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봄볕이 따사로운 4월, 한복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 대전 정부청사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300여명의 군중 앞에서 선 남성에게선 결연함이 느껴진다. 이 남성은 미국 뉴욕 주 원각사 대작불사, JSA 공동경비구역 내 무량수전,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내 한국학연구소의 정자 조성 등 빼어난 걸작으로 세계에 한국전통 건축문화의 우수성을 알린 이광복 도편수다. _박미희 기자


21세기, 한국전통 건축문화를 대변하는 그가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회원들과 거리로 나선 건은 홀대받는 문화재 수리기능인들에 대한 법률 개정안 통과를 위해서다. 한국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문화재기능인들의 처우와 환경은 매우 열악한 실정. 무엇보다 이들을 거리로 나서게 한 것은 문화재기능인들의 실적 관리, 경력증 발급 등의 평가 업무를 문화재청이 문화재수리협회에 위탁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문화재수리업체는 문화재수리기능사 자격이 없이도 사업자등록증을 낼 수 있는 경영인입니다. 경영인들의 모임인 문화재수리협회에서 한평생 현장에서 직접 문화재를 만지고, 수리하는 기능인들을 평가한다는 것은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수리·보존하는 기능인들의 자긍심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한국전통문화의 발전을 위해서 기능인들의 경력관리, 자격 인정교육을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로 이관해야할 것입니다.”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는 문화재 보전수리기능 전승개발을 위해 1988년 설립된 문화재청 소관 사단법인이다. 24개 직종, 전국 9,111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단체로 문화재 보수, 복원을 위한 봉사활동과 문화재기능교육을 주로 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12명, 무형문화재보유자 29명을 보유한 단체로 한국전통문화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문화재기능인들의 모임이다.

최근 제13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광복 도편수는 문화재기능인들의 권익향상과 처우개선, 올바른 문화재 정책 마련을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는 일관성 없는 문화재 정책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놨다. “현재 문화정책은 지정 문화재를 관리, 보존하는 방향으로만 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새로운 문화재를 만드는데 서구식 경골목구조 등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복구되고 있는 문화재도 서양식 건축물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어요. 아직 지정되지 않는 문화재, 그리고 전통기법으로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해야할 것입니다. 더불어 지정된 문화재는 문화재청 소관이고, 이외에는 전부 국토부 소관이라고 해서 외면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이 시대의 문화재까지 보존하고 관리하는 정부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 내린 솜씨, 이광복 대목장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수작으로
한국전통건축의 아름다움 선보여



베를린 자유대 한국학연구소 상량식에 참석한 주독 남북대사와 함께한 사진

21세기, 한국전통건축문화를 대변하는 이광복 도편수. 그의 고향은 전남 진도다. 일찍이 근방에서 솜씨 좋은 목수로 이름을 알린 아버지 밑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끌과 정을 가지고 놀며 자랐다. 부친을 닮은 뛰어난 재주와 남다른 눈썰미를 타고난 그는 1977년 목포공고 건축학과를 진학해 1978년 ‘기능장’에 올라 일찍이 두각을 나타냈다. 건축목공 분야 학생기능경기대회 금상, 지방기능올림픽 은상 등을 수상하며 촉망받는 기능인으로 주목받은 것. 이후 사회에 나와 직업훈련원 교사로 기능인들을 교육해 해외로 파송하는 업무를 맡았고, 대학 행정직에 종사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 하지만 사회인으로서 안정감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공허함은 채울 수가 없었다.

건축에 대한 열망을 잠재우지 못하고 그는 돌연 전통 목수의 길로 들어섰다. 한국전통건축의 대가 조원재, 이광규 선생(중요무형문화재, 대목장)의 맥을 잇는 故 조희환 도편수(대목장) 문하에 입문해 기술을 사사받은 것.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쟁쟁한 목수들 사이에서 늦깎이로 시작한 그가 두각을 나타낸 건 뜨거운 예술혼과 빼어난 솜씨 때문이었다. 누대로부터 내려온 지혜와 스승의 가르침, 현장에서 체득한 지식을 접목해 진일보한 기량을 갖추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것. 스스로 담금질을 하며 그는 뛰어난 기량을 지닌 장인으로 다시 거듭났다. “장인정신이란 비단 무언가를 잘 만들기 위한 노력에 그치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대로부터 내려온 지혜와 수년간 현장에서 체득한 지식, 그리고 아름다운 솜씨를 지니는 것이 장인의 덕목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한국전통문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구현하고자하는 휴머니즘(humanism)을 지니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장인정신[匠人精神]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전통 목공예에서 구규법과 양판법을 동시에 쓰는 목수는 전무하다. 두 가지 방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솜씨를 발휘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는 구규법과 양판법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었기에 남들보다 기능 습득이 빨랐고, 고차원적인 작업을 해낼 수 있었다. 


정교한 기술과 세련된 기법을 선보이는 匠人(장인)


그의 남다름을 일찍이 알아본 이가 있었으니, 국보 1호 숭례문 중건 공사 책임을 맡고, 승보종찰 송광사 불사를 지휘한 지유 신영훈은 한국전통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인물. 그가 이광복 도편수의 빼어난 솜씨와 뛰어난 기지를 인정한 건 2003년, 전북 임실 대도대한 팔각원당 천지원 신축 현장에서다. 한국전통 건축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되는 작품인 팔각원당은 현존 목조건축물 가운데서 유일하게 귀접이 법식을 사용해 축조됐다. “귀접이 방식이란 팔각지붕 아래 나무를 ‘ㅅ’자로 덧댄 것으로 지붕의 무게를 효율적으로 분산하는 건축법입니다. 1mm만 어긋나도, 16mm가 벌어져 기둥이 버티기가 어려워요.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교한 기술과 세밀함이 필요한 작업이죠. 대게 추녀 4개를 걸려고 해도 이틀이 걸리는 작업을 한나절 만에 해내자, 스승님은 ‘이제 도편수답다’며 환하게 웃어주더군요(웃음).”

이때 지유 신영훈은 그에게 목운(杢雲)이라는 호를 내린다. 목운(杢雲), 즉 ‘나무에 문리가 틔였다’는 뜻으로 전통 목수에게는 최고의 찬사이자, 새로운 시대를 이끌 도편수 탄생을 말하는 순간이었다. 

도편수[都邊首]란 17세기부터 궁궐이나 불교사찰을 짓는 공사의 기술자 책임자를 일컫는 말로, 흔히 대목장(大木匠)으로도 불린다. 현재는 실내의 가구 등을 제작하는 소목장(小木匠)과 달리 대목장(大木匠)은 전체의 뼈대를 제작하는 총괄 기술자다. 집 짓는 일부터 기술, 설계, 감리를 조율하는 종합 예술가로 기술자들의 우두머리를 총칭한다.

당대의 건축문화를 말해주는 도편수. 그 이름에 걸맞게 그는 한국전통건축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낙산사 원통보전 내부 불단 공사와 7층석탑 주변 정비사업 빈일루 등 4채 중건 공사, 설악산 봉정암 적별보궁 신축공사, 여주 신륵사 극락보전 해체보수공사, 서울 은평구 진관사 함월당 등 10채 신축공사, 강화학사 재민가, 서울 불광사, 미국 뉴욕 주 원각사 대작불사, 중국 연길시 연성각 신축공사, JSA 공동경비구역 내 무량수전, 미국 워싱턴 메도우락 공원 평화의 종각 건립 및 공원 조성공사, 독일 베를린자유대 내 한국학연구소의 정자 조성 등 걸출한 작품을 남긴 것.


통도사 미주포교당 뉴욕 원각사 선방



한국건축의 미는 자연을 닮은 현수곡선
건축은 한민족의 정신문화를 담아내는 그릇
전통문화의 DNA를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은 아름다운 수작으로 한국전통건축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이렇듯 세계인을 매료한 한국전통건축의 아름다움, 그 핵심은 무엇일까. “한국 건축미의 핵심은 선입니다. 한옥의 선은 높은선도 수평선도 아닌 현수곡선(顯垂曲線 : 줄의 양 끝을 고정하여 자중에 의해 아래로 처진 상태의 곡선)이에요. 한옥의 지붕, 특히 기와지붕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요. 용마루선와 추녀마루를 예로 들 수 있죠. 이렇듯 한국적인 선을 어떻게 자연에 대입해 맞춰놓느냐가 관건입니다. 한국전통건축은 적재적소(適材適所), 즉 있을 때 있고 없을 때 없는 조화로움이 있어요. 이렇듯 조화로운 배치는 눈의 착시현상을 일으켜 공간을 보다 다채롭게 이해하게하고,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지요.”

한국건축문화는 한국정신문화와 그 맥(脈)을 함께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서양의 건축물 중에서 초석, 기둥, 지붕을 다 갖고 있는 건축물은 뭘까요? 바로 신전건물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한국전통건축은 웅장한 궁궐부터 초로에 지어진 초가집까지 초석, 기둥, 지붕으로 이뤄져있습니다. 이 방법은 벽면을 바로 쌓아올리는 현대적 건축기법에 비해서는 효율성이 떨어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적인 건축법을 고집하는 건 한국인의 정신이 반영되었기 때문이죠. 3차원적인 건축문화에는 단군신앙으로부터 비롯된 한민족의 천손사상이 녹아나 있어요. 한편 한국정신문화의 한축을 이루는 불교철학도 한국전통건축에 녹아있습니다. 한국전통건축에는 도리(道理), 이른바 보편적 진리가 담겨있어요. 세상의 이치를 뜻하는 서까래와 그것을 떠받치는 도리에는 이런 우주만물에 대한 보편적 진리와 한민족의 세계관이 담겨있습니다.”

많은 걸작 중에서 단연 화제작은 현재 작업이 진행 중에 있는 미국 뉴욕 주 원각사 대작불사다. 이 작품에는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자하는 이광복 도편수의 정신이 담겨있다. “전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문화재 정책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뉴욕 주 원각사 대작불사는 한국전통건축기법을 사용해 850년 된 거대목을 대들보로 사용해 85평 규모로 지어지고 있어요. 옛날에는 이렇게 큰 규모로 불전을 지은 일이 없죠. 전통 기법만 사용해서는 이처럼 큰 규모의 건축물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현대적 건축기법을 가미해야만 비로소 건축물을 완성할 수 있어요. 하지만 본질적으로 전통에 흐트러짐 없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뤄내는 것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전통이란 그저 옛것을 답습하는데 그치지 않고 현대와 조화를 이뤄 새롭게 계승·발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무엇을 문화재라 규정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도 우리가 함께 고민을 해야 해요. 문화재청은 오래 전에 지어져서 이미 지정된 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하는데 만 그치지 말고 이 시대에 지어지고 있는 새로운 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해야할 때입니다. 우리 안에 내재한 문화적 DNA를 이어가는 일, 제 모든 걸 걸고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명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한국의 문화적 DNA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이라며 자신을 설명했다. 한국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어떤 변화의 움직임이 있어야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큰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아직도 한국은 학력주의 사회에 머물러있어요. 학문에 매진해 석박사를 취득한 학자들만이 전문가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젠 문화재 보존 현장에서 한 평생을 보낸 장인들도 전문가로서 그 전문성을 인정해야할 때입니다. 학문의 테두리 안에서만 전문지식을 따질 것이 아니라, 선조 때부터 내려온 지혜와 수십 년간 현장에서 체득한 지식과 빼어난 솜씨를 갖춘 장인들의 지식도 진정한 의미의 지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재 정책을 마련하고 행정을 집행하는 자리에서 장인들이 설 자리를 찾아볼 수가 없어요. 실례로 도편수라 할지라도 현장 대리인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참담한 현실입니다. 그런 현실에서 점차 문화재기능인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어요. 누대로 내려온 선조들의 지혜, 오랜 세월 동안 체득한 살아있는 지식, 고장 마다 색깔 있는 장인들의 아름다운 솜씨를 발휘하고, 문화재 기능인의 명맥을 이을 수 있도록 현실적인 문화재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01.07: 영국 대영박물관 한국실 신축공사 참여
•08~현재: 목운한옥 대표
•‘05.03~’06.04: 북촌 백인제가옥 해체수리 보수 공사 도편수
•‘05.02~’05.12: 서울 고궁박물관 세종 때의 자격루 복원공사 도편수
•‘09~현재: 지용한옥학교 교수
•‘10.02: 서남대학교 건축과 졸업
•‘11.10~’12.02: 국토해양부 시행 <명지대학교> 건축사 교육 도편수
•‘11.03~’11.12: 서울시 문화재  김형태가옥 전면 해체수리 도편수
•‘13.10: 서울시 건축장인상(한옥분야) 수상
•‘13.07~현재: 뉴욕 원각사 대작불사 신축 도편수
•‘13~현재: 한옥평가 특수감정인
•‘14: 국토교통부 <한옥시공중간관리자과정>교수
•‘15~현재: 서울시 건축위원회 및 한옥위원회 위원
•‘16~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 대목분야 객원교수
•‘17.3: 조계종 총무원장 감사패 수상
•‘19.02.~현재: (사)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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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인물(weeklypeople)-박미희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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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복 사단법인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이사장 / 도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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