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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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송희 전)부산시 여약사회 회장 | 현)부산시 약사회 감사 | 현)대한약사회 여성보건(여약사)위원회 위원 | 중앙약국 대표
    대한약사회는 최근 여약사대상을 선정·수상했다. 부산지부 여약사회 회장으로서 매년 다문화가정을 초청하여 다문화가정의 2세들이 학교 및 사회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교의 역할을 한 전) 부산시 여약사회 회장 박송희 약사가 선정됐다. 이에 주간인물은 지역 사회에 공헌한 사람, 박송희 약사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질병 없는 세상을 만들겠단 생각으로 약사가 되었어요. 약사도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봉사자라는 걸 깨닫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박송희 약사. 원래 사회복지학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던 그녀는 아버지의 권유로 약대에 진학하게 된다. 부산대학교 약학대학 학사, 경성대학교 약학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친 그녀는 약국을 개업한 후로도 약학 연구에 매진했고 다양한 활동으로 지역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해왔다. 이렇듯 다양한 활동 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약사 본연의 임무다. 수십 년간 약국을 운영했던 사직동에 이어 3년 전 정관으로 자리를 옮겨 문을 연 중앙약국은 주민들에게 친근한 곳이다.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약국인 동시에 일상의 고달픔을 털어놓은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언제나 서민들에게 약국은 가까이에 있잖아요. 행여나 문을 닫으면, 급하게 약국을 찾는 분들이 힘없이 발걸음을 돌릴까봐서 한 번도 편하게 약국 문을 닫아본 적이 없어요. 지금과 달리 의약분업 전에는 약사들이 임의조제를 하던 때니까, 약사들의 역할이 컸죠. 그래서 병원을 가기에 형편이 어려운 분, 병원에서도 방도를 찾지 못해 애태우는 분들을 돕고 싶어 약학 연구에 더욱 매진했어요.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도움을 받은 분들이 멀리 있는 저희 약국을 일부러 찾으시니, 그 인연이 깊지요(웃음). 그렇게 이웃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자연스레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한국임상양병학 학회 강사, 하정헌 임상영약학 강사로 외롭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올바른 복약지도와 약물오남용에 대한 강의를 해왔다. 전국을 돌며 취약 계층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걸 깨달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그렇게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그녀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지지가 모였다. 그렇게 그녀는 부산대학교 약학대학 여동문회 회장을 거쳐, 2013년 부산시 여약사회 회장에 취임하게 된다. “당선하고 회장으로 활동하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그동안 많은 일을 해서 회장으로 당선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여약사회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라고 이 자리를 주셨구나’하는 생각이요(웃음). 회장 임기 3년은 제 인생에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인 만큼 이 시간동안은 정말 후회 없이 일해보자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웃음).” 부산시 여약사회는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 함께 상생하는 협회로 거듭나기 위해서 많은 일들을 해왔다. 독거노인, 청소년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올바른 복약지도와 약물 오남용 예방을 위한 강의와 가정방문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그리고 한독약품 주체 ‘밝은 눈 세상 만들기 캠페인’을 통해 취약계층의 무료 백내장 수술을 도왔고, 매년 다문화가정을 초청해 다문화가정의 2세들이 학교와 사회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교의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여성의 쉼터, 한길공동체, 영도 달맞이공부방 등을 찾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나눔의 손길을 전해왔다. 이렇듯 많은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그 공로를 인정받았지만 그녀는 겸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역대 회장님들도 같은 마음이셨을거에요. 뭔가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약사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싶은 마음,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 싶은 마음이셨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여약사회를 이끌어갈 젊은 약사들의 활동의 장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저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웃음).” 환하게 웃는 박송희 약사.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는 뜨거운 현역이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삶을 살아온 그녀의 꿈은 무엇일까. “언제나 이웃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게 제 꿈이에요. 그리고 젊은 약사들이 약사로서 긍지를 갖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것, 그것이 제 마지막 바람이에요(웃음).” 경남 여중·고 졸업 부산약대 졸업 경성대 석·박사 학위취득 전)부산 영도구분회 약국담당 부분회장 전)부산대학교 약학대학 여동문회 회장 전)부산시 여약사 회장 전)부산시 약사회 부회장 현)부산시 약사회 감사 현)대한약사회 여약사 위원 현)한국임상양병약약회 강사 현)하정헌 임상영양학 강사 [997]
    • 메디컬
    2016-10-05
  • 손승희 미리내 우리술아카데미 원장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나지 않는가. 주세법 개정에 따라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하우스 막걸리가 판매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우리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부산 동구에 위치한 전통주 공방 미리내를 찾아 손승희 대표의 전통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김은진 기자 우리나라의 다양한 술 종류와 특유의 깊은 맛에 반해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손 원장은 이전에 식음료팀에서 직장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음료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그는 사케소믈리에 자격증인 kikisake-shi 강의를 듣던 중, 직접 집에서 담근 전통주를 맛보고 그 깊은 맛에 반해 우리나라 술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누룩을 빚는 것부터 시작하는 전통주 수업은, 만드는 사람 스스로가 보람 있고, 즐겁게 만들 수 있다. 현재는 50대부터 70대까지 이전의 추억을 되살리고픈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국가적인 지원 없이 스스로 일궈나가야 하는 사업이기에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술을 만드는 것과 우리나라 전통주 문화를 이어나간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행복하다는 손승희 대표.으로서 발돋움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전국 최고의 교육기관이 되고파 전통주를 알리기 위해 꾸준히 힘쓸 것 만드는 이의 정성이 가장 중요 지금 현재는 개인 사업으로 전통주를 만들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진정한 교육기관으로 인정을 받아 전국에서 제일가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손 대표. 항상 배워야한다는 마음가짐의 그는 세계의 양조장에서 직접 술을 만드는 경험을 통해 현장을 제대로 알고 싶다고 전하기도 했다. 6평에서 국자 두 개로 시작했던 전통주 공방 사업이 현재 발효실까지 갖춰 30평에 이르기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하나의 길을 꾸준히 걸어온 그는, 앞으로도 전통주를 알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길을 걸어가겠다고 언급했다. 또한 우리의 전통주는 똑같은 재료로 만들더라도 만드는 이의 마음에 따라 전부 다른 맛이 난다며, 발효의 과학보다 사람의 정성이 중요하다고도 전했다. 아름다운 문화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손승희 대표는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앞으로도 더 많은 대중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우리나라에서만 만들 수 있는 전통주이기에 그 맛을 낼 수 있고, 이 아름다운 문화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모든 술은 전통주로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며, 다양하게 우리 술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손승희 미리내 우리술아카데미 원장의 바람처럼 더 많은 전통주가 널리 퍼지기를 기대한다. 자격 및 경력 1997~2011 부산롯데호텔 식음료팀 근무 2010 숭실대 경영대학원 사케소믈리에(kikisake-shi) 자격증 취득 2011 (사)한국전통주연구소 가양주반 수료 2012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전통민속주반 수료 2013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전통주전문교육기간 신라대 우리술전문가양성과정 수료 2014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전통주전문교육기간 한국가양주연구소 명주·명인·주인반 수료 2015 국세청 기술연구소 주류면허센터 교육 수료 현재 미리내 우리술아카데미 원장 수상 2015 궁중술 빚기대회 백수환동주 동상 2015 한국가양주연구소 삼해주대회 금상 2015 영월전통주 명인선발대회 장려상 2015 주인선발대회 입상 [997]
    • 문화
    2016-10-05
  • 강준모 뉴벨브레드 대표
    제과제빵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다. 부산 마린시티와 용호동에 위치한 뉴벨브레드는 건강한 빵으로 사랑받는 맛집이다.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부산 빵투어에 꼭 가봐야할 맛집으로 손꼽히며 화제가 되고 있는 뉴벨브레드는 뭔가 다른 특별함이 있다. _박미희 기자 “내 가족에게 먹일 수 있는 착한 빵을 만들겠단 신념, 그것이 뉴벨브레드가 지향하는 가치입니다!” 정직하게 만든 건강한 빵을 자신 있게 권하는 강준모 대표.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외식경영인이다. 유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지점을 운영하며 그 폐해를 뼈저리게 느낀 그는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개발했다. 유럽에서 새로운 빵이 나오면 종을 쳐서 알리는 데서 착안한 이름 뉴벨. 이 이름은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그의 신념이 담겨있다. “본사는 내 가족에게 먹일 수 있는 건강한 빵을 지향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지점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속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죠. 내 가족은 고사하고 손님들에게도 자신 있게 빵을 권하지 못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정말 제 이름을 걸고, 제대로 된 건강한 베이커리를 만들겠단 생각으로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뉴벨브레드를 창업했다.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강한 빵으로 사랑을 받은 뉴벨브레드는 입소문이 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 인기의 원동력은 최상의 식재료에 있다는 게 그의 설명. “뉴벨브레드는 첫째도, 둘째도 최상의 식재료만을 추구합니다! 흔히 사용하는 통조림 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요. 밤식빵에 들어가는 밤도, 직접 다듬은 생률을 조려서 만들고, 팥빵에 들어가는 단팥도 직접 쑤어요. 이렇게 최상의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저희의 자부심이자, 변함없는 원칙이죠.” 이곳의 또 다른 특징은 우유, 버터, 계란을 넣지 않고 만드는 유럽식 식사 빵이라는 점이다. 버터 대신에 최고등급(엑스트라버진)의 올리브오일을 쓰고, 입자가 고와 수분을 잘 흡수하는 최고급 밀가루로 빵을 만든다. 그리고 화학첨가제나 유화제를 쓰지 않고, 천연 발효를 통해 소화가 잘 되는 건강한 빵을 만들고 있는 것. "저는 항상 손님 입장에서 생각했어요. 왜 맛있는 빵을 먹고 나서 소화가 안될까. 알고보니, 그 이유는 우유에 있더라구요. 한국인분들 중에 우유에 대한 소화효소가 없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래서 우유를 쓰지 않고, 단맛을 줄인 건강한 유럽식 식사빵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화학첨가제나 유화제를 쓰지 않고, 천연 발효를 통해 소화가 잘되는 건강한 빵을 만들고 있습니다." 특색 있는 빵은 이곳을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이다. 생률을 직접 조려 넣은 밤식빵, 얇고 쫄깃한 빵 사이에 듬뿍 든 팥소가 매력적인 팥빵, 부드러우면서 쫀득한 식감이 인상적인 엔젤바게트와 4시간이 넘게 끓여 우유의 진한 풍미가 느껴지는 크림쨈, 신선한 속재료가 푸짐한 상큼한 샌드위치까지... 한번 맛보면 다시 찾게 되는 마력의 맛이다. 이렇게 뛰어난 맛으로 이곳은 빵마니아들 사이에서 찾아가봐야하는 부산의 신흥 베이커리로 입소문이 났다. 그리고 올리브TV에 부산 맛집으로 선정되면서 다시금 화제가 됐다. 그러자 이곳저곳 가맹점을 내달라는 요청이 많지만 그의 태도는 한결같다. 오로지 직영점만을 운영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베이커리에 브런치 메뉴를 접목한 서울 직영점 오픈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렇게 뉴벨브레드의 정신을 잇는 다양한 브랜드로 손님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그의 꿈이라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면 큰돈은 벌 수 있겠죠(웃음). 하지만 애당초, 프랜차이즈 사업을 생각하고 시작한 사업이 아니에요. 그저 건강한 빵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브랜드죠. 그리고 설사 프랜차이즈 사업을 한다고 해도 쉽게 따라할 수 없어요(웃음). 건강한 빵을 만들려면 놀랄 정도로 많은 비용과 엄청난 수고로움이 들거든요. 무엇보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면 유통이 가능한 통조림을 써야하고 보관이 용이한 냉동생지를 써야하는데, 이는 저희의 취지와 맞지 않습니다. 건강한 빵을 만들겠다는 초심, 그 본질적인 애정을 갖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로 키워나가겠습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다양한 사업아이템을 실현하고 싶다는 젊은 외식경영인, 강준모 대표. 그가 만들어갈 착한 브랜드가 기대된다. [997]
    • 맛집탐방
    2016-10-05
  • 박효재 경북축산 대표 / 모이라 돈까스 대표
    화이트칼라(White Color), 블루칼라(Blue Color). 근로자가 입는 옷색을 기준으로 직종을 나누는 이 단어는 사무직과 기술직, 즉 현장직을 대표하는 단어로 자주 사용된다. 하얀 셔츠를 입고 쾌적한 실내에서 일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쾌적하지 못한 환경에서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한다는 인식에 기술직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기술직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사회적 시선 그리고 연봉에 따른 대우에 이르기까지 한국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오늘 주간인물이 만나 본 박효재 대표는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적 인식에 정면 대응, 발골 기술을 필두로 축산업에서 시작해 현재는 프랜차이즈 사업에 이르기까지 성공 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_정주연 기자 미국이나 유럽 등 소위 선진국을 다녀온 이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물가가 너무 비싸.” 그런데 단기간 여행이 아닌 생활 위주로 장기간 머문 이들에게 듣는 실상은 조금 다르다. 농산물이나 공산품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저렴한 경우가 많고, 다만 사람의 노동이나 기술력이 들어가는 서비스업은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것. 이는 사람의 노동력이 그만큼 높게 대우받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기술직을 포함한 서비스업에 의한 수입 역시 높은 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매년 최저임금에 대한 논쟁이 끊이질 않을 정도로 사람의 노동력은 하향 평가된다. 이는 전체 직업군에 대한 선호도로 이어져 청년들의 취업 1순위가 사무실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 그중에서도 안정성이 가미된 공무원으로 꼽히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박효재 대표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걸 두려워하지도 주저하지도 않았다. 그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택했고, 그 가능성과 가치를 믿고 앞으로 전진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처음 접한 발골 작업 그 가능성을 알아보다 20대 초반, 돈을 벌기 위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는 박효재 대표. 하지만 그곳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도축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어요. 처음엔 수입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발골 작업을 배우면서 식육업만의 메리트를 발견했어요. 기술을 익히며 저에게서 새로운 가능성과 능력을 보았죠.”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그 경험을 바로 살리지는 못 했다. 마치지 못 한 학업이 있었고, 한국에서 축산업은 젊은이들이 꺼리는 직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다시금 축산업으로 들어선 것은 학과 졸업을 하더라도 사회에서 기반을 잡고 생활하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하면서이다. 호주에서의 경험을 살려 경상도축장에서 발골과 유통 담당 일을 시작한 그는 덩어리로 된 고기의 세분화 작업과 도매업을 겸하며 고령화된 작업장에서 빠르게 기술을 습득하며 인정받기 시작했다. 사회적 인식에 부딪혀 그만둔 축산업 나의 행복을 위해 다시 돌아가다 축산업에서 가능성을 보고 두각을 나타냈지만 사회적 인식과 사람들의 시선에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박효재 대표. “아무래도 예전부터 있는 편견과 시선을 깨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종사하는 분들의 연령대 역시 높았고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대기업에 기술직으로 입사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더 행복해질 텐데’하는 생각이 들면서 무엇일까 고민해보니 답이 나오더라고요.” 본인이 잘 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다시 축산업으로 돌아온 그에게 사회와 사람들의 눈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손재주도 좋고 빠른 그였기에 기술을 익히고 발전시키는데도 남들보다 앞섰다. 하지만 이런 타고난 능력에 안주하지 않고 남들보다 한 발 앞서기 위해 자는 시간도 쪼개가며 노력에 노력을 더했다. 기반을 다잡고 본격적인 자기 사업을 위해 경북축산을 시작하며 그의 진가는 또 한 번 발휘되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시작한 일은 1년 뒤 상환은 물론 흑자를 내기 시작하며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남들보다 빠르게 시작해 배의 노력을 더한 그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하지만 박 대표는 또 다른 꿈을 안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소자본창업 성공의 기쁨 다른 이들과도 함께 하고파 시작한 ‘모이라 돈까스’ 국내산 한우와 한돈을 도매로 납품하면서 소자본으로 창업한 그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일까? 유통업이 주를 이루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되는 미수금. 원활한 자금 순환을 위해 이 부분을 타계할 필요를 느낀 그는 지속적인 소비를 통해 공급이 이루어질 수 있는 돈까스 체인 사업을 생각해냈다. 기존 경북축산에서 생산된 양질의 고기를 공급하면 당사는 지속적인 공급으로 빠른 순환을 이어갈 수 있고, 가맹점주들은 양질의 고기와 맛으로 고객들에게 인정받아 매출을 낼 수 있겠다 싶었다고. 하지만 축산업으로 이미 기반을 잡은 시기에 메뉴 개발과 인테리어 등 여러 복합적 요소가 가미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는 그를 만류하는 이도 없지 않았다. “다양한 외식업들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다니 우려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소자본창업으로 성공했기에 저의 재능을 나누어 다른 이들에게도 그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자체 공장에서 직접 도축, 생산해 숙성시킨 100% 국내산 돼지고기와 특제소스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점주들에게는 비용 절감을, 고객들에게는 양질의 고기를 무한 리필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13년 처음 대구에서 문을 연 모이라 돈까스는 현재 전국적으로 17개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상권 보장을 위해 무분별한 가맹점 개설은 지양해 가맹점 수는 적지만, 합리적인 가격과 맛 그리고 신선함은 꾸준한 매출 증대로 이어져 폐점률 또한 현저히 낮다. 이는 본사인 경북축산에도 신선한 고기의 지속적인 공급으로 이어져 선순환 구조를 이루어냈다. 나누는 기쁨을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다 대구 동구 검사동에 문을 연 모이라 돈까스. 외식이 활발하지 않은 지역이라 상대적으로 매출이 낮을 수밖에 없었는데 몇 개월 뒤 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독거노인 무상급식을 했어요. 당장에는 이윤이 나지 않더라도 모이라 돈까스를 통해 나눔의 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상급식으로 방문하셨던 어르신들이 손자나 손녀와 함께 손님으로 오시기 시작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가족이 있는 분들도 계셨는데, 하나라도 팔아주겠다며 함께 손님으로 다시 찾아주신 거였어요.” 명절을 2번 정도 보내고 난 뒤 검사동 모이라 돈까스는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돈까스집으로 유명세를 치렀고, 맛과 서비스에 반한 손님들의 재방문이 이어지며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나눔을 통해 또 한 번 세상의 온정과 삶의 기쁨을 느낀 그는 지금도 독거노인들을 방문해 식사를 대접하고 말상대가 되어 드리고 있다. 또한 JCI나 대구사랑청년포럼을 통해서도 다양한 나눔과 봉사를 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한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청년들이 좀 더 다양한 꿈을 꾸기를 남들이 선뜻 가지 않는 길이었기에 처음 시작은 그리 순탄치 않았지만, 할 수 있다는 믿음과 끊임없는 노력은 결국 빛을 발했다. 다른 이의 시선과 사회의 인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선진화가 되어갈수록 특화된 기술력을 가진 이들이 더욱 인정받는 사회가 될 것을 간파했기에 그에게 축산업은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희망이었다. “요즘 청년들이 너무 한정된 시각으로만 직장을 선택하는 걸 보면 조금 안타까워요. 본인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한 직장만을 선호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처음엔 그랬어요. 하지만 그 틀을 깨 좀 더 넓고 다양한 사고를 통해 ‘직업’을 선택하면 자기만족은 물론 삶의 만족도 역시 높아집니다.” 최근 들어 전문 기술을 통한 창업을 국가적 차원에서도 장려하며 사회적 관심 역시 높아졌지만 아직은 그 분야가 한정적인 것이 사실. 삶의 주체가 ‘나’임을 강조한 그는 청년들이 스스로의 틀을 깨고 좀 더 성장하고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해 기업의 가치를 사회에 환원하고, 축산업을 좀 더 젊고 유망한 직종으로 젊은이들에게 각광받게 될 그날을 위해 오늘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효재 대표. 그의 열정과 노력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997]
    • 경제
    2016-10-05
  • 6차 산업 활성화를 위해 뭉친 이들 ‘6차산업협동조합’
    ‘1+2+3=6’이다. ‘1×2×3’ 역시 6이다. 하지만 1차 농업 산업 없이는 존재하지 않기에 6차 산업은 곱하기 개념만을 사용한다. 1차(농업생산)×2차(가공)×3차(유통, 체험, 관광, 문화) 산업의 융복합을 통해 농업소득을 안정화하고 농외소득을 창출함으로써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6차 산업의 목적이다. 진주에서는 발 빠르게 ‘6차 산업’을 협동조합으로 꾸려 6차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2014년 11월에 창립해 인터넷 판매망인 '바우샵'(baushop.kr)을 통해 각 농장 체험 프로그램 연계는 물론 각종 판매 대행도 함께하고 있는 6차산업협동조합. 혼자서는 할 수 없는 6차 산업의 구조를 간파, 전국에서 드물게 협동조합으로 운영되고 있는 6차산업협동조합의 김민석 이사장을 만나 보았다. _배진희 기자 2007년 진주로 내려와 아버님 농사를 지으며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에 의구심을 품었다는 김민석 이사장. “농업은 다양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수익을 내기도, 유지를 하기도 힘든 산업입니다. 특히나 농사를 잘 짓는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현실상 농외소득 창출을 통해 수익이 나는 구조로 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농업인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 중 하나인 유통과 판매에 초점을 맞춰 농촌체험마을을 시작으로 다양한 판로 개척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6차산업협동조합. 1차 산업인 농업에 익숙한 이들에게 갑자기 가공이나 유통, 체험 등의 산업을 하게 할 수 없음에 착안, 1차와 2차 그리고 3차 산업으로 이어주는 거점으로 6차산업협동조합을 시작하게 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6차산업협동조합 김민석 이사장을 비롯한 조합의 구성원들은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요리 기능장인 조합원을 비롯해 다도 전문가, 웹 마케터 등 조합원들 각자가 보유한 기술이나 경험들이 다양합니다. 각양각색의 전문 분야 지식과 경험을 살려 원재료의 상품화 노하우를 비롯해 유통 판로 개척 등 농민들의 수입 증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실매출 신장을 위해 판로 개척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특히나 다양한 상품으로의 개발을 통해 원재료의 몇 배에 달하는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바이오센터에 개발팀도 두고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6차산업협동조합은 농업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존재를 아는 이들이 함께 모여 농사에 한정된 1차원적 산업의 모습을 뛰어넘어 가공을 통해 상품의 가치를 높이고, 이 상품들로 체험 및 관광 등의 3차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이러한 이들의 행보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면서 지역 곳곳에 6차산업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성공모델로서 강의 제의도 들어와 바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김민석 이사장은 "좋은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희와 비슷한 사업 유형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어요(웃음)."라고 말했다. 서로의 니즈에 맞는 이들을 연결 국내외로 다양한 수입 창출 구조 만들고파 “농사를 통해 얻은 원재료로는 유통 구조가 국내에 한정되게 됩니다. 그만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판로가 제한적이 되죠. 하지만 외국으로 수출이 가능하도록 원재료를 가공한다면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 판로 개척도 가능해집니다.” 무한한 창의성의 가능성을 지닌 융복합산업인 농업. 하지만 그동안 유통 구조의 한계와 독창성 결여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 해 1차원적인 수입 구조와 유통구조에 한정되어 있었다. 6차산업협동조합은 진정한 블루오션으로서 농업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특히나 서로의 니즈에 맞춰 각 업체나 농가들을 연계해줘 동반 성장을 통해 발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이미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국산 농산물을 가공해 만든 각종 상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점에 주목, 식품과 화장품, 바이오산업의 상품화를 통해 해외 시장 개척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그 일환으로 최근 조합에서는 국산 차 및 발효차 브랜드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이를 상품화하여 경북 안동에 명품 고택을 카페로 개조해 커피와 함께 판매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상품개발뿐만 아니라 농가와 지역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좋은 상품이지만 유통 지식 및 경험 부족으로 수익 창출이 어려운 농가에 대안을 제시해주고, 그로 인해 국민들이 질 좋은 상품을 누리도록 힘쓰는 6차산업협동조합. 농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6차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들의 향후 행보를 더욱 기대해본다. [996]
    • 라이프
    2016-09-12
  • 청각장애를 딛고 일어선 멋진 리더 - 허순도 부산은행 벡스코지점 지점장
    178cm의 큰 키에 젠틀한 분위기의 허순도 지점장. 그는 1981년 부산은행에 입사해 37년째 근속 중이다. 2012년 부진했던 부산은행 연지동 지점을 맡아 성장시킨 후, 2015년 1월부터는 부산은행 벡스코점 지점장으로 부임했으며 은행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 사이에 3딸을 둔 다정한 가장이자 멋진 직장 상사, 듬직한 파트너이기도 하다. _김정은 기자 허순도 지점장. 그의 삶을 들여다보기 전까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탄탄대로를 걸어온 줄만 알았다. 전형적인 도시남 스타일인 깔끔한 인상과 자신감 있는 말투가 그래보였다. 하지만 그의 삶은 오직 그의 열정과 간절함, 의지를 통한 결과물이었다. 경남 고성 출신인 허순도 지점장. 외할머니 손에 자란 그는 10살 이후가 되어서야 부모님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다.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늘 밝고 건강한 아이였다고.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서 또 한번 시련이 찾아왔다. “태어날 때부터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던 거죠. 귀가 어두우면 방향감각이 둔해집니다. 한창 활동이 많은 시기인데다 사춘기였던 터라 정신적으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죠. 하지만 남들보다 불리하다 생각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더욱 열심히 학업에 정진해 전교 1, 2등의 성적을 유지하며 열등감을 극복했다. 상위권 성적으로 부산공고에 지원했지만 장애로 인해 입학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고 어렵게 부산상고에 입학하게 되었다. 이후 장애는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방위로 대체 할 수 있던 군복무도 지원 입대하며 자신을 더욱 담금질 했다. “고통으로 다져진 단단함이지만 당당하고 밝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선천적이던, 후천적이던 육체장애는 누구나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강한 정신력으로 살아가자는 다짐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입사 후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일이든 적극적인 태도로 임했다. “전화가 오면 방향에 따라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전화기의 불빛으로 확인하고 무조건 받았지요. 장애에 대해 떳떳하게 밝히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지역 은행의 특성상 보수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허 지점장은 지역주민과 끈끈한 인간관계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가고 있었다. 부산 연지동에 위치한 삼광사에서 기업 포럼 감사로 활동하고 연지자치위원회에서 주민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지역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예하색소폰동아리>에서 3년간 활동하고 있으며 동아리에서는 서면지하도, 어린이대공원, 부산시민공원, 송상현광장 등에서 월3~6회 매주 빠짐없이 시민들을 위해 색소폰 연주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실적으로 인한 부담감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저 역시도 스트레스로 한계에 부딪힐 때도 몇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내년이면 명예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감사한 분들이 참 많습니다. 회사는 물론 함께했던 동료, 직원들, 그리고 고객분들까지 모두요. 묵묵히 저를 지켜봐 주고 딸들을 예쁘게 길러준 아내에게도 지면을 빌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허 지점장의 큰딸 허은미 양은 연극 영화과를 졸업 후 현재 서울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둘째와 막내는 대학생, 중학생이라고. “가정교육은 엄격하게 했지만 친구 같은 아빠로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들 자신의 자리에서 멋지게 임해줘서 대견하고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상어는 부레가 없어 움직이지 않으면 물속에서 살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일인자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런 상어처럼 살고자 했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후배들에게는 강물 같은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허 지점장. “수면 위는 잔잔해 보이지만 수면 아래로는 수많은 굴곡이 있지요. 하지만 흔들림 없이 모두 안고 포옹하면서 큰 바다에 이르게 하는 강물 같은 리더가 되고자 했습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머무르지 않고 고객을 위해 항상 창조적인 생각을 하며 발로 뛰는 리더이자 열정과 끼를 겸비하여 멋지게 살고 있는 허순도 지점장. 그의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996]
    • 경제
    2016-09-12
  • 대중화를 통해문화 선진국에 기여하고파
    나만의 개성이 담긴 가방을 만들고자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가죽공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3초 백(Bag)’이란 별명이 붙은 루이비통처럼 더 이상 명품은 자신을 나타내는 아이덴티티로 적합하지 않게 된 것. 가방으로 신분을 나타내던 시기를 탈피해 이제는 진정 개성을 추구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진입장벽이 높은 가죽공예는 재료 하나부터 열까지 국산제품이 없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 오늘 주간인물이 찾아간 네임레더팩토리는 창원 최초의 가죽공방으로 그곳에서 만난 이승용 대표는 가죽공예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사람이다. _박지영 기자 창원 최초의 가죽공방 네임레더팩토리. 가죽을 이용한 작은 소품부터 가방까지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주문제작할 수도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네임레더팩토리의 ‘쭈쭈’가 환히 반겨주는 그곳에서 만난 이승용 대표는 한눈에도 단순히 가죽공예를 한 사람은 아니란 인상을 주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 가죽 공예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승용 대표는 네임레더팩토리의 인테리어까지 직접 했을 정도로 재주가 넘치는 사람으로 본디 본인 스스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만들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직접 배워서 만들어내고야 마는 집념을 지닌 그. 가죽공예도 그런 그의 ‘디자인’ 욕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패션 디자인회사에서 일할 당시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이 공장과의 트러블로 만족할 만한 결과물로 나오지 못 하며 직접 가죽공예를 배워 스스로 만들어내겠다고 생각했다고. “이태리에서 직접 전통가죽공예를 배워온 지인으로부터 사사 받았죠.” 그렇게 처음에는 자신의 작업을 위한 공간으로 가죽공예공방을 마련했다. 원래 가방을 좋아했던 터라 그의 가죽, 가방사랑은 작업을 거듭할수록 더해갔다. “서울에서 경남대학교로 강의를 다니면서 남는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창원에 마련했죠. 어쩌다 일이 커지다보니 이렇게 클래스까지 진행하게 되었네요.” 미국, 일본식의 통가죽 스타일이 가죽공예의 전부로 인식되다 6년 전 섬세한 스타일의 유럽식 가죽공예가 알려지며 가죽공예의 무한한 변신을 보여줌으로 일반인들의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요즘 그는 이보다 훨씬 전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실부터 시작해 제작도구까지 어느 하나 국산제품이 없어 진입장벽이 높은 유럽식 가죽공예. 그는 그런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방 내에 도구들을 따로 구비해두었다. 장기적인 취미로 이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일회성 수업으로 끝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누구나 부담 없이 경험해볼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는 노력을 하고 있다. 가죽공방의 진입장벽을 낮춰 그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가죽공예의 대중화. “우리나라는 왜 세계적인 명품이 없을까요? 그건 기본적으로 장인이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적 풍토와 기예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때문이에요. 그렇다면 그건 또 왜 그럴까요? 이런 예술 분야가 대중적이지 않아, 사람들이 높은 안목을 가질 수 있을 만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명품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명품을 표방한 건 아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며 알아봐준 사람들 덕분에 명품으로 거듭나게 된 것. 또한 대중들의 안목이 높아져야 국내 브랜드 역시 ‘만듦새’에 더욱 공을 들이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 문화적 선진국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그 시작은 대중들의 예술 인식에서 출발한다. 가죽공예의 대중화를 통해 예술분야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이승용 대표는 지금 창원대학교와 협력해 국산 가죽공예 도구를 만드는 중이다. 접근성을 높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눈으로, 손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목표.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지만 즐거워 보이는 그의 표정에서 그가 얼마나 가죽을, 예술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쭈쭈와 함께해 더욱 꽉 찼던 그와의 인터뷰. 일정한 형식이 없어 무한한 매력을 지닌 가방 같은 사람, 이승용 대표와의 특별한 만남이었다. [996]
    • 라이프
    2016-09-12
  • 미라클골드- “정부지원금 없이 32년간 피땀 흘린 노력으로 지금의 동보산업을 만들었습니다”
    대구 달성군에서 건강보조기구(미라클골드)를 만드는 ㈜동보산업(http://www.dongbomiracle.co.kr) 이구선 대표. 그는 수족 냉증과 심한 변비, 허리 통증을 열과 복부운동의 힘을 병행하여 각종 질환을 치료하는 ‘붕어운동 건강전도사’다. _이진랑 기자 수족냉증 허리통증에 효과 만점인 붕어운동 붕어운동은 붕어가 꼬리를 흔들 듯이 허리를 좌우로 움직여 배 허릿살 등에 자극을 주며 운동한다고 해서 만들어진 민간요법이다. 이 대표는 붕어운동은 사람의 신체에 많은 변화를 준다며 미라클골드의 효능에 대해 설명했다. “사람의 몸 중에 머리와 함께 중요한 것이 바로 중추신경과 함께 척추라 할 수 있어요. 인간의 몸을 옆에서 봤을 때 S라인 형태를 갖추어야 상, 하 탄력과 좌, 우 근력을 골고루 유지할 수 있죠. 디스크 통증이라 함은 우리 몸에 중추신경이 척추뼈를 눌러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우리 몸을 좌, 우로 살랑살랑 흔들어 금붕어가 헤엄치듯 운동해 주면 신경과 근육이 동시에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일본 의학박사 와타나베 쇼 교수의 스승인 ‘니시의학’의 창시자 니시 가츠조로부터 니시의학을 전수받아 일본 및 국내에서도 상당한 활동 중입니다. ‘니시의학’ 책에는 ‘6대 운동법칙’에 대해 소개되어있는데 그 중에 제일 중요한 하나가 바로 붕어운동입니다.” 실패를 이겨내고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의 결과물 ‘미라클골드’ 이 대표가 붕어운동법과 원적외선을 이용해 온열 족욕 찜질기를 개발하게 된 것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고. 충북 괴산 출신인 그는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초등학교도 마치기 전에 일찌감치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으로 내려가 금형 기술을 배워 일을 시작했어요. 일찍이 10대부터 일을 시작해 15년간 피땀 흘리며 악착같이 모은 돈을 투자해 1984년 대구에서 정밀금형 공장을 설립했죠. 많은 노력 끝에 얻은 공장이기에 너무나 기뻤습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앞만 보며 달렸던 그라 정작 자신의 몸을 돌아보지 못했다. 일중독에 빠진 사이 몸은 엉망진창이 돼 버린 것이다. 공장에서 함께 일한 이 대표의 아내 역시 발바닥이 갈라지고 피가 나기 일쑤였다. 많은 질환으로 고통 받던 그는 어릴 적 손발과 배가 차면 따뜻한 수건으로 찜질을 해주던 할머니가 떠올랐다고. 복부를 흔들면 위, 대장, 소장 등의 운동을 촉진해 각종 장기와 관련된 질환의 예방 치료법이 된다는걸 깨달은 이 대표. 이러한 민간요법을 착안하여 5년간 연구 끝에 1993년 미라클골드의 전신인 ‘미라클 자연건강기’를 개발했다. “6개월 이상 꾸준히 사용한 결과 배에 가스가 줄고 허리 통증이 수그러들면서 점차 치유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후 놀랍게도 변비와 수족 냉증도 사라지며 아내의 건강도 함께 되찾았습니다.” 이 대표는 정밀금형 전문가답게 제품 완성도를 위해 32개의 부품을 전문 공장에 하청을 주며 꼼꼼하게 공정을 거쳤다.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대기업 제품 못지않게 표면처리는 물론 내부까지도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 대표. 부품 하나하나에도 많은 노력을 기여하기에 어디에 내놔도 자신 있다고 말했다. “저희 제품은 1993년 ‘100세 건강법’의 저자인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허정 박사로부터 질병예방 치료가 가능한 건강기구를 입증하는 추천서를 받았어요. 2005년부터는 중국에 수출을 하며 해외시장에 뛰어들었죠. 그리고 1998년에는 대구한의대학교 부속 대구한방병원에서 82% 치유 효과 적합판정에이어 2003년 세계 최초 국내 유일 족욕 붕어 운동기기 특허를 받았습니다.” 또한 이 대표는 누워서 양말을 신은 채 복부 허리 운동과 족욕에 가장 적합한 42℃로 족욕을 즐길 수 있다며 무선 리모컨으로 원하는 속도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현재 국내 중소기업인들이 힘든 상황에 처해있어요, 소비자들이 국내 제품을 많이 이용해 주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국내 사업을 살리고 싶어 장인정신을 가지고 오로지 한길만을 걸어온 이구선 대표.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여 업계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인정받길 기대한다. [996]
    • 경제
    2016-09-12
  • ‘맛’있는 요리와 술 한 잔으로 - 일상의 무게를 털어내는 곳, 우마이찬!
    부산의 숨은 맛집을 찾던 중 알게 된 사하구 당리동에 자리한 수제숯불꼬치전문점 우마이찬. 우마이, 일본어로 ‘맛있다’를 뜻하는 말로 ‘맛’에 자신 있다는 무뚝뚝한 사장님이 건네는 요리와 술 한 잔은 퇴근길 지친 당신의 발걸음을 머무르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_배진희 기자 깔끔한 흰색 간판과 작은 가게가 뿜어내는 은은한 불빛이 이상하게 마음을 끈다. 안으로 들어서니 일반적인 일본 선술집 분위기와 더불어 스멀스멀 ‘덕후스러움’이 느껴진다. 벽 곳곳에 자리한 만화 ‘원피스’ 피규어와 그림이 그 원인. “다른 가맹점이 오픈할 때도 매장에 둘 그림이나 피규어들을 하나씩 선물하죠(웃음).” 우마이찬은 과묵한 김재찬 대표의 정성 어린 요리와 함께, 그의 개성도 함께 묻어나는 공간이다. 외식업 경력 15년 차를 자랑하는 김재찬 대표는 일식과 한식 경력을 두루 갖춘 베테랑. 5년 전부터는 일식에 더욱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 후 남포동에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자카야에서 일하며 그 규모에 비해 낮은 수익률과 요리에 많은 정성을 쏟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3년 전 부산 당리동에 정성이 담긴 요리를 건네는 가게 우마이찬을 개업했다. “저희는 공장에서 꼬치를 꽂아 대량으로 납품받는 방식이 아닌, 당일에 쓸 요리 재료를 직접 준비하고, 당일에 소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료의 신선도가 높아 맛이 좋죠.” 또한, 작은 규모에 3명이나 되는 직원들은 아르바이트 개념이 아니라 추후 독립해 가게를 차릴 예비 사장이거나 책임이 주어지는 자리라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한다. 그렇기에 미식가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전문가가 직접 숯불로 구어 건네는 꼬치구이라 맛이 일품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추천 메뉴를 소개해달라는 말과 함께 넌지시 꼬치구이겠지 생각했지만 김재찬 대표의 대답은 달랐다. “모든 메뉴가 추천 메뉴인 것 같아요. 전부 맛있다고 자신하거든요. 그래도 조금 얘기하자면 생연어사시미의 경우 다른 곳에도 일반적으로 있는 메뉴지만 크래커와 휘핑크림이 같이 나가 우마이찬을 찾는 여성 손님들 사이에 특히 인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 “무뚝뚝한 저와 다르게 제 아내는 손님들에게 친절해 친밀감이 생기면서 손님들이 저희와 같이 한 잔 하자, 같이 먹자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친구같이 동생같이 지내는 사람도 늘어났죠.” 별도의 홍보도 없이 평일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조용히 드나들면서 맛과 분위기가 좋아 단골이 늘어나고, 입소문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는 우마이찬. 가맹점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해 현재 부산 당리동 본점과 사상, 괴정 그리고 진주에 가맹점을 두고 있다. 새로운 곳에 우마이찬을 개업할 예비 사장들은 당리동 본점에서 교육을 받고, 가게가 오픈하면 교육담당 직원이 함께 붙어 자리를 잡게 돕는다. 다른 가맹점에 방문한 손님들의 블로그나 SNS에 올라온 음식 사진을 확인하며 잘못된 매뉴얼을 바로잡기도 한다는 김 대표는 손님들이 우마이찬의 요리를 맛있게 먹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과 우마이찬을 믿고 가게를 오픈한 가맹점이 잘 되면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맛있는 음식으로 우마이찬을 찾는 손님에게 좋은 요리를 대접하고, 서로가 잘 되는 시스템으로 가맹점이 더욱 잘 됐으면 한다는 김재찬 대표. “일단 와서 저희 음식을 드셔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맛’에는 자신 있거든요(웃음).” 오늘 하루 맛있는 요리와 술 한 잔이 생각난다면 우마이찬으로 발걸음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996]
    • 맛집탐방
    2016-09-12
  • 추리에 입힌 색다른 스토리, ‘이스케이프 헤라’ “젊은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죠”
    유행처럼 생긴 방 탈출카페. 추리만화 혹은 영화 속 상황을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재현해 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남녀노소 모두가 할 수 있는 ‘놀이’로 주목받고 있다. 세대를 아우르는 놀이로 현재는 전국의 방 탈출카페를 찾아다니는 마니아층까지 생긴 상태. 그러나 비슷비슷한 테마와 스토리, 그리고 결과를 알고 난 후 다시 한 번 발길을 돌리기가 어려워 지속적인 흥미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 그런 이유로 다시 찾지 않는 분들이라면 부산 사상에 새로이 선보이는 ‘이스케이프 헤라’를 추천한다. 단순하게 추리 공간을 재현해내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스토리와 테마로 어디서도 만나지 못한 미션을 통해 방 탈출 마니아들도 다시 찾게 만드는 독창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스케이프 헤라. 무료한 일상에 갈 곳 잃은 당신을 위한 곳이 바로 여기다. _박지영 기자 부산최대규모의 방 탈출카페가 새로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간 ‘이스케이프 헤라’. 그곳에는 오랜 시간 우정을 쌓아온 3명의 대표가 있었다. 이제 곧 마흔, 각자 본업이 있는데다 친구끼리는 더욱이 동업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음에도 같이 본업 이외 다소 이질적인 ‘방 탈출카페’를 오픈하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본업인 인테리어 일로 방 탈출카페 시공을 맡았던 것이 계기였어요. 재밌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끼리 해보자 그렇게 된 거죠.” 추진력 하나는 끝내주는 3인방. 그대로 시공부터 하나하나 본인들의 손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아니라 ‘우리 기술’로 제대로 만들어보자고 다짐했기에 준비하는 데만 꼬박 4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8월 1일, ‘이스케이프 헤라’의 문을 열었다. 기초가 튼튼한 부산최대규모 다양한 테마와 자체 스토리 독창성 있는 문제로 추리의 재미까지 유행처럼 번진 방 탈출카페의 흥행으로 우후죽순 생겨난 방 탈출카페. 수많은 방 탈출카페 중에서 이스케이프 헤라가 눈에 띄었던 건 비교할 수 없는 규모다. 보통 5개 방으로 구성되어있는 것에 반해 이스케이프 헤라에는 총 10개의 테마방이 존재한다. 기본적인 폐교 테마 이외 녹음실, 바(bar), 면접, 천사와 악마의 방 등 무서운 테마와 24금 자극적인 테마를 포함해 다양한 배경으로 구성되어 비슷비슷한 프랜차이즈 방 탈출카페와 비교된다. 3명의 대표가 만들고자 했던 것은 ‘우리 기술’로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테마와 스토리를 가진 방 탈출카페였기에 방 테마, 스토리, 추리문제까지 자체적으로 개발해 ‘독창성’에 무게를 두었다. “자본을 들여 오랜 시간 개발한 외국 프랜차이즈 방 탈출카페와 경쟁해야 했기에 ‘퀄리티’에서 가장 신경이 쓰였죠. 그래서 다른 곳엔 없는 테마,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스토리와 참신한 추리문제로 우리만의 경쟁력을 갖추려 노력했어요.” 오픈한 지 이제 한 달을 갓 넘겼지만 이미 많은 방 탈출카페 마니아들이 다녀가 호평을 남겼다. 신선한 스토리는 물론, 스토리 속 추리문제까지 꼼꼼하게 신경 써 문제를 풀어가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었다고. 이스케이프 헤라가 특별한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대결 시스템’이 바로 그것. “10개의 테마 중에 3개의 테마는 팀을 나누어 다른 곳에서 출발해 중간에서 만나 탈출하는 대결 시스템이에요. 일행끼리 할 수도 있고 낯선 타인과 함께 할 수도 있어요. 하다보면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겠죠?(웃음)” 지속적인 시나리오 리뉴얼로 젊은이들에게 즐거운 공간이 되었으면 한국 정서를 담은 테마로 해외진출도 꿈 꿔 3명의 대표가 이스케이프 헤라의 문을 연 가장 큰 동기는 ‘젊은이들이 즐길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참 힘들잖아요. 취업이다 뭐다 점점 어렵기만 하니. 그런 젊은 친구들에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특히나 이곳 사상은 특별히 놀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젊은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술집밖에 없죠. 우리 셋의 놀이터였던 사상에 젊은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싶었죠.” 서면, 남포동 등과 같은 부산의 번화가가 아니라 사상을 택한 것도 바로 이 때문. 상대적으로 적은 유동인구로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진 않지만 부산 인근 도시 손님들의 방문도 꽤 많은 편. 이제 시작이지만 손님의 많고 적음보다는 지속적인 발걸음을 위해 시나리오 구상에 더욱 주력할 예정이라 한다. “방 탈출카페의 특성상 체험한 테마는 더 이상 찾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찾아 놀다갈 수 있도록 시나리오 구상에 투자할 계획이에요. 6개월마다 전체 테마를 바꿔야하기 때문에 참 갈 길이 멀어요.(웃음)”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그들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젊은이들의 역사인식이 많은 화제가 되었잖아요. 그래서 우리 역사를 배경으로 한 시나리오를 통해 역사인식도 심어주고 더불어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컨텐츠로 해외진출도 해보고 싶어요. 방 탈출카페가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문화긴 하지만 저희만의 ‘독창성’으로 승부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웃음)” 이스케이프 헤라를 다녀온 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제야 기사가 나가는 것은 3명의 대표가 부탁한 특별한 ‘사진’ 때문. 이스케이프 헤라의 시작을 함께한 모든 직원과 함께 찍은 사진을 꼭 같이 싣고 싶다는 것. 이스케이프 헤라 개국공신들이라며 인터뷰 중간 중간 직원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던 3명의 대표. 함께 걸어가는 그 길은 늘 꽃길이기를. [996]
    • 라이프
    2016-09-12
  • 제게 창작은 기록하지 못했던 나의 일기를 대신하는 흔적
    전귀련 작가는 동아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창원대학교 경영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실력파 작가다. 2016년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기획초대 개인전을 비롯한 21회의 개인전과 국내외 초대단체전 250회를 연 그녀는 왕성한 작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렇듯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다양한 역할을 해오고 있는 그녀는 투철한 작가 정신을 실천해온 열정적인 인물이다. “현대 미술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표현기법이나 형식으로 작가의 상상을 작품에 담아내는 방식을 요구하고 있죠. 저는 이를 받아드리면서도 그림을 단순히 그린다는 행위적 개념을 떠나 또 다른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언어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붓과 함께한 긴 시간, 나의 삶, 나의 인생, 강물처럼 흘려버린 숱한 지난 시간들, 고독과 외로움의 긴 터널, 그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 나를 행복하게 했던 아름다운 순간들. 나에게 있어서 창작은 기록하지 못했던 나의 일기를 대신하는 흔적과 같아요. 그래서 제 작품은 희로애락을 다 담고 있어요.” 그녀의 작품세계는 「Flying-아름다운 날의」 시리즈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그녀는 이를 통해 대중들에게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하는 것. “날아오르고 싶은 열정적인 마음을 ‘Flying-아름다운 날의’란 제목으로 표현했어요. 그리고 삶에 대한 아름다움으로 하나씩 부제를 붙여 나갔고, 그게 하나의 시리즈가 된 거죠. 계절의 아름다움을 색감으로 표현하면서 작품을 완성해나갔어요.” 이렇듯 다양한 작품을 통해 전귀련 작가는 행복의 언어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좋은 작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그녀는 늦은밤이 되도록 작업실을 떠나지 않는다. 30년 넘게 작품 활동을 해왔지만 작가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그녀의 열정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작품 하나하나는 보는 이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그녀의 그림을 오랫동안 응시하며 빠져드는 매력을 느끼는 이유다. 최근 경남 창원시 의창구는 경남예술나눔작가회와 의창아트갤러리 전시운영 협약을 체결했다. 재능기부, 봉사활동에 뜻을 함께한 작가들의 모임인 경남예술나눔작가회는 이번 협약을 통해 지역의 문화예술 저변 확대를 위한 많은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렇게 건강한 움직임의 중심에는 투철한 작가 정신을 실천하며 노력해온 사람, 전귀련 회장이 있다. 이에 주간인물은 지치지 않는 열정을 지닌 작가, 전귀련 회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김정은 기자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전시요청이 들어오고 있어 짬을 내기 힘든 와중에도 전 작가는 경남예술나눔작가회 회장으로서 많은 작가들에게 활동의 장을 마련해주려 애쓰고 있다. “저는 어려운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아요. 예술의 벽을 허물어 친숙하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으로 작업을 하죠. 그래서 그림을 보는 이들이 정신적인 즐거움을 느끼고, 이를 통해 힐링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앞으로 대중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웃음).” 대중들에게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따뜻한 작가, 전귀련 작가와의 행복한 동행이었다. 제주도 마을 벽화사업을 위해 전귀련 작가와 선후배 작가들은 7박8일 동안 마을에 머물면서 마을 전체에 벽화 작업을 했다. 이외에도 거제 이수도 섬마을 전체에 벽화조성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3m 대형 벽화작업, 2층 난간 작업 등 고된 작업이 많았음에도 그녀는 “재능기부를 통해 이웃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보람됐다”고 회고했다. 동아대학교 대학원 미술학 석사졸업 논문; 간접회화를 통한 작품 표현 연구 개인전21회, 단체전·초대전 250여회 대한민국 신미술대전 추천작가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심사위원 창원. 부산미술 대전 심사위원역임 창신대학교 미술디자인학과 외래교수역임 국제 아시아 미술제 운영위원역임 한국미술협회 창원지부 이사 경남전업 미술작가협회 기획 및 정책위원 경남예술나눔작가회 회장 경남도미술협회 여성위원장 경남현대작가회 전시국장 약력 2015년 제20회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초대 개인전 2015년 제21회 압구정 세실아트홀 갤러리 기획초대 개인전 2014년 제19회 Artspool 상진미술관 초대 개인전 (창원) 2013년 제18회 통영미술제 초대 개인전 (통영) 2012년 제17회 더큰병원 숲갤러리 초대 개인전(창원) 카페갤러리 초대 개인전 2회(창원) 2011년 제16회 경남아트페어 부스 개인전(성산아트홀/창원) 제15회 단야디프국제아트페어 개인전(김제) 제14회 파타마병원갤러리 초대 개인전(창원) 2010년 제13회 경남전업작가 아트페어(성산아트홀/창원) 제12회 전귀련 판화 개인전(성산아트홀/창원) 제11회 영상갤러리 초대 개인전(울산) 2009년 제10회 경남전업작가 아트페어(성산아트홀/창원) 제09회 판화 개인전(석당갤러리/부산) 2008년 제08회 경남전업작가 아트페어(성산아트홀/창원) 제07회 대우백화점분수갤러리 초대 개인전(마산) 제06회 거제갤러리 초대 개인전(거제) 제05회 전귀련 개인전(대우갤러리/마산) 2007년 제04회 창원갤러리 초대 개인전(창원) 제03회 칭따오미술관 초대 개인전(중국 청도) 제02회 경남전업작가 아트페어(성산아트홀/창원) 2006년 제01회 경남전업작가 아트페어(성산아트홀/창원) [996]
    • 문화
    2016-09-12
  • 경북 경산의 유일한 여성 합창단, 경산문화원 ‘칼리오페 코러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홉 뮤즈의 우두머리 혹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자라는 뜻인 칼리오페. 경산지역 유일한 여성합창단인 ‘칼리오페 코러스’는 노래로 행복을 전하며 지역문화 행사와 봉사로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고 있다. 김문영 상임지휘자를 중심으로 추미정 단무장을 포함한 55명의 단원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아름다운 목소리로 곡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는 경산문화원 합창단 ‘칼리오페 코러스’. 정기연주회, 초정 연주회 및 각종 합창제와 대회를 통해 문화예술발전과 지역 홍보대사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그들을 만나보았다. _김정은 기자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졸업 대구가톨릭대학교 음악대학원 졸업 미국 L.A.S Univ. 음악대학원 졸업 (합창지휘 박사) 쉐퍼드 대학교 음악대학 합창지휘 전공 지도교수 역임 크리스마스 칸타타 ‘왕의 왕’ 출판 (호산나 출판사) 작곡발표회 2회 현재 대구 합창단 연합회 이사 경북 합창연합회 부회장 대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합창지휘전공 겸임교수 경산 사동중학교 음악교사 대구 부광교회 할렐루야 찬양대 지휘자 아너스 합창단 음악감독 겸 지휘자 경산 교육지원청 청소년 합창단 지휘자 경산문화원 칼리오페 코러스 지휘자 경산문화원 여성합창단 ‘칼리오페 코러스’의 탄생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교육과 문화가 발달된 중소도시 경북 경산. 이곳에 김문영 지휘자는 지역 내 유일한 여성 합창단인 ‘칼리오페 코러스’ 합창단을 창단했다. “오랫동안 음악을 하며 음악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노래를 사랑하고 숨겨진 재능이 있는 아마추어 집단을 모집해 합창단을 창단하고 싶었습니다.” 음악으로 지역사회의 문화 수준을 향상하며 배움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가르쳐주고 같이 공유하고 싶었다는 김문영 지휘자. 그는 경북 경산에 위치한 사동중학교 음악교사로 청소년들로 구성된 '경산교육지원청 청소년합창단'의 지휘와 전공자들로 구성된 '아너스 합창단'의 음악감독과 지휘자로 활동하며 경산지역의 합창단 활성화를 위해 여성합창단 모집을 결심하게 되었다. “2012년 초기 단원들은 경산고 학부모를 대상으로 창단했습니다. 학부모로 구성된 단원들은 모임에 어려움이 많아, 같은 해 10월 경산시 여성합창단을 모집하여 경산 ‘레이디 싱어즈’를 시작으로 ‘칼리오페 코러스’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좌측부터 서재건 단장(경산문화원 원장), 박혜민 반주자, 추미정 단무장> 김문영 지휘자와 55명의 뮤즈 ‘칼리오페 코러스’ ‘칼리오페 코러스’ 단원들은 주로 학부모와 워킹맘 들로 구성된 경산시에 거주하는 여성들로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으로 모였다. 하지만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초기에 힘든 점도 많았다고. “단원들이 처음 모였을 때 힘들긴 했습니다. 개개인이 가진 소리는 좋았지만 지휘자의 소리나 악보를 읽기에는 역부족이었죠. 하지만 매주 월요일 7시~9시까지 연습하며 특별한 사유 없이는 빠짐없이 모여 열심히 노력하고 연습했습니다. 이젠 서로 눈빛만 보고도 교감하며 제가 원하는 것을 읽어 냅니다.” 2년 동안 꾸준한 연습과 합창제 참가로 다져온 실력으로 그들은 2014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주최한 ‘제1회 대구합창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수준 높은 합창단이 많은 대회라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고 배운다는 입장으로 출전했는데 큰 성적을 거두게 되어 모두 기뻐했고 단원들에게 큰 활력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2015년 경상북도 독립운동 기념관에서 주최한 ‘경상북도 독립군가 부르기 경연대회’에서도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문화예술 발전과 더불어 지역 홍보대사의 역할이 인정되어 경산문화원 이사회의 결정으로 경산문화원 소속 합창단이 되었다. “경상도 특유의 억양과 색깔로 칼리오페 코러스만이 가질 수 있는 음악적인 개성을 입혀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무엇보다 창단 멤버 70%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연습하고 각자 위치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틈틈이 연습하는 것도 모자라 대회가 가까워오면 목요일도 추가로 모여 연습한다는 칼리오페 코러스. 그들의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은 ‘2016년 제 19회 전국 환경합창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대회는 대구광역시, (사)자연보호중앙연맹이 주최하고 GEM Singers 주관, 환경부, 대구광역시교육청 후원으로 매년 각지에서 2,000명 이상의 참여자들이 함께 하는 대규모 경연 대회로 공정하고 체계적인 평가로 명성이 높다. 칼리오페 코러스는 55명 모두 출전해 ‘초록별’과 ‘입맞춤’ 2개의 곡을 아름답게 소화했다. “단원들이 바쁜 일상에서도 성실히 연습하고 열의를 다했습니다. 환경대회의 성격에 맞는 소품을 만들고 율동도 창작해 한마음으로 매진했습니다.” 6월에 개최될 예정이었던 대회가 8월로 연기되면서 단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긴 했지만 다시 마음을 모아 휴일과 휴가를 반납하며 연습에 매진했다고 전했다. “예술문화발전에 열의를 다해 지역문화발전의 홍보대사로 역할을 다 하겠습니다” “하나씩 배워간다는 마음으로 시작해 봉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연습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소리는 아니지만 모두가 하나로 뭉쳐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우리 합창단은 사회적 나눔을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감동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갈수록 개인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더불어 함께할 수 있는 합창 하모니의 중요성을 알리며, 2016년부터 공개 오디션을 거쳐 수시로 단원을 모집하고 전국 대회에 출전하여 문화발전과 지역 홍보대사로 열의를 다하겠다는 칼리오페 코러스. 그들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전국으로 퍼지는 날이 기대되는 만남이었다. <경산문화원 합창단 칼리오페 코러스> 2012. 05 경산고 어머니합창단 창단 2012. 10 경산시 여성합창단 재창단 (경산 레이디 싱어즈) 2013. 05 제 1회 경산시 합창축제 (경산시민회관) 2013. 08 제 1회 경산교육가족 합창제 (영남대/천마아트센터 챔버홀) 2013. 10 울진고등학교 연주회 (울진고/강당) 2013. 11 대구합창연합회 대합창제 (대구문화예술회관/팔공홀) 2013. 12 제 1회 창단연주회 ‘그 해 겨울’ (영남대/천마아트센터 챔버홀) 2014. 06 청소년 오케스트라 협연 합창 (영남대/천마아트센터 그랜드홀) 2014. 06 제 8회 아너스 합창단 정기연주회 특별출연 (영남대/천마아트센터 그랜드홀) 2014. 10 대구연합합창제 출연 (대구문화회관/팔공홀) 2014. 11 경산 청소년합창단 정기연주회 특별출연 (영남대/천마아트센터 그랜드홀) 2014. 12 경산 수화문화예술제 오프닝 특별출연 (경산시민회관) 2014. 12 경북합창제 (구미문화예술회관) 2015. 09 경산문화원 소속 합창단 확정 2015. 10 경산문화원 여성합창단 ‘칼리오페 코러스’ 단원명 변경 2015. 11 제 9회 아너스 합창단 정기연주회 특별출연 (수성아트피아/용지홀) 2015. 11 경북합창제 (안동시민회관/대공연장) 2015. 12 경산 수화문화예술제 특별출연 (경산시민회관/대공연장) 2015. 12 제 2회 정기연주회 ‘그 해 겨울_두번째 이야기’ (영남대/천마아트센터 그랜드홀) 2015. 12 경산시립합창단 정기연주회 특별출연 (경산시민회관) 2016. 02 제 1회 칼리오페 코러스 단원모집 공개오디션 2016. 07 경산문화원 한여름 밤의 축제 수상이력 2014. 10 제1회 대구합창대회 ‘대상‘ (대구문화예술회관/팔공홀) 2015. 08 경산북도 독립군가부르기 경연대회 ‘대상’ (안동시민회관) 2015. 11 전국 새마을합창제 ‘장려상’ (구미문화예술회관/대공연장) 2016. 08 제 19회 전국 환경합창경연대회 ‘대상’ (대구문화예술회관) [996]
    • 문화
    2016-09-12
  • 지역 실정에 맞는 행사와 다양한 인프라 구축이 ‘MICE 산업의 성공 요인’
    경상남도와 창원시가 주최하고 한국자동차부품협회, 삼우인터내셔널의 주관으로 경남에서 처음 열린 자동차 대체부품전시회가 얼마 전 나흘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폐막했다. 자동차 업체 수 전국 2위인 경남에서 전 세계 자동차 부품 관련 업체들의 기술 교류의 장과 활로 개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열린 이번 전시회는 올해 첫해임에도 불구하고 5,800만 불의 실제 계약이 이루어지고 1억 3,000만 불의 상담 실적을 올렸다. 다년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실무진을 중심으로 이번 박람회를 이끈 (주)삼우인터내셔널. 이곳의 수장인 박재완 대표와 함께 ‘2016 창원국제자동차부품&산업박람회’를 돌아보고 MICE 산업 전반에 대한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았다. _정주연 기자 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s), 컨벤션(Convention), 이벤트와 전시(Events & Exhibition)의 머리글자를 딴 MICE 산업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 '굴뚝 없는 황금 산업'으로 불리며 새로운 산업 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각 지자체에서도 MICE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벌이고 있는데, 창원시 역시 창원컨벤션센터(CECO)를 넓히면서 MICE 산업 활성화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MICE 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역 실정에 맞는 행사와 그에 걸맞은 인프라 구축이 중요합니다.” 행사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적절한 인프라 구축까지 MICE 산업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적 물적 요인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박재완 대표. 그는 ‘국제조선해양산업전’을 비롯해 ‘국제표면처리박람회’, ‘대한민국국제보트쇼’와 이번 ‘창원국제자동차부품&산업박람회’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 다양한 전시&박람회를 총괄하며 실무에서 직접 발로 뛰어온 베테랑이다. 행사를 기획하고 이끌어가는 사람에 따라 그 행사의 성격이나 성공 여부가 달라지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이력은 가히 주목할 만하다. 올해 처음으로 개최되었지만 다양한 실질적 성과를 이뤄낸 ‘2016 창원국제자동차부품&산업박람회’의 이면에는 그를 비롯한 실무 경험이 풍부한 (주)삼우인터내셔널 직원들의 다양한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지방에서 처음 열린 부품 박람회 많은 어려움 딛고 실질적 성과로 가능성 입증해 자동차 애프터 마켓 시장은 해외에서는 규모나 시장성이 큰 편이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그 시장이 좁은 것이 사실. 여러 대내외적인 이유가 있는데 이번 ‘2016 창원국제자동차부품&산업박람회’를 주관한 (주)삼우인터내셔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지방에서는 처음 열리는 부품 박람회다 보니 업체 유치에 어려움이 좀 있었어요. 참가를 원하지만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실정이다 보니 참가를 결정하고도 다시 주저하는 경우가 있었죠.” 하지만 그들이 다년간 쌓아온 인프라와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하나의 외주도 없이 세미나, 바이어 초청, 투어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하며 (주)삼우인터내셔널은 또 하나의 시장 가능성을 입증했다. 10월에는 기계진흥회 수출상담회를 준비 중인데 이 역시 기계 산업이 많은 지역실정을 반영해 기획한 것이다. “자체적으로 전시회 및 박람회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MICE 산업이 지방에서도 성공적으로 자리 잡고 발전해가려면 지역과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장기적 관점을 갖고 성장해갈 수 있는 행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년에도 ‘창원국제자동차부품&산업박람회’를 이어갈 것을 밝힌 박재완 대표. 올해 많은 성과를 올린 수출상담회를 하루에서 이틀로 늘려 비즈니스적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 한편, 관람객들을 위한 다양한 부대행사를 통해 흥미적 요소를 가미할 것이라고 전했다. 부동산금융재테크박람회, 자동차부품&산업박람회, 각종 세미나와 학술회에 이르기까지 (주)삼우인터내셔널에서 진행한 행사는 어느 한 분야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결국 행사의 성공적 개최 여부는 그것을 이끌어가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경험이 많고 행사를 총괄하며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만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고객만족과 함께 실질적 성과를 이끌어내는 행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회사의 연혁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주)삼우인터내셔널의 박재완 대표를 비롯한 직원들의 추진력과 당당함은 그들의 풍부한 경험과 인프라에 바탕을 둔 것이다. 작지만 내실 있는 기업으로 창원을 넘어 경남의 대표 MICE Consulting 전문 기업으로 성장해가고 있는 (주)삼우인터내셔널. 침체된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지역민들에게 다채로운 행사를 선보일 그들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력 2006.03 ~ 2010.11 국제조선해양산업전 2007.01 ~ 2013.11 제1회~4회 국제표면처리박람회 2007.06 ~ 2013.12 제1회~7회 대한민국국제보트쇼 2009.01 ~ 2013.10 창원출산유아박람회 (매년 2회) 2010.03 ~ 2010.11 2010 경남건강의료박람회 2011.05 ~ 2012.12 2011~2012진주국제농업박람회 2015.01 ~ 2015.04 창원부동산금융재테크박람회 2016.02 ~ 2016.08 창원국제자동차부품&산업박람회 기타 국제초전도 저온공학회, 세계여성인권대회, 세계연극총회, PRADS행사, ASEAN+3과학영재행사, 한아시아지방정부경제컨퍼런스, 한-카타르 고위급회의, 사천항공우주 컨퍼런스, 창원국제자문단회의 및 세계지식컨퍼런스, 경상남도 투자유치설명회 2회, 2007년~2012년까지 코트라 해외바이어초청 수출상담회 김해 및 창원행사 등 대행 [996]
    • 경제
    2016-09-12
  • 꿈꾸는 조리기능장, 나이 들지 않는 청년으로 살다!
    ▶장록기 셰프는 “저에게 요리는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 더 자유로워지고자 정화를 하는 귀중한 기회이며 과정”이라며 그 의미를 전했다. 경영자로, 교수로, 컨설턴트로 명성을 얻고 있는 장록기 셰프는 조리계의 팔방미인이다. 경영학박사, 조리명인, 조리기능장의 영예를 안고도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다며 부끄러워하는 대가. 그 진솔한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_박미희 기자 ‘셰프님, 경력은 얼마나 되세요?’ 이 흔한 물음에 되돌아온 말. “실력은 보낸 세월이 아니라 얼마나 자신을 단련하고, 또 새로워지려고 노력했느냐에 달렸죠.” 우문현답. 그의 답에 기자는 무릎을 탁 쳤다! 역시 명불허전이랬다. 장록기 셰프는 조리계의 몇 안 되는 재원이다. 여전히 주방에서 일을 하는 그는 뜨거운 현역. 한국 조리계의 뛰어난 인재를 키워낸 명문 조리학교를 졸업하고 유명 호텔에서 일한 그는 수많은 국내외 명사들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벌서 강단에서 섰고, 30대에 이미 조리기능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경영학박사이기도 하다. ‘하루 24시간, 자는 시간 말고는 오로지 일과 새로운 도전을 준비한다’는 그는 부지런함이 몸에 배인 사람. 그래서 자신의 재능을 나눠주는 일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서라고. “예전에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맛이 부족하면, 냅킨에 레시피를 적어주고 나왔어요. 조금만 고치면 이 사장님도 잘 될 수 있을 텐데……. 돕고 싶은 마음에서요(웃음). 어느 날 그런 절 보던 선배가 따끔한 조언을 하더군요. ‘어렵게 조리기능장을 따서 그 노하우를 그렇게 쉽게 알려주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을 것’이란 말에 눈이 번쩍 뜨였어요. 그래서 정말 남을 돕고 싶다면 그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그는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창업·경영지원 컨설턴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생계를 걸고 열심히 일하는 소상공인들에게 따뜻한 힘이 되고 싶었던 것. 메뉴 컨설팅부터 고객 상담, 서비스 교육, 경영 컨설팅까지 다방면의 분야에 폭 넓은 실무 경험을 지닌 그의 조언은 소상공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생계가 걸린 일. 그러니 그는 더욱 신중하고 정확한 조언을 할 수 밖에 없단다. 이런 그의 실력과 마음가짐은 많은 업장을 성공시키는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소상공인진흥원 「06년 자영업 컨설팅 경진대회 은상」, 「08년도 자영업컨설팅 우수사례」에 선정되기도 했다. “고사에 忠言逆耳利於行 良藥苦口利於病(충언역이이어행 양약고구이어병)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인 즉 ‘본래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동하는 데는 좋은 것이며, 병을 고치는 약은 입에는 쓰나 병을 고치는데 이롭다’라는 뜻이에요. 충언(忠言)은 신하가 목숨을 걸고 왕에게 함께 잘되자고 간청하는 진언인데, 우리는 살아온 타성에 젖어 미리 상대가 전하고자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답을 내립니다. 금방 기분 상하고,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해요. 경험 많은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에요. 나도 잘 아니까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하죠. 하지만 오너에게 바른 말을 하지 못하면 그건 제대로 된 컨설팅을 한다고 말할 수 없어요.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다’는 말처럼, 당장은 듣기 어려워도 훗날 업장이 성공할 수 있다면 언제든 바른 말을 할 수 있어야죠. 그게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그는 열정을 갖고 강단에 선다. 영산대학교, 동의대학교, 경성대학교, 부산여자대학교, 부산정보대학교, 마산대학교, 계명문화대학교, 대구보건대학교 외래 및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부산조리고, 부산정보관광고에서 산업체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 아이들은 눈빛부터가 다르죠. 학생들에게 삼촌처럼, 때론 친한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다가가려고 해요. 꿈을 지닌 청년들이 꿈을 이룰 수 있게 돕는 게 제 꿈이에요(웃음).” 학생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는 그의 꿈은 강단에서 계속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순간은 역시 주방에서 요리를 할 때다.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프렌치레스토랑 ‘라씨에뜨’는 그가 각별한 애정을 갖는 곳이다. 작은 규모의 레스토랑이지만 이름만 들어도 아는 명사들이 사랑하는 숨은 맛집으로 유명하다. 소박하지만 품격 있는 요리로 깊은 감동을 주는 것. 30년을 넘게 요리를 해왔지만, 손님에게 디쉬를 내가는 순간만큼은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장록기 셰프. 그는 열정을 지닌 뜨거운 현역이었다. “오늘이 있기까지 수없이 담금질해야하는 순간도 많았어요. 뒤돌아보면 제게 있었던 고난과 시련도 모두 성숙을 위한 아름다운 과정이더라고요. 기술인, 기능인, 운동선수,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에요. 누구든 진심갈력해 갈고 닦으면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꼭 주어집니다. 기능은 속일 수 없어요. 자신이 노력한 만큼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얼마나 했느냐’고 물으면 머뭇거려져요. 20년, 30년 세월만 보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많은 시간 동안 최고의 기능을 연마했다면 덕(德)의 깊이라도 있을게 아니냐’고 제게 되묻는 것 같아서요. 그저 본능으로만 살아온 제 모습이 부끄러워져요. 그런 점에서 아직도 저는 부족한 게 많아요. 앞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저를 채워가야죠.”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다며 부끄러워하는 대가. 그 진솔한 모습에 내일을 준비하는 청년의 모습이 보이는 건 왜 일까. 청년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는 장록기 셰프, 따뜻한 그와 행복한 동행이었다. 소상공인진흥원 창업 및 경영지원 컨설턴트 영산대학교 서양조리학과 겸임교수 [996]
    • 맛집탐방
    2016-09-12
  • “각 분야의 외식전문가들과 함께 다양한 외식브랜드 선보이고파”
    2016년 상반기 TV를 가득채운 쿡방(Cooking+방송이 합쳐진 신조어, 요리하는 방송) 열풍과 젊은이들 사이 새로운 여행 컨셉으로 자리 잡은 맛집 여행까지. 음식은 이제 그자체로 즐거움이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또한 하나의 취미가 되었고 제대로 된 한 끼를 위해 어떤 대가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만큼 입맛의 기준도 높아졌으며 맛있는 음식에 대한 잣대도 까다로워졌다. 더 이상 흉내 낸 맛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시대가 온 것. 이에 맞춰 주간인물 역시 소개할만한 음식점을 찾는 데 공을 들였다. 최근 포항에서 제대로 된 태국음식을 선보이는 데가 있다고 하여 찾아간 리틀타이키친. 맛있는 음식을 찾으러 간 그곳에서 뜻밖의 맛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_박지영 기자 청년창업가, 여행을 통해 먹는 즐거움을 배우다 20살 대학을 중퇴하고 컴퓨터 관련 일을 하며 부산에서 PC방을 창업한 강경우 대표. 멋모르고 시작한 첫 사업이 그러하듯 쓰디쓴 실패의 맛을 보았다. “2009년쯤이었을 거 에요. 한창 PC방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때죠. 젊은 나이에 시작해 ‘경영’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죠. 더 좋은 시설을 갖춘 PC방이 생겨나면 그에 맞춰 리모델링과 업데이트로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제가 따라가지 못한 거죠.” 그렇게 3년 동안 운영하던 PC방 문을 닫게 되었고 3년의 노력은 빚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친한 선배 덕에 서면의 한 휴대폰 매장에서 근무하며 낮에는 영업을 하고 밤에는 떡볶이, 우동 등 분식을 팔며 빚을 갚아나갔다. 빚을 갚고 수중에 있던 건 돈 100만원과 중고 자동차 한 대.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포항으로 향했다. “운 좋게 포항에서 매장 하나를 맡게 됐어요. 그렇게 1년 반을 꼬박 일해서 경주시내에 작은 휴대폰 매장을 하나 오픈했죠.” 여기까지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다 그는 외식경영의 길로 들어서게 된 걸까. “하하. 제가 다른 분들처럼 외식경영의 정도를 걸어오진 않았어요. 정말 엉뚱한 계기였죠.” 자유로운 성격에 세계 각국으로 여행을 즐기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며 자연스럽게 함께 한 새로운 취미 ‘여행’. 같이 여행하는 과정에서 먹은 음식들이 그가 외식경영을 하게 된 계기였다. “휴가를 이용해 가까운 나라부터 여행을 하기 시작했어요. 생각보다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 꽤 많더라구요. 싱가폴의 칠리크랩, 말레이시아의 사떼 등 한국인의 입맛에도 맛있는 음식들이 많아요. 직접 먹어보면서 생각했죠. 언젠가 한국에서 선보여도 좋지 않을까 하고요.” 그 찰나의 생각은 우연이라면 우연, 운명이라면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미묘한 계기가 되어 그를 외식경영자의 길로 안내했다. 태국 식재료로 선보이는 진짜 태국음식, ‘리틀타이키친’ 고급형 레스토랑과 일반 중소음식점으로 다양하게 선보이고 싶어 막연히 생각만 하던 차에 친형의 제안으로 부산에서 태국음식점을 열었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외식경영 초보가 겪었던 어려움은 다소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해운대 백사장과 마린시티에 있는 매장을 관리하면서 ‘직원관리’에 버거움을 느낀 것. “매장의 규모가 커질수록 인력을 관리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인력 수급 문제에다 주방과의 트러블까지. 가족과 떨어져 1년을 홀로 부산에서 일했는데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문을 닫은 첫 가게. 마음을 추스르고 작년 4월 포항에 다시금 문을 열었다. “가장이니까.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제일 컸죠. 실패한 이유들을 곱씹어 가족이 있는 포항에서 다시 시작했어요. 한번 해보니까 이제 조금 알 거 같더라구요.” 외식경영에서 뼈저리게 느꼈던 ‘사람’의 중요성. 이 때문에 그는 가장 믿을만한 오랜 친구와 ‘리틀타이키친’의 문을 열었다. 태생이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 강경우 대표. 요행을 부릴 줄 몰라 직접 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배웠다. 그렇게 나온 리틀타이키친만의 레시피는 한국에 거주중인 태국인들의 입맛도 강한 향신료의 향을 꺼리는 한국인들의 입맛도 모두 만족시켰다. 레시피에도 고스란히 드러난 그의 성격. 타 태국음식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임에도 태국에서 사용되는 식재료로, 수입되지 않는 재료는 직접 공수해올 정도로 태국음식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데 공을 들였다. 자잘하게 사용되는 소스도 편한 시판용 대신 리틀타이키친에서 직접 만들어진 것으로 내놓는다. 그래서 한국에 거주중인 태국인들도 고향의 맛을 느끼기 위해 종종 찾는다고. 또한 적당한 퓨전식 레시피로 향신료에 민감한 한국인들도 이국적인 향이지만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 리틀타이키친이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맛 이외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로 쉬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늘 마음을 비우려 노력해요. 여러 사업을 해봤지만 돈에 메이니 저 스스로 너무 스트레스더라구요. 이 일을 시작하면서 거의 10kg이 빠졌을 정도니 어마어마하죠? 그래서 마음가짐을 바로잡는 데만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욕심을 버리고 언젠간 알아주시겠지 묵묵히 ‘맛’에만 신경 쓰자고.” 조금씩 외식경영자로서의 자세를 갖춰가며 리틀타이키친도 체계를 잡아가고 있다. 앞으로 고급형 레스토랑 가맹과 소자본 창업 두 방향으로 전국에 리틀타이키친을 선보이는 것이 당장의 목표. “다양한 창업주들의 니즈와 상황을 고려해 고급형과 소자본형으로 리틀타이키친의 다양함을 표현하고 싶어요. 현재 대구 앞산순환로에 고급레스토랑인 죠이뱅콕을 오픈했고 본격적인 체인사업을 위해 인테리어팀도 꾸려놨습니다. 이제는 보여줄 일만 남았죠.” 각 분야 외식 전문가들과 함께 협동조합 형식의 순수 FnB 사업을 통해 다양한 외식 브랜드 선보이고파 초보 외식경영자 강경우 대표. 그는 리틀타이키친을 통해 진정한 외식경영자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리틀타이키친 및 죠이뱅콕의 모든 음식은 나와 가족이 먹는다고 생각하며 조리에 정성을 들이고 있어요. 가족에게도 자신 있게 선보이며 믿을 수 있는 먹거리, 믿고 드실 수 있는 레스토랑이 되고 싶습니다.” 리틀타이키친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외식경영자로서의 삶. 다양한 사업을 통한 노하우와 실패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마음가짐부터 새로이 다진 그는 앞으로 다양한 변신을 예고 중이다. 엉뚱한 계기로 들어선 외식경영자의 길이지만 이제는 뚜렷한 목표까지 생겼다고. “주변의 여러 분야 외식경영자들과 함께 가맹사업을 하고 싶어요. 세계에는 참 맛있는 음식들이 많아요. 그 모든 것을 제가 다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혼자서 모든 외식분야를 선보인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죠. 그래서 제 주변에 있는 여러 분야의 외식전문인분들과 협력하여 협동조합의 형태든 FnB 사업의 형태든 순수한 협업을 바탕으로 가맹사업을 해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서울에 5개의 매장을 여는 것이 목표라고. “외식업 분야에 대단한 분들이 워낙 많지만 저는 홍석천씨가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창업초기부터 하나씩 일구어 내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한 거리가 홍석천씨의 거리란 말까지 있잖아요. 마음속에 그분을 라이벌로 정해두었어요. 언젠가 제대로 붙어보는 날을 기대하며 준비하려구요.” 먹는 즐거움을 있는 그대로 음식에 표현하는 강경우 대표. 솔직한 그의 음식만큼이나 진솔한 인터뷰로 제대로 된 한 끼를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언젠가 그의 이름이 믿고 먹는 음식의 대표로 성장하는 그날까지 그의 행보를 주간인물이 주목한다. [996]
    • 맛집탐방
    2016-09-12
  • 류재학 국제라이온스협회 355-C(대구)지구 34대 총재 | ㈜화성철강산업 대표이사
    영국의 위대한 지도자 윈스턴 처칠은 “우리는 일함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간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라이온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평화와 박애 정신은 인도주의적 봉사정신으로 결속된 국제라이온스클럽 회원들이 세계 각국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근간을 이룬다. 주간인물은 기획특집으로 나눔을 통해 열매 맺는 삶의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대구지구 라이온스 류재학 전 총재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최수영 차장, 정연실 기자 “스마일 바이러스는 큰 힘을 갖게 하죠!” 헌신적인 봉사활동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생활 속 봉사의 향기가 묻어있는 온화한 미소를 지닌 류재학 전 총재.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인품과 부드러운 미소는 그와 인연을 맺어온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될 정도로 호평이 나 있다. 대구지구의 대표 라이온으로 숭고한 봉사정신을 확산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해온 그. 2008년 총재 취임 당시 ‘스마일 서비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현장을 직접 찾아 웃는 얼굴과 함께 따뜻하게 손을 잡는 현장 봉사를 추진해왔다. 류 전 총재는 임기 동안 과감한 추진력과 혁신적 리더십을 발휘해 ‘대구사랑합동봉사’로 추석 및 설날 전역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일만여 가족이 함께 하는 봉사를 추진하였으며 장애인 복지관 무료급식소 건립, 대구 전 지역 연탄 6만 장 보급사업, 독거노인 실버 카 400대 보급사업, 사랑의 집 수리, 지구 5층 대회의실 증축공사 등 많은 봉사의 흔적을 남겼다. 이는 지역 발전과 복지 향상에 기여했으며, 라이온스 가족이 지역사회에서 존경받고 자부심과 긍지를 갖도록 위상을 높이는데 주력하여 사회적 약자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봉사의 참 의미를 몸소 보여주며 현재까지 귀감이 되고 있다. 최선을 다하는 성실성은 삶에 대한 역량을 키워가는 원동력이 되다 경북 칠곡 동명면 송산리 출생으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류재학 전 총재. 가난을 이겨내려는 의지로 불철주야 일을 벗 삼아 일찍부터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동기간 우애를 위하여 희생하는 등 가족을 보살피는 일에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일 저일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근이 일찍 들었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죠(미소).” 어렵고 힘든 일에 봉착할 때마다 최선을 다하는 성실성은 누구보다도 내세울 수 있는 강한 무기였기에 힘든 현실을 노력으로 극복하며 삶에 대한 역량을 키워나간 원동력이 된 것이다. 주변에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일 없이 도와주고 싶어 했으며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것은 그의 일상이었다. 경로효친의 바탕 위에 그의 인간으로서의 됨됨이는 늘 주변 사람의 칭송을 받았다. IMF 금융위기를 극복한 뒤 봉사의 반열에 우뚝 서다 1990년 라이온스 회원이 되면서 그의 활동 범위는 더 넓어졌다. 1997년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트렸던 IMF 금융위기는 그 역시 피할 수없이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였으며, 힘겹게 이겨낸 것도 그의 노력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온스 클럽 회장 직을 권유받아 망설임 끝에 직책을 맡게 되었다. “제가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인데 당시 회장직을 맡기기 위해 새벽까지 저를 설득하러 오신 분들의 마음에 감동받았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저의 큰 지지자가 되었지만, 당시 아내는 이혼까지 불사하겠다며 엄포를 놓았죠.” 성실감, 책임감과 긍정적인 뚝심 하나로 클럽의 발전을 꾀한 공으로 그가 소속된 대붕클럽은 더욱더 활성화되었으며, 그의 인품과 성실 그리고 책임감으로 2002년 회장에 재임하며 클럽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드디어 2008년도 국제라이온스협회 355-C(대구)지구 제34대 총재에 당선되면서 지역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그는 지식보다는 사람의 도리, 인품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밝은 사회를 지향하는데 힘썼다. “돈이라는 것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돕고 복지에 신경 쓰면서 보람된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참 기쁨이고 행복이죠.” 재임 시절 대구지구 라이온스회관의 봉사회관 증축에 큰 기여 국제라이온스 대구지구에서 류재학 전 총재의 활약은 빛이 날 정도다. 대붕클럽 회장을 시작으로 등반대회 분과위원장, 제5지역 2지대위원장, 환경보호 직능부총재, 5지역 부총재, 환경개선 특별위원장, 봉사기금 특별위원장, 대구장학회재단 이사장, 대구 장애인복지관 운영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복지관 내 사자관 무료급식소 준공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2008년에는 국제라이온스 355C 대구지구의 34대 총재에 취임하여 지구회관의 봉사회관 증축에 큰 기여를 했다. “재임 시절 대구지구에서의 가장 큰 보람을 꼽으라면 2007년 대구 라이온스 동남아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발생한 잉여금과 건립기금 6억 2천만 원을 출연해 라이온스 회관 5층을 확장 건립한 것입니다. 그때 저는 대구지구 라이온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라이온스 봉사단체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일도 열정적으로 해내 2개의 자회사를 설립, 지금까지 철강업계에도 많은 기여를 하며 올해 성서공단에 2개의 자회사를 통합 확장을 위한 증축을 앞두고 있다. 욕심부리지 않고 채워지는 만큼 베풀어야 한다는 소명으로 류재학 전 총재는 더불어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좋은 기억을 남기고, 사람과의 원만한 인간관계를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주고 알아주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사람이다. 그래서 주변의 명망은 그에게 더욱더 잘해야 된다는 신뢰와 의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성공하는 일 뒤에는 누군가의 의지와 노력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현재도 지구산악회, 사자회 등 여러 단체를 통해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행사마다 참여함으로써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봉사는 혼자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부 일심동체로 그의 아내 또한 베푸는 것을 좋아해 부단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무슨 일이든 먼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채워지는 만큼 베풀어야 한다.”라며 베풀기를 생활화하고 있다. ‘진인사대천명’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한 후에 하늘의 명을 기다리는 겸손과 인품이 그의 후덕한 미소에서 풍기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고향인 동명 송산리 발전에도 많은 기여와 협조를 하고 있는 그. 고향의 밭농사, 감농사도 바쁜 시간을 쪼개 직접 하는 억척을 부리며 소박한 천심을 실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향한 그의 스마일 바이러스는 멈춤이 없다. [996]
    • 라이프
    2016-09-12
  • 양산지역 최초 커피바리스타 전문교육기관 -양산커피바리스타학원
    국내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커피. 또한 사람들과 만남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커피다. 바리스타는 이처럼 필수 기호식품이 된 커피를 다루는 전문가다. 한 잔의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지기까지 음료를 추출하고 손님에게 전달하는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게 바리스타 역할이다. 커피 문화가 날로 대중화되면서 그 중심에 선 바리스타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_이진랑 기자 바리스타란? 바리스타는 이탈리아어로 ‘바 안에서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 안에서 뭔가를 만든다는 말뜻만 보면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의 개념으로 쓰인다. 바리스타는 바 안에서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다. 더 정확하게는 추출되는 커피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사람을 뜻한다.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바리스타가 첫 번째로 하는 작업은 좋은 원두를 고르는 것. 이를 위해 커피 산지의 특성과 로스팅(roasting·생두를 볶는 과정) 상태를 항상 숙지해야 한다. 양산시에서 바리스타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하윤성 원장은 원두의 특성에 맞는 추출 방식을 결정하는 것도 바리스타의 몫이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핸드드립, 에스프레소 등 추출 방식에 따라 물의 양과 온도, 추출 시간 등을 조절해야 해요. 바리스타는 보통 완성된 커피를 직접 고객에게 전달하죠. 제조업이면서 동시에 서비스업 성격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리스타는 손님의 취향에 맞춰 커피를 추천하기도 하고 때로는 바에서 안부를 주고받는 등 ‘관계’를 맺기도 합니다.” 좋은 재료로 최상의 맛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는 요리사와 비슷하지만 고객과 대면 서비스가 필수라는 점에서는 와인 소믈리에와도 같다. 최근에는 바리스타들이 전문성을 더 겸비하기 위해 로스터(roaster·생두를 볶는 사람)나 커퍼(cupper·커피의 맛과 품질을 평가하는 사람) 업무까지도 한다고. 직접 로스팅을 하는 소규모 업체일수록 바리스타가 생두 구입부터 커피 서빙까지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커피의 맛을 내는 것부터 일관된 품질 관리까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카페의 전체적인 관리 업무도 바리스타의 영역에 속한다. “설거지와 청소는 기본이죠. 재고 조사와 원·부자재 관리는 물론 각종 사무를 챙겨야 해요.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라면 아르바이트 관리부터 판촉과 마케팅, 재무 관리, 보고서 작성 등의 업무도 수행해야 합니다. 개인 숍의 경우도 이런 업무 내용은 큰 틀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기초가 튼튼한 바리스타를 양성하고파 양산에 위치한 커피바리스타학원은 2011년도에 정식 학원으로 등록하여 운영 중에 있다. 일반적인 학원과는 다르게 실무위주로 카페를 운영한다는 하 원장. “본원은 양산지역 최초의 커피바리스타 전문 교육기관이에요. 수준별, 개별 교육을 통해 수료 후 취업, 창업을 통해 전문바리스타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기초부터 전문 과정까지 교육과정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학원 내부에 카페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수강생들이 직접 카페를 운영하면서 직접 고객과 대면할 수 있도록 하고, 고객들이 없을시 수강생들이 각자 역할 분담하여 카페운영을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한편 하 원장은 카페를 창업하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격증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지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페 창업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카페를 운영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이에 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으면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만큼 기초지식이 중요하죠. 레시피대로 커피만 만들면 된다는 마인드만 가지고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 원장은 바리스타는 서비스부터 제조까지 모든 걸 다 감당하기 때문에 내실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론이 기초가 되어 기술은 물론 친절한 서비스 마인드까지 갖추어야 그것이 참된 바리스타라고 말하는 하 원장. 그는 앞으로도 겸손한 마인드를 갖추고 이론을 바탕으로 기초가 튼튼한 바리스타를 양성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산커피바리스타학원이 앞으로 카페 창업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세계적인 바리스타를 양성하는 곳으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 Profile -부산경남정보대학교 호텔제과제빵과 겸임교수 -로스터리샵 커피가 있는 집 운영 -부산지방경찰청 교양과정 강의 -1388청소년 지원단 -SCRAK 로스팅과정 이수 -커피바리스타 출제위원(한국능력교육개발원) -커피바리스타 심사위원(한국능력교육개발원) -커피마스터 심사위원(한국능력교육개발원) -커피지도사(한국능력교육개발원) -커피마스터(한국능력교육개발원) -경남 바리스타 챔피언쉽 센서리 심사위원 -경남 라테아트 챔피언쉽 비쥬얼 심사위원 -2014 전국학생바리스타대회 심사위원 [996]
    • 교육
    2016-09-12
  • 예쁜 드레스 입고, 셀카로 인생사진 찍자-여자가 가장 아름다워지는 공간, 아그리나
    ▶ 권 대표는 “오픈 행사로, 드레스를 입고 남포동 일대의 시가행진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며 “앞으로 드레스 체험 카페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친구 사진 한장. 보는 순간 ‘심쿵’하게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은 친구 모습에 슬그머니 시샘이 난다. 한편으론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니 웨딩샵도 아닐 테고, 도대체 여긴 어디지?’하는 궁금증이 앞선다. 이곳이 바로 인생사진을 찍기 위해 부산까지 일부러 찾아온다는 그곳, 아그리나 드레스 체험 카페다. _박미희 기자 “웨딩드레스는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잖아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인생사진을 찍었다며 좋아하는 손님들을 보면 참 기뻐요.” 환하게 웃는 권레미 대표. 그녀가 부산 남포동에 문을 연 아그리나 드레스 체험 카페는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화제가 되고 있다. 이곳은 소정의 체험비만 내면, 음료 서비스는 물론 원하는 드레스를 입고 예쁜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친구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는 공간으로 SNS에서 화제인 이곳은 그녀의 꿈과 열정이 담긴 곳이다. “저도 고등학생 때 드레스 카페에서 친구들하고 재밌게 사진을 찍었던 추억이 있어요(웃음). 지금은 시간이 흘러 모두 없어졌지만, 그때의 추억이 다시 생각나더라고요. 드레스는 모든 여자들의 로망인데 사실 사진을 찍으러 웨딩샵을 찾기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부담 없이 편안하게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입고, 셀카를 찍을 수 있는 카페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드레스 관련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미국에서 드레스 관련 일을 했던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와 카페를 오픈했다. 이곳의 특징은 다양한 드레스를 뿐만 아니라 헤어, 메이크업을 셀프로 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드레스에 맞는 구두, 티아라와 액세서리까지 고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소정의 비용을 내면 디지털 카메라를 대여할 수 있고, 포토샵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손님들의 체형과 스타일에 맞는 다양한 드레스를 고르실 수 있으세요. 그리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고, 드레스를 입은 후에 스튜디오에서 셀카를 찍으세요. 시간제한이 없어서 원하시는 만큼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죠.” 드레스 셀렉을 돕는 일부터 피팅을 하고, 헤어장식을 올려주는 일까지 모두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없다. 예쁜 모습을 담을 수 있도록 사소한 것도 배려하는 모습이 살가운 언니 같다. 이런 진심이 통해서 일까. 이곳을 다녀간 손님들은 연일 호평일색이다. 다시는 없을 인생 사진을 찍었다는 사람부터, 웨딩 촬영 비용을 아껴 신혼여행을 좋은 곳으로 갔다는 신혼부부, 서로의 진짜 매력을 발견했다는 커플까지……. 이렇게 이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을 만드는 사람들을 볼 때 그녀는 행복하단다. “이곳에서 많은 분들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하는게 너무 좋아요. 요즘은 결혼을 많이 하지 않는 추세잖아요. 이곳에 오셔서 많은 커플들이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가족,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 오셔서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만드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 해외직구를 통해 새로운 드레스를 구매하고 새로운 포토존을 구성하고 어떻게 하면 손님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지 고민하는 날들. 그렇게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또 행복한 건 그녀를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제가 창업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보내주신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웃음).” [996]
    • 문화
    2016-09-12
  • 이재훈 라드커피 대표
    커피 산업이 성장하면서, 우후죽순 커피 브랜드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 중 경쟁력을 갖춘 프랜차이즈를 찾아보기란 상대적으로 어려운 일. 하지만 여기, 대전·충북에서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고 있는 라드커피는 눈여겨봐야할 브랜드다. _박미희 기자 “대전을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로 키워가고 싶어요!” “대전을 대표하는 브랜드, 젊은 바리스타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기업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환하게 웃는 이재훈 대표. 그가 만든 라드커피는 창업 2년 만에 대전 10개점 청주1개점으로 성장한 브랜드다. 가맹점 수보다,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와 뚜렷한 프랜차이즈 정책으로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커피 프랜차이즈 속에서 뚜렷한 경쟁을 갖춘 라드커피. 이 브랜드는 그의 꿈과 열정이 담겨있다. 이재훈 대표가 커피 산업에 뛰어든 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부터다. 바리스타, 로스터로 일하며 탄탄한 현장감각을 익혔고, 바리스타 자격증 심사위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전문성을 갖췄다. 그렇게 커피에 대한 열정으로 그가 라드커피를 오픈한 건 2014년. 대전의 번화가인 둔산동에 문을 열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반응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그땐 둔산동에 큰 규모의 개인 업장을 여는 게 참 무모해 보였나 봐요(웃음). 주변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만 수두룩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브랜드가 나아가야할 길에 뚜렷한 신념이 있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커피 전문점이 늘어나면서 커피에 집중하기 보다는 부수적인 것에 너무 치우친 곳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커피 전문점이라면 커피에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최고의 커피를 만드는 것은 다이아몬드를 다듬는 것과 같다는 생각으로 브랜딩을 했어요.” 'Like a Diamond'의 약자를 따 ‘라드(LAD)커피’로 이름을 지었다. ‘최고의 커피를 만드는 것은 다이아몬드를 다듬는 것과 같다’는 신념. 그 신념은 실력 있는 바리스타를 키우고, 다양한 선호를 만족시키는 색깔 있는 커피를 손님들에게 내놓는 일로 이어졌다. “커피는 그야말로 기호 식품이에요. 어떤 사람은 적절한 산미와 바디감 있는 커피를, 어떤 사람은 쓴맛이 도는 커피를 맛있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러니 여느 음식처럼 맛있다는 기준을 명확하게 정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다만 내 입맛에 잘 맞는 커피가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시작할 때부터 각기 다른 취향의 3가지의 커피를 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손님들의 반응이 참 좋았어요. 이렇게 좋은 커피를 내놓는 일도 결국 사람은 하는 일이기에, 사람을 키우는데 많은 노력을 들였어요. 그 당시, 30평 매장에 10명이 넘는 직원들이 함께 일했을 정도니까요. 그렇게 함께 시작한 직원들이 지금도 모두 함께 하고 있어요(웃음).” 테스트 매장으로 문을 연 1년. 그 반응은 뜨거웠다. 여기저기 가맹을 내달라는 문의가 쏟아졌지만, 그는 신중했다. 무분별하게 지점을 늘려 본사의 배를 불리기보다 점주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심한 것. “지금 프랜차이즈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가맹점을 늘려 본사만 배를 불리는 형국이에요. 하지만 저는 반대로 생각해봤어요. 지점이 잘되면 본사가 망하는 일은 결코 없지 않을까. 그래서 방향을 대형 프랜차이즈와 개인 매장의 중간 성격을 지향하는 것으로 잡았죠.” 대전에만 10개가 있는 라드커피는 색깔이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어느 점에는 요리를 내놓는 곳이 있는가하면, 다른 지점에 없는 독창적인 음료를 내놓는 곳도 있다. 라드커피를 상징하는 로고의 색깔, 인테리어와 분위기도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라드커피!’라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공통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 프랜차이즈의 획일화된 모습에 질려 개인 업장만을 찾는 손님들에게는 반갑고, 또 체계적인 서비스와 퀄리티있는 커피를 찾는 손님들에게도 즐거운 소식이다. “저희는 한 지점에서 독창적인 음료를 개발했다면, 2달 정도는 다른 지점이 따라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 있어요. 그래서 지점 마다 개성 있는 독특한 음료를 내놓고, 저마다 개성을 갖고 있죠. 하지만 커피에 있어서만은 모두 본사가 로스팅한 좋은 원두를 쓰고 있습니다.” 대전 상대동에 있는 라스커피 본사. 좋은 생두를 로스팅하는 손길이 바쁘다. 본사 챙기랴, 10월에 대전에 새로 오픈하는 지점 챙기랴 바쁜 하루를 보내는 이재훈 대표. 그 모습은 ‘커피 맛의 본질에 승부를 걸겠다’는 그의 철학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면서 크게 두 가지를 결심했어요. 첫째, 절대로 부동산 사업과 연계해 사업 규모를 키우지 말자. 둘째, 홍보나 광고로 브랜드를 띄우지 말자. 외적인 것에 의해 부풀려지는 브랜드 가치를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그래서 저는 본질적인 가치로 손님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이를 통해 대전을 대표하는 브랜드, 젊은 바리스타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가겠습니다.” 대전을 대표 커피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아름다운 청년. 그의 꿈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996]
    • 맛집탐방
    2016-09-12
  • “젊은 세대들이 국산차(茶)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차 한 잔 드릴까요?”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소중한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늘 서두에 이렇게 묻는다. 서먹한 사이라도 이 행동을 시작으로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차를 마시는 것은 단순히 맛 좋은 음료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여는 것,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차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미 커피문화가 익숙하다 못해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쉽사리 꺼지지 않을 것 같은 대한민국 커피 열풍 속에 과감히 건강이라는 이름으로 차(茶) 명함을 내민 곳이 있으니 바로 창원시 사림동에 위치한 ‘이다원’이다. 커피로 점령된 대한민국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이다원 이영숙 대표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이진랑 기자 식품회사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그녀 차(茶)의 매력에 빠지다 식품영양학과 외래교수, 현장지도교수, 병원영양사, 식품회사 연구원으로 다양하게 활동하던 이영숙 대표.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그녀였지만 학구열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처음 마주한 외국의 다양한 차는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당시 우연히 유럽 차(茶)를 접하게 되었어요. 저희 집이 3대째 하동에서 차농사를 하고 있어 나름 차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다양한 종류의 유럽차를 접하고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는걸 알았죠. 차를 어떻게 블렌딩하느냐에 따라 수만 가지에 달하고 찻잎의 종류와 산지에 따라 각기 다른 맛과 향을 낸다는 것을 알고는 차에 대해 참 문외한이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대표는 차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지방에는 차를 공부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마땅치않아 1년이 넘는 시간을 서울로 왕복하며 공부했다고. 현재는 차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하기위해 박사학위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차 관련 학과에서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으며, 국내에 차 관련전공학과가 더 많이 개설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한국차(茶)시장의 가능성을 보다 유럽의 다양한 차를 공부하던 이 대표는 국산 차로도 유럽 차처럼 다양한 맛의 차를 쉽고 편하게 건강을 위해 마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존에 차라고 하면 사람들이 상당히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형식을 갖춰서 마셔야 되고 어린잎일수록 좋은 차고, 비싼 차가 좋은 차라고 생각하는게 대다수죠. 커피처럼 쉽게 생각하지 않은 경향이 있어요. 물론 기존에 있는 차 문화는 그 문화대로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차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무한한 가능성과 매력을 보게 되었습니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했고 연구원생활을 오래하다보니 각 재료가 가진 기능성을 살려 차와 접목하여 각 사람의 건강상태에 맞게, 기호에 맞게 차를 블렌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죠. 그래서 제 목표는 건강한 차를 누구나 쉽게 접하게 하고 커피처럼 자주 마시게 하는 것이랍니다. 당신의 건강과 당신의 이로움을 생각하는 복합공간 ‘이다원’ 많은 사람들이 맛있고 건강한 차를 많이 마셨으면 하는 이 대표의 바람이 지금의 이다원을 탄생시켰다. 창원시 사림동에 위치한 이다원은 이로울 이(利), 차 다(茶), 근원 원(源)자를 쓴다. 풀이하자면 이로운 차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의 기호와 건강에 맞게 차를 접하게 하기위해 이다원을 창업했어요. 또 많은 사람들이 맛보고, 즐기고, 배워야하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이다원의 자회사인 이다원티랩이라는 티카페를 오픈하게 되었죠. 엄밀히 말하면 카페라기보다는 복합공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블렌딩한 차는 물론 커피와 각종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카페공간과 티소믈리에, 티블렌드 교육이 이루어지는 티 교육공간 그리고 30년 한정식 경력을 가진 친오빠가 요리한 맛있는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사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차를 배우고 접할 수 있도록 이다원에 한국티소믈리에 연구원 창원캠퍼스 공간을 마련한 그녀. 교육공간에 진열된 세계 각국의 차종류 샘플들이 교육을 향한 열정을 보여준다. 한편 이 대표는 작년 10월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커피&티페어에서 녹차 블렌딩 부문 금상과 허브 블렌딩 부문 은상을 수상하며 그녀의 블렌딩 실력을 국내에 알렸다. 수상한 것보다 더 이슈가 되었던 건 그 당시 이 대표가 티소믈리에, 티블렌드 교육과정을 밟은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 “처음으로 참가한 대회에서 수상하게 되어 가문의 영광이에요. 수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가족의 도움이 컸습니다. 하동에서 차농사를 짓는 아버지와 큰오빠가 재료공급에 많은 도움을 주셨죠. 온 가족이 차(茶)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출품해서 수상한 작품에서도 가족을 향한 사랑과 차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고 있다. 지난 6일 드디어 스타벅스의 자회사인 티 전문브랜드 티바나(Teavana)가 국내에 론칭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어쩔 수 없이 수입 차시장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영숙 대표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단순히 개인의 이익이 아닌, 많은 이들의 건강과 이로움을 생각하고 국내 차 문화의 발전과 국내 차시장의 성장을 고민하며 부단히 노력해갈 것이다. 순수 우리의 차로 수입시장을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그녀의 마음이 널리 퍼져 우리 차가 대중화되고 그를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아 성장하길 기대한다. [996]
    • 문화
    2016-09-12
  • 좋은 커피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탐험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곳, 정글인터내셔널
    우후죽순 생겨나는 커피전문점에서 친구와 혹은 연인과 수다를 떨며 마시는 커피 한 잔. 그 커피 한 잔의 맛을 진지하게 느껴본 적이 있는가. 카페 창업부터 시작해 커피 경력만 약 10년이지만 본인조차 커피를 잘 몰랐다고 토로하는 정글인터내셔널 이준혁 대표. 그가 커피 본연의 맛을 좌우하는 원재료 및 로스팅에 빠지게 된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_배진희 기자 고등학교는 미술전공, 대학교는 심리학을 전공했다는 특이한 이력의 이준혁 대표. 밝고 경쾌하게 인사를 건네는 그는 대학 졸업 전 이미 창업을 하며 사회에 빨리 발을 디딘 청년 CEO다. “카페 일을 하시던 부모님 밑에서 3년간 일을 배우며 1년 공부하고, 1년 휴학하는 식으로 일하며 조금 이른 나이에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커피가 너무 좋고, 재밌어서 카페를 운영 한다기보다는 커피를 장사하기에 적합한 품목으로 보고 시작했죠. 6년 정도 커피숍을 운영했는데 어느 날 원두를 납품해주시는 사장님께 물건을 받다가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물어봤어요. 그런데 그때 제 경력에 비해 커피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커피숍을 운영하던 그는 다른 시도로 커피숍과 펍을 함께 운영해보려 했지만 실패하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고민 끝에 커피만은 놓고 싶지 않았던 그는 부족한 커피 지식을 계기로 차라리 깊게 들어가 커피 본연의 맛을 좌우하는 원재료에 손을 대보자고 결심했다. 공정직무역, 15시간 이상의 긴 여정 가격경쟁에서 품질관리로 방향을 바꿔 하루도 쉬지 않고 커피 40잔을 맛보기도 이 대표가 정글인터내셔널을 준비하기 시작한 때는 재작년 11월. 처음 생두 무역을 진행한 곳은 베트남의 경제 수도인 호치민에서 북동쪽 30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도시 ‘달랏’이다. 이곳은 평균 해발이 1500m인 고산 도시로 연평균 섭씨 25도를 자랑해 ‘영원한 봄의 도시’라고 불린다. 이러한 기후 조건 때문에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는 베트남의 전략 수출 품목 커피가 달랏에서 대량 재배된다. 3달에 한 번 5톤에서 8톤의 생두를 직접 전수검사를 거쳐 계약한다는 이준혁 대표. 품질과 단가에 신경을 기울여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 대표는 정글인터내셔널을 준비하기까지 2년 동안 전문가의 자문과 개인의 노력으로 생두 무역 진행과 함께 로스팅을 공부했다. “하루라도 빨리 정글인터내셔널만의 질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어 하루도 쉬지 않고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40잔씩 마셨어요. 그러다 보니 매번 게워내면서 속도 많이 버렸죠(웃음).”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정식으로 정글인터내셔널 이름을 내걸고 시작한 처음 몇 달 동안은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가격 경쟁을 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가격 경쟁을 진행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고품질을 지향하는 방법이 넓게 생각했을 때 좋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후 베트남에서 주로 재배되는 쓴맛과 떫은 맛이 강하고, 신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로브스타종에서 신맛이 강하며 맛이 깊고, 고소한 좀 더 우수한 품질의 아라비카종으로 원두를 교체한다. 디자인, 품질, 가격의 삼위일체 개인의 취향까지 고려해 세분화하다 6개월마다 디자인 패키지를 리뉴얼한다는 이 대표는 “대표인 저보다 디자이너의 수입이 더 좋을 정도입니다(웃음).”라고 말한다. 고품질, 합리적인 가격과 더불어 경쟁상대가 많고 빠르게 시장이 변화하는 커피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만큼 꾸준한 제품개발과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생명이다. 오랫동안 대학가에서 커피숍을 운영했던 이 대표는 이러한 소비자의 심리를 알고 커피숍을 운영할 당시에도 계속 리뉴얼을 했었다. 그러한 경험으로 시장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디자인, 품질, 가격의 삼위일체로 거래처에 신뢰를 얻어 영역을 확장하며 사업 안정화에 접어들었다. “아직까지는 이러한 품질, 패키지 디자인 등에 더 투자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정글인터내셔널이 신경 쓰는 것은 고객의 취향을 최대한 맞춰 드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제품 세분화에도 주력하고 있죠.” 주로 도매업에 중점을 두는 정글인터내셔널은 초창기 거래하는 업체가 취향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도록 15개의 샘플을 보내주기도 했다. 현재도 고객이 취향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도록 3개의 샘플을 보내주고 있다. 또한, 개인 고객의 취향을 최대한 고려한 제품을 제공하고자 세 개의 브랜드와 분쇄도 조절까지 가능한 세분화된 제품으로 개인 커머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장사 품목 대상에서 설레는 대상이 된 커피 새로운 가치 개발, 음료로 세대 간을 아우를 수 있었으면 단순히 장사 품목이었던 커피는 이제 이 대표에게 설레는 대상이 되었다. 그는 생두를 처음 로스팅할 때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해 항상 설렌단다. 또한 나라와 지역별로 완전히 다른 맛을 내는 커피의 매력에 빠져버렸다며 “같은 동남아 지역이라도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의 생두를 가져올 수 있게 무역 루트를 늘리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또한 정글인터내셔널 제품의 끊임없는 개발과 더불어, 세대 간을 아우를 수 있는 음료를 만들어 새로운 가치를 개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긍정적인 에너지와 일에 대한 생각으로 항상 바쁜 이준혁 대표. 오늘도 그와 정글인터내셔널의 탐험은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진다. [996]
    • 맛집탐방
    2016-09-12
  • 엄마들에게 여유를 되찾아주는 공간이자 내 아이를 위한 현명한 선택, ‘DOBOR’
    청정지역 지리산 유기농 홈 메이드 이유식으로 까다로운 엄마들의 절대적 신뢰를 얻고 있는 에코맘의 산골이유식. 이제는 온라인 배달 시스템에서 나아가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고민하는 엄마들을 위해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 내 아이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란 의미의 DOBOR(도보르). 그러나 도보르는 ‘아이’만을 위한 곳은 아니다. 단순한 이유식카페의 개념을 벗어나 커피 한잔의 여유조차 가지지 못하는 엄마들을 위해 밀린 수다와 쉼을 가질 수 있는 도보르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어루 만져주는 ‘엄마’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_박지영 기자 에코맘 산골이유식을 만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 ‘DOBOR’ 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이유식을 먹이고 싶은 엄마들의 욕심을 정성스레 담아내 키즈카페, 베이비카페 등 초등학생 이전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요즘, 그럼에도 조금은 생소한 이유식 카페 ‘DOBOR’. 전국에도 몇 되지 않는 이유식카페를 창원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도보르는 에코맘 산골이유식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정식 오프라인 매장이다. 빠르면 생후 4개월에서 6개월에 시작하는 이유식은 아이가 자라면서 모유론 부족한 칼로리와 영양소를 섭취하기위해 시기에 맞는 적절한 식재료로 점차 밥에 가까운 형태로 먹여야 한다. 이때부터 초보 엄마들의 본격적인 육아 고민이 시작된다. ‘첫 시작은 어떤 이유식이 좋을까’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모든 엄마들의 마음. 가장 좋은 재료로 다양한 이유식을 먹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다. 아이가 커갈수록 점점 다양한 식재료가 필요한데 이유식에는 소량만 필요함으로 버리게 되는 식재료가 많아져 여간 부담되는 일이 아니다. 도보르는 그런 엄마들의 마음을 대신하여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하여 꼭 필요한 영양소를 고루 섭취할 수 있는 초기, 중기, 후기, 완료기 단계별 이유식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불안한 엄마들의 마음을 백번 이해, 이미 여러 번 검증을 받은 지리산 청정지역 유기농 이유식 브랜드 ‘에코맘’으로부터 직접 공급받고 있다.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한 식품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도보르 창원직영점의 점장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손지희 점장은 내 아이가 먹는다는 마음으로 포장과 보관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빈손으로 올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자 엄마들에게 휴식과 여유를 돌려줄 수 있는 엄마들을 위한 공간이 되었으면 < 몇 개월 차이로 성장 발달에 격차를 보이는 영유아시기. 키즈카페와 베이비카페가 따로 생기는 것처럼 엄마들의 불안한 마음을 반영하여 베이비존과 키즈존을 나눈 도보르의 세심한 배려> 본격적인 가맹사업을 앞두고 먼저 선보이는 도보르 창원직영점은 도보르의 얼굴이자 미래. 이곳을 맡고 있는 손지희 점장은 여느 평범한 여자처럼 직장을 다니다 결혼 후 주부가 되었다. “흔히 산후우울증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출산 후에 산후우울증이 왔었어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을 하고 창원으로 내려와 아이를 낳고 집에만 있다 보니 제 인생에 허무함을 느꼈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집에만 있어야하나, 내 인생은 이렇게 끝인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남편의 제안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남자들은 이유식도, 엄마의 마음도 잘 모르잖아요.(웃음)”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도보르를 단순한 이유식 카페로 만들기보단 ‘엄마’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손지희 점장. 그래서 식기부터 놀이공간까지 어떤 준비물도 없이 빈손으로 올 수 있도록 모두 구비해두었다. 또한 엄마들도 함께 식사와 간식을 해결할 수 있도록 어른을 위한 메뉴도 따로 준비되어 있어 친정집에 가듯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엄마’가 된 세대들은 이전의 엄마세대들과는 많이 달라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누린 세대이고 여가나 여유를 즐기던 세대죠.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더 큰 거 같아요. 답답하고. 그런 엄마들에게 여유를 찾아주고 싶었어요. 이유식을 만드는 시간만이라도 여유로, 여가로 돌려주고 싶어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식. 도보르는 집에서 만드는 수고를 덜고 긴 연휴나 휴가에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테이크아웃도 가능하다. 그 시간을 활용해 엄마들은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수다를 떨거나 커피 한잔이라도 여유롭게 마실 수가 있게 되는 것, 그게 도보르가 추구하는 가치다. 아직은 창원 직영점만을 운영하고 있지만 더 많은 지역의 엄마들에게 유용한 공간으로 자리하고 싶다는 그녀. 도보로의 가치를 공감하고 추구할 이들과 함께 할 날이 곧 오기를 기대해본다. <아이들 뿐 아니라 엄마들도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공간 구성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다> [996]
    • 라이프
    2016-09-12
  • 신성욱 (주)표준종합건설 대표이사 / 부산광역시 체육회 컬링협회 회장
    건축, 토목, 플랜트, 주택사업 등 다양한 건설사업 부분에서 안정적인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주)표준종합건설. 앞선 기술력으로 부산지역 동종업계 상위권의 성공기업으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또한 부산광역시 체육회의 컬링협회 회장으로 컬링의 저변확대를 위해 다양한 행사와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신성욱 대표. 그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며 안전과 정직을 원칙으로 여기는 소신 있는 기업인으로서 사회공헌활동을 하며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그의 값진 노력과 능력을 조명해보자. _김정은 기자 (주)표준종합건설의 탄생 <제주 스카이리조트> 2001년 구(주)복주종합건설을 시작으로 2008년 설립한 (주)표준종합건설은 안전을 중요시하는 정직한 기업이념을 추구하며 건축에 대한 진정성과 사업가적 역량이 조화되어, 철학과 소신 있는 기업으로 업계의 신뢰를 받으며 지역의 대표 기업으로 성장해 왔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설은 개발과 개척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을 할 때, 그 건물에 애착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안전함을 중요시해야 훌륭한 건축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신 대표는 홍익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한 후 건축가를 시작으로 건설업의 길로 입문했다. "그 당시만 해도 설계 작업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지금은 디자인을 캐드나 3D로 작성하지만 그때는 1점 투시도로 도면지나 스케치북 위에 도면을 그렸습니다.” 오랜시간 업계에 종사하며 기초부터 닦아진 탄탄한 기술로 완벽한 시공을 하였고, 40여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해 모범적인 건설업체로 이미지를 확고히 다져왔다. 국내 최초 배관부식억제장비 특허 획득 "사람이 생활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공기와 더불어 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수질이 좋은 물을 공급하더라도 물이 흐르는 배관에 오염물질이 생성되어 있으면 위생상태가 떨어지는 물을 사용하게 됩니다.“ 과거 우리나라 수도관 관리는 고인 물을 꺼낼 뿐 내부관리는 되지 않았고, 수도관 교체를 통해 일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지만 교체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또 불순물이 끼게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실태에 정부에서는 수도의 설치 및 관리의 적정과 합리화를 도모하여 위생과 안전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수도법 법률을 제정했다. 신 대표는 공중위생의 향상과 생활환경의 개선을 위해 외국에서 기술력을 확보해 3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2009년 수질개선 장치의 신기술인 유체의 자화장치와 자화방법을 도입했다. 청결하고 효율적인 수질관리 시스템으로 영구급수관 사용이 가능하게 하였다. 이후 국내최초 배관부식억제장비 특허권을 취득하고, 공장을 보유하며 수질관리토탈시스템을 갖춘 녹색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민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이라 생각되어 즐겁게 개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저 경제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산업발전을 이끌어 내고자 힘쓰고 싶었다고 신 대표는 전했다. 신뢰받고 인정받는 지역의 대표기업 급격한 대내외 경제변화에도 불구하고 경영의 내실화를 다지기 위해 앞선 시공능력과 건축, 토목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기술자들을 확보해 송월타월, YK스틸, 넥센, 한국선재와 같은 부산을 대표하는 우수한 기업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공사를 진행했다. 뿐만 아니라 김해 상동에 위치한 인계의료법인 의료원, 대연동의 노후된 건물들을 도시형으로 탈바꿈한 100동 이상의 생활주택, 녹색환경 개선 사업에 동참해 시공한 남산중학교, 제주도 서귀동에 위치한 호텔과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발주한 공사 등 (주)표준종합건설은 200여건이 넘는 공사실적을 자랑한다. “고객과 거래가 성사되면 신뢰를 바탕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진행했고, 안전을 먼저 생각하며 견고한 건축물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탄탄한 기술력과 전문 인력 배치, 장기간에 걸쳐 겸비한 노하우는 물론 공사를 맡을 때 마다 내 가족, 내 이웃이 생활하고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신 대표의 신념과 양질의 자재를 사용하는 올 곧은 양심으로 고객들의 신뢰는 더욱 높아가고 있다. 컬링의 저변확대와 대중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해운대 타워> 일반적으로 기업의 존재 이유를 꼽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윤극대화’를 언급하지만 기업의 목적에는 이윤 창출에만 있지 않다. 신성욱 대표는 지역을 넘어 사회전체와 폭 넓은 관계를 맺고, 사회적 책임을 위해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2001년부터 6년동안 부산광역시 체육회의 컬링협회 회장을 맡으며 컬링의 대중화와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안에 드는 스포츠 강국입니다. 체육회에 몸을 담고 있는 것에 자긍심을 갖고 있으며, 책임감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컬링은 팀원이 서로 단합하여 경기를 진행하는 스포츠로 위험성이 낮아 일반인들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스포츠다. 유럽에선 이미 일반 국민들도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1500개에 달하는 컬링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3곳 밖에 없습니다. 특히 부산은 컬링 시스템이 약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선수들의 역량에 비해 훈련환경은 열악해 안타깝습니다.” 컬링을 즐길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을 위해 노력중인 신 대표는 부산체육회와 부산시의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건의 중에 있다. “소치올림픽을 계기로 많이 홍보가 되어 지금은 신세계, 필라, KB에서 컬링에 관심을 두고 투자하고 있으며, 선수양성을 위한 후원도 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컬링에 대한 지원이 약하지만 부산에서 동호회 활동을 하는 일반인들이 300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앞으로 개최될 평창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부산컬링협회에서 다양한 행사와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그에게서는 보여주기식이 아닌 가슴 깊숙이 우러나오는 애정이 느껴졌다. 직원들과도 10년의 세월을 함께하고 있는 신 대표.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을 직원들과 열심히 이뤄나가며 부산컬링협회의 발전을 도모해 컬링이 대중화 될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떳떳한 사업을 하자는 일념으로 모범기업인으로서 당당하게 앞장서 걷고 있는 신성욱 대표의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996]
    • 경제
    2016-09-12
  • 때가 되면 정년은 오기 마련, 하지만 공부와 연구, 봉사 등 자기개발에 은퇴란 없다
    1994 육군대학 졸업헌법은 국민의 4대 기본 의무로 국방의 의무, 교육의 의무, 납세의 의무, 근로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중 국방의 의무는 분단국가인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다양하게 이슈화되곤 한다. 30여 년 전 군 생활을 처음 시작해 몇 해 전 전역한 나태종 박사는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함은 물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충남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에서 국방정책과 군사제도에 대한 다양한 연구 활동과 강의를 하며 몸소 나라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현역 시절부터 꾸준한 자기 개발을 통해 학사, 석사,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전역 후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살려 후학 양성은 물론 다양한 봉사 활동 등 사회 환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주간인물이 대전을 찾았다. _정주연 기자 유달리 뜨거웠던 여름,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으로부터 청소년 수련활동 프로그램 인증을 받아 진행된 ‘청소년 보훈캠프’를 통해 80여 명의 중학생들을 만난 나태종 박사.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중학생들과 2박 3일간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소통하며 올바른 보훈 문화 창달을 위해 힘찬 도전을 시작했다. 30여 년간 장교로 복무하며 국가 안보를 위해 헌신함은 물론, 꾸준한 자기 개발을 통해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도 다시 방송대학교에 입학해 청소년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함과 동시에, 개인으로서의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다함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허물을 벗지 못한 뱀은 죽는다 스스로 먼저 변화를 꾀하고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자 강원도 인제의 전방부대로 배치되어 군 복무를 하던 2000년도. 오늘날처럼 컴퓨터 보급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던 시절, 그는 초등학생 자녀들과 함께 한 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워드프로세서 시험장을 찾았다. “아이들과 함께 워드프로세서 시험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죠.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워드프로세서 2급과 3급 시험을 봤는데 아이들은 물론 저도 모두 시험에 합격해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독학으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 그는 이외에도 30여 개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여가시간에는 주로 자기 발전을 위한 공부를 했다는 나태종 박사는 현역 시절 학사 석사 박사학위까지 모두 취득했다. “허물을 벗지 못한 뱀은 결국 죽는다고 합니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데 나 혼자 고정된 틀에 한정되어 있으면 결국 뒤처지기 마련입니다.” 군사학 박사인 그에게는 또 하나의 독특한 이력이 있다. 50세가 되던 2010년에 시와 수필부문의 신인상을 수상, 시인 겸 수필가로 등단한 그는 창조대 문학상 시 부문 입상, 한국문학신문 주최 수필부문 공모에서 최우수상 입상까지 하며 많은 이들에게 문무겸전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부지런한 주부는 여름에 겨울을 준비하는 법 메뉴얼보다 한 발 앞선 행동으로 뛰어난 지휘관으로서의 역량 발휘 태풍 매미가 전국을 강타한 2003년 9월. 막대한 재산 피해와 함께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추가적인 피해가 우려되던 당시, 그는 병사 700여 명을 지휘하는 경계부대의 지휘관이었다.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전투장비의 피해는 물론 부하들의 안전마저 위급한 순간, 그는 정해진 위기조치 메뉴얼보다 한 템포 빠르게 안전한 고지대로 대피명령을 내려 부하들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지켜냈다. 이후 국방일보에 그날의 지휘조치를 수범사례로 전하는 등 지휘관 및 참모로 근무했던 많은 경험을 군 발간물에 기고하여 동료와 후배 장교들에게 귀감이 될 선례를 남겼다. 부지런한 주부는 여름에 겨울을 준비한다는 말이 있다. 그 역시 많은 부하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직책에 있었던 만큼 결단의 순간 한 발 앞선 생각과 행동을 통해 휘하의 장병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나아가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는데 늘 앞장섰다. 전방에서 다년간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훌륭한 군인이자, 자상한 지휘관으로 활약한 나태종 박사. 그는 현재 미래세대의 주역이 될 청소년과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소통하면서 한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힘찬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무쇠는 담금질할수록 강해지는 법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의 연속을 통해 기회는 찾아온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어느 성공한 이들의 삶을 돌아보더라도 좌절과 실패 없이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다. 나태종 박사에게도 시련의 순간이 없진 않았다. “어찌 저에게도 힘든 순간이나 위기가 없었겠어요. 살아오면서 성취의 기쁨을 맛본 순간도 많았지만, 쓰라린 패배나 좌절의 순간 역시 많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넘어진 그 순간을 딛고 남들 보다 먼저 일어나 안일함을 떨쳐내고 다시 새로 시작하는 의지와 용기입니다.” 온화한 성품으로 어느 지역에 배치되어 근무하게 되더라도 최선을 다하며 자기 발전과 국가 안보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나태종 박사.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불굴의 정신, 중간목표를 설정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온 기회로 인해 새로운 성취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는 그에게서 좌절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하는 타고난 성실함과 더불어 위기 극복의 노하우를 공감할 수 있었다. 2009년부터 다문화가정을 꾸리는 이들의 결혼식에서 주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나태종 박사. 그의 주례로 결혼해 살고 있는 부부가 현재 300여 쌍에 달한다. “한 번은 예전에 주례를 봐준 신부가 다른 결혼식의 하객으로 참석해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보면서 뭉클한 감동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일었습니다. 다문화 가정과 많이 접하며 다문화 군대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져 관련 연구와 논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순간들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처해진 상황의 이면을 꿰뚫어 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또 다른 기회와 학습의 발판으로 삼아 자신에게 끊임없이 미션을 주고 실천해 나가는 나태종 박사. 생각의 전환과 꾸준한 자기 개발로 백세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 인생에 있어 은퇴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 그의 행보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1982 육군소위 임관, 대대장, 작전참모 역임 1997 전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행정학 석사) 2010 - 2014 국보문학협회 대전지회장, 상임이사 2012 충남대학교 대학원 졸업(군사학 박사) 2014 육군중령 전역 2014 - 현재, 충남대학교 초빙교수 / 국가전략연구소 교수연구원 2015 - 현재,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대전본부 공동대표 2016 - 현재,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2016 - 현재, 한중일친선교류협회 교육이사 [996]
    • 교육
    2016-09-12
  • 김광백 신라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 한국정보통신학회 학회장
    지난 28일 신라대학교는 제18회 신라학술상 수상자로 컴퓨터정보공학부 김광백 교수를 선정했다. 김광백 교수는 인공지능 분야인 인공신경망, 기계학습과 의료영상 분야에서 최근 5년간 SCI급 논문 25편을 포함한 약 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독창적이고 우수한 연구실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에 주간인물은 학계의 인정을 받고 있는 김광백 교수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김광백 교수는 인공지능 분야인 인공신경망, 기계학습과 의료영상 분야의 권위자다. 관련 분야의 SCI급 논문을 수차례 발표함으로써 국내는 물론 해외 기업에서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그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 것은 1997년.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연구할 테마에 대해 고민에 빠졌던 그는 의료영상분야의 새로운 비전을 보게 되었다고. “그 당시에는 패턴인식에 대한 연구가 많았을 때였죠. 하지만 저는 앞으로 컴퓨터공학분야의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연구할 테마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때 의대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동경의대에 있는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됐습니다. 어떤 연구 테마가 장기적인 비전이 있겠느냐는 제 질문에 교수님이 의료영상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의료영상 분야에 관심을 갖고, 진단 세포학을 공부해 기관지 편평암, 암세포 분석쪽으로 연구를 시작했죠. 그것을 시작으로 자궁경부암과 관련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제간 연구를 위해 그는 3년 동안 진단 세포학을 공부한다. 이에 컴퓨터공학을 접목해 자궁경부암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많은 학자들에게 인용되며 학계의 호평을 받게 된다. “자궁암을 연구하다보면, 암세포의 특징이 있는데, 이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어요. 컴퓨터공학은 기술적이고, 의학은 진단적으로 문제를 이해하거든요. 하지만 의사분들이 정확하게 과학적인 접근으로 문제를 풀기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3년 동안 진단 세포학을 공부했고,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공학을 접목시키기 시작했죠. 그래서 연구한지 4년 만에 논문을 발표하게 됐어요.” 한편으로 그는 버스정류차선 번호판 인식 개발, 위조여권인식 개발 등 다양한 연구 성과를 남겼다. 이후 그는 부산대 소화기 내과교수인 동생과 함께 위암 내시경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은 내시경, 초음파 분야의 강국인 일본에서 호평을 받으며 히트를 친다. “내시경 시술을 할 때, 암이 어디까지 전의됐는지 파악해 시술 영역을 찾는 게 중요해요. 하지만 그간 기술로는 쉽지 않았죠. 이 연구 성과로 오차를 줄이고, 정확도를 높일 수 있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2008년, 2011년 영국국제인명센터(IBC)로 부터 ‘세계 100대 과학자’에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논문을 통해 많은 학자들에게 새로운 연구방향을 제시한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한 것. 이후에도 그는 새로운 도전을 계속 이어나갔다. 위암에 이어 간암 분야의 연구를 계속해, 논문을 발표했고 그의 논문은 미국도서관 선정, 2008년 CT 간암 분야 저널 랭킹1위를 차지한다. 현재까지는 그는 백병원과 함께 요부 지방분석과 전립선 관련 연구를, 부산대 의과대학과 함께 간암, 지방간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지방간 연구 성과의 상용화를 눈앞에 둔 상태다. 이 연구가 상용화되면 검진의 정확성을 높이고, 환자들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의료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사들이 초음파를 통해 지방간을 검진하면, 사람이 하는 일이라 간혹 실수가 있거나 지방간 등급을 정할 때 의사결정의 명확성이 떨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연구를 토대로 하면 객관적인 기준으로 지방간 등급을 분석할 수 있고, 환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연구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이렇듯 연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학자, 김광백 교수. 새로운 내일을 여는 그의 연구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논문을 낼 때 논문의 우수한 점과 부족한 점을 함께 써낸다는 김 교수. 그 모습에 부족한 점으로 채워 앞으로 나아가는 젊은 학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늘 새롭게 연구하고 도전하는 그에게 꿈이란 가까이 있는 듯 보였다. “앞으로 의료IT 분야에 비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훗날 학교에 의료IT 학과가 개설된다면, 대학의 경쟁력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앞으로 이 분야에 재능을 지닌 많은 재원들을 키워내는 것, 그것이 저의 꿈이죠(웃음).” 환하게 웃는 김광백 교수. 언제나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그와 행복한 동행이었다. 1999년  부산대학교 전자계산학과 졸업(이학박사) 1997년 ~ 현재:신라대학교 컴퓨터정보공학부 교수 1999년 ~ 2000년: Biomedical Fuzzy Systems Association, Editor(Japan) 2009년 :Journal of Digital Imaging (Springer: SCI), Guest Editor 2013년 :International Journal of Computational Vision and Robotics(SCOPUS), Guest Editor 2013년 :International Journal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SCOPUS), Guest Edit 2014년 ~ 현재:Open Computer Science Journal, Editor 2012년 ~ 현재: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 편집위원 2013년 ~ 현재:International Journal of Intelligent Information Processing(SCOPUS), Editor 2015년 : Computational Intelligence and Neuroscience(SCIE), Lead Guest Editor 2016년 ~ 현재:한국정보통신학회 회장 [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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