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한국감정원은 부동산 과세표준 및 정책수립의 기초자료이자 국민경제 활동의 기반이 되는 부동산 가격정보를 정확하고 적기에 조사하고 공급하여 부동산시장의 안정과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이다. 부동산공시가격 조사업무를 하며 감정평가 타당성조사, 각종 부동산 조사업무 및 공동주택 및 상업용 건물 기준시가 조사, 보상평가서 검토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은 공공기관 경영평가 및 청렴도 조사, 정부3.0 평가 모두 2년 연속 최고등급을 달성할 만큼 공신력 있는 공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한국감정원을 기존의 단순 부동산 감정평가기관에서 세계 최고의 부동산시장 조사ㆍ평가ㆍ통계 전문기관으로 키워내는데 획기적으로 크게 기여한 권진봉 前 한국감정원장을 만나 그의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 안연승 차장, 정지우 기자



한국감정원을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공기업으로
환골탈퇴시키다



“심호흡을 세 번 했어요. 그래도 못 참겠어서 '그 무슨 막말이냐'며 언성을 높이려하자 옆에 있던 임원이 허벅지를 쿡 찌르더군요. 허허." 권진봉 전 한국감정원장은 2011년 초 취임 후 노동조합과 회사경영 갈등문제로 담판을 벌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권 원장은 당시 정부의 공기업선진화 정책에 따라 한국감정원에 대한 대대적 개혁이란 임무를 부여받고 있었다. 주 업무이면서도 민간과 경쟁하는 분야인 감정평가 업무를 과감히 버리고 조사·통계 및 공시업무총괄 등 공적 업무에 변환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전체 직원의 30%에 달하는 감정평가사 등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게 뻔한 일이기도 했다. 노조의 힘도 대단했다. 한국감정원의 노조 가입률은 당시 85%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매사 적극적 성격의 권 원장과 노조의 만남은 처음부터 거칠었다. 그가 구조조정 필요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자 노조 측에선 ‘그건 경영진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린 근로조건과 복지에만 신경 쓰겠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에 발끈한 권 원장은 "이게 어떻게 남의 일이냐? 난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단 하루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고 나가겠다."고 결기를 보였다. 30년 공직생활을 해온 그로선 노조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배석했던 임원이 간신히 말리면서 '사태'의 확전은 피했지만 이 경험은 경영 혁신에 대한 권 원장의 생각을 더 굳게 만들었다. 사실 권 원장이 취임할 당시 감정원의 경영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2011년 1분기에는 직원 급여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권 원장은 결국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비상경영대책반을 운용했다. 또 원장이 직접 1일 감정역, 1일 조사역, 1일 보상역 등을 자처하며 위기의식을 전파하고 협조를 당부하면서 고강도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이런 노력들은 점차 결실을 맺어 취임 당시 120%였던 부채비율은 2년 뒤에는 36%로 감소했다. 2011년 실적정부 경영평가에서는 기관과 기관장이 모두 최고등급을 받기도 했다. 정원을 12%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시스템을 뜯어고친 결과이었다. “공기업 사장 임기 3년 동안 적당히 있다 가면 된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32년 공직생활의 연장선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공기업이 일을 잘못하면 국민의 혈세인 세금이 낭비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대충 일할 수 없었습니다.”


제2의 창업과
한국감정원 지방이전



 권진봉 원장은 재직시절 한국감정원의 업무를 감정평가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부동산 조사·평가·통계 전문 공기업으로 변환을 이루어냈다. “한국감정원은 감정평가 중심의 업무에서 부동산 가격의 조사와 통계를 하는 기관으로 크게 바뀌었습니다. 지금의 한국감정원은 부동산 시장의 질서를 바로 세우고, 통계와 정보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동산 조사 통계 전문 공기업이기에 국민경제활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 제2의 창업을 통해 감정원의 업무를 지금의 반석에 올린 것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감정원은 공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지방인 대구로 이전했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 내려간다고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족과 떨어진 분들도 많았었다. “혼자 내려온 분들에게 자기계발을 할 수 있도록 회사 측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학위취득도 할 수 있도록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경북대학교와 MOU를 체결하여 10명의 석사도 배출했습니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
그것은 해병대에서 배운 해병정신


“1973년 1월 해병대 257기로 입대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워낙 혼란했던 시기여서 일찍 군대에 다녀오려고 마음먹었습니다. 해병대에서는 밥 먹는 것도 훈련이었습니다. 1분 내 식사를 마치라는 명령에 처음엔 어찌할 바를 몰랐고 숟가락질 몇 번 만에 식사 시간 종료 명령이 떨어지니 하루 세끼를 먹어도 소화할 것이 없었습니다. 훈련 막바지 어느 날, 배가 너무 고파 몰래 PX에서 건빵 세 봉지를 사서 취침 점호 뒤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몰래 건빵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행여나 건빵 씹는 소리가 옆 전우에게 들릴까 봐 하나하나 녹여 먹었습니다. 그 달콤한 맛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먹고 있는데 ‘기상 5분 전!’이라는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밤이 새도록 건빵을 먹은 것입니다. 해병대에서는 ‘안 되면 되게 하라’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외침을 수도 없이 듣습니다. 해병대 생활을 마치고 나니 저 역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해병정신으로 가득 찼던 기억이 납니다. 공직에서도 군 생활에서 얻은 강한 의지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떤 위기가 닥쳐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의지’ 이것은 제가 해병대에서 배운 정신입니다.”

권진봉 원장은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비결을 묻자 기다렸다는 듯 '530운동'을 권한다. 1주일에 5번 이상, 하루 30분 이상, 유산소운동을 20여년 넘게 해왔다고 한다. 매일 집 근처에서 1시간 동안 등산을 하는데, 우뇌활동이 활발해져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머리가 맑아져 새로운 아이디어가 자꾸 떠오른다고 한다. 지금은 100세이다. 권진봉 원장과 같이 할 일이 많은 유능한 인재는 머지않아 곧 또 다른 얼굴로 국민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학수고대한다. 

<약력 및 상벌>
1978년 ~ 2004년 건설교통부 사무관·과장·국장
2004년 ~ 2005년 원주지방 국토관리청장
2005년 ~ 2006년 건설교통부 대변인 홍보관리관
2006년 ~ 2007년 건설교통부 국장 도로기획관
2007년 ~ 2008년 건설교통부 국장 수자원기획관
2008년 ~ 2010년 건설교통부 수자원정책실장
2011년 ~ 2014년 한국감정원 원장
1999년 녹조근정훈장
2007년 홍조근정훈장
2013년 대한민국 창조경제리더 선정 (매일경제)
2013년 경영자대상 수상 (한국인사관리학회)

<학력>
1971년 휘문고 졸
1978년 서울대학교 농공학과 졸
1999년 한양대 환경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 석사
2012년 서울대학교 건설최고전략과정(ACPMP) 수료
2013년 한국생산성본부 법정관리인·감사양성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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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인물(weeklypeople)-안연승 차장, 정지우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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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봉 제13대 한국감정원 원장 | 前 국토해양부 건설수자원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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