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 9월 23일, 모금회 회의실에서 바이크월드 한명수 대표이사의 8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식을 가졌다. 아너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 이상의 금액을 일시 기부 또는 5년 약정으로 기부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선도하는 고액기부자클럽이다. 이번 대전 8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한 한명수 대표이사는 회사 창립 42주년을 맞이해 평소 마음에 품어왔던 기부를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대해 한 대표이사는 “2020년은 특히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전염병과 수해 피해로 어려운 시기라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회원 가입을 결심하게 되었다”며 “가족들과 함께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주간인물은 꾸준한 사회공헌 활동과 봉사로 지역사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한명수 대표이사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대전광역시 중구 대종로 140에 위치한 바이크월드는 전국 최대 규모의 바이크 매장이다. ‘The Power of Performance’라는 슬로건처럼 판매에서부터 A/S까지 One-Stop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천여 평 규모의 사업장에는 세계적인 바이크 브랜드를 전시·판매하고 있고 용품, 액세서리, 옵션 구매 및 A/S 매장을 갖추고 있다. 모터사이클 문화 발전과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명수 대표이사는 바이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이다.

전국 22개 지부를 두고 약 5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K.G.R.(Korea Goldwing Riders)중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난 42년간 최고의 바이크 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평소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온 그는 코로나19와 수해 피해로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자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을 결심했다. “몇 년 전부터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을 고민했어요. 그간 지역에만 봉사를 해왔지요. 그러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대전은 코로나19로 지역 경기가 어렵고 수해 피해를 입은 이웃들이 많아 지금처럼 어려울 때일수록 도와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희 사정도 어렵지만 함께 나누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흔쾌히 승낙해준 아내와 가족들이 있어 용기를 냈어요. 앞으로 기부약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일할 겁니다(웃음).”



부창부수(夫唱婦隨), 온화한 미소가 아름다운 아내도 이웃들을 위해 남몰래 봉사해왔다. 금슬 좋은 부부는 함께 바이크월드를 운영하며 동호회 활동과 봉사활동을 함께 했다. 그가 ‘8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이름을 올릴 때 아내도 함께 했다. 이번 아너소사이어티 회원가입을 계기로 기부하는 가족을 만들겠다는 게 그의 소망이다. “흔쾌히 승낙한 가족들이 있어 할 수 있는 일입니다(웃음). 저뿐만 아니라 앞으로 아내도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을 하도록 하고 싶어요. 어떤 유산보다도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싶습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 소식을 듣고 먼 이국땅에서 손녀가 “나도 하고 있는 일(기부)을 우리 할아버지도 했네, 참 훌륭하시다”며 해맑게 웃더군요(웃음). 처음엔 무명(無名)으로 하려다 용기를 내서 나선 것의 의미가 여기 있지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지만 이렇게 주변에 알림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아너소사이어티에 관심을 갖게 되고 회원 가입을 권유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한명수 대표이사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CEO다. ‘전국 최고의 바이크 샵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걸어온 42년. 숱한 고비 속에서도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정신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왔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성장했기에 어려운 이웃들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한명수 대표이사는 바이크와의 인연을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의 고향은 충북 제천,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열아홉에 바이크 기술을 익혀 업계에 첫발을 디딘 그는 특유의 근면성실함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제가 처음 바이크를 만난 건 청소년이었을 때였어요. 그 당시 바이크가 귀해서 지역 유지들이나 바이크를 타고 다녔죠. 한번은 수안보 온천에서 목욕을 하다 조합장님을 만났어요. ‘집이 어디냐’고 묻던 조합장님은 저를 바이크 뒷자리에 태우고 장호원의 집까지 태워다주셨지요. 어린 눈에도 바이크를 타는 조합장님의 모습이 참 좋아보였습니다. 그렇게 바이크를 알게 된 저는 바이크 기술을 배워 업계에 첫발을 딛었습니다.”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우던 시절, 현장 막내로 시작해 베테랑 기술자로 인정받기까지……. 수없이 많은 밤을 새우며 기술을 익혔다. “한번은 새벽에 출근하는 친구 아버지와 마주쳤는데, ‘지금 출근하냐, 젊은이가 열심히 한다’며 어깨를 두드리고 가시더군요. 제가 밤새 일한 것을 모르고 새벽에 출근하는 줄 알고하신 말씀이셨지요(웃음). 그 시절, 참 숱한 밤을 새워가며 기술을 익혔습니다.”



그는 1978년 8월 8일에 충북 음성에 오향 오토바이를 열었다. 당시 사글세 3만원을 주고 얻은 5평짜리 가게에서 꿈을 키운 그는 특유의 근면성실함과 뛰어난 영업력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창업한 지 2년여 만에 첫 사옥을 마련하며 사세를 키웠다. 당시 업계에서는 ‘한명수한테 맡기면 다 된다’는 평이 날 정도로 두터운 신용을 얻었다. 자본도 경험도 미천하던 청년 사업가가 첫 사업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 보자!’ 이것이 한결같은 제 좌우명입니다. 젊은 나이에 맨손으로 시작한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긍정적인 자세 때문이겠지요. 유년시절부터 교회를 다니며 술, 담배를 멀리하고 건실하게 성장한 배경도 컸어요. 사업을 시작한 후, 오로지 ‘최고의 바이크 샵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왔어요.”

1990년 청주로 사업장을 이전하고 3년간 효성대리점을 운영했다. 2년 만에 200평 규모의 사옥을 지었고 전국 TOP5 안에 드는 대리점으로 성장하는 등 괄목상대한 성과를 거뒀다. 이후  대림대리점을 운영하며 충남·충북 NO.1, 전국 TOP10에 들 정도로 사세를 키웠다. 안정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로운 시장에 도전을 준비했다.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수차례의 과정의 거쳐 1999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갔습니다. 당시 고1학년이던 아들, 중 2학년이던 딸과 온 가족이 이민을 가 영어교육을 시켰고 저도 미국 바이크 시장을 보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어요. 그러다 유명 헬멧 기업, H사 회장님의 합자 투자로 미국 LA에서 사업을 진행하던 중 9.11 테러가 터져 세계정세를 관망하고 있었지요. 그때 한국의 혼다코리아 측의 제의를 받아 2003년, 혼다코리아 대전 딜러로 새로운 시작을 했습니다.”
미국 바이크 시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새 사업의 밑그림을 그렸다. 2003년 당시로는 참신한 빅 사이즈 매장을 기획했다.
600평 규모의 매장에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를 전시·판매하는가 하면 용품, 액세서리, 옵션 구매 및 A/S 매장까지 갖췄다. 소비자 편의를 위해 넓은 주차공간을 마련하고 사업장 내 편의시설을 확충했다. “처음에 사업을 시작했을 때 600평 규모의 빅 사이즈 매장을 열었어요. 미국 바이크 시장에서 영감을 얻어 넓은 주차시설과 편의시설을 갖췄죠. 당시로는 참신한 시도라 주변의 우려도 컸어요. 하지만 이내 손님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바이크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아내와 함께 사업을 키워온 지난 37년 동안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혼다코리아 대전 딜러로 시작해 지금은 가와사키 총판과 리와코 총판, 인디언 등 다양한 글로벌 바이크 브랜드를 만나볼 수 있는 천여 평 규모의 매장으로 키웠다. 평일 오전에도 이곳은 바이크 마니아들의 발걸음이 줄 잇는다. 국내에서 몇 대 없는 귀한 기종의 바이크부터 대중적인 기종까지……. 손님이 원하는 다양한 기종의 바이크를 구경할 수 있을 뿐더러 다양한 용품과 액세서리, 옵션까지 구매할 수 있어 고객 만족도가 높다. 전시·판매는 물론 한편에 자리한 A/S 매장에서 수리를 받을 수 있어 믿고 맡길 수 있다.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한 손님은 수년 째 단골이다. 먼 대전까지 찾아오는 이유는 ‘애지중지하는 바이크를 믿고 맡길 곳이 여기 뿐’이라는 게 손님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기종의 바이크를 만나볼 수 있어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는 게 인기 비결이다.

밝은 웃음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한명수, 전화조 부부는 지금도 동호회 회원들과 바이크를 즐기는 바이크 마니아다. ‘최고의 바이크 샵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온 그를 기억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호회 회원들은 “바이크를 타는 사람들 중에 이 부부, 바이크월드를 떠올리는 라이더가 많다”고 입 모아 말한다. 한평생 성실하게 한길을 걸어온 한명수 대표이사. 그에게 바이크는 어떤 의미일까. “바이크는 제게 꿈이죠. 유년시절, 우연히 접하게 된 바이크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왔어요. 지나고 보니 그게 우연히 아니라 예비하신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게 바이크는 영원한 꿈이자, 삶 그 자체예요.”

단란한 가정의 가장, 한 업계에 일가를 이룬 베테랑,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독지가로 살아온 세월. 어려운 고비마다 곁에서 힘이 되어준 아내와 가족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단다.



“지난 40여 년을 뒤돌아보니 10년 주기로 경제 위기가 오는 것 같아요. 그 힘든 고비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뚝심 있게 걸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저희도 상당히 어렵지만 계획 중인 숙원사업을 이루면 그동안 품었던 사회공헌 활동의 뜻을 펼쳐서 몸과 마음을 오로지 선한 일에만 쓰고 싶어요. 이를 통해 아너소사이어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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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아너소사이어티 82호! 지역사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최고의 바이크 샵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걸어온 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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