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급변하는 안보환경과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파고 속에서도 軍의 본질에 맞게 ‘국가와 국민에 헌신하는 정예장교 양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육군사관학교. 26기인 오현구 (예)중장은 확고한 국가관과 군인정신, 강인한 체력, 균형감각과 유연성, 미래 육군을 이끌어갈 전략적 마인드를 갖춘 통섭형(統攝形) 리더로 장병들의 지혜와 역량을 결집해 나가는데 평생을 바쳤다. 예편한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는 4년 전부터 수원장로오케스트라단에 몸담고 매월 1~2회 전국 각지의 지방 교회를 순회하며 음악공연과 의료봉사를 하면서 범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인생 후반부를 멋지게 그려나가고 있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오 장군은 1966년 육사에 입교한 이후 2004년 말까지 38년간 전·후방 각지에서 대한민국 국방에만 몰두하며 살아왔다. 예편 후 과학재단 위촉으로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국제정치학과에서 <국제분쟁과 평화연구>란 주제로 <한반도의 안보정세 변화와 평화유지 방안>에 대해 6년간 강의를 하며 큰 호응을 얻었지만 막상 군문을 떠나고 나니 앞으로 겪게 될 미래와 전혀 경험이 없는 사회생활에 있어 다소 두려움과 망설임이 앞서곤 했다. 그런 와중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런 둘째 여식을 결혼식 3주 전에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큰 우환을 겪게 된 오 장군. 자신은 슬퍼할 겨를도 없었고, 큰 슬픔을 견디지 못하는 아내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더 참기가 힘이 들었다는 그는 더욱 세상과는 고립된 침체된 시간들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날 고교 때부터 가깝게 지내던 당시 국내 굴지의 손보회사 회장인 친구가 저에게는 말도 없이 회사 고문 직함이 찍힌 명함을 주면서 친구들과 식사도 하고 자연스럽게 사람도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길 권하더군요. 그 계기로 서서히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고교동창회를 나가보니 산악회를 비롯해 골프, 자전거, 스키 등 많은 동아리 모임이 있었다. 그는 군 생활 중에는 활동에 제한이 있어서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운동이었기에 용기를 냈다.
오 장군은 광교산을 매일 오르내리면서 체력을 키워 자전거 타기에 도전하여 동료들과 4대강, 그리고 그랜드슬램(북한강, 섬진강, 이화령부터 세종시까지 오천 코스, 동해안, 제주도 등) 코스를 완주하여 인증서와 인증 메달을 받았다. “2019년에는 DMZ 코스가 완공됐다는 보도를 보고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부터 김포반도까지 318km를 5일간 완주했었어요, 통일전망대, 원통, 펀치볼, 임진강 등 제가 근무했던 곳들을 자전거로 지나갈 때는 정말 감흥이 새롭더군요.”

1996년 10월 강릉으로 침투한 북괴군 32명 중 몇 명이 살아남아 도피 과정에 12사단 지역에서 우리 매복조와 교전 후 도주한 사건이 있었다. 오 중장은 12사단 지역 근무를 가장 많이 한 경험으로 당시 12사단장으로 발령받았는데, 작전 중이라 취임식도 못 하고 작전지역으로 직접 부임했다. 12사단만 4번째 근무였던 그는 사단장 재임 중 중단된 수색대대의 스키훈련 재활을 건의하여 허락을 받았다. 덕분에 지역 내에 있는 진부령 스키장에서 수색대대 요원들과 몇 번 스키훈련에 동참하기도 했다. 예편 후에는 고교 스키동호회에 나가며 스키 매니아가 됐다.

오 장군은 10년 전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하모니카 연주가 심폐기능을 보강시켜주고 배우기도 쉬우며 악기를 지참하기도 편하다는 방송을 듣고는 대형마트 문화센터에 하모니카 강좌를 찾아간다. “2년 간 그곳에서 배우다가 단체로 예술의 전당 하모니카 연주회에 동참했는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 세계 1위를 했던 박종성 연주가님을 리셉션장에서 만나 개인지도를 받을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지요(웃음).” 오 장군은 4년 전부터 수원장로오케스트라단에서 매월 1~2회 전국 각지의 지방 교회를 순회하며 음악공연과 의료봉사(단원 중에 2명의 양의사와 2명의 한의사가 있음)를 한다. 오 장군은 하모니카 독주 2곡을 연주하고, 의료봉사 시에는 진료받는 사람들의 맥박을 재는 봉사를 한다.

“뒤돌아보면 고난이 적지 않았음에도, 군인의 한평생이 보람되고 영광스러웠다고 회상됩니다. 종착점이 멀지 않은 지금은 교회에서 예배와 장로로서의 봉사, 그리고 매주 목요일 오전 기독교 극동방송국 성경공부에 참석하며 신앙의 성장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어요. 신앙은 내세의 구원뿐만 아니라 현세 삶의 고통도 쓰다듬어 줍니다. 앞으로도 범사에 감사기도를 하고, 하고픈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노년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에게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세상은 넓고도 할 일은 많아요.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나갈 수가 없어서 안타깝지만, 배낭여행을 등을 통해 전국을 비롯하여 세계 구석구석 다녀보고 직접적으로 경험을 해야 우리 한국이 보입니다. 대한민국 오천 년 역사 속에 우리나라가 제대로 잘 살려면 강대국들에 당하고 있다고만 생각할 게 아니라 그들을 잘 이용하면 됩니다.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서면 북한은 저절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해야 합니다.”  [1122]


•월남 맹호사단 소대장, 작전장교
•수도경비 사령부 중대장, 작전장교
•제1사단 수색대대장, 작전참모
•육군본부 기획 관리 참모 부장
•보병 제12사단장
•육군 제1군단장
•미국; 국방대학원, 전략문제연구소
•연세대학교 교수

 

주간인물(weeklypeople)-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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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인생 꽃 노년 ‘Bravo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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