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백중은 ‘우란분절’이라고 하며 불가의 명절이다. 음력 7월 15일에 부모님의 은혜를 기리며 선대 조상이나 호국영령 등 애틋한 사연을 지닌 영혼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날이다. 그 뜻깊은 날을 맞아 천성산 미타암 주지인 명천스님과 만남을 가졌다. _이진랑 기자

 

익숙한 것들이 주는 안도감이란 유정무정 어느 것에서도 통하는 공식이다. 천성산, 그간 숱하게 들어왔던 그 산 이름이 그랬고, ‘아미타 부처님’이라는 여래(부처님의 다른 이름)의 명호가 그러했다. 그렇기에 천성산 미타암은 친숙한 느낌이었고 초행길이었음에도 밀려오는 안도감은 삼복의 더위를 뚫고 올라가야 한다는 두려움마저 잦아들게 했다.

미타암은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1376년이던 우왕 2년에 중창되고 1888년 고종 25년 정진스님에 의해 재충창된 전통 사찰로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고찰이다. 이 천년고찰에 최근 새 바람이 당도했다. 다름 아닌 명천스님이 이 산중의 주인이 되어 입산한 일이다.


명천스님은 조계종단과 불교계에서는 유명인으로 통한다. 통도사의 문화재 위원이며 불상 조성, 법의 조성, 탱화 조성 등 불교문화 관련 각종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은, 최고의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더욱이 염색과 바느질, 음식 등 장르를 불문하고 인정받는 스님의 실력은 국내를 넘어 세계무대가 좁다고 할 정도다. 그가 2002년도에 조성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금니사경 변상도는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에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명천스님은 미국과 뉴질랜드 등지에서도 국내 최고의 불교 역작들을 시연, 전시한 뒤 기증한 예도 적지 않아 한국불교와 한국의 불교문화를 선양하는 일에도 일조한 승가로 화자되고 있다. 2009년에는 고려 가사를 고증   복원하여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과 대한불교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지난 2013년에는 범어사의 금어연을 조성하여 또 한번 불교계를 놀라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 명천스님이 최근 소임을 맡은 미타암은 그야말로 스님의 명성에 부합되는 고찰인 셈이다.
“미타암은 그간 고승대덕 선사들의 주석처로 면면히 맥을 이어온 도량이죠. 사찰은 천성산의 팔부 능선쯤인 해발 700미터 고지에 위치해 있는데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도량에는 대웅보전, 삼성각, 미타석굴, 종각, 두 개 동의 요사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타암에서 가장 큰 자랑거리는 천하기관 미타석굴이지요. 미타석굴은 천연동굴에 조성된 석굴사원으로 내부에는 보물 제998호로 지정된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이 모셔져있으며, 불상의 시선은 동해를 향하고 있어 마치 경주 석굴암과 낙산사 홍련암을 연상케하는 위용입니다.”




이렇듯 미타암은 암자치고는 제법 규모가 있는 도량으로 꾸준한 발전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전임 주지스님의 원력에 힘입어 노후된 도량이 일신을 맞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더욱이 신실한 기도객들이 끊이지 않고 기도를 올리는 기도처로도 아주 유명한 곳으로, 불교 종단의 수승한 선객들로 회자되는 어른 스님들이라면 반드시 이곳에서 정진했을 정도의 수행처로 이름난 도량이 바로 미타암이다. 그러니 소임 2개월을 넘긴 명천스님이 계획하는 다라니기도는 수행도량에 걸맞은 기도로 관음재일 이틀 전인 매월 음력 22일부터 관음재일 당일인 24일까지 사흘 동안 저녁 미타암을 기도도량으로 물들일게 자명하다. 이를 위해 사중에서는 사찰 아래에서부터 부산 노포동터미널까지 차량을 제공할 계획이다. 모르긴 해도 기도를 위해 그 팔부 능선을 찾는 불자들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닌가 싶다.

미타암의 신행단체로는 남성 불자들로 구성된 거사림회와 칠보회가 있는데 거사림회는 신심 돈독한 거사(남자신도)들이 불법을 익히며 동시에 사찰에서 진행하는 크고 작은 불사에 봉사하는 것을 주된 활동으로 삼는 신행모임이다. 칠보회(여자신도)는 매월 음력 초하루와 15일인 보름 법회에 공양을 올리고 봉사활동을 펼치는 모임으로 발족되었다. 봉사만큼은 최상급인 신행단체로 미타암 신도들에게나 참배객들에게 있어 아주 감사한 조직들이다.



불가의 명절로 손꼽히는 백중. 음력 7월 15일에 봉행되는 백중기도법회를 마치고 마주앉은 명천스님에게 향후 미타암에서의 계획에 대해 질문했다. “원효대사는 이곳 정상에서 화엄경을 설하셨고 그로써 비구 천명이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천성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죠. 창건조의 이념이 서린 이곳 미타암은 그러기에 수많은 선지식을 배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른 스님들에 미치지 못하는 소납(스님이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기에 각처에서 서원을 품고 오르는 불자들에게 저마다의 본성을 알아차리게 하는 역할를 해주고 싶습니다. 잠시 불교문화를 뒤로하고 소임에 충실할 것입니다. 미력하나마 공양간을 위한 불사에도 진력해야 하고요.” 겸양이 묻어나는 명천스님의 답이다.   


석조아미타여래입상--------------------------------------------------------------------------------------------------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미타암(彌陀庵)의 석굴사원에 모셔져 있는 통일신라의 불상이다.
머리에 있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와 어깨까지 내려온 긴 귀, 원만하면서도 우아한 인상, 왼손을 몸에 붙여 곧바로 내리고 오른손을 가슴에 댄 모습, 그리고 둥근 어깨와 평판적인 가슴, 대좌 위에 곧바로 선 자세 등에서 779년에 만들어진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상(국보 제82호)의 양식을 이어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부드러운 주름을 형성하며 온몸을 감싸고 있는 옷은 U자형의 옷 주름을 이루면서 흘러내려 발목에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는 끝이 뾰족한 배(舟) 모양으로 안에 2줄의 굵은 선으로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하였다. 그 사이에는 좌우대칭으로 꽃무늬를 배치하였으며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대좌는 얇게 파낸 눈 모양의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는 사각형의 대석(臺石)위에 꽃무늬가 새겨진 이중의 연화좌(蓮華座)를 올려놓고 있다. 광배와 대좌, 옷주름의 양식과 수법이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제82호)과 유사한 점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서방 극락세계로 승천한 다섯 비구(比丘)가 수도하던 석굴에 모셔진 것이다. 또한 미타암이 자연동굴이지만 인공을 가한 흔적이 뚜렷하여 8세기 통일신라 불상 양식의 한 계보를 살펴볼 수 있다. 신라 아미타사상의 전개과정은 물론 당시 성행하던 석굴사원 조영의 한 단면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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