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30(목)
 
  • 백성남 (주)고래건설 · (주)고래할매수산 · (주)고래할매장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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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윤이상은 1917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1920년부터 통영에서 살았다. 그는 통영이 그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집안의 반대 속에서 음악공부를 하던 중 1935년, 1939년 두 번 일본에 건너가 음악이론과 작곡을 공부했다. 1955년 파리에 유학했고 1957년 독일의 베를린 고등음악학교에서 음악이론과 작곡을 배웠다. 졸업 직후인 1959년에 발표한 작품이 호평을 받고 독일에 남아 음악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1959년부터 시작된 북한과의 접촉과 방문, 1967년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한 납치(동백림 유학생간첩단 사건), 1992년 귀순한 오길남 사건 등 일련의 정치적 사건에 얽혀 세간의 관심은 음악적 성과보다는 정치적 행보에 초점이 맞춰 있는 듯 했다. 국내에서 재판을 받고 복역 중 국제적인 여론의 악화로 1968년 특별사면된 후 그는 서독으로 돌아가 2년 뒤 가족들과 함께 서독 국적을 취득했다. 이후 1995년 베를린에서 사망할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그의 사후 23년 만인 2018년 통영의 국제음악당 부지 내에 안장되었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윤이상(1917~1995) 작곡가를 기리기 위해 2000년 ‘통영현대음악제’로 시작돼 2002년부터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명실상부 아시아 최대 현대음악제로 꼽힌다. 


하지만 여전히 윤이상에 대한 평가는 의견이 갈린다. 그의 정치적 행보를 문제 삼는 사람들로 하여금 통영에서 윤이상 지우기 논란이 일고 있는 것. 이런 움직임에 반해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을 재조명하고 통영을 세계적인 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 데 힘찬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 


통영국제음악제(3월 31일~4월 9일)을 앞두고 통영시 도천동 ‘윤이상 기념관’ 인근 건물에서 커다란 펼침막을 내건 백성남 고래할매수산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_박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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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기념관 옆 사업장에 걸린 대형 윤이상 환영 펼침막. 


‘우리는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선생님과 통영국제음악제를 사랑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대형 펼침막을 제작해 내건 것. 통영국제음악제 폐막 이후에도 계속 펼침막을 걸며 윤이상 재조명의 의지를 나타냈다.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이 한국에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는 현실에 늘 안타까움을 느껴습니다. 진영이 어떻든 음악가는 음악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넘어 세계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삶과 음악이 제대로 조명 받길 염원하는 마음에서 펼침막을 제작해 걸게 됐습니다.” 


통영에서 (주)고래건설, (주)고래할매수산, (주)고래할매장어를 경영하고 있는 백성남 대표이사는 이른바 ‘깨인 사람’이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송도에서 사업을 하며 독지가로 남몰래 어려운 이웃을 도와온 모친의 뒤를 이어 수산업을 경영해왔다. 정도경영으로 60년 전통의 고래할매수산을 일궈온 백성남 대표이사. 장애를 딛고 사업가로 성공한 그는 일찍이 문화사업과 장애인복지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가져왔다. 장어 가공, 유통사업에 최적지인 통영으로 사업체를 옮겨와 3년 전, 윤이상 기념관 옆에 사업장을 열었다. 


“작은 항구인 통영에서 윤이상, 전혁림, 유치환, 이중섭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배출된 것은 대단한 문화적 유산입니다. 이런 문화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도시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사용한다면 그 부가가치는 엄청날 것입니다. 윤이상 기념관이 있는 도천동만 하더라도 인근에 여자중학교와 여자고등학교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이 길로 등하교를 하며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듣고 자란다면 그 영향으로 세계적인 천재가 얼마나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런 우수한 문화적 DNA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윤이상 바로 세우기’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런 생각에 반대도 많았다. 펼침막을 두고 반대하는 인근 주민도 많았고 색깔론을 펼치는 보수진영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윤이상 선생이 위대한 작곡가로 올바르게 평가받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기에 주변의 냉소적인 반응에도 그는 시종일관 침착했다. 


“모차르트를 지우고 잘츠부르크를 내세우는 것과 다름없지 않습니까. 외국 사람들은 통영은 몰라도 윤이상은 알아요. 윤이상기념관이란 명칭을 도천음악공원으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는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더 이상 윤이상 선생을 홀대하기 보다는 통영시가 윤이상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세계적인 문화예술도시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심리 위축으로 장어 가공, 유통업계는 어려움을 겪었다. 고래할매수산 역시 타격에서 벗어나긴 어려웠다. 어려운 경영환경에도 불구하고 사업에 매진하고 문화사업, 장애인복지사업으로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착한 기업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문화사업, 장애인복지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요. 이를 통해 지역사회와 더불어 성장하는 강소기업을 일구는 것이 꿈입니다.” [1148]





주간인물(weeklypeople)-박미희 기자 wp1991@daum.net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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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환영 펼침막 건 수산업체!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바로 세우기’에 앞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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