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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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사의 악기, 하프의 매력 속으로! - 심소정 하피스트 / 국제하프협회(International Harp Association) 총괄지휘 & 감독
    ‘귀족 악기’, ‘배우기 어려운 악기’ 등 몇몇 편견으로 대중과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던 하프는 인기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명 연예인 유재석이 오케스트라 하프 연주에 도전하는 과정이 방송돼 학교 방과후 수업과 음악학원 하프 취미반 등으로 문의가 이어지며 대중화와 함께 라이프 영역으로 들어서는 기회가 됐다. 이에 주간인물은 2024년 새해를 맞아 공연 소식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곡선미의 우아한 외관과 아름다운 음색을 지닌 하프의 매력과 함께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악기라는 걸 알리기 위해 공연, 도서, 곡, 앨범 등 다양하게 활동 중인 하프계 신진 아티스트, 심소정 하피스트를 소개한다. _김민진 기자 ▲ 셀린(SelyN) - 1st Single ‘Northern Star’ / 2nd Single ‘NeveR & AlwayS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 졸업 후 미국 이스트만대 석사 및 연주자 자격증을 취득하고 성균관대 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며 연주자로서의 기반을 탄탄히 다져온 심소정 하피스트는 음악저널, 한음, 영산음악, 해외파견, 서울오케스트라 콩쿠르 등 국내 유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바 있다. 또한 Osaka International Competition Espoir Award 1위를 거머쥐며 해외에서도 빛나는 행보를 이어나간 그는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몰도바국립방송교향악단 등 다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서울바로크합주단 초청연주, 송사비의 클래식 음악야화, EBS TV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 전국 세미나를 개최해 100여 회의 강연을 진행한 심소정 하피스트 지난 12월에 셀린(SelyN)이라는 예명으로 두 번째 싱글 ‘NeveR & AlwayS’를 발표한 심소정 하피스트는 싱어송라이터 영역에서도 음악적 기량을 펼쳐 나가며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들과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첫 번째 싱글 ‘Northern Star’은 팝록 장르의 데뷔곡으로 트와이스의 ‘Knock Knock’, 오마이걸의 ‘비밀정원’ 등 다수의 히트곡에 참여한 아이돌 메이커, 마유 와키사카가 함께 작업했고 심소정 하피스트 역시 작사/작곡에 참여하며 차세대 크로스오버 뮤지션으로서의 시작을 알렸다. “하프가 비싸고 어려운 악기라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어려움들이 저를 더욱 강인하게 만들었고 음악의 가치와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편견을 완전히 없애고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길 바랐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모두에게 나의 선택을 인정해 주길 바라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대신에, 편견에 의해 제한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긴 설명보단 결과물로 늘 보여주려다 보니 어느새 연주가, 작가, 가수, 강의자 등 많은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웃음).” ▲ “하프와 강아지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심소정 하피스트 세광음악출판사에서 최연소 작가로 ‘미니하프’ 연계교재를 편찬한 그는 하프만이 가진 장점을 최대로 살리고 동시에 “배울 곳이 없다, 어렵다, 비싸다”등 하프의 허들을 깨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하프협회’를 설립했다. 심소정 하피스트보다 최소 10살, 많게는 20살까지 나이 차이가 있는 베테랑 학원 원장들도 협회에서 하프를 배우며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다. “하프를 배우신 학교 선생님들과 학원 원장님들께서 아이들 발표회 영상이나 사진을 보내주시는데요. 너무 귀엽고, 제가 다 뿌듯하더라고요. 게다가 하프가 본인의 일상을 변화시켰다는 분도 많으시고, 그분들이 하프 앙상블을 만들어 연주회도 열었습니다. 저 대신 도서관이나 공공기관에 연락해 제 책을 홍보해 주시는 열정 넘치는 팬들까지... 하프를 사랑하는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을 보답할 수 있도록 하프 대중화에 기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더 열심히 펼쳐나가겠습니다(웃음).” 심소정 하피스트는 오는 1월 2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영화 겨울왕국의 영감을 받아 기획된 ‘Frozen Harp’ 독주회로 설렘 가득한 새해를 맞아 관객들과 마주할 예정이다. [1157] 인스타그램 : @harpist._.ss0vly ⬇Youtube Lin⬇ youtube.com/@harpistssovly?si=Wv-CWO0fzECuBrj2
    • 문화
    2024-01-23
  • [문화산책] 연우 손유경 한얼우리그림협회 회장 / 전통민화 명인 제14호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위원장 / 창원문화재단 이사
    한국의 얼이 담긴 미술을 추구하는 한얼우리그림협회는 2023년 9월 23일부터 11월 5일까지 경남 하동 칠불사 보설루에서 특별전(그림으로 풀어내는 부처님의 가르침전), ‘卍卍展(만만전)’을 성황리에 마쳤다. 한얼우리그림협회는 2019년 손유경 회장이 우리의 혼과 얼이 담긴 작품을 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창립했으며, 2007년 손 회장과 문하생의 전시를 시작으로 만들어진 ‘소천민화협회’가 한얼우리그림협회의 모태다. “부처님의 진실한 법을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에게 있어 이번 전시는 종교를 통하여 그 해답을 찾는 기회가 되셨을 것이다”고 소회를 밝힌 손유경 회장과 따뜻한 차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마산 앞바다를 바라보며 민화, 불교, 전통, 철학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_김민진 기자 It's raining flower rain 꽃비 내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동양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부산, 대구, 창원, 프랑스, 인도, 중국 등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전시를 통해서도 우리 민화(民畵)를 알리고자 42회에 걸친 개인전과 200여 회 그룹전을 개최한 손유경 회장은 약 25년간 선현들의 뜻깊은 정신을 헤아리는 민화를 그리며 문체부 장관상, 통일부 장관상, 환경부 장관상, 국회의장상 등 각종 수상, 위촉장, 감사장을 받은 바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미술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신념으로 손유경 회장이 창립한 한얼우리그림협회는 조각, 회화, 사진 등 다양한 장르에서 약 250명의 작가들이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 전시가 있었던 칠불사(경남 하동군)는 지리산 해발고도 830m 토끼봉에 자리한 사찰로 2년 전 손 회장과의 인연으로 시작한 ‘卍卍展(만만전)’이 벌써 올해로 다섯 번째 전시를 하게 됐다고. Where am I going? “부처님의 가피력이 온 세상에 내려 모든 중생에게 이롭게 되기를 기원하며 불교 이론을 그림으로 설명하는 전시를 해온 ‘卍卍展(만만전)’은 코로나가 있던 때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미술 속에 담아 지친 대중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됐지요. ‘卍(만자 만)’은 부처님의 가슴에 있는 길상(吉祥)의 징표를 나타내는 문자로 힘겨운 시절의 종식과 평안의 시대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풀이한 작품을 통하여 관람하시는 모든 분이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 등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물음에 부처님의 법을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잘 그리는 것과 좋은 작품은 다르다”고 전한 손유경 회장은 본인 작품에 빠져있기보다는 다양한 학문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열린 사고로 전통과 융합 발전시키길 원했다. 특히 철학 공부를 좋아한다는 손 회장은 예를 들어 여백 하나도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비교 및 노자의 도덕경 등을 참고해 왜 동양화는 여백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가는 재미가 그림을 그릴 때 좋은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한다. 2024년 4월 개인전 개최를 포함하여 올해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 손유경 회장의 활발한 작품 활동 또한 기대된다. 지역의 중견작가로서 국내외 전통 민화작가로서 펼칠 손 회장의 다양한 행보를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1156] chaekgeori(책거리) 여보게 관상가 양반 내가 왕이될 관상인가?
    • 문화
    2024-01-11
  • [재난안전보안관] 행정주도 재난관리체계 대응 한계, 재난안전보안관 도입으로 안전문화 혁신을
    “재난안전은 중앙정부와 민간단체와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재난안전보안관 제도를 공공기관은 물론 시장과 기업에 확산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장훈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 회장은 “재난안전법에만 근거한 소극적·협의적 보여주기식 행정에서 벗어나 재난안전 유관 개별법에까지 적용되고 확산될 수 있도록 법·제도적인 정비가 수반돼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하고 “법·제도적인 정비에는 재난안전보안관 활동이 핵심적인 내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_유경석 편집국장 ■ 연합회, 전문인력 양성·재난안전보안관 전문성 강화 주력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국민 참여를 유도하고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 개별법에 따라 부분별로 이뤄지던 국민 안전을 일원화해 나라를 안전선진국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설립됐다. 안전 관련 전문 인력 양성과 재난안전보안관 전문성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는 최근 월드케어필센터에 ‘2023 제1회 대한민국 희망 재난안전 봉사자 표창 수여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주민의 자율적 참여로 철저한 사전 점검과 신속한 초기 현장 대응을 통해 피해를 줄이도록 하는 민관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는 예측 불가능한 재난 발생 빈도가 급증하는 가운데 재난유형이 다양화·대형화하면서 인명·재산 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행정 주도 재난관리 체계로는 적시성 있는 재난의 예방과 대응에 한계를 보이는 데 따른 것이다. 국제표준화기구 ISO/IEC 17024 재난예방안전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재난안전보안관은 재난안전에 대한 교육방법과 재난 상황 발생시 행동요령 등을 숙달하고, 각종 재난과 안전 관련 위기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민간 안전요원이다. 장훈 회장은 “항상 대형사고나 인명피해가 나서야 움직이고, 그 움직임 역시 시늉만 하는 무사안일의 체질이기 때문에 유사한 사고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며 “관(官) 중심 행정으로 시민 불편이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에게 불행이 오지만 않는다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더 나아가서는 ‘대통령, 자치단체장 등은 임기만 되면 떠난다’는 착각에 그저 버티면 된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무사안일’ 체질화…보여주기식 행정 이젠 그만 대형사고나 인명피해가 발생한 이후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반복되는 행정기관의 늑장 대응을 비판한 것으로, 행정안전부에서 시행 중인 안전보안관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제도 개선 요구이기도 하다. 실제 세월호 사고(2014.4.16) 이후 이천 투석 전문 병원 화재(2022.8.08), 강원 태백 장성사업소 탄광 갱도 붕괴(2022.9.14), 포항 인덕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2022.9.06),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2022.10.29),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 터널 화재(2022.12.29), 서울 인왕산 화재(2023.4.2) 등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면서 국민 불안은 높아지고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안전을 소홀히 한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이는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매년 약 278만 명의 노동자가 업무상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2022년말 기준 우리나라 재해자는 13만348명에 달한다. 이중 질병재해로 1349명, 사고재해로 874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요 선진국들이 연간 사고사망 만인율(0.07~0.35)을 비교적 낮게 유지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 중대재해로 인한 사고사망 만인율은 0.43(2021년 기준)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일터에서 사망·사고는 개인의 생명, 가족의 행복을 파괴하고 사회적 비용, 국가적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제도가 포용적(inclusive)이면 흥하고 착취적(exclusive)이면 빈곤해지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서 높은 산재율을 기록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정치·경제 제도가 착취적임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 OECD국가 중 높은 산재율…영유아·고령자 각종 사고 노출 사망·사고는 일터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호를 받아야 마땅한 어린이들이 각종 안전사고와 교통사고, 영유아 돌연사 등으로 매년 400여 명이 사망하고 있다. 인구절벽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태어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각종 사고에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령자 안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2025년 고령인구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그 속도도 빨라져서 향후 5년간 고령인구는 29.4% 증가하고, 고령운전자는 59.4%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간 고령자 교통안전 확보를 위해 노인 보호구역 활성화, 운전면허 반납제도 운영 등을 시행 중이나 고령인구 10만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고령자에게 안전한 환경은 누구에게나 안전하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의 안전 수준을 한 차원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 안전교육 과감히 개선…관리감독 '지방 이양' 실효성 강화 장훈 회장은 “안전분야의 고질적인 부패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지 불신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시장과 기업, 시민사회, 그리고 개별 국민의 합심과 협력이 요구되며 사회 공동체적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안전(Safety)하고, 환경(Environment)적이고, 시스템(System)을 갖춰야 안전한 나라, 국민이 안심하는 나라, 경제 강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한 감시 시스템 구축과 반부패 환경 조성의 책무가 있고, 지방자치단체장과 기업은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한 비용을 선제적으로 내부화하는 등 안전사회 구현을 위한 사회적 가치를 시장과 기업 경영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간 형식적으로 이뤄진 안전교육 관행을 과감하게 개선해야 해요. 안전교육에 대한 강제조항을 두고, 안전교육 실태조사 및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하는 근거조항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특히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을 위해서는 현재 각 부서별·분야별로 이뤄지고 있는 안전교육과 시설점검 등을 통합 조정하는 한편, 지방이양이 가능한 것은 과감하게 지방에 이양할 것”을 주문했다. ■ 사회공동체 책임·재난안전보안관 활용, 안전분야 부패 근절 이와 함께 중앙행정기관과 재난관리책임기관을 대상으로 정밀안전평가를 실시하고, 정밀안전평가 시 해당 재난안전사고를 제대로 예방하고 대응·수습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평가하는 한편 정밀안전평과 결과 해당 재난안전사고 예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과감하게 재난안전사업을 수행할 수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훈 회장은 “안전분야 부패는 안전무시 관행과 불법행위에 대한 사회적 묵인에서 비롯된다”면서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한 사회 공동체적 책임과 재난안전보안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안전사고 현장점검 및 예방 활동을 위한 공무원들의 부족한 인력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안전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전문 민간단체에 안전교육 및 안전점검 등을 위탁 위임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재난안전보안관들이 갖고 있는 전문성(사명감)을 활용해 민관협업을 통해 안전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가 동참해나가겠습니다!” [1149]
    • 문화
    2023-05-31
  • 전국 유일의 장애인체육 후원단체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 - 장애인체육과 대구 스포츠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다
    박영호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 단장 / 대구북구축구협회 협회장 / 까사데코 대표이사장애인 :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 체육 : 일정한 운동 따위를 통하여 신체를 튼튼하게 단련시키는 일, 또는 그런 목적으로 하는 운동 신체를 단련시켜기 위한 ‘체육’과 신체 또는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인 ‘장애인’, 두 단어가 어울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를 이겨내고 체육계에 종사하는,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고 운동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이 장애인체육 선수들이다. 박수가 아깝지 않은 이 사람들에게 박수에서 그치지 않고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의 10번째 단장으로 위촉된 박영호 단장을 만났다. _박가빈 기자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의 박영호 단장은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대구에 거주 중인, 그야말로 ‘터줏대감’이다. 대구시 북구에서 원목 가구 전문점 까사데코를 운영하고 있는 박 단장. 그가 장애인 체육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18년이라고 한다. 그는 “지인을 따라 익산에서 열린 장애인 전국체전을 보러 갔습니다. 그때 시각장애인 100미터 달리기, 휠체어 배드민턴, 농아인 축구 등 다양한 종목에 참여하는 장애인 선수들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2019년에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에 가입해서 활동을 시작했죠”라며 지원단과의 인연을 설명했다. “각 가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먼 친척 중에라도 꼭 장애인이 한 명쯤은 있을 겁니다. 그분들을 보면 생활에 참 어려움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체육회에 속한 분들은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이를 스포츠로 승화한,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은 전국 유일의 장애인체육 후원단체이다. 장애인체육의 발전을 위해 후원금을 조성하고 장학금을 전달하며, 지역사회에도 봉사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단장은 “전국 유일의 장애인체육 후원단체이다 보니 벤치마킹을 위해 여러 지역에서 보러오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1기는 소수로 시작했으나, 점점 늘어서 10기인 현재는 142명으로 최다 인원을 기록했다. 지난 2월에 있었던 ‘제10기 지원단 위촉식’에서는 10년 차 활동 멤버 4명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박 단장은 이 위촉식에서 2023년도 지원단장으로 위촉됐다. “예전 월례회 때는 30명만 오면 많이 온 거라고 했는데, 요즘 월례회 출석 인원은 약 60명이 넘습니다. 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개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중간에 이탈하는 경우도 잘 없죠. 코로나 시기에도 후원회의 인원은 계속 증가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가 대구인데, 어려운 사람을 돕고 함께 이겨나가고자 하는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합니다.(웃음)” 그는 “대구에 있는 장애인체육 대표선수들의 지원이 주목적이고, 장애인체육에 대해 홍보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한 뒤 “그 일환으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스포츠 종목의 룰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중이에요”라고 말했다. “운동경기를 볼 때, 룰을 잘 모르고 보면 이해도 안 되고 재미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장애인스포츠도 마찬가지예요. 일반적인 운동경기에 대해 잘 아는 분들도 장애인스포츠 종목을 보며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예를 들어 휠체어 테니스 같은 경우는 투바운드가 룰인데, 모르고 보는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수가 있다고 봅니다. 룰을 잘 이해해야 보는 재미도 있고,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최근 분위기는 장애인을 ‘돕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어울린다’는 개념을 강조 중”이라고 말한 뒤 “장애인을 도와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강조하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박 단장이 감사로 속한 대한장애인낚시연맹에서 준비 중인 대회의 이름이 ‘전국 어울림 낚시대회’이다. “장애인들과 어울려서 함께 살아가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우리를 통해 얻을 점이 있고, 우리도 그들을 통해 얻을 점이 있다는 것을 지원단 생활을 통해 더더욱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지난 3월 21일, 지원단은 대구 북구청에 북구 내 장애인 선수들을 위한 장학금 200만 원을 기탁했다. 박 단장은 “각 구·군별 장애인체육회를 만들자는 취지도 있었고, 장애인체육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라며 기탁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구청장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구·군을 돌아다니며 장애인체육을 홍보하고 선수들을 지원할 예정입니다”라고 밝혔다. 올해 지원단의 후원금은 1억 6,460만 원이 책정됐으며, 전액 후원 예정이라고 한다. 박 단장은 “지역의 편중 없이 골고루 후원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뒤 “구·군 단위에서 장애인체육에 대한 지원이 잘 이뤄지면 대구시 전체의 장애인체육 활성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며 바람을 드러냈다. “지원단으로서 후원은 당연한 것이고, 단원들 간에 친목 도모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단원분들이 다들 본업이 있으신데, 다양한 직종의 단원들과 교류하며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원단을 통해 후원도 하고 얻어가는 것도 있었으면 합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지원단은 대구장애인체육회 직원들과 함께하는 체육대회 겸 단합대회를 5월 중에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로 알아가면서 도울 부분은 도와줄 수 있도록 원만한 관계 형성을 도모하려고 합니다. 자기 시간을 쪼개가며 나와서 고생하는 지원단원들과 체육회 직원들이 관계 형성을 잘해서 앞으로 함께 걸어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는 단장으로서 활동의 범위를 넓혀나갈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장애인체육부서가 보통 문화체육부 내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담당 부서를 알아보니 복지과 내에 장애인체육부서가 있더라고요. 앞으로 장애인체육부서와 연계해서 다양한 방면으로 장애인체육 활성화와 홍보에 힘쓰겠습니다.” 단장 임기는 1년, 그는 임기가 끝나고도 고문으로서 활동을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박 단장은 체육회 선수들에 대해 “장애인체육 선수들은 우선 ‘장애’라는 결함을, 곧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선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데, 선수로 나와 성적을 내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뒤 “물론 체육인으로서 몸도 중요하지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한데, 정신적으로 무장해서 열심히 해주길 바랍니다. 그럴 수 있도록 지원단에서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다. 박 단장은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 단장과 동시에 대구북구축구협회의 협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40팀으로 대구 내에서 최다를 자랑하는 북구 축구협회에서 4 년차 회장을 맡은 그는 다방면으로 북구 축구 활성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부키 슛돌이 FC’는 지역아동센터와 소외계층, 저소득층 아이들 우선 선발, 이후 관내 아이들을 선발해서 무료로 수업을 진행하는 사업이다. 박 단장은 “여러 단체에서 다양한 봉사활동과 후원 활동을 진행하다가 ‘내가 북구 축구협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 끝에 나온 것이 부키 슛돌이 FC였어요”라며 창단 배경을 설명했다. 2021년 창단해 올해로 3기를 맞은 부키 슛돌이 FC, 박 단장은 “1기 당시엔 6학년만 뽑아서 진행하려고 했으나, 자리가 남아서 5학년까지 선발했습니다. 2기 때는 4학년까지 뽑았더니, 5·6학년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3기에는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총 60명을 선발했습니다”라며 우여곡절을 설명했다. “감독 1명, 코치 4명, 운영실장 1명, 총 6명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주 1회 토요일에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축구에 대한 교육은 감독과 코치가 진행하고 저는 주로 인성교육을 위주로 참여해요. 예절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확실히 교육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인사를 강조합니다. 아이들이 인사를 하지 않는다던가 대충 인사를 했을 때는 재차 불러서 교육하기도 하죠.” 부키 슛돌이 FC는 학부모들에겐 일절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박 단장은 “첫해에는 보조금 없이 진행했고, 2기 때부턴 구청에서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분들의 후원금이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라며 “지면을 빌어 아낌없이 후원해주시는 후원자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 식사와 간식이 정말 중요한데, 제가 음식업체에 연락해서 ‘한 달에 한 번만 가격을 싸게 해서 제공해달라’라고 타협해서 제공받기도 합니다.” 올해 4월 1일에는 북구 여성축구단인 ‘부키 W-FC’가 창단식을 가지기도 했다. 박 단장은 “대구에 5개 여성축구단이 있었는데, 북구에는 없었어요”라고 말한 뒤 “4월부터 시 대회에 출전할 예정입니다”라고 밝혔다. 대구의 여자 초등축구팀은 2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인 침산초등학교 여자축구부도 박 단장의 작품이다. 지난 2월, 그는 침산초 여자축구부 활성화를 위해 생수와 트레이닝복 등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 박 단장은 “체육회의 홍영숙 사무처장님을 비롯해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 감사합니다. 백만 원을 내는 한 사람보다 만 원을 내는 백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장애인체육회와 지원단, 그리고 체육 꿈나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 그리고 그 관심의 지속을 위해 많은 사람들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더욱 정이 넘치고 사랑스러운 도시 대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며 대구와 장애인체육회, 그리고 지원단 활성화의 바람을 드러냈다. [1148]
    • 문화
    2023-04-27
  • 대한민국 합창과 지휘의 발전을 이끌어온 일등공신 - 여홍은 원로 합창 지휘자 / 교수
    아름다운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가슴을 울리며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한다. 특히 합창의 조화롭고 아름다운 정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맑게 만든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음악교육, 하지만 대한민국은 경제 성장속도에 비해 음악・예술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이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 합창계를 발전시킨 일등공신, 여홍은 교수를 만났다. 반세기 이상 평생 외길을 걸어온 그는 9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지금도 현장에서 우리나라 합창계와 합창 지휘계를 선도하고 있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늘 아름답고 거룩한 음악이 넘치던 기독교 집안,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여홍은 교수는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부터는 교회에서 선교를 위해 고아원이나 양로원에서 찬양 봉사를 하기도 했다고. “1936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유치원을 졸업한 후, 해방되기 일년 전에 귀국해 할아버지의 고향이신 대구 반야월로 왔어요. 고등학교 2학년 말에 대구 신명여고에서 서울 신광여고로 전학했지요. 고3 음악담당이셨던 김경환 선생님께서 이끌어주신 덕에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해 서울대학교 음대에 입학해 성악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이후 50대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60대에 미드웨스트대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처음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남편인 강만식 교수(원자생물물리학 전공, 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권유로 일반대학원인 성신여대 성악과를 졸업하게 된다. “박사학위는 저를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김경환 선생 님의 남편이셨던 구두회 교수님께 논문 지도를 받았어요. 대단한 인연이지요. 워낙 철두철미하셔 죽을 힘을 다해 논문을 통과했어요. 그 논문을 다시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였지요(웃음).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당시에 학위를 받은 일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지 구 교수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성악을 전공한 여 교수는 합창지휘에 있어 더욱 큰 활약을 보였다. “1960년에 대학 졸업 후 모교인 신광여고에 임용됐습니다. 1980년, 당시 최명자 교장선생님의 간곡한 권유로 신광노래선교단을 창단하고 각종 음악회 및 전국 순회공연 등을 500여 회 가졌습니다. 그 때부터 합창과의 인연을 맺게 된 셈입니다. 물론 교회성가대 지휘는 계속 맡고 있었지만요.” 어수선한 국내 정황에 합창계 역시 여건이 쉽지 않았지만 그의 합창에 대한 열정 만큼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다. “각 학교마다 미션스쿨에서는 거의 합창단이 있었어요. 제가 전국고등학교합창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에는 합창제가 열리면 서울 소재 대부분의 고등학교 합창단들이 모두 참여해 2~3일 동안 경연을 할 만큼 큰 행사였지요. 하지만 지금은 입시다 뭐다해서 아이들에게 그런 경험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여 교수는 서울시교육위원회에서 서울음악교사 합창단을 결성, 동료교사와 함께 창단 때부터 퇴임시까지 12년 동안 단장을 맡으며 유럽 연주 객원지휘 활동을 했다. “당시 합창계에는 서울시 음악교사 합창단을 지도해주신 분들이 계셨어요. 너무 감사한 분들이었지요. 러시아에서 오셨던 노다르 찬바 교수님을 비롯해 일곱 분의 지휘자 교수님들과 선생님들 생각이 한번씩 납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기도한 여 교수. 국민훈장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학술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큰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여홍은 교수는 ‘지금까지 잘 해왔구나하는 생각에 참 자랑스럽고 소중하며, 감사한 수상’이었다고 말하며 소녀 같은 미소를 보였다. 이외에도 여 교수는 수많은 기관, 단체에서 특별상, 공로상, 장려상, 감사장 등을 수상했다. “모두 감사하고 뜻깊은 상이었지만, 특히 저를 기쁘고 보람되게 해준 것은 퇴임 시 동료인 국어교사 박기원 선생님이 주신 패에요. <짙은 꽃 향기를 남기시고>라는 주제로 시 한편을 돌에 새겨 주셨는데, 아직도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답니다(웃음).” 2006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을 펼친 한국교회연합성가대의 ‘메시아 연주회’에서 지휘를 맡은 여 교수, 50여 회 동안 여성으로 메시아 지휘를 맡은 사람은 여 교수를 포함해 단 2명에 불과했으니 그의 입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독일에서 앙코르 송을 5곡이나 받으며 청중들이 10분 이상 기립박수를 쳐 독일 조간신문에 최고의 여성 지휘자가 한국에서 왔다는 제목에 기사가 대서특필되며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청중들을 완전히 매료시킨 최고의 공연이었다. “미주성가대합창제 초청으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공연을 했고 한호문화예술제 초청으로 호주 시드니오페라하우스에서도 독창 연주로 영광의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꿈만 같은 순간이었지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와 지휘는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7,17민족화합대성회’입니다. 그외에도 잠실 주경기장에서 2,000여 명을 지휘한 일, 잠실 체육관에서의 부흥회 당시 1,200명(엔그래함-빌리그래함목사의 따님)지휘, 5・16여의도 광장에서 부활절 연합예비 당시 500명 지휘,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순복음인천교회의 150여 명의 지휘 등 대규모의 행사에서 수많은 지휘를 맡았지만 현재하고 있는 을지로교회와 친정교회인 숭덕교회의 30명도 안되는 성가대원들을 지휘하는 일 또한 소중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태도와 마음가짐은 똑같기 때문이지요(웃음).” 그는 한국합창총연합회 자문위원을 비롯해 한국교회음악협회, 일반합창・고교합창연합회에서 고문을 맡아왔다. 또한 한국여성합창협회에서는 이사장으로 오랫동안 활약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드물었던 시대에도 결코 소외되거나 기죽는 일 없이 적극적으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왔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도 목소리가 변하지 않아 을지로교회 수요정오성가대에서 엘토를 맡은 바 있는 그는 올해 2023년 부터는 지휘를 맡고 있다. 여 교수는 “독일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테너로 활동하고 있는 막내아들(강대준 교수-독일 뮌헨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후 독일 드레스덴 국립오페라단에서 활동)과 조그만 공연장에서 조촐하게 작은 음악회를 하고 싶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전했다. 평생을 음악과 합창 발전을 위해 일해온 여홍은 교수, 남다른 열정과 선한 영향력으로 살아온 그는 후학들에게도 의미있는 이야기를 전했다. “음악이 내 삶의 전부입니다. 삶이 풍요로워지려면 무엇보다 믿음을 바탕으로 정직과 성실, 그리고 겸손한 생활이 중요해요. 제가 간절히 바라왔던 삶이기도 한데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언제나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1147]
    • 문화
    2023-04-13
  • ‘그림 읽어주는 남자’가 전하는 감상하는 즐거움 - 이창용 도슨트
    전시회에 가면 늘 ‘내가 좀 더 예술에 대한 조예가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든다. 작품만 보고도 느끼는 것이 있겠지만, 그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나 숨겨진 이야기 등을 알고 보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도세르(docere)에서 유래한 도슨트(docent)는 일정한 교육을 받거나 전문지식을 갖추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 또는 일을 뜻한다.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 전반을 총괄하는 큐레이터나 미술평론가에 비해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는 있겠으나 도슨트야 말로 우리와 가장 가까이서 소통하는 안내자이자 메신저인 셈. ‘그림 읽어주는 남자’ 아트스토리105의 이창용 대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슨트다. 1세대 도슨트로서 현재 한국에서 가장 왕성한 강연, 저술, 방송활동을 하는 인물. 전국에서 이어지는 강연 요청으로 피곤할 법도 한데 인터뷰 내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명확한 화법과 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분위기를 이끈다. 역시는 역시다. _김유미 편집국장 “도슨트는 전시회를 해설해 주는 사람으로 관람객에게 미술품을 감상함에 앞서 전시 작품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통해 전시 관람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미술관 관람이 조금은 지루하거나 어려울 때는 물론, 잘 알려진 작가의 작품이라도 작품의 표현 기법을 위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보다 작품의 작가의 생애나 그 시대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조금의 지식이 있다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죠. 특히나 난해하게 느껴지는 현대미술로 갈수록 사전에 미술사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관객들에게는 각각의 작품이 드러내는 의미를 짧은 감상시간 안에 포착해 해설하는 도슨트가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역사학을 전공한 이창용 대표는 2004년, 로마사를 공부하던 중 ‘로마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이탈리아로 훌쩍 떠났다. 이래저래 범상치 않은 인물임은 확실하다. “가이드 일을 하는 선배를 따라 박물관에 갔는데 여행객들에게 소개하는 내용을 들으며 갸우뚱했어요. ‘어? 저게 아닌데? 내가 하면 더 재밌게 설명할 수 있는데’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에 바티칸 박물관을 방문한 여행자분들을 상대로 도슨트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용돈이나 벌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일하면 할수록 제 적성에 딱 맞는 거에요. 2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원에서 제대로 미술사학을 공부하면서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웃음).” 당시만 해도 ‘도슨트’는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상황. 좋아하는 것만으로 일을 이어가기에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결국 학업을 마치고 해군장교로 복무하고 대기업에 취업한 이 대표. 3년 여 근무하는 동안 특유의 친화력과 창의적 성향은 조직에서 빛을 발했지만, 맘 속 깊이 감춰놓은 도슨트에 대한 열망은 계속 커져만 갔다. “안정적인 생활 속에서도 행복하지가 않더라구요. 많은 고민 끝에 큰마음을 먹고 미술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로 떠났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하다보면 길이 열리겠지’라는 생각이었지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등 유럽의 미술관에서 현지 가이드와 도슨트로 활동했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미술을 전공하고 유학 와 있던 아내를 만나기도 했으니까요(웃음).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후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간 쌓아온 역량을 맘껏 펼쳐보자 싶었어요.” 이창용 대표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미술사를 귀에 쏙쏙 들어오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다. 연 평균 300회 강의를 이어가며 전 국민들의 문화수준 향상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술과 클래식이 함께 하는 <아트콘서트> 마스터로도 활동 중인데 세계적인 화가들과 그들의 명작에 얽힌 이야기와 이어지는 곡을 선정해 오케스트라의 선율로 풀어내는 매력적인 공연으로 전국적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창용 대표는 최근, 인기프로그램인 JTBC ‘톡파원25시’에 출연해 ‘미깡(미술깡패)’라는 별명을 얻으며 인지도를 더욱 높여가는 중이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좋은 기회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제 개인의 영광보다 ‘도슨트’라는 직업을 알리고 많은 분들이 작품을 제대로 알고 즐길 수 있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방송에서도 얘기했지만 시간과 비용을 들여 큰 맘 먹고 세계적인 박물관에 오셔서 그곳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고 즐기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모나리자’만을 위한 곳이 아님에도 줄을 서서 기다려 모나리자 앞에서 사진만 찍고 가시는 여행객들이 대부분이세요. 극장에서 영화 예고편만 보고 나가버리는 셈입니다. 우리가 다가가려 하는 만큼 그림은 우리에게 찾아와 감동을 선물해 줍니다. 어렵게 생각하시지 말고 그림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해요. 저도 계속해서 노력해가겠습니다.” 최근 이 대표는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를 발간했다. “그동안 여러 출판사와 논의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야사 위주의 흥미만을 원하여 출판이 성사되지 못하였습니다. 오랜 기간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는 총 4부작으로 1편 ‘프랑스’, 2편 ‘스페인-네덜란드’, 3편 ‘이탈리아-오스트리아’, 4편 ‘한국’으로 출간될 예정. “많은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루하다고 이야기하죠. 한두 시간 짬을 내어 한 권의 책을 읽듯이,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화가의 인생을 살펴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 그 화가의 작품이 이 전에 비해 훨씬 더 깊고 무겁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재밌는 동화책을 읽어주며 어린아이에게 책에 대한 재미를 갖게 해주는 것처럼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를 선물해 주는 ‘그림 읽어주는 남자’로 꾸준히 기억되고 싶습니다.” [1140] [2018~현재] •아트스토리105 대표 •미술사 전문강사 / 아트콘서트 마스터 [2012~2018] •루브르 박물관 현지 도슨트 •오르세 미술관 현지 도슨트 [2012]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바티칸 박물관전> 큐레이터 [2006~2008] •바티칸 박물관 현지 도슨트 [2005]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인상파 거장전> 도슨트
    • 문화
    2023-02-27
  • 디오라마(Diorama)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재현의 마술사
    거대한 세상 안에서 또다른 작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미니어쳐 예술, 디오라마(Diorama)는 작은 무대를 뜻한다. 풍경화나 그림으로 된 배경에 축소된 모형을 설치해 특정한 장면을 만들거나 배치하는 것을 말하며 모형을 이용해 역사적 사건, 자연 풍경, 도시 경관 등을 표현한다. 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활용되며 기록용으로 쓰였지만, 이제 하나의 예술 장르로써 다양한 오브제의 활용과 축소된 연출은 물론, 음향이나 조명을 함께 연출하여 생생함을 더하기도 한다. 영화, 드라마 미술 감독이자 무대 예술가로서 활동해오던 신언엽 감독. 그는 자신의 무대를 작품으로 승화시켜 국내 최초 디오라마(Diorama) 전시를 선보이며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를 발견해 재현의 마술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신언엽의 디오라마를 조명해본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디오라마는 한 장면의 사건이나 시간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인물과 배경의 전체적인 질감의 정교함을 보여주며 스토리, 음향, 조명, 홀로그램 등의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여 아트와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융복합 예술을 보여준다. 이러한 표현 매체의 확장은 관람객에게 마치 그 시간 그 장소에 들어가 있는 듯한 생생한 장면(Scene)을 보여주며 쉽게 가지 못하는 공간, 느껴볼 수 없었던 공간을 디오라마 작품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디오라마는 단순한 키덜트(Kidult) 산업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한 찰나의 순간을 입체감 있는 표현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줍니다. 장르를 구별하지 않는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통해 교육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느껴 볼 수 있어요.” 디오라마는 근대 이후 유럽귀족들이 테이블 위에 인형 등을 올려놓고 역사적인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데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인형 뿐 아니라 공룡, 전차, 자동차, 비행기 등 점차 종류가 다양해 졌고 1820년대 프랑스의 화가이자 사진 발명가인 다게르가 무대 예술가로서의 경험을 활용해 1822년 파리에서 세계 최초의 디오라마 극장을 설치하고 운영했다고 한다. 1932년, 일본 도쿄과학박물관에서 전시된 디오라마가 최초로 기록된 전시용 디오라마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언엽 감독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정밀 묘사로 인물화를 그리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유명한 배우였던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그린 그림은 지금 봐도 사진과 같이 보일 정도로 상당한 실력이다. 부산이 고향인 신 감독은 서울로 올라와 연극학과에서 무대디자인과 기술을 공부하고 영상대학원 프로덕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후 실감융합콘텐츠학 박사를 공부하며 방송업계 드라마 미술감독, 공연무대 디자인과 영화 미술감독으로 활동한다. “연극, 뮤지컬 무대 디자인, 드라마·영화 미술감독,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호텔 인테리어와 웨딩홀 디자인도 많이 맡았어요. 콘서트부터 광고나 뮤직비디오 세트 디자인을 했구요. 시간과 예산적인 문제로 인해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에 갈증이 나서 디오라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피규어를 수집했었거든요(웃음).” 신 감독은 히어로 피규어에 영감을 받아 ‘배트맨’ 시리즈를 시작으로 ‘백투더 퓨처’, ‘매드맥스’, ‘트랜스포머’, ‘스타워즈’ 등 피규어를 수집해왔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영화 속 장면을 축소된 모형으로 재현해 보곤 했다. “전공인 무대 디자인이 바탕이 됐습니다. 취미로 피규어를 모았는데 표현이 정교하고 또 고가의 제품이 많았죠. 비싸게 샀는데 그냥 장식장에만 두기가 아깝더라구요(웃음). 피규어의 배경을 만들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작품 사진을 찍어 공유했더니 반응도 좋고 무엇보다 제가 너무 즐겁고 재미있더라구요.” 점차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고퀄리티의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 된 신 감독. 취미로 시작된 신언엽의 디오라마는 관련 산업분야의 전시나 박람회에 초대 작품으로 초청되었고 그의 작업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가상의 캐릭터를 현실의 세계로 가져와 우상의 대상인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된다. “그동안 제가 너무 해외 히어로를 주인공으로만 만들고 있었더라구요.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등 우리나라의 영웅을 주제로 한 디오라마를 만들고 싶었는데 우리나라 영웅 피규어가 없어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보게 됐고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커다란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과 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마주했던 판문점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3D디자인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크기가 비교적 큰 디오라마를 전시할 장소가 문제였다. 신 감독은 통일부에 문을 두드렸다. 서기관을 통해 그의 디오라마를 주제로 했던 논문과 포트폴리오, 피규어를 챙겨들고가 통일부를 설득해 장소를 제공받은 것. 첫 전시 공간은 경의선의 북쪽 가장 끝에 위치한 ‘도라산역’ 로비였다. 전시공간이 마련되었고 ‘판문점 선언’ 당시를 재현한 디오라마가 완성이 되어 ‘봄이 오면(When spring comes)’ 이라는 작품명을 가지게 되었다. 같은 해 이 작품은 4월에 서울시청, 5월에는 부산항 축제장과 부산통일관에 전시되었으며 그 이후 계속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기릴 수 있을 만한 의미 있는 공간에서 전시가 이루어졌다. 디오라마 영역에서 단독으로 전시를 개최한 국내 최초・최대 규모이자 미술감독이자 무대예술가였던 ‘감독 신언엽’이 ‘작가 신언엽’으로의 변신을 알린 뜻 깊은 전시이기도 했다. 전공 분야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던 감독 신언엽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디오라마 작가로 변신했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대중들에게 알리는 의미 있는 일에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쏟기로 결심한 것. 2019년 서대문(돈의문)을 디오라마로 복원한 작품도 화제였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5년에 강제 철거된 돈의문을 104년 만에 문화재청, 서울시, 제일기획, 우미건설 등이 참여해 민관 협력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신 작가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디오라마로 복원하는 작업을 맡았다. “외부 제의를 받고 작업한 첫 작품인데 서대문 복원이라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 참여하게 되었지요.” 모 통신사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한 ‘군산 쌀 수탈사건’, 일제강점기의 디오라마 재현을 통해 역사적 의미와 함께 탁월한 창의력을 인정받았다. 국한된 소재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확장성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는 홀로그램, 음향, 조명 등 4차 산업의 다양한 미디어를 도입해 생동감 있는 장면들을 연출해 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신 감독은 바쁜 일정을 쪼개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무대미술) 강단에 서며 학생들과도 소통하고 있다. “디오라마는 인간의 숨겨진 로망을 실현해줍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법한 본능일 거예요. 시공간을 초월해 특별한 역사적 순간, 새로운 창조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 디오라마의 매력입니다.” “디오라마를 통해 재현된 결과물들은 판매하지 않고 문화와 교육, 전시의 목적으로만 활용할 계획”이라는 신언엽 감독. “자신의 디오라마 작품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올바른 역사관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며 따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 EDUCATION ] • 2020 ~ 2022 | 광운대학교 실감융합콘텐츠학과(박사수료) • 2009 ~ 2018 | 홍익대학교 영상대학원 프로덕션디자인 전공(석사) • 1998 ~ 2006 | 용인대학교 연극학과 무대디자인 및 기술 전공(학사) [ AWARD ] •2018 | 통일부장관 표창 디오라마부문(통일부장관 조명균) [ FILM ] •2021 | (주)엠씨엠씨 ‘봄날’(감독: 이돈구) 외 12편/미술감독 [ BROADCASTING ] •2017 | MBC 수목미니시리즈 ‘역도요정 김복주’(연출 오현종) 외 4편/ 미술감독 [ DIORAMA EXHIBITION ] •2016.03 ~ 2018.08 | SBA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엽스타일(YUPSTYLE) 디오라마관 상설전시 • 2018.03 ~ 2019.03 | 서울시 상암동 DMC홍보관 엽스타일(YUPSTYLE) 디오라마 상설전시 • 2018.03 ~ 2019.03 | 서울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살림터 1관 로비 상설전시 • 2019.02 ~ 2019.04 | 파주시 도라산역 로비1F ‘4.27판문점’ 디오라마 상설전시 • 2019.12 ~ 2020.02 | 서울 인사동 CNT 마루갤러리 개인전[재현의 마술사: 신언엽의 디오라마] [ LECTURE ] • 2011.09 | 한국방송예술진흥원[장면만들기] 출강(2학기)/외래교수 • 2017.08 | 서울코믹콘[ 디오라마그시작의배경] -코엑스 • 2018.09 | 홍익대학교영상대학원프로덕션디자인[ 공간과조명] 출강(2학기)/시간강사 • 2022.05 ~현 | 구리고등학교 레인보우 메이커 특강[매체미술교과로서 디오라마의 세계] 수업/시간강사 • 2022.09 ~현 |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무대미술 출강/시간강사 [1140]
    • 문화
    2023-02-27
  • 패션계의 슈퍼루키(super rookie) 끼와 열정 가득한 MZ세대의 대표 디자이너
    꾸준히 성장해온 국내 패션시장,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해외직구 등을 통해 소비자들이 해외브랜드 의류를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타격을 맞고 있다. 김량환 대표는 이런 시대흐름에 맞춰 온라인과 오프라인 쇼핑몰을 만들어 개별브랜드(Leon)를 창업, MZ세대들에게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특별하고 새로운 패션을 전하고 있는 인물이다. 글로벌 패션리더로 성장하고 있는 김 대표를 만나봤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BIGBANG INTERNATIONAL 김량환 대표는 Leon브랜드와 도깨비 쇼핑을 통해 다양한 제품들로 구성된 종합쇼핑몰을 창업하여, 특별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특히 MZ세대들이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유니크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는데 좋은 소재만을 고집하여 품질향상을 우선시하는 한편, 대량 생산으로 제품단가를 낮춰 판매하는 차별화 전략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국내 온라인 쇼핑몰과 유명 온라인 쇼핑몰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될 예정으로 고급원단을 이용한 자체 브랜드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대 초반인 김량환 대표는 독보적인 창업 아이템과 기술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미한 독창적인 디자인들이 눈에 띈다. “국내외 최신의류 트렌드에 맞추어 앞서가는 색상과 디자인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섬세한 제품 마감처리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김 대표는 “최근 시장 환경 SWOT분석을 통해 보자면 강점은 원단 기능성 고급화, 차별화된 디자인, 가격대비 뛰어난 품질입니다. 약점은 판매 채널을 다양화와 마케팅 홍보를 확대부분이지요. 무엇보다 오프라인 거래처를 확보해야 합니다. 코로나 및 경기 침체로 인한 경쟁 업체 세력이 약화되어 있고 시장 점유가 용이한 점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해요. 또한 위기라고 한다면 의류사업 진입 장벽이 낮아 창업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과 악성 재고증가를 들 수 있겠지요.” 20대 초반이지만 그의 시장분석은 경험이 많은 CEO 못지않게 직관력과 통찰력이 돋보인다. 그만큼 날카롭고 정확하다.” 현재 경북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학생으로 학업을 병행하면서 도깨비 쇼핑을 운영 중인 그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좋은 파트너를 찾아 다양한 유통 채널을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유행에 얽매이기보다는 소재와 봉제, 가봉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 독창성)와 숙련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더욱더 연구에 힘을 쓸 계획입니다. 브랜드 이름만큼이나 ‘김량환’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 가치가 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고 있어요.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른 MZ세대는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꾸미고 활용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를 대표하는 유니크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어요.” 자신만의 개성 드러내는 디자인으로 MZ세대들과 소통할 것 “최근 의류 등을 구매하는 형태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패션 대기업들은 브랜드를 축소하거나 통합을 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처럼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 역시 어렵게 되겠죠. 때문에 온라인 쇼핑몰을 활성화 시킬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중저가 쇼핑몰이 성장하고 해외진출이 활발한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온라인 유통비중이 높은 패션업계를 중심으로 패션디자이너의 활동이 좀 더 넓어지고 자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의류 외에도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면서 소비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주얼리, 가방, 악세서리 등을 구매할 수 있도록 현재 도깨비 쇼핑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독창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합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엉뚱한 시도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요.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든 방면으로 시도하고 받아들일 생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MZ세대들과 소통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상업적으로 대중에게 유통되는 옷보다는 자신의 가치관과 개성을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보는게 남는 것’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여가 시간엔 전시회와 패션쇼, 박람회 등 패션・미술과 관련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보고 배우고 느끼고자 합니다. 예술적 감각과 패션 안목을 키우고 영감을 얻는데 도움이 되고 있어요.” 하이패션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한국에서 변함없이 자신의 패션철학과 아이덴티티를 고수하여 현재 자신의 입지를 월드클래스로 다지는 데 시금석이 된 인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우영미’ 대표가 롤모델이라며 웃어 보이는 그는 최근 MZ세대들 사이에서 그의 브랜드 가치가 다시 한 번 평가되고 있지만 세계적 명성에 비해 국내 인지도와 시장점유율이 적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대기업이 패션 유통을 장악한 국내 패션 업계 실정과 명품 패션에 대한 일종의 사대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면서, 국내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 된 측면이 컸어요. 그 과정에서 MZ세대들은 ‘우영미’를 발견했고, 열광하고 있는 거죠. 그야말로 ‘시대가 클래스를 알아본 셈’이죠.” 톡톡 튀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호기심, 그의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 그리고 단단한 자신감으로 뚜벅뚜벅 발을 내딛는 그는 옷을 만드는 즐거움이나 좋은 소재를 발견할 때의 기쁨이 가득하다. 그는 유명 브랜드라고 해서 무조건 좇지 않는다. 자신의 니즈를 정확히 알고, 무엇이 좋은 건지 야무지고 스마트하게 소비하는 MZ세대들의 욕구를 적중시키고 있다. “패션이란게 예술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비즈니스이기도 하죠. 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패션 산업군은 예술에 한 발자국 걸쳐 있으면서도 비즈니스가 중요합니다. 다른 면으로 봐서는 제조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요. 하나의 상품이 나오기까지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이지만 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잘 잡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졸업 후 여성 패션에 최초로 바지 정장을 도입, 여성에게 자유를 입힌 패션 혁명가라고 평가받는 ‘이브 생 로랑’의 나라,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라는 김 대표. 김량환 대표 자신의 피지컬(신체)과 패션 수준 또한 남다르다 보니 모델이냐는 오해도 많이 받는다. ‘시크하며’, ‘쿨’한 이미지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따뜻한 그는 “무엇보다 나만의 아이덴티티(Identity, 독자성)를 갖추고 싶다”며 카리스마를 내비치다가도 “향후 소외계층에 의류를 나눔하는 등 환원 사업도 함께 해나가고자 한다”는 뜻도 전했다. 그의 성장과 왕성한 활약을 통해 대한민국의 패션 피플들이 자신만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멋을 즐기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를 기대해 본다. [1145]
    • 문화
    2023-02-27
  • 유쾌한 만능엔터테이너 부부 “경남 김해, 엔터 문화의 저력을 입증해보이겠습니다”
    키즈댄스대회 <두다붐3(DODABOOM)>. 2019년부터 시작돼 벌써 3회를 맞이하는 이 대회는 경남 최대 규모의 키즈댄스경연대회로 자리 잡은 한편, 서울에서 유명연예기획사 관계자도 직접 김해를 찾아 참여 학생들의 공연을 관람할 정도로 그 위상을 더해가고 있다. 작년 9월 대회에는 경남뿐만 아니라 제주ㆍ울산 등 전국에서 60팀(솔로 댄스ㆍ저학년 14명ㆍ고학년 46명)이 참여하고, 300명이 넘는 관중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매년 성공적으로 개최되며 그 규모와 위상을 키워가는 이 대회의 주최는 다름 아닌 김해지역 케이팝 댄스 전문학원인 ‘엔터아트아카데미’. 엔터아트아카데미 내외점에서 김보연・김민수 대표를 만났다. 이토록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을까. 두 대표에게는 지면에 차마 다 담을 수 없는 좋은 기운과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_김유미 기자 김보연・김민수 부부는 두다붐 대회뿐 아니라 경남 김해에서 1년에 3〜4회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참여하는 콘서트를 진행하고 꾸준한 길거리 버스킹으로 케이팝 문화 확산에도 노력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댄스 동아리 활성화를 위해 6년째 자비를 들여 ‘스쿨액션’이라는 행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장유(1호점), 삼계(2호점), 내외(3호점), 주촌(4호점 예정) 네 곳을 운영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도 이렇게 힘을 쏟는 이유가 뭘까? “저희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라고 해야겠죠. 물론 저희가 처음 춤을 배울 때와는 달리 K-POP과 K-DANCE의 열풍이 거세지면서 춤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전문적인 댄서를 꿈꾸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서울・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경우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가진 전문댄스학원 부족에다 인식도 따라주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에요. 경남 김해에서도 인프라와 시스템을 부족하지 않게 갖추고, 후배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춤을 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오직 그 마음 하나로 열심히 달리고 있지요(웃음).” 김보연 대표는 충북 제천, 김민수 대표는 충남 예산이 고향이다. 끼 많던 부부는 각각 레크리에이션학과, 이벤트연출과를 졸업했다. 춤에 진심이었던 두 사람은 서울의 한 댄스학원에서 만나자 마자 연인이 됐다. 강사로 있던 그녀가 장르를 넘나드는 후배 김민수 대표의 뛰어난 댄스 실력에 한 눈에 반하고 만 것. “하지만 프러포즈는 남편이 먼저 했다”며 그녀가 장난스레 웃어 보인다. 2009년, 결혼 후 두 사람은 서울에서 인연이 있던 선배의 권유로 경남 김해에 내려오게 된다. 댄스에 있어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곳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펼쳐보고자 하는 큰 꿈을 가지고 내려와 수석 강사로 안정된 생활을 했지만, 뜻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고. 2011년, 큰마음을 먹고 김해 시내를 벗어나 장유에 엔터아트아카데미를 오픈했다. “여유자금 없이 학원부터 열었으니 최대한 비용을 줄여야 했어요. 임대만 해놓고 인테리어부터 디테일한 마감까지 처음부터 둘이서 직접 해나갔습니다. 당시에는 ‘초등부’, ‘유아부’도 운영했었는데 정말 고생 많았죠. 대소변 못 가리는 아이들까지 케어하고 잠도 재우고…. 아이들에게 예쁜 무대 의상을 입히기 위해 공업용 미싱기를 사서 밤새도록 돌리기도 하구요. 남편은 공구를 들고 뛰어다녔죠. 학원차 운행까지 직접하며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보람되고 즐겁기도 했던 시간이었어요. 그 때 그 고생들이 다 자산이 되어 이제는 웬만한 일은 전문가 수준으로 어렵지 않게 챙길 수 있게 되었거든요(웃음).” 장유(1호점)에 이어 삼계(2호점) 오픈은 자연스레 진행됐다.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제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실력 있고 뛰어난 친구들을 강사로 채용했어요. 저희와 같이 지역에 있는 후배들에 대한 열망이 뛰어난 친구들이다 보니 더 열정적으로 임하더라구요. 내외(3호), 주촌(4호 예정)은 물론,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끈끈한 사제 간의 정으로 똘똘 뭉친 엔터아트아카데미는 내실 있는 교육 커리큘럼으로 유명하다. SM 등 대형기획사에서 오디션을 직접 보러올 정도로 브랜드 파워도 있다. 실제 서울 본사 기획사 연습생으로 4명을 최종 합격시키기도 했다. 대학입시 전문학원으로도 100% 합격률을 자랑한다. 비영리단체 ‘엔터아트’를 통해 댄스공연은 물론, 공연기획, 영상촬영에다 전문MC까지 해내는 재능 많은 두 부부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다양한 지역 행사에 꾸준히 초청 받으며 밝은 에너지를 전하고 있다고. 엔터아트아카데미 자체적으로도 정기적인 콘서트를 직접 선보이며 학생들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한편, 지역민들에게도 쉽게 접할 수 없는 댄스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해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모금을 통해 독거노인돕기 등 환원사업도 펼치며 따뜻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댄스를 통해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고 창의력을 기를 수 있도록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획일화된 댄스가 아니라 같은 동작이라 하더라도 각자만의 개성을 갖췄으면 하지요. 엔터아트아카데미 콘서트의 경우 각 지점별로 작품 스토리, 기획, 안무구성, 음악, 의상 등을 학생들 스스로 기획하고 연습합니다. 춤을 잘 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연의 레퍼토리나 스토리 라인의 설계까지 짜내면서 실력을 키워가는 거죠. 지방에서 춤을 추고 배우는 친구들이 어깨 쫙 펴고 당당하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도 계속해서 서포트 해나갈 수 있게 열심히 하겠습니다(웃음).” [1145]
    • 문화
    2023-02-27
  • 뜨거운 댄스의 열정으로 삶의 활력 되찾아 건강한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예비 사회적 기업」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신도로에 위치한 ㈜정글러 댄스 스튜디오는 여성가족형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댄스 학원으로 첫 사례가 더욱 의미가 깊은 이곳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전한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곳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주간인물은 타고난 춤꾼으로 새로운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손정희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올해 서른아홉의 손정희 대표는 타고난 춤꾼이다. 어려서부터 춤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그녀는 학창시절,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며 끼와 재능을 펼쳤다.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선박 회사에 디자이너로 일하며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던 그녀에게 춤은 잊지 못할 꿈이었단다. “학창시절, 춤은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는 탈출구였어요. 6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고 열심히 일하는 부모님은 늘 바쁘셨죠. 학창시절, 댄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춤을 연습하고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섰던 순간이 가장 행복했어요. 늘 ‘학교-연습실-집’을 오가며 바쁘게 생활했지만 그때가 가장 살아있는 것 같은 순간이었어요. 대학생 때도 외부 댄스팀을 결성해 활동했었구요.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사회인이 되었지만 춤에 대한 갈망은 여전했습니다. 댄스 강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직업이다 보니 고민도 많았지만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에 끝내 회사에 사표를 쓰고 댄스 강사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0대 시절,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춤에 대한 욕구는 비단 10대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마음껏 자신의 끼를 펼치고 새로운 재능을 찾고 싶은 중장년층의 춤에 대한 욕구도 대단하다. 조금은 부끄럽고 수줍은 마음에 망설여지는 춤 배우기. 손정희 대표는 그런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춤에 다가설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회원들도 점점 실력이 늘고, 수업에 빠지는 일 없이 즐겁게 춤을 배우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취미 생활로 춤을 배우고 싶어 하는 직장인, 삶의 새로운 활력을 찾기 위해 춤을 배우는 시니어, 건전한 여가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건강해지는 청소년들까지... 춤을 통해 새로운 삶의 기쁨을 되찾는 회원들이 있어 일할 맛이 납니다(웃음).”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즐거운 그녀의 수업에는 남다름이 있다 . 단순히 테크닉을 전수하는 것을 넘어서 열린 소통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 특히나 말 못할 고민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그녀는 누구보다 친한 친구이자 따뜻한 멘토다. “2~3년 전, 부산 서면에서 춤을 배우는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연습실을 열었어요.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다보니 너무 정서적으로 힘든 친구들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제가 춤을 가르치기 힘들 정도였는데 아이들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남모를 고충이 많더라고요. 자연스레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힘든 마음을 토닥여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더라고요. 그랬더니 부모님한테도 선생님한테도 말 못할 고민을 제게 털어놓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춤을 배우며 점점 밝아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그랬던 것처럼 춤이 이 아이들의 힘든 현실을 극복하고 꿈을 이뤄가는 새로운 돌파구였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그 연습실 이름이 정글러 댄스였고 그 이름을 따, 북구 화명신도시에 ㈜정글러 댄스 스튜디오를 열었습니다.” ‘청소년들의 건전한 여가문화 확산에 기여하겠다’는 창업정신에 걸맞게 이곳은 2021년 여성가족형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됐다. 댄스 학원으로는 첫 사례라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부산 북구진로교육센터를 비롯해 청소년상담센터와 다른 예비 사회적 기업과 MOU를 체결하고 건전한 여가문화를 선도하고 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10대 청소년들 중에서 아이돌에 열광하지 않는 학생이 있을까요. 그럼에도 아직도 청소년들이 춤을 춘다고 하면 곧 탈선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님들이 많아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건전하게 춤을 배우면 오히려 스트레스 해소와 자아실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함께 춤을 배우는 친구, 선후배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기에 인성 교육에도 효과적이죠. 이렇듯 청소년들의 건전한 여가문화 확산을 통해 올바른 전인성 교육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곳은 K-POP, 코레오, 힙합, 줌바 등 다양한 춤을 배울 수 있다. 아동, 청소년, 직장인, 시니어 등 학원을 다니는 연령층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열정과 실력을 갖춘 전문 댄스 강사의 맞춤 교육을 받을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요즘 가장 트렌디한 K-POP을 배우고 만족해하는 한 회원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K-POP을 배우는 것이 유행인데 이곳은 요즘 가장 트렌디한 K-POP을 배울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며 “개인 SNS 계정에 춤을 배우는 일상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라는 호평을 전했다. 손정희 대표는 댄스 강사지만 그에 앞서 가장 열정적인 춤꾼이다. 그녀가 가장 빛을 나는 곳은 역시 무대. 여러 댄스 대회에 나가 수상한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오랜 시간 갈고 닦아온 춤 실력은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무대 위에 설 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팀원들과 함께 무대를 준비하며 땀 흘리고, 성공적으로 무대를 완성했을 때 희열은 커요. 이런 충만함과 행복을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프로, 손정희 대표. 그녀는 열악한 댄스 강사의 근로여건 개선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댄스 강사의 근로여건이 워낙 열악하다보니 저도 어려울 때가 많았어요. 특히 코로나19가 유행할 때는 생업을 하지 못해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도 못했죠. 이런 어려움을 익히 알기에 후배들에게는 보다 좋은 근로환경에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싶어요. 앞으로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글러 댄스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후배들이 안정적인 근로환경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어요.” [1141]
    • 문화
    2023-01-27
  • 나만의 특별한 사진, 스토리텔링을 통해 피사체를 프레임 안에 담아내다
    사진이 대세인 시대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에 스마트 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우리의 일상은 스마트폰 앨범 속에 담겨 추억으로 남는다. 이제는 보다 전문적인 사진이나 영상들도 스마트폰으로 촬영할 수 있어 상업화하거나 전시회를 갖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나만의 특별한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누구나 한번쯤을 가져봤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통한 피사체를 프레임에 담아 예술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특별한 분위기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양재명 작가를 만나 셔터토그를 해보았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어릴 때부터 사진 찍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양재명 작가, 아버지께서는 중학교 2학년 때, 일본인 친구에게 부탁해 당시 야시카[YASHICA] 카메라를 선물해 주셨다. 당시만 해도 한국 경제수준에서 카메라는 굉장한 고가의 물품이었다. 그는 용돈을 모아 주말이면 흑백필름 2통을 구입하여 카메라를 들고 덕수궁, 경복궁 등을 오가면서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동네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장에게 사진 강습을 받는 등 사진 찍는 일에 남다른 열정을 가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진을 전문으로 배운 분이 아니었기에 전문적인 사진 강의라기보다는 현장실습 위주의 기술 전수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 땐 그 시간이 어찌나 좋던지요(웃음).” 양재명 작가는 서울예술대학 영화학과에 진학하면서 영화 카메라를 전공했지만 좀 더 전문적으로 사진과 카메라를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일본 최고의 예술학교인 도쿄비주얼아트에 입학하여 방송학과에서 ENG 카메라, 스튜디오 카메라를 공부하였고 졸업 후 다시 사진학과에 편입해 광고사진도 공부했다. 이후 미국 하와이 주립대학에서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하는 등 해외 각국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전문적으로 이론과 실기를 겸한 프로작가로 성장해갔다. 양 작가는 “이미 필름 카메라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고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 카메라의 시대도 스마트 폰의 편리함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누구나 스마트폰 하나면 자신만의 멋진 사진을 찍어 전시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편리하게 촬영하는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은 한계가 있지요. 전문 프로 사진가들이 DSLR 카메라를 고집하는 이유는 스마트폰으로 표현할 수 없는 디테일하고 심도있는, 자기 표현력이 강한 사진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진을 배우는 사람들은 꽃 사진, 풍경 사진을 주로 촬영한다. 그러다 혹 인물 사진을 찍을 때 배경은 흐릿하고 피사체의 인물만 또렷하게 표현된 사진에 매료된다. 그러나 피사체 심도의 깊고 얕음은 사진가가 주제에 적합하도록 촬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양 작가는 사진을 찍기 전에 반드시 ‘스토리텔링’을 이용하여 촬영하라고 권유한다.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이다. 이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스토리텔링’을 모른 채 그저 피사체를 보이는 대로 찍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마음의 창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예술 자신만이 생각하는 특별한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멋진 사진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생활 속에서 생활하는 장소에서 만들어진다. 그러기에 사진 자체를 특별하게 찍으려고 하기보다는 촬영하는 장소를 잘 선택하여, 멋진 사진을 만들 수 있는 곳을 찾아 그 장소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사진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선택한 장소를 찾았다면 장소에 담긴 보편적인 요소와 느낌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는 것이 핵심이며, 촬영할 때 그 장소의 특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요소를 찾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은 단순히 그 장소를 묘사한 사진과 그 장소에 대한 스토리를 전달하는 사진의 패러다임을 통한 사진의 이해라고 전했다 그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프로 사진가들은 촬영하기 전에 반드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토리를 생각하고 사진을 찍는다. 무턱대고 셔터만 누른다면 결과물에서 큰 차이가 난다. 남들이 공감하는 멋진 사진을 찍는 방법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렌즈와 조리개 셔터와 노출 그리고 빛의 관찰과 활용방식을 이용하여 프레임 한 컷에 주제(스토리)를 넣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토리와 함께 인간의 삶과 갈등, 진실과 정의, 삶과 죽음이라는 부제를 넣어 촬영하라고 권유한다. 양 작가가 생각하는 사진은 카메라의 메커니즘과 렌즈에 의한 광학적 기록이기보다는 사진가의 마음의 창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또한 ‘사진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피사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같은 피사체라도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 독특한 종합예술이라고 강조했다. [1141] •서울예술대학 영화과(연기, 영화 카메라 전공) •일본 선샤인 외국어대학 일본어과, 도쿄비주얼아트 방송학과 및 사진과 졸업 •미국 하와이 주립대학 저널리즘 전공 •호텔신라, 삼성에버랜드, 대상 청정원,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조일제지 엘르골프, 엘르스포츠 등 다수의 유명 기업광고 촬영 •현)서울외신기자클럽 정회원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소속 골든브릿지(금교) 서울특파원 외신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국무위원, 김영남 조선노동당 상임위원장 등 세계 각국 정상들과 노태우, 김영삼,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 취재 •대학에서 사진 강좌와 칼럼을 쓰고 매년 사진 전시회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수상 내역 •2020.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보도 기자 대상 •2021. 제7회 대한민국 예술문화 스타 대상 문화예술 대상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 대상 보도 기자 대상 Great 대한민국 100인 대상 보도 부문 대상 •2022.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취재 보도 대상
    • 문화
    2023-01-27
  • 자연이 주는 치유, “온 가족이 함께하는 행복한 하루를 선사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감각과 운동적 조작을 통해 배운다. 그러므로 자연 환경은 유아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적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자연 세계 자체가 거의 모두 유아들이 직접 경험하고 조작할 수 있는 생생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자연 세계에서의 다양한 경험은 다음과 같이 유아에게 발달의 모든 측면에서 성장을 도모해 줄 수 있다. -Wilson, 1995-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어떻게 하면 이 귀한 시간을 가장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되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보고 듣고 몸으로 부딪히는 체험활동을 하고 부모들은 탁 트인 자연 속에서 차 한 잔하며 힐링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떨까?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읍 율리중마을길 55에 위치한 청송자연농원을 찾았다. _김유미 기자 고즈넉한 산속에 자리잡은 ‘청송자연농원’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한 느낌이 든다. 40여년 식당으로 운영되던 공간은 리모델링을 거쳐 스마트팜, 카페, 펜션, 수영장이 들어선 복합체험공간으로 탄생했다. 여름에는 계곡 옆 평상에서 더위를 식히고 계곡물을 받아쓰는 수영장에서 피서를 즐길 수 있고, 카페와 스마트팜에서는 아이들의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사시사철 운영되는 펜션 역시 인기다. “아이들과 함께 한 소중한 체험들은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지요. 온 가족이 함께 오셔서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차를 하고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보자 고무장갑을 끼고 여기저기를 살피며 정돈하는 류금순 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뒷산까지 너른 부지에 건물만 해도 두 동, 손이 많이 갈 수 밖에 없을 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까지 맞아가며 일하는 모습이 정스러워 한참을 바라봤다. 역시나 직접 만나본 류 대표는 순수하고 따뜻한 미소의 소유자였다.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했어요. 정말 바쁘고 성실하게 일했지요. 하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더라구요(웃음). 점점 체력에 한계를 느끼던 즈음, 남편과 함께 청송자연농원을 좀 더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연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정말 멋진 곳인데, 어떻게 하면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힐링하고 가실 수 있을까.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요.” 류 대표는 올해 여름부터 카페를 오픈하는 동시에 꼬마농부체험을 시작했다. “화분을 꾸미고 아기허브를 심고 밀짚모자를 꾸며 나만의 농부모자 만들기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정말 호응이 좋았어요. 카페 옆 비닐하우스에 심어논 아기 옥수수와 파프리카, 상추, 딸기 등으로 시기별로 새로운 체험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들이 자꾸만 떠올라요(웃음).” 가을에는 뒷산 감나무에서 감따기 체험을, 빼빼로데이를 앞두고는 빼빼로 만들기 체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퐁퐁트리 만들기가 진행됐다. 지금부터 1월 말까지는 딸기케이크 만들기 체험이 가능하다. 하우스에 있는 다양한 작물 따기는 언제든 환영이다. “특별히 홍보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이 나서 부산, 울산, 양산 등지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더라구요. 카페와 체험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차선영 실장의 역할이 큽니다. 본인이 두 아이의 엄마이자 공예, 요리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분이라 굉장히 알차고 세심하게 준비해주세요.” 모래놀이터와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등 아이들을 위한 배려 속 주인장의 넉넉한 마음이 엿보인다. “운동 부족, 대화 부족인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긴장을 풀고 함께 다양한 체험을 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잘 준비해놓고 있겠습니다(웃음)." 카페 창가에서 바라본 산 아래 웅장한 풍광은 신선이 된 듯 한 느낌까지 갖게 한다. 여유로운 좌석과 테이블 배치에 각종 허브로 꾸며진 실내조경 역시 숨통이 확 트일 정도로 깔끔하고 시원하다. 연못 속에서 노니는 금붕어까지, 자연 그대로를 담아논듯 특별하다 . “최근 단체 예약도 많아지고 있어요. 체험이 끝나면 부리나케 떠나는 형식적인 체험농장이 아닌, 충분히 즐기고 놀면서 멋진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청송자연농원의 소식들을 계속해서 올릴 테니 많은 관심가져주세요.” [1144]
    • 문화
    2023-01-27
  • 탈모인의 새로운 희망, 두피 문신 “완벽한 시술(S.M.P)로 보답해야”
    S.M.P(Scalp Micro Pigmentation) 두피 문신은 두피에 미세한 바늘로 점을 찍는 시술로, 작은 점을 찍어 모근처럼 보이게 해 탈모 부위를 자연스럽게 채워주는 효과가 있다. 이 시술은 의료용 시술에 속하며, 모발을 직접 심는 것에 비해서 통증이 덜하고 회복 기간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겨울로 넘어가는 지금의 계절엔 짧은 일조량으로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탈모를 유발한다. 숭숭 빠지는 머리카락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어 탈모로 고민하는 젊은 층이 차츰 증가하는 요즘, S.M.P를 찾는 이들이 더욱 늘고 있다. _김민진 기자 촉망받는 육상선수에서 스칼프 테크니션(Scalp Technician)으로 더스틴(DUSTIN), 제2의 인생을 점찍다 “내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고객상담 시 그 누구보다 “탈모인의 마음을 잘 안다”고 운을 뗀 더스틴(DUSTIN) 주식회사 그레이시티 스칼프 잠실본점 대표원장은 S.M.P로 전국에서 모이는 뜨거운 상담과 기술 문의로 지역마다 본점을 설립하는 가운데 현재 부산본점도 담당하고 있다. 훤칠한 키와 남다른 체격으로 인터뷰 현장 복도를 순식간에 런웨이로 만들어버린 그는 알고 보니 육상선수로 15년간 필드를 뛰며 촉망받던 유망주였다. 어떻게 S.M.P의 길을 걷게 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새벽부터 야간훈련까지 정해진 시간과 프로그램에 맞춰 규칙적인 운동인의 삶을 살면서 마치 농부와 같이 1년 내내 사시사철 모든 역경을 견디고 훈련하다가 수확하는 때 딱 한 번 전국체전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게 때론 허무한 마음이 들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는 중에 사춘기 시절부터 슬슬 탈모 징조가 보였고, 운동할 때나 외출할 때 늘 저에겐 모자가 필수였습니다. 머리카락에 대한 스트레스로 무슨 일을 하든 100% 몰두가 안 되더라고요. 운동을 하면서 땀이 날 때도 물놀이를 가보려고 해도 자연스레 머리 스타일링에 대해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알게 된 그레이시티에 두피 문신 받으러 갔다가 상담하면서 ‘이건 된다, 무조건! 내가 먼저 배워보고 시술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번뜩이며, 이제는 ‘주도적으로 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세상으로 나가는 첫 발걸음! 그레이시티(GRAYCITY)와 함께 더스틴(DUSTIN) 대표원장은 S.M.P를 접하기 전에 모발이식, 부착식 가발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양한 시도와 많은 돈을 썼기에 고객들이 상담하는 동안 그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는 것부터 큰 용기를 가지게 된다고. “나이가 지긋이 드신 어르신도 20년간 가발을 써오시다가 저를 만나셨고요. 학부모도 딸아이와 손잡고 오셔서 상담받으시고, ‘졸업식 때 가장 멋있는 아버지로 만들어드리겠다’는 약속도 지켜드렸죠. 이러한 여러 고객 사례 중에서도 꽃다운 스무 살 청년의 시술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두피 전체의 모발이 빠지는 전두탈모로 몸과 마음 모두 병이 든 상태였지요. 동행하셨던 어머님도 같이 우시는데... 그 모습에 이 친구를 반드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고, 시술 후 만족 그 이상의 감동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시는 고객분들을 보면 이 일을 시작하길 참 잘한 것 같다는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1142]
    • 문화
    2022-12-26
  • 경북문화관광공사에서 선정한 뷰 카페, 김천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발돋움 중
    카페가 단순한 음료를 넘어 더 깊은 취향의 영역으로 들어선 지금. 커피 본연의 맛과 종류도 중요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공간에 대한 스토리가 더해진 디테일이 주목된다. 넓은 주차장을 기본으로 드라이브해서 찾아가는 맛도 있는 대형카페의 경우엔 건물의 외관부터 입구, 실내, 정원 등 모든 공간이 하나의 컨셉으로 디자인돼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주간인물에서 찾은 지역 핫플레이스로는 높은 건물과 넓은 실내, 커다란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으로 도심 속 카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김천의 떠오르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 ‘메타1976’을 선정했다. _김민진 기자 애향심을 바탕으로 탄생한 메타1976 가상과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를 딴 카페명과 디자인 컨셉을 잡았다는 건축주, 김나영 대표는 토목 관련 근무 경험이 있는 남편 김규식 씨와 ‘1976년생’ 동갑내기 커플로 두 사람의 아이디어가 가득 담긴 이 공간을 위해 경제적으로도 그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메타1976>을 내걸고, 남다른 고향사랑으로 김천시 조각공원길 330-137에 카페를 세웠다. “별을 상징하는 조명 하나하나에도 남편이 신경을 많이 썼어요. 무심코 보면 아무도 알아채지는 못하겠지만, 저희 부부 눈에는 사소한 아이템 하나도 그냥 못 넘어가겠더라고요(웃음). 천장형 에어컨을 설치할 때도 건축컨셉에 잘 어울릴만한 브랜드를 고르고 골라서 최대한 우주를 연상케 하는 공간 구성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어디 멀리 찾아가지 않고서도 제가 사랑하는 고향, 김천 안에도 집 앞에 힐링할 수 있는 명소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건축 쪽으로 일가견이 있는 남편의 도움이 컸습니다.” 최근 김충섭 김천시장도 메타1976 카페에 깜짝 방문해 김천시민을 위한 문화공간 조성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소속의 박정아 배구 선수도 들려 휴식 시간을 보내 신상 카페임에도 불구하고 지역민은 물론, 김천 IC를 지나던 여행객들도 “고속도로에서 반짝거리는 예쁜 불빛이 눈길을 끌었다”라며 이곳을 찾는 발길이 크게 늘고 있다. “남녀노소 모두가 건강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메타1976은 대형 베이커리, 브런치 카페로 유명한 만큼 모든 빵은 100% 유기농 밀가루로 당일 생산되는 시스템으로 그날 남은 새 빵은 인근 보육원에 기탁하는 나눔을 실천하는 김 대표는 “아주 작지만, 저희가 하는 일이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라고 수줍게 전했다. 평일 낮, 취재진이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을 때도 유독 노인층이 주 고객을 이룬 모습이었다. “어르신들은 커피를 안 좋아한다는 말은 다 옛날 말이다”라며, “특히, 저희 빵을 먹고 나면 속이 편하고 더부룩하지 않아서 좋다고 카페에서 드신 후 나가실 때 또 사 가신다”라고 김 대표가 빵에 대한 자부심을 표해 메타1976에서 제공하는 베이커리 중 몇몇 차별화된 시그니처 메뉴 소개를 부탁했다. “<파주빵>은 저희 셰프님이 파주에서 근무하실 때 방송까지 나왔던 빵인데요. 완두콩이 들어가 소화가 잘됩니다.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며, 어르신들의 입맛에도 취향 저격이죠. <먹물 어니언>은 오징어 먹물로 반죽했고, 안에 양파와 크림의 조합이 느끼하지 않으며 손님들께서 ‘한국인의 입맛에 딱이다’라고 말해주시는 빵이어서 매장 내 인기 제품입니다. <소금빵>의 경우엔 다른 곳과 차별화를 둔 부분이 쌀가루 50%를 첨가해 쫄깃하고 담백함은 배가 되고 버터가 적당히 들어가면서 더욱 고소한 풍미가 담겨 단짠(달고 짠)으로 갓 구워낸 소금빵은 겉바속촉의 끝판왕이라고 부르지요(웃음). 소금빵 다음으로 인기 있는 빵인 <바질 토마토>는 토마토, 바질, 베이컨의 환상적 조합이 피자빵인 듯 아닌 듯 묘한 매력을 줍니다.” 이외에도 메타1976의 아포가토(Affogato)는 상하목장 아이스크림과 최고급 이탈리아 원두의 절묘한 만남을 이루며, 매장에서 직접 생산한 수제 마카롱과 함께 큐브 치즈와 스틱 과자로 완성된 음료 또한 김 대표가 자신 있게 추천하는 메뉴다. “각종 전시와 공연이 펼쳐지는 문화예술의 장으로” 통유리 창으로 펼쳐지는 탁 트인 뷰와 더불어 카페 안에서는 지역민에게 다양한 문화공연을 선사하기 위해 계획 중에 있다고. 이미 메타1976의 공간을 알아 본 단골손님들이 먼저 제안하여 진행된 유치원 하우스콘서트, 고교입학설명회 등도 성황리에 마쳤다. 음악과 미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눈과 귀가 힐링이 될 수 있도록 꾸며가고 있는 곳이다. “밤샘 작업을 거친 또 하나의 작품 탄생이 있었습니다. 밋밋하고 뭔가 허전하던 공간에 무얼 채워 넣을까 고민고민하다가 그냥 시중에 파는 흔한 그림 액자는 걸고 싶지 않아 작가님을 섭외해서 직접 작업을 했지요. 메타의 규모에 걸맞은 초대형 사이즈의 그림이 압도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화려한 컬러감과 현대적인 예술미에 매료당하실 겁니다. 오 작가님 이하 여러 작업자님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메타1976의 역사에 한 획을 그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카페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세상 유일한 미술작품을 메타1976에서 많이 감상하실 수 있도록 재능 있는 작가님들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무분별한 확장은 지양하고파” 카페 오픈하고 몇 개월 채 되지 않아 초창기부터 프랜차이즈 문의가 잇따른 메타1976은 707특수임무대대 출신인 남편 김규식 씨의 강직하고 올곧은 가치관을 존중하고 한마음으로 뜻을 같이하는 김나영 대표의 확고한 경영이념으로 무분별한 확장을 지양한다. “저희 카페의 진가를 여기저기서 알아봐 주신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하고 뿌듯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럴수록 처음 저희 부부가 지녔던 창업 신념을 잃지 않으며, 고객님들께 건강하고 신선한 빵과 음료를 제공해 드림에 변함이 없을 것을 약속드리며 집중하고 싶고요. 이후에 현재의 규모보다 조금 더 크게 직영점으로 하나 더 세워서 많은 시민들이 모임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짓고 싶습니다.” [1142]
    • 문화
    2022-12-26
  • 차(茶) 한 잔으로 인생이 바뀌는 기적! “맛있는 차를 만드는 제다인(製茶人)으로 남고파”
    경주시 건천읍 단석로 1757에 자리한 ‘다다티하우스’는 대한문인협회 시인으로 등단한 주인장이 운영하는 카페로 “내 시는 읽기 쉬워야 한다”는 철학이 이어져 “차(茶)도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제조시설을 갖춘 이곳에서 수제약선차를 선보이고,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 운영 및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마침 차생활지도사 수업을 마친 이은주 대표와 향긋한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차로 인생이 바뀐 그의 삶을 들어봤다. _김민진 기자 Q1. 차(茶)를 가까이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현재 맡고 계신 일들도 함께 소개해주신다면. A.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아버지께서 가꿔 온 모든 꽃이 사시사철 잎 하나 마른날 없이 항상 싱싱하고 향기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7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 아이의 엄마로 돌아와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정한 마음이 들 때 “그래, 내가 잘하는 일은 풀 만지는 일이었지”라고 번뜩 떠올랐죠. 평소 관심을 가지고 블로그에 700여 편의 글을 모아왔던 약초에 관한 상식으로 ‘약초활용요법’이라는 평생교육원 과정을 듣다가 약초를 먹는 방법을 좀 더 간편하게 하고 싶어 제다(製茶)에 관심을 가지고 ‘꽃차소믈리에’를 시작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고 더 깊게 알아가고 싶은 것이 넘쳐났던 저는 늘 질문하는 학생으로 결국엔 교수님께서 대답을 못하는 지경까지 오셨죠(웃음). 그리고 배운지 1년 만에 <산우산야초꽃차문화원>을 개원하고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1997년, 적어도 제가 가르친 제자들만큼은 어려움 없이 사범 활동을 하고 자신들의 작은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를 창설해 꽃차소믈리에, 약선차사범, 차생활지도사 과정을 교육하고 있어요. 현재 <다다티하우스> 카페도 운영하며, 중국의 국영차창 ‘운남동경호(雲南同慶號) 보이차’를 수입 및 판매하는 총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Q2. 차(茶) 교육에 대한 열망이 더 크신 것 같습니다. 타 문화원과 달리 크게 차별화를 둔 부분이 있으신지요? A. 한국차, 중국차, 일본차를 모두 교육하는 이색카페로 전국각지에서 수강생이 찾아오는 유일무이한 곳이죠. 모든 차를 판매하고, 시음도 할 수 있는 1층 카페에서는 사실상 영리를 위하기보다는 차를 알리기 위한 무료 나눔이 주를 이루는 공간입니다(웃음). 특히,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의 꽃차소믈리에 과정은 전국 최초로 잎차를 6대 다류 제다법으로 분류하여 만들기 시작했어요. 꼭 찻잎이 아니더라도 허브 종류의 잎 혹은 꽃도 경발효, 비발효, 부분발효, 산화발효, 후발효차로 만들어 전통차의 제다법을 따르고 이를 바탕으로 차 공부에 깊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단지 꽃차만 배우는 것이 아닌, 제다법을 통해 차를 알고 전통차를 이해하여 차의 본질을 알아 가는 차생활지도사 과정을 통해 한국/중국/일본차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으며, 생활 속 차인(茶人)이 돼가는 과정을 습득하게 되죠. 그리고 사범 과정을 통해 각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드리고 있습니다. Q3. 10년 넘게 차(茶) 외길인생을 걸어오신 대표님의 교육으로 제자들의 인생이 바뀐 특별한 사례도 있으시죠? A. 감사하게도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를 통해 70개의 문화원이 만들어졌습니다. 먼 곳에서 그들을 응원하며 지켜보는 제 마음이 얼마나 흐뭇한지요. 제가 겪었던 것처럼 경단녀의 삶에서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 수료 후, 다시 자기의 협회를 만드신 분도 계시고 대학에서 강의하고 계신 분도 있으며 작은 공방을 차려서 열심히 수업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면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계신 인생 선배님들이시죠. 삶은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나이 55살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꿈을 정해 놓고 그 꿈을 위해 나아가다 보면 그 어느 날 우리는 그 꿈에 닿아 있지 않을까요?”라고 제자들에게 항상 하는 말입니다. Q4.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경이 있으셨을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그 일로 깨달은 삶의 철학이 있으시다면. A.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던 저는 두 살 터울 오빠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공부를 더 할 수 없었어요. 늘 꿈에 야간 고등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는 꿈을 꾸는데 아이를 업고 가서 달래고 기저귀를 갈고 있더라고요. 이 똑같은 꿈을 수십번 꿔서 외울 정도였습니다. 3~40대 시절은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일찍 아이들을 키워 놓고, 47살에 제가 벌어서 다도대학원을 입학했지요. 2019년, 위덕대학교 외식산업학부에서 또 공부를 시작했고, 처음에 8학기는 이것이 정녕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을 만큼 높은 장벽이었습니다. 만학도 장학금을 받는다 쳐도 제게는 힘든 경제적 난관이 많았죠. 이제 마지막 기말고사 한 번만 치고 나면 졸업입니다! 삶은 꿈꾸는 자의 것이죠.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강철맨탈챌린지’로 제자들은 12개월 동안 1일 1글 포스팅이라는 어려운 일도 해냈습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Q5. 차(茶)를 비싸고,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비싼 한복을 입고 행다(行茶) 위주의 다례원 교육을 받는 등 어려워하시는 분이 많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차는 커피처럼 마시는 음료입니다. 단지 관심이 조금만 있다면 사람들과 소통하며 스스로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여유를 주는 맛있는 음료죠. 우리의 차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해 보면서 ‘초암차보존회’를 만들어 차의 역사를 바로잡고 알리기 위해 힘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차보존회 속의 생활차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차는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임을 꼭 알리고 싶습니다. [1142]
    • 문화
    2022-12-26

실시간 문화 기사

  • “가구는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오래도록 빛난다” 정성이 깃든 부산 수제원목 짜맞춤 가구 목늬공방
    한국 전통의 짜맞춤 가구 기법은 나무 본연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을 구현해 낸다. 감각적인 느낌으로 인해 그저 두는 것만으로도 멋스러운 짜맞춤 가구. 어느 곳에 두어도 주변과 잘 어우러진다는 점도 장점이다. 테이블, 책상 그리고 식탁, 장식장 등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 세련된 짜맞춤 가구 공방으로 입소문 난 ‘목늬공방’을 찾았다. 그 곳에서 만난 김민재 대표. 그가 들려주는 가구 이야기를 담아본다. _조현정 기자 목늬공방 수업 이야기 원목 자체만으로도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 대학시절 목공학을 전공한 목늬공방의 김민재 대표. 그는 당시 짜맞춤 가구 명장인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짜맞춤 가구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집을 짓는 빌더가 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건축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더라구요. 그때 생각했죠. 제 전공을 살려야겠다고(웃음).” 졸업 후 2년 정도 꾸준히 짜맞춤 가구에 대해 공부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로 배움과 나눔의 공동체를 교육 이념으로 삼고 있는 온새미학교에서 수강교육을 맡게 되었다. 공교육에 동화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한 목공 수업과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주민 목공 교육, 마을 공방 운영 등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목공과 친해질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였다. 당시 서울에서는 목공방이 활성화되고 있었지만 지방에서 목공방을 찾기란 꽤나 힘들었던 상황. 건설경기가 좋지 않아 많은 목수들이 인테리어로 전향을 했기 때문이라고. 이에 많은 이들에게 목공을 알리고 싶었던 그는 4년 전 지금의 목늬공방을 차렸다. 목재에 홈을 만들어 끼워 맞추는 방식의 짜맞춤 가구는 못, 나사 혹은 본드를 사용하지 않고 목재끼리만 연결하는 방식으로 견고하고 튼튼하며, 오래 사용해도 비틀어지거나 휘어질 염려가 없다. “나뭇결을 그대로 살려 본연의 미를 살린 짜맞춤 가구는 우리나라의 정서와 가장 잘 맞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이 인테리어와 소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요즘, 짜맞춤 가구의 인기 또한 자연스레 상승하며 목늬공방을 찾는 수강생들이 많아졌다. 월, 수요일마다 진행되는 수업은 2개월간 짜맞춤 수업을 듣고, 완벽히 이해를 한 다음 제작 단계로 넘어간다. 꼼꼼하고 체계적인 커리큘럼으로 탄생한 멋진 작품들은 수강생들의 열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목늬공방을 찾아주신 수강생들은 약 200여 명 정도예요.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학생부터 신혼부부, 어르신들까지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세요. 섬세한 작업을 하기 위해 집중력과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한데 다들 잘 따라와 주셔서 감사하지요.” 식탁부터 책상, 티비장, 테이블, 침대 같은 가구는 물론, 액자, 거울 틀 등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짜맞춤 기법. “가구를 만들 때 사용하는 못과 철제의 변형으로 나무가 갈라지고 휘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외국에선 원목을 좋은 재료라고 하지 않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짜맞춤 기법으로 만들어진 가구는 시간이 지나도 변형이 없고 본연의 멋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기 때문에 원목이야말로 가장 좋은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주문 제작으로 멋스러운 공간을 완성시키다 쇼룸, 그리고 앞으로의 목늬공방 “해외여행이나 인터넷을 통해 보게 된 가구를 직접 찍어 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짜맞춤 가구로 제작하고자 하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나만의 것이 트렌드가 된 요즘 특히 주문제작이 많아졌다. 목늬공방에서 사용하는 소프트 우드부터 하드우드, 특수목 등 다양한 재료의 목재는 인천과 대구에서 공수해 주문 제품을 만든다.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나무다운 색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은 가운데, 칠을 원하는 고객들도 있다. “고객이 원한다면 칠을 해드리고 있어요. 하지만 칠로 인해 생기는 변형과 칠이 벗겨져 원목 본래의 색이 흠집처럼 보이는 경우를 충분히 설명해 드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목공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과 함께 작업하며 목늬공방만의 노하우와 스킬을 가르치며 후임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흥미와 재능을 겸비한 많은 이들과 소통하며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고. “나무 작업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나무를 다루는 것이 아닌 나무와 습기, 그리고 환경적인 관계를 파악해 나가는 것입니다. 나무가 왜 변형되는지 알아야 하는 사람이죠(웃음). 정성을 담아 만들어낸 가구는 사람의 손때가 묻을수록 더욱 생기가 돌고 광이 난다고 생각해요.” 그는 앞으로 짜맞춤 가구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이들이 발걸음 할 수 있도록 공방 확장은 물론 짜맞춤 가구를 전시하는 쇼룸을 선보일 예정이라 전했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짜맞춤 기법으로 우리의 멋을 담아내는 김 대표. 그의 정성으로 채워져 나갈 목늬공방을 기대한다. [1013]
    • 문화
    2017-05-02
  • 마음의 밭에 지혜(智慧)의 씨앗을 뿌려 덕(德)을 거름삼아 농사를 잘 지으면, 복(福)이라는 열매는 자연히 열릴 것이니
    선대승병들의 호국불교사상과 승병무예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지난해 출범한 (사)대한호국불교승병단. 얼마 전 (사)대한호국불교승병단은 월간룸비니와 함께 대중들과 소통하고 불교 장학회 설립 기금 마련을 위해 자연석 불상 조각전 및 네팔 만다라 전시 그리고 선서화전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곳의 총재를 맡고 있는 마웅스님은 그간 다양한 불교 예술행사 및 나눔과 재능 기부 행사를 통해 생활불교 실천을 강조해온 이다. 어지러운 시국 속 호국불교사상과 불교의 가르침을 일깨우며 공유와 나눔의 정신을 새기고 있는 그의 발자취를 주간인물이 되짚어보았다. _정주연 기자 큰 법당에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일어나니 곳곳에 자리한 불상과 수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주지스님 방에 들어서자 얼핏 보기에도 세월의 무게를 오래 견뎌낸 듯한 크고 작은 불상과 수석, 도자기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원석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꿰고 있던 마웅스님은 취재진을 발견하고는 눈인사를 건네며 손목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취재진이 온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염주를 선물해주고자 손수 만들고 있었던 것. 스님 주위에는 형형색색의 원석들이 그윽하면서도 깊은 빛을 담고 있었다. 평소 염주뿐 아니라 그림이나 공예, 조각 등에서 남다른 예술적 감각을 드러낸 마웅스님은 종교와 예술의 인연을 찾아 이어온 이로 그동안 다양한 불교예술행사를 개최하며 생활 속에 자연히 불교의 가르침이 스며들 수 있게 노력해왔다. 생활불교도량 무상사 나눔과 베풂의 불교 정신 이어가 천안에서 절을 짓고 생활하던 그가 포항과 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되었다. 볼일을 보기 위해 포항을 방문했다 구룡포 바다에 매료된 것. 마웅스님은 그길로 포항에 거처를 마련해 눌러앉았다. 다른 스님 2명과 함께 한겨울 법당을 손수 지으며 부처님의 의지를 전해가던 중 8년 전 지금의 무상사와 인연이 닿아 법당을 짓기 시작하여 지금의 모습을 조금씩 갖춰왔다. 대중이 알기 쉽게 모든 경전을 한글로 편찬해 설법을 이어온 그는 생활불교를 강조하며 소통과 나눔, 베풂의 불교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매년 동짓날 행하는 팥죽 나눔 행사를 비롯해 경로잔치와 포항 주민 위안잔치를 열고 있는 그는 나눔 행사를 ‘논다’라고 표현했다. “나눔에서 오는 기쁨은 받는 것의 그것보다 훨씬 큽니다. 다양한 나눔 행사는 저에게 노는 것입니다. 재밌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는 것, 그것이 저에게는 많은 사람들과 나눔의 기쁨과 즐거움을 공유하며 함께 어우러지는 나눔 행사인 거죠.” 좋은 기를 받고 베푸는 것이 종교라고 말하는 그는 절에서 흔히 다는 등이나 기도에 있어서도 그 값어치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고 전했다. 주지스님이 무엇인 줄 아느냐는 마웅스님의 물음에 취재진이 정형화된 대답을 하자 웃으며 진짜 뜻을 일깨워주었다. “주지스님은 주는 걸 좋아하는 스님을 일컫는답니다(웃음).” 운수(雲水) 구름이나 물이 그 어디에도 걸림 없고 막힘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할 일이 생기면 그저 할 뿐 포항 무상사에서는 매년 4천여 명의 6.25 전사자와 월남전 전사자, 그리고 대간첩 작전 전사자 등을 기리는 합동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처음에는 사찰의 규모가 크지 않아 거절했지만 거듭되는 부탁에 영가(靈駕)를 직접 모시고와 시작한 것이 올해 벌써 5회째를 맞이한다. 망령들도 즐거워야 하지 않겠냐며 공연을 동반한 위령제를 행하고 있는 무상사에서는 매년 천여 명의 인파가 몰리는 산사음악회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찰의 규모에 비해 열리는 행사의 규모가 작지 않아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많을 터인데도 마웅스님은 “그저 할 일이 생기면 할 뿐이죠.”라며 웃어 보인다. 경북지회장애인협회 봉사회장으로도 오랜 시간 활동해온 그는 교도소 법문도 꾸준히 하는 등 다방면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며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이러한 행보와 함께 무상사 신도회 역시 사찰 내에서는 물론 지역 내 다양한 봉사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예술과 함께하는 불교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다 방안 곳곳에 자리한 불상과 불화 외에 눈길을 끄는 것이 또 있으니 바로 각양각색의 염주와 목걸이, 조각보다. 우연히 찻집을 방문했다 찻잔 밑에 ‘다포’를 깔아놓은 것을 보고 옆집 승복사에서 조각 천을 얻어 바느질을 시작했다는 마웅스님은 밤새 바느질을 하며 스스로를 넘어보려 했다고. “어려서부터 개구쟁이에 성격도 급했어요. 그런데 또 몸이 약해 늘 어머니께서 지극으로 보살펴 주셨죠. 어머니께서 바느질하던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기만 하다 처음으로 바느질을 해본 것이었습니다. 원래도 손재주가 조금 남다르다는 말을 듣곤 했는데 숙달이 되면서 모자나 배낭 신발까지 만들게 되었죠.” 원석이나 수석에 관심을 가지며 직접 염주나 목걸이도 만들기 시작했다는 마웅스님은 이외에도 그림이나 공예 등 다양한 예술 활동에 관심을 가지며 많은 예술인들과도 연을 맺었다. 좋은 작품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그는 30년 가까이 값을 매길 수 없는 불상과 명장에 의해 만들어진 도자기 등 다양한 작품들을 대중들과 공유할 목적으로 수집해왔다. 이번에 열린 장학회 설립 기금 마련 전시회에서는 마웅스님이 직접 만든 작품을 비롯해 그와 여러 스님들의 소장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선업을 지으면 좋은 과보를 받을 것이고 악업을 지으면 나쁜 과보를 받을 것이라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나도 좋고 남도 이롭게 하라는 자리이타(自利利他). 불교의 가르침에는 항시 선을 행하고 악을 지양하라는 부처의 말씀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각박해진 세상사 때문인지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요즘 마웅스님의 마지막 말은 우리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고 있다. “밥 한 술을 먹더라도 내가 직접 해야 하듯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뭐든 직접 해야 합니다. 이에 뇌파, 즉 에너지를 밝게 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마음을 다해 살아간다면 즐겁지 아니할 일이 무엇이며 복이 오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마음이라는 밭에 지혜(智慧)의 씨앗을 뿌려 덕(德)을 거름 삼아 농사를 잘 지으면 복(福)이라는 열매는 자연히 열릴 것입니다.” [1013]
    • 문화
    2017-05-02
  • ‘부산 비즈니스서비스 강소기업’ 선정 세계 최고의 해양레저 R&D 업체를 꿈꾸다
    최근 부산 비즈니스서비스 강소기업에 한국컴포짓이 선정되었다. 2014년 설립된 한국컴포짓은 요트, 보트, 특수선 설계 컨설팅 및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전문회사로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젊은 기업이다. _박미희 기자 요트업계 25년 경력의 베테랑 해양레저 선진국, 뉴질랜드에서 실력 인정받아 “국내 요트가 선진국 수준의 품질과 디자인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고 싶어요. 세계 최고의 해양레저R&D 기업을 만드는 것이 꿈이죠!” 환하게 웃는 김성하 대표. 그는 요트업계에 25년 경력을 지닌 전문가다. 해양레저 선진국 뉴질랜드에서 이론과 실무를 배운 그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실력파다. 세계 최고의 해양레저 기술을 이끄는 명문, 유니텍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학해 공부했고 유수의 기업에서 요트 제작 전반의 과정을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세계 최고의 요트 전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그가 요트 업계에 발을 딛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뉴질랜드 이민을 갔을 때 요트 사업의 비전을 보았죠. 뉴질랜드는 요트사업에 있어서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나라입니다.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면 분명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국내 요트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그 한계점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국에서 밑바닥부터 기본기를 차근차근 다진 전문가들이 귀해요. 요트산업이 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자본력을 바탕으로 시장에 뛰어든 경우라 아직도 많은 부분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요트는 다른 선박제작과 달리 엔지니어링적인 측면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디자인적인 측면도 중요하죠. 이렇게 요트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지닌 전문가들을 키워내고, 산업을 활성화할 때 선진국에 뒤지지 않은 디자인과 품질을 지닌 국내요트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그는 국내요트가 선진국 수준의 디자인과 품질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겠다는 생각으로 2014년 한국컴포짓을 창업했다.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국컴포짓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해양레저 R&D 업체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여러 국책과제를 수행하는가하면 부산 비즈니스서비스 강소기업으로 선정되며 그 저력을 증명하고 있다. ‘디자인+엔지니어링+운용·관리’ 요트에 관한 One-stop 서비스 제공 국내 요트업계를 선도할 강소기업으로 주목 2014년 창업한 한국컴포짓은 요트, 보트, 특수선 설계 컨설팅 및 매니지먼트 전문회사다. 각 파트에 국한된 사업만을 진행하는 동종 기업과 달리 한국컴포짓은 디자인, 엔지니어링, 운용·관리까지 요트에 관한 모든 서비스를 One-stop으로 받을 수 있다. “보통 국내 요트업체는 설계면 설계, 디자인이면 디자인 각 파트별로 운영하고 있죠. 하지만 한국의 클라이언트들은 자신이 원하는 요트를 의뢰하고 제작해 운용하는 것까지 One-stop 서비스를 받는 것을 원합니다. 요트를 갖고 싶어 하는 분들도 어떻게 요트를 운용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으세요. 그런 분들에게 저희는 요트에 관한 모든 솔루션을 제공해드리고 있어요.” 요트에 관한 전문적인 기술과 심도 있는 이해가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사업모델. 이렇듯 남다른 경쟁력을 지닌 한국컴포짓은 여러 국책과제들을 수행하며 국내 요트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드론을 비롯한 신기술을 접목한 요트 제작 등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사업들을 연구하고 있는 것. 또한 이곳은 요트산업의 젊은 인재들을 키워내고 있다. 해외 디자인 수상 경력의 디자인 전문가, 조선공학 전문가, 전자제어 전문가 등 실력 있는 젊은 프로들과 내일을 꿈을 만들어가고 있다. “저희의 꿈은 세계 최고의 해양레저 R&D 업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국내 요트 산업을 이끌어갈 젊은 인재를 양성하고, 그들과 함께 선진국과 비견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 품질과 디자인을 지닌 국내요트를 만드는 것, 그것이 저희의 꿈입니다.” 내일을 여는 기업, 한국컴포짓이 만들어갈 한국요트의 새로운 모습이 기대된다. [1013]
    • 문화
    2017-05-02
  • 미소가 활짝 피어나는 꽃을 선물하세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는 “내가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꽃 덕분일 것이다. 나는 언제나 꽃과 함께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꽃은 누군가에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다.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은 그런 의미에서 더 아름답다. 4계절 내내 꽃이 활짝 피어있는 카페를 운영하며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선물하는 김경미 대표를 인터뷰했다. _엄지현 기자 꽃을 보며 휴식하는 공간을 만들다 김경미 대표의 첫인상은 꽃처럼 화사했다. 공대 출신인 그녀는 꽃이 좋아 전문적으로 배우고자 영국으로 떠났다. “꽃을 만지기 시작한지 올해로 2년이 됐네요. 영국에서 맥퀸즈, 지타엘츠 학위과정을 수료하면서 더 넓은 시각으로 꽃을 바라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엔 제 샵을 차리고 싶었습니다. 준비 과정 중, 문득 많은 사람들이 ‘꽃과 차를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예쁜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또 예쁜 것 중에서 꽃이 빠질 수 없잖아요. 너무 외진 곳보다는 꽃과 차가 생각나면 언제든지 찾아오실 수 있도록 어느정도 사람들이 있는 번화가에서 시작하고 싶었다보니 남포동에 꽃바테라는 저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꽃바테만의 매력은 콘크리트, 철제망 등 투박한 인테리어에 꽃을 매달아 대비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대표도 이를 연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꽃바테를 시작할 때 빈티지한 인테리어를 원했어요. 다행히 김해공감인테리어 김경률 실장님께서 정말 많은 아이디어를 내주셨고 많이 소통했죠. 노출된 콘크리트 기둥에 꽃이 피어나고, 녹슨듯한 철제망에 꽃을 매달면 더 좋겠다는 실장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지금의 예쁜 꽃바테가 만들어질 수 있었죠.” 플라워카페에 걸맞게 이곳 메뉴에는 꽃차가 있다. “꽃을 메인으로 한 카페다보니 꽃차를 메뉴에 넣으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효능이 좋은 꽃차를 직접 찾아보고 공부했습니다. 실제로도 손님들께서 저희 가게에 오면 꽃차를 더 많이 찾으세요.” 여기서 끝나지 않는 김 대표의 꽃바테는 플라워 클래스까지 진행한다. 원데이 클래스, 취미반, 정규반 등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사람들에게 꽃다발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제가 영국까지 가서 배워온 꽃에 대한 지식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주문제작도 가능하지만 이왕이면 배워서 직접 만든 꽃다발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죠. 가끔 수강생들과 함께 직접 꽃시장에서 꽃을 골라오는데, 그 과정에서 꽃을 다양하게 접하게 되니 더 뿌듯합니다.” 꽃에서 느끼는 큰 행복 그녀는 꽃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벅찬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영원하지 않다는 거요. 꽃은 영원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요즘 프리저브드 플라워가 유행이라지만, 약품을 사용해 수명을 연장시키는 거지만 결국엔 시들거든요.” 이토록 꽃을 사랑하는 김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많은 꽃 중 고르지 못해 어려워할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단숨에 대답했다. “저는 벚꽃이 제일 좋아요. 딱 지금이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잖아요. 다들 벚꽃보고 행복을 느낀다는게 좋아요. 또 벚꽃은 나무에서 피는 꽃이기도 하고 유통되지 않다보니 핸드타이트나 어레인지 할 때 잘 사용하지 못해요. 그래서 그런지 더 갖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드는듯합니다(웃음)” 고객에게 특별한 날을 만들어줄 때 가장 기쁘다는 그녀는 “주문한 꽃다발을 받으시고 ‘너무 예뻐요!’라는 말을 해주실 때 가장 기뻐요. 또 제가 만든 꽃다발이 평범하던 누군가의 일상에 특별함을 선사한다는 게 행복하죠. 한번은 어떤 남자분이 여자친구에게 깜짝 선물로 꽃다발을 미리 주문하셨는데 그때 여자 분의 벅찬 표정을 잊을 수 없어요.” 사람마다 기념일이 다르기 때문에 정해진 휴일 없이 바쁜 일정을 보낸다는 그녀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고 한다. 김 대표는 앞으로 웨딩 관련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꽃은 웨딩에서도 필수요소로 더 발전하고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또한 꽃바테 2호점, 3호점을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꽃과 차를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명함은 점선을 따라 접으면 예쁜 꽃다발 모양이 된다. 명함에서도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 중 악한 사람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꽃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물하는 그녀와 꽃바테의 앞에는 꽃길만 있기를 바란다. [1012]
    • 문화
    2017-04-24
  • 어른들을 위한 드럼 연습실 ‘드럼치는놈’-드럼으로 펼치는 음악의 열정, 배움의 갈망
    ‘상록수’, ‘여러분’, ‘잃어버린 우산’, ‘희나리’, ‘J에게’, ‘나성에 가면’, ‘연극이 끝난 후’... 포크와 발라드가 주를 이루었던 7080노래들은 2000년대에 이르러서도 리메이크되거나 재소환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암울한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 디제이가 있는 카페에서 팝송이나 포크송을 들으며 숨통을 틔였던 그들. 하지만 독재 정치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뒤 그들의 낭만적인 문화는 90년대 신세대 문화에 밀려 갑작스럽게 사라져갔다. 2000년대 복고 바람과 함께 중장년층에 안착한 그들의 경제 소비력은 다시금 그 문화를 부활시켰지만, 듣는 것만으로는 해소되지 않았던 것일까. 7080세대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 당시 미처 펼치지 못했던 배움의 갈망은 직접 악기를 배우고 익히며 밴드를 결성하고, 공연까지 펼칠 정도로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창원에 위치한 ‘드럼치는놈’은 7080세대를 비롯해 어른들이 드럼을 배우고 자유로이 연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드럼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그곳은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리듬을 타는 드럼 소리에 귀가 매료돼버린다. _정주연 기자 밴드에서 음악의 가장 큰 틀을 담당하며 리듬을 주도하는 드럼은 그 자체만으로도 퍼커시브(타악기)적인 역할이 가능해 멜로디를 만들어 음악 연주가 가능하다. 이러한 매력에 빠져 고등학교 1학년때 처음 드럼을 시작했다는 김경환 대표는 베이스 기타를 치던 친구의 교회 공연을 보고 밴드의 전체적인 리듬을 이끌어가는 드럼에 매료되었다. 가장 기본적인 비트부터 시작 밴드 활동 통해 다양한 경험 쌓아 “처음 친구에게 드럼의 기본 비트를 배우고 다른 교회의 밴드에서 공연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그게 드럼의 전부인 줄 알았어요(웃음). 후에 같이 교회에서 공연하던 선배가 속해있던 울산에서 유명한 밴드에 함께 하게 되며 본격적으로 드럼을 공부하고 연습량을 늘려가며 실력을 조금씩 쌓기 시작했죠.” 군대 제대 후 부모님 몰래 전공을 실용음악과로 바꿀 정도로 드럼은 김 대표에게 평생을 함께 가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지방에 있는 클럽으로 공연 투어도 가고 속해있던 밴드에서 앨범을 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창원에 새 둥지를 틀며 공연과 강사 일을 병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리의 울림과 크기가 센 드럼을 연습하기에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연습실을 물색하게 되는데. 드럼치는놈의 시작은 개인 연습실 현재는 어른들의 드럼 자유 연습실 드럼치는놈의 현재 위치는 여느 밴드의 개인 연습실을 연상시키듯 지하에 위치해 있다. 이유인즉슨 처음 드럼치는놈은 김경환 대표가 개인 연습실로 마련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친구와 함께 연습할 공간을 찾다 현재 이곳을 알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지금의 반 정도 되는 크기였어요. 그런데 드럼 치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들어와 문의를 하는 일이 잦아졌죠.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었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렇게 드럼치는놈은 탄생했어요. 개인 연습실이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바뀌게 된 거죠.” 하지만 처음에는 드럼도 개인 소유 한 대와 학생 소유 한 대로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 시작했다. 꾸준히 다른 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그는 한 달 강의료를 받으면 새 드럼을 사들이고 하는 식으로 확장해갔고 현재는 창원, 마산, 진해에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본점인 명서점은 14개의 드럼 개인룸과 1개의 합주실 및 1개의 패드실이 갖춰져 있고, 분점인 도계점은 8개의 개인 부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명서점이 배우는 학생들 위주라면 도계점은 스스로 깨침을 통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 연습하는 학생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마주치는 학생들을 가만히 보니 40대 이상의 학생들이 유독 눈에 띈다. 어른들을 위한 드럼 연습실 건강한 취미생활과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어린 학생들이 주를 이루었다는 드럼치는놈. 하지만 현재는 그 연령대가 많이 올라가 있다.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배움의 기회와 공간이 주어져요. 하지만 어른들의 경우는 그렇지 못해요. 드럼을 배우고 싶어 여러 실용음악학원을 찾아가 보아도 학생도 어리고 선생님도 어리고, 입시 위주의 커리큘럼이 주를 이루다 보니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기 힘들어요. 문화센터의 경우에는 학생 수와 드럼 수가 현저히 차이를 보여 제대로 된 수업을 받을 수 없는 경우도 많아요.” 드럼치는놈의 어른 학생들은 대부분 다른 곳을 다니다가 오는 경우가 많다. 배움에 대한 열정은 그들을 익숙지 않은 인터넷 검색으로 이끌었고 주위에 묻고 또 물어가며 드럼치는놈을 알게 되어 찾아오게 만들었다. 특히 김 대표는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공간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음악적 자존심은 잠시 내려놓고 직접 7080클럽에서 연주를 했다. 공연이 끝난 후 문의를 하는 손님이 많았고 이들은 드럼치는놈에서 새로운 취미생활과 여가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올해 초에도 어린 학생들의 문의가 많았던 드럼치는놈. 하지만 김 대표는 7080음악의 부흥기를 보낸 4,50대 중장년층에게 배움의 기회를 더 주고 싶어 수강신청을 받지 않았다. 혼란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음악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그들에게 늦게나마 그 열정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어서다. 1층에 위치한 ‘기타치는놈’의 수강생들과 앙상블 수업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드럼치는놈은 수강생 위주의 밴드를 결성해 여러 로컬 밴드 팀과 함께 정기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계획 중이다. “연습만 하고 보여줄 수 없으면 아쉽잖아요(웃음). 가족들에게 지인들에게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다양한 공연 활동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살면서 제일 잘한 것이 현재의 드럼치는놈 장소를 얻은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김 대표는 드럼을 사랑하고 드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공간을 마련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개인이 모여 밴드를 이루고 음악을 통해 교감하고 공유하며 건강한 여가생활을 통해 제2의 인생의 기쁨을 누리길 바라는 그의 바람은 오늘도 드럼치는놈을 찾는 이들의 열정과 만나 7080세대 문화의 부흥에 이바지하고 있다. [1012]
    • 문화
    2017-04-19
  • “대한민국 연극 역사와 함께한 50년 전설의 배우 박 웅!”
    배우로서 자신의 이름을 건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아마 설레는 일임과 동시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무대이지 않을까. ‘박웅의 수상한 수업’이라는 타이틀로 관객을 만났던 박웅이 돌아왔다. 그는 작품을 꾸미고 있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너무 쑥스러운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입을 열었다. 무대 선배이자 인생 선배에게 좋은 작품을 ‘헌정’하고 싶었던 후배들의 마음으로 시작된 인연. 그는 연극 인생 50년을 맞아 다시 한 번 ‘수상한 수업’ 노교수의 옷을 올 가을에 다시 입을 예정이다. 배우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문화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꾸며 1991년 한국연극배우협회의 설립을 주도하여 1~3대 회장을 지냈고, ‘극단자유’ 소속으로 1979년부터 1995년까지 세계 각국의 국제연극제에 참여하여 한류열풍의 시작을 알려준 연극배우 박웅을 만나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안연승 차장 연극과 함께 걸어온 지난 시간. 50주년은 그동안의 기억을 되돌아보고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박웅에게 ‘수상한 수업’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첫 공연을 마치고 그저 기다렸다. 그만큼 이 작품이 매력적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건 단 두 남자. 흥미로운 전개와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이 객석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박웅은 “이 연극의 매력은 끝이 없을 것 같다”며 웃었다. 그가 ‘수상한 수업’에 끌린 가장 큰 이유는 2인극이라는 형식 때문이었다. 배우 생활을 해오면서 2인극이라는 장르를 많이 해보지 못했다. 배우 故추송웅과 함께했던 연극 ‘더블 맨’ 이후 무려 40여 년이 흐른 뒤에야 다시 한 번 2인극을 만나게 됐다. 박웅은 “두 명의 배우가 모든 걸 이끌어가는 게 힘들지만 너무 즐거운 경험”이라고 전했다. “연극 무대에서, 게다가 창작극에서 2인극을 만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저처럼 나이가 있는 배우는 더욱 그렇죠. 사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부딪혀 보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힘들고 지치지만 그만큼 이 작품의 책임을 크게 지고 있다는 것. 거기에서 오는 보람은 또 다른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박웅의 수상한 수업’의 매력 극 중 노교수는 부장 판사 출신으로, 젊은 남자 연극 연출가 유진원에게 5천만 원을 주고 연기술을 배운다. 돈에 사로잡힌 유진원은 그와 함께 무인도에 들어선다. 하지만 감옥에 있는 유진원의 아버지가 죽인 사람이 바로 노교수의 딸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반전을 맞이한다. 딸을 잃은 아버지인 노교수는 들끓는 분노를 감추고 유진원에게 연기 수업을 받는다. 박웅은 노교수가 유진원에게 복수하려는 것은 “아마 두 가지 마음 때문이 아닐까”라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판사로서 법적으로 명확하게 죄와 벌을 가르고 싶은 마음이다. 남자의 아버지는 벌을 받아 감옥에 갇혔지만, 그의 형량을 가볍게 하는데 일조했던 유진원은 아무런 벌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인간적인 ‘아버지’의 분노였다. 박웅은 “아마 법적인 것 이상으로 인간적인 아픔이 더 컸을 것”이라며 “노교수가 아버지이기에 더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데에 동의한 것이다. 더불어 그는 “이 이야기는 피해자와 가해자 본인이 아닌 그 주변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을 이었다. 노교수와 유진원. 두 남자는 살인 사건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지만, 때로는 주변의 아픔이 더 클 수 있다는 것과 선과 악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노교수는 상처를 받았고 딸의 복수를 대신 하고자 합니다. 무인도에서 자신이 목숨을 잃는다면 유진원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죠. 유진원이 그의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산다면 그 아버지(범인)도 고통받지 않겠습니까. 물론 노교수가 유진원의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겠죠. 그러므로 보는 사람에 따라 선과 악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아들도 이젠 동등한 연극후배’ 박웅은 작품에서 두 명의 배우와 호흡을 맞추었다. 예술의전당 초연부터 함께한 김재만과 실제 아들이자 배우인 박준이 번갈아 유진원 역을 맡는다. 아들과 함께하는 것에 대해 물으니 “사실 긴장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라고 답했다. 많은 무대를 서고 관객을 만나왔지만 아들과의 동반 출연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박웅은 “김재만이라는 재능 있고 좋은 배우가 있지만 스케줄상 더블 캐스트가 필요해졌다”며 아들과 함께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아들은 내게 누를 끼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나는 아들과 함께한다는 이유로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혼자 연극을 할 때도 힘든 게 사실인데 숙제를 하나 더 얻은 기분이 들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박웅은 그럴수록 더 좋은 작품, 좋은 무대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아들을 연극 후배로 대하려 노력했다. “인생에서 하루아침에 되는 건 하나도 없잖아요. 처음 연습할 때는 대사도 생각 안 나고 긴장하고 그랬던 거 같은데, 이젠 서로 동등한 배우로서 호흡을 잘 맞춰가는 것 같아 좋습니다.” 극단자유는 나의 마음의 고향 “1966년 6월 무대미술가 이병복 선생과 연출 김정옥 선생에 의해 탄생한 ‘극단자유’는 제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도 극단자유 소속 배우입니다. 한평생을 연극무대 뒷바라지로 살아온 이병복 선생은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연극하자는 뜻으로 극단 이름을 자유라 지으셨다 합니다. 그리고 김정옥 선생은 아시안 인 최초로 국제극예술협회 회장을 역임하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극인들입니다. 두 분과 함께 스페인 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피의 결혼’을 외국에서 공연하면서 들었던 찬사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공연문화를 국민들 가슴속 깊숙이 파고들게 하는 나라가 진정한 문화선진국이라 합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대학로의 모든 극장이 북적북적해지고 공연하는 이들과 관객 모두가 행복했으면 합니다.” 이름 : 박 웅 직업 : 연극배우, 탤런트 출생 : 1940년, 경상북도 문경 데뷔 : 1963년 동아방송 1기 성우 경력 : 1998~2000 제19대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2009 대학로문화발전위원회 이사장 수상경력 : 1977년 동아연극상 남우주연상 출연작 : 연극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 ‘무엇이 될꼬하니’, ‘대머리 여가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랴’, ‘갈매기’, ‘19 그리고 80’, ‘침향’, ‘인간의 시간’, ‘불가불가’, ‘엄마를 부탁해’, ‘레미제라블’, ‘수상한 수업’ 외 다수 [1012]
    • 문화
    2017-04-19
  • 배움에 있어 망설이지 않고 뒷걸음질 치지 않는다, 울산 더발레아카데미
    발레란 ‘춤을 추다’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의 동사 ‘Ballar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음악, 팬터마임, 의상, 장치 등을 갖추어서 이야기나 주제를 종합적으로 표현하며 흐르는 선율에 맞춰 우아한 움직임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무용이다. 아동부터 성인까지 모두가 즐기며 발레를 배울 수 있는 ‘울산 더발레아카데미’ 박지혜 원장이 전하는 발레이야기를 담아본다. _조현정 기자 유아부터 성인까지 체계적인 커리큘럼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완성시키다 발레 전공자인 ‘울산더발레아카데미’ 박지혜 원장. 그녀는 전국 대학 무용 콩쿠르 금상, 지도자상 수상 경력이 있다. “과거에 많은 강의를 요청 받았었습니다. 학원을 운영 하면서 출강까지 나가다보니, 두 가지 모두에게 소홀해 지더라구요. 저에게 더 중요한 것은 학원과 수강생들인데 집중이 되지 않았어요.” 자신을 믿고 따라와 주는 수강생들에게 더 나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현재 부산예술대학교 강의만 출강하며 학원 운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울산에서 최초로 성인발레반을 개설한 그녀는 어떤 이유로 성인발레반을 만들게 되었을까? “우연히 성인발레반을 모집했습니다. 어린아이들만 발레를 배울 수 있다 생각했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점에 너무도 기뻐하셨어요(웃음) 잘 따라와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그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성인발레반을 운영 중입니다.” 더발레아카데미의 강사진은 박 원장과 그녀의 후배 김주희 부원장, 그리고 제자 김수빈 강사로 구성되어 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제 어깨가 든든하답니다(웃음).” 교육 프로그램은 유치부와 초등부 그리고 성인취미반으로 나뉜다. 수업은 Level 1부터 3으로 진행된다. 발레를 처음 입문하는 수강생은 균형감각을 익히는 Level 1, 발레를 시작한 지 6개월 이상인 수강생은 다양한 연결동작과 변화 동작을 익히는 Level 2, 1년 이상의 수강생은 표현력 향상과 다양한 발레 center 수업이 진행되는 Level 3가 있다. 포인트슈즈 클래스반과 분기별로 진행되는 레파토리 수업도 함께 진행 중이다. 또한 올해부터 새로 개설된 박 원장이 직접 진행하는 ‘플로어’ 수업은 발레를 할 때 움직이는 근육점을 찾아주고 몸이 기억하도록 하는 수업으로 현대인에게 필요한 스트레칭과 자세 교정에 도움을 준다. 쓰지 않던 근육들을 찾아 이완 시켜 발레를 할 때에 정확한 방법으로 근육을 사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가끔 수업이 너무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한 달 분량을 하루에 배우는 느낌이라고 하죠(웃음). 저는 한 번도 발레를 느슨히 한 적이 없어요. 과정별로 띄엄띄엄 진행하지 않고 꼭 알아야 하는 스킬은 다 가르쳐드리고 있어요.” “나라고 왜 못해? 나도 할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하는 공간 박 원장은 학원을 처음 운영할 때 회원 수가 늘어나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한 달 동안 공개 무료수업도 진행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더라구요. 그때 처음으로 ‘열심히 해도 되지 않는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죠.” 하지만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개원 6년 만에 수강생들과 함께한 공연 ‘First Position’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수강생들이 열정적으로 연습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연습 당시 부상자도 있었고, 다들 많이 지쳤을 텐데 모두가 한마음으로 최고의 공연을 만들어냈어요. 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사실 일반인들의 시선에서 발레학원의 문턱은 높은 곳이다. “많은 분들이 발레를 배우고 싶어 하지만 부담스러워 하세요. ‘내가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그런데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겼으면 해요. 자신의 콤플렉스, 체형, 발레복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이 계신데, 발레를 통해 자신이 몰랐던 숨겨진 아름다운 모습을 찾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더발레아카데미는 강사와 수강생은 물론 수강생들끼리의 소통도 활발하다. 결혼식, 공연, 기념일 등 함께 축하하고, 기념일엔 파티도 함께 하며 친구처럼 지낸다. “수강생들과 함께하면 너무나도 즐거운 하루가 되죠(웃음).” 수업은 소수정예로 진행되고 있다. “제가 케어 해 줄 수 있는 범위여야만, 최상의 만족도를 전달 할 수 있어요. 포화상태가 돼버리면 개개인을 직접 지도하지 못할 테니까요.” 박 원장의 경영방침으로 학부모와 수강생의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재수강율 또한 높아지고 있다. "저희 수강생들은 진심으로 발레를 즐기고 계세요. 제가 그분들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몇 개월 만에 예쁜 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가지고 다가가는 지도자가 되어 드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수강생들을 위해 스스로 발전하려 노력하는 박 원장. 내일의 더발레아카데미를 기대한다. [1012]
    • 문화
    2017-04-19
  • 배움의 즐거움이 함께 하는 ‘요가씨엘’ 차별화된 요가와 필라테스 프로그램을 선보이다
    명상과 호흡, 스트레칭 등이 결합된 복합적인 심신수련 방법인 요가는 호흡과 근육의 유연성 및 신전(伸展, 늘이어 펴지는 현상)을 주로 행하며 남녀노소 모두 장소나 시간에 구애됨 없이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정통요가뿐 아니라 핫요가나 플라잉요가 등으로 다양화돼 선택의 폭도 확대되며 많은 이들에게 각광받는 운동으로 자리하고 있다. 부산과 울산, 경남에서는 최초로 플라잉요가협회를 만든 요가씨엘의 민아름 대표는 기존의 요가 프로그램과 더불어 자체 개발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요가의 대중화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_정주연 기자 건강미만큼 밝은 미소가 돋보이는 민아름 대표와 요가의 인연은 20살 때 시작되었다.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했던 것이 취미가 되었고 심신단련의 매력에 빠져 지도자 과정까지 이수했다. 10시간이 넘는 요가 수업을 진행하며 2년여의 시간을 보냈다는 민 대표. 하지만 그에게 요가는 어느 순간 심신단련의 목적이 아닌 생계 수단이 되어있었고 강도 높은 수업이 이어지며 노동이 되어버렸다. “배웠던 것에만 한정해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로봇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자연히 보람도 재미도 줄어들기 시작했죠.” 스스로 변화를 감지한 그는 각종 요가 관련 워크숍과 행사에 참여해 견문을 넓히고 해부학 등 관련 공부를 병행하며 자기계발을 시작했다. 특히 그는 배우는데 그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어 익히는 시간을 통해 요가의 진짜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공부를 시작한 이후 저 자신도 변화, 발전했지만 그걸 제 것으로 만들어 회원분들과 함께하며 그간 느끼지 못 했던 보람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어요.” 부산에서 활동하다 양산의 한 요가원에 매니저로 스카우트 되며 자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친 민아름 대표. 하지만 뜻밖의 시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플라잉요가와 자체 개발 프로그램 픽스덤벨 요가씨엘의 시작을 함께하다 2년 여간 매니저로 일하며 학원 운영 경험을 쌓은 것은 물론 다양한 수업 방식을 개발해 발전시켜 나간 민아름 대표. 하지만 예상치 못 했던 시련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그는 다니던 곳을 그만두게 되었다. “당시에는 너무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요가씨엘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인생에 있어 3번 기회가 온다고들 하는데 오히려 그 위기가 저에게는 기회로 돌아왔던 것 같아요.”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요가원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차별화된 요가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싶었다. 다이내믹한 음악을 바탕으로 덤벨 동작과 요가 동작을 조합해 자체적으로 만든 픽스덤벨을 비롯한 다양한 퓨전요가와 함께 당시 수도권 지역에서만 볼 수 있었던 플라잉요가를 메인으로 요가씨엘은 문을 열었다. 그간 양산은 물론 부산과 울산 경남지역에서 볼 수 없었던 요가 수업이 이루어지며 요가씨엘은 금세 요가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더욱이 지도자 과정 수업을 통해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던 민아름 대표는 자신을 따라 요가씨엘로 수업받으러 오는 수강생들을 위해 부산과 울산 경남권에서는 최초로 플라잉요가코리아협회를 만들었다. 현재는 양산 본점을 비롯해 물금점과 4월에 오픈한 증산점까지 세 곳에서 요가씨엘을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협회 지부로 등록된 곳이 전국에 있으며 호주 시드니에도 지부가 있다. 특히 호주 시드니 지부는 호주에 살던 분이 한국에서 머물며 민아름 대표에게 수업을 받고 자격증을 받은 후 호주로 돌아가 지부를 세운 거라고. 그간 방송을 통해 요가를 꾸준히 알려온 그는 현재 요가씨엘에서의 수업뿐 아니라 다양한 외부 특강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에서도 수업 요청이 잦아 직장인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다양한 요가 프로그램으로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꾸준한 자기계발은 필수 배움은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다양한 요가 프로그램과 필라테스 수업으로 꾸준히 사랑받아 온 요가씨엘. 프랜차이즈 사업 문의도 많지만 민아름 대표에게 우선순위는 따로 있었다. 바로 그가 요가씨엘을 할 수 있었고 하게 된 원동력인 ‘배움’. “무슨 일이든 목적의식 없이 하면 단순노동에 불과한 것 같아요. 저 역시 요가를 처음 배우고 가르치며 느꼈던 회의감의 원인은 제 스스로에게 있었어요. 스스로가 먼저 뚜렷한 목표와 목적의식을 가지고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을 때 저도 즐겁고 저에게 수업을 받는 회원분들 역시 즐거워하세요.” ‘배움은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한 민 대표는 해부학과 물리치료 등 조금 더 다양한 공부를 통해 자기계발에 열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가끔 현실에 안주하고 스스로 발전의 시간을 갖지 않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요가를 사랑하고 즐기는 모든 이들에게 배움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 역시 잊지 않았다. “요가는 호흡과 땀을 느끼며 내면과 외면의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운동입니다. 나를 좀 더 보듬어 주며 심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죠. 반면 필라테스는 근육의 움직임에 집중해 몸의 밸런스를 맞춰줄 수 있고 피지컬에 집중할 수 있어요. 각자에게 맞는 운동법으로 꾸준히 한다면 조금 더 즐거운 인생을 사는데 있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웃음).” 요가 본연의 목적은 지키되 변화하는 트렌드와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꾸준히 프로그램 개발에 노력 중인 민아름 대표.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건강한 웃음이 유독 아름다워 보였던 건 그간 꾸준히 자기계발을 통해 심신을 단련시켜왔기 때문이 아닐까. 외적 아름다움과 함께 배움을 통한 내적 아름다움의 가치를 알고 꾸준히 배움과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건강한 행보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1011]
    • 문화
    2017-04-10
  • 100일의 기다림, 향이 살아있는 우리 술-하루 200병 한정 생산, 자가 탁주로 화제!
    “사람들이 제가 만든 술을 마시고 맛있다며 좋아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급하게 만들어 첨가물로 맛을 내는 술이 아니라 향이 살아있는 자연 그대로의 술을 전하고 싶습니다.” 환하게 웃는 조태영 대표. 향이 살아있다. 막걸리하면 생각나는 쿰쿰한 쉰내가 아니라, 은은히 퍼지는 과일향과 꽃향이 향기로운 술. 술 빚는 일에 미친 젊은 양조가, 조태영 대표가 선보인 프리미엄 라이스 와인, 기다림은 향이 살아있는 우리 술이다. _박미희 기자 그는 술 빚는 일에 미친 젊은 양조가다. 술이 좋아서 식음료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그는 와인, 맥주, 사케 등 다양한 주류에 대해 폭넓은 공부를 한 숨은 재주꾼이다. 그는 일본 소믈리에 협회 공인 소믈리에, 세계 사케 협회 공인 키키자케시(사케전문가)이자 영국 와인 검증 WSET 고급과정, 한국전통주연구소 농림축산식품부인증 마스터 과정·지도자 과정, 건국대학교 생물공학과 와인학 석사를 수료한 재원이다. 이렇게 술에 대해 폭넓은 이해를 가진 그가 우리 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한때 일본에서 와인을 유통하고 판매하는 일을 했었어요. 일을 좋아했지만 한편으론 ‘만드는 이가 어떤 마음으로 술을 빚는지도 모르고, 술에 대한 스토리만 만들어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회의감이 들더군요. 그래서 그때부터 내가 만든 좋은 술을 소비자들에게 판매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의 전통주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대를 이어 전통을 이어오는 도가부터 현대식으로 술을 빚는 곳까지 전국 곳곳을 찾아다녔고, 고서를 뒤져가며 전통식으로 술을 빚는 방법을 공부했다. 사케나 와인에 결코 뒤지지 않은 우리 술의 장점은 그를 매료시켰다고. “와인, 사케, 맥주 등 대부분의 술은 균이 죽어있는 술이에요. 하지만 우리 전통주는 균이 살아있는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술이죠. 효모가 살아 있는 술, 그 맛과 향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술은 한편으로 왜곡돼 있는 부분도 많다. 막걸리의 세계화를 외치지만 정작 제조방식은 개선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흔히 막걸리를 마시면 쉽게 숙취가 올라온다고 해요. 그 이유는 술을 급하게 만들어서 술을 만들 때 생기는 이산화탄소를 잘 날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술을 빚을 때 물을 많이 타게 되면 싱겁기 때문에 인공감미료를 써서 맛을 내죠. 그러니 전국 어디든 술맛이 비슷한 것은 결국 이런 이유 때문이죠. 급하게 만든 술, 인공감미료로 맛을 낸 술이 아니라 제대로 만들어 지역 특색을 담은 우리 술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집집마다 술을 빚어 지역의 특색을 담은 다양한 술을 맛볼 수 있었던 우리 고유의 가양주 문화. 이처럼 ‘부산의 특색을 담은 좋은 우리 술을 빚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이름도 부산의 시화인 동백의 꽃말을 따, ‘기다림’이라 지었고 부산 지역의 특산물을 사용해 술을 빚고 있다. “쌀은 바다와 인접해있는 부산 해포도의 ‘해포 맑은 쌀’을 사용해요. 그리고 농약을 치지 않는 진주의 앉은뱅이 밀로 직접 누룩을 만듭니다. 그리고 부산의 물을 그대로 사용하되 미국 최대의 정수 기업인 PENTEK 사의 현대적인정수시스템으로 관리한 깨끗한 물로 술을 빚습니다.” 기다림은 비단 동백꽃의 꽃말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좋은 술 한병이 나오기까지 100일을 기다리고, 하루 200병 한정 생산을 통해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술을 빚는 전통적인 방식에 현대적인 주류 제조 방식을 접목해 새로운 제조방식을 만들어냈다. “원리는 떡을 빚는 방식을 사용했어요. 화학첨가물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쌀이 갖고 있는 단맛을 그대로 담았죠. 쌀의 전분이 당분으로 다시 알코올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순수하게 누룩만을 사용합니다. 제대로 발효되어 특유의 맛과 향을 지닐 수 있도록 100일의 시간을 기다려요. 급하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숙취가 없는 것이 특징이죠. 그리고 와인 제조방식에서 착안한 저온숙성 방식으로 향을 살렸습니다. 그래서 드셔본 분들이 ‘탁주도 이렇게 과실향과 꽃향이 나느냐’며 깜짝 놀라곤해요.” 향이 살아 있는 술. 프리미엄 와인 기다림은 프리미엄 라이스와인이라는 말이 손색이 없을 정도의 맛과 향을 지녔다. 은은한 복숭아향과 무화과 향이 나고, 첫맛은 신맛 중간에는 단맛이 돌아 마치 과일을 머금은 듯하다. 그리고 적절한 묵직함을 지녔음에도 끝맛은 텁텁하지 않고 산뜻한 것이 특징. 이렇듯 탁주하면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는 이 술은 애주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루 200병 한정 생산되는 자가탁주로 귀한 술로 여겨지는 것. 온라인 홈페이지(www.gidarim.co.kr)와 취급하는 주요 업장들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이 술은 일본 수출길에 올라 관심을 받고 있다. “막걸리의 세계화로 우리 술이 많이 수출되고 있어요. 하지만 화려한 명성만큼 이면에는 한계점도 있습니다. 품질 불량으로 반품되는 술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인공감미료로 맛을 낸 급하게 만든 술이 아니라 제대로 만든 우리 술의 진가를 선보이고 싶어요. 현재 우리 술을 만드는 방식의 대부분은 일제시대 때 우리 가양주 문화를 말살하고 강요한 일본식 제조방식이에요. 그래서 지금 술을 빚는데 쓰는 효모도 대부분 일본에서 라이센스를 주고 들여와요.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이것을 정말 한국 술로 볼 수 있느냐’며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집마다 술을 빚어 지역의 특색을 담은 다양한 술을 맛볼 수 있었던 우리 고유의 가양주 문화. 그 전통을 살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우리 술을 선보이고 싶어요.” 평생토록 술을 빚고 싶다는 젊은 양조가, 조태영 대표. 그가 제시할 우리 술의 내일이 기대된다. [1011]
    • 문화
    2017-04-10
  •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당신을 위한 플라워 카페
    아름다움과 화려함, 생명의 대명사로 군림한 꽃은 일상에서는 먼 존재로 특별한 날에만 으레 따라붙었다. 하지만 최근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플리 마켓 장터에도 꽃은 빠지지 않는 판매 상품이 되었고, 집안의 분위기를 위해 혹은 기분 전환으로 꽃을 사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 이에 주간인물은 도심의 모노톤을 벗어나 자연을 맞댈 수 있는 플라워 카페 ‘헤이미쉬’의 이혜정 대표를 만나 꽃의 매력에 좀 더 깊숙이 빠져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_김정은 기자 플라워 카페 헤이미쉬의 다채로운 이야기 화이트 컬러의 환한 내부, 통유리 창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이 가득한 ‘헤이미쉬’의 첫인상은 이름만큼이나 참 편안하고 따뜻했다. “꽃집에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만 구경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요. 카페라는 대중적인 장소에서 가볍게 커피를 즐기며 꽃과 소품 등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하게 되었죠.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더 깊게 공유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웃음).” 꽃만큼이나 아름다운 미모로 따듯하게 인사를 건네는 이혜정 대표. 그녀는 ‘헤이미쉬’에서 플라워 강좌와 꽃 판매를 겸하며 꽃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꽃 외에도 싱그러운 플랜테리어 스타일로 마치 외국 플라워 숍을 방문한 듯한 느낌마저 드는데, 그녀는 어떻게 이런 공간을 연출할 수 있었을까? “저희 남편이 건축가에요. 처음엔 작은 플라워 숍을 계획했는데 커피와 꽃, 식물을 좋아하는 제 취향과 감성을 고스란히 녹여내 주었죠. 제가 좋아하는 공간을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고 함께 좋아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서일까 이곳에는 고재가구를 비롯해 다양한 소품과 다채로운 볼거리가 많다. 특히 고재를 활용해 만든 카페 테이블과 의자는 그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고재가구는 획일화된 브랜드 제품이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옛것의 향수를 접목한 아날로그 정취를 느낄 수 있고, 나무마다 다른 결을 가지고 있어 만졌을 때 질감이나 감촉이 모두 다르죠. ‘헤이미쉬’가 추구하는 편안한 느낌과도 잘 어울리기도 하구요.” 이 대표의 남편은 목조주택 전문 건설회사에 재직 중이며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는 고재가구를 수입하고 있다. 처음엔 목조주택과 어울리는 가구를 위해 수입했지만, 현대식 주거 환경에도 고풍스러움을 더하자 많은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수입 및 판매도 하고 있다. 꽃과 함께 향긋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플라워 클래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꽃이 있는 로맨틱한 ‘헤이미쉬’. 카페 내부에 별도의 공간에서 플라워 강좌도 들을 수 있다. 단아하고 우아한 플라워 디자인을 추구하는 이혜정 대표의 클래스는 오전과 오후 시간을 조율해 소수 인원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꽃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 디자인, 아이디어 구상 방식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클래스를 경험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해서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죠(웃음). 꽃 시장에서 매주 새벽 꽃을 사 오는데, 그날은 평소보다 카페가 더욱 향긋해 많은 손님들이 좋아하시죠. 꽃을 손질하고 관리하는 일이 녹록지는 않지만 센스와 감각이 필요한 작업이라 더욱 흥미로워요. 무엇보다 저처럼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이 가장 즐겁습니다(웃음).” 많은 사람들이 꽃과 가까워지길 바라며 타 카페에 비해 음료 가격을 낮추고 고급 블렌딩 원두를 사용하는 것도 이곳의 장점. 바리스타 자격증을 보유한 이 대표는 카페 본연의 의무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중 5가지 홍차 종류와 달콤한 크림과 쌉싸름한 커피의 맛이 조화로운 ‘아인슈페너’커피가 인기 메뉴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헤이메쉬’에서 향긋한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이혜정 대표. 그녀의 바람처럼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헤이미쉬’를 주간인물에서 응원한다. 경북 경산시 백양로29길 15-19 헤이미쉬 [1011]
    • 문화
    2017-04-10
  • 포항 핫플레이스 ‘CAFE ANCY’
    프랑스의 호수와 알프스의 만년설을 한 잔에 담다 최근 수도권 지역에는 커피를 마시며 쇼핑할 수 있는 카페가 늘어나고 있다. 여심을 제대로 저격한 아이디어다. 대표가 직접 디자인하고 이탈리아 장인이 제작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특별한 스튜디오 겸 카페가 포항에 있다고 해서 찾아가보았다. _엄지현 기자 문헌정보학과를 전공한 김현정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진로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속의 취업전선에 뛰어들기보다는 제가 좋아하고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유럽여행 중에 곳곳에 숨어있는 값이 저렴하면서도 유니크한 아이템들을 접했어요. 다들 이탈리아, 프랑스 제품은 비싸고 부담스러울 거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문득 한국의 그런 인식을 바꿔보자는 생각이 들어 '해외직구' 사업을 3년 전 작게나마 시작하게 됐습니다.” 대학시절 학교에서 진행한 해외탐방 프로그램에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우연히 가게 된 첫 유럽여행이 그녀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된 것. 2016 이탈리아 현지 파트너들과 해외직구 사이트를 운영하던 3년간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한국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에서는 인기있는 브랜드를 알리고 싶었다는 김 대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셀렉한 제품들을 많이 찾아주시고, 감사한 마음을 보답하고자 더 많은 유럽 브랜드의 숨은 브랜드들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게 됐죠.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각이 생기니 직접 디자인해보고 싶은 욕심도 자연스레 생기게 되고, 저만의 브랜드를 런칭하고 싶은 꿈을 갖게 됐습니다.” 김 대표는 마침내 작년 12월, 'Studio Ancy'라는 유럽브랜드를 런칭하고 한국에도 동명의 편집샵을 오픈하며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제품들을 판매하게 되었다. 현재는 이태리와 프랑스 등 유럽현지의 파트너들과 함께 제품을 생산하고, 한국 매장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편집샵을 오픈하며 여태까지 유럽에서 보고 배운 디자인을 이 공간에 다 녹여보고자, 디자인 업체를 섭외하지 않고 혼자 모든 인테리어를 진행한 것 또한 좋은 경험이 됐어요. 정말 간절히 원하고 목표를 위해 노력하면 언젠간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매일 꿈만 꾸던 공간을 결과물로 만들어냈다는 생각에 더 뿌듯하다고 말했다. 스튜디오 안시 키링 스튜디오안시와 함께 '카페안시'도 오픈했다. “스튜디오안시에서 제품을 구경하거나 구입하러 오신 분들이 조금이나마 쉴 수 있는 휴게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카페안시도 함께 오픈했습니다. 또 요즘 포항 양덕에 카페가 많이 생겼지만, 그냥 앉아만 있어도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잖아요. 카페안시는 딱 앉아서 커피 한잔만 마셔도, 그냥 여유가 느껴지고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안시(Ancy)는 프랑스 근교의 작은 도시이다. 특히 프랑스하면 대부분 파리를 먼저 떠올리지만, 그녀는 안시라는 도시가 먼저 떠오른다고 한다. “안시는 프랑스인들이 은퇴하면 살고 싶은 도시 1위로 선정될 만큼 한적하고 아름다운 도시죠. 프랑스 파리의 북적이는 도심에서 벗어나 휴양을 즐길 수 있는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도시라, 저도 카페안시와 함께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누구나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이 곳의 시그니처 메뉴에는 김 대표가 사랑하는 안시의 풍경이 담겨있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으시는 메뉴인 ‘스노우블랑’은 호수에서 바라본 알프스 산맥의 만년설을 표현했어요. 달콤한 크림과 쌉쌀한 커피가 어우러지는 부드러운 맛입니다. 또 다른 메뉴인 ‘안시라떼’에는 안시의 상징인 푸르고 투명한 호수를 담았습니다. 달달한 맛을 좋아하시는 분은 스노우블랑보다 안시라떼를 더 좋아하세요. SNS를 통해 입소문 타고 있는 덕에 주말에는 대부분 타지 분들이 찾아오더라고요.” 스튜디오 안시에서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김 대표가 직접 디자인한 클러치는 곧 중국과 대만에서도 판매할 예정이다. “이탈리아의 브랜드 오너로 계신 현지의 장인께 제가 직접 디자인을 드리고 그 가방을 다시 한국에 판매한 것이 저의 첫 제작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함께 다양한 제품을 제작했고, 이제는 스튜디오안시 브랜드 제품 디자인과 제작에도 열정을 다하고 있어요. 모든 제품은 유럽 현지에서 만들어진 후 한국으로 배송이 됩니다.” 그녀는 지금보다 더 발전한 모습의 스튜디오 안시를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현재는 스튜디오안시가 편집샵 개념이기 때문에 안시 제품 이외에도 다양한 해외브랜드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제가 디자인한 제품들로만 가득 채워진 'STUDIO ANCY' 매장을 해외에 오픈하는 것이 저의 최종 목표입니다.” 밝고 씩씩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김현정 대표의 더 넓은 세상으로의 발걸음이 기대된다. [1011]
    • 문화
    2017-04-10
  • “많은 분들과 끊임없이 작품세계를 추구해 나가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세련되고 클래식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경북 경산에 위치한 ‘이은영작업실’.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담소를 나누기 위해 카페를 찾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이은영 대표의 도자기 작품을 비롯해 금속, 유리공예 작품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고 소장할 수 있다는 것. 강습 받을 수 있는 공방이 함께 운영되어 많은 이들에게 문화 충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_김정은 ­­기자 예술이 있는 복합문화공간 갤러리 카페 ‘이은영 작업실’ 아늑하고 차분한 내부, 조도를 낮춘 은은한 실내 분위기로 운치를 더해 전시된 작품만으로도 볼거리가 풍성한 ‘이은영작업실’. 도예가 이은영 대표의 작품과 금속, 유리로 만든 공예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작업실 내에 있는 카페 ‘커피 컵’ 역시 이곳에서 직접 만든 도자기에 음료와 디저트를 담아 손님에게 대접하고 있다. 도자기가 감상하는 대상이 아닌 일상에서 함께할 수 있는 예술이자 생활이 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많은 작가들이 예술가촌을 형성하거나 단체를 결성하는 등 대중과 마주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독립예술가들이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기에 현실의 장벽은 높고 험합니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단순한 사업을 넘어 독립예술가들을 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작업실을 열었습니다.” 이 대표의 작품 외에 공예작가들과 수강생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즐기고 쉽게 다가올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있는 이은영 대표. “‘이은영작업실’은 작가와 관람객 사이를 연결하는 공간으로 많은 분들과 작품세계를 추구해 나가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은영 대표는 산업디자인과 전공 후 도자기공예를 시작해 작품 활동을 해온 지 10년째 접어들었다. “손으로 하는 작업을 좋아해 매력적으로 느꼈어요. 도자기를 빚으며 성취감을 맞보곤 손에서 흙을 놓을 수 없게 되었죠(웃음).” 도자기에 푹 빠져 있는 이은영 대표의 눈은 그녀의 작품처럼 반짝였다. 이 대표가 빚어낸 그릇은 섬세한 모양과 세련된 자태를 풍기는데 이러한 작가의 색깔은 그녀의 시그니처 작품 ‘인형’ 시리즈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전통사발과 같이 우리나라 고유의 선과 색이 녹아든 새로운 개념의 인형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통해 얻은 미감을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흙’이라는 매개체로 발현하여 생기를 불어넣은 작품을 추구하고 있다. 예술의 높은 문턱을 낮춰 대중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체험학습을 비롯한 1:1개인수업, 단체수업이 가능한 커리큘럼 ‘이은영작업실’은 기분 좋은 흙 내음으로 가득한데, 도자기와 금속, 유리공예를 강습 받을 수 있는 공방이 함께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누구나 볼 수 있어 더욱 이색적이다. “3년간 공방을 운영하며 취미로 시작했던 수강생들이 작가로 전향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요(웃음). 저희 공방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4명의 강사님들 또한 이곳에서 수업을 받았고 실력을 다져왔습니다.” 현직 작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은영 대표와 강사들의 도움으로 누구나 어렵지 않게 도자기와 공예품을 만들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이은영작업실’. 수강생들의 기량에 맞춰 1:1개인수업으로 초급, 중급, 고급의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선택할 수 있다. 취미에 맞는 간단한 체험학습이나 지하에 위치한 넓은 공방에서 단체수업도 가능하다.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기회도 있으니 도예나 공예작품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곳이 되겠다. 앞으로 온라인 사업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작품으로 만나겠다는 계획을 전한 이은영 대표. 예술의 높은 문턱을 낮춰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녀의 멋진 행보를 주간인물에서 응원한다. [1010]
    • 문화
    2017-03-29
  • “깨달음의 정신을 그림과 글씨로 담는 선서화(禪書畵)를 통해 불교가 생활 속에서 행복을 알리는 전달자가 되길 바랍니다”
    작품 세계에 정진하며 선서화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남청(南靑) 임성순 작가는 생활 속에서 선(禪)을 실천하려고 애쓴다. 바람이 따스하고 대지에서 올라오는 생명의 숨소리가 들리는 산사의 작업실은 정신 집중으로 토해 낸 먹의 농도와 채색의 조화를 통해 선의 흥취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김해 신흥사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임성순 작가를 만나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_이진랑 ­­기자 사경(寫經)에서 선서화(禪書畵)로 전환하기까지 어린 시절부터 교직에 계셨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서예와 한학을 보며 성장, 자연스레 서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임 작가. “동진 하명규 선생님을 만나 서예의 기초와 유교, 도교사상을 십여년간 배웠어요. 공부하다 보니 일반적인 사경이나 임서(臨書)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중문학을 공부했죠. 하지만 지금처럼 공부해서는 사경이나 임서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여러 곳을 찾아다니다 불교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경주에 있는 동국대 불교문화 대학원에 늦깎이로 입학하여 불교의 경전과 게송 등으로 작업 하며 불교를 더욱 깊게 연구하게 되었다는 임 작가. “여러 스님들과 교수님들로부터 불법(佛法)이나 경전, 계율 등에 대해 강의를 듣고 더욱 매진하면서 ‘임제의 진인사상’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어요. 선(禪)에 대한 이해를 하면서 선서화에 빠지기 시작했고 더 깊게 공부하고자 동국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경이나 임서에서 창작 작업만으로 그칠뻔했던 것을 진정한 선서화로 전환하여 현재까지 선서화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남청 임성순 작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여 선서화를 대중들에게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선서화를 대중들에게 알리고파 천연단하 선사의 완주음 불교에서 선(禪)이라고 하면 선(禪)과 교(敎)로 분리할 수 있다. 선(禪)은 부처의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이고 교(敎)는 부처의 말씀이라고 한다. 아직 대중들 인식 속에 선서화는 생소하게 느껴질 만큼 알려져 있지 않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임 작가에게 선서화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먼저 선서화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선문화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선문화라고 하는 것은 부처의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이에요. 선문화라는 뜻은 광범위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문화의 뜻은 부처의 마음으로 불법에 맞게 생활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죠. 이와 같은 여러 생활 중에서 서화를 불법에 맞게 하는 것을 선서화라고 합니다. 선서화는 베껴쓰는 사경이 아니고 선을 실천하는 서예가 되어야 하죠. 즉 부처님의 말씀으로 생활하게 하는 보살도의 역할을 해야 선수행이고 진정한 선서화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임 작가는 자신의 작품 활동에 대해 말해 주었다. “임서의 경지에서 선서화로 전환하고 나서는 모든 생활이 자유로워 서예라는 멍에를 벗어나 작업할 수 있게 돼 불교 경전이나 게송을 설명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제 작품은 다양한 서체를 사용하고 있지만 불교와 관련된 작업만 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불교의 경전을 사경(寫經) 한다고 해도 그 의미를 얼마나 파악하고 쓰느냐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를 잘 파악하고 실천한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선서화라 할 수 있겠죠.” 임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본성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서예의 작업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풍요로운 세상이 됐으면 한다"는 뜻을 작품을 통해 대중들에게 말하고 있다. 한편 임 작가는 작년 1월, 첫 번째 개인전을 열고 신흥사 주지인 양지스님이 번역한 불교 경전에 선서화를 담는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올바른 불교문화와 선서화를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살아가기 바쁜 세대에 한 번쯤은 여유롭게 읽으면서 우리 문화를 되새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선서화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보살도를 잘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 임성순 작가. 그녀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하루빨리 선서화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는 그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석사졸업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박사수료 전국예술문화대전 입선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전 국회의원상 대한민국 문화예술협회 필지작가 전국예술문화대전 서성(명인)작가 (사)한국서가협회 김해지부 이사 남청서예원 원장 [1010]
    • 문화
    2017-03-29
  • “어르신들부터 아이들까지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창작활동이라는 미술의 높은 문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미술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나아가 타인과의 원활한 소통을 하는데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 이러한 미술의 기능과 장점을 알리며, 삶의 질을 높이는 미술교육 활성화를 위해 꾸준히 달려온 ‘한국통합미술교육협회’. 미술교육의 내실과 지속성을 강화시켜 미술지도자 양성을 통한 교육인력의 역량 강화에도 힘껏 매진하고 있다. 이에 주간인물은 아동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적합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는 ‘한국통합미술교육협회’의 이길식 회장을 만나보았다. _김정은 기자 산업사회의 정년제로 인해 사회활동으로부터 이르게 은퇴한 후 길어진 노후생활에 소외받고 있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이에 ‘한국통합미술교육협회’는 노인미술연구와 노인미술지도사 양성을 위해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65세 인구가 15%를 넘기며 ‘고령화사회’로 진입해 노인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질적 원조가 시급하지만 정서적 지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미술교육을 통해 어르신들이 정서적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며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도록 협회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협회의 목적은 미술교육을 통해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 미술과 가까워지고 다 함께 즐기며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미술교육의 일반화라고 전했다. 한국통합미술교육협회의 체계적인 커리큘럼으로 역량과 자질을 갖춘 노인미술지도사 양성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고 가르쳐 온 이길식 회장. 미술을 응용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홍순영 교수와 협회의 도움으로 노인을 위한 미술교육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저희 어머니께서 어느 날 ‘그림을 배워 보고 싶다.’라고 하시더군요. 처음엔 의아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가르쳐 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 곧 생활의 활력을 되찾고 매우 만족해하시는 모습을 보고 미술이 전할 수 있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또 한번 느꼈습니다.” 이후 ‘한국통합미술교육협회’는 현재 7개의 대학과 복지센터에 ‘노인미술지도사’반을 개설했다. 수준 높은 강의와 우수한 교재로 심화과정과 전문가 과정을 운영하며 교수 평가제를 도입해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시켰다. “우수한 강사를 배출하기 위해 자격요건을 보다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미술 전공자는 물론,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도 나이와 관계없이 협회의 교육과정을 밟으면 교육자로서 역량과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확대해 노인미술의 질적인 성장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양성된 강사들은 협회와 계약 후 지도사 양성을 위해 대학에서 강의하거나 노인대학, 홈케어, 경로당 등 교육 시설에 배치되어 다양한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협회에서 주관하고 있다. “많은 분들의 관심으로 현재 대구지역의 지도사반은 인원이 모두 마감된 상태입니다. 곧 전국의 20개 대학과 취업센터, 지자체 및 복지센터에 지도사반을 개설하여 일자리 창출을 비롯해 사회적으로 전문 인력 양성에도 힘쓰고자 합니다.” 혼자가 아닌 사회와 함께 갈수 있도록 관심을 보여 주고자 시작한 활동이 희망을 전하는 행동이 되다 아동미술 관련 문화는 확대되어 있지만 노인미술은 상대적으로 취약해 대상자들의 협조와 활동이 다소 떨어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최근에는 문화생활을 즐기고자 하는 어르신이 늘어난 추세입니다. 하지만 선택의 폭이 좁고 주도적이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으시죠.. 미술교육을 접하실 때도 처음엔 자신 없어 하지만 개인 성향에 따라 지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더욱 열정적으로 참여하십니다. 본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고 성취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웃음).”라고 답한 이 회장. 교육활동에만 그치지 않고 전시회를 통해 작품을 선보여 자녀들과 유대관계가 촉진되고, 사회로부터 인정받아 삶의 활력을 되찾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미술교육으로 치매예방과 더불어 마음의 짐과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으로 연결되고 있어 많은 어르신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국통합미술교육협회’는 2017년 5월 법인으로 전환해 바우처 사업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특히 홈케어의 경우 수업전 참여자의 수준과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과거사진을 보며 추억을 되짚는 등 사전 검사 후 노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완료 후 입학식 수여증을 교부하고 결과물과 함께 촬영하는 과정을 거친다. 어려운 환경에 놓인 노인들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미술교육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사업은 많은 희생이 따르고 연구해야 하는 분야가 많지만 미술을 통해 소통하고 관계가 형성되어 사회적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다는 점이 기쁘다는 이길식 회장. 나를 보여주기 위한 활동이 아닌 내가 가진 것을 사회에 환원하며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오랫동안 미술을 사랑하는 아티스트로 성장하길 바라며 16단계의 체계적인 커리큘럼 ‘굿아트스케치북’ 발간 “미술교육의 목적은 대학이나 각종 대회 수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창의력과 표현력을 중심으로 탄탄한 기본기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 이해하고 체계적인 학습을 통해 자신감을 키워야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어요.” 이길식 회장은 입시에 치우친 주입식 교육보다 오랫동안 미술을 즐기고 사랑할 수 있는 훌륭한 예술인으로 학생들이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22년간 미술학원 운영과 더불어 ‘대구미술학원연합회’ 회장으로 미술교육발전에 힘써온 그는 협회와 함께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갖춘 교육청기준 급수단계 ‘굿아트스케치북’을 발간했다. 16단계별로 발간된 이 교재는 미술교육을 통해 정서적 발달과 집중력을 높여 우수한 미술인을 양성하고, 나아가 아이들의 학습발달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교육의 힘은 단기간의 가르침이 아닌 학생들의 평생을 좌우하는 일이라며 교육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이 회장. 학생들의 먼 미래까지 생각하는 그의 교육 이념은 교재개발 외에도 학생들의 재능과 시야를 넓힐 수 있는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거꾸로보기미술학원’의 학생들은 6200명이 참가한 ‘매일학생미술실기대회’에서 대상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하였으며, ‘대가야미술실기대회’에서도 여러 원생들이 우수한 성적으로 수상했다. 훌륭한 예술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 지망하는 대학과 예고 진학에 집중하고 있는 이길식 회장. 그는 미술교육을 받고 싶지만 환경이나 여건상 배우지 못하는 저소득층과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교육경비 지원 추진에도 기여, ‘2016 대구광역시장 표창장’을 수상했다. 미술교육발전에 끊임없이 앞장서고 있는 그는 어떻게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어릴 적 붓글씨를 배웠고 이후 산수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혼자 산에 올라가는 일이 많아졌지요. 그 모습을 본 부모님께서 미술 전문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후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이길식 회장은 ‘대한민국미술대전’ 2회 입상을 시작으로 수많은 수상 경력과 전시를 통해 작가로서도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며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저는 미술을 통해 얻은 것이 많습니다. 제가 배운 것을 아낌없이 나누고 진정한 교육과 예술 문화를 선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도 새벽 4시면 하루를 시작하는 이길식 회장. 앞으로 성화 작업을 통해 그림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인으로서도 대중들과 만나겠다는 약속을 전했다. [1009]
    • 문화
    2017-03-17
  • “예술은 수백만의 시간과 노력이 겹쳐진 것이며 시대의 깊은 고민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부산시 문화상은 1957년부터 매년 문화예술 진흥과 향토문화 발전에 공이 큰 문화예술인을 인문과학, 자연과학, 문학, 공연예술, 시각예술, 대중예술, 공간예술, 언론·출판 8개 분야로 나누어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는 권위있는 시상식으로 유명하다. 주간인물에서 만난 ‘공연예술’ 부문의 수상자인 강순희 작곡가는 1962년 부산에서 단독 작품 연주회를 비롯해 뉴욕, 도쿄, 마닐라 등지에서 작품 연주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1997년 우리시대음악 ‘MiOT’를 결성해 창작음악의 활성화와 보급을 위해 매년 전국 단위로 연주회를 개최하며 현대음악의 다양한 면모를 편견없이 음악사회에 알려온 예술가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_김정은 기자 부산광역시 문화상 시상식 작곡가 강순희는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부산사범대학에서 집중하던 피아노 보다 작곡을 전공하게 된다. 졸업 후 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재직 중, 최초의 단독 연주회 “강 순 희 작품전, 1962 ”을 열게 된다. 생소했던 작곡 분야에 이십육세의 여성이라는 점도 음악사회에서는 뉴스로 기록된다. 오랜 결심과 준비 끝에 작곡가는 1967년 뉴욕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음악 오지에서 현대음악 격동기의 중심지로 뛰어든 셈이다. Manhattan School of Music, The Juilliard School, 그리고 Queence College, CUNY에서 음악기초 훈련과 학문으로 출발해 학사 및 석사학위(작곡전공)를 받게 된다. 1976년 일시 귀국하여 서울대학교,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음대에서 2년 동안 작곡 및 음악이론을 가르치면서 우리 음악 환경과 실정을 재인식하게 된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Hartford 대학교 The Hartt School 대학원에서 고차원의 작곡공부에 몰두, 1985년에 음악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음악 오지 배경의 억압에서 벗어나 동서 문화의 풍성한 자산이 자긍심으로 성장한 시기라고 작곡가는 전한다. 모교와 코네티컷 주립 대에서 가르치면서 작품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펼쳐 갔다. Normam Bayler의 최우수 작곡상, MacDowell 예술원 펠로, 코네티컷 주 예술진흥원 위촉 상 등 수상 경력은 이 시기의 산물로 기록된다. 이후 1987년에는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자곡과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풀 사이즈의 대학 오케스트라를 가진 훌륭하게 변모한 우리 음악 위상에 진한 감동을 받았으며, 당시 정치사회적 갈등기의 한복판에 선 대학가의 혼란으로 작곡가 자신의 재입국 문화충돌을 안고 암중모색한 끝에 우리시대음악; MiOT가 출범하게 되었다. 퇴임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십 년째 그 활동의 폭과 내용의 정체성은 음악사회에 널리 각인되어 있다. 강순희 박사는 학자로서 활동도 특기할만하다. 대학교육 이외에도 학회 활동, MiOT 학술지 발간, 다수의 학술논문 및 영한 역서 출판으로 학계의 자료를 채우고 있다. 대한민국 작곡상 ‘대 관현악곡 Lunimosus, 1988’, 최근에 초연된(2015) 실내악곡 ‘다섯 악기를 위한 조명’은 작품 스케일의 통제 능력을 보여주는 곡이기도 하다. 음악문화의 변천과 더불어 우리예술음악의 입지가 더욱 좁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누군가는 그 맥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강순희 작곡가는 말한다. MiOT(우리시대음악) 무대인사 작품은 독주곡에서 관현악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음악적 재능을 겸비한 강순희 대표. 그녀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수학하고 대학에서 가르친 동안에도 작품활동은 물론, 코네티컷주 예술진흥원에 위촉 작곡가이자 미국 MacDowell 예술원 초청 작곡가이기도하다. 부산대학교 작곡가 교수를 퇴임한 후 현재까지도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대중들과 마주하고 있다. “대중들이 현대음악에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물론 쉽게 들리는 음악은 아니지요.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듣다 보면 어느새 현대음악은 내 곁에 와있고 매력 있는 음악으로 친근해 질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연주회'라고 하면 음악적으로 고전·낭만시대 음악이라고 일컫는 선율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모습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음악계에는 이런 ‘클래식 음악’의 정형화를 깨려는 시도가 1900년대 초반부터 쇤베르크( 1874~1951) 등 작곡가에 의해 꾸준히 진행됐다. 하지만 ‘현대음악'이라고 이름 붙은 일련의 장르는 역사상 전례 없는 양과 질의 축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객들에게는 낯설다. “시장성이 떨어지는 현대음악은 작곡가·연주자·관객 사이의 거리감이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연주도 실현되기 어렵고, 관객은 그 존재 자체를 잘 모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 시대의 다원론적 성격을 깊이 인식하고 현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작곡가들이 고민하고 표현하고 있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기를 바라며 현대 음악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음악에 대한 열정과 집념만으로 진지하게 현대음악을 모색하는 강순희 대표. 그녀는 어떻게 예술가로서 성장하게 된 것일까? “유년시절 기억에 아버지께서 클래식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항상 SP레코드로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으셨죠. 어머니 역시 그 시대에 보기 드문 멋쟁이였고 음악과 예술에 관심이 높은 분이셨어요. 두 분 덕분에 저도 일찍이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었고 초등학교 때부터 건반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이미 화성학을 배운 그녀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 동요를 작곡하기도 했다. 이후 피아노와 화성학에 열중하며 작곡을 시작하였고, 부산 사범대를 졸업한 후 수년간 음악교사 시절을 보냈고, 도미하여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시도한다. 작곡으로 미국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일세대 이기도 하다. 이후 부산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며 MiOT 예술감독을 맡아 창작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퇴임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MiOT 예술감독으로서 예술음악의 폭넓은 이해와 현대음악의 보급과 활성화를 위해 매년 정기연주회를 거듭해 오고 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음악' 시대와 소통하는 작곡 단체 'MiOT (Music in Our Time)' MiOT(우리시대음악) 무대인사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음악'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내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양상'들을 보이며 시대와 소통하려는 진지한 창작음악 작곡 단체 'MiOT'는 'Music in Our Time'의 약자로 '우리 시대의 음악'을 일컫는다. “MiOT가 지향하는 바는 현대음악의 폭넓은 이해를 위해 다양한 음악을 편견 없이, 깊이 있게 접근하는 겁니다. 창작음악 연주와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죠. 또한 대중에게 바치는 음악이라는 현실을 외면하면 안됩니다. 청중이 없으면 위대한 음악도, 위대한 음악가도 없어요. 무대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청중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음악가라고 생각합니다.” 1997년도에 창단해 매년 정기연주회를 열어온 MiOT는 대중과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특정 주제를 내세우고, 예컨데 시각예술과 음악의 관계를 제시하는 등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현대음악의 이해도를 높이고 접근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98년 '실내악 초연의 밤'을 시작으로 최초의 발표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작곡 발표회 때마다 특정 주제를 내세웠지요. 가령 1999년엔 '말과 음악Ⅰ'(베리오, 이영자, 김철화, 이강율, 찰스 아이브스), 2000년엔 '20세기 회고'(쇤베르크, 루토슬라브스키, 카터, 이상근, 강순희), 2002년 '대립과 공존Ⅰ'(멜비, 김철화, 윤소희) 하는 식입니다. 작품마다 이질적인 캐릭터의 조합이지만,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대중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과정이며 그 내면에는 치열하고 진지한 소리의 모색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그 진지함은 우리 시대의 음악 흐름을 포착하면서 현대음악의 폭 넓은 면모를 지키려는 노력입니다.” Juilliard 시절, 음악도서관에서 MiOT 2017은, 서양음악 발달사 600년과 MiOT 20주년을 병열하고 조명하는 기념음악회를 준비 중에 있다. MiOT의 예술가들이 또 한번 청중의 가슴에 어떠한 감흥을 줄 것인지 우리 모두가 기대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세상과 대중, 그리고 다양한 작품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예술가 연주회를 여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새로운 음악 발표회를 가지는 것 자체가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국내외 최정상급 작곡가들의 초연곡 발표 무대를 이십여 년이 이르도록 지속하고 있는 MiOT. 한국 초연곡을 한정해 발표한다는 당초 취지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외는 물론 국내 현대 작곡가들은 MiOT 무대에 함께했다. 이토록 현대음악과 청중의 만남을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는 강순희 대표. 그녀가 요구하는 현대 음악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해마다 변화하는 세상에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깊이 있게 논의하며 연주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통찰하는 콘셉트와 이를 반영하는 현대 음악을 선보이기 위함이죠. 세상과 대중, 그리고 다양한 작품과 끊임없이 교감하며 동시대 동일공간에서 호흡을 함께하는 삶, 그것이 살아있는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저는 대중과 가까이에서 시대음악을 모색하며, 음악은 영원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세상의 모든 것은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변함없이 음악을 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싶고 또 그로 인해 존재의 의미를 느낀다는 강순희 작곡가. 대중들을 향해 끊임없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진정한 예술가의 행보가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the Illumination 2015 & 관현악곡 'Luminosus' 필사본 www.miot.or.kr [1007]
    • 문화
    2017-02-20
  •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음악을 이해하는 뮤지션이 되길
    한류열풍이 거세지며 학생들의 장래희망에도 영향이 미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초등학생 장래희망 조사에서 ‘연예인’이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을 반영하듯 스타를 꿈꾸는 사람이 1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생각을 음악으로 창작하고 연주하는 뮤지션들은 아티스트로서 대중들에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으며, 뮤지션을 희망하는 이들 역시 더욱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 성장하고 있다. 음악인으로서 빛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양성하는 곳으로 유명한 진주에 위치한 ‘MIU실용음악학원’. 정미우 대표를 만나 뮤지션이 되기 위한 걸음을 들어보았다. _김정은 기자 엔터테인먼트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음악과 문화산업에서 실용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여 전문 음악가로서 꿈을 키워가는 이들 역시 더욱 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입니다. 대학 문턱을 넘기 위한 입시과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음악을 이해해야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어요. 준비된 실력은 자신감을 만들며 성공한 뮤지션으로 가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MIU실용음악학원‘의 정미우 대표는 입시에 치우친 주입식 교육보다 오랫동안 음악을 즐기고 사랑할 수 있는 훌륭한 뮤지션으로 학생들이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학생들의 미래까지 생각하는 정 대표의 교육이념은 뮤지션이 되기까지 무던히도 노력했던 그의 과거에서 엿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나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어요. 대학 진학 후 동아리활동을 통해 음악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스스로 답을 찾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서점에 있는 음악관련 서적은 모두 구입해 독학하였지만 그래도 풀리지 않는 것들이 많아 결국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10년 이상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한 정 대표, 오디션을 통해 입학한 유수 대학에서 학위를 이수하고 미국 현지에서 레코딩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수많은 뮤지션들과 작업 하며 뮤지션으로 입지를 다져갔지만 그곳에서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생기면 엄청난 양의 책을 통해 연구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갔다. “저는 너무 외롭고 힘겹게 공부했어요. 먼 길을 돌아 배웠기 때문에 우리 학생들의 고민이 더욱 이해 되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고 싶고 제가 배운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싶어요. 특히 입시생들은 짧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헛되게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아요.” 최적의 시설과 양질의 교육커리큘럼 MIU실용음악학원 ‘For My Soul’의 이야기 ‘MIU실용음악학원’은 각 분야 전문 선생님들의 체계화된 교육 커리큘럼과 맞춤형 개인레슨으로도 유명하다. 합주훈련은 물론 연주력과 균형을 이루도록 이론수업과 화성학 수업을 함께 지도하고 있으며, 음악시장에서 넓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음반 프로듀싱, 레코딩, 작곡, 작사, 등 음향 엔지니어로서 공부할 수 있는 프로듀싱분야 과정도 열려있다. 입시반과 뮤직 프로듀싱반 외에도 취미반, 유학반까지 운영하고 있어 실용음악을 전문으로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곳이다. 3,4,5층으로 이루어진 교육시설은 총 15개의 개인 연습실과 레슨실, 레코딩실, 합주실, 음악감상실, 이론실 등을 갖춰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자신의 연주를 듣고 분석하는 실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정 대표. 미국 현지에서 레코딩 스튜디오를 운영했던 경험으로 프로페셔널 장비를 그대로 사용하여 수강생들에게 녹음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최적의 시설과 양질의 교육커리큘럼으로 학생들에게 길을 제시하는 정미우 대표. 그는 뮤지션으로서도 발자취를 남길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며, 올해 1집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For My Soul’ 앨범 녹음이 끝난 상태고 봄에 발매될 예정이에요. 제 아들 이름이 소울입니다(웃음). 아들과 제 영혼을 위한 음악이에요. 가족에 관한 내용을 담은 앨범으로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고의 뮤지션들과 작업한 이번 앨범은 ‘폴 매카트니’, ‘노라존스’, ‘존 메이어’와 같은 세계적인 가수들이 녹음한 곳으로 알려진 ‘아바타 스튜디오’에서 작업했고, 그의 음악적 열정과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뮤지션으로서 뮤지션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정미우 대표. 그의 열정과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만남이었다. 재즈피아니스트 칙 코리아와 함께, 재즈기타리스트 지미 브루노와 함께 1999 건국대학교 전자공학과 중태 2006-2009 뉴욕 Five Towns College 학사 졸업 (Audio Recording & Guitar 전공) 2012-2014 뉴욕 Aaron Copland School of Music- Queens College 대학원 졸업 (Jazz Guitar 전공) [1007] •수상경력 2008 Five Towns College - Phi Sigma Eta Honor Society 최우수 장학생 선발 2011 Five Towns College 대학원 장학생 선발 입학 •기타 세션, 프로듀싱, 레코딩 경력 2007 뉴욕 아름다운교회 Worship 앨범 기타 세션 2009 Jonggil Lee 1집 기타세션,레코딩 2010 김진영 동요 3집 - 레코딩, 기타세션 2010 J. Woo 앨범 - 레코딩, 믹싱 2011 Witness Community ‘예배자의 마음’ 레코딩,기타 세션 2011 권진원 7집 ‘멜로디와 수채화’ 엔지니어 참여 2012 재즈 기타리스트 Pete Jung - Indian Steps 프로듀서 2012 퓨전 재즈그룹 B on D -Think Color 믹싱 2012 재즈 Bassist 최광문 1,2집 레코딩 & 믹싱 2012 두나미스 ‘nited Worship 2012’레코딩,기타 세션 2013 재즈 섹소포니스트 정성조 Big Band in NY-2 레코딩 2014 재즈 Vocalist 이효정 1집 ‘상처난 손가락’ 프로듀서 2012-2015 ‘New York Worship’음악 디렉터 역임 2015 정미우 Jazz 앨범 뉴욕 현지 녹음 2015 재즈그룹 ‘JMP’크리스마스 재즈 케롤 싱글앨범 발매 2015 국립 국악원 국악과 재즈의 만남 콘서트 2016 MBC 최윤영 Jazz 콘서트 출연 2016 김진영 동요 4집 - 믹싱 2017 재즈 보컬리스트 송혜영 1집 레코딩, 믹싱 및 기타연주 현 엠아이유 실용음악학원 원장, 창신대학교, 경남 예술고등학교 출강 뉴욕, 한국 다수 재즈 클럽 연주 •사사 2006~2015 10년간 미국 뉴욕 현지 뮤지션과 교수들에게 사사 받음 ( Paul Ballenback, Peter Rogine, Michael Mossman, David Berkman, Steve Briody, Stephen Gleason..)
    • 문화
    2017-02-20
  • 쉘 위 댄스? “춤을 통해 심신의 건강과 즐거움을 되찾아보세요”
    댄스스포츠는 스포츠 요소가 가미된 댄스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영국 상류층 사람들이 사교 모임 때 추던 볼룸댄스를 기원으로 하며 댄스스포츠 또는 경기댄스라고도 한다. 일반 사교댄스와는 달리 많은 운동량과 고도의 수련을 필요로 하는 만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이 분야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선수들 양성에 힘쓰고 있는 신앤김 뷰티플댄스 아카데미의 김민정 대표를 만나보았다._구아리 기자 댄스스포츠 선수로 활약 뷰티플클럽파티, 댄스크루즈 등을 통한 화합 춤은 소통의 매개체 김민정 대표를 만나기 위해 부산 해운대에 위치하고 있는 뷰티플댄스 아카데미를 찾았다. 전 국가대표 댄스스포츠 선수이기도 한 그녀는 은퇴 후 파트너였던 지금의 남편(신경식 대표)과 결혼하여 그와 함께 분당본점을 비롯해 강남점 해운대점 등 전국 6개의 신앤김 뷰티플댄스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선수지도자를 양성 뿐 아니라 일반동호인들의 건강증진과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0년도부터 17년간 춤과 함께 한 인생을 살아온 김 대표. 초등학교 때는 쿵푸, 중학교 때는 합기도, 고등학교 때는 취미로 무용을 했었다는 그녀는 무대예술 및 특수분장을 전공했다. 꾸준히 문화예술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부산대 공대출신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음악을 좋아하던 남편은 취미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김 대표가 그에게 댄스스포츠를 제안하면서 같이 배우기 시작하여 지금은 함께 전문직업으로 삼게 되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선수로는 다소 늦게 시작했다는 김대표는 늦은 만큼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하여 선수로서의 입지를 다졌고, 그 결과 각종 대회에서 챔피언을 거머쥐는 좋은 결과도 낳았다. 김 대표는 오랜 세월동안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큰 힘이 된다며 그녀가 처음 슈즈를 신을 때부터 함께한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10여 년간 함께 한 사람들과 뜻깊은 시간을 갖고자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작년부터 매달 분당점에서 뷰티플클럽파티를 강남점에서는 루프탑바비큐파티를 개최하고 있어요. 그리고 회원들과의 화합을 위해 뷰티플크루즈여행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고 올해는 부산에서 해변파티를 진행해볼까해요.(웃음)” 춤과 함께한 인생을 살아온 김 대표. 그렇다면 그녀가 말하는 춤의 매력은 무엇일까? “요즘 현대인들은 해야 하는 것, 지켜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보니 일상에 지치기 쉬운 삶을 살고 있어요. 사람이 위안 받는 것을 사람을 통해 치유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댄스스포츠와 같은 춤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음악을 통해 소통하며 지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게 매개체 역할을 하죠. 남녀노소를 막론해서, 나이 지긋한 시니어세대에서부터 베이비붐시대를 겪은 4050세대들, 삶에 지친 직장인들, 성장기 어린이들까지 넓은 계층을 아울러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특히 부부팀들에 많이 권합니다. 가정을 위해 엄마아빠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춤을 추며 눈을 마주하고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서로를 아끼고 가꾸면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그들을 보며 김 대표 자신도 행복함을 느낀다고. “왜곡된 시선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댄스스포츠를 즐기시고, 각반의 회원들과의 교류를 통해 심신의 건강과 새로운 즐거움을 느껴 좋은 기운을 갖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봉사하는 삶 문화예술 환경조성에 일조하고파 김 대표는 지난 12월, 김 대표의 주최로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주변지인들과 함께 쌀과 소정의 후원금을 해운대구 여러기관에 후원했다. 평소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많은 그녀는 부산국제여성회(BIWA)라는 봉사단체에서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일정한 금액을 기부하는 봉사도 좋지만 직접 발로 뛰는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한 그녀는 자선바자회나 무료급식 봉사활동 등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제가 받은 사랑이 많아서 그동안 받은 사랑을 보답한다는 마음이에요. 잘돼서 도와준다는 생각보다는 지금부터 할 수 있는 부분은 하면서 살고 싶어요. 어쩌면 저보다 더 힘든 사람을 도우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주어진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더라고요. 앞으로도 봉사하며 감사해하며, 열심히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내가 행복해야 행복을 나눠줄 수 있으니까요” 김 대표는 문화예술 전공자들은 꿈을 향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복지시스템이 탄탄히 갖춰지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자신도 그 체계를 만들어나가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그녀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부산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토론을 진행하는 모임 및 다양한 행사의 리더로서 활약하고 있다. 예술인들이 걱정없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그녀의 꿈을 향한 도전이 기대되는 만남이었다. [1007] PROFILE 전 한국댄스스포츠 국가대표 전 한국댄스스포츠 챔피언 현 뷰티플댄스스포츠 아카데미 대표 현 BKD 뷰티플코리아댄스포럼 대표 현 WDC 댄스스포츠 국제 심사위원 현 대한체육회 댄스스포츠 서울시연맹 이사 2016 전국체전 서울시연맹 고등부 감독 크리스탈 댄스스포츠 대회 1위 일본 인터전 대표 선발전 1위 WDC 한국대표 선발전 1위 ASIA-KOREAN OPEN CUP 프로 1위 화룡배 댄스스포츠 대회 1위 댄스스포츠 코치 협회장배 1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배 1위 세계댄스평의회 한국대표선발전 프로 1위 2007 동아시아게임 탱고부문 동메달리스트 2004~2014 이태리 영국 연간 2-3회 유학 2014~2016 BKDF 시합 및 페스티벌 개최 2017 동아대학교 예술대학원 졸
    • 문화
    2017-02-20
  • 복합문화공간 만화카페 풀덤(FULLDOM)-감각적인 인테리어에 맛있는 먹거리와 다양한 볼거리가 함께해
    야외에서 뛰어놀기 힘든 추운 겨울이면 친구들과 옹기종기 따뜻한 방에 누워 만화책을 돌려 보곤 했다. 간식을 먹으며 한 손 가득 빌려온 만화책을 보다 보면 반나절은 금세 지나가버렸다. PC방이 흔하지 않고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나 여타 놀이 공간도 많지 않던 시절, 만화방은 젊은이들의 쉼터였다. 하지만 다양한 레저와 문화 공간이 생기고 웹툰의 등장으로 만화나 만화방은 젊은이들에게 외면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카페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와 콘셉트의 ‘만화카페’가 등장해 젊은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서울 홍대에서 시작해 지방에서도 다양한 만화카페가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 광주에 위치한 ‘풀덤(FULLDOM)’은 복층구조와 세련된 인테리어로 오픈 1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전남대 후문 본점을 시작으로 충장점과 첨단점까지 문을 열어 성황리에 운영 중이다. 복합문화공간으로 광주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풀덤’, 고객 눈높이에 맞춘 운영으로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한 그곳을 주간인물이 찾아가 보았다. _정주연 기자 전남대 후문 메인 거리를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풀덤(FULLDOM)은 유명 편집숍을 연상시키는 세련된 외관이 인상적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마주하는 대형 책장과 스크린 그리고 작은 무대는 방문객들의 궁금증을 또 한 번 자극한다. 복층구조에 전면을 통유리로 인테리어한 이곳의 정체는 4만여 권의 다양한 만화책이 구비된 ‘만화카페’. 커피를 포함한 식음료부터 요기를 달래줄 다양한 먹거리까지 구비해 방문객들의 눈과 입을 모두 사로잡는 이곳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라는데. 다락방 구조에서부터 윈도형 자리까지 혼자 오는 고객도 함께 오는 고객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 “친구나 연인 또는 가족단위로 오는 고객들이 많아요. 조금 더 편안하게 만화를 보며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좌식 형태의 좌석에서부터 다락방 형태의 좌석, 칸막이형 좌석까지 다양하게 마련했습니다.” 특히나 요즘은 혼술이나 혼밥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난 점을 감안, 창가를 바라보는 좌석을 배치해 변화하는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했다. 특히나 4만여 권이 넘는 책은 남녀노소 누구나 만화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로 준비되어 있다. 얼마 전 오픈한 첨단점은 주변에 초등학교가 많은 점을 고려해 아동도서까지 구비했다. 주변 상권 분석을 통해 주요 고객층을 파악해 지점별로 책의 장르도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식음료와 먹거리 레시피를 통해 최적의 맛을 구현해 만화 카페답게 커피부터 에이드까지 다양한 종류의 식음료를 판매하고 있는 풀덤은 고객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라면부터 볶음밥류까지 분식 위주의 다양한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여느 식당과 마찬가지로 본점과 지점의 음식 맛이 달라질 것을 우려해 풀덤은 자체 조리 레시피를 마련했다. 인기 메뉴인 라면만 하더라도 물의 양과 조리 시간 그리고 가니쉬에 이르기까지 획일화된 조리 방법을 구사해 어느 지점에서나 풀덤만의 맛있는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성된 메뉴는 음료 세트나 음식 세트 등 다양한 패키지 요금제로 조금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 상권과 상점의 규모까지 고려 롱런할 수 있는 풀덤이 되고파 넓은 실내와 감각적인 인테리어, 4만여 권이 넘는 만화책 구비로 광주는 물론 인근 지역에서도 가맹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 풀덤. 하지만 풀덤의 색을 그대로 살려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공간과 함께 철저한 주변 상권 분석을 통한 자리 선정이 우선시 되어야 하기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현재 복층구조로 이루어진 광주점 3곳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실내 설계가 돋보인다. 이는 보다 많은 책을 보유함으로써 다양한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켜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풀덤이 되기 위함임을 시사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이승진 대표는 취재진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했다. 입구에 위치한 ‘마음의 소리’라는 상자였다. “고객들의 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기 위해 마련해놓은 것이에요.” 사소하지만 고객들이 겪는 불편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마련해 놓은 ‘마음의 소리’를 통해 풀덤의 고객 중심 경영을 엿볼 수 있었다. 입구 쪽 작은 무대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버스킹을 하는 음악인들을 초청해 공연도 선보이고 있다는 풀덤은 단순한 만화카페를 넘어 지역의 대표 복합문화공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풀덤의 다락방에는 디퓨저가 각각 놓여있다. 디스플레이해놓은 책장 하나에도 다양한 인테리어적 요소를 가미해 고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작지만 의미 있는 노력을 통해 풀덤은 광주의 대표 복합문화공간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1006]
    • 문화
    2017-02-01
  • 국악가수, 그 신선함 A gugak singer delivering a fresh sound
    민중들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난 노래라는 뜻의 민요와 일제 강점기 시절 형성된 대중 가요 형식의 노래인 트로트. 이 두 장르를 융합하여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사람이 있다. 이번주 주간인물이 만나본 국악 트로트 가수 정소라와 특별한 만남을 가져보았다._이효정 ­­기자 Folk music refers to music that was created by the people over time, while trot is a popular music genre that emerged in Korea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There is someone who has pioneered a brand new music genre by combining these two types of music. It's the gugak trot singer, Jeong So-ra, who was interviewed for this week&s feature on Weekly People._Lee Hyo-jeong 집에 있는 전축을 통해 유행곡을 들으며 살았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몸져 눕게 되면서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늘 가슴 속에선 가수에 대한 열망을 간직하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신월동을 지나고 있을 때 국악 학원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 필름처럼 지나온 세월들이 순식간에 떠오르고 지나갔다. 한복을 좋아하던 나, 노래를 곧잘 부르던 나, 국악을 좋아하던 나……. 트로트는 힘든 삶을 노래로 표현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국악과 접목시켜보았다. 한(恨)이 서린 국악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고 트로트는 관객들에게 흥겨움을 불러일으켰다. I had spent my younger years playing the hit records on the LP player at home. When my parents fell ill, I had no choice, but to start working to provide for my family. Still, I retained in my heart the longtime aspirations to become a singer. Then, one day, I was walking in Sinwol-dong, Seoul when a gugak academy caught my eye. At that moment, memories from the past & how I dearly loved hanbok, how I loved to sing, how I loved gugak - flashed before my eyes. Trot was a great way to express my hardships in life, but in a limited way. So I decided to incorporate it with gugak. Gugak, which conveys the feelings of han (roughly translated to sorrow or resentment), resonated with the audiences, while trot excited them. 기회가 왔다. Then an opportunity knocked at my door. 국악으로 입소문이 났다. 소홀했던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아이가 예중에 갈 수 있도록 노경미 선생님과 같이 공부할 수 있게 합의가 되었다. 그러나 지인에게 사기를 당했고 나는 우울증에 빠졌다. 아이 진학도 포기한 체 자리에 누워버렸다. 무대에 다시 오르는 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야위어 9개월을 정신과약으로 버티며 사경을 헤맸다. 그러던 어느 날 무용가 김정희 선생님의 제안으로 아이와 함께 미국 동부 버지니아 공연에 나가게 되었다. 10살의 아이는 청춘가를 불렀고 관중을 휩쓸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희망을 얻었다. 귀국 후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봉사도 다니면서 열심히 살았으며 그렇게 CD 제작의 기회가 왔으나 기획사의 두 번의 실패로 무산되었다.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가수 출신의 오영산 작곡가님을 만나 실패의 경험과 위로를 받았다. 오영산 선생님께서 이왕 CD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름 석자로 작사하여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라고 적극적으로 밀어주셨고 그렇게 가수 정소라가 탄생하였으며 타이틀곡 ‘떠난 사람‘이 탄생했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I gained fame as a gugak singer. I was able to start studying again, and an agreement was made for my child to train under Noh Gyeong-mi so that he could enroll in a middle school specializing in the arts. But I was scammed by an acquaintance, and that incident made me fall into depression. I became emaciated to a point where I couldn&t imagine myself performing on stage again. For 9 months, I tried direly to hold on to my sanity and my life, relying on psychiatric medications. Then, Then, one day, based on a suggestion from dancer Kim Jeong-hee, I took my child to perform in Virginia U.S.A. There, my 10-year-old left the crowd enraptured with his performance of “Cheongchunga (The Song of Youth).” After seeing this, I regained hope. Although I continued to suffer from financial hardships even after returning to Korea, I still worked hard, even volunteering from time to time. I was given an opportunity to record a CD, but the project fell through twice because of the record company. At a time of dejection, I found solace in singer-turned-composer Oh Young-san, who shared with me his own experiences of failures. Oh Young-san provided me with his full support, as he encouraged me to write my own lyrics and do what I needed to produce a CD. That&s how I came to be singer Jeong So-ra, and my debut song, &The Person Who Left,& was born. I&ll never forget that moment. 나의 아들 변도현 My child, Byeon Do-hyeon 아이는 어릴 때부터 끼가 충만했다. 남자 아이였기 때문에 나와 같은 길을 가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그저 사람들에게 예쁨 받는 모습이 너무 예뻐 바라만 봤다. 아이는 내가 연습을 할 때 옆에서 곧잘 따라불렀다. 6살 때는 방송국에서 인기상도 받았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아이에게 민요와 트로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10살이 된 아이는 동부 버지니아에서 감사장까지 받았다. 나의 아이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아이의 재능을 키워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비록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독학으로 시작했지만 나의 아이는 나보다 더 크고 튼튼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주겠다고 다짐했다. My child&s talent has been apparent even from a young age. But because my child was a boy, I never knew he&d walk the same path as I did. I just noticed how he was dearly loved by the crowd who listened to him. Whenever I practiced, he&d sing along next to me. When he was 6 years old, he received a popularity prize from a broadcasting station. That was when I began to teach my son folk music and trot in full swing. When he was 10, he received a certificate of appreciation from the State of Virginia. I was proud of my child, and I became resolved to help him foster his talent. As a self-taught singer, I began singing at a relatively late age, but I wanted to do my best to present my child with the best environment to nurture his talent so that he may be able to move on to a bigger world. 더 넓은 세상을 향해 Toward a bigger world 가요계에는 무명가수가 수 없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주목을 받는 일은 쉽지 않다. 나 역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 자리까지 온 것 만으로도 영광이고 행복하다. 지난 2016년 이탈리아, 그리스, 뉴욕에서 공연을 하고 왔다. 한이 담긴 남도 민요부터 흥겨운 경기 민요까지 상황에 따라 부르는 곡은 다르지만 외국에 나가면 꼭 민요를 부른다. 나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국악 한 마당’을 보며 몇 백번씩 돌려보며 예습, 연습, 복습을 했다. 또한 대공연장에서 명창들의 공연을 어깨너머로 그들을 보며 독학으로 지금의 내가 됐노라고 자부한다. 나의 공연 모습을 보고 뉴욕에서 섭외 전화가 왔고 그 때 나에게 누구 제자냐는 질문을 해왔다. 내가 "저는 독학입니다."라고 말하자 전화가 끊겼다. 명창의 제자만 인정한다는 뜻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There are countless obscure singers in the music industry. I myself has a long way to go. However, I feel honored and take great pleasure in the fact that I&ve come this far. I performed in Italy, Greece and New York in 2016. The songs I choose to perform & from Namdo folk music that conveys han to the upbeat Gyeonggi folk music & depend on the situation, but I always include folk songs in my set list. Because I was never well-off, I watched the TV show, &Gugak Hanmadang,& hundreds of times to practice the songs repeatedly. Also, I watched the performances of prominent folk and gugak singers and taught myself to sing like them. After seeing my performances, someone from New York called to invite me to perform, and he asked who my teacher was. I said, &I&m a self-taught singer,& and he immediately hung up on me. It implied that only those taught under the tutelage of prominent singers deserve the attention and recognition. While I knew this was only natural, I couldn&t help but feel that this situation was somewhat regrettable. 아들의 도전 My son&s incredible journey 한 때 아이는 한복이 불편하여 입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나 요즈음 다시 국악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아이는 한 두가지를 알려줘도 여러 가지 깨우친다. 또한 분야 특성상 남자아이가 희소하기 때문에 많은 선생님들께서 내 아이 도현이를 가르치고 싶어하신다. 게다가 도현이는 연습을 안하고 큰 무대에 올라가도 떨지 않고 잘 해낸다. 국악의 살아있는 전설 김뻐꾹 선생님께서도 도현이를 유망주라 생각하시고 많이 예뻐해주신다. 내 생각에 국악은 우리의 생각과 얼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며 나의 아이를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것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우리의 정서가 담긴 국악을 아이가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중에 국악을 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걸림돌이 아이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지금이라도 다시 국악으로 돌아와 나와 같이 공부를 하고 공연을 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하며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도와주신 분들께도 주간인물을 통해 감사의 말씀 드린다. There was a time when my child complained about wearing hanbok because it was uncomfortable. These days, he has fallen in love with gugak again. When I teach my son just a couple of things, he realizes so many more. Because of his gender, many vocal teachers want to train him. He is not the type to get stage fright, even if he didn&t practice. Kim Ppeokkuk, the living legend in gugak, adores my son, Byeon Do-hyeon. I personally believe that gugak is the best way to express our thoughts and spirit as Koreans, and the best way to describe my child. Once, I&ve told my child, &It&s important to accept new things, but it&s just as important to maintain our traditions.& It is highly important for me to make sure that my child accepts gugak, which encompass the sentiments of Koreans, at his age because I&m fully aware of the many obstacles he would face if he were to try learning it later in his life. I&m grateful and happy that he has found his way to gugak again to study and perform it with me. I&d also like to extend my gratitude toward everyone who has helped us through Weekly People. 혼자 시작한 일을 이제는 아들과 함께 한다. 온전하게 세상으로부터 허락받은 유일한 것은 아들이라며 씁쓸하게 웃던 정소라 가수. 아들과 함께 하는 길에 박수를 보내며 주간인물은 그들의 힘찬 걸음을 응원한다. Singer Jeong So-ra now has company in her once lone journey. She gave a bitter smile, while saying that the only thing that has been granted to her by the world is her son. At Weekly People, we wish to applaud her for her hard work and dedication, and will support her journey with her son. 국악 가수 정소라 Gugak singer Jeong So-ra 타이틀곡 ‘떠난 사람’ Debut song &The Person Who Left& MC 이벤트 행사 전문 국악 가수 Gugak singer who mainly performs at emceed events 나는 홀로 서 있었다. There I stood alone. [1006]
    • 문화
    2017-02-01
  • “당신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드립니다”
    여자들의 더 예뻐지고 싶은 욕심은 끝이 없다. 이제 남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말하는 ‘예뻐진다’는 의미는 TV속 연예인이나 인형처럼 자신의 얼굴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을 최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생활로 자신을 가꾸는 긍정적인 표현이 되었다. 퍼스널한 서비스 제공을 통해 고객들의 더 아름다운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포미뷰티센터 김민희 대표. 고객에게 맞는 미용을 제공함은 물론 세계 미용시장과 국내의 흐름에 맞는 체계적인 교육으로 미용인 양성에 힘쓰고 있는 그녀를 주간인물에서 만나보았다. _김정은 ­­기자 아름다움을 실현 시키는 공간, 포미뷰티센터 한 가지만 전문적으로 관리하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한 곳에서 메이크업부터 피부, 네일, 보디, 왁싱까지 모든 관리가 가능한 ‘토탈 뷰티’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대구에 위치한 ‘포미뷰티센터’는 성형외과와 피부과 간호사 출신으로 반영구 화장을 최초로 지역에 도입하여 15년간 실력을 다져온 김민희 대표와 각 분야별로 다년간의 경력과 자격증을 보유한 디자이너들이 고객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 곳으로 고객들의 신뢰와 만족도가 높아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곳이다 . “포미뷰티센터를 찾는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의 일부가 되어 아름다움이 실현되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프라이빗한 뷰티룸으로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인 포미뷰티센터. 남성들을 위한 그루밍 공간 또한 마련되어 있어 데이트 코스로 찾는 고객들도 늘고 있다. 정밀한 시스템과 디테일한 체크리스트를 바탕으로 상세한 상담을 진행하는 포미뷰티센터는 고객의 피부 상태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시한다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해요. 고민이 되는 부분과 피부타입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고객이 보유한 제품을 먼저 체크해 활용법을 정확하게 알려드리고 있어요. 필요 이상의 관리나 새로운 화장품을 구매하기보단 보유하고 있는 좋은 제품의 사용팁과 노하우를 알려드리는 것 또한 저희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탄탄한 실력을 갖춘 전문가들의 섬세한 관리와 값비싼 피부 관리실의 거품을 모두 제거한 서비스로 고객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김 대표. 포미뷰티센터를 찾는 고객들의 Needs&Wants를 충족시켜 마음까지 힐링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국내에 이어 세계 미용시장 진출을 위한 1:1 개인별 맞춤 강의 피부국가자격교육인증기관 포미뷰티아카데미 국내 미용업계는 수적 증가와 과열경쟁으로 더욱 전문화된 기능을 추구해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K-뷰티 열풍으로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미용인이 늘고 있어요. 때문에 글로벌 시대에 적합한 기술과 이론을 바탕으로 더욱 체계화된 교육이 필요합니다. 형식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수강생의 능력과 진로를 생각한 커리큘럼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에요.” 피부국가자격교육인증기관인 포미뷰티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김민희 대표. 그녀는 국가자격증을 보유한 각 분야별 전문 강사들과 함께 국내 미용업계의 교육수준 향상과 세계 미용시장에 나갈 수 있도록 실효성을 목적으로 미용인 양성에 힘쓰고 있다. 소수 정예로 운영되는 포미뷰티아카데미는 피부, 네일, 메이크업 등 각 분야에 4명 이상의 수강자를 받지 않으며 1:1 개인별 맞춤 강의로 국가미용자격증 시험 100% 합격률을 자랑하고 있다. “업계에 종사하는 미용인들도 자격증 취득을 위해 아카데미를 찾고 있지만, 취업을 목적으로 아카데미를 찾는 수강생들이 늘어 실전대비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취업, 창업과 연계하여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부담을 줄여 주고자 아카데미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가꾸어 주는 것을 좋아하며 즐기다 보니 오랫동안 뷰티업계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는 김민희 대표.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포미뷰티센터와 포미뷰티아카데미를 찾는 모든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겠습니다.” 아름다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귀추가 더욱 주목되는 멋진 만남이었다. PROFILE 간호과졸업 간호사면허증 취득 서울대병원 수술실/ 대구성형외과 수술실 및 상담 수간호사 치료용 반영구화장성형/ 눈썹 터치기법(엠보) 시술 도입 한국 최초 독일 누보컨투어코리아교육 포미성형외과.피부과 반영구화장, 피부관리실 운영 반영구화장아카데미 교육생 양성 포미뷰티센터 동성로점 오픈 한국컨투어 메이크업협회(KCMA)정회원 미용사국가자격시험 심사위원 제1회 미용사(피부)국가자격증 취득 한국컨투어 메이크업협회(KCMA)디프로마 미용전문가협회(IFBC) 반영구화장1급자격 한국패션타투 협회 정회원 포미뷰티센터 현대점 오픈 IBSO국제미용올림픽 연합회지사장 포미뷰티아카데미대표 [1005]
    • 문화
    2017-01-24
  •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부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문화가 이어져오고 있다. 미의 기준은 변할지언정 미를 향한 마음은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혹시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번 주 주간인물이 만나보았다. _이효정 ­­기자 의식의 차이가 차이를 만든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그 당시에는 플로리스트가 고급스럽게 만든 꽃의 공급이 부족했다. 전무하다시피 했다. 또한 조화는 ‘성묘꽃’의 이미지가 강했다. ‘조화는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시들지도 않는데 왜 즐거운 순간을 함께하지 않을까?’ 그렇게 더플라워마켓이 시작되었다. “저는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사법 시험을 준비하다가 어느 날 고속터미널 꽃시장에 갔습니다. 선물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그 당시 가격으로 15만원 어치 꽃을 샀습니다. 그게 시작입니다.” 한민선 대표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땐 꽃을 만질 줄 몰라서 만들어진 것을 가지고 와서 팔았다고 했다. 꽃시장에 가보면 수 많은 플로리스트가 있다. 그 사람들이 만든 것을 사와서 팔고 그들이 꽃 손질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배워서 팔았다고. “다른 과를 전공한 것의 장단점을 말한다면 장점으로는 전문가의 시선보다 소비자의 시선에 더 가깝기 때문에 좋은 반응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점으로는 아무래도 정규 교육을 안 받았다는 사실이죠. 그 단점을 보완하고자 열심히 노력합니다.” 생화를 손질하다보면 물 올림이나 꽃이 피는 철과 같은 전문 지식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조화는 손질 기법이 공예에 더 가깝기 때문에 단점도 노력으로 승화할 수 있는 것이다. 소비자와 소통은 내가 직접 더 플라워 마켓에는 CS(Customer Service)팀이 따로 있다. 그러나 한민선 대표는 고객의 클레임을 본인이 감수한다. “고객님들께서 무슨 문제를 가지고 계신지 혹은 어떤 것을 원하시는지 직접 듣는 것이 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조화돈꽃다발’이다. 일반적으로 돈꽃다발은 생화로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생화에서 나오는 수분으로 돈이 젖기 일쑤이며 가격도 비싼 편이다. 그러나 더 플라워 마켓의 돈꽃다발은 가격도 매우 합리적이며 사이즈 역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을 시작할 무렵 외환위기가 왔습니다. 플라워관련업종들은 아무래도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타격이 컸습니다. 주위 분들이 경기가 안 좋을수록 고급화 전략으로 가야한다고 충고를 해주셨지만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물하기 좋아해서 시작한 사업인데 어떻게 고객분들게 부담을 주는 가격의 상품을 구성할 수 있겠습니까? 초심을 잃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생각들로 더 플라워 마켓을 경영하고 있는 한민선 대표. 고객의 클레임을 직접 듣는 열정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친근하고 신뢰감을 주고 싶다 “좀 더 친근하고 신뢰감을 주고 싶어서 브랜드 이름도 간결하게 만들었습니다. 홈페이지에 들어와보고 ‘어? 가격 괜찮네? 이것도 사볼까?’, ‘우와, 이거 예쁘다. 이런 디자인도 있네?’ 라고 소비자들이 반응해주길 바라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더 플라워 마켓에는 돈꽃다발 뿐만이 아니라 크리스마스를 위한 미니트리, 비누꽃다발, 가랜드와 같은 상품들도 있다. 매주 새로운 디자인이 출고되고 시즌마다, 계절마다 새로운 디자인과 인기가 있었던 디자인이 동시에 진행된다. “조화는 풍성하게도 가능하고 화사하며 내구성이 좋습니다. 또한 영원성도 있기 때문에 눈 앞에 두고 그 때를 회상할 수 있죠.” 새로운 도전 지난 10년간 더 플라워마켓은 일반 소비자분들의 입소문을 타고 조화와 크리스마스 장식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사 보셨을만한 업체로 성장했다. 소매로 10년간 성장해온 더 플라워 마켓이 작년부터 사업자 고객들을 위해 전문몰을 오픈하기에 이르렀다. 그 동안 소매물을 운영하면서 얻은 노하우들로 사업자 고객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일반 소비자 고객층들에게는 트렌드에 잘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업자 고객층들에겐 운영하면서 얻은 지식들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더 플라워 마켓이 한 층 더 성장한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다보니 그게 직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직업에서 발생하는 업무들을 좀 더 능숙하게 해내고 싶어 열심히 일하다보니 사업을 확장하게 되었다. 사업을 확장하다보니 그것이 더 크고 튼튼한 궤도로 올라가고 싶은 꿈이 되었다. 명확하게 되고 싶은 꿈이 있는 것도 좋지만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다보면 그것이 꿈이 된다는 한민선 대표. 그녀의 꿈에 박수를 보낸다. [1005]
    • 문화
    2017-01-17
  • PARTY를 만드는 남자-안상민 파티플래너와의 특별한 만남
    지난 2016년 12월 28일 지나가는 해에 대한 아쉬움과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설렘이 가득한 때, 대구지역에서 처음으로 커뮤니티 파티 ‘파만남(파티를 만드는 남자)’이 개최되어 많은 화제가 되었다. 성별, 연령, 직업 모두 다른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사교의 장으로 꾸며진 ‘파만남’ 파티. 이를 기획한 것은 바로 파티플래너 안상민 대표다. 오늘 주간인물은 누구보다 바쁜 연말을 보낸 그를 만나러 대구로 향했다. 우리에겐 결코 친숙하지 않는 파티문화. 그 높은 벽을 허물어 파티의 대중화를 꿈꾸는 안상민 대표를 만나 그가 만들어가는 파티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_박지영 ­­기자 (사)한국파티이벤트협회 전문교육 수료 다양한 기업 행사 통해 쌓은 다년간의 실무경험 프로그램 구상부터 행사 진행까지 ‘전문 파티플래너’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 갓 군대를 전역한 2011년 안상민 대표는 먹고 마시기의 반복된 일상을 벗어나 친구들과 색다른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파티.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열었던 첫 파티는 지금의 안상민 대표를 있게 한 계기였다. “친구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짜고 행사도 운영하면서 파티에 대한 흥미를 느꼈어요. 적지만 약간의 수익도 생겼죠. 그래서 주기적으로 파티를 열어보자 생각했죠.” 그렇게 몇 번의 파티를 개최했고 이를 바탕으로 조금 더 큰 규모의 파티를 구상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성공했단 성취감에 사로잡힌 것도 잠시, 정산을 통해 본 파티의 결과는 실패로 결론이 났다. “너무 궁금했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 왜 실패한 걸까.” 그 길로 서울의 파티·이벤트 관련 전문교육기관을 찾아 나섰다. “파티플래너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에요. 말 그대로 기획자죠. 프로그램 구상부터 실제 행사진행까지 플래닝 수업 뿐 만 아니라 현장에서의 변수와 상황변화에 따른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춰야 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교육이 꼭 필요해요.” 전문교육을 수료한 그는 그곳에서 만난 (사)한국파티이벤트협회 이용우 회장과의 인연으로 지금의 리얼플랜에 자리했다. 리얼플랜에서 3년간 팀장으로 기업 내 시상식, 워크샵 등 다양한 기업행사를 치러내며 전문 파티플래너로서 탄탄한 기반을 다진 안 대표. 다년간 쌓은 경험을 토대로 고향인 대구로 내려와 리얼플랜의 대구·경북지역 대표를 맡았다. “서울에서도 아직 파티와 파티플래너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요. 지방엔 개념조차 생소한 상황이죠. 왜 파티플래너가 필요한지 의문을 가지는 분들도 많아요. 그 인식을 바꾸기 위해 처음 파티를 시작한 곳, 제 고향인 대구로 내려왔습니다.” 파티, 이벤트 등 각각의 행사가 진행되기까지는 프로그램 구상부터 컨셉, 소품, 장비 등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다. 또한 행사가 진행되는 순간순간 발생할 수 있는 변칙적인 상황들이 무수히 많기에 다양한 현장 경험이 요구된다. 탄탄한 준비와 매끄러운 진행이 없으면 주최자도 참가자도 모두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사교가 주 목적인 파티의 특성상 사교를 위한 분위기 조성과 어색함을 깨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연출력까지 전문 파티플래너가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특히 안상민 대표는 주최 측과 참가자의 성향, 행사의 성격 등을 다양하게 고려하고 늘 색다른 프로그램으로 많은 신뢰를 받고 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파티의 대중화와 더불어 일반인을 위한 다양한 파티를 기획, 지방의 파티문화를 선도할 것 기업 내 행사는 구성원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조직 내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드는 등 긍정적 효과가 큼에도 불구하고 파티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그리 좋지 못하다. “보통 파티라고 하면 놀고먹는 식의 부정적인 시선이 많아요. 아니면 TV나 영화에서만 보던 상류층만의 문화 혹은 20대만의 문화라고만 생각하기도 하죠. 특히 지방에서의 편견이 심해요.” 파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잘못된 편견을 허물고 파티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파티가 가진 의미를 새겨주고자 2016년 12월 28일 안상민 대표는 ‘파만남(파티를 만드는 남자)’을 개최했다. 성별, 연령, 직업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파티를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석 가능한 사교의 장 ‘파만남’ 파티는 일반인들의 파티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며 큰 화제가 되었다. 전문 파티플래너가 기획한 파티를 처음 접해본 대구시민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지방에서 파티에 대한 인식은 좋지 못한 이유가 제대로 된 파티를 접해본 경험이 없어서라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지방분들이 더 화끈하게 즐길 수 있음에도 말이죠. 그래서 일반인들도 쉬이 즐길 수 있는 파티를 기획했죠.” 이를 계기로 앞으로 안 대표는 지속적으로 파만남 파티를 진행해 파티 커뮤니티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또한 일반인을 위한 다양한 파티를 구상해 파티 대중화를 위해 힘쓸 것이란다. “올해 저의 스승님인 리얼플랜 대표님을 중심으로 파티업계 최초로 한국파티이벤트협회가 설립됐어요. 파티, 이벤트 등 각종 행사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참여해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전문교육도 실시하고 있어요. 전문가들이 모여 지역에 밀접한 다양한 파티·이벤트들을 구상해 다양한 활동들을 펼칠 계획입니다.” 앞으로 대구를 무대로 ‘파티’에 대한 홍보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라는 안상민 대표. 파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벽을 깨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파티에 대한 ‘두려움’을 깨고 싶어요. ‘혼자가기 어렵다’, ‘아는 사람이 없다’ 등 파티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들을 들을 때 가장 마음이 아파요.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는 기회를 더 만들어 장차 대구가 외국 못지않게 파티가 많은 도시로 만들어가고 싶어요.” 앞으로 그가 만들어갈 파티문화가 자꾸만 기대된다. “파티플래너가 여는 파티에 와보신 적이 있나요? 저만 믿고 오세요.” [1005]
    • 문화
    2017-01-17
  • 앙금의 놀라운 변신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이 있다. 여자 뿐만이 아니다. 앙금도 변신할 수 있다. 앙금의 놀라운 변신을 좌우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번 주 주간인물에서 만난 편옥희 대표이다. 앙금의 놀라운 변신을 따라가보도록 하자. _이효정 ­­기자 옥희 혹은 O.K 공방은 아늑했다. 훈훈한 공기가 추위로 언 몸을 녹여줬다. 추운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며 따뜻한 커피를 내주었다. 인터뷰가 시작됨을 알리자 쑥쓰러워하며 웃음을 짓는 편옥희 대표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베이킹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오직 아이들의 간식을 위해서 베이킹을 시작했단다. 공부하는 아이들을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쿠키를 만들었다. 그렇게 쿠키를 굽기 시작했다. 그러다 입소문이 나서 ‘오키쿠키’라는 이름으로 수제쿠키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단다. “오키는 OKAY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땐 오키도키하고 장난스럽게 발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 이름이 편옥희잖아요. 제 이름과 같은 발음으로 들리기도 해서 오키쿠키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수제쿠키 사업이 앙금플라워를 만나면서 새로운 물살을 탔다. 앙꼬블리의 태동이 시작된 것이다. “앙금과 러블리의 합성어로 사랑스러운 케이크로 행복한 순간을 선물한다는 의미로 앙꼬블리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이들의 간식과 지인들의 선물용으로 베이킹을 시작했지만 쿠키와 초콜렛 그리고 떡케이크를 접목시키면서 플라워케이크 브랜드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이름을 바꾼 것이다. 즐거움은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타고난 손재주를 가진 편옥희 대표. 앙금플라워를 배우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마카롱에 앙금플라워로 장식을 해서 만든 플라워마카롱, 앙금을 이용해서 만든 앙금캐릭터케이크, 앙금으로 아이싱을 하여 화분까지 먹을 수 있는 앙금다육이까지. “시간이 흐른 후 이 일을 시작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이 일을 시작했다면 상업적이고 욕심으로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취미 생활로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즐기면서 할 수 있고 즐거운 마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다양한 디자인의 원천이 됩니다.” 편옥희 대표는 어른과 아이들 모두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쿠키나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쿠키 같은 경우 명절에 가족들이 모두 모였을 때 티타임을 즐기며 화목을 도모할 수 있는 효자상품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때 쿠키만으로는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마카롱을 넣어봤단다. 마카롱까지 주다보니 활용도가 굉장히 높아지면서 앙꼬블리를 찾는 사람들이 더 늘었다. 또한 앙금다육이는 초코설기로 바닥을 만들고 앙금으로 다육이의 잎을 장식하고 초콜렛으로 돌 모양을 냈다. 아이들의 반응이 매우 폭발적이었다. 검은깨를 갈아서 만든 앙금캐릭터케이크 역시 마찬가지. 왕관을 쓰려는 자, 무게를 견뎌라 자식들의 간식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건강한 식재료는 필수라는 편옥희 대표. 호박, 백련초 등의 천연색소를 사용하여 기존 버터 플라워케익 등과 차별화를 두었으며, 특히 단호박, 비트, 자색 고구마 등을 직접 말리고 분쇄하여 사용하므로 맛과 향이 더 좋다는 것이 타사와 가지는 차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설기 안에도 여러 견과류, 대추와 같은 부가물이 들어 가다보니 향도 진하고 씹히는 식감도 일품이다. 또한 제대로 알고 제대로 사용하고 싶어 4개월의 쇼콜라 과정도 이수했으며 앙금플라워 강습을 받으러 멀리 지방까지 가는 일도 서슴치 않았단다. 건강한 맛거리를 제대로 만들고 싶다는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손 끝에서 피어나는 작품 계절마다 시즌마다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는 편옥희 대표. 수제쿠키, 초콜렛 그리고 앙금플라워까지. 팔방미인의 표본이다. 또한 카페 운영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카페 창업반을 열어 강습도 하고 원데이 클래스 운영도 하고 있다. 수업을 할 때 가까이서 하나하나 정성껏 알려주고 본인의 노하우도 전수하다보니 알음알음 수업을 듣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서 연락이 오면 실시간으로 답장을 보낸다. 맞춤이다보니 디자인 구성에도 상당히 많은 공을 들인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 손 끝에서 탄생한 모든 것들이 편옥희 대표의 작품인 셈. “저를 믿고 주문을 하신 분들의 즐거운 상황을 위해 많이 고민합니다. 그래서 좋은 피드백이 오면 너무 행복해요. 하나하나 만들 때는 힘들지만 그래도 좋은 피드백이 오니까 멈출 수가 없습니다. 힘들어도 이 맛에 열심히 하는거죠.” 10년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 융통성있고 빠르게 행동 할 수 있다. 아이들을 키웠기 때문에 어린이들도 즐겁게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할 수 있다. 이 모든 경험들, 그러니까 살아오면서의 경험은 모두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옥희 대표. 앞으로의 편옥희 대표에게 펼쳐질 많은 나날들을 주간인물은 응원한다. [1005]
    • 문화
    2017-01-17
  • 축복을 수놓다 - 살다가 어느틈에 ‘결혼’을 추억했을 때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문서영 대표는 직접 드레스를 한 땀 한 땀 제작한다. 디자인에서부터 제단, 봉제까지, 천 조각 위에 그녀의 손 따라 실이 누벼진다. 꽃 분홍빛으로 물들 신부의 앞날을 위한 예쁜 마음도 같이 누빈다. 훗날 이때를 추억했을 때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오기를 바라는 문서영 대표, 백색의 깨끗함이 담겨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주간인물이 담았다. _이가현 ­­기자 ‘축복’을 담은 수작업 드레스로 문서영 대표가 선사하는 ‘행복’ 루케테 웨딩은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드레스를 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30여년간 문서영 원장은 동양인의 체형에 꼭 맞는 패턴을 연구하여 디자인의 유니크함과 고급스러움, 그리고 완벽한 드레스 핏감까지 고려한 차별화된 드레스를 제작해 왔다. 문서영 대표는 드레스를 입는 사람의 기분까지도 행복해지는 핸드메이드 명품웨딩을 추구한다. 디자인에서부터 봉제까지 문서영 대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드레스를 입는 신부의 앞날을 축복하며 드레스를 만드는 문서영 대표, 그녀에게 웨딩드레스란 무엇일까. “제 자식 같은 존재이죠. 제 사명감을 가지고 만드는 것입니다. 제 2의 인생을 준비하는 신부에게 좋은 추억을 새겨줄 수 있는 일, 그것이 저의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눈코 뜰새 없이 바쁘지만 뿌듯해요, 예비신부님들이 환하게 웃는거 보면요. ”앞으로도 행복한 신부를 만들기 위한 그녀의 행보는 계속된다. 프렌차이즈점, 패션쇼 등을 통해 영역을 넓히고 웨딩드레스 디자인의 선구자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찰나의 순간을 위한 배려 문서영 대표는 일주일에 한 벌씩 드레스를 만든다. 숍에 있는 드레스만 해도 500여벌이 넘는다. 기자는 직접 현장에서 상담도 하며 옷 제작까지 하는 문서영 대표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졌다. 33년동안 그 지속적인 하루를 어떻게 지켜왔을까."일주일에 한번씩 결혼식을 준비하고 정신 없이 살다보면 시간이 금방 가요. 창 밖 한번 보면 꽃 피어 있고 또 한번 보면 눈 내리더라고요.그래도 저는 옷 만드는 일을 그만둘 수 없어요. 이 일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최고의 달란트에요. 너무너무 재밌는 일이에요. 매일 기도해요. 최고의 드레스를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저는 최고가 될때까지 할겁니다." 30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드레스를 만들고 입히는 일을 하면서 그녀는 늘 친절과 신뢰를 지킨다.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데 있어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자 하는 그녀의 신조이다. 드레스 관리에 있어서 세탁과 소품 정리등 신부에게 늘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 일생에 딱 한번 있는 결혼식인 만큼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 노력하는 그녀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하루하루 설레는 일을 한다는 것은 문서영 대표는 세계에서 제일 가는 드레스를 만드는 손을 가지고 싶다고 기도한다.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저는 이 일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면 끝까지 해보세요. 우직하게 혼자만의 길을 가세요. 5년하다가 안되면 10년 하고 또 하고 그러다 보면 꼭 이룰 수 있어요” 처음 웨딩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그녀는 발로 뛰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지키고자 하였다. 지나온 30년 그리고 지속될 30년 그녀는 처음과 같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웨딩드레스를 제작할 것이다. 결혼, 그 숭고한 두 글자 문서영 대표는 자신의 옷을 입는 신부에게 축사를 건넨다. “결혼이라는 두 글자는 정말 소중한 글자입니다. 둘이 만나 하나의 예술을 하는 마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 기자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란 서로가 이해할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 아닐까. 흰색처럼 서로가 서로의 색에 물들 수 있게. 1999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설립 2002 프랑스 국제무역박람회초청 패션쇼 참가 2002 '삼총사' 의상협찬 (출연진 전원 의상제공) 2003 인도대사관주최 친선교류패션쇼 참가 2003 순복음 교회 성가대 예술의 전당 합창복 300벌 제작 2004 KBS1 TV 아침마당 Oriental 드레스 방영 2004 세계 의상 페스티벌 패션쇼(힐튼호텔) 참가 2004 국회의사당 Oriental 드레스 방영 2004 MBC 문화기행 Oriental 드레스 방영 2007 '아줌마가 간다' '과거를 묻지마세요' 의상협찬 2008 KBS TV 세상의 아침 '등파인 드레스가 유행이다.'방영 2009 전국 검정고시 장학 기금 마련 패션쇼 2009 한강 프라디아 패션쇼 참가 2010 '수상한 삼형제' '보석비빔밥' 의상협찬 2011, 2012 미스아시아 선발대회의상협찬 2013 '지성이면 감천' 드레스 협찬 2014 '앙큼한 돌싱녀' '소원을 말해봐' 드레스 디자인 및 제작, 2014 소프라노 신영옥, 가수 소향 드레스 협찬 2014 따뜻한 드레스와 변형 드레스 건으로 특허출원 2014~ 2016 그린 코리아 선발대회, MISSY 글로브 선발대회, 국제모델 선발대회, 통일 아리랑 모델 선발대회, 더 뷰티 모델 선발대회, 국제 뷰티미 선발대회, MISS GREEN KOREA, MISS GLOBAL INTERNATIONAL, FACE OF BEAUTYA INTERNATIONAL 한국대표선발대회 심사의원 2016 '우리결혼했어요','사라제인' 드레스 제작 및 협찬 [1005]
    • 문화
    2017-01-17
  • 함께 해 온 세월, 깊은 사연이 담긴 가구 “가구 수리는 추억의 재현입니다”
    뚝딱뚝딱. 스윽스윽. 정겨운 작업소리를 들으며 양호방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창문을 관통하여 작업실에 내리쬐는 12월의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는 생각을 하며, 처음으로 마주한 오양호 장인. 안경 너머 보이는 반달눈, 사람 좋은 웃음이 서린 입가. 흡사 피노키오의 제페토 할아버지가 연상되는 푸근한 인상이다. 제페토 할아버지가 말썽꾸러기 목각 인형 ‘피노키오’를 사랑으로 포용해주었듯, 오양호 장인은 섬세한 손길로 오래되어 낡고 망가진 ‘가구’들에 새로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는 ‘가구는 추억’이라고 말한다. 조립식 가구를 떠올리는 기자와 오양호 장인이 생각하는 가구의 의미,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아닐까. 오양호 장인이 말하는 ‘가구’를 들어보았다. _박정연 ­­팀장 ‘추억’을 선사하는 행복한 가구수리 전문점 오양호 장인을 찾는 고객들은 전부 입소문을 타고 소개로 그를 찾는다. 서울은 물론 경기, 제주 등 각지에서 새로운 탄생을 고대하는 고가구와 골동품 등이 그에게 날아든다. 다른 가구수리업체에 한번 맡겨졌던 가구가 오양호 장인에게 다시 오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세월이 많이 흘러 낡고 망가진 가구가 100% 복원되기 때문에. 처음 가구를 들였던 그때의 모습을 되찾아주어, 처음 가구를 들이던 그날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초창기에 아주 오래된 자개장 복원을 의뢰 받았습니다. 거의 폐기 직전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오래되고 낡은 자개장이었기에 ‘너무 낡았으니 버리고 새로 하나 구입하십시오’라고 말했더니 어르신께서 저를 야단치셨습니다. ‘내가 이 자개장을 결혼할 때 혼수로 해와서 50-60 평생을 함께 해왔다. 집안도 한평생 화목했고, 자식들도 잘되어 품을 떠났다. 이렇게 福장인데 버리라니,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정성껏 복원을 해드렸더니, 굉장히 좋아하시면서 소개도 많이 해주시고 칭찬일색이셨습니다. 그럴 때 참 기쁘고, 감동을 많이 받습니다.” 고객들의 다양한 사연이 담겨있는 가구는 ‘추억의 매개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오양호 장인은 자개장 이후 하나하나의 가구 의뢰건에 대해 더욱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러한 시간들이 모여 현재 가구수리 분야에서 알아주는 오양호 장인을 이루었다. 100% 완벽하게 가구 복원 철저한 ‘장인정신’의 실현 가구 수리는 보통 자개장, 락카, 티크, 골동품 등 전문 기술 분야가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가구 수리 장인은 1~2가지 정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오양호 장인은 가구 수리에 관한 한 전범위를 아우른다. 어떤 가구라도 양호방에 오면 100% 완벽하게 복원 가능하다. “벌써 몇 십 년 전 일입니다만…. 부모님께서 사용하시던 고가구 몇 점이 있었습니다. 가구수리 견습생 시절, 배우는 단계이다 보니 실습을 하다 잠깐의 실수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그 때 보낸 가구에 대한 안타까움이 섞여 아쉬움만 점점 커져갑니다. 아무리 훌륭한 가구라도, 아무리 진귀한 골동품이라도 제게는 그때 그 가구만큼 소중하지 않습니다. 부모님께서 사용하셨던 손때 묻은 고가구를 좀 더 신중하게 다루지 못했던 그때의 실수가 제 평생의 한으로 남습니다.” 오양호 장인은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슬쩍 훔쳤다. 그러한 아픈 기억이 있기에, 자신에게 맡겨지는 가구들에 더욱 완벽을 가해 복원하는 것이 아닐까. 오양호 장인은 40년간 해왔던 대로 앞으로도 고객들의 가구수리[추억의 재현]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후임자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가구 수리 기술은 빠르게 습득되지 않습니다. 가구마다 사례가 다양하기에 몇 년간의 견습 시기를 견뎌야 하는데, 힘든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힘든만큼 보람도 큰 작업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오양호 장인은 말을 덧붙였다. “원목가구 같은 경우, 가정에서 사용하다 보면 나무가 많이 건조됩니다. 그로 인해 의자가 흔들리고, 책상이 터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원목가구들은 재수리를 한번 받으면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몰라 좋은 가구를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안타깝습니다. 여름철엔 습도로 인해 늘어나고, 겨울이 되면 줄어드는 것이 원목의 습성이기 때문입니다. 긴 세월 함께 해온 고가구 버리지 마시고 연락주세요.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해드리겠습니다.” [1004]
    • 문화
    2017-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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