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찰랑찰랑한 면 위에 올려진 노르스름한 돼지고기육전, 나붓하게 썬 하얀 배, 연둣빛 오이와 빨간 명태회무침이 한옥을 곱게 차려입은 세련된 여인의 모습과 닮았다. 진주 남강을 바라보며 논개를 노래했던 시인 변영로가 말한 ‘아름답던 그 아미(蛾眉)’와 ‘그 석류(石榴)속 같은 입술’을 바라보는 듯하다. 한 그릇으로 보여지는 진주의 멋과 풍류. 진주냉면은 예향의 도시 진주의 우수한 음식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음식이다. 서민음식으로 출발했던 평양냉면, 함흥냉면과 달리 진주냉면은 교방을 찾았던 진주양반이 즐겼던 선주후면(先酒後麵)의 음식. 예로부터 물자가 풍부한 진주지방에서 남해안의 해물과 육류, 지리산의 임산물로 만든 육수는 남도 특유의 갯맛(개미)이 뛰어나다. 100년 역사를 지닌 진주교방음식문화의 대표음식, 진주냉면의 원형을 재현하고 새롭게 계승·발전시키는 사람이 있다. 진주냉면에 인생을 건 남자, 이종상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_박미희 기자


“진주냉면에 제 청춘을 바쳤고 인생을 걸었습니다. 높은 음식 문화를 자랑하는 예향의 도시, 진주. 진주 향토음식을 대표하는 진주냉면의 원형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와 도전은 앞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이종상 대표.

진주가 고향인 이종상 대표는 진주냉면에 인생을 건 조리명장이다. 진주교방음식문화연구소를 설립하고 향토음식 연구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진주에서 내로라하는 진주냉면 노포부터 새로운 진주냉면의 차세대 주자까지……. 다양한 진주냉면 전문점에서 총괄 셰프를 맡으며 진주냉면 연구와 사업화에 모든 열정을 바쳐왔다. 예로부터 예향의 도시로 뛰어난 음식문화를 자랑했던 진주. 그 명성만큼이나 수려한 반가음식을 대표하는 다양한 향토음식들이 있지만, 그가 유독 진주냉면에 매료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진주냉면만큼 100년이 넘는 역사성과 다양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 향토음식을 찾아보기란 어려워요. 진주 교방문화를 대표하는 독특한 향토음식으로 세련되고 화려한 진주의 음식문화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음식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알려진 평양냉면, 함흥냉면의 명성에 가려진 채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안타까운 음식이기도합니다. 진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만큼, 요리사로서 이름을 걸고 진주냉면의 원형을 보존하고 새롭게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제 모든 걸 걸었습니다.”


대대로 구전을 통해 전해진 진주냉면의 조리법은 아직까지 원형이 정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이종상 셰프는 진주냉면의 기원과 원형을 보존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수년간 조사, 연구를 계속해왔다. “진주냉면 노포들도 대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만들었던 방식 그대로를 이어받아 진주냉면을 만들고 있어요. 옛날부터 먹어온 진주냉면의 조리법 그대로이지만, 원형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진주냉면의 기원, 원형을 밝히기 위해서 수년간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진주에서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온 어르신부터 지역유지들을 두루 만나 직접 인터뷰하며 조사를 했고, 고 조리법을 재현하기 위해 다양한 문헌을 참조하기도 했죠. 그런 과정에서 예전에는 육수를 우릴 때 해물과 함께 꿩을 사용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다른 냉면들과 다른 진주냉면만의 차별화된 특성을 파악하고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냉면들과 차별화되는 진주냉면만의 차별화된 특성은 무엇일까. 전국 팔도 냉면들과 다른 세련된 맛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식사대용으로 먹었던 평양냉면과 함흥냉면과 달리 진주냉면은 옛날 양반들이 교방에서 선주후면의 전통에 따라 해장국 대용으로 먹었던 음식이에요. 양반들의 음식이었던 만큼 산과 바다 그리고 들에서 나는 재료를 두루 넣어 깊은 감칠맛을 낸 육수와 화려하고 풍성한 고명이 들어가는 세련된 음식이에요. 한밤중에 교방에서 놀던 양반이 냉면을 찾으면 금방 차려낼 수 있도록 장법을 이용해 육수를 만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예로부터 진주는 영남일대의 풍부한 물자가 모이는 집산지였던 만큼 남해안에서 나는 해물과 육류, 그리고 지리산의 임산물을 두루 넣어 풍부한 맛을 냈고, 면도 4가지 곡류(메밀, 볶은 보리, 고구마전분, 앉은뱅이 밀)을 넣어 쫄깃하고 구수한 곡물향이 묻어나는 면을 뽑아냈습니다. 이렇듯 진주냉면은 과거 전국적인 도시로 명성이 높았던 부강한 진주의 식문화를 대변하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주냉면의 원형을 재현하고 새롭게 계승·발전하고자한 10여 년간의 노력. 그 노력의 결실은 진주냉면의 명성을 잇는 차세대로 주목받고 있는 ‘진주냉면 산홍’으로 이어졌다. 현재 1만 명의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보다 나은 고객 서비스와 업장 운영을 위해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진주냉면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는 진주냉면 산홍은 향토음식으로서 진주냉면의 원형을 보존하고 계승·발전해나가고 있는 외식명가다. 진주 금산 본점, 진주 하대직영점, 산홍 오산평택직영점이 성업 중에 있고, 내년 초 진주 평거직영점 오픈을 앞두고 있다.
찾아가는 맛집으로 알려진 진주 금산 본점은 1900년부터 지금까지 진주 시가지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시하는가하면 절개 높은 기생으로 이름이 높은 산홍을 비롯한 진주의 인물을 담은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진주냉면은 물론 예향의 도시, 진주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



몹시 추운 한 겨울, 3일 동안 한 그릇도 팔리지 않아도 혹시나 찾아올 단 한 분의 손님을 위해 펄펄 끓은 냉면가마솥의 불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

이런 노력은 이색적인 산홍이라는 상호를 짓게 된 배경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산홍은 논개를 흠모한 절개 높은 기생이에요. 조선말기 마지막 왕실화가 채용신이 그린 조선 팔도미인도에 영남미인으로 그려질 만큼 출중한 미모와 뛰어난 기예로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했지요. 1906년 당시 을사오적 중 우두머리로,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권세가, 내부대신 이지용이 진주로 내려와 천만금을 내놓으며 첩실 자리를 제안하자, 그녀는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의 우두머리”라며 이지용을 꾸짖었습니다. 이로 인해 산홍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당시 양반들도 바른 말을 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던 시절, 일개 기생으로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에게 항거한 일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어요. 지금은 잊혀 진주 시민들도 잘 알지 못한 산홍. 그녀의 이름을 상호로 쓴 이유는 산홍의 진주정신을 담은 높은 기개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처럼 냉면 한그릇을 내놓아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곱고 아름답게 담아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서예요.”

‘산홍’-‘진달래로 붉게 물든 산’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의 음식은 진주냉면의 화려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진주냉면의 아름다움과 멋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진주냉면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멋을 표현할 수 있도록 정갈한 모양의 고명에 신경을 썼습니다. 돼지고기육전으로 땅을, 하얀 배로 땅위에 내린 흰 눈을, 연두빛 오이채는 눈을 뚫고 올라오는 초목을, 그리고 빨간 명태회로 꽃을 표현했어요. 마치 여인의 가채처럼 아름다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조금만 흐트러져도 주방에서 다시 고명을 올릴 정도로,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있어요.”

고운 차림새만큼이나 그 맛은 어떨까. 진주냉면에 있어서만큼 정통한 그가 내놓은 진주냉면 맛이 궁금했다. 메밀, 볶은 보리, 고구마전분, 앉은뱅이 밀을 배합해 자가제면한 쫄깃한 면발, 국내산 건고추를 빻아 향미가 살아있는 고춧가루와 건해산물로 담근 해물 간장, 사과와 배를 듬뿍 갈아 넣어 시원한 맛이 일품인 산홍은 기존 비빔냉면을 뛰어넘는 기품 있는 맛을 자랑한다. 그리고 전통 방식 그대로, 장법으로 육수를 우려낸 진주냉면(물냉면)의 육수는 깊고 구수하다. 건해산물로 우려낸 시원함과 소와 돼지 사골로 우려낸 깊은 감칠맛 그리고 비법 재료인 황태를 사용해 맛의 풍미를 한층 끌어올렸다. 진주의 맛이라고 할 수 있는 갯맛(개미)를 깊게 느낄 수 있다. 거기에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해산물의 독을 풀어주는 자소엽을 사용해 3년 간 숙성시켜 만든 식초를 뿌리면 그야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진주냉면 한 그릇에서 느껴지는 셰프의 정성. 기자의 감탄에 이종상 셰프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진달래로 붉게 물든 산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푸짐한 모양과 맛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산더미물갈비


“산홍의 자랑은 최대한 진주냉면의 원형에 가깝도록 재현했다는 점입니다. 감자녹말을 사용해 쫄깃한 식감이 강한 함흥냉면과 메밀을 주로 사용해 툭툭 끊기는 맛이 뛰어난 평양냉면과 달리 진주냉면은 예로부터 4가지 곡물을 배합해서 사용했어요. 끈기와 탄성을 지닌 한국 토종밀인 앉은뱅이 밀, 향이 뛰어난 메밀, 쉽게 퍼지지 않고 보존성이 뛰어난 고구마 전분, 낮은 메밀함량을 보완해 곡물향을 끌어올리는 볶은 보리를 적절히 배합해 쓰면 서로의 성질을 보완해 좋은 면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수없이 많은 테스트와 연구를 통해 가장 좋은 배합으로 자가제면해 면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해산물을 활용해 직접 담근 해물 간장으로 맛을 내고, 육수를 내는 전통방식인 장법을 그대로 활용해 보다 깊은 감칠맛이 나는 육수를 만들고 있어요. 시대상의 변화로 대부분의 업장에서는 고급 식재료 치는 소고기 육전을 고명으로 쓰지만, 산홍은 원형 그대로 돼지고기 육전을 고명으로 쓰고 있어요. 따로 튀지 않고 면과 어울리는 구수한 돼지고기 육전의 맛을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소고기와 도가니, 만두, 다채로운 야채를 샤브샤브 식으로 즐길 수 있는 산더미물갈비도 이곳의 인기 메뉴다. 이 메뉴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많아 산더미물갈비를 전문으로 하는 외식브랜드 런칭을 준비 중에 있다. “저의 스승님인 김영갑 한양대 호텔관광외식경영학과 교수님과 함께 추억과 이야기를 파는 식당을 준비 중에 있어요. 맛있는 음식을 파는 것을 넘어서 독특한 문화와 이야기가 있는 외식 브랜드 런칭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소상공인들과 더불어 성장하는 행복한 프랜차이즈를 만드는 것이 저희의 목표이에요.”
진주냉면의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진주냉면 산홍은 내년 초 평거동에 새로운 업장을 내 본격적으로 손님들을 맞이할 계획이다. 진주하면 떠올릴 수 있는 다양한 문화와 이야기들을 진주냉면을 통해 녹여내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맛있는 음식점을 넘어 독특한 테마와 문화가 있는 곳, 예향의 도시 진주를 알릴 수 있는 스토리가 있는 맛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진주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그들에게 자랑이 되는 음식점을 만드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역적의 첩’ 자리를 단칼에 거절한 저항의식은 논개사당 의기사 앞에 걸려있는 산홍의 詩 (의기사감음)에 잘 나타난다.

천년토록 의로운 진주
쌍묘에 높은 누각 또 있구나
부끄러운 인생들 한가한 날에
피리 소리 북소리 너절하게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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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교방음식의 대표주자, 진주냉면 - 100년 전 숙수들이 만들어온 방식 그대로 재현하고 발전시킨 새로운 명가(名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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