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2017년 새해 초, 따뜻한 나눔을 전하는 사람 신인규 대표이사를 만나러 밀양으로 향했다. 밀양 시청 앞에 있는 (주)도서출판 밀양에서 만난 신인규 대표이사는 작업복 앞치마 차림 그대로였다. 작지만 다부진 체격과 밝은 표정이 인상적인 그는 특별한 사람이다. 도서출판, 인쇄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그는 경남 4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자, 심청장학회 이사장으로 적극적인 사회공헌을 펼쳐온 인물이다. 이렇듯 그는 밀양의 독지가이자, 출판·인쇄업계에서 참신한 도전을 한 인물로 주목을 받고 있다.  _박미희 ­­기자

몇 년 새 문을 닫은 대형 출판업체가 줄을 이을 정도로 도서출판업계의 불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돈을 버는 일과 거리가 있는 일을 생업으로 삼으면서 그는 어떻게 꾸준히 기부활동을 해올 수 있었을까. 이쯤 되면 타고난 금수저는 아닌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신인규 대표이사는 요새 보기 드문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그의 고향은 경남 밀양, 송전탑 문제로 아픔을 겪었던 부북면 화악산 아래 평밭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나이 마흔 일곱에 저를 보셨어요. 어려운 형편에 저를 낳으셨으니 자식 뒷바라지가 힘들었지요. 워낙 연로하실 때 저를 낳으셨으니 어머니 젓 대신에 암죽을 먹고 자랐어요. 그래도 타고난 건강 체질과 강인한 정신력을 제게 물려주셨죠. 어찌나 산골인지 학교를 가려면 1시간 30분이 넘게 걸었어야 됐어요. 오가는 길에 진을 다 빼니, 공부에 집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부모님께 부담을 안 드리려고 밀양전문대(현 부산대 밀양캠퍼스)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으려고 그는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장학금을 받아서 학비를 댔다. “대학교 다닐 때 밤에 은행 청원경찰로 일을 했어요. 밤새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받은 장학금을 모아 부모님 용돈을 드렸지요. 그때 일하면서 읽은 책들이 평생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건실한 중견기업 ㈜한국화이바에 취직을 한다. 그 특유의 근면성실함과 실력은 업계에서 소문이 날 정도였다.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고, 새벽 5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가 돼야 퇴근을 했죠.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하다 보니 회사에서도 저를 인정해주더라고요. 하지만 3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화이바의 신인규가 아니라, 신인규의 신인규가 되고 싶다.’ 그래서 수중에 있는 단돈 몇 푼을 가지고 창업을 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창업을 준비하게 된다. 평소 가장 애정이 있었던 책과 관련된 사업을 구상했다. “우리 인생은 종이로 시작돼 종이로 마무리 됩니다. 원래는 제지업을 하려고 했는데 큰 자본이 필요해서 대신 인쇄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 단돈 60만원을 가지고 창업을 했어요. 기계를 리스해서 사놓고 혼자서 기계를 돌려보려고 하니까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마산 인쇄 골목으로 가서 일을 도와주며 어깨 너머로 일을 배웠습니다. 인쇄업계는 원래 기술을 잘 안 가르쳐주기에 일하는 도중에 기계가 돌아가는 걸 몰래 지켜보고 돌아와서 혼자 해보고, 그렇게 수없이 반복해서 일을 배웠지요.”
그는 1993년 단돈 60만원을 밑천으로 (주)도서출판 밀양을 창업한다. 창업할 때 그가 시작한 또 하나의 사업은 바로 심청장학회 사업이다. “제가 필요하면 남도 필요할 거란 생각. 그 생각에서 기부를 실천하게 되었어요. 제가 도움이 절실할 때 장학금을 받았으니 다시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창업을 할 때 장학사업을 함께 시작했어요.”
특유의 근면성실과 꼼꼼한 일처리로 창업 이후 그는 성공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IMF 외환 위기의 어려움은 그에게도 어김없이 닥쳐왔다. 거래처의 부도로 연쇄부도를 맞게 된 것. “외주를 주면서 받은 어음으로 결제를 했는데, 그게 돌아와 2억 6천만 원의 부도를 맞았습니다. 회사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는데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일했죠. 10만 원짜리 일이 들어오면 인건비 1만원을 남기고, 나머지는 은행에 넣고……. 아내와 저 직원 한명. 세 명이서 정말 절실하게 일했어요. 제 사정을 아는 주변 분들이 많이 일을 맡겨주시더라구요. 그때 내가 참 잘 살았구나하는 고마운 생각이 들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비싼 인생 공부를 했구나 싶어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그는 다시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 2013년 지금의 사옥으로 이전했고 밀양 외에 타 지역에서 많은 거래처를 보유하고 있다. ‘당신의 상상을 인쇄해드립니다’는 사훈처럼 고객에게 최고의 만족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인쇄업계의 불문율인 최소 수량이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손해가 따르지만, 그는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당신의 상상을 인쇄해드립니다. 이 사훈처럼 고객이 생각하는 무엇이든 그것을 현실화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고객에 맞춰 디자인도 종이도 인쇄방식도 모두 다르게 하고 있어요. 사실 최소 수량이 없으면 일손이 많이 들고, 때론 손해를 많이 보기도하지만 고객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죠. 손해는 보지만 고마워하는 손님들이 소개를 해주셔서 일이 끊이지 않아요.”


인맥에 기대지 않고, 영업을 하지 않아도 고객들의 소개로 자연스럽게 거래처가 늘어났다. 현재 전국에 500곳이 넘는 거래처를 두고 있고, 20년이 넘게 거래해온 거래처만 200곳이 넘는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그가 작업용 앞치마를 입고 인쇄기계 앞에 선다는 점이다. “저는 하루에 4시간만 자요.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은 더 바쁘게 살아야죠. 저는 일에 삶에 미쳐있는 사람입니다.”
일에 미쳐있는 것만큼 그는 봉사에도 미쳐있다. 창업과 함께 시작한 심청장학회는 20여 년간 약 250여명의 학생들에게 누적장학금 7억 원을 전달했다. 2015년, 경남 4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해 1억 원 기탁을 약정했다. 꾸준하게 밀양시 장학회에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다.
“심청장학회에서 장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은 공부가 아니에요. 공부는 잘 못하지만 예의바르고 착한 학생, 꿈이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선정대상입니다. 공부는 못하지만 꿈이 있는 바른 학생은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해요. 장학금이 단순히 경제적인 지원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지지해주고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요. 그게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온 가족이 장기기증을 약속했고, 보호관찰소 사회봉사 감독으로 활동하며 소외되고 어려운 환경 속에 있는 청소년들을 돕고 있다. 그가 요즘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는 바로 미혼모 문제다. “저는 미혼모라는 말이 싫어요. 미혼모를 만드는 것은 남자에요. 미혼모라는 말 자체가 사회적 차별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청소년들이 더 좋은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들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사업들을 추진할 수 있는 법령 개정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느티나무경상남도장애인부모회 밀양시지부에 후원회 총무를 맡아 성인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저는 성인장애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해주는 터전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장애인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자체적으로 교육과 의료·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국가기관 성격의 장애인복지센터를 마련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서 필요한 500억 원의 예산 마련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를 이어 (주)도서출판 백년인쇄를 이끌어갈 차기 인쇄쟁이인 아들 신재우 씨와 함께
기부금을 기탁한 신인규 대표이사



항상 약자 편에 서서 키다리아저씨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신인규 대표이사.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가 건강을 잃지 않는 비결은 걷기다. 술, 담배, 화투, 당구, 골프 등 잡기를 못하는 그는 오로지 걷기로 건강을 유지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평균 15km를 걷는 그는 1년, 365일 동안 약 3650km를 걷는다. 현재 재단법인 한국걷기연맹 산하 ‘워크 아이 경남’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이웃들에게 걷기 운동을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극단 진영에서 중견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랑의 부부합창단(LCC) 합창단원(테너파트)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독실한 카톨릭 신앙인인 그는 천주교 부산교구 밀양본당에서 해설을 담당하고 있다.
‘1%의 가능성으로 100%를 만드는 돈키호테.’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온 사람. 그에게 책을 만드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책을 만드는 일은 징검다리에 돌을 놓는 것과 같아요. 앞서 간 길을 누가 따라온다면 제가 놓은 돌을 밟고 쉽게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제 뒤에 다른 사람이 또 그 사이에 돌을 놓을 테고요. 그러면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길을 따라오리라 생각합니다.”
신인규 대표이사의 길을 잇는 사람은 바로 그의 아들, 신재우 씨다. 어려서부터 인쇄업을 천직으로 알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해온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성장한 아들은 아버지를 닮고자한다. 그래서 사명도 (주)도서출판 밀양에서 (주)도서출판 백년인쇄로 변경할 계획이다. 100년 기업을 만드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인쇄업계의 100년 기업을 만드는 것이 제 소망이에요. 그래야 인쇄 선진국인 일본과 독일을 넘어서 한국의 인쇄기술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뒤를 이어 아들이 더 훌륭하게 해낼 것이라고 믿어요.”
“작업복인 앞치마는 자신의 수의”라며 “평생 인쇄공으로 살다, 인쇄공으로 죽고 싶다”는 신인규 대표이사. 그는 언제나 앞치마 차림으로 인쇄기 앞에 설 것이다. 미래를 만들어갈 우리 어린이들이 볼 책을 만들기 위해서, 또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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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인물(weeklypeople)-박미희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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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삶도 미쳐야, 미치죠” 1% 가능성으로 100%를 완성하는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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