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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검색결과

  •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 우수한 의정활동으로 이어져!
    2017년 정유년의 시작, 한해를 가득 채운 우수한 의정활동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제8회 부산광역시의장협의회 지방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한 박성윤 의원이 바로 그 사람이다. 이에 주간인물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을 잃지 않는 사람, 박성윤 의원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Q. 영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의원님은 어떻게 정치에 입문하게 되셨는지요? A. 저는 영도에서 50년을 넘게 살았습니다. 영도는 제가 학창시절을 보내고 형제들이 뿌리내린 삶의 터전입니다. 제게 주민들은 형이자 누이 같은 살가운 이웃들입니다. 그러니 영도에 대한 애정이 깊을 수밖에요.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바꾸겠다는 순수한 열정, 그것이 저를 정치로 이끌었고 또 행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영도를 시작으로 성장한 큰 정치인들을 많이 지켜봐왔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처음 약속과 달리 하나같이 영도를 떠나고, 누구도 책임지려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책임지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의 삶의 터전인 영도를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Q. 그간 발로 뛰는 의정활동으로 많은 관심을 얻으셨습니다. 그간 의정활동 중에 의원님이 가장 의미 있다고 평가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A. 의정활동 중에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죠. 조례재정, 예산심의, 행정사무감사 등 지방의원으로서 해야 되는 일들이 많지만, 그 중에도 저는 의회의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는데 보탬이 된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야권 성향 정치인으로 제6대 의원으로 당선된 이후로 의회 내부의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루어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의원님들과 함께 행정부의 감시와 견제를 잘 하는 의회, 지역 현안을 꼼꼼하게 따지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의회. 오늘날의 건강한 영도구의회를 만들어가고 있다는데 보람을 느낍니다. Q. 주민들의 민원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걸로 압니다. 민원을 잘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면요? A.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요. 편안한 동네오빠, 친한 동생 같아야 주민들이 스스럼없이 어려운 애기를 할 수 있거든요(웃음). 작은 민원이라도 주민들의 어려움을 듣고 잘 해결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설사 제가 쉽게 해결해드릴 수 없는 문제라도,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하면 결과를 떠나서 주민들이 흡족해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태도가 중요한 거죠. 앞으로도 주민들의 삶을 살피고, 지역 발전을 위해서 더 열린 태도로 다가가겠습니다. Q. 지역 발전을 위해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주요 현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A. 80년대 영도의 인구가 약 25만 명이었는데, 현재는 많이 줄어서 약 13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인구가 많이 준만큼, 한편으로는 고령화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영도의 재정자립도는 9% 정도로 타 시·군구와 비교해도 굉장히 열악한 상황이에요. 고착화되어 있는 지역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문화·관광에 특화되어 있는 도시로 발전시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영도는 대한민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관광지입니다. 태종대, 해양박물관, 영도다리 등 우수한 관광자원이 있고 최근에는 부산항대교 개통으로 접근성도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그냥 영도를 둘러보고 스쳐가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이는 보고, 놀고, 즐길 거리가 부족하고 관광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동삼하리 지구 개발과 영도다리 인프라 구축 사업 등이 잘 연결되어 제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 동삼하리지구 개발은 문화관광부의 허가로 고도제한이 풀린 상태이고, 대기업들의 참여로 성공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Q. 끝으로 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초심을 잃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뽑아주신 것은 주민들이 저의 열정과 진정성을 높이 평가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의회와 집행부와 함께 소통하면서 지역의 각종 현안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겠습니다. 앞으로 지역 주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 지역 공동체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 뛰겠습니다. 이런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저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있습니다. 프로필 대한민국 특수임무 국가유공자 해군첩보부대(UDU)중앙회 부회장(전) 부산광역시 영도구의회 6,7대 의원 영도구의회 7대 전반기 복지건설위원장 영도구 도시계획위원회 운영위원(현) 영도발전연구소 운영위원(전) 영도구 공직자윤리위원회 운영위원(전) 영도구 연안연구센터 운영위원(전) 영도구 관광진흥위원회 자문위원(현) 영도구 도서관 운영위원회 운영위원(전) 노무현재단 지방자치 연구위원(현) [1007]
    • 정치
    2017-02-20
  • ‘한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 이젠 행동하는 정치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부산광역시의장협의회 지방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한 김태수 의원은 진심으로 진심을 구하는 사람이다. ‘한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겠다’며 자리에 연연하기보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풀뿌리민주주의부터 실현해야한다는 그의 말에는 큰 울림이 있다. _박미희 기자 Q. 평소 ‘한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말씀을 자주하신 걸로 압니다. 김태수 의원님은 어떻게 정치에 입문하게 되셨나요? 자신의 정치철학이 있다면요? A.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길을 따르고 싶었습니다. 그간 시민단체 활동으로 정치참여를 하다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을 계기로 현실정치에 나서야겠다는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풀뿌리 민주주의부터 실현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부산에서 3번의 도전 끝에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10년 세월 동안, 만난 수많은 유권자들과 함께 나눴던 고민, 그리고 지역의 많은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번 제대로 일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자리에 연연하기 보다는 ‘한번을 해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Q. 그간 의정활동을 뒤돌아보셨을 때 스스로 가장 보람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A. 이제는 의원들 스스로가 기득권이나 권위주의를 내려놓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외 연수를 통해 견문을 넓히고 그것이 우수한 의정활동에 보탬이 되는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의원들의 일탈로 주민들의 혈세가 낭비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어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일탈행위 및 개인행동 금지’를 주요로 하는 ‘부산진구의회 의원 행동강령 조례안’을 발의했습니다. 그리고 의원들의 업무추진비 명목의 예산들을 30% 정도 삭감하므로써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Q.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지역구 현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A. 부산진구의 가장 시급한 현안은 바로 재계발문제입니다. 산적해 있는 재계발 문제는 때론 지역발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주민들의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재계발이 되지 않아 슬럼화된 지역의 취약한 방범 실태는 주요한 민원 사항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기업의 책임계발이 중요합니다. 한번 재계발지역으로 정해지면 공적인 자금이 지원될 수가 없어요. 재계발지역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매몰비용을 지불해야하지만, 이를 갚을 능력이 없는 협동조합이 많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에서 한시적으로 기업에 다른 혜택을 주고 매몰비용을 감당하게 했는데, 이를 더 늘려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합니다. Q. 김태수 의원님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지역을 떠나는 정치인들이 많죠. 하지만 저는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시민단체를 통해서 지역 발전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밀알이 되어 뿌려놓은 이 새로운 가치를 전하는데 보탬돼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각계 계층의 민의가 정책으로 반영되고, 다양한 인재가 나와야 여당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제가 오랫동안 몸 담아온 부전시장 상인회를 비롯한 다양한 시민단체의 참여를 통해 행동하도록 하겠습니다. Q. 끝으로 주민들과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정치인은 좋은 아버지가 되기 상당히 어려운 직업이더라고요(웃음). 정치에 입문한 뒤로 항상 바쁜 활동 때문에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한 살 된 아이를 엎고 봉사활동을 하던 저를 기억하고, 여전히 응원해주시는 많은 주민들에게 실망시켜드리지 않는 정치인.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 김태수가 되고 싶습니다. [1007]
    • 정치
    2017-02-17
  • 주민들의 삶을 살피는 ‘진심’, 우수한 의정활동으로 이어져!
    2017년 정유년의 시작, 한해를 가득채운 우수한 의정활동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의성군내 최다득표로 재선에 성공하고, 2016년 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한 김영수 부의장이 그 사람이다. 이에 주간인물은 발로 뛰는 의정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김영수 부의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주요 의정활동과 지역의 주요현안을 담았다. _박미희 기자 Q. 그간 발로 뛰는 의정활동으로 많은 관심을 받으셨습니다. 다양한 의정활동 중에 의원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A. 의정활동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법의 맹점이나 미비점 때문에 제대로 권리행사를 못하는 주민들을 만날 때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주민들을 만나며 민원을 직접 듣고 챙기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조례제정, 예산심의, 행정사무감사 등 지방의원으로서 많은 활동이 있지만 그중에서 주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챙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욕구와 불편함이 무엇인지 알아보며 삶의 면면을 챙기고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주민들의 삶이 개선되고, 지역이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발로 뛰는 의정활동을 펼쳐나가겠습니다. Q. 의원님은 최다득표로 재선에 성공하셨고, 2016년 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그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소회와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A. 저를 지지해주신 주민들 여러분들에게 우선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제가 이렇게 과분한 상을 수상한 것은 저에게 믿음을 가지고 많은 의견을 개진해주신 주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부족하니까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더 열심히 발로 뛰는 의정활동을 펼치라는 뜻으로 알고,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Q.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지역구 현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A. 지역구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상수도 문제입니다. 저의 지역구 지하수는 석회질과 철분의 함량이 너무 많아서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합니다. 먹는 물은 주민들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고,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은 주민들의 권리이기에 중요성이 큽니다. 제 공약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공약이 바로 이 상수도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임기동안 노력한 결과 일부 지역은 문제를 해결하였지만, 아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지역도 하루라도 빨리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노력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Q. 36년 공직생활을 통틀어 의원님의 삶의 지침이 되었던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A. 제 좌우명은 ‘힘들지만 정직하게 하자’, ‘잘못하면 즉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자’입니다. 공직생활과 의원직을 수행하면서 소신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해서 안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은 어렵더라도 꼭 하는 사람이 되자’는 삶의 지침을 지켜왔습니다. 앞으로도 저를 지지해주신 많은 주민들의 기대와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의정활동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2017년 새해, 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저물고 2017년 정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를 돌이켜 보면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인 혼란기에 민생은 어렵고, 대한민국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내가 잘못했을 때 안타까운 마음으로 토닥여 주고, 힘들 때 위로와 용기를 주신 믿음직한 주민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지역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바쁘고 힘들수록 원칙을 지키고 서로 믿고 도우며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때, 또 한분 한분이 가정과 직장과 일터에서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가정이 바로서고 지역이 발전하며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지역발전과 주민을 위한 의정활동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김영수 부의장님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군단위에서는 상대적으로 교육혜택을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잠시였지만 학교 행정실장(6년 6개월)으로 근무하면서 열악한 교육환경이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교육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과 머리를 맞대어 지역의 우수한 인재들을 키워낼수 있는 좋은 환경과 토대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웅군인 의성군을 이끌어나갈 동량을 키워내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주요 경력 의성군 금성면, 춘산면사무소 근무 안동시 대신동사무소 근무 의성군청 근무 의성군 탑리여자중학교 행정실장 한국자유총연맹 의성군지부 운영위원 명예통역(일어)관광 안내원 생활체육 경북 탁구연합회 부회장 제6대 의성군의회 후반기 산업건설위원장 국민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등급판정위원(현) 금성중학교 총동창회장(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현) 제7대 의성군의회 후반기 부의장(현) 의성교육지원청 학교 체육협의체 위원장(현) 의성교육지원청 학교 행정협의체 위원(현) [1006]
    • 정치
    2017-02-01
  • 2016년 한해를 꽉 채운 의정활동 “시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 지역발전을 위해 뛰겠습니다!”
    2016년 한해를 갈무리하는 요즘, 올 한해 우수한 의정활동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15년 우수의정 대상, 16년 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하고, 16년 대구참여연대 · 대구YMCA가 꼽은 우수의원으로 선정된 최광교 의원이 바로 그 사람이다. 이에 주간인물은 발로 뛰는 의정활동으로 주목 받고 있는 최광교 의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2016년 주요 의정활동과 지역의 주요 현안을 뒤돌아보았다. _박미희 기자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Q 올 한해, 발로 뛰는 의정활동으로 많은 관심을 받으셨습니다. 올해 진행하셨던 주요 의정활동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지난해에는 주로 달빛고속도로 명칭제안 등 대구시의 위상과 관련되는 정책제안이나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 등 인접 광역 및 기초지방자치단체와의 상생 및 교류협력과 관계되는 대외적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을 해왔지만, 올해는 대구시정과 관련해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정책을 입안하는 등 주로 내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의정활동을 수행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미래전략과제 발굴 및 육성조례안을 대표발의해 대구시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선도하고 지역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고, 항상 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소방공무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공사·공상 소방공무원에 대한 지원을 위한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또한 전기자동차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전기자동차의 보급 촉진과 이용 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제정해 전기자동차의 보급을 활성화하고 지역 자동차부품산업이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총 8건의 조례를 제·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북구와 달서구가 교육국제화 특구로 지정되었지만 지정된 지 4년이 넘도록 당초 계획의 0.001%도 추진되지 못한 교육국제화 특구에 대한 대구시의 주도적 추진을 요청하고, 관광산업 및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팔공1번 버스노선 등 버스노선개편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올해 초에는 반복되는 전통시장화재의 위험성을 알리고 재발방지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서문시장 4지구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해 대구시가 좀 더 적극적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더라도 대형화재를 미연에 방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나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Q 15년 우수의정 대상, 16년 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하고, 16년 대구참여연대·대구YMCA가 선정한 우수의원으로 선정되셨는데 그 소회와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A 2015년에는 전국시도의장협의회에서 주는 우수의정대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청소년 관련 정책에 기여한 공로로 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9월에는 대구참여연대와 대구YMCA가 선정한 우수의원에 선정되고 발의한 조례와 질의가 좋은 조례와 좋은 질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좋은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시민여러분께서 저를 통해 의견을 개진해 주신 결과이며 항상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신 지역주민들과 시민여러분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과분한 상을 받게 된 것은 앞으로 더 잘해달라는 채찍으로 알고 시민여러분의 눈과 귀가 되고 또 손과 발이 되어 지역이 발전되고 지역민이 행복해 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지역구 현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A 북구지역은 한때 대구의 중심이었던 지역과 칠곡 같은 신흥개발 지역으로 구분됩니다. 그렇다보니 한편으로는 도심재생사업과 같이 지역을 재정비하고 재개발하는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신흥개발지역에는 부족한 인프라를 채워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특히 제 지역구 현안사업으로는 도청이전터에 대한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인근 지역을 활성화 시키는 도정이전터 개발사업과, 도심공단인 3공단 리노베이션을 통해 노후화된 도심공단인 3공단을 시대에 맞게 역할을 재설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시민운동장 종합스포츠타운과 옛 제일모직 자리에 들어서는 창조경제 단지 조성 등을 통해 지역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 넣고 고성동 등 인근지역의 주거환경 개선사업과 재개발 추진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옥산로·호암로 명품거리 조성과 하중도 개발도 지역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할 대상 사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Q 2016년을 갈무리하는 지금,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2016년도 한해를 돌이켜 보면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은 한해였습니다. 북한은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며 핵을 통한 전쟁위협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트럼프대통령 당선자는 자국이익을 중심으로 국제구도를 재편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대한민국은 대통령탄핵이라는 정치적 환란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이런 어지러운 시기에도 우리 대한민국이 굳건하게 버틸 수 있는 것은 내 고장과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지역주민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한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유년 새해에는 시민 여러분들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다시 한 번 기원 드립니다. 학 력 성광고등학교 졸업 경일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경북대학교 정책정보대학원 졸업(석사) 경 력 제7대 대구광역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 위원장(현) 대구광역시 공직자 윤리위원회 위원(현) 대구 광주 달빛동맹 민관협의회 위원(현) 성광고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현) 경일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현) 경북대학교 총동창회 이사(현) 바르게살기 북구협의회 자문위원(현) 국민건강보험 대구 북부지사 자문위원(현) 대구시의회 대구 경북 상생특별위원회 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북구협의회 부회장 대구시립 북부도서관 운영위원 (사)한국청년지도자연합회 대구강북지회 3대 회장 제7대 대구광역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 간사 제7대 대구광역시의회 의원 제6대 북구의회 의장 제5대 북구의회 의원 [1003]
    • 정치
    2016-12-22

경제 검색결과

  • “많은 시민들과 엘리트 체육인들이 마음 놓고 농구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최근 최준규 세무사가 제11대 김해농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남다른 고향 사랑과 농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그의 진정성 있는 행보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에 주간인물은 농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애쓰고 있는 최준규 회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최근 제11대 김해농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최준규 회장은 농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규모가 작아 사무실을 두지 못했던 협회의 사정을 알고 자신의 사무실을 사무국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최근에는 김해농구협회 현판식을 진행했다. 이렇듯 최 회장의 농구사랑은 각별하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농구와 인연을 맺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해외영업팀에서 일하다 프로농구단 사무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것. “저는 어려서부터 농구를 좋아했어요. 대학 때 농구동아리 활동을 했고, 스포츠 마케팅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사내공모에서 농구단 외국선수 통역을 뽑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지원을 했죠.” 그렇게 그는 현대전자농구단이 KCC농구단으로 재창단 이후 1년 반 동안 재키존스 등 용병선수의 통역과 지원 업무를 맡았다. 그 당시만 해도 국내 프로농구단의 지원시스템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선진 스포츠 마케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그가 느낀 현실과의 이상과의 괴리는 컸다. 이후 사고와 과로가 겹치고 허리 디스크 수술까지 받게 되면서 그는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바로 세무사 시험에 도전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 그렇게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10여 년 전 김해로 내려와 세무회계사무소를 개업했다. 그가 운영하는 최준규세무회계사무소는 김해에서 재산세제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 세무회계사무소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해는 부동산 개발지역이 많아서 재산세제와 관련된 일들이 많아요. 김해에 내려와 관련된 일들을 시작해 계속 이 분야의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 폭넓은 경험과 전문성으로 재산세제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 세무회계사무소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죠.” 10년의 세월동안 변함없이 인연을 맺어온 의뢰인부터 적극적으로 주변 지인을 소개해주는 사람까지…….그가 의뢰인과 좋은 인연을 맺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몇년 전 일을 맡겨주신 의뢰인들의 사소한 사안들도 다 기억을 해요. 소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의뢰인들은 그런 관심을 참 고마워하세요. 의뢰인들이 놓칠 수 있는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히 챙기는 노력, 그것이 의뢰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이 속담은 절세에도 적용된다. 그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경우도 이미 부동산 등기를 마친 후 자신을 찾는 의뢰인들을 만날 때라고. “부동산 등기가 완료되면 세무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요. 부동산 매매를 하기 전에 전문가를 찾아 상담을 받으시면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까지 세금을 절세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 전문가를 찾아 세무 서비스를 받는 의뢰인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절세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최준규 세무사.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의뢰인에 대해 묻자, 그는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최근에 세법이 많이 개정되고 있는 추세에요. 농지에 대한 감면세액이 1년 한도액 2억에서 1억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제 의뢰인이 토지 매매 시기를 조정해서 큰 절세 효과를 얻었죠. 단순한 매매연도 조정만으로도 큰 절세 효과를 얻은 케이스죠.” 진심으로 의뢰인을 대하는 그는 요즘 사회공헌 활동에도 열심이다. ‘이웃과 함께 나눌수록 도리어 받는다’는 선순환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이번 김해농구협회 회장 취임도 이런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이라고.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지역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어 참 기뻐요(웃음). 김해는 경남권에서 비교적 우수한 선수를 배출할 수 있는 학교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아 선수 육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협회 차원에서 우수한 선수 육성을 위해서 지속적인 지원을 계속해나가겠습니다. 더불어 더욱 많은 시민들이 생활체육으로 농구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그는 앞으로 지역에서 농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역 농구대회를 자주 개최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수한 선수 육성을 위해 지속적인 지원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김해 농구발전을 위해 앞으로 ‘소통’과 ‘화합’의 정신으로 조직을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두 조직이 하나 되어 시작한 만큼, 조직의 화합과 소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김해 농구발전을 위한 다양한 일들을 해나가겠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시민들과 엘리트 체육인들이 마음 놓고 농구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최근 제11대 김해농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최준규 회장은 농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규모가 작아 사무실을 두지 못했던 협회의 사정을 알고 자신의 사무실을 사무국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최근에는 김해농구협회 현판식을 진행했다. 이렇듯 최 회장의 농구사랑은 각별하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농구와 인연을 맺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해외영업팀에서 일하다 프로농구단 사무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것. “저는 어려서부터 농구를 좋아했어요. 대학 때 농구동아리 활동을 했고, 스포츠 마케팅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사내공모에서 농구단 외국선수 통역을 뽑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지원을 했죠.” 그렇게 그는 현대전자농구단이 KCC농구단으로 재창단 이후 1년 반 동안 재키존스 등 용병선수의 통역과 지원 업무를 맡았다. 그 당시만 해도 국내 프로농구단의 지원시스템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선진 스포츠 마케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그가 느낀 현실과의 이상과의 괴리는 컸다. 이후 사고와 과로가 겹치고 허리 디스크 수술까지 받게 되면서 그는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바로 세무사 시험에 도전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 그렇게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10여 년 전 김해로 내려와 세무회계사무소를 개업했다. 그가 운영하는 최준규세무회계사무소는 김해에서 재산세제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 세무회계사무소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해는 부동산 개발지역이 많아서 재산세제와 관련된 일들이 많아요. 김해에 내려와 관련된 일들을 시작해 계속 이 분야의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 폭넓은 경험과 전문성으로 재산세제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 세무회계사무소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죠.” 10년의 세월동안 변함없이 인연을 맺어온 의뢰인부터 적극적으로 주변 지인을 소개해주는 사람까지…….그가 의뢰인과 좋은 인연을 맺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몇년 전 일을 맡겨주신 의뢰인들의 사소한 사안들도 다 기억을 해요. 소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의뢰인들은 그런 관심을 참 고마워하세요. 의뢰인들이 놓칠 수 있는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히 챙기는 노력, 그것이 의뢰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이 속담은 절세에도 적용된다. 그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경우도 이미 부동산 등기를 마친 후 자신을 찾는 의뢰인들을 만날 때라고. “부동산 등기가 완료되면 세무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요. 부동산 매매를 하기 전에 전문가를 찾아 상담을 받으시면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까지 세금을 절세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 전문가를 찾아 세무 서비스를 받는 의뢰인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절세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최준규 세무사.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의뢰인에 대해 묻자, 그는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최근에 세법이 많이 개정되고 있는 추세에요. 농지에 대한 감면세액이 1년 한도액 2억에서 1억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제 의뢰인이 토지 매매 시기를 조정해서 큰 절세 효과를 얻었죠. 단순한 매매연도 조정만으로도 큰 절세 효과를 얻은 케이스죠.” 진심으로 의뢰인을 대하는 그는 요즘 사회공헌 활동에도 열심이다. ‘이웃과 함께 나눌수록 도리어 받는다’는 선순환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이번 김해농구협회 회장 취임도 이런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이라고.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지역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어 참 기뻐요(웃음). 김해는 경남권에서 비교적 우수한 선수를 배출할 수 있는 학교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아 선수 육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협회 차원에서 우수한 선수 육성을 위해서 지속적인 지원을 계속해나가겠습니다. 더불어 더욱 많은 시민들이 생활체육으로 농구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그는 앞으로 지역에서 농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역 농구대회를 자주 개최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수한 선수 육성을 위해 지속적인 지원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김해 농구발전을 위해 앞으로 ‘소통’과 ‘화합’의 정신으로 조직을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두 조직이 하나 되어 시작한 만큼, 조직의 화합과 소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김해 농구발전을 위한 다양한 일들을 해나가겠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시민들과 엘리트 체육인들이 마음 놓고 농구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1008]
    • 경제
    2017-03-02
  • 부동산에 관한 모든 솔루션을 한번에! - 선진 부동산 문화를 이끄는 리딩컴퍼니 ‘(리맥스) 더 킹스’
    한번이라도 부동산 매매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부동산 계약만이 이뤄졌다고 능사는 아닌 일. 세무, 법률, 금융 등 부동산 거래에 따른 일들이 어디 하나, 둘인가. 이제는 이곳저곳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는 일이 지쳤다면.... 부동산과 관련된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업용 부동산 전문기업, (리맥스) 더 킹스를 찾아가보라. 부동산에 관한 모든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든든한 조력자를 만날 수 있을 테니! _박미희 기자 “선진 부동산 문화를 리드하는 리딩컴피니를 만들고 싶어요!” 환하게 웃는 천경훈 대표. 그는 부동산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부동산 업계에 입문해 10여 년 동안 실력있는 부동산 전문가로 이름을 알렸다. 부동산 전문가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창업에 도전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부동산은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사업입니다. 선진국에 비해 한국 부동산 시장은 정체되어 있어요. 부동산 중개에 국한되지 않고 컨설팅, 세무, 법률, 금융 등 부동산과 관련된 전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진 모델을 만들고 싶어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2012년 (리맥스) 더 킹스를 법인화했다. 상업용 부동산을 비롯해 중소형 빌딩, 건물, 토지매각, 임대차 컨설팅 등 다양한 사업 분야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에 특화되어 있는 서비스로 주목을 받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은 부동산 시장의 꽃이죠.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특화된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층이 있지만, 주로 미국과 유럽의 대기업에서 거의 독점화해온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고객들의 ‘Needs&Wants’에 발맞춰 한국 실정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했습니다.” 부동산에 관한 모든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든든한 조력자. (리맥스) 더 킹스는 부동산 중개에 국한되지 않고 컨설팅, 세무, 법률, 금융 등 부동산과 관련된 전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부동산 자산관리(PM) 등 고객 맞춤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전속 계약을 맺은 대리인으로서 고객의 소중한 자산을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 하나까지 챙기는 세심함과 뛰어난 전문성으로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이어나가겠습니다.” 2016년 (리맥스) 더 킹스는 미국의 본사를 둔 세계적인 부동산 컨설팅업체 리맥스(RE/MAX)와 ‘chain agreemaent’를 체결했다. 전 세계 100여개 국에 진출한 글로벌 부동산 기업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선진 부동산 기업의 모델을 만들고 있는 것. “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부동산 프랜차이즈 사업을 했었어요. 누구도 도전하지 않는 분야에 도전하다보니, 어려움이 크더군요. 선례나 롤모델이 있으면 좋을 텐데하는 안타까움이 늘 있었죠. 그래서 세계적인 부동산 컨설팅 기업과 체인 계약을 통해 그들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습니다. 이를 적용해 한국의 실정에 맞는 선진 부동산 사업 모델을 만들고 있어요.” (리맥스) 더 킹스의 또 다른 장점은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인재들이 많다는 점이다. “저는 늘 말해요. ‘직원들의 고객이 고객이라면, 제 고객은 바로 직원’이라고(웃음). 어렵게 얻은 노하우를 전수해주지 않아, 어깨 너머로 일을 배워야하는 업계의 관행이 안타까웠어요. 저는 인재를 키워 훗날 경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뛰어난 인재를 뽑아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부동산 전문가로 키워내고 있어요. 직원들의 뛰어난 실력이 곧 고객 만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젊은 기업, (리맥스) 더 킹스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4월, 부산·경남 지역 최초로 임대(차)인의 요구 사항을 적극 반영한 사무실 임대 전문 브랜드 ‘오킹(오피스 킹)’을 출시할 예정이다. “실제로 공실율이 높아 속을 태우는 건물주 분들이 많으세요. 한편 사무실을 이전하는 분들도 꼼꼼히 따져보지 못하고 사무실을 이전해 뒤늦게 후회하는 분들도 많으시고요. 이렇게 임대인과 임차인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 좋은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게하는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것입니다.” 환하게 웃는 천경훈 대표. 그는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이다. 그가 만들어갈 새로운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리맥스) 더 킹스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부동산 기업을 일구는 것이 꿈입니다. 부동산 전문가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업,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건실한 기업을 일구고 싶어요. 한국 부동산의 선진 모델을 제시하는 기업, (리맥스) 더 킹스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 [1008]
    • 경제
    2017-03-02
  • 부산 118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 독보적인 기술 경쟁력으로 인정받는 강소기업
    최근 부산 118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한 유승관 대표이사는 나눔을 실천하는 건실한 기업가다. 해외수입에 의존하던 대형발전기부품(COIL WEDGE)의 국산화에 성공해 국내 산업발전에 기여를 하고 있다.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강소기업 (주)삼일육스틸을 일군 그는 차세대 엔지니어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고 있다. _박미희 기자 “어려운 이웃들에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쁩니다. 나눌수록 되려 받는 행복, 이젠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환하게 웃는 유승관 대표이사. 그는 터빈 및 발전기부품(SPRING, COIL WEDGE) 제조를 주력으로 하는 (주)삼일육스틸을 경영하는 건실한 기업가다. 그는 부산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특수강을 개척한 삼미종합특수강(주)에서 13년 동안 일하며 철강산업 분야에서 실력 있는 전문가로 인정을 받았다. 이후 광진실업(주)에서 5년 동안 철강유통과 경영전반의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특수강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로 이름을 알리던 그가 (주)삼일육스틸을 창업한 건 2001년. 수십 년간 쌓아온 철강산업의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강소기업을 일구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주)삼일육스틸은 화력 및 원자력 발전소의 발전기에 사용되는 핵심부품인 고강도 비자성 스테인리스강 코일웨지, 증기터빈 및 가스터빈에 사용되는 고강도 특수합금 스프링 등 수십 여종을 제조해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두산중공업, TOSHIBA, GE 등 국내외 유수의 대기업들과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맺어오며 실력을 인정받아온 것. 이런 신뢰의 근간은 해외수입에 의존하던 기술의 국산화에 성공한 독보적인 기술력에 있다. “코일웨지는 화력,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되는 발전기의 핵심부품입니다. 그동안 해외에 의존하던 이 기술을 광진실업과 함께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해외 기술 의존도가 높은 소재산업 분야에서 국내기술로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우수한 품질과 뛰어난 가격 경쟁력은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비결이다. 평소 ‘다른 것은 양보해도, 결코 품질만은 양보하지 못한다!’는 그의 지론은 품질경영에 대한 철학을 말해준다. “코일웨지는 발전기의 핵심부품입니다. 이 작은 부품 하나가 잘못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손해비용은 거의 천문학적입니다. 그러니 파트너들도 단순히 가격이 아닌 제품의 품질을 우선으로 파트너를 정하죠.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우수한 품질과 뛰어난 가격 경쟁력은 글로벌기업과 꾸준한 신뢰관계를 쌓아온 우리의 저력입니다.” 철강산업분야의 전문가로 작지만 내실 있는 강소기업을 일구기까지……. 엔지니어로서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저는 제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웃음). 기회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잡을 수 있다고 하죠. 제가 특별히 특출하였기보다는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노력해온 시간들이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분야에 비전을 봤고, 또 주저지 않고 도전했습니다. 그 결과, 수입에 의존하던 기술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외형에 집착하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며 기업이 나아가야할 좋은 방향에 대해 고심해왔어요. 무엇보다 내일처럼 회사 일을 하는 좋은 직원들과 함께하는 것, 그것이 제가 회사를 잘 이끌어올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꿈은 목표를 정하고 하루하루 노력하는 자의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그는 생활에서 실천해왔다. 40대에 마라톤을 시작해 보스턴 마라톤, 베를린 마라톤 등 유명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고, 100km를 뛰는 울트라마라톤까지 완주했다. 50살이 되는 해에는 철인3종 킹 코스에 도전해 성공하는 등 나이를 잊은 열정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기업경영만큼이나 그는 사회공헌 활동에도 열심이다. 오랫동안 모교에 장학금을 기탁해왔고 사회봉사단체의 후원을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최근에는 부산 118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실천했다. “저도 어려울 때 주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고 싶었어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조금이나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쁩니다.” 엔지니어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고 있는 유승관 대표이사. 끝으로 그에게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에 대해 묻자, 그는 선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는 착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게 어렵죠(웃음). 하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노력을 다한다면 분명 비전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국내기술이 아닌 해외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기술들이 많습니다. 청년들이 이런 분야에 도전해서 자신들의 성공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또 다른 마라톤입니다” [1008]
    • 경제
    2017-03-02
  • “일도 삶도 미쳐야, 미치죠” 1% 가능성으로 100%를 완성하는 돈키호테
    2017년 새해 초, 따뜻한 나눔을 전하는 사람 신인규 대표이사를 만나러 밀양으로 향했다. 밀양 시청 앞에 있는 (주)도서출판 밀양에서 만난 신인규 대표이사는 작업복 앞치마 차림 그대로였다. 작지만 다부진 체격과 밝은 표정이 인상적인 그는 특별한 사람이다. 도서출판, 인쇄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그는 경남 4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자, 심청장학회 이사장으로 적극적인 사회공헌을 펼쳐온 인물이다. 이렇듯 그는 밀양의 독지가이자, 출판·인쇄업계에서 참신한 도전을 한 인물로 주목을 받고 있다. _박미희 ­­기자 몇 년 새 문을 닫은 대형 출판업체가 줄을 이을 정도로 도서출판업계의 불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돈을 버는 일과 거리가 있는 일을 생업으로 삼으면서 그는 어떻게 꾸준히 기부활동을 해올 수 있었을까. 이쯤 되면 타고난 금수저는 아닌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신인규 대표이사는 요새 보기 드문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그의 고향은 경남 밀양, 송전탑 문제로 아픔을 겪었던 부북면 화악산 아래 평밭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나이 마흔 일곱에 저를 보셨어요. 어려운 형편에 저를 낳으셨으니 자식 뒷바라지가 힘들었지요. 워낙 연로하실 때 저를 낳으셨으니 어머니 젓 대신에 암죽을 먹고 자랐어요. 그래도 타고난 건강 체질과 강인한 정신력을 제게 물려주셨죠. 어찌나 산골인지 학교를 가려면 1시간 30분이 넘게 걸었어야 됐어요. 오가는 길에 진을 다 빼니, 공부에 집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부모님께 부담을 안 드리려고 밀양전문대(현 부산대 밀양캠퍼스)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으려고 그는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장학금을 받아서 학비를 댔다. “대학교 다닐 때 밤에 은행 청원경찰로 일을 했어요. 밤새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받은 장학금을 모아 부모님 용돈을 드렸지요. 그때 일하면서 읽은 책들이 평생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건실한 중견기업 ㈜한국화이바에 취직을 한다. 그 특유의 근면성실함과 실력은 업계에서 소문이 날 정도였다.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고, 새벽 5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가 돼야 퇴근을 했죠.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하다 보니 회사에서도 저를 인정해주더라고요. 하지만 3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화이바의 신인규가 아니라, 신인규의 신인규가 되고 싶다.’ 그래서 수중에 있는 단돈 몇 푼을 가지고 창업을 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창업을 준비하게 된다. 평소 가장 애정이 있었던 책과 관련된 사업을 구상했다. “우리 인생은 종이로 시작돼 종이로 마무리 됩니다. 원래는 제지업을 하려고 했는데 큰 자본이 필요해서 대신 인쇄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 단돈 60만원을 가지고 창업을 했어요. 기계를 리스해서 사놓고 혼자서 기계를 돌려보려고 하니까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마산 인쇄 골목으로 가서 일을 도와주며 어깨 너머로 일을 배웠습니다. 인쇄업계는 원래 기술을 잘 안 가르쳐주기에 일하는 도중에 기계가 돌아가는 걸 몰래 지켜보고 돌아와서 혼자 해보고, 그렇게 수없이 반복해서 일을 배웠지요.” 그는 1993년 단돈 60만원을 밑천으로 (주)도서출판 밀양을 창업한다. 창업할 때 그가 시작한 또 하나의 사업은 바로 심청장학회 사업이다. “제가 필요하면 남도 필요할 거란 생각. 그 생각에서 기부를 실천하게 되었어요. 제가 도움이 절실할 때 장학금을 받았으니 다시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창업을 할 때 장학사업을 함께 시작했어요.” 특유의 근면성실과 꼼꼼한 일처리로 창업 이후 그는 성공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IMF 외환 위기의 어려움은 그에게도 어김없이 닥쳐왔다. 거래처의 부도로 연쇄부도를 맞게 된 것. “외주를 주면서 받은 어음으로 결제를 했는데, 그게 돌아와 2억 6천만 원의 부도를 맞았습니다. 회사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는데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일했죠. 10만 원짜리 일이 들어오면 인건비 1만원을 남기고, 나머지는 은행에 넣고……. 아내와 저 직원 한명. 세 명이서 정말 절실하게 일했어요. 제 사정을 아는 주변 분들이 많이 일을 맡겨주시더라구요. 그때 내가 참 잘 살았구나하는 고마운 생각이 들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비싼 인생 공부를 했구나 싶어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그는 다시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 2013년 지금의 사옥으로 이전했고 밀양 외에 타 지역에서 많은 거래처를 보유하고 있다. ‘당신의 상상을 인쇄해드립니다’는 사훈처럼 고객에게 최고의 만족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인쇄업계의 불문율인 최소 수량이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손해가 따르지만, 그는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당신의 상상을 인쇄해드립니다. 이 사훈처럼 고객이 생각하는 무엇이든 그것을 현실화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고객에 맞춰 디자인도 종이도 인쇄방식도 모두 다르게 하고 있어요. 사실 최소 수량이 없으면 일손이 많이 들고, 때론 손해를 많이 보기도하지만 고객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죠. 손해는 보지만 고마워하는 손님들이 소개를 해주셔서 일이 끊이지 않아요.” 인맥에 기대지 않고, 영업을 하지 않아도 고객들의 소개로 자연스럽게 거래처가 늘어났다. 현재 전국에 500곳이 넘는 거래처를 두고 있고, 20년이 넘게 거래해온 거래처만 200곳이 넘는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그가 작업용 앞치마를 입고 인쇄기계 앞에 선다는 점이다. “저는 하루에 4시간만 자요.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은 더 바쁘게 살아야죠. 저는 일에 삶에 미쳐있는 사람입니다.” 일에 미쳐있는 것만큼 그는 봉사에도 미쳐있다. 창업과 함께 시작한 심청장학회는 20여 년간 약 250여명의 학생들에게 누적장학금 7억 원을 전달했다. 2015년, 경남 4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해 1억 원 기탁을 약정했다. 꾸준하게 밀양시 장학회에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다. “심청장학회에서 장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은 공부가 아니에요. 공부는 잘 못하지만 예의바르고 착한 학생, 꿈이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선정대상입니다. 공부는 못하지만 꿈이 있는 바른 학생은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해요. 장학금이 단순히 경제적인 지원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지지해주고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요. 그게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온 가족이 장기기증을 약속했고, 보호관찰소 사회봉사 감독으로 활동하며 소외되고 어려운 환경 속에 있는 청소년들을 돕고 있다. 그가 요즘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는 바로 미혼모 문제다. “저는 미혼모라는 말이 싫어요. 미혼모를 만드는 것은 남자에요. 미혼모라는 말 자체가 사회적 차별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청소년들이 더 좋은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들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사업들을 추진할 수 있는 법령 개정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느티나무경상남도장애인부모회 밀양시지부에 후원회 총무를 맡아 성인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저는 성인장애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해주는 터전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장애인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자체적으로 교육과 의료·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국가기관 성격의 장애인복지센터를 마련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서 필요한 500억 원의 예산 마련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를 이어 (주)도서출판 백년인쇄를 이끌어갈 차기 인쇄쟁이인 아들 신재우 씨와 함께 기부금을 기탁한 신인규 대표이사 항상 약자 편에 서서 키다리아저씨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신인규 대표이사.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가 건강을 잃지 않는 비결은 걷기다. 술, 담배, 화투, 당구, 골프 등 잡기를 못하는 그는 오로지 걷기로 건강을 유지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평균 15km를 걷는 그는 1년, 365일 동안 약 3650km를 걷는다. 현재 재단법인 한국걷기연맹 산하 ‘워크 아이 경남’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이웃들에게 걷기 운동을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극단 진영에서 중견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랑의 부부합창단(LCC) 합창단원(테너파트)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독실한 카톨릭 신앙인인 그는 천주교 부산교구 밀양본당에서 해설을 담당하고 있다. ‘1%의 가능성으로 100%를 만드는 돈키호테.’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온 사람. 그에게 책을 만드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책을 만드는 일은 징검다리에 돌을 놓는 것과 같아요. 앞서 간 길을 누가 따라온다면 제가 놓은 돌을 밟고 쉽게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제 뒤에 다른 사람이 또 그 사이에 돌을 놓을 테고요. 그러면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길을 따라오리라 생각합니다.” 신인규 대표이사의 길을 잇는 사람은 바로 그의 아들, 신재우 씨다. 어려서부터 인쇄업을 천직으로 알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해온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성장한 아들은 아버지를 닮고자한다. 그래서 사명도 (주)도서출판 밀양에서 (주)도서출판 백년인쇄로 변경할 계획이다. 100년 기업을 만드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인쇄업계의 100년 기업을 만드는 것이 제 소망이에요. 그래야 인쇄 선진국인 일본과 독일을 넘어서 한국의 인쇄기술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뒤를 이어 아들이 더 훌륭하게 해낼 것이라고 믿어요.” “작업복인 앞치마는 자신의 수의”라며 “평생 인쇄공으로 살다, 인쇄공으로 죽고 싶다”는 신인규 대표이사. 그는 언제나 앞치마 차림으로 인쇄기 앞에 설 것이다. 미래를 만들어갈 우리 어린이들이 볼 책을 만들기 위해서, 또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1006]
    • 경제
    2017-02-01
  • ‘대구시 스타기업 선정’ 2017년 새해에 기대되는 기업
    2016년 6월, 1년에 300만 명이 넘게 선택한 제품. 휴대폰 보조 배터리, 에스모도(SMODO)의 히트로 주간인물을 멋있게 장식한 김명용 대표이사. 2017년 새해 짧은 시간 내에 빠른 성장을 하며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명성을 주간인물이 다시 찾았다. 역시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은 하루가 다른 것인가. 대구시 스타기업 선정과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으로 대내외적으로 많은 주목받고 있는 명성은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기업이다. _박미희 ­­기자 자체 기업부설연구소 디자인팀 두고 독자적 기술 개발 ‘삼성SDI 정품’ 셀 사용해 품질 높여 한국, 중국 공장에서 자체 생산 개발부터 납품까지 ‘ONE-STOP서비스’ 명성은 22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판촉물 전문기업이다. 전통적인 사업 분야에서 더 나아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새로운 신(新)성장사업인 휴대폰 보조 배터리 사업에 진출했다. 단순히 휴대폰 배터리 판매에 그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기업부설연구수와 디자인팀을 두고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휴대폰 보조 배터리의 핵심 부품도 삼성SDI 정품 셀을 사용하고, 한국과 중국 심천공장에서 자체 생산을 통해 품질을 높였다. 이렇듯 개발부터 납품까지 한 번에 이뤄지는 ‘ONE-STOP서비스’로 높은 품질을 유지한 것. 이렇게 탄생한 에스모도(SMODO)-K 시리즈는 수많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며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다. 2배 빠른 충전,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한 90%의 고효율을 자랑하는 고품질과 가볍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은 것. 이에 2016년 11월, 대구시 스타기업으로 선정되며, 그 저력을 다시금 증명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으로 뻗어가는 강소기업의 모델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 이런 대내외적인 관심 속에서도 김명용 대표이사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꿈이 있는 기업을 만들어가는 그의 열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타기업에 선정되는 것에 대해 보람과 기쁨이 컸어요. 하지만 한편으론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전통적인 사업 분야에서 더 나아가 휴대폰 보조 배터리 분야라는 신(新)성장사업에서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기에 대구시 스타기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대만큼 앞으로 신(新)성장사업에서 대구를 대표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모든 기업의 역량을 쏟아 붓겠습니다!” 에스모도(SMODO)—K 시리즈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호평! ‘온라인 시장’, ‘무선가전기기 분야’의 비전 보고 새로운 투자 국내 기술로 세계 속에서 인정받는 글로벌 강소기업 꿈꿔 명성의 약진이 돋보이는 것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도전정신 때문이다. 성장 가능성이 무궁한 온라인 시장과 무선가전기기 분야의 비전을 보고 새로운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것. 그리고 IOT(사물인터넷)을 접목한 가전기기 등 신제품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이를 위해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해외 시장 개척으로 바쁜 한해를 보냈다는 김명용 대표이사. 그에게 2017년 새해는 어떤 의미일까. “지금 심정이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하기 전에 출발선에 서 있는 듯 한 느낌이에요. 설레고, 기대되고, 또 한편으로는 떨리는(웃음), 그만큼 새해에는 중요한 일들을 많아요. 2017년은 명성의 새로운 도약의 한해가 될 것입니다. 신(新)성장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해외시장 개척, 그리고 보조 배터리 분야의 리딩 컴퍼니로 우뚝 서는 기틀을 마련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 기술로 해외시장에서 인정받는 글로벌 강소기업, 명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해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 꿈이 있는 젊은 기업, 명성의 도약을 기대해본다. 1994. 04 명성 인터내셔널 설립 1994. 06 명성산업으로 상호 변경 2003. 09 중국 심천 현지 사무실 오픈 2008. 02 서울 사무소 오픈 2009. 09 (주)기프트케이알 법인 설립 2011. 07 벤처기업 인증 2012. 04 (주)명성으로 상호변경 2012. 04 중소기업진흥공단 HIT500제품 선정(실리콘컵, 도마) 2012. 09 품질경영시스템 ISO9001:2008 인증 2012. 10 기업부설연구소 인증 2012. 12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인증 2014. 12 삼성SDI 리튬전지 공급계약 체결 2015. 05 실리콘생활용품 품질인증(FI) 획득 2015. 06 중소기업청 수출유망중소기업 지정 2015. 06 중소기업청 고성장(가젤형)기업 지정 2015. 07 중소기업진흥공단 HIT500제품 선정(보조배터리) 2016. 06 중국 심천공장 확장 이전 2016. 07 대구시 공동브랜드 쉬메릭 제품 선정 2016. 11 대구시 스타기업 선정 [1005]
    • 경제
    2017-01-17
  • ‘진주시 우수중소기업인상’ 수상-서부·경남에서 손꼽히는 우수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 기업
    삼삼환경(주)은 서부·경남에서 손에 꼽히는 우수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 기업이다. 최근 삼삼환경(주) 박수연 대표이사는 우수한 경영성과와 친환경 기술개발의 공로를 인정받아 경남은행이 수여한 ‘진주시 우수중소기업인상’을 수상했다. 이에 주간인물은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여성 CEO, 박수연 대표이사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삼삼환경(주)의 모태는 창업주, 박명식 회장이 1984년 세운 삼삼중기개발공사로부터 시작된다.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지역상공계의 원로인 박명식 회장은 30여년이 넘게 건설사업을 지속해 오면서 사업 다변화를 통해 경쟁력 있는 회사를 키워왔다. 건설, 토목업을 주축으로 철거, 건설폐기물처리, 재활용골재 생산판매, 조경, 중장비대여업을 유기적으로 운영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온 것. 1995년 환경 사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건설폐기물 중간처리 사업에 뛰어들어 최고급의 재활용 순환골재를 생산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2003년, 삼삼종합중기(주)로부터 분할 설립한 삼삼환경(주)은 서부·경남을 대표하는 건설폐기물 중간처리 기업으로 성장했다. 비계구조물해체공사업, 건설폐기물중간처리, 수집운반과 폐목재 전문 처리업을 비롯해 이동식현장파쇄, 인증순환골재판매, 건설기계대여에 이르기까지 높은 평가를 받아온 것. 이런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의 바탕에는 2세 경영인으로 훌륭하게 회사를 키워온 박수연 대표이사가 있다. 집안의 장녀로 어려서부터 경영에 남다른 소질을 보이자 박명식 회장은 그녀를 더욱 강인하게 키웠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기업인의 표본이세요(웃음). 평소 아버지는 저에게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학비는 대주시더라도 어려서부터 용돈은 스스로 벌어 쓰도록 가르치셨죠.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가장 어려운 현장부터 회사의 핵심사업, 회계와 경영전반을 아우르기까지……. 15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는 항상 저를 딸이 아닌 직원으로 엄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작은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아버지가 한땐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이 저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큰 뜻을 알 것 같아요(웃음).”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이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15년. 그 시간동안 성공적인 가업승계를 위해 그녀가 남몰래 흘려야하는 눈물은 많았다. 주경야독으로 경상대학교 대학원 경영학석사 과정을 마쳤고, 워킹맘으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힘든 과정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사회생활을 하는 엄마들의 고충을 저도 겪었죠(웃음). 아픈 아이를 떼놓고 일하러 가야하는 심정이 참 가슴 아프더라고요. 그 마음을 알기에 여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더 좋게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세상을 더 넓게 보게 된 것 같아요.” 여성기업인협회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박수연 대표이사. 그녀는 뛰어난 사업 마인드와 남다른 안목으로 차세대 여성기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전통적인 사업 분야에서 눈을 돌려 회사가 나아가야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 “그 동안 최고의 골재 생산을 위한 친환경적 기술 개발에 많은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다면체볼을 3단으로 충전한 진동볼밀형 시멘트페이스트 박리기를 폐콘크리트 공정에 적용하여 콘크리트용 순환 잔골재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였습니다.” 이 기술을 통해 고부가가치의 콘크리트용 잔골재를 생산하면 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순환잔골재를 생산하면 석산 골재 채취량을 감소시켜 천연자원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건설폐기물의 매립지 반입량 감소와 매립장 평균수명을 증가시킬 수 있어요. 그리고 운반거리가 먼 천연모래 생산지에 비해 가까운 지역의 순환잔골재를 사용하면 재료비와 운반비를 낮춰 공사원가를 절감하는 등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친환경기술개발의 공로로 삼삼환경은 2015년 환경부장관 표창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우수한 기업경영 성과와 지역사회에 공헌한 공로로 경남은행이 수여한 ‘진주시 우수중소기업인상’을 수상하며 다시금 그 저력을 증명했다. “이 상은 저 혼자만의 상이 아니라 회사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준 직원들과 함께 도움을 주신 주변 분들이 있어 받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 훌륭한 기업 문화를 지닌 기업을 일구라는 뜻으로 알고 더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건설폐기물중간처리 사업을 이끄는 100년 기업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박수연 대표이사의 꿈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그녀의 열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기업은 한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30여년이 넘게 함께 회사를 일궈온 많은 임직원들과 도움을 준 주변 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어린 곳입니다. 그러니 회사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에 보답하는 길은 삼삼환경을 훌륭하게 키워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건설폐기물중간처리 사업을 이끄는 선도기업으로 100년 대계의 초석을 마련하겠습니다.” [1004]
    • 경제
    2017-01-06
  • 부산형 제조업을 이끌어갈 차세대 모델 - 아름다운 기업문화가 있는 해동엔지니어링
    부산벤처기업인상에 빛나는 최준호 대표는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이다.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CEO로 어려운 역경을 딛고 수·배전반 판넬, 선박용 크레인 판넬, KTX 전장품 분야에서 인정받는 강소기업, 해동엔지니어링을 이끌고 있다. ISO9001,14001를 인정받아 뛰어난 품질과 벤처기업인증과 부설연구소를 두어 기술로 인정받는 해동엔지니어링은 부산형 제조업을 이끌어갈 차세대 기업이다. 그리고 해동엔지니어링은 가족친화기업, 클린사업장으로 선정되고, 부산형착한기업,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생명나눔가게에 가입해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기업 문화로 주목받고 있다. _박미희 ­­기자 부산벤처기업인상 수상에 빛나는 사람, 최준호 대표를 만나러 부산 대저동 해동엔지니어링을 찾았다. 매서운 추위에도 눈썹을 휘날리며 거래처를 다녀왔다는 최준호 대표의 얼굴은 밝았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오히려 건강한 활력이 느껴진다. 역시 건실한 기업가의 면모란 이런 것. 그와 마주한 그의 집무실은 작지만, 따뜻했다. 부산형착한기업,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적십자의 희망풍차, 생명나눔가게 인증패 등으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집무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인 기업, 그 아름다운 기업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이렇듯 그가 봉사와 나눔에 적극적인 것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적십자 회원으로 활동하며 봉사와 나눔을 실천한 어머니의 영향이 컸단다. “어릴 땐 어려운 형편에도 먼저 남을 생각하는 어머니가 야속하기도 했어요. 그런 저에게 어머니는 항상 ‘베풀 때 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라’며 봉사와 나눔에 대한 정신을 가르치셨어요. 이제 와 보니 어머니의 말씀이 정말 옳다는 걸 많이 느껴요. 제가 오늘날,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모두 어머니가 쌓은 공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저희 어머니세요.” 생활고에 시달릴 정도로 어려웠던 시절, 방황하던 그를 잡아주던 사람이 있으니, 바로 3년 동안 고등학교 담임을 맡았던 신종칠 선생님이다. 그의 가능성을 보고 좋은 길로 이끌어주던 선생님 덕분에 마음을 잡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고. “선생님 덕분에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해서 고3때 전교 2등을 했어요. 수능을 잘 치고 대학에 합격했는데, 등록금 내지 못해 진학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로 장남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이를 악물고 일만 했어요. 오로지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한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가계를 책임지고 있던 그는 병역특례로 산업체에 근무한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꿋꿋하게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실력 있는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죠. 실은 상사들도 잘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도면을 보고 혼자 책을 찾아가며 독학을 했습니다.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부딪혀가며 하나, 하나 알아갔어요. 하지만 공부하고, 일하는 재미에 밤새는 줄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실력을 인정받아 제대 후에 제대로 된 직장인으로 대우를 받았죠.” 업계에 이름이 나자 유명 중견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고연봉에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자신의 꿈을 펼치기엔 너무 턱없이 좁았던 세상. 그래서 그는 크레인 외에 배전반, 철도 부품 등 다방면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다. 서른, 젊은 나이에 창업을 결심한 것. 하지만 조선 기자재 산업의 불황으로 사업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는 한때 힘겨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그때 그의 곁에서 힘이 되어준 것이 바로 지금의 아내와 가족들이었단다. 가족들을 위해 그는 대표 직함을 새긴 명함 한 장, 공구상자 하나를 들고 무작정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믿고 일을 맡겨줄 사람이 없었죠. 하지만 처자식이 있는데 분유 값이라도 벌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 회사의 부장님을 찾아뵙고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 제품 조립비가 30만원이라면, 지금 당장 15만원에 제품을 만들어주겠다’며 하지만 ‘제가 만든 제품의 가치가 30만원이 넘는다면, 저를 믿고 써달라고’ 말이죠. 이후 제품을 본 부장님이 제 실력을 인정해주시고, 일을 맡겨주셨어요. 그렇게 인연이 되어 사내 소사장으로 다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일어선 그는 조금씩 회사 규모를 키워 해동엔지니어링을 설립한다. 2014년 지금의 사내 공장을 설립하고, 배전반 철도 부품 분야의 경쟁력 있는 강소기업을 일구기까지……. 그 바탕에는 14년의 경력과 역경에 굴하지 않는 기업가정신이 있다. “창조경제의 핵심모델로 사물인터넷, 미래형자동차 등의 첨단산업을 듭니다. 하지만 저는 제조업이 창조경제의 핵심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조업은 한국의 뿌리산업으로 우리 경제의 굳건한 버팀목입니다. 저는 제조업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창조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면, 창조경제의 주역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동엔지니어링은 철도 배전반 분야 외에도 인제대학교와 MOU를 맺고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듯 새로운 신성장동력을 마련해 기업의 백년대계를 준비하고 있는 것. 더 나은 기술진보를 위한 열정으로 내일을 만들어가는 사람, 최준호 대표의 꿈은 무엇일까. “부산에 뿌리를 둔 제조기업으로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 기술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강소기업, 지역의 향토기업으로 지역경제에 버팀목이 되는 기업을 만들고 싶어요. 이를 통해 저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꾸는 청년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습니다!” [1003]
    • 경제
    2016-12-22
  • 강소기업, 대건테크 3D프린터 선도기업으로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초석 다져
    미래 10대 기술 가운데 하나인 3D프린터. 특허가 끝나면 세계적으로 10조원대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단일 기술이다. 이런 이유로 3D프린터 사업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래 먹거리 산업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3D프린터 산업에서만은 막 걸음마를 땐 상태다. 이런 현실에서 치열한 노력으로 당당히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중소기업이 있어 화제다. 바로 창원을 대표하는 강소기업, 대건테크가 그 주인공이다. 3D프린터 시장을 이끄는 선도기업, 대건테크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 _박미희 기자 지난 2015년, 2월 ‘국내 최초, 자체기술 3D프린터 생산’으로 주목을 받으며 주간인물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한 대건테크. 짧은 시간 내 빠른 성장을 하며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대건테크를 주간인물이 다시 만났다. 성장하는 기업은 하루가 다른 것일까. 창원형 강소기업, 글로벌선도기업, 수출유망중소기업, IP스타기업 선정 등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겹경사가 이어졌다.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의 면모란 바로 이런 것. 실력이 있으면 내가 찾지 않아도, 남이 나를 먼저 알아주는 것처럼, 이 같은 많은 수상과 연이은 매스컴의 보도에도 신기수 대표이사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세계를 무대로, 세계가 주목하는 신성장산업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것. 그 뜨거운 열정과 뚝심 있는 기업가 정신은 그대로였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국내 3D프린터 시장을 선도해가는 새로운 신기술을 내놓고 있다는 점. 이번에 어떤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번엔 세브란스 병원과 손잡고, 세계 최초로 의료용 3D프린터 출시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의료용 소재(PEEK 소재 등)를 이용해, 의료현장에 필요한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의료용 3D프린터가 출시된다면, 의료 현장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이처럼 곳곳에 3D프린터를 필요로 하는 산업현장은 많다. 하지만 막상 3D프린터를 잘 활용할 인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선진국에서처럼 우선 교육현장이나 가정에서 3D프린터를 보급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3D프린터 시장이 무르익기까지 기다려야하는 시간은 5년에서 10년. 그 시기를 보다 앞당기고, 산업의 발전을 위해 3D프린터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현재 대중화를 위해 출시된 보급형 제품의 가격은 70만 원 대 안팎이에요. 이제는 가격대를 더 낮춰 30~40만원대로 조정할 계획입니다. 이 안에 드론 기능이 내재 되어 있어요. 이 프로그램을 따라 프린트하고, 조립하면 드론을 쉽게 만들 수 있고, 휴대폰 어플로 쉽게 드론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보급형 제품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3D프린터를 소개하고자합니다.” 자체 연구소, 매년 매출액의 10% 이상 R&D 투자 자체 브랜드, 마이디 (MyD) 시리즈 국내외 시장에서 인정받아 산학연으로 차세대 3D프린터 기술 이끌어 투명 경영, 우수한 노사문화가 성장의 밑바탕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는 초일류 기업 꿈꿔 대건테크는 1998년 창업한 산업용 케이블 분야 및 하드웨어 장비 제조회사다. 높은 기술력과 품질로 인정받던 대건테크가 미래 먹거리 산업인, 3D 프린터 산업에 눈을 돌린 건 2013년부터다. 전통적인 사업 분야를 기반으로 새로운 신성장 동력을 마련한 것. 이런 적극적인 투자와 연구개발로, 대건테크는 자체브랜드 마이디 (MyD) 시리즈를 내놓았다. 교육용 MyD S140, 전문가용 MyD S160, 산업용 MyD P250을 자체 개발한 것. 이 제품들은 플라스틱 수지 등 열가소성 물질을 노즐에 녹여 적층하는 응용수지 압출 적층 인쇄방식으로 사용의 편의성과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3D프린터 시장에서 좋은 품질과 가격 경쟁력으로 인정을 받은 것. “플라스틱 소재인 필라멘트를 녹여 재성형하는 3D프린팅 방식의 경우 노즐 막힘 현상이 프린터 수명은 물론 출력물의 품질을 떨어트리는 주요 원인 중에 하나입니다. 이러한 노즐문제를 대폭 개선해 사용 편의성과 품질을 높이면서, 가격 절감을 이뤄냈습니다.” 이렇듯 대건테크는 뛰어난 기술력과 우수한 품질로 국내시장을 선도하는 3D프린터 선도기업으로 성장했다. 짧은 시간에 빠른 성장을 이뤄내는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 첫째, 독보적인 기술 경쟁력을 들 수 있다. 기술력의 바탕은 정밀 가공기기 분야에서 17년간 쌓은 오랜 기술력과 노하우. 거기에 대건테크는 자체 연구소를 두고, 매년 매출액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안동대학교, 한밭대, 한국기계연구원, 재료연구소 등과 기술협약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기술 개발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사는 길은 독보적인 기술 경쟁력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기술개발을 위한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자체 연구소를 두고, 매출액의 10% 이상을 꾸준히 R&D에 투자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밭대, 안동대학교, 한국기계연구원, 재료연구소 등과 함께 손잡고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앞으로도 3D프린터 사업을 이끌 수 있는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위한 도전은 계속 될 것입니다!” 이런 노력은 국내 3D 프린터 시장을 선도하는 앞선 기술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미래부, 산자부, 국토부의 여러 국책과제를 맡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산업을 이끄는 선도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그 바탕에는 ‘투명경영’과 ‘우수한 노사문화’로 대변되는 뛰어난 기업문화가 있다. “저는 직원들이 참 고마워요. 저보다 회사 생각을 더 많이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일합니다. 이렇게 뛰어난 인재들이 많은 것이 저희 회사의 자랑이자, 회사의 미래죠(웃음). 널리 인재를 구하고, 직원들의 복지와 근로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그리고 우수한 노사문화는 투명한 경영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법적으로 분기별로 노사협의를 하기로 되어 있지만, 저희는 매달 경영 실적을 공유하며 함께 비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대건테크는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시장에서 인정받은 이후로 미국, 중국, 인도 시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이렇듯 3D 프린터 시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대건테크는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기업이다. “저는 좋은 기업이란 취업하고 싶은 회사, 거래하고 싶은 회사, 투자하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건테크하면 우선 믿음이 가는 좋은 기업을 만들고 싶어요. 꿈이 있는 회사, 장차 한국의 기술력으로 세계 속에 인정받는 초일류 기업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세계 속에 인정받는 우리 강소기업, 대건테크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회사 연혁 1998. 10 대건기술 설립 1999. 05 반도체장비 Cable Ass'y. Wire Harness 설계, 제작 사업 2000. 06 군용 시험장비 사업 개시 (개발, 설계, 제작) 2003. 07 ISO9001, ISO14001 품질환경경영시스템 인증 2004. 09 (주)대건테크로 법인 신설 2004. 10 공작기계 전장부 사업 착수 2006. 11 기업 부설 연구소 설립 / INNO-BIZ 기업인증 2007. 06 벤처기업 인증 2007. 10 싱글 PPM 품질혁신기업 인증 (중소기업청) 2009. 03 부품 소재전문기업 인증(지식경제부) 2010. 12 가족친화우수기업 인증(여성가족부) 2012. 09 2012년 취업하고 싶은 기업 선정(중소기업청) 2013. 09 2013년 취업하고 싶은 기업 2년 연속 선정(중소기업청) 2014. 01 WIRE CUTTING 방전가공기 자체 생산 판매 2014. 03 자사 상표 3D 프린트 MyD 출시 2015. 01 일본 현지 지사 및 법인 설립 2015. 09 창원형 강소기업 지정 (창원시) 2016. 04 글로벌 선도기업 지정 (산업단지공단) 2016. 12 금속 3D프린터 MyD 출시 2017. 06 PEEK 소재 3D프린터 MyD 출시 [1000]
    • 경제
    2016-11-17
  •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협동조합-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싶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살아야, 대한민국 경제가 산다!’ 대한민국 경제의 내일을 말해주는 한마디. 창조경제의 혁신 모델로 협동조합이 주목을 받고 있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이후로, 부산에만 500여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된 상태다. 하지만 상호간의 정보교류와 소통의 부재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협동조합이 많은 실정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초 부산협동조합협회를 설립해 소통과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부산협동조합협회는 협동조합의 발전방향에 대한 길을 모색하며, 현재 사단법인 설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_ 박미희 기자 “협동조합이 잘되면, 지역 경제가 살고, 고용이 창출되며 이는 지역발전으로 이어집니다. 소상공인, 중소기업인들에게 힘이 되는 협동조합. 부산 지역 협동조합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환하게 웃는 손종현 회장. 그는 부산에서 수산물 수출입 유통 전문기업, 흥광산업(주)과 주일물산을 성공적으로 운영해온 건실한 기업인이다. 수산물 수출입, 국내유통 분야에 잔뼈가 굵은 그는 중국을 비롯해 국·내외 경제에 눈이 밝은 사업가다. 그런 그가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해외 출장을 가던 도중, 비행기에서 마윈 회장의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됐어요. ‘이제 대기업이 승자 독식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이 서로 협동하고 협업하면서 경제를 이끌어가는 시대가 도래했다. 다양성의 세상에서 경쟁력이 있는 중소기업이 이젠 희망이다’라는 메시지가 정말 가슴에 와닿더라고요. 실제 알리바바 그룹 직원들 중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죠. 앞으로 100세 시대, 평생 일자리를 마련해야하는 시대에 우리 사회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하나. 그것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길, 바로 협동조합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차츰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국제사회를 이해하는 탁월한 감각,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영 경험은 그가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바탕이다. 그런 그에게 많은 지지가 모였고, 올해 초 부산협동조합협회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며 협동조합 발전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된 이후로 부산에만 500여개의 협동조합이 생겨났어요. 하지만 상당수의 협동조합은 운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안타까운 실정이죠. 무엇보다 정보를 교류하고, 상호간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없어 그간 어려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올해초 부산협동조합협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협동조합의 상당수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개별 협동조합들의 자본력, 정보력, 조직력이 미약한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기업에 비해 개별 협동조합이 갖고 있는 자본력, 정보력, 조직력은 미약해요. 그것이 상당수 협동조합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유사한 협동조합끼리 빅딜을 통해 네트워크를 활성화 해야해요. 그리고 유통, 제조, 서비스, 교육, 문화, 장례, 예식, 컨설팅, 물류 등 업종별로 분과를 만들어, 협동조합끼리 협업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부산협동조합협회는 협동조합의 발전방향에 대한 길을 모색하며, 현재 사단법인 설립을 눈 앞에 두고 있다. “협동조합이 잘 되려면 실효성 있는 관련 정책과 법안, 조례 등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의결권을 지닌 조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잘 전달하기 위해 사단법인 설립을 준비해왔습니다. 사단법인이 설립되면, 협동조합 활동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겠습니다.” 한편 부산협동조합협회는 협동조합 제품을 해외에 소개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재외 공관장과 함께 부산협동조합 제품의 해외 수출 촉진을 위한 상담회를 개최하고, 부산 중소기업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중국의 항저우 전화그룹과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 항저우 시 전화그룹에 부산협동조합 전시관을 마련해 제품을 홍보하는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해왔다. 앞으로 부산 중소기업과 협동조합 제품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끝으로 그는 협동조합의 발전을 위해 많은 사회구성원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남겼다. “협동조합의 발전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 사회구성원의 인식제고와 참여도 중요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인식제고가 상당히 중요하죠. 협동조합은 하나의 사업체에요. 협동조합이 잘되면 고용이 창출되고,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이는 지역발전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부산시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협동조합에 대한 소비자들의 따뜻한 참여와 관심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어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1000]
    • 경제
    2016-11-15
  • 정수식 조양플랜트 대표 | 사상구 주민자치위원연합회 회장 | 사상구 생활문화운동 본부장
    최근 정수식 조양플랜트 대표는 주민자율환경개선사업 및 생활문화운동에 힘써온 공로로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 - 장려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에 주간인물은 지역사회를 위해 공헌해온 인물, 정수식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40년, 부산 사상구에 뿌리를 내리고 산 세월만큼 지역에 대한 애정이 깊지요. 이웃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제가 보탬이 될 수 있는 것이 기쁩니다.” 환하게 웃는 정수식 대표. 사상구에서 그는 기업가로,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봉사자로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강소기업, 조양플랜트를 운영하며 사상구 주민자치위원연합회 회장, 사상구 생활문화운동 본부장, 사상구 청년회의소 명예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 언양이 고향인 그는 한살 때 부터 부산에서 자라며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특유의 성실함과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스물다섯에 조양플랜트를 창업했다. 40여년 굴곡 많은 시장의 변화를 겪으며 업계에서 인정받는 회사를 일군 것. 규모는 작지만, 높은 신용과 탄탄한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회사를 만들기까지……. 그 뒤에는 그의 숨은 땀과 노력이 숨어있다. “사업하면서, 인생의 파도도 많았죠(웃음). 40년 넘게 사업을 하면서 많은 굴곡을 이겨내 왔어요. 사업이 잘 될 때가 있는가하면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언제나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정확한 납기에 보내준다는 원칙만 지키면 거래처의 신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품질과 신용, 그것이 제가 빈손으로 사업을 일으켜 지금까지 사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죠(웃음).” 한창 사업이 번성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시절. 그는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30여년이 흘려 지금까지 한결같이 지역을 살피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그가 몸 담았거나 회장직을 맡았던 단체만 해도 모두 13개. 민족통일사상구협의회, 사상구 경찰발전위원회, 사상구 체육회, 사상구 주민자치위원연합회, 사상구 생활문화운동본부 등 많은 단체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온 것. 특히 12년 동안 한국열관리시공협회 부산시회장을 맡아 산업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해왔다. 현재는 이 단체 중 대다수에 고문을 맡아 물심양면으로 단체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 이런 그의 활동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사상구 주민자치위원연합회와 사상구 생활문화운동본부 활동이다. 30여년전 주민자치라는 단어조차 생소할 때부터 그는 지역을 위해 발 벗고 일 해왔다. 최근에는 주례2동 주민자치위원장을 거쳐 2011년부터 사상구 주민자치위원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주민이 공감하는 열린 마을자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민간주도 봉사단체인 사상구 생활문화운동본부 본부장으로 주민생활과 밀접한 연중 캠페인을 주제로 선정하고, 구민생활 개선을 위한 많은 일을 해왔다. 칭찬합시다(2011년). 한가정 한가훈 갖기(2012년), 클린사상365운동(2013년~2015년), 건강UP! 행복UP! 건강도시 사상만들기 운동(2016년)추진 등 통해 성숙된 시민의식을 향상하고, 민간주도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과 이정표를 마련한 것. “자발적인 참여로 함께 뜻을 해준 회원들, 그리고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신 사상구 구청장님과 관련 부서의 공무원들의 도움이 있기에 잘 이끌어 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많은 일들을 해나가겠습니다!” 선하게 웃는 정수식 대표. 그는 이번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 수상과 관련해 한결같이 겸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저보다 뛰어난 분들이 많은데,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아도 되는지 그저 송구할 뿐입니다. 제가 뛰어나서라기보다 곁에 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많은 분들이 있어 여러 단체들을 잘 이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곁에서 항상 힘이 되어주는 아내와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부족하나마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 정수식 대표와의 행복한 동행이었다. [998]
    • 경제
    2016-10-12
  • ‘제28회 자랑스러운 달서구민상’ 수상-“봉사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임을 배웠죠!”
    대구 달서구는 최근 ‘제28회 자랑스러운 달서구민상’ 수상자로 지역경제·사회발전 부문에 ㈜우창케미칼 장병철 대표를 선정했다. 그는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해온 향토기업인이자 봉사자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온 사람이다. 이에 주간인물은 지역사회에 공헌해온 건실한 사업가, 장병철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장병철 대표는 30여 년간 지역에서 섬유사업 및 합성수지 제조업에 몸담은 향토기업인이다. 그가 운영하는 합성수지 비닐 그라비아 인쇄 전문업체인 ㈜우창케미칼은 강소기업으로 지역경제발전과 고용창출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그는 대구교도소 교정연합회 부회장, 국제라이온스 356-A 대구지구 영진클럽 회장 역임, 달서경제인협의회 회원, 달서다함께봉사단 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왔다. 이렇듯 건실한 기업가로, 또 진정한 봉사자로 살아온 장병철 대표. 그는 신용을 밑천으로 일어선 정형적인 자수성가형 사업가다.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공장을 34년을 운영해왔어요 처음엔 봉제공장을 시작해서 15년, 그리고 우창케미칼을 설립하고 19년. 맨손으로 시작해서 사업을 일으킬 수 있었던 ‘신용을 첫 번째로’라는 신념 덕분이에요. 아직도 저와 가족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거래처를 직접 만납니다. 좋은 제품, 믿을 수 있는 회사. 그게 우리 회사의 저력이죠.”이렇듯 우창케미칼은 규모는 작지만 알찬 기업이다. 생산–인쇄–가공을 한꺼번에 하는 one-stop 시스템을 갖추고, 자동화설비를 통해 불량률을 줄이고,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 이렇듯 그는 ‘대구지역 경제가 살려면 제조업이 가격 경쟁이 아닌 품질 경쟁으로 승부해야한다’는 그의 지론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그는 내년 10월, 20주년을 맞이해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소품종 다량생산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는 것. 이렇듯 발로 뛰며 일하는 장병철 대표. 회사 운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는 오랫동안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을 해왔다. 대구교도소 교정연합회 부회장, 국제라이온스 356-A 대구지구 영진클럽 회장 역임, 달서경제인협의회 회원, 달서다함께봉사단 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해온 것. 많은 활동 중 그는 대구교도소 교정연합회 부회장 활동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워낙 어렵게 자라다보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알겠더군요.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조금이나 힘이 되고 싶어 봉사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라이온스 클럽 활동을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대구교도소 교정연합회 부회장 활동으로 이어지게 됐죠. 처음에는 막연히 무서운 마음도 들더라고요(웃음). 하지만 한명, 한명 재소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그런 마음이 사라졌어요. 이들 중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려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사회에 다시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러가서 오히려 제가 참 많은 걸 배웠죠.” “봉사는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것을 배웠다”는 장 대표. 그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려는 보호대상자(출소자)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신의 회사에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 많은 보호대상자들이 그곳에서 희망을 얻었고, 지금 가족으로 남아있는 직원은 2명이라고. 이렇듯 많은 인연들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진심을 털어놓았다. “많은 친구들이 우리 회사를 스쳐갔지만, 그중에 한 친구가 기억에 남네요. 형을 살고나온 청년이었어요. 4개월 남짓 우리 공장에서 함께 일을 하고 한솥밥을 먹었죠. 제가 따로 불러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우리 아들하고도 가깝게 지냈고요. 그러나 어느 날 온다 간다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어요. 순간 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다 이유가 있겠거니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 제 아들 녀석에게 전화가 왔어요. 어렵게 성공해서 가정도 꾸리고 잘 산다고. 고맙고 또 미안해서, 아들에게 전화는 해도 저를 다시 보기가 어려웠나 봐요(웃음). 제 마음은 이래요. 한번 스쳐가는 인연으로 남아도 되니, 정말 새사람이 되겠다는 그 굳은 마음으로 사회에 꼭 적응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진정한 제 바람입니다.” 그는 앞으로 계속 새 사람이 되고자하는 보호대상자들이 다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단다. 그는 끝으로 “앞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한다”며 늘 힘이 되어준 가족들과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998]
    • 경제
    2016-10-12

문화 검색결과

  • 양동식 경희한의원 원장 | 시인
    ‘찬란한 전통문화 유구한 역사, 활기찬 거리마다 꽃을 피우네~’ 순천시민의 노래의 노랫말을 쓴 사람. 시인이며 한의사인 양동식 원장은 지역사회를 위해 공헌해온 사람이다. 1978년 경희한의원을 개업한 후로 38년 동안 지역의료 발전을 위해 기여해왔다. 그리고 1989년 <시문학>에 등단한 이후로 시인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또한 순천문인협회 2대 지부장을 역임하면서 순천문인협회의 기틀을 공고히했고, 2004년 순천문학상을 제정하는 등 순천 문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또한 순천의 역사와 풍광, 자랑스러운 인물을 조명하는 시집을 발간하고 기독교의 역사를 알기 쉽게 쓴 『선교 100년』이라는 시집을 발간하는 문학을 통해 순천을 알려왔다. 이런 공로로 그는 올해 ‘순천시민의 상’ 영예의 수상자로 그 이름을 올렸다. _박미희 기자 명망 있는 한의사이자 짙은 향토적 정서를 아름다운 문학으로 승화한 시인, 양동식 원장. 그는 어떻게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을까. “원래 고향은 순천이지만 일본에서 저희 부모님이 저를 낳으셨어요. 일제 치하에 할머니 손에서 자랐죠. 순박하고 어진 삶을 살았던 할머니는 억압과 핍박을 많이 받으셨어요. 까막눈이라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셨던 할머니. 만약 할머니께서 글을 안다면 그 모진 세월을 구구절절이 글로 남기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저는 어른이 되면 꼭 할머니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겠단 생각을 했죠. 이렇게 일제 치하에 억압받던 민초들의 삶을 문학으로 대변하고자 문인이 되겠단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전남대 국문학과에 들어가 문인의 꿈을 키우게 된다. 하지만 글 쓰는 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방황하는 그에게 명의였던 아버지(고 양득승 선생)은 한의사의 길을 권했고, 그렇게 대를 이어 한의사가 되기 위해 그는 경희대한의학과에 들어간다. 남보다 늦게 시작했기에 곱절은 노력해야했던 시절을 지나 그는 1978년 고향 순천에 경희한의원을 개업한다. 개업 초부터 명성이 자자할 정도로 입소문이 났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공허함은 달랠 길이 없었다고. “글을 잊곤 어떻게 살겠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낮에는 진료를 하고 밤에는 글을 쓰기 시작했죠. 낮에는 의사니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했고, 밤에는 시인이니 감성적적으로 변해야하니... 마치 내가 지킬앤하이드 같구나(웃음), 이런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래도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글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러다 1989년 <시문학>에 등단했고, 이후로 작품 활동을 계속 했어요. 그러자 주변에 글쓰는 한의사란 소문이 나면서 순천문인협회에 함께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그렇게 협회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문필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껴, 순천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 뒤늦게 박사학위를 받았죠.” <시문학> 등단작인 <사베댁 이야기>는 그의 할머니(사베댁)의 삶을 모티브로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핍박받는 민중의 삶과 애환을 노래한 이 시는 그 특유의 향토적인 서정과 작품성을 인정받아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순천의 역사와 풍광을 담아낸 『내 고향 순천』, 김삿갓 탄생 200주년 기념 정본시집 『길위의 시』, 기독교의 역사를 알기 쉽게 쓴 『선교 100년』 등을 출간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그리고 순천시와 승주군의 통합에 따라 화합을 다지고 순천의 비전을 담은 <순천시민의 노래>를 작사하고, 순천문학상을 제정하는 등 문학을 통해 순천을 알리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 집념이 없이는 해낼 수 없는 고된 작업의 연속이었지만, 그가 직접 사재를 털어서까지 의미 있는 작업을 해왔던 건 투철한 작가정신과 지치지 않는 열정 때문이다. “순천시와 승주군이 통합할 무렵, 순천시민의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순천의 명소를 다시 둘러보고 직접 자료를 모으며 작사를 하는데 공을 많이 들였죠. 그렇게 곡을 완성하고 나서 소정의 상금을 받았는데, 거기에 사재를 보태 발간한 것이 『내 고향 순천』이에요(웃음). 지금 생각해봐도 참 의미 있는 일이었죠. 그리고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김삿갓을 삼은 것도 그가 자기 할아버지를 매도했다는 오해를 풀기 위한 마음에서였어요.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야하는 고된 작업이었지만 김삿갓의 일대기와 문학적 가치를 바로 알렸다는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제는 조금은 편해지고 싶을 나이,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한의사로, 시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 참신한 발상과 다양한 주제로 새로운 시집을 내는 것이 그의 꿈이란다. 언제나 나이 들지 않는 젊은 시인, 양동식 원장과의 행복한 동행이었다. [999]
    • 문화
    2016-10-31
  • 한-엘살바도르 교류협력과 친선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
    푸른 태평양이 펼쳐진 곳, 해안선 위로 화산에 구름이 걸린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작지만 아름다운 나라, 엘살바도르는 6.25 전쟁 당시 우리에게 구호물품을 보낸 전통적인 우방국이기도 하다. 한-엘살바도르 교류협력과 친선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밀톤 알시데스 마가냐 에레라 주한엘살바도르 대사와 도용복 엘살바도르 명예영사가 그 주인공. 부산국제관광전 참가를 위해 부산을 찾은 그들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The blue Pacific Ocean and the clouds hanging over the volcanoes along the coastline present a picturesque landscape, which can be witnessed in El Salvador, a small yet remarkably beautiful country that sent relief goods to South Korea during the Korean War. There are those who are dedicated to promoting the bilateral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they are Milton Alcides Magana Herrera, the Ambassador of El Salvador to the Republic of Korea, and Yong-bok Do, the Honorary Consul of El Salvador. We met with these two during their visit to Busan to attend the Busan International Travel Fair (BITF). _박미희 기자(Written by Park Mi-hee) (다음은 그들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The following is the Q&A interview with the Ambassador Magana Herrera and the Honorary Consul Do) Q 한국인들에게 엘살바도르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Could you provide information on El Salvador for our Korean readers? A (마가냐 대사)엘살바도르는 스페인어로 구세주란 뜻입니다. 인구 700여만 명의 엘살바도르는 경상북도와 비슷한 크기로 태평양에 인접해 있죠. 중미에서 ‘마야의 길’이라 불릴 정도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요. 엘살바도르는 국토의 4분의 1일 화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최고봉인 해발 2250m, 산타아나산은 활화산이어서 지금도 ‘태평양의 등대’로 불리지요. 이런 엘살바도르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많은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입니다. 또 화산지대에 생산되는 커피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지요. 그리고 수도 산살바도르의 산살바도르공항은 중남미의 허브 공항이에요. 이렇듯 엘살바도르는 알면 알수록 더욱 매력 있는 나라입니다. (Ambassador Magana) “El Salvador” is Spanish for “the Savior.” El Salvador, with a population of about 7 million, is similar to Gyeongsangbuk-do Province in size, and it is adjacent to the Pacific Ocean. Called the Route of the Maya, El Salvador is situated in a geopolitically important location. One-fourth of the country is made up of volcanoes, of which the Santa Ana Volcano is the highest at 2,250m above sea level and as an active volcano, it is called the Lighthouse of the Pacific. Such exquisite natural environment is why El Salvador is a popular tourist destination. El Salvador is also world-renowned for the coffee produced in the volcanic zone. Plus, the airport in San Salvador, the national capital, is the hub airport of Latin America. As such, El Salvador has many appeals. Q 1962년 수교한 이후로 한국과 엘살바도르의 외교적 우호관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Please tell us about the relations between Korea and El Salvador since the establishment of diplomatic ties in 1962. A (마가냐 대사) 우리에게 한국은 친구의 나라입니다. 1948년 한국정부 수립시 엘살바도르는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일원으로 참여했고, 6.25 전쟁 때 구호물품을 보낸 나라에요. 이렇듯 엘살바도르는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지속적으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왔습니다. 1962년 남한 단독 수교를 맺은 이래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다방면에서 양국은 긴밀한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켜왔어요. 한국도 2001년 엘살바도르 지진 발생 때 긴급 구호금과 지진 피해 복구비를 전달해 따뜻한 마음을 전했죠. (Ambassador Magana) Korea is a friend to El Salvador. At the time of the ROK government’s establishment in 1948, El Salvador served as a member of UNTCOK*, and we also sent relief goods to South Korea during the Korean War. As such, El Salvador has been supportive of Korea on the international stage including the UN. Since the establishment of our diplomatic ties in 1962, our countries have been developing a close cooperative relationship in political, economic, social, cultural and other realms. South Korea, on the other hand, provided El Salvador with donations and supplies for the emergency relief efforts following the earthquake in 2001. * UNTCOK: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엘살바도르] Q 인터뷰 내내 대사님의 엘살바도르에 대한 자부심과 한국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네요. 향후, 양국의 우호관계 증진을 위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I can feel your pride in El Salvador and your love for Korea. Is there a message you’d like to convey to promote the friendly relations between our countries? A (마가냐 대사) 엘살바도르는 한국에서 멀다면 멀지만, 한편으론 가까운 나라에요. 마음의 장벽을 허문다면 물리적인 거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한다면 엘살바도르와 한국은 얼마든지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친구의 나라, 한국에 엘살바도르를 알리기 위해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한국과 엘살바도르의 우호관계와 활발한 상호 교류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입니다. (Ambassador Magana) El Salvador may be far away from South Korea, but it could be very close. If we break down the barriers in our hearts, the physical distance won’t be a problem. By opening our hearts and communicating with each other, El Salvador and South Korea can become closer. That’s why I’m doing many things to introduce El Salvador to our friend, South Korea. I plan on continuing the diverse efforts to promote bilateral exchange and friendly rel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El Salvador. Q 도용복 명예영사님의 엘살바도르에 대한 애정은 각별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엘살바도르의 명예영사가 되셨는지요? Honorary Consul Do, I’m aware of your love for El Salvador. How were you appointed the Honorary Consul of El Salvador? A (도 명예영사) 제게 엘살바도르는 제2의 고향입니다. 50세에 새 인생을 찾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엘살바도르는 작지만 아름다운 나라, 다시 찾고 싶은 나라로 기억에 남았어요. 그렇게 목숨을 걸고 세계 각국의 오지를 여행한 제 이야기가 매스컴에 소개되면서 오지여행 전문 강사로 전국을 돌며 강의를 하게 됐습니다. 지인이 주한 엘살바도르 대사관에서 명예영사를 찾는다는 사실을 듣고 절 적극 추천했어요. 대사관 측에서도 부산이 아닌, 전국을 무대로 엘살바도르를 알릴 수 있는 인물을 찾고 있었는데 제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2003년, 엘살바도르의 명예영사로 취임해 활동하게 됐지요. 이런 엘살바도르에 대한 사랑은 저뿐만 아니라 가족들 역시 대단해요(웃음). 바이올리니스트인 제 막내딸(도진미 씨)은 엘살바도르를 비롯한 중미를 돌며 거리공연과 자선공연을 펼치면서 차츰 유명해졌죠. 현지에서 사라토미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국영TV에도 소개됐는데 훗날 딸은 ‘자신에게 엘살바도르는 영혼의 고향’이라며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하곤 해요. 이렇게 엘살바도르는 제게 사랑하는 친구의 나라이자, 영원한 영혼의 안식처입니다. (Honorary Consul Do) I consider El Salvador as my second home. I went on a journey to discover a new life at the age of 50, and I remember El Salvador as a small but beautiful country that I wanted to visit again. My story of life-staking travels in the remote areas of the world got media coverage, and I began giving lectures across the country as an expert on trekking. Someone I know found out that the Embassy of El Salvador to the Republic of Korea was looking for an honorary consul, and strongly recommended me. The Embassy was looking for someone to promote El Salvador not just in Busan but across Korea, and I think they thought I was the perfect candidate. So in 2003, I was appointed as the Honorary Consul of El Salvador. I share this great love for El Salvador with my family (laugh). My youngest daughter (Jin-mi Do), who is a violinist, has given street and charity performances across Central America including El Salvador and gradually gained fame. She has been nicknamed “Saratomi” and featured on a state-owned television network. She still shows her unwavering love for El Salvador describing it as the home of her soul. As such, El Salvador is a country that I love dearly and it is an eternal safe haven for my soul. [부산국제관광전의 엘살바도르 부스를 찾은 서병수 부산시장과 마가냐 대사, 도용복 명예영사] Q 도용복 명예영사님의 양국가간 우호증진을 위한 가교역할의 노력상과 활동상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Could you tell us about your efforts to serve as a bridge between the two countries to promote their friendly relations? A (도 명예영사) 엘살바도르는 제 마음 속에 언제나 가까이에 있어요. 매번 전국을 다니며 강의를 할 때 꼭 엘살바도르에 대한 소개를 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 산지이자 천혜의 자연 환경을 지닌 아름다운 관광지 그리고 6.25 전쟁 때 구호물품을 나눠준 전통적인 우방국으로 엘살바도르를 소개할 때마다, 뜨거운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보면 기쁘죠(웃음). 이외에도 부산국제관광전이나 투자설명회 때 대사관과 함께 부스를 만들고 참가해 엘살바도르를 홍보하고 있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엘살바도르를 알리고, 기업 간의 무역거래와 현지진출을 주선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또 부산시립교향악단과 엘살바도르 교향악단의 상호 방문을 주선하는 등 양국 간 문화교류를 위해서도 애써왔어요. 그동안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수차례 엘살바도르를 방문해 민간 교류 활성화를 위해 애써왔습니다. 이렇듯 앞으로도 한국과 엘살바도르의 우호증진과 교류활성화를 위해 민간 외교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겠습니다. (Honorary Consul Do) I hold El Salvador very close to my heart. Whenever I give lectures, I always talk about El Salvador, describing it as a world-famous coffee producer, a tourist destination with an exquisite natural environment, and a traditional ally that provided us with relief goods during the Korean War. When the audience shows a keen interest, it brings me great joy (laugh). In addition, I’ve promoted El Salvador at the booth set up with the Embassy of El Salvador at BITF and investor relations meetings. As such, I’ve been making an effort to inform people about El Salvador and to arrange trade deals and market expansions of Korean and El Salvadoran companies. I’ve also arranged mutual visits between the Busan Philharmonic Orchestra and the El Salvador Symphony Orchestra and other cultural exchanges. I’ve visited El Salvador numerous times on official and non-official visits to promote exchanges between the private sectors. As such, I’ll stay dedicated to my role as a bridge that promotes the friendly relations and exchanges between South Korea and El Salvador. Q 여러모로 엘살바도르는 앞으로 성장가능성이 큰 나라네요. 한국과 엘살바도르의 활발한 교류 협력을 통해 양국의 비전을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l Salvador seems to have high growth potential. It seems that South Korea and El Salvador will be able to share a mutual vision through active exchanges and cooperation. A (마가냐 대사, 도 명예영사) 1962년 국교가 수립된 이후로 엘살바도르와 한국의 교역은 성장세를 그려왔어요. 지리적 요충지에 위치한 엘살바도르는 성장 잠재력이 큰 나라입니다. 앞으로 한국의 대엘살바도르 투자·개발협력사업의 활성화를 통해 양국의 성장과 발전을 함께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의 나라. 양국의 활발한 교류협력 통해 한국과 엘살바도르의 새로운 발전상을 기대해봅니다. (Ambassador Magana and Honorary Consul Do)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diplomatic ties in 1962, the trade between El Salvador and South Korea has displayed a growth trend. El Salvador, located in a geographically strategic point, has high growth potential. We believe Korea’s investment and development cooperation projects with El Salvador will promote mutual growth and development. Through the active exchanges and cooperation between our countries, which share friendly ties, we expect that Korea and El Salvador will enter a new phase of development.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도용복 명예영사 ‘제12회 부산국제합창제’ 첫 공동조직위원장 맡아 세계인의 축제로 거듭나는 성장의 발판 마련해 appointed as the first Co-Chairperson of the Steering Committee to create the foundation for the 12th Busan Choral Festival & Competition to become an international festival 명품 골프용품 브랜드, 사라토가를 만든 성공한 기업인, 세계 167개국을 누빈 오지여행가, 스타강사. 이렇게 도용복 명예영사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다. 하지만 단연코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애쓰는 후원자’라는 이름만큼 그를 잘 나타내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그간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해온 그가 이번엔 합창으로 전 세계에 부산을 알리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새롭게 거듭나는 제12회 부산국제합창제의 공동조직위원장으로 참여해 성공적인 대회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 오는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4일간 소향씨어터, 영화의 전당 그리고 부산문화회관 등 부산 전역에서 개최되는 제12회 부산국제합창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번 부산국제합창제는 세계 11개국 37개 팀 1,600여명이 참가하며, 이 가운데 해외에서는 10개국 19개 합창단 600여명(경연 15개 팀, 비경연 4팀)이, 한국에서는 18개 합창단 1,000여명(경연 4팀, 합창친구들 14팀)이 참가하여 하나 되는 세계인의 합창축제를 만든다. 아울러 클래식-혼성·동성, 민속음악, 팝&가스펠, 청소년 부문의 5개 종목을 겨루게 된다. ‘세계인의 축제’로 거듭나는 부산국제합창제. 올해는 합창경연을 위해 북미를 비롯한 전 세계 많은 합창단들이 부산을 찾았다. 찾아가는 음악회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심사위원들이 중심이 된 합창워크샵 대신 참가 합창단들이 모여 교류하며 합창하는 축제합창단을 운영하는 점 등이 달라져 더욱 의미있다. 이렇듯 새로운 구성과 풍성한 볼거리로 새롭게 거듭하는 부산국제합창제는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올해 첫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은 도용복 명예영사는 “변원탄 위원장님과 공동조직위원장으로 앞으로 부산국제합창제를 잘 이끌어나가겠다”며 막중한 자리에 대한 책임감과 보내준 성원에 고마움을 표했다. 우수한 문화예술 콘텐츠로 부산, 더 나아가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릴 수 있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부산국제합창제가 세계 속에 부산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산국제합창제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속의 합창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민간 외교관으로,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후원자로 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도용복 명예영사. 변화는 산소와 같다는 그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된다. A successful entrepreneur who founded Saratoga, a premium gold gear and equipment brand, an adventurous traveler who traveled in the remote areas of 167 countries, a popular lecturer and speaker... These are the descriptions that follow Honorary Consul Yong-bok Do. But the words that best describe him are a “patron of the arts and culture who is dedicated to their development.” Do, who has contributed greatly to the development of the arts and culture, has set forth an ambitious plan to promote Busan on the international stage through the art of choral singing. He has been appointed as the Co-Chairperson of the Steering Committee for the 12th Busan Choral Festival & Competition, and he is currently pouring his heart and soul into making sure of its success. The 12th Busan Choral Festival & Competition, set to be held at the Sohyang Theater, Busan Cinema Center and Busan Cultural Center for 4 days from October 18 to 21, is garnering a lot of attention. Around 37 teams comprised of 1,600 members in total from 11 countries across the world will take part in the event. Of the participating teams, 19 choirs with around 600 members in total (15 choirs in the competitive category and 4 choirs in the non-competitive category) are from 10 overseas countries, while 18 choirs with around 1,000 members are from Korea (4 choirs in the competitive category and 14 teams of “Choral Friends”). There will be a total of 5 competitive categories, which are Classical Music: Mixed Sex Choir, Classical Music: Same Sex Choir, Folk Music, Pop & Gospel, and Youth. The Busan Choral Festival & Competition, which is emerging as a festival for the entire globe, will attract choirs from around the globe including North America, coming to join the choral competition. There are a wide range of programs such as a music festival in store for the participants and visitors. This year’s festival will be especially meaningful as a festival choir, where the members of the participating choirs get a chance to gather together and interact with one another, will be organized instead of the choir workshop where the judges played the central role. As such, the Busan Choral Festival & Competition, which will offer new and diverse programs and events, is met with high anticipation. Honorary Consul Yong-bok Do, who is serving as the Co-Chairperson of the Steering Committee of the Busan Choral Festival & Competition for the first time this year, expressed his gratitude for the support he has received by stating, “I will do my best to lead the Busan Choral Festival & Competition well as a co-chairperson along with Byeon Won-tan.” He hopes to promote Korea on the global stage with excellent cultural content. “By joining forces together, the Busan Choral Festival & Competition can become an important cultural asset that can be used to promote Busan in the world. I ask for your participation and show of interest so that the Busan Choral Festival & Competition can become a festival of Asia and the world.” Honorary Consul Do, who is dedicated to his missions as a private diplomat and a patron of culture and the arts, says that change is like oxygen, and we can’t wait to see the challenges he undertakes in the future. [998]
    • 문화
    2016-10-12
  • 예쁜 드레스 입고, 셀카로 인생사진 찍자-여자가 가장 아름다워지는 공간, 아그리나
    ▶ 권 대표는 “오픈 행사로, 드레스를 입고 남포동 일대의 시가행진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며 “앞으로 드레스 체험 카페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친구 사진 한장. 보는 순간 ‘심쿵’하게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은 친구 모습에 슬그머니 시샘이 난다. 한편으론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니 웨딩샵도 아닐 테고, 도대체 여긴 어디지?’하는 궁금증이 앞선다. 이곳이 바로 인생사진을 찍기 위해 부산까지 일부러 찾아온다는 그곳, 아그리나 드레스 체험 카페다. _박미희 기자 “웨딩드레스는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잖아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인생사진을 찍었다며 좋아하는 손님들을 보면 참 기뻐요.” 환하게 웃는 권레미 대표. 그녀가 부산 남포동에 문을 연 아그리나 드레스 체험 카페는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화제가 되고 있다. 이곳은 소정의 체험비만 내면, 음료 서비스는 물론 원하는 드레스를 입고 예쁜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친구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는 공간으로 SNS에서 화제인 이곳은 그녀의 꿈과 열정이 담긴 곳이다. “저도 고등학생 때 드레스 카페에서 친구들하고 재밌게 사진을 찍었던 추억이 있어요(웃음). 지금은 시간이 흘러 모두 없어졌지만, 그때의 추억이 다시 생각나더라고요. 드레스는 모든 여자들의 로망인데 사실 사진을 찍으러 웨딩샵을 찾기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부담 없이 편안하게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입고, 셀카를 찍을 수 있는 카페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드레스 관련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미국에서 드레스 관련 일을 했던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와 카페를 오픈했다. 이곳의 특징은 다양한 드레스를 뿐만 아니라 헤어, 메이크업을 셀프로 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드레스에 맞는 구두, 티아라와 액세서리까지 고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소정의 비용을 내면 디지털 카메라를 대여할 수 있고, 포토샵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손님들의 체형과 스타일에 맞는 다양한 드레스를 고르실 수 있으세요. 그리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고, 드레스를 입은 후에 스튜디오에서 셀카를 찍으세요. 시간제한이 없어서 원하시는 만큼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죠.” 드레스 셀렉을 돕는 일부터 피팅을 하고, 헤어장식을 올려주는 일까지 모두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없다. 예쁜 모습을 담을 수 있도록 사소한 것도 배려하는 모습이 살가운 언니 같다. 이런 진심이 통해서 일까. 이곳을 다녀간 손님들은 연일 호평일색이다. 다시는 없을 인생 사진을 찍었다는 사람부터, 웨딩 촬영 비용을 아껴 신혼여행을 좋은 곳으로 갔다는 신혼부부, 서로의 진짜 매력을 발견했다는 커플까지……. 이렇게 이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을 만드는 사람들을 볼 때 그녀는 행복하단다. “이곳에서 많은 분들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하는게 너무 좋아요. 요즘은 결혼을 많이 하지 않는 추세잖아요. 이곳에 오셔서 많은 커플들이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가족,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 오셔서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만드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 해외직구를 통해 새로운 드레스를 구매하고 새로운 포토존을 구성하고 어떻게 하면 손님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지 고민하는 날들. 그렇게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또 행복한 건 그녀를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제가 창업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보내주신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웃음).” [996]
    • 문화
    2016-09-12
  • 각양각색, 개성 있는 선인장을 만나다 - 선인장 전문샵, 블루마운틴
    뾰족 뾰족난 가시가 예쁘다. 카페 한편 놓인 선인장은 어떤 소품보다도 공간의 살린다. 예쁘고 키우기도 쉬워서 개업 선물로, 또 홈가드닝 아이템으로 사랑받는 선인장. 이 선인장을 전문으로 하는 샵이 있다. 대구에 이어 부산에 문을 연 블루마운틴이 바로 그곳. 그곳에서 꿈꾸는 젊은 청년 김용현 대표를 마주했다. _박미희 기자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도전하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죠. 하지만 하고 싶은 일에 도전했기에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환하게 웃는 김용현 대표. 그는 젊은 청년 사업가다.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한 그는 정말 좋아하는 일로, 창업을 결심한 용기 있는 청년이다. “원예학과 선후배, 동기들 중에서 이렇게 전공을 살려 창업을 한 사례는 제가 처음이에요(웃음). 원예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50%이상은 농업직 공무원에 도전하는 게 현실이거든요.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죠.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싶어 이 일을 시작했어요. 그냥 꽃집도 아니고, 선인장 전문샵이라니……. 처음 창업을 한다고 할 때 말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죠(웃음).” 그냥 흔한 꽃집이라면 차라리 쉬웠겠다. 선인장 전문샵을 내겠다고 하니 주변에선 걱정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꿈을 이루기 우해 청춘을 밑천으로 세상에 나갔다. “다육이나 다른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는 분들이 밑에서 일을 해보기도 하고, 전국에 이름 난 곳을 찾아다니며 공부했죠. 힘들었어도, 제가 하고 싶은 사업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선인장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그렇게 선인장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대구의 블루마운틴 최백기 대표와 인연이 닿게 된다. 그와 함께 일하며 많은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고. “그냥 학문으로 원예를 접하는 것과 상업적인 목적으로 식물을 다루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더라고요. 좋은 선인장을 찾는 것부터, 개성 있는 스타일링까지……. 많은 걸 배웠죠. 사실 단일품목의 전문샵의 생명은 스타일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좋은 선인장도 어떤 화분에, 어떻게 심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많이 달라지니까요.” 그렇게 그는 부산에 내려와 블루마운틴을 오픈했다. 선인장의 이미지를 담은 블루마운틴. 그 이름처럼 이곳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련되고 개성 있는 선인장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가 직접 농장을 다니며 구해온 다양한 선인장을 개성 있게 스타일링해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 그리고 화이트를 메인컬로로 한 젊은 감각의 샵은 선인장 마니아부터 초보 가드너까지 서로 정보를 얻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처음 오는 손님들이 의외로 ‘화분을 따로 사야서 심어야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하시더라고요(웃음). 그건 아니고요. 저희가 직접 스타링한 가격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어, 그대로 들고 가서 키우시면 돼요. 의외로 선인장들의 종류와 특성이 다양해서 그 특성에 맞는 가드닝 방법에 대한 조언도 해드려요. 처음 가드닝을 시작한 분부터 선인장 마니아까지 많은 분들이 이곳을 찾으셔서, 정보를 얻고 가세요.” 들여놓으며 돈이 들어온다는 ‘금호’부터, 뾰족하고 긴 가시가 예뻐 인테리어용으로 인기라는 ‘근위주’까지 다양한 선인장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개업선물, 답례품, 인테리어, 홈가드닝 아이템까지……. 다양한 용도의 선인장을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이렇게 선인장에 둘려 싸여 하루를 보내는 그는 언제나 해맑은 표정이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그의 꿈이라고. “원예학을 전공하고 이 일을 하고 싶어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친구들과 후배들이 많아요. 훗날, 사업이 잘되면 우리 함께 일하자는 말을 많이 했거든요(웃음). 앞으로 사업이 잘 되서, 친구들과 후배들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 그것이 제 꿈이죠(웃음).” 환하게 웃는 김용현 대표. 내일을 만들어가는 젊은 그의 꿈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뾰족한 가시가 예뻐 인테리어용으로 인기라는 근위주> <들여놓으면 돈이 들어온다고 해서 인기인 금호> [996]
    • 문화
    2016-09-12

교육 검색결과

  •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건강한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어요!"
    최근 (사)한국숲유치원협회 4대 회장으로 김정화 수성대 교수가 선임됐다. 그녀는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코다이음악교육협회 부회장, 대구생태유아공동체 대표, 대구환경교육 네트워크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생태교육 발전을 위해 기여해온 사람이다. "아이들이 숲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녀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Q. 교수님의 생태교육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생태교육에 뜻을 두게 되셨나요? A. 저는 생태교육과의 인연을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팔삭둥이로 태어나 갓난쟁이 때부터 아주 허약했어요. 강보에 쌓인 저를 어머니는 솔잎 자리에 눕혀 생기를 얻도록 했지요. 그리고 제 나이 스무 살에 갑자기 아버지를 여의고, 오 남매의 장녀로 집안을 이끌어야 했어요. 그때 제 마음을 다독여준 것 역시 자연이었죠. 꾸준하게 등산을 하면서 큰 위안을 얻었거든요. 그러다 스물여섯, 대장 결핵으로 건강을 잃었을 때도 자연이 절 살렸어요. 사찰을 찾아 생활한 2달 동안 자연의 치유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자연은 늘 제 삶과 함께였죠. 그러다 음악을 전공하고 교육자의 길을 걷던 저는 우연히 '코다이음악교습법'을 접하면서 생태교육에 눈을 떴어요. 때마침 수성대 특성화 사업으로 생태교육 연구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생태교육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후진 양성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한국코다이음악교육협회, 대구생태유아공동체 등에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생태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일하게 되었어요. Q. 생태교육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무엇입니까? A. 생태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확신을 얻게 됐어요. 자연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은 눈빛부터가 달라요. 맑은 숲 속에서 뛰놀며 성장한 아이들은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요. 한마디로 전인교육에 가장 탁월한 교육법이 저는 생태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나서, 생태교육 전도사가 되었죠(웃음). Q. 교수님은 평소 '한국형 숲유치원 모형 개발'과 '전문 인재의 양성'의 중요성을 역설해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A. 현재 시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은 선진국의 사례를 따르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좋은 것은 받아들여야겠지만, 우리 것의 장점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특유의 숲 문화와 고유한 교육 문화, 놀이문화를 잘 융합해 한국형 숲유치원 모형을 개발·보급된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거예요. 이를 위해 한국형 숲유치원 시범 운영과 다양한 지원 사업 추진 등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생태학습의 보급을 위해서는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만큼이나 숲 체험, 생태학습 등을 지도하는 전문 인재의 양성이 중요해요. 이를 위해 기반 제도 마련과 시스템 구축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계속해나가겠습니다. Q. 대구를 기점으로 시작된 '동네 숲터 발굴 사업'이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시행될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네 숲터 발굴 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A. 우리 곁에 있지만 활용되지 못했던 근거리의 숲터를 발굴하고 재정비해 아이들의 체험학습공간으로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되돌려주자는 것이 이 사업의 취지에요. 대구에서 처음 시작한 이후 40여 군데의 숲터를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어요. 대구를 롤모델로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이 사업을 시행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2년의 임기 동안 이 사업이 전국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Q. 끝으로 성원해주시는 관련자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부족한 사람이 막중한 자리를 맡아 어깨가 무겁습니다. 화합과 소통의 정신으로 협회를 잘 이끌어나가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숲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데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프로필 (사)한국숲유치원협회 회장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코다이음악교육협회 부회장 대구생태유아공동체 대표 대구환경교육 네트워크 공동대표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 위원 대구창조경제연구회 감사 대구광역시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대구광역시 환경정책위원회 위원 경산 큰나무어린이집 공동대표이사 [1007]
    • 교육
    2017-02-20
  • 임행진 前 순천대학교 교수
    최근 전남 순천시는 시의 명예를 높이고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공헌한 공로 임행진 전 순천대 교수를 선정했다. 이에 주간인물은 참된 교육자이자, 지역의 소문난 효자인 임행진 교수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내 성이 임(林)씨인데, 그런데 평생 임학(林學)만 하고 살았으니 진짜 내가 나무박사가 될 운명인가봐요.(웃음)” 환하게 웃는 임행진 교수. 전 순천대학교 임학과 교수로 한국 임학 발전에 기여를 해온 학자이자, 41년간 교직에 머무르며 후진을 키워온 참된 교육자다. 퇴직 후 1998년에 한국복지통신협의회 순천지회를 창립하고 현재까지 수많은 어르신들에게 컴퓨터 무료 교육을 실시해왔고,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30년간 지극정성으로 모셔 ‘효자상(성균관 순천향교 주최)’을 수상한 인물이다. 모두가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영암의 농촌마을에서 가난한 집안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중등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어려운 형편에도 장남만은 대학을 보내 공부 시키려던 부모님의 사랑은 지극한 것이었다고. “그때는 학교를 가려면 몇 리를 걸어서 가야할 때였죠. 줄줄이 동생들은 많은데, 형편이 어려워 저만 대학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에 어렵게 대학을 마치고 중등교사로 교직생활을 시작했어요. 적은 교사 월급이지만 작은 돈을 쪼개 부모님 공양하고, 동생들 공부시키는 낙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교육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요(웃음).” 이후 그는 순천대학교의 전신인 순천 농림고등 전문대학교 때부터 순천대와 인연을 맺어 대학의 성장을 함께 지켜봐왔다. 순천대학교에 재직한 35년 동안 학생처장, 대학원장 등 여러 보직을 두루 거치며 임학 발전과 후진양성에 많은 기여를 한 것. 이런 공로로 그는 국민포장, 교육공로상,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전남에 철쭉이 잘 되지요(웃음). 철쭉 외에도 좋은 나무들이 전남에 많은데, 제가 교수로 있을 때 연구를 위해 일본까지 가서 배워온 것들이 많아요. 오랫동안 나무를 연구하다보니 이제는 나무 곁을 지나기만해도 나무 상태를 한눈에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다들 절 보고 나무박사라 하나 봐요(웃음). 교직에 오래 머물렀으니, 후배 교수와 제자들이 많지요. 학계와 조경 산업에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나온 것이 제겐 큰 보람입니다.” 그는 여러모로 나무를 닮았다. 큰 나무 그늘은 100리가 간다고 했듯이, 주변 사람들을 보살피는 모습이 마치 한그루 아름드리나무와 같다. 아내가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어 고령의 노모를 모시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지난 30년 간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지극정성으로 효도를 다했다. 이런 그의 깊은 효심이 알려지면서 그는 효자상 수상 영예를 안았다. “어머니의 병수발이야 자식된 도리로 당연한 것이죠.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모셨어요. 어머니가 106세로 눈을 감으셨는데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살다가 눈을 감으셨어요. 그게 자식 입장에서는 참 다행인 일이에요. 그런 일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효자상 수상을 하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는 장남으로 집안을 살뜰히 챙기는가 하면 전국 임씨 중앙회 상임부회장으로 친족들을 챙겨왔다. “제가 원래 씨족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관심을 갖고 보다보니, 족보가 잘못된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것을 통합하고 정리하는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러다 차츰 전국 임씨 중앙회에서 일을 도맡아하게 되었고, 지금은 전국 임씨 중앙회 상임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웃음). 친족들 일만큼 집안일을 챙기는데 장남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왔어요.” 그는 퇴직 후에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한국복지통신협의회 순천지회를 창립하고 컴퓨터 무료 교육을 실시해 교육봉사를 해오고 있는 것.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지요. 그러니 조금이라도 세상에 이로운 것은 남기고 가야한다는 것이 제 소신이에요. 그래서 교육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즐겁고, 행복하고 즐거운 노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조금이나마 제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따뜻한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웃음).” 환하게 웃는 임행진 교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늘 젊음을 잃지 않고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그의 모습이 건강했다. 1956년 전남대학교 농과대학 임학과 졸업 1982년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교육학 석사) 1986년 조선대학교 대학원 졸업(이학 박사) 1956년 보성중학교, 순천농고, 영암농고, 강진농고 교사 1965년 순천농림(고등)전문학교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 1979년 순천농업전문대학 교수 1982년 순천대학교 교수 1997년 순천대학교 정년퇴임 1984년 국민포상 1989년 교육공로상 1997년 국민훈장 모란장 81-83년 순천시 정책자문위원 89-95년 광주농고 총동창회 부회장 99-03년 한국복지정보통신협의회 순천지회장 04-06년 한국복지정보통신협의회 순천지회(현 상임고문) 96-2004년 지역발전 추진위원 순천시 96-97년 대한 교련 순천대 분위회장 91년-현재 순천지구 전남대 동문회장 및 고문(현) 97년-현재 전국 임씨 중앙회 상임부회장(현) [999]
    • 교육
    2016-10-31
  • ‘2016 방사선진흥대회’-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 수상
    최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2016 방사선진흥대회’에서 국민 복지향상 분야의 방사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김정훈 교수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에 주간인물은 보건물리학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정훈 교수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김정훈 교수는 경원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원자력공학으로 석·박사를 받은 보건물리 전문가다.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 방사선학과 교수로 한국방사선학회, 대한방사선학과 교수협의회, 대한방사선학회, 한국방사선진흥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와의 만남이 인상 깊었던 건 원자력을 둘러싼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여느 전문가들과 다르다는 점이다.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그의 말이 큰 울림을 주는 건 그 스스로가 원전 지역의 거주민이기 때문이다. “원자력에서 4km 떨어진 곳에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외부의 시선으로 주민들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것은 많이 달라요. 생각보다 주민들이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관심도 높죠. 독재정권 때는 주민들의 저항을 일축하며, 희생만을 강요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시대가 변했어요. 주민들도 무조건 반대만을 외치지 않고, 정부도 예전처럼 공권력으로 밀어붙이지만은 않습니다. 이제는 전문가 집단, 정책의사결정자들, 해당주민들, 시민사회가 모두 마음을 열고 함께 토론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할 때입니다.” 원자력 문제를 둘러싼 우리사회의 갈등의 골은 깊다. 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자력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 “지금까지 우리사회는 원자력 발전소를 하냐, 하지 않느냐로 논쟁을 해왔어요. 정부는 친핵의 입장에서 시민사회는 반핵의 입장에서 각자의 주장만을 펼쳐왔어요. 이렇게 해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원자력을 하더라도 어떻게 안전하게 원자력을 운영할 것인가. 거기에 초점을 맞춰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힘을 모아야합니다. 그리고 그간 원자력 문제라고 하면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는 문제에만 초점을 맞춰왔어요. 선진국의 사례처럼 앞으로 원자력 발전소보다 보건·의료, 산업, 비파괴 분야에 적용되는 관련 산업 비중이 더 커질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 분야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한다고 생각해요.” 원자력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중을 계몽의 대상이아니라 이해와 설득의 대상으로 바라봐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런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많은 자문활동과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중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을 꼽아보라고 하자 그는 특유의 선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최근에 주부들 대상으로 ‘원자력 바로 알기’를 주제로 특강을 한 적이 있어요. 일본 수산물에 대한 안정성 논란이 일 때라 관심이 뜨거웠죠. 전문가 집단이나 관련 종사자들보다 더 큰 관심을 갖는 주부님들의 모습을 보고 느낀 게 컸어요. 생각하는 것보다 대중들은 많은 전문지식을 갖고 있었고 관심도 높았죠. 대중들이 원자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은 무지에서 비롯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쳐 깨우쳐한다는 식의 일부 전문가들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느꼈어요. 원자력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는 대중들을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 원자력을 올바르게 이해시키고 설득해야하는 대상으로 바라봐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연구가 세상을 이롭게 하기를 바라는 사람, 김정훈 교수. 열정적으로 일하는 그에게 꿈이란 늘 가까이 있어보였다. “사실 좋은 논문을 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리 학생들이 먼저에요. 혹자는 아파야 청춘이라고 말하지만 지금은 우리 청년들이 겪고 있는 장래에 대한 불안과 아픔은 상당히 큽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이 사회에서 자기 경쟁력을 갖고 당당히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어요.” 이렇듯 학자로 교육자로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바로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가장 소중한 건 가족이죠. 힘든 암투병을 이겨내며 아들을 응원해주시는 어머니, 살뜰히 내조해주는 아내와 장모님, 그리고 교수의 길을 이끌어주는 누나와 사랑하는 형, 이렇게 가족들이 있어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또 지도교수로 애정을 갖고 격려해주신 경희대학교 부총장 황주호 교수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 그리고 모두 건강하길 바란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웃음).” 2000년 경원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2003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석사 2007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박사 2007년-2009년 경희대학교 연구박사 2009년-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 부교수 2013년-현재 한국방사선학회 이사 2013년-현재 대한방사선학과 교수협의회 이사 2014년-2016년 대한방사선학회 이사 2014년-현재 한국방사선진흥협회 교육이사 [999]
    • 교육
    2016-10-31
  • 김광백 신라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 한국정보통신학회 학회장
    지난 28일 신라대학교는 제18회 신라학술상 수상자로 컴퓨터정보공학부 김광백 교수를 선정했다. 김광백 교수는 인공지능 분야인 인공신경망, 기계학습과 의료영상 분야에서 최근 5년간 SCI급 논문 25편을 포함한 약 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독창적이고 우수한 연구실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에 주간인물은 학계의 인정을 받고 있는 김광백 교수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김광백 교수는 인공지능 분야인 인공신경망, 기계학습과 의료영상 분야의 권위자다. 관련 분야의 SCI급 논문을 수차례 발표함으로써 국내는 물론 해외 기업에서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그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 것은 1997년.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연구할 테마에 대해 고민에 빠졌던 그는 의료영상분야의 새로운 비전을 보게 되었다고. “그 당시에는 패턴인식에 대한 연구가 많았을 때였죠. 하지만 저는 앞으로 컴퓨터공학분야의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연구할 테마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때 의대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동경의대에 있는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됐습니다. 어떤 연구 테마가 장기적인 비전이 있겠느냐는 제 질문에 교수님이 의료영상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의료영상 분야에 관심을 갖고, 진단 세포학을 공부해 기관지 편평암, 암세포 분석쪽으로 연구를 시작했죠. 그것을 시작으로 자궁경부암과 관련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제간 연구를 위해 그는 3년 동안 진단 세포학을 공부한다. 이에 컴퓨터공학을 접목해 자궁경부암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많은 학자들에게 인용되며 학계의 호평을 받게 된다. “자궁암을 연구하다보면, 암세포의 특징이 있는데, 이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어요. 컴퓨터공학은 기술적이고, 의학은 진단적으로 문제를 이해하거든요. 하지만 의사분들이 정확하게 과학적인 접근으로 문제를 풀기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3년 동안 진단 세포학을 공부했고,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공학을 접목시키기 시작했죠. 그래서 연구한지 4년 만에 논문을 발표하게 됐어요.” 한편으로 그는 버스정류차선 번호판 인식 개발, 위조여권인식 개발 등 다양한 연구 성과를 남겼다. 이후 그는 부산대 소화기 내과교수인 동생과 함께 위암 내시경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은 내시경, 초음파 분야의 강국인 일본에서 호평을 받으며 히트를 친다. “내시경 시술을 할 때, 암이 어디까지 전의됐는지 파악해 시술 영역을 찾는 게 중요해요. 하지만 그간 기술로는 쉽지 않았죠. 이 연구 성과로 오차를 줄이고, 정확도를 높일 수 있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2008년, 2011년 영국국제인명센터(IBC)로 부터 ‘세계 100대 과학자’에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논문을 통해 많은 학자들에게 새로운 연구방향을 제시한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한 것. 이후에도 그는 새로운 도전을 계속 이어나갔다. 위암에 이어 간암 분야의 연구를 계속해, 논문을 발표했고 그의 논문은 미국도서관 선정, 2008년 CT 간암 분야 저널 랭킹1위를 차지한다. 현재까지는 그는 백병원과 함께 요부 지방분석과 전립선 관련 연구를, 부산대 의과대학과 함께 간암, 지방간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지방간 연구 성과의 상용화를 눈앞에 둔 상태다. 이 연구가 상용화되면 검진의 정확성을 높이고, 환자들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의료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사들이 초음파를 통해 지방간을 검진하면, 사람이 하는 일이라 간혹 실수가 있거나 지방간 등급을 정할 때 의사결정의 명확성이 떨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연구를 토대로 하면 객관적인 기준으로 지방간 등급을 분석할 수 있고, 환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연구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이렇듯 연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학자, 김광백 교수. 새로운 내일을 여는 그의 연구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논문을 낼 때 논문의 우수한 점과 부족한 점을 함께 써낸다는 김 교수. 그 모습에 부족한 점으로 채워 앞으로 나아가는 젊은 학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늘 새롭게 연구하고 도전하는 그에게 꿈이란 가까이 있는 듯 보였다. “앞으로 의료IT 분야에 비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훗날 학교에 의료IT 학과가 개설된다면, 대학의 경쟁력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앞으로 이 분야에 재능을 지닌 많은 재원들을 키워내는 것, 그것이 저의 꿈이죠(웃음).” 환하게 웃는 김광백 교수. 언제나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그와 행복한 동행이었다. 1999년  부산대학교 전자계산학과 졸업(이학박사) 1997년 ~ 현재:신라대학교 컴퓨터정보공학부 교수 1999년 ~ 2000년: Biomedical Fuzzy Systems Association, Editor(Japan) 2009년 :Journal of Digital Imaging (Springer: SCI), Guest Editor 2013년 :International Journal of Computational Vision and Robotics(SCOPUS), Guest Editor 2013년 :International Journal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SCOPUS), Guest Edit 2014년 ~ 현재:Open Computer Science Journal, Editor 2012년 ~ 현재: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 편집위원 2013년 ~ 현재:International Journal of Intelligent Information Processing(SCOPUS), Editor 2015년 : Computational Intelligence and Neuroscience(SCIE), Lead Guest Editor 2016년 ~ 현재:한국정보통신학회 회장 [996]
    • 교육
    2016-09-12

메디컬 검색결과

  • ‘한국의 클리블랜드 클리닉을 꿈꾸다!’대장항문-소화기병원, 상쾌한병원
    서구화된 식생활 때문에 대장항문 질환이 늘고 있다. 한국인들이 앓고 있는 암 중에 10위권 밖에 있던 대장암은 요즘 발병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현재 남성암 2위, 여성암 3위로 흔한 질병이 되고 있는 것. 이런 추세 속에서 대장항문질환에 대한 조기 진단과 올바른 치료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주간인물은 대장항문-소화기병원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상쾌한병원, 최정석 병원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대장항문 질환은 환자들이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질환이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 등한시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서구화된 식생활로 인해 날로 늘어나는 대장항문질환, 빠른 조기 진단과 올바른 치료가 건강의 첫걸음입니다!” 환하게 웃는 최정석 병원장. 그는 대장항문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의료인이다. 대장항문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플로리다에서 연구 강사로 활동했고, 수많은 대장항문질환 관련 논문발표와 방송출연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렇듯 탄탄한 실력과 명성을 자랑하는 그는 어떻게 대장항문 세부 전문의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어려서부터 주변에 좋은 의사 분들이 많았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의사의 꿈을 꾸고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제가 대장항문 세부전문의의 길을 선택할 때만해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죠(웃음). 하지만 장기적으로 대장항문 분야의 중요성이 날로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분야를 선택했어요. 그 당시 치질, 변비, 변실금, 대장용종, 대장암 등 여러 가지 대장항문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은 많아도 전문적으로 치료할 의사가 많이 없는 현실이 늘 안타까웠어요. 그 당시 대장항문질환의 분야의 여건이 열악했거든요. 그래서 배움을 찾아 미국으로 향했죠.” 그렇게 그는 1997년, 대장항문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플로리다에서 연구 강사로 활동한다. 그 당시 부산에서 최초, 국내에선 세 번째의 도전이었다. 1년 3개월간의 연구 강사활동을 마치고 난 뒤, 많은 연구논문과 다양한 활동으로 주목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춘해병원에서 대장항문클리닉 과장으로 일하며 그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배변조영술, 항문초음파검사, 항문내압검사 등 고가의 장비가 필요했지만 병원 재정상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요. 그래서 이런 점을 개선하고, 다양한 대장항문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한 번에 케어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어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실력 있는 병원, 전문성 있는 병원, 가족 같은 병원을 만들겠단 생각으로 그는 2002년 상쾌한병원을 개원했다. 2011년, 현대식으로 신축한 공간에 첨단장비를 구비해 외과, 내과, 영상의학과 전문의인 우수한 의료진을 초빙해 대장항문 및 소화기 병원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상쾌한병원은 개인병원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고가의 최첨단 장비와 뛰어난 의료서비스로 환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위/대장 내시경, 치질 수술 잘하는 병원으로 높은 평판을 얻은 것. 상쾌한병원은 위/대장 내시경 치질 수술과 관련해 최첨단 의료장비를 보유하고, 최신 수술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첨단 내시경인 올림푸스 190을 구비해 안전하고 정확한 내시경 진단을 하고 있다. 올림푸스 190은 고해상도의 NBI( Narrow Band Imaging) 협대역내시경으로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는 혁신적 첨단기술 장비다. 또한 독일 ERBE사의 첨단 VIO 300S/APC2 장비를 구비하여 안전하고 섬세한 내시경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VIO 300S/APC2는 내시경 용종수술시(대장용종, 위용종) 조직의 손상을 낮추며 수술시 예상되는 합병증을 최소화하는 최첨단 전기 수술기이다. 한편 치질수술에 있어서도 PPH 치질수술법을 도입하고 있다. PPH 치질수술법은 세계적인 헬스케어 회사인 존슨앤존슨 메디칼의 원형자동문합기구를 이용한 통증이 매우 적은 치질 수술법이다. PPH 치질수술은 늘어진 항문점막 및 치핵덩어리를 원래의 위치로 끌어올린 후 절제하고 봉합하는 시술법으로 늘어진 치핵 조직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주는 근본적인 치료방법이다. 수술시간이 짧고 통증이 적으며 상처 치유기간이 짧아 일상생활로의 복귀가 빠르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병원에서 양성대장질환 환자들을 맡기고, 대장항문분야의 교수들과 동료의사들이 인정하는 병원을 만들기까지……. 그 바탕에는 풍부한 임상경험으로 다져진 탄탄한 실력과 특화된 의료서비스가 있다. “사람의 얼굴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항문의 모양도 제각각입니다. 항문은 변이 새는 것을 막고, 변을 잘 배출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어요. 치질 수술을 할 때 항문을 많이 도려내기보다는 고유의 모양과 기능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수술하는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치질 수술을 하는 의사를 재단사와 같다고 하죠(웃음).” 환자 한명, 한명을 내 가족처럼 돌보는 최정석 원장. 많은 수술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그가 한결같은 건 인술을 베푸는 선한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대장항문질환은 남모를 고통이 심한 질환이에요. 부끄럽다고 숨기지 말고, 조기에 잘 치료를 하면 다시 건강해질 수 있는 병이죠. 저희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다시 건강을 찾은 환자들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환자들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병원, 그런 좋은 병원을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서도 그는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외래교수, 부산시 수영구 의사협회 회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실력 있는 병원, 전문성으로 인정받는 병원을 만들기 위한 그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직까지 대장항문 소화기 병원에서 대장암 수술까지는 하지 않아요. 앞으로는 병원을 더욱 발전시켜, 대장암까지 수술할 수 있는 병원, 대학병원에 비교해도 손색없는 전문화된 병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처럼, 작지만 전문화된 실력으로 인정받는 병원을 만들고 싶다는 최정석 원장. 꿈이 있는 병원을 만들어가는 그의 내일이 기대된다. 프로필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부산대학교병원 인턴, 레지던트 과정 수료 일반외과 전문의, 의학박사 대장항문외과 세부전문의 춘해병원 대장항문클리닉 과장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플로리다 연구강사(1997-1998) 대한 대장항문학회 인증 대장내시경 전문의 대한 외과학회 평생회원 대한 대장항문학회 평생회원 미국 대장항문병학회 정회원 <학회 및 논문발표; 국내외 54회> KNN 건강강좌, 부산일보, 건강칼럼, MBC TV닥터 저서; 임상에서 흔히 접하는 대장항문질환 상쾌한 병원과 함께하는 “튼튼한 대장항문 만들기” (현)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외래 교수 (현)부산시 수영구 의사협회 회장 ­ (현)상쾌한병원 병원장 [1004]
    • 메디컬
    2017-01-06
  • 대구·경북 최초 ‘아쿠아 ICL 전문센터’ 지정-앞서나가는 의료서비스로 인정받는 ‘한빛안과’
    2000년도 개원한 한빛안과는 대구·경북에서 시력교정수술로 이름난 곳이다. 최근 홍채절개를 하지 않는 유일한 안내삽입렌즈인 아쿠아 ICL의 제조사, STAAR Surgical 社로부터 ‘아쿠아ICL 전문센터’로 공식 지정돼 화제가 되고 있다. 올해 초 ‘아쿠아 ICL 2016 교육연구상’ 수상한데 이어 공로를 인정받은 것. 이에 주간인물은 선도적인 의료서비스로 인정받는 한빛안과를 찾아, 열정적인 의료진의 모습을 담았다. _박미희 기자 2000년부터 시력교정수술을 시작한 한빛안과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앞서나가는 의료서비스로 인정받는 곳이다. 우수한 의료진, 뛰어난 의료설비와 풍부한 임상경험을 두루 갖춰 지역 의료문화를 선도해나가고 있다. 최근 STAAR Surgical 社로부터 ‘아쿠아 ICL 전문센터’로 지정된 것도 그간의 이런 노력들을 인정받은 결과다. “아쿠아 ICL은 근시 및 난시 교정을 위한 시력 교정 렌즈로 미국 STAAR Surgical 社가 특허를 받은 생체친화적인 ‘콜라머’ 재질로 만든 특수렌즈에요. 홍채절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안내삽입렌즈이기 때문에 라식·라섹 수술이 불가능한 고도근시 환자, 각막이 얇아 레이저 수술이 어려운 경우, 각막을 깎아내기 싫어하는 환자들에게 주로 시행되는 수술법입니다. 국내는 2002년 KFDA 승인을 받아 수술이 시작되었으며, 8만 명 이상이 수술을 받아 안전성이 입증됐습니다. 많은 병원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성공적인 수술을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경험을 갖춘 의사가, 제대로 수술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죠.” 많은 장점들로 아쿠아 ICL은 이미 많은 안과에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STAAR Surgical 社로부터 ‘아쿠아 ICL 전문센터’로 지정받은 것은 대구경북에서 한빛안과가 유일하다. 아쿠아 ICL의 안전성과 효과성 및 우수성을 입증하고, 아쿠아 ICL 수술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앞서나가는 의료서비스로 인정받는 병원을 만들기까지 그 뒤에는 김종욱, 배언희, 박건욱 원장의 열정이 있었다. 대구 경북, 시력교정수술 1세대로 시작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변함없이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을 만들어 온 것. 그 바탕에는 흔들리지 않은 원칙과 소신이 있다. “시력교정수술은 평생에 단 한번 하는 수술입니다. 그러니 그만큼 정밀 검사를 거쳐 충분한 상담 후 수술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의 소홀함이 없이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지금까지 진료해 왔기에 오늘날 한빛안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병원은 단순히 하나의 잣대로만 평가할 수 없어요. 풍부한 임상경험을 지닌 우수한 의료진, 뛰어난 의료설비, 그리고 친절한 서비스가 두루 갖춰질 때 비로소 좋은 병원이 되는 거죠(웃음).” 오랜 세월,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며 보낸 순간순간이 값지다는 그들. 그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에 대해 묻자,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시력교정수술로 자신의 꿈을 찾은 환자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시력교정수술을 받고 육군사관학교나 경찰대학에 지원해 꿈을 이룬 환자들을 다시 만나면 참 뿌듯하죠. 또 시력교정수술을 받고 나서, ‘세상이 이렇게 밝고 환했느냐’며 환하게 웃는 환자들을 보면 너무 기쁩니다(웃음).” 김종욱, 박건욱 원장의 아들도 이곳에서 시력교정수술을 받았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시력교정수술을 해줄 만큼, 믿고 맡길 수 있는 병원. 그 바탕에는 앞서나가는 의료기술을 연구하는 그들의 노력이 있다. 끝으로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말에 그들은 평소 생각을 소탈하게 전했다. “똑같은 물감과 똑같은 도화지를 줘도 어떤 화가가 그리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지요(웃음). 저는 시력교정수술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에 단 한번, 내 소중한 눈을 맡기는 일이니만큼 단순히 수술비용만을 따져 병원을 선택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에요. 시력교정술은 개개인의 눈 특성에 맞는 수술이 중요한 만큼, 정말 믿고 맡길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실력 있는 병원, 한빛안과의 내일이 기대된다. [1004]
    • 메디컬
    2017-01-06
  • ‘광주 48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청년 의사
    2016년 한해를 갈무리하는 지금. 추운 한파에도 따뜻한 나눔의 손길을 전하는 사람이 있어 화제다. 만 서른 둘, 젊은 나이에 광주 48호 아너소사이어티로 이름을 올린 김진우 병원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평소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온 청년 한의사가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을 한 일도 대단한데, 올해 말 우수한 시설과 뛰어난 의료진을 보유한 백운요양병원을 개원해 지역 의료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이렇듯 쉽지 않은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김진우 병원장은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이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어 꿈을 펼칠 수 있었다’며 선한 웃음을 짓는 젊은 의료인, 김진우 병원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Q. 만 32세, 젊은 나이에 광주 48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이름을 올리셨습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을 결심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시다면. A. 저는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는 사회 선배님들을 보면서, 참 멋지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평소 가입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저도 꼭 가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급적 이른 나이에 가입을 하면, 저처럼 저를 보고 꿈을 키우는 후배들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올해 광주 48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Q.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 전부터 ‘남구가족사랑 나눔협약식’ 체결, 유니세프 가입 등을 통해 꾸준히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오셨습니다. 병원장님에게 나눔과 봉사는 어떤 의미입니까? A. 저는 어려서부터 주변에 선물을 하거나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로 남을 돕는 것을 좋아했어요. 상대방이 진심으로 기뻐하거나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참 기쁘더라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종교는 없지만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착한 일을 하고 살면 저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왔어요. 백운요양병원을 개원하기까지 사회 각계각층의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과 격려가 있었습니다. 결코 혼자 힘으로 가능했던 일은 아니었어요. 이 자리를 빌어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Q. 만 32세, 젊은 나이로 백운요양병원을 개원해 많은 관심을 얻고 있으십니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인데, 요양병원 개원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십니까? A. 점차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늘어나는 노인인구에 대한 케어가 중요해지고 있어요. 초창기에 요양병원을 마치 현대판 고려장으로 보는 안 좋은 인식도 많았지만, 점차 한국 사회가 핵가족화되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요양병원에 대한 사회적인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젠 노인 케어시설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가 오고 있고, 그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질 것입니다. 요양병원 개원을 결심한데는 개인적인 경험도 컸어요. 3년 전,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식구들이 일하러 나간 사이에 집 계단에서 넘어져 그만 돌아가셨어요. 누군가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결코 돌아가실만한 사고는 절대 아니었거든요. 그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노인들을 곁에서 더 따뜻하게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찾기 편리한 위치에 쾌적하고 좋은 시설을 갖춘 요양병원을 개원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Q. 김진우 병원장님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단순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제 꿈은 우선 가족들을 잘 보살피는 거예요. 그리고 작으나마,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싶어요. 훗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된다면 더 좋겠죠(웃음). 그리고 제가 동물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유기견과 유기묘를 위한 보호시설을 마련해 버림받는 아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싶습니다. Q. 끝으로 힘이 되어준 많은 관련자분들과 환자분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결코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고마운 분들을 한분, 한분 다 거명하자면, 이 지면을 다 채우고도 남을 거예요(웃음). 그만큼 제 주변에 감사한 분들이 참 많아요. 그중에서도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행복한 요양병원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실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인생의 멘토, 이경준 원장님과 정원창 원장님께 특별히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1003]
    • 메디컬
    2016-12-26

맛집탐방 검색결과

  • 이젠, 창원에서 뜨는 인덕동에 가봐! 트렌드한 외식문화가 있는 곳, 카페인덕동
    창원시 마산합포구 덕동동, 하수처리 시설이 있어 창원 사람들에게 외곽이라 여겨지는 이곳에 트렌드한 외식문화를 소개하는 카페가 생겨 화제다. 바로 월드 로스팅 챔피언의 커피와 셰프가 직접 조리한 브런치, 전문 베이커의 베이커리를 즐길 수 있는 CAFE IN 덕동이 바로 그곳이다. 그곳에서 지역 외식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오고 있는 젊은 외식경영인, 황지선 대표와 마주했다. _박미희 기자 “창원의 외곽으로 여기는 덕동동이 외식문화가 꽃피는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가장 좋은 것들만 담아 정성껏 내놓겠습니다.” 환하게 웃는 황지선 대표. 그녀는 원래 서울에서 13년 동안 명품관련 잡지사의 웨딩플래너로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우리나라 웨딩플래너 1세대다. 평소 요리와 카페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던 그녀는 이태리 남부 출신의 실력파 셰프에게 이태리 가정식 요리를 배웠고 푸드스타일리스트에게 플레이팅과 요리를 배우며 실력을 다졌다. 이런 준비과정 끝에 그녀는 자신의 사업을 하고자 고향, 마산으로 내려와 CAFE IN 덕동을 오픈했다. 지역에서 앞서나가는 브런치&카페 문화를 알리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창원에서 찾아가볼만한 카페로 입소문이 나고 있는 CAFE IN 덕동. 프로페셔널한 그녀처럼 이곳의 메뉴는 한마디로 야무지다. 브런치, 베이커리, 커피 음료 등 많은 메뉴가 있지만 무엇 하나 손님들에게 허투루 나가는 게 없다. 보통 카페에서 다양한 메뉴를 하다보면 하나에만 힘을 주게 마련인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베이킹, 브런치, 커피 등 각 파트별로 구성된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모든 메뉴를 직접 개발하고 만들어내고 있는 것. 이런 정성을 그녀는 ‘진정성 있게 손님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한다. “‘트렌드’라는 말은 좋아하지만, ‘유행’이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아요. 한때 인기를 끌었다 쉽게 잊혀지는 카페가 아니라 오랫동안 손님들의 사랑을 받는 카페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겉모습이 아니라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콘텐츠가 뛰어나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손님들에게 내놓는 브런치, 베이커리, 커피 어느 하나 대충하는 것이 없어요.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를 손님들에게 내놓고 있습니다. 그것이 손님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진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이성곤 셰프, 이창석 베이킹 팀장, 예성제 바리스타가 각 파트의 팀장으로 이곳의 메뉴를 책임지고 있다. 탄탄한 실력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돋보이는 사람들. 전문가들의 탄탄한 실력만큼이나 이곳의 맛의 핵심은 바로 신선한 재료에 있다. 월드 로스팅 챔피언, 고토 나오키가 로스팅한 원두를 사용하고 신선한 재철 식재료와 직접 베이킹한 다양한 베이커리들을 사용한다. 반조리 식품이나 인스턴트식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작은 것도 직접 만드는 핸드메이드를 고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무엇일까. 커피로는 단연 직접 만든 코코아 파우더가 가득 뿌려져 달콤한 티라미슈의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티라미슈 라떼’, 비엔나커피의 일종으로 히말라야 소금이 뿌려져 나와 단맛과 짠맛의 조화를 느낄 수 있는 ‘히말라야 소금라떼’를 들 수 있다. 브런치 메뉴로는 토스트, 수제소시지, 베이컨, 스카치에그, 그릴버섯, 병아리콩 샐러드가 푸짐하게 담겨 나오는 ‘아메리칸 브랙퍼스트’, 자몽, 라임, 딜, 타임으로 브락스 한 알래스카 생연어에 리코타치즈, 계절 그린야채, 유자라임드레싱을 곁들인 ‘연어 리코타 샐러드’, 그릴에 구운 삼겹살, 페페론치노 그라나파다노를 넣은 ‘삼겹살 스테이크 파스타’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수박 모양을 닮은 수박빵을 비롯해 매일 구워내는 신선한 베이커리도 단연 인기다. 이들 메뉴의 공통점은 손이 많이 가고 좋은 재료를 사용한 것에 반해 가격 부담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브런치 메뉴는 평균 1만 5천 원 선이면 즐길 수 있어 이른바 가성비가 좋다. 이는 지역에 앞서나가는 브런치 문화를 알리고 싶은 그녀의 생각이 담겨있기 때문. “누구나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브런치 메뉴는 없어요. 모두가 좋은 재료를 사용해 셰프가 직접 만든 요리죠. 브런치도 하나의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가격 부담이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도록 메뉴를 구성했습니다.” CAFE IN 덕동. 그 이름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카페를 만들고 싶다는 황지선 대표. 긍정적인 마인드와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젊은 프로들의 모습은 많은 손님들을 다시 찾게 하는 힘이다. 외곽으로만 여겨지는 덕동동. 이젠 이곳을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면서 이곳은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CAFE IN 덕동, 덕동동 안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구요. 인사동, 논현동처럼 앞으로 인덕동(IN 덕동)이 하나의 이름이 되었으면 해요. 마산의 외지로 여겨지던 덕동동이 외식문화가 꽃피는 거리가 되었으면 바램입니다. 앞으로 CAFE IN 덕동하면 믿고 찾아올 수 있는 곳, 새로운 외식문화를 소개하는 랜드마크로 만들어가겠습니다!” [1008]
    • 맛집탐방
    2017-03-02
  • ‘한결같이 늘 그렇게’, 또바기 정신으로-오랫동안 사랑받는 외식브랜드를 만들어가겠습니다!
    대구 김광석거리, 줄서서 먹는 맛집이 있다. 바로 일본 퓨전가정식을 대구에 소개한 또바기 kitchen&bar가 바로 그곳이다. 이번엔 명덕시장길에 한식을 메인으로한 또바기 kitchen&bar 2호점을 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참신한 발상으로 사랑받는 외식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김영재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언제, 어디서나 믿고 찾을 수 있는 외식 브랜드 ‘또바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청년들이 함께 꿈을 키워나가는 브랜드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환하게 웃는 김영재 대표. 그는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젊은 외식경영인이다. 조리학과 출신으로 일찍이 외식사업에 뜻을 둔 그는 유명 외식업체에서 경험을 쌓았다. 맨손으로 시작해 창업을 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지만 ‘할 수 있다!’는 청년정신으로 창업을 시작했다. “다른 업장에서 일할 때도 언제나 ‘내가 대표’라는 마음으로 일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보니 어느새 경영 마인드가 쌓이더군요. 그렇게 요식업에서 일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언제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법. 그는 우연히 떠난 일본 여행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일본 여행 때 가이세키 요리를 맛보곤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어요. 식사를 하면서 대접받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 가이세키 요리를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소개하고 싶었어요. 제가 시작할 당시에는 대구에서 일본 가정식을 하는 곳이 거의 없을 때였지만, 분명 가이세키 요리를 대중적으로 풀어내면 젊은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첫 선을 보인 또바기키친앤바 1호점은 일본 퓨전가정식을 주메뉴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모두 1인상에 담겨져 나오는 정갈한 일본 퓨전가정식은 젊은 식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작은 재료 하나까지 직접 만드는 정성, 반찬 하나 하나 예쁜 그릇에 담겨나오는 정갈함, 그리고 1만 원대의 부담없는 가격은 이곳의 인기의 비결이다. 이런 매력에 오픈한 지 얼마되지 않아 이곳은 김광석 거리에서 줄서는 맛집이 됐다. 첫 매장이 성공하면 안이해지기 마련인데, 언제나 업장에 나와 손님을 맞는 그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좋은 음식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초심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 “또바기는 순우리말로 ‘언제나 한결같이 꼭 그렇게’라는 뜻이에요. 좋은 음식을 대중적으로 소개하겠다는 그 초심, 그 마음을 지키고 싶어 브랜드 명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획일적인 프랜차이즈 업장을 내고 싶진 않단다. 여기 저기 투자 제안이 들어와도 흔들림 없는 건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추구하고 싶어서라고. 그래서 이번엔 한식을 주 메뉴로 명덕시장길에 또바기키친앤바 2호점을 열었다. 수육정식, 닭갈비정식, 김치퀘사디아 등 모두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가는 요리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가격대는 1만 원대 안팎이다. 엄마가 해주는 집밥처럼 정성은 듬뿍 담되, 주머니 가벼운 손님들도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대중성을 추구했다. 거기에 카페 온 듯 한 캐주얼하고 편안한 감성은 ‘한끼를 먹어도 잘 먹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구성이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외식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젊은 베테랑. 그의 꿈은 오늘도 성장하고 있다. “외식경영인으로 백종원 대표를, 셰프로는 최현석 셰프가 롤모델이에요. 손이 많이 가는 세련된 요리를 보다 대중적으로 손님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처럼 어렵게 시작한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꿈꾸는 청년, 김영재 대표가 만들어갈 내일이 기대된다. [1008]
    • 맛집탐방
    2017-03-02
  • 국내 최초, ‘수제 초밥 전문점’, 스시정창현-직접 만들어먹는 초밥으로 화제!
    2년 전 창원의 스시 달인으로 주간인물을 멋지게 장식한 정창현 대표를 주간인물이 다시 만났다. 20여년 경력의 젊은 베테랑, 탄탄한 실력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창원에 새로운 외식 문화를 만들었던 그가 이번엔 국내 최초 ‘수제 초밥 전문점’에 도전해 화제가 되고 있다. _박미희 기자 ‘스시정창현.’ 자신의 이름을 건 업장에서 그가 환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다찌 앞에서 손님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한 그는 여전히 변함없었다. 좋은 재료로 만든 정직한 음식을 내놓겠다는 신념을 지키고 있는 것. 하지만 그간 변한 것이 있다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갖는 건강한 활력이 느껴질 뿐이다. 스시 하나로 창원 미식가들을 단번에 사로잡은 그가 이번엔 ‘수제 초밥 전문점’에 도전했다. 그때 문득 드는 생각, ‘스시는 당연히 수제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 ‘수제’란 주방장이 아닌 손님이 직접 초밥을 만들어 먹는다는 의미다. 그럼 손님이 비닐장갑까지 끼고 초밥을 만든다고? 아니다. 스시밥을 숟가락에 올려 밥 위에 생와사비를 적당히 올리고 생선회를 간장에 찍어서 올려 먹거나 젓가락을 이용해 생선회로 밥을 감싸 생와사비를 푼 간장에 찍어 날치알을 곁들여 먹는 방법이다. 흔히 ‘스시=장인의 손맛’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참신한 발상. 그가 이런 도전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20년 동안 스시를 만들어왔어요. 저는 그동안 어떻게 하면 조금 특이하고 맛있게 스시를 먹을 수 없을까, 그 방법을 수없이 고민해왔죠. 그 결과 기존 스시가 갖는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기존 방식대로 스시를 만들려면 우선 밥을 식혀야하구요. 스시를 만들고나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밥이 굳는 단점이 있죠. 하지만 네타(스시 위에 올라가는 활어회 등)은 따뜻한 밥에 올려 먹을 때 더 맛있거든요. 그래서 초대리로 간을 한 따뜻한 스시밥을 떠서 네타를 올리는 방식으로 스시를 내놓게 되었습니다.” 고슬 고슬~ 공기가 많이 들어가 밥알이 살아있는 따뜻한 스시밥에 올려먹는 도톰한 생선회. 그 맛은 가히 일품이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밥양을 조절할 수 있어 더욱 맛있게 스시를 즐길 수 있다. 그러니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스시밥이다. 전국에 있는 쌀 중에서 스시에 가장 적합하게 개량된 쌀을 선별하였고, 유자로 맛을 낸 초대리로 간을 한다. “밥이 맛있어서 몇 번이고 리필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저희 가게는 스시에 가장 적합하게 개량된 쌀을 사용합니다. 밥알이 매끈하고 윤기가 돌아 밥을 지어놓으면 정말 맛있죠. 그리고 유자로 맛을 낸 초대리로 간을 해 풍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창원에 이름난 스시 전문점, ‘스시창’(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마디미로38번길 11Nest빌딩/T.055-266-1607)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가장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정성껏 음식을 만든다는 것. 이 원칙은 이곳에서도 변함이 없다. 그가 직접 제작한 그릇에 스시밥을 중심으로 광어, 연어, 참치뱃살 등 신선한 생선회가 올려져 나온다. 따라 나오는 밑반찬들과 미소장국, 샐러드 하나까지 모두 정갈하고 맛있다. 이렇게 애피타이저, 수제초밥, 장국, 조림, 튀김, 식사까지 함께 나오는 코스는 코스별로 2만 5천원에서 4만 5천 원 선. 수제초밥만 즐길 수 있는 단품 메뉴는 1만 5천원이니, 정말 착한 가격이다. 좋은 재료를 쓰고도 이렇게 가성비가 좋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인건비를 줄였기 때문이라고. “업장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의 고충은 모두 같아요. 기술자를 구하기도 어렵고 한 달에 나가는 인건비도 만만치 않죠. 좋은 재료를 써서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인건비 때문에 운영에 어려움이 커요. 하지만 수제 초밥 전문점은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창업을 희망하는 분들도 단기간에 일을 배울 수 있어 누구나 쉽게 창업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많은 기술자가 필요하지 않다보니 소규모 업장으로도 운영이 가능하다.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어 회전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거기에 손님들의 재방문율이 높아 수익성도 좋다. 스시정창현은 창원 상남점 본점 (주소: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마디미로9번길 4/T.055-286-1213)을 비롯해 마산 2호점(주소: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옛길 77 /T.055-256-1113)까지…….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손님들의 반응은 뜨겁다. ‘수제 초밥’이라는 신선한 컨셉에 가성비까지 두루 갖춰 식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 여기 저기 가맹문의가 들어오고 있지만 오히려 그는 조급하기보다 신중했다. 외형적인 성장보다는 내실을 다지며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로 키워나가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 “정창현, 제 이름을 건만큼 믿고 먹을 수 있는 브랜드로 키워나고 싶어요. 외식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브랜드, 소상공인들에게 따뜻한 힘이 되는 착한 브랜드로 키워나가겠습니다!” [1008]
    • 맛집탐방
    2017-03-02
  • 독보적인 존재감! ‘부산 다이닝’을 맛볼 수 있는 그곳
    요즘 부산에서 파인다이닝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부산은 외식문화가 발달된 수도권과 달리 소비자 층이 적고 원활한 식자재 공급과 인력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파인다이닝으로 이름을 알렸던 유명한 업장들도 하나, 둘 문을 닫고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전 하고 있는 추세. 이 같은 현실 속에서 부산의 색깔을 살린 파인다이닝이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부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파인다이닝’이라는 확실한 임팩트를 주는 머스트루가 바로 그곳이다. _박미희 기자 라꽁띠, 엘올리브가든에서 활동했던 정재용 셰프가 이번에 자신의 업장을 냈다. 탄탄한 기본기와 창의적인 요리로 인정받는 그의 회심작, 머스트루는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미식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바로 ‘부산형 파인다이닝’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 것. “부산에서 파인다이닝은 셰프로서도 어려운 작업이에요. 고도의 집중력과 화려한 테크닉과 창의성을 집약해야하니까요.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하이엔드 기술을 발휘한 세련된 요리를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부산에서도 이런 업장들이 많이 생겨나야 지역의 외식문화가 발전하고 많은 인재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유명한 파인다이닝은 많죠. 하지만 부산에서 경쟁력을 지니려면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승부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요리와 독특한 분위기를 추구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희 업장을 ‘부산 다이닝’이라고 설명하죠.” ‘must+truth’의 합성어라는 ‘mustrue'. 이 이름에서도 진정성 있게 손님들에게 다가가고자하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손님들과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도록 구성된 업장의 특이한 구조에서도 알 수 있다. 마치 친구 집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의 내부는 몇 개의 테이블을 제외하곤 바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곳 앉아서 코스의 전과정을 요리하는 셰프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것. “오픈 주방이라 바에 앉아서 요리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실 수 있어요. 단순히 요리를 미각으로만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나의 연극처럼 요리의 전과정을 보고, 느끼고, 즐기는 감동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완벽한 오감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곳. 2시간 내내 오로지 손님에게 집중하는 정재용 셰프의 손길에서 나온 코스 요리는 감동적이다. 에피타이저부터 마지막 후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않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특히 가지된장과 과리꼬추를 가니쉬로 올린 스테이크, 멸치국수를 활용한 카펠리니 파스타 등 한식의 요소를 가미한 창의적 발상이 눈에 띈다. “가장 맛있는 요리는 좋은 재료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참가자미, 딱새우, 멸치 등 부산·경남에서 구하기 쉬운 로컬푸드를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산하면 멸치국수가 유명하죠. 그래서 멸치육수를 베이스로한 카펠리니 파스타를 내놓고 있어요. 그리고 고기를 먹을 때 장과 야채를 곁들이는 한식의 요소를 활용해서 스테이크를 내놓고 있습니다.” 이렇듯 탄탄한 기본기와 창의성으로 인정받는 정재용 셰프.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젊은 베테랑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부산의 외식문화가 발전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서 재능을 펼치고 싶은 젊은 셰프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진정성 있게 손님들에게 다가가려는 마음, 그 초심을 지키고 싶습니다.” [1007]
    • 맛집탐방
    2017-02-20
  • 도심 속, 푸르른 정원이 펼쳐진 힐링카페 “좋은 것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죠!”
    김해 가야의 길에 위치한 SS커피는 스토리가 있는 공간이다. 보기 드물게 도심 속 푸르른 나무들로 꾸며진 정원이 있는 이곳은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고 있다. _박미희 기자 따뜻한 감성과 문화가 흐르는 공간, SS커피는 요즘 김해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그 이유는 뛰어난 커피의 맛도 맛이겠지만, 무엇보다 도심 속에 푸른 정원을 품은 카페이기 때문이다. 금싸라기 같은 비싼 땅에 건물을 올려도 부족하겠건만, 정원을 만들다니……. 조금은 남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이 아닐까하는 기대만큼이나 취재진이 만난 김병욱 대표는 역시나 열린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 원래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했던 그는 퇴직 이후에 새로운 관심사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조경. 원래 조경에 ‘조’자로 모르던 그가 조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이곳에 정원을 만들면서부터다. 지금의 푸르른 모습과 달리 원래 이곳은 물웅덩이가 있는 빈땅이었다. 궂은 날이면 웅덩이에서 자란 해충들로 인근 주민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던 것을 그가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꾸기로 결심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인근 주민들도 이 땅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죠. 저는 오히려 이곳을 삭막한 도심에 숨통을 틔어주는 힐링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수많은 반대와 어려움을 딛고 이곳에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조경에 ‘조’자도 모르던 사람이 정원을 가꾸다니 나중엔 다들 놀라더군요(웃음). 그때 저는 ‘누구나 열정을 가지면, 비전문가도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힘들게 만들었지만 정원이 내 것이라는 생각은 없어요. 좋은 건 많은 사람들이 같이 보면 더 좋으니까요. 그렇게 정원을 만들고,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 정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카페를 만들었다는 말이 맞지요.” 이곳은 브랜딩부터 남다른데, SS커피란 이름은 파사석탑과 관련된 석선(돌:石 배:船)의 약자에서 따왔단다. 가야의 길에 위치한 만큼 김해의 역사를 알리고 싶어 하는 그의 생각이 담겼다. ‘가장 상업적이지 않는 것이, 가장 상업적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카페 운영에서도 알 수 있다. 커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운영하는 이곳은 좋은 커피로 입소문이 났다. 최고급 원두를 사용해 정성껏 내린 커피, 그 가치에 맞게 담는 잔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썼다. 개인 업장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도예가의 도자기 잔을 사용하고 있는 것. ‘손님들에게 커피 한잔을 내놓아도 최선을 다해 내놓겠다’는 신념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신선한 제철 과일을 듬뿍 올려 건강한 재료로 만든 타르트도 이곳의 인기 메뉴다. 값싼 통조림 과일을 쓸 수도 화학첨가제를 써서 쉽게 만들 수도 있지만, 변함없이 ‘좋은 재료를 쓴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때론 너무 코스트가 높아서 ‘그렇게 해서 남느냐’는 퉁을 듣기도해요. 한편으론 그 말도 일리는 있죠. 하지만 저는 사람이 느끼는 건 다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눈 앞에 보이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순 없겠지만, 분명 좋은 재료를 써서 정성껏 만든 커피와 디저트를 알아보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힘들더라도 이 원칙을 지켜가려고 합니다.” 푸르른 정원 속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커피 한잔. 그 시간이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이 정원은 저만의 것이 아니에요. 좋은 것은 많은 사람들하고 나눌수록 좋지요. 휴식이 필요한 분들이 찾아오셔서 이 공간을 즐기고, 좋은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더 상대방을 배려하고, 다름을 이해한다면 더 좋은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심 속 활력이 되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들의 진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1006]
    • 맛집탐방
    2017-02-01
  • ‘맛’, ‘서비스’, ‘분위기’ 삼박자를 골고루 갖춘 곳 - 기분 좋은 레스토랑, OVER30
    사람의 기분을 가장 쉽게 좋게 하는 방법은 뭘까? 바로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 가성비 좋은 레스토랑으로 입소문난 OVER30는 행복한 외식공간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그곳에서 열정적인 젊은 외식 경영인, 정재식 대표를 만났다. _박미희 기자 OVER30는 울산 동구 일산지해수욕장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보기 드물게 ‘맛’, ‘서비스’, ‘분위기’, 삼박자를 골고루 갖춘 레스토랑으로 사랑받아온 것. 최근 창원 가로수길에 2호점을 열면서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기분 좋은 레스토랑’으로 기억되는 OVER30. 이곳의 주인인 정재식 대표는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이다. 다년간 외식업에 몸담아온 그가 갖는 외식업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제가 이 일을 참 좋아해요. 정확하게 말하면 일만큼이나 사람을 더 좋아하죠(웃음). 어린 나이에 외식업에 입문한 이후로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았어요. 물론 더 좋은 조건의 일도 많았지만 서른이 돼서 이 일을 다시 택한 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저도 어려서부터 일을 했기에 외식업의 열악한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래서 저와 함께 일하는 친구들은 서른이 되면 다 사장님이 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이런 의미로 이름을 OVER30라 짓게 되었습니다.” 이름에 깃든 애정만큼이나 이곳은 남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다. 블루, 화이트, 골드를 메인컬러로 한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거기에 고급스러운 식기와 기품 있는 소품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무엇보다 이곳의 특별하게 하는 것은 역시 맛이다. 통통한 새우, 마늘과 올리브오일의 조화가 조화로운 ‘감바스 알 아히효’, 직접 만든 라비올리에 트러플 오일로 향을 더한 ‘트러플 오일 라비올리’, 드라에이징한 국내산 육우 채끝 등심을 써서 진한 풍미를 잘 살린 ‘30′s 뉴욕 스트립 스테이크’ 등이 인기메뉴다. 그리고 바텐더로 경험을 잘 살려 만든 샹그리아 피쳐 라인도 SNS상에 화제가 되고 있다. 와인은 비싸다는 편견을 깨고 1000ml에 1만원이라는 착한 가격과 좋은 맛으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다른 곳은 절대 따라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손님들을 대하는 사장님의 마음가짐이다. “경영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소비자 감성이에요. 내가 손님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맛과 서비스, 그리고 분위기를 구성하려고 애써요. 계산할 때 지불한 식비가 전혀 아깝지 않고, 정말 기분 좋게 대접받았다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이런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것은 그의 아내. 업장에서 손님들을 맞는 그녀와 스텝들의 표정이 밝은 것도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은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다녀간 손님들의 입소문으로 유명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부족한게 많다”며 “앞으로 더 새로운 메뉴와 좋은 서비스로 다가가겠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자신의 일에 남다른 애정을 지닌 그가 만들어갈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OVER30처럼, 이젠 OVER40을 준비하고 있어요(웃음). 마흔까지는 일선에서 일을 하고, 그 후에는 저와 함께 일한 친구들이 이 자리를 대신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앞으로 젊은 청년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웃음).” 진심으로 진심을 구하는 사람, 정재식 대표가 만들어갈 내일이 기대된다. [1006]
    • 맛집탐방
    2017-02-01
  • 노련한 셰프의 손길이 담긴 맛집 - 와규 와 연어 를 한번에 맛볼 수 있는 곳
    고원석 와규위드연어 오너셰프세상사 시름겨운 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따뜻한 사케 한잔에 고민을 털어버리고 싶다. 부산 송정, 고소한 풍미가 일품인 와규와 신선한 노르웨이산 연어를 즐길 수 있는 와규위드연어는 이런 날 찾아가기 딱 좋은 곳이다. 일본 동경요리학교 출신의 베테랑 고원석 셰프의 차진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곳, 와규위드연어는 사람들의 허기진 마음까지 채워주는 곳이다. _박미희 ­­기자 “요리하는 순간이 가장 즐겁다”는 고원석 셰프는 요리사가 천직인 사람이다. 요리명문, 동경요리학교 출신인 그는 일본에서 정통 일식을 제대로 배운 실력파 셰프다. 일본의 유명 업장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자신의 요리세계를 펼치기 위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서울에서 ‘카코이 돈뿌리 전문점’을 열어 성공한 그는 최근 부산에 내려와 송정에서 와규위드연어를 열었다. 처가가 있는 부산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다양한 업장을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서울에서 요리할 때는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 쉴 틈이 없었죠. 정말 정신없이 요리하기에 바빴던 것 같아요. 손님들이 많이 찾아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셰프로서 정체성을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부산에 내려와 업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작년 여름 그가 송정에 문을 연 와규위드연어는 참신한 메뉴 구성과 뛰어난 맛으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와규와 연어, 그 참신한 조합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손님 네 분이 오시면, 그 중에 꼭 한분은 못 드시는 음식이 있어요. 고기를 좋아하는 분은 회를 못드시고, 회를 좋아하는 분은 고기를 잘 못드시고. 그래서 메뉴를 정하기가 쉽지 않죠. 그러던 중 고기(와규)와 회(연어)를 함께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어야 제가 정통일식을 전공했기 때문에 너무나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는 메뉴였고, 와규는 일본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던 사촌의 영향으로 늘 가까이하던 음식이었죠. 가장 맛있고, 손님들이 원하는 음식으로 메뉴를 짜게 되었습니다.” 풍부한 마블링과 고소한 맛이 일품인 호주산 와규와 청정한 환경에서 자란 신선한 노르웨이산 연어를 함께 즐길 수 있다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좋은 재료는 맛의 기본이지만, 주방에서 20년의 세월을 보낸 셰프의 섬세한 손길이 더해져 그 맛은 배가 된다. 그가 말하는 맛의 노하우는 바로 ‘숙성’에 있다고. “신선한 냉장 연어를 그때그때 받아서 쓰지만 연어 특유의 비릿한 맛이 날 수 밖에 없어요. 그 맛을 잡기 위해서는 숙성을 잘 시키는 게 중요하죠. 그래서 정성껏 밑준비를 하고 숙성과정부터 마지막 손님상에 나가기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맛있는데, 가격까지 착하다. 그것이 이곳의 장점이다. 연어와 와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세트 메뉴는 중 4만원~대 6만원 안팎. 푸짐한 구성에 비해 착한 가격이다. 다채로운 단품 메뉴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된 메뉴도 매력적이다. 이렇듯 정통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손님이 원하는 것을 먼저 주는 것. 그것이 고원석 셰프가 지닌 장점이다. “주변에서 늘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까운 실력인데, 왜 정통일식을 하지 않느냐고.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에요. 하지만 손님들이 원하는 대중적인 일식을 하는 셰프도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카코이 돈뿌리 전문점을 열었구요. 이번엔 부산에서 하고 싶은 업장을 열고 싶어 와규위드연어를 오픈했습니다. 와규위드연어는 첫 시작이구요. 앞으로 하고 싶은 많은 메뉴와 색다른 컨셉으로 다양한 업장을 열고 싶습니다(웃음).” 환하게 웃는 고원석 셰프. 그는 하루 종일 주방에서 좋은 요리를 내놓기 위해 고심한다. 손님들을 향한 마음, 그 진정성은 요리에 녹아나기 마련. 연어를 전혀 못 먹던 손님들도 맛있다며 다시 찾아오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진다는 그는 천생 마음이 착한 요리사다. 성공한 외식경영인, 좋은 요리로 인정받는 셰프이길 원하는 고원석 셰프. 그의 꿈은 무엇일까. “손님들하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게 좋죠. 머리가 히긋해져도 다찌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싶어요. 몇 평 남짓한 작은 업장에서 그날 들어온 싱싱한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내놓는 사람, 손님들과 진정한 교감을 나누는 좋은 요리사가 되고 싶습니다(웃음).” [1005]
    • 맛집탐방
    2017-01-17
  • 젊은 커피인의 꿈이 있는 카페, 마메종
    ‘마지막 한 모금까지 맛있다!’ 유명 커피 브랜드의 카피처럼, 이곳의 커피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여심을 사로잡는 예쁜 인테리어도 SNS에서 화제가 됐지만, 무엇보다 이곳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커피 그 자체’다. 커피에 영혼을 담는 청년 사장, 고기민 대표와 마주했다. _박미희 기자 마메종, 불어로 ‘우리집’(Ma Maison)을 뜻하는 이곳은 따뜻한 감성이 흐르는 공간이다. 화이트를 메인컬러로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에 돋보이는 이곳은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여심을 사로잡는 인테리어도 인테리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게 하는 힘은 커피 그 자체다. “진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감각이라 많은 손님들이 좋아해주세요. 하지만 저는 외형이 아니라 커피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카페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고기민 대표. 스물다섯의 젊은 청년 사장님인 그는 커피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커피의 매력에 푹 빠져 커피 공부 삼매경에 푹 빠졌고, 용기 있게 카페 창업에 도전했다. 인터뷰 초반, 카페 소개를 해달라는 기자의 말에 ‘원두부심과 잔부심이 남다르다’며 애정을 표하는 고 대표. 그의 말대로 이곳의 좋은 커피 맛은 특별한 생두에서부터 시작된다. 특별관리를 통해 소량 생산되는 마이크로랏(Micro-Lot)을 쓰고 있는 것. 특히 핸드드립에 쓰이는 생두는 COE(Cup-of-Excellence : 각국의 커피농장에서 출품한 우수한 커피를 5차례 이상 엄격한 심사를 거쳐 해당국의 그 해 최고 커피로 인정한 생두)를 쓴다. 좋은 생두를 쓰는 만큼 로스팅에 들이는 정성도 대단하다. 생두 본연의 맛을 잘 살릴 수 있는 로스팅 기법을 찾아 이곳만의 색깔을 입혔다. 좋은 커피 한잔이 만들어지기까지 로스팅 기기 옆에서 밤을 지새우는 그의 힘든 일상이 있다. “생두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로스팅이 중요하죠. 아메리카노, 라떼, 카푸치노처럼 단맛과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는 커피에는 약·중배전을, 카페모카, 바닐라라떼처럼 시럽이 들어가는 커피에는 강배전 로스팅을 해서 표현하고 싶은 맛을 살려요. 로스팅에 대한 공부는 끝이 없는데 앞으로 더 많이 공부하고 계속 노력 해야죠(웃음).” 좋은 원두를 쓰는 것처럼 차와 음료에 쓰이는 재료도 모두 좋은 것만을 고집한다. 하동의 다원과 연계해 좋은 잎차를 받아 사용하고 있고, 슈가 시럽 대신 99% 사탕수수로 만든 마리브자드시럽을 사용한다. 다원에서 받아온 잎차는 코스트만 60%가 넘고, 마리브자드시럽은 슈가시럽에 비해 4~5배가 넘을 정도로 비싸다. 하지만 ‘좋은 재료를 쓰면 그만큼 맛있다’는 간단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원칙을 그는 지켜내고 있다. 바리스타들이 정성을 다해 내린 커피. 그 커피의 가치를 고스란히 전하기 위해서는 좋은 잔에 담아 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업장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명품 잔에 커피를 담아낸다. 비용을 생각하면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지만 고객들에게 좋은 커피 한잔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저희가 내놓은 좋은 커피, 차 한 잔이 손님들의 뇌리 속에 인상 깊게 남았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마메종하면 좋은 분위기, 맛있는 커피와 친절한 서비스가 있는 곳이란 인상을 남기고 싶어요.” 오늘도 훌륭한 커피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고기민 대표. 그의 젊은 꿈은 무엇일까. “카페 운영, 바리스타 교육에서 더 나아가 원두 납품 사업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요. 그리고 전문성과 실력을 인정받는 커피인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환하게 웃는 고 대표. 그의 젊은 꿈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1004]
    • 맛집탐방
    2017-01-09
  • 다양한 프리미엄 생맥주를 부담없이 즐긴다-세계생맥주전문점 ‘채플린’
    부어라, 마셔라! 굳이 소리내지 않아도, 잔을 치켜들며 다같이 건배!를 외치지 않아도 된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의 생맥주 한잔은 혼자라도 좋다. 아니 혼자여서 좋을 때도 있다. 그것은 하루의 갈증을 뼛속 깊이 달래줄테니. 최근 마산 합성동에 다양한 종류의 세계생맥주를 한 곳에서 맛볼 수 있어 맥주마니아들의 발길을 사로잡은 곳을 찾아가보았다. _구아리 기자 맥주마니아들의 성지 샘플러 3~6종으로 부담없이 맛볼 수 있어 다양한 가게들이 즐비한 마산의 번화가 합성동에서 채플린은 외관부터 눈에 띈다. 세계생맥주전문점인만큼 밋밋한 느낌보다는 좀 더 특이하고 재밌는 분위기를 위해서 여기저기 공들인 티가 났다. 내부로 들어서자 한쪽 벽면 스크린에서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고, 채플린의 명언들이 곳곳에 적혀있다. 게다가 채플린의 상징인 모자를 전구 덮개로 포인트를 준 것은 마치 가로등 밑에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마저 들게하고, 메뉴판은 슬레이트보드로 만들어 손님들에게 소소한 재미까지 전달한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희극배우이자 20세기 가장 위대한 천재 아티스트로 손꼽히는 찰리 채플린을 가게 상호부터 다양한 소품들에까지 담아낸 이유는 무엇일까. “채플린은 우리에게도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우스꽝스러운 중산모와 낡은 구두, 지팡이로 기억되는 그는 신사적이면서도 재미를 주는 인물이었는데, 저희 가게에 오시는 손님들도 맥주를 마실 때 그런 느낌을 주고받으면 좋겠다싶은 생각에서 잡은 콘셉트입니다.” 채플린은 인디카IPA, 1664블랑, 코젤다크, 파울라너, 필스너우르켈, 산토리, 스텔라, 클라우드 총 8가지 생맥주를 보유하고 있다. 원래 맥주에 대해 큰 관심은 없었다던 김 대표는 평소 맥주마니아인 사촌형 덕분(?)에 점점 맥주의 맛을 알게 되었다고. 그렇게 맥주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유명한 맥주집을 다녀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경남일대에는 아직 프리미엄급 생맥주를 한 곳에서 먹을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내가 그것을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어 2016년 10월 채플린을 탄생시켰다. 자신이 좋아하는 맥주들을 손님들에게 제공하면서 맥주의 대중화에도 기여하고 싶다는 그다. 채플린에서는 과음보다는 적당한 도수로 다양한 맥주를 기분좋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생맥주 샘플러도 3종~6종로 나눠져 있어 부담없이 각종 생맥주를 맛볼 수 있고 자신에게 적합한 맥주를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각종 병맥주도 취급하고 있으며 손님들이 마셔보고 싶다는 맥주가 있다면 자신이 구해주기도 한다고. 앞으로 병맥주를 더욱 늘려갈 예정이라고 한다. 신선도가 생명인 맥주 맥주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안주 또한 인기 추억이 깃든 아지트 공간이 되고파 신선함이 생명인 맥주! 김 대표 또한 맥주는 신선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테이블 회전율이 높은 가게에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래도 맥주를 자주 교체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저는 생맥주의 날짜를 체크해서 수시로 맛을 관리하는데, 조금이라도 맛이 변질되면 그 맥주는 폐기합니다. 하지만 다행히 저희는 테이블 회전율이 좋은 편이라 지금까지 폐기한 적은 없네요.(웃음)” 채플린에서는 맥주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안주메뉴들 또한 인기를 끌고 있다. 김 대표에게 최고의 안주&맥주 궁합을 추천해달라니 '목살파히타‘와 ’코젤다크‘를 꼽았다. “목살파히타는 특제소스로 볶아 목살을 또띠아에 싸먹는 멕시코음식인데 목살파히타의 자극적인 맛을 시나몬이 올려진 흑맥주 코젤이 잡아주기 때문에 잘 어울려요. 아무래도 단짠단짠(단맛과 짠맛을 반복해서 먹는다는 의미의 줄임말)조합이기 때문에 손님들이 자주 찾으십니다. 피자와 1664 블랑(향긋한 과일향과 부드러운 청량감의 프랑스 밀 맥주)도 잘 어울리고요.” 음식물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아 10리터 쓰레기봉투를 쓴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 말은 즉 맛있어서 남기지 않는다는 뜻인데, 여전히 다양하고 맛있는 안주연구에도 열심이다. 김 대표의 꿈은 채플린이 추억을 남긴 아지트 공간이 되는 것이다. "가게 곳곳을 보면 인형이라던지 손님들이 놔두고 가신 것들이 꽤 있는데, 이런 것들이 내가 여기를 방문했었고 또 방문할 것이다는 생각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있는 아지트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프리미엄생맥주를 즐기며 좋은 사람과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싶다면 채플린을 찾아가보자. [1004]
    • 맛집탐방
    2017-01-06
  • “동네 선술집처럼 편안하고 정감 있는 비스트로를 만들고 싶어요!"
    이런 곳에 이런 맛집이 있다니! 이런 뜬금없는 곳에서 마주한 맛집의 만남은 항상 신선하다. 부산 대연동, 젊은 셰프가 운영하는 비스트로 콰이는 이처럼 반가운 맛집이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식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비스트로 콰이. 젊은 셰프의 꿈과 열정을 담은 그곳에서 비스트로의 멋과 낭만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_박미희 기자 “비스트로, 그 말처럼 선술집처럼 편안하고 인간미 넘치는 곳, 사람들의 허기진 마음까지 달래주는 곳을 만들고 싶어요.” 환하게 웃는 이동주 오너셰프. 호주 SBIT 주립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한 그는 한식, 양식, 중식에 두루 능통한 재주꾼이다. 호주에서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로 활동하던 그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가진 재주가 많은 만큼 풀어놓기 조심스러워 보이는 그는 요리에 대해선 항상 겸손한 사람이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족한 게 많아요. 조금씩 손님들이 쉽게 받아드릴 수 있게 제 요리를 풀어가고 있어요. 식재료도 입맛도 너무 달라 힘든 부분도 있지만, 조만간 더 좋은 요리로 손님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웃음).” 자신의 요리 세계를 펼치고 싶지만, 한국의 다른 식재료와 손님들의 입맛을 따라가기는 아직 버겁다는 이 셰프. 하지만 요리에 대한 진솔한 열정은 처음 찾는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특히 이곳의 스테이크는 그의 요리 철학을 잘 보여준다. 한우 1+를 사용하고, 양을 푸지게 주는데도(200g 내외) 가격은 3만 원대 초반. 일반적인 레스토랑이나 비스트로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다. 좋은 재료도 재료지만, 식재료 본연의 맛을 담기 위한 세심한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코스트가 80%는 넘는다(웃음)”며 그럼에도 “이 가격도 비싸다는 손님을 마주하면 난처해진다”는 그의 말에 진솔함이 묻어난다. 그럼에도 그가 스테이크를 내놓기를 고집하는 건 어떤 이유에서 일까. “스테이크는 레스토랑이나 비스트로의 얼굴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식재료가 갖고 있는 본연의 맛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죠. 물론 상대적으로 저렴한 호주산이나 미국산 소고기를 사용해 보겠단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호주 현지에 문을 열었다면 당연히 호주산을 쓰겠지만,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소고기는 역시 한우더라고요. 그래서 한우를 쓰고 있어요(웃음).” 한결같은 태도에 어느새 마음이 스르륵 녹는다. 장사로 이문을 남기기보다, 조금 덜 남아도 좋은 요리를 손님들에게 내놓겠다는 열정. 그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이곳에서 대중적인 메뉴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단연 파스타다. 맛집 블로거들이 저마다 ‘파스타가 맛있는 집’으로 입소문을 내고 다니는 이유는 역시 기본에 충실한 맛 때문이다. “파스타 면으로 저희는 스파게티니를 써요. 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면 종류고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별 다른 비법은 없어요(웃음). 바쁘더라도 요리할 때 기본을 잘 지키려고 애쓰죠. 좋은 기름을 쓰고, 후추 같은 기본 식자재를 한번 볶아 쓴다던지, 마늘도 파스타를 만들기 전에 직접 빻아 본연의 향과 맛을 살립니다. 마늘 파스타는 마늘과 치즈만, 그리고 해물 오일 파스타라면 해물과 마리네이드 된 파프리카로 조화로운 맛, 조개 파스타 라면 단지 제철 조개만 듬뿍 넣어요. 보통 파스타에는 바지락을 많이 쓰는데, 요즘은 동죽이 가장 맛있는 철이라 동죽을 쓰고 있습니다(웃음).” 파스타처럼 대중적인 메뉴도 있지만, 이곳이 매력적인 것은 색다른 메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사의 특유의 민물생선향을 살린 피쉬앤칩스나 제철 석화를 안주로 곁들이는 와인은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메뉴다. 선보이고 싶은 다양한 메뉴들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과정이 즐겁다는 이 셰프. 앞으로 그가 보여줄 다양한 요리는 어떤 색깔일까. “저는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그런 음식을 하고 싶어요. 주린 배가 아니라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주는 따뜻한 음식,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요리죠(웃음).” 열정적으로 주방을 오가며 요리하는 그의 모습이 건강하다. 하루 종일 손님들에게 내놓을 맛있는 요리와 새로운 메뉴를 고민하는 열정적인 청년, 그의 꿈은 무엇일까. “비스트로 콰이는 사랑하는 아내와 호주에서 함께 살던 호주의 거리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부산에는 아직 비스트로라는 문화를 찾기가 어렵잖아요. 그 이름처럼 편안하고 정감 있는 선술집같은 비스트로,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지는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1003]
    • 맛집탐방
    2016-12-26
  • 장인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창원의 스시 명가 ‘코다와리스시’
    ‘이런 곳에 이런 맛집이 있다니!’ 취재 경력이 수년째인 기자도 깜짝 놀랐다. 섬세하고 기품 있는 맛. 창원의 스시 맛집으로 떠오르는 코다와리(こだわり:구애됨, 속뜻 자부심)라는 그 이름처럼 장인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취재했다. _박미희 기자 “창원, 아니 부산·경남에서도 이런 스시는 맛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자부심이란 이름을 걸 만하지요(웃음).” 환하게 웃는 신영 대표. 그는 외식경영인으로 가장 좋은 자질을 지녔다. 한마디로 그는 타고난 미식가. 자칭타칭 ‘스시 마니아’라고 불릴 정도로 일식을 좋아한다. 일본 출장을 가면 으레 맛있는 일식집부터 수소문하다는 그는 속일 수 없는 섬세한 미각을 지녔다. ‘맛있는 집을 찾다, 맛있는 집을 차렸다’는 우스갯소리처럼, 그는 자신이 즐겨 찾는 요리로 승부를 걸 수 있는 업장을 열었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 생각이라면 이 상권에 이렇게 들어설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 “이 상권엔 저렴한 가격에 많은 양을 제공하는 스시전문점들이 많지요. 하지만 저는 남들과 똑같이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정말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마음, 저희의 이름을 걸고 음식을 내놓겠다는 신념으로 시작했습니다.” 코다와리(こだわり) 일본어로 자부심이란 뜻을 지닌 그 이름처럼 가게는 소박하지만 기품이 넘친다. 은은한 나뭇결이 살아있는 테이블과 한지의 느낌이 편안한 일본의 가정집 같다. 그렇다면 이곳의 맛은 어떨까. 이곳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박건혁 셰프는 1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서울 청담동에서 활동하며 도쿄 출신(후지타상)에게 정통 스타일인 에도마예 스시를 사사받았다. 에도마예 스시 (에도시대부터 앞바다에 잡힌 해산물로 요리하는 일본 정통 스시 스타일)를 알리고 싶어 고향으로 내려왔다. 요리사만큼 일식에 대한 깊은 조예를 지닌 신영 대표를 믿고 따라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곳의 스시는 한마디로 인상적이다. 고슬고슬 잘 지어진 밥알과 잘 숙성된 네타가 입안에서 한데 어우러져 넘어 간다. 톡톡 터지는 것 같은 식감과 감칠맛을 지닌 밥도 밥이지만, 스시 위에 발려져 나오는 간장도 맛있다. 거기에 제철 생선을 잘 숙성한 네타의 풍부한 맛이 어우러진다. 마지막으로 혀끝에 눅진한 생선 맛이 남지 않고, 향긋한 라임향이 감돌자, 벌서부터 다음 요리가 기대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스시의 기본이 되는 밥이다. 입안에 넣으면 똑똑 터지는 것 같은 식감과 깊게 배여 있는 감칠맛은 이곳의 밥의 특징. 이는 짓는 방법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저희는 쌀을 불려서 일정시간 저온에서 건조한 후 다시 밥을 지어요. 그래서 하루에 일정량 밖에 밥을 하지 못하죠. 하지만 이렇게 되면 쌀이 수분을 잘 흡수해요. 그래서 알알이 초대리가 잘 스며들어, 그 자체로 간이 된 듯 한 느낌을 주죠. 그리고 저희는 에도마예 스시의 스타일 대로 적식초를 사용해서 초대리를 만들어요. 적식초는 탄수화물인 밥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깊은 감칠맛을 냅니다. 그래서 알알이 살아있는 느낌을 주죠.” 그렇다면 위에 올라간 네타는 어떨까. 싱싱한 제철 횟감을 받아와 잘 숙성시키는 것이 비결.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게, 한데 어우러져 넘어갈 수 있는 크기가 마음에 든다. 거기에 올라가는 네타의 종류에 맞게 (조개면, 조개, 장어면 장어뼈를 사용해 고아내는 간장, 초밥위에 발라내는 간장을 ‘쯔메’라고 한다) 고아낸 간장은 감칠맛을 더한다. 스시집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예로부터 계란구이와 고등어초절임이라고 했다. 역시 에도마예 스시를 제대로 사사받은 실력이 어김없이 발휘되는 맛. 그러니 다른 요리는 먹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저렴한 가격에 스시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디너세트 외에도 주방장 특선요리는 주말에도 예약이 줄 잇는다. 그리고 앞으로 늦게 마치는 직장인들을 위한 심야식당을 운영해나갈 계획이라고. 좋은 음식을 이렇게 착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니……. 메뉴판을 다시 봐도 놀라운데, 이는 손님들에게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가려는 신 대표의 생각 때문이다. “큰 을 벌려는 욕심으로 사업을 시작한 게 아니에요. 좋은 음식으로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겠다는 것이 저희의 생각이죠. 앞으로는 스시로는 창원에서 no,1이 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정직한 음식으로 승부하는 집, 창원의 스시 명가의 이름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1000]
    • 맛집탐방
    2016-11-17
  • 황성용 아내의 쉐프 대표이사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 워킹맘 A씨. 가족들 얼굴을 제대로 보는 건 고작 저녁상을 마주할 때뿐인데, 하루 종일 시달렸을 가족들을 위해 따뜻한 저녁상을 차리고 싶지만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저녁 준비를 하기는커녕,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다. 그저 누군가 따뜻한 밥상을 코앞에 대령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질 뿐. 이럴 땐 아내에게도 근사한 식사를 차려줄 쉐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 프리미엄 반조리& 샐러드 카페, 아내의 쉐프는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_박미희 기자 경남 진해. 황성용 대표를 만나러 아내의 쉐프 본점으로 향하는 길. 따뜻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이해준 그는 한마디로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브랜드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며,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에 ‘바른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이란 믿음이 갔다. 그가 4년의 준비 끝에 런칭한 회심작, 아내의 쉐프는 오픈한지 1년 5개월 만에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동종업계 브랜드와의 차별화를 통해 높은 고객 충성도를 자랑하며 경기, 부산, 대구, 포항 등 전국 8개의 가맹점을 운영하며 성공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는 것. 이렇듯 성공적인 스타트 업이 가능했던 건 오랫동안 준비해온 그의 노력과 땀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형마트에서 가장 잘 팔리는 진열대에는 공산품이 놓여 있잖아요. 하지만 일본은 그 자리를 신선식품이 다 차지하고 있었어요. 쫙 늘어선 반조리식품들이 1분에도 몇 개씩 날개 돋힌 듯 팔려가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 우리 외식업의 미래는 반조리식품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사업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반조리식품 사업에 열을 올리는 곳은 몇몇 대기업뿐이다. 자본력도 부족하고, 체계적인 롤모델이 없는 상태에서 그는 맨손으로 사업을 준비했다. “아내가 늘 힘이 돼줬어요. 그런 아내를 위해 요리하니, 아내가 너무 행복해하더라고요(웃음). 그때 생각했죠. 아내에게도 쉐프가 필요하구나! 그렇게 가정식을 메인으로 하는 브랜드 컨셉을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아내의 쉐프는 기존 반찬가게와 무엇이 다를까. 보통 반찬가게는 한식 위주의 식단으로만 구성돼있다. 하지만 이곳은 한식을 비롯해 레스토랑에 가야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세계 가정식도 맛볼 수 있다는 게 특징. 감바스 알 아히요, 밀푀유나베, 도미 파피요트, 연어 스테이크 등은 이곳의 인기 메뉴다. 이렇듯 제철식재료를 중심으로 한 30여 가지들의 요리를 매달 다르게 내놓고 있고, 현재까지 총 70여종의 메뉴를 보유한 상태. 이렇듯 다양한 메뉴를 ‘단 5~10분이면 레스토랑을 집으로 옮겨올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이들하고 외식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몇 분만 투자하면, 아이들과 마음 편하게 식사할 수가 있어요. 홈파티, 집들이, 캠핑 등 언제나 쉽고 간단하게 실력발휘를 할 수 있죠.” 하지만 깐깐한 주부들이 환호를 받은 건 단순히 이 이유만은 아니다. 한눈에 봐도 느껴지는 신선한 식재료. 그것이 주부들이 단골을 외치를 이유라고. “저희는 런칭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식재료에 대한 컴플레인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한눈에 봐도 신선한 식재료! 그것이 모든 고객들이 믿고 저희를 선택하는 이유이자, 저희의 자부심이죠. 매일아침 각 지점에서 필요한 식재료를 주문하면 바로 배송을 받아 청결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가공을 하고 소분해 포장해서 나가고 있어요.” 내공 있는 주부들도 깜짝 놀라는 맛은 쉐프라는 이름을 걸만한다. 맛의 포인트는 한식의 맛을 좌우는 육수와 소스에 있다고. “모두 15가지의 소스 레시피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중 4가지는 샐러드에 특화된 소스에요. 신생업체로 이렇게 많은 소스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자,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중 10가지의 소스는 HACCP 인증을 받은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배, 꿀, 황매실액 등 천연 재료를 사용해 맛을 내고 있어요. 그리고 좋은 멸치, 디포리, 다시마 등을 사용해 육수를 우려내 깊고 풍부한 맛을 내고 있습니다.” 각 지점 마다 육수와 소스를 직접 만들어 맛의 차이가 있는 타 업체와 달리 이곳은 본사가 육수와 소스를 공급해 맛의 균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회원이 되면 약 15% 정도의 가격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카카오톡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구매를 할 수 있다. 그리고 2만원 이상 제품을 구매하면 집까지 배달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또한 매달 새로운 메뉴를 출시하는 등 고객 만족을 위해 노력은 계속 되고 있다. 본사와 점주가 함께 상생하는 브랜드 반조리식품 업계의 선도기업을 꿈꿔 본점이 성공을 거둔 이후로 지점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 그는 여느 때보다 바쁘다. 하지만 그가 욕심을 냈다면 더 많은 가맹점을 낼 수도 있을 터, 하지만 그는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단다. 그러니 점주들을 대하는 그의 마음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키워나가는 과정인 만큼 본사도 점주도 서로 양보해야할 부분이 많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주고 싶은 게 그의 마음이다. 그래서 상권분석부터 교육, 경영컨설팅까지……. 본사에서 책임지고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성공 가능성을 보이자 이곳저곳에서 유혹 아닌 유혹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끝까지 자신이 만든 브랜드에 대한 신념과 가치를 지켜나가겠다는 게 그의 설명. “저는 한국 외식업의 미래가 반조리식품에 있다고 생각해요. 훗날 반조리식품의 선두기업으로 우뚝 서는 것, 그리고 외식업을 넘어 한국의 가정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 제 꿈이에요. 앞으로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기업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999]
    • 맛집탐방
    2016-10-31
  • 꿈꾸는 조리기능장, 나이 들지 않는 청년으로 살다!
    ▶장록기 셰프는 “저에게 요리는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 더 자유로워지고자 정화를 하는 귀중한 기회이며 과정”이라며 그 의미를 전했다. 경영자로, 교수로, 컨설턴트로 명성을 얻고 있는 장록기 셰프는 조리계의 팔방미인이다. 경영학박사, 조리명인, 조리기능장의 영예를 안고도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다며 부끄러워하는 대가. 그 진솔한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_박미희 기자 ‘셰프님, 경력은 얼마나 되세요?’ 이 흔한 물음에 되돌아온 말. “실력은 보낸 세월이 아니라 얼마나 자신을 단련하고, 또 새로워지려고 노력했느냐에 달렸죠.” 우문현답. 그의 답에 기자는 무릎을 탁 쳤다! 역시 명불허전이랬다. 장록기 셰프는 조리계의 몇 안 되는 재원이다. 여전히 주방에서 일을 하는 그는 뜨거운 현역. 한국 조리계의 뛰어난 인재를 키워낸 명문 조리학교를 졸업하고 유명 호텔에서 일한 그는 수많은 국내외 명사들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벌서 강단에서 섰고, 30대에 이미 조리기능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경영학박사이기도 하다. ‘하루 24시간, 자는 시간 말고는 오로지 일과 새로운 도전을 준비한다’는 그는 부지런함이 몸에 배인 사람. 그래서 자신의 재능을 나눠주는 일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서라고. “예전에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맛이 부족하면, 냅킨에 레시피를 적어주고 나왔어요. 조금만 고치면 이 사장님도 잘 될 수 있을 텐데……. 돕고 싶은 마음에서요(웃음). 어느 날 그런 절 보던 선배가 따끔한 조언을 하더군요. ‘어렵게 조리기능장을 따서 그 노하우를 그렇게 쉽게 알려주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을 것’이란 말에 눈이 번쩍 뜨였어요. 그래서 정말 남을 돕고 싶다면 그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그는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창업·경영지원 컨설턴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생계를 걸고 열심히 일하는 소상공인들에게 따뜻한 힘이 되고 싶었던 것. 메뉴 컨설팅부터 고객 상담, 서비스 교육, 경영 컨설팅까지 다방면의 분야에 폭 넓은 실무 경험을 지닌 그의 조언은 소상공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생계가 걸린 일. 그러니 그는 더욱 신중하고 정확한 조언을 할 수 밖에 없단다. 이런 그의 실력과 마음가짐은 많은 업장을 성공시키는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소상공인진흥원 「06년 자영업 컨설팅 경진대회 은상」, 「08년도 자영업컨설팅 우수사례」에 선정되기도 했다. “고사에 忠言逆耳利於行 良藥苦口利於病(충언역이이어행 양약고구이어병)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인 즉 ‘본래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동하는 데는 좋은 것이며, 병을 고치는 약은 입에는 쓰나 병을 고치는데 이롭다’라는 뜻이에요. 충언(忠言)은 신하가 목숨을 걸고 왕에게 함께 잘되자고 간청하는 진언인데, 우리는 살아온 타성에 젖어 미리 상대가 전하고자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답을 내립니다. 금방 기분 상하고,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해요. 경험 많은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에요. 나도 잘 아니까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하죠. 하지만 오너에게 바른 말을 하지 못하면 그건 제대로 된 컨설팅을 한다고 말할 수 없어요.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다’는 말처럼, 당장은 듣기 어려워도 훗날 업장이 성공할 수 있다면 언제든 바른 말을 할 수 있어야죠. 그게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그는 열정을 갖고 강단에 선다. 영산대학교, 동의대학교, 경성대학교, 부산여자대학교, 부산정보대학교, 마산대학교, 계명문화대학교, 대구보건대학교 외래 및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부산조리고, 부산정보관광고에서 산업체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 아이들은 눈빛부터가 다르죠. 학생들에게 삼촌처럼, 때론 친한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다가가려고 해요. 꿈을 지닌 청년들이 꿈을 이룰 수 있게 돕는 게 제 꿈이에요(웃음).” 학생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는 그의 꿈은 강단에서 계속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순간은 역시 주방에서 요리를 할 때다.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프렌치레스토랑 ‘라씨에뜨’는 그가 각별한 애정을 갖는 곳이다. 작은 규모의 레스토랑이지만 이름만 들어도 아는 명사들이 사랑하는 숨은 맛집으로 유명하다. 소박하지만 품격 있는 요리로 깊은 감동을 주는 것. 30년을 넘게 요리를 해왔지만, 손님에게 디쉬를 내가는 순간만큼은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장록기 셰프. 그는 열정을 지닌 뜨거운 현역이었다. “오늘이 있기까지 수없이 담금질해야하는 순간도 많았어요. 뒤돌아보면 제게 있었던 고난과 시련도 모두 성숙을 위한 아름다운 과정이더라고요. 기술인, 기능인, 운동선수,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에요. 누구든 진심갈력해 갈고 닦으면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꼭 주어집니다. 기능은 속일 수 없어요. 자신이 노력한 만큼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얼마나 했느냐’고 물으면 머뭇거려져요. 20년, 30년 세월만 보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많은 시간 동안 최고의 기능을 연마했다면 덕(德)의 깊이라도 있을게 아니냐’고 제게 되묻는 것 같아서요. 그저 본능으로만 살아온 제 모습이 부끄러워져요. 그런 점에서 아직도 저는 부족한 게 많아요. 앞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저를 채워가야죠.”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다며 부끄러워하는 대가. 그 진솔한 모습에 내일을 준비하는 청년의 모습이 보이는 건 왜 일까. 청년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는 장록기 셰프, 따뜻한 그와 행복한 동행이었다. 소상공인진흥원 창업 및 경영지원 컨설턴트 영산대학교 서양조리학과 겸임교수 [996]
    • 맛집탐방
    2016-09-12
  • 이재훈 라드커피 대표
    커피 산업이 성장하면서, 우후죽순 커피 브랜드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 중 경쟁력을 갖춘 프랜차이즈를 찾아보기란 상대적으로 어려운 일. 하지만 여기, 대전·충북에서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고 있는 라드커피는 눈여겨봐야할 브랜드다. _박미희 기자 “대전을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로 키워가고 싶어요!” “대전을 대표하는 브랜드, 젊은 바리스타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기업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환하게 웃는 이재훈 대표. 그가 만든 라드커피는 창업 2년 만에 대전 10개점 청주1개점으로 성장한 브랜드다. 가맹점 수보다,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와 뚜렷한 프랜차이즈 정책으로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커피 프랜차이즈 속에서 뚜렷한 경쟁을 갖춘 라드커피. 이 브랜드는 그의 꿈과 열정이 담겨있다. 이재훈 대표가 커피 산업에 뛰어든 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부터다. 바리스타, 로스터로 일하며 탄탄한 현장감각을 익혔고, 바리스타 자격증 심사위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전문성을 갖췄다. 그렇게 커피에 대한 열정으로 그가 라드커피를 오픈한 건 2014년. 대전의 번화가인 둔산동에 문을 열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반응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그땐 둔산동에 큰 규모의 개인 업장을 여는 게 참 무모해 보였나 봐요(웃음). 주변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만 수두룩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브랜드가 나아가야할 길에 뚜렷한 신념이 있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커피 전문점이 늘어나면서 커피에 집중하기 보다는 부수적인 것에 너무 치우친 곳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커피 전문점이라면 커피에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최고의 커피를 만드는 것은 다이아몬드를 다듬는 것과 같다는 생각으로 브랜딩을 했어요.” 'Like a Diamond'의 약자를 따 ‘라드(LAD)커피’로 이름을 지었다. ‘최고의 커피를 만드는 것은 다이아몬드를 다듬는 것과 같다’는 신념. 그 신념은 실력 있는 바리스타를 키우고, 다양한 선호를 만족시키는 색깔 있는 커피를 손님들에게 내놓는 일로 이어졌다. “커피는 그야말로 기호 식품이에요. 어떤 사람은 적절한 산미와 바디감 있는 커피를, 어떤 사람은 쓴맛이 도는 커피를 맛있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러니 여느 음식처럼 맛있다는 기준을 명확하게 정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다만 내 입맛에 잘 맞는 커피가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시작할 때부터 각기 다른 취향의 3가지의 커피를 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손님들의 반응이 참 좋았어요. 이렇게 좋은 커피를 내놓는 일도 결국 사람은 하는 일이기에, 사람을 키우는데 많은 노력을 들였어요. 그 당시, 30평 매장에 10명이 넘는 직원들이 함께 일했을 정도니까요. 그렇게 함께 시작한 직원들이 지금도 모두 함께 하고 있어요(웃음).” 테스트 매장으로 문을 연 1년. 그 반응은 뜨거웠다. 여기저기 가맹을 내달라는 문의가 쏟아졌지만, 그는 신중했다. 무분별하게 지점을 늘려 본사의 배를 불리기보다 점주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심한 것. “지금 프랜차이즈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가맹점을 늘려 본사만 배를 불리는 형국이에요. 하지만 저는 반대로 생각해봤어요. 지점이 잘되면 본사가 망하는 일은 결코 없지 않을까. 그래서 방향을 대형 프랜차이즈와 개인 매장의 중간 성격을 지향하는 것으로 잡았죠.” 대전에만 10개가 있는 라드커피는 색깔이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어느 점에는 요리를 내놓는 곳이 있는가하면, 다른 지점에 없는 독창적인 음료를 내놓는 곳도 있다. 라드커피를 상징하는 로고의 색깔, 인테리어와 분위기도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라드커피!’라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공통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 프랜차이즈의 획일화된 모습에 질려 개인 업장만을 찾는 손님들에게는 반갑고, 또 체계적인 서비스와 퀄리티있는 커피를 찾는 손님들에게도 즐거운 소식이다. “저희는 한 지점에서 독창적인 음료를 개발했다면, 2달 정도는 다른 지점이 따라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 있어요. 그래서 지점 마다 개성 있는 독특한 음료를 내놓고, 저마다 개성을 갖고 있죠. 하지만 커피에 있어서만은 모두 본사가 로스팅한 좋은 원두를 쓰고 있습니다.” 대전 상대동에 있는 라스커피 본사. 좋은 생두를 로스팅하는 손길이 바쁘다. 본사 챙기랴, 10월에 대전에 새로 오픈하는 지점 챙기랴 바쁜 하루를 보내는 이재훈 대표. 그 모습은 ‘커피 맛의 본질에 승부를 걸겠다’는 그의 철학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면서 크게 두 가지를 결심했어요. 첫째, 절대로 부동산 사업과 연계해 사업 규모를 키우지 말자. 둘째, 홍보나 광고로 브랜드를 띄우지 말자. 외적인 것에 의해 부풀려지는 브랜드 가치를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그래서 저는 본질적인 가치로 손님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이를 통해 대전을 대표하는 브랜드, 젊은 바리스타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가겠습니다.” 대전을 대표 커피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아름다운 청년. 그의 꿈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996]
    • 맛집탐방
    2016-09-12

라이프 검색결과

  • 달라이라마 단독 친견으로 ‘화제’ 마음 속에 그린 일이 이뤄지는 곳, 신비의 기도도량 무명사
    심상치 않은 시국과 어려운 경제난으로 서민들의 삶은 어느 때보다 어렵다. 풍진 세상, 깊은 번뇌를 달래주는 도심 속 사찰, 무명사는 신비의 기도도량이다. 무명 스님의 원력으로 신비한 경험을 한 이들이 늘면서 무명사는 신비의 기도도량으로 명성을 얻었다. 최근 이뤄진 달라이라마와의 단독 친견으로 무명사는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섰다. _박미희 기자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고난의 땅에서 비폭력과 친생명의 메시지를 전한 위대한 인물, 달라이라마. 그와 무명 스님의 단독친견이 이뤄졌다. 낯선 땅에서 온 귀한 인연, 하지만 달라이라마는 그를 마치 오랜 벗을 대하듯 살갑게 대했다. 연신 ‘코레아~’를 외치며 머리를 부비고 얼싸안는 달라이라마. 그런 그와 무명 스님 사이에는 아무 말이 필요 없는 듯, 반가움의 눈빛과 환한 웃음만 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우정을 나누는 것 같았다. 둘 사이에는 잔잔한 평화의 기운이 가득했다. 이렇듯 깊은 영혼의 울림을 나눈 두 사람, 무명 스님은 달라이라마와의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저와 달라이라마 존자님 사이에는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깊은 영적인 교감만이 가득했지요. 낯선 땅에서 온 저를 마치 오래 사귄 벗을 대하듯 살갑게 대해 주었습니다. 존자님을 친견하기 전, 주변에선 저에게 질문을 준비하라고 하더군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물음이 있었는데, ‘왜 나는 한 생각을 하기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은가?’ 하는 것이었죠. 결국 그 질문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왜 나는 한 생각을 하기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은가?’ 그 본질적인 물음은 예기치 않았던 달라이라마와의 친견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원래 무명 스님에게 단체 친견 제의가 들어왔었다. 하지만 형식적인 만남이 못내 내키지 않았던 스님은 이를 거절하고, 며칠 후 한국에 들어온 티베트 스님들과 우연히 조우한다. 사연을 들은 티베트 스님들도 ‘달라이라마의 단독 친견은 어려운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 만남은 또 다른 인연의 징검다리가 되어 결국 달라이라마와의 단독 친견으로 이어졌다. 세계적인 지도자들도 만남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던 달라이라마와의 극적인 만남은 한편의 드라마처럼 이렇게 이뤄졌다. 이런 달라이라마와의 영적교감을 말해주듯 무명 스님이 걸어온 길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목 부러진 돌부처와의 인연 ‘스님 어떻게 출가를 결심하게 되셨나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무명 스님의 눈빛은 깊어졌다. 풍진 세상, 출가를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과 번뇌가 있었을까…….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기자의 상념을 깨우듯, 스님의 청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사 번뇌에 빠져 고통 받는 중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속세에서 부와 명예를 위해 일생을 바치는 일이 덧없게 느껴졌죠. 그런 세상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스님은 홀연히 속세를 떠나, 불가와 인연을 맺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원력 높은 큰스님들과 마주했고, 그때마다 ‘오늘부터 내 상좌 하라’며 무명 스님을 붙잡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무명 스님은 정중히 거절하며 은사스님을 찾아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났다. 그렇게 수년, 은사스님을 찾아 떠돌던 무명 스님은 우연히 금정산에 자리한 작은 사찰과 인연이 닿게 됐다. “여러 법 높으신 큰스님들의 상좌 제의를 거절하고, 무슨 인연인지 금정산에 자리한 작은 사찰의 노스님을 은사스님으로 맞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 어느 날, 목이 부러진 돌부처를 친견하고 이를 수습하여 부처님을 모시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사찰에 모셔진 부처님의 목이 부러졌다는 겁니다. 그때부터 목이 부러진 돌부처와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목이 부러진 돌부처와의 연으로 스님은 신비로운 영적인 경험을 계속하게 된다. 스님의 이런 영험한 원력이 알려지자 사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금정산 자락에 작은 움막을 짓게 되어 기도에 정진한다. 이후에도 움막이 철거 됐다 다시 지어지는 일이 수없이 반복됐다. 비바람을 피하기도 어려운 작은 움막 속에서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 날들의 연속. 그 고난 속에서도 스님은 묵묵히 수행을 이어나갔다. “그때 저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먹었어요. 맨밥에 눈물을 쏟아 후루룩 삼키곤 했죠. 얼어터진 손으로 목탁을 칠 때도 나는 복된 사람이라 생각했지요. 끼니를 잇기 어려운 날들, 반복되는 고난 속에서 세상의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진실한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 둘 움막을 찾아와 함께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그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 하나의 길이 되었지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져 하나의 길이 만들어졌다. 무명 스님의 영험한 원력은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어 비바람을 막기 위해 비닐법당을 세웠으며, 비닐법당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무명 스님은 사찰명을 고심하게 되었다고. “사찰명을 고심하던 중 ‘없을 無, 이름 名, 무명사라 하라’는 계시를 받고 무명사라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후 무명사는 부처님과 무명 스님의 가피력으로 이름이 났고, 이를 시기한 이들이 불상을 엎는 만행을 일삼았다. 또한 마지막 철거를 당하는 날 신도들은 위기에 놓이자 많은 신도들이 깊은 근심에 쌓였다. “그때 저는 ‘신도들에게 슬픔의 눈물이라면 당장 그치고 기쁨의 눈물이라면 실컷 울어라. 더 이상 무명사는 부서지지 않는다’라고 했고, 그 이후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죠. 그렇게 운명처럼 인연이 닿아 지금의 무명사가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라,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 없다 신비의 기도도량, 무명사 도심 속 사찰, 무명사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불자들로 발 딛을 틈이 없다. 부처님과 무명 스님의 가피력에 많은 불자들이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때마다 무명 스님은 “무명사에 와서 소원성취를 이루면 모두 이 산승의 법력과 도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는 모두 때가 되어 이뤄진 것일 뿐”이라며 겸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불치병의 환자가 씻은 듯이 병이 낫고, 시한부 인생을 살던 말기 암 환자가 암을 극복하는가 하면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있던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고, 깊은 시름에 우울증을 앓던 이가 마음의 병이 나았다는 곳. 무명사는 이렇듯 기도성취를 이룬 수많은 불자들의 입을 통해서 무명 스님의 법력과 신비한 원력으로 널리 이름이 났다. 무명 스님의 신비한 원력은 익히 고승들로부터 예견한 바이다. “나는 도를 모른다. 세상에 도가 어디에 있느냐? 세상만사, 도 아닌 것이 없지. 모든 것이 도이다. 무명사에서 기도성취를 이룬 불자들은 그 덕을 제게 돌리지만, 다만 때가 되어 이뤄진 것뿐입니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는 듯, 날카로운 통찰력과 무심히 던지는 스님의 소탈한 말과 행동은 많은 불자들의 마음을 맑게 일깨운다. 찰나의 맑은 생각을 담아 법문하는 무명 스님. “바른 귀가 있어 잘 들으면 곧 그것이 법문이라 생각한다”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무명 스님의 법문은 세상사 번뇌에 힘들어하는 많은 불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풍진 세상, 심상치 않은 시국에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웃으세요. 웃다가 이뤄지는 일이 많습니다. 상대방을 보며 웃어주는 것이 곧 보시를 하는 일이요, 덕을 쌓는 일입니다.” 웃음 보시를 강조하는 무명 스님. 그 말씀 속에는 스스로의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작은 것부터 생활에서 실천해나가라는 큰 가르침이 있다. 신비의 기도도량 무명사.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세상사 번뇌에 빠진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오늘도 무명사의 등불은 밝게 빛날 것이다. [1006]
    • 라이프
    2017-02-01
  •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가는 사람, 친환경미래자동차전문가, 백수황 교수를 만나다
    대기오염을 줄이는 전기자동차와 수소연료전지자동차, 자율주행으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영화에서 보던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무궁한 성장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미래자동차산업은 4차산업혁명의 핵심분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호남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 (재)광주그린카진흥원 ‘자동차기능안전 인증’ 기획위원 등으로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백수황 교수는 장래가 촉망되는 친환경미래자동차 전문가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내일을 여는 꿈의 기술의 모습을 담았다. _박미희 기자 Q 지금은 친환경미래차전문가로 유명하시지만, 원래 전공은 전자전기제어계측공학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길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A 한양대학교 전자전기제어계측공학과에서 모터 및 발전기의 설계해석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현재의 기술흐름이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친환경 및 스마트 자동차로 급격히 변화하는 추세잖아요. 그 변화의 중심 있는 주요 부품이 바로 모터에요. 제가 모터를 전공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러다 자동차전자제어시스템 전문회사인 현대케피코의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할 때 차량의 연비 및 배기성능을 개선하는 파워트레인용 전장시스템을 담당하면서, 미래자동차분야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동차전자제어 분야에 다수의 논문과 특허를 보유하면서, 전문가로 거듭나게 됐어요. Q 미래자동차분야에 많은 매력을 느끼셨나요? 앞으로 어떤 비전이 있다고 생각하셨는지요? A 미래자동차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자동차하면 운송 수단의 역할과 운전자를 위한 편의성을 떠올리게 되잖아요. 하지만 자동차는 사람이 타고 있기에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에요. 미래자동차를 알게 되면서 자동차를 단순히 비즈니스적인 대상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대상이며 새로운 문화를 여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죠. 이미 선진국에서는 2020년부터 도심에 내연기관 자동차를 진입하게 하지 못하는 법이 제정될 정도로 이젠 미래자동차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미래자동차에 관련 기술의 개발 속도는 상당히 빨라지고 있고요. 이런 세계적인 추세에 뒤쳐진다면 다시 쫓아가기가 힘듭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미래자동차 산업을 선도해나간다면, 장차 대한민국의 발전에 큰 기틀이 마련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지난 9월, 호남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로 부임하신 걸로 압니다. 프라임 사업에 선정된 호남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은 데 학부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A 호남대 미래자동차공학부는 ‘자동차전자제어전공’과 ‘자동차소프트웨어전공’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1학년 때에는 공통으로 필요한 MSC(수학, 과학, 컴퓨터) 교과목들을 주로 수강하며, 그 후 자동차전자제어전공에서는 전기자동차, 수소연료전지자동차 등 친환경자동차산업 분야에 필요한 기술인 친환경자동차 부품설계, 제어, 시험평가, 자동화 등을 학습하고, 자동차소프트웨어전공에서는 스마트자동차 분야에 필요한 기술인 자동차소프트웨어 및 임베디드시스템 등과 관련 교과목들을 학습하며, 4학년 때에는 1~3학년 때의 전공지식들을 바탕으로 종합설계 교과목을 학습하게 됩니다. 호남대는 지난 5월 교육부의 프라임(PRIME) 사업에 광주지역에서 유일하게 선정돼 향후 3년간 정부로부터 150억원을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호남대 미래자동차공학부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장학금과 특전이 제공됩니다. 또한 올해 4월 중국 조이롱자동차와 친환경자동차분야에 대한 인력양성 협약을 체결하였으며, 매년 20명 이상을 조이롱자동차에 취업시키기로 약정을 했습니다. 호남대학교 미래자동차공학부는 아낌없는 교육환경지원과 우수한 교수님들의 강좌를 통해 미래자동차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준비가 완료 되었습니다. 따라서 졸업 후 학생들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이라 전망합니다. Q 최근 (재)광주그린카진흥원의 ‘광주 자동차 기능안전 인증지원 체계 구축’ 기획위원으로 위촉되셨습니다. 외에도 광주 자동차산업 생태계분석 및 경쟁력강화 전략수립 위원, 광주칭화자동차포럼 실무운영위원 등 다방면에서 폭넓은 대외활동을 하고 있으세요. 이런 활동들에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요? A 처음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데요(웃음). 애정을 갖고 있는 부분이라면 당연히 자동차의 안전이겠죠.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 외에도 다양한 대내외적인 활동을 통해서 앞으로 미래자동차 분야 발전에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학교의 발전과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또한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학문, 더 나아가 새로운 내일을 여는 학문인 미래자동차 분야의 학자로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어요. Q 끝으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학생들에게 ‘항상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저도 힘든 고비를 많이 넘기며 지금까지 왔어요(웃음). 삶의 가운데에서 어떠한 어려운 일들이 봉착했을 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끈질기게 도전한다면 그 꿈을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력 2005.02 : 한양대학교 전자컴퓨터공학부 (공학사) 2012.08 : 한양대학교 전자전기제어계측공학과 (공학석사/박사) 경력 2012.07~2016.08 : 현대케피코 책임연구원 (R&D분야 : 파워트레인용 전장시스템) 2016.09~ 현재 : 호남대학교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 [1003]
    • 라이프
    2016-12-22
  • 핫 프랜차이즈 -1970 핫도그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 핫도그 - 이젠 스낵 문화를 이끄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소개하고 싶어요!”
    부산 남포동,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곤 금세 아리송해졌다. 무슨 특별한 음식을 먹으려고 이 긴 줄을 서고 있나. 가까이 다가서서보니, 흔히 보는 핫도그다. 그런데 다시 보니 그냥 흔한 핫도그가 아닌 특별한 맛과 모양을 지녔다. 이 때문에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2~30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1970년대 학창 시절 등하굣길엔 우리들의 눈을 자극하던 길거리 음식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끓어오르는 기름에 노르스름하게 튀겨져 새하얀 설탕이 듬뿍 발라졌던 핫도그가 있었다. 조그마한 소시지 하나에 소다 냄새가 가득한 하얀 밀가루 반죽만 두툼하게 두세 번 발라 튀겨졌던 그 핫도그에 케첩을 한줄 쭉 발라서 먹던 시절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핫도그는 위생이나 영양가면에서 그리 좋은 음식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코끝과 입맛을 자극하며 허전했던 우리들의 배를 채워주던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그런 지난 세월 속에서 우리의 사랑을 받았던 길거리 음식 핫도그가 이제 새로운 개념으로 찾아왔다. 저렴하고 흔한 밀가루 반죽과 싸구려 소시지가 아닌 찹쌀과 옥수수, 코코넛을 주성분으로 한 곡물 반죽파우더, 국내산 돈육으로 만든 특별한 소시지, 그리고 치즈의 명가 독일 로젠 지방에서 수입한 모짜렐라 치즈를 곁들인 특별한 핫도그, 바로 이것이었다. 줄을 서고 꽤 긴 시간의 기다림도 감수하는 이유가. 남포동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1970핫도그. 이미 상당히 알려져 관광객들의 필수 먹거리 코스가 되어버린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_박미희 ­­기자 2000년도 주간인물을 멋있게 장식한 두 사람을 16년의 세월이 흘러, 주간인물이 다시 만났다. 부산의 향토 브랜드로 유명한 투윙닭강정의 김종철 회장과 울산 최초 창업지원센터를 열어 주목을 받았던 박영상 대표. 이 두 사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남았을 세월. 그 시간을 지나 주간인물이 만난 두 사람은 여전했다. 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뜨거운 열정, 그리고 신용을 목숨처럼 여기는 상도(常道)까지……. 그들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이번엔 두 사람이 한팀을 이루었다는 것. 20여 년 오로지 한길만을 걸어온 김종철 회장은 동업을 하지 않기로 외식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박영상 대표와 한팀을 이룬 건 그의 진실됨과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는 게 후문. 그리고 ‘반드시, 이 브랜드는 성공한다’는 확신이 그를 이끌었다고. “1997년 IMF 시절, 모두들 안 된다고 할 때 나는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 확신은 적중했고, 오늘날 투윙닭강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확신, 이번에 박영상 대표를 만나 사업 얘기를 들었을 때 다시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무엇보다 건실한 사람, 박영상 대표에 대한 믿음이 컸지요.” 외식업계의 원로인 김종철 회장과 프랜차이즈 업계의 실력파 박영상 대표가 한팀이 되어 만든 브랜드. 그들이 야심차게 준비한 힐즈코리아의 1970핫도그는 창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세간의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핫도그=노점상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 핫도그를 이렇게 젊고 깔끔하게 어필할 수 있다니! 무엇보다 손님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자타공인이 인정하는 맛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명 백화점 MD도 한번 맛보곤 바로 계약을 체결하자고 할 정도로 그 맛은 뛰어나다. 부산 남포동에 첫 매장을 오픈하자마자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 것도 모두 이 맛 때문이다. 핫도그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한번 맛보면 다시 생각나는 맛의 비결은 무엇일까. 기자의 물음에 “맛으론 전국 최고라고 자부한다”며 그들은 소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는 맛을 만들기 위해서, 그간 많은 준비과정이 있었다는 게 그들의 설명. “핫도그하면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죠. 하지만 좋은 재료를 쓰거나, 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지 못하는 게 현실이에요. 1950년대 한국에 들어와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가 된 핫도그. 그 핫도그의 풍미를 제대로 살려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위생적인 환경에서 좋은 재료로, 맛있게 만들어 고객들에게 제대로 내놓자고 결심했습니다.” ‘한국식 핫도그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겠다!’ 그 결심이 서자, 박영상 대표는 전국의 핫도그를 먹으러 다녔다. 그렇게 각 지역의 이름 난 핫도그를 찾아다니며 얻은 결론은 하나다. 모두가 저렴한 단가를 맞추기 위해 결국 저렴한 재료를 쓰게 된다는 것. 그렇게 만들어서는 맛과 품질이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좋은 재료로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팔아야 된다는 원칙을 고수하게 되었다고. “처음 핫도그를 베어 물면, 먼저 느껴지는 게 빵이에요. 무엇보다 빵이 맛있어야 돼요. 보통 다른 핫도그는 밀가루로 반죽을 하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밀가루를 쓰지 않아요. 찹쌀, 옥수수, 코코넛 등의 주재료를 사용해 빵의 맛을 내고 있어요. 그리고 핫도그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요즘 세대의 트렌드를 반영한 치즈와 소시지입니다. 보통 저가형의 소시지를 많이 사용하는데, 계육이나 밀가루가 많이 들어가서 깊은 맛을 내지 못해요. 그래서 저희는 모든 메뉴에 국내산 돈육 100%를 사용한 소시지를 OEM 생산을 통해 쓰고 있고, 치즈의 명가 독일 로젠 지방의 모짜렐라 치즈를 소시지 위에 꽂아서 프리미엄 핫도그를 런칭하게 되었죠.” 핫도그가 이렇게 다양하다니. 1970핫도그의 메뉴는 신선하다. 표면에 씨앗을 입힌 씨앗 핫도그부터, 라면을 입힌 핫도그, 시리얼을 사용한 시리얼핫도그, 울퉁불퉁한 모양이 재밌는 감자핫도그까지……. 색다른 핫도그의 변신은 그들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이젠, 음식도 디자인이죠(웃음). 라면, 시앗, 씨리얼을 이용해 다양한 메뉴들을 개발했어요. 핫도그도 이렇게 다양하고 참신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참신한 시도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나갈 것입니다.” 보통 프랜차이즈의 시작은 이렇다. 개인 업장으로 성공하게 되면, 그 노하우를 신규 창업자에게 전수해주면서 가맹계약을 맺는다. 점주들이 하나, 둘 늘면 물류와 프랜차이즈 체계를 잡아나간다. 하지만 1970핫도그의 시작은 반대다. 맛은 재료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생각. 그래서 핫도그의 맛을 좌우하는 핵심 재료들부터 OEM으로 생산해냈다. 초기 투자비용은 크지만, 재료가 변하지 않아야 가맹점 마다 균일한 맛을 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게 초반 투자를 충분히 해놓은 상태에서 첫 업장을 열었다. 올 여름 부산 남포동에 문을 연 첫 업장은 무더위가 기승하는 계절에도 기록적인 성과를 남겼다. 4평 남짓한 작은 업장에서 일 매출 180만원을 기록한 것. 한 개 2,500원~3,000원 남짓한 핫도그를 하루에 7-800개를 팔아야 발생할 수 있는 수익이다. 매장의 성공을 보며 그들은 굳은 확신을 갖게 되었단다. “전국에 핫도그 브랜드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추세죠. 점점 치열해지는 시장 경쟁 속에서 제가 갖고 있는 확신은 하나입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본질에 투자할 것. 뛰어난 맛과 좋은 품질과 친절한 서비스. 그런 본질적인 경쟁력을 갖춘다면 소비자들이 먼저 알아보고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저희 1970핫도그의 경쟁력이죠.” 1호점 매장의 성공 이후로 부산 부산대점, 현대백화점 부산점, 판교점, 대구점, 울산점 등이 입점했거나 진행 중이며 그 외에도 추가 입점 예정이다. 그리고 서울 경희대점, 서울 한양대점 등이 오픈해 성업 중이고 서울 가로수길점, 서울대점, 홍대점, 인사동점, 외대점 등의 가맹계약이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성공적인 스타트 업을 한 이후로 상승세를 그리고 있는 지금. 그들은 어느 때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피곤한 기색보다 건강한 활력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온 경험과 노하우를 담은 회심작이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리라. 장차 전국으로 뻗어나갈 브랜드. 그 프랜차이즈 정책에 대해 묻자, 단 한마디로 말했다.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가 산다.’ 오랫동안 쌓아온 프랜차이즈 사업의 경영철학은 오로지 이 하나다. “저는 가맹점 개설 수익을 수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맹점을 늘리는 것에 급급한 프랜차이즈는 결코 오래가지 못해요. 가맹점이 잘 돼서 본사를 통해 식재료를 구매하고, 그것이 수익으로 이어지면 결국 본사도 잘 되는 겁니다. 그렇게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도 사는 것이죠. 그러니 제 목표는 가맹점을 전국에 많이 여는 것이 아니라 망하는 가맹점이 없게 운영하는 것이에요. ‘폐점율 0%’, 이 목표에는 그간 제 사업 인생이 담겨있죠(웃음).” 음식은 곧 문화다. 전쟁 직후 배고픔을 달래줬던 부대찌개. X세대를 대변하던 패스트푸드. 바쁜 현대인들을 위한 슬로우 푸드까지……. 누군가는 선도적으로 대중들에게 음식과 문화를 소개했다. 이처럼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인 핫도그를 새로운 디저트 문화를 이끄는 아이템으로 소개하겠다는 것. 이것이 그들이 그리는 큰 그림이다. “1950년 전후에 미군들을 통해서 한국에 핫도그가 소개됐죠. 그리고 1970년 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오늘날의 핫도그가 만들어졌어요. 그렇게 핫도그는 우리에게 친근한 길거리 음식으로 자리 잡았죠. 앞으로 저희는 디저트 문화를 이끄는 아이템으로 핫도그를 소개하고 싶어요. 우리에게 언제나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핫도그, 그 진정한 가치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그들은 소상공인들에게 따뜻한 힘이 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단다. 1970핫도그, 디저트 문화를 이끄는 대표 브랜드로 거듭나는 내일을 기대해본다. [1002]
    • 라이프
    2016-12-14
  • 이상웅 아는사람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세간의 많은 관심을 끌었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통상임금 대표 소송. 그 화제의 소송에 변호인단으로 참여한 이상웅 변호사는 장래가 촉망되는 변호사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울산 지역 법조계에서 좋은 평을 받고 있다. _박미희 기자 “변호사로 만난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믿음을 주고 싶어요. 대표변호사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변호사사무실을 운영하는 첫 번째 원칙이죠(웃음).” 이상웅 변호사는 자신의 일에 남다른 열정을 지닌 사람이다. 젊은 변호사로 지역 법조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그는 어떻게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되었을까. “제 원래 꿈은 언론인이 되는 거였죠. 저는 남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데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군 제대 후에 장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남의 이야기를 전해주기보다, 이야기를 듣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언해주는데 더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했던 그는 자신의 공부 성향에 맞는 법학전문대학원을 선택해 본격적인 법조인의 길을 준비한다. “부산대 로스쿨은 금융, 해운통상 분야와 관련해서 많이 특화되어 있어요. 특히 저는 금융거래법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졌어요. 시험과목으로 들어가지 않지만, 실무에서 많이 다뤄지는 부분이거든요. 금융관련 법령은 단행법으로 구성되어 있어 종합적인 시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좋은 공부가 됐던 것 같아요.” 연고가 있는 서울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었지만, 굳이 울산을 선택한 것은 앞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 때문이었다. “서울 로펌에서 고용변호사로 활동한다면 특화된 분야에만 너무 치중할 것 같았어요. 더 다양한 소송 실무를 경험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연고가 전혀 없는 울산으로 내려와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울산은 사건 수가 많지는 않아도, 기업법무와 관련된 다양한 소송들이 많아서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울산으로 내려와 초선변호사로 열정적으로 일한다. 그런 그가 변호인단으로 참여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통상임금 대표 소송(1심)은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정치학을 전공한 배경지식을 살려, 승소의 핵심열쇠를 풀어낸 것. “현대중공업의 급여세칙에는 결근, 조퇴, 휴직 기타 징계사유에 대해 일정 퍼센트의 상여금을 감한다는 규정이 있어요. 그래서 이를 두고 반대편 변호사는 고정성이 없음을 들어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저는 상여금을 감하는 것도 제재에 해당하며 감봉처분을 받아도 기본급의 고정성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하여 법리적인 반박을 했습니다. 그밖에도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것을 법리적으로 주장했고, 결국 1심 승소를 받을 수 있었어요. 현재 이 소송은 2심에서 패해, 대법원까지 올라간 상태에요.” 이렇듯 화제가 된 소송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 만큼 좋은 제안도 많았지만, 그는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는 길을 선택한다. “대표 변호사로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직접 상담을 하고 소송과정에 의뢰인의 의견을 구하며 소송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변호사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길이라고 믿어요.” 환하게 웃는 이 변호사.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아보라고 하자, 그의 눈은 이내 깊어졌다. “제 의뢰인은 사내 봉침 동호회 회원으로 활동을 하셨어요. 그래서 가까운 동료에게 봉침을 놓았는데, 그분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결국 식물인간 상태에 놓인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분이 대가를 받거나 고의를 가지고 한 일이 아닌데 큰 사고로 이어져 민형사상으로 막대한 책임을 지게 될 상황에 처하셨죠. 상담을 할수록 자신이 벌을 받을 두려움보다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에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적으로 돕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쑥스럽지만, 이례적으로 담당 검사분을 찾아뵙고 진심으로 읍소를 했습니다. 그때 변호사로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기소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집행유예를 받았고, 민사상으로도 합의를 해서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변호사로 한 점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했던 사건이었어요.” 그는 앞으로 변호사로 걸어갈 길에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하고 싶단다. 장래가 촉망되는 그는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을까. “이 치열한 법률시장에서 제가 하는 말이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죠(웃음). 하지만 단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한번이라도 저를 마주한 의뢰인들에게 적어도 인간적인 후회가 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변호사. 그런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끝으로 언제나 곁에서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이 변호사. 열정과 소신을 지닌 그의 내일이 기대된다. 부산 내성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부산지방법원 실무수습 심화과정 수료 법무법인 삼성(울산) 근무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울산광역시지부 자문위원 울산광역시교육소청심사위원회 위원 울산시북구주민투표청구심의위원회 위원 주요 승소사례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통상임금 대표소송에서 승소(1심) 외국선주의 운송계약상 배상 청구에 대하여 승소 공장건물 붕괴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소가 150억원)에서 승소 식품위생법 위반 형사사건 등에서 무죄 판결 이혼소송에서 남편의 숨겨둔 재산(17억 원 상당)을 밝혀내 승소 그 외에도 각종 행정, 이혼, 손해배상(산업재해, 의료, 교통사고) 소송 등에서 승소 [999]
    • 라이프
    2016-10-31
  • 젊은 패기와 실력으로 승부수! 진심으로 의뢰인에게 다가가는 젊은 변호사
    점점 치열해지는 법조시장. 탄탄한 실력과 패기로 똘똘 뭉친 젊은 변호사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여기 탄탄한 실력과 따뜻한 인품으로 인정받는 남혜진 변호사는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이다. 이에 주간인물은 진심으로 의뢰인에게 다가가는 사람, 남혜진 변호사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청명한 하늘이 아름다운 가을, 남혜진 변호사를 만나러 창원 법원으로 향하는 길. 환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반긴 남혜진 변호사는 한마디로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었다. 창원이 고향인 그녀는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5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제45기를 수료한 젊은 법조인이다. 얼마 전 고향인 창원으로 내려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그녀는 문턱이 낮은 법률사무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탄탄한 실력과 젊은 패기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남혜진 변호사. 그녀는 어떻게 법조인의 길을 꿈꾸게 되었을까.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되었어요. 동국대법학과에 진학해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도전했죠.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20대를, 꿈을 위해 도전하는 시간들로 채우고 싶었죠. 1차 시험은 재학 중에 합격했으니 빠른 편이었어요. 하지만 2차 시험에서 계속 아쉽게 낙방을 해서 수험 기간이 길어졌어요. 제겐 참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의뢰인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와의 싸움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지만, 꿈이 있었기에 어려움을 딛고 목표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밤새 불을 밝히며 공부하던 날들. 그 힘든 시간 동안 그녀는 훌륭한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더욱 선명하게 그렸다고. “사시에 합격한 기쁨도 잠시,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니 다시 또 공부더라고요(웃음).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그에 따라 다른 처방을 내리는 것처럼, 변호사도 의뢰인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법리를 적용해서 복잡한 문제를 풀어가야 하죠. 그래서 변호사는 평생 공부하는 직업이라고 하나봐요(웃음). 타성에 젖지 않고 변호사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 사건 하나하나를 소중히 다루는 변호사가 되겠단 결심을 했어요.” 여러 로펌의 고용 제안도 많았지만, 그녀가 고향 창원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누군가에겐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사건인데, 너무 많은 일에 치여 제가 할 도리를 다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어요. 평생 변호사로 일할 텐데 어떤 만족감이나 보람 없이 일로만 하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더라구요. 큰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소송 하나 하나를 마치 내 가족의 일처럼 최선을 다해 하는 것, 그것이 제가 변호사 사무실을 열겠다고 결심한 이유입니다.” 상담부터 마지막 재판 결과까지 대표 변호사로 책임감을 갖고 일을 하고 싶다는 남 변호사. 그녀가 창원 사파동에 문을 연 해정법률사무소는 열린 변호사 사무실이다. 그녀가 직접 모든 사건의 상담을 하고, 소송 과정에서 의뢰인들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참여로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 사건의 요추를 꿰뚫는 안목, 철두철미한 사전 준비는 의뢰인들이 그녀를 신뢰하는 이유다. “소송을 준비하면서 작은 부분도 세심하게 준비를 많이 해요.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 나중에 소송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의뢰인들과의 상담을 통해 사건의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열린 소통으로 의뢰인의 의견을 많이 구하는 편이죠(웃음).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시는 의뢰인분들이 참 감사해요(웃음).” 개업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연이어 의뢰인들의 소개로 사건이 들어오는 것은 매사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태도 때문이다.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해 싸워줘서 고맙다는 의뢰인들의 말에 가슴이 찡 해지죠(웃음). 날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워줬다. 그런 믿음, 그 신뢰는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큰 보상입니다. 제 좌우명은 ‘늘 최선을 다하자!’에요. 조금은 식상할 수 있는 말이지만 오늘 하루,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쌓여 더 좋은 내일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하는 변호사,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웃음).”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 남혜진 변호사와 행복한 동행이었다. 프로필 창원 명지여자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제55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45기 수료 WHO/UNESCO/ICRC 기관 연수 창원 해민법률사무소 실무수습 서울동부지방법원 법원시보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창원지방검찰청 검사직무대리 변리사 자격 취득 現) 양산시 상북면, 동면, 원동면 마을 변호사 現) 해정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홈페이지 : http://haejunglaw.com [999]
    • 라이프
    2016-10-31
  •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 장려상 수상-지역의 특색 있는 생활문화를 만들어온 사람
    최근 정수식 조양플랜트 대표는 주민자율환경개선사업 및 생활문화운동에 힘써온 공로로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 - 장려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에 주간인물은 지역사회를 위해 공헌해온 인물, 정수식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40년, 부산 사상구에 뿌리를 내리고 산 세월만큼 지역에 대한 애정이 깊지요. 이웃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제가 보탬이 될 수 있는 것이 기쁩니다.” 환하게 웃는 정수식 대표. 사상구에서 그는 기업가로,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봉사자로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강소기업, 조양플랜트를 운영하며 사상구 주민자치위원연합회 회장, 사상구 생활문화운동 본부장, 사상구 청년회의소 명예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 언양이 고향인 그는 한살 때 부터 부산에서 자라며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특유의 성실함과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스물다섯에 조양플랜트를 창업했다. 40여년 굴곡 많은 시장의 변화를 겪으며 업계에서 인정받는 회사를 일군 것. 규모는 작지만, 높은 신용과 탄탄한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회사를 만들기까지……. 그 뒤에는 그의 숨은 땀과 노력이 숨어있다. “사업하면서, 인생의 파도도 많았죠(웃음). 40년 넘게 사업을 하면서 많은 굴곡을 이겨내 왔어요. 사업이 잘 될 때가 있는가하면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언제나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정확한 납기에 보내준다는 원칙만 지키면 거래처의 신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품질과 신용, 그것이 제가 빈손으로 사업을 일으켜 지금까지 사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죠(웃음).” 한창 사업이 번성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시절. 그는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30여년이 흘려 지금까지 한결같이 지역을 살피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그가 몸 담았거나 회장직을 맡았던 단체만 해도 모두 13개. 민족통일사상구협의회, 사상구 경찰발전위원회, 사상구 체육회, 사상구 주민자치위원연합회, 사상구 생활문화운동본부 등 많은 단체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온 것. 특히 12년 동안 한국열관리시공협회 부산시회장을 맡아 산업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해왔다. 현재는 이 단체 중 대다수에 고문을 맡아 물심양면으로 단체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 이런 그의 활동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사상구 주민자치위원연합회와 사상구 생활문화운동본부 활동이다. 30여년전 주민자치라는 단어조차 생소할 때부터 그는 지역을 위해 발 벗고 일 해왔다. 최근에는 주례2동 주민자치위원장을 거쳐 2011년부터 사상구 주민자치위원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주민이 공감하는 열린 마을자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민간주도 봉사단체인 사상구 생활문화운동본부 본부장으로 주민생활과 밀접한 연중 캠페인을 주제로 선정하고, 구민생활 개선을 위한 많은 일을 해왔다. 칭찬합시다(2011년). 한가정 한가훈 갖기(2012년), 클린사상365운동(2013년~2015년), 건강UP! 행복UP! 건강도시 사상만들기 운동(2016년)추진 등 통해 성숙된 시민의식을 향상하고, 민간주도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과 이정표를 마련한 것. “자발적인 참여로 함께 뜻을 해준 회원들, 그리고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신 사상구 구청장님과 관련 부서의 공무원들의 도움이 있기에 잘 이끌어 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많은 일들을 해나가겠습니다!” 선하게 웃는 정수식 대표. 그는 이번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 수상과 관련해 한결같이 겸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저보다 뛰어난 분들이 많은데,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아도 되는지 그저 송구할 뿐입니다. 제가 뛰어나서라기보다 곁에 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많은 분들이 있어 여러 단체들을 잘 이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곁에서 항상 힘이 되어주는 아내와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부족하나마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 정수식 대표와의 행복한 동행이었다. [998]
    • 라이프
    2016-10-12

포토뉴스 검색결과

  • 이젠, 창원에서 뜨는 인덕동에 가봐! 트렌드한 외식문화가 있는 곳, 카페인덕동
    창원시 마산합포구 덕동동, 하수처리 시설이 있어 창원 사람들에게 외곽이라 여겨지는 이곳에 트렌드한 외식문화를 소개하는 카페가 생겨 화제다. 바로 월드 로스팅 챔피언의 커피와 셰프가 직접 조리한 브런치, 전문 베이커의 베이커리를 즐길 수 있는 CAFE IN 덕동이 바로 그곳이다. 그곳에서 지역 외식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오고 있는 젊은 외식경영인, 황지선 대표와 마주했다. _박미희 기자 “창원의 외곽으로 여기는 덕동동이 외식문화가 꽃피는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가장 좋은 것들만 담아 정성껏 내놓겠습니다.” 환하게 웃는 황지선 대표. 그녀는 원래 서울에서 13년 동안 명품관련 잡지사의 웨딩플래너로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우리나라 웨딩플래너 1세대다. 평소 요리와 카페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던 그녀는 이태리 남부 출신의 실력파 셰프에게 이태리 가정식 요리를 배웠고 푸드스타일리스트에게 플레이팅과 요리를 배우며 실력을 다졌다. 이런 준비과정 끝에 그녀는 자신의 사업을 하고자 고향, 마산으로 내려와 CAFE IN 덕동을 오픈했다. 지역에서 앞서나가는 브런치&카페 문화를 알리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창원에서 찾아가볼만한 카페로 입소문이 나고 있는 CAFE IN 덕동. 프로페셔널한 그녀처럼 이곳의 메뉴는 한마디로 야무지다. 브런치, 베이커리, 커피 음료 등 많은 메뉴가 있지만 무엇 하나 손님들에게 허투루 나가는 게 없다. 보통 카페에서 다양한 메뉴를 하다보면 하나에만 힘을 주게 마련인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베이킹, 브런치, 커피 등 각 파트별로 구성된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모든 메뉴를 직접 개발하고 만들어내고 있는 것. 이런 정성을 그녀는 ‘진정성 있게 손님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한다. “‘트렌드’라는 말은 좋아하지만, ‘유행’이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아요. 한때 인기를 끌었다 쉽게 잊혀지는 카페가 아니라 오랫동안 손님들의 사랑을 받는 카페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겉모습이 아니라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콘텐츠가 뛰어나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손님들에게 내놓는 브런치, 베이커리, 커피 어느 하나 대충하는 것이 없어요.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를 손님들에게 내놓고 있습니다. 그것이 손님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진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이성곤 셰프, 이창석 베이킹 팀장, 예성제 바리스타가 각 파트의 팀장으로 이곳의 메뉴를 책임지고 있다. 탄탄한 실력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돋보이는 사람들. 전문가들의 탄탄한 실력만큼이나 이곳의 맛의 핵심은 바로 신선한 재료에 있다. 월드 로스팅 챔피언, 고토 나오키가 로스팅한 원두를 사용하고 신선한 재철 식재료와 직접 베이킹한 다양한 베이커리들을 사용한다. 반조리 식품이나 인스턴트식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작은 것도 직접 만드는 핸드메이드를 고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무엇일까. 커피로는 단연 직접 만든 코코아 파우더가 가득 뿌려져 달콤한 티라미슈의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티라미슈 라떼’, 비엔나커피의 일종으로 히말라야 소금이 뿌려져 나와 단맛과 짠맛의 조화를 느낄 수 있는 ‘히말라야 소금라떼’를 들 수 있다. 브런치 메뉴로는 토스트, 수제소시지, 베이컨, 스카치에그, 그릴버섯, 병아리콩 샐러드가 푸짐하게 담겨 나오는 ‘아메리칸 브랙퍼스트’, 자몽, 라임, 딜, 타임으로 브락스 한 알래스카 생연어에 리코타치즈, 계절 그린야채, 유자라임드레싱을 곁들인 ‘연어 리코타 샐러드’, 그릴에 구운 삼겹살, 페페론치노 그라나파다노를 넣은 ‘삼겹살 스테이크 파스타’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수박 모양을 닮은 수박빵을 비롯해 매일 구워내는 신선한 베이커리도 단연 인기다. 이들 메뉴의 공통점은 손이 많이 가고 좋은 재료를 사용한 것에 반해 가격 부담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브런치 메뉴는 평균 1만 5천 원 선이면 즐길 수 있어 이른바 가성비가 좋다. 이는 지역에 앞서나가는 브런치 문화를 알리고 싶은 그녀의 생각이 담겨있기 때문. “누구나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브런치 메뉴는 없어요. 모두가 좋은 재료를 사용해 셰프가 직접 만든 요리죠. 브런치도 하나의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가격 부담이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도록 메뉴를 구성했습니다.” CAFE IN 덕동. 그 이름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카페를 만들고 싶다는 황지선 대표. 긍정적인 마인드와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젊은 프로들의 모습은 많은 손님들을 다시 찾게 하는 힘이다. 외곽으로만 여겨지는 덕동동. 이젠 이곳을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면서 이곳은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CAFE IN 덕동, 덕동동 안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구요. 인사동, 논현동처럼 앞으로 인덕동(IN 덕동)이 하나의 이름이 되었으면 해요. 마산의 외지로 여겨지던 덕동동이 외식문화가 꽃피는 거리가 되었으면 바램입니다. 앞으로 CAFE IN 덕동하면 믿고 찾아올 수 있는 곳, 새로운 외식문화를 소개하는 랜드마크로 만들어가겠습니다!” [1008]
    • 맛집탐방
    2017-03-02
  • ‘한결같이 늘 그렇게’, 또바기 정신으로-오랫동안 사랑받는 외식브랜드를 만들어가겠습니다!
    대구 김광석거리, 줄서서 먹는 맛집이 있다. 바로 일본 퓨전가정식을 대구에 소개한 또바기 kitchen&bar가 바로 그곳이다. 이번엔 명덕시장길에 한식을 메인으로한 또바기 kitchen&bar 2호점을 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참신한 발상으로 사랑받는 외식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김영재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언제, 어디서나 믿고 찾을 수 있는 외식 브랜드 ‘또바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청년들이 함께 꿈을 키워나가는 브랜드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환하게 웃는 김영재 대표. 그는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젊은 외식경영인이다. 조리학과 출신으로 일찍이 외식사업에 뜻을 둔 그는 유명 외식업체에서 경험을 쌓았다. 맨손으로 시작해 창업을 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지만 ‘할 수 있다!’는 청년정신으로 창업을 시작했다. “다른 업장에서 일할 때도 언제나 ‘내가 대표’라는 마음으로 일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보니 어느새 경영 마인드가 쌓이더군요. 그렇게 요식업에서 일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언제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법. 그는 우연히 떠난 일본 여행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일본 여행 때 가이세키 요리를 맛보곤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어요. 식사를 하면서 대접받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 가이세키 요리를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소개하고 싶었어요. 제가 시작할 당시에는 대구에서 일본 가정식을 하는 곳이 거의 없을 때였지만, 분명 가이세키 요리를 대중적으로 풀어내면 젊은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첫 선을 보인 또바기키친앤바 1호점은 일본 퓨전가정식을 주메뉴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모두 1인상에 담겨져 나오는 정갈한 일본 퓨전가정식은 젊은 식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작은 재료 하나까지 직접 만드는 정성, 반찬 하나 하나 예쁜 그릇에 담겨나오는 정갈함, 그리고 1만 원대의 부담없는 가격은 이곳의 인기의 비결이다. 이런 매력에 오픈한 지 얼마되지 않아 이곳은 김광석 거리에서 줄서는 맛집이 됐다. 첫 매장이 성공하면 안이해지기 마련인데, 언제나 업장에 나와 손님을 맞는 그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좋은 음식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초심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 “또바기는 순우리말로 ‘언제나 한결같이 꼭 그렇게’라는 뜻이에요. 좋은 음식을 대중적으로 소개하겠다는 그 초심, 그 마음을 지키고 싶어 브랜드 명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획일적인 프랜차이즈 업장을 내고 싶진 않단다. 여기 저기 투자 제안이 들어와도 흔들림 없는 건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추구하고 싶어서라고. 그래서 이번엔 한식을 주 메뉴로 명덕시장길에 또바기키친앤바 2호점을 열었다. 수육정식, 닭갈비정식, 김치퀘사디아 등 모두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가는 요리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가격대는 1만 원대 안팎이다. 엄마가 해주는 집밥처럼 정성은 듬뿍 담되, 주머니 가벼운 손님들도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대중성을 추구했다. 거기에 카페 온 듯 한 캐주얼하고 편안한 감성은 ‘한끼를 먹어도 잘 먹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구성이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외식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젊은 베테랑. 그의 꿈은 오늘도 성장하고 있다. “외식경영인으로 백종원 대표를, 셰프로는 최현석 셰프가 롤모델이에요. 손이 많이 가는 세련된 요리를 보다 대중적으로 손님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처럼 어렵게 시작한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꿈꾸는 청년, 김영재 대표가 만들어갈 내일이 기대된다. [1008]
    • 맛집탐방
    2017-03-02
  • 국내 최초, ‘수제 초밥 전문점’, 스시정창현-직접 만들어먹는 초밥으로 화제!
    2년 전 창원의 스시 달인으로 주간인물을 멋지게 장식한 정창현 대표를 주간인물이 다시 만났다. 20여년 경력의 젊은 베테랑, 탄탄한 실력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창원에 새로운 외식 문화를 만들었던 그가 이번엔 국내 최초 ‘수제 초밥 전문점’에 도전해 화제가 되고 있다. _박미희 기자 ‘스시정창현.’ 자신의 이름을 건 업장에서 그가 환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다찌 앞에서 손님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한 그는 여전히 변함없었다. 좋은 재료로 만든 정직한 음식을 내놓겠다는 신념을 지키고 있는 것. 하지만 그간 변한 것이 있다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갖는 건강한 활력이 느껴질 뿐이다. 스시 하나로 창원 미식가들을 단번에 사로잡은 그가 이번엔 ‘수제 초밥 전문점’에 도전했다. 그때 문득 드는 생각, ‘스시는 당연히 수제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 ‘수제’란 주방장이 아닌 손님이 직접 초밥을 만들어 먹는다는 의미다. 그럼 손님이 비닐장갑까지 끼고 초밥을 만든다고? 아니다. 스시밥을 숟가락에 올려 밥 위에 생와사비를 적당히 올리고 생선회를 간장에 찍어서 올려 먹거나 젓가락을 이용해 생선회로 밥을 감싸 생와사비를 푼 간장에 찍어 날치알을 곁들여 먹는 방법이다. 흔히 ‘스시=장인의 손맛’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참신한 발상. 그가 이런 도전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20년 동안 스시를 만들어왔어요. 저는 그동안 어떻게 하면 조금 특이하고 맛있게 스시를 먹을 수 없을까, 그 방법을 수없이 고민해왔죠. 그 결과 기존 스시가 갖는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기존 방식대로 스시를 만들려면 우선 밥을 식혀야하구요. 스시를 만들고나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밥이 굳는 단점이 있죠. 하지만 네타(스시 위에 올라가는 활어회 등)은 따뜻한 밥에 올려 먹을 때 더 맛있거든요. 그래서 초대리로 간을 한 따뜻한 스시밥을 떠서 네타를 올리는 방식으로 스시를 내놓게 되었습니다.” 고슬 고슬~ 공기가 많이 들어가 밥알이 살아있는 따뜻한 스시밥에 올려먹는 도톰한 생선회. 그 맛은 가히 일품이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밥양을 조절할 수 있어 더욱 맛있게 스시를 즐길 수 있다. 그러니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스시밥이다. 전국에 있는 쌀 중에서 스시에 가장 적합하게 개량된 쌀을 선별하였고, 유자로 맛을 낸 초대리로 간을 한다. “밥이 맛있어서 몇 번이고 리필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저희 가게는 스시에 가장 적합하게 개량된 쌀을 사용합니다. 밥알이 매끈하고 윤기가 돌아 밥을 지어놓으면 정말 맛있죠. 그리고 유자로 맛을 낸 초대리로 간을 해 풍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창원에 이름난 스시 전문점, ‘스시창’(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마디미로38번길 11Nest빌딩/T.055-266-1607)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가장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정성껏 음식을 만든다는 것. 이 원칙은 이곳에서도 변함이 없다. 그가 직접 제작한 그릇에 스시밥을 중심으로 광어, 연어, 참치뱃살 등 신선한 생선회가 올려져 나온다. 따라 나오는 밑반찬들과 미소장국, 샐러드 하나까지 모두 정갈하고 맛있다. 이렇게 애피타이저, 수제초밥, 장국, 조림, 튀김, 식사까지 함께 나오는 코스는 코스별로 2만 5천원에서 4만 5천 원 선. 수제초밥만 즐길 수 있는 단품 메뉴는 1만 5천원이니, 정말 착한 가격이다. 좋은 재료를 쓰고도 이렇게 가성비가 좋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인건비를 줄였기 때문이라고. “업장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의 고충은 모두 같아요. 기술자를 구하기도 어렵고 한 달에 나가는 인건비도 만만치 않죠. 좋은 재료를 써서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인건비 때문에 운영에 어려움이 커요. 하지만 수제 초밥 전문점은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창업을 희망하는 분들도 단기간에 일을 배울 수 있어 누구나 쉽게 창업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많은 기술자가 필요하지 않다보니 소규모 업장으로도 운영이 가능하다.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어 회전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거기에 손님들의 재방문율이 높아 수익성도 좋다. 스시정창현은 창원 상남점 본점 (주소: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마디미로9번길 4/T.055-286-1213)을 비롯해 마산 2호점(주소: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옛길 77 /T.055-256-1113)까지…….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손님들의 반응은 뜨겁다. ‘수제 초밥’이라는 신선한 컨셉에 가성비까지 두루 갖춰 식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 여기 저기 가맹문의가 들어오고 있지만 오히려 그는 조급하기보다 신중했다. 외형적인 성장보다는 내실을 다지며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로 키워나가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 “정창현, 제 이름을 건만큼 믿고 먹을 수 있는 브랜드로 키워나고 싶어요. 외식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브랜드, 소상공인들에게 따뜻한 힘이 되는 착한 브랜드로 키워나가겠습니다!” [1008]
    • 맛집탐방
    2017-03-02
  • “많은 시민들과 엘리트 체육인들이 마음 놓고 농구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최근 최준규 세무사가 제11대 김해농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남다른 고향 사랑과 농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그의 진정성 있는 행보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에 주간인물은 농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애쓰고 있는 최준규 회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최근 제11대 김해농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최준규 회장은 농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규모가 작아 사무실을 두지 못했던 협회의 사정을 알고 자신의 사무실을 사무국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최근에는 김해농구협회 현판식을 진행했다. 이렇듯 최 회장의 농구사랑은 각별하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농구와 인연을 맺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해외영업팀에서 일하다 프로농구단 사무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것. “저는 어려서부터 농구를 좋아했어요. 대학 때 농구동아리 활동을 했고, 스포츠 마케팅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사내공모에서 농구단 외국선수 통역을 뽑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지원을 했죠.” 그렇게 그는 현대전자농구단이 KCC농구단으로 재창단 이후 1년 반 동안 재키존스 등 용병선수의 통역과 지원 업무를 맡았다. 그 당시만 해도 국내 프로농구단의 지원시스템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선진 스포츠 마케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그가 느낀 현실과의 이상과의 괴리는 컸다. 이후 사고와 과로가 겹치고 허리 디스크 수술까지 받게 되면서 그는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바로 세무사 시험에 도전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 그렇게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10여 년 전 김해로 내려와 세무회계사무소를 개업했다. 그가 운영하는 최준규세무회계사무소는 김해에서 재산세제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 세무회계사무소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해는 부동산 개발지역이 많아서 재산세제와 관련된 일들이 많아요. 김해에 내려와 관련된 일들을 시작해 계속 이 분야의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 폭넓은 경험과 전문성으로 재산세제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 세무회계사무소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죠.” 10년의 세월동안 변함없이 인연을 맺어온 의뢰인부터 적극적으로 주변 지인을 소개해주는 사람까지…….그가 의뢰인과 좋은 인연을 맺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몇년 전 일을 맡겨주신 의뢰인들의 사소한 사안들도 다 기억을 해요. 소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의뢰인들은 그런 관심을 참 고마워하세요. 의뢰인들이 놓칠 수 있는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히 챙기는 노력, 그것이 의뢰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이 속담은 절세에도 적용된다. 그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경우도 이미 부동산 등기를 마친 후 자신을 찾는 의뢰인들을 만날 때라고. “부동산 등기가 완료되면 세무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요. 부동산 매매를 하기 전에 전문가를 찾아 상담을 받으시면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까지 세금을 절세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 전문가를 찾아 세무 서비스를 받는 의뢰인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절세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최준규 세무사.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의뢰인에 대해 묻자, 그는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최근에 세법이 많이 개정되고 있는 추세에요. 농지에 대한 감면세액이 1년 한도액 2억에서 1억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제 의뢰인이 토지 매매 시기를 조정해서 큰 절세 효과를 얻었죠. 단순한 매매연도 조정만으로도 큰 절세 효과를 얻은 케이스죠.” 진심으로 의뢰인을 대하는 그는 요즘 사회공헌 활동에도 열심이다. ‘이웃과 함께 나눌수록 도리어 받는다’는 선순환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이번 김해농구협회 회장 취임도 이런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이라고.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지역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어 참 기뻐요(웃음). 김해는 경남권에서 비교적 우수한 선수를 배출할 수 있는 학교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아 선수 육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협회 차원에서 우수한 선수 육성을 위해서 지속적인 지원을 계속해나가겠습니다. 더불어 더욱 많은 시민들이 생활체육으로 농구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그는 앞으로 지역에서 농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역 농구대회를 자주 개최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수한 선수 육성을 위해 지속적인 지원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김해 농구발전을 위해 앞으로 ‘소통’과 ‘화합’의 정신으로 조직을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두 조직이 하나 되어 시작한 만큼, 조직의 화합과 소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김해 농구발전을 위한 다양한 일들을 해나가겠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시민들과 엘리트 체육인들이 마음 놓고 농구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최근 제11대 김해농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최준규 회장은 농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규모가 작아 사무실을 두지 못했던 협회의 사정을 알고 자신의 사무실을 사무국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최근에는 김해농구협회 현판식을 진행했다. 이렇듯 최 회장의 농구사랑은 각별하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농구와 인연을 맺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해외영업팀에서 일하다 프로농구단 사무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것. “저는 어려서부터 농구를 좋아했어요. 대학 때 농구동아리 활동을 했고, 스포츠 마케팅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사내공모에서 농구단 외국선수 통역을 뽑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지원을 했죠.” 그렇게 그는 현대전자농구단이 KCC농구단으로 재창단 이후 1년 반 동안 재키존스 등 용병선수의 통역과 지원 업무를 맡았다. 그 당시만 해도 국내 프로농구단의 지원시스템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선진 스포츠 마케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그가 느낀 현실과의 이상과의 괴리는 컸다. 이후 사고와 과로가 겹치고 허리 디스크 수술까지 받게 되면서 그는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바로 세무사 시험에 도전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 그렇게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10여 년 전 김해로 내려와 세무회계사무소를 개업했다. 그가 운영하는 최준규세무회계사무소는 김해에서 재산세제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 세무회계사무소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해는 부동산 개발지역이 많아서 재산세제와 관련된 일들이 많아요. 김해에 내려와 관련된 일들을 시작해 계속 이 분야의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 폭넓은 경험과 전문성으로 재산세제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 세무회계사무소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죠.” 10년의 세월동안 변함없이 인연을 맺어온 의뢰인부터 적극적으로 주변 지인을 소개해주는 사람까지…….그가 의뢰인과 좋은 인연을 맺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몇년 전 일을 맡겨주신 의뢰인들의 사소한 사안들도 다 기억을 해요. 소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의뢰인들은 그런 관심을 참 고마워하세요. 의뢰인들이 놓칠 수 있는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히 챙기는 노력, 그것이 의뢰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이 속담은 절세에도 적용된다. 그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경우도 이미 부동산 등기를 마친 후 자신을 찾는 의뢰인들을 만날 때라고. “부동산 등기가 완료되면 세무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요. 부동산 매매를 하기 전에 전문가를 찾아 상담을 받으시면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까지 세금을 절세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 전문가를 찾아 세무 서비스를 받는 의뢰인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절세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최준규 세무사.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의뢰인에 대해 묻자, 그는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최근에 세법이 많이 개정되고 있는 추세에요. 농지에 대한 감면세액이 1년 한도액 2억에서 1억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제 의뢰인이 토지 매매 시기를 조정해서 큰 절세 효과를 얻었죠. 단순한 매매연도 조정만으로도 큰 절세 효과를 얻은 케이스죠.” 진심으로 의뢰인을 대하는 그는 요즘 사회공헌 활동에도 열심이다. ‘이웃과 함께 나눌수록 도리어 받는다’는 선순환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이번 김해농구협회 회장 취임도 이런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이라고.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지역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어 참 기뻐요(웃음). 김해는 경남권에서 비교적 우수한 선수를 배출할 수 있는 학교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아 선수 육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협회 차원에서 우수한 선수 육성을 위해서 지속적인 지원을 계속해나가겠습니다. 더불어 더욱 많은 시민들이 생활체육으로 농구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그는 앞으로 지역에서 농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역 농구대회를 자주 개최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수한 선수 육성을 위해 지속적인 지원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김해 농구발전을 위해 앞으로 ‘소통’과 ‘화합’의 정신으로 조직을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두 조직이 하나 되어 시작한 만큼, 조직의 화합과 소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김해 농구발전을 위한 다양한 일들을 해나가겠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시민들과 엘리트 체육인들이 마음 놓고 농구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1008]
    • 경제
    2017-03-02
  • 부동산에 관한 모든 솔루션을 한번에! - 선진 부동산 문화를 이끄는 리딩컴퍼니 ‘(리맥스) 더 킹스’
    한번이라도 부동산 매매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부동산 계약만이 이뤄졌다고 능사는 아닌 일. 세무, 법률, 금융 등 부동산 거래에 따른 일들이 어디 하나, 둘인가. 이제는 이곳저곳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는 일이 지쳤다면.... 부동산과 관련된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업용 부동산 전문기업, (리맥스) 더 킹스를 찾아가보라. 부동산에 관한 모든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든든한 조력자를 만날 수 있을 테니! _박미희 기자 “선진 부동산 문화를 리드하는 리딩컴피니를 만들고 싶어요!” 환하게 웃는 천경훈 대표. 그는 부동산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부동산 업계에 입문해 10여 년 동안 실력있는 부동산 전문가로 이름을 알렸다. 부동산 전문가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창업에 도전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부동산은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사업입니다. 선진국에 비해 한국 부동산 시장은 정체되어 있어요. 부동산 중개에 국한되지 않고 컨설팅, 세무, 법률, 금융 등 부동산과 관련된 전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진 모델을 만들고 싶어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2012년 (리맥스) 더 킹스를 법인화했다. 상업용 부동산을 비롯해 중소형 빌딩, 건물, 토지매각, 임대차 컨설팅 등 다양한 사업 분야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에 특화되어 있는 서비스로 주목을 받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은 부동산 시장의 꽃이죠.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특화된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층이 있지만, 주로 미국과 유럽의 대기업에서 거의 독점화해온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고객들의 ‘Needs&Wants’에 발맞춰 한국 실정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했습니다.” 부동산에 관한 모든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든든한 조력자. (리맥스) 더 킹스는 부동산 중개에 국한되지 않고 컨설팅, 세무, 법률, 금융 등 부동산과 관련된 전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부동산 자산관리(PM) 등 고객 맞춤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전속 계약을 맺은 대리인으로서 고객의 소중한 자산을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 하나까지 챙기는 세심함과 뛰어난 전문성으로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이어나가겠습니다.” 2016년 (리맥스) 더 킹스는 미국의 본사를 둔 세계적인 부동산 컨설팅업체 리맥스(RE/MAX)와 ‘chain agreemaent’를 체결했다. 전 세계 100여개 국에 진출한 글로벌 부동산 기업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선진 부동산 기업의 모델을 만들고 있는 것. “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부동산 프랜차이즈 사업을 했었어요. 누구도 도전하지 않는 분야에 도전하다보니, 어려움이 크더군요. 선례나 롤모델이 있으면 좋을 텐데하는 안타까움이 늘 있었죠. 그래서 세계적인 부동산 컨설팅 기업과 체인 계약을 통해 그들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습니다. 이를 적용해 한국의 실정에 맞는 선진 부동산 사업 모델을 만들고 있어요.” (리맥스) 더 킹스의 또 다른 장점은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인재들이 많다는 점이다. “저는 늘 말해요. ‘직원들의 고객이 고객이라면, 제 고객은 바로 직원’이라고(웃음). 어렵게 얻은 노하우를 전수해주지 않아, 어깨 너머로 일을 배워야하는 업계의 관행이 안타까웠어요. 저는 인재를 키워 훗날 경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뛰어난 인재를 뽑아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부동산 전문가로 키워내고 있어요. 직원들의 뛰어난 실력이 곧 고객 만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젊은 기업, (리맥스) 더 킹스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4월, 부산·경남 지역 최초로 임대(차)인의 요구 사항을 적극 반영한 사무실 임대 전문 브랜드 ‘오킹(오피스 킹)’을 출시할 예정이다. “실제로 공실율이 높아 속을 태우는 건물주 분들이 많으세요. 한편 사무실을 이전하는 분들도 꼼꼼히 따져보지 못하고 사무실을 이전해 뒤늦게 후회하는 분들도 많으시고요. 이렇게 임대인과 임차인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 좋은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게하는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것입니다.” 환하게 웃는 천경훈 대표. 그는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이다. 그가 만들어갈 새로운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리맥스) 더 킹스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부동산 기업을 일구는 것이 꿈입니다. 부동산 전문가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업,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건실한 기업을 일구고 싶어요. 한국 부동산의 선진 모델을 제시하는 기업, (리맥스) 더 킹스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 [1008]
    • 경제
    2017-03-02
  • 부산 118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 독보적인 기술 경쟁력으로 인정받는 강소기업
    최근 부산 118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한 유승관 대표이사는 나눔을 실천하는 건실한 기업가다. 해외수입에 의존하던 대형발전기부품(COIL WEDGE)의 국산화에 성공해 국내 산업발전에 기여를 하고 있다.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강소기업 (주)삼일육스틸을 일군 그는 차세대 엔지니어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고 있다. _박미희 기자 “어려운 이웃들에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쁩니다. 나눌수록 되려 받는 행복, 이젠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환하게 웃는 유승관 대표이사. 그는 터빈 및 발전기부품(SPRING, COIL WEDGE) 제조를 주력으로 하는 (주)삼일육스틸을 경영하는 건실한 기업가다. 그는 부산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특수강을 개척한 삼미종합특수강(주)에서 13년 동안 일하며 철강산업 분야에서 실력 있는 전문가로 인정을 받았다. 이후 광진실업(주)에서 5년 동안 철강유통과 경영전반의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특수강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로 이름을 알리던 그가 (주)삼일육스틸을 창업한 건 2001년. 수십 년간 쌓아온 철강산업의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강소기업을 일구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주)삼일육스틸은 화력 및 원자력 발전소의 발전기에 사용되는 핵심부품인 고강도 비자성 스테인리스강 코일웨지, 증기터빈 및 가스터빈에 사용되는 고강도 특수합금 스프링 등 수십 여종을 제조해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두산중공업, TOSHIBA, GE 등 국내외 유수의 대기업들과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맺어오며 실력을 인정받아온 것. 이런 신뢰의 근간은 해외수입에 의존하던 기술의 국산화에 성공한 독보적인 기술력에 있다. “코일웨지는 화력,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되는 발전기의 핵심부품입니다. 그동안 해외에 의존하던 이 기술을 광진실업과 함께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해외 기술 의존도가 높은 소재산업 분야에서 국내기술로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우수한 품질과 뛰어난 가격 경쟁력은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비결이다. 평소 ‘다른 것은 양보해도, 결코 품질만은 양보하지 못한다!’는 그의 지론은 품질경영에 대한 철학을 말해준다. “코일웨지는 발전기의 핵심부품입니다. 이 작은 부품 하나가 잘못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손해비용은 거의 천문학적입니다. 그러니 파트너들도 단순히 가격이 아닌 제품의 품질을 우선으로 파트너를 정하죠.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우수한 품질과 뛰어난 가격 경쟁력은 글로벌기업과 꾸준한 신뢰관계를 쌓아온 우리의 저력입니다.” 철강산업분야의 전문가로 작지만 내실 있는 강소기업을 일구기까지……. 엔지니어로서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저는 제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웃음). 기회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잡을 수 있다고 하죠. 제가 특별히 특출하였기보다는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노력해온 시간들이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분야에 비전을 봤고, 또 주저지 않고 도전했습니다. 그 결과, 수입에 의존하던 기술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외형에 집착하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며 기업이 나아가야할 좋은 방향에 대해 고심해왔어요. 무엇보다 내일처럼 회사 일을 하는 좋은 직원들과 함께하는 것, 그것이 제가 회사를 잘 이끌어올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꿈은 목표를 정하고 하루하루 노력하는 자의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그는 생활에서 실천해왔다. 40대에 마라톤을 시작해 보스턴 마라톤, 베를린 마라톤 등 유명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고, 100km를 뛰는 울트라마라톤까지 완주했다. 50살이 되는 해에는 철인3종 킹 코스에 도전해 성공하는 등 나이를 잊은 열정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기업경영만큼이나 그는 사회공헌 활동에도 열심이다. 오랫동안 모교에 장학금을 기탁해왔고 사회봉사단체의 후원을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최근에는 부산 118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실천했다. “저도 어려울 때 주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고 싶었어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조금이나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쁩니다.” 엔지니어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고 있는 유승관 대표이사. 끝으로 그에게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에 대해 묻자, 그는 선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는 착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게 어렵죠(웃음). 하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노력을 다한다면 분명 비전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국내기술이 아닌 해외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기술들이 많습니다. 청년들이 이런 분야에 도전해서 자신들의 성공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또 다른 마라톤입니다” [1008]
    • 경제
    2017-03-02
  • 독보적인 존재감! ‘부산 다이닝’을 맛볼 수 있는 그곳
    요즘 부산에서 파인다이닝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부산은 외식문화가 발달된 수도권과 달리 소비자 층이 적고 원활한 식자재 공급과 인력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파인다이닝으로 이름을 알렸던 유명한 업장들도 하나, 둘 문을 닫고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전 하고 있는 추세. 이 같은 현실 속에서 부산의 색깔을 살린 파인다이닝이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부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파인다이닝’이라는 확실한 임팩트를 주는 머스트루가 바로 그곳이다. _박미희 기자 라꽁띠, 엘올리브가든에서 활동했던 정재용 셰프가 이번에 자신의 업장을 냈다. 탄탄한 기본기와 창의적인 요리로 인정받는 그의 회심작, 머스트루는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미식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바로 ‘부산형 파인다이닝’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 것. “부산에서 파인다이닝은 셰프로서도 어려운 작업이에요. 고도의 집중력과 화려한 테크닉과 창의성을 집약해야하니까요.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하이엔드 기술을 발휘한 세련된 요리를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부산에서도 이런 업장들이 많이 생겨나야 지역의 외식문화가 발전하고 많은 인재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유명한 파인다이닝은 많죠. 하지만 부산에서 경쟁력을 지니려면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승부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요리와 독특한 분위기를 추구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희 업장을 ‘부산 다이닝’이라고 설명하죠.” ‘must+truth’의 합성어라는 ‘mustrue'. 이 이름에서도 진정성 있게 손님들에게 다가가고자하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손님들과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도록 구성된 업장의 특이한 구조에서도 알 수 있다. 마치 친구 집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의 내부는 몇 개의 테이블을 제외하곤 바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곳 앉아서 코스의 전과정을 요리하는 셰프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것. “오픈 주방이라 바에 앉아서 요리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실 수 있어요. 단순히 요리를 미각으로만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나의 연극처럼 요리의 전과정을 보고, 느끼고, 즐기는 감동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완벽한 오감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곳. 2시간 내내 오로지 손님에게 집중하는 정재용 셰프의 손길에서 나온 코스 요리는 감동적이다. 에피타이저부터 마지막 후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않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특히 가지된장과 과리꼬추를 가니쉬로 올린 스테이크, 멸치국수를 활용한 카펠리니 파스타 등 한식의 요소를 가미한 창의적 발상이 눈에 띈다. “가장 맛있는 요리는 좋은 재료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참가자미, 딱새우, 멸치 등 부산·경남에서 구하기 쉬운 로컬푸드를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산하면 멸치국수가 유명하죠. 그래서 멸치육수를 베이스로한 카펠리니 파스타를 내놓고 있어요. 그리고 고기를 먹을 때 장과 야채를 곁들이는 한식의 요소를 활용해서 스테이크를 내놓고 있습니다.” 이렇듯 탄탄한 기본기와 창의성으로 인정받는 정재용 셰프.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젊은 베테랑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부산의 외식문화가 발전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서 재능을 펼치고 싶은 젊은 셰프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진정성 있게 손님들에게 다가가려는 마음, 그 초심을 지키고 싶습니다.” [1007]
    • 맛집탐방
    2017-02-20
  •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건강한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어요!"
    최근 (사)한국숲유치원협회 4대 회장으로 김정화 수성대 교수가 선임됐다. 그녀는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코다이음악교육협회 부회장, 대구생태유아공동체 대표, 대구환경교육 네트워크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생태교육 발전을 위해 기여해온 사람이다. "아이들이 숲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녀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Q. 교수님의 생태교육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생태교육에 뜻을 두게 되셨나요? A. 저는 생태교육과의 인연을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팔삭둥이로 태어나 갓난쟁이 때부터 아주 허약했어요. 강보에 쌓인 저를 어머니는 솔잎 자리에 눕혀 생기를 얻도록 했지요. 그리고 제 나이 스무 살에 갑자기 아버지를 여의고, 오 남매의 장녀로 집안을 이끌어야 했어요. 그때 제 마음을 다독여준 것 역시 자연이었죠. 꾸준하게 등산을 하면서 큰 위안을 얻었거든요. 그러다 스물여섯, 대장 결핵으로 건강을 잃었을 때도 자연이 절 살렸어요. 사찰을 찾아 생활한 2달 동안 자연의 치유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자연은 늘 제 삶과 함께였죠. 그러다 음악을 전공하고 교육자의 길을 걷던 저는 우연히 '코다이음악교습법'을 접하면서 생태교육에 눈을 떴어요. 때마침 수성대 특성화 사업으로 생태교육 연구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생태교육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후진 양성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한국코다이음악교육협회, 대구생태유아공동체 등에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생태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일하게 되었어요. Q. 생태교육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무엇입니까? A. 생태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확신을 얻게 됐어요. 자연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은 눈빛부터가 달라요. 맑은 숲 속에서 뛰놀며 성장한 아이들은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요. 한마디로 전인교육에 가장 탁월한 교육법이 저는 생태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나서, 생태교육 전도사가 되었죠(웃음). Q. 교수님은 평소 '한국형 숲유치원 모형 개발'과 '전문 인재의 양성'의 중요성을 역설해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A. 현재 시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은 선진국의 사례를 따르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좋은 것은 받아들여야겠지만, 우리 것의 장점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특유의 숲 문화와 고유한 교육 문화, 놀이문화를 잘 융합해 한국형 숲유치원 모형을 개발·보급된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거예요. 이를 위해 한국형 숲유치원 시범 운영과 다양한 지원 사업 추진 등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생태학습의 보급을 위해서는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만큼이나 숲 체험, 생태학습 등을 지도하는 전문 인재의 양성이 중요해요. 이를 위해 기반 제도 마련과 시스템 구축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계속해나가겠습니다. Q. 대구를 기점으로 시작된 '동네 숲터 발굴 사업'이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시행될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네 숲터 발굴 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A. 우리 곁에 있지만 활용되지 못했던 근거리의 숲터를 발굴하고 재정비해 아이들의 체험학습공간으로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되돌려주자는 것이 이 사업의 취지에요. 대구에서 처음 시작한 이후 40여 군데의 숲터를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어요. 대구를 롤모델로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이 사업을 시행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2년의 임기 동안 이 사업이 전국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Q. 끝으로 성원해주시는 관련자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부족한 사람이 막중한 자리를 맡아 어깨가 무겁습니다. 화합과 소통의 정신으로 협회를 잘 이끌어나가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숲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데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프로필 (사)한국숲유치원협회 회장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코다이음악교육협회 부회장 대구생태유아공동체 대표 대구환경교육 네트워크 공동대표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 위원 대구창조경제연구회 감사 대구광역시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대구광역시 환경정책위원회 위원 경산 큰나무어린이집 공동대표이사 [1007]
    • 교육
    2017-02-20
  •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 우수한 의정활동으로 이어져!
    2017년 정유년의 시작, 한해를 가득 채운 우수한 의정활동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제8회 부산광역시의장협의회 지방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한 박성윤 의원이 바로 그 사람이다. 이에 주간인물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을 잃지 않는 사람, 박성윤 의원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Q. 영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의원님은 어떻게 정치에 입문하게 되셨는지요? A. 저는 영도에서 50년을 넘게 살았습니다. 영도는 제가 학창시절을 보내고 형제들이 뿌리내린 삶의 터전입니다. 제게 주민들은 형이자 누이 같은 살가운 이웃들입니다. 그러니 영도에 대한 애정이 깊을 수밖에요.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바꾸겠다는 순수한 열정, 그것이 저를 정치로 이끌었고 또 행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영도를 시작으로 성장한 큰 정치인들을 많이 지켜봐왔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처음 약속과 달리 하나같이 영도를 떠나고, 누구도 책임지려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책임지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의 삶의 터전인 영도를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Q. 그간 발로 뛰는 의정활동으로 많은 관심을 얻으셨습니다. 그간 의정활동 중에 의원님이 가장 의미 있다고 평가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A. 의정활동 중에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죠. 조례재정, 예산심의, 행정사무감사 등 지방의원으로서 해야 되는 일들이 많지만, 그 중에도 저는 의회의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는데 보탬이 된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야권 성향 정치인으로 제6대 의원으로 당선된 이후로 의회 내부의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루어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의원님들과 함께 행정부의 감시와 견제를 잘 하는 의회, 지역 현안을 꼼꼼하게 따지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의회. 오늘날의 건강한 영도구의회를 만들어가고 있다는데 보람을 느낍니다. Q. 주민들의 민원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걸로 압니다. 민원을 잘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면요? A.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요. 편안한 동네오빠, 친한 동생 같아야 주민들이 스스럼없이 어려운 애기를 할 수 있거든요(웃음). 작은 민원이라도 주민들의 어려움을 듣고 잘 해결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설사 제가 쉽게 해결해드릴 수 없는 문제라도,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하면 결과를 떠나서 주민들이 흡족해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태도가 중요한 거죠. 앞으로도 주민들의 삶을 살피고, 지역 발전을 위해서 더 열린 태도로 다가가겠습니다. Q. 지역 발전을 위해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주요 현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A. 80년대 영도의 인구가 약 25만 명이었는데, 현재는 많이 줄어서 약 13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인구가 많이 준만큼, 한편으로는 고령화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영도의 재정자립도는 9% 정도로 타 시·군구와 비교해도 굉장히 열악한 상황이에요. 고착화되어 있는 지역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문화·관광에 특화되어 있는 도시로 발전시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영도는 대한민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관광지입니다. 태종대, 해양박물관, 영도다리 등 우수한 관광자원이 있고 최근에는 부산항대교 개통으로 접근성도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그냥 영도를 둘러보고 스쳐가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이는 보고, 놀고, 즐길 거리가 부족하고 관광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동삼하리 지구 개발과 영도다리 인프라 구축 사업 등이 잘 연결되어 제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 동삼하리지구 개발은 문화관광부의 허가로 고도제한이 풀린 상태이고, 대기업들의 참여로 성공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Q. 끝으로 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초심을 잃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뽑아주신 것은 주민들이 저의 열정과 진정성을 높이 평가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의회와 집행부와 함께 소통하면서 지역의 각종 현안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겠습니다. 앞으로 지역 주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 지역 공동체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 뛰겠습니다. 이런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저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있습니다. 프로필 대한민국 특수임무 국가유공자 해군첩보부대(UDU)중앙회 부회장(전) 부산광역시 영도구의회 6,7대 의원 영도구의회 7대 전반기 복지건설위원장 영도구 도시계획위원회 운영위원(현) 영도발전연구소 운영위원(전) 영도구 공직자윤리위원회 운영위원(전) 영도구 연안연구센터 운영위원(전) 영도구 관광진흥위원회 자문위원(현) 영도구 도서관 운영위원회 운영위원(전) 노무현재단 지방자치 연구위원(현) [1007]
    • 정치
    2017-02-20
  • ‘한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 이젠 행동하는 정치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부산광역시의장협의회 지방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한 김태수 의원은 진심으로 진심을 구하는 사람이다. ‘한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겠다’며 자리에 연연하기보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풀뿌리민주주의부터 실현해야한다는 그의 말에는 큰 울림이 있다. _박미희 기자 Q. 평소 ‘한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말씀을 자주하신 걸로 압니다. 김태수 의원님은 어떻게 정치에 입문하게 되셨나요? 자신의 정치철학이 있다면요? A.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길을 따르고 싶었습니다. 그간 시민단체 활동으로 정치참여를 하다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을 계기로 현실정치에 나서야겠다는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풀뿌리 민주주의부터 실현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부산에서 3번의 도전 끝에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10년 세월 동안, 만난 수많은 유권자들과 함께 나눴던 고민, 그리고 지역의 많은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번 제대로 일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자리에 연연하기 보다는 ‘한번을 해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Q. 그간 의정활동을 뒤돌아보셨을 때 스스로 가장 보람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A. 이제는 의원들 스스로가 기득권이나 권위주의를 내려놓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외 연수를 통해 견문을 넓히고 그것이 우수한 의정활동에 보탬이 되는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의원들의 일탈로 주민들의 혈세가 낭비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어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일탈행위 및 개인행동 금지’를 주요로 하는 ‘부산진구의회 의원 행동강령 조례안’을 발의했습니다. 그리고 의원들의 업무추진비 명목의 예산들을 30% 정도 삭감하므로써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Q.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지역구 현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A. 부산진구의 가장 시급한 현안은 바로 재계발문제입니다. 산적해 있는 재계발 문제는 때론 지역발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주민들의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재계발이 되지 않아 슬럼화된 지역의 취약한 방범 실태는 주요한 민원 사항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기업의 책임계발이 중요합니다. 한번 재계발지역으로 정해지면 공적인 자금이 지원될 수가 없어요. 재계발지역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매몰비용을 지불해야하지만, 이를 갚을 능력이 없는 협동조합이 많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에서 한시적으로 기업에 다른 혜택을 주고 매몰비용을 감당하게 했는데, 이를 더 늘려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합니다. Q. 김태수 의원님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지역을 떠나는 정치인들이 많죠. 하지만 저는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시민단체를 통해서 지역 발전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밀알이 되어 뿌려놓은 이 새로운 가치를 전하는데 보탬돼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각계 계층의 민의가 정책으로 반영되고, 다양한 인재가 나와야 여당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제가 오랫동안 몸 담아온 부전시장 상인회를 비롯한 다양한 시민단체의 참여를 통해 행동하도록 하겠습니다. Q. 끝으로 주민들과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정치인은 좋은 아버지가 되기 상당히 어려운 직업이더라고요(웃음). 정치에 입문한 뒤로 항상 바쁜 활동 때문에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한 살 된 아이를 엎고 봉사활동을 하던 저를 기억하고, 여전히 응원해주시는 많은 주민들에게 실망시켜드리지 않는 정치인.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 김태수가 되고 싶습니다. [1007]
    • 정치
    2017-02-17
  • “일도 삶도 미쳐야, 미치죠” 1% 가능성으로 100%를 완성하는 돈키호테
    2017년 새해 초, 따뜻한 나눔을 전하는 사람 신인규 대표이사를 만나러 밀양으로 향했다. 밀양 시청 앞에 있는 (주)도서출판 밀양에서 만난 신인규 대표이사는 작업복 앞치마 차림 그대로였다. 작지만 다부진 체격과 밝은 표정이 인상적인 그는 특별한 사람이다. 도서출판, 인쇄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그는 경남 4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자, 심청장학회 이사장으로 적극적인 사회공헌을 펼쳐온 인물이다. 이렇듯 그는 밀양의 독지가이자, 출판·인쇄업계에서 참신한 도전을 한 인물로 주목을 받고 있다. _박미희 ­­기자 몇 년 새 문을 닫은 대형 출판업체가 줄을 이을 정도로 도서출판업계의 불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돈을 버는 일과 거리가 있는 일을 생업으로 삼으면서 그는 어떻게 꾸준히 기부활동을 해올 수 있었을까. 이쯤 되면 타고난 금수저는 아닌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신인규 대표이사는 요새 보기 드문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그의 고향은 경남 밀양, 송전탑 문제로 아픔을 겪었던 부북면 화악산 아래 평밭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나이 마흔 일곱에 저를 보셨어요. 어려운 형편에 저를 낳으셨으니 자식 뒷바라지가 힘들었지요. 워낙 연로하실 때 저를 낳으셨으니 어머니 젓 대신에 암죽을 먹고 자랐어요. 그래도 타고난 건강 체질과 강인한 정신력을 제게 물려주셨죠. 어찌나 산골인지 학교를 가려면 1시간 30분이 넘게 걸었어야 됐어요. 오가는 길에 진을 다 빼니, 공부에 집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부모님께 부담을 안 드리려고 밀양전문대(현 부산대 밀양캠퍼스)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으려고 그는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장학금을 받아서 학비를 댔다. “대학교 다닐 때 밤에 은행 청원경찰로 일을 했어요. 밤새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받은 장학금을 모아 부모님 용돈을 드렸지요. 그때 일하면서 읽은 책들이 평생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건실한 중견기업 ㈜한국화이바에 취직을 한다. 그 특유의 근면성실함과 실력은 업계에서 소문이 날 정도였다.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고, 새벽 5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가 돼야 퇴근을 했죠.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하다 보니 회사에서도 저를 인정해주더라고요. 하지만 3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화이바의 신인규가 아니라, 신인규의 신인규가 되고 싶다.’ 그래서 수중에 있는 단돈 몇 푼을 가지고 창업을 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창업을 준비하게 된다. 평소 가장 애정이 있었던 책과 관련된 사업을 구상했다. “우리 인생은 종이로 시작돼 종이로 마무리 됩니다. 원래는 제지업을 하려고 했는데 큰 자본이 필요해서 대신 인쇄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 단돈 60만원을 가지고 창업을 했어요. 기계를 리스해서 사놓고 혼자서 기계를 돌려보려고 하니까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마산 인쇄 골목으로 가서 일을 도와주며 어깨 너머로 일을 배웠습니다. 인쇄업계는 원래 기술을 잘 안 가르쳐주기에 일하는 도중에 기계가 돌아가는 걸 몰래 지켜보고 돌아와서 혼자 해보고, 그렇게 수없이 반복해서 일을 배웠지요.” 그는 1993년 단돈 60만원을 밑천으로 (주)도서출판 밀양을 창업한다. 창업할 때 그가 시작한 또 하나의 사업은 바로 심청장학회 사업이다. “제가 필요하면 남도 필요할 거란 생각. 그 생각에서 기부를 실천하게 되었어요. 제가 도움이 절실할 때 장학금을 받았으니 다시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창업을 할 때 장학사업을 함께 시작했어요.” 특유의 근면성실과 꼼꼼한 일처리로 창업 이후 그는 성공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IMF 외환 위기의 어려움은 그에게도 어김없이 닥쳐왔다. 거래처의 부도로 연쇄부도를 맞게 된 것. “외주를 주면서 받은 어음으로 결제를 했는데, 그게 돌아와 2억 6천만 원의 부도를 맞았습니다. 회사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는데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일했죠. 10만 원짜리 일이 들어오면 인건비 1만원을 남기고, 나머지는 은행에 넣고……. 아내와 저 직원 한명. 세 명이서 정말 절실하게 일했어요. 제 사정을 아는 주변 분들이 많이 일을 맡겨주시더라구요. 그때 내가 참 잘 살았구나하는 고마운 생각이 들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비싼 인생 공부를 했구나 싶어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그는 다시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 2013년 지금의 사옥으로 이전했고 밀양 외에 타 지역에서 많은 거래처를 보유하고 있다. ‘당신의 상상을 인쇄해드립니다’는 사훈처럼 고객에게 최고의 만족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인쇄업계의 불문율인 최소 수량이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손해가 따르지만, 그는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당신의 상상을 인쇄해드립니다. 이 사훈처럼 고객이 생각하는 무엇이든 그것을 현실화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고객에 맞춰 디자인도 종이도 인쇄방식도 모두 다르게 하고 있어요. 사실 최소 수량이 없으면 일손이 많이 들고, 때론 손해를 많이 보기도하지만 고객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죠. 손해는 보지만 고마워하는 손님들이 소개를 해주셔서 일이 끊이지 않아요.” 인맥에 기대지 않고, 영업을 하지 않아도 고객들의 소개로 자연스럽게 거래처가 늘어났다. 현재 전국에 500곳이 넘는 거래처를 두고 있고, 20년이 넘게 거래해온 거래처만 200곳이 넘는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그가 작업용 앞치마를 입고 인쇄기계 앞에 선다는 점이다. “저는 하루에 4시간만 자요.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은 더 바쁘게 살아야죠. 저는 일에 삶에 미쳐있는 사람입니다.” 일에 미쳐있는 것만큼 그는 봉사에도 미쳐있다. 창업과 함께 시작한 심청장학회는 20여 년간 약 250여명의 학생들에게 누적장학금 7억 원을 전달했다. 2015년, 경남 4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해 1억 원 기탁을 약정했다. 꾸준하게 밀양시 장학회에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다. “심청장학회에서 장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은 공부가 아니에요. 공부는 잘 못하지만 예의바르고 착한 학생, 꿈이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선정대상입니다. 공부는 못하지만 꿈이 있는 바른 학생은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해요. 장학금이 단순히 경제적인 지원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지지해주고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요. 그게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온 가족이 장기기증을 약속했고, 보호관찰소 사회봉사 감독으로 활동하며 소외되고 어려운 환경 속에 있는 청소년들을 돕고 있다. 그가 요즘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는 바로 미혼모 문제다. “저는 미혼모라는 말이 싫어요. 미혼모를 만드는 것은 남자에요. 미혼모라는 말 자체가 사회적 차별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청소년들이 더 좋은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들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사업들을 추진할 수 있는 법령 개정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느티나무경상남도장애인부모회 밀양시지부에 후원회 총무를 맡아 성인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저는 성인장애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해주는 터전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장애인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자체적으로 교육과 의료·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국가기관 성격의 장애인복지센터를 마련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서 필요한 500억 원의 예산 마련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를 이어 (주)도서출판 백년인쇄를 이끌어갈 차기 인쇄쟁이인 아들 신재우 씨와 함께 기부금을 기탁한 신인규 대표이사 항상 약자 편에 서서 키다리아저씨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신인규 대표이사.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가 건강을 잃지 않는 비결은 걷기다. 술, 담배, 화투, 당구, 골프 등 잡기를 못하는 그는 오로지 걷기로 건강을 유지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평균 15km를 걷는 그는 1년, 365일 동안 약 3650km를 걷는다. 현재 재단법인 한국걷기연맹 산하 ‘워크 아이 경남’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이웃들에게 걷기 운동을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극단 진영에서 중견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랑의 부부합창단(LCC) 합창단원(테너파트)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독실한 카톨릭 신앙인인 그는 천주교 부산교구 밀양본당에서 해설을 담당하고 있다. ‘1%의 가능성으로 100%를 만드는 돈키호테.’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온 사람. 그에게 책을 만드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책을 만드는 일은 징검다리에 돌을 놓는 것과 같아요. 앞서 간 길을 누가 따라온다면 제가 놓은 돌을 밟고 쉽게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제 뒤에 다른 사람이 또 그 사이에 돌을 놓을 테고요. 그러면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길을 따라오리라 생각합니다.” 신인규 대표이사의 길을 잇는 사람은 바로 그의 아들, 신재우 씨다. 어려서부터 인쇄업을 천직으로 알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해온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성장한 아들은 아버지를 닮고자한다. 그래서 사명도 (주)도서출판 밀양에서 (주)도서출판 백년인쇄로 변경할 계획이다. 100년 기업을 만드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인쇄업계의 100년 기업을 만드는 것이 제 소망이에요. 그래야 인쇄 선진국인 일본과 독일을 넘어서 한국의 인쇄기술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뒤를 이어 아들이 더 훌륭하게 해낼 것이라고 믿어요.” “작업복인 앞치마는 자신의 수의”라며 “평생 인쇄공으로 살다, 인쇄공으로 죽고 싶다”는 신인규 대표이사. 그는 언제나 앞치마 차림으로 인쇄기 앞에 설 것이다. 미래를 만들어갈 우리 어린이들이 볼 책을 만들기 위해서, 또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1006]
    • 경제
    2017-02-01
  • 도심 속, 푸르른 정원이 펼쳐진 힐링카페 “좋은 것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죠!”
    김해 가야의 길에 위치한 SS커피는 스토리가 있는 공간이다. 보기 드물게 도심 속 푸르른 나무들로 꾸며진 정원이 있는 이곳은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고 있다. _박미희 기자 따뜻한 감성과 문화가 흐르는 공간, SS커피는 요즘 김해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그 이유는 뛰어난 커피의 맛도 맛이겠지만, 무엇보다 도심 속에 푸른 정원을 품은 카페이기 때문이다. 금싸라기 같은 비싼 땅에 건물을 올려도 부족하겠건만, 정원을 만들다니……. 조금은 남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이 아닐까하는 기대만큼이나 취재진이 만난 김병욱 대표는 역시나 열린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 원래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했던 그는 퇴직 이후에 새로운 관심사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조경. 원래 조경에 ‘조’자로 모르던 그가 조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이곳에 정원을 만들면서부터다. 지금의 푸르른 모습과 달리 원래 이곳은 물웅덩이가 있는 빈땅이었다. 궂은 날이면 웅덩이에서 자란 해충들로 인근 주민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던 것을 그가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꾸기로 결심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인근 주민들도 이 땅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죠. 저는 오히려 이곳을 삭막한 도심에 숨통을 틔어주는 힐링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수많은 반대와 어려움을 딛고 이곳에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조경에 ‘조’자도 모르던 사람이 정원을 가꾸다니 나중엔 다들 놀라더군요(웃음). 그때 저는 ‘누구나 열정을 가지면, 비전문가도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힘들게 만들었지만 정원이 내 것이라는 생각은 없어요. 좋은 건 많은 사람들이 같이 보면 더 좋으니까요. 그렇게 정원을 만들고,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 정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카페를 만들었다는 말이 맞지요.” 이곳은 브랜딩부터 남다른데, SS커피란 이름은 파사석탑과 관련된 석선(돌:石 배:船)의 약자에서 따왔단다. 가야의 길에 위치한 만큼 김해의 역사를 알리고 싶어 하는 그의 생각이 담겼다. ‘가장 상업적이지 않는 것이, 가장 상업적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카페 운영에서도 알 수 있다. 커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운영하는 이곳은 좋은 커피로 입소문이 났다. 최고급 원두를 사용해 정성껏 내린 커피, 그 가치에 맞게 담는 잔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썼다. 개인 업장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도예가의 도자기 잔을 사용하고 있는 것. ‘손님들에게 커피 한잔을 내놓아도 최선을 다해 내놓겠다’는 신념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신선한 제철 과일을 듬뿍 올려 건강한 재료로 만든 타르트도 이곳의 인기 메뉴다. 값싼 통조림 과일을 쓸 수도 화학첨가제를 써서 쉽게 만들 수도 있지만, 변함없이 ‘좋은 재료를 쓴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때론 너무 코스트가 높아서 ‘그렇게 해서 남느냐’는 퉁을 듣기도해요. 한편으론 그 말도 일리는 있죠. 하지만 저는 사람이 느끼는 건 다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눈 앞에 보이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순 없겠지만, 분명 좋은 재료를 써서 정성껏 만든 커피와 디저트를 알아보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힘들더라도 이 원칙을 지켜가려고 합니다.” 푸르른 정원 속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커피 한잔. 그 시간이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이 정원은 저만의 것이 아니에요. 좋은 것은 많은 사람들하고 나눌수록 좋지요. 휴식이 필요한 분들이 찾아오셔서 이 공간을 즐기고, 좋은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더 상대방을 배려하고, 다름을 이해한다면 더 좋은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심 속 활력이 되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들의 진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1006]
    • 맛집탐방
    2017-02-01
  • 달라이라마 단독 친견으로 ‘화제’ 마음 속에 그린 일이 이뤄지는 곳, 신비의 기도도량 무명사
    심상치 않은 시국과 어려운 경제난으로 서민들의 삶은 어느 때보다 어렵다. 풍진 세상, 깊은 번뇌를 달래주는 도심 속 사찰, 무명사는 신비의 기도도량이다. 무명 스님의 원력으로 신비한 경험을 한 이들이 늘면서 무명사는 신비의 기도도량으로 명성을 얻었다. 최근 이뤄진 달라이라마와의 단독 친견으로 무명사는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섰다. _박미희 기자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고난의 땅에서 비폭력과 친생명의 메시지를 전한 위대한 인물, 달라이라마. 그와 무명 스님의 단독친견이 이뤄졌다. 낯선 땅에서 온 귀한 인연, 하지만 달라이라마는 그를 마치 오랜 벗을 대하듯 살갑게 대했다. 연신 ‘코레아~’를 외치며 머리를 부비고 얼싸안는 달라이라마. 그런 그와 무명 스님 사이에는 아무 말이 필요 없는 듯, 반가움의 눈빛과 환한 웃음만 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우정을 나누는 것 같았다. 둘 사이에는 잔잔한 평화의 기운이 가득했다. 이렇듯 깊은 영혼의 울림을 나눈 두 사람, 무명 스님은 달라이라마와의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저와 달라이라마 존자님 사이에는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깊은 영적인 교감만이 가득했지요. 낯선 땅에서 온 저를 마치 오래 사귄 벗을 대하듯 살갑게 대해 주었습니다. 존자님을 친견하기 전, 주변에선 저에게 질문을 준비하라고 하더군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물음이 있었는데, ‘왜 나는 한 생각을 하기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은가?’ 하는 것이었죠. 결국 그 질문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왜 나는 한 생각을 하기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은가?’ 그 본질적인 물음은 예기치 않았던 달라이라마와의 친견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원래 무명 스님에게 단체 친견 제의가 들어왔었다. 하지만 형식적인 만남이 못내 내키지 않았던 스님은 이를 거절하고, 며칠 후 한국에 들어온 티베트 스님들과 우연히 조우한다. 사연을 들은 티베트 스님들도 ‘달라이라마의 단독 친견은 어려운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 만남은 또 다른 인연의 징검다리가 되어 결국 달라이라마와의 단독 친견으로 이어졌다. 세계적인 지도자들도 만남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던 달라이라마와의 극적인 만남은 한편의 드라마처럼 이렇게 이뤄졌다. 이런 달라이라마와의 영적교감을 말해주듯 무명 스님이 걸어온 길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목 부러진 돌부처와의 인연 ‘스님 어떻게 출가를 결심하게 되셨나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무명 스님의 눈빛은 깊어졌다. 풍진 세상, 출가를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과 번뇌가 있었을까…….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기자의 상념을 깨우듯, 스님의 청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사 번뇌에 빠져 고통 받는 중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속세에서 부와 명예를 위해 일생을 바치는 일이 덧없게 느껴졌죠. 그런 세상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스님은 홀연히 속세를 떠나, 불가와 인연을 맺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원력 높은 큰스님들과 마주했고, 그때마다 ‘오늘부터 내 상좌 하라’며 무명 스님을 붙잡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무명 스님은 정중히 거절하며 은사스님을 찾아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났다. 그렇게 수년, 은사스님을 찾아 떠돌던 무명 스님은 우연히 금정산에 자리한 작은 사찰과 인연이 닿게 됐다. “여러 법 높으신 큰스님들의 상좌 제의를 거절하고, 무슨 인연인지 금정산에 자리한 작은 사찰의 노스님을 은사스님으로 맞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 어느 날, 목이 부러진 돌부처를 친견하고 이를 수습하여 부처님을 모시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사찰에 모셔진 부처님의 목이 부러졌다는 겁니다. 그때부터 목이 부러진 돌부처와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목이 부러진 돌부처와의 연으로 스님은 신비로운 영적인 경험을 계속하게 된다. 스님의 이런 영험한 원력이 알려지자 사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금정산 자락에 작은 움막을 짓게 되어 기도에 정진한다. 이후에도 움막이 철거 됐다 다시 지어지는 일이 수없이 반복됐다. 비바람을 피하기도 어려운 작은 움막 속에서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 날들의 연속. 그 고난 속에서도 스님은 묵묵히 수행을 이어나갔다. “그때 저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먹었어요. 맨밥에 눈물을 쏟아 후루룩 삼키곤 했죠. 얼어터진 손으로 목탁을 칠 때도 나는 복된 사람이라 생각했지요. 끼니를 잇기 어려운 날들, 반복되는 고난 속에서 세상의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진실한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 둘 움막을 찾아와 함께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그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 하나의 길이 되었지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져 하나의 길이 만들어졌다. 무명 스님의 영험한 원력은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어 비바람을 막기 위해 비닐법당을 세웠으며, 비닐법당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무명 스님은 사찰명을 고심하게 되었다고. “사찰명을 고심하던 중 ‘없을 無, 이름 名, 무명사라 하라’는 계시를 받고 무명사라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후 무명사는 부처님과 무명 스님의 가피력으로 이름이 났고, 이를 시기한 이들이 불상을 엎는 만행을 일삼았다. 또한 마지막 철거를 당하는 날 신도들은 위기에 놓이자 많은 신도들이 깊은 근심에 쌓였다. “그때 저는 ‘신도들에게 슬픔의 눈물이라면 당장 그치고 기쁨의 눈물이라면 실컷 울어라. 더 이상 무명사는 부서지지 않는다’라고 했고, 그 이후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죠. 그렇게 운명처럼 인연이 닿아 지금의 무명사가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라,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 없다 신비의 기도도량, 무명사 도심 속 사찰, 무명사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불자들로 발 딛을 틈이 없다. 부처님과 무명 스님의 가피력에 많은 불자들이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때마다 무명 스님은 “무명사에 와서 소원성취를 이루면 모두 이 산승의 법력과 도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는 모두 때가 되어 이뤄진 것일 뿐”이라며 겸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불치병의 환자가 씻은 듯이 병이 낫고, 시한부 인생을 살던 말기 암 환자가 암을 극복하는가 하면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있던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고, 깊은 시름에 우울증을 앓던 이가 마음의 병이 나았다는 곳. 무명사는 이렇듯 기도성취를 이룬 수많은 불자들의 입을 통해서 무명 스님의 법력과 신비한 원력으로 널리 이름이 났다. 무명 스님의 신비한 원력은 익히 고승들로부터 예견한 바이다. “나는 도를 모른다. 세상에 도가 어디에 있느냐? 세상만사, 도 아닌 것이 없지. 모든 것이 도이다. 무명사에서 기도성취를 이룬 불자들은 그 덕을 제게 돌리지만, 다만 때가 되어 이뤄진 것뿐입니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는 듯, 날카로운 통찰력과 무심히 던지는 스님의 소탈한 말과 행동은 많은 불자들의 마음을 맑게 일깨운다. 찰나의 맑은 생각을 담아 법문하는 무명 스님. “바른 귀가 있어 잘 들으면 곧 그것이 법문이라 생각한다”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무명 스님의 법문은 세상사 번뇌에 힘들어하는 많은 불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풍진 세상, 심상치 않은 시국에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웃으세요. 웃다가 이뤄지는 일이 많습니다. 상대방을 보며 웃어주는 것이 곧 보시를 하는 일이요, 덕을 쌓는 일입니다.” 웃음 보시를 강조하는 무명 스님. 그 말씀 속에는 스스로의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작은 것부터 생활에서 실천해나가라는 큰 가르침이 있다. 신비의 기도도량 무명사.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세상사 번뇌에 빠진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오늘도 무명사의 등불은 밝게 빛날 것이다. [1006]
    • 라이프
    2017-02-01
  • 주민들의 삶을 살피는 ‘진심’, 우수한 의정활동으로 이어져!
    2017년 정유년의 시작, 한해를 가득채운 우수한 의정활동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의성군내 최다득표로 재선에 성공하고, 2016년 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한 김영수 부의장이 그 사람이다. 이에 주간인물은 발로 뛰는 의정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김영수 부의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주요 의정활동과 지역의 주요현안을 담았다. _박미희 기자 Q. 그간 발로 뛰는 의정활동으로 많은 관심을 받으셨습니다. 다양한 의정활동 중에 의원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A. 의정활동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법의 맹점이나 미비점 때문에 제대로 권리행사를 못하는 주민들을 만날 때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주민들을 만나며 민원을 직접 듣고 챙기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조례제정, 예산심의, 행정사무감사 등 지방의원으로서 많은 활동이 있지만 그중에서 주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챙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욕구와 불편함이 무엇인지 알아보며 삶의 면면을 챙기고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주민들의 삶이 개선되고, 지역이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발로 뛰는 의정활동을 펼쳐나가겠습니다. Q. 의원님은 최다득표로 재선에 성공하셨고, 2016년 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그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소회와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A. 저를 지지해주신 주민들 여러분들에게 우선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제가 이렇게 과분한 상을 수상한 것은 저에게 믿음을 가지고 많은 의견을 개진해주신 주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부족하니까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더 열심히 발로 뛰는 의정활동을 펼치라는 뜻으로 알고,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Q.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지역구 현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A. 지역구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상수도 문제입니다. 저의 지역구 지하수는 석회질과 철분의 함량이 너무 많아서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합니다. 먹는 물은 주민들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고,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은 주민들의 권리이기에 중요성이 큽니다. 제 공약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공약이 바로 이 상수도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임기동안 노력한 결과 일부 지역은 문제를 해결하였지만, 아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지역도 하루라도 빨리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노력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Q. 36년 공직생활을 통틀어 의원님의 삶의 지침이 되었던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A. 제 좌우명은 ‘힘들지만 정직하게 하자’, ‘잘못하면 즉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자’입니다. 공직생활과 의원직을 수행하면서 소신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해서 안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은 어렵더라도 꼭 하는 사람이 되자’는 삶의 지침을 지켜왔습니다. 앞으로도 저를 지지해주신 많은 주민들의 기대와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의정활동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2017년 새해, 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저물고 2017년 정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를 돌이켜 보면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인 혼란기에 민생은 어렵고, 대한민국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내가 잘못했을 때 안타까운 마음으로 토닥여 주고, 힘들 때 위로와 용기를 주신 믿음직한 주민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지역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바쁘고 힘들수록 원칙을 지키고 서로 믿고 도우며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때, 또 한분 한분이 가정과 직장과 일터에서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가정이 바로서고 지역이 발전하며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지역발전과 주민을 위한 의정활동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김영수 부의장님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군단위에서는 상대적으로 교육혜택을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잠시였지만 학교 행정실장(6년 6개월)으로 근무하면서 열악한 교육환경이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교육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과 머리를 맞대어 지역의 우수한 인재들을 키워낼수 있는 좋은 환경과 토대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웅군인 의성군을 이끌어나갈 동량을 키워내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주요 경력 의성군 금성면, 춘산면사무소 근무 안동시 대신동사무소 근무 의성군청 근무 의성군 탑리여자중학교 행정실장 한국자유총연맹 의성군지부 운영위원 명예통역(일어)관광 안내원 생활체육 경북 탁구연합회 부회장 제6대 의성군의회 후반기 산업건설위원장 국민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등급판정위원(현) 금성중학교 총동창회장(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현) 제7대 의성군의회 후반기 부의장(현) 의성교육지원청 학교 체육협의체 위원장(현) 의성교육지원청 학교 행정협의체 위원(현) [1006]
    • 정치
    2017-02-01
  • ‘맛’, ‘서비스’, ‘분위기’ 삼박자를 골고루 갖춘 곳 - 기분 좋은 레스토랑, OVER30
    사람의 기분을 가장 쉽게 좋게 하는 방법은 뭘까? 바로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 가성비 좋은 레스토랑으로 입소문난 OVER30는 행복한 외식공간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그곳에서 열정적인 젊은 외식 경영인, 정재식 대표를 만났다. _박미희 기자 OVER30는 울산 동구 일산지해수욕장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보기 드물게 ‘맛’, ‘서비스’, ‘분위기’, 삼박자를 골고루 갖춘 레스토랑으로 사랑받아온 것. 최근 창원 가로수길에 2호점을 열면서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기분 좋은 레스토랑’으로 기억되는 OVER30. 이곳의 주인인 정재식 대표는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이다. 다년간 외식업에 몸담아온 그가 갖는 외식업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제가 이 일을 참 좋아해요. 정확하게 말하면 일만큼이나 사람을 더 좋아하죠(웃음). 어린 나이에 외식업에 입문한 이후로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았어요. 물론 더 좋은 조건의 일도 많았지만 서른이 돼서 이 일을 다시 택한 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저도 어려서부터 일을 했기에 외식업의 열악한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래서 저와 함께 일하는 친구들은 서른이 되면 다 사장님이 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이런 의미로 이름을 OVER30라 짓게 되었습니다.” 이름에 깃든 애정만큼이나 이곳은 남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다. 블루, 화이트, 골드를 메인컬러로 한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거기에 고급스러운 식기와 기품 있는 소품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무엇보다 이곳의 특별하게 하는 것은 역시 맛이다. 통통한 새우, 마늘과 올리브오일의 조화가 조화로운 ‘감바스 알 아히효’, 직접 만든 라비올리에 트러플 오일로 향을 더한 ‘트러플 오일 라비올리’, 드라에이징한 국내산 육우 채끝 등심을 써서 진한 풍미를 잘 살린 ‘30′s 뉴욕 스트립 스테이크’ 등이 인기메뉴다. 그리고 바텐더로 경험을 잘 살려 만든 샹그리아 피쳐 라인도 SNS상에 화제가 되고 있다. 와인은 비싸다는 편견을 깨고 1000ml에 1만원이라는 착한 가격과 좋은 맛으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다른 곳은 절대 따라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손님들을 대하는 사장님의 마음가짐이다. “경영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소비자 감성이에요. 내가 손님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맛과 서비스, 그리고 분위기를 구성하려고 애써요. 계산할 때 지불한 식비가 전혀 아깝지 않고, 정말 기분 좋게 대접받았다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이런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것은 그의 아내. 업장에서 손님들을 맞는 그녀와 스텝들의 표정이 밝은 것도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은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다녀간 손님들의 입소문으로 유명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부족한게 많다”며 “앞으로 더 새로운 메뉴와 좋은 서비스로 다가가겠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자신의 일에 남다른 애정을 지닌 그가 만들어갈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OVER30처럼, 이젠 OVER40을 준비하고 있어요(웃음). 마흔까지는 일선에서 일을 하고, 그 후에는 저와 함께 일한 친구들이 이 자리를 대신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앞으로 젊은 청년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웃음).” 진심으로 진심을 구하는 사람, 정재식 대표가 만들어갈 내일이 기대된다. [1006]
    • 맛집탐방
    2017-02-01
  • 노련한 셰프의 손길이 담긴 맛집 - 와규 와 연어 를 한번에 맛볼 수 있는 곳
    고원석 와규위드연어 오너셰프세상사 시름겨운 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따뜻한 사케 한잔에 고민을 털어버리고 싶다. 부산 송정, 고소한 풍미가 일품인 와규와 신선한 노르웨이산 연어를 즐길 수 있는 와규위드연어는 이런 날 찾아가기 딱 좋은 곳이다. 일본 동경요리학교 출신의 베테랑 고원석 셰프의 차진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곳, 와규위드연어는 사람들의 허기진 마음까지 채워주는 곳이다. _박미희 ­­기자 “요리하는 순간이 가장 즐겁다”는 고원석 셰프는 요리사가 천직인 사람이다. 요리명문, 동경요리학교 출신인 그는 일본에서 정통 일식을 제대로 배운 실력파 셰프다. 일본의 유명 업장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자신의 요리세계를 펼치기 위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서울에서 ‘카코이 돈뿌리 전문점’을 열어 성공한 그는 최근 부산에 내려와 송정에서 와규위드연어를 열었다. 처가가 있는 부산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다양한 업장을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서울에서 요리할 때는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 쉴 틈이 없었죠. 정말 정신없이 요리하기에 바빴던 것 같아요. 손님들이 많이 찾아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셰프로서 정체성을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부산에 내려와 업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작년 여름 그가 송정에 문을 연 와규위드연어는 참신한 메뉴 구성과 뛰어난 맛으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와규와 연어, 그 참신한 조합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손님 네 분이 오시면, 그 중에 꼭 한분은 못 드시는 음식이 있어요. 고기를 좋아하는 분은 회를 못드시고, 회를 좋아하는 분은 고기를 잘 못드시고. 그래서 메뉴를 정하기가 쉽지 않죠. 그러던 중 고기(와규)와 회(연어)를 함께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어야 제가 정통일식을 전공했기 때문에 너무나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는 메뉴였고, 와규는 일본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던 사촌의 영향으로 늘 가까이하던 음식이었죠. 가장 맛있고, 손님들이 원하는 음식으로 메뉴를 짜게 되었습니다.” 풍부한 마블링과 고소한 맛이 일품인 호주산 와규와 청정한 환경에서 자란 신선한 노르웨이산 연어를 함께 즐길 수 있다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좋은 재료는 맛의 기본이지만, 주방에서 20년의 세월을 보낸 셰프의 섬세한 손길이 더해져 그 맛은 배가 된다. 그가 말하는 맛의 노하우는 바로 ‘숙성’에 있다고. “신선한 냉장 연어를 그때그때 받아서 쓰지만 연어 특유의 비릿한 맛이 날 수 밖에 없어요. 그 맛을 잡기 위해서는 숙성을 잘 시키는 게 중요하죠. 그래서 정성껏 밑준비를 하고 숙성과정부터 마지막 손님상에 나가기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맛있는데, 가격까지 착하다. 그것이 이곳의 장점이다. 연어와 와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세트 메뉴는 중 4만원~대 6만원 안팎. 푸짐한 구성에 비해 착한 가격이다. 다채로운 단품 메뉴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된 메뉴도 매력적이다. 이렇듯 정통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손님이 원하는 것을 먼저 주는 것. 그것이 고원석 셰프가 지닌 장점이다. “주변에서 늘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까운 실력인데, 왜 정통일식을 하지 않느냐고.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에요. 하지만 손님들이 원하는 대중적인 일식을 하는 셰프도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카코이 돈뿌리 전문점을 열었구요. 이번엔 부산에서 하고 싶은 업장을 열고 싶어 와규위드연어를 오픈했습니다. 와규위드연어는 첫 시작이구요. 앞으로 하고 싶은 많은 메뉴와 색다른 컨셉으로 다양한 업장을 열고 싶습니다(웃음).” 환하게 웃는 고원석 셰프. 그는 하루 종일 주방에서 좋은 요리를 내놓기 위해 고심한다. 손님들을 향한 마음, 그 진정성은 요리에 녹아나기 마련. 연어를 전혀 못 먹던 손님들도 맛있다며 다시 찾아오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진다는 그는 천생 마음이 착한 요리사다. 성공한 외식경영인, 좋은 요리로 인정받는 셰프이길 원하는 고원석 셰프. 그의 꿈은 무엇일까. “손님들하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게 좋죠. 머리가 히긋해져도 다찌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싶어요. 몇 평 남짓한 작은 업장에서 그날 들어온 싱싱한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내놓는 사람, 손님들과 진정한 교감을 나누는 좋은 요리사가 되고 싶습니다(웃음).” [1005]
    • 맛집탐방
    2017-01-17
  • ‘대구시 스타기업 선정’ 2017년 새해에 기대되는 기업
    2016년 6월, 1년에 300만 명이 넘게 선택한 제품. 휴대폰 보조 배터리, 에스모도(SMODO)의 히트로 주간인물을 멋있게 장식한 김명용 대표이사. 2017년 새해 짧은 시간 내에 빠른 성장을 하며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명성을 주간인물이 다시 찾았다. 역시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은 하루가 다른 것인가. 대구시 스타기업 선정과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으로 대내외적으로 많은 주목받고 있는 명성은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기업이다. _박미희 ­­기자 자체 기업부설연구소 디자인팀 두고 독자적 기술 개발 ‘삼성SDI 정품’ 셀 사용해 품질 높여 한국, 중국 공장에서 자체 생산 개발부터 납품까지 ‘ONE-STOP서비스’ 명성은 22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판촉물 전문기업이다. 전통적인 사업 분야에서 더 나아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새로운 신(新)성장사업인 휴대폰 보조 배터리 사업에 진출했다. 단순히 휴대폰 배터리 판매에 그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기업부설연구수와 디자인팀을 두고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휴대폰 보조 배터리의 핵심 부품도 삼성SDI 정품 셀을 사용하고, 한국과 중국 심천공장에서 자체 생산을 통해 품질을 높였다. 이렇듯 개발부터 납품까지 한 번에 이뤄지는 ‘ONE-STOP서비스’로 높은 품질을 유지한 것. 이렇게 탄생한 에스모도(SMODO)-K 시리즈는 수많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며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다. 2배 빠른 충전,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한 90%의 고효율을 자랑하는 고품질과 가볍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은 것. 이에 2016년 11월, 대구시 스타기업으로 선정되며, 그 저력을 다시금 증명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으로 뻗어가는 강소기업의 모델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 이런 대내외적인 관심 속에서도 김명용 대표이사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꿈이 있는 기업을 만들어가는 그의 열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타기업에 선정되는 것에 대해 보람과 기쁨이 컸어요. 하지만 한편으론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전통적인 사업 분야에서 더 나아가 휴대폰 보조 배터리 분야라는 신(新)성장사업에서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기에 대구시 스타기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대만큼 앞으로 신(新)성장사업에서 대구를 대표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모든 기업의 역량을 쏟아 붓겠습니다!” 에스모도(SMODO)—K 시리즈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호평! ‘온라인 시장’, ‘무선가전기기 분야’의 비전 보고 새로운 투자 국내 기술로 세계 속에서 인정받는 글로벌 강소기업 꿈꿔 명성의 약진이 돋보이는 것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도전정신 때문이다. 성장 가능성이 무궁한 온라인 시장과 무선가전기기 분야의 비전을 보고 새로운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것. 그리고 IOT(사물인터넷)을 접목한 가전기기 등 신제품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이를 위해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해외 시장 개척으로 바쁜 한해를 보냈다는 김명용 대표이사. 그에게 2017년 새해는 어떤 의미일까. “지금 심정이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하기 전에 출발선에 서 있는 듯 한 느낌이에요. 설레고, 기대되고, 또 한편으로는 떨리는(웃음), 그만큼 새해에는 중요한 일들을 많아요. 2017년은 명성의 새로운 도약의 한해가 될 것입니다. 신(新)성장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해외시장 개척, 그리고 보조 배터리 분야의 리딩 컴퍼니로 우뚝 서는 기틀을 마련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 기술로 해외시장에서 인정받는 글로벌 강소기업, 명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해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 꿈이 있는 젊은 기업, 명성의 도약을 기대해본다. 1994. 04 명성 인터내셔널 설립 1994. 06 명성산업으로 상호 변경 2003. 09 중국 심천 현지 사무실 오픈 2008. 02 서울 사무소 오픈 2009. 09 (주)기프트케이알 법인 설립 2011. 07 벤처기업 인증 2012. 04 (주)명성으로 상호변경 2012. 04 중소기업진흥공단 HIT500제품 선정(실리콘컵, 도마) 2012. 09 품질경영시스템 ISO9001:2008 인증 2012. 10 기업부설연구소 인증 2012. 12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인증 2014. 12 삼성SDI 리튬전지 공급계약 체결 2015. 05 실리콘생활용품 품질인증(FI) 획득 2015. 06 중소기업청 수출유망중소기업 지정 2015. 06 중소기업청 고성장(가젤형)기업 지정 2015. 07 중소기업진흥공단 HIT500제품 선정(보조배터리) 2016. 06 중국 심천공장 확장 이전 2016. 07 대구시 공동브랜드 쉬메릭 제품 선정 2016. 11 대구시 스타기업 선정 [1005]
    • 경제
    2017-01-17
  • 젊은 커피인의 꿈이 있는 카페, 마메종
    ‘마지막 한 모금까지 맛있다!’ 유명 커피 브랜드의 카피처럼, 이곳의 커피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여심을 사로잡는 예쁜 인테리어도 SNS에서 화제가 됐지만, 무엇보다 이곳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커피 그 자체’다. 커피에 영혼을 담는 청년 사장, 고기민 대표와 마주했다. _박미희 기자 마메종, 불어로 ‘우리집’(Ma Maison)을 뜻하는 이곳은 따뜻한 감성이 흐르는 공간이다. 화이트를 메인컬러로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에 돋보이는 이곳은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여심을 사로잡는 인테리어도 인테리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게 하는 힘은 커피 그 자체다. “진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감각이라 많은 손님들이 좋아해주세요. 하지만 저는 외형이 아니라 커피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카페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고기민 대표. 스물다섯의 젊은 청년 사장님인 그는 커피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커피의 매력에 푹 빠져 커피 공부 삼매경에 푹 빠졌고, 용기 있게 카페 창업에 도전했다. 인터뷰 초반, 카페 소개를 해달라는 기자의 말에 ‘원두부심과 잔부심이 남다르다’며 애정을 표하는 고 대표. 그의 말대로 이곳의 좋은 커피 맛은 특별한 생두에서부터 시작된다. 특별관리를 통해 소량 생산되는 마이크로랏(Micro-Lot)을 쓰고 있는 것. 특히 핸드드립에 쓰이는 생두는 COE(Cup-of-Excellence : 각국의 커피농장에서 출품한 우수한 커피를 5차례 이상 엄격한 심사를 거쳐 해당국의 그 해 최고 커피로 인정한 생두)를 쓴다. 좋은 생두를 쓰는 만큼 로스팅에 들이는 정성도 대단하다. 생두 본연의 맛을 잘 살릴 수 있는 로스팅 기법을 찾아 이곳만의 색깔을 입혔다. 좋은 커피 한잔이 만들어지기까지 로스팅 기기 옆에서 밤을 지새우는 그의 힘든 일상이 있다. “생두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로스팅이 중요하죠. 아메리카노, 라떼, 카푸치노처럼 단맛과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는 커피에는 약·중배전을, 카페모카, 바닐라라떼처럼 시럽이 들어가는 커피에는 강배전 로스팅을 해서 표현하고 싶은 맛을 살려요. 로스팅에 대한 공부는 끝이 없는데 앞으로 더 많이 공부하고 계속 노력 해야죠(웃음).” 좋은 원두를 쓰는 것처럼 차와 음료에 쓰이는 재료도 모두 좋은 것만을 고집한다. 하동의 다원과 연계해 좋은 잎차를 받아 사용하고 있고, 슈가 시럽 대신 99% 사탕수수로 만든 마리브자드시럽을 사용한다. 다원에서 받아온 잎차는 코스트만 60%가 넘고, 마리브자드시럽은 슈가시럽에 비해 4~5배가 넘을 정도로 비싸다. 하지만 ‘좋은 재료를 쓰면 그만큼 맛있다’는 간단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원칙을 그는 지켜내고 있다. 바리스타들이 정성을 다해 내린 커피. 그 커피의 가치를 고스란히 전하기 위해서는 좋은 잔에 담아 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업장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명품 잔에 커피를 담아낸다. 비용을 생각하면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지만 고객들에게 좋은 커피 한잔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저희가 내놓은 좋은 커피, 차 한 잔이 손님들의 뇌리 속에 인상 깊게 남았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마메종하면 좋은 분위기, 맛있는 커피와 친절한 서비스가 있는 곳이란 인상을 남기고 싶어요.” 오늘도 훌륭한 커피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고기민 대표. 그의 젊은 꿈은 무엇일까. “카페 운영, 바리스타 교육에서 더 나아가 원두 납품 사업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요. 그리고 전문성과 실력을 인정받는 커피인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환하게 웃는 고 대표. 그의 젊은 꿈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1004]
    • 맛집탐방
    2017-01-09
  • ‘한국의 클리블랜드 클리닉을 꿈꾸다!’대장항문-소화기병원, 상쾌한병원
    서구화된 식생활 때문에 대장항문 질환이 늘고 있다. 한국인들이 앓고 있는 암 중에 10위권 밖에 있던 대장암은 요즘 발병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현재 남성암 2위, 여성암 3위로 흔한 질병이 되고 있는 것. 이런 추세 속에서 대장항문질환에 대한 조기 진단과 올바른 치료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주간인물은 대장항문-소화기병원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상쾌한병원, 최정석 병원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대장항문 질환은 환자들이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질환이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 등한시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서구화된 식생활로 인해 날로 늘어나는 대장항문질환, 빠른 조기 진단과 올바른 치료가 건강의 첫걸음입니다!” 환하게 웃는 최정석 병원장. 그는 대장항문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의료인이다. 대장항문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플로리다에서 연구 강사로 활동했고, 수많은 대장항문질환 관련 논문발표와 방송출연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렇듯 탄탄한 실력과 명성을 자랑하는 그는 어떻게 대장항문 세부 전문의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어려서부터 주변에 좋은 의사 분들이 많았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의사의 꿈을 꾸고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제가 대장항문 세부전문의의 길을 선택할 때만해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죠(웃음). 하지만 장기적으로 대장항문 분야의 중요성이 날로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분야를 선택했어요. 그 당시 치질, 변비, 변실금, 대장용종, 대장암 등 여러 가지 대장항문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은 많아도 전문적으로 치료할 의사가 많이 없는 현실이 늘 안타까웠어요. 그 당시 대장항문질환의 분야의 여건이 열악했거든요. 그래서 배움을 찾아 미국으로 향했죠.” 그렇게 그는 1997년, 대장항문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플로리다에서 연구 강사로 활동한다. 그 당시 부산에서 최초, 국내에선 세 번째의 도전이었다. 1년 3개월간의 연구 강사활동을 마치고 난 뒤, 많은 연구논문과 다양한 활동으로 주목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춘해병원에서 대장항문클리닉 과장으로 일하며 그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배변조영술, 항문초음파검사, 항문내압검사 등 고가의 장비가 필요했지만 병원 재정상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요. 그래서 이런 점을 개선하고, 다양한 대장항문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한 번에 케어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어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실력 있는 병원, 전문성 있는 병원, 가족 같은 병원을 만들겠단 생각으로 그는 2002년 상쾌한병원을 개원했다. 2011년, 현대식으로 신축한 공간에 첨단장비를 구비해 외과, 내과, 영상의학과 전문의인 우수한 의료진을 초빙해 대장항문 및 소화기 병원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상쾌한병원은 개인병원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고가의 최첨단 장비와 뛰어난 의료서비스로 환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위/대장 내시경, 치질 수술 잘하는 병원으로 높은 평판을 얻은 것. 상쾌한병원은 위/대장 내시경 치질 수술과 관련해 최첨단 의료장비를 보유하고, 최신 수술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첨단 내시경인 올림푸스 190을 구비해 안전하고 정확한 내시경 진단을 하고 있다. 올림푸스 190은 고해상도의 NBI( Narrow Band Imaging) 협대역내시경으로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는 혁신적 첨단기술 장비다. 또한 독일 ERBE사의 첨단 VIO 300S/APC2 장비를 구비하여 안전하고 섬세한 내시경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VIO 300S/APC2는 내시경 용종수술시(대장용종, 위용종) 조직의 손상을 낮추며 수술시 예상되는 합병증을 최소화하는 최첨단 전기 수술기이다. 한편 치질수술에 있어서도 PPH 치질수술법을 도입하고 있다. PPH 치질수술법은 세계적인 헬스케어 회사인 존슨앤존슨 메디칼의 원형자동문합기구를 이용한 통증이 매우 적은 치질 수술법이다. PPH 치질수술은 늘어진 항문점막 및 치핵덩어리를 원래의 위치로 끌어올린 후 절제하고 봉합하는 시술법으로 늘어진 치핵 조직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주는 근본적인 치료방법이다. 수술시간이 짧고 통증이 적으며 상처 치유기간이 짧아 일상생활로의 복귀가 빠르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병원에서 양성대장질환 환자들을 맡기고, 대장항문분야의 교수들과 동료의사들이 인정하는 병원을 만들기까지……. 그 바탕에는 풍부한 임상경험으로 다져진 탄탄한 실력과 특화된 의료서비스가 있다. “사람의 얼굴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항문의 모양도 제각각입니다. 항문은 변이 새는 것을 막고, 변을 잘 배출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어요. 치질 수술을 할 때 항문을 많이 도려내기보다는 고유의 모양과 기능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수술하는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치질 수술을 하는 의사를 재단사와 같다고 하죠(웃음).” 환자 한명, 한명을 내 가족처럼 돌보는 최정석 원장. 많은 수술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그가 한결같은 건 인술을 베푸는 선한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대장항문질환은 남모를 고통이 심한 질환이에요. 부끄럽다고 숨기지 말고, 조기에 잘 치료를 하면 다시 건강해질 수 있는 병이죠. 저희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다시 건강을 찾은 환자들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환자들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병원, 그런 좋은 병원을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서도 그는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외래교수, 부산시 수영구 의사협회 회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실력 있는 병원, 전문성으로 인정받는 병원을 만들기 위한 그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직까지 대장항문 소화기 병원에서 대장암 수술까지는 하지 않아요. 앞으로는 병원을 더욱 발전시켜, 대장암까지 수술할 수 있는 병원, 대학병원에 비교해도 손색없는 전문화된 병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처럼, 작지만 전문화된 실력으로 인정받는 병원을 만들고 싶다는 최정석 원장. 꿈이 있는 병원을 만들어가는 그의 내일이 기대된다. 프로필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부산대학교병원 인턴, 레지던트 과정 수료 일반외과 전문의, 의학박사 대장항문외과 세부전문의 춘해병원 대장항문클리닉 과장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플로리다 연구강사(1997-1998) 대한 대장항문학회 인증 대장내시경 전문의 대한 외과학회 평생회원 대한 대장항문학회 평생회원 미국 대장항문병학회 정회원 <학회 및 논문발표; 국내외 54회> KNN 건강강좌, 부산일보, 건강칼럼, MBC TV닥터 저서; 임상에서 흔히 접하는 대장항문질환 상쾌한 병원과 함께하는 “튼튼한 대장항문 만들기” (현)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외래 교수 (현)부산시 수영구 의사협회 회장 ­ (현)상쾌한병원 병원장 [1004]
    • 메디컬
    2017-01-06
  • ‘진주시 우수중소기업인상’ 수상-서부·경남에서 손꼽히는 우수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 기업
    삼삼환경(주)은 서부·경남에서 손에 꼽히는 우수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 기업이다. 최근 삼삼환경(주) 박수연 대표이사는 우수한 경영성과와 친환경 기술개발의 공로를 인정받아 경남은행이 수여한 ‘진주시 우수중소기업인상’을 수상했다. 이에 주간인물은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여성 CEO, 박수연 대표이사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삼삼환경(주)의 모태는 창업주, 박명식 회장이 1984년 세운 삼삼중기개발공사로부터 시작된다.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지역상공계의 원로인 박명식 회장은 30여년이 넘게 건설사업을 지속해 오면서 사업 다변화를 통해 경쟁력 있는 회사를 키워왔다. 건설, 토목업을 주축으로 철거, 건설폐기물처리, 재활용골재 생산판매, 조경, 중장비대여업을 유기적으로 운영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온 것. 1995년 환경 사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건설폐기물 중간처리 사업에 뛰어들어 최고급의 재활용 순환골재를 생산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2003년, 삼삼종합중기(주)로부터 분할 설립한 삼삼환경(주)은 서부·경남을 대표하는 건설폐기물 중간처리 기업으로 성장했다. 비계구조물해체공사업, 건설폐기물중간처리, 수집운반과 폐목재 전문 처리업을 비롯해 이동식현장파쇄, 인증순환골재판매, 건설기계대여에 이르기까지 높은 평가를 받아온 것. 이런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의 바탕에는 2세 경영인으로 훌륭하게 회사를 키워온 박수연 대표이사가 있다. 집안의 장녀로 어려서부터 경영에 남다른 소질을 보이자 박명식 회장은 그녀를 더욱 강인하게 키웠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기업인의 표본이세요(웃음). 평소 아버지는 저에게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학비는 대주시더라도 어려서부터 용돈은 스스로 벌어 쓰도록 가르치셨죠.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가장 어려운 현장부터 회사의 핵심사업, 회계와 경영전반을 아우르기까지……. 15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는 항상 저를 딸이 아닌 직원으로 엄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작은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아버지가 한땐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이 저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큰 뜻을 알 것 같아요(웃음).”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이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15년. 그 시간동안 성공적인 가업승계를 위해 그녀가 남몰래 흘려야하는 눈물은 많았다. 주경야독으로 경상대학교 대학원 경영학석사 과정을 마쳤고, 워킹맘으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힘든 과정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사회생활을 하는 엄마들의 고충을 저도 겪었죠(웃음). 아픈 아이를 떼놓고 일하러 가야하는 심정이 참 가슴 아프더라고요. 그 마음을 알기에 여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더 좋게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세상을 더 넓게 보게 된 것 같아요.” 여성기업인협회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박수연 대표이사. 그녀는 뛰어난 사업 마인드와 남다른 안목으로 차세대 여성기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전통적인 사업 분야에서 눈을 돌려 회사가 나아가야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 “그 동안 최고의 골재 생산을 위한 친환경적 기술 개발에 많은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다면체볼을 3단으로 충전한 진동볼밀형 시멘트페이스트 박리기를 폐콘크리트 공정에 적용하여 콘크리트용 순환 잔골재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였습니다.” 이 기술을 통해 고부가가치의 콘크리트용 잔골재를 생산하면 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순환잔골재를 생산하면 석산 골재 채취량을 감소시켜 천연자원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건설폐기물의 매립지 반입량 감소와 매립장 평균수명을 증가시킬 수 있어요. 그리고 운반거리가 먼 천연모래 생산지에 비해 가까운 지역의 순환잔골재를 사용하면 재료비와 운반비를 낮춰 공사원가를 절감하는 등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친환경기술개발의 공로로 삼삼환경은 2015년 환경부장관 표창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우수한 기업경영 성과와 지역사회에 공헌한 공로로 경남은행이 수여한 ‘진주시 우수중소기업인상’을 수상하며 다시금 그 저력을 증명했다. “이 상은 저 혼자만의 상이 아니라 회사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준 직원들과 함께 도움을 주신 주변 분들이 있어 받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 훌륭한 기업 문화를 지닌 기업을 일구라는 뜻으로 알고 더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건설폐기물중간처리 사업을 이끄는 100년 기업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박수연 대표이사의 꿈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그녀의 열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기업은 한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30여년이 넘게 함께 회사를 일궈온 많은 임직원들과 도움을 준 주변 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어린 곳입니다. 그러니 회사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에 보답하는 길은 삼삼환경을 훌륭하게 키워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건설폐기물중간처리 사업을 이끄는 선도기업으로 100년 대계의 초석을 마련하겠습니다.” [1004]
    • 경제
    2017-01-06
  • 다양한 프리미엄 생맥주를 부담없이 즐긴다-세계생맥주전문점 ‘채플린’
    부어라, 마셔라! 굳이 소리내지 않아도, 잔을 치켜들며 다같이 건배!를 외치지 않아도 된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의 생맥주 한잔은 혼자라도 좋다. 아니 혼자여서 좋을 때도 있다. 그것은 하루의 갈증을 뼛속 깊이 달래줄테니. 최근 마산 합성동에 다양한 종류의 세계생맥주를 한 곳에서 맛볼 수 있어 맥주마니아들의 발길을 사로잡은 곳을 찾아가보았다. _구아리 기자 맥주마니아들의 성지 샘플러 3~6종으로 부담없이 맛볼 수 있어 다양한 가게들이 즐비한 마산의 번화가 합성동에서 채플린은 외관부터 눈에 띈다. 세계생맥주전문점인만큼 밋밋한 느낌보다는 좀 더 특이하고 재밌는 분위기를 위해서 여기저기 공들인 티가 났다. 내부로 들어서자 한쪽 벽면 스크린에서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고, 채플린의 명언들이 곳곳에 적혀있다. 게다가 채플린의 상징인 모자를 전구 덮개로 포인트를 준 것은 마치 가로등 밑에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마저 들게하고, 메뉴판은 슬레이트보드로 만들어 손님들에게 소소한 재미까지 전달한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희극배우이자 20세기 가장 위대한 천재 아티스트로 손꼽히는 찰리 채플린을 가게 상호부터 다양한 소품들에까지 담아낸 이유는 무엇일까. “채플린은 우리에게도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우스꽝스러운 중산모와 낡은 구두, 지팡이로 기억되는 그는 신사적이면서도 재미를 주는 인물이었는데, 저희 가게에 오시는 손님들도 맥주를 마실 때 그런 느낌을 주고받으면 좋겠다싶은 생각에서 잡은 콘셉트입니다.” 채플린은 인디카IPA, 1664블랑, 코젤다크, 파울라너, 필스너우르켈, 산토리, 스텔라, 클라우드 총 8가지 생맥주를 보유하고 있다. 원래 맥주에 대해 큰 관심은 없었다던 김 대표는 평소 맥주마니아인 사촌형 덕분(?)에 점점 맥주의 맛을 알게 되었다고. 그렇게 맥주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유명한 맥주집을 다녀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경남일대에는 아직 프리미엄급 생맥주를 한 곳에서 먹을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내가 그것을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어 2016년 10월 채플린을 탄생시켰다. 자신이 좋아하는 맥주들을 손님들에게 제공하면서 맥주의 대중화에도 기여하고 싶다는 그다. 채플린에서는 과음보다는 적당한 도수로 다양한 맥주를 기분좋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생맥주 샘플러도 3종~6종로 나눠져 있어 부담없이 각종 생맥주를 맛볼 수 있고 자신에게 적합한 맥주를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각종 병맥주도 취급하고 있으며 손님들이 마셔보고 싶다는 맥주가 있다면 자신이 구해주기도 한다고. 앞으로 병맥주를 더욱 늘려갈 예정이라고 한다. 신선도가 생명인 맥주 맥주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안주 또한 인기 추억이 깃든 아지트 공간이 되고파 신선함이 생명인 맥주! 김 대표 또한 맥주는 신선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테이블 회전율이 높은 가게에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래도 맥주를 자주 교체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저는 생맥주의 날짜를 체크해서 수시로 맛을 관리하는데, 조금이라도 맛이 변질되면 그 맥주는 폐기합니다. 하지만 다행히 저희는 테이블 회전율이 좋은 편이라 지금까지 폐기한 적은 없네요.(웃음)” 채플린에서는 맥주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안주메뉴들 또한 인기를 끌고 있다. 김 대표에게 최고의 안주&맥주 궁합을 추천해달라니 '목살파히타‘와 ’코젤다크‘를 꼽았다. “목살파히타는 특제소스로 볶아 목살을 또띠아에 싸먹는 멕시코음식인데 목살파히타의 자극적인 맛을 시나몬이 올려진 흑맥주 코젤이 잡아주기 때문에 잘 어울려요. 아무래도 단짠단짠(단맛과 짠맛을 반복해서 먹는다는 의미의 줄임말)조합이기 때문에 손님들이 자주 찾으십니다. 피자와 1664 블랑(향긋한 과일향과 부드러운 청량감의 프랑스 밀 맥주)도 잘 어울리고요.” 음식물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아 10리터 쓰레기봉투를 쓴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 말은 즉 맛있어서 남기지 않는다는 뜻인데, 여전히 다양하고 맛있는 안주연구에도 열심이다. 김 대표의 꿈은 채플린이 추억을 남긴 아지트 공간이 되는 것이다. "가게 곳곳을 보면 인형이라던지 손님들이 놔두고 가신 것들이 꽤 있는데, 이런 것들이 내가 여기를 방문했었고 또 방문할 것이다는 생각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있는 아지트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프리미엄생맥주를 즐기며 좋은 사람과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싶다면 채플린을 찾아가보자. [1004]
    • 맛집탐방
    2017-01-06
  • 대구·경북 최초 ‘아쿠아 ICL 전문센터’ 지정-앞서나가는 의료서비스로 인정받는 ‘한빛안과’
    2000년도 개원한 한빛안과는 대구·경북에서 시력교정수술로 이름난 곳이다. 최근 홍채절개를 하지 않는 유일한 안내삽입렌즈인 아쿠아 ICL의 제조사, STAAR Surgical 社로부터 ‘아쿠아ICL 전문센터’로 공식 지정돼 화제가 되고 있다. 올해 초 ‘아쿠아 ICL 2016 교육연구상’ 수상한데 이어 공로를 인정받은 것. 이에 주간인물은 선도적인 의료서비스로 인정받는 한빛안과를 찾아, 열정적인 의료진의 모습을 담았다. _박미희 기자 2000년부터 시력교정수술을 시작한 한빛안과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앞서나가는 의료서비스로 인정받는 곳이다. 우수한 의료진, 뛰어난 의료설비와 풍부한 임상경험을 두루 갖춰 지역 의료문화를 선도해나가고 있다. 최근 STAAR Surgical 社로부터 ‘아쿠아 ICL 전문센터’로 지정된 것도 그간의 이런 노력들을 인정받은 결과다. “아쿠아 ICL은 근시 및 난시 교정을 위한 시력 교정 렌즈로 미국 STAAR Surgical 社가 특허를 받은 생체친화적인 ‘콜라머’ 재질로 만든 특수렌즈에요. 홍채절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안내삽입렌즈이기 때문에 라식·라섹 수술이 불가능한 고도근시 환자, 각막이 얇아 레이저 수술이 어려운 경우, 각막을 깎아내기 싫어하는 환자들에게 주로 시행되는 수술법입니다. 국내는 2002년 KFDA 승인을 받아 수술이 시작되었으며, 8만 명 이상이 수술을 받아 안전성이 입증됐습니다. 많은 병원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성공적인 수술을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경험을 갖춘 의사가, 제대로 수술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죠.” 많은 장점들로 아쿠아 ICL은 이미 많은 안과에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STAAR Surgical 社로부터 ‘아쿠아 ICL 전문센터’로 지정받은 것은 대구경북에서 한빛안과가 유일하다. 아쿠아 ICL의 안전성과 효과성 및 우수성을 입증하고, 아쿠아 ICL 수술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앞서나가는 의료서비스로 인정받는 병원을 만들기까지 그 뒤에는 김종욱, 배언희, 박건욱 원장의 열정이 있었다. 대구 경북, 시력교정수술 1세대로 시작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변함없이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을 만들어 온 것. 그 바탕에는 흔들리지 않은 원칙과 소신이 있다. “시력교정수술은 평생에 단 한번 하는 수술입니다. 그러니 그만큼 정밀 검사를 거쳐 충분한 상담 후 수술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의 소홀함이 없이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지금까지 진료해 왔기에 오늘날 한빛안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병원은 단순히 하나의 잣대로만 평가할 수 없어요. 풍부한 임상경험을 지닌 우수한 의료진, 뛰어난 의료설비, 그리고 친절한 서비스가 두루 갖춰질 때 비로소 좋은 병원이 되는 거죠(웃음).” 오랜 세월,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며 보낸 순간순간이 값지다는 그들. 그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에 대해 묻자,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시력교정수술로 자신의 꿈을 찾은 환자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시력교정수술을 받고 육군사관학교나 경찰대학에 지원해 꿈을 이룬 환자들을 다시 만나면 참 뿌듯하죠. 또 시력교정수술을 받고 나서, ‘세상이 이렇게 밝고 환했느냐’며 환하게 웃는 환자들을 보면 너무 기쁩니다(웃음).” 김종욱, 박건욱 원장의 아들도 이곳에서 시력교정수술을 받았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시력교정수술을 해줄 만큼, 믿고 맡길 수 있는 병원. 그 바탕에는 앞서나가는 의료기술을 연구하는 그들의 노력이 있다. 끝으로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말에 그들은 평소 생각을 소탈하게 전했다. “똑같은 물감과 똑같은 도화지를 줘도 어떤 화가가 그리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지요(웃음). 저는 시력교정수술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에 단 한번, 내 소중한 눈을 맡기는 일이니만큼 단순히 수술비용만을 따져 병원을 선택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에요. 시력교정술은 개개인의 눈 특성에 맞는 수술이 중요한 만큼, 정말 믿고 맡길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실력 있는 병원, 한빛안과의 내일이 기대된다. [1004]
    • 메디컬
    2017-01-06
  • ‘광주 48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청년 의사
    2016년 한해를 갈무리하는 지금. 추운 한파에도 따뜻한 나눔의 손길을 전하는 사람이 있어 화제다. 만 서른 둘, 젊은 나이에 광주 48호 아너소사이어티로 이름을 올린 김진우 병원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평소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온 청년 한의사가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을 한 일도 대단한데, 올해 말 우수한 시설과 뛰어난 의료진을 보유한 백운요양병원을 개원해 지역 의료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이렇듯 쉽지 않은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김진우 병원장은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이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어 꿈을 펼칠 수 있었다’며 선한 웃음을 짓는 젊은 의료인, 김진우 병원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Q. 만 32세, 젊은 나이에 광주 48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이름을 올리셨습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을 결심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시다면. A. 저는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는 사회 선배님들을 보면서, 참 멋지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평소 가입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저도 꼭 가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급적 이른 나이에 가입을 하면, 저처럼 저를 보고 꿈을 키우는 후배들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올해 광주 48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Q.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 전부터 ‘남구가족사랑 나눔협약식’ 체결, 유니세프 가입 등을 통해 꾸준히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오셨습니다. 병원장님에게 나눔과 봉사는 어떤 의미입니까? A. 저는 어려서부터 주변에 선물을 하거나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로 남을 돕는 것을 좋아했어요. 상대방이 진심으로 기뻐하거나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참 기쁘더라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종교는 없지만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착한 일을 하고 살면 저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왔어요. 백운요양병원을 개원하기까지 사회 각계각층의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과 격려가 있었습니다. 결코 혼자 힘으로 가능했던 일은 아니었어요. 이 자리를 빌어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Q. 만 32세, 젊은 나이로 백운요양병원을 개원해 많은 관심을 얻고 있으십니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인데, 요양병원 개원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십니까? A. 점차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늘어나는 노인인구에 대한 케어가 중요해지고 있어요. 초창기에 요양병원을 마치 현대판 고려장으로 보는 안 좋은 인식도 많았지만, 점차 한국 사회가 핵가족화되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요양병원에 대한 사회적인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젠 노인 케어시설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가 오고 있고, 그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질 것입니다. 요양병원 개원을 결심한데는 개인적인 경험도 컸어요. 3년 전,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식구들이 일하러 나간 사이에 집 계단에서 넘어져 그만 돌아가셨어요. 누군가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결코 돌아가실만한 사고는 절대 아니었거든요. 그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노인들을 곁에서 더 따뜻하게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찾기 편리한 위치에 쾌적하고 좋은 시설을 갖춘 요양병원을 개원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Q. 김진우 병원장님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단순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제 꿈은 우선 가족들을 잘 보살피는 거예요. 그리고 작으나마,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싶어요. 훗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된다면 더 좋겠죠(웃음). 그리고 제가 동물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유기견과 유기묘를 위한 보호시설을 마련해 버림받는 아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싶습니다. Q. 끝으로 힘이 되어준 많은 관련자분들과 환자분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결코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고마운 분들을 한분, 한분 다 거명하자면, 이 지면을 다 채우고도 남을 거예요(웃음). 그만큼 제 주변에 감사한 분들이 참 많아요. 그중에서도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행복한 요양병원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실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인생의 멘토, 이경준 원장님과 정원창 원장님께 특별히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1003]
    • 메디컬
    2016-12-26
  • “동네 선술집처럼 편안하고 정감 있는 비스트로를 만들고 싶어요!"
    이런 곳에 이런 맛집이 있다니! 이런 뜬금없는 곳에서 마주한 맛집의 만남은 항상 신선하다. 부산 대연동, 젊은 셰프가 운영하는 비스트로 콰이는 이처럼 반가운 맛집이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식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비스트로 콰이. 젊은 셰프의 꿈과 열정을 담은 그곳에서 비스트로의 멋과 낭만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_박미희 기자 “비스트로, 그 말처럼 선술집처럼 편안하고 인간미 넘치는 곳, 사람들의 허기진 마음까지 달래주는 곳을 만들고 싶어요.” 환하게 웃는 이동주 오너셰프. 호주 SBIT 주립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한 그는 한식, 양식, 중식에 두루 능통한 재주꾼이다. 호주에서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로 활동하던 그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가진 재주가 많은 만큼 풀어놓기 조심스러워 보이는 그는 요리에 대해선 항상 겸손한 사람이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족한 게 많아요. 조금씩 손님들이 쉽게 받아드릴 수 있게 제 요리를 풀어가고 있어요. 식재료도 입맛도 너무 달라 힘든 부분도 있지만, 조만간 더 좋은 요리로 손님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웃음).” 자신의 요리 세계를 펼치고 싶지만, 한국의 다른 식재료와 손님들의 입맛을 따라가기는 아직 버겁다는 이 셰프. 하지만 요리에 대한 진솔한 열정은 처음 찾는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특히 이곳의 스테이크는 그의 요리 철학을 잘 보여준다. 한우 1+를 사용하고, 양을 푸지게 주는데도(200g 내외) 가격은 3만 원대 초반. 일반적인 레스토랑이나 비스트로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다. 좋은 재료도 재료지만, 식재료 본연의 맛을 담기 위한 세심한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코스트가 80%는 넘는다(웃음)”며 그럼에도 “이 가격도 비싸다는 손님을 마주하면 난처해진다”는 그의 말에 진솔함이 묻어난다. 그럼에도 그가 스테이크를 내놓기를 고집하는 건 어떤 이유에서 일까. “스테이크는 레스토랑이나 비스트로의 얼굴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식재료가 갖고 있는 본연의 맛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죠. 물론 상대적으로 저렴한 호주산이나 미국산 소고기를 사용해 보겠단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호주 현지에 문을 열었다면 당연히 호주산을 쓰겠지만,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소고기는 역시 한우더라고요. 그래서 한우를 쓰고 있어요(웃음).” 한결같은 태도에 어느새 마음이 스르륵 녹는다. 장사로 이문을 남기기보다, 조금 덜 남아도 좋은 요리를 손님들에게 내놓겠다는 열정. 그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이곳에서 대중적인 메뉴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단연 파스타다. 맛집 블로거들이 저마다 ‘파스타가 맛있는 집’으로 입소문을 내고 다니는 이유는 역시 기본에 충실한 맛 때문이다. “파스타 면으로 저희는 스파게티니를 써요. 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면 종류고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별 다른 비법은 없어요(웃음). 바쁘더라도 요리할 때 기본을 잘 지키려고 애쓰죠. 좋은 기름을 쓰고, 후추 같은 기본 식자재를 한번 볶아 쓴다던지, 마늘도 파스타를 만들기 전에 직접 빻아 본연의 향과 맛을 살립니다. 마늘 파스타는 마늘과 치즈만, 그리고 해물 오일 파스타라면 해물과 마리네이드 된 파프리카로 조화로운 맛, 조개 파스타 라면 단지 제철 조개만 듬뿍 넣어요. 보통 파스타에는 바지락을 많이 쓰는데, 요즘은 동죽이 가장 맛있는 철이라 동죽을 쓰고 있습니다(웃음).” 파스타처럼 대중적인 메뉴도 있지만, 이곳이 매력적인 것은 색다른 메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사의 특유의 민물생선향을 살린 피쉬앤칩스나 제철 석화를 안주로 곁들이는 와인은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메뉴다. 선보이고 싶은 다양한 메뉴들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과정이 즐겁다는 이 셰프. 앞으로 그가 보여줄 다양한 요리는 어떤 색깔일까. “저는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그런 음식을 하고 싶어요. 주린 배가 아니라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주는 따뜻한 음식,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요리죠(웃음).” 열정적으로 주방을 오가며 요리하는 그의 모습이 건강하다. 하루 종일 손님들에게 내놓을 맛있는 요리와 새로운 메뉴를 고민하는 열정적인 청년, 그의 꿈은 무엇일까. “비스트로 콰이는 사랑하는 아내와 호주에서 함께 살던 호주의 거리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부산에는 아직 비스트로라는 문화를 찾기가 어렵잖아요. 그 이름처럼 편안하고 정감 있는 선술집같은 비스트로,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지는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1003]
    • 맛집탐방
    2016-12-26
  • 2016년 한해를 꽉 채운 의정활동 “시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 지역발전을 위해 뛰겠습니다!”
    2016년 한해를 갈무리하는 요즘, 올 한해 우수한 의정활동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15년 우수의정 대상, 16년 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하고, 16년 대구참여연대 · 대구YMCA가 꼽은 우수의원으로 선정된 최광교 의원이 바로 그 사람이다. 이에 주간인물은 발로 뛰는 의정활동으로 주목 받고 있는 최광교 의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2016년 주요 의정활동과 지역의 주요 현안을 뒤돌아보았다. _박미희 기자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Q 올 한해, 발로 뛰는 의정활동으로 많은 관심을 받으셨습니다. 올해 진행하셨던 주요 의정활동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지난해에는 주로 달빛고속도로 명칭제안 등 대구시의 위상과 관련되는 정책제안이나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 등 인접 광역 및 기초지방자치단체와의 상생 및 교류협력과 관계되는 대외적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을 해왔지만, 올해는 대구시정과 관련해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정책을 입안하는 등 주로 내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의정활동을 수행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미래전략과제 발굴 및 육성조례안을 대표발의해 대구시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선도하고 지역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고, 항상 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소방공무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공사·공상 소방공무원에 대한 지원을 위한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또한 전기자동차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전기자동차의 보급 촉진과 이용 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제정해 전기자동차의 보급을 활성화하고 지역 자동차부품산업이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총 8건의 조례를 제·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북구와 달서구가 교육국제화 특구로 지정되었지만 지정된 지 4년이 넘도록 당초 계획의 0.001%도 추진되지 못한 교육국제화 특구에 대한 대구시의 주도적 추진을 요청하고, 관광산업 및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팔공1번 버스노선 등 버스노선개편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올해 초에는 반복되는 전통시장화재의 위험성을 알리고 재발방지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서문시장 4지구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해 대구시가 좀 더 적극적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더라도 대형화재를 미연에 방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나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Q 15년 우수의정 대상, 16년 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하고, 16년 대구참여연대·대구YMCA가 선정한 우수의원으로 선정되셨는데 그 소회와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A 2015년에는 전국시도의장협의회에서 주는 우수의정대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청소년 관련 정책에 기여한 공로로 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9월에는 대구참여연대와 대구YMCA가 선정한 우수의원에 선정되고 발의한 조례와 질의가 좋은 조례와 좋은 질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좋은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시민여러분께서 저를 통해 의견을 개진해 주신 결과이며 항상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신 지역주민들과 시민여러분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과분한 상을 받게 된 것은 앞으로 더 잘해달라는 채찍으로 알고 시민여러분의 눈과 귀가 되고 또 손과 발이 되어 지역이 발전되고 지역민이 행복해 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지역구 현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A 북구지역은 한때 대구의 중심이었던 지역과 칠곡 같은 신흥개발 지역으로 구분됩니다. 그렇다보니 한편으로는 도심재생사업과 같이 지역을 재정비하고 재개발하는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신흥개발지역에는 부족한 인프라를 채워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특히 제 지역구 현안사업으로는 도청이전터에 대한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인근 지역을 활성화 시키는 도정이전터 개발사업과, 도심공단인 3공단 리노베이션을 통해 노후화된 도심공단인 3공단을 시대에 맞게 역할을 재설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시민운동장 종합스포츠타운과 옛 제일모직 자리에 들어서는 창조경제 단지 조성 등을 통해 지역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 넣고 고성동 등 인근지역의 주거환경 개선사업과 재개발 추진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옥산로·호암로 명품거리 조성과 하중도 개발도 지역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할 대상 사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Q 2016년을 갈무리하는 지금,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2016년도 한해를 돌이켜 보면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은 한해였습니다. 북한은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며 핵을 통한 전쟁위협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트럼프대통령 당선자는 자국이익을 중심으로 국제구도를 재편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대한민국은 대통령탄핵이라는 정치적 환란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이런 어지러운 시기에도 우리 대한민국이 굳건하게 버틸 수 있는 것은 내 고장과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지역주민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한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유년 새해에는 시민 여러분들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다시 한 번 기원 드립니다. 학 력 성광고등학교 졸업 경일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경북대학교 정책정보대학원 졸업(석사) 경 력 제7대 대구광역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 위원장(현) 대구광역시 공직자 윤리위원회 위원(현) 대구 광주 달빛동맹 민관협의회 위원(현) 성광고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현) 경일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현) 경북대학교 총동창회 이사(현) 바르게살기 북구협의회 자문위원(현) 국민건강보험 대구 북부지사 자문위원(현) 대구시의회 대구 경북 상생특별위원회 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북구협의회 부회장 대구시립 북부도서관 운영위원 (사)한국청년지도자연합회 대구강북지회 3대 회장 제7대 대구광역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 간사 제7대 대구광역시의회 의원 제6대 북구의회 의장 제5대 북구의회 의원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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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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