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부산의 향토음식 밀면. 1919년 개업해 101년의 역사를 지닌 내호냉면은 처음으로 부산에서 밀면을 만든 곳이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이곳은 ‘허영만의 식객’, ‘한국인의 밥상’, ‘3대 천왕’, ‘맛있는 녀석들’ 등 여러 매스컴에 소개되며 한국인이 사랑하는 한식당으로 알려졌다. 부산 대표적인 노포인 내호냉면은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하는 백년가게로 선정돼 다시금 가치를 인정받았다. 최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부산남구청보건소 직원들에게 냉면 130인분을 제공하는 등 꾸준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주간인물은 뚝심 있는 한우물 경영으로 부산 향토음식의 원형을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켜가는 내호냉면의 이야기를 담았다. _박미희 기자


부산 우암동에 위치한 내호냉면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백년가게다. 내호냉면의 시초는 1919년, 1대 이영순 여사가 함경남도 흥남 내호리에서 ‘동춘면옥’을 열어 농마국수(함흥냉면의 이북이름)를 팔면서부터 시작했다. 이후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일가족이 피난을 내려와 부산 우암동 일대에 정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3년, 1대 이영순 여사와 딸, 2대 정한금 여사가 고향의 호 ‘내호(內湖)’를 따 ‘내호냉면’라 상호를 지었고, 1958년 무렵, 이북음식을 그리워하던 피난민들이 구호품으로 구하기 쉬운 밀가루를 섞어 냉면을 만들면서 지금의 밀면이 탄생됐다. “냉면을 그리워하던 피난민들이 구호품으로 구하기 쉬운 밀가루를 섞어 냉면을 만든 것이 밀면의 시초입니다. 처음에는 밀가루로 만든 냉면이라 '밀가루 냉면'으로 불렸고, 점차 '밀냉면'으로 불리다, 종국엔 '밀면'이라고 명칭하게 되었죠. 냉면보다 질기지 않고 부드러워 많은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밀면을 만든 할머니 조차 오로지 냉면 생각뿐이셨어요. 당신이 제일 먼저 만들었으면서도 '밀면은 없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이라고 하셨죠. 하지만 1980~90년대 부산향토음식으로 밀면이 각광을 받으며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되자, '밀면 원조집'으로 더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2대 정한금 여사의 맏며느리 이춘복 여사(3대)가 대를 이었고, 지금은 이춘복 여사와 유상모 대표의 장남, 유재우 대표가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투철한 장인정신과 뚝심있는 한우물 경영으로 노포를 지키고 있다.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제게 늘 가업을 이으라고 말하셨어요. 할머니는 ‘원래 자리에서 절대로 솥을 움직이지 마라’, ‘결코 길을 막지 말라’고 유언을 남기셨지요. 그 유지를 따라 옆집, 앞집을 하나씩 사서 가게를 확장했을 뿐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앞으로 새 가게를 얻는다고 해도 선대의 손때가 묻은 이 자리는 평생 지켜나갈 것입니다. 노포를 꾸려가는 일은 여러가지로 어려운 일이지만, 오로지 가업을 잇는다는 사명감으로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여름이면 하루 1,000그릇이 넘게 팔 정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유명 인사들이 문턱이 달토록 드나들었던 내호냉면은 3대가 손을 잡고 찾는 노포로도 유명하다. 찾는 손님들 중 70%가 외지인일 정도로 그 명성이 높다. 그렇다면 원조 밀면의 맛은 어떨까.
찰랑거리는 면발 위에 곱게 놓인 고명과 양념장. 밀면하면 생각나는 한약재 냄새나 흔한 살얼음도 찾아볼 수 없다. 면을 삼기기도 전 코끝을 스치는 향긋한 향에 침이 고인다. 갓 삶아 찰랑거리는 면발은 씹으면 씹을수록 당기는 맛이다. 냉면도 아닌 것이 쫄면도 아닌 것이... 쫄깃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는 그 긴장감이란, '역시 원조는 다르다!'는 감탄이 나온다. 오로지 사골, 소고기, 스지와 갖은 야채로 맛을 낸 육수는 이북냉면의 기품을 간직하고 있었다. 밀면의 원형을 말해주는 맛, 원조의 품격을 느낄 수 있는 한 그릇이다. 



맛의 비법에 대해 묻자, 그는 한세기가 담긴 노포의 비법을 말했다.  “특별한 비법은 없습니다(웃음). 오히려 단순하지요. 굳이 비법을 든다면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계절, 날씨, 재료의 상태에 따라 그때 그때 반죽, 양념장, 육수를 숙성하는 시간이 조금씩 달라요. 육수 액기스를 만들어 물에 타 육수를 만든 보통의 방식을 쓰지 않고, 한통, 한통 육수를 다 우려서 씁니다. 재료비도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가지만 맑고 깊은 육수를 내는 비법이죠. 주로 밀가루, 고구마 전분을 7:3의 비율로 배합해 반죽을 하지만, 날씨에 따라 반죽 비율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씨반죽으로 적절하게 숙성해 쫄깃하고 부드러운 면발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죠. 거기에 3차에 거쳐 숙성한 양념장을 더 해 맛을 냅니다. 계절, 날씨, 재료의 상태에 따라 숙성 시간을 조금씩 달리하기 때문에 수십년 숙련된 솜씨가 아니면 감히 흉내낼 수도 없습니다.”
지난 20년간 가업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때론 반세기를 함께 해온 단골손님의 입맛이 더 정확할 때도 있단다. “처음 주방을 맡았을 땐 음식 맛이 변했다고 어르신들한테 혼도 많이 났습니다(웃음). 반세기를 내집처럼 드나든 단골손님들의 입맛을 어떻게 속일 수가 있나요. 그래서 신 메뉴 하나도 쉽게 내놓지 못하는 게 노포의 숙명이라면 숙명이겠지요(웃음). 여전히 한결같은 맛을 이어나가기 위해 아직도 어머니가 주방의 중심을 딱 잡고 계세요.”



그는 선대의 장인정신을 잇고, 향토음식의 원형을 보존하고 계승,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호냉면은 맛집을 넘어선 가치를 지닌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100년 간 내려온 향토음식의 원형과 발전, 그 시대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문화유산이지요. 함흥냉면에서 시작해 6.25 전쟁으로 부산에 온 피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밀면에는 경계문화가 녹아있습니다. 피난민들이 정착한 우암동 소막마을에도 우리 근현대 역사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요. 내호냉면과 더불어 침체되어 있는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다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호냉면을 알릴 수 있도록 부산과 서울에 직영점을 내는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내호냉면은 연중무휴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 세차게 비가 오는 날에도 펄펄 끓는 냉면 솥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냉면 한그릇 때문에 이 외진 곳까지 찾아오신 손님들을 생각하면... 문을 닫을 수가 없어요. 어떤 때는 문을 닫는 게 오히려 나을 때도 있지만, 이것은 이문을 떠나 손님들과 지켜야할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에게는 세상 떠나기 전 마지막 한그릇이 될 수도 있는 소중한 식사를 위해 매일 정성을 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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