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소(牛). ‘농업이 천하대본(天下大本)’이던 시절, 소는 그 대본의 근간이었다. 황소 같은 일소가 없으면 농사는 언감생심, 소는 또 다른 식구였다. 식구를 잡아먹을 수는 없는 일. 어쩌다 늙어 죽은 소가 생기면 마을에서 공동으로 도축해 나눠먹었다. 육식이 어렵던 시절, 일부 미식가 양반들은 남몰래 탐육을 했다. 몽골이 육식문화를 고려에 전파하기 시작한 13세기부터 국내에도 구이문화가 발달했다. 고려 때는 설야멱(雪夜覓)이 유행한다. 설야멱은 송나라 태조가 눈 내리는 밤(설야.雪夜), 신하이자 친구인 조보를 ‘찾아가 (멱覓)’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는데서 유래한다. 소고기를 굽다가 찬물에 살짝 담갔다 다시 익히는 구이법. 이 같은 미식가 양반들의 육식사랑은 조선시대 우금령에도 계속됐다. 눈 내리는 밤(설야.雪夜), 몰래 산을 찾아가(멱覓) 고기를 굽던 선비들. 금기(禁忌)를 넘어, 맛보고 싶은 육식의 매력을 재현한 ‘설야멱(雪夜覓)’은 떠오르는 양산의 맛집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_박미희 기자



양산 물금읍에 위치한 설야멱(雪夜覓)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등심덧살’, ‘특항정살’로 인기를 얻고 있다. 카페를 연상케 하는 세련된 공간에서 식육처리기능사를 취득한 CEO와 직원들이 직접 구워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오픈한 지 얼마되지 않아 ‘양산 돼지고기 맛집’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정경환 대표는 브랜드 기획에 남다른 감각을 갖고 있는 외식경영인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는 5년 전, 거제도에서 무한리필 돼지고기 전문점을 열며 외식업계에 발을 디뎠다. 가게는 성업했지만, 늘 그는 새로운 도전에 목말랐다. “돼지고기가 거기서 거지지. 한때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그러다 고기의 첫 스승격인 곳간504 김동현 대표의 가게에서 식사를 했어요. ‘이렇게 맛있는 돼지고기가 있다니!’ 눈이 번쩍 뜨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발골법, 수입산과 국내산의 차이부터 빙결점, 웻에이징과 드라이에이징의 맛의 차이 등 연구를 계속했어요. 보다 전문적인 공부를 위해 안성 농협축산물위생교육원에 입학해, 식육처리기능사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외식사업은 식(食)을 넘어서 종합적인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사업’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메뉴, 플레이팅, 서비스, 공간디자인 등이 한데 어우러져 브랜딩될 때 고객에게 제대로 된 가치를 전할 수 있다는 것. “이젠 맛은 기본이고요. 서비스, 분위기 등 소비자들의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만, 외식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메뉴, 플레이팅, 서비스, 공간디자인 등을 종합적인 브랜딩에 중점을 두고 설야멱을 기획하게 되었어요.”  



‘설야멱은 양산의 문화입니다’라는 자신 있는 문구가 눈에 띄는 매장, 카페처럼 깔끔한 공간에 한국적인 미를 느낄 수 있는 동양화가 걸려있다. 한편에는 양산하면 떠오르는 매화를 모티브로한 그린 인테리어를 두어 브랜드 이미지를 살렸다. 입구에서 보이는 투명한 저온숙성고에는 그가 심혈을 기울인 돼지고기 특수부위들이 진열되어있다.  

‘이렇게 맛있는 항정실과 가브리살(등심덧살)은 처음 먹어본다!’는 탄성이 나오는 맛. 그 비주얼부터 일반적인 항정살과 가브리살과 다르다. 엄선된 육가공업체를 통해 무항생제 한돈만 취급하는 이곳은 특수부위의 맛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정형했고, 굽는 법도 남다르다. “1~1.5cm 정도로 도톰하게 항정살과 등심덧살을 정형해요. 시중에 유통하는 항정살과 가브리살과 달리 비계를 조금 더해 정형하고요. 얇게 포를 뜨지 않고 등심에서 떼 낸 덩어리 그대로를 저온숙성해 맛을 살립니다. 거기에 히말라야 핑크소금으로 밑간을 해 숯불화로에서 직접 구워드려요. 숯불의 열기와 수증기로 익혀지듯 굽히기 때문에 육즙이 빠지지 않아 겉은 바싹, 속은 촉촉한 고기를 맛볼 수 있어요.”
 
북어보푸라기 소금, 잭다니엘 소스, 홀 그레인 머스타드, 생와사비 등 다양한 소스와 곁들여 먹으면 그 맛은 배가 된다. 중화식으로 야채를 볶아 낸 채수에 끓인 순두부찌개도 환상적. 밥 한그릇을 싹 비울 수 있는 꼬들배기김치와 곁들이면 근사한 한끼다. “손님들 중 열에 아홉은 ‘이게 돼지고기가 맞느냐?, 새로운 식감을 맛봤다’며 감탄하세요(웃음).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드시고 가는 손님들을 보면 보람됩니다. 직원들 한명, 한명이 직접 고기를 구워드려야하는 만큼 직원 교육과 서비스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손님들이 많아 바쁜데도 좋은 팀워크로 열심히 일해주는 송새한 매니저와 직원들이 늘 고마워요. 그리고 곁에서 묵묵히 힘이 되어준 아내(최호선 씨)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는 본점의 인기에 힘입어 2호점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와 개성을 담은 정육점을 오픈할 계획이다. 앞으로도 숙성육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로 양산을 대표하는 한식당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라고. “‘설야멱은 양산의 문화입니다’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맛’, ‘서비스’, ‘분위기’ 삼박자를 갖춘 외식명소를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이를 통해 지역 외식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요!” [1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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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밤(설야.雪夜), 몰래 찾아가(멱覓)서라도 먹고 싶은 마성의 돼지고기 '雪夜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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