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으며 세계 여러 나라를 놀라게 했다. 이는 기초산업을 기반으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왔으며,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고유가 시대로 접어든 요즘 누구보다도 자원의 소중함을 절실히 안고 살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일본인과 미군의 어깨너머로 배운 자동차에 대한 지식과 열정은 현시대가 처하고 있는 에너지 자원의 고민에 정통하고 있다. 석유 대체 에너지인 CNG 차량 개발을 통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아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자동차뿐 아니라 고향 모교의 대전고 총동문회와 여러 지역사업, 건설교통신문 회장까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삼화모터스 박영규 회장을 집중 조명해본다. _김봉운 기자



시골 학교의 자동차와 오토바이
일본인 학교에서 재능을 발견하다



학창 시절 일제 탄압에 맞서 싸웠으며 이후 정당 활동과 독재정권에 맞서며, 여러 운동으로 젊은 혈기를 왕성하게 사회에 쏟아부었다. 서른 살에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삶의 모든 것이 변해야 했다. 애국과 부조리한 사회에 정면으로 부딪쳤던 그에게 당장 가정을 책임질 무엇이 아무것도 없었다. 일제강점기 중, 고등학교를 다니며 일본이 운영하는 학교에 재학했다. 그 당시 시대 상황상 자동차와 오토바이는 대전이란 개발이 막 시작된 시골에서는 보기 귀한 물건이었으나, 교육용으로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한 대씩 있었다. 기계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여 누구보다 열심히 탐구하여 기술을 습득하였다. 해방 후 일본인 학교는 파견된 미군의 소유로 변경되면서 공부했던 내용을 미군 기술자들의 어깨너머로 학습한 결과 지역 내 최고의 자동차 정비사가 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운동과 정치 생활을 빼면 가지고 있는 기술은 자동차를 정비하는 것 이외에는 없었다. 미군이 버린 자동차를 주어다가 수리 및 개조하여 처음으로 택시를 만들었다. 이에 택시 2대로 회사에 입사하며 5년 안에 꼭 사장이 되겠다는 꿈을 시작으로 자동차와 재회하게 되었다. 고물을 주어 개조한 택시 2대로 시작하여 18대의 택시회사 사장으로 사업장을 만든 게 3년 만이다. 목표보다 빨리 현실에 옮길 수 있는 것도 미국과 일본의 기술을 습득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울에 있는 미군 부대에서 대전까지 차를 공수해 오면서 사업 수익을 얻은 그는 직접 운송하며 갖은 역경에 부딪혀야 했으며 이에 사업을 더욱 확장할 수 있었다. 매번 서울에서 대전으로 차를 운송할 때마다 거친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타이어를 3번 갈며 12시간 동안 운전할 만큼 그에게 성공하겠다는 의지는 너무 간절했다. 이러한 성공에 대한 열정은 사장이 되어야겠다는 목표의식은 빠른 시간에 결과로 도출되었다고 회상한다.



부가세 감면과 공제조합
택시업계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노력


당시 택시조합에 이사장직은 연배가 높고 경력이 오래된 선배들이 주로 맡는 직함이었다. 하지만 여러 부조리에 실증을 느껴 택시업계의 혁신이 필요하다 느끼며 서른 여덟의 젊은 나이에 이사장직에 출사표를 던졌다. 새로운 공약으로 내세워 그동안 개인 위주로 조합을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챙겼던 부분에 전부 공동분배를 한다는 강수로 사람들에게 어필하였다. 정당 활동의 경험은 정부 사람들과의 교섭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이에 원만한 결과로 끌어냈다. 조금씩 충남조합의 택시기사들의 업무 환경이 발전해지며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퍼졌다. 후배들의 간언과 서울의 이사장과 부산의 이사장 권유로 전국 택시연합회 회장에 출마하며 3선을 하며 체질개선에 박차를 가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10%의 부가세가 적용되었는데 나누어먹기 식으로 경합을 하는 상황에서 부가세 까지 부담하려고 하니 택시기사들의 부담은 컸다, 식구들의 처우개선을 통해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다짐은 중앙정부와 직접 담판을 짓게 되었으며 건설교통위원회, 재무위원회, 법사위원회 3개의 위원회와 회의 끝에 부가세 50% 감면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부가세 다음으로 큰 애로사항은 보험회사의 갑질과 횡포가 심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학교를 다니며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박 회장은 일본 택시업계와의 교류를 통해 선진 방식을 도입하기로 생각한다. 교통부에서 관리되어야 할 운송업체 보험체제는 우리나라에선 재무부에서 관리되고 있었으며 정경유착의 병폐로 그것을 바꾸기 힘든 구조였다. 하지만 죽어 가는 동지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택시업계의 가족까지 하면 200만이 넘는다. 이를 살리기 위해 끈질기게 정부를 설득한 결과 보험회사에 독선을 제지할 수 있었으며 새로운 공제조합의 제도를 도입하였다. 업계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는 택시업계를 시작으로 버스, 화물 등 모든 운수업체의 공제 조합에 새로운 틀을 만들어냈다.


대전고 총동문회, 대전의 새로운 문화축제를 만들다


서른넷부터 대고 동창회 부회장을 역임했었다. 지역사회 발전과 선후배 사이의 소통의 장을 새로 구축하여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단체를 만들고 싶었다. 단체의 파급력은 참가하는 회원의 수와 질에서 나오는 것을 젊은 시절 여러 운동을 통해 몸소 습득했었다. 이듬해 동창회 회장직에 오른 후 그동안의 생각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먼저 그 시작으로 전국에서 제일가는 동창 모임을 통해 대전의 새로운 문화의 축제를 열고 싶었다. 준비를 위해 일년동안 회원들을 밤낮없이 만나며 단발적인 일회성 행사가 아닌 매년 대전고 총동문회를 통해 대전의 새로운 화합의 장을 만들기를 원했다. 불철주야 총동문회 활동으로 대전에 새로운 바람을 넣으며 3000명 이상이 동원될 정도로 대전을 넘어 전국에서 으뜸가는 동문회가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연임이 되지 않는 총동문회 회장의 자리는 결국 열정과 헌신을 통해 정관을 수정하여 연임하게 되었고 새로운 장학 사업을 통해 대전의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우리 아이들을 후원하며 동문회의 새로운 사업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많은 공로로 대전고등학교에 헌신과 나눔을 후배들과 공유하기 위해 학교 교실을 따로 만들어 박 회장의 업적과 발자취에 대해 특별관을 따로 두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삼화모터스의 열정


삼화모터스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기술개발로 몸집을 키워왔다. 그중 하나가 고유가 시대의 국민들의 석유 가격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불철주야 시간을 아끼지 않고 휘발유, LPG 연료 차량을 CNG 천연가스로 개조, 장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CNG는 현재와 미래의 무한한 에너지로 그 매장량이 세계 각처에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고 무공해 청정 연료이다. 가격도 석유와 LPG 가스에 비해 놀랄 만큼 저렴하며, 저장 용기(탱크)는 탄소나노섬유로서 폭발 위험성이 절대로 없다. 100% 안전하고 국가 공공기관인 가스안전공사와 교통안전공단에서 엄격히 검사하여 그 안정성을 보장하고 있으며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장착할 수 있다. 53년이라는 반세기의 전통과 최신 장비 및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수입차 전문 일급 정비업체 삼화모터스의 주력 사업으로 고유가 시대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박 회장은 교육과 지역 문화에서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를 증대시키며 지역 내 선한 영향력을 발산하기 위해 대전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묵묵하게 활동 중이다. 장학재단을 설립하며 아이들이 앞으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게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다. 또한 글로벌 교육을 통해 앞으로 4차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대전 충청권이 대한민국의 중심 역할을 하길 꿈꾸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역군으로 성장하길 바라며 정성을 다해 후원하고 있다. 이에 지역사회를 위해 오늘도 뜨거운 열정을 태우고 있는 박 회장의 행보를 주간인물은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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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 건설교통신문 회장, ㈜삼화모터스 회장, ㈜능화건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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