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1976년 대한민국이 처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음을 알리는 감격스러운 순간, 몬트리올 하늘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던 때를 기억하는가. 해방 이래 최초의 올림픽 대회(레슬링 종목) 우승자 양정모 선수의 금메달은 한국 스포츠사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부산에서 탄생한 올림픽 영웅도 자랑스럽지만, 1976년부터 2000년까지 전국 최강을 자랑했던 부산레슬링 역사의 중심에는 1963년에 창단한 부산광역시레슬링협회가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다시금 그때의 전성기를 되찾겠다는 힘찬 각오를 다지고 있는 부산광역시레슬링협회의 이헌창 회장의 의미 있는 행보를 만나 보자. _김정은 기자


부산광역시레슬링협회는 지난 2월 22일 부산 중구 부산호텔에서 제 16대 이헌창 신임 회장의 취임식을 개최했다. 이 회장은 레슬링 국가대표(미들급) 선수 출신으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레슬링 담당관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이에 문교부장관 표창(1989년)과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2001년), 국무총리 표창(2003년)을 수상했다. 
아울러 그에게 더욱 큰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는, 대한레슬링협회 상임이사 12년, 부산레슬링협회 전무이사와 부회장을 역임하며 레슬링 발전을 위해 오랫동안 기여해 온 인물이기 때문.    
“부산레슬링협회는 우리 선수들에게 희망과 자부심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선수가 부산에서 분명히 나 올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협회는 전국 최강을 자랑했던 부산레슬링의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애정과 열정을 갖고, 인프라 확충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 출신,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레슬링 담당관
부산레슬링의 전성기를 되찾기 위한 힘찬 발걸음
선수 확보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최선을
지도자의 처우개선도 시급한 문제로 다뤄야 ...




부산레슬링협회가 있는 부산 월드컵대로에 위치한 양정모 실내체육관을 찾은 취재진을 힘찬 에너지로 맞아주는 이헌창 회장.
한눈에 봐도 나이에 비해 건장한 체구와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인상적이다.
부산 가야고와 동아대 체육학과를 전공한 그는, 1978년부터 1980년까지 레슬링 국가대표(미들급)로 태극기를 달고 세계무대를 누볐다. 현역 은퇴 후에도 경희대 교육대학원에서 체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모교인 가야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아 온 그이기에, 누구보다도 선수의 마음을 이해하며 부산의 레슬링 환경이 어렵고 열악한 점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토로했다.
“레슬링은 원래 우리나라의 효자종목인데, 현재 부산의 선수는 유소년을 포함해 90여 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려운 운동이라는 인식이 강해 유소년 팀의 기반이 약해졌고, 대학에서조차 등록금 인상으로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으니 선수 확보에 상당한 애로점이 있습니다. 이에 협회는 부산시 사회체육센터에서 레슬링 교실을 운영해 보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부모들의 지지가 낮아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레슬링 발전을 위해 20년간 레슬링 동호회와 선수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원해 온 이헌창 회장. 부산의 레슬링 꿈나무를 육성하고, 유소년들의 재능을 발굴하기 위해서 지도자의 처우개선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능 있는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협회가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대의원 총회에서도 결의를 다져 올해 3월부터 5월에는 각 학교마다 학교장을 찾아 선수 확보를 위한 간담회 자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어 부산시와 시 교육청 등 유관기관과 협조 체제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선수들이 열심히 운동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격려와 후원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체계적으로 레슬링 선수 육성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헌창 회장. 그가 레슬링에 입문하고 오랫동안 후배들을 위해 봉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고향인 밀양에서 중학교 재학 중, 체급이 좋다며 씨름을 해보지 않겠냐는 선생님의 권유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웃음).”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도 않았지만 타고난 재능과 운동신경으로 전국 중등부 씨름대회에서 1등을 거머쥐게 된 그. 이어 중학교 3학년 때 부산에서 유도를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운동에 입문하게 된다. 그러던 중 전 레슬링 국가대표팀 감독 최경수 선수를 스승으로 만나 레슬링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선수로 입문한지 3개월 만에 전국대회(고등부) 우승의 저력을 보이기도. 뿐만 아니라 전국체전에 8회 동안 출전하며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고 2년간 실업팀에서도 활약, 결혼 후에도 선수로 활동했다. 이후 후학 양성과 (주)가온개발의 수장으로 성공한 사업가가 된 후에도 레슬링 선수들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하며 선수 육성에 기여해왔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 레슬링을 하지 않았다면, 대학과 대학원 진학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레슬링에 고마움과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침체된 레슬링의 활성화와 후배 선수들을 양성하는 일을 돕고자 시작했던 봉사가 지금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부산레슬링의 부활을 위해 우수선수 발굴과 선수 지원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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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창 부산광역시레슬링협회 회장 / (주)가온개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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