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8(수)
 
  • 모발과 두피에 대한 깊은 이해 - 최선진 이즈붙임머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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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긴 머리에 대한 로망이 있다. 짧은 머리보다는 할 수 있는 스타일링이 많고 특유의 청순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낼 수 있기 때문, 하지만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를 가지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애매한 길이의 머리카락이 중구난방으로 뻗치는 일명 ‘거지존’에 다다른 순간, 참다 못해 ‘붙임머리’를 검색해 본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길이와 숱, 염색 시술 등 추가 금액에 주춤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몇몇 시술 사례들에 결국 마음을 접고 만 경험이 있다면 이 글에 집중해보자. _김유미 기자

 

부산 대연동에 위치한 이즈붙임머리의 최선진 대표는 20년 가까이 붙임머리를 연구하고 시술해온 인물이다. “연예인들만 하는 줄 알았던 붙임머리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일부 샵에서 터무니 없는 가격이나 시술로 고객들이 피해를 입고 있어 안타깝다”는 그는 2015년, 이즈붙임머리를 오픈하며 서울, 수도권에 뒤지지 않는 실력과 노하우로 부산 붙임머리 전문샵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오직 붙임머리 시술, ‘붙임머리 전문샵’

입소문으로 성장해 대부분이 단골 고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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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붙임머리는 오직 붙임머리에 필요한 시술만 하는 ‘붙임머리 전문샵’이다. 전문 디자이너들이 있어 시술 시간이 짧고 부가적인 염색 및 스트레이트를 무료 시술해, 좀 더 완벽한 결과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얻을 수 있다. 실제로 고객리뷰에서는 스타일, 꼼꼼한 시술, 친절함, 자연스러움에 대한 감사 외에 “손이 정말 빠르셔서 편하게 시술받았다”는 평들이 많다. 

최 대표는 “저를 포함해서 전 직원들이 베테랑이다 보니 보통 2시간 정도면 시술이 끝난다”며 “3~4시간 반듯하게 앉아있을 걱정을 하고 오셨다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나 놀랐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라며 웃어 보인다. 실제로 6년 이상 최 대표와 함께한 정은 수석디자이너와 정민 실장은 업계에서도 상당한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즈붙임머리에서는 다른 곳과 달리 오직 최고급 천연 인모만 사용하고 있다는 것, 2~3회 재사용도 가능한데다 따로 추가 비용을 받지 않는 오픈 가격으로 고객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다. 


“오픈을 준비할 때부터 합리적인 가격과 제대로 된 결과물을 보여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었기에 안내 드린 부분 말고는 추가 금액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붙임머리를 하시고 무겁고 당김이 심하거나 땋임에 손가락이 걸려 불편을 겪으시다가 재시술을 받고자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는데, 이즈에 오셔서 아주 만족해서 가시지요.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시술해 드리려고 해요.”

이즈붙임머리에서는 피스를 새로 붙일 때 뿐만 아니라 재 시술 시에도 뿌리 염색이나 전체 염색 1회 무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수익보다는 더욱 완벽한 시술을 해내는 게 먼저인 최 대표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다. 

 

일본 오사카에서 3년간의 유학 생활 

‘맛’을 요리하는 일식 셰프의 꿈 접고, 헤어디자이너로 ‘멋’을 요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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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에 위치한 ‘이즈붙임머리’ 

 

사실 최선진 대표는 의외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운명처럼 헤어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 스토리도 흥미롭다. 

“졸업 후 조선소에 취업해 1년 정도 일을 했습니다. 대우는 좋았지만, 저와는 맞지 않더라구요(웃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상황이라 당장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공부하기 위해서는 큰 맘을 먹어야 했어요.”


호텔조리를 공부했던 그는 일식 셰프의 꿈을 안고 단돈 500만 원을 가지고 일본 오사카로 유학길에 올랐다. 학비 300만 원, 집세 100만 원을 떼고 수중에 남은 100만 원으로 생활비를 조달하자니, 아르바이트는 필수였다고. “면접 전에 머리를 자르고자 우연히 들른 헤어샵에서 정말 운명처럼 스승이자 은인과 같은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던 대표 원장이 일자리를 찾는 최 대표의 사정을 알게 되었고 “평소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며 “자신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줄 수 있겠냐”고 제의한 것. 그로서는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기회였다. “바닥을 쓰는 일부터 시작해 3년 간 특훈을 받게 됐습니다. 배울 수록 체질에 맞더라구요. 일본어 공부에다 헤어디자이너로서 배워야 할 이론에 현장 경험까지, 하루도 허투루 보낸 날이 없었지요. 지금은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리하는 제 모습이 상상도 안될만큼요(웃음).”


실패도 있었다. 귀국 후 야심차게 샵을 오픈했지만, 당시만 해도 붙임머리가 대중화되기 전이었던터라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자리 잡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하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 지금의 이즈를 키워냈다. “돌아보면 사업이 쉽지 않다는 큰 가르침을 얻고 초심을 찾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는 최 대표는 “이런 실패의 경험들이 있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속 깊은 말을 전했다.  


“일본어 소통이 되다 보니 일본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주세요. 캐나다에 살고 계신 한 고객분은 1년에 3회 이상 한국에 꼭 들어와 저희 샵에서 시술을 받고 가시죠. 시술이 끝난 후 만족해하시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시는 고객분들로 인해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붙임머리의 저변 확대를 위해 계속 정진해나가겠습니다(웃음).” [1152]


주간인물(weeklypeople)-김유미 기자 wp@weeklypeople.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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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머리, 결국은 디자이너의 역량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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