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우리는 한 분야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을 ‘달인’이라고 부른다. 경남 진주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1급자동차정비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철 대표는 자동차의 고장 소리만 듣고도 어디가 문제인지 진단할 수 있을 정도로 자동차 정비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기계 수리에 한 평생을 바쳐온 그의 도전적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자. _정효빈 기자



쓰러져도 다시 한번…
수많은 고난을 이겨낸 의지의 소공인



“자동차 정비, 특히 차량 하체 수리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이라 책임감이 막중합니다. 정비업만 40여 년, 현재의 자리에서만 20년 넘게 일을 하다 보니 차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저를 찾아오는 단골손님만 해도 수십 명이죠. 완전히 망가지고 찌그러진 차를 원상복구 해내는 것이 엔지니어로서 느끼는 보람이에요. 정비를 완벽하게 끝마쳤을 때 밀려오는 뿌듯함과 희열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자동차정비소는 정비 작업의 범위에 따라 급이 나눠진다. 국토교통부에서 지정한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제4절 제131조에 따르면 자동차 정비업은 자동차종합정비업, 소형자동차종합정비업, 자동차전문정비업, 원동기전문정비업 총 4가지로 분류된다. 흔히들 말하는 1급정비소는 곧 자동차종합정비업을 뜻한다. 자동차종합정비업으로 분류된 정비소는 건설기계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자동차에 대한 점검, 정비 및 튜닝 작업이 가능한 곳으로, 모든 차량의 엔진 계통의 정비부터 고난도의 미션 수리, 판금 도색까지 가능하다.

진주시 상평동에서 자동차종합정비공장인 가야1급정비를 운영하고 있는 김영철 대표는 40년 가까이 자동차정비업에 몸 담아온 베테랑으로, 평생을 기계 수리와 자동차 정비 기술에 매진해온 인물이다. 질 높은 정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매 작업에 최선을 다할 것을 강조하는 김 대표는 ‘정비만 제대로 하면 됐던 과거와 달리, 이제 정비는 기본이자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때’라며 자신의 지론을 드러냈다.

김 대표의 호방한 인상과 넉넉한 미소를 보고 있자면 고생 없이 평탄한 유년시절을 보냈을 것 같지만,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이른 나이부터 일터에 나가야만 했단다. 한창 뛰어놀고 공부에 매진해야 했을 학창 시절, 어린 김 대표는 자전거수리방으로 향해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일을 시작했다. 모두가 업무를 끝내고 잠자리에 든 시간, 용접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밤늦은 시간 몰래 공업사로 향하곤 했다는 그. 자전거수리부터 시작해 농기계 업체, 공업사를 거치는 등 김 대표가 기름밥을 먹은 세월만 40여 년. 부단히 기술 습득에 매진하던 그는 군복무를 마친 후 농기계업체와 자동차정비 업무를 겸하며 본격적으로 정비소 운영을 시작하게 됐다.


“운영 초창기엔 정비소가 아니라 경찰서로 출근하곤 했습니다. 경찰서에서 교통사고 정보를 들으면 곧장 견인차를 끌고 사고 현장으로 향했죠. 그곳에서 사고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분들에게 다가가 어떻게 사고 처리를 해야 하는지 성심성의껏 도와드렸고, 자연스럽게 차 수리를 저희 정비소로 당겨오곤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정말 바쁘게 흘러갔어요. 틈나면 의자에 앉아서 잠깐 눈 붙이고, 하루에 두 세 시간 자면서 4~5년을 보냈죠. 그 시기에 집이 경매에 넘어가기도 하고, 집주인에게 쫓겨나는 일도 겪고…. 서러웠던 적이 참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한 평이라도 내 땅을 가져보리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덕분에 정말 치열하게 일했습니다. 현재의 정비공장도 처음부터 이렇게 넓은 규모는 아니었어요. 한 평, 한 평, 몇 해에 걸쳐 땅을 조금씩 사들였고 세월이 쌓여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이죠.”
굴곡진 세월을 지나 지역의 터줏대감으로 고향 진주에서 정비소를 운영한 지만 20년이 넘다보니, 현재는 김영철 대표의 손기술만 믿고 찾아오는 고객도 수십 명에 이른다. 그간 김 대표가 길러낸 자동차정비 엔지니어도 여럿. 새로운 사업장을 번듯하게 운영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고 있자면 뿌듯한 마음도 크다고. 오랜 경륜의 현장 전문가인 김 대표는 과거 국제대학교에서 자동차정비 강의를 진행하기도. 당시 실제 엔진 기기 하나 없이 실습에 임하는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엔진 3대를 학교 측에 기부하기도 했다고. 엔지니어로서 자부심이 큰 만큼, 업계 후배 양성에 힘쓰던 시절이 아직까지도 그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단다. 더불어 김 대표는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업계 상황이 어려워지는 것을 볼 때 안타까움이 크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크고 작은 애로와 고충이 많습니다. 업체 수도 많고 워낙 경쟁이 치열한 업계라, 서로 헐뜯고 끌어내리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 같아 지칠 때도 많고요. 또한 표준공임에 훨씬 못 미치는 서비스단가로 업체끼리 끝없이 가격 경쟁만 하다보면 서비스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 지속될까 걱정도 되고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진주 남강청실회 창립 등 꾸준한 지역봉사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에 보탬 되기를…”


자신의 고향 진주에서 업을 오래 지속하다보니, 자연스레 지역민을 향한 마음도 각별해졌을 터. 실제 김영철 대표는 지역 곳곳에서 꾸준히 봉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모교인 진주남중학교의 최연소 장학회장을 지내며 후배들에게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었고, 지역 대표 봉사단체인 진주남강청실회를 창설해 회장직을 겸하며 이웃을 향한 꾸준한 봉사를 펼쳐온 김 대표. 김장 나누기, 벽화 그리기, 집 수리, 집 짓기 봉사를 꾸준히 이어오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지역민들을 보다 가까운 곳에서 만나고, 단체가 와해되었던 시절엔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발 벗고 나서 다시금 회원 수 90여 명의 건실한 지역 봉사단체로 이끌어 온 그인 만큼, 남강청실회에 가지는 애착도 남다르단다.
“청실회 활동을 통해 지역 이곳저곳을 들여다볼 수 있어 보람이 큽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제가 어려운 형편 때문에 못 배워놔서, 똑같이 어려운 후배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모교인 진주남중학교의 장학회장으로 나서게 되었어요. 제가 학창시절 씨름부 활동을 한 적도 있어서 씨름부 후원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한창 성장기에 운동하는 아이들이 배불리 먹고, 지치지 않고 열심히 운동했으면 해서 그 친구들 밥 먹인다고 돼지 한 마리를 통으로 잡은 적도 있지요(웃음). 제가 워낙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하다보니, 가진 것을 나누면서 이웃들과 소통하는 것이 저의 낙입니다.”

누구보다 더욱 간절하고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달려온 김영철 대표의 40여 년.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이냐’ 물으니, 소파에 등을 기대며 ‘이제는 퇴직하고 싶다’며 웃어 보인다. 오랜 세월 앞만 바라보며 부단히 달려온 그였기에, 이제는 후배 엔지니어에게 자신의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해 사업체를 잘 물려주는 것이 목표라고. ‘아직도 공장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저 하나만 바라보는 직원들 때문에 정비소를 떠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직원들을 믿고 후련한 마음으로 이곳을 떠날 용기를 내야할 것 같다’라며 김 대표가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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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업력의 노련함, 신뢰의 자동차 정! 지역사회와 상생하며 이웃사랑 실천하는 경남 자동차정비업계 터줏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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