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 몇 평 남짓한 작은 작업실에는 새벽녘을 밝히는 빛은 채 깃들지 않았다.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 조용한 적막이 흐르는 곳에서 몇 시간씩 똑같은 자세로, 자신의 예술혼을 쏟아내는 이 사람. 딱딱한 돌에 새로운 생명력을 새기는 전각 작가, 이세웅 작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전통에 기반을 두되, 재료와 형식에 있어 파격을 준 작품으로 예술계에 신선한 활력이 되고 있는 그를 주간인물이 인터뷰했다. _박미희 기자

이세웅 작가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젊은 전각 작가다. 돌에 일일이 작은 글씨를 새겨 넣는 전각은 깊이 있는 예술성과 고도의 작업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 서예를 전공한 예술가들 사이에도 전각을 전공으로 삼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젊은 작가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올해로 20년, 오로지 전각 하나에 자신의 예술혼을 불어넣고 있는 이세웅 작가는 한국 전각 문화를 이끌 차세대 주역이다.
어려서부터 일찍이 서예에 눈을 떠 남다른 재능으로 미술계가 기대하는 기대주로 관심을 받았던 그는 95년 원광대학교 순수미술학부 서예학과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인 꿈을 펼쳤다. 자유자재로 다양한 서체를 아름답게 표현하던 그가 어렵다는 전각에 천착(穿鑿)하게 된 건 운명 같은 일이었다. “군 제대 후, 교수님의 제안으로 중국 유리창을 견학하게 됐어요. 한국으로 치면 인사동 같은 곳인데, 그곳에서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치바이스(제백석)의 전각 작품을 모은 책을 보게 됐어요. 가난한 목수였던 제백석은 40대부터 전각에 몰두하게 됐고 중국 전각의 최고봉이라 불리며 당대 전각 문화를 이끈 대가죠. 그의 전각 작품을 모은 책을 보고 난 뒤 3~4일 연속, 꿈에 제백석 선생이 나오는 거예요. 한동안 인상적인 그 꿈을 잊지 못하고,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전각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죠.”



전각은 고도의 예술성을 요하는 작업이다. 다양한 서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서예의 기본기부터 사군자, 조각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망라하는 배경지식이 필요한 예술 분야다. 하지만 전각의 또 다른 매력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예술 작업에서 나온다고. “누군가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웅크린 채 돌에 글씨를 새기는 저를 보면 ‘뭐 하러 저런 고생을 사서 하나?’하고 생각할거예요(웃음). 하지만 작가는 머릿속에 담긴 이미지를 전각으로 표현하는 그 행위 자체를 사랑하죠. 조금만 잘못해도 쉽게 깨지기 쉬운 돌에 한획, 한획 정확한 글씨를 새기는 일은 정교한 기술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물의 가치는 상당히 크다고 봐요.”

수없이 많은 새벽을 밝히며 혼을 담은 젊은 작가의 전각 작품. 전통적인 전각 기법에 충실한 전통적인 작품부터 다양한 디자인 기법을 가미한 현대적 전각 작품까지…….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데, 모두 수많은 반복과 연습으로 빚어진 인고의 시간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다. 그는 “국당, 조성주 선생의 문하에 입문해 사사받았다”며 “선인들의 뛰어난 작품을 수없이 모방하는 과정에서 탄탄한 기본기를 다질 수 있었다”는 말을 전했다.
천자문의 첫 글자인 하늘 천(天)부터 마지막 자인 어조사 야(也)까지...전체를 일곱 번을 반복해 측관(돌 옆면에서 새긴 전각, 사람의 성명, 생년 등을 주로 기록한다)에 새긴 작품은 그의 피땀 어린 노력을 보여준다. “돌 세 개를 사서, 천자문을 새기고 연습하기 위해 썼어요. 다 쓴 요령석을 다시 쓰기 위해 사포로 밀고 다시 천자문을 새기기를 일곱 번. 그렇게 피나는 연습을 통해, 인면보다 깨지기 쉬워 쉽게 새기기 어렵다는 측관에 천자문의 모든 자를 새기는데 성공했습니다. 스승님께서 ‘탁본을 떠 학생들의 교본으로 쓰겠다’며 크게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이렇듯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이세웅 작가의 작품은 한마디로 독보적이다. 전통 전각에 바탕을 두되, 재료와 형식에 있어 파격을 추구했다. 그 대표작이 안중근 의사의 이미지를 팝아트 적으로 활용해 전각 작품과 대비적으로 배치한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다. 이런 그의 시도는 백범김구 선생의 이미지를 디자인해 전통적인 전각 작품과 함께 배치한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이 작품과 얽힌 저작권 문제는 작가, 이세웅을 한 뼘 성장시킨 동력이었다고. “제주도의 한 스님께서 제 도안을 그대로 새긴 작품을 출품해 정부 주최 대회에서 수상을 했어요. 스님께서는 저작권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연관된 선생님은 문제가 불거지자 얼마간의 사례금으로 주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하려고 하셨어요. 당시 저는 학생 신분이었지만 사건을 무마하려고만 하는 기성 작가들의 모습에 실망해, 당당히 저작권을 요청했고 해당 작품은 수상이 취소되는 결과로 귀결이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저작권 문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작가로 한 뼘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표작을 꼽아보라고 하자, 그는 일본 산케이국제서전 전각 부문 대상 수상작을 꼽았다. 일본 산케이신문이 주최하는 일본산케이국제서전은 전 세계 신진 작가들의 등용문이자 1만 여점 이상의 출품작이 모이는 큰 대회다. 그곳에서 전각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작가들을 제치고 한국인이 대상의 영예를 거머쥐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 그 일화에 대해 묻자, 이 작가는 한때 생활고에 시달렸던 어려웠던 시기를 회상했다. “작품을 출품하고도 한동안 수상 소식을 듣지 못했어요. 번번이 한국 미술 대전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시던 터라 수상은 꿈도 못 꾸고 있었는데 작품을 출품하라고 권유한 한 지인을 통해 대상 수상 소식을 듣게 됐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워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 수상식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몇 년 뒤 지인을 통해 상패를 받게 되었습니다. 작품 활동을 해나가기 어려운 시기였지만, 작가로서 가장 열심히 매진하던 때, 큰 힘이 되었습니다(웃음).”
전업작가로 전각만을 고집하기란 한국 문화계의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다. 이세웅 작가는 “원광대학교 순수미술학과 서예과는 초등학교 때부터 서예를 배워온 학생들 중에서 각 도를 대표하는 학생들을 뽑아 구성한 곳”이라며 “그럼에도 졸업생 40여 명 중에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저와 다른 한 친구, 단 둘뿐이며 학과는 폐과가 될 위기에 처해있다”며 한국에서 순수 예술가로 활동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토로했다.



아시아예술 경영협회 사무국장 및 전각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젊은 작가들의 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이세웅 작가는 한국 예술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대중들의 인식의 변화가 수반돼야한다는 말을 전했다. “작가의 등급별로 작품 가격이 합리적으로 매겨지는 중국, 일본 미술 시장과 달리 한국 미술시장에서 가격표가 붙어진 작품을 찾아보기란 상당히 어려워요. 중국, 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 해봐도 한국 미대 교수님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역량은 상당히 뛰어납니다. 하지만 정작 대학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의 가치를 어떻게 매겨야하며, 어떻게 판매해야하는지를 가르치는 수업을 찾아보기란 어렵습니다. 이후 미대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전업작가를 꿈꾸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죠. 그렇다면 한 해에 전국 미대 졸업생이 수만명에 이르는 시대에 젊은 작가들이 재능을 채 펼치지도 못하고 수장(水漿)되고 마는 것이 한국 예술계의 현주소입니다. 한국 예술 문화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작품에 대한 합리적인 가격 설정 기준이 마련되어야하고, 대중들이 작가의 작품을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미술시장의 질서가 마련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설고 이세웅 작가, 그의 뜨거운 예술혼을 담은 작품활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다양한 소재에 대한 연구와 디자인 적인 요소를 응용한 참신한 작품 세계를 펼칠 계획이다. “전각은 중국에서 수입하는 돌을 주로 사용해요. 중국에서 수입하는 것이다 보니 가격 부담도 컸고, 사이즈와 규격에 한계가 많았습니다. 이런 기존의 틀을 깨고 다양한 소재에 대한 연구와 디자인적인 요소를 응용한 참신한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갈 계획이에요. 작가의 예술혼을 담은 아우라 있는 작품, 한국의 고유한 정체성을 담은 개성 있는 작품활동을 펼쳐나가고 싶습니다!” 




•(현) 설고전각팩토리 대표
•아시아예술경영협회사무국장 및 전각자문위원
•원광대학교 순수미술학부 서예학과 졸업
수상경력
•예술의 전당 청년작가전 전각부문 초대작가 선발
•일본 산케이국제서전 전각부문 대상
•한·중 국제서법예술대전 전각부문 최우수상
•제1회 월정사 사경대회 전각부문 최우수상
•제1회 잉크아트 인터넷 세예대전 전각부문 금상
•전국휘호대회 전각부문 특선 2회
•월간서예대전 전각부문 특선 2회
•경기도미술대전 전각부문 특선
•대한민국서도대전 전각부문 특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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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 딱딱한 돌에 예술혼 담아 숨결을 새기는 젊은 작가 - 이세웅 설고전각팩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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