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세계 167개국을 누빈 사나이. 격동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고, 맨손으로 건실한 기업을 일군 기업가. 그리고 세계 각국의 오지를 다니며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희망 전도사, 도용복 회장. 그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도용복 회장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자수성가한 기업가다. 안동이 고향인 그는 부산으로 내려와 주경야독으로 어렵게 학업을 마쳤다. 그렇게 가난한 청년에게 음악과 예술은 따뜻한 위안이 되었다. 이후 그는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월남전 참전을 결심했다. 그는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는 전선에서 강인한 삶의 태도를 키웠다. 그렇게 도 회장은 1989년 사라토가를 설립했고, 27년 동안 변함없이 고객들의 사랑을 받는 토탈 골프용품 전문 메이커로 키워냈다. 날로 회사는 번창하고 성공한 CEO로 이름을 알리던 40대, 갑자기 찾아온 고엽제 후유증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시련을 그는 새 인생을 시작하는 계기로 만들었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고 일어선 것. “그땐 과연 내가 50까지 살 수 있을까. 그때까지 산다면, 남은 인생 정말 내가 하고픈 일을 하며 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태리로 가 음악 공부를 했고, 50살이 되던 해 남아프라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죠. 그게 제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오지를 중심으로 세계 167개국을 여행했다.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기에 이젠 그는 여행을 가기 전에 미리 유서를 써놓는다. 하지만 그는 인생에 다시없을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영혼의 울림을 느꼈다. 이렇게 그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찾았다. 세계를 누비며 발로한 공부는 건강뿐만 아니라 맑은 영혼까지 되찾아 주었다. “발로한 공부는 제 인생을 바꿔놓았어요. 여행을 통해 얻는 변화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죠. 이렇게 제가 새로운 삶을 얻은 것처럼 청년들에게도 더 넓은 세상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청춘들과 함께 떠난 여행. 좋은 호텔에서 묵으며 여유 있는 여행을 할 수도 있지만, 그는 대학생들과 도미토리룸에서 함께 자고 걷는 고된 여행길을 선택했다. “그것이 여행의 진정한 의미”라는 게 도 회장의 설명. 그렇게 그는 그 길에서 대한민국 청년들의 내일을 보았다. “장래에 대해 망연자실하던 친구가 여행을 다녀온 뒤 꿈을 찾았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아예 딴 사람이 된 것 같다며 기뻐하는 부모님의 편지를 받을 때면 참 흐뭇하죠. 우리 청년들의 잠재력은 무궁한데, 너무 좁은 틀에만 가둬두는 것만 같아 안타까웠어요. 넓은 세상을 경험한다면 글로벌 마인드를 지닌 훌륭한 재원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훗날 이순신처럼 나라의 동량이 될 청년들을 키우는 것, 그것이 제 꿈이죠(웃음).”

그의 오지체험을 직접 촬영한 사진과 영상이 언론매체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되었고, 이후 많은 곳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그렇게 그의 새로운 인생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첫 강연을 마치고 나서 잠을 못 이뤘어요. 강연장에서 내 열정을 다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죠. 그래서 그날부터 매일 2시간씩 조깅을 하면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조금씩 저를 채워가면서 새롭게 강단에 섰죠.”

그렇게 그는 그의 경험을 담아 남미·아프리카 기행 사진집 『 EL CONDOR PASA 』(1998. 1.), 기행문집 『 중앙아시아의 보물창고 신비한 나라 투르크메니스탄 』(2004. 6.), 세계 여행기 『 세상의 아들딸들아! 살아있으라 사랑하라 』(2011. 10.), 『 여행의 위대한 순간, 그래도 살아있으라 』(2015. 3.)를 펴냈고, 여행과 음악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오지 전문강사’로서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행정기관, 공공기관과 전국대학,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며 명성을 얻고 있는 것. 1년의 대부분을 강연활동으로 채울 정도로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지만, 피곤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는 건 바로 그의 열정 때문이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강의를 듣고 나서 자신의 인생이 바뀐 것 같다고. 강연을 듣는 분들 중 단 10%라도 생각이 바뀔 수 있다면, 그건 참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조금이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감사하지요(웃음)”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여행자, 도용복 회장.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그는 계속 여행길에 오르고 있다. 최근에도 2달 동안 러시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독일, 터키, 조지아, 아르메니아, 그리스, 우크라이나, 몰도바, 마케도니아, 터키, 코소보,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이스라엘, 카자흐스탄 등 북유럽과 동유럽을 여행하고 왔다. 먼 여행길에 지칠 법도 하건만, 그는 여전히 “아직도 다시 찾고 싶은 나라들이 많다”며 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말했다. 청년 같은 그 눈빛만 봐도 앞으로도 그의 여행길이 계속 되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70세 이후부터의 세 번째 인생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 인생을 살고 싶다’는게 그의 바람. 이런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세우고 그는 청년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구 한의대학교 특임교수, 국립부경대학교 초빙교수, 주한엘살바도르 명예영사, (사)부산문화예술진흥회 이사장, 뉴월드 오케스트라 단장, 부산재즈클럽 고문, 부산국제합창제 조직위원장, 한국국제합창협회 이사장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특히 그의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지역 문화발전을 위해 팝송교실을 여는가하면, 각종 문화예술 단체들의 활성화를 위해 뒤에서 묵묵히 지원하고 있는 것. 또한 최근 한국국제합창협회 이사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부산에서 1만 합창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제 바램이에요. 이제는 문화예술 콘텐츠산업이 어떤 산업보다 큰 부가가치를 만드는 산업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한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무색해지는 열정을 지닌 도용복 회장. 늘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그에게 꿈은 언제나 가까이 있어 보였다. “제 꿈은 우리 청년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장래는 청년들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이순신처럼 나라의 동량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작으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열정의 또 다른 이름, 도용복 회장. 청년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그의 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주)사라토가 회장
오지여행가
주한엘살바도르 명예영사
국립부경대학교 초빙교수
대구한의대학교 특임교수
한국국제합창협회 이사장
(사)부산문화예술진흥회 이사장
뉴월드 오케스트라 단장
부산재즈클럽 고문

약력
부산재즈클럽 초대 회장

동서대학교/신라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대구예술대학교 특임교수 역임
B.B.S 부산 중고등학교 교장 역임
도레미문화센터 대표 역임
한국케이블TV방송국 부산 울산 경남협의회 시청자위원회 위원장
2013 대장경세계문화축전 명예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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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희 기자-주간인물(weeklyepople)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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