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왕실의 기증을 시작으로 방대한 규모의 소장품을 보유한 서구 미술관들과는 달리, 국내 미술관들은 짧은 역사만큼이나 소장품의 규모나 내용이 비교적 미약한 편이다. 이러한 가운데, 개인이 평생에 걸쳐 모은 진귀한 소장품들을 전시한 공간이 있어 화제다. 키덜트뮤지엄을 이끄는 김동일 관장은 40여 년간 직접 모아온 50,000여 점에 이르는 수집품을 ‘세대를 아우르는 추억의 물건’이라는 주제로 전시하며 전 세대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리움과 추억이 공존하는 키덜트뮤지엄의 이야기를 주간인물이 담았다. _정효빈 기자

경주시 보문관광단지에는 눈에 띄는 독특한 건축물이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본뜬 보문콜로세움이다. 유교·신라·가야의 얼이 깃든 경주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 같지만, 이런 건물이 우리를 때때로 다른 시공간으로 데려가곤 한다.
보문콜로세움에 자리 잡은 키덜트뮤지엄 역시 그러하다. 축음기, 영사기, 라디오, 음반 등의 수집품과 김동일 관장의 창작품들이 시대별, 분야별, 주제별로 구분되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긴 세월이 묻은 물건들은 금세 친근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우리를 과거로 데려간다. 키덜트뮤지엄은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관람객 모두가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인 것. 개인 소장품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진귀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수집품에 놀라기도 잠시, 전시된 물건들은 전체 소장품의 10~2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그간 김동일 관장이 걸어온 길에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이십대 초반일 땐 해외여행을 쉽게 갈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는데, 운 좋게 친한 형을 따라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됐습니다. 한 상점에서 어디선가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기에 ‘이 소리가 어디서 나느냐’고 물었더니, 주인이 코카콜라병을 가리키더라고요. 소리의 정체는 콜라병 모양의 라디오였습니다.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죠. 당시 국내에서는 상상조차 못 했던 다양한 물건들을 접하며 굉장히 놀랐습니다. 어찌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던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유럽의 물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시관은 영사기박물관, 소리박물관, 인형·피규어박물관, 문구박물관, 골동품박물관, 만화박물관 등으로 구분돼있으며, 소장품은 주기적으로 교체 전시되어 관람객들에게 다채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양이지만, 소장품 하나를 구하기까지의 시행착오와 간절함, 기쁨 등 각각 추억이 서려 있기에 소장품의 먼지를 털고 닦아내는 과정 역시 큰 즐거움’이라며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김동일 관장. 소장품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을 알고 나니, 각각의 물건들이 옛 추억을 가득 머금은 채 ‘나 기억하지?’라며 친근하게 말을 거는 듯하다.
키덜트뮤지엄에서는 뛰어난 가치의 소장품뿐만 아니라 김동일 관장의 창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시절,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인테리어 소품을 제작해왔다는 김 관장은 버려진 제품 등 폐자재를 활용한 독창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부분적으로 손상돼 가치가 떨어진 자개장의 자개를 이용한 신라의 유물 액자부터, TV 프레임 속에 다양한 피규어들을 배치한 디오라마 작품들은 우리에게 미래와 환경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와 더불어 해양쓰레기를 활용해 참신한 업사이클링 제품을 탄생시키기도.
“작년 겨울 해안가의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을 하게 됐는데, 현장에 가보니 못 쓰는 부표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인위적으로 색을 덧입히지 않았는데도 색감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버려진 부표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중 부표로 만든 우체통은 ‘2020 해양수산부 주관 해양쓰레기 업사이클링 아이디어 공모전’에 당선된 바 있으며, 키덜트뮤지엄에 오신 고객분들께서 이 우체통을 만들어달라는 요청도 많이 주셨습니다. 향후 해양쓰레기를 활용해 만든 참신한 작품들을 전시한 공원을 조성해보고 싶어요. 전 세계적으로도 그런 곳은 찾기가 힘든데,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생긴다면 참 좋지 않을까요?”



영사기, 축음기 등 시대를 대표하는 발명품은 물론,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창작품을 선보이며 매력적인 전시를 이어가고 있는 김동일 관장. 그는 ‘키덜트뮤지엄을 통해 관람객들의 창의력에 신선한 자극이 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히기도. 여기서 다소 아쉬운 점은 김 관장이 소장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수집품을 수용하고 전시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 관장은 ‘향후 전시 공간이 추가로 마련된다면 재미는 물론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교육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우리나라가 공부 실력으로는 세계 어디에서도 뒤지지 않습니다. 다만, 토론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거나,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죠. 제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빛나는 창의력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인재들을 배출하려면 국내에서도 노벨상 같은 공신력 있는 시상식을 만들어 많은 이들이 이 분야에 도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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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를 잇는 전시공간 ‘키덜트뮤지엄’ 참신한 전시기획으로 창의력 개발의 장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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