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8(수)
 
  • 정행 스님 화명선원 주지 / 불교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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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행 스님은 영혼을 울리는 불교 성악가다. 숙명여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음악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미국 유학길을 올라 명상과 부처님 법을 실천하고 다도 문화를 소개했다. 카네기홀에서 공연한 유명한 성악가이자 지역 활동가로 열심히 봉사했다. 출가 전부터 명상과 참선을 공부하고 지역 활동가로 열심히 활동했던 스님은 서울 평창동 효동선원에서 범패를, 서울 삼성동 무형문화재센터에서 국악을 수료했다. ‘음악의 뿌리를 찾겠다’라는 일념으로 지천명이 되던 해, 출가해 청도 운문사 강원을 졸업했다. 동국대 정각원 음악 법사 및 음악원 교수, 대구 동화사 문화국장, 서울 성북동 행복선원 선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부산 화명선원 주지로 전법과 포교에 전념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내 안의 소리」를 작사 · 작곡했다.


부산 화명선원은 매년 하절기·동절기마다 화명2동 행정복지센터에 저소득계층 학생 지원금 200만 원을 각각 기탁해왔고 부산 북구청에 독거노인 건강음료 배달사업 후원금 200만 원을 기탁해왔다. 화명선원 선행회는 화명2동 행정복지센터에 취약계층 아동과 독거노인 등을 대상으로 이불(150만원 상당) 나눔을 해왔다. 사월 초파일과 어버이날, 가을에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무료 음식 공양을 해왔고 부산 북구 28개 동 경로당을 다니며 어르신들에게 수박 나눔을 펼치는 등 매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약 1,000만 원가량의 자비 나눔을 실천해왔다. _박미희 기자

 

 

‘영혼을 정화하는 맑은 울림’

 

 

취재진이 마주한 정행 스님의 목소리에는 영혼을 치유하는 어떤 힘이 있었다. 풍진 세상, 세속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스님과 차를 나누는 이 시간만은 고요한, 평온이 깃들었다. 성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스님이 출가를 결심한 것도 모두 음악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자라기론 문경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나 귀하게 컸죠.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줄곧 서양음악을 했어요. 어려서부터 ‘사’보다는 ‘공’을 우선하는 가풍 속에서 자라서인지 아니면 전생의 인연 때문이지 출가 전부터, 내 한 몸 편한 것으로는 도무지 성이 차지 않더군요. 비록 내 몸이 고되더라도 남을 도울 때 비로소 행복을 느꼈어요. 성악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서도 명상과 부처님 법을 전하고 다도 문화를 소개하며 교포 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한평생 봉사를 하며 살았는데, 귀국 후 ‘음악의 뿌리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갖게 됐죠. 한국은 불교 역사와 함께 해왔기에 음악의 뿌리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범패(梵唄;불교음악)에서 시작되더라고요. 그 길로 서울 평창동 효동선원에서 범패를, 서울 삼성동 무형문화재센터에서 국악을 수료하며 우리 음악의 뿌리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스님은 지천명이 되던 해에 청도 운문사 강원을 졸업했다. 

“쉰, 이젠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하는 때잖아요. 한 개인으로 봉사를 한다고 해봤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삭발을 하고 가사 장삼을 두르니, 만인에게 부처님 법을 전하고 영혼을 바르게 갈 수 있도록 안내할 수 있더군요. 제게 주어진 짧은 생(生)을 누군가의 영혼을 바르게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데 쓸 수 있다니 얼마나 뜻있는 삶입니까? 그래서 청도 운문사 강원을 졸업하면서 본격적인 수도와 참선을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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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화명2동 행정복지센터 저소득계층 학생 지원금 기탁식

 

음악을 통해 포교와 전법에 힘 쏟아왔다. 동국대 정각원 음악 법사 및 음악원 교수, 대구 동화사 문화국장, 서울 성북동 행복선원 선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각계각층의 불자들을 만났고 음악으로 위안과 희망을 전했다. 만인에게 공평한 음악은 포교와 전법에 좋은 매개체였다.


“대구 동화사에서 ‘산사 태교교육’을 운영했어요. 산부인과 전문의들과 연계해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며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건강한 사찰음식을 먹고 신선한 숲속도 걷는 진정한 자애명상에 초점을 뒀죠. 태교교육을 음악으로 하니, 예비 엄마, 아빠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웃음). 한번은 청송 교도소에 교정 봉사활동을 하러 가서 첫인사로 피아노를 치며 노사연의 만남을 불렀거든요. 일순간 무섭게 굳어 있던 재소자들의 표정이 아기처럼 순해지더라고요.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라는 가사처럼 ‘지금 이 자리, 이 순간부터 새로 태어났다는 마음으로 수도하고 참선하면 된다’라는 말에 왈칵 눈물을 쏟은 재소자도 있었어요. 만인에게 공평한 음악이 때론 어떤 법문보다도 더 큰 가르침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늘 평온한 얼굴과 청아한 목소리로 불자들을 맞이하는 스님. 하지만 알고 보면 스님은 5년 전, 암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다. 

“선원장으로 한창 일할 때였는데 어느 날 음침한 잠자리를 보곤 문득, ‘내가 이 자리에서 아프겠구나’하는 직감이 들었어요. 그러곤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됐습니다. 조금 더 살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기보다는 목숨 다할 때까지 포교하고 전법하리라 결심했어요. 그 길로 오로지 수행과 참선, 식이요법으로 병마와 싸워 이겨냈고 십시일반으로 치료비를 마련해준 불자들의 정성 덕분에 지금은 건강을 많이 회복한 상태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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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북구청 독거노인 건강음료 배달사업 후원금 기탁식

 

부산 화명동 화명선원 주지로 현재 포교와 전법에 힘쓰고 있다. 도심 포교당인 화명선원은 관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따뜻한 자비 나눔을 실천해왔다. 매년 하절기·동절기마다 화명2동 행정복지센터에 저소득계층 학생 지원금 200만 원을 각각 기탁해왔고 부산 북구청에 독거노인 건강음료 배달사업 후원금 200만 원을 기탁해왔다. 화명선원 선행회는 화명2동 행정복지센터에 취약계층 아동과 독거노인 등을 대상으로 이불(150만원 상당) 나눔을 해왔다. 사월 초파일과 어버이날, 가을에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무료 음식 공양을 해왔고 부산 북구 28개 동 경로당을 다니며 어르신들에게 수박 나눔을 펼치는 등 매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약 1,000만 원가량의 자비 나눔을 실천해왔다. 


화명선원에서는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드물게 매달 둘째 주마다 실내연주회가 펼쳐진다.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로 구성된 피아노 4중주 반주로 불자들과 함께하는 찬불과 법회를 하고 있다. 


정행 스님이 불자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끽다거(喫茶去)다. 차 한잔을 나누며 세속의 걱정 근심을 함께 나누고 전법과 포교에 힘쓰고 있는 것. 


“ ‘끽다거(喫茶去), 즉 차 한잔 마시고 가게’라는 말을 늘 해요(웃음). 화명선원을 찾는 불자들이라면 누구나 저와 차 한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죠. 불자들은 지금 현재 닿은 인연을 통해 부처님의 법을 잘 배우고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좋지요. 내 마음속에 작은 티끌이라도 있다면 내 몸 밖에 나가는 에너지가 맑을 수 없어요. 그러니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빛으로, 무(無)로 나아가는 것이 결국 수행인 것 같아요. 앞으로 자신을 태워 완전히 연소하는 촛불처럼 포교와 전법에 정진하며 온 힘을 다 해 살 것입니다(웃음).”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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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소리」 운주사(불교총판)


 






주간인물(weeklypeople)-박미희 기자 wp@weeklypeople.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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