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국보와 보물이 있는 절터이야기’와 ‘정보사회와 컴퓨터’의 저자 김남용 교수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향긋한 차 내음이 솔솔 풍겨온다. 이렇듯 귀한 차로 손님맞이를 하는 신한대학교 김남용 교수의 연구실에는 불철주야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바쁜 일상 중 한 템포 쉬어 갈 여유를 선사해주는 김남용 교수의 연구실에 찾아가 차 한잔을 나누며 교육자의 나아갈 길(正道)에 대해 들어보았다. _강성은 기자



후학양성은 나의 운명


90년 3월 첫 채직 후 28년 3개월 동안 김 교수는 언제나 등교 1등을 차지하고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 성공한 맛집의 비결은 소스 하나가 판가름하듯 그의 성공비결도 아주 사소한 습관하나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규정한 ‘업무집중시간’ 아침 2~3시간은  아주 작은 실천이지만 그의 크나큰 성공 소스다. 오늘이 오기까지 얼마간의 아침을 가장먼저 열어왔을까. 책이 빡빡한 그의 연구실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그간의 고민과 업무의 흔적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이런 김 교수의 어릴 적 꿈은 놀랍게도 화가였다고. 유년시절 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고 즐겨왔던 그.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컴퓨터 학과에 진학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붓을 잡고 있을지도 몰랐을 일이다. 지금은 그림대신 왕성한 사진 작업으로 과거의 꿈을 대신하고 있다. 이렇듯 다재 다능한 그에게 교수가 된 계기를 물었다. “대학원에 간다고 모두가 교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운이 좋았고 시대상황이 잘 따라 줬다고 생각합니다.” 베이비 붐 세대에 태어난 김 교수. 대학에 들어갈 당시는 79년도. 컴퓨터 업계에서 가장 인력이 필요할 때라서 다행히 대학원진학까지 하여 교수가 될 수 있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잘 타고 났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으면 취직을 못해서 호되게 고생 했을겁니다.”라며 지금 이 시대 학생들의 어려운 상황을 공감한다. 감사한일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신 두 분


지금의 김 교수를 있게 해준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을 꼽으라면 두 사람을 꼽을 수 있다. 대학교 일학년 때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만났던 아저씨. 혼잡한 지하철안에서 전공 공부를 하고 있는데 웬 아저씨 한분이 공부하는 책을 보더니 본인의 회사에 찾아오라며 회사이름만 남기고 이름 한자도 가르쳐 주지 않은 채 홀연히 내려버렸다. 알고 보니 지금 한화의 전신인 한국화약 전산관련부서에서 근무하던 직책 높으신 분이었고 학생시절의 김 교수에게 훌륭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그분과 계속 알고 지내며 작은 말씀하나도 놓치지 않고 실천했던 것이 김 교수의 미래를 책임지는 일이 되었다고 한다. 무심히 지나쳤을 수도 있는 ‘어느 아저씨’의 말을 기억하고 회사주소 하나에 의지해 기어코 다시 만난 집념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또 한분은 석·박사 왕창종 지도교수님. 그는 지금 까지 만난 교수님 중에 가장 훌륭한 교수님이라고 회상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훌륭한 교수 아래에 훌륭한 교수가 탄생하듯 그의 제자 중에서도 훌륭한 인물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기득권 타파는 이시대의 숙제


대한민국이라는 열차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교육자라는 바퀴가 맡은 바 역할을 제대로 하여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교육자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임이 무엇이냐에 대하여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교육자 자신들은 물론이며 국가적으로도 혼선을 빚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갈 길을 잃었다. 그는 교육자의 역할을 강화하여 사회적 모순을 해결해 줄 것을 요구 하고 있다. 교육자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시기는 유아교육입니다. 뿌리부터 바로잡아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이 시대 교육인의 사명입니다.” 그는 기득권 세력이 그들의 권리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행사하는 세태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종합형 문제해결형 인재양성을 위해 분석·설계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교양 교육이 강화 돼야 한다고 말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조기교육을 받으며 국·영·수 위주의 성적내기용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는 한국 교육계의 현실을 꼬집었다.


옛 절터 연구소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


교수실 한켠에서 오늘도 옛 절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그의 오랜 꿈은 옛 절터 연구소를 만드는 것. 미륵사지, 해양사지, 황룡사지등 옛 절터는 우리나라에 2000여 곳이 있다. 절터를 답사하고, 사진을 찍고, 정보를 모은 지가 벌써 20여년이다. 개인사진전을 열고 책까지 쓸 정도의 전문가이다. 그는 퇴직 후 설립할 옛 절터 연구소를 위해 시간 날 때 마다 옛 절터 답사를 간다. 지금도 옛 절터에 관한 모든 광범위한 정보를 그만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향후 옛 절터 웹서비스도 할 예정이다. 옛 절터에 관한 모든 정보가 그 안에 들어있을 것이다. “옛 절터에 관한 모든 정보는 김남용 교수의 연구소를 가봐라. 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완성도를 높이고 싶습니다.” 방대한 자료들을 정리하느라 밤낮없이 지내고 있지만 열정이 있기에 행복함이 넘쳐나는 그다. 업무외의 시간은 주로 자전거 타는데 보낸다. 자전거연합회회장도 지낸 그는 취미생활을 즐기며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자전거 타기를 권한다. 지역 활성화를 위해 커피연구소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강릉의 커피축제가 있듯, 의정부 커피축제를 준비 중입니다.” “이를 통하여 낙후돼 있는 위성도시 의정부의 활성화를 이루고 싶습니다.” 커피+음악의 복합 문화 공간을 만들어 홍보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동네카페 투어 도장 찍기 이벤트 등 재미있는 컨텐츠를 활용해 활성화를 이룰 계획이다. “과거 황금의 땅이었던 의정부가 지금처럼 낙후돼있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또한 학문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그는 어떻게 하면 대중들이 정보기술 등 어려운 학문을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할 수 있을까 오늘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스마트폰을 사이에 두고 정적만이 흐르는 21세기 각박한 사회에 숨이 턱턱 막힌다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김남용 교수의 연구실에 들러보자. 우리는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경계의 벽을 허물고 다시 대화의 싹을 틔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 교수의 연구실에 세 번 이상 찾아가면 ‘나만의 잔’을 만들어 준다. 나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들게 해줄 그의 정겨운 연구실에서 한세상 멋지게 살아온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볼 것을 추천한다. 

[1014]

[주간인물(weeklypeople)-강성은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경기북부의 활성화를 책임지는 교육자가 되겠습니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