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올 가을 10월에 국립국장 전통예술아카데미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 남산골 은빛 축제 제 1회 남산골 국악경연대회에서 당당히 남자부문 도살풀이춤으로 대상을 수상해 인생의 제2막 춤을 통해 날개짓하며 날아오르고 있는 조 홍 선생. 춤이 있어서 노후가 행복하다는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_우호경 차장



경기도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담고있는 도살풀이춤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다



도살풀이춤은 경기도 남부에 마을굿인 경기도당굿에서 연희되던 춤으로 독특한 경기도당굿의 제의적 요소와 음악과 춤사위에서 여타의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경기도 지역만의 문화양식적 역사성과 문화적 예술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무속계열의 춤이다. 이 도살풀이춤은 흉살과 재난을 소멸시켜 마을의 안녕과 나아가 행복을 맞이한다는 종교적 소원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다. 도살풀이춤은 매우 제의적이지만 소박한 삶의 깊은 뜻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춤사위와 긴 수건에 의해 그려지는 공간상의 유선이 매우 다양하며 그 형태가 하나의 소박한 화폭과도 같다. 또한 각기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의 자유로운 춤사위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제의적인 내면의 멋과 외면적 역동성의 표현미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독특한 경기도당굿 장단과 어우러져 경기도만의 독특한 멋과 뛰어난 예술성을 표현하고 있다. 도살풀이춤의 반주음악은 경기도당굿 무악으로 매우 다양하고 독특한 장단구조로 이루어진 2분박6박자의 도살풀이장단(섭채)으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 장단에 발도 못 맞출 정도로 특색 있게 구성되어 있다.
조 선생이 다시 춤을 만난 것은 영주 부석사 밑에 소백산 안에 예술촌이라는 마을에서 전문가들인 쟁이들(춤과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 모여 '하루 저녁 멋지게 한판 놀아보자' 하며 공연을 하다가 시작되었다. 또한 그 당시 총무 스님으로 계셨던 범종스님하고 15년째 인연을 맺고 있다. 일주일 3일 이상은 경기도 안산에서 안동 광흥사 범종스님이 계시는 절에 내려가 범종스님을 돕고있다. 현재 범종스님은 훈민정음 해례본인 대한민국의 소중한 문화재를 찾는데 큰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뜻에 따라 조 선생 또한 오른팔같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춤 공연을 보면 그 동작에 내 몸이 실려가는 느낌입니다"




경북 대구에서 태어난 조 선생은 유년시절 또래 아이들보다 남다른 감각을 지닌 소년이었으며, 중학생이 되어 장래희망이 스님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조 선생은 풍물에 재능이 있었던 어머니를 통해 자연스럽게 유년시절부터 판소리와 국악에 특별한 관심과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고등학교에 진학 할 무렵에는 본격적으로 전주에서 판소리를 공부했다. 당시 대금과 가야금으로 이름이 알려진 원광호 선생이 본격적으로 국악 공부를 권유했으며 이후 전주의 이일주 선생에게 본격적으로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조 선생은 대학교 진학 후 국악과 춤에 대한 열망과 그리움을 가슴에 담은 채 결혼을 하고 평범한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현재의 요식업을 하며 안정된 삶 속에서도 ‘자신이 꼭 가야할 길이 있는 것처럼’ 가슴 한 켠에는 한국 전통 춤에 대한 간절함과 염원이 늘 남아있었다고 전하는 조 선생. 그는 2005년 경남 밀양 하보경 선생님의 공연을 보러 다니는 등 전통 춤에 대한 열정이 끊임없이 이어져 50대 초반에 남산에 있는 국립극장전통예술아카데미에 등록을 하여 김복임 現회장과 인연이 닿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춤을 추게 되었다.
“춤 공연을 보면 그 동작에 내 몸이 실려가는 느낌이다" 라고 말하는 조 선생. 그는 스스로 느끼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며, 자신의 열망과 욕구를 채워주는 춤을 출 수 있도록 내조해 준 아내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또한 공연을 할 때마다 참석해 축하와 격려를 보내주며 금전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은 가족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자신이 춤을 출 수 있다고 말하며, 조 선생은 현재 사찰에서 제사와 49제를 위한 춤을 추며 전통예술을 널리 알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삶을 단순화 시키고 싶다. 타 공연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면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 했으나 실제로 해보니 쉽지가 않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춤은 나의 인생에 동반자다. 무대가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교감하며 공유하는 일은 가슴 벅찬 행복함을 느낀다." 조 선생은 10년 후 칠순 잔치에 가족들과 지인들을 모아 자신의 춤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에 대해 소망과 염원을 가지고 있다. 그는 도살풀이 춤을 추기 위해 버선을 신으려고 잡아당기는 순간 희열을 느끼며, 한발짝 내딛을 때 늘 긴장 속에서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조 선생은 “그래! 내 인생, 제 2막 노년기에 접어들었지만 지금도 춤만 추면 내가 살아 있는 것을 느끼며 몸에 전율이 오르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이 행복감! 나는 정말 행운아다.” 라며 자신을 늘 격려하고 있다. 또한 죽을 때까지 범종스님을 도와 함께 한다는 행운까지 얻은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웃음을 보여주는 조 홍 선생에게 주간인물은 뜨거운 열정과 힘찬 응원에 박수를 보내며, 그의 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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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인물(weeklyepople)-우호경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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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 한국의 전통춤을 추는 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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