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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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사의 악기, 하프의 매력 속으로! - 심소정 하피스트 / 국제하프협회(International Harp Association) 총괄지휘 & 감독
    ‘귀족 악기’, ‘배우기 어려운 악기’ 등 몇몇 편견으로 대중과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던 하프는 인기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명 연예인 유재석이 오케스트라 하프 연주에 도전하는 과정이 방송돼 학교 방과후 수업과 음악학원 하프 취미반 등으로 문의가 이어지며 대중화와 함께 라이프 영역으로 들어서는 기회가 됐다. 이에 주간인물은 2024년 새해를 맞아 공연 소식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곡선미의 우아한 외관과 아름다운 음색을 지닌 하프의 매력과 함께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악기라는 걸 알리기 위해 공연, 도서, 곡, 앨범 등 다양하게 활동 중인 하프계 신진 아티스트, 심소정 하피스트를 소개한다. _김민진 기자 ▲ 셀린(SelyN) - 1st Single ‘Northern Star’ / 2nd Single ‘NeveR & AlwayS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 졸업 후 미국 이스트만대 석사 및 연주자 자격증을 취득하고 성균관대 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며 연주자로서의 기반을 탄탄히 다져온 심소정 하피스트는 음악저널, 한음, 영산음악, 해외파견, 서울오케스트라 콩쿠르 등 국내 유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바 있다. 또한 Osaka International Competition Espoir Award 1위를 거머쥐며 해외에서도 빛나는 행보를 이어나간 그는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몰도바국립방송교향악단 등 다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서울바로크합주단 초청연주, 송사비의 클래식 음악야화, EBS TV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 전국 세미나를 개최해 100여 회의 강연을 진행한 심소정 하피스트 지난 12월에 셀린(SelyN)이라는 예명으로 두 번째 싱글 ‘NeveR & AlwayS’를 발표한 심소정 하피스트는 싱어송라이터 영역에서도 음악적 기량을 펼쳐 나가며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들과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첫 번째 싱글 ‘Northern Star’은 팝록 장르의 데뷔곡으로 트와이스의 ‘Knock Knock’, 오마이걸의 ‘비밀정원’ 등 다수의 히트곡에 참여한 아이돌 메이커, 마유 와키사카가 함께 작업했고 심소정 하피스트 역시 작사/작곡에 참여하며 차세대 크로스오버 뮤지션으로서의 시작을 알렸다. “하프가 비싸고 어려운 악기라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어려움들이 저를 더욱 강인하게 만들었고 음악의 가치와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편견을 완전히 없애고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길 바랐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모두에게 나의 선택을 인정해 주길 바라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대신에, 편견에 의해 제한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긴 설명보단 결과물로 늘 보여주려다 보니 어느새 연주가, 작가, 가수, 강의자 등 많은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웃음).” ▲ “하프와 강아지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심소정 하피스트 세광음악출판사에서 최연소 작가로 ‘미니하프’ 연계교재를 편찬한 그는 하프만이 가진 장점을 최대로 살리고 동시에 “배울 곳이 없다, 어렵다, 비싸다”등 하프의 허들을 깨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하프협회’를 설립했다. 심소정 하피스트보다 최소 10살, 많게는 20살까지 나이 차이가 있는 베테랑 학원 원장들도 협회에서 하프를 배우며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다. “하프를 배우신 학교 선생님들과 학원 원장님들께서 아이들 발표회 영상이나 사진을 보내주시는데요. 너무 귀엽고, 제가 다 뿌듯하더라고요. 게다가 하프가 본인의 일상을 변화시켰다는 분도 많으시고, 그분들이 하프 앙상블을 만들어 연주회도 열었습니다. 저 대신 도서관이나 공공기관에 연락해 제 책을 홍보해 주시는 열정 넘치는 팬들까지... 하프를 사랑하는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을 보답할 수 있도록 하프 대중화에 기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더 열심히 펼쳐나가겠습니다(웃음).” 심소정 하피스트는 오는 1월 2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영화 겨울왕국의 영감을 받아 기획된 ‘Frozen Harp’ 독주회로 설렘 가득한 새해를 맞아 관객들과 마주할 예정이다. [1157] 인스타그램 : @harpist._.ss0vly ⬇Youtube Lin⬇ youtube.com/@harpistssovly?si=Wv-CWO0fzECuBrj2
    • 문화
    2024-01-23
  • [문화산책] 연우 손유경 한얼우리그림협회 회장 / 전통민화 명인 제14호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위원장 / 창원문화재단 이사
    한국의 얼이 담긴 미술을 추구하는 한얼우리그림협회는 2023년 9월 23일부터 11월 5일까지 경남 하동 칠불사 보설루에서 특별전(그림으로 풀어내는 부처님의 가르침전), ‘卍卍展(만만전)’을 성황리에 마쳤다. 한얼우리그림협회는 2019년 손유경 회장이 우리의 혼과 얼이 담긴 작품을 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창립했으며, 2007년 손 회장과 문하생의 전시를 시작으로 만들어진 ‘소천민화협회’가 한얼우리그림협회의 모태다. “부처님의 진실한 법을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에게 있어 이번 전시는 종교를 통하여 그 해답을 찾는 기회가 되셨을 것이다”고 소회를 밝힌 손유경 회장과 따뜻한 차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마산 앞바다를 바라보며 민화, 불교, 전통, 철학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_김민진 기자 It's raining flower rain 꽃비 내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동양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부산, 대구, 창원, 프랑스, 인도, 중국 등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전시를 통해서도 우리 민화(民畵)를 알리고자 42회에 걸친 개인전과 200여 회 그룹전을 개최한 손유경 회장은 약 25년간 선현들의 뜻깊은 정신을 헤아리는 민화를 그리며 문체부 장관상, 통일부 장관상, 환경부 장관상, 국회의장상 등 각종 수상, 위촉장, 감사장을 받은 바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미술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신념으로 손유경 회장이 창립한 한얼우리그림협회는 조각, 회화, 사진 등 다양한 장르에서 약 250명의 작가들이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 전시가 있었던 칠불사(경남 하동군)는 지리산 해발고도 830m 토끼봉에 자리한 사찰로 2년 전 손 회장과의 인연으로 시작한 ‘卍卍展(만만전)’이 벌써 올해로 다섯 번째 전시를 하게 됐다고. Where am I going? “부처님의 가피력이 온 세상에 내려 모든 중생에게 이롭게 되기를 기원하며 불교 이론을 그림으로 설명하는 전시를 해온 ‘卍卍展(만만전)’은 코로나가 있던 때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미술 속에 담아 지친 대중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됐지요. ‘卍(만자 만)’은 부처님의 가슴에 있는 길상(吉祥)의 징표를 나타내는 문자로 힘겨운 시절의 종식과 평안의 시대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풀이한 작품을 통하여 관람하시는 모든 분이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 등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물음에 부처님의 법을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잘 그리는 것과 좋은 작품은 다르다”고 전한 손유경 회장은 본인 작품에 빠져있기보다는 다양한 학문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열린 사고로 전통과 융합 발전시키길 원했다. 특히 철학 공부를 좋아한다는 손 회장은 예를 들어 여백 하나도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비교 및 노자의 도덕경 등을 참고해 왜 동양화는 여백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가는 재미가 그림을 그릴 때 좋은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한다. 2024년 4월 개인전 개최를 포함하여 올해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 손유경 회장의 활발한 작품 활동 또한 기대된다. 지역의 중견작가로서 국내외 전통 민화작가로서 펼칠 손 회장의 다양한 행보를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1156] chaekgeori(책거리) 여보게 관상가 양반 내가 왕이될 관상인가?
    • 문화
    2024-01-11
  • [재난안전보안관] 행정주도 재난관리체계 대응 한계, 재난안전보안관 도입으로 안전문화 혁신을
    “재난안전은 중앙정부와 민간단체와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재난안전보안관 제도를 공공기관은 물론 시장과 기업에 확산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장훈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 회장은 “재난안전법에만 근거한 소극적·협의적 보여주기식 행정에서 벗어나 재난안전 유관 개별법에까지 적용되고 확산될 수 있도록 법·제도적인 정비가 수반돼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하고 “법·제도적인 정비에는 재난안전보안관 활동이 핵심적인 내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_유경석 편집국장 ■ 연합회, 전문인력 양성·재난안전보안관 전문성 강화 주력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국민 참여를 유도하고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 개별법에 따라 부분별로 이뤄지던 국민 안전을 일원화해 나라를 안전선진국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설립됐다. 안전 관련 전문 인력 양성과 재난안전보안관 전문성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는 최근 월드케어필센터에 ‘2023 제1회 대한민국 희망 재난안전 봉사자 표창 수여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주민의 자율적 참여로 철저한 사전 점검과 신속한 초기 현장 대응을 통해 피해를 줄이도록 하는 민관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는 예측 불가능한 재난 발생 빈도가 급증하는 가운데 재난유형이 다양화·대형화하면서 인명·재산 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행정 주도 재난관리 체계로는 적시성 있는 재난의 예방과 대응에 한계를 보이는 데 따른 것이다. 국제표준화기구 ISO/IEC 17024 재난예방안전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재난안전보안관은 재난안전에 대한 교육방법과 재난 상황 발생시 행동요령 등을 숙달하고, 각종 재난과 안전 관련 위기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민간 안전요원이다. 장훈 회장은 “항상 대형사고나 인명피해가 나서야 움직이고, 그 움직임 역시 시늉만 하는 무사안일의 체질이기 때문에 유사한 사고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며 “관(官) 중심 행정으로 시민 불편이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에게 불행이 오지만 않는다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더 나아가서는 ‘대통령, 자치단체장 등은 임기만 되면 떠난다’는 착각에 그저 버티면 된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무사안일’ 체질화…보여주기식 행정 이젠 그만 대형사고나 인명피해가 발생한 이후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반복되는 행정기관의 늑장 대응을 비판한 것으로, 행정안전부에서 시행 중인 안전보안관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제도 개선 요구이기도 하다. 실제 세월호 사고(2014.4.16) 이후 이천 투석 전문 병원 화재(2022.8.08), 강원 태백 장성사업소 탄광 갱도 붕괴(2022.9.14), 포항 인덕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2022.9.06),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2022.10.29),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 터널 화재(2022.12.29), 서울 인왕산 화재(2023.4.2) 등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면서 국민 불안은 높아지고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안전을 소홀히 한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이는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매년 약 278만 명의 노동자가 업무상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2022년말 기준 우리나라 재해자는 13만348명에 달한다. 이중 질병재해로 1349명, 사고재해로 874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요 선진국들이 연간 사고사망 만인율(0.07~0.35)을 비교적 낮게 유지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 중대재해로 인한 사고사망 만인율은 0.43(2021년 기준)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일터에서 사망·사고는 개인의 생명, 가족의 행복을 파괴하고 사회적 비용, 국가적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제도가 포용적(inclusive)이면 흥하고 착취적(exclusive)이면 빈곤해지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서 높은 산재율을 기록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정치·경제 제도가 착취적임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 OECD국가 중 높은 산재율…영유아·고령자 각종 사고 노출 사망·사고는 일터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호를 받아야 마땅한 어린이들이 각종 안전사고와 교통사고, 영유아 돌연사 등으로 매년 400여 명이 사망하고 있다. 인구절벽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태어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각종 사고에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령자 안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2025년 고령인구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그 속도도 빨라져서 향후 5년간 고령인구는 29.4% 증가하고, 고령운전자는 59.4%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간 고령자 교통안전 확보를 위해 노인 보호구역 활성화, 운전면허 반납제도 운영 등을 시행 중이나 고령인구 10만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고령자에게 안전한 환경은 누구에게나 안전하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의 안전 수준을 한 차원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 안전교육 과감히 개선…관리감독 '지방 이양' 실효성 강화 장훈 회장은 “안전분야의 고질적인 부패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지 불신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시장과 기업, 시민사회, 그리고 개별 국민의 합심과 협력이 요구되며 사회 공동체적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안전(Safety)하고, 환경(Environment)적이고, 시스템(System)을 갖춰야 안전한 나라, 국민이 안심하는 나라, 경제 강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한 감시 시스템 구축과 반부패 환경 조성의 책무가 있고, 지방자치단체장과 기업은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한 비용을 선제적으로 내부화하는 등 안전사회 구현을 위한 사회적 가치를 시장과 기업 경영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간 형식적으로 이뤄진 안전교육 관행을 과감하게 개선해야 해요. 안전교육에 대한 강제조항을 두고, 안전교육 실태조사 및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하는 근거조항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특히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을 위해서는 현재 각 부서별·분야별로 이뤄지고 있는 안전교육과 시설점검 등을 통합 조정하는 한편, 지방이양이 가능한 것은 과감하게 지방에 이양할 것”을 주문했다. ■ 사회공동체 책임·재난안전보안관 활용, 안전분야 부패 근절 이와 함께 중앙행정기관과 재난관리책임기관을 대상으로 정밀안전평가를 실시하고, 정밀안전평가 시 해당 재난안전사고를 제대로 예방하고 대응·수습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평가하는 한편 정밀안전평과 결과 해당 재난안전사고 예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과감하게 재난안전사업을 수행할 수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훈 회장은 “안전분야 부패는 안전무시 관행과 불법행위에 대한 사회적 묵인에서 비롯된다”면서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한 사회 공동체적 책임과 재난안전보안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안전사고 현장점검 및 예방 활동을 위한 공무원들의 부족한 인력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안전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전문 민간단체에 안전교육 및 안전점검 등을 위탁 위임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재난안전보안관들이 갖고 있는 전문성(사명감)을 활용해 민관협업을 통해 안전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가 동참해나가겠습니다!” [1149]
    • 문화
    2023-05-31
  • 전국 유일의 장애인체육 후원단체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 - 장애인체육과 대구 스포츠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다
    박영호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 단장 / 대구북구축구협회 협회장 / 까사데코 대표이사장애인 :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 체육 : 일정한 운동 따위를 통하여 신체를 튼튼하게 단련시키는 일, 또는 그런 목적으로 하는 운동 신체를 단련시켜기 위한 ‘체육’과 신체 또는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인 ‘장애인’, 두 단어가 어울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를 이겨내고 체육계에 종사하는,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고 운동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이 장애인체육 선수들이다. 박수가 아깝지 않은 이 사람들에게 박수에서 그치지 않고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의 10번째 단장으로 위촉된 박영호 단장을 만났다. _박가빈 기자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의 박영호 단장은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대구에 거주 중인, 그야말로 ‘터줏대감’이다. 대구시 북구에서 원목 가구 전문점 까사데코를 운영하고 있는 박 단장. 그가 장애인 체육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18년이라고 한다. 그는 “지인을 따라 익산에서 열린 장애인 전국체전을 보러 갔습니다. 그때 시각장애인 100미터 달리기, 휠체어 배드민턴, 농아인 축구 등 다양한 종목에 참여하는 장애인 선수들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2019년에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에 가입해서 활동을 시작했죠”라며 지원단과의 인연을 설명했다. “각 가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먼 친척 중에라도 꼭 장애인이 한 명쯤은 있을 겁니다. 그분들을 보면 생활에 참 어려움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체육회에 속한 분들은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이를 스포츠로 승화한,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은 전국 유일의 장애인체육 후원단체이다. 장애인체육의 발전을 위해 후원금을 조성하고 장학금을 전달하며, 지역사회에도 봉사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단장은 “전국 유일의 장애인체육 후원단체이다 보니 벤치마킹을 위해 여러 지역에서 보러오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1기는 소수로 시작했으나, 점점 늘어서 10기인 현재는 142명으로 최다 인원을 기록했다. 지난 2월에 있었던 ‘제10기 지원단 위촉식’에서는 10년 차 활동 멤버 4명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박 단장은 이 위촉식에서 2023년도 지원단장으로 위촉됐다. “예전 월례회 때는 30명만 오면 많이 온 거라고 했는데, 요즘 월례회 출석 인원은 약 60명이 넘습니다. 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개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중간에 이탈하는 경우도 잘 없죠. 코로나 시기에도 후원회의 인원은 계속 증가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가 대구인데, 어려운 사람을 돕고 함께 이겨나가고자 하는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합니다.(웃음)” 그는 “대구에 있는 장애인체육 대표선수들의 지원이 주목적이고, 장애인체육에 대해 홍보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한 뒤 “그 일환으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스포츠 종목의 룰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중이에요”라고 말했다. “운동경기를 볼 때, 룰을 잘 모르고 보면 이해도 안 되고 재미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장애인스포츠도 마찬가지예요. 일반적인 운동경기에 대해 잘 아는 분들도 장애인스포츠 종목을 보며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예를 들어 휠체어 테니스 같은 경우는 투바운드가 룰인데, 모르고 보는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수가 있다고 봅니다. 룰을 잘 이해해야 보는 재미도 있고,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최근 분위기는 장애인을 ‘돕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어울린다’는 개념을 강조 중”이라고 말한 뒤 “장애인을 도와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강조하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박 단장이 감사로 속한 대한장애인낚시연맹에서 준비 중인 대회의 이름이 ‘전국 어울림 낚시대회’이다. “장애인들과 어울려서 함께 살아가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우리를 통해 얻을 점이 있고, 우리도 그들을 통해 얻을 점이 있다는 것을 지원단 생활을 통해 더더욱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지난 3월 21일, 지원단은 대구 북구청에 북구 내 장애인 선수들을 위한 장학금 200만 원을 기탁했다. 박 단장은 “각 구·군별 장애인체육회를 만들자는 취지도 있었고, 장애인체육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라며 기탁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구청장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구·군을 돌아다니며 장애인체육을 홍보하고 선수들을 지원할 예정입니다”라고 밝혔다. 올해 지원단의 후원금은 1억 6,460만 원이 책정됐으며, 전액 후원 예정이라고 한다. 박 단장은 “지역의 편중 없이 골고루 후원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뒤 “구·군 단위에서 장애인체육에 대한 지원이 잘 이뤄지면 대구시 전체의 장애인체육 활성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며 바람을 드러냈다. “지원단으로서 후원은 당연한 것이고, 단원들 간에 친목 도모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단원분들이 다들 본업이 있으신데, 다양한 직종의 단원들과 교류하며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원단을 통해 후원도 하고 얻어가는 것도 있었으면 합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지원단은 대구장애인체육회 직원들과 함께하는 체육대회 겸 단합대회를 5월 중에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로 알아가면서 도울 부분은 도와줄 수 있도록 원만한 관계 형성을 도모하려고 합니다. 자기 시간을 쪼개가며 나와서 고생하는 지원단원들과 체육회 직원들이 관계 형성을 잘해서 앞으로 함께 걸어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는 단장으로서 활동의 범위를 넓혀나갈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장애인체육부서가 보통 문화체육부 내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담당 부서를 알아보니 복지과 내에 장애인체육부서가 있더라고요. 앞으로 장애인체육부서와 연계해서 다양한 방면으로 장애인체육 활성화와 홍보에 힘쓰겠습니다.” 단장 임기는 1년, 그는 임기가 끝나고도 고문으로서 활동을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박 단장은 체육회 선수들에 대해 “장애인체육 선수들은 우선 ‘장애’라는 결함을, 곧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선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데, 선수로 나와 성적을 내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뒤 “물론 체육인으로서 몸도 중요하지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한데, 정신적으로 무장해서 열심히 해주길 바랍니다. 그럴 수 있도록 지원단에서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다. 박 단장은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 단장과 동시에 대구북구축구협회의 협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40팀으로 대구 내에서 최다를 자랑하는 북구 축구협회에서 4 년차 회장을 맡은 그는 다방면으로 북구 축구 활성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부키 슛돌이 FC’는 지역아동센터와 소외계층, 저소득층 아이들 우선 선발, 이후 관내 아이들을 선발해서 무료로 수업을 진행하는 사업이다. 박 단장은 “여러 단체에서 다양한 봉사활동과 후원 활동을 진행하다가 ‘내가 북구 축구협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 끝에 나온 것이 부키 슛돌이 FC였어요”라며 창단 배경을 설명했다. 2021년 창단해 올해로 3기를 맞은 부키 슛돌이 FC, 박 단장은 “1기 당시엔 6학년만 뽑아서 진행하려고 했으나, 자리가 남아서 5학년까지 선발했습니다. 2기 때는 4학년까지 뽑았더니, 5·6학년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3기에는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총 60명을 선발했습니다”라며 우여곡절을 설명했다. “감독 1명, 코치 4명, 운영실장 1명, 총 6명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주 1회 토요일에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축구에 대한 교육은 감독과 코치가 진행하고 저는 주로 인성교육을 위주로 참여해요. 예절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확실히 교육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인사를 강조합니다. 아이들이 인사를 하지 않는다던가 대충 인사를 했을 때는 재차 불러서 교육하기도 하죠.” 부키 슛돌이 FC는 학부모들에겐 일절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박 단장은 “첫해에는 보조금 없이 진행했고, 2기 때부턴 구청에서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분들의 후원금이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라며 “지면을 빌어 아낌없이 후원해주시는 후원자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 식사와 간식이 정말 중요한데, 제가 음식업체에 연락해서 ‘한 달에 한 번만 가격을 싸게 해서 제공해달라’라고 타협해서 제공받기도 합니다.” 올해 4월 1일에는 북구 여성축구단인 ‘부키 W-FC’가 창단식을 가지기도 했다. 박 단장은 “대구에 5개 여성축구단이 있었는데, 북구에는 없었어요”라고 말한 뒤 “4월부터 시 대회에 출전할 예정입니다”라고 밝혔다. 대구의 여자 초등축구팀은 2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인 침산초등학교 여자축구부도 박 단장의 작품이다. 지난 2월, 그는 침산초 여자축구부 활성화를 위해 생수와 트레이닝복 등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 박 단장은 “체육회의 홍영숙 사무처장님을 비롯해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 감사합니다. 백만 원을 내는 한 사람보다 만 원을 내는 백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장애인체육회와 지원단, 그리고 체육 꿈나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 그리고 그 관심의 지속을 위해 많은 사람들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더욱 정이 넘치고 사랑스러운 도시 대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며 대구와 장애인체육회, 그리고 지원단 활성화의 바람을 드러냈다. [1148]
    • 문화
    2023-04-27
  • 대한민국 합창과 지휘의 발전을 이끌어온 일등공신 - 여홍은 원로 합창 지휘자 / 교수
    아름다운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가슴을 울리며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한다. 특히 합창의 조화롭고 아름다운 정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맑게 만든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음악교육, 하지만 대한민국은 경제 성장속도에 비해 음악・예술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이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 합창계를 발전시킨 일등공신, 여홍은 교수를 만났다. 반세기 이상 평생 외길을 걸어온 그는 9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지금도 현장에서 우리나라 합창계와 합창 지휘계를 선도하고 있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늘 아름답고 거룩한 음악이 넘치던 기독교 집안,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여홍은 교수는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부터는 교회에서 선교를 위해 고아원이나 양로원에서 찬양 봉사를 하기도 했다고. “1936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유치원을 졸업한 후, 해방되기 일년 전에 귀국해 할아버지의 고향이신 대구 반야월로 왔어요. 고등학교 2학년 말에 대구 신명여고에서 서울 신광여고로 전학했지요. 고3 음악담당이셨던 김경환 선생님께서 이끌어주신 덕에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해 서울대학교 음대에 입학해 성악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이후 50대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60대에 미드웨스트대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처음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남편인 강만식 교수(원자생물물리학 전공, 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권유로 일반대학원인 성신여대 성악과를 졸업하게 된다. “박사학위는 저를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김경환 선생 님의 남편이셨던 구두회 교수님께 논문 지도를 받았어요. 대단한 인연이지요. 워낙 철두철미하셔 죽을 힘을 다해 논문을 통과했어요. 그 논문을 다시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였지요(웃음).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당시에 학위를 받은 일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지 구 교수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성악을 전공한 여 교수는 합창지휘에 있어 더욱 큰 활약을 보였다. “1960년에 대학 졸업 후 모교인 신광여고에 임용됐습니다. 1980년, 당시 최명자 교장선생님의 간곡한 권유로 신광노래선교단을 창단하고 각종 음악회 및 전국 순회공연 등을 500여 회 가졌습니다. 그 때부터 합창과의 인연을 맺게 된 셈입니다. 물론 교회성가대 지휘는 계속 맡고 있었지만요.” 어수선한 국내 정황에 합창계 역시 여건이 쉽지 않았지만 그의 합창에 대한 열정 만큼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다. “각 학교마다 미션스쿨에서는 거의 합창단이 있었어요. 제가 전국고등학교합창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에는 합창제가 열리면 서울 소재 대부분의 고등학교 합창단들이 모두 참여해 2~3일 동안 경연을 할 만큼 큰 행사였지요. 하지만 지금은 입시다 뭐다해서 아이들에게 그런 경험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여 교수는 서울시교육위원회에서 서울음악교사 합창단을 결성, 동료교사와 함께 창단 때부터 퇴임시까지 12년 동안 단장을 맡으며 유럽 연주 객원지휘 활동을 했다. “당시 합창계에는 서울시 음악교사 합창단을 지도해주신 분들이 계셨어요. 너무 감사한 분들이었지요. 러시아에서 오셨던 노다르 찬바 교수님을 비롯해 일곱 분의 지휘자 교수님들과 선생님들 생각이 한번씩 납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기도한 여 교수. 국민훈장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학술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큰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여홍은 교수는 ‘지금까지 잘 해왔구나하는 생각에 참 자랑스럽고 소중하며, 감사한 수상’이었다고 말하며 소녀 같은 미소를 보였다. 이외에도 여 교수는 수많은 기관, 단체에서 특별상, 공로상, 장려상, 감사장 등을 수상했다. “모두 감사하고 뜻깊은 상이었지만, 특히 저를 기쁘고 보람되게 해준 것은 퇴임 시 동료인 국어교사 박기원 선생님이 주신 패에요. <짙은 꽃 향기를 남기시고>라는 주제로 시 한편을 돌에 새겨 주셨는데, 아직도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답니다(웃음).” 2006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을 펼친 한국교회연합성가대의 ‘메시아 연주회’에서 지휘를 맡은 여 교수, 50여 회 동안 여성으로 메시아 지휘를 맡은 사람은 여 교수를 포함해 단 2명에 불과했으니 그의 입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독일에서 앙코르 송을 5곡이나 받으며 청중들이 10분 이상 기립박수를 쳐 독일 조간신문에 최고의 여성 지휘자가 한국에서 왔다는 제목에 기사가 대서특필되며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청중들을 완전히 매료시킨 최고의 공연이었다. “미주성가대합창제 초청으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공연을 했고 한호문화예술제 초청으로 호주 시드니오페라하우스에서도 독창 연주로 영광의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꿈만 같은 순간이었지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와 지휘는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7,17민족화합대성회’입니다. 그외에도 잠실 주경기장에서 2,000여 명을 지휘한 일, 잠실 체육관에서의 부흥회 당시 1,200명(엔그래함-빌리그래함목사의 따님)지휘, 5・16여의도 광장에서 부활절 연합예비 당시 500명 지휘,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순복음인천교회의 150여 명의 지휘 등 대규모의 행사에서 수많은 지휘를 맡았지만 현재하고 있는 을지로교회와 친정교회인 숭덕교회의 30명도 안되는 성가대원들을 지휘하는 일 또한 소중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태도와 마음가짐은 똑같기 때문이지요(웃음).” 그는 한국합창총연합회 자문위원을 비롯해 한국교회음악협회, 일반합창・고교합창연합회에서 고문을 맡아왔다. 또한 한국여성합창협회에서는 이사장으로 오랫동안 활약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드물었던 시대에도 결코 소외되거나 기죽는 일 없이 적극적으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왔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도 목소리가 변하지 않아 을지로교회 수요정오성가대에서 엘토를 맡은 바 있는 그는 올해 2023년 부터는 지휘를 맡고 있다. 여 교수는 “독일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테너로 활동하고 있는 막내아들(강대준 교수-독일 뮌헨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후 독일 드레스덴 국립오페라단에서 활동)과 조그만 공연장에서 조촐하게 작은 음악회를 하고 싶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전했다. 평생을 음악과 합창 발전을 위해 일해온 여홍은 교수, 남다른 열정과 선한 영향력으로 살아온 그는 후학들에게도 의미있는 이야기를 전했다. “음악이 내 삶의 전부입니다. 삶이 풍요로워지려면 무엇보다 믿음을 바탕으로 정직과 성실, 그리고 겸손한 생활이 중요해요. 제가 간절히 바라왔던 삶이기도 한데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언제나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1147]
    • 문화
    2023-04-13
  • ‘그림 읽어주는 남자’가 전하는 감상하는 즐거움 - 이창용 도슨트
    전시회에 가면 늘 ‘내가 좀 더 예술에 대한 조예가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든다. 작품만 보고도 느끼는 것이 있겠지만, 그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나 숨겨진 이야기 등을 알고 보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도세르(docere)에서 유래한 도슨트(docent)는 일정한 교육을 받거나 전문지식을 갖추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 또는 일을 뜻한다.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 전반을 총괄하는 큐레이터나 미술평론가에 비해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는 있겠으나 도슨트야 말로 우리와 가장 가까이서 소통하는 안내자이자 메신저인 셈. ‘그림 읽어주는 남자’ 아트스토리105의 이창용 대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슨트다. 1세대 도슨트로서 현재 한국에서 가장 왕성한 강연, 저술, 방송활동을 하는 인물. 전국에서 이어지는 강연 요청으로 피곤할 법도 한데 인터뷰 내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명확한 화법과 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분위기를 이끈다. 역시는 역시다. _김유미 편집국장 “도슨트는 전시회를 해설해 주는 사람으로 관람객에게 미술품을 감상함에 앞서 전시 작품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통해 전시 관람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미술관 관람이 조금은 지루하거나 어려울 때는 물론, 잘 알려진 작가의 작품이라도 작품의 표현 기법을 위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보다 작품의 작가의 생애나 그 시대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조금의 지식이 있다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죠. 특히나 난해하게 느껴지는 현대미술로 갈수록 사전에 미술사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관객들에게는 각각의 작품이 드러내는 의미를 짧은 감상시간 안에 포착해 해설하는 도슨트가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역사학을 전공한 이창용 대표는 2004년, 로마사를 공부하던 중 ‘로마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이탈리아로 훌쩍 떠났다. 이래저래 범상치 않은 인물임은 확실하다. “가이드 일을 하는 선배를 따라 박물관에 갔는데 여행객들에게 소개하는 내용을 들으며 갸우뚱했어요. ‘어? 저게 아닌데? 내가 하면 더 재밌게 설명할 수 있는데’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에 바티칸 박물관을 방문한 여행자분들을 상대로 도슨트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용돈이나 벌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일하면 할수록 제 적성에 딱 맞는 거에요. 2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원에서 제대로 미술사학을 공부하면서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웃음).” 당시만 해도 ‘도슨트’는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상황. 좋아하는 것만으로 일을 이어가기에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결국 학업을 마치고 해군장교로 복무하고 대기업에 취업한 이 대표. 3년 여 근무하는 동안 특유의 친화력과 창의적 성향은 조직에서 빛을 발했지만, 맘 속 깊이 감춰놓은 도슨트에 대한 열망은 계속 커져만 갔다. “안정적인 생활 속에서도 행복하지가 않더라구요. 많은 고민 끝에 큰마음을 먹고 미술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로 떠났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하다보면 길이 열리겠지’라는 생각이었지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등 유럽의 미술관에서 현지 가이드와 도슨트로 활동했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미술을 전공하고 유학 와 있던 아내를 만나기도 했으니까요(웃음).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후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간 쌓아온 역량을 맘껏 펼쳐보자 싶었어요.” 이창용 대표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미술사를 귀에 쏙쏙 들어오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다. 연 평균 300회 강의를 이어가며 전 국민들의 문화수준 향상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술과 클래식이 함께 하는 <아트콘서트> 마스터로도 활동 중인데 세계적인 화가들과 그들의 명작에 얽힌 이야기와 이어지는 곡을 선정해 오케스트라의 선율로 풀어내는 매력적인 공연으로 전국적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창용 대표는 최근, 인기프로그램인 JTBC ‘톡파원25시’에 출연해 ‘미깡(미술깡패)’라는 별명을 얻으며 인지도를 더욱 높여가는 중이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좋은 기회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제 개인의 영광보다 ‘도슨트’라는 직업을 알리고 많은 분들이 작품을 제대로 알고 즐길 수 있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방송에서도 얘기했지만 시간과 비용을 들여 큰 맘 먹고 세계적인 박물관에 오셔서 그곳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고 즐기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모나리자’만을 위한 곳이 아님에도 줄을 서서 기다려 모나리자 앞에서 사진만 찍고 가시는 여행객들이 대부분이세요. 극장에서 영화 예고편만 보고 나가버리는 셈입니다. 우리가 다가가려 하는 만큼 그림은 우리에게 찾아와 감동을 선물해 줍니다. 어렵게 생각하시지 말고 그림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해요. 저도 계속해서 노력해가겠습니다.” 최근 이 대표는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를 발간했다. “그동안 여러 출판사와 논의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야사 위주의 흥미만을 원하여 출판이 성사되지 못하였습니다. 오랜 기간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는 총 4부작으로 1편 ‘프랑스’, 2편 ‘스페인-네덜란드’, 3편 ‘이탈리아-오스트리아’, 4편 ‘한국’으로 출간될 예정. “많은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루하다고 이야기하죠. 한두 시간 짬을 내어 한 권의 책을 읽듯이,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화가의 인생을 살펴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 그 화가의 작품이 이 전에 비해 훨씬 더 깊고 무겁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재밌는 동화책을 읽어주며 어린아이에게 책에 대한 재미를 갖게 해주는 것처럼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를 선물해 주는 ‘그림 읽어주는 남자’로 꾸준히 기억되고 싶습니다.” [1140] [2018~현재] •아트스토리105 대표 •미술사 전문강사 / 아트콘서트 마스터 [2012~2018] •루브르 박물관 현지 도슨트 •오르세 미술관 현지 도슨트 [2012]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바티칸 박물관전> 큐레이터 [2006~2008] •바티칸 박물관 현지 도슨트 [2005]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인상파 거장전> 도슨트
    • 문화
    2023-02-27
  • 디오라마(Diorama)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재현의 마술사
    거대한 세상 안에서 또다른 작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미니어쳐 예술, 디오라마(Diorama)는 작은 무대를 뜻한다. 풍경화나 그림으로 된 배경에 축소된 모형을 설치해 특정한 장면을 만들거나 배치하는 것을 말하며 모형을 이용해 역사적 사건, 자연 풍경, 도시 경관 등을 표현한다. 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활용되며 기록용으로 쓰였지만, 이제 하나의 예술 장르로써 다양한 오브제의 활용과 축소된 연출은 물론, 음향이나 조명을 함께 연출하여 생생함을 더하기도 한다. 영화, 드라마 미술 감독이자 무대 예술가로서 활동해오던 신언엽 감독. 그는 자신의 무대를 작품으로 승화시켜 국내 최초 디오라마(Diorama) 전시를 선보이며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를 발견해 재현의 마술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신언엽의 디오라마를 조명해본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디오라마는 한 장면의 사건이나 시간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인물과 배경의 전체적인 질감의 정교함을 보여주며 스토리, 음향, 조명, 홀로그램 등의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여 아트와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융복합 예술을 보여준다. 이러한 표현 매체의 확장은 관람객에게 마치 그 시간 그 장소에 들어가 있는 듯한 생생한 장면(Scene)을 보여주며 쉽게 가지 못하는 공간, 느껴볼 수 없었던 공간을 디오라마 작품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디오라마는 단순한 키덜트(Kidult) 산업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한 찰나의 순간을 입체감 있는 표현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줍니다. 장르를 구별하지 않는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통해 교육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느껴 볼 수 있어요.” 디오라마는 근대 이후 유럽귀족들이 테이블 위에 인형 등을 올려놓고 역사적인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데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인형 뿐 아니라 공룡, 전차, 자동차, 비행기 등 점차 종류가 다양해 졌고 1820년대 프랑스의 화가이자 사진 발명가인 다게르가 무대 예술가로서의 경험을 활용해 1822년 파리에서 세계 최초의 디오라마 극장을 설치하고 운영했다고 한다. 1932년, 일본 도쿄과학박물관에서 전시된 디오라마가 최초로 기록된 전시용 디오라마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언엽 감독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정밀 묘사로 인물화를 그리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유명한 배우였던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그린 그림은 지금 봐도 사진과 같이 보일 정도로 상당한 실력이다. 부산이 고향인 신 감독은 서울로 올라와 연극학과에서 무대디자인과 기술을 공부하고 영상대학원 프로덕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후 실감융합콘텐츠학 박사를 공부하며 방송업계 드라마 미술감독, 공연무대 디자인과 영화 미술감독으로 활동한다. “연극, 뮤지컬 무대 디자인, 드라마·영화 미술감독,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호텔 인테리어와 웨딩홀 디자인도 많이 맡았어요. 콘서트부터 광고나 뮤직비디오 세트 디자인을 했구요. 시간과 예산적인 문제로 인해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에 갈증이 나서 디오라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피규어를 수집했었거든요(웃음).” 신 감독은 히어로 피규어에 영감을 받아 ‘배트맨’ 시리즈를 시작으로 ‘백투더 퓨처’, ‘매드맥스’, ‘트랜스포머’, ‘스타워즈’ 등 피규어를 수집해왔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영화 속 장면을 축소된 모형으로 재현해 보곤 했다. “전공인 무대 디자인이 바탕이 됐습니다. 취미로 피규어를 모았는데 표현이 정교하고 또 고가의 제품이 많았죠. 비싸게 샀는데 그냥 장식장에만 두기가 아깝더라구요(웃음). 피규어의 배경을 만들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작품 사진을 찍어 공유했더니 반응도 좋고 무엇보다 제가 너무 즐겁고 재미있더라구요.” 점차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고퀄리티의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 된 신 감독. 취미로 시작된 신언엽의 디오라마는 관련 산업분야의 전시나 박람회에 초대 작품으로 초청되었고 그의 작업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가상의 캐릭터를 현실의 세계로 가져와 우상의 대상인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된다. “그동안 제가 너무 해외 히어로를 주인공으로만 만들고 있었더라구요.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등 우리나라의 영웅을 주제로 한 디오라마를 만들고 싶었는데 우리나라 영웅 피규어가 없어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보게 됐고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커다란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과 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마주했던 판문점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3D디자인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크기가 비교적 큰 디오라마를 전시할 장소가 문제였다. 신 감독은 통일부에 문을 두드렸다. 서기관을 통해 그의 디오라마를 주제로 했던 논문과 포트폴리오, 피규어를 챙겨들고가 통일부를 설득해 장소를 제공받은 것. 첫 전시 공간은 경의선의 북쪽 가장 끝에 위치한 ‘도라산역’ 로비였다. 전시공간이 마련되었고 ‘판문점 선언’ 당시를 재현한 디오라마가 완성이 되어 ‘봄이 오면(When spring comes)’ 이라는 작품명을 가지게 되었다. 같은 해 이 작품은 4월에 서울시청, 5월에는 부산항 축제장과 부산통일관에 전시되었으며 그 이후 계속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기릴 수 있을 만한 의미 있는 공간에서 전시가 이루어졌다. 디오라마 영역에서 단독으로 전시를 개최한 국내 최초・최대 규모이자 미술감독이자 무대예술가였던 ‘감독 신언엽’이 ‘작가 신언엽’으로의 변신을 알린 뜻 깊은 전시이기도 했다. 전공 분야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던 감독 신언엽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디오라마 작가로 변신했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대중들에게 알리는 의미 있는 일에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쏟기로 결심한 것. 2019년 서대문(돈의문)을 디오라마로 복원한 작품도 화제였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5년에 강제 철거된 돈의문을 104년 만에 문화재청, 서울시, 제일기획, 우미건설 등이 참여해 민관 협력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신 작가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디오라마로 복원하는 작업을 맡았다. “외부 제의를 받고 작업한 첫 작품인데 서대문 복원이라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 참여하게 되었지요.” 모 통신사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한 ‘군산 쌀 수탈사건’, 일제강점기의 디오라마 재현을 통해 역사적 의미와 함께 탁월한 창의력을 인정받았다. 국한된 소재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확장성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는 홀로그램, 음향, 조명 등 4차 산업의 다양한 미디어를 도입해 생동감 있는 장면들을 연출해 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신 감독은 바쁜 일정을 쪼개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무대미술) 강단에 서며 학생들과도 소통하고 있다. “디오라마는 인간의 숨겨진 로망을 실현해줍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법한 본능일 거예요. 시공간을 초월해 특별한 역사적 순간, 새로운 창조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 디오라마의 매력입니다.” “디오라마를 통해 재현된 결과물들은 판매하지 않고 문화와 교육, 전시의 목적으로만 활용할 계획”이라는 신언엽 감독. “자신의 디오라마 작품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올바른 역사관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며 따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 EDUCATION ] • 2020 ~ 2022 | 광운대학교 실감융합콘텐츠학과(박사수료) • 2009 ~ 2018 | 홍익대학교 영상대학원 프로덕션디자인 전공(석사) • 1998 ~ 2006 | 용인대학교 연극학과 무대디자인 및 기술 전공(학사) [ AWARD ] •2018 | 통일부장관 표창 디오라마부문(통일부장관 조명균) [ FILM ] •2021 | (주)엠씨엠씨 ‘봄날’(감독: 이돈구) 외 12편/미술감독 [ BROADCASTING ] •2017 | MBC 수목미니시리즈 ‘역도요정 김복주’(연출 오현종) 외 4편/ 미술감독 [ DIORAMA EXHIBITION ] •2016.03 ~ 2018.08 | SBA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엽스타일(YUPSTYLE) 디오라마관 상설전시 • 2018.03 ~ 2019.03 | 서울시 상암동 DMC홍보관 엽스타일(YUPSTYLE) 디오라마 상설전시 • 2018.03 ~ 2019.03 | 서울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살림터 1관 로비 상설전시 • 2019.02 ~ 2019.04 | 파주시 도라산역 로비1F ‘4.27판문점’ 디오라마 상설전시 • 2019.12 ~ 2020.02 | 서울 인사동 CNT 마루갤러리 개인전[재현의 마술사: 신언엽의 디오라마] [ LECTURE ] • 2011.09 | 한국방송예술진흥원[장면만들기] 출강(2학기)/외래교수 • 2017.08 | 서울코믹콘[ 디오라마그시작의배경] -코엑스 • 2018.09 | 홍익대학교영상대학원프로덕션디자인[ 공간과조명] 출강(2학기)/시간강사 • 2022.05 ~현 | 구리고등학교 레인보우 메이커 특강[매체미술교과로서 디오라마의 세계] 수업/시간강사 • 2022.09 ~현 |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무대미술 출강/시간강사 [1140]
    • 문화
    2023-02-27
  • 패션계의 슈퍼루키(super rookie) 끼와 열정 가득한 MZ세대의 대표 디자이너
    꾸준히 성장해온 국내 패션시장,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해외직구 등을 통해 소비자들이 해외브랜드 의류를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타격을 맞고 있다. 김량환 대표는 이런 시대흐름에 맞춰 온라인과 오프라인 쇼핑몰을 만들어 개별브랜드(Leon)를 창업, MZ세대들에게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특별하고 새로운 패션을 전하고 있는 인물이다. 글로벌 패션리더로 성장하고 있는 김 대표를 만나봤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BIGBANG INTERNATIONAL 김량환 대표는 Leon브랜드와 도깨비 쇼핑을 통해 다양한 제품들로 구성된 종합쇼핑몰을 창업하여, 특별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특히 MZ세대들이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유니크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는데 좋은 소재만을 고집하여 품질향상을 우선시하는 한편, 대량 생산으로 제품단가를 낮춰 판매하는 차별화 전략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국내 온라인 쇼핑몰과 유명 온라인 쇼핑몰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될 예정으로 고급원단을 이용한 자체 브랜드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대 초반인 김량환 대표는 독보적인 창업 아이템과 기술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미한 독창적인 디자인들이 눈에 띈다. “국내외 최신의류 트렌드에 맞추어 앞서가는 색상과 디자인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섬세한 제품 마감처리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김 대표는 “최근 시장 환경 SWOT분석을 통해 보자면 강점은 원단 기능성 고급화, 차별화된 디자인, 가격대비 뛰어난 품질입니다. 약점은 판매 채널을 다양화와 마케팅 홍보를 확대부분이지요. 무엇보다 오프라인 거래처를 확보해야 합니다. 코로나 및 경기 침체로 인한 경쟁 업체 세력이 약화되어 있고 시장 점유가 용이한 점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해요. 또한 위기라고 한다면 의류사업 진입 장벽이 낮아 창업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과 악성 재고증가를 들 수 있겠지요.” 20대 초반이지만 그의 시장분석은 경험이 많은 CEO 못지않게 직관력과 통찰력이 돋보인다. 그만큼 날카롭고 정확하다.” 현재 경북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학생으로 학업을 병행하면서 도깨비 쇼핑을 운영 중인 그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좋은 파트너를 찾아 다양한 유통 채널을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유행에 얽매이기보다는 소재와 봉제, 가봉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 독창성)와 숙련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더욱더 연구에 힘을 쓸 계획입니다. 브랜드 이름만큼이나 ‘김량환’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 가치가 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고 있어요.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른 MZ세대는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꾸미고 활용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를 대표하는 유니크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어요.” 자신만의 개성 드러내는 디자인으로 MZ세대들과 소통할 것 “최근 의류 등을 구매하는 형태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패션 대기업들은 브랜드를 축소하거나 통합을 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처럼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 역시 어렵게 되겠죠. 때문에 온라인 쇼핑몰을 활성화 시킬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중저가 쇼핑몰이 성장하고 해외진출이 활발한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온라인 유통비중이 높은 패션업계를 중심으로 패션디자이너의 활동이 좀 더 넓어지고 자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의류 외에도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면서 소비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주얼리, 가방, 악세서리 등을 구매할 수 있도록 현재 도깨비 쇼핑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독창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합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엉뚱한 시도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요.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든 방면으로 시도하고 받아들일 생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MZ세대들과 소통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상업적으로 대중에게 유통되는 옷보다는 자신의 가치관과 개성을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보는게 남는 것’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여가 시간엔 전시회와 패션쇼, 박람회 등 패션・미술과 관련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보고 배우고 느끼고자 합니다. 예술적 감각과 패션 안목을 키우고 영감을 얻는데 도움이 되고 있어요.” 하이패션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한국에서 변함없이 자신의 패션철학과 아이덴티티를 고수하여 현재 자신의 입지를 월드클래스로 다지는 데 시금석이 된 인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우영미’ 대표가 롤모델이라며 웃어 보이는 그는 최근 MZ세대들 사이에서 그의 브랜드 가치가 다시 한 번 평가되고 있지만 세계적 명성에 비해 국내 인지도와 시장점유율이 적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대기업이 패션 유통을 장악한 국내 패션 업계 실정과 명품 패션에 대한 일종의 사대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면서, 국내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 된 측면이 컸어요. 그 과정에서 MZ세대들은 ‘우영미’를 발견했고, 열광하고 있는 거죠. 그야말로 ‘시대가 클래스를 알아본 셈’이죠.” 톡톡 튀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호기심, 그의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 그리고 단단한 자신감으로 뚜벅뚜벅 발을 내딛는 그는 옷을 만드는 즐거움이나 좋은 소재를 발견할 때의 기쁨이 가득하다. 그는 유명 브랜드라고 해서 무조건 좇지 않는다. 자신의 니즈를 정확히 알고, 무엇이 좋은 건지 야무지고 스마트하게 소비하는 MZ세대들의 욕구를 적중시키고 있다. “패션이란게 예술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비즈니스이기도 하죠. 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패션 산업군은 예술에 한 발자국 걸쳐 있으면서도 비즈니스가 중요합니다. 다른 면으로 봐서는 제조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요. 하나의 상품이 나오기까지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이지만 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잘 잡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졸업 후 여성 패션에 최초로 바지 정장을 도입, 여성에게 자유를 입힌 패션 혁명가라고 평가받는 ‘이브 생 로랑’의 나라,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라는 김 대표. 김량환 대표 자신의 피지컬(신체)과 패션 수준 또한 남다르다 보니 모델이냐는 오해도 많이 받는다. ‘시크하며’, ‘쿨’한 이미지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따뜻한 그는 “무엇보다 나만의 아이덴티티(Identity, 독자성)를 갖추고 싶다”며 카리스마를 내비치다가도 “향후 소외계층에 의류를 나눔하는 등 환원 사업도 함께 해나가고자 한다”는 뜻도 전했다. 그의 성장과 왕성한 활약을 통해 대한민국의 패션 피플들이 자신만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멋을 즐기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를 기대해 본다. [1145]
    • 문화
    2023-02-27
  • 유쾌한 만능엔터테이너 부부 “경남 김해, 엔터 문화의 저력을 입증해보이겠습니다”
    키즈댄스대회 <두다붐3(DODABOOM)>. 2019년부터 시작돼 벌써 3회를 맞이하는 이 대회는 경남 최대 규모의 키즈댄스경연대회로 자리 잡은 한편, 서울에서 유명연예기획사 관계자도 직접 김해를 찾아 참여 학생들의 공연을 관람할 정도로 그 위상을 더해가고 있다. 작년 9월 대회에는 경남뿐만 아니라 제주ㆍ울산 등 전국에서 60팀(솔로 댄스ㆍ저학년 14명ㆍ고학년 46명)이 참여하고, 300명이 넘는 관중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매년 성공적으로 개최되며 그 규모와 위상을 키워가는 이 대회의 주최는 다름 아닌 김해지역 케이팝 댄스 전문학원인 ‘엔터아트아카데미’. 엔터아트아카데미 내외점에서 김보연・김민수 대표를 만났다. 이토록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을까. 두 대표에게는 지면에 차마 다 담을 수 없는 좋은 기운과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_김유미 기자 김보연・김민수 부부는 두다붐 대회뿐 아니라 경남 김해에서 1년에 3〜4회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참여하는 콘서트를 진행하고 꾸준한 길거리 버스킹으로 케이팝 문화 확산에도 노력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댄스 동아리 활성화를 위해 6년째 자비를 들여 ‘스쿨액션’이라는 행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장유(1호점), 삼계(2호점), 내외(3호점), 주촌(4호점 예정) 네 곳을 운영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도 이렇게 힘을 쏟는 이유가 뭘까? “저희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라고 해야겠죠. 물론 저희가 처음 춤을 배울 때와는 달리 K-POP과 K-DANCE의 열풍이 거세지면서 춤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전문적인 댄서를 꿈꾸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서울・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경우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가진 전문댄스학원 부족에다 인식도 따라주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에요. 경남 김해에서도 인프라와 시스템을 부족하지 않게 갖추고, 후배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춤을 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오직 그 마음 하나로 열심히 달리고 있지요(웃음).” 김보연 대표는 충북 제천, 김민수 대표는 충남 예산이 고향이다. 끼 많던 부부는 각각 레크리에이션학과, 이벤트연출과를 졸업했다. 춤에 진심이었던 두 사람은 서울의 한 댄스학원에서 만나자 마자 연인이 됐다. 강사로 있던 그녀가 장르를 넘나드는 후배 김민수 대표의 뛰어난 댄스 실력에 한 눈에 반하고 만 것. “하지만 프러포즈는 남편이 먼저 했다”며 그녀가 장난스레 웃어 보인다. 2009년, 결혼 후 두 사람은 서울에서 인연이 있던 선배의 권유로 경남 김해에 내려오게 된다. 댄스에 있어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곳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펼쳐보고자 하는 큰 꿈을 가지고 내려와 수석 강사로 안정된 생활을 했지만, 뜻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고. 2011년, 큰마음을 먹고 김해 시내를 벗어나 장유에 엔터아트아카데미를 오픈했다. “여유자금 없이 학원부터 열었으니 최대한 비용을 줄여야 했어요. 임대만 해놓고 인테리어부터 디테일한 마감까지 처음부터 둘이서 직접 해나갔습니다. 당시에는 ‘초등부’, ‘유아부’도 운영했었는데 정말 고생 많았죠. 대소변 못 가리는 아이들까지 케어하고 잠도 재우고…. 아이들에게 예쁜 무대 의상을 입히기 위해 공업용 미싱기를 사서 밤새도록 돌리기도 하구요. 남편은 공구를 들고 뛰어다녔죠. 학원차 운행까지 직접하며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보람되고 즐겁기도 했던 시간이었어요. 그 때 그 고생들이 다 자산이 되어 이제는 웬만한 일은 전문가 수준으로 어렵지 않게 챙길 수 있게 되었거든요(웃음).” 장유(1호점)에 이어 삼계(2호점) 오픈은 자연스레 진행됐다.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제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실력 있고 뛰어난 친구들을 강사로 채용했어요. 저희와 같이 지역에 있는 후배들에 대한 열망이 뛰어난 친구들이다 보니 더 열정적으로 임하더라구요. 내외(3호), 주촌(4호 예정)은 물론,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끈끈한 사제 간의 정으로 똘똘 뭉친 엔터아트아카데미는 내실 있는 교육 커리큘럼으로 유명하다. SM 등 대형기획사에서 오디션을 직접 보러올 정도로 브랜드 파워도 있다. 실제 서울 본사 기획사 연습생으로 4명을 최종 합격시키기도 했다. 대학입시 전문학원으로도 100% 합격률을 자랑한다. 비영리단체 ‘엔터아트’를 통해 댄스공연은 물론, 공연기획, 영상촬영에다 전문MC까지 해내는 재능 많은 두 부부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다양한 지역 행사에 꾸준히 초청 받으며 밝은 에너지를 전하고 있다고. 엔터아트아카데미 자체적으로도 정기적인 콘서트를 직접 선보이며 학생들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한편, 지역민들에게도 쉽게 접할 수 없는 댄스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해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모금을 통해 독거노인돕기 등 환원사업도 펼치며 따뜻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댄스를 통해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고 창의력을 기를 수 있도록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획일화된 댄스가 아니라 같은 동작이라 하더라도 각자만의 개성을 갖췄으면 하지요. 엔터아트아카데미 콘서트의 경우 각 지점별로 작품 스토리, 기획, 안무구성, 음악, 의상 등을 학생들 스스로 기획하고 연습합니다. 춤을 잘 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연의 레퍼토리나 스토리 라인의 설계까지 짜내면서 실력을 키워가는 거죠. 지방에서 춤을 추고 배우는 친구들이 어깨 쫙 펴고 당당하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도 계속해서 서포트 해나갈 수 있게 열심히 하겠습니다(웃음).” [1145]
    • 문화
    2023-02-27
  • 뜨거운 댄스의 열정으로 삶의 활력 되찾아 건강한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예비 사회적 기업」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신도로에 위치한 ㈜정글러 댄스 스튜디오는 여성가족형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댄스 학원으로 첫 사례가 더욱 의미가 깊은 이곳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전한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곳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주간인물은 타고난 춤꾼으로 새로운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손정희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올해 서른아홉의 손정희 대표는 타고난 춤꾼이다. 어려서부터 춤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그녀는 학창시절,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며 끼와 재능을 펼쳤다.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선박 회사에 디자이너로 일하며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던 그녀에게 춤은 잊지 못할 꿈이었단다. “학창시절, 춤은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는 탈출구였어요. 6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고 열심히 일하는 부모님은 늘 바쁘셨죠. 학창시절, 댄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춤을 연습하고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섰던 순간이 가장 행복했어요. 늘 ‘학교-연습실-집’을 오가며 바쁘게 생활했지만 그때가 가장 살아있는 것 같은 순간이었어요. 대학생 때도 외부 댄스팀을 결성해 활동했었구요.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사회인이 되었지만 춤에 대한 갈망은 여전했습니다. 댄스 강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직업이다 보니 고민도 많았지만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에 끝내 회사에 사표를 쓰고 댄스 강사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0대 시절,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춤에 대한 욕구는 비단 10대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마음껏 자신의 끼를 펼치고 새로운 재능을 찾고 싶은 중장년층의 춤에 대한 욕구도 대단하다. 조금은 부끄럽고 수줍은 마음에 망설여지는 춤 배우기. 손정희 대표는 그런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춤에 다가설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회원들도 점점 실력이 늘고, 수업에 빠지는 일 없이 즐겁게 춤을 배우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취미 생활로 춤을 배우고 싶어 하는 직장인, 삶의 새로운 활력을 찾기 위해 춤을 배우는 시니어, 건전한 여가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건강해지는 청소년들까지... 춤을 통해 새로운 삶의 기쁨을 되찾는 회원들이 있어 일할 맛이 납니다(웃음).”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즐거운 그녀의 수업에는 남다름이 있다 . 단순히 테크닉을 전수하는 것을 넘어서 열린 소통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 특히나 말 못할 고민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그녀는 누구보다 친한 친구이자 따뜻한 멘토다. “2~3년 전, 부산 서면에서 춤을 배우는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연습실을 열었어요.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다보니 너무 정서적으로 힘든 친구들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제가 춤을 가르치기 힘들 정도였는데 아이들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남모를 고충이 많더라고요. 자연스레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힘든 마음을 토닥여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더라고요. 그랬더니 부모님한테도 선생님한테도 말 못할 고민을 제게 털어놓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춤을 배우며 점점 밝아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그랬던 것처럼 춤이 이 아이들의 힘든 현실을 극복하고 꿈을 이뤄가는 새로운 돌파구였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그 연습실 이름이 정글러 댄스였고 그 이름을 따, 북구 화명신도시에 ㈜정글러 댄스 스튜디오를 열었습니다.” ‘청소년들의 건전한 여가문화 확산에 기여하겠다’는 창업정신에 걸맞게 이곳은 2021년 여성가족형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됐다. 댄스 학원으로는 첫 사례라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부산 북구진로교육센터를 비롯해 청소년상담센터와 다른 예비 사회적 기업과 MOU를 체결하고 건전한 여가문화를 선도하고 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10대 청소년들 중에서 아이돌에 열광하지 않는 학생이 있을까요. 그럼에도 아직도 청소년들이 춤을 춘다고 하면 곧 탈선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님들이 많아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건전하게 춤을 배우면 오히려 스트레스 해소와 자아실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함께 춤을 배우는 친구, 선후배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기에 인성 교육에도 효과적이죠. 이렇듯 청소년들의 건전한 여가문화 확산을 통해 올바른 전인성 교육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곳은 K-POP, 코레오, 힙합, 줌바 등 다양한 춤을 배울 수 있다. 아동, 청소년, 직장인, 시니어 등 학원을 다니는 연령층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열정과 실력을 갖춘 전문 댄스 강사의 맞춤 교육을 받을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요즘 가장 트렌디한 K-POP을 배우고 만족해하는 한 회원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K-POP을 배우는 것이 유행인데 이곳은 요즘 가장 트렌디한 K-POP을 배울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며 “개인 SNS 계정에 춤을 배우는 일상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라는 호평을 전했다. 손정희 대표는 댄스 강사지만 그에 앞서 가장 열정적인 춤꾼이다. 그녀가 가장 빛을 나는 곳은 역시 무대. 여러 댄스 대회에 나가 수상한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오랜 시간 갈고 닦아온 춤 실력은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무대 위에 설 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팀원들과 함께 무대를 준비하며 땀 흘리고, 성공적으로 무대를 완성했을 때 희열은 커요. 이런 충만함과 행복을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프로, 손정희 대표. 그녀는 열악한 댄스 강사의 근로여건 개선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댄스 강사의 근로여건이 워낙 열악하다보니 저도 어려울 때가 많았어요. 특히 코로나19가 유행할 때는 생업을 하지 못해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도 못했죠. 이런 어려움을 익히 알기에 후배들에게는 보다 좋은 근로환경에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싶어요. 앞으로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글러 댄스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후배들이 안정적인 근로환경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어요.” [1141]
    • 문화
    2023-01-27
  • 나만의 특별한 사진, 스토리텔링을 통해 피사체를 프레임 안에 담아내다
    사진이 대세인 시대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에 스마트 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우리의 일상은 스마트폰 앨범 속에 담겨 추억으로 남는다. 이제는 보다 전문적인 사진이나 영상들도 스마트폰으로 촬영할 수 있어 상업화하거나 전시회를 갖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나만의 특별한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누구나 한번쯤을 가져봤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통한 피사체를 프레임에 담아 예술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특별한 분위기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양재명 작가를 만나 셔터토그를 해보았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어릴 때부터 사진 찍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양재명 작가, 아버지께서는 중학교 2학년 때, 일본인 친구에게 부탁해 당시 야시카[YASHICA] 카메라를 선물해 주셨다. 당시만 해도 한국 경제수준에서 카메라는 굉장한 고가의 물품이었다. 그는 용돈을 모아 주말이면 흑백필름 2통을 구입하여 카메라를 들고 덕수궁, 경복궁 등을 오가면서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동네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장에게 사진 강습을 받는 등 사진 찍는 일에 남다른 열정을 가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진을 전문으로 배운 분이 아니었기에 전문적인 사진 강의라기보다는 현장실습 위주의 기술 전수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 땐 그 시간이 어찌나 좋던지요(웃음).” 양재명 작가는 서울예술대학 영화학과에 진학하면서 영화 카메라를 전공했지만 좀 더 전문적으로 사진과 카메라를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일본 최고의 예술학교인 도쿄비주얼아트에 입학하여 방송학과에서 ENG 카메라, 스튜디오 카메라를 공부하였고 졸업 후 다시 사진학과에 편입해 광고사진도 공부했다. 이후 미국 하와이 주립대학에서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하는 등 해외 각국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전문적으로 이론과 실기를 겸한 프로작가로 성장해갔다. 양 작가는 “이미 필름 카메라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고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 카메라의 시대도 스마트 폰의 편리함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누구나 스마트폰 하나면 자신만의 멋진 사진을 찍어 전시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편리하게 촬영하는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은 한계가 있지요. 전문 프로 사진가들이 DSLR 카메라를 고집하는 이유는 스마트폰으로 표현할 수 없는 디테일하고 심도있는, 자기 표현력이 강한 사진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진을 배우는 사람들은 꽃 사진, 풍경 사진을 주로 촬영한다. 그러다 혹 인물 사진을 찍을 때 배경은 흐릿하고 피사체의 인물만 또렷하게 표현된 사진에 매료된다. 그러나 피사체 심도의 깊고 얕음은 사진가가 주제에 적합하도록 촬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양 작가는 사진을 찍기 전에 반드시 ‘스토리텔링’을 이용하여 촬영하라고 권유한다.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이다. 이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스토리텔링’을 모른 채 그저 피사체를 보이는 대로 찍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마음의 창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예술 자신만이 생각하는 특별한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멋진 사진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생활 속에서 생활하는 장소에서 만들어진다. 그러기에 사진 자체를 특별하게 찍으려고 하기보다는 촬영하는 장소를 잘 선택하여, 멋진 사진을 만들 수 있는 곳을 찾아 그 장소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사진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선택한 장소를 찾았다면 장소에 담긴 보편적인 요소와 느낌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는 것이 핵심이며, 촬영할 때 그 장소의 특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요소를 찾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은 단순히 그 장소를 묘사한 사진과 그 장소에 대한 스토리를 전달하는 사진의 패러다임을 통한 사진의 이해라고 전했다 그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프로 사진가들은 촬영하기 전에 반드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토리를 생각하고 사진을 찍는다. 무턱대고 셔터만 누른다면 결과물에서 큰 차이가 난다. 남들이 공감하는 멋진 사진을 찍는 방법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렌즈와 조리개 셔터와 노출 그리고 빛의 관찰과 활용방식을 이용하여 프레임 한 컷에 주제(스토리)를 넣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토리와 함께 인간의 삶과 갈등, 진실과 정의, 삶과 죽음이라는 부제를 넣어 촬영하라고 권유한다. 양 작가가 생각하는 사진은 카메라의 메커니즘과 렌즈에 의한 광학적 기록이기보다는 사진가의 마음의 창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또한 ‘사진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피사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같은 피사체라도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 독특한 종합예술이라고 강조했다. [1141] •서울예술대학 영화과(연기, 영화 카메라 전공) •일본 선샤인 외국어대학 일본어과, 도쿄비주얼아트 방송학과 및 사진과 졸업 •미국 하와이 주립대학 저널리즘 전공 •호텔신라, 삼성에버랜드, 대상 청정원,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조일제지 엘르골프, 엘르스포츠 등 다수의 유명 기업광고 촬영 •현)서울외신기자클럽 정회원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소속 골든브릿지(금교) 서울특파원 외신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국무위원, 김영남 조선노동당 상임위원장 등 세계 각국 정상들과 노태우, 김영삼,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 취재 •대학에서 사진 강좌와 칼럼을 쓰고 매년 사진 전시회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수상 내역 •2020.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보도 기자 대상 •2021. 제7회 대한민국 예술문화 스타 대상 문화예술 대상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 대상 보도 기자 대상 Great 대한민국 100인 대상 보도 부문 대상 •2022.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취재 보도 대상
    • 문화
    2023-01-27
  • 자연이 주는 치유, “온 가족이 함께하는 행복한 하루를 선사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감각과 운동적 조작을 통해 배운다. 그러므로 자연 환경은 유아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적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자연 세계 자체가 거의 모두 유아들이 직접 경험하고 조작할 수 있는 생생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자연 세계에서의 다양한 경험은 다음과 같이 유아에게 발달의 모든 측면에서 성장을 도모해 줄 수 있다. -Wilson, 1995-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어떻게 하면 이 귀한 시간을 가장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되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보고 듣고 몸으로 부딪히는 체험활동을 하고 부모들은 탁 트인 자연 속에서 차 한 잔하며 힐링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떨까?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읍 율리중마을길 55에 위치한 청송자연농원을 찾았다. _김유미 기자 고즈넉한 산속에 자리잡은 ‘청송자연농원’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한 느낌이 든다. 40여년 식당으로 운영되던 공간은 리모델링을 거쳐 스마트팜, 카페, 펜션, 수영장이 들어선 복합체험공간으로 탄생했다. 여름에는 계곡 옆 평상에서 더위를 식히고 계곡물을 받아쓰는 수영장에서 피서를 즐길 수 있고, 카페와 스마트팜에서는 아이들의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사시사철 운영되는 펜션 역시 인기다. “아이들과 함께 한 소중한 체험들은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지요. 온 가족이 함께 오셔서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차를 하고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보자 고무장갑을 끼고 여기저기를 살피며 정돈하는 류금순 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뒷산까지 너른 부지에 건물만 해도 두 동, 손이 많이 갈 수 밖에 없을 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까지 맞아가며 일하는 모습이 정스러워 한참을 바라봤다. 역시나 직접 만나본 류 대표는 순수하고 따뜻한 미소의 소유자였다.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했어요. 정말 바쁘고 성실하게 일했지요. 하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더라구요(웃음). 점점 체력에 한계를 느끼던 즈음, 남편과 함께 청송자연농원을 좀 더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연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정말 멋진 곳인데, 어떻게 하면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힐링하고 가실 수 있을까.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요.” 류 대표는 올해 여름부터 카페를 오픈하는 동시에 꼬마농부체험을 시작했다. “화분을 꾸미고 아기허브를 심고 밀짚모자를 꾸며 나만의 농부모자 만들기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정말 호응이 좋았어요. 카페 옆 비닐하우스에 심어논 아기 옥수수와 파프리카, 상추, 딸기 등으로 시기별로 새로운 체험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들이 자꾸만 떠올라요(웃음).” 가을에는 뒷산 감나무에서 감따기 체험을, 빼빼로데이를 앞두고는 빼빼로 만들기 체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퐁퐁트리 만들기가 진행됐다. 지금부터 1월 말까지는 딸기케이크 만들기 체험이 가능하다. 하우스에 있는 다양한 작물 따기는 언제든 환영이다. “특별히 홍보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이 나서 부산, 울산, 양산 등지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더라구요. 카페와 체험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차선영 실장의 역할이 큽니다. 본인이 두 아이의 엄마이자 공예, 요리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분이라 굉장히 알차고 세심하게 준비해주세요.” 모래놀이터와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등 아이들을 위한 배려 속 주인장의 넉넉한 마음이 엿보인다. “운동 부족, 대화 부족인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긴장을 풀고 함께 다양한 체험을 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잘 준비해놓고 있겠습니다(웃음)." 카페 창가에서 바라본 산 아래 웅장한 풍광은 신선이 된 듯 한 느낌까지 갖게 한다. 여유로운 좌석과 테이블 배치에 각종 허브로 꾸며진 실내조경 역시 숨통이 확 트일 정도로 깔끔하고 시원하다. 연못 속에서 노니는 금붕어까지, 자연 그대로를 담아논듯 특별하다 . “최근 단체 예약도 많아지고 있어요. 체험이 끝나면 부리나케 떠나는 형식적인 체험농장이 아닌, 충분히 즐기고 놀면서 멋진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청송자연농원의 소식들을 계속해서 올릴 테니 많은 관심가져주세요.” [1144]
    • 문화
    2023-01-27
  • 탈모인의 새로운 희망, 두피 문신 “완벽한 시술(S.M.P)로 보답해야”
    S.M.P(Scalp Micro Pigmentation) 두피 문신은 두피에 미세한 바늘로 점을 찍는 시술로, 작은 점을 찍어 모근처럼 보이게 해 탈모 부위를 자연스럽게 채워주는 효과가 있다. 이 시술은 의료용 시술에 속하며, 모발을 직접 심는 것에 비해서 통증이 덜하고 회복 기간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겨울로 넘어가는 지금의 계절엔 짧은 일조량으로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탈모를 유발한다. 숭숭 빠지는 머리카락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어 탈모로 고민하는 젊은 층이 차츰 증가하는 요즘, S.M.P를 찾는 이들이 더욱 늘고 있다. _김민진 기자 촉망받는 육상선수에서 스칼프 테크니션(Scalp Technician)으로 더스틴(DUSTIN), 제2의 인생을 점찍다 “내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고객상담 시 그 누구보다 “탈모인의 마음을 잘 안다”고 운을 뗀 더스틴(DUSTIN) 주식회사 그레이시티 스칼프 잠실본점 대표원장은 S.M.P로 전국에서 모이는 뜨거운 상담과 기술 문의로 지역마다 본점을 설립하는 가운데 현재 부산본점도 담당하고 있다. 훤칠한 키와 남다른 체격으로 인터뷰 현장 복도를 순식간에 런웨이로 만들어버린 그는 알고 보니 육상선수로 15년간 필드를 뛰며 촉망받던 유망주였다. 어떻게 S.M.P의 길을 걷게 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새벽부터 야간훈련까지 정해진 시간과 프로그램에 맞춰 규칙적인 운동인의 삶을 살면서 마치 농부와 같이 1년 내내 사시사철 모든 역경을 견디고 훈련하다가 수확하는 때 딱 한 번 전국체전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게 때론 허무한 마음이 들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는 중에 사춘기 시절부터 슬슬 탈모 징조가 보였고, 운동할 때나 외출할 때 늘 저에겐 모자가 필수였습니다. 머리카락에 대한 스트레스로 무슨 일을 하든 100% 몰두가 안 되더라고요. 운동을 하면서 땀이 날 때도 물놀이를 가보려고 해도 자연스레 머리 스타일링에 대해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알게 된 그레이시티에 두피 문신 받으러 갔다가 상담하면서 ‘이건 된다, 무조건! 내가 먼저 배워보고 시술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번뜩이며, 이제는 ‘주도적으로 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세상으로 나가는 첫 발걸음! 그레이시티(GRAYCITY)와 함께 더스틴(DUSTIN) 대표원장은 S.M.P를 접하기 전에 모발이식, 부착식 가발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양한 시도와 많은 돈을 썼기에 고객들이 상담하는 동안 그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는 것부터 큰 용기를 가지게 된다고. “나이가 지긋이 드신 어르신도 20년간 가발을 써오시다가 저를 만나셨고요. 학부모도 딸아이와 손잡고 오셔서 상담받으시고, ‘졸업식 때 가장 멋있는 아버지로 만들어드리겠다’는 약속도 지켜드렸죠. 이러한 여러 고객 사례 중에서도 꽃다운 스무 살 청년의 시술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두피 전체의 모발이 빠지는 전두탈모로 몸과 마음 모두 병이 든 상태였지요. 동행하셨던 어머님도 같이 우시는데... 그 모습에 이 친구를 반드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고, 시술 후 만족 그 이상의 감동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시는 고객분들을 보면 이 일을 시작하길 참 잘한 것 같다는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1142]
    • 문화
    2022-12-26
  • 경북문화관광공사에서 선정한 뷰 카페, 김천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발돋움 중
    카페가 단순한 음료를 넘어 더 깊은 취향의 영역으로 들어선 지금. 커피 본연의 맛과 종류도 중요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공간에 대한 스토리가 더해진 디테일이 주목된다. 넓은 주차장을 기본으로 드라이브해서 찾아가는 맛도 있는 대형카페의 경우엔 건물의 외관부터 입구, 실내, 정원 등 모든 공간이 하나의 컨셉으로 디자인돼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주간인물에서 찾은 지역 핫플레이스로는 높은 건물과 넓은 실내, 커다란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으로 도심 속 카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김천의 떠오르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 ‘메타1976’을 선정했다. _김민진 기자 애향심을 바탕으로 탄생한 메타1976 가상과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를 딴 카페명과 디자인 컨셉을 잡았다는 건축주, 김나영 대표는 토목 관련 근무 경험이 있는 남편 김규식 씨와 ‘1976년생’ 동갑내기 커플로 두 사람의 아이디어가 가득 담긴 이 공간을 위해 경제적으로도 그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메타1976>을 내걸고, 남다른 고향사랑으로 김천시 조각공원길 330-137에 카페를 세웠다. “별을 상징하는 조명 하나하나에도 남편이 신경을 많이 썼어요. 무심코 보면 아무도 알아채지는 못하겠지만, 저희 부부 눈에는 사소한 아이템 하나도 그냥 못 넘어가겠더라고요(웃음). 천장형 에어컨을 설치할 때도 건축컨셉에 잘 어울릴만한 브랜드를 고르고 골라서 최대한 우주를 연상케 하는 공간 구성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어디 멀리 찾아가지 않고서도 제가 사랑하는 고향, 김천 안에도 집 앞에 힐링할 수 있는 명소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건축 쪽으로 일가견이 있는 남편의 도움이 컸습니다.” 최근 김충섭 김천시장도 메타1976 카페에 깜짝 방문해 김천시민을 위한 문화공간 조성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소속의 박정아 배구 선수도 들려 휴식 시간을 보내 신상 카페임에도 불구하고 지역민은 물론, 김천 IC를 지나던 여행객들도 “고속도로에서 반짝거리는 예쁜 불빛이 눈길을 끌었다”라며 이곳을 찾는 발길이 크게 늘고 있다. “남녀노소 모두가 건강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메타1976은 대형 베이커리, 브런치 카페로 유명한 만큼 모든 빵은 100% 유기농 밀가루로 당일 생산되는 시스템으로 그날 남은 새 빵은 인근 보육원에 기탁하는 나눔을 실천하는 김 대표는 “아주 작지만, 저희가 하는 일이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라고 수줍게 전했다. 평일 낮, 취재진이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을 때도 유독 노인층이 주 고객을 이룬 모습이었다. “어르신들은 커피를 안 좋아한다는 말은 다 옛날 말이다”라며, “특히, 저희 빵을 먹고 나면 속이 편하고 더부룩하지 않아서 좋다고 카페에서 드신 후 나가실 때 또 사 가신다”라고 김 대표가 빵에 대한 자부심을 표해 메타1976에서 제공하는 베이커리 중 몇몇 차별화된 시그니처 메뉴 소개를 부탁했다. “<파주빵>은 저희 셰프님이 파주에서 근무하실 때 방송까지 나왔던 빵인데요. 완두콩이 들어가 소화가 잘됩니다.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며, 어르신들의 입맛에도 취향 저격이죠. <먹물 어니언>은 오징어 먹물로 반죽했고, 안에 양파와 크림의 조합이 느끼하지 않으며 손님들께서 ‘한국인의 입맛에 딱이다’라고 말해주시는 빵이어서 매장 내 인기 제품입니다. <소금빵>의 경우엔 다른 곳과 차별화를 둔 부분이 쌀가루 50%를 첨가해 쫄깃하고 담백함은 배가 되고 버터가 적당히 들어가면서 더욱 고소한 풍미가 담겨 단짠(달고 짠)으로 갓 구워낸 소금빵은 겉바속촉의 끝판왕이라고 부르지요(웃음). 소금빵 다음으로 인기 있는 빵인 <바질 토마토>는 토마토, 바질, 베이컨의 환상적 조합이 피자빵인 듯 아닌 듯 묘한 매력을 줍니다.” 이외에도 메타1976의 아포가토(Affogato)는 상하목장 아이스크림과 최고급 이탈리아 원두의 절묘한 만남을 이루며, 매장에서 직접 생산한 수제 마카롱과 함께 큐브 치즈와 스틱 과자로 완성된 음료 또한 김 대표가 자신 있게 추천하는 메뉴다. “각종 전시와 공연이 펼쳐지는 문화예술의 장으로” 통유리 창으로 펼쳐지는 탁 트인 뷰와 더불어 카페 안에서는 지역민에게 다양한 문화공연을 선사하기 위해 계획 중에 있다고. 이미 메타1976의 공간을 알아 본 단골손님들이 먼저 제안하여 진행된 유치원 하우스콘서트, 고교입학설명회 등도 성황리에 마쳤다. 음악과 미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눈과 귀가 힐링이 될 수 있도록 꾸며가고 있는 곳이다. “밤샘 작업을 거친 또 하나의 작품 탄생이 있었습니다. 밋밋하고 뭔가 허전하던 공간에 무얼 채워 넣을까 고민고민하다가 그냥 시중에 파는 흔한 그림 액자는 걸고 싶지 않아 작가님을 섭외해서 직접 작업을 했지요. 메타의 규모에 걸맞은 초대형 사이즈의 그림이 압도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화려한 컬러감과 현대적인 예술미에 매료당하실 겁니다. 오 작가님 이하 여러 작업자님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메타1976의 역사에 한 획을 그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카페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세상 유일한 미술작품을 메타1976에서 많이 감상하실 수 있도록 재능 있는 작가님들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무분별한 확장은 지양하고파” 카페 오픈하고 몇 개월 채 되지 않아 초창기부터 프랜차이즈 문의가 잇따른 메타1976은 707특수임무대대 출신인 남편 김규식 씨의 강직하고 올곧은 가치관을 존중하고 한마음으로 뜻을 같이하는 김나영 대표의 확고한 경영이념으로 무분별한 확장을 지양한다. “저희 카페의 진가를 여기저기서 알아봐 주신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하고 뿌듯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럴수록 처음 저희 부부가 지녔던 창업 신념을 잃지 않으며, 고객님들께 건강하고 신선한 빵과 음료를 제공해 드림에 변함이 없을 것을 약속드리며 집중하고 싶고요. 이후에 현재의 규모보다 조금 더 크게 직영점으로 하나 더 세워서 많은 시민들이 모임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짓고 싶습니다.” [1142]
    • 문화
    2022-12-26
  • 차(茶) 한 잔으로 인생이 바뀌는 기적! “맛있는 차를 만드는 제다인(製茶人)으로 남고파”
    경주시 건천읍 단석로 1757에 자리한 ‘다다티하우스’는 대한문인협회 시인으로 등단한 주인장이 운영하는 카페로 “내 시는 읽기 쉬워야 한다”는 철학이 이어져 “차(茶)도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제조시설을 갖춘 이곳에서 수제약선차를 선보이고,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 운영 및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마침 차생활지도사 수업을 마친 이은주 대표와 향긋한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차로 인생이 바뀐 그의 삶을 들어봤다. _김민진 기자 Q1. 차(茶)를 가까이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현재 맡고 계신 일들도 함께 소개해주신다면. A.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아버지께서 가꿔 온 모든 꽃이 사시사철 잎 하나 마른날 없이 항상 싱싱하고 향기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7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 아이의 엄마로 돌아와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정한 마음이 들 때 “그래, 내가 잘하는 일은 풀 만지는 일이었지”라고 번뜩 떠올랐죠. 평소 관심을 가지고 블로그에 700여 편의 글을 모아왔던 약초에 관한 상식으로 ‘약초활용요법’이라는 평생교육원 과정을 듣다가 약초를 먹는 방법을 좀 더 간편하게 하고 싶어 제다(製茶)에 관심을 가지고 ‘꽃차소믈리에’를 시작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고 더 깊게 알아가고 싶은 것이 넘쳐났던 저는 늘 질문하는 학생으로 결국엔 교수님께서 대답을 못하는 지경까지 오셨죠(웃음). 그리고 배운지 1년 만에 <산우산야초꽃차문화원>을 개원하고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1997년, 적어도 제가 가르친 제자들만큼은 어려움 없이 사범 활동을 하고 자신들의 작은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를 창설해 꽃차소믈리에, 약선차사범, 차생활지도사 과정을 교육하고 있어요. 현재 <다다티하우스> 카페도 운영하며, 중국의 국영차창 ‘운남동경호(雲南同慶號) 보이차’를 수입 및 판매하는 총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Q2. 차(茶) 교육에 대한 열망이 더 크신 것 같습니다. 타 문화원과 달리 크게 차별화를 둔 부분이 있으신지요? A. 한국차, 중국차, 일본차를 모두 교육하는 이색카페로 전국각지에서 수강생이 찾아오는 유일무이한 곳이죠. 모든 차를 판매하고, 시음도 할 수 있는 1층 카페에서는 사실상 영리를 위하기보다는 차를 알리기 위한 무료 나눔이 주를 이루는 공간입니다(웃음). 특히,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의 꽃차소믈리에 과정은 전국 최초로 잎차를 6대 다류 제다법으로 분류하여 만들기 시작했어요. 꼭 찻잎이 아니더라도 허브 종류의 잎 혹은 꽃도 경발효, 비발효, 부분발효, 산화발효, 후발효차로 만들어 전통차의 제다법을 따르고 이를 바탕으로 차 공부에 깊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단지 꽃차만 배우는 것이 아닌, 제다법을 통해 차를 알고 전통차를 이해하여 차의 본질을 알아 가는 차생활지도사 과정을 통해 한국/중국/일본차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으며, 생활 속 차인(茶人)이 돼가는 과정을 습득하게 되죠. 그리고 사범 과정을 통해 각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드리고 있습니다. Q3. 10년 넘게 차(茶) 외길인생을 걸어오신 대표님의 교육으로 제자들의 인생이 바뀐 특별한 사례도 있으시죠? A. 감사하게도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를 통해 70개의 문화원이 만들어졌습니다. 먼 곳에서 그들을 응원하며 지켜보는 제 마음이 얼마나 흐뭇한지요. 제가 겪었던 것처럼 경단녀의 삶에서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 수료 후, 다시 자기의 협회를 만드신 분도 계시고 대학에서 강의하고 계신 분도 있으며 작은 공방을 차려서 열심히 수업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면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계신 인생 선배님들이시죠. 삶은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나이 55살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꿈을 정해 놓고 그 꿈을 위해 나아가다 보면 그 어느 날 우리는 그 꿈에 닿아 있지 않을까요?”라고 제자들에게 항상 하는 말입니다. Q4.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경이 있으셨을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그 일로 깨달은 삶의 철학이 있으시다면. A.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던 저는 두 살 터울 오빠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공부를 더 할 수 없었어요. 늘 꿈에 야간 고등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는 꿈을 꾸는데 아이를 업고 가서 달래고 기저귀를 갈고 있더라고요. 이 똑같은 꿈을 수십번 꿔서 외울 정도였습니다. 3~40대 시절은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일찍 아이들을 키워 놓고, 47살에 제가 벌어서 다도대학원을 입학했지요. 2019년, 위덕대학교 외식산업학부에서 또 공부를 시작했고, 처음에 8학기는 이것이 정녕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을 만큼 높은 장벽이었습니다. 만학도 장학금을 받는다 쳐도 제게는 힘든 경제적 난관이 많았죠. 이제 마지막 기말고사 한 번만 치고 나면 졸업입니다! 삶은 꿈꾸는 자의 것이죠.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강철맨탈챌린지’로 제자들은 12개월 동안 1일 1글 포스팅이라는 어려운 일도 해냈습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Q5. 차(茶)를 비싸고,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비싼 한복을 입고 행다(行茶) 위주의 다례원 교육을 받는 등 어려워하시는 분이 많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차는 커피처럼 마시는 음료입니다. 단지 관심이 조금만 있다면 사람들과 소통하며 스스로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여유를 주는 맛있는 음료죠. 우리의 차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해 보면서 ‘초암차보존회’를 만들어 차의 역사를 바로잡고 알리기 위해 힘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차보존회 속의 생활차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차는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임을 꼭 알리고 싶습니다. [1142]
    • 문화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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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잘돼! 할 수 있어!’ 진정한 ‘불교’를 행하며 자비를 베푸는 곳, 안심정사
    생활불교로 널리 알려진 법안 스님(안심정사 회주). 그는 <운명을 바꾼 사람들>, <걱정 말고 기도하라>, <법안스님과 함께 하는 불교 교리>, <생활법문> 등의 책을 출판한 한국불교태고종(韓國佛敎太古宗)의 학승이다. 현재 법안스님은 전국적으로 6개 도량 (부산, 논산, 대구, 서울, 창원, 제주)을 오가며 자비와 나눔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백미 기탁, 봉사활동 등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있는 것. 대한민국이 한국불교태고종(이하 태고종)으로부터 올바른 ‘불교’를 행하기를 바라는 법안 스님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나랑 같은 시대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렵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수도승이나 교화승은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불교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종교든 자비의 실천이 가장 중요하며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 그 수많은 자비의 실천 중에서 전국에 위치한 안심정사에 대한 이야기로 긴 인터뷰를 시작했다. “우리가 하는 활동은 네 가지 입니다. 첫 번째는 불자들이 오면 신앙심을 갖도록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게 기도 의식이에요. 첫 번째가 가장 중요해요, 여기 신도들이 오면 기도를 하잖아요. 수도승이 독경염불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 이유가 마음이 편안해지기 위해서 일정한 틀의 법회, 즉 의식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함께해 신앙심을 통해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도움을 줍니다. 두 번째는 교리학습입니다. 불교라는 종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이잖아요. 그 가르침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신자가 문제가 생기면 그에 따른 답을 줘야 하잖아요. ‘스님 괴롭습니다’라고 하면 ‘부처님께선 이런 상황에 이런 괴로움이 생긴다고 하십니다’라며 교리 학습을 시켜줍니다. 세 번째 신앙상담입니다. 1:1로 신도들을 만나 상담을 해줘야합니다. 1000명씩 두고 강의하면 다 알아듣는 것 같아도 사실은 알아듣는 게 끝이 아니에요. 내일 시험을 본다고 하면 상담을 하며 일러줍니다. 네 번째는 자원봉사입니다. 전국 군법당에 8~90% 초코파이 초코바를 넣어주고 있습니다. 신병교육대에도 들어가죠. 한 달에 2000만원씩 베풀고 있습니다. 또 각 6개 지자체에 쌀이 매년 120톤씩 들어갑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안심정사의 손이 닿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이렇게 기도법회, 교리학습, 신앙상담, 사회봉사 네 가지 큰 맥락으로 불교를 행하고 있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이전에 태고종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도 ‘대승, 보살, 교화 이 세 가지’라며 유창한 달변을 이어갔다. “‘대승'은 모두가 극락을 가자는 것,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상구보리하와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 위로 보리, 즉 부처님 말씀을 배우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행복해지고 성공하는 불교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 그게 바로 보살과 교화입니다. 그래서 대승, 보살, 교화 이 세 가지입니다.” 스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불교’란 무엇일까. “불교라는 종교는 저 하늘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라”라고 하는 게 아니라 지장보살님처럼 지옥에 직접 들어가 같이 지옥에서 사는 것입니다. 불난 집에 들어가 번뇌 속에서 중생들과 함께 부대끼며 사는 것이 태고종의 정체성이죠. 그래서 결혼도 허락이 됩니다. 지금까지 역대 부처님이 다 결혼을 하셨고 아드님이 다 있었죠. 단순히 독경, 수행만 하는 게 아니고 세속을 겪어내며 불자들을 구원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결혼을 해봐야 불자들의 부부사이의 번뇌를 보살필 수 있습니다. 아들에 대한 집착, 가정사에 대한 모든 문제를 겪으며 해결해야 부처가 될 수 있고 보살들을 교화할 수 있습니다. ‘스님이 가정에 대해 어떻게 아시나요?’라는 질문에 ‘나는 결혼해봐서 잘 알아요’라고 답변해줍니다(웃음). 신도가 궁금해 하는 것에 답을 주지 못한다면 누가 나를 찾아오겠습니까?” “태고종은 선종이지만 염불로 교화를 합니다. 조상천도나 방생을 통해 아픔을 어루만져 주기도 하죠.” 그의 말을 뒷받침하듯 안심정사 1432년 효령대군이 지낸 이후 최초 ‘한강 수륙재’를 통해 호국영령과 무주고혼 등을 위문했다. 500여 년 만의 수륙재를 안심정사가 어떻게 이뤄냈을까? “처음엔 반대가 많았습니다. 어느 종단도 사찰도 한강에서 수륙재를 할 수 없었죠. 그걸 안심정사가 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비웃었어요. 종교행사가 안된다고 하니 저는 수륙재 명칭을 ‘영산재(문화축제)’라고 칭하기로 했죠. 그러니 반대할 명분이 없게 되었습니다(웃음). 개신교 신자였던 당시 공원사업소장은 나중에는 수륙재가 연례행사가 될 수 있도록 도움도 주셨습니다. 한강에서 수륙재를 하고 나니 전국 어디서도 수륙재를 봉행할 수 있게 됐죠. ‘한강에서도 했는데 왜 안되냐’면서 한강 수륙재 자료를 보여주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회마다 1억 이상 삼보정재가 들어가지만 행사를 마치면 1억 이상이 다시 보시로 들어옵니다. 제주도 수륙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베풀면 그만큼 돌아옵니다. 폭리를 취해서도, 취하려고 해서도 안되요. 그저 베풀기만 하면 됩니다.” 대중포교인 ‘생활법문, 기초교리’를 중심으로 불교 전파에 큰 획을 그은 법안스님. 이에 그치지 않고 군부대에 ‘부처님 말씀’이라는 소책자를 매년 6만권 ~ 12만권 기증해 현재까지 54만권을 보냈다. 젊은이들에게 불교를 전하기 위해서 만화로 경전을 만들기도 한 법안스님은 포교에 있어서 선을 정해두지 않는다. “부산의 지자체장분들 중에 불교신자가 많이 계십니다. 리더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지도자 양성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 불교계와 안심정사가 돕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인이자 지도자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하고자 합니다.” “과거, 절도 없이 작은 골방에서 지내며 한국불교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진정 불교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대부분이었죠. 국민들의 불교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기 위해서 아주 많이 노력했습니다. 당시 불자들은 ‘마음 비워야하고 사회에서 희생하고 양보해야한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제가 불자들한테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어요.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 ‘번뇌망상’을 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교만하고 하는 악한 마음이죠. 반면에 희망 용기 의욕을 버리라고 한 적은 없어요. 나쁜 것들을 버려야지 모든 마음을 다 버리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는 게 아니고 불교로 돌아가자며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설득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엔 ‘태고종 중이 빨간 가사 두르고 방송에 나왔다’라며 면전에다 비속어를 하는 등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다. 하루는 절에 직접 찾아와 분노를 쏟아내는 한 신자에게 법안스님은 당당하게 일침을 놓기에 이르렀다. “‘번뇌 일으키지 마라. 내가 너를 아는데 과거 나는 예비고사에서 최상위 분야였다. 너와 레벨이 달라, 나는 한 고등학교에서 IQ가 제일 높은 사람이었다. 내가 태고종 중으로 빨간 가사 두르고 있지만 교리와 학문적 불교 공부도 다 마쳤다. 너랑은 수준이 다르다’라고 일침을 놓았죠. 그러니 조금 있다가 조용히 자리를 뜨더군요. 반면에 제가 학문적으로 지식을 갖췄더라도 명확히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불자들에게 모른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웃음).” 안심정사에 쌀을 가져다 놓으라고 한 적이 없지만 지금도 안심정사 논산 본찰에는 1주일마다 쌀이 1000kg씩 쌓인다. 신자들의 돈독한 신뢰가 스님에게는 큰 선물이라고. “그 신뢰를 지키기 위해 매 끼니 한 그릇 흰죽만 먹으며 밖에서는 음식을 안 먹습니다. 술, 고기, 오신채는 입에 대지도 않아요.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엔 밥 한 그릇을 물에 말아서 한 끼 식사를 합니다.” “무슨 일이든 뜻만 있다면 이룰 수 있습니다. 계율을 잘 지키고 늘 기도하고 수행한다면 못 이룰 일이 없어요. 본래 제 사주는 무재, 무관 사주였습니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 연구하며 자기계발서를 100여 권 읽었죠. 결국엔 마음먹기 달렸다는 이야기, 곧 불교의 심법과 이어지는 말인 겁니다. ‘이 쉬운 일을 사람들은 어렵게 생각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여기서 영감을 얻어 소원표, 기도표를 만들었습니다. 나는 ‘누구나 내게 오면 내가 아낌없이 줄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소원했습니다. 무재, 무관 사주인 제가 부처님 품에서 안심정사를 일구고 여기저기 베풀면서 삽니다. 환경은 누구 편이 아닙니다. 내 편이라고 생각하면 내 편이 되고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내 편이 아닌 것이 되는 겁니다. 이렇듯 불교는 심법 입니다. 생각을 통해서 내 환경과 운명을 바꾸는 종교죠. 생각을 바꾸면 잘될거에요. 빠르거나 더딘 차이만 있을 뿐이죠.” “불교의 문제점은 불교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교라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쪽으로 돌아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웃음). 절대로 신도들을 통해 돈을 벌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베풀면 돌아온다. 베푸는 게 사람들 마음을 열기 쉽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저 베풀기만 하면 됩니다. 베풀면 그만큼 그 이상이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안심정사를 200곳으로 늘여 더 많은 신도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스님은 “절은 많은데 스님이 없다. 안심정사를 새로 열고 보낼 상좌가 없다”라며 태고종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하루빨리 ‘바른 불교’로 돌아가야한다는 그의 의지가 어려운 시기, 큰 위로가 된다. [1108]
    • 문화
    2020-12-30
  • 한국 장례꽃 장식 발전에 기여한 ‘엔딩 플로리스트’ ‘울산광역시 최고장인’ 선정으로 화제!
    최근 이윤희 이윤꽃예술원 대표는 제6회 울산광역시 최고장인으로 선정됐다. 울산시는 미용과 화훼장식, 패션디자인, 실내건축, 용접 등 5개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과 업적을 쌓은 5명을 제6회 울산광역시 최고장인으로 선정했다. 이번 화훼장식 분야의 최고장인으로 선정된 이윤희 대표는 41년간 화훼분야에 종사하면서 고전적 형태의 장례꽃 장식을 현대적 기법으로 연출하는데 기여한 인물이다. _박미희 기자 이윤희 대표는 41년간 화훼장식 분야에 천착(穿鑿)해온 장인이다. (사)국제꽃예술인협회 이사장으로 국내 최초 장례화훼 기능경기대회를 개최하고 장례꽃 관련 서적을 출간하는 등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독일 장미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해 세계에 한국 장례화훼의 우수성을 알린 이윤희 대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장례꽃 전문가, ‘엔딩플로리스트’다. ‘울산광역시 최고장인’ 선정이란 핫이슈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울산 영락원을 찾았다. 한국 장례문화를 선도하는 울산 영락원은 최신식 시설을 갖추고 고품격 장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영락원의 장례꽃을 전담하고 있는 그녀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사람이다. 장례화훼 기능경기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루기 위해 서울 출장을 다녀왔다는 그녀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밝은 표정으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최고장인 선정 소감에 대해 묻자 그녀는 빛나는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소감을 밝혔다. “최고장인 선정은 개인적으로 가장 뜻 깊은 일이에요. 울산 영락원이 생기면서 처음 울산에 와서 지금까지 일하면서 11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가버렸네요. 처음엔 많이 낯설고 힘든 점도 많았지만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고 많은 도움을 받아 이제는 제2의 고향과 같은 울산에서 최고장인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합니다.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제가 화훼분야에서 울산에서 처음으로 선정됐다는 것은 앞으로 화훼분야 발전에 기여하라는 뜻으로 압니다. 앞으로 울산광역시 최고장인이란 이름에 걸맞게 인재육성과 산업발전에 기여하라는 큰 숙제를 받았다고 생각해요(웃음).” 이윤희 대표는 타고난 심미안(審美眼)을 지닌 플로리스트다. 꽃꽂이와 요리가 신부수업의 필수이던 시절, 취미로 꽃꽂이를 배운 그녀는 화훼장식의 매력에 푹 빠졌다. 1979년도 한국 꽃꽂이협회 헬레나 초급 입문을 시작해 1급 사범을 수료했고 1986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15년간 선진 화훼장식 문화를 배웠다. 일본 현대 꽃꽂이 전문학교인 ‘마나코’를 졸업한 뒤 ‘Lee Art’ 꽃꽂이 분교 학원을 창업했다. 일본 유학생활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해 묻자 그녀는 꽃으로 한국을 알린 일화에 대해 말했다. “88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에 일본 전통 꽃꽂이 미생류에서 개최하는 일본여류작가전에 외국인 최초로 참가했어요. 기모노를 차려입은 일본인들 속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좋은 작품을 선보였어요. 보수적인 문화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히 꽃으로 한국을 알린 제 모습을 보고 감격한 친구가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요.” 일본의 선진 화훼장식 문화를 배운 그녀는 귀국 후 2002년에 첫 사업자를 내고 화훼산업 분야에 정식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그녀는 국제행사 화훼장식 기획총괄, 기업체 공간장식 전문가, 엔딩 플로리스트, 웨딩 플로리스트, 화훼사업 경영자, 독일 조경사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대표적으로 2005년 APEC 정상회담, 2006년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화훼장식을 맡아 APEC하우스, 벡스코, 그랜드호텔 등의 화훼장식을 담당했고, 2015년 한·중·일 국가정상회담의 화훼장식을 맡아 청와대 영빈관의 화훼장식을 하기도 했다. 2006년 아·태 신시장 포럼, UN교통장관 회담, 2015 아시아 송 페스티벌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담당해 화훼장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국제행사를 총괄한다는 책임감에 밤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이윤희 대표. 고된 작업이었지만 국제무대에서 빛나는 작품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단다. “큰 행사 하나를 담당하면 생각보다 많은 곳에 꽃이 필요해요. 행사가 열리는 무대와 장소뿐만 아니라 건물 로비, 계단 등 많은 곳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또한 오프닝파티, 에프터파티의 장소와 손님들이 묵을 호텔 내부 꽃 장식까지... 국제행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곳을 신경써야하기 때문에 상당히 고된 작업이죠. 하지만 공들인 작품들이 국제행사에서 빛날 때 정말 보람을 느껴요. 무엇보다 국제행사를 통해 한국 화훼장식의 가치를 세계에 알렸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선진 화훼문화를 배우기 위한 그녀의 열정은 컸다. 다시 독일 유학길에 올라 2004년 독일상 공부 조경사(실내외조경분야 응용)를 취득했고 같은해 독일 조경박람회에 참가해 금·은·동 메달을 수상했다. 독일에서 체계적인 화훼기술 이론을 익혔고 선진 조경기술을 습득해 산업에 적용하는 시도를 했다. “도시화로 녹지공간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요. 이런 맥락에서 일찍부터 국내에서 그린 디자인 작품을 시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2004년에 아르피나호텔에 코르크를 활용해 산을 형상화한 작품을 연출했고 2008년에는 에덴벨리스키장 골프장에 실내 액자형 녹화작품을 연출하기도 했지요. 시대를 앞서 그린 디자인 작품을 연출한 경험을 통해 관련 숙련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요.” 그녀는 세계무대에서 한국 화훼장식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국제세미나와 국제박람회에 참여했다. 2018년에는 독일 장미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화훼 선진국인 독일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수상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어요. 한국 화훼장식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세계의 주목을 많이 받았고 기업의 러브콜도 많이 받았습니다. 한국 화훼장식을 더 발전시킨다면 장차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 될 것이라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41년을 회고하며 그녀가 가장 큰 보람으로 꼽는 일 중에 하나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장례화훼 기능경기대회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 화훼산업은 선진국인 일본, 독일에 비해 미개척지와 같았습니다. 장례꽃 관련 전문서적이 부족했을뿐더러 체계적인 이론이 정립되어있지 않아 후학양성에 어려움이 컸어요.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장례화훼기능경기대회를 마련했습니다. 지난 15년간 일본에서 배운 선진 화훼문화와 독일에서 익힌 체계적인 화훼이론을 기반으로 「장례의 탄생」, 「동서양의 장례문화」 등을 집필해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화훼문화를 이끌어갈 차세대 인재를 육성하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윤희 대표는 선진 화훼장식 기술로 장례꽃 분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고인의 생애를 표현한 스토리텔링의 이미지 제단(祭壇 : 제사를 지내는 단), 작업 효율성과 작품성을 높인 획기적인 퍼즐식 꽃장식으로 관련 특허, 디자인등록만 14건에 달한다. “흰 국화를 일렬로 배치하는 기존의 제단 꽃장식에서 탈피해 획기적인 시도를 많이 했어요. 대표적인 것이 고인의 생애를 표현한 스토리텔링 이미지제단입니다. 예를 들어 순국하신 소방공무원을 위해 불꽃 모양의 제단을, 산에 잠든 산악인을 위해 산 모양의 제단을 통해 고인을 추모하는 것이지요. 다양한 디자인을 폭 넓게 선택할 수 있고 급박한 상황에서 빠르게 설치하고 철거할 수 있도록 퍼즐식 꽃장식을 고안해냈어요. 작업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장례꽃 장식의 작품성을 높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그간 화훼장식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2019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공로상 포상(2회)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또한 숙련 기능인으로 기술 전수와 후진 양성에 기여해 2017년 국무총리배 국제꽃장식대회 금상, 2018년 국무총리배 국제꽃장식대회 협회장상, 2019년 울산 틴 마이스트 지방기능 경기대회 국회의원상, 울산광역시 2020년 지방경기대회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새로운 장례꽃 장식문화를 이끌어가는 이윤희 대표. 그녀에게 장례꽃 장식분야의 발전을 위해 어떤 변화가 있어야하느냐고 묻자 관록이 묻어나는 혜안을 말했다. “장례꽃 문화의 전통을 잇되 현대적으로 계승·발전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능경기대회 활성화,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장차 산업을 이끌 차세대 인재들을 육성하고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한국 장례꽃 장식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 학력 ] •울산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영산대학교 호텔관광경영학과 박사 [ 경력 ] •2008-현재 울산영락원 위탁업체 •2014-현재 (사)한국장례꽃문화협회 대표 •2016-현재 (사)대한민국전통명장협회 전통명장 •2018-현재 (사)국제꽃예술인협회 8대 이사장 •2019-현재 대한민국신지식인 •2020-현재 울산광역시 최고장인(화훼장식 분야) [1108]
    • 문화
    2020-12-30
  • 2천년의 역사 '김해장군차' 가야 역사와 문화의 상징 다시 태어나다
    2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김해지역 특산품 ‘김해장군차(將軍茶)’. 허황옥이 가야 김수로왕에게 시집올 때 차 씨앗을 가져와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통차다. 가야문화권을 통해 일본에도 전파되었고 중간에 명맥이 끊기기도 했었지만 향토사학자들의 가야차 뿌리를 찾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 끝에 1987년 자생군락지를 발굴했고 1999년부터 농가재배를 시작했다. 그 중심에 새날제다의 김종국 대표가 있었다. 장군차시배지 안내와 제다기술 등 역사문화를 알리는데 힘을 써 온 김 대표는 장군차의 산 증인이다. 주간인물은 김해장군차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새날제다’ 김종국 대표를 만났다. _신지원 기자 “1986년 9월에 김해 가야역사의 연구 발굴 및 보존을 위해 몇 명이 뜻을 모아 가야문화연구회를 창립했습니다.” 창립멤버 중 한명인 김종국 대표의 부단한 노력으로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었고 2004년에는 청와대에 장군차 선물을 하게 되었다. 이는 2005년 해운대 동백섬 누리마루에서 제13차 APEC 정상회담이 열릴 때 장군차를 회담 탁자에 내어 놓는 데까지 연결이 되어 홍보가 확실히 된 셈이다. “서울 코엑스에서 차(茶) 전시를 할 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께 김해장군차를 드시고 힘내시라는 뜻으로 청와대에 좋은 차 한통을 보냈습니다. 이후 정상회담에서 차 시음할 때 장군차가 사용된 겁니다. 각 언론에서도 부산 APEC 퍼스트 레이디들의 친교시간에 김해에서만 생산되는 장군차를 시음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장군차 선물에 관해서는 「봉하일기」 목차 ‘봉하일기 4’ 에도 나와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본래 차에 관심이 많았는데 청와대를 찾은 김해 분들에게서 장군차를 선물 받은 뒤 차 재배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기재되어있다. 장군차의 역사는 여러 사료(史料)에 등장하고 몇 가지 차(茶) 전래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능화(李能和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는 ‘김해 백월산에 죽로차가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수로왕비인 허왕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 씨앗이라고 전한다’는 기록도 있지만, 김 대표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언급된 내용을 강조했다. “허황옥이 가지고 온 물품을 ‘한사잡물(漢肆雜物-한나라에서 나는 갖가지 물품)’이라 하여 한나라의 여러 물건이라고 언급한 점입니다. 바다를 건너오면서 가져온 한나라 여러 물건 중에 옷·필단·금은주옥·장신구 등 씨앗도 있었고 이것이 장군차 씨앗으로 중국 사천성에서 도래한 중엽종일 가능성을 뒷받침해 주는 요소로 특기할 만 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허황옥과 관련된 내용 중에 중국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 외에도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는 김수로왕의 15대손인 신라 30대 법민왕(문무왕)이 서기 661년에 가락 왕묘에 제향을 올리도록 조칙을 내렸는데 제수(祭需)품목 중에 차(茶)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흥덕왕3년(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중국에서 가져온 차 종자를 가져와 왕께 드렸더니 지리산에 심으라고 했다는 대렴 전래설도 있다. 하지만 대렴이 가져오기 전인 진흥왕과 선덕여왕 때에도 차를 마셨다는 기록은 있다. 또한 조선 중종 25년(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고려 충렬왕이 김해에 들렀다가 금강사 절의 뜰에 있는 차나무를 보고 맛과 향이 차 중에서 으뜸이라 하여 ‘장군’이라고 명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 법민왕의 명으로 김수로왕 제사상에 차를 올린 시기만 해도 대렴이 당나라에서 차(茶) 씨앗을 가져온 시기보다 앞섭니다. 김해에는 지금도 차(茶)와 관련된 지명으로 남게 된 곳들이 동상동의 차밭골(다전동 茶田里) 등 여럿 있어요. 여러 가지 자료와 정황을 종합하면 김해가 한국 최초의 차 시배지(始培地)입니다.” 동상동·대성동 일대의 김해 장군차 서식지는 역사를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뿐 아니라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어 2017년 6월29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287호로 지정되었다. 1999년 새날제다 설립 후 장군차 묘목 육성, 제다기술 숙련, 장군차 홍보 등에 앞장서 온 김 대표는 2010년 제 3회 대한민국 차(茶) 품평대회 발효차 최우수상을 수상한 경력도 있으며, 친환경 유기농법 무농약 인증을 받아 20년간 주촌면에서 장군차를 최고의 차로 가공하여 유통 중이다. “‘새날제다’는 새로운 날이라는 뜻의 새날과 차를 만드는 기술이라는 뜻의 제다(製茶)를 합쳐 만든 이름입니다.” 장군차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서도 구매할 수 있는데 포장지 앞면에 가야금과 찻사발이 눈에 띈다. “가야의 가야금과 불교의 동자승이 차를 끓이고 있는 모습인데, 불교와 차가 한국에 먼저 들어왔다는 것을 뜻하는 김해를 대표하는 것들의 그림입니다.” 김 대표는 오래전부터 불교와 차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고자 인도에 두 번 다녀왔어요. 밤을 꼬박 새며 모기한테 물리는지도 모르고 참선을 했어요.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 많이 해봤어요.” 김 대표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딸 김서리 씨는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인도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해 태국의 불교대학에서 강의를 했었으며, 현재는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강사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을 언급하는 김 대표. “없던 것이 있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 걸레가 빨면 행주가 되고 행주를 쓰다보면 걸레가 되는 그런 이치에요. 불교 공부할 때 10년 이상 헤맸는데 어느 날 화장실에서 눈이 번쩍 뜨이더라구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는 생명체가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집착할 이유가 없구나 해서 더 헤맬 것 없이 차농사를 짓게 됐고 차 밭에 완전 묻혀 살았어요. 그 당시 5년 간 차를 키우며 흘린 땀이 평생 흘린 땀보다 더 많았어요. 차 밭에서 참선을 하면 새가 내 어깨 위에 놀다가 가기도 하고. 그땐 악이라는 건 없을 때에요. 세상 살다보면 악도 생기고 욕심도 생길 수 있지만 그래도 무애심(無碍心)으로 마음에 걸림 없이 살아가려고 합니다.” 장군차는 색·향·미가 있는 차다. 차를 만들 때 심혈을 기울여 만든다는 김 대표는 “차를 잘 만들어 사람들이 좋은 차(茶)를 맛있게 마실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며 건강에도 좋다고 덧붙였다. “장군차는 발효차라서 오래될수록 좋습니다. 발효와 숙성은 다른데 발효가 끝나고 나면 숙성이 됩니다. 차를 잘 보관 해놓으면 숙성이 되면서 특유의 맛과 향이 자연적으로 생깁니다.” “장군차는 효능도 많아요. 머리도 맑게 하고 피도 맑게 하며 노화방지·고혈압·당뇨에도 좋습니다.” 다른 차나무와 달리 인도 남방계통의 잎이 큰 대엽류의 찻잎으로 카테킨, 아미노산, 비타민류, 미네랄 등의 무기성분 함량이 높은 게 특징이다. 품종과 맛에 차별성이 있고 장군차의 신장보호효과 연구도 나와 있는 등 약학적 효능도 연구돼 있다. 사라져가는 식재료와 조리법을 보존하기 위해 1997년 이탈리아 슬로푸드 본부에서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된 ‘맛의 방주’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장군차는 국제 슬로푸드 지정 ‘맛의 방주(The Ark of Taste)’에 등재되기도 했다. 지역의 먹거리를 보존하는 국제적인 프로젝트인 ‘맛의 방주’에도 오른 한국의 차 ‘김해장군차’는 김해지역 뿐 아니라 서울도심 유명호텔 최고층 한식레스토랑에서도 아름다운 야경을 내려다보며 마실 수 있고 온라인 구입을 통해 집에서도 즐길 수 있다. 장군차는 세계차연합회(WTU)에서 격년제로 개최하는 국제명차품평대회에서 2008년 최고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이후 연속해 금상·은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2008년부터 11년 연속 대한민국 ‘올해의 명차’에 선정된 바 있는 등 국내외에서 명성을 높여가고 있다. 내년에 김해시 최고명장신청을 할 예정인 김종국 대표. 다양한 지원책을 통해 김해의 대표 브랜드로 키워 장군차 인지도를 높여 나갔으면 한다.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은 2천년의 역사 김해장군차의 맛과 향기가 국내를 넘어서 해외 깊숙한 곳까지 퍼져 나가길 기대해본다. [1108]
    • 문화
    2020-12-30
  • 진주냉면과 효종갱, 침도를 복원해온 식생활문화연구가! (주)닥게리와 세계무대 진출을 꿈꾸다
    우리나라를 알고자 하는 열풍이 한식에까지 뻗어 세계화에 도달했다. 한식의 소비가 증가했고, K-푸드라는 말도 생겼다. 이는 곧 우리의 문화를 더 가깝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미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식을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전시키고, 그에 따른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 식문화의 뿌리를 이해하고 이를 조화롭게 접목해 나가는 것이 ‘K-Food’의 진정한 성장이 아닐까. 여기, 50년 동안 한국 식생활 문화의 스토리를 정립하고 음식을 복원해 온 이가 있다. 문화인류학과 역사학, 사회학 등 방대한 자료를 치밀하게 분석해 이론과 방법론을 바탕으로 음식문화를 이야기해 온 인물, 김영복 회장의 이야기다. ‘음식의 맛은 주관적인 취향일 수 있지만, 식문화는 한 민족의 거대한 역사를 담고 있으며 우리 전통의 자산이자 무형의 가치’라며 김 회장은 인터뷰의 포문을 열었다. _김정은 기자 김영복 회장이 식문화를 연구한 지는 이미 50여 년이다. 해병대를 제대한 후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해 반세기 동안 해왔지만, 식생활 문화연구에 입문하게 된 특별한 계기를 꼽을 수는 없단다. 음식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느 순간 식문화에 매료돼 깊은 연구를 하면서부터 우리나라 음식에 대한 스토리가 제대로 정립이 안 된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고. 그때부터 식문화 연구를 위해 전국을 누비며 고서를 찾고, 자료를 모으며 지금까지 720가지의 음식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고 하니 이만하면 김 회장에게 식생활 문화 연구는 ‘업’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된다. “식문화의 영역은 단순히 영양학과 조리학, 가공학이 아닌 역사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의미를 지닙니다. 한 개인과 사회가 소비하는 음식을 보면 그 사회가 처한 환경이나 슬픔, 기쁨 그리고 역경과 고난이 드러나기도 하지요. 때문에 다른 민족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식생활문화는 민족의 거대한 역사와 전통의 큰 자산임에도 점점 그 의미가 희미해져 가는 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식문화를 연구해 온 이유도 우리 음식에 대해 논할 때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싶었습니다.” 50여 년간 720가지 음식 이야기 만들어 진주냉면ㆍ효종갱 · 침도 등 30여 가지 전통음식 재현 음식 칼럼ㆍ방송 출연으로 식문화 알리며 일본과 중국, 미국 등 국제행사를 통해 한식 세계화에 기여 180㎝의 훤칠한 키와 당당한 풍채, 남다른 패션 감각까지. 범상치 않은 아우라가 전해지는 김영복 회장의 첫인상. 올해 74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인터뷰 내내 보이는 여유로움과 위트, 마주 앉은 사람을 배려하는 매너까지. 집무실을 가득 채운 상당한 양의 책과 소품,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까지도 그의 분위기를 똑 닮았다. “제가 연구를 시작할 초창기엔 식문화 연구가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배울만한 곳도 없었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때도 아니었으니 고서를 찾고자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었죠. 실제 조리하는 과정을 보고자 할 때는 수소문 끝에 향토음식을 만드는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을 찾아 나서기 일쑤였고요.” 지난 50여 년간 720여 건의 한식 스토리를 정리해 온 김 회장. 그가 풀어낸 음식 스토리는 방송을 통해 자문하거나 출연해 역사와 유래를 중심으로 식문화를 재조명하면서 우리 음식의 가치를 시청자에게 전했다. 방송뿐 아니라 여러 매체에 연재한 맛 칼럼 중 ‘김영복과 떠나는 향토 음식 순례’와 ‘음식과 문화’ ‘사라진 우리의 맛’ ‘김영복의 이야기가 있는 음식 여행’ ‘참살이 여행’ ‘대를 이은 맛집’ ‘숟가락을 들기 전’ 등의 맛 칼럼은 독자들에게 여전히 인기가 높다. 또 2000년부터는 한식 세계화에 기여하고자 일본과 중국, 미국의 9개 도시를 다니며 한식문화 강좌와 한식을 알리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으며 한식의 멋과 전통 그리고 맛의 우수성을 동시에 알리는 국제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민간 외교에도 기여해 왔다. 경남대 산업대학원 교수직과 BBQ 계열 글로벌 푸드아트 전문학교 이사장, 서울관광호텔 직업전문학교 이사장으로 역임할 때에도 음식을 복원하고 개발하는 일에 몰두해 온 김 회장. 지금까지 재현한 전통음식은 30여 가지가 넘는다. 그중 사라졌던 ‘진주냉면’도 1999년, 그의 손에서 다시 빛을 봤다. “북한평양출판사가 펴낸 ‘북한 민속전통’ 책을 읽고 조선 냉면 중 최고는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길로 진주에 내려가 하루에만 5~7그릇씩 냉면을 먹으며 사라진 진주냉면의 맛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지요.” 진주냉면 기술자 3명을 찾아가 공통된 맛을 추려내 오늘날의 진주냉면을 복원시킨 그. 2005년에는 황덕이씨와 함께 진주냉면을 재현해 상품화에도 성공했다. 그 음식이 바로 진주 하연옥에서 맛볼 수 있는 ‘진주냉면’이다. 김 회장이 재현한 대표적인 또 다른 음식은 효종갱(曉鐘羹)이다. 문헌을 통해 조선의 배달 음식인 효종갱을 알았다는 그는 조선 후기 1925년 최영년이 쓴 ‘해동죽지’에서 경기도 광주성 내에서 먹은 배춧국인 ‘효종갱’이 나온다고 전했다. “경기도 광주 마을에서 항아리에 효종갱을 담아 한양 양반집으로 배달했지요. 효종갱은 높은 벼슬의 양반들이 연회를 마친 후 술에 시달린 속을 다스리기 위해 시켜 먹던 최초의 배달 음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식문화의 역사적 스토리를 언론에 최초로 공개한 그는 이어 복숭아물김치(침도)를 재현해 KBS ‘도문대작’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진주칠보화반과 진주헛제사밥, 해주비빔밥, 무술주, 흑삼계탕, 구선왕도고, 꿩짠지, 어육김치가 그의 손에서 재현됐다. 교수로 재직했던 2005년에는 시장에 파는 떡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한 후 한양대학교와 경남대학교에 떡 연구 과정을 등록해 영양 떡을 중점으로 상인들에게 교육했으며 오늘날 천연색소로 만든 떡의 시초를 열기도 했다. 닭가슴살 요리 전문 프랜차이즈 (주)닥게리 설립 닥살냉면과 닭살 육전을 비롯, 닭요리만 30여 가지 이상 개발해 유통 후학 양성을 위한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열어 “우리나라 외식업계는 식당은 많지만, 메뉴로 차별화된 곳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인테리어나 마케팅에 대한 투자만 늘고, 정작 음식은 카피하거나 모방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매우 안타까워요.” 외식산업의 질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 닭가슴살 요리 전문 프랜차이즈인 (주)닥게리를 설립해 청도에 본사를 연 김영복 회장. 여기서 ‘닥게리’는 닭을 가두어 기르는 어리를 이르는 전남 방언이다. 문을 연 지 한 달도 안 된 때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데, 맛도 맛이지만 재료에서 오는 이색적임도 호기심을 자극할만하다. 흔히들 닭가슴살은 퍽퍽하기 때문에 면 역시 뚝뚝 끊어질 것이라 예상하지만 면발이 쫄깃하다는 게 이곳의 비법. 50년 동안 한국의 음식을 연구한 식생활 문화연구가 김영복 회장의 노하우가 집약된 메뉴다. 그래서인지 김 회장이 출시한 메뉴라는 것을 알고 찾아오는 이들도 부지기수. 음식에 대한 그의 신념은 이미 많은 이들에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중간 정도의 탄성을 가진 면을 개발하는데 2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닭가슴살을 이용해 면을 개발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닭 소비량이 10억 마리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중 날개와 다리는 인기가 높아 금방 소진되지만, 닭가슴살은 40%에 그친다고 하더군요. 때문에 닭 소비가 높아질수록 닭가슴살의 재고도 쌓인다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물론 닭가슴살을 활용한 반려동물 식품이나 다이어트 식품 등으로 상용화되고 있지만 퍽퍽하다는 이유로 즐겨 먹는 식품은 아니지요. 때문에 맛있고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닭가슴살을 만들어보고자 다양한 요리로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1인분에 50g 정도의 닭가슴살이 들어가기 때문에 담백한 맛이 깊고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다. 육수 역시 쇠고기를 쓰는 평양냉면과 달리 닭을 고아서 농축 시켜 구수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라고. 냉면 위에도 닭가슴살 육전이 올라가는데 사람들은 이게 또 별미라고 입을 모아 호평한다. 이 기세에 힘을 얻어 닭가슴살 육전만 따로 메뉴가 편성되었을 정도. 이어 4계절을 겨냥해 칼국수와 떡국, 닭곰탕 등을 출시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식품공장을 설립해 닭을 재료로 만든 30여 가지 음식을 전국에 유통하고 있다. 올해 12월에는 온라인 매장까지 오픈 예정 이라고 하니 닥게리의 염지 비법이 첨가된 닭가슴살과 닭가슴살 육전, 칼국수는 택배로도 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닥게리는 천안역점 개설과 함께 서울 잠실, 수원 경기대후문, 부산연제구 연산점 개설 준비를 하고 있으며 식당의 성격에 맞는 닭가슴살 요리를 납품해 13개의 MP(Matching Partner) 점과 파트너를 맺고 있다. “제가 73살에 닥게리를 창업했습니다. KFC 회장이 62살에 창업을 했다고 하니, 어쩌면 제가 더 큰 용기를 낸 것이 아니겠습니까(웃음). 물론 고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힘차게 달려온 이유는 젊은 친구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착한 기업, 그리고 나아가서는 사회와 세계에 봉사하는 기업을 만들자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루지 못한다면, 제 뒤를 이어 기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후진 양성에도 적극적으로 임할 계획입니다.” 50년 동안 한국의 식생활 문화를 알려 온 것에 그치지 않고 기업가로서 새로운 도전을 펼치고 있는 김영복 회장. 이어 자신이 익힌 학문과 방대한 자료들을 연구할 후학 양성에도 뜻을 품고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완공을 앞두고 있다고. 앞으로도 ‘살아가는 삶’을 위해 달려갈 것이라는 그의 열정을 주간인물에서 응원한다. [ 약력 ] •現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원장 •現 ㈜닥게리 회장 •경남대학교 산업대학원 초빙교수 •전국직업전문학교협회 회장 •서울호텔관광전문학교 이사장 •BBQ 계열 글로벌 푸드아트 전문학교 이사장 •KNN, SBS 창사특집방송 진주냉면 2000년 •KBS 추석특집 도문대작 2008년 •KBS 한국인의 밥상 - 자문 및 전문가 출현 •KBS 밥상의 전설 고정출현 •2000. 일본 오사카 ‘마당’ 초청 재일교포 요리사 교육 •2000. 사라진 진주냉면 재현(KBS, MBC, SBS 방송) •2004. 하이 서울 축제 전통음식 전시 •2005. 미국 뉴욕 한가위 축제 떡 퍼포먼스 •2006. 미국 뉴욕 ‘한국 음식 강연 및 전시회’ •2007. 국회 떡 세계화 작품 발표회 주관 •2007. 농림부 축산안전물 요리경연대회 심사위원장 •2008. 미국 뉴욕 뉴욕총영사 유엔외교사절 초청만찬 주관 [1106]
    • 문화
    2020-12-09
  • 유안, 소통의 건축을 말하다 - 유헌상 건축사사무소 유안 대표 건축사
    유헌상 건축사를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우연히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의 한 통신회사 사옥을 보고 난 후였다. 건축사사무소 유안이 설계와 시공을 맡은 숨(S:UM)이라는 이름의 사옥은 따스한 햇살을 풍부하게 공간 내부로 끌어들이고, 층계를 오가는 계단 통로 사이엔 나무를 심어 건물 안에서도 자연의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왔다. 하루의 대부분을 사무공간에서 보낼 이들을 위한 배려가 물씬 느껴졌다. 이런 세심하고 따뜻한 설계라니. 햇볕을 쬘 시간이 적은 직장인들에겐 꿈과 같은 공간이 아닐까? 건축은 꿈을 현실로 가져오는 작업이라고 했던가. 공간에 머무는 이들의 꿈이 그의 설계 안에 녹아있음을 발견했다. _정효빈 기자 ‘안락함과 미학을 공간에 담다’ 깊이 있는 소통으로 완성되는 생명력을 품은 공간 건축사사무소 유안은 대구와 경북을 주 무대로 활동하며 이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설계와 완성도 높은 시공으로 지역 내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건축 스튜디오다. 건축사사무소 유안을 이끄는 유헌상 대표 건축사는 빛의 강조를 통해 공간의 깊이를 표현하는 섬세한 설계로 아름답고 편안한 공간을 창조해내고 있다. “뭇 사람들은 건축물이 무생물이라고 하지만 저는 생명을 가진 유기체와 같다고 생각해요. 건물의 전기시설이나 수도, 배수관은 인체에 빗대면 핏줄이나 소화기관과 다를 바 없죠. 사람과 에너지를 주고받는 생명력을 가진 공간인 만큼,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가치를 지닌 건축물이 더욱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공간이란 본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규모에 따라 공간이 갖는 성격이 모두 다르고 사람들의 행동과 동선에 따라 각기 다른 공간감을 부여해야 하기에 클라이언트에게 꼭 맞는 공간을 구성하기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유헌상 대표는 어떻게 공간을 설계하고 건축주의 마음을 읽을까? 그는 대지를 둘러싼 환경과 더불어 클라이언트와의 깊이 있는 소통을 설계의 첫 단계로 꼽았고, 그들의 요구를 재구성해 설계에 담아내는 것이 건축사의 역할이라 말한다. “건축을 시작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시간이 갈수록 선 하나 긋는 것이 더욱 어렵고 신중해지는 단계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제가 그은 선들이 토대가 되어 좋은 건축물이 완성되면 거주자는 더욱 풍성한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이 건물이 그들의 미래이자 전 재산이 될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면 설계에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건축주와의 소통에서 중요한 건 그들의 막연한 요구 속에서 구체성을 캐치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맞춤복을 제작해주는 과정처럼요(웃음). 건물을 계획하기 위해서는 대지와 주변 환경과의 소통도 중요한데요. 설계 전 여러 번 현장에 가서 건물이 지어질 대지와 환경을 오랜 시간 둘러봅니다. 도심이라면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공간을 어떻게 마련할지, 주변 경관이 훌륭한 곳이라면 멋진 풍경을 어떻게 공간에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고요. 매 프로젝트에 애정을 갖고 오랜 시간과 공을 들이다 보니 고객분들께서도 이 점을 알아봐 주시는 것 같습니다(웃음).” 건축설계·시공·인테리어 아우르는 통합시스템으로 시너지를 높이다 주택은 주거와 사무, 휴식 등 모든 행동이 일어나는 복합적인 성격을 띤 공간이다. 유헌상 대표는 “집이라는 공간 설계를 응용해 모든 공간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라며 주거공간 설계에 흥미를 나타냈다. “집은 모든 행동이 일어나는 공간이에요. 집 안의 서재가 때로는 사무공간이 되기도, 잘 꾸며진 부엌은 카페가 되기도 하죠. 이렇듯 집 안에서는 다양한 행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특정 목적만을 가진 건축물보다 더 많은 부분을 고려한 설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작고 협소한 공간을 잘 다룰 줄 알면 이를 응용해 더 넓은 공간에 적용할 수 있어요. 각기 다른 목적을 띤 공간이 공존하는 주거공간 설계를 통해 만족감을 줄 수 있다면 다른 공간에서도 충분히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건축사사무소 유안은 건축 설계와 감리, 시공, 인테리어를 모두 도맡아 설계 의도가 고스란히 반영된 완성도 높은 건축물을 완성해내고 있다. 유 대표가 자랑하는 건축사사무소 유안의 경쟁력 역시 건축의 시작과 끝을 모두 책임져 바쁜 클라이언트의 편의를 돕고 건축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장을 잘 아는 건축사가 현실감 있는 설계를 할 수 있고, 이것이 곧 불필요한 시공 과정과 추가공사비용을 줄여 클라이언트에게 최대의 만족감을 선사할 수 있다”는 유헌상 대표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도면을 그리는 단계에서부터 머릿속에 건축물의 이미지가 그려지곤 하는데, 막상 공사에 들어가면 도면과 완전히 다른 건물이 지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더라고요. 색감이나 디테일 등 처음 설계 의도가 온전히 반영된 건축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설계와 시공, 인테리어가 일괄적으로 작업 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 구축은 유헌상 대표의 오랜 고민에서 비롯됐다. 그가 설계 사무소에서 일하던 시절, 설계 의도에서 현저히 벗어난 건물들이 숱하게 지어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껴왔다고. 그는 설계와 시공, 인테리어가 하나 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집을 지어보기로 했다. 유 대표와 그의 아내가 건축주이자 설계사가 되었고, 시공 역시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이 과정을 통해 건축물 하나에 모이는 각기 다른 요구와 입장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하게 됐고, 이는 현재의 운영시스템을 자리잡게 한 밑거름이 됐다. “건축과 관련된 모든 것을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클라이언트분들이 큰 호응을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시공사와 인테리어 업체를 따로 선정하고 의견을 조율하려면 또다시 시간과 비용을 들이셔야 하니까요.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건축사는 실제 공사에 착수했을 때 건물이 어떠한 형태로 완성될지 감을 잡기 쉬워집니다. 지휘자 한 명이 오케스트라를 조화롭게 이끌어가듯 건축도 일관된 지휘 아래 설계와 시공, 인테리어까지 마무리된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공간이 탄생한다고 믿습니다.” “분야를 아우르는 전문가 양성이 목표 만족도 높은 프로젝트 완수하는 종합건축사사무소로 거듭나고파” “건물 완공 후 건축주의 얼굴에 피어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처음 저를 찾아왔던 설렘과 기대감에 찬 얼굴과 겹쳐 보일 때, 그 순간의 보람과 희열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 ‘완벽한 건축’이란 코드가 잘 맞는 건축주와 건축사가 만나 그들의 코드에 딱 맞는 건물이 완성된다는 의미 아닐까요?(웃음)” 기업의 성공에는 대개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경영 혁신, 고집스런 품질 제일주의, 철저한 신용 등이다. 여기에 직원의 성장과 행복을 책임지려는 CEO의 살뜰함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건축사사무소 유안은 치밀한 건축설계와 이를 구현하는 완성도 높은 시공, 인테리어 작업까지 건축에 관한 종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앞선 모든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맞물리게 하기 위한 구성원 전원의 노력은 수많은 업계 경쟁자들보다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히딩크 감독의 훈련방식과 전술이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플레이어를 한 가지 포지션만 소화하는 선수가 아닌 멀티플레이어가 되도록 훈련시켰죠. 저 역시 건축설계뿐만 아니라 시공 분야에 관해서도 지속해서 공부하는 등 현장을 잘 아는 건축사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건축과 밀접하게 관련된 다방면의 분야에서 저와 함께 내공을 쌓고 성장할 인재들도 언제든 환영입니다(웃음).” ‘종합건축 유안E&C’를 슬로건으로 삼고 향후 건축사사무소 유안을 실력 있는 종합건축사사무소로 성장시키고 싶다는 유헌상 대표. 그는 끝으로 “설계, 감리, 시공, 인테리어 등 각 분야별로 팀을 나누되, 구성원 모두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 서로의 분야를 이해하고 빠른 의견 조율이 이루어지는 활기찬 조직을 만들어갈 것이며, 구성원과 클라이언트 모두가 행복한 건축사사무소로 거듭나고 싶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전했다. “경사진 대지에 층계가 여러 개로 나누어진 사옥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일과 생활 모두 즐거운, 집과 사무실이 결합된 재밌는 공간이 탄생되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적으로 정말 멋있다고 생각한 국내 건축물이 있는데, 하늘에서 봤을 때 꽃 모양이 연상되는 것이 참 인상 깊더라고요. 저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저곳이 전국에서 가장 멋있다’라고 생각되는 건축물을 지어보고 싶습니다(웃음).” [1106]
    • 문화
    2020-12-09
  • 자연과 함께 묻어나는 도자기 갤러리 카페, 아버지 호를 따서 만든, 마음의 여유와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
    자연과 건물이 일체가 된 듯 정원 풍경과 건축물이 잘 어우러진 토곡요(土谷窯)와 토곡정원. 통도사 근처 경상남도 양산에 위치하고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이다. 선명한 하늘과 초록색 자연 그리고 세련된 건축물은 한 폭의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밤에도 로맨틱한 경관으로 은은한 조명이 한 몫 한다. 주간인물은 자연과 더불어 힐링공간으로 호평받고 있는 토곡요(土谷窯) 도자기 갤러리카페의 참모습을 알리고자 이영풍 대표를 만났다. _신지원 기자 복합 문화공간으로써의 토곡요와 토곡정원은 커피와 음식만 단순히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니라 감성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토곡요(土谷窯)는 베이커리와 커피가 있는 카페이면서 도자기 전시실 관람과 구매도 가능한 점이 특색이고, 토곡정원은 레스토랑이면서 스몰웨딩, 각종 축하모임 등 단체 손님들에게 대관이 가능한 곳이다. 차로 3분거리 정도의 1.5km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고 두 군데 모두 이영풍 대표가 현재 운영 중이다. 토곡요는 커다란 통유리로 되어있는 건축물 앞에 멋진 정원이 펼쳐져 있고 실내로 들어가면 심플하면서 모던하다. 곳곳에 다양한 도자기와 벽에 걸린 그림들로 장식되어있고, 둥근 조명이 달린 높은 천장과 트인 전망은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토곡정원 역시 맛과 자연 공간이 어우러진 곳으로 영화에 나오는 웨딩 혹은 축하파티 장면이 절로 떠오른다. 전등과 야외 하얀 테이블세트들이 깔끔하면서 분위기 있게 보인다. 두 군데 모두 우리나라에서 인정받는 ‘토곡 이경효’ 도예가이신 이 대표의 아버지 호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호 ‘토곡(土谷)’에 도자기를 만드는 곳이라는 뜻으로 기와굽는 가마 ‘요(窯)’를 합쳐 지은 이름이다. “도자기하시는 분들 작업공간은 ‘요’로 많이 끝나요. 가마 ‘요’자거든요. 원래 이 자리가 토곡요였으니깐 카페도 토곡요로 하고 레스토랑도 뭘로 할까 하다가 토곡정원으로 지었어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서 하고 있는 이 대표는 고모님과 부모님이 도자기 작업을 해오셨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도자기를 친숙하게 보고 자라왔고, 지금은 동양화를 그리는 아내까지 예술가 집안이다. 이 대표는 단국대 도예과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와 도자기 작업과 카페·레스토랑 운영을 병행하고 있다. 아버지가 롤 모델이라는 이 대표의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은 컸다. “아버지처럼 최선을 다해서 아버지 발가락이라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평생 도자기만 하셨고 거의 없는 백지 상태에서 이 정도 만드신 분이고 다른 건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이 도자기만 하셨어요.” 이경효 도예가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작가로 도자기 업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 분이다. “평생 정말 열심히 하셨고 잠을 줄이면서까지 작업을 하셨어요. 어머니는 그림을 그리시고 아버지랑 두 분 같이 작업하셨어요. 도자기에 그림 들어가는 것은 어머니가 다 그리세요. 저희 아내도 동양화하고 있어서 제가 만든 거에 아내가 그려주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랑 같이, 이 대표는 부인과 같이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건축설계와 인테리어하는 지인들의 도움도 컸고 실내공간은 부인의 손길도 많이 닿았다고 한다. “친구와 후배가 건축물 설계부터 인테리어 마감까지 고생 많이 했어요. 친구들이 있어서 든든했습니다. 전등부터 식물 등 소품·공간 배치 등 세세한 것들은 아내의 도움도 컸어요(웃음). 벽에 걸린 그림들도 와이프가 그린 거에요.” 도자기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공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 대표는 나가서 보여주고 싶어 작품과 연계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도자기가 많이 위축되더라구요. 전통 도자기를 좀 더 알리고 싶었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자기를 많이 팔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카페를 시작했어요.” 이 대표는 시간 날 때마다 도자기 작가로서 작업을 계속 한다고 한다. “제가 커피나 음식을 전혀 못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전문 직원들이 직접 해주고 저는 작업만 하고 운영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토곡요에서 사용되는 찻잔은 모두 만든 작품이다. “제가 만든 식기에 내고 싶고, 원두라든지 재료도 제일 좋은 것을 씁니다. 빵도 매일 매일 구워요. 저희는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은 하나도 없고 매일 전부 만듭니다.” 야외에서는 일회용이지만 실내에서는 직접 작업한 컵들이 사용된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가져가서(웃음) 그게 좀..” 만든 일정 수량에서 어느 순간 없어지기도 하고 cctv에 가져가는 것도 보이고 경찰이 잡은 적도 있다며 이 대표의 걱정도 있지만 그만큼 그가 작업한 도자기가 사랑받고 있는 사례다. 토곡요는 오픈한지 2년, 토곡정원은 오픈 한 지 몇 개월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다. 탁 트인 전망과 자연·예술·맛이 공존 하는 곳으로 인기가 많다. 젊은 사람들이 전통도자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길 바래왔던 그의 마음도 통했다. “젊은 사람들이 도자기에 관해 관심을 많이 가져요. 평소에 많이 볼 수 없는 것들이니깐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런 것에 신기해하고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구요. 나이 드신 분들은 도자기를 많이 좋아하시더라구요. 어떤 분은 구경할게 많다면서 차도 마시고 장시간 머물다 가시기도 해요. 주말에는 3대가 같이 오시는 가족분들도 많아요.” 토곡 이경효 도예가 편안한 곳으로 사람들이 오래도록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한다. “도심을 벗어나 정원을 베이스로 편안하게 와서 피크닉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곳입니다. 저희가 뭐 하지마라는 게 거의 없거든요. 어느 정도 지킬 것만 지켜주시고 오시는 많은 분들이 편안하게 쉬다가 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튀지 않고 꾸준히 걸어 나가고 싶다는 이 대표는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앞으로는 도자기 수강도 해볼 수 있고 문화예술적인 프로그램들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오래된 주변 공간들을 활용해 다양한 공간을 만들 계획이라는 이 대표는 평범함과 꾸준함을 강조했다. “포근하고 편안했으면 좋겠고, 성실하게 나아가고 싶어요.” 그의 도자기에 대한 열정과 오래 살았던 동네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끝으로 ‘애 잘 키우고 화목한 가정 지속’을 언급하며 아이들과 아내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전했다. 성실한 자세로 묵묵하게 나아가고 싶다는 이 대표의 행보가 기대된다. [1105]
    • 문화
    2020-12-02
  • 흙과 불, 도공의 손길에 담긴 백년의 꿈 - 배창진 2대토광도예 대표
    2020년 경남지방중소벤처기업청이 선정한 백년소공인에 소산(小山) 배창진 대표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그는 선친인 종산(宗山) 배종태 선생의 뒤를 이어 물레성형, 장작가마 등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독창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투철한 장인정신과 숙련기술로 백년소공인으로서 성장역량을 인정받은 배창진 작가. 그를 만나기 위해 분청사기의 본고장, 경남 김해시 진례면으로 향했다. _정효빈 기자 “선친께서 살아계실 땐 늘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어느 날은 가마에 불을 지피자마자 눈이 오기 시작했어요. 허리까지 쌓일 정도의 폭설이라 불이 꺼지지 않도록 밤새도록 불을 땠지요. 기압이 낮아 불 온도가 잘 유지되지 않았는지 가마를 열어보니 50점의 도자기 중 단 한 점만이 살아남아있었습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도자기 한 점을 꺼냈는데, 힘 력(力)자를 연상시키는 문양이 새겨져있더라고요. 마치 신께서 ‘오늘 고생 많았다’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긴 노고 끝에 나오는 이런 작품 한 점을 통해 자연의 경이로움과 엄청난 희열감을 느끼곤 합니다.” 언제부터였을까. 최초의 기억이 시작되던 순간부터 흙과 불을 다루던 아버지의 모습은 늘 그와 함께였다. 전통 장작가마 기능보유자였던 종산(宗山) 배종태 선생의 아들로 자라온 배창진 작가에겐 도예가의 길이 어쩌면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김해시 진례면에서 선친의 뒤를 이어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 작가. 도예가로서 긴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그에게는 아버지의 발걸음을 그저 뒤따라가지만은 않겠다는 것이 큰 숙제이자 임무다. “아버지께서 작업하는 걸 보고 자라서인지 작품도 닮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모습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저는 저로서 새롭고 독창적인 작품을 빚어내고 싶은 욕심이 크죠. 김해를 대표하는 분청사기와 진사를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합니다. 가마에 불을 때는 날엔 많은 분들이 직접 작품을 보실 수 있도록 공방에서 품평회를 여는데요. 좋은 작품에 대한 판단기준을 세워드리기 위해 전체 제작과정을 설명해드리기도 하고, 가마 앞에 모여 어떤 조건에서 이러한 작품이 나왔는지, 왜 실패했는지 등 의견도 다양하게 나눕니다. 이 시간을 함께한 분들께선 작품도 더 귀하게 여겨주시고 도공의 노고를 더욱 깊게 이해해주시는 것 같아 저 역시 참으로 애정하는 시간입니다.” 흙과 불, 도공의 혼이 빚어낸 분청사기는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중간단계인 15~16세기에 번성했던 생활자기의 하나로, 가장 한국적인 미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투박하지만 형태와 문양이 자유롭고 박진감 넘쳐 서민적이면서도 예술성이 뛰어난 도자기로 알려진 분청사기. 그중 도자기 유약에 구리를 환원 소성해 만든 진사도자기는 제작 난도가 높아 숙련된 도공들도 쉬이 도전하지 못하는 분야다. “진사도자기는 도공이 직접 문양을 새기거나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마 속의 불이 독특한 빛과 문양을 만들어냅니다. 도공의 힘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란 뜻이지요.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뒤, 나머지는 자연에 맡기는 수밖에 없어요. 가마에서 모두 깨져버린 도자기를 보고 있노라면 불의 힘 앞에서 비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성할 때의 날씨와 주변 환경, 가마의 수분 함유량, 나무의 상태, 도공의 컨디션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문양이 탄생하기에 그 가치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배창진 작가는 손수 물레를 사용해 도자기를 성형하고, 전통 장작가마를 사용해 도자기를 구워낸다. 고된 작업이지만 전통방식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형과 색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소량 생산하는 작은 생활자기까지, 모든 작품의 시작과 끝이 그의 수작업으로 탄생한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내 그릇으로 내 몸에 들어갈 음식을 먹는 일”이라며 “시간은 오래 걸릴지라도 모든 작품을 수작업으로 완성한다는 자부심이 크다”라며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배 작가가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김해시 진례면은 수많은 도예가들이 불과 흙을 다루며 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수많은 도공들이 작품활동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자연에서 얻는 영감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데 배창진 작가는 그 역시 “가을이 되면 넓은 들판에 노란 밀알이 익어가던 멋진 동네가 점점 공장으로 둘러싸이고 있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예술가의 머릿속엔 늘 풍부한 감성이 피어올라야 하는데, 삭막해지는 주변 환경을 보며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도자기를 만들며 발생하는 연기나 소음 때문에 외진 곳에서 작업을 하는데도 각종 민원으로 화살이 향할 때면 도공들이 떳떳하게 설 자리가 없다고 느낄 때도 많고요. 또한 돼지열병과 코로나19 확산으로 2년째 김해도자기축제가 개최되지 못하고 있어 아쉽습니다. 도자기축제는 대중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기회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작품을 연구하고 작가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도 해주거든요. 제가 55세가 되는 해에 첫 개인전을 열 계획을 갖고 있는데, 얼른 힘든 시기를 극복해 대중들과 다시 만나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몸을 태워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나무. 불을 지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나무처럼 자신의 모든 혼을 쏟아 좋은 작품을 완성시키고 싶다며 밝게 웃는 배창진 작가. 그의 굳건한 다짐과 발걸음을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1105]
    • 문화
    2020-12-02
  • 장묘업계의 차별화된 관리와 유지! 추모문화의 발전을 선도, 고객의 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고 정도경영 실천
    세상에 가장 공평한 것이 있다. 누구나 태어나서 늙어가며 죽음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쉬세요.’ 정중한 예를 갖추고 드리는 장의사들의 인사로 고인이 마지막으로 듣는 말이다. 관·혼·상·제(冠婚喪祭)중에서 상례는 인간의 죽음이라는 엄숙한 사태에 직면했을 때 돌아가신 분을 정중히 모시는 절차인 만큼 가장 중요한 예법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건강하게 잘 사는 것만큼 인생을 잘 마무리 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현대사회에서 장례문화는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유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하면서 고인을 좀 더 생각하고 기릴 수 있도록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는 곳이 있다. 경남 김해에 위치하고 있는 공원형 프리미엄 추모공원 ‘재단법인 낙원공원묘원’. 주간인물은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는 (재)낙원공원묘원 박승현 이사장을 만나 장묘(葬墓)문화에 대해 집중 조명해 보았다. _신지원 기자 많은 분들이 안장되어있는 곳에 가면 엄숙한 곳인 만큼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공원묘지란 묘지 이용자에게 휴식 등을 제공하기 위하여 일정한 구역 내에 묘지와 공원 시설을 혼합하여 설치한 묘지를 말한다. (재)낙원공원묘원은 무겁고 어두웠던 이전의 공동묘지라는 고정관념을 한 번에 없애준다. 장묘문화는 현대의 흐름 속에서 급속히 변화하고 있고 유가족들에게 좀 더 편안하고 편리한 추모와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확산되어간다. 그 중심에 (재)낙원공원묘원이 있다. 김해 금은산의 따뜻하고 아늑한 산세(山勢)와 앞으로 드넓게 펼쳐진 평야의 풍경은 (재)낙원공원묘원이 간직한 아름다운 절경이다. 거대한 고대 원형극장을 연상케 할 만큼 분묘들이 중앙 무대를 향해 둥그렇게 줄지어 있는 듯하다. 총 2만5천 기(基, 무덤·비석·탑 따위를 세는 단위)라고 하니 직접 가보지 않은 사람도 규모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재단법인 낙원공원묘원은 1982년 설립된 사설묘지공원이다. 박승현 이사장은 대학에서 건축학을 졸업한 후 대형건설사에서 10여 년 근무하고 부동산을 운영하다가 아버지 박영근(85)씨가 이끌어오던 (재)낙원공원묘원을 이어받아 2011년 10월에 (재)낙원공원묘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건설업계와 부동산에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이 (재)낙원공원묘원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공원묘지가 건축, 토목, 부동산을 알아야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게 미리 공부가 되어있지 않으면 보기가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개발을 하는 부분들도 부동산과 연결되어있고 집을 짓고 도로를 만드는 것은 토목과 건축이 접목되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전체적으로 콘트롤했던 경험이 도움됐습니다.” 끊임없는 투자 박 이사장은 취임 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투자를 해오고 있다. “2000년도부터 사설묘지공원이 공설묘지공원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업황이 어려워지다 보니 슬럼화 되는 사설공원묘지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저희 공원묘지는 끊임없이 투자를 진행해 온 것이 자생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습니다. 다른 공원묘지에 비해서 깨끗하고 시설 이용하기가 편리한 부분들이 많아요.” 선투자 했던 부분들이 지금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부분들이 많다며 고객들에게 감사한 마음 또한 잊지 않는다. “공설공원묘지와 사설공원묘지의 가격차이로 그만한 메리트가 없으면 사설공원묘지가 선택받기 힘든 시장으로 바뀌어버렸어요. 그래도 고객의 사랑을 많이 받고 유지되어 오고 있는 부분에 대해 저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낙원공원묘원은 부산을 비롯해 김해 경남권에서 인정을 받는 곳이다. “부산과 가까워 부산에서 오시는 분이 50% 김해 및 기타 경남지역 분이 50% 정도입니다.” 입소문 타고 알음알음 고객이 고객을 소개 (재)낙원공원묘원에서는 특별히 광고하고 있는 것은 없다. 고객이 고객을 소개하는 식으로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다며 박 이사장은 시설이나 관리에 대한 차이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묘지관리가 잘 유지되고 시설이 깨끗하게 변하는 과정을 다 봐오신 기존 묘지에 모셔져 있는 분들의 유가족들이 주변에 알음알음 소개로 저희 공원묘지는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입소문으로 고객이 찾아오십니다.” (재)낙원공원묘원의 모든 직원들이 유가족들과 고인이 되신 분들을 자기 부모님처럼 생각해 따뜻하고 소중하게 대하기 때문에 기존의 장사(葬事)업자 이미지와는 달리, 진정성 있는 마음이 고객들에게 자연스레 전달된다. 이런 점이 인정돼 김해시청 표창장과 보건복지부 표창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고의 관리수준, 365일 매일매일 철저한 관리 “묘지가 1년 365일 계속 관리됩니다. 20여 명의 현장 전문 인력들이 매일 아침 7시부터 각각 담당구역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관리하고 있어요.” 박 이사장은 꼼꼼한 현장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즉시 보고하는 체계가 잘 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묘지에 이상이 생겨 유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선조치한 부분을 말씀드리면 굉장히 고마워하십니다. 산소 묘지도 세월이 흐르면 손을 볼 시기가 옵니다. 관이 썩게 되면 썩는 만큼 봉분도 내려앉거든요. 세월이 지나 오래된 곳은 사진을 찍어서 보내거나 전화를 드려 유상 혹은 무상으로 들어가는 부분 모두 얘기해 드립니다. 바쁜 일상 속 유가족들이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에 대해 저희가 연락드리면 울컥하시는 분들도 많으시고, 그럴 때 고인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십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그런 일들이기 때문에 모셔져 있는 분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저희 부모님이라고 생각하고 모시고 있습니다. 작은 부분들에 감동을 해서 찾아주시는 고객분들이 많으십니다. 낙원공원묘원은 세심한 묘터 관리와 편리하고 아늑한 성묘가 될 수 있도록 임직원 모두가 정성을 다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유족과 고인의 연결고리 공간, 새로운 추모문화 새로운 추모문화를 만들어가는 추모음악회는 고인에 대한 유족들의 편지 사연을 공유하면서 고인을 생각할 수 있는 자리로 참석한 많은 분들에게 진한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애기들 데리고 가족단위로 오시는 분들도 많은데 편지낭송 등을 들으면서 교육에 도움이 되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으세요. 공원묘지 내 작은 공간을 마련해 2시간 정도 진행됩니다. 편지 사연들로 눈물바다가 되기도 해요. 엄마를 위해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부르시는 분도 계시고 나름대로 재미있고 뜻 깊은 시간입니다. 고인과 유가족들과의 연결고리를 저희 공원묘원에서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에서 추진된 겁니다. 여태까지 4번 열렸는데 매년 호응이 좋았어요. 1년에 한번 추석 1~2주 전에 열립니다.” 유가족들은 고인과의 추억을 되살리고 고인에 대한 사랑과 은혜를 되새겨보는 기회로 소중한 자리 마련에 고마워한다고 한다. 추석명절 합동추모제 추석 당일 고객들을 위한 합동차례를 개최한다. “합동추모제는 핵가족화 되고 1인 가구도 늘어나면서 나이 드신 분들의 차례상차리기 힘들다는 말씀을 듣고 그런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합동제사를 지내기로 했습니다. 별도 공간을 만들어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그날은 하루 종일 상을 놔둡니다. 유가족들이 시간 되실 때 오셔서 각각의 방식으로 인사드리고 가십니다.” 장묘문화 인식제고 필요, 쉼터공원 같은 공간으로 “묘지라는 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입니다. 부모님이 생각날 때 찾아가는 곳이에요. 힘들 때 부모님한테 하소연하는 자리, 기쁠 땐 기쁨을 나누는 자리, 새해에는 결의를 다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묘지는 성묘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떠나보낸 고인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부모님을 화장한 후 강물이나 산에 뿌리는 사람들도 많은데 헤어짐을 재촉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타깝더라구요. 장묘문화 인식제고도 필요합니다. 성묘 보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동선이나 편리함이 제일 중요해요. 옆에 자투리 공간들은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쉼터·휴식공간 마련을 위해 꾸준히 진행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을 위한 박 이사장의 마음은 한결같다. 더 나은 회사를 위해 직원들 복지에도 신경 써 박 이사장은 모든 직원들의 생일을 일일이 다 챙긴다. 전체 직원이 모여 사내식당에서 축하하는 자리를 가진다. “저희는 최대한 가족적인 분위기로 하려고 합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직원들을 대하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중요해요. 직원들 호응도 좋고 결속력도 생기는 것 같아요. 이 외에도 월별 우수사원 투표를 올해 처음 시작해봤는데 역시 효과가 좋습니다. 직원들이 직원을 평가해서 뽑는 거에요.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따뜻하게 하고 직원들끼리 도움도 주고 서로 챙기며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부분이 생기더라구요. 그런데 아쉽게도 제 표는 많이 안 나오더라구요(웃음). 연말에는 표를 전부 집계해서 한 사람에게 뭔가 의미 있는 선물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봉안당(납골당) 만들 것 토탈장례시스템도 계획 중 “가까운 시일 내에 대한민국 최고의 봉안당(납골당)을 지을 계획입니다. 더불어 토탈장례시스템을 생각 중인데요. 장례식장과 연결해 원스톱 서비스로 장기계획에 있습니다. 코로나19사태 전에는 1년에 두세 번 정도는 중국·일본·대만·미국 등 외국에 가서 해외 우수 장례시설을 견학했어요. 잘 되어 있는 사례들을 보고 접목할 수 있는 것들을 매년 공부합니다.” 박 이사장은 고객들을 위해 항상 연구하고 올바른 경영을 하려고 노력한다. “장례업이 왜곡된 곳이 많은데 저희는 앞으로도 정도경영(正道經營)의 길을 걸으려고 합니다. 수수료 문화를 없애고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재)낙원공원묘원이 되고 싶고 고객에게 알파(α)혜택을 더할 수 있는 법인이 될 거예요. 다양성과 함께 올바른 장례문화를 확립시키고 싶습니다.”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다가가려는 박 이사장의 소신과 다짐은 확고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게 제 철학입니다. 계획을 가지고 생활하려고 해요. 12월 달 되면 내년 계획 잡습니다. 계획 없이 살아가게 되면 하루하루가 무의미해집니다. 1년 동안 뭐했는지 생각해보면 한 것도 없고 안 한 것도 없고 그냥 무의미하게 건너가는 해들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하루하루· 한 달· 일 년 그렇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최선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말이 있다. 하루하루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내일도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항상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다보면 좋은 일도 생긴다. (재)낙원공원묘원은 엄숙한 곳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깨닫게 되는 공간이다. 박 이사장의 ‘하루하루를 열심히 달린다’는 말이 새삼 와 닿는다. 항상 고객을 진정성 있게 대하고 올바른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재)낙원공원묘원이 많은 이들에게 더욱더 신뢰받는 곳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1104]
    • 문화
    2020-11-11
  • 아름다움을 찾으며 끊임없이 채워가는 삶 “뷰티전문가의 성장을 돕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과 관심은 지대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갖는다는 것은 남녀 누구나 바라는 일일 것.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찾고, 아름다움으로 삶을 채워가는 이를 주간인물이 만났다. 주인공은 ‘FILL UP 아름다움을 채우다’ 김하나 원장이다. 그는 멈추지 않고 자신을 가꾸는 과정 속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설정한 후, 국내외에 K-뷰티의 우수함을 알리고 있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로 학교와 강연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뷰티 전문가, 김 원장을 홍대 핫플레이스에 위치한 ‘FILL UP 아름다움을 채우다’에서 만났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한원애 기자 ‘FILL UP 아름다움을 채우다(이하 필업)’ 뷰티센터는 헤어, 속눈썹, 두피문신, 왁싱, 네일, 메이크업, 에스테틱을 전문으로 하는 토탈 뷰티센터로, 차별화된 뷰티·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며 소비자의 만족을 이끌어내고 있다. 김하나 원장은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변함없는 마음”이라며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고객들의 아름다움을 채우겠다’는 신조로 필업 뷰티센터를 이끌어가고 있다. 유년 시절부터 예술과 문화에 깊은 관심과 재능을 보였다는 김 원장. 일찍이 여러 분야에서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인 그녀는 기계체조를 배우기도, 여러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은 물론 글쓰기에도 재능을 보여 직접 집필한 단편수필 수상 이력이 있을 정도. 억대 연봉을 받는 금융인으로 20대를 보낸 그녀가 뷰티 업계에 발을 들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저것 잘하는 것은 많았지만 제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어떤 삶이 의미 있는 삶인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한 상태였어요. 깊은 고민을 이어가던 중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됐죠. 북경대학교에서 이어간 학문은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유학생활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던 어느 날, 우연히 네일아트를 접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정말이지 운명처럼 빠져들게 됐죠.” 그간 쌓아온 커리어와 정반대였던 뷰티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자 도전이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점이 김 원장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행복을 중심에 두니 나의 삶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는 김하나 원장은 30대 중반, 뷰티샵 오픈을 시작으로 피부관리 분야까지 서비스 분야를 넓혀 다년 간 경력을 쌓았다. 이후 꾸준한 배움을 위해 다양한 교육과정, 세미나를 이수하는 등 열정적인 자세로 임해왔다고. 그는 변화하는 트렌드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등 역량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운 채로 이곳저곳에 사업제안서를 건네던 기억이 생생해요(웃음). 그때도 힘든 줄 모르고 마냥 좋았습니다. 도전할 수 있어서,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요(웃음).” K-뷰티 우수함 알리려 먼 해외로… “프로 미용인 후배 양성할 것” 각종 미용시술과 성형수술이 흔해지며 쌍꺼풀 수술이나 필러는 흔한 시술이라는 인식이 퍼져가고, 성형시술을 받기 위해 국내에 들어오는 성형관광패키지가 붐처럼 일어났던 시기. 김 원장은 다양한 해외 활동을 통해 K-뷰티의 자부심은 높였고, 높은 연봉으로 능력을 인정받기도. K-뷰티붐을 발 빠르게 캐치한 김하나 원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중국시장에 본격적인 진출을 꾀했다. 당시 여권이나 비자를 받기 까다로운 여건이었지만 극소수만이 통과할 수 있던 좁은 문을 뚫고 중국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다양한 교류가 잠시 멈춘 상태이지만, 향후 중국 청도에 300평 규모의 미용교육시설을 오픈할 예정입니다.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중국 현지 미용학교를 컨택해 MOU를 체결하기도 했지요. 사스, 메르스의 위기도 이겨냈고 지금은 코로나19로 상황이 힘들지만, 낙심하진 않습니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해외시장을 개척하려는 꿈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더 열심히 준비하려 합니다.” 김 원장이 운영하고 있는 필업 뷰티센터는 최정예 뷰티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는 곳이다. 자격증 취득 후에도 기술이 숙련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수강생들을 도와 고객도 행복하고 수강생도 행복하며 교육훈련을 도운 필업 뷰티센터 역시 행복하기를 꿈꾸고 있다고. 김하나 원장은 “수강생 전원이 모두에게 박수 받는 프로 미용인이 될 수 있도록 교육에 온 힘을 집중하고 있다”며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김하나 원장은 현재 반영구화장 시술을 정식으로 합법화시키기 위해 관련 협회 회장단과 함께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반영구화장을 알리고 전문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한다고. 그녀는 현재 대한반영구메이크업재단의 교육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재단에 공헌할 단단한 체계를 갖추고 준비를 마친 상태다. 필업 뷰티센터를 이끄는 수장으로, 후배를 양성하는 교수로, 대한반영구메이크업재단의 교육위원장으로 활약하며 프로 미용인 양성에 열정을 다하고 있는 김하나 원장. 아름다움을 찾아서 사는 삶,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채워가는 삶을 살아가며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는 것’이 꿈이라 밝히는 김 원장. 뷰티사업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으로 멈추지 않을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는 그녀를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수상 경력] •2015년 대한민국 대상(제1회 대한민국 최고국민대상 뷰티부문 공로대상 : 이수성 前국무총리상) 부상으로 받은 상금을 전액 장학금 기금 전달 [대표 약력] •현) 필업뷰티 대표원장 •전) 하나 뷰티 대표원장 •현) 숙명여자대학교 뷰티최고경영자 과정 외래교수 •한국미용대학 교수협회 연수원 초빙 교수 •GBEC글로벌 미용전문가협회 협회장 •중·한 국제미용학교 교육이사 •중국 심천, 청도, 광저우 다수 수석 강사 출강 •중국 우한시 국제 미용학원 원장 •서울대학교 STHIS 뷰티 최고경영자 과정 •국제미인대회 글로벌 미스퀸 공식 샤프롱 •제1회 대한민국 최고국민대상 뷰티부문 공로대상(이수성 前 국무총리상) •다수의 국회의원 상장 보유 •대한민국 대중스타 대상 뷰티문화공로 부문 •아시아K뷰티포럼 100대 뷰티명장 대상 •제1회 GBEC글로벌 미용전문가 대회 대회장 •국내·외 미용대회 조직운영위원장, 감독관, 심사장, 심사위원 위촉 [1104]
    • 문화
    2020-11-11
  • 전국 최고의 타투교육의 중심 타투스터디 “마음과 책임감만 있으면 타투이스트를 꿈꿀 수 있습니다”
    “‘나’라는 문신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무얼 잘 하는지 표현하고 싶어 첫 활동명을 지을 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본명을 쓰고 있습니다. 나중에도 지금도 제가 하는 타투 일테니 말이죠(웃음).” 대한민국 타투 1세대와 2세대의 가교 역할을 맡았던 이재랑 타투이스트, 자칫 혐오감을 줄 수 있었던 타투를 조금 더 대중적으로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장르를 바꾸고 전문성을 키워갔다. 대한민국 유일무이 전문 타투스쿨, 타투스터디를 개설하기 위해 양쪽 허벅지부터 무릎까지 셀프 타투로 연습을 할 정도. 스스로의 몸에 직접 연습을 하면서 피부 회복, 잉크의 번지는 정도 등 많은 정보를 쌓았다고. 하나의 직업군으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_박정호 기자 어떤 장르를 좋아하나? 타투를 한 지 9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에는 장르 자체가 많지는 않았어요. 이레즈미 같은 장르가 많았고 시대가 바뀌게 되면서 새로운 장르의 시초인 ‘뉴 제패니즈’라는 장르를 들여왔습니다. 일본에서 시작된 장르 중 하나인데 전통적인 이레즈미는 도깨비, 호랑이, 용 등 전형적인 주제를 쓰지만 뉴 제패니즈는 전형적인 소재도 사용하지만 토끼, 참새, 고양이 같은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일본풍의 본질은 벗어나지 않고 예뻐 거부감 없이 대중에게 다가간 경우가 되었죠. 또 ‘블랙 앤 그레이’ 에도 경력이 깁니다. 타투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많은 분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예술적 부분들을 말씀하시는데 사실 저는 예술성이란 부분보단 사회적으로는 인식이 좋지 않았던 타투이스트를 하나의 직업군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컸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인정받고 싶었죠. 다들 미술을 하면 더 좋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저는 목공을 전공했었어요. 그렇기에 교육을 준비했던 이유도 있습니다. ‘무조건 예술성이 있어야 하고 그림을 전공해야지만 타투를 할 수 있는게 아니다’라는 부분을 어필하고 싶었어요.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타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전라도에서 서울로 무작정 올라가 혼자 시작했죠. 아버지를 한참 뵙지 않을 정도로 소식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지냈어요. 외로운 시간이었지만 9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성장한 모습으로 찾아뵈었습니다(웃음). 몸에 있는 타투에 의미가 있는지. 의미가 크지 않습니다. 팔뚝부터 시작해 손등으로 채워갔습니다. 노출이 심한 부위를 선택했던 이유가 있었어요. 당시 타투하는 분들도 손등에 타투가 없었습니다. 손등에 보이는 타투를 새기게 된 건 포기하고 싶을 때 저를 붙잡는 목표를 잡아준 ‘배수진’과 같은 역할이었습니다. 타투이스트가 된 계기가 있다면.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목공을 전공하면서 지방, 전국대회 수상을 많이 했습니다. 고3 때 기계에 손이 끼어 부상을 입고 입상에 실패했죠. 군대에 가서 보니까 할 수 있는게 없더라구요. 타투라는 것을 우연히 접했습니다. 인터넷을 봤는데 타투를 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깊게 남게 된 거죠.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하고 많이 알아봤습니다. 지금 스터디 원장님이시기도 한 신정섭 대표님이라는 분을 만나서 배우며 시작되었습니다. 교육자로서의 삶에 들어선 이유는? 타투를 시작했던 시대적 배경 때문에 배우는 과정이 사실은 너무 힘들었죠. 제대로 배울 수 없는 게 너무 많았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배웠죠. 배우면서도 물음표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건 어떻게 누구한테 배워야 할까 성장해 나가는 입장인 저도 타투란 것을 사람들이 잘할 수 있을까? 이것보다 쉽게 설명해 줄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뭘까? 하면서 제자들한테 제공하려 커리큘럼과 스터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본인에게 타투가 가지는 의미는. 살면서 필요에 의한 선택이 많았습니다. 저라는 사람을 조금 더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죠. 사람들이 모두 다 대부분이 공통적인 부분들을 다 가지고 있어요. 팔 두 개 손가락 5개 이런 것처럼 저라는 사람을 조금 더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라는 사람이 크다고 생각은 안 합니다. 스터디를 열 때 큰 수익에 기대를 했었다면 이렇게 크지는 못했을 거예요. 교육할 때 항상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을 줄 수 있냐 마음을 줬을 때 이 친구가 열심히 할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수 있도록 교육을 합니다. 지나온 시간 중에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다면. 수강생들이 500명 이상이 됩니다. 정말 열심히 하고 잘했던 애들 반반 힘들어했고 열심히 하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은 그런 친구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교육하면서 힘든 친구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손을 잡고 그림을 그려줄 정도로 힘들고 어려워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서 스터디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가지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향해 정진하는걸 보여줬고 아직도 함께 하고있습니다.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커리큘럼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 만들고 아카데미를 만들고 천천히 알려주며 경험이 쌓이다보니 이렇게 하면 교육생들이 잘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체계적, 전문적이게 커리큘럼이 잘 맞추어져서 교육이 상당히 효율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전문, 심화, 후반기교육 등으로 차등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기본 과정이 있습니다. 3개월 동안 똑같은 공통과제와 공통교육을 교육해주고 있어요. 공통적인 교육과정 안에서 조금씩의 변화를 두고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자기가 가야 하는 길들을 좀 더 확실히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기술적인 부분들이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죠. 타투에 관련된 부분들을 많은 사람에게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제 노하우를 다 넣어놨어요. 단 하나도 빠짐없이 함께하는 친구들이 더 잘했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해서 저를 따라올 만큼 올라와 제가 더 뛰어야 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어요. 타투는 완성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정체기가 오면 안 됩니다. 항상 성장해야 하는 직업이 타투이스트입니다.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찾아보길 바랍니다. [1104]
    • 문화
    2020-11-11
  • 진정한 실력과 품격의 날개로 비상하는, 대중문화예술의 미래인재를 양성
    스쳐지나갈 줄 알았던 불청객 코로나19는 도통 우리 곁을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연일 뉴스에는 전염병 관련 이슈가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은 전 세계와 사회 전반에 실로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고 있고, 이는 예외 없이 대중문화예술인들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현안으로 다가왔다. 늘 대중과 만나고 소통해야하는 대중문화종사자들은 대중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어려운 상황 속 돌파구를 찾는데 여념이 없었는데. 그들은 현 사태를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을까?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한국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 유동근 이사장을 찾았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대중문화예술인들은 시간과 세대를 초월해 사람들의 지친 마음과 균열이 생긴 일상에 위로와 감동을 전하는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온 마음을 바치겠습니다.” 따스한 햇살 가득한 10월의 가을, 목동에 위치한 (사)한국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 사옥에서 유동근 이사장을 만났다. 한국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는 분야를 뛰어넘은 종합 엔터테이너의 자질이 요구되는 현실에 발맞추기 위해 2017년 3월, 5개 개별협회(연기자·가수·성우·코미디언·실연자협회 등) 2만 5천여 회원들이 뜻을 모아 발족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 선도 단체다. 201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국비사업인 ‘대중문화예술인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연합회 내 부설교육기관인 한국대중문화예술원을 설립해 국가교육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대한민국 방송예술이 한 세기에 가까운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우리 방송예술인들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한류의 중심에 서서 국내 방송문화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어느덧 문화혁명의 시대라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예술분야가 만나 종합 예술을 만들어가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한국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나가기 위해 재능 있는 방송예술인들의 상호교류를 확대해 방송문화예술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며, 나아가 대한민국 방송문화예술의 중심이 되어 세계를 향한 성공의 길로 나아가는데 앞장서겠습니다.” 가능성을 지닌 인재가 제대로 재능을 펼치기 위해선 누군가가 그들의 역량을 알아보고 이끌어주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대중문화예술원은 무한한 재능을 지녔지만 제대로 된 교육과정과 기회를 찾지 못했던 대중문화예술인 지망생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꿈을 펼칠 기회를 열어주고 역량 있는 예술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현재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트렌드를 조명한 <차세대 한류인재양성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대중문화예술원은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도 접할 수 없는 양질의 현장 실기교육과 깊이 있는 인성교육을 통해 역량과 품격의 두 날개로 오래 날 수 있는 미래인재를 양성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통해 현장의 노하우를 전하고, 성숙한 인성교육을 통해 선진 문화를 이끌어가고자 한다고. 유동근 이사장은 “대중문화예술계에서 상호 존중하는 시스템을 배운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돋보일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타고난 재능에 더해진 노력과, 훈련을 통해 연마된 엔터테이너. 이들을 알아보고 길러낼 수 있는 노련한 전문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는 시기다. 역량 있는 국내 엔터테이너를 발굴하고 지도하는 멘토로서 누구보다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유동근 이사장. 대한민국문화예술 인재발굴에 소매를 걷어붙인 그가 펼쳐갈 행보에 기대가 모아진다. [ 약력 ] •1956년 출생 •1980 TBC 23기 공채 탤런트 •2019. 1 ~ 한국대중문화예술원(K-PAEC) 원장 •2017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 •2016.12 ~ 제1대 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 이사장 •2016.08 서울드라마어워즈 심사위원장 •2016.05 국민대통합 홍보대사 •2016.03 ~ 2018.12 제23대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 [ 수상내역 ] •2018 KBS 연기대상 대상 •2018 제11회 코리아드라마어워즈 연기대상 •2014 KBS 연기대상 대상 •2011 제2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표창 •2008 MBC 연기대상 중견배우부문 황금연기상 •2007 제1회 코리아드라마어워즈 연기대상 •2002 KBS 연기대상 대상 •2002 제23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2002 제38회 백상예술대상 방송부문 최우수남자연기상 •2000 제36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인기상 유동근 이사장은 남다른 고증과 재미로 주말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궜던 대하드라마의 부활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엔터테이너의 열의와 열정을 다 할 수 있는 대하드라마 부활의 절실함에 대해 강조하며 “대하드라마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다루기 때문에 역사를 알아가는 데에 아주 적합한 콘텐츠인데도 불구하고 수익성의 문제로 국내 대하드라마 제작의 대부분이 중단된 상태”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1104]
    • 문화
    2020-11-11
  • ‘2020년 부산예술상’ 수상! 1,600곡을 작곡한 부산 음악계의 원로
    아름다운 선율과 노랫말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곡을 작곡한 김성덕 작곡가. 1968년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해 1,600곡을 작곡하며 왕성한 활동을 해온 김성덕 작곡가는 최근 ‘2020년 부산예술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부산 음악계의 원로로 불리는 그는 관현악곡, 칸타타, 실내악곡, 독주곡, 합창곡, 예술가곡, 동요곡, 대중가요, 찬송가, 송영곡, 어린이 성가곡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작곡활동을 해온 음악가다. 주간인물은 부산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김성덕 작곡가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청명한 가을 하늘이 아름다운 계절, ‘2020년 부산예술상’ 수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김성덕 작곡가를 만났다. 한국적인 정서와 현대적 감성을 담은 아름다운 선율이 인상적인 합창곡 <시편23편>으로 유명한 김성덕 작곡가는 부산이 낳은 작곡가다. 남다른 예술가적 기풍이 있는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42년간 교육공무원으로 일하며 초·중·고·대학에서 음악교육을 통해 후진 양성에 기여해왔다. 작곡활동을 위해 부산교육대학교, 서울신학교, L.A Bible College & Seminary,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한국교원대대학원 등에서 작곡, 성악, 지휘, 문학, 신학 등등 폭넓은 공부를 했다. 일찍이 음악에 있어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그는 1968년 부산에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해 많은 명곡을 남겼다. 대표작인 합창곡 <시편23편>, 1974년 ‘KBS TV 우리들의 새노래 작곡 공모전’ 수상작인 <바닷가에서> 등을 비롯해 관현악곡, 칸타타, 실내악곡, 독주곡, 합창곡, 예술가곡, 동요곡, 대중가요, 찬송가, 송영곡, 어린이 성가곡을 아우르는 1,600여곡을 작곡했다.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도 뜨거운 열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영원한 현역이다. 작곡가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에 대해 묻자 김성덕 작곡가는 소년처럼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인다.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작곡 발표회를 할 때에요. 작곡 발표회를 하기까지 준비과정은 정말 치열합니다. 힘든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올린 곡을 듣고 관객들이 감동하는 모습을 볼 때, 짜릿한 전율을 느끼지요.” 그는 지금까지 개인 공연 7회(100여곡), 개인 작곡집 60여권(1000여곡), 개인 음반 CD 10장(263곡)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단체로 작곡 발표회 200회(400곡), 출판 250권(600권), 단체 음반 CD 150장 (250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성덕 작곡가는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부산작곡가협회, 한국창작가곡협회, 한국동요사랑회, 한국동요작사작곡가협회,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작곡가회, 한국가곡학회,한국교회음악작곡가협회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공로를 인정 받아 ‘2003년 문화관광부장관 표창장’, ‘2006년 부산음악상(작곡 부문)’, ‘2013년 한국예술문화명인(교회음악작곡) 인증 <제13-0803-21호>’, ‘2013 가요창작인 작가상’ 등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김성덕 작곡가가 음악적 영감을 오선지에 담아내는 과정은 치열하다. 역작을 완성하기 위해 그는 음표 하나하나에 영혼을 담는다. “영감은 하나님이 제게 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번뜩이는 영감을 오선지에 담아내는 찰나의 순간, 그 순간에 작곡가는 영혼을 담아요. 짧은 시간에 완성한 <시편23편>은 저 조차도 어떻게 만들었나 싶을 때가 많아요(웃음). 한창 무더운 여름, 시편23편을 읽는데 번뜩 악상이 떠오르더군요. 그때 오선지에 수기로 음표를 그리기 시작했지요. 마치 헨델이 메시아를 작곡하듯 거침없이 떠오르는 악상을 오선지에 담을 때 짜릿한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산 음악계의 원로인 김성덕 작곡가. 어려운 음악계의 현실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좋은 음악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후배 음악가들에게 그는 따뜻한 격려를 전했다. “독일,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은 음악가들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지원제도가 많아요. 반면 한국 음악계는 경제적 지원이 부족해 음악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어려운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음악가들이 더 좋은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하기위해서는 1회 공연으로 끝나는 단체에 가입하기 보다는 작곡집과 음반 CD를 발매하는 기회를 주는 단체에 가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김성덕 작곡가는 뜨거운 현역이다. ‘궁극적으로 오페라를 작곡하는 것’이 목표라는 그는 올해도 김성덕성가합창작곡집 <하늘의 은혜>를 출간했고 연이은 작곡 발표회를 앞두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뇌졸중으로 쓰러졌어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저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제게 이런 큰상을 받게 되다니, 2020년은 제 인생에 다시 없을 뜻깊은 해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 꿈이에요. 꾸준하게 노력하다보면 어느날 하나님께서 명곡을 내려주신다고 생각합니다(웃음).” [1103]
    • 문화
    2020-11-03
  • 꿈이 있는, 꿈을 꾸는 정원 밀양 분재식물원 ‘꿈의 정원’ 꽃, 나무, 동물, 목각공예품이 공존하는 자연 복합 공간
    버스를 타고 양 옆으로 넓게 펼쳐진 논밭을 지나다보면 울타리 위로 높게 뻗어있는 나무들이 보인다. 그 곳은 바로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54에 위치한 밀양의 분재식물원, ‘꿈의 정원’. 입구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밖에선 보이지 않던 푸른 정원이 펼쳐진다. 풍성한 나무들 사이로 이헌만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간인물은 꽃과 나무로 한정되어있는 보편적인 식물원의 개념을 넘어 방문객들에게 동물체험, 도자기체험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꿈의 정원 이헌만 대표를 만나보았다. _박새얀 기자 6만 6000㎡ 규모를 자랑하는 꿈의 정원에는 300여종 이상의 나무와 꽃, 풀들이 자라나고 있다. 이헌만 대표가 10년 동안 손수 재배하고 수집한 식물들이다. 이 대표는 10년을 함께하고 있는 식물들을 하나하나씩 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보통 분재는 철사로 굴곡을 잡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무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살리고자 철사를 사용하지 않고 가위로 자연스럽게 다듬어 줍니다.” 자연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고자 하는 이 대표의 정원 철학이 돋보였다. 500년 된 느릅나무 앞에 멈춰선 이 대표의 눈빛이 더욱 빛났다. 꿈의 정원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나무라고 한다. 강직하고 올곧게 자리 잡은 뿌리가 500년의 세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 누가 아무리 비싼 값에 사간다고 해도 판매 할 생각이 없을 정도입니다(웃음).”그러면서 이 대표는 느릅나무를 본인의 인생에 빗대어 표현했다. “느릅나무는 마치 제가 걸어온 인생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세월에 따라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일부러 ‘예쁘게 키워야지’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제 인생에 스며든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꿈의 정원에는 다른 식물원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것들이 많다. 연못에 뜨는 백두산 돌, 사람 모양의 돌, 다섯 가지의 바위를 겹겹이 쌓아 만든 폭포가 그런 것들이다. “그저 식물만 구경하기보다는 희귀한 볼거리들을 제공함으로써 방문객들이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대표는 ‘어린이 동물 체험 학습관’과 ‘도자기체험관’도 운영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면 타조, 토끼, 싸움닭, 금계 등 도시에서 보지 못하는 동물들을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이 동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먹이를 주는 등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해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활성화 시킨 공간이다. “이제 자라나는 새싹인 어린이들이 동물과 직접 교감을 하면서 생명에 대한 존중,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도자기체험관에는 이 대표가 수집한 목각공예품과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도자기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어 가족단위의 방문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름 넣은 칭찬글 밀양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 대표는 서울로 상경해 실내인테리어 사업을 했었다. 하지만 IMF 위기와 건강 악화로 인해 밀양으로 귀향해 ‘꿈의 정원’을 꾸렸다. 평소 꽃과 나무를 좋아해서 각종의 식물을 키우는 것을 취미로 했던 이 대표. 그러다 문득 ‘내 고향 밀양에 자연을 담은 관광자원을 만들고 싶다.’라는 꿈 하나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정원에 놓을 식물들을 탐색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 때를 회상하던 이 대표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연히 붉은병꽃나무를 보고 정원에 꼭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 곳 저 곳 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판매를 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저는 얼마가 들더라도 사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결국 제 간절한 마음이 통한 건지 붉은병꽃나무를 무료로 기증을 받았습니다. 그때가 제 기억 속 가장 뿌듯했던 날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방문객들을 위해 꿈의 정원의 체험 서비스를 더욱 확충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현재 기획하고 있는 것이 바로 130평대의 ‘한우 판매, 체험장 소달구지’이다. 그 중 30평은 농산물, 100평은 한우 체험장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송아지 탄생 과정부터 시작해 부위별 특징, 식감, 전시 체험을 열고 한우를 식사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것입니다.” 한우를 구입하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식사를 할 수 있다. 한우 값 외에 모든 식사 값은 무료라고 하니 좋은 가성비로 즐기기에 적합하다. 아리랑 초목회 전삼용 고문, 정수학 자문위원과 함께 사람 모양의 돌 꿈의 정원에는 ‘이름 넣은 칭찬글’이라는 팻말과 함께 조그만 테이블이 놓여있다. 팻말 그대로, 방문객의 이름을 넣어 칭찬을 하는 서예(캘리그라피)를 적어서 무료로 나눠주는 것. ‘이름 넣은 칭찬글’은 아리랑 초목회 정수학 자문위원의 붓 끝에서 탄생한다. 정수학 자문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름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어린이들 이름 한 번 불러주면서 칭찬하고, 이름을 잃은 며느리들, 엄마들의 이름 한 번 불러주는 것에 큰 감동을 받더라고요.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삭막해진 사회 속에서 이름 넣은 칭찬글을 통해 마음이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이 대표는 비영리법인 아리랑 초목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아리랑 초목회를 통해 2019년까지 총 7회에 걸쳐 <밀양 야생화 전시회>를 꾸준히 개최해오고 있다. 아리랑 초목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초목회의 더 큰 활성화를 꾸리고자 회장으로 자리 하게 되었다고. 그 결과 꿈의 정원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야생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스레 아리랑 초목회 회원들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밝혔다. “단순히 식물원의 개념을 넘어서서 자연과 동물을 느끼고 접할 수 있는 자연이 묻어나는 복합 공간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의 정원에 오셔서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내는 꿈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내내 나무와 꽃, 생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보였다. 이 대표의 바람대로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방문해 꿈 꿀 수 있는 정원으로 더욱 거듭나기를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타조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이 대표 직접 수집한 도자기들 500년 된 느릅나무 [1103]
    • 문화
    2020-10-26
  • 가구지오 목공방, 내 손에서 완성되는 반짝이는 행복! 일상에 지친 이들을 위한 마음의 쉼터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즐겁게 달리기 위해서는 리프레시 타임이 반드시 필요하다. 취미활동과 함께하는 일상의 보석 같은 휴식은 삶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고, 새로운 길에 눈을 뜨이게 하기도 한다. 큰 기대 없이 시작한 무언가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어 숨겨진 재능을 찾고 새로운 가능성과 삶의 모습을 발견한 이를 주간인물이 만났다. _정효빈 기자 생산적 여가활동으로 주목받는 ‘목공’ 높은 성취감과 만족도로 마음의 위안 선사해 “전 10년을 주기로 직업을 바꿔왔습니다. 온종일 한 공간에 갇혀 일하니 답답하기도 하고 특별한 성취감을 느끼긴 힘들었죠. 일상에 지루함이 찾아올 때쯤 목공을 시작했는데 나무를 다루다 보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이젠 제가 가장 좋아하고 행복한 일을 찾았으니 직업을 바꿀 필요가 없어졌습니다(웃음).” 화창한 10월의 가을, 대구 서문시장 거리를 따라 쭉 걷다 보면 정겨운 느낌 가득한 목공방을 발견할 수 있다. 곧장 안으로 들어서자 향긋한 나무 향이 코를 자극한다. 공방 내부에는 한창 작업 중인 원목 의자와 서랍장이 놓여있고 벽면엔 섬세한 손길이 닿은 목공예품이 가득 진열돼있다. 가구지오 목공방은 수제가구 제작과 다양한 목공예품이 제작되는 곳으로, 10년 차 공방지기 김무환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집안 어른께서 목재를 다루는 일을 하셔서 유년 시절부터 나무는 늘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해 취미로 이것저것 만들곤 했고요. 처음부터 업으로 삼겠다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만들다가 주변에서 무언갈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면 만들어주기도 하고, 혼자 노는 공간으로 시작한 이곳이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가구지오 공방의 진열장에는 섬세하게 나무를 잘라 조립한 ‘우든카’가 가득 눈에 띈다. 타 목공방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이 목공예품은 김무환 대표가 가장 사랑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김 대표가 우든카 제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의 아들 덕분이었다고. “우리 아들 주려고 간단하게 나무로 자동차나 곤충, 로봇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장난감에 중금속이나 납 성분이 검출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친환경적인 재료로 제가 직접 만드는 것이 낫겠다 싶더라고요. 워낙 섬세한 작업이다 보니 온전히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인지 특히 이 작업을 할 때 가장 재밌고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목공의 매력은 나무로 뭐든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우든카의 경우도 직접 도로를 달릴 순 없지만 수집은 가능하죠(웃음). 내가 갖고 싶은 건 무엇이든 창작해 만들 수 있으니 거기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대단합니다.” “나무의 특성 이해하는 과정 흥미로워…. 수강생과 함께 놀며 소통하는 공방 만들어갈 것” “최근에 매운 향이 나는 ‘웨루’라는 나무로 작업을 하는데, 옻나무를 만져도 멀쩡하던 제가 웨루나무를 재단하면서 콧물과 재채기가 멈추지 않더라고요.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고생은 조금 했지만 나무의 새로운 특성을 알아가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나무를 모두 접해볼 순 없겠지만 다양한 특수목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나무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수강생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가구지오 목공방은 원목을 이용해 친환경적인 수제가구를 제작하는 곳으로 원하는 디자인과 사이즈, 컬러, 나무 타입을 선택해 주문 제작할 수 있다. 테이블, 의자, 수납장, 침대 프레임, 옷장, 소품 등 종류가 다양해 주거공간뿐만 아니라 상업공간까지 맞춤 가구 제작이 가능하다. 또한 (사)한국목공교육협회 목공지도사교육원으로 지정된 이곳은 가구 및 목공예품 제작을 위한 기초적인 이론수업 및 정규 목공수업과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목공을 체험해볼 수 있다. 더불어 쓰임이 무궁무진한 나무를 유리, 철제, 가죽 등 다양한 소재와 접목한 소품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차별화된 수업을 진행해나가겠다는 것이 김 대표의 계획이다. “다양한 나무 중에서도 특히 레드오크를 좋아합니다. 단단하고 가볍지 않아서 싫증이 나지 않는 나무예요. 나무는 각기 다른 향과 색을 지녔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나무를 발견하면 ‘저 나무는 어떤 성질을 가졌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멈출 정도죠. 수강생분들께도 각기 다른 나무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론수업을 우선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많은 분의 기억 속에 가구지오가 ‘나무에 관해 더욱 깊이 있게 알아갈 수 있는 공방’으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웃음).” 지금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를 만지며 수강생과 함께 어울리는 소통의 공간으로 공방을 운영해나가고 싶다는 김무환 대표. 김 대표가 목공을 통해 반짝이는 즐거움을 발견한 것처럼 그와 그의 공간을 찾는 많은 이들이 따스한 원목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길 기대해본다. [1103]
    • 문화
    2020-10-26
  • 박준제 보람산부인과 대표원장 / 사단법인 은석문화회 이사장
    지난 7월 21일, 경남 김해시 삼방동 은석문화회관에서 열린 사단법인 은석문화회 창립총회에서 박준제 원장이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박 원장은 부산시 당감동에 소재한 보람산부인과 대표원장으로 21년째 한 자리를 지키며 환자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의사로서의 사명을 지켜온 인물. 지역사회 예술 문화에 인프라를 형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그는 ‘은혜로운 반석’이라는 뜻인 자신의 호 '은석'을 따 은석문화회를 창립했다. 평소 예술에 관심이 많은 그는 ‘닥터심벌즈’에 몸담으며 13년째 트럼펫을 연주하고 있기도 하다. _장서은 기자 Q. 은석문화회 창립을 축하드립니다. 은석문화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은석문화회 창립에 많은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토록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을 보아하니 ‘이러한 문화공간이 지역사회에 필요 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은석문화회를 소개하자면 ‘지역 문화예술 사업’과 ‘청소년 프로그램 개발 및 지원활동’을 중심으로 각종 활동을 병행하는 복합문화공간입니다. 그 외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 봉사활동 등 다양한 사업도 할 수 있는 공간이죠. 특히 은석문화회관은 6~800석 크기의 공연장을 가지고 있어 문화의 장으로 사용하기 적합한 곳입니다. 은석문화회관이 소재한 경남 김해시 삼방동은 예술·문화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었지요. 문화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미흡한 곳에 문화교류센터를 세워 지역 간 문화편차를 해소하고, 나아가 김해 지역 문화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져올 것입니다. Q. 콘텐츠나 커리큘럼 등 구체적인 사업은 어떻게 진행 될 예정인가요? 지상 1층 공간은 로비, 카페, 독서 공간 등의 휴게시설로 활용되고, 2층에는 ‘동김해 청소년 문화의 집’(가칭)이 운영될 예정입니다.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는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 동아리 프로그램 등이 운영될 계획입니다. 뿐만 아니라 문화 활성화 지원 사업, 역량개발 사업과 같은 청소년 지원 업무도 함께 병행 할 예정입니다. 지상 3~5층은 공연장·연습실과 같은 음악 관련 공간과 영화 관람시설 등 각종 문화 향유를 위한 부대시설이 갖춰지죠. 청소년 문화의 집은 내년 상반기, 고석규비평문학관은 내년 가을께 개관을 목표로 현재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해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는 중입니다. Q. (청소년) 문화 사업에 대한 인식이 생긴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의사 생활을 하며 생긴 직업병인지 디스크 파열과 다양한 고질병으로 건강이 많이 좋지 않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건강이 허락할 때 지역발전을 위한 일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러다 좋은 기회에 '김해은석회관'을 인수하게 되었는데 이 건물의 필요성을 생각하다 문화 예술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하기 좋겠다고 느껴 지역문화의 장을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연고가 있는 지역이 아니다보니 2년여 동안 많은 분들을 찾아다니며 이곳에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듣던 중 김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친구에게 지역 학생들의 열악한 조건을 듣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해시에서도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 도입 되길 바랬죠. 그렇게 자연스레 청소년 문화 사업을 중심으로 시작하게 되었네요. 이 모든 좋은 취지의 뜻을 알리니 같은 마음을 가진 이사님들이 은석문화회를 찾아주셔 함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웃음). Q. 의료인으로 꿈은 언제부터 가지게 되셨나요? 원장님의 청소년 시절이 궁금합니다. 제가 어릴 적 아버지께서 몸이 좋지 않으셨어요.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이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렇게 21년째 이 자리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고 소통하며 복지를 위해 살아왔네요. 그리고 저의 청소년 시절을 떠올려보니 음악을 참 좋아했던 아이였습니다. 고등학생 때 도서관에서 하던 음악 감상회를 보곤 무작정 트럼펫이라는 악기에 빠지게 되었죠. 소리를 내기에 상당히 어려운 악기다보니 연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몇 번을 도전하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음이 열렸으니 악기를 구입한지는 20년째지만 제대로 연주한 것은 13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닥터심벌즈 활동을 하며 음악에 대한 애정을 놓치지 않고 있죠(웃음). Q. 은석문화회의 미래나 목표, 또는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개인적으로는 이곳이 전 연령층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현재 세대 간의 교류는 너무 어려운 일이죠. 특히 맞벌이 부부들이 많아져 한창 부모님의 관심을 받아야 할 나이에 그렇지 못한 청소년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또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60세부터 제 2의 생활을 즐기시는 분들도 많으세요. 이러한 세대들이 소통하기 어렵다고 하는 세상이지만 음악으로부터 소통을 하면 상당히 좋은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청소년 오케스트라, 전문 오케스트라, 실버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지면서 세대 간 소통이 음악으로 이루어지며 자연스레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연주회장에서 끝이 나는 한정적인 문화가 아닌 유튜브나 SNS등의 발달된 과학 문명을 통해 멀리 퍼트리고 싶습니다. 은석문화회관에서 나오는 음악과 다양한 문화 및 문학까지 콜라보해 지역사람들은 물론 모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질 높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겠죠. 더불어 경남 김해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은 지역이에요. 그들의 문화, 음악,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행사도 진행할 것입니다. Q.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제 첫걸음을 딛었을 뿐입니다. 제가 어쩌면 당연시 받은 것들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을 뿐이죠. 음악, 책 등 예술과 문화가 함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으니 이제는 누구나 언제든지 와서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꼭 무언가를 해야하는 공간이 아니라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두어 쉼이 필요할때 언제든 편히 머무를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곳이 될 것입니다. 은석문화회는 제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고 누구나 주인입니다. 이곳에 항상 관심을 가져주시고 좋은 의견을 내어주시는 것이 은석문화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됩니다. 삼방동, 김해를 넘어 부·울·경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문화의 산실’이 되겠습니다(웃음). [1102]
    • 문화
    2020-10-13
  • 예수님의 가르침, 그대로 사랑하라! 봉사하며 사랑을 베푸는 마산삼육교회
    지난 9월 18일, 마산삼육교회(담임목사 홍성호)에서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 행정복지센터(동장 황규봉)에 마스크 5,000장을 기탁했다. 마산삼육교회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단 예하의 교회다. 1860년 미국의 미시간 주 배틀크리크(Battle Creek)에서 제임스 화이트(James White), 엘런 화이트(Ellen White), 조지프 베이츠(Joseph Bates), 존 앤드루스(John Andrews) 등에 의해 조직된 개신교 교파 중 하나이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모든 목회자들이 급여에 대한 소득세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_박정호 기자 Q. 어려운 시기에 마스크 기탁을 해주셨습니다. 한 말씀 해주신다면. 우리 교회는 무엇이든 회의를 통해서 결정합니다. 두 명의 장로, 집사, 목사 모두가 참여해서 말이죠. 평소 상의하고 결정을 하고 직원 회의를 거쳐 진행했지만 코로나 시국에 대면 회의를 할 수 없으니 비대면 회의로 마스크를 기탁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교단에는 ‘도르가’ ‘아드라’등의 구호단체가 있고 각 교회마다 지부가 조직이 되어 활동을 합니다. 저희 교회는 국내뿐 아니라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 등의 나라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몇 가정이 쌀 한 가마니로 버틸 수 있다고 파악 후 지원 요청을 하면, 필요한 만큼 메신저에 올리고 개인적으로, 또는 교회 차원에서 직원 회의를 거쳐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Q. 코로나로 인해 교회의 방역 지침에 대한 불신이 늘고 있습니다. 마산삼육교회는 어떤가요? 교인들의 안전을 위해서 교회와 교단 차원에서 방역당국의 모든 지시에 협조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방역 지침을 지키고 있죠. 온도 체크, 손 세정제 사용, 방문 기록까지 철저히 관리하여 전체 공문을 보냅니다. 방역당국의 지시에 따르는 것을 기본적으로 하되 나머진 강압적으로 하지 않아요. 심각 단계 때에는 방송 예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조금 나아졌을 땐 예배를 드리되 떡이나 두유 등을 나눠주며 최대한 짧게 진행하고 귀가조치 했습니다. 교단 차원에서 방역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Q.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단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신다면. 우리 교단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교단입니다. 제칠일안식일이 말이죠. 성경에 십계명을 따라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칠일째 되는 날 쉬라고 하신 명령에 따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준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칠일을 창조의 기념일로 지정하시고 그날을 복 주시고(Blessed), 거룩하게(Holiday) 구별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행운의 숫자로 여기는 럭키 세븐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자주 쓰는 휴일(Holiday)이란 단어가 거룩한 날이라는 Holy+day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영어로 History라고 합니다. 그 의미도 His+Story, 즉 그의 이야기가 역사라는 뜻으로 우리가 평범하게 쓰는 단어들 속에 성경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단은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을 다른 날과 구별하여 거룩히 준수하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성도들입니다. 다른 교파에서 이단이라 부르지만 기독교 신앙의 기초인 성경을 비추어 볼 때 가장 진리에 가까운 교회라고 자부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완전하시지만 이런 죄스럽고 불완전한 세상에는 완전한 교회나 사람은 없다고 성경에서 말하곤 하죠.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성화된 의인이자 그리스도인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종교와 교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가 진리의 교회인지 궁금해서 모든 종교에 대해 공부하고 어떠한 기독교파가 진정한 종교인지 성경을 기초로 연구한 결과 제칠일안식일재림교회가 성경에 기초한 가장 진리에 가까운 기독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Q. 장로로 계시면서 느끼는 점. 예수를 지져스(jesus) 라고 하고, 그리스도를 크라이스트(christ)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 믿고 따르는 자들은 크리스천(christian)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기독교인이라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셔서 봉사하고, 섬기고, 자기 자신을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를 기쁜 마음으로 바치셨습니다. 그 희생을 통해 온 우주에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결국 구약과 신약에 따르면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때에 오셨고, 예수님은 그를 믿고 따르며,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마침내 천국으로 인도하실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히 성도들과 천국에서 함께 살게 하기 위해서 재림하신다는 내용이 성경의 핵심인 것입니다. 저는 그 예수님을 믿고 살며 어언 30년 넘게 교회를 섬기며 살다 보니 장로가 되었습니다. 장로는 높은 지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모본에 따라 성도와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귀한 종의 직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성경의 구약에서 십계명을 두 가지 핵심으로 요약한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이 첫째요, 그리고 나와 이웃과의 사랑이 둘째 계명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내 너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나니 그것은 사랑이다’라는 말씀도 하셨죠.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으로 비추어 보면 모든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요, 그래서 역사는 그와 그의 사랑 이야기 ‘History’입니다. 그 예수님의 가르침 그대로 사는 것이 크리스천의 축복이며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핵심인 사랑을 잃어버리는 신앙인들이 너무 많아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1102]
    • 문화
    2020-10-13
  • <제23회 경상남도 관광기념품 공모전> 동상 수상! 통영 전통공예의 심미안(審美眼)을 녹여내다
    제23회 경상남도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이태숙 통영 동백공방 대표의 마주르카 그릇이 동상을 차지했다. 이태숙 작가가 만든 마주르카 그릇은 러시아 마주르카 인형(겹겹이 쌓인 인형)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실용성과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작품이다. 느티나무로 깎은 백골에 천연옻칠을 하고 꽃을 디자인한 나전칠기를 더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더했다. 주간인물은 작가의 예술혼을 담은 실용적인 작품을 만드는 이태숙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 세계를 담았다. _박미희 기자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漁港)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 中- 시인이 노래한 아름다운 통영.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은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를 키워냈다. 조선시대 통영에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했고 군사들에게 물자를 대는 12공방이 있어 예로부터 솜씨 좋기로 이름난 장인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옻칠한 그릇이나 가구의 표면 위에 광채나는 야광패(夜光貝)나 전복조개 등의 껍질을 여러가지 문양으로 박아넣어 장식한 나전칠기는 규수들의 안방을 차지하는 귀물이었다. 두 겹의 옷감 사이에 솜을 넣거나 넣지 않은 상태에서 2~3땀씩 직선으로 바느질해 옷감이 따로 놀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누비는 쉽게 헤지지 않아 대를 물렸다. 이렇듯 통영을 대표하는 두 예술기법을 조화롭게 응용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가 바로 이태숙 작가다. 부산이 고향이 이태숙 작가는 원래 대학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서양화가다. 삶의 터전으로 통영을 선택한 그녀는 수백년의 역사를 지닌 나전칠기와 누비에 매료돼 장인들에게 기술을 배웠다. 통영시 나전칠기 교실에서 교육을 받았고, 패쇄공 박재경 명장에게 영향을 받았다. “통영의 오랜 예술문화의 소산인 나전칠기와 누비에 매력을 느꼈어요. 두 기술을 조화롭게 응용해 처음으로 ‘나천칠기 누비가방’을 만들었어요. 한줄, 한줄 정성을 다해 누빈 가방에 찬란한 나전칠기 공예로 디자인을 더해 작품성과 실용성을 갖춘 가방을 제작했습니다. 처음 나천칠기 누비가방을 만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공예대전에서 입상을 했고, 통영전통공예관에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이태숙 작가는 나전칠기와 누비 작업에 예술혼을 담는 작가다. 오랜시간 한 자세로 작업에만 몰두하는 그 시간을 사랑한다. “옷감을 한줄, 한줄 누빌 때 마치 도를 닦는 것과 같아요.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것, 그것이 곧 누비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천에서 받는 감성과 달리 한줄, 한줄 누빈 누비는 보다 아름다운 작품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누비의 매력이죠(웃음). 수백년 간 내려온 누비의 전통을 잇고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수백년 간 내려온 누비에 영롱하게 빛나는 나전칠기를 더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인내가 필요하다. 백골에 생옻칠을 입혀 베헝겁을 바르고 그 위에 흑칠을 하고 토분과 생옻칠을 더한 고래를 바르고 다시 자개를 놓고 생칠을 한후 갈아내고 광을 내는 과정을 거쳐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자개를 가늘게 실같이 켜내어 칼끝으로 눌러서 끊어내는 끊음질은 그 자체가 갈고 닦는 인내죠. 오랜시간 인내를 갖고 정성을 드려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이 됩니다. 작품들 모두 내가 쓰는 물건처럼 건강에 좋은 천연옻칠을 하고 있어요. 통영 전통공예의 아름다움을 지닌 나전칠기의 알면 알수록 매력있어요(웃음).” 작품명 「화룡점정」으로 <제43회 대한민국공예품대전>에서 입상을 「목련의 봄-남태칠기」로 <제44회 대한민국 공예품대전>에서 입상을 <제44회 경상남도공예품대전>에서 동상을, 「나전 액세서리」로 <제18회 경상남도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청바지업사이클링」으로 <제21회 경상남도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대회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동백공방은 ‘2020년 경상남도 공예품개발 장려업체’로 지정되었으며 지난 2월에는 전통공예 전승과 보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경상남도공예협동조합 표창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러시아 마주르카 인형(겹겹이 쌓인 인형)에서 영감을 얻은 마주르카 그릇으로 <제23회 경상남도 관광기념품 공모전>-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요즘 1인 가구가 늘면서 수납공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요. 마주르카 인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5개 그릇을 겹겹이 포개서 쌓을 수 있는 느티나무 백골에 천연옻칠을 하고 뚜껑에 꽃을 디자인한 나천칠기 작업을 해 작품성을 더했지요. 통영 전통공예의 뛰어난 심미안과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한 실용성을 담은 작품입니다.” 그녀의 손길을 닿으면 하얀 백골도 화려한 나전칠기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딱딱한 무생물에 작가의 영감을 담아 생명력을 더 하는 이태숙 작가. 수백년동안 내려온 통영 장인들의 전통을 잇고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는 이태숙 작가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1101]
    • 문화
    2020-09-25
  • 이애숙 꿈문화사회활동가 / 옹달샘 결혼정보회사 대표
    ‘표현한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지능적인 영역이자고유의 영역인 동시에 기계가 따라 올 수 없는 ‘신의 재능’이다. 우리는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으로 늘 표현을 해왔다. 한국사회는 표현에 서툴다. 한 많은 역사 때문일까, 각박한 문화 때문일까. 50~60대 중심세대들은 위로는 부모세대를 섬겨야하고 아래로는 자식들을 감싸야하는 책임감, 청년들은 중심세대의 눈치에 암묵적인 노코멘트의 태도를 취한다. 오랫동안 마산바다의 터를 지키며 다양한 세대들과 교류해 온 이애숙 대표를 만났다. _허유림 기자 “스물 여섯, 스물 여덟 두 딸을 둔 엄마 이애숙입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교육사업을 하기 시작했죠. 세상이 정한 기준에 맞춰 관심과 사랑을 쏟으며 온 열정을 다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저는 욕심 많은 잔소리쟁이 엄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잔소리를 안하기 위해 서로 말을 안 해보기도 하고…. 무언의 침묵이 잔소리를 하는 것도 안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나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꼼꼼하고 원칙주의자인 그녀는 회계사무소, 보험영업, 의류사업을 통해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지만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 아이들과의 갈등에서 청년세대와 부모세대들의 소통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낀 이애숙 대표는 50+인생을 통해 청년들과 중심세대가 소통하는 문화를 통해 사회에 선순환을 일으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30대 청년 세대들은 50~60대 중심세대와의 대화가 얼마나 편할까. 50~60대들은 청년세대의 생각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애숙 대표의 +, -, ×, ÷ 인생사칙연산 “50~60대들은 위로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아래로는 자녀들을 수용하는 섬김의 세대입니다. 시대적으로 중간에 있는 샌드위치 세대지요. 가정, 직장내 갈등들은 잘 참지만 표현이 서툰 세대기도 하죠. 외면은 행복해 보일지 몰라도 내면은 모두들 외롭습니다. 50~60대의 경험을 공유하고 나누기 위해 50+인생학교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주영의원님의 축사로 늦저녁버스킹을 진행했고 앞으로는 건강, 돈, 사랑의 주제로 다양한 기획들을 할 계획입니다. 50+의 건강한 문화 형성 속 수익창출을 통해 청년들에게 꿈 문화를 보급하는 것이 숨은 목적입니다.(웃음)” 대부분 돈을 버는 일에 우리의 삶이 집중되어 있다. 이 삶속에는 꿈은 없다. 돈을 쓰고, 늘리고, 나누는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면 그것이 바로 꿈이다. 이 대표의 꿈은 월100만원을 기부 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모델 10개 정도 만들어 월 천 만원의 자금으로 꿈 문화사업을 하고 싶다. “꿈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꿈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입니다. 꿈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꿈은 삶의 방향을 설정해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이 자신의 삶입니다. 꿈은 방향이고 성장이며 과정입니다.” 꿈이 없으면 세상이 혼란스럽고 삶이 혼돈스럽다. 마치 우주 미아와 같다. 죽으면 ‘돌아가신다’라는 표현은 우리가 삶의 과정을 잘 보내고 죽을 때 본연의 자리로 잘 돌아간다는 뜻이다. 삶의 관점을 죽음에 놓고 보면 참으로 숙연해진다. “우리 50+들이 즐겁게 놀며 세상의 방향을 좀 바꿔 보면 어떨까요? 함께할 사람 붙어라 외칩니다!”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꿈이 있어 행복하다는 그녀. 그녀에게 미래를 물었다. “요즘 20대들이 트로트를 불러 어른들이 많은 위로 받고 있어요, 우리 세대들도 청년들에게 거꾸로 꿈과 희망이 있는 발라드를 불러주고 싶어요. 그래서 밴드도 구성하고 책도 써보고 싶습니다. 고민을 공유했을 때 험담하고 비난 받는 문화가 아닌 격려하고 응원받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꿈을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1101]
    • 문화
    2020-09-25
  • 화석 학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 고생물학자! 뉴욕타임즈, BBC, 세계적 과학저널에 소개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람들 간의 접촉을 통한 감염 방지를 위해 수업·강연·박람회·음식주문 등 많은 사회·문화활동과 일상이 비대면 방식으로 바뀌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검색하고 문의하는 등 언택트(비대면)가 빠르게 우리 생활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최근 국내 백과사전 플랫폼에서 초등학생들이 궁금해하는 키워드로 6월에서 7월까지 분석한 결과, 공룡(2위: 2700여건)과 화석(3위: 1600여건)이 상위권으로 집계됐다. 이에 주간인물은 흥미로운 집계 결과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곳곳에 숨어있는 익룡(翼龍.Pterosaur) 발자국 화석 발굴·연구의 전문가이자 세계적인 학술지에서도 인정한 김경수 진주교대 과학교육과 교수를 만나러 세계 최대! 최고의 화석산지, 진주로 한달음에 향했다. _김민진 기자 경상남도 진주시 영천강로68번길 22에 위치한 진주익룡발자국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니 공룡 발자국 화석 연구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들 사이에서 일명 ‘Eagle Eye(매의 눈)’로 불리는 김경수 교수가 환한 미소로 취재진을 반겼다. 진주교대 부설 한국지질유산연구소장인 김 교수는 진주 일대에서 12년째 숱한 화석들을 발굴 및 연구해 온 저명한 고생물학자로서, 화석의 가치를 알리는 데 모든 힘을 쏟고 있다. 1972년 하동에서 공룡 알 화석이 발견되고, 1973년 경북 의성에서 공룡 뼈 화석이 발견되어 이후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공사 현장에서 수많은 화석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진주의 경남혁신도시 조성 공사 시, 김경수 교수에게 의뢰함으로 진주교육대학교 조사단을 통해 1억 1천만 년 전 익룡 발자국만 무려 2,500여 점이 무더기로 발견되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진주 호탄동 퇴적층에서 발견된 익룡 발자국은 그 숫자와 밀집도면에서도 압도적으로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익룡의 발톱 자국까지 선명하게 나타나 있으며, 좁은 장소에서 익룡 발자국 보행렬 화석들이 다수 발견된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경우로 학술적 가치와 그 중요성이 상당히 높이 평가되는 화석산지이다. 아울러 각종 공룡과 새의 발자국 화석들도 다량 발견되어 중생대 백악기 고생태 및 지질학 연구·교육을 위한 지역으로 인정된 진주 호탄동의 총 3필지 1200㎡가 천연기념물 문화재 보호구역(제534호)으로 지정되었다. 김경수 교수는 발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석의 훼손과 손실을 최소화하는 ‘발자국 화석 발굴 방법에 대한 기술’ 특허도 취득하였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잇따라 붙는 김 교수의 수많은 논문들은 뉴욕타임즈, BBC, 세계적 과학저널 Scientific Reports 등을 통해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현재 우리 도처에는 화석이 정말 많습니다. 저부터가 먼저 논문을 위한 연구로 책상 앞에 앉아있을 것이 아니라, 후대의 발전을 위해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 혼자서 절대 독점하면 안 되고 각자의 바퀴가 잘 돌아가도록 일을 해야 하지요. ‘화석을 제대로 보존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는 단순 명료한 하나의 목적 아래 함께 열심히 현장을 다니고, 발견하면 반드시 신고하는 행정처리를 중요시 여기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논문을 쓴다면 순리적인 흐름 속에서 당연한 결과물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사천시 서포면 자혜리(중생대 백악기 진주층)에서 발견된 세계 최초의 두발로 걷는 백악기 원시악어 발자국 화석은 최근 국내 공영방송을 포함해 다수의 매체에서 보도됐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완벽하게 보존된 도마뱀 발자국 화석은 진주혁신도시의 진주층에서, 경남 진주시 정촌면 뿌리산업단지에서는 정교하게 보존된 백악기 공룡의 발바닥 피부자국도 세계 최초로 발견됐다. 매년 한국을 방문해 김경수 교수와 함께 공동 연구를 하는 미국·스페인·호주·중국 등의 교수진들은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김 교수와 지속적인 온라인 소통으로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 중에 있다고 한다. “학문이라는 것을 배워서 사회에 나갔을 때 그 전공을 살려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전한 김 교수는 한 번 없어지면 다시 만들 수 없는 자연이 만든 유산, ‘화석보존’을 위해 행동으로 앞장서서 화석발굴과 보존연구에 매진하며 끊임없이 인재양성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질학, 고생물학 등 돈이 되지 않는 배고픈 학문이라는 인식을 깨뜨리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김경수 교수의 힘찬 날개짓에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육식공룡이 남긴 구애 흔적 화석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발견한 김 교수 [1100]
    • 문화
    2020-09-04
  • 안동의 문화는 곧 대한민국의 문화, 가슴 뜨거운 유일한 전쟁의 역사, 차전놀이!
    안동차전놀이는 경북 안동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행해지던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다. 마을 청장년들이 패를 갈라 나무로 만든 놀이기구인 ‘동채’를 서로 부딪쳐 승부를 겨루는 것으로 후삼국시대에 고을의 삼태사(김선평, 권행, 장길)가 고려 왕건을 도와 고창(안동의 옛 지명)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군을 무찌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전승돼 오고 있다. 당시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왕이 내려준 성씨가 안동 권씨, 김씨, 장씨다. 1천여 년을 이어오던 안동차전놀이는 일제 탄압에 1922년 중단됐다가 안동인들의 여망에 의해 재현돼 1966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 1967년 부산 제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문화공보부장관상, 1968년 대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해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1969년 1월 7일 국가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됐다. _박정호 기자 “대부분의 민속놀이가 미신에 기반을 두고있음에 반해 전쟁 승리의 역사에 기반을 둔 남성적 최고예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안동차전놀이는 한 팀에 수백 명씩 힘을 합세해 움직이기 때문에 협동 단결심이 강한 놀이로 민족의 혼을 상기시키는 국가적 민족적 차원에서 그 뜻이나 가치에 있어 가장 값지고, 훌륭한 대동놀이의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차전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싸움에서 이기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여겨 모두 최선을 다했고, 응원하는 사람도 각자의 편을 목청껏 응원했지요. 한마음 한뜻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공동체의식이 깃들여진 놀이입니다. 함께 소리를 지르고 힘을 쓰면서 신명이 고조되고 저절로 운동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각하게 됩니다. 이 놀이는 서민들의 삶을 노래하는 농경 사회에서 꼭 필요한 것이었어요. 이긴 편은 머릿수건과 신발을 하늘 높이 던지면서 환호를 했고, 하루 종일 노래와 춤을 즐기곤 했습니다.” 사단법인 안동차전놀이보존회의 수장이자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인 이재춘 회장은 “학창시절에는 그냥 자유롭게 살아왔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특별한 목적도 없고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가고 싶은 대학에 떨어지고 하니 의욕이 생기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뒤늦게 국립 전통문화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신문대학원을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건너건너 아는 어르신이 안동군수가 되셨는데 ‘집에서 놀면 안된다. 차라리 군에 취직을 하라’고 조언해주시더군요. 그래서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 공부하고 시험을 쳤는데 경북도에서 2등을 했어요(웃음).” “1992년, 제가 나랏돈을 받으며 공무원을 할 때 차전놀이가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시장님이 차전놀이 관련 부서로 저를 보내셨어요. 계속 근속근무를 하다보니 70년도에 전수생 후보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더니 인간문화재가 되었습니다(웃음). 대구에서 시민상, 도민상, 금오대상을 받고 또 작년에 문화부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많은 영광을 안았지만 이 고향에서 크는 게 제일 외롭덥니다. 안동이 유교 사상이 정착되어 가문이 살아있어야 안동에선 인정을 해주는 정서가 있어서 혼자서 살기 위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 스스로 참 잘 지낸 것 같네요.” "안동차전놀이는 지난 2000년 독일에서 개최된 ‘하노버 엑스포 2000’에 참가하는 등 그동안 각종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고 초청공연도 해왔습니다. 전야제에 카터 미 대통령 또 각국 주요인사가 참석하기도 했지요. 2016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한인문화축제와 2018년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열린 한인의 날 행사에 초청돼 공연하는 등 민간외교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별 생각없던 외국인들이 차전놀이가 시작하면 그 웅장함에 놀랍니다. 3100명이 모였었는데 그 중 300명이 차전놀이 공연을 했으니 그 규모가 상당했지요. 독일의 경우는 공영방송에서 소개되고 나니 특파원 7명이 오기도 했습니다(웃음). 뉴질랜드에 10명 정도의 대한민국 교포를 보냈고. 캐나다에 8명을 보내 교포들과 동호인을 모집해 진행했습니다. 2003년엔 미국에 처음 들어간 100주년 기념으로 하와이에서 현지의 해군이랑 교포들이 공연하기도 했어요.” 그는 독일 행사를 갈 때 기억나는 일이 있다며 소개했다. “300명이 비행기를 탔는데 차전놀이꾼들이다보니 얼마나 체격도 좋고 우람했겠습니까. 한 잔씩 주는 양주를 두세잔씩 들이키는 놀이꾼들을 보고 승무원들이 ‘군인이냐, 무슨 부대냐’ 질문하며 궁금해 하더라구요. 우연찮게 돌아올때도 똑같은 비행기를 탔습니다. 독일 정부로부터 상금을 탔기에 함께 간 300명이 12만원씩 나눠가졌지요. 본토에서 쇼핑할 시간이 없었으니 비행기에서 면세품을 다 사버려서 품절이 되어버렸어요. 승무원들이 놀라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웃음).” 국가에서 지정한 대부분의 문화 이수자들은 문화생활이 전업이지만 차전놀이 전수생, 이수자들은 다 탄탄한 직장이 있다며 이 회장은 자랑스러움을 표했다. 그래서 봉사라고 생각하며 임한다고 했다. “문화청장님이 이런 단체가 있는줄 몰랐다며 깜짝 놀라셨어요. 이수자, 전수생들이 다 강력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문화단체는 유일무이합니다. 우리가 모범 조직으로 선정되어서 매번 우수상을 타다가 최근엔 최우수상까지도 타서 상금도 받고 했습니다. 제가 안동문화원장으로 있을 때 처음으로 전국 유일한 여성 한마당, 도산별과, 노국공주 선발대회 등을 개최한 이력이 있습니다. 또한 자랑스러운 안동인상, 경북도 자랑스러운 도민상, 문화관광부 상도 수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회장은 “모두에게 감사하다 그냥 살아가는데 일을 터주었다.”라며 겸손한 말을 전했다. “행사가 있으면 제가 도포를 걸치고 나가지만 행사가 끝나면 바로 벗습니다. 한 명의 문화재로서 남의 구설에 오르지 않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안동의 민속이 바로 대한민국의 민속입니다. 예를 지키는 고장이라 일거수 일투족을 조심하며 겸손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라의 인물이라며 고향에서도 대접을 받으려 경쟁하고 싸우고 하는 것 보다 순수한 자기 분야에서 뽑힌 인물이 옳고 고장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 옳은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욕심을 안내야 생활이 편합니다. 욕심을 조금이라도 내기 시작하면 언젠간 과욕을 하기 마련이지요. 주어진 삶에 맞게 욕심을 내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우주의 원리에 맞게 사는 게 맞습니다.” 조만간 문화원 출신들이 주도를 하여 ‘안동문화사랑지킴이’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안동에서 국회, 행정 등 업적이 많고 지역에 봉사하는 사람들을 찾아 국가 기관이 아닌 문화단체에서 상을 주려고 한다 계획을 전했다. 문화로 쌓아올린 안동에서는 아주 뜻깊은 상이 생길 예정이다. “제 살아생전 평화 통일을 이룬다면 남․북한 동포들과 함께 차전놀이를 해보고 싶습니다. 서로에 대한 미움을 완전히 내려놓고 함께 어깨를 맞대며 말이죠,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며 이북의 동포와 함께 놀이할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고문 권영세 (안동시장) 김형동 (국회의원) 김호석 (안동시의회의장) 권덕칠 (안동교육지원청교육장) 류한상 (전 안동문화원장) •이사 이영걸 (풍산한지 대표) 김근환 (영남사 대표) 이재업 (동성환경 대표) 권영동 (전 고령부군수) 권석환 (안동문화원 이사) •감사 김명호 (전 경상북도의회의원) 김희엽 (안동호텔 대표) •전수교육조교 임규혁 (전 공무원) •이수자 이병국 (예총 경상북도지회장) 김우섭 (경북도민일보 국장) 김동학 (동창기획 대표) 정우일 (한돈식당 대표) 이장영 (경동창호 대표) 김건태 (전 때재배골프장 대표이사) 임치광 (대성MD의료기 대표) 권오율 (이안스크린 대표) 정태순 (대흥스틸 대표) •전수생 김상현 (안동문화원 과장) 이기종 (공무원) [1099]
    • 문화
    2020-08-27
  • 2020 ‘뷰티풀 환경미술대전’ 대상 수상 “제 작품을 통해 세상과 공감(empathy)하고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공간을 뜯어 붙여낸 듯한 그림. 절경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을 통해서 두 번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안은희 작가. 지난 7월 25일, 2020 ‘뷰티풀 환경미술대전’에서 그녀의 작품이 ‘황산절경’이 대상인 국회의원상을 수여하며 그녀의 삶은 더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어쩌면 살아가기 위해 그림에 온몸을 던진 안 작가의 예술과 삶을 들어보자­­. _박정호 기자 공간을 뜯어 붙여낸 듯한 그림. 절경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을 통해서 두 번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안은희 작가. 지난 7월 25일, 2020 ‘뷰티풀 환경미술대전’에서 그녀의 작품이 ‘황산절경’이 대상인 국회의원상을 수여하며 그녀의 삶은 더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어쩌면 살아가기 위해 그림에 온몸을 던진 안 작가의 예술과 삶을 들어보자­­. _박정호 기자 안은희 작가가 예술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다른 작가들과는 사뭇 다르다. 평소에 활력이 넘쳐 몸을 움직이고 운동하는 삶이 너무 행복했던 사람이었다는 안 작가. 가족들과 국내 곳곳을 다니며 함께 운동하고 공감하며 살아가던 그녀였다. 운동에 소질도 꽤 있어 대부분의 종목은 3개월이면 다 마스터할 정도였다고. 하지만 그게 몸에 부담이 되었는지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6년 전,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병원을 가보니 척추 디스크가 2번부터 5번까지 터졌다는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운동이나 여행을 다닐 수 없게 되었고 아이들과의 소통도 제대로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주부로서의 삶도 중요했지만 저의 유일한 활력소인 운동이 없어지게 되자 점점 활동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에서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갔고, 그와 함께 삶의 행복도 사라져간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회복하고자 명의를 만나도 제가 다시 걷는 일은 기적이라 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고 저조차도 너무 아프니까 누워만 있는 날이 반복되었습니다. 제 삶이 점점 시들어 갈 때쯤이었어요. 아이들 미술 선생님이 오셨는데 그림 그리는 게 눈에 확 들어오는 거예요. 아이들이 그린 산과 바다 그림을 보고 너무 그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건강상 가기는 무리였기에 그마저도 체념하기 시작했죠. 그렇지만 아이가 그린 그림을 걸어두자 그게 조금 위로가 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루 이틀 그렇게 아이의 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이 혹시 그림이 아닐까 싶어서 선생님께 저도 좀 가르쳐 달라며 복대를 차고 습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의 사진, 그림을 보고 하나둘씩 그려봤지요. 2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해주셨는데 그렇게 아이 방 한 면을 아크릴화로 채우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미술 숙제가 나오고 하면 제가 더 신나는 거예요. 그때 느꼈죠, 아, 그림이 나를 살리는구나 하고요.” 처음엔 사실화를 동경했다는 안은희 작가, ‘현실주의 작가분들이 그림을 정말 잘 그리지만 어느 한 부분이 답답하고 단순히 사진하고 똑같다는 점에 조금의 갈증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새도 나비도 나무도 그리기 시작하며 그림의 영역을 넓혔고 아이들과도 다시 소통을 시작하며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역시 사실적으로만 그리는 것으로는 제 마음을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앉아서, 누워서 그림을 그리며 행복했지만 제 본래 모습은 활동적인 사람이었기에 점점 다른 여러 감각도 만족 하길 바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수행평가 수업에 쓸 점토를 조물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런 입체감을 캔버스에 옮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선생님에게 어떤 재료를 써야 입체적인 느낌을 낼 수 있는지도 물어보고 스스로 공부했습니다. 그리하여 ‘모델링 퍼티’에 대해서 알게 되었죠. 그때부터 생각했어요. 입체적 그림을 그려내면 산도 들도 바다도 좀 더 내가 그 속으로 떠난 것처럼 여러 감각을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느낌이 들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입체적으로 그림을 표현해내는 재료를 찾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결국 저에게 딱 맞는 재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산과 바다를 갔을 때 모습을 상상하며 돌 하나, 나무 하나의 느낌을 살려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입체적으로 공간을 담아내는데 도전하기 시작한 거죠.” 처음 시작할 땐 돌 표현하는 게 마음에 차지 않았다는 안은희 작가, 답답한 마음에 그림을 거꾸로 그려보게 되었고 다시 그림을 뒤집었을 때 진정 입체감이 살아난 웅장한 바위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은희 작가는 지금까지 그림을 거꾸로 뒤집어서 그린다. “디스크 증상이 점점 호전되며 가끔씩 외출을 시작하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바닷가나 절벽에 가서 나무면 나무, 돌이면 돌을 직접 보고 만져봤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동영상을 매번 찍어왔지요. 그림을 시작하고 몸이 서서히 낫는 거예요. 그동안은 모작만 했는데 직접 나가서 보니까 너무 신기했어요. 매번 아무 생각 없이 그림에 빠져서 그렸고 그림을 드디어 완성했을 때쯤에는 늘 몸이 아파 찡그리고 있던 저의 얼굴에서 사라진 미소를 되찾은 걸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림 앞에 서있으면 나무 향기 바다 내음을 느낄 수 있었고 저의 지친 마음도 점점 채워져가며 몸을 많이 움직일 수 없어 답답했던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마치 제가 산에 직접 오르고 파도에 몸을 맡긴듯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때부터 저는 티비와 핸드폰에서 제가 가고 싶은 곳을 찾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늘 설레었지요 마치 여행을 가기 전 설레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림을 완성했을 때는 마음이 충만했답니다. 마치 그속에 속속들이 관광을 하고 온 것처럼 말이지요. 그 느낌 그대로, 만져봐도 진짜 돌처럼 느껴지게끔 더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부조’ 방식을 채택했어요. 거의 공간을 뜯어오는 느낌의 그림에 가까워진다는 평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픈 와중에도 남편은 항상 끊임없는 지지를 보냈다는 안 작가. 그렇게 그녀는 자신만의 방법, 그림으로 활력을 찾아갔고 작품수도 점점 늘어갔다. “하루는 남편이 ‘저런 그림들을 집안에 두니 그림이 답답해 보인다’라며 ‘그림만이라도 여기저기 여행을 떠나보내자’고 농담으로 한 마디 하더군요. 그렇게 전국대전에 제 작품을 출품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을 전국에 흘려보내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2년 동안 10여 회의 수상 결과를 이루어 냈습니다.” “전국대전에 출품하면 어떻겠냐는 주변의 권유에 마음을 비우고 내봤다”는 그녀. “출품할 때마다 수상을 하게 되어 전라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상을 다 받게 되었다”며 웃어보인다. “남편이 차에 그림 항상 싣고 옮겨주었고 안 들어가는 대형 작품은 차량을 대절해 운반을 했습니다. 가뜩이나 큰 작품인데 캔버스 대신 판넬에 그림을 그렸기에 더 무거웠죠. 그 무거운 그림을 옮기는데 2년 동안 남편이 군말 없이 다 도와줬습니다. 너무 고마웠어요. 그에 힘입어 다른 전시회도 나가고 작년, 개인전에 올리게 되었는데 혼자서 완판을 했습니다.” 처음 공모전에서 상을 받을 때 ‘안은희’라는 세 글자를 보고 “아~ 내 이름이 안은희였구나” 라는걸 느껴봤다며 감격해하던 안 작가. 우연한 기회로 (사)대구환경미술협회와 (사)한국전업미술관협회에도 가입을 하며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좋은 회장님들과 작가 선생님들을 만나 전시도, 여러 방면 출품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생겨 해외, 국내 전국 초대전 전시 또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뷰티풀환경미술대전에서 대상인 국회의원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가르침 없이 혼자의 힘으로 그리고 싶은 데로 나이프 가는 데로 간절한 마음만 담아 그린 그림이 수상을 하니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제 그림으로 많은 분들이 힐링 되기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고요. 새로운 창작 기법을 발전시켜 또 다른 세계의 작품을 만들고 지금까지의 그림에서 탈피하여 더 좋은 작품으로 여러분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작가로 거듭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몸이 아파 누워있을 땐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했지만 잠시라도 그림을 보면 여행을 간 듯 행복했습니다. 제 마음을 전하고자 소아암 병동에도 작품을 전시해 아이들이 만져볼 수 있게 해주는 재능기부도 해보고 싶습니다. 언젠간 저의 공감(empathy)이 가득한 그림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지 않을까요. [1099]
    • 문화
    2020-08-27
  • 향긋한 온화함이 감도는 감성 tea room “자신의 기호를 알고 누리고자 하는 본질을 깨닫는다면 감동은 배가 되고 더욱 깊이 있어질 것입니다”
    콧속을 가득 채우는 향긋한 향기, 진열장 가득 놓인 각국의 귀한 차들이 반기는 곳. 실비아티룸은 차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안목을 갖춘 전문 티 마스터 박은주 대표가 이끌어가는 공간이다. 다채로운 홍차, 이와 어울리는 디저트는 물론 다양한 찻잔과 그릇, 알맞은 커트러리까지…. 실비아티룸이 특별한 이유는 차를 마시고 스콘을 갈라 잼을 바르는 등 향긋하고 달콤한 티타임을 즐기는, ‘테이블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벤트를 사랑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곳’이라는 점이다. _정효빈 기자 차와 함께하는 모든 과정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이는 곳 박은주 대표가 차의 매력에 깊게 빠져든 건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유년 시절 집에 일주일간 머물었던 외국인 손님으로 인해 일찍이 커피문화를 접하게 됐다는 박 대표. 커피를 통해 티타임의 매력을 알게 된 그는 홍차를 접하며 본격적으로 차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다. “예쁜 찻잔에 스푼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나, 찻잎을 덜어 따뜻한 물을 붓는 일련의 과정들이 참 좋더라고요. 제가 이런 걸 워낙 좋아하다 보니 해외 출장이 잦았던 큰 오빠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늘 새로운 차를 선물로 사 오곤 했어요. 하루는 오빠가 ‘홍차랑 초콜릿을 먹을 때 씹어 먹지 말고 입안에서 녹이고 바로 차를 한 모금 마셔봐’라고 하길래 그대로 따라 해 봤죠. 입안에서 섞이는 맛과 향이 어찌나 좋던지…(웃음). 좋아하고 자주 접하다 보니 후각이나 맛을 느끼는 감각도 발달하게 된 것 같아요.” 실비아티룸에서 만날 수 있는 박은주 대표의 브랜드 ‘Silvia’s Tea’는 실론티 프라임급의 정석으로, 2015년 두바이에서 있었던 스리랑카 대표 차 산지 경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FFEXSP 등급의 홍차다. Silvia’s Tea는 차에 대한 깊이 있는 식견을 지닌 박 대표가 스리랑카 현지 Tea Factory에서 생산한 찻잎을 패키징한 그의 분신과 같은 브랜드. 홍차를 즐기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Silvia’s Tea에는 ‘내 손을 통해 나가는 모든 것은 나를 대변한다’는 박 대표의 소신이 담겨있다. “티타임에서 얻는 힐링, 대체될 수 없어… 차를 매개로 소통하는 공간 만들어갈 것” 홍차 수업, 카페 창업 컨설팅, 베이킹·쿠킹 원데이클래스가 운영되고 있는 실비아티룸. 박은주 대표는 많은 이들이 달콤한 티타임을 가지며 향기로운 일상을 영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클래스에 임하고 있다. ‘자신의 기호를 알고 누리고자 하는 본질을 깨닫는다면 감동은 배가 되고 깊이 있어질 것’이라 말하는 박 대표. 그가 진행하는 클래스 역시 조금은 특별하다.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클래스를 박은주 대표만의 언어로 표현하며 호응을 얻고 있었는데. “물론 본인의 기호에 맞게 완벽한 티타임을 즐기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홍차 내리는 법을 잘 몰라서 홍차의 진짜 맛과 향을 제대로 못 느끼고 계신 것 같아요. 홍차는 찻잎의 특성에 따라 우려내는 시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요. 수강생분들에게 ‘너구리는 면이 두꺼우니 5분 끓이고, 스낵면은 면이 얇으니 2분 정도 끓이지 않느냐. 라면 끓이는 것처럼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쉽다’고 설명해드립니다. 홍차는 어디까지나 기호식품이니까요.” 박은주 대표는 카페를 운영하는 데 있어 고객과의 소통은 물론 ‘자기 자신과의 소통’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근 카페창업컨설팅 문의가 많아진 만큼 이에 임하는 그의 자세도 남다르다. “많은 자본이 투입된 멀티형 공간의 럭셔리한 카페와 달리 차 한 잔, 커피 한 잔으로 승부를 봐야하는 소규모 카페는 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스토리와 손님과의 소통이 운영의 성패를 가릅니다. 기본적으로 테이블에 제공되는 모든 것에 관해 설명할 줄 알아야 하고, 내 손에서 나가는 음식에 온전히 책임져야 해요. 더불어 주인의 마음 역시 즐겁고 행복해야 합니다. 공간의 분위기는 주인장 혼자 만드는 게 아니에요. 나와의 소통을 통해 내 일상을 온화하게 만들어야 자신에게서 묻어나오는 따뜻함과 향기로움이 손님에게도 전달되죠. 공간에 머무는 이들의 행복한 감정이 모여 공간에 축적된다고 믿어요.” 진심을 담은 클래스 운영으로 다년간 축적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누고 있는 박은주 대표. 실비아티룸을 통해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가 꿈꾸는 내일이 궁금했다. “차 한 잔을 마주하며 느끼는 힐링은 앞으로도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알약으로 여러 영양소를 공급받을 수는 있지만, 티타임은 그렇게 심플한 대체가 불가능하죠. 홍차가 주는 모든 온기와 향기를 오감을 통해 느끼고, 이 과정을 통해 얻는 힐링을 더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이곳을 소통의 공간으로 운영해가겠다는 마음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웃음). 향후 차 수·출입 분야에도 집중할 예정이며, 실비아티룸을 차가 아닌 분야에서도 마음의 양식을 얻어갈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창출해내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싶습니다.” [1099]
    • 문화
    2020-08-27
  • “환경에 대한 안타까움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실천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리싸이클링-예술로 물들이다>전에서 스티로폼, 펫트병을 활용한 _신재순 회장 작품 <I'm 비보이> (사)환경미술협회는 미술을 통한 환경운동을 목적으로 조직, 창립된 단체로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과 함께 전국 규모의 대표적 NGO 운동 단체다. 시민단체들과 연대, 공유하며 전국적으로 16개 광역시‧도 지회와 60여 개의 시‧군 지부, 2개의 해외 지부(미국‧프랑스)로 결성되어 있는 순수미술단체로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많은 미술인들과 대중들에게 알리는 의미 있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_박정호 기자 동양화, 서양화, 사진, 서예, 조각, 공예, 디자인, 민화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된 회원 4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사) 대구환경미술협회는 매년 환경 관련 전시회를 가지며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신재순 지회장은 협회 소개로 “여러 기관 및 단체들과 주관 및 협력으로 다양한 문화 예술행사 및 세미나,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환경 계몽운동의 일환으로 매년 재활용품을 활용한 재활용 전과 환경조형물 설치 및 대형 환경물 제작프로젝트를 개최하고 있고, 어르신이나 장애우 등 소외된 계층을 위해 시민과 함께하는 <찾아가는 문화마당> 활동 또한 매년 개최하고 있다.”라고 했다.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현재는 조금 주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코로나19도 회원들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어르신과 함께하는 ‘바람불어 좋은 날’ 부채그림 그리기를 통해 직접 찾아가는 체험행사를 펼치며 더욱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르신들이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갇혀있다시피 계셔서 즐거운 경험을 드리고자 기획했으며, 매년 해왔던 행사이긴 하지만 올해는 더욱 의미가 있었던 것은 보호자조차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르신들이 부채에 그림을 그리시고 좋아서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큰 기쁨을 느끼며, 세대 간의 벽도 허물고, 예술가들도 예술을 통한 사회적 봉사를 할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라고 했다. 작년의 경우, 대구 성서 노인복지회관 등에서 함께한 어르신들이 200명 정도, 올해는 몬스마뜨리스 데이케어센터, 안심성봉요양원, 더 행복 주간보호 센터에서 100여 명의 어르신과 함께 했다. 어르신과 함께하는 부채그리기 체험 대구 지역 미술단체 중 처음으로 자체의 협회 갤러리를 조성한 (사) 대구환경미술협회, 코로나19로 모든 국민들이 경제적인 고충을 겪고 있는 가운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술가들과 함께하고자 협회 차원에서 갤러리 공간을 마련했다. “토갤러리는 대구문화재단의 코로나 피해 예술 단체 지원금을 마중물로 협회 회원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통해 조성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지역 미술이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가 지역예술가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첫 갤러리 개관기념초대전으로 (사) 대구환경미술협회 회원 76명을 초대해 회화, 도예, 조각 등의 작품 80여 점을 전시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예술 영역의 확대라는 의미 외에도 예술 작품을 통한 환경의식 고취에도 의의가 있다고 했다.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참신한 미술품들을 접해보ㄴ고 더불어 우리가 쉽게 버리는 물건들이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는 ‘Junk Art’ 를 통해 자연과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대구환경미술협회 <신천에 부는 바람소리> 설치전 (대구 신천 둔치) “Junk Art란 말 그대로 버려진 물건들을 재활용해 예술품을 만드는 활동을 뜻합니다. 즉 버려진 고철을 용접하여 이어 붙이거나, 폐타이어 등을 쌓아 올리는 등 비교적 무거운 소재의 폐자재를 활용하여 작품을 제작하지요.(Heavy Junk) 하지만 우리 협회가 추구하는 소프트 정크(Soft Junk)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페트병, 깡통, 스티로폼 등의 재활용품을 활용해 만든 작품으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따라 하기 쉬워 환경, 교육, 예술적인 측면의 효과가 아주 큽니다.” 마지막으로 신재순 지회장은 대구 신천에 ‘환경미술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싶은 생각도 하고 있으며, 대구시가 추진하고 있는 ‘컬러풀 대구’의 이미지와 맞게 찬찬히 구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환경미술협회 대구광역시지회 부설의 토갤러리 개관 “신천에 흐르는 물을 이용해 재활용 정크 아트 등을 띄우고, 신천 둔치를 따라 소프트 정크(Soft Junk) 설치작품들을 전시하고, 그렇게 환경미술 비엔날레를 개최하면 컬러풀 대구의 정서에 맞게 관광객도 유치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한 수익 창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환경미술협회 대구광역시지회 신재순 지회장과 협회원들이 꿈꾸는 세상이 오길 기대하며 예술 작품을 통해 환경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길 바란다. [1098]
    • 문화
    2020-08-10
  • 소통의 아틀리에, 꽃in뜨라레 - 최서윤 꽃in뜨라레 실장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트렌드로 식물이 급부상하고 있다. 식물과 교감하는 과정이 불안감이나 우울감을 극복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고, 흙과 식물을 정성껏 돌보고 집중하는 동안 세로토닌이 분비돼 행복함을 느끼게 하고 우울한 감정을 지워주기 때문. 코로나19 위기 속, 그 어느 때보다 ‘행복’과 ‘힐링’이 필요한 시기, 주간인물이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주인공은 최서윤 꽃in뜨라레 실장이다. 경남 창원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플로리스트이자 플랜테리어 디자이너인 그는 식물을 매개로 이웃과 소통하며 화훼산업에서 미래의 가치를 발견한 인물이다. _정효빈 기자 꽃in뜨라레는 플라워디자인부터 플랜테리어까지 식물에 관한 토탈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꽃과 식물을 이용한 화훼장식뿐만 아니라 실내·외 조경 및 가드닝까지. 식물과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인 꽃집에서는 플랜테리어 작업과 클래스를 병행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최서윤 실장은 조경·인테리어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플랜테리어는 자연의 싱그러움을 느끼고 싶지만 매일 숲 속을 찾아갈 수 없는 바쁜 현대인들이 집 안으로 자연을 들이는 느낌을 받도록 꾸민 것으로, 최근 들어 수요가 더욱 늘어난 분야. 과거 인테리어 현장에서 일했던 경험과 자연에 관한 관심이 자연스레 최 실장을 현재의 모습으로 이끌었단다. “어릴 적 용돈이 생기면 먹을 것 대신 항상 꽃을 사곤 했어요. 꽃집을 차리는 것이 장래희망일 정도로 꽃을 좋아했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평범한 꽃집 아줌마가 되느냐, 플로리스트가 되느냐, 더 나아가 종합예술 분야로 확장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했고, 자연스레 조경· 인테리어 분야까지 영역을 넓히게 되었습니다.” 현재 최서윤 실장은 올 8월 개소 예정인 ‘경상남도 중부권 돌봄노동자 지원센터’의 실내 플랜테리어 작업을 맡으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경상남도 돌봄노동자 지원센터는 전국 최초로 노인, 아동, 장애인, 산모·신생아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돌봄노동자를 위한 센터로, 돌봄노동자 실태조사와 연구·정책개발 등의 수행을 통해 건강관리와 직업·심리 상담, 역량강화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한 돌봄노동자 권익증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추진할 계획인 이곳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는 최 실장의 의지와도 맞닿아 있는 공간이다. “육체적·심리적으로 지친 돌봄노동자의 진정한 휴식을 위해 자연과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센터를 꾸미고 싶었습니다. 프리저브드 유럽이끼를 메인 소재로 결정해 미세먼지를 잡고 내부 습도를 훌륭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했죠. 돌봄노동자분들이 코로나19 확산 속 긴급돌봄으로 인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감정소모가 상당하다고 들었어요. 센터는 그분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나무와 식물은 물론 물 흐르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흘러나오도록 해 센터에 들어서면 마치 우거진 숲 속에 들어선 것과 같은 모습으로 조성하려고 합니다.” 식물을 매개로 이웃들과 소통하고 정을 나누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며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최서윤 실장. 꽃과 식물을 판매해 수익을 얻는 것보다 마음의 부자가 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기쁨이라고. “동네 어르신들이 집 앞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신다고 흙을 한 포대 사러 오시면, 대화도 더 나눌 겸 집까지 배달해드릴 때가 많아요. 어르신들이 고맙다고 항상 과일이나 먹을 것을 챙겨주시는데, 형편이 어려우신데도 제게 마음을 나누어주시는 게 참 감사하더라고요. ‘이런 게 이웃 간의 정이구나’하고 자주 느껴요. 꽃집을 운영하며 이웃들과 함께 웃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에요. 결국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일이죠(웃음).” 지역 사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최서윤 실장의 꿈은 향후 공동체 형태의 화훼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것. 노인, 장애인, 경력단절 여성 등 취약계층과 공동으로 사업을 운영해나가며 골목 상권 활성화를 꾀하고, 다시금 활기가 도는 동네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최 실장은 지역 어르신들의 경제적 안정과 사회참여 기회 제공에 목소리를 높이며 이와 관련된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꽃과 식물을 다루는 일이 다소 힘들긴 하지만, 분업화를 통해 일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면 어르신들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배우고 일하며 스트레스도 풀고,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치매 예방도 하시고요. 꽃과 식물은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저와 함께 일하시면서 건강과 활력까지 되찾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웃음).” [1097] •1995 자동차정비기능사 •2017 화훼장식기능사 •2019 플로리스트 1급 •2019 도시농업관리사 •2019 소상공인기능경진대회 제21회 대한민국화훼장식기능경기대회 프리져브드상품 부문 동상 꽃다발 부문 우수상
    • 문화
    2020-07-22
  • 우리 민족이 만든 독특한 정형시의 하나인 시조의 언어제조기
    서 시인 고향은 경남 함양이다. 마을 뒤로는 덕유산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멀리는 지리산이 아른거리는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태어났다. 비교적 감수성이 높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들하고 어울리기 보다는 자연과 벗 삼아 책 읽기를 좋아했다고. 작가의 초등시절, 중앙대 국문과를 다니시던 숙부의 영향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폭풍의 언덕, 제인에어 등의 책을 읽으며 감수성을 축적하였고, 한 줄씩 써 두었던 느낌들을 시(詩)로 승화시키는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하였다. 중학교까지는 함양군 서상면에서 지냈고 전남 영암 신북고를 졸업, 청소년시절을 보내면서 전국 백일장, 호남예술제, 전국대학 학보지 작품모집, 월출산 문화재등에 참여하여 수상, 각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시하고 학생중앙지에 입상을 했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추치호 기자 서 시인은 군 제대 후 조인수 아동문학가를 회장으로, 고인이 되신 황금찬 님을 고문으로 모시고 아마추어 문학모임인 ‘푸른글방’을 결성하여 전국에 지부를 내고 독자들이 만나고 싶은 유명작가들을 섭외하며 활동을 했다. 또한 신달자, 허영자, 이문열, 故천상병, 이외수, 중광스님을 비롯한 유명한 작가들 모임을 통해 그분들의 인생관을 들었으며, 추천을 받아 등단도 시켰다. 서 시인은 향토시조를 거의 3만편, 시(詩)는 2만 편, ‘진달래’란 제목으로 연작시조를 10만 편 정도 쓸 정도로 놀라운 문학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를 아는 작가들은 서 시인을 ‘언어제조기’, ‘즉흥시인’ 등의 닉네임으로 부를 정도. 또한 문단에서는 ‘진달래꽃 시인으로’ 통하는 대단한 열정적인 작가다. 학창시절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는 톡특한 친구였어요. 시험볼때마다 답안지에 시(詩)를 써서 나중에 따로 답안지 작성을 할 정도로 글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어요”라고 호평했다. 서 시인은 스승을 따로 모시고 시조를 공부한 적이 없다. 대자연, 대국어사전, 수많은 책들의 그의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 앞으로 그의 계획은 [백암 문학상] 제정과 낙후된 벽서지역 꿈나무들에게 [공천문학 장학금]을 주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정치 사회, 경제가 흔들려 대한민국 국민모두가 힘들어 하는 이 시기에 “ 詩는 나에게 있어서 밥이고 숨쉬기 이며, 나의 영혼입니다 ”라는 서 시인. 평생 외길을 걸어온 그의 詩 한편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정화가 되고 한줄기 희망을 갖길 기원하며 그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주간인물은 응원한다. ▪ 한국문인협회 회원 ▪ 대구 문예세상 심사위원 ▪ 대구 영남 시조학회 ▪ <낙강>부회장 ▪ 한문협 강북지부 부회장 ▪ 시인들의 샘터문학 자문위원 ▪ 아시아 태평양문협 시조분과 심사위원 ▪ 전국 백일장 심사위원 ▪ 한미문단회원 ▪ 한국 신문예 홍보이사 ▪ 한시작가협회원 ▪ 한국청소년 신문사 주최 서울시의회 의장상 문학대상 ▪ 행안부위원장 문학대상 진달래 목마름 갈망하는 화녀같이 뜨거운 꽃 구름밭 여린 비에 타는 갈증 식힌 꽃이 번뇌에 탁해진 마음 깔끔히 씻고 피었다 넘치는 생명의 빛 생동하는 산맥마다 꽃떨기 타는 마음 붉은 태양 녹일 듯 뜨거운 환희의 몸짓은 온 산밭에 번진다 비온 뒤 맑은 화안 근심 벗겨 더욱 붉고 말쑥한 옷맵시에 방긋 방긋 웃는 모습 해거름 타는 노을에 제 미색을 견준다. 작가의 길 그대들이 시를 읊지 않으면 뉘 있어 이 추운 겨울 밤의 고독 깊은 시름에 젖은 수심을 알겠는가 정치에 글쟁이는 무관하니 대자연을 노래하라 인생 백세를 노래하라 끝없이 달려가도 모자를 세월 앞에 아웅다웅 하지 마시게 비방하고 헐뜯지 마시게 신새벽 정취를 노래하라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라 각박한 현실 속에 주저앉은 사람들의 가슴에 시를 풀어 위로하라 문장을 풀러 희망의 문을 열어라 말의 칼을 무디게 하고 필로써 행복을 노래하라 글쟁이의 본분을 망각하지 말라 세상 바른 이치를 깨우쳐라 백 마디 말보다 한 줄의 시맥으로 천지에 빛을 뿌려라 감동의 씨를 뿌리고 결실을 맺어라 글로써 온풍을 일으키고 글로써 삶의 희망을 전하라 푸른 창공에 해처럼 타오르라 이 땅의 글쟁이들이여 [1097]
    • 문화
    202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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