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우리는 살아가며 느닷없이 삶이 바뀌는 순간을 경험한다. 순간은 우연히 찾아와 이전의 삶과는 다른 회로로 미래를 이끈다. 중앙동의 대로를 벗어나 용두산 기슭이 만든 오르막길을 오르면 오래된 건물 속에 카페 ‘라임스케일’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우연히 만난 순간을 기회로 삼아 꿈을 정립하고 자신만의 길을 갈고 닦는 신원태 대표가 있다. 부산항의 바다내음보다 짙은 그의 핸드드립 커피 향은 지나가는 이들을 붙잡는다. 커피 한 모금, 그 순간이면 삶이 바뀔 수도 있다. _송인주 기자


요즘 장사하려면 SNS를 해야만 한다. 카페를 창업하려면 커피에 관한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SNS에 관한 지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더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 수 있는가? SNS를 통한 홍보는 이젠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보인다. 그리고 SNS 홍보로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특색있는 메뉴와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포토존이 필요하다. 쉽게 찾을 수 없는 감성적인 인테리어가 곁들여진다면 그곳은 어느샌가 대기 줄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원태 대표는 SNS를 쳐다볼 시간에 커피를 한 잔 더 내리는 선택을 했다. 누군가는 홍보에 힘쓰지 않는 그를 바보라고 말할지 몰라도 신 대표는 커피만을 생각한다.

그는 10여 년간 커피를 내려왔다. 10년이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는 이제 시작이라 말할 뿐이다. 그의 커피 스승인 ‘빈스톡’의 박윤혁 대표의 영향이다. 그의 커피를 마신 순간, 신 대표는 충격을 받아 커피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울산에 계실 때 그분의 커피를 처음 마시고 충격을 받았어요. 카페를 창업하고 쭉 빈스톡 커피를 쓰다가 선생님께서 로스팅을 직접 하라고 부추기셨습니다. 자기 스타일을 찾으려면 직접 로스팅을 해야 한다고요. 덕분에 제 커피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선생님께 기술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더 많이 배웠어요(웃음).
그는 원래 대연동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현재의 라임스케일 위치를 찾게 되기까지는 남다른 이야기가 있다. “제가 이곳에 자리 잡을 때만 해도 여기에 카페 하겠다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어요. 동네 어르신들이 저를 정신이 이상한 사람 보듯이 봤죠(웃음).”
“지인 소개로 처음 이곳을 왔는데 참 재밌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기가 조금만 밑으로 내려가면 복잡한 시내지만 조금만 위로 올라오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나요. 그러고 3년 있다가 자리를 옮겨야겠단 생각이 들었을 때 불현듯 이곳이 떠올랐어요. 곧바로 차를 타고 왔는데 3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었어요. 낮에 다시 오니 세탁소 자리가 비어져 있었고 지금 카페 자리에 있는 분께서 창고를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이 동네에서 카페를 한다면 이곳밖에 안 떠올랐고 마침 원래 있던 분이 정리하는 찰나여서 얼른 들어왔습니다.”

현재 라임스케일은 예전에는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훨씬 이전에는 흔히 말하는 담배포였다고. “제가 여기 들어오면서 억지로 옛것을 바꾸기 싫었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고 싶었죠. 백설사커피의 백설사는 그 자리에 원래 있던 세탁소 이름에서 가져왔습니다. 라임스케일도 그런 맥락이에요. 지금 보시다시피 천장과 벽면에 세월 때문에 깨진 흔적 있죠? 석회 자국요. 그래서 라임스케일(lime scale)입니다.”

카페 이름은 라임스케일이고 백설사커피는 그의 로스팅 브랜드다. “제 커피 스타일은 말하자면 경상도 남자 같은 커피입니다. 저돌적이지만 따듯함이 묻어나는 커피요(웃음). 이곳에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합니다. 저는 장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디저트가 돈이 되는데 저는 음료도 없이 오직 커피만 하고 있으니까요. 가게가 크면 그만큼 손님이 찾아오고 그 수만큼의 니즈를 헤아려야 합니다. 지금이 딱 제 역량으로 오시는 손님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크기라고 생각합니다.”

‘라임스케일의 커피는 정말 맛있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신 대표의 커피를 소개하는 명확한 문구이다. 실제로 근방에서 커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소문났다. 신원태 대표가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고 커피만을 연구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찾고자 노력한 끝에 얻은 성과다.

“커피가 기호 식품이라 불리잖아요. 기호 식품인 만큼 다양한 커피가 존재합니다. 마시는 사람의 취향만큼의 커피가 존재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근데 최근에 보면 커피의 다양성 보다는 커피 외적인 요소의 다양함이 많아지는 듯합니다. 무엇이든 너무 과하면 손님들도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언제나 균형이 중요하죠.”

그는 커피가 너무 신성시되어 있진 않은가 반문한다. 어느 순간부터 커피를 분석하며 마신다. 조금 더 단순하게 커피를 느낀다면, 커피가 더 맛있어진다. 취재의 막바지에 그의 핸드드립 커피를 맛볼 수 있었다. 정말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커피였다. 분석하고 말 것도 없이 그저 맛있는 커피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신 대표를 바라보니, 그가 울산에서 처음 박윤혁 대표의 커피를 마셨을 때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1117]

주간인물(weeklypeople)-송인주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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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다! 커피마스터의 작은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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