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안동차전놀이는 경북 안동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행해지던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다. 마을 청장년들이 패를 갈라 나무로 만든 놀이기구인 ‘동채’를 서로 부딪쳐 승부를 겨루는 것으로 후삼국시대에 고을의 삼태사(김선평, 권행, 장길)가 고려 왕건을 도와 고창(안동의 옛 지명)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군을 무찌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전승돼 오고 있다. 당시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왕이 내려준 성씨가 안동 권씨, 김씨, 장씨다.

1천여 년을 이어오던 안동차전놀이는 일제 탄압에 1922년 중단됐다가 안동인들의 여망에 의해 재현돼 1966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 1967년 부산 제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문화공보부장관상, 1968년 대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해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1969년 1월 7일 국가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됐다. _박정호 기자


“대부분의 민속놀이가 미신에 기반을 두고있음에 반해 전쟁 승리의 역사에 기반을 둔 남성적 최고예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안동차전놀이는 한 팀에 수백 명씩 힘을 합세해 움직이기 때문에 협동 단결심이 강한 놀이로 민족의 혼을 상기시키는 국가적 민족적 차원에서 그 뜻이나 가치에 있어 가장 값지고, 훌륭한 대동놀이의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차전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싸움에서 이기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여겨 모두 최선을 다했고, 응원하는 사람도 각자의 편을 목청껏 응원했지요. 한마음 한뜻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공동체의식이 깃들여진 놀이입니다. 함께 소리를 지르고 힘을 쓰면서 신명이 고조되고 저절로 운동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각하게 됩니다. 이 놀이는 서민들의 삶을 노래하는 농경 사회에서 꼭 필요한 것이었어요. 이긴 편은 머릿수건과 신발을 하늘 높이 던지면서 환호를 했고, 하루 종일 노래와 춤을 즐기곤 했습니다.”
사단법인 안동차전놀이보존회의 수장이자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인 이재춘 회장은 “학창시절에는 그냥 자유롭게 살아왔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특별한 목적도 없고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가고 싶은 대학에 떨어지고 하니 의욕이 생기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뒤늦게 국립 전통문화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신문대학원을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건너건너 아는 어르신이 안동군수가 되셨는데 ‘집에서 놀면 안된다. 차라리 군에 취직을 하라’고 조언해주시더군요. 그래서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 공부하고 시험을 쳤는데 경북도에서 2등을 했어요(웃음).”


“1992년, 제가 나랏돈을 받으며 공무원을 할 때 차전놀이가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시장님이 차전놀이 관련 부서로 저를 보내셨어요. 계속 근속근무를 하다보니 70년도에 전수생 후보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더니 인간문화재가 되었습니다(웃음). 대구에서 시민상, 도민상, 금오대상을 받고 또 작년에 문화부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많은 영광을 안았지만 이 고향에서 크는 게 제일 외롭덥니다. 안동이 유교 사상이 정착되어 가문이 살아있어야 안동에선 인정을 해주는 정서가 있어서 혼자서 살기 위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 스스로 참 잘 지낸 것 같네요.”
"안동차전놀이는 지난 2000년 독일에서 개최된 ‘하노버 엑스포 2000’에 참가하는 등 그동안 각종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고 초청공연도 해왔습니다. 전야제에 카터 미 대통령 또 각국 주요인사가 참석하기도 했지요. 2016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한인문화축제와 2018년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열린 한인의 날 행사에 초청돼 공연하는 등 민간외교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별 생각없던 외국인들이 차전놀이가 시작하면 그 웅장함에 놀랍니다. 3100명이 모였었는데 그 중 300명이 차전놀이 공연을 했으니 그 규모가 상당했지요. 독일의 경우는 공영방송에서 소개되고 나니 특파원 7명이 오기도 했습니다(웃음). 뉴질랜드에 10명 정도의 대한민국 교포를 보냈고. 캐나다에 8명을 보내 교포들과 동호인을 모집해 진행했습니다. 2003년엔 미국에 처음 들어간 100주년 기념으로 하와이에서 현지의 해군이랑 교포들이 공연하기도 했어요.”
그는 독일 행사를 갈 때 기억나는 일이 있다며 소개했다. “300명이 비행기를 탔는데 차전놀이꾼들이다보니 얼마나 체격도 좋고 우람했겠습니까. 한 잔씩 주는 양주를 두세잔씩 들이키는 놀이꾼들을 보고 승무원들이 ‘군인이냐, 무슨 부대냐’ 질문하며 궁금해 하더라구요. 우연찮게 돌아올때도 똑같은 비행기를 탔습니다. 독일 정부로부터 상금을 탔기에 함께 간 300명이 12만원씩 나눠가졌지요. 본토에서 쇼핑할 시간이 없었으니 비행기에서 면세품을 다 사버려서 품절이 되어버렸어요. 승무원들이 놀라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웃음).”
국가에서 지정한 대부분의 문화 이수자들은 문화생활이 전업이지만 차전놀이 전수생, 이수자들은 다 탄탄한 직장이 있다며 이 회장은 자랑스러움을 표했다. 그래서 봉사라고 생각하며 임한다고 했다.
“문화청장님이 이런 단체가 있는줄 몰랐다며 깜짝 놀라셨어요. 이수자, 전수생들이 다 강력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문화단체는 유일무이합니다. 우리가 모범 조직으로 선정되어서 매번 우수상을 타다가 최근엔 최우수상까지도 타서 상금도 받고 했습니다. 제가 안동문화원장으로 있을 때 처음으로 전국 유일한 여성 한마당, 도산별과, 노국공주 선발대회 등을 개최한 이력이 있습니다. 또한 자랑스러운 안동인상, 경북도 자랑스러운 도민상, 문화관광부 상도 수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회장은 “모두에게 감사하다 그냥 살아가는데 일을 터주었다.”라며 겸손한 말을 전했다.
“행사가 있으면 제가 도포를 걸치고 나가지만 행사가 끝나면 바로 벗습니다. 한 명의 문화재로서 남의 구설에 오르지 않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안동의 민속이 바로 대한민국의 민속입니다. 예를 지키는 고장이라 일거수 일투족을 조심하며 겸손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라의 인물이라며 고향에서도 대접을 받으려 경쟁하고 싸우고 하는 것 보다 순수한 자기 분야에서 뽑힌 인물이 옳고 고장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 옳은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욕심을 안내야 생활이 편합니다. 욕심을 조금이라도 내기 시작하면 언젠간 과욕을 하기 마련이지요. 주어진 삶에 맞게 욕심을 내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우주의 원리에 맞게 사는 게 맞습니다.”
조만간 문화원 출신들이 주도를 하여 ‘안동문화사랑지킴이’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안동에서 국회, 행정 등 업적이 많고 지역에 봉사하는 사람들을 찾아 국가 기관이 아닌 문화단체에서 상을 주려고 한다 계획을 전했다. 문화로 쌓아올린 안동에서는 아주 뜻깊은 상이 생길 예정이다.

“제 살아생전 평화 통일을 이룬다면 남․북한 동포들과 함께 차전놀이를 해보고 싶습니다. 서로에 대한 미움을 완전히 내려놓고 함께 어깨를 맞대며 말이죠,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며 이북의 동포와 함께 놀이할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고문
권영세 (안동시장)
김형동 (국회의원)
김호석 (안동시의회의장)
권덕칠 (안동교육지원청교육장)
류한상 (전 안동문화원장)
•이사
이영걸 (풍산한지 대표)
김근환 (영남사 대표)
이재업 (동성환경 대표)
권영동 (전 고령부군수)
권석환 (안동문화원 이사)
•감사
김명호 (전 경상북도의회의원)
김희엽 (안동호텔 대표)
•전수교육조교
임규혁 (전 공무원)
•이수자
이병국 (예총 경상북도지회장)
김우섭 (경북도민일보 국장)
김동학 (동창기획 대표)
정우일 (한돈식당 대표)
이장영 (경동창호 대표)
김건태 (전 때재배골프장 대표이사)
임치광 (대성MD의료기 대표)
권오율 (이안스크린 대표)
정태순 (대흥스틸 대표)
•전수생    
김상현 (안동문화원 과장)
이기종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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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문화는 곧 대한민국의 문화, 가슴 뜨거운 유일한 전쟁의 역사, 차전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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