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19세에 주식투자를 시작하여 100억 대의 자산가가 된 젊은 청년 재벌. 이 타이틀 하나만으로 그는 일약 스타가 되었고, 세상은 그런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개인 투자자들은 투자비법을 배우고자 그에게 환호했고, 예능 프로와 각종 매체들은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를 부르는 곳,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기꺼이 동참했고, 어느새 그는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주식 재벌 복재성 대표의 럭셔리한 자택, 억대를 호가하는 고급 수입차는 연일 화제였다. 대중이 그의 화려한 이력에 주목할 때, 주간인물은 젊은 나이에 막대한 재산을 거머쥔 주식투자자라는 타이틀 이면의 ‘인간 복재성’이 궁금했다. _박정연 팀장


주식 청년 재벌,
사회에 ‘사랑의 희망’을 전하다

19세 소년 복재성
유학경비 충당 위해 300만원으로 시작한 주식 투자



“학창시절 일본어 특기생으로 대학 입학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내정되어있던 특기자 목록에서 제 이름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배후 사정을 알게 되었고, 어린 나이었지만 사회에 대한 깊은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한국을 떠나 더 큰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었기에 유학을 가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복재성 대표는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틈틈이 모아온 전재산 300만원을 가지고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4년 유학경비에 소요될 학비와 생활비를 계산해보았습니다. 대략 2억 4천만원 정도의 경비가 필요했고, 당시의 제가 생각해낼 수 있었던 방책은 부동산과 주식이었습니다. 부동산보다는 주식이 제가 가진 300만원으로 현실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고, 그렇게 주식투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식을 향한 거창한 목표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번 시작한 것, 제대로 해내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웠을 뿐이었다.
복재성 대표가 주식을 시작했던 당시는 주식투자에 대한 인식 자체도 부족했고, 주식을 한다고 하면 ‘집안 기둥을 뽑아먹을 녀석’이라는 둥 핀잔을 받던 시절이었다. 주위의 걱정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복재성 대표는 본인의 확고한 소신을 바탕으로 주식공부를 시작했다. 서점에서 주식투자 관련 서적을 전부 사들였고, 한권 한권 정복해나갔다. 그렇게 2개월 여. 이론을 마치고, 실전으로 돌입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수중의 300만원을 전부 날려버린 것이었다. 이로써 첫번째 난관에 부딪힌 복재성 대표. 여기서 포기하느냐, 다시금 도전하느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치열함’으로 이뤄낸 인고와 숙성의 시간


복재성 대표의 선택은 ‘여기서 무너져 내릴 순 없다’였다. 세계적인 석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며, 보란듯이 성공하고 싶었다. 직권남용 부당처우를 했던 사람들에게 당당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유학자금이 필요했다. “딱 2년만 주식에 미쳐보자. 딱 2년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이를 악물고 나의 모든 열정을 몽땅 쏟아내어 보자고 자신에게 다짐하고 다짐했습니다.” 깜깜한 터널 끝에 한줄기 빛이 보이는 듯 했다. 해답은 찾았지만, 문제는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것. 복재성 대표는 낮에는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저녁에는 pc방에서, 주말에는 호프집에서 밤낮, 주일주말 가릴 것 없이 2개월 간 일에 몰두했고, 그렇게 다시 300만원을 쥐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실을 단단하게 다졌던, 가장 치열했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에 합당한 노력을 하면 안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300만원을 잃었던 당시는 막막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시기가 있었기에 단련되어 현재의 부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제 자신이 이뤄낸 것이기에 누구든지 목표에 상응하는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이뤄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재성 대표의 현재 대단해 보이는 화려한 삶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이러한 인고의, 숙성의 시간이 있었기에 현재의 성공이 가능했다고, 복재성 대표는 담담히 읊조렸다.

개인투자자들을 돕고자 힘써왔던 지난날

복재성 대표는 숙성기간을 거치며 주식투자자로서 성공을 거머쥐었지만, 주변에서 주식 투자에 실패하는 사례는 너무나 많았다. 자신이 시행착오를 겪던 시절이 떠올라 안타까웠던 복재성 대표는 온라인 주식카페를 개설하여 개인투자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큰 사명감을 가졌었습니다. 그 당시는 주식투자 10번 중 9번을 실패해도 1번을 성공한다면 서민들이 단기간에 큰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었기에 개인적으로도 많은 보람을 느꼈었습니다. 그것이 제 열정의 원동력이기도 했고요. 반면 현재는 개인투자자를 돕는다는 미명하에 제도를 수정하여 개인이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막혀버렸습니다. 이제 프로낚시꾼들만 물고기를 낚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회사를 닫았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이 돈을 벌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제 유명세를 이용하여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한 마음으로 시작한 주식 강의. 그를 믿고 따르는 추종자들도 많이 생겨났지만 반대급부로 블랙컨슈머와 악성네티즌 또한 생겨났다. 하지만 한층 단단해진 복재성 대표는 더 이상 세간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는 묵묵하게 자신의 소신대로 나눔 활동을 펼쳐오고 있을 뿐이다.


기꺼이 따뜻한 손길 내미는,
기부 릴레이 대한민국을 희망하며


“10대라는 나이가 왜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복재성 대표는 질문을 던졌다. 기자 생각을 이야기 하자 복재성 대표는 말을 이었다. “10대는 未成年, 법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나이입니다. 사회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이 대통령도 꿈꿔보고, 국회의원도 꿈꿔보며, 다양한 꿈을 꾸는 시기입니다. 20대는 그 꿈들을 하나씩 실천해보는 나이이고, 30대는 그 중에서 자신에게 적합한 꿈을 잡아 키워가는 나이이며, 40대는 그것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삶을 확고히 해나가는 나이입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10대 아이들이 과연 어떤 꿈을 꾸는지 말입니다.” 복재성 대표가 소외계층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 나눔 활동을 시작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모교인 군산 중앙고 후배들 중 재능을 갖추었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마음껏 꿈을 꾸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겹쳐졌기에, 돈걱정 없이 마음껏 꿈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 아이들이 성장하여 자신이 받았던 것과 같이 사회에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하여 훈훈한 대한민국이 되길 희망하며. 이 밖에도 복재성 대표는 장애인 단체 후원 등 다방면으로 기부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복재성 대표는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이야기를 덧붙였다. “누구나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꿈꿉니다. 다만 성공한 사람이 드문 이유는, 성공을 꿈꾸지만 그에 합당한 노력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안주보다는 도전을 선택하세요.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하세요. 모두가 주식투자에 대한 편견으로 만류할 때, 저는 주식투자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겁내지 마세요. 사회가 불안정하다 보니 안정을 추구하는 젊은 친구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20-30대 분들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는데 전력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날의 도전은 결과가 어떻든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모두 2017 정유년 뜻한 바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006]

[주간인물(weeklypeople)-박정연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주식 청년 재벌, 사회에 '사랑의 회장'을 전하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