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승무를 추는 여승의 발끝에 세인들의 눈길이 몰렸다. 하늘을 향해 승천하는 여승의 혼처럼, 사뿐히 접어올린 전통신의 선은 춤사위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하늘을 향해 올라간 용마루선과 추녀마루선에서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곡선이 우리 전통신에 있다. 이렇게 시대가 흘려도 변하지 않는 한국의 명품, 전통신의 명맥을 잇는 장인이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큰 장인, 50년간 전통신을 지켜온 안해표 화혜장(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 17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최근 문을 연 부산전통예술관에 새롭게 자리한 그를 주간인물이 만났다. _박미희 기자


최근 부산시가 전통공예의 거점으로 마련한 부산전통예술관에서 안해표 화혜장을 만났다. 지난 18일,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 3층 규모로 문을 연 부산전통예술관은 상설 전시장을 갖추고 기능 분야의 무형문화재 전수 교육을 하는 복합공간이다. 부산전통예술관에는 자수장, 전각장, 화혜장, 선화, 지연장, 동장각장 등 6개 종목 기능보유자가 입주했다. 그 중 부산에서 유일한 화혜장인 안해표(67. 부산시지정무형문화제 제17호) 장인의 을 찾았다.

화혜란, 왕가나 양반층이 신던 가죽신을 일컫는다. 화(靴)는 신목이 있는 신발을, 혜(鞋)란 신목이 없는 신발을 말한다. 이를 아울러 화혜(靴鞋)라 하고 이를 만드는 장인을 화혜장(靴鞋匠)이라고 불렀으며, 순우리말로 갖바치라 불렀다. 전통신은 현대적인 신발과 달리 좌우가 없는 것이 특징. 신다보면 자연스레 발모양에 따라 좌우가 구분돼 편안하게 신을 수 있다. 비단, 가죽 등 쓰이는 재료를 구하고 가공하는 일부터 한땀, 한땀 손바느질로 꿰매는 과정까지 많은 공이 든다. 오방색을 비롯한 한국적인 색감과 아름다운 곡선미를 지닌 디자인으로 시대가 변해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진정한 한국의 명품(名品)이다.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신의 명맥을 잇는 장인, 안해표 화혜장은 올해로 50여 년간 전통신을 만들어왔다. 그의 조부는 경남 합천군에서 관에 대는 전통신을 만들어온 장인이었다. 뒤를 이은 아버지를 이어 3대째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장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건 19세 때 부산 용두산공원 아래에서 전통신 가게를 운영하던 김현경 선생 문하에서 기술을 사사받은 이후부터다. 지금은 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이 부산 감천문화마을, 전통신전수관에서 일하며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누대로 내려온 기술과 오랜 세월 체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전통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안해표 화혜장. 장인의 빼어난 솜씨는 구태여 들어내지 않아도 세인들을 감동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처음에는 대회에 작품을 내보라는 주변의 권유에 ‘무슨 그런 일을 하느냐’며 가볍게 넘겼지요. 그러다 주변의 권유로 전국 대회에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기대를 안했는데, 작품을 본 심사위원들이 ‘빼어난 작품’이라며 무형 문화재 등록을 해보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때 만해도 무형문화재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무형문화재 등록에 도전해보라는 주위의 권유도 가벼이 여겼지요. 그런데 함께 활동하던 장인들이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한 분야에 천착한 장인이 많이 나와야, 그 명맥을 이을 수 있다’며 강권하더군요. ‘귀한 것을 지니는 것만큼이나 후대에 전하는 것이 더욱  장인의 큰 사명’임을 깨닫고, 무형문화재로 전통신의 명맥을 잇기 위해 애쓰게 되었습니다.”


한평생 전통신을 만들어온 장인의 야무진 솜씨는 왕가 의복을 복원하는 일에도 쓰임을 받았다. 문헌으로만 남겨진 자료를 토대로 왕의 전통신을 그대로 복원하는 일은 웬만한 솜씨 있는 장인들도 엄두를 내기 힘든 일. 하지만 3대째 내려온 기술과 한평생 전통신에 천착한 장인의 노력은 수백 년의 세월도 고스란히 뛰어넘는 명작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현재 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전 세계에 한국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왕의 전통신은 그의 작품이다. 한땀, 한땀 손바느질을 해서 전통신 하나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하는 시간은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달포까지도 걸린다.

“전통신은 만드는 과정은 정성 그 자체입니다. 비단, 가죽 등 사용되는 귀한 재료를 구하고 가공하는 일부터 한땀, 한땀 손바느질로 모양을 잡는 일까지……. 수십 가지 공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완성할 수 있죠. 이렇게 정성을 드리는 장인의 마음이 담겨야, 비로소 시간이 흘려도 변치 않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담은 전통신을 완성할 수 있어요. 전통신은 우리 옷의 고유한 자태와 맵시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한국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함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 만큼 후대에 우리의 것을 전수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을 대표하는 장인으로 부산전통예술관에 공방을 마련한 것도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 전통신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서라고. “전통신의 명맥을 잇고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한국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일, 그리고 그 맥을 잇는 일이 저의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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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함축한 전통신, 명품의 명맥을 잇는 부산의 큰 장인 - 안해표 화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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