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조병섭 이사장은 한국인쇄산업의 산증인이다. 1959년 소문출판인쇄사를 설립한 이후로, 15년 동안 부산인쇄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부산중소기업협동조합 이사장협의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 경제와 인쇄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리고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사재를 털어 어려운 이웃들을 돌봐온 조병섭 이사장. 그는 70억 상당의 소문출판인쇄사 건물을 (사)소문노인복지재단에 기부 출연했고, 소문노인대학을 만들어 노인복지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렇듯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한 삶을 살아온 그는 최근 부산 서구, ‘제30회 자랑스러운 구민상’ 희생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며 다시금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에 주간인물은 자수성가한 기업가로, 지역의 숨은 독지가로 살아온 그의 감동적인 인생 스토리를 담았다. _박미희 기자


그의 고향은 경남 김해. 일찍이 암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4남 중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했고 그런 그에게 쏟는 어머니의 정성은 유독 각별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쇄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험난하고 가파른 세월이었지만 그는 특유의 근면성실함과 남다른 일머리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건실한 청년은 스물다섯에 공장장이 됐고, 1959년 소문출판인쇄소를 열며 어엿한 사장이 됐다. 두터운 신용과 꼼꼼한 일처리로 이내 인정을 받았고 한때는 부산시청, 병무청, 선관위 등 정부기관의 일을 도맡아할 정도로 번성했다. 한편으로 1974년 송도케이블카 운영업체인 부산삭도(주)를 설립해 성공가도를 달렸다.

이렇듯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이름을 알리던 그에게 유혹 아닌 유혹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원칙을 지켜왔다. “제 삶의 신조 중에 하나가, ‘사람은 본디 자기 분수대로 살아야 하고, 작은 것이라도 남에게 베풀고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땅 투자를 해라,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라, 여기저기서 이런 저런 제안도 많았죠. 하지만 사업 외에 다른 것을 탐할 마음도 없었고 막중한 자리를 맡기엔 제 그릇이 작아 오로지 사업만 충실히 해왔습니다. 그저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혼자 힘으로 사업을 일으켰다는 게 보람된 일이죠(웃음). 그리고 저도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어려운 이웃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조금이나 힘이 되고 싶어 도움의 손길을 이어왔습니다.”
혼자 힘으로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룬 그에게 많은 지지가 모였다. 그렇게 그는 15년간 부산인쇄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16년간 부산중소기업협동조합 이사장협의회 회장직을 맡아 인쇄산업발전과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일을 했다. 그리고 부산상공회의소 상공의원(9,10,14,15대), 부산시정자문위원회 위원, 국제로타리3360지구 부산동남클럽회장, 장유중·칠산초등학교 총동창회 회장, 학교법인 장유학원재단이사장, (사)소문노인복지재단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문화훈장옥관장, 부산시민대상, 노인대학경영대상, 국무총리표창, 문화체육부장관표창 등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70억 상당의 건물 (사)소문노인복지재단 기부 출연
소문노인대학 운영, 무료급식 실시, 소문실버가요제 개최 등
노인복지를 위해 헌신


성공한 사업가로, 지역의 독지가로 이름이 높았던 그가 몇 해 전 70억 상당의 소문출판인쇄소건물을 (사)소문노인복재단에 기부 출연해 화제가 됐다. 한평생 일군 기업의 터를 선뜻 국가에 기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 하지만 가장 반대할 것 같았던 가족들이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여줬다고. “남들은 애써 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줘야하지 않느냐고 했죠. 하지만 저는 지금껏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까지 다 보냈으니 자식들에게 할 도리를 다했다고, 이제는 내가 뜻하는 일을 하겠다고 했죠. 원래 적십자 건물로 사용되던 것을 제가 인수해 인쇄소로 만들었어요. 그렇게 보면 원래 국가의 것이니, 다시 국가에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랬더니 아내는 물론이요, 장남(조양환 전 부산시의회 부의장)을 비롯해 자식들 전부가 제 뜻을 따라줬어요. 생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이웃들에게 베풀고 나눠주고 싶은 제 뜻을 가족들이 잘 이해해줬지요.”

그는 한평생 어려운 이웃들을 살뜰히 살펴왔다. 그 중 노인복지에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때문이다. “어머니는 훌륭한 분이셨어요. 남편 없이 네 아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웠죠. 특히 어려서부터 허약해 키가 작았던 저에 대한 사랑과 정성은 각별했지요. 어머니 덕분에 키가 작아 6.25 때 군 면제를 받을 정도로 허약했던 저는 건강을 되찾았어요. 고등학생이 되서야 뒤늦게 키도 다시 컸고요. 그만큼 저에 대한 어머니의 정성은 대단한 것이었죠. 기댈 곳 없이 외로운 마음을 부처님에게 기도하며 달래던 어머니.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변함이 없어요. 그래서 외로운 노인들을 보면 마치 저희 어머니를 보는 듯했어요. 못 다한 효도를 어르신들에게 하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를 공양하는 마음으로 그는 2000년도부터 소문노인대학을 운영해왔다. 무료급식실시, 경로잔치 개최 등 많은 행사로 노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과 행복을 전하고 있는 것. 이런 그의 따뜻한 진심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며 기업가로 독지가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조 이사장. 이제는 더 이상 원이 없다는 그의 마지막 바람은 무엇일까. “저는 제 생의 마지막까지 어려운 이웃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요.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 제 존재가 조금이나마 세상에 이로울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제6회 소문실버가요제

‘노인들이 행복하려면, 먼저 노인들이 즐거워야합니다!’ 조병섭 이사장의 지론은 확고했다. 노인들이 즐거운 세상을 만드는 소문실버가요제. 개인이 개최한 가요제로는 단연 돋보이는 규모와 구성을 자랑하는 소문실버가요제는 올해로 제6회를 맞이했다. 오는 10월 26일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흥겨운 노래한마당과 풍성한 축제의 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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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인물(weekylpeople)-박미희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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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섭 소문출판인쇄사 회장 | 사단법인 소문노인복지법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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