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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검색결과

  • 노식래 서울시의원
    시 의원은 주민의 직접선거에 의하여 선출되며 시의회의 구성원으로서 임기 동안 일정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의회에 출석할 수 있는 의회출석권을 비롯하여 발언권, 표결권, 의안발의권, 청원소개권 등의 권리를 가지며, 지역민들을 대신하여 일하는 만큼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청렴한 자세와 지위를 이용한 권력남용 금지 등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 주민이 직접 뽑은 주민의 일꾼이기에 무엇보다 겸손한 자세로 지역주민과 국민들의 입장에서 정치활동을 해나가며 한 나라의 경제성장과 안정을 도모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시의원. 주간인물이 만난 노식래 의원은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도 끝까지 참여하여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고 약속이 있을 때마다 지역식당을 찾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동네를 도는 등 주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으로 진정한 생활정치를 이루어가는 의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간인물은 노 의원을 만나 그가 말하는 국민을 생각하는 진심과 정치적 신념에 대해 집중 조명해보았다._장보연 기자 지역민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 정치의 힘은 오직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 노 의원은 용산구에서 당선된 서울시의원으로서 서울시의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과 도시계획관리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며 지역과 도시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노 의원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대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며 구체적으로 청년주택, 행복주택을 비롯하여 빈집을 통한 새로운 주거형태를 제시하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40~50대의 국민들이 조기퇴직이 늘어나는 사회의 현상에 따라 그들의 일자리 창출과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도시의 역할이며 그 역할을 서울시가 해 나가야 한다며 굳은 신념을 드러냈다. 공의와 정의를 이루는 따뜻한 정치인으로서 지역주민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하고 싶다는 노 의원. 그는 “님”자를 싫어하고 딱딱한 책상을 싫어하여 원형 테이블에서 눈을 마주치며 함께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원으로서 정치권력은 군림하는 것이 아닌 오직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어 노 의원은 자신은 단지 전달자일 뿐이라며 겸손을 표했다. 4년 전 간소한 차이로 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하였을 때 무엇보다 지역주민들과 더 가까이에서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이후 4년간 매일 동네를 다니며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식사조차 지역식당을 이용하면서 지역민들과 정을 나누고자 했다. 또한 그들의 어려움과 필요한 정책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각종 회의와 협회, 향우회 등에 참석하는 등 성실한 활동을 이어갔다. 드디어 그의 진심이 통하여 경쟁률이 높았던 용산구 지역의 시 의원으로 당선된 노 의원. 그는 당선되었다는 기쁨보다 당선 직후 만난 어르신의 “현수막에 걸었던 약속 지킬거죠?”라는 물음에 책임감을 느꼈다며 이후 더욱 신중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공의와 정의을 실현하는 사회를 꿈꾼 소년 다양한 정치활동을 통해 탄탄한 기초를 다지다 노 의원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사건이 자신을 정치인의 길에 들어서게 한 시초라며 지난 날을 회상했다. “선생님께서 옆 동네 아이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시더니 물건 훔친 사람이 있다면 자진해서 손들어라 하시면서 유독 옆 동네 아이들에게 나무라셨죠. 그 모습을 보면서 공의롭지 못하며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의 가난이나 환경이 아이들을 도둑으로 몰아가는 상황과 대상이 된다는 생각에 분개했다는 노 의원. 그는 어릴 때부터 편견과 선입견, 위계의식을 배척하며 평등하게 바라보고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자 했다. 특히 노 의원이 자란 정읍은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동학혁명’이 일어났던 지역이기에 정의, 공의를 배우며 성장했다. 때문에 노 의원은 서울로 상경해 첫 직장으로 홀트아동복지재단에서 사회복지관련 업무를 6년간 하였으며, 유럽을 비롯한 해외를 다니며 사회복지 선진화시스템을 배우고자 했다. 이후 자신이 배웠던 시스템과 복지를 정책으로 반영하여 복지과 경제의 안정을 도모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하고자 하였고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 비서관으로서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대통령의 측근에서 정치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로서 김대중 前대통령이 당 대표로 있는 정당의 조직담당의 업무와, 노무현 前대통령이 있던 당의 공보담당으로 대통령을 직접 수행하는 역할을 하였고 당 대표, 대표후보들과 함께 활동하며 수행과 공보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박원순 시장의 무소속 출마 당시 함께 25자치구를 다니며 정치활동을 이어가며 박원순 시장의 첫 당선과 첫 출근에 동행하는 행운과 영광을 얻기도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인재영입과 당무를 총괄하는 사무부총장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정치영역과 자신의 역할을 탄탄히 확장해갔다. 더욱 겸손한 자세로 나아가길 원한다는 노 의원은 지역발전을 위해 힘쓰며 “愛憫, 易地思之”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며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정치로서 국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정치인이 되고자한다. 또한 세대변화가 일어나는 이 시대에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고 전했다.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 “편견없는 사회, 모두가 소중한 세상”을 이루어가는 노 의원. 국민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통해 국민들의 삶이 윤택해지고 희망으로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기대하며 그의 단단한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現제10대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 위원회 위원 •現제10대 서울시의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前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사 •前국회사무처 정책연구위원 2급 •前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 (총무부본부장) •前더불어민주당 문재인대통령후보 부대변인 •前더불어민주당 문재인대통령후보 공보단 부단장 •前새정치민주연합 중앙당 상근 부대변인 •前새정치민주연합 서울특별시당 대변인 •前서울 용산 청년회의소(JC) 특우회장 •前용산상공회의소 이사 •前서울시 자원봉사센터 이사 •前서울특별시 체육회 부회장 [1055]
    • 정치
    2018-10-19
  • 송규근 고양시의원
    “많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학생들 삶에 변화를 주고 싶었습니다.” 교수 활동을 통해 소외된 계층의 학생들을 많이 접하며 학생들을 위한 변화를 위해 노력을 쏟았지만 사회적 한계를 경험 후 직접 사회를 변화 시키고자 정치에 도전하게 되었다. 어떠한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시민을 먼저 생각하며 언제나 청렴한 정치인이 되겠다는 소신을 펼쳤다. 그는 고양시 초선의원이자 당의 최연소 의원으로 육군 장교와 교수로서의 활동을 바탕으로 지역민들의 생활 가까이에서 함께하며 그들의 민원을 해결하고자 힘쓰고 있다. 주간인물은 송 의원을 만나 그가 강조하는 고양시의 생활정치 실천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_장보연 기자 이현주 기자 생활정치로 지역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하는 의원 고양시는 서울과 양주시, 파주시를 접하며 수도권의 중심 지역으로 자리잡으며 인구 100만을 넘어 이제 105만의 도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시민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고양시의회는 33명의 의원이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 더불어민주당 최연소 송규근 의원이 있다. 단수공천이 아닌 당내 경선을 통해 선출되어 실력을 검증받은 송 의원. 그는 현재 “공부하는 의회” 라는 지향점을 위해 당 내 초선의원들과 스터디를 하며 고양시의 발전과 변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그는 시 의원 이전에 대학교수로 활동하며 사회의 부조리와 대학 운영시스템에 대한 한계와 괴리를 느끼며 사회현실과 마주하여 의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교수로서 청년들의 가난의 대물림과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며 사회와 정치가 변화되어 그들이 꿈꿀 수 있는 세상을 전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했다는 송 의원. 그는 ‘학부모지혜공유센터와 청년지원센터 구축 등을 통해 지역커뮤니티를 활발히 하며 아이를 맘놓고 키울 수 있고 청년들이 희망찬 내일을 꿈꾸는 안전하고 활기 넘치는 도시를 만들 계획이라며 소신을 펼쳤다. 많은 지역민들이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뛰어다니며, 생활정치를 해 나가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며 지역민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교육자로서 청년들의 아픔을 함께하다 전남 화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낸 송 의원은 인천대학교에 진학하며 처음으로 집을 떠나 낯선 세상과 마주하였다. 영문학을 전공한 뒤 육군장교로 임관하여 7년간 복무한 뒤 전역함과 동시에 석사대학원을 졸업하고 이후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의 길에 들어섰다. 박사학위가 있어도 대학 전임교수가 되기 힘든 요즘, 박사과정생으로서 전임 교수에 임용되는 기적같은 경험을 한 송 의원은 경찰경호전공 교수로서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며 청년들의 고민과 상황에 대해 느끼며 소통해왔다. 교육자로서의 소신과 열정을 가지고 교단에 올랐지만 기대와는 다른 대학 사학재단의 부조리와 현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청년들을 보며 삶의 환기와 변화를 주고자 새로운 시도를 한 송 의원. 전임교수로 임용됨과 동시에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무원고시반’을 만들어 학생들이 더 넓은 꿈을 꿀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안정적인 삶 속에서 삶을 영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끊임없는 대화와 상담을 통해 가장 가까운 멘토가 되었다. 특히 운동선수 출신이었던 한 제자가 알파벳도 잘 읽지 못했지만 몇년간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소방관에 합격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는 송 의원은 “할 수 있다” 는 마음을 심어주고자 했으며, 학생들이 스스로 변화되고 노력하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가난의 대물림을 스스로 끊을 수 있다는 삶의 교훈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에 청년들을 위한 정치에 직접 발 벗고 나선 송 의원은 조금씩 빛을 발해주는 제자들의 미래가 기대되며, 시의원으로서 청년들이 꿈꾸는 세상을 위해 힘쓰겠다며 소신을 펼쳤다. 현재 송 의원에게 오는 민원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양이지만, 더디더라도 작은 민원까지도 답변을 주고자 한다는 송 의원. 그는 무엇보다 시민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시민들을 위한 ‘생활정치’에 집중하고자 한다. 교수 생활을 통해 현 사회의 한계와 소외된 이들의 불편함을 학생들과의 상담을 통해 온몸으로 깨달았으며 그들의 삶에 변화에 진정으로 도움을 주고자 정치의 길을 걷고 있는 만큼 더 낮은 시선으로 사람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강조하고 있다. 10년 뒤 미련 없이 후배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시민들과 함께 하겠다는 송 의원은 “후회없이 최선을 다했다. 송규근은 정말 일 잘한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의 삶을 꿈꾼다. 청렴 정치인, 젊은 정치인으로서 앞으로 더 젊은 정치인들이 나올 수 있기를 바라는 송 의원. 그의 겸손한 자세와 시민들을 향한 진심이 고양시를 행복의 도시로,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의 힘찬 발걸음을 주목해본다. •서울대학교 글로벌스포츠매니지먼트 박사과정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운영위원 •다음세대를위한청년연합 경기도 정책실장 •월드비전 후원자 멘토 •前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부대변인 •前 국제대학교 교수 •육군 대위 전역(학사 35기) [1053]
    • 정치
    2018-09-17
  • 박용갑 대전광역시 중구청장
    지리적으로 분단된 한반도 중앙에 위치해 있어 서울, 경기, 충청, 전라, 경상, 강원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이행하는 대전. 이러한 요충지의 역할을 수행하며 동시에 정부기관, 교육, 물류 등의 집중으로 성장ㆍ발전이 가장 높은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대전의 역할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대전 중구는 한반도 중심의 자치구로써 구민과 소통을 통해 다양한 인프라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새로운 문화축제로 중구와 대전의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단체가 개막된 이후 중구에서 3선 당선이라는 성공과 역대 최다 득표(65.1%)의 영예를 통해 대전 중구에서의 성과와 업적으로 모범 구정운영의 본을 보이고 있는 박용갑 구청장을 만나 심층취재 하였다. _장보연 기자 효(孝) 문화 중심도시 새로운 문화축제의 틀을 제시하다 중구는 각 도시의 모태도시이며 그 모습은 어머니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른 현재, 새로운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그 지역 유행의 흐름에 주도권을 내주고 있는 실정이지만 박 구청장은 흐름의 역행을 주도하며 원도심의 활성화 우선과제로 '효 문화 중심 원도심 활성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지체 되었던 도시재생에 사활을 걸었다. 경제발전에 대한 정부의 강한의지와 집행은 우리 국민 삶의 기본질서가 많이 무너지게 되며 물질만능주의 시대로 변하며 흐르게 되었다. 박 구청장은 이러한 본질을 되찾기 위해 고심했으며 본질의 정체성은 인성에서 나온다는 결론을 내렸다. 망가진 본질의 백해를 주창하고 나오게 되면 효의 관을 성립할 수가 없으므로 많은 이들과 함께 고심한 박 구청장은 장례법이 만들어지는 유교적인 효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있는 다름을 이해해주고 있는 캠페인을 만들고 있다. 이에 박 구청장은 뿌리축제를 기획하여 진행 중이며, 현재 35만명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매년 뿌리축제를 진행해 오면서 초기에는 어르신들만 오시는 축제였지만, 현재 160만이 함께하며 초ㆍ중ㆍ고ㆍ대학까지 70여개 다수의 젊은이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축제를 통해 초대한 어른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인성이 길러지는 문화와 교육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이러한 효과로 문화관광부에서도 장려하는 사업이며 그 목적이 왜 효인가? 왜 뿌리인가? 의 물음은 3대 요소를 선정해 인성교육의 학습의 장을 만들었다. 1. 내가 어디서 왔는가? 나의 뿌리를 알고 2. 나를 낳아준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상을 배우고 3. 미래에 인성을 사회문화를 만든다. "효 문화뿌리축제가 국가유망축제로 매년 선정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하며, 효 문화뿌리축제의 목적은 청소년들이 인성적으로 바르게 성장하고 미래적 가치를 찾는 축제로 매해 더욱 발전된 프로그램과 구성으로 구민들과 소통할 계획입니다. 또한 이런 인문학적 정책이 높은 미래가치로 평가받아 우리 중구를 이끌어 나갈 것 입니다." 침체되는 지역 경제 상권을 살리다 대흥동 골목재생 1·2단계 조성사업 등 완료와 원도심 상권활성화 기대 낙후된 시설과 상권쇠락으로 침체에 빠져있던 대전 중구지역의 舊 대전극장, 제일극장 거리 일원에 대한 재창조 사업이 완료되면서 거리가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중구는 골목재생사업이 으능정이거리와 연계를 통한 상권회복 등 사업추진에 따른 시너지효과 제고를 위해 시·구비 확보하고 舊 제일극장 거리(커플존 거리) 250m 구간에 대한 추가 정비사업을 지난해 말 완료했다며 전했다. 이로써 중구는 舊 대전극장과 제일극장을 잇는 총 500m 구간에 대한 도로정비와 야간 경관조명 사업을 완료하며 제일극장 거리와 으능정이거리, 대흥동을 잇는 상권활성화를 위한 기반시설을 완료하게 됐다. 중구는 이 일원의 경관개선에 따라 젊은이들이 찾는 멋스러운 정취와 함께 으능정이거리 및 중교로 문화흐름 거리와 연계시킴으로써 원도심 상권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중구는 기반시설 조성에 따른 거리활성화로 인한 임대료 인상으로 세입자가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 방지를 위해 건물주와 임차인의 임대료 안정협약 체결을 협의하며 오는 18일 MOU를 맺기로 했다. 이어 침체된 원도심권역의 경제활성화를 위해 문화흐름 중교로 조성사업과 우리들공원 재창조사업, 대흥동 골목재생 1·2단계 조성사업을 완료했으며, 올해에는 선화동 예술과 낭만의 거리 조성사업을 추진해 지역특성에 맞는 테마거리로 조성할 계획이라며 혁신적인 포부를 밝혔다. 박 구청장은 “대흥동과 은행동을 연결하는 도심재생사업이 완료됨에 따라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지역의 활성화가 기대된다”며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아름다운 거리로 육성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질 것이라며 소신을 펼쳤다. 구민과의 약속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미래보다 현재에 충실한 구청장 박 구청장은 젊음이 가득한 문화예술 중심상권 육성을 통해 새롭게 도약하는 활기찬 지역경제를 이끌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생활 불편을 개선하며 찾아가는 현장과 소통행정으로 서민복지를 구현하며 기업유치와 일자리창출 및 관광객 증대로 원도심을 활성화하며, 중기 목표는 효(孝)!월드 활성화를 통해 효의 가치실현과 사회질서를 바로세우고자 한다. 또한 박 구청장은 미래 성장 동력 산업과 보문산 관광벨트 기반 경제 중심지로 도약하며, 5대 구정방안으로는 구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젊고 활기찬 구정 구현을 힘주어 강조한다. 1. 찾아가는 현장 행정 (구민과 공감하는 소통과 화합의 현장행정 추진) 2. 균형있는 지역 개발 (현실여건과 지역 주민들의견이 반영된 원도심 재개발 사업추진) 3. 살기좋은 복지환경 (소외와 차별없는 맞춤형 복지 서비스 제공) 4. 창의적인 인재육성 (할력신장 지원을 통한 인재 육성과 평생 교육환경 조성) 5. 참여하는 문화예술 (구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과 생활체육 활성화) 박 구청장의 이러한 구정방향은 구청장이 되고 나서 다짐했던 것이 두 가지 신념의 바탕에서 나오게 되었다. 첫째는 인사를 위해서 금전적인 요구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신념과 둘째로 이행하지 못할 공약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꼭 지킬 수 있는 것만 약속하는 박 구청장은 구민들과 약속 할 때는 지속적으로 추진한 공약에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계획이 있어야하는데 민심을 홀리기 위해 행정의 구분 없이 유권자들을 속이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확실하지 않으면 공약하지 않겠다는 박 구청장의 신념은 구정 활동 중 가장 중요하게 추구하는 가치이다. 지방자치, 변화의 바람을 주도하는 지방 정부의 활성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지방정부라고 명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중앙정부는 지방으로의 권력과 재정이 광역자치단체는 산하 기초자치단체로 인사권과 재정이 먼저 이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방분권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권한과 재원을 합리적으로 나누어 중앙정부는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 국가 미래를 위하여 일하며, 지방정부는 지역과 주민에게 밀접한 문제들을 책임지고 해결해 가면서 중앙과 지방이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도약해야 합니다. 겉모습만 분권이 아닌 실질적 분권이 되기 위해선 기득권을 쥐고 있는 중앙과 광역자치단체에서 조건 없이 아래로 권한을 분배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고통과 갈등이 생겨나겠지만 이는 진정한 지방분권을 탄생시키는데 필요한 산통이라고 봅니다.”며 소신을 펼친 박 구청장은 민선 7기에서도 지금까지처럼 대전 중구를 위해 올바른 지방 행정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역경을 이겨낸 집념, 신념을 만들어내다 박 구청장은 평범한 가정의 9남매 중 다섯째로 형제가 많은 화목한 가정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숭례초등학교 재학시절 아버지가 세상을 달리하며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졌었는데, 박 구청장은 본인의 학업은 포기하지만 동생들에게 집안 형편의 이유로 학업을 이어나가지 못하게 하지 않고자 다짐하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선에 뛰어야만 했다. 이때부터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며 가족을 위해 헌신한 박 구청장은 고된 일로 힘든 몸이지만 스스로 학구열을 다지며 배우고 익히는 것에 소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하며 성인이 되고 택시운전을 하며 프로권투선수로서의 삶도 그렸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정당 국회의원의 수행비서 제안이 들어오며 다년간 비서로 의정활동을 보좌했던 경험은 현재 25만 구민의 대표로서 누구보다도 헌신하고 봉사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균형있는 지역개발과 주민의 목소리를 담은 도시재생 사업, 중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원도심 활성화 정책으로 옛 중구의 명성을 되찾을 것입니다. 구민회관 건립과 뿌리공원2단지 조성,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거리 조성 등으로 중구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4년 연속 국가 유망축제인 효문화뿌리축제를 더욱 발전시켜 효문화중심도시 건설에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어르신이 살기 편안한 도시 아이 키우기 행복한 도시로, 오래됐지만 깨끗한 도시로 살기 좋은 중구를 만들어 가겠습니다.”라며 앞으로의 7기 구정활동에 대해 포부를 밝힌 박 구청장은 이와 더불어 미래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오늘의 나의 행동을 구속한다는 신념으로 현재의 자신을 엄격하게 채찍질한다. 구민들의 목소리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대전 중구청장의 열정은 대전의 밝고 긍정적인 빛을 발하고 있다. 『즐풍목우(櫛風沐雨) 바람에 머리를 빗고, 비에 몸을 씻는다.』 주간인물은 대전과 시민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은 순수한 리더 대전광역시 중구 박용갑 구청장의 행보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1052]
    • 정치
    2018-09-10

경제 검색결과

  • “하고싶은 것이 있나요? 그럼 하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꿈과 비전을 공유하는 세무사 - 송무락 송무락경영연구소 세무사 / 경영지도사
    다양한 전문자격사가 존재하는 현 시대에 ‘세무사’는 거래처를 통해 나와 타인의 자산 형성에 기여하고, 자신의 영역을 개발하여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통제하여 개인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세무사라는 전문자격사를 따 미래를 계획하기에는 일반인들에게 어렵게 다가오는 영어를 비롯한 세법학, 회계학 등의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주간인물이 만난 송무락 세무사는 5년간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처럼 자기주도 학습방법으로 세무사 합격의 쾌거를 이룬 세무사이다. 이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수험생들에게 세무사의 가치와 학습에 필요한 마음가짐을 전하며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소신있는 세무사이자 멘토로 자리잡고 있다. 그를 만나 그의 소신과 신념에 대해 집중취재 했다. _장보연 기자 자신만의 자산, 가치를 만들어 가는 삶 왜 하필 세무사라는 질문에 “자산”이라고 답하는 송 세무사는 자산이란 과거사건의 결과 현재 통제가능하고 미래경제적 효익의 유입가능성이 높은 자원이라고 말하며, 현재 남들이 뺏어가지 못하게 만든 것으로 그것이 향후에도 계속 돈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의미로 세무사는 “신뢰도”라는 자산이 생겨 노후에도 꾸준한 수입과 안정적인 거래를 통한 자산형성과 편안한 인간관계 형성을 돕기에 몇 가지 의미에서 자산을 형성할 수 있다고 전했다. 송 세무사는 어릴 때, 사촌형이 회계법인에 몸을 담고 있어 회계관련의 정보를 듣고 자라며 회계 관련 직종에서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교 때 유네스코와 관련된 다양한 대외활동을 경험한 후 사람들과 함께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목적지향적인 일반 기업에서도 직장생활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고 오랜시간 동안 직장생활을 이어간 송 세무사.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진정한 꿈을 들여다보기보다는 삶을 살아가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였고, 타인의 시선과 꿈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지난날의 아쉬움을 전했다. 결국 어릴 때부터 고민했던 꿈을 찾고, 자신의 자산을 축적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문자격사인 세무사를 꿈꾸게 되었다. 삶은 결국 돌고 돌아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게 되는 것 같다며 소중한 깨달음을 얻은 경험에 대한 가치를 전했다.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재미있는 길을 찾아나서는 송 세무사는 글 하나로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듯이, 업무에 있어서도 그런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무사로서 세무상담 및 전략상담과 경영지도사와 부동산컨설팅까지 진행하고 있는 그는 재개발, 재건축 분야까지 확장하여 자신의 업무를 넓혀가고 있다. 송무락 세무사 스터디그룹의 합격비법 “버티면 산다” 직장을 다니며 5년간 세무사 공부를 했던 송 세무사는 가정에서 남편과 아빠로서, 아픈 어머니를 모시는 아들, 회사에서는 임원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 늦깎이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출근 전, 후의 시간과 주말을 이용하여 공부하고, 돌이 지난 아이를 가로등 불빛에서 엎고 재우면서 책을 보기도 한 송 세무사는 “내 인생에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스스로 소설과 영화의 한 장면을 찍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제 인생의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했고, 힘들기보다는 오히려 신선하고 즐거웠습니다. 제 인생의 스토리처럼 공부그룹 또한 스토리 있는 공부밴드라고 짓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했다. 그는 공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습관화”라고 말한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삶과 학습이 명확히 구분이 안될 만큼 끊임없이 학업에 매진해온 송 세무사. 그는 공부해 온 경험을 공유하고 타인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과정과 합격후기를 '예비 세무사들의 모임' 카페에 전하였고, 작은 시작이 많은 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댓글과 회독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송 세무사의 글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고 싶다는 이들이 생겨 모음집을 만들게 되었고, 필요한 수험생들에게 2000부를 전달하였다. 지속적인 상담과 질문으로 인해 매년 시험이 끝나고 나면 블로그 조회수와 상담메일이 쉴새없이 오지만, 송 세무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험기간이라는 긴 터널을 함께 버티고,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전하고자 한다. 4년 전부터 시작된 학습 모임은 현재 네이버밴드 “스토리 있는 공부” 와 네이버 블로그 “송무락 세무사와 함께하기”를 통해 학습모임을 가지며 직장인 수험생, 전업수험생, 늦깎이 수험생 등 공부에 의지를 가지고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놀라운 성과를 보이고 있는 학습모임은 송 세무사가 타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겠다는 거창한 목적과 의지가 아닌 단순히 스스로가 재밌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여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는 작게나마 도움이 되도록 도움을 전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노동의 대가가 아닌 그저 어울리는 삶이 즐겁다고 말하는 모습에 미소가 띈다. “가슴 떨리는 삶이 제 꿈이었습니다. 사람은 정말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만 움직입니다. 그것이 금전이든 명예든 아니면 소박한 꿈일지라도. 포기하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과거에는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 환경이 변하고 우선순위에서 밀려 상대적으로 하고 싶지가 않아서지, 하고 싶은데 그만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짜 하고 싶으세요? 그럼 하시면 됩니다.” 간절한 마음을 가진다면 합격의 문에 가까워 질 수 있다고 말하는 송 세무사는 가정과 자신의 직업에 있어서 그저 재미를 느끼며 타인과 긍정적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역할로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겠다고 전했다. 그의 손길을 통해 세무사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을 확신한다. [ 학력 ] •충북 제천고 •중앙대학교 회계학 학사 •성균관대학교 경영학 석사 [ 약력 ] •대우건설, 외국계컨설팅사, 오리온그룹에서 회계/세무/기획파트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해양환경 전문기업에서 관리임원으로 근무하며 주변의 필요한 분들에게 세무/경영/부동산투자/학습상담 등을 병행하고 있다(연락처:010-7115-6404, 네이버 블로그“송무락 세무사와 함께하기”). [1062]
    • 경제
    2019-01-22
  • 국민안심시대를 염원하며 안전한 사회를 위해 나아가는 발걸음의 시작 - 손주달 한국위험물안전협회 회장
    현 시대에 화학물질은 경제활동의 기본이면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평범한 일상에서부터 공장의 각종 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산업화 이후 화학물질 관련 산업이 성장하여 각종 화학제품으로 인류의 삶의 질은 많이 향상되었고, 우리가 생활 속에서 편리함을 추구할수록 화학물질의 종류와 사용량은 늘어났다. 화학물질은 편리함과 동시에 위험성이라는 양날의 칼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 가스누출사고와 가습기살균제사건 등 많은 이들을 사망으로 이끄는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화학물질의 특성을 반영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예방 및 대응에 대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주간인물이 만난 손 회장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국민안심시대를 여는 소명과 비전으로 협회를 이끌고 가고 있다. 그가 말하는 안전사회와 위헌물안전협회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공공의 안전 확보와 회원의 권익보호에 앞장서 한국위험물안전협회는 위험물안전관리법이 (위험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위험물로 인한 위해를 방지하여 공공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제정한 법) 2003년 5월에 제정되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위험물과 관련된 전문 기관이 없어, 전국의 위험물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과 학계 및 전 현직 소방 및 위험물 관계자들이 만든 단체이다. 2013년부터 꾸준히 모임을 가져왔고 2014년 발기인 총회를 시작으로 한국위험물안전협회를 운영해오고 있다. 현재는 서울 여의도 협회 사무실이 위치해있으며 금년 11월 사무실에서 총회를 진행함으로서 다시 한번 비영리 사단법인 허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협회에서는 유관 단체들과의 업무협약체결 및 여러 캠페인과 주유소 주변 정화와 안전홍보활동을 해왔고, 최근에는 부산에서 열린 위험물 안전관리산업전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또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위험물로 인한 화재가 발생시, 올바른 소화기 사용방법과 대피방법, 인공호흡방법 등의 교육으로 안전관리에 집중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위험물안전관리법의 기본취지에 입각하여 협회 설립을 통해 공공의 안전을 확보하고 관련 종사자와 협회 회원들의 권익보호에 힘쓰고자 함이다. 또한 협회는 현재에도 계속해서 산업계와 학계 등 다양한 업계의 회원 가입이 이루어지고 있고 협회를 설립하고자 하는 회원들의 의지가 높은 만큼 2019년에는 사단법인으로서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손 회장은 국민들에게 위험물 안전관리의 중요성을 알리며 위험물 안전관리의 발전과 육성을 통해 새로운 전략을 가지고, 기존의 관련 기관과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면서 국민안심시대를 위해 실천으로 지속적으로 위험물 안전관리의 방안에 주력할 예정이라며 힘주어 전했다. 체계적인 훈련과 매뉴얼을 통한 예방과 준비성 지난 10월 고양저유소에서 작은 풍등 하나가 거대한 탱크를 폭발시켜 온 국민을 놀라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 실생활에 위험물 시설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만큼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이번 고양사건은 예방과 사후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건처리의 한계점을 보여주었다. 이에 협회와 손 회장은 위험물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에 방점을 두고 평상시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등에 꾸준한 관심과, 사고 시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매뉴얼로 훈련 등을 통해 만약의 사태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점검과 사고 발생 시 빠른 대응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여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과정이자 노력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위험물의 사용은 소비 뿐만 아니라 저장, 운반 및 취급까지 확대 해석되는 경향이 있고, 위험물 행정의 범위도 화재•폭발사고 방지를 위한 전통적인 지도와 단속 외에 위험물 누출을 방지하는 분야까지 넓혀가고 있다. 특히 미국, 일본과 같은 나라는 60~80년 전에 협회가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어 국민 안전과 위험물 행정 등의 발전에 힘을 쏟고 있다. 그렇기에 협회의 노력으로 선진국형 안전문화를 정착하고 위험물안전관리 업무의 최첨단 체계화를 도모할 필요성이 있다 할 수 있다. 손 회장은 “위험물질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나, 지식 및 인지가 미흡합니다. 위험물의 처리방법과 성질 등을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으나, 전문가 또한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실생활에 위험물 시설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만큼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협회는 위험물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에 방점을 두고 평상시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등에 꾸준한 관심과, 사고 시 피해 최소화를 위한 매뉴얼로 훈련 등을 통해 만약의 사태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이들의 노력 소방관련 일을 하며 위험물 안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손 회장은 가스, 폐기물, 유독물질, 위험물질 등 다양한 위험물질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운 만큼 국민들이 위험물에 관심을 가져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갈 것을 강조했다. “협회가 중심이 되어 국내의 위험물 안전관리에 대하여 부족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대외적으로 위험물에 대한 안전관리를 전파하고, 전 국민이 안전관리의 필요성과 관심도가 높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6년간 협회의 설립을 위해 노력해왔으나, 일의 경과가 더디고 뚜렷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 어려운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험물안전관리법의 기본 목적와 취지에 따라 협회의 기술력을 향상시키고, 회원들의 권익과 독립적이고 정문적인 협회활동에 꾸준히 주력하고자 합니다. 일의 경중이나 진행속도의 늦고 빠름에 연연해하지 않고, 묵묵히 한 길만을 가다 보면 더디더라도 언젠가는 협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국민안심시대를 이루고 협회 회원들이 희망하는 그 곳에 당도하리라 생각합니다.”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국민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손 회장과 한국위험물안전협회. 수많은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이들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화학물질의 사용으로 우리 삶이 더욱더 편리하고 윤택해지고 보다 안전한 사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진정한 국민안심시대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1062]
    • 경제
    2019-01-22
  • 신상호 수목장닷컴 대표
    수목장(樹木葬)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나무, 화초, 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를 지내는 친자연적인 장례방법으로서, 묘지나 납골당에 비해 면적을 최소한으로 차지하기 때문에 국토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산림자원을 효율적으로 보존해 자연환경을 아름답게 조성할 수 있으며 정원같은 편안함을 준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고인의 죽음과 함께 나무를 가꾸게 되며 후손에게 아름다운 미래 환경을 물려줄 수 있다는 깊은 의미도 담겨있다고 말할 수 있다. 수목장닷컴 신상호 대표는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도리'라며 납골당을 한지나 진흙토기로 이용해 진정으로 흙으로 돌아가며 자연과 하나되는 삶을 그리고 있다. 주간인물 자연을 보존하며 소풍오듯이 후손들이 오고 갈 수 있는 열린공간, 쉼의 공간을 제공하는 신 대표를 만나 그의 가치를 집중 조명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아름다운 숲을 유지·보존하는 수목장 후손들에게 자연을 고스란히 전해주기 위한 노력 수목장닷컴은 2015년부터 시작한 신생기업으로서 주로 법인 수목장허가 컨설팅 업무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문적으로 수목장 인허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찾기 어렵기에 신 대표는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여 미래를 내다보는 눈으로 수목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수목장 분야는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사업으로서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매년 국토의 1%에 해당하는 면적이 묘지로 훼손되고 있어 묘지 확장을 막고, 산림을 아름다운 숲을 가꾸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묘지나 납골당에서 수목장으로 국민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으나 긍정적 인식에 비해 수목장의 실제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기에 현실적으로 수목장 공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신 대표. 그는 수목장 확대는 묘지나 납골당으로 인한 자연 훼손을 막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며 후손들에게 자연을 고스란히 전해주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신 대표는 아울러 가족 간의 정이 메말라가는 현실에 도움이 되는 수목장은 부모와 조상을 정성껏 모시려는 우리 전통인 효 문화를 살릴 수 있으며 후대 아이들에게도 부모가 자기 부모를 정성껏 모시고 기리는 모습으로 가족간의 친화력을 높일 수 있다고 전했다. 신 대표는 법인 수목장 이외에 가족수목장을 보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법인 수목장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수목장 관련법상 ‘가족수목장’을 직접 조성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일반인들에게 이러한 법 제도가 잘 알려지지 않아 가족수목장의 시도가 많이 없는 상황이다. 필요한 만큼의 적은 토지를 구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에 토지주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신 대표. 그는 “국토 면적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산림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토지주 입장에서도 매매도 어렵고 활용할 방법도 없는 무수익 자산인 토지를 가족수목장으로 제공하고 수익화 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라며 땅의 활용에 대한 소신을 펼쳤다. 대기업과 경매기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목장 실무에 뛰어들다 신 대표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 후 삼성 금융그룹의 공채 37기로 입사하였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업무를 해보고 싶다는 단단한 마음으로 퇴직 후 부동산경매회사를 설립했다. 그 당시에 모든 경매사이트는 유료 서비스였으나 신 대표는 경매 정보를 무료로 제공함으로서 유료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냄으로써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경매시장을 개척했다. 회사 근무 시에 익혔던 제도와 체계성을 도입하여 4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2년 만에 80명으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후 경매업계에서 신 대표 기업의 형태를 모방하는 회사들이 점점 늘어났고 경매가 일반인에게 널리 확산되는데 큰 일조를 한 신 대표. 그러나 그는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항해를 향해 나아갔다. 우연한 기회로 수목장에 대해 알게 되었고 실무적으로 직접 몸으로 익혀야겠다는 다짐으로 무보수로 수목장 인허가 업무를 맡아서 진행하며 이후 수목장을 조성하는 공사도 직접 해봄으로써 실무 경험을 쌓아갔다. 그러던 중 수목장 분야에는 체계적인 회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향후 사회의 흐름과 비전을 보며 수목장닷컴을 설립하여 자신만의 신념과 소신으로 사업을 구축하고 있다. 사업자들에게 체계적·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목장닷컴 수목장 공급이 확대될 수 있도록 신규 수목장이 많이 형성되는 것과 바람직한 수목장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신 대표. 그는 수목장 사업은 토지나 임야를 활용한 개발 사업이나 난이도가 가장 높은 분야라 할 수 있으며, 경험이 없는 사업자들은 어려움에 봉착하기 쉽다고 설명한다. 조심스럽게 예측하건데, 허가권한을 가지고 있는 지자체들은 주민들의 민원을 우려하기 에 쉽게 허가를 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과정의 기간이 길어지고 비용이 증가하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수목장 이용자들에게 비용으로 전가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수목장 사업자들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시행착오와 비용을 줄이도록 돕는 것이 바로 수목장닷컴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신 대표는 죽음에 대해서 터부시하는 우리 문화가 잠재되어 있으나 이제는 닫혀 있는 마음을 열어 더 이상 수목장을 혐오시설로 인식하지 않고, 아름다운 수목원처럼 조성해 이용자 뿐만 아니라 수목장 주변 주민들에게도 휴시공간으로 제공했으면 한다며 힘주어 말했다. 또한 일반인이 가족수목장을 조성할 수 있는 방법과 법인 수목장 사업자들이 수목장 사업을 진행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수목장 보급 실용서’를 집필하며 올해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신 대표. 그를 통해 수목장 문화가 확산되어 후손들에게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자연을 간직하고 평안한 장례문화가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現수목장닷컴 대표 •동아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삼성그룹 삼성카드 37기 입사 •리치옥션 부사장, 대표이사 [1054]
    • 경제
    2018-10-08
  • 하인숙 ㈜아트테크닉 대표
    아기가 태어난 뒤 모유를 먹이면 면역력이 강한 아이로 자라서 전염병에 걸리는 확률이 아주 적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높은 성인으로 자란다는 연구가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모유수유 운동을 펼칠 만큼 최근 모유수유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지만 여성에게 집중된 아이 양육과 가사일 등 여러 여건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엄마들이 많은 것은 현 시대의 현실이다. 향후 법과 제도, 시설 지원, 사회적 인식 등이 개선되어야 저출산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 모유수유를 하지 못하거나 젖병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대부분의 아기들은 크게 거부하기도 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떼를 쓰며 울기도 한다. ㈜아트테크닉 하인숙 대표는 자신이 아이들을 키울 당시 아기가 젖병을 거부하여 울면서 떼를 쓰고 엄마의 젖만을 자꾸만 찾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젖병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찾다 지금의 기업을 설립하였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심을 담아 아기 제품을 개발하는 하인숙 대표. 그를 만나 엄마의 마음으로 경영하는 그의 신념과 경영가치에 대해 심층취재하였다. _장보연 기자 엄마의 가슴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제품으로 실리콘 젖병 업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다 롯데마트 담당자와 정부 중소기업 간담회 ㈜아트테크닉은 2015년에 상품개발을 시작하여 2018년에 설립된 아기용품 전문기업이다. ㈜아트테크닉은 Technique이라는 기술과 기능에 Art인 예술성을 더해 일상생활에서 예술을 느낄 수 있고 실용성 있는 상품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사업이 시작되었다. 아트테크닉의 핵심 개발상품인 스마:트 베베는 똑똑한 아기라는 뜻으로 아기의 두뇌를 발전시키고 감성이 풍부한 아기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을 담았다. 주요상품인 스마:트 베베는 젖병을 처음 접하거나 모유수유에서 젖병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아기의 거부감이 클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아기의 안정감과 정서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개발하였다. 그래서 엄마의 젖가슴과 같은 촉감과 포근함,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실리콘 풍선 젖병을 개발을 하게 되었다. 공기 주입에 의해 실리콘 커버가 풍선 모양으로 팽창하므로 수유 시 아기의 손에 닿는 촉감이 엄마의 가슴처럼 부드럽고 편안해 아기의 만족감이 높아진다. 특히 한국생활시험연구소(KCL)시험검사 테스트를 통과했으며 공기를 주입하여도 바람이 빠지지 않도록 만드는 기술과 젖꼭지 호환성까지 갖춰 특허 받은 혁신적 제품이다. 세상의 모든 아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서적 안정감과 소근육 발달에 영향을 주다 2018 대한민국세계여성발명대회 준대상(실리콘풍선젖병) 젖병을 통해 전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하 대표는 아기를 위한 정서적 안정감과 사랑이 인류의 평화에 공헌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있다. 아기에게 주는 이로움은 아기의 성장에 크나큰 영향으로 인해 삶이 달라질 수 있는 배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드럽고 장난감 같은 젖병을 아기들이 만지면서 손가락 운동을 유도하여 정서적 안정감과 소근육 발달에 영향을 주어 아이큐발달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하 대표는 회사설립한지 3개월 만에 세계여성발명대회에서 준대상(실리콘풍선젖병)과 금상(실리콘풍선노리개젖꼭지)을 수상하는 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일본, 미국, 중국, 브라질, 베트남 등 전 세계에 계약하여 수출을 진행하고 있다. 제품에 정직한 기술만을 담았다는 하 대표는 아기를 사랑하는 진실된 마음으로 사업을 구축하여 유아용품 업계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인류의 공헌을 위해 이 길을 걸어간다는 하 대표는 자신만의 신념과 가치관으로 사업을 구축하고 있으며 성장단계를 지나 기업의 안정화가 된 후에는 유아용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미혼모들과 소외계층 아기들, 센터의 도움으로 자라고 있는 아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며 따뜻한 마음을 표했다. “모든 일에 리더가 되고, 남들보다 앞서가라" 스마트베베 실리콘 젖병과 젖꼭지 하 대표의 고향은 나비축제로 유명한 전남 함평으로 바닷가 근처의 마을에서 성장했다. 대대로 그릇을 빚는 집안에서 아버지는 옹기장이로서 동네사람들이 집으로 모여 일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부모님은 “니가 하고 싶은 거라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지원해줄 것이다. 어디서든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살아라. 네가 가장 멋있다.” 라는 말씀을 항상 해주었다며 자신이 기업을 운영하기까지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경영을 하고 싶었다는 하 대표는 직장생활을 꾸준히 한 뒤 사업에 대한 강한 신념과 확신이 들어 3년간의 개발 끝에 현재의 아트테크닉을 설립하게 된다. 하 대표는 “마음속에 항상 언젠가는 가문과 나라를 위해 영광스러운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타인의 뒤에 서 있지 말고 항상 머리에 있어 리더가 되고, 남들보다 앞서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SMA:RT하고 사회에 적응을 잘하기를 원한다면 스마:트 베베하자! 스마트베베 실리콘 젖병과 젖꼭지 하 대표는 “아기를 정말 사랑한다면 스마:트 베베하세요.” 라고 말할 만큼 자신의 제품과 강한 확신을 보인다. 실제로 국내 특허와 중국 등 세계6개국에 특허 출원중인 만큼 특별한 기술력을 자랑하며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브랜드만 선호하는 한국 소비자들은 세계 소비자들에 비해 낮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해외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아지면 국내에도 스마:트 베베가 자리를 잡을 것으로 믿는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와 롯데마트가 뽑은 기업에 선정되어 “충분히 성장할 기업, 함께 성장해야 하는 기업”으로 유아용품 기업의 중심에 서있다. 단순히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엄마의 따뜻한 품과 심리적 안정감을 선사하겠다는 ㈜아트테크닉 하인숙 대표의 자랑과 신념은 이유있는 확신이자, 그의 삶이 증명해주고 있다. 하인숙 대표를 통해 한국 중소기업의 발전과 모든 아기들이 엄마의 품을 느끼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기대하며 하 대표의 무궁한 발전과 행보를 응원해본다. World’s First! Silicon Balloon Feeding Bottle With a natural and lifelike feel, a feeding bottle similar to a mother's breast Causes baby to use babies fingers which promotes IQ development! Many researches and academic reports state that getting plenty finger exercise during baby’s first year of life has a positive impact on IQ as the brain becomes more developed. "30% of nerve cells are mobilized to move these tiny hands. This is why it's extremely important to perform precise movements of the hands. If we move our hands in precise ways, do arts and crafts, etc. then this is extremely beneficial for brain development." - Prof. Yuhyeon Seo (Director, Neuroscience Research Institute, Seoul National University) •2018년 ㈜아트테크닉 설립 •스마트베베_국내특허 및 중국 등 세계 6개국에 특허 출원 진행중 •특허출원번호 : 10-2017-0164949 •상표등록출원번호 : 40-2017-0151468 •PCT등록번호 : PCT/KR2018/001474 [1052]
    • 경제
    2018-09-10
  • 박대현 DH세무회계 대표세무사
    현대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따라 복잡한 법 체계와 세법으로 인해 국민들이 공제항목을 일일이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세무사 라는 전문인의 역할이 중요한데 적법한 절세를 위해 수만 개의 규정 중에서 이득이 될 규정을 요리조리 찾아내서 세금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 세무사의 주된 업무라 할 수 있다. 또한 법적인 절차를 통해 의뢰인에게 가장 유리한 납세절차를 조언하며 단순 세금신고에서 벗어나 세금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는 역할로 확대되고 있다. DH세무회계 박대현 대표세무사는 부동산 세무회계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가겠다는 정신으로 의뢰인들에게 심층적인 상담을 통해 올바른 세무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주간인물은 박대현 대표를 만나 그의 세무서비스와 직업정신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거래형태를 완전히 변화시키며 합리적인 절세방안을 제시하다 DH세무회계사무소는 세무의 다양한 영역에서도 ‘부동산 세무회계’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대표가 부동산 전문 세무회계 사무소를 설립한 것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다짐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부동산과 관련된 세금부과에 대하여 행정소송 이전에 국민의 권리나 이익의 침해에 대해 구제받을 수 있는 ‘조세불복제도’를 통해 더욱 신념이 확고해졌다. 대표는 부동산은 세무의 어떤 분야보다도 정직한 분야이기에 행정해석을 연구하고 법령을 찾고 분석하여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다고 설명한다. 현재 합법적인 방법으로 절세방법에 대해 상담을 진행하고 상담내용을 토대로 검토하며, 무엇보다 짧은 시간 내에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 이유는 몇 번에 걸친 상담을 통해 거래형태를 완전히 변화시키고 합리적인 방법을 제시하기 위함이며 잔금예정일을 달리하여 보다 적합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대표는 아직 사업의 기반을 마련해 나가는 과정이나, 앞으로 자신만의 영역으로 사업을 구축하며 미래에는 부동산 투자회사와 연구소를 설립하여 부동산 전문분야 세무회계 기업을 설립하고 싶다는 꿈을 펼쳤다. 또한 자신이 어렵게 공부한 만큼 경제적 사정으로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지원해주고 싶다며 사회 공헌활동에 대한 마음을 표했다. 박 대표는 “공평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업자 보다 근로자의 세금을 무리하게 낼 때 세금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시민들은 세금을 어렵게 느끼지만 ‘알고 싶지 않은 분야‘ 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매년 많은 세법이 개정되는데 일반 시민들이 모든 법을 알기 어렵기에 조금 더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라며 특히 지역 세무사회의 활성화를 통해 비영리적인 혜택을 시민들에게 제공해야 함을 강조했다.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박 대표는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요리 특기생이었다며 세무사와는 거리가 먼 꿈을 꾸었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공부를 잘하지 못해 매일 남아서 보충수업 하는 아이었죠. 그때는 못해서 그런지 몰랐죠(웃음). 정말 순수했습니다. 하지만 꿈만큼은 항상 컸습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은 운동, 음악 등 예체능 분야로 하고 싶은 건 다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셨습니다.” 박 대표는 성장기에는 복싱, 유도, 격투기 등 여러 운동을 접했고 보컬트레이닝 까지 받으며 관심이 생기는 분야는 거의 다 경험하며 성장했다. 이후 고등학교 때 요리 특기생으로 요리를 전공하였고, 요리를 그만두면서 본격적으로 공부하여 상명대학교 경제학과를 입학하였다. 군대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하면서 경제학 전공과 관련된 직업보다는 ‘세무사’가 본인에게 적합하다는 판단을 하여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 박 대표는 경제적 이익이 아닌 무엇을 하던지 자신이 독립적 ‧ 주도적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싶어 세무사를 되고자 했다고 전했다. 수험생활 때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시험에 대한 압박으로 밥 먹는 시간조차 아껴가며 누구보다 최선을 다한 박 대표는 “가정형편이 어려웠기에 나에게 허락된 시간 내에 끝장을 보자. 이게 아니면 답이 없다”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임했다고 한다. “2차 시험에서 근소한 차이로 불합격했을 때는 학교운동장을 그렇게 뛰었습니다. 시험장에서 반 포기하고 시험지를 작성했던 제 자신에게 화가 났죠. 그때부터 다짐한 것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입니다. 학창시절에 다양한 경험을 해보았기에 후회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한 요인인 것 같습니다.” 가진 것 하나 없기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패기와 본인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만의 길을 꿋꿋히 걸어가 세무사에 합격하게 되었다. 또한 세무사 시험 후 전화기에 불이 날 만큼 수험생들이 상담전화가 오곤 하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말보다 후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전했다. 향후 박 대표는 세무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며, 강의와 무료봉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에 주간인물은 자신의 직업을 통해 경제적 이득이 아닌 소박한 나눔을 하며 자신의 영역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박 대표의 찬란한 행보를 기대해본다. •現DH세무회계 대표세무사 •前세무법인 보광 근무 •서울 상명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https://blog.naver.com/dhtax8222 [1050]
    • 경제
    2018-08-17
  • 곽상현 선경세무법인 대표 세무사
    청년실업문제와 불안정한 고용시장에서 청년들이 꿈꾸는 안정적인 전문직을 통해 불안정 속 안정을 취하고자 한다. 8대 전문직 중 하나인 세무사는 납세자의 위임을 받아 세무서에 각종 세금신고를 대신해 주거나 자문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납세자가 겪을 수 있는 세금문제에 대해 부당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직업으로, 갈수록 세법이 복잡해지고 경제규모도 커지면서 세무사는 특별한 역할을 통해 우리 국민에게 큰 혜택을 제공한다. 이에 주간인물은 곽 상현 대표를 만나, 세무사의 진정한 역할을 포함하여 앞으로의 향후 비전과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_장보연 기자 SPECIALIST를 지향하는 최고의 세무 전문가 집단 선경세무법인은 각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 세무사들과 함께하며, 전국의 각 거점에 위치하여 다양한 세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우리사회는 제너럴리스트가 아닌 스페셜리스트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선경세무법인만의 전문성으로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상속 증여 양도세, 조세불복청구, 기업 및 경영상담 등 전방위적인 세무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의 시너지는 최고의 혜택으로 선경세무법인을 찾는 외뢰인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현재 전문분야의 깊이 있는 연구와 의뢰인들의 니즈를 정확히 진단하여 지혜로운 솔루션을 제공하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최근 사업자들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는 ‘현명한 법인전환’과 법인사업자들의 잠재된 문제점을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더욱이 법인 컨설팅을 더욱 특화시켜 합법적인 절세방안에 대한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세무회계의 새로운 방향을 선도하고자 한다. 확고한 꿈을 통해 불확실한 미래를 극복하다 경기도 광명에서 나고 자란 곽 대표는 생명공학을 전공했으나 어릴 적부터 사람과 어울리고 소통하는 것에 불편함이 없었던 장점은 영업을 통해 적성을 찾을 수 있었다. 첫 직장으로 미래에셋 영업팀에서 근무하면서 주가와 연계된 펀드와 관련된 심도있는 공부를 통해 많은 이들과 활발한 소통을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시장의 불안정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여러 복합적인 요인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고 미래에셋 근무당시, 많은 고객에게 혜택을 제공하며 얻은 보람은 향후 대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데 큰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 세무사가 된다면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세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에 막연한 걱정도 있었으나 친구의 ‘조급해하지 말라’ 조언으로 큰 자신감을 얻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여 지금의 세무사로서 선경세무법인을 이끌어가고 있다. 초심을 잃지 않는 기본자세 재능기부를 통한 밝은 사회를 구현하다 다사다난 했던 수험 생활을 마치고 막상 세무사가 되었지만, 수험시절에 생각했던 세무사로서의 장밋빛 미래와는 달리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초반 업무를 파악하며 겪는 어려움은 확고한 꿈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으나,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납세자들의 사례는 수험시절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이라 이를 극복하고 해결책을 찾는 일에 노력을 하였다. 비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해 진다는 말처럼 이 시절을 겪으며 고민하고 연구하던 노력은 곽 대표가 세무사로서의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친절하게 그리고 알아듣기 쉽게 모르면 반복적으로 말해줘야 한다. 그리고 고객들이 질문하는 것들에 대해 명확히 진단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찾아가는 서비스를 해주는 이 사회의 빛과 소금과 같은 세무사가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이 결심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한 것이고 이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루트를 통해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현재 중소기업 중앙회, 중소기업청 세무, 회계 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납세자의 세법 지식함양을 위해 강의를 하고 있으며 영세납세자들을 위한 나눔 세무사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정보에 소외되기 쉬운 납세자들의 세법 지식 강화를 위해 앞으로도 강의 활동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세법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어렵고 복잡한 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죽음과 세금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미국의 속담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매일 같이 세금을 내며 생활한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세법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을세무사와 나눔세무사 등 무료로 납세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활동 등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도움을 주고 있다. 더 나아가 콘텐츠를 제작, 개발할 계획을 하고 있다니 기대가 된다. “세무사로서의 다양한 역할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화된 무기를 개발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제가 법인컨설팅 시장을 특화 시킨 것처럼 좋아하는 분야를 생각하며 아이디어를 내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라고 강조하며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무법인을 통해 업계의 패러다임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런 혁신적 경영의 기본은 초심과 기본 그리고 원칙을 통해 발휘되고 있다. 이러한 열정을 통한 정진은 우리나라 세무회계의 더욱 특화된 전문화로 한 단계 도약하는 선경세무법인 곽상현 대표를 통해 이루어지길 주간인물은 기대한다. •現 중소기업청 세무 자문위원 •現 중소기업중앙회 세무 · 회계자문단 •現 영세납세자 지원단 •現 한국세무사회 국제협력위원 •前 택스로세무회계 대표세무사 •前 서연세무법인 근무 [1049]
    • 경제
    2018-07-31
  • 안유라 AYR감정평가사무소 대표
    •現 AYR감정평가사무소 대표 •前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밸류애드 팀 •前 세빌스코리아 투자자문팀 •前 태평양감정평가법인 본사 •연세대학교 주거환경학과/경영학과 졸업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은 해마다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양산하며 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정책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에 부동산과 관련한 다양한 시장이 파생되었고, 그 한편에 감정평가업이 자리하고 있다. 감정평가사는 주로 부동산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직업으로 전문직으로 분리되며, 토지, 건물 등의 부동산과 건설기계, 선박과 같은 동산, 그리고 특허권, 상표권 등의 무형자산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다. 이에 부동산 전문가로서 고객의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 달성을 통해 최고의 혜택을 제공하는 안유라 대표를 만나 AYR감정평가사무소에서 지향하는 감정평가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_장보연 기자 의뢰인의 가치를 회사의 가치로, 함께 상승하는 “가치” AYR감정평가사무소는 최근 적극적인 홍보 및 확장을 통해 실질적으로 의뢰인에게 경제적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는 감정평가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법을 알지 못해 활용하지 못하는 감정평가서비스를 홍보하고, 고객을 개인 · 기업 · 투자자로 분류하여 각 고객에게 의미 있는 감정평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실질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개인의 경우, 상속이나 증여, 소유자추천손실보상 부문에서 상속재산가액 평가를 통해 향후 양도세나 현재 시점의 상속세를 절감 또는 소유자추천 손실보상평가를 통해 피수용자의 입장을 보다 적정하게 반영하는 보상가액을 받아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의 경우, 자산 보유량이 많은 개인사업자나 가족경영형태를 지향하는 사업자들에게 현물출자에 의한 법인전환을 추천함과 동시에, 기업의 자산재평가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대외신뢰도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안 대표는 감정평가사로서 외국계 부동산 투자자문업에 뛰어들어 외국계 투자자문회사인 세빌스코리아에 재직하면서 광화문에 위치한 Tower8을 비롯하여, 동탄신라스테이, 전주효자홈플러스, YG타워(현 센터플레이스) 등 10여건의 투자자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또한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밸류애드팀 소속으로 임대차구조를 개선하여 상가건물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작업을 진행, 명동 청휘빌딩, 가로수길H&M빌딩, 가로수길 옥림빌딩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상업시설 전문 투자자문을 참여한 최초의 감정평가사로서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안 대표의 투자자문 경험을 바탕으로 제도화 되어있는 시장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 고객과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 함께 상승하는 가치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AYR감정평가사무소의 비전이다. 안 대표는 “단순히 법적인 요구에 의해 진행되는 공시지가 평가나 담보평가와 같은 공적평가가 아닌 사적시장에서 평가를 통해 숨어있던 이익을 발견하여 의뢰인이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되었을 때, 감정평가사로서 자긍심을 느낍니다.”라며 의뢰인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혁신적인 감정평가사무소가 되기 위해 블로그 활동과 유튜브를 통한 활발한 소통의 시작점에 서있다. 신념과 철학을 통한 전문인의 길 포기하지 않는 열정으로 고객과 함께하다 안 대표는 연세대학교 주거환경과를 전공하여 재학 중 병원 전문 실내디자인 사무소에서 인턴생활을 경험했다. 업무 특성상 매일 밤샘작업을 하며 인턴생활을 하던 중 회사선배로부터 “감정평가사”라는 직업을 소개받게 된다. 이후 부동산개발에 있어 가장 상위 단계라 볼 수 있는 감정평가와 투자자문과 관련하여 일을 하고 싶다는 동경과 꿈을 불태웠다. 안 대표는 2년간 쉬지 않고 불철주야 하며 시험 전날 복도에서 함께 공부한 동료를 만나 펑펑 울 만큼 간절하게 공부한 결과, 지금의 감정평가사가 되었다. 이후 태평양 감정평가법인에서 평가업계 전반에 대한 이해와 평가의 기초를 다지고 해외 투자그룹에서 근무하여 감정평가사로서 영역을 확장하였다. 그 당시 투자자문, 증권, 자산운용업계에 감정평가사들이 흔하지 않았음에도 안 대표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보겠다는 패기를 안고 감정평가를 기반으로 부동산 유동화 시장 중심에 뛰어들며 감정평가업계와 후배들에게 새로운 도전과 업무영역 확장의 비전을 심어주었다. 특히 서울의 Tower8 프로젝트는 그녀의 첫 번째 투자자문 성공사례로서 건축허가 및 착공신고 후 공사가 진행중인 상태에서 투자자문에 참여하여 평균적으로 투자자문 과정이 6개월 내에 완료되는 것과 달리 약 2년여 기간에 걸쳐 투자자문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독일계 펀드와 거래를 성사시키며, 거래규모 3,000억원대의 매각가를 달성 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런 과정에서 투자희망자를 모집 · 선정하는 과정부터 계약 및 소유권이전등기 과정까지 참여하여 매도인과 매수인의 합의점을 찾아주며 자문사가 하는 모든 실무적인 업무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탄탄한 시장조사와 감정평가과정을 거치는 작업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더욱 체계성 · 전문성을 갖춘 감정평가사로서 성장하였다. 안 대표는 “부동산은 시장경제 중심에 있기에 감정평가사는 수에 밝아야 하고 각 분야의 다양한 경제적 정보를 섭렵해야 합니다. 부동산 관련 자료를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대인관계 능력이 필요하고, 해당 이해관계인들이 고민하는 다양한 입장의 가격을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라며 후배들에게 본인이 갖고 있는 의지가 꿈으로 이어질 수 있게 응원하며, 어디서나 의지가 있는 사람은 시장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힘주어 당부한다. 안 대표는 앞으로 개인들의 부동산 매매시장에 감정평가절차를 보편화 함으로써, 부동산 매매시장 패러다임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조금 더 안정된 자산관리를 통해 고객들의 수익을 극대화하고, 합당한 가격 수준의 거래시스템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처럼 고객의 가치가 회사의 가치와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고객의 자산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는 부동산시장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AYR감정평가사사무소 안유라 대표를 통해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의 혁신적 변화를 주간인물은 기대한다. Tower8, 동탄 신라스테이, 전주효자홈플러스, YG타워, 명동 청휘빌딩, 가로수길H&M빌딩, 옥림빌딩 프로젝트 참여 •2017 청휘빌딩 매각 투자자문 •2016 가로수길 옥림빌딩 매각 투자자문 •2016 가로수길 H&M빌딩 매각 투자자문 •2015 전주효자 홈플러스 매각 투자자문 •2015 Tower 8 선매각 투자자문 •2015 제주신화역사공원 분양가격 및 토지가격 산정 •2014 동탄메타폴리스 상업시설 적정 매입가치 평가컨설팅 •2014 YG타워(현 센터플레이스) 매각 투자자문 •2012 M plaza 리노베이션 후 예상가치 평가컨설팅 https://blog.naver.com/yura_ahn http://www.ayrapp.co.kr [1049]
    • 경제
    2018-07-31

문화 검색결과

  • 최찬환 사단법인 통일의 집 이사장
    “평화” 대한민국 국민이 그렇게도 염원하던 평화가 차츰 이루어지고 있는 현 시대에 과거를 되돌아보면, 한국의 분단은 초기 정부가 수립될 당시 일제의 침략과 세계역사에서 힘이 없었던 나라의 불가피한 상황이자 희생이 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역사적인 아픔이다. 전쟁을 통해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임에도 한국과 북한은 서로의 정치적 이념의 차이로 지금의 시대까지 흘러 후손들에게 아픔과 수고를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그러나 1970년대 당시 순수한 마음으로 한 민족이자 한 핏줄인 북한과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 시대에 평화적 관계를 위한 노력이 빛을 밝혀가고 있는 것이다. 주간인물이 만난 최찬환 이사장은 ‘문익환 통일의 집’을 문화적·역사적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문익환 목사의 평화적 통일의 염원과 정신을 이어가며 이 시대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그를 만나 문익환 통일의 집의 역사적 가치와 이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순수한 마음으로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던, 문익환 목사의 뜻을 전하는 문화적 공간 ‘문익환 통일의 집’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해있으며 실제 문익환 목사와 그의 가족이 1970년대부터 살았던 집이다. 1994년 문익환 목사가 세상을 떠난 뒤 부인 박용길이 ‘문익환 통일의 집’이라는 명칭을 세움으로서 시작되었다.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고 문익환 목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후원에 힘입어 2018년 6월 1일에 박물관으로 개관되어 일반인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곳은 통일을 염원하던 문익환 목사의 생애와 근현대사의 귀중한 자료들을 보관하고 연구하여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통일을 소망하고 꿈꿀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익환 목사는 만주 북간도 명촌동에서 태어나 1955년부터 한국신학대학 교수와 한빛교회 목사로 활동하였으며 1968년 신·구교 공동 구약 번역 책임위원으로 성서를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그 과정에서 시인이 되어 여러 권의 책을 남겼으며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고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1992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 1976년 첫 구속 이후 6차례에 걸쳐 생의 마지막 18년 중 11년 3개월의 옥고를 치루고 한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하며 어려운 이웃들과 아픔을 함께했다. 문익환 목사의 행보는 특정한 정치적 이념에 의한 것이 아닌 교수와 시인, 목회자로서 인간의 본연의 평화를 소망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모두가 평화 속에서 살아가길 희망했다. 그 마음을 담아 명칭을 “문익환 통일의 집”이라 지은 것이며 평화의 씨앗을 심어 역사적·문화적 공간으로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주고자 한다. 역사와 문화예술의 만남 삶의 교훈과 배움을 전하는 박물관으로 재탄생하다 최 이사장은 1970년대 문 목사와 동네에서 함께 살던 이웃으로 최 이사장의 어머니와 문 목사의 어머니가 친구처럼 지낸 사이였다. 문 목사가 10년동안 옥고를 치르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활발한 교류활동은 하지 못하였으나 그의 삶과 순수한 이념을 존중했고, 문 목사의 가족들이 관리하던 집을 가까운 이웃이었던 최 이사장이 유지·관리하며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경북 경산에서 나고 자란 최 이사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건축에 뜻을 두어 연세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하면서 건축과 문화, 예술의 조화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대학 때는 건축분야 중에서도 도시계획과 도시정책에 관심을 가지며 관련 학문에 매진하였고, 이후 다양한 도시계획사업에 참여하며 서울시 보라매 공사부지, 한강고수부지, 세종시 정비사업에 참여하였으며 주거환경연합 정비사업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건축정책법규를 저서를 발간하여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건축인들의 교재로 사용될 만큼 영향력있는 건축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특히 한 동네에서 49년을 살아온 최 이사장은 무엇보다 동네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주거환경 변화와 문화 · 예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 이사장은 “문화라는 것은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아닌 시간이 누적되어 형성되는 것이며 삶의 장소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우리의 통일의 염원이 시작되었고 국민이 한마음이 될 때 통일이 가까워지며, 문화적·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공간들이 많이 탄생하리라 판단합니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향후 문익환 통일의 집을 기반으로 역사적 사실에 스토리를 주어 그 장소와 사람이 역사적 교훈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향후 문익환 통일의 집의 전시공간을 확보해 다양한 전시와 연계된 시설물을 통해 문화적으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견학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의 세대들에게 무엇을 심어주고 전해줄 것인지 연구하며 역사의 정신을 이어가는 문익환 통일의 집과 최 이사장. 이들을 통해 문익환 목사가 염원하던 통일이 가까워지며 순수한 평화통일 이념이 후손들에게 이어지고 이 시대의 배움과 삶의 교훈을 주는 공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1055]
    • 문화
    2018-10-19
  • 중·한 민간 외교 교류의 중심! 평창올림픽에서 전 세계를 한 마음으로 모으는 가교역할이 되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중·일 삼국의 민간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국에서의 한류의 열풍이 불어 서로간의 문화이해가 적극적으로 개방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교류는 여러 인문 교류와 스포츠 교류, 무역 교류에 이어 사람과 사람의 교류를 통해 상호이해를 깊게 하고 지역활성화를 촉진하며 공동체를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삼국의 문화교류를 위해 각 국가의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수적이며 이는 국가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중일 교류의 안정적인 물결을 도모하는 한중일친선교류협회 정혜숙 지사장은 한·중양국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우며 우의을 다지는 21세기의 진정한 동반자적 관계를 갖는것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주간인물은 정 지사장을 만나 협회의 무궁한 발전 도모 방향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집중 취재했다. _장보연 기자 “동북아 최고의 민간 외교사절단” 중·한 전략적 합작 협의서(MOU)를 체결 정 지사장은 한중일친선교류협회에서 위탁·파견한 중국 라오닝성에서 지사장으로 근무하며 중국 무한 및 심양에서 중한 양국의 민간 차원에서 인문교류와 스포츠 교류, 무역 교류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최근 중국의 랴오닝성과학발전연구회와 한중일친선교류협회가 정식으로 장기간 우호적인 전략적 합작 협의서(MOU)를 체결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며 중국과 한국의 민간차원의 활발한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이를 통해 양 협회의 합작을 강화하고 우의를 돈독히 함과 더불어 교류 관련 업무를 보다 원활히 수행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각종 문화, 스포츠 활동 및 민간 무역의 발전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 한중일친선교류협회는 2006년 외교부장관의 허가를 사단법인으로 매년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교육, 스포츠, 경제 등을 통한 민간외교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동북아 최고의 민간 외교사절단”이라는 평가가 있을 만큼 평화공영에 기여하며 한국이 동방의 등불을 넘어 세계의 등불이 되는 것에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특히 자매결연 등 민간교류가 더욱 활성화되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우며 우정을 다지는 21세기 진정한 동반자적 관계를 갖는데 디딤돌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올림픽의 활성화를 도우며 영예증서를 수여받다 세계로 뻗어가는 대한민국이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 3년간의 땀과 노력을 담은 2018년 평창올림픽.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에서 개최된 올림픽은 “함께 만들어가는 평화, 그리고 새로운 물결”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세계인이 하나가 되어 스포츠 정신을 실현하고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아 세계평화를 이루어가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85개국 선수단과 국가가 참여하여 과학과 문화가 결합된 경기장에서 최상의 경기를 이루어 세계인의 주목을 사로잡았다. 평창올림픽은 성공적인 개최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으나 그 과정에 있어 국민들뿐만 아니라 입장권을 구매하고 경기를 보러올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준 전 세계의 나라 관계자들의 수고와 노력이 바탕이 되었다. 특히 정 부회장은 중국과 한국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활발한 스포츠 교류를 위해 평창올림픽, 평창장애인올림픽의 활성화를 돕고자 경기입장권 3억 7000만원(한화)을 판매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입장권 판매의 1위의 성적을 이루었으며 이러한 노력에 대한 공로로 한국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로부터 표창장을 수여받으며, 제3464호 대한민국 정식 훈장등기부에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한국 정부의 높은 평가이자 인정으로, 향후 한국과 중국과 교류에 중심이 될 정 부회장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혁신적인 여성 기업가로서 랴오닝성을 넘어 중국의 경제발전을 도모하다 중국 동북지역의 관문인 랴오닝성은 한반도와 중국을 연결하는 지역으로서 주도적 경제성장을 이루어 경제혁신도시로 성장하며 세계인의 이목을 이끌고 있다. 랴오닝성(遼寧省)은 자원의 풍부함과 하이테크 산업으로 전자정보, 금융서비스, 전자정보산업을 통해 향후 중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의 도시가 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특히 최근 한반도에 ‘평화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북・중 접경 최대 경제도시인 랴오닝성(遼寧省)은 더욱 중국안팎에서 주목되고 있는 도시이며 한국과 랴오닝성의 우호적 관계는 중국과의 교류협력에 전환점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이에 랴오닝성 과학발전연구회의 부회장과 거래컨설팅서비스유한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있는 정 지사장은 랴오닝성에서 영향력있는 여성 기업가로서 세계로 뻗어나갈 랴오닝성의 인적 · 물적의 풍부함과 경제적 가치를 예견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거래컨설팅서비스 기업을 경영하며 IT발전과 전자정보시스템 사업에 주목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흐름과 사회적 이슈에 발맞춰 나아가며, 혁신적인 여성 기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보다 더 협회의 합작을 강화하고 우의를 돈독히 하며 문화와 스포츠, 무역관련의 발전과 교류를 이어가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힌 정 지사장은 민간 우의협력에 주력하여 한중관계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이에 주간인물은 한·중의 교류의 중심이 될 정 지사장의 행보가 앞으로 더 큰 폭으로 이어지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 믿으며 민간외교의 가교역할을 수행하는 걸출한 여성가업가로서의 그의 찬란한 행보를 주목해본다. “东北亚最佳民间外交使团” 签署中韩战略合作协议(MOU) 郑副会长自接受中日韩友好协会委派担任中国辽宁省分会会长以来,一直穿梭在中国武汉和沈阳,担起了中韩两国民间的人文交流与体育交流、贸易交流等相关业务重担。不仅为中国辽宁省科学发展研究会与中日韩友好协会签署长期友好战略合作协议(MOU)方面发挥了主导作用,也为中韩两国民间的积极交流起到了带头作用。在不断加强两国协会合作、增进友谊同时,努力开展交流相关业务,为发展各种文化、体育活动和民间贸易付出辛勤汗水,立下了汗马功劳。 中日韩友好协会于2006年获得外交部部长批准以后,每年都以社团法人穿梭在中日两国,活跃在教育、体育、经济等领域的民间外交舞台。从而被授予“东北亚最佳民间外交使团”的高度评价,同时希望协会为和平共荣做出贡献,为韩国成为东方以及世界灯塔发挥领先作用。特别是在姊妹结缘等民间交流活动开展活跃情况下,立志为建立互相尊重和学习文化、进一步加深友谊的21世纪真正伙伴关系充当一块垫脚石。 助力奥运会,获荣誉证书 希望和平,希望走向世界的大韩民国历时三年辛勤筹备举办的2018年平昌奥运会,在大韩民国江原道平昌举办的奥运会打出了“共筑和平、以及新的浪潮”口号,蕴含了全球人齐心协力实现体育精神、以和平、统一愿望实现世界和平的信息。来自85个国家和地区的运动员参加了比赛,在充分融合科技与文化的竞技场上竞相角逐,吸引了全球人的关注。 平昌奥运会的成功举办获得了高度评价,这与全国人民的努力以及为顺利观看比赛而铺垫的各国相关人士的努力是分不开的。 特别是,郑副会长为促进中韩体育交流,同时助力平昌奥运会和平昌残疾人奥运会,在出售比赛入场券3亿7千万韩元方面起到了举足轻重的作用。不仅创下了入场券销售第一的成绩,受到韩国冬季奥运会组委会表彰,更是创下了名列第3464号大韩民国官方勋章登记簿的壮举。这是韩国政府给予的高度评价和肯定,同时也是对郑副会长站在未来中韩交流中心的未来发展方向的关注。 创新型女性企业家,走出辽宁 助力中国经济发展 辽宁省是通往中国东北的门户,是连接朝鲜半岛和中国的地区,作为引领经济增长的经济创新型城市,引起了世界的广泛关注。辽宁省拥有丰富资源和高科技产业,有望通过电子信息,金融服务和电子信息产业,发展成为未来中国的新增长动力城市。随着“和平时代”来到朝鲜半岛,辽宁省作为接壤朝鲜的最大经济城市,越来越受到国内外的关注,认为韩国与辽宁省的友好关系将会是与中国交流合作的一个转折点。 郑副会长是辽宁省科学发展研究会副会长暨商务咨询服务有限公司代表董事,她作为辽宁省具有影响力的女性企业家,以高瞻远瞩的眼光预测辽宁省人力、物力资源的丰富和经济价值,并以各种活动活跃在各个领域。特别是通过经营商务咨询服务公司,把脉关注IT业发展和电子信息系统业务的中国经济流向和社会焦点问题,充分展示了作为创新型女性企业家的崭新面貌。 郑副会长表示,她将继续加强协会合作、增进两国友谊,继续传承文化、体育、贸易相关发展与交流,重视民间友好合作,为中韩关系发展做出微薄之力。人物周刊认为,站在中韩交流中心的郑副会长未来的前进方向,将会进一步促进两国交流与合作,我们将继续关注这位为民间外交搭桥的杰出女性企业家的辉煌前景。 [1055]
    • 문화
    2018-10-19
  • 이소흔 아트클래스 자그마치 대표 · 서양화가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힐링’에 주목하고 있다. 닫혀버린 마음을 치유하고 여유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힐링 활동에 눈을 돌리고 있는데,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바로 ‘취미 미술’이다. 이전의 미술이 전문가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자들의 특기였다면, 요즘의 미술은 간단한 소도구로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취미와 같다. 최근 많은 사람들은 미술 활동을 하며 삶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여 자기 개발과 자아 발견을 통한 삶의 가치를 찾고 있다.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아트클래스 자그마치의 이소흔 대표는 그림을 그리는 단순한 학원이 아닌 자신과 타인이 위로 받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주간인물은 이소흔 대표를 만나 그녀가 추구하는 진정한 예술의 가치와 치유방법을 집중 조명 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지친 일상을 위로 받는 그림 클래스 사람간의 관계를 통해 포근한 마음을 전하다 2013년도 5월에 시작된 아트클래스 자그마치는 ‘자유롭게 그리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이라는 뜻을 가진 곳이다. 그에 걸맞게 심신을 치유하고 힐링할 수 있는 미술클래스를 전문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바쁜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자그마치에서는 원기둥이나 모형을 보고 그리는 입시위주의 그림이 아닌 수강생의 현재 심리 상태에 맞는 1:1 개인 맞춤 그림스타일을 제안하고 이를 토대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곳의 수강생들은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출하고, 지친 일상을 위로·힐링 받음과 동시에 클래스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유연한 대화와 소통으로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유화에 대한 동경을 가진 수강생, 막연히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던 수강생, 어릴 적 꿈을 이루지 못한 수강생, 한번쯤 그림을 접해보고 싶은 원데이 클래스 수강생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수강생을 비롯해 취미활동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직장인들은 평일 저녁과 주말을 이용해 아트클래스 자그마치를 찾고 있다. “그림에서는 자유롭게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라고 말하는 이 대표.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캔버스 앞에서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며, 나와의 소통을 하길 바라는 그녀는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다고 전한다. 또한 매주 클래스가 기다려진다고 말하는 수강생들을 볼 때 보람되고 감사하다는 그녀는 오픈 때부터 5년 이상 함께한 수강생이 대다수인 만큼 신뢰와 소통을 바탕으로 수강생들과의 인연을 이어가며, 그들에게 따뜻한 힐링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클래스에 참여하는 수강생들 모습 촉망 받던 서양화가, 클래스의 만남을 통해 슬럼프를 극복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미술선생님의 칭찬과 권유로 뒤늦게 미술을 시작한 늦깎이 미술학도였다. 그 전까지 피아노를 쳤던 이 대표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음에도 보고 그리는 것에 타고난, 미술전공을 희망하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놀랄 정도의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음악에서 미술로 갑작스럽게 전공을 바꾸려는 이 대표에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로 그녀의 꿈을 지지해주었다. 이후 그녀는 대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서양화를 전공하며 화가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을 쌓았고, 특히 졸업전시회에 출품된 그녀의 작품은 큐레이터의 눈에 띄어 한 해에 2~3명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특별한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었을 정도로 서양화가로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해나갔다. 하지만 활달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기는 그녀가 오로지 흰 캔버스만을 마주하고 좁은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에만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금 더 즐겁고 재밌게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지 고민하던 그녀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대화도 나누며 그림을 그리면 작품에도 더 집중할 수 있고, 자신의 내면을 작품 속에 더 자연스럽게 투영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작업실을 개방하여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작품 활동을 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아트클래스 자그마치”를 오픈하게 되었다. 그녀는 사람들과 함께 나눈 영감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가로서 작품활동을 함과 동시에 수강생들에게는 미술을 편안한 마음으로 접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온전히 나를 마주하는 시간, 내면을 치유하는 공간 이 대표는 캔버스 앞에서 집중하는 시간을 중요시 하며 그림을 그리는 두 세시간의 동안 온전히 나의 그림에 집중하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한다.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어떠한 색감을 선택할지를 고민하며 흰 캔버스를 마주하면 노트에 낙서하고 끄적이던 어릴적 기억들부터 아련한 추억 속 러브레터까지도 생각나곤 하죠.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에서 다양한 물감들과 붓질 소리들로 옛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을 갖다 보면 이만한 치유가 어디있을까요.”라고 말하는 이 대표. 현대인들 중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병 보다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유롭게 그리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자그마치’의 이름에 걸맞게 이 대표는 사람들에게 미술로 마음의 여유를 찾도록 돕는 ‘치유미술’ 분야를 보다 전문화 해나가고 있다. 용기 내어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갖고자 첫걸음을 떼려는 사람들에게 미술이 특기가 아닌 취미로써 생각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임을 전하고 싶다는 이 대표. 요즘처럼 삶의 스트레스와 반복되는 일상으로 지친 현대인들이 미술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고, 포근한 마음으로 삶에 집중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그의 힘찬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수강생들 작품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재학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강남구 청담동 아트클래스 자그마치 운영 •개인전 3회, 단체전 다수, 아트페어 다수 •MBC 나혼자산다 김지수편 출연 •MBC 나누면 행복 출연 •TV조선 기적의 밥상 현영편 출연 •영덕여고 진로탐색의 날 -페인팅 작가 대표 출강 [1053]
    • 문화
    2018-09-17

교육 검색결과

  •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장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제3의 물결을 넘어서 제4의 물결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혁명적 변화와 더불어 '공간의 변화'로 인함이다. 지구는 하나의 마을로 비유할 수 있을 만큼의 세계화로 인해 국경의 의미가 점차 사라지고 세계를 무대에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세계에서 인종이나 문화를 초월하여 정부, 비정부, 국제기구, 영리법인 등을 포함한 조직과 구성원을 이끌어 가는 글로벌 리더. 그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건전하고 능동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능력, 국가와 민족은 물론 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다양한 구성원들과의 자발적 성과를 이루어 가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에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글로벌 리더 양성에 주력하여 혁신적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KDI국제정책대학원(KDI School) 유종일 원장. 주간인물은 최상의 교육가치로 세계로 나아가는 KDI School와 유종일 원장의 교육철학에 대해 집중 조명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지역과 국제사회의 동반성장을 이끄는 KDI School 국내유일에서 세계최고를 향해 KDI School(이하 KDIS)은 이론과 실무능력을 겸비한 고급 국제전문인력을 양성하고 경제발전과정의 체계적인 연구와 교육수행을 목표로 1997년 12월에 설립되었다. 행정중심도시인 세종자치특별시에 위치하여, 중앙부처와 국책연구기관이 집약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세계수준의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KDIS는 특히 국제사회의 포용성장을 이끄는 글로벌 리더를 양성한다는 비전을 세우고, 현장 활용을 지향하는 혁신적 교육과 체계적인 공공부문 역량강화를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KDIS는 ‘살아 숨쉬는 교육’을 위해 학술연구 실적과 정책연구 경력을 겸비한 세계적 수준의 교수진들과 함께 최고의 커리큘럼을 제공하며 첨단 교육환경과 체계적 학생지원시스템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2018년도에는 전 석사과정에 대해 NASPAA(전미행정대학원연합회) 인증을 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KDIS의 글로벌 교육은 국제학생 비율 40%로 다양한 경력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의 최적의 비율로 구성되어 거시적 안목과 국제적 소양을 배양하는데 힘쓰고 있으며, 133개국 2,000여명의 다국적 외국인 동문 네트워크를 자랑하고 있다. 정부, 공공기관, 금융, 언론, 기업, 시민단체, 국제기구 등 각계각층의 고위급 인사들이 포진한 국내외 동문 네트워크는 차세대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데 밑거름이 되고 있다. 유 원장은 이러한 네트워크가 학생들에게 글로벌 마인드와 국제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각을 키울 수 있으며, 국경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행복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음을 전했다. 현재 석사학위과정은 정책학, 개발정책학, 공공관리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간·야간 과정의 운영과 직장병행, 복수학위 및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학업에 효율성을 더하고 있다. 또한 박사학위과정은 개발정책학 박사과정과 정책학 박사과정으로 공공정책 이슈와 개발정책이슈에 독자적인 연구능력을 갖춘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전 교육과정은 영어로 진행된다. 경제민주화의 아이콘, 민주를 향한 희망으로 불의와 맞서 싸워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난 유 원장은 어렸을 때 일찍이 서울에 올라와 시골생활에 대한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있는 것이 아쉬운 마음이 든다며 운을 띄었다. 유 원장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겨울공화국’이라 불렸던 대한민국은 혼란 그 자체의 시기였다. 1970년대 무자비한 정부의 공권력 행사와 유신독재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아픔을 겪었고 ‘민주’를 향한 희망의 불씨를 피우고자 했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청년들이 사회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당시, 유 원장 또한 사회정의를 꿈꾸며 독재와 불의를 향한 끌어 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어 운동현장으로 뛰어든 청년이었다. 물리와 수학을 좋아했던 유 원장이었으나 단순히 자신만을 위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이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중에서도 경제학을 전공하며 깊게 뿌리 박혀있는 그릇된 경제정책과 경제흐름에 대해 분석하며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사회를 위해 힘써 싸우는 것과 나라의 자강을 위해 교육을 확대하는 것 그 무엇도 귀중하지 않은 것이 없기에 사회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교육의 필요성과 그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유 원장. 그는 교육이란 사람의 가치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전으로 변화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활용할 것인지를 배워가는 과정이라 말한다. 평생 경제학자로 살아오며 기본적인 학문의 연구와 더불어 사회적 실천을 꾸준히 이어온 유 원장은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이라 불린다. 그가 1997년에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들여다 본 대한민국은 IMF로 나라가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고,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될 당시 유 원장은 경제정책의 근본과 기초를 민주화 시키자는 혁신적 패러다임을 제안했다. 국민들의 동의와 공감을 얻어 경제민주화가 주도적 정책담론으로 등장하게 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된 유 원장은 민주통합당에서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50개 정책대안을 제시한 바 있으며, “경제민주화를 포함한 모든 민주화는 국민으로부터 시작됨”을 강조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용기,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 거친 용기로 평생 변화를 추구하며 불의와 싸워온 유 원장. 그는 안주하고자 하는 안락한 마음을 항상 경계하며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고자 내면의 싸움을 이어왔다. 하버드 박사과정 중에도 편안한 삶과 환경조건을 거부하며 박사학위를 출세의 발판으로 삼기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고자 해왔다. “삶에 있어 비굴해지지 않는 용기, 자신의 잘못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한 개인적 삶을 위해 즐거운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매우 불행한 유신독재 체제 속에 청년기를 보내면서 사회 변화에 앞장서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과정이 있어서 단순히 나를 위해서만 혹은 학문적 성취를 위해서만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학생들 또한 KDIS에서의 배움을 발판으로 개인의 성취를 넘어서 타인과 사회를 위한 변화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가르치고자 합니다.” 유 원장은 현재 비영리단체인 주빌리 은행의 은행장이자 대표를 맡고 있다. 수많은 국민들이 부실채권으로 인해 고통 받는 현실을 바꾸려는 운동단체로서, 악성부실채권을 소각하여 고통 받는 채무자들을 해방시키고 제3자의 부실채권을 사고파는 행위 등 잘못된 금융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앞장섰다. 애초 목표로 한 천억원의 부실채권 소각을 훌쩍 넘어 2조원 가까운 엄청난 액수의 부실채권을 소각했고, 수렁에 빠진 수많은 서민들과 청년들에게 부채에서 자유로워져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와 용기를 주었다. 나아가 애초에 부실채권 문제를 발생시키는 그릇된 금융시스템과 정책을 바꾸려는 노력을 경주했고 그 결과 정부와 국회의 관심으로 제도적인 변화도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삶이 소중하다는 유 원장은 어느 누구도 억울한 삶을 살아가지 않도록, 모두가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존 제도와 법을 끊임없이 개혁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무대 인류의 공영에 이바지할 인재 양성의 초석 선한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KDIS. 유 원장이 말하는 리더란 “변화를 이끄는 사람”을 의미한다. 리더란 반드시 높은 성취와 지위를 획득한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더불어 자신을 내어주며 확신으로 함께 걸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 원장은 이러한 리더를 통해 사회 구성원의 가치가 달라지고,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세상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전했다. 또한 기존의 질서에 안주하면서 자신만의 성취를 추구하는 인재가 아닌 기존질서의 한계점을 보완하고 혁신적 변화를 위해 담대한 도전을 하는 인재가 지금 이 시대에 진정한 리더가 될 것이라 말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의 발달은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심각한 도전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기술변화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사회를 해체하지 않으면서 삶의 풍요와 사회의 통합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제도와 정책을 연구하고 마련해야 합니다. 요즘 국제협력질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만, 인류가 힘을 합쳐 지구온난화와 싸우고 환경보전과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 연구하고 헌신하는 리더를 기르는 것이 우리 KDI School이 하는 일입니다. 이 향기로운 이상을 꿈꾸며 모든 학생과 교직원이 한마음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국제사회의 성장과 포용을 이끄는 리더를 양성하는 KDI School의 유종일 원장. 그는 타인과 사회를 위한 삶으로 학생들에게 진정한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학생들과 경계 없는 소통으로 희망을 전하고 있다. 이에 주간인물은 KDI School과 유종일 원장을 통해 기업과 국가, 세계를 이끌어가는 학생들의 원대한 꿈이 실현되어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확신한다. [ 주요연혁 ] •現KDI국제정책대학원장 •現주빌리은행 대표 •現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 공동대표 •前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 •前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前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 •前민주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 •前대통령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위원 •前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고캠퍼스 초빙교수 •前중국 칭화대학교 방문교수 •前중국 북경대학교 초빙교수 •前KDI 초빙연구위원 •前일본 리츠메이칸대학교 부교수 •前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조교수 •前미국 노트르담대학교 조교수 •前세계경제발전연구소 연구원 •前국제무역개발기구(UNCTAD) 컨설턴트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박사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 저서 ] •한국경제, 4대마약을 끊어라 •세계경제의 미래와 한국경제 •MB의 비용 •경제민주화가 희망이다 •박정희의 맨얼굴 •위기의 경제 등 [1060]
    • 교육
    2018-12-13
  • 김혜영 교육컨설팅그룹 울림 대표
    기업윤리란 기업의 경영자와 구성원들이 조직 내부에서 지켜야 할 행동의 기준이며,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정당한 방법을 통하여 기업을 올바르게 운영하는 기준을 말한다. 동시에 기업 윤리는 다른 경제 주체와 상호 의존하는 경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하는 기업의 도덕적 책임도 포함되는 것으로, 기업의 도덕성 · 경영 방식 및 경영 정책의 평가 기준이 된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 뿐만 아니라 기업자체의 윤리이념을 통해 개인의 가치를 성장시키고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효과를 일으킨다. 이에 주간인물이 만난 교육컨설팅그룹 울림 김혜영 대표는 개인과 기업의 상생을 강조하며 함께 만들어 나가는 조직문화의 가치와 중요성을 전달한다. 그를 만나 행함이 있는 강의의 가치와 목적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_장보연 기자 마음과 행동과의 연결고리 건강한 개인과 조직의 관계를 통해 사회의 변화를 돕다 울림은 "울림있는 교육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설립된 교육전문기관으로서, 윤리경영 · 청렴교육 · 부정청탁금지 · 컴플라이언스 · 인문학 리더십 · 조직활성화 · 기업교육컨설팅과 관련한 강의와 칼럼기고 활동 등을 하며 개인과 기업의 상생과 성장을 돕고 있다. 김 대표가 윤리와 청렴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온 국민들이 가슴 아파했던 세월호 사건의 의해서였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좋은 어른이 되어 다음세대 아이들만큼은 ‘공공성을 띈 기관에서는 날 외면하지 않을거야’ 라는 믿음과 신뢰를 주며 기본적인 것을 보장받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소망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안전하고 건전한 사회가 되길 마음이며 윤리와 도덕성이라는 기본을 기업과 조직구성원, 시민이 인식하고 있음으로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함이다. 김 대표는 “마음의 울림을 주는 강의”를 추구하며 단순히 좋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아닌 수강생들이 하나쯤은 기억하고 실생활에서 실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행과정에서 머리의 인지로 그치지 아니하고 가슴이 기억하는 울림, 더 나아가 손으로의 실천까지 이어지도록 하며 마음과 행동과의 연결고리를 통한 직접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액션플랜까지 전달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은 실행들이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개인 · 기업 · 사회가 변화되는 밑걸음이 된다고 보고 김 대표는 “울림”을 통해 개인과 기업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며 밀착형 강의를 이뤄가고 있다. 또한 그는 윤리경영과, 청렴,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공유가치창출(CSV)가 무조건적인 기업만의 역할이 아닌 그들의 활동이 기업이익에 영향을 줌으로써 선순환 할 수 있는 자발적 연결고리를 찾아가야 된다고 설명했다. 자발성을 통해 가치 있는 개인의 삶과 기업의 시너지 효과를 상승시키다 김 대표는 윤리경영에서 가장 핵심은 ‘자발성’이라 말하는데,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구성원들과 회사의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고 그들을 경영 주체로서 인정할 때 스스로 기업을 위한 행함과 협치하는 문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가치 있게 여기며 열심히 하고자 하는 욕구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 스스로 하고자 하는 자발성과 더하여 윤리성이 있을 때 개인과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과 목표가 설립된다고 설명한다. 윤리적이어야만 “조직 내에서 나의 일은 가치 있고, 지역사회의 많은 영향을 미치기에 당당하게 일할 수 있어”라는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으며 그 마음이 오랜시간의 신뢰관계의 토대가 되고 기업 생산성을 높이는 밑걸음이 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리더들의 확고한 문화정립과 교육이 학습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김 대표는 정서적인 교육과 실질적인 교육을 결합되어 주체적인 프로세스를 제시하여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교육의 비전가치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청렴과 윤리를 연구하다 보니 인문학적인 배경이 많아진 김 대표는 청렴은 멀리있는 것이 아닌 일생생활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생활밀착형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개인과 기업이 함께 청렴한 기업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은 끊임없는 학습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이론적인 변화가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이 조직 안에서 어떤 상황에서 ‘할지 말지’ 고민할 때 법규, 사규가 없이 양심에 의해서 결정할 때가 있는데 그것을 바로 “윤리적 딜레마”라고 한다. 그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딜레마를 깨어주는 것이 학습과 신뢰이며, 개인과 기업의 관계 속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사업무의 시작과 끝을 경험하며 성숙한 삶을 만나다 김 대표는 관광경영학을 전공한 재원으로서 한국 피자전문점인 피자헛에서의 인턴십을 시작으로 미국 피자브랜드인 파파존스의 오픈멤버로 참여하여 한국에서 매장혁신을 이루는데 기여했다. 서빙부터 매장관리 점장을 거쳐 추천을 통해 10개의 지점을 운영하는 슈퍼바이저로서 활동을 하던 중 사수로부터 더 넓고 큰 범위의 조직을 변화시키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권유를 받게 된다. 그 당시, 김 대표는 고객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맞닿는 업무를 했기에 교육은 굳이 필요한 요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수의 추천으로 시작한 교육업무를 통해 조직과 구성원의 변화를 몸소 느끼고 할수록 가치와 보람된 일이라 느꼈다는 김 대표. 그는 이후 교육에 주력하여 수많은 매뉴얼을 탄생시키고 조직을 체계화 프로세스를 연구했다. 단순히 좋은 교육이 아닌 명확하고 규정화된 프로세스가 있어야 조직이 변화될 수 있다고 판단한 김 대표는 기업의 인사팀에서 교육과 인사업무를 담당하였고 계획과 실행, 결과보고 등 절차가 많은 인사업무를 해나갔다. 그러던 와중에 김 대표의 인생의 터닝포인트라 할 수 있는 일을 겪는다. 둘째아이가 백일이 되자마자 회사를 이직하여 업무에 집중할 당시 잦은 야근으로 가족들을 돌보기가 쉽지 않았던 김 대표를 대신하여 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봐주었는데 당시 어머니가 아프셔서 오래 봐주시지 못함에도 엎어가며 아이들을 키워주셨고, 김 대표는 육아와 일까지 병행하며 예민하고 날선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후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후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는데, 김 대표는 돌이 지나도록 말이 느린 둘째 아이가 걱정되기 시작했고 특히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다른 아이들과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말한다. 단 한번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가장 가까운 존재인 엄마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 아팠다는 김 대표는 이후 모든 일을 정리한 뒤 “아이와 눈 마주치기”를 목표로 세우고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과 두 아이가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거야’라고 생각해 업무에 몰두했지만 이제는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김 대표. 그는 회사의 퇴직과 아이를 통한 경험을 통해 삶이 더 의미있고 가치있게 여겨져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전하며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 한 계단씩 밟아나가며 경험이란 영양분으로 강의의 꽃을 피우고 있다. 김 대표는 향후에도 꾸준히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길 희망하며 교육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느꼈던 이야기와 개인과 기업의 상생과 고생과 관련된 책을 집필할 예정이다. 기업에 있어서는 사회적 공헌도 필요하나 실제적인 이득과 시각의 변화, 성공사례들과 그 기업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어 사회의 필요한 이야기가 되고자 한다. 무엇보다 좋은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부조리하지 않은 사회를 전하고 싶다고 말하는 김 대표. 그는 청년들에게 불의를 봤을 때 눈감지 않는 용기, 침묵하지 않는 용기, 해낼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며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윤리적인 사회와 기업을 이루어 가는데 기여하는 그의 발걸음을 응원하며 그를 통해 건강한 기업문화가 형성되어 개인의 가치를 인정받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삶의 현장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주요연혁 ] •現교육컨설팅그룹 울림 대표 •現대한상공회의소 외래교수 •現한국생산성본부 전임교수 •現한국능률협회 전문위원 •現소스토리 감성코칭 전문강사 •現연세대학교, 한양대학교 외래교수 •前CJ 푸드빌 상생아카데미 전임교수 •前Smoothie King Korea 교육팀장 •前LG 아워홈 인사교육 팀장 •가천대학교 (구, 경원대학교) 관광경영학 학사 •가천대학교 (구, 경원대학교) 경영학 석사 [ 저서 ] •존경받는 리더의 비밀, 티칭력 [ 칼럼 및 원고 / 영상 ] •강동구 도시관리공단 소식지 <전문가 칼럼> 기고 •국민연금관리공단 <윤리경영 칼럼> 기고 •국민연금관리공단 <청탁금지법 인터넷강의> 원고개발 •한국추출가공식품업중앙회 동영상강의 진행 [ 교육과정 수료 ] •청렴연수원 청렴강사과정 수료 •이화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최고 명강사 과정 수료 •감성 액티브코칭 과정 수료 •하브루타 강사과정 수료 •TA 강사과정/ DiSC 강사 과정/ NLP 강사 과정 수료 •SPOT 강사 과정 수료 •개인정보보호법 교육강사 과정 수료 •국가공인 CS Leaders 강사 •국가공인 SMAT 1급 강사 [ 강의분야 ] •1. 윤리경영과 컴플라이언스 윤리경영과 상생의 리더십 신뢰받는 기업이 되기위한 CSR과 CSV전략 지속 성장하는 기업의 비밀, 윤리경영 신입사원이 알아야 할 윤리경영의 모든 것 셀프 윤리 리더십 윤리적 딜레마, 당신의 선택은? 인문학적 윤리경영 CSR, 그리고 착한 기업, 나쁜 기업 •2. 인문학 리더십 역사 속 리더십 / 신화 속 리더십 / 명화 속 리더십 영화 속 리더십 •3. 리더십과 조직활성화 목표관리/ 성과관리 리더십 [여울 리더십] 여성의 울림 있는 리더십 전략 [소화기] 소통과 화합으로 기적을 만드는 팀 [1058]
    • 교육
    2018-11-21
  • 양윤주 플레아띠창의융합미술학원 원장
    4차 혁명의 시대에서 융합교육과 창의교육의 중요성이 화두에 올랐다. 주입식 교육을 했던 과거에는 공부와 성적향상을 위한 교육으로 미술학원에서도 창의력 보다는 그림을 잘 그리는 기술을 가르치며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교육방식을 행해왔다. 그러나, 다양한 직업과 가치관이 존재하는 지금은 부모들의 인식과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행복한 아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아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감성교육과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한 창의수업을 선호하고 있다. 주간인물이 만난 플레아띠창의융합미술학원 양윤주 원장은 수학공식처럼 영어단어처럼 암기해서 그려내기 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고 직접 보고 만지고 표현하며 테크닉을 스스로 깨우치는 교육법으로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다. “우리아이들”이란 말을 사용하며 한명 한명을 보석같은 귀한 존재로 진정한 사랑을 전하는 그를 만나 진정한 창의와 미술교육의 융합과 진정한 교육인으로서의 모습과 그의 직업정신에 대해 집중조명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체계적이고,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상상력과 창의력을 높이는 자기주도 교육을 지향 창의프로그램(할로윈데이) 플레아띠창의융합미술학원(이하 플레아띠)은 양 원장만의 노하우와 프로그램을 접목하여 설립한 창의융합미술센터이며, 3세부터 성인까지의 미술프로그램을 가지고 소수정예로 개인별 맞춤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플레아띠는 영어로 기쁨을 의미하는 'pleasure'과 'artist'의 합성어로 다양한 커리큘럼과 사랑으로 작은 예술가인 우리 아이들이 항상 기쁨을 가지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한글로 '아띠'는 '친구'라는 순 우리말로 친구 같은 선생님, 가족 같은 따뜻한 학원 분위기와 그 의미를 같이 한다. 교사 전원이 정규 미술대학교 출신으로서 미술치료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이들에게 맞춤 프로그램으로 선생님과의 교감에 주력하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즐거운 학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플레아띠는 타 학원과 달리 “창의융합” 이라는 이름 아래 수학, 과학, 국어, 음악, 역사 등 모든 분야와 융합 및 접목하여 아이들이 다양한 분야를 접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함을 목표로 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상상력과 창의력을 높이는 자기주도 교육을 지향한다. 양 원장은 “무한한 잠재능력을 가진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할 줄 알고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가르치겠습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나누며 이야기하고 치유하는 법을 미술을 통해 가능케 하겠습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으로 칭찬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자존감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존중하며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겠습니다.” 라며 교육보다는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해나가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면 되요. 결론은 사랑입니다!” 6세 보건의 날 대학시절 입시학원의 입시반 전공담임 강사로 미술선생님 일을 시작한 양 원장. 그는 과거 여러 기관을 거치고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미술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아이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1년의 경력을 지닌 원장으로 새내기 원장과 미술교사들에게 강의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학원을 성공적으로 운영 할 수 있을까요? 원장님만의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라는 질문에 장황한 대답보다는 한가지의 결론만을 말한다.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면 되요. 결론은 사랑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은 저절로 따라 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아이처럼 귀중하게 생각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대하고자 한다. 양 원장에게 2018년은 남다른 해인데 ‘플레아띠 창의융합미술학원’ 이라는 상호명으로 브랜드를 런칭과 상표출현을 하였으며, 주변에 훌륭한 선생님들과 함께 ‘플레아띠 아동미술교육 연구회’ 라는 이름으로 마음을 모았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항상 노력하며 공부하는 교사들의 집단이자 아동미술교육연구회 이며 다수의 분점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와는 차별하여 인증된 원장만 운영이 가능하고 직영체계의 분점만을 인정하는 일종의 ‘진정한 교육자’ 마인드를 가진 미술선생님들의 연합이라 할 수 있다. 양 원장은 특히 “미술의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소수의 사람들이 미술선생님이라는 이름을 직업으로 삼아 보석 같이 빛나는 우리 아이들을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받은 프로그램으로 일률적으로 가르치면서 상업적으로 변질 되고 있는 소수의 미술교육 시장이 안타깝습니다” 라고 말하며 “플레아띠는 어떤 지점을 가더라도 믿을만 해” 라는 인식을 심어 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성이 바르고 노력하는 참된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을 맞이하고 함께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디딤돌 역할이 되어주고 싶다며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 아이 작품에 손을 대어 도와줄 수는 있어도 아이의 생각에 손을 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7세 정물화 그리기, 토틀러(3~5세) 수업사진 양 원장은 “미술은 감성 교육입니다. 교사는 아이들 개개인의 니즈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하며 플레아띠는 소수 정예 수업을 지향 합니다.” 라며 운을 띄었다. 아이 작품에 손을 대어 도와줄 수는 있어도 아이의 생각에 손을 대는 일은 없어야 하며, 아이가 그 수업을 거부 하더라도 교사는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의 수업을 진행 할 수 있도록 준비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양 원장은 미술이 타 과목보다 자유로운 만큼 더욱이 교사와의 ‘라포 형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에 입사 당시 자격이 없는 교사들도 입사 후 학원에서 지원해 주어 의무적으로 공부하도록 도우며 매달 두 번의 정규 교사 회의와 수시로 진행되는 원장과 교사, 학부모 간의 면담 외에도 외부 세미나, 포럼 참석, 연구 과제 발표 등을 하며 서로에게 배우기도 한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교사들 덕분에 플레아띠가 더욱 단단해 지고 있다고 말하는 양 원장. 그는 자신에게 선생님들은 플레아띠를 함께 시작한 동지이며 보석 같은 사람들이니 항상 마음으로 감사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양 원장이 교사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수업 외 아이들의 개인적인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사랑 할 것! 그 사랑을 표현 해 줄것! 선생님 같은 교사 보다는 언니, 이모, 엄마 같은 교사가 될 것!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너는 나의 소중한 학생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교사 또한 특별한 선생님이 될 것! 그 다음이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학원에 슬로건인 먼저 사랑하고 그 다음 가르치겠습니다.” 라며 자신의 신념을 펼쳤다. 초3 정물소묘 수업 양 원장은 “가장 위험하지 않은 실패는 미술이라고 합니다. 잘못 그려도 다시 그리고, 만들다가 부서지면 다시 만들면 되니까요. 이때 교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망쳤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더욱 멋있게 변화되는 과정을 보면서 사고의 전환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것 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이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존감’입니다.” 라고 말한다. 나를 믿는 마음, 실패에도 의연할 수 있는 큰 마음, 스스로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힘을 얻은 아이들은 미술 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 했을 때에도 자존감을 바탕으로 창의력을 더 해 여러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양 원장은 교육에 앞서 진정한 교육자로서의 숭고한 사랑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며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존재로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있어 긍정적 에너지와 지혜를 일깨워주고 있다. 아이들과의 인연을 귀중히 여기며,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면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양 원장이 있어 아이들의 환한 미소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를 통해 아이들이 세상을 깊고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키우고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의 따뜻한 행보를 주목해본다. 성동구청장님과 함께 (올해 성동구청에서 열린 환경그리기 공모전에서 20명의 수상자 중 1,2등을 포함한 8명의 출품작 입상) •現 플레아띠 창의융합미술학원 대표 원장 •아트앤하트 플러스 행당교육원 원장 •방문미술 프랜차이즈 홍대 마포지사장 •아트N큐빅 창의미술학원 원장 •미취학아동, 초·중 및 입시미술, 성인미술교육 경력 17년 •퍼포먼스공연 및 설치미술, 전시회 다수 •미술대회 공모전 심사 위원 •우수 지도자상 수상 •공로상 수상 •미술공모전 입상 다수 •교과서논술지도사자격 •한국사지도사자격 •미술치료사자격 •레크리에이션지도사자격 •아동독후활동지도사자격 •플레아띠 상표등록 •예술학석사 [1057]
    • 교육
    2018-11-09
  • 고재일 청년중국어 대표
    대한민국의 이웃나라인 중국은 9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세계경제시장을 주도하는 국가로 성장하였으며 한국의 기업들 조차 중국에 능숙한 비즈니스 인재를 필요로 해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다. 사회의 첫 발을 내딛기 전 자신만의 무기인 언어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치열한 취업 전쟁 속에서 자신만의 차별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 내 한국 유학생은 단연 1위로, 6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현지에서 중국어를 학습하며, 한국의 학원에서도 중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의 숫자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도이다. 그러나 한문과 성조가 많은 중국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고 학문적으로 학습하는 이들은 많으나, 생활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이에 주간인물은 청년중국어 고재일 대표를 만나 하나의 언어로서 쉽고 즐겁게 다가갈 수 있는 중국어 학습방법과 그의 따뜻한 신념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정직과 신뢰로 믿을 수 있는 교육원,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방법으로 중국어와 친해지다 청년중국어는 8년간 중국어를 가르쳐온 중국인 선생님과 고 대표가 함께 2017년부터 오프라인에서 온라인까지 사업을 확장하여 한국 학생들에게 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주로 중국관련 학업과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학생들, 대기업 사업, 승무원 준비생 등이 등록하고 있으며, 외국어는 직접 배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고 대표는 중국의 웨이하이 현지인 선생님들과 교육팀을 만들어 함께 사업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최근 고 대표가 집필한 “중국어 회화를 위한 청년 필독서”는 기존의 중국회화 책과 차별화를 보이는데, 실제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중국어 회화 질문 250개를 엄선하였고, 회화를 함에 있어 지루하지 않고 자신의 문장을 머릿속에서 만들어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특히 고 대표는 책으로만 외국어 공부를 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청년중국어와 필독서를 만들었다. 언어는 자유롭고 즐거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의 외국어 공부는 복습과 예습의 반복이며 학문적인 외국어를 배우기에 언어의 실체를 물어봤을 때 응용이 힘들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 대표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기” 방법으로 시험공식이나 문법보다는 수강생 스스로가 중국어를 입으로 내뱉을 수 있도록 하여 그 과정에서 코치와 교정을 해주고 있다. 언어에는 완벽한 구사 자체가 있을 수 없으며 계속해서 입을 내뱉는 과정을 반복하면 문장이 저절로 머릿속에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외국어를 할 때 ‘틀리면 어떡하지?’ 라는 외국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운 마음을 깨뜨려주고 싶다는 고 대표. 그는 중국어는 우리에게 외국어이기에 틀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언어는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말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내뱉기를 조언한다. 이에 ‘청년중국어’는 정직하고 믿을 수 있는 교육원으로 편안하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 되고 싶다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도전하라!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서울에서 나고 자란 고 대표는 어릴 적 조용한 성격으로 자신만의 쉼이었던 외국영화를 즐겨보았고 특히 미국과 중국영화를 보며 사람들의 순수한 사랑이야기와 따뜻한 삶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이후 자연스럽게 영화아카데미 쪽으로 진로를 정하였으나, 사회에서의 현실은 녹록치가 않았고 방향성을 재정립하여 다시 학업에 집중하며 광고학 전공으로 진학하였다. 공부하는 시간동안 힘이 되어주며 자신의 삶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은 우연히 본 웅진그룹의 윤석금 회장의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라는 저서에 나와있는 글귀였다. “도전하라, 도전하다보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이룰 수 있다.” 이 책의 글귀가 자신을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고 대표는 편입공부를 하던 시기에 도전하자! 라는 마음으로 임하며 지칠 때마다 이 글을 보며 이겨냈다. 이후 광고학을 전공하며 다양한 대내·대외활동을 경험한 후 자신이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언어와 관련한 한국관광공사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통역사로 활동하게 된다. 또한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며 중국어에 본격적으로 주력하게 되는데, 특히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중국인 바이어들과의 잦은 만남으로 자신이 알던 중국어로 대화하였을 때 효과적인 대화가 이루어져 중국어에 대한 성취감과 흥미를 더욱 갖게 되었다는 고 대표. 그는 중국어에 집중하기 위해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가 어학원을 다니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중국인 친구들을 사귀며 쉽고 재밌는 생활중국어를 터득하게 된다. 중국어를 빨리 배우게 된 비결이라고 한다면 “낯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고 대표는 유학 당시 학원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 종이에 “Language Exchange”서로의 언어를 교환하자는 내용의 명함을 만들어 근처 대학교 많은 학생들에게 노출시켰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어 동아리 부회장을 만나 공동체 안에서 친목을 다지며 중국어를 더 깊게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청년들의 꿈을 살려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시작할 수 있는 용기,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습니다.” 고 대표는 청년들에게 용기와 힘을 줄 수 있는 외국어 전문교육원으로 성장하고 싶다며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 특히 청년들이 똑똑하고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에 한계를 두고 작은 세상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눈을 넓히면 큰 세상이 있기에 중국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지길 희망한다며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더욱이 함께 힘을 합친다면 더 도전하고 나비효과와 같은 힘을 서로에게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단순히 사업의 확장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소박하지만 밀도있는 중국어 수업과 창업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사업 전에 필요한 마케팅, 컨설팅 등의 도움을 주고 싶다는 고 대표. 그의 중국어 교육과 청년으로서의 단단한 소신을 통해 대한민국 청년들이 외국어를 친근하게 접하고 세상을 향해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의 따뜻한 발걸음을 주목해본다. 여천홍 선생님 - 중국 웨이하이 교육팀 수강생 만족도 1위 •한국방송예술진흥원 방송연출학과 •국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광고학전공 •캐나다 Business Communication, SSP(Speaking for Success Program) 학위 취득 •삼성화재, 서울우유 등 UCC공모전 다수 수상 •서울시관광협회 외국인 영어통역 •대통령 비서관 관광통역 수행(이태원관광지) •DMZ, 남이섬, 서울시내 주요관광지 프레젠테이션 •자동차필름무역회사 해외영업팀 사원 •미국, 홍콩 등 무역전시회 바이어상담 •중국 웨이하이 어학연수 및 현 청년중국어 대표 •중국산동성 웨이팡 대학교 교류협력 [1054]
    • 교육
    2018-10-05
  • 이광식 커스사운드디제이미디학원 대표
    지속적인 디지털 장비의 개발과 보급은 홈스튜디오를 활성화시키고 프로툴즈와 큐베이스, 로직 등으로 녹음하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직접 곡을 녹음하고 프로듀싱하는 방식이 빠르게 전파되었다. 또한 음악이 탄생하기까지에 있어 첫 단추 과정인 미디작곡과 믹싱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실정이기에 프로듀싱을 위해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멘토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전노하우와 트렌디한 커리큘럼을 제시하는 커스사운드는 최적화된 레슨환경을 제공하며 다양한 예제와 템플릿을 수강생들에게 효율적으로 컨설팅해주고 있다. 이에 주간인물은 음악에 있어 지휘자 역할을 하는 이광식 대표를 만나 그의 직업정신을 집중 취재 해보았다._장보연 기자 서울시 교육청 인가받은 정식교육기관인 “커스사운드” 자신만의 음악을 생산하며 뮤지션이 되어가는 공간 2012년에 설립된 커스사운드는 디제이ㆍ미디 전문학원으로서 현재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100명 이상의 수강생들이 다양한 취미활동과 전문 일렉트로닉 뮤지션을 꿈꾸며 실력을 키워가는 공유의 공간이자 커뮤니티이다. 특히 전문 강사 12명이 있을 만큼 체계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커스사운드는 1:1 집중레슨으로 진행되며, 상담 시에 수강생들이 원하는 음악적 스타일을 빠르게 파악하여 그에 맞는 선생님과 ‘맞춤레슨’으로 수강생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또한 사운드의 트렌드에 맞춰서 한 달에 한번 강사들이 모여 ‘커리큘럼 회의’를 진행하며 수강생들이 원하는 음악적 포인트와 건의에 대해 토론하는 장을 만들어 지속적인 컨텐츠 변화와 트렌드에 발맞춰 나아가고 있다. 현재 수강생들은 20대 초반부터 40대 후반까지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직장인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쉼의 공간으로, 학생들에게는 꿈을 펼치기 위한 공간이 되고 있으며, 스스로 음악작업을 할 수 있을 만큼 응용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수강생들에게 가장 큰 경험은 클럽이나 행사자리에서 직접 자신이 만든 음악을 틀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며 수강생들에게는 짜릿한 경험을 선사해주고 있다. 디제잉 학원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한 한국에서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하여 교육청의 허가까지 받은 ‘커스사운드’는 무허가 학원도 많은 상태에서 인가를 받은 정식 교육기관으로 커리큘럼과 학원비용까지 교육청에 등록되어 신뢰되는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언젠가는 유명한 뮤지션이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관객과의 호흡, 가장 짜릿한 순간 7실 때부터 피아노를 치며 음악을 가장 가까운 친구로 두었던 이 대표는 9살 때부터 마이마이 카세트로 Boyz II Men(보이즈투맨)과 Michael Jackson(마이클잭슨) 음악을 들으며 성장했다. 90년대에 힙합이란 문화가 한국에서 인기를 누리면서 1999대한민국과 드렁큰타이거 등 힙합뮤지션들에 빠졌고, 고등학교 때는 스쿨밴드에서 드럼을 치며 메탈음악에 심취했다. 모든 삶이 음악에 중심이 가있던 이 대표는 자연스럽게 음대를 가고자 했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 보다는 사회활동을 먼저 시작했다. 20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비닐하우스 제작, 중국요리음식점, 피자음식점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아르바이를 통해 돈을 모았던 이 대표. 그는 꿈을 위해 음악아카데미를 다니며 밴드, 디제이, 미디 등 자신의 음악적 활동영역을 서서히 넓혀갔다. 20살 때부터 일렉트로닉 뮤직을 좋아해 디제이를 꾸준히 해왔으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현실과의 차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며 경제적 어려움이 다가왔으나, 음악을 좋아하는 열정과 꿈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활동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좋았다는 이 대표.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돈을 벌어서 악기와 음악장비, 학비를 낼 수 있었고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었기에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죠. 언젠가는 유명한 뮤지션이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웃음)” 특히 이 대표는 공연을 하며 ‘관객과 호흡’할 때 가장 행복했다고 전하며, 자신이 직접 만든 음악과 완성된 선곡을 틀어 공연장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에 몸을 맡기는 모습에 희열과 음악을 하길 잘했다는 만족을 느낀다고 말한다. 특히 음악 안에서 산다는 것이 평소에는 너무나도 익숙해 인식하고 느끼지 못하지만, 공연장에서 자신의 몸과 머리에 인식이 되는 순간 내가 한 분야에 집중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음악인생에 대해 풀어냈다. 지금까지도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대표는 일렉트로닉 뮤지션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와 비전을 공유하고자 작은 스튜디오에서 시작하였으나 진정성을 가지고 꾸준히 걸어온 끝에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전문 디제이미디학원으로 발전하며 수강생들에게 인기있는 학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혁신적 교육기관의 탄생 교육기관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사업까지 확장하다 오래 전부터 음악을 하면서 재즈와 클래식 등 과거의 유산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이 있었으나 항상 이 대표가 꿈꿔왔던 것은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에 대한 열망이었다. 밴드음악을 하던 시절에도 새로운 사운드를 추구하고자 신디사이저를 익히며 수집하고, 디제잉을 하며 항상 새로운 기술과 테크놀로지에 관심을 기울여 온 이 대표. 그는 “시대가 변화됨에 따라 음악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으며, 음악의 조류 또한 변화되고 있습니다. 이미 영미권에서는 혁신적인 대중음악 교육기관들이 많이 생겼으나 저는 국내에서도 이러한 혁신을 이뤄낼 수 있는 교육을 할 것입니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이에 이 대표는 더욱 나은 커리큘럼과 교육방향을 위해 모든 강사진과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며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시장을 블루오션으로 보고 중국을 오가며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 대표는 단순히 교육사업만 하는 것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회사까지 설립하여 아티스트 발굴육성과 음반기획사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탄탄히 구축해나가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음악에만 집중하며 살아왔습니다. 목표는 오로지 한 가지였습니다. 그렇기에 매순간이 즐거웠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것이 제일 가치있는 삶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라며 신념을 전했다. 특히 수강생들이 자신으로 인해 성장하며 음악을 통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이 대표. 건조한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음악을 통해 생기를 되찾고 자신의 꿈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의 힘찬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Kuss sound’ is a professional academy for DJ and MIDI located in Seogyo-dong, Mapo-gu. It is a sharing space and community where more than 100 students are doing hobbies and dreaming of becoming professional electronic musicians. Especially, ‘Kuss sound’ featuring systematic and professional characteristic with 12 instructors gives 1:1 lesson, and covers the ages from early 20’s to late 40’s by providing the stress relieving and resting space to business people as well as giving the space for dreams to the students. The special thing is that it helps to develop the application ability enough to do music work by oneself. The greatest experience for the students is providing the chance to play their self-made music in clubs or event places, giving an exciting experience. ‘Kuss sound’, which has passed the rigorous screening process in Korea unfamiliar with the DJing academy itself, is a formal educational institute accredited by government though there are many unauthorized academy, and the curriculum and the tuition fee of ‘Kuss sound’ are registered with the Office of education, showing reliability. •Jameson Lunching Party @ D Museum •ZNF @ S-Factory •Only Pro DJ @ Celia(Shanghai, China) •Halloween @ ADLIB(Ningbo, China) •Second Movement @Loofy(Hangzhou, China) •BALTHAZAR#909SNARE @ BASE •[서울 일렉트로시티] 공개방송 @ MANSION •BANYAN TREE CLUB & SPA LIVE PERFORMANCE •인천 PENTAPORT ROCK FESTIVAL •원음방송 [ BAND PEOPLE RADIO STAR ] •영화 [BREAKING DAWN PART2] SHOWCASE •동두천 ROCK FESTIVAL •NYE CELEBRATION PARTY @ PLATOON SEOUL •2010 남아공 WORLDCUP PARTY •HOTEL WALKERHILL RIVER PARK [1053]
    • 교육
    2018-09-17
  • 남기정 케이제이(KJ)영어학원 원장
    국가의 백년대개는 교육으로 우리사회의 미래이자 희망이고 교육은 인재를 만들며 인재는 미래를 만든다. 요즘 우리문화는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화를 이끌며, 세계시장의 트랜드를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교육에서도 빛을 보이며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학생, 선생님, 학부모의 시너지 효과가 파급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개인의 열정이 국가 위상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작은 단위에서의 선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부분은 학교, 학생, 학부모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정책 방향을 명확하게 진단하면서 우리사회의 영어교육에 새로운 바람을 통해 특별한 교육안을 선보이고 있다. 영어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워주는 케이제이(KJ)영어학원 남기정 원장을 만나 그의 교육철학과 학원경영을 향한 소신과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교육만큼은 진실해야하며 달라야 한다는 소신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진정성을 드러내다 케이제이(KJ)영어학원은 2014년도에 설립하여 학생 수가 단 3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원으로 시작하였으나 현재 많은 초ㆍ중ㆍ고 아이들이 이곳에서 영어를 학습해가고 있다. 그 당시 교육열이 높았던 대치동에서 강사를 했던 남 원장은 실질적으로 아이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함에도 마케팅 목적으로 어려운 교재를 사용하고 옳지 못한 교육방법으로 지도하는 모습에 교육만큼은 진실해야 하며 달라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학원운영에 뛰어들었다. 남 원장은 “외부에서 보여지는 시선을 배제하고 효율성있게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만 오로지 신경쓰는 교육을 하길 원했고 그 시간들은 가치있고 즐거웠습니다.”라며 온전히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며 자신만의 소신을 펼쳤다. 그 진심이 느껴져 특별한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입소문과 소개로 점차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만큼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학원을 운영해왔다. 특히 남 원장은 함께하는 선생님들 마저 신중하게 선임하여 이전에 함께했던 동료와 또는 함께하고 싶은 사람‘ 중 진실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할 선생님을 구인하여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제가 먼저 다가서거나, 또는 묵묵히 기다려주었을 때 상당수의 아이들이 마음을 열어주었습니다.” 한 인격체로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남 원장은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영어와 가까워지고 공부하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생길지 고민해왔다. 특히 아이들의 학교 교과서는 가이드라인과 규정이 정해져있기에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학년과 아이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나 저학년 학생들에게는 영어를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문화와 콘텐츠를 이용하여 애니메이션과 영어동영상 등을 보여주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많이 보고 많이 느끼는 것” 견문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과정 속에서 꽃을 피우다 중학교 시절 존경하는 선생님이 있어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으나 부모님께서는 아들이 더 큰 꿈을 꾸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생님이 되는 것에 반대하였다. 남 원장 스스로도 넓은 세상에 나아가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 여겼고 어른들의 조언이 합리적이며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최대한 자신을 다양한 경험에 노출시키길 원했고 남 원장의 목표는 오로지 ‘많이 보고 많이 느끼는 것’이었다. 이에 남 원장이 영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또한 영어 자체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영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경험이 많다는 점에서였다. 대학 전공을 선택할 당시 그는 앞으로의 인생이 자신이 직접 한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쉽게 구체적인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다. “확실한 방향을 알 수 없었으나, 식견을 넓히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한 결과가 바로 영어였습니다.” 국내를 넘어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싶어 본격적으로 영어를 시작한 남 원장은 자신이 접하는 컨텐츠와 소통의 범위를 넓히길 원했다고 전했다.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대학교 3학년 때부터 학원강사로 활동하며 캐나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혀갔다. 또한 남 원장은 군생활은 카투사로 AFN 방송국에서 어학병으로 복무를 하면서 실용영어와 학문으로서의 영어 둘 모두를 몰입해서 익혔다. 같이 카투사에서 복무했던 친구들 중에는 자신보다 외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많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영어능력 테스트에서 남 원장이 최상위권에 들어 방송국 어학병으로 복무하였다. 방송국에서 뉴스 스크립트를 쓰고 촬영하고 취재를 나가는 작업을 하며 부분적으로 이긴 하지만 미국 아나운서와 기자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며 이 경험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더라도 개인의 의지가 있으면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졸업 후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직업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을 위해 은행과 교직원으로 근무를 하며 사회의 경제흐름을 익혔다. “제 인생의 화두였던 넓은 식견과 경험을 지닌 사람이 되자는 목표 하에 겪어온 일련의 과정입니다. 일단 여러 경험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두 직장을 거친 결과 선생님이 여전히 하고 싶다는 것을 보다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남 원장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견문을 넓히는 것에 삶의 모든 것을 쏟았다. 이후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영어 습득에 대한 이해를 다질 수 있었기에 이 부분을 여러사람들과 공유하고자 영어교육업에 진입하게 되었으며 아이들에게도 삶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흔들리지 말자” 아이들 중심의 교육 행운을 선사하는 진정한 교육인 아이들 중심의 교육을 강조하는 남 원장은 일시적 유행에 휩쓸리기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에 집중한다. 교육계에도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일시적 유행이 존재한다. 알맹이가 없는 트렌드에 따르다가 학생들의 소중한 시간이 낭비되는 것이 가장 살펴야할 부분이라고 그는 말한다. 영어라는 과목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남 원장은 현실적으로 ‘실용성’을 꼽는다. 쏟아져 나오는 최신 정보와 컨텐츠는 대부분 영어로 되어있으며 번역을 기다리는 시간 소비와 번역상의 왜곡 없이 그러한 내용을 접하는 방법은 영어를 익히는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에 더불어 학업과 취업은 영어 습득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그는 강조한다. 당장 성적이 급하지 않은 어린 학생들에게는 영어 컨텐츠를 통해 저변과 시각을 넓히는 것을 권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영어의 필요성과 매력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게 된다는 취지에서다. 남 원장은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밑받침 역할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영어는 언어적 측면과 이론적 측면이 있는데, 소통의 도구로서의 기능과 학문적 기능, 이 두 가지를 다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소통의 도구로서 영어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누구든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데, 영어를 할 수 있다면 이를 훨씬 많은 사람들과 할 수 있다는 견해이지만 의사 표현 기능 외에 시험도 잘 봐야한다고 남 원장은 말한다. 학생들에게 시험은 자신감과 관심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이들 스스로 영어를 좋아하는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되 아이들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학교 영어에도 꼼꼼히 신경쓰며, 아이들 또한 좋은 성적으로 선물을 안겨주고 있다. 무엇보다 “흔들리지 말자” 는 다짐을 해나간다는 남 원장은 선생님들과 함께 진지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오랫동안 한 가지를 연구하겠다는 신념으로 임하기에 당장의 시류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억지로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영어가 갖고 있는 매력을 알게 된다면 영어를 좋아하진 않아도 싫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어 학습이 지닌 가치와 매력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실력 향상을 이루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입니다.” 남 원장의 모든 기준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안되는지 이다. 이 소신과 신념을 지켜나가는 남 원장은 대학생이 된 제자들이 찾아와 “선생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에요!” 라고 말할 때 자신의 길을 더욱 꿋꿋이 지켜나갈 것을 다짐한다고 전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보고 꿈을 꾸는 것을 돕는 것에 의미를 두는 남기정 원장은 참된 교육자의 모습으로 아이들과의 상하가 관계에서 소통하는 것이 아닌 같은 눈높이에서 같은 시각으로 교육을 완성하고자 한다. 이에 주간인물은 이러한 새로운 교육을 지향하는 참 된 교육인의 길을 응원하며 그를 통해 세계의 중심이 되는 글로벌 인재가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TOEIC 만점 •TOEIC Speaking 만점 •주한민군방송국 AFN 뉴스제작 (영문기사작성) •강남역 B어학원 토익파트 팀장 •대치동 S어학원 팀장 [1051]
    • 교육
    2018-08-27
  • 유용국 한국국제크리스천스쿨(KICS) 이사장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디모데후서 3:17)" 기독교에서 말하는 교육의 목적은 자신의 이익과 세상을 주도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라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영광 돌리는 삶은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성경을 기반으로 하여 체계적ㆍ전문적인 교육아래 예수님을 닮아가며 자신의 자아가 온전하게 성숙되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존재로서 타인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리더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유용국 이사장은 혼란스러운 교육체계 속에서 기독교 교육이 깨어나 이 세상을 밝히며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아이들을 성장케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 말한다. 이에 주간인물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세계를 이끌어갈 리더를 양성하는 유용국 이사장의 교육가치를 심층 취재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커리큘럼, 교재, 교사, 학생의 융합으로 학문적으로 탁월한 사람을 배양하다 학교,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 KICS는 2004년에 개교하여 현재 인천 남구와 경기도 부천에 자리잡고 있는 크리스천 학교이다. 유치부, 초등, 중등, 고등학교까지 청소년기에 기독교적인 교육을 기반으로 하여 성경의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은 영향력 있는 선한 리더를 양성하는 것을 비전으로 두고 있다. 유 이사장은 교육에 있어 "커리큘럼, 교재, 교사, 학생"이라는 네 가지의 원칙을 강조하며 미국 밥존스대학교(BJU) 커리큘럼과 교재를 바탕으로 한 높은 학문성과 체계성을 견지하고 있다. 실제 미국 크리스천 사립학교의 커리큘럼과 동일할 뿐만 아니라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며 한국의 일반 공ㆍ사립의 교육에서 진행되는 한국어, 역사, 중국어, 기술가정, 체육, 보건, 특별활동, 미술 등의 과목들을 배운다. 그러나 교육과정에서 아이들은 성경에 기반한 이론을 배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창조와 뜻하심을 배워간다. 경기, 인천을 넘어 서울 서초와 미국 일리노이까지 크리스천스쿨을 전파하다 KICS는 경기, 인천과 더불어 서울의 서초, Belleville Christian School(미국 일리노이) 캠퍼스가 올해 9월 개교를 앞두고 있다. 또한 모든 캠퍼스의 커리큘럼이 동일하며 수준 높은 미국 교육문화 체험(AP, SAT, ACT, UP)과 폭넓은 대학 관계망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서초 캠퍼스를 통해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1:1맞춤형 진학 및 진로상담으로 미국대학 진학에 도움을 주고자하며 성적우수장학금과 복지장학금, 밥존스장학금, 진학장학금 등의 장학금을 통해 아이들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향후 더 많은 크리스천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국내ㆍ외 700개 학교와 2020개 유치원, 나아가 크리스천대학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유 이사장은 그 계획을 위해 기도하며 수많은 사람과 사명을 감당할 준비를 하고 있다. 교육적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구축하여 한국을 넘어 아시아 크리스천스쿨의 학문적 수준을 높이고 세계선교에 기여하기 위해 발돋움하고 있다. 기독교 문화와 학문이 세상을 앞서갑니다 “크리스천스쿨이라 하면 단순히 기독교적인 교육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전문성과 체계성을 갖춘 커리큘럼으로 아이들의 학문적 수준과 깊이가 어떤 교육보다 넓고 깊습니다. 아이비리그 대학에 작년에 3명, 올해는 6명이 입학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세상과 문화를 이끌어 나갈거라 믿습니다. 기독교 학문이 모든 학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세상을 앞서간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유 이사장은 기독교교육은 ‘신앙, 학문’이 뛰어나며 세상을 앞서가는 교육이라 자신 있게 말한다. 몇몇 기독교인들은 교회와 삶이 분리되어 ‘감성’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나 유 이사장은 삶이 ‘신앙’ 그 자체라고 말하며 사람들이 기독교적인 학문적 지식이 부족하여 신앙의 깊이와 지식, 문화가 사라져간다며 이 시대의 교육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다음세대를 위한 준비’라는 말을 교회마다 많이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음세대를 준비하며 배워가는 과정이 바로 학교의 역할이며, 교육의 커리큘럼이다. “기독교의 문화와 학문은 세상을 앞서가며 아이들이 논리적인 근거와 사고를 바탕으로 미래를 이끌어나가는데 신앙적ㆍ학문적으로 탁월하며 선도할 거라 믿습니다. 기독교 교육이 앞서갈 때 비로소 사람들은 인정하고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권위와 신뢰로써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오직 사명감으로 길을 걸어온 유 이사장은 앞으로 이런 마음들이 공유되고 나누어져서 기독교 교육이 성장하고 한국의 부흥을 일으키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교육사역에 헌신하며 진정한 기독교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다 유 이사장은 아주 작은 교실에서 7명으로 시작한 교육이 현재 오프라인 500명, 온라인 500명이 넘는 조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자 교육을 위해 헌신하라는 뜻이라 생각한다는 유 이사장은 인생 자체가 교육중심 이었다고 말한다. 어릴 때 어머니가 크리스천스쿨의 교사로 봉사하던 중에 교회 옆에 있는 집에서 성장하며 3~4살부터 교회유치원과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미션스쿨에서 다녔다. 신학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공부할 때 친분이 있는 선교사가 장학금을 준다며 크리스천스쿨에 와서 잠시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자 교육사역을 준비시키기 위함이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또한 유 이사장은 미국 유학생활에서 진정한 크리스천이 무엇이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믿음의 눈으로 바라봤다. 답은 교육이었다. 교육적인 관점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한국은 정부가 교육을 통제하나 미국은 사립, 공립학교와 더불어 교단 교회를 중심으로 7천개 전후의 크리스천스쿨이 있다. 이것이 미국 교육의 힘이 되고 신앙의 바탕이 되는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이 시대가 지니는 교육의 한계와 현실에 맞닥뜨리며 진정한 학문적ㆍ신앙적으로 성숙된 환경을 아이들에게 펼쳐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며 성장기에 크리스천스쿨을 다녀 누구보다 크리스천스쿨의 영향과 아이들의 변화를 잘 알고 있었기에 기독교교육의 불모지 같은 한국에서 교육사역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자신이 미국에서 느끼고 배웠던 수많은 것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진정한 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게 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고 흐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미국의 교육을 한국에 흐르게 하면, 그 교육과 문화를 통해 이 나라가 학문적으로 성장할 것이라 믿습니다. 미국에 간 우리아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를 설립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어주었고, 앞으로도 이 커넥션이 활성화된다면 크리스천이 세상 문화를 이끌어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독교교육이 모든 것을 앞서가는 빛과 소금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 한명 한명이 글로벌 교두보가 되고, 학생, 학부모, 교사가 그 신뢰와 믿음을 잃지 않고 협력하여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삶을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처럼 검증된 교사와 교육으로 기독교 문화 안에서 진정한 글로벌 리더십과 사랑으로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성숙한 사람으로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있다. 유 이사장은 학교사역은 함께하는 것이자 학부모, 교사, 학생 모두가 동행하는 것이라 말하며 한국사회 교육에 메세지를 전달하여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주간인물은 사랑과 헌신으로 아이들의 꿈의 길을 활짝 열어주는 유용국 이사장의 행보를 응원하며, 대한민국 기독교 교육의 새 바람을 일으키길 기대해본다. The Christian culture and disciplines lead the world. I think that students will lead the future on the basis of logical ground and thinking which are from the Christian culture and disciplines. Christian education is also devotedly and academically excellent and outstanding. Therefore, people will acknowledge and follow this Christian culture and disciplines when Christian education is ahead of the curve. ※서초캠퍼스 _ 서울특별시 서초구 우면동 65 (바우뫼로7길 19) ※Belleville Campus _ Belleville Christian School (미국 일리노이) : 1901 Mascoutah Ave. Belleville, IL 62220 ※인천캠퍼스 _ 인천시 남구 문학길 136번길 (문학동 400-1) ※문의사항 _ 032)668-2212~5 [1048]
    • 교육
    2018-07-18

라이프 검색결과

  •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소통하는 공인노무사 - 일하고 싶은, 일하기 좋은 근로환경 형성의 조력자, 최수영 최수영노동법률사무소 대표노무사
    공인노무사는 국가에서 공인하는 유일한 노동 법률 전문가로 노동관계법령에 따라 고용노동부, 노동위원회, 근로복지공단 등을 상대로 노동자의 권리구제를 대행 또는 대리하고, 기업을 위해 각종 인사노무관리 상담이나 지도, 작업장 혁신 컨설팅 업무를 하고있다. 노사양측의 의뢰를 받아 노무관리를 진단하거나 분쟁을 합리적으로 조정 중재하는 일도 주요한 업무영역이다. 주간인물이 만난 최수영 공인노무사는 따뜻한 감성과 기탄없는 소통방식으로 의뢰인과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하며 근로자와 사용자의 합의점을 찾아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 근로조건 자문위원으로서 청소년 근로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를 만나 의뢰인과의 소통방법과 직업가치관을 집중조명 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공감과 소통으로 의뢰인과 사용자의 원활한 관계를 돕다 최수영노동법률사무소는 최수영 노무사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대표로 있는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노무사 사무소이다. 최 노무사는 현재 서울청 국선노무사, 청소년근로조건 보호위원, 중소벤처기업부 비즈니스 자문위원, 단위농협의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건설사, 제조사 등 다수 기업 자문 및 인사제도 개선, 근로시간 단축, 임금설계 컨설팅과 근로자를 위한 노동법률 상담, 권리구제 등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최 노무사는 “노무사라는 이름 때문에 노무사는 근로자 측에서만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노무사의 궁극적인 역할은 기업이나 근로자 한 측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설명했다. 결국 노무사는 기업과 근로자 모두 일하기 좋은 토대를 만들어주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며 기업은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근로자는 지속적으로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노무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여야 할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 특히 최 노무사는 최근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관련 이슈가 매우 뜨겁고 그만큼 노동법에 대한 기업과 근로자들의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인 만큼 앞으로는 기업과 근로자 모두 친숙하게 노동법 상식들을 접할 수 있도록 기업 인사 담당자와 직장인들을 위한 유투브 강의와 세미나 개최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또한 현재 사무실이 위치해있는 근처에 문정동 법조단지에 직장인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부터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천농업협동조합 노무관련 자문위원 위촉 실질적인 도움을 전하고 싶어 시작한 발걸음 최 노무사는 법대를 졸업한 후 대학생 때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하며 행정사무관으로서 국민을 위한 정책을 기획하고 많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러나 몇 년간 행정고시에 낙방하면서 ‘아,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하며 방황하던 시기에 노무사로 활동하고 있는 다른 선배들을 만나게 될 기회가 생겨 노무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학교에서 노동법 강의를 들으며 많은 관심이 생긴 최 노무사. 그는 노무사라는 직업이 자신이 애초에 꿈꿨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라는 희망을 실현할 수 있으며, 더불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되어 노무사 준비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노무사가 갖춰야 할 자질 중에는 외향성과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점도 있어 상담을 통한 업무가 많은 노무사의 업무 특성상 외향적인 분들이 많다. 그러나 최 노무사는 본래 성격이 외향적이거나 사람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강의도 진행하며 울고 웃는 나날을 보내면서 노력의 과정을 겪어왔다는 최 노무사. 그는 아직도 부족한 점은 많지만 노무사로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되었다며 지금의 모습에 감사하며 앞으로 최선을 다해 달려 나갈 것을 다짐했다. 청소년들의 근로환경과 권익을 위해 달려나가는 청소년 근로조건 보호위원 국선노무사로서 청소년 근로조건 보호위원과 현장실습 점검 노무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 노무사는 “우리 청소년들도 학교 강의나 인터넷 커뮤니티나 뉴스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노동법과 관련된 내용을 알게 모르게 많이 접하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 등 일하다가 ‘아. 뭔가 내가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스스로 노동부를 찾아가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노무사를 찾아서 노무 상담을 받으러 오기도 하는 등 본인의 권리 구제를 위하여 굉장히 능동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올바르지 않는 정보들이 많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만을 믿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계속 참고 일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죠.” 그렇기에 최 노무사는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면 꼭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것을 사업주에게 요청하고 만약 사업주가 작성을 거부하거나 미룬다면 ‘부모님 또는 학교 선생님께서 제출하라고 하셨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작성을 유도하는 방법을 강조한다. 또한 고용노동부와 한국공인노무사회가 함께 운영하는 청소년근로권익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수도 있고, 더불어 최 노무사와 같은 청소년근로조건보호위원의 도움을 받아 권리구제도 가능하니 미리 알아둘 것을 당부했다. 의뢰인과 믿음을 바탕으로 공감하고 해결하는 노무사 최근 공인노무사 27기 합격발표가 나고 수습 노무사들이 사회로 나온 시점에 최 노무사는 “노무사로서 이루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다면, 본인이 가진 한계를 뛰어 넘어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멋진 노무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노무사에 합격했을 때부터 언젠가 제 이름을 건 사무실을 열고 싶다는 생각이 명확했습니다. 저는 의뢰인이 믿을 수 있는 노무사, 의뢰인의 사연을 공감해줄 수 있는 노무사, 일을 잘 해결해줄 수 있는 노무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제가 부족하지 않나 많이 돌아보고 반성하며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라는 괴테의 말처럼 저도 이리 저리 방황하면서도 처음에 노무사 합격했을 때 꿈꿨었던 그 소망을 조금씩 이뤄가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 라며 수습노무사들에게 경험을 바탕으로 한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신뢰할 수 있는 노무사, 공감할 수 있는 노무사, 그리고 일을 잘 해결해줄 수 있는 노무사로 성장해가는 최수영 노무사의 미래가 기대되며 그의 진취적인 발걸음을 통해 많은 근로자와 사용자의 관계가 원활해질 것을 확신한다. •現최수영노동법률사무소 대표노무사 •現서울지방노동청 국선노무사 •現청소년 근로조건 보호위원 •現서울지방노동청 근로조건 자율개선사업 수행 노무사 •現근로조건 특례제외업종 자율준수 지원사업 수행 노무사 •現직업계고 산업체 현장실습 지도점검 수행 노무사 •現중소벤처기업부 비즈니스 지원단 인사/노무 분야 전문위원 •現위험성평가 전문가 •現회천농협 노무관련 자문위원 ■삼성전자, GS건설, KT, 현대엔지니어링 등 다수회사 자문 수행 경력 보유 [1062]
    • 라이프
    2019-01-22
  • 장현준 현명속기사무소 대표속기사
    기록을 담당하는 전문 직업인 '속기사'는 과거의 기록물을 담아내어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끼치며 무엇보다 정치, 경제,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기록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국가기관의 회의, 강연, 청문회 등의 현장에서 음성과 무형의 언어를 빠르고 정확하게 기록하여 문자화 하고있다. 단순히 글을 기록하는 것이 아닌 상황과 분위기 등 모든 언어를 종합적으로 기록하여 작성하며, 속기사의 빠른 속기는 청각장애인들을 비롯한 장애인들의 학습을 돕는 분야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록’을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창을 열어주는 속기사. 주간인물이 만난 장현준 속기사는 최고의 속기사를 지향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며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속기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그를 만나 속기사의 역할과 그의 직업가치와 신념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의뢰인의 일을 내 일처럼 처리하겠습니다” 오류없는 속기로 완벽성을 추구하다 현명속기사무소(이하 현명)은 ‘세상을 밝게 비추어 의뢰인의 일을 내 일처럼 처리하자’라는 의미와 포부로 시작한 전문 속기사무소이다. 국내 최고 실력이라고 자부하는 법원, 의회출신 1급, 2급 국가공인 속기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증거제출용 녹취록을 전문적으로 작성하고 있다. 이외에 회의록, 방송스크립트, 자막, STT전사, 각종 출장 속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이다. 장 대표는 속기에 있어 ’완벽함‘ 을 추구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사람의 말을 텍스트화 하는 속기의 특성상 쉽게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한 단어가 특정단어로 강하게 뇌리에 박힐 경우 누군가가 의견을 줄 때까지 그 단어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현명은 2인 1조로 속기록 작성을 진행하고, 모든 속기록의 최종본 출고 전에 반드시 장 대표의 최종 검수가 진행된다. 이는 보다 오류를 줄일 수 있기에 완벽하고 우수한 속기를 통해 의뢰인에게 만족을 주고 있다. 또한 중립의 입장에서 의뢰인의 억울한 마음을 빼지도 더하지도 않고, 객관적으로 담아낼 수 있도록 본질적 역할에 충실하여 책임감 있는 속기를 선사하고 있다. 자신과의 싸움 끝에 얻어낸 성취! 속기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자신을 마주하다 타 속기사보다 이른 나이에 합격한 장 대표는 합격한 이후 각종 회의록 작성, 인터넷강의 스크립트 각성, 인터뷰 녹취록 작성, 대기업 고객센터 녹취록 작성, 단순 음성파일 텍스트 전환, 청각장애인 봉사활동 등 많은 경험을 쌓는데 주력했다. 그의 노력은 속기를 하기 까지 평탄하지 않았던 나날들이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장 대표는 자신만의 소신이 확고하여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였을 때 학교 재학 중에 다시 수능을 준비하였다. 새로운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던 학문적 접근에 다시 반 재수를 하는 등 혼자만의 격동기를 보낸 장 대표. 그는 내면에서 끊임없는 고민과 결정을 반복한 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과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속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학창시절 컴퓨터 영재라는 말을 들을 만큼 컴퓨터에 소질이 있었기에 속기가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특히 공부하는 과정에 있어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 E-스포츠 중계를 들으면서, 또 칼럼과 뉴스를 보면서 속기를 해 나태해지고 지루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자 노력했다. 이 때 뉴스를 본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장 대표는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처럼 다양한 분야를 듣고 작성하며 최고의 전문 속기사가 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을 걷고 있다. 또한 자신을 묵묵히 기다려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부모님과 의뢰인들이 믿고 맡겨주시는 만큼 최고의 속기사사무소가 될 것을 다짐한다고 힘주어 전했다. “음식에도 맛집이 있듯이 녹취록의 맛집이 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힘드실 때 저희 현명속기사무소를 찾아주신 의뢰인들께 항상 최고의 녹취록, 최상의 서비스를 다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속기 관련한 여러 가지 사업을 시도해 보는 것이며, 특히 청각장애인 분들에게 도움이 될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속해있는 지역구에도 도움이 되는 사업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 사건·사고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의뢰인의 속기를 하며 감정이입을 해 함께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임감 있는 업무를 수행하는 장 대표. 그의 속기하는 손길을 통해 많은 이들이 당면한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그의 성장이 속기사의 가치를 높일 것이라 확신한다. •現현명속기사무소 대표 / 국가공인속기사 •前용산구의회 근무 •前노원구의회 근무 •前효성ITX근무 •인터넷강의 스크립트 작성 •아웃소싱업체 인터뷰 녹취록 자성 •그외 다수의 녹취록, 속기록 작성 [1061]
    • 라이프
    2019-01-21
  • 최상의 결과를 내는 전문성, 의뢰인을 향한 존중으로 진실을 파헤치는 법의 수호자 - 김진우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
    과거 사법시험에 합격만 하면 부와 명예가 보장되었던 시절과 달리 법조계에도 이미 치열한 경쟁과 시장논리가 작용한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뛰어난 전문성과 성실함으로 시장에서 인정받는 변호사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 열정과 소신을 바탕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진우 변호사는 많은 이들의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다. 김 변호사는 새로운 분쟁과 사건을 대할 때 단지 피상적인 사실관계만을 살피지 않고,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 파악을 위해 의뢰인 주변의 인간관계는 물론, 의뢰인이 속한 산업과 거래계의 사소한 관행까지 철저하게 파헤치는 것으로 의뢰인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쌓은 특유의 공감능력으로 의뢰인과 편하게 소통하고, 강원도 철원의 DMZ에서 전투병으로 복무하며 쌓은 강인한 체력으로 사건을 파헤치는 김 변호사. 주간인물은 다소 상반되는 듯한 이 2가지 캐릭터를 모두 겸비하고 있는 김진우 변호사를 만나 그의 열정과 소신을 집중취재 했다. _장보연 기자 형사고소 및 수사 관련 강연 의뢰인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유능한 변호사로 자리매김 법무법인 주원은 각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변호사들을 비롯하여 회계사, 세무사 등 100여명에 가까운 전문인력이 포진한 강한 로펌이다.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은 이후 2015년부터 법무법인 주원의 파트너 변호사로 합류한 김 변호사는 불과 1~2년만에 다양한 형사소송(금융범죄, 명예훼손, 성범죄)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일부 사건은 언론에 소개가 되기도 하였다. 정재욱 변호사와 함께 블록체인 법률강연 김변호사는 또한 각종 부동산 관련 소송을 비롯한 민사소송에서도 많은 승소 판결을 받으며 다양한 의뢰인들의 부름을 받았는데 점차 담당하는 사건의 규모와 양이 늘어나면서 상시적으로 업무를 함께 처리할 변호사 Team을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김 변호사는 이에 과거 법원에 재직하며 풍부한 송무 경험을 쌓았던 김연정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에서 기업자문 및 M&A를 담당했던 정재욱 변호사, 대형 증권사의 법무팀 변호사 출신으로서 금융실무에 밝은 이충윤 변호사 등과 함께 법무법인 주원 내부에 Team을 조직하여 다양한 민형사 소송 및 기업자문 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 중이다. 형사소송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김 변호사는 최근에도 기존 1심에서 법정구속 되어 있던 의뢰인을 2심부터 새로 변론하여, 결국 원심 파기 무죄판결을 받은 바가 있다. 구치소에서 편지를 보내오는 의뢰인의 억울함을 풀어 주고자 매번 밤을 새며 수천 페이지가 넘는 사건기록을 검토할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이처럼 풍부한 변호사 인력을 바탕으로 민형사 송무와 기업자문을 가리지 않고 성과를 거두어 왔으며, 기존에 자문하던 기업들의 해외진출 수요에 따라 2018년 3월에는 싱가포르 현지에서 다양한 로펌 및 기업과 MOU를 체결하기도 하였다. 김 변호사는 대외적으로도 그 능력을 인정받아 대한변호사협회 이사를 4년째 겸직하고 있고 많은 법제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국회의 각 의원실에 법률자문을 하고, 여러 국가기관과 언론에 공신력 있는 의견을 제시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협력하고 있는 김연정, 정재욱 변호사와 함께 조세법 전문가인 아버지를 보며 키운 변호사의 꿈과 휴전선 북쪽 DMZ에서배운 강인함 김 변호사는 국세청에 오래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조세법 전문가이자 세무사로 활동 중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법률과 변호사 직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거기에 어렸을 때부터 씩씩한 성격을 바탕으로 웅변에 소질이 있었던 김 변호사는 진로를 선택함에 있어서 큰 고민 없이 법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연세대학교 재학 중 토론 대표팀의 주장으로 선발될 정도로 발표 능력도 인정받게 된다. 다만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키우고 싶었고 잠시나마 한정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김 변호사는 강원도 철원에 소재한 육군 3사단 백골부대에 현역으로 입대하였다. 이후 엄격한 내무 생활도 경험해보고 야간에 고된 산악침투 훈련 도중 부상을 입는 등 나름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또한 휴전선 북쪽의 비무장지대(DMZ) 내부에 소재한 GP에서도 복무를 하였는데, 완전 무장 상태로 곳곳에 지뢰가 매설된 비무장지대를 정찰하면서 체력과 담력을 키울 수 있었고 이는 지금 변호사로서 활동하는데 정신적, 육체적으로 매우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전역 이후에도 다시 사교적인 성격을 접어두고 법률 공부에 매진한 김 변호사. 그는 가끔은 미래가 막막할 때 가수 임재범의 노래 ‘비상’ 中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거야.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보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할거야" 를 되새기며 미래를 그려 나갔다고 한다. 싱가포르 로펌 대표변호사와 MOU협약 모습 의뢰인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합리적 해결방안을 찾아가다 의뢰인과의 소통을 가장 중시하고 의뢰인의 해당 분야 경험을 존중한다는 김 변호사. 그는 스스로 법률에 대한 전문성을 지닌 변호사로서의 자부심도 크지만, 각각의 산업과 거래계의 현실에 대해서는 현업에 종사하는 의뢰인들보다 지식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매순간 의뢰인의 이야기를 경청한다고 전한다. 예를 들어 어업과 관련하여 수산물 거래 및 유통과정이 문제되는 사건을 처리할 때는 어촌에서 잔뼈가 굵은 의뢰인만큼 세부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의뢰인과 상담을 할 때 어업에 대해서는 지식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임한다는 소신을 전했다. 각종 민형사 소송, 자문 업무에 관계없이 회의 때마다 해당 산업의 현실과 관행, 거래내용에 대해 많이 듣고자 노력하고 질문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김 변호사. 그는 "변호사의 권위는 의뢰인의 경험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궁금한 것을 거리낌 없이 물어볼 수 있는 자신감과 여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매 사건을 처리할 때마다 끊임없는 질문이 사건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고, 의뢰인의 만족도도 높았습니다. 앞으로도 매 사건마다 치열하게 파고들어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갈 것입니다."라며 확고한 의지를 전했다. 김 변호사는 다른 분야에 한눈을 팔기 보다는 변호사 본연의 업무와 의뢰인에게 충실하고 현재 이끌고 있는 Team의 규모를 키워 민사, 형사, 가사, 기업자문 그 어떤 사건이던지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을 다지고, 이를 통해 의뢰인과 소중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전했다. 의뢰인과의 기탄없는 소통과 공감으로 실체적인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김 변호사. 그의 남다른 신념이 의뢰인의 분쟁을 해결하여 주고, 그들의 굳어있는 마음을 구원하며, 나아가 장차 이 사회의 정의에 이바지 할 것을 확신한다. 한양대학교 로스쿨 초청강연 ■ 주요경력 및 학력 •現 대한변호사협회 이사 (2015. 2. ~ 현재) •現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 위촉 변호사 •現 고용노동부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권리구제 대리인 위촉 변호사 •現 서울지방변호사회 광고심사위원회 위원 •現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2동 / 송파구 오륜동 주민센터 위촉 마을변호사 •現 사단법인 한국부패방지법학회 연구위원現 변호사시험 예비시험 검토위원 •現 법무법인(유한) 주원 파트너 변호사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전문석사 •연세대학교 법학과 학사 ■ 인턴 경력 •서울고등법원 제20민사부 심화 실무수습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실무수습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실무수습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공정거래팀, 기업법무팀 심화인턴 •법무법인(유한) 바른 심화인턴 ■ 연수 및 학술활동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School of Law Pre-LL.M. 과정 수료 (2011) •現 중소기업법 연구회 회원 •前 연세대학교 토론대표팀 주장 •前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금융법학회 학회장 ■ 주요 업무수행 분야 1. 기업자문 업무 (각종 투자와 계약관련 사항) (국내 기업 자문사례 多, 싱가포르 법인설립 및 암호화폐 ICO 관련 업무, 미국 등 현지 한인마트 설립 관련 계약 검토, 마카오 상업지구 분쟁해결 자문 등) 2. 형사소송 (금융범죄, 명예훼손, 성범죄 등 언론에 소개된 다양한 무죄판결 사례 有) 3. 민사소송 (대규모 건설지구 및 부동산 관련 소송 수행 경 多) 4. 기타 언론에 소개된 가사소송 등 승소사례 有 ■ 기타 업무수행 및 외부활동 이력 1. 한국경제신문, 머니투데이, 법률신문, 내일신문 등 다양한 언론사 법률기고 2. KBS, JTBC, YTN, 연합뉴스 등 각종 언론사 인터뷰 3. 서울경제신문 및 디센터 유니버시티 주관 블록체인 법률분야 강연 (2018) 4. 한양대학교 초청 법률실무 분야 강연 (2015, 2016) 5. 육군 제36보병사단 법률강연 (2015, 2016)6. 육군 제2사단 법률강연 (2019) 육군 36시간 법률 및 인생진로 강연 [1062]
    • 라이프
    2019-01-18
  • 김종인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이사장 / 나사렛대학교 재활복지대학원장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신체장애인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 “장애인복지법 제4조 제1항 장애인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국가에서 장애인에 대해 책임과 보호의 필요성을 의미하며 복지를 향상시킬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마땅한 대한민국의 장애인들은 그렇지 못한 사회를 향해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의료·교육·직업재활 등 생활안정의 권리추구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1988년 제8회 장애자올림픽 대회를 개최하며 장애인스포츠의 저변 확대와 국내장애인체육대회의 활성화·장애인교육의 체계화·복지시설의 확대를 인식하고 국민들에게 장애인의 도전과 극복, 참여와 평등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복지의 여러 한계를 가진 대한민국에서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 이제는 개인과 가정의 책임이 아닌 당연한 국가의 책임이며, 선택이 아닌 의무라는 사실을 가슴깊이 느낄 수 있는 사회로 변모해야 할 것이다. 당시 홀트일산복지타운 재활과정을 거쳐 88서울장애인올림픽 문화예술 파트담당이었던 김 이사장은 30년간 사회복지에 힘쓰며 소외된 이웃들의 권익을 대변해왔다. 그를 만나 시청각중복장애인을 위한 환경의 한계와 향후 노력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시청각중복장애인의 현주소와 권리보장 및 사회통합방안 시각과 청각 중복장애인들을 위한 일명 '한국 헬렌켈러법' 제정을 위한 세미나가 국회에서 열렸다. '시청각중복장애인의 현주소와 권리보장 및 사회통합방안'이란 주제의 강연과 세계 최초로 개발된 시청각중복장애인 의사소통 지원기 '점어기'의 시연회가 열렸는데, 이는 사회 및 제도의 변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이명수 의원과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설립자인 김한규 회장,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 나경원 의원, 나사렛대학교 이영식 이사장이 참석 및 축사를 통해 장애인의 생활안정과 인권을 위해 국가가 책임질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전했다. 또한 한국의 시청각중복장애인은 약 1만2000여명으로 추산되나 장애관련 국내법상에도 장애유형이 규정된 것이 없을 정도로 방치되었는데, 김 이사장이 속해있는 나사렛대학교와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의 연구팀에서 관련법을 제정을 제언하고, 해당 장애인들에 대한 의사소통체계는 밀알복지재단과 협력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개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더불어 시청각중복장애인의 활동지원사와 시청각통역사 양성 및 지원, 시청각중복장애인 당사자 조직의 결성 및 지원, 시청각중복장애인의 국제교류 및 협력체계 구성을 위한 모임 결성 등의 내용을 담은 '한국헬렌켈러법' 제정안을 제안했다. 평생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봉사하며 그들을 대변해온 김 이사장.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사회통합에 필요한 원활한 의사소통을 지원하기 위하여 당사자의 권리보호 가족 등에 대한 상담 등을 수행하는 한국헬렌켈러센터를 설치하여 필요한 개별서비스와 훈련을 제공하여 시청각중복장애인의 경제적, 사회적 자립을 고취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김 이사장은 향후 사회복지정책연구원과 나사렛대학교(재활복지대학원), 그리고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 제주농아인복지관 등의 협력을 통하여 ‘한국형 헬렌켈러센터’의 모형개발과 시험적 운영을 통하여 한국에 알맞은 모형 정착과, 학문적 연구의 협력과 현장에서의 접목 및 설치를 통해 더욱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30년 동안 사회복지정책을 제안해온 연구원의 중심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사)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은 1988년 21세기 복지국가 실현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출범하여 1992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사단법인 허가를 취득한 후, 대한민국 사회복지정책 연구개발사업부터 아동청소년 장학사업 등 인재개발사업, 장애인과 노인의 재활사업 등 전문적 연구와 함께 실제적 사업을 수행해오고 있다. 사회복지기관 설립 및 복지사업의 컨설팅을 하는 것은 물론,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지원으로 발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국내 최초의 민간자격증인 발달행정보조사 자격사업을 운영하여 취업이 불리한 발달장애인의 고용연계에 힘쓰고 있으며, 복지전문인력 양성을 위하여 재활복지경영사 자격사업 또한 실시하고 있다. 소외된 이웃의 권익을 대변하고, 보다 나은 복지사회 구현을 위하여 복지정책을 개발하고, 현실성 있는 복지구현을 위하여 사회복지시설과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등 선진복지국가 건설에 기여하는 목표로 하는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과 김 이사장. 그는 시청각중복장애인의 권리보장과 지원을 위한 “한국 헬렌켈러 제정 및 헬렌켈러센터 설립”에 크나큰 관심과 지원으로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찾고있다. 소망과 비전을 전하는 스승 김 이사장은 대학교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였고, 캠퍼스 내에 맹학교, 농학교, 지체장애학교, 정신박약학교(현재 지적장애학교)등 4개의 또 다른 캠퍼스가 자리잡고 있어 장애인들과 어울리며 대학생활을 하였다며 운을 띄었다. 장애인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한 친구는 한라산에 올라가는 소원이고, 또 한 친구는 라디오를 듣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맹인 장애인친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눈 한번만 떠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김 이사장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살면서 딱 한번만 눈을 떠 보는 것이 소원이라 말하는데, 나는 눈을 뜨면서도 왜 이렇게 사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들을 섬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시각 장애인들과 마음을 합쳐 ‘수학의 완성’을 점자로 찍어 15권의 점자책을 만들기도 하며 그들이 세상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민 김 이사장. 특히 그는 광부로 일하다 척추손상으로 척추장애인 진단을 받은 박종균 박사가 자신을 만나 대학원을 가고 박사학위를 딴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한 제자인 강민휘 군은 지적장애인으로서 아시아 최초로 다훈증후군 배우가 된 주인공이다. 강민휘 군의 밝고 넉살좋은 성격을 눈여겨본 김 이사장은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홀로서기 할 수 있도록 하나부터 열까지 지도했다. 자신을 통해, 여러 도움의 손길을 통해 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을 가장 보고 싶으며, 그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는 김 이사장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마음으로 희망의 불씨를 전하며 소명과 비전을 전하는 스승이라 할 수있다. 시각장애인들의 빛과 희망이 되어주는 김 이사장이 있어 시각장애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행복추구권을 보장받아 인권의 주체로 살아간다는 꿈을 품는 세상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 주요연혁 ] •現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원장 •現나사렛대학교재활복지대학원장 •現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교수 •現한국장애인정책대학원장 •現한국재활상담사 협회장 •現근로복지공단 자문교수 •前나사렛대학교 부총장 •前한국직업재활사협회 회장 •前보건복지부 장애인복지정책 자문교수 •前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연수부 강사 •노던콜로라도대학교 대학원 재활학 박사 •한인 최초 미국 인간재활학(Human Rehabilitation) 박사 •숭실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보건학 석사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 학사 [ 수상 ]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 (2009년) •서울시장 표창 (2007년) •근정포장 (2004년) •노동부장관 표창 (1998) •경기도지사 표창 (1987)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대한민국 산학협력 복지대상(한국언론인협회) •Bob Ross International AmbassadorAward 노무현 정권 당시 근정포상 수상 [1060]
    • 라이프
    2018-12-13
  • 박세원 법률사무소 제민 대표변호사
    변호사법 제1조 제2항에 명시되어 있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라는 말은 국민의 권리와 정의를 실현시키는 변호사의 가치와 역할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겸손한 자세로 국민의 편에서 법률에 의거한 양심적 법률서비스와 탁월한 소송 전략을 이루어 가야한다. 낮은 자세로 의뢰인과 소통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경청하여 합리적 과정과 방안을 제시해 나가고 있는 박세원 변호사. 주간인물은 그를 만나 그의 굳건한 신념과 의뢰인과의 소통방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공감과 겸손으로 의뢰인의 마음을 두드리는 법률사무소 제민 옛말에 “경세제민 :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고난에서 구한다” 라는 말이 있다. 그 의미를 인용하여 설립한 법률사무소 제민은(이하 제민) 경세제민의 정신에 입각하여 열정과 소신을 가진 청년변호사들이 모여 2017. 1. 만든 법률사무소이다. 제민은 현재 슈퍼모델 대상 수상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지닌 이진영 변호사와, 따뜻한 감성으로 의뢰인과 친근하게 소통하는 박 변호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민·형사·가사 등 일반 사건을 포함하여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인사노무, 학교폭력대책관련 업무 등을 특화 업무로 삼고 있고, 행정사 사무소 및 여러 중소기업과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왕성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많은 변호사들과 협업하여 함께 성장해 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최근 박 변호사는 네이버지식IN의 우수상담 변호사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박 변호사가 소통할 시 가장 중요히 여기는 점인 “공감과 겸손”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있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당면하고 있는 법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조력자입니다. 의뢰인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의뢰인이 처한 상황, 문제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낮은 자세로 눈을 맞추고 진심으로 그들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마음을 이해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죠. 겸손한 자세로 대화를 할 때, 상대방 역시 저를 존중하는 자세로 대화에 임하게 됩니다.” 가장 합리적인 대책 강구 학생들을 올바르게 선도 · 보호에 주력! 박 변호사는 주력하는 업무로서 민사 사건으로는 실제 종속적 근로계약임에도 위탁계약으로 가장하여 계약을 체결하여 근로자로 받아야 할 권리를 받지 못하고, 불이익한 처우를 받은 의뢰인을 위해 의뢰인의 지위가 실질적 근로자임을 주장하는 사건을 일부 담당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서울 소재 모 중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학교폭력대책위원회(이하 학폭위)는 학교폭력이 발생하였을 때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올바르게 선도함으로써 학교폭력을 예방과 나아가 학생의 인권 보호 및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과거처럼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체벌 등 강압적인 태도로서 학생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가장 합리적인 대책을 강구하는 절차이다. 요즘에는 교육의 질도 높아지고, 접할 수 있는 교육 매체들이 다양해짐에 따라 학생들의 수준도 많이 향상 되었습니다. 그에 발맞춰 사건을 해결하는 수준도 향상되어야 하죠. “제가 위원회에 몸담고 활동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사건의 원만한 해결하여 학생들을 올바르게 선도하고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낮은 자세로 의뢰인과 공감 · 소통하며 정의실현에 앞장서고자 군대를 제대하고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사법시험 공부에 매진한 박 변호사. 그는 약5년 정도의 수험생활을 마치고 2014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과정을 마친 후 2017년부터 변호사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박 변호사는 사법연수생으로서 각 직역별 수습활동 기간 중 특히 국선변호인 및 공익법률상담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상대방의 고충을 듣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 사건을 해결하였고 많은 보람을 느껴 여러 직역 중 변호사를 선택하였다. “중학교 때 잠시나마 교사의 꿈을 가진 적도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거나,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재미있게 전달해 주거나, 나쁜 길로 빠지려는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업무에 대해 많은 관심과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학교폭력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젊음과 소신을 가진 박 변호사는 법조인으로 “정직과 최선” 을 가장 중요시 한다고 말한다. 이는 의뢰인을 만나 상담을 시작하여 수임계약을 체결하고, 사건을 진행해가며, 결론에 이르러 의뢰인의 권리가 현실적으로 실현될 때까지 정직과 최선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뢰인은 변호사를 믿고 사건 해결을 맡긴 사람이기에 그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박 변호사. 그는 “소송은 서면을 무기로 하여 이루어지는 전쟁과 같습니다. 그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정직과 최선이 뒷받침 된 자세로 사건이나 소송에 임한다면, 승리라는 결과물은 자연적으로 따라 오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라며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사회적, 윤리적 책임감을 느낍니다.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들의 권리를 회복시켜 줘야한다는 의무감도 가지고 있죠.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입니다. 신체적, 외형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의사와 같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보살피고, 그들을 치유하는 변호사가 될 것입니다.” 항상 낮은 자세로 공감하며, 의뢰인이 처한 곤경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겠다는 포부를 밝힌 박 변호사. 변호사로서의 본질적인 가치와 역할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소신으로 의뢰인과 함께하는 그를 응원하며, 박 변호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의가 실현되고 국민들의 법적 보호를 정당히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現법률사무소 제민 대표변호사 •現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공인선수대리인 •現서울특별시 공익변호사 •現서울여의도중학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전문위원 •前서울중앙지방법인 국선변호인 •前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사법연수원 시행 전국 초·중등생 사법교육 •사법연수원 수료 •사법시험 합격 [1060]
    • 라이프
    2018-12-13
  • 김한올 옳은속기사무소 대표속기사
    속기는 정치·경제·사회 다방면의 분야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상황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기록하는 역할을 하고있다. 내뱉으면 사라지는 말을 속기사의 손을 통해 글로 옮겨지고 공식적인 문서가 되어 공증으로서 법적인 효력까지 지니게 된다.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사회를 기록하여 대한민국의 역사의 기록지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속기사. 주간인물이 만난 김한올 속기사는 최고의 속기사를 지향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며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속기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김한올 속기사를 만나 속기사의 역할과 그의 직업가치와 신념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정확성과 신속성을 모두 갖춘 올바른 속기사무소 의뢰인과 소통, 공감하는 속기사 옳은속기사무소의 ‘옳은’은 김한올 속기사의 ‘올’과 은종하 속기사의 ‘은’을 따 올바른 마음의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속기 사무소이다. 김 속기사는 증거 제출용 녹취록을 전문으로 하여 경찰과 법원 등 수사기관에 증거목적으로 낼 수 있는 문서를 객관적으로 작성하여 의뢰인이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주는 것에 주력하는 젊은 속기사이다. 김 속기사는 속기사의 역할 중 하나인 녹취록 작성은 “정확성과 신속성”이 최우선이라 말하는데 무엇보다 증거제출용으로 작성하는 것이고 문서에 따라 재판의 승소를 좌지우지 하기에 신중히 기록하고 있다. “음질이 좋지 않을 때에도 속기사는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 김 속기사는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처럼 사회의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알고 있어야 잘 듣고 올바르게 쓸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한 분야의 전문용어에 대해서도 단순히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의뢰인의 목적과 하고자 하는 전달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하면서 듣고 기록해야만 의뢰인의 만족과 사건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들으며 검수하고 청취불능 구간에서는 의뢰인과 상담을 통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기록하고자 노력한다는 김 속기사. 그는 개인적인 속기 봉사와 자막센터에서 근무하며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자막 송출 속기를 할 때 보람을 느꼈다고 말한다. 청각 장애인들에게 귀가 되어드리고, 공공기록물관리법에 의해 기록하는 속기사를 통해 역사가 기록되고 역사의 중심에 서는 것이기에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이라며 자신만의 소신을 전했다. 한 번의 실패 끝에 찾아온 진정한 꿈, 최고의 속기사가 되겠다는 굳은 신념 용인에서 성장한 김 속기사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컴퓨터학원을 다녔다. 컴퓨터가 대세인 시대가 올 것이라는 아버지의 선견지명으로 컴퓨터를 배우며 키보드 타자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는 김 속기사. 그는 함께 배우는 오빠, 언니들을 제치고 가장 타자가 빠른 수강생이었고 매일 타자를 쳐, 5학년 때 용인시대회에서 대상까지 탈 정도로 타자에 능한 학생이었다. 자신의 적성에 맞았으나 직업적으로 타자를 활용할 수 있는 명확한 길을 알지 못해 진로를 고민하던 중 미용을 접하게 되어 고등학교 때부터 집중적으로 미용에 몰입하면서 또 다른 재능을 알게 되었다. 미용자격증을 단숨에 취득하고 조기취업까지 할 정도로 소질이 있던 김 속기사는 매일 샵에 출근하던 중 인생을 뒤흔드는 일이 발생한다. 매일 성실하게 일하던 중, 어느 날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땅에 발을 딛지 못할 만큼의 통증을 느껴 자신이 그렇게도 노력하고 고생했던 미용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밤새 눈물을 흘렸다는 김 속기사. 병원을 다니며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없었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마음의 병까지 생기는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에 여러 아르바이트와 치료를 병행하며 아픔을 참고 일했던 김 속기사는 가족과 지인들의 조언으로 앉아서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러던 중 자신이 어릴 적 타자를 잘했던 기억이 떠올라 “속기사”라는 직업을 접하게 된다. ‘속기’ 만큼은 자신이 있었으나 자신이 하던 타자와는 다른 속기를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마음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10시간 이상 매일 연습하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기록하였다. 힘들 때마다 “최고의 속기사가 될 것이고, 미용은 실패했으나 이것만은 실패하지 않겠다” 라는 굳은 결의를 다졌다고 말하는 김 속기사. 그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현재 옳은속기사무소에서 함께하고 있는 은종하 속기사를 만나 서로에게 힘이 되었고 연인으로서 미래를 계획하며 함께 나아가고 있다. 김 속기사는 “지금 속기사를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당장 실력이 느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어느새 성장하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라며 속기사 준비생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 속기사는 현재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속기 의뢰가 많기에 의뢰인들과 더욱 공감하고 소통하는 속기사로 더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또한 신뢰가는 속기사로서 의뢰인이 만족하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친근하고 가까운 존재로서 자리 잡고자 한다. 단단한 신념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소신을 가진 김 속기사. 지금보다 향후 더 세상을 향해 자신의 꿈을 펼쳐나갈 김 속기사의 미래를 기대하며 그의 꽃 길을 응원해본다. •옳은속기사무소 대표 속기사 •KBS 정치부 속기사 •국회의원 인터뷰 영상 속기 •국회 본회의/상임위 실시간 속기 •소리자바 자막방송센터 실시간 자막방송 속기 •재개발/재건축 현장 속기 •서울사이버대학교 강의록 작성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강의록 작성 •넷플릭스 VOD 자막 제작 •삼성카드 고객상담 녹취록 작성 •LGU+ 고객상담 녹취록 작성 •그 외 다수 민·형사상 녹취록 작성 [ 자격 ] •한글속기 1급 보유 •수사속기 1급 보유 •디지털영상속기 1급 보유 •워드프로세서 1급(단일) 보유 •GTQ 1급 보유 [1057]
    • 라이프
    2018-11-09
  • 오한남 대한민국배구협회 회장
    최근 김연경 선수를 비롯한 우리나라 배구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하며 한국 배구의 위상과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적인 선수가 되기까지 감독과 협회, 여러 기관과 단체의 노력이 필수적이며 뒤에서 묵묵히 지원하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선수 양성과 대회 유치에 주력하는 대한민국배구협회는 1946년 3월 10일 창립되어 1959년 10월에 국제배구연맹(FIVB)에 가입되었고, 배구종목을 소관하는 국제배구연맹(FIVB) 등 국제체육기구에 대하여 독점적 교섭권을 갖는 배구종목의 유일한 단체로서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여자배구가 우리나라 구기종목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획득하였으며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배구는 금메달을 3회, 여자배구는 금메달을 2회 땄으며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을 4번이나 획득하여 국위선양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지금의 선수들이 있기까지 선배 배구선수들의 노력과 땀이 바탕이 되었다. 선수와 감독 출신으로서 선수들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대한민국 배구협회 오한남 회장. 그의 중동사업 성공기와 협회 회장으로서의 신념에 대해 심층취재 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우수한 배구선수의 양성을 통해 국위선양에 이바지하는 대한민국배구협회 남 대표 선수단 격려 단체사진 대한민국배구협회는 배구 종목운동을 국민에게 널리 보급하여 국민체력을 향상하게 하며 건전한 여가선용과 명랑한 기풍을 진작하는 한편 배구선수, 전국규모연맹체 및 시도종목단체를 지원·육성하고 우수한 선수를 양성하여 국위선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이다. 2007년 11월에 사단법인으로 출범하며 2016년 2월에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을 통합한 대한민국배구협회로 거듭나고 있다. 주요 사업은 배구에 관한 기본방침의 심의·결정, 국제대회의 개최 및 참가, 배구대회의 주최 및 주관, 배구기술의 연구 및 향상, 배구 종목의 진흥 등 배구와 관련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며 배구 선수들의 기량향상과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오 회장이 2017년 6월 30일 전국의 선거인단으로 구성된 회장선거에서 대한민국배구협회 제39대 회장으로 당선된 후 우리나라의 배구 국제경쟁력 강화 및 우수선수 양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노력의 첫째로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남녀 대표팀 감독 및 코치 전임제를 실시하여 국가대표팀의 경기력향상과 유소년부터 시니어까지 체계적인 선수관리 및 훈련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둘째, 미래 국가대표 선수 양성을 위해 남녀 대표팀 전임감독이 중심이 되어 매년 겨울에 동계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셋째, 대표팀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전력분석원과 체력 트레이너 등 대표팀 지원인력을 대폭 보강하여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훈련환경을 제공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오 회장은 배구선수였기에 선수들에게 필요한 환경과 지원에 대해 면밀히 파악하고 있어 배구의 발전과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세계의 중심이 될 한국배구, 그 뒤에서 묵묵히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이들 여자 대표 주장 김연경 선수 격려 오 회장은 “대한민국배구협회는 2001년도에 아시아남자선수권대회를 국내에 개최하고 이후 17년간 중요 국제대회를 국내에 유치한 실적이 없어 국내 배구 팬들에게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했다”라며 운을 띄었다. “회장 임기 내에 매머드급 국제대회를 국내에 개최하겠다고 배구 팬들에게 약속한 바 있으며 아시아배구연맹(AVC) 총회에 참석하여 AVC임원들과 긴밀히 접촉하고 개최의향이 있는 국가협회를 대상으로 적극 설득하여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를 2019년 9월초 12일간 우리나라 서울에서 개최키로 하였다.” 라며 배구의 활성화와 대회개최를 위해 대내·대외적으로 각고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는 AVC가 1975년도에 제1회 대회를 개최한 후 우리나라는 여자배구의 매시라고 불리고 있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 김연경 선수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한 번도 개최한 실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내년 9월초 서울에 개최예정인 아시아여자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국내 배구발전과 활성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며 말했다. 특히 2004년 10월에 프로배구연맹인 코보(KOVO)가 발족하고 V-리그가 겨울철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배구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국가대표팀의 주축인 프로선수들의 국가대표팀 참여는 아주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배구협회는 프로연맹 및 프로구단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국가대표팀의 경기력 향상 및 국제대회의 상위입상 할 수 있도록 코보와 긴밀히 협력하고자 한다. 오 회장은 2020년은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로 내년 10월에 개최 예정인 2020 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전의 국내개최를 추진 중이며, 남녀 대표팀 모두 올림픽 본선에 동반 진출할 수 있도록 대표팀 지원에 인적·물적·재정적 지원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 배구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우수선수의 조기발굴과 국가대표팀의 선수층 확대를 꾀할 것이며 중장기적인 배구발전 방안을 준비하여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기반구축에 집중하고 있다고 힘주어 전했다. 제2의 두바이가 될 바레인의 디아르(Diyar) 중동의 한인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로 한국인의 긍지를 전하다 바레인 디아르(Diyar) 지역 오 회장은 1982년에 카타르 알-알리 배구클럽 감독에 부임하면서 중동의 바레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바레인(Bahrain)은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두 개의 섬이라는 뜻을 가진 작은 섬나라이나, 걸프 지역 중 가장 개방적이고 서구문화에 관대하며 표현에 자유로운 도시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사는 이들이 바레인으로 매주 해상연육교를 통해 대이동을 할 만큼 바레인은 자유를 느끼고 억눌린 마음을 잠시 해소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자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또한 외국인 활동의 제한 분야를 완화하여 우호적이고 개방적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으며,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카타르와의 교량 건설도 추진되고 있어 세계 최장 교량으로 주변 국가와 접근성이 더욱 높아질 예정이다. 미래가 기대되는 도시인 바레인은 외국인이 살기 좋은 나라 1위 (Inter Nations) 를 할 만큼 일자리 창출과 경제·사회가 안정적인 모습을 띈다. 이러한 강력한 성장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아 주변 국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이자 문화·교육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으며 제2의 두바이를 설계 중이다. 특히 현재 바레인 디아르(Diyar)지역에 한인타운을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진행중인데, 디아르는 한국의 파트너 지역으로서 실용적이고 고급스런 주거시설을 중심으로 최고급 의료·교육시설과 최상급의 헬스케어·레저 등 다양한 형태로 개발되고 있는 계획도시이다. 이글스힐스와 공동으로 합작하여 개발 중이며 한국 산업의 진출을 도모하고 의료관광의 전초기지 구축 및 뷰티·교육·엔터테인먼트·IT·금융 등 한국의 첨단사업 사업의 중동기지를 구축하여 고급인력의 일자리 창출과 한국과 디아르의 상호간 이해와 문화교류의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라 예상된다. 외국인이 가장 살기 조은 도시 1위 / 바레인의 국왕들 오 회장은 바레인의 이러한 성장가능성을 선견지명하여 1993년부터 바레인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중동국가는 법이 엄격하고 인연을 중요하게 여겨 중동에서 사업을 하려면 신뢰관계를 쌓는데 상당한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있었으나, 바레인에서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 호텔을 비롯한 요식업을 활발하게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동안 바레인에서 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고 바레인으로 오는 국내인사들에게 많은 조언과 협조를 하여 바레인에서 안정적인 사업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있다. 오 회장은 바레인을 비롯한 중동국가들은 아직도 국제사회로부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비상식적인 행동과 테러행위로 많은 오해와 불신을 받고 있으나, 아랍에미레이트(UAE)와 바레인 등 몇몇 국가들은 탈 석유화를 선언하고 적극적인 개방정책으로 건전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앞으로 중동의 미래는 아주 밝다고 말한다. 이에 중동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한인들에게 희망과 꿈을 전하고 그들이 중동에서 온전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고있다. 오 회장은 “국내 경제여건이 어렵습니다만 모두 함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갑시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기본성장률을 넘어서지 않고 정체되어 가계소득이 줄어들고 소비가 위축되고 그에 따른 기업의 생산이 줄어드는 등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어 국민들이 많이 힘드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독자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도록 남녀 배구 국가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선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라며 스포츠로 하나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배구는 전부이자, 끝까지 함께 나아가야만 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오 회장. 그는 배구 뿐만 아니라 중동과 한국의 교두보 같은 역할로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있으며 한국과 중동을 오가는 활발한 교류 활동의 중추적인 기둥이 되고 있다. 배구와 교류의 중심에서 헌신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그의 행보를 통해 후배 배구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대한민국 배구가 세계로 뻗어 나아가기를 기대하며 배구협회의 행보를 주목해본다. •現 제39대 대한민국배구협회 회장 •現 세계한인무역협회(OKTA) 바레인 지회장 •現 12~18기 평통자문회의 위원 겸 중동협의회 부회장 •現 Bahrain 배구감독 이후 사업 •前 한국대학배구연맹 회장 •前 서울시 배구협회 회장 •前 Bahrain 한인회 회장 •前 Bahrain 한글학교 교장 •前 Bahrain재외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前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홍보대사 •前 UAE Al-Ali 배구클럽 배구 감독 •前 한일합섬 주식회사 배구감독 / 배구코치 •前 Qatar Al-Ali 배구클럽 배구감독 •前 한양 여자 고등학교 배구코치 •前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 •前 금성통신 주식회사 배구단 •前 육군보안사령부 배구단 •前 주식회사 대한항공 배구단 [1057]
    • 라이프
    2018-11-09
  • 황대현 호텔 선샤인 대표이사
    비즈니스 호텔은 국내·외를 다니는 바이어들과 관광객들을 비롯하여 특정 목적을 가진 이들이 방문하여 타지에서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경제의 급성장과 글로벌화로 인해출장과 외국인 관광 수요가 커졌으나, 도심 속에 중간 등급의 합리적인 숙박시설이 없다는 점에서 시작된 비즈니스 호텔. 실질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기존의 호텔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이 가능해 고객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서울에도 많은 호텔이 있으나 그 중 30년간 자리를 지키며 고객의 편안한 휴식과 최고의 서비스만을 지향하며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이노베이션을 이루며 자리를 지켜온 호텔선샤인 황대현 대표. 그를 만나 호텔경영에 열정을 다한 그의 삶의 가치와 경영철학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30년의 역사를 지닌 호텔의 목표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고 최상의 서비스를 드리는 것 선샤인호텔은 황 대표가 설립한 비즈니스 호텔로서 대한민국 최초의 비즈니스 호텔이며 30년을 유지해온 뿌리깊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호텔이다. 현재 서울의 강남과 제주도, 대전에 위치해있으며 타 호텔에 비해 부담없는 가격과 신선한 재료로 만드는 조식을 자랑하고 있다. 한 분의 고객이라도 편안하고 따뜻한 휴식을 취했으면 한다는 황 대표는 항상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지향하며, 호텔의 역사와 함께 오랫동안 가족같은 고객들이 애정을 가지고 호텔을 방문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 직원회의를 통해 호텔의 발전방향과 개선점을 공유하고 보완해간다는 황 대표. 선샤인호텔은 장기근로자가 많은데 성실하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직원들 한명 한명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소중히 여긴다고 말한다. “룸메이트 직원들이 10~30년씩 근무하며 호텔과 대표님 덕분에 우리 아이들 다 키울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했을 때 ‘이 일을 하기를 잘했구나’ 라는 보람을 느낍니다.” 황 대표는 늘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고 항상 낮은 자세로 정직 · 성실 · 근면할 것을 강조하며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직원을 대하기에 모든 직원들이 고객에게 편안하고 따뜻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경영에 뜻을 두다 신뢰와 약속을 통한 경영의 안정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황 대표는 8살에 외갓집이 있는 부산으로 가 학창시절을 보내었으며, 대학교를 위해 처음 서울에 상경하여 경영대학교 상학과를 전공하였다. 어릴 때부터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황 대표의 사업가적 마인드는 당시 작은 여관을 운영하시던 어머니로 부터 시작되었다. 여관을 하시면서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셨던 어머니를 보며 그는 한국에 반드시 필요한 호텔을 짓겠다고 다짐하며 미래를 꿈꿨다. 호텔경영을 시작하기 전에 경제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무역관련 사업을 8년간 하며 외국의 호텔문화와 경영시스템 등을 배우고 기본을 다져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37세에 비즈니스 호텔을 짓게 된 황 대표는 늘 자신이 어릴 때부터 바라고 꿈꾸었던 사업이었기에 행복하고 벅찬 마음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성취했다는 자신감과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지만 호텔을 설립한 후 경영의 안정성을 찾아가는 데에는 여러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많았다. 한국의 IMF와 석유파동으로 인해 위기를 겪을 때도 많았으나 황 대표는 그때마다 함께해주는 직원들과 자신의 꿈을 생각하며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또한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는데 은행, 거래업체의 신뢰를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단 한번도 약속과 신뢰를 깨뜨리지 않고 정직한 거래를 해왔다며 자신의 신념을 전했다. 사업에 있어 가장 기본인 신뢰와 정직을 철칙으로 여기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 온 황 대표는 선샤인호텔에 자신의 인생의 꿈과 노력이 다 담겨있는 만큼 앞으로 지속적으로 고객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며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가고자한다. “호텔사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어떤 것이라도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황 대표는 특히 이 시대의 청년들이 가슴에 꿈을 품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오래참고 인내한다면 반드시 축복이 따를 것이라 생각한다며 청년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30년간 한 길만을 걸으며 누구든지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도심 속의 따뜻한 보금자리로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선샤인 호텔과 황 대표. 그를 통해 대한민국의 비즈니스 호텔의 가치가 상승하며 내국인과 외국인이 방문할 시에 한국의 최상 서비스를 느낄 수 있는 호텔,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기대하며 그의 경영철학이 청년들에게 꿈이 되길 희망해본다. [1055]
    • 라이프
    2018-10-19
  • 김성모 마스터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변호사법 1조 1항에서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를 명시하고 있다. 정의를 실현하며 국민들의 권익에 앞장선다는 뜨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나아가는 변호사. 그들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마주하며 근본적인 해결을 찾고 의뢰인에게 적합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법률분야 중 “재개발·재건축과 도산”분야는 일반시민들에게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분야 중 하나이며, 이러한 분야에 분쟁으로 소송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면 전문지식과 경험, 승소경력을 갖춘 전문변호사의 법률 조력이 필수적이다. 이에 주간인물이 만난 김성모 변호사는 재개발·재건축, 도산분야 전문 변호사로서 복잡하고 특수한 법률이 적용되는 사건들을 풍부한 실무경험과 전문지식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그를 만나 대한민국 변호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의 직업가치를 집중조명 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실체적 진실을 바탕으로 한 사건의 해결에 주효하다 2014년도 설립된 법률사무소 마스터는 소속 변호사 1명과 직원 10명이 함께하는 내실있는 법률사무소로서 재개발·재건축, 법인과 일반회생을 주력분야로 하면서 관련 민·형사 사건도 아울러 해결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사건에 앞서 의뢰인과의 상담을 할 때에 수임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대한 사건의 객관적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의뢰인의 말을 경청하지만, 의뢰인이 하는 말에만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때로는 불리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질문도 함으로써 승패와 성공가능성을 최대한 현실의 상황에 맞도록 전달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현재 남양주시에서 무료법률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김 변호사는 시민들과의 상담을 통해 민원행정의 발전을 도모하고 시민들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법률사건의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司”가 들어가는 전문직이 있으나 그 중에서도 변호사는 辯護士 즉 선비 “士”를 쓰는 전문직이다. 선비 士를 쓴 것은 단순한 일반 서비스종사자가 아닌 변호사법 제1조 1항에 나와 있듯이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과 재산, 생명신체의 자유를 지키는 데 앞장서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김 변호사는 경제적 가치나 명예도 중요하지만 변호사로서의 본질적 의무와 사명감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삶은 곧 법! 어려움을 딛고 이겨내 진정한 변호사로서의 길을 걸어가다 전남 순천에서 나고 자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제학과를 희망하였으나 대학진학에 실패한 후 고시원에서 재수를 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 대다수가 법률관련 진로와 사법고시를 목표로 하였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중 흥미가 생겼다는 김 변호사. 그는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문제들이 법률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런 문제들이 법적으로 어떻게 해결되는지에 대해 주목하였고, 법을 알지 못해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은데 법을 알면 법적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 매우 유용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군대 제대 이후 짧은 기간 안에 사법고시 1차에 합격하였으나 2차에서 번번이 고비를 마시기도 하였지만 넉넉하지 형편에도 적극적인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부모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이겨냈는데, 정작 합격 후에는 기쁨보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는 김 변호사. 어려운 상황에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도 소신을 잃지 않고 변호사로서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한다. 특히 김 변호사는 월반을 할 정도로 머리가 뛰어나신 어머니가 집안형편 때문에 진학을 못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한 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자신의 학업에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후 김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에서 재개발·재건축 분야에 선구적인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종보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전망이 밝은 분야일 뿐만 아니라 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한 분야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재개발 전문 법무법인에 근무하며 여러 사건들을 전담하고 관련 전문지식을 습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나라 경제가 많이 어려워지는 만큼 중소기업들의 경제성장과 환경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향후 그런 어려움에 처해있는 중소기업들이 법인회생이라는 절차와 제도를 통해 자포자기 하지 않고 새롭게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라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특히 “지금의 현실에서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단순히 광고나 지인의 소개를 통해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변호사와 직접 상담없이도 사건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는 것인데, 어떤 변호사를 선임하느냐에 따라 사건해결의 과정과 결과에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그 분야의 실무경험과 전문성을 잘 갖추고 있는지 알아보고 반드시 변호사와 직접 상담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변호사의 본질적인 의무와 사명감을 잃지 않는 그의 직업정신과 진정성이 많은 변호사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국민의 인권과 정의가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의 단단한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 주요이력 ] •現 법률사무소 MASTER 대표 변호사 •現 서울지방변호사회 중소기업고문변호사 •現 경기 남양주시청 전문법률상담위원 •現 심석중학교 고문변호사 •現 ㈜다인종합건설 외 다수 고문변호사 •2017년 중소기업진흥공단 회생컨설턴트 •2016년 법무법인효성 서초분사무소 설립 •M&A 컨설턴트 자격증취득 •2015년 재개발 전문분야 등록 / 도산법 전문분야 등록 •2014년 법무법인 효성 구성원변호사 •2009년 법무법인 인덕 구성원변호사 •2008년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연수 •2006년 사법연수원 38기 •2005년 전남대학교 법과대학원 법학과 수료 •2003년 전남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1054]
    • 라이프
    2018-10-08
  • 손효진 십인의 속기사무소 대표속기사
    속기는 빠른 속(速), 기록 기(記) 즉, 무형의 음성 언어를 빠르고 정확하게 문자 언어로 기록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하며 그 일을 행하는 전문인을 속기사라 한다. 회의, 강연, 강의, 좌담회 등에서 내용을 번역 및 내용수정, 편집하여 문서로 작성하는 일을 수행하며 법원을 비롯하여 국가 공공기관과 관련된 사건과 업무를 기록하여 국민들에게 신속ㆍ정확히 전달하는 데 의의를 둔다.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기록하며 나라의 역사를 한 장 한 장 써 내려가는 속기사. 주간인물은 정부청사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10인의 속기사무소 손효진 대표를 만나 그가 말하는 역사를 기록하는 속기사의 직업가치와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10분안에 녹취록이 완성된다” 신속ㆍ정확한 녹취로 전문성을 키우는 십인의 속기사무소 KBS 굿모닝 대한민국 이색직업편 출연 십인의 속기사무소는 송파구 동부지방법원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모든 기록을 전담하고 있는 ‘기록 전문 사무소’ 이다. 현재 5명의 국가공인 속기사, 변호사, 엔터테인먼트가 협력사로 제휴되어 다방면의 기록들을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작성하고 있으며 개인의 민·형사 사건에서부터 단체나 기업의 회의록, 공공기관 및 관공서의 공공기록물, 대통령 및 장차관 이취임사, 국제회의 작성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기록물을 신속∙정확하게 작성하기 위해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다. “10분안에 녹취록이 완성된다”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녹취 작성과정과 의뢰인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신속함과 정확성을 갖추겠다는 의지를 담고있는 십인의 속기사무소. 특히 손 대표는 여러 사회적 이슈 갑의 갑질, 아동 및 여성 성폭행, 미투사건, 정치권 녹취파일 등 진실을 알리고 진상규명을 하는 것이 속기사의 중요한 역할이며, 의뢰인의 유리한 법적 증거물을 생산하고 사건을 바로 잡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는 미투, 성폭행, 부정부패 청탁 등의 녹취파일들은 증거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 공인의 잘못된 행태, 국가의 잘못된 만행 또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어느 대스타의 이면 등을 국민에게 알리고 이를 바로잡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속기사의 분야는 스포츠에 빗대자면 수비수, 공격수, 미드필더 등 다양하게 포진 되어 있으며, 이중 녹취는 ‘공격수’에 해당합니다. 개인의 소송, 기업의 분쟁, 손해배상 등이 녹취이나 회의록으로서 법적효력이 발생하죠. 법과 관련된 여러 분쟁에서 이것은 본인에게 유리한 증거물 즉 강력한 하나의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속기사는 대한민국의 국가기록법에 의거하여 국민을 향한 사항들을 한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많은 속기사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금융, 조세, 검찰, 정부청사 등의 기관에서 알맞은 기록업무를 행하고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정보를 속기하여 전달하는 등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며 사회의 필요한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 영화를 전공한 한 사람이 속기사가 되기까지 ‘속기사로 먹고살기” 영화와 책을 좋아하셨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예술을 한 손 대표. 그는 시나리오 작가를 소망하고 포트폴리오 제작하여 시험을 통해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때 당시 집 근처에서 ‘주유소습격사건’ 이란 영화가 한창 촬영되고 있을 때 근처를 다니며 영화 스텝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것과 영화가 어떻게 제작되는 것인지 관찰하곤 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이후 스토리텔링과 영화제작,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며 진로를 결정하여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교 진학 후 다양한 활동을 하며 꿈을 향해 나아갔으나 창작의 고통 때문이었는지 자주 몸이 아팠고 병원에 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부모님께서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한다는 조언과 함께 어머니의 꿈이었던 속기사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이후 손 대표는 속기사가 되어 정부청사에서 오랜 시간 근무를 한 뒤 다양한 업무영역을 경험하고 체계성을 갖추고자 지금의 십인의 속기사무소를 설립하였고, 단순히 기록하는 전문속기사를 넘어 자신만의 것을 만들기 위해 도전했다. 퇴사 전 “속기사로 먹고살기” 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긍정적 반응으로 2개월간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국민들이 속기사를 알게 되었으며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효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손 대표는 “속기사는 제게 예전의 엄마의 꿈과도 맞닿아 있어 의미가 새롭습니다.” 라며 영화를 좋아했던 자신을 위해 물신양면으로 뒷바라지 해주시고 어떤 일을 하던지 묵묵히 응원해주며 지금의 직업을 지지해준 부모님과, 믿고 의뢰 주시는 모든 의뢰인님들께 진심을 담아 감사함을 표했다. 후대의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도록 공헌하고 싶어 기록자에 대한 올바른 자세, 본인의 사견을 배제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작성할 수 있는 소신 이런 것들이 바탕으로 자리 잡은 속기사, 기록자들만이 올바른 기록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는 손 대표. 그는 빠를 ‘속’자에 기록할 ‘기’를 쓰는 속기사라는 단어 안에 이 모든 자세와 철학이 함축되어야 마땅하다며 신념을 펼쳤다. 손 대표는 “점점 사명감이 생깁니다. 내가 업으로서 작성하는 이 기록들이 수많은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이 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 후대에게 올바르게 잘 전해져서 역사적인 분쟁이 없고 또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굳건한 나라가 된다는 사명감, 그런 책임감과 같은 의식이 쌓여갑니다. 개인과 나라의 역사 기록하는 일을 통해 국가기록물로 남겨져 후대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도록 공헌하고 싶습니다.” 라며 더 나은 개인·국가를 위해 자신의 위치에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또한 한 분야에 머무는 속기사가 아닌, 다방면의 속기록 등을 경험하기 위해 노력해온 손 대표. 그는 정치, 외교, 국방, 사회 전반의 대한민국 전 부처의 기록물을 생산했고, 메르스 에볼라 산사태 등과 같은 인명 및 자연재난 재해에 관련된 속기록들을 뉴스 속보보다 빠르게 작성했으며 경찰청 성폭력 지원센터 수사속기사, 교육지원 속기사, 속기 봉사 등을 통해 속기의 쓰임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업의 가치실현을 위해 노력해왔다. 손 대표는 “앞으로 속기사로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성폭력 전담 속기사와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교육전문 속기사와 의료회의 전문 속기사 등 전문분야의 속기사가 있듯이 어떤 영역이든지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다양한 속기사로서의 영역을 넓히고 싶습니다.”라며 자신만의 소신을 펼쳤다. 손 대표는 현재 Ai속기계 도입으로 방대한 분량의 모든 기록물이 당일작성이 가능하고 추후 의뢰부터 결제까지 원스톱으로 할 수 있는 어플 개발과정에 있다. 또한 ‘속기사로 먹고살기’ 라는 책을 출간한 손 대표는 취업의 기로에 서 있는 타인에게 숨어있는 맛집과 같은 속기사 라는 직업을 소개하고 자신이 겪었던 취업관련 고충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자 하였으며, 그로 인해 드러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직업적 가치를 알리고 미래 사회변화와 더불어 협업을 시도하고자 했다. 또한 우리 사회에 온전히 뿌리내려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다방면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으면 한다며,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직업은 아니나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속기사의 역할이라고 전했다. 이런 인식이 개선되면 좀 더 많은 속기사들이 질 높은 기록물들을 생산∙발전 할 수 있다며 힘주어 말했다. 다양한 브리핑을 속기하여 기사와 기록물을 통해 정부와 국민을 연결하고 시대의 변화와 정책을 기록하는 손효진 속기사. 그를 통해 몇 십년이 흘러도 우리의 후손들이 대한민국의 변화와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는 기록물이 남기를 기대하며 그의 찬란한 행보를 응원해본다. 2017년 12월 온라인 서점 ‘알라딘’ 취업분야1위 / 교보문고 청소년 자기개발분야1위 / 교보문고 2017년 12월 놓쳐서는 안될 신간베스트 1위 / 2017년 12월 알라딘 경제,경영 1위 / 2017년 12월 4주간 yes24 신간베스트 4위 •문화체육관광부 정책브리핑 속기사 (2008-2017년) •전국경찰청 성폭력통합지원센터 수사속기사 •(사)한국AI속기사협회 자격검증 감독위원 •극립특수교육원 속기사 선발시험위원 •“속기사로 먹고살기” 저자 •10인의 속기∙녹취사무소 대표이사 [1052]
    • 라이프
    2018-09-10
  • 이민호 대전중구리틀야구단 총감독
    바야흐로 야구 관중의 800만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은 프로야구 구단만 10개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관중석에는 야구 팬들의 함성소리가 가득 찰 만큼 인기있는 스포츠로 성장・발전했다. 그 중에서도 프로야구 흥행을 주도해가는 스타선수와 레전드 선수들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많다. 첫째로 야구에 대한 열정과 승부사적 기질이며, 둘째로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치 않는 강한 멘탈. 셋째로는 그런 선수들을 조련하고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이끈 지도자가 있다는 것이다. 주간인물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대전중구리틀야구단 이민호 감독을 만나 감독으로써 아이들과 소통하는 법과 그의 지도철학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진실하며 거짓없이 선수들을 양성하는 것 절대 포기하지 않고 선수들의 꿈을 키워줄 것입니다 대전중구리틀야구단은 야구와 어린이 스포츠 발전의 중요성을 안 박용갑 구청장의 영향으로 2014년도에 창간되었으며 대전에서 가장 늦게 창간된 리틀야구단이다. 하지만 어떤 구단보다 의미있는 결실을 맺고 있다. 2018년 U-12 전국유소년야구대회에서 준우승을 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지난해 2017년 U-10 전국리틀야구대회 준우승, 도미노피자기대회에서 공동 3위를 차지하며 대전시와 중구의 위상을 떨치고 있다. 현재 야구단은 선수반과 취미반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초등학교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의 아이들이 소속되어있다. 특히 이 감독은 야구선수를 꿈꾸며 중·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진로의 방향성을 도와주며 아이의 특성, 지도자 스타일, 학교의 중요성에 대해 학부모들에게 전달하여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길잡이 역할이 되어주고 있다. 초창기에는 이 감독 스스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재능이 없나 싶을 정도로 지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나 아이들은 야구란 운동을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데 일정시간과 일정량의 반복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때부터 ‘기다리자’ 라는 말을 되새기며 실력이 쌓일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림을 반복한 결과 지금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감독은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를 좋아하는 열정 하나로 대회에 나가 준우승을 한 아이들을 대견해했다. 그리고 선수들의 꿈 때문에 열정을 다해 지도하게 되고 그런 선수들을 위해 “절대 포기하지 않고 선수들의 꿈을 키워주겠다” 는 다짐으로 지도를 하고 있다. 또한 운동은 무엇보다 학부모와 감독, 선수들의 마음이 화합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이 감독은 “진실하며 거짓없이 선수들을 양성하는 것이 저의 지도철학입니다. 특히 아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가교역할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한국야구가 프로야구 구단은 많으나 하부조직의 뿌리가 너무 단단하지 못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운동장, 진실한 지도,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리그가 필요합니다.” 라며 야구의 미래를 위한 준비를 강조했다. “오로지 야구 생각뿐이었습니다” 국가대표를 꿈꾸며 야구를 향한 열정 하나로 나아가다 포항 연일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란 이 감독은 초등학교 때 육상선수로서 전국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며 운동의 소질을 보였다. 그의 재능을 본 신덕순 담임선생님은 도시로 나가 선수생활을 할 것을 권유했다. 그 당시 대구에 있던 형님의 친구가 대구에서의 야구인기와 야구가 어떤 스포츠인지 알려주며 시골 논밭에서 동네 야구를 하기 시작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이후 포항제철중학교에서 선수선발 테스트에 합격한 후 감독님이 직접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를 설득하며 본격적으로 운동선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 집에서 하숙하며 혼자있는 시간동안 어떻게하면 야구를 더 잘할 수 있을까, 오로지 야구생각 뿐이었다고 말하는 이 감독은 “방황하던 청소년시절 야구가 나 자신을 바르게 성장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라고 설명했다. “단 한번도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나를 이끌었나 싶을 정도로 야구를 좋아했습니다. 그것은 국가대표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꿈 때문에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열정으로 대학교 2학년 때 드디어 국가대표로서 태극마크를 달게 된 이 감독은 9시 뉴스를 통해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명단을 확인하게 된다. 벅찬 마음으로 한걸음에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달려가 감동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국가대표로서 첫 발걸음을 시작하였다. 대표팀에서 함께 뛴 이종범, 양준혁, 박정태와 같은 선수들을 보며 그 선수들의 진지하고 열정 넘치는 야구를 대하는 자세를 배우게 되었고 더욱 더 노력해야겠다는 긍정적 자극과 야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는 야구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말한다. 특히 90년 북경 아시안게임에서 경기 후 휴식시간에 선수촌에서 전 아시아 선수들이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고 노래하며 하나 되어 화동하는 모습을 보고 스포츠를 통한 아시아인들의 화합에 큰 감동을 받게 되었고, 이후 그때 감동을 국제 야구교류단체를 설립해 한국∙일본∙대만∙중국을 다니며 15년간 야구보급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 감독은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하는 말이 있다. ‘될 때까지 끝까지!’ 이 말은 이 감독을 지금까지 이끌어준 야구스승의 인생 철학이요. 선수로서 한 인생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던지는 성공비법이다.” 라고 말한다. “혹 야구선수로써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할지라도 어린 선수들이 야구를 통해 배운 정신을 바탕으로 힘들고 어려운 사회에서 역경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며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힘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일깨워주고 싶습니다.” 라며 지도자로서 아이들을 향한 깊은 마음을 표현했다. 또한 이 감독은 자신이 어린나이에 국가대표로서 해외로 나가 많은 것을 보고 배운 것처럼 어린 제자들 또한 그런 기회를 제공하고픈 포부를 밝혔다. 한국에서 야구로서 유명세와 실력을 지닌 지역을 제치고 대전중구리틀야구단의 성과가 빛나는 것은 선수들의 꿈과 미래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이민호 감독이 있어서이다. 그를 통해 대전 중구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빛낼 야구선수가 탄생하길 기대하며 그의 힘찬 발걸음을 응원해본다. •포항제철고 졸업 •영남대학교 졸업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입단 •쌍방울레이더스 입단 •SK와이번스입단 •대한민국 국가대표 야구선수(1990) •아시아 야구 기술 교류 활동(일본,중국,대만) •前북경 사범대 부속 중고 감독 •前전국 청소년 야구 보급활동 [1052]
    • 라이프
    2018-09-10
  • 이선경 위드인사이트 대표 · 심리학 석사
    개인의 심리적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도록 현명한 조언을 내리는 심리상담사는 내담자의 마음의 상처와 고통을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는데 그 의의를 둔다. 내담자가 원활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동반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심리상담사는 무엇보다 내담자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소망과 희망을 일깨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위드인사이트 이선경 대표는 내담의 성숙한 훈련을 돕고 행복한 삶에 기여를 하며, 진정성있는 소신으로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고 있다. 주간인물은 내적인 리더십을 이끄며 마음챙김을 도모하는 이선경 대표를 만나 행복한 삶과 그의 철학을 마주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타인을 돕고 싶다는 소망이 만든 진심 내적성찰을 통해 심리학에 빠져들다 이 대표는 천주교 순교자 집안에서 모태신앙으로 나고 자랐으며, 순종적인 성격과 가정환경탓에 가톨릭대학교에 진학하여 신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학창시절 자신만의 꿈을 꾸지 않고 신부가 되기 위해 예비신학생 모임까지 참석하였으나, 고3때 아버지께서 너의 길을 응원하겠다는 말을 전함으로서 인생의 진로가 바뀌게 된다. 이후 진로에 대한 혼란이 있었으나 “타인을 돕는 일을 하고싶다” 라는 소망을 품어 심리학과에 진학하였다. 학창시절 우수한 성적은 아니었으나 심리학은 학문적 관심을 가지게 된 밑거름이 되었으며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듯이 점점 학문에 매진하게 된 이 대표. 대학교를 조기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하며 자신의 길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는데, 대학원생들이 직접 수업을 진행하는 한 강의에서 이 대표의 수업에 교수님의 평은 이러했다. “자네는 모방을 많이 했지? 앞으로 강의를 하면 잘하겠네.” 강원도 동해-삼척교육청 연수 이 대표가 수업을 위해 그 당시 유명한 교수들의 강의 기법을 익히고 습득하며 몸에 익힌 그 노력의 흔적이 보였던 것이다. 이 대표의 전공 특성상 대부분이 상담관련 센터로 진학하게 되지만 이 대표는 상담센터에 가 내담자 개인의 성장을 도모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장점을 살려 강사가 되어 다수의 넓은 성장을 도모할 것인지에 대해 깊게 고민하여 긴 시간동안 자신의 길을 탐색했다. 이후 기업교육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교육 컨설팅 및 전문강사 배정·배치 업무를 하면서 강사들의 강의를 주의깊게 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축하고자 하며 위드인사이트의 시작점을 알렸다. 특히 이 대표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형이상학, 통찰, 내적에 관련된 대화를 많이 함으로써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철학과 신념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양육자가 어머니라면 아버지는 내적인 양육자와 마찬가지라며 철학에 대한 탐구를 통해 자신이 학창시절 고민했던 철학적 관점이 성인이 되어 깨달음으로 다가와 더 성숙해질 수 있었기에 부모님의 영향과 응원에 감사함을 전했다. 스스로 안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교육생들의 니즈에 맞춘 심리학 전문강의 심리 도구를 활용한 자기이해 강의 위드인사이트(WITH IN SIGHT)는 With + Insight 관계와 통찰, Within + Sight 마음과 성장 즉, “내적인 통찰을 의미하며 이 대표만의 가치와 철학을 담고 있다. 강연에서의 이 대표를 통해 ”위드“하여 수강생 개인이 ”인사이트“를 얻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으며, 교육이 끝난 뒤 ”인사이트“를 가진 수강생들에게 스스로 안을 바라볼 수 있는 힘, 즉 내적성장이 되었길 바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초·중·고·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교육생들에게 마음챙김, 코칭, 회복탄력성, 스트레스 관리, 셀프리더십과 감정 커뮤니케이션 등을 교육하고 있는 이 대표는 사전에 교육담당자뿐만 아니라 교육생들도 만나 인터뷰하는 등 직접 스몰 컨설팅을 진행하며 고객사의 니즈에 맞추어 부합하는 탄탄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강연으로서 강원도교육청의 초청을 받아 간 전문상담교사 선생님들 교육에 “마음챙김”이란 주제로 한 강의였다. 강의가 끝난 뒤 나이가 지긋한 한 선생님이 “다른 어떤 마음챙김 교육보다 선생님 교육이 훨씬 유용해요!” 라고 말했을 때, 자신이 정말 필요한 사람이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다는 마음으로 감동을 받았다는 이 대표. 그는 “자기조절과 마음챙김”이라는 신선한 주제로 강의하나 실제로 심리학적인 용어로서 ‘의도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판단하지 않고 집중하는 개념’이다. 이 대표는 대학수업 중 마음챙김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철학이 하나로 모아질 뿐만 아니라 매순간들을 더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대표에게 마음챙김은 학문과 삶에 중요한 기둥이 되어준 개념이며 철학적, 내적, 형이상학적 자양분들을 실질적으로 교육생에게 전해줄 수 있는 도구가 된 것이다. “심리학은 인생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인생이 쓰다고 느껴졌을 때 심리학 한 덩어리를 먹으면 인생이 달아질 것 입니다.” 통찰과 관련된 책을 집필하고 있는 이 대표는 센스와 젊음을 갖춘 심리학자로서 대중들과 인사이트에 대해 더 많은 소통을 이루고자 한다. 향후 외국기업에서는 폭넓게 적용되고 있는 심리 교육이 국내에서도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힘쓰며 교육의 질과 양을 늘려나가고 싶다는 이 대표. 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길러 “위드인사이트!” 할 수 있기를, 교육생들에게 삶의 따뜻한 빛과 같기를 기대하며 그의 확신있는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의왕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강사 양성교육 [ 주요이력 ] •아주대학교 일반대학원 심리학 석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조기졸업 •現) 위드인사이트 대표 •現) 한국생산성본부(KPC) 창직코치 •現) HRD컨설팅펌 티엔에프리더스 선임연구위원 •現) 자작나무 리더십센터 연구위원 •現)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록 민간자격 발급교수 •現) 종합심리서비스기업 테스트온 교육팀장 •現) MCA 아카데미 강사 •現) ㈜마인딩 자존감 전문 트레이너 •前) HRD 컨설팅펌 티엔에프리더스 컨설턴트 / PM •前) 아주대 / 수원여대 / 화성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 심리상담사 [ 연구논문 ] - Insight & Development : •평가염려 완벽주의 성향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마음챙김 기반 인지치료 프로그램(MBCT)의 효과 •국회도서관, 한국교육학술정보원 (2016년) •말랑말랑 두뇌학습 시리즈, 테스트온㈜(2017년) •감정조절 프로그램 지도자 지침서 2권 ,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상담복지센터(2018년) [ 주요자격사항 ] •한국코치협회 KAC 인증코치 •한국명상학회 K-MBSR (마음챙김 기반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 수료 / 1년 장기명상 프로그램 수료 / MBCT 과정 운영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록민간자격 두뇌학습 보드게임 지도사 1급, 2급, 3급 자격발급교수 •한국MBTI연구소 MBTI일반강사 •여성가족부 성폭력전문상담원 •플로리스트 (농림축산식품부 2015-002955) •심리검사 도구 활용 자격: MBTI, MMTIC, TA, TCI, MMPI, HTP, KFD, BGT, SCT, K-WAIS, MLST-
    • 라이프
    2018-09-10
  • 박인준 법률사무소 우영 대표변호사
    법률에 규정된 자격을 가지고 소송 당사자나 관계인의 의뢰 또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피고나 원고를 변론하며 그 밖의 법률에 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 업무로 살펴보면 당사자의 선임 또는 관청의 지정에 의하여 소송에서 소송행위뿐만이 아니라 기타 일반 법률 사무를 행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함에 있어 사실관계를 따지는 변호사가 아닌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박인준 대표. 박 대표 의뢰인이 왜 나에게 찾아왔고, 이곳에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며 진심을 찾아내어 해결해야한다고 소신을 펼치며 남다른 직업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주간인물은 박인준 변호사를 만나 그의 열정과 우영법률사무소만의 가치를 집중취재 했다. _장보연 기자 의뢰인이 만족하는 서비스를 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 의뢰인에게 인정받는 변호사 법률사무소 우영은 도울 祐(우), 길 永(영)으로 ‘의뢰인을 끝까지 돕겠다’라는 의미와 다짐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박 대표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朴商祐, 徐永順) 존함을 한 자씩 따, 평생을 소시민으로 사셨지만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셨던 부모님을 늘 기억하고 부모님의 이름을 걸고 한다는 사명감으로 임하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우영이란 의미에서 변호사의 본질과 가장 부합되는 말이라 생각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 현재 박 대표는 자신의 경찰 경험을 바탕으로 배양된 증거 확보의 노하우를 가져 의뢰인에게 차원이 다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공무원징계분야와 형사분야에서 다수의 상담과 사건처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다수의 공무원징계사건을 현재 진행 중이며, 언론보도가 되었을 정도의 사회적인 파급력이 큰 징계사건도 수임하여 변호하고 있어 공직생활의 경험을 녹여낸 상담과 소청심사, 소송수행이 의뢰인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실제 진행과정에 있어 의뢰인의 진의, 사건의 실체, 증거확보유무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고소대리수임여부를 결정하며, 범죄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사명감으로 다수의 고소대리업무를 수행하며 체계성과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로서 사건해결에 주효하고있다. 현재 올해 10월에 광화문에서 분사무소 설립을 앞두고 있는 박 대표는 자신의 고향이 종로구이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간다는 의미에서 광화문에 분사무소를 계획하여 시민들과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분들과 만나고 싶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특히 “사건해결에 있어 사건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분쟁당사자의 ‘진정한 의도’를 알기 위해서는 ‘법률전문가’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승소가 종국적인 목적이라 말하는 소수 변호사들도 있으나 저는 ‘분쟁의 근본적해결’ 을 목적으로 합니다. 소송에 의한 해결은 차선책에 불과함을 늘 주지하면서 사건에 임하고 있습니다.“ 라며 자신만의 소신을 펼쳤다. 또한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뢰인이 왜 나에게 찾아왔고 이곳에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며 의뢰인이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진심을 찾아내어 해결해야 한다. 이것은 사건을 보는 안목이자 법적인 틀을 넘어서는 시각이라 말하는 박 대표. 그는 의뢰인의 입장에서 가지는 사소한 의문점까지 해소시키고자 하며 “의뢰인이 만족하는 서비스를 하는 것이 기본” 이라는 마인드를 가져 단순히 법적 해결이 아닌 내적인 소통까지 하여 깊이 있는 사건해결을 보이고있다. 다양한 경험, 사건을 해결하는 예리한 시각의 칼날이 되다 사건을 파고드는 아집 박 대표는 사회의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변호사가 되었기에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사회경험인 메리츠화재에서 영업관리자를 하며 핵심 영업부서에서 보험설계사들을 교육,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 때 다양한 보험과 시작부터 끝의 과정까지 익히며 입체적으로 보험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졌으며 세상과 소통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특히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했던 보험설계사들과의 지속적인 면담과 상담을 통해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여러 분야와 다양한 직종에 대한 이해와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가 넓어졌으며그 경험이 변호사로서의 사건을 해결하는 데 긍정적 역할이 되었다. 이후 마음속에 품고 있던 사회 정의감과 한 가지에 예리하게 파고드는 성격으로 경찰로서의 새로운 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후 경찰로 근무하며 사실과 법리관계를 파고드는 시각과 자세를 배우며 다양한 사건들을 해결했고, 더 다양한 범위에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로서 발돋움하게 하였다. 박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보험관련 사건과, 공무원 중징계 사건, 형사사건을 중심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있으며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공무원의 중징계 사건은 한 사람의 인생과 가정이 걸린 일이기에 더욱 보람을 느끼며 의뢰인에게 ‘내가 정말 중요한 사람이구나’ 라고 느끼며 책임감을 느낀다고 전한 박 대표. “일반인들이 변호사를 만나게 되는 일은 평생 한 두 번입니다. 생명, 신체, 가족관계와 관련된 큰 위기에서 변호사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돕는 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저희 모든 경험이 밑걸음이 되었으면 합니다.”라며 자신만의 신념으로 그 길을 꿋꿋히 걸어가고 있다. 현재 여러 변호사님들과 제휴하여 업무를 처리하며, 향후 유능한 변호사님들을 영입하여 보험, 형사분야에서의 강점을 지속적으로 강화함으로써 내실있는 법무법인으로 성장시킬 계획을 가지며 사건을 올곧게 처리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힌 박 대표. 무엇보다 변호사라는 이름으로 특정 사건에 한계를 두지 않고, 한 사람으로 어른다운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소신을 밝혔다. 또한 사건 해결은 기본이며, 의뢰인을 향한 서비스 정신과 더불어 인간미가 있어야 진심이 통할 것이라고 말한 박 대표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처럼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보람된 직업을 가진 만큼 이 사회의 변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건 해결을 넘어 의뢰인의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리고 자신의 경험으로 사건의 세심한 과정과 결과까지 이끌어내는 박 대표. 그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억울함이 해소될 뿐만 아니라 사건을 끝까지 해결하는 근성이 모든 변호사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기를 바라며 그의 찬란한 행보를 응원해본다. •前 육군 병장 만기제대 (군필) •前 롯데그룹근무 •前 메리츠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근무 •前 경찰공무원 •現 서울시 공익변호사단 •現 서울 응암1동 주민센터 자문변호사 •現 MK다이브리조트 자문변호사 •現 주식회사 플로원 자문변호사 •現 짱키즈 휘트니스그룹 자문변호사 •現 메리츠화재 안양본부 자문변호사 •現 메리츠화재 안산본부 자문변호사 •現 메리츠화재 GA5본부 자문변호사 •現 법률사무소 우영 대표변호사 [1052]
    • 라이프
    2018-09-10
  • 김희재 MSTONE 대표이사
    인터넷 이용의 대중화는 지식 소유권의 개념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가 지식과 맺는 사회적 관계는 지식의 생산과 전달, 그리고 사용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 역사적으로 변화했다. 가치나 규범, 혹은 법률의 영역에서 어떤 고정된 형태로 규정되며, 특허를 통해 그 재산권을 정식으로 보호받고 인정받고 있다. 어느 시기보다 빠르게 변하는 우리네 현재의 삶은 방대하게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의 바다 속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은 경쟁의 범위도 광범위하게 만들며, 보다 독특하고,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제품을 통해 많은 업체들이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구조는 경영인들에게 큰 기회와 위험의 양날의 칼을 보여준다. 이러한 불투명한 구조 속, 자신만의 독특한 길을 걷고 있는 MSTONE의 김희재 대표이사는 자본주의 시장구조체계에 변화를 줄만한 귀감이 되는 경영 철학을 통해 활동하고 있다. 이에 이러한 특별한 경영에 대해 주간인물이 집중 조명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모두와 나눌 수 있는 핵심 경영철학, 개인의 이득이 중심이 되지 않는 사업 방향 ▲ 플러그톡_ 플러그가 밀착되지 않을경우 튕겨져 나와 스파크에 의한 화재예방을 도움. 스위치만 눌러 자동으로 빠지게 되는 기능 탑재 순수하게 지적 재산소유권을 통해 우리사회의 많은 업체들 속 독특한 컬러로 시장에 귀감을 보이는 MSTONE 김희재 대표는 2009년 처음 사업을 시작해, 올해로 10여년의 시간동안 국민들 나아가 전세계인에게 이로운 제품을 개발하는데 각고의 열정을 받치고 있다.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김 대표는 가까운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40억에 가까운 재산을 돌려받지 못하며 실패를 경험한다. 이후 다시 한번 재기를 결심하고 건설현장의 일용직 직원으로 근무하며 사색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김 대표는 준비 기간 동안 열심히 모았던 기본자금을 바탕으로 보세 옷을 유통하면서 차츰 사업의 규모를 키웠다. 새로운 기술습득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몰두한 결과, 모자복원이라는 전 세계의 유일무이한 영역의 전문가로 세계최초로 기계를 양산하면서 그의 사업은 더욱 확장되게 되었다. 기본에 충실하며 성실을 무기로 현재 전국 10여개의 모자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으로의 기술이 집약된 기계를 수출계약을 진행 중이며 나아가 화학, 전기 등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높고 낮음의 잔잔한 파도가 아닌 거센 풍파 속 실패의 경험은 현재 성공적인 사업으로 재도약하는 김 대표의 밑거름이라고 회상한다. 또한 김 대표는 긴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가족과 신앙을 꼽으며, 2009년 재기해 현재까지 20개가 넘는 특허를 출원하며 연구와 사업에 특별한 시너지로 독특한 컬러를 보이고 있다. 전문분야의 파생, 양산으로 이어지는 노력의 결실 MSTONE의 뜻은 MOVE STONE의 약자로, 인류의 역사가 구석기시대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사업의 기초를 구석기시대에 살고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작은 단위에서부터의 돌을 하나씩 옮겨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의지에서 나왔다. 이러한 작고 큰 돌이 하나, 둘 옮겨 지다보면 새로운 역사가 되는 것이며, 문화가 되는 것으로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사업보다는 이 시대가 진정 필요로 하는 제품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를 희망한다. 이에 3가지 주력 사업을 통해 활동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모자복원 기술을 통해 기계 설비와 시장유통을 통해 전국적인 매장을 운용중이다. 두 번째로는 태안 앞바다의 기름유출 사건을 보면서 고안하기 시작하여 사대 강 녹조를 통해 수심·수면·수변에 있는 녹조에 작용해 강을 정화시킬 수 있는 기술로 특허를 받았다. 이는 4대강 뿐만 아니라 기름유출, 모기살충 등 다양한 효과를 볼 수 있는 화학제품들로 다년간의 실험과 연구를 통해 현재 화학약품의 효과를 증명해 중앙정부와 연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특별한 기술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고생하는 다양한 이들에게 무료로 제품을 제공하며사익보다는 공익을 추구하는 김 대표의 특별한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전기 콘센트를 통해 시각장애인과 어린이 등 사고 노출에 취약한 이들을 위해 연구 개발을 주력하고 있다. 콘센트는 세계 최초로 좌우가 대칭되어 원하는 방향을 선택하는 방향 선택형 콘센트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콘센트, 수분과 먼지와의 마찰을 일절 차단하는 콘센트 그리고 아이들의 장난에도 어떠한 물체도 들어가지 않는 콘센트의 개발하여 위험성과 편리성을 접목시킨 유익한 제품을 시장에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최고의 가치를 지향하는 MSTONE의 전기 제품은 S전자 핸드폰 액세서리로 MOU를 체결하였으며 세계적인 헤어드라이기 회사에 D사와의 납품예정으로 그 기술을 인정받고 있다. 김 대표는 개발된 모든 제품을 필요로 하는 지역사회의 가까운 곳과 전국에 유치원 등에 무료로 설치를 해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경영의 본을 보이고 있다. 현재 좋은 제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혜택과 감동을 전하는 MSTONE은 향후 계획과 발전방향 또한 현재와 같은 기조인 개인의 이득보다는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며, 이를 통해 지자체 나아가 정부를 통해 현재 개발된 제품들이 널리 사용되어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 속 커지는 물질만능주의 사회체제 속 人과 情의 길을 유감없이 보여 따뜻한 사회변혁을 꿈꾸고 있다. 주간인물은 자본가ㆍ개발자의 더불어 가는 사회의 따뜻한 선순환을 통해 지역사회에서부터 나아가 대한민국의 온기를 전하는 MSTONE 김희재 대표의 특별한 행보를 주목해본다. [1058]
    • 라이프
    2018-08-28
  • 유종호 송파공인번역행정사사무소 대표・대한외국어번역행정사협회 교육연구이사
    1960년대 한국의 산업화와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은 우호적 관계를 맺던 독일이라는 낯선 나라로 향한 우리 국민들이었다.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난 대학생을 비롯하여 전직회사원 등 대학교육을 받은 이들이 주를 이루었고, 그들은 광산근로자와 간호사로서 일하며 고국에 있는 가족들과 나라를 위해 돈을 벌었다. 오늘날 독일사회에서 한국교민들은 큰 문제없이 잘 어울려 살고 있지만, 처음에는 언어적인 문제로 인해 무엇 하나 사기 힘든 장벽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파독광부의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송파공인번역행정사사무소 유종호 행정사는 독일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할 시에 독일에 있는 한국인들의 적응을 돕고 주재국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긴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독일어 번역행정사사무소를 설립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며 외국을 오가는 국민들과 현지에 있는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고있다. 이에 주간인물은 유종호 대표를 만나 그의 직업가치와 삶의 이야기에 대해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의뢰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행정사 주말업무의뢰가 오더라도 서비스 정신으로 임해야 대한외국어번역행정사협회 제5회 합격자 환영회(2017.12) 송파공인번역행정사사무소는 유학, 이민, 취업, 해외법인설립을 위한 서류 번역‧공증과 해외취득자격증 등 각종 서류 번역‧공증을 해결하는 행정사무소이다. 특히 유 대표는 독일어와 관련한 번역과 그에 따른 번역확인증명서 발급 혹은 공증의 대행과 더불어 독일어권 기업지원 종합서비스와 유학수속, 국제 행정민원 및 출입국 업무, 연금‧보험업무에 특화된 일반행정 민원을 대행하고 있다. 유 대표는 “누군가의 불편사항 특히 모국어가 아니어서 겪는 힘든 일을 해결하게끔 도와주는 것이 외국어번역행정사의 역할이며, 국내외에서 의뢰인의 출생에서 사망 시까지 행하는 모든 일이 보람되고 명예롭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혼 관련서류 번역, 배우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서한 대필, 유산 진단서 번역 공증 등 애환이 담긴 업무를 처리할 때는 의뢰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화장 일정 등으로 늦은 밤이나 주말에 업무의뢰가 오더라도 서비스 정신으로 임해야 한다고 한다며 업무의 남다른 정성을 표했다. 유 대표는 독일 특수계약서와 같이 독일어 원본의 오자나 문법상의 오류를 수정하고 독일 측의 동의를 확인하며 의뢰인에게 필요한 사건을 해결을 했을 때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자긍심을 느낀다는 전했다. 또한 현재 대한외국어번역행정사협회 교육연구이사로서 올해 후배 행정사들에 대한 실무교육과 전체 회원들을 위한 정기세미나를 진행하며 행정사 양성에 힘쓰고 있다. 또한 2018년 6월에는 번역 품질 향상과 Business 활성화를 위한 정기 세미나를 개최하고 발표자와 참가자들의 진지한 토론을 통해 업무 활성화에 대한 열의와 깊은 관심을 확인하였다. “앞으로는 대한외국어번역행정사협회의 기능이 강화되어 회원들의 실효적 권익 증진이 이루어 지도록 관리‧감독 부처인 행정안전부 및 17개 시.도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협회 임원으로서의 소임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베트남어, 태국어 등 수요가 증가되는 언어에 대한 번역행정사 인력 확보와 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스웨덴어 등 소수 언어 번역행정사 인력 확보에 대해서도 주무 부처와 지속 협의해 나갈 예정입니다.” 외교관‧공직경험을 이제 사회에 환원하고 싶습니다 제5회 외국어번역행정사 실무교육(2018.3) 안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유 대표는 중학교 때 까지만 해도 당시 영어교과서와 담임선생님이 집필한 영어문제집을 다 외울 정도로 영어를 좋아했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고3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서울대학교 독일어과에 진학하게 된다. 운동이나 음악을 즐겼지만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타 지역에서 공부하고 있었기에 외로움을 탈피하기 위해 공부에 빠져들었다고 전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외국어교육과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고 대학 졸업 후 서울고등학교, 경복고등학교 독일어 교사로 재직하였다. 또한 유 대표는 독일 Köln 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 후 외교관으로서 16년 간 독일, 스위스, 러시아에서 근무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대구광역시 의료산업자문대사, 부산외대 법경찰학부 겸임교수 와 경찰대 외래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유 대표는 공직 은퇴 후 대학교수, 의료산업자문대사 등의 활동을 통해 32년간의 공직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고 보다 장기간의 활동 가능성을 모색하던 중 외국어번역행정사 업무가 가장 적성에 맞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전하며 학술 및 공직경험을 바탕으로 신뢰성 있는 번역과 고품격의 민원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번역행정사로서 사업을 구축하고 있다. 유 대표는 “知之者 不如 好之者, 好之者 不如 樂之者 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한다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공자의 말이 있습니다. 모든 프로 정신은 즐기는 자의 경지에서 나올 수 있으며, 즐거움으로 일하는 자를 대하는 국민도 함께 즐거워진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의뢰 건 처리 후 좋은 결과가 나 어려운 일이 해결되어 고맙다고 연락이 왔을 때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은 한 여름의 한줄기 바람처럼 시원합니다. 청년들도 도전하였으면 합니다. 보람을 찾아서!” 라며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가치있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유 대표는 향후 외국에 진출 할 기업이나 진출한 기업들이 문서상의 해석이나 조항에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하여 국익에 작은 보탬이 되고 글로벌시대에 외국에 나가거나 외국에서 장기간 유학 또는 업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국민들의 국내 정착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데에 뜻을 두고, 한류문화를 유럽에 전파하는 데에도 교량역할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에 주간인물은 단순히 업무를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뢰인의 마음을 공감하며 자신의 일처럼 사건을 처리하는 유종호 대표를 통해 행정서비스를 통한 국민의 권리와 이익이 향상되기를 기대해 본다. •現송파공인번역행정사사무소 대표 •現2018년도 외국어번역행정사 실무교육 총괄팀장 •現대한외국어번역행정사협회 정회원 ∙ 교육연구이사 •現사단법인 한독경제인회 정회원 •제5회 일반행정사 자격 취득 •제4회 외국어(독일어) 번역행정사 자격 취득 •경찰대 외래교수 (담당과목: 치안정보론) •부산외대 법경찰학부 겸임교수 (담당과목: 국가정보학) •대구광역시 의료산업자문대사 •주독일 · 러시아 대한민국대사관 공사 •주스위스 대한민국대사관 참사관 •주함부르크 · 베를린·프랑크푸르트 대한민국총영사관 영사 •독일 Köln 대학교 독어독문과 석사과정 수료 •서울고등학교, 경복고등학교 독일어 교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외국어교육과 독일어 전공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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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17
  • 이상민 EasyArmy21 군전문 행정사 연합 대표 행정사
    행정사는 행정과 관련한 법과 국민의 편익을 도모하는 행정제도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으로 그 의의를 둔다. 이 대표는 군인징계, 복무곤란, 고충심사, 병무민원 전문의 행정사로서 군대에서 행정처리를 필요로 하는 병사들이 나이가 어리고 행정절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한계로 어떤 서류를 작성하고 상급지휘관에게 보고하여 본인의 고충처리에 대한 요청 절차가 필요한데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법의 도움을 받게 된다. 이에 각종 행정사법, 행정절차법과 군법 그리고 각 군의 규정에 의거해 사건을 처리하며 보다 원활한 처리를 위한 서류를 준비해 사건을 처리하는 이 대표는 국민과 병사들을 위한 권익증진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에 주간인물은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을 잘 알지 못해 병사들의 고충을 온전히 해결해주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방의 현실에 따끔한 조언과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행정사 EasyArmy21 이상민 행정사를 만나 군 행정처리의 절차와 효율적인 솔루션에 대해 집중 조명 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EasyArmy21, 편안한 군대와 육군의 21개월 이 대표는 군·병무 전문 행정사로서 2016년도 4월 1일에 시작하여 현재 마포구 성산동에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직접 전국에 있는 군 출신 행정사들과 함께 군전문행정사 연합을 설립했다. “EasyAmy21 군전문행정사 연합사무소의 ‘EasyAmy21’은 편안한 군대와 육군의 21개월을 의미합니다. 군 출신 행정사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빠르고 정확한 상담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군 부대는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실제로 부모님과 군인들은 가까운 곳에서 상담하길 원했습니다.” 전국의 9명의 행정사들은 장교·부사관·군무원 출신으로서 실질적으로 한국의 군·병무 관련 사건을 가장 밀접한 실무 차원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행정사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영역이 다양하나, 일반 행정사는 군인들의 징계에 대해 대리인으로서 변론을 할 수 없다. 전문자격사의 권한 중 군 관련 사건은 군 출신행정사만 군인징계의 대리로서 역할이 일부 가능하기에 군인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이 행정사의 역할이 중요한 실정이다. 또한 현재 이등병부터, 예비역 장군의 사건까지 계급에 제한을 두지 않고 군대 내에서 일어나는 군 징계ㆍ고충심사ㆍ병무민원 등의 처분과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 등록 및 공무상병인증과 같은 실무 지원을 전담하고 있다. 특히, 자신의 잠을 줄이더라도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직접 전화상담과 사건을 처리하며 군인들의 개인정보보호와 빠른 사건 해결을 위한 노력 또한 모든 업무에 책임감을 갖고 신중히 해결하고 있다. 이에 군인 뿐만 아니라 군인 여자친구, 부모님까지 사무소에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상담을 하는 군과의 가교역할을 하는 상담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군 전문 시민 인권모니터단 한국의 군 전체의 문제점과 사업방향을 제시하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이 대표는 아버지가 군인으로서 34년, 큰아버지가 군법무관 20년, 고모부 30년, 고모의 자녀가 11년째 군인생활 중이며 ‘군대’는 인생과 떼놓을 수 없는 필연적인 곳이다. 여행가이드 꿈꾸었으나, 군인 가족의 제복을 보고 자란 탓인지 생도들의 제복에 대한 로망으로 99년도에 육군3사관학교에 입학하였다. 이후 군에서도 지휘자 및 지휘관, 인사 관련 실무자로 군 내부 장병들의 환경과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며 변화를 꾀하고자 하였다. 국방부 직할부대에서 인사관련실무자로 임무수행 했던 이 대표는 병사들이 군에서 사건이 생겼을 때, 정서적으로 간부에게 직접적 건의를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군이 아닌 민간에서 어려운 일을 해결 해주기 위해 군 전문 행정사를 시작했다. 동생 같은 군인들을 생각하며 휴가, 외박을 나왔을 때 편하게 올 수 있도록 접근성을 생각하며 지금의 이곳에 자리잡았다. 2015년도 행정사 자격을 취득한 후 군 전문 행정사 3년차인 이 대표는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2017년 국방부 시민 인권모니터단, 국방 정보공개단과 2018년 국방예산국민참여단으로 위촉 받아 한국의 군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국군장병들이 편하고 정확하게 본인의 고충을 상담하는 부분에 대해 개선사항을 요구하며 자신의 업무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군인에게 닥친 사건이 부당하다면 실질적인 법을 기반으로 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행정절차를 안내해주며 또한 필요한 청구서 등의 문서를 작성 국방부로부터 청구에 대한 이행을 요구하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절차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저 넋 놓고, 울고 있는 것은 사건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군인들에게 자신의 사건에 대한 책임감과 목표와 행정절차를 정확히 아는 것이 도움된다고 조언하는 이 대표는 향후 군 전문 행정사로서의 기반을 마련하고 확장을 통해 국방부에서 시행중인 국방부 운영상담센터 보다 확실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EasyAmy21 군전문행정법인을 꿈꾸고 있다. 주간인물은 이 대표를 통해 군 내에서 일어나는 불합리적인 사건들이 온전히 해결되어 군인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세상의 부모들이 걱정없이 자녀들을 군대에 보낼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대하며 그의 행보를 응원해본다. •現EasyArmy21대표 •現인연행정사사무소 대표 •現한국일반행정사협회 마포구 지회장 •現국방부 예산 국민참여단 •現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2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 •現군생활컨설팅 전문교수(EasyArmy21) •現네이버 곰신카페 자문 행정사 •現네이버 지식IN 군 병무 전문 행정사 •現행정심판 권리 분석사 •現1급 심리상담사 (군인심리 상담전문) •前국방정보공개 국민참여단 •前국방부 인권모니터단 •前징계심사위원장 및 징계심사위원(다수) •前국방부 직할 인사 실무 장교 •前현역복무부적합조사 실무 장교 [1048]
    • 라이프
    2018-07-18

포토뉴스 검색결과

  • “하고싶은 것이 있나요? 그럼 하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꿈과 비전을 공유하는 세무사 - 송무락 송무락경영연구소 세무사 / 경영지도사
    다양한 전문자격사가 존재하는 현 시대에 ‘세무사’는 거래처를 통해 나와 타인의 자산 형성에 기여하고, 자신의 영역을 개발하여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통제하여 개인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세무사라는 전문자격사를 따 미래를 계획하기에는 일반인들에게 어렵게 다가오는 영어를 비롯한 세법학, 회계학 등의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주간인물이 만난 송무락 세무사는 5년간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처럼 자기주도 학습방법으로 세무사 합격의 쾌거를 이룬 세무사이다. 이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수험생들에게 세무사의 가치와 학습에 필요한 마음가짐을 전하며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소신있는 세무사이자 멘토로 자리잡고 있다. 그를 만나 그의 소신과 신념에 대해 집중취재 했다. _장보연 기자 자신만의 자산, 가치를 만들어 가는 삶 왜 하필 세무사라는 질문에 “자산”이라고 답하는 송 세무사는 자산이란 과거사건의 결과 현재 통제가능하고 미래경제적 효익의 유입가능성이 높은 자원이라고 말하며, 현재 남들이 뺏어가지 못하게 만든 것으로 그것이 향후에도 계속 돈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의미로 세무사는 “신뢰도”라는 자산이 생겨 노후에도 꾸준한 수입과 안정적인 거래를 통한 자산형성과 편안한 인간관계 형성을 돕기에 몇 가지 의미에서 자산을 형성할 수 있다고 전했다. 송 세무사는 어릴 때, 사촌형이 회계법인에 몸을 담고 있어 회계관련의 정보를 듣고 자라며 회계 관련 직종에서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교 때 유네스코와 관련된 다양한 대외활동을 경험한 후 사람들과 함께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목적지향적인 일반 기업에서도 직장생활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고 오랜시간 동안 직장생활을 이어간 송 세무사.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진정한 꿈을 들여다보기보다는 삶을 살아가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였고, 타인의 시선과 꿈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지난날의 아쉬움을 전했다. 결국 어릴 때부터 고민했던 꿈을 찾고, 자신의 자산을 축적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문자격사인 세무사를 꿈꾸게 되었다. 삶은 결국 돌고 돌아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게 되는 것 같다며 소중한 깨달음을 얻은 경험에 대한 가치를 전했다.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재미있는 길을 찾아나서는 송 세무사는 글 하나로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듯이, 업무에 있어서도 그런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무사로서 세무상담 및 전략상담과 경영지도사와 부동산컨설팅까지 진행하고 있는 그는 재개발, 재건축 분야까지 확장하여 자신의 업무를 넓혀가고 있다. 송무락 세무사 스터디그룹의 합격비법 “버티면 산다” 직장을 다니며 5년간 세무사 공부를 했던 송 세무사는 가정에서 남편과 아빠로서, 아픈 어머니를 모시는 아들, 회사에서는 임원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 늦깎이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출근 전, 후의 시간과 주말을 이용하여 공부하고, 돌이 지난 아이를 가로등 불빛에서 엎고 재우면서 책을 보기도 한 송 세무사는 “내 인생에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스스로 소설과 영화의 한 장면을 찍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제 인생의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했고, 힘들기보다는 오히려 신선하고 즐거웠습니다. 제 인생의 스토리처럼 공부그룹 또한 스토리 있는 공부밴드라고 짓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했다. 그는 공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습관화”라고 말한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삶과 학습이 명확히 구분이 안될 만큼 끊임없이 학업에 매진해온 송 세무사. 그는 공부해 온 경험을 공유하고 타인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과정과 합격후기를 '예비 세무사들의 모임' 카페에 전하였고, 작은 시작이 많은 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댓글과 회독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송 세무사의 글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고 싶다는 이들이 생겨 모음집을 만들게 되었고, 필요한 수험생들에게 2000부를 전달하였다. 지속적인 상담과 질문으로 인해 매년 시험이 끝나고 나면 블로그 조회수와 상담메일이 쉴새없이 오지만, 송 세무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험기간이라는 긴 터널을 함께 버티고,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전하고자 한다. 4년 전부터 시작된 학습 모임은 현재 네이버밴드 “스토리 있는 공부” 와 네이버 블로그 “송무락 세무사와 함께하기”를 통해 학습모임을 가지며 직장인 수험생, 전업수험생, 늦깎이 수험생 등 공부에 의지를 가지고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놀라운 성과를 보이고 있는 학습모임은 송 세무사가 타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겠다는 거창한 목적과 의지가 아닌 단순히 스스로가 재밌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여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는 작게나마 도움이 되도록 도움을 전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노동의 대가가 아닌 그저 어울리는 삶이 즐겁다고 말하는 모습에 미소가 띈다. “가슴 떨리는 삶이 제 꿈이었습니다. 사람은 정말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만 움직입니다. 그것이 금전이든 명예든 아니면 소박한 꿈일지라도. 포기하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과거에는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 환경이 변하고 우선순위에서 밀려 상대적으로 하고 싶지가 않아서지, 하고 싶은데 그만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짜 하고 싶으세요? 그럼 하시면 됩니다.” 간절한 마음을 가진다면 합격의 문에 가까워 질 수 있다고 말하는 송 세무사는 가정과 자신의 직업에 있어서 그저 재미를 느끼며 타인과 긍정적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역할로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겠다고 전했다. 그의 손길을 통해 세무사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을 확신한다. [ 학력 ] •충북 제천고 •중앙대학교 회계학 학사 •성균관대학교 경영학 석사 [ 약력 ] •대우건설, 외국계컨설팅사, 오리온그룹에서 회계/세무/기획파트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해양환경 전문기업에서 관리임원으로 근무하며 주변의 필요한 분들에게 세무/경영/부동산투자/학습상담 등을 병행하고 있다(연락처:010-7115-6404, 네이버 블로그“송무락 세무사와 함께하기”). [1062]
    • 경제
    2019-01-22
  • 국민안심시대를 염원하며 안전한 사회를 위해 나아가는 발걸음의 시작 - 손주달 한국위험물안전협회 회장
    현 시대에 화학물질은 경제활동의 기본이면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평범한 일상에서부터 공장의 각종 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산업화 이후 화학물질 관련 산업이 성장하여 각종 화학제품으로 인류의 삶의 질은 많이 향상되었고, 우리가 생활 속에서 편리함을 추구할수록 화학물질의 종류와 사용량은 늘어났다. 화학물질은 편리함과 동시에 위험성이라는 양날의 칼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 가스누출사고와 가습기살균제사건 등 많은 이들을 사망으로 이끄는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화학물질의 특성을 반영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예방 및 대응에 대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주간인물이 만난 손 회장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국민안심시대를 여는 소명과 비전으로 협회를 이끌고 가고 있다. 그가 말하는 안전사회와 위헌물안전협회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공공의 안전 확보와 회원의 권익보호에 앞장서 한국위험물안전협회는 위험물안전관리법이 (위험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위험물로 인한 위해를 방지하여 공공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제정한 법) 2003년 5월에 제정되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위험물과 관련된 전문 기관이 없어, 전국의 위험물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과 학계 및 전 현직 소방 및 위험물 관계자들이 만든 단체이다. 2013년부터 꾸준히 모임을 가져왔고 2014년 발기인 총회를 시작으로 한국위험물안전협회를 운영해오고 있다. 현재는 서울 여의도 협회 사무실이 위치해있으며 금년 11월 사무실에서 총회를 진행함으로서 다시 한번 비영리 사단법인 허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협회에서는 유관 단체들과의 업무협약체결 및 여러 캠페인과 주유소 주변 정화와 안전홍보활동을 해왔고, 최근에는 부산에서 열린 위험물 안전관리산업전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또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위험물로 인한 화재가 발생시, 올바른 소화기 사용방법과 대피방법, 인공호흡방법 등의 교육으로 안전관리에 집중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위험물안전관리법의 기본취지에 입각하여 협회 설립을 통해 공공의 안전을 확보하고 관련 종사자와 협회 회원들의 권익보호에 힘쓰고자 함이다. 또한 협회는 현재에도 계속해서 산업계와 학계 등 다양한 업계의 회원 가입이 이루어지고 있고 협회를 설립하고자 하는 회원들의 의지가 높은 만큼 2019년에는 사단법인으로서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손 회장은 국민들에게 위험물 안전관리의 중요성을 알리며 위험물 안전관리의 발전과 육성을 통해 새로운 전략을 가지고, 기존의 관련 기관과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면서 국민안심시대를 위해 실천으로 지속적으로 위험물 안전관리의 방안에 주력할 예정이라며 힘주어 전했다. 체계적인 훈련과 매뉴얼을 통한 예방과 준비성 지난 10월 고양저유소에서 작은 풍등 하나가 거대한 탱크를 폭발시켜 온 국민을 놀라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 실생활에 위험물 시설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만큼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이번 고양사건은 예방과 사후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건처리의 한계점을 보여주었다. 이에 협회와 손 회장은 위험물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에 방점을 두고 평상시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등에 꾸준한 관심과, 사고 시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매뉴얼로 훈련 등을 통해 만약의 사태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점검과 사고 발생 시 빠른 대응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여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과정이자 노력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위험물의 사용은 소비 뿐만 아니라 저장, 운반 및 취급까지 확대 해석되는 경향이 있고, 위험물 행정의 범위도 화재•폭발사고 방지를 위한 전통적인 지도와 단속 외에 위험물 누출을 방지하는 분야까지 넓혀가고 있다. 특히 미국, 일본과 같은 나라는 60~80년 전에 협회가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어 국민 안전과 위험물 행정 등의 발전에 힘을 쏟고 있다. 그렇기에 협회의 노력으로 선진국형 안전문화를 정착하고 위험물안전관리 업무의 최첨단 체계화를 도모할 필요성이 있다 할 수 있다. 손 회장은 “위험물질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나, 지식 및 인지가 미흡합니다. 위험물의 처리방법과 성질 등을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으나, 전문가 또한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실생활에 위험물 시설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만큼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협회는 위험물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에 방점을 두고 평상시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등에 꾸준한 관심과, 사고 시 피해 최소화를 위한 매뉴얼로 훈련 등을 통해 만약의 사태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이들의 노력 소방관련 일을 하며 위험물 안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손 회장은 가스, 폐기물, 유독물질, 위험물질 등 다양한 위험물질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운 만큼 국민들이 위험물에 관심을 가져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갈 것을 강조했다. “협회가 중심이 되어 국내의 위험물 안전관리에 대하여 부족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대외적으로 위험물에 대한 안전관리를 전파하고, 전 국민이 안전관리의 필요성과 관심도가 높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6년간 협회의 설립을 위해 노력해왔으나, 일의 경과가 더디고 뚜렷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 어려운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험물안전관리법의 기본 목적와 취지에 따라 협회의 기술력을 향상시키고, 회원들의 권익과 독립적이고 정문적인 협회활동에 꾸준히 주력하고자 합니다. 일의 경중이나 진행속도의 늦고 빠름에 연연해하지 않고, 묵묵히 한 길만을 가다 보면 더디더라도 언젠가는 협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국민안심시대를 이루고 협회 회원들이 희망하는 그 곳에 당도하리라 생각합니다.”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국민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손 회장과 한국위험물안전협회. 수많은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이들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화학물질의 사용으로 우리 삶이 더욱더 편리하고 윤택해지고 보다 안전한 사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진정한 국민안심시대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1062]
    • 경제
    2019-01-22
  •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소통하는 공인노무사 - 일하고 싶은, 일하기 좋은 근로환경 형성의 조력자, 최수영 최수영노동법률사무소 대표노무사
    공인노무사는 국가에서 공인하는 유일한 노동 법률 전문가로 노동관계법령에 따라 고용노동부, 노동위원회, 근로복지공단 등을 상대로 노동자의 권리구제를 대행 또는 대리하고, 기업을 위해 각종 인사노무관리 상담이나 지도, 작업장 혁신 컨설팅 업무를 하고있다. 노사양측의 의뢰를 받아 노무관리를 진단하거나 분쟁을 합리적으로 조정 중재하는 일도 주요한 업무영역이다. 주간인물이 만난 최수영 공인노무사는 따뜻한 감성과 기탄없는 소통방식으로 의뢰인과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하며 근로자와 사용자의 합의점을 찾아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 근로조건 자문위원으로서 청소년 근로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를 만나 의뢰인과의 소통방법과 직업가치관을 집중조명 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공감과 소통으로 의뢰인과 사용자의 원활한 관계를 돕다 최수영노동법률사무소는 최수영 노무사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대표로 있는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노무사 사무소이다. 최 노무사는 현재 서울청 국선노무사, 청소년근로조건 보호위원, 중소벤처기업부 비즈니스 자문위원, 단위농협의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건설사, 제조사 등 다수 기업 자문 및 인사제도 개선, 근로시간 단축, 임금설계 컨설팅과 근로자를 위한 노동법률 상담, 권리구제 등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최 노무사는 “노무사라는 이름 때문에 노무사는 근로자 측에서만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노무사의 궁극적인 역할은 기업이나 근로자 한 측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설명했다. 결국 노무사는 기업과 근로자 모두 일하기 좋은 토대를 만들어주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며 기업은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근로자는 지속적으로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노무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여야 할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 특히 최 노무사는 최근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관련 이슈가 매우 뜨겁고 그만큼 노동법에 대한 기업과 근로자들의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인 만큼 앞으로는 기업과 근로자 모두 친숙하게 노동법 상식들을 접할 수 있도록 기업 인사 담당자와 직장인들을 위한 유투브 강의와 세미나 개최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또한 현재 사무실이 위치해있는 근처에 문정동 법조단지에 직장인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부터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천농업협동조합 노무관련 자문위원 위촉 실질적인 도움을 전하고 싶어 시작한 발걸음 최 노무사는 법대를 졸업한 후 대학생 때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하며 행정사무관으로서 국민을 위한 정책을 기획하고 많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러나 몇 년간 행정고시에 낙방하면서 ‘아,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하며 방황하던 시기에 노무사로 활동하고 있는 다른 선배들을 만나게 될 기회가 생겨 노무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학교에서 노동법 강의를 들으며 많은 관심이 생긴 최 노무사. 그는 노무사라는 직업이 자신이 애초에 꿈꿨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라는 희망을 실현할 수 있으며, 더불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되어 노무사 준비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노무사가 갖춰야 할 자질 중에는 외향성과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점도 있어 상담을 통한 업무가 많은 노무사의 업무 특성상 외향적인 분들이 많다. 그러나 최 노무사는 본래 성격이 외향적이거나 사람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강의도 진행하며 울고 웃는 나날을 보내면서 노력의 과정을 겪어왔다는 최 노무사. 그는 아직도 부족한 점은 많지만 노무사로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되었다며 지금의 모습에 감사하며 앞으로 최선을 다해 달려 나갈 것을 다짐했다. 청소년들의 근로환경과 권익을 위해 달려나가는 청소년 근로조건 보호위원 국선노무사로서 청소년 근로조건 보호위원과 현장실습 점검 노무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 노무사는 “우리 청소년들도 학교 강의나 인터넷 커뮤니티나 뉴스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노동법과 관련된 내용을 알게 모르게 많이 접하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 등 일하다가 ‘아. 뭔가 내가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스스로 노동부를 찾아가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노무사를 찾아서 노무 상담을 받으러 오기도 하는 등 본인의 권리 구제를 위하여 굉장히 능동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올바르지 않는 정보들이 많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만을 믿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계속 참고 일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죠.” 그렇기에 최 노무사는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면 꼭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것을 사업주에게 요청하고 만약 사업주가 작성을 거부하거나 미룬다면 ‘부모님 또는 학교 선생님께서 제출하라고 하셨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작성을 유도하는 방법을 강조한다. 또한 고용노동부와 한국공인노무사회가 함께 운영하는 청소년근로권익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수도 있고, 더불어 최 노무사와 같은 청소년근로조건보호위원의 도움을 받아 권리구제도 가능하니 미리 알아둘 것을 당부했다. 의뢰인과 믿음을 바탕으로 공감하고 해결하는 노무사 최근 공인노무사 27기 합격발표가 나고 수습 노무사들이 사회로 나온 시점에 최 노무사는 “노무사로서 이루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다면, 본인이 가진 한계를 뛰어 넘어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멋진 노무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노무사에 합격했을 때부터 언젠가 제 이름을 건 사무실을 열고 싶다는 생각이 명확했습니다. 저는 의뢰인이 믿을 수 있는 노무사, 의뢰인의 사연을 공감해줄 수 있는 노무사, 일을 잘 해결해줄 수 있는 노무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제가 부족하지 않나 많이 돌아보고 반성하며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라는 괴테의 말처럼 저도 이리 저리 방황하면서도 처음에 노무사 합격했을 때 꿈꿨었던 그 소망을 조금씩 이뤄가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 라며 수습노무사들에게 경험을 바탕으로 한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신뢰할 수 있는 노무사, 공감할 수 있는 노무사, 그리고 일을 잘 해결해줄 수 있는 노무사로 성장해가는 최수영 노무사의 미래가 기대되며 그의 진취적인 발걸음을 통해 많은 근로자와 사용자의 관계가 원활해질 것을 확신한다. •現최수영노동법률사무소 대표노무사 •現서울지방노동청 국선노무사 •現청소년 근로조건 보호위원 •現서울지방노동청 근로조건 자율개선사업 수행 노무사 •現근로조건 특례제외업종 자율준수 지원사업 수행 노무사 •現직업계고 산업체 현장실습 지도점검 수행 노무사 •現중소벤처기업부 비즈니스 지원단 인사/노무 분야 전문위원 •現위험성평가 전문가 •現회천농협 노무관련 자문위원 ■삼성전자, GS건설, KT, 현대엔지니어링 등 다수회사 자문 수행 경력 보유 [1062]
    • 라이프
    2019-01-22
  • 장현준 현명속기사무소 대표속기사
    기록을 담당하는 전문 직업인 '속기사'는 과거의 기록물을 담아내어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끼치며 무엇보다 정치, 경제,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기록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국가기관의 회의, 강연, 청문회 등의 현장에서 음성과 무형의 언어를 빠르고 정확하게 기록하여 문자화 하고있다. 단순히 글을 기록하는 것이 아닌 상황과 분위기 등 모든 언어를 종합적으로 기록하여 작성하며, 속기사의 빠른 속기는 청각장애인들을 비롯한 장애인들의 학습을 돕는 분야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록’을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창을 열어주는 속기사. 주간인물이 만난 장현준 속기사는 최고의 속기사를 지향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며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속기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그를 만나 속기사의 역할과 그의 직업가치와 신념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의뢰인의 일을 내 일처럼 처리하겠습니다” 오류없는 속기로 완벽성을 추구하다 현명속기사무소(이하 현명)은 ‘세상을 밝게 비추어 의뢰인의 일을 내 일처럼 처리하자’라는 의미와 포부로 시작한 전문 속기사무소이다. 국내 최고 실력이라고 자부하는 법원, 의회출신 1급, 2급 국가공인 속기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증거제출용 녹취록을 전문적으로 작성하고 있다. 이외에 회의록, 방송스크립트, 자막, STT전사, 각종 출장 속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이다. 장 대표는 속기에 있어 ’완벽함‘ 을 추구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사람의 말을 텍스트화 하는 속기의 특성상 쉽게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한 단어가 특정단어로 강하게 뇌리에 박힐 경우 누군가가 의견을 줄 때까지 그 단어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현명은 2인 1조로 속기록 작성을 진행하고, 모든 속기록의 최종본 출고 전에 반드시 장 대표의 최종 검수가 진행된다. 이는 보다 오류를 줄일 수 있기에 완벽하고 우수한 속기를 통해 의뢰인에게 만족을 주고 있다. 또한 중립의 입장에서 의뢰인의 억울한 마음을 빼지도 더하지도 않고, 객관적으로 담아낼 수 있도록 본질적 역할에 충실하여 책임감 있는 속기를 선사하고 있다. 자신과의 싸움 끝에 얻어낸 성취! 속기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자신을 마주하다 타 속기사보다 이른 나이에 합격한 장 대표는 합격한 이후 각종 회의록 작성, 인터넷강의 스크립트 각성, 인터뷰 녹취록 작성, 대기업 고객센터 녹취록 작성, 단순 음성파일 텍스트 전환, 청각장애인 봉사활동 등 많은 경험을 쌓는데 주력했다. 그의 노력은 속기를 하기 까지 평탄하지 않았던 나날들이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장 대표는 자신만의 소신이 확고하여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였을 때 학교 재학 중에 다시 수능을 준비하였다. 새로운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던 학문적 접근에 다시 반 재수를 하는 등 혼자만의 격동기를 보낸 장 대표. 그는 내면에서 끊임없는 고민과 결정을 반복한 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과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속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학창시절 컴퓨터 영재라는 말을 들을 만큼 컴퓨터에 소질이 있었기에 속기가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특히 공부하는 과정에 있어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 E-스포츠 중계를 들으면서, 또 칼럼과 뉴스를 보면서 속기를 해 나태해지고 지루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자 노력했다. 이 때 뉴스를 본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장 대표는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처럼 다양한 분야를 듣고 작성하며 최고의 전문 속기사가 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을 걷고 있다. 또한 자신을 묵묵히 기다려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부모님과 의뢰인들이 믿고 맡겨주시는 만큼 최고의 속기사사무소가 될 것을 다짐한다고 힘주어 전했다. “음식에도 맛집이 있듯이 녹취록의 맛집이 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힘드실 때 저희 현명속기사무소를 찾아주신 의뢰인들께 항상 최고의 녹취록, 최상의 서비스를 다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속기 관련한 여러 가지 사업을 시도해 보는 것이며, 특히 청각장애인 분들에게 도움이 될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속해있는 지역구에도 도움이 되는 사업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 사건·사고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의뢰인의 속기를 하며 감정이입을 해 함께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임감 있는 업무를 수행하는 장 대표. 그의 속기하는 손길을 통해 많은 이들이 당면한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그의 성장이 속기사의 가치를 높일 것이라 확신한다. •現현명속기사무소 대표 / 국가공인속기사 •前용산구의회 근무 •前노원구의회 근무 •前효성ITX근무 •인터넷강의 스크립트 작성 •아웃소싱업체 인터뷰 녹취록 자성 •그외 다수의 녹취록, 속기록 작성 [1061]
    • 라이프
    2019-01-21
  • 최상의 결과를 내는 전문성, 의뢰인을 향한 존중으로 진실을 파헤치는 법의 수호자 - 김진우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
    과거 사법시험에 합격만 하면 부와 명예가 보장되었던 시절과 달리 법조계에도 이미 치열한 경쟁과 시장논리가 작용한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뛰어난 전문성과 성실함으로 시장에서 인정받는 변호사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 열정과 소신을 바탕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진우 변호사는 많은 이들의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다. 김 변호사는 새로운 분쟁과 사건을 대할 때 단지 피상적인 사실관계만을 살피지 않고,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 파악을 위해 의뢰인 주변의 인간관계는 물론, 의뢰인이 속한 산업과 거래계의 사소한 관행까지 철저하게 파헤치는 것으로 의뢰인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쌓은 특유의 공감능력으로 의뢰인과 편하게 소통하고, 강원도 철원의 DMZ에서 전투병으로 복무하며 쌓은 강인한 체력으로 사건을 파헤치는 김 변호사. 주간인물은 다소 상반되는 듯한 이 2가지 캐릭터를 모두 겸비하고 있는 김진우 변호사를 만나 그의 열정과 소신을 집중취재 했다. _장보연 기자 형사고소 및 수사 관련 강연 의뢰인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유능한 변호사로 자리매김 법무법인 주원은 각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변호사들을 비롯하여 회계사, 세무사 등 100여명에 가까운 전문인력이 포진한 강한 로펌이다.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은 이후 2015년부터 법무법인 주원의 파트너 변호사로 합류한 김 변호사는 불과 1~2년만에 다양한 형사소송(금융범죄, 명예훼손, 성범죄)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일부 사건은 언론에 소개가 되기도 하였다. 정재욱 변호사와 함께 블록체인 법률강연 김변호사는 또한 각종 부동산 관련 소송을 비롯한 민사소송에서도 많은 승소 판결을 받으며 다양한 의뢰인들의 부름을 받았는데 점차 담당하는 사건의 규모와 양이 늘어나면서 상시적으로 업무를 함께 처리할 변호사 Team을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김 변호사는 이에 과거 법원에 재직하며 풍부한 송무 경험을 쌓았던 김연정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에서 기업자문 및 M&A를 담당했던 정재욱 변호사, 대형 증권사의 법무팀 변호사 출신으로서 금융실무에 밝은 이충윤 변호사 등과 함께 법무법인 주원 내부에 Team을 조직하여 다양한 민형사 소송 및 기업자문 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 중이다. 형사소송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김 변호사는 최근에도 기존 1심에서 법정구속 되어 있던 의뢰인을 2심부터 새로 변론하여, 결국 원심 파기 무죄판결을 받은 바가 있다. 구치소에서 편지를 보내오는 의뢰인의 억울함을 풀어 주고자 매번 밤을 새며 수천 페이지가 넘는 사건기록을 검토할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이처럼 풍부한 변호사 인력을 바탕으로 민형사 송무와 기업자문을 가리지 않고 성과를 거두어 왔으며, 기존에 자문하던 기업들의 해외진출 수요에 따라 2018년 3월에는 싱가포르 현지에서 다양한 로펌 및 기업과 MOU를 체결하기도 하였다. 김 변호사는 대외적으로도 그 능력을 인정받아 대한변호사협회 이사를 4년째 겸직하고 있고 많은 법제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국회의 각 의원실에 법률자문을 하고, 여러 국가기관과 언론에 공신력 있는 의견을 제시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협력하고 있는 김연정, 정재욱 변호사와 함께 조세법 전문가인 아버지를 보며 키운 변호사의 꿈과 휴전선 북쪽 DMZ에서배운 강인함 김 변호사는 국세청에 오래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조세법 전문가이자 세무사로 활동 중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법률과 변호사 직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거기에 어렸을 때부터 씩씩한 성격을 바탕으로 웅변에 소질이 있었던 김 변호사는 진로를 선택함에 있어서 큰 고민 없이 법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연세대학교 재학 중 토론 대표팀의 주장으로 선발될 정도로 발표 능력도 인정받게 된다. 다만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키우고 싶었고 잠시나마 한정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김 변호사는 강원도 철원에 소재한 육군 3사단 백골부대에 현역으로 입대하였다. 이후 엄격한 내무 생활도 경험해보고 야간에 고된 산악침투 훈련 도중 부상을 입는 등 나름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또한 휴전선 북쪽의 비무장지대(DMZ) 내부에 소재한 GP에서도 복무를 하였는데, 완전 무장 상태로 곳곳에 지뢰가 매설된 비무장지대를 정찰하면서 체력과 담력을 키울 수 있었고 이는 지금 변호사로서 활동하는데 정신적, 육체적으로 매우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전역 이후에도 다시 사교적인 성격을 접어두고 법률 공부에 매진한 김 변호사. 그는 가끔은 미래가 막막할 때 가수 임재범의 노래 ‘비상’ 中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거야.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보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할거야" 를 되새기며 미래를 그려 나갔다고 한다. 싱가포르 로펌 대표변호사와 MOU협약 모습 의뢰인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합리적 해결방안을 찾아가다 의뢰인과의 소통을 가장 중시하고 의뢰인의 해당 분야 경험을 존중한다는 김 변호사. 그는 스스로 법률에 대한 전문성을 지닌 변호사로서의 자부심도 크지만, 각각의 산업과 거래계의 현실에 대해서는 현업에 종사하는 의뢰인들보다 지식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매순간 의뢰인의 이야기를 경청한다고 전한다. 예를 들어 어업과 관련하여 수산물 거래 및 유통과정이 문제되는 사건을 처리할 때는 어촌에서 잔뼈가 굵은 의뢰인만큼 세부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의뢰인과 상담을 할 때 어업에 대해서는 지식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임한다는 소신을 전했다. 각종 민형사 소송, 자문 업무에 관계없이 회의 때마다 해당 산업의 현실과 관행, 거래내용에 대해 많이 듣고자 노력하고 질문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김 변호사. 그는 "변호사의 권위는 의뢰인의 경험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궁금한 것을 거리낌 없이 물어볼 수 있는 자신감과 여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매 사건을 처리할 때마다 끊임없는 질문이 사건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고, 의뢰인의 만족도도 높았습니다. 앞으로도 매 사건마다 치열하게 파고들어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갈 것입니다."라며 확고한 의지를 전했다. 김 변호사는 다른 분야에 한눈을 팔기 보다는 변호사 본연의 업무와 의뢰인에게 충실하고 현재 이끌고 있는 Team의 규모를 키워 민사, 형사, 가사, 기업자문 그 어떤 사건이던지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을 다지고, 이를 통해 의뢰인과 소중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전했다. 의뢰인과의 기탄없는 소통과 공감으로 실체적인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김 변호사. 그의 남다른 신념이 의뢰인의 분쟁을 해결하여 주고, 그들의 굳어있는 마음을 구원하며, 나아가 장차 이 사회의 정의에 이바지 할 것을 확신한다. 한양대학교 로스쿨 초청강연 ■ 주요경력 및 학력 •現 대한변호사협회 이사 (2015. 2. ~ 현재) •現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 위촉 변호사 •現 고용노동부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권리구제 대리인 위촉 변호사 •現 서울지방변호사회 광고심사위원회 위원 •現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2동 / 송파구 오륜동 주민센터 위촉 마을변호사 •現 사단법인 한국부패방지법학회 연구위원現 변호사시험 예비시험 검토위원 •現 법무법인(유한) 주원 파트너 변호사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전문석사 •연세대학교 법학과 학사 ■ 인턴 경력 •서울고등법원 제20민사부 심화 실무수습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실무수습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실무수습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공정거래팀, 기업법무팀 심화인턴 •법무법인(유한) 바른 심화인턴 ■ 연수 및 학술활동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School of Law Pre-LL.M. 과정 수료 (2011) •現 중소기업법 연구회 회원 •前 연세대학교 토론대표팀 주장 •前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금융법학회 학회장 ■ 주요 업무수행 분야 1. 기업자문 업무 (각종 투자와 계약관련 사항) (국내 기업 자문사례 多, 싱가포르 법인설립 및 암호화폐 ICO 관련 업무, 미국 등 현지 한인마트 설립 관련 계약 검토, 마카오 상업지구 분쟁해결 자문 등) 2. 형사소송 (금융범죄, 명예훼손, 성범죄 등 언론에 소개된 다양한 무죄판결 사례 有) 3. 민사소송 (대규모 건설지구 및 부동산 관련 소송 수행 경 多) 4. 기타 언론에 소개된 가사소송 등 승소사례 有 ■ 기타 업무수행 및 외부활동 이력 1. 한국경제신문, 머니투데이, 법률신문, 내일신문 등 다양한 언론사 법률기고 2. KBS, JTBC, YTN, 연합뉴스 등 각종 언론사 인터뷰 3. 서울경제신문 및 디센터 유니버시티 주관 블록체인 법률분야 강연 (2018) 4. 한양대학교 초청 법률실무 분야 강연 (2015, 2016) 5. 육군 제36보병사단 법률강연 (2015, 2016)6. 육군 제2사단 법률강연 (2019) 육군 36시간 법률 및 인생진로 강연 [1062]
    • 라이프
    2019-01-18
  • 김종인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이사장 / 나사렛대학교 재활복지대학원장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신체장애인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 “장애인복지법 제4조 제1항 장애인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국가에서 장애인에 대해 책임과 보호의 필요성을 의미하며 복지를 향상시킬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마땅한 대한민국의 장애인들은 그렇지 못한 사회를 향해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의료·교육·직업재활 등 생활안정의 권리추구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1988년 제8회 장애자올림픽 대회를 개최하며 장애인스포츠의 저변 확대와 국내장애인체육대회의 활성화·장애인교육의 체계화·복지시설의 확대를 인식하고 국민들에게 장애인의 도전과 극복, 참여와 평등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복지의 여러 한계를 가진 대한민국에서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 이제는 개인과 가정의 책임이 아닌 당연한 국가의 책임이며, 선택이 아닌 의무라는 사실을 가슴깊이 느낄 수 있는 사회로 변모해야 할 것이다. 당시 홀트일산복지타운 재활과정을 거쳐 88서울장애인올림픽 문화예술 파트담당이었던 김 이사장은 30년간 사회복지에 힘쓰며 소외된 이웃들의 권익을 대변해왔다. 그를 만나 시청각중복장애인을 위한 환경의 한계와 향후 노력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시청각중복장애인의 현주소와 권리보장 및 사회통합방안 시각과 청각 중복장애인들을 위한 일명 '한국 헬렌켈러법' 제정을 위한 세미나가 국회에서 열렸다. '시청각중복장애인의 현주소와 권리보장 및 사회통합방안'이란 주제의 강연과 세계 최초로 개발된 시청각중복장애인 의사소통 지원기 '점어기'의 시연회가 열렸는데, 이는 사회 및 제도의 변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이명수 의원과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설립자인 김한규 회장,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 나경원 의원, 나사렛대학교 이영식 이사장이 참석 및 축사를 통해 장애인의 생활안정과 인권을 위해 국가가 책임질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전했다. 또한 한국의 시청각중복장애인은 약 1만2000여명으로 추산되나 장애관련 국내법상에도 장애유형이 규정된 것이 없을 정도로 방치되었는데, 김 이사장이 속해있는 나사렛대학교와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의 연구팀에서 관련법을 제정을 제언하고, 해당 장애인들에 대한 의사소통체계는 밀알복지재단과 협력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개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더불어 시청각중복장애인의 활동지원사와 시청각통역사 양성 및 지원, 시청각중복장애인 당사자 조직의 결성 및 지원, 시청각중복장애인의 국제교류 및 협력체계 구성을 위한 모임 결성 등의 내용을 담은 '한국헬렌켈러법' 제정안을 제안했다. 평생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봉사하며 그들을 대변해온 김 이사장.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사회통합에 필요한 원활한 의사소통을 지원하기 위하여 당사자의 권리보호 가족 등에 대한 상담 등을 수행하는 한국헬렌켈러센터를 설치하여 필요한 개별서비스와 훈련을 제공하여 시청각중복장애인의 경제적, 사회적 자립을 고취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김 이사장은 향후 사회복지정책연구원과 나사렛대학교(재활복지대학원), 그리고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 제주농아인복지관 등의 협력을 통하여 ‘한국형 헬렌켈러센터’의 모형개발과 시험적 운영을 통하여 한국에 알맞은 모형 정착과, 학문적 연구의 협력과 현장에서의 접목 및 설치를 통해 더욱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30년 동안 사회복지정책을 제안해온 연구원의 중심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사)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은 1988년 21세기 복지국가 실현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출범하여 1992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사단법인 허가를 취득한 후, 대한민국 사회복지정책 연구개발사업부터 아동청소년 장학사업 등 인재개발사업, 장애인과 노인의 재활사업 등 전문적 연구와 함께 실제적 사업을 수행해오고 있다. 사회복지기관 설립 및 복지사업의 컨설팅을 하는 것은 물론,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지원으로 발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국내 최초의 민간자격증인 발달행정보조사 자격사업을 운영하여 취업이 불리한 발달장애인의 고용연계에 힘쓰고 있으며, 복지전문인력 양성을 위하여 재활복지경영사 자격사업 또한 실시하고 있다. 소외된 이웃의 권익을 대변하고, 보다 나은 복지사회 구현을 위하여 복지정책을 개발하고, 현실성 있는 복지구현을 위하여 사회복지시설과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등 선진복지국가 건설에 기여하는 목표로 하는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과 김 이사장. 그는 시청각중복장애인의 권리보장과 지원을 위한 “한국 헬렌켈러 제정 및 헬렌켈러센터 설립”에 크나큰 관심과 지원으로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찾고있다. 소망과 비전을 전하는 스승 김 이사장은 대학교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였고, 캠퍼스 내에 맹학교, 농학교, 지체장애학교, 정신박약학교(현재 지적장애학교)등 4개의 또 다른 캠퍼스가 자리잡고 있어 장애인들과 어울리며 대학생활을 하였다며 운을 띄었다. 장애인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한 친구는 한라산에 올라가는 소원이고, 또 한 친구는 라디오를 듣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맹인 장애인친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눈 한번만 떠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김 이사장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살면서 딱 한번만 눈을 떠 보는 것이 소원이라 말하는데, 나는 눈을 뜨면서도 왜 이렇게 사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들을 섬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시각 장애인들과 마음을 합쳐 ‘수학의 완성’을 점자로 찍어 15권의 점자책을 만들기도 하며 그들이 세상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민 김 이사장. 특히 그는 광부로 일하다 척추손상으로 척추장애인 진단을 받은 박종균 박사가 자신을 만나 대학원을 가고 박사학위를 딴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한 제자인 강민휘 군은 지적장애인으로서 아시아 최초로 다훈증후군 배우가 된 주인공이다. 강민휘 군의 밝고 넉살좋은 성격을 눈여겨본 김 이사장은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홀로서기 할 수 있도록 하나부터 열까지 지도했다. 자신을 통해, 여러 도움의 손길을 통해 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을 가장 보고 싶으며, 그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는 김 이사장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마음으로 희망의 불씨를 전하며 소명과 비전을 전하는 스승이라 할 수있다. 시각장애인들의 빛과 희망이 되어주는 김 이사장이 있어 시각장애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행복추구권을 보장받아 인권의 주체로 살아간다는 꿈을 품는 세상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 주요연혁 ] •現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원장 •現나사렛대학교재활복지대학원장 •現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교수 •現한국장애인정책대학원장 •現한국재활상담사 협회장 •現근로복지공단 자문교수 •前나사렛대학교 부총장 •前한국직업재활사협회 회장 •前보건복지부 장애인복지정책 자문교수 •前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연수부 강사 •노던콜로라도대학교 대학원 재활학 박사 •한인 최초 미국 인간재활학(Human Rehabilitation) 박사 •숭실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보건학 석사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 학사 [ 수상 ]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 (2009년) •서울시장 표창 (2007년) •근정포장 (2004년) •노동부장관 표창 (1998) •경기도지사 표창 (1987)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대한민국 산학협력 복지대상(한국언론인협회) •Bob Ross International AmbassadorAward 노무현 정권 당시 근정포상 수상 [1060]
    • 라이프
    2018-12-13
  • 박세원 법률사무소 제민 대표변호사
    변호사법 제1조 제2항에 명시되어 있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라는 말은 국민의 권리와 정의를 실현시키는 변호사의 가치와 역할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겸손한 자세로 국민의 편에서 법률에 의거한 양심적 법률서비스와 탁월한 소송 전략을 이루어 가야한다. 낮은 자세로 의뢰인과 소통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경청하여 합리적 과정과 방안을 제시해 나가고 있는 박세원 변호사. 주간인물은 그를 만나 그의 굳건한 신념과 의뢰인과의 소통방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공감과 겸손으로 의뢰인의 마음을 두드리는 법률사무소 제민 옛말에 “경세제민 :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고난에서 구한다” 라는 말이 있다. 그 의미를 인용하여 설립한 법률사무소 제민은(이하 제민) 경세제민의 정신에 입각하여 열정과 소신을 가진 청년변호사들이 모여 2017. 1. 만든 법률사무소이다. 제민은 현재 슈퍼모델 대상 수상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지닌 이진영 변호사와, 따뜻한 감성으로 의뢰인과 친근하게 소통하는 박 변호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민·형사·가사 등 일반 사건을 포함하여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인사노무, 학교폭력대책관련 업무 등을 특화 업무로 삼고 있고, 행정사 사무소 및 여러 중소기업과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왕성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많은 변호사들과 협업하여 함께 성장해 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최근 박 변호사는 네이버지식IN의 우수상담 변호사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박 변호사가 소통할 시 가장 중요히 여기는 점인 “공감과 겸손”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있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당면하고 있는 법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조력자입니다. 의뢰인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의뢰인이 처한 상황, 문제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낮은 자세로 눈을 맞추고 진심으로 그들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마음을 이해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죠. 겸손한 자세로 대화를 할 때, 상대방 역시 저를 존중하는 자세로 대화에 임하게 됩니다.” 가장 합리적인 대책 강구 학생들을 올바르게 선도 · 보호에 주력! 박 변호사는 주력하는 업무로서 민사 사건으로는 실제 종속적 근로계약임에도 위탁계약으로 가장하여 계약을 체결하여 근로자로 받아야 할 권리를 받지 못하고, 불이익한 처우를 받은 의뢰인을 위해 의뢰인의 지위가 실질적 근로자임을 주장하는 사건을 일부 담당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서울 소재 모 중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학교폭력대책위원회(이하 학폭위)는 학교폭력이 발생하였을 때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올바르게 선도함으로써 학교폭력을 예방과 나아가 학생의 인권 보호 및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과거처럼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체벌 등 강압적인 태도로서 학생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가장 합리적인 대책을 강구하는 절차이다. 요즘에는 교육의 질도 높아지고, 접할 수 있는 교육 매체들이 다양해짐에 따라 학생들의 수준도 많이 향상 되었습니다. 그에 발맞춰 사건을 해결하는 수준도 향상되어야 하죠. “제가 위원회에 몸담고 활동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사건의 원만한 해결하여 학생들을 올바르게 선도하고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낮은 자세로 의뢰인과 공감 · 소통하며 정의실현에 앞장서고자 군대를 제대하고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사법시험 공부에 매진한 박 변호사. 그는 약5년 정도의 수험생활을 마치고 2014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과정을 마친 후 2017년부터 변호사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박 변호사는 사법연수생으로서 각 직역별 수습활동 기간 중 특히 국선변호인 및 공익법률상담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상대방의 고충을 듣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 사건을 해결하였고 많은 보람을 느껴 여러 직역 중 변호사를 선택하였다. “중학교 때 잠시나마 교사의 꿈을 가진 적도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거나,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재미있게 전달해 주거나, 나쁜 길로 빠지려는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업무에 대해 많은 관심과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학교폭력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젊음과 소신을 가진 박 변호사는 법조인으로 “정직과 최선” 을 가장 중요시 한다고 말한다. 이는 의뢰인을 만나 상담을 시작하여 수임계약을 체결하고, 사건을 진행해가며, 결론에 이르러 의뢰인의 권리가 현실적으로 실현될 때까지 정직과 최선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뢰인은 변호사를 믿고 사건 해결을 맡긴 사람이기에 그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박 변호사. 그는 “소송은 서면을 무기로 하여 이루어지는 전쟁과 같습니다. 그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정직과 최선이 뒷받침 된 자세로 사건이나 소송에 임한다면, 승리라는 결과물은 자연적으로 따라 오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라며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사회적, 윤리적 책임감을 느낍니다.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들의 권리를 회복시켜 줘야한다는 의무감도 가지고 있죠.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입니다. 신체적, 외형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의사와 같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보살피고, 그들을 치유하는 변호사가 될 것입니다.” 항상 낮은 자세로 공감하며, 의뢰인이 처한 곤경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겠다는 포부를 밝힌 박 변호사. 변호사로서의 본질적인 가치와 역할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소신으로 의뢰인과 함께하는 그를 응원하며, 박 변호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의가 실현되고 국민들의 법적 보호를 정당히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現법률사무소 제민 대표변호사 •現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공인선수대리인 •現서울특별시 공익변호사 •現서울여의도중학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전문위원 •前서울중앙지방법인 국선변호인 •前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사법연수원 시행 전국 초·중등생 사법교육 •사법연수원 수료 •사법시험 합격 [1060]
    • 라이프
    2018-12-13
  •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장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제3의 물결을 넘어서 제4의 물결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혁명적 변화와 더불어 '공간의 변화'로 인함이다. 지구는 하나의 마을로 비유할 수 있을 만큼의 세계화로 인해 국경의 의미가 점차 사라지고 세계를 무대에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세계에서 인종이나 문화를 초월하여 정부, 비정부, 국제기구, 영리법인 등을 포함한 조직과 구성원을 이끌어 가는 글로벌 리더. 그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건전하고 능동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능력, 국가와 민족은 물론 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다양한 구성원들과의 자발적 성과를 이루어 가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에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글로벌 리더 양성에 주력하여 혁신적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KDI국제정책대학원(KDI School) 유종일 원장. 주간인물은 최상의 교육가치로 세계로 나아가는 KDI School와 유종일 원장의 교육철학에 대해 집중 조명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지역과 국제사회의 동반성장을 이끄는 KDI School 국내유일에서 세계최고를 향해 KDI School(이하 KDIS)은 이론과 실무능력을 겸비한 고급 국제전문인력을 양성하고 경제발전과정의 체계적인 연구와 교육수행을 목표로 1997년 12월에 설립되었다. 행정중심도시인 세종자치특별시에 위치하여, 중앙부처와 국책연구기관이 집약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세계수준의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KDIS는 특히 국제사회의 포용성장을 이끄는 글로벌 리더를 양성한다는 비전을 세우고, 현장 활용을 지향하는 혁신적 교육과 체계적인 공공부문 역량강화를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KDIS는 ‘살아 숨쉬는 교육’을 위해 학술연구 실적과 정책연구 경력을 겸비한 세계적 수준의 교수진들과 함께 최고의 커리큘럼을 제공하며 첨단 교육환경과 체계적 학생지원시스템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2018년도에는 전 석사과정에 대해 NASPAA(전미행정대학원연합회) 인증을 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KDIS의 글로벌 교육은 국제학생 비율 40%로 다양한 경력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의 최적의 비율로 구성되어 거시적 안목과 국제적 소양을 배양하는데 힘쓰고 있으며, 133개국 2,000여명의 다국적 외국인 동문 네트워크를 자랑하고 있다. 정부, 공공기관, 금융, 언론, 기업, 시민단체, 국제기구 등 각계각층의 고위급 인사들이 포진한 국내외 동문 네트워크는 차세대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데 밑거름이 되고 있다. 유 원장은 이러한 네트워크가 학생들에게 글로벌 마인드와 국제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각을 키울 수 있으며, 국경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행복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음을 전했다. 현재 석사학위과정은 정책학, 개발정책학, 공공관리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간·야간 과정의 운영과 직장병행, 복수학위 및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학업에 효율성을 더하고 있다. 또한 박사학위과정은 개발정책학 박사과정과 정책학 박사과정으로 공공정책 이슈와 개발정책이슈에 독자적인 연구능력을 갖춘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전 교육과정은 영어로 진행된다. 경제민주화의 아이콘, 민주를 향한 희망으로 불의와 맞서 싸워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난 유 원장은 어렸을 때 일찍이 서울에 올라와 시골생활에 대한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있는 것이 아쉬운 마음이 든다며 운을 띄었다. 유 원장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겨울공화국’이라 불렸던 대한민국은 혼란 그 자체의 시기였다. 1970년대 무자비한 정부의 공권력 행사와 유신독재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아픔을 겪었고 ‘민주’를 향한 희망의 불씨를 피우고자 했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청년들이 사회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당시, 유 원장 또한 사회정의를 꿈꾸며 독재와 불의를 향한 끌어 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어 운동현장으로 뛰어든 청년이었다. 물리와 수학을 좋아했던 유 원장이었으나 단순히 자신만을 위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이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중에서도 경제학을 전공하며 깊게 뿌리 박혀있는 그릇된 경제정책과 경제흐름에 대해 분석하며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사회를 위해 힘써 싸우는 것과 나라의 자강을 위해 교육을 확대하는 것 그 무엇도 귀중하지 않은 것이 없기에 사회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교육의 필요성과 그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유 원장. 그는 교육이란 사람의 가치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전으로 변화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활용할 것인지를 배워가는 과정이라 말한다. 평생 경제학자로 살아오며 기본적인 학문의 연구와 더불어 사회적 실천을 꾸준히 이어온 유 원장은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이라 불린다. 그가 1997년에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들여다 본 대한민국은 IMF로 나라가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고,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될 당시 유 원장은 경제정책의 근본과 기초를 민주화 시키자는 혁신적 패러다임을 제안했다. 국민들의 동의와 공감을 얻어 경제민주화가 주도적 정책담론으로 등장하게 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된 유 원장은 민주통합당에서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50개 정책대안을 제시한 바 있으며, “경제민주화를 포함한 모든 민주화는 국민으로부터 시작됨”을 강조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용기,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 거친 용기로 평생 변화를 추구하며 불의와 싸워온 유 원장. 그는 안주하고자 하는 안락한 마음을 항상 경계하며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고자 내면의 싸움을 이어왔다. 하버드 박사과정 중에도 편안한 삶과 환경조건을 거부하며 박사학위를 출세의 발판으로 삼기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고자 해왔다. “삶에 있어 비굴해지지 않는 용기, 자신의 잘못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한 개인적 삶을 위해 즐거운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매우 불행한 유신독재 체제 속에 청년기를 보내면서 사회 변화에 앞장서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과정이 있어서 단순히 나를 위해서만 혹은 학문적 성취를 위해서만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학생들 또한 KDIS에서의 배움을 발판으로 개인의 성취를 넘어서 타인과 사회를 위한 변화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가르치고자 합니다.” 유 원장은 현재 비영리단체인 주빌리 은행의 은행장이자 대표를 맡고 있다. 수많은 국민들이 부실채권으로 인해 고통 받는 현실을 바꾸려는 운동단체로서, 악성부실채권을 소각하여 고통 받는 채무자들을 해방시키고 제3자의 부실채권을 사고파는 행위 등 잘못된 금융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앞장섰다. 애초 목표로 한 천억원의 부실채권 소각을 훌쩍 넘어 2조원 가까운 엄청난 액수의 부실채권을 소각했고, 수렁에 빠진 수많은 서민들과 청년들에게 부채에서 자유로워져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와 용기를 주었다. 나아가 애초에 부실채권 문제를 발생시키는 그릇된 금융시스템과 정책을 바꾸려는 노력을 경주했고 그 결과 정부와 국회의 관심으로 제도적인 변화도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삶이 소중하다는 유 원장은 어느 누구도 억울한 삶을 살아가지 않도록, 모두가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존 제도와 법을 끊임없이 개혁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무대 인류의 공영에 이바지할 인재 양성의 초석 선한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KDIS. 유 원장이 말하는 리더란 “변화를 이끄는 사람”을 의미한다. 리더란 반드시 높은 성취와 지위를 획득한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더불어 자신을 내어주며 확신으로 함께 걸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 원장은 이러한 리더를 통해 사회 구성원의 가치가 달라지고,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세상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전했다. 또한 기존의 질서에 안주하면서 자신만의 성취를 추구하는 인재가 아닌 기존질서의 한계점을 보완하고 혁신적 변화를 위해 담대한 도전을 하는 인재가 지금 이 시대에 진정한 리더가 될 것이라 말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의 발달은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심각한 도전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기술변화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사회를 해체하지 않으면서 삶의 풍요와 사회의 통합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제도와 정책을 연구하고 마련해야 합니다. 요즘 국제협력질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만, 인류가 힘을 합쳐 지구온난화와 싸우고 환경보전과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 연구하고 헌신하는 리더를 기르는 것이 우리 KDI School이 하는 일입니다. 이 향기로운 이상을 꿈꾸며 모든 학생과 교직원이 한마음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국제사회의 성장과 포용을 이끄는 리더를 양성하는 KDI School의 유종일 원장. 그는 타인과 사회를 위한 삶으로 학생들에게 진정한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학생들과 경계 없는 소통으로 희망을 전하고 있다. 이에 주간인물은 KDI School과 유종일 원장을 통해 기업과 국가, 세계를 이끌어가는 학생들의 원대한 꿈이 실현되어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확신한다. [ 주요연혁 ] •現KDI국제정책대학원장 •現주빌리은행 대표 •現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 공동대표 •前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 •前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前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 •前민주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 •前대통령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위원 •前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고캠퍼스 초빙교수 •前중국 칭화대학교 방문교수 •前중국 북경대학교 초빙교수 •前KDI 초빙연구위원 •前일본 리츠메이칸대학교 부교수 •前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조교수 •前미국 노트르담대학교 조교수 •前세계경제발전연구소 연구원 •前국제무역개발기구(UNCTAD) 컨설턴트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박사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 저서 ] •한국경제, 4대마약을 끊어라 •세계경제의 미래와 한국경제 •MB의 비용 •경제민주화가 희망이다 •박정희의 맨얼굴 •위기의 경제 등 [1060]
    • 교육
    2018-12-13
  • 김혜영 교육컨설팅그룹 울림 대표
    기업윤리란 기업의 경영자와 구성원들이 조직 내부에서 지켜야 할 행동의 기준이며,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정당한 방법을 통하여 기업을 올바르게 운영하는 기준을 말한다. 동시에 기업 윤리는 다른 경제 주체와 상호 의존하는 경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하는 기업의 도덕적 책임도 포함되는 것으로, 기업의 도덕성 · 경영 방식 및 경영 정책의 평가 기준이 된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 뿐만 아니라 기업자체의 윤리이념을 통해 개인의 가치를 성장시키고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효과를 일으킨다. 이에 주간인물이 만난 교육컨설팅그룹 울림 김혜영 대표는 개인과 기업의 상생을 강조하며 함께 만들어 나가는 조직문화의 가치와 중요성을 전달한다. 그를 만나 행함이 있는 강의의 가치와 목적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_장보연 기자 마음과 행동과의 연결고리 건강한 개인과 조직의 관계를 통해 사회의 변화를 돕다 울림은 "울림있는 교육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설립된 교육전문기관으로서, 윤리경영 · 청렴교육 · 부정청탁금지 · 컴플라이언스 · 인문학 리더십 · 조직활성화 · 기업교육컨설팅과 관련한 강의와 칼럼기고 활동 등을 하며 개인과 기업의 상생과 성장을 돕고 있다. 김 대표가 윤리와 청렴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온 국민들이 가슴 아파했던 세월호 사건의 의해서였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좋은 어른이 되어 다음세대 아이들만큼은 ‘공공성을 띈 기관에서는 날 외면하지 않을거야’ 라는 믿음과 신뢰를 주며 기본적인 것을 보장받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소망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안전하고 건전한 사회가 되길 마음이며 윤리와 도덕성이라는 기본을 기업과 조직구성원, 시민이 인식하고 있음으로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함이다. 김 대표는 “마음의 울림을 주는 강의”를 추구하며 단순히 좋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아닌 수강생들이 하나쯤은 기억하고 실생활에서 실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행과정에서 머리의 인지로 그치지 아니하고 가슴이 기억하는 울림, 더 나아가 손으로의 실천까지 이어지도록 하며 마음과 행동과의 연결고리를 통한 직접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액션플랜까지 전달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은 실행들이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개인 · 기업 · 사회가 변화되는 밑걸음이 된다고 보고 김 대표는 “울림”을 통해 개인과 기업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며 밀착형 강의를 이뤄가고 있다. 또한 그는 윤리경영과, 청렴,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공유가치창출(CSV)가 무조건적인 기업만의 역할이 아닌 그들의 활동이 기업이익에 영향을 줌으로써 선순환 할 수 있는 자발적 연결고리를 찾아가야 된다고 설명했다. 자발성을 통해 가치 있는 개인의 삶과 기업의 시너지 효과를 상승시키다 김 대표는 윤리경영에서 가장 핵심은 ‘자발성’이라 말하는데,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구성원들과 회사의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고 그들을 경영 주체로서 인정할 때 스스로 기업을 위한 행함과 협치하는 문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가치 있게 여기며 열심히 하고자 하는 욕구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 스스로 하고자 하는 자발성과 더하여 윤리성이 있을 때 개인과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과 목표가 설립된다고 설명한다. 윤리적이어야만 “조직 내에서 나의 일은 가치 있고, 지역사회의 많은 영향을 미치기에 당당하게 일할 수 있어”라는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으며 그 마음이 오랜시간의 신뢰관계의 토대가 되고 기업 생산성을 높이는 밑걸음이 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리더들의 확고한 문화정립과 교육이 학습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김 대표는 정서적인 교육과 실질적인 교육을 결합되어 주체적인 프로세스를 제시하여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교육의 비전가치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청렴과 윤리를 연구하다 보니 인문학적인 배경이 많아진 김 대표는 청렴은 멀리있는 것이 아닌 일생생활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생활밀착형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개인과 기업이 함께 청렴한 기업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은 끊임없는 학습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이론적인 변화가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이 조직 안에서 어떤 상황에서 ‘할지 말지’ 고민할 때 법규, 사규가 없이 양심에 의해서 결정할 때가 있는데 그것을 바로 “윤리적 딜레마”라고 한다. 그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딜레마를 깨어주는 것이 학습과 신뢰이며, 개인과 기업의 관계 속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사업무의 시작과 끝을 경험하며 성숙한 삶을 만나다 김 대표는 관광경영학을 전공한 재원으로서 한국 피자전문점인 피자헛에서의 인턴십을 시작으로 미국 피자브랜드인 파파존스의 오픈멤버로 참여하여 한국에서 매장혁신을 이루는데 기여했다. 서빙부터 매장관리 점장을 거쳐 추천을 통해 10개의 지점을 운영하는 슈퍼바이저로서 활동을 하던 중 사수로부터 더 넓고 큰 범위의 조직을 변화시키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권유를 받게 된다. 그 당시, 김 대표는 고객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맞닿는 업무를 했기에 교육은 굳이 필요한 요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수의 추천으로 시작한 교육업무를 통해 조직과 구성원의 변화를 몸소 느끼고 할수록 가치와 보람된 일이라 느꼈다는 김 대표. 그는 이후 교육에 주력하여 수많은 매뉴얼을 탄생시키고 조직을 체계화 프로세스를 연구했다. 단순히 좋은 교육이 아닌 명확하고 규정화된 프로세스가 있어야 조직이 변화될 수 있다고 판단한 김 대표는 기업의 인사팀에서 교육과 인사업무를 담당하였고 계획과 실행, 결과보고 등 절차가 많은 인사업무를 해나갔다. 그러던 와중에 김 대표의 인생의 터닝포인트라 할 수 있는 일을 겪는다. 둘째아이가 백일이 되자마자 회사를 이직하여 업무에 집중할 당시 잦은 야근으로 가족들을 돌보기가 쉽지 않았던 김 대표를 대신하여 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봐주었는데 당시 어머니가 아프셔서 오래 봐주시지 못함에도 엎어가며 아이들을 키워주셨고, 김 대표는 육아와 일까지 병행하며 예민하고 날선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후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후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는데, 김 대표는 돌이 지나도록 말이 느린 둘째 아이가 걱정되기 시작했고 특히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다른 아이들과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말한다. 단 한번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가장 가까운 존재인 엄마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 아팠다는 김 대표는 이후 모든 일을 정리한 뒤 “아이와 눈 마주치기”를 목표로 세우고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과 두 아이가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거야’라고 생각해 업무에 몰두했지만 이제는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김 대표. 그는 회사의 퇴직과 아이를 통한 경험을 통해 삶이 더 의미있고 가치있게 여겨져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전하며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 한 계단씩 밟아나가며 경험이란 영양분으로 강의의 꽃을 피우고 있다. 김 대표는 향후에도 꾸준히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길 희망하며 교육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느꼈던 이야기와 개인과 기업의 상생과 고생과 관련된 책을 집필할 예정이다. 기업에 있어서는 사회적 공헌도 필요하나 실제적인 이득과 시각의 변화, 성공사례들과 그 기업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어 사회의 필요한 이야기가 되고자 한다. 무엇보다 좋은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부조리하지 않은 사회를 전하고 싶다고 말하는 김 대표. 그는 청년들에게 불의를 봤을 때 눈감지 않는 용기, 침묵하지 않는 용기, 해낼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며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윤리적인 사회와 기업을 이루어 가는데 기여하는 그의 발걸음을 응원하며 그를 통해 건강한 기업문화가 형성되어 개인의 가치를 인정받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삶의 현장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주요연혁 ] •現교육컨설팅그룹 울림 대표 •現대한상공회의소 외래교수 •現한국생산성본부 전임교수 •現한국능률협회 전문위원 •現소스토리 감성코칭 전문강사 •現연세대학교, 한양대학교 외래교수 •前CJ 푸드빌 상생아카데미 전임교수 •前Smoothie King Korea 교육팀장 •前LG 아워홈 인사교육 팀장 •가천대학교 (구, 경원대학교) 관광경영학 학사 •가천대학교 (구, 경원대학교) 경영학 석사 [ 저서 ] •존경받는 리더의 비밀, 티칭력 [ 칼럼 및 원고 / 영상 ] •강동구 도시관리공단 소식지 <전문가 칼럼> 기고 •국민연금관리공단 <윤리경영 칼럼> 기고 •국민연금관리공단 <청탁금지법 인터넷강의> 원고개발 •한국추출가공식품업중앙회 동영상강의 진행 [ 교육과정 수료 ] •청렴연수원 청렴강사과정 수료 •이화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최고 명강사 과정 수료 •감성 액티브코칭 과정 수료 •하브루타 강사과정 수료 •TA 강사과정/ DiSC 강사 과정/ NLP 강사 과정 수료 •SPOT 강사 과정 수료 •개인정보보호법 교육강사 과정 수료 •국가공인 CS Leaders 강사 •국가공인 SMAT 1급 강사 [ 강의분야 ] •1. 윤리경영과 컴플라이언스 윤리경영과 상생의 리더십 신뢰받는 기업이 되기위한 CSR과 CSV전략 지속 성장하는 기업의 비밀, 윤리경영 신입사원이 알아야 할 윤리경영의 모든 것 셀프 윤리 리더십 윤리적 딜레마, 당신의 선택은? 인문학적 윤리경영 CSR, 그리고 착한 기업, 나쁜 기업 •2. 인문학 리더십 역사 속 리더십 / 신화 속 리더십 / 명화 속 리더십 영화 속 리더십 •3. 리더십과 조직활성화 목표관리/ 성과관리 리더십 [여울 리더십] 여성의 울림 있는 리더십 전략 [소화기] 소통과 화합으로 기적을 만드는 팀 [1058]
    • 교육
    2018-11-21
  • 김한올 옳은속기사무소 대표속기사
    속기는 정치·경제·사회 다방면의 분야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상황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기록하는 역할을 하고있다. 내뱉으면 사라지는 말을 속기사의 손을 통해 글로 옮겨지고 공식적인 문서가 되어 공증으로서 법적인 효력까지 지니게 된다.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사회를 기록하여 대한민국의 역사의 기록지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속기사. 주간인물이 만난 김한올 속기사는 최고의 속기사를 지향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며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속기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김한올 속기사를 만나 속기사의 역할과 그의 직업가치와 신념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정확성과 신속성을 모두 갖춘 올바른 속기사무소 의뢰인과 소통, 공감하는 속기사 옳은속기사무소의 ‘옳은’은 김한올 속기사의 ‘올’과 은종하 속기사의 ‘은’을 따 올바른 마음의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속기 사무소이다. 김 속기사는 증거 제출용 녹취록을 전문으로 하여 경찰과 법원 등 수사기관에 증거목적으로 낼 수 있는 문서를 객관적으로 작성하여 의뢰인이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주는 것에 주력하는 젊은 속기사이다. 김 속기사는 속기사의 역할 중 하나인 녹취록 작성은 “정확성과 신속성”이 최우선이라 말하는데 무엇보다 증거제출용으로 작성하는 것이고 문서에 따라 재판의 승소를 좌지우지 하기에 신중히 기록하고 있다. “음질이 좋지 않을 때에도 속기사는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 김 속기사는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처럼 사회의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알고 있어야 잘 듣고 올바르게 쓸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한 분야의 전문용어에 대해서도 단순히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의뢰인의 목적과 하고자 하는 전달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하면서 듣고 기록해야만 의뢰인의 만족과 사건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들으며 검수하고 청취불능 구간에서는 의뢰인과 상담을 통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기록하고자 노력한다는 김 속기사. 그는 개인적인 속기 봉사와 자막센터에서 근무하며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자막 송출 속기를 할 때 보람을 느꼈다고 말한다. 청각 장애인들에게 귀가 되어드리고, 공공기록물관리법에 의해 기록하는 속기사를 통해 역사가 기록되고 역사의 중심에 서는 것이기에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이라며 자신만의 소신을 전했다. 한 번의 실패 끝에 찾아온 진정한 꿈, 최고의 속기사가 되겠다는 굳은 신념 용인에서 성장한 김 속기사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컴퓨터학원을 다녔다. 컴퓨터가 대세인 시대가 올 것이라는 아버지의 선견지명으로 컴퓨터를 배우며 키보드 타자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는 김 속기사. 그는 함께 배우는 오빠, 언니들을 제치고 가장 타자가 빠른 수강생이었고 매일 타자를 쳐, 5학년 때 용인시대회에서 대상까지 탈 정도로 타자에 능한 학생이었다. 자신의 적성에 맞았으나 직업적으로 타자를 활용할 수 있는 명확한 길을 알지 못해 진로를 고민하던 중 미용을 접하게 되어 고등학교 때부터 집중적으로 미용에 몰입하면서 또 다른 재능을 알게 되었다. 미용자격증을 단숨에 취득하고 조기취업까지 할 정도로 소질이 있던 김 속기사는 매일 샵에 출근하던 중 인생을 뒤흔드는 일이 발생한다. 매일 성실하게 일하던 중, 어느 날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땅에 발을 딛지 못할 만큼의 통증을 느껴 자신이 그렇게도 노력하고 고생했던 미용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밤새 눈물을 흘렸다는 김 속기사. 병원을 다니며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없었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마음의 병까지 생기는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에 여러 아르바이트와 치료를 병행하며 아픔을 참고 일했던 김 속기사는 가족과 지인들의 조언으로 앉아서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러던 중 자신이 어릴 적 타자를 잘했던 기억이 떠올라 “속기사”라는 직업을 접하게 된다. ‘속기’ 만큼은 자신이 있었으나 자신이 하던 타자와는 다른 속기를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마음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10시간 이상 매일 연습하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기록하였다. 힘들 때마다 “최고의 속기사가 될 것이고, 미용은 실패했으나 이것만은 실패하지 않겠다” 라는 굳은 결의를 다졌다고 말하는 김 속기사. 그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현재 옳은속기사무소에서 함께하고 있는 은종하 속기사를 만나 서로에게 힘이 되었고 연인으로서 미래를 계획하며 함께 나아가고 있다. 김 속기사는 “지금 속기사를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당장 실력이 느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어느새 성장하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라며 속기사 준비생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 속기사는 현재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속기 의뢰가 많기에 의뢰인들과 더욱 공감하고 소통하는 속기사로 더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또한 신뢰가는 속기사로서 의뢰인이 만족하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친근하고 가까운 존재로서 자리 잡고자 한다. 단단한 신념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소신을 가진 김 속기사. 지금보다 향후 더 세상을 향해 자신의 꿈을 펼쳐나갈 김 속기사의 미래를 기대하며 그의 꽃 길을 응원해본다. •옳은속기사무소 대표 속기사 •KBS 정치부 속기사 •국회의원 인터뷰 영상 속기 •국회 본회의/상임위 실시간 속기 •소리자바 자막방송센터 실시간 자막방송 속기 •재개발/재건축 현장 속기 •서울사이버대학교 강의록 작성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강의록 작성 •넷플릭스 VOD 자막 제작 •삼성카드 고객상담 녹취록 작성 •LGU+ 고객상담 녹취록 작성 •그 외 다수 민·형사상 녹취록 작성 [ 자격 ] •한글속기 1급 보유 •수사속기 1급 보유 •디지털영상속기 1급 보유 •워드프로세서 1급(단일) 보유 •GTQ 1급 보유 [1057]
    • 라이프
    2018-11-09
  • 오한남 대한민국배구협회 회장
    최근 김연경 선수를 비롯한 우리나라 배구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하며 한국 배구의 위상과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적인 선수가 되기까지 감독과 협회, 여러 기관과 단체의 노력이 필수적이며 뒤에서 묵묵히 지원하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선수 양성과 대회 유치에 주력하는 대한민국배구협회는 1946년 3월 10일 창립되어 1959년 10월에 국제배구연맹(FIVB)에 가입되었고, 배구종목을 소관하는 국제배구연맹(FIVB) 등 국제체육기구에 대하여 독점적 교섭권을 갖는 배구종목의 유일한 단체로서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여자배구가 우리나라 구기종목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획득하였으며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배구는 금메달을 3회, 여자배구는 금메달을 2회 땄으며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을 4번이나 획득하여 국위선양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지금의 선수들이 있기까지 선배 배구선수들의 노력과 땀이 바탕이 되었다. 선수와 감독 출신으로서 선수들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대한민국 배구협회 오한남 회장. 그의 중동사업 성공기와 협회 회장으로서의 신념에 대해 심층취재 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우수한 배구선수의 양성을 통해 국위선양에 이바지하는 대한민국배구협회 남 대표 선수단 격려 단체사진 대한민국배구협회는 배구 종목운동을 국민에게 널리 보급하여 국민체력을 향상하게 하며 건전한 여가선용과 명랑한 기풍을 진작하는 한편 배구선수, 전국규모연맹체 및 시도종목단체를 지원·육성하고 우수한 선수를 양성하여 국위선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이다. 2007년 11월에 사단법인으로 출범하며 2016년 2월에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을 통합한 대한민국배구협회로 거듭나고 있다. 주요 사업은 배구에 관한 기본방침의 심의·결정, 국제대회의 개최 및 참가, 배구대회의 주최 및 주관, 배구기술의 연구 및 향상, 배구 종목의 진흥 등 배구와 관련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며 배구 선수들의 기량향상과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오 회장이 2017년 6월 30일 전국의 선거인단으로 구성된 회장선거에서 대한민국배구협회 제39대 회장으로 당선된 후 우리나라의 배구 국제경쟁력 강화 및 우수선수 양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노력의 첫째로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남녀 대표팀 감독 및 코치 전임제를 실시하여 국가대표팀의 경기력향상과 유소년부터 시니어까지 체계적인 선수관리 및 훈련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둘째, 미래 국가대표 선수 양성을 위해 남녀 대표팀 전임감독이 중심이 되어 매년 겨울에 동계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셋째, 대표팀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전력분석원과 체력 트레이너 등 대표팀 지원인력을 대폭 보강하여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훈련환경을 제공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오 회장은 배구선수였기에 선수들에게 필요한 환경과 지원에 대해 면밀히 파악하고 있어 배구의 발전과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세계의 중심이 될 한국배구, 그 뒤에서 묵묵히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이들 여자 대표 주장 김연경 선수 격려 오 회장은 “대한민국배구협회는 2001년도에 아시아남자선수권대회를 국내에 개최하고 이후 17년간 중요 국제대회를 국내에 유치한 실적이 없어 국내 배구 팬들에게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했다”라며 운을 띄었다. “회장 임기 내에 매머드급 국제대회를 국내에 개최하겠다고 배구 팬들에게 약속한 바 있으며 아시아배구연맹(AVC) 총회에 참석하여 AVC임원들과 긴밀히 접촉하고 개최의향이 있는 국가협회를 대상으로 적극 설득하여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를 2019년 9월초 12일간 우리나라 서울에서 개최키로 하였다.” 라며 배구의 활성화와 대회개최를 위해 대내·대외적으로 각고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는 AVC가 1975년도에 제1회 대회를 개최한 후 우리나라는 여자배구의 매시라고 불리고 있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 김연경 선수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한 번도 개최한 실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내년 9월초 서울에 개최예정인 아시아여자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국내 배구발전과 활성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며 말했다. 특히 2004년 10월에 프로배구연맹인 코보(KOVO)가 발족하고 V-리그가 겨울철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배구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국가대표팀의 주축인 프로선수들의 국가대표팀 참여는 아주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배구협회는 프로연맹 및 프로구단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국가대표팀의 경기력 향상 및 국제대회의 상위입상 할 수 있도록 코보와 긴밀히 협력하고자 한다. 오 회장은 2020년은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로 내년 10월에 개최 예정인 2020 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전의 국내개최를 추진 중이며, 남녀 대표팀 모두 올림픽 본선에 동반 진출할 수 있도록 대표팀 지원에 인적·물적·재정적 지원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 배구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우수선수의 조기발굴과 국가대표팀의 선수층 확대를 꾀할 것이며 중장기적인 배구발전 방안을 준비하여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기반구축에 집중하고 있다고 힘주어 전했다. 제2의 두바이가 될 바레인의 디아르(Diyar) 중동의 한인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로 한국인의 긍지를 전하다 바레인 디아르(Diyar) 지역 오 회장은 1982년에 카타르 알-알리 배구클럽 감독에 부임하면서 중동의 바레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바레인(Bahrain)은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두 개의 섬이라는 뜻을 가진 작은 섬나라이나, 걸프 지역 중 가장 개방적이고 서구문화에 관대하며 표현에 자유로운 도시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사는 이들이 바레인으로 매주 해상연육교를 통해 대이동을 할 만큼 바레인은 자유를 느끼고 억눌린 마음을 잠시 해소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자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또한 외국인 활동의 제한 분야를 완화하여 우호적이고 개방적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으며,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카타르와의 교량 건설도 추진되고 있어 세계 최장 교량으로 주변 국가와 접근성이 더욱 높아질 예정이다. 미래가 기대되는 도시인 바레인은 외국인이 살기 좋은 나라 1위 (Inter Nations) 를 할 만큼 일자리 창출과 경제·사회가 안정적인 모습을 띈다. 이러한 강력한 성장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아 주변 국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이자 문화·교육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으며 제2의 두바이를 설계 중이다. 특히 현재 바레인 디아르(Diyar)지역에 한인타운을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진행중인데, 디아르는 한국의 파트너 지역으로서 실용적이고 고급스런 주거시설을 중심으로 최고급 의료·교육시설과 최상급의 헬스케어·레저 등 다양한 형태로 개발되고 있는 계획도시이다. 이글스힐스와 공동으로 합작하여 개발 중이며 한국 산업의 진출을 도모하고 의료관광의 전초기지 구축 및 뷰티·교육·엔터테인먼트·IT·금융 등 한국의 첨단사업 사업의 중동기지를 구축하여 고급인력의 일자리 창출과 한국과 디아르의 상호간 이해와 문화교류의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라 예상된다. 외국인이 가장 살기 조은 도시 1위 / 바레인의 국왕들 오 회장은 바레인의 이러한 성장가능성을 선견지명하여 1993년부터 바레인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중동국가는 법이 엄격하고 인연을 중요하게 여겨 중동에서 사업을 하려면 신뢰관계를 쌓는데 상당한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있었으나, 바레인에서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 호텔을 비롯한 요식업을 활발하게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동안 바레인에서 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고 바레인으로 오는 국내인사들에게 많은 조언과 협조를 하여 바레인에서 안정적인 사업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있다. 오 회장은 바레인을 비롯한 중동국가들은 아직도 국제사회로부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비상식적인 행동과 테러행위로 많은 오해와 불신을 받고 있으나, 아랍에미레이트(UAE)와 바레인 등 몇몇 국가들은 탈 석유화를 선언하고 적극적인 개방정책으로 건전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앞으로 중동의 미래는 아주 밝다고 말한다. 이에 중동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한인들에게 희망과 꿈을 전하고 그들이 중동에서 온전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고있다. 오 회장은 “국내 경제여건이 어렵습니다만 모두 함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갑시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기본성장률을 넘어서지 않고 정체되어 가계소득이 줄어들고 소비가 위축되고 그에 따른 기업의 생산이 줄어드는 등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어 국민들이 많이 힘드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독자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도록 남녀 배구 국가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선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라며 스포츠로 하나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배구는 전부이자, 끝까지 함께 나아가야만 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오 회장. 그는 배구 뿐만 아니라 중동과 한국의 교두보 같은 역할로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있으며 한국과 중동을 오가는 활발한 교류 활동의 중추적인 기둥이 되고 있다. 배구와 교류의 중심에서 헌신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그의 행보를 통해 후배 배구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대한민국 배구가 세계로 뻗어 나아가기를 기대하며 배구협회의 행보를 주목해본다. •現 제39대 대한민국배구협회 회장 •現 세계한인무역협회(OKTA) 바레인 지회장 •現 12~18기 평통자문회의 위원 겸 중동협의회 부회장 •現 Bahrain 배구감독 이후 사업 •前 한국대학배구연맹 회장 •前 서울시 배구협회 회장 •前 Bahrain 한인회 회장 •前 Bahrain 한글학교 교장 •前 Bahrain재외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前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홍보대사 •前 UAE Al-Ali 배구클럽 배구 감독 •前 한일합섬 주식회사 배구감독 / 배구코치 •前 Qatar Al-Ali 배구클럽 배구감독 •前 한양 여자 고등학교 배구코치 •前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 •前 금성통신 주식회사 배구단 •前 육군보안사령부 배구단 •前 주식회사 대한항공 배구단 [1057]
    • 라이프
    2018-11-09
  • 양윤주 플레아띠창의융합미술학원 원장
    4차 혁명의 시대에서 융합교육과 창의교육의 중요성이 화두에 올랐다. 주입식 교육을 했던 과거에는 공부와 성적향상을 위한 교육으로 미술학원에서도 창의력 보다는 그림을 잘 그리는 기술을 가르치며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교육방식을 행해왔다. 그러나, 다양한 직업과 가치관이 존재하는 지금은 부모들의 인식과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행복한 아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아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감성교육과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한 창의수업을 선호하고 있다. 주간인물이 만난 플레아띠창의융합미술학원 양윤주 원장은 수학공식처럼 영어단어처럼 암기해서 그려내기 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고 직접 보고 만지고 표현하며 테크닉을 스스로 깨우치는 교육법으로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다. “우리아이들”이란 말을 사용하며 한명 한명을 보석같은 귀한 존재로 진정한 사랑을 전하는 그를 만나 진정한 창의와 미술교육의 융합과 진정한 교육인으로서의 모습과 그의 직업정신에 대해 집중조명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체계적이고,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상상력과 창의력을 높이는 자기주도 교육을 지향 창의프로그램(할로윈데이) 플레아띠창의융합미술학원(이하 플레아띠)은 양 원장만의 노하우와 프로그램을 접목하여 설립한 창의융합미술센터이며, 3세부터 성인까지의 미술프로그램을 가지고 소수정예로 개인별 맞춤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플레아띠는 영어로 기쁨을 의미하는 'pleasure'과 'artist'의 합성어로 다양한 커리큘럼과 사랑으로 작은 예술가인 우리 아이들이 항상 기쁨을 가지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한글로 '아띠'는 '친구'라는 순 우리말로 친구 같은 선생님, 가족 같은 따뜻한 학원 분위기와 그 의미를 같이 한다. 교사 전원이 정규 미술대학교 출신으로서 미술치료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이들에게 맞춤 프로그램으로 선생님과의 교감에 주력하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즐거운 학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플레아띠는 타 학원과 달리 “창의융합” 이라는 이름 아래 수학, 과학, 국어, 음악, 역사 등 모든 분야와 융합 및 접목하여 아이들이 다양한 분야를 접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함을 목표로 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상상력과 창의력을 높이는 자기주도 교육을 지향한다. 양 원장은 “무한한 잠재능력을 가진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할 줄 알고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가르치겠습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나누며 이야기하고 치유하는 법을 미술을 통해 가능케 하겠습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으로 칭찬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자존감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존중하며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겠습니다.” 라며 교육보다는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해나가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면 되요. 결론은 사랑입니다!” 6세 보건의 날 대학시절 입시학원의 입시반 전공담임 강사로 미술선생님 일을 시작한 양 원장. 그는 과거 여러 기관을 거치고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미술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아이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1년의 경력을 지닌 원장으로 새내기 원장과 미술교사들에게 강의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학원을 성공적으로 운영 할 수 있을까요? 원장님만의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라는 질문에 장황한 대답보다는 한가지의 결론만을 말한다.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면 되요. 결론은 사랑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은 저절로 따라 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아이처럼 귀중하게 생각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대하고자 한다. 양 원장에게 2018년은 남다른 해인데 ‘플레아띠 창의융합미술학원’ 이라는 상호명으로 브랜드를 런칭과 상표출현을 하였으며, 주변에 훌륭한 선생님들과 함께 ‘플레아띠 아동미술교육 연구회’ 라는 이름으로 마음을 모았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항상 노력하며 공부하는 교사들의 집단이자 아동미술교육연구회 이며 다수의 분점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와는 차별하여 인증된 원장만 운영이 가능하고 직영체계의 분점만을 인정하는 일종의 ‘진정한 교육자’ 마인드를 가진 미술선생님들의 연합이라 할 수 있다. 양 원장은 특히 “미술의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소수의 사람들이 미술선생님이라는 이름을 직업으로 삼아 보석 같이 빛나는 우리 아이들을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받은 프로그램으로 일률적으로 가르치면서 상업적으로 변질 되고 있는 소수의 미술교육 시장이 안타깝습니다” 라고 말하며 “플레아띠는 어떤 지점을 가더라도 믿을만 해” 라는 인식을 심어 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성이 바르고 노력하는 참된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을 맞이하고 함께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디딤돌 역할이 되어주고 싶다며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 아이 작품에 손을 대어 도와줄 수는 있어도 아이의 생각에 손을 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7세 정물화 그리기, 토틀러(3~5세) 수업사진 양 원장은 “미술은 감성 교육입니다. 교사는 아이들 개개인의 니즈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하며 플레아띠는 소수 정예 수업을 지향 합니다.” 라며 운을 띄었다. 아이 작품에 손을 대어 도와줄 수는 있어도 아이의 생각에 손을 대는 일은 없어야 하며, 아이가 그 수업을 거부 하더라도 교사는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의 수업을 진행 할 수 있도록 준비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양 원장은 미술이 타 과목보다 자유로운 만큼 더욱이 교사와의 ‘라포 형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에 입사 당시 자격이 없는 교사들도 입사 후 학원에서 지원해 주어 의무적으로 공부하도록 도우며 매달 두 번의 정규 교사 회의와 수시로 진행되는 원장과 교사, 학부모 간의 면담 외에도 외부 세미나, 포럼 참석, 연구 과제 발표 등을 하며 서로에게 배우기도 한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교사들 덕분에 플레아띠가 더욱 단단해 지고 있다고 말하는 양 원장. 그는 자신에게 선생님들은 플레아띠를 함께 시작한 동지이며 보석 같은 사람들이니 항상 마음으로 감사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양 원장이 교사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수업 외 아이들의 개인적인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사랑 할 것! 그 사랑을 표현 해 줄것! 선생님 같은 교사 보다는 언니, 이모, 엄마 같은 교사가 될 것!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너는 나의 소중한 학생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교사 또한 특별한 선생님이 될 것! 그 다음이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학원에 슬로건인 먼저 사랑하고 그 다음 가르치겠습니다.” 라며 자신의 신념을 펼쳤다. 초3 정물소묘 수업 양 원장은 “가장 위험하지 않은 실패는 미술이라고 합니다. 잘못 그려도 다시 그리고, 만들다가 부서지면 다시 만들면 되니까요. 이때 교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망쳤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더욱 멋있게 변화되는 과정을 보면서 사고의 전환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것 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이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존감’입니다.” 라고 말한다. 나를 믿는 마음, 실패에도 의연할 수 있는 큰 마음, 스스로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힘을 얻은 아이들은 미술 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 했을 때에도 자존감을 바탕으로 창의력을 더 해 여러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양 원장은 교육에 앞서 진정한 교육자로서의 숭고한 사랑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며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존재로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있어 긍정적 에너지와 지혜를 일깨워주고 있다. 아이들과의 인연을 귀중히 여기며,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면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양 원장이 있어 아이들의 환한 미소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를 통해 아이들이 세상을 깊고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키우고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의 따뜻한 행보를 주목해본다. 성동구청장님과 함께 (올해 성동구청에서 열린 환경그리기 공모전에서 20명의 수상자 중 1,2등을 포함한 8명의 출품작 입상) •現 플레아띠 창의융합미술학원 대표 원장 •아트앤하트 플러스 행당교육원 원장 •방문미술 프랜차이즈 홍대 마포지사장 •아트N큐빅 창의미술학원 원장 •미취학아동, 초·중 및 입시미술, 성인미술교육 경력 17년 •퍼포먼스공연 및 설치미술, 전시회 다수 •미술대회 공모전 심사 위원 •우수 지도자상 수상 •공로상 수상 •미술공모전 입상 다수 •교과서논술지도사자격 •한국사지도사자격 •미술치료사자격 •레크리에이션지도사자격 •아동독후활동지도사자격 •플레아띠 상표등록 •예술학석사 [1057]
    • 교육
    2018-11-09
  • 최찬환 사단법인 통일의 집 이사장
    “평화” 대한민국 국민이 그렇게도 염원하던 평화가 차츰 이루어지고 있는 현 시대에 과거를 되돌아보면, 한국의 분단은 초기 정부가 수립될 당시 일제의 침략과 세계역사에서 힘이 없었던 나라의 불가피한 상황이자 희생이 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역사적인 아픔이다. 전쟁을 통해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임에도 한국과 북한은 서로의 정치적 이념의 차이로 지금의 시대까지 흘러 후손들에게 아픔과 수고를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그러나 1970년대 당시 순수한 마음으로 한 민족이자 한 핏줄인 북한과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 시대에 평화적 관계를 위한 노력이 빛을 밝혀가고 있는 것이다. 주간인물이 만난 최찬환 이사장은 ‘문익환 통일의 집’을 문화적·역사적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문익환 목사의 평화적 통일의 염원과 정신을 이어가며 이 시대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그를 만나 문익환 통일의 집의 역사적 가치와 이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순수한 마음으로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던, 문익환 목사의 뜻을 전하는 문화적 공간 ‘문익환 통일의 집’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해있으며 실제 문익환 목사와 그의 가족이 1970년대부터 살았던 집이다. 1994년 문익환 목사가 세상을 떠난 뒤 부인 박용길이 ‘문익환 통일의 집’이라는 명칭을 세움으로서 시작되었다.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고 문익환 목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후원에 힘입어 2018년 6월 1일에 박물관으로 개관되어 일반인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곳은 통일을 염원하던 문익환 목사의 생애와 근현대사의 귀중한 자료들을 보관하고 연구하여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통일을 소망하고 꿈꿀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익환 목사는 만주 북간도 명촌동에서 태어나 1955년부터 한국신학대학 교수와 한빛교회 목사로 활동하였으며 1968년 신·구교 공동 구약 번역 책임위원으로 성서를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그 과정에서 시인이 되어 여러 권의 책을 남겼으며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고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1992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 1976년 첫 구속 이후 6차례에 걸쳐 생의 마지막 18년 중 11년 3개월의 옥고를 치루고 한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하며 어려운 이웃들과 아픔을 함께했다. 문익환 목사의 행보는 특정한 정치적 이념에 의한 것이 아닌 교수와 시인, 목회자로서 인간의 본연의 평화를 소망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모두가 평화 속에서 살아가길 희망했다. 그 마음을 담아 명칭을 “문익환 통일의 집”이라 지은 것이며 평화의 씨앗을 심어 역사적·문화적 공간으로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주고자 한다. 역사와 문화예술의 만남 삶의 교훈과 배움을 전하는 박물관으로 재탄생하다 최 이사장은 1970년대 문 목사와 동네에서 함께 살던 이웃으로 최 이사장의 어머니와 문 목사의 어머니가 친구처럼 지낸 사이였다. 문 목사가 10년동안 옥고를 치르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활발한 교류활동은 하지 못하였으나 그의 삶과 순수한 이념을 존중했고, 문 목사의 가족들이 관리하던 집을 가까운 이웃이었던 최 이사장이 유지·관리하며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경북 경산에서 나고 자란 최 이사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건축에 뜻을 두어 연세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하면서 건축과 문화, 예술의 조화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대학 때는 건축분야 중에서도 도시계획과 도시정책에 관심을 가지며 관련 학문에 매진하였고, 이후 다양한 도시계획사업에 참여하며 서울시 보라매 공사부지, 한강고수부지, 세종시 정비사업에 참여하였으며 주거환경연합 정비사업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건축정책법규를 저서를 발간하여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건축인들의 교재로 사용될 만큼 영향력있는 건축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특히 한 동네에서 49년을 살아온 최 이사장은 무엇보다 동네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주거환경 변화와 문화 · 예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 이사장은 “문화라는 것은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아닌 시간이 누적되어 형성되는 것이며 삶의 장소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우리의 통일의 염원이 시작되었고 국민이 한마음이 될 때 통일이 가까워지며, 문화적·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공간들이 많이 탄생하리라 판단합니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향후 문익환 통일의 집을 기반으로 역사적 사실에 스토리를 주어 그 장소와 사람이 역사적 교훈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향후 문익환 통일의 집의 전시공간을 확보해 다양한 전시와 연계된 시설물을 통해 문화적으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견학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의 세대들에게 무엇을 심어주고 전해줄 것인지 연구하며 역사의 정신을 이어가는 문익환 통일의 집과 최 이사장. 이들을 통해 문익환 목사가 염원하던 통일이 가까워지며 순수한 평화통일 이념이 후손들에게 이어지고 이 시대의 배움과 삶의 교훈을 주는 공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1055]
    • 문화
    2018-10-19
  • 중·한 민간 외교 교류의 중심! 평창올림픽에서 전 세계를 한 마음으로 모으는 가교역할이 되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중·일 삼국의 민간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국에서의 한류의 열풍이 불어 서로간의 문화이해가 적극적으로 개방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교류는 여러 인문 교류와 스포츠 교류, 무역 교류에 이어 사람과 사람의 교류를 통해 상호이해를 깊게 하고 지역활성화를 촉진하며 공동체를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삼국의 문화교류를 위해 각 국가의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수적이며 이는 국가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중일 교류의 안정적인 물결을 도모하는 한중일친선교류협회 정혜숙 지사장은 한·중양국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우며 우의을 다지는 21세기의 진정한 동반자적 관계를 갖는것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주간인물은 정 지사장을 만나 협회의 무궁한 발전 도모 방향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집중 취재했다. _장보연 기자 “동북아 최고의 민간 외교사절단” 중·한 전략적 합작 협의서(MOU)를 체결 정 지사장은 한중일친선교류협회에서 위탁·파견한 중국 라오닝성에서 지사장으로 근무하며 중국 무한 및 심양에서 중한 양국의 민간 차원에서 인문교류와 스포츠 교류, 무역 교류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최근 중국의 랴오닝성과학발전연구회와 한중일친선교류협회가 정식으로 장기간 우호적인 전략적 합작 협의서(MOU)를 체결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며 중국과 한국의 민간차원의 활발한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이를 통해 양 협회의 합작을 강화하고 우의를 돈독히 함과 더불어 교류 관련 업무를 보다 원활히 수행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각종 문화, 스포츠 활동 및 민간 무역의 발전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 한중일친선교류협회는 2006년 외교부장관의 허가를 사단법인으로 매년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교육, 스포츠, 경제 등을 통한 민간외교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동북아 최고의 민간 외교사절단”이라는 평가가 있을 만큼 평화공영에 기여하며 한국이 동방의 등불을 넘어 세계의 등불이 되는 것에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특히 자매결연 등 민간교류가 더욱 활성화되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우며 우정을 다지는 21세기 진정한 동반자적 관계를 갖는데 디딤돌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올림픽의 활성화를 도우며 영예증서를 수여받다 세계로 뻗어가는 대한민국이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 3년간의 땀과 노력을 담은 2018년 평창올림픽.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에서 개최된 올림픽은 “함께 만들어가는 평화, 그리고 새로운 물결”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세계인이 하나가 되어 스포츠 정신을 실현하고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아 세계평화를 이루어가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85개국 선수단과 국가가 참여하여 과학과 문화가 결합된 경기장에서 최상의 경기를 이루어 세계인의 주목을 사로잡았다. 평창올림픽은 성공적인 개최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으나 그 과정에 있어 국민들뿐만 아니라 입장권을 구매하고 경기를 보러올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준 전 세계의 나라 관계자들의 수고와 노력이 바탕이 되었다. 특히 정 부회장은 중국과 한국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활발한 스포츠 교류를 위해 평창올림픽, 평창장애인올림픽의 활성화를 돕고자 경기입장권 3억 7000만원(한화)을 판매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입장권 판매의 1위의 성적을 이루었으며 이러한 노력에 대한 공로로 한국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로부터 표창장을 수여받으며, 제3464호 대한민국 정식 훈장등기부에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한국 정부의 높은 평가이자 인정으로, 향후 한국과 중국과 교류에 중심이 될 정 부회장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혁신적인 여성 기업가로서 랴오닝성을 넘어 중국의 경제발전을 도모하다 중국 동북지역의 관문인 랴오닝성은 한반도와 중국을 연결하는 지역으로서 주도적 경제성장을 이루어 경제혁신도시로 성장하며 세계인의 이목을 이끌고 있다. 랴오닝성(遼寧省)은 자원의 풍부함과 하이테크 산업으로 전자정보, 금융서비스, 전자정보산업을 통해 향후 중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의 도시가 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특히 최근 한반도에 ‘평화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북・중 접경 최대 경제도시인 랴오닝성(遼寧省)은 더욱 중국안팎에서 주목되고 있는 도시이며 한국과 랴오닝성의 우호적 관계는 중국과의 교류협력에 전환점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이에 랴오닝성 과학발전연구회의 부회장과 거래컨설팅서비스유한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있는 정 지사장은 랴오닝성에서 영향력있는 여성 기업가로서 세계로 뻗어나갈 랴오닝성의 인적 · 물적의 풍부함과 경제적 가치를 예견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거래컨설팅서비스 기업을 경영하며 IT발전과 전자정보시스템 사업에 주목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흐름과 사회적 이슈에 발맞춰 나아가며, 혁신적인 여성 기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보다 더 협회의 합작을 강화하고 우의를 돈독히 하며 문화와 스포츠, 무역관련의 발전과 교류를 이어가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힌 정 지사장은 민간 우의협력에 주력하여 한중관계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이에 주간인물은 한·중의 교류의 중심이 될 정 지사장의 행보가 앞으로 더 큰 폭으로 이어지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 믿으며 민간외교의 가교역할을 수행하는 걸출한 여성가업가로서의 그의 찬란한 행보를 주목해본다. “东北亚最佳民间外交使团” 签署中韩战略合作协议(MOU) 郑副会长自接受中日韩友好协会委派担任中国辽宁省分会会长以来,一直穿梭在中国武汉和沈阳,担起了中韩两国民间的人文交流与体育交流、贸易交流等相关业务重担。不仅为中国辽宁省科学发展研究会与中日韩友好协会签署长期友好战略合作协议(MOU)方面发挥了主导作用,也为中韩两国民间的积极交流起到了带头作用。在不断加强两国协会合作、增进友谊同时,努力开展交流相关业务,为发展各种文化、体育活动和民间贸易付出辛勤汗水,立下了汗马功劳。 中日韩友好协会于2006年获得外交部部长批准以后,每年都以社团法人穿梭在中日两国,活跃在教育、体育、经济等领域的民间外交舞台。从而被授予“东北亚最佳民间外交使团”的高度评价,同时希望协会为和平共荣做出贡献,为韩国成为东方以及世界灯塔发挥领先作用。特别是在姊妹结缘等民间交流活动开展活跃情况下,立志为建立互相尊重和学习文化、进一步加深友谊的21世纪真正伙伴关系充当一块垫脚石。 助力奥运会,获荣誉证书 希望和平,希望走向世界的大韩民国历时三年辛勤筹备举办的2018年平昌奥运会,在大韩民国江原道平昌举办的奥运会打出了“共筑和平、以及新的浪潮”口号,蕴含了全球人齐心协力实现体育精神、以和平、统一愿望实现世界和平的信息。来自85个国家和地区的运动员参加了比赛,在充分融合科技与文化的竞技场上竞相角逐,吸引了全球人的关注。 平昌奥运会的成功举办获得了高度评价,这与全国人民的努力以及为顺利观看比赛而铺垫的各国相关人士的努力是分不开的。 特别是,郑副会长为促进中韩体育交流,同时助力平昌奥运会和平昌残疾人奥运会,在出售比赛入场券3亿7千万韩元方面起到了举足轻重的作用。不仅创下了入场券销售第一的成绩,受到韩国冬季奥运会组委会表彰,更是创下了名列第3464号大韩民国官方勋章登记簿的壮举。这是韩国政府给予的高度评价和肯定,同时也是对郑副会长站在未来中韩交流中心的未来发展方向的关注。 创新型女性企业家,走出辽宁 助力中国经济发展 辽宁省是通往中国东北的门户,是连接朝鲜半岛和中国的地区,作为引领经济增长的经济创新型城市,引起了世界的广泛关注。辽宁省拥有丰富资源和高科技产业,有望通过电子信息,金融服务和电子信息产业,发展成为未来中国的新增长动力城市。随着“和平时代”来到朝鲜半岛,辽宁省作为接壤朝鲜的最大经济城市,越来越受到国内外的关注,认为韩国与辽宁省的友好关系将会是与中国交流合作的一个转折点。 郑副会长是辽宁省科学发展研究会副会长暨商务咨询服务有限公司代表董事,她作为辽宁省具有影响力的女性企业家,以高瞻远瞩的眼光预测辽宁省人力、物力资源的丰富和经济价值,并以各种活动活跃在各个领域。特别是通过经营商务咨询服务公司,把脉关注IT业发展和电子信息系统业务的中国经济流向和社会焦点问题,充分展示了作为创新型女性企业家的崭新面貌。 郑副会长表示,她将继续加强协会合作、增进两国友谊,继续传承文化、体育、贸易相关发展与交流,重视民间友好合作,为中韩关系发展做出微薄之力。人物周刊认为,站在中韩交流中心的郑副会长未来的前进方向,将会进一步促进两国交流与合作,我们将继续关注这位为民间外交搭桥的杰出女性企业家的辉煌前景。 [1055]
    • 문화
    2018-10-19
  • 황대현 호텔 선샤인 대표이사
    비즈니스 호텔은 국내·외를 다니는 바이어들과 관광객들을 비롯하여 특정 목적을 가진 이들이 방문하여 타지에서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경제의 급성장과 글로벌화로 인해출장과 외국인 관광 수요가 커졌으나, 도심 속에 중간 등급의 합리적인 숙박시설이 없다는 점에서 시작된 비즈니스 호텔. 실질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기존의 호텔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이 가능해 고객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서울에도 많은 호텔이 있으나 그 중 30년간 자리를 지키며 고객의 편안한 휴식과 최고의 서비스만을 지향하며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이노베이션을 이루며 자리를 지켜온 호텔선샤인 황대현 대표. 그를 만나 호텔경영에 열정을 다한 그의 삶의 가치와 경영철학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30년의 역사를 지닌 호텔의 목표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고 최상의 서비스를 드리는 것 선샤인호텔은 황 대표가 설립한 비즈니스 호텔로서 대한민국 최초의 비즈니스 호텔이며 30년을 유지해온 뿌리깊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호텔이다. 현재 서울의 강남과 제주도, 대전에 위치해있으며 타 호텔에 비해 부담없는 가격과 신선한 재료로 만드는 조식을 자랑하고 있다. 한 분의 고객이라도 편안하고 따뜻한 휴식을 취했으면 한다는 황 대표는 항상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지향하며, 호텔의 역사와 함께 오랫동안 가족같은 고객들이 애정을 가지고 호텔을 방문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 직원회의를 통해 호텔의 발전방향과 개선점을 공유하고 보완해간다는 황 대표. 선샤인호텔은 장기근로자가 많은데 성실하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직원들 한명 한명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소중히 여긴다고 말한다. “룸메이트 직원들이 10~30년씩 근무하며 호텔과 대표님 덕분에 우리 아이들 다 키울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했을 때 ‘이 일을 하기를 잘했구나’ 라는 보람을 느낍니다.” 황 대표는 늘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고 항상 낮은 자세로 정직 · 성실 · 근면할 것을 강조하며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직원을 대하기에 모든 직원들이 고객에게 편안하고 따뜻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경영에 뜻을 두다 신뢰와 약속을 통한 경영의 안정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황 대표는 8살에 외갓집이 있는 부산으로 가 학창시절을 보내었으며, 대학교를 위해 처음 서울에 상경하여 경영대학교 상학과를 전공하였다. 어릴 때부터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황 대표의 사업가적 마인드는 당시 작은 여관을 운영하시던 어머니로 부터 시작되었다. 여관을 하시면서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셨던 어머니를 보며 그는 한국에 반드시 필요한 호텔을 짓겠다고 다짐하며 미래를 꿈꿨다. 호텔경영을 시작하기 전에 경제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무역관련 사업을 8년간 하며 외국의 호텔문화와 경영시스템 등을 배우고 기본을 다져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37세에 비즈니스 호텔을 짓게 된 황 대표는 늘 자신이 어릴 때부터 바라고 꿈꾸었던 사업이었기에 행복하고 벅찬 마음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성취했다는 자신감과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지만 호텔을 설립한 후 경영의 안정성을 찾아가는 데에는 여러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많았다. 한국의 IMF와 석유파동으로 인해 위기를 겪을 때도 많았으나 황 대표는 그때마다 함께해주는 직원들과 자신의 꿈을 생각하며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또한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는데 은행, 거래업체의 신뢰를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단 한번도 약속과 신뢰를 깨뜨리지 않고 정직한 거래를 해왔다며 자신의 신념을 전했다. 사업에 있어 가장 기본인 신뢰와 정직을 철칙으로 여기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 온 황 대표는 선샤인호텔에 자신의 인생의 꿈과 노력이 다 담겨있는 만큼 앞으로 지속적으로 고객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며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가고자한다. “호텔사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어떤 것이라도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황 대표는 특히 이 시대의 청년들이 가슴에 꿈을 품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오래참고 인내한다면 반드시 축복이 따를 것이라 생각한다며 청년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30년간 한 길만을 걸으며 누구든지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도심 속의 따뜻한 보금자리로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선샤인 호텔과 황 대표. 그를 통해 대한민국의 비즈니스 호텔의 가치가 상승하며 내국인과 외국인이 방문할 시에 한국의 최상 서비스를 느낄 수 있는 호텔,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기대하며 그의 경영철학이 청년들에게 꿈이 되길 희망해본다. [1055]
    • 라이프
    2018-10-19
  • 노식래 서울시의원
    시 의원은 주민의 직접선거에 의하여 선출되며 시의회의 구성원으로서 임기 동안 일정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의회에 출석할 수 있는 의회출석권을 비롯하여 발언권, 표결권, 의안발의권, 청원소개권 등의 권리를 가지며, 지역민들을 대신하여 일하는 만큼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청렴한 자세와 지위를 이용한 권력남용 금지 등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 주민이 직접 뽑은 주민의 일꾼이기에 무엇보다 겸손한 자세로 지역주민과 국민들의 입장에서 정치활동을 해나가며 한 나라의 경제성장과 안정을 도모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시의원. 주간인물이 만난 노식래 의원은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도 끝까지 참여하여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고 약속이 있을 때마다 지역식당을 찾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동네를 도는 등 주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으로 진정한 생활정치를 이루어가는 의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간인물은 노 의원을 만나 그가 말하는 국민을 생각하는 진심과 정치적 신념에 대해 집중 조명해보았다._장보연 기자 지역민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 정치의 힘은 오직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 노 의원은 용산구에서 당선된 서울시의원으로서 서울시의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과 도시계획관리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며 지역과 도시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노 의원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대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며 구체적으로 청년주택, 행복주택을 비롯하여 빈집을 통한 새로운 주거형태를 제시하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40~50대의 국민들이 조기퇴직이 늘어나는 사회의 현상에 따라 그들의 일자리 창출과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도시의 역할이며 그 역할을 서울시가 해 나가야 한다며 굳은 신념을 드러냈다. 공의와 정의를 이루는 따뜻한 정치인으로서 지역주민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하고 싶다는 노 의원. 그는 “님”자를 싫어하고 딱딱한 책상을 싫어하여 원형 테이블에서 눈을 마주치며 함께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원으로서 정치권력은 군림하는 것이 아닌 오직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어 노 의원은 자신은 단지 전달자일 뿐이라며 겸손을 표했다. 4년 전 간소한 차이로 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하였을 때 무엇보다 지역주민들과 더 가까이에서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이후 4년간 매일 동네를 다니며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식사조차 지역식당을 이용하면서 지역민들과 정을 나누고자 했다. 또한 그들의 어려움과 필요한 정책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각종 회의와 협회, 향우회 등에 참석하는 등 성실한 활동을 이어갔다. 드디어 그의 진심이 통하여 경쟁률이 높았던 용산구 지역의 시 의원으로 당선된 노 의원. 그는 당선되었다는 기쁨보다 당선 직후 만난 어르신의 “현수막에 걸었던 약속 지킬거죠?”라는 물음에 책임감을 느꼈다며 이후 더욱 신중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공의와 정의을 실현하는 사회를 꿈꾼 소년 다양한 정치활동을 통해 탄탄한 기초를 다지다 노 의원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사건이 자신을 정치인의 길에 들어서게 한 시초라며 지난 날을 회상했다. “선생님께서 옆 동네 아이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시더니 물건 훔친 사람이 있다면 자진해서 손들어라 하시면서 유독 옆 동네 아이들에게 나무라셨죠. 그 모습을 보면서 공의롭지 못하며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의 가난이나 환경이 아이들을 도둑으로 몰아가는 상황과 대상이 된다는 생각에 분개했다는 노 의원. 그는 어릴 때부터 편견과 선입견, 위계의식을 배척하며 평등하게 바라보고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자 했다. 특히 노 의원이 자란 정읍은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동학혁명’이 일어났던 지역이기에 정의, 공의를 배우며 성장했다. 때문에 노 의원은 서울로 상경해 첫 직장으로 홀트아동복지재단에서 사회복지관련 업무를 6년간 하였으며, 유럽을 비롯한 해외를 다니며 사회복지 선진화시스템을 배우고자 했다. 이후 자신이 배웠던 시스템과 복지를 정책으로 반영하여 복지과 경제의 안정을 도모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하고자 하였고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 비서관으로서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대통령의 측근에서 정치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로서 김대중 前대통령이 당 대표로 있는 정당의 조직담당의 업무와, 노무현 前대통령이 있던 당의 공보담당으로 대통령을 직접 수행하는 역할을 하였고 당 대표, 대표후보들과 함께 활동하며 수행과 공보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박원순 시장의 무소속 출마 당시 함께 25자치구를 다니며 정치활동을 이어가며 박원순 시장의 첫 당선과 첫 출근에 동행하는 행운과 영광을 얻기도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인재영입과 당무를 총괄하는 사무부총장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정치영역과 자신의 역할을 탄탄히 확장해갔다. 더욱 겸손한 자세로 나아가길 원한다는 노 의원은 지역발전을 위해 힘쓰며 “愛憫, 易地思之”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며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정치로서 국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정치인이 되고자한다. 또한 세대변화가 일어나는 이 시대에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고 전했다.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 “편견없는 사회, 모두가 소중한 세상”을 이루어가는 노 의원. 국민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통해 국민들의 삶이 윤택해지고 희망으로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기대하며 그의 단단한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現제10대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 위원회 위원 •現제10대 서울시의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前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사 •前국회사무처 정책연구위원 2급 •前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 (총무부본부장) •前더불어민주당 문재인대통령후보 부대변인 •前더불어민주당 문재인대통령후보 공보단 부단장 •前새정치민주연합 중앙당 상근 부대변인 •前새정치민주연합 서울특별시당 대변인 •前서울 용산 청년회의소(JC) 특우회장 •前용산상공회의소 이사 •前서울시 자원봉사센터 이사 •前서울특별시 체육회 부회장 [1055]
    • 정치
    2018-10-19
  • 김성모 마스터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변호사법 1조 1항에서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를 명시하고 있다. 정의를 실현하며 국민들의 권익에 앞장선다는 뜨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나아가는 변호사. 그들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마주하며 근본적인 해결을 찾고 의뢰인에게 적합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법률분야 중 “재개발·재건축과 도산”분야는 일반시민들에게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분야 중 하나이며, 이러한 분야에 분쟁으로 소송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면 전문지식과 경험, 승소경력을 갖춘 전문변호사의 법률 조력이 필수적이다. 이에 주간인물이 만난 김성모 변호사는 재개발·재건축, 도산분야 전문 변호사로서 복잡하고 특수한 법률이 적용되는 사건들을 풍부한 실무경험과 전문지식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그를 만나 대한민국 변호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의 직업가치를 집중조명 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실체적 진실을 바탕으로 한 사건의 해결에 주효하다 2014년도 설립된 법률사무소 마스터는 소속 변호사 1명과 직원 10명이 함께하는 내실있는 법률사무소로서 재개발·재건축, 법인과 일반회생을 주력분야로 하면서 관련 민·형사 사건도 아울러 해결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사건에 앞서 의뢰인과의 상담을 할 때에 수임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대한 사건의 객관적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의뢰인의 말을 경청하지만, 의뢰인이 하는 말에만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때로는 불리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질문도 함으로써 승패와 성공가능성을 최대한 현실의 상황에 맞도록 전달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현재 남양주시에서 무료법률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김 변호사는 시민들과의 상담을 통해 민원행정의 발전을 도모하고 시민들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법률사건의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司”가 들어가는 전문직이 있으나 그 중에서도 변호사는 辯護士 즉 선비 “士”를 쓰는 전문직이다. 선비 士를 쓴 것은 단순한 일반 서비스종사자가 아닌 변호사법 제1조 1항에 나와 있듯이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과 재산, 생명신체의 자유를 지키는 데 앞장서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김 변호사는 경제적 가치나 명예도 중요하지만 변호사로서의 본질적 의무와 사명감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삶은 곧 법! 어려움을 딛고 이겨내 진정한 변호사로서의 길을 걸어가다 전남 순천에서 나고 자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제학과를 희망하였으나 대학진학에 실패한 후 고시원에서 재수를 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 대다수가 법률관련 진로와 사법고시를 목표로 하였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중 흥미가 생겼다는 김 변호사. 그는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문제들이 법률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런 문제들이 법적으로 어떻게 해결되는지에 대해 주목하였고, 법을 알지 못해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은데 법을 알면 법적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 매우 유용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군대 제대 이후 짧은 기간 안에 사법고시 1차에 합격하였으나 2차에서 번번이 고비를 마시기도 하였지만 넉넉하지 형편에도 적극적인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부모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이겨냈는데, 정작 합격 후에는 기쁨보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는 김 변호사. 어려운 상황에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도 소신을 잃지 않고 변호사로서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한다. 특히 김 변호사는 월반을 할 정도로 머리가 뛰어나신 어머니가 집안형편 때문에 진학을 못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한 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자신의 학업에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후 김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에서 재개발·재건축 분야에 선구적인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종보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전망이 밝은 분야일 뿐만 아니라 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한 분야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재개발 전문 법무법인에 근무하며 여러 사건들을 전담하고 관련 전문지식을 습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나라 경제가 많이 어려워지는 만큼 중소기업들의 경제성장과 환경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향후 그런 어려움에 처해있는 중소기업들이 법인회생이라는 절차와 제도를 통해 자포자기 하지 않고 새롭게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라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특히 “지금의 현실에서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단순히 광고나 지인의 소개를 통해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변호사와 직접 상담없이도 사건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는 것인데, 어떤 변호사를 선임하느냐에 따라 사건해결의 과정과 결과에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그 분야의 실무경험과 전문성을 잘 갖추고 있는지 알아보고 반드시 변호사와 직접 상담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변호사의 본질적인 의무와 사명감을 잃지 않는 그의 직업정신과 진정성이 많은 변호사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국민의 인권과 정의가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의 단단한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 주요이력 ] •現 법률사무소 MASTER 대표 변호사 •現 서울지방변호사회 중소기업고문변호사 •現 경기 남양주시청 전문법률상담위원 •現 심석중학교 고문변호사 •現 ㈜다인종합건설 외 다수 고문변호사 •2017년 중소기업진흥공단 회생컨설턴트 •2016년 법무법인효성 서초분사무소 설립 •M&A 컨설턴트 자격증취득 •2015년 재개발 전문분야 등록 / 도산법 전문분야 등록 •2014년 법무법인 효성 구성원변호사 •2009년 법무법인 인덕 구성원변호사 •2008년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연수 •2006년 사법연수원 38기 •2005년 전남대학교 법과대학원 법학과 수료 •2003년 전남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1054]
    • 라이프
    2018-10-08
  • 신상호 수목장닷컴 대표
    수목장(樹木葬)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나무, 화초, 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를 지내는 친자연적인 장례방법으로서, 묘지나 납골당에 비해 면적을 최소한으로 차지하기 때문에 국토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산림자원을 효율적으로 보존해 자연환경을 아름답게 조성할 수 있으며 정원같은 편안함을 준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고인의 죽음과 함께 나무를 가꾸게 되며 후손에게 아름다운 미래 환경을 물려줄 수 있다는 깊은 의미도 담겨있다고 말할 수 있다. 수목장닷컴 신상호 대표는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도리'라며 납골당을 한지나 진흙토기로 이용해 진정으로 흙으로 돌아가며 자연과 하나되는 삶을 그리고 있다. 주간인물 자연을 보존하며 소풍오듯이 후손들이 오고 갈 수 있는 열린공간, 쉼의 공간을 제공하는 신 대표를 만나 그의 가치를 집중 조명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아름다운 숲을 유지·보존하는 수목장 후손들에게 자연을 고스란히 전해주기 위한 노력 수목장닷컴은 2015년부터 시작한 신생기업으로서 주로 법인 수목장허가 컨설팅 업무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문적으로 수목장 인허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찾기 어렵기에 신 대표는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여 미래를 내다보는 눈으로 수목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수목장 분야는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사업으로서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매년 국토의 1%에 해당하는 면적이 묘지로 훼손되고 있어 묘지 확장을 막고, 산림을 아름다운 숲을 가꾸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묘지나 납골당에서 수목장으로 국민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으나 긍정적 인식에 비해 수목장의 실제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기에 현실적으로 수목장 공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신 대표. 그는 수목장 확대는 묘지나 납골당으로 인한 자연 훼손을 막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며 후손들에게 자연을 고스란히 전해주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신 대표는 아울러 가족 간의 정이 메말라가는 현실에 도움이 되는 수목장은 부모와 조상을 정성껏 모시려는 우리 전통인 효 문화를 살릴 수 있으며 후대 아이들에게도 부모가 자기 부모를 정성껏 모시고 기리는 모습으로 가족간의 친화력을 높일 수 있다고 전했다. 신 대표는 법인 수목장 이외에 가족수목장을 보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법인 수목장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수목장 관련법상 ‘가족수목장’을 직접 조성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일반인들에게 이러한 법 제도가 잘 알려지지 않아 가족수목장의 시도가 많이 없는 상황이다. 필요한 만큼의 적은 토지를 구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에 토지주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신 대표. 그는 “국토 면적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산림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토지주 입장에서도 매매도 어렵고 활용할 방법도 없는 무수익 자산인 토지를 가족수목장으로 제공하고 수익화 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라며 땅의 활용에 대한 소신을 펼쳤다. 대기업과 경매기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목장 실무에 뛰어들다 신 대표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 후 삼성 금융그룹의 공채 37기로 입사하였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업무를 해보고 싶다는 단단한 마음으로 퇴직 후 부동산경매회사를 설립했다. 그 당시에 모든 경매사이트는 유료 서비스였으나 신 대표는 경매 정보를 무료로 제공함으로서 유료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냄으로써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경매시장을 개척했다. 회사 근무 시에 익혔던 제도와 체계성을 도입하여 4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2년 만에 80명으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후 경매업계에서 신 대표 기업의 형태를 모방하는 회사들이 점점 늘어났고 경매가 일반인에게 널리 확산되는데 큰 일조를 한 신 대표. 그러나 그는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항해를 향해 나아갔다. 우연한 기회로 수목장에 대해 알게 되었고 실무적으로 직접 몸으로 익혀야겠다는 다짐으로 무보수로 수목장 인허가 업무를 맡아서 진행하며 이후 수목장을 조성하는 공사도 직접 해봄으로써 실무 경험을 쌓아갔다. 그러던 중 수목장 분야에는 체계적인 회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향후 사회의 흐름과 비전을 보며 수목장닷컴을 설립하여 자신만의 신념과 소신으로 사업을 구축하고 있다. 사업자들에게 체계적·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목장닷컴 수목장 공급이 확대될 수 있도록 신규 수목장이 많이 형성되는 것과 바람직한 수목장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신 대표. 그는 수목장 사업은 토지나 임야를 활용한 개발 사업이나 난이도가 가장 높은 분야라 할 수 있으며, 경험이 없는 사업자들은 어려움에 봉착하기 쉽다고 설명한다. 조심스럽게 예측하건데, 허가권한을 가지고 있는 지자체들은 주민들의 민원을 우려하기 에 쉽게 허가를 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과정의 기간이 길어지고 비용이 증가하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수목장 이용자들에게 비용으로 전가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수목장 사업자들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시행착오와 비용을 줄이도록 돕는 것이 바로 수목장닷컴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신 대표는 죽음에 대해서 터부시하는 우리 문화가 잠재되어 있으나 이제는 닫혀 있는 마음을 열어 더 이상 수목장을 혐오시설로 인식하지 않고, 아름다운 수목원처럼 조성해 이용자 뿐만 아니라 수목장 주변 주민들에게도 휴시공간으로 제공했으면 한다며 힘주어 말했다. 또한 일반인이 가족수목장을 조성할 수 있는 방법과 법인 수목장 사업자들이 수목장 사업을 진행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수목장 보급 실용서’를 집필하며 올해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신 대표. 그를 통해 수목장 문화가 확산되어 후손들에게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자연을 간직하고 평안한 장례문화가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現수목장닷컴 대표 •동아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삼성그룹 삼성카드 37기 입사 •리치옥션 부사장, 대표이사 [1054]
    • 경제
    2018-10-08
  • 고재일 청년중국어 대표
    대한민국의 이웃나라인 중국은 9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세계경제시장을 주도하는 국가로 성장하였으며 한국의 기업들 조차 중국에 능숙한 비즈니스 인재를 필요로 해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다. 사회의 첫 발을 내딛기 전 자신만의 무기인 언어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치열한 취업 전쟁 속에서 자신만의 차별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 내 한국 유학생은 단연 1위로, 6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현지에서 중국어를 학습하며, 한국의 학원에서도 중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의 숫자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도이다. 그러나 한문과 성조가 많은 중국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고 학문적으로 학습하는 이들은 많으나, 생활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이에 주간인물은 청년중국어 고재일 대표를 만나 하나의 언어로서 쉽고 즐겁게 다가갈 수 있는 중국어 학습방법과 그의 따뜻한 신념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정직과 신뢰로 믿을 수 있는 교육원,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방법으로 중국어와 친해지다 청년중국어는 8년간 중국어를 가르쳐온 중국인 선생님과 고 대표가 함께 2017년부터 오프라인에서 온라인까지 사업을 확장하여 한국 학생들에게 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주로 중국관련 학업과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학생들, 대기업 사업, 승무원 준비생 등이 등록하고 있으며, 외국어는 직접 배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고 대표는 중국의 웨이하이 현지인 선생님들과 교육팀을 만들어 함께 사업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최근 고 대표가 집필한 “중국어 회화를 위한 청년 필독서”는 기존의 중국회화 책과 차별화를 보이는데, 실제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중국어 회화 질문 250개를 엄선하였고, 회화를 함에 있어 지루하지 않고 자신의 문장을 머릿속에서 만들어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특히 고 대표는 책으로만 외국어 공부를 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청년중국어와 필독서를 만들었다. 언어는 자유롭고 즐거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의 외국어 공부는 복습과 예습의 반복이며 학문적인 외국어를 배우기에 언어의 실체를 물어봤을 때 응용이 힘들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 대표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기” 방법으로 시험공식이나 문법보다는 수강생 스스로가 중국어를 입으로 내뱉을 수 있도록 하여 그 과정에서 코치와 교정을 해주고 있다. 언어에는 완벽한 구사 자체가 있을 수 없으며 계속해서 입을 내뱉는 과정을 반복하면 문장이 저절로 머릿속에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외국어를 할 때 ‘틀리면 어떡하지?’ 라는 외국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운 마음을 깨뜨려주고 싶다는 고 대표. 그는 중국어는 우리에게 외국어이기에 틀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언어는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말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내뱉기를 조언한다. 이에 ‘청년중국어’는 정직하고 믿을 수 있는 교육원으로 편안하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 되고 싶다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도전하라!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서울에서 나고 자란 고 대표는 어릴 적 조용한 성격으로 자신만의 쉼이었던 외국영화를 즐겨보았고 특히 미국과 중국영화를 보며 사람들의 순수한 사랑이야기와 따뜻한 삶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이후 자연스럽게 영화아카데미 쪽으로 진로를 정하였으나, 사회에서의 현실은 녹록치가 않았고 방향성을 재정립하여 다시 학업에 집중하며 광고학 전공으로 진학하였다. 공부하는 시간동안 힘이 되어주며 자신의 삶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은 우연히 본 웅진그룹의 윤석금 회장의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라는 저서에 나와있는 글귀였다. “도전하라, 도전하다보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이룰 수 있다.” 이 책의 글귀가 자신을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고 대표는 편입공부를 하던 시기에 도전하자! 라는 마음으로 임하며 지칠 때마다 이 글을 보며 이겨냈다. 이후 광고학을 전공하며 다양한 대내·대외활동을 경험한 후 자신이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언어와 관련한 한국관광공사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통역사로 활동하게 된다. 또한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며 중국어에 본격적으로 주력하게 되는데, 특히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중국인 바이어들과의 잦은 만남으로 자신이 알던 중국어로 대화하였을 때 효과적인 대화가 이루어져 중국어에 대한 성취감과 흥미를 더욱 갖게 되었다는 고 대표. 그는 중국어에 집중하기 위해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가 어학원을 다니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중국인 친구들을 사귀며 쉽고 재밌는 생활중국어를 터득하게 된다. 중국어를 빨리 배우게 된 비결이라고 한다면 “낯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고 대표는 유학 당시 학원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 종이에 “Language Exchange”서로의 언어를 교환하자는 내용의 명함을 만들어 근처 대학교 많은 학생들에게 노출시켰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어 동아리 부회장을 만나 공동체 안에서 친목을 다지며 중국어를 더 깊게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청년들의 꿈을 살려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시작할 수 있는 용기,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습니다.” 고 대표는 청년들에게 용기와 힘을 줄 수 있는 외국어 전문교육원으로 성장하고 싶다며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 특히 청년들이 똑똑하고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에 한계를 두고 작은 세상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눈을 넓히면 큰 세상이 있기에 중국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지길 희망한다며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더욱이 함께 힘을 합친다면 더 도전하고 나비효과와 같은 힘을 서로에게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단순히 사업의 확장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소박하지만 밀도있는 중국어 수업과 창업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사업 전에 필요한 마케팅, 컨설팅 등의 도움을 주고 싶다는 고 대표. 그의 중국어 교육과 청년으로서의 단단한 소신을 통해 대한민국 청년들이 외국어를 친근하게 접하고 세상을 향해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의 따뜻한 발걸음을 주목해본다. 여천홍 선생님 - 중국 웨이하이 교육팀 수강생 만족도 1위 •한국방송예술진흥원 방송연출학과 •국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광고학전공 •캐나다 Business Communication, SSP(Speaking for Success Program) 학위 취득 •삼성화재, 서울우유 등 UCC공모전 다수 수상 •서울시관광협회 외국인 영어통역 •대통령 비서관 관광통역 수행(이태원관광지) •DMZ, 남이섬, 서울시내 주요관광지 프레젠테이션 •자동차필름무역회사 해외영업팀 사원 •미국, 홍콩 등 무역전시회 바이어상담 •중국 웨이하이 어학연수 및 현 청년중국어 대표 •중국산동성 웨이팡 대학교 교류협력 [1054]
    • 교육
    2018-10-05
  • 이광식 커스사운드디제이미디학원 대표
    지속적인 디지털 장비의 개발과 보급은 홈스튜디오를 활성화시키고 프로툴즈와 큐베이스, 로직 등으로 녹음하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직접 곡을 녹음하고 프로듀싱하는 방식이 빠르게 전파되었다. 또한 음악이 탄생하기까지에 있어 첫 단추 과정인 미디작곡과 믹싱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실정이기에 프로듀싱을 위해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멘토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전노하우와 트렌디한 커리큘럼을 제시하는 커스사운드는 최적화된 레슨환경을 제공하며 다양한 예제와 템플릿을 수강생들에게 효율적으로 컨설팅해주고 있다. 이에 주간인물은 음악에 있어 지휘자 역할을 하는 이광식 대표를 만나 그의 직업정신을 집중 취재 해보았다._장보연 기자 서울시 교육청 인가받은 정식교육기관인 “커스사운드” 자신만의 음악을 생산하며 뮤지션이 되어가는 공간 2012년에 설립된 커스사운드는 디제이ㆍ미디 전문학원으로서 현재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100명 이상의 수강생들이 다양한 취미활동과 전문 일렉트로닉 뮤지션을 꿈꾸며 실력을 키워가는 공유의 공간이자 커뮤니티이다. 특히 전문 강사 12명이 있을 만큼 체계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커스사운드는 1:1 집중레슨으로 진행되며, 상담 시에 수강생들이 원하는 음악적 스타일을 빠르게 파악하여 그에 맞는 선생님과 ‘맞춤레슨’으로 수강생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또한 사운드의 트렌드에 맞춰서 한 달에 한번 강사들이 모여 ‘커리큘럼 회의’를 진행하며 수강생들이 원하는 음악적 포인트와 건의에 대해 토론하는 장을 만들어 지속적인 컨텐츠 변화와 트렌드에 발맞춰 나아가고 있다. 현재 수강생들은 20대 초반부터 40대 후반까지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직장인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쉼의 공간으로, 학생들에게는 꿈을 펼치기 위한 공간이 되고 있으며, 스스로 음악작업을 할 수 있을 만큼 응용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수강생들에게 가장 큰 경험은 클럽이나 행사자리에서 직접 자신이 만든 음악을 틀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며 수강생들에게는 짜릿한 경험을 선사해주고 있다. 디제잉 학원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한 한국에서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하여 교육청의 허가까지 받은 ‘커스사운드’는 무허가 학원도 많은 상태에서 인가를 받은 정식 교육기관으로 커리큘럼과 학원비용까지 교육청에 등록되어 신뢰되는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언젠가는 유명한 뮤지션이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관객과의 호흡, 가장 짜릿한 순간 7실 때부터 피아노를 치며 음악을 가장 가까운 친구로 두었던 이 대표는 9살 때부터 마이마이 카세트로 Boyz II Men(보이즈투맨)과 Michael Jackson(마이클잭슨) 음악을 들으며 성장했다. 90년대에 힙합이란 문화가 한국에서 인기를 누리면서 1999대한민국과 드렁큰타이거 등 힙합뮤지션들에 빠졌고, 고등학교 때는 스쿨밴드에서 드럼을 치며 메탈음악에 심취했다. 모든 삶이 음악에 중심이 가있던 이 대표는 자연스럽게 음대를 가고자 했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 보다는 사회활동을 먼저 시작했다. 20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비닐하우스 제작, 중국요리음식점, 피자음식점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아르바이를 통해 돈을 모았던 이 대표. 그는 꿈을 위해 음악아카데미를 다니며 밴드, 디제이, 미디 등 자신의 음악적 활동영역을 서서히 넓혀갔다. 20살 때부터 일렉트로닉 뮤직을 좋아해 디제이를 꾸준히 해왔으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현실과의 차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며 경제적 어려움이 다가왔으나, 음악을 좋아하는 열정과 꿈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활동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좋았다는 이 대표.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돈을 벌어서 악기와 음악장비, 학비를 낼 수 있었고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었기에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죠. 언젠가는 유명한 뮤지션이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웃음)” 특히 이 대표는 공연을 하며 ‘관객과 호흡’할 때 가장 행복했다고 전하며, 자신이 직접 만든 음악과 완성된 선곡을 틀어 공연장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에 몸을 맡기는 모습에 희열과 음악을 하길 잘했다는 만족을 느낀다고 말한다. 특히 음악 안에서 산다는 것이 평소에는 너무나도 익숙해 인식하고 느끼지 못하지만, 공연장에서 자신의 몸과 머리에 인식이 되는 순간 내가 한 분야에 집중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음악인생에 대해 풀어냈다. 지금까지도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대표는 일렉트로닉 뮤지션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와 비전을 공유하고자 작은 스튜디오에서 시작하였으나 진정성을 가지고 꾸준히 걸어온 끝에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전문 디제이미디학원으로 발전하며 수강생들에게 인기있는 학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혁신적 교육기관의 탄생 교육기관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사업까지 확장하다 오래 전부터 음악을 하면서 재즈와 클래식 등 과거의 유산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이 있었으나 항상 이 대표가 꿈꿔왔던 것은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에 대한 열망이었다. 밴드음악을 하던 시절에도 새로운 사운드를 추구하고자 신디사이저를 익히며 수집하고, 디제잉을 하며 항상 새로운 기술과 테크놀로지에 관심을 기울여 온 이 대표. 그는 “시대가 변화됨에 따라 음악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으며, 음악의 조류 또한 변화되고 있습니다. 이미 영미권에서는 혁신적인 대중음악 교육기관들이 많이 생겼으나 저는 국내에서도 이러한 혁신을 이뤄낼 수 있는 교육을 할 것입니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이에 이 대표는 더욱 나은 커리큘럼과 교육방향을 위해 모든 강사진과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며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시장을 블루오션으로 보고 중국을 오가며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 대표는 단순히 교육사업만 하는 것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회사까지 설립하여 아티스트 발굴육성과 음반기획사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탄탄히 구축해나가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음악에만 집중하며 살아왔습니다. 목표는 오로지 한 가지였습니다. 그렇기에 매순간이 즐거웠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것이 제일 가치있는 삶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라며 신념을 전했다. 특히 수강생들이 자신으로 인해 성장하며 음악을 통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이 대표. 건조한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음악을 통해 생기를 되찾고 자신의 꿈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의 힘찬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Kuss sound’ is a professional academy for DJ and MIDI located in Seogyo-dong, Mapo-gu. It is a sharing space and community where more than 100 students are doing hobbies and dreaming of becoming professional electronic musicians. Especially, ‘Kuss sound’ featuring systematic and professional characteristic with 12 instructors gives 1:1 lesson, and covers the ages from early 20’s to late 40’s by providing the stress relieving and resting space to business people as well as giving the space for dreams to the students. The special thing is that it helps to develop the application ability enough to do music work by oneself. The greatest experience for the students is providing the chance to play their self-made music in clubs or event places, giving an exciting experience. ‘Kuss sound’, which has passed the rigorous screening process in Korea unfamiliar with the DJing academy itself, is a formal educational institute accredited by government though there are many unauthorized academy, and the curriculum and the tuition fee of ‘Kuss sound’ are registered with the Office of education, showing reliability. •Jameson Lunching Party @ D Museum •ZNF @ S-Factory •Only Pro DJ @ Celia(Shanghai, China) •Halloween @ ADLIB(Ningbo, China) •Second Movement @Loofy(Hangzhou, China) •BALTHAZAR#909SNARE @ BASE •[서울 일렉트로시티] 공개방송 @ MANSION •BANYAN TREE CLUB & SPA LIVE PERFORMANCE •인천 PENTAPORT ROCK FESTIVAL •원음방송 [ BAND PEOPLE RADIO STAR ] •영화 [BREAKING DAWN PART2] SHOWCASE •동두천 ROCK FESTIVAL •NYE CELEBRATION PARTY @ PLATOON SEOUL •2010 남아공 WORLDCUP PARTY •HOTEL WALKERHILL RIVER PARK [1053]
    • 교육
    2018-09-17
  • 이소흔 아트클래스 자그마치 대표 · 서양화가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힐링’에 주목하고 있다. 닫혀버린 마음을 치유하고 여유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힐링 활동에 눈을 돌리고 있는데,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바로 ‘취미 미술’이다. 이전의 미술이 전문가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자들의 특기였다면, 요즘의 미술은 간단한 소도구로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취미와 같다. 최근 많은 사람들은 미술 활동을 하며 삶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여 자기 개발과 자아 발견을 통한 삶의 가치를 찾고 있다.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아트클래스 자그마치의 이소흔 대표는 그림을 그리는 단순한 학원이 아닌 자신과 타인이 위로 받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주간인물은 이소흔 대표를 만나 그녀가 추구하는 진정한 예술의 가치와 치유방법을 집중 조명 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지친 일상을 위로 받는 그림 클래스 사람간의 관계를 통해 포근한 마음을 전하다 2013년도 5월에 시작된 아트클래스 자그마치는 ‘자유롭게 그리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이라는 뜻을 가진 곳이다. 그에 걸맞게 심신을 치유하고 힐링할 수 있는 미술클래스를 전문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바쁜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자그마치에서는 원기둥이나 모형을 보고 그리는 입시위주의 그림이 아닌 수강생의 현재 심리 상태에 맞는 1:1 개인 맞춤 그림스타일을 제안하고 이를 토대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곳의 수강생들은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출하고, 지친 일상을 위로·힐링 받음과 동시에 클래스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유연한 대화와 소통으로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유화에 대한 동경을 가진 수강생, 막연히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던 수강생, 어릴 적 꿈을 이루지 못한 수강생, 한번쯤 그림을 접해보고 싶은 원데이 클래스 수강생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수강생을 비롯해 취미활동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직장인들은 평일 저녁과 주말을 이용해 아트클래스 자그마치를 찾고 있다. “그림에서는 자유롭게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라고 말하는 이 대표.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캔버스 앞에서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며, 나와의 소통을 하길 바라는 그녀는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다고 전한다. 또한 매주 클래스가 기다려진다고 말하는 수강생들을 볼 때 보람되고 감사하다는 그녀는 오픈 때부터 5년 이상 함께한 수강생이 대다수인 만큼 신뢰와 소통을 바탕으로 수강생들과의 인연을 이어가며, 그들에게 따뜻한 힐링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클래스에 참여하는 수강생들 모습 촉망 받던 서양화가, 클래스의 만남을 통해 슬럼프를 극복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미술선생님의 칭찬과 권유로 뒤늦게 미술을 시작한 늦깎이 미술학도였다. 그 전까지 피아노를 쳤던 이 대표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음에도 보고 그리는 것에 타고난, 미술전공을 희망하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놀랄 정도의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음악에서 미술로 갑작스럽게 전공을 바꾸려는 이 대표에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로 그녀의 꿈을 지지해주었다. 이후 그녀는 대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서양화를 전공하며 화가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을 쌓았고, 특히 졸업전시회에 출품된 그녀의 작품은 큐레이터의 눈에 띄어 한 해에 2~3명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특별한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었을 정도로 서양화가로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해나갔다. 하지만 활달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기는 그녀가 오로지 흰 캔버스만을 마주하고 좁은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에만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금 더 즐겁고 재밌게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지 고민하던 그녀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대화도 나누며 그림을 그리면 작품에도 더 집중할 수 있고, 자신의 내면을 작품 속에 더 자연스럽게 투영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작업실을 개방하여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작품 활동을 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아트클래스 자그마치”를 오픈하게 되었다. 그녀는 사람들과 함께 나눈 영감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가로서 작품활동을 함과 동시에 수강생들에게는 미술을 편안한 마음으로 접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온전히 나를 마주하는 시간, 내면을 치유하는 공간 이 대표는 캔버스 앞에서 집중하는 시간을 중요시 하며 그림을 그리는 두 세시간의 동안 온전히 나의 그림에 집중하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한다.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어떠한 색감을 선택할지를 고민하며 흰 캔버스를 마주하면 노트에 낙서하고 끄적이던 어릴적 기억들부터 아련한 추억 속 러브레터까지도 생각나곤 하죠.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에서 다양한 물감들과 붓질 소리들로 옛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을 갖다 보면 이만한 치유가 어디있을까요.”라고 말하는 이 대표. 현대인들 중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병 보다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유롭게 그리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자그마치’의 이름에 걸맞게 이 대표는 사람들에게 미술로 마음의 여유를 찾도록 돕는 ‘치유미술’ 분야를 보다 전문화 해나가고 있다. 용기 내어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갖고자 첫걸음을 떼려는 사람들에게 미술이 특기가 아닌 취미로써 생각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임을 전하고 싶다는 이 대표. 요즘처럼 삶의 스트레스와 반복되는 일상으로 지친 현대인들이 미술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고, 포근한 마음으로 삶에 집중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그의 힘찬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수강생들 작품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재학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강남구 청담동 아트클래스 자그마치 운영 •개인전 3회, 단체전 다수, 아트페어 다수 •MBC 나혼자산다 김지수편 출연 •MBC 나누면 행복 출연 •TV조선 기적의 밥상 현영편 출연 •영덕여고 진로탐색의 날 -페인팅 작가 대표 출강 [1053]
    • 문화
    2018-09-17
  • 송규근 고양시의원
    “많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학생들 삶에 변화를 주고 싶었습니다.” 교수 활동을 통해 소외된 계층의 학생들을 많이 접하며 학생들을 위한 변화를 위해 노력을 쏟았지만 사회적 한계를 경험 후 직접 사회를 변화 시키고자 정치에 도전하게 되었다. 어떠한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시민을 먼저 생각하며 언제나 청렴한 정치인이 되겠다는 소신을 펼쳤다. 그는 고양시 초선의원이자 당의 최연소 의원으로 육군 장교와 교수로서의 활동을 바탕으로 지역민들의 생활 가까이에서 함께하며 그들의 민원을 해결하고자 힘쓰고 있다. 주간인물은 송 의원을 만나 그가 강조하는 고양시의 생활정치 실천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_장보연 기자 이현주 기자 생활정치로 지역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하는 의원 고양시는 서울과 양주시, 파주시를 접하며 수도권의 중심 지역으로 자리잡으며 인구 100만을 넘어 이제 105만의 도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시민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고양시의회는 33명의 의원이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 더불어민주당 최연소 송규근 의원이 있다. 단수공천이 아닌 당내 경선을 통해 선출되어 실력을 검증받은 송 의원. 그는 현재 “공부하는 의회” 라는 지향점을 위해 당 내 초선의원들과 스터디를 하며 고양시의 발전과 변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그는 시 의원 이전에 대학교수로 활동하며 사회의 부조리와 대학 운영시스템에 대한 한계와 괴리를 느끼며 사회현실과 마주하여 의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교수로서 청년들의 가난의 대물림과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며 사회와 정치가 변화되어 그들이 꿈꿀 수 있는 세상을 전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했다는 송 의원. 그는 ‘학부모지혜공유센터와 청년지원센터 구축 등을 통해 지역커뮤니티를 활발히 하며 아이를 맘놓고 키울 수 있고 청년들이 희망찬 내일을 꿈꾸는 안전하고 활기 넘치는 도시를 만들 계획이라며 소신을 펼쳤다. 많은 지역민들이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뛰어다니며, 생활정치를 해 나가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며 지역민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교육자로서 청년들의 아픔을 함께하다 전남 화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낸 송 의원은 인천대학교에 진학하며 처음으로 집을 떠나 낯선 세상과 마주하였다. 영문학을 전공한 뒤 육군장교로 임관하여 7년간 복무한 뒤 전역함과 동시에 석사대학원을 졸업하고 이후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의 길에 들어섰다. 박사학위가 있어도 대학 전임교수가 되기 힘든 요즘, 박사과정생으로서 전임 교수에 임용되는 기적같은 경험을 한 송 의원은 경찰경호전공 교수로서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며 청년들의 고민과 상황에 대해 느끼며 소통해왔다. 교육자로서의 소신과 열정을 가지고 교단에 올랐지만 기대와는 다른 대학 사학재단의 부조리와 현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청년들을 보며 삶의 환기와 변화를 주고자 새로운 시도를 한 송 의원. 전임교수로 임용됨과 동시에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무원고시반’을 만들어 학생들이 더 넓은 꿈을 꿀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안정적인 삶 속에서 삶을 영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끊임없는 대화와 상담을 통해 가장 가까운 멘토가 되었다. 특히 운동선수 출신이었던 한 제자가 알파벳도 잘 읽지 못했지만 몇년간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소방관에 합격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는 송 의원은 “할 수 있다” 는 마음을 심어주고자 했으며, 학생들이 스스로 변화되고 노력하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가난의 대물림을 스스로 끊을 수 있다는 삶의 교훈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에 청년들을 위한 정치에 직접 발 벗고 나선 송 의원은 조금씩 빛을 발해주는 제자들의 미래가 기대되며, 시의원으로서 청년들이 꿈꾸는 세상을 위해 힘쓰겠다며 소신을 펼쳤다. 현재 송 의원에게 오는 민원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양이지만, 더디더라도 작은 민원까지도 답변을 주고자 한다는 송 의원. 그는 무엇보다 시민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시민들을 위한 ‘생활정치’에 집중하고자 한다. 교수 생활을 통해 현 사회의 한계와 소외된 이들의 불편함을 학생들과의 상담을 통해 온몸으로 깨달았으며 그들의 삶에 변화에 진정으로 도움을 주고자 정치의 길을 걷고 있는 만큼 더 낮은 시선으로 사람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강조하고 있다. 10년 뒤 미련 없이 후배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시민들과 함께 하겠다는 송 의원은 “후회없이 최선을 다했다. 송규근은 정말 일 잘한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의 삶을 꿈꾼다. 청렴 정치인, 젊은 정치인으로서 앞으로 더 젊은 정치인들이 나올 수 있기를 바라는 송 의원. 그의 겸손한 자세와 시민들을 향한 진심이 고양시를 행복의 도시로,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의 힘찬 발걸음을 주목해본다. •서울대학교 글로벌스포츠매니지먼트 박사과정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운영위원 •다음세대를위한청년연합 경기도 정책실장 •월드비전 후원자 멘토 •前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부대변인 •前 국제대학교 교수 •육군 대위 전역(학사 35기) [1053]
    • 정치
    2018-09-17
  • 손효진 십인의 속기사무소 대표속기사
    속기는 빠른 속(速), 기록 기(記) 즉, 무형의 음성 언어를 빠르고 정확하게 문자 언어로 기록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하며 그 일을 행하는 전문인을 속기사라 한다. 회의, 강연, 강의, 좌담회 등에서 내용을 번역 및 내용수정, 편집하여 문서로 작성하는 일을 수행하며 법원을 비롯하여 국가 공공기관과 관련된 사건과 업무를 기록하여 국민들에게 신속ㆍ정확히 전달하는 데 의의를 둔다.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기록하며 나라의 역사를 한 장 한 장 써 내려가는 속기사. 주간인물은 정부청사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10인의 속기사무소 손효진 대표를 만나 그가 말하는 역사를 기록하는 속기사의 직업가치와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10분안에 녹취록이 완성된다” 신속ㆍ정확한 녹취로 전문성을 키우는 십인의 속기사무소 KBS 굿모닝 대한민국 이색직업편 출연 십인의 속기사무소는 송파구 동부지방법원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모든 기록을 전담하고 있는 ‘기록 전문 사무소’ 이다. 현재 5명의 국가공인 속기사, 변호사, 엔터테인먼트가 협력사로 제휴되어 다방면의 기록들을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작성하고 있으며 개인의 민·형사 사건에서부터 단체나 기업의 회의록, 공공기관 및 관공서의 공공기록물, 대통령 및 장차관 이취임사, 국제회의 작성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기록물을 신속∙정확하게 작성하기 위해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다. “10분안에 녹취록이 완성된다”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녹취 작성과정과 의뢰인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신속함과 정확성을 갖추겠다는 의지를 담고있는 십인의 속기사무소. 특히 손 대표는 여러 사회적 이슈 갑의 갑질, 아동 및 여성 성폭행, 미투사건, 정치권 녹취파일 등 진실을 알리고 진상규명을 하는 것이 속기사의 중요한 역할이며, 의뢰인의 유리한 법적 증거물을 생산하고 사건을 바로 잡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는 미투, 성폭행, 부정부패 청탁 등의 녹취파일들은 증거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 공인의 잘못된 행태, 국가의 잘못된 만행 또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어느 대스타의 이면 등을 국민에게 알리고 이를 바로잡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속기사의 분야는 스포츠에 빗대자면 수비수, 공격수, 미드필더 등 다양하게 포진 되어 있으며, 이중 녹취는 ‘공격수’에 해당합니다. 개인의 소송, 기업의 분쟁, 손해배상 등이 녹취이나 회의록으로서 법적효력이 발생하죠. 법과 관련된 여러 분쟁에서 이것은 본인에게 유리한 증거물 즉 강력한 하나의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속기사는 대한민국의 국가기록법에 의거하여 국민을 향한 사항들을 한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많은 속기사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금융, 조세, 검찰, 정부청사 등의 기관에서 알맞은 기록업무를 행하고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정보를 속기하여 전달하는 등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며 사회의 필요한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 영화를 전공한 한 사람이 속기사가 되기까지 ‘속기사로 먹고살기” 영화와 책을 좋아하셨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예술을 한 손 대표. 그는 시나리오 작가를 소망하고 포트폴리오 제작하여 시험을 통해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때 당시 집 근처에서 ‘주유소습격사건’ 이란 영화가 한창 촬영되고 있을 때 근처를 다니며 영화 스텝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것과 영화가 어떻게 제작되는 것인지 관찰하곤 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이후 스토리텔링과 영화제작,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며 진로를 결정하여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교 진학 후 다양한 활동을 하며 꿈을 향해 나아갔으나 창작의 고통 때문이었는지 자주 몸이 아팠고 병원에 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부모님께서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한다는 조언과 함께 어머니의 꿈이었던 속기사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이후 손 대표는 속기사가 되어 정부청사에서 오랜 시간 근무를 한 뒤 다양한 업무영역을 경험하고 체계성을 갖추고자 지금의 십인의 속기사무소를 설립하였고, 단순히 기록하는 전문속기사를 넘어 자신만의 것을 만들기 위해 도전했다. 퇴사 전 “속기사로 먹고살기” 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긍정적 반응으로 2개월간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국민들이 속기사를 알게 되었으며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효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손 대표는 “속기사는 제게 예전의 엄마의 꿈과도 맞닿아 있어 의미가 새롭습니다.” 라며 영화를 좋아했던 자신을 위해 물신양면으로 뒷바라지 해주시고 어떤 일을 하던지 묵묵히 응원해주며 지금의 직업을 지지해준 부모님과, 믿고 의뢰 주시는 모든 의뢰인님들께 진심을 담아 감사함을 표했다. 후대의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도록 공헌하고 싶어 기록자에 대한 올바른 자세, 본인의 사견을 배제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작성할 수 있는 소신 이런 것들이 바탕으로 자리 잡은 속기사, 기록자들만이 올바른 기록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는 손 대표. 그는 빠를 ‘속’자에 기록할 ‘기’를 쓰는 속기사라는 단어 안에 이 모든 자세와 철학이 함축되어야 마땅하다며 신념을 펼쳤다. 손 대표는 “점점 사명감이 생깁니다. 내가 업으로서 작성하는 이 기록들이 수많은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이 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 후대에게 올바르게 잘 전해져서 역사적인 분쟁이 없고 또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굳건한 나라가 된다는 사명감, 그런 책임감과 같은 의식이 쌓여갑니다. 개인과 나라의 역사 기록하는 일을 통해 국가기록물로 남겨져 후대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도록 공헌하고 싶습니다.” 라며 더 나은 개인·국가를 위해 자신의 위치에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또한 한 분야에 머무는 속기사가 아닌, 다방면의 속기록 등을 경험하기 위해 노력해온 손 대표. 그는 정치, 외교, 국방, 사회 전반의 대한민국 전 부처의 기록물을 생산했고, 메르스 에볼라 산사태 등과 같은 인명 및 자연재난 재해에 관련된 속기록들을 뉴스 속보보다 빠르게 작성했으며 경찰청 성폭력 지원센터 수사속기사, 교육지원 속기사, 속기 봉사 등을 통해 속기의 쓰임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업의 가치실현을 위해 노력해왔다. 손 대표는 “앞으로 속기사로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성폭력 전담 속기사와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교육전문 속기사와 의료회의 전문 속기사 등 전문분야의 속기사가 있듯이 어떤 영역이든지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다양한 속기사로서의 영역을 넓히고 싶습니다.”라며 자신만의 소신을 펼쳤다. 손 대표는 현재 Ai속기계 도입으로 방대한 분량의 모든 기록물이 당일작성이 가능하고 추후 의뢰부터 결제까지 원스톱으로 할 수 있는 어플 개발과정에 있다. 또한 ‘속기사로 먹고살기’ 라는 책을 출간한 손 대표는 취업의 기로에 서 있는 타인에게 숨어있는 맛집과 같은 속기사 라는 직업을 소개하고 자신이 겪었던 취업관련 고충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자 하였으며, 그로 인해 드러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직업적 가치를 알리고 미래 사회변화와 더불어 협업을 시도하고자 했다. 또한 우리 사회에 온전히 뿌리내려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다방면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으면 한다며,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직업은 아니나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속기사의 역할이라고 전했다. 이런 인식이 개선되면 좀 더 많은 속기사들이 질 높은 기록물들을 생산∙발전 할 수 있다며 힘주어 말했다. 다양한 브리핑을 속기하여 기사와 기록물을 통해 정부와 국민을 연결하고 시대의 변화와 정책을 기록하는 손효진 속기사. 그를 통해 몇 십년이 흘러도 우리의 후손들이 대한민국의 변화와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는 기록물이 남기를 기대하며 그의 찬란한 행보를 응원해본다. 2017년 12월 온라인 서점 ‘알라딘’ 취업분야1위 / 교보문고 청소년 자기개발분야1위 / 교보문고 2017년 12월 놓쳐서는 안될 신간베스트 1위 / 2017년 12월 알라딘 경제,경영 1위 / 2017년 12월 4주간 yes24 신간베스트 4위 •문화체육관광부 정책브리핑 속기사 (2008-2017년) •전국경찰청 성폭력통합지원센터 수사속기사 •(사)한국AI속기사협회 자격검증 감독위원 •극립특수교육원 속기사 선발시험위원 •“속기사로 먹고살기” 저자 •10인의 속기∙녹취사무소 대표이사 [1052]
    • 라이프
    2018-09-10
  • 박용갑 대전광역시 중구청장
    지리적으로 분단된 한반도 중앙에 위치해 있어 서울, 경기, 충청, 전라, 경상, 강원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이행하는 대전. 이러한 요충지의 역할을 수행하며 동시에 정부기관, 교육, 물류 등의 집중으로 성장ㆍ발전이 가장 높은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대전의 역할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대전 중구는 한반도 중심의 자치구로써 구민과 소통을 통해 다양한 인프라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새로운 문화축제로 중구와 대전의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단체가 개막된 이후 중구에서 3선 당선이라는 성공과 역대 최다 득표(65.1%)의 영예를 통해 대전 중구에서의 성과와 업적으로 모범 구정운영의 본을 보이고 있는 박용갑 구청장을 만나 심층취재 하였다. _장보연 기자 효(孝) 문화 중심도시 새로운 문화축제의 틀을 제시하다 중구는 각 도시의 모태도시이며 그 모습은 어머니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른 현재, 새로운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그 지역 유행의 흐름에 주도권을 내주고 있는 실정이지만 박 구청장은 흐름의 역행을 주도하며 원도심의 활성화 우선과제로 '효 문화 중심 원도심 활성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지체 되었던 도시재생에 사활을 걸었다. 경제발전에 대한 정부의 강한의지와 집행은 우리 국민 삶의 기본질서가 많이 무너지게 되며 물질만능주의 시대로 변하며 흐르게 되었다. 박 구청장은 이러한 본질을 되찾기 위해 고심했으며 본질의 정체성은 인성에서 나온다는 결론을 내렸다. 망가진 본질의 백해를 주창하고 나오게 되면 효의 관을 성립할 수가 없으므로 많은 이들과 함께 고심한 박 구청장은 장례법이 만들어지는 유교적인 효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있는 다름을 이해해주고 있는 캠페인을 만들고 있다. 이에 박 구청장은 뿌리축제를 기획하여 진행 중이며, 현재 35만명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매년 뿌리축제를 진행해 오면서 초기에는 어르신들만 오시는 축제였지만, 현재 160만이 함께하며 초ㆍ중ㆍ고ㆍ대학까지 70여개 다수의 젊은이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축제를 통해 초대한 어른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인성이 길러지는 문화와 교육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이러한 효과로 문화관광부에서도 장려하는 사업이며 그 목적이 왜 효인가? 왜 뿌리인가? 의 물음은 3대 요소를 선정해 인성교육의 학습의 장을 만들었다. 1. 내가 어디서 왔는가? 나의 뿌리를 알고 2. 나를 낳아준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상을 배우고 3. 미래에 인성을 사회문화를 만든다. "효 문화뿌리축제가 국가유망축제로 매년 선정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하며, 효 문화뿌리축제의 목적은 청소년들이 인성적으로 바르게 성장하고 미래적 가치를 찾는 축제로 매해 더욱 발전된 프로그램과 구성으로 구민들과 소통할 계획입니다. 또한 이런 인문학적 정책이 높은 미래가치로 평가받아 우리 중구를 이끌어 나갈 것 입니다." 침체되는 지역 경제 상권을 살리다 대흥동 골목재생 1·2단계 조성사업 등 완료와 원도심 상권활성화 기대 낙후된 시설과 상권쇠락으로 침체에 빠져있던 대전 중구지역의 舊 대전극장, 제일극장 거리 일원에 대한 재창조 사업이 완료되면서 거리가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중구는 골목재생사업이 으능정이거리와 연계를 통한 상권회복 등 사업추진에 따른 시너지효과 제고를 위해 시·구비 확보하고 舊 제일극장 거리(커플존 거리) 250m 구간에 대한 추가 정비사업을 지난해 말 완료했다며 전했다. 이로써 중구는 舊 대전극장과 제일극장을 잇는 총 500m 구간에 대한 도로정비와 야간 경관조명 사업을 완료하며 제일극장 거리와 으능정이거리, 대흥동을 잇는 상권활성화를 위한 기반시설을 완료하게 됐다. 중구는 이 일원의 경관개선에 따라 젊은이들이 찾는 멋스러운 정취와 함께 으능정이거리 및 중교로 문화흐름 거리와 연계시킴으로써 원도심 상권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중구는 기반시설 조성에 따른 거리활성화로 인한 임대료 인상으로 세입자가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 방지를 위해 건물주와 임차인의 임대료 안정협약 체결을 협의하며 오는 18일 MOU를 맺기로 했다. 이어 침체된 원도심권역의 경제활성화를 위해 문화흐름 중교로 조성사업과 우리들공원 재창조사업, 대흥동 골목재생 1·2단계 조성사업을 완료했으며, 올해에는 선화동 예술과 낭만의 거리 조성사업을 추진해 지역특성에 맞는 테마거리로 조성할 계획이라며 혁신적인 포부를 밝혔다. 박 구청장은 “대흥동과 은행동을 연결하는 도심재생사업이 완료됨에 따라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지역의 활성화가 기대된다”며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아름다운 거리로 육성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질 것이라며 소신을 펼쳤다. 구민과의 약속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미래보다 현재에 충실한 구청장 박 구청장은 젊음이 가득한 문화예술 중심상권 육성을 통해 새롭게 도약하는 활기찬 지역경제를 이끌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생활 불편을 개선하며 찾아가는 현장과 소통행정으로 서민복지를 구현하며 기업유치와 일자리창출 및 관광객 증대로 원도심을 활성화하며, 중기 목표는 효(孝)!월드 활성화를 통해 효의 가치실현과 사회질서를 바로세우고자 한다. 또한 박 구청장은 미래 성장 동력 산업과 보문산 관광벨트 기반 경제 중심지로 도약하며, 5대 구정방안으로는 구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젊고 활기찬 구정 구현을 힘주어 강조한다. 1. 찾아가는 현장 행정 (구민과 공감하는 소통과 화합의 현장행정 추진) 2. 균형있는 지역 개발 (현실여건과 지역 주민들의견이 반영된 원도심 재개발 사업추진) 3. 살기좋은 복지환경 (소외와 차별없는 맞춤형 복지 서비스 제공) 4. 창의적인 인재육성 (할력신장 지원을 통한 인재 육성과 평생 교육환경 조성) 5. 참여하는 문화예술 (구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과 생활체육 활성화) 박 구청장의 이러한 구정방향은 구청장이 되고 나서 다짐했던 것이 두 가지 신념의 바탕에서 나오게 되었다. 첫째는 인사를 위해서 금전적인 요구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신념과 둘째로 이행하지 못할 공약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꼭 지킬 수 있는 것만 약속하는 박 구청장은 구민들과 약속 할 때는 지속적으로 추진한 공약에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계획이 있어야하는데 민심을 홀리기 위해 행정의 구분 없이 유권자들을 속이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확실하지 않으면 공약하지 않겠다는 박 구청장의 신념은 구정 활동 중 가장 중요하게 추구하는 가치이다. 지방자치, 변화의 바람을 주도하는 지방 정부의 활성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지방정부라고 명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중앙정부는 지방으로의 권력과 재정이 광역자치단체는 산하 기초자치단체로 인사권과 재정이 먼저 이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방분권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권한과 재원을 합리적으로 나누어 중앙정부는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 국가 미래를 위하여 일하며, 지방정부는 지역과 주민에게 밀접한 문제들을 책임지고 해결해 가면서 중앙과 지방이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도약해야 합니다. 겉모습만 분권이 아닌 실질적 분권이 되기 위해선 기득권을 쥐고 있는 중앙과 광역자치단체에서 조건 없이 아래로 권한을 분배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고통과 갈등이 생겨나겠지만 이는 진정한 지방분권을 탄생시키는데 필요한 산통이라고 봅니다.”며 소신을 펼친 박 구청장은 민선 7기에서도 지금까지처럼 대전 중구를 위해 올바른 지방 행정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역경을 이겨낸 집념, 신념을 만들어내다 박 구청장은 평범한 가정의 9남매 중 다섯째로 형제가 많은 화목한 가정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숭례초등학교 재학시절 아버지가 세상을 달리하며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졌었는데, 박 구청장은 본인의 학업은 포기하지만 동생들에게 집안 형편의 이유로 학업을 이어나가지 못하게 하지 않고자 다짐하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선에 뛰어야만 했다. 이때부터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며 가족을 위해 헌신한 박 구청장은 고된 일로 힘든 몸이지만 스스로 학구열을 다지며 배우고 익히는 것에 소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하며 성인이 되고 택시운전을 하며 프로권투선수로서의 삶도 그렸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정당 국회의원의 수행비서 제안이 들어오며 다년간 비서로 의정활동을 보좌했던 경험은 현재 25만 구민의 대표로서 누구보다도 헌신하고 봉사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균형있는 지역개발과 주민의 목소리를 담은 도시재생 사업, 중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원도심 활성화 정책으로 옛 중구의 명성을 되찾을 것입니다. 구민회관 건립과 뿌리공원2단지 조성,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거리 조성 등으로 중구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4년 연속 국가 유망축제인 효문화뿌리축제를 더욱 발전시켜 효문화중심도시 건설에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어르신이 살기 편안한 도시 아이 키우기 행복한 도시로, 오래됐지만 깨끗한 도시로 살기 좋은 중구를 만들어 가겠습니다.”라며 앞으로의 7기 구정활동에 대해 포부를 밝힌 박 구청장은 이와 더불어 미래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오늘의 나의 행동을 구속한다는 신념으로 현재의 자신을 엄격하게 채찍질한다. 구민들의 목소리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대전 중구청장의 열정은 대전의 밝고 긍정적인 빛을 발하고 있다. 『즐풍목우(櫛風沐雨) 바람에 머리를 빗고, 비에 몸을 씻는다.』 주간인물은 대전과 시민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은 순수한 리더 대전광역시 중구 박용갑 구청장의 행보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1052]
    • 정치
    2018-09-10
  • 하인숙 ㈜아트테크닉 대표
    아기가 태어난 뒤 모유를 먹이면 면역력이 강한 아이로 자라서 전염병에 걸리는 확률이 아주 적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높은 성인으로 자란다는 연구가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모유수유 운동을 펼칠 만큼 최근 모유수유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지만 여성에게 집중된 아이 양육과 가사일 등 여러 여건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엄마들이 많은 것은 현 시대의 현실이다. 향후 법과 제도, 시설 지원, 사회적 인식 등이 개선되어야 저출산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 모유수유를 하지 못하거나 젖병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대부분의 아기들은 크게 거부하기도 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떼를 쓰며 울기도 한다. ㈜아트테크닉 하인숙 대표는 자신이 아이들을 키울 당시 아기가 젖병을 거부하여 울면서 떼를 쓰고 엄마의 젖만을 자꾸만 찾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젖병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찾다 지금의 기업을 설립하였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심을 담아 아기 제품을 개발하는 하인숙 대표. 그를 만나 엄마의 마음으로 경영하는 그의 신념과 경영가치에 대해 심층취재하였다. _장보연 기자 엄마의 가슴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제품으로 실리콘 젖병 업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다 롯데마트 담당자와 정부 중소기업 간담회 ㈜아트테크닉은 2015년에 상품개발을 시작하여 2018년에 설립된 아기용품 전문기업이다. ㈜아트테크닉은 Technique이라는 기술과 기능에 Art인 예술성을 더해 일상생활에서 예술을 느낄 수 있고 실용성 있는 상품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사업이 시작되었다. 아트테크닉의 핵심 개발상품인 스마:트 베베는 똑똑한 아기라는 뜻으로 아기의 두뇌를 발전시키고 감성이 풍부한 아기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을 담았다. 주요상품인 스마:트 베베는 젖병을 처음 접하거나 모유수유에서 젖병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아기의 거부감이 클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아기의 안정감과 정서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개발하였다. 그래서 엄마의 젖가슴과 같은 촉감과 포근함,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실리콘 풍선 젖병을 개발을 하게 되었다. 공기 주입에 의해 실리콘 커버가 풍선 모양으로 팽창하므로 수유 시 아기의 손에 닿는 촉감이 엄마의 가슴처럼 부드럽고 편안해 아기의 만족감이 높아진다. 특히 한국생활시험연구소(KCL)시험검사 테스트를 통과했으며 공기를 주입하여도 바람이 빠지지 않도록 만드는 기술과 젖꼭지 호환성까지 갖춰 특허 받은 혁신적 제품이다. 세상의 모든 아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서적 안정감과 소근육 발달에 영향을 주다 2018 대한민국세계여성발명대회 준대상(실리콘풍선젖병) 젖병을 통해 전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하 대표는 아기를 위한 정서적 안정감과 사랑이 인류의 평화에 공헌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있다. 아기에게 주는 이로움은 아기의 성장에 크나큰 영향으로 인해 삶이 달라질 수 있는 배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드럽고 장난감 같은 젖병을 아기들이 만지면서 손가락 운동을 유도하여 정서적 안정감과 소근육 발달에 영향을 주어 아이큐발달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하 대표는 회사설립한지 3개월 만에 세계여성발명대회에서 준대상(실리콘풍선젖병)과 금상(실리콘풍선노리개젖꼭지)을 수상하는 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일본, 미국, 중국, 브라질, 베트남 등 전 세계에 계약하여 수출을 진행하고 있다. 제품에 정직한 기술만을 담았다는 하 대표는 아기를 사랑하는 진실된 마음으로 사업을 구축하여 유아용품 업계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인류의 공헌을 위해 이 길을 걸어간다는 하 대표는 자신만의 신념과 가치관으로 사업을 구축하고 있으며 성장단계를 지나 기업의 안정화가 된 후에는 유아용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미혼모들과 소외계층 아기들, 센터의 도움으로 자라고 있는 아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며 따뜻한 마음을 표했다. “모든 일에 리더가 되고, 남들보다 앞서가라" 스마트베베 실리콘 젖병과 젖꼭지 하 대표의 고향은 나비축제로 유명한 전남 함평으로 바닷가 근처의 마을에서 성장했다. 대대로 그릇을 빚는 집안에서 아버지는 옹기장이로서 동네사람들이 집으로 모여 일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부모님은 “니가 하고 싶은 거라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지원해줄 것이다. 어디서든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살아라. 네가 가장 멋있다.” 라는 말씀을 항상 해주었다며 자신이 기업을 운영하기까지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경영을 하고 싶었다는 하 대표는 직장생활을 꾸준히 한 뒤 사업에 대한 강한 신념과 확신이 들어 3년간의 개발 끝에 현재의 아트테크닉을 설립하게 된다. 하 대표는 “마음속에 항상 언젠가는 가문과 나라를 위해 영광스러운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타인의 뒤에 서 있지 말고 항상 머리에 있어 리더가 되고, 남들보다 앞서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SMA:RT하고 사회에 적응을 잘하기를 원한다면 스마:트 베베하자! 스마트베베 실리콘 젖병과 젖꼭지 하 대표는 “아기를 정말 사랑한다면 스마:트 베베하세요.” 라고 말할 만큼 자신의 제품과 강한 확신을 보인다. 실제로 국내 특허와 중국 등 세계6개국에 특허 출원중인 만큼 특별한 기술력을 자랑하며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브랜드만 선호하는 한국 소비자들은 세계 소비자들에 비해 낮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해외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아지면 국내에도 스마:트 베베가 자리를 잡을 것으로 믿는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와 롯데마트가 뽑은 기업에 선정되어 “충분히 성장할 기업, 함께 성장해야 하는 기업”으로 유아용품 기업의 중심에 서있다. 단순히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엄마의 따뜻한 품과 심리적 안정감을 선사하겠다는 ㈜아트테크닉 하인숙 대표의 자랑과 신념은 이유있는 확신이자, 그의 삶이 증명해주고 있다. 하인숙 대표를 통해 한국 중소기업의 발전과 모든 아기들이 엄마의 품을 느끼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기대하며 하 대표의 무궁한 발전과 행보를 응원해본다. World’s First! Silicon Balloon Feeding Bottle With a natural and lifelike feel, a feeding bottle similar to a mother's breast Causes baby to use babies fingers which promotes IQ development! Many researches and academic reports state that getting plenty finger exercise during baby’s first year of life has a positive impact on IQ as the brain becomes more developed. "30% of nerve cells are mobilized to move these tiny hands. This is why it's extremely important to perform precise movements of the hands. If we move our hands in precise ways, do arts and crafts, etc. then this is extremely beneficial for brain development." - Prof. Yuhyeon Seo (Director, Neuroscience Research Institute, Seoul National University) •2018년 ㈜아트테크닉 설립 •스마트베베_국내특허 및 중국 등 세계 6개국에 특허 출원 진행중 •특허출원번호 : 10-2017-0164949 •상표등록출원번호 : 40-2017-0151468 •PCT등록번호 : PCT/KR2018/00147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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