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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준혁 (주)광성산업개발 대표이사 / 유튜브 채널 [광성&아키우노티비] 건축가이드
    /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부르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 거장인 안도 타다오(Ando Tadao)의 작품들을 보면 인간과 자연, 세상의 이치를 건축으로 녹여낸 작품들이 많다. 건축 거장 안도 타다오의 영향을 받은 (주)광성산업개발 박준혁 대표는 노출콘크리트와 공간만으로 자연과의 조화를 접목시켜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 건축물을 창조해내는 마에스트로다. 광성이라는 상호에는 조금은 남다른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미칠 광(狂) 이룰 성(成) ‘미쳐야 이룬다’는 뜻으로 회사가 가진 이념이다. 그런 이념의 영향일까. (주)광성산업개발의 건축물을 보면 노출콘크리트지만 왠지 모르게 건물에 세세한 신경 쓴 느낌이 강하다. 편안하고 정감가는 컨셉의 디자인 요소가 가미된 건축물에서 박 대표의 감각이 묻어난다. 주간인물은 편안하고 완성도 높은 건축물과 차세대 젊은 건축가답게 자라나는 건축학도들, 미래의 건축주들과 활발한 소통을 펼치는 (주)광성산업개발 박준혁 대표를 만나봤다. _강태원 기자 경상남도 도민의 106만 인구를 담는 창원시 최고의 번화가 상남동에 자리한 (주)광성산업개발. (주)광성산업개발 박준혁 대표가 만든 건축물들은 건축주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핫플레이스 건축물 제조사로 통한다. ‘귀산동 카페 서향’ ‘안민고개 카페 안민651’ ‘상남동 카페 광성하우스’ 등 이름만 들어도 SNS에서 한 번쯤은 들어본 지역의 핫플레이스 카페들은 모두 그의 작품이다. 이밖에도 펜션과 주택 등 자연의 조화가 담긴 컨셉과 디자인 요소가 가미된 작품성을 지닌 건물들은 ‘예쁜 건물’로 사람들 마음속에 강하게 인식됐다. 업계에서 인정받고 소문난 종합건설회사 대표로 그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지금의 위치로 자리 잡기까지 어린 시절부터 독특한 이력에 여러 업종을 거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순수했던 유소년시절, 국가대표로도 활동 박 대표의 고향은 경남 마산이다. 현재 창원에 (주)광성산업개발이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기 전 그는 중학교 시절 주변의 시선과 기대로 촉망받던 국가대표 역도선수였다. 타고난 운동 감각으로 어린나이에 국가대표들만 모인다는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고된 훈련을 받으며 노력해왔지만, 관리자들과의 잦은 트러블로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를 순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운동지망을 야구로 변경해 지역 내에서 활약상을 펼치기도 했다. 국가대표 역도선수로 등록된 것이 야구선수 활동에 지장을 초래해 운동선수는 그만뒀다고. “지금 이렇게 종합건설회사를 운영하면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린 시절 남들과는 다른 인생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승부욕이 남달라 운동선수로 활동할 때부터 노력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 결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어렸을 적부터 끈기 있게 운동을 해오며 태생부터 승부욕에 집착이 강했어요. 운동을 그만두고 나서는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유학 생활을 했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바로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수많은 업종을 거쳐 종합건설회사 오너로 “군 제대 후 종합건설회사에서 일을 했었어요. 몇 년간 다져진 현장 경험을 통해 제 자신의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막상 밖으로 나와 보니 바로 시작할만한 게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출장 세차를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2016년입니다. 당시 출장 세차일은 잘됐습니다. 주로 돌아다니는 일의 특수성 때문에 하루에 정해진 양은 한정되어 있었고 세차 문의가 쇄도했어요. 그리고 디테일링샵을 차리게 됐죠. 출장은 출장대로하고 샵은 샵대로 운영하다 보니 일이 잘됐지만, 장마가 찾아와서 또 일거리가 없는 거죠. 그래서 입주 청소를 무작정 시작하게 됐습니다.” 당시 입주 청소를 시작한 박 대표는 창원의 모든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잠을 줄여가며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아파트 대리석을 얼마나 닦았는지 손가락에 때가 스며들고 지문이 닳아서 없어질 정도였다. 그렇게 몇 년간 일이 들어오면 입주 청소를 하기 위해 지역의 수많은 고급 아파트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느낀 점이 있었다고. “막상 입주 청소를 하며 대형건설회사에서 지었다는 아파트 인테리어를 봤는데 생각보다 낮은 퀄리티에 실망감이 컸습니다. 건설회사를 시작해보려고 직장에서도 나왔는데 청소 일을 하고 있는 제 자신 스스로에게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었죠.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갑질의 남모를 설움도 많이 당했습니다. 비로소 회사를 시작할 수 있는 자금이 모였고 종합건설회사에서 근무했었던 노하우를 살려서 함안 칠서읍에 가정집을 짓게 된 것이 첫걸음이었습니다.” 박 대표는 군 제대 후부터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하루도 마음 편하게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일터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경력을 쌓아온 실속이 꽉 찬 베테랑이었다. 그런 그는 현장에서 인력을 관리하고 일을 진행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소비자가 없어 판로 개척이 필요했다. 자신과 회사를 알리기 위해서는 지어진 건물로 우리의 명함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그 당시 공사 현장에서 일을 진행할 때 마창대교를 타고 차로 매일같이 지나가던 길이 있었습니다. 제가 눈여겨보던 장소가 있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던 건물이 철거가 된 거에요. 그 자리에 딱 맞는 건축물을 짓고 싶었습니다. 막연하게 그 자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서 수소문했어요. 결국 만남이 성사됐고 건축물을 짓게 해달라고 필사적으로 메달렸습니다.” 열성적인 박 대표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그렇게 쉽지 않은 과정을 통해 일을 받아서 지어 올린 건물이 지금의 ‘귀산동 카페 서향’이다. “서향을 짓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어요. 그 뒤로 귀산동 카페 하우요, 안민고개 카페 안민651 등 만드는 곳마다 핫플레이스가 되다 보니 이제는 업계에서 노출콘크리트 건물만 봐도 ‘광성에서 한 거네’라는 말이 나오게 된 거예요. 건축물로 저희 (주)광성산업개발을 알린 계기가 된 거죠(웃음).” 노출콘크리트로 한국의 안도 타다오를 꿈꾸다 노출콘크리트 건축물에 대한 박 대표의 철학은 간단한 듯 보이지만 간단하지 않았다. 박 대표의 건축물에는 그간 건설업계 현장에서 탄탄하게 쌓아 올린 남다른 노하우가 적용됐다. “제가 생각하는 철학은 교회에 가야 기도가 잘되고 도서관에 가야 공부가 잘되듯 건물도 그 현장에 맞는 건물의 옷이 있습니다. 노출콘크리트 건물을 짓기 전에는 건물에 대한 모든 계획이 다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세밀하게는 전기선 빠지는 위치, 배관이 지나가는 위치 등 건물의 구조 내 설비가 다 계산돼있어야 해요. 시각적으로 건물을 예쁘게 짓는 것은 누구나 다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선은 사람이 편안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는 편리하죠. 그런데 편리하다고 해서 편안한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시골집에 있는 오두막에 누워있을 때 그런 편안함을 느낄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런 것처럼 카페를 방문한 손님이 아주 편해야 계속 찾아올 수 있는 거예요. 건물이 집이 된다면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으로 계속 머무르고 싶은 곳으로 건물을 짓는 그런 개념이 되어야 합니다.” 유튜브 [광성&아키우노티비]로 소통하는 건축가이드 박 대표는 젊은 대표답게 노련하고 남다르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건축물 견적서와 원가 공개를 다하는 등 자라나는 건축학도들, 미래의 건축주들과 활발한 소통을 펼치고 있다. “유튜브는 저희가 개인적으로 제일 힘들 때 시작했어요. 당시 자금회전이 잘 안되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때 시작했던 유튜브 채널이 지금처럼 발전할 줄 생각도 못했어요. 유튜브를 통해 저희의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건축학도들에게도 견적서, 견적을 신속하고 빠르게 잡는 방법 등 저희가 만든 프로그램을 알려주고 있고 미래의 건축주에게도 견적서를 다 나눠주고 원가 공개를 다합니다. 이것이 업무상의 기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성세대 어른들이 해온 방식으로는 앞으로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하지 않으면 퇴보하는 겁니다. 지금 하고 있는 직업이 없어질 수도 있죠. 세상이 밝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대한 공유하는 입장입니다.” 박 대표는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을 통해 보람을 얻고 있다고 고백했다. 박 대표는 바쁜 와중에도 자투리 시간을 내서 고령화된 시골 동네로 찾아가 일손을 도울 정도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봉사맨이다. 회사동료들과 합심해 유튜브 채널에서 불우한 이웃을 위해 기금을 기부하신 분들의 명단으로 기부를 한 적도 있다. 코로나19로 지역사회가 어려울 때는 회사에서 운영 중인 상남동 광성하우스 커피숍에서 보건소 등을 찾아가 무료 커피 봉사를 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박 대표는 “봉사활동도 그렇고 사실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베푸는 삶에 만족감이 크고 우리 회사가 남들에게 얼마나 좋게 비치는 것을 고민하기보다 저희의 겉모습을 보고 오해를 가져서 생기는 문제가 더 큰 것이기 때문에 서로 간에 활발한 교류와 소통을 통해 한국에서 노출콘크리트 건축물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하고 싶은 저희 진심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09.03 ~ 2010.12 Scott Boras Corporation •2011.01 ~ 2011.07 ㈜지양건설 건설현장팀 대리 •2011.07 ~ 2013.04 대한민국 대항군 육군 병장 입대 / 제대 •2013.04 ~ 2014.05 ㈜지양건설 건설현장팀 반장 •2014.05 ~ 2017.11 ㈜지양건설 건설현장팀 소장 •2018.01 ~ ㈜광성산업개발 설립 대표이사 [1096]
    • 경제
    2020-07-08

메디컬 검색결과

  • ‘Worry less, care more’ 걱정은 덜고 돌봄은 더 하자! 국내최고 노인요양시설 정보 플랫폼
    대한민국이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 돌봄 서비스’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지 오래다. 이 가운데 전국 노인요양시설의 정보를 모아 객관적 데이터로 5단계 검증을 통해 간병인을 중개하는 국내의 ‘노인요양시설 정보 플랫폼’이 대세로 떠올랐다. 플랫폼을 통해 5060세대의 만족도 높은 호응을 얻고 있는 그 주인공은 바로 (주)케어닥 박재병 대표. 본지는 그를 만나 어르신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_강태원 기자 “어르신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족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2가지로 나뉩니다. 어르신을 위한 시설에 모시거나, 집으로 혹은 병원으로 간병인을 부르는 것인데요. 저희 플랫폼은 어르신 돌봄이 필요할 때 케어닥에서 시작과 종결을 할 수 있게 도와드리는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박재병 대표는 노인요양시설에 근무했거나, 사회복지 관련 전공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일에 뛰어들어 노인돌봄서비스로 5060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 이유는 뭘까? 그의 플랫폼 개발 계기는 단순했다. 박 대표의 어머니는 수년 동안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병수발을 들었는데 당시 이를 지켜보던 그에게는 ‘왜 굳이 할머니를 어머니가 돌봐야 하지?’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안심하고 늙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고. “부산지역 독거노인 봉사단체를 운영하면서 한국의 노인 돌봄 서비스와 그 구조적 문제를 노인분들을 통해 전해듣고 현장에서 보면서 ‘와 이거 참 문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공동창업자들에게 하게 됐고 ‘국내 노인돌봄 문제를 해결해보자’라는 결심을 하게 됐죠. 그렇게 ‘케어닥’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노인돌봄 서비스에서 소비자가 가장 큰 불편을 느끼는 문제는 전국에 2만 3천개가 넘는 노인요양시설과 노인요양병원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없고, 불투명하다는 겁니다. 전국에 치킨집만큼 요양시설이 많지만 어디가 어떻게 왜 좋은지 도무지 알 방법이 없었죠. 우리가 만원짜리 치킨을 시킬 때 후기와 평점을 보고 결정하면서 수천만원이 드는 요양시설에 우리 부모님과 할머니를 모실 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을 개선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인증평가원, 건강보험공단의 정보를 바탕으로 사용자 정보와 요양시설 원장들이 제보하는 정보를 통해 국내에서 최대로 풍부한 요양시설 중개 플랫폼을 구현했다. 또 작년부터는 요양시설 뿐만 아니라 간병인 중개 사업에도 확장해 교육과 간병인들 관리를 통한 중개업을 함께하고 있다. “저희 (주)케어닥은 간병 서비스 부분에 각별한 신경을 쏟고 있습니다. 간병인 직접 교육을 통해 관리하는 간병 서비스로 소비자에게 최고의 만족을 드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실제로 케어닥이 가진 노인 돌봄서비스 중개 플랫폼은 독보적이다. 실제로 소비자와 공급자가 적극적인 행태로 플랫폼을 이용하며 요양시설 정보 데이터를 바탕으로 여러 정부 유관기관과 제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플랫폼 내에서 간병인까지 한 번에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은 국내 유일이라 할 수 있다. 또 케어닥을 통해 매칭 받은 간병인은 신분, 자격, 이력, 국적, 1:1면접, 인성검사까지 거친 인원이다. 이들을 앱에서 무료로 프로필을 확인하고 간병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부분은 케어닥만의 큰 차별점인 셈. 노인 돌봄 서비스에서 소비자 타켓팅을 정확히 노린 케어닥의 효과일까. 케어닥은 ‘2019 대한민국 모바일 어워드 이달의 우수 모바일 서비스’로 선정되며 플랫폼 중의 플랫폼으로 5060세대의 만족도 높은 호응과 더불어 영향력을 가진 대세 플랫폼임을 입증했다. 노인 돌봄 대세 플랫폼으로 영향력을 입증한 케어닥의 비결은 무엇일까. “항상 고객의 이야기와 반응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저희 고객은 구매자뿐만 아니라, 간병인문들과 요양시설 운영자분들 모두를 포함하는데요. 거대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노인 산업이지만, 제도나 구조적 복잡성으로 인해 실제로 사업을 풀어내기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비즈니스를 풀어내기 위한 유일하고 가장 빠른 방법은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해에서 더 나아간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희는 저희가 만들고 싶어서 만드는 앱이 아니라 소비자가 실제로 원하고 쓰는 앱을 만드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핵심 철학은 ‘worry less, care more’이다. 걱정은 덜고 돌봄은 더 하자는 의미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간병이나 요양시설 이용하는 고민과 걱정을 덜고, 간병과 요양의 구조를 케어닥 플랫폼을 통해 객관적인 정보 공개와 돌봄 과정의 데이터 기록화를 투명화한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다. 박 대표는 케어닥 서비스는 꼭 필요할 때 쓰는 서비스가 아님을 강조했다. “미리 받아 놓고 일이 터졌을 때 당황하지 않고 요양시설을 급하게 찾거나, 간병인을 급하게 불러야 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돌봄 상황이 발생하면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그때 생각하기 어려울 수 있기에 미리 앱을 받아 놓고 사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 이력 및 수상내역 ] •2020. 04 인공지능 간병 지원 솔루션 Tips 과제 신청 간병인 & 요양보호사 교육원 설립, 상설 교육장 운용 02 Pre-A Funding(미래과학기술지주 3억원) 우리은행-시니어플러스 마케팅 업무협약 체결 어르신 돌보미 매칭 서비스 앱 마켓 출시 (IOS, AND) •2019. 12 KB손해보험 노인돌봄 중개 플랫폼 업무상배상책임보험 가입 케어닥 직영 재가방문요양시설 오픈(돌봄연구소) 11 Pre-A Funding(D3쥬빌리파트너스 5억원) 한국사이버진흥원 ‘노인돌봄 실무자 과정’ 개발 협력 체결 10 공공 빅데이터 활용 창업공모전-국무총리상 수상 05 Seed Funding (스파크랩, 롯데액셀러레이터, 미래에셋벤처투자, 엔젤투자) 04 전국 요양시설 검색 서비스 정식 출시 (web, android) 대한민국 모바일 어워드-우수 모바일앱 선정 (머니투데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02 케어닥 전국 요양시설 검색 서비스 Beta 출시 •2018. 12 고용노동부 예비사회적기업, 벤처기업 인증 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공모수상 Data 이용 허가 04 법인설립 [1095]
    • 메디컬
    2020-08-28

포토뉴스 검색결과

  • ‘Worry less, care more’ 걱정은 덜고 돌봄은 더 하자! 국내최고 노인요양시설 정보 플랫폼
    대한민국이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 돌봄 서비스’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지 오래다. 이 가운데 전국 노인요양시설의 정보를 모아 객관적 데이터로 5단계 검증을 통해 간병인을 중개하는 국내의 ‘노인요양시설 정보 플랫폼’이 대세로 떠올랐다. 플랫폼을 통해 5060세대의 만족도 높은 호응을 얻고 있는 그 주인공은 바로 (주)케어닥 박재병 대표. 본지는 그를 만나 어르신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_강태원 기자 “어르신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족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2가지로 나뉩니다. 어르신을 위한 시설에 모시거나, 집으로 혹은 병원으로 간병인을 부르는 것인데요. 저희 플랫폼은 어르신 돌봄이 필요할 때 케어닥에서 시작과 종결을 할 수 있게 도와드리는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박재병 대표는 노인요양시설에 근무했거나, 사회복지 관련 전공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일에 뛰어들어 노인돌봄서비스로 5060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 이유는 뭘까? 그의 플랫폼 개발 계기는 단순했다. 박 대표의 어머니는 수년 동안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병수발을 들었는데 당시 이를 지켜보던 그에게는 ‘왜 굳이 할머니를 어머니가 돌봐야 하지?’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안심하고 늙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고. “부산지역 독거노인 봉사단체를 운영하면서 한국의 노인 돌봄 서비스와 그 구조적 문제를 노인분들을 통해 전해듣고 현장에서 보면서 ‘와 이거 참 문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공동창업자들에게 하게 됐고 ‘국내 노인돌봄 문제를 해결해보자’라는 결심을 하게 됐죠. 그렇게 ‘케어닥’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노인돌봄 서비스에서 소비자가 가장 큰 불편을 느끼는 문제는 전국에 2만 3천개가 넘는 노인요양시설과 노인요양병원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없고, 불투명하다는 겁니다. 전국에 치킨집만큼 요양시설이 많지만 어디가 어떻게 왜 좋은지 도무지 알 방법이 없었죠. 우리가 만원짜리 치킨을 시킬 때 후기와 평점을 보고 결정하면서 수천만원이 드는 요양시설에 우리 부모님과 할머니를 모실 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을 개선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인증평가원, 건강보험공단의 정보를 바탕으로 사용자 정보와 요양시설 원장들이 제보하는 정보를 통해 국내에서 최대로 풍부한 요양시설 중개 플랫폼을 구현했다. 또 작년부터는 요양시설 뿐만 아니라 간병인 중개 사업에도 확장해 교육과 간병인들 관리를 통한 중개업을 함께하고 있다. “저희 (주)케어닥은 간병 서비스 부분에 각별한 신경을 쏟고 있습니다. 간병인 직접 교육을 통해 관리하는 간병 서비스로 소비자에게 최고의 만족을 드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실제로 케어닥이 가진 노인 돌봄서비스 중개 플랫폼은 독보적이다. 실제로 소비자와 공급자가 적극적인 행태로 플랫폼을 이용하며 요양시설 정보 데이터를 바탕으로 여러 정부 유관기관과 제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플랫폼 내에서 간병인까지 한 번에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은 국내 유일이라 할 수 있다. 또 케어닥을 통해 매칭 받은 간병인은 신분, 자격, 이력, 국적, 1:1면접, 인성검사까지 거친 인원이다. 이들을 앱에서 무료로 프로필을 확인하고 간병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부분은 케어닥만의 큰 차별점인 셈. 노인 돌봄 서비스에서 소비자 타켓팅을 정확히 노린 케어닥의 효과일까. 케어닥은 ‘2019 대한민국 모바일 어워드 이달의 우수 모바일 서비스’로 선정되며 플랫폼 중의 플랫폼으로 5060세대의 만족도 높은 호응과 더불어 영향력을 가진 대세 플랫폼임을 입증했다. 노인 돌봄 대세 플랫폼으로 영향력을 입증한 케어닥의 비결은 무엇일까. “항상 고객의 이야기와 반응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저희 고객은 구매자뿐만 아니라, 간병인문들과 요양시설 운영자분들 모두를 포함하는데요. 거대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노인 산업이지만, 제도나 구조적 복잡성으로 인해 실제로 사업을 풀어내기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비즈니스를 풀어내기 위한 유일하고 가장 빠른 방법은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해에서 더 나아간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희는 저희가 만들고 싶어서 만드는 앱이 아니라 소비자가 실제로 원하고 쓰는 앱을 만드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핵심 철학은 ‘worry less, care more’이다. 걱정은 덜고 돌봄은 더 하자는 의미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간병이나 요양시설 이용하는 고민과 걱정을 덜고, 간병과 요양의 구조를 케어닥 플랫폼을 통해 객관적인 정보 공개와 돌봄 과정의 데이터 기록화를 투명화한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다. 박 대표는 케어닥 서비스는 꼭 필요할 때 쓰는 서비스가 아님을 강조했다. “미리 받아 놓고 일이 터졌을 때 당황하지 않고 요양시설을 급하게 찾거나, 간병인을 급하게 불러야 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돌봄 상황이 발생하면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그때 생각하기 어려울 수 있기에 미리 앱을 받아 놓고 사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 이력 및 수상내역 ] •2020. 04 인공지능 간병 지원 솔루션 Tips 과제 신청 간병인 & 요양보호사 교육원 설립, 상설 교육장 운용 02 Pre-A Funding(미래과학기술지주 3억원) 우리은행-시니어플러스 마케팅 업무협약 체결 어르신 돌보미 매칭 서비스 앱 마켓 출시 (IOS, AND) •2019. 12 KB손해보험 노인돌봄 중개 플랫폼 업무상배상책임보험 가입 케어닥 직영 재가방문요양시설 오픈(돌봄연구소) 11 Pre-A Funding(D3쥬빌리파트너스 5억원) 한국사이버진흥원 ‘노인돌봄 실무자 과정’ 개발 협력 체결 10 공공 빅데이터 활용 창업공모전-국무총리상 수상 05 Seed Funding (스파크랩, 롯데액셀러레이터, 미래에셋벤처투자, 엔젤투자) 04 전국 요양시설 검색 서비스 정식 출시 (web, android) 대한민국 모바일 어워드-우수 모바일앱 선정 (머니투데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02 케어닥 전국 요양시설 검색 서비스 Beta 출시 •2018. 12 고용노동부 예비사회적기업, 벤처기업 인증 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공모수상 Data 이용 허가 04 법인설립 [1095]
    • 메디컬
    2020-08-28
  • 박준혁 (주)광성산업개발 대표이사 / 유튜브 채널 [광성&아키우노티비] 건축가이드
    /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부르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 거장인 안도 타다오(Ando Tadao)의 작품들을 보면 인간과 자연, 세상의 이치를 건축으로 녹여낸 작품들이 많다. 건축 거장 안도 타다오의 영향을 받은 (주)광성산업개발 박준혁 대표는 노출콘크리트와 공간만으로 자연과의 조화를 접목시켜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 건축물을 창조해내는 마에스트로다. 광성이라는 상호에는 조금은 남다른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미칠 광(狂) 이룰 성(成) ‘미쳐야 이룬다’는 뜻으로 회사가 가진 이념이다. 그런 이념의 영향일까. (주)광성산업개발의 건축물을 보면 노출콘크리트지만 왠지 모르게 건물에 세세한 신경 쓴 느낌이 강하다. 편안하고 정감가는 컨셉의 디자인 요소가 가미된 건축물에서 박 대표의 감각이 묻어난다. 주간인물은 편안하고 완성도 높은 건축물과 차세대 젊은 건축가답게 자라나는 건축학도들, 미래의 건축주들과 활발한 소통을 펼치는 (주)광성산업개발 박준혁 대표를 만나봤다. _강태원 기자 경상남도 도민의 106만 인구를 담는 창원시 최고의 번화가 상남동에 자리한 (주)광성산업개발. (주)광성산업개발 박준혁 대표가 만든 건축물들은 건축주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핫플레이스 건축물 제조사로 통한다. ‘귀산동 카페 서향’ ‘안민고개 카페 안민651’ ‘상남동 카페 광성하우스’ 등 이름만 들어도 SNS에서 한 번쯤은 들어본 지역의 핫플레이스 카페들은 모두 그의 작품이다. 이밖에도 펜션과 주택 등 자연의 조화가 담긴 컨셉과 디자인 요소가 가미된 작품성을 지닌 건물들은 ‘예쁜 건물’로 사람들 마음속에 강하게 인식됐다. 업계에서 인정받고 소문난 종합건설회사 대표로 그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지금의 위치로 자리 잡기까지 어린 시절부터 독특한 이력에 여러 업종을 거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순수했던 유소년시절, 국가대표로도 활동 박 대표의 고향은 경남 마산이다. 현재 창원에 (주)광성산업개발이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기 전 그는 중학교 시절 주변의 시선과 기대로 촉망받던 국가대표 역도선수였다. 타고난 운동 감각으로 어린나이에 국가대표들만 모인다는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고된 훈련을 받으며 노력해왔지만, 관리자들과의 잦은 트러블로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를 순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운동지망을 야구로 변경해 지역 내에서 활약상을 펼치기도 했다. 국가대표 역도선수로 등록된 것이 야구선수 활동에 지장을 초래해 운동선수는 그만뒀다고. “지금 이렇게 종합건설회사를 운영하면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린 시절 남들과는 다른 인생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승부욕이 남달라 운동선수로 활동할 때부터 노력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 결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어렸을 적부터 끈기 있게 운동을 해오며 태생부터 승부욕에 집착이 강했어요. 운동을 그만두고 나서는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유학 생활을 했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바로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수많은 업종을 거쳐 종합건설회사 오너로 “군 제대 후 종합건설회사에서 일을 했었어요. 몇 년간 다져진 현장 경험을 통해 제 자신의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막상 밖으로 나와 보니 바로 시작할만한 게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출장 세차를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2016년입니다. 당시 출장 세차일은 잘됐습니다. 주로 돌아다니는 일의 특수성 때문에 하루에 정해진 양은 한정되어 있었고 세차 문의가 쇄도했어요. 그리고 디테일링샵을 차리게 됐죠. 출장은 출장대로하고 샵은 샵대로 운영하다 보니 일이 잘됐지만, 장마가 찾아와서 또 일거리가 없는 거죠. 그래서 입주 청소를 무작정 시작하게 됐습니다.” 당시 입주 청소를 시작한 박 대표는 창원의 모든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잠을 줄여가며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아파트 대리석을 얼마나 닦았는지 손가락에 때가 스며들고 지문이 닳아서 없어질 정도였다. 그렇게 몇 년간 일이 들어오면 입주 청소를 하기 위해 지역의 수많은 고급 아파트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느낀 점이 있었다고. “막상 입주 청소를 하며 대형건설회사에서 지었다는 아파트 인테리어를 봤는데 생각보다 낮은 퀄리티에 실망감이 컸습니다. 건설회사를 시작해보려고 직장에서도 나왔는데 청소 일을 하고 있는 제 자신 스스로에게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었죠.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갑질의 남모를 설움도 많이 당했습니다. 비로소 회사를 시작할 수 있는 자금이 모였고 종합건설회사에서 근무했었던 노하우를 살려서 함안 칠서읍에 가정집을 짓게 된 것이 첫걸음이었습니다.” 박 대표는 군 제대 후부터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하루도 마음 편하게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일터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경력을 쌓아온 실속이 꽉 찬 베테랑이었다. 그런 그는 현장에서 인력을 관리하고 일을 진행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소비자가 없어 판로 개척이 필요했다. 자신과 회사를 알리기 위해서는 지어진 건물로 우리의 명함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그 당시 공사 현장에서 일을 진행할 때 마창대교를 타고 차로 매일같이 지나가던 길이 있었습니다. 제가 눈여겨보던 장소가 있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던 건물이 철거가 된 거에요. 그 자리에 딱 맞는 건축물을 짓고 싶었습니다. 막연하게 그 자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서 수소문했어요. 결국 만남이 성사됐고 건축물을 짓게 해달라고 필사적으로 메달렸습니다.” 열성적인 박 대표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그렇게 쉽지 않은 과정을 통해 일을 받아서 지어 올린 건물이 지금의 ‘귀산동 카페 서향’이다. “서향을 짓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어요. 그 뒤로 귀산동 카페 하우요, 안민고개 카페 안민651 등 만드는 곳마다 핫플레이스가 되다 보니 이제는 업계에서 노출콘크리트 건물만 봐도 ‘광성에서 한 거네’라는 말이 나오게 된 거예요. 건축물로 저희 (주)광성산업개발을 알린 계기가 된 거죠(웃음).” 노출콘크리트로 한국의 안도 타다오를 꿈꾸다 노출콘크리트 건축물에 대한 박 대표의 철학은 간단한 듯 보이지만 간단하지 않았다. 박 대표의 건축물에는 그간 건설업계 현장에서 탄탄하게 쌓아 올린 남다른 노하우가 적용됐다. “제가 생각하는 철학은 교회에 가야 기도가 잘되고 도서관에 가야 공부가 잘되듯 건물도 그 현장에 맞는 건물의 옷이 있습니다. 노출콘크리트 건물을 짓기 전에는 건물에 대한 모든 계획이 다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세밀하게는 전기선 빠지는 위치, 배관이 지나가는 위치 등 건물의 구조 내 설비가 다 계산돼있어야 해요. 시각적으로 건물을 예쁘게 짓는 것은 누구나 다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선은 사람이 편안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는 편리하죠. 그런데 편리하다고 해서 편안한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시골집에 있는 오두막에 누워있을 때 그런 편안함을 느낄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런 것처럼 카페를 방문한 손님이 아주 편해야 계속 찾아올 수 있는 거예요. 건물이 집이 된다면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으로 계속 머무르고 싶은 곳으로 건물을 짓는 그런 개념이 되어야 합니다.” 유튜브 [광성&아키우노티비]로 소통하는 건축가이드 박 대표는 젊은 대표답게 노련하고 남다르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건축물 견적서와 원가 공개를 다하는 등 자라나는 건축학도들, 미래의 건축주들과 활발한 소통을 펼치고 있다. “유튜브는 저희가 개인적으로 제일 힘들 때 시작했어요. 당시 자금회전이 잘 안되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때 시작했던 유튜브 채널이 지금처럼 발전할 줄 생각도 못했어요. 유튜브를 통해 저희의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건축학도들에게도 견적서, 견적을 신속하고 빠르게 잡는 방법 등 저희가 만든 프로그램을 알려주고 있고 미래의 건축주에게도 견적서를 다 나눠주고 원가 공개를 다합니다. 이것이 업무상의 기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성세대 어른들이 해온 방식으로는 앞으로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하지 않으면 퇴보하는 겁니다. 지금 하고 있는 직업이 없어질 수도 있죠. 세상이 밝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대한 공유하는 입장입니다.” 박 대표는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을 통해 보람을 얻고 있다고 고백했다. 박 대표는 바쁜 와중에도 자투리 시간을 내서 고령화된 시골 동네로 찾아가 일손을 도울 정도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봉사맨이다. 회사동료들과 합심해 유튜브 채널에서 불우한 이웃을 위해 기금을 기부하신 분들의 명단으로 기부를 한 적도 있다. 코로나19로 지역사회가 어려울 때는 회사에서 운영 중인 상남동 광성하우스 커피숍에서 보건소 등을 찾아가 무료 커피 봉사를 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박 대표는 “봉사활동도 그렇고 사실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베푸는 삶에 만족감이 크고 우리 회사가 남들에게 얼마나 좋게 비치는 것을 고민하기보다 저희의 겉모습을 보고 오해를 가져서 생기는 문제가 더 큰 것이기 때문에 서로 간에 활발한 교류와 소통을 통해 한국에서 노출콘크리트 건축물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하고 싶은 저희 진심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09.03 ~ 2010.12 Scott Boras Corporation •2011.01 ~ 2011.07 ㈜지양건설 건설현장팀 대리 •2011.07 ~ 2013.04 대한민국 대항군 육군 병장 입대 / 제대 •2013.04 ~ 2014.05 ㈜지양건설 건설현장팀 반장 •2014.05 ~ 2017.11 ㈜지양건설 건설현장팀 소장 •2018.01 ~ ㈜광성산업개발 설립 대표이사 [1096]
    • 경제
    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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