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언젠가 ‘공간 디자이너의 덕목’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고정관념을 버릴 것,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 편의성을 항상 염두에 둘 것 등 여러 항목이 있었지만 ‘듣고, 질문하고, 소통할 것’이라는 글귀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머릿속에서 잊혀질 뻔 했던 이 글귀가 다시 떠오른 건 강동영 대표와 나눈 대화 덕분이었다.
강 대표와 만남을 가진 8월의 끝자락, 대구에 위치한 한치각 스페이스디자인 사무실에서 한 시간가량 포멀한 인터뷰를 진행한 후, 사진 촬영을 위해 경산시 소재 카페 파스마로 자리를 옮겼다. 이동 중 차 안에서 이뤄진 ‘비공식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인간 강동영’은 마음을 여는 경청과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클라이언트와 나눈 소통의 깊이만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그의 철학이 그저 인터뷰용 답변은 아니었구나, 확신한 순간이다. _정효빈 기자

“ ‘한치각’은 목재 모듈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각재를 이용해 공간을 나누고
구성하는 일이어서 ‘각재 하나로 모든 공간을 연출하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강동영 대표는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 출신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한치각 스페이스 디자인을 이끌며 다양한 공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한치각 스페이스 디자인은 인테리어 디자인 및 그래픽 설계, 종합기획, 시공서비스, 엔지니어링 및 응용기술 서비스를 통해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아가고 있으며,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유연한 전문성으로 대응하며 지속가능성이 보장된 환경을 창조해나가고 있다.

공간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지닌 강동영 대표는 다양한 경험의 소유자다. 대학 시절엔 밴드부에서 보컬을 맡기도, 학창 시절엔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줄곧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공간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가 건축가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건축가 유춘수님께서 설계한 상암 올림픽경기장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어요. 그 순간 건축설계라는 분야에 완전히 매료돼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죠. 당시에 ‘건축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선생님께 물으니 ‘4년제 대학에 가면 된다’라고 아주 간결하게 대답해주시더라고요(웃음). 그때가 수능 6개월 전이었는데, 그때부터 정말 피 터지게 공부만 했어요. 그렇게 4년제 대학교의 건축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죠.”

건축학과 졸업 후 강 대표는 서울의 건축사사무소에서 근무하며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이후 인테리어 디자인 업계로 거처를 옮겼고, ‘자신의 디자인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확고한 마음으로 고향인 대구에 내려와 2014년 한치각 스페이스디자인을 설립했다.


‘공간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줍니다’
공간이 담고 있는 스토리 발견해 가치와 정체성을 부여하다


“트렌드만 좇기보다 현장에서 얻는 영감을 바탕으로 그 공간만이 가진 특성을 살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가면 ‘아, 이 공간은 이렇게 해야겠다’라는 게 짧은 시간 안에 머릿속에 그려지곤 해요. 하루는 카페 인테리어 문의를 받고 볕 좋은 오후에 현장을 찾았는데,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빛이 참 예뻐 보이더라고요. 내부 공간의 기둥에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그림자가 이곳의 포인트가 될 것 같았죠. 내부 색감이나 조명만 살짝 바꿔도 분위기에 큰 변화를 줄 수 있을 만큼 빛이 가진 힘은 굉장한 것 같아요.”
공간이 품고 있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다양한 만큼, 공간의 개성과 의미를 표현하는 방향으로 디자인 작업에 임하고 있다는 강동영 대표. 그의 손길이 닿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공간 하나에 이토록 다채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몇 명이나 될까’하는 생각이 든다. 강 대표는 일반적인 상업공간 인테리어 외에도 도서관, 금융기관, 교육청 등 다양한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공간디자인 속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쏠쏠한 재미와 더불어 강 대표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빌딩 방식을 듣고 나니, 그가 창조한 공간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경북 울진의 수협에서 인테리어 문의를 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금융기관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기 마련인데, 그런 천편일률적인 인테리어에서 벗어나 수협만이 가진 히스토리를 공간에 담고 싶었죠. 수협은 수산인을 위한 협동조합이잖아요? 수산인들에게는 바다가 주 무대이니,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먼 바다가 그들에게는 ‘육지’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육지는 오히려 먼 ‘바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의미를 표현하고자 육지와 바다가 뒤바뀐 지도 이미지를 수협 중앙 벽면에 새겨 넣게 됐습니다. 또한 수협의 역사적인 순간들을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비어있는 벽면에 표현했죠. 클라이언트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던 작업 중 하나였습니다.” 

그가 작업한 육군제3사관학교 기숙사 인테리어 역시 호국의 가치가 오롯이 전해지도록 디자인됐다. 기숙사 입구는 웅장한 멋을 자아내는 전시관과 같은 모습으로 조성했고, 조국을 위해 몸바칠 육군사관생도들이 머물 공간의 동선은 태극문양으로 계획했다. 또한 전시관 내부에 소위 계급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구조물을 설치해 상부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장군을 뜻하는 별 문양이 표현되도록 디자인했다. “육군제3사관학교가 가진 상징들을 분석해 삼각형, 브이, 시옷자 등의 형태를 먼저 따냈습니다. 이후 그 형태와 유사한 전통적인 건물 등 대표 이미지를 찾아낸 다음, 이를 다시 현대에 접목할 방법을 찾는 과정으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공간은 그곳에 머무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간에 머무는 이들도 공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인테리어사업자협동조합 통해
더불어 잘 사는 업계환경 만들어갈 것


“경험상 제가 정말 고생한 공간이 대박이 나더라고요. ‘아, 이번 현장 정말 힘들다’라고 느끼는 순간, 대박 나겠다는 느낌이 딱 와요(웃음). 오히려 일이 순탄하게 끝나면 알 수 없는 미안함이 들 정도죠. 땀 흘린 만큼 잘 운영되는 공간을 보는 것만큼 뿌듯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찾은 스토리를 통해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들과 진정으로 호흡하며 최고의 작품을 완성해내고 싶다는 강동영 대표. 공간 디자이너는 고객이 생각하는 것을 대신 구현해내는 직업인만큼, 포화된 인테리어 업계 상황 속에서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을 통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공간 완성도를 선보이고 싶다고. 그는 “디자이너의 역량은 물론, 고객인 본인의 생각을 깊이 있게 고민하는 디자이너를 선택했을 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디자인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디테일은 아무나 챙길 수 없어요. 숙련도에 따라 업체의 디자인이 어떤 식으로 표출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항상 고객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을 통해 작업을 완성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한치각을 이끌어나가겠습니다.”

공간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을 지닌 강동영 대표는 업계 후배들에 대한 애정도 크다. 강 대표 역시 인테리어 업계에서 일하며 수많은 풍파를 겪고 나니,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후배들은 그러한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현재 강 대표는 그와 뜻을 함께하는 10명의 동료와 함께 ‘한국인테리어사업자협동조합’ 운영에 첫발을 내디딘 상태다. 이 조합은 인테리어 사업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은 물론,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아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을 위해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예정이다.
“저도 이 업계에서 고생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나이를 조금 먹고 나니 이젠 어린 후배들에게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선배들이 이미 겪었던 어려움을 후배들이 더 이상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인테리어사업자협동조합 운영을 통해 실력 있는 젊은 친구들이 필드에서 더욱 활약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사람과 공간은 에너지를 공유한다. 공간에 머무는 이들의 에너지가 공간에 스며들고, 공간이 지닌 에너지 역시 사람들에게 스며든다. 공간은 생각과 의지가 반영되는 곳이기에 공간을 다루는 기술은 우리의 삶과도 더욱 밀접한 관계가 된다. 건강한 의식이 담긴 공간을 창조해내며 디자인이 지니는 가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있는 강동영 대표. 그가 앞으로 선보일 공간들이 더욱 기대된다. 




[1100]
카페 ‘파스마’
후포수협

육군제3사관학교
미군부대 내 도서관

주간인물(weeklypeople)-정효빈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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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디자이너, 상생의 여행길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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