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30여 년 동안 한복 디자이너로서 오로지 한길만 고집해 걸어온 김인숙 대표. 그는 한복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미학을 바탕으로 한복을 세계에 알리며 문화 교류 역할을 수행해 귀감이 되어 온 인물이다. 우리나라 전통의 명맥을 이어간다는 자긍심을 높여 더욱 나아가겠다는 김인숙 명인의 스토리를 조명해 본다. _김정은 기자


“한복의 선과 색채에는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가 서려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전통과 역사의 명맥을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한복의 전통성은 살리고, 현대미(美)를 가미해 한복의 세계화와 대중화에 기여하겠습니다.”
한복 디자이너로서 32년 동안 국내외 저명한 전시회와 패션쇼를 통해 꾸준히 한복의 미를 알려온 김인숙 대표. 2015 한국문화예술인총연맹에서 주최한 ‘문화예술인대상 전통한복 부문 대상’을 수상해 명인으로 선정, 2016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수상에 이어 국제평화대상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은 인물이다.
지난날을 떠올리면 고된 기억도 있지만, 우리나라 전통의 명맥을 이어간다는 자부심과 배움에 대한 즐거움으로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며 온화한 미소를 보이는 그. 한복과 땔 수 없는 인연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33년 전 아리랑 한복을 시작으로 한복사업을 영위하게 되었습니다. 시대의 흐름과 젊은 층의 감성에 접근하고자 8년 전 ‘하늘빛 우리옷’으로 상호를 변경했어요. 푸른 하늘색을 연상하게 하는 고운 색을 사용할 때는 ‘하늘의 옷을 지은 것 같다’는 평가를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웃음).”



김 대표는 놀랍게도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86아시안게임’ 당시 개막식에서 정통 한복이 등장했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우리나라의 전통을 고스란히 담은 한복의 고고한 자태에 한눈에 매료되었습니다. 한복을 입는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엄청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우리 전통의상을 세계 각국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당시 부산의 동구 범일동에서 유명한 사업가로 이름이 알려진 친오빠와 형부의 도움으로 김 대표는 한복사업에 입문하게 됐다. 이전에도 섬유와 의류산업이 활발했던 범일동을 자주 왕래하며 한복과 나름 친숙하기는 했지만, 기술적인 부분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오로지 자신감만으로 한복사업에 도전한 것.

“처음 열흘 동안 한 명의 손님도 없이 홀로 가게를 지키면서 ‘아,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낮은 자세로 시장 안 주단부에 인사를 돌기 시작하며 한복 복식에 대한 이론부터 실습까지 전국을 다니며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나이 겨우 28세.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상인들 사이에서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에 후회를 남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배움의 자세를 갖춰 멀리 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충무 누비 반두루마기’가 그의 눈에 띄었다. 정통성은 그대로 반영하되 옷에 놓을 자수를 남다르게 디자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옷은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처럼 팸플릿이나 한복 책자가 없던 시기라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판로가 약했어요. 보이는 곳곳에 사진을 붙여 두거나, 주단부에 부탁해 달아 두었더니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단골이 착용한 옷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들어 올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김 대표의 옷을 우연히 공항에서 보았다며 외국에서 본인의 치수 정도만 알려주고 여러 벌의 옷을 주문해간 사람도 있었다. “그 고객과의 우정은 끈끈하게 오랫동안 유지돼 보람된 기억으로 남는다”며 그녀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86아시안게임’에 등장한 한복의 고고한 자태에 매료돼
의지와 자긍심을 한 땀 한 땀 새긴 하늘빛 우리옷
국내를 넘어 국제 행사에서 한복의 아름다움 알리다



지금이야 온라인으로 검색만 해도 수두룩하게 얻을 수 있는 게 정보지만, 당시만 해도 그 흔한 한복 잡지도 구하기 힘들었던 때였다. 하지만 그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전공서 등을 독파했고, 민속미인선발대회를 비롯해 한복을 입고 출전하는 대회나 행사는 모두 찾아다니며 사진을 촬영해 앨범을 만들었다. 타 디자이너들의 한복 감각과 흐름을 읽어 내고자 한 것.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른 매장과 차별화된 인테리어에도 몰두하며 고객과의 관계에 가장 큰 심혈을 기울였다. 

“유연성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고객의 첫인상을 비롯해 피부 톤과 미세한 체형 차이, 그리고 사소한 취향 하나까지도 모두 파악해 옷을 지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복은 단순히 판매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의복이니까요.” 그의 의지와 자긍심은 한 땀 한 땀 한복에 담기기 시작했고, 야무진 솜씨는 이내 사람들의 눈에 띄어 입소문으로 번졌다. 혼수 보따리를 품에 안고 치수를 재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며 주변에서는 디자인과를 전공해 한복을 잘한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이 모든 게 1년 6개월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틈에도 김 대표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돈을 버는 것에 전전긍긍하지 않았던 터라, 사업부흥만으로는 아쉬움이 남았다. 한복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목표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 더 많이, 더 깊이 한복에 대해 알고 싶었던 그는 원광대학교 한복 복식학과를 지원, 복식과 색채, 문양에 대해 연구하며 정통의 바탕 위에 자신의 한복 작업을 체계화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김 대표의 노력과 실력은 국내를 넘어 국제 행사에서 더욱 빛을 내기 시작했다.
헝가리와 러시아, 온두라스, 달라스, 코스타리카, 호주, 캐나다 등의 대사와 그 부인들이 김 대표의 옷을 입곤 했는데 특히 코스타리카 대사와의 인연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며 일화를 공개했다. “코스타리카 대사 내외분의 옷은 제가 해마다 지어드렸습니다. 남다른 패션 감각을 지닌 멋진 분이셨죠.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 대사님께서 연설시 저를 직접 무대에 불러 최고의 의상을 제작해준 디자이너라고 소개해 주셨어요. 덕분에 타임지에 함께 소개되는 영광까지 얻게 되었습니다(웃음).” 김 대표가 지은 한복에 감동한 그는 자국으로 초대하는 초대장을 보내기까지 했단다. 또한 그녀는 미세스코리아선발대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주목받기도 했는데, 더욱 이목을 끌었던 사실은 ‘하늘빛 우리옷’에서 디자인한 한복을 착용한 후보들이 퀸과 진, 선, 미를 모두 석권했던 것이었다고.

한복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입는 것
민족의 얼·정체성을 지닌 전통 한복을 보전해야
미적인 감성과 철학, 사상이 반영된 한복드레스 진전 이룰 것 



이처럼 전통 한복을 통해 우리나라를 알리는 문화 교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온 김인숙 대표는 현대에 맞게 한복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복 고유 이미지가 심하게 훼손되고 변질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얼핏 보기엔 한복과 비슷해도 엄연히 한복이라 부를 수 없는 옷들이 대부분이더군요. 지나치게 상업적인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만들어진 국적 불명의 퓨전 한복들이 정통성을 훼손하고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특히 경복궁과 북촌마을, 전주한옥마을은 관광지로 유명해 외국인들이 자주 찾아 우리나라 한복을 대여해서 입고 관광을 하는데 소위 퓨전 한복이라는 왜곡된 한복으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매우 안타까워요.”

우리 것을 지켜야 한류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아니겠냐는 김인숙 대표는 혼례 시 입는 한복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의견을 표했다.
“예로부터 혼례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일컬을 만큼 인생의 가장 큰 행사이지요. 헌데 요즘은 웨딩드레스에 비중을 많이 두면서 우리 전통 혼례복의 개념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물론 전통혼례복을 고집하라는 의견은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이 결혼을 통해 기대되는 모든 소망과 기원을 색과 문양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한복의 의미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소재와 전통 방식으로 만든 한복의 착용과 관리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감수한다면 격식을 갖춰야 할 곳에 한복만큼 아름답고 우아한 의복은 없습니다. 한복의 미적인 감성뿐만 아니라 철학과 사상이 반영된 전통을 살려, 젊은 층에게 한복 드레스를 알리는 데 저 역시 앞장서 노력하겠습니다.”

한복의 멋을 다음 세대에도 온전하게 물려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김인숙 대표. 우리나라 전통을 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한복의 산업화ㆍ세계화ㆍ대중화에 아낌없이 노력해 온 그의 다음 걸음이 기대된다. 





■ 주요경력
•1988 월간 아름다운 우리 옷 출품
•1989 한국민속미인선발대회 작품 수상
•1990 한국불교방송 한복패션쇼 참가
•1999 부산 가야고등학교 교복 선발업체 선정
•2002~2018 한국미세스코리아선발대회 심사위원 위촉
•2002, 2006 한국미세스코리아선발대회 작품 대상 수상
•2003 한국문화예술진흥회 우리 옷 연구가 위촉
•2004 여성봉사단체 부산목련회대표 봉사상
•2007 인천 세계의상페스티벌 부산 대표 디자이너 참가
•2007, 2009 인천 세계의상페스티벌 각국 대사 의상 제작(코스타리카, 헝가리, 러시아)
•2008 세계 의상패션페스티벌 부산 대표 디자이너
•2008 원광디지털대학을 빛낸 인물 선정 공로패 수상
•2009 사단법인 한지문화진흥회 디자이너 금상
•2009 아태 정상회의 귀빈 두루마기 제작
•2009 한국 전통한복 문화원 금상
•2009 인천 세계의상페스티벌 최우수 디자이너 수상
•2010 전통한복작품대회 최우수상
•2015 한국문화예술대상 명인 수상
•2016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수상
•2016 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
•2017 국제평화대상
•2018 한국문화예술감사패

[1063]

 

주간인물(weeklypeople)-김정은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한복을 통해 우리 전통의 가치와 정신을 이어가겠습니다” 한복의 아름다운 가치를 담아내는 이름, 하늘빛우리옷 - 김인숙 대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