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양산지역의 대표적인 건설업체, 세영건설은 석면해체, 시설물 유지보수 및 비계구조물 철거업과 실내건축 공사업 등을 전문으로 하며 정기적인 통큰 기부와 선행 실천으로도 유명하다. 최근 설 명절을 앞두고 어김없이 정영식 세영건설 대표는 소외계층을 위해 써달라며 양산시복지재단에 1천만 원을 쾌척했다. 사실 정 대표는 2015년에도 양산시 지역주민의 다양한 복지수요에 발 빠른 대응을 위한 후원금으로 1,000만 원을 기탁했었다. 정영식 대표의 기부금은 개인사업자가 재산을 자발적으로 사회에 기부한 금액 중 최대 수준이라고 양산시장도 밝힌 바 있다. 이외에도 정 대표는 고향, 경남 하동 발전을 위해서도 꾸준히 거액의 성금을 전달해오며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불꽃을 피웠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본보기로서 앞장설 뿐이다”라고 피력한 정 대표의 특별한 고향사랑과 기부열정 스토리를 들어보자. _김민진 기자


지난 2월 4일, 기탁식에서는 정영식 대표의 셋째 아들(정진화 씨)과 함께 참석해 한층 의미가 깊은 기부였다는데···.

“작년 연말 간경화로 건강이 크게 악화되어 아들의 간 이식으로 회복돼 삶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있는 기간 중 아들과 함께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보며 아들에게 기부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키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주고자 했지요. 설 명절을 앞두고 적은 돈일지라도 어려운 사람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매일매일의 소소한 일들 속에 무언가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할 때에 많은 선행을 하고 싶습니다.”

정영식 대표는 서울아산병원 입원 당시에도 코로나로 고생하는 의료진과 병원 관계자들에게는 감사의 마음을, 입원 중인 환자들에게는 응원과 격려의 의미로 마스크 2만 장도 기부했었다.

“병실에 나란히 누워 이 돈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아들에게 먼저 물었습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3남매에게 ‘너희한테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회에 다 환원하고 갈 것이다’ 등의 말을 늘 했었던 터라. 아들도 이번 마스크 기탁을 보면서 ‘아버지의 생각은 역시 다르신 것 같다, 아버지의 뜻에 따르겠다’라고 흔쾌히 말을 해주어 고마웠습니다. 6남 1녀 넷째로 어린 시절 제가 워낙 없이 살고 또 지금 이렇게 아파보니 마음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 아픔을 잘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 특히 어린 친구들, 학생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기탁식에 참석할 때마다 “예전부터 막연히 생각만 하던 기부를 실천할 수 있는 재단이 있어 더없이 기쁘다”며, “작은 정성이지만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이 희망찬 미래를 그려 나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겸손한 소감을 전하는 정영식 대표.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뚜렷한 인생철학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공헌 및 나눔 경영과 함께 정 대표는 재양산하동향우회장으로서도 평소 고향인 하동에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 인재 양성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 및 장학기금 마련은 물론이거니와 소년소녀 가장들을 후원하고 ‘나는 귀한 몸’이라는 주제로 소년보호관찰 강의 등에도 직접 나서고 있다. 인터뷰 내내 일 잘하는 하동 군수,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하동 특산 녹차밭, 반듯한 인사성의 트롯 신동 정동원과의 관계 등 하동 고향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또한 향우회를 통해 “자랑스러운 하동인을 찾아 소개하고 고향에서 열심히 사업을 이끄는 훌륭한 사업가와 음지에서 사회봉사를 하는 하동인을 발굴해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는 사회봉사활동을 펼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정영식 대표는 오늘날 안타까운 농촌의 현실을 바라보며 “고향을 지키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재양산 16개 시군 향우회 장학사업도 계속적으로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여 강조했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면 무조건 1인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정 대표는 직접 현장을 발로 뛰고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성실하게 차근차근 부를 쌓아온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89년도에 부산에서 중장비 일을 했습니다. 믿음 생활도 열심히 하며 주일을 지키고자 ‘6일 중기’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요. 당시 일은 잘 되었지만, 사람을 잘못 만나는 바람에 한순간에 망했지요. 이후 건설 쪽으로 양산에서 터를 잡았습니다. 한 우물을 파는 것보다 시대 흐름에 빨리 맞춰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서 꼴찌여도 사회에 나가서 1등 할 수 있다. 용기를 가져라’고 초등학교 때 임영민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데요. 당시 구구단을 외워야만 하교를 할 수 있었지요. 근데 저는 얼른 집에 가서 아버지 농사일을 도와드려야 했거든요. 선생님께 차라리 저를 때리고 보내달라며 우리가 졸업할 때 즈음에는 주판도 사용 안 하고 계산기를 사용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철없이 대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습니까(웃음). 그런데 선생님께서 졸업식 날 저에게 그렇게 말씀해 주신 덕분에 오늘날 흰머리로 가득해진 나이가 되어서도 선명하고 분명하게 제 마음속에 남아 무슨 일이든지 위기에 오히려 강하게 맞서고 용기를 가지며 헤쳐가게 되었습니다.”

정 대표는 직원 채용 시에도 인재를 발굴하고 키운다는 생각으로 신중을 기하는데 우선적으로 보는 것이 바로 ‘인성’이다.


“능력은 입사 후에도 키울 수 있지만 인성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인성이 좋지 않은 직원 한 명은 일을 조직적으로 할 때에 그룹 전체의 효율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학점이나 역량이 뛰어나도 면접 시에 가정환경, 배경, 부모님과의 관계 등 무엇을 보고 듣고 자랐으며 그로 인해 현재 면접자가 지닌 삶의 가치관, 사고방식 등의 파악을 통해 입사 여부를 결정합니다. 무엇보다도 회사의 주인처럼 일하는 직원을 발탁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성실하게 이뤄낸 일연의 사연들을 들어보면 이 사람은 ‘여기서도 주인정신을 가지고 일을 잘하겠구나!’하는 게 보입니다. 요즘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이 어떠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안 될 것 같다, 힘들다는 등의 부정적이고 포기하는 말들은 쉽게 내뱉는 현실을 가끔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네요. 저는 젊은 직원들한테도 배울 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진취적이고 선진국형의 마인드를 갖춘 다양한 연령대의 직원들과 오래 일하며 될성부른 인재를 위해 과감하게 지원하고 싶습니다.”

‘정열·열의·집념’이라는 세 단어로 설명이 가능한 정영식 대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남보다 두 배 일하고 쉴 때도 일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찼다. 단순히 근무 시간이 두 배가 아닌, 쉬고 있을 때나 무의식중에도 일 생각과 연구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는 마인드의 정 대표가 앞으로도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고 끊임없이 샘솟는 선한 영향력의 아이디어들을 실천해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뜻해지기를 바란다. [1111]

주간인물(weeklypeople)-김민진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나눔이 있는 기업, 아름다운 CEO 인생은 ‘준비와 약속’ "땀으로 얻은 결실, 고향 발전과 사회 환원에 투자하고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