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최근 손인호 손건축사 사무소 대표는 대구광역시장애인골프협회 정기 대의원 총회에서 제5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취임한 손 회장은 “앞으로 ‘투명 행정’, ‘친선 도모’, ‘소통 강화’-3대 공약 실천으로 조직 활성화와 발전에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며 “최고의 장애인 골프협회를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_박미희 기자


손인호 회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CEO다. 경북 의성군에서 5남1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역경을 딛고 청운의 꿈을 이룬 사람이다. “진로를 고민하던 제게 중학교 은사님께서 ‘넌 커서 건축 설계 쪽으로 나가라’고 조언을 해주시더라고요. 이후로 건축 설계에 뜻을 두고 안동공고 건축과에 진학해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그 시절에 모두가 그랬듯이 어려운 가정형편에 학업보다는 취업에 뜻을 두고 진로를 선택했어요. 군에서 해병대 제6여대 공병 참모실 설계 담당으로 일한 경험이 훗날 사회생활에 좋은 밑거름이 됐습니다. 일일이 손으로 설계 도면을 그리던 때부터 일을 시작해 캐드 작업으로 도면을 그리는 지금까지… 한결같이 건축설계 외길만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니 제게 건축은 천직(天職)이나 다름이 없죠(웃음).”

한밤중에 시작해 먼동이 틀 때까지... 그는 늘 새벽을 밝히며 설계 작업에 매달렸다.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우며 구력을 쌓았던 시절, 그는 한우물을 파는 뚝심으로 어려움을 버텨내던 청년이었다. “지금이야 캐드로 작업을 하니, 설계 도면에 차이가 별로 없지요. 하지만 일일이 손으로 도면을 그려내던 시절에는 설계 도면만 봐도 누가 작업했는지 금세 알 수 있을 만큼 차이가 컸어요. 그러니 선 하나, 글자 한 자 새기는 일도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습니다. 견고하고 완벽한 작업으로 대기업 협력사들과도 원만하게 작업을 해나갈 수 있었지요.”     

그렇게 유명 건축설계 사무실에서 책임자로 탄탄한 경력과 실력을 쌓은 그는 98년 건축사 전문자격을 취득하고 99년, 대구에서 손건축사 사무소를 개업했다. IMF 외환위기로 건설경기가 하강하던 시절에 과감하게 창업에 도전한 것. “뒤돌아보면 IMF 외환위기 때 모두가 다 어려웠지요. 하지만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는 생각으로 끝없이 도전하고 노력해왔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딛고 창업을 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주위의 좋은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는 참 복 많은 사람이죠.”
그는 이후 ‘신용’과 ‘정직’을 바탕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정도경영(正道經營)에 뜻을 두고 업계의 신용을 쌓았다. 맡겨진 프로젝트는 어떻게든 성공해내는 근성은 사업 성공의 밑바탕이 되었다.



30년, 뚝심 있게 외길을 걸어온 손인호 회장에게 건축 설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을 물었다. “건축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입니다. 의사는 한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건축사는 안전한 설계로 수백 명의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어요. 일례로 90년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한국사회에 안전한 건축 설계의 중요성에 대해 시사 하는 바가 컸어요. 이처럼 설계, 시공, 관리에 이르는 전 단계에서 ‘안전’을 제1의 원칙으로 한다면 큰 사고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남 1녀를 둔 단란한 가정의 가장, 성공한 건축가로 탄탄대로를 걷던 그의 인생에 갑작스레 찾아온 뇌경색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8년 전에 장모님과 장인어른, 아버님의 상을 연이어 치르고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졌어요. 지나친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죠. 눈을 떠보니 중환자실이더군요. 사지를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있는데 ‘이렇게 인생이 끝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지만 누구보다 나약한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었지만 매일 8시, 병문안 시간이 되면 엄마 손을 잡고 침대 머리맡에서 우는 어린 딸아이를 보며 ‘다시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지를 가지게 됐어요. 그렇게 다시 일어서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뇌경색으로 잃은 신체의 감각은 컸다. 어눌한 말투, 제대로 수족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도 그는 고난에 굴복하기 보다는 딛고 일어서기 위해 용기를 냈다. “제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걸  모르는 지인이 전화통화를 하면서 저한테 ‘젊은 사람이 왜 낮술을 먹었냐’며 퉁을 놓더라고요. 그땐 술을 먹었냐고 착각할 정도로 어눌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어요. 다시 정상적으로 말하기 위해서 휠체어를 타고 응급실 문 앞에서 대본을 크게 소리내어 외쳤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제게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책임질 가족들을 생각해 다시 일어설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3년간 재활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10년 앞서 재활에 매진해온 환우가 권한 운동은 수영. 폐활량을 높여주고 관절에 무리가 안가는 수영을 통해 그는 건강을 조금씩 되찾았다. 이후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의 권유로 그는 파크골프를 시작하게 되었고 골프를 통해 오랫동안 잃었던 자유를 맛보는 느낌을 받았단다. “잔디밭을 걸어 다니니 정말 날아다닐 것 같았어요(웃음). 예전에도 골프를 쳤지만 뇌경색으로 쓰려진 이후로는 골프를 치지 못했죠. 그러다 파크골프를 치러 잔디밭을 걸으니 날아갈 것 같은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점점 심신이 회복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죠. 테이블 위에 올려두지 못하던 팔도 골프를 치고선 많이 회복해 정상적으로 돌아왔어요.”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면서 골프를 치게 된 그는 필드에 서면 어느 때보다 행복한 표정이다. 다시 건강을 되찾으면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기분이라고. “상쾌한 필드에 나오면 정말 기분이 좋아요(웃음). 골프를 통해 다시 건강과 삶의 활력을 되찾았죠. 골프를 치면서 장애인 골프협회를 알게 되었고 조금씩 봉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많은 분들이 저처럼 골프를 통해 건강과 삶의 활력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유의 친화력과 따뜻한 인간미로 기억되는 손인호 회장은 한평생 봉사를 실천해왔다.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원 법사랑위원회 수석부회장, 대구 바르게살기운동 달서구협의회 회원, 대구광역시청 건설기술 심의위원, 대구 남구청· 북구청·서구청·달서구청 건설기술 심의위원, 대구건축사회 디자인 개선 자문위원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한때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누구보다 자신 있게 살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40대 후반 찾아온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제2의 삶을 시작하게 됐어요. 아프기 전부터 해오던 봉사활동도 많지만, 재기하고 나서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이 더 애틋해졌어요. 앞으로도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습니다(웃음).” 

이번 장애인 골프협회 회장 취임도 장애인 골프의 저변 확대와 조직발전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손 회장은 ‘투명 행정’, ‘친선 도모’, ‘소통 강화’라는 3대 공약 실천으로 최고의 장애인 골프협회를 만들어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새로운 임원진과 협회 행정을 회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것입니다. 그리고 연 3회 이상의 친선경기를 개최해 조직 화합과 활성화를 꾀할 계획이에요. 유관기관과의 소통 강화를 통해 조직발전을 위한 새로운 원동력을 마련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장애인 골프의 저변확대를 기여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장애인 골프협회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웃음)”


봉사와 나눔으로 여는 인생 2막. 그는 어느 청년 못지 않은 열정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대구공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영남대 경영학 대학원 과정을 다니며 만학의 열정을 꽃피우고 있는 것. 겨울을 나고 새 봄을 맞이하는 나무처럼 그는 청신한 얼굴의 오월 같은 청춘이다. “어찌보면 삶은 늘 위기죠. 하지만 위기에는 고난만 있는 것 같지만, 위기 속에 기회가 있습니다. 삶의 역경을 맞이하는 순간, 좌절하기보단 진정한 삶을 가치를 느끼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1113]


주간인물(weeklypeople)-박미희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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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봉사로 여는 인생 2막 ‘뇌경색 딛고 재활에 성공한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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