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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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 욕지내생사(欲知來生事)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라”
    경남 창녕군 영취산에 위치한 청련사의 주지인 무영스님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잘 만들어진 길을 따라서 차를 몰고 조금 올라가니 청련사 사리탑과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를 하고 내리니 세월이 아주 오래된듯한 석불 하나가 반겨주듯 우뚝 서있다. 낯설지 않은 기분에 잠시 멍하니 서서 석불을 바라보다 절 입구로 들어서니 무영스님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신다. 스님과 차 한 잔을 마주하고 앉았다. _이진랑 ­­기자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아미타삼존여래좌상을 모신 청련사 청련사는 1863년에 창건된 사찰로 창녕 영취산 북녘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양산 통도사가 있는 곳도 영취산이다. 이러한 영취산과 청련사의 역사에 대해 무영스님이 설명해 주었다. “영취산은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던 독수리 모양의 산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영취산이란 이름은 바로 고려 지공 선사께서 이곳의 형상이 인도 영취산과 흡사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죠. 청련사는 원래 대흥사라는 이름으로 있던 암자를 이건하여 세웠다고 하며, 그때 현재의 아미타삼존여래좌상을 대흥사에서 옮겨 왔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무영스님은 계속해서 아미타삼존여래좌상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아미타삼존여래좌상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63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불상의 정확한 조성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1682년 창건 기록과 도광 22년(1842년)에 대흥사에서 옮겨왔다는 기록이 남아있죠. 이 불상의 특징인 옷의 주름, 자세 등의 양식을 미루어 보아 17세기 말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한편 청련사에서는 지역 발전과 인재 육성을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다. “저희 청련사에서는 창녕군의 발전과 어려운 이웃, 그리고 인재 육성을 위한 기금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작은 도움이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러한 활동들을 유지해 사회 발전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혼탁한 세상에 지혜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무영스님에게 스님이 된 계기에 대해서 묻자 “첫사랑에 실패해서”라고 웃으며 말했다. “저는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이었어요. 제가 스님이 되리라곤 생각하지도 않았죠. 그런데 정말 자연스럽게 된 거 같아요. 무슨 큰 계기가 있었던 게 아니고 정말 자연스럽게 되었죠. 이 또한 부처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첫사랑에 실패했다고 말했던 건 우스갯소리였다며 웃던 무영스님은 그에 얽힌 일화 하나를 들려주었다. “예전에 학생들 상대로 강의를 할 때 학생들이 기자님과 같은 질문을 많이 했었어요. 처음에는 학생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로 설명을 했죠. 당연히 학생들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강의를 마치고 내려와서 어른 스님에게 말씀드렸다가 혼이 났습니다.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20대가 질문을 했으면 20대에 맞게 대답을 해야지 왜 40대에 맞춰서 대답을 하냐며 20대가 질문을 하면 그에 맞게 답해 주어야 한다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때부터 학생들이 같은 질문을 하면 첫사랑에 실패해서라고 말해주곤 한다는 무영스님. 그렇게 학생들 상대로 강의를 나가고 하다 보니 대한민국의 교육에서 매우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남이 정해놓은 삶,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그 길만을 향해 애쓰며 걸어가는 걸 볼 때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남들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래서 그것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갔으면 합니다.” 무영스님은 “지금 이렇게 혼탁한 세상에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지혜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쓸모 있는 사람이 많아져 그 사람들이 이 사회를 바로잡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가는 주역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스님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며 조언의 말을 전했다. “우리는 항상 0.1%의 여운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욕심내지 말고 주어진 삶 속에서 아름다운 행복을 누렸으면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불사가 끝나면 자리에서 물러나 지혜를 찾아가는 공부를 시작하며 주어진 삶에 만족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우리의 삶이 무영스님의 바람대로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1003]
    • 문화
    2016-12-22
  • 개성있는 감성디자인을 추구하다 - 부산/경남 홈·토털 인테리어 전문업체
    최근 인테리어 업계에서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해 인테리어 효과를 높이는 ‘감성’ 바람이 불고 있다. 부산의 대표적인 인테리어 업체로 꼽히는 ‘좋은공간 인테리어’는 디자인부터 시공까지 인테리어에 관한 모든 것을 담당하는 곳이다. 고급스런 디자인과 완벽한 시공으로 소비자의 감성까지 만족시키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_구아리 기자 매장 내 쇼룸 및 샘플룸 완비 검증받은 자재만 사용 좋은공간 인테리어를 이끌어가고 있는 고경영 대표는 토목설계과 출신으로 전공을 살려 몇 년 간 직장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토목은 특성상 정해진 틀과 법규 안에서 행해지는 업무다 보니, 자신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인테리어를 해보고 싶었단다. 꿈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과감히 그만둔 그는 광주에서 인테리어 업을 하고 있는 외삼촌댁으로 시공을 배우기 위해 거처를 옮겼다. 그러다 자연스레 토털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고, 경력을 쌓아 몇 년 전 부산에 좋은공간 인테리어를 오픈했다. 수많은 인테리어 업체 가운데 개성있는 감성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좋은공간 인테리어의 장점은 좋은공간이 추구하는 색깔을 가능하면 배제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즉, 고객이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파악하여 시공을 하기 때문에 그것이 곧 고객의 높은 만족도로 연결된다.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들은 시공기간 동안에만 그곳에 머물지만, 계속해서 그 공간에 사시는 분들은 고객분들이니까 그분들이 살기 좋은 공간을 만들어야죠.” 그는 자신만의 색깔을 고집하지 않게 된 계기이자,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을 떠올렸다. “외국생활을 꽤 오래하신 고객 한 분이 한국에 있는 본인의 집을 미국, 유럽에 있는 호텔스타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하셨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평소 저는 가성비를 생각해서 자재를 고르는 편인데, 그 고객의 요구에 맞추려다보니 다양한 친환경 일본산 벽재와 고급스톤를 사용해서 최대한 고급스럽고 세련된 연출을 했죠. 가성비를 생각하지 않은 특별하고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분도 외국의 호텔보다 더 좋다며 굉장히 만족하셨어요.(웃음)” 이 외에도 동래구 사직동에 위치하고 있는 좋은공간 인테리어 매장 내 쇼룸 및 샘플룸이 완비되어 있어 고객이 직접 제품 및 자재를 보면서 선택할 수 있다는 점, 원가 절감시스템과 오픈견적서 도입으로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시공가격을 제시한다는 것도 고객들이 좋은공간 인테리어를 찾는 또다른 이유다. 고객감동 A/S 홈 스타일링 부서 편성 또 맡기고 싶은 업체 되고파 “저희 좋은공간 인테리어는 시공업이지만 모티브는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욕먹으면서 하지 말자'가 신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웃음)” 공간미학을 꿈꾸는 부산의 인테리어업체 좋은공간 인테리어의 고경영 대표는 친절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는 공사가 끝난 후 고객들이 “공사 끝났다고 안오나보네..” 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시공완료 후에도 끝까지 책임지고 관리한다. 4명의 직원들이 하는 일의 70%이상이 A/S 관련 업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최근에는 홈 스타일링 부서 편성도 준비하고 있단다. 소품구입 컨설팅까지 책임지며 끝까지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노력이 아닐까. ‘실망시켜드리지 않는 업체가 되고 싶다’는 고 대표. 몇 년이 지나도 ‘좋은 공간이 정말 잘해놓았구나, 다음 이사 갈 때도 또 좋은공간에 인테리어를 맡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당신이 꼭 알아야 하는 셀프 인테리어 노하우! (Feat. 고경영 대표) Step1. 도배지 위에 바를 수 있는 벽지용 페인트를 꼼꼼히 칠한다. 우리나라는 철근콘크리트 구조이기 때문에 도배지 위에 바르는 페인트를 추천한다고. 이왕이면 소품에서 이색이 느껴지지 않는 다크그레이 톤이면 금상첨화. Step2. 두 곳만 예쁘게 만들어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조명과 예쁜 소품으로 포인트를! Step3. 무지주 선반을 활용한다. 선반에 책을 꽂으면 서재가 되고, 그릇을 수납하면 다이닝 룸, 커피잔이나 와인잔을 놓으면 홈 카페가 될 수 있으니 히든아이템이다. Step4. 물, 전기가 닿는 곳은 셀프로 했을 때 위험하니 손대지 말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셀프인테리어를 어설프게 했다간 오히려 복구비용이 더 들 수 있으니, 자신이 꼼꼼한지 체크해볼 것. 그리고 투자하는 자신의 시간과 비용의 기회비용을 따져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1003]
    • 경제
    2016-12-22
  •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가는 사람, 친환경미래자동차전문가, 백수황 교수를 만나다
    대기오염을 줄이는 전기자동차와 수소연료전지자동차, 자율주행으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영화에서 보던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무궁한 성장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미래자동차산업은 4차산업혁명의 핵심분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호남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 (재)광주그린카진흥원 ‘자동차기능안전 인증’ 기획위원 등으로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백수황 교수는 장래가 촉망되는 친환경미래자동차 전문가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내일을 여는 꿈의 기술의 모습을 담았다. _박미희 기자 Q 지금은 친환경미래차전문가로 유명하시지만, 원래 전공은 전자전기제어계측공학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길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A 한양대학교 전자전기제어계측공학과에서 모터 및 발전기의 설계해석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현재의 기술흐름이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친환경 및 스마트 자동차로 급격히 변화하는 추세잖아요. 그 변화의 중심 있는 주요 부품이 바로 모터에요. 제가 모터를 전공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러다 자동차전자제어시스템 전문회사인 현대케피코의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할 때 차량의 연비 및 배기성능을 개선하는 파워트레인용 전장시스템을 담당하면서, 미래자동차분야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동차전자제어 분야에 다수의 논문과 특허를 보유하면서, 전문가로 거듭나게 됐어요. Q 미래자동차분야에 많은 매력을 느끼셨나요? 앞으로 어떤 비전이 있다고 생각하셨는지요? A 미래자동차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자동차하면 운송 수단의 역할과 운전자를 위한 편의성을 떠올리게 되잖아요. 하지만 자동차는 사람이 타고 있기에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에요. 미래자동차를 알게 되면서 자동차를 단순히 비즈니스적인 대상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대상이며 새로운 문화를 여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죠. 이미 선진국에서는 2020년부터 도심에 내연기관 자동차를 진입하게 하지 못하는 법이 제정될 정도로 이젠 미래자동차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미래자동차에 관련 기술의 개발 속도는 상당히 빨라지고 있고요. 이런 세계적인 추세에 뒤쳐진다면 다시 쫓아가기가 힘듭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미래자동차 산업을 선도해나간다면, 장차 대한민국의 발전에 큰 기틀이 마련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지난 9월, 호남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로 부임하신 걸로 압니다. 프라임 사업에 선정된 호남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은 데 학부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A 호남대 미래자동차공학부는 ‘자동차전자제어전공’과 ‘자동차소프트웨어전공’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1학년 때에는 공통으로 필요한 MSC(수학, 과학, 컴퓨터) 교과목들을 주로 수강하며, 그 후 자동차전자제어전공에서는 전기자동차, 수소연료전지자동차 등 친환경자동차산업 분야에 필요한 기술인 친환경자동차 부품설계, 제어, 시험평가, 자동화 등을 학습하고, 자동차소프트웨어전공에서는 스마트자동차 분야에 필요한 기술인 자동차소프트웨어 및 임베디드시스템 등과 관련 교과목들을 학습하며, 4학년 때에는 1~3학년 때의 전공지식들을 바탕으로 종합설계 교과목을 학습하게 됩니다. 호남대는 지난 5월 교육부의 프라임(PRIME) 사업에 광주지역에서 유일하게 선정돼 향후 3년간 정부로부터 150억원을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호남대 미래자동차공학부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장학금과 특전이 제공됩니다. 또한 올해 4월 중국 조이롱자동차와 친환경자동차분야에 대한 인력양성 협약을 체결하였으며, 매년 20명 이상을 조이롱자동차에 취업시키기로 약정을 했습니다. 호남대학교 미래자동차공학부는 아낌없는 교육환경지원과 우수한 교수님들의 강좌를 통해 미래자동차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준비가 완료 되었습니다. 따라서 졸업 후 학생들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이라 전망합니다. Q 최근 (재)광주그린카진흥원의 ‘광주 자동차 기능안전 인증지원 체계 구축’ 기획위원으로 위촉되셨습니다. 외에도 광주 자동차산업 생태계분석 및 경쟁력강화 전략수립 위원, 광주칭화자동차포럼 실무운영위원 등 다방면에서 폭넓은 대외활동을 하고 있으세요. 이런 활동들에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요? A 처음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데요(웃음). 애정을 갖고 있는 부분이라면 당연히 자동차의 안전이겠죠.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 외에도 다양한 대내외적인 활동을 통해서 앞으로 미래자동차 분야 발전에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학교의 발전과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또한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학문, 더 나아가 새로운 내일을 여는 학문인 미래자동차 분야의 학자로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어요. Q 끝으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학생들에게 ‘항상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저도 힘든 고비를 많이 넘기며 지금까지 왔어요(웃음). 삶의 가운데에서 어떠한 어려운 일들이 봉착했을 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끈질기게 도전한다면 그 꿈을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력 2005.02 : 한양대학교 전자컴퓨터공학부 (공학사) 2012.08 : 한양대학교 전자전기제어계측공학과 (공학석사/박사) 경력 2012.07~2016.08 : 현대케피코 책임연구원 (R&D분야 : 파워트레인용 전장시스템) 2016.09~ 현재 : 호남대학교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 [1003]
    • 라이프
    2016-12-22
  • 손 끝에서 피어나는 앙금꽃 한송이
    식문화가 서구화되면서 디저트 문화가 한국에 전파되었다. 잔치가 파티가 되어버린 것이다. 파티 문화가 확산되면서 파티의 주인공 케이크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 새로운 케이크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401 케이크의 김태희 대표. 그는 ‘케이크는 빵이다’라는 공식을 깨고 떡으로 케이크를 만들고 팥 앙금으로 장식을 올린다. 그가 만든 앙금 플라워 떡케이크는 맛도 일품이지만 섬세한 꽃장식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주간인물이 앙금 플라워 떡케이크의 새로운 도약을 따라가보았다._이효정 ­­기자 Q. 401 케이크. 이름이 특이하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 A.저는 원래 미술 계통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생활이 무료하여 새로운 취미 생활을 하고 싶어서 떡케이크 수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강하며 연습삼아 만든 떡케이크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던 것이 입소문을 타고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 때 제가 사는 집 호수가 401호였습니다. Q. 앙금 플라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A.저는 원래 요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에서도 요리 잘 안하고 요리 자체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죠. 그런데 앙금 플라워를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다채로운 색감이 주는 압도적인 매력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색깔을 섞고 그것이 제 손 끝에서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 너무 매력적입니다. 그렇게 앙금 플라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401 케이크가 가지는 타사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A.앙금꽃을 만들 때 디테일에 많은 신경을 씁니다. 색의 조화라던가 명암의 차이에 많은 신경을 쓰기 때문에 비주얼에 자신이 있습니다. 비주얼을 보고 앙금 떡케이크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의 이목을 더 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비슷한 색이 반복되면 단조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꽃의 ‘굴곡’과 같은 디테일이 더해지면 단조로움이 자연스러움으로 탈바꿈되는데 이것이 401이 가지는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가지는 교육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 A.제 수업을 들으러 오시는 분들 중에는 창업을 목적으로 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삶의 활력을 위해서 오시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매일 직장과 집을 왔다갔다하는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새로운 취미를 개설하고자 하시는 분들인데요, 그런 분들이 자신의 손으로 예쁜 꽃을 만들고 정성스럽게 만든 케이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모습이 매우 보기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에 오시는 분들이 삶에 활력을 찾아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에 참석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A.앙금 플라워 떡케이크를 만드는 사람들을 플라워케이크 지도사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401 케이크는 지금처럼 원데이 클래스와 주문제작을 병행할 예정입니다. 또한 앙금플라워 떡케이크의 대중화에 앞장서기 위해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늘리고 꽃 표현법이나 색깔 혹은 좀 더 맛있는 설기를 위한 레시피를 개발할 예정입니다. Q. 주간인물 독자들에게 한 마디. A.앙금플라워 떡케이크가 이제 조금씩 입소문이 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으로 제가 있는 분야가 점점 인정을 받고 있는 추세라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혹시라도 앙금플라워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번쯤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도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입니다. 집-일을 반복하는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새로운 취미를 갖는다는 건 저의 세상을 더 넓고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케이크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김태희 대표. 주간인물은 김태희 대표의 열정과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내며 그의 앞으로의 나날을 응원한다. PROFILE 現 401 앙금 플라워 대표 現 원데이 클래스 운영 [1003]
    • 문화
    2016-12-22
  • 직접 찾아가 감동을 전하는 고객맞춤형 PT서비스 ‘드림방문홈트레이닝’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발표에 따르면 ‘목디스크 관련 질환’의 2011〜2015 건강보험 등 진료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1년 606명이던 거북목증후군 환자 수가 2015년 1134명으로 4년 만에 약 2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런 생활습관과 관련된 질병들은 해마다 증가되어 갈수록 문제가 악화되고 있는데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병원, 한의원 등에서는 맞춤형 치료를 개발하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주로 ‘개선’에 초점을 둔 이들 치료 등은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완치’ 개념의 치료는 어렵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보다 근본적인 생활습관 개선, 근력강화 등을 통한 자세교정 등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에 일시적인 치료이후에 생활 속에서 다시 증세가 악화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면에서 홈트레이닝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트레이닝 서비스가 국내에서 이슈를 끌고 있다.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전문 트레이너들이 집으로 방문하여 운동을 시켜주고 자세 교정을 도와주는 일종의 고급형 퍼스널트레이닝 서비스이다. 드림홈트레이닝의 황시온 대표는 아직 조금은 낯선 홈트레이닝 분야에서 최근 가장 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를 만나 홈트레이닝의 매력에 대해 흠뻑 빠져보았다. _국도형 ­­차장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제 몸으로 직접 실험해보고 도움 드리고 있습니다” 드림 홈트레이닝은 고객이 원하는 곳으로 직접 방문하여 운동을 처방해주는 업체이다. 홈트레이닝은 국내에선 다소 생소한 분야겠지만 이미 선진국에서는 이미 많이 활성화 되어 있는 상태이다. 국내에서는 연예인들이나 운동선수들, 또는 중산층 이상의 부유층에서 많이 활성화 되고 있는 단계이나 아직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분야이다. 황시온 대표는 “방문 홈트레이닝을 필요로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금액적 부담이 크거나 이런 형태의 서비스가 있는지 모르시는 분들도 상당 수 있습니다. 주부님들의 경우 아이 양육문제도 있기 때문에 제약이 있는 편입니다.” 라며 “저희 회사의 경우 고객님이 원하시는 시간에 원하시는 장소로 직접 찾아가서 운동을 처방해 주거나 아이들이 있으신 경우 1인 2조로 움직여 아이를 별도로 케어해드리는 서비스까지 제공해드리고 있습니다.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단계라 시장의 반응은 꽤 괜찮은 편입니다.”라고 말했다. 드림홈트레이닝은 이외에도 직원들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교육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강연회를 열어 소비자들과 홈트레이닝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주로 어떤 고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묻자 황대표는 “현대인들은 생각보다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많습니다. 이로인해 거북목증후군이나 디스크, 그리고 비만 등의 질병 등이 발생되는데 저희 같은 경우 운동처방을 통해 아이들이 건강해지고 학교 성적까지 향상되는 사례가 나타나면서 현재는 예약제로 받아서 진행 할 정도로 많은 학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오고 있습니다.” 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우슈와 회사생활이 가져다 준 ‘전화위복’의 기회 “직접 겪어보지 않고 가르치는 것 불가능” 황대표는 어릴 적부터 우슈 선수로 활동 했다. 획득한 금메달만 25개 남짓 될 정도로 우슈 유망주였던 그녀는 어느 순간 우슈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거의 없음을 느끼게 되었고, 이후 우슈를 그만 둔 뒤 금융회사에 취업하여 8년 동안 근무를 하게 된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오랜 시간 앉아 일을 하면서 건강을 잃게 되었고, 특히 26살이 되던 해 암판정 까지 받으면서 삶과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다. 당시 상황에 대해 황시온 대표는 “전화위복이라는 말처럼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서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건강을 소홀히 했던 내 자신을 처음으로 반성하게 되었고 암 수술을 이후 거북목과 디스크를 치료하기 위해 유명하다는 병원과 마사지업체 등 전부 다니면서 수 천 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라며 “하지만 차도가 없어 매일매일 고통 속에 살던 중 ‘인강병원’ 이라는 곳을 알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디스크나 거북목 증후군 치료는 약물이나 시술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운동을 통해 개선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 저는 재활전문가들을 찾아가 직접 운동을 배우게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눈에 띄게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땐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경험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황시온 대표는 인터뷰 내내 ‘직접 경험’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내 몸에 관련 된 일인데 말만 듣기 좋게하는 일부 전문가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녀는 “저 또한 몸이 안 좋을 때 전문가라고 해서 찾아갔던 분이 많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오히려 몸을 더 아프게 하거나 무리한 운동을 시켜, 디스크를 더 악화시킨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적어도 내 몸만큼은 직접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강사분들 중에서도 실제로 아파봤거나 살 쪄본 적 있는 선생님들이 고객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케어를 해주십니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고 이론만 가지고 ‘전문가’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고객에게 미안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얘기했다. CEO는 ‘갑’이 아니라 ‘을’ “건강은 지킬 수 있을 때 반드시 지켜야” 트레이너가 아닌 기업인으로서 경영철학을 묻는 질문에 황 대표는 “CEO는 갑이 아닌 을로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희 아버님께선 어려서부터 ‘가장 힘세고 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세상이 행복해 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회사 경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권위를 내세우면서 직원들을 힘들게 하지 않고 오히려 섬기려는 자세로 그들을 대할 때 직원들이 행복질 수 있고 고객들에게도 그런 부분들이 전달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해왔기에 저를 믿고 ,섬겨주는 상사를 만났을 때 더욱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얘기했다. 이런 그의 경영철학을 대변하듯 드림홈트레이닝의 내부 분위기는 딱딱한 회사의 느낌보단 활기찬 체육시간 같은 느낌이었다. 누군가 일을 지시하고 시키는 지시형 구조가 아닌 구성원들 스스로가 일을 찾아서 하는 이상적인 회사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인터뷰가 마무리 될 즈음 향후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황시온 대표는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열정과 꿈, 그리고 다른 것들도 소중하겠지만, 건강이 가장 1순위가 되어야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많은 분들에게 건강이라는 꿈을 이루어 드리고 싶습니다. 드림홈트레이닝의 브랜드가 수도권을 넘어 전국에 확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 온 황시온 대표의 밝은 앞날을 기대해본다. [1003]
    • 라이프
    2016-12-22
  • 풍운의 육사생도 2기-‘德將’으로서 명성이 빛나는 역사의 산증인!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1875년 황해도 평산 출생으로 어려서 서울에 이사하여 도동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다 배재 학당에 입학, 신학문을 공부하고 1895년 8월 배재학당 영어 교사가 되었다. 1899년 부패 무능 부패한 군주제를 폐지하고 민주공화제 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5년 7개월간의 옥고를 치루고 1904년 출옥했다. 그 후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미국에 건너가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한국에서 일본의 세력을 몰아내는 데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뜻을 못 이루었다. 1905년 미국에 머물러 학문을 더 닦기로 결심하고 조지 워싱턴 대학에 입학, 1908년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 학위 과정을 수료,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10년에 국권 침탈이 되자 귀국하여 YMCA를 중심으로 후진들을 지도하다가 다시 도미했다. 이 후 30여 년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미 대륙과 하와이ㆍ상하이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3ㆍ1 독립 운동 때 국내 인사들과 연락하여 거사에 동조하고 이해 4월 10일 상하이에 임시 정부가 서자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뒤에 다시 미국에 돌아가 임시 정부 구미 위원부를 설치, 1933년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연맹 회의에 참석하여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다. 1945년까지 워싱턴ㆍ하와이 등지에서 항일 투쟁과 외교 활동을 계속하다가 해방을 맞아 이해 10월에 귀국, 반공ㆍ반탁을 주장하면서 민주주의 자주 독립 노선을 전개했다. 1948년 5월 제헌 국회 의장이 되고, 이해 8월 정부 수립과 동시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애치슨은 자서전에서 이승만 박사의 투철한 반공정신과 애국심에 감동한 트루먼 대통령이 6.25참전의 결단을 내렸다고 기술했다고 한다. 오늘은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고문으로 활동 중인 군사평론가협회 신재성 이사장을 만나 그의 소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안연승 차장 풍운의 육사생도2기 “저는 대한민국 최초의 4년제 육군사관학교 생도 2기로 입교를 했는데, 그때 지원자가 8,000여 명으로 28대 1의 관문을 뚫고 333명이 합격하여 입교했습니다. 입교해서 6.25전쟁이 나기 전까지 불과 25일간 제식훈련, 각개훈련, 사격술 등의 훈련을 하고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당시 생도들은 다행히도 9발 내지 86발씩의 M1 실탄 사격은 체험하였습니다. 육사 생도 1기, 2기 600 여 명이 6.25전쟁 개전 초 포천지구 전투에 투입되어서 인민군 3사단 9연대와 6월 26일 오후에 전투를 치렀는데, 6.25 개전 이래 인민군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혔으며 전무후무하게 사관생도로 전투에 참가하여 가장 많은 피해를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6.25전쟁 첫 일주일 동안 계급도 군번도 없이 치른 전투에서 우리 동기생인 생도 2기 86명, 생도 1기 선배들은 64명의 고귀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세계 戰史 상 4년제 사관생도를 개전 초기 무모하게 소총수로 투입한 사례는 없다고 한다. “계급도 군번도 없는 상태에서 투입돼 86명이란 아까운 전우를 잃고 나서야 군 수뇌부에서 깨달았는지 대구에 위치해 있던 육군본부의 경계임무와 포항지역의 사령부 경계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후 그 해 9월 2일 창설된 육군종합학교로 편입해 불과 2개월밖에 안된 짧은 기간의 훈련을 받고 임관, 생도 2기생들을 주축으로 9사단을 창설해 백마고지 전투까지 치렀습니다. 당시 싸인, 코싸인을 좋아하던 본인은 28연대 8중대 81mm 박격포 소대장으로 강원 현리지구, 정선지구에서 전투를 치렀고 강릉 주둔 1개월 뒤 다시 현리지구, 고대산, 저격능선, 백마고지 등 요충지에서 눈물겨운 격전을 치렀습니다. 백마고지에서는 우측다리 중상 중에도 2개월 반을 사병의 등에 업혀서 중대를 지휘했습니다. 당시 겨울이었기에 두터운 솜바지를 속에 입어서 아직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28연대 3대대가 1951년 11월 6일 최초로 공격 점령한 이래, 무려 주인이 24번이나 바뀌는 치열한 전투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백마고지 전투는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세계전사 상 4년제 사관생도를 무모하게 전투에 투입한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좋은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는 이런 무모한 일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각성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동기생의 41%가 6.25전쟁에서 전사하였으나, 오늘날까지 덤으로 살게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먼저 간 동기생들의 숭고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전략폭격기 B-29 한국전쟁 초기에도 투입되었다 B-29는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미국의 전략폭격기이며,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폭격기로 유명하다. 전략폭격기이기 때문에 한국전쟁 초기에 나타났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B-29는 한국전쟁 중반에 대량 표적에 폭격에 사용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신재성 장군이 육사생도로 참가한 전투에서 불암산 상공을 선회하는 B-29를 보았고, 북한군이 수천발의 고사포 사격을 가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진술하여 논란이 되었는데, 유엔군 사령부에 사실여부의 확인요청을 하여보니, 그날 맥아더 장군의 특별 명령으로 B-29 4대가 서울 상공에 출격하였다는 자료가 미국으로부터 전달되어 명백한 사실임이 밝혀졌다. 이 자료로 재작년부터 새롭게 쓰는 ‘6.25전쟁사’ 1권에 최초로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고 있다 한다. “6.25전쟁 개전 초 포천지구 전투에 투입되어서 인민군 3사단 9연대와 6월 26일 오후에 전투를 치렀는데, 6.25 개전 이래 인민군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혔으며 전무후무하게 사관생도로 전투에 참가하여 가장 많은 피해를 받았습니다. 6.25전쟁 첫 일주일 동안 계급도 군번도 없이 치른 전투에서 우리 동기생인 생도 2기 86명의 고귀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북한군의 전차와 야포에 밀려 태릉지구로 철수하여 27일부터 28일까지 92고지(지금의 태릉골프장 지역) 및 불암산 일대에서 진지를 사수하다가 12시반 경에 철수명령이 떨어졌으나, 동기생 4명은 철수명령을 전달받지 못하고 본대로 합류하려고 학교(육사) 쪽으로 가보니 벌써 상당수의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발견한 인민군 기마대 1개 중대 가량의 병력이 따발총을 쏘며 추격해 와 사력을 다해 근처 봉화산으로 피했습니다. 그날 봉화산에 잠복해 있는데, 오후 4시경에 B-29 한 대가 육사 상공을 선회하자 수천 발의 북한군 고사포 사격이 가해져서 폭격기가 격추당할까 봐 걱정하였습니다. 미 공군이 인민군의 화기 성능을 알고 비행한 것 같아요. 의정부 쪽으로 50분 정도 폭격하는데 그 소리가 대단하더군요. 이 목격담을 재작년 6월 25일에 우리 교회에서 간증을 하고, 며칠 후 동기생 모임이 있어 이 이야기를 꺼냈다가 치매가 걸리지 않았느냐는 면박까지 받았습니다. 그 날 저와 함께 B-29를 목격한 동기생 중 한 명은 2개월 후 전사했고, 또 두 명은 전쟁 중 실종되어 이 사실을 밝히는 어려웠으나 유엔군 사령부에 이 사실을 확인시켜 주어 한국전쟁전사에 새롭게 게재되었습니다.” 덕장으로서 명성이 빛나는 신재성 장군! 81mm 박격포소대장, 중화기중대장, 보병대대장, 보병연대장, 보병사단장까지, 그리고 1971년 1월 1일 동기생들 가운데 가장 먼저 유일하게 장군에 진급하는 등 전형적인 야전지휘관으로서의 지휘를 굳건히 하던 중 신재성 장군은 10.26사태에 부딪쳤다. 당시 3군 사령부 참모장이던 신 장군은 이건영 사령관이 보안사에 연금돼 있는 상태에서 부대를 지키고 있었는데 부하들이 찾아와 사령관 사진을 떼자고 했고, 속이 상해 있던 신재성 장군은 부하들에게 “전두환 이놈, 가만 두지 않겠어. 복수하고 말거야.”라고 화를 냈다. 어느 간신배가 쪼르르 전두환에게 달려가 신재성 장군의 말을 전했으나 전두환 장군은 “뭘, 그런 사람도 있어야지.”하면서 넘어갔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신 장군의 인품을 존경하였고, 또한 신 장군의 인품이 높아 혹시라도 처벌할 경우 후배들의 반발도 두려웠던 것이다. 3남1녀의 자녀를 모두 훌륭하게 키워준 아내에게 존경과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는 신재성 장군은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연세에도 나라걱정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믿음과 신뢰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저의 아들이 긴급조치위반으로 체포되었을 때, 그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께서는 ‘신 장군이 자식농사 잘 지었구만’ 하더란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습니다. 작금의 어지러운 국정상황에서도 우리 국민들이 나라의 경제와 국방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지혜만은 꼭 갖기를 기도해 봅니다.” [1003]
    • 라이프
    2016-12-22
  •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자 행복입니다. 행복한 부산진구를 만드는데 앞장서겠습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바쁜 일상과 어려운 경제 조건 속에 날이 갈수록 개인주의가 심해지고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각박한 사회에서 타인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봉사라는 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 타인을 배려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거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부족한 것을 메꿔주는 것. 요즘같은 어려운 환경에도 여기저기서 훈훈한 소식들이 간간이 들려오고 있는 가운데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가려고 애쓰며 오랜 시간 동안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자신을 희생해가며 살아가고 있는 이가 있어 찾아보았다. 그 주인공은 70대 여성의 몸으로 부산진구 시민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바르게살기운동 부산진구협의회 양미대자 회장이다. 그녀를 만나 특별한 시간을 가져 보았다. _이진랑 ­­기자 사회발전에 이바지 하는 바르게살기운동 많은 단체들이 사회 발전과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그중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는 지역별로 형성된 협의회로 회원들의 강한 결집력을 통해 체계적이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바르게살기운동은 독립된 개별법에 의해 설립된 국민운동 단체로서 진실, 질서, 화합을 3대 이념으로 선진 한국의 밝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하여 모든 국민이 함께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바르게살기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민주적이고 문화적인 국민 의식을 함양하고 공동운명체로서의 국민화합을 이루며 선진국형 사회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 특히나 눈에 띄게 활동하며 따뜻한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는 부산광역시협의회 소속인 부산진구협의회의 양미대자 회장은 “바르게살기협의회는 진정한 인간됨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범국민적 의식개혁운동”이라며 부산진구협의회에서 실행하고 있는 활동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저희는 크게 다섯 가지 활동으로 나눌 수 있어요. 첫번째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극복을 위해 출산 장려를 위한 유아 용품 공동 구매 및 물려주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어요. 두번째로는 가정 사랑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죠. 세번째는 낙도 어린이를 부산에 초청해 견학하게 하는 사업을 실시하는 등 지역감정을 극복하기 위한 영호남 교류 활동을 전개하고, 네 번째로 이주 여성과 여성 위원 간의 교류 증진, 전통 예절 교육, 한국 문화 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다문화 가정의 증가로 발생하는 사회 문제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무료 급식소 운영 및 각종 자선 바자회 개최를 통해 무의탁 노인 돕기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부산진구협의회는 부산광역시 내의 구·군 협의회 16개 중 회원 수와 동수가 제일 많지만 그에 비해 보조금이 적다. 하지만 모든 회원들이 잘 단합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양 회장이 이끄는 대로 잘 따라와 준다고. 모두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봉사하기에 부산진구협의회가 항상 좋은 실적과 결과를 보일 수 있었다고 양 회장은 말했다. 살맛나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일에 노력을 다할 것 양미대자 회장이 보여주고 있는 봉사는 바르게살기운동에 들어와서 시작한 게 아니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봉사하는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남편을 18년 전에 떠나보내고 음식점을 운영하며 자식들을 홀로 키웠다. 세 명의 자녀를 번듯하게 잘 키우고 출가시킨 후 양 회장은 봉사하는 삶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신실한 천주교 교인이었던 양 회장은 천주교에서도 알아줄 정도로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고. “천주교에서 많은 봉사를 했어요. 중요한 직책을 맡아 큰 행사에서도 많은 일들을 했었죠. 이 밖에도 라이온스클럽에서 10년 정도 활동했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봉사하는 모습을 알아주었던 지인의 소개로 바르게살기협의회에 입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한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입문하자마자 여성부 회장으로 추대되었어요.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여성회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낙하산이 아니냐는 등 뒤에서 말이 많았었죠. 그래서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추천해주신 지인분의 체면을 생각해 임기 동안이라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여성회장 임기를 모두 마치고 마무리하고자 했던 양 회장. 그간 보여주었던 진실된 마음이 전해져서였을까. 이사회에서 그녀를 부산진구협의회 회장으로 추대하게 되었다고.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겁도 나고 제가 있는 이 자리가 부담스럽기만 했어요.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먼저 앞섰죠. 각 구의 회장들은 모두 남자였고 저 혼자만 여성회장이었기 때문에 주눅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총회 이·취임식에 참여해 보니 이미 봉사에 밑바탕이 되어있기에 자신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양 회장. 이후 그녀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뒤에서 말이 많았던 사람들도 양 회장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인정하게 되었다고. 또한 그녀의 봉사의 작은 결과물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진심으로 봉사한 그녀에겐 뜻깊은 선물이었다. 양 회장은 “부산시의 중심인 부산진구에서 부산진구협의회가 모범을 보이며 잘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녀는 항상 앞서가는 부산진구, 살기 좋은 부산진구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봉사하고 있다. 끝으로 양 회장에게 참된 봉사는 어떤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봉사는 월급이나 일당을 받으며 하는 일이 아니에요.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남에게 보여주려 해서도 안되죠. 자신을 낮추고 절대 어떠한 대가를 바라서도 안됩니다. 정말 진실되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는 것이 저는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자신이 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며 항상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하고 살맛 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003]
    • 라이프
    2016-12-22
  • 볼링의 메카, 대구 - 체육회 통합을 발판으로 새로이 도약
    각 경기종목의 국가대표, 또는 예비국가대표 선수들을 수시로 입소시켜 합숙훈련을 가짐으로써 팀워크를 재정비하고, 전력의 집중적인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종합운동시설과 숙박시설을 갖춘 태릉선수촌. 그곳에 유일하게 올림픽 종목이 아닌 볼링 선수촌이 있다. 이는 세계를 무대로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이는 볼링 선수들의 활약이 있기 때문. 그 중에서도 대구는 매년 우수한 선수들을 배출하며 한국 볼링을 널리 알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해 동안 지역 우수 인재 유출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했다. 이에 엘리트 체육회와 생활체육회 첫 통합회장으로 선임된 최균 회장은 선수들의 처우개선을 통해 지역의 인재 유출을 막고 다시금 대구 볼링의 전성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_박지영 ­­기자 엘리트 체육회와 생활체육회의 첫 통합 시기 볼링 명품 도시 대구의 이름 다시금 널리 알려 오랫동안 대구시민들의 발이 되어준 동명교통의 최균 대표가 엘리트 체육회와 생활체육회가 통합된 대구볼링협회의 첫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묵묵히 지역 경제에 일조하며 대구광역시버스운송사업조합의 이사장으로서 역할을 해온 그는 전통적인 볼링인은 아니지만 대구볼링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무거운 책임의 자리에 올랐다. “대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볼링방송이 방영되는 도시로 볼링의 메카라 불립니다. 대구의 많은 시민들이 볼링을 즐기며 전국에서 최고의 시설을 자랑합니다. 매년 우수한 선수들이 대구의 이름을 알렸고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대한민국의 볼링을 세계에 알려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지역 인재 유출로 팀 해체 위기까지 갔던 대구볼링. 그래서 최균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선수처우개선을 통해 지역 내 우수 선수들을 유치, 선수들이 오직 볼링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대구볼링협회의 부족한 부분들을 찾고 우수한 선수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볼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선수들 운동 환경개선에 힘썼습니다. 내년에는 이를 바탕으로 좋은 성적을 목표로 정진할 예정입니다.” 생활체육의 경우 전국 최대 볼링 인구 규모와 최고 시설을 바탕으로 즐기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에 올해 대구볼링협회는 엘리트 부분과 생활체육 부분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16년 소년체전에서 대구볼링 소년부가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고 제20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전국생활체육 시·도 대항 볼링대회에서 이례적으로 남녀단체 동반우승으로 2연패 달성, 2016년 대통령배 전국볼링스포츠클럽 리그 최강전에서 우승하며 다시금 대구볼링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볼링 저변확대와 발전 그리고 선수들을 위해 묵묵한 조력자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 나아가 대한민국 볼링 위상에 대구볼링이 더욱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 대구볼링의 새로운 도약을 알리며 뜻 깊은 한 해를 보낸 최균 회장은 볼링의 활성화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새로운 대구볼링의 전성기를 기대하며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볼링 저변 확대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통해 대구볼링의 옛 명성을 되찾고 싶습니다.” 전국 최대 규모의 볼링 인구를 자랑하는 대구지만 더 이상 신규 볼링 인구 유입이 없어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내년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볼링 교실을 통해 학생들이 볼링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할 예정이다. “제가 가장 아쉬웠던 것은 대구에 남자 대학부 팀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최근 지역 내 대학에서 볼링부가 신설될 예정이라 하여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오로지 대구볼링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힘쓰고 있는 최균 회장. 그는 늘 뒤에서 묵묵한 조력자의 역할을 다하며 선수들의 애로사항을 직접 청취, 부족한 부분을 뒷바라지 하는데 여념이 없다. 늘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지켜보며 응원하는 최 회장은 무엇보다 회장으로서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했다. “저는 선수들의 높은 사기가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기진작을 통해 실력발휘를 할 수 있도록 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대구볼링이 대한민국볼링의 정상에 서며 나아가 대한민국볼링 위상에 큰 기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볼링의 메카 대구. 그 이름을 지키는데 온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세계에서 활약하는 대한민국 볼링에 대구볼링이 큰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구볼링의 발전뿐만 아니라 지역 체육의 발전을 진심으로 바라며 대구체육회에 버스를 기증 하는 등 지역 체육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자처해온 최균 회장. 그의 행보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1003]
    • 라이프
    2016-12-22
  • ‘야구마켓배 2016 대구·경북 리틀야구리그 최강전’ 우승
    이루지 못한 꿈에서 시작된 지도자의 길 올바른 인성을 지닌 인재로, 한국 야구의 미래 꿈나무로 키워내 박찬호, 조성민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활약한 92학번 황금세대. 홍재호 감독은 이들과 같은 시대를 보낸 프로야구선수 출신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지명을 받아 OB 베어스(現두산 베어스)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홍 감독은 3년의 선수생활을 뒤로 한 채 돌연 지도자의 길로 돌아섰다. “치열한 시대에 선수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어요. 프로생활을 그만두면서 야구 역시 그만둘 생각이었죠.” 그러나 문득 자신은 못 다한 꿈이지만 아이들은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그렇게 대구 북구 칠성초등학교에서 코치생활을 시작, 전국대회우승 등 다양한 대회를 경험하며 대구상고(現상원고)를 거쳐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학교야구(제도권야구)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대구북구리틀야구단 창단과 더불어 감독 제의가 들어온 것. “2008년 대구북구리틀야구단은 지역 내 유망한 선수를 발굴하기 위해 창단됐어요. 북구는 대구에서도 가장 초등학교가 많고 이에 따라 많은 학교야구팀이 있죠. 이곳으로 보낼 선수들을 길러내기 위해 감독으로 오게 됐습니다.” 오랜 운동 경험, 프로 경력 그리고 오랜 코치생활로 다져진 그의 지도력은 김재걸(삼성라이온스), 박종호(LG트윈스), 김창희(기아타이거즈), 김상엽(NC다이노스) 등 프로구단들의 코치들과 진갑용, 이승엽 등 유명 프로선수들도 자제들을 맡길 만큼 인정받고 있다. 매년 적게는 3명 많게는 6명까지 제도권으로 선수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올해 삼성의 지명을 받은 대구고등학교 조현덕 선수 역시 홍 감독이 지도했던 선수다. 우수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우수한 유망주를 길러내는 홍 감독의 지도방식은 무엇보다 올바른 인성을 지닌 인재로 길러내는 것. “인사를 통해 예를 갖추고 올바른 인성함양을 통해 바르게 자라도록 이끄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올해는 ‘야구마켓배 2016 대구·경북 리틀야구리그 최강전’에서 우승하며 야구명문도시 대구, 그 중에서도 북구의 이름을 전국에 알렸다. 탄탄한 리틀야구 기반 마련을 통해 한국야구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가장 큰 소명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보람된다는 홍 감독. “제가 공을 쳤을 때보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공을 쳤을 때 더 큰 감동을 느꼈어요. 이게 지도자가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요.” 2008년부터 대구북구리틀야구단을 맡으며 대구 내에서 가장 많은 유망주들을 제도권으로 보낸 홍 감독은 앞으로 대구리틀야구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주력할 예정이다. “대구는 전국에서 가장 리틀야구가 활성화된 곳이에요. 유일하게 리틀야구연맹이 있는 곳으로 리틀야구의 체계가 가장 잘 갖춰진 곳이죠. 그러나 외국과 비교했을 때 아직 우리나라 리틀야구는 갈 길이 멀어요. 수많은 유망주들을 배출하고 그 나라 야구의 든든한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이제 시작이죠. 앞으로 더욱 탄탄한 리틀야구 기반을 마련해 우수한 선수들을 배출해내며 한국야구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매주 대회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밤낮없이 뛰고 있는 대구의 리틀야구 감독들. 그러나 리틀야구 전용구장 등 기반시설의 부재와 리틀야구에 대한 관심 등 아직은 풀어나가야 할 숙제들이 많다. “야구에 대한 열정하나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당면한 과제들을 지혜롭게 풀어나가 앞으로 리틀야구의 발전에 더욱 힘쓰겠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지도자로서 수많은 유망주들을 길러온 홍 감독. 마지막으로 그는 물심양면 도와준 배진환 후원회장과 후원회, 임원단, 그리고 자신을 믿고 아이들을 맡겨준 학부모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앞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리틀야구. 대구북구리틀야구단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97~07 대구 칠성초등학교 코치 07~08 대구상업고등학교(現대구상원고등학교) 코치 08~ 대구북구리틀야구단 감독 [1003] 야구명문도시 대구에서 또다시 훈훈한 소식이 전해왔다. 올해 열린 야구마켓배 대구·경북 리틀야구리그 최강전에서 대구북구리틀야구단이 우승의 영광을 안은 것. 대구북구리틀야구단은 대구 내에서도 가장 리틀야구가 활발한 지역인 북구에서 수많은 유망주들을 제도권으로 보내며 리틀야구 명문으로 거듭나고 있다. 선수출신의 오랜 코치 경험을 겸비한 홍재호 감독의 지도 아래 오늘도 뜨거운 땀을 흘리고 있는 그 현장으로 달려가 보았다. _박지영 ­­기자
    • 라이프
    2016-12-22
  • 감물염색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감물드리
    `감물! 자연의 색을 감싸다`란 주제로 진행한 2016년 청도감물염색 디자인 공모전에서 가을의 푸른 하늘과 황금벌판을 표현한 이순애 감물드리 대표의 작품이 대상으로 선정됐다. 청도의 특산물인 반시를 활용한 감물 염색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감만의 색감, 문양을 드러낸다. 그 매력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순애 감물드리 대표를 만나 자세히 들어보았다. _배진희 ­­기자 작년 청도감물염색 디자인 공모전 동상 수상에 이어 올해는 ‘대상’을 수상한 이순애 감물드리 대표. “반시 축제에 따른 공모전이니 감물염색의 매력이 나타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감만이 나타낼 수 있는 감 문양을 꽃줄기로 잡고 작업을 하는 등 감 터치가 두드러지게 드러나도록 작업했죠.” 그녀는 15년째 생활용품은 물론 침구류와 옷가지 등에 감물을 입혀오고 있는 감물 염색의 장인이다. 감물염색을 익히기 전까지는 청도의 한 출판사에서 지부장을 맡으며 10년간 회사생활을 했다. “10년 정도 하니까 슬럼프가 오더라고요. 회사를 다니며 친구 따라 바람도 쐴 겸 염색 교육을 들으러 갔어요. 당시에는 이게 업이 될 거라는 생각을 못했죠.”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본인이 사용할 목적으로 침구에 감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방문한 친구가 이 침구들을 보고 만족해 전부 구매해갔다. 그 후에 지인 등 계속해서 구매 요청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본업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을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꾸준히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뭘까. “보기보다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중노동에 가깝다고 표현하죠. 하지만 염색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푹 빠져들어요. 참 신기하죠(웃음). 특히 감물 염색은 색이 한 번에 나오지 않고 서서히 드러나는데 그 부분이 굉장히 매력적인 것 같아요.” 감물 염색 과정을 살펴보면 8월 말 열리는 풋감을 분쇄하여 착즙한다. 이때 이 대표가 이용하는 청도 반시는 씨가 없고 즙액이 많아 다양한 감물을 들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착즙 후 나온 감물로 원단을 염색하여 햇볕에 널어두고, 마르면 물을 먹이고 또 말리고를 3~4일간 반복한다. 이 방법을 한 번, 두 번, 세 번 할 때마다 색깔이 다르게 나온다. 이 대표는 화학 염색처럼 빨리 발색이 되지 않고 시간을 들이는 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감물 염색은 감만이 낼 수 있는 문양이 있어요. 다른 어떤 걸로도 똑같은 문양을 표현할 수 없죠.” 그녀의 작업실을 둘러보니 침구류뿐만 아니라 가방, 옷가지 등 그 종류와 수가 다양했다. “처음에는 침구류만 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천연의류 쪽으로 방향을 잡아 주로 가정주부, 직장인들을 상대로 하고 있어요.” 이 대표는 감물 염색을 시작할 때 작업 환경이 갖추어진 상태가 아니었다. 취미로 하다 보니 오히려 환경이 열악했고, 주변의 호응을 얻으며 사업 영역을 넓혀 가려 했을 때는 어떻게 자신의 작품을 대중을 상대로 알려야 할지 막막했다. “박람회라는 박람회는 다 찾아다녔어요. 운전도 할 줄 몰라 타 지방으로 갈 때는 제품을 택시에 싣고 힘들게 가기도 했죠. 직접 발로 열심히 뛰어다닌 만큼 성과도 있었어요(웃음).” 그렇게 박람회를 통해 연을 맺은 사람들이 꾸준한 단골 고객이 되었다. 염색작업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도 영향을 받아 항상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작업해야 한다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완성도에 신경 쓰는 이순애 대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들이 대를 잇게 되었다며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많은 사람들이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교육 사업도 함께 연계하고 싶다고 밝혔다. [1003]
    • 문화
    2016-12-22
  • 핫 프랜차이즈 -1970 핫도그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 핫도그 - 이젠 스낵 문화를 이끄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소개하고 싶어요!”
    부산 남포동,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곤 금세 아리송해졌다. 무슨 특별한 음식을 먹으려고 이 긴 줄을 서고 있나. 가까이 다가서서보니, 흔히 보는 핫도그다. 그런데 다시 보니 그냥 흔한 핫도그가 아닌 특별한 맛과 모양을 지녔다. 이 때문에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2~30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1970년대 학창 시절 등하굣길엔 우리들의 눈을 자극하던 길거리 음식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끓어오르는 기름에 노르스름하게 튀겨져 새하얀 설탕이 듬뿍 발라졌던 핫도그가 있었다. 조그마한 소시지 하나에 소다 냄새가 가득한 하얀 밀가루 반죽만 두툼하게 두세 번 발라 튀겨졌던 그 핫도그에 케첩을 한줄 쭉 발라서 먹던 시절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핫도그는 위생이나 영양가면에서 그리 좋은 음식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코끝과 입맛을 자극하며 허전했던 우리들의 배를 채워주던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그런 지난 세월 속에서 우리의 사랑을 받았던 길거리 음식 핫도그가 이제 새로운 개념으로 찾아왔다. 저렴하고 흔한 밀가루 반죽과 싸구려 소시지가 아닌 찹쌀과 옥수수, 코코넛을 주성분으로 한 곡물 반죽파우더, 국내산 돈육으로 만든 특별한 소시지, 그리고 치즈의 명가 독일 로젠 지방에서 수입한 모짜렐라 치즈를 곁들인 특별한 핫도그, 바로 이것이었다. 줄을 서고 꽤 긴 시간의 기다림도 감수하는 이유가. 남포동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1970핫도그. 이미 상당히 알려져 관광객들의 필수 먹거리 코스가 되어버린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_박미희 ­­기자 2000년도 주간인물을 멋있게 장식한 두 사람을 16년의 세월이 흘러, 주간인물이 다시 만났다. 부산의 향토 브랜드로 유명한 투윙닭강정의 김종철 회장과 울산 최초 창업지원센터를 열어 주목을 받았던 박영상 대표. 이 두 사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남았을 세월. 그 시간을 지나 주간인물이 만난 두 사람은 여전했다. 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뜨거운 열정, 그리고 신용을 목숨처럼 여기는 상도(常道)까지……. 그들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이번엔 두 사람이 한팀을 이루었다는 것. 20여 년 오로지 한길만을 걸어온 김종철 회장은 동업을 하지 않기로 외식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박영상 대표와 한팀을 이룬 건 그의 진실됨과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는 게 후문. 그리고 ‘반드시, 이 브랜드는 성공한다’는 확신이 그를 이끌었다고. “1997년 IMF 시절, 모두들 안 된다고 할 때 나는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 확신은 적중했고, 오늘날 투윙닭강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확신, 이번에 박영상 대표를 만나 사업 얘기를 들었을 때 다시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무엇보다 건실한 사람, 박영상 대표에 대한 믿음이 컸지요.” 외식업계의 원로인 김종철 회장과 프랜차이즈 업계의 실력파 박영상 대표가 한팀이 되어 만든 브랜드. 그들이 야심차게 준비한 힐즈코리아의 1970핫도그는 창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세간의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핫도그=노점상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 핫도그를 이렇게 젊고 깔끔하게 어필할 수 있다니! 무엇보다 손님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자타공인이 인정하는 맛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명 백화점 MD도 한번 맛보곤 바로 계약을 체결하자고 할 정도로 그 맛은 뛰어나다. 부산 남포동에 첫 매장을 오픈하자마자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 것도 모두 이 맛 때문이다. 핫도그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한번 맛보면 다시 생각나는 맛의 비결은 무엇일까. 기자의 물음에 “맛으론 전국 최고라고 자부한다”며 그들은 소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는 맛을 만들기 위해서, 그간 많은 준비과정이 있었다는 게 그들의 설명. “핫도그하면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죠. 하지만 좋은 재료를 쓰거나, 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지 못하는 게 현실이에요. 1950년대 한국에 들어와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가 된 핫도그. 그 핫도그의 풍미를 제대로 살려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위생적인 환경에서 좋은 재료로, 맛있게 만들어 고객들에게 제대로 내놓자고 결심했습니다.” ‘한국식 핫도그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겠다!’ 그 결심이 서자, 박영상 대표는 전국의 핫도그를 먹으러 다녔다. 그렇게 각 지역의 이름 난 핫도그를 찾아다니며 얻은 결론은 하나다. 모두가 저렴한 단가를 맞추기 위해 결국 저렴한 재료를 쓰게 된다는 것. 그렇게 만들어서는 맛과 품질이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좋은 재료로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팔아야 된다는 원칙을 고수하게 되었다고. “처음 핫도그를 베어 물면, 먼저 느껴지는 게 빵이에요. 무엇보다 빵이 맛있어야 돼요. 보통 다른 핫도그는 밀가루로 반죽을 하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밀가루를 쓰지 않아요. 찹쌀, 옥수수, 코코넛 등의 주재료를 사용해 빵의 맛을 내고 있어요. 그리고 핫도그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요즘 세대의 트렌드를 반영한 치즈와 소시지입니다. 보통 저가형의 소시지를 많이 사용하는데, 계육이나 밀가루가 많이 들어가서 깊은 맛을 내지 못해요. 그래서 저희는 모든 메뉴에 국내산 돈육 100%를 사용한 소시지를 OEM 생산을 통해 쓰고 있고, 치즈의 명가 독일 로젠 지방의 모짜렐라 치즈를 소시지 위에 꽂아서 프리미엄 핫도그를 런칭하게 되었죠.” 핫도그가 이렇게 다양하다니. 1970핫도그의 메뉴는 신선하다. 표면에 씨앗을 입힌 씨앗 핫도그부터, 라면을 입힌 핫도그, 시리얼을 사용한 시리얼핫도그, 울퉁불퉁한 모양이 재밌는 감자핫도그까지……. 색다른 핫도그의 변신은 그들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이젠, 음식도 디자인이죠(웃음). 라면, 시앗, 씨리얼을 이용해 다양한 메뉴들을 개발했어요. 핫도그도 이렇게 다양하고 참신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참신한 시도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나갈 것입니다.” 보통 프랜차이즈의 시작은 이렇다. 개인 업장으로 성공하게 되면, 그 노하우를 신규 창업자에게 전수해주면서 가맹계약을 맺는다. 점주들이 하나, 둘 늘면 물류와 프랜차이즈 체계를 잡아나간다. 하지만 1970핫도그의 시작은 반대다. 맛은 재료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생각. 그래서 핫도그의 맛을 좌우하는 핵심 재료들부터 OEM으로 생산해냈다. 초기 투자비용은 크지만, 재료가 변하지 않아야 가맹점 마다 균일한 맛을 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게 초반 투자를 충분히 해놓은 상태에서 첫 업장을 열었다. 올 여름 부산 남포동에 문을 연 첫 업장은 무더위가 기승하는 계절에도 기록적인 성과를 남겼다. 4평 남짓한 작은 업장에서 일 매출 180만원을 기록한 것. 한 개 2,500원~3,000원 남짓한 핫도그를 하루에 7-800개를 팔아야 발생할 수 있는 수익이다. 매장의 성공을 보며 그들은 굳은 확신을 갖게 되었단다. “전국에 핫도그 브랜드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추세죠. 점점 치열해지는 시장 경쟁 속에서 제가 갖고 있는 확신은 하나입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본질에 투자할 것. 뛰어난 맛과 좋은 품질과 친절한 서비스. 그런 본질적인 경쟁력을 갖춘다면 소비자들이 먼저 알아보고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저희 1970핫도그의 경쟁력이죠.” 1호점 매장의 성공 이후로 부산 부산대점, 현대백화점 부산점, 판교점, 대구점, 울산점 등이 입점했거나 진행 중이며 그 외에도 추가 입점 예정이다. 그리고 서울 경희대점, 서울 한양대점 등이 오픈해 성업 중이고 서울 가로수길점, 서울대점, 홍대점, 인사동점, 외대점 등의 가맹계약이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성공적인 스타트 업을 한 이후로 상승세를 그리고 있는 지금. 그들은 어느 때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피곤한 기색보다 건강한 활력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온 경험과 노하우를 담은 회심작이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리라. 장차 전국으로 뻗어나갈 브랜드. 그 프랜차이즈 정책에 대해 묻자, 단 한마디로 말했다.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가 산다.’ 오랫동안 쌓아온 프랜차이즈 사업의 경영철학은 오로지 이 하나다. “저는 가맹점 개설 수익을 수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맹점을 늘리는 것에 급급한 프랜차이즈는 결코 오래가지 못해요. 가맹점이 잘 돼서 본사를 통해 식재료를 구매하고, 그것이 수익으로 이어지면 결국 본사도 잘 되는 겁니다. 그렇게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도 사는 것이죠. 그러니 제 목표는 가맹점을 전국에 많이 여는 것이 아니라 망하는 가맹점이 없게 운영하는 것이에요. ‘폐점율 0%’, 이 목표에는 그간 제 사업 인생이 담겨있죠(웃음).” 음식은 곧 문화다. 전쟁 직후 배고픔을 달래줬던 부대찌개. X세대를 대변하던 패스트푸드. 바쁜 현대인들을 위한 슬로우 푸드까지……. 누군가는 선도적으로 대중들에게 음식과 문화를 소개했다. 이처럼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인 핫도그를 새로운 디저트 문화를 이끄는 아이템으로 소개하겠다는 것. 이것이 그들이 그리는 큰 그림이다. “1950년 전후에 미군들을 통해서 한국에 핫도그가 소개됐죠. 그리고 1970년 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오늘날의 핫도그가 만들어졌어요. 그렇게 핫도그는 우리에게 친근한 길거리 음식으로 자리 잡았죠. 앞으로 저희는 디저트 문화를 이끄는 아이템으로 핫도그를 소개하고 싶어요. 우리에게 언제나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핫도그, 그 진정한 가치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그들은 소상공인들에게 따뜻한 힘이 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단다. 1970핫도그, 디저트 문화를 이끄는 대표 브랜드로 거듭나는 내일을 기대해본다. [1002]
    • 라이프
    2016-12-14
  • 스타트업의 든든한 조력자, XNTree(엑센트리)!
    스타트업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신생 기술벤처기업을 뜻하는 용어로써, 차별화된 기술, 아이디어 및 혁신성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시장에 역동성을 불어넣고 국가경제의 든든한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사업 초기의 부족한 자본금과 불안정성은 스타트업의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 이에 영국 런던에서 Level39라는 세계적인 스타트업클러스터의 엑셀러레이터인 XNTree는 지난 5년간 런던이 세계에 보여준 혁신을 통한 성공모델을 발판으로 이제는 아시아에 맞는 혁신모델을 제시하며,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세계를 무대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고자 한다._박정연 팀장, 이가현 ­­기자 글로벌 스타트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다 한국의 스타트업 중 일부 잠재성 높은 스타트업 기업들은 XNTree의 스타트업 플랫폼을 거쳐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XNTree는 향후 수년간 스마트시티 플랫폼을 한국을 포함하여 싱가폴, 중국, 인도, 이란, 대만, 일본, 홍콩 등에 현지의 지자체와 공동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XNTree는 현재 런던 Level39에서 약 230개의 핀테크, 스마트시티 전문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으며, 이는 지난 수년간 미국과 이스라엘 등을 뛰어넘는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XNTree는 아시아진출을 위해 2016년 7월 19일 서울에서 아시아 개소식을 하였으며, 첫 프로그램으로써 국내의 6개 스타트업을 선정하여 올해 11월 초 이들을 런던 Level39에 입주시켜 엑셀러레이팅을 진행하고 있다. 개소식과 함께 국내 파트너사로 한전, BNK부산은행,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솔섬유, The Floor(이스라엘 핀테크허브)와 파트너십을 맺고 XNTree의 아시아 허브를 한국에 두는 의미있는 결정을 내렸다. 또한 앞으로 한국에서만 스마트시티 플랫폼을 서울, 부산, 나주-광주, 그리고 경기도 지역에 구축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하여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사업 전반에 브레이크가 걸린 상황이지만 천재원 대표는 국내의 스타트업 기업 육성과 R&D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정치적인 잣대로 규정하기보다는 국가의 경제구조 혁신의 주춧돌로써 반드시 계속 되어야 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아닌 세계에서 경쟁하다 XNTree의 천재원 대표에게 물었다.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시장은 재벌기업 중심의 독과점 시장구조로 신생스타트업이 성장해나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시장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촉망받는 스타트업들이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한국 스타트업의 잠재가치를 미리 파악하여 해외선진 시장에서 제대로 된 기업가치(Valuation)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이를 저희 내부에서는 한국스타트업의 ‘Exodus’ 전략이라고 부릅니다.” 천재원 대표는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을 해외로 뻗어나가도록 돕고 있으며, XNTree는 스타트업들을 위한 아시아스마트시티라는 플랫폼 내에서 우수한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돕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스마트시티 클러스터에서는 IoT, Cyber Security, AR/VR, FinTech, Design, Energy 등 디지털시대에 맞는 다양한 주제를 통해 국내외의 잠재성이 높은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선택된 스타트업들이 XNTree의 아시아 스마트시티 플랫폼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XNTree는 향후 3년 전후로 아시아 지역에 500개의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XNTree의 스마트시티 플랫폼의 주요 특징은 사용자 중심의 시장경제이다. 공급자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생활에 편리함과 효율을 높일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를 세상에 던지면서 각 개인 및 집단에서 축적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용자(소비자) 중심으로 편하게 만들어내는 결과가 스마트시티의 본질일 것이다.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이를 활용하는 것은 많은 차이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으며 향후 글로벌 혁신을 이끌어가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그 기업들이 갖고 있는 데이터를 스마트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업일 것입니다.”라고 천재원 대표는 힘주어 말한다. 스타트업과 청년들의 멘토, XNTree! 넓은 시각으로 세계를 주시하라! 미국 보스턴의 한 초등학교에서 경험한 교생실습은 천재원 대표에게 ‘멘토의 역할’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직접적 개입이 아닌 간접적으로 스스로의 역량을 기르게 해 주는 것이 스승이자 멘토의 역할이라고 천재원 대표는 강조한다.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에 물음표를 던지고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자세가 창의성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이러한 깨우침은 XNTree의 글로벌 경영에 중요한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잠재성이 큰 스타트업을 발굴해 그에 맞는 프로그램, 투자를 해주고 성공이라는 ‘경험’을 맛보게 해주는 것, 그것이 XNTree가 스타트업 청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멘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천재원 대표는 청년들에게 고한다. “꿈을 크게 가지십시오,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십시오. 학교에서 배운 지식 (Book Smart), 현장에서 경험한 자산 (Street Smart)이 합쳐져서 자신의 역량이 되고 그리고 나서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넓은 시각을 갖는 것을 강조한다. 세계흐름의 방향을 알고 자신에게 필요한 자원을 스스로 찾는 역량을 기르라고 권고한다. “미래가치가 있는 자원을 찾으세요. 혹 그 자원이 해외에 있더라고 무서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협력하고 관계망을 맺고 그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으세요. 홀로 경쟁하는 것이 아닌 ‘협력’속에서 성공을 쟁취 하세요” Semper Paratus. Always ready.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기회에 대비하라!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천재원 대표는 ‘SEMPER PARATUS'라는 말을 언급했다. Semper Paratus.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는 자세를 가지라는 라틴어 뜻이다. 앞으로 또 어떤 기회가 천재원 대표에게 찾아올까. 어느 틈에 찾아 온지 모르는 봄날의 벚꽃처럼 올 수 있고, 발톱을 곧게 세운 맹수의 모습으로 찾아올 수 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몫이다. 다가올 찰나의 순간을 위해 늘 준비하는 천재원 대표, 언제어디서든 그의 역량이 빛나기를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1002]
    • 경제
    2016-12-14
  • 문화와 사람을 이어주다 - 일상에서 예술로의 초대
    대학로하면 청년들이 미래를 향한 꿈을 꾸기 시작하는 곳이자, 동시에 예술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라는 느낌이 떠오른다. 아니 떠올랐었다. 요즘은 일상생활 대부분을 프랜차이즈에 맡기는 일명 프랜차이즈 라이프'(Franchise Life)가 오늘의 대학로 문화가 처한 몰개성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대학가의 위기이자, 청년문화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부산 대연동의 경성대·부경대 대학로도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음식점, 술집, 어학원들이 즐비하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문화공간인 (주)문화드림이 이 위기의 대학가와 청년문화의 돌파구가 되기 위한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_구아리 기자 ‘다 때가 있느니라, 배움에는 때가 없다’ 한국문화예술협동조합에서도 활약 “문화드림은 학생, 직장인, 주부, 시니어 등 일반인들이 쉽게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자리잡은 이유는 대학가 앞에 청년들을 위한 문화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학가는 청년들이 미래를 향한 꿈을 꾸기 시작하는 곳으로 대학문화가 살아나야 지역의 청년문화가 살아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요.” 문화드림은 교양있는 삶을 위한 취미, 직장인 활력프로젝트, 청년행복프로젝트 등 테마에 따라 보타니컬, 우쿨렐레, 오카리나, 하모니카, 뮤지컬 등 다양한 강좌를 선보이고 있다. 모든 강사진이 각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로, 현재의 예술적 동향을 파악하고 적용하여 실질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있기에 수강생들의 만족도도 높다. 문화드림의 박종준 대표는 ‘다 때가 있느니라, 배움에는 때가 없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아이러니컬하게 들릴 수 있지만 받아들이는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말입니다. 취업이라는 관문 앞에서 힘들게 허덕이고 있는 청춘들에게는 젊었을 때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라는 뜻이고, 시니어들에게는 반복되는 일상패턴에서 벗어나 문화예술을 통해 일상의 즐거움을 찾아보라는 의미입니다.(웃음)” 박종준 대표는 음악, 창작, 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활동 및 교육을 통해 문화예술의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는 문화드림 설립 전부터 한국문화예술협동조합이라는 단체에서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협동조합은 2012년,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며 설립되었으며 ‘Life in Art’ 문화예술을 통해 삶의 행복 찾기라는 비전을 가진다. 이곳의 목적은 다양한 연주와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운영을 통해 예술가들에게는 그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대중들에게는 양질의 문화예술 공연·교육 프로그램을 쉽게 경험하고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박 대표는 한국문화예술협동조합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가 문화드림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자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예술문화 및 교육사업에 힘써 문화예술학교 설립 수많은 공연과 창작활동을 해오고 있는박 대표는 처음부터 문화기획자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라고 한다. 원래 성악가였던 그는 ‘뜻 맞는 예술가들과 함께 좋은 공연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점차 그 경험이 쌓이면서 기획자로서 그리고 단체대표로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한국예술교육진흥원에서 주최한 해외전문가 초청 워크숍 중 미국 ‘Big Thought’의 단체철학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Big Thought’는 문화예술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그것이 그의 인생 터닝포인트이자 문화예술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고. 그렇게 시작한 문화예술사업으로 그는 무대 위가 아닌 무대 아래에서 호흡하는 주체가 되었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을 묻자, 지난 11월 성황리에 마친 ‘깽깽이 할배’를 떠올렸다. “깽깽이 할배는 38선 넘어 형제를 위해 바이올린을 켜는 극중 주인공 인물을 말합니다. 통일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마임, 클래식, 스트릿 댄스 등 각자 다른 분야의 예술을 융합한 것이 특징입니다. 총예술감독으로서 그 공연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관객들에게도 더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문화예술교육사업에도 힘쓰며 예술과 대중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해내고 있다. 2015년부터는 부산교육청의 지원으로 부산경남 일대지역에서 ‘학교를 찾아가는 음악회’를 하고 있으며, ‘숙려제’를 통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 그리고 탈북민 아이들에게도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술관련 학과에서 꿈을 키워나가는 청년 예술가들을 보조강사로 적극적으로 기용하여 일자리 제공과 더불어 다양한 프로그램의 경험을 통해 미래의 전문인을 양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박 대표의 꿈은 문화예술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문화예술계에 몸담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타인들과의 나눔활동을 통해 사회의 긍정적 변화에 기여하도록 이어주고 싶다는 것이다. 예술창작활동을 통해 문화예술인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예술인으로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 싶어한다. 예술을 배우고 싶지만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선실행 후판단’이다. 무슨 일이든 직접 경험해봐야 알듯이 예술도 마찬가지로 우선 해보고 판단하라!는 그의 메시지를 새기며 문화드림과 한국문화예술협동조합에서 제공하는 문화예술을 통해 삶의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보길 권한다. ■ 문화예술교육 주요 활동영역 ■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하모니카자격증 발급 기관취득 한국국제하모니카협회와 교육업무체결 2015,2016 부산광역시 교육청 학교를 찾아가는 음악회 체결 부산광역시 동래교육청 자유학기제 진로체럼 협약기관 부산광역시 교육청 숙려제기관 북한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장대현학교 협약기관 부산문화재단 토요꿈다락 교육기관 부산,경남지역 중학교 자유학기제 교육기관 [1002]
    • 교육
    2016-12-14
  • 아이들의 웃음, 가족 모두가 행복한 미래를 위한 공간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첫걸음입니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아이들의 심리, 발달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아동심리센터를 찾는 아빠들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심리센터에서 내 아이의 심리상태, 발달단계를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이해하기 힘들었던 아이의 행동 혹은 부모로서 주의해야 할 부분을 확인하며 좀 더 현명한 양육이 가능하게 돕는 것.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핵심은 ‘이해’라고 말하며, 오늘도 아이들과 부모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아이다움 심리언어발달센터의 임광훈, 이효정 원장과의 만남을 소개한다. _배진희 ­­기자 아이다움 심리언어발달센터의 임광훈 원장은 예전부터 아이들을 좋아하고 사람들의 정서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이효정 원장은 아이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특히나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의 통제되지 않은 모습이나 독특한 기질이 엿보일 때 관심이 자주 가 심리학을 전공하기에 이르렀다. 임광훈 원장은 아동·청소년 심리상담, 이효정 원장은 아이와 학부모를 위주로 하는 놀이치료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 상담과 치료 영역이 세분화 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배우자인 서로가 함께 일하며 의지하고, 부족한 부분을 상호 보완하며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면담부터 치료까지 원스톱으로 진행 임상전문가들의 체계적, 특성화 프로그램 아이다움 심리언어발달센터는 예약제로 이루어진다. 먼저 전화예약 후 방문 상담이 필요한 경우 날짜를 정한다. 아이와 학부모의 초기 상담을 통해 아이의 문제를 이해하며 진단평가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른 치료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때 부모의 2차 보고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전되는 과정을 확인하며 그에 맞는 치료법과 치료 시기가 재조정되고, 그 후 종결평가 등을 통해 지속적인 사례를 점검한다. 보통 상담치료는 주 1, 2회 진행 되는데, 치료 시기는 상황에 따라서 연 단위의 장기적인 치료가 진행되기도 한다. “치료과정에서 아이와 치료사 그리고 가정의 연결고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서로 관계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죠.” 심리·언어발달평가 실시 및 놀이치료사, 언어치료사, 미술치료사, 인지치료사 등 각 분야의 임상전문가들이 체계적이고 특성화된 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특성화 프로그램의 세부 내용으로는 ‘ADHD 아동을 위한 주의력 향상 프로그램’과 왕따, 학교 폭력 등 학교에 적응이 힘든 아이들을 위한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 부모와 자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치료사에게 점검받아 양육행동기술을 훈련하는 ‘부모·자녀 상호작용 놀이 프로그램’, 그리고 자녀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양육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 검사 등을 위한 ‘부모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아이다움의 큰 장점은 이러한 모든 과정을 전문가 한 사람이 아이, 부모 면담부터 검사, 치료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는 신뢰감을 형성하고 치료 상황 컨트롤을 용이하게 한다. 한편, 아이다움은 보건복지부 바우처 제공기관으로 경제적 여건으로 치료가 힘든 경우 교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관심과 상호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 보통 부모의 권유나 학생 스스로의 판단 하에 상담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아동폭력이나 학교폭력 및 왕따 등 가려진 부분은 찾기 어려워 도움을 주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부모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맞벌이 가정이 대부분이라 바쁘시지만 아이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부모의 도움이 힘든 아이들의 경우 사회복지현장의 전문가들, 유치원 및 학교 선생님 등 어른들의 관심이 중요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임 원장과 이 원장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아동과 청소년, 학부모들에게 맞는 상담과 치료를 진정성을 가지고 진행하는 기본적인 부분을 우선할 겁니다. 또한 센터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많은 분들이 알게 되어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노력을 이어갈 겁니다.”라고 밝혔다. [1002]
    • 교육
    2016-12-14
  • 불교의 진리로 수행하고 실천하며 지역주민에게 봉사하는 행복을 나누다
    겨울의 초입새에서 주간인물은 사랑과 허기, 방황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다 포용하는 미소를 가진 성화스님을 만났다. 마주앉은 자리, 찻물 내리는 소리, 바닥에 비추는 햇빛, 세상의 고즈넉함을 모두 담은 장안사, 그곳에서 세상의 아픈 자를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아내신, 그리고 다시 지속될 삶을 주간인물이 담았다. _안연승 차장, 이가현 ­­기자 복지는 자비를 실천하는 활동공간 1998년도 IMF 때 성화 스님은 공사현장에서 아이들이 크는 것을 보고 사회의 안전판을 구축하기로 마음먹었다. 건강한 환경에서 아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24시간 어린이집을 운영하였다. 그것이 사회복지활동의 첫걸음이었다. 성화 스님에게 복지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복지는 자비를 실천하는 활동공간이고 저 역시 행복하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구축된 곳이 아닌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가서 지역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애쓰시는 스님은 일산 노인종합복지관 관장, 영등포 장애인 복지관, 한솔 종합사회복지관 관장으로 사회복지 현장에서 지역주민과 공생하는 삶을 살아왔다. 2003년부터 성화 스님은 8년 동안 한솔 종합사회복지관 관장으로 맡은 바 임무를 다 하셨다. 그 시작은 쉽지 않았다. 2004년 한 독거노인이 전구를 갈다가 사고로 대퇴부가 부러졌다. 그 상태로 하루가 지난 뒤 발견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성화 스님은 사회안전망 구축에 힘쓰기 시작하였다. 2004년 관리대상자 100세대를 직원들에게 1인당 7세대를 분배했다. 일주일에 3번 안부 전화, 두유 배달을 실시함으로써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였다. 보기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지역주민의 욕구에 맞는 복지의 결과는 주민들의 지지로 돌아왔다. 청소년 범죄율 감소와 더불어 복지관 평가에서 C급 판정을 받은 복지관은 3년 뒤 경기도에서 1등가는 복지관으로 지역사회주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성화 스님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말하였다. 얼굴에 미소가 어리었다.“지역주민들은 재활용 분리수거를 통해 650만 원을 모았었는데. 지역 어르신을 위한 추석 선물 비용이었어요. 그런데 150만 원이 부족하여 복지관에 지원 요청하였지 나는 복지관에 후원할 것을 권했고 지역주민은 그래도 복지관에 신뢰가 있었는지 후원을 한거야. 나는 담당 복지과장에게 더 좋은 상품과 프로그램으로 기획할 것을 회의를 통하여 전달하였고 2배 이상의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였어 그랬더니 매년 늘어 2010년에는 분리수거를 통해 1200만원을 모았더라고.” 지역민들과 함께 숨 쉬는 사회복지 기자는 지역주민들의 고충과 사례를 술술 얘기하시는 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지역과 함께 숨 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세한 부분까지 다 알고 계시는 모습에 코끝이 찡해왔다. 관장이라는 직함이 스님에게는 어떤 책임으로 다가왔는지 물었다. “관장은 직원이 신명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죠.” 성화 스님은 1998년도부터 직원들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 오셨다. “IMF가 터지고 24시간제 어린이집을 할 때 야간에는 여교사 둘이 근무를 하는데 새벽에 바람만 스쳐도 무서워하더라고요. 내가 그때 새벽 1, 2시에도 상관없으니 무섭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오겠다고 했어요.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언제든 달려오겠다. 라고 서로 지지하며 그때 참 우리 직원들과 함께 헌신적으로 일했죠” 복지관이 왜 헌신적으로 일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물었다. “사회복지관은 그 설립목적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조직 이익이나 사익을 버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따뜻한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 복지입니다. 그 목적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안일하게 가지고 있는 사고로 복지관 설립 목적을 이행할 수 없으면 복지 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 시절 직원들에게 말했어요. 저 아이들이 무너지면 한 가정의 행복이 무너지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복지 한다고 들어왔으면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라 내가 뒤에서 든든하게 버텨주겠다” 이처럼 성화 스님은 직원들이 신명 나게 일 할 수 있게 정서적으로 물질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 사회복지를 시작한 1998년도에도 그랬고 2016년 끝자락에도 변함없다. 직원들 하나하나의 강점을 찾아 유능한 사람을 만들고 격려한다. “기관장은 외풍을 잘 막아야 하죠. 아닌 것을 요청하는 것은 다 거부할 수 있어야 직원들이 일할 맛 나게 됩니다. 그것이 관장의 역할이죠.” 가슴에 품은 뜻 성화 스님의 신념은 ‘바르게 살자’이다. 처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자기뿐만 아니라 같이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이 생활할 수 있게 배려해야 하는 삶이 바르게 사는 삶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신념은 성화 스님이 걸어오신 삶에 덤덤하게 묻어난다. 영구임대 주택에 알코올 환자가 많았다. 성화 스님은 그들을 배척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공존할 수 있는 사회의 장을 만들고 싶었다. 알코올 중독 가정의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방과 후 교실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과 음식 등을 제공했다. 또한, 사회의 퍼져있는 낙인이론을 없애기 위해 알코올 중독 가정의 아이들과 비알코올 중독 가정의 아이들이 함께 활동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 청소년들이 1박 2일 동안 지역 독거노인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시간을 통해 영구임대주택 거주자의 편견을 깨트렸다. 그리고, 일산 노인종합복지관 재직 시 식당은 140석으로 1200명의 어르신들의 식사시간은 10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편안히 식사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시청, 국회의원, 시의원 등과 함께 노력하여, 식당 좌석을 400석으로 늘림으로써 어르신들이 이용하시는데 불편함이 없게 만들었다. 그런 노력에 대한 보상일까 3년 동안 보건복지부 프로그램 평가에서 대상을 받았고, 전국 노인복지관 평가에서 최상위층에 속하는 쾌거를 이뤘다. 성화 스님은 말한다. “제일 좋은 복지관은 이용자가 이용하면서 행복한 복지관이죠” 청년에게 고함 성화 스님은 일산 노인종합복지관에서 근무하던 20대 사회공익요원 청년들을 떠올리며 운을 떼었다. “아프면 아픈 대로 받아들이지 거기에 머물러서 포기하거나 무너지지 마세요. 죽을 것처럼 아팠던 것도 훗날 되돌아보면 소중한 시간이고 나의 자산이 됩니다. 지나가고 나면 괜찮은 아픔입니다. 청춘이라는 그 설레는 이름! 무너지지 마세요.” 인터뷰를 하면서 기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님이 바라보는 사회는 얼마만큼 아프면서도 아름답길래 사회에 늘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실까’ 스님이 바라는 사회는 어떤 세상일까 궁금하였다. 성화 스님은 어려운 사람에 대한 배려를 좀 더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불평등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존재는 하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함으로써 같이 더불어 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여 직업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여러분들이 어떤 직업을 택하든 어떻게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까 고민하십시오” 성화스님은 2017년 4월 서울 관악구 장애인복지관 관장에 새로 취임한다. ‘처처극락’ 머무르는 곳마다 행복한 삶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얼굴에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한다. 선하게 미소 짓는 스님의 발걸음 한걸음 한걸음이 행복하기를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경기도 평택 출생 불지종가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정우화상을 은사로 득도 중앙승가대학교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졸업 대한불교조계종 장안사 주지 성남시 한솔종합사회복지관장 서울시립 영등포 장애인 복지관장 역임 고양시 일산노인종합사회복지관장 서울시 관악구장애인복지관장(2017.04) 저서: 시집(오랑케꽃) [1002]
    • 라이프
    2016-12-14
  • ‘지글 지글~’ 셰프의 따뜻한 정성을 머금은 스테이크!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부산 남포동은 트리축제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친구 혹은 연인과 분위기를 내기 위해 특별히 스테이크를 먹고 싶지만 레스토랑은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이거나 억! 소리 나게 비싼 곳뿐이다. 걱정하지 마시길. 셰프의 따뜻한 미소와 정성이 담긴 스테이크 요리를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 ‘토레스’가 있다. _배진희 ­­기자 부산 남포동에 위치한 소고기 팬스테이크 전문점 토레스에서 정민정 오너셰프를 만났다. 인상 좋은 미소와 함께 내공이 느껴지는 그는 외식 경력만 30년인 베테랑 요리사다. “젊었을 때부터 외식 쪽 일을 했어요. 주말에 제대로 쉬지 못하는 등 힘든 요소가 많지만 한 번도 업을 바꿔 볼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웃음).” 정 대표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면서 손님들과 제대로 소통하고 교류하는데 한계를 느껴 셰프뿐만 아니라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상품개발 운영 팀장을 맡기도 하고, 창업 컨설팅을 진행하며 외식업의 전반적인 경험을 두루 쌓았다. 과거, 피자를 주 메뉴로 하는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일 할 때는 일본이나 이탈리아에 직접 가 맛보며 메뉴개발을 하기도 했다. 이런 풍부한 경험을 기반으로 비슷한 맛을 가진 프랜차이즈 기업과는 차별화된, 정 대표만의 가게 ‘토레스’를 3년 전 오픈했다. 직접 만든 식재료로 건강한 음식 지향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족도 높은 한 끼 식사 오픈키친으로 된 토레스, 그곳에 가면 주방에서 요리하고 고객에게 직접 서비스하는 정 대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토레스의 모든 음식을 직접 핸들링 하는 정 대표는 신선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 예로, 작년 말에는 전라도 신안에 있는 염전에 직접 가 요리에 쓰일 소금을 가져와 테스팅 하여 현재 사용하고 있다. 또한 리코타 치즈, 피자 도우 역시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스테이크를 위한 고기 숙성과정 등으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하루 약 14시간씩 일하는 워커홀릭이 되었다. 직접 만든 스테이크 소스의 경우 매력을 느낀 고객들의 테이크아웃 판매요청이 쇄도하지만 소스에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는 특성상 변질의 우려가 있어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 추천메뉴를 알려달라는 취재진의 말에 정 대표는 “토레스는 스테이크가 주메뉴에요. 그렇다 보니 다른 메뉴인 피자나 파스타의 경우 스테이크와 함께 드셨을 때 스테이크의 맛을 크게 좌우하지 않는 선에서 조화롭게 맛이 어우러지도록 요리하려고 노력해요”라며 메뉴의 조화를 중시하는 대답을 했다. 토레스는 팬스테이크 전문점인 만큼 무겁고 두꺼운 주물 팬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요리부터 서빙까지 까다롭고 불편한 주물 프라이팬을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요리할 때 정말 힘들어요(웃음). 그렇지만 그냥 플레이트에 스테이크가 담겨 나오는 것보다 온도가 오래 유지되고 마이야르 반응으로 스테이크 맛을 더욱 깊게 만든다는 장점이 크기 때문이죠.” 마이야르 반응은 스테이크를 불에 구웠을 때 고기 표면에 수분이 제거되며 나타나는 반응으로 이로 인해 고기의 색이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변하고, 침샘을 자극하는 향기가 생겨난다. 이는 온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섭씨 130~200도(℃) 사이에서 격렬하게 반응이 일어나고 수많은 향기 물질이 만들어진다. 이 반응을 일어나게 하려면 고기를 섭씨 130~200도(℃)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야 한다는 뜻으로 정 대표가 주물 팬을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건강한 식재료와 셰프의 솜씨에서 나오는 맛도 맛이지만, 토레스의 큰 장점 중 다른 하나로 합리적인 가격을 들 수 있다. 가게를 열고 한 번도 가격 변동을 하지 않았다는 정 대표, “다른 곳에서 20%의 수익을 생각할 때 저희는 10%만 생각합니다. 너무 상업적인 음식으로 가지 않으려고요.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음식점이 아니라 오랫동안 머무는 곳이 되고 싶어요.” 음식에 대한 마인드와 집중, 완성도가 중요 정 대표는 베테랑 요리사이지만 아직도 요리를 하면서 배우고, 그 과정이 즐겁다고 말한다. 기회가 된다면 젊은 셰프들과 공유하고, 본인이 가진 노하우도 알려주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정 대표. 가맹점 운영 계획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직접 요리를 하며 고객을 대할 의지가 있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라고 밝혔다. “어느 정도의 집중과 완성도를 가지고 요리를 하는지, 고객을 대할 때 어떤 마음인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정민정 대표는 앞으로 60, 70대 나이가 들어서도 손님들에게 전문적인 음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일을 꾸준히 하고 싶다고 밝혔다. [1002]
    • 맛집탐방
    2016-12-14
  • 멋스럽고 고즈넉한 분위기,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한옥카페
    도심 속 아기자기하게 늘어선 카페들과 빼곡하게 들어찬 소문난 맛집들이 시선을 사로잡는가 하면 조용한 시골에 자리한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한옥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경남 거창의 한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한옥카페 ‘청’은 멋진 자태를 뽐내며 추운 겨울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게다가 향도 좋은 커피와 따뜻한 차 한 잔은 우리의 몸을 녹여줄 뿐 아니라, 겨울 분위기를 한껏 내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_구아리 기자 한옥이 주는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 그윽한 나무냄새와 향긋한 커피향의 조화 거창읍에 위치하고 있는 카페 청에 들어서자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구조물 곳곳마다 세심함이 가득 담긴 정말 멋진 목조건물이다. “한옥 고유의 따스한 분위기를 살리고 소품과 외벽 톤으로 현대식 생활의 옷을 입혔습니다. 계절로 꼽자면 겨울, 시간대로는 저녁시간에 가장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이곳은 상가밀집지역이 아니라 주택가 쪽에 위치하다보니 밤에 조명을 켜면 따뜻한 느낌이 배가되거든요. 특히 서까래와 레일 등의 조합은 아늑한 분위기를 내는데 톡톡히 한몫 하고 있죠.(웃음)” 실내에 통나무로 된 계단을 올라가면 2층 좌식공간이 있는데, 특히 이곳은 손님들에게 인기 만점인 공간이다. 프랜차이즈 카페와 유행을 좇아 비슷한 콘셉트의 카페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요즘, 장 대표는 왜 한옥카페를 하게 되었을까. 그녀는 평소 커피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부산의 유명한 한 카페에서 커피를 따로 배울 정도였고, 자연스레 카페사업에 대한 꿈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전통찻집을 원했고 그 접점을 찾은 것이 과거와 현대를 한데 묶어놓은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지금의 카페 청이다. 거창인구 평균연령대가 도심지역보다 높은 편이라는 점도 한옥카페를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한옥의 편안하고 따뜻한 점이 장점이라면, 아무래도 서울 북촌한옥마을이나 전주 한옥마을을 찾는 연령대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서 아직은 카페 청을 찾는 젊은 손님층이 얕다는 점이 아쉽다고 한다. 그러나 소품과 인테리어 톤을 통해 과거와 현대를 중화시켰고 메뉴 또한 허니인삼스무디나 유자스무디 등을 준비해 놓는 등 젊은 층을 겨냥한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차 직접 달인 대추차, 쌍화차 인기 ‘내가 마실 수 없는 건 판매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카페 청은 다양한 차를 수제로 선보인다는 점이 눈여겨 볼만하다. 그래서인지 혹시 상호도 수제 ‘청’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꽤 받는다고. 하지만 ‘청’은 세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 넓은 대청마루의 편안함. 둘째, 맑고 깨끗한 옹달샘의 약차. 셋째, 언제나 푸르른 소나무. 용기있는 자의 기상이다. 오미자·생강·모과·매실과 같은 제철과실들은 1년치 재료를 한 달에 걸쳐 미리 만들어 놓고, 레몬·라임·자몽은 2-3주 분량을 미리 만들어 놓는 등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이지만, 부지런히 준비하는 장 대표에게서 손님들의 건강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대추차와 쌍화차는 직접 달이기 때문에 그 맛과 건강은 일품이다. 대추는 장 대표 부모님이 무농약으로 직접 농사지은 것들이며, 손님들도 그 맛을 알고 대추차와 대추라떼는 청의 인기메뉴이다. 쌍화차도 일반 과립형태가 아니라 9가지 약재를 비율에 맞춰서 달인 것이라고 한다. “요즘 스몰카페시장이 거대해지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생과일음료나 커피를 드실 수 있는데, 소비자들이 커피나 차도 내 몸에 들어가는 음식이라고 생각하시고 한 잔을 마시더라도 건강한 음료를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먹을 수 없는 건 판매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임하고 있는 장 민 대표는 카페 청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에서 음식점은 3-40년 가업과 전통을 잇는 곳들도 있지만 카페는 드물어요. 일본이나 유럽의 카페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카페가 되었으면 해요. 가끔 지긋한 나이의 어르신들이 들어오시면서 ‘우리같은 늙은이들이 들어와도 되냐,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럴 때 너무 마음이 아파요. 그런 걱정 하지 마시고 들어오셔서 편히 계시다 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chiu_yi_b [1002]
    • 맛집탐방
    2016-12-14
  • 2016 농촌진흥청 농촌자원분야 경진대회 6차산업 우수 가공 상품 최우수상 수상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자연과 생산자가 중심이 되는 6차산업의 시대이다. 6차산업이란, 1차산업인 농수산업과 2차산업인 제조업, 그리고 3차산업인 서비스업이 복합된 산업을 말한다. 예를 들어 친환경으로 농산물을 생산하고(1차산업), 해당농산물로 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하고(2차산업), 도시소비자들을 초청해 직접 체험활동을 펼치는 것(3차산업)이다. 6차산업분야에서 활약하며 2016 농촌진흥청 농촌자원분야 경진대회에서 ‘6차산업 우수 가공 상품 최우수상 수상’한 경남 거창의 이수미팜베리를 방문취재했다._구아리 ­­기자 양계사업으로 시작하여 베리계의 대모로 살아 숨쉬는 흙냄새를 맡으며 1만 4000평 농장서 기르는 베리류 5종 세트 이수미 대표는 1992년 거창군으로 귀농해 2006년 이수미팜베리를 설립하면서 친환경농업을 시작했다. 거창이 고향인 이 대표는 원래 서울의 한 유명 여성의류회사에서 디자이너를 꿈꾸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어 그 충격으로 어머니마저 마음의 병인 우울증을 앓으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제일 힘들어하는데 뭔들 소용 있겠냐’며 과감히 사직서를 낸 이 대표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위해 귀향을 결심했다. "엄마 얼굴에 병색이 짙었는데 제가 곁에 오니 좋으셨나 봅니다. 웃음을 되찾으시고 혈색도 돌아오더라고요. 건강해지는 엄마 모습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고 한시름 놓았죠." 그러면서 이 대표는 이전과는 달라진 환경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생각 끝에 그녀는 농업이 가진 가치를 깨달으며 생산적인 노동으로 성공해보고 싶은 생각에 양계사업을 시작했다. 꽃다운 나이 22세,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힐을 신고 다니던 그녀는 이제, 정신집중을 위해 앞머리 한 올도 내려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창이 큰 모자를 쓰고, 장화와 작업복 차림으로 18년간 양계사업에 몰두해왔다. 특히 정신집중을 위해 쓰기 시작한 모자는 어느새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햇빛을 차단해줄 뿐만 아니라 외부일정이 있을 때에는 패션모자로 바꿔쓰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자기관리면모까지 보여줄 수 있는 애정아이템이라고. 그렇게 양계사업을 해오며 마침내 2006년에는 1만 4천평의 대지를 구입했다. 양계장을 하면서 밤에는 그 땅을 가꾸고 베리사업을 준비했다. 인공이 아닌 자연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색과 향이 좋아 관심을 갖게 된 이 대표와 베리류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6차산업 선도농가로 활약 수확·가공·교육·숙박체험을 연계 발전 지역농가 및 사회에 파급효과 “베리는 항산화 효과가 우수하여 노화를 방지할 뿐만 아니라 시력개선효과, 심장 및 혈관질환, 뇌졸중 등 혈액과 관련된 질병의 치료에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2008년도에 심은 베리들은 올해로 8년째 이 대표의 정성과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그녀는 베리를 심을 때부터 무농약을 고집해왔다. 초기에는 베리들이 벌레에 적응을 못해서 피해가 막심했다고 한다. 많은 고심 끝에 베리입장에서 생각하며 시간을 두고 기다리자, 점차 베리들이 내성력이 강해지고 자생력이 생기며 건강한 베리로 자라나더란다. 수확하는 양보다 베리의 품질을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드넓은 1만 4천평 대지 중간에는 영하 28도를 유지하고 있는 냉동창고가 있다. 여름에 수확하는 베리는 외부환경에 오염되지 않도록 최대한 신선하게 보존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친환경으로 생산한 신선한 베리와 가공제품들을 직거래로 판매해 유통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농가수취 가격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인터뷰 중에도 직거래 구매를 위한 문의가 끊이지 않았고, 이수미표 베리에 대한 인기를 확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1층엔 소비자 교육실을 겸한 체험실이 있다. 그곳에서는 학교 교과목과 연계한 농 촌교육이 이루어지는데, 농업에 대한 가치나 건강한 먹거리 등 농업관련 전반적인 스토리를 들려주며 농업분야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교육 후에는 베리류를 이용한 요리체험을 통해 직접 맛보는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그들은 미래소비자입니다. 때문에 농업가치를 인식시켜 주고,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체험관을 짓게 된 것도 단지 먹거리 생산에 머물지 않고 문화를 생산하는 농촌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12월에는 카페공간도 오픈예정이다. 베리류를 이용한 샐러드와 주스, 떡을 디저트메뉴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요즘은 밥보다 디저트를 선호하고, 1인가구가 날로 증가하는 추세라 농업도 변화하는 트렌드를 잘 읽어서 현대인의 취향에 맞게 경쟁력을 갖춰나가야 합니다. 또한 소비자들이 제대로 된 먹거리를 찾아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저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웃음)” 거창읍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수미팜베리. 자연과 생명이 꿈틀대는 이 곳에서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며 편히 쉬다 갈 수 있도록 펜션 및 게스트하우스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이곳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찾길 기대해본다. [1002]
    • 라이프
    2016-12-14
  • “한우를 내 자식, 내 분신 같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왔습니다”
    축산업의 현실적 문제 해결과 발전을 위해, 그리고 인재 육성을 위해 매진하고 있는 이가 있다. 국내 최초 농축산업분야 최고 장인(匠人)인 ‘농업 마이스터’로 지정된 태영축산 구기태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오늘 구 대표를 만나 축산업의 현실과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_이진랑 ­­기자 구기태 대표는 18년 전 대구의 한 제조업체에 다니던 직장인이었다. 당시 구 대표의 동생이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부모의 농장을 물려받아 한우를 키웠다고. 1998년 경영 악화로 동생이 경영하던 한우농장이 문 닫을 위기에 처하자 구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는 체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저는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소에게 먹일 조사료를 직접 재배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당시 조사료를 직접 생산하는 축산농가는 드물었죠. 볏짚과 배합사료를 먹이는 관행 사료로는 번식우의 능력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옥수수, 라이그래스, 유연보리 등 영양소가 풍부한 사료를 충분히 제공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조사료를 직접 재배했습니다.” 여름철 구 대표는 밭에 옥수수와 수단그라스를 키웠다. 겨울에는 수확을 끝낸 논을 빌려 보리와 라이그래스를 심었고, 180마리의 소가 배출한 똥은 자신의 밭과 빌린 논에 뿌렸다. 그는 “논 주인은 제가 뿌린 퇴비 덕분에 쌀농사가 잘 된다며 좋아했고 저는 겨울에 그 논에서 조사료를 키우고 볏짚도 얻었다”며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질 좋은 조사료를 먹이다 보니 한우의 면역력이 높아지고 호르몬 체계가 좋아졌으며 송아지 생산도 늘었다고. “한우를 내 자식, 내 분신과 같이 생각하고 대하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왔어요. 조사료 100% 자급 기반을 구축했고, 암소 개체별 BCS(신체충실지수) 파악으로 번식우 관리를 정밀화시켰습니다. 소의 분만 간격은 농가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지요. 일반 농가는 소 한 마리가 365일 동안 한 마리의 송아지를 낳도록 관리하지만 저는 340일로 내외로 단축시켜 자립적인 농업경영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구기태 대표는 2008년부터 올해까지 경상대학교 축산학과와 함께 조사료 품질 향상 연구를 수행해왔으며, 조사료 첨가물(생균제) 개발을 통해 사료비 절감과 임신 기간 단축의 성과를 꾸준히 거두고 있다. “저의 한우 축사는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평지에 현대식으로 건립돼 소를 안정적으로 사육할 수 있고, 농장 내 높은 기계화로 작업 효율이 높아요. 중앙통로를 중심으로 먹이를 양쪽 방향으로 나눠주며, 자동화·기계화된 시설로 대부분의 작업과 청소를 하죠. 천장에 대형 선풍기를 가동시켜 온도를 조절해 하절기 축사 온도는 외부보다 3도 정도 낮게 유지됩니다. 투명·불투명 자재를 함께 이용해 천장을 만들어 내부에 햇볕과 그늘이 엇갈리게 만들었습니다. 소가 그늘과 햇볕을 선택해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죠.”구 대표는 축산물 HACCP 인증, 친환경 축산물 인증을 획득하며 한우 고품질을 유지해왔다. 국내 최초로 ‘농업 마이스터’에도 선정됐고, 한국농업교육협회 주관 농고생 멘토링 사업에도 참여해 다른 농업인들에게 교육 및 컨설팅을 통해 전문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공유시켜왔다. 이 밖에 진양농협 한우작목반, 한우협회, 경남한우개량동우회, 한우산업진흥회 등의 활동에서도 전문성을 발휘했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가 인정받아 최근 ‘제22회 경상남도 자랑스런 농업인상’(자립경영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배움에 대한 철학이 남다른 구 대표는 “주먹구구식 농사가 아니라 철저한 과학영농을 정착시켜야 하며, 소만 키울 것이 아니라 사람도 키워 다른 농가도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면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접목시키는 일에 더욱 신명을 바쳐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차세대들은 기성세대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기업농을 목표로 해야 한다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지식들을 전해주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앞으로 차세대 축산인들이 구 대표를 통해 다양한 경험, 그리고 깊은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익혀 대한민국의 농축산업을 발전시키길 기대해 본다. 구 대표는 젊은 나이에 축산업에 뛰어들어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 좋은 결과를 맺었다. 한편 구 대표는 2013년 한우분야 ‘농업 마이스터’로 선정됐다. 국내 최초로 지정된 ‘농업 마이스터’는 전문 기술과 지식, 경영능력을 갖추고 이를 다른 농업인에게 교육 및 컨설팅을 할 수 있는 농업분야 장인이다. 구 대표는 농업 마이스터로서 앞으로 농축산업을 이어갈 인재들과 농업인들에 교육을 하며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축산업은 농업 총 생산액의 42%를 차지할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왔다. 이와 같은 성장을 발판으로 지속 가능한 선진 축산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양적 성장 이외에 사회·환경문제 해결이나 주위에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는 국민에게 사랑받는 산업으로써의 모습이 요구된다. [1002]
    • 라이프
    2016-12-14
  • 차별화된 메뉴와 우수한 제품, 톡톡튀는 아이디어 소비자를 유혹하라!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07년 2,300여개에 불과했던 커피 전문점은 올해 5만개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가 2천만에 해당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400명당 카페1개가 있는 형태, 이미 수익성 없는 포화시장이라 할 수 있겠다. 국세청이 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커피전문점 사업자는 지난해 8월에 비해 1년사이 20.1% 급증하여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는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여전히 커피전문점이라는 사실을 나타내준다._김정은 ­­기자 이노베이터 시스템의 이금동 대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해결책으로 단순히 싼 가격만을 내세우는 경우 소비자에게 품질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하며 “또는 매출이 높아도 수익률이 맞지 않아 힘만 들고 수익이 늘지 않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기술 없이 개인 커피전문점을 오픈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프랜차이즈의 경우 높은 로열티로 매장운영이 힘들 수 있어 역시 주의해야 한다고도 전했다.결국 전문 기술이 있어 창업을 하더라도 커피와 함께 할 수 있는 디저트 메뉴 개발기술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눈에 띄는 한 매장. 화려한 샹들리에와 품격 있는 작품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이곳은 최근 감각적인 메뉴들로 주목 받는 페어리스트리 카페&레스토랑 갤러리메르헨 점. 감미로운 음악과 아름다운 작품, 기분 좋은 향기의 커피, 맛있는 디저트와 음식이 있어 오감을 충족시키는 특별한 공간이다. 대부분의 창업아이템이 레드오션으로 변해버린 시점에서 이 대표는 어떻게 차별화된 메뉴와 우수한 제품, 톡톡튀는 아이디어로 소비자를 유혹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안고 페어리스트리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레드오션을 퍼플오션으로 바꿀 수 있는 대안을 찾고자 한 것. “사실 포화시장은 단순히 커피전문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산업화와 경제발전은 이미 오랜시간 진행되었기 때문에 창업에 있어서 현재 블루오션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메뉴와 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은 많은 비용과 시간, 지식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고가의 장비와 시설 등이 필요하기에 개인이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래서 이노베이터 시스템에서는 시장 트랜드와 아이템을 철저히 분석하여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는 제품개발과 메뉴연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성과 경험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매장을 운영하고 관리할 수있는 AUTO 시스템 프랜차이즈를 선보이고 있으며 새로운 수익모델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인영세매장들을 위해 커피원두, 음료베이스, 소스와 같은 신선한 원료공급은 물론 콜드브루커피, 과일식초, 수제청, 수제쨈, 수제쿠키 및 케이크 등과 같은 완제품을 직접 제조생산하여 제공하고 있습니다.” 페어리스트리는 브런치와 디너와 같은 식사메뉴도 패키지화해 제공되어 수익의 극대화를 실현하고 있다. 자체 공장에서 제조생산된 완제품은 백화점에 입점하여 판매될 만큼 우수한 맛과 디자인을 갖춰 그 자체로도 경쟁력을 가진다. “다채로운 문화컨텐츠 및 이색적인 서비스와 이를 통한 마케팅도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단순한 커피전문점이 아닌, 가맹점주와 고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행복한 공간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기분 좋고 행복하게 해주고 영세 자영업자들을 살리는 멋진 기업을 만들고자 합니다. 앞으로 더 큰 그림을 그려나갈 이노베이터 시스템의 모습을 지켜봐주세요.” 자연주의 브랜드 ‘페어리스트리’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라이프 스타일 온라인에서 이미 예쁘고 맛있는 더치커피로 입소문이 난 브랜드 페어리스트리. 프리미엄 생두를 선별하여 전문 바리스타들이 직접 로스팅부터 추출까지 전 과정을 참여해 커피 맛에 예민한 사람일수록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특별한 레시피로 제조하여 맛과 향이 우수하고 품질이 뛰어난 커피 관련 메뉴만 30여종 이상 된다고 하니 커피를 사랑한다면 꼭 한번 방문에 보길 추천한다. 전문 파티쉐가 만드는 핸드메이드 디저트는 환상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며 고급스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셀레네라는 디저트는 둥근 초코볼에 따뜻한 초코소스를 부어 초코볼이 녹아 내리면 안에 숨어 있던 아이스크림과 브라우니가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내는데 초코 홀릭들에게는 천상의 맛을 선사하니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강력추천 메뉴라고. 이외에도 다이어트에 좋은 과일식초나 생과일주스와 같은 다양한 음료와 브런치 등 특별한 레스토랑 메뉴는 풍성한 맛을 자랑하며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다. [1002]
    • 경제
    2016-12-14
  • 진정성을 담은 외유내강 리더십의 요체
    서울여자대학교의 1기 졸업생이 모교의 총장이 된다. 4대 총장을 지내고 5대, 6대 총장을 지낸다. 총장으로 재임한 12년 동안 애교(愛校)심을 바탕으로 ‘변화’와 ‘혁신’을 통해 대학의 대외적인 위상을 드높였다. 이는 이광자 서울여대 전 총장의 스토리로, 성공적인 여성리더로 손꼽히며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대학교육의 발전에 힘써온 이광자 총장은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특별위원회 위원장과 국민대통합위원회 갈등예방조정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이 봉착한 난세(亂世)야말로 국민대통합이 필요한 시점일 것이다. 이광자 총장을 만나 그와 서울여대의 단단한 연결고리, 국민통합을 위한 갈등관리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_박정연 팀장, 이가현 ­­기자 서울여대 ‘잘 가르치는 대학’으로의 자리매김 그 중심에 이광자 총장 “서울여자대학교는 저에게 또 하나의 집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광자 총장은 운을 떼었다. “저는 서울여자대학교 1회 졸업생으로, 서울여대 4,5,6대 총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총장 재임 12년 간 모교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하나님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능력과 나의 가능성을 서울여대에 투입해 보자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섬겨왔습니다.” 서울여자대학교는 1961년 고황경 박사의 뜻에 따라 여성리더 육성을 목표로 설립된 대학으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공동체교육을 대학교육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문을 하기 전에 인성이 바르게 서야 한다’는 고황경 박사의 뜻에 따라 학생들은 생활관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타인과 함께 호흡하는 법을 체득하게 된다. 이러한 고황경 박사의 공동체교육을 모토로 시작된 서울여대만의 자랑거리 ‘바롬인성교육’은, 대학 전인교육 성공사례로 손꼽히며 교육부 주관 ‘2014 대한민국 인성교육 대상’을 대학 최초로 수상했다. 1회부터 3회 졸업생까지 전교생 공동체 교육으로 진행되었던 바롬인성교육은, 현재 시대적 상황과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1학년 3주, 2학년 2주 총 5주간의 합숙 교육으로 진행하며 공동체 의식 함양과 더불어 학생들이 배려심과 이해심을 기르도록 돕는다. 이러한 대학 전통을 바탕으로 서울여대는 2010년 국내 최초로 학부교육선도(ACE)대학으로 선정되었고, ‘잘 가르치는 대학’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러한 서울여대의 성장 안에는 이광자 총장의 12년간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 2010년 ‘잘 가르치는 대학’에 선정된 것을 비롯해 ‘에코캠퍼스’, ‘입학사정관제 선도대학’ 등 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선발에 포함되었으며, 대학의 대외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항상 총장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교육의 측면에서 서울여자대학을 어떻게 국내 최고의 여성교육 대학으로 만들 수 있을지, 국가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우리 서울여대 졸업생들이 건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여성리더로서 앞장설 수 있을지 말입니다.”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세대와 지역, 이념 간 갈등을 타파하는데 앞장설 터 이광자 총장은 현재 국민대통합위원회에서 갈등예방조정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우리 사회에 내재된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고, 공존과 상생 문화의 정착, 대한민국의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해 설치된 대통령직속기관으로 기획정책분과 위원회, 통합가치분과위원회, 갈등예방조정분과위원회, 국민소통분과위원회로 나뉘어져 있다. “우리 사회는 세대, 지역, 이념을 아울러 수많은 갈등에 직면해 있습니다.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갈등을 ‘극복’해내는 것입니다. 갈등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갈등을 잘 관리할 수 있다면 갈등은 오히려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는 기회가 될 것이고, 갈등을 극복함으로써 새로이 변화와 발전을 이룩해낼 수 있습니다.” 효율적인 갈등 관리로 국민대통합을 이루어야 함을 피력하며 이광자 총장은 말을 이었다. “국정이 말이 아닙니다. 참으로 비참하고 참담한 마음입니다.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되고 있는 현 시점은 모두가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할 시기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국민대통합위원회의 4개 분과위원이 서로 조화를 이뤄 하나의 통합위원을 만들어 토의와 논의를 거쳐 국가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만 합니다. 현재의 국가적 위기가 대한민국 변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100만 촛불시위의 물결을 통해 우리나라의 희망을 봤습니다. 국가를 향한 평화로운 열망의 외침, 그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며 국가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정의롭고, 정직하고, 온당한 사회. 노력이 통하는 사회.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회.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위원이기에 앞서 저 또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갈등을 긍정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이광자 총장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가치 존중-수용-이해-인정 그리고 ‘정직’과 ‘투명성’ 첫째 ‘존중’할 것. 둘째 상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것. 셋째 ‘이해’할 것. 넷째 ‘인정’할 것. 이광자 총장이 말하는 인간관계의 기본 법칙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이해하고 인정한다. 이는 공적인 관계는 물론 부부관계, 부모자식 간에도 통용된다. 이광자 총장은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 선후배 어떤 인간관계든지 위의 4가지를 기억하고 상대방을 대한다면 대인관계의 질이 좋아지고 나아가 사회도 훨씬 성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이광자 총장은 지난 삶을 돌아보며 가장 중요한 가치로 ‘정직’과 ‘투명’을 꼽았다. 정직과 투명성을 재산으로 한평생 살아온 그는 ‘작은 일부터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큰일 또한 맡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들 속에서 살아온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주간인물은 이광자 총장이 걸어온 지난날에 존경을 표하며, 이제까지 대학의 발전을 위해 눈부신 노력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국가의 통합과 발전을 위해 한껏 힘써주기를 기대한다. 前 서울여자대학교 제4,5,6대 총장 前 한국기독교학교연맹 산하 대학총장협의회 회장 前 서울복지재단 이사장 前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부회장 前 한국연구재단 비상임이사 現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 이사 現 국민대통합위원회 갈등예방조정위원회 위원장 現 방송통신위원회 통신특별심사위원회 위원장 現 서울여자대학교 학교법인 정의학원 이사 現 (사)대한민국 조찬기도회 부회장 [1002]
    • 교육
    2016-12-14
  • “섬김, 나눔, 배려를 통해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한 어린이”
    두근두근 기대 반, 조마조마 걱정 반,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낼 때 엄마들의 마음이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는 보육과 교육의 역할은 해가 거듭될수록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수많은 교육기관 중 내 아이를 어디에 맡길 것인가에 대한 부모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아이들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통해 양육의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는 본영어린이집의 윤준수 원장을 만나보았다._김정은 ­­기자 아이들의 건강한 행복을 위해 감성과 인성을 함양시키는 참교육 윤 원장은 교육 시설에서 다양한 직책과 ‘사단법인 대구광역시 법인어린이집 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며 교육 전문가로서 자질과 내실을 단단히 다져온 교육경력 14년의 전문가다. 그는 아이들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했다. “행복한 아이를 위해 행복한 부모와 행복한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그 속에서 전해지는 보육과 교육은 아이들의 세상에 행복을 안겨주며 올바른 인성과 바람직한 미래의 인재상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아빠와 함께하는 일일캠프 체험을 비롯해 부모가 함께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중요시 한다며 아이들 이야기에 연신 미소로 대답하는 윤 원장. 그는 아이들이 마냥 좋아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되었단다. “제가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습니다. 저를 보고 웃으며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사랑스럽고 예뻐요(웃음).” 본영어린이집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질문에 윤 원장은 “학습적인 발달도 중요하지만 신체적, 인지학적인 면에서 자연은 중요한 교육환경”이라며 “본영어린이집에서는 ‘발도로프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고 밝혔다. ‘발도로프 교육’은 선생님과 함께 자연을 체험하며 숲에서 놀이하는 경험을 통해 흙과 땅을 밟으며 신체활동을 하는 것으로 아이들의 건강과 직결된다. “우리 아이들 텃밭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여러 가지 채소를 직접 심어 재배해 먹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자연에 대해 눈과 마음으로 느껴보게 함으로써 신체적. 정신적, 지적발달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죠.” 이 외에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중 아이들의 발달에 맞춘 외부강사를 초대해 영어, 체육, 음악, 미술, 국악 등의 활동과 교통, 화재, 지진 등 훈련학습을 통해 안전교육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기도 하다. “이제 비상대응훈련 사이렌이 울리면 비상구를 안내하기 전에 아이들이 먼저 어떻게 대처하는지 압니다. 입을 막고 자세를 낮춰 선생님을 따라 내려옵니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 부모님에게 가르쳐 주기도 한다더군요(웃음).” 위험요소를 치우는 데만 그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자기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알려줘야 한다는 어린이집의 적극적인 활동에 부모들은 큰 만족과 호응을 보내고 있다. 섬김, 나눔, 배려를 가르치는 행복한 교육 아이들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부모를 위해 사진을 찍어 모바일로 매일 공유하고 있다는 본영 어린이집. “쉬운 일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일에 지친 부모에게 아이들의 모습은 곧 기쁨과 활력이 되기 때문에 힘을 드리고 싶은 작은 마음이지요.” 뿐만 아니라 학기가 끝나면 아이들이 생활했던 사진을 모아 성장앨범을 만들어 부모와 아이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 전국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연합회는 매년 우물파기인 ‘희망의 샘’ 사업과 학교를 지어주는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나눔의 기쁨을 실천하고 있다. 얼마 전 본영어린이집에서 찾은 캄보디아에 위치한 작은 마을의 유일한 교육시설 ‘평화어린이집’은 전국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연합회에서 지은 어린이집으로 대구 본영어린이집 윤준수 원장 외 20명의 교사들은 매년 이곳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일 년간 틈틈이 모은 성금과 재능기부 봉사활동으로 아이들과 교사들 모두 만족하고 있다고. “아이들에게 나눔을 가르치는 것은 부모와 선생님이 먼저 봉사하며 나누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욱 적극적인 참여로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나눔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윤 원장이 전하는 진심어린 메시지를 통해 앞으로 본영어린이집에서 자라날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엿 볼 수 있는 만남이었다. [1002]
    • 교육
    2016-12-14
  • 단기부터 장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소수 정예로 확실한 관리로 다이어트부터 건강까지
    매일 새롭게 다짐하는 다이어트 결심.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는 말이 있듯 먹방(먹는 방송)의 유행과 맛집 탐방으로 맛있는 음식 앞에서 쉬이 무너지는 의지를 다잡기란 쉽지가 않다. 불어나는 체중, 떨어지는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신체적 정신적 건강까지 잃어가는 사람들. 일반 운동 시설로는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이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다이어트, 몸매 관리, 건강 등 목적에 맞는 운동을 통해 소수 정예로 구성, 집중 관리를 받으며 목표 달성을 가능케 하는 다이어트 캠프가 있어 찾아가보았다. 부산, 경남 최초 여성전문 합숙다이어트 캠프인 이곳은 단순히 개인의 목적 달성을 넘어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관리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하는 애프터서비스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_박지영 기자 부산, 경남 최초 여성전문 합숙다이어트 캠프 단기부터 장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 소수정예로 확실한 1:1 관리 늘 수도권과의 격차로 좋은 시스템을 뒤늦게 받을 수밖에 없는 지방 도시의 현실. 그래서 이민우 대표는 부산, 경남 최초로 여성전문 합숙 다이어트 캠프, 퓨어트다이어트 캠프의 문을 열었다. “남성분들은 기본적으로 근력이 좋아요. 또한 운동에 대한 지식도 있는 편이고 기구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 일반 시설에서도 충분히 효과를 보실 수 있죠. 그래서 남성분들의 경우는 합숙의 의미가 크지 않아요.” 오로지 여성만 거기다가 1인 1실(최대 2인)으로 소수정예로 이뤄지는 것은 퓨어트가 유일하다. “다이어트 캠프는 놀러오는 곳이 아니에요. 운동을 하러 오는 곳이죠. 사람이 많을수록 분위기가 느슨해지고 흐려질 수밖에 없어요.”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더불어 이민우 대표가 가장 공을 들인 것은 프로그램. 오랜 운동 경험을 통해 1주일 단기프로그램부터 장기프로그램까지,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운동 간의 효능이 맞도록 구성, 다이어트부터 건강까지 각자의 목적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해두었다. 이를 바탕으로 개인에 따라 4주 기준으로 평균 8kg~12kg, 최대 15kg 까지 감량이 가능하다고. “사실 이곳까지 오신 분들의 경우는 일반적인 운동 시설에서 더 이상 관리가 되지 않아 오는 경우가 많아요.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죠. 대부분 살찌는 체질에, 살이 찔 수밖에 없는 습관들이 있어요. 그래서 이곳에서 정확한 방법으로 집중관리가 필요하죠.” 각 개인에 맞는 맞춤 프로그램과 외부 수업까지,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관리로 ‘도움이 되는 운동’이 이민우 대표 다이어트 프로그램의 기본 모토다. 정확한 지식과 방법으로 운동에 대한 이해 저염식 식단으로 일상 식생활 변화까지 퇴소 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 마련 이민우 대표가 퓨어트다이어트 캠프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퇴소 이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곳에 들어오셨을 때 목표로 한 체중감량, 몸매관리, 건강은 당연히 해드려야 하는 일이에요. 그러나 저는 여기서 더 나아가 퇴소 이후에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는 신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운동의 목적과 효과 그리고 올바른 운동 방법과 기구의 사용 등을 꼼꼼히 설명하고 가르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그 역시 매일 공부하고 있다고. 또한 일상생활로 돌아갔을 때 무리가 없도록 식단까지 실생활과의 차이를 줄이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 일반인들의 경우 운동하는 사람들처럼 매일 풀과 닭가슴살만 먹을 순 없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식단이 다이어트 의지를 더욱 저하시키고 실패의 위험을 높이죠.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도 무리 없이 실천 가능하도록 일반식을 저염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음식의 유혹 앞에서 쉬이 무너지는 다이어트 의지를 방지하고 건강까지 챙기는 저염식 식단으로 이 대표는 퇴소 이후 회원들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다. 단순히 캠프 내에서 끝나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꾸준히 관리하도록 변화시켜주는 것, 이것이 퓨어트다이어트 캠프가 회원들의 신뢰를 받는 이유다. 다이어트 캠프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최선 나아가 일반 다이어트 뿐 아니라 특수 목적 다이어트까지 4년간 다양한 사람들이 다녀가며 변화를 경험했지만 아직까지 지방에서는 다이어트 캠프가 생소한 시스템이다. 다이어트 캠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다. “5년간은 다이어트 캠프를 알리는데 주력하고 싶어요. 좋은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지방에는 모르는 분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또한 누구나 쉽게 올 수 있도록 다이어트 캠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싶어요.” 아직은 다이어트 캠프에 대해 부끄럽다는 인식이 강해 쉽게 찾지 못하는 것이 현실. 인식 개선을 통해 많은 분들이 자신이 목표로 한 바를 이루고 보다 건강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더불어 일반 다이어트에서 더 나아가 병원과 연계해 특수한 목적의 다이어트 프로그램까지 구상해보고 싶다고. “후에는 산후 관리, 재활까지 특수한 다이어트, 운동 프로그램까지 해보고 싶어요. 보다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종합적인 운동 캠프로 거듭날 것입니다.” 직접 수업도 하며 매일 회원들의 프로그램 관리에 새로운 공부까지. 하루하루를 부지런하게 사는 이민우 대표. 무엇보다 누군가를 위해 운동하는 것이 매력적이라며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부산, 경남의 대표 다이어트 캠프로 거듭나길 바라며 오늘도 그의 열정을 응원한다. [1002]
    • 라이프
    2016-12-14
  • “회원분들과 함께 자유로운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경제적인 부담 없이 운동하며 일상 속 지친 삶의 활력소를 얻고자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더불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운동할 수 있다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운동과 함께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어 많은 사람들이 소통하며 쉴 수 있는 커뮤니티 플레이스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부산 만덕에 위치한 커뮤니티 플레이스 크로스핏 팀몬스터를 방문해 김다윗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이진랑 ­­기자, 황병양 ­­기자 크로스핏 팀몬스터 크로스핏 팀몬스터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따뜻한 온기와 함께 청량한 기운이 취재진을 반겼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곳은 다른 휘트니스 센터와는 다르게 시내의 조용한 카페를 연상하게 만들어 새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점점 대중화가 되어가고 있는 크로스핏은 역도, 체조, 달리기 등 여러 가지 운동종목을 크로스 트레이닝화 한 프로그램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으며 단 시간에 많은 운동량으로 바쁜 현대인들의 운동시간을 충분히 충족시켜준다. 지상에 위치해 유리 너머로 보이는 포근한 날씨를 느끼며 인터뷰는 이어졌다. 대부분의 크로스핏 트레이닝 센터는 특수성이라는 이유로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크로스핏 팀몬스터는 그러한 고정관념을 허물고 지하가 아닌 지상에 자리를 잡아 시원하게 트인 바깥 전경을 만끽하면서 운동을 할 수 있다. 크로스핏 뿐만 아니라 스마트핏, PT와 그룹레슨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샤워시설은 물론, 트레이닝 공간부터 태닝샵, 옥상 야외 공간, 카페, 휴식공간까지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을 갖추고 있다. 크로스핏 팀몬스터를 오픈하기 전 김 대표의 마음 속 한 편에는 항상 자그마한 소망이 있었다. “대부분 크로스핏 센터는 트레이닝 공간 밖에 없어 많이 아쉽더라구요. 저는 크로스핏 팀몬스터에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 회원분들께서 운동뿐만 아니라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땐 카페, 조용히 공부를 하고 싶을 땐 휴식공간으로 이용하실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운동 그 이상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거죠.” 김 대표는 운동을 통해 형성되는 릴레이션십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회원분들과 운동 이외에 다양한 공간에서 소통을 가짐으로서 좀 더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고 싶어했다. 상상 그 이상의 즐거움 크로스핏 김 대표는 우리 일행과 인터뷰를 하는 내내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그에게 크로스핏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중학교 때부터 입식타격 선수로 활동 했어요. 체력훈련중에 지금의 크로스핏 운동과 비슷한 훈련을 했죠. 당시에는 크로스핏이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던 시기라 명칭은 몰랐지만 저에게 매력적인 운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2000년도에 국내에 도입된 크로스핏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고, 고교시절부터 같이 운동했던 동료들과 함께 2013년에 팀몬스터를 결성해 체계적으로 활동했죠. 처음에는 마땅히 운동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김 대표는 카센터 등 여러 장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운동을 해왔지만 매번 장소 협조에 대한 어려움이 많았다고 얘기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박상욱 역도감독을 만나게 되었고 김 대표가 운동할 공간을 마련하려고 박 감독에게 조심스레 요청을 하자, 박 감독은 곧바로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고 했다. 박 감독은 팀몬스터의 크로스핏 운동을 지켜보며 역도의 자세와 비슷한 동작이 많다며 역도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게 되면서 김 대표는 역도까지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학교를 세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어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김 대표는 한 회원분께서 센터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고 취재진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잠시 문 밖을 나가 회원분께 미소와 함께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권하며 따뜻한 차 한 잔을 준비해 대접했다. 김 대표의 경영철학은 회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김 대표가 본인의 휴대폰으로 차가 담겨져 있는 컵들에 회원들의 이름과 메시지가 붙여진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얘기를 했다. “항상 운동을 마치고 회원 한 분 한 분의 이름과 함께 희망의 메세지를 직접 오미자차가 담긴 컵에 붙여 대접해드리고 있어요.” 김 대표는 진심어린 마음으로 회원들의 마음을 사고 있었다. 얼마 전 센터 오픈 기념으로 지인에게 선물을 받아 센터 입구에 놓인 쌀가마를 가리키며 김 대표는 이렇게 얘기했다. “뒷쪽 창고에 아직 뜯지 않은 라면박스도 있는데 나중에 연말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할 예정이에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 정도면 저에겐 충분한거 같아요.” 김 대표에게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는 운동을 통해 얻는 수익보다 사람을 얻는 것에 더욱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얘기를 하면서 진정성 있는 인간미를 자아냈다. 그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학교를 세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어요. 지금 한창 젊은 시절 몸에 힘이 넘칠 때 필드에서 많은 사람들과 직접 마주하며 소통하고 싶고 또 아직 못 다한 박사과정도 밟고 싶어요. 훗날 시간이 지나 학교 교단에 서서 운동을 지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 대표는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크로스핏 팀몬스터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하며 마무리를 지었다. 김다윗 대표의 아름다운 활약과 함께 희망 가득한 앞날을 기대해본다. [1002]
    • 라이프
    2016-12-14
  • 제조업과 디자인 접목으로 새로운 시너지 창출-위기를 딛고 일어나, 신기(新起)산업
    사흘간의 가오픈 기간 동안 천여 명의 사람들이 다녀가 화제가 되고 있는 카페가 있다. 가장 부산다운 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진 이 카페는 독특한 이름으로 그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이는 바로 부산 영도 청학동의 신기산업. 카페라기엔 다소 생소한 이름을 가진 이곳은 부산에서 오랫동안 자리해온 제조업 기업이다. 일반인들과의 교류가 전혀 필요치 않은 제조업 기업이 카페란 이름으로 대중과의 소통에 나서고 있어 찾아가본 신기산업. 그곳에서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성민 대표를 만나보았다._박지영 ­­기자 갑작스런 경영승계 리만사태로 인한 경영악화 위기를 딛고 새로이 일어나, ‘신기(新起)’ 부산에서 오랫동안 제조업 기업으로 자리해온 신기산업은 87년에 설립된 청룡금속이 그 전신이다. 미국 코스트코, 월마트 등에 제품을 100% 납품하며 2001년에는 500만불 수출탑을 달성할 정도로 탄탄한 기업이었던 청룡금속. 그러나 30명의 직원이 4명으로, 든든했던 공장을 폐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아버지께서 암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어요. 경영에도 제조업에도 아무런 지식이 없었던 상황에서 제대로 경영승계가 이뤄질 시간도 없이 대표직을 맡게 됐어요. 그와 동시에 2008년 리만사태로 인해 모든 주문과 거래가 끊겼죠. 그렇게 이곳, 청룡금속이 시작된 영도 옛 창고로 돌아왔어요.” 경영승계에 전혀 생각이 없었던 이 대표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회사의 존폐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가 대표직을 맡으며 가장 먼저 한 일은 해외의 다양한 전시회, 박람회를 다니며 바이어를 모색한 것. 기존의 단일화된 바이어를 다양화하는 일에 몰두했다. “한 곳의 바이어를 통해 제품을 생산하고 납품하는 방식에서 보다 다양화된 바이어를 통해 안정적인 경영이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각종 전시, 박람회를 통해 그는 다이소, 아트박스, 핫트랙스 등에 제품을 납품하는 회사들의 제품을 OEM방식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카카오프렌즈 제품 생산을 시작하는 등 유명한 캐릭터 제품들을 다량 생산하면서 새롭게 일어난 신기산업. 그래서 그 이름 또한 새로울 신(新), 일어날 기(起)로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직원복지를 위한 카페 신기산업 신기산업의 제품 전시와 더불어 부산다운 뷰로 영도 랜드마크로 정식 오픈기간도 아닌 가오픈 기간동안 천여 명의 사람이 다녀간 카페 신기산업. 부산 영도 청학동에 자리한 카페 신기산업은 본디 청룡금속이 시작한, 창고로 사용되던 곳이다. 믿고 따라와 준 그리고 신기산업을 새로이 일으키는데 고생한 직원들을 위한 복지의 목적으로 만든 공간이었으나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가장 부산다운 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지면서 영도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다. “카페를 시작한 이유는 직원들 복지차원과 더불어 저희 회사를 알리기 위함이었어요.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많은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지만 신기산업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이 훨씬 많잖아요. 그래서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면서 이곳에 우리의 제품을 전시해 회사를 알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카페 한 곳에 마련된 제품 전시 공간에는 신기산업의 자체 브랜드 제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미니멀한 디자인과 실용적인 제품 그리고 저렴한 가격대로 카페를 방문한 사람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받아 조금은 놀란 기색의 이 대표. 이윤을 창출하기보단 회사를 알리고 싶어 방문한 손님들께 그냥 드리기도 한다고. “생각보다 너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사실 많이 놀랐어요. 저희 카페와 제품 모두 좋아해주셔서 앞의 공장도 카페로 바꾸어 보다 많은 분들이 다녀가실 수 있게 그리고 더 많은 제품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계획 중이에요.” 제조업과 디자인의 접목으로 새로운 시너지 효과 창출 영도, 나아가 부산의 대표기업으로 자리하고파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생산하고 자체 브랜드 출시로 15개국에 수출하는 등 제조업 기업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는 신기산업. 많은 디자인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신기산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디자인 회사가 아니다. “디자인 기업으로 회사의 정체성을 바꾸고 싶지는 않아요. 저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제조업 경력에 있어요. 그 힘을 바탕으로, 단순 디자인 기업에서는 가질 수 없는 제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디자인과 접목,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제조회사로 거듭나고 싶어요.” 자체 브랜드 출시, 카페 오픈 등 독특한 행보 역시 디자인제품을 만드는 제조회사로 거듭나는데 구상한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라는 이 대표. 그 꿈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직원들을 부자로 만드는 것이다. “저희 직원들이 보통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굉장히 젊은 편이에요. 그래서 다 같이 노력해서 다 같이 잘되는 것, 그게 제 목표에요.” 나아가 영도의 대표기업, 부산의 대표기업으로 자리하고 싶다는 이성민 대표. 그 꿈을 위해 그는 오늘도 바쁘게 뛰어가고 있다. [1002]
    • 경제
    20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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