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 멈추지 않는 도전, 가슴 뛰는 삶,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한 걸음 내딛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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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주)도원플라텍은 국내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분야에 있어 최강자로 꼽히는 곳이다. 삼성메디슨 1차 협력사로서 사출뿐 아니라 제품 개발 / 양산 과정 전체 프로세스를 갖춘 ‘토털 전문기업’으로 국내를 넘어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혁신기업이다.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내열성, 내약품성, 난연성, 양산성, 경량성, 전기절연성, 녹슬지 않는 성질 등 다른 고분자 소재보다 우수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고기능성 플라스틱 소재로 자동차, 전기・전자분야, 기계 부품, 화학 장치와 첨단 산업인 항공우주산업 및 바이오 산업 등에 적용되며 향후 산업 변화와 기술 개발로 더욱 그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수성가형 CEO 최경옥 대표이사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강력한 카리스마, 뚝심있는 리더십으로 업계를 지켜가고 있는 인물. 상당히 긴 시간 그와 나누며 울고 웃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본다. _김유미 기자

 

1남 5녀를 둔 집안의 외동아들이었던 최경옥 대표는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사랑만 듬뿍 받으며 자랐다. 부친은 전남 신안에서 종업원 20명을 두고 주로 내의를 생산하는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지역 유지였다. 하지만 70년대 초, 대기업들이 대량생산방식을 갖추고 저가 판매를 시작하면서 그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사업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결국, 부도를 맞게 되면서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쫓기듯 떠나와야 했습니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열다섯부터 공장을 찾아다녔어요. 그때 처음 취직한 곳이 플라스틱 사출 공장이었습니다.”


특유의 성실함과 영특함으로 22세의 젊은 나이에 공장장으로 승진하며 능력을 인정받은 최 대표. 사장은 주로 바깥에서 영업을 담당하고 공장은 오롯이 최 대표가 전권을 맡아 운영했다. 어깨는 무거웠지만, 그만큼 현장 경험을 제대로 쌓을 수 있었다.

“명절이면 거래처에서 상품권, 선물을 가지고 오셨어요. 다들 그렇게 주고받고 하니 별다른 것이 아니었는데도 저는 늘 정중히 거절했었지요. 사람 마음이란 게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제 판단이 흐려질까 염려가 되더라구요.” ‘떳떳하지 못하면 차라리 굶어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반듯한 그의 생각과 행동은 상대에게는 유난스러움으로 비치기도 했다. “어린놈이 유도리(융통성) 없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웃음). 하지만 서른넷, 제 사업을 시작하자 그분들이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주셨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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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사출 분야에서 금메달 따기’

스물여덟, 인생의 목표를 세우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대내외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최 대표, 주경야독으로 검정고시까지 합격했지만 늘 마음 한편이 헛헛했단다. “남들과 비교하게 되더라구요. 좋은 환경에서 공부도 맘껏 하고 가정도 이뤄서 잘만 사는 또래들을 보며 ‘내 미래에는 뭐가 있나? 다 부질없다’는 생각에 무기력했었죠. 집, 공장만 오가며 목표도 계획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때였습니다.” 


스물여덟, 그의 삶에 있어 큰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은 우연히 보게 된 TV 속 인터뷰에서였다.

“88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용인즉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실을 경기를 마치고서야 알았다는 겁니다. 경기 결과에 영향을 줄까 봐 가족들이 알리지 않았다더군요. 순간 머리가 울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금메달이 뭐길래, 금메달 하나로 뭐 얼마나 인생역전,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길래 다른 모든 걸 포기하면서까지 이루고자 하는 것인가? 그럼 나에게 금메달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하구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가방끈이 긴 것도 아니고, 다른 특출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오직 하나, 남들보다 일찍 현장에서 일을 배우고 마스터 했기에 플라스틱 사출에 있어서만큼은 자신 있었지요. ‘그래, 플라스틱에 내 인생 한번 걸어보자, 나도 금메달 한번 따보자’ 마음먹었습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선수의 인터뷰가 제게 큰 울림이 된 것이죠.”


현장 상황에 대해서는 빠삭했지만, 기초이론부터 다시 다져야겠다 마음먹은 최 대표는 그때부터 책을 펼쳐 들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참고할 만한 관련 서적이 없어 일본어로 된 책을 번역해가며 파고들었다. “없는 돈에 무작정 책을 사서 일본어 학원에 가지고 가 번역 좀 해달라고 부탁했었어요. 지금처럼 복사나 제본 기술이 좋을 때가 아니다 보니 단면으로 찍어서 엮어 두께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읽고 또 읽고 하니 이리저리 헤지고 찢어져 테이프로 수선해서 엉망이 되었죠. 아들은 가보로 간직하자고 합니다(웃음).”


서른여덟, IMF 위기 속에서 내공 쌓아

고기능성 특수 플라스틱 전문 기업으로 성장하다


1993년 도원산업을 설립했지만 학연・지연・혈연 아무런 도움 없이 시작한 사업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 대표는 묵묵히 내공을 쌓아나갔다. 금형, 블로우 몰딩(Blow molding) 업체 등 다양한 곳에서 또다시 처음부터 배우며 경험치를 높여갔다. “ ‘다른데 눈 돌리지 말고 기술만 쌓아가자’ 생각했습니다. ‘도원이 재야의 고수가 되면 분명히 먼저 알아봐 주는 곳이 생길 것이다’하구요. 무슨 자신감이었을까요(웃음). 그때부터 대한민국에서 최고,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로 달렸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어느 날은 원료 업체에 대금을 줘야 하는데, 돈이 부족했다. 겨우 마련한 600만 원을 들고 가 사정할 요량으로 조심스레 내밀었더니 한창 형님뻘인 업체 사장이 “직원들 떡값은?”하고 묻더란다. “못 줬습니다”했더니 한참 고민하던 사장이 최 대표에게 그 돈을 도로 건네면서 여유가 생길 때 대금을 갚으라고 했다는 것. 최 대표는 당시를 생각하면서 “그 후로도 그분께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뒤에 은혜를 갚으려고 보니 돌아가 버리셨다”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강단과 끈기로 무장한 최경옥 대표를 중심으로 ㈜도원플라텍은 기술력을 갖추는 데 집중했다. IMF 시기 역시 ‘긴 터널과 다름없다. 자고 있으면 안 된다. 반드시 끝나는 때가 오니 바로 튀어 나갈 준비를 하자’는 마음으로 버텨냈다. 그리고 2002년, 실제로 도약의 기회를 맞게 된다. 고령화 시대와 함께 수요가 급증하고 있던 치과 용품에 주목해오던 최 대표가 바이오매스 플라스틱(biomass-based plastics), 즉 친환경 소재의 식물성 플라스틱을 개발해 낸 것. 중국의 대량생산과 저가 공세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매진했던 결과였다. 이후 ㈜도원플라텍은 치과용 임플란트 포장 용기, 초음파 진단기 특수케이스 등 주로 의료기기에 사용되는 부품 등을 생산해내며 승승장구해나갔다. 국내에서 고기능성 특수 플라스틱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거의 유일한 업체인 데다 제품 디자인, 금형 설계, 금형 제작, 사출 후가공(CNC), EMI, 실리콘, 프레스, 인쇄, 진공성형까지 설계에서부터 생산, 조립까지의 모든 공정을 원스톱으로 처리해낼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보니 당연한 결과였다. 실제로 재야의 고수가 된 ㈜도원플라텍으로 반도체나 의료기기 등 고기능성 특수 플라스틱 제품 개발 문의가 계속 이어졌다. 


마흔여덟, 누전으로 인한 공장 화재로 위기 맞아

오직 기술력 하나로 재기에 성공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2007년 10월 새벽, 전기 누전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해 공장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것. 플라스틱이 가연성 물질이다 보니 불은 크게 번져 드라이버 하나 건지지 못했다. 최 대표는 망연자실했지만, 늘 그랬듯 포기하지 않고 의지를 다졌다. 


“타버린 건 껍데기였어요.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가 없었다면 다시 일어서지 못했을 겁니다. 감사하게도 거래처에서도 선금을 쥐여주며 응원해주셨지요.”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새로 공장을 짓고 힘을 냈다. 24시간 대기 상태로 작업복도 벗지 않고 현장에서 먹고 자며 눈물겨운 시기를 견뎠다. 그리고 다시금 일어선 ㈜도원플라텍은 명실공히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전문기업으로 거듭났다. 산부인과에서 태아 검사용으로 사용하는 초음파 진단기 특수 케이스 개발에 성공하면서 삼성메디슨 1차 협력사로 자리하며 돈독한 신뢰를 쌓아오고 있다. 2011년 삼성전자에 인수된 삼성메디슨은 태양광과 자동차 배터리, LED, 바이오·제약과 함께 이건희 선대 회장이 신수종 사업으로 꼽았던 의료기기의 연구, 개발,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글로벌 의료기기 전문기업이다.


“일이 아닌, 돈에 욕심내본 적이 없습니다. 대출이 얼마가 있던 간에 그저 내 집, 내 공장, 아이들 대학 학비 정도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웃음). 그러다 보니 늘 당당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좋은 소재를 사용해 뛰어난 기술력으로 만든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는 것,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요?”


협력사에서 100을 기준치로 잡으면 ㈜도원플라텍은 150을 잡는다. 130의 결과가 나온 것을 알게 되면 그 즉시 전량 회수 조치한다. “기준은 상대가 아닌, 우리에게 맞추는 것”이라는 그는 “현실에 안주해서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수준을 높이려면 기준이 높아야 하고 기준을 잡으려면 기본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기본을 갖추려면 기초부터 단계별로 밟아 나가야 하지요. 기준이 잡힐 때까지는 어떠한 타협도 안 됩니다. 그래야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쉰여덟, 췌장암 진단

6년간 투병 후 완치 판정을 받다


“제 인생을 돌아보면 항상 여덟 수에 큰 변화를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너무 일만 하느라 제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탓일까요. 쉰여덟에는 생각지도 못한 췌장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도 그냥 담담했던 것 같습니다.”

종양이 위치한 곳이 췌장 머리 쪽이라 증상이 일찍 나타나면서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천운이었다.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며 올해 초,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 꼬박 6년의 세월이 걸렸다. 시도 때도 없이 찌르는 듯한 통증에도 배를 부여잡고 공장을 지켰던 최 대표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 외에는 단 하루도 출근하지 않은 날이 없다. 응급실에 실려 간 것만도 수차례다.


“수술 후에도 병원에서 1년 하고도 15일을 보내고서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게 벌써 일 년 전이네요. 생사를 오가면서, 병원에서 많은 환자와 의료진들을 만나고 지켜보면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이제 일 만큼이나 제 자신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고자 합니다(웃음).”


국내 최초 마이크로니들(Microneedle) 양산 성공

차원이 다른 혁신으로 앞서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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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도원플라텍은 또 한 번 큰 이슈를 만들어냈다. 부산대 출자 바이오스타트업 ㈜에스앤비아와 손을 잡고 의료용 마이크로니들을 연간 2,000만 개 생산해낼 수 있는 양산 체계를 갖추며 업계에 놀라움을 안긴 것이다. 대량 양산에 성공한 것은 국내 최초다.


마이크로니들(Microneedle) 기술은 마이크로미터(μm) 수준의 미세바늘을 활용, 피부로 유효성분(API)을 전달하는 경피 약물전달 시스템(Transdermal Drug Delivery System)을 가리킨다. 주사제나 경구제를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약물전달 기술로 전 세계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환자 몸에 직접 바늘을 투여하는 주사보다 통증이 덜할 뿐 아니라 스스로 부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약물 투여가 쉽고, 주삿바늘 때문에 생기는 공포나 감염 등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향후 국내 바이오산업 성장에 있어 ㈜도원플라텍이 큰 기여를 할 것이 기대된다. 

 

다가올 예순여덟, 

재능 통해 더 나은 세상 만드는데 기여해나갈 것


“어릴 적 저도 배를 곯아봤기에, 주변의 인정과 도움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봤기에, 그 당시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 대한 마음이 남다릅니다. 좋은 일을 하면 감사한 분들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도 들어서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더라구요.”

㈜도원플라텍이 성장 가도에 오르기 전부터 최경옥 대표는 실업고 학생들에게 꾸준히 장학금을 전달해왔다. 그간 활동해 온 다양한 단체를 통해서도 통 큰 나눔을 실천해 온 그는 얼마 전, 첫 손녀의 태명(이글)으로 부산 강서구청에 쌀 1t을 기부하며 멋진 할아버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아들(최명환 팀장)이 제 뒤를 이어나가게 됐습니다. 한창 공부하면서 배워나가고 있는데, 확실히 젊어서 그런지 빠르게 습득하고 일 처리도 아주 유연해요. 고집 세고 뻣뻣한 저보다 훨씬 낫죠. 아주 든든합니다(웃음). 그럼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해봤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플라스틱에 관해서는 전문가라 자부할 수 있으니 내 재능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작년, 복귀한 후부터는 환경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제품 개발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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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옥 대표이사의 뒤를 이어 가업을 이을 준비를 하고 있는 (주)도원플라텍 최명환 관리팀장

 

그 첫 도전으로 최 대표는 최근, 소각장에서 쓰이는 ‘다이옥신 저감용 폴링’ 개발에 성공했다. 쓰레기 소각과정에서 배출되는 가스에는 무색, 무취의 맹독성 발암 물질인 다이옥신이 함유되어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있는 상황. 기존에 숯 성분을 첨가한 제품이 있었지만 숯 함유량 5% 미만으로 미미했던 반면, 최 대표는 연구를 통해 숯 함유량을 최고 33%까지 끌어올렸다. 숯이 유해성분인 다이옥신을 흡착시키다 보니 배출되는 다이옥신의 양이 현저히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다.


최경옥 대표는 ㈜도원플라텍을 이끌어오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도 굴하지 않으며 창조적 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영리사업임을 잊지 않고 시대의 기류를 면밀하게 읽어내 성공적으로 산업화하며 업계의 발전을 이뤄냈다. ‘기술력이 없으면 기업의 성장과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보다 과감한 혁신으로 언제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냈다. 

그는 불교 신자다. 집안 식구들은 모두 교회를 다니는데 어려웠던 시절, 스님과의 인연으로 인해 유일하게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었단다. 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나가는 법, ‘자신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라’는 부처님의 전도선언(傳道宣言) 정신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최경옥 대표는 이제 두 손녀의 할아버지로 미래 세대의 더 나은 삶까지 고민하고 있다. 그의 신념과 열정을 응원한다. [1155]


주간인물(weeklypeople)-김유미 기자 wp@weeklypeople.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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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산업의 최강자 - 최경옥 ㈜도원플라텍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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