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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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넓은 소통을 바탕으로 주선업계의 발전과 화합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전국화물자동차운송주선사업연합회(이하 주선연합회)는 지난 6월 12일, 제41차 임시총회를 개최하여 제11대 회장 선거를 실시하였다. 총회의 투표결과 장진곤 회장이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주선연합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장진곤 회장은 부산에 소재한 (주)창성운수를 경영하고 있으며, 현재 주선연합회 부회장 및 부산화물주선협회 이사장을 맡아 주선업의 권익신장과 보호에 열정을 쏟아 온 인물이다. 그간 주선업의 불리한 제도 개선과 주선사업의 활성화에 앞장서 왔던 그의 행보를 주간인물에서 만나보았다. _김정은 기자 1994년 (주)창성운수 대표이사를 시작으로 20년 이상 화물운송주선사업과 화물운송사업을 영위해 오면서 주선연합회 부회장, 부산화물주선운송협회 이사장을 역임해온 장진곤 회장. 정직과 성실, 겸손을 덕목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녹여 내는 자질과 인품을 지닌 리더십으로 ‘주선연합회’ 제11대 신임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주선업이 변화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회원과 임직원, 역대 연합회 회장을 비롯해 각 지역의 협회 이사장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지만,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전개될 정책 변화가 우리 주선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업권 보호를 최우선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해 나가며 폭넓은 소통을 바탕으로 주선업계의 발전과 화합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장 회장은 주선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 업계, 협회가 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전하며 전임 집행부와 시, 도, 협회와 연합회 간 가교 역할을 하는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주선업계는 아직까지 영세한 업체가 많고, 계속되는 경기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우려하고 연합회가 나서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주선사업의 선진화와 주선업무의 활성화 회원사의 권익신장에 앞장서며 불리한 제도 개선 ‘부산화물주선운송협회’에서 추대 형식으로 이사장에 선출될 정도로 뛰어난 리더십을 인정받아 온 장 회장은 주선업계 최대 현안 과제였던 국토교통부의 ‘화물운송시장발전방안’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주선사업 등록제전환 움직임을 저지하는데 기여한 공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주선업계는 주선사업이 등록제로 개방되면 늘어나는 주선업체로 인한 과열경쟁과 주선료 하락 등의 부작용을 크게 우려했던 상황이었다. “주선사업이 누구나 진입이 가능한 등록제로 전환될 시에는 업체 증가로 인한 과열 경쟁으로 화주운임이 하락하고, 이어 화주운임 하락은 주선사업자로부터 운송을 의뢰받는 개인 차주들의 운임하락으로 이어집니다. 결과는 화물운송시장에 부작용을 초래해 시장안정이 저해되는 일입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화물운송시장을 더욱 어렵고 질서가 무너지게 만드는 일이었지요.” 이에 장 회장은 국토교통부에 등록제전환을 저지하며 물류시장 현실에 대한 철저한 검증 후 현장 상황에 맞는 개정안이 발효되기를 적극적으로 건의하였다. 또한 부산시가 조성한 노포동 화물자동차 공영차고지 건물면적을 계획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힘써 지역 주선사 사무실 부족난을 완화하고 협회 회원가입 확대와 주선사업자간 화합, 단합에도 주력해 왔다. 이후에도 주선업의 불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주선업무의 활성화를 위해 앞장섰다. 각 지역의 협회와 회원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회원들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단단한 조직으로 연합회를 꾸려나갈 계획이라는 장진곤 회장. 말보다 앞선 행동을 실천하며 임기를 끝낸 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비췄다. 취재진과의 만남에서도 스스로를 낮추며 배려와 존중이 넘치는 그의 모습에서 향후 주선연합회의 귀추가 더욱 기대되는 만남이었다. [ 약력 ] •부산대학교 산업대학원 산업CEO과정 •1994 (유) 창성운수(주선업) 대표이사 역임 •2000 (주) 창성운수(운송.주선) 대표이사 •2004 하나은행 광안동지점 명예지점장 역임 •2007 부산화물자동차운송사업협회 이사 역임 •2008 가야컨트리클럽. 경기분과위원장 역임 •2013 부산대학교 산업대학원CEO 총동문회 20대회장 역임 •2015 재부창녕향우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2016 부산광역시화물자동차운송주선사업협회 이사장 •2017 전국화물자동차운송주선사업연합회 회장 [ 수상 ] •2007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표창장 •2008 한국골프장경영협회장 표창장 •2009 부산시장 표창장 •2010 건설교통부장관 표창장 [1017]
    • 경제
    2017-06-27
  • 어른들의 청춘을 되살려주는 이곳으로 ‘롤러와yo’!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가 열렬한 인기를 얻는 것은 그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맞아 그땐 그랬지’라며 향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리메이크 된 그 시절의 노래가 음원차트 상위권에 있기도 하고, 유행이 돌고 돌아 나팔바지가 다시 인기이기도 하다. 최근 이러한 복고열풍을 타며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곳이 있다. 여가·데이트·놀이공간으로 화려하게 돌아온 실내 롤러장이다. _엄지현 기자 박대표는 통신업계에서 15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다가 롤러와yo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하는 일이라 겁도 많이 났지만 지금이 아니면 후회할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직장에서는 제가 성장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요. 예전부터 나만의 사업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어요. 무엇을 해볼까 탐색하던 중에 과거 롤러를 타고 씽씽 달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그 시절이 떠올랐죠. 찾아보니 전국에 5~6개 정도 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기존에 있는 롤러장으로 직접 찾아가서 사업에 대한 정보를 배우고 한 달 전 롤러와yo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추억을 회상하는 어른들과 새로운 놀이문화를 반가워하는 젊은 세대들이 롤러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제가 청소년일 때 롤러장은 비행청소년들이 다른 학생들의 금품을 갈취하고 괴롭히는 곳이라는 좋지 않은 인식이 많았죠. 그래서 롤러장을 다시 부활시키면서 그런 인식을 없애고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음악을 들으면서 신나게 롤러를 타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에 학생들이 단체로 방문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 제 또래인 30대 후반~40대들은 아이를 데리고 본인들의 청춘을 회상하시면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대부분이 가족 손님들이에요. 6살 이상 어린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고, 20대의 경우에도 인라인을 타던 세대라 금방 롤러에 적응을 하더라고요. 이렇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세대가 찾아주시니 저로서는 뿌듯합니다.” 박 대표는 직접 인테리어에 참여하여 롤러를 즐기는 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고. “롤러장의 생명인 바닥은 기존의 롤러장들의 바닥을 직접 보기도 하고 유명한 롤러 동호회인 ‘롤러클럽’의 자문을 받아 롤러스케이트를 가장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에폭시 바닥을 선택했습니다. 또 분위기 또한 롤러장의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에 미러볼과 네온사인, 화려한 조명을 달았습니다. 매점, 개인 사물함 등도 손님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죠. 저희 롤러장은 지하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덕분에 덥지 않게 롤러를 즐길 수 있죠.” 그는 또 이곳은 지하철역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찾아오기에도 불편함이 없다고 말했다. 박우석 대표는 직장생활을 접고 처음 시작한 사업이라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응원해주는 가족들이 있어 긍정적으로 극복했다고 말했다. “사업은 처음이기에 제가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롤러장 자체도 유행산업이기 때문에 언제 그 유행이 지날지에 대해 불안했죠. 물론 지금도 그 불안감은 가지고 있습니다. 15년 동안 안정적으로 직장 잘 다니다가 갑자기 사업을 한다니 처음에는 다들 말리기도 하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하지만 아내가 마흔이 지나면 아무것도 시도조차 못할 것이라며 지금 저질러보라고 지지해줬습니다. 저는 항상 고마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묵묵히 저의 꿈을 응원해주시는 저희 가족들과 처가 식구들, 제 삶의 이유인 아내와 어린 아들을 보며 잘 해내야겠다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는 앞으로 이곳 대구 지산동에 기반을 탄탄하게 잡아둔 후, 성서 지역에 2호점을 내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사회생활에 지친 30~40대 제 또래의 어른들에게 아무 고민 없던 학창시절을 떠올리길 바랍니다.” 새로운 복고열풍을 몰고 올 롤러와yo가 청춘 같은 그의 열정과 함께 쌩쌩 달리기를 기대해본다. [1017]
    • 라이프
    2017-06-27
  • 강상효 금강주택건설(주) | 금강종합건설(주) 대표
    얼마 전 거창군에서는 다섯 가족의 뜻깊은 장학금 기탁이 있었다. 단란하게 가족티를 맞춰 입고 거창군청을 방문한 그들의 이번 행보는 많은 이들의 미소를 짓게 했는데, 바로 셋째 아들의 돌잔치 축의금을 기탁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선 3월에도 아빠 강상효 금강주택건설(주) 대표는 하동군에 1천만 원의 장학금을 기탁한 바 있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지역의 인재 육성을 위해 기꺼이 장학금 기탁 행렬에 동참한 그의 조금은 특별한 사연을 주간인물이 담아 보았다. _정주연 기자 인터뷰를 위해 거창읍에 소재한 금강주택건설(주)를 방문한 취재진은 예상보다 젊은 나이의 강상효 대표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글서글한 웃음이 인상적이었던 그는 뜻하지 않게 기탁 사실이 너무 많이 알려진 것 같다며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 했다. 누구나 마음속에 갖고 있는 생각이지만 실천 기회를 갖지 못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 하는 강상효 대표. 오히려 돌잔치에 함께 해준 많은 친지 지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3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벌써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회사의 대표로 지역 내에서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그에게 이번 기탁은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평소 이런 일에 관심이 없었다면 선뜻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강상효 대표에게 ‘준비’와 ‘기회’는 인생에 있어 늘 중요한 주춧돌과 같았다. 이른 사회생활 시작 건설 외길에 들어서다 남들보다 조금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강상효 대표.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과 사춘기 방황 시절을 겪으며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생에 있어 첫 번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공부를 곧잘 했어요(웃음). 그런데 3학년부터 방황을 시작하게 되며 성적이 떨어졌고,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죠. 어느 날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는데 과연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죠.” 그길로 자퇴서를 낸 그는 공사현장에서 막노동 일을 시작했다. 시멘트를 나르고 벽돌을 나르며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한 그의 가장 큰 보람은 차곡차곡 모이는 일당이었다. 맡은 일에는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 했고 그 결과 먼저 그를 찾아주는 이들이 생겨났다. 일당 외에 추가로 돈을 받는 경우도 있을 만큼 그는 매사에 늘 열심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단순한 작업만을 반복할 수 없다고 느낀 강 대표는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목수 일을 시작했다. 월급은 적고 하는 일은 많아졌지만 새로운 일을 배운다는 것에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성취감을 느꼈다. “유년시절에도 고무동력기나 패러글라이딩 등 만들기에 소질이 있었어요. 손재주가 조금 남달랐나 봐요.” 목수 일에서도 조금씩 두각을 드러내며 2년여를 보낸 그는 또 한 번 도약을 위해 경기도 안산으로 길을 나섰다. 더 큰 현장에서 보고 배우며 한 단계 성장하는 발판으로 삼다 거창이 고향인 강상효 대표가 아무 연고도 없는 경기도 안산으로 간 것은 조금 더 큰 현장과 환경에서 더 많은 기술과 일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함께 일하던 전문 목수를 따라나섰을 때 그의 나이는 겨우 20대 초반이었다. 점차 큰 규모의 현장에서 일하며 새로운 도전과 배움을 통해 2년 여간 경력을 쌓은 강 대표. 목수만 수백 명이 모이는 대형 공사 현장에서까지 일하게 된 그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현장이 워낙 크고 사람이 많다 보니 일을 하는 강도나 정도가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었어요. 저는 남들이 한두 개 옮길 때 5개씩 옮기며 일했죠. 그런데 그 모습이 곱게 만은 보이지 않았나 봐요. 어느 날 같이 일하던 분들이 저에게 유난스럽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셨어요. 순간 번뜩했죠. 만약 내가 현실에 안주하고 저들처럼 일하면 20년 뒤에도 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겠구나 싶었죠.” 조금 더 주도적으로 다양하게 일을 하고 싶다고 느끼던 찰나 거창에서 연락이 왔다. 대형 사우나 공사 현장의 관리 감독을 맡을 소장직을 제의한 것. 거창으로 돌아온 그는 다년간 직접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공사를 이끌어갔고 틈틈이 개인 공사 작업도 진행하며 그만의 커리어를 쌓아갔다. 이때 즈음 집 짓는 매력에 빠진 강 대표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언젠가는 건설 사업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긴 것이다. 금강주택건설(주)에 이어 금강종합건설(주)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건설 관련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는 현장에서 일하는 시간 외에는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대학에서 CAD 수업 청강을 듣고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금강주택건설(주)를 시작한 강 대표. 그간 들였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시행사 금강주택건설(주)로 시작해 지난해 시공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금강종합건설(주)까지 설립한 그는 지금도 늘 공사 현장을 누빈다. 아직은 경영인보다 기술자이고 싶다는 강 대표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이어가고 있는 것. 덤덤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던 그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더니 “이게 뭔가 특별한가요? 다들 이 정도의 사연은 갖고 있지 않나요?” 하며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어린 나이에 막노동을 시작으로 한 회사의 대표가 되기까지 항상 노력과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있어서는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의 일로만 느껴진 터. 하지만 그가 아무런 준비와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는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설사 왔다고 하더라도 그 기회를 잡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아 초등학교 시절부터 용돈을 직접 벌어 썼다는 그는 자연히 습득한 자립심과 특유의 끈기에 노력을 더해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같은 시간을 산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는 개개인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들은 모여 결국 인생의 향방을 좌우한다. 17살 어린 나이에 강 대표는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거기에 안주하거나 상황을 원망하기보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전진해 나갔다. 15년이 지난 현재 그의 인생은 또 한 번 남들과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아직 성공이라고 말하기에는 이르다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말하는 강 대표. 그의 15년 뒤 모습이 더욱 기대되는 만남이었다. [1017]
    • 경제
    2017-06-27
  • 교육을 통한 경영인으로서 동반자가 되어드리겠습니다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폴리페서의 사회적 역할이 커져가고 있는 지금, 사회 각 분야에서 교수들의 활약상이 주목된다. 특히 건축학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온 이백래 교수는 33년 경력을 바탕으로 모브 파트너스를 운영하고 있다. 모브 파트너스는 종합 부동산 서비스 제공 기업으로서 최고의 해결방안을 제시해준다. 또한 교육 경영인으로서 탄탄한 경력을 쌓아 학생들에게 귀감을 주고 있는 이백래 교수를 만나 그의 기업관과 교육관을 들어 보았다. _강성은 기자, 최선호 기자 의뢰인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종합부동산시스템 ‘MOV-Partners’ 이백래 교수가 대표이사로 경영하고 있는 모브 파트너스는 앞을 예측하기 힘든 부동산 개발 분야에서 종합부동산시스템을 통해 의뢰인들에게 최적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교수는 땅 분양에 초점을 맞추어 분양 이후 의뢰인에 관리가 부족했던 현재의 부동산 시스템에 대하여 아쉬움을 느꼈다. 이에 분양 전부터 이후까지, 의뢰인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는 종합부동산시스템이 필요함을 느끼고 이를 모브 파트너스에서 진행하고 있다. 분양과 건설이 따로 진행되었던 기존 시스템과 달리, 적합한 땅을 조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건물이 설 때까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적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종합부동산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의뢰인의 성공 동반자가 되는 것이 모브 파트너스의 지향점이자 이 교수의 목표다. 최근 부동산 개발시장의 불확실성으로 국민들과 기업가들은 혼란에 빠져있다. 이에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한 대안으로 모브 파트너스가 등장했다. 위험 요인의 회피가 가능한 이 대표의 노하우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철저한 시장조사와 정교한 사업성분석을 통한 그만의 결과물인 것이다. 법무법인과 회계법인과 협력하는 등 의뢰인에게 최적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대표는 서울대학교병원 2015 종합 발전계획 수립, 성남 백현 유원지 개발사업 기획, 국립해양박물관 임대형 민간투자사업 기획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저력으로 모브 파트너스를 운영하고 있다. 모브 파트너스는 최소의 핵심인원으로 대한민국 대표 부동산개발사업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수행해온 전문가 집단이다. 현재는 싱가포르의 한 기업에 대한 종합부동산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교수와 모브 파트너스는 지금도 기업과 같이 성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트레이닝 청년들의 눈에 씌워진 색안경을 벗겨주고파 이백래 교수는 종합부동산시스템 못지않게 후학양성을 중요시 하고 있다. 물고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중시한 유대인의 교육철학처럼, 이 교수는 제자들에게 사회에 제시되어 있는 정답이 아닌 근거와 논리로 구축된 자기의견을 주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건축학과를 나오면 건설 회사를 가거나 설계회사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설 분쟁과 관련하여 로펌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며 컨버젼 시대에 이 교수는 제자들에게 진로에 대한 다양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 교수는 건축에 국한하지 않고 연관 있는 분야까지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가 가르치는 건축기획은 건축기획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사업기획까지 교육하여 제자들의 시야를 넓히고 있다. 누구나 그의 가르침을 받을 수는 있지만 아무나 받을 수는 없다. 다년간의 실무경험이 다져진 훌륭한 이 교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한양대학교 건축학부의 학생들은 소중한 기회를 놓지지 말고 귀를 쫑긋 세워야 할 것이다. 몇몇 제자들은 졸업이후, 해외로 나가 관련 분야의 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제자와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메일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 제자의 모습에 이 교수는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이백래 교수는 자신의 활동이 사회에 맞지 않을 수 있다며, 활동상 소개를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그의 진실한 생각과 활동들이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믿어 볼 수 있었다. 앞으로도 모브 파트너스가 고객의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사업의 성취를 위해 진심을 담은 노력을 할 것을 기대한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주간인물이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1017]
    • 교육
    2017-06-27
  • 경경환 제트에프삭스코리아 대표이사
    독일 ZF Friedrichshafen AG의 국내 투자 회사로, 차량용 쇼크업소버(댐퍼)를 생산하고 있는 제트에프삭스코리아는 한국과 일본 완성차 시장을 목표로 국내에 전략적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경남 지역을 넘어 한국의 자동차 산업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그곳에 사람냄새 가득 밴 경경환 대표를 주간인물이 만나보았다. _엄지현 기자 경 대표는 이번 수상에 대해 “저 혼자 잘해서 받은 상이라기보다는 직원들과 함께 힘내서 받은 상이죠. 자동차 산업이 많이 침체되어 있는 와중에 저희 회사는 바쁘게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고, 지난 6~7년 동안 노력한 결과를 보상받는 기분이 들어 뿌듯합니다.”라고 말했다. 제트에프삭스코리아는 이미 2016년 매출액은 2721억 원으로 사상 최고 매출액을 경신했고, 그중 일본, 중국 등 11개국 수출이 전체 매출의 73%인 1976억 원을 차지하는 등 해외수출실적도 크게 향상돼 2015년 제52회 무역의 날 ‘1억 달러 수출탑’ 수상에 이어 2016년에는 ‘경상남도 수출유공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살피는 ‘경반장’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그는 2008년 취임 이후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정상에서 만납시다.’ 라는 경영철학으로 노사 간, 협력사 간 상생협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예전부터 자동차 산업을 떠나지 않고 꾸준히 쌓아온 그만의 내공으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그렇다면 그만의 경영 노하우는 무엇일까? “저는 예전에 직원들에게 경반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제가 현장에 있으면 직원들에게 하나하나 귀찮게 요구해요. 그때마다 직원들의 입에서 안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죠. 보채는 것이 방관하는 것보다 경영할 때 중요합니다. 일례로 예전에 현장의 바닥이 너무 지저분해서 다 치우자고 말했을 때 직원들이 기계를 옮기며 청소해야 한다며 안 된다고 말했었죠. 그래서 제가 안되는 게 어디에 있냐면서 직접 차근차근 바닥을 치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좋은 대표이기도 나쁜 대표이기도 합니다(웃음).” 경 대표는 직원들의 질문과 고민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 안에 답이 있음을 찾고 일을 해결해낸다고 말했다. “어느 날 직원들이 ‘길어서 안 됩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저한테는 그 말이 ‘너무 길지만 않으면 됩니다.’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길이를 잘라서 쓰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죠. 말 그대로 고민 속에 정답이 있고 그 길을 따라 가면 됩니다.” 이 또한 불가능은 없다고 말하는 그의 성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이런 그에게 직원들은 사소한 일들이 아닌 경영자로서 큰일을 하라며 말하기도 한다고. “대개 큰 문제들 위에 작은 문제들이 쌓여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작은 문제들부터 해결해야하는 것이지요.” 좋은 사람들이 만드는 따뜻한 사회 경 대표는 2013년부터 매달 꾸준히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정기후원을 하고 있다고. “우리 회사에서 저를 포함해서 164명 정도의 직원들이 모금을 하고 있는데, 직원들 또한 후원하면서 얻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마음이 착해지면 좋은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런 좋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회사는 다양한 방면에서 발전할 수 있는 것이지요. 지난 올림픽 때 ‘할 수 있다’로 멋진 경기 보여준 펜싱의 박상영 선수 또한 경남의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성장한 선수라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모은 후원금을 통해 한 사람을 훌륭한 인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행하고 있죠. 그래서 사내 게시판에 2~3달에 한 번씩 후원아동에 대한 글을 올려요. 그 글을 보고 후원하는 직원들과 그렇지 않은 직원들은 서로 느끼는 바가 다르고, 그런 식으로 후원을 북돋습니다.” ‘효(孝)’와 ‘정(情)’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는 회사 그는 청년과 대학생의 일자리 창출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도내 대학생의 안정적 일자리 확보를 위한 ‘경남형 기업트랙’ 협약을 맺기도 했다. 제트에프삭스코리아만의 특별한 채용 기준이 있다고. “2008년에 여기 처음 왔을 때에 비해 이직률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우리 회사만의 채용기준이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기업이든 결국 사람과 사람이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인가에 초점을 맞춘 면접을 진행합니다. 조부모와 부모의 나이를 묻기도 하고 얼마나 자주 찾아뵙는지에 대해서도 묻는데, 대답을 못하는 청년들이 꽤 있습니다. 본인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잘해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점을 유의해서 채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제트에프삭스코리아에서는 여성들의 출산휴가와 남성들의 육아휴가를 당연하게 권장하고 있고 다양한 복지혜택으로 직원들을 배려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있다고. “윗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일의 능률에 큰 차이를 만듭니다. 기계를 다루는 일이지만 결국엔 사람과 사람의 일이기에 서로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죠. 사람을 아끼는 마음으로 직원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한국 자동차 산업, 기술력으로 해외에 진출하기를 경 대표는 “저희는 일부 3교대로 근무할 만큼 일이 많고 바쁜데, 다른 곳에서는 미안해서 말 못합니다. 그 정도로 자동차 산업이 국내·외의 요인들 때문에 침체되어 있습니다. 부품업체들의 경우 모기업의 타이트한 관리 덕분에 세계에서의 경쟁력이 강합니다. 원천기술을 확보해서 해외로 진출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우리나라 업체들 생산 기술력은 단연 뛰어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언어의 벽이 있지만 그 벽을 부수고 나아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미래를 위해 준비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기본설계만 해 줄 뿐 나머지설계는 온전히 저희의 몫입니다. 개선에 대한 부분도 직접 계속 추진해야 하는 것이지요. 주위에서 저에게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지 묻습니다. 그럴 때 저는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된다고 말하죠. 일이 많은 것은 그저 일이 많은 것일 뿐 저의 스트레스가 될 순 없습니다. 이런 마인드의 작은 변화로도 회사차원에서 큰 발전이 되는 것이지요. 목표가 있다면 회사가 직접 고객들을 찾아가 영업을 하는 것보다 회사 앞에 고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최고의 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품질개선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등의 노력을 할 예정입니다.” 최근 80장의 슬라이드에 본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경경환 대표는 굴곡이 많은 인생 곡선을 다시 되짚으며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항상 고민하고 공부해왔던 것 같습니다. 슬라이드에 일생을 담으면서 보니 95년부터 어떻게 만들어야 좋은 물건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더군요.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제가 변함없이 좋은 제품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습니다.” 직원들에게 좋은 대표이자 선배로서 변함없는 마음으로 회사를 이끌어가는 경경환 대표의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 그러면서 기술력을 놓치지 않는 경영이 그를 2017년 최고의 경영인으로 만든 듯하다. [1017]
    • 경제
    2017-06-27
  • 몽도르 카페&하우스에서 가덕도 바다를 보며 자연에 녹아들어 힐링과 여유를 즐기길
    카페 입구에 다다르자 마당 곳곳에 자리한 야자수 나무에 눈길이 멈춘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카페로 내려가는 돌계단 들어서자 자그마한 팻말이 꽂힌 화분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길지 않은 계단 길임에도 꽃들을 구경하느라 이따금씩 발길을 멈추게 되는 이곳은 부산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몽도르(MONT D'OR) 힐링 카페다. 바다를 마주한 테라스에는 아이들이 맨발로 뛰놀며 카페 이곳저곳을 누빈다. 푹신한 소파에 기대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의 모습에 빠져있을 때쯤 송영심, 문환업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_정주연 기자 온화한 웃음과 말투로 취재진을 반겨준 두 대표는 두 딸아이를 둔 부부다. 얼핏 평범한 카페 주인인가 싶지만 송영심 대표는 국내 유명 친환경 생활용품 전문 회사인 (주)크린아이를 이끌고 있는 이다. 한때 주부들 사이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만능클리너 ‘매직블럭’을 국내에 처음 선보이고, 이후 내놓은 각종 생활용품들이 연달아 히트를 치며 건실한 중견기업으로 자리한 (주)크린아이. 현재도 꾸준히 친환경 생활용품과 위생용품을 개발, 생산하고 있는 이곳의 대표가 부산 가덕도에 카페를 열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지 호기심이 일었다. 힐링을 위한 자연 가덕도에서 마주하다 20년 가까이 사업을 이어온 그들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며 힐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평소에도 자연을 좋아하고 꽃을 좋아해 힐링을 위한 장소를 여기저기 찾아보았지만 도심에서는 쉽지 않았어요.” 신혼 때 지냈던 다대포의 때 묻지 않은 환경이 떠오른 그들은 우연히 들른 가덕도에서 현재 몽도르가 위치한 곳을 발견하고 ‘바로 여기다’싶었다고.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한 그곳은 아직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있었다. 매입을 결정한 후 이 장소를 어떻게 꾸미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누구나 편안하게 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준비는 무려 4년여의 긴 시간이 들었다. 자연경관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며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건물을 짓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던 것. 소품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디자인하고 직접 가구를 고르고 메뉴를 개발해 드디어 문을 연 몽도르. 그런데 몽도르에는 두 대표의 손길만 닿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의 합작품 몽도르 두 딸과 함께 구상하고 만들다 “처음 몽도르를 시작하려 마음먹고 가족들이 모두 미국 여행길에 올랐어요. 보름간 시애틀과 포틀랜드, LA의 여러 카페를 여행하며 몽도르만의 콘셉트와 분위기를 구상했죠.” 흐트러진 듯 자연스럽게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에서 힐링과 여유를 발견하며 조금씩 몽도르의 틀을 잡아갔다. 커피 원두 역시 그 분위기와 어울리면서도 기업 정신을 갖고 있는 LA스폐셜티 커피 1세대 라밀커피(LamillCoffee) 원두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그들의 두 딸이었다. 첫째 딸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공부하고 있어 서로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체 메신저 방에서 항상 의견을 교환하고 조율하며 몽도르를 함께 디자인하고 만들어갔다. 예술적 감각을 지닌 큰 딸과 마케팅에 관심이 많았던 작은 딸은 카페의 로고를 디자인하고 시그니처 메뉴로 자리한 스윗크리미라떼를 비롯해 레시피 개발에 앞장섰다. 평소 조경과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두 대표는 카페 안팎의 콘셉트를 잡고 디자인하며 직접 발품도 팔았다. 온 가족의 정성이 녹아든 몽도르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탄생한 것이 없다. “가족 간에 대화가 많은 편이에요. 특히 남편은 두 딸의 친구 이름도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친구처럼 다정다감하게 딸들과 지내요.” 몽도르에는 어린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찾는 이들의 연령대가 다양하다. 가족단위의 방문이 많기 때문인데 누구나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힐링의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두 대표와 딸들의 바람이 실현되고 있었다. 힐링 카페&하우스 손님과 직원 모두에게 쉼의 장소가 되길 몽도르는 카페와 펜션을 함께 운영 중이다. 그런데 이름이 펜션이 아니라 하우스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어려운 점 중 하나가 좋은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에요. 비전이나 복지 부문의 부재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죠.” 일반인들에게는 카페와 펜션으로 운영되지만 크린아이 직원들에게는 집처럼 언제든 가족들과 함께 방문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하우스’로써 새로운 복지와 비전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물론 직원들에게는 별도의 요금을 받지 않으며 예약에 있어서도 최우선 순위다. 직원들뿐 아니라 손님들에게도 최대한의 자유와 여유를 선사하고 싶었다는 두 대표는 정형화된 카페 운영에서 탈피한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1층 메인 테라스에서는 소파를 이리저리 옮기는 손님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몽도르에서는 손님들이 자유롭게 원하는 방식으로 힐링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아래층 테라스에는 애견 동반 출입도 가능하다. 그런데 특히나 눈에 띄는 부분은 테마방으로 꾸며진 공간이다. 개별 테라스도 갖춘 위층의 테마 카페는 방 별로 편안히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갓난 아이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방문해도 각자 그들의 방식으로 힐링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몽도르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어 사진작가들에게도 이미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오픈 한 달 만에 주말이면 한적했던 도로가 차들로 가득 차 대기 손님이 생길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몽도르. 자연과 환경, 인간을 중시하는 (주)크린아이의 기업 이념을 고스란히 녹아낸 이곳은 건강하게 먹을 수 있고 여유롭게 힐링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다. [1017]
    • 맛집탐방
    2017-06-27
  • 대구 ‘제1회 자랑스러운 건설인상’ 수상-지역과 함께 성장한 전문건설업체
    지역의 건설 산업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직결되어있다. 대구에 위치한 ㈜경풍은 대구의 상징적인 건물들을 시공하며 지역의 대표적 전문건설업체로 자리 잡았다. 어떤 이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중요한 업무를 진행하는 곳이 되기도 하는 건물들의 시공에 참여하며 마침내 대구의 자랑스러운 건설인이 된 ㈜경풍의 박용화 대표이사를 만나봤다. _엄지현 기자 대구시는 지역사회의 건설 산업과 시정발전, 일자리 창출 등에 기여한 공이 큰 건설업체에 ‘자랑스러운 건설인상’을 수여했다. 이 상은 대구시가 올 해 처음으로 제정한 상인만큼 그 의미가 크다. 박 대표이사는 “생각지도 못한 큰 상을 받게 되어 얼떨떨하네요. 우선 좋은 상을 주신 대구시에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면서 우리 직원들뿐만 아니라 저와 함께 일해 온 모든 분들의 덕이 큽니다. 이 상의 가치가 헛되지 않게 더 발전하는 모습과 대구 지역의 건설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수상에 대한 마음을 말했다. ㈜경풍을 1993년부터 오랜 시간 이끌 수 있는 그만의 경영이념은 소통이었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현실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들과의 소통이죠. 건물을 짓는 일은 기술적인 문제이기에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는 자신의 천직이라 믿고 건설업에 뛰어들었고, 힘든 순간들이 찾아와도 긍정적으로 이겨내 왔다고 말했다. “건설업을 바탕에 두고 공부를 하며 시작했죠. 그 시절에는 건설업이 촉망받는 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IMF때 주택건설회사의 90%가 부도를 내는 상황이 닥쳤습니다. 당시에 ‘나는 아직 젊으니까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패기로 그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고생을 많이 하고 자란 세대였고, 가장으로서의 무게도 저를 강인하게 만들었죠.” 박 대표이사는 고향인 대구에 굵직한 건물들을 시공하며 대구와 함께 성장해왔다. “차를 타고 가다가 제가 시공한 건물을 봤을 때 드는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특히 대구의 관문인 동대구역 인근에 시공한 무역센터는 밤에 야경으로 더욱 아름다운 건물이고, 법원 옆에 있는 범어숲도 한층 더 아름답죠. 또 성서공단에 우뚝 솟은 비즈니스 센터는 많은 기업체들의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건물이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시공사례입니다. 동구의 봉무 이시아타운에 건설된 텍스타일 컴바니스(섬유박물관)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시공되었습니다. 맡은 바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새 대구의 각 구마다 우리 회사가 시공한 건물이 하나씩은 있더군요. ㈜경풍이 성장한 흔적이 객관적인 결과물로 보이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는 30년 가까이 자신을 믿고 따라왔던 직원들과 계속 묵묵히 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언제까지 제가 이 회사를 이어갈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한 오랜 시간 우리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현재에 충실하여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경풍을 이끌고 싶습니다.” 또 그는“어려움을 겪고 단단해진 기술자들이 모여서 대한민국의 건설업에 더 좋은 발전을 이끌어냅시다.”라며 건설업 종사자들에게 응원의 말을 남겼다. [1017]
    • 경제
    2017-06-27
  • 교육을 통한 경영인으로서 동반자가 되어드리겠습니다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폴리페서의 사회적 역할이 커져가고 있는 지금, 사회 각 분야에서 교수들의 활약상이 주목된다. 특히 건축학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온 이백래 교수는 33년 경력을 바탕으로 모브 파트너스를 운영하고 있다. 모브 파트너스는 종합 부동산 서비스 제공 기업으로서 최고의 해결방안을 제시해준다. 또한 교육 경영인으로서 탄탄한 경력을 쌓아 학생들에게 귀감을 주고 있는 이백래 교수를 만나 그의 기업관과 교육관을 들어 보았다. _강성은 기자 의뢰인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종합부동산시스템 ‘MOV-Partners’ 이백래 교수가 대표이사로 경영하고 있는 모브 파트너스는 앞을 예측하기 힘든 부동산 개발 분야에서 종합부동산시스템을 통해 의뢰인들에게 최적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교수는 땅 분양에 초점을 맞추어 분양 이후 의뢰인에 관리가 부족했던 현재의 부동산 시스템에 대하여 아쉬움을 느꼈다. 이에 분양 전부터 이후까지, 의뢰인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는 종합부동산시스템이 필요함을 느끼고 이를 모브 파트너스에서 진행하고 있다. 분양과 건설이 따로 진행되었던 기존 시스템과 달리, 적합한 땅을 조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건물이 설 때까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적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종합부동산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의뢰인의 성공 동반자가 되는 것이 모브 파트너스의 지향점이자 이 교수의 목표다. 최근 부동산 개발시장의 불확실성으로 국민들과 기업가들은 혼란에 빠져있다. 이에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한 대안으로 모브 파트너스가 등장했다. 위험 요인의 회피가 가능한 이 대표의 노하우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철저한 시장조사와 정교한 사업성분석을 통한 그만의 결과물인 것이다. 법무법인과 회계법인과 협력하는 등 의뢰인에게 최적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대표는 서울대학교병원 2015 종합 발전계획 수립, 성남 백현 유원지 개발사업 기획, 국립해양박물관 임대형 민간투자사업 기획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저력으로 모브 파트너스를 운영하고 있다. 모브 파트너스는 최소의 핵심인원으로 대한민국 대표 부동산개발사업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수행해온 전문가 집단이다. 현재는 싱가포르의 한 기업에 대한 종합부동산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교수와 모브 파트너스는 지금도 기업과 같이 성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트레이닝 청년들의 눈에 씌워진 색안경을 벗겨주고파 이백래 교수는 종합부동산시스템 못지않게 후학양성을 중요시 하고 있다. 물고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중시한 유대인의 교육철학처럼, 이 교수는 제자들에게 사회에 제시되어 있는 정답이 아닌 근거와 논리로 구축된 자기의견을 주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건축학과를 나오면 건설 회사를 가거나 설계회사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설 분쟁과 관련하여 로펌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며 컨버젼 시대에 이 교수는 제자들에게 진로에 대한 다양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 교수는 건축에 국한하지 않고 연관 있는 분야까지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가 가르치는 건축기획은 건축기획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사업기획까지 교육하여 제자들의 시야를 넓히고 있다. 누구나 그의 가르침을 받을 수는 있지만 아무나 받을 수는 없다. 다년간의 실무경험이 다져진 훌륭한 이 교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한양대학교 건축학부의 학생들은 소중한 기회를 놓지지 말고 귀를 쫑긋 세워야 할 것이다. 몇몇 제자들은 졸업이후, 해외로 나가 관련 분야의 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제자와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메일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 제자의 모습에 이 교수는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이백래 교수는 자신의 활동이 사회에 맞지 않을 수 있다며, 활동상 소개를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그의 진실한 생각과 활동들이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믿어 볼 수 있었다. 앞으로도 모브 파트너스가 고객의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사업의 성취를 위해 진심을 담은 노력을 할 것을 기대한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주간인물이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1017]
    • 경제
    2017-06-26
  • 우리의 삶 자체가 예술이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표현할 때,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나 도구를 사용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떠올린 그 무엇들은 대부분 우리 안에 내재된 익숙한 무언가가 표현된 것이다. 예술을 어렵고 먼 존재로만 여기는 우리들에게 최우정 교수는 친구 같은 편안함으로 다가와 예술의 가치를 알려 주었다. 예술의 대중화를 꿈꾸며 활동하는 서울대학교 최우정 교수의 교육현장으로 찾아가 작곡의 기초와 예술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교수로 재직하며 TIMF앙상블 예술감독 및 연희단 거리패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우정 교수의 예술관에 대해 들어보자. _강성은 기자 갈등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습니다 최우정 교수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작곡 및 음악이론을 공부했다. 모교인 서울대학교의 교수로 있는 최우정 교수는 정상의 자리에 있다고 자부할 만큼 높은 학식과 예술 경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갈등하며 나아가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미래의 불확실성과 사회의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는 학생들과 같이 최 교수도 본인의 전공에 대해 아직까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의 어머니는 바이올린 선율을 좋아하시는 분이셨다. 어머니는 항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선율을 듣고 계셨고 그 선율을 들으며 자란 최 교수는 자연스레 음악에 대한 친숙함을 가지게 되었다. 최 교수는 음감이 탁월했지만 피아노에 흥미가 없어 교습을 중단하고 바이올린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초등학교 3,4학년부터는 음악 전공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고 마침내 서울예고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때론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악기연주자의 길을 가고 싶었던 최 교수는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진학을 했고 콩쿠르에서 1등을 거머쥐게 되었다. 여기에서 최 교수는 또 본인의 장래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하기 시작한다. 클래식문화의 현실에 숨이 막혔던 최 교수는 연극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 분야에서 귀인을 만나게 된다. 이윤택 선생을 만나 연극분야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그 후 최 교수는 ‘오구’등 5편의 연극 음악을 공동 제작하는 등 연극분야에서 활약을 하게 된다. 이렇듯 갈등과 방황 속에서 최 교수는 한 단계 성숙 과정을 경험했다. 최 교수는 본인의 장점과 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갈등 속에서 예술의 혼이 정점에 이른다고 말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는 학생들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같은 조언을 합니다. 갈등과 결핍의 상황 속에서 예술혼은 진정성을 부여 받습니다. 그 힘든 과정 속에서 빛을 발하는 영감이 나올 수 있으니 그럴 때 일수록 좌절에 빠져있을게 아니라 음악에 집중해보라고 합니다.” 끊임없는 작품 활동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최 교수의 노하우가 전수되는 순간이다. “저는 작품 활동을 할 때도 불협화음에 집중을 합니다. 왼손연주와 오른손 연주가 조화를 이룰 때보다. 두 소리가 부조화를 이룰 때의 소리에 매력을 느끼곤 하죠.” 기자 앞에서 직접 연주를 하며 불협화음의 매력을 보여주는 최 교수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음악적 삶의 표본 예술가는 일반적으로 자기가 아는 현실 세계가 아닌 상상의 세계를 바탕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에게 익숙한 소재들을 깊이 관찰한 후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재구성하여 다른 상상 속에서만 존재 가능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 다름 아닌 예술이라고 최 교수는 말한다. “현실 세계의 익숙한 것들을 다른 맥락으로 재구성해 대중들 앞 에 선보이는 것이 다름 아닌 음악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대에서 음악은 우리의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의 귀는 아침에 깨어나는 순간부터 한시도 음악을 피하지 못한다. 음악을 더 잘 즐기기 위해 사람들은 직접 연주도 하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하며 음악회에도 참석한다. 연극이나 영화를 보러가도 음악은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구성요소다. 리듬과 음계로 이루어진 악보에 있는 것도 음악이지만 “우리의 삶 자체가 예술이고 음악”이라고 말하는 최 교수는 오늘 아침에도 딸아이와 음악을 나누는 식사시간을 가졌다. 이렇듯 예술이라 하면 음악, 미술, 문학, 건축 등 복잡다단하지만, 음악처럼 사람들에게 쉽게 접하고 또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뜻과 감정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예술은 없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그는 학문적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진다. 본인이 원하는 전공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 주고 그 안에서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교육자의 참된 역할이라고 그는 말한다. 또한 TIMF 앙상블에서도 예술 감독으로서 활약하고 있는 그는 젊은 음악가들을 발굴하는데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한국의 우수한 인적자원들이 예술적 활동을 활발히 펼칠 수 있도록 젊은 음악가들을 지원한다. TIMF 앙상블은 2001년에 창단되었으며 통영국제음악제의 정신을 해외에 홍보하기 위해 창단된 단체이다. TIMF 앙상블은 새롭게 작곡, 편곡, 해석되는 음악에 집중하고 그렇게 구성된 것들을 프로덕션 한다. 최 교수는 현재 6월초에 진행될 연극 ‘이 일을 어찌할꼬!’의 제작과정에 참여중이다. 연극 ‘이 일을 어찌할꼬!’는 이윤택 연출의 대종사의 삶을 다룬 현실 극이다. 끝으로 최 교수는 “흥이 많은 한국 사람들”의 음악성을 높이 산다며 자기계발과 취미활동을 통해 음악적 소양을 많이 발전시키기 바란다고 말했다. 최우정 교수는 연극과 무용, 음악, 공간과 같은 표현도구가 들어간 형태의 무대예술작품의 발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클래식 현대음악, 오페라, 뮤지컬, 무용, 음악극, 국악,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활동해 오고 있다. 작업하고 있는 새로운 작품에 열정을 많이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예술가 최우정 교수의 행보를 주목해보자. [1017]
    • 문화
    2017-06-26
  • 한국 표준 전도사 ‘커브너프 기념상’ 수상, 표준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 인정받아!
    최근 최갑홍 성균관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가 ‘커브너프 기념상’을 수상했다. ‘커브너프 기념상’은 1970년부터 85년까지 미국 재료시험협회 대표이사를 지낸 윌리엄 커브너프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재료시험협회(ASTM)에서 수여하는 상이다. 표준분야에서 국제적인 공헌도가 높은 전문가를 매년 수상자로 선정해 왔다. 올해는 한국의 공로를 인정해 국내 전문가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에 최갑홍 교수는 국제적으로 표준을 널리 알리고, 표준·적합성 평가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을 하게 되었다. 주간인물은 한국 표준 전도사, 최갑홍 교수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세계 속에 우뚝 선 한국 표준 전문가 “2000년도부터 ‘하나의 기술표준이 세계의 산업지도를 바꿔놓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한국 표준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번 수상은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쁩니다. 앞으로 한국 표준이 곧 세계 표준이 될 수 있도록 한국 표준 분야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습니다.” 담담히 수상 소감을 밝히는 최갑홍 교수. 정통 기술관료 출신인 그는 1977년 기술고시에 합격한 이후로 산업자원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국제표준화기구(ISO),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을 거쳐 기술표준원 원장, 한국표준협회 회장,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원장을 지낸 기술정책, 국제표준, 시험인증분야의 최고 전문가다. 또한 그는 국제표준화기구인 ISO 이사회 이사, 미국재료시험협회(ASTM) 이사,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정책이사 등으로 국제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그 결과 2005년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의 총회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최했으며 2015년 국제표준화기구(ISO) 총회 개최, 2018년 국제전기기술위원회 총회를 한국에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렇듯 국내외에서 표준을 널리 알리고 표준·적합성 평가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그는 이번 ‘커브너프 기념상’ 수상으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았다. 그는 현재 성균관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로 한국 표준 분야를 이끌 차세대 전문가를 육성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 경쟁력이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4차산업혁명시대, 표준분야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는 요즘, 한국 표준 분야의 권위자로서 그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2차, 3차산업 발전의 근간이 기술이자 곧 이 기술을 산업으로 연계시키는 전략적 수단이 표준이였으며” 앞으로 “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기술의 융합, 초연결사회의 구축을 위한 소프트인프라로서의 표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 질 것”이라며 국가경쟁력을 위한 표준 분야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렇듯 국내외 표준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최갑홍 교수. 그는 어떻게 표준 전문가로 한국 산업발전에 기여하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전남 신안 섬마을, 천재 소년 독실한 신앙생활로 역경 딛고 일어서 형설지공의 정신으로 기술고시 합격 그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 안좌면 안좌도.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섬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이 명석한 두뇌로 집안과 이웃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현명한 어머니와 책임감 강한 형님 슬하에서 성장한 그는 일찍이 학업에 뜻을 세웠다. 책이 귀하던 시절, 한 두 권을 읽고 또 읽어 닳아질 정도로 배움에 열정적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진학과 동시에 서울로 상경한다. 때론 사촌집에 더부살이를 하고, 늘 학비 마련을 위해 전전긍긍했지만 언제나 학업성적은 1등이었던 그는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청운의 꿈과 달리 그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가세가 더욱 기울어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하고 학비를 벌어야했던 것. 주경야독으로 기술고시 준비를 시작한 그는 어려운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힘겨운 그의 삶에 한줄기 빛이 되어준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 “채플시간에 유명박사님들이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성경공부를 하는 걸 보면서 뭔가 배울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위해 시작한 교회와의 인연은 제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뒤돌아보면 내게 놓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최갑홍 교수. 그는 형설지공의 정신으로 1977년 기술고시에 합격해 기술 관료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산자부 30년 공직 생활, 기술정책 전문가로 디지털TV, Electro-21, GSM이동통신, 비메모리반도체 등 국가 대형 연구개발 5개년 계획 수립·추진 2000년 국제표준화기구 ISO 파견 이후 기술표준의 중요성 깨달아, 표준 전도사로 사명감 느껴 기술공무원으로 임용돼 산업자원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배움의 열정을 계속 이어나갔다. 주경야독을 하며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전기공학 석사를, 미국 위스콘신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의 기술 발전을 위해서 기술 관료가 먼저 배우고 익혀야한다고 생각한 것. 이런 깨인 생각은 뛰어난 기술정책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디지털 TV를 시작으로 Electro-21, GSM이동통신, 비메모리반도체 등 국가 대형 연구개발 5개년 계획 수립·추진해 전문성과 실력을 인정받았다. “30년 공직생활을 뒤돌아보았을 때, 1990년 디지털 TV 시장이 막 열리던 시대에서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LG, 삼성 같은 대기업들이 세계 디지털 TV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기반 정책을 마련한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후 그는 대통령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며 한국 산업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표준은 공기와 같아’ 한국 표준화를 위한 사명감으로 헌신해와 그가 표준화에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2000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표준화기구 ISO에 파견을 나가면서부터다. 그곳에서 3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하나의 기술표준이 곧 세계 산업 지도를 바꿔놓을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표준은 공기와 같습니다. 이제는 기술개발에만 열을 올려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국제 표준이 되지 않으면 상용화가 되기 어려운 시대가 됩니다. 이미 각국은 표준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표준으로 선정된 제품의 경우 시장지배력을 공고히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는 기업들은 제품 표준화 작업을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하기 때문입니다.” 이후 그는 기술표준원 원장, 한국표준협회 회장,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원장을 지내며 대한민국 산업발전과 국가표준화를 위해 공헌해왔다. 또한 국제표준화기구인 ISO 이사회,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정책이사, 미국재료시험협회(ASTM) 이사를 지내며 우리 기술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추구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이렇게 한국 표준화를 위한 사명감으로 헌신해온 최갑홍 교수. 표준 전문가로서의 그의 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표준화 분야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저는 2018년에 우리나라에서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총회가 열리고 여건이 허락하면 회장직에 입후보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나라의 우수한 기술들이 국제 표준화되어 무역장벽을 낮추어 질 좋은 제품들이 지구촌 모든 민족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산업 발전과 표준 발전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정통기술관료로 한국 산업 발전에 기여한 인물. 세계 속에 우뚝 선 표준 전문가, 최갑홍 교수가 만들어갈 새로운 내일의 모습이 기대된다. 학 력 •연세대 전기공학과(‘78, 공학사) •연세대 대학원 전기공학과(‘84, 석사) •미국, 위스콘신대학원 공공정책학(‘97, 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기술경영학과(‘13, 박사) 주 요 경 력 •제13회 기술고등고시(77.10)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개발과, 반도체전기과 과장(99.6~00.8) •국제표준화기구(ISO,제네바)파견, 신성장산업연구팀 과장(00.8~04.3) •대통령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실 행정관(04.3~06.2)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원장(06.6~08.3) •한국표준협회 회장(08.4~11.3)과 한국전지협회 부회장[11.11-13.6] •미국시험재료표준화기구(ASTM) 이사(12.1~14.12)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원장(13.7~ 16.7)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이사(12.1~현재) •성균관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16.9~현재) [1017]
    • 교육
    2017-06-26
  • 돈부리 한 그릇에 가득 담긴 정성 ‘가츠동과 연어가 맛있는 집’
    큰 그릇에 밥을 담고 그 위에 여러 가지 재료를 얹어서 먹는 일본식 덮밥인 돈부리는 맛있고 가격도 합리적이라 한 끼 식사로 제격이다. 돈부리를 전문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한 부산 시민들의 입맛을 끌어당기는 곳이 있어 주간인물이 찾아가보았다. _엄지현 기자 10년 넘게 사무직에 종사하던 박 대표는 남의 일이 아닌 나를 위한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만의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여러 시장을 조사하며 공부했죠. 그러던 중 부산에 많은 맛집들 중에 돈부리를 전문으로 하는 곳은 없음을 알고 ‘내가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교토돈부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가 교토돈부리를 운영하는 방식에서 조금은 번거롭고 까다롭지만 손님들을 위함이 느껴졌다. “손님들이 직접 아시지는 못하지만 중요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희는 식기들을 매일 3번씩 소독하고 있고, 저희의 슬로건이 ‘가츠동과 연어가 맛있는 집’이기 때문에 가츠동을 만드는데 중요한 튀김기를 매일 청소합니다. 또 치즈 감자 고로케의 경우에도 재료를 따로따로 볶아서 조리하고 고급 치즈를 사용하는 등 번거롭지만 이런 작은 노력들로 만든 요리가 손님들에게 좋은 평을 받는 비결입니다.” 박 대표는 계속 변화하는 외식산업에 발맞춰 변하는 상황대처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외식업을 이끄는 오너는 주방 일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방에 문제가 생길 경우 리스크가 줄어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근래에 경영만 하는 오너가 많아 걱정이 많습니다. 운영하면서 중점으로 두는 것은 다섯 가지입니다. 첫 째로, 음식의 상품성입니다. 메뉴 자체가 접근하기 어렵거나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보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드실 수 있는 메뉴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매장의 컨셉입니다. 저희의 경우에도 부산에 2개의 매장을 두고 있는 작은 브랜드이지만 우리만의 아이덴티티를 위해 로고를 제작하고, 매장인테리어의 컨셉을 균일화 하는 등의 노력을 했습니다. 세 번째는 직원관리에요. 저 또한 시작단계에는 직원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 지 갈피를 못 잡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만의 규정을 정하고 직원들에게 워크샵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 가게의 능률에 큰 효과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앞으로도 다양한 복지혜택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이외에도 지속적인 메뉴관리, 서비스, 홍보 등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중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메뉴에 정성을 가득 쏟았다는 박 대표가 가장 추천하는 메뉴는 무엇일지 궁금해 물어보았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규우나기동입니다. 규동과 우나기동 중 결정하기 힘든 분들을 위해 반반씩 섞어놓은 메뉴입니다. 또 확실히 가츠동이 저희의 대표 메뉴입니다. 다른 곳과 달리 두툼한 고기를 사용하여 즐거운 식감을 느낄 수 있죠. 벤토와 함께 다양한 음식을 드시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가츠동벤토도 손님의 고민을 덜어드리는 효자 메뉴입니다. 이번 소셜프랜차이즈 지원 사업 브랜드로 선정된 교토돈부리는 소셜 미션 발굴과 청년 일자리 기여 방안 및 프랜차이즈 진입장벽의 완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고민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조금 더 내실 있는 프랜차이즈를 위해 저희에게도 좋은 일이고, 열정 있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회적으로도 좋은 일이라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마음이 들고 뿌듯합니다. 이로 인해 앞으로 교토돈부리의 가맹사업이 활성화되기 바라며 경쟁력 있는 브랜드가 되길 바랍니다.” 또 그는 청년들에게 외식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편안한 일이 아닌 부지런하고 꼼꼼해야 하는 일임을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규모는 작지만 탄탄한 내실로 맛, 전통성, 서비스, 진정성 등의 밸런스를 잡아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중의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또 가맹 사업의 과정에서도 찍어내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각 지점마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프랜차이즈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며 앞으로의 다짐을 다잡았다. [1017]
    • 맛집탐방
    2017-06-26
  • 박용웅 사단법인 생명과학진흥회 이사장 | 사단법인 한국문화복지사협회 회장 | 월간 문화 복지 발행인 | 일신선교회 회장
    사단법인 생명과학진흥회 (좌)김상현 감사 (우)박용웅 회장 울산광역시 중구 복산동에서 출생한 박용웅 이사장은 초·중·고등학교를 울산에서 다녔고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에서 호헌 총신 대학원을 거쳐 신학박사·목사가 되었다. 그 후 미국 UNM 대학교에서 NMD 학위를 취득하고 Hayfield Univ 방문교수, UNM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유년 시기부터 신실한 기독교인 이었던 박 이사장은 1979년 일신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다가 은퇴 후 생명과학진흥회 이사장으로서 생명존중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일전에 주간인물에서 문화복지사협회 회장으로서 특별한 만남을 가졌던 박용웅 이사장을 다시 만나 근황을 들어보았다. _강성은 기자 일자리창출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생명과학진흥회 “저는 2004년 10월 7일 설립된 생명과학진흥회의 초대 이사장으로서 지금까지 쭉 맡아오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 학회로 출발했으며 초기명칭은 생명공학 유전자학회였지요. 학회장은 당시에 건국대학교 병원장 의과대학교수로 재직했던 장상근 박사님이었습니다. 저는 2003년 종교단체에서 은퇴했으며 사단법인 생명공학 유전자학회의 설립 이사장으로 재직 중 천여명의 유전자 상담사를 배출시킨 바 있습니다. 2008년 생명윤리법 개정으로 유전자 상담사의 자격증을 발급할 수 없어 부득이 사단법인 생명과학진흥회로 개명하여 현재까지 이사장, 대표, 회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또한 박 이사장은 2013년 한국문화복지사협회를 설립, 대표/회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사단법인 생명과학진흥회는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처음에는 생명공학 유전자학회로 출발하여 건국대학교 병원장이었던 장상근 박사가 학회장으로 업무를 추진했으나 이후 생명과학진흥회로 개명하면서 본인이 생명과학진흥회의 대표 / 이사장으로서 정관목적사업인, 생명과학 분야의 학술발표회, 강연회 및 세미나의 개최를 진행하였다. 또한 회지와 기타 기술자료 발간 및 배부 생명과학문화의 국제교류사업을 도맡아 하였다. 생명과학진흥회는 또한 생명과학 융합 문화사업 지원 및 포상을 진행하며 생명과학문화개발을 위한 교육연구원을 운영 하고 있다. 특히 생명과학 지도사 및 기질 상담사 양성과 자격증을 발급하고, 초·중·고 방과 후 교육에 힘을 다하여 진로상담을 비롯하여, 성인들의 유전성 질환이나 성향 등을 분석 연구하여 삶의 질을 향상하고자 하며, 이 분야의 전문가 10만 여명의 일자리 창출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 그의 또 다른 도전 기질 상담사 그는 2017년도 1월에 기질 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기질 상담사는 DNA 검사를 통해 폭력성과 같은 인간의 타고난 기질을 조사한 후 진로상담 혹은 치료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사람은 분노, 폭력, 중독성과 같은 유전적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박 이사장은 체계적인 유전자 조사를 통해 개인의 기질을 파악한 후 개개인에 맞는 솔루션을 적용해주는 것이 기질 상담사의 역할이라고 전했다.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나누어지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상당히 과학적이죠.” 다만 기질 상담사는 청소년기에 주목되는 폭력성들과 같은 것들을 검사하는 것이다. 중독유전자도 조사가 가능하다. “담배를 끊는 행위에서 개개인마다 어려움의 차이를 느끼는 이유는 기질적 성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박 이사장은 기질적 성향이 사람들이 대인관계를 할 때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전했다. 다른 사람 보다 대인관계를 어려워하는 기질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으며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유형의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유전자검사에서 그런 요소들이 나오기 때문에 이런 유전성향이 있을 때에는 아이를 어떤 방향으로 진로교육에 참여시킬 것인지가 정해진다. 이런 성향을 발굴해 과학적 근거를 찾으면 자라나는 아이들의 진로가 희망적일 것이라 생각하여 박 이사장은 직접 민간자격으로 국가에 기질 상담사 자격증 등록을 시도 했고 작년 12월에 개정, 1월에 취득할 수 있었다. 기질 상담사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청소년의 진로상담도 해 줄 수 있지만 질병상담도 가능하다. 유전성향에는 질병도 모두 드러나기 때문. 의사들은 유전자 검사는 병원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 하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민간단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유전자 검사는 예측이다.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기질상담사의 역할이다. 생명윤리의 깊은 뜻을 마음에 품고 “과학기술을 선용 하면 무엇이든 괜찮지만 악용 하면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결과가 오는 법입니다.” 박 이사장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를 지향한다.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구상하며, 직업창출에 전심전력을 다한다. 장수하는 것도 좋으나 건강하고 행복한 여생을 지원한다. 행복한 여생을 위해 필요한 호르몬이 있다. 최근 의학에서 발견한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은 엔돌핀의 4,000배 효과로 암세포도 이기게 하며 통증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 다이돌핀은 감동하고 감격할 때 나오는 호르몬입니다. 여러분 감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십시오.” 박 이사장은 인간을 감동 시킬 수 있는 것은 문화생활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여 문화복지사협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인간의 문화는 생명과 직결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앞으로 박 이사장은 생명과학 지도사 및 기질 상담사의 양성과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진력할 것을 약속했다. 또한 동식물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에서도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활동을 계속해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생명경시 풍조는 망국의 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를 교육과 실천으로 계몽할 것입니다. 일천여명의 회원들과 국민여러분! 미래과학자들은 21세기를 3D 시대라고 합니다. 직업의 결정적 비전입니다. Digital, DNA, Design. 생명과학은 문화융합사업으로 확산되어 이 사회, 이 나라를 평화롭고 부강한 나라로 이끌어야 합니다. 생명과학의 발전만이 국가 경쟁에서의 승산이 있습니다.” 생명과학분야의 문화융합실천, 생명윤리 준수를 위해 힘쓰고 있는 박용웅 이사장이 이끄는 생명과학진흥회의 내일을 기대한다. [1017]
    • 교육
    2017-06-26
  • 나미수 사단법인 한자교육진흥회 이사장
    나미수 이사장은 대학을 졸업 후 국가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중앙부처에서 35년간 근무했고, 공직을 정년을 마치고 지금의 (사)한자교육진흥회에 12년간 몸 담아왔다. 그동안 이사, 원장을 거쳐 2014년 이사장의 중책을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나미수 이사장에게 한자교육진흥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강성은기자 인재육성을 위한 태동 사단법인 한자교육진흥회는 1990년 한자교육운동을 하는 단체 중 국내 최초로 공익법인 설립인가를 받은 한자교육의 선도적인 단체이다. 우리말의 70%이상은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같은 현실에서 한자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올바른 국어의 이해가 어렵다. 또한 언어구사력, 문장의 작성과 이해력 및 업무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한글을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글과 한자의 혼용이 필수적이며, 우리 전통문화의 이해, 민족의 정체성 확립이 절실하다. 나미수 이사장은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 육성을 위해 한자교육이 반드시 실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당시 국내 저명인사들이 뜻을 모아 한자의 체계적인 교육과 활용방법 및 발전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한자교육운동단체를 조직했다. 한자교육진흥회는 350여만 회원을 관리하고 있으며, 2개 종목의 공인자격과 4개 종목의 등록자격 시험을 전국적으로 실시해 어휘력의 신장과 바른 인성의 함양, 나아가 전통문화의 이해 및 계승에 이바지해왔다. 한자교육진흥회는 한자교육 방법을 다양하게 연구·개발하여 쉽고 재미있게 한자를 익힐 수 있도록 했다. 언어수행능력의 향상을 기하고 학습결과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평가를 실시해 한자실력급수 시험 등 고객의 저변확대에 힘씀으로써 청소년의 종합적 학습능력 향상을 꾀하고 바른 인성의 함양에 기여하도록 진력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이 개인의 인격, 사회적 품격 나아가 국가의 격을 높여 문화국민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조직원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 “리더 한사람의 능력으로 조직이 발전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원 모두가 자기 역량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협력과 협동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리더의 참 역할이죠. 귀를 크게 열어 자기의지를 피력하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기회와 배려를 다하고자 노력합니다.” 이렇듯 그는 한자교육진흥회 운영 방향에 대해 피력했다. 앞으로 한자교육진흥회의 지속적인 개발과, 자격시험 관리·운영의 개선 및 취득자의 사회적 우대를 위하여 더욱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끝으로 나미수 이사장은 350여만 회원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저희 법인이 추진하고 있는 한자교육운동에 더 큰 지원과 지속적인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많은 성원 속에 더욱 발전할 것을 다짐합니다.” 한국인의 지적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이바지하고 있는 한자교육진흥회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인터뷰였다. 나미수 이사장의 확고한 리더쉽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자교육진흥회는 앞으로도 다방면의 연구를 통해 탄탄한 교육 인프라를 구축할 것을 약속했다. 많은 외래어의 유입과 비속어의 사용으로 우리말은 파괴되고 한자어의 중요성조차 퇴색되고 있는 지금 한자교육진흥회의 활발한 활동이 기대된다. [1017]
    • 교육
    2017-06-26
  • 김제완 한국과학문화진흥회 명예회장 |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우리는 하루에 과학적인 현상과 이슈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 맞닿아 있는 모든 요소가 생활 속의 과학이지만 우리는 정작 바쁜 일상에 쫓겨 많은 부분 간과하고 지낸다. 그러나 한국과학문화진흥회 김제완 회장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 일어나는 과학적 이슈와 변화들에 민감하게 집중하고 이를 교육에 접목시켜 왔다.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나 본인의 역할을 대신해 줄 인물을 찾고 있다. _강성은 기자 한국과학문화의 대중화에 힘쓰는 과학문화진흥회 과학문화진흥회는 국내 과학기술자의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일반시민의 과학기술 의식제고 등 과학문화 사업전개를 목적으로 지난 1997년 11월에 비영리단체로 발족했다. 후에 2002년 8월 정부에서 사단법인으로 설립허가를 받았다. 국민의 과학기술의식 제고와 과학기술 대중화 운동에 힘쓰고 있으며 생활의 합리화와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사단 법인 과학문화진흥회에는 과학기술전문인 및 대학교수 200여명이 소속되어 있으며 단체는 ‘우리과학기술 찾고 알리기 모임’등 20여개 단체회원을 가지고 있다. 1997년 김 회장을 중심으로 봉천동 오피스텔의 전세방에서 연간산업 3000만원의 예산을 집행하며 과학의 대중화사업을 시작했다. 10년 후, 2007년에는 연간 15억의 사업예산을 집행하며 민간의 과학의식을 제고하는 최고의 민간단체로 자리 잡게 되었다. 2010년 이후에는 사업 플랫폼을 전시회에서 온라인으로까지 확장하여 대한민국의 과학문화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후원하는 단체로는 미래창조과학부, 한국연구재단, 한국과학창의재단,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로서 한국과학문화진흥회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한국 과학의 활성화를 위하여 함께하고 있다. 김 회장은 앞으로도 진흥회를 애정과 격려로서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노벨과학상 수상을 위하여 김 회장은 한국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과학지식을 머릿속에 입력하는 방식의 학습문화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만지고, 두들기고, 깨보고, 돌려보는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한국과학문화진흥회는 이 같은 학습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전국 16개 주요도시에 운영되고 있는 과학 연구원에 창조성을 강조한 과학문화 활동에 관한 기초자료를 제공했다. 또한 정부에서 건설한 수도권 2000만 인구를 위한 국립과학관과 대덕 엑스포 과학 공원 내에 설치할 ‘과학 기술 창조의 전당’에 설치할 전시품과 동 시설에서 개최되는 과학문화 활동의 기본 컨텐츠를 제공했다. 또한 노벨 해설 강연 사업으로 학생들의 교육을 도맡고 있다. 노벨 해설 강연 사업은 1997년도부터 연인원 1만명의 청중을 상대로 계속 되어온 강연강좌사업이다. 전국 모든 과학 고등학교에서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연례행사로 정착되었다. 매년 10~11월에 개최하고 있는 노벨 해설 강연회는 당해연도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과학자의 과학업적을 전국 약 30여개 고등학교 및 대학현장을 방문하여 실시함으로서 대한민국의 기초과학문화를 확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또한 과학문화진흥회는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교양강좌를 실시해 과학문화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점심시간에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저명 과학자의 현대 과학기술 해설을 듣고 질의를 하는 ‘과학 사랑방’은 현대과학을 알기 쉽게 풀이하는 교양강좌를 실시함으로써 과학을 존중하는 과학마인드를 확산하고져 시행하는 과학화 사업이다. 격의 없는 친숙한 분위기 속에서 다른 대중강연에서는 할 수 없는 소박한 질문과 의견을 제시함으로서 과학에 더 가까워진다는 장점이 있다. “1998년부터 매월 첫째 및 셋째 월요일에 개최하고 있으며 차츰 인지도가 높아져 점점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인재를 찾습니다 김 회장이 학회 참석차 뉴욕에 갔을 때 이야기다. 김 회장은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하여 호텔 지하에 위치한 바에 찾아가 진 토닉을 주문했다. 김 회장에게 진 토닉을 만들어 주었던 바텐더가 김 회장에게 물었다. "tell me about the quark" quark는 현대 과학에서 발견된 가장 작은 단위의 소립자다. 소립자 세 개를 합쳐 양성자의 핵이 되는 것이다. 술을 만드는 바텐더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질문에 김 회장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한국인들도 직업에 상관없이 이렇게 과학에 관심을 가진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과학 노벨상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서울대학교 연구실로 출근하여 세계의 과학뉴스를 검색하고 그날의 과학이슈를 정리해 한눈에 알기 쉽게 정리한다. 그런 작업을 해온지가 어언 40년이 넘어간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과학 분야에서는 내로라하는 명사가 되었다. 정부에 요청하여 국내최초의 과학 고등학교 경기 과학 고등학교 설립에도 기여했다. “어느 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면 자연스레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본인의 재능을 발견하고 기여한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보람되는 일이지만 국가적으로도 필요한 일입니다” 김 회장이 몸담고 있는 한국과학문화진흥회는 moon(massive online outreach network) project를 기획중이며 노벨 e-도서관도 운영 중이다. 또한 최근에는 인터넷 신문기사 ‘PHYSICS TODAY'를 꾸준히 게재하고 있다. “국민들의 과학적인 관심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시선을 조금만 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터넷 신문기사에는 태양주변에서 휘어지는 빛, 꿈 시간의 상상도 등 흥미로운 기사들이 게재되어 있다. 과학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한국과학문화진흥회를 지금까지 이끌어 온 김제완 명예회장은 앞으로 자신보다 더 훌륭하게 과학문화진흥회를 이끌어 줄 인재를 기다리고 있다. 과학의 대중화와 노벨수상자의 탄생을 위해 힘써 줄 인재를 찾는 데 주간인물이 일조하기를 바라며 한국과학문화진흥회의 활동을 격려한다. [1017]
    • 교육
    2017-06-26
  • 서초대로는 세광그린푸드 가 장악한다
    한국인 외국인 가릴 것 없이 모두 좋아하는 음식인 삼겹살. 삼겹살을 찾다 우연히 찾아가 본 이층집 삼겹살은 타 브랜드와의 차별화를 내세우고 자기만의 색깔로 하나의 음식만이 아닌 상호 WIN-WIN 시켜주는 구성으로 판매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이 브랜드를 만든 이가 누구인가 궁금하던 순간, ‘30대 젊은 CEO’라는 이야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삼겹살과 다른 외식사업들의 성공스토리를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어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강성은 기자 편윤아 기자 결코 실패란 없는 외식업계의 브랜드 창조자 김슬기 대표는 19살 때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숙식이 제공되는 서래마을 일식집에서 첫 일을 시작하게 됐다. 몇 년간 끊임없이 쉬지 않고 일을 하다 서비스 업종이 자기와 맞다고 생각이 들어 처음 함께 일한 동료와 함께 경험을 살려 소자금으로 이자까야 ‘하시’를 열게 되었다. 위치가 손님들이 찾기에 후미진 곳이라 처음 6-7개월 동안 하루 한,두팀 손님정도밖에 오지 않아 저녁엔 이자까야 일을 하고 오전엔 신문을 돌리거나 주유소 일 등 각종 알바를 하여서 잠 잘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1대1 밀착 접객으로 대중들에게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해 지금의 ‘하시’가 만들어졌고 요식업계에 몸을 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강남1세대 이자까야 ‘하시’ 족발·된장으로 유명한 ‘오목집’ 김슬기 대표는 22살 때 ‘하시’ 첫 1호점을 시작해 논현동 본점과 청담점 압구정점을 오픈해 3개 매장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이후 그는 5년 동안 일식에 매진하여 1년간 휴식기를 취하고 한국인이 좋아하고 질리지 않는 한식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한국인의 술 문화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한 한식에서의 필수 아이템인 소주와 맥주를 함께 팔수 있는 것을 생각해 처음에는 양대창을 아이템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당시 티비프로그램에서 양대창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 곱창을 접고 그 당시 콜라겐이 다량 함류된 족발에 관심을 갖게 된다. 품질 좋은 생족을 받아 매일 직접 삶아 내놓는 온족발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단짠단짠 스타일에 맞춰 달짝지근하면서도 쫀득한 껍질이 일품이다. 냄새가 나지 않는 족발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해물냄비도 인기메뉴다. 술을 좋아하시는 주당가들은 이 해물냄비의 매력에 빠져서 더욱이 오목집을 재방문한다고 한다. 또한 시크릿푸드로 통하는 ‘한우된장전골’는 먹어본 사람은 다시 찾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삼겹살 매니아들도 인정하는 집 분위기에 취해 술을 찾게 되는 ‘교대 이층집’ 오목집 런칭 후 1년뒤 2013년도 말 2014년도에 고깃집으로는 파격적인 위치인 1층이 아닌 2층에 자리잡아 성공적인 런칭을 하게 된다. 한국인의 입맛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삼겹살을 아이템으로 통삼겹과 통목살 꽃삼겹을 대표메뉴로 내놓고 있다. 더불어 삼겹살과 어우릴만한 사이드 아이템을 곁들여 Win-Win 효과를 보고 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김 대표는 영화 미술감독과 함께 인테리어 작업을 하여 ㄱ자와 ㄷ자 형태의 테이블배치로 손님들이 자리 구분 없이 어우러져 고기와 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조용하고 자기만의 공간을 좋아하시는 분들께서는 불편하겠지만 서로 가까이에 있어 손님들도 더욱이 친근감을 느끼며 딴 일반 고기집 과는 색달라 더욱이 대화소통이 잘 되는 분이 많다고 한다. 교대 1호점의 성공으로 광화문에 2호점을 오픈하며 2017년 3월에 여의도점을 성황리에 열어 직장인들의 발길을 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교대 이층집 맞은편에 위치한 편안한 분위기의 양념돼지갈비 ‘교대갈비집’ 거꾸로 생각하는 남다른 마인드가 성공의 지름길 2015년도에 교대 이층집을 손님을 분산시키기위한 아이템으로 생각한 것이 부담 없는 가격의 양념돼지갈비이다. 김 대표는 다른 고깃집과는 달리 점심영업도 꼭 필요하다는 철칙으로 인근직장인의 타깃으로 삼아 선보이고 있는 소고기국밥과 함흥냉면도 점심메뉴로 선보이고 있다. 트렌드에 민감한 2030세대와는 달리 34살의 김 대표는 유행을 따라가고 민감하지 않으며 제일 먼저 음식점의 음식 맛도 기본이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냄새가 나고 편안해야 한다는 사람중심의 경영을 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고객님이 첫 번째지만 직원들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 대표. 현재 120명의 직원을 계약직 없이 정직원으로 채용해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해 복리후생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직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며 무엇보다 “자기 울타리 안에 있는 직원들을 많이 챙기고 제 가족처럼 신경 쓴다”는 말을 전했다. 또한 일년에 한두달은 전국방방곡곡 점장과 주방장과 함께 같이 알려진 맛집부터 알기 힘든 맛집까지 탐방하여 요식업 아이템을 찾고 있다. 김 대표는 “음식은 디자인과 달리 창조적인 색다른 음식을 발굴할 순 없지만 갖추어진 음식에 구색을 덧붙여서 접목시킨 음식을 아이템으로 내놓고 있다”며 “이것이 win-win전략으로 성공의 발검음의 발판이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전했다. [1017]
    • 맛집탐방
    2017-06-26
  • 김성수 소람한방병원 한방대표원장 / 한의학 박사
    김성수 박사는 『유방암, 당신의 방심을 노린다』, 『고맙습니다. 꽃으로 살게 해주셔서』, 『통합 암치료, 12주 면역요법』등의 저서를 냈으며 공중파 방송에 출연해 전문가로서 암 치료와 예방에 관한 전문지식을 설파한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암 환자들의 희망 김성수 박사를 만나 심층취재 해 보았다. _강성은 기자 여성암센터의 캡틴 김성수 한의학 박사 생후 10개월 소아마비를 앓았던 김성수 박사는 지체장애 2급을 판정받아 보조기를 쓰게 되었다. 어린 김 박사를 위해 유명하다는 의사는 모두 수소문해 서울까지 침을 맞으러 다녔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김 박사는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자꾸만 작아졌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날이 잦아졌다. 뜻하지 않은 장애 탓에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로 자랐다. 김 박사는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공학박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결정적으로 한의사의 길을 가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재학 중 경희대학교 의료진이 침술마취로 맹장수술을 행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한의학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이후부터다. 한의학으로 저는 다리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만난 현실은 그를 실망시켰다. 한번 손상된 신경은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 그때 김 박사는 한의사의 길을 택한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에서 내 역할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봉사 동아리를 통해 타인의 병을 고치며 환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는 장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의료인으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현대인의 친밀한 적 암세포 김 박사의 외삼촌이 암선고로 세상과 이별하게 됐고 연이어 장인어른이 위암선고 3기를 판정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김 박사는 암 치료연구에 매진하게 되었다. 전문서적을 밤낮으로 연구하고 관련학회에 참가하는 등 난치병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저명한 교수들도 암이 쉽지 않다고 했을 때 김 박사는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의료인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일까. 환자의 옆에 최후의 한사람이 남아 병간호를 한다면 그게 누가 되었건 간에 주치의고 명의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한의사이지만 양학과 한학은 상호협력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필요한 부분을 접목한 통합치료가 필요합니다. 통합치료의 기본 철학은 환자를 위해 환자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유전 등의 요인으로 한국인의 36%이상이 고통 받고 있는 지금. 소람한방병원은 의료진들의 통합적 진료와 처방으로 90%를 능가하는 치료율을 보이고 있다. 오픈마인드가 중요합니다. 외골수가 되는 것은 아주 위험한일입니다. 환자들을 위해 시기별로 항암치료와 한의학 치료를 조절해 처방합니다.” 의료진의 확고한 철학은 때에 따라서 환자들에게 믿음을 심어줄 수 있지만 환자에게 절대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다. 김성수 박사는 ‘환자의 가이드가 되는 것이 한의사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양방학과 한방학의 다리역할을 해줄 수 있는 의료통합센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의료통합센터는 환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방향안내자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양·한방 진료를 동시에 할 수 있고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융합 의학기구입니다. 실제로 진료를 하다보면 변수가 많아 세세한 상담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모습이 아직까지 구체화 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조직하고 있습니다. 수술과 비 수술, 양학과 한학의 경계를 가르지 않고 환자의 회복을 위해 통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이 완성되어가고 있습니다.” 자율적으로 양·한방 두 분야의 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한국적인 의학의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소람통합의학센터의 내일이 기대된다. 전 세계의 환자들과 환자 가족들의 희망으로 자리잡길 바란다. 끝으로 김 박사는 암 환자와 함께 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환자들에게는 가족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서로 치유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환자가 포기하지 않고 가족들이 투병을 같이 해줄 수 있는 힘이 되 줄 수 있다면 극복가능 합니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소람 한방병원의 임직원들은 모두 환자들의 행복과 회복을 위해 오늘도 힘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든든한 대들보 같은 김성수 대표원장이 있다. [1017]
    • 메디컬
    2017-06-26
  • 이강업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 사진작가
    건축물을 보며 사람의 생각과 가치를 읽어낼 수 있다는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이강업 교수는 정년퇴임 후 팔당에 별채를 짓고 사진작가로서의 삶에 푹 빠져있다. 현직에서 본인 맡은 바 최선을 다 한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유를 갖고 제 2의 삶을 즐기고 있는 사진작가 이강업 교수를 만나보았다. _강성은 기자 이강업 교수의 건축학개론 이강업 교수의 원래 꿈은 영화와 영상 미디어 관련 분야였다. 60년대 말 대학진학 후 한국 분위기가 국토발전으로 치우치는 양상이었고 이 교수의 부친이 건축학을 강력히 추천했기에 이 교수는 건축학도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영상학에 미련이 있었고 이 교수는 전과를 고민했으나 대학원까지 마치라는 부친의 말씀에 이 교수는 건축공부를 계속하게 되었다. 그렇게 영상학에 대한 꿈을 접고 건축학에 발을 들였다. 현직에 있을 당시 설계와 건축 역사 강의를 했던 이강업 교수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그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현장답사를 위해 전 세계 방방곡곡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어 강의 때 활용했다. 건축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현장을 보지 않고서는 이야기하지 말라는 원칙을 고수한 것이다. 강의 하나 당 몇 백 개의 사진을 활용했다. “아마도 영상학에 미련이 남았던 것이 사진을 찍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건축물은 계절에 따라 다르고 기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 그의 지론. 건축물은 겉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라고 한다. 건축 역사는 사회적 문화를 반영한 인간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종교를 형상화한 장소가 교회와 절처럼 인간 가치관이 실체물로써 드러난 것이 바로 건축물이다. “건축을 보면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130년이란 시간을 들여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한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며 느낄 수 있듯이 하나의 건축물을 완공하는 작업이란 숭고한 인간의 활동인 것이다. 바르셀로나 하면 가우디의 성당을 빼놓을 수 없듯이 이렇게 하나의 건축물이 랜드마크가 되는 일이란 쉽지 않은 것이다. 건축을 공부할 때 역사와 문화를 떼놓을 수 없다. 건축물에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베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스페인은 한 때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었다. 이에 가우디의 건축물도 이슬람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는 가우디의 출생이 스페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교수는 건축 실무에도 많은 기여를 한 바 있다. 98년도 완공된 한양대학교 도서관은 당해 연도 문화대상을 수상했으며 한양대학교 중앙에 세워졌다. 은퇴 후에 오는 것들 별채는 어머니를 위해 지은 집이다. 20년 전 어머니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며 지나가다가 보았던 집터를 보고 마음에 들어 단번에 계약을 했고 어머니께 집을 지어 드렸다. 별채에서 10여년간 생활하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지금은 이 교수가 은퇴 후의 삶을 보내고 있다. “은퇴 후에 점점 겸손해 집니다. 어떻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느냐 이것이 핵심입니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건축에 우리는 순응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건축물들도 사실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죠.” 은퇴 후에 자연을 관조하며 이강업 교수는 자연의 위대함에 대해 새삼 더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또한 이 교수는 현직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교육자로서의 길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건축가가 되는 데 지름길은 없습니다. 우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인문학적 소양도 필요하죠”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며 건축물에서 비례, 규율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빛을 어떻게 들어오게 하느냐를 고민하는 것에서 고딕성당이 건설되었듯 작은 고민에서 건축물의 기초 실마리가 풀린다고 했다. 제 2의 알베르티 이 교수는 여러 가지 상황을 복합적으로 이해해 하나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했다. 쉽게 이야기해서 지름길은 없기 때문에 꾸준한 공부를 통한 감각을 익힐 것을 강조했다. 르네상스 초기 이탈리아의 건축가 알베르티는 건축가는 천재여야 한다고 했다. 알베르티 역시 천재였다. 소년 시절부터 문학ㆍ음악ㆍ미술ㆍ수학ㆍ물리 또한 체육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에 뛰어난 능력을 나타낸 천재였다. 그의 이론은 옛 고전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였는데, 그의 설계는 뒤에 바로크 건축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 이 교수도 같은 생각을 한다. 알베르티처럼 모두가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날 수는 없지만 건축가는 사회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지식을 습득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강업의 프레임 인간을 이해하는 것. 긍정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답은 사방에 깔려 있지만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다. 건축학에 열정을 가지고 이론만이 아닌 실제를 위한 연구를 중요시 한다면 한국 건축계의 미래를 밝게 진단할 수 있다. 화분하나를 놓고서 인생의 의미를 관조하는 사람 이강업. 교수로서의 책임을 잠시 내려놓은 그와의 만남은 세상을 달리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그는 2016년 5월 예술의 전당에서 관조라는 주제로 사진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앞으로도 전시회에서 그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1017]
    • 문화
    2017-06-26
  • “연 1억원 기탁, 무료 법률 서비스 100회 달성이 제 목표에요!”
    변호사 2만명 시대.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사회공헌 활동에 뜻을 두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변호사가 있어 화제다.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사랑의 열매, 착한 가게에 가입해 수익금 일부를 기탁하고 있는 이덕규 변호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에 주간인물은 나눔을 실천하는 그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좋은 변호사의 길을 고민하는 사람 “‘힘차게 일하고 넉넉하게 베풀자!’ 저희 모토처럼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서비스를 더욱 늘려나가고 싶어요. 더불어 실력으로 인정받는 법률사무소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 환하게 웃는 이덕규 변호사. 그는 탄탄한 실력만큼이나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변호사다. 수원 영통구에서 자신의 법률 사무소를 운영하며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연 50여회의 무료 법률서비스를 하고 있다. 또한 사랑의 열매, 착한 가게에 가입해 수익금의 일부를 지역사회 취약계층을 위해 기탁하고 있다. 날로 치열해지는 법률 시장에서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가 이렇게 사회공헌 활동에 뜻을 두게 된 건 사법연수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덕규 변호사의 고향은 경기 화성. 인근의 수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일찍이 명석한 두뇌로 주변의 관심을 받았던 그는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인 법조인의 길을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그도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한때 어려운 고비를 넘기도 했다. 그때 옆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준 것이 바로 지금의 아내다. “재학 중에 사시를 준비했어요. 처음에는 제 방식대로 공부했는데, 나중에는 신림동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며 더욱 열심히 시험을 준비를 했죠. 그때 곁에서 힘이 되어준 아내의 역할이 참 컸어요. 아내를 만나고 마음이 편안해져서 공부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3번의 낙방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회고하면 굳은 표정이 나올 법도 하건만 그의 표정은 오히려 더 환했다. 역경은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지론. “예전에는 완벽한 변호사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굳이 완벽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제 모습을 존중하려고 노력해요. 부족함이 있더라도, 그것이 사회를 더욱 좋게 만든데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경은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힘이죠. 이젠 완벽하기 보단 늘 좋은 변호사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고, 또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합격의 기쁨을 안고 들어간 사법연수원. 그곳에서 그는 봉사활동의 첫 경험을 얻었다. “사법연수원에서 지체장애인들의 보호시설로 첫 봉사활동을 갔습니다. 지체장애인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마음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부끄럽지만, 그때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독실한 신앙생활의 삶의 에너지 재개발건축, 건축인허가, 토지수용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연 1억 원 기탁, 100회 무료 법률서비스 달성’이 나눔의 목표 신사명변의 자세로 매진할 것 그렇게 그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변호사로 본격적인 시작을 했다. 다양한 소송을 두루 맡으며 실력은 인정받은 그는 2012년에 자신의 법률 사무소를 개업했다. “대표변호사가 되고나니 겪는 고충이 크더라고요. 일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늘 고민을 해야 하니까요. 그때 주변의 권위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시간을 잘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고, 그동안 당연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모두 감사하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를 딛고 그는 자신의 주특기인 재개발건축, 건축인허가, 토지수용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변호사 사무실을 키워나갔다. 매사 최선을 다하는 그의 열정적인 자세에 만족한 의뢰인들의 소개가 이어지면서 성장세를 계속 이어나갔다. 더불어 그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기 시작했다. 미혼모, 노숙자, 미성년자들 같은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 것. “노숙자분들은 억울하게 지명수배자로 지명되거나 명의가 도용돼 범죄자로 몰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때 변호사의 작은 법률 조력으로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가 있죠. 이렇듯 소외된 이웃들에게 변호사로 도움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이 변호사. 하지만 그의 나눔에 대한 목표는 크다. “개인적으로 1년에 1억 원을 기부하고, 무료 법률서비스 100회를 달성하는 것이 제 목표에요. 이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을 향한 따뜻한 나눔의 손길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에게 ‘좋은 변호사의 길’에 대해 묻자 그는 평소 자신의 소신을 말했다. “저는 변호사는 신사명변(愼思明辨)의 자세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해요. 신중히 생각하되, 분명하게 사리를 분별하라는 것. 그것이 좋은 변호사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진정성 있는 태도로 의뢰인에게 먼저 다가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언제나 좋은 변호사의 길에 대해 고민하는 이덕규 변호사.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그가 만들어갈 새로운 내일이 기대된다. [1017]
    • 라이프
    2017-06-26
  • 진주의 자랑 ‘땡초김밥’ - 가맹사업 확장으로 전국에서 맛볼 수 있어
    진주가 사랑하고 자랑하는 별미, 땡초김밥. 16년 동안 한결같은 맛을 통해 진주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땡초김밥의 비결이 궁금하다. _김정은 기자 땡초김밥은 지난 2003년 본점인 진주 대안동을 시작으로 총 19개의 가맹점이 활발한 영업을 하고 있다. 진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정평 난 만큼 가맹문의가 지속적으로 들어올텐데 타 지역에서 쉽게 맛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업적인 이윤 추구에 목적을 두었다면 가맹점을 우후죽순으로 개설할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조리과정은 물론이고 매장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게 본사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본점을 운영하면서 먼 지역의 체인점까지 관리하고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이 아직 아니라고 판단해 개설하고 있지 않았지요. 최근에야 부산과 서울에 지사를 두고 전국으로 가맹사업을 진출시킬 준비를 마쳤습니다.” “30여 차례의 조리과정을 거쳐 신 메뉴를 개발한 후 6개월 이상 소비자들의 선호도를 파악해 엄선된 메뉴만 출시했다”는 최 대표. 총 55가지 메뉴를 개발해 가맹점의 매출 다각화에 힘쓰고 있다. ‘제대로 된 기반을 잡지 않으면 언젠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경영이념과 음식에 정성을 쏟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철학을 통해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가맹점만 개설하며 책임운영을 해왔기에 경기불황에도 폐점한 곳 없이 ‘땡초김밥’은 진주의 명물로 꾸준히 자리 잡고 있다. 16년 동안 한결같은 맛을 통해 진주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땡초김밥의 시작이 궁금해졌다. “2001년 진주에서 5평 남짓한 점포에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상가밀집지역이어서 상인들이 주 고객층이었어요. 바쁜 가운데 식사대용으로 간단히 먹을 수 있을 메뉴를 찾다보니 김밥을 택하게 되었지요.” 이후 점차 단골손님들이 늘어났고, 그는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김밥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맵기만한 음식은 혀와 위에 자극을 주고 부담을 줍니다. 위를 보호할 수 있는 재료의 배합으로 서서히 매운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음식을 개발하고자 노력했습니다.” 1년 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탄생된 땡초김밥의 ‘특별소스’는 위를 보호할 수 있는 4가지의 한약성분을 첨가하고, 국내산 재료만 고집해 만든다. 모든 재료를 직접 준비하는 것은 기본, 특유의 감칠맛을 더한 중독성 강한 맛으로 진주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잡으며 2003년 ‘땡초’를 상표등록 시작으로 6개의 상표등록증을 출원하게 된다. “전문기술 없이 개인이 외식업을 시작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또한 일부 대형 프랜차이즈의 경우 높은 로열티로 매출이 높아도 수익률이 맞지 않아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보다 성공적인 창업을 위해서는 다양한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꼼꼼히 따져보고 차별성과 경쟁력을 갖춘 아이템을 선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자본으로 장사를 시작하는 자영업자를 위해 교육과 마케팅 지원부터 상권분석에 이르기까지 함께하고 있는 ‘땡초김밥’. 점주의 환경을 충분히 고려해 가맹사업을 도와야 하며, 점주들 역시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도 장사를 쉽게 생각하거나 자신감만 가지고 시작해서는 안된다고 최 대표는 강조했다. “저도 맨주먹으로 사회에 뛰어든 사람으로서 사업에 실패한 경험도 있고, 높은 이자를 감당해가며 힘든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업주들에게 현실적인 대안과 노하우를 전수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 대표는 주방 전문 인력비를 절감하기 위해 점주가 직접 조리할 수 있는 메뉴얼과 경험부족으로 발생되는 시행착오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가맹점의 마진 부담을 덜어주고자 높은 로열티를 없애고 초기 투자비 외 부대비용이 들지 않는 방안을 마련했다. 저렴한 가격이지만 그 가격에 그치는 서비스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최 대표. 우수한 품질의 재료를 하루 동안 판매할 수 있는 양만 공급하고 소비하며 바른 먹거리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또한 소비자의 입맛과 선진화된 소비문화에 발맞춰 신메뉴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포화상태인 외식사업에서 지역의 성격과 특색, 환경을 고려해 메뉴를 구성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어렵습니다.” 타지역에서도 ‘땡초김밥’을 찾는 고객들이 점차 늘고 있어 흐뭇하고 기쁘다는 최석효 대표. 탄탄한 내실과 상생경영을 실천하는 ‘땡초김밥’이 진주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성장하길 주간인물에서 응원한다. [1016]
    • 맛집탐방
    2017-06-22
  • 도쿄키친 ‘단디도시락’-메뉴 하나하나에 깃든 정성과 노력, 고객들의 사랑이 되어 돌아오다
    일본 여행객들의 먹거리 목록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도시락’. ‘해외여행까지 가서 웬 도시락?’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도시락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다양한 종류와 높은 퀄리티로 여행객과 현지인 모두에게 인기 만점 메뉴로 꼽힌다. 편의점은 물론 일본의 거리 상가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데 지역마다 가게마다 종류도 상이하고 가격과 맛의 가성비 역시 상당히 높다. 최근 한국에서도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의 수요 증가로 몇 년 사이 도시락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편의점, 프랜차이즈 도시락 전문점, 수제 도시락 전문점까지 접할 수 있는 곳 역시 많아졌는데 특히 수제 도시락은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한 맞춤형으로 제작되어 찾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주간인물은 수제 도시락이라는 인식조차 희미하던 6년 전부터 부산에서 신선하고 맛있는 도시락을 선보이고 있는 ‘도쿄키친’을 찾았다. _정주연 기자 ‘도쿄키친’을 들어서자 아기자기한 도시락 사진들이 가득한 일본 지하철 노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도쿄의 동네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촬영한 것이라고. 연일 밀려드는 주문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상민 대표, 이엽 부대표와 도쿄키친만의 도시락 이야기를 시작해보았다. 일본에서 시작된 도시락 사랑 도쿄키친의 시작 초등학교 시절 서울랜드에서 스파게티를 처음 맛보고 요리사를 꿈꿨던 이상민 대표는 조리학과로 대학을 진학했다. 일본을 자주 오가며 ‘한식을 일본 음식처럼 정갈하게 선보일 수 없을까’ 늘 고민하던 그는 일본에서 한식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제대 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설거지부터 시작해 한식캐주얼주점으로 스카우트되어 주방장을 맡고 메뉴 개발을 하는 위치에 오르기까지 6년 여간 여러 일본 식당과 일본 내 한식당에서 경력을 쌓았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만의 요리를 선보이고자 했을 때 불현 ‘도시락’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도쿄에서 가장 많이 먹었던 게 뭔가 생각해보니 바로 ‘도시락’이었어요.” 유학시절부터 지역별 도시락 맛집들을 탐방했던 그는 힘든 유학생활 든든한 한 끼를 책임져준 도시락을 한국에서도 선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 도쿄키친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수제 도시락에 대한 국내 인식은 높지 않았다. 주택가에 5평 남짓한 가게를 열었을 때만 하더라도 지인들은 그에게 우려의 목소리를 내비쳤다. 그런데 오픈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쿄키친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처음에는 매장과 테이크아웃으로 시작했지만 대기 손님의 증가로 예약 주문으로 운영방식을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도쿄키친의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일까. 누구나 돈의 가치를 느끼며 먹을 수 있는 정갈한 한 끼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고 맛있는 한식 도시락부터 도쿄에서 맛볼 수 있는 돈부리 벤또와 돈가스류 도시락까지. 얼핏 평범해 보이는 메뉴인데 가만히 도시락 칸칸이 담긴 음식들을 살펴보면 도쿄키친의 인기 비결을 찾을 수 있다. 일본에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을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개발한 메뉴에 천연 조미료를 사용한 수제소스로 정갈하면서도 깔끔한 맛을 더하고, 일본 특유의 플레이팅 감성까지 입혔다. 그런데 도쿄키친의 도시락에는 또 한 가지 숨은 비밀이 있다. “고객들이 6,500원 도시락을 먹었을 때 하나라도 버리는 메뉴가 있다면 비싸고 가치가 없겠지만 남김없이 맛있게 다 드신다면 그 도시락은 그만큼의 가치와 값어치를 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도시락 한 칸 한 칸에 담기는 밑반찬 하나도 허투루 담아내지 않았던 그의 정성은 어느새 고객들 사이에 ‘어느 것 하나 버릴게 없는 도시락’이라는 평을 이끌어내며 맛있게 그리고 알차게 즐길 수 있는 도시락으로 자리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함과 정갈함이 더해진 한식의 새로운 변화와 도쿄에서 수년간 쌓아온 경험에서 비롯된 요리 메뉴는 도쿄키친만의 가치를 만들어냈다. ‘단디해라, 매사 단디하자’ 도쿄키친의 ‘단디(Dandy)도시락’ 얼마 전 부산시와 고용노동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소셜 프랜차이즈 창업지원사업’에 공모해 선정된 도쿄키친은 (재)부산디자인센터의 지원 아래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간 무수한 프랜차이즈 제안이 있었지만 창업을 하려는 이들의 간절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조금 더 안정화된 이후에 시작하고 싶어 미뤄왔던 것. “그동안 메뉴 안정화와 홍보, 마케팅을 중심으로 도쿄키친의 기틀을 잡는데 집중했어요. 이제는 조금 더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분들에게 도쿄키친의 ‘단디도시락’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3년 전 호주 유학생활을 접고 들어온 동생 이엽 부대표는 이상민 대표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사업 계획서에는 도쿄키친이 그간 걸어온 길부터 향후 비전과 발전 가능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두 형제의 도쿄키친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단디(Dandy)도시락이라는 브랜드로 가을 즈음 출시 예정인데 이름부터 왠지 정감이 간다. “고향이 부산인데 외할머니께서 ‘단디해라, 단디하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셨어요. 영어로 댄디(Dandy)라는 이중적 의미도 있고 앞으로도 제대로 열심히 해보자는 의지를 담아 이렇게 브랜드명을 짓게 되었어요.” 안팎으로 도쿄키친의 기틀의 잡고 안정화 시키는데 노력해 온 두 형제는 ‘단디도시락’으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었다.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우는 개념의 도시락 시대는 지나갔다. 굳이 맛집에 가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편하게 하지만 퀄리티 높은 요리로 채워진 수제 도시락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동네별로 소비자층도 다양하고 선호하는 음식도 각양각색이다. 도쿄키친의 ‘단디도시락’은 지역별로 철저한 상권 분석을 통해 그 지역만의 도시락 메뉴와 서비스를 선보여 ‘우리동네 도시락집’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맛집 탐방 목록에 단디도시락의 지역별 시그니처 메뉴가 등장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1016]
    • 맛집탐방
    2017-06-19
  • 고객가치를 창조하는 회사-(주)세종경영컨설팅
    부산시는 ‘부산경제진흥원’과 함께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성장성, 경제기여도, 동남권 중추기능 수행역량 등을 평가해 ‘부산 비즈니스서비스 강소기업’ 15개사를 선정했다. 그중 (주)세종경영컨설팅은 전문서비스 컨설팅분야 강소기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부산을 대표하는 컨설팅 회사로서 면모를 뽐낸 (주)세종경영컨설팅은 글로벌시대에 맞는 수준 높은 컨설팅으로 창업에서부터 경영관리, 전직지원 서비스까지 제공하며 우수기업으로서의 역량을 입증하고 있다. _김정은 기자 부산시 등 정부기관 주요 창업 관련 사업 참여 초우량 종합컨설팅회사로 거듭 (주)세종경영컨설팅은 ‘삼덕통상’, ‘신라금속’을 비롯해 ‘경덕산업’, ‘이화기술단’, ‘세미정공’ 등 부산, 경남 소재의 굵직하 중소기업체를 대상으로 컨설팅을 제공한바 있다. 중소기업청, 부산시 등 정부기관에서 주관하는 컨설팅 및 창업교육 용역을 발주 받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또한 외국계회사인 ‘아데코 코리아’ 및 대구교육청 ISO컨설팅 등 부산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기업 창업에서부터 창업, 전직지원까지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컨설팅을 제공해 클라이언트가 만족하는 성과를 산출해내는 (주)세종경영컨설팅의 한우수 대표. 그는 부산가톨릭대학 경영학부 겸임교수로 30여 년간 근무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수여한 후 ‘한국창업경영컨설팅협회’ 회장, ‘해운대구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 센터장, ‘포스코 인재개발원’수석 컨설턴트를 맡으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전문 컨설턴트다. “기업의 경영 실태를 조사하고 애로사항을 정확하게 진단한 후 구체적인 개선방법을 제안하는게 컨설턴트의 역할입니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산업현장에서 축적한 노하우와 전 분야를 통섭할 수 있는 전문지식, 그리고 봉사정신과 도덕성을 갖춘 컨설팅 회사를 선정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세종경영컨설팅은 박사학위와 경영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한 15명의 전문 컨설턴트가 분야별로 포진되어 기업의 생산과 마케팅, 재무까지 종합적인 경영 컨설팅을 지원해 기업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재취업. 창업 등 전직지원 컨설팅 분야 선두 전국 대학 및 정부기관 창업 교육 컨설팅 부산시는 창업 전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청년창업가에 대해 청년 창업 교육 정책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지원하고 있다. 이에 (주)세종경영컨설팅은 부산대를 비롯해 전국 대학의 창업 교육에 대한 용역을 발주받아 청년들의 성공창업을 위해 창업핵심역량을 강화 하는데 열정을 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취업을 생각하거나 창업을 계획하고 있는 은퇴자를 대상으로 ‘(사)해피시니어’를 만들어 전직지원 컨설팅을 제공해 중장년 구직자들에게 인생 2막을 열어주고자 계획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기’에서 정직 지원 컨설팅 용역을 받아 진행했고, 연간 400명의 퇴직자가 쏟아지는 ‘포스코’를 대상으로 4년째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을 만큼 영남지역 컨설팅 회사 중 전직지원 컨설팅 분야에서 가장 잘 특화된 회사로 정평이 나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에 대한 재취업 및 창업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는 만큼 전직지원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아직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에 그들의 전공을 살려 발전할 수 있도록 창업이나 재취업의 분야에서 도움을 드리고자 주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퇴직 후 자신들의 능력을 노후에도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앞장서고,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인재양성에도 박차를 가하겠다는 한우수 대표. 그의 따뜻한 행보에 주간인물은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해운대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 참신한 아이디어와 영정을 가진 1인 창조기업 발굴 창업기업의 안정적 성장 및 일자리창출 (주)세종경영컨설팅은 현재 ‘해운대구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를 운영 중에 있다.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란 창의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상업을 영위하는 1인 기업을 대상으로 시설과 장소를 제공하고, 1인 창조기업의 육성에 필요한 각종 경영지원 서비스를 제공해 (예비)창업자가 창업 초기에 겪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게 지원하는 비즈니스지원센터를 말한다. 2011년 해운대구청에서 건립한 일자리종합센터인 ‘행복나눔센터’를 2013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1인창조기업비지니스센터’로 지정받아 (주)세종경영컨설팅이 센터를 운영하면서 창업자의 성공사업을 위해 창업 아이템을 진단하고 기업 활동 맞춤형 컨설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해운대구 1인 창조 비즈니스센터’는 현재까지 90개의 창업기업을 배출하며 3년 연속 최우수 S등급을 받은 바 있다. •1999 (주)세종경영컨설팅 설립 •중소기업상담회사등록(중기청) •삼성전기 전직지원컨설팅 •대구광역시 교육청 ISO컨설팅 •노동부 사회적기업 지정기관 •부산시 의료관광컨설팅 수행 •전국소상공인대회 표창(중기청) •우수시니어운영기관 표창(중기청) •부산시 청년창업교육 4기운영 •소상공인창업학교 운영 •해운대구 1인 창조기업센터 운영 •POSCO인재창조원 컨설팅/교육 •부산시 웹 접근성 용역 •부산시 비즈니스서비스 강소기업인증 •통영농업기술센터 강소농교육 [1016]
    • 경제
    2017-06-19
  • 합리적이고 깨끗한 생활청소서비스-토털 홈케어 깨끗한 우리집
    현대사회는 복잡, 다양하게 변하면서 우리 주변에 많은 것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크고 작은 해약을 주면서 우리의 건강과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때문에 과거의 단순한 주거공간에서 탈피하여 좀 더 쾌적한 생활환경과 생활의 질을 높여주는 공간이 요구된다. 과거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아토피’라는 알레르기질환 또한 다양한 환경변화가 원인이 되어 나타난 질병 중 하나다. 보다 쾌적하고 깨끗한 실내 환경을 추구하는 가정이 많아지면서 이에 발맞춰 정직하고 성실한 서비스로 쾌적한 주거공간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는 깨끗한 우리집의 대표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_구아리 기자 평범한 직장인에서 기업대표로 재도약 세탁기, 에어컨, 냉장고 등 주로 가전청소를 맡아 쾌적하고 깨끗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김진한 대표는 창업 전에는 평범한 직장생활을 해왔다. 전자계열 직종에서 일을 해온 그는 퇴직 후, 본격적으로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친구와 함께 동업을 시작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좌절을 느낀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의 이력을 살리면서 시장성도 ‘홈케어 서비스’에 도전하며 재기했다. 창업 당시인 2012년에는 울산지역에 홈케어 서비스 업체는 2-3곳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포화상태에 도달했다고. 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김 대표는 각종 노하우를 쌓아왔고 지금은 소비자들에게 높은 만족감을 주며 재이용률이 높은 업체로 성장 중이다. “창업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을 보고 이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본적인 기술이나 제품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오히려 고객의 물건을 망가뜨리고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다보면 고객의 생각에는 ‘세탁기는 청소업체를 불러서 하면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 잡을 수도 있습니다. 새것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노후화된 기계를 다루는 것이기에 좀 더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고객에게 진실 된 서비스로 다가가는 것 고수압, 고스팀으로 세균박멸, 자외선 살균소독 김 대표에게 기억에 남는 일화에 대해서 묻자 2년 전, 고객의 집에서 119에 실려 갔던 경험을 떠올렸다. “일반가정의 세탁실이 꽤 좁은 편이거든요. 그날도 세탁기 분해청소를 하고 있다가 뒤를 돌아보는데 허리가 ‘삐끗’하더니 꼼짝을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119를 불렀죠. 지금 생각하면 아찔해요.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었고, 피로가 누적되다보니 허리 근육들이 놀라서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고객이 만족한 웃음을 보일 때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김 대표. 가장 뿌듯했던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에어컨청소를 하기위해 고객의 집에 방문했었는데 세탁기 이상현상에 대해서도 여쭤보시더라고요. 제가 아는 한에서 상세한 설명을 해드렸죠. 당시 안방 벽걸이 에어컨에도 잡음이 있어서 청소하면서 같이 고쳐드렸는데 아무래도 그런 부분을 좋게 봐주셨나봐요. 그 고객님이 울산최대커뮤니티에 저희 업체 후기 글을 길고 상세하게 적어서 올려주셨어요. 저도 몰랐는데, 나중에 다른 고객이 그 글을 보고 연락 주셨다고 말씀주시더라고요.(웃음)” 이처럼 깨끗한 우리집에서는 기술적인 부분은 기본, 고객에게 진실 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청소에 있어서도 남다른 노하우를 빼놓을 수 없다. 세탁기 청소 시에는 제품을 완전 분해해 기본 고압세척 및 스팀 살균소독. 자외선 살균소독을 통해 세균99.9%를 박멸한다. 깨끗하게 변신한 세탁기를 고객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 후 깨끗하게 변화된 세탁기에 대한 고객의 만족도도 굉장히 높은 수준이며, 이들의 입소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깨끗한 우리집을 찾고 있다. “세탁기는 2~3년 사용하신다면 세탁기 내부 회전통 안쪽과 고정통, 그리고 회전날개 아래쪽에 찌든 때와 이물질들이 계속 쌓이게 되는데 시중에서 팔고 있는 크리너로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습니다. 100%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세탁기 분해 청소 뿐 입니다.“ 요즘 가장 문의가 많은 에어컨 청소 또한 완전 분해하여 친환경 전문약품으로 3단계 약품처리 세척과정을 거친다. 울산지역을 대표하는 청소업체 쾌적하고 건강한 주거공간 모든 가정이 누리는 그날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깨끗한 우리집에서 김 대표가 주로 맡고 있는 것은 가전청소지만 그 외 생활청소(입주, 거주, 상가, 화재)와 인테리어(아파트, 상가, 샷시, 판넬공사)도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가전청소만으로 시작했는데, 이용해주시는 고객님들께서 생활청소와 인테리어 문의도 해주셔서 점점 확대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지인 혹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에게 일을 나눠주며 함께 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세 가지를 묶어 진정한 토털홈케어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홈케어 서비스 하면 깨끗한 우리집, 깨끗한 우리집하면 홈케어 서비스를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죠.(웃음)” 김 대표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시간을 내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가전청소를 주기적으로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비용을 받지 않고 나와요. 특히 아이들이 있는 집은 더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그래서 동사무소에 가서 어려운 이웃들 리스트를 받아 재능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봉사단체에도 가입해서 꾸준히 해보려고 합니다. 모든 가정이 쾌적하고 건강한 주거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웃음)” [1016]
    • 경제
    2017-06-19
  • 좀 더 체계적으로, 좀 더 집중적으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현대인의 건강을 책임지다
    노출의 계절이 다가오자 다이어트, 몸만들기를 결심한 이들이 많다. 운동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꼽으라면 본인의 '의지'가 아닐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강한 자극을 줄 피트니스 센터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신에게 꼭 맞는 센터를 찾는다면 운동을 보다 재밌게 하면서 효과를 최대로 끌어 올릴 수 있기 때문. 최근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신도시 지역에 400평 규모의 쾌적한 환경에 체계적인 시스템운영을 통해 회원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전문 피트니스 센터가 생겼다고 해서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_구아리 기자 현대인의 건강을 책임지다 운동량 UP,재미 UP, 지방은 DOWN 휘트니스 사관학교의 관장을 맡고 있는 이동빈 대표는 기계체조 선수로 활동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남다른 운동신경으로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가까이 해왔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권투, 격투기의 체육특기생으로 활약하며 대학에서는 스포츠 학을 전공했다. 그는 M-1 무에타이킥복싱 07년 미들급 우승, 2008년 올림피아(보디빌딩) 부산 -80kg 준우승을 비롯해 생활스포츠 보디빌딩 자격증, 스포츠마사지와 스포츠 테이핑, 카이로프랙틱과 스포츠 해부학, 운동 생리학, 스포츠 의학, 운동 역학, 스포츠 영양학 등을 수료했으며 대통령 경호팀 소속 출신 등의 이력을 가진 전문 스포츠인이다. ‘55kg 체급에서 시작해 피땀 나는 노력 끝에 1년 6개월 만에 2배의 체급까지 끌어올렸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강인한 정신력이 돋보였다. 운동을 하면서 오는 슬럼프 또한 운동을 통해 극복했다고 말하는 이 대표는 진정한 스포츠인의 면모를 가진 사람이다.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불필요한 생각을 지울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웃음)” 젊은 나이에 화려한 스포츠 이력을 가진 그가 휘트니스 사관학교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경기도 대형 피트니스 센터에서 트레이너로서 경력을 쌓고 군 전역 후 고향인 마산으로 내려와 자산동의 피트니스 센터에서 활약했다. ‘그 곳에서 만난 회원과의 인연으로 지금의 휘트니스 센터를 설립하게 되었다’는 그는 ‘자신이 가진 운동 노하우를 회원들에게 전문적으로 가르쳐 줄 수 있는 장을 마련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운동에 있어서 가지고 있는 철학은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운동하는 것’이며 이것이 그의 트레이닝 방식이기도 하다. “다 건강하자고 하는 운동 아니겠습니까. 불규칙한 현대인의 생활패턴을 균형 있는 삶으로 탈바꿈 할 수 있도록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400평 규모의 쾌적한 환경 제공 #헬스타그램, 이제는 운동을 해야 할 때! 휘트니스 사관학교는 대한 퍼스널 트레이닝 연맹(FISAF Korea. 피사프 코리아) 경남지부 직영을 맡고 있다. 피사프 코리아는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퍼스널 트레이닝' 이라는 개념을 정착시키고 1994년, 퍼스널 트레이닝의 전문적 교육을 최초로 시작한 단체다. 이처럼 전문 피트니스 헬스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휘트니스 사관학교에서는 일반헬스와 퍼스널 트레이닝(이하 PT)를 비롯해 요가, 필라테스, 댄스. 스피닝 등을 수강할 수 있다. 요가, 필라테스, 댄스. 스피닝 등의 수업을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눠 진행하여 회원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들을 수 있다. PT는 개인PT/세미PT/단체PT로 구분하며 바디펌프과정과 다이어트반도 따로 개설돼 있어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자랑한다. “개인PT는 트레이너의 집중적인 지도아래 디테일하게 진행합니다. 세미PT는 운동을 꾸준히 해 오신 분들을 위해 보다 전문적이고 역학적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단체PT는 다이어트를 위한 반으로 목표체중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헬스장의 경우 기구사용과 운동방법 등에 미숙해 등록하기 부담스러워하는 고객들이 많지만, 휘트니스 사관학교에서는 초보자의 경우 상담실 내에서 인바디(체성분검사) 측정을 통해 개인에 맞는 운동처방을 진단해주고, 이 대표를 비롯한 코치진이 직접 별도의 PT비용 없이 혼자서 운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지도해주는 것이 장점이다. “스트렝스(벌크업) 코치와 다이어트 코치 등 각 수업마다 전문 분야의 강사들이 지도해주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PT에 등록하지 않아도 다양한 코치진들이 운동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니 운동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시고 의지만 가지고 오시면 됩니다.(웃음)” 휘트니스 사관 ‘학교’ 라고 이름을 정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처음에는 본인의 이름을 따서 빈짐(Gym)이라고 지을까도 고민했지만 다양한 코치진아래 운동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는 특성을 살려 ‘학교’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이 대표는 “기존 회원들의 추천을 통해 상담을 원하는 회원이 많은 만큼, 단순히 몸의 외곽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체형교정과 근밸런스, 코어밸런스 등을 맞춰 아름다움과 건강 모두 가져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선수들을 위한 아낌없는 지원 부팅캠프(맞춤형 다이어트 합숙) 준비 중 휘트니스 사관학교가 위치한 마산 현동은 최근 들어 아파트단지가 속속 들어서며 신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마을과 뒷산을 바라보며 운동할 수 있는 쾌적한 입지조건 또한 이곳이 가지는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입지적 특성 때문인지 회원 상호간 친목과 단합이 활성화돼있어요. 운동을 마치고 나서도 모임을 통해 운동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시면서 서로 동기부여가 돼 주기도 하고요. 전반적으로 스포츠맨십을 가지고 계신 회원 분들이 많아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운동을 재밌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휘트니스 사관학교는 400평 규모의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선수들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선수들이 사용하는 모든 장비가 구비돼 있으며 선수들이 방문할 시 무료로 센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시합에 나가는 비용을 지원해주기도 한다고. 이 대표에게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 묻자 자신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곧 피트니스 센터 아래 6층에 부팅캠프로 문을 열 예정입니다. ‘부팅캠프’란 숙박과 식사가 제공되는 커리큘럼을 통해 특정한 목적(초고도비만, 예비신랑신부, 운동선수 등)을 가진 이들에게 단기간에 건강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입니다. 회원의 목적과 성향에 맞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건강한 다이어트를 위한 맞춤컨설팅과 밀착관리를 도와 줄 예정이라 저 또한 심혈을 기울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검증된 컨설턴트로서 거듭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최근 운동은 육체건강과 더불어 정신건강과 힐링을 증진시키는 요소입니다. 그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휘트니스 사관학교의 대표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건전한 피트니스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생활스포츠지도사 보디빌딩 자격증 •생활스포츠지도사 복싱 자격증 •퍼스널트레이너 자격증 •스포츠마사지/스포츠테이핑 •카이로프랙틱 •심폐소생술 일반과정 수료 •무에타이킥복싱 4단 •유도 2단 •운동생리학 수료 •스포츠해부학 수료 •운동역학 수료 •스포츠영양학 수료 •스포츠의학 수료 •요트조종/딩기조종/카약조종/윈드서핑 수료 •전) 부산 올림피아 보디빌딩 -80kg준우승 •전) M-1 무에타이킥복싱 07년 미들급 우승 •전) 인제대학교 스포츠의학팀소속 •kacep 대한운동사협회 학술세미나 발표 knee joint mobilization (무릎관절운동) [1016]
    • 라이프
    2017-06-19
  •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두 형제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유쾌한 공간
    대구의 명소 ‘김광석 거리’에는 청년들의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즐비한 가게들 중 대구 시민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 찾아올 정도로 핫한 곳이 있다. 멀리서 봐도 눈에 들어오는 초록색 건물에 창문 너머로 보이는 웃음 가득한 얼굴의 사람들. 거기에 눈과 입으로 즐기는 음식까지, ‘코레아경양식’을 찾아가보았다. _엄지현 기자 두 사람은 15년 전 젊음과 패기로 외식업계로 뛰어들었다. 막연히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점점 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어 그들의 꿈이 되었다고 말했다. “저희가 22살, 24살이었으니까 그 나이의 혈기로 시작했죠. 요리도 그때 배우기 시작해서 처음엔 많이 서툴렀습니다. 식사와 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가게였는데, 운영하는 방법이나 서비스 등 운영하면서 배운 점이 많아요. 점점 좋은 의미의 욕심도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코레아경양식은 저희의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요.” 형제인 두 대표는 처음에는 자주 다투기도 하고 의견 대립도 많았다고 말했다. “갈등을 겪었지만 어느 순간 서로의 단점을 맞춰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이니까 서로를 잘 아는 것도 저희가 가게를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특히 서로가 어떤 것을 잘하는지, 또 제가 잘 못하는 것은 동생이 잘하고, 동생이 어려워하는 점은 제가 잘 아니까 서로에게 좋은 역할을 하죠.” 이런 그들의 장점이 코레아경양식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동생인 허정영 대표가 직접 한 인테리어는 여성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콘크리트로 인더스트리얼 느낌이지만 곳곳에 세련된 소품들로 조화를 줬어요. 또 저희의 포토존은 의아하게도 화장실이에요. 화장실에 핑크빛 네온사인으로 포인트를 줬습니다. 다들 처음엔 제 인테리어 계획을 듣고 화장실에 갑자기 무슨 핑크냐며 말렸어요. 그때 형은 저에게 ‘너 자신의 감각을 믿고 해봐라’고 말해줬었죠. 지금은 화장실이 가장 붐빌 정도로 사랑받는 공간이 되었죠. 또 모르고 오신 분들도 화장실 문을 여시면서 감탄사를 내뱉으실 때 가장 뿌듯합니다.” 형인 허정우 대표의 장점은 그들의 요리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른 곳과는 차별화 된 코레아경양식만의 메뉴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예쁜 플레이팅이 사람들의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코레아경양식의 메뉴는 4가지에요. 가끔 손님들이 추천해달라고 하실 때마다 ‘4가지 메뉴 전부 저희가 사랑하는 메뉴라서 어느 것을 골라도 만족스러울 겁니다.’ 라고 말할 정도로 애정이 가득하죠. 그래도 그중 고르라고 하면 ‘치즈 불고기 필라프’입니다. 저희의 치즈 불고기 필라프는 양배추에 치즈와 함께 쌈처럼 싸먹으면 맛있습니다. 매번 손님들께 먹는 방법을 설명해드리는데, 이 과정에서 손님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좋죠. 저는 이렇듯 음식 하나에도 스토리가 담겼으면 해요. 손님들이 음식을 받고 항공샷(일어서서 음식을 위에서 촬영하는 방법)을 찍고 계신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허정우 대표는 “요즘에는 손님들의 눈이 예전보다 높아지셔서 맛만 좋아서는 가게가 잘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가게들이 오래가지 않고 금방 생겼다 금방 사라지는 것 같아요. 저희는 그래서 맛은 물론 눈과 귀와 마음까지 만족시키는 가게가 되려고 해요. 그게 저희 가게가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SNS를 통해 코레아경양식이 입소문을 타서 정말 많은 분들이 와주시는데 저희 음식을 먹기 위해 그 긴 시간을 기다려주신다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 손님에게서 힘을 많이 얻습니다.”라고 말했다. 함께 15년 동안 외식업을 하며 동고동락한 서로에게 한마디 했다. “매순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동생이 ‘원래 정상에 오르기 5분전이 제일 힘들더라, 조금만 참으면 정상이니 힘내자’라고 저에게 말해줘요. 저도 동생에게 이 말을 되돌려주고 싶습니다.” 동생인 허정영 대표도 “부족한 점 많은 동생을 형으로서 채워줘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진심이 꾹꾹 담긴 그들의 말이었다. 두 대표는 앞으로 ‘책임형 프랜차이즈 컨설팅’을 할 계획이라고. “저희가 시작할 때처럼 막연하게 준비가 안 된 채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저희가 조언을 해주기도 했는데, 실제로 잘 된 사례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가게를 프랜차이즈하면서 직접 운영방식이나 서비스 등 컨설팅해보고자 합니다. 그게 프랜차이즈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고, ‘다같이 잘 되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이나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들은 다같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꿈이라며 “일이 바빠져서 늦게 퇴근하고 힘들게 일하면서도 늘 밝은 직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메뉴개발에 큰 힘이 됐던 실장과 이처럼 열심히 하는 직원들이 코레아경양식을 통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또 앞으로 오픈할 2호점도 1호점만큼이나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했다. [1016]
    • 맛집탐방
    2017-06-19
  • “서울대 행정대학원은 지난 58년 동안 행정학 연구·교육 및 공직자 양성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구성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 특히 정부와 공공기관은 국민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해 늘 고민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은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설득하려고만 하기 보다는 쌍방향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할 때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진정한 소통을 위해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정부는 어떠한 방식으로 인터넷에 대한 정책을 만들어 내고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우지숙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언론학에 법학을 접목하여 대한민국의 미디어 정책분야의 세계화를 위해 힘쓰고 있었다. 그의 아름다운 융합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안연승 차장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역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은 1959년 설립된 행정학·정책학 교육과 연구의 요람입니다. 지난 58년 동안 행정학과 정책학 분야의 교수·연구요원을 배출하고 공직자를 양성하는 기관으로서 큰 역할을 해 왔고, 이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리더가 될 사람들에게 공공성의 중요성을 교육하는 것에도 중점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동 대학원을 졸업한 수많은 학생들이 학계, 국가기관, 공공기관, 언론기관, 기업 등의 연구자와 고위 관리자로서 종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적 마인드와 공적 책임 등에 대한 교육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기관에서 공공 커뮤니케이션 및 시민과 공적 기관의 소통 문제에 대한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소통의 매개가 되는 언론, 미디어, 인터넷 등 정보통신방송 매체에 대한 정책과 법제도 연구를 계속하고자 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학계 뿐 아니라 미디어/인터넷 기업, 시민단체, 법조계 분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하여 현안을 이해하고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를 계속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나라의 공공 커뮤니케이션과 시민과 정부 간 소통이 발전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비 서울대출신 첫 여교수! 우지숙 교수는 국내 최고의 고급 공무원 교육기관으로 정평이 나있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최초의 여교수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가 주목을 받았던 또 다른 이유는 비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행정당국에서는 신임교수 채용 시 3분의 1을 다른 대학 출신 교수로 채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현재도 서울대 교수의 대부분은 모교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 교수는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언론학 석·박사를, 그리고 뉴욕대학교에서 법학으로 학위(J.D.)를 받은 실력파 교수다. 언론학과 법학을 함께 전공한 보기 드문 학력에 더해 유연하게 열린 사고를 평가받는 우 교수는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도메인분쟁 패널리스트,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위원회 미디어다양성위원 등 대외활동도 왕성하다. 우 교수의 행정대학원 부임 후 14년이 지난 지금 여교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저 이후 여교수님은 한 분만 더 오셨습니다. 현재 28명의 교수 중 2명만이 여성입니다. 서울대학교 전체로 보아도 여교수의 비율은 15% 정도입니다. 그리고 여교수의 보직교수 비율도 매우 낮습니다. 의사결정과정에의 참여는 더욱 부족한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 교내 여교수회에서도 오랫동안 문제의식을 가져왔고, 그 결실로서 학내에 다양성위원회가 구성되어 여성 뿐 아니라 학내 소수자들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교수나 여성보직자의 비율에 가시적인 변화가 있기 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학생의 구성을 보면 이미 여학생들이 거의 절반에 달하고 학업성취나 여러 면에서 여학생들이 전혀 뒤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뛰어나기에 조금은 낙관적인 미래를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후배 여성들의 미래에는 장벽이 조금은 덜할 수 있도록 저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행정대학원 학생부원장으로서 교내에서의 세심한 역할 우지숙 교수가 교내에서 맡은 역할도 크다. 공기업정책학과장을 거쳐 현재 행정대학원의 첫 여성 부원장이자 행정학과장으로서 세심하게 학생들을 살피고 있다. 행정학과 학생들의 교육과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며 학생들의 수업이나 생활에 대한 상담 뿐 아니라 교수와 학생간, 그리고 학생들 서로간의 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도 우 교수의 일이다. 인터뷰 중에도 며칠 후에 있을 <행정학과의 밤> 행사를 학생들과 함께 준비한다며 분주한 모습이었다. 언론학을 전공하다가 법학을 함께 공부한 계기 지능정보화시대로 접어드는 오늘날 IT기술과 법을 아우르는 다 학문적 연구를 하는 학자들의 역할은 매우 크다. 우지숙 교수처럼 언론학 박사와 미국의 로스쿨 학위를 함께 갖고 있는 Ph.D./J.D.는 국내에 몇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 언론학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커뮤니케이션학으로 명성이 높은 펜실베니아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정치 커뮤니케이션 분야를 전공하였습니다. 공부하는 것이 힘들기는 했지만 새로운 도전이 즐거웠고 좋은 교수님들과 학우들을 만나서 유학을 떠난지 4년 만에 박사과정의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제가 정치보다는 정책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IT 정책 쪽으로 전공 분야를 바꾸었고 박사논문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 판례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법에 대해 좀 더 알아야 논문을 더 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로스쿨에 진학했고 로스쿨에서의 법 공부는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논증하는 것에 큰 흥미를 느낀다는 점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변호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고 오히려 로스쿨에 다니면서 저에게 학자의 길이 맞는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질문하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의뢰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 보다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스스로 찾아내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 교수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법과 커뮤니케이션·미디어·IT기술 등의 접목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면서 다 학문적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새 정부의 성공여부는 쌍방향 소통이 관건이다 공공 커뮤니케이션의 전문가인 우 교수에게 새 정부의 소통에 대한 평가나 제언을 부탁해 보았다. “아직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얼마 지나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여러 가지 행동이나 결정을 통해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주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한편으로는 매우 잘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도 잘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듭니다. 작년부터 여러 달에 걸쳐 우리 국민들이 광장에서, 또 인터넷 공간에서 국민들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지금은 국민의 생각이나 의견을 아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운 시기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국민들이 이렇게 상시적으로 자발적인 의견 표명을 하지 않을 것이고 국민들의 의견이 좀 더 다양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가 왔을 때 얼마나 국민의 의견을 잘 들으려고 노력할 것이냐, 즉 새 정부의 소통의 관건은 앞으로 국민을 얼마나 잘 설득할 것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들을 것이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달 후부터는 정부에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국민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알기 어려운 시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 때 정부가 얼마나 쌍방향적인 소통을 지속적으로 하려고 하느냐가 새 정부 성공의 관건이라 생각합니다.” 우 교수는 행정대학원 리더십센터 주관으로 '소통의 리더십'에 대한 연구를 향후 몇 년 동안 진행해 보려고 계획하고 있다. 열린 정부의 이상을 실현하는 열쇠인 정부 투명성과 정보공개 IT·미디어 정책 연구를 계속 할 것 우 교수는 또한 정부가 소통 그 자체에만 매몰되기 보다는 열린 정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포괄적인 노력을 계속해야만 성공한 정부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 되는 공공정보공개와 정부투명성 제고를 위한 노력 없이는 책임있는 정부가 되기도 어렵고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도 어려워 질 것이라고 한다. 쌍방향 소통을 위해서는 열린 정부를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선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 교수의 향후 연구 분야인 정보통신방송정책, 저작권과 개인정보보호제도, 인터넷 거버넌스 등 인터넷 정책과 법제도, 정책홍보, 시민성과 의사소통 역시 모두 정부투명성 및 열린 정부의 개념과 연계되어 진행되는 것들이다. “우리 사회의 소통 및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제반 분야의 문제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사회과학적 실증연구와 법제도적 연구를 융합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언론학과 법학을 함께 전공한 사람으로서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연구와 교육을 통해 우리나라의 공공 커뮤니케이션과 시민과 정부 간 소통이 발전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학력 •1985.3 - 1989.2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신문방송학과 학사 •1989.9 - 1996.5 펜실베니아 대학교(U. of Penn.) 언론학 석사/박사 MA/Ph.D in Communication, Annenberg School for Communication, University of Pennsylvania •1994.9 - 1997.5 뉴욕대학교(NYU) 로스쿨 JD Juris Doctor, New York University School of Law 자격 •미국 뉴욕주 변호사 (1998. 11 취득) 경력 및 활동 •2016. 12 - 현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과장/학생부원장 •2013. 12 - 2014. 12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공기업정책학과 학과장 •2012. 4 - 2013. 12 서울대학교 정보통신행정연구소 소장 •2001. 2 - 현재 WIPO 도메인네임 해결기구, 패널리스트 (조정인) •2016. 4 - 현재 기획재정부 정책성과평가 위원 •2017. 5 - 현재 언론인권센터 비상임이사 •2010. 3 - 2010. 12 방송통신위원회 미디어다양성위원회 위원 •2008. 12 - 2014.12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정보공개심의위원회 위원 •2013. 9 - 2014. 8 미래창조과학부 규제심사위원회 위원 •2001. 12 - 2004. 12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위원 •2003. 3 - 2005. 2 인터넷주소분쟁위원회, 조정위원 •2004. 5 - 2007. 2 정보통신부 자체평가위원회 평가위원 •2017. 3 -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연구이사 •2014. 1. 1 - 2014. 12 한국행정학회 법률행정특별위원회 위원 •2009. 3. 1 - 2010. 2 서울행정학회, 특별위원회 이사 •2007. 1. 1 - 2010. 12 저널 <Korean Journal of Policy Studies>, 책임편집위원 •2003. 5 - 2007. 2 저널 <행정논총> 편집위원 수상 경력 •2006. 11 2006 연세 미래 여성지도자 100인 선정 •2005. 5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 (ICA) 커뮤니케이션법/정책 분과 (Communication Law and Technology Division) 논문상 수상 •2001. 12 매일경제·조현정학술장학재단 공동 개최 제2회 매경비트학술상 최우수상 수상 •1994. 7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ICA) 정치커뮤니케이션 분과 (Political Communication Division) 논문상 수상 [1016]
    • 교육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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