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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검색결과

  • 시민이 믿는 의회, 시민을 믿는 의장! 동북아 최고의 중심도시를 향한 도약을 꿈꾸다
    ‘새로운 부산’을 바라는 시민의 명령으로 탄생한 제8대 부산시의회, 그 후반기를 이끌고 있는 신상해 의장은 온화한 성품과 합리적 의정활동,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춰 동료 의원들에게도 두터운 신망을 받는 재선 시의원이다. 최근 전국14개 시도의회 의장의 마음을 모아 가덕신공항 지지 선언을 개최, 시의회 역사에 큰 획을 그으며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인물이다. 인터뷰 도중 “의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며 의회발전의 의지를 자신있게 피력하는 신상해 의장, 그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의 형식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A.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보다 더 보람찬 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정계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시의원이 되기 전, 문화불모지였던 사상구에 새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사상문화원 설립 추진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1년 동안 동분서주하며 기업인들로부터 자본금을 출연 받았고 650명 회원으로 구성된 사상문화원을 성공리에 출범했습니다. 설립 3년 만에 사상문화원은 전국 220여 개 문화원 중에 최우수 문화원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웃음). 그렇게 13여년간 사상문화원을 운영하며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점을 구민들이 인정해주셔서 2006년, 5대 부산시의원에 당선되게 되었습니다. Q. 코로나19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A. 지난해 2월 21일, 부산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시민의 하나 된 마음, 의료인과 방역당국의 헌신으로 대확산 위기를 잘 넘겨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파력이 큰 변이 바이러스 유입 등 4차 대유행에 대한 우려가 대단히 크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부산시의회는 지난해 9월부터 코로나19 비상대책위원회를 운영하며 방역·의료, 경제·민생, 교육·행정, 소통·홍보 등 4대 핵심분야 중심으로 코로나19위기에 총력 대응하고 있어요. 민생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골목상권 보호, 원격수업 활성화 등 당장 시급한 사항에 대해 바로 조례·규칙 제·개정을 통해 입법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부산시의회는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 특히 사회안전망 확충과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계속 역량을 집중할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있는 만큼 백신 접종에 적극적으로 응해 주시기 바랍니다.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고 모두가 생활방역을 실천해 주신다면, 일상회복의 날을 앞당길 수 있어요. 다시 한 번 힘을 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Q. 의장 취임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A.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정말 다사다난했습니다. 하지만 제8대 의회는 시민의 관심과 지지, 의원들의 노력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죠. 권한대행 체제 속에 시의회·시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긴밀히 협의한 결과, 코로나-19위기 속에 시장이 사임하는 최악의 상황도 신속하게 안정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중앙 정치권, 정부 등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용한 전방위적인 노력을 펼쳐 권한대행 체제 속에서 사상 최대 규모 국비인 7조7,220억 원을 확보하는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후반기에 2개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켜 중장기적인 비전을 실현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장 크게 꼽고 싶은 것은 ‘김해신공항 백지화’를 넘어 ‘가덕신공항 건설’ 여론 확대를 주도해 그 물길을 바꾼 것입니다(웃음). 지난해 12월 7일 전국 14개 시도의회 의장님들을 부산시의회에 모시고 가덕신공항 건설지지 선언을 개최한 것은 가장 뿌듯한 기억이죠. 지역민을 대표하는 지방의회가 각자의 지역을 넘어서 국가적인 의제에 모두의 마음을 모은 우리나라 지방자치 역사에 없었던 대단한 일이고 그것을 우리 부산이 주도해 만들어낸 것이죠. 부산시민의 응원과 힘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Q. 가덕신공항 건설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추진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A. 가덕신공항은 단순한 지역 공항이 아닙니다. 침체된 지역경제를 부활시킬 발판이며 수도권 일극 체제로 신음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계를 국토균형발전의 미래로 견인하는 대(大)전환점이죠. 잘 아시다시피, 지난 2월 가덕신공항 건설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시민의 20년 숙원인 가덕신공항 건설은 명실상부 불가역적인 국책사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특별법 통과는 큰 산 하나를 넘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야말로 국가적 역량을 결집해 안전· 확장·접근성을 갖춘 물류·여객 중심 관문 공항 건설에 사활을 걸어야 할 때입니다. 2029년까지 개항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추어 국가사업인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에도 힘을 실을 계획입니다. 가덕신공항 건설사업에 대한 사전타당성 조사가 5월 중 착수될 예정입니다. 국토부는 사전타당성 조사 결과를 반영해 2022년 3월 내로 사업추진 방향을 마련하고 정부의 6차 공항종합계획에 가덕신공항 건설을 추가로 반영해 2024년 초 착공, 2029년 완공의 로드맵을 갖고 가덕신공항의 조속 건설에 매진해 나갈 것입니다. Q.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와 같은 부산의 큰 현안의 해결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A. 2021년 올 한해는 부산의 사활을 거는 마지막 기회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현안이 많았죠. 먼저 2030부산월드엑스포는 2021년 6월, 유치신청서 제출을 계기로 본격적인 막이 오를 예정입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광저우와 텐진, 아제르바이잔 바쿠, 프랑스 파리, 캐나다 몬트리올, 네덜란드 로테르담 등 수많은 도시들이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핵심 현안은 2가지로 추진력과 인지도를 갖춘 인물을 추진위원장으로 위촉하고 개최 예정 장소인 북항재개발사업지구 내 미군시설의 이전 등의 실질적인 진척을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시의회는 올해를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원년으로 선언하고 시의회 차원의 유치 지원추진단을 구성해 총력 지원할 것입니다. Q. 내년 1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있으십니까? A. 32년 만에 이루어진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의 취지는 지역의 문제를 숙의, 결정하는 권한이 주민에게 있다는 ‘주민주권’ 강화에 있습니다. 또 중앙과 지자체가 상, 하의 개념을 넘어 협력의 관계로 바뀔 것입니다. 지자체가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거듭나고 국토균형발전도 속도를 내게 되겠죠. 부산시의회는 2022년 1월, 법 시행을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자치법 개정안 통과로 특별지자체 설립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부·울·경 3개 시·도 특별연합 설립에도 속도를 낼 방침입니다. 다만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지방의회 독립성 강화를 위한 핵심 내용인 조직구성권과 세출 예산권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요. 이에 부산시의회는 청와대와 국회, 행정안전부 등에 지방의회의 조직구성권과 세출 예산권 보장의 내용을 담은 별도의 ‘지방의회법’을 제정해 줄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보냈습니다. Q. 앞으로 남은 1년 임기, 어떤 정책에 주력할 예정입니까? A. 대한민국은 지금, 수도권 일극 체제와 지방소멸이라는 양극화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살고 물적·인적 자원, 기업이 수도권에 초 집중화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그 어느 지역도 소멸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지역민의 20년 숙원인 가덕신공항이 돌이킬 수 없는 국책사업이 되며 지역경제 회생, 국토균형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죠. 또 32년 만에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이 이루어지면서 부·울·경이 하나의 권역으로 묶이는 메가시티 조성에도 박차가 가해질 예정입니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이 수도권 일극 체제에 균열을 내고 ‘모두가 잘 사는 나라’ ‘전 국토가 골고루 발전하는 나라’를 만드는 큰 원동력으로 나설 수 있다는 희망이 커지고 있어요. 가덕신공항의 조속 건설,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북항 재개발 등 굵직한 미래비전 사업들을 진행해 부산을 동북아 중심도시로 도약시키고 국토균형발전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1117]
    • 정치
    2021-06-16
  • 부산 기초·광역의원 최초 광복회 역사정의실천인상 수상! 독립유공자의 아들에서 북항 재개발의 전문가를 꿈꾸다!
    2021년 5월 11일, 박재혁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제 기념식에서 부산광역시 동구의 배인한 의원이 부산 기초·광역의원으로서는 최초로 광복회 역사정의실천인상을 수상했다. 항일독립운동기념관 조성을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수상의 영예를 안은 배 의원은 동구의회 전반기 의장으로서 지역민을 위해 초고층 생활형 숙박시설 건축 반대에 앞장서 삭발을 감행하며 의회를 이끌었고 후반기도 의원으로서 분골쇄신(粉骨碎身)의 정신으로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또 ‘독립유공자 유족’이자 ‘북항 전문가’로 지역구에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인 배인한 의원과 특별한 만남을 1문 1답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역사정의실천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지방자치제에 가장 아래 기초의원이 정치인상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의아하고 개인적으로는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번에 상을 받게 된 것은 항일독립운동기념관 조성을 위한 노력과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조례가 조명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조례를 준비할 때 제가 독립유공자 유족이기에 이해충돌 적인 측면도 있어 동료의원께 조례취지를 잘 설명하며 진행이 되었습니다. 역사를 위해 선뜻 힘을 보태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상은 역사와 정의를 위해서 앞으로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기초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는 하나의 격려(激勵)라고 생각합니다. 독립유공자 유족으로서는 아버지께 다시 한번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Q. 의정활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의정에 참여하기 전, 사회활동을 하는 제가 봐도 동구는 특정 정당, 특정 정치인의 색깔이 굉장히 진한 곳이었습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처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언젠가는 ‘지역 야당’으로서 의정에 뛰어들어 단색 양상의 정치 판도를 변화시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던 중 ‘북항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동구에는 북항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북항 재개발 사업 1단계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부산의 지도를 바꾸는 국책사업은 동구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느끼고 의정활동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북항에 평생 살았던 저로서는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도전이었죠(웃음). Q. 추진 중인 지역 현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항일독립운동기념관 유치에 힘을 실을 생각입니다. 부산시에서 독립기념 관련 행사를 하면 꼭 충렬사에 들러 참배를 합니다. 하지만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송상현 동래부사, 정발 부산진첨절제사를 비롯해 부산에서 순절하신 호국선열의 위패를 모셔온 곳입니다. 행사의 목적과 다른 곳을 가고 있던 것이죠. 작지만 부산 민주공원에 광복회관 2층에 위패 봉안소라는 곳에 유일하게 부산 출신 독립유공자이신 순국선열, 애국지사 위패가 450여 기가 있습니다. 그곳을 찾아 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20년, 광복회에서도 항일독립운동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당시 수탈장소이기도 했던 옛 북항 1, 2부두 근처가 기념관으로써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크루즈선이 많이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죠. 크루즈선 특성상 부두에 4~5시간 동안 체류하기에 접안지 근처에 항일독립운동기념관을 유치, 한국의 역사와 동구의 관광 메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고 합니다. Q. 발의한 대표적인 조례 몇 가지 부탁드립니다. A. 적극적인 구정질문 및 의회 의견 수렴을 위해 의회의 회의 규칙을 개정하는 조례를 발의했습니다. 구정질문을 일괄질문·일괄답변 방식에서 일문일답 방식으로 할 수 있게끔 말이죠. 또 질문, 답변 시간 포함 20분으로 규정되어있던 본질문의 시간을 답변 시간을 포함하지 않도록 개정했습니다. 또한 노령인구가 많은 동구 특성상 65세 이상 세대, 장애인 단독 세대 등의 대형폐기물 이동 지원에 관한 조례도 발의했습니다. 이 조례는 전국 최초로 원도심인 동구지역 여건을 감안하여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과거에는 대형폐기물을 구청에서 정해준 일정한 장소까지 갖다 놓아야 수거를 하는 문전수거방식에서 집을 방문하여 수거하는 방문수거방식으로 변경을 하여 노령층과 장애인을 배려했다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대형폐기물을 혼자서 옮기게 되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 외에도 항상 주변에 무엇이 필요한지, 준비되어야 하는지 생각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웃음). Q. 지역주민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A. 의장직을 맡았던 전반기에는 코로나-19가 심각하지는 않았습니다. 1년 8개월 정도는 구민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죠. 하지만 후반기에 들어 코로나-19가 점점 확산하며 행사가 취소되고 하니까 공식 선상에서 주민들을 대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SNS상으로 5분 발언 등의 의정활동을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웃음). 문자도 하나하나 보내드리고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남보다 덜 자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후보자로 있을 때 열심히 하겠다고 지역주민과 약속을 했기에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지역주민은 물론 동구청 직원으로부터 제보가 많이 들어옵니다. 무언가를 말했을 때 반응이 좋을 것 같은 사람한테 제보하지 움직이지 않는 사람한테 제보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향후 북항재개발이 마무리되는 2030년까지는 지역을 위해 북항을 잘 아는 분이 더 많이, 함께 일했으면 합니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라고 비록 제가 아니더라도 어떤 누구라도 선출직 공직자는 지역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117]
    • 정치
    2021-06-16
  • 지역에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4전 5기! 실패와 좌절은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시의원!
    ‘반려동물도 가족이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선거 공보물에 최초로 동물과 교감하는 사람으로서 기초의원에 출마한 남자가 있다. 바로 창원시의 김인길 의원이다. 그는 출마 이전,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그들의 삶을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 택시 면허를 취득, 운행하며 지역의 현안을 청취했다. 또 원활한 민원 해결을 위해 심리상담사 자격증 4개 분야(노인, 청소년, 부부, 일반심리상담사)를 취득하여 본인의 이름을 건 무료심리상담소도 운영했다. 지역구에 꾸준히 봉사해온 이력과 그의 노력이 시민들로부터 인정받으며 당선증을 품에 안은 그는 최근 지역 어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하기 위해 『창원시 수난구호 참여자 지원 조례안』을 발의했으며 ‘국민의힘 경남도당위원장 표창장’,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지방의정봉사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당과 의회에서의 활동까지 인정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생활 정치의 달인, 지역구의 심부름꾼, 준비된 시의원으로 승승장구하는 창원시의회 국민의힘 청년정책위원장 김인길 의원과의 인터뷰를 1문 1답으로 정리해 보았다. _박정호 기자 “인간 김인길은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누구라도 도와주고 싶어서 찾아다니는 사람이죠. 저를 믿어주신 분들께 온 힘을 다해 제 모든 열정을 바치겠습니다.” Q. 국민의힘 도당위원장 표창장,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지방의정봉사상 수상소감 한마디 해주신다면. A. 코로나19에 대한 대응과 지난 태풍피해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공로, 의욕적인 의정활동, 주민과 활발히 소통하는 모습을 인정하여 이 상을 주셨다고 했습니다(웃음). 지난날을 돌아보자면 하루도 빠짐없이 지역에 귀 기울이고, 재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던 것 같아요. 지역민과 당, 의회 모두가 그 모습을 좋게 봐주셨다는 것에 큰 감사함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라는 뜻깊은 상이자 저에겐 재충전의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힘입어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지치지 않고 발로 뛰는 김인길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Q.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A. 저는 58년 동안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진짜 토박이입니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며 건설업을 14년 이상 해왔죠. 항상 봉사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사업을 하다 보니 조금 어려웠죠. 그러다 2002년 월드컵,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응원 문구를 보고 잠시 접어두었던 봉사에 전념하겠다는 꿈을 다시 꺼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2006년에 출마하며 처음으로 도전장을 내밀었죠. ‘실패와 좌절은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일념으로 총 4번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5번째인 2018년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4전 5기죠(웃음). 맨 처음 출마했을 때가 40대 초반인데 50이 다 지나서야 의회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16년 동안 오로지 지역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으로 도전했어요. 간절했던 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늘 봉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Q. 봉사와 뗄 수 없는 의원이라는 평이 자자한데, 이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시다면? A. 어릴 적부터 이경민 경신재단 원장님과 인연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용돈을 꼬박 모아 진해희망원에 전달하곤 했고, 한 달에 한 번씩 원생분들을 위한 생일파티를 열어드리기도 했죠.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는 지역 보육원 숙소에다 도배, 장판 시공도 무료로 해드리곤 했습니다. 과거 봉사를 할 때 독거노인 한 분이 꼬박 모은 30만 원을 장판 아래서 꺼내 건네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아직 그분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요. “우리같이 어려운 사람 좀 도와주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돈을 받아야 하나 싶어서 몇 번을 마음만 받겠다며 거절했지만 “이게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이니까 좀 받아주라”라고 하셔서 매번 봉사하며 주기만 했던 제가 무언가를 처음으로 받아봤던 따뜻한 기억이 되었죠. 물론 그 돈은 전액 기부를 했습니다. 이것 외에도 복지 사각지대에서 의료보험 미납으로 인하여 고충을 겪는 분들과 많이 접하며 보험비를 대납하는 도움을 드렸죠. 그 시절의 기억이 저를 더욱 봉사에 전념하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웃음). Q. 지역의 현안은 무엇이며, 이와 관련한 의원님의 주요 의정활동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35년 전에, 옛 진해시 시절에 허가를 내놨던 진해 쓰레기매립장 유치를 반대하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와 다르게 주변 지역이 대도시화가 되어버렸는데 유치 계획은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게 쓰레기매립장이 아니라 아름다운 환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또 고질적인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석동터널의 빠른 완공을 추진하고 있으며 경화시장 현대화도 추진 중입니다. 경화시장의 총 부지가 2,400평인데 재개발을 추진하여 2층 건물을 세울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1층은 시장 점포로 이용하고 2층은 5일장을 유치, 평소에 있던 어패류 관련 오·폐수 악취와 수질오염을 예방하고 옥상에 2,400평 건물의 옥상에 주차장을 만들어 주민들의 교통편의와 장날에 발생하는 주차난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Q. 주민분들과 소통은 어떻게 하십니까? A. 제가 경화시장 입구에서 거주하며 핸드폰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이기에 장날이 되면 집으로 찾아오시는 민원인들이 많아요(웃음). 제가 지역에서의 경험도 많고 가락종친회(김해김씨, 김해허씨, 인천이씨)의 진해청년회장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해 두었기에 민원을 해결할 때 다양한 방법을 구할 수 있습니다. 객지 생활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 제 최고의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공부하고, 사업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잘 알고 해결한다고 할 수 있죠. Q. 주민들께 전하고 싶으신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A. 생활 정치인으로서 주민과 관공서 사이의 발이 되고 주민들에게 더욱더 봉사하겠습니다. 제가 기초의원 활동을 하며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이 바로 민원을 해결해 줄 때입니다. 민원이 해결될 때마다 희열을 느낍니다. “내가 이 일에 쉼 없이 도전한 이유가 있구나. 선택을 잘했구나”하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정도였죠. 앞으로 더 큰 꿈을 위해서 노력할 예정입니다. 꿈은 한꺼번에 오는 게 아니고 조금씩 다가온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의 꿈도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지역에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4전 5기 하며 이뤄낸 저와 이 힘든 시기를 함께 극복하자고 주민분들께 전하고 싶습니다(웃음). [ 주요경력 ] - (주)시티빌건설 대표이사 - 창원무료나눔협의회 이사 - 김인길 무료심리상담 소장 - 반려동물 분실센터 운영 소장 - 진해 여성 YWCA평생 봉사 회우 - (주)김인길 휴대폰 대표/진해재향군인회 이사 - 가락종친회(김해김씨, 김해허씨, 인천이씨) 진해청년회장 - 지체장애인협회 자문위원 - 진해 라이온스클럽 봉사위원(전) - (사)대한가수협회 진해지회장(전) -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전) - 경화초등학교 총동창회 부회장(전) - (재)국제 예술 문화 체육재단 진해지회장(전) - (사)대한 청소년 육성보호연맹 진해지회장(전) - 병암동 산악회/ 진경 산악회/한마음 산악회 회장(전) [1113]
    • 정치
    2021-03-31
  • 30년의 경험, 강력한 네트워크, 발로 뛰는 의정까지! 연제구의 리더에서 봉사자의 길을 걷다
    지역에서 ‘온천천 전문가’로 불리기도 하는 권종헌 의원은 2월 25일 유엔평화공원 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지역 내 현안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한 노력상을 높이 평가받아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가 수여하는 지방의정봉사상을 수상했다. 의정활동에 참여하기 이전에도 활발하게 지역을 위해 봉사했던 그는 토목 전문가로서 지역 시장의 아케이트 공사 당시 직접 도면을 바꿔가며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 지구 단위 계획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중복결정을 과감하게 계획하여 주차장 확보를 하는 추진력 강한 의원이기도 하다. 생각은 젊음으로, 판단과 결정은 경륜으로 이루어 내는 권종헌 의원과 특별한 만남을 가져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수상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 한 말씀 해주신다면. A. 저는 연산 1동에 30년을 살았습니다. 그 세월 동안 주민자치위원회 회장, 자유총연맹 지회장, 체육회 이사, 문화원 감사, 통합방위위원회 친목회장 등 여러 단체를 경험하며 살아왔죠. 그렇기에 연제구 구석구석, 민원 해결, 현장의 애로사항을 한 번에 파악하기 수월했어요.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을 위한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토목을 전공했기에 많은 시설 관련 민원을 원활히 처리해온 것도 인정을 받은 듯하여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부산시 지방의정봉사상을 받고 올해는 전국 지방의정봉사상을 받게 되었기에 구민들에게 부끄럽지 않게끔 더욱 열심히 할 것이라 다짐합니다. Q. 의정활동 이전에 다양한 활동을 하셨죠. 의정에 참가하게 된 계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A. 20여 년간 건설을 업으로 삼으며 일반, 전문 건설, 전기공사업을 하면서 병원, 유치원도 지어봤죠. 이하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민자치회 시범 마을 공모사업에 참가, 당시 전국의 3478개 읍면동 중 31개 마을에 연산1동이 선정되어 국비 1억 원을 교부금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선정된 31개 마을 중 안심마을 10곳 선정 공모사업에도 선정되어 연산1동은 추가로 국비 6억 원을 더 받았습니다. 연산1동은 이를 토대로 사거리마다 CCTV 설치, 어린이 통학로 설치 등을 통해 주민이 더욱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마을이 되었죠. 이렇게 활동하다 보니 많은 사업이 주민자치위원회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왕 지역을 위해 활동할 것이라면 구의원에 도전하여 더 크게, 더 넓게 일해보자는 마음에 의정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신뢰를 얻어 당선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지역 봉사에 전념했죠. Q. 의정활동에 임하는 의원님만의 철학이 궁금합니다. A. 제가 처음 구의원에 도전할 때 구민들께 말씀드렸습니다. “배지 받으러 가는 거 아니다.”라고 말이죠. 활동하면서 5번도 채 안 달았습니다(웃음). 지금 구의원 생활을 하면서 지역에 봉사하는 것도 행복하지만 제가 가장 행복했던 날들은 주민자치회장 할 때가 제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 하나가 얼마나 큰일을 하는지 알고 있기에 항상 100% 그 이상을 해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셨을 때 기억나는 활동들이 있을까요? A. 거제배수펌프장이 1년에 3~4억의 전기요금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구민의 혈세로 가동하는 것인데 비용이 과하다고 생각하여 필수 가동 시간 외에는 전기를 차단하여 기본요금을 1억 원 이상 절감 성과를 거두어 구민들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렸습니다. 또 온천천 관할구역 2km가량을 돌봤습니다. 어떤 곳은 화장실이 인도 위에 설치되어 보행에 불편이 많아 인도 뒤로 개축을 하여 환경을 개선하였고, 연신초등학교 뒤편 70m 정도는 보행로가 없어 새로운 데크길을 만들어 보행환경개선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온천천에는 자전거 도로와 보행로를 분리하는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Q. 지역구의 현안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A. 지금 연산1동은 엘리베이터 공사 및 사랑방 사업을 연계한 증축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옛 건물이라 승강기가 없어 노약자분들의 이동에 제한이 많았죠. 4층에 30평 규모의 정축 공사를 하여 사랑방 역할을 하는 주민자치회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온천천 신금로 주변 침수지역, 펌프장 증설공사도 차질 없이 마무리하여 홍수 예방과 주민의 안전권을 보장해드릴 것입니다. 연산3동은 주민 복지센터 신축사업을 병행하여 만화 도서관이 연산3동에 신축이 됩니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꼼꼼히 챙기며 새뜰 마을 사업도 차질 없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연산6동은 주거지 주차 문제가 심각합니다. 새싹공원 지하에 주차공간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진행 중입니다. 주민 복지센터. 진입로 등 환경 개선 사업도 진행 중입니다. Q. 주민들과의 민원 해결 사례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A. 아닌 것은 안된다고 하고 1%라도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반드시 해결해드리려 합니다. 많은 민원이 있고 해결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명함 같은 홍보물을 모아오시면 돈으로 돌려드리는 사업을 개선했던 것입니다. 취지는 좋았지만 홍보물을 회수하는 장소가 구청이다 보니 먼 연산9동에서 구청까지 1시간가량을 걸어오시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점을 인지하자마자 바로 주민센터로 회수 하여 차량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수정했죠. 겉으로 봤을 때 사소하고 놓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수정하고 더 좋은 방안을 만들 때면 희열을 느낍니다(웃음). Q. 전하고 싶으신 말씀. A. 구민 여러분들이 서로 합치하고 이해해주는 연제구가 되면 좋겠습니다. 반을 받으면 반을 돌려주는 배려하는 삶을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한 번이라도 남을 칭찬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그런 마음으로 주민 여러분들을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구민 여러분들도 저와 함께 기쁜 마음으로 타인에게 마음을 할애해보는 건 어떨까요? 주요경력 •연산1동 주민자치위원회 회장 •자유총연맹 연제구지회 지회장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연제구자문위원 •연신초등학교 운영위원회 위원장 •연산중학교 운영위원회 위원장 •연청중학교 운영위원회 지역위원 •연제문화원 감사 •연제체육회 이사 •연제구 통합방위협의회 위원 •연산1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 자문위원 학력 •부산대학교 산업대학원 졸업(공학석사) 수상 및 표창 •안전행정부 주관 연산1동 안심마을 선정 안전행정부 장관상 수상 •부상광역시장 표창 수상 •연제구청장 표창 수상 [1112]
    • 정치
    2021-03-22
  • 제13회 지방의정봉사대상 수상! 4선 의원의 통찰력, 경륜으로 대구 동구의 발전을 꿈꾼다!
    최근 대구광역시 동구의회 차수환 의장은 지난달 29일 전국시군자치구의회 의장협의회로부터 지방의정봉사대상을 전달받았다. 이 상은 지역사회와 주민의 복리 증진을 위해 헌신·봉사하고 지방 자치 발전과 지방의회 위상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한 의원을 선정해 수여하고 있는 상이다. 대구광역시 동구의 토박이이자 2006년부터 4선째 지역에 봉사하고 있는 차수환 의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Q. 제13회 지방의정봉사대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남은 1년 반, 더 잘하라고 주신 상이라 생각합니다. 수상 배경을 떠나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참 많아요. 코로나-19 시국에 앞서 동구의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정부에서 확실히 지원한다면 국내 기술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지 못함이 상당히 아쉽습니다. 또 k2 비행장의 후적지 개발 문제도 목전에 다가왔어요. K2 비행장이 나가면서 아파트만 들여올 것이 아니라 대구의 신성장동력으로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마지막으로 대구 월배차량기지가 금강역으로 오는 것에 반대 결의안도 낼 예정입니다. 지금껏 구민들이 k2 비행장 소음 때문에 고생했는데 이번엔 차량기지라니요. 이제 동구 발전을 위해 좋은 것들을 들여올 시간이라 생각하기에 적극 대처에 나설 계획입니다. Q. 구민의 신임이 두터운 4선 의원이십니다. 과거 의정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어떤 의정철학을 가지고 계시는가요? 저는 처음에 정치에 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어요. 어릴 때부터 봉사를 참 많이 했죠. 1979년 4-H 클럽 대구시 연합회장을 맡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웬만한 봉사단체와 활동은 다 참여하며 살아왔어요. 크게 말씀드리자면 지역 청소년지도 봉사도 하고 간단한 방문 봉사도 마다하지 않았죠.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더 크게 봉사해보라고 계속 권유를 하더군요. 주변의 목소리에 망설이던 도중 당시 구민의 목소리가 관에까지 미치지 못하고 메아리로 끝나는 것들이 안타깝다고 느끼기도 했던 저이기에 이번 기회에 구민들의 목소리를 대신 반영해드리고 싶어 동구의회 5대 선거를 거쳐 의회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Q. 의장님께 2020년 한 해는 어떤 한해였나요. 자평해 주신다면. 코로나19가 온 나라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죠. 특히 31번 확진자가 나오면서 대구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특히 동구가 힘들었죠. 그날 2월 18일로 기억이 나는데 동구는 완전 터널 속을 지나온 느낌이었습니다. 당시 방역에 최선을 다해준 구민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모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수도권보다는 대구, 경북이 나은 실정이죠. 하지만 아직도 여러 가지 제재 속에서 소상공인, 지역민들이 여전히 고생을 많이 합니다. 마음은 쓰이지만 지원해 줄 수 있는 재량권이 없다 보니 마음이 정말 힘든 한해였습니다. Q. 지역민들과의 소통은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코로나 때문에 활동이 어려워져 구민분들을 직접 뵙기가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현실에 맞게 비대면(Untact)으로 의견 청취를 하고 있습니다. 주로 전화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대화를 나누곤 하죠. 우리 주민들에 대한 민원을 종합해 보면 대부분 개개인의 힘든 일과 불편함의 해소를 원하는 경우가 많으시죠. 그렇다 보니 집행부와 상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당 내용에 집행부 협조가 어려우면 해결이 난항을 겪는 경우가 많죠. 민원인분의 개인 사정으로 보면 참 딱하고 도와드리고 싶은데 모든 일이란 게 쉽지만은 않으니까요. 민원인과 함께 고민을 많이 하고 해결방법을 찾으려 항상 노력합니다. Q. 2021년을 맞이하며 다짐과 전하고 싶으신 말씀. 구민분들이 코로나에 대한 피로감으로 너무 많이 지쳐 있습니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조금 누그러들길 바라고 있습니다. 다시 주민들의 현장 속으로 찾아가서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고 싶습니다. 그날이 온다면 마음속에 두고 있는 팔공산, 금호강을 재정비해 관광자원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달성군에 사문진이 있듯이 금호강엔 나루터와 토성도 있어요. 수백억의 예산이 들 수도 있는 큰 계획이지만 동구의 발전을 위해 팔공산, 금호강 벨트를 만들어서라도 자원화하고 싶습니다. 항상 초심을 유지하며 보여주기식 행정보다는 주민 속으로 들어가는 행정을 실천하겠습니다. 코로나가 빨리 극복되고 새로운 해를 맞이했으면 합니다. 나아진 상황에서 화합, 소통으로 단합된 동구민을 봤으면 좋겠어요. 동구 장기발전계획에 따라 보기에는 특별해 보이지만 실제 내면은 그렇지 않은 부분들, 정말 모든 자원이 풍부해도 주목받지 못한 곳들이 많아요. 2021년은 다른 지역, 어느 곳에서 오시더라도 ‘관광명소 동구’라며 웃고 즐길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의원프로필 > •해서초, 중앙중, 성광고, 대구미래대학 졸업 •대구 동구의회 4선 의원(5대, 6대, 7대, 8대) •(현) 대구광역시 구ㆍ군의회의장협의회 회장 •(현) 전국시군자치구의회 의장협의회 부회장 •(현) 8대 후반기 동구의회 의장 •(현) 불로봉무, 도평, 공산, 방촌, 해안 주민자치위원회 고문 •(전) 5대 동구의회 도시건설위원장, 6대 동구의회 운영행정위원장, 7대 동구의회 의장 (4선 의원) •(전) 동부경찰서 자율방범연합회 회장 •(전) 대구시 4-H 시연합회장 < 수상이력 > •제1회 한국 메니페스토 약속대상 (기초의원 부문)대상 •전국 시・군자치구의회 의장협의회 의정봉사대상 •대구광역시 구・군의장협의회 모범의정 봉사상 수상 2회 •국회의장 공로패 1회 •대구시장 표창 2회 •대구지방경찰청장 감사장 2회 •대구지방경찰청장 표창장 3회 •동구 경찰서장 감사장 4회 •동구 경찰서장 표창장 2회 [1110]
    • 정치
    2021-02-19
  •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으로 지역 정계를 이끄는 차세대 주역
    「답설야중거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踏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제 불수호란행 (不須胡亂行)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금일아행적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수작후인정 (遂作後人程)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 서산대사 - 대구광역시 중구의회 첫 여성의장인 권경숙 의장은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는 사람이다.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으로 지역 정계를 이끄는 차세대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 밝아오는 새해를 맞아 참신한 의정활동으로 지역 정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오고 있는 권경숙 의장과 마주했다. _박정호 기자 (다음은 권경숙 의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정계에 입문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A. 남편과 결혼을 하면서 동인동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됐어요. 사업체를 경영하면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지요. 15년 넘게 지역 라이온스클럽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지지가 모이더군요. 저도 ‘구민을 위해 봉사할 기회가 생긴다면 더 잘 할 수 있겠다’고 용기를 냈습니다. 정당과 안동권씨 종친회에서도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라며 ‘기회를 주면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추천과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죠. 지난 30여 년 동안 사업체를 운영하며 터전을 잡고 살아온 지역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정계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Q. 초선의원으로 부의장을 역임하셨고 최초 여성 의장으로 중구의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 같은 지지를 얻게 된 비결은 무엇입니까? A. 항상 제 역할인 구의원을 구민을 위한 ‘생활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에 밀접한 ‘구민을 위한 발’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공직에 있기 전에는 관공서에 가는 것이 어려워 잘 가지 않았어요. 주민들과 관공서의 사이를 메워주는 것이 구의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86년도부터 동인동에 거주하며 누구보다 주민들의 실생활을 잘 알고 이웃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주부로, 근로자로 그리고 CEO로 사업체를 운영한 경험이 주민들을 보다 잘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전 정당 활동을 통해 익혀온 생활도 마찬가지였죠. 늘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구민들에게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드리며 의정활동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꾸며진 부지런함보다 소탈하고 자연스러운 구민의 심부름꾼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Q. 평소 의정활동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시나요? 권경숙 의장님의 의정철학이 궁금합니다. A. 기초의원의 역할은 구정을 견제하고 주민들과 소통하는 데 있습니다. 그동안 의정활동을 하면서 집행부를 무조건적으로 견제하는 것에 아니라 먼저 구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주민들의 생활이 윤택해지고 중구가 발전할 수 있는 사안은 적극적으로 밀어줘야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구민들의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사업의 세부내역을 살펴보고 그 타당성을 파악해 정확히 짚어내는 ‘핀셋 견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집행부와 다르게 우리 구의원들은 발로 뛰며 구민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집행부가 놓치는 점들도 볼 수 있지요. 사안에 따라 중구의 발전을 위한 정책은 언제든지 집행부와 뜻을 함께하며 든든하게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항상 주민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으며 항상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Q. 지역의 현안은 무엇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A. 중구는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도심 공동화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구 상업지역은 낙후돼 있고 공실률도 높은 편이에요. 발전이 어려운 시점에서 주거지역 개발을 통해 인구를 유입시켜 중구의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기적 경기 침체로 도심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주거복합 용적률을 400%로 제한한다는 ‘대구시 도시계획 조례 개정 철회’를 촉구했으며 지난해 대구시의회에 ‘도시계획조례 개정 반대 결의문’을 전달하기도 했죠. 현재 중구 전체 면적의 44.2%가 상업지구에 해당해 조례 개정으로 중구의 건설사업이 위축되면 구민의 재산권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대중교통 전용지구 지정으로 인해 주변 큰 상권들이 영업난으로 문을 닫아가고 있습니다. 대중교통 전용지구와 보행자 전용지구를 끼고 있는 약 500평 정도의 청라버스 주차장의 경우도 전용지구 때문에 주민을 위한 장소로 발전하지 못함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중구의 대표 관광자원인 근대골목을 돌아볼 수 있는 청라버스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뜻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관광사업 활성화를 위해 청라버스 허가 내용을 확인해서 중구에서만 운행할 것이 아니라 동대구역까지 가서 관광객을 싣고 올 수 있도록 새롭게 노선 편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민원 해결의 노하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A. 민원 해결에 대한 피드백은 대부분 좋았습니다. 민원인들의 말씀을 경청하고 어려운 사정을 공감하고 함께 헤쳐나가기 위해 애쓰는 편이에요. 어떤 결과가 나오든 서로의 입장을 수용할 수 있도록 끝까지 경청하며 민원인께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드리려 노력합니다.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것이죠. 민원이 아니더라도 항상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때론 민원 해결에 난항을 겪더라도 ‘사필귀정(事必歸正)’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하고 있습니다. Q. 2021년 신축년(辛丑年)을 맞이해 구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2020년은 모두가 매순간 최선을 다 한 한해였습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노력해주신 구민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전합니다. 저는 혼자 힘으로는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구민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을 맞이해 대구 중구 발전을 위해 구민들과 한마음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올해 대중교통 전용지구 개편 및 수제화 골목 활성화를 위한 연구와 시청사 후적지 개발 등 지역 발전의 견인차가 될 수 있는 주요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중구 의회에서도 노력하겠습니다. 밝아오는 새해에도 집행부와 주민을 잇는 ‘구민의 발’로서 구민들의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겠습니다. •계명문화대학 사회복지상담과 졸업 •㈜카피몰데이타 시스템 대표이사 •새누리당 대구광역시당 디지털정당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18대 대통령선거 대구선거대책위원회 위원 역임 •대구시 생활체육회 이사 역임 •라이온스 문화활동 특별위원장 역임 •라이온스 대외협력 특별위원장 역임 •동인동 새마을금고 이사 역임 •안동권씨 대구청장년회 부회장 역임 •경북대학교산업대학원 AMP총동창회 재무이사 역임 •새누리당 대구광역시당 디지털대책 부본부장 역임 •제8대 중구의회 전반기 부의장 역임 [1109]
    • 정치
    2021-02-15
  • 체계적이고 좋은 조례는 행정을 움직인다! 노력하고 증명하고 인정받는 광역의원!
    부산광역시 김문기 의원은 ‘많은 이들이 정책 속에서 소외당해서는 안 된다’ 라는 신념으로 잘못된 관행을 허물고 시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조례와 정책들을 발의하는 생활밀착형 광역의원이다. 최근 ‘살찐 고양이 조례’ 발의로 2020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주관 약속대상 좋은조례분야에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부산시의회 단독 최우수상 수상이란 쾌거를 이루어내며 함께 ‘공공기관 임원 보수 기준에 관한 조례’에 관련된 계류 중이던 ‘법’보다 앞서 조례를 제정해 역으로 법을 만들고자 하게 하는 효과를 냈다. 또한 BRT 구간의 지그재그형 횡단보도를 일렬로 재정비해 차량 이용자와 보행자 모두의 안전과 편의를 보장하는 등 피부에 와닿는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필요하다면 지방 의회가 먼저 하면 된다.” 라며 포부를 드러내는 김문기 부산시의원, 주간인물이 찾아가 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부산광역시 의회 단독 최우수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소감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의정활동 중 인정받아 감사한 부분도 있었지만 이정도 상까지 수상하게 되어 굉장히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웃음). 이번 ‘부산광역시 공공기관 임원 보수기준에 관한 조례’, 즉 ‘살찐 고양이 조례’가 통과될 때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부산만 봐도 시민의 혈세로 움직이는 많은 공공기관이 있습니다. 부산 시민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우선 공공기관들의 임금 상향선이 제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죠. 기업에도 호봉 수가 있듯이 근속 년수에 따라 급여를 책정해야 하는데 책정 방식이 내부적, 구조적으로 잘못되어 있었기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 세운 조례입니다. 혈세 낭비를 방지하고 빈부격차를 줄이는 방안으로써 굉장히 강한 메세지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Q. 2020년을 돌아보신다면 어떤 한해였나요. 2018년에 신뢰를 받아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벌써 3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네요. 공부를 한다는 건 그 분야를 바라보는 해상도를 올리는 과정이란 말이 있습니다. 부산광역시를 경험하고 공부할수록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 선명하게 보였어요. 올 한해는 뭔가 어깨에 굉장히 무거운 짐을 얹고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어려운 시국에 시민들의 숨통을 조금이라도 더 터주고 싶어 방안을 밤새 물색하던 날도 있었죠. 우선 부산시 주택조례에 손을 뻗었습니다. 대부분의 아파트엔 경로당이 있었지만 공동 육아나눔센터는 없다는 것을 알았죠. 그 많은 세대의 거주자들이 육아시설을 찾아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경제활동을 하는 부모에게 공동육아시설이 있다는 것 자체로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300세대 이상 규모의 단지에는 공동육아시설을 설치하게끔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두 번째, 부산 공공와이파이 이용 관련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핸드폰이 없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항상 데이터 활용도가 높죠. 그에 수반되는 데이터 통신요금이 굉장히 높아요. 요즘은 패키지로 할인 판매를 하고 있다지만 데이터 통신료에 대한 부담이 여전히 크다고 느껴졌죠. 무료 와이파이가 어디서든 다 잡힌다면 통신요금이 자연스럽게 내려가기 때문이죠. 기본적인 소비항목부터 비용을 줄일 수 있게끔 실질적인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세 번째로 ‘살찐 고양이 조례 2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출연금 정산환수에 대한 조례’ 입니다. 지금까지는 공공기관 및 출연기관에 출연금 대행사업비를 ‘지급’하면 끝이었습니다. 조례 제정 후에는 대행사업비 지급 1년 뒤 정산을 해야해요. 남은 금액을 환수를 하게끔 조례를 재정했어요. 혈세를 단 1원도 낭비하지 않고자 다른 방향들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들을 부산시민분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웃음). Q. 지역구의 현안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동래구는 동,서간의 차이가 많습니다. 사직, 온천 지역 안락동, 명장동, 수민동,복선동,명륜동 쪽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죠. 그 격차를 극복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동역 역사 개통을 시발점으로 문화 역사와 교육의 구, 자원을 개발, 특화된 '옳은 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발이 지체되어 있는 동에 있어선 도시재생사업리모델링 사업등을 이용해 재건축, 재개발 사업을 통해 도시가 옛것을 그대로 간직하며 발전할 수 있게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산의 역사가 들어있는 곳이 바로 동래구 입니다. 충렬사 내부에 있는 유교의 정신, 안락서원도 복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옛것을 개선시키며 점차 없어져가는 역사와 문화를 찾아내고, 알리고, 국제관광도시로 지정된 부산의 핵심적인 지역구에 걸맞는 지역이 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Q. 부산시민, 지역주민들께 전하고싶은 말은. 2020년은 모두가 잊지 못할 한해라고 생각합니다. 경험을 해보지도 못한 팬데믹 현상이 일어나 굉장히 힘든 1년을 보내셨죠. 의정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렵게 마음을 해소시킬 수 있는 마음이 있는지 조금의 노력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활동을하고자 합니다. 한 해 동안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2021년도에는 이런 어려움을 훌훌 털어버리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국내에도 백신이 들어올테니까 지금보다는 훨씬 살기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것 같아요. 저는 더욱 더 연구하여 제도를 개선시키겠습니다. 2021년 한해동안은 당해왔던 어려운 일을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극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 부산시민, 우리 지역주민들을 지지하고 응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의정활동을 하다보면 가장으로서 소홀해지는 부분이 생기지만, 늘 저를 지지하고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우리 아내와 딸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현) 부산광역시 광역의원 •(현) 부산광역시 지역혁신협의회위원 •(현) 동래구 민주평통자문위원 •(현) 부산광역시의회 후반기 기획재경위원회 위원 •(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정책위 부의장 •(전)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도시안전 및 발전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전) 더불어민주당 동래구 지역위원회 부위원장 •(전) 삼성그룹 삼성에스원 지사장 •(전) 동의과학대학교 외래교수, 겸임조교수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전) (사)한국경비협회(부울경)이사, 교육강사 •(전) 부산광역시의회 전반기 기획행정위원회 위원 < 수상이력 > •2019- 대한민국 탑리더스 대상 우수의정활동부문 대상 •2019- 제1회 거버넌스 지방정치 대상 수상 •2019- 대한민국 자치발전 대상 •2019- 제23회 대한민국 의정대상 지자체 의정대상 •2019- 제2회 내 삶을 바꾸는 깨알정책대상 •2019- 2018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지방의원 약속대상 지방선거부문 •2019- 부산참여연대 좋은 조례상 •2020-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주관 약속대상 좋은조례분야 최우수 수상(부산시의회 단독 최우수상 수상) [1109]
    • 정치
    2021-02-15
  • 살기 좋은, 안전한 수성을 위해 묵묵히 걸어온 길! 발로뛰는 공감 정치로 2020 사회발전대상 수상!
    대구광역시 수성구 전영태 의원은 (사)신문방송인클럽에서 주최한 2020대한민국 사회발전대상 지방자치 의정부문 대상을 받았다. 2020대한민국 사회발전대상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각 분야에서 묵묵히 노력하는 인물들을 선정하여 주는 상이다. 평소 공감정치를 목표로 주민 밀착형 생활정치를 실천하는 전영태 의원은 수성구 체조협회장 출신이기도 하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라는 모토로 구민들의 건강복지 증진에도 힘써왔다. ‘수성구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 사전, 사후 점검에 관한 조례’ 등을 대표발의하고 도시공원 활성화를 위해 도시공원 살리기 특위 위원으로서 현장에서 발로 뛰는 의정을 몸소 실천해왔다. 도시보건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수성구민의 독감백신 안전성과 보건안전에 대한 경각심까지 고취하는 그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Q. 2020 대한민국 사회발전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소감 부탁드립니다 A.큰 상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지역과 주민들을 위해 더 열심히 하라고 주신 상이라 생각하고 더 노력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평소에 지역을 많이 방문하며 주민들이 민원을 많이 해결했습니다. 두 번째로 생활에 도움이 많이 된 조례들이 있어요. 야간보행자 안전을 위한 횡단보도 투광기 설치 조례, 대구시 수성구 부실공사방지 조례,수성구 폭염피해 예방 조례 등 2년 6개월 동안 12건 정도를 해냈습니다. 또 많은 연구를 바탕으로 5분 발언, 구정 질의를 통해서 항상 주민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며 안팎으로 나름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그런 활동들을 인정해주셔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Q. 주민밀착형, 생활 정치 의원이십니다. 의정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A.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오랫동안 당 생활을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주민들께 봉사할 기회가 없을까 하고 생각이 들어 풀뿌리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인 구의회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주위에서도 이야기를 많이 하고 수성구체육회 회장을 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죠. Q. 지역의 현안은 무엇인가요? A.범어 1, 4와 황금 1, 2 지역구의 가장 큰 현안은 범어산이 4개 동네를 맞물고 있습니다. 이 작년 6월 30일부로 일몰제가 되며 대구시에서 매입을 하게되어 이제 마무리 단계에 와있습니다. 범어 1, 4동과 황금 1,2동의 주민들이 편의성 있게 활용할 수 있게끔 등산로, 체육시설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 것입니다. 행정복지센터 후적지를 주민들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집행부와 자주 소통해서 추진할 계획입니다. Q. 주민들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십니까? A. 저는 평소에 많이 걸어 다니는 편입니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에는 시장이나 골목길을 다니며 주민들을 만나는 편입니다. 그 과정에서 듣는 민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행정절차를 잘 모르셔서 정리를 못 한 것들은 공무원을 통해 친절하게 상담해주고 잘 해결해드립니다. 하지만 구의원으로서 능력 밖의 일들을 부탁하실 땐 저도 도와드리고 싶지만 참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알아봐 드리고 당내 국회의원분들께 민원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건의를 하는 편입니다. Q. 2020년을 되돌아본다면. A. 코로나-19로 인해 참 힘든 한해였습니다. 공식적인 활동이 거의 없었죠. 민원인들과 직접 만나기 위해서 더 다닌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만큼 속상한 한해였습니다. 주민분들께 더 많은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들이 잘 했다고 만족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하려고 항상 노력하는 편입니다. 노력하는, 연구하는 의원이 되고 싶습니다. 실제로 갖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웃음).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A. 행복 수성이지 않습니까? 제 정치 기본원칙이 주민과의 소통, 협치를 통해 생활 정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노력하는 의원, 연구하는 의원이 되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수성구민 여러분 신축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하양초, 대건중,고등학교 졸업 •경산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졸업 •경북대학교 정책-정보대학원 졸업 (정치학 석사) •서울경제신문 대구, 경북지사 지사장(전) •수성구 체육회 체조협회 회장(전) •(사)충호안보연합회 대구, 경북지부 부회장(전) •경북대학교 정책정보대학원 동창회 부회장 •수성구 범어1,4동 황금1,2동 주민자치위원회 고문 •수성구 범어1동 희망나눔위원회 고문 •수성구 범어1동 방위협의회 고문 •수성구 범어1동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회원 •수성구 황금2동 자율방재단 회원 •국민의힘 대구시당 안보위원회 수석 부위원장 •민주평통 수성구협의회 자문위원 [1109]
    • 정치
    2021-02-15
  • ‘2020년 지방의정봉사상 수상’ 시민을 위한 복리 증진에 앞장서는 의원!
    양산시의회 도시건설위원회의 문신우 의원은 지역구의 토박이이자 오랜 지역의 봉사자이다. 초선 의원으로서 항상 초심을 유지하며 선거 때 시민과 약속한 공약을 대부분 이루어낸 의원이기도하다. 장애인 바우처 제도를 개선시켜 양산시 교통약자들을 위한 이동권 강화, 전동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구체적 처우 개선사업 시행, 작은도서관 지원사업, 신기산성 힐링 공원 조성, 악취관제센터 건립까지 그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일 잘하는 의원'으로 호평을 받으며 2020년 지방의정봉사상을 수상한 문신우 의원을 주간인물이 찾아가 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지방의정봉사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간단한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A. 양산시의회에 저보다 훌륭한 의원분들이 많으신데 제가 과연 이 상을 받아도 되는지 그저 송구스럽습니다(웃음). 작년을 돌아보자면 행정감사, 예산 집행 과정에서 드론을 띄워서 현장 확인을 했습니다. 사업지의 도면만 봐서는 확실히 알 수 없기에 드론을 띄워서 전체 사업지 부지 주변을 다 살펴보며 근린생활과 공업단지의 거리를 측정했어요. 특히 환경 쪽에 관심이 많다 보니 양산시의 악취 매연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 현장 행정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시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제일 먼저 무분별하게 공단이 조성되는 지역에 주거지와 공단과의 경계지점을 만들었습니다. 먼저 저의 지역구인 산막공단의 무분별한 개발로 공단의 악취와 매연 탓에 주민들의 고통이 극심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내려온 지침에 ‘근린생활지역 인근 500m를 개발해서는 안 된다.’라고 공문이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녹지를 없애 버리고 공장을 개발하여 이에 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양산시로 하여금 부지를 매입, 주거지와 공단 사이에 완충지를 조성하여 주민분들의 불편을 해소하도록 하였습니다. 또 저녁이면 악취와 매연이 몰려오기 마련이죠. 이를 해결하고 주민들의 생활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오는 6월 악취관리 관제센터를 준공할 계획입니다. 관제센터가 준공되면 양산시 전체를 한곳에서 악취와 매연을 관찰, 통제할 수 있어 시민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복리 증진은 결국 시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A. 처음부터 정치에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양산 토박이로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오면서 이웃들의 삶에 대해 점차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제가 3형제 중에 막낸데 큰 형님은 공직생활을, 둘째 형님은 교육자로 사회에 진출해 각자의 자리에서 이바지하고 있었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막내아들의 장래에 대한 고민이 크셨지요. 그렇게 공직자로 지역사회에 기여 하고자 하는 뜻에서 의원직을 꿈꾸게 되었어요. 활동을 시작하다 보니 지역사회의 바로잡아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고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점차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정계 입문에 뜻을 가지고 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의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Q. 지난 의정활동을 뒤돌아보았을 때 의미 있는 활동은 무엇입니까? A. 양산은 공업지구와 농촌지구가 혼재되어있는 지역입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텃밭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요. 그래서 「정원문화조성 및 진흥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지역에 정원을 만들어 아이들이 정원의 텃밭을 통해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며 자랄 수 있게끔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양산시 도시계획조례 일부 개정안」을 제정해 ‘학교 정문’에서 100m 이내에 제조업을 세울 수 없다는 기존의 조항을 ‘학교 담’에서부터 100m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1종 근린생활에는 제조업이 들어설 수 없도록 하고 2종, 3종은 기존의 330m²를 67m²로 조례를 일부 개정하여 주거지역 안에 생활권을 침해하는 시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Q. 지역의 주요 현안은 무엇입니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십니까? A. 지역의 가장 큰 현안은 원도심 문제입니다. 원도심은 신도시보다 많이 낙후되어 있어요. 양산은 점차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읍과 동의 지원 자체가 달라요. 지원이 잘 되는 읍보다 동에 저소득층 인구가 많습니다. 그 결과 인구가 신도시로 몰리고 있죠. 현재 인구 증가도 주춤하는 추세입니다. 2027년이 되면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하죠. 하지만 앞으로 서창, 사송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며 입주가 시작되면 5~6만의 인구 유입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서가는 양산으로 거듭나 양산의 인구가 계속 늘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또 양산은 아침, 저녁 교통체증이 심한 편입니다. 사거리 교통평가를 해보면 F를 받을 정도죠. 교통체증 문제를 해결하여 양산의 물류창고 기지를 더 활용할 수 있도록 도로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지역민들과 소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십니까? 민원 해결 방식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A. 민원인들이 찾아오면 얼마나 답답해서 직접 오셨겠냐는 마음으로 맞이해요. 막연한 기대감을 주기보다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현재 저는 마을 행정을 추진하고 있어요. 가장 먼저 시작한 동료의원인 박재우 의원을 비롯해 저 또한 직접 마을을 찾아다니며 단체원들을 만나고 마을의 어려운 점은 없는지 살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지역구에만 40개의 마을이 있는데 하루에 세 마을만 방문해도 하루가 금방이에요(웃음). 작은 민원은 동장님을 통해서 물어보고 큰 민원은 취합해 각 부서로 보내 해결 여부를 확인해요. 이틀 안에 된다, 안된다는 결정이 나오지 않으면 바로 직접 연락을 취해요. 민원인들과의 신뢰를 위해서 안 된다면 어떻게든 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Q. 마지막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우선 코로나 방역에 협조해주시는 시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불만 없이 방역수칙을 지켜주시는 분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코로나-19 현장을 다녀보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크더군요. 그런데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애쓰시는 봉사단체 분들과 시민들이 있어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양산시의회에서도 조례 제정 등 의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경남 양산 출생 •삼성초등학교 졸업 •양산중학교 졸업 •양산고등학교 졸업 •현)양산시 시립박물관 운영위원 •현)교통 안전 정책 심의위원 •현)양산시 재난관리 기금 운용 심의 위원 •현)양산시 평생교육 협의회 위원 •현)공동주택 지원심의위원 •현)노사민정 협의회 위원 •현)삼성동자율방범대 고문 •(現)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양산교육환경개선 특별위원장 •전)양산고등학교 장학후원회 이사 •전)양산라이온스 부회장 •전)만원의행복 봉사회원 •전)삼성초 31회 동기회 회장 •전)삼성중학교 장학회 회장 •전)양산 68 동기회 회장 •전)양산고 43회 동기회 회장 [1109]
    • 정치
    2021-02-15
  • ‘제9회 우수의정대상’, ‘2020 유권자총연맹 우수의원상’ 수상
    최근 부산광역시의회 김진홍 의원은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가 수여하는 ‘제9회 우수의정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생활 악취 저감과 방지를 위한 조례」와 「현장 실습 학생의 안전과 학습권 보장을 위한 조례」 발의와 함께, 초량 지하차도 사망사건과 수돗물 유충 관련 정수장 현장 방문과 대책 마련 촉구 등으로 시민생활 밀착형 의정활동을 펼쳐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진홍 의원은 발로 뛰는 의정활동으로 작년 연말, ㈔대한민국유권자총연맹에서 주최한 ‘우수의원상’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소통과 화합의 정신으로 참신한 의정활동을 펼치며 부산광역시의회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지방의회 발전을 이끌고 있다. _박정호 기자 Q. ‘제9회 우수의정대상’, ‘2020 유권자총연맹 우수의원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간단한 수상소감 부탁드립니다. A. 우수의정대상은 전국시도의장단협의회에서 매년 의정활동을 평가해서 연말에 시상하는 상입니다. 통상적으로는 의정활동과 의회 내부에서 맡은 직책에 대한 성과를 평가받는 것이죠. 7대에도 수상을 했고 이번 8대에도 다시 수상하게 되어 연속 수상을 하게 된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더 열심히 하라고 주시는 상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제 개인적인 역량이나 의정활동 보다는 소수야당으로서 역할과 의지를 격려하기 위해 주신 상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웃음). 특히, ‘2020 유권자총연맹 우수의원상’은 유권자연맹에서 주신 상이니 저에겐 더 큰 의미가 있고 좋았습니다. 모니터단의 평가를 통해서 해당 의원의 상임위원회 활동, 시정질의, 5분발언 등을 평가합니다. 총괄적으로 취합을 해서 우수한 의정활동을 한 분들에 대해 수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상보다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받은 상 중에서 개인적으로 의미를 더 부여하게 되는 상이네요. Q. 지난 의정활동을 뒤돌아보았을 때 기억에 남는 조례 제정과 5분 발언은 무엇입니까? A. 2017년 말 제주도 현장실습 안전사고 이후, 교육부는 조기취업 형태가 아닌 학습이 가능하고 안전한 ‘학습중심 현장실습’을 전면 도입하여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전사고 부담 및 책무성 강화로 인해 산업체의 참여가 위축되면서 조기취업 기회도 줄어들기 시작했죠. 청년 취업난과 겹쳐 학생들의 진로 불안감이 높아지고 학교의 업무 부담도 가중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그에 맞춰 「부산광역시 고등학교 현장실습 운영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해 직업 체험을 통한 현장적응력을 갖춘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학생의 소질과 적성, 직업적성심리검사 및 상담 등을 바탕으로 다양한 현장실습을 운영, 현장실습생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충분한 노동인권 교육 실시안전과 학습권이 보장된 현장실습 실현, 직업계 고등학교의 정체성 확보, 교육 경쟁력 상승에 힘을 실었습니다. 또한, 고층건물 단지에서 무시무시한 흉기로 돌변하는 빌딩풍 관련 조례도 ‘설비’나 ‘안전’의 범주에서 벗어나 ‘재해’로 규정해 대책을 세우는 「부산광역시 빌딩풍 예방 및 피해저감에 관한 조례」 를 전국 최초로 제정하기 위해 그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Q. 김진홍 의원님께 2020년은 어떤 한해였습니까? A. 2020년 전반기엔 부의장을 맡았고 후반기엔 원내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소수 야당이지만 야당의 역할인 시정에 대한 견제, 감시 부분들에 있어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정말 노력을 했습니다. 여·야의 협치를 부르짖었지만 만족스럽지는 못했습니다. 의정활동에 있어서 상임위원회 활동은 열심히 잘 했지만 아쉬운 점을 꼽자면 조례를 발의하기 위해선 10명이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일까 상대적으로 야당의 조례발의가 여당 의원보다는 저조하다고 봅니다. 원 구성은 되어있지만 5명밖에 되지 않기에 어려움이 많았죠. 새해에는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인 5명의 동의로도 조례발의가 가능하게끔 개선을 하려고 합니다. Q.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 계획은 무엇입니까? A. 시의회의 존재 목적은 시정을 견제, 감시하는 것임을 항상 새기겠습니다. 부산의 발전과 부산시민의 행복을 위해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자세로 올 한해도 채워나갈 것을 다짐하며 새해를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극복 외에, 2021년 제1 목표를 꼽자면 단연 '가덕신공항 건설'입니다. 우선, 국민의힘 부산 국회의원 전원이 발의한 「가덕신공항 건설 특별법」이 올2 월에 통과되도록 힘을 모으겠습니다. 2030년에 북항에서 월드엑스포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는 항공인프라인 가덕신공항이 2029년에 반드시 개항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시민 여러분들께서도 한 뜻으로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부산시민 여러분. 올해는 오거돈 시장의 불명예 퇴진으로 인해 초유의 시정공백 사태를 맞고 있는 부산에서 보궐선거가 열립니다. 시민 여러분들의 선택을 받아 선출된 유능한 시장이 시정공백을 메우고, 현안들을 꼼꼼히 챙겨나가야 할 것입니다. 1년 임기의 시장인 만큼, 시의회가 시정을 견제·감시, 견인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성과로써 보답할 수 있는 2021년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Q.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무엇보다도, 코로나 방역에 적극 협조하며 고통을 분담하고 계신 시민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현재 우리의 일상과 지역경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올해는 벼랑 끝에 내몰린 민생을 회복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지난 1월 27일부터 부산형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접수를 받고 있습니다. 매출손실에 비하면 충분한 금액은 아니겠지만, 고통을 덜어드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울러, 사각지대에 놓여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분들에 대한 추가지원 대책도 마련해내겠습니다. 사랑하는 부산시민 여러분! 올해는 반드시 코로나를 극복하고 민생 회복을 이뤄내야 합니다. 이에, 국민의힘이 앞장서도록 하겠습니다. 시민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시는 믿음과 성원에 부응할 수 있도록 올 한 해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배문고등학교 •동아대학교 관광경영학과 •동의대학교대학원 (부동산학과) 행정학석사 •(前)제5대 동구의회 부의장 •(前)동일중앙초등학교운영위원장 •(前)부산서중학교 운영위원 •(前)동구배드민턴협회 부회장 동구문화원 이사 •(前)새마을운동 동구지회 이사 •(前)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자문위원 •(前)재7대 부산광역시의회 의원 •(前)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전반기 부의장 •(前)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전반기 기획행정위원회 의원 •(現)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후반기 도시환경위원회 부위원장 •(現)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국민의힘 원내대표 [ 수상내역 ] •2017 경실련 우수조례 의원상 •2018 한국지방의회의정대상 최우수상 •2018 대한민국 지방자치평가연계 의정대상 •2019 한국을 빛낸 사람들 대상(지방자치 공기업 인사혁신 공로) •2020 (사)대한민국 유권자총연맹 -2020 우수의원상 •2020 제9회 우수의정대상 [1109]
    • 정치
    2021-02-02
  • 의정활동은 곧 지역민을 위한 복지, 중구의 발 빠른 기초의원! - 이경숙 대구광역시 중구의회 의원 / 운영행정위원장
    대구에도 민주당의 푸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구 중구의 초선 의원인 이경숙 의원도 큰 바람을 따라 발로 뛰는 기초의원 중 한 명이다. 중구의회 여성의원 중 유일하게 더불어민주당이자 현재 운영행정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대구중남사회복지연구소 대표,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사회복지를 담당했었던 그녀. 더불어민주당 중남구지역위원회의 여성위원장을 도맡아 하며 풍부한 사회봉사 및 복지 경험으로 조례 발의, 중구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 공로로 대구지역 전반기 우수의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복지와 청년정책의 중심, 진정한 대구 중구를 위한 의정 활동으로 시민들과 당내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발 빠른 이경숙 의원을 만나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의정에 입문하게 된 계기. A. 이전엔 직장을 다니며 더불어민주당 중남구지역위원회 여성위원장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시민 사회활동을 많이 했어요. 세월호 참사 때 대책위원회에서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이명박 정권 때는 언론탄압과 미디어 악법 제제, 미국산 쇠고기 파동, 박근혜 정권 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등 민주적 활동에 동참하곤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불의 한 분야들을 해결하려 선두에서 목소리를 내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고 2017년 12월 31일, 홀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 팀장직을 내려놓으며 본격적으로 의정 활동에 전념하게 되었죠. 구의원, 지역 의원은 나라의 살림살이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 의원으로서 지역을 다니며 섬세한 시선으로 놓칠 수 있는 문제와 민원까지 발견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고 항상 국민의 살림살이를 대신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입문했고 지금도 그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민원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Q. 운영행정위원장으로서 8대 의회는 어떠신가요. A. 실질적인 의원의 역할은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입니다. 역할을 조금 더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선 양당의 시선과 의견이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8대 의회에 들어서는 다른 의원님들도 동참해 주시고 목소리를 내며 제대로 된 역할을 찾아가고 있어요. 주민을 위한 의정 활동이기 때문에 정당의 이익만을 좇지 않고 제 소신껏, 혼자서도 여러 명의 업무 효율을 낼 수 있도록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Q. 대구 중구에서 도서관에 관련하여 많은 활동을 하셨습니다. 기억나는 것들이 있으시다면. A. 대표적으로 2018년 말, 100년 역사의 중앙도서관이 국채 보상 아카이브 기록관으로 전환되는 움직임에 '민주당 E-데이'를 통해 도서관 존치를 호소하며 지켜내려 노력했습니다. 대구광역시 중구의 거점역할을 하는 구립공공도서관이 하나도 없는데 작은 도서관마저도 재단에 위탁 추진을 하려고 해 제가 결사반대하고 나섰었죠. 긴급 간담회를 통해 주민 관계자들에게 ‘교육, 문화 인프라 확충을 위해 공공 도서관을 세워야 할 마당에 기존 도서관을 민간으로 전환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동의안 부결에 힘을 실었어요.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고 대여하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 발전, 역사적 기록물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는 시민들의 만남, 휴식의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년 10월 15일, 구립 도서관이 한 개도 없는 중구에 도서관 건립을 위해 "청라언덕"이라는 연구 단체를 만들었고 전문 연구 용역과 계약을 체결해 연구 진행 중입니다. Q. 2020 대구 전반기 우수의원이십니다. 대표적인 조례가 무엇인가요. A. 19년 10월 '중구 공공화장실 등의 불법 촬영 예방 및 안심지역 선정' 조례안을 대표 발의 했습니다. 대구 시내에선 최초로 시행한 불법 촬영 예방 조례안이었죠. 하루는 동성로 모니터링 중 여성용 공중 화장실에 '여기 카메라 있는 거 아니냐' 하는 낙서가 있었습니다. 중구는 김광석 길 등 관광이 활성화된 지역입니다. 관광을 온 여성들이 그런 불안감을 안고 사용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겠죠. '관광'에 대한 중구 이미지 제고와 여성 보안관 제도와 여성 모니터단 제도 또한 발의를 했죠. 여성친화 도시인데 여성에 관한 보호법과 대책이 많이 없는 게 아쉽습니다. 타 시, 도에는 있지만, 중구에 없는 좋은 조례들도 많이 공부합니다. 또한 청년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와 함께 중구의 청년 정책에도 청년위원회 발대식 참석, 청년정책 연구소 포럼 참여 등으로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Q. 기초의원의 숙제, 민원해결은 어떻게 하시나요? A. 민원 해결의 경우엔 사회복지를 하면서 특정 취약계층에게 봉사했던 마음을 그대로 주민들에게 드린다는 마음으로 임합니다. 그 마음도 변함이 없게끔 노력하고 있죠. 간단한 민원은 직접 찾아가 현장에서 동영상이나 사진을 찍고 담당자에게 직접 찾아가 해결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민원이 들어와 해결하기 힘들 때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떻게든 장기적으로 해결하더라도 공감과 이해를 통해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민원인과 시그널을 맞추는 거죠(웃음). Q. 앞으로의 의정활동 계획은 어떻습니까. A. 사회복지 분야에 전문가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복지뿐만 아니라 항상 공부하고 연구합니다. 용적률 400% 제한 때문에 우후죽순 재개발이 이루어져 거주지역 주변에 교통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땅값이 비싸서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죠. 민식이 법도 생겼지만 아직 중구가 교통문제가 가장 열악합니다. 교통 약자인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동인초등학교 앞 육교 철거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내며 싸우고 있습니다. 청년과 아이들이 살기 좋은 중구를 만들고 싶어요. Q.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A. 구민분들에게 의원이 되면 참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성과가 잘 드러나진 않아 미안하지만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의정 활동은 공감과 감정이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누구든 그 사람과 공감하는 능력이 있어야 소통이 잘 되겠죠? 기초의원으로서 제 노력이 권력이나 단체로 인해서 난항을 겪을 때 많이 힘들지만 저를 믿고 뽑아주신 구민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칠전팔기’하며 나아가겠습니다! [1106] [ 프로필 ] •한국방통대 교육학과 졸업 •대구중남사회복지연구소 대표 •노무현재단 대구경북지역위원회 운영위원 •홀트아동복지회 사회복지 담당 •대구초등학교 운영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중남구지역위원회 여성위원장 •대구중남사회복지연구소 대표이사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대구지역 대표 •제8대 중구의회 전반기 도시환경위원장 역임 •대구지역 전반기 우수의원 선정 •제 8대 중구의회 운영행정위원장(현) •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 재학 중
    • 정치
    2020-12-09
  •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발로 뛰는 야무진 젊은 일꾼! - 이정민 대구광역시 중구의회 의원
    구민들의 복지와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정책을 강구하고 있는 이정민 의원.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대구 중구에 없는 ‘청년정책’을 발의하며 여성의원으로 생활 정치를 실천하고 있는 그는 ‘우리 대구 중구가 여성・아동 친화 도시로 지정돼 구민들이 보다 나은 보육환경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라며 진정성 있는 각오를 밝혔다. 발로 뛰는 의정 활동으로 헌신하고 있는 청년 일꾼 이정민 의원의 똑 부러지는 의정 활동을 1문 1답으로 만나보자. _박정호 기자 Q.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의원님의 의정철학이 궁금합니다. A. 어려서부터 훌륭한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며 정치인의 꿈을 키웠습니다. 막연히 정치의 꿈을 갖고 있었지만 이를 이룰 방법은 찾지 못했었지요. 사회에 진출한 뒤에는 외식기업 ㈜범진을 운영하며 사업가의 길을 걸었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대구 중구에 신혼집을 꾸렸어요. 그러던 중 대구 중구, 남구 청년당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면서 ‘지금이라도 도전해볼까’하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당원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청년당원으로 활동하는 중에는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로 공천 되어 다른 의원님의 선거 운동을 도왔어요. ‘각 구마다 당을 이끌어갈 차세대를 키워야한다’라는 곽상도 의원님의 신념에 깊이 공감하며 만삭의 몸으로 최선을 다 해 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힘,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힘,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힘’을 지향하는 국민의 힘의 가치에 공감했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기초의회에서부터 그 가치를 실현하고 싶었습니다. 이후 (사)학부모총연합회 중남구지회장, (사)중소기업식품발전협회 3040 CEO 총무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보고 느낀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리더십과 가능성을 인정받아 비례대표로 선출, 초선의원으로 대구 중구의회에 입성했습니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초심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 해 일하겠습니다! Q. 지역의 주요 현안은 무엇입니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상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A. 가장 큰 현안으로는 인구감소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인구감소 문제는 대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꼭 풀어야 할 숙제에요. 대구 중구는 청년인구 유입의 메리트가 적은 편이에요. 주거문제만 놓고 봐도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비싼 편이고 생활근린시설과 문화시설도 부족한 편입니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대구청년CEO협회와 경북 청년CEO협회 아래 대구 경북의 주요 리더들이 만듬 모임에서 대구·경북청년회가 파생되어 함께 고민을 나누고 있어요. 청년인구 유입을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Q. 지난 의정활동을 뒤돌아보았을 때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입니까. A. 올해는 코로나19바이러스의 여파로 구민들이 겪는 어려움이 컸습니다. 민생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해결하기 위해 의회 차원에서도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5분 발언을 통해 부족한 보육시설 확충을 위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을 건의했습니다. 청년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기본조례를 마련하고 세부적으로는 청년정책 심의위원회를 설립, 행정현장에서 실효성있는 정책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어 민원이 자주 제기되는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공이 잘 된 아파트 브랜드에 포상을 주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Q. 평소 구민과의 소통, 민원 해결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A. 제가 젊다 보니 구민들께서 손녀처럼 봐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주로 전화를 많이 주시고 사진을 찍어 메세지로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 역시 3살 아이가 있는 엄마로서, 젊은 청년으로서, 구민들의 일꾼으로서 공감하며 민원을 해결하고 막상 닥치면 반드시 해내려고 합니다. 물에 물 탄 듯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죠(웃음). 공감은 하되 감정이 앞서지 않고 이성적으로 일을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매사 이성적으로 문제를 판단하고 객관적인 해결방법을 내어 드리려고 노력해요. 이렇듯 민원 해결은 공감을 우선으로 하지만 조례 발의나 의정활동을 할 때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얘기할 수 있는 의원이라고 생각합니다. Q. 끝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먼저 공천을 주신 곽상도 의원님께 제일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 처음 겪어보는 의정생활에 많이 헤맬 때 도움의 손길을 주신 오상석 전 의장님께도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3선의 탄탄한 경험으로 젊은 나이에 주민들과 소통하는 방법, 제 맘속의 틀을 깰 수 있게끔 많은 선례를 주셨습니다. 또 홍인표 의원님께서 많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또 가정에서 항상 많은 시간을 할애해주고 응원해주고 전폭적인 지지를 해줘서 제가 이렇게 꿈을 이루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들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정민이라는 청년의원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청년정책 뿐만 아니라 지역을 위해서 활동하고 조금이라도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큰 걸음을 내딛고 있는 저를 믿고 응원해주시면 최선을 다해 보답하겠습니다! [1105]
    • 정치
    2020-11-30
  • ‘2020년 대구광역시 기초의원 의정대상’ 수상! 오직 국민을 위한 봉사를 위해 달려온 대구 만촌동의 산증인!
    대구 수성구의회 최진태 의원이 지난 23일 영남 언론 기자단 협회가 주관하는 제1회 ‘2020년 대구광역시 기초의원 의정 대상’을 수상했다. 올해 1회를 맞이한 2020년 대구광역시 기초의원 의정 대상은 대구 각 구·군 기초의회에서 지역구민들의 민원 해결과 봉사활동에 최선의 노력으로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친 의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최진태 의원은 수성구의회 제8대 전반기 부의장을 역임하였고, 대구농업 마이스터고 수영장 강습료 인하를 촉구하기 위해 대구시 교육청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는 노력도 하였으며, 수성구 도시공원 살리기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공원 일몰제 시행 이전에 장기 미집행 공원을 살리기 위한 방안과 주민 피해 최소화 방안 마련 등 지역 발전과 주민 복리증진을 위해 노력해왔다. _박정호 기자 Q. ‘대구시 기초의원의정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간단한 수상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저에게 과분한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성원해 주신 주민들을 비롯해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추천해 주신 조용성 의장님, 수성구 의회 발전을 위해 한마음으로 일하는 동료 의원님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앞으로 ‘행복한 수성구’를 만들기 위해 보다 낮은 자세로 주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참신한 의정 활동으로 지역 정가의 활력을 불어넣겠습니다! Q. 정계에 입문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A. 84년도부터 만촌동에서 삶의 터전을 닦으며 살아왔습니다. 주민들은 36년간 함께 울고 웃어온 친근한 이웃들이에요. 사업을 하면서 주민들의 권유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만촌동 자율방범대, 만촌동 바르게 살기 협회, 만촌 3동 청소년회 등 30여 년간 지역을 위해 일해왔습니다. 지역 봉사 단체를 창립하기도 하고 기존 단체의 활성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봉사 단체의 장으로 주민들과 관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높게만 느껴지는 관의 문턱을 낮추고 소통의 연결고리가 되기 위해 정계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저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주민들의 친근한 이웃이죠(웃음). 생활에서 겪는 사소한 어려움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어려울 때 우산을 씌워주는 친구 같은 의원이 되고 싶습니다. 저의 삶의 터전인 수성구 발전을 위해, 또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Q. 지금까지 의정활동을 자평해보신다면 A.만촌 2,3동은 재개발, 재건축이 많은 지역입니다. 그러다 보니 재개발, 재건축과 관련된 분쟁과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주민들과 시공사 사이에서 원만한 분쟁 해결을 위해서 중재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만촌 3동은 높은 지대에 위치한 노후화된 주택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노후화된 배수관 문제로 생기는 민원과 분쟁이 많아요. 관련 부처와 협력을 통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또한 대구농업 마이스터고 수영장 강습료 인하를 촉구하기 위해 대구시 교육청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는 노력도 하였으며, 수성구 도시공원 살리기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공원 일몰제 시행 이전에 장기 미집행 공원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앞으로도 ‘해답은 민원현장에 있다’라는 신념으로 현장에서 민원들의 고충을 듣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Q. 의회 발전을 위한 노력상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A.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앞으로 올바른 의원상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7대 친목회 총회장을 맡아 소통과 화합의 장을 마련했고, 그 결과 다른 의회에서 있었던 상임위 파행을 미연에 막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여·야를 아우르는 포용성 있는 정치로 의원들 간의 소통과 화합의 매개체가 되고 싶습니다. Q. 사람 최진태는 누구인가요. A. 제가 의원직을 오래 할 마음은 없고요(웃음). 그저 선배 의원으로서 봉사에 뜻을 둔 정계 후배들을 키워주고 싶습니다. 사사로운 마음으로 의정 활동에 뜻을 두기보다 진심으로 봉사하고자 하는 후배들을 이끌어주고 싶어요. 정치는 ‘직업’이라기보다 지역과 나라에 헌신하는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정철학을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동료 의원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Q. 정치인 최진태를 말씀해 주신다면... A.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묵묵하게 일하는 스타일이에요. 열심히 일하다 보면 결국 알아주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첫인상은 경상도 남자라 무뚝뚝하죠. 하지만 저를 오래 지켜본 지인들은 다가가기 쉽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웃음). 한때 주민자치위원장이 공석이 되었을 때 삼고초려해 청빈한 분을 모셨지요. 무려 3시간을 설득하니 결국에는 수락을 하시더라고요. 이처럼 하고자 하는 일은 뚝심 있게 추진하는 사람입니다. Q. 앞으로의 의정 계획은 무엇입니까? A. 당에 대한 충성보다 주민들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원들 간의 협치를 이끌어내며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의 씨앗을 뿌리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행복한 수성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1105]
    • 정치
    2020-11-11
  • 100억 단위의 첨예한 추진력, 늘 초심과 함께하는 기초의원!
    지난 7월 열린 ‘2020 대구·경북 의원정책대상’에서 구창교 의원이 우수상을 수상했다. 당선 후 활발한 의정활동과 정책추진으로 지역민들의 삶을 행복하게 변화시키기 위해 힘써온 공로다. 민생을 챙기는 참신한 의정활동으로 지역 정가에 신선한 활력이 되고 있는 구창교 의원. 그와의 만남을 일문일답으로 담았다._박정호 기자 Q.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A. 대학 졸업 후 장교 생활을 시작해 2000년에 전역했습니다. 이후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는데, IMF 여파로 취업도 쉽지가 않았죠. 일단 먹고 살아야 하니 막노동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현대산업개발 건축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관리자분이 제게 ‘막노동이 아니라 사업을 해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후 현장에서 착실히 건축지식을 쌓아 조립식 건축 전문기업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국내 굴지 대기업과 거래를 트고 서울에서 활발히 사업을 이어가던 중 독특한 시공법을 적용한 대구 지하철 3호선 지붕공사를 맡게 됐고, 이를 계기로 고향 대구에 다시 내려오게 됐습니다. 회사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무렵, 그동안 하지 못했던 지역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대구북구새마을회에 가입하여 무태조야동에서 처음 시작하였고 이후 북구새마을협의회까지 봉사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그렇게 봉사단체의 일원으로 활동을 이어가던 중, 무언가 한계에 봉착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제도권 내에 들어가 또 다른 봉사를 해보자는 목표가 생겼고 더 큰 봉사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지방의회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Q. 의정활동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A. 아직 초선인 저는 부족함 투성이입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고 생각하고 ‘늘 초심으로 겸손하자’고 다짐합니다. 무엇보다도 기초의원은 시민의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하기에, 무조건 발로 뛰는 의정을 하겠노라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착실히 수행하기 위해선 건강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매일 아침 5시에 망일봉으로 산행을 가곤 하지요. 눈이 잘 떠지지 않는 아침도, 운동이 정말 하기 싫은 날도 있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라고 단호하게 마음을 고쳐먹곤 합니다. 정치인이 아닌 ‘인간 구창교’는 그다지 샤프한 편은 아니라, 주민분들께서 동네 형이나 동생처럼 편하게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Q. 지역 현안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상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A. 무태조야동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지역구가 바뀐 곳으로, 인구 약 4만 명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무태조야동은 고령 인구가 많은 동네인데 복지관이 없어 어르신들께서 문화생활을 즐길 곳을 찾아 외부로 많이 나가시곤 했지요. 또한 학부모님들이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길러내실 수 있도록 도서관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북구청장님과 지속적으로 의견을 나눠왔지요. 지역에 대구시 소유의 근린공원이 있는데, 여기에는 족구장이 있었고 이곳은 소음으로 주민들과 마찰이 잦던 공간이었습니다. 이 족구장을 이전해 문화공간 건립을 추진했습니다. 복합문화공간에는 도서관과 복지관이 들어설 예정인데 지역 주민들이 한곳에 모여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북구의 중심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또한 지역에 위치한 가압장은 과거에는 그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가동이 멈춰진 혐오시설로 전락했는데요, 과거 철거사업에 실패한 서변가압장에 관한 심의도 앞두고 있습니다. Q. 끝으로 북구 주민들께 한 말씀 해주신다면. A. 북구가 빠른 속도로 변화, 발전하고 있습니다. 금호강을 중심으로 대규모 프로젝트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많은 문화 체육공간이 마련되고 있는 중인데 이런 SOC 사업진행 중에 주민들간의 마찰, 갈등이 발생하기도합니다. 주민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건 ‘나’보다는 ‘우리’를 중요시여기며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북구민 모두가 ‘우리는 한 마을의 한 주민이다’라는 결속력을 다지실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행사를 추진하는 등 저 역시 전력을 다할 테니, 많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PROFILE •성광고 졸업 •영남대 정치행정대 지역개발학과 졸업 •영남대 행정대학원 지역개발학과 졸업(행정학 석사) •예비역 육군 소령 •(전)(주)케이엔피 대표이사 •(전)대구북구새마을협의회 회장 •(전)자유한국당 대구시당 부위원장 •(전)성북초등학교 운영위원장 •(전)북대구농협 대의원 •(전)대구시 장애인 수영연맹 부회장 •(전)대구 북구문화재단 이사 •(현)국민건강보험공단 자문위원 •(현)통합신공항 대구시민추진단 집행위원 •(현)대구광역시새마을회 감사 •(현)대구광역시 북구의회 의원 [1104]
    • 정치
    2020-11-11
  • 나 자신보다 세금의 구성, 편집, 집행이 더 중하다 “한 방울의 혈세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젊어서부터 땀 흘려 돈을 안 벌고 쉽게 돈 번 분들이 2000만원 받고 자활교육받고 난 다음에 또다시 성매매 안 한다는 확신이 없다.” 2018년 12월, 그가 중구의회 본회의에서 쏟아낸 강력한 한마디였다. 그 누구보다 국민이 피땀 흘려 낸 세금을 편성하고 사용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홍준연 의원의 각오를 비추는 말이었다. 솔직하지만 다소 과격했던 이 발언으로 인해 홍 의원은 민주당에서 제명을 당했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조금의 혈세도 다시 다지고 살피겠다는 그의 의지를 증명하기엔 충분했다. _박정호 기자 Q. 정계에 입문하기 전엔 어떤 일을 하셨나요. 흙수저 인생이었습니다. 계명문화대학 사진과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웨딩 촬영을 하다 가업을 이어받아서 모터 수리공장을 운영했었지요. 2012년도에 사고로 좌안이 실명되며 장애인 취업을 통해 직장생활을 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세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죠,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을 겪었습니다.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적극적인 학생운동을 하진 않았지만 부조리한 면이 있을 때는 반드시 동참하여 “호헌철페 독재타도”를 외쳤습니다. 故노무현 대통령님을 정말 좋아해 재단에도 몸을 담았었습니다. 그분이 걸어오신 정치의 길 그리고 정신을 이어받아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2014년 민주당에 입당하게 되었지요. 가시밭길로 들어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대구에서 민주당이 활동하기 힘든 정서라 매번 악전고투하면서 지냈습니다. 19대 대통령선거 후 당 대표 1등 공로상을 받았으며 모두가 겁내는 대구 중구에 민주당 기초의원 후보로 출마 후 ‘생즉사 사즉생’ 의 각오로 새벽부터 늦은 밤 까지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중구 최다 득표의 영예와 함께 정식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Q. 입문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신다면. 가장 충격적인 노 전 대통령님이 서거하신 이후 “제대로 된 정치를 해보자”라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국민과 가장 편안하게 동네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보내신 분이죠. 저도 그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고 일단 국민들을 편하게 해주는, 동네 삼촌 같은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역주의 타파, 동서 간의 화합을 외치시면서 고군분투했던 그분을 떠올리며 그 유지를 잘 잇고 계승해 국민들을 위한 편안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마음으로 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Q. 정치인으로서 홍준연은 어떤 사람입니까. 원칙, 상식, 공정에 어긋나지 않는 그런 정치를 하려고 합니다. 조례안 발의나 활동에서도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순종 동상 철거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대구 중구에서 도시활력증진사업 중 하나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예산 70억원(국비 35억원, 시·구비 35억원)을 들여 순종이 다녀간 수창동과 인교동 주변에 순종 동상을 세우며 어가길을 조성했습니다. 굴욕의 역사를 되새겨 경각심을 주겠다고 하지만 당시 행차는 이토 히로부미가 대구 시민을 순응시키려는 의도로 순종을 강제동원한 것이기 때문에 이는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 발원지인 대구 시민정신과도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강력하게 주장해서 반드시 무너뜨릴 예정입니다. 또 예산이 잘못 쓰이는 경우도 가만히 두질 못합니다. 디자인 시범거리 조성에 막대한 예산이이 집행되었습니다(15억 5천만원). 제가 직접 가보니 탁상행정으로 만들어진 모양새를 띄고 있었습니다. 당장 철거 후 재시공 사업을 추진하여 바로 잡게 되었죠. 만년 적자인 중구 관광명소를 운행하는 ‘청라버스’라고 있습니다. 조만간 사업 철폐과정을 밟아가려고 합니다. 지금 또 준비하고 있는 게 대구 중구에 환경과 유류비 비리 재정비, 성매매 자활지원금 환수를 위해 법적 대응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제 득표율인 36.8%, 그 수많은 주민분들이 예산 잘 짜고 잘 쓰라고 뽑아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하면 힘이 납니다. Q. 사람 홍준연은. 사실 참 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눈을 다치고 나서 SNS 활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작은 글을 보다 보면 눈도 점점 아프고 불편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길을 다니다 보면 폐지를 주워서 생계를 이어가시는 분들이나 그런 복지 사각지대에 계신 분들을 틈나는 대로 찾아뵙고 식사도 대접하고 그분들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직원들과 찾아가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안타까운 사정이 있습니다. 주변 직원들이 말하길 “항상 비스마르크 같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눈물 많은 동네 아저씨 같다”고 하시더군요(웃음). Q. 기억나는 이야기. 2015년,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의 원내대표께서 국회 연설에 올라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말했습니다. 항상 세금의 편성, 집행의 소중함을 최고로 중시하는 저에게 정말 깊은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박근혜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에 정치생명을 걸면서 소신발언 하는 사자후, 잠시의 편한 길보다 가시밭길이지만 국민을 위하는 길을 선택한 유승민 의원의 연설에 감명을 받았고 그 모습을 저도 닮고자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Q. 감사한 분들이 계시다면. 자갈마당 성매매 여성이 범죄자인지 피해자인지 정확한 판단 후 자활지원금 지급 발언 이후 민주당에서 제명, 출당당하고 난 후 하태경 의원님, 이준석 의원님께서 참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정치적 인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젠 국민의힘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개혁보수 정치인으로 국민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치,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정치를 하라고 배웠습니다. 아버님께서 얼마 전에 타계하셨습니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엔 늘 모자란 장남이었는데 최다 득표로 당선되고 참 기뻐하셨습니다. 언제나 주민들한테 낮은 자세로 그들을 위해 정치하라 하시던 아버지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감사하며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민께 정치적 이념을 강요하기보다 국민 세금의 공정한 편성과 집행으로 삶의 질을 향상 시키는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9월부터 예산 심의에 들어가는데 주민들이 느끼기에 불필요한 예산이 없도록 서류 한 장 더 쳐다보고 현장으로 한 발 더 다가서서 주민의 말씀을 경청하겠습니다. 제 역할은 국민의 세금을 집행하는 것이라 매번 각인시킵니다. 지금 제 가방 안에는 구의역 사고의 김모 군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불의의 사고로 숨진 김용균님의 유품사진이 있습니다. 컵라면으로 잠시 짬을 내어 식사하시던 그분들이 납부한 세금, 우리 국민의 피와 땀, 노력의 결정체인 세금이 나라의 원동력입니다.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법의 맹점을 이용한 예산집행 제 임기 마치는 날까지 철저하게 감시하고 개선하겠습니다. [1101]
    • 정치
    2020-09-25
  • 2020 대한민국 지속가능혁신리더대상 의정 부문 수상! 발로 뛰는 의정활동으로 ‘구미’가 인정한 남자
    평소 ‘현장을 달리는’ 의정으로 구미 시민들에게 많은 인정을 받는 정치인이 있다. 4선을 지내오는 동안 믿고 맡길 수 있는 의원으로 평가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10대 전반기 부의장과 운영위원장, 예•결산 특별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쌓아온 노하우와 함께 소통, 추진력, 신뢰를 가진 삼위일체의 ‘윤창욱 의원’을 만났다. 특히 그는 사회복지학 전공으로 도민의 복지환경 증진에 힘을 싣고 있다. _박정호 기자 Q. 수상소감을 말씀해 주신다면. 의회, 의장을 민주당이 독점해가고 광역의원 824명 중 143여 명이 미래통합당인 상황입니다. 그나마 17개 광역시, 도 중 대구, 경북만 미래통합당이 다수당인 상황이지요. 이 상은 보수당으로서 역할을 점 더 잘하라는 의미가 있어요. 구미에 6명의 의원이 있는데 여, 야당 비율이 3대 3입니다. 민주당의 힘이 강한 지역이죠. 그렇지만 저는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로 2년 전에 무투표 당선이 되었습니다. 이번 의장 선거에서는 운이 따르지 않았지만 항상 노력하는 정치인이 되겠습니다. Q. 정치인으로서 윤창욱은 어떤 모습입니까? 저는 정당정치와 생활정치를 접목하는 의원입니다. 광역의원은 정당, 생활정치의 접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장을 굉장히 많이 다녔고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언제나 1순위에 해당하는 활동을 꼽자면 항상 먼저 찾아가서 민원 해결을 위해 노력을 합니다. 집행부보다는 도민들이 원하는 의정활동을 펼쳤다고 보면 됩니다. 대표적으로 선거 때 공약했던 부분들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약속했던 부분들을 책임완수 하기 위해서죠. 초선 때와 지금은 정치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정치의 정서는 권위적인 면모가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죠. 움직이는 생활공간에 전부 CCTV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4선이니까 주변에서 다 나를 알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친구와 술을 먹을 때나 식사를 할 때, 심지어 걸음걸이마저 누가 나를 쳐다본다고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항상 조심하면서 화려한 것, 말하자면 값비싼 고급 식당은 지양하고 포장마차 같은 편안한 곳에서 만나서 이야기하고 합니다. 누가 값을 지불해도 편안한 곳에서 사람 만나는 게 좋더군요. Q. 정계에 발을 들이기 전엔 어떤 삶을 살아오셨습니까? 정당에 입문한 시기는 1983년입니다. 오래되었죠. 그 당시 민주 정의당. 청년당원으로 입당을 했습니다.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정치 인생 전부를 보수의 길을 걸었습니다. 처음 입당할 때가 12대 국회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생이었죠. 당시 입당원서를 쓰고 청년당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도에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30대 초에 청년 회의소에서 조직 활동을 배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도에 구미청년회의소(JC)의 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회장을 하고 난 뒤에 한나라당 구미시지구당의 사무국장을 맡게 되었지요. 그리고 2005년도에 구미시체육회 사무국장을 했습니다. 도민체전 3연패를 하고 2006년도에 도의원에 당선되어서 활동을 시작했죠. 의정활동을 어려서부터 해서 그런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인연인가 보네요(웃음). Q. 정계에 입문하게 되신 계기가 있다면? 사실 처음엔 선출직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권유를 받아서 시작했습니다. 20대부터 구미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단체 소속도 많이 되어 있었고. 각 단체 조직마다 사무국장이나 회장직 등 중책을 많이 도맡아서 활동하다 보니 ‘너 정도면 선출직 나가면 당선 충분히 되겠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일찍부터 당 생활을 오래 해서 시작부터 광역의회로 가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게 당선이 되었습니다. 의회 배지를 달고 나서는 정말 기분이 새로웠습니다. 임기가 4년인데 선거 당시 따로 뭔가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발로 뛰는 의정을 했으니 선거유세를 막 애써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제가 4번 선거했는데 처음에는 77퍼센트, 재선, 3선 때는 64퍼센트, 4선 때는 무투표로 당선이 되었죠. 이런 가운데 국회의원이 4번 바뀌었습니다. 공천을 받기 위해 경선을 계속해서 나가긴 했습니다(웃음). Q. ‘사람 윤창욱’은 어떤 사람인가요? 구미시를 위해 이 한 몸 모두 불사른 뒤에, 조금이나마 봉사활동 쪽에 힘을 실어 보거나 텃밭이나 가꾸면서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언제 마무리될지 모르지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있을 테니까요. 검소하게 살면서 봉사활동을 하며 여생을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아왔고 천성이라 생각합니다. 어릴 때 독자로 자랐습니다. 1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어요. 어릴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누나들은 어렵게 일하며 야간대학을 다녔고 저는 독자이기에 대학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살까지는 내성적이라고 할까요. 활동적인 면은 있었지만 항상 마음은 여렸습니다. 책을 좋아했던 저는 한날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사게 되었는데 ‘적극적 사고방식'이란 책이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를 담아놓은 책이었는데 항상 삶에 있어 소극적이었던 저에겐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대학교 학과를 정할 때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80년도 사회복지 체계가 없었던 시절이죠. 가정 형편이 어려우니까 ‘사업 쪽으로 돌려야 할까’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대학교 1학기를 마치고 출판사에 취직을 하러 갔습니다. 출판사에 책 판매하는 일을 하게 되었죠. 한 6개월 다녔습니다. 열심히 돈을 모아 광고 유통 사무실을 하나 열게 되었죠. 구미공단과 지역에 영업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광고 유통 쪽에 8년 동안 입지를 쌓아갔습니다. 청년회의소 사무국장을 하면서 가게를 놓긴 했지만요. 이렇듯 어릴 때 영업활동을 하면서 삶에 용기를 가지게 되었죠. 적극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홀로 일어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20살 때 아버지가 타계하셨고, 장남으로서 25살부터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엄청나게 컸었습니다. Q. 감사했던 분들에게 한말씀 하신다면. 주변의 많은 분들께서 의정 활동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힘을 많이 실어주셨어요. 선출직 4년 차에 ‘소통’이란 단어에 대해서 깨달았습니다. 3선 후엔 배려를 하기로 했습니다. 나만의 독단적인 생각으로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소통, 배려, 저한테 다가올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을 할 때도 저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빨리 캐치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소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누구와 두세 시간을 지내고 나면 전화번호를 받습니다. 다음 날 문자나 톡으로 인사를 보냈죠. 처음엔 하루 서른 명을 내 사람으로 만들자는 계획을 세우고 활동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랬지만 20명, 10명으로 줄이게 되었습니다. 녹록지가 않더라고요(웃음). 보통 구미 시민분들 중 저를 아는 사람들은 일단 부지런하다며 칭찬해 주십니다. 작은 민원도 해결하려고 답을 구해서 드립니다. 시민분들이 전화를 하셔서 이런 저런 일이 있는데 해결해 달라 하시면 집행부로 넘기지 않고 제가 해결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면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연결해 드립니다. 교육에 대한 열정이 많아 학교환경개선사업 등 많은 지원사업에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소외계층, 장애인, 어려운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무엇이 부족한지를 파악했습니다.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바를 토대로 개선책을 마련하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장애인 센터에 가서 직접 배식도 하고, 함께 앉아 소통하며 밥 한 끼 먹기도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 남은 임기 동안 평소와 똑같이 경북도민과 지역주민들을 위해서 일할 것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처럼 의정 활동에 매진할 거라 약속드리고 선거 때 공약한 부분을 꼭 지켜서 성과를 내는 것이 제 소임을 다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제가 뭘 했는지 알게 되는 그런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정치활동을 할 생각입니다. 자체적 활동과 과감히 내려놓을 수 있는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1100]
    • 정치
    2020-09-04
  • 옳음을 향해서 나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광복회 선정 ‘역사정의실천’ 정치인 등극!
    경상남도의회 빈지태 의원이 국립묘지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 무덤 이장과 서훈 취소를 위한 국립묘지법·상훈법 개정 촉구 결의안을 공동발의하는 등 공로를 인정받아 광복회로부터 역사정의실천 정치인으로 선정됐다. “지나온 역사 속에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후손들에게 해악을 끼칠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옳은 것을 위한 정치를 해나가겠다”는 굳은 신념을 드러내며 수상소감을 전한 빈지태 의원.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주간인물이 담았다. _박정호 기자 Q. 역사정의실천 정치인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소감을 말씀해주신다면. 저는 사실 역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큰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바른 길에 동참하고 싶었습니다. 작은 우리의 역사가 모여서 큰 역사가 되는 겁니다. 그 역사 속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큰 상을 주셔서 어깨가 굉장히 무겁습니다. 훗날 후손들에게 부끄럽지않게 더 바르게 살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감사히 받았습니다. 사실 제가 도의회에서 광복회에 직접적인 역할을 한 것은 별로 없고 김영진의원님께서 역사 관련 일을 많이 하셨는데, 같이 마음을 모아 드리며 함께 했던 것입니다. 우리 삶 자체가 역사라고 보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역사를 바로 일구어가지 않으면 훗날 우리들의 후손들이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친일파와 그 잔재를 청산하지 못해서 광복 7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후가를 치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른 역사에 걸맞게 그런 역사에 부응해서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Q. 정치인으로서 빈지태는? 정치에 뛰어 든지 15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농민운동을 하다가 선후배들의 권유로 2006년 민주노동당으로 도의원에 출마하여 낙선하고 2010년에 다시 군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후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으로 도의원이 되었고, 전반기 농해양수산위원장을 맡아 농민운동을 하면서 농민들과 접촉하며 배운 농업정책과 현실을 정치에 접목하기 위해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운동을 시작했고, 그 속에서 농업.농촌.농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라고 농민단체의 조직적인 결의와 도움으로 정치에 입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의정활동은 농업정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년동안 농업정책과 관련한 많은 정책들을 다루고 펼치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농산물가격 안정 지원 조례와 농민수당조례 등을 농민단체와 같이 만들었습니다. Q. 정계에 입문하기 전의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농촌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부모님 따라서 농사일을 도우며 자랐습니다. 농촌은 제 삶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 고향에서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산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되었고 그때부터 객지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들어서면서부터 아버지가 병환으로 병원 생활을 하시다 고3 5월달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시간 동안 어머니 혼자서 농사를 지으시랴, 병수발하시랴 정말 바쁘게 보내셨습니다.저도 학교 다니면서 늘 주말에 집에 가 농사일을 돕곤 했습니다. 좀 힘들고 어렵게 지내왔지만 그래도 어려움에 좌절하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늘 언제나 최선을 다했습니다. 87년에 진주에 있는 경상대학교를 들어가서 학생운동을 접하게 되었고, 87년 6월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소위 학생운동권이 되었습니다. 군부독재시절의 우리 사회의 모순을 보게 되었고 그 모순된 사회를 바로잡겠다는 마음으로 사회과학 공부도 하게 되고 이 사회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학생회 간부 활동도 하게 되었고 91년도에는 학생운동의 깊이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속을 면치 못했죠. 징역2년을 선고 받았다가 김영삼 대통령 취임 특사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졸업할 때 직장생활도 하게 되었는데 회사가 IMF 때 부도가 나서 창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농민회 선배와 함께 창원시농민회를 재건했습니다. 농민회 활동을 시작해 1년 정도 있다가 고향 함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수박농사.벼농사를 지으면서 함안에서 지역에 있는 분들을 만나서 함안농민회를 재건하게 되었습니다. 2002년 농민들과 함께 쌀수입개방 반대 투쟁을 주도하다가 다시 구속이 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Q.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농민회원들의 권유에 따라서 만37세에 함안 제2선거구에 민주노동당 도의원으로 출마를 하여 19퍼센트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당시 정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를 때였죠. 정의감과 패기 하나를 무기로 나서던 시절이었습니다. 낙선을 하고 2006년도엔 전농 부산경남연맹 사무처장 일을 맡게 되어 2년 정도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시절 FTA문제가 예민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농민들을 위해 수입 개방을 막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0년 선거를 앞두고 다시 선거에 도전할 때는 군위원 선거로 바꾸었습니다. 민주노동당으로 군위원 출마를 했고 2명을 선출하는 곳에서 6명이 출마, 1등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제가 농민운동을 할 때에는 목표와 목적이 있고 하니까 과격한 경우도 있었지만 법적인 테두리 안으로 들어와서 오히려 대화하고 합리적으로 이야기를 풀다보니 군의원 4년 동안은 합리적으로 일 잘하는 의원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선거에선 당이 해산되는 등 여러 가지 악재가 발생하여 낙선을 하게 되었죠. 무소속으로 있다가 민주당 지역위원장님으로부터 2017년 보궐선거에 민주당 출마를 권유받고 군의원으로 출마하여 17표 차로 낙선을 했습니다. 정치를 그만 두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지역위원장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가서 이번에는 다시 도의원 선거를 치러 당선이 되었습니다. 함안이라는 지역이 보수적인 곳이라 출마 당시에는 누구도 민주당 도의원이 당선 될거라는 기대는 안했는데 막상 부딪혀 보니 당선되어 지금껏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인간 빈지태는 누구인가? 옳고 그름에 대한 부분에 대해 분명한 기준과 단호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좀 아니다 싶으면 속내를 숨기지를 못해요(웃음). 정치하는 사람으로서는 단점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이런 단호함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정치판에서 살아남지 못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매 순간 옳고 바르며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도 바르게 살아가라고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평소에는 저도 부드러운 남자이기도 합니다. Q. 감사했던 분들에게 한 말씀해주신다면. 제 삶 속을 돌아보면 어머니가 단신으로 저를 키우셨고 어렵게 살면서도 늘 바르게 사는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제 편이셨습니다. 대학 생활 당시 학생운동으로 구속이 되고 빨갱이 소리를 들을 때도 어머니는 늘 저를 믿고 제 편에 서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 아내 역시 그랬습니다. 또 선거때 마다 제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아무른 댓가없이 저를 도와주신 많은 지역 분들 덕분에 제가 5번의 선거를 치루면서도 쓰러지지않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나의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믿고 도와주신 많은 분들이 계셔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Q.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정치는 주민분들을 보고 나아가는 것이기도 하고 역사 속에서 정치든 삶 자체든 역사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옳고 바르게 만들어 가지 않으면 후손들에게 해악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옳은 것을 위해서 행동을, 정치를 하겠습니다. 유권자 분들이나 도민분들이 볼 때는 과격해 보일 테지만 열심히 한다고 알아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라가야의 고도, 수박의 고장 함안 출신 •농산물 가격안정 조례 발의, 수박, 벼농사 경험 •광복회 선정 역사 정의실천 정치인 선정 •기획행정위원회 [1100]
    • 정치
    2020-09-04
  • "행복과 불행은 한 집에 삽니다. 밝고 긍정적인 말과 마음으로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길 바랍니다”
    웃으면 기적이 온다. 웃는 것도 연습을 해야 한다. 좋은 때는 웃고 나쁠 때 화내는 것이 아닌, 나쁜 일이 있을 때 웃음으로써 나쁨을 떨쳐버리고 마음을 긍정으로 바꿔주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하’만 배우면 금방 실천할 수 있습니다. 타인으로 인해서 기분 나빠할 이유가 없습니다. 인생은 짧다면 짧은데 웃지 않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 말이죠.” 유니세프를 비롯해 10개가 넘는 후원단체에 기부하는 김호석 안동시의장은 많이 베풀고 열정을 가지면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전한다. _박정호 기자 Q.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 서비스업, 유통업에 종사했었습니다. 자기계발을 꾸준히 했어요. 크리스토퍼, 카네기, 웃음 치료, 라이온스 봉사활동 등으로 바쁘게 살아왔죠. 봉사활동은 벌써 25년째 하고 있습니다. 제2의 고향으로서 안동에 온 지 32년째입니다. 태어나서 반은 대구와 경북 성주에서 학교를 다니며 생활했고 군대를 전역하고 직장으로 인해 안동에 오게 되었습니다. 보수적이지만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고 나니 안동만큼 따뜻한 곳이 없더라고요. 이웃들이 다 함께 가는 길을 열어주고 응원해 주십니다. 안동의 정신, 퇴계 이황 선생님의 가르침이 공경 경(敬) 이기 때문일까요. 저도 이 글자를 정말 좋아합니다. 지역구 활동, 자율방범대, 조기축구회, 체육회, 적십자 활동 등을 하면서 인맥을 쌓게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로 안동에 왔다가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오직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사람을 많이 사귀고 끊임없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사업도 성공하며 지역 정당의 협의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정치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봉사라고 생각하고 회장을 맡게 되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 결국엔 안동을 위해 이렇게 큰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Q. 의장 당선 소감. 무소속으로 의장에 당선된 데에 있어서는 열여덟 분의 의원님들이 도움을 주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기쁨, 영광이 가득합니다. 안동 시민만 바라보고 시민들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기를 바랍니다. 안동시가 바라보는 미래가 모두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생산적인 의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소통하고 열린 의회를 만들어야겠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는 행정 집행부와의 견제 기능도 있지만 제가 집행부 공무원분들한테 늘 이야기하는 게 있습니다. 출근하면 집행부 직원이지만 퇴근하면 한 명의 안동 시민이다. 개인적으로 안동 시민으로써 바라보는 올바른 공무원 상을 떠올리고 스스로 평가해서 활동해라고 말이죠. 스스로 바라보고 판단해라 쌍두마차가 되어서 집, 정부 의회가 되길 바랍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상당히 힘들고 대형 산불도 있었고 장마로 인해서 상당히 힘든 시기에 시민들이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이 시기를 잘 견디고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Q. 안동의 현안. 안동이 관광 거점 도시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경북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지정도 큰 기회가 될 겁니다. 그에 반해 안동의 인구가 자꾸 줄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문화유산이 굉장히 많습니다. 오죽하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하겠어요. 천만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 관광 거점 도시로 선정이 되었고 외부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안동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경기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안동의 자연 보전 특성상 공장은 들어올 수가 없기 때문에 관광을 통해 안동 시민의 행복을 유치하려면 관광 사업을 활성화시키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스스로를 돌아본다면. 우선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안된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없애려고 합니다. 이름하여 yes맨이죠(웃음). 우리 안동시에다가 주문하는 것이 현황문제, 민원, 인허가거리를 가져왔을 때 당연히 미비한 점도 있고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되는 길을 찾아서 안내를 해드리라고 주문합니다. 긍정맨인데다가 웃음치료를 배웠기 때문에 웃음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부지런합니다. 아침마다 만나는 직원들에게 좋은 멘트를 남겨주며 ‘친절 스마일 서비스’ 운동을 공무원들에게 부탁합니다. 안동 시민들이 웃음을 머금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 매사에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운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부지런히 하려고 노력한다. 제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합니다. 긍정, 스마일을 하기 위해서 열정을 꺼내기 위해서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1. 나는 오늘도 내 생에 최고의 날이다 2.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다가오는 오늘이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외칩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해내고 만다, 나는 승리자이다, 나는 성공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좋다, 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를 참 사랑한다, 나는 지금 행복을 선택한다”하고요. 하루를 마무리할 때는 “행복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라는 말을 전하죠. 우리가 부모 입장에서 자식들에게 “좋은 책을 많이 읽어라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어라. 좋은 생각을 하라”라고 하지 않습니까. “좋은 말을 많이 하면 좋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눈으로 좋은 걸 많이 보고, 귀로는 좋은 걸 많이 듣고, 머리로 좋은 것을 많이 생각하고, 긍정적인 말, 진취적인 말, 열정적인 말을 하면 말이 씨가 됩니다, 된다 된다 된다”하면 진짜 됩니다. 감사한 분들이 계십니다. 의장 김호석으로서 시민들께 감사하고, 안동시위원회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웃음을 배움으로써 180도 인생이 바뀌었죠. 한국웃음연구소 이호섭 소장님께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를 긍정적으로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웃다 보니까 사업도 성공했네요. Q. 전하고 싶으신 말씀. 긍정적인 생각과 말을 통해 내 몸에 건강을 찾고, 사업도 성공하고, 하는 일마다 뭐든 잘 된 거라 생각합니다. 반대가 부정은 아닙니다. 안동 시민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긍정적인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상당히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맙시다. 모두가 즐거운 세상이 꼭 올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한집에 산다는 것 아십니까. 웃음소리가 나면 행복이 문을 두드리고 시끄러운 소리, 짜증나는 소리를 하면 불행이 찾아든다고 합니다. 안동시민이 행복한 그날까지 많이 열심히 부지런히 뛰겠습니다. [1099]
    • 정치
    2020-08-27
  • “나를 밟고 화합의 길로 가라” First in Last out 의회의 가교 역할을 자처한 남자
    언론이 가지고 있는 힘은 굉장하다. 기사를 통해서 전해지는 말들이 제3자에게 닿는 순간, 그 글은 강한 힘을 갖고 그들의 뇌리에 새겨진다. 개인적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욱 큰 타격을 받기 마련이다. 대구 달서구에서 7대 후반기 운영위원장을 맡으며 원칙을 갖고 소신 있게 의정활동을 이어오던 안대국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의견이 대립하는 의회에선 다양한 이유로 파행 국면을 맞게 마련이다. 무엇이 그를 뭇매 맞게 했을까. “7대와 8대 의회를 지내며 보니, 우리 의원들이 달성해야 할 최우선 목표는 ‘소통’과 ‘화합’이라고 생각됩니다. 집행기관인 구청에는 견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주민복지나 주민편익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의회 내 불협화음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잡음들이 저를 괴롭혔지만 지방의회의 발전과 변화하는 의회의 전체적인 흐름을 위해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저 하나가 꿋꿋이 잘 견뎌내면 다양한 이슈 사이에서도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보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_박정호 기자 새누리당 출신이지만 민주당에 계십니다. 이유는? 과거에도 정당이 가진 색깔을 떠나서 저의 목표는 분명했고, 제 정치적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당 차원에서 잘못하는 부분이 있기에 신념에 맞게 정당하게 대응하였습니다. 그 후 지역 주민을 위해서 차라리 무소속이 낫겠다고 결심하였고 탈당하였습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하려던 중, 민주당에서 입당 요구를 하시더라고요. 달서구 민주당 구의원분들께서 제 손을 잡아주시고, 민주당 공천을 받아 재도전하였습니다. 구민 여러분들의 많은 지지로 그 결과, 역대 최다 득표와 함께 2위와 역대 최대 표차로 당선되었습니다. 그 순간은 아직도 제 의정활동의 원동력이 되어 초심을 잃지 않게 만들었으며, 지역주민분들께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거유세를 할 때도 저는 현수막에 개인 전화번호를 적어놨습니다. “핸드폰 번호를 노출하면 안 된다. 피곤해진다.”라고 선배 의원님들이 말씀하셨지만, 저는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 최우선이라 생각했습니다. 초선 때 쌓은 경험으로 뒤돌아보니 지역주민에게 더 가까이 갈 방법은 직접 소통이더라고요. 그분들의 소중한 의견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모두 듣고 싶어 제 전화번호를 계속 공개하였고, 지금도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 있습니다. 의정활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 경북 의성에서 자랐습니다. 시골에서 자라다 보니 ‘열심히 일해서 성공해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첫 직장은 국내 유명 가구회사인 퍼시스(Fursys)였습니다. 공채 1기로 입사하여 “품질관리” 전공을 살려 표준화 공정관리를 통해 제품 품질 향상에 기여하였습니다. 그 후, 경험을 살려 대구에서 인쇄업을 시작했습니다. 인쇄업을 하면서 2015년 중소기업청장,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수상하였고, 이웃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지역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역주민들과 각 단체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 구의원 해야 한다.”라고 계속 말씀하셨으며, 적극적인 주변의 권유와 지역주민분들께 받은 큰 사랑과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많은 고심 끝에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의정활동을 적극 독려해 주신 지역주민들께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겸손한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나가며, 달서구의회를 잘 이끌겠습니다. ‘안대국’은 어떤 사람인가. 말하자면 모든 게 부족하지요. 하지만 늘 최선을 다한다는 마인드로 하고자 하는 일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구청 직원들도 함께 일하면서 많이 느꼈을 겁니다. 저는 실무 담당자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실무 담당자와 팀장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 교환하는 시간을 자주 갖습니다. “이런 계획이 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말이죠. 실무진의 역량을 믿고 자문을 구하면 그들도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합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빠르게 수렴하고 처리하며 더 좋은 방법을 다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저의 의정활동으로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습니다. 집행부의 활동을 감시하는 역할이 의정활동의 첫 번째이지만 집행부의 집행과 계획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분명한 감시와 아울러 주민을 위한 일들을 제대로 펼쳐갈 수 있습니다. 적극적이고 빠른 민원 해결과 함께 지역 주민과의 소중한 약속을 잘 지켜 2019년에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실시하는 “약속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모든 생각과 행동은 주민들을 위한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의정활동을 펼칠 예정입니다. 끝까지 지켜봐 주십시오. 감사했던 분들에게. 저를 이 자리에 있도록 해주신 지역주민 한 분 한 분께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기대와 믿음으로 만들어진 의원 안대국 이기에 주민들의 바람과 기대에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꿋꿋이 신념을 지키며 지역 발전과 의회 화합을 목표로 의정활동을 수행하겠습니다. 지역 내 개선사항, 건의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주민 여러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많은 참여가 달서구를 더욱 발전시킵니다. 전하고 싶으신 말씀. 항상 최선을 다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전문대에 진학하였고, 졸업 후 바로 취업하여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남아있었습니다. 큰 결심 끝에 50대 중반에 대학교를 편입하였고 공부에 흥미를 느껴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병행하며 대학원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주어진 제 상황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수한 성적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지금 제가 최선을 다할 일은 8대 후반기 의회 화합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진통 끝에 새로운 후반기 의회가 출범하여 첫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의원님들과 의장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며, 주민들에게 신뢰받는 8대 달서구의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99]
    • 정치
    2020-08-27
  • ‘대구·경북 의원정책대상’ 우수상 , 부정(不正)을 잡아 업어치는 정치인
    경상북도의회 박태춘 의원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용인대 유도학과 학사, 동 교육대학원 석사, 동 대학원 경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2008년 체육훈장 기린장을 수여한 바 있는 체육 전문가이자 교육 전문가. 유도 7단에 용무도, 태권도 총합 16단인 무도인이기도 하다. 경상북도의회에 체육전문인이 입성한 것은 최초의 일. 공정하게 경기에 임하고 비정상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불의한 일을 행하지 않으며, 항상 상대편을 향해 예의를 지키는 '스포츠맨십'과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더불어민주당 경상북도의회 (전)교육위원회 활동하면서 작년 환갑을 맞아 여행비 전액을 경상북도교육청에 기부하는 등 남몰래 선행을 이어가며 바른 정계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유능제강(柔能制强)이란 말이 있다. 유도를 익힌 이들이 자주 듣는 표현으로, ‘부드러운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이긴다'라는 뜻이다. ‘유능제강’의 철학으로 많은 의정활동을 펼쳐오던 박 태춘의원이 최근 경상북도의회에서 최초로 ‘대구•경북 시민단체 의원정책대상’ 우수상을 수상해 그를 만나기 위해 경상북도의회로 향했다. _박정호 기자 Q. 경상북도의원 중 최초로 ‘대구· 경북 시민단체 의원정책대상’ 우수상을 수상하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가를 바라고 활동한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웃음). 공무원 복지환경, 청소년 폭력 문제, 보호 종료 아동 지원 , 적극 행정 지역 참여. 도쿄올림픽 전지훈련 추진 등 여러 항목이 참작이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늘 한결같은 마음과 더욱 낮은 자세로 도민들만 보고 전진할 생각입니다. 저는 당을 따지지 않습니다. 경북 도민,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이 일입니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 잘 잡는 고양이가 최고’라는 말이 있듯이, 일 잘하는 사람 찍어주시면 됩니다. 그것이 유권자의 권리이자 의무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다만, 경북 최초의 체육전문인(최고 학위) 출신의원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Q.지금까지를 돌아본다면. 경험이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저는 대학교 2학년(80년대) 시절부터 선배님들과 함께 청년당원으로서 정당생활을 하였습니다. 오늘에 생각해보니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이 '정치'인 듯합니다. ‘젊어서 고생을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젊을 때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다 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2010년도에 큰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깨어나서도 체육인으로서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의사 선생님 소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꾸준한 재활운동을 통해 다시 재기한 저는 제2의 인생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상으로 활동만 할 수 있도록 치료해달라고 매일같이 기도하며, 수술한 왼쪽다리와 오른쪽 어깨를 고정시키고, 왼 팔, 오른쪽 다리로 운동을 하며 이 악물고 버텼습니다. 아내의 역할이 컸지요. 병원 밥 먹으면 영양부족으로 빨리 회복하기 힘들다며 매일 손수 지은 밥으로 도시락을 싸가며 병수발을 해주었습니다. 내조 덕분에 다시 태어난 셈이지요. 2014년도에 고향에 귀촌하여 기초 군의원 후보 출마와 경북도민신문 대표이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운영하던 유도체육관은 바우처(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로 지도하고, 국가대표 장애인 유도 감독(88올림픽)으로 활동하면서 인연이 되어 시작 한, 장애인 가족 후원회 활동은 연간 7~8백만 원을 지원하면서, 10여년이 넘는 지금까지 그 인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2018년도 지방선거에 입문하게 되면서 유도 체육관 운영을 전부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 유도 체육관이 가끔 생각나곤 합니다. Q.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방 기초의원으로 활동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늘 민원 해결이 잘되지 않아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아 이건 아닌데, 내가 직접 일꾼으로 뛰어야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수록되어 있으며 유도인들의 정신적 철학인 ‘유능제강’을 늘 마음에 새기며 진정한 강함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드리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한 저를 지켜보시던 주위 분들의 기대치가 점점 커져갔고 결국 주위에서 “정치를 해봐라, 당신이면 믿고 맡기겠다”라고 응원해 주셨어요. 그 응원에 힘입어 “그러면 한번 해보겠습니다! ” 하고 뛰어들었습니다. 경북 안동시 용산동 ○○아파트(1533세대)가 장마철에 붕괴되었을 때 약 17억의 보상금을 받아 가구당 11만 원 씩 지급하고, 관리비 등 경비를 다운 시키는 등의 일련의 활동에 입주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말 보람을 느꼈습니다. 또한 공동주택 입주민 동 대표 감사 역할을 하면서 각종 비리 및 행정 부주의를 적발하는 등 비리에 관련해서는 한번 손을 대면 끝까지 파고드는 스타일입니다(웃음). Q. 인간 ‘박태춘’을 소개한다면. 무도인 다운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란 스포츠인 정신 때문인지 ‘항상 저보다 약자는 지켜야 한다’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활동 중단되기 전까지는 재능기부로 경북경찰청에서 호신술을 꾸준히 지도해 왔습니다. 갑질 관련 언론 보도로 이미지가 사납고 안 좋겠지만 사실 저는 8남매(5남 3녀)에서 여섯째인 참 눈물 많고 정이 많은 부드러운 남자입니다. 평생을 유도인으로 살면서 의리와 부드러움이 풍기는 전형적인 스포츠인입니다. 스스로가 부족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며 교훈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이후 더욱 자중하고 겸손하고자 합니다. 주위에서 저에 대한 비방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자네가 나를 그토록 칭찬하고 좋은 말하고 다닌다며!” 역으로 친구들을 대하곤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늘 ‘유능재강’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에 이기고, 부드러운 것은 굳센 것을 이긴다’는 이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것은 행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저는 이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을 인생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 85년 대학 졸업 후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봉화 고향에서 나올 때 단돈 500원을 들고 나왔습니다. 안동 및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유도선수들을 가르칠 때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빈 교실 바닥에서 도복을 입은 채 자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어나면 매일같이 몸이 눅눅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몸에 익힌 부지런함과 근면 성실함은 몸에 배어있습니다. 원래 저는 육상 선수로 활동을 했었는데. 자랑을 하자면 그 당시(고1) 100미터 11초였습니다(웃음). 고2 때 육상을 그만두고 유도에 전념했지요. 대학 시절 방학 때마다 고향을 내려와 교도소 직원들에게 유도를 가르칠 때는 새벽 5시에 어김없이 일어나서 개인 아침 운동을 하곤 했습니다. 대학시절 교도관 및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고 싶었습니다. 청송 교도소 직업훈련원 교정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줄곧 교육위원으로 활동 한 바 있습니다. 명절에는 무연고 재소자들과 음식을 나누며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던 인연이 벌써 10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능이 끝난 고3 학생들을 상대로 일일 교사로 호신술 강의를 하곤 했습니다. 교과과정이 끝났기 때문에 험난한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자기 몸 하나는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지나온 삶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도의원이란 직분도 제게 더 많은 봉사의 기회를 부여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위원회 위원으로서 ‘교육에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직접 현장을 발로 뛰며 확인하고, 먼저 챙겨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하반기부터는 문화환경위원회(산림, 환경, 장애인 체육 및 일반체육, 보건환경, 경북문화재단 그 외) 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위원으로서 교육의 현장을 발로 뛰었듯이 경북도내의 문화, 환경, 예술 등 기타 전 분야도 ‘답은 현장에 있다’는 생활정치 이념으로 찾아다니며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Q. 300만 도민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 도민을 먼저 생각하고 낮은 자세로 늘 도민들의 곁에 함께 하는, 소통, 협업의 의원이 되고 싶습니다. ‘머리가 나쁘면 눈치가 있어야 하고 눈치가 없으면 말이라도 잘해야 한다’는 대학 시절 스승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말은 저에게 ‘위치와 환경을 탓하지 말고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 업그레이드’해야 함을 각인시키는 주문이었습니다. 56세의 나이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된 것도 그 영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사람들과의 믿음, 신뢰, 희망, 행복, 의리를 소중히 생각합니다. 언론을 통해 가정불화, 우울증, 성적 스트레스, 실적 우선주의 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들 기사를 접할 때는 안타까움을 넘어서 화가 납니다. 저의 철학과 행동력에 도민 여러분들의 믿음, 신뢰를 더해 함께 나아간다면 ‘살기 좋은 경북’, ‘아이들이 행복한 경북’은 ‘이상’이 아니라 실현 그 자체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경북도민 전체가 행복해지는 그날을 위해서 항상 바로 옆에 서서 생활 정치를 펼쳐나가겠습니다. [1098]
    • 정치
    2020-08-10
  • ‘2020 제8회 거버넌스 지방정치대상’ 자치분권강화 분야 우수상 수상, 국민의 믿음으로 달성에 푸른 돌을 던졌다!
    대구 달성군의회 건물은 의회 리모델링으로 한창 재단장 중이었다. 최근 들어서 1당 체재의 종지부를 찍고 민주당 의원들이 선출된 결과다. 의회에 의원들이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느낀 김보경 의원의 발돋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민주당의 이름으로 달성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는 김보경 의원을 만나보았다. _박정호 기자 지난 6월 24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2020 거버넌스지방정치대상 시상식’에서 자치분권강화 분야 우수상을 수상하며 초선의원으로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김보경 의원. 지난 2년 동안 다양한 분야와 계층을 위한 자치법규를 16건을 발의했으며 자치분권 실현과 의원 능력 향상을 위한 의원 연구단체를 구성, 고령화 사회 대비를 위한 한일 정보교환 강연을 개최하는 등 주민과 함께하는 진정한 지역 자치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지방자치 역량 강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노동 특보를 맡게 된 계기로 기초의원으로 민주당의 이름으로 출마를 하게 된 그는, 지역에서 36.9% 득표하며 10명 중 1등으로 당선이 된 인물이다. “기초의원의 역할은 주민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일”이라며 수상소감을 전하는 그는 발로 뛰며 생각을 실천하는 인물이다. “지방의회가 좀 더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기초위원, 지방의원들이 구체적인 활동을 해야 확실한 결과가 나올거란 믿음을 바탕으로 6월 27일, 의원연구단체인 ‘정책성장연구회’를 발족했습니다. 그 속에서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한일 심포지엄 정책을 추진했던 것들이 가장 큰 수상의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구회의 구성인자들은 당원들은 배제를 해두고 이를테면 다둥이 아빠, 정년퇴직한 어르신들, 어린이집 원장, 개인 사업자 등 각자의 역할에서 있으신 분들을 모아서 발기인으로 모셔서 시작했습니다. 거버넌스(협치)를 지역에서 실천하는 단계를 밟아가고 있습니다. 직접 공모를 준비했기 때문에 제가 당선될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웃음). 처음에는 막연하게 했는데 자료를 만들고, 연구하고, 수상까지 하면서 거버넌스 이상으로 좋은 경험, 성장, 실천하는 에너지를 받았습니다.” 추진해 온 의안들의 현황에 대해서도 디테일하게 의정활동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달성군의 발전을 위해 소리소문 없이 노력하는 그이다. 18년 11월, 5분 자유발언을 통해 대구 어린이과학체험관의 달성군 유치 당위성을 주장함으로써 서명운동 등을 전개, 체험관 건립 확정까지 이루어 냈다. 김 의원은 최근에 추진하는 정책들에 대해서도 자신있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제 성격이 스스로 발의한 일들은 끝까지 재확인하는 스타일입니다. 제가 한 일인데 왜 안되냐고 스스로한테도 따져묻기도 하죠(웃음). 장애인 문제, 지역구 노인 관련 문제 등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먼저 마을방송 시스템도 손을 대보려고 추진 중입니다. 달성군이 도농복합도시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편의를 위해 마을방송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기존에는 마을회관에 유선으로 방송장비가 있어 소모성이 굉장히 크고 고장이 자주 났습니다. 관련 조례가 없었기 때문에 고장이 나도 고쳐줄 비용을 지급해줄 수 없었어요. 시대의 발전을 따라 무선방송시스템을 이용해서 사용하자 발의를 했습니다. 예산은 만들어 놓고 아직 실천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년에는 예산을 더 증액해서 도농복합도시로써 발전성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화재발생경보에 대한 방연 마스크를 비치하는 발의안도 있습니다. 화재발생 시 골든타임 내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섭니다. 어린이집, 노인정 등 재난구호 마스크. 중증장애인 분들도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역에는 있는데 우리 지역에 없는 것들을 자주 확인하고 있습니다. 진척도는 크지는 않지만 계속 확인하고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김보경 의원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활동 지원에 관한 조례, 야외무대 운영 조례,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조례, 선택예방접종 지원에 관한 조례, 건설공사 준공표지 설치에 관한 조례 등도 추가로 발의했다. “이번 총선에서 보면 기존에 민주당 2명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지역의 위기감 속에서 인물론 보다는 지역을 위한 투표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달성군이기에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많이 남아있는 지역입니다. 민주당의 이름으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것도 민주화의 큰 바람이 아니었더라면 당선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달성군에는 더욱더 열심히 해야한다는 나름의 책임감이 있습니다.” 김보경 의원은 지면을 빌어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가족이 가장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집사람, 큰딸, 배드민턴 동호인분들, 고등학교 후배님들로 선거인단을 꾸렸어요. 그런분들의 응원 속에서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자료를 준비하는 동안에 군의회 의원님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달성군수님을 비롯해서 의회 사무국장님, 사무국 직원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김보경 의원은 향후 연구단체 중심 지역 현안에 대한 해결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여 모두의 협력과 공론화를 통해 양지에서 해결책을 찾기를 바랬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치와 지역사회의 자리매김이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잘한다, 못한다, 보다는 저 의원 ‘부지런하다’라는 말을 듣고싶습니다.” 누군가는 좀 알아줬으면, 누군가는 어깨라도 한번 두드려주면 좋겠다는 김 의원. “남은 임기 동안 늘 처음에 가졌던 마음처럼 주민들에게 다가가겠습니다. 참 열심히 하더라, 그래 그 사람 괜찮더라, 그 말을 가장 듣고 싶어요(웃음).” [1097]
    • 정치
    2020-07-22
  • 도의원의 신념, 공직의 경험, 농민의 손으로 경북 농업을 이끄는 청송의 힘
    2020 제 8회 우수의정대상을 수상한 경상북도 농수산위원회 신효광 의원은 단 한 번도 비리에 연루된 적 없는 청렴한 의원이다. 20년 이상을 공직에서 근무하고 10여년 농사를 지은 그에겐 공직자와 농업인으로서의 값진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정면 돌파 스타일의 의정활동으로 시장을 살리는 데 주력하며 청송군 5개 장애인단체의 지지를 등에 업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그를 만나기 위해 경상북도의회를 찾았다. _박정호 기자 Q. 제8회 우수의정대상 수상소감. 도민분들과 국민분들이 주시는 상이라는 생각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더욱 열심히 할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Q.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 2014년에 군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감사하게도 선출이 되었습니다. 이전에 공직생활을 20년 넘게 했습니다. 농사도 10년 가까이 짓고 사회활동도 하고 공직생활의 경험과 사회생활을 하며 쌓아온 식견으로 보니 이제는 제도권 안에 들어가서 목소리를 높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여년 공직에 몸담으며 들어온 농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서 의원직에 도전을 했습니다. Q. 의원님께 있어서 청송이란. 청송은 제 전부입니다. 청송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의정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청송이 바로 저라는 사람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군의원을 할 때는 군의 견제, 감시를 최우선으로 하고 또 대척점에 서기도 하고 했지만 이제 제 역할은 도의원이기 때문에. 도정에 대해서 감시를 하고 군에 대해서는 이제 최대한 상생의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도의원으로서 최대한 협력을 하려고 합니다. Q. 추진해온 의안들의 현황과 ‘힘’에 대한 이야기. 주민 편익사업을 주로 추진해 왔습니다. 도로사업, 또 농업 관련 예산 편성에 힘을 실어왔습니다. 경상북도에는 23개 군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산 배분에서도 도의원의 역할이 무겁습니다. 공무원에게는 인사가 힘이고 주민에게는 예산이 힘이기 때문입니다. 주민들한테 직접적으로 힘을 실어주기 위해선 예산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예산을 많이 받아야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든 결실은 군민들에게로 가기 때문에 농민들을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더 큰 힘이 필요합니다. Q. 지금까지 활동을 자평한다면.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민분들의 소리를 놓치지 않고 최대한 많이 담아내는 것을 가장 가까운 목표로 두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안이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도움이 되고 성과가 조금이라도 나타나야 제대로 된 일을 한 겁니다. 7월 7일이면 후반기 의정이 시작됩니다.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가 많아 농수산위원회를 한 번 더 요청을 해놓았습니다(웃음). 제 뜻이 충분히 관철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제8회 우수의정대상을 수상한 경북 농수산위원회 신효광 의원 Q. 지역의 현안. 도의원을 하면서 농업에 대한 자연재해, 냉해, 저온, 서리, 우박, 태풍, 햇빛, 가뭄 등 국가와 지방정부 차원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농업 자연재해 보험은 자부담 비용이 많이 드는 편입니다. 예산 차원에서의 규모 확대를 노리고 그로 인한 보상범위를 확대, 궁극적으로는 자부담이 없도록 계속 추진할 계획입니다. 현재는 지난해부터 농업 자연재해 보험 자부담금액을 5%를 더 줄였습니다. 20%에서 15%로 말이죠. 위원회 중심, 의회 중심으로 집행부랑 의견을 수렴하여 원만하게 이루었습니다. 농업에 대한 자연재해만큼은 국가 차원에서 보상을 해주자는 제 이념으로 농민들은 농사짓는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는 농작업 대행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경상북도에선 농기계를 임대 해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 부녀 가정, 장애인분들 귀농, 귀촌에 도전하면서 장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업 대행, 하우스 비닐 교체, 논밭, 과수원에 제초 약재 살포 등을 항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농업에 있어 약자들이 어느 정도는 소득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신뢰성을 가진 농협을 대행사로 지정하려고 합니다. 농협은 장비로 사람을 고용하여 환원 사업 형태를 만들어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수익이 돌아오게끔 지원을 하고 싶습니다. Q. 고마운 사람들. 이 일을 할 때 주민분들께서 열심히 농업에 종사해주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고맙습니다. 현장에서 주민들을 만나 소통하기 위해 장날이 되면 시장을 찾곤 하지요. 코로나 사태로 경로당이 문을 열지를 않아서 요즘은 마을별로 과수원에 적과하는 곳에 가서 얼굴을 비추곤 합니다. 소통하고 하는 데 있어서 자주 못 가는 경우가 많아서 아쉽습니다. 관내 구역은 넓고 인구는 없어 시간이 부족합니다. 가끔 문자로라도 안부를 전하고 합니다. 자주 못뵈서 안타깝고 죄송한데 틈나는 대로 찾아뵐 테니 너무 상심하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웃음). [1097]
    • 정치
    2020-07-22
  • “정치와 정치인은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기능이다. 사람들과 함께 했다”
    “원구성하고 당내 의총을 거치면서 시끄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교섭단체의 대표라는 게 책임감이 무겁습니다. 상대 당이 있고 우리 당도 있고 인원수 차이도 많이 나다보니 다수 안에서도 알게 모르게 약간의 오해와 갈등이 있는 경우가 있긴하지만, 아울러 함께 할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에 집행부, 여당, 야당 모두 함께 좋은 협력관계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시의회 더불어민주당 후반기 원내대표로 선출된 조철호 의원은 어려운 시기인 만큼 상생과 협력을 강조했다. 그와 차 한 잔을 두고 편안한 대담을 나누었다. _박정호 기자 Q. 정치에 입문하계 된 계기. 과거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동업도 하고 직접 영업도 뛰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지요.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있었습니다. 그 다음해인 2004년 열린우리당 총선때 고등학교 선배가 도움을 요청하여 수행과 조직부장을 맞게 되면서 정계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오거돈 전 시장, 박재호 국회의원님과 인연이 되어 정계에 머물게 되었죠. 박재호 의원님이 국민체육 진흥공단에 있을 때 전문위원 활동도 하고 여러 번 낙선 하시다가 국회의원에 당선 되셔서 보좌관도 했으니 박재호 의원님과의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배정고 총동문회 청년국장을 맡으면서 출마한 동문들을 도우면서 자연스레 정치에 입문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조철호는 누구인가. 세상의 변화 속도가 빠릅니다. 그러나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내가 하고 싶다’, ‘내가 해야 한다’ 라는 것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평소 추대받아서 정치인이 되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인도 주변에서 발견되고, 추대받아서 출마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임위원장 자리를 권유 받았지만 욕심은 없었습니다. 시의원 하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사람 조철호는 자리에 대한 욕심이 많지 않고, 나름 배려를 잘 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선친은 항상 남들한테 친절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의원 당선 3개월 이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유언도 같은 말씀을 해주시고 떠나셨어요. ‘남들한테 친절하라.’ 저는 사람에게 상처를 안주는 사람 같아요.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부족한 부분도 많고 합니다. 원내대표가 되고나서 많은 의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평의원 일 때는 그럴 일이 없었는데 평소와는 다른 관계가 형성이 되어가고 직접 만나보니 또 알려진 것과는 다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람이라는 게 상대적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나봅니다(웃음). 인간 조철호는 관계를 잘 합니다. 상임위원회를 결성하면서 협력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협치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고, 상임위를 밥그릇처럼 여기는 분들도 있기는 합니다. Q. 지금까지의 행보를 돌아본다면. 정계에서 16년이란 세월을 보냈지만 정치를 했다고는 할 수 없죠. 박재호라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박재호 의원님은 당선 후 저를 옆에 두고 싶어 했고, 실제 오랜 시간 옆에 있었습니다. 저는 정치를 한 게 아니고 정계의 사람들과 16년간 관계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으로 계실 때 조직국장으로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그 관계 속에 저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재호 의원님과 저는 부산 삼삼횟집을 제일 좋아합니다. 제 절친한 친구의 가게거든요. 그래서 횟집도 차렸습니다. 저는 영등포에, 박재호 의원님은 역삼동에 차렸습니다. 16년동안 동거동락했죠. 늘 겸손한 모습, 항상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며 제 몸에 배였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언젠가는 박재호 의원님도 은퇴를 하셔야 겠지요. “다음에는 너 네가 나 먹여 살려라”하는 그런 사이입니다. 그분 참 재산도 없고 욕심도 없는 분입니다. 박재호 의원님이 당선되었을 때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Q. 현재 부산 교육의 현안.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 지역사회 등 우리 모두의 의식이 선도적, 선제적, 창의적, 주도적, 적극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분명 학교의 안전은 최우선시 되어야 할 영역이고, 우리 모두의 책무입니다. 학교 안전을 핑계 삼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퇴직을 앞둔 교장선생님이 계시는 학교는 변화도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겠지요. 저는 우리 교육의 가장 큰 현안은 학교사회와 지역사회의 소통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지역사회와 학교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마을협의체가 진정한 주민자치의 출발이 되고, 학생들도 함께하는 마을협의체가 지방자치 주민자치의 완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원내대표로 출마하게된 계기? 앞으로의 계획. 원내대표로서 어떤 역할이 필요할까? 먼저 생각해 보았습니다. 보좌진 하나없는 지방자치의 현실에서 각자도생으로는 우리 시의원 모든 분들이 힘들어 지겠구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여와 야의 문제 보다도 의원들 개개인의 의정활동에 있어 부족하고 힘든부분을 의원들의 좋은 협력관계로 풀어 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원내대표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다음달 8월에는 시당위원장으로 박재호 국회의원께서 추대 받는 분위기도 조성이 되어있고 하니 부산시당과의 소통을 요구하는 시의원님들의 마음이 저를 선택해준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지방 분권 강화를 위해서 우리시의회의 역할도 상당히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Q. 감사한 사람들. 가장 감사할 부분은 아버님이시죠. 당선 3달 만에 작고하신 것도 너무 안타깝지만 남한테 피해주지 마라는 걸 항상 가르쳐 주신 점이 너무 고맙습니다. 유치원 다닐 때 선친에게 딱 한번 맞아봤습니다. 그 이유가 제가 늦잠을 자서 유치원 셔틀버스를 기다리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웃음). “선생님이나 친구들한테 얼마나 큰 피해를 준줄 아느냐”. 돌아가실 때 까지도 “남한테 친절하라”고 하셨던 게 가장 큰 가르침이라 생각하고 아버지께 감사를 먼저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박재호 의원님께도 그렇습니다. 형님 동생 관계를 맺었고 그렇게 살았으면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혈육 같은 형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 이런 인터뷰는 제가 원내대표가 되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회를 빌어 정치하시는 분들께 더더욱 사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정치와 정치인은 신분이 아니라 기능입니다.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기능입니다. 자신의 영달과 명예를 위해서 정치를 한다면, 주민들의 아픔을 정치에 이용한다면 지탄받아야 마땅하다고 강하게 꼬집어 말하고 싶습니다. 정치는 더 나은 우리 주민들의 삶을 위한 것입니다. [1097]
    • 정치
    2020-07-22

경제 검색결과

  • 고품질 발효사료 생산으로 ‘농가 소득 증대’,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스타 영농조합법인
    경북 경주시 현곡면에 위치한 천년TMF영농조합법인(이하 천년TMF)은 고품질 발효사료인 TMF사료를 생산·공급해 한우농가의 소득증대에 기여한 스타 영농조합법인이다. 천년TMF는 2009년 경주시로부터 22억 4천만 원을 지원, 영농조합법인으로서 18억 7천만 원을 출자 받아 설립됐다. 2009년 설립된 이후로 꾸준한 성장세를 그리며 탄탄대로를 걸어오고 있다. 또 사료의 주재료인 총체 보리, 옥수수 사이레지 등을 지역 농민단체와 계약재배를 통해 매입해 지역 농업인에게도 지속적인 판로를 열어주고 있다. 천년TMF은 지역 축산인들이 원하는 양질의 사료를 낮은 가격에 공급하며 동시에 꾸준한 장학기금을 기탁해 지역 선순환 시스템 구축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0여 년간 천년TMF영농조합법인을 이끌어오며 경주 축산업 발전에 기여한 전상대 대표이사와 마주했다. _박정호 기자 자수성가형 CEO인 전상대 대표이사는 축산업계의 베테랑이다. 본래 낙농업을 했던 그는 한우 사육으로 전환하며 경주시 천북면으로 축사를 이전했다. 축사 이전과 동시에 그의 숙원사업이었던 축사 현대화를 추진, ‘사료 자가배합기’를 한우 사육에 성공적으로 접목했다. 사료 자체 생산으로 ‘사료비 절감’과 ‘양질의 사료 생산’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그는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경주시한우협회 지부장을 맡기도 하였다. “20대에 축산업을 하면서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처음 결혼 예물을 팔아 송아지 두 마리로 시작을 했죠. 온몸으로 부딪히며 일에 전념했고 고생 끝에 새로운 현대화 축사를 꾸리게 되었습니다. 시설도 시설이지만 축사는 혐오시설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자 항상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죠. 한우협회 지부장을 맡고 있는 어느 날 아침 8시 쯤 경주시장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축사를 아주 깨끗하게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평소에도 어떻게 관리를 하는지 보러 오신 거죠. 자가배합 사료로 인해 냄새도 적고 파리가 꼬이지 않는 깨끗한 축사를 보시곤 시장님은 ‘경주 축산을 살려줄 수 있겠습니까? 시와 함께 사업을 해봅시다’라며 제안을 하셨어요. 저는 ‘앞으로 사업의 50년을 준비할 만 평의 땅을 마련했을 때 함께 하시죠’라고 답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부지가 준비되자 2009년, 천년TMF의 첫 걸음을 내딛었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매월 2500톤의 사료를 생산하며 경주 1위 업체로 자리매김했습니다(웃음). 영농조합법인 중에서 판매량으론 항상 상위 5위권 내를 유지하고 있는 영농조합법인으로 성장했습니다.” 항상 조합원과 지역 농민들과 함께 상생하는 상부상조 정신을 강조하는 전상대 대표이사. 그에 맞는 미담도 아주 많았다. 오랜 시간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조합원의 사육 스타일에 맞는 송아지를 대신 구매해주며 사육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그는 ‘지역민의 사업이 곧 자신의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농업인과 축산인, 영농조합이 함께 윈윈(Win-Win)하며 모두의 숙원사업을 해결해주는 것이 목표”라며 자신의 경영철학을 밝혔다. “첫 번째 목표는 천년TMF사료를 사용하는 농가의 소 한 마리를 1,000만 원에 출하시켜드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1++ 등급을 받아야하고 지육, 도체중이 500kg이 되어야 합니다.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한 번에 목표를 통과하게끔 어떤 사료를 어떻게 줄 것인지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술적인 부분을 지도하며 출하 전에 초음파 육질 측정을 통해 성장 과정에서 꾸준히 코칭하며 출하 일자까지 맞춰드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농가와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죠. 그래서 저희는 늘 농가에 ‘우리를 믿고 맡겨두세요’라고 말씀드립니다(웃음). 성공하면 축산농가 입장에서는 천년TMF를 따라했더니 좋은 결과를 얻었고 이로 인해 소득 증대를 거뒀으니 서로의 신뢰가 더욱 두터워지는 것이죠. 최근엔 김해축산물 공판장 설립 이래 최고가인 2천 45만원에 낙찰되는 쾌거를 달성하며 천년TMF의 저력을 증명해보이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지역 농가와의 계약재배입니다. 사전협의를 통해 모든 규정을 정해 두고 지역 농업단체와 계약재배 매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 중에 가장 보람된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계약재배를 통해 경주 전체의 총체 보리를 써왔습니다. 이를 통해 경주가 전국 총체 보리 재배의 선도지역이 되는데 기여하고 있어요.” 천년TMF는 우수한 자체기술을 가진 영농조합법인으로도 유명하다. 대부분의 업체가 미생물을 구매해서 사용하는 반면 천년TMF는 자체 미생물 배양시설을 갖추고 있다. 미생물을 자체 배양·생산하다 보니 미생물 원균 비율을 높여서 사용할 수 있다. 보통 발효 사료는 발효균 수가 10³~10⁴ 마리 정도 검출되지만 천년TMF의 사료는 10⁶~10⁷마리 정도의 미생물을 포함하고 있다. 반추동물인 소의 소화생리는 ‘반추위’라는 제1위와 제2위에서 미생물을 통해 각종 영양소를 분해, 생성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화할 때 장 내의 미생물도 함께 분해하여 단백질 공급을 돕는다. 그만큼 소에게 높은 함량의 미생물은 곧 원활한 영양분 공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소라는 동물 자체가 하나의 발효기관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거든요. 그렇기에 얼마나 발효가잘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느냐가 영양을 보급하는 것과 일맥상통하게 됩니다. 직원들과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유산균, 고초균, 효모균, 미생물로 발효시킨 건강한 발효사료를 만들고 있어요. 이는 곧 건강한 고기를 만드는 것과도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천년TMF의 발효사료를 사용하는 축사의 특징은 축사의 냄새가 덜하고 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소에게 잘 맞고 친환경적인지 증명해 주는 것이죠. 축사라고 하면 혐오시설이란 고정관념이 있는데 천년TMF와 함께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깨끗한 곳에서 건강한 소를 사육하는 곳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자리 잡을 것입니다.” 천년TMF는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역사회에 더불어 상생하는 영농조합법인의 성공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것. “사업 초기, 지방세로 지원을 받은 만큼 지역에서 받은 것을 되돌려줘야한다”며 “사업이 성장할수록 지역에 더 큰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것이 전상대 대표이사의 진심이다. “저와 직원들은 이 사업장과 관련해서 큰 욕심이 없습니다(웃음). 임직원 모두 ‘부를 쌓기보다 지역에 받은 것을 되돌려주자’는 사회공헌의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지역민들과 서로 믿고 사업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리고 누구나 농업을 하면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늘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각 지역에서 농업을 하면서 정부 지원을 받는 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어렵지만 인색하지 않게 지역에서 받은 것을 되돌려주고 또 함께 나누며 성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앞으로 이런 나눔 문화가 농축산 산업 전반에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웃음).” 오늘도 전상대 대표이사의 머릿속엔 기업과 농업 성장에 관한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올 7월, 경주 용강동에 있는 한우 직판점을 시작으로 전자상거래, 유통 사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역 한우농가의 판로 개척을 통해 더불어 잘 사는 경주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 인터뷰 말미 “돈을 벌기 위해 이웃과 지역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며 “누구라도 돈을 벌면 지역과 산업 발전을 위해 재투자를 해야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전상대 대표이사. 또 “올해도 평소 축산분야에 관심이 많고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주낙영 경주시장님의 도움으로 시비 3억 원을 지원받아 총 사업비 6억 원의 ‘원료 발효탱크 설치사업’을 통해 신기술을 접목하여 발효 효율의 극대화를 통한 한층 발전된 TMF사료를 생산할 계획입니다”라며 성원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인터뷰 내내 자신감 가득 찬 그의 눈빛은 천년TMF영농조합법인이 이끌어갈 새로운 6차 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 했다. 그가 이끌어갈 한국 축산 산업의 내일이 기대된다. [1120]
    • 경제
    2021-08-10
  • 불꽃보다 뜨거운 소방 엔지니어 집단, 대한민국 대표 기술기업을 향해 가는 ㈜메이크순!
    (주)메이크순의 대표 엔지니어들 왼쪽부터 황종욱 상무, 이항준 원장, 김미란 상무, 정형민 이사 2021년 6월 8일, 부산시는 부산을 대표하는 기술창업기업 80개사를 선정했다. 부산 대표 기술창업기업 사업은 혁신기술을 보유하고 성장 가능성이 큰 창업기업을 선발해 부산시 산하 창업지원 기관이 맞춤형 지원을 하는 사업이다. 그중 소방 엔지니어들이 모여 신기술 개발, 지식재산권 획득, 신기술 교육까지 한 번에 이루어내는 ㈜메이크순(Make Something Out Of Nothing)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기술창업기업 선정 배경에 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A. 소화배관에 대한 흔들림 방지 버팀대 존버(Zonever)의 기술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진이 나면 붕괴보다는 화재로 인해 사망사고가 납니다. 그러므로 소화 배관에 내진설계를 하도록 만들었죠. 기존에 있는 종·횡방향의 버팀대의 패러다임을 타파하여 ‘수평·수직 배관 4방향 버팀대’를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설치하는 지지대도 기존 25mm 배관을 M12 전산 볼트용 지지대로 개발해 협소한 공간에도 쉽게 설치가 가능하도록 했죠. 또 이 모든 제품을 고정하는 앵커볼트(후 시공용)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점을 파악해 자사의 기술력으로 ‘선 설치 앵커볼트(Zonever Easy Insert)’를 자체 개발했습니다. 콘크리트 타설 이후 설치하는 앵커볼트는 드릴 작업 중 전선관 파손, 콘크리트에 크랙을 낼 우려가 있으므로 앵커볼트를 먼저 설치하는 제품을 제작했습니다. 미국 중국에서 특허를 받은 자랑스러운 제품들입니다(웃음). Q. ㈜메이크순의 창업 스토리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 ㈜ 메이크순은 2007년, 교육사업부인 ‘Edufire(에듀파이어)기술학원’을 기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소방공사, 소방점검 등 실무를 해왔던, 소위 말하는 ‘현장의 잔뼈가 굵은’ 소방 엔지니어들이 머리를 맞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보자(Make Something Out Of Nothing)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엔지니어 집단입니다. 신기술 개발, 지식재산권 취득, 신기술 교육 등을 이용하여 ‘기술을 전달하는’ 브랜드를 목표로 하고 있죠. 현재 진행중인 흔들림 방지 버팀대(Zonever)는 아이템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앞으로 독자적인 기술력을 통해 다양한 특허제품을 개발하고 풍부한 현장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컨설팅을 수행하는 기업이 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고효율의 연구·개발·시공의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Q. 대표님의 경영이념이 궁금합니다. A. 공유할 수 있는 기술을 늘리자는 것이 목표입니다. 중소기업에서 같이 성장하는 건 쉽지 않겠지만 진심을 담아 ‘더불어 잘 살자’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후배, 직원들에게 제가 가지지 못했던 폭발적인 성장의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꿈은 있지만 다들 경험이 적으니 경험을 쌓도록 해주고 싶어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고기를 잡아주는 대신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가끔 직원들과 술 한잔하며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봅니다. 저는 ㈜메이크순에 몸담은 이상 하고 싶은 걸 이룰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제가 챙겨줄 수 있는 건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하며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그 뜨거운 선순환으로 움직이는 화력발전소 같은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기업 발전 목표는 무엇인가요? A. 현재 현대건설 등 다양한 건설사와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사지구 힐스테이트, 쿠팡 대구 물류센터 약 33만㎡(약 10만 평)등 초대형 규모의 현장 기술 지원도 무리 없이 진행하고 있죠. 모든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에 10개 이상의 대리점을 보유하고 있는 지금, 더 발전하여 10대 건설사에 완벽한 소방 관련 엔지니어링 안착하고자 해요. 또 남들이 안 하는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신기술인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방재 신기술(NET)을 인정받아 조달청 우수 조달 물품으로 선정되는 것이 가장 가까운 목표입니다. Q. ㈜메이크순만의 경쟁력은 무엇입니까? A. 항상 직원들에게 ‘물건을 팔지 말고 기술을 파는 사람이 되어라’라고 합니다. 내진이라는 기술에 대해서 담당자들이 ‘이렇게 하는 걸 처음 본다. 현장에서 이렇게 설치 문제점 등을 지적해주는 경우를 잘 못 봤다’는 평가를 자주 해주십니다. 현장에서 직접 케어가 가능한 게 우리의 강점이죠. 10년 이상의 풍부한 소방 현장경험이 있는 임직원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법적이고 기술적으로 현장을 보살펴줄 수 있는 점이 ㈜메이크순이 가진 강점입니다. Q. 지면을 빌어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무엇이든 ‘되는 방법을 찾아가는’ 회사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전문가가 되고 무언가를 시도하는 회사가 되겠습니다. 촉박한 시간속에서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나가겠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는 큰일을 이루고 싶다면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해보세요. 많은 걸 가지고 싶다면 그에 따르는 희생을 하고 그만큼 움직여야 합니다. 저도 실무 현장에서 배관 용접을 하며, 노하우를 쌓으며 올라왔습니다. 경험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런 과정을 거쳐오며 참을성을 가지고 도전을 해봅시다! (주)메이크순 이항준 대표이사 / 원장 기술창업기업 선정 배경이 된 Zonever 기술자격-소방기술사 / 소방시설관리사 소방설비기사 / 산업기사 [ 경력 ] •중앙소방기술심의 위원 •지방소방기술심의 위원 •성능위주소방설계 심의 위원 •소방청 소방학교 외래 교수 •한국소방안전원 외래 교수 •부산시 안전관리 자문위원 •부산시 건설본부 외부전문가 •양산시 건축심의 위원 •한국기술사회 소방분회장 •전 한국소방기술사회 부산지회 회장 [ 수상이력 ] •부산시장 표창 수상 (2020.12) •과학의 날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 수상(2017.2) •소방청장 표창 수상(2011.5) [ 주요저서 ] •한방에 끝내는 소방설비기사 필기/실기 •한방에 끝내는 소방시설관리사 필기/실기 •한방에 끝내는 화재안전기준 등 10권 등 (총 26권) [1119]
    • 경제
    2021-07-09
  • 지역에 스며드는 주례새마을금고, 더 나은, 더욱 튼튼한 금고를 꿈꾸다!
    사상구 주례새마을금고(이사장 박천수)는 지난 12일 코로나-19 확산 방지 및 여름철 전염병 예방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례2동 주민 자율방역단의 노고를 격려하며 앞으로의 활동에 힘써 달라는 의미로 방역 활동 지원금 350만 원을 기탁했다. “전염병으로부터 주민 건강을 지키고 깨끗하고 안전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활동을 펼치고 있는 주례2동 주민 자율방역단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라며 “앞으로도 지역주민을 위한 생활 방역 활동에 만전을 기해 주시길 바란다”라고 말한 박천수 이사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마을금고는 한 지역 주민들의 상조와 이해를 바탕으로 1963년 4월 경상남도 재건 국민운동본부에 의해 발족된 농총신용조합을 효시로 하고 있다. 그 후 1971년 새마을운동의 전개와 함께 그의 금융기구로서 역할을 도맡게 되었다. 1973년 비영리특수 법인인 새마을금고연합회가 발족되며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토대로 오늘날까지 다양한 금융 활동과 지역 환원을 이어오고 있다. 1976년 9월 20일 자연 설립된 주례새마을금고는 법인인가와 중앙회 가입을 거쳐 1983년 12월 27일 주례2동 우편취급국에서 업무를 개시했다. 1997년부터 주례새마을금고의 대의원직을 맡으며 인연을 맺어온 박천수 이사장은 1995년부터 주례2동의 통장을 9년 역임하며 지역 구석구석의 현안에 밝은 모습이었다. 지역의 원로에서 새마을금고 이사장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물어보니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박 이사장은 말을 이어갔다. “과거 이·통장협의회를 하면서 행정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구청에 다니고 이리저리 사람을 알아가다 보니 주변에서 금고에 발을 들여보라 추천을 하더라고요. 제가 지역에서 오래 활동하며 사람을 많이 알아둔 게 저와 금고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2000년도부터 금고 이사직에 출마했습니다. 이후 이사, 부이사장직에 있다가 2012년 11대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11, 12, 13대를 거쳐 상근 이사장은 10년 차네요. 3선째인 지금 더 이루고 싶은 게 많습니다.” 박천수 이사장은 2012년 3월 1일 자로 조합원들의 신임을 얻어 이사장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총자산 670억 원 규모의 금고를 맡아 내수 경기불황,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등을 극복하며 2020년 총자산 1037억 원까지 끌어올리는 쾌거를 거뒀다. 이는 안정적이고 투명한 경영의 결과다. 또 새마을금고 신 주례지점을 확장 이전해 근처 365ATM 부스를 설치하는 등 금고의 이용 편의성 확충에도 힘을 실었다. 지난 2번의 임기 동안 열악한 금융, 경영여건 속에서 지속적인 수익을 내는 능력 있는 이사장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3번째 임기인 지금 “보다 튼튼한 금고를 만들기 위해 말보다는 결과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라고 피력한 박 이사장은 금고 성장 외에도 지역 나눔 활동에도 힘을 실었다. 꾸준한 라면 기탁, 주례2동 행정복지센터에 TV 기탁, 짜장 나눔데이 등 지역에 온정을 불어넣고 있는 것. 박천수 이사장은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지역주민이 어려움을 겪는 요즘 “지역의 마을금고로서 다양한 방면으로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주례새마을금고는 2021년 목표 자산 1100억 원 달성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금융업계가 위축되며 덩달아 금융사업도 어려운 가운데 고객들의 자산 방어에 총력을 다하며 작게나마 한 걸음씩 나아가겠다는 박천수 이사장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돋보인다. 주례의 큰 어른, 주례새마을금고의 3선 이사장, 새마을금고 북·사상구협의회 회장을 맡아 앞으로 금융, 경영, 지역 상생의 선구자(先驅者)가 되어줄 박천수 이사장의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1985년 ㈜부산방직 관리자 근무 •1989년 대신섬유 기획부장 근무 •1995년 주례2동 통장 9년 역임 •1997년 주례2동새마을금고 제7,8,9,10대 대의원 •2000년 3월 1일 주례새마을금고 제8대 이사 •2004년 3월 1일 주례새마을금고 제9대 이사 •2008년 3월 1일 주례새마을금고 제10대 이사 •2010년 3월 1일 주례새마을금고 부이사장 보궐선거 당선 •2012년 3월 1일 주례새마을금고 제11대 이사장 •2016년 3월 1일 주례새마을금고 제12대 이사장 •2017년 2월 1일 ~ 2020년 1월 31일 새마을금고중앙회 대의원 •2020년 3월 1일 ~ 현재 주례새마을금고 제13대 이사장 •2020년 3월 9일 ~ 현재 새마을금고 북•사상구협의회 회장 [1120]
    • 경제
    2021-06-30
  • 당신의 똑똑한 여행 동반자 ㈜심도컴퍼, Travel-Tech의 초신성 기업을 향해 달린다!
    최근 울산광역시 중구가 지역 내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맞춤형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 울산광역시로부터 4차산업 기술력을 인정받은 15개 기업 중 “소비자가 사용할 때 재밌고 즐거워하는 제품을 만들자”라는 이념 하나로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는 ㈜심도컴퍼니의 심도형 대표이사를 만나볼 수 있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와디즈(WADIZ)에서 선보인 세로로 뽑는 여행용 티슈 ‘세로고침’의 펀딩을 목표치의 300% 이상으로 마무리 지으며 세상에 존재감을 알린 심 대표, 그와의 심도있는 인터뷰를 1문 1답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심도컴퍼니의 창업 배경이 궁금합니다. 저는 청년창업사관학교 6기 졸업생입니다. 언제나 재밌는 아이디어 상품들을 생산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죠(웃음). ㈜심도컴퍼니를 시작하기 이전엔 ‘알통닭’이라는 치킨 브랜드를 런칭했었습니다. 배달 전문 브랜드였는데 지역 배달의민족에서 주문 수도 1등을 유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 브랜드는 국내 프랜차이즈 업체에 판매되어 편입되었어요. 요식업 브랜드를 운영하며 식자재 관리를 해보니 식자재처럼 유통기한을 따지지 않는, 상하지 않는 제품의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제 아이디어의 그릇이 될 ㈜심도컴퍼니를 시작하게 되었죠. 수많은 아이디어 중 뭘 할지 고민하다가 먼저 여행용품 브랜드인 푸들(Pudle)을 2017년에 런칭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Q. 경영이념을 말씀해 주신다면. 심도있는 생각과 발상이 있는 회사를 만들자는 생각이에요. 저만의 색깔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하고 싶습니다. 또 사회에 기여 하는 기업가 정신을 뿌리로 두고 제품을 기획, 개발하고 있습니다. 푸들의 네임텍은 소모성 제품이기에 플라스틱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소재로 제품을 개발, 수익금 일부는 기부했고요. ‘세로고침’은 수익금 일부를 ‘아이들의 상상력을 열어주세요’라는 내용으로 기부하려고 해요. 저와 ㈜심도컴퍼니는 재밌는 브랜드와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제품을 이용하실 소비자분도 재밌게 이용했으면 좋겠어요. Q. 2020년, 글로벌 IP 스타 기업에도 선정되었는데요. 선정 배경이 궁금합니다. 가장 큰 배경은 푸들의 스마트 캐리어가 제네바 국제발명전시회에서 은상을 받은 이력이라 생각합니다. 전시회에서 인기가 많았어요. 프랑스와 두바이 쪽 유통망 바이어를 확보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죠. 아무래도 글로벌 IP 스타 기업은 수출 유망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을 선정하기 마련입니다. 공항에서 판매되는 여행용품인 의료용 스타킹이 인기가 많았고 해당 제품의 활발한 마케팅 활동, 샘플 수출, KOTRA의 해외지사화 사업을 통한 유통망 확보에 힘을 실어왔죠. 또 푸들은 신제품 출시를 크라우드펀딩으로 해왔는데 이를 통해 연결된 해외 바이어에게 꾸준히 샘플을 수출한 점도 선정에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여러 지원을 토대로 푸들의 스마트 캐리어 요소기술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Q. 최근 개발 중인 아이템은 어떤 게 있나요? 이미 출시한 제품으로는 여행용 목베개, 패브릭 네임텍, 이미 출시한 제품으로는 여행용 목베개, 패브릭 네임텍, 울산의 고래, 연어를 모티브로 한 보냉커버, 의료용 기내 압박스타킹인 ‘아빠스타킹’, 세로로 뽑는 여행용 티슈 ‘세로고침’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또 지자체의 특산물 브랜드에 기여 하고자 확보한 ‘감자합니다’ ‘고구맙습니다’가 있어요. 또 미역, 젓갈 브랜드를 기획해둔 게 있습니다. 필요하신 지자체는 언제든 연락주세요(웃음). 창업 아이템은 2019년에 스마트 캐리어를 출시하고자 준비하였는데요. 앱을 통한 커스터마이징으로 나만의 캐리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출시일이 미뤄졌고 조금 더 완벽한 스마트 캐리어를 구현하기 위해 자동압축기능인 ‘스퀴징’ 기능을 접목하려 또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습니다. 산학협력을 통해 R&D를 이어나가고 있어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 대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Q. ㈜심도컴퍼니의 강점과 비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샵인샵 브랜딩, 상표권에 대한 로열티 판매와 기획에 능합니다. 상표권 승소 이력도 많고 제대로 된 상표권을 찾아드리기도 해요. 이를 AI 산업 쪽으로 적용하여 BI(브랜드이미지 통일화 작업)와 CI(기업 명칭, 심벌, 로고)구성을 알고리즘화해서 브랜딩을 해주는 엔진, 아비치(AIBICI)를 개발하여 차별화된 ‘다음 세대’의 브랜딩을 꿈꾸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립니다. 트레블 테크 산업의 획을 긋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기술을 확보하려 노력 중입니다. 여행용 매거진을 제공하는 메니튜어라는 앱도 개발하고 있어요. 플랫폼 사업으로 이어지면서 기존 OTA 시장에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 더 편하고 좋은 경험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색깔 있는 브랜딩, 제품 기획력이 있으니 부족한 기업들이 있다면 도와드리고 싶어요. 앞으로도 좋은 결과물을 선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웃음).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1117]
    • 경제
    2021-06-16
  • 대구광역시 원스탑 HACCP 시공의 선두주자 - 모든 사업자와 상생하는 식품의 미래를 꿈꾼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수입되는 식품들의 열악한 위생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접한 누리꾼들은 “수입 품목에도 HACCP를 적용해야 한다”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HACCP, 많이 들어 보았지만 생소한 단어이기도 하다. 바로 ‘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 System’의 약자로서 ‘해썹’ 또는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이다. 식품의 원재료, 제조, 유통, 조리 등 소비자가 섭취하기 전까지의 모든 과정의 위해요소를 규명,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학적 위생관리체계인 HACCP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위생의 지표가 되어주고 있다. 인증 절차가 까다롭기에 창업의 꿈을 가진 사람들은 업체를 통해서 컨설팅을 받아 꿈을 향해 걸음마를 떼곤 한다. 대부분의 업체가 수도권에 밀집된 반면 대구광역시에 자리 잡고 있는 HACCP 컨설팅 및 시공업체 (주)예인C&E, “식품 사업은 대부분 영세하고 지자체 지원책이 없습니다. 그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합리적인 방향으로 소규모의 공장들을 HACCP이라는 바운더리에 넣어주고 싶어요”라고 피력하는 조진우 대표와 나눈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일반인에겐 생소한 직업이기도 합니다. 어떤 계기로 이 길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A. 5년 간의 군생활을 마감하고 전역후 직장생활보다는 군인정신으로 사업을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중국에서 상품을 들여와 인터넷쇼핑몰에 상품을 파는일을 하다 1년 만에 퇴직금을 날리고 사업을 접고 대구 소재 ㈜세계실업에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주로 공장을 상대로 산업재해 방지 기계 납품 및 직원복지시설을 리모델링 및 신축하는 공사업무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식품공장 현장을 보게 되었으며 업무상 HACCP 시공하는 업체와 현장에 대해 협의할 것이 있어 업체들과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당시엔 HACCP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어요. HACCP 건설 경험이 많은 업체는 수도권에 있었기 때문에 건축주 입장에서는 거리가 멀어도 건축비용이 비싸더라도 울며겨자먹기로 수도권 업체에 건축 및 컨설팅을 맡기는 것을 보게 되며 제가 지역에서 건축 및 컨설팅 업체를 만들어 보자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죠. 실제로 수도권 업체와 견적비교하자면 건축비용 차원에서 이깁니다(웃음). 전체 비용의 최소 10% 이상은 경비이기 때문이죠. Q. HACCP 컨설팅 절차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면. A. 첫째, 식품 품목을 조사합니다. 식품제조 대분류는 축산물가공, 식품가공 두 분야로 크게 나뉘어 있기 때문이죠. 그에 따라 설계도 조금씩 다릅니다. 축산물가공은 주로 수처리 문제발생 많고 원료육 온도관리에 중점을 두고 설계합니다, 식품가공은 급수,배수,환기 등에 중점을 두어 설계하죠. 그리고 식품공장에서 제조하는 식품의 종류가 100여가지 이상으로 많기 때문에 각 식품품목특성을 잘 반영하여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규모를 알아야 합니다. 소규모 HACCP, 일반 HACCP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매출액 및 직원수로 소규모 HACCP 및 일반 HACCP으로 나눠지며 일반적인 식품공장의 설계기준 및 건축 방향은 소규모나 일반이나 큰차이점은 없으나 일반 HACCP의 경우 HACCP인증심사시 80여개의 항목을 심사하고 소규모 HACCP 20개 항목을 심사하기 때문에 건축 및 컨설팅의 방향을 마리 정해두고 위해서죠. 2가지를 확인한 후 설계 방향을 잡습니다. 다루는 식품의 컨셉에 맞게 설계를 해주고 최초 설계도면 시안을 드려요. 그 후 의뢰하신 분과 함께 5번 정도 반복 미팅을 진행하며 2차 ,3차, 4차 수정 반복작업을 통해 최종확정 도면을 만듭니다. 그리고 식품 기계회사에 도면을 넘겨드리면 식품기계를 배열, 배치하고 마지막으로 도면을 수정합니다. 식품기계 배치까지 완성된 도면을 건축사 사무실에 넘겨드리고 건축사 검토 후 지자체에 건축허가를 접수하면 기본적인 설계 작업 끝나는 것이죠. Q. ㈜예인 C&E의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A. 설계부터 건축주와 긴밀한 협의하여 작업을 하기 때문에 완성된 건축물에 대한 건축주 만족감이 높은 것이 장점이며 이후 건축이 완료되면 HACCP 인증 7원칙, 12 절차에 따라 HACCP 관리기준서 작성 및 인증심사를 컨설팅 지원을 해드립니다. 또 사후에 공장 수선, 새로운 기계가 들어올 때, 새로운 공정이 추가 되었을 때도 사후관리를 꾸준히 해주고 있습니다. 또 지역에 사업체가 있기에 문제 발생시 업무처리 대응이 훨씬 좋습니다. 10년간 HACCP 시공을 전문으로 하다 보니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지역에서 종합건설 면허를 가지고 HACCP 전문건축을 하는 유일한 건설업체 이기도 합니다. 또한, 자체 개발 자재를 이용해 섬세함의 차이가 상당하다고 자부하고 있죠. 마지막으로 저희는 기본 설계할 때 의뢰하신분에게 비용을 받지 않습니다.최종 허가도면이 나오면 저희가 견적서를 드리고 의뢰하신분에게 다른 여러군데 건설업체에 견적서를 받아보시라고 합니다. 가져와서 저희 견적서와 같이 비교해보기도 하며. 제 견적이 터무니없이 비싸면 포기합니다(웃음). Q. 지면을 빌어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A. 식품을 제조하는 업체중 영세하고 2명 이하로 작업하는 업체가 많습니다. 법령에 따라 HACCP를 구축해야 하는 것 도 잘알고 있지만 비용적인 측면과 HACCP 인증 후 관리하는 것이 만만치 않아 식품업을 포기하는 업체가 많습니다. 저는 영세한 업체를 위한 플랫폼 구축을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 가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 ㈜예인C&E는 ‘아파트형 식품공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식품공장의 공유주방 형태를 떠오르게 하는 이 HACCP 공동화 시설은 대구광역시 성서공단의 폐공장 부지 등을 활용하여 다양한 소규모 식품 업체들을 입주, 영세한 규모의 사업자에게도 부담 없이 기회를 주고자 하는 조 대표의 경영이념을 담아낼 공간이기도 하다. 앞으로 ‘식품의 메카 대구광역시’를 만들어나갈 ㈜예인C&E에 많은 기대와 응원을 보낸다. [1115]
    • 경제
    2021-04-23
  • "나에겐 미래가 있다. 꿈이 있다. 희망이 있다. 내일이 있다. 나 자신에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김건이 되겠다."
    과거 해군 장교로서 복무했던 김건 대표. 어렸을 적부터 군고구마 장사를 하더라도 자신만의 브랜드를 ‘경영’ 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복무하던 부대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안정된 직업군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마음 속에 접어둔 그의 꿈이 매일같이 갈증을 일으켰다. 서른 살 되던 해, 군복을 벗고 민간인의 신분으로 돌아온 그는 꿈을 찾아 인생 제2막의 닻을 끌어올렸다. 그 이후로 17년, ㈜빈스라이팅 D&T를 ‘경영’하며 꿈을 이룬 김 대표와 마주할 수 있었다.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반겨준 그는 마치 먼지 쌓인 항로일지를 펼치듯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_박정호 기자 현재 창원에서 (주)빈스라이팅 D&T를 경영하며 순항하고 있는 김건 대표, 세상을 밝게 하는 빛을 다루고 싶었던 그는 2005년에 '현대조명물류센터'라는 이름으로 그의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사업을 이어가던 중 유통과정에서 불어나는 조명의 가격 거품을 보게 되었고 이 모든 거품을 걷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유통과정 일원화 시스템'을 실현, 국내 최초로 직영지점과 대리점을 통한 전국 유통망 확보, 자체 중국 광저우에 제조공장을 운영하며 생산, 유통, 납품, 매매의 유통과정을 통합하였다. 시장 가격 경쟁에서 성공적으로 우위를 점한 김 대표는 2011년 ㈜빈스라이팅 D&T로 사업체를 재설립하게 되었다. 그의 유통 일원화 소식을 듣고 인테리어, 전기건설사, 건축업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빈스라이팅에 가면 당일에 모든 자재를 받을 수 있다”라고 인정받을 만큼 그의 도전과 경영은 성공적으로 흘러갔다. “17년째 조명 외길만 걷고 있습니다(웃음). 군대에서 몸담고 있던 보직이 스트레스를 준 이유도 있겠지만 항상 꿈꿔왔던 일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컸어요. 경영학과 석, 박사를 이수해서일까요. 경영이 정말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사업을 구상하고 전역하게 되었죠.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 새벽 3시까지 일했습니다. 제가 실제로 뛰면서 겪어보니 사회는 열심히 뛴 만큼 보상을 해주더군요. 그런 솔직한 피드백을 느끼며 ‘이 일을 평생 해야겠다’. 라고 다짐했죠.” ㈜빈스라이팅 D&T의 통합물류창고 전경 여름 소나기만큼 빨리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충족을 위해 매일같이 신제품 개발, 신속한 물품 제공, 확실한 사후관리를 통해 믿음을 꾸준히 쌓아온 김 대표.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바뀌고 있는 시장에도 유연하게 적응하여 ‘코로나 극복 상업조명 특별가 제공 행사’를 통해 사업체들의 소모품 교체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의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또 국제라이온스협회 335-C 지구의 최연소 회원, 경남 장애인유도회 부회장, ‘밝은 사회 창원클럽’에서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그. 지역 취약계층의 노후화된 조명등 교체를 위한 LED 조명등을 꾸준히 기탁해오며 따뜻한 복지가의 면모도 보여주고 있다. 남들이 알게 모르게 사회공헌활동을 이어온 김 대표는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이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지역의 취약계층분들이 아직도 백열전구를 쓰고 있다는 소식에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밑바닥에서부터 이 사업을 키울 때까지 제가 열심히 뛰어 본 결과 노력하면 그래도 이 사회가 보답을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또 지금까지 오는데 무엇보다도 사회와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사회활동을 통해 지역에 돌려드리고자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김건 대표, 그 중에서도 가족한테 가장 고맙다고 피력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래도 결혼해서 전역하는 것도, 사업을 하면서도 반대 한번 없이 믿고 응원해준 집사람이 가장 고마워요(웃음). 또 ㈜빈스라이트에 이름까지 빌려주는 첫째 딸 빈이, 아들 준이 항상 사랑하고 고마워. 또 젊은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세상이 힘들고 실업률도 높다지만 귀천을 따지지 않고 열심히 뛰고 노력하면 한 만큼 그런 대가가 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서 다른 결과가 나올 거에요. 스스로는 잘 못 느껴도 주변은 많이 변해 있을 것입니다. 남들 일할 때 일하는 건 당연해요. 남들 잘 때도 일하면 십 일이 하루처럼 가고, 한 달이 십 일처럼, 1년이 한 달처럼 갈 겁니다. 그렇게 10년만 일하면 그만큼 보답이 올 거예요. 한번 달려가 봅시다!” [1115]
    • 경제
    2021-04-23
  • 세계로 뻗어나가는 ‘코리안 허브’ 의 선두주자 - 어머니의 마음으로 고객의 건강을 염원하는 기업
    경상남도 마산 내서읍에 있는 ㈜가고파힐링푸드, 국내 대표 약초를 재료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 기업이다. 2013년 설립 이후 1년 만에 2014 여성 친화 기업에 선정, 뒤이어 6차산업인 ‘농촌 융복합산업’ 인증을 받았다. 2019년 창원시 선정 ‘창원형강소기업’ 10개사 중 하나로도 선정되며 경상남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기업이다. “약초는 정성껏 손질해 약탕기에 넣어 달이며 오랜 시간 가족의 건강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부채질을 하여 끓여 내야 하는 한방 재료입니다. 우리 ㈜가고파힐링푸드는 그 마음과 시간을 대신하고 고객의 건강을 염원하는 기업이에요”라며 기업과 고객에게 정성(精誠)을 다하겠다는 윤금정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져보았다. _박정호 기자 강원도에서 태어난 윤금정 대표는 훨씬 선대에서부터 약초와 관련된 일을 해오던 집안에서 약재를 만들고 환을 만들고 하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약초 사이에서 자라왔다. 3대 째다. 이런 환경 특성상 자연스럽게 약초와 친해지게 되고 나중엔 향만 맡아도 어떤 약초인지 맞출 정도로 약재와 친해진 윤 대표. 약초를 이용한 장아찌를 백화점에 납품하는 어머니의 일을 도우면서 지금까지의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당시의 일은 모든 걸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일이었어요. 우리 엄마가 그렇게 고생하시는 게 안타까워 그만하라고 몇 번이고 말리기도 했지만 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일을 누군가는 이어가길 바라는 어머니의 바람에 어머니 일을 조금씩 돕기 시작했죠. 약초 소포장 작업을 도와드리다 하루는 제품을 백화점에 납품하러 가서 소비자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약초가 건강에 좋은 건 알아도 올바르게 복용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려 고민하는 모습이었죠. 그렇게 약초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손이 갈 수 있는 제품이 되게끔 제품을 생산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 마음이 지금의 ㈜가고파힐링푸드를 만들게 된 뿌리가 되었습니다.” ㈜가고파힐링푸드는 간편 삼계탕 재료, 한방 액상청을 주력으로 간편 삼계탕 키트, 다양한 유기농 허브차, 간단한 스낵 등 약초를 이용한 힐링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고 완벽한 식품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다양한 기술연구에도 매진한 윤 대표. 연구소를 설립하고 지역의 대학교와 공동개발연구도 하며 국내에서만 통용되고 좋아하는 건강선호식품을 넘어 ‘코리안 허브’로 내보이고 싶은 꿈도 가지게 되었다. “생산기술도 늘어가고 그에 따라 제품에 대한 부가가치도 함께 높아지기 시작했죠. 국내에서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농협하나로마트에 납품해 오고 있으며 농림부 장관상, 중기부 장관상, 창조혁신대상 등을 수상하며 그간의 노력들을 인정받기도 했죠. 늘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어요. 또 제 꿈인 ‘코리안허브’를 선보이기 위해 해외 진출을 시작했죠. 통역사가 있음에도 바디랭귀지로 약초 이야기를 전했어요(웃음). 그렇게 50만 원 정도의 첫 수주가 들어왔는데 그때의 기쁨은 잊을 수가 없죠. 이를 계기로 19년도까지는 한 달에 2번 정도는 해외 박람회, 판촉전에 나갔고 ‘코리안 허브’에 관하여 문의가 있거나 구매 의사를 표하는 곳이 있다면 1달러짜리 제품이라도 들고 비행기에 올랐어요. 그 열정으로 2016년부터 중국,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에서부터 시작해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도 수출을 확장해가고 있어요.” 기업을 운영하며 늘 사회와 함께한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윤 대표. 그 생각은 꾸준한 사회적 기탁으로 실천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나아가 힐링센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사회적 복지 계획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된 분들에게 남녀노소 구분 없이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힐링센터에서 쉬는 동안 모자랐던 사랑도, 관심도, 따뜻한 손길도 드려 그로 인해 다시 한번 꿈을 향해 달려가게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한의사도 고용하여 체계적인 의료체계도 구축해 놓고 싶어요. 누군가 힐링센터 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분의 건강, 음식, 마음 모두를 채울 수 있는 그런 힐링센터를 만드는 게 저와 ㈜가고파힐링푸드의 최종 목표입니다(웃음).” 윤 대표는 젊은 청년들을 고용해 이들을 인재로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인재가 양성되지 않으면 회사가 성장할 수 없어요.”라며 많은 교육과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인재 양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한 달에 보름 정도는 해외에 나가 있는데 엄마 없는 빈자리, 아내 없는 빈자리, 대표가 없는 빈자리를 잘 메워줘서 고맙다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가고파힐링푸드의 슬로건은 ‘고객들이 제품을 받았을 때 미소를 짓게 하자’는 것입니다. 받았을 때 행복한 제품들을 만들기 위해 석, 박사 출신의 연구진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어요. 유능한 분들이 영업팀과 시장조사를 하고, 신제품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노력으로 어렵게 만들어진 제품에 소비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이야기까지 만들어 마음도 함께 전하고 싶습니다. 각 유통사에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러브콜을 해주셨으면 합니다(웃음). 준비가 다 되어있어요. 전쟁터든 어디든 준비를 마치고 있기에 어디인들 못가겠어요!” [1113]
    • 경제
    2021-03-31
  • 세계로 뻗어나가는 ‘코리안 허브’ 의 선두주자 - 어머니의 마음으로 고객의 건강을 염원하는 기업
    경상남도 마산 내서읍에 있는 ㈜가고파힐링푸드, 국내 대표 약초를 재료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 기업이다. 2013년 설립 이후 1년 만에 2014 여성 친화 기업에 선정, 뒤이어 6차산업인 ‘농촌 융복합산업’ 인증을 받았다. 2019년 창원시 선정 ‘창원형강소기업’ 10개사 중 하나로도 선정되며 경상남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기업이다. “약초는 정성껏 손질해 약탕기에 넣어 달이며 오랜 시간 가족의 건강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부채질을 하여 끓여 내야 하는 한방 재료입니다. 우리 ㈜가고파힐링푸드는 그 마음과 시간을 대신하고 고객의 건강을 염원하는 기업이에요”라며 기업과 고객에게 정성(精誠)을 다하겠다는 윤금정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져보았다. _박정호 기자 강원도에서 태어난 윤금정 대표는 훨씬 선대에서부터 약초와 관련된 일을 해오던 집안에서 약재를 만들고 환을 만들고 하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약초 사이에서 자라왔다. 3대 째다. 이런 환경 특성상 자연스럽게 약초와 친해지게 되고 나중엔 향만 맡아도 어떤 약초인지 맞출 정도로 약재와 친해진 윤 대표. 약초를 이용한 장아찌를 백화점에 납품하는 어머니의 일을 도우면서 지금까지의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당시의 일은 모든 걸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일이었어요. 우리 엄마가 그렇게 고생하시는 게 안타까워 그만하라고 몇 번이고 말리기도 했지만 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일을 누군가는 이어가길 바라는 어머니의 바람에 어머니 일을 조금씩 돕기 시작했죠. 약초 소포장 작업을 도와드리다 하루는 제품을 백화점에 납품하러 가서 소비자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약초가 건강에 좋은 건 알아도 올바르게 복용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려 고민하는 모습이었죠. 그렇게 약초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손이 갈 수 있는 제품이 되게끔 제품을 생산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 마음이 지금의 ㈜가고파힐링푸드를 만들게 된 뿌리가 되었습니다.” ㈜가고파힐링푸드는 간편 삼계탕 재료, 한방 액상청을 주력으로 간편 삼계탕 키트, 다양한 유기농 허브차, 간단한 스낵 등 약초를 이용한 힐링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고 완벽한 식품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다양한 기술연구에도 매진한 윤 대표. 연구소를 설립하고 지역의 대학교와 공동개발연구도 하며 국내에서만 통용되고 좋아하는 건강선호식품을 넘어 ‘코리안 허브’로 내보이고 싶은 꿈도 가지게 되었다. “생산기술도 늘어가고 그에 따라 제품에 대한 부가가치도 함께 높아지기 시작했죠. 국내에서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농협하나로마트에 납품해 오고 있으며 농림부 장관상, 중기부 장관상, 창조혁신대상 등을 수상하며 그간의 노력들을 인정받기도 했죠. 늘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어요. 또 제 꿈인 ‘코리안허브’를 선보이기 위해 해외 진출을 시작했죠. 통역사가 있음에도 바디랭귀지로 약초 이야기를 전했어요(웃음). 그렇게 50만 원 정도의 첫 수주가 들어왔는데 그때의 기쁨은 잊을 수가 없죠. 이를 계기로 19년도까지는 한 달에 2번 정도는 해외 박람회, 판촉전에 나갔고 ‘코리안 허브’에 관하여 문의가 있거나 구매 의사를 표하는 곳이 있다면 1달러짜리 제품이라도 들고 비행기에 올랐어요. 그 열정으로 2016년부터 중국,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에서부터 시작해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도 수출을 확장해가고 있어요.” 기업을 운영하며 늘 사회와 함께한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윤 대표. 그 생각은 꾸준한 사회적 기탁으로 실천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나아가 힐링센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사회적 복지 계획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된 분들에게 남녀노소 구분 없이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힐링센터에서 쉬는 동안 모자랐던 사랑도, 관심도, 따뜻한 손길도 드려 그로 인해 다시 한번 꿈을 향해 달려가게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한의사도 고용하여 체계적인 의료체계도 구축해 놓고 싶어요. 누군가 힐링센터 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분의 건강, 음식, 마음 모두를 채울 수 있는 그런 힐링센터를 만드는 게 저와 ㈜가고파힐링푸드의 최종 목표입니다(웃음).” 윤 대표는 젊은 청년들을 고용해 이들을 인재로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인재가 양성되지 않으면 회사가 성장할 수 없어요.”라며 많은 교육과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인재 양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한 달에 보름 정도는 해외에 나가 있는데 엄마 없는 빈자리, 아내 없는 빈자리, 대표가 없는 빈자리를 잘 메워줘서 고맙다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가고파힐링푸드의 슬로건은 ‘고객들이 제품을 받았을 때 미소를 짓게 하자’는 것입니다. 받았을 때 행복한 제품들을 만들기 위해 석, 박사 출신의 연구진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어요. 유능한 분들이 영업팀과 시장조사를 하고, 신제품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노력으로 어렵게 만들어진 제품에 소비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이야기까지 만들어 마음도 함께 전하고 싶습니다. 각 유통사에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러브콜을 해주셨으면 합니다(웃음). 준비가 다 되어있어요. 전쟁터든 어디든 준비를 마치고 있기에 어디인들 못가겠어요!” [1113]
    • 경제
    2021-03-31
  • 30여 년 중앙새마을금고와 함께한 산증인 "지역주민들과 함께 성장하며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겠습니다"
    30년 간 울산 남구 소재의 중앙새마을금고에서 근무하며 회원들과 지역민들을 위해 항상 일선에서 뛰어온 최춘식 이사장. 금고의 시작부터 함께해 성장발전에 삶의 대부분을 투자한 금융인이자 회원들과 지역구민들을 위해 다양한 복지사업과 소통을 이어온 인물이다. 작년, 이사장으로 취임하며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도 금고 자산을 방어하고 더 나아가 이익 창출과 비대면 환원사업을 벌이며 뛰어난 수완을 보이고 있는 그를 만났다. 긴 시간 동안 지역과 회원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소통 정신으로 금고 내 운영진과 지역민의 마음까지 모두 사로잡은 최춘식 이사장을 주간인물이 조명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중앙새마을금고와 함께 사회 첫 발을 내딛다 울산 남구 소재의 중앙새마을금고는 1991년도 1월 11일에 설립되었다. 최춘식 이사장은 같은 해 10월 1일부터 신규직원으로 출근하며 사회 첫 발을 내디뎠다. 울산중앙새마을금고와 함께 성장한 산증인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묵묵히 금고와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30년 가까이 한 길만 걷던 그는 2020년 1월 말에 퇴사하고 2020년 2월 20일, 직원으로는 최초로 이사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발기인들이 금고를 설립할 그 당시에는 삼산동이라는 동네가 허허벌판이었습니다. 매일같이 가방에 서류를 잔뜩 챙겨 들고 회원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했던 기억이 있어요.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며 원만한 성장을 이루다가도 IMF 금융위기가 나라를 흔들기도 했고 외환은행 예금인출사태로 인한 국민의 불안으로 위기를 맞이할 때도 있었지만 모두 한 마음으로 똘똘 뭉쳐 이겨내며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이광수 작가의 <유정>, <무정> 등 농촌계몽 사상에 관한 책을 좋아해 가까이 두며 자란 저는 반드시 금고를 키워내 ‘지역주민들과 밀착된 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 꿈이 컸기에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3,000억 이상의 탄탄한 재무구조를 보유한 중견 금고로 지역에서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통, 화합, 나아가 삶의 일부가 되는 금고 ‘이사장의 경영이념이 금고의 사활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는 최춘식 이사장. 30년 동안 근속해오면서 쌓은 소통의 경험으로 지역민들과 융화되게, 나아가 회사를 투명하게 잘 발전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종적으론 지역사회의 ‘금고’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다며 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새마을금고는 안전하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이익에 따른 배당 적립, 환원사업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3층에 근무하는데 지역 주민 분들이 스스럼없이 찾아주십니다. 회원과 금고 간의 간격이 없게끔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자신이 있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신입 때는 업무밖에 몰랐는데 부장 정도의 직급이 되니 회원들과 밀접함이 필요하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당시 전무님께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회원들과 소통할 시간을 내어 달라고 부탁드렸죠. 그 후 직접 지역의 산악회 총무를 맡아 더불어 지내다 보니 산악회 분들이 다 같이 금고에 계좌를 만들어주시기도 했습니다(웃음).” 내부의 전문 인력 양성을 통한 편리성 구축, 외부의 사회 환원에 앞장서는 금고 “우리 금고의 자랑이라고 하자면 직원들이 진짜 친절하고 정직하고 성실합니다(웃음). 저는 그 점을 제일 높게 사요. 회원들이 우리 금고에 오면 아주 편하다고 매번 말씀해주셔요. 직원들에게 친절에 대해서 매번 강조하기도 하지만, 고맙게도 자발적으로 나서주는 경우가 더 많아요. 또 방문해주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더 전문적이고 편안하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직원들의 금융 관련 자격증 취득도 장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수고스러움에 보답하기 위해 자격증 수당도 지급하고 있죠. 각 개인의 전문 분야가 늘어갈수록 중앙새마을금고는 더욱더 단단해지겠지요.” “옛날부터 바람이 있다면 새마을 사업과 비슷한 형태로 지역에 금융서비스를 보급하고 발전시키고 싶었다”는 최 이사장. 또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해 금고에서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새마을금고인은 입사할 때 새마을지도자 교육을 많이 받습니다. 어려운 분들을 도와드리고자 하는 DNA가 뿌리박혀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힘든 시기에 서로 도우며 새마을금고가 스스로 일어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현재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매년 10명씩 지정해서 지원하고 있지만, 더욱 많은 학생을 지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너무 애써주시는 부녀회원분들과 새마을협회, 부녀회 자장면 무료급식 사업, 삼산동 부녀회 김장담그기 행사, 새마을부녀회 저소득 고추장 담가주기 사업 등에 찬조를 하여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외 지역사회 환원을 위해 노인정 방문, 새마을문고 지원 등을 해오고 있으며 지역의 각종 행사지원, 방범 차량 지원, 적십자 기부 활동은 늘 해왔던 익숙한 일들이기도 합니다. 회원분들만을 위한 일일연수, 산악회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죠.”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묻자. 여지없이 회원들에 대한 고마움과 다짐을 전한다. “회원님들, 우리 금고인들은 항상 회원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나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언제나 곁에서 안전하고 따뜻한 경영을 하겠습니다. 그러니 금고를 내 집처럼 가깝게 이용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중앙새마을금고 연혁] •1991.01.11 법인 금고 (제 12-2-62호) 재 창립 •신규업무 시작과 초대 이사장 이성우 취임 •1991.01.05 제1분사무소 (삼산분소) 개설 (제 12-2-62-1호) 승인 •1992.02.22 제 1차 정기총회 •1992.04.13 안전기금 가입 (경남도지부 인가 제 420호) •1996. 03.28 명칭 변경 (달동새마을금고 →삼산동 새마을금고) •1998.02.14 제 7차 정기총회 제 4대 이사장 이한영 취임 •1998.03.21 명칭변경 (삼산동새마을금고 →삼산새마을금고) •2001.11.26 공제 유효계약고 100억원 달성 •2005.01.24 자산 500억원 달성 •2008.02.21 제 19차 정기총회 제 7대 이사장 임현철 취임 •2008.04.29 명칭 변경 (삼산새마을금고 →중앙새마을금고) •2008.09.01 본동지점 확장 이전 (남구 남중로 128) •2009.11.13 자체회관 매입 및 본점 이전 (남구 월평로 252) •2009.11.27 자산 1,000억원 달성 •2010.07.13 제 23차 임시총회 제 8대 이사장 김원환 취임 •2011.04.25 자산 1,500억원 달성 •2011.05.19 공제 유효계약고 500억원 달성 •2013.11.25 자산 2,000억원 달성 •2014.10.27 중앙지점 확장 이전 (남구 삼산중로 67) •2015.11.25 공제 유효계약고 1,000억원 달성 •2016.11.22 자산 2,500억원 달성 •2019.03.31 자산 3,000억원 달성 •2020.02.17 제 37 임시총회 제 11대 이사장 최춘식 취임 •2020.12.31 현 자산 3,059억원 [1111]
    • 경제
    2021-03-09
  • 소신 있는 젊은 농업인! 울산 최고의 미나리가 되기 위한 도약!
    울산의 대표 작물로 사랑받는 건강식품 ‘미나리’. 비타민 A, B1, B2, C가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고 단백질, 철분, 칼슘, 인 등 무기질과 섬유질이 풍부한 팔방미인이다. 대표적인 알칼리성 식품으로 해독작용, 중금속 배출로 신체의 독소를 정화하는 능력을 인정받아 복요리 등에도 자주 이용된다. 변비와 고혈압에 효과가 좋아 최근에는 제철 음식이 아니라 약용음식, 밥상 필수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 간 기능 향상, 숙취 해소에 좋아 미나리즙이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한다. 이렇듯 천연 종합영양제인 미나리는 자라는 환경, 재배하는 이의 관리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물 좋고 공기 좋은 통도사 근교에서 청정지하수로 재배해 질기지 않고 아삭한 식감으로 지역주민들에게 사랑받는 ‘통도알바위미나리’를 주간인물이 찾아가 보았다. _박정호 기자 꼼꼼한 성격으로 아버지와 함께 건축 관련 업계에 몸담아 왔다는 김병우 대표. 하지만 아버지의 건강검진 결과에서 선천적 질환인 ‘비후성 심근증’을 진단받으며 “진행 과정을 늦추는 방법밖에 없다”라는 의사의 말에 아버지와 함께 건축 현장을 떠나 귀농을 마음먹었다. “우연일까요. 아버지의 고향이 미나리로 유명한 청도 한재입니다. 아버지 친구, 지인분들도 다 미나리 농사를 하고 계셨기에 조심스럽게 알아보고 공부하고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너무 힘들었죠. 모든 것이 처음 겪는 일이었고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경험이 부족했던 저였지만 지인분들께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저를 이끌어주셨기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씨를 뿌리는 과정부터 재배하여 포장하는 단계까지 제 손을 거치지 않는 과정은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통도알바위미나리의 제품에 애착과 자부심이 강합니다(웃음).” 양산과 울산의 경계인 울산 울주군에 있는 통도알바위미나리. 일교차가 어느 정도 있어야 아삭한 식감을 내는 미나리의 특성상 영남알프스 영축산 밑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또 근처에 온천단지가 있을 만큼 양질의 지하수를 자랑하는 천혜의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김 대표는 자신감 있게 말을 이어갔다. “현재는 하우스 1000평, 노지 1000평에서 구석구석 손이 닿을 수 있는 정도로만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대량생산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는 말 못 하죠(웃음). 하지만 제 손으로 직접 키워서 출하하는 미나리가 맛도 좋고 품질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많아 나중에 규모를 더 키운다고 해도 농사의 모든 과정엔 제 손이 거쳐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병우 대표는 “미나리를 키우는 방법은 충분히 공유되어있기 때문에 방법보단 키우는 사람이 부지런해야 그 가치가 올라간다”라는 생각으로 매일 아침 일찍 눈을 뜨고 일에 나선다. 일체의 농약 살포 없이 영양제만으로 재배하며 또 그만의 차별화된 ‘열 전구 시설’을 이용해 11월 말부터 출하를 시작해 조금이라도 더 일찍 더 양질의 제품을 식탁에 올려주고 싶다는 그의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주변에서 점점 우리 미나리의 맛을 인정해 주셨어요. 직접 오셔서 구매하시는 경우가 가장 많고 하나로마트의 로컬푸드존에도 납품을 하고 있습니다. 전부 고정단가로 매대에 올리고 하루 지나면 수거해옵니다. 로컬푸드존은 따로 지정된 자리가 없어 순서대로 진열하는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 가장 먼저 진열해두기 위해 일찍 길을 나서는 편입니다. 가끔 피곤하기도 하지만 하루는 할머니 한 분이 저보다 일찍 오셔서 제 미나리를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그 이후에는 이유 불문하고 1등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서게 되었어요.” “이 집 미나리 먹다가 다른 집 미나리 못 먹겠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짜릿했다는 김 대표. 지역에서 서서히 인정받는 그의 미나리는 점점 많은 곳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선입견 없이 어떤 상품이든 색안경을 안 끼고 봐줬으면 좋겠다”며 “통도알바위미나리를 많이 사랑해달라”는 이야기를 나지막이 전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은 소신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하려고 조금 편법을 이용하면 언젠가는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단단히 각오하고 임하고 있습니다. 과거 건축업에 몸담을 때도, 지금 농사를 할 때도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마음이 단단한 초석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융통성 없어 보이지만 수확한 미나리가 제 기준에 안 맞으면 다 버려버립니다. 최대한 좋은 것, 이쁜 것만 골라서 내어 드리려는 제 욕심에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고생을 많이 합니다. 항상 정직하게 떳떳하게 물건을 내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통도알바위미나리에선 우수한 농도의 미나리즙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또 고기를 사서 방문하면 현장에서 구매한 미나리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시식 장소도 준비되어 있다. 통도사 인근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꼭 들러 봄향기로 몸보신 해보는건 어떨까.[1111]
    • 경제
    2021-03-09
  • 최고의 자동화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영이엔씨, 2020 양산 우수 중소기업인상 수상!
    기영이엔씨는 2013년 설립 이후 2018년부터 괄목할 만한 당기순이익, 영업이익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하며 창업 이래 자동화 설비 제어 PART 제작 및 산업 라인의 뇌 역할을 맡는 프로그램 설계, 센서 설비인 SICK 와 연계한 판매망을 구축하며 SICK 대리점 운영을 바탕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기영이엔씨는 더 나은 산업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센서류를 공급, 동시에 고객의 요구에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21세기의 산업발전에 공헌하고자 끊임없는 도전 정신을 추구하고 있는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 2차 전지 산업 및 자동화 설비 제작을 주력으로 기술혁신을 통해 기술 수준 향상은 물론 인력개발원을 통해 고급 인력의 고용 창출과 최고 품질의 설비제품을 생산하여 2020 양산 우수 중소기업인상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그 주인공 기영이엔씨 권해성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아버지가 40년 정도 철강사업 분야에서 전기설비 시공 관련 사업을 하셨다는 권 대표. 한동안 철강 사업이 난항을 겪을 때 수주가 뜸해지기 시작하며 서서히 사업 영역의 다변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결국엔 철강 사업 분야에서 전지 사업 분야로 사업 영역의 다변화를 통한 선택과 집중을 하게되었죠. 2013년도에 사업자를 만들며 도전했고 다양한 역경 과 굴곡의 터널을 지나 2016년에 2차 전지 사업 분야의 자동화 제어 PART의 수주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몸담던 철강 사업이 주춤한 건 인생의 큰 위기였지만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할까요(웃음). 그때 기존 해오던 사업으로 바빴더라면 전지 사업으로 단호하게 돌아서지는 못했을 겁니다. 단순히 2차 전지 사업으로 뛰어들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처음 시작할 때는 1주일 철야를 해도 운영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이뤄내기 위해 편하게 누워 자는 건 상상도 못 했죠. 매일매일이 야근이고 잠시 눈 붙였다가 뜨면 아직 다 끝내지 못한 일에 몰두해야 했습니다. 2018년도에는 불철주야 노력의 결실로 상당규모의 매출 성장을 이루어냈죠. 주말도 없이 새벽 3시에 퇴근 후 오전 6시에 출근했어요.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웃음).” 2차 산업 전지 생산은 크게 조립과 화성 공정으로 나뉘어 있다. 그중 전지를 만드는 데 있어 ‘이동’하는 라인인 화성동 설치를 주력으로 하는 기영이엔씨다. 프로그램 설계 및 설비 제어 시공 능력을 인정받아 END USER인 삼성SDI, LG, SK 등 대기업과 연계된 업체의 수주를 받아 진행해오고 있는 이 곳은 최근 양산시 선정 2020 우수 중소기업상을 받으며 세간의 이목을 더욱 집중시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큰 영광이기도 하지만 함께해준 직원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기영이엔씨는 유럽계 센서(SICK) 쪽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국내 및 해외 메이커의 타사 제품을 사용하는 설비에 유럽계 센서(SICK)로 접목 및 확판을 통한 노력의 결실을 점진적으로 성장세로 이어가고 있다. 주요한 한해 였다고 할 수 있는 2018년, 직접 거래는 아니었지만 당사에서 수주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 및 2차 산업 전지분야의 설비에 SICK 센서를 점진적으로 적용 도입 시키며 확판을 이루어 나가는 쾌거를 이루어 내고 있다. 함께했던 사람들, 매일같이 밤을 새워가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처럼 수주 받은 프로젝트를 묵묵히 수행하면서 결실을 맺는 직원들한테 감사하기도 하지만 수주를 주시는 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는 권해성 대표. 믿고 맡겨준 만큼 돈이 얼마가 들지는 몰라도 무조건 납품기일을 맞추어 신뢰를 쌓아 나가는게 기영이엔씨의 첫 번째 목표이자 성취감 그 자체라고 했다. “저 또한 직원들한테 잘하려고 항상 노력합니다(웃음). 다들 그냥 밖에서 보면 다 형 동생처럼 지내요. 대리가 사장을 놀릴 정도로 말이죠. 안 그래도 힘든 일인데 수주가 들어오면 보통은 집에 못 가기 때문에 평소에 더 잘 챙겨주려 노력합니다. 아무리 혼자 뛴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평소엔 친구처럼 하지만 일에 불붙었을 때만큼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어떤 날에는 집에 좀 가라고 하기도 해요.” 석탄 연료에서 전지 연료로 바뀌는 큰 순간이지만 지금은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한다는 권해성 대표. 앞으로 기술력을 발달시키며 수정, 보완할 점이 많다고 한다. 향후엔 석탄 산업이 그랬던 것처럼 PLC 사업에서 완전한 PC 사업으로 바뀌는 데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며 업무 이외에도 전지 연료 사업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했다. [1109] •2013 설립 •2018 SICK 대리점 지정 •2019 석계공장 신축
    • 경제
    2021-02-09
  • OEM을 초석으로 쌓아 올린 ODM 소스! 사계절 깨끗하고 맛있는 식품을 드리는_포시즌!
    좋은 재료가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그 맛을 좌우하는 것은 바로 ‘소스’ 와 ‘양념’이다. 한 메뉴의 맛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수많은 전문 인력이 머리를 맞대 수개월 남짓 연구를 거듭해야 한다. 사람들은 전문 업체에 맛을 맡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소스 OEM 업체다. 창원에서 B2B 납품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주)포시즌푸드는 이러한 OEM을 베이스로 ODM까지 소화가 가능한 ‘맛 개발’ 업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OEM’은 주문자가 설계, 개발 주문하여 위탁업체에 생산을 주문하는 상표부착 방식이며 ‘ODM’은 위탁업체에서 설계, 개발에서 제조까지 상표부착방식입니다. 힘든 과정을 스스로 밟는 것이지만 사실 ODM이 더 재밌습니다(웃음). 시간과 큰 비용이 투자되지만 없던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경험들을 쌓아 올리는 게 너무 즐겁습니다”라며 처음 자체 소스 개발에 성공했을 때의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성취감을 바탕으로 사계절 맛있는 식품을 만들고 싶은 (주)포시즌푸드의 배수재 대표이사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과거 식품회사에 약 28년 가까이 근무한 배수재 대표이사. (주)포시즌푸드를 창립하기 직전까지도 식품제조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었다. 사원, 대리, 과장, 부장, 이사직을 거치며 경험을 쌓아온 배수재 대표이사. 근무하던 제조회사와 유통회사의 관계 속 보이지 않는 갑을관계로 인한 한계를 느끼며 더 큰 목표를 위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며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18년 3월에 (주)포시즌푸드를 시작했는데 제대로 된 운영을 못 했습니다. 19년에 들어서야 정상 영업을 시작했으며 개발 위주로 후사를 준비했죠. 상황에 특화된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에 영업보다는 개발 위주로 운영하며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 과정이 참 힘들었죠. 일단 제품의 연구 및 제품출시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주문받은 업체와 많은 협의를 거쳐 수차례 수정 과정을 거칩니다. 완성해도 관할 관청에 품목신고를 받아야 판매할 수 있고 어떤 용기에 어떤 규격에 넣을 것인지 디자인 선정을 하게 되죠. 이렇게 제품이 나오기까지는 짧게는 1개월, 길게는 1년까지도 걸립니다.” 지금은 매출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수많은 프랜차이즈의 러브콜을 받는 (주)포시즌푸드. 20년 3월 이후 개발 품목을 이용하는 프랜차이즈가 맛집으로 인정받으며 하나둘 성공리에 오픈함과 동시에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10여가지 브랜드를 가진 SY프랜차이즈, 요즘 화젯거리인 와플칸, 청솔로9, 바른FC, 족제소, 제주에 버거요, 등 다양한 소스, 양념, 분말, 파우더를 제조, 납품 중이며 코로나 시국에 더욱 빛을 발한 온라인몰에서 피트쿡, 김상우푸드, 초원식품, 젠프 등에 납품하며 집계 상 200%에 달하는 성장을 이루었다. 또 오프라인에서도 농협, 축협, 수도권 대형 유통업체인 토호식품, 좋은이웃마트, 우도식품, 중소형마트 등 다양한 분야의 업체를 대상으로 꾸준히 연구, 제조, 납품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No-sugar’라는 표시가 엄격하고 기준이 모호해 ‘Low-sugar’로 표기를 한 다이어트 또는 운동을 즐겨 하시는 분들을 위한 제품도 개발했죠. 현재 원재료 수급문제로 애로 사항이 있지만, 당을 대체하기 위해 창원의 생산품목인 단감을 이용한 원재료 개발 등 계속 연구에 매진하고 있어요. 이렇듯 항상 소비자 입장을 많이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맛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모 학교 영양사 선생님이 그러셨든 저도 발로 뛰며 좋은 원재료를 찾고 있습니다. 눈앞의 이익보단 맛이 좋은 제품을 많이 사용합니다.” 소비자들의 니즈(needs)에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포시즌푸드는 개발력과 트렌디함도 함께 갖추고 있다. 언택트 시대를 맞이하며 밀키트, HMR(가정간편식)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해당 제품을 ‘저격’ 하여 소포장 제품을 발 빠르게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밀키트와 소포장 제품은 ‘다품목 소량생산’이라 제조 기업에서 애써 외면하기 마련이지만 배수재 대표이사는 꿋꿋하게 제품을 생산, 연구하고 있다. 식품의 생명, 좋은 맛이 보장된 (주)포시즌푸드. 아직 여건과 환경이 조금 부족하지만 디자인에도 많이 신경 쓴다는 배수재 대표이사.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습니다. 진열대에 서면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는 제품이 승리하기 마련이죠.”라며 앞으로도 디자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향후엔 더 크고, 다양한 업종에서 근무했던 연구 인력과 함께하겠단 의지를 밝혔다. “개발에 아주 힘을 갖추고 디자인 소통도 아주 많이 합니다. 피드백을 주시면 빨리 답을 드리고 요구 사항을 반영합니다. 한 번 납품 후 끝이 아니고 계속 연락하며 보완점, 절충점을 빠르게 찾아내는 게 (주)포시즌푸드의 ‘강점’입니다. 또 신제품이 나오면 가장 주변의 분들에게 나눠 품평회를 통해서 피드백을 적극 수용합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용도와 내용물에 따라 제작하고 있습니다.” “먹는 건 안심하고 드셔도 된다.”라며 (주)포시즌푸드의 청결함과 안전성에도 자부심이 있는 배수재 대표. 당당하고 맛있는 식품을 내놓기 위해 당연히 인체에 해가 없고 법적 규정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 “제품에 대한 위생은 몸에 배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이라도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개선을 하고 있습니다. 전 직원 대상으로 주기적인 식품안전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최고로 신선한 재료로 제품을 제작하기 위해 모든 제품은 1주일 전에 주문생산을 원칙으로 합니다. 소량발주도 예외는 아니죠. 신선도를 위해 보관 또는 발주하는 원재료, 부재료가 200여 가지가 넘습니다. 그래서 미리 1주일 전에 협의를 보고 원재료를 가져와 제작에 들어가죠.” “소스와 양념의 대상 식품이 광범위하고 모든 음식에 소스와 양념이 기본적으로 필요하기에 시작점으로 삼았습니다.”라며 소스와 양념을 베이스로 농산, 축산, 수산 가공품으로 뻗어 나가려는 배수재 대표이사. 소스와 양념 개발 마지막엔 전 분야 식품 가공을 높은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가장 가까운 목표인 축산물 가공부터 수산물, 농산물에 관련 사업을 계획 중이며 B2B와 함께 B2C 영업 계획을 이뤄가고 있다. “(주)포시즌푸드의 모든 연구와 제품출시의 마지막은 제가 직접 참가해 결정합니다. 개발 연구한 제품을 여러 가지 초안을 제출하면 제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해 적절한 시안을 선택하죠. 고기를 예로 들자면 두꺼운 고기냐 얇은 고기냐 하는 재료의 다양성이 있겠죠. 또 조리 방법, 조리했을 때 소스의 향 등 어떻게 ‘맛을 낼지’ 캐치를 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저 또한 수없이 연구하고 제품을 맛보고 있어요. 앞으로도 더 맛있는 음식의 사계절을 책임지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1108]
    • 경제
    2020-12-30
  • 조합원, 지역민에게 바친 30년. 태종대 신협의 역사와 함께한 산증인!
    신협은 믿음과 나눔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 비영리로 운영되는 협동조합 금융 기관이다. 과거 쌀 한 가마니를 꿔오면 2가마니로 돌려줘야 하는 고리대로 고생을 하던 시절, 은행에서 소외된 경제적 약자들의 지위 향상에 기여하며 계층 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1960년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에 의해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창립된 성가신용협동조합을 시작으로 많은 신협이 등장하였다. 현재에 이르러 편리한 인터넷 금융,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 조합원들과 함께 든든한 협동조합의 기틀을 마련했다. 영도구 동삼동 태종대성당에서 태동한 태종대신협, 1975년부터 시작된 그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회공헌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20년 겨울에도 ‘사랑의 이웃돕기 물품 전달식’을 개최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태종대신협의 김부연 이사장을 찾아가 보았다. _박정호 기자 김부연 이사장은 태종대신협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한 인물이다. 그는 90년부터 신협에 몸담으며 이사로 활동했다. 2,3억정도의 규모였던 당시 4대 이사장님이 “자네가 임원을 하지 말고 직원으로 여기 신협을 좀 맡아주게”라고 하여 95년도에 직원으로서 조합을 맡게 되었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 있던 작은 12~3억 규모의 조합을 바로 받아 태종대성당 안의 작은 장소를 빌려 점포를 내며 변화를 도모했다. 그 후 96년도에 본점 부지를 매입하고 97년도에 공사를 시작, 98년 1월 17일에 태종대신협 본점 건물을 세우기까지 이르렀다. “제가 2010년 5월에 정년퇴직했습니다. 저의 젊음을 전부 신협에 바쳤죠. 30년 가까운 시간, 참 다사다난했지만 IMF 당시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당시 신협들이 정말 많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득을 크게 봤어요. 당시 금융업 한정으로 파산 시 조합원들에게 정부에서 전액을 보상해주는 임시 정책이 생겼어요. 그런 국가적 대책이 있으니 전화위복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정책 발표 직후 태종대신협은 18%까지 금리를 올렸어요. 당시 타 금융 기관이 금리를 26% 정도 줬었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일이었죠. 저와 평소에 신뢰를 쌓던 분들 저를 믿어주신 분들이 투자해주신 덕에 IMF를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웃음).” 김부연 이사장은 태종대 신협이 단순히 그의 직장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 이곳은 바로 ‘평생’이었다. 75년 11월 조합원 81명 123만 원의 자산으로 조합이 설립되었다. 1985년 이사진으로 합류한 이후로 들어오게 된 그는 이후로 평생 신협과 함께하며 현재 자산 800억 이상, 조합원 수는 6,000여 명 이상 성장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조합원을 최고로 모신다는 경영이념을 가지고 있다며 조합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조합원들이 의료 편의를 볼 수 있도록 의료시설, 병원, 장례식장 등과 제휴하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의 활동 범위를 고려해 고신대 병원, 성모병원, 고려병원 등과도 제휴하고 있습니다. 건강검진 관련 지원도 많이 해드리고 있습니다. 원래는 5월 경 조합원들과 국내 좋은 곳에 가서 신협의 활동내용과 조합원으로서 자랑스러운 가치관을 교육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내용은 모두가 받아야 하는 혜택이라 생각하기에 거동이 불편하신 분, 장애인분도 동행,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단체관광이 어렵다 보니 작은 식사 규모나 다른 복지혜택으로 돌려드리려고 합니다. 조합원이 주인이니까 이익금을 바로 돌려드리기 위해서 제일 나은 방법을 항상 고려합니다.”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은행에 맡겨둔 자산을 부동산에 투자하는 흐름이 있었다.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줄어 금융권의 자산이 빠지며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보였다. 올해의 업적이라면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웃음 짓는 그를 직원들은 “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 조합의 업무를 솔선수범 하며 자신의 이익보다 조합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업무에 임하셨던 분”이라며 칭찬했다. “올해 신협의 사정이 그렇게 좋지는 못했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역구민들께 도움을 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작게나마 10kg 쌀 100포와 이불 세트 22채를 기탁했죠. 어려운 이웃들한테 돌아갈 수 있도록 태종대신협의 뿌리인 성당을 통해서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김장 인력 지원, 고춧가루 지원, 기타 지원금을 전달하기도 하고요. 연탄 기부활동도 했죠. 최대한 멀리 손을 뻗어서 많은 분께 도움을 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과거 25만 명 정도가 거주했던 영도구, 이젠 12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김 이사장은 “학군도 그렇고 모든 것이 낙후되어 있다”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영도구 소재의 부산남고등학교 이전에 대한 움직임에 직접 나서 대책 회의를 통해 막으려고 노력한 그는 지역이 경제적으로도, 학군도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인구 유입이 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움직여 조합을 조금이라도 더 성장시켜 조합원과 지역민을 위한 더 큰 규모의 환원 사업을 꿈꾸고 있었다. “제가 여기 있다는 것은 태종대신협이 조합원, 지역 환원 사업을 위해서 힘쓰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익이 있어야 그 이익금으로 주민과 구민을 위해서 더 활동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아닌 서민들과 함께 만들어온 신협은 서민들을 위해서 이익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어여삐 여겨 신협을 애용해 주셨으면 합니다(웃음).” [1107]
    • 경제
    2020-12-29
  • 국내 최초 선없는 TV설치 업체! 이익보다는 사람을 남기는 마음으로 완벽한 설치와 빠른 A/S를 약속드립니다
    어렸을 때부터 정리정돈의 달인이었다는 백애심 대표. 성격이 이렇다 보니 최초로 벽걸이 TV를 설치한 명장인 신랑을 따라다니며 작업 보조를 하기 시작했다고. 어렵게 설명하면 접근성이 떨어질 테니 이 기술을 고객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이해가 잘 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심 끝에 떠오른 이름이 바로 ‘선 없는 벽걸이 TV ’다. 이 말 한마디가 엄청난 이슈를 끌게 되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에 최초로 ‘선 없는 벽걸이 TV ’라는 말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기술의 주역, 1000세대에 들어가면 1000세대 모두 만족하는 설치 전문업체 백년로지텍의 백애심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고객을 위한 평생 무료 A/S 제공으로 브랜드 안정성 차별화, 서비스 교육 이수 후 기술 교육 실시 “백년로지텍은 벽걸이, 천장형 tv, 콘센트 매립설치 전문 기업입니다. 모든 고객님들에게 처음보다는 끝을 중요시해요. 처음 이슈의 흐름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며 고객들을 만나고, 소통하다 보니 고객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업체에 대한 신뢰라는 것도 듣게 되었죠. 고객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A/S, 설치상에 대한 문제는 무조건 평생 보장이란 문구를 내걸었습니다. 처음엔 다들 믿지 않았지만. 시공, 보장 사례가 늘어나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죠. 비싸더라도 모든 게 확실하게 되어있는 대기업이라며 극찬을 해주시더라고요. 10년, 100년, 해당 건물이 없어질 때까지 안전하게 TV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서비스,인성 교육을 이수하고 기술 교육을 이수하여 현장에 투입되어도 한 달에 1~4번정도 정기교육이 이루어지는 백년로지텍. 새벽6시에 모여 신상품 설명회, 설치가 미흡한 사례에 대해 회의를 진행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예전에는 명장이었던 사장님이 직접 현장에 동행하여 기술을 전수해 주며 적극적인 직원 교육에 임했다. “대부분의 후기가 10점 만점에 10점이지만 가끔 1점 받는 팀장님이 계셔요. 조사를 해 보면 약속시간에 늦게 도착하셨다던가 그런 실수를 하는 경우더군요. 그럴 땐 말 한마디 때문에 백년로지텍의 이미지가 결정되고 고객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인성교육도 철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성교육을 할 때 ‘원래 그런 건 없다’라고 합니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고치고, 배우고,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하죠. 개인 면담도 진행하며 당근과 채찍을 잘 활용하며 교육합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바른 정신으로 무장해야 고객의 안전을 보장하고 더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설치 실력이 부족하면 재교육 하면 되는데 언행과 인성은 참 어렵기 마련이죠(웃음).” 국내산 제품을 이용한 정직한 시공 안전과 고객 감동을 한 번에 잡다 백년로지텍은 우수한 서비스, 브랜드 신뢰도로 인해 해운대 제닉스에 90% 이상 ‘천장 TV’ 설치를 한 이력이 있다. 또한 GS편의점의 천장형 모니터도 전국 단위의 시공 요청이 왔지만 공동구매 설치 기업 특성상 일부 근교 지역만 설치했다고 한다. 또한 광고형 모니터인 ‘DID’, 매립형 디스플레이, 콘센트 확장, LED시계 매립 등 다양한 방면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해운대 제닉스 입주 이후 엘시티로 이사가며 다시 백년로지텍을 찾는 경우도 다분했다고. “박람회를 나가면서 ‘떳다방’이라는 이미지를 없에려고 노력했습니다. 공동구매로 들어간 곳은 공동구매가가 있잖아요. 공동구매 기간이 지나도 서비스를 끊지 않고 몇 개월 동안은 같은 값으로 시공해드립니다. 그래서 손님들이 입주할 때 주관사에 직접 재연결해달라고 하십니다. 그러다 보니 주관사들이 1순위로 찾는 기업이 되어버렸죠(웃음).” “TV를 설치하는 과정이 정직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추락으로 인한 사망 사고가 있기도 했죠. 지금까지는 세우면 되는 스탠드형 TV 시대였지만 현재는 설치 작업이 불가피한 벽걸이 TV로 바뀌는 시대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한 설치에요. 국산 자재로 아끼지 말고 조금 남기더라도 안전하게 시공하려 합니다. 콘센트 작업은 처음엔 홍보 없이 했는데 입소문이 나서 공동구매로 해달라고 요청이 오더군요. 직원의 절반 이상은 전기 자격증이 있고 나머지 직원들도 자격증 이수 과정에 있습니다. 모든 기사분들이 자격을 취득해 안전한 설치를 추구할 겁니다.” 따뜻한 노사문화, 마스크 기탁을 통한 사회 기여 잦은 교육이 있는 백년로지텍, 한 달에 몇 번씩 모이고 보는 게 일상이라고. 자주 만나다 보니 직원 중 돌이나 백일 때 십시일반으로 봉투를 건네자고 하면 단박에 모인다고 한다. 건의하면 한 명도 불만 없이 2시간 이내에 다 모금이 될 정도로 평소에 관계가 끈끈하다고 한다. “기부는 꾸준히 하고 있던 일입니다. 5년 전 남편을 따라다닐 때부터 상황에 따라 설치 기부를 해주기도 하고 최근엔 TV 2대를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일은 티 나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웃음). 마스크 기탁을 왜 하게 되었냐면요. 마스크값이 굉장히 비쌀 때 저도 사러 갔는데 제일 앞에 할머니들께서 ‘마스크 그냥 주는 데가 없나, 마스크 누가 100장만 주면 좋겠다’라고 하셨는데 나중에 여유가 되면 저분들한테 내가 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경남 양산에 사무실이 있고 집이 있다 보니까 양산으로부터 시작했어요. 앞으로도 다른 도시에도 기탁을 할 예정입니다.” 독보적인 기술력, 끊임없는 연구 투명한 기업 전망! “엘지 시그니쳐 갤러리 TV, 삼성 더 프레임 TV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국산 TV들이 설치가 제대로 되질 않습니다. 대한민국에 아직도, 앞으로도 이렇게 설치하는 곳은 없을 겁니다. 이젠 전국 가맹을 욕심내고 있습니다. 내년 1년동안 전국가맹으로 100가맹점 유치가 목표입니다. 백년로지텍은 아주 오래 있을 겁니다. TV가 있으면 백년로지텍이 있을 겁니다. 늘 곁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우리를 만나게 될 겁니다.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연락이 오기도 하죠. 이제 부산, 경남, 전라도를 아울러 그분들도 만나러 가야 합니다(웃음). 머지않아 어느 지역이든 백년로지텍이 함께 하겠습니다.” [1105]
    • 경제
    2020-11-30
  • 부동산, 세무의 원스톱 담당비서이자 배우자! 기업 성장의 논스톱 파트너가 되겠습니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세무사 등록회원이 2020년 기준 2만 1천여 명 정도로 매년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법인 회사도 2014년 기준 407개에서 2020년 만 2천여 개로 등록되었다고. 이는 곧 고객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지만 수가 많은 만큼 제대로 된 세무사를 만나는 것 역시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일. 부산 동구 수정동에 위치한 세무법인 오름은 최적의 세무와 회계, 경영 컨설팅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부동산과 세무서를 함께 운영하며 전문화된 서비스를 실천하고 있다. 1층엔 공인중개사 사무실, 2층엔 세무사무소를 운영하는 특별한 구조인데, 이와 같은 시스템을 마련하게 된 배경에는 ‘사업자들의 새 출발은 대부분 사옥을 설립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에 장소 마련과 동시에 세금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구조로 초보 창업자들에게 든든한 사업 파트너가 되기 위함이라고. 세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고객 행복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세무법인 오름의 목표라는 박설진 대표세무사. ‘지금까지 함께해 온 기업 중 단 한 곳도 폐업한 곳이 없다는 게 오름의 자부심’이라는 그와의 인터뷰를 지금 주목해보자. _박정호 기자 경영학과를 전공한 박설진 세무사. 오랫동안 사업을 영위해 온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경영학과를 진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무사로 활동하는 선배님들의 대부분이 자기 직업에 대한 만족도와 자부심이 높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경영학을 배우면서 세무사라는 직업의 전망을 엿보게 되었고,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갔을 때도 외국인 회계사를 만나면서. ‘아, 내가 갈 길은 이거다.’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귀국 뒤 바로 고시반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는 박설진 세무사. 그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지금 이 건물을 구매하며 자리를 잡게 되었고 전역 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던 저에게. 주변에서 자격증을 함께 활용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권유를 하기 시작했죠. 생각해보니 부동산 거래와 세무 업무를 연결해 시너지효과를 내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대부분의 사업자분들은 장소를 구하면서 시작을 하니 부동산업을 하면서 세무사무소를 개업했습니다. 개업하며 제 고객과는 무조건 처음과 끝까지 같이 한다는 다짐을 했죠. 심지어 폐업까지도 옆에서 케어하겠다고 말이죠. 평생의 주치의로 끝까지 간다는 마음입니다. 상가를 맡겨 주신 분들은 돈에 관한 일이라면 세무 관련이 아니라도 전부 다 답변을 해주고 있습니다.” 부동산과 양도, 상속, 증여 쪽으로 전문성을 띄는 세무법인 오름. 부동산 업무만 처리한다면 당장에 매물을 판매하고 종결하면 되겠지만 세무 업무도 병행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의뢰인 관점에서 무엇이 최적의 솔루션인가 많은 고민을 하고 여부를 결정해 드린다고 한다. “처음부터 양도 의뢰 단계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가장 좋습니다. 왜 팔려고 하는지, 팔면 어떻게 되는지 전체적인 세금 신고만 하는 게 아니라 컨설팅을 해드리는 거죠. 보통 상담하면 두 시간 정도는 걸려요. 부동산 인맥들이 주는 정보가 많으니 완벽에 가깝게 설계할 수 있죠. 증여 또는 상속으로 넘겨주는 순간까지 생각합니다. 동구 쪽에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많아 자제분께 증여 또는 상속해주시는 일이 많습니다. 상속이 진행되면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남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드려요.” 조정지역이 서울 쪽에서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변동이 아주 심한 요즘, 부동산 가격도 불안정하기에 양도, 상속, 증여가 많아지고 있다. 또한 세무 어플리케이션이 개발되며 기장시장에서 낮은 가격으로 점유율을 높혀가고 있기에 세무시장은 상당히 좋지 않다. “세무 어플을 써보니까 과정이라던가 어떤 결과가 일어날 거라고 설명은 안 해줍니다. 최종 금액만 계산해 줬어요. 그래서 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상황에 맞춰 디테일하게 설명을 해드려요. 세무적으로만 일할 게 아니라 보조금 지원금 쪽의 소개도 해드리고. 해당 사항이 있으니 신청해보라며 바쁜 분들에겐 자료를 마련해 주거나. 대리로 신청을 해주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뢰 관계를 많이 쌓아나가요(웃음).” 5인, 1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에선 고용주도 함께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쁜 일정 중 고용지원금에 대한 정보를 받지도 못하는 경우가 다분하기 마련. 박 세무사는 그런 영세업 고객들의 사업장을 직접 찾아가서 고용 여부와 고용 시기, 고용 인원도 컨설팅 해준다고 한다. “주변의 횟집인데 사장님이 어깨를 다치셨어요. 수술을 해야 할 정도였지만 사장님이 쉬시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라 끙끙 앓으면서 일하고 계셨죠. 고용지원금을 쓸 수 있는데도 모르고 계션던 겁니다. 다행이게도 지원금으로 직원을 고용하며 어깨 수술도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나중에 해당 횟집이 잘 되어서 2호점까지 차리게 되었어요. 마지막까지 어떤 직원을 뽑는지, 언제 뽑는지, 업장을 어디에 차려야 하는지 컨설팅해드리며 훈훈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학교생활 중 남포동 중앙컴퓨터 학원에서, 개업 초기엔 부산진여상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는 박 세무사. 강의 시간표를 가득 채울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고. 직장인 세무교육반을 2년 정도 맡으며 아침에 공부를 하고 저녁에 강의를 하며 시험준비를 병행했다. 강의를 위한 공부, 합격을 위한 공부를 함께 하니 합격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었다고 한다. 부산진여상에서 강의한 인연으로는 아직까지도 매년 학생들에게 사무실에서 실습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저를 믿고 강사로 고용해주셨던 김재준 원장님께 감사합니다. 공부하면서 강의를 하며 개념이 더 다져지고 말로 이론을 풀어내며 더 이해가 잘되곤 했죠. 또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고맙습니다. 세무, 기장이 다가 아니에요. 맡겨 주신 분들께 전반적인 컨설팅을 해주며 최대한 다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사업장에 먼저 찾아가 제안을 합니다. 해당하는 지원금이 있으니 해보자, 직원이 몇 분 계시니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등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며 말이죠. 업체가 많아지고 하면 신고하기도 바쁘긴 한데 잠을 줄여가면서, 시간을 쪼개서 피드백을 드리고 있습니다.” [1105]
    • 경제
    2020-11-30
  • 세무사, 업이 아닌 ‘사업’을 꿈꾼다! 26세 세무고시 합격, 젊은 세무사!
    “사실 공부를 뛰어나게 잘 하진 못했었어요. 부모님도 크게 터치하는 스타일은 아니셨구요. 어릴 적 사학자를 꿈꾼, 자유로운 아이었습니다. 늘 국사는 1등급일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입시를 앞두고, 현실적인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꿈을 가지기엔 수리 기초가 많이 부족하더라구요. 부모님께 ‘수리가 부족해 과외를 받고 싶다’고 했죠. 6개월 만에 2등급까지 올렸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점차 수학에 빠지게 되더라구요. 과외 선생님께서 제가 이쪽으로 재능이 있고, 사교적이라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니 ‘세무사’라는 직업을 가져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시더군요. 운명을 믿는 편은 아닌데, 마침 그날 신문에 세무사가 돈 많이 버는 직업 1위로 적혀있었습니다(웃음). 어차피 시험을 봐야 하니 ‘부모님께 부담을 주지 않고 국립대학교 세무학과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그렇게 그의 세무 인생이 시작됐다. _박정호 기자 성유신 세무사는 군대 전역 이후였던 2012년, 잠시 휴식을 가지고 3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며 1,000만 원을 공부 자금으로 모았다. “욕심이 많아서 잠을 엄청 줄이면서 생활했습니다. 과 행사에도 다 참여하면서 뻗어도 도서관 가서 뻗었죠. 놀 때 놀고 할 때 한다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질투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미리 공부한 과목을 수강신청을 하며 전략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목표를 가지고 하면 언제나 다 이루어내는 성격이었죠.” 에일리의 ‘보여줄게’와 하현우의 ‘질풍가도’라는 노래를 좋아한다는 성 세무사, 그의 삶의 모토가 드러난다.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며 합격을 꿈꿨습니다. 남자는 한 말을 지켜야 한다는 주의입니다. 결국 졸업과 함께 합격했죠. 졸업연도의 10월에 합격했습니다. 매일 6시 반에 일어나 바로 헬스장에서 20분 동안 뛰고 씻고 7시 반까지 독서실에 갔습니다. 식사 시간마저 아까워 빠듯하게 보내며 모든 시간을 다 줄였습니다. 스트레스는 운동으로 풀고 밤 11시에 잤어요. 항상 부모님이 지켜보고 계시진 않지만 후회 없이 공부를 했나 생각하며 잤습니다. 1년 반 정도를 그렇게 살았습니다.” 26살에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 적게 잘 땐 4시간씩 자면서 한 공부가 결실을 이루었다. “개업을 할 때도 근로자가 되기 싫었다”는 그는 마산세무서에서 5개월 동안 수습을 받고 바로 대출을 받아서 사회로 뛰어들었다. “1년 지나고 보니 거래처가 12곳 정도 있었어요. 홀로서기를 하며 달력 300개를 주문해서 뿌리고 다녔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다 넘어져 꼬리뼈가 깨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꿈꾼 미래와는 너무 달라서 슬프기도 했죠. 그럴 때마다 힘들게 절 키우신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당시에는 시험 준비할 때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다시 리플렛을 만들어 아침에 홍보하고 다녔습니다. 블로그도 꾸준하게 업로드하고 말이죠. 지금도 그 일정은 여전합니다(웃음).” 같은 가격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다. 하나라도 더 잘해주는 사람한테 ㄴ 가고 싶은 게 사실이다. 세무도 트렌드가 있다는 성 세무사. 빠른 업무 처리 속도와 함께 기타 지원금에 대한 친절한 정보 제공은 그에게 큰 경쟁력이 되었다. “카카오채널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요. 세무 어플을 제공해 주면서 정보 등을 제공하고 부수적인 컨설팅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절세를 하는지 내용에 대한 그런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새벽 5시에 일어나 서울에 가 교육을 받곤 합니다.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해볼까 하는 그런 욕심이 있어요.” 세무사 업이 아니고 세무 사업이라고 생각하며 임한다는 성 세무사. 솔루션을 제공해 주면서 그 사업이 더 번창해 줄 수 있게 도와주는 세무 사업을 하고 싶다고. 그를 위해 내실을 다질 시간이라고 성유신 세무사는 말했다. 기본적인 프로그램 이외에도 다른 업무 프로그램을 이용하며 업무 효율을 높이기를 도모한다고. 평소 직원들의 복지에 대해서도, 어떻게 하면 다른 세무소가 안 하는 일을 하나라도 더 제공할까. 무기를 하나씩 준비하고 세법도 공부해야겠지만 서비스, 사업 면에서 어떻게 더 다가갈지 구체적인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직원분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평소 바쁘기 전에 대비를 해두고 업무 준비를 해둡니다. 제가 받은 교육을 함께 일하는 분들께도 꾸준히 전수하고 있습니다. 사실 참 외로운 직업입니다. 세무사는 보기에는 행복해 보이지만 힘들고 외로운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할까……속앓이가 많기는 합니다. 그래도 사람 만나는 게 좋아서 행복합니다. 그래서 친한 사람들 밥 한 끼 사주면서 얘기하며 스트레스 풀고 해요.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일도 저절로 잘 풀리는 것 같습니다(웃음).” [1103]
    • 경제
    2020-10-26
  • ‘경매’, 오직 한 길을 걸어온 20년 “서민들을 위한 소액토지투자의 최고 전문가로 불리고 싶습니다”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음> ‘투자’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하지만 울산의 중심, 중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탑플러스 경매학원은 단순히 사전적 의미의 ‘투자’ 연구와 강의의 연속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박동일 원장이 고액 투자가 부담스러운 서민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쏟아오고 있는 곳이다. _박정호 기자 통신 사업에 몸 담았으나 여의치 않은 현실에 잠시 주춤했던 박동일 원장은 2002년, 우연히 ‘경매’를 알게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경매’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오직 그 한 길만을 보며 달려갔다. 그렇게 그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메모지를 들고 울산 근교에 경매 관련 자료와 매물들을 알아보고 다녔습니다. 처음에 경주 산내에 있는 시골 농지를 낙찰받아 동네 이장님들께 팔았는데 수익도 수익이지만 적성에 맞았어요. 첫 사업에 힘겨울 때에 만난 분들로부터 ‘본사에서 월급받으며 직원으로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었습니다만 스스로가 월급 받고 일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자립해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 했었지요(웃음).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경매를 하다가 울산에 주거용으로 임대사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도부터 시작했으니까 7~8년 정도 지났을 때네요. 당시엔 강의를 나가거나 그러지 않았는데도 알아보시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울산에서 경매를 공부하는 분들을 모아서 연구소 10층에 사무실을 만들어 정보를 나누곤 했어요. 당시에 만든게 ‘울산생활경매연구소’입니다. 점차 주변에 알려지고 소개를 해주시는 분들도 늘어가면서 강의도 나가게 되었습니다.” 2001년 결혼할 때 가지고 있던 돈 4,000만원에다 대출금을 합쳐서 산 집이 가격이 오르면서 팔게 된 박 원장, 울산 근교의 4,000만원 상당의 빌라를 사서 월세를 받기 시작하며 실전 투자에도 점점 발을 들였다. “2005년 부터는 토지 투자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농지도 몇 번 구매를 해보았지만, 농지는 바로 팔 수가 없는 특수성이 있어요. 그래서 월세를 좀 받거나 작은 토지들, 지분이라고 하는데 전체의 일부분을 낙찰해서 배당을 받거나 토지만 낙찰을 받아서 토지 사용료를 청구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수익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박동일 원장은 울산광역시 여성회관, 교차로문화센터, 현대중공업 한마음회관 위주로 강의를 진행해오고 있다. 서민들을 중심으로 한 무료강의도 다수다. “투자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아도 자세히 몰라서 손해를 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보증금을 떼인 분들도 허다했어요. 무료로 강의를 나가며 개인적으로는 토지 투자를 계속 했습니다. 월세 받는 것보다는 경험이 중요하다 생각하여 직접 소액 투자를 하며 연구했습니다. 근로자들이 많은 울산의 특성에 맞추어 천만원 단위의 소액투자로 도전할 수 있는 선례를 만들어 갔죠. 작은 규모의 투자, 말하자면 재건축 부지의 1~2평, 공원 일부분, 토지의 지분 일부분을 낙찰받는 것들이죠.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전국 공공기관의 공매정보를 한눈에 보여주며 인터넷으로 직접 공매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 공매포털인 ‘온비드(Onbid)’에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년째 이어오고 있는데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어요. 또 카페를 통해서도 연구한 내용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학원운영은 제가 하고 있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제 카페를 보신 분들이 학원 수강생이 되는 경우도 많아요. 강의를 직접 들어보시고 찾아 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의 강의는 기초부터 다지는 ‘기본반’과 실전에 다가가는 ‘투자반’으로 크게 나뉜다. 항상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필요한게 있다면 말해주세요.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상담 해드리겠습니다”라고 운을 떼며 수업을 시작한다고. “혹시나 주변에 경매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언제든 말해 주시라고. 저는 항상 이 자리에 있으니 도와주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나는 늘 하는 일이지만 그분들에게는 인생 전부가 걸린 일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절실한 분들이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도와주려고 하다 보니까 마음에 상처가 많이 생기기도 합니다. 제 나름 최선을 다한다곤하지만 급한 불을 끄고 나면 ‘선생님이니까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제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분들이 있어요. 돈이 걸린 예민한 문제다보니 처음과 끝이 다른 경우도 간혹 있지요. 사람이다보니 저 역시도 그럴 땐 너무 섭섭하고 속상하죠. 하지만 제 스타일이 무엇 하나라도 시작을 하면,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하는 스타일이고 특히 일에 대해서는 자존심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감내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저한테 상담을 오시는 분들이 잘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꼭 보전하셨으면 좋겠다, 더 성공하셨으면 좋겠다, 하며 상담에 임하고 도전해요.” 그에게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는지 물었다. “5년 전, 수강생이었던 분이 급하게 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서울에 있는 아들이 살고 있던 곳이 경매로 넘어가게 됐는데 보증금을 못받게 생겼다는 겁니다. ‘경매는 진행되고 있고 절차상 문제 때문에 못받게 생겼다. 배당요구가 끝났고 경매는 진행이 되고 있고...’ 자세히 알아 보니 건물에 살고 있던 학생들이 대부분 학교생활을 하다보니 배당요구 신청을 못했던 거예요. 사유가 있으면 배당요구는 연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통보를 못받았다’고 사유를 제출하고 ‘일단 무조건 법원 뛰어가라’고 했습니다. 결국 연기가 되어 애들이 다시 보증금을 받게 되었어요. 기분이 짜릿하더라구요. 아버지 되는 분이 한여름에 10층을 뛰어올라 오셨습니다. 보증금을 수령하신 후엔 복숭아를 한상자 들고 오시더라구요(웃음). 2014년 경 밀양에 입찰하러 갔을 때부터 아직까지 이어지는 인연도 있어요. 당시 계약이 틀어진 거예요. 마침 주변에 매매가 있다길래 동네 부동산에 갔습니다. 저는 투자를 하러 갔기 때문에 마지못해 주택을 입찰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택에 세를 놓았죠. 그런데 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오시는 거예요. 월세를 100/10만원~100/15만원 정도로 세를 내놓은 집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세를 받을 목적은 없었어요. 그 건물을 허물고 토지를 활용하려고 했었죠.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분들께서 월세도 잘 내시고 또 옹기종기 모여 사시니까 저도 좋아서 토지 활용은 포기하고 주택을 그냥 뒀습니다. 제가 자주 연락을 하려고 하는데 대부분 핸드폰을 잘 안쓰셔서 쉽지가 않더라구요. 그중에 가장 젊은 할아버지가 대표로 연락을 해주세요. 청소나 유지 보수도 하는김에 찾아가서 인사도 드리고 음료수도 좀 사오라고 하시면 사가기도 하고 왕래하고 있습니다(웃음).” “투자라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이지만 혼자 할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박 원장. 혼자서 왔다면 꾸준히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작은 집에 벽화도 그려주시고 목공예 하시는 수강생이 책상을 만들어 주기도 하셨어요. 오래 되었지만 그 책상을 버리질 못하겠어서 아직도 쓰고 있습니다. 경매 답사를 가면 외부로 나가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보험을 미리 들어놓기 위해 학원을 차렸습니다. 어떤 분은 감사의 의미로 상추를 한박스씩 들고 오시기도 하고 그러십니다. 사람 살아가는 ‘정(情)’이란게 뭐 그런거 아닐까요.” 바쁜 가운데에도 어려운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며 소외된 이웃들을 살피는 일도 앞장서고 있다. “저는 먹고 살기만 하면 되니까요”라며 웃어보이는 그는 “작은 도움과 선행을 함에 소소한 재미가 있다”고 했다. “남들보다 부지런히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문화가정이나 사정이 어려운 분들, 아이들에게 무료로 강의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 고작 피자 몇 판 들고 갈 뿐인데, 너무나 반겨주고 좋아해줘서 오히려 제가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돌아보니 참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네요(웃음).” “정신없이 살다보니 벌써 큰아이는 대학생이 될 나이가 되었네요. 참 쉽지 않은 인생인 듯 합니다. 사업하다가 무너져 다 잃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주변에 있는 분들이 좋은 분들이셔서 여기까지 왔다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제 주변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적을 만들지 말자’ 라는 생각을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차라리 내가 조금 손해를 보는게 낫다’고 매번 다짐합니다. 저는 제가 일을 한참 더 할 수 있다, 또 더 할거라 생각합니다. 욕심을 많이 버렸습니다. 욕심을 냈더라면 크게 투자를 했을텐데 서민형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당장의 수익을 바라지 않고 7~8년 째 공부하고 계신 분들과도 함께하고 있어요.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그렇게 상부상조하며 더불어 살아가고자 합니다.”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는 이렇다 할 소액토지투자전문가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기본적으로 큰돈으로 전국적으로 투자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박동일 원장은 울산에서 큰 포부가 있다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제가 정(情)도 많고 소소한 즐거움에 행복을 느낀다고는 했지만 강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소액투자에 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꼭 듣고 싶어요. 나중엔 전국 단위에서 서민들을 위한 적은 금액 투자의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098]
    • 경제
    2020-08-10

문화 검색결과

  • 가장 그리워할, 소중할 시간을 영원히 담아주는 곳, 스튜디오 영원(Studio 01)
    베이비 스냅 스튜디오 영원 (studio 01) 김산 대표는 지난 6월 15일 내외동행정복지센터를 방문,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사진 촬영권 1,000장을 기탁했다. 이번 기탁은 홀로 사시는 어르신, 한부모 가정에 위로와 응원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스튜디오 영원 전 직원 일동이 함께 참여했으며 이날 기탁한 촬영권은 독거어르신(영정사진) 500세대와 한부모 가족(가족사진) 500세대에 전달될 예정이다. 스튜디오 영원의 김산 대표는 셔터에 손끝을 올릴 때 이 사람들이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며 찰나를 담아내는 사진작가다. 스튜디오 영원을 찾는 모든 사람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과 그리워할 순간을 기록하는 사진작가 김산 대표의 이야기를 주간인물이 담아보았다. _박정호 기자 김산 대표에겐 어린 시절, 가야 할 방향을 잃고 헤매던 때가 있었다. 여러 생각을 표출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컸기에 작사, 작곡, 책을 쓰는 등 다양한 영역에 도전해왔다는 김 대표. 다양한 경험 뒤 그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바로 사진, 찰나의 아름다움을 사각 틀 안에 담아내는 예술이 그를 매료시켰다. 그가 선택한 길을 관철하기 위해선 부모님의 신뢰를 먼저 얻어야 했던 김산 대표. 사진 공모전에 출품하여 당선되면 그의 길을 믿어주시겠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그는 지체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드사진작가협회에서 주최한 공모전에 도전한 것이다. 산속에서 온몸에 소의 피를 묻힌 셀프 누드 사진으로 메시지를 담아낸 그의 사진은 심사위원들과 경쟁자들을 매료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김산 작가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독립영화도 2, 3편 찍고 개인적인 출사도 좋아했어요. 원래는 패션 사진을 업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첫 아이가 태어나며 어느 순간 현실적인 것들을 먼저 바라보게 되더군요. 그렇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베이비 스냅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장르는 바뀌었을지라도 사진을 통해 추구하는 방향은 변하지 않았어요(웃음). 매일 똑같은 공간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편집하면 사람이 나태해지기 마련이잖아요. 스튜디오 영원에서 한 시간 남짓 찍어드리는 사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실지 몰라도 이 사진은 몇십, 몇백 년 동안 남아있는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매번 같은 마음을 되새김질하며 카메라도 가장 오래 보존하기 위해 한 장의 용량이 가장 큰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죠. 스튜디오를 찾아와주시는 분들께 항상 영원(永遠)한 추억을 남겨드리고 싶어요.” 김 산 대표는 초등학생 아이 둘의 ‘싱글 대디’이기도 하다. 이번 사진 촬영권 기탁도 아이들과 혼자 살아가는 마음과 환경을 알다 보니 행복한 순간을 기록해주고 싶은 마음에 진행했다고. 기탁에 앞서 지역을 조사해보니 큰 동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홀로 지내는 노인분이 1,000명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김 대표.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몸과 마음이 더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청을 통해 선정된 아이들의 성장앨범 제작, 소아암센터 아이들의 사진 촬영과 지역 두 곳의 보육원에 격월로 촬영을 하러 가고 있다. “저희 스튜디오 바로 아래에도 노인요양원이 있는데 간혹 무심한 가족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저라도 스튜디오 영원과 함께 많은 도움을 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김 대표.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냐고 물어보자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너무 오래전이긴 해요. 5년 전쯤 다른 스튜디오에서 직원으로 근무할 때도 촬영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죠. 그때 품에 안아본 갓난아기가 있었는데 그때 그 아이의 얼굴과 온기가 아직도 선명해요. 진지하게 입양을 고려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데려오지 못했죠. 그 이후엔 보육원에 가도 선물만 주고 안에는 들어가지 않으려 해요. 또 어르신들 사진을 촬영하며 소통할 때 그분들의 사연을 자주 듣는데 듣다 보면 많이 울게 되더라고요. 생각해보면 매번 촬영마다 울었던 것 같네요(웃음). 그때 함께 나눈 이야기들도 마치 어제 들은 것처럼 선명히 기억이 납니다. 그런 경험들이 모이다 보니 힘들게 살아왔던 제 삶이 남들에게 제가 가진 것들을 베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얼마나 잘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가져오고 얻는 것들 다 베풀고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요. 요즘 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나만 챙기기에는 이 세상에 나보다 힘들 사람들이 더 많잖아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매번 안쓰럽고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완전 달라요. 한번 손을 내미는 순간부터 그 나눔이 익숙해질 겁니다. 다들 그렇게 각자의 행복을 찾아 더 나은 삶을 살아가면 좋겠어요.” [1121]
    • 문화
    2021-09-13
  • 각자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는 기업!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빛의 놀이터를 꿈꾸다
    2021년 5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관광벤처기업 공모에 부산의 기업들이 선정됐다. 그 중 조명, 소품을 이용한 사진 촬영과 천마산, 산복도로 등의 부산의 숨은 명소 드라이브 투어를 통해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전하며 여행객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밝히는 부산관광스타트업, ‘밝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숨겨진 부산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야경명소에서 LED조명을 활용한 촬영소품을 통해 관광객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위동영 대표. 오늘도 부산의 밤을, 사람들의 추억을 밝히는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_박정호 기자 “부산을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부산에 야경명소가 많아요. 타지사람들이 오면 한 번쯤은 가보는 장소죠. 그렇기에 타지사람들은 부산에 가볼 만한 곳은 다 가봤으니 다음에 굳이 안 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근교 바다로 가더군요. 그래서 부산의 야경에 특별함을 더해 새 단장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조명과 소품을 더해 야경명소를 재해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밝히는 사람들’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예술을 좋아했던 위동영 대표는 광안리 바닷가에 설치된 제니 홀저의 작품, ‘디지털 빛의 메시지’를 보고 빛과 텍스트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 ‘나도 도전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마음 속에 일었다고 전한다. “작품을 처음 봤을 당시 영문 문구를 직역해서 그런지 메시지가 좀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한국적이고 감성적인 문구를 더해 저만의 작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대학교에 작품 전시 순회를 하게 되었죠. 청춘들에게 응원과 행복을 전해주는 ‘ 꿈은 너와 많이 닮아서 참 예쁘다’ 와 같은 문구를 빛으로 새겨넣곤 했어요. 전시회 내내 대학생들 사이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에 힘입어 제니 홀저처럼 야간에 할 수 있는 예술콘텐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자 대학교 창업동아리를 통해 참여할 수 있는 예술과 조명, 우산, 꽃, 파라솔 등 소품을 빛과 연결해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빛의 ‘놀이터’를 만들고 싶은 바람이 컸다”는 그는 부산의 밤이 밝고 아름답게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정육점 냉장고, 복조리, 유리잔 등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것들에 조명을 담아 촬영용 소품으로 만든 것이 그 첫 단계다. 제작한 제품을 판매할 수도 있지만 특별한 상황에서만 쓰이는 촬영용품의 특성상, 환경을 생각해 따로 판매하지 않고 대여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억들을 활용해 조명 소품의 활용성을 극대화하고 그 빛과 함께하는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 쌓아왔던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콘텐츠 중 빛으로 만연한 순간을 담은 엽서를 사진 촬영을 마치고 드리고 있습니다. 추억을 담은 사진과 굿즈까지 드리니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또 찾아오신 분들이 사진 결과물을 보고 좋아하실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그렇기에 제가 가진 색감보다 더 좋은 색감을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조명 소품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숨은 가치를 밝혀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부산에서 시작해 차츰 전국으로 영역을 넓혀 훗날, 일본 베트남 등으로 해외 진출을 하는 것이 목표다. 오프라인 영역을 활성화해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즐거움의 거점이 되는 ‘모든 것을 밝히는 사람들’이 그의 꿈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삶을 더 즐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그의 하루를 가득 채우고 있다. “ ‘밝히는 사람들’이 복수잖아요. 그런데 현재는 1인 기업으로 저 혼자 디자인, 촬영, 조명소품 제작, 홍보 등 모든 것을 혼자서 하고 있어서 ‘밝히는 사람들’이라는 명칭과는 거리가 멉니다(웃음). 고객분들과 사진이라는 결과물을 함께 만드는 모습, 그리고 다양한 기관과 사람들과 협업하는 과정을 비춰보면 ‘밝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밝히는 사람들은 다채로운 색깔과 다양한 시선으로 새로운 부산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밝히는 사람들, 많이 지켜봐 주시고 응원 부탁드립니다!” [1118]
    • 문화
    2021-06-16
  • 부처님의 품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찾아가는 도량
    창원시 의창구 동읍 용잠리, 한적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8m에 달하는 대불(大佛)이 아주 멀리서부터 눈길을 끈다. 대불을 등대 삼아 가다 보니 쉽사리 대한불교조계종 용잠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마치 정토(淨土)에 온 듯한 향내가 코끝을 적셨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건만 주지 원공(圓空)스님은 법당 앞에서 이미 기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어주는 스님, 이렇게 또 주간인물과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_취재 박정호 기자, 글 송인주 기자 ‘창원시의 대표적인 전법도량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는 평을 듣는 용잠사는 5년 전 창건 된 전법도량이다. 창건 이후 다양한 포교 활동과 기도, 불자들을 위한 불교대학 교리강좌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20년 10월에 봉안된 높이 8m 높이의 석가모니 대불은 용잠사에 찾아오는 불자들에게 친견하는 것만으로도 신심이 우러나게 하고, 마음의 고뇌를 내려놓게 하는 안식처가 되게끔 도량을 돌봐주고 있다. “용잠사에선 다양한 신행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기도, 교리 강좌와 해탈의 직접적인 수행인 참선수행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기본적인 기도로 새벽예불을 새벽 4시에, 오전 10시 10분에 사시마지를 올립니다. 그리고 저녁예불을 저녁 6시 30분에 올리고 있어요. 교리 강좌에 있어선 1월부터 7월까지 매주 월요일에, 6개월 과정으로 기본교리과정을 진행하고 있고, 경전반은 여러 경전을 바꿔가며 매주 수요일에 강의하고 있습니다. 본과반이라고 할 수 있죠(웃음). 시절이 시절이니 만치 밴드나 유튜브를 통해서 비대면으로도 함께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주지 소임을 다하고 있는 원공스님은 뛰어난 학승(學僧)이다. 1994년 대한불교조계종 단일계단 수계(受戒)를 거친 스님은 해인사 강원 졸업, 망월사, 해인사, 동화사의 선방(禪房)에서 수년간 안거 수행하며 법력을 쌓아왔다. 2017년, 대승불교의 바탕인 공(空)사상을 오롯이 담은 ‘제법공상의 이해와 수행’을 출간하여 불교의 핵심이 되는『반야심경(般若心經)』을 누구나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정리하기도 했다. “고뇌에 빠진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제시하고 열반으로 이끌기 위해 함께합니다. 경전을 배웠기에 가르치는 것이고 참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리고 행하고 함께하고 있습니다.”라고 피력한 스님의 말을 빌려 신앙이념에 관하여 담아보기로 하였다. 불교에서는 열반을 가르치는데, 열반이란 나고 죽음을 해결하여 다시는 나고 죽음을 되풀이 하지 않고, 평안을 누리는 경지를 말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너무나 추상적이게 생각되기도 할 것인데, 열반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래상태’입니다. 모든 생명체를 크게 나누어 보면 열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지 행하면, 그것의 결과가 생기는데 그것을 불교에서는 ‘업(業)’이라고 합니다. 이 업(業)에는 반드시 보(報. 갚음)가 있기 마련이어서 그 업의 결과 과보로 인하여, 좋은 업(業)이 있으면 인간, 천상의 모습을 이루고, 나쁜 업(業)이 있으면 축생, 아귀, 지옥, 아수라 등의 모습을 이룬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인간인 것은 업에 의한 과보(果報)의 모습이지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업(業)을 지으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범부중생은 이 여섯 종류의 길에 돌고 돌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또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기도 하고, 미운 이와 만나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것에 뜻대로 안되기도 하며,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끝없이 변해가는 일을 겪고 있습니다. 이 겪고 있는 일들이 뜻대로 안되니 ‘괴롭다’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삶이 ‘괴로움’이라는 뜻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괴로운 윤회의 삶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생활은, 현재의 내가 바깥의 보이는 것, 들리는 것들을 향해서 갈구(渴求)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몸으로, 입으로 업(業)을 지어 그 결과로 나타난 상태라고 합니다. 그렇게 밖으로 향하지 않고,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등의 이끌림을 그치고 안으로 고요를 이룬다면, 이 여섯 삶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분들을 아라한, 벽지불, 대보살이라고 하며 열반(涅槃)을 이룬 분들이라고 하여, 나고 죽음과 그 가운데의 여러 가지 일들의 뜻대로 안 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들도 아직은 완전한 열반(涅槃)을 이룬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더 깊이 닦아서 여래(如來)가 되고서야 완전한 열반을 이루어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 가지 생명의 존재’ 이치로 살펴보면, 중생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일을 행하느냐에 따라서, 인간, 천상, 축생, 아귀, 지옥, 아수라 등의 상대적 업에 매여 괴로운 생활을 하는 여섯 종류의 삶을 살수도 있고, 또 아라한, 벽지불, 대보살 등 업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의 자유를 누리는 세 종류의 삶으로 살수가 있으며, 또 여래가 되어 대자유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이 이치로 보면 열반(涅槃)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 지옥에서 천상까지가 모두 나의 행하는 바대로 나타나는 나의 업의 모습이고, 열반도 그 업을 벗어난 나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이 업의 모습에만 ‘나’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윤회의 삶과 해탈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 중생이 얼마나 큰 능력의 존재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나를 몰라서 내가 지은 나의 업(業)에 매여서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고, 내가 나를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회복하기만 한다면, 모든 얽매임을 벗어나서 대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렇듯 열반은 자기의 ‘본래 모습’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자기 개발(開發)입니다. 자기의 숨어 있는 무한(無限)의 역량을 개발하여 스스로 대자유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중생들이 당신의 품속에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이러하니 누구나가 자기의 본래 상태 즉 열반을 성취하여 대자유의 삶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가르침을 펴신 것입니다." 용잠사는 꾸준한 사회공헌활동으로 온기를 전하고 있는 도량이기도 하다. 신도회인 ‘금강회’와 함께 김장 나눔, 이웃돕기 쌀 나눔, 불자들의 마음을 모은 장학금 기탁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나눔을 실천해오고 있다. “고마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불자 분들이 등(燈) 하나라도 달아주시는 마음을 모아 그 마음 그대로 사회에 돌려드리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수행처소를 마련해주셔서 참 고맙고 그런 감사한 마음을 나누려고 나름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라고 피력한 원공스님, 지면을 빌어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도 함께 풀어놓았다. “불교란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차근차근 기본교리부터 시작하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내가 나를 몰라서 어렵고 괴로운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바르게 회복한다면 무한능력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꼭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을 내셔서, 인연이 닿는 곳에서 좋은 인연을 맺어보시기 바랍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많이들 고달프실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등불 삼아서 힘겨운 시절을 잘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1115]
    • 문화
    2021-04-23
  • 생활에 믿음이 스며드는, 머물지 않고 행(行)하는 불자가 되는 도량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 위치한 광명사. 주지인 법경스님과 함께 2017년 6월부터 매달 첫째, 셋째 주 화요일마다 무료급식을 실천해오며 지역에 온기를 나눠온 도량이다. 무료급식 외에도 건강 치매 예방프로그램, 풍선 만들기, 문화공연 등을 병행, 매달 정기적인 자비행을 실천해오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실시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행사 진행에 차질이 생기자 무료급식 행사를 도시락 전달 행사로 바꾸어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역의 독거 어르신들의 새해 건강을 보살피기 위해 정성껏 조리한 삼계탕을 전달하며 “코로나-19가 사라지고 활력있는 일상 속에 지낼 때까지 힘내시고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라는 법경 스님을 주간인물이 조명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어릴 적 육상에 소질을 보였던 법경 스님, 초등학교 시절 소년체전에 출전하기도 하며 선명하게 두각을 드러냈다. 하루는 체육 교사가 “너는 도시로 나가 꿈을 펼쳐라”라며 그를 혼자 부산으로 보냈다. 하지만 당시 그는 고작 초등학교 5학년, 꿈만 좇아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자취를 하기엔 너무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대화를 이어가는 스님의 표정을 보니 그 또한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린 나이에 혼자 지내며 방황을 많이 했어요. 그 시간이 너무 후회스러웠죠. 그러다 20대 젊은 시절 우연한 기회에 운명처럼 불교를 접하게 되었고 은사 스님의 가르침으로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출가하게 되었죠. 스승을 받들며 구도의 세계로 들어가는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1년 정도는 부모님 모르게 행자 생활을 했습니다(웃음). 이후 정식 승려가 되는 ‘구족계(具足戒)’를 받을 때 부모님을 모셨어요. 구족계 이후 기도 중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는데 저를 안아주시며. ‘너는 따뜻한 마음으로 가거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처님의 자비로운, 따뜻한 마음을 세상에 가서 펼쳐라’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수행하던 공간을 떠나 부산 사상구에 오게 되었죠.” 큰스님의 품을 떠나 부산에 처음 왔을 때는 그에게 주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방과 불상 한 분이 전부, 말 그대로 벌판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 와중에도 부처님을 모시며 행복을 느꼈고 기회가 온다면 자비행을 실천하고자는 마음을 키워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신념으로 매일같이 기도를 올리며 지낸 시절을 회상하며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게 된 계기에 관하여 이야기를 이어갔다. “부처님이 이끌어주시는 대로 살아가다 보니 하나 둘 좋은 인연을 만났어요. 그러다 보니 한분 두분 도와주시는 불자님들을 만나게 되었고 지금까지 기도 정진하게 되었죠. ‘관세음보살님께서 화두로 주신 따뜻한 마음을 어떻게 펼칠까?’라는 생각을 몇 년을 하다가 2016년 8월 속가 아버님께서 타계하신 찰나에 ‘세상의 모든 어르신이 나의 어머니고, 아버지고, 부처님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되는대로 공양을 올리자는 마음으로 2017년 6월부터 무료급식소를 마련, 어르신들께 공양하기 시작했죠. 곧 4년 차가 되는데 앞으로도 급식소 시설을 더욱 더 발전시켜서 아이들 놀이 공간도 따로 마련해주고 싶어요. 최종적으론 온 세대가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곳이 되고 싶습니다.” 모두 신도(信徒)가 아닌 불자(佛子)가 되고, 겉모습만 불자가 되는 게 아닌 ‘올바른 불자’가 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전하고 싶다는 법경스님. “지식이 많다고 부처가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행하지 않으면 결과가 없다고 생각해요. 행하지 않는 지식은 쓸모없는 것이니 회향(廻向)하는 불자가 됩시다”라며 스님이 추구하는 진정한 불자의 모습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저의 법명이 법경(法炅)입니다. 이름대로 ‘부처님의 법을 세상에 밝게 펼치는 것’이 저의 신조이고 다짐입니다. ‘부처님 법을 머리에 담고만 있으면 나 혼자만 성불하는 것이고 부처님 법을 세상에 펼치고 행하면 만 사람이 성불한다’라는 신념을 앞으로도 펼쳐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서 잘못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알게 모르게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항상 참회하는 마음과 내려놓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참회하는 마음과 욕심을 버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세상이 좋아 보이고, 맑아 보이고, 편안하고 즐거운 삶이 될 것입니다.” “ ‘자작자수(自作自受)’,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인이 지은 공덕도 악덕도 자기가 다시 받는다.’라는 뜻으로 통하죠. 부디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은 공덕을 많이 지어서 공덕이 가득한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1114] ▲ 광명사의 다양한 나눔활동
    • 문화
    2021-04-16
  • 베이비복스 1기 리더 정현전, 부산 유명 맛집 '초함' 대표로 제2의 인생 펼쳐
    태극기 한복 모델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현전 대표 핑클, SES와 함께 국내 1세대 아이돌로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걸그룹 ‘베이비복스’ 부산에서 모델로 활동하던 정현전, 정시운과 리드보컬을 맞은 차유미, 무용을 전공한 김이지, TV 공개방송을 구경하다 픽업된 이희진이 바로 1996년에 결성된 베이비복스의 1기멤버들이다. 이들은 3년 여 간의 연습기간을 거쳐 1997년 정규 1집 'EQUALIZEHER'로 데뷔해 타이틀곡 <남자에게(민주주의)>로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베이비복스는 2004년까지 한국에서 총 8장의 음반을 발표했고 아이돌 1세대 중 디바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정규 앨범을 발표한 그룹으로 보컬, 댄스, 랩파트를 각각 맡는 21세기 현재 완성형 아이돌 구성을 갖춘 유일한 그룹이라고 평가받아오고 있다. 그중 1기 리더를 맡으며 맡언니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정현전씨를 만났다. 고향 부산으로 돌아와 자신이 좋아하던 '요리' 솜씨를 맘껏 펼치며 유명 맛집 대표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식으로 정리해본다. _박정호 기자 Q>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 출연 이후 더 많은 관심을 받고 계십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코로나19로 인해 다들 힘든 시기지요. 저 역시 방역에 신경을 많이 쓰며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제가 운영하는 '초함'은 오픈형 식당이 아니라 룸으로 이루어져 있어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주고 계십니다. 방 크기도 다양해서 가족, 친구, 동호회, 회식 등을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데 지금 시기에 맞아떨아졌어요. 하지만 그래도 작년엔 여파가 있어 자연스레 여유 시간이 많아졌는데 그동안 메뉴 개발에 전념했습니다. 외식경영에도 관심이 생겨 외식경영학 박사과정 수업도 들으면서 나름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Q> 데뷔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학교에서 '벙어리'냐고 할 정도로 말이 없었어요(웃음). 그래서 친한 친구들은 항상 발랄한 성격들이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장래 희망이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었으니 말 다했죠. 요리하는 걸 좋아해 늘 '큰 냉장고가 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몸이 아파 병원에 다닐 땐 간호사가 될까 하기도 했는데 그때 TV에서 전인화 선배님이 장희빈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연기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모두에게 “영화배우가 되어서 여러분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라고 말했다고 하니 의외로 당돌한 면도 있었나봐요. Q> 처음 캐스팅 당시를 회상해본다면. 광안리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받았어요. 학생 때 당시 잡지나 CF에도 간간히 출연하고 있었는데 매니저 분이 당시에 주신 명함이 제 눈엔 허술해 보여 버렸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나중에 알고 있던 작가분이 연락오셔서 그 매니저분에 대해 확신을 주신 바람에 다시 인연이 닿게 되었습니다. 면접에서 “뭐가 제일 하고 싶냐”라고 물어보기에 “연기자요”라고 답했어요. 그러니 흔쾌히 한번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토요일 토요일 밤에’와 단막극 등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니까 너무 즐겁더라구요. 그러다 매니저님이 “연기는 나중에 하고 내가 가수 매니저니까 가수에 도전해보는 건 어때?”라고 물어보시기에 뜻에 따라 가수 연습생이 되기로 했죠. 멤버가 몇 번씩 바뀌는 치열했던 연습생 시절을 보냈었지요. Q> 베이비복스 활동 당시는 어땠나요? 항상 젝스키스 뒤의 순서로 나갔으니까 격렬한 춤이 많아 부상을 많이 입었죠. 멤버 중 차유미는 부상으로 인해 무릎에 물이 차 탈퇴하기도 했구요. 그 와중에도 마냥 즐거웠어요. 저는 항상 꿈에 가득 차 있었죠. 무대를 하나 만드는 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컨셉을 어떻게 잡을지 매일 연습하며 구상했어요. 환경이나 상황이 바뀌면서 완성된 무대가 엎어질 때도 있었지만 저는 마냥 행복했어요. 당시 3사 방송에 나오는 것 자체가 쉽지가 않았던 시절에 사장님을 잘 만나서 7월부터 12월까지 47회를 출연할 정도로 바빴습니다. 일정을 소화하려 심야 고속버스를 타는 날이 참 많았는데 텅 빈 고속도로의 가로등 불빛과 버스의 불빛이 막힘없이 뻗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걸 즐겼어요. 끝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나의 미래도 불빛처럼 끝없이 펼쳐진 것 같았죠. 행복했던 날들이었지만 저도 활동을 길게 하진 않았습니다. 연예계를 직접 경험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꿈을 높이 잡아라’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때의 저는 다른 목표가 없었고 ‘연예인’이 되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끈기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리더로서 힘들었던 일들이 많았어요. 팀을 컨트롤 해야 했고 총대를 메야 했던 일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둔 걸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Q>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항상 감사했던 게 무대에 설 때마다 관객분들께서 ‘젝스키스 보고 베이비복스 보고 가자’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1집 '남자에게’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나레이션이 엄청 파격적이어서 그런지 인기가 상당했던 기억이 나네요. 활동 시기가 IMF와 겹쳐 앨범도 많이 팔리지도 많았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려웠지만 하루에 스케줄이 11개를 소화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차를 타고 방송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공연하기 위해서 전국을 많이 돌아다녔어요. 제주에서 강원도로 갔던 기억도 나네요.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아서 감사한 기억뿐이에요. Q> 탈퇴 이후 공백기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다시 연기연습도 하고 다른 R&B팀 연습도 하며 서울에서 있었습니다. 그때는 또 뭘 해도 안 됐어요. 팀을 모아도 해체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사람이 때와 기회는 늘 오는 것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죠. 10년 정도 서울 생활을 하다가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친구들이 오면 항상 초읍에 '초함'이라고 제가 좋아했던 가게에서 식사를 하곤 했는데 인연이었는지 어머니께서 건물을 구입하시고 덥썩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힘들어서 울기도 했는데 벌써 5년 차네요. 어릴적부터 음식을 만들고 즐기는 걸 좋아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손님들이 제 음식을 맛있게 드셔주셔서 늘 감사하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외식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초함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초함이 자리한 부산 초읍 지역도 함께 살아날 것이라는 목표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 그래도 어릴적 꿈이 현모양처였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웃음).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 낳고 서로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과 살아보고 싶어요. 사람 마음 중 가장 좋은 마음이 사랑(愛)이라잖아요. 사람들이 ‘내 가족도 소중하지만 타인도 남의 소중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조금 더 생각을 열어 사소한 문제가 생기면 그냥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넘겼으면 좋겠어요. 지금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끼고 서로 얼굴을 가리고 살아가고 있잖아요. 나중에 마스크를 벗을 때가 곧 올 테니까 그때까지 서로 마음속에 ‘사랑 愛’를 많이 새겨두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 대표는 인터뷰 내내 여전히 도시적이고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꾸밈없는 털털한 모습으로 반전 매력을 드러냈다. 그녀가 운영 중인 '초함' 역시 마찬가지. 빼곡한 건물들 사이 시골 느낌의 정겨운 흙집의 모습을 한 '초함'은 투박하지만 정겹고 세련되진 않지만 편안한 곳이다. 푸짐하기만 한 밥상은 차리기 쉽지만, 품격있으면서도 깔끔한 한식 테이블은 이외로 어렵고 낯선 법. 이곳에서 나오는 한식의 맛과 멋을 살린 차림새는 예사롭지 않다. "한식이라고 해서 전통만을 고집하면 자칫 올드한 테이블이 될 수 있어요. 심플하면서 간결한 그릇과 음식이 돋보이는 담음새가 중요하죠." 주인장의 따뜻한 감성이 깃든 '초함'이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되길 기대해본다. [1113]
    • 문화
    2021-03-31
  • 최고의 목재, 최고의 하드웨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완벽한 작품을 만드는 공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는 요즘 목공예 가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모든 사람의 생김새가 다르듯 나무도 자란 환경이나 세월에 따라 형태, 무늬, 빛깔 모두가 달라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구를 만들기에는 가장 적합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목재 선정부터 설계, 제작 등 모든 과정을 100% 사람의 손으로 진행하여 특별함을 더해주는 목재 가구공방을 특히나 많이 찾는다. 이를 따라 수제가구를 제작하는 목공방 창업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양질의 목재에 독일의 우수한 하드웨어 브랜드 ‘헤펠레’ 의 기술을 접목하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가구를 만드는 대구의 한 공방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이에 주간인물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로 249-2에 위치한 화제의 ‘헤펠레 목공방’을 찾아가 채성수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채성수 대표는 15년 정도 렌터카 사업을 했다. 승승장구하던 렌터카 사업에 대기업이 자리를 잡으며 차차 수주가 줄었다는 그에겐 대기업이 절대 손댈 수 없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어릴 적부터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흥미와 소질이 있었다는 채 대표. 그렇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구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목공을 시작하게 되었다. “3년간 홀로 목공에 전념하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나갔습니다. 이 일은 몸으로 부딪치며 실력을 쌓아가야 하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어도 절대 좌절하진 않았죠. 첫 시작을 ‘헤펠레’라는 하드웨어를 제작, 판매, 유통하는 업체와 함께 시작하며 하드웨어에 대해서도 동시에 많이 배웠습니다. 거의 모든 공방이 가구를 제작할 때 고급 원목을 추구할 것이기에 저에겐 무기가 필요했죠. 그것이 바로 고급 하드웨어입니다. 가구의 가장 기본적인 경첩, 레일 내부 선반의 움직임까지 좌우하는 하드웨어까지 최고급 제품을 쓰는 공방은 찾기 힘들 것이라 자부합니다. 더불어 보다 튼튼하고 건강까지 생각하는 가구가 되기 위해 마무리 단계에선 순수 완전 천연오일인 ‘AURO’ 오일을 여러 번 얇게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 코팅하고 있습니다.” 원목 외에는 절대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채성수 대표. 또 그는 가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작업이 없는 날이면 완성품을 전부 해체해 다시 완벽하게 조립하며 신중하게 수많은 도전과 연습을 해오고 있다. “대충 만들어서 마구 팔 생각이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라며 그는 제품에, 더 나아가 그의 작품에 대한 애착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아침 6시 출근 새벽 1시에 퇴근하는 날이 대부분이죠. 목재 구매, 배달, 시공 전부 혼자서 합니다. 모두 제 손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제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게 제 다짐입니다. 가끔 혼자서 큰 목재를 옮기거나 작업을 할 때면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많고 많은 목공방 중 저를 선택하신 이유를 꼭 보여드리리라 다짐하며 다시 작업에 매진하곤 하죠. 그렇게 제작한 제품은 평생 A/S를 보장해드립니다. 단순히 해당 목재를 교체하는 것이 아닌 100% 다시 제작해서 교환해드리죠. 혼자서 일을 하다 보니 일정이 잘 맞지 않는 때도 있지만 괜찮다며 오히려 감사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힘을 많이 얻습니다(웃음).” 원목 싱크대, 수납장, 침대, 테이블에 이어 리히텐베르크 기법이 들어간 도마까지, 나무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은 모두 제작하는 채성수 대표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편백 발목경사대’와 ‘원목 중문’은 고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특히 그의 중문은 상, 하단의 마감재까지 전부 직접 제작하여 전국 각지에서 러브콜을 받는가 하면 아이들의 약한 피부와 활동적인 면을 고려해 까다롭지만 각진 모서리 하나 없는 발목 경사대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날 정도다. “똑같은 기계를 만지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를 제품을 제작하더라도 한 공정에서 몇십 번씩 확인하고 수정하고 다듬으며 진심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제 제품은 대부분 다 알아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연습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남들보다 더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저에게 주어진 모든 작업을 배움의 자세로 최선을 다해서 임하겠다고 전하고 싶어요. 제 직업에 긍지를 가지고 앞만 보고 나아가겠습니다!” 어떤 손님이 어떤 물건을 주문할지 모르니 일이 모험과 같다고 말하는 채성수 대표.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다시 구슬땀을 흘리며 커다란 목재를 작업대로 옮기는 그의 모습을 보니 좋은 제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수적천석(水滴穿石)’ 이란 사자성어가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최고의 작품을 향해가는 그의 행보에 많은 기대가 된다. [1112]
    • 문화
    2021-03-22
  • 직접 닿을 수 있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나눔을 실천하는 도량
    지난 2월, 홍은사는 부산 서대신4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통해 생활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백미 1,000kg을 기탁했다. 홍은사는 오랫동안 관내 백미 기탁, 서대신4동 경로한마당 개최 후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눔을 실천해온 도량이다. 주간인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할 수 있는 일’로 지역사회에 온기를 전하는 성각스님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어리석은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반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만을 열심히 한다.” -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中 - 30년 전 성각스님과 함께 부산 서구 서대신4동 꽃마을로에 터를 잡은 홍은사, 아늑한 공간에 이곳저곳 신도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도량의 모습만 봐도 주변을 살피고 베풀 줄 아는 스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매년, 지역에 성품을 기탁하고 경로잔치를 지원하는 등 아낌없는 나눔을 실천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사태로 인해 지역의 행사가 대부분 취소되자 소외, 저소득계층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백미를 기탁했다. “관내에 어르신들이 많이 계셔요. 다들 적적하게 지내실 모습을 알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더 드리고자 코로나 이전에는 주민자치회, 새마을 부녀회와 함께 70세 이상의 어르신들을 모셔 경로한마당을 개최하곤 했죠. 학교를 빌려서 하기도하고 구덕야영장 광장에서 다채로운 축하공연과 함께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사업 홍보도 같이 진행하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대면 행사의 진행이 어렵다 보니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기탁으로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웃음).” 성각스님은 홍은사를 관리, 운영하는 주지이기도 하지만 부모의 인연을 잃은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기도 하다. 출가하고 절을 돌보기 시작했을 당시엔 갓 태어난 아이를 절에 두고 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그렇게 인연이 닿거나 부모를 일찍 여윈,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인 부모가 되기로 했다. “아이들을 거두어 지내기 시작한 게 25년이 넘었네요. 정신없이 함께 살아오다 보니 아이들이 벌써 대학교를 다 졸업하고, 대견하게도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꾸려서 제 품을 떠났습니다. 그중엔 인연이 깊은지 아직 저와 함께 지내는 아이도 있어요. 다 자란 아이들이 인사를 하러 오면 그날은 종일 기분이 좋아요. 이미 다 컸다면 큰 아이들이지만 제 눈엔 처음 데려온 그 날이 눈에 선합니다. 자라면서 별 말썽도 안 부리고 주는 부족한 사랑에도 항상 웃어줬던 아이들을 보면 아직도 저는 그저 좋습니다(웃음).” ‘똑같은 꽃이라도 아름다운 색깔과 향기를 내뿜어 사랑받는 꽃이 있듯이 실천이 따르는 사람의 말은 비록 그 메아리가 조용하지만 멀리 울려 퍼진다.’ - 법구경(法句經) 中 - 홍은사는 규모는 크진 않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신도들과 소통을 이어오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직접 찾아오는 신도들이 예전보다 줄었지만 찾아올 한 명의 신도를 위해서라도 꾸준히 경건하게, 겸손하게 법회를 이어오고 있는 성각스님이다. 또 고민이 있어 찾아오는 신도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한 뒤 방향을 잡아주는 이정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제 말을 듣고 큰 희망이 생기거나 실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항상 상대방의 인생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지고 방향을 제시해주려고 합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때로는 칭찬을 하기도 하고 직언을 해야 할 때도 있듯 이야기를 할 때 스스로 힘든 시간을 헤쳐나가실 수 있게끔 지혜를 드리려고 합니다. 누구든, 언제든 홍은사에 오시면 차 한 잔 내어드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웃음).” “지난 2020년 참 힘들었죠. 모두가 힘든데 특별한 일은 갈수록 없고…그래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며 조금만 더 힘내주면 좋겠어요. 코로나가 하루빨리 종식되어 이 각박한 세상의 마음을 다 녹이고 모두가 마음을 열고 서로가 가족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다시 만났으면 합니다. 다시 불자분들, 어르신들을 모실 수 있는 날을 위해 저도 공부와 기도에 매진하며 살아가고 있겠습니다. 부디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성각스님은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아낌없는 나눔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기자와 인사를 나눈 뒤 다시 법당으로 돌아갔다. 한없이 베풀며 살아온 그의 뒷모습이 참으로 따스해 보였다. [1111]
    • 문화
    2021-03-09
  • 번뇌를 내려놓고 나누며 살자! ‘불자가 닮고 싶은 불자’가 되는 도량, 정종사
    한적한 경남 양산 평산동에 위치한 정종사, 사람 냄새보단 따뜻함이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의 불자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매해 기탁을 이어오고 있는 여해스님은 코로나19로 많이 여윈 세상을 조금이나마 안아주고 싶다며 앞으로도 꾸준한 기탁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밝아오는 신축년(辛丑年)을 맞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백미 2600kg과 라면 300박스를 기탁하며 주변을 따뜻하게 한 여해스님과 차 한잔을 두고 대화를 나눴다. _박정호 기자 Q. 지역사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 온 정종사, 그간 어떤 사회공헌 활동들을 해왔나요? A. 이전부터 꾸준히 기탁을 해왔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분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어 신청자의 양심을 믿고서 이유를 묻지 않고 현금을 지원해 드리는 ‘자체 재난지원금’을 운영했습니다. 1차 지원금은 제 사비로 40분에게 50만원씩 나누어 드렸고 2차 지원금은 방생 후 여비로 신청자 20분에게 10만원씩 지원을 해드렸습니다. 또 연말에 쌀 20kg 130포대를 구매해서 통도사 자비원을 통해 양산지역 차상위계층을 포함해 취약계층 200여 가구에 전달하기도 했죠. 최근에 뉴스를 보니 코로나19의 여파로 정규직 취업도 힘들고 알바를 구하기도 어려워 컵라면으로 하루에 겨우 한끼를 먹거나 식사를 거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이 동네에도 그런 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해 급할 때 간단하게 끼니라도 해결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컵라면 300박스를 나누어 드렸어요. 보통 보시의 종착점이 사찰인 경우가 많지만 저는 정종사가 보시의 종착점이 아닌 복을 나누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늘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웃음). Q. 어떤 마음가짐으로 절을 돌보고 계십니까? A.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선대와 달리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이란 시련을 겪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누구를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죠.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고 마음속의 괴로움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울증, 불면증, 가정이나 직장 등에서 쌓인 스트레스로 웃음을 잃은 사람들에게 사회에서는 어떤 치유책도 내놓지 못했죠. 그래서 우리 불교가 사람들의 이런 정신적인 괴로움을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종사를 찾아주시는 분들 중에선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들도 있고 아직 종교가 없는 분들도 있지만 종교를 떠나 마음속의 번뇌를 알아차리고 다스려 스스로 치유하고 내려놓는 방법, 부정적인 에너지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길을 같이 고민하고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인을 위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요. 타인을 위하는 것이 바로 복을 짓는 것입니다. 그 복은 허투루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자신에게 좋은 결과로 돌아와요. 사람들이 마음의 괴로움을 없애고 밖으로 복을 짓는 삶이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늘리는 방법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정종사의 주지소임을 보고 있죠. Q. 시대상의 변화에 발맞춰 어떤 포교활동을 펼치고 계십니까? A. 요즘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은 필수잖아요. 사실 정종사는 코로나가 오기 전부터 비대면 신행생활을 실천해 왔습니다. 8년 전쯤에 우연히 ‘스토리채널’이라는 SNS를 알게 되어 ‘여해스님 산중일기’라는 채널을 만들어 20여 명의 신도들과 함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SNS를 통해 제 생각을 전해주고 소통하다보니 벌써 구독자가 5000명이 넘었습니다. 구독자뿐만 아니고 비구독자분들도 와서 보기 시작하셨는지 게시물은 하루에 만 명 가까이 보고 계시더군요. 그렇게 SNS로 맺어진 분들이 지금 정종사 신도의 90%를 차지할 정도죠. 그렇게 먼 곳에서 찾아주시는 분들,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기도해 드리는 불자님들도 상당수 됩니다. 또한 ‘정종사불자모임’ 밴드를 통해서 소통하기도 합니다. 포교활동의 핵심은 재정의 투명한 공개입니다. 정불회와 공승회 등 보시금이 들어오는 통장의 입출금 내역을 매달 SNS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어떻게 보시금이 쓰이는지 알려드리는 것이 상호간에 신뢰하는 마음을 만들기 때문이죠. 또한 투명한 시스템으로 운영함으로써 혹여 제 마음속에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자란다면 그런 시스템이 보완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Q. 신도들과 함께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입니까? A. 출가하고 몇 년 동안 경전과 계율을 공부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인연에 따라 정종사 주지 소임을 맡은 후 신도님들과 함께 하면서 배우는 것이 더욱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젠 사람을 인도하거나 가르치겠다는 생각보단 앞으로 불자님들과 함께 더 공부하고 배우는 시간을 가지겠다고 다짐했죠. 주지로서 절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다 제 수행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주지가 되기 이전에 올바른 스님이 되고 싶어요. 수행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고 그 가운데 제가 선택한 것은 불자님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완성’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웃음). 신도님들 역시 훌륭한 불자라는 칭찬이 주지스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보다 다른 신도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 바람직한 모양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종사에 들어오면 보게 되는 현수막이 하나 있습니다. ‘불자가 닮고 싶은 불자가 되자’ 이 글귀에 모든 것이 담겨 있죠. 거만하고 남을 무시하거나 험담과 뒷담화를 습관적으로 하는 모습, 자신을 내세우고 자기 감정만 중시하고 자기 입장만을 고집하는 모습을 닮고 싶은 불자는 없을 것입니다. 불자가 닮고 싶은 불자의 모습은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신행생활이 자신도 이롭고 상대방도 이롭다고 항상 말씀드려요. 나를 내세우지 않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함’이라고 전하고 싶어요. Q. 끝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부처님께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욕계(欲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욕계의 ‘욕’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죠. 잘 생각해보면 사람이 이 세계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무엇인가를 바라고 원하고 기대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들 예를 들면 돈, 이성, 자동차, 집, 가족, 친구 등 태반이 외부에 있는 것들이에요. 외부의 것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행복을 느끼고 그렇지 않으면 힘들고 괴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내 몸 바깥에 있는 것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느냐… 아니죠. 이것을 불교에서는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여도 얻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자신과 제일 가까운 배우자나 자녀조차 내 뜻대로 안 되잖아요. 사실 자기 몸과 마음조자도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이죠. 그래서 행복한 인생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부처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욕심과 욕망이라는 업에 의해 유지되는 욕계라는 세계에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욕심을 줄이며 사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본래부터 사람도, 물건도 다 내 뜻대로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죠.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기를 쓰고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을 통제하려고 애쓰면서 아까운 인생을 소모하지 말고 그나마 몇 가지 뜻대로 되는 일에 감사하고 무탈한 일상에 감사하며 만족할 줄 아는 마음으로 살아보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채우려고 애써왔던 그 수많은 시간들, 채워져야 행복해질 것 같은 느낌, 이제는 내려놓고 살아갑시다! 지금 나에게 없는 것들을 욕심내고 채워 미래의 행복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행복해지는 것을 방해하는 내면의 욕심을 내려놓아 보세요. 성취로 인한 행복도 있지만 성취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욕심을 조금 덜 부리며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자고 전하고 싶습니다. [1110]
    • 문화
    2021-02-19
  • 번뇌를 내려놓고 나누며 살자! ‘불자가 닮고 싶은 불자’가 되는 도량, 정종사
    한적한 경남 양산 평산동에 위치한 정종사, 사람 냄새보단 따뜻함이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의 불자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매해 기탁을 이어오고 있는 여해스님은 코로나19로 많이 여윈 세상을 조금이나마 안아주고 싶다며 앞으로도 꾸준한 기탁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밝아오는 신축년(辛丑年)을 맞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백미 2600kg과 라면 300박스를 기탁하며 주변을 따뜻하게 한 여해스님과 차 한잔을 두고 대화를 나눴다. _박정호 기자 Q. 지역사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 온 정종사, 그간 어떤 사회공헌 활동들을 해왔나요? A. 이전부터 꾸준히 기탁을 해왔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분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어 신청자의 양심을 믿고서 이유를 묻지 않고 현금을 지원해 드리는 ‘자체 재난지원금’을 운영했습니다. 1차 지원금은 제 사비로 40분에게 50만원씩 나누어 드렸고 2차 지원금은 방생 후 여비로 신청자 20분에게 10만원씩 지원을 해드렸습니다. 또 연말에 쌀 20kg 130포대를 구매해서 통도사 자비원을 통해 양산지역 차상위계층을 포함해 취약계층 200여 가구에 전달하기도 했죠. 최근에 뉴스를 보니 코로나19의 여파로 정규직 취업도 힘들고 알바를 구하기도 어려워 컵라면으로 하루에 겨우 한끼를 먹거나 식사를 거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이 동네에도 그런 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해 급할 때 간단하게 끼니라도 해결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컵라면 300박스를 나누어 드렸어요. 보통 보시의 종착점이 사찰인 경우가 많지만 저는 정종사가 보시의 종착점이 아닌 복을 나누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늘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웃음). Q. 어떤 마음가짐으로 절을 돌보고 계십니까? A.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선대와 달리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이란 시련을 겪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누구를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죠.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고 마음속의 괴로움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울증, 불면증, 가정이나 직장 등에서 쌓인 스트레스로 웃음을 잃은 사람들에게 사회에서는 어떤 치유책도 내놓지 못했죠. 그래서 우리 불교가 사람들의 이런 정신적인 괴로움을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종사를 찾아주시는 분들 중에선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들도 있고 아직 종교가 없는 분들도 있지만 종교를 떠나 마음속의 번뇌를 알아차리고 다스려 스스로 치유하고 내려놓는 방법, 부정적인 에너지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길을 같이 고민하고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인을 위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요. 타인을 위하는 것이 바로 복을 짓는 것입니다. 그 복은 허투루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자신에게 좋은 결과로 돌아와요. 사람들이 마음의 괴로움을 없애고 밖으로 복을 짓는 삶이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늘리는 방법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정종사의 주지소임을 보고 있죠. Q. 시대상의 변화에 발맞춰 어떤 포교활동을 펼치고 계십니까? A. 요즘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은 필수잖아요. 사실 정종사는 코로나가 오기 전부터 비대면 신행생활을 실천해 왔습니다. 8년 전쯤에 우연히 ‘스토리채널’이라는 SNS를 알게 되어 ‘여해스님 산중일기’라는 채널을 만들어 20여 명의 신도들과 함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SNS를 통해 제 생각을 전해주고 소통하다보니 벌써 구독자가 5000명이 넘었습니다. 구독자뿐만 아니고 비구독자분들도 와서 보기 시작하셨는지 게시물은 하루에 만 명 가까이 보고 계시더군요. 그렇게 SNS로 맺어진 분들이 지금 정종사 신도의 90%를 차지할 정도죠. 그렇게 먼 곳에서 찾아주시는 분들,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기도해 드리는 불자님들도 상당수 됩니다. 또한 ‘정종사불자모임’ 밴드를 통해서 소통하기도 합니다. 포교활동의 핵심은 재정의 투명한 공개입니다. 정불회와 공승회 등 보시금이 들어오는 통장의 입출금 내역을 매달 SNS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어떻게 보시금이 쓰이는지 알려드리는 것이 상호간에 신뢰하는 마음을 만들기 때문이죠. 또한 투명한 시스템으로 운영함으로써 혹여 제 마음속에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자란다면 그런 시스템이 보완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Q. 신도들과 함께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입니까? A. 출가하고 몇 년 동안 경전과 계율을 공부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인연에 따라 정종사 주지 소임을 맡은 후 신도님들과 함께 하면서 배우는 것이 더욱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젠 사람을 인도하거나 가르치겠다는 생각보단 앞으로 불자님들과 함께 더 공부하고 배우는 시간을 가지겠다고 다짐했죠. 주지로서 절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다 제 수행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주지가 되기 이전에 올바른 스님이 되고 싶어요. 수행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고 그 가운데 제가 선택한 것은 불자님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완성’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웃음). 신도님들 역시 훌륭한 불자라는 칭찬이 주지스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보다 다른 신도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 바람직한 모양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종사에 들어오면 보게 되는 현수막이 하나 있습니다. ‘불자가 닮고 싶은 불자가 되자’ 이 글귀에 모든 것이 담겨 있죠. 거만하고 남을 무시하거나 험담과 뒷담화를 습관적으로 하는 모습, 자신을 내세우고 자기 감정만 중시하고 자기 입장만을 고집하는 모습을 닮고 싶은 불자는 없을 것입니다. 불자가 닮고 싶은 불자의 모습은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신행생활이 자신도 이롭고 상대방도 이롭다고 항상 말씀드려요. 나를 내세우지 않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함’이라고 전하고 싶어요. Q. 끝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부처님께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욕계(欲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욕계의 ‘욕’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죠. 잘 생각해보면 사람이 이 세계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무엇인가를 바라고 원하고 기대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들 예를 들면 돈, 이성, 자동차, 집, 가족, 친구 등 태반이 외부에 있는 것들이에요. 외부의 것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행복을 느끼고 그렇지 않으면 힘들고 괴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내 몸 바깥에 있는 것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느냐… 아니죠. 이것을 불교에서는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여도 얻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자신과 제일 가까운 배우자나 자녀조차 내 뜻대로 안 되잖아요. 사실 자기 몸과 마음조자도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이죠. 그래서 행복한 인생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부처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욕심과 욕망이라는 업에 의해 유지되는 욕계라는 세계에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욕심을 줄이며 사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본래부터 사람도, 물건도 다 내 뜻대로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죠.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기를 쓰고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을 통제하려고 애쓰면서 아까운 인생을 소모하지 말고 그나마 몇 가지 뜻대로 되는 일에 감사하고 무탈한 일상에 감사하며 만족할 줄 아는 마음으로 살아보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채우려고 애써왔던 그 수많은 시간들, 채워져야 행복해질 것 같은 느낌, 이제는 내려놓고 살아갑시다! 지금 나에게 없는 것들을 욕심내고 채워 미래의 행복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행복해지는 것을 방해하는 내면의 욕심을 내려놓아 보세요. 성취로 인한 행복도 있지만 성취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욕심을 조금 덜 부리며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자고 전하고 싶습니다. [1110]
    • 문화
    2021-02-19
  • ‘정말 잘돼! 할 수 있어!’ 진정한 ‘불교’를 행하며 자비를 베푸는 곳, 안심정사
    생활불교로 널리 알려진 법안 스님(안심정사 회주). 그는 <운명을 바꾼 사람들>, <걱정 말고 기도하라>, <법안스님과 함께 하는 불교 교리>, <생활법문> 등의 책을 출판한 한국불교태고종(韓國佛敎太古宗)의 학승이다. 현재 법안스님은 전국적으로 6개 도량 (부산, 논산, 대구, 서울, 창원, 제주)을 오가며 자비와 나눔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백미 기탁, 봉사활동 등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있는 것. 대한민국이 한국불교태고종(이하 태고종)으로부터 올바른 ‘불교’를 행하기를 바라는 법안 스님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나랑 같은 시대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렵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수도승이나 교화승은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불교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종교든 자비의 실천이 가장 중요하며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 그 수많은 자비의 실천 중에서 전국에 위치한 안심정사에 대한 이야기로 긴 인터뷰를 시작했다. “우리가 하는 활동은 네 가지 입니다. 첫 번째는 불자들이 오면 신앙심을 갖도록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게 기도 의식이에요. 첫 번째가 가장 중요해요, 여기 신도들이 오면 기도를 하잖아요. 수도승이 독경염불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 이유가 마음이 편안해지기 위해서 일정한 틀의 법회, 즉 의식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함께해 신앙심을 통해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도움을 줍니다. 두 번째는 교리학습입니다. 불교라는 종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이잖아요. 그 가르침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신자가 문제가 생기면 그에 따른 답을 줘야 하잖아요. ‘스님 괴롭습니다’라고 하면 ‘부처님께선 이런 상황에 이런 괴로움이 생긴다고 하십니다’라며 교리 학습을 시켜줍니다. 세 번째 신앙상담입니다. 1:1로 신도들을 만나 상담을 해줘야합니다. 1000명씩 두고 강의하면 다 알아듣는 것 같아도 사실은 알아듣는 게 끝이 아니에요. 내일 시험을 본다고 하면 상담을 하며 일러줍니다. 네 번째는 자원봉사입니다. 전국 군법당에 8~90% 초코파이 초코바를 넣어주고 있습니다. 신병교육대에도 들어가죠. 한 달에 2000만원씩 베풀고 있습니다. 또 각 6개 지자체에 쌀이 매년 120톤씩 들어갑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안심정사의 손이 닿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이렇게 기도법회, 교리학습, 신앙상담, 사회봉사 네 가지 큰 맥락으로 불교를 행하고 있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이전에 태고종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도 ‘대승, 보살, 교화 이 세 가지’라며 유창한 달변을 이어갔다. “‘대승'은 모두가 극락을 가자는 것,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상구보리하와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 위로 보리, 즉 부처님 말씀을 배우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행복해지고 성공하는 불교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 그게 바로 보살과 교화입니다. 그래서 대승, 보살, 교화 이 세 가지입니다.” 스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불교’란 무엇일까. “불교라는 종교는 저 하늘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라”라고 하는 게 아니라 지장보살님처럼 지옥에 직접 들어가 같이 지옥에서 사는 것입니다. 불난 집에 들어가 번뇌 속에서 중생들과 함께 부대끼며 사는 것이 태고종의 정체성이죠. 그래서 결혼도 허락이 됩니다. 지금까지 역대 부처님이 다 결혼을 하셨고 아드님이 다 있었죠. 단순히 독경, 수행만 하는 게 아니고 세속을 겪어내며 불자들을 구원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결혼을 해봐야 불자들의 부부사이의 번뇌를 보살필 수 있습니다. 아들에 대한 집착, 가정사에 대한 모든 문제를 겪으며 해결해야 부처가 될 수 있고 보살들을 교화할 수 있습니다. ‘스님이 가정에 대해 어떻게 아시나요?’라는 질문에 ‘나는 결혼해봐서 잘 알아요’라고 답변해줍니다(웃음). 신도가 궁금해 하는 것에 답을 주지 못한다면 누가 나를 찾아오겠습니까?” “태고종은 선종이지만 염불로 교화를 합니다. 조상천도나 방생을 통해 아픔을 어루만져 주기도 하죠.” 그의 말을 뒷받침하듯 안심정사 1432년 효령대군이 지낸 이후 최초 ‘한강 수륙재’를 통해 호국영령과 무주고혼 등을 위문했다. 500여 년 만의 수륙재를 안심정사가 어떻게 이뤄냈을까? “처음엔 반대가 많았습니다. 어느 종단도 사찰도 한강에서 수륙재를 할 수 없었죠. 그걸 안심정사가 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비웃었어요. 종교행사가 안된다고 하니 저는 수륙재 명칭을 ‘영산재(문화축제)’라고 칭하기로 했죠. 그러니 반대할 명분이 없게 되었습니다(웃음). 개신교 신자였던 당시 공원사업소장은 나중에는 수륙재가 연례행사가 될 수 있도록 도움도 주셨습니다. 한강에서 수륙재를 하고 나니 전국 어디서도 수륙재를 봉행할 수 있게 됐죠. ‘한강에서도 했는데 왜 안되냐’면서 한강 수륙재 자료를 보여주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회마다 1억 이상 삼보정재가 들어가지만 행사를 마치면 1억 이상이 다시 보시로 들어옵니다. 제주도 수륙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베풀면 그만큼 돌아옵니다. 폭리를 취해서도, 취하려고 해서도 안되요. 그저 베풀기만 하면 됩니다.” 대중포교인 ‘생활법문, 기초교리’를 중심으로 불교 전파에 큰 획을 그은 법안스님. 이에 그치지 않고 군부대에 ‘부처님 말씀’이라는 소책자를 매년 6만권 ~ 12만권 기증해 현재까지 54만권을 보냈다. 젊은이들에게 불교를 전하기 위해서 만화로 경전을 만들기도 한 법안스님은 포교에 있어서 선을 정해두지 않는다. “부산의 지자체장분들 중에 불교신자가 많이 계십니다. 리더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지도자 양성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 불교계와 안심정사가 돕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인이자 지도자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하고자 합니다.” “과거, 절도 없이 작은 골방에서 지내며 한국불교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진정 불교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대부분이었죠. 국민들의 불교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기 위해서 아주 많이 노력했습니다. 당시 불자들은 ‘마음 비워야하고 사회에서 희생하고 양보해야한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제가 불자들한테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어요.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 ‘번뇌망상’을 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교만하고 하는 악한 마음이죠. 반면에 희망 용기 의욕을 버리라고 한 적은 없어요. 나쁜 것들을 버려야지 모든 마음을 다 버리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는 게 아니고 불교로 돌아가자며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설득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엔 ‘태고종 중이 빨간 가사 두르고 방송에 나왔다’라며 면전에다 비속어를 하는 등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다. 하루는 절에 직접 찾아와 분노를 쏟아내는 한 신자에게 법안스님은 당당하게 일침을 놓기에 이르렀다. “‘번뇌 일으키지 마라. 내가 너를 아는데 과거 나는 예비고사에서 최상위 분야였다. 너와 레벨이 달라, 나는 한 고등학교에서 IQ가 제일 높은 사람이었다. 내가 태고종 중으로 빨간 가사 두르고 있지만 교리와 학문적 불교 공부도 다 마쳤다. 너랑은 수준이 다르다’라고 일침을 놓았죠. 그러니 조금 있다가 조용히 자리를 뜨더군요. 반면에 제가 학문적으로 지식을 갖췄더라도 명확히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불자들에게 모른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웃음).” 안심정사에 쌀을 가져다 놓으라고 한 적이 없지만 지금도 안심정사 논산 본찰에는 1주일마다 쌀이 1000kg씩 쌓인다. 신자들의 돈독한 신뢰가 스님에게는 큰 선물이라고. “그 신뢰를 지키기 위해 매 끼니 한 그릇 흰죽만 먹으며 밖에서는 음식을 안 먹습니다. 술, 고기, 오신채는 입에 대지도 않아요.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엔 밥 한 그릇을 물에 말아서 한 끼 식사를 합니다.” “무슨 일이든 뜻만 있다면 이룰 수 있습니다. 계율을 잘 지키고 늘 기도하고 수행한다면 못 이룰 일이 없어요. 본래 제 사주는 무재, 무관 사주였습니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 연구하며 자기계발서를 100여 권 읽었죠. 결국엔 마음먹기 달렸다는 이야기, 곧 불교의 심법과 이어지는 말인 겁니다. ‘이 쉬운 일을 사람들은 어렵게 생각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여기서 영감을 얻어 소원표, 기도표를 만들었습니다. 나는 ‘누구나 내게 오면 내가 아낌없이 줄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소원했습니다. 무재, 무관 사주인 제가 부처님 품에서 안심정사를 일구고 여기저기 베풀면서 삽니다. 환경은 누구 편이 아닙니다. 내 편이라고 생각하면 내 편이 되고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내 편이 아닌 것이 되는 겁니다. 이렇듯 불교는 심법 입니다. 생각을 통해서 내 환경과 운명을 바꾸는 종교죠. 생각을 바꾸면 잘될거에요. 빠르거나 더딘 차이만 있을 뿐이죠.” “불교의 문제점은 불교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교라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쪽으로 돌아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웃음). 절대로 신도들을 통해 돈을 벌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베풀면 돌아온다. 베푸는 게 사람들 마음을 열기 쉽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저 베풀기만 하면 됩니다. 베풀면 그만큼 그 이상이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안심정사를 200곳으로 늘여 더 많은 신도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스님은 “절은 많은데 스님이 없다. 안심정사를 새로 열고 보낼 상좌가 없다”라며 태고종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하루빨리 ‘바른 불교’로 돌아가야한다는 그의 의지가 어려운 시기, 큰 위로가 된다. [1108]
    • 문화
    2020-12-30
  • 전국 최고의 타투교육의 중심 타투스터디 “마음과 책임감만 있으면 타투이스트를 꿈꿀 수 있습니다”
    “‘나’라는 문신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무얼 잘 하는지 표현하고 싶어 첫 활동명을 지을 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본명을 쓰고 있습니다. 나중에도 지금도 제가 하는 타투 일테니 말이죠(웃음).” 대한민국 타투 1세대와 2세대의 가교 역할을 맡았던 이재랑 타투이스트, 자칫 혐오감을 줄 수 있었던 타투를 조금 더 대중적으로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장르를 바꾸고 전문성을 키워갔다. 대한민국 유일무이 전문 타투스쿨, 타투스터디를 개설하기 위해 양쪽 허벅지부터 무릎까지 셀프 타투로 연습을 할 정도. 스스로의 몸에 직접 연습을 하면서 피부 회복, 잉크의 번지는 정도 등 많은 정보를 쌓았다고. 하나의 직업군으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_박정호 기자 어떤 장르를 좋아하나? 타투를 한 지 9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에는 장르 자체가 많지는 않았어요. 이레즈미 같은 장르가 많았고 시대가 바뀌게 되면서 새로운 장르의 시초인 ‘뉴 제패니즈’라는 장르를 들여왔습니다. 일본에서 시작된 장르 중 하나인데 전통적인 이레즈미는 도깨비, 호랑이, 용 등 전형적인 주제를 쓰지만 뉴 제패니즈는 전형적인 소재도 사용하지만 토끼, 참새, 고양이 같은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일본풍의 본질은 벗어나지 않고 예뻐 거부감 없이 대중에게 다가간 경우가 되었죠. 또 ‘블랙 앤 그레이’ 에도 경력이 깁니다. 타투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많은 분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예술적 부분들을 말씀하시는데 사실 저는 예술성이란 부분보단 사회적으로는 인식이 좋지 않았던 타투이스트를 하나의 직업군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컸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인정받고 싶었죠. 다들 미술을 하면 더 좋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저는 목공을 전공했었어요. 그렇기에 교육을 준비했던 이유도 있습니다. ‘무조건 예술성이 있어야 하고 그림을 전공해야지만 타투를 할 수 있는게 아니다’라는 부분을 어필하고 싶었어요.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타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전라도에서 서울로 무작정 올라가 혼자 시작했죠. 아버지를 한참 뵙지 않을 정도로 소식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지냈어요. 외로운 시간이었지만 9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성장한 모습으로 찾아뵈었습니다(웃음). 몸에 있는 타투에 의미가 있는지. 의미가 크지 않습니다. 팔뚝부터 시작해 손등으로 채워갔습니다. 노출이 심한 부위를 선택했던 이유가 있었어요. 당시 타투하는 분들도 손등에 타투가 없었습니다. 손등에 보이는 타투를 새기게 된 건 포기하고 싶을 때 저를 붙잡는 목표를 잡아준 ‘배수진’과 같은 역할이었습니다. 타투이스트가 된 계기가 있다면.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목공을 전공하면서 지방, 전국대회 수상을 많이 했습니다. 고3 때 기계에 손이 끼어 부상을 입고 입상에 실패했죠. 군대에 가서 보니까 할 수 있는게 없더라구요. 타투라는 것을 우연히 접했습니다. 인터넷을 봤는데 타투를 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깊게 남게 된 거죠.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하고 많이 알아봤습니다. 지금 스터디 원장님이시기도 한 신정섭 대표님이라는 분을 만나서 배우며 시작되었습니다. 교육자로서의 삶에 들어선 이유는? 타투를 시작했던 시대적 배경 때문에 배우는 과정이 사실은 너무 힘들었죠. 제대로 배울 수 없는 게 너무 많았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배웠죠. 배우면서도 물음표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건 어떻게 누구한테 배워야 할까 성장해 나가는 입장인 저도 타투란 것을 사람들이 잘할 수 있을까? 이것보다 쉽게 설명해 줄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뭘까? 하면서 제자들한테 제공하려 커리큘럼과 스터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본인에게 타투가 가지는 의미는. 살면서 필요에 의한 선택이 많았습니다. 저라는 사람을 조금 더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죠. 사람들이 모두 다 대부분이 공통적인 부분들을 다 가지고 있어요. 팔 두 개 손가락 5개 이런 것처럼 저라는 사람을 조금 더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라는 사람이 크다고 생각은 안 합니다. 스터디를 열 때 큰 수익에 기대를 했었다면 이렇게 크지는 못했을 거예요. 교육할 때 항상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을 줄 수 있냐 마음을 줬을 때 이 친구가 열심히 할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수 있도록 교육을 합니다. 지나온 시간 중에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다면. 수강생들이 500명 이상이 됩니다. 정말 열심히 하고 잘했던 애들 반반 힘들어했고 열심히 하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은 그런 친구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교육하면서 힘든 친구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손을 잡고 그림을 그려줄 정도로 힘들고 어려워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서 스터디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가지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향해 정진하는걸 보여줬고 아직도 함께 하고있습니다.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커리큘럼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 만들고 아카데미를 만들고 천천히 알려주며 경험이 쌓이다보니 이렇게 하면 교육생들이 잘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체계적, 전문적이게 커리큘럼이 잘 맞추어져서 교육이 상당히 효율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전문, 심화, 후반기교육 등으로 차등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기본 과정이 있습니다. 3개월 동안 똑같은 공통과제와 공통교육을 교육해주고 있어요. 공통적인 교육과정 안에서 조금씩의 변화를 두고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자기가 가야 하는 길들을 좀 더 확실히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기술적인 부분들이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죠. 타투에 관련된 부분들을 많은 사람에게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제 노하우를 다 넣어놨어요. 단 하나도 빠짐없이 함께하는 친구들이 더 잘했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해서 저를 따라올 만큼 올라와 제가 더 뛰어야 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어요. 타투는 완성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정체기가 오면 안 됩니다. 항상 성장해야 하는 직업이 타투이스트입니다.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찾아보길 바랍니다. [1104]
    • 문화
    2020-11-11
  • 예수님의 가르침, 그대로 사랑하라! 봉사하며 사랑을 베푸는 마산삼육교회
    지난 9월 18일, 마산삼육교회(담임목사 홍성호)에서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 행정복지센터(동장 황규봉)에 마스크 5,000장을 기탁했다. 마산삼육교회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단 예하의 교회다. 1860년 미국의 미시간 주 배틀크리크(Battle Creek)에서 제임스 화이트(James White), 엘런 화이트(Ellen White), 조지프 베이츠(Joseph Bates), 존 앤드루스(John Andrews) 등에 의해 조직된 개신교 교파 중 하나이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모든 목회자들이 급여에 대한 소득세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_박정호 기자 Q. 어려운 시기에 마스크 기탁을 해주셨습니다. 한 말씀 해주신다면. 우리 교회는 무엇이든 회의를 통해서 결정합니다. 두 명의 장로, 집사, 목사 모두가 참여해서 말이죠. 평소 상의하고 결정을 하고 직원 회의를 거쳐 진행했지만 코로나 시국에 대면 회의를 할 수 없으니 비대면 회의로 마스크를 기탁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교단에는 ‘도르가’ ‘아드라’등의 구호단체가 있고 각 교회마다 지부가 조직이 되어 활동을 합니다. 저희 교회는 국내뿐 아니라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 등의 나라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몇 가정이 쌀 한 가마니로 버틸 수 있다고 파악 후 지원 요청을 하면, 필요한 만큼 메신저에 올리고 개인적으로, 또는 교회 차원에서 직원 회의를 거쳐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Q. 코로나로 인해 교회의 방역 지침에 대한 불신이 늘고 있습니다. 마산삼육교회는 어떤가요? 교인들의 안전을 위해서 교회와 교단 차원에서 방역당국의 모든 지시에 협조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방역 지침을 지키고 있죠. 온도 체크, 손 세정제 사용, 방문 기록까지 철저히 관리하여 전체 공문을 보냅니다. 방역당국의 지시에 따르는 것을 기본적으로 하되 나머진 강압적으로 하지 않아요. 심각 단계 때에는 방송 예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조금 나아졌을 땐 예배를 드리되 떡이나 두유 등을 나눠주며 최대한 짧게 진행하고 귀가조치 했습니다. 교단 차원에서 방역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Q.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단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신다면. 우리 교단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교단입니다. 제칠일안식일이 말이죠. 성경에 십계명을 따라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칠일째 되는 날 쉬라고 하신 명령에 따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준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칠일을 창조의 기념일로 지정하시고 그날을 복 주시고(Blessed), 거룩하게(Holiday) 구별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행운의 숫자로 여기는 럭키 세븐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자주 쓰는 휴일(Holiday)이란 단어가 거룩한 날이라는 Holy+day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영어로 History라고 합니다. 그 의미도 His+Story, 즉 그의 이야기가 역사라는 뜻으로 우리가 평범하게 쓰는 단어들 속에 성경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단은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을 다른 날과 구별하여 거룩히 준수하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성도들입니다. 다른 교파에서 이단이라 부르지만 기독교 신앙의 기초인 성경을 비추어 볼 때 가장 진리에 가까운 교회라고 자부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완전하시지만 이런 죄스럽고 불완전한 세상에는 완전한 교회나 사람은 없다고 성경에서 말하곤 하죠.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성화된 의인이자 그리스도인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종교와 교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가 진리의 교회인지 궁금해서 모든 종교에 대해 공부하고 어떠한 기독교파가 진정한 종교인지 성경을 기초로 연구한 결과 제칠일안식일재림교회가 성경에 기초한 가장 진리에 가까운 기독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Q. 장로로 계시면서 느끼는 점. 예수를 지져스(jesus) 라고 하고, 그리스도를 크라이스트(christ)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 믿고 따르는 자들은 크리스천(christian)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기독교인이라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셔서 봉사하고, 섬기고, 자기 자신을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를 기쁜 마음으로 바치셨습니다. 그 희생을 통해 온 우주에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결국 구약과 신약에 따르면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때에 오셨고, 예수님은 그를 믿고 따르며,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마침내 천국으로 인도하실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히 성도들과 천국에서 함께 살게 하기 위해서 재림하신다는 내용이 성경의 핵심인 것입니다. 저는 그 예수님을 믿고 살며 어언 30년 넘게 교회를 섬기며 살다 보니 장로가 되었습니다. 장로는 높은 지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모본에 따라 성도와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귀한 종의 직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성경의 구약에서 십계명을 두 가지 핵심으로 요약한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이 첫째요, 그리고 나와 이웃과의 사랑이 둘째 계명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내 너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나니 그것은 사랑이다’라는 말씀도 하셨죠.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으로 비추어 보면 모든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요, 그래서 역사는 그와 그의 사랑 이야기 ‘History’입니다. 그 예수님의 가르침 그대로 사는 것이 크리스천의 축복이며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핵심인 사랑을 잃어버리는 신앙인들이 너무 많아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1102]
    • 문화
    2020-10-13
  • 안동의 문화는 곧 대한민국의 문화, 가슴 뜨거운 유일한 전쟁의 역사, 차전놀이!
    안동차전놀이는 경북 안동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행해지던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다. 마을 청장년들이 패를 갈라 나무로 만든 놀이기구인 ‘동채’를 서로 부딪쳐 승부를 겨루는 것으로 후삼국시대에 고을의 삼태사(김선평, 권행, 장길)가 고려 왕건을 도와 고창(안동의 옛 지명)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군을 무찌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전승돼 오고 있다. 당시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왕이 내려준 성씨가 안동 권씨, 김씨, 장씨다. 1천여 년을 이어오던 안동차전놀이는 일제 탄압에 1922년 중단됐다가 안동인들의 여망에 의해 재현돼 1966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 1967년 부산 제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문화공보부장관상, 1968년 대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해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1969년 1월 7일 국가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됐다. _박정호 기자 “대부분의 민속놀이가 미신에 기반을 두고있음에 반해 전쟁 승리의 역사에 기반을 둔 남성적 최고예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안동차전놀이는 한 팀에 수백 명씩 힘을 합세해 움직이기 때문에 협동 단결심이 강한 놀이로 민족의 혼을 상기시키는 국가적 민족적 차원에서 그 뜻이나 가치에 있어 가장 값지고, 훌륭한 대동놀이의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차전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싸움에서 이기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여겨 모두 최선을 다했고, 응원하는 사람도 각자의 편을 목청껏 응원했지요. 한마음 한뜻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공동체의식이 깃들여진 놀이입니다. 함께 소리를 지르고 힘을 쓰면서 신명이 고조되고 저절로 운동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각하게 됩니다. 이 놀이는 서민들의 삶을 노래하는 농경 사회에서 꼭 필요한 것이었어요. 이긴 편은 머릿수건과 신발을 하늘 높이 던지면서 환호를 했고, 하루 종일 노래와 춤을 즐기곤 했습니다.” 사단법인 안동차전놀이보존회의 수장이자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인 이재춘 회장은 “학창시절에는 그냥 자유롭게 살아왔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특별한 목적도 없고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가고 싶은 대학에 떨어지고 하니 의욕이 생기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뒤늦게 국립 전통문화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신문대학원을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건너건너 아는 어르신이 안동군수가 되셨는데 ‘집에서 놀면 안된다. 차라리 군에 취직을 하라’고 조언해주시더군요. 그래서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 공부하고 시험을 쳤는데 경북도에서 2등을 했어요(웃음).” “1992년, 제가 나랏돈을 받으며 공무원을 할 때 차전놀이가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시장님이 차전놀이 관련 부서로 저를 보내셨어요. 계속 근속근무를 하다보니 70년도에 전수생 후보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더니 인간문화재가 되었습니다(웃음). 대구에서 시민상, 도민상, 금오대상을 받고 또 작년에 문화부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많은 영광을 안았지만 이 고향에서 크는 게 제일 외롭덥니다. 안동이 유교 사상이 정착되어 가문이 살아있어야 안동에선 인정을 해주는 정서가 있어서 혼자서 살기 위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 스스로 참 잘 지낸 것 같네요.” "안동차전놀이는 지난 2000년 독일에서 개최된 ‘하노버 엑스포 2000’에 참가하는 등 그동안 각종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고 초청공연도 해왔습니다. 전야제에 카터 미 대통령 또 각국 주요인사가 참석하기도 했지요. 2016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한인문화축제와 2018년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열린 한인의 날 행사에 초청돼 공연하는 등 민간외교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별 생각없던 외국인들이 차전놀이가 시작하면 그 웅장함에 놀랍니다. 3100명이 모였었는데 그 중 300명이 차전놀이 공연을 했으니 그 규모가 상당했지요. 독일의 경우는 공영방송에서 소개되고 나니 특파원 7명이 오기도 했습니다(웃음). 뉴질랜드에 10명 정도의 대한민국 교포를 보냈고. 캐나다에 8명을 보내 교포들과 동호인을 모집해 진행했습니다. 2003년엔 미국에 처음 들어간 100주년 기념으로 하와이에서 현지의 해군이랑 교포들이 공연하기도 했어요.” 그는 독일 행사를 갈 때 기억나는 일이 있다며 소개했다. “300명이 비행기를 탔는데 차전놀이꾼들이다보니 얼마나 체격도 좋고 우람했겠습니까. 한 잔씩 주는 양주를 두세잔씩 들이키는 놀이꾼들을 보고 승무원들이 ‘군인이냐, 무슨 부대냐’ 질문하며 궁금해 하더라구요. 우연찮게 돌아올때도 똑같은 비행기를 탔습니다. 독일 정부로부터 상금을 탔기에 함께 간 300명이 12만원씩 나눠가졌지요. 본토에서 쇼핑할 시간이 없었으니 비행기에서 면세품을 다 사버려서 품절이 되어버렸어요. 승무원들이 놀라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웃음).” 국가에서 지정한 대부분의 문화 이수자들은 문화생활이 전업이지만 차전놀이 전수생, 이수자들은 다 탄탄한 직장이 있다며 이 회장은 자랑스러움을 표했다. 그래서 봉사라고 생각하며 임한다고 했다. “문화청장님이 이런 단체가 있는줄 몰랐다며 깜짝 놀라셨어요. 이수자, 전수생들이 다 강력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문화단체는 유일무이합니다. 우리가 모범 조직으로 선정되어서 매번 우수상을 타다가 최근엔 최우수상까지도 타서 상금도 받고 했습니다. 제가 안동문화원장으로 있을 때 처음으로 전국 유일한 여성 한마당, 도산별과, 노국공주 선발대회 등을 개최한 이력이 있습니다. 또한 자랑스러운 안동인상, 경북도 자랑스러운 도민상, 문화관광부 상도 수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회장은 “모두에게 감사하다 그냥 살아가는데 일을 터주었다.”라며 겸손한 말을 전했다. “행사가 있으면 제가 도포를 걸치고 나가지만 행사가 끝나면 바로 벗습니다. 한 명의 문화재로서 남의 구설에 오르지 않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안동의 민속이 바로 대한민국의 민속입니다. 예를 지키는 고장이라 일거수 일투족을 조심하며 겸손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라의 인물이라며 고향에서도 대접을 받으려 경쟁하고 싸우고 하는 것 보다 순수한 자기 분야에서 뽑힌 인물이 옳고 고장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 옳은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욕심을 안내야 생활이 편합니다. 욕심을 조금이라도 내기 시작하면 언젠간 과욕을 하기 마련이지요. 주어진 삶에 맞게 욕심을 내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우주의 원리에 맞게 사는 게 맞습니다.” 조만간 문화원 출신들이 주도를 하여 ‘안동문화사랑지킴이’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안동에서 국회, 행정 등 업적이 많고 지역에 봉사하는 사람들을 찾아 국가 기관이 아닌 문화단체에서 상을 주려고 한다 계획을 전했다. 문화로 쌓아올린 안동에서는 아주 뜻깊은 상이 생길 예정이다. “제 살아생전 평화 통일을 이룬다면 남․북한 동포들과 함께 차전놀이를 해보고 싶습니다. 서로에 대한 미움을 완전히 내려놓고 함께 어깨를 맞대며 말이죠,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며 이북의 동포와 함께 놀이할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고문 권영세 (안동시장) 김형동 (국회의원) 김호석 (안동시의회의장) 권덕칠 (안동교육지원청교육장) 류한상 (전 안동문화원장) •이사 이영걸 (풍산한지 대표) 김근환 (영남사 대표) 이재업 (동성환경 대표) 권영동 (전 고령부군수) 권석환 (안동문화원 이사) •감사 김명호 (전 경상북도의회의원) 김희엽 (안동호텔 대표) •전수교육조교 임규혁 (전 공무원) •이수자 이병국 (예총 경상북도지회장) 김우섭 (경북도민일보 국장) 김동학 (동창기획 대표) 정우일 (한돈식당 대표) 이장영 (경동창호 대표) 김건태 (전 때재배골프장 대표이사) 임치광 (대성MD의료기 대표) 권오율 (이안스크린 대표) 정태순 (대흥스틸 대표) •전수생 김상현 (안동문화원 과장) 이기종 (공무원) [1099]
    • 문화
    2020-08-27
  • 2020 ‘뷰티풀 환경미술대전’ 대상 수상 “제 작품을 통해 세상과 공감(empathy)하고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공간을 뜯어 붙여낸 듯한 그림. 절경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을 통해서 두 번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안은희 작가. 지난 7월 25일, 2020 ‘뷰티풀 환경미술대전’에서 그녀의 작품이 ‘황산절경’이 대상인 국회의원상을 수여하며 그녀의 삶은 더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어쩌면 살아가기 위해 그림에 온몸을 던진 안 작가의 예술과 삶을 들어보자­­. _박정호 기자 공간을 뜯어 붙여낸 듯한 그림. 절경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을 통해서 두 번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안은희 작가. 지난 7월 25일, 2020 ‘뷰티풀 환경미술대전’에서 그녀의 작품이 ‘황산절경’이 대상인 국회의원상을 수여하며 그녀의 삶은 더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어쩌면 살아가기 위해 그림에 온몸을 던진 안 작가의 예술과 삶을 들어보자­­. _박정호 기자 안은희 작가가 예술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다른 작가들과는 사뭇 다르다. 평소에 활력이 넘쳐 몸을 움직이고 운동하는 삶이 너무 행복했던 사람이었다는 안 작가. 가족들과 국내 곳곳을 다니며 함께 운동하고 공감하며 살아가던 그녀였다. 운동에 소질도 꽤 있어 대부분의 종목은 3개월이면 다 마스터할 정도였다고. 하지만 그게 몸에 부담이 되었는지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6년 전,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병원을 가보니 척추 디스크가 2번부터 5번까지 터졌다는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운동이나 여행을 다닐 수 없게 되었고 아이들과의 소통도 제대로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주부로서의 삶도 중요했지만 저의 유일한 활력소인 운동이 없어지게 되자 점점 활동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에서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갔고, 그와 함께 삶의 행복도 사라져간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회복하고자 명의를 만나도 제가 다시 걷는 일은 기적이라 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고 저조차도 너무 아프니까 누워만 있는 날이 반복되었습니다. 제 삶이 점점 시들어 갈 때쯤이었어요. 아이들 미술 선생님이 오셨는데 그림 그리는 게 눈에 확 들어오는 거예요. 아이들이 그린 산과 바다 그림을 보고 너무 그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건강상 가기는 무리였기에 그마저도 체념하기 시작했죠. 그렇지만 아이가 그린 그림을 걸어두자 그게 조금 위로가 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루 이틀 그렇게 아이의 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이 혹시 그림이 아닐까 싶어서 선생님께 저도 좀 가르쳐 달라며 복대를 차고 습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의 사진, 그림을 보고 하나둘씩 그려봤지요. 2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해주셨는데 그렇게 아이 방 한 면을 아크릴화로 채우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미술 숙제가 나오고 하면 제가 더 신나는 거예요. 그때 느꼈죠, 아, 그림이 나를 살리는구나 하고요.” 처음엔 사실화를 동경했다는 안은희 작가, ‘현실주의 작가분들이 그림을 정말 잘 그리지만 어느 한 부분이 답답하고 단순히 사진하고 똑같다는 점에 조금의 갈증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새도 나비도 나무도 그리기 시작하며 그림의 영역을 넓혔고 아이들과도 다시 소통을 시작하며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역시 사실적으로만 그리는 것으로는 제 마음을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앉아서, 누워서 그림을 그리며 행복했지만 제 본래 모습은 활동적인 사람이었기에 점점 다른 여러 감각도 만족 하길 바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수행평가 수업에 쓸 점토를 조물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런 입체감을 캔버스에 옮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선생님에게 어떤 재료를 써야 입체적인 느낌을 낼 수 있는지도 물어보고 스스로 공부했습니다. 그리하여 ‘모델링 퍼티’에 대해서 알게 되었죠. 그때부터 생각했어요. 입체적 그림을 그려내면 산도 들도 바다도 좀 더 내가 그 속으로 떠난 것처럼 여러 감각을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느낌이 들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입체적으로 그림을 표현해내는 재료를 찾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결국 저에게 딱 맞는 재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산과 바다를 갔을 때 모습을 상상하며 돌 하나, 나무 하나의 느낌을 살려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입체적으로 공간을 담아내는데 도전하기 시작한 거죠.” 처음 시작할 땐 돌 표현하는 게 마음에 차지 않았다는 안은희 작가, 답답한 마음에 그림을 거꾸로 그려보게 되었고 다시 그림을 뒤집었을 때 진정 입체감이 살아난 웅장한 바위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은희 작가는 지금까지 그림을 거꾸로 뒤집어서 그린다. “디스크 증상이 점점 호전되며 가끔씩 외출을 시작하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바닷가나 절벽에 가서 나무면 나무, 돌이면 돌을 직접 보고 만져봤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동영상을 매번 찍어왔지요. 그림을 시작하고 몸이 서서히 낫는 거예요. 그동안은 모작만 했는데 직접 나가서 보니까 너무 신기했어요. 매번 아무 생각 없이 그림에 빠져서 그렸고 그림을 드디어 완성했을 때쯤에는 늘 몸이 아파 찡그리고 있던 저의 얼굴에서 사라진 미소를 되찾은 걸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림 앞에 서있으면 나무 향기 바다 내음을 느낄 수 있었고 저의 지친 마음도 점점 채워져가며 몸을 많이 움직일 수 없어 답답했던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마치 제가 산에 직접 오르고 파도에 몸을 맡긴듯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때부터 저는 티비와 핸드폰에서 제가 가고 싶은 곳을 찾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늘 설레었지요 마치 여행을 가기 전 설레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림을 완성했을 때는 마음이 충만했답니다. 마치 그속에 속속들이 관광을 하고 온 것처럼 말이지요. 그 느낌 그대로, 만져봐도 진짜 돌처럼 느껴지게끔 더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부조’ 방식을 채택했어요. 거의 공간을 뜯어오는 느낌의 그림에 가까워진다는 평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픈 와중에도 남편은 항상 끊임없는 지지를 보냈다는 안 작가. 그렇게 그녀는 자신만의 방법, 그림으로 활력을 찾아갔고 작품수도 점점 늘어갔다. “하루는 남편이 ‘저런 그림들을 집안에 두니 그림이 답답해 보인다’라며 ‘그림만이라도 여기저기 여행을 떠나보내자’고 농담으로 한 마디 하더군요. 그렇게 전국대전에 제 작품을 출품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을 전국에 흘려보내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2년 동안 10여 회의 수상 결과를 이루어 냈습니다.” “전국대전에 출품하면 어떻겠냐는 주변의 권유에 마음을 비우고 내봤다”는 그녀. “출품할 때마다 수상을 하게 되어 전라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상을 다 받게 되었다”며 웃어보인다. “남편이 차에 그림 항상 싣고 옮겨주었고 안 들어가는 대형 작품은 차량을 대절해 운반을 했습니다. 가뜩이나 큰 작품인데 캔버스 대신 판넬에 그림을 그렸기에 더 무거웠죠. 그 무거운 그림을 옮기는데 2년 동안 남편이 군말 없이 다 도와줬습니다. 너무 고마웠어요. 그에 힘입어 다른 전시회도 나가고 작년, 개인전에 올리게 되었는데 혼자서 완판을 했습니다.” 처음 공모전에서 상을 받을 때 ‘안은희’라는 세 글자를 보고 “아~ 내 이름이 안은희였구나” 라는걸 느껴봤다며 감격해하던 안 작가. 우연한 기회로 (사)대구환경미술협회와 (사)한국전업미술관협회에도 가입을 하며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좋은 회장님들과 작가 선생님들을 만나 전시도, 여러 방면 출품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생겨 해외, 국내 전국 초대전 전시 또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뷰티풀환경미술대전에서 대상인 국회의원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가르침 없이 혼자의 힘으로 그리고 싶은 데로 나이프 가는 데로 간절한 마음만 담아 그린 그림이 수상을 하니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제 그림으로 많은 분들이 힐링 되기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고요. 새로운 창작 기법을 발전시켜 또 다른 세계의 작품을 만들고 지금까지의 그림에서 탈피하여 더 좋은 작품으로 여러분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작가로 거듭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몸이 아파 누워있을 땐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했지만 잠시라도 그림을 보면 여행을 간 듯 행복했습니다. 제 마음을 전하고자 소아암 병동에도 작품을 전시해 아이들이 만져볼 수 있게 해주는 재능기부도 해보고 싶습니다. 언젠간 저의 공감(empathy)이 가득한 그림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지 않을까요. [1099]
    • 문화
    2020-08-27
  • “환경에 대한 안타까움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실천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리싸이클링-예술로 물들이다>전에서 스티로폼, 펫트병을 활용한 _신재순 회장 작품 <I'm 비보이> (사)환경미술협회는 미술을 통한 환경운동을 목적으로 조직, 창립된 단체로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과 함께 전국 규모의 대표적 NGO 운동 단체다. 시민단체들과 연대, 공유하며 전국적으로 16개 광역시‧도 지회와 60여 개의 시‧군 지부, 2개의 해외 지부(미국‧프랑스)로 결성되어 있는 순수미술단체로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많은 미술인들과 대중들에게 알리는 의미 있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_박정호 기자 동양화, 서양화, 사진, 서예, 조각, 공예, 디자인, 민화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된 회원 4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사) 대구환경미술협회는 매년 환경 관련 전시회를 가지며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신재순 지회장은 협회 소개로 “여러 기관 및 단체들과 주관 및 협력으로 다양한 문화 예술행사 및 세미나,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환경 계몽운동의 일환으로 매년 재활용품을 활용한 재활용 전과 환경조형물 설치 및 대형 환경물 제작프로젝트를 개최하고 있고, 어르신이나 장애우 등 소외된 계층을 위해 시민과 함께하는 <찾아가는 문화마당> 활동 또한 매년 개최하고 있다.”라고 했다.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현재는 조금 주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코로나19도 회원들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어르신과 함께하는 ‘바람불어 좋은 날’ 부채그림 그리기를 통해 직접 찾아가는 체험행사를 펼치며 더욱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르신들이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갇혀있다시피 계셔서 즐거운 경험을 드리고자 기획했으며, 매년 해왔던 행사이긴 하지만 올해는 더욱 의미가 있었던 것은 보호자조차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르신들이 부채에 그림을 그리시고 좋아서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큰 기쁨을 느끼며, 세대 간의 벽도 허물고, 예술가들도 예술을 통한 사회적 봉사를 할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라고 했다. 작년의 경우, 대구 성서 노인복지회관 등에서 함께한 어르신들이 200명 정도, 올해는 몬스마뜨리스 데이케어센터, 안심성봉요양원, 더 행복 주간보호 센터에서 100여 명의 어르신과 함께 했다. 어르신과 함께하는 부채그리기 체험 대구 지역 미술단체 중 처음으로 자체의 협회 갤러리를 조성한 (사) 대구환경미술협회, 코로나19로 모든 국민들이 경제적인 고충을 겪고 있는 가운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술가들과 함께하고자 협회 차원에서 갤러리 공간을 마련했다. “토갤러리는 대구문화재단의 코로나 피해 예술 단체 지원금을 마중물로 협회 회원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통해 조성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지역 미술이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가 지역예술가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첫 갤러리 개관기념초대전으로 (사) 대구환경미술협회 회원 76명을 초대해 회화, 도예, 조각 등의 작품 80여 점을 전시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예술 영역의 확대라는 의미 외에도 예술 작품을 통한 환경의식 고취에도 의의가 있다고 했다.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참신한 미술품들을 접해보ㄴ고 더불어 우리가 쉽게 버리는 물건들이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는 ‘Junk Art’ 를 통해 자연과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대구환경미술협회 <신천에 부는 바람소리> 설치전 (대구 신천 둔치) “Junk Art란 말 그대로 버려진 물건들을 재활용해 예술품을 만드는 활동을 뜻합니다. 즉 버려진 고철을 용접하여 이어 붙이거나, 폐타이어 등을 쌓아 올리는 등 비교적 무거운 소재의 폐자재를 활용하여 작품을 제작하지요.(Heavy Junk) 하지만 우리 협회가 추구하는 소프트 정크(Soft Junk)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페트병, 깡통, 스티로폼 등의 재활용품을 활용해 만든 작품으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따라 하기 쉬워 환경, 교육, 예술적인 측면의 효과가 아주 큽니다.” 마지막으로 신재순 지회장은 대구 신천에 ‘환경미술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싶은 생각도 하고 있으며, 대구시가 추진하고 있는 ‘컬러풀 대구’의 이미지와 맞게 찬찬히 구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환경미술협회 대구광역시지회 부설의 토갤러리 개관 “신천에 흐르는 물을 이용해 재활용 정크 아트 등을 띄우고, 신천 둔치를 따라 소프트 정크(Soft Junk) 설치작품들을 전시하고, 그렇게 환경미술 비엔날레를 개최하면 컬러풀 대구의 정서에 맞게 관광객도 유치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한 수익 창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환경미술협회 대구광역시지회 신재순 지회장과 협회원들이 꿈꾸는 세상이 오길 기대하며 예술 작품을 통해 환경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길 바란다. [1098]
    • 문화
    2020-08-10

메디컬 검색결과

  • ‘통通~’하는 우리 동네 주치의! “대화하고 소통하며 아픈 곳을 훌훌 툭툭 털어내셨으면 합니다”
    경남 사천시 정동면에 위치한 대통한의원에서 지난 6월 16일, 사천시사회복지협의회를 통해 사천 지역 소외계층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기탁금 500만 원을 전달했다. 지역의 10여 개에 달하는 한의원 중 가장 최근에 오픈한 후 개원 1주년을 맞이한 이 곳은 젊고 소통에 능한 김선욱 원장으로 인해 주변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 기탁 역시 지역민들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 “1년 동안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고 사랑해주셨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하고 찾아보다가 사천시사회복지협의회를 알게되었구요.” 김선욱 원장과 대통한의원의 이야기를 주간인물이 담아보았다. _박정호 기자 고등학생 때 허리가 좋지 않았다는 김선욱 원장.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진전이 없었다고. 그 중 한의원 한 곳에서 치료를 받고 허리가 좋아진 그는 그때부터 한의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들 전문직을 택한 이유로 높은 소득을 생각하고 선택했다 생각하실 거예요. 하지만 저는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환자 개개인의 증상과 환경, 상황에 맞춰 치료방법을 의논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는 점에 매력을 느껴 한의사라는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죠. 한의사로 살아가며 환자와 피부와 마음을 맞대면서 직접적인 치료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진료하고, 상담하고, 침을 놓으면서 환자분과 속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늘어놓는 일이 정말 즐겁습니다.” 김선욱 원장은 복진, 설진, 안진, 촉진을 통해 환자들과 체온, 감정, 통증을 공유한다. 이를 통해 좀 더 섬세한 진단을 내려 성공적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척추를 교정하는 ‘추나’를 통해 척추 디스크 극복한 사례, 난임 부부에게 한약 처방을 통해 임신을 성공시킨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고. 심지어 재생불량성 빈혈을 가지고 있던 한 고령 환자는 다방면의 치료를 통해 혈구 수치가 2배 이상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김 원장에게 대통한의원은 어떤 곳인지 물어보았다. “흔히 아는 동네 한의원이죠(웃음). 허리, 어깨와 같은 생활 통증에서부터 가벼운 내과적 진료를 맡아서 하고 있고요. 저 같은 경우는 수련의 과정을 거쳤기에 추나, 비염, 한약, 교통사고 후유증 치료, 다이어트 관리까지 하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같은 경우엔 평생 후유증이 생길 수 있으므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셨는지 체크한 후, 후유증을 예방하기 위해 외상적 치료와 내과적 치료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다이어트 처방에 이용하는 ‘감비환’은 크게 4가지의 한약재로 이루어진 환이에요. 그 조합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위장을 보호하고 적은 식사량으로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어 식욕을 잡아드리면서 신진대사, 수분 대사를 올려서 가만히 있어도 운동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대통한의원은 이렇듯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한의학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오는 모든 분이 소중하기에 항상 후회없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진료를 한다”는 김선욱 원장. 이곳이 평생의 직장이라 생각하며 침을 놓을 수 있는 그날까지 계속하겠다는 그가 앞으로 꿈꾸는 한의사의 삶은 어떨까 물어보았다. “제가 사천에서 자리 잡으며 꿈꾸었던 것은 이 동네의 주치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몸의 통증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도 한의사로서, 우리 동네 주치의로서 많은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인터뷰 말미, 평소 지역의 주민들과 방문해주는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며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하는 그, 한 시간 남짓의 인터뷰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저를 믿고, 마음을 열고 치료를 받아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대통한의원은 모든 분들한테 열려 있으니까 많이들 찾아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환자분들이 많이 오신다고 해서 의료의 질이 떨어지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함께 근무하시는 분들이 수고스러우시지만 진료 시간도 평일 9시부터 20시까지 주말 9시부터 16시까지 하고 있으니 언제든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오십시오. 대화하고 소통하며 아픈 곳을 훌훌 털어드리고 싶습니다!.” 지역에 따뜻한 의료 서비스와 나눔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대통한의원과 김 원장의 귀추가 주목된다. [1120] •동신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동신대학교 한의과대학원 석·박사 수료과정 •동신대학교 목포한방병원 전문의 수련 •순천 금강한의원 진료원장 역임 •광주 장수한의원 진료원장 역임 •여수 365차한의원 진료원장 역임 •사천 제 3훈련비행단 한방진료과장 역임 •대한한의학회 회원 •대한침구의학회 평생회원 •대한약침학회 회원
    • 메디컬
    2021-08-10
  • 1대1 맞춤 상담을 통해 마음의 창을 새로 그려 넣다-Perfect-Beauty를 위한 장소, 에스마리의원!
    K-뷰티 열풍과 함께 한국의 성형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 분야로 우뚝 서고 있다. 미적 성형수술은 외과적인 시술, 수술을 이용해 기능적인 면을 개선하거나 첫인상 대부분을 좌우하는 외모를 개선, 복구 또는 개인적인 미적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성형수술이란 범주 안에도 부위별로 다양한 솔루션이 있지만 그 중 사람의 인상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바로 ‘눈’이다. 예로부터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듯 대부분 크고 또렷한 눈을 선호한다. 이로 인해 ‘눈 성형 잘하는 병원’을 호시우보(虎視牛步:호랑이같이 예리(銳利)하고 무섭게 사물(事物)을 보고 소같이 신중(愼重)하게 행동(行動)한다)의 자세로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더는 헤맬 필요가 없다. 울산 남구 문수로 331에 있는 ‘에스마리 의원’과 김덕영 대표원장이 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해줄 터, 섬세한 상담을 통해 찾아오는 환자에게 최대한의 만족을 주고자 한다는 김덕영 대표원장을 주간인물이 찾아가 보았다. _박정호 기자 에스마리의원은 안전하고 정확한 시술, 성형수술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눈 성형에 분야에 이름이 난 김덕영 원장과 1대1 맞춤 상담을 통해 다양한 솔루션을 제시받고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쌍꺼풀, 상안검, 하안검, 눈매교정(안검하수 교정), 앞트임, 뒷트임 등 다양한 분야에 많은 임상경험을 지닌 김덕영 원장은 언제나 고객에게 최고의 만족과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하는 ‘눈 성형’ 전문가다. “의사는 환자들의 증상에 대해 설명도 해줄 수 있고 처방이든 치료든 어떤 도움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잖아요.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외과에 지원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형외과로 받을 내디뎌 수련의 과정을 거쳐 6년 동안 눈 수술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환자도 하루에 세 명 이상 수술하지 않아요. 제가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인원만큼만 진료하려고 노력합니다(웃음).” 수술에 들어가기 전 어떤 의사는 종교에 상관없이 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는 예도 있다. 결과물이 잘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환자에게 신뢰를 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다. 김덕영 원장은 눈 수술을 할 때 기능적인 장애를 예방하기 위해 대화를 하면서 수술을 진행한다. “항상 환자의 안전과 결과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그는 수술 중에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차분한 노래를 틀어 수술에 안정감을 더한다.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완벽한 결과를 내고자 온 힘을 쏟는 의사다. “평소에 그림 그리기, 특히 선 긋기를 굉장히 많이 합니다. 아무리 지금이 디지털 시대라고 하지만 의사는 아날로그잖아요(웃음). 손으로 직접 수술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을 그리는 연습을 많이 합니다. 일직선인 눈은 없거든요. 눈이라는 게 유선형을 띄고 있기 때문에 디자인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유선(流線) 긋기 연습을 매일같이 하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코디네이터를 거치지 않고 환자들과 직접 상담을 한다. 상담을 통해 환자가 원하는 것을 듣고 맞춤 솔루션을 제시하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미리 알려주며 그 방향대로 수술을 한다. 병원 내의 코디네이터를 거치지 않고 원장과의 상담-수술로 이어지는 ‘One-Stop 체계’로 운영하기에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단다. “고객과의 소통 중에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을 원하는지를 들어보는 것입니다. 연예인 사진이나 참고자료를 가져오면 본인이 희망하는 바를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확실하게 말해드리죠. 왜 수술을 결정했는지 히스토리 테이킹도 함께 진행하여 겉과 속을 동시에 채워드리려고 합니다.” 에스마리의원은 성형수술과 함께 피부과 진료도 함께 하고 있다. 의료 장비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은 김 원장은 항상 최고의 의료장비를 갖추기 위해 많은 장비를 물색하고 있다. “가격을 떠나서 최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국산 의료장비를 애용하고 있다”며 자신 있게 말하는 김 원장. 그의 정직한 진료도 최첨단 장비만큼이나 빛을 발하고 있다. “색소, 기미, 착색, 여드름 등 모든 상담과 진료에 앞서 ‘뭐가 되고 싶은지’를 여쭤봅니다. 제가 구성한 관리 프로그램도 확실한 효과를 내지만 환자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구성하여 제시하는 게 더 좋아요. 너무 어린 나이거나 자연스럽게 없어질 만한 현상이면 시술은 삼가고 연고만 처방해드리는 때도 있습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잖아요(웃음).” 언제나 환자가 최고의 만족함을 보여야 비로소 마음을 놓게 된다는 김 원장. 타 병원에서 수술에 실패하여 마음을 다쳐서 오는 고객에겐 더욱 신경이 많이 쓰인단다. 수술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가 있는 재수술 환자를 만나면 그 마음까지 보듬어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진심이다. 그런 그의 마음이 통하는 걸까, 에스마리의원에는 타 지역에서 오는 재수술 환자도 상당히 많았다. 김 원장은 “모든 수술이 그렇지만 재수술에서는 책임감이 더 막중하다”며 마지막 멘트를 남겼다. “웃으면서 와 웃으면서 나갈 수 있는 병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고객과 같은 눈높이에서 몸도 마음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를 믿고 찾아와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웃음)” 솔직한 김덕영 원장과의 인터뷰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정직하고 책임감 강한 그를 통해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한다. [1118] •충남대학교 의학과 •울산대학교병원 수련의, 티아라 성형외과, 파르베 성형외과 •에스마리 성형외과/피부과 원장 •한국미용외과의학회 정회원 •대한지방흡입학회 정회원 •대한비만미용치료학회 정회원 •대한피부모발학회 정회원 •대한임상레이저학회 정회원 A
    • 메디컬
    2021-06-16
  • 24년의 임상 경력, 투명하고 정직한 진료로 보답하는 양심치과“치과는 통증 완화가 우선입니다”
    치과를 찾아야하는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걱정은 몇몇 치과로 인해 알려진 ‘과잉진료’다. 단순하게 찾은 치과에서 여러 개의 충치가 있다며 당장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감당해야하는 큰 비용과 수고가 염려되는 것이다. 환자는 과잉진료를 의심하고 치과의사는 일부의 문제고 환자의 오해라 주장하는 팽팽한 대립 속, 양심치료를 한다고 알려진 치과들에 더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거제연세치과의 최병철 원장은 치아가 시리거나 아프다고 해서 모두 충치는 아니라고 말한다. “심한 양치질로 인해 치아 표면이나 잇몸이 손상되었거나, 산도가 낮은 음식류, 이온음료 또는 뜨거운 음식을 섭취할 때도 시릴 수 있는 게 치아입니다.” 양심적인 진료와 함께 환자들의 통증 완화에 더 심혈을 기울이는 의료인, 최병철 원장을 만나보았다. _박정호 기자 수도권에서 오랫동안 치과를 개원해 운영하다가 거제에 터를 잡게 되었다는 최병철 원장. “교육 이수를 위해 외국에 다녀오고, 다시 새로 개원할 때쯤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거제에 어머님이 혼자 계시다보니 가까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해서 내려오게 되었지요. 처음에 고현시장에서 5년 정도 있다가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거제연세치과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정서에 맞게 넓은 대기실과 환기가 잘 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통유리로 탁 트인 진료실은 치통으로 인해 꽉 막힌 답답한 마음도 시원하게 뚫어주는 듯 했다. 뿐만 아니다. 환자의 통증을 줄여주기 위해 무통 마취 앰플도 체온에 맞게 보온하여 사용하는 세심한 배려와 24년 경력의 노하우, 정직함과 친절함으로 근무에 임하는 의료진들의 진심 또한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요즘 CT가 보편화돼있지만 활용성에 따라서 가치가 다르죠. 저는 임플란트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수술을 합니다. 상악동 거상술 같은 고난도 수술도 문제가 없지요. 또 무영등을 달아놓으니 확실히 시야 확보가 잘 되어서 수술에 임할 때도 수월하더군요.” 실력뿐 아니라 거제연세치과는 친절한 병원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방문했던 환자들이 음식을 갖고 다시 찾아와 인사를 할 정도, 고현초등학교 구강검진 만족도 조사에서도 만족도 최다점수&불만족 0표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서울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쌓은 서비스 마인드를 모든 직원들에게 전파한 결과다. “특히 치과는 환자분들에게 안정을 줄 수 있는 서비스적인 요소도 신경을 써야합니다. 직원들에게도 친절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지요. 컴플레인도 굉장히 적고, 재방문 환자와 정착환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다들 같이 노력해주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뉴욕대학(NYU) 임플란트 코스를 수료한 그는 임플란트 식립에 특히 자신이 있다. 상악 4개 뼈 이식을 동반한 임플란트 수술도 1시간 안에 끝낼 정도다. 수술 시간과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수술 후 관리도 굉장히 철저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첫 치과를 개원하며 임플란트에 관심이 생겨 교육 코스를 밟다 보니 24년 정도 되었네요. 시간이 지나갈수록 임상 경험이 쌓여 어려운 수술도 침착하게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세치과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마취를 위해 앰플을 보온하여 사용하고 있다. “마취통증이라는 게 어쩌면 가장 큰 숙제인데 이 또한 통증을 완화하는 노하우입니다. 따뜻하게 해주면 체온과 비슷한 온도로 신체에 투여되기 때문에 통증을 덜하게 하고 신체에도 별 무리없이 빠르게 마취가 진행이 됩니다. 무통마취라고 하지만 마취하는 과정엔 결국 바늘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마저도 가능하면 환자분들이 불편을 덜 느끼게 신경을 쓰고 연구를 해서 개선해나가고 있습니다.” “아픈 사람 낫게 해주는 것과 양심에 맞게, 당당하게, 저에게 부끄럽지 않게 진료하는 것이 제 가장 가까운 목표입니다. 치과는 통증 완화가 우선입니다. 신경치료 같은 경우는 정말 아프거든요.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치료해드리는게 제가 할 일이지요. 환자분들이 편안히 치료를 받으시고 치아가 없어 불편하셨던 분들이 임플란트 수술 후 잘 씹으신다고 후기를 들려주시거나 할 때 굉장히 보람을 느끼고 행복합니다.” 이곳은 어린 친구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치료 중 너무 많이 움직여서 다칠 위험이 있기에 치과 입장에서는 진료 난도가 높다. 하지만 연세치과는 아이들 전용 보호장치로 고정을 한 뒤 안전을 확보하여 치료를 해서 안전한 진료가 보장되어 있었다. “최근에도 아이 한 명이 왔는데 기억에 남습니다. 예전에는 바로 진료가 가능했는데 요즘은 환자가 많아서 검사하고 당일 진료가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아이가 아픈데도 시간이 안되어서 치료를 못하다가 마치기 20분 전에 전화가 온 겁니다. 아이가 너무 아파한다구요. 직원들이 마감을 멈추고 아이의 접수를 해주고 마감 넘어서까지도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너무 고맙다고 하시고 아이도 한결 나아 보였죠. 재방문하여 아이를 다시 만났을 때 다 나은 모습을 보고 부모 마음이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병원 식구들에게도 감사했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호평을 해주는 환자들에게 오히려 더 감사하다”며 인사를 전하는 최 원장. “앞으로도 더 좋은 의료 서비스와 정직한 진료를 하겠다”라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다른 병원을 가게 되더라도 진료비용이 터무니없이 싸면 조금 의심을 해보라고 합니다. 한번 때운 치아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에요. 저는 환자분들한테 엑스레이를 보여드리며 전체적인 구강상태를 설명을 진행합니다. 있는 충치들을 일단 확인을 다 시켜드리고 급하게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부분만 먼저 손을 봅니다. 다른 곳에서 진료하고 오시는 경우에도 정기적인 체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102]
    • 메디컬
    2020-10-13

맛집탐방 검색결과

  • 2021 대한민국 소비자 브랜드대상 만점 수상, 9가지 메뉴의 구방미인 프랜차이즈 방구족발!
    방구족발의 곽봉석 본부장(좌) 과 반구동 대표(우) 지난 6월 24일, 대한민국 소비자브랜드 대상위원회가 주최한 ‘2021 대한민국 소비자 브랜드대상’에 ‘BG푸드시스템’의 족발 프랜차이즈 ‘방구족발’이 150점 만점에 150점 만점을 받으며 선정되었다. 방구족발은 2015년, 진해 본점을 시작으로 경상남도 일대에 10여 개의 점포를 운영 중이다. 10년 전, 오일장에서 터를 잡아 장사를 시작해 다년간 쌓아온 반 대표의 노하우와 레시피로 개발해 낸 ‘데리야끼 족발’, ‘맵달 불족발’ 등의 특별하고도 창의적인 메뉴는 방구족발만의 경쟁력. 모든 연령층의 입맛을 ‘저격’하며 입소문을 타고 이름을 알리고 있다. “방구족발은 정감가는 브랜드입니다. 방구라는 이미지 자체가 익숙하기도, 촌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고객분들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가 없더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구요(웃음).” 유쾌한 반구동 대표와 방구족발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_박정호 기자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반 대표는 마음 한 켠에 ‘장사를 하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처음 요식업계에 발을 들이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간절한 마음과 막역한 친구의 도움으로 방구족발을 오픈하게 되었다. 시작은 지역 오일장에서 천막을 치고 길에서 족발을 삶아서 판매하는 노지 장사였다. 꼭 나만의 장사를 하고 싶었던 그의 진심이 스며든 것일까, 방구족발은 장터에서 독보적인 맛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심지어 전수 창업 요청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반구동 대표는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수많은 분들의 호응에 힘입어 준비과정을 거쳐 진해에 방구족발 점포를 차리게 되었어요, 장터에서부터 입소문이 많이 나서인지 줄이 끝없이 이어졌어요(웃음). 주변에서 아낌없이 주시는 사랑과 응원에 힘입어 더 다양한 곳에서 방구족발을 만나게 해드리고 싶어 2020년, 공정거래위원회에 상표등록을 하고 가맹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방구족발은 현재 경남권을 넘어 전국구로 발돋움을 준비하고 있다. 반 대표는 프랜차이즈 본사로서 항상 초심을 잃지 않겠다며 “현재 상황에서 안주하지 않고 손님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매일 더 나아지는 방구족발을 선보일 것”이라며 끊임없는 노력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이를 위해 밤낮없이 레시피 연구와 신메뉴 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그의 노력은 꾸준히 사랑받는 아홉 가지 메뉴가 증명해주고 있다. “모두의 입맛이 다르기에 메뉴 개발에 있어서 대중화에 초점을 맞춰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다양한 메뉴가 탄생하게 되었죠. 대부분의 족발집은 냉족발, 온족발, 불족발 정도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다면 방구족발은 아홉 개의 메뉴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어요. 항상 제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보다 소비자분들께서 인정하는 맛을 개발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습니다.” 반구동 대표는 창업주로서 많은 고충을 겪어 봤기에 가맹점주와의 상생에서도 탁월함을 보였다. 신설 가맹점의 홍보가 필요한 타이밍에 광고 지원을 해주기도 하고 변동이 심한 족발 원재료의 특성을 파악, 시장 분석을 통해 차액 지원도 아낌없이 해오고 있다. 점주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아닌 점주가 ‘필요로 하는 것’을 융통성 있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프랜차이즈 박람회와 다른 성공사례들을 많이 연구해왔습니다. 갈수록 배달사업이 성행하기 때문에 가맹점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창업하여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해 다양한 규모의 창업 모델을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또 소자본 창업으로서 가맹점주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가맹비를 받지 않고 있죠. 가맹 문의를 오시는 분들에겐 절실함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착한 프랜차이즈’가 되자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경영에 임하고 있습니다.” 반구동 대표는 처음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지역구의 여러 사회시설에 족발을 기탁하며 ‘보이지 않는’ 선행을 이어오고 있었다. 2018년부터는 그의 기탁활동을 꾸준히 지켜본 한 라이온스 회원의 권유로 동진해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사회 나눔을 실천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함께하는 점주들이 모두 성공했으면 한다”는 그는 “그것이 곧 본사의 성공”이라고 말하며 “현 가맹점주 그리고 예비 가맹점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는 처음 오신 예비 점주님께도 ‘성공하고 싶으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라는 말을 합니다(웃음). 그 모습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라고 느껴지실 수 있겠지만 저는 프랜차이즈 본사로서 모자람 없이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에 강하게 말씀드릴 수 있죠. 여기 끊임없는 레시피 개선, 전례에 없던 다양한 개성을 가진 메뉴들 그리고 오로지 여러분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본사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창업을 고민 중이신 예비 점주님들께서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되셨다면 언 제든 방구족발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1121] 가맹문의 : 1600-8455
    • 맛집탐방
    2021-08-23
  • 한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대패가 1900! 평생 함께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로 자리잡다!
    최근 SH컴퍼니에서 운영하는 대패삼겹 요리 전문 브랜드 ‘대패가1900’이 부산은행과 프랜차이즈론 MOU를 채결, 현 가맹점주 및 예비 가맹점주들을 위한 창업자금을 지원했다. 프랜차이즈론은 BNK 부산은행이 본사의 재무 건전성,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심사해 검증된 프랜차이즈에게 지원하는 맞춤형 대출 제도다. 경쟁력 있는 프랜차이즈로 인정받은 대패가1900. 뛰어난 외식경영인인 김남규 대표이사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대패가1900의 탄생스토리가 궁금합니다. A. 어머니께서 부산 양정에서 대패 삼겹살집을 운영했습니다. 동네 맛집으로 유명했어요. 바로 옆에 대형 고깃집 프랜차이즈가 입점했는데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내는 정도가 아니라 대형 프랜차이즈 가게가 폐업할 정도였습니다(웃음). 어머니의 가게가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 프랜차이즈 관련 서적을 구매하며 공부를 시작했어요. 저도 2016년, 부산대학교에서 대패가1900을 열게 되었죠.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처음 창업했을 때는 홀 위주의 일반적인 대패삼겹살 가게였습니다. 매출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지만 프랜차이즈 사업 모델로서는 큰 메리트가 없는 매출 대였어요. 위치가 외진 곳에 있어서 재방문 고객보다 신규 고객들이 터무니없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돌파구를 찾고자 새로운 형태로 홍보를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2017년, 배달서비스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주문이 하루에 5~10개 정도만 들어와도 브랜드와 맛을 알리기에는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배달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첫날엔 배달 5건으로 시작했지만 한 달이 지나갈 때쯤 하루 20~30건으로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어요. 저의 도전이 성공한 것이었죠. 그런데 저는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배달이 잘 되는 상권에서의 대패 삼겹살 배달 전문점 매장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친구에게 창업 자금을 빌려 배달 전문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자금이 여유롭지 않아 중고 집기류를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게 사기 위해 창업초기 친구와 폐업하는 가게를 찾아다니면서 집기류를 구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오픈한 첫날에 주문이 30~40건씩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확실한 가능성을 본 저는 이걸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전국 최초로 대패삼겹살 배달 프랜차이즈를 런칭하게 되었습니다. Q. 대패가1900만이 가진 강점이 있을까요? A. 전국 최초 대패 삼겹살 배달 전문점으로서 오랫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은 ‘맛’과 ‘구성’이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대패삼겹살만을 취급, 연구하고 요리를 하므로 특수부위인 ‘대패 삼미살’과 직접 개발한 매운 소스로 조리한 ‘불대패 삼겹살’ 등 다양한 메뉴가 많습니다. 이외에도 저희는 대패가1900만의 무기를 항상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배달시장은 갈수록 더 포화 상태가 될 것이고 경쟁도 물론 치열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초대형 프랜차이즈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업체지만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를 높일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샵인샵 브랜드들을 늘려서 언제든 유행에, 입맛에 맞출 수 있는 그런 브랜드가 되고자 합니다. 맛에 대한 경쟁력을 계속해서 갖추기 위해 자체 소스 제조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식자재 유통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으십니까? A. 3PL 업체를 통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사업이란 게 물류 유통 기반 사업이다 보니 원활한 식자재 공급이 가장 중요하더군요. 처음엔 유통 기반 사업에 관한 경험이 적어서 시행착오를 겪곤 했습니다. 점주님들께 클레임이 들어오는 일도 있었죠. 사실 지금도 들어 오고 있긴 합니다(웃음). 사업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유통 관련 공부를 하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많은 변수들에 대응하기 위해 품질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을 계속하고 있어요. 클레임이 걸렸을 때 본사에서 보상은 물론이고 해당 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지만 그 건을 마무리 짓습니다. 100%라고는 말을 못 하겠지만 매 순간 100%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Q. 가맹점주와의 상생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A. 대패가1900이 잘되는 곳도 있지만 안 되는 곳도 있기 마련입니다. 제 경험상 장사라는 것은 기복 없이 꾸준히 잘 돼야 좋은 것이거든요(웃음). 그래서 본사에서는 초량갈비쌈냉면, 야한 쭈꾸미, 킹치찌개찜 등 샵인샵 브랜드를 만들어 원하시는 가맹점주분들께 별도의 비용 없이 브랜드들을 입점시켜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가맹점에 유통마진을 최대한 낮추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축산물 및 식자재 유통 브랜드를 런칭하고 직접 유통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 경쟁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2018년 1월 첫 가맹점을 오픈한 이후 80개 이상의 가맹점이 생겼고 폐업을 한 곳은 10개가 채 안 되어요. 폐업률이 낮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저희를 믿고 함께 해주신 점주님들을 위해 최고의 수익을 드리고자 본사에서는 두 발 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부분들이 많지만 가맹점과 본사가 같이 성장하며 상생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믿고 기다려주신다면 더 좋은 결과로 보답해드리고 싶어요.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A. 지금은 배달을 중점으로 운영하는 대패가1900이지만 다양한 가맹점주님들의 니즈에 맞추기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홀과 배달을 병행하는 매장도 본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런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특수 상권인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대형마트, 휴게소에도 대패가1900을 입점시킬 예정입니다. 그리고 현재 배달 패키지 자체도 업그레이드하여 요즘 감성에 맞는 마케팅을 진행할 계획이에요. 끊임없는 연구 개발을 통해 가맹점주님들이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나아가 해외 진출도 준비 중입니다. K-푸드의 열풍에 더불어 대패가1900을 동남아시아에 알리는 거죠(웃음). 한 층 업그레이드된 브랜드를 탄생시킬 거예요. 2, 3년마다 계약을 마치고 없어지는 브랜드가 아닌 평생 지속적으로 운영하실 수 있는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코로나-19 종식 이후까지 대비하는 중입니다(웃음). 그리고 최근 독거노인복지재단에 저희 대패가1900의 도시락 기부를 진행 중입니다. 아직은 제가 개인적으로 추진하는 일이지만 함께하길 원하시는 가맹점주님들이 있다면 본사 차원에서의 자선 활동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싶습니다. Q. 지면을 빌어 전달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지금까지 대패 삼겹살 전문점이라고 하는 곳들을 보면 대패 삼겹살 외에 다른 품목까지 취급하는 곳들이 많습니다. 이곳이 진짜 대패 전문점인가? 할 정도로 말이죠. 대패가1900은 모든 메뉴를 대패 삼겹살로 만들어 제공하고, 어디서든 다양한 대패 삼겹살 전문 요리들을 맛보실 수 있게끔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부족한 게 많지만 전 국민이 대패 삼겹살을 떠올렸을 때 ‘대패가1900’이라는 브랜드가 떠오르게 만들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커피 하면 ’스타벅스’, 치킨 하면 ‘교촌치킨’, 피자 하면 ‘도미노피자’, 그리고 대패 삼겹살 하면 ‘대패가 1900’이 떠오를 수 있게요(웃음). 꼭 대패 삼겹살을 대표하고 국내에서 유일한 ‘진짜’ 대패 삼겹살 전문점이 되겠습니다. [1120]
    • 맛집탐방
    2021-06-30
  • 더 가볍게, 더 맛있게, 더 건강하게!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건강한 '식단'
    코로나19로 인해 그 무엇보다 건강이 큰 재산인 요즘, 가장 기본적인 육체를 단련하는 운동은 이제 나 자신을 위한 필수 항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헬스 열풍’과 함께 속에서부터 건강함을 채우는 다양한 ‘식단’들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에서도 운동보다 식단이 더욱 중요하다는 다양한 결과들이 도출되며 현대인들에게 건강한 식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매일 도시락을 싸서 들고 다닐 수는 없는 상황이다. 밖에서 편안하게 건강한 ‘식단’을 챙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카페가 등장해 바쁜 현대인의 일상을 메워주고 있다. 스무디(Smoothie)와 닭가슴살(Chicken Breast)을 합친 이름의 스무치(smoochie) 카페가 그 곳이다. 닭가슴살을 갈아 넣은 스무디, 다양한 메뉴의 식단을 개발, 소비자들의 건강과 입맛을 사로잡는 김다운 대표와의 인터뷰를 Q&A 형식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유일무이한 ‘식단’ 카페입니다. 창업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A. 사실 저는 기계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개인적인 건강 문제로 운동을 시작하며 식단을 접하게 되었죠. 창업 당시에 잘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죠. 전공 공부를 할 때 기계의 부품과 사람의 몸을 비교하여 이야기했었습니다. 기계에 더 좋은 연료를 넣으면 기관이 더 오래가듯, 사람 몸에도 접목을 시켜 몸에 더 좋은 연료를 제공해보고 싶었습니다. Q. 대표님의 경영철학이 궁금합니다. A. 맛있고, 건강하고,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맛있다는 건 먹고 나서 또 생각이 나는 식단, 가볍다는 것은 먹고 나서 속이 더부룩하지 않은 식단, 건강하다는 것은 다이어트를 하시는 분들도 부족함 없이 드실 수 있는 식단을 내어드리는 겁니다. 항상 시장조사를 통해 다양한 재료들을 확인하고 개선점을 찾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다 보면 쓸 수 있는 재료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알룰로스, 스테비아 등 그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대체 조미료들을 접목, 안주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어요. 많은 사람에게 나은 삶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들어가는 재료는 영양학적으로 제가 다 선정, 맛은 어머니께서 잡아주시곤 합니다(웃음). Q. 스무치의 주력 메뉴에 관해서 설명해 주신다면. A. 아무래도 상호명인 ‘스무치’ 겠죠. 말 그대로 닭가슴살 스무디에요. 식단의 지표가 되는 음식이 맛이 없으면 삶이 무기력해집니다. 매일 닭가슴살만 먹는 식단을 유지해보신 분들은 공감하시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먹고 싶은 마음으로 비린 맛을 잡아내고 닭가슴살이 들어갔다고 하면 못 믿으실 정도의 맛을 자랑합니다. 또 밥 메뉴 같은 경우에는 옵션이 있다. 곤약밥, 현미밥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죠. 열량을 현미밥 기준 600kcal, 곤약밥은 300kcal로 맞추어서 내어드립니다. 현미밥은 하루 세끼 건강식으로, 곤약밥은 하루 여섯 끼를 드시게끔 열량을 설계했습니다. 되짚어 보면 사람이 제일 빠르게 성장할 때가 바로 갓난아기 때입니다. 모유 수유를 하면 3시간 간격을 두고 배가 고파서 울죠. 탄수화물, 단백질이 소화되는 시간이 보통 3~4시간입니다. 쓸 수 있는 만큼만 먹는 것이죠. 그 메커니즘에 맞게끔 여섯 끼를 드실 수 있게 설계를 했습니다. Q. 스무치만의 경쟁력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A. 경쟁력은 바로 유일무이함에 있습니다. 현대인들 삶을 봤을 때 건강과 운동에 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접하기 쉬워지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더 중요한 건강한 ‘식단’을 접할 수 있는 가게는 흔하지 않아요. 몸을 만들고, 식단을 유지하는 소비자로서는 갈 곳이 없습니다. 밖에서 식사 약속을 잡을 곳도 마땅치 않죠. 하지만 건강한 ‘식단’을 찾는 분들의 고민을 바로 해결해줄 수 있는 곳, 바로 ‘스무치’ 입니다. 아직 모르시는 분들은 있어도 한 번만 오시는 분들은 거의 없어요(웃음). Q. 가맹사업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A. 목표는 항상 크게 잡으라고 했죠. 5년 안에 300개 매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가맹점주분께 본사 입장에서 해드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드리려고 해요. 비용의 거품을 모조리 다 빼 드리려고 합니다. 재료도 각자 더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은 각자 구매할 수 있게 자유를 보장해 드립니다. 하지만 레시피에 들어가는 핵심재료들은 본사에서 드려요. 물론 거품을 빼서 제공한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발주 단위도 kg 단위가 아닌 100g 단위로 발주를 받습니다. Q. 지면을 빌어 전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모두가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가족과 같은 ‘사람’이니까요. 가맹점주님들한테는 본인이 하시는 만큼 벌 수 있는 사업장을 제공해 드리고 싶습니다. 예비 가맹점주님께 환경은 제공해 드릴 테니 함께 뛰어가자고 말씀드리고 싶네요(웃음). [1115]
    • 맛집탐방
    2021-04-23
  • 운영하고 싶은, 갑・을 없는 프랜차이즈! 지역, 점주와 꾸밈없이 소통하는 천미리 커피
    커피 원두를 들고 환하게 웃는 최명화 대표 언론에 ‘선한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며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와중에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착한 가게들이 하나, 둘 조명받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결식아동, 독거노인, 복지시설에 도움을 주는 선행이 늘어나는 요즘. 경상남도 김해시의 한 카페에도 ‘결식아동 꿈나무 카드, 컬러풀 드림카드를 소지한 아이들에게 언제든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따뜻한 현수막이 걸려 화제가 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핫프랜차이즈 ‘천미리 커피’다. 예전부터 지역에 다양한 나눔을 실천해오며 ‘갑, 을 없는 프랜차이즈 회사’라는 표어로 점점 이름을 알리고 있는 핫한 프랜차이즈다. 커피가 생각나는 나른한 오후, 천미리 커피의 최명화 대표와 실장과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카페의 따뜻한 나눔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어떤 활동을 해오셨습니까? A. 처음 시작한 매장 주변 동네는 결식아동이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어려운 아이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나누어 ‘저런 어른이 있구나’ 하며 마음에 온기를 품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무작정 현수막을 걸어두고 매장에 파는 음료든 비매품이든 나눠주기 시작했죠. 아이들이 와서 수줍게 음식을 받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날은 종일 기분이 좋았어요(웃음). 현재 천미리 커피는 수익금의 일부를 김해시에 기부, 지역아동센터를 통해(셀라 신나는 집, 성 바오로 배움터, 풀코스모스지역아동센터) 음료와 디저트, 되물림 하는 옷 등을 기탁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코로나 19로 노고가 많으신 소방서와 보건소 등에도 음료와 디저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추후엔 지역자활센터와 협력을 통해 소외계층 일자리 창출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Q. 천미리 커피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원래 김해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했었습니다. 원활하게 운영하며 수익도 상당했어요. 하지만 본사의 일방적인 의사결정과 요구가 너무 잦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협화음이 잦게 되었고 수많은 마찰 끝에 결국 매장을 양도양수 하게 되었죠. 본사와 점주의 갑을 관계가 싫었기에 ‘완벽한 상생’을 모티브로 브랜드를 론칭하게 되었습니다. 점주님들이 우리 천미리 커피의 이름을 걸고 영업을 하며 수익을 낼 때 보람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천미리 커피가 탄생하게 되었죠. Q. 어떤 것들을 중점으로 창업 준비를 하셨습니까? A. 창업을 결정하고 1년 동안 매일같이 협력사와 좋은 원두를 찾으러 다니고 시식하며 브랜드의 큰 틀을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웜 클라우드’, ‘고고 커피’ 등 유명한 카페를 찾아가면서 로스팅에 대해서 배우고 지향하는 커피 맛의 형태를 잡아가기 시작했죠.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매일 에스프레소를 20종류씩 맛보았어요. 그러다 보니 속이 너무 쓰리기도 하고 다른 음식을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모를 정도에 이르기도 했습니다(웃음). 단 한잔의 커피로도 기분 좋은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고 남녀노소 누구나 쓰지 않고 맛있는 커피를 선보이고 싶었어요. 그 결과 지금은 저희가 브라질, 에티오피아 등 산지별 커피를 저희만의 비율로 생산하는 ODM 원두를 로스팅해 가맹점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지금의 천미리 커피의 원두가 탄생하기까지 정말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것 같습니다. Q. 천미리 커피의 경쟁력은 무엇입니까? A. 대부분 소비자와 예비 창업자분들께선 규모가 있는 중·대형 프랜차이즈 창업을 결심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대형프랜차이즈는 영업권을 보장받기 힘들며 피드백 또한 매뉴얼화 된 간단한 교육만 강조하기 마련이죠. 영업에 대한 제한, 규정이 본사의 수익구조와 직결되기에 이 또한 경험이 적은 예비 창업자분들께선 고려하기 어려운 내용이므로 창업결정 후 후회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저희 천미리 커피는 본사에서 점주님들께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영업 방법에 대한 교육, 재료에 대한 이해, 소비자들의 니즈 파악 등 다양한 교육과 담당 슈퍼바이저를 통해 즉각적인 피드백을 드리고 있습니다. 점주님들께 든든한 조력자이자 함께하는 가족 같은 회사가 있다는 것을 꼭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웃음). 또 원두도 대부분 미리 로스팅하고 보관했다가 상자 단위 출고를 하기 마련인데 천미리 커피는 신선도를 고려해 매장에서 필요한 만큼 발주를 넣으면 즉시 로스팅에 들어가 로스팅한 지 24시간 내로 커피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메뉴 개발에도 자문을 많이 구하는 편입니다. 메뉴에 대한 방향성, 발전성에 대해 현장에서 정보를 많이 모으고 있죠. 운영하고 싶은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쉬지 않고 소통하고 있어요. Q. 갑을 없는 프랜차이즈,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입니까? A. 설비, 인테리어 업체, 재료 선정에서도 단가가 더 저렴하고 좋은 업체가 있다면 그곳을 선정하라고 말씀드려요. 과거 제가 점주로서 느꼈던 불합리한 제도를 모두 없앴습니다. 그리고 매장 관리를 위해 주 1회 이상 각 점주님을 찾아갑니다. 실무 경험을 토대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을 잡아드리려고 해요. 지역마다 상권에 대한 특성을 분석해 맞춤 경영을 할 수 있게끔 자주 면담을 진행합니다. 또 불필요한 재료의 강매, 의사결정 권한이 없는 일방적 통보 등을 없애고 점주님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피드백을 드리고 있습니다. Q. 끝으로 전하고 싶으신 메시지가 있다면... A. 중·대형 프랜차이즈의 수익구조, 규모만 보고 창업 결정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커피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이미지때문에 적성도 고려하지 않은 채 수익성을 두고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를 창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맹 계약이란 결정이 쉬운 결정이 아니고 당연하게 일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천미리 커피는 가맹 상담을 진행하고 2주 정도의 시간을 가진 뒤 신중하게 본계약 도장을 찍고 있습니다. 어떤 동네에 가도 성공하는 브랜드가 되어 점주님들이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습니다. 점주님들이 성공해야 본사도 성공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렇게 점주님과 고객님들께 진심인 회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천미리 커피는 돈만 있으면 다 하는 프랜차이즈가 아닙니다. 상생과 점주님의 성공을 위해 먼저 마음이 통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웃음). [1113]
    • 맛집탐방
    2021-03-31
  • 양산 대표 맛집 선정! 건강한 음식 전도사로 나아가는 여정
    2017년 양산맛집 향토음식 경연대회에서 대상인 ‘삽량상’을 수상했던 산들바람, 2020년 양산맛집에도 선정되며 그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그 후 3년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 동안 산들바람의 김숙희 대표는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주방에서 내어 주던 약선요리 전문가에서 이제는 교육자의 입장으로 탈바꿈했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서 산들바람의 비법을 전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몸에 병이나 뭘 먹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산들바람의 김숙희 대표를 주간인물이 조명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양산시 하북면 신평강변로 82에 위치한 산들바람. 이곳을 책임지는 김숙희 대표는 초심을 한 번도 잃지 않고 15가지 반찬을 손님상에 올리기 직전 바로 만들어서 낸다. 2020년 선정된 양산 맛집 선정은 심사위원 16명이 7~8명으로 팀을 만들어서 환경, 음식, 방문자들의 반응, 시식 등을 종합해 총점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달성해야 선정되는 강화된 심사방식을 채택한 상당히 난이도 있는 ‘검증 절차’였다. “본선에 진출한 16곳 중 6곳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어요(웃음). 지난 회보다 선정 기준이 까다로워졌지만 모든 부문에서 자신이 있었어요. 신선한 재료를 쓰는 건 당연한 일이고 어떻게 맛있게 해야 모두가 한 상을 맛있게 드시고 떠날지만 생각했어요. 심사 도중에도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죠. ‘맛집이라고 하면 김치는 무조건 각자 집에서 담아야 한다. 특유의 맛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죠.” 앞서 말했듯 김숙희 대표가 구한 식재료는 단순히 신선함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사시사철 전국의 산을 다니며 재료들을 찾아오고 인근에 위치한 통도사 안의 밭에서 배추와 무를 유기농으로 재배한다. 과거 유기농 배추 농사 경력이 있기에 쌓아둔 노하우로 아삭한 식감의 배추를 내어놓는다. “나무를 키울 땅이 없으니까 엄나무, 뽕나무, 구지뽕, 두릅을 다 캐러 다녀요. 화전민같이 주인이 없는 집에 가면 엄나무들이 남아있어요. 뽕잎은 어디서 땄는지 모르는 건 쓰지 않아요. 가게를 쉬는 한이 있더라도 아직도 밤 12시라도 나무를 구하러 가곤 합니다. 또한 김장김치 재료는 제가 직접 키워서 쓰니 김장을 할 때 재료와 양념이 잘 어우지게 할 수 있죠.” 김숙희 대표는 영천 은혜사에서 간암을 앓고 있던 스님의 식단을 책임지며 약선요리의 조예가 깊어졌단다. 이와 더불어 십여 년 동안 연구한 발효액도 언제나 인기가 많다. 신장이 좋지 않았던 남편을 위해 하나둘씩 발효액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발효액 공부를 했어요. 간장, 된장, 고추장도 담고 식초도 4~5가지를 담아서 해요. 한 상 차려낸다는 마음이 아니고 건강한 밥상을 통해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었죠. 당뇨는 완치라는 게 없어요. 음식으로 늦출 수 밖에 없죠. 남편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신장이 아프기 시작하면 무조건 병원에서 투석을 준비하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음식으로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낫지는 않지만 우리 집 음식을 통해서 유지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대장암 3기라며 장기의 대부분을 잘라내셨다는 LG계열의 사장님도 개복숭아 발효액을 꾸준히 드시고는 ‘매일 설사만 했는데 이젠 속이 정말 편해졌다’고 찾아오신 경우도 있어요(웃음).” 머루포도식초, 홍시감식초, 사과식초, 유기농포도식초와 내리는 데 5년 가까이 걸리는 복숭아 식초부터 가시오가피, 개복숭아, 와송, 황매실 발효액까지... 김 대표의 전매특허 음식들이 있지만 산행 중에 좋은 재료를 찾으면 특별한 발효액, 담금주 등을 만들기도 한다. 정해진 틀에 안주하지 않는 다양한 음식들은 방문하는 손님들의 마음을 훔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그녀는 “간단하게 만들어 맛있는 음식은 결코 없다”며 “일을 많이 할수록 건강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며 건강한 밥상에 들이는 노력과 수고로움을 기꺼이 받아드리는 모습을 보였다. 산들바람을 찾아주는 손님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나타냈지만 그런 진심에 상처를 주는 손님들도 있었단다. “100% 자연음식이기에 처음 접해보시면 그 맛과 향을 온전히 느끼긴 어려워요. 기름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 민물조기도 오븐에 구워서 내죠. 하지만 그런 점들이 익숙하지 않으신지 악플을 남겨두시는 분들도 있고 이런 곳도 맛집이냐며 핀잔을 주고 가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예약해주신 분들보다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반찬이 작다며 화를 내시기도 했죠. 주문이 들어옴과 동시에 인원에 맞게 상차림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제가 더 속상한 경우가 있었어요.” 반면에 자연 그대로의 맛, 손수 담은 재료의 정성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분들이 있어 더 노력할 수 있다는 김숙희 대표. 그녀는 “손님들이 산들바람의 요리를 입만 즐거운 음식으로 대하기보다는 건강을 위한 음식으로 내 몸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고 생각하며 접하길 바란다”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누구든지 아프기 전에 좋은 음식을 드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 드시는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 계속 생각해보고 음식에 대해, 내 몸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 식사를 하며 건강하게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혹여나 지금 아프신 분이 있다면 집에 공장에서 나오는 음식을 다 버리고 햇빛을 받고 자란 음식을 드시라고 강력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장이 좋지 않아 계속 설사하시는 분들과 화학조미료로부터 벗어나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유튜브를 통해 약선요리 강의를 하고 있어요. 설탕을 쓰지 않는 조리법부터 건강에 좋은 조리법까지……. 쉽고 재밌게 소개하고 있으니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져주시길 바래요(웃음).” [1109]
    • 맛집탐방
    2021-02-09

라이프 검색결과

  • ‘봉사’는 ‘나 자신이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끼는 것’ “새벽을 밝히는 ‘여명’이 제 삶 또한 밝혀주고 있습니다”
    최근 부산여명라이온스클럽은 창립 제19주년 기념식 및 회장 이·취임식에서 백미 10kg 69포, KF94 마스크 6000매, 수건을 비롯한 생활용품 6종 100여 개 등 6백만 원 상당의 후원품을 괘법동행정복지센터에 기탁했다. 1년 간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황정식 회장은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 하겠다”라고 피력하며 임기를 마무리하고도 한 명의 라이온으로서 그의 봉사정신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주간인물은 라이온스 초대석에 유종의 미를 거둔 황정식 회장의 이야기를 일문일답식으로 담아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라이온스클럽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2002년 창사하여 20년째 산업체 전용 전열기를 생산, 납품하는 ‘전열사’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봉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소소한 봉사활동을 해오던 중 친구의 추천으로 라이온스에 입회하게 되었죠. 8년 전, 입회 당시엔 ‘개인적으로 하는 봉사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하는 의문점이 있었어요. 항상 스스로가 부족하다 느끼고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라이온으로서 활동한 지난 시간, 그리고 회장직을 맡아 임무를 수행하며 복지 사각지대에 라이온스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고, 공감하며 도움을 드리다 보니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1년 동안 한 클럽의 회장으로서 봉사하며 지역에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제가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죠(웃음). Q. 부산여명라이온스클럽의 활동들이 눈에 띕니다. 클럽 자랑을 해주신다면. A. 여명의 자랑이라고 한다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1년 남짓 임원진들이 저랑 함께하며 불협화음 없이 힘을 보태주었고 모든 국면에서 의기투합하여 여러 수상의 영예를 안곤 했죠(웃음). 1년 임기를 마감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집행부 회원들에게 특히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지구의 147개 클럽 중 임원진들이 사비로 봉사하는 것은 우리가 처음일 것입니다. 또 봉사활동 현장에 역대 회장님들이 동행해 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젊은 신입회원들이 항상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고 있어 앞으로 부산여명라이온스클럽의 미래가 더욱 기대됩니다. Q.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A. 어려운 분들에게 단발적인 도움을 드리게 되면 단순한 행사 차원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최근 방문했던 괘법동행정복지센터 대한 봉사활동이 5년 정도는 유지할 수 있도록 이사회를 통해서 만장일치로 규칙을 만들게 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 회장직을 마무리하며...... A. 지면을 빌어 모든 회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회의 석상이나 공식 석상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구구절절할 수가 없어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웃음). 역대 회장님들도 일반회원분들도 “회장님 고생하십니다”라는 따뜻한 멘트를 자주 보내주셨습니다. 그 덕에 힘들 때마다 참 고마움을 많이 느꼈어요. 총무님, 재무님, 사무장님, 집행부 임원분들 모두 전 클럽 통틀어서 가장 고생 많으셨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었습니다. 라이온스 모토가 ‘we serve’, ‘우리는 봉사한다’잖아요. 앞으로도 함께 나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Q.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라이온으로서 회원 확보를 위하여 많이 움직여봤을 때 라이온스클럽을 굉장히 어렵게 생각합니다. 차기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어요. 봉사는 절대로 어려운 게 아닙니다. 봉사는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 바로 도전해보길 바랍니다. [1120]
    • 라이프
    2021-06-30
  •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는 라이온스! 새로운 봉사 문화 정착에 한 걸음 다가서다!
    1958년 한국에 뿌리내린 라이온스클럽은 긴 시간 동안 지역에 봉사하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뭉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인 봉사단체이다. 2020년, ‘우리는 봉사한다’라는 뜻의 ‘We Serve’라는 표어를 걸고 온누리에 따뜻함을 나누고 있다. 수많은 지역사회 나눔 소식들이 들리는 와중 햇살 따스한 5월, 라이온스 355-A 지구 제8지역의 배추김치 1,000kg 기탁 소식이 눈에 띄었다. “김치는 항상 식단에 있어야 생각해 김장철 받은 김치가 떨어질 때쯤 구청을 통해 기탁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문성수 부총재는 1987년부터 식자재 기업 ‘패밀리식품’을 경영해오며 과거 혐오시설이라 불린 ‘월남 난민보호소’, 사회복지법인, 복지관 등에 차별 없이 식자재를 납품해온 마음 따뜻한 기업인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식자재를 납품하며 쌓은 경륜으로 ‘주고 싶은 도움’이 아닌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는 문성수 부총재. 그와의 따뜻한 인터뷰를 담아보았다. _박정호 기자 과거 상갓집에 조문을 하러 갔던 문성수 부총재, 빈소에 끝없이 들어오는 단체 조문객을 보고 “뭐 하시는 분들일까”라는 궁금증에 후배에게 질문했다. 돌아온 대답은 ‘라이온스클럽 회원 분들입니다. 선배님도 잘 어울리실 텐데 한번 함께 해보시겠습니까?’라는 후배의 권유였다. 당시 사업에 전념하던 터라 단체에 가입하기엔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던 문 부총재는 마음 한켠에 받은 권유를 곱게 접어두었다. 식자재 유통을 했던 그는 주로 사회복지법인에 납품을 했는데 현장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접하고 봉사 현장을 많이 겪어오며 지역 봉사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활원에 가보니까 ‘우리 실정의 봉사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모자란 점이 있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자주 품었습니다. 하루는 재활원에 갔었는데 5세, 뇌 병변 환자가 저한테 안겼어요. 아이의 침이 옷에 묻었지만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를 보고 더 마음이 가더군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 5부두에 미 함대가 훈련하러 들어올 시기였습니다. 부두에 정박하자마자 미군들이 바로 재활원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오는데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하고 허물없이 티 없이 교감하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나눔이고 봉사구나’하는 뭉클함을 느꼈죠.” 미군의 온전한 나눔의 모습을 본 문 부총재는 2003년, 라이온스클럽에 발을 들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사업체를 운영하며 봐온 봉사의 모습, 온전히 피부를 맞대며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그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다. 그가 몸담은 클럽은 서면 라이온스클럽에서 활동하던 이종삼 L이 2002년 6월 26일 72명의 회원을 모아 시작한 부영라이온스클럽이었다. “벌써 입회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네요. 처음 입회했을 때는 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엄청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왔습니다. 당시 함께해주신 선배들이 배려를 잘해주셔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부영클럽은 결속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활력이 넘치는 50대부터 경륜이 쌓인 70대까지 부인회와 젊은 신입회원들도 최선을 다해주고 있습니다. 항상 노력하는 그 모습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라이온스클럽 부총재의 임기는 1년이다. 2020년, 21년은 코로나-19로 인해 시에서도 다양한 행사를 자제하길 권유해 대외행사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1년 단위로 짜인 연례행사들을 개최시키진 못했지만 물심양면으로 총재를 보좌하며 누구보다도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임기를 보내고 있는 문 부총재. 그는 라이온스 입회 순간부터 지금까지 고수해온 스스로의 라이온스 정신이 있다고 말했다. “라이온스클럽의 모토가 ‘We Serve’입니다. 봉사를 통해 나 자신이 발전합니다. 끊임없이 배우며, 발전하며 뿌듯한 마음이 갈수록 커져요. 대외적으로 라이온스클럽은 ‘봉사단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에게 봉사는 기본입니다. 저는 이제 라이온스클럽이 문화로 정착되어야 할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스킨십으로 나누는 ‘교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들이 동아리를 결성해서 운영하는 ‘목욕 봉사’와 같은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봉사를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품을 지원하는 것도 좋겠지만 피부로 부딪히면서 다시 마음을 나누며 봉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다시 돌아오면 좋겠습니다.” 자신만의 라이온스 정신에 대하여 피력하는 문성수 부총재의 얼굴은 꽤나 상기되어 있었다. 표정에서 감출 수 없을 만큼 봉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아직도 녹음이 만연한 푸르른 여름을 보는 듯했다. 그와의 아쉬운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 담아보았다. “요즘은 경제상황도 안 좋지만 젊은 분들께서 힘을 합쳐 ‘역사시절’로 올라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또 가끔 회원 간에 사고의 차이 때문에 큰 목적을 잠깐 잊는 일도 있습니다. 그럴 땐 제 선친께서 항상 당부하셨던 ‘참을 忍(인)을 가슴에 새기며 善(선), 惡(악)을 전부 내 스승으로 삼으라’는 말을 되새겨봅니다. 그 마음을 한번 떠올려보면 더 나은 결과가 생길 것입니다. 1년 동안 355-A 8지역의 회장님들이 너무 많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다른 지역들보다 더 돈독하게 활동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저 혼자서 이루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굳은 결속과 유대로 세상에 온기를 드리우는 8지역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118]
    • 라이프
    2021-06-16
  •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 주민들의 마음에 스며드는 열린 교회를 만들다
    마을교회는 부산 부산진구 범천1동에서 2019년 7월 7일에 설립된 작은 개척교회다. 이곳은 작은 개척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로 타의 모범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4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마을교회는 범천1동 주민센터에 이불 20채를 기탁했다. 이 뿐만 아니라 선풍기, 전기장판, 이불 등의 물품 기탁과 꾸준한 관내 식품 지원 및 무료급식 봉사도 이어오고 있다. 한마디로 ‘나눔 활동계의 다윗’ 같은 교회다. “마을교회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마을이든 스며드는 교회가 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종언 담임목사. 그는 안락1동에서 붕어빵을 판매해 수익금으로 이웃을 돕는 따뜻한 목회자다.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이종언 담임목사와의 이야기를 일문일답의 형식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언 11장 24~25절- Q. 이종언 목사님의 목회자로서의 길이 궁금합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마을교회를 설립하게 되셨습니까? A. 저는 원래 성악을 전공했습니다. 찬양 사역자의 삶이 좋아 ‘평생 교회에서 활동하며 살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중 주변의 권유로 신학교에 가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신학대학원을 갔고 목사가 되었죠. 하지만 부목사 생활을 하며 제가 살고자 했던 목회자의 삶과 다름을 느끼고 힘들어하던 중 성대폴립(후두폴립:laryngeal polyp) 수술을 하게 됐습니다. ‘한 달 동안 말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죠. 침묵의 기간을 이겨내며 저의 가치관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교인을 대하는 마음자세가 많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담아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해드리며 신앙인으로서 신앙을 잃은 분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움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진심과 진심을 맞닿으면 누군가의 마음이 변화됨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이것이 진정 제가 생각한 목회자의 길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마을교회의 근간이 되었죠. Q. 마을교회는 작은 개척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로 타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사님의 목회 철학은 무엇입니까? A. ‘내 한 몸 마을의 주민처럼 살자’고 항상 되새깁니다. 많은 교회가 있지만 ‘과연 마을에 스며들어서 긴밀한 교제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해보니 아니더라고요. 행사를 통해서 마을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게 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그 행사를 구심점으로 관계가 발전하기 때문이죠. 옛날 마을의 어른은 어른 대접을 받았잖아요. 지혜를 구하기도 하고 말이죠. 저는 마을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굳이 행사가 없어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도움의 손길과 지혜를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꾸준한 나눔과 봉사활동을 해오셨는데,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드리고 있으십니까? A. 주변에서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 싶어 평일에는 안락1동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웃음). 손님들이 기분 좋게 붕어빵을 사가실 수 있도록 늘 넉넉하게 드리려고 해요. 붕어빵 한 마리를 서비스로 드리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붕어빵 무료 나눔의 날을 만들어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웃으면서 마음을 나누었어요. 또 교회 개척과 동시에 시작한 안락1동 바르게살기 위원회에서 마을과 주민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죠. 이렇게 시간이 지나갈수록 주민들과 서로를 알아가면서 좋은 유대관계를 맺기 시작했어요. 이렇듯 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뭘 더 해드리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봄이면 여름에 뭘 필요로 할까 하고 미리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웃음). 교회가 마을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면 제가 주고 싶은 것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엔 뭘 필요로 할지 주변에 자문을 많이 구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니 갈 길이 선명해지더군요. 엄청나게 대단한 것을 해줄 수는 없겠지만 매번 최선을 다 해 준비하고 있어요. Q. 봉사로 만난 인연 중에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A. 지난겨울 우연히 10여년 간 만성질환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청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밥과 물은 고사하고 전기장판과 하루 한끼로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질병이 있으니 변변한 직장을 가질 수도 없구요. 저는 이 청년이 따뜻한 밥이라도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매달 식료품을 지원해주게 됐습니다. 또 정기적인 치료가 중요해서 매달 치료비 일정액을 도와주기로 했어요. 그러다 보니 6개월 만에 사람이 달라지더군요. 목소리에 힘도 실리고 자주 웃고 못 보던 표정들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가 주고 싶은 것과 그가 필요한 것을 잘 맞춰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웃음).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A. 대형교회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늘면서 한때 사회적인 지탄을 받기도 했지요. 이번 기회에 주민들로부터 교회가 과연 마을에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고 있는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더 나은 존재가 되어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준비를 하고 실행으로 옮겨 교회 주변의 마을이 행복해진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행복하게 지내길 바랍니다(웃음). [1117]
    • 라이프
    2021-06-16
  • 신뢰, 소통, 공감의 변호사! 무죄 전문 변호사로 우뚝 서다!
    “피고인 안인득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온 국민의 주목을 받았던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사건’이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법정을 나서던 그. 문일환 변호사도 함께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사형이 선고될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는 최선을 다해 피고인을 대변(代辯)했고 변호(辯護)했다. 기자회견에 침착하게 임하는 그의 직업정신에 많은 누리꾼이 찬사를 보내곤 했다. 그로부터 2년, 창원시에 새로운 법무법인으로 둥지를 튼 문일환 변호사를 주간인물이 만났다. _박정호 기자 2004년 대학교 재학 중에 제46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수도권에서 초임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3년 정도 구력을 쌓았을까,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억울함이 있음에도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보지 못하는 사례들을 보며 국선 전담 변호사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피고인의 여러 가지 사연을 듣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이렇게 살다 죽는 건 의미 없다. 젊을 때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든 한 번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기에 공익과 인권옹호를 위해서 큰 결심을 했습니다.” 그렇게 그의 국선 전담 변호사 생활이 시작됐다. “국선 전담 변호사에 합격한 11년 전, 대법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경남 창원으로 가라고 말이죠. 처음엔 잘 모르는 곳이었어요. 아내도 서울 사람이고 아이들도 어렸던 상황이라 가장의 역할과 법조인의 역할 사이에서 많이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 뜻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6년의 국선 전담 변호사 생활이 시작되었죠. 다양한 분야의 사건을 맡았지만 주로 강력사건, 형사사건, 형사합의부 사건을 주로 도맡아 했습니다.” _____ 설득이 아닌 공감(共感)으로 무죄 전문 변호사로 자리잡다 국선 전담 변호사로 활동하며 70회 이상의 국민참여재판을 경험한 문일환 변호사는 남들이 꺼리는 강력사건에도 피고인에 대한 도리, 개인적인 소명감으로 최선을 다했다. 일반재판과 비교하면 무죄율이 굉장히 높은 국민참여재판의 특성을 활용, 변호인으로서 승리하기 위해 다양한 논문을 조사하고 논문을 써오기도 했다. 항소심에서는 할 수 없는 국민참여재판의 장점이자 단점, 단 한 번의 기회로 배심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기에 재판마다 사건을 영세불망(永世不忘)의 마음으로 머릿속에 새겨두고 변호인석에 섰다. 불 보듯 사건을 꿰뚫고 있는 그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배심원들과 소통하는 데 집중해 배심원들의 신뢰를 얻었다. 소통에 관한 연구와 배심원들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 선택하는 등 심리학 저서를 통달한 노력이 재판마다 빛을 발하며 문일환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 전문 변호사, 무죄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검사가 기소한 것이 다 맞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재판에서 검사들에겐 자료가 많았지만 저는 정제된 정보로 모순됨을 파악해 포인트를 잡아 배심원들을 설득하고 무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만듭니다. 항상 배심원들과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것에 초점을 둡니다. 제가 100을 알아본들 전달을 못 하면 쓸모가 없습니다. 30을 말해도 30을 전달하고 공감하게 하는 게 더 효율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매 순간 문장의 선택과 말의 속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무작정 변호를 한다기보단 신뢰도를 올려야 하기에 재판의 지휘자 역할을 맡으며 배심원들의 호감도를 높이려고 노력합니다.” _____ 추상적인 정의(正義)를 벗어나 변호(辯護)에 충실한 법조인 정의로움과 소명 의식을 가지고 살아온 문 변호사. 항상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와야겠다는 그의 의지를 꾸준히 실천으로 옮겨왔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 법무법인을 운영하는 상황, 그는 “변호사도 사업이기에 가급적 사건 수임을 많이 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져 생각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법정에 들어선 순간에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재판이다. 그 속에서 그를 지금까지 이끌어온 신념에 대해 물었다. “제가 어디까지 의뢰인한테 희망을 줘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합니다. 나 자신도, 그 누구도 속이고 싶지 않아요. 가식을 되게 싫어하고 솔직해지고 싶어요. 또 솔직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는 SNS에 무죄를 받아낸 재판에 대하여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댓글로 ‘정의가 승리한 겁니까’라고 물어보더군요. 정의(正義), 공정(公正), 그런 추상적인 가치를 대입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죄라는 건 결백은 아닙니다. 검사가 입증에 실패했다는 것일 뿐이죠. 결과적으로 저는 제 역할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앞으로도 그 누구도 속이지 않고 제 역할에 충실할 것입니다.” _____ 투명한 신뢰(信賴)를 바탕으로 의뢰인과 동행(同行)하는 법무법인 “저에게 변호사는 서비스업입니다. 예전처럼 변호사가 갑인 시대는 일찍이 끝났다고 생각해요.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에선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변호사란 보조자입니다. 입과 머리가 될 수 있지만 전부가 되어줄 수는 없어요. 의뢰인도 함께 헤쳐나가야 합니다. 변호사의 경험이 활이고 의뢰인이 화살이 되는 겁니다. 법정에서 혹여나 제 말이 틀릴 수도 있지만, 제 말을 믿고 따라올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변호사가 갖춰야 할 소양입니다. 창원 최고의 법무법인이 되겠다고 말하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제 사무실을 알고 오신 분들께 사건의 명암을 모두 밝혀 투명하게 이해를 시켜드릴 것입니다. 양면을 다 보고도 저에게 활시위를 당길 기회를 주신다면 반드시 의뢰인들이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현재 문일환 변호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에 있는 ‘법무법인 지승’에서 대표 변호사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의뢰인들과 함께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문 변호사에게 귀추가 주목되는 때다. [1116] 학력 •1995. 3. - 2005. 2. 건국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2010. 9. - 2013. 2. 부산대학교 법과대학원 석사 졸업(지식재산권법 전공) •2013. 3. - 2015. 8.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사 수료(지식재산권법 전공) 경력 •2004. 12. 제46회 사법시험 합격 •2005. 3. - 2007. 2. 제36기 사법연수원 수료 •2007. 5. - 2010. 2. 법무법인 세인 소속 변호사 •2010. 3. - 2016. 2. 창원지방법원 국선전담 변호사 (형사사건 약 1,500건 변호, 국민참여재판사건 약 70건 변호) •2014. 5. - 현재 대법원 형사실무연구회 회원 •2014. 5. - 현재 대법원 특별소송실무연구회 회원 •2016. 3. - 2021. 2. 법률사무소 환 대표 변호사 •2016. 4. - 2019. 4. 경남개발공사 사외이사 •2017. 1. - 현재 경남지방경찰청 징계위원회 위원 •2017. 2. - 현재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2017. 2. - 2019. 1. 경남지방변호사회 총무이사 •2018. 1. - 현재 경남도민일보 칼럼니스트 •2018. 1. - 현재 창원시 교육지원청 징계위원회 위원 •2018. 1. - 2020. 1. 창원지방검찰청 형사상고심의위원 •2018. 3. -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 고문변호사 •2018. 9. - 2019. 8. 부산고등법원 국선변호 운영위원회 위원 •2019. 1. - 현재 경상남도 지방세 심의위원회 위원 •2019. 7. - 현재 경상남도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위원 •2020. 10. - 현재 경상남도 교육청 교권보호위원회 위원 •2021. 3. - 현재 법무법인 지승 대표변호사 수상 •2015. 2. 경남지방변호사회 표창장 수상 •2016. 2. 29. 대한변호사협회 청년변호사상 수상 •2019. 1. 28. 경남지방변호사회 공로상 수상 •2019. 6. 경상남도 교육감 감사장 수상 •2020. 12. 경상남도 도지사 표창장 수상
    • 라이프
    2021-05-24
  •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정신으로 무장한 농업연구가! 일터가 즐거운 세상, 농업이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
    2021년 1월 1일 경상북도 농업의 심장인 경상북도농업기술원에 새로운 원장이 활동을 시작했다. 경남 창녕, 시골에서 아버지가 농사짓는 모습을 보며 자란 신용습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언제나 흙과 함께한 성장 과정으로 인해 농업이 생활에 녹아있고 타고난 농업 DNA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소신 있게 농대에 진학, 농촌진흥기관에 발을 들이며 긴 여정에 오르게 되었다. 평생을 흙과 함께 살아오며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현장에 나가 애로사항을 들어온 신용습 원장. 그를 만나러 경상북도농업기술원에 찾아갔다. 깔끔하게 정돈된 원장실, 반갑게 기자를 반기는 검회색빛 머리칼의 신사, 중후한 분위기에 반해 소년처럼 반짝이던 그의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_박정호 기자 Q. 평생 농업을 연구하며 살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한 번 되돌아보신다면. A. 저는 1994년부터 성주 참외 과채류연구소에서 참외 연구를 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재배해 오던 참외인데 논문, 저서 한 편 없는 현실을 맞이했죠. 그리하여 하루 종일 참외 생각만 하며 20년 이상을 참외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제가 쓴 논문이 150여 편, 저서도 50편 이상이 되더군요(웃음). 앞의 이론 외에도 현실적인 문제도 많이 해결했습니다. 당시의 농가들이 겨울철에 일조량이 부족해 참외 생장이 더딜 때 현장에서 쓰이는 폴리에틸렌 비닐보다 태양광이 잘 들어오고 만들고 수명도 5~10배 긴 ‘PO(Polyolefin)’ 필름을 도입했습니다. 또 예전에는 발효과 때문에 80% 정도의 참외를 버렸어야 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농업인들이 참외 농사를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구에 착수, 제 박사 과정으로 발효과 발생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렇게 국내 1호 참외 석, 박사가 되었어요. 그 시간 속에서 얻은 결론은 농업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고 5년 앞을 바라보고 연구와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는 신념도 생겼죠. 그렇게 흙에서 자라 흙에서 살다 보니 원장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Q. 참외 이외의 작물에도 활약상이 많다고 호평을 받으십니다. 어떤 작물인가요? A. 최근 가장 인기 있는 포도 샤인머스켓이죠. 이에 관한 연구는 경북농업기술원에서 전국에서 가장 빠른 2013년부터 시작했어요. ‘샤인머스켓 고품질 재배기술’ 교재를 6종을 제작, 농업기술센터와 홈페이지에서도 열람할 수 있도록 하여 전국의 고품질 생산 기반 조성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18년부터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기술원 핵심 기획과제를 수행, 샤인머스켓 상품성 향상을 위한 ‘나노과수봉지’를 만들어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으로 특허 출원했죠. 또 농가의 병해충 방제법 개발, 과실 저장 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는 '장기저장기술' 등을 개발하여 수출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했죠. 또 샤인머스켓 품종이 인기가 있지만 일본 품종이란 걸 아시나요? 그래서 국산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2019년에 샤인머스켓 보다 숙기가 2주 정도 빠르면서 향이 강하고 아삭한 식감을 가진 ‘골드스위트’와 적색 품종인 루비스위트를 품종 보호 출원 하게 되었죠. 최근 2020년에는 자연 무핵 ‘코코씨들리스’, 적색 샤인머스켓으로 불리는 ‘레드클라렛’, 사과 맛이 나는 ‘캔디클라렛’, 알 솎기가 쉬운 ‘해피그린’등 총 6품종을 선보였습니다. 앞으로 경북육성 신품종이 농가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보급될 수 있도록 '신품종 맞춤형 재배기술'을 개발하여 품질이 우수한 국산품종 생산과 함께 수출 증가도 꾀하는 중입니다. Q. 스마트팜, LED 식물공장의 등장으로 농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기술원의 현주소는 어떻습니까? A. 참외는 하우스 시설 안에서 재배되잖아요. 생각해 보면 30년 전부터 이미 환경제어를 통해 농사를 이어온겁니다. 말하자면 경북의 농업인들은 스마트팜의 최고 권위자인 것이죠(웃음). 또 우리 경상북도에선 제가 2010년부터 전국 최초로 10피트 컨테이너에 LED 식물공장을 구축했습니다. 수직농장(Vertical Farm) 시설도 전부 2013년도에 연구를 마쳤죠. 한발 더 나가 컨테이너를 독도로 보내 '경상북도형 독도 LED 식물공장'을 세우고자 했지만 문화재청에서 허가가 나지 않아서 불발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요양원, 학교, 해운회사로 유통하게 되었죠. 바다 한가운데서 싱싱한 상추를 먹는 그런 시대를 연 것입니다. Q. 빅데이터를 통한 농경 발전계획을 세우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형태를 갖춰가고 있나요? A. 보통 생각하시는 '행정'의 빅데이터와 '농업'의 빅데이터는 다릅니다. 채광, 습도, 비료 살포 시기 등의 자료들이죠. 농업의 빅데이터 활용을 설명하자면 토마토 농사의 경우, 같은 시설의 하우스에서 1억 원 매출을 만드는 사람, 1000만 원 매출을 만드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1억 매출을 만드는 사람의 농업 빅데이터를 다른 하우스에 대입, 생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죠. 이러한 빅데이터를 통해 노지 스마트팜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노지 스마트팜의 핵심은 급수관리, 통제입니다. 토양에 습도 센서를 꽂아 컴퓨터가 물을 방류, 땅 밑에 매립된 관을 통해 작물에 급수하는 '지중관수' 시스템을 통해서 물과 인력을 아끼려고 합니다. 또 드론을 이용한 지역 관제, 방제, 살포 시스템을 구현하고 싶어 5년 전부터 연구에 착수하고 있습니다. Q. 농외소득 창출을 위해 추진 중인 사업이 있으시다면. A. 경상북도청 인근에 '지역 특화 밥상'을 만들어서 농가 맛집 운영을 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 지난 2007년부터 농가 맛집 사업을 시작했죠. 지역농업과 문화를 연계한 농촌형 소규모 외식산업으로 농외소득을 증가, 전통문화의 계승, 확산을 목적으로 시작된 사업입니다. 농산물을 자가(自家)재배하고 지역 식자재를 50% 이상 활용한 향토음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농촌문화도 함께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반음식점과 차별화되죠. 이러한 농가 맛집은 지난해까지 전국에 182곳이 조성되었으며, 경북농업기술원에서는 25개소를 운영 중입니다. 또한 건강레시피, 간편식·밀키트(meal kit)도 개발하여 찾아가는 농가 맛집 배달 시스템을 구축함과 동시에 농가 맛집이 치유의 기능을 갖춘 복합 식문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 A. 경상북도 농업기술원엔 37만 농업인들이 필요로 할 때 어떤 문제든지 해결해줄 수 있는 300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연구진들이 정확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드림으로써 농업인은 농업에 전념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 모든 국민은 농업인의 마음에 따라 생산되는 농산물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농업인이 우대받는 환경을 만들어 더 좋은 먹거리로 국민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의료계 지출도 줄어들 수 있도록 수 있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농업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농업기술원엔 모든 메뉴얼이 준비되어 있으니 언제든지 활용하시면 좋겠습니다. 기술로, 작물로 농업인이 우대받는 세상을 만들고 농업인이 만족하는 시대를 열 것입니다. 저는 내일 퇴직하더라도 오늘까지 일할 것입니다. 이 일에 미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4000여 분께서 참외를 재배하는데 참외 농업인들은 저를 다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직장이 즐거운 사람이 있냐’라고들 하는데 그게 바로 접니다. 농업인이 만족할 때까지, 행복할 때까지 경상북도농업기술원이 자양분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경북대학교대학원 원예학과 졸업(농학박사) •영남대학교 원예학과 졸업 •경상북도농촌진흥원 영양군농촌지도소 •경상북도농업기술원 성주과채류시험장장 •경상북도농업기술원 성주참외과채류연구소장 •경상북도농업기술원 농업환경연구과장 •경상북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장 •농촌진흥청 국립연예특작과학원 [1114]
    • 라이프
    2021-04-16
  • 태어날 때 한번 주어지는 ‘효소’ 전문효소 제품을 통해 건강한 삶의 라이프 파트너를 꿈꾸는 기업!
    사람은 태어날 때 체내에 120살까지 사용할 수 있는 만큼의 효소를 가지고 태어난다. 효소란 생체 내에서 생체의 여러 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고분자 생물학적 촉매제로 항생제, 술, 담배, 인스턴트식품, 화학비료로 자란 작물을 먹으며 쌓인 독소를 해독하기 위한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소모되기는 쉽지만 체내에 쌓이기는 힘든 효소. 불규칙한 생활과 식습관, 적은 수분 섭취와 생활 스트레스로 인해 체내 효소가 고갈되고 있다. 자동차에 연료를 채우듯 부족한 효소를 채워야 하는데 이때 발효된 식품을 먹는 것이 효과적이다. ㈜좋은효소 부산서면본부의 금정숙 본부장은 “60년이 지나면 기계도 고장이 나요. 요즘은 의학이 발전해 신체 부품을 교체할 수도 있지만, 병든 몸의 5%는 의사가 고치고 95%는 스스로 고쳐야 합니다”라고 전한다. 온 국민이 효소를 통해 인체를 정화 시키길 바란다는 ㈜좋은효소의 이야기를 주간인물이 담았다. _박정호 기자 ㈜좋은효소는 다양한 교육 및 판매 시스템을 기반으로 우수한 전문효소 제품들을 유통, 판매하여 인체 정화를 통해 더욱 건강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기업이다. ㈜좋은효소 에서 말하는 인체 정화란 우리 몸의 소변길, 대변길과 혈액을 정화하고 기운을 향상 시켜 체내 독성 노폐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혈액순환과 신진대사가 잘 되도록 하여 과잉 축적된 체지방을 태워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생명 활동의 주체인 효소로 대사 기능을 향상, 젊음을 유지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일상에도 좋은 발효 효소 식품이 있습니다. 1차는 식혜, 간장 2차는 된장 등이 있죠. 하지만 ㈜좋은효소의 제품은 ‘3차 복합발효배양물 ’입니다. 평소에 접할 수 있는 발효 효소식품보다 쉽게 체내에 흡수되기 때문에 소화기관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됩니다. 신체가 쉬는 동안 재생시스템을 활발하게 하여 자기 치유, 자가분해, 배출, 세포 부활, 혈액 정화 등으로 건강하고 날씬하고 아름답게 도와주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결과론적으로 효소로 몸을 정화해 ‘사람을 살리는’ 프로그램인 것이죠.” ㈜좋은효소 서면본부를 이끌어 나가기에 앞서, 효소의 효능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는 금정숙 본부장. 하지만 남편이 심근경색을 겪은 후, 심장 스턴트를 2개 시술한 후 주변의 추천으로 ‘미리안’ 제품을 꾸준히 섭취하게 한 것이 인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속는 셈 치고 먹여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남편의 고질병이었던 당뇨 수치가 좋아지고, 고혈압도 많이 호전되는 겁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교육을 받고 보니 ㈜좋은효소의 식품이 피를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죠. 남편이 나중엔 ‘이거보다 좋은 게 없다.’라고 하는 모습에 저도 동참하게 되었습니다(웃음). 이젠 인체 정화를 통해 국민의 건강증진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어요. 국민의 건강이 좋아지면 그만큼 병원 가는 일도 적어질 테죠. 그 나비효과로 국가 의료보험료 절감, 끝은 국민의 세금 절감과 국비 절약으로 나라에 이바지하겠다는 큰 의도가 있습니다. 단순히 한 명의 건강만을 생각하는 게 아닌 기업이죠.” 1차 발효를 시키기 위해선 적어도 45°c 이상의 온도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체온인 36.5°c 로는 발효가 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소화만 가능하다. 게다가 이미 1차 발효가 진행된 식품은 보편적인 환경의 인체 내에서는 발효를 시킬 수 없다고. 1, 2차 발효를 넘어 완전 무독, 완전 흡수의 발효 단계까지 도달하기 위해 ㈜좋은효소는 자체 종균을 개발, 3차복합발효배양물을 생산하고 있다. “미생물이 천천히 발효되는 과정에 인체에 유익한 좋은 물질이 생성되고 독성이 점차 제거됩니다. 1차로 발효시킨 식품은 약 50% 독성이 제거되고 인체 흡수율이 일반 음식보다 높아져요. 인체에 빨리 소화, 흡수시키기 위해 발효식품을 만드는 것이죠. 독성이 50% 정도 제거되기 때문에 체질을 가리지 않고 섭취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게 1차 발효식품이죠. 그렇지만 3차 발효 가공을 하게 되면 완전 무독 상태가 되고 흡수율은 배로 높아져요. 완전 무독성이기 때문에 영아가 먹어도 될 수준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좋은효소의 모든 제품은 자체 종균을 활용해 나노 식품보다 입자를 더 잘게 쪼개어내는 발효 과정을 거칩니다. 모든 곡류, 야채, 과일, 약용 식품, 식물 중 가장 고분자인 상황버섯, 꽃가루까지도 발효시킬 수 있어요. 1차 발효식품과 다르게 3차 복합발효배양물은 보편적인 인체 내에서도 발효가 됩니다. ‘완전 무독화’ 상태이기 때문에 영아부터 요양병원 노인들까지도 드실 수 있어요. 자사의대표 3차 복합발효배양물 식품인 ‘미리안’은 현대인들의 건강이 대사증후군 등 여러 질병에 위협받을 것을 ‘미리 알고’ 준비한 제품이란 뜻에서 명명해 출시한 제품이죠. 그 종류와 효능도 제각각입니다. 예를 들면 제품 중 하나인 ‘이너자임’을 이유식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죠.” “3차 복합발효배양물인 ‘미리안’은 완전 무독 제품으로 누구든 먹을 수 있고 장이 알아서 영양을 다 흡수합니다. 미리안을 드시지 않더라도 꼭 알고 가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두 발로 설 수 있을 때 체내를 깨끗이 해야 한다는 것이죠. 특히 60살이 넘어갈 때 반드시 한번은 체내 전체를 정화해야 합니다. 미리안과 함께 인체 정화에 도전하며 햇빛을 많이 받은 음식을 드시려고 노력하면 그 날 이후로 삶이 바뀔 겁니다. 세상 모든 분께 부디 건강한 삶을 살아가라고 전하고 싶네요 저 또한 인체정화 건강혁신 선구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웃음).” ■ 미리안 차 : 수분공급 건강증진 및 유지에 좋은 제품으로 현미, 마테, 결명자, 산사자, 구기자 등 허브혼합물과 복분자 등이 함유돼 소변길을 열어준다. 신장, 방광, 전립선, 피를 깨끗하게 할 수 있다. ■ 미리안 클린 : 혈중콜레스테롤 개선과 배변활동 원활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차전자피 및 각종 현곡류, 해조류 등 발효 배양한 분말과 알로에, 다시마, 녹차, 푸룬과즙분말 등이 첨가되어 대변길을 열어 주어 변비, 숙변을 해결할 수 있다. ■ 미리안 슬림 : 가르시니아, 캄보지아 추출물 함유 제품으로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합성되는 것을 억제하여 체지방 감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혈관 청소부 역할을 합니다. 에너지 차 혈압 당뇨 고지혈 콜레스테롤 조절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 미리안 이너자임 : 식사대용으로 쓰일 수 있는 제품입니다. 고영양 건강식으로 이유식에 쓰이기도 한다. 뼈와 몸을 튼튼하게 해주고 피부탄력 증진 영양소 보급, 건강증진 및 유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현미 배아 및 호분층, 호박, 보리, 율무, 메밀 등 발효 완두, 대두단백, 혼합 과일 추출물, 해조칼슘 등이 함유되어 있다. ■ 미리안 알파자임 : 자율신경계 완화, 호르몬 촉진, 스트레스 완화,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개선,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L-테아닌과 각종 두류 및 현곡류 등을 발효 계지, 작양, 대추, 모려 등의 식물추출물이 함유되어 있다. ■ 파비스 썬자임 : 현미 배아 및 호분층, 보리, 메밀 외 해조류 발효 배양물에 황기, 마, 지황, 산수유, 천문둥, 오미자 등 식물추출물이 추가로 함유된 과립제품이다. 당뇨합병증 예방 및 혈당조절 저혈당 증세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신경쇠약, 만성적인 소모장애와 말초혈관, 미세혈관의 노폐물제거 및 신장기능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 속편한 엔자임 : 진피, 산사자, 창출, 대추를 추출 발효한 발효 진액과 울금, 복령, 마, 대두, 현미, 보리, 율무, 메밀, 미역, 등이 함유된 과립제품이다. 속 쓰림 예방, 역류성 식도염, 신물, 구토, 울렁거림, 부종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체했을 때 소화제 역할도 가능합니다. ■ 쎌밸런스 : 글루콘산, 마그네슘, 아연, 식물혼합 추출물, 두충, 우슬, 마, 구기자, 산수유, 숙지항, 복령 등이 함유된 ‘액상 파동수’로 아연과 마그네슘이 함유되어 있다. 정상적인 면역기능, 세포분열 신경과 근육 기능 유지에 필요한 역할과 에너지를 올려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 파비스 프로자임 : 상황, 영지, 운지, 표고 등의 버섯류와 화분류(3차 발효), 현미, 보리, 메밀, 그라비올라, 강황, 현곡류, 미역, 다시마 등이 함유된 과립제품으로 항암 면역 작용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비염 아토피 알러지 등의 피부 개선, 강력한 항산화제 역할을 할 수 있다. ■ 리버빔 : 밀크씨슬 추출물 함유 제품으로 간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효소발효배양분말, 버섯허브혼합추출물, 헛개나무추출물, 타우린 등 함유로 간 해독, 피로물질 해소, 시력 향상까지도 도모할 수 있는 제품이다. ■ 엠지칼-D : 세가지 영양소가 합쳐져 있는 제품. ・ 마그네슘 - 에너지 이용, 신경과 근육 기능 유지에 필요하다, ・ 칼슘 - 뼈, 치아 형성에 필요, 혈액 응고에 필요. 골다공증 발생 위험 감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 비타민 D - 칼슘과 인이 흡수되고 이용되는데 필요, 뼈의 형성과 유지에 필요하다. ■ 메모리엔 은행잎추출물 : 기억력 개선, 혈행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 셀레늄 : 유해산소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데 필요하다. 또 치매예방 말초신경 발달 두통완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 류마티나 : 각종 두류 및 현곡류, 황기, 오가피, 우슬, 울금, 두충 등을 발효 배양하여 글루코사민, 상어 연골, 비타민, 미네랄을 더한 제품으로 체질개선 건강증진 및 유지 관절, 연골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주)좋은효소 건강십계명• 1.바른 호흡을 하자 2.수분 섭취가 중요하다 3.햇볕을 쬐자 4.올바른 식습관을 갖자 5.꾸준한 운동을 하자 6.충분한 휴식을 취하자 7.절제의 미덕을 기르자 8.감사하는 마음, 낙천적 마음을 갖자 9.몸을 따뜻하게 하자 10.정기적으로 인체정화를 하자 [1107]
    • 라이프
    2020-12-29
  • 너무나 매력적인 전문직, 속기사 “신속하고 정확한 작업은 기본, 의뢰인과 소통하며 공감하는 정직한 속기사”
    속기사는 보이지 않는 음성언어를 개인의 견해 없이 정확하게 문자 언어로 옮겨 적는 직업이다. 현대적 사관,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개인의 역사를 기록해주고 과거를 찾아주기도 하며 돌아오지 않는 순간을 다시 복구해 돌려주는 역할을 한다. 간담회, 회의, 녹취록, 의정 회의, 작은 법적 분쟁부터 심지어 유언이나 돌아가신 부모님의 음성을 문자로 기록하기도 한다. 부산 연제구에 위치한 코어속기사무소의 이동준 소장은 녹취록 작성이 어려운 사투리, 음질이 매우 나쁜 녹음본도 완벽히 복원해 내 의뢰인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수입의 일부를 지파운데이션과 유니세프에 기부하며 나눔까지 실천하고 있는 이 소장. 바르고 정직한 마음으로 소리를 옮겨 담는 이동준 소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Q.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보람이 되는 일을 찾고 싶었어요. 사람마다 보람을 느끼는 기준이 다르잖아요. 저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줬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직업 같았습니다. 속기사의 업무 내용에 대해 알게 되었을때 더욱 확신이 들었죠. 손을 쓰는 일에도 자신이 있었고 디테일하고 정밀한 업무에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간혹 마음 아픈 사건들의 녹취록을 작성할 때는 많이 힘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일이 잘 해결되어 웃으며 사무실을 나가시는 분들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Q. 유일하게 실기만 있는 국가공인 자격증입니다. 과정은 어떠셨나요. 물론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미있다고 느꼈던 적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시험장으로 갔죠. 시험이 시작되는 순간 너무 긴장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첫 시험은 아무 기억도 없이 끝났어요(웃음). 그때 느꼈습니다. 이 시험은 멘탈싸움이구나. 그 후로 멘탈 훈련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소음이 많은 카페라던지, 사람이 많은 곳 등등에서 연습을 했습니다. 최근에는 통신수단의 발달로 녹취록의 수요 자체가 증가하고 녹음 기능이 좋아져서 작업하기 수월해졌습니다. 그로인해 녹취록의 범위도 다양해져 이혼소송 학교폭력 등의 사건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속기사를 준비하시는 분들은 국회나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속기공무원을 목표로 시작합니다. 저도 관공서에서 경험을 쌓고 대구 소재의 속기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요. 당시의 소장님이 본인의 직업에 대한 철학이 굉장히 뚜렷하신 분이었습니다. 잠도 안무주시면서 녹취록을 작성하곤 하셨죠. 녹취록은 딱 한 글자만으로도 인생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그 한 글자로 인해 밤을 새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된 속기사의 모습을 봤고 ‘저도 저렇게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했죠. Q. AI속기사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공지능이 나오면 가장 먼저 없어질 직업이 속기사라는 말도 있더라구요(웃음). 하지만 사람의 말이 너무나 다양한 억양과 발음이다보니 쉽지 않을 겁니다. 아주 먼 미래가 될 수는 있겠지요. 지금 속기사 들은 말더듬는 것까지 다 기록을 합니다. 매우 정교한 작업이에요. Q. 속기사의 삶은 어떻습니까? 속기사는 빼지도 않고 넣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옮기는 직업이잖아요. 제가 창의 력이 좀 부족한 편입니다. 그동안의 저의 큰 단점이었는데 속기사로서는 엄청난 장점이 되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쓰게 되어요. (웃음) 속기사는 집중력, 순발력, 맞춤법, 문법에 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하고 컴퓨터 및 장비를 능숙하게 조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장시간의 회의에서는 체력과 지구력도 필요로 합니다. "아는만큼 들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르는 말은 안들리거나 다르게 들리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속기사는 모든 분야에 대해 끝없이 공부하고 연습하고 복습해야 합니다.속기사는 당연히 기술전문직인 만큼 피지컬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분야에서의 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범위가 없는 공부를 해야 하죠. 항상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Q. 코어속기사무소가 가지는 강점은 무엇인가요? 저를 찾아주시는 의뢰인 분들은 제가 젊은 속기사인 점을 좋게 봐주시더라구요. 대부분의 녹취록을 처음 의뢰하시는 분들은 녹취록 제작과정을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시는데요.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녹음파일을 주고 받거나 검수 과정을 간소화 시켜서 의뢰인들의 시간과 노력을 절약시켜드릴 수 있는 것이 저의 장점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 의뢰인들과 조금 더 공감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사무실에 오셔서 얘기 들어드리고 하는 것도 좋습니다. 법률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냥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나면 의뢰인의 표정이 훨씬 편안해지십니다. 속기사무소는 막연하게 보면 재밌어 보인다고 해요. ‘말을 그대로 받아 정리하는게 뭐가 어렵냐’라고 하는데 책임감이 상당히 강한 직업입니다. 압박감이 클 때도 있구요. 일 자체가 쉽다고 할 수는 없죠. 앞으로 주어진 대로 살아갈 계획입니다. 솔직함을 가득 담아서 살아야죠.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속기사로서의 삶도 꽤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습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제가 맡은 바 솔직하게 임하겠습니다. [1104]
    • 라이프
    2020-11-11
  • 중재와 사람 전문가, “모두 조금씩 더 잘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경남신문 사옥 1층에 위치한 노무법인SN.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당히 많은 직원들이 이목을 끈다. 노동관계법 및 노동정책이 계속해서 급변하는 요즘,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각각 프로페셔널한 영역을 구축하며 신뢰를 얻고 있는 노무법인SN. 대표공인노무사인 배경린 노무사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신속하고 정확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저희 법인 구성원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전문 역량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임금, 4대보험, 정부지원금, 산재, 체당금 등 구성원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의 역량 향상을 위해 1주일에 한 번씩 내부 역량교육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무법인SN은 구성원 각자의 전문적인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기업, 노동자들의 니즈에 만족을 주기 위해 항상 고민한다고. 하루하루 급변하는 노동환경 속에서 누구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법률 서비스 및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규모의 확장과 내부역량 강화가 필수라는 배경린 노무사. 최근 내부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시스템화하는 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업무도 중요하지만 직원 복지를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저 또한 월급을 받고 일 해봤고 수습도 받아봤고 하니까 내가 신나서 스스로 일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전문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이 힘들고, 매일아침 출근하기가 싫고, 스스로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면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유가 생길 때 마다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이익을 분배하고, 동기부여할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1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죠.” 어렸을 때부터 전문직을 꿈꿨다는 배경린 노무사. 일의 전체를 스스로 계획하고 진행할 수 있는 전문직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다고 했다. “많은 전문직종 중 공인노무사가 세상에 가장 쓸모 있어 보였습니다(웃음). 특별한 사건이 있거나 송사가 오고가지 않는다면 전문직을 찾을 일이 없죠. 전문직을 한 번도 안 만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구요. 하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은 노동자 아니면 사장입니다. 거의 모든 국민이 공인노무사가 필요한 사람들인 셈이죠. 예전부터 삶, 그 속에서 제가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삶과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보니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공인노무사라는 직업이 딱이다 싶더라구요. 시험 준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늦게 시작했어요.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1차 시험에 합격하고 2차 시험에 불합격하여 고민을 하던 중 사장님께서 도전을 해보라고 독려해 주셨습니다. 안되면 그때 다시 오더라도 시험에 전념하라고 하셨어요. 주변에서 많이 배려해 주셨죠.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수험 기간 3년 만에 합격했습니다.” 사용자측 노동자측 극명하게 대립하는 양 당사자 사이에서 공격과 방어를 반복하는 직업인 공인노무사. 배경린 노무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공격과 방어의 포지션이 바뀌다보니 생각보다 그 고충이 많다고 한다. “오전에는 산재사고로 돌아가신 노동자에 대한 유족급여 신청 관련하여 전투적으로 회사를 상대하다가도, 점심엔 사용자의 입장에서 사내규정을 정비하고 컨설팅을 진행합니다. 저녁에는 임금을 못 받은 외국인들 사이에 있기도 하죠. 만나는 사람의 폭이 너무 넓고, 각자의 삶과 처한 환경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상담을 하고 사건을 진행하는데 꽤나 많은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그의 인생 목표인 ‘돕고 사는 인생’. 많은 사건을 해결하다보면 희비가 교차하는 일도 굉장히 많을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보함을 많이 느꼈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노동자 사건을 해결할 때가 제일 보람차요. 노동자 측에서 임금체불이라든지 부당해고, 산재보상 신청과 같은 문제는 생계와 완전히 직결되는 부분이잖아요. 사건이 해결되면 한 가정을 살린 듯한 기분이 듭니다. 최근 어깨 회전근개파열로 산재 신청하셨던 분이 기억나네요. 20년 정도 생산공장에서 일하신 분인데 제 키보다 높은 곳에 토크렌치로 힘을 가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산재 신청을 했는데 회사에서 쉬운 검사업무만 하였다고 서류를 제출하여 불승인이 되어 저에게 재심사를 의뢰하셨어요. 이럴 땐 정말 화가 나서 전투적으로 나섭니다. 제가 가서 뒤집어버렸죠.(웃음)” 공인노무사 수습을 마치고 처음으로 맡은 정식 사건이 사망 산재사건이었다는 배 노무사. 급성 심정지로 사망한 사건이었는데, 2달 정도를 고인에 빙의해서 살았다고 한다. 사망 산재사건을 다루는 공인노무사의 분야는 다른 사망사건 조사와는 상당히 다르다. “고인이 평생 어떤 일을 얼마나 했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업무환경은 어떻게 변화하였으며, 고인이 받은 부담과 스트레스에 공감해야만 합니다. 제가 고인이 되어서 주변의 상황을 느껴야 하죠. ‘아침에 출근해서 굉장히 추웠지. 체조를 했어. 곧바로 회의를 했는데 이런이런 얘기들이 나왔겠지. 그럼 고인이라면 어떤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았을까‘하구요.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결국 유족급여 청구가 승인되지 않았어요. 이 직업을 가지고 처음 맡은 사건이 사망 산재사건이었고, 그 사건이 불승인 되었던 거죠. 유족에 대한 미안함도 크고, 제도에 대한 분노, 패배감도, 상실감도 매우 컸습니다. 다시는 이런 안타까움이 생기지 않게끔 해야 한다는 마음이 나태해질 때 다시 집중하게 해주는 그런 지배적인 마음이 되었습니다. 실패가 사람을 키운다고 하죠. 항상 이때의 감정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공인노무사는 항상 분쟁 속에 있다. 법 해석이 서로 달라서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많은 경우가 감정 갈등에서 시작되는 경우라고, “얽힌 매듭을 풀 실마리는 법이 아닌 관계에서 찾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전문가가 바로 공인노무사이지 않나 싶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쌓인 갈등이 해소되면 사건이 판정으로 가지 않고 해결되는 경우도 많아요. 법을 적용하여 승패를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쟁 당사자 간의 관계, 승패보다는 분쟁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여 갈등을 조정하는 것 또한 매우 가치 있습니다. 공인노무사는 싸우는 사람이지만, 사실 저는 정말 싸움을 싫어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싸워야 할 때 사람 배경린이 있으면, 공인노무사 배경린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꽤 조용합니다. 업무에 있어서는 조금 더 잘 싸우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남들보다 두세배는 노력하는 셈이지요. 그래서 항상 승리에 대한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것 같아요(웃음). [1104]
    • 라이프
    2020-11-11
  • 사람이 곧 재산이다! 창원시 ‘희망2020 이웃사랑 유공 포상’ 수상- 마산 합포의 따뜻함을 책임져온 봉사의 여성
    창원시 ‘희망2020 이웃사랑 유공 포상’ 수상자 중 민간인 부문 수상자인 고향죽의 박희선 대표를 만났다. 고향죽의 모든 재료는 북마산 도매 곡류시장에서 박 대표가 직접 공수해 오는 것이다. 18년 동안 매일같이 도와주는 사람 없이 홀로, 120인분의 죽을 만들어 그 중 20여 인분을 이웃들에게 나누면서 살아온 그녀. 어려운 이웃들의 든든한 한 끼를 위해 정성껏 요리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남들은 왜 하느냐고 물어봅니다. 물론 힘들 때도, 고달플 때도 많았지요. 그런데 오히려 소문을 듣고 몰래 물건을 가져다 놓으시거나, 일부러 팔아주러 오시는 손님들 덕에 힘이 납니다. 아직은 아름다운 세상입니다(웃음).” _박정호 기자 “처음 봉사를 시작했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며 박희선 대표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오히려 어쩌면 “지금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며 웃어보이며 ‘희망2020 이웃사랑 유공 표상’ 수상 소감을 전한다. “시작할 땐 맨바닥에 박치기했다고 할 수 있어요. 가게를 몇 번 차리고 망하고 했어요. 전세 보증금도 다 잃곤 했죠. 네 번째로 이 자리에 왔는데 정말 돈이 없어서 아는 분이 도움을 주셔서 재기했습니다. 여기 온 지가 벌써 3년 째네요.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넉달 전에는 반찬가게 확장도 하며 여유가 조금 생겼어요. 정말 진심을 담아 봉사하면 하늘도 움직여주고, 아니더라도 뭔가 좋은 움직임이 생깁니다. 대표적으로 저희 아이들의 일이 잘 풀리더군요. 그리고 제가 사랑을 베푸니 나쁜 사람이 오지 않아요. 핸드폰을 잃어버려도 누군가 주워서 가져다줄 정도로 복이 좋아졌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들이 반드시 돌아옵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세상을 보는 마음을 고르게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집을 운영하니 주로 먹을 걸 많이 내어왔다는 박 대표. 평소에 정기적으로 나누었던 음식 외에도 청소하시는 분들이나 박스 모으는 분들을 마주하면 포장된 죽을 내어 드린다고. “허기진 아침에 죽을 데워서 드시라고 담아 드리곤 합니다. 주변에선 이 일대에 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십니다(웃음). 길가에서 마주치는 분들 다 불러서 죽을 나눠주곤 했었죠. 가게 주변에서 일하는 아이들이 라면먹고 김밥먹고 할 바에는 건강한 죽 먹고 지내라며 끓여서 나눠줘요. 죽밖에 줄게 없으니까 호박죽, 소고기야채죽 등 맛있는 죽으로 끓여줍니다. 처음엔 부끄럽다고 안받으려 하면 내 손주가 나중에 너한테 도움 받을지 모른다며 쥐어서 보내주죠. 그렇게 먹인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 다시 먹을걸 사러 올 때 기분이 정말 좋아요. 사람들이 그러고도 먹고 사는 게 용하다고 하더라구요. 결국엔 나눠드리는 제가 기분이 좋은 겁니다. 세상이 참 좋구나 하는 마음에 장사가 더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새벽 3시만 되면 죽을 끓이러 가게에 들어서는 박 대표. 손님이 새벽 4~5시에 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고향죽을 찾아 왔는데 손님들이 헛걸음 하시면 기분이 안 좋으니 잠을 조금 더 줄여서라도 일찍 가게를 연다는 그녀의 얼굴에 피로감이 아닌, 만족감이 더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저는 긍정적으로 살아요. 오늘 돈이 없으면 내일 어떻게 생기겠지 하고, 누가 제 껄 훔쳐 가면 그래, 그거 훔쳐 가면 내 것이 좋아서 가져갔겠지 하며 삽니다. 남의 것을 보태서 자기 욕심 채우려 하는 사람은 말로가 비참하기 마련이죠. 제가 힘을 들여 죽을 끓이고 나누는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한 아들이랑 다툰 적도 있었죠. 아들이 가출을 했을 정도로 갈등이 심각했지만, 저는 제가 떼돈을 벌더라도 못 사는 사람들 줄 거라고 할 정도로 단호하게 제 갈 길을 갔습니다. 이젠 제 아들딸도 저와 함께 봉사하고 있어요(웃음). 엄마가 좋은 일 하는데 자식도 따라와야죠. 당연한 겁니다.” 박희선 대표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함께하는 동생들 “아직도 꿈이 많다”는 박희선 대표. 지금도 더 큰 규모로 봉사하고 싶다고 한다. 장사를 하며 상해를 입어도 ‘이만큼만 다치게 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한다고. "평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제 예순 여섯인데 아직까지 30대 같은 마음이에요. 지금처럼 사는게 최고예요. 저는 항상 주변에 제가 돈은 없지만 재산은 많다고 합니다. 사람이 재산입니다. 돈만 있으면 뭐하나요. 사람이 있어야지.” 박 대표는 과거 도움을 많이 준 당시 마산시청의 서윤성 과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죽을 나누어 주고 싶어도 혼자라 쉽지 않았는데, 과장님이 직접 받아서 나눠주셨어요. 쌀이 모자랄 때는 절에 쌀이 많이 들어오는 기간에 절에서 쌀을 얻어 가져다주기도 하셨지요. 서 과장님이 전근 가실 때도 후임한테 인수인계를 해주고 가셨어요. 참 감사한 분입니다. 또 저를 믿고 언제 불러도 나타나 주는 동생들에게 고맙다고 전해주고 싶네요. 힘들 때도 제 마음을 다독여주며 항상 응원해주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뭐든지 나눠 줌으로써 행복을 느끼고 해요. 할머니들에게 죽을 드리고 하며 감정으로 무언가 감사를 느낀 것보단 마음이 아플 때가 더 많은 듯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가정이 많다 보니 할머니들도 돌아가면서 죽을 받는데 양이 부족할 때가 있으면 급한 할머니 드리라면서 전합니다. 다들 내일 장사 어쩔 거냐고 하는데 장사가 사람보다 중요하겠어요. 좋은 사람이 너무 많으니 살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살아있는 동안만 봉사하고 살 겁니다. 아파서 누워 있는 건 안 할거에요. 누구든 열심히 살고 있다면 하늘이 보고 있습니다. 땅도 숨을 쉬고 있고 하늘도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본답니다(웃음).” [1103]
    • 라이프
    2020-10-26
  • “건강한 삶을 위해, 행복하기 위해 스포츠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경북 여성 체육 활성화 위한 힘찬 발걸음이 시작되다
    지난 6월 18일, 경상북도체육회(회장 김하영)는 여성체육 활성화를 위한 다짐과 함께 여성체육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하고 여성체육위원장으로 정난희 교수를 위촉했다. 여성체육위원회는 도 체육회 산하 여성체육을 위한 자문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위원회다. 활동을 시작한 정난희 교수는 “무엇보다 ‘여성 스포츠인’에 국한되지 않고 남,녀 모두 ‘스포츠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과 체제의 변화를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_박정호 기자 “평소 체육인으로 지내면서 여성이 스포츠활동에 참여, 생활화하고 전문체육지도자로 나아가는 방향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습니다. 시, 도 체육회에 가봐도 여성임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은 현실이지요. 뭔가 체계적으로, 작은 걸음이라도 내디디고 싶다는 바람으로 위원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여성들 스스로가 신체적으로 남성에 비해 불리하다는 틀에 갇혀서 날개를 펼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안타까움을 전한 정 교수는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먹고 쉬고 일하듯이 스포츠도 생활화되어야 한다”며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초등학교 장래희망란에 ‘체육 교사’라고 적었다는 정 교수는 어릴 적 꿈을 이뤄낸 사람이다. 그 꿈을 위해 사범대를 진학, 그 중에 체육과를 선택하며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구미여고에 첫 발령을 받고 1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교육을 한다는 자체는 정말 행복했지만 같은 내용을 수업하고 교과목에 있는 정보만 배우는 시스템은 저에게 맞지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것 같았고 만족도도 높지 않았습니다. 뭔가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학교 옆에 에어로빅 교육원을 오픈했습니다. 88올림픽 이후로 에어로빅 종목이 급성장하기 시작하며 함께 주목받았습니다. 당시엔 에어로빅을 전공한 선생님들이 없었기 때문에 특별했던 셈이었어요(웃음).” 우연히 구미대학교 이기철 교수로부터 강의 요청을 받게 된 정 교수. 그렇게 좋은 기회가 주어져 구미대학교 스포츠건강관리과 겸임교수로 오게된다. 이후에는 경운대학교 사회체육학과 전임교수로도 활동했다. “시야를 조금씩 넓히다보니 여성 스포츠인에 대한 차별, 격차를 해소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기더군요. 누구든 쉽게 접근해 건강을 위해서 운동에 참여하게끔 했습니다. 건강하다면 양로원, 보건소 등에서도 수업을 할 수 있게끔 커리큘럼을 짜고 가르쳤습니다. 저희 학과에서는 국가공인 자격증 준비도 도와주고 있어요. 전문대학에서 체육 교사가 될 수는 있지만, 길이 아주 먼 것이 사실입니다. 그에 대비하기 위해서 자격증 준비와 함께 5과목을 트레이닝 시키면서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요. 그 결과 응시생 중 3분의 2가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체육 분야에 있어서는 취업률이 90%에 달하고 있지요.” 정 교수는 사업가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구미지역에 처음으로 유명 스포츠 브랜드를 입점시킨 것이 바로 그녀다. “스물다섯살 때 최초로 구미 2번 도로에 매장을 세우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지요. 그 매장을 25년간 운영했습니다.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해서 제자들에게 하나라도 더 들려보내고 먹이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뭔가를 바래본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저 그런 어머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딸에게 천만금을 물려주는 것 보다 제가 나누고 베푸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큰 유산이라고 여겼지요. 그 결실일까요. 제자들이 스승의 날이 아닌 어버이날에도 전화가 옵니다. ‘교수님은 구미의 어머니, 제2의 어머니이십니다’하면서 전화가 오면 눈물나게 보람찬 하루가 됩니다.” 잠시도 쉴틈없이 살아온 그녀. 지난 날을 돌아봐도 후회는 없다고 전했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면서 평범하게 지내고 싶기도 했어요. 혼자서 해야 할 역할이 너무 많았습니다. 지기도 싫어하고 내가 노력하고 성취하는 것은 나눠야 하는 사람입니다. 어디서 뭔가를 해야 하는데,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늘 쫓기면서 살았습니다. 시대에 따라서 중요성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살아가며 겪는 모든 경험이 지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삶의 순간에 있어 열정을 잃지 않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명구조, 조종면허 1급 취득 등 작은 목표를 달성하며 ‘여자인 나도 한다. 엄마인 나도 한다’하는 동기부여와 나이가 들수록 의욕이 떨어지는 것, 삶에 대한 권태를 벗어나서 뛰어난 선례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시간만 나면 뭐라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제발 좀 가만히 있어 달라며 딸이 속상해합니다(웃음).” 모교 효성여대 지도교수였던 홍진표 교수를 언급하며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전한 정난희 교수. 요새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한참 찾아뵈지를 못했다며 인생의 전환점인 옛 이야기를 털어놨다. “1980년도, 그때는 체육과에 군기가 한창 강할 때였죠. 신입생들이 들어오고 하면 의례적으로 군기를 잡고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선배에게 마구 대들던 한 신입생을 혼냈는데 그게 아주 큰 이슈가 된 겁니다. 모든 교수님께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사과를 드렸죠. 마지막으로 홍진표 교수님에게 찾아갔더니 ‘여자들은 체육인 아니냐. 혼날 건 혼나야 한다. 잘했다. 이런게 한번쯤은 필요했다. 무릎 꿇지마라. 이번 일에 잘못한 점은 있겠지만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당당하게 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때 무언가 북받쳐 올라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네요. 교수님은 제 결혼식 때 주례까지 봐주시며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또 한 사람, 제 딸한테도 고맙다고 전하고 싶어요. 이쁘게, 밝게 커주고 아직도 엄마 말이 법이고 엄마가 애처로워서 엄마 말을 들어주는 듯한 우리 이쁜 딸. 지금은 저를 편하게 해주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들이 보여요.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사랑하는 내 딸 덕분이에요.” “엄마, 아빠의 역할, 교수의 역할을 다 하며 살아왔어요. 그렇기에 한 면만 보고 점수를 매길 수는 없고 여러 가지 측면을 다 봤을 때 80점은 줘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능력, 노력하는 것에 비해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 부처님께서 도와주신 것 같아요(웃음). 이 80점은 제 딸이 저에게 준 점수입니다. 핵전쟁이 나도, 지구가 멸망해도 세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며 말이죠. 자기를 구출해주러 나타날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며 저를 믿어줬어요. 힘들 때 제일 많이 생각나는 게 있어요. 하루는 제 딸이 ‘다음엔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 엄마가 한 것 그 이상으로 갚아줄게’ 했던 그 말로 매번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며 살아요.” [1100]
    • 라이프
    2020-09-04
  • 제40회 장애인의 날 기념, ‘올해의 장애인상’ 대통령상 수상!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를 아우르는 복지 공무원이 되겠습니다”
    법정기념일인 ‘장애인의 날’은 4월 20일이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제40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이 7월 24일에 연기되어 치러졌다. 감염 예방을 위해 여러 장애인단체가 함께 모이는 기념식 대신, 유공자 포상 전수식 행사로 축소되어 진행된 이번행사에서 ‘올해의 장애인 상’을 수상한 이재영 팀장을 만나보았다. 그는 해운대구청에서 6급 공무원으로 근무 중이다. _박정호 기자 Q. ‘올해의 장애인상’ 3명의 수상자 중 한 분이십니다. 수상소감을 한마디 해주신다면. 다른 훌륭한 장애인분들도 많은데 큰 상을 받게 되어서 정말 미안하기도 영광스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저를 통해 많은 장애인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고 도와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제 곁에서 늘 함께해준 아내와 돌아가신 어머니와도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Q. 학창 시절을 떠올려본다면 생후 백일까지는 우량아 였다고 해요(웃음). 제가 백일 때 찍은 사진은 있는데 돌 사진이 없습니다. 병이 나 경기가 나서 뇌를 다쳤기 때문이래요. 병원에도 많이 다녀봤지요. 여섯살쯤 의사 선생님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10개 세포 중 3개는 죽어있는데 남은 7개를 이용해 3개를 살리는 방법을 사용하자”라고 하셨답니다. 어머니가 일반학교, 특수학교 어디로 보낼지 고심을 많이 하셨는데 결국 일반학교에 가게 되었고 그 속에서도 뒤쳐지지 않고 생활해 왔지요.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잘했어요. 전교 1등 할 때도 있었죠. 중학교 때는 전교 4등까지 좀 떨어졌고 고등학교는 반에서 10등 안팎이었어요(웃음). 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불합격한다 할 때 저는 6시간 잘 수 밖에 없었어요. 필기를 못하는 저를 위해 제가 친구들 것을 빌려오면 어머니가 필기를 베껴주셨어요. 보통 애들이랑 동등한 상황이었고 오히려 더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진학 때 실패를 한번 겪었어요. 대학교 예비고사는 붙고 본고사는 떨어졌지요. 결국 학력고사를 쳐서 부산대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대학교는 논문식으로 되어있어서 시험을 칠 수가 없었어요. 조금 불공평하다고 느꼈지만 불평만 하고 있을 순 없었지요. 노력 끝에 결국 차석으로 졸업했습니다. Q. 2009년 3월, 6급 공무원 승진 당시 심정이 남달랐을 듯 한데요. 제 인생에서 진급을 처음 했습니다. 처음엔 별정 7급으로 들어왔는데요. 97년도에 IMF가 터지면서 사회복지 분야 쪽에 일꾼이 필요했는지 별정직 공무원들이 일반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살아가며 어머니께서 우시는 것을 딱 두 번 봤습니다. 대학에 도전할 당시 옹벽에 합격자명단에서 제 이름을 찾았을 때 처음 우셨고, 6급으로 진급하는 날 우셨습니다. 그렇게 뭉클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웃음). 처음 생활보고 조사를 하는데 3미터쯤 되는 거리를 걷질 못해 네발로 기어서 조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제 모습을 보기가 불편했는지 다들 핀잔을 주고 했지만 딱 2년을 하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다들 믿어주시더군요(웃음). 동에서 15년 근무하다가 지금 여기 분청에 왔는데 한번 일반 공무원과 경쟁을 시켜봐야 되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있어 구청으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고 그후 5년 여의 각고 끝에 팀장이 되었습니다. 2006년도 7월, 이제는 허물없이 형님동생하고 지내는 분들이지만 처음엔 당시 계장님, 국장님께서도 제게 일을 맡기면서 조금은 불안하고 못미더워하시더군요. 그러다 홍천에 세미나가 있어서 국장님한테 결재를 부탁드리고 2박 3일 세미나를 다녀왔는데 결재가 안되어 있는거에요.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국장님이 제가 오면 직접 들어보고 결재해줄 생각이셨답니다. 눈물이 팍 나더군요. 저를 알아주는 것 같아서 말이죠. 주변의 신뢰와 응원에 힘입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첫 시행 당시 담당자를 도맡으며 노인장기요양직원, 노인요양기관을 만들 때 4개 시설에 관여해서 예산을 따고 교부하고 했습니다. 장애를 겪고 있기 때문에 더 잘 진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조언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저는 사회복지 대상이 되는 사람이자 일꾼이기 때문에 한쪽만 보지 않고 양쪽 측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60년을 살아오며, 그 중 35년 동안 장애인 복지에서 겪은 경험에 의하면 장애인 자신은 스스로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연의 능력이 80 정도라면 스스로는 90~100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일반인은 50 정도로 낮춰서 봅니다. 그런 출발점이라던가 능력에 대한 평가를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해낼 수 있는지, 없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Q. 안타까웠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씁쓸하게도 좀 어두운 내용의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반송 2동에 근무할 때에요. 요즘도 택시를 잡으려고 하면 30% 정도는 그냥 지나갑니다. 당시에도 어렵게 택시를 잡았더니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집에나 있지 뭐한다고 나오냐”고 하더군요. 또 하루는 샌드위치 가게에 갔는데 주인이 대뜸 “비싼데요. 비쌉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불편한 모습만 보고 돈이 없을 거라고 판단하고 대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Q. 감사한 분들이 계신다면.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께서 정말 많이 챙겨주셨어요. 지금은 다 돌아가셨지요. 고 2때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못가겠다 했는데 선생님께서 “야, 가자”하며 끝까지 챙겨 데려가셨습니다. 또 어머니께서 제가 진로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할 때 “저 녀석은 뭘 하든지 할 것이다”라고 하시며 용기를 주셨지요. 그 은혜로 제가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무엇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판단해주는 전문가가 있다면 더할 나위없겠지요. 당신 능력은 이 정도 입니다. 이 정도는 해봐라! 채찍질하는 전문가 그룹이 있어야 해요. 어떤 일이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뭐든 해놓고 내 몫을 달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요. 장애를 극복했다는 건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고요. 제가 ‘불구하고’라는 단어를 참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잘 살아왔지 않나 싶습니다. 감사하게도 3년 전, 20년 교제한 아내랑 결혼도 했지요. 일반인과 근접하게 잘 살아온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99점. 1점은 빼놨다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보태볼까 생각 중입니다(웃음). [1099]
    • 라이프
    2020-08-27
  • 나의 꿈으로부터 시작된 긴 여정, “돌아오지 않을 모든 순간을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스타모빌엔 영업사원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날것으로 보여드리고 딱히 홍보는 하지 않습니다. 제 자존심상 ‘팔고 나면 끝이냐’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직원들에게 차를 사러 오는 분들보다 이미 차를 구입하신 분들에게 더 대응을 잘해드리라고 항상 당부합니다. 저희를 믿고 다시 찾는 분의 마음을 놓치게 되면 10명을 놓치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A/S 24시간 대표번호를 지정해서 운영을 합니다. 평소에 매우 바쁜 직원들을 배려해 일요일이나 휴일엔 제 핸드폰으로 모든 전화를 착신해둡니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웃음).” _박정호 기자 대한민국 대표 캠핑카 브랜드로 불리는 ‘스타모빌캠핑카’. 엔지니어 출신인 여대훈 대표는 자동차과를 전공하고 기계공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한 인물이다. “아버지가 2급 장애인이었다”라는 그는 어릴 적 캠핑을 가거나 텐트에서 자 본 기억이 없는게 항상 아쉬웠다고 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 제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꼭 해주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시간만 나면 텐트를 들고 떠나곤 했습니다.” 캠핑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가족들과 놀러 나갔습니다. 제가 야외에서 텐트를 치고 있는 동안 둘째를 가져 만삭이었던 아내는 바위에 앉아 저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코피를 흘리는 겁니다. 순간 ‘아, 무작정 바깥으로 나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외국 차량 자료를 모조리 찾아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만의 캠핑카를 만들기 위해 중고 버스 하나를 사서 공부했던 외국 자료들을 바탕으로 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엔지니어로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차량 개조라는 게 저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매일 새벽 일찍 나가서 조용한 공터에서, 차고지에서 차량을 직접 뜯어고쳤습니다. 마침내 그 캠핑카가 완성되어 전국을 다니기 시작했죠.” ▲ 스타모빌 부산본사 식구들 여 대표가 만든 캠핑카가 이슈가 되기 시작했하면서 그의 블로그에는 캠핑카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돈을 받기도 하고 친한 형 동생의 차들은 재료비만 받기도 하다 보니 점점 취미가 전문화되는 겁니다. 조금씩 수익도 나기 시작했어요. 필요한 장비도 하나둘씩 사 모으기 시작하니까 점점 규모가 커졌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이렇게 제 업이 될 줄은 몰랐어요(웃음).” GM대우가 크게 흔들리던 시절, 여 대표를 포함한 많은 직원들이 권고사직 제의를 받거나 정리해고당하기 일쑤였다. 그 역시도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굳이 회사에 몸을 두고 일을 하는 게 맞을까”라고 생각하며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용기를 북돋아 준 아내의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었다. “좋아하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게 가장 행복할 것 같다”라는 말이었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 제2막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김해에서 공유 공방 스타일로 조그맣게 시작했습니다. 목재소 자리에 있는 창고를 하나 얻어서 공구들을 가져다 놓고 조금씩 작업을 하면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입소문을 타고 점점 주문이 몰려오는 겁니다. 그러다 2016년 9월 사업자를 내고 10월에 개업하게 되었습니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문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죠.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하네요. 저 혼자 캠핑카를 만들면서 전문적인 장비도 모으고, 직원도 뽑으며 큰 틀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경기도 향남 센터, 광주 광산구에 위치한 센터는 직영으로 운영하고 울산엔 쇼룸을 오픈했습니다. 지금은 출고가 3~4개월 정도 걸립니다. 한 달에 30대 출고가 가능하지요. 예전엔 출고까지 8개월~11개월 걸렸다는 걸 생각해보면 상당한 발전입니다(웃음).” 현재 한국(KRVIA), 일본, 미국, 독일에는 레저 자동차 산업 협회가 있다. 여 대표는 협회 11인 이사 중에서 기술 이사를 맡고 있다. “대부분의 콘퍼런스(conference)는 협회에서 주관을 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에서 법령을 만들 때도 협회 측에 많이 물어보고 결정을 할 정도로 공신력이 있는 조직이지요. 자랑스러운 점은 11명 이사 중 기술 이사는 저 한 명이라는 점입니다. 저와 이어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전기 장치가 ‘스타모빌’이 가진 강점이죠. 우리의 전기 시스템이 마치 한국 캠핑카의 표준처럼 잡혀가고 있습니다. 신생 캠핑카 업체가 협회에서 교육을 받을 때 알려주기 때문에 점점 퍼져나갈 수밖에 없어요. 차를 통제하는 제어 시스템, 예를 들어서 조작성 같은 부분의 기술이 상당히 좋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와서 막 들여본다 하더라도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어요.” 한국의 캠핑카 레이아웃은 다 나와있다 해도 무방하다. 대부분 다 정형화된 구성, 시스템, 외형, 실내 구조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모빌의 경우 그 내부를 보면 구성이 조금 특별한 것을 알 수 있다. 초창기 여대훈 대표가 버스 캠핑카를 만들면서 외국 자료들을 밤새 보며 생각해둔 것들을 직접 스타모빌을 운영하면서 하나씩 실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여대훈 대표와 그의 아버지 “코로나 때문에 출장을 못 가지만 스타모빌 차이나도 있습니다. 일본, 독일에도 출장을 자주 가는데 왜냐하면 캠핑카에 들어가는 시설물의 부품이 대부분 국산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품 선택, 접목하는 과정에서 콘퍼런스(conference)를 하게 되면 제가 많이 갑니다. 우리나라는 이 산업이 이제 시작되었고 다른 나라에선 이미 오래된 사업이다 보니까 아직까지는 큰 흐름을 우리나라가 따라가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출장을 가는 거죠. 하지만 저와 스타모빌 가족들이 더 많은 연구와 협력으로 완벽한 국산화를 이룰 것입니다” 스타모빌이 가장 호평을 받는 분야는 사후대책 부문이다. 어느 회사든 A/S에 있어서는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스타모빌은 모든 후기에 호평이 자자했다. 여대훈 대표도 그 부분에선 자신이 있다며 특별한 시스템을 설명했다. “어느 회사든 똑같은 딜레마를 갖고 있긴 한데 저는 초반에 빨리 깨달았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이 오더를 하고 차량 출고를 하면 우리의 손을 떠났기 때문에 하자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하자율이 높진 않지만 대응을 해주는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리 대책을 세운 거죠. 대부분은 현장을 하나로 통일해서 운영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자회사처럼 서비스센터를 관리하는 센터장을 따로 만들어서 운영을 했습니다. 마치 자회사처럼 말이죠. 순수히 사후 관리에 대한 임무만 맡기기 위해 전화번호도 따로 배정을 해뒀습니다. 상황 발생 시 보통은 탁송을 원칙으로 하는데. 출장 서비스도 합니다. 제주도에 공구통 들고 비행기 타고 가기도 하고 사랑도에 배 타고 들어갔다 온적도 있습니다(웃음). 보통 반응이 ‘진짜 오네’ 하시며 신기해하시고 다른 캠핑카를 타시는 분들도 우리 서비스를 보고 자연스럽게 스타모빌을 기억하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신속하고 평을 좋게 받는 이유는 서비스센터가 따로 있고 센터장은 과장 본사는 부장급으로 배치를 해 신속히 운영되는 기반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캠핑카를 제작할 때 보통은 차량을 절개해서 바닥을 깔고, 측판, 뒤판, 천장, 벙커, 전기, 침대 등등 순서대로 집어넣는 방식으로 공정이 진행된다. 하지만 스타모빌은 케빈을 따로 제작, 도킹하는 특별한 제작 기술을 소유하고 있다. 바로 케빈 (캠핑카에서 생활하는 부분) 바닥 밑에 서브 프레임을 따로 만들어서 차와 도킹하는 방식이다. “스타모빌의 방식을 적용해서 캠핑카를 만들 수 있는 엔지니어가 한국에 3명 밖에 없습니다. 타 업체는 차량이 와야 작업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제조사에서 나오는 베이스 차량의 차량 출고 스케줄에 예민하지 않다는 장점도 있죠. 케빈은 계속 생산하면 되고 차가 일찍 오면 일찍 도킹해서 보내고 늦게 오면 늦게 오는 데로 도킹해서 보내면 되니까요(웃음). 도킹하는 방식 자체가 특허도 걸려있고 외국에서 제가 직접 배워왔기 때문에 더욱 자신 있습니다. 그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2017년도엔 중국 대련에서 살기도 했어요. 일본은 인건비가 비싸고 부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중국의 대련에 공장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도 캠핑카를 제작하는 일본 기술이 탐났기 때문이죠. 알고 보니 일본 차를 중국에 보내서 캠핑카를 만들지 못하니 중국에서 케빈을 만들어서 일본에서 도킹만 한다는 것을 파악했죠. 아, 이거다. 그래서 중국 대련으로 가 부탁하고 배우고, 연구하고 왔습니다. 함께 간 3인방이 똑같이 기술을 배워서 유일하게 3명이 있는 겁니다(웃음).” 여대훈 대표는 “혼자만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운을 뗐다. 감사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전하고 싶다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전했다. “회사 차량을 선택해 주는 고객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매번 전하지만, 사실 가장 감사한 분들은 공장 안에 다 있습니다. 매일 우리 회사 식구들한테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로 투자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분 참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순수히 개인 자본으로 움직이는 회사이기 때문에 더 특별해요. 출장을 갈 때나 차량을 같이 만들고, 봐주고, 직원이랑 같이 디자인 랜더링도 하며 뭐든 다 같이 하려고 합니다. 본부장, 공장장, 서비스센터장을 비롯한 중간 관리자분들이 특히 고마운 사람들이죠. 다 저를 믿어주고, 따라주고 하다 보니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하는 빅토리RV 식구분들께도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2020년 1분기부터 제작을 하려고 했던 ST-4, 이미지 랜딩은 이미 마쳤지만 너무 바빠서 못 만들고 있어서 출시가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4인용 규모에 대중적인 접근성을 가지 고있는 팔방미인의 제품일 것이라고 여 대표는 전했다. 또한 출시 예정인 ST-8, ST-10은 벤츠 스프린트, 솔라티, 포드 트랜짓과 같은 대형 바디로 이루어진 플래그쉽 모델로 구상하고 있다고. 스타모빌은 현재 B to C(Business to Customer) 공급을 주력으로 하며 서울 경기 쪽으로 의전업체, 차량 공유 시스템 등 B to B(Business to Business)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도 전 세계로 뻗어나갈 스타모빌의 행보가 주목되는 바이다. [1098]
    • 라이프
    2020-08-10
  • 전북소방 최초 여성 소방서장 “주민 안전에 총력...‘무거운 책임감 느껴” “지역 안전 수장으로서 역할 다할 것”
    전라북도에 최초 여성 소방서장이 등장했다. 1985년 최초의 여성 소방관 임용으로 화제를 모으며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재난 사회학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침과대단(枕戈待旦)의 정신으로 항상 대비태세를 갖추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전미희 소방서장을 만나기 위해전북 익산으로 향했다. _박정호 기자 Q.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말씀 부탁드립니다. 익산소방서장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전북 익산은 규모가 꽤 큽니다. 30만 정도의 인구의 작지 않은 도시입니다. 많은 움직임이 있고 산업의 현장이 가득합니다. 30만 익산 시민들이 불안감 없이 일상생활을 편안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영광스런 자리지만, 그만큼 개인적으로는 무한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Q. 소방 공무원에 지원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시청에 근무하시는 공무원이셨습니다. 예전 80년대에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직업들이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공무원을 해야겠다 생각하며 자랐죠. 대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첫 시험이 소방공무원 시험이었습니다. 바로 지원을 했고 85년도에 임용이 되었죠. 당시 80년도의 사회는 산업화가 빠르게 이루어지던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이 소방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할 때 임용되어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이 자리까지 온 듯 합니다. Q. 사람 전미희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너무 모자라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다"하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웃음). Q. 소방공무원으로서 지금까지를 돌아본다면. 2019년 국가직으로 전환되고 인식도 좋아지면서 소방공무원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는 많아진 것 같습니다.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소방관 생활을 해 온데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 두 번째는 내부적으로 직원에 대한 편의나 복지에 대해서 많은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장비, 인원 확충에 만전을 기하고 심신안정실 등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서 복지 분야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직업 특성상 재난 현장 활동이 대부분인 소방공무원들이 보건안전은 물론 육체적·심리적 부담을 줄이고, 사기 진작을 통해 소방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랍니다. Q. 소방의 현안에 대해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리 사회의 확장성이 너무 급격합니다. 사회의 확장성에 따라서 안전을 유지해야 하는 안전 확장성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 재난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현대 재난은 과거의 재난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1회성 재난이 발생하면 국지적으로 끝나는 상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시골 주택에서 화재가 일어난다면 단독주택이 재산손실을 입거나 개인의 피해가 전부였단 뜻이죠. 하지만 공동화가 된 사회에서는 아파트 한 집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연기가 복도를 통해 공유되고 화재가 번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됩니다. 갈수록 일상성이고 규모가 커지고 빈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과거는 자연재해가 주를 이뤘다면 현재는 자연재해, 인재, 산업재해, 사회적인 재난을 가지는 연속선상의 재난을 담당하는 부서들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방식으로 재난에 대항한다고 하면 실패할 확률이 커집니다. 총력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재난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습니다. 나이, 소득, 성별에 따라서 취약계층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잘사는 사람의 주택에서 불날 확률보다는 소득이 낮은 계층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가 더 높습니다. 부자들은 대응이나 복구가 빠르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그 집이 유일한 안식처이실 텐데 안타까움이 크죠. 재난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지만 재난 복구는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습니다. 재난취약계층에 대한 소방정책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안전복지를 확충하는 것은 소방서장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가장 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Q. 전라북도의 코로나 대비 상황은 어떤가요. 코로나가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진 않습니다. 하지만 국민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전북소방서 또한 마찬가집니다. 해외 입국자에 대한 조치를 완벽하게 취하고 있습니다. 우선 해외입국자들을 미리 만나서 리무진에 태워서 전주로 모시고 갑니다. 한곳에 집합해서 남원 인재개발원으로 다시 보냅니다. 전 인원의 검체를 확인하고 시, 군내 보건소에서 데려가게 하는 완벽차단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전라북도는 해외입국자가 들어와서 생긴 감염사례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고생해주는 우리 구급대원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Q. 감사한 이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어떤 결과물이 좋게 나타나는 것은 시민들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으면 50%도 성공할 수 없어요. 건전한 생활풍토가 있고 익산 시민들이 깨어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로 감사한 것은 익산시민분들이지요. K방역이 그냥 K방역이 아닙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시민들과 소방과의 소통이 원활해서 이루어진 결과라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또 익산에 의용소방대가 있습니다. 그분들이 시내 도시 곳곳에 방역활동을 하고 계세요. 마스크 부족사태가 발생 했을 때 마스크 공장에 가서 공장이 24시간 가동될 수 있도록 일을 거들어 주시기 했습니다. 지금도 현장에서 봉사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 ‘통(通)하지 않으면 통(痛)한다’라는 말을 자주해요. 소통할 통(通)에 아플 통(痛)입니다. 소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뜻인데요. 일단은 직원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을 하고자 할 때 이해하고 따라와줘야 합니다. 소통을 기본으로 한 신뢰가 다져진다면 저의 정책은 충분히 이뤄질거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의용소방대 770분과 대화도 자주 나눕니다. 지역을 찾아가서 지역 주민과의 대화도 자주 하려고 하지요. 사실 안전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단독경보형 감지기 소화기만으로도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으면 조기 진화가 가능하고 기초소방시설이 갖춰져있으면 즉각 대응도 가능합니다. 선상낚시를 한다면 조끼를 입음으로 내가 물에 떠있으면 살 수 있듯이 준비한다면 언제든 예방하고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소방관들은 화재, 구조, 구급현장에서 다치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슬픔을 딛고 소방이 지금까지 왔습니다. 저의 책임과 의무 중 하나는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의 환경을 조금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구급대원 폭행, 구급대원들에게 불리한 상황을 제공하는 분들에게 법률적인 제재가 필요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양성화시켜서 대책을 완성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말하고 싶습니다. 과거 119 종합상황실에서 근무했습니다. 각 도마다 상황실이 있어요. 상황실에 근무하면 전라북도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에 대한 신고는 대부분 119로 들어옵니다. 119의 역할이 맞던 아니던 무조건 119를 찾으셔요. 저는 개인적으로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할 때 119 전화번호가 1순위로 떠오른다는 것은 편안함을 느끼고 계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민분들에게 감사하고 소방 정책과 현장 활동으로 보답을 하고자 합니다. [1097]
    • 라이프
    2020-07-22
  • 최기연 경북농업기술원장
    올해 초 취임한 경북농업기술원 최기연 원장의 행보가 심상찮다.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 라는 그의 말대로 눈에 보이는 성과들을 꾸준히 내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 1980년 선산군 농촌지도소 (현 구미시농업기술센터)에서 공직을 시작해 1994년 경북농촌진흥원을 비롯해 40여 년간 구미, 의성, 청송 등에서 근무하며 현장 중심의 농촌진흥사업을 두루 거친 최 원장. 그를 만나기 위해 대구에 위치한 경북농업기술원을 찾았다. _박정호 기자 Q. 40여 년 공직 생활을 되돌아 보신다면. 1980년도부터 제 공직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는데 참 많은 일들이 있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직에 발을 들였습니다. 저는 배우고 싶은 의지가 상당히 강했기 때문에 공직생활 중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통해 상당한 양의 공부를 병행하며 지식을 쌓아나갔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농업기술원장으로서 박사 학위가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차마 도전을 못했습니다(웃음). 이제 제 본분을 다해가니 다시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2002년 글로벌시대가 도래하며 외국어를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기술원에 영어 잘하는 박사들은 많았지만 중국어 공부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당시 WTO 관계도 있고 공부는 하고 싶은데 여건이 안되었어요. 아쉽게도 해외연수 갈 기회도 한번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급여를 포기하고 1년을 휴직하여 중국에 공부를 하러갔습니다. 산둥성의 배농장에도 가보고 두루두루 현장을 둘러봤지요. 중국에서 기차를 탄 시간만 600시간이 넘습니다. 많은 농업현장을 방문하면서 정신적 무장이 많이 되었습니다. 공직에 있으면서 스스로 업데이트 시키지 않으면 안되겠다 하는 위기감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후에 좋은 기회로 유학을 떠나게 되면서 제 스스로의 다짐으로 하루 4시간 자면서 공부하고 일했습니다. 공직 생활동안 청송사과 명품화 및 농산물 가공 6차 산업화, 포항 산딸기, 상주 햇 순나물 등 지역 특화작목 육성, 전국 최대 탑프루트 생산단지 육성, 전국 최초 무인헬기 병해충 119 방제단 설립, 아프리카 세네갈, 나이지리아 벼농사 기계화단지 조성 등 성공리에 추진하여 아프리카 기아해결에도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못자리 실패 예방을 위해 벼 출아기 개발, 탄소 발열재 개발, 앞마당 육묘기 개발, 특허도 10여종 냈지요. 고추칼라바이러스 예방을 위한 고추 다단식 육묘기술 개발도 진행 중입니다. 아이디어가 끊이질 않아요.(웃음) Q. 성주 참외 고설‧양액재배 스마트팜 기술개발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성주군에 2세 농업경영인들이 대략 200분 정도 됩니다. 다른 시‧군이 20~30명 정도라면 성주군은 그의 10배정도 되는 셈이죠. “도시에서 왜 돌아왔냐” 물어보면 “참외 소득이 상당하다”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청년들이 취업을 생각하다가 부모님들께서 농사를 권유하셔서 시작하게 되는데, 꽤 괜찮은 일종의 창업입니다. 그런데 돌아온 청년들이 딸기농사를 시작하더라구요. “성주에 돌아오면 참외를 해야지 딸기를 하냐”하니 “참외는 해보니까 너무 힘듭니다. 좋은 기술을 개발해주신다면 참외에 한번 발을 들여보겠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지난해 경상북도의 참외 수입이 5,700억 정도 됩니다. 참외가 수익성은 좋지만 농사 짓는 것 자체가 힘들어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고소득 작목이지만 쪼그려 앉아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악성 노동으로 성주 군민들은 근골격계 질환을 많이들 앓고 계세요. 참외를 딸기처럼 하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다 지난해 5월 쯤 참외를 서서 하는 프로젝트를 해보자 다짐했죠. 참외로 스마트팜을 운영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 많이 했습니다. 평소 흙 속에 있는 참외를 키우면 유해균이 생기기 때문에 매년 흙을 객토를 하거나 뜨거운 물을 대서 병균을 소독하기도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습니다. 딸기처럼 참외를 양액으로 재배해보자 하는 마음에 연구에 착수했고 한 넝쿨에 4개에서 8개까지 증가시켰습니다. 생육기간을 2∼3개월 연장해 수량은 30% 증수가 가능하고 상품성도 높아진 것이지요. 또한 무가온 재배가 가능하도록 해 시설비와 경영비를 동시에 줄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방충망으로 지면에서 띄워놓고 재배를 하기 때문에 병충해도 해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스마트팜을 운영하려면 첫 번째는 양액재배가 전제로 이뤄져야 합니다. 수확까지 해결하기 위해선 로봇이 나와야 하구요(웃음). 하지만 수확 이외에는 스마트팜으로 대부분 운영이 가능합니다. 기계식으로 운영이 될 때까지 기술 개선을 해나갈 예정입니다. ‘참외형 스마트팜 재배기술’은 성주를 중심으로 칠곡, 고령, 김천 등 지역의 특화 고소득 작목인 참외를 딸기처럼 서서 편하게 농사지을 수 있도록 개발된 재배기술이다. 이는 양액재배 기술을 바탕으로 고설베드(high bed) 재배 기술을 융합해 1세대 스마트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기술 방식으로 국내에서 첫 개발 되었다. Q. 아프리카에도 9번이나 다녀오셨다던데. 에티오피아에 강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식량난을 극복하기 위해 찾아가는 현장 교육을 실시하고 감자를 재배하는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세네갈에서는 대통령의 요청으로 '코리아 라이스 프로젝트'를 통해 기아를 해결하고자 단장으로 참여했습니다. 사전답사를 포함해 아프리카에만 9번을 갔습니다. 세네갈에 프로젝트 시범단지를 10헥타르 규모로 만들고 2.6배 수량을 올리고 왔습니다. 한국기술을 보급하고 왔다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도 요청이 있었습니다. 국가가 아닌 기업체 단위로 식량난 해결요청이 들어왔어요. 작년 3월에 현지답사를 가고 10월 달에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기계도 가져가고 준비를 끝냈지만 코로나 때문에 중단되었어요. 지금 아프리카는 식량을 자급자족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이지리아는 2모작, 세네갈은 3모작까지 가능합니다. 용수가 있는데 사용을 못하고 있어요. 물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리고 도와주었습니다. 그 과정 중에 근면, 자조, 협동, 새벽부터 농지에 나가 살피는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이것이 한국인이다. 벼농사 시범계획을 통해서 새마을운동 정신까지 알려준 셈이지요(웃음). Q. 귀농인들을 위한 정책들을 소개해 주신다면. 농촌으로 청년들이 들어와야 합니다. 일반 직장에서 연봉 한 4~5천만원을 버는 사람은 상당히 찾기 어렵습니다. 농촌에서는 대부분 그만큼의 연봉을 받을 순 있지만 땅 구입이 전제가 됩니다. 막상 땅을 구입 하려고 하면 4~5억원의 창업자금이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귀농에 대한 정책과 복지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지방소멸 극복과 귀농인을 위해 의성군 안계면 시안리 일대에 스마트팜 창업교육장을 조성하고 '스마트팜 인큐베이팅' 사업을 벌일 예정입니다. 38퍼센트 이상의 고령화, 지방소멸위험지수 공동1위 선정에 따른 위기극복 방안으로 만든 것입니다. 고소득 작목 딸기에 대한 스마트팜 조성, 단계별 맞춤형 교육 실시, 50%의 창업자금도 지급이 되어 창업 부담도 덜어줄 수 있을 겁니다. 작년 4월에서 지금까지 1기 교육생 50명이 아카데미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고, 현재는 32명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1기 교육생 조기 창업지원을 통해 8명이 마을 인근 지역에 창업을 추진하고 있고 현재 2기생 33명을 향후 2년간 기본교육과 실습교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본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부모님들이 창업할 농지구입, 스마트팜 설치시 자부담금(약 2억원정도)를 도와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입교 시 부모님들을 함께 모서서 사업설명을 드리고 현장 투어를 통해 교육생과 부모님들이 한마음이 되어 본사업을 이해하고 창업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입교를 하면 농업기술원에서 2개월간 기본교육을 실시하고 의성 스마트팜 현지에서 1~2년간 현장실습 교육을 실시합니다. 교육 이수자 중 창업 희망 시 창업지원을 하게 됩니다. 창업은 농지구입 등 조건이 갖추어지면 사업비 3억5천만원 중 1억5천만원은 보조해 주고 2억원은 자부담을 하거나 10년 융자를 통해 지원해 줍니다. 낙후된 농촌에 첨단 스마트팜 조성으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 청년농업인 유입 및 창업희망농가 현장교육장 활용, 예술인, 농기업도 들어와서 함께 호환하면서 운영을 할 계획입니다. 사실 개인시간이 없을까봐 두려워하는 경우도 많은데 내부의 스마트팜 장치가 잘 되어있어 개인적인 생활을 보내며 스마트폰을 통해 농장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미래도 점점 다가오고 있고 현재 어느정도 시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전체 교육 인원의 50% 정착이 목표입니다. 작년 50명 입교 후 1년동안 32명이 수료, 8명이 창업한 결과가 있다보니 이번 교육은 지원자가 많습니다. 탄력적으로 수용인원을 늘려야 합니다. 한 명당 한달에 200만원씩 들어가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하고 결과를 기다려야 합니다. 정부차원에선 100퍼센트 정착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시행단계에서 더뎌지는 경향이 있어요. 농업에 대해 이탈률이 높은 이유는 해보지 않은 일을 처음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 점도 생각을 해주셔야 더 나아질 겁니다. 전체적인 사업량에 있어선 첨단 스마트팜 온실 5동 2.6헥타르로 선별출하시설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총 사업비 113억원, 온실 신축 73억, 선별출하시설 등 40억, 부지매입 3.9헥타르 군비24억 별도부담 밎 지원 등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Q. 인간 '최기연'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자기 생각이 큰 재산이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9급 공무원부터 시작해 대한민국 고위공직자 1,850명중에 한명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형님께서 농업기술원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을 가문의 영광이라면서 제일 기뻐하고 축하해 주셨습니다. 형님께 ‘스마트팜 창업프로젝트’을 이야기했더니 “옛날에 농사지은 경험이 있었으니 이렇게 좋은 제도를 만들 수 있었구나.” 하고 많은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6살 때 돌아가셔서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슬하에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형님은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지만 저는 학비를 적게 내고 다닐 수 있는 안동 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포기하고 약 2년간 농사일을 하다가 농촌지도직 공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도 고등학교를 졸업 할 수 있어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께 감사한 마음을 간직합니다. 어머님께서 늘 대학을 못 보내어 많이 아쉬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휴직하고 유학을 갈 때 모아둔 용돈 200만원을 학비에 보태라고 주셨습니다. 항상 좀 부족한 상황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몸에 익숙하고 힘들긴 했지만 지나고 보니 젊은 시절의 역경들이 공직생활과 연결되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직 외길을 걸으면서 열정과 ‘하면 뭐라도 이룰 수 있다’라는 신념이 오늘의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1097] 청년농업인 스마트팜 조경도
    • 라이프
    2020-07-22
  • 독보적이고 차별화된 타로 리딩교육의 정수, "사람의 운명은 반드시 준비된 사람이 읽어야 한다"
    어렸을 적부터 크고 작은 사업을 운영하며 자연스레 타로와 사주를 자주 보게 되었다는 조미진 회장. 규모가 큰 사업에 있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도움을 받고자 했지만 항상 잘 맞지않았다고. 불안함을 해소하고자 스스로 공부를 시작한 그녀, 이렇게 기나긴 여정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_박정호 기자 사업에 도움 얻고자 시작한 타로 공부 겉핥기식 교육에 실망해 스스로 공부 시작한 것이 오히려 계기가 돼 “처음엔 제 업이 아니니까 제 것만 해석했어요. 당시 타로수강협회라고 하는 곳이 종로 쪽에 한곳 있었는데 협회에서 배우면 좋겠다 싶어서 발을 들였죠. 협회라곤 했지만 소모임 정도의 규모였습니다. 사주팔자, 성명학 등 여러 가지 분야로 교육을 하더라구요. 그런데 카드 78장 각각의 키워드만 가르쳐 주는 방식이 다였어요. 카드를 뽑으면 그 카드가 가진 의미만 겨우 읊는 수준에 그쳤죠. 답답한 마음에 리딩 수업을 20시간 추가로 수강해도 그저 자주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상황에 대처하듯 카드를 읽어 내는 수업이 전부더라구요. 카드들을 모아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전해줘야 하는데 스토리텔링이 전혀 안 되는 겁니다. 진부한 수업에 지쳐서 다른 곳을 찾아서 배우기도 했는데 대부분 비슷한 교육만 반복되더라구요. 심지어 한번은 신 내림을 받은 사람이 타로카드를 가르친다고 해서 긴가민가 하는 마음에 수업을 들어봤더니 카드를 펼쳐놓고 그냥 ‘느낌으로 읽으라’고 해서 헛웃음이 나왔던 적도 있었습니다(웃음).” “타로를 배워서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는 조 회장. 순전히 자신의 사업에 도움을 얻고자 타로 공부를 시작했지만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 사업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산전수전 겪으면서 지쳐있던 와중에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 카드를 펼치고 가만히 들여다 봤어요. 자세히 보니까 카드마다 눈빛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집안이 기독교였지만 경험하지 못한 신비한 기운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그때부터 다른 느낌으로 타로카드가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은 모든 순간순간들이 모인 이야기’ 리딩과 스토리텔링 위주의 전문 교육으로 차별화 처음에는 지인들을 데려다가 놓고 점을 보기 시작했다. ‘반 정도 맞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질문에 따라 답이 틀려진다는 점을 깨달았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가 없는데 어떤 선생님은 느낌대로 말하라 하고 다른 선생님은 질문마다 틀리다고 애매모호하게 알려주니 점을 보는 저도 정립이 되질 않더라구요. 죽기 직전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운명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앞으로의 인생을 걸고 제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에요. 그때 결심했습니다. ‘내가 가르치면 이렇게 가르치지 말아야지’하구요. 무엇보다 신중해야 할 자신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현재 시행되는 교육방식으로는 스토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조 회장. ‘인생은 모든 순간순간들이 모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스토리텔링 위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판단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보통 3카드, 5카드로 점을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떻게 복잡한 사람 인생을 그 적은 키워드로 풀어내나 싶었어요. 그런 경우는 키워드가 적기 때문에 대충 맞추고 어림잡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거죠. 점을 봐주시는 분도 사주를 봐주시는 분도 모호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거에요. 저는 적중률을 높이기 위해 사주와 타로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어요. 공부한 연차에 따라서 사주 선생님들의 풀이가 달랐고 지금 당장 궁굼한건 사주로 풀수 없어서 큰 틀만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인생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좀 더 구체적인 해답을 주고 싶어서 타로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만든 키워드를 점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어요. 어릴 적부터 작문, 독후감 상을 매 대회마다 휩쓸었던 이력이 있었기에 스토리텔링에 자신이 있었습니다(웃음). 궁금해 하시는 문제에 있어서 간지러운 부분을 확실히 긁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기본적인 성격, 팔자, 인생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 심지어 미래 결혼생활 모습도 볼 수 있게 커리큘럼을 만든 조 협회장. 타로에서 고질적인 문제였던 긍정과 부정에 대한 커리큘럼까지 구성했다. 이런 커리큘럼을 가진 교육자는 유일무이하다는 자부심으로 임한다. “협회 내 수강생 중 초심자는 30% 정도 돼요. 나머지 분들은 다른 협회나 교육기관에서 1차적으로 배우고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는 리딩 실력과 키워드가 정리가 안되서 다시 처음부터 배우고 싶어서 찾아오십니다. 그만큼 타로에 있어서는 리딩과 스토리텔링이 필수적인 요소에요. 그리고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기틀을 단단히 다져둬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죠. 수업 진행에 있어서는 1:1은 각자가 스프레드를 계속 하면서 리딩을 시켜요. 소수정예 수업은 한 명 한 명 돌아가면서 리딩을 잡아줍니다. 각 운에 대한 키워드를 알려주고 바로 리딩을 시켜서 몸과 머리가 동시에 기억하게 만드는거죠. 점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집착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더 유명해지고자 방송에 출연한 사람들을 찾아가곤 하는데 어디를 가더라도 이러한 수업은 저밖에 할 수 없다고 자부합니다(웃음).” 타로 교육의 체계화와 성장을 위한 발판 마련을 위해 협회 설립해 진정한 상담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통해 마음을 얻는 것 미술심리와 점술을 수년간 병행했던 조 협회장. 과거엔 개인 심리상담 고객들도 많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수업도 계속 이어왔지만 교육자로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선 어느 정도 체계와 인식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어 교육협회를 창설하기로 결심했다. “개인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때 ‘선생님 찾기 너무 힘들어서 고생했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제가 굳이 숨어있었던 건 아닌데 좀 더 조직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말들이 더더욱 저를 강하게 이끌었죠. 협회 창설을 준비하는데 밤낮없이 8개월을 달렸어요. 회원 명부 입증도 해야 했고 자리도 알아보고 교육내용도 준비하고 잠잘 시간이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무엇보다 협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회원이 필요했어요. 뜻이 맞는 전문 수강생들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협회 생성의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힘들었지만 타로를 배울 때부터 지켜보던 지인 분들이 선뜻 많은 도움을 건네주셨기 때문에 조금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어요. 좀 더 나은 교육과 협회원들을 위해 하루빨리 사단법인으로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 14시간 이상을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심리 상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굉장히 예민하다. 그래서 상담을 받으러 오는 이들을 위해 조 회장은 직원을 뽑지 않고 프라이빗(private)한 환경을 조성한다. 오직 조 회장에게만 마음을 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상담을 하다보면 가정환경 때문에 올바르지 않은 길을 걷게 된 아이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친구들이죠. 그렇기에 우울증, 대인공포증, 불면증을 앓는 경우가 많아요. 과거 심리 상담을 했던 경험으로 미술 심리테스트를 해보면 어렸을 적 환경을 다 알 수가 있어요. 타로를 배우기 전의 다양한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 같은 경우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큰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을 위해 원망에 대한 공백을 채워 주려고 애썼고 개개인과 모두 연락을 유지하며 아이들을 부모님과 같은 마음으로 보살피려 노력했어요. 아이가 마음을 닫아버린 경우엔 제가 혼자서 성격, 삶 등을 순서대로 맞춰버려요. 그러면 참 신기해하면서 아이도 제 이야기에 빠져들고 서로에 있어 신뢰도 두터워지고 결국 마음을 얻게 되는 거죠. 그렇게 상담을 진행하고 있어요.”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다양한 고민에 부딪히게 된다. 조 회장은 “타로로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한 눈에 꿰뚫어 볼 수는 없지만 세분화된 규제 안에서 축소판으로, 그 흐름을 읽어낼 수는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속마음을 저처럼 디테일하게 읽을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 수가 있어요. 그러기 위해선 수업에 많이 참여해서 리딩을 연습하고 키워드 본질에서 절대 벗어나면 안 됩니다. 벗어난 이야기를 전해준다면 사기가 되는 거지요. 이런 교육은 저밖에 할 수 없어요. 다양한 경험과 공부를 통해 타로카드에 미술심리, 점, 사주까지 모든 관점에서 보고 풀어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스토리텔링이 가장 중요해요. 마음을 읽어내야 합니다.” 많아 봤자 7카드로 점치는 곳과는 다르게 조미진 회장은 11장을 뽑게 한다. 팔자는 12장, 궁합을 볼 때는 16장씩 뽑아 그들이 가진 공통점. 내비치는 분위기를 통해 스토리텔링으로 창출해낸다. 2~3개월 예약 대기, 갑상선암 수술로 건강 돌아보는 계기 까다로운 수료증 취득 과정이지만 성장하는 제자들보며 성취감 느껴 “주말엔 소수정예로 12~4시, 4~8시까지 오전반・오후반으로, 평일에는 1:1수업으로 8~10시간 정도 진행된다. 하루에 14시간 이상 수업을 진행할 때도 있다 보니 그런 날엔 브레이크 밟을 힘조차 없어서 대리운전기사를 불러서 귀가할 정도라고. “결국 건강이 망가져 갑상선암 수술을 했어요. 그때도 2주 쉬고 바로 업무로 복귀했지요. 2~3개월 예약이 가득 차있으니 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이 나를 긴 시간동안 기다렸다 만나려는 이유가 절실함을 알기에 밥 먹을 시간도 쪼개서 초콜릿 물고 수업과 상담을 했어요. 9월 중순까지는 예약이 가득 차있는 상황이에요.” 협회 내에서도 타로 자격증 발급이 가능하지만 쉽지는 않다. 마스터 반까지 수료하면 수료증 발급은 받지만, 마지막 단계인 팔자까지 읽어내야 자격증이 지급된다고. “배운 뒤로 여러각도에서 모든 카드에 대한 포괄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면 자격증까진 받기가 상당히 힘들어요. 집에 가면 까먹을까봐 수업내용 촬영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촬영한 내용을 돌려보게 하죠. 수년 전에 인연을 맺었던 제자들이 스승의 날이 되면 선물도 보내주고 편지도 보내주곤 해요. 정말 뿌듯하죠. 그런 친구들을 보며 힘을 많이 얻습니다.” “타로나 점을 볼 때 사설로 어설프게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힘든 상황에 있는 마음 약한 분들의 심리를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이들 때문에 타로에 대해 자칫 잘못된 인식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까 염려스러워요. 대충 독학해서 남의 인생을 가지고 말장난 치고 돈만 좇는 사람들을 타파하는 일이 가장 큰 협회의 목표이자 사명입니다.” 타로카드가 가진 개념을 바꾸고 싶다는 조미진 회장. 조만간 협회를 사단법인으로 출범하고 학원을 설립해 타로의 보급률을 늘리고자 계획하고 있다. 오는 7, 8월 중에는 온라인 사이트도 오픈될 예정. 외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한국타로리딩교육협회. 더 많은 사람들의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095] 인스타그램 : rexy_joh 온라인타로수업 : http://www.rexytarot.com 블로그 : https://blog.naver.com/rexy_cho --------------------------------------------------- 렉시타로샵 송파구 문정동 송파대로167 문정역테라타워 B동 1층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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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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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그리워할, 소중할 시간을 영원히 담아주는 곳, 스튜디오 영원(Studio 01)
    베이비 스냅 스튜디오 영원 (studio 01) 김산 대표는 지난 6월 15일 내외동행정복지센터를 방문,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사진 촬영권 1,000장을 기탁했다. 이번 기탁은 홀로 사시는 어르신, 한부모 가정에 위로와 응원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스튜디오 영원 전 직원 일동이 함께 참여했으며 이날 기탁한 촬영권은 독거어르신(영정사진) 500세대와 한부모 가족(가족사진) 500세대에 전달될 예정이다. 스튜디오 영원의 김산 대표는 셔터에 손끝을 올릴 때 이 사람들이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며 찰나를 담아내는 사진작가다. 스튜디오 영원을 찾는 모든 사람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과 그리워할 순간을 기록하는 사진작가 김산 대표의 이야기를 주간인물이 담아보았다. _박정호 기자 김산 대표에겐 어린 시절, 가야 할 방향을 잃고 헤매던 때가 있었다. 여러 생각을 표출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컸기에 작사, 작곡, 책을 쓰는 등 다양한 영역에 도전해왔다는 김 대표. 다양한 경험 뒤 그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바로 사진, 찰나의 아름다움을 사각 틀 안에 담아내는 예술이 그를 매료시켰다. 그가 선택한 길을 관철하기 위해선 부모님의 신뢰를 먼저 얻어야 했던 김산 대표. 사진 공모전에 출품하여 당선되면 그의 길을 믿어주시겠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그는 지체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드사진작가협회에서 주최한 공모전에 도전한 것이다. 산속에서 온몸에 소의 피를 묻힌 셀프 누드 사진으로 메시지를 담아낸 그의 사진은 심사위원들과 경쟁자들을 매료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김산 작가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독립영화도 2, 3편 찍고 개인적인 출사도 좋아했어요. 원래는 패션 사진을 업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첫 아이가 태어나며 어느 순간 현실적인 것들을 먼저 바라보게 되더군요. 그렇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베이비 스냅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장르는 바뀌었을지라도 사진을 통해 추구하는 방향은 변하지 않았어요(웃음). 매일 똑같은 공간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편집하면 사람이 나태해지기 마련이잖아요. 스튜디오 영원에서 한 시간 남짓 찍어드리는 사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실지 몰라도 이 사진은 몇십, 몇백 년 동안 남아있는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매번 같은 마음을 되새김질하며 카메라도 가장 오래 보존하기 위해 한 장의 용량이 가장 큰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죠. 스튜디오를 찾아와주시는 분들께 항상 영원(永遠)한 추억을 남겨드리고 싶어요.” 김 산 대표는 초등학생 아이 둘의 ‘싱글 대디’이기도 하다. 이번 사진 촬영권 기탁도 아이들과 혼자 살아가는 마음과 환경을 알다 보니 행복한 순간을 기록해주고 싶은 마음에 진행했다고. 기탁에 앞서 지역을 조사해보니 큰 동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홀로 지내는 노인분이 1,000명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김 대표.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몸과 마음이 더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청을 통해 선정된 아이들의 성장앨범 제작, 소아암센터 아이들의 사진 촬영과 지역 두 곳의 보육원에 격월로 촬영을 하러 가고 있다. “저희 스튜디오 바로 아래에도 노인요양원이 있는데 간혹 무심한 가족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저라도 스튜디오 영원과 함께 많은 도움을 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김 대표.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냐고 물어보자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너무 오래전이긴 해요. 5년 전쯤 다른 스튜디오에서 직원으로 근무할 때도 촬영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죠. 그때 품에 안아본 갓난아기가 있었는데 그때 그 아이의 얼굴과 온기가 아직도 선명해요. 진지하게 입양을 고려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데려오지 못했죠. 그 이후엔 보육원에 가도 선물만 주고 안에는 들어가지 않으려 해요. 또 어르신들 사진을 촬영하며 소통할 때 그분들의 사연을 자주 듣는데 듣다 보면 많이 울게 되더라고요. 생각해보면 매번 촬영마다 울었던 것 같네요(웃음). 그때 함께 나눈 이야기들도 마치 어제 들은 것처럼 선명히 기억이 납니다. 그런 경험들이 모이다 보니 힘들게 살아왔던 제 삶이 남들에게 제가 가진 것들을 베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얼마나 잘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가져오고 얻는 것들 다 베풀고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요. 요즘 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나만 챙기기에는 이 세상에 나보다 힘들 사람들이 더 많잖아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매번 안쓰럽고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완전 달라요. 한번 손을 내미는 순간부터 그 나눔이 익숙해질 겁니다. 다들 그렇게 각자의 행복을 찾아 더 나은 삶을 살아가면 좋겠어요.” [1121]
    • 문화
    2021-09-13
  • 2021 대한민국 소비자 브랜드대상 만점 수상, 9가지 메뉴의 구방미인 프랜차이즈 방구족발!
    방구족발의 곽봉석 본부장(좌) 과 반구동 대표(우) 지난 6월 24일, 대한민국 소비자브랜드 대상위원회가 주최한 ‘2021 대한민국 소비자 브랜드대상’에 ‘BG푸드시스템’의 족발 프랜차이즈 ‘방구족발’이 150점 만점에 150점 만점을 받으며 선정되었다. 방구족발은 2015년, 진해 본점을 시작으로 경상남도 일대에 10여 개의 점포를 운영 중이다. 10년 전, 오일장에서 터를 잡아 장사를 시작해 다년간 쌓아온 반 대표의 노하우와 레시피로 개발해 낸 ‘데리야끼 족발’, ‘맵달 불족발’ 등의 특별하고도 창의적인 메뉴는 방구족발만의 경쟁력. 모든 연령층의 입맛을 ‘저격’하며 입소문을 타고 이름을 알리고 있다. “방구족발은 정감가는 브랜드입니다. 방구라는 이미지 자체가 익숙하기도, 촌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고객분들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가 없더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구요(웃음).” 유쾌한 반구동 대표와 방구족발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_박정호 기자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반 대표는 마음 한 켠에 ‘장사를 하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처음 요식업계에 발을 들이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간절한 마음과 막역한 친구의 도움으로 방구족발을 오픈하게 되었다. 시작은 지역 오일장에서 천막을 치고 길에서 족발을 삶아서 판매하는 노지 장사였다. 꼭 나만의 장사를 하고 싶었던 그의 진심이 스며든 것일까, 방구족발은 장터에서 독보적인 맛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심지어 전수 창업 요청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반구동 대표는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수많은 분들의 호응에 힘입어 준비과정을 거쳐 진해에 방구족발 점포를 차리게 되었어요, 장터에서부터 입소문이 많이 나서인지 줄이 끝없이 이어졌어요(웃음). 주변에서 아낌없이 주시는 사랑과 응원에 힘입어 더 다양한 곳에서 방구족발을 만나게 해드리고 싶어 2020년, 공정거래위원회에 상표등록을 하고 가맹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방구족발은 현재 경남권을 넘어 전국구로 발돋움을 준비하고 있다. 반 대표는 프랜차이즈 본사로서 항상 초심을 잃지 않겠다며 “현재 상황에서 안주하지 않고 손님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매일 더 나아지는 방구족발을 선보일 것”이라며 끊임없는 노력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이를 위해 밤낮없이 레시피 연구와 신메뉴 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그의 노력은 꾸준히 사랑받는 아홉 가지 메뉴가 증명해주고 있다. “모두의 입맛이 다르기에 메뉴 개발에 있어서 대중화에 초점을 맞춰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다양한 메뉴가 탄생하게 되었죠. 대부분의 족발집은 냉족발, 온족발, 불족발 정도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다면 방구족발은 아홉 개의 메뉴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어요. 항상 제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보다 소비자분들께서 인정하는 맛을 개발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습니다.” 반구동 대표는 창업주로서 많은 고충을 겪어 봤기에 가맹점주와의 상생에서도 탁월함을 보였다. 신설 가맹점의 홍보가 필요한 타이밍에 광고 지원을 해주기도 하고 변동이 심한 족발 원재료의 특성을 파악, 시장 분석을 통해 차액 지원도 아낌없이 해오고 있다. 점주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아닌 점주가 ‘필요로 하는 것’을 융통성 있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프랜차이즈 박람회와 다른 성공사례들을 많이 연구해왔습니다. 갈수록 배달사업이 성행하기 때문에 가맹점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창업하여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해 다양한 규모의 창업 모델을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또 소자본 창업으로서 가맹점주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가맹비를 받지 않고 있죠. 가맹 문의를 오시는 분들에겐 절실함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착한 프랜차이즈’가 되자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경영에 임하고 있습니다.” 반구동 대표는 처음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지역구의 여러 사회시설에 족발을 기탁하며 ‘보이지 않는’ 선행을 이어오고 있었다. 2018년부터는 그의 기탁활동을 꾸준히 지켜본 한 라이온스 회원의 권유로 동진해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사회 나눔을 실천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함께하는 점주들이 모두 성공했으면 한다”는 그는 “그것이 곧 본사의 성공”이라고 말하며 “현 가맹점주 그리고 예비 가맹점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는 처음 오신 예비 점주님께도 ‘성공하고 싶으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라는 말을 합니다(웃음). 그 모습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라고 느껴지실 수 있겠지만 저는 프랜차이즈 본사로서 모자람 없이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에 강하게 말씀드릴 수 있죠. 여기 끊임없는 레시피 개선, 전례에 없던 다양한 개성을 가진 메뉴들 그리고 오로지 여러분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본사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창업을 고민 중이신 예비 점주님들께서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되셨다면 언 제든 방구족발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1121] 가맹문의 : 1600-8455
    • 맛집탐방
    2021-08-23
  • ‘통通~’하는 우리 동네 주치의! “대화하고 소통하며 아픈 곳을 훌훌 툭툭 털어내셨으면 합니다”
    경남 사천시 정동면에 위치한 대통한의원에서 지난 6월 16일, 사천시사회복지협의회를 통해 사천 지역 소외계층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기탁금 500만 원을 전달했다. 지역의 10여 개에 달하는 한의원 중 가장 최근에 오픈한 후 개원 1주년을 맞이한 이 곳은 젊고 소통에 능한 김선욱 원장으로 인해 주변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 기탁 역시 지역민들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 “1년 동안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고 사랑해주셨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하고 찾아보다가 사천시사회복지협의회를 알게되었구요.” 김선욱 원장과 대통한의원의 이야기를 주간인물이 담아보았다. _박정호 기자 고등학생 때 허리가 좋지 않았다는 김선욱 원장.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진전이 없었다고. 그 중 한의원 한 곳에서 치료를 받고 허리가 좋아진 그는 그때부터 한의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들 전문직을 택한 이유로 높은 소득을 생각하고 선택했다 생각하실 거예요. 하지만 저는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환자 개개인의 증상과 환경, 상황에 맞춰 치료방법을 의논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는 점에 매력을 느껴 한의사라는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죠. 한의사로 살아가며 환자와 피부와 마음을 맞대면서 직접적인 치료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진료하고, 상담하고, 침을 놓으면서 환자분과 속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늘어놓는 일이 정말 즐겁습니다.” 김선욱 원장은 복진, 설진, 안진, 촉진을 통해 환자들과 체온, 감정, 통증을 공유한다. 이를 통해 좀 더 섬세한 진단을 내려 성공적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척추를 교정하는 ‘추나’를 통해 척추 디스크 극복한 사례, 난임 부부에게 한약 처방을 통해 임신을 성공시킨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고. 심지어 재생불량성 빈혈을 가지고 있던 한 고령 환자는 다방면의 치료를 통해 혈구 수치가 2배 이상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김 원장에게 대통한의원은 어떤 곳인지 물어보았다. “흔히 아는 동네 한의원이죠(웃음). 허리, 어깨와 같은 생활 통증에서부터 가벼운 내과적 진료를 맡아서 하고 있고요. 저 같은 경우는 수련의 과정을 거쳤기에 추나, 비염, 한약, 교통사고 후유증 치료, 다이어트 관리까지 하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같은 경우엔 평생 후유증이 생길 수 있으므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셨는지 체크한 후, 후유증을 예방하기 위해 외상적 치료와 내과적 치료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다이어트 처방에 이용하는 ‘감비환’은 크게 4가지의 한약재로 이루어진 환이에요. 그 조합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위장을 보호하고 적은 식사량으로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어 식욕을 잡아드리면서 신진대사, 수분 대사를 올려서 가만히 있어도 운동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대통한의원은 이렇듯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한의학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오는 모든 분이 소중하기에 항상 후회없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진료를 한다”는 김선욱 원장. 이곳이 평생의 직장이라 생각하며 침을 놓을 수 있는 그날까지 계속하겠다는 그가 앞으로 꿈꾸는 한의사의 삶은 어떨까 물어보았다. “제가 사천에서 자리 잡으며 꿈꾸었던 것은 이 동네의 주치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몸의 통증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도 한의사로서, 우리 동네 주치의로서 많은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인터뷰 말미, 평소 지역의 주민들과 방문해주는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며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하는 그, 한 시간 남짓의 인터뷰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저를 믿고, 마음을 열고 치료를 받아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대통한의원은 모든 분들한테 열려 있으니까 많이들 찾아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환자분들이 많이 오신다고 해서 의료의 질이 떨어지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함께 근무하시는 분들이 수고스러우시지만 진료 시간도 평일 9시부터 20시까지 주말 9시부터 16시까지 하고 있으니 언제든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오십시오. 대화하고 소통하며 아픈 곳을 훌훌 털어드리고 싶습니다!.” 지역에 따뜻한 의료 서비스와 나눔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대통한의원과 김 원장의 귀추가 주목된다. [1120] •동신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동신대학교 한의과대학원 석·박사 수료과정 •동신대학교 목포한방병원 전문의 수련 •순천 금강한의원 진료원장 역임 •광주 장수한의원 진료원장 역임 •여수 365차한의원 진료원장 역임 •사천 제 3훈련비행단 한방진료과장 역임 •대한한의학회 회원 •대한침구의학회 평생회원 •대한약침학회 회원
    • 메디컬
    2021-08-10
  • 고품질 발효사료 생산으로 ‘농가 소득 증대’,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스타 영농조합법인
    경북 경주시 현곡면에 위치한 천년TMF영농조합법인(이하 천년TMF)은 고품질 발효사료인 TMF사료를 생산·공급해 한우농가의 소득증대에 기여한 스타 영농조합법인이다. 천년TMF는 2009년 경주시로부터 22억 4천만 원을 지원, 영농조합법인으로서 18억 7천만 원을 출자 받아 설립됐다. 2009년 설립된 이후로 꾸준한 성장세를 그리며 탄탄대로를 걸어오고 있다. 또 사료의 주재료인 총체 보리, 옥수수 사이레지 등을 지역 농민단체와 계약재배를 통해 매입해 지역 농업인에게도 지속적인 판로를 열어주고 있다. 천년TMF은 지역 축산인들이 원하는 양질의 사료를 낮은 가격에 공급하며 동시에 꾸준한 장학기금을 기탁해 지역 선순환 시스템 구축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0여 년간 천년TMF영농조합법인을 이끌어오며 경주 축산업 발전에 기여한 전상대 대표이사와 마주했다. _박정호 기자 자수성가형 CEO인 전상대 대표이사는 축산업계의 베테랑이다. 본래 낙농업을 했던 그는 한우 사육으로 전환하며 경주시 천북면으로 축사를 이전했다. 축사 이전과 동시에 그의 숙원사업이었던 축사 현대화를 추진, ‘사료 자가배합기’를 한우 사육에 성공적으로 접목했다. 사료 자체 생산으로 ‘사료비 절감’과 ‘양질의 사료 생산’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그는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경주시한우협회 지부장을 맡기도 하였다. “20대에 축산업을 하면서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처음 결혼 예물을 팔아 송아지 두 마리로 시작을 했죠. 온몸으로 부딪히며 일에 전념했고 고생 끝에 새로운 현대화 축사를 꾸리게 되었습니다. 시설도 시설이지만 축사는 혐오시설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자 항상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죠. 한우협회 지부장을 맡고 있는 어느 날 아침 8시 쯤 경주시장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축사를 아주 깨끗하게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평소에도 어떻게 관리를 하는지 보러 오신 거죠. 자가배합 사료로 인해 냄새도 적고 파리가 꼬이지 않는 깨끗한 축사를 보시곤 시장님은 ‘경주 축산을 살려줄 수 있겠습니까? 시와 함께 사업을 해봅시다’라며 제안을 하셨어요. 저는 ‘앞으로 사업의 50년을 준비할 만 평의 땅을 마련했을 때 함께 하시죠’라고 답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부지가 준비되자 2009년, 천년TMF의 첫 걸음을 내딛었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매월 2500톤의 사료를 생산하며 경주 1위 업체로 자리매김했습니다(웃음). 영농조합법인 중에서 판매량으론 항상 상위 5위권 내를 유지하고 있는 영농조합법인으로 성장했습니다.” 항상 조합원과 지역 농민들과 함께 상생하는 상부상조 정신을 강조하는 전상대 대표이사. 그에 맞는 미담도 아주 많았다. 오랜 시간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조합원의 사육 스타일에 맞는 송아지를 대신 구매해주며 사육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그는 ‘지역민의 사업이 곧 자신의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농업인과 축산인, 영농조합이 함께 윈윈(Win-Win)하며 모두의 숙원사업을 해결해주는 것이 목표”라며 자신의 경영철학을 밝혔다. “첫 번째 목표는 천년TMF사료를 사용하는 농가의 소 한 마리를 1,000만 원에 출하시켜드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1++ 등급을 받아야하고 지육, 도체중이 500kg이 되어야 합니다.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한 번에 목표를 통과하게끔 어떤 사료를 어떻게 줄 것인지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술적인 부분을 지도하며 출하 전에 초음파 육질 측정을 통해 성장 과정에서 꾸준히 코칭하며 출하 일자까지 맞춰드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농가와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죠. 그래서 저희는 늘 농가에 ‘우리를 믿고 맡겨두세요’라고 말씀드립니다(웃음). 성공하면 축산농가 입장에서는 천년TMF를 따라했더니 좋은 결과를 얻었고 이로 인해 소득 증대를 거뒀으니 서로의 신뢰가 더욱 두터워지는 것이죠. 최근엔 김해축산물 공판장 설립 이래 최고가인 2천 45만원에 낙찰되는 쾌거를 달성하며 천년TMF의 저력을 증명해보이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지역 농가와의 계약재배입니다. 사전협의를 통해 모든 규정을 정해 두고 지역 농업단체와 계약재배 매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 중에 가장 보람된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계약재배를 통해 경주 전체의 총체 보리를 써왔습니다. 이를 통해 경주가 전국 총체 보리 재배의 선도지역이 되는데 기여하고 있어요.” 천년TMF는 우수한 자체기술을 가진 영농조합법인으로도 유명하다. 대부분의 업체가 미생물을 구매해서 사용하는 반면 천년TMF는 자체 미생물 배양시설을 갖추고 있다. 미생물을 자체 배양·생산하다 보니 미생물 원균 비율을 높여서 사용할 수 있다. 보통 발효 사료는 발효균 수가 10³~10⁴ 마리 정도 검출되지만 천년TMF의 사료는 10⁶~10⁷마리 정도의 미생물을 포함하고 있다. 반추동물인 소의 소화생리는 ‘반추위’라는 제1위와 제2위에서 미생물을 통해 각종 영양소를 분해, 생성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화할 때 장 내의 미생물도 함께 분해하여 단백질 공급을 돕는다. 그만큼 소에게 높은 함량의 미생물은 곧 원활한 영양분 공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소라는 동물 자체가 하나의 발효기관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거든요. 그렇기에 얼마나 발효가잘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느냐가 영양을 보급하는 것과 일맥상통하게 됩니다. 직원들과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유산균, 고초균, 효모균, 미생물로 발효시킨 건강한 발효사료를 만들고 있어요. 이는 곧 건강한 고기를 만드는 것과도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천년TMF의 발효사료를 사용하는 축사의 특징은 축사의 냄새가 덜하고 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소에게 잘 맞고 친환경적인지 증명해 주는 것이죠. 축사라고 하면 혐오시설이란 고정관념이 있는데 천년TMF와 함께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깨끗한 곳에서 건강한 소를 사육하는 곳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자리 잡을 것입니다.” 천년TMF는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역사회에 더불어 상생하는 영농조합법인의 성공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것. “사업 초기, 지방세로 지원을 받은 만큼 지역에서 받은 것을 되돌려줘야한다”며 “사업이 성장할수록 지역에 더 큰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것이 전상대 대표이사의 진심이다. “저와 직원들은 이 사업장과 관련해서 큰 욕심이 없습니다(웃음). 임직원 모두 ‘부를 쌓기보다 지역에 받은 것을 되돌려주자’는 사회공헌의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지역민들과 서로 믿고 사업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리고 누구나 농업을 하면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늘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각 지역에서 농업을 하면서 정부 지원을 받는 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어렵지만 인색하지 않게 지역에서 받은 것을 되돌려주고 또 함께 나누며 성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앞으로 이런 나눔 문화가 농축산 산업 전반에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웃음).” 오늘도 전상대 대표이사의 머릿속엔 기업과 농업 성장에 관한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올 7월, 경주 용강동에 있는 한우 직판점을 시작으로 전자상거래, 유통 사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역 한우농가의 판로 개척을 통해 더불어 잘 사는 경주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 인터뷰 말미 “돈을 벌기 위해 이웃과 지역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며 “누구라도 돈을 벌면 지역과 산업 발전을 위해 재투자를 해야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전상대 대표이사. 또 “올해도 평소 축산분야에 관심이 많고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주낙영 경주시장님의 도움으로 시비 3억 원을 지원받아 총 사업비 6억 원의 ‘원료 발효탱크 설치사업’을 통해 신기술을 접목하여 발효 효율의 극대화를 통한 한층 발전된 TMF사료를 생산할 계획입니다”라며 성원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인터뷰 내내 자신감 가득 찬 그의 눈빛은 천년TMF영농조합법인이 이끌어갈 새로운 6차 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 했다. 그가 이끌어갈 한국 축산 산업의 내일이 기대된다. [1120]
    • 경제
    2021-08-10
  • 불꽃보다 뜨거운 소방 엔지니어 집단, 대한민국 대표 기술기업을 향해 가는 ㈜메이크순!
    (주)메이크순의 대표 엔지니어들 왼쪽부터 황종욱 상무, 이항준 원장, 김미란 상무, 정형민 이사 2021년 6월 8일, 부산시는 부산을 대표하는 기술창업기업 80개사를 선정했다. 부산 대표 기술창업기업 사업은 혁신기술을 보유하고 성장 가능성이 큰 창업기업을 선발해 부산시 산하 창업지원 기관이 맞춤형 지원을 하는 사업이다. 그중 소방 엔지니어들이 모여 신기술 개발, 지식재산권 획득, 신기술 교육까지 한 번에 이루어내는 ㈜메이크순(Make Something Out Of Nothing)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기술창업기업 선정 배경에 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A. 소화배관에 대한 흔들림 방지 버팀대 존버(Zonever)의 기술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진이 나면 붕괴보다는 화재로 인해 사망사고가 납니다. 그러므로 소화 배관에 내진설계를 하도록 만들었죠. 기존에 있는 종·횡방향의 버팀대의 패러다임을 타파하여 ‘수평·수직 배관 4방향 버팀대’를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설치하는 지지대도 기존 25mm 배관을 M12 전산 볼트용 지지대로 개발해 협소한 공간에도 쉽게 설치가 가능하도록 했죠. 또 이 모든 제품을 고정하는 앵커볼트(후 시공용)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점을 파악해 자사의 기술력으로 ‘선 설치 앵커볼트(Zonever Easy Insert)’를 자체 개발했습니다. 콘크리트 타설 이후 설치하는 앵커볼트는 드릴 작업 중 전선관 파손, 콘크리트에 크랙을 낼 우려가 있으므로 앵커볼트를 먼저 설치하는 제품을 제작했습니다. 미국 중국에서 특허를 받은 자랑스러운 제품들입니다(웃음). Q. ㈜메이크순의 창업 스토리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 ㈜ 메이크순은 2007년, 교육사업부인 ‘Edufire(에듀파이어)기술학원’을 기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소방공사, 소방점검 등 실무를 해왔던, 소위 말하는 ‘현장의 잔뼈가 굵은’ 소방 엔지니어들이 머리를 맞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보자(Make Something Out Of Nothing)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엔지니어 집단입니다. 신기술 개발, 지식재산권 취득, 신기술 교육 등을 이용하여 ‘기술을 전달하는’ 브랜드를 목표로 하고 있죠. 현재 진행중인 흔들림 방지 버팀대(Zonever)는 아이템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앞으로 독자적인 기술력을 통해 다양한 특허제품을 개발하고 풍부한 현장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컨설팅을 수행하는 기업이 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고효율의 연구·개발·시공의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Q. 대표님의 경영이념이 궁금합니다. A. 공유할 수 있는 기술을 늘리자는 것이 목표입니다. 중소기업에서 같이 성장하는 건 쉽지 않겠지만 진심을 담아 ‘더불어 잘 살자’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후배, 직원들에게 제가 가지지 못했던 폭발적인 성장의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꿈은 있지만 다들 경험이 적으니 경험을 쌓도록 해주고 싶어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고기를 잡아주는 대신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가끔 직원들과 술 한잔하며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봅니다. 저는 ㈜메이크순에 몸담은 이상 하고 싶은 걸 이룰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제가 챙겨줄 수 있는 건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하며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그 뜨거운 선순환으로 움직이는 화력발전소 같은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기업 발전 목표는 무엇인가요? A. 현재 현대건설 등 다양한 건설사와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사지구 힐스테이트, 쿠팡 대구 물류센터 약 33만㎡(약 10만 평)등 초대형 규모의 현장 기술 지원도 무리 없이 진행하고 있죠. 모든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에 10개 이상의 대리점을 보유하고 있는 지금, 더 발전하여 10대 건설사에 완벽한 소방 관련 엔지니어링 안착하고자 해요. 또 남들이 안 하는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신기술인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방재 신기술(NET)을 인정받아 조달청 우수 조달 물품으로 선정되는 것이 가장 가까운 목표입니다. Q. ㈜메이크순만의 경쟁력은 무엇입니까? A. 항상 직원들에게 ‘물건을 팔지 말고 기술을 파는 사람이 되어라’라고 합니다. 내진이라는 기술에 대해서 담당자들이 ‘이렇게 하는 걸 처음 본다. 현장에서 이렇게 설치 문제점 등을 지적해주는 경우를 잘 못 봤다’는 평가를 자주 해주십니다. 현장에서 직접 케어가 가능한 게 우리의 강점이죠. 10년 이상의 풍부한 소방 현장경험이 있는 임직원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법적이고 기술적으로 현장을 보살펴줄 수 있는 점이 ㈜메이크순이 가진 강점입니다. Q. 지면을 빌어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무엇이든 ‘되는 방법을 찾아가는’ 회사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전문가가 되고 무언가를 시도하는 회사가 되겠습니다. 촉박한 시간속에서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나가겠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는 큰일을 이루고 싶다면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해보세요. 많은 걸 가지고 싶다면 그에 따르는 희생을 하고 그만큼 움직여야 합니다. 저도 실무 현장에서 배관 용접을 하며, 노하우를 쌓으며 올라왔습니다. 경험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런 과정을 거쳐오며 참을성을 가지고 도전을 해봅시다! (주)메이크순 이항준 대표이사 / 원장 기술창업기업 선정 배경이 된 Zonever 기술자격-소방기술사 / 소방시설관리사 소방설비기사 / 산업기사 [ 경력 ] •중앙소방기술심의 위원 •지방소방기술심의 위원 •성능위주소방설계 심의 위원 •소방청 소방학교 외래 교수 •한국소방안전원 외래 교수 •부산시 안전관리 자문위원 •부산시 건설본부 외부전문가 •양산시 건축심의 위원 •한국기술사회 소방분회장 •전 한국소방기술사회 부산지회 회장 [ 수상이력 ] •부산시장 표창 수상 (2020.12) •과학의 날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 수상(2017.2) •소방청장 표창 수상(2011.5) [ 주요저서 ] •한방에 끝내는 소방설비기사 필기/실기 •한방에 끝내는 소방시설관리사 필기/실기 •한방에 끝내는 화재안전기준 등 10권 등 (총 26권) [1119]
    • 경제
    2021-07-09
  • ‘봉사’는 ‘나 자신이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끼는 것’ “새벽을 밝히는 ‘여명’이 제 삶 또한 밝혀주고 있습니다”
    최근 부산여명라이온스클럽은 창립 제19주년 기념식 및 회장 이·취임식에서 백미 10kg 69포, KF94 마스크 6000매, 수건을 비롯한 생활용품 6종 100여 개 등 6백만 원 상당의 후원품을 괘법동행정복지센터에 기탁했다. 1년 간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황정식 회장은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 하겠다”라고 피력하며 임기를 마무리하고도 한 명의 라이온으로서 그의 봉사정신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주간인물은 라이온스 초대석에 유종의 미를 거둔 황정식 회장의 이야기를 일문일답식으로 담아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라이온스클럽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2002년 창사하여 20년째 산업체 전용 전열기를 생산, 납품하는 ‘전열사’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봉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소소한 봉사활동을 해오던 중 친구의 추천으로 라이온스에 입회하게 되었죠. 8년 전, 입회 당시엔 ‘개인적으로 하는 봉사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하는 의문점이 있었어요. 항상 스스로가 부족하다 느끼고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라이온으로서 활동한 지난 시간, 그리고 회장직을 맡아 임무를 수행하며 복지 사각지대에 라이온스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고, 공감하며 도움을 드리다 보니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1년 동안 한 클럽의 회장으로서 봉사하며 지역에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제가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죠(웃음). Q. 부산여명라이온스클럽의 활동들이 눈에 띕니다. 클럽 자랑을 해주신다면. A. 여명의 자랑이라고 한다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1년 남짓 임원진들이 저랑 함께하며 불협화음 없이 힘을 보태주었고 모든 국면에서 의기투합하여 여러 수상의 영예를 안곤 했죠(웃음). 1년 임기를 마감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집행부 회원들에게 특히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지구의 147개 클럽 중 임원진들이 사비로 봉사하는 것은 우리가 처음일 것입니다. 또 봉사활동 현장에 역대 회장님들이 동행해 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젊은 신입회원들이 항상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고 있어 앞으로 부산여명라이온스클럽의 미래가 더욱 기대됩니다. Q.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A. 어려운 분들에게 단발적인 도움을 드리게 되면 단순한 행사 차원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최근 방문했던 괘법동행정복지센터 대한 봉사활동이 5년 정도는 유지할 수 있도록 이사회를 통해서 만장일치로 규칙을 만들게 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 회장직을 마무리하며...... A. 지면을 빌어 모든 회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회의 석상이나 공식 석상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구구절절할 수가 없어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웃음). 역대 회장님들도 일반회원분들도 “회장님 고생하십니다”라는 따뜻한 멘트를 자주 보내주셨습니다. 그 덕에 힘들 때마다 참 고마움을 많이 느꼈어요. 총무님, 재무님, 사무장님, 집행부 임원분들 모두 전 클럽 통틀어서 가장 고생 많으셨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었습니다. 라이온스 모토가 ‘we serve’, ‘우리는 봉사한다’잖아요. 앞으로도 함께 나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Q.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라이온으로서 회원 확보를 위하여 많이 움직여봤을 때 라이온스클럽을 굉장히 어렵게 생각합니다. 차기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어요. 봉사는 절대로 어려운 게 아닙니다. 봉사는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 바로 도전해보길 바랍니다. [1120]
    • 라이프
    2021-06-30
  • 지역에 스며드는 주례새마을금고, 더 나은, 더욱 튼튼한 금고를 꿈꾸다!
    사상구 주례새마을금고(이사장 박천수)는 지난 12일 코로나-19 확산 방지 및 여름철 전염병 예방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례2동 주민 자율방역단의 노고를 격려하며 앞으로의 활동에 힘써 달라는 의미로 방역 활동 지원금 350만 원을 기탁했다. “전염병으로부터 주민 건강을 지키고 깨끗하고 안전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활동을 펼치고 있는 주례2동 주민 자율방역단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라며 “앞으로도 지역주민을 위한 생활 방역 활동에 만전을 기해 주시길 바란다”라고 말한 박천수 이사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정호 기자 마을금고는 한 지역 주민들의 상조와 이해를 바탕으로 1963년 4월 경상남도 재건 국민운동본부에 의해 발족된 농총신용조합을 효시로 하고 있다. 그 후 1971년 새마을운동의 전개와 함께 그의 금융기구로서 역할을 도맡게 되었다. 1973년 비영리특수 법인인 새마을금고연합회가 발족되며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토대로 오늘날까지 다양한 금융 활동과 지역 환원을 이어오고 있다. 1976년 9월 20일 자연 설립된 주례새마을금고는 법인인가와 중앙회 가입을 거쳐 1983년 12월 27일 주례2동 우편취급국에서 업무를 개시했다. 1997년부터 주례새마을금고의 대의원직을 맡으며 인연을 맺어온 박천수 이사장은 1995년부터 주례2동의 통장을 9년 역임하며 지역 구석구석의 현안에 밝은 모습이었다. 지역의 원로에서 새마을금고 이사장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물어보니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박 이사장은 말을 이어갔다. “과거 이·통장협의회를 하면서 행정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구청에 다니고 이리저리 사람을 알아가다 보니 주변에서 금고에 발을 들여보라 추천을 하더라고요. 제가 지역에서 오래 활동하며 사람을 많이 알아둔 게 저와 금고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2000년도부터 금고 이사직에 출마했습니다. 이후 이사, 부이사장직에 있다가 2012년 11대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11, 12, 13대를 거쳐 상근 이사장은 10년 차네요. 3선째인 지금 더 이루고 싶은 게 많습니다.” 박천수 이사장은 2012년 3월 1일 자로 조합원들의 신임을 얻어 이사장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총자산 670억 원 규모의 금고를 맡아 내수 경기불황,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등을 극복하며 2020년 총자산 1037억 원까지 끌어올리는 쾌거를 거뒀다. 이는 안정적이고 투명한 경영의 결과다. 또 새마을금고 신 주례지점을 확장 이전해 근처 365ATM 부스를 설치하는 등 금고의 이용 편의성 확충에도 힘을 실었다. 지난 2번의 임기 동안 열악한 금융, 경영여건 속에서 지속적인 수익을 내는 능력 있는 이사장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3번째 임기인 지금 “보다 튼튼한 금고를 만들기 위해 말보다는 결과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라고 피력한 박 이사장은 금고 성장 외에도 지역 나눔 활동에도 힘을 실었다. 꾸준한 라면 기탁, 주례2동 행정복지센터에 TV 기탁, 짜장 나눔데이 등 지역에 온정을 불어넣고 있는 것. 박천수 이사장은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지역주민이 어려움을 겪는 요즘 “지역의 마을금고로서 다양한 방면으로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주례새마을금고는 2021년 목표 자산 1100억 원 달성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금융업계가 위축되며 덩달아 금융사업도 어려운 가운데 고객들의 자산 방어에 총력을 다하며 작게나마 한 걸음씩 나아가겠다는 박천수 이사장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돋보인다. 주례의 큰 어른, 주례새마을금고의 3선 이사장, 새마을금고 북·사상구협의회 회장을 맡아 앞으로 금융, 경영, 지역 상생의 선구자(先驅者)가 되어줄 박천수 이사장의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1985년 ㈜부산방직 관리자 근무 •1989년 대신섬유 기획부장 근무 •1995년 주례2동 통장 9년 역임 •1997년 주례2동새마을금고 제7,8,9,10대 대의원 •2000년 3월 1일 주례새마을금고 제8대 이사 •2004년 3월 1일 주례새마을금고 제9대 이사 •2008년 3월 1일 주례새마을금고 제10대 이사 •2010년 3월 1일 주례새마을금고 부이사장 보궐선거 당선 •2012년 3월 1일 주례새마을금고 제11대 이사장 •2016년 3월 1일 주례새마을금고 제12대 이사장 •2017년 2월 1일 ~ 2020년 1월 31일 새마을금고중앙회 대의원 •2020년 3월 1일 ~ 현재 주례새마을금고 제13대 이사장 •2020년 3월 9일 ~ 현재 새마을금고 북•사상구협의회 회장 [1120]
    • 경제
    2021-06-30
  • 한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대패가 1900! 평생 함께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로 자리잡다!
    최근 SH컴퍼니에서 운영하는 대패삼겹 요리 전문 브랜드 ‘대패가1900’이 부산은행과 프랜차이즈론 MOU를 채결, 현 가맹점주 및 예비 가맹점주들을 위한 창업자금을 지원했다. 프랜차이즈론은 BNK 부산은행이 본사의 재무 건전성,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심사해 검증된 프랜차이즈에게 지원하는 맞춤형 대출 제도다. 경쟁력 있는 프랜차이즈로 인정받은 대패가1900. 뛰어난 외식경영인인 김남규 대표이사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대패가1900의 탄생스토리가 궁금합니다. A. 어머니께서 부산 양정에서 대패 삼겹살집을 운영했습니다. 동네 맛집으로 유명했어요. 바로 옆에 대형 고깃집 프랜차이즈가 입점했는데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내는 정도가 아니라 대형 프랜차이즈 가게가 폐업할 정도였습니다(웃음). 어머니의 가게가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 프랜차이즈 관련 서적을 구매하며 공부를 시작했어요. 저도 2016년, 부산대학교에서 대패가1900을 열게 되었죠.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처음 창업했을 때는 홀 위주의 일반적인 대패삼겹살 가게였습니다. 매출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지만 프랜차이즈 사업 모델로서는 큰 메리트가 없는 매출 대였어요. 위치가 외진 곳에 있어서 재방문 고객보다 신규 고객들이 터무니없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돌파구를 찾고자 새로운 형태로 홍보를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2017년, 배달서비스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주문이 하루에 5~10개 정도만 들어와도 브랜드와 맛을 알리기에는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배달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첫날엔 배달 5건으로 시작했지만 한 달이 지나갈 때쯤 하루 20~30건으로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어요. 저의 도전이 성공한 것이었죠. 그런데 저는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배달이 잘 되는 상권에서의 대패 삼겹살 배달 전문점 매장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친구에게 창업 자금을 빌려 배달 전문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자금이 여유롭지 않아 중고 집기류를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게 사기 위해 창업초기 친구와 폐업하는 가게를 찾아다니면서 집기류를 구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오픈한 첫날에 주문이 30~40건씩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확실한 가능성을 본 저는 이걸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전국 최초로 대패삼겹살 배달 프랜차이즈를 런칭하게 되었습니다. Q. 대패가1900만이 가진 강점이 있을까요? A. 전국 최초 대패 삼겹살 배달 전문점으로서 오랫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은 ‘맛’과 ‘구성’이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대패삼겹살만을 취급, 연구하고 요리를 하므로 특수부위인 ‘대패 삼미살’과 직접 개발한 매운 소스로 조리한 ‘불대패 삼겹살’ 등 다양한 메뉴가 많습니다. 이외에도 저희는 대패가1900만의 무기를 항상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배달시장은 갈수록 더 포화 상태가 될 것이고 경쟁도 물론 치열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초대형 프랜차이즈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업체지만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를 높일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샵인샵 브랜드들을 늘려서 언제든 유행에, 입맛에 맞출 수 있는 그런 브랜드가 되고자 합니다. 맛에 대한 경쟁력을 계속해서 갖추기 위해 자체 소스 제조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식자재 유통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으십니까? A. 3PL 업체를 통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사업이란 게 물류 유통 기반 사업이다 보니 원활한 식자재 공급이 가장 중요하더군요. 처음엔 유통 기반 사업에 관한 경험이 적어서 시행착오를 겪곤 했습니다. 점주님들께 클레임이 들어오는 일도 있었죠. 사실 지금도 들어 오고 있긴 합니다(웃음). 사업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유통 관련 공부를 하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많은 변수들에 대응하기 위해 품질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을 계속하고 있어요. 클레임이 걸렸을 때 본사에서 보상은 물론이고 해당 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지만 그 건을 마무리 짓습니다. 100%라고는 말을 못 하겠지만 매 순간 100%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Q. 가맹점주와의 상생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A. 대패가1900이 잘되는 곳도 있지만 안 되는 곳도 있기 마련입니다. 제 경험상 장사라는 것은 기복 없이 꾸준히 잘 돼야 좋은 것이거든요(웃음). 그래서 본사에서는 초량갈비쌈냉면, 야한 쭈꾸미, 킹치찌개찜 등 샵인샵 브랜드를 만들어 원하시는 가맹점주분들께 별도의 비용 없이 브랜드들을 입점시켜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가맹점에 유통마진을 최대한 낮추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축산물 및 식자재 유통 브랜드를 런칭하고 직접 유통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 경쟁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2018년 1월 첫 가맹점을 오픈한 이후 80개 이상의 가맹점이 생겼고 폐업을 한 곳은 10개가 채 안 되어요. 폐업률이 낮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저희를 믿고 함께 해주신 점주님들을 위해 최고의 수익을 드리고자 본사에서는 두 발 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부분들이 많지만 가맹점과 본사가 같이 성장하며 상생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믿고 기다려주신다면 더 좋은 결과로 보답해드리고 싶어요.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A. 지금은 배달을 중점으로 운영하는 대패가1900이지만 다양한 가맹점주님들의 니즈에 맞추기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홀과 배달을 병행하는 매장도 본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런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특수 상권인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대형마트, 휴게소에도 대패가1900을 입점시킬 예정입니다. 그리고 현재 배달 패키지 자체도 업그레이드하여 요즘 감성에 맞는 마케팅을 진행할 계획이에요. 끊임없는 연구 개발을 통해 가맹점주님들이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나아가 해외 진출도 준비 중입니다. K-푸드의 열풍에 더불어 대패가1900을 동남아시아에 알리는 거죠(웃음). 한 층 업그레이드된 브랜드를 탄생시킬 거예요. 2, 3년마다 계약을 마치고 없어지는 브랜드가 아닌 평생 지속적으로 운영하실 수 있는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코로나-19 종식 이후까지 대비하는 중입니다(웃음). 그리고 최근 독거노인복지재단에 저희 대패가1900의 도시락 기부를 진행 중입니다. 아직은 제가 개인적으로 추진하는 일이지만 함께하길 원하시는 가맹점주님들이 있다면 본사 차원에서의 자선 활동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싶습니다. Q. 지면을 빌어 전달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지금까지 대패 삼겹살 전문점이라고 하는 곳들을 보면 대패 삼겹살 외에 다른 품목까지 취급하는 곳들이 많습니다. 이곳이 진짜 대패 전문점인가? 할 정도로 말이죠. 대패가1900은 모든 메뉴를 대패 삼겹살로 만들어 제공하고, 어디서든 다양한 대패 삼겹살 전문 요리들을 맛보실 수 있게끔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부족한 게 많지만 전 국민이 대패 삼겹살을 떠올렸을 때 ‘대패가1900’이라는 브랜드가 떠오르게 만들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커피 하면 ’스타벅스’, 치킨 하면 ‘교촌치킨’, 피자 하면 ‘도미노피자’, 그리고 대패 삼겹살 하면 ‘대패가 1900’이 떠오를 수 있게요(웃음). 꼭 대패 삼겹살을 대표하고 국내에서 유일한 ‘진짜’ 대패 삼겹살 전문점이 되겠습니다. [1120]
    • 맛집탐방
    2021-06-30
  • 1대1 맞춤 상담을 통해 마음의 창을 새로 그려 넣다-Perfect-Beauty를 위한 장소, 에스마리의원!
    K-뷰티 열풍과 함께 한국의 성형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 분야로 우뚝 서고 있다. 미적 성형수술은 외과적인 시술, 수술을 이용해 기능적인 면을 개선하거나 첫인상 대부분을 좌우하는 외모를 개선, 복구 또는 개인적인 미적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성형수술이란 범주 안에도 부위별로 다양한 솔루션이 있지만 그 중 사람의 인상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바로 ‘눈’이다. 예로부터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듯 대부분 크고 또렷한 눈을 선호한다. 이로 인해 ‘눈 성형 잘하는 병원’을 호시우보(虎視牛步:호랑이같이 예리(銳利)하고 무섭게 사물(事物)을 보고 소같이 신중(愼重)하게 행동(行動)한다)의 자세로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더는 헤맬 필요가 없다. 울산 남구 문수로 331에 있는 ‘에스마리 의원’과 김덕영 대표원장이 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해줄 터, 섬세한 상담을 통해 찾아오는 환자에게 최대한의 만족을 주고자 한다는 김덕영 대표원장을 주간인물이 찾아가 보았다. _박정호 기자 에스마리의원은 안전하고 정확한 시술, 성형수술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눈 성형에 분야에 이름이 난 김덕영 원장과 1대1 맞춤 상담을 통해 다양한 솔루션을 제시받고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쌍꺼풀, 상안검, 하안검, 눈매교정(안검하수 교정), 앞트임, 뒷트임 등 다양한 분야에 많은 임상경험을 지닌 김덕영 원장은 언제나 고객에게 최고의 만족과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하는 ‘눈 성형’ 전문가다. “의사는 환자들의 증상에 대해 설명도 해줄 수 있고 처방이든 치료든 어떤 도움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잖아요.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외과에 지원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형외과로 받을 내디뎌 수련의 과정을 거쳐 6년 동안 눈 수술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환자도 하루에 세 명 이상 수술하지 않아요. 제가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인원만큼만 진료하려고 노력합니다(웃음).” 수술에 들어가기 전 어떤 의사는 종교에 상관없이 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는 예도 있다. 결과물이 잘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환자에게 신뢰를 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다. 김덕영 원장은 눈 수술을 할 때 기능적인 장애를 예방하기 위해 대화를 하면서 수술을 진행한다. “항상 환자의 안전과 결과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그는 수술 중에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차분한 노래를 틀어 수술에 안정감을 더한다.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완벽한 결과를 내고자 온 힘을 쏟는 의사다. “평소에 그림 그리기, 특히 선 긋기를 굉장히 많이 합니다. 아무리 지금이 디지털 시대라고 하지만 의사는 아날로그잖아요(웃음). 손으로 직접 수술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을 그리는 연습을 많이 합니다. 일직선인 눈은 없거든요. 눈이라는 게 유선형을 띄고 있기 때문에 디자인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유선(流線) 긋기 연습을 매일같이 하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코디네이터를 거치지 않고 환자들과 직접 상담을 한다. 상담을 통해 환자가 원하는 것을 듣고 맞춤 솔루션을 제시하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미리 알려주며 그 방향대로 수술을 한다. 병원 내의 코디네이터를 거치지 않고 원장과의 상담-수술로 이어지는 ‘One-Stop 체계’로 운영하기에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단다. “고객과의 소통 중에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을 원하는지를 들어보는 것입니다. 연예인 사진이나 참고자료를 가져오면 본인이 희망하는 바를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확실하게 말해드리죠. 왜 수술을 결정했는지 히스토리 테이킹도 함께 진행하여 겉과 속을 동시에 채워드리려고 합니다.” 에스마리의원은 성형수술과 함께 피부과 진료도 함께 하고 있다. 의료 장비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은 김 원장은 항상 최고의 의료장비를 갖추기 위해 많은 장비를 물색하고 있다. “가격을 떠나서 최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국산 의료장비를 애용하고 있다”며 자신 있게 말하는 김 원장. 그의 정직한 진료도 최첨단 장비만큼이나 빛을 발하고 있다. “색소, 기미, 착색, 여드름 등 모든 상담과 진료에 앞서 ‘뭐가 되고 싶은지’를 여쭤봅니다. 제가 구성한 관리 프로그램도 확실한 효과를 내지만 환자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구성하여 제시하는 게 더 좋아요. 너무 어린 나이거나 자연스럽게 없어질 만한 현상이면 시술은 삼가고 연고만 처방해드리는 때도 있습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잖아요(웃음).” 언제나 환자가 최고의 만족함을 보여야 비로소 마음을 놓게 된다는 김 원장. 타 병원에서 수술에 실패하여 마음을 다쳐서 오는 고객에겐 더욱 신경이 많이 쓰인단다. 수술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가 있는 재수술 환자를 만나면 그 마음까지 보듬어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진심이다. 그런 그의 마음이 통하는 걸까, 에스마리의원에는 타 지역에서 오는 재수술 환자도 상당히 많았다. 김 원장은 “모든 수술이 그렇지만 재수술에서는 책임감이 더 막중하다”며 마지막 멘트를 남겼다. “웃으면서 와 웃으면서 나갈 수 있는 병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고객과 같은 눈높이에서 몸도 마음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를 믿고 찾아와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웃음)” 솔직한 김덕영 원장과의 인터뷰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정직하고 책임감 강한 그를 통해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한다. [1118] •충남대학교 의학과 •울산대학교병원 수련의, 티아라 성형외과, 파르베 성형외과 •에스마리 성형외과/피부과 원장 •한국미용외과의학회 정회원 •대한지방흡입학회 정회원 •대한비만미용치료학회 정회원 •대한피부모발학회 정회원 •대한임상레이저학회 정회원 A
    • 메디컬
    2021-06-16
  • 각자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는 기업!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빛의 놀이터를 꿈꾸다
    2021년 5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관광벤처기업 공모에 부산의 기업들이 선정됐다. 그 중 조명, 소품을 이용한 사진 촬영과 천마산, 산복도로 등의 부산의 숨은 명소 드라이브 투어를 통해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전하며 여행객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밝히는 부산관광스타트업, ‘밝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숨겨진 부산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야경명소에서 LED조명을 활용한 촬영소품을 통해 관광객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위동영 대표. 오늘도 부산의 밤을, 사람들의 추억을 밝히는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_박정호 기자 “부산을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부산에 야경명소가 많아요. 타지사람들이 오면 한 번쯤은 가보는 장소죠. 그렇기에 타지사람들은 부산에 가볼 만한 곳은 다 가봤으니 다음에 굳이 안 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근교 바다로 가더군요. 그래서 부산의 야경에 특별함을 더해 새 단장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조명과 소품을 더해 야경명소를 재해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밝히는 사람들’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예술을 좋아했던 위동영 대표는 광안리 바닷가에 설치된 제니 홀저의 작품, ‘디지털 빛의 메시지’를 보고 빛과 텍스트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 ‘나도 도전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마음 속에 일었다고 전한다. “작품을 처음 봤을 당시 영문 문구를 직역해서 그런지 메시지가 좀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한국적이고 감성적인 문구를 더해 저만의 작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대학교에 작품 전시 순회를 하게 되었죠. 청춘들에게 응원과 행복을 전해주는 ‘ 꿈은 너와 많이 닮아서 참 예쁘다’ 와 같은 문구를 빛으로 새겨넣곤 했어요. 전시회 내내 대학생들 사이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에 힘입어 제니 홀저처럼 야간에 할 수 있는 예술콘텐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자 대학교 창업동아리를 통해 참여할 수 있는 예술과 조명, 우산, 꽃, 파라솔 등 소품을 빛과 연결해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빛의 ‘놀이터’를 만들고 싶은 바람이 컸다”는 그는 부산의 밤이 밝고 아름답게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정육점 냉장고, 복조리, 유리잔 등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것들에 조명을 담아 촬영용 소품으로 만든 것이 그 첫 단계다. 제작한 제품을 판매할 수도 있지만 특별한 상황에서만 쓰이는 촬영용품의 특성상, 환경을 생각해 따로 판매하지 않고 대여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억들을 활용해 조명 소품의 활용성을 극대화하고 그 빛과 함께하는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 쌓아왔던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콘텐츠 중 빛으로 만연한 순간을 담은 엽서를 사진 촬영을 마치고 드리고 있습니다. 추억을 담은 사진과 굿즈까지 드리니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또 찾아오신 분들이 사진 결과물을 보고 좋아하실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그렇기에 제가 가진 색감보다 더 좋은 색감을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조명 소품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숨은 가치를 밝혀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부산에서 시작해 차츰 전국으로 영역을 넓혀 훗날, 일본 베트남 등으로 해외 진출을 하는 것이 목표다. 오프라인 영역을 활성화해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즐거움의 거점이 되는 ‘모든 것을 밝히는 사람들’이 그의 꿈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삶을 더 즐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그의 하루를 가득 채우고 있다. “ ‘밝히는 사람들’이 복수잖아요. 그런데 현재는 1인 기업으로 저 혼자 디자인, 촬영, 조명소품 제작, 홍보 등 모든 것을 혼자서 하고 있어서 ‘밝히는 사람들’이라는 명칭과는 거리가 멉니다(웃음). 고객분들과 사진이라는 결과물을 함께 만드는 모습, 그리고 다양한 기관과 사람들과 협업하는 과정을 비춰보면 ‘밝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밝히는 사람들은 다채로운 색깔과 다양한 시선으로 새로운 부산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밝히는 사람들, 많이 지켜봐 주시고 응원 부탁드립니다!” [1118]
    • 문화
    2021-06-16
  •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는 라이온스! 새로운 봉사 문화 정착에 한 걸음 다가서다!
    1958년 한국에 뿌리내린 라이온스클럽은 긴 시간 동안 지역에 봉사하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뭉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인 봉사단체이다. 2020년, ‘우리는 봉사한다’라는 뜻의 ‘We Serve’라는 표어를 걸고 온누리에 따뜻함을 나누고 있다. 수많은 지역사회 나눔 소식들이 들리는 와중 햇살 따스한 5월, 라이온스 355-A 지구 제8지역의 배추김치 1,000kg 기탁 소식이 눈에 띄었다. “김치는 항상 식단에 있어야 생각해 김장철 받은 김치가 떨어질 때쯤 구청을 통해 기탁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문성수 부총재는 1987년부터 식자재 기업 ‘패밀리식품’을 경영해오며 과거 혐오시설이라 불린 ‘월남 난민보호소’, 사회복지법인, 복지관 등에 차별 없이 식자재를 납품해온 마음 따뜻한 기업인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식자재를 납품하며 쌓은 경륜으로 ‘주고 싶은 도움’이 아닌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는 문성수 부총재. 그와의 따뜻한 인터뷰를 담아보았다. _박정호 기자 과거 상갓집에 조문을 하러 갔던 문성수 부총재, 빈소에 끝없이 들어오는 단체 조문객을 보고 “뭐 하시는 분들일까”라는 궁금증에 후배에게 질문했다. 돌아온 대답은 ‘라이온스클럽 회원 분들입니다. 선배님도 잘 어울리실 텐데 한번 함께 해보시겠습니까?’라는 후배의 권유였다. 당시 사업에 전념하던 터라 단체에 가입하기엔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던 문 부총재는 마음 한켠에 받은 권유를 곱게 접어두었다. 식자재 유통을 했던 그는 주로 사회복지법인에 납품을 했는데 현장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접하고 봉사 현장을 많이 겪어오며 지역 봉사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활원에 가보니까 ‘우리 실정의 봉사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모자란 점이 있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자주 품었습니다. 하루는 재활원에 갔었는데 5세, 뇌 병변 환자가 저한테 안겼어요. 아이의 침이 옷에 묻었지만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를 보고 더 마음이 가더군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 5부두에 미 함대가 훈련하러 들어올 시기였습니다. 부두에 정박하자마자 미군들이 바로 재활원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오는데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하고 허물없이 티 없이 교감하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나눔이고 봉사구나’하는 뭉클함을 느꼈죠.” 미군의 온전한 나눔의 모습을 본 문 부총재는 2003년, 라이온스클럽에 발을 들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사업체를 운영하며 봐온 봉사의 모습, 온전히 피부를 맞대며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그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다. 그가 몸담은 클럽은 서면 라이온스클럽에서 활동하던 이종삼 L이 2002년 6월 26일 72명의 회원을 모아 시작한 부영라이온스클럽이었다. “벌써 입회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네요. 처음 입회했을 때는 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엄청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왔습니다. 당시 함께해주신 선배들이 배려를 잘해주셔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부영클럽은 결속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활력이 넘치는 50대부터 경륜이 쌓인 70대까지 부인회와 젊은 신입회원들도 최선을 다해주고 있습니다. 항상 노력하는 그 모습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라이온스클럽 부총재의 임기는 1년이다. 2020년, 21년은 코로나-19로 인해 시에서도 다양한 행사를 자제하길 권유해 대외행사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1년 단위로 짜인 연례행사들을 개최시키진 못했지만 물심양면으로 총재를 보좌하며 누구보다도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임기를 보내고 있는 문 부총재. 그는 라이온스 입회 순간부터 지금까지 고수해온 스스로의 라이온스 정신이 있다고 말했다. “라이온스클럽의 모토가 ‘We Serve’입니다. 봉사를 통해 나 자신이 발전합니다. 끊임없이 배우며, 발전하며 뿌듯한 마음이 갈수록 커져요. 대외적으로 라이온스클럽은 ‘봉사단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에게 봉사는 기본입니다. 저는 이제 라이온스클럽이 문화로 정착되어야 할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스킨십으로 나누는 ‘교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들이 동아리를 결성해서 운영하는 ‘목욕 봉사’와 같은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봉사를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품을 지원하는 것도 좋겠지만 피부로 부딪히면서 다시 마음을 나누며 봉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다시 돌아오면 좋겠습니다.” 자신만의 라이온스 정신에 대하여 피력하는 문성수 부총재의 얼굴은 꽤나 상기되어 있었다. 표정에서 감출 수 없을 만큼 봉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아직도 녹음이 만연한 푸르른 여름을 보는 듯했다. 그와의 아쉬운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 담아보았다. “요즘은 경제상황도 안 좋지만 젊은 분들께서 힘을 합쳐 ‘역사시절’로 올라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또 가끔 회원 간에 사고의 차이 때문에 큰 목적을 잠깐 잊는 일도 있습니다. 그럴 땐 제 선친께서 항상 당부하셨던 ‘참을 忍(인)을 가슴에 새기며 善(선), 惡(악)을 전부 내 스승으로 삼으라’는 말을 되새겨봅니다. 그 마음을 한번 떠올려보면 더 나은 결과가 생길 것입니다. 1년 동안 355-A 8지역의 회장님들이 너무 많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다른 지역들보다 더 돈독하게 활동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저 혼자서 이루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굳은 결속과 유대로 세상에 온기를 드리우는 8지역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118]
    • 라이프
    2021-06-16
  • 시민이 믿는 의회, 시민을 믿는 의장! 동북아 최고의 중심도시를 향한 도약을 꿈꾸다
    ‘새로운 부산’을 바라는 시민의 명령으로 탄생한 제8대 부산시의회, 그 후반기를 이끌고 있는 신상해 의장은 온화한 성품과 합리적 의정활동,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춰 동료 의원들에게도 두터운 신망을 받는 재선 시의원이다. 최근 전국14개 시도의회 의장의 마음을 모아 가덕신공항 지지 선언을 개최, 시의회 역사에 큰 획을 그으며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인물이다. 인터뷰 도중 “의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며 의회발전의 의지를 자신있게 피력하는 신상해 의장, 그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의 형식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A.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보다 더 보람찬 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정계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시의원이 되기 전, 문화불모지였던 사상구에 새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사상문화원 설립 추진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1년 동안 동분서주하며 기업인들로부터 자본금을 출연 받았고 650명 회원으로 구성된 사상문화원을 성공리에 출범했습니다. 설립 3년 만에 사상문화원은 전국 220여 개 문화원 중에 최우수 문화원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웃음). 그렇게 13여년간 사상문화원을 운영하며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점을 구민들이 인정해주셔서 2006년, 5대 부산시의원에 당선되게 되었습니다. Q. 코로나19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A. 지난해 2월 21일, 부산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시민의 하나 된 마음, 의료인과 방역당국의 헌신으로 대확산 위기를 잘 넘겨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파력이 큰 변이 바이러스 유입 등 4차 대유행에 대한 우려가 대단히 크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부산시의회는 지난해 9월부터 코로나19 비상대책위원회를 운영하며 방역·의료, 경제·민생, 교육·행정, 소통·홍보 등 4대 핵심분야 중심으로 코로나19위기에 총력 대응하고 있어요. 민생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골목상권 보호, 원격수업 활성화 등 당장 시급한 사항에 대해 바로 조례·규칙 제·개정을 통해 입법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부산시의회는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 특히 사회안전망 확충과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계속 역량을 집중할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있는 만큼 백신 접종에 적극적으로 응해 주시기 바랍니다.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고 모두가 생활방역을 실천해 주신다면, 일상회복의 날을 앞당길 수 있어요. 다시 한 번 힘을 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Q. 의장 취임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A.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정말 다사다난했습니다. 하지만 제8대 의회는 시민의 관심과 지지, 의원들의 노력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죠. 권한대행 체제 속에 시의회·시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긴밀히 협의한 결과, 코로나-19위기 속에 시장이 사임하는 최악의 상황도 신속하게 안정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중앙 정치권, 정부 등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용한 전방위적인 노력을 펼쳐 권한대행 체제 속에서 사상 최대 규모 국비인 7조7,220억 원을 확보하는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후반기에 2개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켜 중장기적인 비전을 실현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장 크게 꼽고 싶은 것은 ‘김해신공항 백지화’를 넘어 ‘가덕신공항 건설’ 여론 확대를 주도해 그 물길을 바꾼 것입니다(웃음). 지난해 12월 7일 전국 14개 시도의회 의장님들을 부산시의회에 모시고 가덕신공항 건설지지 선언을 개최한 것은 가장 뿌듯한 기억이죠. 지역민을 대표하는 지방의회가 각자의 지역을 넘어서 국가적인 의제에 모두의 마음을 모은 우리나라 지방자치 역사에 없었던 대단한 일이고 그것을 우리 부산이 주도해 만들어낸 것이죠. 부산시민의 응원과 힘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Q. 가덕신공항 건설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추진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A. 가덕신공항은 단순한 지역 공항이 아닙니다. 침체된 지역경제를 부활시킬 발판이며 수도권 일극 체제로 신음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계를 국토균형발전의 미래로 견인하는 대(大)전환점이죠. 잘 아시다시피, 지난 2월 가덕신공항 건설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시민의 20년 숙원인 가덕신공항 건설은 명실상부 불가역적인 국책사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특별법 통과는 큰 산 하나를 넘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야말로 국가적 역량을 결집해 안전· 확장·접근성을 갖춘 물류·여객 중심 관문 공항 건설에 사활을 걸어야 할 때입니다. 2029년까지 개항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추어 국가사업인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에도 힘을 실을 계획입니다. 가덕신공항 건설사업에 대한 사전타당성 조사가 5월 중 착수될 예정입니다. 국토부는 사전타당성 조사 결과를 반영해 2022년 3월 내로 사업추진 방향을 마련하고 정부의 6차 공항종합계획에 가덕신공항 건설을 추가로 반영해 2024년 초 착공, 2029년 완공의 로드맵을 갖고 가덕신공항의 조속 건설에 매진해 나갈 것입니다. Q.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와 같은 부산의 큰 현안의 해결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A. 2021년 올 한해는 부산의 사활을 거는 마지막 기회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현안이 많았죠. 먼저 2030부산월드엑스포는 2021년 6월, 유치신청서 제출을 계기로 본격적인 막이 오를 예정입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광저우와 텐진, 아제르바이잔 바쿠, 프랑스 파리, 캐나다 몬트리올, 네덜란드 로테르담 등 수많은 도시들이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핵심 현안은 2가지로 추진력과 인지도를 갖춘 인물을 추진위원장으로 위촉하고 개최 예정 장소인 북항재개발사업지구 내 미군시설의 이전 등의 실질적인 진척을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시의회는 올해를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원년으로 선언하고 시의회 차원의 유치 지원추진단을 구성해 총력 지원할 것입니다. Q. 내년 1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있으십니까? A. 32년 만에 이루어진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의 취지는 지역의 문제를 숙의, 결정하는 권한이 주민에게 있다는 ‘주민주권’ 강화에 있습니다. 또 중앙과 지자체가 상, 하의 개념을 넘어 협력의 관계로 바뀔 것입니다. 지자체가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거듭나고 국토균형발전도 속도를 내게 되겠죠. 부산시의회는 2022년 1월, 법 시행을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자치법 개정안 통과로 특별지자체 설립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부·울·경 3개 시·도 특별연합 설립에도 속도를 낼 방침입니다. 다만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지방의회 독립성 강화를 위한 핵심 내용인 조직구성권과 세출 예산권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요. 이에 부산시의회는 청와대와 국회, 행정안전부 등에 지방의회의 조직구성권과 세출 예산권 보장의 내용을 담은 별도의 ‘지방의회법’을 제정해 줄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보냈습니다. Q. 앞으로 남은 1년 임기, 어떤 정책에 주력할 예정입니까? A. 대한민국은 지금, 수도권 일극 체제와 지방소멸이라는 양극화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살고 물적·인적 자원, 기업이 수도권에 초 집중화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그 어느 지역도 소멸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지역민의 20년 숙원인 가덕신공항이 돌이킬 수 없는 국책사업이 되며 지역경제 회생, 국토균형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죠. 또 32년 만에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이 이루어지면서 부·울·경이 하나의 권역으로 묶이는 메가시티 조성에도 박차가 가해질 예정입니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이 수도권 일극 체제에 균열을 내고 ‘모두가 잘 사는 나라’ ‘전 국토가 골고루 발전하는 나라’를 만드는 큰 원동력으로 나설 수 있다는 희망이 커지고 있어요. 가덕신공항의 조속 건설,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북항 재개발 등 굵직한 미래비전 사업들을 진행해 부산을 동북아 중심도시로 도약시키고 국토균형발전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1117]
    • 정치
    2021-06-16
  •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 주민들의 마음에 스며드는 열린 교회를 만들다
    마을교회는 부산 부산진구 범천1동에서 2019년 7월 7일에 설립된 작은 개척교회다. 이곳은 작은 개척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로 타의 모범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4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마을교회는 범천1동 주민센터에 이불 20채를 기탁했다. 이 뿐만 아니라 선풍기, 전기장판, 이불 등의 물품 기탁과 꾸준한 관내 식품 지원 및 무료급식 봉사도 이어오고 있다. 한마디로 ‘나눔 활동계의 다윗’ 같은 교회다. “마을교회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마을이든 스며드는 교회가 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종언 담임목사. 그는 안락1동에서 붕어빵을 판매해 수익금으로 이웃을 돕는 따뜻한 목회자다.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이종언 담임목사와의 이야기를 일문일답의 형식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언 11장 24~25절- Q. 이종언 목사님의 목회자로서의 길이 궁금합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마을교회를 설립하게 되셨습니까? A. 저는 원래 성악을 전공했습니다. 찬양 사역자의 삶이 좋아 ‘평생 교회에서 활동하며 살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중 주변의 권유로 신학교에 가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신학대학원을 갔고 목사가 되었죠. 하지만 부목사 생활을 하며 제가 살고자 했던 목회자의 삶과 다름을 느끼고 힘들어하던 중 성대폴립(후두폴립:laryngeal polyp) 수술을 하게 됐습니다. ‘한 달 동안 말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죠. 침묵의 기간을 이겨내며 저의 가치관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교인을 대하는 마음자세가 많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담아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해드리며 신앙인으로서 신앙을 잃은 분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움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진심과 진심을 맞닿으면 누군가의 마음이 변화됨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이것이 진정 제가 생각한 목회자의 길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마을교회의 근간이 되었죠. Q. 마을교회는 작은 개척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로 타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사님의 목회 철학은 무엇입니까? A. ‘내 한 몸 마을의 주민처럼 살자’고 항상 되새깁니다. 많은 교회가 있지만 ‘과연 마을에 스며들어서 긴밀한 교제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해보니 아니더라고요. 행사를 통해서 마을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게 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그 행사를 구심점으로 관계가 발전하기 때문이죠. 옛날 마을의 어른은 어른 대접을 받았잖아요. 지혜를 구하기도 하고 말이죠. 저는 마을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굳이 행사가 없어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도움의 손길과 지혜를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꾸준한 나눔과 봉사활동을 해오셨는데,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드리고 있으십니까? A. 주변에서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 싶어 평일에는 안락1동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웃음). 손님들이 기분 좋게 붕어빵을 사가실 수 있도록 늘 넉넉하게 드리려고 해요. 붕어빵 한 마리를 서비스로 드리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붕어빵 무료 나눔의 날을 만들어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웃으면서 마음을 나누었어요. 또 교회 개척과 동시에 시작한 안락1동 바르게살기 위원회에서 마을과 주민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죠. 이렇게 시간이 지나갈수록 주민들과 서로를 알아가면서 좋은 유대관계를 맺기 시작했어요. 이렇듯 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뭘 더 해드리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봄이면 여름에 뭘 필요로 할까 하고 미리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웃음). 교회가 마을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면 제가 주고 싶은 것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엔 뭘 필요로 할지 주변에 자문을 많이 구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니 갈 길이 선명해지더군요. 엄청나게 대단한 것을 해줄 수는 없겠지만 매번 최선을 다 해 준비하고 있어요. Q. 봉사로 만난 인연 중에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A. 지난겨울 우연히 10여년 간 만성질환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청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밥과 물은 고사하고 전기장판과 하루 한끼로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질병이 있으니 변변한 직장을 가질 수도 없구요. 저는 이 청년이 따뜻한 밥이라도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매달 식료품을 지원해주게 됐습니다. 또 정기적인 치료가 중요해서 매달 치료비 일정액을 도와주기로 했어요. 그러다 보니 6개월 만에 사람이 달라지더군요. 목소리에 힘도 실리고 자주 웃고 못 보던 표정들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가 주고 싶은 것과 그가 필요한 것을 잘 맞춰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웃음).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A. 대형교회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늘면서 한때 사회적인 지탄을 받기도 했지요. 이번 기회에 주민들로부터 교회가 과연 마을에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고 있는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더 나은 존재가 되어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준비를 하고 실행으로 옮겨 교회 주변의 마을이 행복해진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행복하게 지내길 바랍니다(웃음). [1117]
    • 라이프
    2021-06-16
  • 부산 기초·광역의원 최초 광복회 역사정의실천인상 수상! 독립유공자의 아들에서 북항 재개발의 전문가를 꿈꾸다!
    2021년 5월 11일, 박재혁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제 기념식에서 부산광역시 동구의 배인한 의원이 부산 기초·광역의원으로서는 최초로 광복회 역사정의실천인상을 수상했다. 항일독립운동기념관 조성을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수상의 영예를 안은 배 의원은 동구의회 전반기 의장으로서 지역민을 위해 초고층 생활형 숙박시설 건축 반대에 앞장서 삭발을 감행하며 의회를 이끌었고 후반기도 의원으로서 분골쇄신(粉骨碎身)의 정신으로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또 ‘독립유공자 유족’이자 ‘북항 전문가’로 지역구에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인 배인한 의원과 특별한 만남을 1문 1답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역사정의실천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지방자치제에 가장 아래 기초의원이 정치인상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의아하고 개인적으로는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번에 상을 받게 된 것은 항일독립운동기념관 조성을 위한 노력과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조례가 조명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조례를 준비할 때 제가 독립유공자 유족이기에 이해충돌 적인 측면도 있어 동료의원께 조례취지를 잘 설명하며 진행이 되었습니다. 역사를 위해 선뜻 힘을 보태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상은 역사와 정의를 위해서 앞으로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기초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는 하나의 격려(激勵)라고 생각합니다. 독립유공자 유족으로서는 아버지께 다시 한번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Q. 의정활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의정에 참여하기 전, 사회활동을 하는 제가 봐도 동구는 특정 정당, 특정 정치인의 색깔이 굉장히 진한 곳이었습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처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언젠가는 ‘지역 야당’으로서 의정에 뛰어들어 단색 양상의 정치 판도를 변화시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던 중 ‘북항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동구에는 북항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북항 재개발 사업 1단계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부산의 지도를 바꾸는 국책사업은 동구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느끼고 의정활동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북항에 평생 살았던 저로서는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도전이었죠(웃음). Q. 추진 중인 지역 현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항일독립운동기념관 유치에 힘을 실을 생각입니다. 부산시에서 독립기념 관련 행사를 하면 꼭 충렬사에 들러 참배를 합니다. 하지만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송상현 동래부사, 정발 부산진첨절제사를 비롯해 부산에서 순절하신 호국선열의 위패를 모셔온 곳입니다. 행사의 목적과 다른 곳을 가고 있던 것이죠. 작지만 부산 민주공원에 광복회관 2층에 위패 봉안소라는 곳에 유일하게 부산 출신 독립유공자이신 순국선열, 애국지사 위패가 450여 기가 있습니다. 그곳을 찾아 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20년, 광복회에서도 항일독립운동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당시 수탈장소이기도 했던 옛 북항 1, 2부두 근처가 기념관으로써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크루즈선이 많이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죠. 크루즈선 특성상 부두에 4~5시간 동안 체류하기에 접안지 근처에 항일독립운동기념관을 유치, 한국의 역사와 동구의 관광 메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고 합니다. Q. 발의한 대표적인 조례 몇 가지 부탁드립니다. A. 적극적인 구정질문 및 의회 의견 수렴을 위해 의회의 회의 규칙을 개정하는 조례를 발의했습니다. 구정질문을 일괄질문·일괄답변 방식에서 일문일답 방식으로 할 수 있게끔 말이죠. 또 질문, 답변 시간 포함 20분으로 규정되어있던 본질문의 시간을 답변 시간을 포함하지 않도록 개정했습니다. 또한 노령인구가 많은 동구 특성상 65세 이상 세대, 장애인 단독 세대 등의 대형폐기물 이동 지원에 관한 조례도 발의했습니다. 이 조례는 전국 최초로 원도심인 동구지역 여건을 감안하여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과거에는 대형폐기물을 구청에서 정해준 일정한 장소까지 갖다 놓아야 수거를 하는 문전수거방식에서 집을 방문하여 수거하는 방문수거방식으로 변경을 하여 노령층과 장애인을 배려했다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대형폐기물을 혼자서 옮기게 되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 외에도 항상 주변에 무엇이 필요한지, 준비되어야 하는지 생각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웃음). Q. 지역주민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A. 의장직을 맡았던 전반기에는 코로나-19가 심각하지는 않았습니다. 1년 8개월 정도는 구민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죠. 하지만 후반기에 들어 코로나-19가 점점 확산하며 행사가 취소되고 하니까 공식 선상에서 주민들을 대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SNS상으로 5분 발언 등의 의정활동을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웃음). 문자도 하나하나 보내드리고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남보다 덜 자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후보자로 있을 때 열심히 하겠다고 지역주민과 약속을 했기에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지역주민은 물론 동구청 직원으로부터 제보가 많이 들어옵니다. 무언가를 말했을 때 반응이 좋을 것 같은 사람한테 제보하지 움직이지 않는 사람한테 제보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향후 북항재개발이 마무리되는 2030년까지는 지역을 위해 북항을 잘 아는 분이 더 많이, 함께 일했으면 합니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라고 비록 제가 아니더라도 어떤 누구라도 선출직 공직자는 지역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117]
    • 정치
    2021-06-16
  • 신뢰, 소통, 공감의 변호사! 무죄 전문 변호사로 우뚝 서다!
    “피고인 안인득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온 국민의 주목을 받았던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사건’이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법정을 나서던 그. 문일환 변호사도 함께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사형이 선고될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는 최선을 다해 피고인을 대변(代辯)했고 변호(辯護)했다. 기자회견에 침착하게 임하는 그의 직업정신에 많은 누리꾼이 찬사를 보내곤 했다. 그로부터 2년, 창원시에 새로운 법무법인으로 둥지를 튼 문일환 변호사를 주간인물이 만났다. _박정호 기자 2004년 대학교 재학 중에 제46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수도권에서 초임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3년 정도 구력을 쌓았을까,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억울함이 있음에도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보지 못하는 사례들을 보며 국선 전담 변호사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피고인의 여러 가지 사연을 듣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이렇게 살다 죽는 건 의미 없다. 젊을 때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든 한 번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기에 공익과 인권옹호를 위해서 큰 결심을 했습니다.” 그렇게 그의 국선 전담 변호사 생활이 시작됐다. “국선 전담 변호사에 합격한 11년 전, 대법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경남 창원으로 가라고 말이죠. 처음엔 잘 모르는 곳이었어요. 아내도 서울 사람이고 아이들도 어렸던 상황이라 가장의 역할과 법조인의 역할 사이에서 많이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 뜻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6년의 국선 전담 변호사 생활이 시작되었죠. 다양한 분야의 사건을 맡았지만 주로 강력사건, 형사사건, 형사합의부 사건을 주로 도맡아 했습니다.” _____ 설득이 아닌 공감(共感)으로 무죄 전문 변호사로 자리잡다 국선 전담 변호사로 활동하며 70회 이상의 국민참여재판을 경험한 문일환 변호사는 남들이 꺼리는 강력사건에도 피고인에 대한 도리, 개인적인 소명감으로 최선을 다했다. 일반재판과 비교하면 무죄율이 굉장히 높은 국민참여재판의 특성을 활용, 변호인으로서 승리하기 위해 다양한 논문을 조사하고 논문을 써오기도 했다. 항소심에서는 할 수 없는 국민참여재판의 장점이자 단점, 단 한 번의 기회로 배심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기에 재판마다 사건을 영세불망(永世不忘)의 마음으로 머릿속에 새겨두고 변호인석에 섰다. 불 보듯 사건을 꿰뚫고 있는 그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배심원들과 소통하는 데 집중해 배심원들의 신뢰를 얻었다. 소통에 관한 연구와 배심원들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 선택하는 등 심리학 저서를 통달한 노력이 재판마다 빛을 발하며 문일환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 전문 변호사, 무죄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검사가 기소한 것이 다 맞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재판에서 검사들에겐 자료가 많았지만 저는 정제된 정보로 모순됨을 파악해 포인트를 잡아 배심원들을 설득하고 무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만듭니다. 항상 배심원들과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것에 초점을 둡니다. 제가 100을 알아본들 전달을 못 하면 쓸모가 없습니다. 30을 말해도 30을 전달하고 공감하게 하는 게 더 효율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매 순간 문장의 선택과 말의 속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무작정 변호를 한다기보단 신뢰도를 올려야 하기에 재판의 지휘자 역할을 맡으며 배심원들의 호감도를 높이려고 노력합니다.” _____ 추상적인 정의(正義)를 벗어나 변호(辯護)에 충실한 법조인 정의로움과 소명 의식을 가지고 살아온 문 변호사. 항상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와야겠다는 그의 의지를 꾸준히 실천으로 옮겨왔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 법무법인을 운영하는 상황, 그는 “변호사도 사업이기에 가급적 사건 수임을 많이 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져 생각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법정에 들어선 순간에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재판이다. 그 속에서 그를 지금까지 이끌어온 신념에 대해 물었다. “제가 어디까지 의뢰인한테 희망을 줘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합니다. 나 자신도, 그 누구도 속이고 싶지 않아요. 가식을 되게 싫어하고 솔직해지고 싶어요. 또 솔직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는 SNS에 무죄를 받아낸 재판에 대하여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댓글로 ‘정의가 승리한 겁니까’라고 물어보더군요. 정의(正義), 공정(公正), 그런 추상적인 가치를 대입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죄라는 건 결백은 아닙니다. 검사가 입증에 실패했다는 것일 뿐이죠. 결과적으로 저는 제 역할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앞으로도 그 누구도 속이지 않고 제 역할에 충실할 것입니다.” _____ 투명한 신뢰(信賴)를 바탕으로 의뢰인과 동행(同行)하는 법무법인 “저에게 변호사는 서비스업입니다. 예전처럼 변호사가 갑인 시대는 일찍이 끝났다고 생각해요.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에선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변호사란 보조자입니다. 입과 머리가 될 수 있지만 전부가 되어줄 수는 없어요. 의뢰인도 함께 헤쳐나가야 합니다. 변호사의 경험이 활이고 의뢰인이 화살이 되는 겁니다. 법정에서 혹여나 제 말이 틀릴 수도 있지만, 제 말을 믿고 따라올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변호사가 갖춰야 할 소양입니다. 창원 최고의 법무법인이 되겠다고 말하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제 사무실을 알고 오신 분들께 사건의 명암을 모두 밝혀 투명하게 이해를 시켜드릴 것입니다. 양면을 다 보고도 저에게 활시위를 당길 기회를 주신다면 반드시 의뢰인들이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현재 문일환 변호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에 있는 ‘법무법인 지승’에서 대표 변호사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의뢰인들과 함께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문 변호사에게 귀추가 주목되는 때다. [1116] 학력 •1995. 3. - 2005. 2. 건국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2010. 9. - 2013. 2. 부산대학교 법과대학원 석사 졸업(지식재산권법 전공) •2013. 3. - 2015. 8.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사 수료(지식재산권법 전공) 경력 •2004. 12. 제46회 사법시험 합격 •2005. 3. - 2007. 2. 제36기 사법연수원 수료 •2007. 5. - 2010. 2. 법무법인 세인 소속 변호사 •2010. 3. - 2016. 2. 창원지방법원 국선전담 변호사 (형사사건 약 1,500건 변호, 국민참여재판사건 약 70건 변호) •2014. 5. - 현재 대법원 형사실무연구회 회원 •2014. 5. - 현재 대법원 특별소송실무연구회 회원 •2016. 3. - 2021. 2. 법률사무소 환 대표 변호사 •2016. 4. - 2019. 4. 경남개발공사 사외이사 •2017. 1. - 현재 경남지방경찰청 징계위원회 위원 •2017. 2. - 현재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2017. 2. - 2019. 1. 경남지방변호사회 총무이사 •2018. 1. - 현재 경남도민일보 칼럼니스트 •2018. 1. - 현재 창원시 교육지원청 징계위원회 위원 •2018. 1. - 2020. 1. 창원지방검찰청 형사상고심의위원 •2018. 3. -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 고문변호사 •2018. 9. - 2019. 8. 부산고등법원 국선변호 운영위원회 위원 •2019. 1. - 현재 경상남도 지방세 심의위원회 위원 •2019. 7. - 현재 경상남도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위원 •2020. 10. - 현재 경상남도 교육청 교권보호위원회 위원 •2021. 3. - 현재 법무법인 지승 대표변호사 수상 •2015. 2. 경남지방변호사회 표창장 수상 •2016. 2. 29. 대한변호사협회 청년변호사상 수상 •2019. 1. 28. 경남지방변호사회 공로상 수상 •2019. 6. 경상남도 교육감 감사장 수상 •2020. 12. 경상남도 도지사 표창장 수상
    • 라이프
    2021-05-24
  • 대구광역시 원스탑 HACCP 시공의 선두주자 - 모든 사업자와 상생하는 식품의 미래를 꿈꾼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수입되는 식품들의 열악한 위생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접한 누리꾼들은 “수입 품목에도 HACCP를 적용해야 한다”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HACCP, 많이 들어 보았지만 생소한 단어이기도 하다. 바로 ‘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 System’의 약자로서 ‘해썹’ 또는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이다. 식품의 원재료, 제조, 유통, 조리 등 소비자가 섭취하기 전까지의 모든 과정의 위해요소를 규명,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학적 위생관리체계인 HACCP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위생의 지표가 되어주고 있다. 인증 절차가 까다롭기에 창업의 꿈을 가진 사람들은 업체를 통해서 컨설팅을 받아 꿈을 향해 걸음마를 떼곤 한다. 대부분의 업체가 수도권에 밀집된 반면 대구광역시에 자리 잡고 있는 HACCP 컨설팅 및 시공업체 (주)예인C&E, “식품 사업은 대부분 영세하고 지자체 지원책이 없습니다. 그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합리적인 방향으로 소규모의 공장들을 HACCP이라는 바운더리에 넣어주고 싶어요”라고 피력하는 조진우 대표와 나눈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일반인에겐 생소한 직업이기도 합니다. 어떤 계기로 이 길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A. 5년 간의 군생활을 마감하고 전역후 직장생활보다는 군인정신으로 사업을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중국에서 상품을 들여와 인터넷쇼핑몰에 상품을 파는일을 하다 1년 만에 퇴직금을 날리고 사업을 접고 대구 소재 ㈜세계실업에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주로 공장을 상대로 산업재해 방지 기계 납품 및 직원복지시설을 리모델링 및 신축하는 공사업무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식품공장 현장을 보게 되었으며 업무상 HACCP 시공하는 업체와 현장에 대해 협의할 것이 있어 업체들과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당시엔 HACCP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어요. HACCP 건설 경험이 많은 업체는 수도권에 있었기 때문에 건축주 입장에서는 거리가 멀어도 건축비용이 비싸더라도 울며겨자먹기로 수도권 업체에 건축 및 컨설팅을 맡기는 것을 보게 되며 제가 지역에서 건축 및 컨설팅 업체를 만들어 보자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죠. 실제로 수도권 업체와 견적비교하자면 건축비용 차원에서 이깁니다(웃음). 전체 비용의 최소 10% 이상은 경비이기 때문이죠. Q. HACCP 컨설팅 절차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면. A. 첫째, 식품 품목을 조사합니다. 식품제조 대분류는 축산물가공, 식품가공 두 분야로 크게 나뉘어 있기 때문이죠. 그에 따라 설계도 조금씩 다릅니다. 축산물가공은 주로 수처리 문제발생 많고 원료육 온도관리에 중점을 두고 설계합니다, 식품가공은 급수,배수,환기 등에 중점을 두어 설계하죠. 그리고 식품공장에서 제조하는 식품의 종류가 100여가지 이상으로 많기 때문에 각 식품품목특성을 잘 반영하여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규모를 알아야 합니다. 소규모 HACCP, 일반 HACCP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매출액 및 직원수로 소규모 HACCP 및 일반 HACCP으로 나눠지며 일반적인 식품공장의 설계기준 및 건축 방향은 소규모나 일반이나 큰차이점은 없으나 일반 HACCP의 경우 HACCP인증심사시 80여개의 항목을 심사하고 소규모 HACCP 20개 항목을 심사하기 때문에 건축 및 컨설팅의 방향을 마리 정해두고 위해서죠. 2가지를 확인한 후 설계 방향을 잡습니다. 다루는 식품의 컨셉에 맞게 설계를 해주고 최초 설계도면 시안을 드려요. 그 후 의뢰하신 분과 함께 5번 정도 반복 미팅을 진행하며 2차 ,3차, 4차 수정 반복작업을 통해 최종확정 도면을 만듭니다. 그리고 식품 기계회사에 도면을 넘겨드리면 식품기계를 배열, 배치하고 마지막으로 도면을 수정합니다. 식품기계 배치까지 완성된 도면을 건축사 사무실에 넘겨드리고 건축사 검토 후 지자체에 건축허가를 접수하면 기본적인 설계 작업 끝나는 것이죠. Q. ㈜예인 C&E의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A. 설계부터 건축주와 긴밀한 협의하여 작업을 하기 때문에 완성된 건축물에 대한 건축주 만족감이 높은 것이 장점이며 이후 건축이 완료되면 HACCP 인증 7원칙, 12 절차에 따라 HACCP 관리기준서 작성 및 인증심사를 컨설팅 지원을 해드립니다. 또 사후에 공장 수선, 새로운 기계가 들어올 때, 새로운 공정이 추가 되었을 때도 사후관리를 꾸준히 해주고 있습니다. 또 지역에 사업체가 있기에 문제 발생시 업무처리 대응이 훨씬 좋습니다. 10년간 HACCP 시공을 전문으로 하다 보니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지역에서 종합건설 면허를 가지고 HACCP 전문건축을 하는 유일한 건설업체 이기도 합니다. 또한, 자체 개발 자재를 이용해 섬세함의 차이가 상당하다고 자부하고 있죠. 마지막으로 저희는 기본 설계할 때 의뢰하신분에게 비용을 받지 않습니다.최종 허가도면이 나오면 저희가 견적서를 드리고 의뢰하신분에게 다른 여러군데 건설업체에 견적서를 받아보시라고 합니다. 가져와서 저희 견적서와 같이 비교해보기도 하며. 제 견적이 터무니없이 비싸면 포기합니다(웃음). Q. 지면을 빌어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A. 식품을 제조하는 업체중 영세하고 2명 이하로 작업하는 업체가 많습니다. 법령에 따라 HACCP를 구축해야 하는 것 도 잘알고 있지만 비용적인 측면과 HACCP 인증 후 관리하는 것이 만만치 않아 식품업을 포기하는 업체가 많습니다. 저는 영세한 업체를 위한 플랫폼 구축을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 가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 ㈜예인C&E는 ‘아파트형 식품공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식품공장의 공유주방 형태를 떠오르게 하는 이 HACCP 공동화 시설은 대구광역시 성서공단의 폐공장 부지 등을 활용하여 다양한 소규모 식품 업체들을 입주, 영세한 규모의 사업자에게도 부담 없이 기회를 주고자 하는 조 대표의 경영이념을 담아낼 공간이기도 하다. 앞으로 ‘식품의 메카 대구광역시’를 만들어나갈 ㈜예인C&E에 많은 기대와 응원을 보낸다. [1115]
    • 경제
    2021-04-23
  • 부처님의 품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찾아가는 도량
    창원시 의창구 동읍 용잠리, 한적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8m에 달하는 대불(大佛)이 아주 멀리서부터 눈길을 끈다. 대불을 등대 삼아 가다 보니 쉽사리 대한불교조계종 용잠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마치 정토(淨土)에 온 듯한 향내가 코끝을 적셨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건만 주지 원공(圓空)스님은 법당 앞에서 이미 기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어주는 스님, 이렇게 또 주간인물과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_취재 박정호 기자, 글 송인주 기자 ‘창원시의 대표적인 전법도량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는 평을 듣는 용잠사는 5년 전 창건 된 전법도량이다. 창건 이후 다양한 포교 활동과 기도, 불자들을 위한 불교대학 교리강좌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20년 10월에 봉안된 높이 8m 높이의 석가모니 대불은 용잠사에 찾아오는 불자들에게 친견하는 것만으로도 신심이 우러나게 하고, 마음의 고뇌를 내려놓게 하는 안식처가 되게끔 도량을 돌봐주고 있다. “용잠사에선 다양한 신행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기도, 교리 강좌와 해탈의 직접적인 수행인 참선수행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기본적인 기도로 새벽예불을 새벽 4시에, 오전 10시 10분에 사시마지를 올립니다. 그리고 저녁예불을 저녁 6시 30분에 올리고 있어요. 교리 강좌에 있어선 1월부터 7월까지 매주 월요일에, 6개월 과정으로 기본교리과정을 진행하고 있고, 경전반은 여러 경전을 바꿔가며 매주 수요일에 강의하고 있습니다. 본과반이라고 할 수 있죠(웃음). 시절이 시절이니 만치 밴드나 유튜브를 통해서 비대면으로도 함께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주지 소임을 다하고 있는 원공스님은 뛰어난 학승(學僧)이다. 1994년 대한불교조계종 단일계단 수계(受戒)를 거친 스님은 해인사 강원 졸업, 망월사, 해인사, 동화사의 선방(禪房)에서 수년간 안거 수행하며 법력을 쌓아왔다. 2017년, 대승불교의 바탕인 공(空)사상을 오롯이 담은 ‘제법공상의 이해와 수행’을 출간하여 불교의 핵심이 되는『반야심경(般若心經)』을 누구나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정리하기도 했다. “고뇌에 빠진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제시하고 열반으로 이끌기 위해 함께합니다. 경전을 배웠기에 가르치는 것이고 참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리고 행하고 함께하고 있습니다.”라고 피력한 스님의 말을 빌려 신앙이념에 관하여 담아보기로 하였다. 불교에서는 열반을 가르치는데, 열반이란 나고 죽음을 해결하여 다시는 나고 죽음을 되풀이 하지 않고, 평안을 누리는 경지를 말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너무나 추상적이게 생각되기도 할 것인데, 열반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래상태’입니다. 모든 생명체를 크게 나누어 보면 열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지 행하면, 그것의 결과가 생기는데 그것을 불교에서는 ‘업(業)’이라고 합니다. 이 업(業)에는 반드시 보(報. 갚음)가 있기 마련이어서 그 업의 결과 과보로 인하여, 좋은 업(業)이 있으면 인간, 천상의 모습을 이루고, 나쁜 업(業)이 있으면 축생, 아귀, 지옥, 아수라 등의 모습을 이룬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인간인 것은 업에 의한 과보(果報)의 모습이지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업(業)을 지으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범부중생은 이 여섯 종류의 길에 돌고 돌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또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기도 하고, 미운 이와 만나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것에 뜻대로 안되기도 하며,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끝없이 변해가는 일을 겪고 있습니다. 이 겪고 있는 일들이 뜻대로 안되니 ‘괴롭다’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삶이 ‘괴로움’이라는 뜻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괴로운 윤회의 삶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생활은, 현재의 내가 바깥의 보이는 것, 들리는 것들을 향해서 갈구(渴求)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몸으로, 입으로 업(業)을 지어 그 결과로 나타난 상태라고 합니다. 그렇게 밖으로 향하지 않고,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등의 이끌림을 그치고 안으로 고요를 이룬다면, 이 여섯 삶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분들을 아라한, 벽지불, 대보살이라고 하며 열반(涅槃)을 이룬 분들이라고 하여, 나고 죽음과 그 가운데의 여러 가지 일들의 뜻대로 안 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들도 아직은 완전한 열반(涅槃)을 이룬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더 깊이 닦아서 여래(如來)가 되고서야 완전한 열반을 이루어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 가지 생명의 존재’ 이치로 살펴보면, 중생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일을 행하느냐에 따라서, 인간, 천상, 축생, 아귀, 지옥, 아수라 등의 상대적 업에 매여 괴로운 생활을 하는 여섯 종류의 삶을 살수도 있고, 또 아라한, 벽지불, 대보살 등 업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의 자유를 누리는 세 종류의 삶으로 살수가 있으며, 또 여래가 되어 대자유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이 이치로 보면 열반(涅槃)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 지옥에서 천상까지가 모두 나의 행하는 바대로 나타나는 나의 업의 모습이고, 열반도 그 업을 벗어난 나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이 업의 모습에만 ‘나’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윤회의 삶과 해탈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 중생이 얼마나 큰 능력의 존재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나를 몰라서 내가 지은 나의 업(業)에 매여서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고, 내가 나를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회복하기만 한다면, 모든 얽매임을 벗어나서 대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렇듯 열반은 자기의 ‘본래 모습’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자기 개발(開發)입니다. 자기의 숨어 있는 무한(無限)의 역량을 개발하여 스스로 대자유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중생들이 당신의 품속에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이러하니 누구나가 자기의 본래 상태 즉 열반을 성취하여 대자유의 삶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가르침을 펴신 것입니다." 용잠사는 꾸준한 사회공헌활동으로 온기를 전하고 있는 도량이기도 하다. 신도회인 ‘금강회’와 함께 김장 나눔, 이웃돕기 쌀 나눔, 불자들의 마음을 모은 장학금 기탁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나눔을 실천해오고 있다. “고마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불자 분들이 등(燈) 하나라도 달아주시는 마음을 모아 그 마음 그대로 사회에 돌려드리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수행처소를 마련해주셔서 참 고맙고 그런 감사한 마음을 나누려고 나름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라고 피력한 원공스님, 지면을 빌어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도 함께 풀어놓았다. “불교란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차근차근 기본교리부터 시작하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내가 나를 몰라서 어렵고 괴로운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바르게 회복한다면 무한능력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꼭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을 내셔서, 인연이 닿는 곳에서 좋은 인연을 맺어보시기 바랍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많이들 고달프실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등불 삼아서 힘겨운 시절을 잘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1115]
    • 문화
    2021-04-23
  • 더 가볍게, 더 맛있게, 더 건강하게!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건강한 '식단'
    코로나19로 인해 그 무엇보다 건강이 큰 재산인 요즘, 가장 기본적인 육체를 단련하는 운동은 이제 나 자신을 위한 필수 항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헬스 열풍’과 함께 속에서부터 건강함을 채우는 다양한 ‘식단’들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에서도 운동보다 식단이 더욱 중요하다는 다양한 결과들이 도출되며 현대인들에게 건강한 식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매일 도시락을 싸서 들고 다닐 수는 없는 상황이다. 밖에서 편안하게 건강한 ‘식단’을 챙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카페가 등장해 바쁜 현대인의 일상을 메워주고 있다. 스무디(Smoothie)와 닭가슴살(Chicken Breast)을 합친 이름의 스무치(smoochie) 카페가 그 곳이다. 닭가슴살을 갈아 넣은 스무디, 다양한 메뉴의 식단을 개발, 소비자들의 건강과 입맛을 사로잡는 김다운 대표와의 인터뷰를 Q&A 형식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유일무이한 ‘식단’ 카페입니다. 창업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A. 사실 저는 기계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개인적인 건강 문제로 운동을 시작하며 식단을 접하게 되었죠. 창업 당시에 잘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죠. 전공 공부를 할 때 기계의 부품과 사람의 몸을 비교하여 이야기했었습니다. 기계에 더 좋은 연료를 넣으면 기관이 더 오래가듯, 사람 몸에도 접목을 시켜 몸에 더 좋은 연료를 제공해보고 싶었습니다. Q. 대표님의 경영철학이 궁금합니다. A. 맛있고, 건강하고,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맛있다는 건 먹고 나서 또 생각이 나는 식단, 가볍다는 것은 먹고 나서 속이 더부룩하지 않은 식단, 건강하다는 것은 다이어트를 하시는 분들도 부족함 없이 드실 수 있는 식단을 내어드리는 겁니다. 항상 시장조사를 통해 다양한 재료들을 확인하고 개선점을 찾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다 보면 쓸 수 있는 재료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알룰로스, 스테비아 등 그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대체 조미료들을 접목, 안주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어요. 많은 사람에게 나은 삶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들어가는 재료는 영양학적으로 제가 다 선정, 맛은 어머니께서 잡아주시곤 합니다(웃음). Q. 스무치의 주력 메뉴에 관해서 설명해 주신다면. A. 아무래도 상호명인 ‘스무치’ 겠죠. 말 그대로 닭가슴살 스무디에요. 식단의 지표가 되는 음식이 맛이 없으면 삶이 무기력해집니다. 매일 닭가슴살만 먹는 식단을 유지해보신 분들은 공감하시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먹고 싶은 마음으로 비린 맛을 잡아내고 닭가슴살이 들어갔다고 하면 못 믿으실 정도의 맛을 자랑합니다. 또 밥 메뉴 같은 경우에는 옵션이 있다. 곤약밥, 현미밥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죠. 열량을 현미밥 기준 600kcal, 곤약밥은 300kcal로 맞추어서 내어드립니다. 현미밥은 하루 세끼 건강식으로, 곤약밥은 하루 여섯 끼를 드시게끔 열량을 설계했습니다. 되짚어 보면 사람이 제일 빠르게 성장할 때가 바로 갓난아기 때입니다. 모유 수유를 하면 3시간 간격을 두고 배가 고파서 울죠. 탄수화물, 단백질이 소화되는 시간이 보통 3~4시간입니다. 쓸 수 있는 만큼만 먹는 것이죠. 그 메커니즘에 맞게끔 여섯 끼를 드실 수 있게 설계를 했습니다. Q. 스무치만의 경쟁력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A. 경쟁력은 바로 유일무이함에 있습니다. 현대인들 삶을 봤을 때 건강과 운동에 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접하기 쉬워지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더 중요한 건강한 ‘식단’을 접할 수 있는 가게는 흔하지 않아요. 몸을 만들고, 식단을 유지하는 소비자로서는 갈 곳이 없습니다. 밖에서 식사 약속을 잡을 곳도 마땅치 않죠. 하지만 건강한 ‘식단’을 찾는 분들의 고민을 바로 해결해줄 수 있는 곳, 바로 ‘스무치’ 입니다. 아직 모르시는 분들은 있어도 한 번만 오시는 분들은 거의 없어요(웃음). Q. 가맹사업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A. 목표는 항상 크게 잡으라고 했죠. 5년 안에 300개 매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가맹점주분께 본사 입장에서 해드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드리려고 해요. 비용의 거품을 모조리 다 빼 드리려고 합니다. 재료도 각자 더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은 각자 구매할 수 있게 자유를 보장해 드립니다. 하지만 레시피에 들어가는 핵심재료들은 본사에서 드려요. 물론 거품을 빼서 제공한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발주 단위도 kg 단위가 아닌 100g 단위로 발주를 받습니다. Q. 지면을 빌어 전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모두가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가족과 같은 ‘사람’이니까요. 가맹점주님들한테는 본인이 하시는 만큼 벌 수 있는 사업장을 제공해 드리고 싶습니다. 예비 가맹점주님께 환경은 제공해 드릴 테니 함께 뛰어가자고 말씀드리고 싶네요(웃음). [1115]
    • 맛집탐방
    2021-04-23
  • "나에겐 미래가 있다. 꿈이 있다. 희망이 있다. 내일이 있다. 나 자신에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김건이 되겠다."
    과거 해군 장교로서 복무했던 김건 대표. 어렸을 적부터 군고구마 장사를 하더라도 자신만의 브랜드를 ‘경영’ 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복무하던 부대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안정된 직업군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마음 속에 접어둔 그의 꿈이 매일같이 갈증을 일으켰다. 서른 살 되던 해, 군복을 벗고 민간인의 신분으로 돌아온 그는 꿈을 찾아 인생 제2막의 닻을 끌어올렸다. 그 이후로 17년, ㈜빈스라이팅 D&T를 ‘경영’하며 꿈을 이룬 김 대표와 마주할 수 있었다.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반겨준 그는 마치 먼지 쌓인 항로일지를 펼치듯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_박정호 기자 현재 창원에서 (주)빈스라이팅 D&T를 경영하며 순항하고 있는 김건 대표, 세상을 밝게 하는 빛을 다루고 싶었던 그는 2005년에 '현대조명물류센터'라는 이름으로 그의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사업을 이어가던 중 유통과정에서 불어나는 조명의 가격 거품을 보게 되었고 이 모든 거품을 걷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유통과정 일원화 시스템'을 실현, 국내 최초로 직영지점과 대리점을 통한 전국 유통망 확보, 자체 중국 광저우에 제조공장을 운영하며 생산, 유통, 납품, 매매의 유통과정을 통합하였다. 시장 가격 경쟁에서 성공적으로 우위를 점한 김 대표는 2011년 ㈜빈스라이팅 D&T로 사업체를 재설립하게 되었다. 그의 유통 일원화 소식을 듣고 인테리어, 전기건설사, 건축업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빈스라이팅에 가면 당일에 모든 자재를 받을 수 있다”라고 인정받을 만큼 그의 도전과 경영은 성공적으로 흘러갔다. “17년째 조명 외길만 걷고 있습니다(웃음). 군대에서 몸담고 있던 보직이 스트레스를 준 이유도 있겠지만 항상 꿈꿔왔던 일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컸어요. 경영학과 석, 박사를 이수해서일까요. 경영이 정말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사업을 구상하고 전역하게 되었죠.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 새벽 3시까지 일했습니다. 제가 실제로 뛰면서 겪어보니 사회는 열심히 뛴 만큼 보상을 해주더군요. 그런 솔직한 피드백을 느끼며 ‘이 일을 평생 해야겠다’. 라고 다짐했죠.” ㈜빈스라이팅 D&T의 통합물류창고 전경 여름 소나기만큼 빨리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충족을 위해 매일같이 신제품 개발, 신속한 물품 제공, 확실한 사후관리를 통해 믿음을 꾸준히 쌓아온 김 대표.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바뀌고 있는 시장에도 유연하게 적응하여 ‘코로나 극복 상업조명 특별가 제공 행사’를 통해 사업체들의 소모품 교체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의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또 국제라이온스협회 335-C 지구의 최연소 회원, 경남 장애인유도회 부회장, ‘밝은 사회 창원클럽’에서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그. 지역 취약계층의 노후화된 조명등 교체를 위한 LED 조명등을 꾸준히 기탁해오며 따뜻한 복지가의 면모도 보여주고 있다. 남들이 알게 모르게 사회공헌활동을 이어온 김 대표는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이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지역의 취약계층분들이 아직도 백열전구를 쓰고 있다는 소식에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밑바닥에서부터 이 사업을 키울 때까지 제가 열심히 뛰어 본 결과 노력하면 그래도 이 사회가 보답을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또 지금까지 오는데 무엇보다도 사회와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사회활동을 통해 지역에 돌려드리고자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김건 대표, 그 중에서도 가족한테 가장 고맙다고 피력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래도 결혼해서 전역하는 것도, 사업을 하면서도 반대 한번 없이 믿고 응원해준 집사람이 가장 고마워요(웃음). 또 ㈜빈스라이트에 이름까지 빌려주는 첫째 딸 빈이, 아들 준이 항상 사랑하고 고마워. 또 젊은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세상이 힘들고 실업률도 높다지만 귀천을 따지지 않고 열심히 뛰고 노력하면 한 만큼 그런 대가가 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서 다른 결과가 나올 거에요. 스스로는 잘 못 느껴도 주변은 많이 변해 있을 것입니다. 남들 일할 때 일하는 건 당연해요. 남들 잘 때도 일하면 십 일이 하루처럼 가고, 한 달이 십 일처럼, 1년이 한 달처럼 갈 겁니다. 그렇게 10년만 일하면 그만큼 보답이 올 거예요. 한번 달려가 봅시다!” [1115]
    • 경제
    2021-04-23
  • 생활에 믿음이 스며드는, 머물지 않고 행(行)하는 불자가 되는 도량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 위치한 광명사. 주지인 법경스님과 함께 2017년 6월부터 매달 첫째, 셋째 주 화요일마다 무료급식을 실천해오며 지역에 온기를 나눠온 도량이다. 무료급식 외에도 건강 치매 예방프로그램, 풍선 만들기, 문화공연 등을 병행, 매달 정기적인 자비행을 실천해오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실시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행사 진행에 차질이 생기자 무료급식 행사를 도시락 전달 행사로 바꾸어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역의 독거 어르신들의 새해 건강을 보살피기 위해 정성껏 조리한 삼계탕을 전달하며 “코로나-19가 사라지고 활력있는 일상 속에 지낼 때까지 힘내시고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라는 법경 스님을 주간인물이 조명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어릴 적 육상에 소질을 보였던 법경 스님, 초등학교 시절 소년체전에 출전하기도 하며 선명하게 두각을 드러냈다. 하루는 체육 교사가 “너는 도시로 나가 꿈을 펼쳐라”라며 그를 혼자 부산으로 보냈다. 하지만 당시 그는 고작 초등학교 5학년, 꿈만 좇아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자취를 하기엔 너무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대화를 이어가는 스님의 표정을 보니 그 또한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린 나이에 혼자 지내며 방황을 많이 했어요. 그 시간이 너무 후회스러웠죠. 그러다 20대 젊은 시절 우연한 기회에 운명처럼 불교를 접하게 되었고 은사 스님의 가르침으로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출가하게 되었죠. 스승을 받들며 구도의 세계로 들어가는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1년 정도는 부모님 모르게 행자 생활을 했습니다(웃음). 이후 정식 승려가 되는 ‘구족계(具足戒)’를 받을 때 부모님을 모셨어요. 구족계 이후 기도 중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는데 저를 안아주시며. ‘너는 따뜻한 마음으로 가거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처님의 자비로운, 따뜻한 마음을 세상에 가서 펼쳐라’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수행하던 공간을 떠나 부산 사상구에 오게 되었죠.” 큰스님의 품을 떠나 부산에 처음 왔을 때는 그에게 주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방과 불상 한 분이 전부, 말 그대로 벌판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 와중에도 부처님을 모시며 행복을 느꼈고 기회가 온다면 자비행을 실천하고자는 마음을 키워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신념으로 매일같이 기도를 올리며 지낸 시절을 회상하며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게 된 계기에 관하여 이야기를 이어갔다. “부처님이 이끌어주시는 대로 살아가다 보니 하나 둘 좋은 인연을 만났어요. 그러다 보니 한분 두분 도와주시는 불자님들을 만나게 되었고 지금까지 기도 정진하게 되었죠. ‘관세음보살님께서 화두로 주신 따뜻한 마음을 어떻게 펼칠까?’라는 생각을 몇 년을 하다가 2016년 8월 속가 아버님께서 타계하신 찰나에 ‘세상의 모든 어르신이 나의 어머니고, 아버지고, 부처님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되는대로 공양을 올리자는 마음으로 2017년 6월부터 무료급식소를 마련, 어르신들께 공양하기 시작했죠. 곧 4년 차가 되는데 앞으로도 급식소 시설을 더욱 더 발전시켜서 아이들 놀이 공간도 따로 마련해주고 싶어요. 최종적으론 온 세대가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곳이 되고 싶습니다.” 모두 신도(信徒)가 아닌 불자(佛子)가 되고, 겉모습만 불자가 되는 게 아닌 ‘올바른 불자’가 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전하고 싶다는 법경스님. “지식이 많다고 부처가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행하지 않으면 결과가 없다고 생각해요. 행하지 않는 지식은 쓸모없는 것이니 회향(廻向)하는 불자가 됩시다”라며 스님이 추구하는 진정한 불자의 모습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저의 법명이 법경(法炅)입니다. 이름대로 ‘부처님의 법을 세상에 밝게 펼치는 것’이 저의 신조이고 다짐입니다. ‘부처님 법을 머리에 담고만 있으면 나 혼자만 성불하는 것이고 부처님 법을 세상에 펼치고 행하면 만 사람이 성불한다’라는 신념을 앞으로도 펼쳐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서 잘못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알게 모르게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항상 참회하는 마음과 내려놓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참회하는 마음과 욕심을 버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세상이 좋아 보이고, 맑아 보이고, 편안하고 즐거운 삶이 될 것입니다.” “ ‘자작자수(自作自受)’,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인이 지은 공덕도 악덕도 자기가 다시 받는다.’라는 뜻으로 통하죠. 부디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은 공덕을 많이 지어서 공덕이 가득한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1114] ▲ 광명사의 다양한 나눔활동
    • 문화
    2021-04-16
  •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정신으로 무장한 농업연구가! 일터가 즐거운 세상, 농업이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
    2021년 1월 1일 경상북도 농업의 심장인 경상북도농업기술원에 새로운 원장이 활동을 시작했다. 경남 창녕, 시골에서 아버지가 농사짓는 모습을 보며 자란 신용습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언제나 흙과 함께한 성장 과정으로 인해 농업이 생활에 녹아있고 타고난 농업 DNA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소신 있게 농대에 진학, 농촌진흥기관에 발을 들이며 긴 여정에 오르게 되었다. 평생을 흙과 함께 살아오며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현장에 나가 애로사항을 들어온 신용습 원장. 그를 만나러 경상북도농업기술원에 찾아갔다. 깔끔하게 정돈된 원장실, 반갑게 기자를 반기는 검회색빛 머리칼의 신사, 중후한 분위기에 반해 소년처럼 반짝이던 그의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_박정호 기자 Q. 평생 농업을 연구하며 살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한 번 되돌아보신다면. A. 저는 1994년부터 성주 참외 과채류연구소에서 참외 연구를 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재배해 오던 참외인데 논문, 저서 한 편 없는 현실을 맞이했죠. 그리하여 하루 종일 참외 생각만 하며 20년 이상을 참외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제가 쓴 논문이 150여 편, 저서도 50편 이상이 되더군요(웃음). 앞의 이론 외에도 현실적인 문제도 많이 해결했습니다. 당시의 농가들이 겨울철에 일조량이 부족해 참외 생장이 더딜 때 현장에서 쓰이는 폴리에틸렌 비닐보다 태양광이 잘 들어오고 만들고 수명도 5~10배 긴 ‘PO(Polyolefin)’ 필름을 도입했습니다. 또 예전에는 발효과 때문에 80% 정도의 참외를 버렸어야 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농업인들이 참외 농사를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구에 착수, 제 박사 과정으로 발효과 발생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렇게 국내 1호 참외 석, 박사가 되었어요. 그 시간 속에서 얻은 결론은 농업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고 5년 앞을 바라보고 연구와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는 신념도 생겼죠. 그렇게 흙에서 자라 흙에서 살다 보니 원장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Q. 참외 이외의 작물에도 활약상이 많다고 호평을 받으십니다. 어떤 작물인가요? A. 최근 가장 인기 있는 포도 샤인머스켓이죠. 이에 관한 연구는 경북농업기술원에서 전국에서 가장 빠른 2013년부터 시작했어요. ‘샤인머스켓 고품질 재배기술’ 교재를 6종을 제작, 농업기술센터와 홈페이지에서도 열람할 수 있도록 하여 전국의 고품질 생산 기반 조성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18년부터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기술원 핵심 기획과제를 수행, 샤인머스켓 상품성 향상을 위한 ‘나노과수봉지’를 만들어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으로 특허 출원했죠. 또 농가의 병해충 방제법 개발, 과실 저장 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는 '장기저장기술' 등을 개발하여 수출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했죠. 또 샤인머스켓 품종이 인기가 있지만 일본 품종이란 걸 아시나요? 그래서 국산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2019년에 샤인머스켓 보다 숙기가 2주 정도 빠르면서 향이 강하고 아삭한 식감을 가진 ‘골드스위트’와 적색 품종인 루비스위트를 품종 보호 출원 하게 되었죠. 최근 2020년에는 자연 무핵 ‘코코씨들리스’, 적색 샤인머스켓으로 불리는 ‘레드클라렛’, 사과 맛이 나는 ‘캔디클라렛’, 알 솎기가 쉬운 ‘해피그린’등 총 6품종을 선보였습니다. 앞으로 경북육성 신품종이 농가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보급될 수 있도록 '신품종 맞춤형 재배기술'을 개발하여 품질이 우수한 국산품종 생산과 함께 수출 증가도 꾀하는 중입니다. Q. 스마트팜, LED 식물공장의 등장으로 농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기술원의 현주소는 어떻습니까? A. 참외는 하우스 시설 안에서 재배되잖아요. 생각해 보면 30년 전부터 이미 환경제어를 통해 농사를 이어온겁니다. 말하자면 경북의 농업인들은 스마트팜의 최고 권위자인 것이죠(웃음). 또 우리 경상북도에선 제가 2010년부터 전국 최초로 10피트 컨테이너에 LED 식물공장을 구축했습니다. 수직농장(Vertical Farm) 시설도 전부 2013년도에 연구를 마쳤죠. 한발 더 나가 컨테이너를 독도로 보내 '경상북도형 독도 LED 식물공장'을 세우고자 했지만 문화재청에서 허가가 나지 않아서 불발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요양원, 학교, 해운회사로 유통하게 되었죠. 바다 한가운데서 싱싱한 상추를 먹는 그런 시대를 연 것입니다. Q. 빅데이터를 통한 농경 발전계획을 세우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형태를 갖춰가고 있나요? A. 보통 생각하시는 '행정'의 빅데이터와 '농업'의 빅데이터는 다릅니다. 채광, 습도, 비료 살포 시기 등의 자료들이죠. 농업의 빅데이터 활용을 설명하자면 토마토 농사의 경우, 같은 시설의 하우스에서 1억 원 매출을 만드는 사람, 1000만 원 매출을 만드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1억 매출을 만드는 사람의 농업 빅데이터를 다른 하우스에 대입, 생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죠. 이러한 빅데이터를 통해 노지 스마트팜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노지 스마트팜의 핵심은 급수관리, 통제입니다. 토양에 습도 센서를 꽂아 컴퓨터가 물을 방류, 땅 밑에 매립된 관을 통해 작물에 급수하는 '지중관수' 시스템을 통해서 물과 인력을 아끼려고 합니다. 또 드론을 이용한 지역 관제, 방제, 살포 시스템을 구현하고 싶어 5년 전부터 연구에 착수하고 있습니다. Q. 농외소득 창출을 위해 추진 중인 사업이 있으시다면. A. 경상북도청 인근에 '지역 특화 밥상'을 만들어서 농가 맛집 운영을 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 지난 2007년부터 농가 맛집 사업을 시작했죠. 지역농업과 문화를 연계한 농촌형 소규모 외식산업으로 농외소득을 증가, 전통문화의 계승, 확산을 목적으로 시작된 사업입니다. 농산물을 자가(自家)재배하고 지역 식자재를 50% 이상 활용한 향토음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농촌문화도 함께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반음식점과 차별화되죠. 이러한 농가 맛집은 지난해까지 전국에 182곳이 조성되었으며, 경북농업기술원에서는 25개소를 운영 중입니다. 또한 건강레시피, 간편식·밀키트(meal kit)도 개발하여 찾아가는 농가 맛집 배달 시스템을 구축함과 동시에 농가 맛집이 치유의 기능을 갖춘 복합 식문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 A. 경상북도 농업기술원엔 37만 농업인들이 필요로 할 때 어떤 문제든지 해결해줄 수 있는 300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연구진들이 정확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드림으로써 농업인은 농업에 전념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 모든 국민은 농업인의 마음에 따라 생산되는 농산물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농업인이 우대받는 환경을 만들어 더 좋은 먹거리로 국민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의료계 지출도 줄어들 수 있도록 수 있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농업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농업기술원엔 모든 메뉴얼이 준비되어 있으니 언제든지 활용하시면 좋겠습니다. 기술로, 작물로 농업인이 우대받는 세상을 만들고 농업인이 만족하는 시대를 열 것입니다. 저는 내일 퇴직하더라도 오늘까지 일할 것입니다. 이 일에 미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4000여 분께서 참외를 재배하는데 참외 농업인들은 저를 다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직장이 즐거운 사람이 있냐’라고들 하는데 그게 바로 접니다. 농업인이 만족할 때까지, 행복할 때까지 경상북도농업기술원이 자양분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경북대학교대학원 원예학과 졸업(농학박사) •영남대학교 원예학과 졸업 •경상북도농촌진흥원 영양군농촌지도소 •경상북도농업기술원 성주과채류시험장장 •경상북도농업기술원 성주참외과채류연구소장 •경상북도농업기술원 농업환경연구과장 •경상북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장 •농촌진흥청 국립연예특작과학원 [1114]
    • 라이프
    2021-04-16
  • 지역에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4전 5기! 실패와 좌절은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시의원!
    ‘반려동물도 가족이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선거 공보물에 최초로 동물과 교감하는 사람으로서 기초의원에 출마한 남자가 있다. 바로 창원시의 김인길 의원이다. 그는 출마 이전,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그들의 삶을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 택시 면허를 취득, 운행하며 지역의 현안을 청취했다. 또 원활한 민원 해결을 위해 심리상담사 자격증 4개 분야(노인, 청소년, 부부, 일반심리상담사)를 취득하여 본인의 이름을 건 무료심리상담소도 운영했다. 지역구에 꾸준히 봉사해온 이력과 그의 노력이 시민들로부터 인정받으며 당선증을 품에 안은 그는 최근 지역 어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하기 위해 『창원시 수난구호 참여자 지원 조례안』을 발의했으며 ‘국민의힘 경남도당위원장 표창장’,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지방의정봉사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당과 의회에서의 활동까지 인정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생활 정치의 달인, 지역구의 심부름꾼, 준비된 시의원으로 승승장구하는 창원시의회 국민의힘 청년정책위원장 김인길 의원과의 인터뷰를 1문 1답으로 정리해 보았다. _박정호 기자 “인간 김인길은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누구라도 도와주고 싶어서 찾아다니는 사람이죠. 저를 믿어주신 분들께 온 힘을 다해 제 모든 열정을 바치겠습니다.” Q. 국민의힘 도당위원장 표창장,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지방의정봉사상 수상소감 한마디 해주신다면. A. 코로나19에 대한 대응과 지난 태풍피해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공로, 의욕적인 의정활동, 주민과 활발히 소통하는 모습을 인정하여 이 상을 주셨다고 했습니다(웃음). 지난날을 돌아보자면 하루도 빠짐없이 지역에 귀 기울이고, 재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던 것 같아요. 지역민과 당, 의회 모두가 그 모습을 좋게 봐주셨다는 것에 큰 감사함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라는 뜻깊은 상이자 저에겐 재충전의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힘입어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지치지 않고 발로 뛰는 김인길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Q.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A. 저는 58년 동안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진짜 토박이입니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며 건설업을 14년 이상 해왔죠. 항상 봉사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사업을 하다 보니 조금 어려웠죠. 그러다 2002년 월드컵,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응원 문구를 보고 잠시 접어두었던 봉사에 전념하겠다는 꿈을 다시 꺼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2006년에 출마하며 처음으로 도전장을 내밀었죠. ‘실패와 좌절은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일념으로 총 4번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5번째인 2018년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4전 5기죠(웃음). 맨 처음 출마했을 때가 40대 초반인데 50이 다 지나서야 의회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16년 동안 오로지 지역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으로 도전했어요. 간절했던 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늘 봉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Q. 봉사와 뗄 수 없는 의원이라는 평이 자자한데, 이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시다면? A. 어릴 적부터 이경민 경신재단 원장님과 인연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용돈을 꼬박 모아 진해희망원에 전달하곤 했고, 한 달에 한 번씩 원생분들을 위한 생일파티를 열어드리기도 했죠.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는 지역 보육원 숙소에다 도배, 장판 시공도 무료로 해드리곤 했습니다. 과거 봉사를 할 때 독거노인 한 분이 꼬박 모은 30만 원을 장판 아래서 꺼내 건네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아직 그분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요. “우리같이 어려운 사람 좀 도와주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돈을 받아야 하나 싶어서 몇 번을 마음만 받겠다며 거절했지만 “이게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이니까 좀 받아주라”라고 하셔서 매번 봉사하며 주기만 했던 제가 무언가를 처음으로 받아봤던 따뜻한 기억이 되었죠. 물론 그 돈은 전액 기부를 했습니다. 이것 외에도 복지 사각지대에서 의료보험 미납으로 인하여 고충을 겪는 분들과 많이 접하며 보험비를 대납하는 도움을 드렸죠. 그 시절의 기억이 저를 더욱 봉사에 전념하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웃음). Q. 지역의 현안은 무엇이며, 이와 관련한 의원님의 주요 의정활동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35년 전에, 옛 진해시 시절에 허가를 내놨던 진해 쓰레기매립장 유치를 반대하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와 다르게 주변 지역이 대도시화가 되어버렸는데 유치 계획은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게 쓰레기매립장이 아니라 아름다운 환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또 고질적인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석동터널의 빠른 완공을 추진하고 있으며 경화시장 현대화도 추진 중입니다. 경화시장의 총 부지가 2,400평인데 재개발을 추진하여 2층 건물을 세울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1층은 시장 점포로 이용하고 2층은 5일장을 유치, 평소에 있던 어패류 관련 오·폐수 악취와 수질오염을 예방하고 옥상에 2,400평 건물의 옥상에 주차장을 만들어 주민들의 교통편의와 장날에 발생하는 주차난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Q. 주민분들과 소통은 어떻게 하십니까? A. 제가 경화시장 입구에서 거주하며 핸드폰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이기에 장날이 되면 집으로 찾아오시는 민원인들이 많아요(웃음). 제가 지역에서의 경험도 많고 가락종친회(김해김씨, 김해허씨, 인천이씨)의 진해청년회장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해 두었기에 민원을 해결할 때 다양한 방법을 구할 수 있습니다. 객지 생활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 제 최고의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공부하고, 사업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잘 알고 해결한다고 할 수 있죠. Q. 주민들께 전하고 싶으신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A. 생활 정치인으로서 주민과 관공서 사이의 발이 되고 주민들에게 더욱더 봉사하겠습니다. 제가 기초의원 활동을 하며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이 바로 민원을 해결해 줄 때입니다. 민원이 해결될 때마다 희열을 느낍니다. “내가 이 일에 쉼 없이 도전한 이유가 있구나. 선택을 잘했구나”하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정도였죠. 앞으로 더 큰 꿈을 위해서 노력할 예정입니다. 꿈은 한꺼번에 오는 게 아니고 조금씩 다가온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의 꿈도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지역에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4전 5기 하며 이뤄낸 저와 이 힘든 시기를 함께 극복하자고 주민분들께 전하고 싶습니다(웃음). [ 주요경력 ] - (주)시티빌건설 대표이사 - 창원무료나눔협의회 이사 - 김인길 무료심리상담 소장 - 반려동물 분실센터 운영 소장 - 진해 여성 YWCA평생 봉사 회우 - (주)김인길 휴대폰 대표/진해재향군인회 이사 - 가락종친회(김해김씨, 김해허씨, 인천이씨) 진해청년회장 - 지체장애인협회 자문위원 - 진해 라이온스클럽 봉사위원(전) - (사)대한가수협회 진해지회장(전) -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전) - 경화초등학교 총동창회 부회장(전) - (재)국제 예술 문화 체육재단 진해지회장(전) - (사)대한 청소년 육성보호연맹 진해지회장(전) - 병암동 산악회/ 진경 산악회/한마음 산악회 회장(전) [1113]
    • 정치
    2021-03-31
  • 운영하고 싶은, 갑・을 없는 프랜차이즈! 지역, 점주와 꾸밈없이 소통하는 천미리 커피
    커피 원두를 들고 환하게 웃는 최명화 대표 언론에 ‘선한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며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와중에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착한 가게들이 하나, 둘 조명받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결식아동, 독거노인, 복지시설에 도움을 주는 선행이 늘어나는 요즘. 경상남도 김해시의 한 카페에도 ‘결식아동 꿈나무 카드, 컬러풀 드림카드를 소지한 아이들에게 언제든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따뜻한 현수막이 걸려 화제가 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핫프랜차이즈 ‘천미리 커피’다. 예전부터 지역에 다양한 나눔을 실천해오며 ‘갑, 을 없는 프랜차이즈 회사’라는 표어로 점점 이름을 알리고 있는 핫한 프랜차이즈다. 커피가 생각나는 나른한 오후, 천미리 커피의 최명화 대표와 실장과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카페의 따뜻한 나눔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어떤 활동을 해오셨습니까? A. 처음 시작한 매장 주변 동네는 결식아동이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어려운 아이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나누어 ‘저런 어른이 있구나’ 하며 마음에 온기를 품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무작정 현수막을 걸어두고 매장에 파는 음료든 비매품이든 나눠주기 시작했죠. 아이들이 와서 수줍게 음식을 받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날은 종일 기분이 좋았어요(웃음). 현재 천미리 커피는 수익금의 일부를 김해시에 기부, 지역아동센터를 통해(셀라 신나는 집, 성 바오로 배움터, 풀코스모스지역아동센터) 음료와 디저트, 되물림 하는 옷 등을 기탁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코로나 19로 노고가 많으신 소방서와 보건소 등에도 음료와 디저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추후엔 지역자활센터와 협력을 통해 소외계층 일자리 창출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Q. 천미리 커피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원래 김해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했었습니다. 원활하게 운영하며 수익도 상당했어요. 하지만 본사의 일방적인 의사결정과 요구가 너무 잦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협화음이 잦게 되었고 수많은 마찰 끝에 결국 매장을 양도양수 하게 되었죠. 본사와 점주의 갑을 관계가 싫었기에 ‘완벽한 상생’을 모티브로 브랜드를 론칭하게 되었습니다. 점주님들이 우리 천미리 커피의 이름을 걸고 영업을 하며 수익을 낼 때 보람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천미리 커피가 탄생하게 되었죠. Q. 어떤 것들을 중점으로 창업 준비를 하셨습니까? A. 창업을 결정하고 1년 동안 매일같이 협력사와 좋은 원두를 찾으러 다니고 시식하며 브랜드의 큰 틀을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웜 클라우드’, ‘고고 커피’ 등 유명한 카페를 찾아가면서 로스팅에 대해서 배우고 지향하는 커피 맛의 형태를 잡아가기 시작했죠.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매일 에스프레소를 20종류씩 맛보았어요. 그러다 보니 속이 너무 쓰리기도 하고 다른 음식을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모를 정도에 이르기도 했습니다(웃음). 단 한잔의 커피로도 기분 좋은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고 남녀노소 누구나 쓰지 않고 맛있는 커피를 선보이고 싶었어요. 그 결과 지금은 저희가 브라질, 에티오피아 등 산지별 커피를 저희만의 비율로 생산하는 ODM 원두를 로스팅해 가맹점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지금의 천미리 커피의 원두가 탄생하기까지 정말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것 같습니다. Q. 천미리 커피의 경쟁력은 무엇입니까? A. 대부분 소비자와 예비 창업자분들께선 규모가 있는 중·대형 프랜차이즈 창업을 결심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대형프랜차이즈는 영업권을 보장받기 힘들며 피드백 또한 매뉴얼화 된 간단한 교육만 강조하기 마련이죠. 영업에 대한 제한, 규정이 본사의 수익구조와 직결되기에 이 또한 경험이 적은 예비 창업자분들께선 고려하기 어려운 내용이므로 창업결정 후 후회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저희 천미리 커피는 본사에서 점주님들께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영업 방법에 대한 교육, 재료에 대한 이해, 소비자들의 니즈 파악 등 다양한 교육과 담당 슈퍼바이저를 통해 즉각적인 피드백을 드리고 있습니다. 점주님들께 든든한 조력자이자 함께하는 가족 같은 회사가 있다는 것을 꼭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웃음). 또 원두도 대부분 미리 로스팅하고 보관했다가 상자 단위 출고를 하기 마련인데 천미리 커피는 신선도를 고려해 매장에서 필요한 만큼 발주를 넣으면 즉시 로스팅에 들어가 로스팅한 지 24시간 내로 커피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메뉴 개발에도 자문을 많이 구하는 편입니다. 메뉴에 대한 방향성, 발전성에 대해 현장에서 정보를 많이 모으고 있죠. 운영하고 싶은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쉬지 않고 소통하고 있어요. Q. 갑을 없는 프랜차이즈,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입니까? A. 설비, 인테리어 업체, 재료 선정에서도 단가가 더 저렴하고 좋은 업체가 있다면 그곳을 선정하라고 말씀드려요. 과거 제가 점주로서 느꼈던 불합리한 제도를 모두 없앴습니다. 그리고 매장 관리를 위해 주 1회 이상 각 점주님을 찾아갑니다. 실무 경험을 토대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을 잡아드리려고 해요. 지역마다 상권에 대한 특성을 분석해 맞춤 경영을 할 수 있게끔 자주 면담을 진행합니다. 또 불필요한 재료의 강매, 의사결정 권한이 없는 일방적 통보 등을 없애고 점주님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피드백을 드리고 있습니다. Q. 끝으로 전하고 싶으신 메시지가 있다면... A. 중·대형 프랜차이즈의 수익구조, 규모만 보고 창업 결정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커피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이미지때문에 적성도 고려하지 않은 채 수익성을 두고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를 창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맹 계약이란 결정이 쉬운 결정이 아니고 당연하게 일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천미리 커피는 가맹 상담을 진행하고 2주 정도의 시간을 가진 뒤 신중하게 본계약 도장을 찍고 있습니다. 어떤 동네에 가도 성공하는 브랜드가 되어 점주님들이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습니다. 점주님들이 성공해야 본사도 성공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렇게 점주님과 고객님들께 진심인 회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천미리 커피는 돈만 있으면 다 하는 프랜차이즈가 아닙니다. 상생과 점주님의 성공을 위해 먼저 마음이 통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웃음). [1113]
    • 맛집탐방
    2021-03-31
  • 베이비복스 1기 리더 정현전, 부산 유명 맛집 '초함' 대표로 제2의 인생 펼쳐
    태극기 한복 모델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현전 대표 핑클, SES와 함께 국내 1세대 아이돌로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걸그룹 ‘베이비복스’ 부산에서 모델로 활동하던 정현전, 정시운과 리드보컬을 맞은 차유미, 무용을 전공한 김이지, TV 공개방송을 구경하다 픽업된 이희진이 바로 1996년에 결성된 베이비복스의 1기멤버들이다. 이들은 3년 여 간의 연습기간을 거쳐 1997년 정규 1집 'EQUALIZEHER'로 데뷔해 타이틀곡 <남자에게(민주주의)>로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베이비복스는 2004년까지 한국에서 총 8장의 음반을 발표했고 아이돌 1세대 중 디바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정규 앨범을 발표한 그룹으로 보컬, 댄스, 랩파트를 각각 맡는 21세기 현재 완성형 아이돌 구성을 갖춘 유일한 그룹이라고 평가받아오고 있다. 그중 1기 리더를 맡으며 맡언니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정현전씨를 만났다. 고향 부산으로 돌아와 자신이 좋아하던 '요리' 솜씨를 맘껏 펼치며 유명 맛집 대표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식으로 정리해본다. _박정호 기자 Q>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 출연 이후 더 많은 관심을 받고 계십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코로나19로 인해 다들 힘든 시기지요. 저 역시 방역에 신경을 많이 쓰며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제가 운영하는 '초함'은 오픈형 식당이 아니라 룸으로 이루어져 있어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주고 계십니다. 방 크기도 다양해서 가족, 친구, 동호회, 회식 등을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데 지금 시기에 맞아떨아졌어요. 하지만 그래도 작년엔 여파가 있어 자연스레 여유 시간이 많아졌는데 그동안 메뉴 개발에 전념했습니다. 외식경영에도 관심이 생겨 외식경영학 박사과정 수업도 들으면서 나름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Q> 데뷔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학교에서 '벙어리'냐고 할 정도로 말이 없었어요(웃음). 그래서 친한 친구들은 항상 발랄한 성격들이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장래 희망이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었으니 말 다했죠. 요리하는 걸 좋아해 늘 '큰 냉장고가 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몸이 아파 병원에 다닐 땐 간호사가 될까 하기도 했는데 그때 TV에서 전인화 선배님이 장희빈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연기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모두에게 “영화배우가 되어서 여러분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라고 말했다고 하니 의외로 당돌한 면도 있었나봐요. Q> 처음 캐스팅 당시를 회상해본다면. 광안리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받았어요. 학생 때 당시 잡지나 CF에도 간간히 출연하고 있었는데 매니저 분이 당시에 주신 명함이 제 눈엔 허술해 보여 버렸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나중에 알고 있던 작가분이 연락오셔서 그 매니저분에 대해 확신을 주신 바람에 다시 인연이 닿게 되었습니다. 면접에서 “뭐가 제일 하고 싶냐”라고 물어보기에 “연기자요”라고 답했어요. 그러니 흔쾌히 한번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토요일 토요일 밤에’와 단막극 등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니까 너무 즐겁더라구요. 그러다 매니저님이 “연기는 나중에 하고 내가 가수 매니저니까 가수에 도전해보는 건 어때?”라고 물어보시기에 뜻에 따라 가수 연습생이 되기로 했죠. 멤버가 몇 번씩 바뀌는 치열했던 연습생 시절을 보냈었지요. Q> 베이비복스 활동 당시는 어땠나요? 항상 젝스키스 뒤의 순서로 나갔으니까 격렬한 춤이 많아 부상을 많이 입었죠. 멤버 중 차유미는 부상으로 인해 무릎에 물이 차 탈퇴하기도 했구요. 그 와중에도 마냥 즐거웠어요. 저는 항상 꿈에 가득 차 있었죠. 무대를 하나 만드는 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컨셉을 어떻게 잡을지 매일 연습하며 구상했어요. 환경이나 상황이 바뀌면서 완성된 무대가 엎어질 때도 있었지만 저는 마냥 행복했어요. 당시 3사 방송에 나오는 것 자체가 쉽지가 않았던 시절에 사장님을 잘 만나서 7월부터 12월까지 47회를 출연할 정도로 바빴습니다. 일정을 소화하려 심야 고속버스를 타는 날이 참 많았는데 텅 빈 고속도로의 가로등 불빛과 버스의 불빛이 막힘없이 뻗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걸 즐겼어요. 끝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나의 미래도 불빛처럼 끝없이 펼쳐진 것 같았죠. 행복했던 날들이었지만 저도 활동을 길게 하진 않았습니다. 연예계를 직접 경험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꿈을 높이 잡아라’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때의 저는 다른 목표가 없었고 ‘연예인’이 되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끈기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리더로서 힘들었던 일들이 많았어요. 팀을 컨트롤 해야 했고 총대를 메야 했던 일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둔 걸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Q>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항상 감사했던 게 무대에 설 때마다 관객분들께서 ‘젝스키스 보고 베이비복스 보고 가자’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1집 '남자에게’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나레이션이 엄청 파격적이어서 그런지 인기가 상당했던 기억이 나네요. 활동 시기가 IMF와 겹쳐 앨범도 많이 팔리지도 많았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려웠지만 하루에 스케줄이 11개를 소화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차를 타고 방송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공연하기 위해서 전국을 많이 돌아다녔어요. 제주에서 강원도로 갔던 기억도 나네요.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아서 감사한 기억뿐이에요. Q> 탈퇴 이후 공백기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다시 연기연습도 하고 다른 R&B팀 연습도 하며 서울에서 있었습니다. 그때는 또 뭘 해도 안 됐어요. 팀을 모아도 해체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사람이 때와 기회는 늘 오는 것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죠. 10년 정도 서울 생활을 하다가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친구들이 오면 항상 초읍에 '초함'이라고 제가 좋아했던 가게에서 식사를 하곤 했는데 인연이었는지 어머니께서 건물을 구입하시고 덥썩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힘들어서 울기도 했는데 벌써 5년 차네요. 어릴적부터 음식을 만들고 즐기는 걸 좋아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손님들이 제 음식을 맛있게 드셔주셔서 늘 감사하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외식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초함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초함이 자리한 부산 초읍 지역도 함께 살아날 것이라는 목표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 그래도 어릴적 꿈이 현모양처였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웃음).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 낳고 서로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과 살아보고 싶어요. 사람 마음 중 가장 좋은 마음이 사랑(愛)이라잖아요. 사람들이 ‘내 가족도 소중하지만 타인도 남의 소중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조금 더 생각을 열어 사소한 문제가 생기면 그냥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넘겼으면 좋겠어요. 지금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끼고 서로 얼굴을 가리고 살아가고 있잖아요. 나중에 마스크를 벗을 때가 곧 올 테니까 그때까지 서로 마음속에 ‘사랑 愛’를 많이 새겨두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 대표는 인터뷰 내내 여전히 도시적이고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꾸밈없는 털털한 모습으로 반전 매력을 드러냈다. 그녀가 운영 중인 '초함' 역시 마찬가지. 빼곡한 건물들 사이 시골 느낌의 정겨운 흙집의 모습을 한 '초함'은 투박하지만 정겹고 세련되진 않지만 편안한 곳이다. 푸짐하기만 한 밥상은 차리기 쉽지만, 품격있으면서도 깔끔한 한식 테이블은 이외로 어렵고 낯선 법. 이곳에서 나오는 한식의 맛과 멋을 살린 차림새는 예사롭지 않다. "한식이라고 해서 전통만을 고집하면 자칫 올드한 테이블이 될 수 있어요. 심플하면서 간결한 그릇과 음식이 돋보이는 담음새가 중요하죠." 주인장의 따뜻한 감성이 깃든 '초함'이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되길 기대해본다. [1113]
    • 문화
    2021-03-31
  • 세계로 뻗어나가는 ‘코리안 허브’ 의 선두주자 - 어머니의 마음으로 고객의 건강을 염원하는 기업
    경상남도 마산 내서읍에 있는 ㈜가고파힐링푸드, 국내 대표 약초를 재료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 기업이다. 2013년 설립 이후 1년 만에 2014 여성 친화 기업에 선정, 뒤이어 6차산업인 ‘농촌 융복합산업’ 인증을 받았다. 2019년 창원시 선정 ‘창원형강소기업’ 10개사 중 하나로도 선정되며 경상남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기업이다. “약초는 정성껏 손질해 약탕기에 넣어 달이며 오랜 시간 가족의 건강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부채질을 하여 끓여 내야 하는 한방 재료입니다. 우리 ㈜가고파힐링푸드는 그 마음과 시간을 대신하고 고객의 건강을 염원하는 기업이에요”라며 기업과 고객에게 정성(精誠)을 다하겠다는 윤금정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져보았다. _박정호 기자 강원도에서 태어난 윤금정 대표는 훨씬 선대에서부터 약초와 관련된 일을 해오던 집안에서 약재를 만들고 환을 만들고 하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약초 사이에서 자라왔다. 3대 째다. 이런 환경 특성상 자연스럽게 약초와 친해지게 되고 나중엔 향만 맡아도 어떤 약초인지 맞출 정도로 약재와 친해진 윤 대표. 약초를 이용한 장아찌를 백화점에 납품하는 어머니의 일을 도우면서 지금까지의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당시의 일은 모든 걸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일이었어요. 우리 엄마가 그렇게 고생하시는 게 안타까워 그만하라고 몇 번이고 말리기도 했지만 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일을 누군가는 이어가길 바라는 어머니의 바람에 어머니 일을 조금씩 돕기 시작했죠. 약초 소포장 작업을 도와드리다 하루는 제품을 백화점에 납품하러 가서 소비자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약초가 건강에 좋은 건 알아도 올바르게 복용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려 고민하는 모습이었죠. 그렇게 약초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손이 갈 수 있는 제품이 되게끔 제품을 생산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 마음이 지금의 ㈜가고파힐링푸드를 만들게 된 뿌리가 되었습니다.” ㈜가고파힐링푸드는 간편 삼계탕 재료, 한방 액상청을 주력으로 간편 삼계탕 키트, 다양한 유기농 허브차, 간단한 스낵 등 약초를 이용한 힐링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고 완벽한 식품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다양한 기술연구에도 매진한 윤 대표. 연구소를 설립하고 지역의 대학교와 공동개발연구도 하며 국내에서만 통용되고 좋아하는 건강선호식품을 넘어 ‘코리안 허브’로 내보이고 싶은 꿈도 가지게 되었다. “생산기술도 늘어가고 그에 따라 제품에 대한 부가가치도 함께 높아지기 시작했죠. 국내에서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농협하나로마트에 납품해 오고 있으며 농림부 장관상, 중기부 장관상, 창조혁신대상 등을 수상하며 그간의 노력들을 인정받기도 했죠. 늘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어요. 또 제 꿈인 ‘코리안허브’를 선보이기 위해 해외 진출을 시작했죠. 통역사가 있음에도 바디랭귀지로 약초 이야기를 전했어요(웃음). 그렇게 50만 원 정도의 첫 수주가 들어왔는데 그때의 기쁨은 잊을 수가 없죠. 이를 계기로 19년도까지는 한 달에 2번 정도는 해외 박람회, 판촉전에 나갔고 ‘코리안 허브’에 관하여 문의가 있거나 구매 의사를 표하는 곳이 있다면 1달러짜리 제품이라도 들고 비행기에 올랐어요. 그 열정으로 2016년부터 중국,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에서부터 시작해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도 수출을 확장해가고 있어요.” 기업을 운영하며 늘 사회와 함께한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윤 대표. 그 생각은 꾸준한 사회적 기탁으로 실천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나아가 힐링센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사회적 복지 계획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된 분들에게 남녀노소 구분 없이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힐링센터에서 쉬는 동안 모자랐던 사랑도, 관심도, 따뜻한 손길도 드려 그로 인해 다시 한번 꿈을 향해 달려가게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한의사도 고용하여 체계적인 의료체계도 구축해 놓고 싶어요. 누군가 힐링센터 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분의 건강, 음식, 마음 모두를 채울 수 있는 그런 힐링센터를 만드는 게 저와 ㈜가고파힐링푸드의 최종 목표입니다(웃음).” 윤 대표는 젊은 청년들을 고용해 이들을 인재로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인재가 양성되지 않으면 회사가 성장할 수 없어요.”라며 많은 교육과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인재 양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한 달에 보름 정도는 해외에 나가 있는데 엄마 없는 빈자리, 아내 없는 빈자리, 대표가 없는 빈자리를 잘 메워줘서 고맙다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가고파힐링푸드의 슬로건은 ‘고객들이 제품을 받았을 때 미소를 짓게 하자’는 것입니다. 받았을 때 행복한 제품들을 만들기 위해 석, 박사 출신의 연구진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어요. 유능한 분들이 영업팀과 시장조사를 하고, 신제품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노력으로 어렵게 만들어진 제품에 소비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이야기까지 만들어 마음도 함께 전하고 싶습니다. 각 유통사에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러브콜을 해주셨으면 합니다(웃음). 준비가 다 되어있어요. 전쟁터든 어디든 준비를 마치고 있기에 어디인들 못가겠어요!”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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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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