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부산 동래구 복천동에 있는 복천박물관은 사적 제273호인 복천동고분군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기 위해 1996년 10월에 개관했다.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 조사를 통해 200여 기의 무덤이 확인되고, 여기서 12,000여 점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복천박물관은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가야지역 및 일본을 포함한 인접 국가의 유물을 연구 및 전시하여 시민들에게 부산의 뿌리와 문화적 성격을 올바르게 전달하고 있다. 나동욱 관장은 올해 초, 복천박물관장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오는 7월 25일까지 그가 오래도록 매진한 연구와 관련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바로 <부산의 성곽> 전시다. 부산지역의 성곽을 통해 부산의 역사성을 조명하는 나동욱 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_송인주 기자


이번 <부산의 성곽> 특별전시는 나동욱 관장이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장으로 있을 때 발간한 학술연구총서, 「부산 성곽・보루를 쌓아 근심을 없애다」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다. 현재까지 부산에서 확인된 성곽 유적은 총 32개인데 고대 산성을 비롯해 읍성, 왜성까지 다양하다. 이 유적들의 관련 조사 성과를 사진 자료를 중심으로 전시하여 한반도의 관문이자 해안방어 요충지인 부산의 역사성을 조명하는 것이 <부산의 성곽> 전시이다. 전시에는 그동안 나동욱 관장이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조사하고 연구한 성곽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성곽에 담긴 이야기는 복천박물관의 기능과 역할과 맞닿아있다. 시민들에게 올바른 부산의 뿌리와 문화를 전달하는 것. 나동욱 관장이 이야기하는 성곽에도 같은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부산 시민들에게 성곽은 자연스러운 경관의 일부다. 일부 성곽은 성곽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입증되기 이전부터 시민들의 생활 반경에 있었고 시민들은 그저 오래된 건축물의 일부로 보았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배산성에서 부산 최초로 삼국시대 문자가 적혀진 나무문서(목간)를 수습하거나 영남지역 최대의 집수지 2기 확인, 당감동성지 발굴조사, 구덕산부터 천마산까지 3중으로 된 오해야항 목장성의 확인, 아이봉수대 발굴조사와 명칭오류 시정, 임진왜란 때의 동래읍성터 확인, 금정산성 및 죽성리왜성 조사 등 나동욱 관장의 노력이 없었다면, 여러 성곽이 빛을 보지 못 하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나 관장은 동아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경남 지역의 토성 연구와 한국의 왜성 연구로 각각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성곽전문가다. 그는 긴 시간 성곽을 연구하며 역사를 바로잡고 잘못된 개념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2020년 1월, 부산시는 범일동 소재의 ‘부산진지성’을 ‘부산진성’으로 문화재 명칭을 변경 고시했다. 부산근대역사관장으로 있던 2012년에 「부산진성을 통한 부산의 명칭유례 일 고찰」을 발표하는 등 부산의 명칭유래와 부산진성의 명칭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며 꾸준한 조사와 연구를 한 결과였다. 2016년에는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장으로 있으면서 이번 전시의 바탕이 된 「부산 성곽」을 공동 기획하고 원고를 쓰며 성곽을 통해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데 힘썼다.

그는 행동하는 공무원이면서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고고학자다. 박물관 업무와 학술 연구에 매진하며 시민의 신고로 땅에서 뭐라도 나왔다고 하면, 그곳이 어디든 곧장 뛰어갔다. 부산의 곳곳을 안 다닌 곳이 없다고. 그가 직접 피부로 느낀 부산의 역사는 그야말로 파도파도 끝이 없는 화수분이다. “시민들의 세금을 받아 연구하는 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부산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시민의 신고를 통해서 수습도 많이 했어요. 신고해주신 분이 너무 감사해서 쉬는 날도 마다하지 않고 현장에 가서 유물을 수습하고 기록을 남겼죠. 고고학의 기피분야인 성곽분야나 봉수대뿐만 아니라 유적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찾아내고 가능한 한 보존되도록 노력했습니다. 부산 지역 지표조사에서 구석기가 최초로 확인된 청사포 유적도 팀을 꾸려 조사하려했었어요. 근데 그곳 땅을 새로 산 사람이 경작을 하려다 훼손되어 아쉽습니다만, 구석기 시대 유물이 발견된 것은 그 자체로 큰 의의를 가집니다. 부산 역사의 시작이 팔천년 전인 신석기시대 동삼동패총유적에서 만 오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고고학적인 발굴 작업은 조사자의 손끝에 의해 시대가 뒤바뀔 수 있어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유적이라도 꼼꼼하게 작업에 임했습니다.”

경상남도 양산시에 위치한 ‘금조총’은 나동욱 관장이 혼자서 직접 발굴했다. 동료들은 그를 유물 복이 있다고 말할 정도다.
“당시 금조총의 위치는 거대한 부부총에서 제법 떨어진 곳으로, 무덤이라고 여기기엔 초라한 돌무더기에 불과하였습니다. 모두들 다른 지구로 넘어가고 혼자서 조사를 떠맡게 되었죠. 처음에 은제 허리띠 조각이 나왔는데 경주박물관에서나 봤던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던 것도 잠시 화려한 순금귀고리, 은제팔찌, 금동관, 청동다리미 뿐만 아니라 금조총으로 명명하게 된 순금제 새의 다리까지 줄줄이 나오더군요. 만약 하찮은 돌무더기라 하여 조사되지 못하고 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며 이곳이 뭉개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니 식은땀이 줄줄 흘렀어요. 무덤에 경주의 왕릉 급에서 나오는 고급유물이 많았지만, 무덤은 일반 무덤크기인 점으로 보아 신분 높은 여인이 모종의 정치적인 이유로 크게 장사지내지 못하고 몰래 묻힌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나동욱 관장은 남다른 수집 열정으로 역사 시대를 불문하고 유물을 수집해왔다. “20년 전쯤, 부산박물관에 있을 때 방송국에서 퇴짜 맞았다고 권총집과 탄띠, 레코드판 몇 장을 들고 찾아오신 시민분이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6.25전쟁 때 군인으로 상사이셨다고 했어요. 사연을 듣고 그 분을 따라 가니까 폐가 비슷한 곳에 일제강점기 때 징집되면서 일장기에 응원구호가 적힌 물건에서부터 아버지 월급봉투, 계급장, 70년대 성냥 등 수백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허접한 것이라 가치가 없다는 직원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1톤 화물차를 끌고 가서 박물관으로 모두 실어왔죠. 모두 당시의 생활상을 말해주는 유물로 이젠 이런 물건을 구하기도 어려워요(웃음).”

현재는 과거가 된다. 과거의 발굴만큼 현재의 보전도 중요하다. 성곽만큼 시민들에게 가까이 있으면서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유적이 있을까. 누군가에겐 그냥 돌로 보일 진 몰라도 나동욱 관장이 바라본 성곽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역사의 주춧돌이다. 그는 앞으로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성곽을 더 찾고자 한다. 가야 시대의 성곽은 없을까, 자문하는 그의 눈이 더 없이 빛나 보인다. 마치 재밌는 일을 찾은 소년의 눈이다. 이제 시작된 그의 모험을 계속 지켜보고 싶다. [1120]
 

주간인물(weeklypeople)-송인주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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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성곽, 과거와 현재를 잇다! 사명감으로 부산을 밝히는 고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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