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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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 이젠 행동하는 정치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부산광역시의장협의회 지방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한 김태수 의원은 진심으로 진심을 구하는 사람이다. ‘한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겠다’며 자리에 연연하기보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풀뿌리민주주의부터 실현해야한다는 그의 말에는 큰 울림이 있다. _박미희 기자 Q. 평소 ‘한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말씀을 자주하신 걸로 압니다. 김태수 의원님은 어떻게 정치에 입문하게 되셨나요? 자신의 정치철학이 있다면요? A.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길을 따르고 싶었습니다. 그간 시민단체 활동으로 정치참여를 하다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을 계기로 현실정치에 나서야겠다는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풀뿌리 민주주의부터 실현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부산에서 3번의 도전 끝에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10년 세월 동안, 만난 수많은 유권자들과 함께 나눴던 고민, 그리고 지역의 많은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번 제대로 일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자리에 연연하기 보다는 ‘한번을 해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Q. 그간 의정활동을 뒤돌아보셨을 때 스스로 가장 보람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A. 이제는 의원들 스스로가 기득권이나 권위주의를 내려놓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외 연수를 통해 견문을 넓히고 그것이 우수한 의정활동에 보탬이 되는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의원들의 일탈로 주민들의 혈세가 낭비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어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일탈행위 및 개인행동 금지’를 주요로 하는 ‘부산진구의회 의원 행동강령 조례안’을 발의했습니다. 그리고 의원들의 업무추진비 명목의 예산들을 30% 정도 삭감하므로써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Q.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지역구 현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A. 부산진구의 가장 시급한 현안은 바로 재계발문제입니다. 산적해 있는 재계발 문제는 때론 지역발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주민들의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재계발이 되지 않아 슬럼화된 지역의 취약한 방범 실태는 주요한 민원 사항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기업의 책임계발이 중요합니다. 한번 재계발지역으로 정해지면 공적인 자금이 지원될 수가 없어요. 재계발지역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매몰비용을 지불해야하지만, 이를 갚을 능력이 없는 협동조합이 많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에서 한시적으로 기업에 다른 혜택을 주고 매몰비용을 감당하게 했는데, 이를 더 늘려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합니다. Q. 김태수 의원님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지역을 떠나는 정치인들이 많죠. 하지만 저는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시민단체를 통해서 지역 발전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밀알이 되어 뿌려놓은 이 새로운 가치를 전하는데 보탬돼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각계 계층의 민의가 정책으로 반영되고, 다양한 인재가 나와야 여당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제가 오랫동안 몸 담아온 부전시장 상인회를 비롯한 다양한 시민단체의 참여를 통해 행동하도록 하겠습니다. Q. 끝으로 주민들과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정치인은 좋은 아버지가 되기 상당히 어려운 직업이더라고요(웃음). 정치에 입문한 뒤로 항상 바쁜 활동 때문에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한 살 된 아이를 엎고 봉사활동을 하던 저를 기억하고, 여전히 응원해주시는 많은 주민들에게 실망시켜드리지 않는 정치인.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 김태수가 되고 싶습니다. [1007]
    • 정치
    2017-02-17
  • 권오을 바른정당 경북도당 위원장 | 3선 국회의원
    “세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항상 도전하는,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개혁정신이 투철한 개혁가예요. 고려 말에 태어났으면 ‘정도전’처럼 살았을 겁니다. 의원시절,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정활동으로 1등 안한 적이 없습니다. 최고의 국회의원이었습니다. 50대 3선 의원, 한창 잘 나갈 시기에 참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원외로 보낸 지난 8년! 더 크게 성장할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부도덕한 정치, 추락하는 경제, 각박해진 서민생활로 더 이상 기댈 곳 없는 사람들에게 그가 바로 희망입니다.” 이 말들은 모두 한사람을 지칭하고 있다. 바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권오을 바른정당 경북도당위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오늘은 국민들로부터 다시금 신뢰받고자 바른정당의 외연확장에 매진하고 있는 권오을 전 의원을 만나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 안연승 차장, 정지우 기자 Q. 바른정당의 창당배경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 비전을 소개해주세요? “박근혜 정부 4년동안 나타난 국정난맥과 공천과 탄핵과정에서 드러난 독선과 불통, 무능과 패권정치의 민낯에 무한한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국정 전체가 농단을 당하고 최순실의 나라가 되어버려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당 지도부를 포함한 그 누구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태산준령이라고 불리는 보수의 심장 경북,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서 나고 자란 개혁보수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위기에 놓인 보수를 살리고, 민생을 최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바른정당’ 창당에 앞장섰습니다. 진정한 보수는 도덕성을 중히 여기며 시대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백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경주 최 부잣집은 300년을 이어져올 수 있었습니다. 보수의 혁명은 이렇듯 선비정신의 맥을 이으며 시작되어야 합니다. 서민이 따뜻하고 부자가 떳떳한 그래서 모두가 공평한 사회건설에 앞장서야 합니다. 바른정당이 가족의 가치를 가장 우선하는 따뜻한 정당, 민생을 제일로 살피는 책임지는 정당, 부정부패를 청산하고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깨끗한 정당, 지방화와 분권,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들을 추구하는 통합적 보수정당이 되어 시대적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Q. 경북도청 이전의 핵심인물로서 진행과정과 함께 안동의 발전전략도 소개해주세요? “1991년 경북도의원 시절 청원 제1호로 ‘경북북부권도청이전안’을 제출하여 도청이전문제를 이슈화시켰습니다. 1995년 도의회 도청이전지 용역결과, 안동이 1위로 발표되었고 1996년 15대 국회의원이 되어 이후 12년 동안 도청이전을 주도했었습니다. 2006년 한나라당 경북도당 위원장 시절에는 경북도지사 후보들에게 도청이전을 공약화하도록 설득했으며, 2007년 예천군수를 설득하여 안동·예천 공동으로 도청유치신청서를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에는 경북도의회 도청이전특위 운영위원, 평가위원들에게 안동·예천 입지의 타당성을 홍보하고 설득하여 2008년 6월 8일 안동·예천이 경북도청이전지로 확정 발표되었고 2016년 마침내 도청이전의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안동이 경북내 1인당 총생산이 하위 2위인 것은 제조업 생산비중이 제일 낮은 것에서 기인됩니다. 제조업이 안동총생산의 최소 25%이상이 될 수 있도록 산업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창원, 구미, 울산 등과 삼성이 11조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아산탕정 신도시처럼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단지 조성이 도청유치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동의 동서4축 고속도로와 중앙선 복선전철화가 마무리되는 2018년을 기점으로 경북북부지역의 농축산물을 원자재로 하는 식품클러스터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2000년 1월 안동상공회의소 신년인사회에서 주창한 후 안동시장과 함께 브랜드완성을 위해 노력했고 2006년 특허등록으로 도시 브랜드화가 된 것처럼, 산업단지 유치와과 식품클러스터 조성은 새로운 안동의 브랜드가 될 것입니다. Q. 경북지방 원전 추가건설과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세요. 원자력발전소 25기중 12기가 경상북도에 위치해있습니다. 지난 경주지진이후 원자력발전소 안전에 대한 도민들의 우려가 큽니다. 재앙에 가까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이후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원천을 해체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효율성에 도민의 안전성을 담보로 할 순 없습니다. 추가적인 원전건설은 반대하며 위험요인과 활성단층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가동 중인 원전도 수명이 다하면 순차적으로 해체해야 합니다. 자연친화적인 신재생에너지로 필요한 에너지를 대체 확보해가야 할 것입니다. 비록 아직은 태양광 등 대체적인 에너지의 생산가격이 비싸 경제성이 없다할지라도, 이 기회에 선도적으로 외국에도 수출할 수 있는 에너지산업으로 육성할 일입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지난해 이미 시대착오적인 일이라고 반대한 바 있습니다. 한마디로 국정교과서는 정권교과서입니다. 정권이 교체되면 또 교체될 것이 뻔합니다. 검인정 교과서의 근·현대사에 문제가 있다면 공론화 과정을 거쳐 수정하면 될 일입니다. 특히 종북, 친북내용은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왜곡되거나 미화된 부분은 수정하여 그 판단에 맡길 일입니다. 친일문제도 사실대로 기술하되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공과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됩니다. 건국절 논란과 관련해서는 이승만 대통령 스스로가 대한민국의 기원을 1919년 임시정부로부터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경북도민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은? 돌이켜보면 우리 TK는 그동안 박 대통령과 30년 영남보수정권에게 무비판적으로 지지를 보내면서 지내왔습니다. 이로인해 보수정당 일당 독점체제를 고착화시켜 정치적 다양성을 말살해왔습니다. 대구의 섬유, 구미의 전자, 포항의 철강산업으로 이 땅의 가난을 물리친 주역이라는 과거의 허상에 자족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로인해 지역경쟁력은 물론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도 획일화되어 모두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바른정당은 낡고 부패한 보수대신 참된 보수의 가치를 재정비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TK의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것입니다. 지역권력 독점 견제를 통해 보수 유권자의 선택의 폭을 넓혀 공정한 국가를 만드는 바른 정치를 해나갈 것입니다. 영남 사림의 비판정신을 살려 부정부패, 비리를 없애는 정치풍토를 조성해갈 것입니다. 화랑정신으로 삼국을 통일한, 독립정신으로 나라를 되찾은, 낙동강 전투에서의 호국정신으로 대한민국을 지킨, 새마을정신으로 가난을 물리친, 경북의 새로운 영광을 위한 도약의 길에 따뜻한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1007]
    • 정치
    2017-02-17
  • 주식 청년 재벌, 사회에 '사랑의 회장'을 전하다
    19세에 주식투자를 시작하여 100억 대의 자산가가 된 젊은 청년 재벌. 이 타이틀 하나만으로 그는 일약 스타가 되었고, 세상은 그런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개인 투자자들은 투자비법을 배우고자 그에게 환호했고, 예능 프로와 각종 매체들은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를 부르는 곳,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기꺼이 동참했고, 어느새 그는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주식 재벌 복재성 대표의 럭셔리한 자택, 억대를 호가하는 고급 수입차는 연일 화제였다. 대중이 그의 화려한 이력에 주목할 때, 주간인물은 젊은 나이에 막대한 재산을 거머쥔 주식투자자라는 타이틀 이면의 ‘인간 복재성’이 궁금했다. _박정연 팀장 주식 청년 재벌, 사회에 ‘사랑의 희망’을 전하다 19세 소년 복재성 유학경비 충당 위해 300만원으로 시작한 주식 투자 “학창시절 일본어 특기생으로 대학 입학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내정되어있던 특기자 목록에서 제 이름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배후 사정을 알게 되었고, 어린 나이었지만 사회에 대한 깊은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한국을 떠나 더 큰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었기에 유학을 가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복재성 대표는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틈틈이 모아온 전재산 300만원을 가지고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4년 유학경비에 소요될 학비와 생활비를 계산해보았습니다. 대략 2억 4천만원 정도의 경비가 필요했고, 당시의 제가 생각해낼 수 있었던 방책은 부동산과 주식이었습니다. 부동산보다는 주식이 제가 가진 300만원으로 현실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고, 그렇게 주식투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식을 향한 거창한 목표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번 시작한 것, 제대로 해내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웠을 뿐이었다. 복재성 대표가 주식을 시작했던 당시는 주식투자에 대한 인식 자체도 부족했고, 주식을 한다고 하면 ‘집안 기둥을 뽑아먹을 녀석’이라는 둥 핀잔을 받던 시절이었다. 주위의 걱정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복재성 대표는 본인의 확고한 소신을 바탕으로 주식공부를 시작했다. 서점에서 주식투자 관련 서적을 전부 사들였고, 한권 한권 정복해나갔다. 그렇게 2개월 여. 이론을 마치고, 실전으로 돌입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수중의 300만원을 전부 날려버린 것이었다. 이로써 첫번째 난관에 부딪힌 복재성 대표. 여기서 포기하느냐, 다시금 도전하느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치열함’으로 이뤄낸 인고와 숙성의 시간 복재성 대표의 선택은 ‘여기서 무너져 내릴 순 없다’였다. 세계적인 석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며, 보란듯이 성공하고 싶었다. 직권남용 부당처우를 했던 사람들에게 당당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유학자금이 필요했다. “딱 2년만 주식에 미쳐보자. 딱 2년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이를 악물고 나의 모든 열정을 몽땅 쏟아내어 보자고 자신에게 다짐하고 다짐했습니다.” 깜깜한 터널 끝에 한줄기 빛이 보이는 듯 했다. 해답은 찾았지만, 문제는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것. 복재성 대표는 낮에는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저녁에는 pc방에서, 주말에는 호프집에서 밤낮, 주일주말 가릴 것 없이 2개월 간 일에 몰두했고, 그렇게 다시 300만원을 쥐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실을 단단하게 다졌던, 가장 치열했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에 합당한 노력을 하면 안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300만원을 잃었던 당시는 막막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시기가 있었기에 단련되어 현재의 부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제 자신이 이뤄낸 것이기에 누구든지 목표에 상응하는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이뤄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재성 대표의 현재 대단해 보이는 화려한 삶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이러한 인고의, 숙성의 시간이 있었기에 현재의 성공이 가능했다고, 복재성 대표는 담담히 읊조렸다. 개인투자자들을 돕고자 힘써왔던 지난날 복재성 대표는 숙성기간을 거치며 주식투자자로서 성공을 거머쥐었지만, 주변에서 주식 투자에 실패하는 사례는 너무나 많았다. 자신이 시행착오를 겪던 시절이 떠올라 안타까웠던 복재성 대표는 온라인 주식카페를 개설하여 개인투자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큰 사명감을 가졌었습니다. 그 당시는 주식투자 10번 중 9번을 실패해도 1번을 성공한다면 서민들이 단기간에 큰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었기에 개인적으로도 많은 보람을 느꼈었습니다. 그것이 제 열정의 원동력이기도 했고요. 반면 현재는 개인투자자를 돕는다는 미명하에 제도를 수정하여 개인이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막혀버렸습니다. 이제 프로낚시꾼들만 물고기를 낚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회사를 닫았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이 돈을 벌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제 유명세를 이용하여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한 마음으로 시작한 주식 강의. 그를 믿고 따르는 추종자들도 많이 생겨났지만 반대급부로 블랙컨슈머와 악성네티즌 또한 생겨났다. 하지만 한층 단단해진 복재성 대표는 더 이상 세간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는 묵묵하게 자신의 소신대로 나눔 활동을 펼쳐오고 있을 뿐이다. 기꺼이 따뜻한 손길 내미는, 기부 릴레이 대한민국을 희망하며 “10대라는 나이가 왜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복재성 대표는 질문을 던졌다. 기자 생각을 이야기 하자 복재성 대표는 말을 이었다. “10대는 未成年, 법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나이입니다. 사회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이 대통령도 꿈꿔보고, 국회의원도 꿈꿔보며, 다양한 꿈을 꾸는 시기입니다. 20대는 그 꿈들을 하나씩 실천해보는 나이이고, 30대는 그 중에서 자신에게 적합한 꿈을 잡아 키워가는 나이이며, 40대는 그것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삶을 확고히 해나가는 나이입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10대 아이들이 과연 어떤 꿈을 꾸는지 말입니다.” 복재성 대표가 소외계층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 나눔 활동을 시작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모교인 군산 중앙고 후배들 중 재능을 갖추었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마음껏 꿈을 꾸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겹쳐졌기에, 돈걱정 없이 마음껏 꿈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 아이들이 성장하여 자신이 받았던 것과 같이 사회에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하여 훈훈한 대한민국이 되길 희망하며. 이 밖에도 복재성 대표는 장애인 단체 후원 등 다방면으로 기부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복재성 대표는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이야기를 덧붙였다. “누구나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꿈꿉니다. 다만 성공한 사람이 드문 이유는, 성공을 꿈꾸지만 그에 합당한 노력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안주보다는 도전을 선택하세요.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하세요. 모두가 주식투자에 대한 편견으로 만류할 때, 저는 주식투자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겁내지 마세요. 사회가 불안정하다 보니 안정을 추구하는 젊은 친구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20-30대 분들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는데 전력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날의 도전은 결과가 어떻든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모두 2017 정유년 뜻한 바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006]
    • 경제
    2017-02-01
  • 공간의 주인은 사람이다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시스템 정리수납 전문기업 덤인.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정리수납 서비스를 시작한 기업이다. 정리수납 서비스란 공간을 더 가치 있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일컫는다. 정경자 대표는 시대의 흐름 속 미래의 유망 직업으로 정리수납 서비스가 우리나라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했다. 가족형태 변화에 따른 맞벌이 부부와 1인 가족 수 증가, 노인 인구수 증가 등, 여성의 사회적 활동, 다양한 변화와 더불어 바뀐 소비습관의 흐름을 읽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에서도 가사 일을 분담해 줄 수 있는 서비스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공간의 주인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물건이 공간을 차지하게 되면서 물건에 치여서 집은 좁아지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죠. 비움으로써 자유로워지고 바르게 채움으로써 행복해 집니다. 그 행복은 나눠야 하고요. 이 전체를 키우는 선순환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과 일상이 행복해 지죠” 덤인의 ‘덤’은 공짜로 얻는다는 의미의 ‘덤’이다. 덤인을 만나 공간을 덤으로 얻고, 사람과 삶을 덤으로 얻기를 바라는 정경자 대표. 사람들과 함께하며 사람을 감동시키는 덤인. 그 과정에서 행복을 덤으로 얻는 정경자 대표의 행복한 이야기를 담았다. _이가현 기자 업계 최다 가맹점 보유! 최고의 서비스 지향! 그 성과의 시작 그녀는 현재 전국에 54,000의 명 회원과 전국에 27호점의 최다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시작부터 완만한 것은 아니었다. 2011년 처음 정리수납 사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선입견에 부딪혀 미뤄졌다. ‘자기 물건은 자기가 정리한다’라는 인식이 강한 사회는 정 대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비스를 받는 고객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과 동시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의 인식도 쉽게 재고되지 않았다. 정 대표는 경력 단절여성을 대상으로 전문가 양성과정을 만들었다. “정리하는 일은 직업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을 바꾸는 게 힘들었어요. 매뉴얼을 만들었죠. 냉장고 정리, 옷장 정리, 아이들 장난감 정리뿐만 아니라 정리 수납전문가 양성 과정도 체계화시켜 만들었어요. 정리수납전문가 2급 과정은 정리수납 방법을 배워 자기 집을 정리할 수 있게 구성했고, 1급 과정은 좀 더 체계적이고 표준화된 정리수납의 노하우와 서비스 마인드를 익혀 팀원들과 함께 협력하여 실제 서비스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옷 개는 방법부터, 냉장고 정리하는 방법까지 직접 메뉴얼을 만들면서 서비스 만족과 동시에 전문 직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 하였습니다.” 2015년 한국 직업사전에 정리수납 컨설던트가 새로 등재되었다. 대한민국에 없는 직업군을 정경자 대표가 ‘창직’ 해낸 셈이다. 이러한 노력은 경력 단절 여성에게 새롭게 일할 기회를 마련했으며 가정의 새로운 질서를 잡아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덤인은 ‘업테리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업테리어란 인테리어를 하지 않고 공간의 물건을 정리하고 수납하는 것만으로도 공간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말합니다. 업테리어를 하는 정리수납 전문가를 ‘업테리안’이라 불러요. 하나의 고유명사는 사람들의 인식변화에 힘이 됩니다. 더불어 ‘정리수납 전문가’라는 의의를 가지죠. 전문가 양성에서 어려웠던 점은 직업의식 고취였어요. 경력단절 여성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어려움에 직면했죠. 우선 습득과정에 있는 어려움, 그리고 사회성 부족, 직업의식 부재. 하지만 전문직이라는 명칭은 이러한 변화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콩알 봉사단 선물 같은 시간 덤인 자체 내부에는 ‘콩알 봉사단’이 있다. “봉사는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살아가는 데 있어 언제나 하나의 영역일 뿐이에요. 그래서 봉사하는데 시간이 나면,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이런 말을 나에게 적합하지 않습니다. 제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도움이 됐으면 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랬으면 하는 취지에서 만들게 됐어요. 회사니깐 수입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이바지하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리수납을 잘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전문가잖아요. 그래서 정리수납 봉사를 하게 됐죠,” 적어도 사는 공간만큼은 ‘한 평이라도 내 집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콩알 봉사단은 전국적 단위로 사회의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전국에 1,000명의 봉사단원이 있다. 현재 4호까지 생겼으며 2017년 10호까지 만들 예정이다. 정경자 대표는 봉사단원 한명 한명을 콩알로 본다. “콩알이 많이 모이면 다양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어요. 콩알 같은 봉사단원이 모여 사회에 영양소를 제공한다는 의미죠. 또 옛말에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나눔’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뜻도 있어요.” 정경자 대표는 콩알 봉사단 활동 외에 노숙자, 장애인들에게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본인의 물건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 생각, 삶을 정리하는 가치까지 습득할 수 있게 한다. 정경자 대표는 말한다. “나의 존재가 세상에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일자리를, 가정에는 일상 속 정갈함이 주는 행복감을 선사하는 정경자 대표. “삶의 끝자락 되돌아봤을 때, 내 인생 자체가 세상의 선물이길 바랍니다.” 봄볕 아래 일랑이는 파아란 마가렛 꽃을 닮은 그녀의 미소가 푸르다. 2017년 1월 19일 주머니 속 가로 11cm, 세로 13cm의 핫 팩이 주는 63도의 소소한 따뜻함을 느끼며 도착한 덤인 사무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정경자 대표. 그녀와 함께한 인터뷰 73분 15초의 시간, 기자에게는 마치 생일날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삶에 있어 정리가 필요한 이유, 조그마한 습관이 주는 일상의 즐거움, 그리고 더불어 산다는 의미를 다시 느끼게 해준 정경자 대표. 그녀의 따뜻한 발걸음을 응원한다. 프로필 숙명여자대학교 여성인적자원개발대학원 졸업(석사) < 저서 > 정리습관의 힘 경향미디어 단계별 성장발달을 위한 영아마사지 공동역자 도서출판 금광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베이비요가 공동역자 도서출판 금광 [1006]
    • 라이프
    2017-02-01
  • 복합문화공간 만화카페 풀덤(FULLDOM)-감각적인 인테리어에 맛있는 먹거리와 다양한 볼거리가 함께해
    야외에서 뛰어놀기 힘든 추운 겨울이면 친구들과 옹기종기 따뜻한 방에 누워 만화책을 돌려 보곤 했다. 간식을 먹으며 한 손 가득 빌려온 만화책을 보다 보면 반나절은 금세 지나가버렸다. PC방이 흔하지 않고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나 여타 놀이 공간도 많지 않던 시절, 만화방은 젊은이들의 쉼터였다. 하지만 다양한 레저와 문화 공간이 생기고 웹툰의 등장으로 만화나 만화방은 젊은이들에게 외면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카페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와 콘셉트의 ‘만화카페’가 등장해 젊은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서울 홍대에서 시작해 지방에서도 다양한 만화카페가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 광주에 위치한 ‘풀덤(FULLDOM)’은 복층구조와 세련된 인테리어로 오픈 1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전남대 후문 본점을 시작으로 충장점과 첨단점까지 문을 열어 성황리에 운영 중이다. 복합문화공간으로 광주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풀덤’, 고객 눈높이에 맞춘 운영으로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한 그곳을 주간인물이 찾아가 보았다. _정주연 기자 전남대 후문 메인 거리를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풀덤(FULLDOM)은 유명 편집숍을 연상시키는 세련된 외관이 인상적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마주하는 대형 책장과 스크린 그리고 작은 무대는 방문객들의 궁금증을 또 한 번 자극한다. 복층구조에 전면을 통유리로 인테리어한 이곳의 정체는 4만여 권의 다양한 만화책이 구비된 ‘만화카페’. 커피를 포함한 식음료부터 요기를 달래줄 다양한 먹거리까지 구비해 방문객들의 눈과 입을 모두 사로잡는 이곳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라는데. 다락방 구조에서부터 윈도형 자리까지 혼자 오는 고객도 함께 오는 고객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 “친구나 연인 또는 가족단위로 오는 고객들이 많아요. 조금 더 편안하게 만화를 보며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좌식 형태의 좌석에서부터 다락방 형태의 좌석, 칸막이형 좌석까지 다양하게 마련했습니다.” 특히나 요즘은 혼술이나 혼밥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난 점을 감안, 창가를 바라보는 좌석을 배치해 변화하는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했다. 특히나 4만여 권이 넘는 책은 남녀노소 누구나 만화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로 준비되어 있다. 얼마 전 오픈한 첨단점은 주변에 초등학교가 많은 점을 고려해 아동도서까지 구비했다. 주변 상권 분석을 통해 주요 고객층을 파악해 지점별로 책의 장르도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식음료와 먹거리 레시피를 통해 최적의 맛을 구현해 만화 카페답게 커피부터 에이드까지 다양한 종류의 식음료를 판매하고 있는 풀덤은 고객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라면부터 볶음밥류까지 분식 위주의 다양한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여느 식당과 마찬가지로 본점과 지점의 음식 맛이 달라질 것을 우려해 풀덤은 자체 조리 레시피를 마련했다. 인기 메뉴인 라면만 하더라도 물의 양과 조리 시간 그리고 가니쉬에 이르기까지 획일화된 조리 방법을 구사해 어느 지점에서나 풀덤만의 맛있는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성된 메뉴는 음료 세트나 음식 세트 등 다양한 패키지 요금제로 조금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 상권과 상점의 규모까지 고려 롱런할 수 있는 풀덤이 되고파 넓은 실내와 감각적인 인테리어, 4만여 권이 넘는 만화책 구비로 광주는 물론 인근 지역에서도 가맹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 풀덤. 하지만 풀덤의 색을 그대로 살려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공간과 함께 철저한 주변 상권 분석을 통한 자리 선정이 우선시 되어야 하기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현재 복층구조로 이루어진 광주점 3곳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실내 설계가 돋보인다. 이는 보다 많은 책을 보유함으로써 다양한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켜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풀덤이 되기 위함임을 시사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이승진 대표는 취재진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했다. 입구에 위치한 ‘마음의 소리’라는 상자였다. “고객들의 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기 위해 마련해놓은 것이에요.” 사소하지만 고객들이 겪는 불편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마련해 놓은 ‘마음의 소리’를 통해 풀덤의 고객 중심 경영을 엿볼 수 있었다. 입구 쪽 작은 무대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버스킹을 하는 음악인들을 초청해 공연도 선보이고 있다는 풀덤은 단순한 만화카페를 넘어 지역의 대표 복합문화공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풀덤의 다락방에는 디퓨저가 각각 놓여있다. 디스플레이해놓은 책장 하나에도 다양한 인테리어적 요소를 가미해 고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작지만 의미 있는 노력을 통해 풀덤은 광주의 대표 복합문화공간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1006]
    • 문화
    2017-02-01
  • “믿을 수 있는 중고차 시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경남 최대 규모 자동차매매단지 ‘천차 만차’
    최근 우리 경제의 화두인 저성장과 경기 침체는 합리적인 소비문화를 촉발시키고 있다. 현대인들이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인 ‘가성비’는 사소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지불하는 대가에 대한 최선의 선택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소비 성향을 가장 잘 나타내는 키워드다. 그런데 이러한 가성비 위주의 소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정보다. 알리고자 하는 내용만 공개하는 편향된 정보가 아니라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제공되는 양질의 정보 말이다. 소비에서 정보가 중요한 시장이 바로 중고차 시장이다. 중고차 시장은 거래건수가 지난 2015년 기준 367만여 건에 달하고 전체 시장 규모도 30조원을 상회하는 거대한 시장으로 가파른 성장일로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 규모와 잠재력에 비해 시장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는 여전히 낮고, 아직도 허위매물·허위이력 차량 판매 등의 문제가 심심치 않게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등 개선이 난망한 상황이다. 이러한 좋지 못한 중고차 시장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이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경남 최대 규모 창원자동차매매단지인 ‘천차만차’의 홍정표 위원장이다. 오늘 그를 만나 중고차 시장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_이진랑 기자 신뢰할 수 있는 중고차 시장으로 거듭나고파 중고차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의심부터 하는 습관이 있다. 이유인즉슨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중고차를 사면서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어떤 차가 좋은지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판매자가 추천하는 대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중고차 구입 시 사전에 피해를 예방하고 좋은 차를 사는 방법 및 구매요령에 대해 홍 위원장이 설명해주었다. “현재 중고차 시장이 많이 투명해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몇몇 양심 없는 업체들 때문에 피해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어요. 사전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하죠. 중고차를 살 때 주의점과 구매요령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첫째, 중고차 사고유무 판별 및 성능점검표 카히스토리 조회 등 사고 차 및 침수차에 주의해야 합니다. 차량 구입 시 걱정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사고유무, 침수 여부 등이 아닐까요? 울산, 부산 등의 침수차가 중고차 매매시장에 흘러나왔다는 이야기를 통해 소비자들의 가장 걱정거리 중 하나가 침수 여부죠. 중고차 구입 전 트렁크 및 하부 부식 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하며, 보험사고이력조회 및 성능상태 점검기록부를 비교하여 차량의 정확한 정보를 알아봐야 합니다. 둘째, 싼 중고차 및 중고시세보다 저렴한 중고차는 허위매물, 미끼매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내가 원하는 중고차의 용도 및 연비, 구입 시세, 팔 때의 시세까지 감안해 구입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고차 매매상사에 직접 방문해 할부 보험 폐차 수출 중고차 시세 상담받는 것이 좋습니다.” 홍 위원장이 알려준 것만 잘 숙지하고 구매한다면 큰 문제없이 원하는 차를 구입할 수 있다고. 중고차 시장이 고객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대한자동차연합과 전국자동차연합이 직접 허위매물 단속을 하고 적발 시 그 판매원의 사원증을 폐기, 같은 업종에서 다시 일하지 못하게 처리한다. “이제 중고차 시장의 정식 판매원들은 사원증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사원증이 있는 판매원에게 차를 구매한 뒤 문제가 생겼을 경우 소속 상사나 연합회에서 배상해 주고 있으니 꼭 사원증이 있는 판매원에게 구입하길 당부합니다.” 홍 위원장은 예전과는 달리 판매원들도 지식이 많고 친절해 안심하고 구매해도 괜찮다며 꼭 사원증부터 확인할 것을 강조하며 문제 발생 시 위원회에 문의하면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천차만차에서는 최상급의 중고차만 취급한다며 항상 친절함과 최상의 서비스로 응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고차 시장에 활기를 되찾고파 대기업에서 골목상권까지 손을 뻗치며 소상공인들이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중고차 시장도 마찬가지로 대기업이 운영하는 계열사들이 늘어나면서 일반 소상공인들로 이루어진 중고차시장의 매출이 점점 줄어가고 있다. “대기업들이 중고차 시장에 들어오면서 일반 소상공인으로 이루어진 중고차 시장이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어요. 거기에 국내 경기까지 좋지 못하니 매출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앞으로 정부에서 저희 같은 소상공인들을 위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힘든 상황이 이어질 거예요. 정부측에서 대기업으로부터 소상공인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줬으면 합니다.” 하루빨리 중고차 시장에 활기를 되찾고 싶다는 홍 위원장.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천차만차 위원회에는 매년 정기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성금을 기탁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저희 위원회에서는 지역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홍정표 위원장의 바람대로 중고차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시장으로 거듭나며 하루빨리 활기를 되찾길 기대해본다.
    • 경제
    2017-02-01
  • 국악가수, 그 신선함 A gugak singer delivering a fresh sound
    민중들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난 노래라는 뜻의 민요와 일제 강점기 시절 형성된 대중 가요 형식의 노래인 트로트. 이 두 장르를 융합하여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사람이 있다. 이번주 주간인물이 만나본 국악 트로트 가수 정소라와 특별한 만남을 가져보았다._이효정 ­­기자 Folk music refers to music that was created by the people over time, while trot is a popular music genre that emerged in Korea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There is someone who has pioneered a brand new music genre by combining these two types of music. It's the gugak trot singer, Jeong So-ra, who was interviewed for this week&s feature on Weekly People._Lee Hyo-jeong 집에 있는 전축을 통해 유행곡을 들으며 살았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몸져 눕게 되면서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늘 가슴 속에선 가수에 대한 열망을 간직하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신월동을 지나고 있을 때 국악 학원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 필름처럼 지나온 세월들이 순식간에 떠오르고 지나갔다. 한복을 좋아하던 나, 노래를 곧잘 부르던 나, 국악을 좋아하던 나……. 트로트는 힘든 삶을 노래로 표현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국악과 접목시켜보았다. 한(恨)이 서린 국악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고 트로트는 관객들에게 흥겨움을 불러일으켰다. I had spent my younger years playing the hit records on the LP player at home. When my parents fell ill, I had no choice, but to start working to provide for my family. Still, I retained in my heart the longtime aspirations to become a singer. Then, one day, I was walking in Sinwol-dong, Seoul when a gugak academy caught my eye. At that moment, memories from the past & how I dearly loved hanbok, how I loved to sing, how I loved gugak - flashed before my eyes. Trot was a great way to express my hardships in life, but in a limited way. So I decided to incorporate it with gugak. Gugak, which conveys the feelings of han (roughly translated to sorrow or resentment), resonated with the audiences, while trot excited them. 기회가 왔다. Then an opportunity knocked at my door. 국악으로 입소문이 났다. 소홀했던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아이가 예중에 갈 수 있도록 노경미 선생님과 같이 공부할 수 있게 합의가 되었다. 그러나 지인에게 사기를 당했고 나는 우울증에 빠졌다. 아이 진학도 포기한 체 자리에 누워버렸다. 무대에 다시 오르는 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야위어 9개월을 정신과약으로 버티며 사경을 헤맸다. 그러던 어느 날 무용가 김정희 선생님의 제안으로 아이와 함께 미국 동부 버지니아 공연에 나가게 되었다. 10살의 아이는 청춘가를 불렀고 관중을 휩쓸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희망을 얻었다. 귀국 후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봉사도 다니면서 열심히 살았으며 그렇게 CD 제작의 기회가 왔으나 기획사의 두 번의 실패로 무산되었다.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가수 출신의 오영산 작곡가님을 만나 실패의 경험과 위로를 받았다. 오영산 선생님께서 이왕 CD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름 석자로 작사하여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라고 적극적으로 밀어주셨고 그렇게 가수 정소라가 탄생하였으며 타이틀곡 ‘떠난 사람‘이 탄생했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I gained fame as a gugak singer. I was able to start studying again, and an agreement was made for my child to train under Noh Gyeong-mi so that he could enroll in a middle school specializing in the arts. But I was scammed by an acquaintance, and that incident made me fall into depression. I became emaciated to a point where I couldn&t imagine myself performing on stage again. For 9 months, I tried direly to hold on to my sanity and my life, relying on psychiatric medications. Then, Then, one day, based on a suggestion from dancer Kim Jeong-hee, I took my child to perform in Virginia U.S.A. There, my 10-year-old left the crowd enraptured with his performance of “Cheongchunga (The Song of Youth).” After seeing this, I regained hope. Although I continued to suffer from financial hardships even after returning to Korea, I still worked hard, even volunteering from time to time. I was given an opportunity to record a CD, but the project fell through twice because of the record company. At a time of dejection, I found solace in singer-turned-composer Oh Young-san, who shared with me his own experiences of failures. Oh Young-san provided me with his full support, as he encouraged me to write my own lyrics and do what I needed to produce a CD. That&s how I came to be singer Jeong So-ra, and my debut song, &The Person Who Left,& was born. I&ll never forget that moment. 나의 아들 변도현 My child, Byeon Do-hyeon 아이는 어릴 때부터 끼가 충만했다. 남자 아이였기 때문에 나와 같은 길을 가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그저 사람들에게 예쁨 받는 모습이 너무 예뻐 바라만 봤다. 아이는 내가 연습을 할 때 옆에서 곧잘 따라불렀다. 6살 때는 방송국에서 인기상도 받았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아이에게 민요와 트로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10살이 된 아이는 동부 버지니아에서 감사장까지 받았다. 나의 아이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아이의 재능을 키워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비록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독학으로 시작했지만 나의 아이는 나보다 더 크고 튼튼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주겠다고 다짐했다. My child&s talent has been apparent even from a young age. But because my child was a boy, I never knew he&d walk the same path as I did. I just noticed how he was dearly loved by the crowd who listened to him. Whenever I practiced, he&d sing along next to me. When he was 6 years old, he received a popularity prize from a broadcasting station. That was when I began to teach my son folk music and trot in full swing. When he was 10, he received a certificate of appreciation from the State of Virginia. I was proud of my child, and I became resolved to help him foster his talent. As a self-taught singer, I began singing at a relatively late age, but I wanted to do my best to present my child with the best environment to nurture his talent so that he may be able to move on to a bigger world. 더 넓은 세상을 향해 Toward a bigger world 가요계에는 무명가수가 수 없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주목을 받는 일은 쉽지 않다. 나 역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 자리까지 온 것 만으로도 영광이고 행복하다. 지난 2016년 이탈리아, 그리스, 뉴욕에서 공연을 하고 왔다. 한이 담긴 남도 민요부터 흥겨운 경기 민요까지 상황에 따라 부르는 곡은 다르지만 외국에 나가면 꼭 민요를 부른다. 나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국악 한 마당’을 보며 몇 백번씩 돌려보며 예습, 연습, 복습을 했다. 또한 대공연장에서 명창들의 공연을 어깨너머로 그들을 보며 독학으로 지금의 내가 됐노라고 자부한다. 나의 공연 모습을 보고 뉴욕에서 섭외 전화가 왔고 그 때 나에게 누구 제자냐는 질문을 해왔다. 내가 "저는 독학입니다."라고 말하자 전화가 끊겼다. 명창의 제자만 인정한다는 뜻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There are countless obscure singers in the music industry. I myself has a long way to go. However, I feel honored and take great pleasure in the fact that I&ve come this far. I performed in Italy, Greece and New York in 2016. The songs I choose to perform & from Namdo folk music that conveys han to the upbeat Gyeonggi folk music & depend on the situation, but I always include folk songs in my set list. Because I was never well-off, I watched the TV show, &Gugak Hanmadang,& hundreds of times to practice the songs repeatedly. Also, I watched the performances of prominent folk and gugak singers and taught myself to sing like them. After seeing my performances, someone from New York called to invite me to perform, and he asked who my teacher was. I said, &I&m a self-taught singer,& and he immediately hung up on me. It implied that only those taught under the tutelage of prominent singers deserve the attention and recognition. While I knew this was only natural, I couldn&t help but feel that this situation was somewhat regrettable. 아들의 도전 My son&s incredible journey 한 때 아이는 한복이 불편하여 입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나 요즈음 다시 국악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아이는 한 두가지를 알려줘도 여러 가지 깨우친다. 또한 분야 특성상 남자아이가 희소하기 때문에 많은 선생님들께서 내 아이 도현이를 가르치고 싶어하신다. 게다가 도현이는 연습을 안하고 큰 무대에 올라가도 떨지 않고 잘 해낸다. 국악의 살아있는 전설 김뻐꾹 선생님께서도 도현이를 유망주라 생각하시고 많이 예뻐해주신다. 내 생각에 국악은 우리의 생각과 얼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며 나의 아이를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것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우리의 정서가 담긴 국악을 아이가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중에 국악을 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걸림돌이 아이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지금이라도 다시 국악으로 돌아와 나와 같이 공부를 하고 공연을 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하며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도와주신 분들께도 주간인물을 통해 감사의 말씀 드린다. There was a time when my child complained about wearing hanbok because it was uncomfortable. These days, he has fallen in love with gugak again. When I teach my son just a couple of things, he realizes so many more. Because of his gender, many vocal teachers want to train him. He is not the type to get stage fright, even if he didn&t practice. Kim Ppeokkuk, the living legend in gugak, adores my son, Byeon Do-hyeon. I personally believe that gugak is the best way to express our thoughts and spirit as Koreans, and the best way to describe my child. Once, I&ve told my child, &It&s important to accept new things, but it&s just as important to maintain our traditions.& It is highly important for me to make sure that my child accepts gugak, which encompass the sentiments of Koreans, at his age because I&m fully aware of the many obstacles he would face if he were to try learning it later in his life. I&m grateful and happy that he has found his way to gugak again to study and perform it with me. I&d also like to extend my gratitude toward everyone who has helped us through Weekly People. 혼자 시작한 일을 이제는 아들과 함께 한다. 온전하게 세상으로부터 허락받은 유일한 것은 아들이라며 씁쓸하게 웃던 정소라 가수. 아들과 함께 하는 길에 박수를 보내며 주간인물은 그들의 힘찬 걸음을 응원한다. Singer Jeong So-ra now has company in her once lone journey. She gave a bitter smile, while saying that the only thing that has been granted to her by the world is her son. At Weekly People, we wish to applaud her for her hard work and dedication, and will support her journey with her son. 국악 가수 정소라 Gugak singer Jeong So-ra 타이틀곡 ‘떠난 사람’ Debut song &The Person Who Left& MC 이벤트 행사 전문 국악 가수 Gugak singer who mainly performs at emceed events 나는 홀로 서 있었다. There I stood alone. [1006]
    • 문화
    2017-02-01
  • 사람을 위한 인테리어 전문 업체 ‘인테리어 디자인수(IDSU)’
    인간생활의 3대 기본 요소인 의식주(衣食住). 어떤 패션으로 개성과 자아를 표현할지, 어떤 음식을 잘 만들고 먹고 찾아야 할지에 대한 관심은 이미 각종 방송프로그램에서 ‘쿡방’으로 표현되고 다양한 인터넷 정보들로 넘쳐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어떤 공간에서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집방’이 방송가에 새로운 트렌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 경기침체 속에서도 꾸준히 인테리어·리모델링 시장이 건자재, 가구 업계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전국적으로 지은 지 20년이 지난 아파트가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건물 노후화가 심각해 리모델링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데다 인테리어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진 덕분이다. 특히 신규 분양시장 침체가 예고되면서 이 시장은 업계 블루오션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인테리어 업종이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그 틈새를 이용해 악덕업체들의 비양심적인 시공으로 인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양심을 지키며 돈보다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정직한 업체가 있다. 그 업체는 경남 진주에서 정직하면서 실력까지 겸비한 인테리어 디자인수(IDSU). 김태경 대표를 만나 실내인테리어의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_이진랑 기자 늘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업체로 성장하고파 올해로 회사를 설립한지 7년째 접어든다는 김태경 대표. 그 시간동안 많은 성장을 해오면서 지금은 진주에서 대표적인 인테리어 업체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저는 인문대 출신입니다. 하지만 이 분야에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때문에 부모님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죠. 대학을 다니며 실내건축 자격증 1급, 2급 모두 취득했고, 졸업전에 토목설계회사에 근무하며 경험을 쌓았어요. 그리고 졸업 후에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 도급순위 3위의 회사에 운 좋게 취업해 2002년까지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인내하며 미래를 위해 꿋꿋하게 걸어갔던 김 대표. 결혼을 한 뒤 미국생활로 인해 3년의 공백 기간이 있었지만 남편 직장문제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진주에 정착했다. 그녀는 국립경상대 교수로 임용되면서 진주에 자리를 잡았다고. “2009년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2년동안 타업체 소장직을 맡으며 굵직한 시공을 담당하던 중 2011년에 인테리어 디자인수(IDSU)를 설립했습니다. 저에게 들어오는 일이 많아지다보니 자연스레 회사를 만들게 되었어요(웃음).” 그 뒤로 김 대표는 크고 굵직한 공사들을 맡아왔다. 또한 그 일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으며 그녀의 실력을 입증했다. ‘인테리어 디자인수(IDSU)’는 현재 진주지역의 대표적인 인테리어 업체로 알려져 있지만 김 대표는 겸손한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사람을 위한 인테리어 업체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저는 항상 고객에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며 고객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고객들에게 100% 만족을 주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전망있는 직업으로 인식되고파 살아가는데 안식처가 되어주는 곳, 바로 거주공간이다. 최근들어 자신의 거주공간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꾸미기 위해 별도로 업체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테리어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방송을 통해서 많이 알려지면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직업적인 면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정말 전망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최근들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젊은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변하지 않았죠. 하지만 저는 젊은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제가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일하기 전부터 전망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죠. 인테리어라는 직업은 보이는게 다가아닙니다. 인테리어 하나로 할 수 있는 분야가 정말 많아요.” 김 대표는 특별한 자격증을 보유하지 않아도 인테리어를 배울수 있고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초반에는 많이 힘들고 고생도 많이 하죠. 모든일이 그렇듯 쉬운일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힘든 것을 이겨내고 그 기술들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된다면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지 않고 자신의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나아가 한층 성장하게 된다면 인테리어는 일을 넘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젊은 친구들이 인테리어 분야에 대해 너무 어렵고 힘들게만 생각하지말고 미래를 보고 한번쯤 도전해 봤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김 대표. 그녀는 젊은 인재들이 업계에 활동해 국내 인테리어 시장이 국외 시장 못지않게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양심을 팔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인테리어 업체로 남고파 인테리어 업종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면서 집을 새로 꾸미거나 개보수하기 위해 인테리어 시공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새롭게 꾸며질 집을 생각하면서 기분 좋게 공사를 시작했지만, 하자가 발생하거나 계약내용과 시공결과가 달라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시공 업체들이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저렴한 자재를 사용한다든지 부실공사를 해서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피해가 발생해도 상당수가 보상을 받지 못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대표는 이런 피해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선 시공 업체 선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양심적이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지만 소수의 비양심적인 업체들 때문에 고객들과 동종 업체에게도 피해가 일어나고 있어요. 업체를 선정할때는 가까운 지역의 업체를 선택하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다양하고 많은 업체들과 상담하는것도 좋은 방법이죠. 인테리어는 작은돈이 들어가는게 아니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사진행 전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해야되요. 이는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을때 중요한 증빙자료가 됩니다.” 인테리어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신뢰가 필요하다. 김 대표는 인테리어를 의뢰 받고 일을 시작할 때 자신의 집을 인테리어 한다는 마음으로 성실하고 꼼꼼하게 시공한다. 거기에 여성의 섬세함이 더해져 고객의 만족도가 높다. 시공 이후에도 사후관리까지 철저하게 책임지다보니 고객들이 인테리어 디자인수(IDSU)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 항상 고객들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는 김 대표. 하지만 인테리어를 마치고 만족하는 고객의 모습을 보는것이 보람이라고. 그녀는 아직까지 자신이 부족하고 하루하루 배우고 성장해 가는 중이라며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 진주에서 제일가는 인테리어 업체 ‘인테리어 디자인수(IDSU)’가 되겠다고 말했다. 인테리어라는 업종이 아무래도 사람을 상대하는 업종이기 때문에 가끔씩 상처를 받는 일이 발생한다. 상처를 받고 힘들고 지칠때 김 대표는 여행으로 그것들을 이겨낸다고. 여행을 다녀오면 안좋았던 일은 다 잊어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여행을 하면서 마음의 치유도 얻고 휴식도 하며 새로운 영감을 얻어요. 외국의 인테리어를 보면 많은 공부가 되죠. 그래서 저는 여유가 생기면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입니다.” 김 대표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일을 정말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앞으로 건축에도 꿈을 키우고 싶다며 건축부터 인테리어까지 토털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전했다. 여자라는 편견을 깨버린 김 대표. 인테리어 디자인수(IDSU)가 진주를 넘어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인테리어 업체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1006]
    • 라이프
    2017-02-01
  • “일도 삶도 미쳐야, 미치죠” 1% 가능성으로 100%를 완성하는 돈키호테
    2017년 새해 초, 따뜻한 나눔을 전하는 사람 신인규 대표이사를 만나러 밀양으로 향했다. 밀양 시청 앞에 있는 (주)도서출판 밀양에서 만난 신인규 대표이사는 작업복 앞치마 차림 그대로였다. 작지만 다부진 체격과 밝은 표정이 인상적인 그는 특별한 사람이다. 도서출판, 인쇄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그는 경남 4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자, 심청장학회 이사장으로 적극적인 사회공헌을 펼쳐온 인물이다. 이렇듯 그는 밀양의 독지가이자, 출판·인쇄업계에서 참신한 도전을 한 인물로 주목을 받고 있다. _박미희 ­­기자 몇 년 새 문을 닫은 대형 출판업체가 줄을 이을 정도로 도서출판업계의 불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돈을 버는 일과 거리가 있는 일을 생업으로 삼으면서 그는 어떻게 꾸준히 기부활동을 해올 수 있었을까. 이쯤 되면 타고난 금수저는 아닌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신인규 대표이사는 요새 보기 드문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그의 고향은 경남 밀양, 송전탑 문제로 아픔을 겪었던 부북면 화악산 아래 평밭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나이 마흔 일곱에 저를 보셨어요. 어려운 형편에 저를 낳으셨으니 자식 뒷바라지가 힘들었지요. 워낙 연로하실 때 저를 낳으셨으니 어머니 젓 대신에 암죽을 먹고 자랐어요. 그래도 타고난 건강 체질과 강인한 정신력을 제게 물려주셨죠. 어찌나 산골인지 학교를 가려면 1시간 30분이 넘게 걸었어야 됐어요. 오가는 길에 진을 다 빼니, 공부에 집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부모님께 부담을 안 드리려고 밀양전문대(현 부산대 밀양캠퍼스)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으려고 그는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장학금을 받아서 학비를 댔다. “대학교 다닐 때 밤에 은행 청원경찰로 일을 했어요. 밤새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받은 장학금을 모아 부모님 용돈을 드렸지요. 그때 일하면서 읽은 책들이 평생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건실한 중견기업 ㈜한국화이바에 취직을 한다. 그 특유의 근면성실함과 실력은 업계에서 소문이 날 정도였다.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고, 새벽 5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가 돼야 퇴근을 했죠.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하다 보니 회사에서도 저를 인정해주더라고요. 하지만 3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화이바의 신인규가 아니라, 신인규의 신인규가 되고 싶다.’ 그래서 수중에 있는 단돈 몇 푼을 가지고 창업을 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창업을 준비하게 된다. 평소 가장 애정이 있었던 책과 관련된 사업을 구상했다. “우리 인생은 종이로 시작돼 종이로 마무리 됩니다. 원래는 제지업을 하려고 했는데 큰 자본이 필요해서 대신 인쇄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 단돈 60만원을 가지고 창업을 했어요. 기계를 리스해서 사놓고 혼자서 기계를 돌려보려고 하니까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마산 인쇄 골목으로 가서 일을 도와주며 어깨 너머로 일을 배웠습니다. 인쇄업계는 원래 기술을 잘 안 가르쳐주기에 일하는 도중에 기계가 돌아가는 걸 몰래 지켜보고 돌아와서 혼자 해보고, 그렇게 수없이 반복해서 일을 배웠지요.” 그는 1993년 단돈 60만원을 밑천으로 (주)도서출판 밀양을 창업한다. 창업할 때 그가 시작한 또 하나의 사업은 바로 심청장학회 사업이다. “제가 필요하면 남도 필요할 거란 생각. 그 생각에서 기부를 실천하게 되었어요. 제가 도움이 절실할 때 장학금을 받았으니 다시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창업을 할 때 장학사업을 함께 시작했어요.” 특유의 근면성실과 꼼꼼한 일처리로 창업 이후 그는 성공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IMF 외환 위기의 어려움은 그에게도 어김없이 닥쳐왔다. 거래처의 부도로 연쇄부도를 맞게 된 것. “외주를 주면서 받은 어음으로 결제를 했는데, 그게 돌아와 2억 6천만 원의 부도를 맞았습니다. 회사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는데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일했죠. 10만 원짜리 일이 들어오면 인건비 1만원을 남기고, 나머지는 은행에 넣고……. 아내와 저 직원 한명. 세 명이서 정말 절실하게 일했어요. 제 사정을 아는 주변 분들이 많이 일을 맡겨주시더라구요. 그때 내가 참 잘 살았구나하는 고마운 생각이 들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비싼 인생 공부를 했구나 싶어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그는 다시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 2013년 지금의 사옥으로 이전했고 밀양 외에 타 지역에서 많은 거래처를 보유하고 있다. ‘당신의 상상을 인쇄해드립니다’는 사훈처럼 고객에게 최고의 만족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인쇄업계의 불문율인 최소 수량이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손해가 따르지만, 그는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당신의 상상을 인쇄해드립니다. 이 사훈처럼 고객이 생각하는 무엇이든 그것을 현실화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고객에 맞춰 디자인도 종이도 인쇄방식도 모두 다르게 하고 있어요. 사실 최소 수량이 없으면 일손이 많이 들고, 때론 손해를 많이 보기도하지만 고객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죠. 손해는 보지만 고마워하는 손님들이 소개를 해주셔서 일이 끊이지 않아요.” 인맥에 기대지 않고, 영업을 하지 않아도 고객들의 소개로 자연스럽게 거래처가 늘어났다. 현재 전국에 500곳이 넘는 거래처를 두고 있고, 20년이 넘게 거래해온 거래처만 200곳이 넘는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그가 작업용 앞치마를 입고 인쇄기계 앞에 선다는 점이다. “저는 하루에 4시간만 자요.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은 더 바쁘게 살아야죠. 저는 일에 삶에 미쳐있는 사람입니다.” 일에 미쳐있는 것만큼 그는 봉사에도 미쳐있다. 창업과 함께 시작한 심청장학회는 20여 년간 약 250여명의 학생들에게 누적장학금 7억 원을 전달했다. 2015년, 경남 4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해 1억 원 기탁을 약정했다. 꾸준하게 밀양시 장학회에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다. “심청장학회에서 장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은 공부가 아니에요. 공부는 잘 못하지만 예의바르고 착한 학생, 꿈이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선정대상입니다. 공부는 못하지만 꿈이 있는 바른 학생은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해요. 장학금이 단순히 경제적인 지원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지지해주고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요. 그게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온 가족이 장기기증을 약속했고, 보호관찰소 사회봉사 감독으로 활동하며 소외되고 어려운 환경 속에 있는 청소년들을 돕고 있다. 그가 요즘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는 바로 미혼모 문제다. “저는 미혼모라는 말이 싫어요. 미혼모를 만드는 것은 남자에요. 미혼모라는 말 자체가 사회적 차별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청소년들이 더 좋은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들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사업들을 추진할 수 있는 법령 개정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느티나무경상남도장애인부모회 밀양시지부에 후원회 총무를 맡아 성인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저는 성인장애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해주는 터전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장애인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자체적으로 교육과 의료·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국가기관 성격의 장애인복지센터를 마련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서 필요한 500억 원의 예산 마련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를 이어 (주)도서출판 백년인쇄를 이끌어갈 차기 인쇄쟁이인 아들 신재우 씨와 함께 기부금을 기탁한 신인규 대표이사 항상 약자 편에 서서 키다리아저씨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신인규 대표이사.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가 건강을 잃지 않는 비결은 걷기다. 술, 담배, 화투, 당구, 골프 등 잡기를 못하는 그는 오로지 걷기로 건강을 유지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평균 15km를 걷는 그는 1년, 365일 동안 약 3650km를 걷는다. 현재 재단법인 한국걷기연맹 산하 ‘워크 아이 경남’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이웃들에게 걷기 운동을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극단 진영에서 중견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랑의 부부합창단(LCC) 합창단원(테너파트)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독실한 카톨릭 신앙인인 그는 천주교 부산교구 밀양본당에서 해설을 담당하고 있다. ‘1%의 가능성으로 100%를 만드는 돈키호테.’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온 사람. 그에게 책을 만드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책을 만드는 일은 징검다리에 돌을 놓는 것과 같아요. 앞서 간 길을 누가 따라온다면 제가 놓은 돌을 밟고 쉽게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제 뒤에 다른 사람이 또 그 사이에 돌을 놓을 테고요. 그러면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길을 따라오리라 생각합니다.” 신인규 대표이사의 길을 잇는 사람은 바로 그의 아들, 신재우 씨다. 어려서부터 인쇄업을 천직으로 알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해온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성장한 아들은 아버지를 닮고자한다. 그래서 사명도 (주)도서출판 밀양에서 (주)도서출판 백년인쇄로 변경할 계획이다. 100년 기업을 만드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인쇄업계의 100년 기업을 만드는 것이 제 소망이에요. 그래야 인쇄 선진국인 일본과 독일을 넘어서 한국의 인쇄기술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뒤를 이어 아들이 더 훌륭하게 해낼 것이라고 믿어요.” “작업복인 앞치마는 자신의 수의”라며 “평생 인쇄공으로 살다, 인쇄공으로 죽고 싶다”는 신인규 대표이사. 그는 언제나 앞치마 차림으로 인쇄기 앞에 설 것이다. 미래를 만들어갈 우리 어린이들이 볼 책을 만들기 위해서, 또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1006]
    • 경제
    2017-02-01
  • 오륙도수제순대, 대한민국 최초의 해물순대, 오륙도 명물을 넘어 대한민국 명물이 되는 그날까지
    부산의 숨은 명소에서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스카이워크의 개장으로 대표 관광지로 급부상한 오륙도. 그러나 남포동 하면 씨앗호떡이 떠오르듯 오륙도 하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나 명물이 있는가? 이에 선뜻 답하기 어렵다면 순대 하나로 오륙도의 명물, 나아가 대한민국의 명물 자리를 당차게 넘보는 오륙도수제순대의 김경구, 김보경 대표의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_배진희 ­­기자, 정주연 ­­기자 ‘오륙도’를 테마로 차별화 모든 메뉴를 직접 조리, 믿을 수 있는 건강식 작년 9월에 개업한 오륙도수제순대는 이미 여러 블로거들과 매체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새벽 두시까지 다음날 쓸 재료를 준비해두지만 그래도 재료가 빨리 소진돼 일찍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만큼 한 번 맛을 본 고객들의 긍정적 반응이 이어져 단골 고객을 확보,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오륙도수제순대는 매장 이름부터 메뉴 개발까지 ‘오륙도’를 타깃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전국 최초로 개발한 해물순대는 이곳을 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맛보는 인기 메뉴다. “오륙도, 바다 하면 대부분 해산물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해산물을 순대에 접목해 나온 음식이 해물순대에요. 해산물은 그 종류가 방대해, 사람들이 그중 적어도 하나는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특별히 싫어하는 사람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 줄 거라고 확신했죠.” 전복, 새우, 대게 등 30여 가지의 해산물이 들어간 해물순대뿐만 아니라 야채순대는 야채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마늘, 당근, 양배추 등을 잘게 손질하여 만들었기에 거부감 없이 즐겨 먹는다. 또한 땡초순대는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이곳은 수제 순대뿐만 아니라 뚝배기탕, 순대곱창전골도 주메뉴다. 뚝배기탕은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사골로 건강한 한 끼 식사가 가능한 메뉴로 모듬수제순대와 고기, 야채, 버섯, 들깨에 사골국물까지 들어가 깊고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또한 세 가지 맛으로 구성돼 있어 입맛에 맞게 선택할 수도 있다. 순대곱창전골은 푸짐한 수제 순대와 당면, 야채들이 가득 들어가 깊은 국물을 낸다. 함께 나가는 편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메뉴들을 손수 만들며 건강한 음식을 지향하고 있다. 대표적인 서민 음식, ‘순대’에 차별화를 꾀하다 인터뷰 내내 열정적으로 ‘순대’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김경구 대표. 그는 어떤 계기로 많고 많은 메뉴 중 순대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김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 공기업에 다니며 억대 연봉을 받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었다. “회사 생활을 해보니 종속적인 일보다 능동적인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템을 찾던 중 순대의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순대는 지역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즐기는 대중적인 음식이다. 김 대표는 순대가 대중적인 음식이라는 베이스 위에 서민 음식, 옛날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점에 착안, 이를 2차, 3차로 개발해 대중적이지만 차별화된 다양한 메뉴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음식이라 확신했다. 기존 방식 탈피, 시행착오를 거쳐 경쟁력 확보 기획부터 홍보까지 직접 발로 뛰다 그와 배우자 김보경 공동대표는 3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전국에 유명하다는 순대집과 맛집을 찾아 맛보고, 순대로 유명한 곳에서 직접 일을 배우며 사업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순대 집을 돌며 느낀 것은 아주 고전적인 방식을 고수한다는 점이었어요.” 순대하면 고기의 비린 맛 때문에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 대표는 이 비린 맛을 잡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며, 이를 위해 창을 밀가루와 소금 등으로 계속해서 세척하여 잡내를 최대한 없애려고 노력했다. 또한, 순대에 열을 가하면 속 재료는 팽창하고, 창은 수축하려고 해 터지기 쉽다. 이 때문에 온도조절이 중요한데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번거롭지만 반복해서 냉기와 열을 가해 전골에 순대를 넣고 끓여도 쉽게 터지지 않는 그들만의 방법을 고안해냈다. “오픈하기 몇 개월 전부터는 다양한 방식으로 순대만 뽑아 가장 기본이 되는 ‘순대의 맛’을 견고히 하기 위해 신경 썼어요.” 이들은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고, 재료도 직접 공수, 혹은 거래처를 확보해 유통비를 절감하고 있다. 유동인구가 적은 곳에 매장을 오픈했기에 그 입지 조건을 고려, 홍보를 위해 직접 인형 탈을 제작해 전단지를 돌리는 등 하나부터 열까지 두 대표가 직접 발로 뛰며 일구어왔다. 서로가 최고의 사업 파트너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드려는 김경구 대표를 보고 불안하지는 않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보경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둘이 워낙에 맛집을 많이 다녔어요. 다니면서도 맛을 보고 감동만 하다 오는 게 아니라 그곳만의 차별화된 아이템이나 포인트가 어디에 있는지 눈여겨봤었죠. 그리고 남편은 경영, 기획, 마케팅에 소질이 있고, 저는 요리분야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둘이라면 뭘 하든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라고 답했다. 이들은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 생각들을 서로 공유하며 사업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얼마 전 오륙도수제순대에 외국인들이 다녀가 음식을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입맛에도 손색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는 김 대표. 그래서 그는 더욱 그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산 호떡을 예로 들면 단순한 호떡에 씨앗을 첨가해 씨앗호떡으로 명물이 되었듯, 순대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순대를 다양하게 개발해 옛날 음식, 서민 음식이라는 일반적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후에는 이를 위한 연구소를 설립하는 것도 목표입니다.” 창원에 2호점 개업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매장을 늘려나갈 계획을 가진 두 대표는 현재도 우리나라에 없는 계절별 수제 순대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구상 중이다. “‘오륙도’하면 오륙도수제순대, 후에는 ‘부산’하면, 나아가 ‘대한민국’ 하면 오륙도수제순대가 떠오를 수 있도록 브랜드화하여 우리나라 대표 음식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1006]
    • 맛집탐방
    2017-02-01
  • 도심 속, 푸르른 정원이 펼쳐진 힐링카페 “좋은 것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죠!”
    김해 가야의 길에 위치한 SS커피는 스토리가 있는 공간이다. 보기 드물게 도심 속 푸르른 나무들로 꾸며진 정원이 있는 이곳은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고 있다. _박미희 기자 따뜻한 감성과 문화가 흐르는 공간, SS커피는 요즘 김해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그 이유는 뛰어난 커피의 맛도 맛이겠지만, 무엇보다 도심 속에 푸른 정원을 품은 카페이기 때문이다. 금싸라기 같은 비싼 땅에 건물을 올려도 부족하겠건만, 정원을 만들다니……. 조금은 남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이 아닐까하는 기대만큼이나 취재진이 만난 김병욱 대표는 역시나 열린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 원래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했던 그는 퇴직 이후에 새로운 관심사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조경. 원래 조경에 ‘조’자로 모르던 그가 조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이곳에 정원을 만들면서부터다. 지금의 푸르른 모습과 달리 원래 이곳은 물웅덩이가 있는 빈땅이었다. 궂은 날이면 웅덩이에서 자란 해충들로 인근 주민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던 것을 그가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꾸기로 결심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인근 주민들도 이 땅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죠. 저는 오히려 이곳을 삭막한 도심에 숨통을 틔어주는 힐링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수많은 반대와 어려움을 딛고 이곳에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조경에 ‘조’자도 모르던 사람이 정원을 가꾸다니 나중엔 다들 놀라더군요(웃음). 그때 저는 ‘누구나 열정을 가지면, 비전문가도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힘들게 만들었지만 정원이 내 것이라는 생각은 없어요. 좋은 건 많은 사람들이 같이 보면 더 좋으니까요. 그렇게 정원을 만들고,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 정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카페를 만들었다는 말이 맞지요.” 이곳은 브랜딩부터 남다른데, SS커피란 이름은 파사석탑과 관련된 석선(돌:石 배:船)의 약자에서 따왔단다. 가야의 길에 위치한 만큼 김해의 역사를 알리고 싶어 하는 그의 생각이 담겼다. ‘가장 상업적이지 않는 것이, 가장 상업적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카페 운영에서도 알 수 있다. 커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운영하는 이곳은 좋은 커피로 입소문이 났다. 최고급 원두를 사용해 정성껏 내린 커피, 그 가치에 맞게 담는 잔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썼다. 개인 업장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도예가의 도자기 잔을 사용하고 있는 것. ‘손님들에게 커피 한잔을 내놓아도 최선을 다해 내놓겠다’는 신념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신선한 제철 과일을 듬뿍 올려 건강한 재료로 만든 타르트도 이곳의 인기 메뉴다. 값싼 통조림 과일을 쓸 수도 화학첨가제를 써서 쉽게 만들 수도 있지만, 변함없이 ‘좋은 재료를 쓴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때론 너무 코스트가 높아서 ‘그렇게 해서 남느냐’는 퉁을 듣기도해요. 한편으론 그 말도 일리는 있죠. 하지만 저는 사람이 느끼는 건 다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눈 앞에 보이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순 없겠지만, 분명 좋은 재료를 써서 정성껏 만든 커피와 디저트를 알아보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힘들더라도 이 원칙을 지켜가려고 합니다.” 푸르른 정원 속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커피 한잔. 그 시간이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이 정원은 저만의 것이 아니에요. 좋은 것은 많은 사람들하고 나눌수록 좋지요. 휴식이 필요한 분들이 찾아오셔서 이 공간을 즐기고, 좋은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더 상대방을 배려하고, 다름을 이해한다면 더 좋은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심 속 활력이 되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들의 진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1006]
    • 맛집탐방
    2017-02-01
  • 편안함과 진정성으로 고객에게 다가가는 수제화 브랜드 ‘Longtemps’ - “내가 신고 싶은 신발을 디자인합니다”
    과거 6,70년대 대구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수제화. 하지만 장기적인 경기 침제와 대량생산 체제를 바탕으로 한 저가 제품 공세에 맞닥뜨리면서 과거의 위상이 눈에 띄게 현저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최근 패션에 예민하고 개성강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수제화가 다시금 뜨고 있다. 유행을 타지 않고 품격있는 디자인과 발에 맞는 편안함이 수제화의 강점. 숙련된 솜씨를 가진 장인의 정성을 담은 수제화 브랜드가 대구에 생겼다고 해서 찾아가보았다. 고객과의 신뢰와 소통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는 ‘롱템스’의 김정호 대표를 주간인물에서 만나보았다. _김정은 기자 고객과 함께 소통하는 브랜드 대한민국 구두 장인의 손길로 태어난 ‘롱템스’ 거대 브랜드들이 국내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개인이 구두 브랜드를 만들고 수제화를 판매 한다는건 쉽지 않은 도전이다. ‘롱템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 “아직까지 클래식 구두나 수제화에 대한 허들이 높은게 현실입니다. 문턱을 낮춰 좋은 품질의 구두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여 많은 사람들이 수제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패션 아이템을 판매한다는 개념이 아닌 고객과 함께 소통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거 김 대표 역시 대형브랜드 수제화 매장을 운영해왔었다. 하지만 고객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부분이 가장 안타깝고 불편했다고. “이윤창출에만 목적을 두면 소재에서부터 차이가 납니다. 그것이 곧 제품의 내구성을 낮추는 행위가 되고 소비자와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죠.” 천천히 가더라도 신뢰와 진정성 있는 브랜드로 고객에게 다가가겠다는 김정호 대표. 그의 경영철학은 곧 좋은 수제화 제작을 향한 열정과 깊은 애정으로 표현되었다. “국내의 유명한 공방을 찾아다니며 해외 못지않게 뛰어난 장인들의 솜씨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롱템스’가 가진 색과 디자인을 구현할 장인을 모시는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웃음).” 기본적인 것에 집중하되 라인과 작은 디테일에 중점을 둔 ‘롱템스’. 그의 까다로운 요구를 들어주는 장인을 만나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완벽한 파트너가 되었다. 감각적인 디자인과 장인의 섬세하고 꼼꼼한 손길의 과정을 거쳐 ‘롱템스’만의 품격 높은 수제화가 태어난 것이다. 고객의 취향에 맞춘 커스텀 수제화 토탈 가죽케어 시스템 ‘롱템스’의 ‘슈케어’ 김 대표는 맞춤 구두를 제작할 때 정확한 발 사이즈를 측정하는 것만큼이나 고객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고객이 원하는 방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해야 만족도 높은 구두를 맞춰 드릴 수 있습니다. 처음 수제화를 접하는 고객에겐 충분한 설명과 가이드를 제시해서 광범위한 선택의 폭을 좁혀 드리고 있습니다.” 자체 디자인도 다양하지만 모든 제품은 본인의 취향에 맞게 가죽, 밑창, 굽 높이 등을 선택할 수 있다. 고객의 발모양과 크기를 체크한 후 라스트(신발 틀)에 맞춰 제작에 들어가기 때문에 기성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편안함에 한번 신어보면 90%이상 재구매하는 단골이 된다. 제작 기간은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로 매장에서 찾거나 택배로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수제화는 처음 신었을 때 보다 신으면 신을수록 빛을 발하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설명하는 김 대표. ‘롱템스’의 수제화는 1년간 A/S를 책임질뿐 아니라 ‘슈케어’ 서비스를 도입해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다. “수제화는 관리만 잘하면 수명이 없어요. 하지만 미흡한 관리와 잘못된 손질방법으로 안타까운 사례를 많이 접했습니다. 국내에도 전문성을 갖춘 ‘슈케어’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대구지역에서는 소홀히 여기는 여건입니다.” ‘롱템스’의 ‘슈케어’ 서비스는 단순히 구두를 닦는다는 의미에서 벗어난다. 가죽의 품질과 색상을 고려한 적합한 클리너 및 영양크림, 그 외에 다양한 가죽 전용 제품을 사용하며 각종 오염 및 미세한 상처를 제거하여, 가죽 본연의 질감 및 색상을 최대한 살려주고 복원시켜주는 ‘토탈 가죽케어 시스템’이다. “내가 신고 싶은 신발을 디자인한다”는 김정호 대표. 젊은층을 타깃으로 시작했지만 고집스러운 그의 고객 사랑과 수제화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이제는 중장년층에서 여성들까지 애용하는 구두가 되었다. 앞으로도 고객들과 함께 인생을 걸어갈 구두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하는 김 대표.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멋진 인물이었다. www.longtemps.co.kr, 070-8877-9289 www.facebook.com/Longtemps119 [1006]
    • 경제
    2017-02-01
  • 가발도 이제 하나의 패션 트렌드! 다양한 스타일 연출로 세대를 아우르는 맞춤가발 브랜드 누리모
    중년 남성만의 고민이라 생각했던 탈모. 그러나 요즘은 청장년층에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여성들에게까지, 성별과 연령에 상관없이 탈모가 찾아온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마저 감추고 싶은 비밀인 탈모는 유전, 환경, 스트레스 등 다양한 원인들에 기인하는 만큼 최근 치료약, 두피마사지, 모발이식 등 그 예방과 치료방법 역시 다각도로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방법도 아직까지 눈에 띄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찾는 방법이 가발이다. 가장 즉각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어 가장 만족도가 높지만 여전히 가발에 대한 인식은 구시대에 머물러있다. 또한 100만원이 훌쩍 넘는 비용 역시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오늘 주간인물은 다양한 세대의 니즈를 반영하면서 가격 부담은 낮춘, 가발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갈 ‘누리모’의 최우영 원장을 만나보았다. _박지영 기자 다년간 미용 노하우와 대형 브랜드에서의 경력을 겸비 만족은 높게, 부담은 적게 맞춤가발 ‘누리모’ 오랫동안 미용실을 운영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미용을 전공했던 최우영 원장은 미용사로 활동하다 국내 최대 가발브랜드 H사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저 역시 탈모가 있어요. 일반 미용사일 때도 두피관리에 관심이 많았죠. 그러나 생각보다 효과가 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가발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다년간 미용경험을 바탕으로 개개인에 맞는 가발 스타일을 연출해주는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며 국내 최대 가발브랜드의 지점장 자리까지 해낸 그는 탄탄한 경험과 경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발브랜드 ‘누리모’를 런칭했다. “요즘 탈모는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찾아와요.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가발이 필요해졌죠. 그런데 가발이 생각보다 가격대가 높아요. 보통 150~160만 원대가 기본이죠.” 학생부터 사회초년생, 중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확대된 탈모로 가발의 소비층 역시 확대되었지만, 부담스러운 가격은 구매를 주저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대형 브랜드와 비슷한 품질에 가격은 대폭 절감한 중저가 브랜드를 선보인 것. 탈부착식, 고정식 등 다양한 방식은 물론 미용경험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티 나지 않는 가발’을 추구하는 최우영 원장은 개개인의 두피상태를 체크, 두상과 탈모상태에 따른 맞춤가발을 만들고 있다. “탈모로 고민하시는 분들이 가장 마지막에 찾는 것이 가발이에요. 오랜 고민 끝에 찾아오는 그분들에게 부담 없는 가격으로 좋은 가발을 선물해드리고 싶어요.” 가발도 이제 패션 트렌드 다양한 스타일 연출로 가발의 다양성 선보여 트렌드를 반영한 젊은 가발 브랜드로 성장할 것 중저가 가발을 추구하는 가발브랜드 누리모는 ‘스타일을 누리다’란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히 저렴하고 좋은 가발을 넘어 스타일을 가미한 트렌디한 가발을 추구하는 것. “탈모 연령층의 확대는 결국 젊은 감각의 가발이 필요해졌음을 의미하죠. 단순히 탈모를 감추는 역할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는 가발이 필요합니다.” 여성의 경우 긴 모발을 바탕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지만 짧은 모발의 남성의 경우 가발이 표현할 수 있는 스타일 영역이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최우영 원장은 오랜 경험과 경력을 통해 최근 유행하는 투블럭, 포마드, 베이비펌 등 가발 스타일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가발도 이제는 하나의 패션 트렌드에요. 그저 탈모를 가리는 것을 넘어 유행하는 스타일을 표현하고 개인의 성향과 개성을 표현하는 아이템이 될 수 있죠.” 최근 늘어난 30대 탈모층의 증가로 헤어 트렌드 분석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최우영 원장. “탈모 범위에 따라 제한이 있긴 하나 가발로 커버할 수 없는 것이 이젠 거의 없는 편이에요. 최대한 원하는 스타일을 연출하는데 더욱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제 1년을 넘긴 누리모지만 그 안에 담긴 노하우는 10년이 훌쩍 넘는다. 그의 손을 거친 가발들만 보아도 가발의 변화가 어디까지 왔는가 알 수 있을 정도.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최우영 원장. “가발의 인식이 아직까지도 구시대에 머물러 있어요. 여전히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만 한다고 생각하죠. 가발의 올드한 스타일도 한 몫 하죠. 그러나 가발 역시 많은 발전을 거듭하며 티 나지 않고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어요. 그러니 탈모 고민을 가진 분들이 어려워 않고 쉽게 발걸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구미를 시작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보유한 중저가 브랜드로 거듭날 것이란 누리모. 많은 탈모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브랜드로 거듭나길. 홈페이지 주소_ http://www.nulimo.co.kr 블로그 주소_ http://blog.naver.com/nulimo [1006]
    • 경제
    2017-02-01
  • 달라이라마 단독 친견으로 ‘화제’ 마음 속에 그린 일이 이뤄지는 곳, 신비의 기도도량 무명사
    심상치 않은 시국과 어려운 경제난으로 서민들의 삶은 어느 때보다 어렵다. 풍진 세상, 깊은 번뇌를 달래주는 도심 속 사찰, 무명사는 신비의 기도도량이다. 무명 스님의 원력으로 신비한 경험을 한 이들이 늘면서 무명사는 신비의 기도도량으로 명성을 얻었다. 최근 이뤄진 달라이라마와의 단독 친견으로 무명사는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섰다. _박미희 기자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고난의 땅에서 비폭력과 친생명의 메시지를 전한 위대한 인물, 달라이라마. 그와 무명 스님의 단독친견이 이뤄졌다. 낯선 땅에서 온 귀한 인연, 하지만 달라이라마는 그를 마치 오랜 벗을 대하듯 살갑게 대했다. 연신 ‘코레아~’를 외치며 머리를 부비고 얼싸안는 달라이라마. 그런 그와 무명 스님 사이에는 아무 말이 필요 없는 듯, 반가움의 눈빛과 환한 웃음만 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우정을 나누는 것 같았다. 둘 사이에는 잔잔한 평화의 기운이 가득했다. 이렇듯 깊은 영혼의 울림을 나눈 두 사람, 무명 스님은 달라이라마와의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저와 달라이라마 존자님 사이에는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깊은 영적인 교감만이 가득했지요. 낯선 땅에서 온 저를 마치 오래 사귄 벗을 대하듯 살갑게 대해 주었습니다. 존자님을 친견하기 전, 주변에선 저에게 질문을 준비하라고 하더군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물음이 있었는데, ‘왜 나는 한 생각을 하기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은가?’ 하는 것이었죠. 결국 그 질문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왜 나는 한 생각을 하기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은가?’ 그 본질적인 물음은 예기치 않았던 달라이라마와의 친견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원래 무명 스님에게 단체 친견 제의가 들어왔었다. 하지만 형식적인 만남이 못내 내키지 않았던 스님은 이를 거절하고, 며칠 후 한국에 들어온 티베트 스님들과 우연히 조우한다. 사연을 들은 티베트 스님들도 ‘달라이라마의 단독 친견은 어려운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 만남은 또 다른 인연의 징검다리가 되어 결국 달라이라마와의 단독 친견으로 이어졌다. 세계적인 지도자들도 만남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던 달라이라마와의 극적인 만남은 한편의 드라마처럼 이렇게 이뤄졌다. 이런 달라이라마와의 영적교감을 말해주듯 무명 스님이 걸어온 길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목 부러진 돌부처와의 인연 ‘스님 어떻게 출가를 결심하게 되셨나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무명 스님의 눈빛은 깊어졌다. 풍진 세상, 출가를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과 번뇌가 있었을까…….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기자의 상념을 깨우듯, 스님의 청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사 번뇌에 빠져 고통 받는 중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속세에서 부와 명예를 위해 일생을 바치는 일이 덧없게 느껴졌죠. 그런 세상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스님은 홀연히 속세를 떠나, 불가와 인연을 맺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원력 높은 큰스님들과 마주했고, 그때마다 ‘오늘부터 내 상좌 하라’며 무명 스님을 붙잡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무명 스님은 정중히 거절하며 은사스님을 찾아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났다. 그렇게 수년, 은사스님을 찾아 떠돌던 무명 스님은 우연히 금정산에 자리한 작은 사찰과 인연이 닿게 됐다. “여러 법 높으신 큰스님들의 상좌 제의를 거절하고, 무슨 인연인지 금정산에 자리한 작은 사찰의 노스님을 은사스님으로 맞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 어느 날, 목이 부러진 돌부처를 친견하고 이를 수습하여 부처님을 모시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사찰에 모셔진 부처님의 목이 부러졌다는 겁니다. 그때부터 목이 부러진 돌부처와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목이 부러진 돌부처와의 연으로 스님은 신비로운 영적인 경험을 계속하게 된다. 스님의 이런 영험한 원력이 알려지자 사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금정산 자락에 작은 움막을 짓게 되어 기도에 정진한다. 이후에도 움막이 철거 됐다 다시 지어지는 일이 수없이 반복됐다. 비바람을 피하기도 어려운 작은 움막 속에서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 날들의 연속. 그 고난 속에서도 스님은 묵묵히 수행을 이어나갔다. “그때 저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먹었어요. 맨밥에 눈물을 쏟아 후루룩 삼키곤 했죠. 얼어터진 손으로 목탁을 칠 때도 나는 복된 사람이라 생각했지요. 끼니를 잇기 어려운 날들, 반복되는 고난 속에서 세상의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진실한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 둘 움막을 찾아와 함께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그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 하나의 길이 되었지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져 하나의 길이 만들어졌다. 무명 스님의 영험한 원력은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어 비바람을 막기 위해 비닐법당을 세웠으며, 비닐법당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무명 스님은 사찰명을 고심하게 되었다고. “사찰명을 고심하던 중 ‘없을 無, 이름 名, 무명사라 하라’는 계시를 받고 무명사라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후 무명사는 부처님과 무명 스님의 가피력으로 이름이 났고, 이를 시기한 이들이 불상을 엎는 만행을 일삼았다. 또한 마지막 철거를 당하는 날 신도들은 위기에 놓이자 많은 신도들이 깊은 근심에 쌓였다. “그때 저는 ‘신도들에게 슬픔의 눈물이라면 당장 그치고 기쁨의 눈물이라면 실컷 울어라. 더 이상 무명사는 부서지지 않는다’라고 했고, 그 이후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죠. 그렇게 운명처럼 인연이 닿아 지금의 무명사가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라,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 없다 신비의 기도도량, 무명사 도심 속 사찰, 무명사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불자들로 발 딛을 틈이 없다. 부처님과 무명 스님의 가피력에 많은 불자들이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때마다 무명 스님은 “무명사에 와서 소원성취를 이루면 모두 이 산승의 법력과 도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는 모두 때가 되어 이뤄진 것일 뿐”이라며 겸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불치병의 환자가 씻은 듯이 병이 낫고, 시한부 인생을 살던 말기 암 환자가 암을 극복하는가 하면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있던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고, 깊은 시름에 우울증을 앓던 이가 마음의 병이 나았다는 곳. 무명사는 이렇듯 기도성취를 이룬 수많은 불자들의 입을 통해서 무명 스님의 법력과 신비한 원력으로 널리 이름이 났다. 무명 스님의 신비한 원력은 익히 고승들로부터 예견한 바이다. “나는 도를 모른다. 세상에 도가 어디에 있느냐? 세상만사, 도 아닌 것이 없지. 모든 것이 도이다. 무명사에서 기도성취를 이룬 불자들은 그 덕을 제게 돌리지만, 다만 때가 되어 이뤄진 것뿐입니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는 듯, 날카로운 통찰력과 무심히 던지는 스님의 소탈한 말과 행동은 많은 불자들의 마음을 맑게 일깨운다. 찰나의 맑은 생각을 담아 법문하는 무명 스님. “바른 귀가 있어 잘 들으면 곧 그것이 법문이라 생각한다”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무명 스님의 법문은 세상사 번뇌에 힘들어하는 많은 불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풍진 세상, 심상치 않은 시국에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웃으세요. 웃다가 이뤄지는 일이 많습니다. 상대방을 보며 웃어주는 것이 곧 보시를 하는 일이요, 덕을 쌓는 일입니다.” 웃음 보시를 강조하는 무명 스님. 그 말씀 속에는 스스로의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작은 것부터 생활에서 실천해나가라는 큰 가르침이 있다. 신비의 기도도량 무명사.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세상사 번뇌에 빠진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오늘도 무명사의 등불은 밝게 빛날 것이다. [1006]
    • 라이프
    2017-02-01
  • 커피를 진정 즐기는 이들의 공간 ‘커피 브로’ 스페셜티 커피에 담아내는 따뜻한 나눔과 사랑
    2000년이 접어들며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커피 프랜차이즈점이 퍼져가고 있을 무렵, 믹스커피나 캔커피로만 커피를 즐기던 많은 이들에게 에스프레소는 신선한 경험이었으리라. 커피 브로의 권성용 대표가 처음 맛본 에스프레소 한 잔은 깊은 풍미에 복잡 다양한 감정들이 함께 어우러져 신선한 충격 그 이상이었다고. 몇 년 뒤, 본격적으로 커피 세계에 빠졌다는 그는 바리스타 자격증에서부터 커피감별사 '큐그레이더(Q-Grader)'에 이르기까지 그만의 커피 향과 맛을 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스페셜티 커피 한 잔에 추억과 정(情) 그리고 나눔을 녹아내는 그의 커피 이야기를 주간인물이 담아보았다. _정주연 기자 연일 화려한 인테리어의 커피숍들이 SNS를 가득 메우고 있지만 각양각색의 커피 맛에 있어서는 호불호가 나뉘기 마련. 다양한 원두만큼이나 로스팅과 블렌딩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인지라 일반인들에게 커피는 가장 무난한 맛이 가장 맛있는 커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커피 브로의 권성용 대표는 커피를 처음 공부할 때부터 그만의 색을 내기 위해 국내 바리스타 자격증은 물론 유럽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모두 마스터하고 로스팅 관련 공부도 이어갔다. “처음엔 단순히 커피를 직접 만들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자연스레 로스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커피공부를 하면 할수록 많은 분들과 다양한 커피를 공유하며 함께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커피의 품질, 맛, 특성 등을 감별해 생두나 블렌딩, 로스팅 등의 품질을 파악하는 ‘커핑(Cupping)’. 권 대표는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A) 공인 커피감별사 '큐그레이더(Q-Grader)'공부까지 마치고 스페셜티 커피로 가장 그 다운 커피 맛을 선보이기 위해 커피 브로를 오픈했다. 스페셜티 커피 전문 커피 브로 다양한 커피 선보여 커피 문화 만들고파 커피 브로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있는데, 쉽게 연상할 수 있는 ‘Brother’와 바리스타(Barista)와 로스터(Roster)가 함께한다는 의미이다. “동생 역시 커피에 관심이 많아 현재 커피 브로에서 함께 일하고 있어요. 저는 로스터로서 동생은 바리스타로서 함께 커피 브로만의 색을 입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근 대구만 하더라도 스페셜티 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로스터리 카페가 많지만 경산에는 아직까지 커피 브로가 유일하다고. 커피 브로의 커피는 깊고 은은한 향도 일품이지만 특유의 산미가 느껴진다. 이로 인해 손님들과 가벼운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대중적인 커피에서는 맛볼 수 없는 산미가 느껴지자 커피가 상한 것 아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으셨어요. 처음에는 바꿔달라고 하시는 분도 계셨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 맛을 즐기기 위해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스페셜티 커피야말로 커피 브로의 색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권 대표는 앞으로도 다양한 스페셜티 커피를 선보여 많은 분들이 커피를 진정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커피 브로 역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그는 지역의 대표 스페셜티 커피전문점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커피 품질 관리에서부터 로스팅, 매장관리까지 전문 커피품질관리사 양성에 힘쓰고파 2016년 커피품평협회에서 만들어진 커피품질관리사 자격증. 권성용 대표는 커피 브로에서 커피와 관련된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커피품질관리사 자격증을 위한 수업도 함께 하고 있다. “커피의 품질을 관리할 수 있는 커핑이 선행되어야 커피 본연의 맛을 찾아내 최적의 맛을 낼 수 있어요. 커피품질관리사는 원산지별 커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커피 생산과 가공, 유통을 익혀 좋은 커피를 선별하는 능력을 길러, 고객의 기호에 맞는 커피 로스팅을 통해 최종적으로 고객에게 맛있는 커피로 감동을 선사할 수 있기를 목적으로 합니다.” 다양한 고객의 기호와 요구 사항에 대응하기 위해 커피의 시작과 끝을 아우르는 전문매장관리자는 다변하는 커피시장에서 필수불가결한 요건인 셈. 전문 커피품질관리사 양성을 통해 서울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많은 커피 전문가들과 함께 지역의 커피 문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권 대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원두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로스팅이나 블렌딩하는 방법에 따라 수만 가지의 맛을 낼 수 있는 커피. 또한 커피를 내는 이의 열정과 따뜻한 마음까지 함께한다면 그 커피는 진정한 의미의 스폐셜티 커피로 거듭난다. 커피 브로가 오픈하고 매년 수능일이면 인근 고등학교에서 무료 나눔 커피 행사를 한다는 권 대표. 뿐만 아니라 벌써 5년째 꾸준히 초록우산재단을 통해 기부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커피 한 잔에 특별한 맛과 향을 넘어 따뜻한 마음까지 담아내고 있었다. 커피를 통해 많은 이들이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권 대표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주간인물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1006]
    • 맛집탐방
    2017-02-01
  • 주민들의 삶을 살피는 ‘진심’, 우수한 의정활동으로 이어져!
    2017년 정유년의 시작, 한해를 가득채운 우수한 의정활동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의성군내 최다득표로 재선에 성공하고, 2016년 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한 김영수 부의장이 그 사람이다. 이에 주간인물은 발로 뛰는 의정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김영수 부의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주요 의정활동과 지역의 주요현안을 담았다. _박미희 기자 Q. 그간 발로 뛰는 의정활동으로 많은 관심을 받으셨습니다. 다양한 의정활동 중에 의원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A. 의정활동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법의 맹점이나 미비점 때문에 제대로 권리행사를 못하는 주민들을 만날 때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주민들을 만나며 민원을 직접 듣고 챙기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조례제정, 예산심의, 행정사무감사 등 지방의원으로서 많은 활동이 있지만 그중에서 주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챙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욕구와 불편함이 무엇인지 알아보며 삶의 면면을 챙기고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주민들의 삶이 개선되고, 지역이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발로 뛰는 의정활동을 펼쳐나가겠습니다. Q. 의원님은 최다득표로 재선에 성공하셨고, 2016년 의정봉사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그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소회와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A. 저를 지지해주신 주민들 여러분들에게 우선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제가 이렇게 과분한 상을 수상한 것은 저에게 믿음을 가지고 많은 의견을 개진해주신 주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부족하니까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더 열심히 발로 뛰는 의정활동을 펼치라는 뜻으로 알고,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Q.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지역구 현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A. 지역구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상수도 문제입니다. 저의 지역구 지하수는 석회질과 철분의 함량이 너무 많아서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합니다. 먹는 물은 주민들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고,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은 주민들의 권리이기에 중요성이 큽니다. 제 공약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공약이 바로 이 상수도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임기동안 노력한 결과 일부 지역은 문제를 해결하였지만, 아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지역도 하루라도 빨리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노력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Q. 36년 공직생활을 통틀어 의원님의 삶의 지침이 되었던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A. 제 좌우명은 ‘힘들지만 정직하게 하자’, ‘잘못하면 즉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자’입니다. 공직생활과 의원직을 수행하면서 소신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해서 안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은 어렵더라도 꼭 하는 사람이 되자’는 삶의 지침을 지켜왔습니다. 앞으로도 저를 지지해주신 많은 주민들의 기대와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의정활동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2017년 새해, 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저물고 2017년 정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를 돌이켜 보면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인 혼란기에 민생은 어렵고, 대한민국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내가 잘못했을 때 안타까운 마음으로 토닥여 주고, 힘들 때 위로와 용기를 주신 믿음직한 주민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지역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바쁘고 힘들수록 원칙을 지키고 서로 믿고 도우며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때, 또 한분 한분이 가정과 직장과 일터에서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가정이 바로서고 지역이 발전하며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지역발전과 주민을 위한 의정활동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김영수 부의장님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군단위에서는 상대적으로 교육혜택을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잠시였지만 학교 행정실장(6년 6개월)으로 근무하면서 열악한 교육환경이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교육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과 머리를 맞대어 지역의 우수한 인재들을 키워낼수 있는 좋은 환경과 토대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웅군인 의성군을 이끌어나갈 동량을 키워내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주요 경력 의성군 금성면, 춘산면사무소 근무 안동시 대신동사무소 근무 의성군청 근무 의성군 탑리여자중학교 행정실장 한국자유총연맹 의성군지부 운영위원 명예통역(일어)관광 안내원 생활체육 경북 탁구연합회 부회장 제6대 의성군의회 후반기 산업건설위원장 국민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등급판정위원(현) 금성중학교 총동창회장(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현) 제7대 의성군의회 후반기 부의장(현) 의성교육지원청 학교 체육협의체 위원장(현) 의성교육지원청 학교 행정협의체 위원(현) [1006]
    • 정치
    2017-02-01
  • ‘맛’, ‘서비스’, ‘분위기’ 삼박자를 골고루 갖춘 곳 - 기분 좋은 레스토랑, OVER30
    사람의 기분을 가장 쉽게 좋게 하는 방법은 뭘까? 바로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 가성비 좋은 레스토랑으로 입소문난 OVER30는 행복한 외식공간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그곳에서 열정적인 젊은 외식 경영인, 정재식 대표를 만났다. _박미희 기자 OVER30는 울산 동구 일산지해수욕장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보기 드물게 ‘맛’, ‘서비스’, ‘분위기’, 삼박자를 골고루 갖춘 레스토랑으로 사랑받아온 것. 최근 창원 가로수길에 2호점을 열면서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기분 좋은 레스토랑’으로 기억되는 OVER30. 이곳의 주인인 정재식 대표는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이다. 다년간 외식업에 몸담아온 그가 갖는 외식업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제가 이 일을 참 좋아해요. 정확하게 말하면 일만큼이나 사람을 더 좋아하죠(웃음). 어린 나이에 외식업에 입문한 이후로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았어요. 물론 더 좋은 조건의 일도 많았지만 서른이 돼서 이 일을 다시 택한 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저도 어려서부터 일을 했기에 외식업의 열악한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래서 저와 함께 일하는 친구들은 서른이 되면 다 사장님이 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이런 의미로 이름을 OVER30라 짓게 되었습니다.” 이름에 깃든 애정만큼이나 이곳은 남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다. 블루, 화이트, 골드를 메인컬러로 한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거기에 고급스러운 식기와 기품 있는 소품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무엇보다 이곳의 특별하게 하는 것은 역시 맛이다. 통통한 새우, 마늘과 올리브오일의 조화가 조화로운 ‘감바스 알 아히효’, 직접 만든 라비올리에 트러플 오일로 향을 더한 ‘트러플 오일 라비올리’, 드라에이징한 국내산 육우 채끝 등심을 써서 진한 풍미를 잘 살린 ‘30′s 뉴욕 스트립 스테이크’ 등이 인기메뉴다. 그리고 바텐더로 경험을 잘 살려 만든 샹그리아 피쳐 라인도 SNS상에 화제가 되고 있다. 와인은 비싸다는 편견을 깨고 1000ml에 1만원이라는 착한 가격과 좋은 맛으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다른 곳은 절대 따라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손님들을 대하는 사장님의 마음가짐이다. “경영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소비자 감성이에요. 내가 손님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맛과 서비스, 그리고 분위기를 구성하려고 애써요. 계산할 때 지불한 식비가 전혀 아깝지 않고, 정말 기분 좋게 대접받았다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이런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것은 그의 아내. 업장에서 손님들을 맞는 그녀와 스텝들의 표정이 밝은 것도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은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다녀간 손님들의 입소문으로 유명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부족한게 많다”며 “앞으로 더 새로운 메뉴와 좋은 서비스로 다가가겠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자신의 일에 남다른 애정을 지닌 그가 만들어갈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OVER30처럼, 이젠 OVER40을 준비하고 있어요(웃음). 마흔까지는 일선에서 일을 하고, 그 후에는 저와 함께 일한 친구들이 이 자리를 대신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앞으로 젊은 청년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웃음).” 진심으로 진심을 구하는 사람, 정재식 대표가 만들어갈 내일이 기대된다. [1006]
    • 맛집탐방
    2017-02-01
  • 시리얼마니아들의 성지-전국최다 총 52가지 시리얼 보유!
    최근 가장 사랑받는 핫플레이스 중 한 곳인 서면 전포카페거리에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색카페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맛있다는 시리얼은 모조리 모아놓았다는 곳! 집에서만, 혹은 아침에만 시리얼을 먹으라는 법은 없다. 약 50 여가지의 시리얼을 제공하며 손님들의 눈과 입을 만족시켜주는 언더더씨(UNDER THE C)라는 작지만, 감각적인 시리얼 카페를 직접 찾아가보았다. _구아리 기자 예쁜 공간에서, 예쁜 음식을 먹는 행복 가오픈기간부터 핫플레이스로 등극 간판에 콘푸로스트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외관 유리창문에 걸려있는 인어공주 네온사인이 눈길을 사로잡는 언더더씨에 들어서자, 시리얼카페답게 안쪽벽면을 가득채운 알록달록한 여러종류의 시리얼 디스펜서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화이트톤 배경에 각종 시리얼 패키지들이 인테리어 효과를 더해주고, 카운터 옆에는 다양한 종류의 음료와 토핑이 진열되어 있다. 총 52가지 종류의 시리얼을 제공하는 언더더씨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시리얼을 제공하는 곳이다. 가오픈기간임에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언더더씨. “운이 좋게도 오픈 전부터 관심을 받게 되어 얼떨떨했어요. SNS매체에서 찾아와 오픈 날 에 맞춰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 덕분인지 예상보다 많은 손님들이 방문해주셔서 조금 당황하기도 했고요.(웃음)” 언더더씨를 운영하고 있는 채지혜, 이용배 대표는 지인의 추천으로 시리얼카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약 한달 전 서면 전포카페 거리에 언더더씨를 오픈했다. 언더더씨라는 콘셉트에 맞게 인어공주 인형을 비롯한 각종 인테리어 소품들이 눈에 띈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고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는 채 대표는 문득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했던 ‘플라운더(인어공주의 단짝친구, 밝은 노란색과 금빛나는 무늬가 매력적인 열대지방 물고기)’를 떠올렸고, 시리얼패키지들도 캐릭터적인 요소가 많으니 그런 부분의 콘셉트가 일치하여 언더더씨라는 이름으로 짓게 되었다고 했다. “언더더씨에 들어서는 순간, 제가 가졌던 동심처럼 손님들도 동심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DIY (Do It Yourself) 로 먹는 재미 더해 시리얼과 어울리는 프리미엄 Tea도 제공 시리얼카페 언더더씨를 이용하는 방법은 총 3단계에 걸쳐 주문하면 된다. Step1은 시리얼 사이즈(S/M/L)를 고르는 것. S는 한가지의 시리얼, M은 두가지, L은 3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시리얼이 있는 만큼, 손님들이 보고 고를 수 있도록 메뉴판에 여러 시리얼들의 사진과 함께 설명이 적혀있다. 고심하여 고른 시리얼의 번호를 메뉴판에 옮겨 적으면 된다. Step2는 시리얼과 함께 먹을 음료를 선택하는 단계로 우유(기본/바나나/딸기/초코/아몬드), 아이스크림, 요거트 중에서 고르면 된다. 마지막으로 함께하면 더 맛있을 토핑(마시멜로우, 젤리, 초콜릿)을 고르면 주문완료! 일회용스푼과 주문한 시리얼, 음료, 그리고 달달한 입맛을 상쾌하게 잡아줄 민트사탕이 제공된다. 베이직시리얼, 달콤한 허니시리얼, 과일향이 나는 상큼한 프루티시리얼, 운동이나 다이어트하는 분들을 위한 헬시시리얼 등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개인의 기호에 맞는 레시피 제조가 가능해 손님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가장 인기있는 시리얼은 럭키챔스(LUCKY CHARMS), 그리고 익숙한 오레오오즈입니다. 연령이나 성별에 따라 선호하는 시리얼도 다릅니다. 어린학생들은 비주얼적으로 예쁜 시리얼을 선호하고, 주 고객층인 2-30대 여성들은 시리얼패키지가 예쁜 것이나 SNS에 사진올리기에 예쁜 것들을 고르시더라고요. 특히 마시멜로우가 들어간 시리얼도 좋아하시고요. 남자분들이나 운동하시는 분들은 아몬드우유도 많이 찾으십니다.” 또한 시리얼의 달달한 끝맛을 깔끔하게 잡아 줄 프리미엄 티(Tea) 종류도 제공하고 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칵테일메뉴, 시리얼라떼, 쉐이크 연구 중 편하게 즐기다 갈 수 있는 곳 약 50가지의 시리얼이 구비되어있는터라 선택의 폭이 다양해 많은 고민을 하는 손님들을 위해 두 대표는 칵테일메뉴를 개발 중이다. 최상의 조합을 자랑할 수 있는 시리얼들로 구성된 메뉴로서 테마별로 나눠 총 7가지의 칵테일메뉴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수많은 시리얼 중 어떤 것을 고를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손님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또한 올 여름에는 시리얼라떼, 쉐이크 등을 출시하기 위해 계속해서 연구 중이라고 한다. 그들은 손님들이 오셔서 “혹시 사진찍어도 돼요?” 라고 묻지 않으셔도 된다며 맘껏 이 공간을 담아가시고 즐기셨으면 좋겠다며 그럴 때 본인들도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본인들이 사진에 나오게 되면 “이왕 나오는 거 예쁘게 담아달라”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특히 여행 중에 캐리어를 들고 오시는 손님들에게 조금의 서비스라도 더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타지에서 일부러 방문해주시는 분들에게도 너무 감사드리고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외국인 손님들도 많이 방문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두 대표는 급하게 쫓기는 느낌은 넣어두시고, 편안하게 천천히 즐기다 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조그마한 공간이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며 재방문 하고 싶은 곳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1006]
    • 맛집탐방
    2017-02-01
  • 귀여운 고래가 그려져 있는, 풍부한 맛과 향의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곳
    동네마다, 골목마다 크고 작은 카페가 있는 요즘, 흔하디 흔한 카페라지만 이번에 찾은 곳은 꽤 특별하다. 창원 도계동에 자리잡은 이곳은 오래된 주택과 낮은 아파트 사이 맨들맨들한 갈색벽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여, 오픈한 지 한 달 만에 맛있는 커피와 아늑한 분위기로 입소문이 난 앰버그리스를 찾았다. _구아리 기자 맛있는 커피를 위한 연구실 느낌 에스프레소 이탈리아노 챔피언십(EIC) 국가대표선발전 우승 고급스러운 레스토랑과 카페가 밀집한 창원의 번화가 상남동, 혹은 가로수길에서 다소 떨어진 곳인 도계동에 주택가들 속에서 자연스레 녹아든 카페 ‘앰버그리스’가 있다. 귀여운 고래가 그려져 있는 갈색벽돌 외관의 이곳은 밖에서 봤을 땐 어떤 곳인지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다. 그 흔한 카페 간판도 없기 때문이다. “카페오픈 전에 시장조사를 하면서 애초에 ‘의외성’을 염두에 뒀었어요. 특히 도계동은 인구밀도가 높은 것에 비해 특색있는 카페가 없더라고요. 지금 이 공간은 제가 찾던 그 느낌, 자연스러움을 추구할 수 있는 장소에 딱 적합한 것 같아요.” 김현우 대표는 앰버그리스를 오픈하기까지 약 6개월이라는 다소 긴 시간이 걸렸고, 이는 모든 것을 셀프인테리어로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카페 입구에서부터 곳곳에 소품 하나까지도 섬세하게 신경쓴 모습이었다. 그는 요즘 트렌드인 하얀외벽에 밝은 조명 인테리어 대신, 아지트 느낌을 내기위해 어두운 색감의 페인팅과 낮은 조도의 조명을 선택하고 외관은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주변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느낌을 살렸다. “외부보다 내부인테리어에 더 신경썼어요. 외관이 화려해지면 아무래도 내부에 들어섰을 때, 손님들이 실망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문을 열고 들어오셨을 때, 의외의 느낌과 놀람, 그리고 편안함 이 세가지를 선사하고 싶었습니다.(웃음)”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키친 앞쪽에는 손님과의 소통을 위한 바(bar)도 마련했다. 실제로 커피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바에 앉아 김 대표와 함께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키친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이유도 로스팅을 직접 하며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기 위한 연구실 느낌을 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카페 한켠에 자연스레 비치되어 있는 다양한 바리스타 자격증이 눈길을 끌어 그에게 원래 커피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있었는지 질문했다.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30세까지 커피는 맛이 쓰고 마치 한약같아서 아예 마시질 않았어요. 그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28세에 일본으로 4박 5일간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첫 외국여행이기도 했고 일본에 머문 짧은 시간동안 문화적으로 굉장한 충격을 받았었죠. 거기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 다니던 직장을 과감하게 그만두고 29세에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간 그는 80년이 된 카페에서 인생커피를 맛보게 되면서 본격적인 커피공부를 시작했다. 그 결과, 몇 년 전에는 ‘에스프레소 이탈리아노 챔피언십(이하 EIC)’ 국가대표선발전에서 우승해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이 대회에 한국대표로 출전하며 바리스타로서 한층 더 성장했다. 커피와 가까워질 수 있는 브루잉수업 한 잔 더 마시고 싶은 커피를 제공하고파 김 대표는 커피의 대중화에 일조하기위해 브루잉수업 취미반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브루잉에 대한 이해, 3요소, 원산지별 맛 차이, 로스팅 단계별 맛의 변화, 다양한 추출도구의 이해의 총 5주과정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를 통해 누구나 커피를 손쉽게 배우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커피에 대한 특별한 감각보다는 수학공식처럼 기본원리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로스팅 단계별로, 가정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커피도구를 앰버그리스에서 접하면서 자신이 선호하는 커피, 자신에게 맞는 커피를 찾을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죠.(웃음)” 그가 생각하는 가장 맛있는 커피는 취향이나 맛도 중요하지만 그 순간, 그 날에 마신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란다. “소위 말하면 안티 없는(싫어하는 사람이 없는)커피요. 국제적으로 스페셜티 시장이 커지면서 산미가 많이 올라오는 커피가 유행하고 있는데,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엔 다소 거부감이 들 수도 있거든요. 맛은 혀뿐만 아니라 기억, 정서, 역사, 공간이 주는 느낌 등 다양한 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중들이 선호하는 커피를 하고 싶어요.” 앰버그리스, 이곳의 마스코트가 고래인 것도 카페이름과 관련 있다. 앰버그리스는 수컷 향유고래의 배설물로 고급 향수의 재료로 사용되는데 휘발성을 억제하여 좋은 향을 최대한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게 한다고 하여 바다의 로또 혹은 바다의 선물이라고 불릴 만큼 귀한 것이다. 김 대표는 같은 의미에서 우리나라 카페, 커피역사는 그리 길진 않지만, 유럽이나 일본의 카페처럼 사람들과 커피로 소통하며 오랫동안 이곳에서 함께하고 싶다고 전했다. [1006]
    • 맛집탐방
    2017-02-01
  • 지역민들의 인권증진과 법률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파
    수려한 해상 경관을 자랑하는 남해도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솔밭처럼 우뚝한 하늘 남쪽의 아름다운 곳’이라고 칭해질 만큼 산세가 아름답고, 바닷물이 맑고 따뜻한 남해. 어려워진 경제와 혼란한 시국 속에서도 지역 후학 양성을 위한 장학금 기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풍광만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이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형제가 나란히 변호사가 되어 서울과 진주에서 각각 활동 중인 정동윤 변호사는 남해 출신으로 얼마 전 후배 양성에 도움이 되고자 동생과 함께 기탁 행렬에 동참했다. 그런데 그의 따뜻한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라는데. _정주연 기자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변호사가 된 본연의 뜻을 살리기 위해 재작년 진주로 내려왔다. “대학 시절 진로를 고민하던 때 ‘변호사가 되어야겠다’ 마음먹은 이유에요. 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남해군민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공부도 하게 되었으니 그분들을 위해 도움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차에 법률 자문이 떠올랐어요.” 인구 5만이 채 되지 않는 인구에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남해, 상대적으로 대도시에 비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많았다. 법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그는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검소하고 바른 성품은 아버지의 가르침 영향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이가 있었으니 남흥여객의 대표이자 정 변호사의 아버지였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께서는 늘 남해군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이렇게 입고, 먹고, 공부할 수 있는 건 다 그분들이 저희 남흥여객을 이용해 주셔서 라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언젠가는 꼭 그분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기를.” 정 변호사가 들려준 대학 시절 일화들에서 아버지의 검소하면서 곧은 성품이 여실히 드러났다. “대학 시절 용돈을 모아 처음으로 명품 로퍼를 산 적이 있어요. 이 사실을 아신 아버지에게 크게 꾸지람을 들었어요. 제가 쓰는 돈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제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다시 한 번 일깨워주셨어요.” 남해군민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는 남흥여객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그들의 소중한 돈이 비록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허투루 쓰이는 걸 경계하셨던 것. 진로를 고민하던 때 취업 보다는 변호사를 선택하게 된 것도 경제적 여유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뭔가 도움 줄 수 있는 일을 하기를 아버지도 원하셨기 때문이었다. 지역민들에게서 느껴지는 유대감 일에 대한 보람도 높아져 “남해가 큰 도시는 아니다 보니 지역민들 사이에 유대감이 깊은 것 같아요. 오시는 분들 중 남해군민이시거나 남해 출신인 분들은 호칭부터가 좀 더 친근해요. 서울에서는 재판을 통해 승소하면 인센티브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여기서는 ‘내가 또 한 분의 억울함을 풀어드리는데 도움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연히 일에 대한 보람도 많아지고 변호사로서 자부심도 높아지는 것 같아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들이 오면 옛 추억도 얘기하며 클라이언트들과 자연스레 신뢰를 쌓아가는 정 변호사. 현재 남해경찰서 자문 변호사로 활동 중인 그는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수사 과정 입회 및 조정, 피해자 권리 구제방안에 대한 법적 자문을 하고 있다. 또한 진주경찰서에서 수사민원 변호사로도 활동 중인 정 변호사는 한국여성보호협회에서 의뢰한 가사사건 변호도 최소한의 수임료만으로 진행하고 있다. 남해와 진주를 넘나들며 지역 내에서 다양한 재능기부 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올해 좀 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고 전했다.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면 수입도 좀 더 안정적이고 클라이언트도 많지 않으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소탈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정 변호사. “서울에서는 똑같은 변호사 일을 하는데도 뭔가 ‘비즈니스’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클라이언트들과 친근감도 좀 더 들고, 일이 잘 되었을 때 뿌듯함과 함께 보람을 많이 느껴요.” 어려워진 경제와 혼란한 시국 속에 웃을 일이 적어진 요즘이지만, 정 변호사처럼 사회 곳곳에서 작지만 뜻깊은 일로 함께하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취재진마저 인터뷰가 끝날 무렵에는 마치 오래 알고 지낸 듯 편안한 느낌을 들게 한 정동윤 변호사. 따뜻함이 묻어나는 그의 미소는 변호사 정동윤으로 향후 그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1006]
    • 라이프
    2017-02-01
  • “당신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드립니다”
    여자들의 더 예뻐지고 싶은 욕심은 끝이 없다. 이제 남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말하는 ‘예뻐진다’는 의미는 TV속 연예인이나 인형처럼 자신의 얼굴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을 최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생활로 자신을 가꾸는 긍정적인 표현이 되었다. 퍼스널한 서비스 제공을 통해 고객들의 더 아름다운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포미뷰티센터 김민희 대표. 고객에게 맞는 미용을 제공함은 물론 세계 미용시장과 국내의 흐름에 맞는 체계적인 교육으로 미용인 양성에 힘쓰고 있는 그녀를 주간인물에서 만나보았다. _김정은 ­­기자 아름다움을 실현 시키는 공간, 포미뷰티센터 한 가지만 전문적으로 관리하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한 곳에서 메이크업부터 피부, 네일, 보디, 왁싱까지 모든 관리가 가능한 ‘토탈 뷰티’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대구에 위치한 ‘포미뷰티센터’는 성형외과와 피부과 간호사 출신으로 반영구 화장을 최초로 지역에 도입하여 15년간 실력을 다져온 김민희 대표와 각 분야별로 다년간의 경력과 자격증을 보유한 디자이너들이 고객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 곳으로 고객들의 신뢰와 만족도가 높아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곳이다 . “포미뷰티센터를 찾는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의 일부가 되어 아름다움이 실현되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프라이빗한 뷰티룸으로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인 포미뷰티센터. 남성들을 위한 그루밍 공간 또한 마련되어 있어 데이트 코스로 찾는 고객들도 늘고 있다. 정밀한 시스템과 디테일한 체크리스트를 바탕으로 상세한 상담을 진행하는 포미뷰티센터는 고객의 피부 상태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시한다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해요. 고민이 되는 부분과 피부타입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고객이 보유한 제품을 먼저 체크해 활용법을 정확하게 알려드리고 있어요. 필요 이상의 관리나 새로운 화장품을 구매하기보단 보유하고 있는 좋은 제품의 사용팁과 노하우를 알려드리는 것 또한 저희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탄탄한 실력을 갖춘 전문가들의 섬세한 관리와 값비싼 피부 관리실의 거품을 모두 제거한 서비스로 고객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김 대표. 포미뷰티센터를 찾는 고객들의 Needs&Wants를 충족시켜 마음까지 힐링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국내에 이어 세계 미용시장 진출을 위한 1:1 개인별 맞춤 강의 피부국가자격교육인증기관 포미뷰티아카데미 국내 미용업계는 수적 증가와 과열경쟁으로 더욱 전문화된 기능을 추구해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K-뷰티 열풍으로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미용인이 늘고 있어요. 때문에 글로벌 시대에 적합한 기술과 이론을 바탕으로 더욱 체계화된 교육이 필요합니다. 형식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수강생의 능력과 진로를 생각한 커리큘럼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에요.” 피부국가자격교육인증기관인 포미뷰티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김민희 대표. 그녀는 국가자격증을 보유한 각 분야별 전문 강사들과 함께 국내 미용업계의 교육수준 향상과 세계 미용시장에 나갈 수 있도록 실효성을 목적으로 미용인 양성에 힘쓰고 있다. 소수 정예로 운영되는 포미뷰티아카데미는 피부, 네일, 메이크업 등 각 분야에 4명 이상의 수강자를 받지 않으며 1:1 개인별 맞춤 강의로 국가미용자격증 시험 100% 합격률을 자랑하고 있다. “업계에 종사하는 미용인들도 자격증 취득을 위해 아카데미를 찾고 있지만, 취업을 목적으로 아카데미를 찾는 수강생들이 늘어 실전대비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취업, 창업과 연계하여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부담을 줄여 주고자 아카데미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가꾸어 주는 것을 좋아하며 즐기다 보니 오랫동안 뷰티업계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는 김민희 대표.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포미뷰티센터와 포미뷰티아카데미를 찾는 모든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겠습니다.” 아름다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귀추가 더욱 주목되는 멋진 만남이었다. PROFILE 간호과졸업 간호사면허증 취득 서울대병원 수술실/ 대구성형외과 수술실 및 상담 수간호사 치료용 반영구화장성형/ 눈썹 터치기법(엠보) 시술 도입 한국 최초 독일 누보컨투어코리아교육 포미성형외과.피부과 반영구화장, 피부관리실 운영 반영구화장아카데미 교육생 양성 포미뷰티센터 동성로점 오픈 한국컨투어 메이크업협회(KCMA)정회원 미용사국가자격시험 심사위원 제1회 미용사(피부)국가자격증 취득 한국컨투어 메이크업협회(KCMA)디프로마 미용전문가협회(IFBC) 반영구화장1급자격 한국패션타투 협회 정회원 포미뷰티센터 현대점 오픈 IBSO국제미용올림픽 연합회지사장 포미뷰티아카데미대표 [1005]
    • 문화
    2017-01-24
  • 칩 형태로 만들어낸 수제 과일 말랭이 - 고운 색깔과 모양에 맛까지 더해져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는 1년 사이 월 매출 1500만원으로 창업 대박을 이루어내 방송까지 출연하는 창업 성공 CEO가 되었다. 평소 수제청과 수제 말랭이 만드는 걸 좋아했다는 그의 창업 성공 비결은 수제 레몬 말랭이였다. 얼핏 흔해 보이는 사업 아이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레몬 말랭이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고객들의 후기와 구매율 그리고 재구매율만으로 당당히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수제 과일 말랭이의 숨은 매력과 창업 성공 스토리를 듣기 위해 주간인물이 달보드레를 방문해 이자옥 대표를 인터뷰했다. _정주연 기자 테이블 3개에 10평 남짓했던 달보드레 첫 매장의 주메뉴는 과일 말랭이와 직접 담근 수제청 그리고 수제 양갱이었다. 친숙한 메뉴임에도 불구,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판매 방법까지 달보드레 이자옥 대표만의 특별함이 담겨 창업 성공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씨를 제거해 쓴맛 잡은 레몬 말랭이 흔히 볼 수 없는 각종 과일 말랭이 지금의 달보드레를 있게 한 1등 공신 메뉴는 바로 레몬 말랭이다. 칩 형태의 달보드레 레몬 말랭이는 그 자체로 간식으로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차로 우려먹을 수도 있다. 유난히 고운 빛깔을 띠는 달보드레 레몬 말랭이에는 이자옥 대표의 각고의 노력이 담겨있다.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 씨를 제거한 것이 고객들에게 달보드레만의 레몬 말랭이로 다가설 수 있었던 비법이에요. 지금도 레몬 씨를 제거하는 작업에 공을 많이 들여요. 1차로 건조 전에 씨를 제거하고, 건조 후 숨은 씨까지 한 번 더 확인하며 제거해요.” 이렇게 만들어진 레몬 말랭이는 슬라이스 방식이 아닌 칩의 형태로 만들어내 미적 요소까지 더해져 고객들의 눈과 입을 모두 사로잡았다. ‘하루퐁당수’로 현재는 레몬 외에도 자몽과 키위, 라임, 오렌지 그리고 파인애플까지 흔히 볼 수 없는 과일 말랭이 역시 달보드레에서는 모두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유독 달보드레의 수제 과일 말랭이가 인기 있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라는데. 적절한 온도와 시간으로 건조해 만든 과일말랭이 맛은 물론 미적 효과까지 “하루하루 날씨가 다 달라요. 같은 건조기에서 동일한 온도와 시간으로 건조하더라도 그날의 기온과 습도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 미세하지만 적절한 온도와 시간을 그날의 날씨와 환경을 고려해 조절해줘야 식감도 맛도 모두 살릴 수 있습니다.” 레시피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탓에 여러 유사업체가 생겨났지만 이자옥 대표만의 노하우가 더해진 달보드레의 수제 과일 말랭이는 여전히 많은 고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특히 한결같이 베스트 메뉴로 자리하고 있는 레몬 말랭이의 경우 계절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레몬의 무른 정도까지 고려해 만들어 독보적인 빛깔과 맛을 자랑한다. 온라인을 겨냥한 판매 다양한 구성으로 차별화된 마케팅 배송 전 마지막 검수까지 열 평 남짓한 매장이었지만 이자옥 대표에게는 오프라인 매장이 전부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온라인 판매를 염두했어요. 당시 수제 제품이나 디톡스, 해독주스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는데 수제로 만든 과일 말랭이를 하는 곳은 찾기가 어려웠어요.” 직접 만든 과일 말랭이를 촬영해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이 이어졌고, 고객들의 후기가 더해지며 금세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이자옥 대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조금 더 다양한 구성으로 선택의 폭을 넓혀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켰다. 특히나 그가 지금도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고 하는데. “온라인으로 판매되다 보니 실물과 사진의 모습이 달라 실망하시지 않을까 염려되어 지금도 마지막 택배 작업은 제가 직접 해요. 한 번 더 제품을 검수하고 라벨을 확인한 후 포장해요.” 이런 꼼꼼함은 고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달보드레는 실사가 오히려 사진보다 더 예쁘고 맛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고구마 말랭이나 사과 말랭이 등 말랭이 자체는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하지만 칩 형태로 만들어진 다양한 과일 말랭이는 흔함 속에서 찾은 이자옥 대표만의 차별화였다. 레시피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언뜻 만들기 쉬워 보이지만 빛깔에서부터 맛까지 달보드레만이 갖고 있는 특별함은 쉽게 따라 하기 힘들 터. 여전히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며 달보드레만의 빛깔을 입히는데 노력하고 있는 이자옥 대표의 창업 성공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단맛은 줄이고 천연재료로 색상을 입힌 수제 양갱 역시 그의 숨은 정성이 담겨 상견례나 각종 중요 인사 선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창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의 특별함을 담아내지 못하면 성공 스토리로는 남지 못 한다. 이자옥 대표의 창업 성공 스토리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달보드레만의 차별화된 빛깔을 입히며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1005]
    • 맛집탐방
    2017-01-24
  • 산업통상자원부 주관 소재부품산업지역거점사업 “국내 부식제어 분야의 초석을 다져 100년 연구소로 거듭날 것”
    2013년에 발생한 현대자동차의 북미 동부지역 23만대 대량리콜사태는 자동차 서스펜션(완충장치)의 관통부식으로 인한 차량 결함으로 비롯되었다. 눈이 많이 오는 북미 동부지역은 기후적 특성상 제설을 위한 염화칼슘이 대량 사용되는데 이때 염화칼슘의 CI라는 염소 성분이 차량의 도장면에 부식을 일으킨 것. 도장기술에 대한 보다 높은 이해와 연구만 있었다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이처럼 강철이 사용되는 모든 산업 분야에 빠져선 안 될 중요한 기술 ‘도장(塗裝)’.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자, 자동차, 선박, 해양플랜트, 담수화설비, 원자력발전소 등 도장기술이 꼭 필요한 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 도장에 관련된 제대로 된 연구소 하나 없다. 올해 비로소 부경대가 산업통상자원부 주관 소재부품산업지역거점산업인 ‘극한환경용 구조물 부식제어 융합기술 기반구축사업’에 선정되면서 국내 도장기술발전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된 것. 국내 유일 도장기술을 가르치는 학과가 있는 부경대, 그곳에서 30여년 묵묵히 도장기술을 연구해온 국내 도장기술의 대가, 박진환 교수를 만나보았다. _박지영 ­­기자 30여 년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국내 도장(塗裝)기술의 대가 박진환 교수의 연구실을 들어서면 새하얀 말티즈 한 마리가 먼저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유기견들의 아빠로, 부경대 용당캠퍼스의 캣대디로 유명한 박진환 교수는 국내의 몇 안 되는 도장기술 전문가. 30여년 동안 도장기술 연구에 매진해온 그는 천안함 영구보존, 광안대교 강교 보수도장 연구 등 굵직한 연구를 통해 국내 도장기술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뼈아픈 역사를 보존하는 것도, 아름다운 현재를 기억하는 것도 그와 도장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도 쉬이 접할 수 있는 도장기술은 강철이 사용되는 모든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특히 도장을 통한 부식방지와 페인트를 이용한 미적 감각은 제품의 상품성과 직결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말로 다할 수 없다. “도장기술은 우리나라 대표 산업인 전자, 자동차, 선박, 해양플랜트, 원자력발전전소 모든 분야에 필수적인 기술입니다. 우리나라 산업의 숨은 공로자라 할 수 있죠.” 그러나 국내에서는 ‘도장기술=3D’라는 인식이 강해 관련 연구는 물론 전문가 역시 몇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오로지 도장기술만을 연구해온 박진환 교수. 많은 이들이 포기함에도 이토록 오랜 시간 외로운 연구를 계속해왔던 것은 도장기술의 무궁한 가치와 우리나라 산업의 미래를 위함이다. “과거 유럽이 선도하고 있던 조선 산업을 일본이 가져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자동용접기술의 개발이었습니다. 중국 역시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부식기술을 연구해왔습니다. 이 덕분에 새롭게 조선 산업의 메카로 떠올랐죠. 이에 우리는 선진화된 도장기술로 조선, 해양플랜트 산업을 선도해야 합니다. 비단 조선 산업 뿐 만이 아닙니다. 강철이 사용되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도장기술의 중요성은 날로 더해갈 것이고 그에 따라 고도의 기술이 요해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늦었지만 힘든 첫 발을 내딛어야 합니다.” 최첨단장비를 통한 기술연구와 기업에 필요한 기술지원으로 강소기업 육성 그리고 도장분야 고급인력양성까지 국내 부식제어 분야의 초석 다져 100년 연구소로 박진환 교수의 10여년의 사업구상과 2년간의 준비로 올해 산업통상자원부 주관 소재부품산업지역거점사업인 ‘극한환경용 구조물 부식제어 융합기술기반구축사업’으로 부경대가 선정됐다. 부경대는 1984년 국내 최초로 도장전공학과(공업화학과)를 설립해 이 분야를 개척해온 유일한 대학교로 부산의 자동차산업, 울산과 거제, 통영 등 경남 일대의 조선, 해양플랜트 등 동남권의 도장산업지원 및 육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을 위해 앞으로 국내 부식제어 R&D거점으로 부상할 예정이다. “부식제어 관련 최첨단 장비구축에 143억 원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이 장비들을 통해 도장기술을 연구하고, 이 기술들을 필요한 기업에 제공함으로서 지역 기업이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더불어 이 사업을 통해 도장기술 관련 전문 인력을 길러내는 것이 박 교수의 목표. “도장기술에 관련된 연구는 물론 전문인력 역시 턱없이 부족합니다. 오랜 시간 외면 받아온 기술이기에 사라질 위기가 코앞에 닥쳐왔죠. 이번 사업을 통해 국내 도장 전문가를 길러 국내 도장기술의 맥을 잇고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를 통해 100년을 이어갈 연구소로 만드는 것이 박 교수의 마지막 목표다. “단순히 연구소를 만드는 것에 의미를 둬선 안 됩니다. 100년 연구소로 성장시켜 국내 도장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산업의 미래를 책임질 기업으로 만들 것입니다.” 이를 위해 30여 년간 연구해온 도장기술에 관한 노하우를 모두 쏟아 부울 것이라는 박진환 교수. 녹슬지 않는 그의 뚝심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프로필 現 부경대학교 교수 現 부경대학교 도장기술센터 센터장 現 한국부식방식학회 도장방식분과 위원장 前 포항공과대학 연구교수(1999~2000) 前 동경공업대학 연구교수(1996~1997) 대표연구 2016 극한환경용 구조물 부식제어 융합기술 기반구축사업 2014 천안함 영구보전 연구 2008~2011 광안대로 강교보수도장 개선 학술연구 [1005]
    • 교육
    2017-01-24
  • 노련한 셰프의 손길이 담긴 맛집 - 와규 와 연어 를 한번에 맛볼 수 있는 곳
    고원석 와규위드연어 오너셰프세상사 시름겨운 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따뜻한 사케 한잔에 고민을 털어버리고 싶다. 부산 송정, 고소한 풍미가 일품인 와규와 신선한 노르웨이산 연어를 즐길 수 있는 와규위드연어는 이런 날 찾아가기 딱 좋은 곳이다. 일본 동경요리학교 출신의 베테랑 고원석 셰프의 차진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곳, 와규위드연어는 사람들의 허기진 마음까지 채워주는 곳이다. _박미희 ­­기자 “요리하는 순간이 가장 즐겁다”는 고원석 셰프는 요리사가 천직인 사람이다. 요리명문, 동경요리학교 출신인 그는 일본에서 정통 일식을 제대로 배운 실력파 셰프다. 일본의 유명 업장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자신의 요리세계를 펼치기 위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서울에서 ‘카코이 돈뿌리 전문점’을 열어 성공한 그는 최근 부산에 내려와 송정에서 와규위드연어를 열었다. 처가가 있는 부산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다양한 업장을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서울에서 요리할 때는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 쉴 틈이 없었죠. 정말 정신없이 요리하기에 바빴던 것 같아요. 손님들이 많이 찾아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셰프로서 정체성을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부산에 내려와 업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작년 여름 그가 송정에 문을 연 와규위드연어는 참신한 메뉴 구성과 뛰어난 맛으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와규와 연어, 그 참신한 조합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손님 네 분이 오시면, 그 중에 꼭 한분은 못 드시는 음식이 있어요. 고기를 좋아하는 분은 회를 못드시고, 회를 좋아하는 분은 고기를 잘 못드시고. 그래서 메뉴를 정하기가 쉽지 않죠. 그러던 중 고기(와규)와 회(연어)를 함께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어야 제가 정통일식을 전공했기 때문에 너무나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는 메뉴였고, 와규는 일본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던 사촌의 영향으로 늘 가까이하던 음식이었죠. 가장 맛있고, 손님들이 원하는 음식으로 메뉴를 짜게 되었습니다.” 풍부한 마블링과 고소한 맛이 일품인 호주산 와규와 청정한 환경에서 자란 신선한 노르웨이산 연어를 함께 즐길 수 있다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좋은 재료는 맛의 기본이지만, 주방에서 20년의 세월을 보낸 셰프의 섬세한 손길이 더해져 그 맛은 배가 된다. 그가 말하는 맛의 노하우는 바로 ‘숙성’에 있다고. “신선한 냉장 연어를 그때그때 받아서 쓰지만 연어 특유의 비릿한 맛이 날 수 밖에 없어요. 그 맛을 잡기 위해서는 숙성을 잘 시키는 게 중요하죠. 그래서 정성껏 밑준비를 하고 숙성과정부터 마지막 손님상에 나가기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맛있는데, 가격까지 착하다. 그것이 이곳의 장점이다. 연어와 와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세트 메뉴는 중 4만원~대 6만원 안팎. 푸짐한 구성에 비해 착한 가격이다. 다채로운 단품 메뉴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된 메뉴도 매력적이다. 이렇듯 정통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손님이 원하는 것을 먼저 주는 것. 그것이 고원석 셰프가 지닌 장점이다. “주변에서 늘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까운 실력인데, 왜 정통일식을 하지 않느냐고.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에요. 하지만 손님들이 원하는 대중적인 일식을 하는 셰프도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카코이 돈뿌리 전문점을 열었구요. 이번엔 부산에서 하고 싶은 업장을 열고 싶어 와규위드연어를 오픈했습니다. 와규위드연어는 첫 시작이구요. 앞으로 하고 싶은 많은 메뉴와 색다른 컨셉으로 다양한 업장을 열고 싶습니다(웃음).” 환하게 웃는 고원석 셰프. 그는 하루 종일 주방에서 좋은 요리를 내놓기 위해 고심한다. 손님들을 향한 마음, 그 진정성은 요리에 녹아나기 마련. 연어를 전혀 못 먹던 손님들도 맛있다며 다시 찾아오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진다는 그는 천생 마음이 착한 요리사다. 성공한 외식경영인, 좋은 요리로 인정받는 셰프이길 원하는 고원석 셰프. 그의 꿈은 무엇일까. “손님들하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게 좋죠. 머리가 히긋해져도 다찌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싶어요. 몇 평 남짓한 작은 업장에서 그날 들어온 싱싱한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내놓는 사람, 손님들과 진정한 교감을 나누는 좋은 요리사가 되고 싶습니다(웃음).” [1005]
    • 맛집탐방
    2017-01-17
  • REAL FIT 정직과 전문성을 갖춘 PT스튜디오
    우리 몸은 206개의 뼈로 구성되어있다. 근육은 뼈에 연결되어 뼈가 움직이게 도와준다. 각자의 위치에서 몸을 지탱하고 몸속 내부 기관을 보호하기도 하며 우리가 자유로운 동작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매일 사용하기 때문에 잦은 근육통을 느끼기도 하고 외형상으로 불균형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정확한 진단으로 접근하는 리얼핏. 한 사람 몸 상태마다 정확한 측정과 방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윤중완 대표. 그가 전하는 PT란 무엇일까. 정직과 전문성을 갖춘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 보자. _이가현 ­­기자 REAL FIT 강남 PT스튜디오 리얼핏은 대한민국 상위 1% 전문 퍼스널 트레이너들로 구성된 강남 PT 스튜디오이다. 리얼핏은 ‘전문성’을 강조한다. 윤중완 대표는 전문적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기본적인 것이죠. 자격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안전장치예요. 회원님들께는 전문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또 전문가에게는 전문성에 대한 보호를 한 것입니다. 그는 헬스분야에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스포츠의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트레이너들이 전문성을 갖출 때 회원님들의 몸이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 발전하려고 노력합니다. 저에게 PT받는 회원님들이 알찬 시간이 되기 위함이죠.” 전문가란 문제점을 찾아내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윤중완 대표, 그가 지키는 신념은 무엇일까 “저는 회원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트레이너 자신이 잘 모르는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수정, 보완하지 않고 그대로 행하는 것, 회원님들의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는데도 계속 진행하고 있는 트레이너들을 보면 안타깝고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그래서 후배양성에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이런 부분입니다. 더 전문성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외부에 있는 트레이너를 대상으로 세미나를 연다. 센터에 방문하는 회원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센터에 방문하는 회원 하나하나 목표를 파악하고 필요한 점을 보완해주는 그는 단순히 운동을 넘어서 생활을 편안함, 즐거움까지 선사해 준다. 윤중완 대표는 헬스장에 방문하는 회원들의 밝아진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헬스란 단순히 운동을 넘어서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라는 그, 기자는 그에게 ‘운동이란 무엇일까’ 하는 다소 추상적인 질문을 해보았다. 현장에서 회원들과 매일 땀 흘리며 운동하는 그가 느끼는 ‘운동’에 대해 이야기 들어보고 싶었다. “운동이라는 것은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죠. 단순하게 살을 빼는 것이 아닌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하나의 방안입니다. 회원님들의 몸이 건강해지고 자신감도 생기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뿌듯하죠.” 또한 운동은 저의 삶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지금도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원님들에게 쏟는 에너지, 시간이 정말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어요.” 그가 하루에 13시간씩 레슨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아직 최고가 아니지만,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요. ‘한번 했으면 이 길에서 끝장을 내자’라는 욕구가 있습니다.” “회원님들은 가족이죠” 이러한 열정은 회원들의 꾸준한 발걸음으로 돌아온다. ‘윤중완 트레이너님을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가 회원들에게 받은 인사이다. 최근 5년 동안 15,000시간의 레슨을 하였다. 15,000 시간이라는 통계는 그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 말해준다. 하루에 13시간 많게는 17시간까지 레슨을 하면서도 매 순간 배우려고 하고 좀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윤중완 대표. 센터를 시작하기 전에도 그렇고 그 후에도 7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한 회원이 많다. 대표는 말한다. “회원은 가족이죠. 저는 회원님들이 저희 센터에 오셔서 불편함 없이 운동에 매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머리끈, 화장 솜 등 작은 것 하나하나 필요한건 없는지, 불편사항은 무엇인지 소통을 통해 해결하려 합니다.” 그는 운동으로 힘들어하는 회원과 ‘내기’를 진행한다. 목표달성과 함께 소소한 선물을 준비한다. 운동에 도움이 될 만한 음식, 옷 등을 통해 끝까지 운동 할 수 있게 배려한다. 기자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다시 오고 싶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을 선물처럼 기억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고 한다. 건강을 위해 방문한 곳이지만 더 많은 배려를 느끼고 돌아가는 그 곳, 외형적인 근육만 단련시키는 것이 아닌 마음 근육도 같이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윤중완 대표, 사람을 향한 그의 따스한 시선덕분에 행복해진 많은 사람들, 주간인물은 변함없는 응원을 보낸다. 윤중완 대표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모든이에게. [1005]
    • 라이프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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