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꾸준한 교육적 혁신을 통해 2013~2017년 5년간 수도권 전문대 ‘가·나 그룹’ 중 취업률 1위 대학으로 성장한 인천재능대학교. 이러한 성장에는 이기우 총장의 열정 가득한 손길이 곳곳에 묻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교육계 주요 관직을 거쳐 교육부 차관까지 역임한 이기우 인천재능대학교 총장은 2006년 총장직에 오른 이후 지난해 4번째 연임에 성공하는 신화를 달성했다. “직업교육이 존중받는 능력중심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서 나가겠다”며 포부를 전한 이 총장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직을 겸임하며 전문대학의 사회적 역할 강화를 위한 일에도 힘쓰고 있다. 주간인물은 사회를 바라보는 깊고 따스한 시선과 교육에 대한 신념의 소유자인 이기우 총장의 행보에 함께해 보았다. _조병훈 경기인천지사장


Q. 거제에서 태어나셔서 그 곳에서 성장하셨습니다. 어린시절을 거제도에서 보내셨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지요.

A.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으로 나와 살았지만, 태를 묻은 고향 거제도에서의 유년시절은 뚜렷이 기억납니다. 특히, 그 시절을 떠올리면 늘 배가 고팠던 기억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시절 어렵지 않은 집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지만, 저희 집은 유독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쌀밥을 원 없이 먹어 보는 게 소원이던 시절.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제삿날이었습니다.
그래도 제삿날에는 쌀밥과 기름진 음식이 제사상에 올라가고 생선에 전이라도 이웃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늘 어느 집에 제사가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웠고, “느그 집 기제가 언제드노?”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 부모님이 해주셨던 음식들이 무척 그립습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어머니는 아들 영양보충을 위해 가끔 대접에 달걀을 하나 깨서 풀고, 거기다 참기름을 넣어 휘휘 저어 주셨는데 정말 별미 중의 별미였습니다. 달걀과 참기름이 뒤섞인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Q. 거제는 두 분의 대통령을 배출한 땅입니다. 지령인걸(地靈人傑)이라는 옛말이 있듯, 앞으로도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배출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뛰어난 분들을 많이 배출하는 거제에 대해 풍수적으로 들으신 것이 있으시다면.

A . 거제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으로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한 곳입니다. 60여개의 섬들이 빚어내는 천혜의 비경은 물론이고, 풍성한 먹거리로도 유명하지요. 쪽빛 바다와 청명한 하늘,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광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마주한 듯한 신비로움까지 느껴집니다.
거제(巨濟)는 ‘크게 구제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풍수적으로도 거제는 한반도의 남동쪽 끝자락에 위치해 지기(地氣)가 매우 왕성하여 가장 기(氣)를 많이 받는 곳입니다. 웅장한 산세를 닮아 훌륭한 인물이 배출되고 산업도 크게 발달할 풍수적 지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거제의 발전이 중요합니다. 거제가 곧 미래입니다.

Q.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하셔서 차관급인 국무총리 비서실장과 교육인적자원부 차관까지 역임하시며 공무원의 전설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이 있으십니까.

A. 대학 입시시험에서 떨어진 후 부산 대연동우체국 서기보로 들어갔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우연찮게 공직에 입문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제 일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어 다시 시험을 쳐 거제교육청 서기보로 옮겼습니다. 처음 거제교육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도 ‘빨리 돈 벌어서 대학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일은 뒷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일을 제대로 배우고 또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출근을 했더니 제 자리가 없는 겁니다. 그때 제 상사가 제 책상을 밖으로 치우고 시설계로 보냈습니다. 3개월 동안 먹지로 글을 베끼는 작업만 시키는데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기왕에 할 일이라면 제대로 해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자’라는 결심으로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서무계로 원위치 되었지요. 이후 대학입시에 대한 생각을 접었습니다. 아니, 생각이 안 났다는 것이 맞겠네요. 왜냐하면 일하는 재미에 푹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승진점수도 좋았고, 사무관 승진시험도 단번에 붙었습니다.
이후 공무원으로서 제대로 일하는 공직자가 되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이왕 하는 일이라면 ‘신명나게 그리고 잘 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무리 자잘한 일이더라도 정성을 들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육부 차관까지 역임하고 과분한 평가까지 받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Q. 이해찬 당시 교육부 장관으로부터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공무원으로, 이상주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으로부터는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공무원으로 칭송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전무후무한 평가를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공무원 시절부터 남들이 힘들어하고 하기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는 편이었습니다. “좋은 것은 당신이 직접 보고하고, 나쁜 것은 내가 보고 하겠다”, 국무총리 비서실장 시절 후배 동료들에게 한 말입니다. 어려웠던 시절 절실함 속에 많은 것을 겪었던 탓일까요? 남들이 힘들어 하는 일을 저는 크게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인간관계에서는 옷깃을 스치는 인연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일례로, 교육부에 있을 때는 교육부 재직자들의 이름을 전부 외웠습니다. 상대방을 만났을 때, 상대는 제 이름을 몰라도 저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인천재능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해서도 마찬가지로 학과별로 돌아가며 교원들과 오찬간담회 겸 상견례를 하던 날, 악수를 하며 일일이 그분들의 이름을 불러드린 적이 있습니다. 김춘수 시인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라고 노래한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의 마음을 전하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사람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고자 성심을 다했습니다.
사소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대학이라는 조직에서 처음으로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설 수 있었던 그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기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지금과 같은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기억에 남는 은사님이 있으십니까.

A. 어릴 적부터 가난한 집안형편에 타 지역으로 고등학교를 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 저에게 꿈을 꾸고 실현하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셨던 선생님이 두 분 계십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이명걸 선생님은 저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그 분이 부산고 출신이신데, “기우, 너 부산고 가라”고 하셔서 부산고에 대한 막연한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3 때 김영진 선생님은 “너는 반드시 합격한다. 앞으로 좋은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며 확신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어요. 제가 그 당시 부산고를 갈 수 있었던 것은 저를 믿고 격려해주신 두 분의 선생님 덕분입니다.


Q. 2006년 인천재능대학교 총장 취임 이후, 4차례의 연임 기간 동안 인천재능대를 자타가 공인하는 일류대학으로 발전시키셨습니다. 그 실적을 회상해 주신다면.

A. 인천재능대학교는 특히 정부재정지원사업 등 교육평가에서 탁월한 성과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대학 기본역량진단 평가에서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되어 2019년부터 3년간 대학혁신지원사업 국고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서울, 인천, 경기지역 전문대 중 최고 점수를 받아 A등급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2017년에는 사회맞춤형 산학협력 선도전문대학(LINC+) 육성사업에 선정되어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맞춤형 인재 양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고용노동부에서 주관하는 ‘고숙련 일학습병행제(P-Tech)’ 사업 선정, 특성화전문대학육성사업 선정 등 어느 대학에서나 선정되기를 바라는 굵직굵직한 사업과 평가에서 세계적 수준의 고등직업교육 역량을 인증받으며 정부재정지원사업 등 교육평가 9관왕을 달성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인천재능대학교는 학생들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도록 산업현장과 유사한 교육환경에서 실무교육과 참된 인격을 갖추기 위한 인성교육에 힘쓰고 있습니다.

Q.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 한국전문대학법인협의회 회장으로 국내 전문대학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하셨습니다. 향후 학생 수 감소 등 외적인 환경변화에 대비한 전문대학 생존전략을 간략하게 말씀해 주신다면.

A. 전문대학은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정립하고, 지역산업과 긴밀한 협조관계 속에서 각 대학의 특성에 맞게 그 대학만이 해낼 수 있는 장점을 만들어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차별화전략(differentiation strategy)과 초점화전략(focus strategy)을 토대로 각 대학만의 차별화된 강점을 구축하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전문대학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발판이라고 봅니다.
이를 토대로 전문대는 직업교육의 세계적 표준에 맞는 직업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글로벌 직무 역량을 갖춘 전문인력을 배출하는 등 글로벌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Q.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나라 교육도 큰 변화가 올 것으로 예측됩니다. 근 40년 가까이 교육부에서 일했고 평생을 교육에 몸담아 오셨습니다. 총장님께서 생각하시는 ‘교육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교육부에서 40년, 인천재능대학교에서 13년, 50년을 넘게 교육의 최일선에서 제 깜냥에 맞게 역할하면서 나름 자랑할 것도 축적해 왔다고 자부하는데 ‘교육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늘 주저하게 됩니다.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바로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육에 관한 변하지 않는 생각은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제시한 ‘실사구시(實事求是)’입니다. 실용 우선, 합리 지향, 실상 파악, 쓸모를 강조했던 실사구시가 바로 교육의 요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교육이 일정 부분 정체되고 또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은 현실(사실)과의 간극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봅니다. 즉, 사실을 추구하고 실용을 지향하는 힘이 너무 약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교육은 삶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매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추상성이 아니라 구체성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써먹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써먹을 수 없는 교육은 생명력이 길지 않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교육은 실사구시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교육이 다시 희망이 될 수 있는 혹은 백년지계를 도모할 수 있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Q. 지금까지 모든 일에 열정을 가지시고 최선을 다하시면서 남이 이루지 못한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각 분야에서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워런 버핏은 “이 세상에 성공적인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은 없다. 성공적인 직업인과 그렇지 못한 직업인이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미래사회를 주도할 키워드는 학벌이나 학력이 아닌 능력입니다. 아울러 인생 이모작 시대에는 자신이 신명을 다해 지속적으로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여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꾸준히 축적하여 자신만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즉, ‘극적으로 변화되는 순간’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의 적성과 흥미, 꿈과 끼’입니다. 이것을 무시한 선택은 후회와 퇴보를 남깁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무엇을 가장 즐겁게 잘할 수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하고자 하는 일에 당당하게 도전해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앞으로 하시고 싶으신 일이 있으시다면?

A. 제 나이쯤 되면 개인적인 목표가 그리 큰 의미가 없습니다. 스스로 노욕(老慾)을 가지지 않도록 늘 경계하기도 하고요. 다만, 제가 몸담고 있는 전문대학이 고등직업교육을 담당하는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우리 사회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문대학에는 일반대학에 비해 특히 저소득층 자녀들이 많이 진학합니다. 이들에게 직업교육을 통해 건실한 사회일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우리 사회의 공적 아젠다로 부각되기를 희망합니다. 실업자와 경력 단절자들도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주는 일이 체계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즉,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통해 계층이동이 활발한 사회구조, 희망사다리가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그 속에 우리 전문대학들의 역할이 더 커졌으면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더 따뜻하고 아름다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또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시간이 갈수록 고향 거제 생각이 많이 납니다. 현재, 거제는 주력산업인 조선업의 어려움으로 상당히 침체되어 있습니다. 저의 여러 경험이 고향 거제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온 힘을 다해 지원하고자 합니다. [1075]

주간인물(weeklypoeple)-조병훈 경기인천지사장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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