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50여 년간 기업을 운영하면서 단 한 사람도 해고한 적이 없는 기업, 어음 결제를 하지 않는 기업,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인터폰을 수출한 기업, 국내 중소기업체 가운데 세계 최다국인 130개국에 수출하는 기업, 세계 일류상품 15년 연속 지정기업, 품질경쟁력 우수기업 13년 연속 지정기업, 대한민국 퍼스트 브랜드 대상 13년 연속 수상기업, 세계3대 디자인 어워드(Award)인 iF, Red Dot, IDEA에서 모두 수상한 기업 그리고 자체 교육프로그램으로 유명대학의 교수님들을 초빙해 MBA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기업, 대한민국 제1호 명문 장수기업으로 선정되는 영광까지 가지고 있는 기업이 있다. 1968년 4월 세운상가에서 중앙전자공업사를 설립한 이래, 50여 년간 매10년을 주기로 패러다임을 변화해가며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있는 주식회사 코맥스 변봉덕 회장이 그 중심에 있다. 그를 만나 명문장수기업의 의미와 앞으로의 비전 등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안연승 차장



정보통신과 인연의 시작



50여 년 전 한양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한 청년은 학교 선생님이라는 안정된 길 대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로 했다. 당시 생소했던 ‘인터폰’ 사업이다. 청년은 직접 가방을 둘러매고 미국과 영국을 다니며 해외시장을 개척했다. 한국 최초로 인터폰을 생산한 회사는 신뢰와 인재경영을 내세우며 홈 IoT기업으로 성장했고, 대한민국 1호 명문 장수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존경받는 기업인과 장수기업인이 드문 시대에 변봉덕 회장은 존경받는 기업문화를 확산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었다. “50여 년 전만 해도 인터폰이라는 것이 생소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공장에서 가발이나 신발을 생산하는 노동집약 산업이 중심이었습니다. 청년 시절, 정보통신의 중심지인 세운상가에 자주 가곤 했는데, 그곳에서 정보통신 산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정보통신 산업이 국가산업을 선도할 거란 생각을 했고, 전자기기 개발과 제조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인터폰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기존에 없던 거니 오히려 기회가 될 거란 자신도 있었고 전화기와 달리 인터폰 같은 구내통신 사업은 국가의 제약이 없었고, 해외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는 기회란 판단이 들었습니다. 1968년 ‘중앙전자공업사’를 설립해 국내 최초로 도어폰을 생산했고, 1970년대 이후에는 주택 붐이 일면서 웬만한 고급주택에는 거의 우리 제품이 사용됐습니다.”


1973년 첫 수출을 해내다


“1973년 첫 수출을 한일이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시제품이 든 가방 하나만 들고 혼자 미국으로 떠나 거래처를 개척했습니다. 호텔방에서 전화번호부를 뒤져 관련업체를 선정한 뒤 무조건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습니다. 퇴짜 맞기 일쑤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제품을 팔았습니다. 당시 미국 인터폰시장은 현지 기업제품으로 장악이 되어 있었고, 우리 인터폰이 가격경쟁력은 있었지만 제품 기술에 대한 신뢰도는 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며칠 후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더욱 열심히 뛰었습니다. 다행히도 반신반의하던 몇몇 바이어들이 제품주문을 해주어 한국으로 돌아와 정말 최선을 다해  제품을 만들었고, 품질테스트도 확실히 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인지 불량률이 1% 미만이었고, 외국 바이어들도 감탄해 주는 수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참가한 청와대 행사에서는 ‘중소기업인 코맥스도 발로 뛰며 수출하고 있는데 대기업은 뭐하고 있느냐’ 라는 말까지 들어 보았습니다. 1997년 IMF때는 해외거래처에서 자금을 지원해 주겠다는 제안까지 있었지만 자금지원 대신 제품을 사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코맥스는 IMF때 오히려 수출이 늘었습니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정한 벗 아닙니까?”


대한민국 제1호 명문장수기업! 코맥스!


“대한민국 제1호 명문 장수기업으로 선정되어 큰 영광입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 부끄럽지만 우리나라 산업의 역사가 짧은데, 장수 중소기업을 독려하려고 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야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한건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기업이 오랫동안 사업을 영위하려면 ‘관계’가 중요합니다. 협력사, 고객사들과 신뢰를 구축했던 것이 오랜 기간 기업을 운영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고, 관계를 맺은 지 40여 년 이상 되는 해외 고객사들도 있는데 이들 회사는 자식·손자까지 우리 회사와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고객뿐만 아니라, 직원에 대한 신뢰와 인재육성의 결과 전 직원이 장인정신으로 뭉쳐 한 분야에서 50년간 시장의 변화와 수요에 맞춰 전문화·세계화를 이루어낸 결과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부단한 자기혁신으로 100년 이상 가는 명문 장수기업으로 성장해 보이겠습니다.” 변봉덕 회장의 100년 기업의 꿈은 장남 변우석 부사장의 든든한 지원이 있어 가능하다. 서울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변 부사장은 2006년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의 명문오페라 극장인 ‘라스칼라’의 정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변 회장의 간곡한 설득으로 경영인으로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던 변우석 부사장은 코맥스 벤처러스 대표직을 수행하며 스타트업과의 동반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한다.


코맥스의 인재경영


변봉덕 회장이 기업을 경영하면서 꼭 지켜왔던 원칙은 인재경영이다. 인재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기 때문이다. “코맥스는 사람을 중시하는 기업입니다. 기업의 모든 작업은 전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죠. 직원들의 교육을 장려하기 위한 코맥스 아카데미라는 자체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인재경영의 일환입니다. 아카데미에서는 기본 회사업무에 관한 교육뿐 아니라 유명대학교수님들을 초빙해 MBA 수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코맥스는 직원들의 의견을 흘려듣지 않고 아무리 작은 의견에도 귀를 귀 울리는 것이 조직문화이고, 매년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직원에게는 포상 독려하고 실제 업무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청년실업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입니다. 저도 29살 젊은 나이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지금의 사업을 이룬 만큼, 요즘 청년들이 겪는 실업, 취업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탄탄한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춰 성장해야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여 청년들이 일하고 싶은 명문 강소기업을 만드는데 계속 일조하겠습니다.” 


•1958년 양정고등학교 졸업
•1962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수학과 졸업
•1984년 국제경영대학원(전경련부설)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1987년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2004년 KAIST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1968년 중앙전자공업사 창립(대표)
•1979년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 이사(현)
•1987년 한양대학교 총동문회장(1987~1996년)
•1997년 한국전기제품안전진흥원 이사장
•1999년 주식회사 코맥스 대표이사(현)
•1999년 민주평통자문회의 의원
•2006년 성남상공회의소 제12대 회장
•2012년 성남상공회의소 제14대 회장
•2013년 가천대학교 감사

수상경력

•1994년 수출산업포상 대통령상
•2004년 국가생산성혁신대회 종합분분 대통령상
•2005년 성남상공회의소 종합상공대상
•2006년 무역의날 석탑산업훈장
•2010년 4.19민주혁명 건국포장
•2012년 국가생산성 대상 지식경제부장관 표창
•2016년 제50회 납세자의날 모범납세자 국세청장 표창
•2017년 제12회 전자·IT의날 금탑산업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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