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이젠 이곳은 지역의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지만 6년 전 그가 이 자리에 처음 카페를 열겠다고 했을 때 모두들 안 된다고 했다고. “6년 전 카페를 연다고 할 때 모두 저보고 ‘미쳤다’고 했죠(웃음). 지금과 달리 그땐 상권도 형성되지 않았고, 옛날 70~80년대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거리였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여기에 이런 젊은 카페를 연다면 이 골목이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도전했죠.”
건물을 짓는 공사 시간만 3년. 처음부터 있던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지었다면 훨씬 수월했을 작업. 하지만 그가 힘들더라도 1960년대 건물을 리모델링한 건 어떤 이유에서 일까. “해외에선 공장지대에 건물을 그대로 살려 카페나 레스토랑을 여는 곳이 많더라고요. 캐나다 증류주 공장지대에 있는 카페를 갔는데,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미 서울이나 수도권에는 트렌디한 문화공간이 많으니까, 고향인 대구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건물을 지을 땐 정말 고생도 많았어요. 정말 ‘맨땅에 헤딩하듯’는 심정으로 난관을 헤쳐 나가며 공사를 했었습니다.”



한번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유명한 건축가가 건물을 둘러보더니 ‘정말 무식해서 할 수 있는 인테리어’라며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고 호평 아닌 호평을 했더란다. 그만큼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의 고생스러움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 하지만 흘린 땀만큼 건물은 아름답게 지어졌고, 그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모습을 보는 순간이 그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라고. “사실 카페를 해서 큰 수익이 나진 않아요. 공간을 여유롭게 즐기시라고 이 넓은 카페에 테이블 19개만 두었더니, 다들 미쳤다고 하더군요(웃음). 하지만 이곳을 찾는 손님들만은 커피 한잔의 여유로움을 편안한 휴식을 즐기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김밥 전문점에서 김밥이 제일 맛있는 것처럼 커피 전문점이 커피가 맛있는 건 당연하다’며 커피 맛은 말로 설명하지 않겠다는 김 대표. 그의 자신감처럼 이곳의 커피와 브런치 메뉴는 단연 돋보인다. 낮에는 카페로, 저녁에는 펍으로 운영돼 인기를 얻고 있다. 그리고 상시적으로 문화 예술공연과 프리마켓이 열려 문화예술 공간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대구의 대표적인 번화가, 동성로. 그 근처에 위치한 교동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옛 흔적을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거리에 새로운 활력을 심어주는 곳이 있어 화제다. 1960년대 건물을 리모델링해 젊은 감각의 카페로 재탄생시킨 디스트릭트가 바로 그곳. 그곳에서 골목을 살리는 젊은 청년, 김가람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옛 추억이 묻어나는 거리. 이 조용한 거리의 젊은 활력이 되고 있는 디스트릭트는 한눈에 봐도 이색적이다. 1960년대 감자탕집으로 쓰였다는 건물을 리모델링한 이곳은 어느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개성이 묻어난다. 마치 유럽 어딘가에서 본 듯한 이국적인 정취가 묻어나는 가하면, 공장으로 쓰이던 건물을 카페로 만든 듯 한 빈티지한 감성이 묻어난다.

200여 평, 지하1층, 지상2층에 테라스까지 보유한 이곳은 건물의 외형적인 아름다움만큼이나 감각적인 내부 인테리어로 화제가 되고 있다. 대구에 왔다면 한번쯤 찾아가봐야할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는 것. 3년전 이 카페가 생기고 나서 이곳에서 영감을 얻은 젊은 사장님들이 하나, 둘 개성 있는 업장을 열면서 이 거리는 변화하고 있다.


 

거리의 활력을 만드는 젊은 명소, 디스트릭트. 하지만 아직도 골목을 살리기 위해 주민들의 이해를 구해야할 때도 많단다. 가까이 있는 주민들을 직접 만나며 혹여나 있을지 모르는 불편함을 살피는 그의 모습이 살갑다. 요즘 보기 드문 건실한 청년. 알고 보니 이 사람, 훌륭한 집안의 장손이란다. 그의 할아버지, 천일장갑 김원수 대표는 장애인을 사랑하기를 가족같이 여기는 건실한 기업가다. 자수성가형 기업가인 그는 숨은 독지가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늘 도움의 손길을 전해왔다. 이런 올곧은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은 아버지를 따라 그 역시 고향에서 성실한 사업가로 살고 있는 것. “남들이 할 수 없다던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건 다 가족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허황되게 돈을 쫓기보다, 단돈 100만원을 벌어도 보람되게 벌라’는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앞으로 더 성실한 사업가로 살아가겠습니다.”

고향을 사랑하는 청년, 김가람 대표. 지역의 새로운 외식문화가 자리할 수 있게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가겠다는 그의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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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희 기자-주간인물(weeklypeople)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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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람 디스트릭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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