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우리나라에서 즐겨 마시고 소비되는 차(茶)의 대부분은 녹차다. 뜨겁게 달군 솥에 찻잎을 골고루 뒤집어가며 익힌 후, 꺼내서 식히고 다시 덖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만들어진다. 같은 차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도 녹차가 가장 많은 부분을 자치하는데, 제조 방법이 달라 서로 다른 맛과 향을 지닌다. 중국차는 향으로, 일본차는 색으로, 한국차는 맛으로 마신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미처 모르고 있던 한국차의 매력을 만끽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바로 우리나라의 대표 차 고장, 경남 하동군이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차 시배지인 이곳에는 한국 전통 차의 진미를 느낄 수 있는 ‘조태연가(家) 죽로차’가 있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1대 조태연옹, 그리고 2대 조성호 대표에 이어 현재 3대째 차를 만들어오고 있는 조윤석 대표를 만나 그가 전하는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_곽인영 기자



우리나라 최초로 녹차 상표를 낸 ‘조태연가(家) 죽로차’
선친의 가업정신 아래
정선된 맛과 깊은 향, 지조 있는 푸른 찻잎색 담아내


1962년 우리나라 최초로 녹차 상표를 낸 ‘조태연가(家) 죽로차’는 경남 하동군 내에서도 내로라하는 녹차 명가다. 올해로 57주년을 맞이하지만 이곳의 역사는 그보다 더 깊다. 해방 후 녹차재배는 커녕 있는 차나무도 모두 파내고 유실수를 심던 때 일본 오이타에서 제다 일을 했던 조윤석 대표의 할머니는 한국에 돌아와 자신만의 기술로 오롯이 한국전통차를 개발, 차밭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하동군의 화개면으로 들어왔다. 녹차 상표를 내기도 전이었다. 그때부터 차를 만들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조태연가에서 만들어지는 죽로차는 대나무 밭 사이사이에서 아침 이슬을 머금고 자란 싱그러운 차나무의 잎이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선친께서는 항상 “올곧지 않은 차는 내놓을 수 없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선친의 가업정신 아래 상품이 아닌 작품이라는 긍지를 갖고 항상 자만하지 않고 깊은 향과 정성 어린 손맛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어려운 시련들을 극복해가며 전통 차의 맥을 이어온 조태연가 죽로차는 자만하지 않는 장인의 정직한 손을 거쳐 탄생한다. 그 속에는 정선된 맛과 깊은 향, 지조 있는 푸른 찻잎색을 띈다. 특히 곡우 이전의 어린 찻잎으로 덖은 우전은 은은하면서 순한 향을 가지며 최고급 녹차로 손꼽힌다. 5월 중순에 채엽한 찻잎을 덖은 대작 또한 구수한 맛이 감돌면서 친밀한 맛을 낸다.
“1994년 편찮은 어머니의 일손을 돕기 위해 대전에서 하동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때는 지금까지 차를 만들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웃음) 녹차 상품 포장만 2년을 하면서 하나씩 작업 과정을 손에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녹차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25살에 다시 수능을 치고 식품공학을 전공했어요. 좋은 원료를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대학원에서 자원식물개발을 공부하기도 했죠.”
조윤석 대표는 현재 1대 조태연옹, 그리고 2대 조성호 대표에 이어 하동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받아 차를 만들고 있다. 어린 시절 차를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난 조 대표에게 찻잎 따기는 용돈벌이였고 찻물은 동상에도, 감기에도, 배앓이에도 빠짐없이 쓰이던 만병통치약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차를 만드는 환경이 몸에 익고 촉각, 후각, 미각, 손재주와 눈썰미까지 제다인의 자세를 고루 갖출 수 있었다.
“다시 하동으로 내려온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선친께서 처음으로 저를 차를 만드는 곳으로 불러 가만히 그 과정을 지켜보게 하셨어요. 그렇게 또 6년이 흘렀습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차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차를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술과 정신이 뒷받침해줘야 하지요. 아마도 선친께서는 제 스스로 차가 무엇인지를 깨달기를 바랬던 것 같습니다.”
작은 천막 아래 차를 우려내는 솥 두 개를 놓고 조 대표는 어머니와 아버지 옆에서 차를 배웠다. 뜨거워진 솥과 물에 손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면 물집이 잡히고 피멍이 생겼다. 그렇게 그는 물 하나만으로 우려내는 섬세하면서도 미묘한 차의 매력에 매료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정된 수량에 한해 100% 수작업으로 생산
“전통차와 한국문화의 우수성,
전 세계에 알리겠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저까지 모두 차맛이 다릅니다. 만드는 사람과 손이 다르기 때문이죠. 다름의 보폭은 크지 않지만 그 보폭 속에서 저만의 차를 표현할 수 있어서 즐거워요.”

조태연가의 모든 차는 옛 방식 그대로 한정된 수량에 한해 100%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대량 생산을 할 경우 품질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윤석 대표는 차가 생산되지 않는 달에는 쑥, 감잎, 뽕잎, 연잎, 국화, 구절초, 겨우살이 등을 다양한 원료를 활용한 차 만들기에 전념한다. 이런 대용차들도 몇 년간 스님들의 시음 의견을 수렴한 후에야 상품으로 내놓는다. 뿐만 아니라 그는 10년 전부터 한국차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해외박람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만드는 방식 그대로 내놓았더니 처음에는 반응이 좋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알게 됐습니다. 나라마다 풍습이 다르고 차의 농도와 기호 또한 달랐기 때문이었죠. 이제는 그 점들은 연구하고 보완해 매년 꾸준히 해외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티(Tea) 문화가 세계적인 트렌드로 부상한지 오래인데 한국의 전통찻집은 사라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의 입맛과 식생활도 바뀌고 있습니다. 그에 맞게 차 문화도 대중적으로 접근해 앞으로 미래에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그 방향을 찾아가야 합니다.”




조태연가에서 생산되는 차의 절반은 현재 해외(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 체코, 핀란드, 폴란드, 대만, 홍콩 등)로 수출되고 있다. 매년 그 양이 증가하며 차뿐만 아니라 조윤석 대표를 보기 위해 머나먼 한국까지 직접 방문해 차를 사가는 외국인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4월에는 국내에서 전통차를 알리고자 충남 천안에 ‘티카페 그림’을 오픈했다.
“점점 차문화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하동을 방문해 차를 찾는 분들은 많이 계시지만 일상 속에서 전통차를 찾아 나서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좀 더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티카페를 오픈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다양한 메뉴를 추가해 선택의 폭을 넓혔습니다. 올해는 좀 더 체계적인 커리큘럼 속에서 차를 즐기고 맛볼 수 있도록 티스쿨을 만들어 복합문화공간을 만들 계획입니다. 10년 후에는 해외에서도 문화공간을 조성해 한국의 차맛을 알리고 싶습니다.”

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도전을 즐긴다는 조윤석 대표. 단순히 조태연가의 차를 알라기 보다 자신이 차를 접하면서 알게된 전통차의 우수하고 과학적인 원리까지 대중화·세계화시키는 것이 목표라하고 한다.  

“좋은 사람과 좋은 물이 있으면 좋은 차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의 차와 그 기술은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자부심입니다. 차를 좋아하고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습니다.”  [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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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석 조태연가(家) 죽로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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