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바른 외식문화로 작은 사회를 만들어나갈 터상어는 바다의 강력한 포식자로 일컬어진다. 그런 상어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으니 바로 ‘부레가 없다는 것’. 때문에 상어는 쉴 새 없이 꼬리를 저어대며 움직인다. 잠시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가라앉기 때문이다. 그네들이 본래 가진 강력한 힘의 영향도 있겠지만, 먹잇감을 얻기 위한 집요함과 그 노력으로 인해 바다 속의 1인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여기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성공을 이룬 이가 있다. 20년 동안 정직과 깐깐한 신념으로 ‘국수요리’ 하나만 고집해 기어코 ‘최고’라는 평가를 얻어 낸 인물. 해운대 하면 떠오르는 ‘31㎝해물칼국수’를 만든 정영탁 대표의 이야기다.기회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변화에 주저하지 않는 자신감으로 명성을 쌓아온 그의 도전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_김정은 기자


사시사철 많은 이들이 찾는 곳 해운대. 국내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만큼 볼거리도 먹거리도 넘쳐나는 이곳에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 있으니, 바로 ‘해운대31cm해물칼국수’다. 매스컴을 타고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부산에서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곳은 다른 지역민들에게도 부산을 관광하면 꼭 찾아가볼만한 맛집으로 꼽힌다. 사람들이 찾아가는 맛집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기자 역시 큰 기대를 안고 정영탁 대표를 찾아 나섰다.

“칼국수는 예로부터 서민음식이자 위로를 건네는 정겨운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싸고 맛있고 푸짐한, 삼박자를 골고루 갖춰 시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메뉴를 선보이자는 결심에서 해운대31㎝해물칼국수가 탄생했지요.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부산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음식으로 특별한 추억을 안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지름 31㎝ 그릇을 가득 채운 조개와 칼국수의 양은 보기만 해도 짧은 탄성을 불러내지만 여기서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대왕칼국수라고도 불리는 이 메뉴의 가격은 고작 7천원. 하지만 가격이 싸다고 품질까지 싸게 보면 큰 오산이다.칼국수에는 생물을 그대로 받아 조리한 가리비와 홍합, 물총 조개 등 조개류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있다. 그 양이 얼마나 푸짐한 지 조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 다른 곳에서 족히 2인분, 3인분의 양은 될 법하다. 하지만 한 그릇을 거뜬히 비워도 텁텁하거나 물리지 않는다. 끝까지 깔끔하고 시원하다. 혀끝에서 느끼는 얄팍한 맛이 아닌 숙성된 깊은 맛이 느껴져서다. 면발에도 특별한 비법을 적용했다. 해산물이 워낙 많다 보니 천천히 먹다보면 면이 퍼질 수 있기에 면이 오랫동안 쫄깃함을 유지할 수 있는 전분을 첨가해 식감을 살렸다. 여기에 직접 담근 맛있게 매운 배추김치는 맛의 풍미를 더한다. ‘맛있는 음식을 부담 없는 가격과 푸짐한 양으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슬로건을 고집스럽게 지켜가는 해운대31㎝해물칼국수. 오픈한지 이제 겨우 2년이지만, 사실 이곳의 내공은 20년 전부터 쌓여왔다. 외식시장에 처음 입문했던 그때부터 사람을 위한 음식으로 위로를 건네자는 정 대표의 이념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으로 탄생된 메뉴와 레시피, 좌절과 고난 속에서도 도전은 계속 된다

깔끔한 인상에 선한 웃음.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와 매너, 그 속에서도 호방함을 잃지 않는 여유와 기품 있는 언행. 정영탁 대표의 첫인상이다. 외모만 보면 어려울 것 없이 탄탄한 성공가도를 달려왔을 것 같은 그지만, 두 손에 단단히 박힌 굳은살의 묵직함을 보면 ‘그간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달려 왔을지, 그리고 걸어온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겠다’하는 짐작이 앞선다.



“건축학을 전공했습니다. 회사에 취직해 직장생활을 하던 중 IMF에 직격탄을 맞아 막막하던 중 ‘국수’와 인연이 됐지요. 저희 집 주변에 유명한 국수집이 하나 있었는데 맛을 보면 늘 ‘나도 이 정도는 만들 수 있겠는데?’라는 자신감이 들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는지 부끄럽네요(웃음).”그때부터였다. 국수집 주인장에게 가맹점을 허가 받고 양산 신도시에 국수가게를 열었다. 사실 음식에 대해 아는 게 없다보니 매순간이 고비였다. 어찌됐든 장사는 그럭저럭 잘됐지만, 손에 남는 게 없었다. 본점과 계약할 당시 모든 물품을 납품 받아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에 매출이 높아도 본사의 배만 불리는 형국이었다.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하다가는 초심을 잃고, 기존 손님들까지 잃을 판이라는 생각에 돌파구를 찾아 나선 정 대표. 유명 호텔의 주방장과 만나게 된다.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습니다. 지인을 통해 얼굴만 아는 분이었는데 무작정 찾아가 국수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했어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요.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웃음). 그래도 그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7번이고, 8번이고 찾아가 부탁드렸더니 결국엔 국수 만드는 베이스를 알려주셨습니다. 해운대31㎝해물칼국수의 밑거름을 만들어 주신 참으로 고마운 분이시죠.”하지만 어디 기초만 배워서 될 일이겠는가. 아무리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도 원하는 맛이 나지 않았다. 그 길로 장사는 접어두고 레시피 연구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이상하게 음식에 대해 아는 건 없어도 나만의 레시피를 가져야겠다, 우리 국수집에 손님들이 와야 하는 특별한 이유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연구를 했어요. 그렇게 탄생한 메뉴가 ‘얼큰이 칼국수’와 ‘물비빔국수’였습니다.”국수 매니아들이라면 한번쯤 맛보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얼큰이 칼국수와 물비빔국수가 흔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접하기 힘든 이색메뉴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부산에서 다시 개업한 칼국수집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을 무렵 고비가 찾아왔다.
“대장암 2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장사를 잠시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건강을 회복하는 일부터 생각하고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건강을 회복할 무렵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던 대형 음식점에서 손을 내밀었다. 마트 내에 국수 가게를 오픈하자는 제의였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상태였지만, 가장의 책임감이 먼저였다. 그렇게 4년이 넘도록 점장으로 가게를 운영했다. 그곳에서 출시한 물회국수까지 인기를 얻으면서 손님들이 찾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직원으로 일을 해보니 장사가 쉽지 않다는 것을 더 깊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매장을 오픈해 나의 음식을 선보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늘 메뉴를 기획했지요.”


한 그릇 꽉 찬 산지 직송 푸짐한 조개와 해산물로
싸고 맛있고 푸짐한, 삼박자 갖춘 정겨운 음식 ‘칼국수’
부산, 그리고 해운대의 명물로 자리 잡아



부산, 그리고 해운대를 좋은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자 했다는 그가 선택한 메뉴는 바로 칼국수. 제일 자신 있는 아이템이기도  했고, 칼국수를 메인으로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음식으로 손님들을 대접해보자는 목표가 생겼다. 해운대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니 해산물이 떠올랐다. 그리고 시중에 파는 해물 칼국수에 해산물이 아쉽다는 평을 내가 바꿔보겠노라고 다짐했다.
당시를 잠시 회상하던 정 대표는 ‘살아 있는 싱싱한 해산물을 넉넉한 양으로 손님께 대접하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라며 소리 없는 웃음을 짓는다. 그때부터 재료부터 선점하기 위해 산지를 직접 방문해 조개류와 해산물 유통까지 파악했다.
넉넉하지 않은 자금으로 가게를 구하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점포가 없었다. 그러던 중 좌동재래시장의 좁은 골목길에 숨어 있는 아담한 매장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2년 넘게 비어있던 자리에다 주변이 막걸리 가게다 보니 낮에는 사람 하나 없는 그야말로 골목이었다. 음식이 사람을 끌지, 장소가 사람을 끌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심기일전. 메뉴에 자신이 있었기에 도전에 망설임이 없었다. 인테리어도 자신의 전공을 살려 한달 보름동안 혼자서 작업을 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제는 어디인지 굳이 찾아볼 필요도 없을 정도다. 좌동재래시장에서 줄이 길게 늘어선 집이 바로 31cm해물칼국수 매장이 됐다. 해산물은 받아오는 양이 많아져 산지에서 미리 1차 해감을 해 올 정도가 되었다. 소문을 듣고 맛을 확인하러 온 이도 있고, 전에 먹었던 그 맛이 생각나 장시간을 달려온 이도 생겼다. 줄이 길어지면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출출한 배를 채울 수 있었으나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7천원에 팔면 남는 게 있을지 모를 정도’라는 걱정부터 ‘해물 많이 준다는 곳 가봤지만 이 정도인 곳은 못 봤다’라며 그 푸짐함을 칭찬했다. 해운대31㎝해물칼국수는 해운대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정 대표는 안주하지 않았다. 현실에 더욱 초점을 맞춰 외식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점을 더 깊게 파악하고 해법을 찾아 나갔다. 꾸준히 공부하며 기록해 온 그의 메모가 말해준다. “지금 읽어보면 이렇게 기발한 생각도 했구나 하는가 하면, 쑥스러울 정도로 유치한 내용도 있어요(웃음). 하지만 이런 작은 메모 하나하나가 모여 좋은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첩경(지름길)이 되었습니다.”


옳은 방향으로 함께 걸어갈 가맹점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칼국수 브랜드로 성장시킬 것



“장사가 잘되니 가맹문의가 쇄도했습니다. 당시에는 프랜차이즈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정중히 거절했지만, 간절한 심정으로 찾아와 우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제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또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가게가 생긴다면 많은 이들에게 대접하는 것도 의미가 크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 전수창업으로 창업주와 함께했지만 초심으로 장사를 잘 영위하는 점주가 있는 반면, 이익을 따지며 해운대31㎝해물칼국수와 다른 행태로 장사를 하는 곳도 생겼다. 그가 꿈꾸던 사업 문화가 아니었다.
 “본사의 말에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그 힘이라는 게 가맹점을 진두지휘하겠다는게 아니라 함께 옳은 방향을 갈 수 있는 길잡이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바라는 바는 31㎝해물칼국수의 상호에 책임을 가지고,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분들과 우리들의 작은 문화와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간절한 심정으로 열심히 가맹점을 이끌어가고 있는 점주들을 위해서라도 프랜차이즈 본사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결심을 전하는 정영탁 대표. 그와 뜻을 함께할 이들과 프랜차이즈 사업을 이뤄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다.
본사의 핵심재료인 조개와 김치 등 몇 가지만 본사에서 유통하는 구조를 마련, 이외의 식재료는 자율화 정책을 시행해 원가절감 효과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어 점포 운영 노하우와 상권분석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정 대표가 직접 지원에 나선다.
현재 해운대 좌동본점에 이어 해운대 시장직영점과 울산직영점이 성업 중이며 김해 내·외동이 오픈 예정 중이다. 
“세상에 성공한 외식사업가는 많지만,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가는 없었어요. 제가 누구보다 잘 알지요. 저 역시 막다른 길에 몰리기도 했었고, 거듭된 난관에 부딪히며 혼자 고군분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것을 배웠고, 깨달았으며 제게는 큰 자산이 되었으니까요. 그때의 저처럼 홀로 힘든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웃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싸고, 푸짐하고, 맛있는 해운대31㎝해물칼국수의 방침은 그대로 이어가 부산을 넘어 한국의 대표칼국수로 나아가겠다는 정영탁 대표. 그의 열정과 도전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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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지름만 31㎝, 음식이 아닌 情을 나누는 해운대 대표 칼국수 - 정영탁 ㈜미스터탁누들 대표이사 / 해운대31㎝해물칼국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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