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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대통령표창 - 정직한 땀의 결실, 따뜻한 나눔으로 바꾼 40년
    한국자유총연맹 김해시지회 정대헌 회장이 지난달 28일 개최된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식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정 회장은 지난 2021년부터 한국자유총연맹 김해시지회장을 맡아 자유안보사업, 북한이탈주민 정착 돕기 사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시민들의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실천해온 인물이다. _박미희 기자 “나눌수록 되려 받는 행복, 이젠 많은 분들과 함께 봉사의 기쁨을 나누고 싶어요(웃음).” 정대헌 회장은 지역사회의 숨은 독지가로 꾸준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해왔다.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CEO인 그는 40년 경력, 자동차 정비 달인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고향은 경남 창원 북면 감계리, 2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찍이 자동차 정비사로 사회 첫발을 디뎠다. “지인의 추천으로 마산 신기사에서 정비사로 입문했어요. 군 제대 이후 현대자동차서비스정비센터에 입사해 십여 년간 자동차 판금 수리를 했습니다. 초창기,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기초부터 차근차근 이론과 실무를 다져나갔죠. 오랫동안 쌓은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정대헌 회장은 1989년,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창업에 도전해 경남 마산에서 ‘신화정비’를 설립했다. 몇 년 후, 경남 창원에서 ‘대명자동차정비’로 이전했고 2007년, 김해시 진영읍 본산에 1급 본산종합자동차정비를 열어 성업 중에 있다. 1급 본산종합자동차정비는 고급 자동차 판금 도색 전문 업체다. 손님들 사이에서는 ‘못 고칠 자동차가 없고 못 고칠 부분이 없는 만능 정비업소’로 입소문이 났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고품질의 정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 오랜 세월 현장에서 쌓은 뛰어난 기술력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동차 정비에 관한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신 판금·도색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철저한 자동차 수리 후 검사로 고객 만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40년 경력, 자동차 정비의 달인에게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IMF 외환위기, 거래처들의 연이은 부도로 한때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거래처들이 잇따라 부도가 나면서 대금을 받을 길이 막막했어요. 그야말로 죽을 고비에 처했죠. 오죽 막막했으면 ‘낙동강에 확 뛰어들까’하는 극단적인 생각을 할 정도였죠. 하지만 정비사란 자부심,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버텼어요. 뚝심 있게 한우물을 파며 정직하게 일한 노력이 훗날 다 돌아오더라고요.” 기초부터 탄탄하게 쌓아온 실력. 그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아 그는 다시 사업을 일으킬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에 대해 묻자, 그는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경남은행 상남동 지점장이셨어요. 차 정비를 해 드렸더니, ‘이렇게 정비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제대로 된 사업장을 열어 다시 사업을 하라’라고 격려하시더라고요. 모두가 고치기 어렵다는 차를 잘 정비한 것이 마음에 드셨는지 그날 이후로 오랜 단골이 되셨어요. 엔지니어로서의 역량을 높이 인정해 주셔서 훗날 자본금을 마련하는데도 계속 도움을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감사할 따름이죠(웃음).” 올해 육십셋의 정대헌 회장은 뜨거운 현역이다. 베테랑인 그는 정비가 어려운 고급 차도 손쉽게 정비한다. 차를 점검하는 눈빛이 사뭇 매섭다. 자동차 외관만 봐도, 소리만 들어도 차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단번에 알아보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 40년 숙련 기능인의 우수한 정비 기술은 전문가들도 인정할 정도다. “자동차 정비 일은 하면 할수록 어렵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깊이를 더할수록 더 많은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죠. 제대로 된 자동차 정비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늘 배우는 자세로 항상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있어요(웃음).” 땀과 눈물로 만들어온 세월, 그 세월과 함께 쌓아온 덕망은 이젠 그의 아들, 정규화 씨가 이어가고 있다. 2세 경영인으로 일선에서 함께 일하며 가업을 잇고 있는 것. 현장에서 땀 흘리는 아들에게 정 회장은 “정비보다 더 어려운 일이 사람을 대하는 것”이라며 “저마다 다른 손님들의 다양한 ‘Needs&Wants’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늘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라며 자신의 경영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서 꾸준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왔다. 지난 10여 년 간 창원시 체육 문화 발전을 위해 봉사를 해왔고 김해로 사업장을 옮긴 이후론 줄곧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해왔다. 2017년 한국자유총연맹 김해시지회 운영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해 2018년,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2021년, 김해시지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자유안보사업, 북한이탈주민 정착돕기 지원사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시민들의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한국자유총연맹 김해시지회는 1,000여 명의 회원들이 단단한 결속력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다. 특히 북한이탈주민 정착돕기 지원사업에 적극적이다. “김해 지역에 500여 명의 북한이탈주민들이 있어요. 김해시지회는 추석맞이 어울림한마당, 간담회, 경제문화탐방 등을 통해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김해시지회는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한 문화체험 활동과 각종 행사를 통해 문화적인 이질감을 해소하고 이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는 추석맞이 어울림한마당’,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는 간담회’를 주최하고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는 경제문화탐방’, ‘통일청소년민주시민교육’을 통해 활발한 소통과 공감을 이뤄내고 있다. ‘함께하는 평화의 봄’ 평화통일 사업에 참석해 북한이탈주민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고 있다. 김해시지회는 2022년, ‘광복 제77주년 나라사랑 태극기 나눔행사’를 개최했으며 2023년에는‘104주년 3·1절나라사랑태극기나눔’ 사업에 동참했다. 호국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희생을 기억하고 시민들의 애국심과 긍지를 높이기 위해 마련된 행사로 500여 명의 회원들이 참석해 차량용·가정용 태극기 500장을 시민들에게 나눴다. “김해시지회는 매년 광복주년 나랑사랑 태극기 나눔행사를 하고 있으며 2023년부터는 3·1절에 가정용 태극기, 차량용 태극기를 시민들에게 배부함으로써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나라사랑의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회원들과 한마음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월남전 참전지회 김해지회와 국리민복 확산과 가치 실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보훈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6.25참전용사 초청 보훈위안잔치, 국가유공자 명패 달아드리기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 정대헌 회장은 여러 캠페인과 행사에 참여해 국민운동 활성화에 기여했다. 지역사회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해왔다. 국토대청결운동을 주도했고 가야문화축제, 진영읍단감가요제 등 김해시 지역문화축제에 참여했고 경남여성단체협의회와 협력해 6.25참전용사 가정에 사랑의 김장나눔 봉사활동을 펼쳤다. 사랑의 집고쳐주기 지원사업에 참여했고 김해시 불우이웃돕기에 성금 200만원과 250만원 상담의 성품을 기탁했으며 2023 사랑의 도시락나눔사업으로 독거노인 및 소외가정에 밑반찬 나눔활동에 동참하는 등 많은 봉사단체를 후원하며 꾸준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왔다. 그는 매년 사업체 수익의 10%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10여 년간, 누적 기부액만 2억 원이 넘어선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들어내지 않고 묵묵하게 실천해온 봉사와 나눔. 그에게 봉사와 나눔은 이제는 일상이자 삶의 원동력이다. “정비소 수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저희 정비소를 찾아주셨기에 사업체를 잘 운영해올 수 있었어요(웃음). 사회에서 받을 것은 되돌려준다는 생각에서 꾸준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어요. 하면 할수록 되려 받는 나눔의 기쁨, 제가 열심히 일하고 밝게 웃는 삶의 원동력이죠(웃음).” 이번 대통령 표창 수상은 시민들의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봉사한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에 대해 정대헌 회장은 “저보다 더 훌륭한 분이 많은데 이렇게 수상을 하게 되어 송구스럽다”면서 “모든 것은 한마음으로 봉사해온 회원들과 도와주신 지역사회 구성원들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지회 발전과 지역사회를 위해 꾸준히 봉사하며 노력하겠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한평생, 열심히 일하고 기쁘게 봉사하는 그는 요즘 새로운 일로 분주하다. 내년 4월, 김해 최초 ‘한국자유총연맹 경남도지부 국리민복가치확산 결의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 김해에서 최초로 진행되는 이번 한국자유총연맹 경남 시.군18개 지역 단합회를 통해 회원들 간의 화합과 소통을 이뤄낼 계획이다. 김해에서 치러지는 첫 대회인만큼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합심해 노력하고 있다. 2024년에는 김해시에서 제105회 전국체육대회 개최를 앞두고 있어 김해시 홍보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내년 4월, 개최되는 한국자유총연맹 국리민복가치확산 결의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해에서 치러지는 첫 대회인 만큼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민·관의 뜻을 모을 계획입니다. 단합회 개최로 회원들 간의 활발한 교류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단체의 화합과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많은 사회구성원들의 뜨거운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웃음).”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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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25
  • [포커스] 값싼 중국산에 밀리는 한국 치자를 지키는 ‘치자명인’, 약용작물 마이스터가 권하는 회춘 비결은?
    이성만 대표는 농업 분야의 최고장인, 농업 마이스터(약용작물)다. ‘농업 마이스터’는 재배품목에 대한 전문기술과 지식 경영 능력 및 소양을 갖추고 있으며 농업경영 기술 또는 교육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농업경영인을 대상으로 시험 등의 절차를 거쳐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지정한 자를 말한다. 농업 마이스터 지정은 영농경력 15년 차 이상을 대상으로 3차례 심사(필기시험, 역량평가, 현장심사)등을 통해 선정된다.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는 만큼 농업 마이스터는 농업 분야 최고 권위자에게 주어지는 자격으로 통한다. 이 대표는 값싼 중국산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는 한국 치자를 지키는 치자명인이다. ‘농업이 천직’이라고 말하는 그는 30여 년간 영농에 종사하며 농업 기술 개발과 교육, 농업 경영에 있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왔다. 자체 브랜드 ‘통영치자’를 통해 통영 특산물, 유기농 치자로 다양한 제품을 개발, 판매하며 한국 치자의 우수성을 알려왔다. 자수성가형 CEO인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100억대 부농의 꿈을 이뤘다. 주경야독으로 행정학(사회복지사)를 졸업하고 경상대 해양식품공학과 석사,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창업대학원 석사를 마친 그는 경상대학교 대학원 생명소재공학 박사 과정을 다니며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 치자와 관련한 다수의 논문과 특허를 출원했고 저서 『치자열매의 재배와 이용』을 편찬한 약용작물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다. 치자명인으로 불리는 이성만 명인은 최근 새로운 도전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_박미희 기자 대한민국 신지식인 선정으로 주간인물을 장식했던 이성만 명인을 통영 도산면에서 다시 만났다. 개척가인 이성만 명인은 코로나19로 경영환경이 어려운 가운데도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작년, 영농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귄위인 ‘농업 마이스터’에 선정된데 이어 메디어스 청춘연구소 센터장으로 변신, 경상대학교 대학원 생명공학과 박사 과정을 다니며 학문적 토대를 쌓고 있다. 오랜만에 마주한 이 명인의 달라진 점은 비단, 그 동안의 공로를 인정받는 여러 가지 사회적 명성 뿐만이 아니었다. 3년 전과 달리 건강하고 풍성해진 머리숱, 탱탱한 피부결로 그는 한결 젊어보였다. “메디어스 제품 하나를 발랐을 뿐이었는데 그동안 자꾸 빠지기만 하던 머리카락이 다시 나더라고요(웃음). 치자를 비롯한 약용작물을 재배와 제품화에 한평생을 받쳐왔는데 이 제품을 써보고는 최첨단 기술인 생명소재 공학의 가치를 피부로 느꼈죠. 그래서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세수하고 메디어스 토너만 뿌리는데도 내가 봐도 피부가 좋아진 것 같아요. 주변에서는 ‘다들 빠지던 머리가 다시 난다’며 ‘정말 회춘하는 거 아니냐’고 신기해하곤 해요(웃음).” 이성만 명인이 권하는 회춘 비결, 메디어스 제품군 2018년, 이성만 명인은 통영 도산면에 3만 여평 농지에 3만 주 가량의 치자나무를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고 있다. 치자의 우수한 성분을 담은 치자비누, 항염성분으로 잇몸건강에 좋은 치자치약, 화장품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약용식물과 화장품에 대한 조예가 남달랐던 그는 최근 메디어스 청춘연구소 센터장으로 변신, 활발한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인체의 가장 큰 장기는 바로 피부입니다. 피부를 건강하게 가꾸는 것은 곧 회춘을 뜻하죠. 메디어스는 생명공학, 바이오, 줄기세포 등에 기반한 인체 섬유아세포배양액을 두피, 얼굴, 여성의 Y존 등에 M.T.S 타공하는 방식이나 피부에 바르는 방식으로 피부를 건강하게 만들어요. 메디어스는 한국의 신경훈 회장(미국의 한의사)이 미국의 연구소에서 인체 섬유아세포를 배양해 한국과 글로벌 시장에 보급하고 있는 제품입니다. 저도 이 일에 동참해 메디어스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웃음).” 열정가인 이성만 명인은 하루가 바쁜 사람이다. 농업 마이스터, 농촌융복합산업, 한국예술문화명인협회, 어촌계협의회 등 모임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신비로울 정도로 약효가 뛰어난 15년 숙성 벌꿀을 상품화해 약식동원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듯 바쁜 와중에도 통영 사랑의 집 짓기 회장, 장애인 복지시설 민들레 운영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메디어스 제품 사용 전/후, 보다 탄력있고 풍성해진 머리결 “평생 ‘농업이 천직’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어요. 어려운 환경을 딛고 반드시 자수성가해서 부농의 꿈을 이루겠다는 꿈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그간 역경도 많았지만, 뛰어난 효능을 지닌 우리 약용작물이 우리 농업의 미래며 한국의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 농업 마이스터로 선진 영농기술을 개발, 보급하고 농업경영 기술을 컨설팅해 영농인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어요!” [1149] [주요약력] •농업회사법인 참솔(주) 대표이사 •대한민국 신지식인 •한국예술문화명인 •농업 마이스터 (현장교수) •메디어스 청춘연구소 센터장 [학력] •경상대 해양식품공학과 석사(수료) 졸업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창업대학원 석사 졸업 •경상대학교 대학원 생명소재공학 박사 과정 재학 중 [사회활동] •통영해란어촌계장 •통영 사랑의 집 짓기 회장 •통영 로컬푸드 회장 •장애인 복지시설 민들레 운영위원장 •대한적십자사 통영지구 건강지킴봉사단 [저서] •치자열매의 재배와 이용
    • 라이프
    2023-05-31
  • 피부 혁명의 아이콘 - 이은희 이은희에스테틱 대표
    에스테틱 운영 19년차 이은희 대표를 만나는 일은 하늘의 별을 보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라고 한다. 단순히 시간을 맞춰 예약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까다로운 절차와 인내의 기다림을 거쳐야 하기 때문. 사전 설문지 35개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을 적어야 하고 개인정보 이용에 동의를 하면 비로소 예약완료가 끝난다. 이후 4개월의 대기 시간을 거치고 난 후, 통화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방문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극한 상황 속에서도 홈케어 코칭 1만 여 건을 달성한 주인공. 피부관리 에스테틱 창업자들의 컨설팅 교육에 힘쓰고 있는 이은희에스테틱의 이은희 대표를 만나기 위해 역시나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거제 지세포로 향하는 길은 설레기만 하다. _장예영 기자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대학진학을 하려던 때 IMF가 왔어요. 아버지께서 실직을 하면서 가고 싶었던 대학을 포기하고 일터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죠. 그 때 첫 직장이 경락 마사지를 전문으로 하는 에스테틱샵이었습니다. 아침 9시에 출근을 해서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퇴근하는 생활이 계속됐어요. 욱신거리는 손목의 통증을 견뎌내면서도 오로지 샵을 직접 운영하고자 하는 꿈 하나로 견뎌 내고 있을 때, 턱에 뾰루지가 하나씩 올라오더니 보기 흉할 정도로 번지기 시작했어요. 경락마사지 오일에 노출이 되었을까 싶어 피부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지요.” 마침 메디컬 스킨케어 분야를 준비하던 피부과 원장과의 인연으로 이 대표는 VVIP고객관리를 맡게 된다. 에스테틱에서 볼 수 없었던 피부 임상테스트 등 의료적인 이론과 지식들은 그녀를 더욱 깊이 있는 피부전문가로 만들었다. 그녀는 “당시의 공부와 경험들이 지금의 나로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병원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었던 이은희 대표. 그녀의 자리는 어느 누구도 채울 수 없는 자리가 되어버렸고 고액 연봉은 그를 증명하게 된다. “일을 잘 할수록 그 영역은 넓어져만 갔습니다. 저를 찾는 분들도 많아지고 잠시도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바빠졌지만 저만의 프라이빗한 샵을 만들고자 했던 꿈은 쉽게 떨칠 수가 없더라구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제 꿈을 위해 퇴사를 하고는 광안리해수욕장 근처에 첫 에스테틱 샵을 열었어요. 피부과에서 인정받은 실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였죠. 함께 일하면서 알게 됐던 지인분이 거제 지세포에 펜션을 운영하신다는 겁니다. 기분전환 삼아 휴식 겸 오게 됐는데 너무나 이곳이 마음에 드는 거예요. 마침 지세포에 에스테틱이 없다는 것을 알고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이 공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오픈 초창기, 아무 연고도 없던 곳이다 보니 고객 한 사람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네일아트, 왁싱, 스킨케어까지 토탈뷰티 에스테틱으로 운영을 시작한 이 대표. “바쁘고 분주했지만 마음 한편엔 답답함도 있었어요. 이유모를 갈증을 느끼고 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정은희 대표님을 알게 되었죠. 파메스틱 론칭의 기회를 얻게 되면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됐습니다. 슈퍼젝션 도입으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셈이에요. 한 번의 방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홈케어 홈코칭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객관리에 중점을 두게 되면서 피부맛집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고 안주하지 않았다. 거제도에서 서울을 오가며 공부해간 그녀는 대학진학을 다시 꿈꾸며 경남정보대학교 국제뷰티학과에 입학을 했다. 뷰티테라피, 아로마테라피 연구를 하고 CIDESCO 수료를 하면서 43개 회원국가에서 취업이 가능한 자격을 보유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멈추지 않는다는 것’, ‘지속적인 노력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 ‘실패해도 계속 도전한다는 것’일 터, 바로 이은희 대표가 그런 사람이다. “고등학교 재학 중인 남학생이 샵을 찾아왔어요. 학업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예민한 피부로 스트레스가 심해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고 교육자 집안이라는 압박감에 너무 힘들어 했었지요. 5회의 케어를 받을 때쯤 눈에 띄게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고, 자신감을 다시 찾은 아이는 성적도 다시 올라 현재 대한민국의 탑 순위 대학으로 진학했어요. 마지막 케어를 받으러 왔을 때 감사해하시던 아버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웃음).” “40대 여자분께서 예민한 피부 케어로 저에게 오셨다가 한결 좋아지셨는데 통영에 있는 친구분들이 다들 놀라셔서 소개를 시켜 달라고 하셨대요. 거제 지세포에 있는 에스테틱이라고 했더니 비웃으시면서 센텀도 아니고 하다못해 창원도 아닌, 거제도 촌구석에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하시더래요. 그런데 그 분들이 지금 대중교통으로 3시간이나 걸려서 저에게 오시고 계세요. 거제도의 교통 특성상 버스를 타면 안 들리는 곳이 없다보니 지세포까지 오려면 하루 시간을 투자해야 하시는데도 고성, 진주, 태안, 강원도, 서울 등에서 오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한 분이 오시면 친구의 친구, 이모, 고모 등 소개 소개를 거쳐 제 찐팬들이 되시곤 하죠. 너무 감사한 일이예요.” ‘우연으로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우연으로 만나는 사람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고 인생을 바꿀 선택지는 스스로에게 있음을 이은희 대표에게 다시금 배워간다. “정은희 대표님의 권유로 인스타 마케팅을 하고 있어요. 그 결과 미국, 베트남, 태국, 일본에서 파메스틱 제품 문의가 들어오고 있어요. 제가 있는 곳이 서울 강남이냐고 물어오세요. 혹 오실 일이 생기면 깜짝 놀라시겠죠(웃음)? 간이과세자였던 절 1년 만에 일반과세자로 만들어 주셨고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게 도와준 분은 정은희 대표님이세요. 저의 영원한 GOD멘토시지요. 저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상황에 길을 만들어주고 성장시켜 주시고 제 삶을 업그레이드 해 주셨어요. 단순한 피부케어가 아닌 중점적인 교육을 전문적으로 하는 피부사관학교를 만들어 정 대표님께 받았던 귀한 가르침을 물려 줄 계획을 하고 있어요. 함께 가는 이 길이 두렵지 않게 저도 제 능력이 필요한 분들에게 나누면서 살고 싶어요.” 초심을 잃지 않겠다며 다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찾았다. 기부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는 이은희 대표. 피부의 미학은 기다림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제는 대한민국의 관문을 뛰어넘어 세계로 뻗어 가고자 한다. 그녀의 간절한 꿈이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1149]
    • 라이프
    2023-05-31
  • "과일선물전문점이 뜬다~!!" - 박소희 로즈애플(ROSE APPLE) 양산점 대표와의 인터뷰
    <로즈애플>은 일반 청과물 가게가 아닌 과일을 선물용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과일선물전문점이다. 2016년 안동점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적으로 40개가 넘는 지점들이 운영되고 있는 전국 최대 과일선물전문점, 로즈애플은 2018년도 양산점을 오픈하기까지만 해도 양산에서 과일선물전문점이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하게 느끼는 이들이 많을 때였다고. 6년 차 운영 중인 양산점은 코로나와 1인 운영 매장 예약 시스템 속에서도 꾸준한 성장으로 억대 매출을 유지 중이다. “고객이 모르는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제 마음에 안 들면 판매하지 않아요”라며 부드럽지만, 뚜렷한 소신이 인상 깊었던 박소희 대표를 통해 그간 스토리를 들어봤다. _ 김민진 기자 Q1. 과일이 메인이 되는 이곳만의 특별한 상품구성 또는 서비스가 있나요? 당연히 첫째는 신선함입니다. 저는 모든 과일을 직접 눈으로 보고 가져와요. 솔직히 장사하면서 직접 시장에 가 발품을 판다는 게 시간적으로나 효율적인 면에서 쉬운 일이 아니죠. 편하게 시장도매인에게 주문하고 배달로 받아볼 수도 있지만,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게 과일입니다. 매번 제 눈으로 보고 품종도 확인하고 이집 저집 비교해야 좋은 과일이 저에게 오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예약제로 과일 순환율이 높습니다. 과일바구니, 과일도시락 등 모두 제 손으로! 정성이 담겨 상품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이다 보니 예약이 필수죠. 예약날짜에 맞춰서 예약분의 150% 정도만 과일을 구매하고, 날짜에 맞춰서 과일 후숙과 과일 선도를 따로 관리하기 때문에 재고 발생 또한 줄일 수 있지요. 선물로 꽃 선물을 많이 하시는데요. 과일 자체로도 꽃만큼 아름다운 과일들이 정말 많습니다. 색상에서부터 모양, 향기까지 정말 다양하지요. 그리고 서비스 차원에서 아름다움이 배가 될 수 있도록 생화 꾸밈을 아끼지 않고 과일의 아름다움을 더욱 끌어올려서 상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Q2. 꼼꼼하게 과일을 검수하지만, 예기치 못한 일로 당황스러운 일도 있었을 것 같아요? 설, 추석에는 양산은 물론 전국에서 택배 주문이 있어요. 기업고객은 물론 개인고객도 많고요. 대목인 명절 2주 정도는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정신이 없지만, 꼼꼼한 제품 검수는 필수입니다! 그런데 이때 택배사의 배송 실수로 아주머니 한 분의 컴플레인이 딱 한 번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요. 창업 초창기에 너무 당황스러운 인신공격까지 받으며 멀쩡한 상품까지 포함해서 그 자리에서 매출의 2/3 이상을 바로 환불해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명절 휴무 내내 일주일 동안 전화로 모진 말을 듣고 대인기피증에 매장을 접으려고 했었는데요. 그때 제 마음을 다독이고 잡아주신 분이 바로 저희 매장 첫 손님이자 처음으로 큰 매출을 기록할 수 있게 해주신 고객이 계십니다. 양산에서 사업을 하시는 이 분에게 장사하는 방법, 다양한 고객을 대하는 스킬, 내가 내 마음을 지키기 등 많은 걸 배우며 지금은 저의 스승님이자 VIP 고객이십니다(웃음). Q3. 순탄치만은 않았던 1인 창업을 통해 만들어진 운영철학이 있을까요? 감사하게도 꾸준히 주문해 주시는 단골이 많습니다. 매번 상품에 만족하시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 고객님들로부터 좋은 기운을 많이 받지요. 그리고 제가 보답하는 길은 당연히 고품질의 과일입니다. 지금은 양산에도 후발업체들이 있어서 사실 고객님들의 선택지가 여러 개 있는데도 4~5년째 저희 매장을 사랑해 주시는 단골분들께 감사할 따름이죠. 요즘은 과일도 새로운 신품종부터 수입이 어렵던 과일, 새로운 과일들이 많은데요. 그런 과일들을 어렵게 구하게 되면 단가가 맞지 않아도 마진이 뚝 떨어져도 단골분들께 먼저 맛보시라고 구성해 드리는 저의 진심을 알고 계속 찾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Q4. 마지막으로 고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대부분 선물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연락을 주시는데요. “중요한 분께 드리니 신경 써주세요”라고 많이들 말씀하세요. 감사한 분들에게 혹은 중요한 행사 간식으로 필요해서 주문하시다 보니 얼마나 업체 선정을 까다롭게 하셨을까.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얼마나 기대하시고 이곳을 선택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혼자 하는 일이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 힘들더라도 앞으로도 지금처럼 변함없이 소중한 고객 한분 한분께 사랑을 담아 선물을 드려 많은 분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1148]
    • 라이프
    2023-04-26
  • 경남 양산 원동, 꿈에 정원, 신록의 아름다움을 담은 숲속 펜션
    봄의 시작을 알리는 향기로운 매화. 흐드러지게 핀 매화밭과 반짝이는 낙동강변 사이로 기차가 들어오는 순매원의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아름다운 고장, 양산 원동. 이곳에 숲속 요정이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숲속 펜션이 있어 인기다. ‘역대급 뷰의 노천 스파’로 SNS에서 화제가 된 꿈에 정원이 바로 그 주인공. 주간인물은 <MBN 돌싱글즈3>의 촬영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양산의 새로운 명소를 담았다. _박미희 기자 잎사귀마다 맺힌 새벽이슬이 반짝이는 신록의 계절. 향기로운 고장, 경남 양산 원동의 꿈에 정원은 연둣빛 새싹이 움튼다. 푸른 산을 병풍처럼 두른 풍요로운 땅, 원동면 내화절골길에 위치한 꿈에 정원은 배종팔 대표가 직접 가꾼 아름다운 수목들로 꾸며진 숲속 펜션이다. 부산에서 부동산 임대업과 건설업을 했던 배종팔 대표가 원동으로 내려와 사업을 기획하게 됐다. “처음에 토지를 구입할 때는 투자 목적으로 구입했죠. 그러나 땅을 밟아보면서 느낌이 와서 여기에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건축을 하게 됐습니다. 주변에서도 ‘인근에 이보다 좋은 땅은 없다’며 감탄하는 이가 많았죠. 어려서부터 농촌에서 자라다 보니 원래 식물을 키우는 것을 취미로 삼아왔어요. 이참에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꿈에 정원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꽃과 나무와 자연을 늘 함께하다보니 항상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나무 몇 그루밖에 없던 황량한 산은 그의 손을 거쳐 3년 전, 아름다운 정원을 갖춘 숲속 펜션으로 거듭났다. 기초 토목공사부터 정원 조경, 펜션 건축까지... 모두 그와 그의 가족들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그의 손길로 키운 푸른 수목은 물론 귀한 자연석까지... 곳곳에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나무 몇 그루밖에 없던 산에 건물을 세우기 위해 먼저 토목공사를 했습니다. 토목공사를 할 때 정말 좋은 수석들이 많이 나왔어요. ‘누군가 이 땅에 보물을 숨겨 놓은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웃음). 이 땅에서 나온 수석들을 옮겨 지금의 정원과 계단을 꾸몄어요. 같이 작업을 한 분도 ‘이렇게 좋은 돌이 있느냐’며 함께 신나서 작업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웃음).” 봄이면 향기로운 꽃망울을 터트리는 야생화, 여름이면 연둣빛 잎사귀로 신록의 계절을 물 드리는 푸른 수목, 가을이면 병풍처럼 둘러싼 산에 물드는 단풍, 겨울이면 안온하고 고요한 적막을 느낄 수 있는 곳, 꿈에 정원. 이곳에는 사시사철 푸른 잎을 드리우는 소나무와 향긋한 천리향, 푸릇한 황금사철나무, 산수유, 야자수 등 갖은 수목이 우거져있다. 초록빛 생명력으로 생기발랄하게 자라는 이 나무들은 모두 그가 밭에 모종을 심어 키워낸 것들이다.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긴 기다림과 많은 자본이 필요하죠. 제반 공사도 해야 하고 건축을 하는데 많은 자본이 들거든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먼저 밭에 1,700주의 나무 모종을 사서 심고 가꿨어요. 다 큰 나무를 사서 심는다면 조경에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나무 모종을 사서 직접 심고 가꿨기에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일례로 한 포트에 3,000원 하는 나무 모종이 이젠 30만 원이 훌쩍 넘는 큰 나무로 자랐습니다. 이렇듯 제가 심고 가꾼 나무들로 직접 조경을 하고 가꾸기에 더욱 애정이 깊죠(웃음).” 화이트와 우드톤이 어우러진 펜션 건물은 마치 발리의 리조트에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넓은 창을 통해 밝은 햇살과 정원의 푸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곳의 백미는 푸른 나무들과 어우러진 노천 온수 스파다. 야자수, 산수유, 황금사철나무, 소나무 등 나무들로 둘러싸인 온수풀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숲속에서 목욕을 즐기는 듯한 상쾌함을 만끽할 수 있다. 연인과 가족들과 찍은 인생 사진을 올리는 손님들이 늘고 있어 SNS 상에서도 ‘역대급 예쁜 뷰의 노천탕 숙소’, ‘숲속 요정이 살 듯한 펜션’ 등으로 소개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은 <MBN 돌싱글즈3>의 촬영지로 소개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이에 한 단골손님은 “이곳에 오면 숲속에서 잠드는 것 같은 휴식을 느낄 수 있다”라며 “병풍처럼 둘러싼 아름다운 산세와 아름다운 정원, 맑은 공기를 느끼며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 순간이 바로 힐링”이라는 말을 전했다. 아름다운 정원과 깔끔하게 정돈된 펜션을 가꾸기 위해 배종팔 대표의 손은 한순간도 쉴 틈이 없다. 자식처럼 애정으로 가꾼 수목들과 이름 아침 지저귀는 산새들, 따뜻한 청란을 낳는 암탉, 수줍은 꽃망울을 틔어 인사를 건네는 야생화를 돌보는 그의 손길은 언제나 분주하다. “제가 좋아서 한일인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이곳을 좋아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브라이덜 샤워, 돌잔치, 칠순잔치 같은 이벤트를 즐기며 온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손님들을 볼 때, 저도 같이 행복해집니다(웃음). 이곳이 많은 분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힐링을 제공하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푸른 신록의 계절, 꿈에 정원에서 자연을 만끽해 보는 것은 어떨까. [1147]
    • 라이프
    2023-04-13
  • 고양국제꽃박람회, 화훼 산업 활성화 위한 교류의 장 ‘2023 고양국제꽃포럼’ 개최
    재단법인 고양국제꽃박람회(이사장 이동환)는 화훼 및 원예 산업의 최신 트렌드를 논의하고 세계 화훼인의 상호 교류의 장을 형성하는 ‘2023 고양국제꽃포럼’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포럼은 4년 만에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2023 고양국제꽃박람회에서 함께 개최되며, 박람회 기간 중 4월 28일과 29일 양일간 일산호수공원 화훼교류관에서 진행된다. 2023 고양국제꽃포럼은 ‘생활 속의 꽃(Flower in the Life)’을 주제로 화훼 산업과 원예 산업의 확장 가능성에 대한 전망과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자 마련됐다. 포럼은 주제 발표와 세션 발표로 나누어 진행되며, 발표에 앞서 개회식과 이동환 고양특례시 시장의 기조연설로 시작한다. 첫째 날에는 화훼 산업의 트렌드와 기술, 유통을 중심 주제로 다룬다. △국제화훼무역기구 실비에 마미아스(Sylvie Mamias) 사무국장 △업사이트 임강후 대표 △팬 아메리칸 시드(Pan American Seed) 지앤핑 렌(Jianping Ren) 수석 식물 육종가 △PHOOL 안킷 아가왈(Ankit Agarwal) 대표 △화훼 디자인 심사위원 앨리슨 브래들리(Alison Bradley)의 발표가 각각 진행된다. 또 △화훼 작가 드미트리 투르칸(Dmitry Turcan)의 꽃꽂이 시연과 강연도 함께 진행된다. 실비에 마미아스 사무국장은 ‘세계 화훼 산업의 트렌드 및 동향’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며, 변화가 빨라지는 세계 화훼 산업의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의 전망과 함께 최신 기술 동향 등을 다룬다. 뒤이어 화훼작가 드미트리 투르칸이 꽃꽂이 시연과 함께 ‘고유 꽃꽂이 스타일에 대한 중요성’을 주제로 발표한다. 해당 발표에서는 개성있는 스타일로 꽃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와 감성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세션 1에서는 ‘Ag Tech(농업 기술)’를 다루며, 두 명의 연사 발표가 진행된다. 임강후 업사이트 대표는 ‘화훼·원예 분야의 디지털 트윈 확산을 위한 정책 및 산업적 제언’을 주제로 발표하며, 팬 아메리칸 시드의 수석 식물 육종가 지앤핑 렌은 ‘화훼 육종의 변화: 과거와 미래’ 주제로 발표한다. 세션 2에서는 ‘Trade & Logistics’를 다루며, 버려진 꽃을 업사이클링하는 스타트업 기업 PHOOL의 대표 안킷 아가왈이 연사로 나서 ‘꽃에 새로운 생명을 주는 일’을 주제로 세션 발표를 이어 나간다. 마지막으로 국제적인 화훼 디자인 심사위원인 앨리슨 브래들리는 ‘Floral Fundamentals 플랫폼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플로리스트, 학생, 육종가, 학교 및 공급업체 등 화훼·원예 종사자들을 위한 플랫폼 ‘Floral Fundamentals’을 중심으로 진행 교육 및 네트워킹 방식과 관련된 내용을 다룰 예정이다. 두 번째 날에는 화훼 디자인을 중심으로 포럼이 진행된다. △게릴라 가드닝의 리차드 레이놀즈(Richard Reynolds) 작가 △국제플로리스트조직(Florint) 토마스 래츠커(Thomas Ratschker) 심사장 △국제플로리스트조직(Florint) 사이먼 오그리젝(Simon Ogrizek) 대표의 발표가 각각 진행된다. 세션 3에서는 ‘디자인’을 큰 주제로 다루며, 두 명의 연사 발표가 진행된다. 게릴라 가드닝 프로젝트를 진행한 리차드 레이놀즈 작가는 ‘화훼 산업에 끼치는 게릴라 가드닝의 문화적인 영향’을 주제로 발표하며, 국제플로리스트조직의 심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토마스 래츠커는 ‘독일 플로리스트의 디자인 교육 시스템’을 주제로 발표한다. 포럼의 마지막 순서로 국제플로리스트 조직의 사이먼 오그리젝 대표는 ‘국제 화훼·원예 산업의 차세대 도전 과제 대응 전략’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포럼은 ‘2023 고양국제꽃포럼’ 예매 페이지를 통해 사전 참가 신청할 수 있으며, ‘고양국제꽃박람회’ 홈페이지 또는 예매 페이지 접속을 통해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포럼 전일까지 참가자들은 얼리버드 티켓을 구매할 수 있으며, 5인 및 10인 단체 할인도 함께 가능하다. 포럼 참가자는 꽃박람회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2023 고양국제꽃포럼은 4월 28일(금), 29일(토) 양일간 일산호수공원 화훼교류관에서 진행되며, 사전에 연사들의 발표 내용을 적은 사전자료집이 E-BOOK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김운영 고양국제꽃박람회 대표이사는 “이번 포럼을 시작으로 국내외 화훼 산업의 전문가와 함께 더욱 발전된 화훼 산업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고양국제꽃박람회 소개 1997년 대한민국 최초로 시작된 고양국제꽃박람회는 고양의 역사와 함께하고, 고양의 역사를 새로 써왔다. 매년 우수하고 다양한 품종을 선보이며 고양 화훼농가를 넘어 대한민국 화훼 수출의 역군으로 성장했고, 사계절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국내외에서 찾는 매력적인 글로벌 화훼박람회로 성장했다. 고양시는 앞으로 마이스 산업, 한류콘텐츠 등을 결합해 고양국제꽃박람회를 화훼 융복합 산업의 첨병으로 성장시켜 나가겠다. 대한민국 화훼 산업을 앞에서 견인하고, 뒤에서 떠받치는 최고의 박람회로 자리매김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언론연락처: 2023 고양꽃포럼 운영사무국 브로스그룹 박종옥 팀장 070-4467-9908 이 뉴스는 기업·기관·단체가 뉴스와이어를 통해 배포한 보도자료입니다.
    • 라이프
    2023-04-10
  • “태권도 정신이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생활체육・엘리트, 겨루기・품새・시범 등 균형있는 태권도 발전 이루는데 힘 쏟을 것
    태권도 정신은 개인, 사회, 이념의 가치를 모두 포함한다. ‘나를 이기고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의미의 극기(克己)와 홍익(弘益)의 정신이다. 각박한 현실, 치열한 경쟁 속에 내면은 점차 나약해지고 정서는 메말라 간다. 태권도에서 강조하는 5대 정신 <예의 , 인내 , 염치 , 극기 , 백절불굴>은 비단 수련생들 뿐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닐까. 태권도 감독 출신으로 그 정신을 실천해나가며 성공한 사업가로, 진정성 있는 민간외교관으로 불리는 이가 있다. (주)천우테크 대표이사, 주한에디오피아 명예총영사이자 부산광역시 태권도협회장인 김상진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해서 하나를 우직하게 끝까지 파고드는 것은 자신있다”며 웃어 보이는 그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삶의 모토”라고 전한다. 듬직한 외모에 시원스런 웃음이 매력적인 김 회장과 따뜻한 차 한 잔을 두고 마주 앉았다. _심원정 편집위원, 김유미 기자 할렐루야 태권도단 초대감독 역임 ‘태권도’에 관한 끝없는 미담 제조기 6년 째 부산광역시 태권도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상진 회장은 미국 링컨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를 취득하고 에버그린대학교 사회학 명예박사, 그리고 코헨대학교에서 <태권도와 가라데의 상호관련성 연구(전통주의 역사관에서 고찰한 발전과정을 중심으로)> 논문으로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는 등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정진해가는 인물이다. 태권도 공인 6단인 그는 어린 시절 육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주 종목은 1,500미터 장애물 뛰기. “엄청난 체력이 필요한 종목이다 보니 정말 강도 높은 훈련을 많이 했어요. 그 때 열심히 운동한 덕에 지금도 체력은 자신있습니다(웃음).” 1987년 만들어진 부산광역시 할렐루야 태권도단에서는 초대감독을 맡았다.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선수들은 당시 11체급 중에 8체급 우승을 달성할 정도로 성장했고 현재는 세계 각국에서 태권도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직접 시범, 격파, 호신술(실전 겨루기)을 가르쳤어요. 제재소에서 송판 2.5cm 나무를 끊어와 연습하곤 했습니다. 시범단의 경우 도약할 때 탄성이 없으면 부상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근력이 있어야 해요. 육상을 할 때 익혔던 훈련 경험과 노하우를 할렐루야 태권도단 선수들에게 적용했었는데 그게 좋은 성과를 가져왔던 것 같습니다.” 태권도에 관한 김상진 회장의 미담과 비하인드스토리는 끝이 없다. 2007년부터 10년 넘게 내전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프가니스탄 태권도 국가대표팀을 지원해오고 있는 김 회장은 태권도 전용훈련장 건립에 힘을 보태고 태권도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국내에 방한했을 때는 합숙훈련을 지원, 병원 치료를 돕는 등 매년 4천만 원 이상을 후원해 오고 있다. 메일로 직접 소통하며 훈련 방법과 스케줄 등을 직접 전수한 끝에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라훌라 닉파이 선수가 동메달을 따낸 극적인 일화도 있다. 메달은 2회 연속 이어졌다. 고신대학교와의 인연도 깊다. 태권도선교학과를 만들어 겸임교수를 맡은 그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해오고 있다. 해외 개발도상국 곳곳을 지원하고 올해 4월에는 세계태권도연맹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천만 원을 기부하는 등 한 마디로 태권도에 관해서만큼은 ‘진심’인 김 회장이다. ‘2022 고양 WT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종합우승 2회 연속 단장 겸 감독 맡아 ‘키다리아저씨’ 별명 얻어 올해 4월 24일 막을 내린 ‘2022 고양 WT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한국 태권도 품새 대표팀이 금메달 29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로 종합우승을 달성했다. 제1회 서울대회 이후 12회 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널리 알렸다. 2006년 서울에서 창설되고 2007년에 2회 대회를 인천에서 치른 후, 15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되어 더욱 의미가 깊은 이번 대회는 코로나19 중에도 세계 62개국에서 1천여 명의 부문별 국가대표 선수단이 참가하며 성황을 이뤘다. “2018년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대회인데다 한국에서 15년 만에 열리는지라 더욱 기대가 컸습니다. 우리 대표 선수들 또한 대회에 목말라 있는 만큼 세계 최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안방에서 종합우승을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컸지요.” 2018년 대만 세계 대회에 이어 연속으로 단장 겸 감독을 맡아 선수단에게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온 김상진 회장. 그는 대회 준비 때부터 폐막까지 선수들과 함께 동행하며 독려하고 지원했다. 국내 입상 선수들뿐만 아니라 어렵게 대회에 출전한 여섯 개 외국 팀에게도 후원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선수들이 최상의 환경과 여건에서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온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역할이니까요. 일찍부터 훈련장에 나가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꼭 한명 한명 붙잡고 얘기하지 않아도 응원하고 격려하는 마음은 서로 와 닿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열린 대회였는데도 선수 개개인과 지도진이 성실하게 잘 준비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파이팅 해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태권도의 뿌리이자 타 무술과의 뚜렷한 차이점인 ‘품새’, 의미와 가치 재조명돼야 김 회장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겨루기 스포츠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태권도에 품새의 가치를 다시 조명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균형 잡힌 발전이 이루어졌으면 한다”는 것.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겨루기만 부각되어 단순히 스포츠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품새는 태권도의 참 정신을 알고 태권도 기법 자체를 완전히 소화해 종합적으로 완성해야하는 태권도의 최고경지에요. 인성과 품성을 강조하는 품새가 함께 성장해야 진정한 태권도 정신이 나옵니다.” 품새란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규정된 형식(틀, 型)에 맞추어 지도자 없이 수련할 수 있도록 이어 놓은 동작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기원 심사규정은 품・단 응시별 실기과목을 9단까지 구분하고 있다. 김 회장은 “품새는 공격과 방어의 기본동작을 연결, 수련함으로써 겨루기 기술향상과 동작 응용능력 배양하는 태권도의 뿌리”라며 “형식적인 지도가 아닌, 품새의 의미와 가치가 제대로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다행히 2006년 세계태권도연맹이 품새를 세계대회 정식종목으로 채택한 후, 세계 각국에서는 품새 수련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품새 수련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 김 회장은 “런던올림픽 이후 계속해서 올림픽 대회를 참관하고 있는데 올림픽과 ‘WT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의 관중석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겨루기로 대결하는 올림픽의 경우 자기 나라, 자기편만 응원을 합니다. 당연한 거죠. 하지만 품새선수권대회는 자국 뿐 아니라 어느 국가라도 선수들이 멋지게 해낼 때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로 응원합니다(웃음).” 본인 2000만 원 기부, 기금 등 모아 코로나19 극복 위해 체육관 월세 지원 “어려운 시기, 태권도 정신으로 위기 이겨냈으면” 태권도의 근본이 되는 ‘품새’의 위상을 올리고자 애쓰는 그는 같은 차원에서 태권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태권도 체육관이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2020년, 부산광역시 태권도협회는 전국 최초로 지역 내 모든 태권도 체육관 615곳에 월세를 지원했다. “현실적인 지원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체육관별로 50만 원씩, 부산지역 내 총 615개 체육관에 지급했어요.” 코로나19 여파로 휴관하는 체육관에 월세를 지원하는 것은 전국에서 처음 있는 일, 3억 750만 원에 달하는 지원금은 각종 연수나 행사 등에서 절약해 모은 협회 저축금과 상조 복지기금을 해약해 마련했다. “최일선에서 태권도 보급과 지도를 책임지는 체육관이야말로 태권도 발전의 근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선수생활을 거쳐 체육관을 13년간 운영한 바 있다 보니 급변하는 경제적, 사회적 환경 속에서 얼마나 어려우실지 잘 압니다. 관장, 사범님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협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균형있는 태권도 발전 이루는데 힘 쏟을 것 지난 8월 9일 부산광역시 태권도협회는 부산경찰청, 태권도진흥재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다문화 가정 자녀 13명과 다문화 대안학교 3개교에 1년간 태권도 수련을 무료로 지원하기로 했다. 다문화가정 자녀의 사회 부적응을 해소하고, 이들이 우리 사회의 밝고 건강한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부산에 사는 다문화가정 구성원은 2만 6천여 명으로 결혼이민자 자녀의 증가와 중도입국자녀 유입 등으로 학령기 자녀가 늘어나고 있어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김 회장은 “대한민국 국기인 태권도를 활성화하면서 소외계층을 위한 수련 기회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가을에도 좋은 소식이 들렸다. 경기도 가평군에서 개최한 ‘2022 전국생활체육대축전’ 태권도 종목에서 부산시가 종합우승을 차지한 것. 김상진 회장은 “열심히 연습한 선수들과 열성적으로 지도해 준 지도자, 임직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뤄낸 성과”라며 겸손한 말을 이어갔다. “협회는 사조직이 아닙니다. 태권도인들의 권리를 대변하고 태권도를 널리 알리고 보급해 국민의 체력향상과 정신력을 배양시키는 일만 하면 됩니다. 본연의 역할만 생각한다면 니편, 내편 나눌 일이 없지요. 회장에 자리한 이후 판공비를 비롯해 협회 돈은 쓰지 않고 사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고민과 생각을 통해 집행되는 일들이 부산을 넘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생활체육 태권도와 엘리트 태권도, 품새・겨루기・시범 등 태권도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김상진 회장은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해 에티오피아 상공회의소와 MOU를 체결, 양국 기업 간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며 주한에티오피아 명예총영사로서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김 회장은 당시 이노비즈 부산·울산지회장 자격으로 2017년 7월, ‘한-에티오피아 경제인 연합회(KEBA)’를 발족한 바 있으며 이후 양국의 경제 협력으로 한국 외무부의 승인을 거쳐 에티오피아 정부로부터 명예영사로 임명됐다. 회원사 중 26개 사의 민간 경제사절단 ‘한-에티오피아 경제인 연합회’를 이끌고 에티오피아에 방문해 물라투 테시호메(Mulatu Teshome) 대통령과의 협의를 통해 에티오피아 내 약 60만 평 산업단지 개발에 관한 협정을 맺고 한국전용 산업 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주)천우테크는 세계적인 금속표면 전문 기업으로, 스테인리스 배관 후처리 공정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김상진 회장은 설립 이후 꾸준한 혁신 경영으로 업계를 선도해오며 체계적이고 다양한 복지 혜택을 제공해 임직원의 노동 환경 및 지역사회 고용 증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주)천우테크가 개발한 환경 친화적 금속표면처리제 ‘CW-R2’는 질산, 불산 등 유독 물질을 사용하던 기존의 금속표면처리제와 달리 약품에 중금속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제품으로, 밀폐된 공간에서도 작업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준다. 또한 강관의 표면을 부동태피막처리 하여 표면의 녹과 부식 발생을 방지해 스테인리스관의 수명을 높이고, 처리 공정을 단순화시켜서 발생하는 폐수량이 줄어들어 처리 비용이 절감돼 업계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1141]
    • 라이프
    2023-01-27
  • 책 한 권으로 시작된 법조인의 꿈! 휴머니즘을 실현한 명법관, 광주변호사회를 대변하다
    최근 장정희 변호사가 ‘제57대 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됐다. 장정희 회장은 전남 영광 출신으로 전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96년 제38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거쳐 1999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했다. 이후 광주지법 순천지원 판사, 광주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광주지법 가정법원 장흥지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법무법인 감동으로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광주지방변호사회 공보이사, 제1부회장을 맡아 회무 경험을 쌓았으며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으로 회원들의 높은 지지를 얻어 제57대 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 됐다. 주간인물은 2023년 계묘년(癸卯年)을 맞아 지역 법조계를 이끌어갈 리더의 모습을 담았다. _박미희 기자 장정희 회장은 명망 높은 법조인이다. 그의 고향은 전남 영광. 3남 2녀의 셋째로 시골에서 농사짓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명석한 두뇌로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가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된 것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고. “초등학생 때 우연히 변호사에 관한 책을 읽게 됐어요. 주인공인 변호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변론을 하고 천신만고 끝에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며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변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던 평범한 소년이었던 저는 그 책에 영감을 얻어 변호사를 꿈꾸게 됐어요. ‘나중에 커서 변호사 되면 어떻겠느냐’는 제 말에 크게 기뻐하시며 대견해하던 부모님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그 이후로부터 자연스럽게 장래희망은 변호사가 되었습니다(웃음).” 변호사란 직업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순수한 시골 소년은 한 권의 책에 깊은 감명을 얻어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된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고학(苦學)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 법조인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그 당시 저희 집 형편은 매우 어려웠어요. 그래서 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입주과외를 하며 학비를 벌었고 고등학교도 영광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변호사의 꿈을 포기한 적이 없었기에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전남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당시, 1987년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절실함에 공감해 학생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죠. 대학교 2학년 때 ‘통일선봉대’로 참여했다가 시위현장에서 경찰에 체포,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가게 됐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고시공부를 시작해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꿈을 이룰 수 있었어요.” 눈빛이 살아있는 청년. 그는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사법연수원에서 진로를 정할 때도 고민이 많았어요. 애당초 변호사가 꿈이었지만 판사의 길은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다신 갈 수 없는 길이기에 결국 판사의 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판사로 임관한 이후에도 법관으로서 직분을 다 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1999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한 이후 광주지법 순천지원 판사, 광주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광주지법 가정법원 장흥지원장을 역임했다. 20년 가까이 법관으로 살며 만인에게 공정한 법 앞에 억울한 이가 없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 해왔다. 명법관으로 이름이 높았던 장정희 회장. 평소 특유의 소탈한 성품과 온화한 태도로 법원 직원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어왔다. 일례로 장흥지원장을 역임할 당시, ‘상·하반기 지원장 적합성 평가 99점대’를 기록할 정도로 그 덕망이 높았다. 후배 법조인들의 롤모델로 꼽히는 장정희 회장은 평소 강연 때마다 법관의 필수 덕목으로 ‘경청(傾聽)’을 꼽는다. “법관의 필수 덕목은 경청이죠. 판사로서 재판을 진행할 때마다 당사자의 말을 끝까지 차분하게 들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법정에서 당사자들은 판사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사정은 있지만 대부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법 불신의 원인은 소송당사자들과의 소통 부재에서 오고 이 같은 소통 부재는 법관들이 당사자들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 데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사자가 원하는 재판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법관 앞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면 그 결과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법관 더 나아가 법조인의 최고의 덕목은 경청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판결. 그 판결을 내리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기록을 검토하고 고뇌했던 시간들로 그는 청춘을 보냈다. “판사로 일하면서 인간적인 고뇌를 느끼는 순간이 많았죠. 왜냐면 형사사건의 경우, 중형이 선고됐을 때와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한 사람의 인생이 크게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판결을 내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특히 성폭력 사건, 살인 사건 같은 강력 사건에서 목격자나 증인이 부족한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확실한 물증도 없는 사건에 대해 판결을 내려야 할 때 실체적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많이 애썼던 기억이 나네요.” 20년 가까운 법관 인생을 뒤로하고 그는 2015년 변호사로 새로운 법조 인생을 시작했다. 고위직 법관으로 전도유망한 길을 앞두고 그가 돌연 변호사로 새로운 인생 2막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법관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법조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법원에서 대부분의 주요 보직도 거쳤고 대법원에서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사건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지요. 지원장으로 근무하면서 법원 직원들과도 원만하게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법관으로서의 삶은 어찌 보면 주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기에 늘 새로운 길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변호사로 새로운 법조 인생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하고 국회의원을 지낸 송기석 변호사와 2018년, ‘법무법인 감동으로’를 설립했다. 6개월 뒤, 서울중앙지검 중요경제범죄수사단 부장검사를 역임한 이상길 대표 변호사를 영입, 민사, 형사 사건의 체계적인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법무법인 감동으로’는 특화된 법률서비스로 지역 법조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올해 서울 서초동에 분사무소를 개소, 서울남부지검장을 역임한 송삼현 변호사가 대표변호사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호남과 서울 수도권을 잇는 강소 로펌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 “민사와 형사 사건은 보통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경우가 많죠. 법원 부장판사, 검찰 부장검사를 역임한 구성원들로 민사와 형사 사건의 협업 체계를 구축, 다각적인 측면에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어요. 중요한 사건이라도 멀리 서울, 경기도까지 가지 않아도 가까이에서 전문적인 법률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주요 현안을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풀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많은 사건을 맡았던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에 대해 물었다. 대표 사건을 꼽는 여느 변호사들과 달리 그는 사회적 울림이 있는 한 사건을 들었다. “의뢰인은 한국인 남편에게 시집을 온 외국인 여성이었어요. 중소기업을 다니던 남편은 어느 날 과로사로 사망하게 되고 의뢰인은 근로복지공단을 대상으로 유족급여를 청구했죠.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급여 지급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유족급여 지급을 거부했고 결국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도 패소를 했어요. 이후 저를 찾아온 의뢰인을 통해 억울한 사연을 듣게 됐습니다. 항소심에서 남편의 사망과 과중한 업무의 연관성을 밝혀냈고 결국 승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 의뢰인들의 사건을 맡아보면 한국의 실정을 잘 모르고 한국어도 서툴기 때문에 억울하게 피해를 입거나 범죄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어요. 점점 외국인 거주자가 늘어나고 있는 시대상에 발맞춰 법률 사각지대에 있는 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광주국제교류협력단 상임이사, 전남대학교 총동창회 상임부회장, 청소년범죄예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누리문화재단 운영위원 등으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오피니언으로 지역사회의 현안을 함께 해결하고 풀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명법관으로 유명한 그지만 사건을 맡을 때면 변호사를 꿈꿨던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항상 경청하는 법조인이 되자’는 초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건에 임하는 것. “변호사는 항상 의뢰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건을 의뢰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사건을 수임하다 보면 자칫 소홀하게 대하는 사건이 생기게 되죠. 결과의 승패를 떠나 소홀하게 대한 사건의 의뢰인을 생각하면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반면 패소를 했으나 사건에 임할 때 정말 내일처럼 최선을 다 한 사건은 의뢰인도 결과를 떠나 정말 고마워하더라고요. 의뢰인들의 입장에 서서 항상 경청하는 태도로 사건에 임하는 것이 변호사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강소 로펌을 이끌고 있는 그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제57대 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앞으로 지역 법조계 발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당선 소감에 대해 그는 힘찬 포부를 밝혔다. “회원들의 정당한 권익 옹호와 복리 증진을 위해 노력해나갈 것입니다. 특히 어려운 청년 변호사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면서 적극적인 지원을 계속해나갈 계획입니다. 또한 변호사의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고 변호사회에 주어진 시대적, 사회적 역할을 다하면서 광주지방변호사회가 쌓아놓은 훌륭한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나가겠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 회원들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고 회원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지역사회의 현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지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아울러 법치행정이 정착될 수 있도록 공익적 역할에도 힘쓸 생각입니다.” 장정희 회장은 △변론권 침해 방지 △전자경유제도 실시 △회관 리모델링 △경유증지 단가 인하 △외부위원 추천 시 청년변호사 우선 고려 △신입회원과 선배회원 간 결연 △변호사 직역 수호 및 확대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 △법원·검찰·경찰 평가를 통한 사법제도 개선 등을 주요 공약으로 회원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올바른 사법 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해 기존 광주지방변호사회 법관·검사 평가 특별위원회 외에 경찰 평가 특별위원회를 신설할 계획이다. “수사 과정에서 불합리한 일이 생기지 않고 공정한 수사를 받을 수 있도록 새롭게 경찰 평가 특별위원회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올바른 사법 시스템이 정착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바쁘게 일하는 중년인 장정희 회장은 아내, 이화영 씨와 함께 슬하에 2녀를 둔 다정한 가장이기도 하다. 인터뷰 말미, 그는 “가장 고마운 사람은 늘 곁에서 힘이 되어준 아내”라며 자랑을 잊지 않는다. 언제나 밝고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과 화목한 가정이 가장 큰 버팀목이자 자랑이다. 법조인의 휴머니즘을 담은 책 한 권으로 시작된 꿈은 진행형이다. 순수한 시골 소년에서 고학으로 꿈을 이룬 청년, 명법관으로 살아온 20년, 열정적인 변호사로 지역을 대표하는 오늘날까지...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1144]
    • 라이프
    2023-01-27
  • 대구·경북 최초! 믿을 수 있는 간병인 매칭 플랫폼 개발, 도움에 도움을 더하는 ‘케어플러스’
    대한요양병원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한 해 고령인구가 80만 명 이상 증가로 2026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간병 서비스에 대한 관심 또한 급증하고 있는데 코로나19 사태까지 겪으며 더욱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간병시스템이 절실하다. “요즘같이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우리 가족에게 딱 맞는 간병인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최소한의 핵심적인 정보로 간병인이나 병간호 일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전한 간병인 매칭 플랫폼 ‘케어플러스’ 개발자, 이종화 주식회사 씨플러스 대표이사는 대구 토박이로 오랜 시간 지역 봉사를 통해 앱 구축의 영감을 얻었다. _김민진 기자 Q1. ‘간병’이라는 서비스에 대해 수요자와 공급자를 서로 매칭해주는 <케어플러스> 플랫폼은 상호 간에 이점이 뚜렷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맞습니다. 간병 서비스라는 것이 일상생활 중에 쉽게 접하는 범위가 아닌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처음에 어디서 어떻게 간병인을 찾아야 할지 까마득하지요. 특히, 간병인의 경력이나 고용 비용은 선택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지만 객관적인 기준이 없으니 구인 자체부터 고민이 많이 된다는 얘기를 복지시설 봉사활동을 통해 익히 들었습니다. 게다가 간병인을 구인하여 서비스를 이용했지만 앞서 계약 조건과 다르게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일이 다반사인 것도 알게 됐지요. 대구에서 나고 자라며 내가 사는 지역에 관심도 많고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그 속에서 주민들의 불편한 소식이 들리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도움을 드리면 어떨까”라는 단순한 이유로 시작해 모바일 앱까지 개발하게 되며 일이 커졌네요(웃음). 케어플러스는 서비스 이용의 시작을 복잡하지 않은 방법으로 휴대폰 앱에서 간병인을 요청하는 장소, 시간, 날짜 그리고 환자 상태만 등록하면 보호자는 간병인의 경력과 이력을 실시간으로 조회하여 쉽고 빠르게 요양보호사 자격을 갖춘 우수한 간병인을 직접 선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보호자와 간병인이 계약 조건에 대해 애초에 정확하게 짚고 진행하기에 추가 비용 등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없지요. Q2. 체계적인 병간호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 찾기가 어려운 간병인의 입장에서도 반가운 시스템이네요? 그렇습니다. 기존의 구직 방법은 알선업체에서 먼저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거리가 너무 멀거나 간병 요청 시간이 애매한 경우도 있고요. 그리고 환자의 상태가 중증 이상이면 더 많이 돌봄이 필요한데도 경증 환자의 간병과 똑같은 일급을 받습니다. 사실 간병인의 직업군은 프리랜서라 원하는 날짜, 시간, 거리, 급여 등 근무조건을 유동적으로 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는 수요자의 요구사항에만 응해야 하는 현실이다 보니 프리랜서의 메리트가 사라지면서 간병인의 수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죠. 이러한 애로사항에 중점을 둔 케어플러스 앱은 구직할 때 원하는 조건을 간병인 스스로 선택해 꾸준히 일자리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급여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간병인들은 여러 알선 회사에 등록하면서 간병인 배상책임 보험료도 각각 납부해야했는데요. 케어플러스에서는 근무한 일수만큼만 보험료를 납부하게끔 되어 있어 기존의 불필요한 비용 지출도 현저히 감소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Q3. 업계 최초 ‘복수카드결제’시스템으로 부담이 큰 간병비 문제 해결을 돕는 특징이 눈에 띕니다. 현금결제만 하는 부분은 보호자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에 착안해 다수 인원의 보호자가 카드 결제로 할부도 가능하도록 안심할 수 있는 PG사 결제 서비스를 앱에 연동해 안전한 결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설계했지요. 이로써 연말정산처리와 함께 간병비를 가족 간에 분할하여 경제적 부담감을 크게 덜 수 있죠. 이와 더불어 간병비는 앱 내에서 간병인과 보호자 간의 협의가 가능하기에 서비스 진행 중에 추가적인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는 일절 발생할 수 없고, 간병인은 서비스 종료 후 다음 날부터 언제든지 간병비를 출금할 수 있습니다. Q4. 어르신들도 사용하기 쉽다는 앱의 직관적인 디자인과 간략한 질문으로 호평 일색인 <케어플러스>를 통한 기대효과를 말씀해주신다면. 배달주문보다 사용법이 쉬워요. 앱에 접속하여 복잡하지 않은 회원가입 절차를 거친 후 ‘간병인 찾기’ 또는 ‘간병일감 찾기’ 중에 희망 서비스를 클릭합니다. 보호자가 간단한 정보를 입력하고 공고를 등록하면 간병인은 공고리스트를 조회해서 원하는 공고를 선택하고요. 간병 비용을 책정하여 입력하면 보호자는 간병인 리스트 중에서 가장 적합한 간병인을 선택하면 매칭이 성사됩니다. 매칭 절차가 간단해 휴대폰 조작이 어려우신 분도 쉽게 구인・구직을 할 수 있지요. 간병 서비스는 생활 밀착형 분야이지만 실질적으로 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서비스는 아니기에 간병 관련 정보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도 부족하고, 인구수가 적은 지역에서는 간병인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간병인에게는 안정적인 수익 유지와 근무환경을, 보호자에게는 간편한 간병인 구인 서비스를 제공하여 향후 일자리 창출의 효과로 간병인 수가 급증하여 수요와 공급 체계에도 균형을 찾을 수 있죠. 따라서 간병인 매칭 플랫폼이 전국적으로 확산해 그동안 소외된 지역을 포함하여 새로운 간병 문화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Q5. 최근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기관과 업무협약도 체결하며 <케어플러스> 개발과정 단 6개월 만의 놀라운 성장 속도인데요. 앞으로 나아갈 ㈜씨플러스 비전이 궁금합니다. 요양기관, 협회 등 전국적인 MOU 체결로 곳곳에서 직면한 여러 문제를 정형화된 프로세스로 효율적이고 스마트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케어플러스’라는 하나의 네트워크 형성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기존의 간병 서비스는 환자가 존재해야만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이 유지되어 수익이 발생하는데요. 주식회사 씨플러스는 환자의 건강을 회복하는 그 과정에 집중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건강한 간병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남고 싶습니다. 간병인 매칭 서비스부터 기업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관리 시스템까지 간병 서비스와 관련된 이해관계자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토탈 간병케어 솔루션’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1144] 현 (現) - 주식회사 씨플러스 대표이사 - 한일미디어 대표 - 국제라이온스클럽 365-A대구지구 와룡라이온스클럽 회원 - 국제로타리클럽 3700지구 대덕로타리클럽 회원 - 영남대학교 법률아카대미 총동창회 상임부회장 - 대구시 북구 구암동 방위협의회 부회장 - (사)대구시중소기업중소상공인협회 사무총장 - (사)대구시중소기업중소상공인협회 서대구지회 회장 - (사)한국청년지도자연합회대구광역시지부 달성지회 초대회장 - (사)벤처기업인협회 회원 주요 수상 경력 - 2005년 11월 대구지방경찰청 강희락 청장 감사장 - 2017년 12월 대구시남구의회 서석만 의장 표창 - 2017년 12월 대구시북구의회 하병문 의장 표창 - 2018년 12월 홍의락 국회의원 표창 - 2019년 01월 곽대훈 국회의원 표창 - 2019년 05월 김부겸 국회의원 표창 - 2019년 12월 제501보병여단장 고영준 대령 감사장 - 2021년 11월 대구시 수성구 김대권 구청장 표창 - 2021년 11월 주호영 국회의원 표창 - 2022년 01월 대구시의회 장상숙 의장 표창 - 2022년 12월 대구시 류한국 서구청장 표창 - 2022년 12월 국민의 힘 이인선 국회의원 표창 외 다수
    • 라이프
    2023-01-27
  • 한평생 봉사와 헌신의 자세로! “고향 발전 위해 적극 앞장서야”
    인구 변화 추이가 심상치 않은 요즘.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이 맞물리며 전국적으로 인구가 점점 줄어 인구 절벽이 심화할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때에 주목할 만한 지역이 있다. 20년 사이 인구가 5.2배 증가한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이 바로 그곳. 자녀 키우기 좋은 자연환경으로 입소문이 자자한 현동은 특별히 자녀를 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구가 많이 유입되고 있다. 조용한 도심지역으로 소리 없이 강한 현동을 면밀히 들여다보고자 60년이 넘도록 고향 발전을 위해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삶을 살아온 김범수 마산합포구 현동주민자치회장을 만났다. _김민진 기자 Q1. 인구감소시대에 인구 증가로 주목받는 마산합포구 현동을 소개해주신다면.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를 살펴보면, 조선시대에 사람이 살기 좋은 조건으로 풍수와 경제, 인심 그리고 자연 등이 언급돼 있는데요.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지역이 현동입니다! 8개의 자연부락(自然部落)으로 구성된 현동은 과거에는 90%가 개발제한구역이었으나, LH가 시행하는 현동 보금자리 주택지구 조성에 따라 개발제한구역 해제로 대단지 아파트가 조성되면서 2003년도에는 인구가 2,700명이었고 올해는 14,000명이 됐습니다. 지금은 남양휴튼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어 2024년에는 17,000명으로 증가할 것을 예상하지요. 그러다 보니, 이러한 인구 증가에 따른 앞으로의 방향을 두고 현동주민자치회에서도 지역 발전을 위해 한마음으로 봉사하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Q2. 남다른 고향사랑으로 지역주민을 위한 나눔, 행사, 봉사활동 등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9남매 일곱째로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제가 열두 살이었을 때 일찍이 선친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 홀로 저희를 키우며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에 “나도 커서 우리 어머니처럼 가족을 위한 헌신과 그리고 우리 가족이 사는 그 지역에 나눔을 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꿨지요. 지금껏 지역을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이유도 사랑하는 아내와 든든한 5남매 덕분입니다. 마산시농협 이사, 현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회장, 현동복지패밀리봉사회 회장, 현동초등학교 동창회 회장 등을 거쳐 현재 현동주민자치회장과 합포구 주민자치회 부회장을 겸임하기까지 소위 말하는 거마비로 나오는 예산 등에도 일절 개인적으로 쓰지 않고 바른 마음과 헝그리 정신으로 아끼고 아껴서 오직 주민들께 돌리는 활동을 당연시 해왔지요. 또한, 홀로 계신 어르신 집에 방문하여 노후화된 전등 교체, 멀리 가지 않고도 집 앞에서 문화공연을 즐길 수 있는 음악회, 수다도 나누고 천연기념물 수달도 지키는 현동 수달마켓에서의 아나바다, 어린이 사생대회 등 구민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부족한 예산 속에서 지역에 계신 분들의 많은 도움과 기부가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3. 지역 토박이로서 오랜 활동으로 기억에 남는 추억도 있으실 것 같아요? 제 나이 24날, 처음으로 지역 단체에 가입하게 되었는데요. 그 출발지가 현동자율방범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때를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던 것 같아요. 현동은 산지가 많은 관계로 타지에서 차를 몰고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늦은 밤, 차들이 길모퉁이에 주차를 해놓으면 가로등도 없고 취약지구이니 빨리 딴 곳으로 이동하시라고 일일이 돌아다니며 밤늦게까지 활동을 해도 힘든 줄 몰랐지요(웃음). 그 이후에도 새마을협의회,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등에서 오랫동안 지역을 위한 봉사활동을 즐겼던 것도 지역을 생각하는 마음이 항상 있었기에 지금껏 해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구민들과 함께 단합된 활동으로 좋은 추억을 쌓고 싶네요. Q4. 2023년 현동주민자치회 활성화 방향과 계획이 궁금합니다. 현동에는 지역 문화제인 당마산성이 있습니다. 현재 잡목이 우거져 있으며,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거나 훼손되어 원형을 알 수 없지요. 현동 초등학교의 남쪽에 우뚝 솟은 이곳을 어린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자연학습지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현동의 대표적인 주민 힐링공간이 된 유수지에 노인을 위한 파크골프장을 만들어 사기업이 아닌, 주민자치회가 관리하는 방향으로 안건을 내고자 해요. 과거, 갈대와 각종 쓰레기들이 방치돼 악취가 나고 해충이 들끓어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기피 장소의 유수지가 ‘환호연 정원’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2,000그루 수국을 식재하고 웅장한 돌탑을 설치했던 성공 사례가 있거든요. 끝으로, 2년 동안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현동주민자치회장 1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신 현동주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이 일을 이어갈 현동주민자치회장 2기를 위해서 저 또한 열심히 돕겠습니다! [1144]
    • 라이프
    2023-01-27
  • 살기 좋은 양산 덕계 “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갑니다”
    주민은 권력을 지닌 정치가나 전문가들에게 이끌려가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이끌어가야 할 주체들이다. 그러나 그동안 다양한 주민참여 방법들은 대부분 소수 전문가나 전문화된 활동가들에 의해 수행되어 왔다. 그들이 주민자치 활동을 주도하고 주민들은 주민자치활동의 대상 또는 수혜자의 역할 만을 해온 것이다. 풀뿌리자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하여 동에 설치되는 ‘주민자치회’는 동네 생활문제 해결을 위한 주민 의사결정기구다. 자치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총회를 거쳐 의제를 실행하며 변화하는 지방분권 패러다임의 중심에 서있다.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가 자치회관 운영에 관한 심의·의결 및 동 행정에 관한 협의 권한만을 가졌던 것과 달리, ‘주민자치회’는 보다 권한과 책임이 강화된 주민 의사결정기구로 한층 강화된 주민자치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주민자치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비전과 목표는 ‘살기 좋은 마을을 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내가 사는 ‘마을’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경남 양산 최초의 주민자치회. 덕계동주민자치위원회가 덕계동 주민자치회로 전환되는 과정 속, 위원장에서 회장으로 역할을 다해온 서창현 회장을 만났다. 양산 덕계에서 10대째 고향을 지키고 있는 그는 진정성 담긴 애향심으로 살기 좋은 덕계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_김유미 기자 두 갈래로 흐르는 강줄기 사이에 자리 잡은 ‘큰 시내 사이에 만들어진 마을’, 덕계는 큰 ‘덕(德)’자와 시내 ‘계(溪)’자를 합쳐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2007년 4월 1일 웅상읍에서 분동된 덕계동은 부산과 울산을 연결하는 산업·유통 및 교통의 요충지로서, 최근 대단지 아파트 등 대규모 주거단지 조성과 그에 발맞춘 지역 개발 및 도시 인프라 개선 등으로 드물게 꾸준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지역이다. 회야강과 천성산의 맑은 공기와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기도 하다. “14개 면동 중 인구가 적은 편에 속했던 양산 덕계는 계속된 인구 유입으로 이제는 주목받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정말 쾌적하고 여유로운 곳입니다. 저처럼 지역에서 오래 살아오신 분들과 새로 조성된 아파트에 입주하는 분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데도 마을 주민 간 소외나 불화가 전혀 없어요. 어떠한 안건에도 모두가 양보하고 배려하며 평화롭게 해결합니다. 정말 다들 마음 좋은 분들이세요. 갈등이 없다보니 저는 조용히 맡은 일만 하면 됩니다(웃음).” 사람 좋은 얼굴로 허허 웃어 보이지만, 리더이자 책임자로서 서창현 회장의 역할은 상당하다. 따뜻한 리더십과 소통력으로 때론 카리스마 있게, 때론 포용력 있게 주민들과 함께 의견을 모아가며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9월 17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됐던 ‘덕계동 한마음축제’가 3년 만에 덕계동체육회(회장 방영한)와 덕계동 주민자치회 공동주최로 3년 만에 개최됐다. 지역주민 1,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발표회, 클래식 공연, 초대가수 공연, 경품 추첨 등이 펼쳐졌다. ‘2022년 덕계동 주민총회’도 개최되어 더욱 의미가 깊었다. 지난 2021년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회로 변경된 후 처음으로 개최된 주민총회에는 120여 명의 주민들이 참석하여, 2023년 덕계동 주민자치회의 주요사업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주민자치회의 꽃은 주민총회입니다. 주민들이 원하는 사업을 발굴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동의를 얻어서 마을 사업으로 정착화 시키는 것이지요." 얼마 전 ‘한평정원 조성사업’도 큰 관심을 끌었다. 도심 속 자투리 땅에 꽃을 심고 꾸며 쓰레기 무단투기를 막고 주변 환경 조성 개선에도 도움을 주고자 시작한 사업이다. "현재 덕계동행정복지센터 옆, 덕계지하차도 위 택시승강장 앞, 동일2차아파트 후문 산책로에 한평정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관리가 잘 되지 않은 보기 싫은 공간이었지만, 이번 한평정원 조성사업을 통해 새롭게 단장되어 주민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명소로 탈바꿈하게 되었어요.” 서창현 회장은 “무더운 여름철 덕계동의 환경미화를 위해 발벗고 나서준 주민자치회원 및 덕계동장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에게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잡초 제거 및 계절꽃 식재 등을 통해 한평정원 관리에 힘을 쏟아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꾸준히 찾는 명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주민자치를 활성화 시키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한 시민의식을 가진 주민들의 참여입니다.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정착시키려면 주민이 대표로 참여하는 주민자치회, 입주자대표회, 학부모가 대표로 참여하는 학교운영회와 같은 제도적으로 시민참여가 보장된 자치기구가 더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건강한 시민의식을 가진 우리 덕계 주민들이 주민자치회를 통해 자기가 사는 곳을 더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기 위해 관심을 가져주시고, 더 많은 참여를 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앞으로도 알찬 예산 집행으로 주민들에게 더 필요하고 와닿는 사업을 펼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주민자치 사업의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는 데 무엇보다 행정기관과의 적극적인 소통이 중요합니다. 지면을 빌어 박은미 덕계동장님을 비롯해 많은 유관 단체 자생단체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항상 지원해주시고 협력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달성서씨 10대손인 서창현 회장, 지역에서 건실한 건설사를 운영하며 사업적으로도 성공한 그는 국제라이온스협회 355-D(울산・양산)지구 총재특별고문으로도 활동하며 지역 봉사와 나눔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내 고향, 내 동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작지만 큰 행복”이라는 그와의 따뜻한 만남이었다. [1142]
    • 라이프
    2022-12-26
  • 고된 노동과 집념, 지혜가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 ‘상황버섯’
    양산 동면 법기수원지는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부산 최초의 근대식 수원지인 구덕수원지(1902년)와 성지곡수원지(1909년)에 이어 1932년에 완공된 이곳은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 살던 일본인의 식수로 이용된 곳이기도 하다. 상수원 보호구역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여 수십 년 동안 인간의 출입이 제한된 까닭에 79년 동안 ‘금단의 땅’이 되었다가 지난 2011년 7월 15일, 댐과 수림지 일부를 일반인에 개방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수 없이 먹을 수 있는 청정 수질을 자랑하며 150만t의 물을 저장할 수 있고 하루 수천t 정도가 부산에 공급된다.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공존하는 산골 마을, 양산시 동면 법기수원지 입구에는 1급수 맑은 지하수를 끌어올려 친환경으로 재배되고 있는 상황버섯 농장이 있다. 청정한 자연과 맑은 정기를 담아낸 국제장수상황버섯이 바로 그곳이다. 1999년부터 이곳에 자리 잡아 상황버섯을 재배하고 있는 양동수 대표는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축적된 기술과 꼼꼼한 품질관리로 최상품의 상황버섯을 생산해내고 있다. _김유미 기자 상황버섯이 건강에 좋은 귀한 작물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내의 모든 식물 중 항암작용이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상황버섯은 발암물질을 분해하고 배설을 촉진해 암 치료에 좋을 뿐 아니라 면역력을 강화해서 종양을 저지하는 효과 또한 크다고 한다. 소화기계통의 암인 위암, 식도암, 십이지장암, 결장암, 직장암, 간암에 좋고 자궁경부암, 전립선암 등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황버섯의 균사체에 함유되어 있는 베타글루칸 성분이 혈관신생을 억제해 암의 성장을 막고 NK Cell(자연살해세포)의 증식을 도우며 면역기능을 강화해 준다. 그래서 미국식품의약국에서는 상황버섯을 세계 10대 항암식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바이러스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초기에는 노란 진흙덩어리가 뭉친 것 같은 형태를 유지하다가 다 자란 후에는 그루터기에 혓바닥을 내민 것처럼 보여 ‘수설’이라고도 한다. 그 중에서도 장수상황버섯은 특히 더 노란빛을 띄는데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장수상황버섯은 약용버섯 중에서도 뛰어난 효능을 자랑한다. 항암효과와 면역력 증진에 탁월한, 하늘이 준 귀한 선물 ‘상황버섯’ 국내 최초 공중재배 시작해 경남 거창이 고향인 양동수 대표, SK주유소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주유소를 인수받아 운영할 만큼 성실하게 살아온 그는 기름을 공급하던 거래처 농원과의 인연으로 상황버섯을 알게 된다. “당시에 상황버섯 1kg 가격이 280만원에 달할 때였어요. 도대체 어떤 버섯이기에 이렇게나 비쌀까? 얼마나 좋기에 이 가격에도 사람들이 찾을까? 호기심이 들었죠. 그러던 중 농원에서 종균기능사로 일하던 분께서 상황버섯을 한번 키워보지 않겠냐고 제의하시더라구요. 덕분에 종균도 편하게 공급받게 되어 큰 투자 없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부담 없이 시작한 일이 제 일생일대의 과업이 되어버린 셈이죠(웃음).” 마땅한 부지를 찾던 중 청정한 환경이 1순위라고 생각되어 지금의 법기수원지 근처로 자리를 잡았다. 부업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상황버섯에 대해 공부하고 재배방법을 연구하다보니 그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번 시작하면 제대로 파고드는 그의 성격으로 인해 결국 상황버섯 재배는 그의 인생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공중재배를 국내에서 처음 시작하게 된 것도 계속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기존에 원목(참나무)을 땅에 놓고 키우는 재배 방식은 상황버섯이 자라면서 흙이나 모래 등을 같이 품어버리기 대문에 수확 후 손질과정에서도 힘든 점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토양 속의 오염물질이 상황버섯에 일부 흡수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아예 땅에 닿지 않게 공중재배 방식으로 재배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번뜩 떠오르더군요. 현재는 많은 농장들이 공중재배방식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버섯의 품질은 물론, 공간 효율도 좋고 관리도 수월하기 때문이지요.무엇보다 생산량도 바닥에 세워서 하는 것보다 4배 가량 많습니다.” 무농약농산물인증, 경상남도 추천상품 선정 건강을 위해 먹는 상황버섯, ‘제대로 키워야한다’는 사명 국제장수상황버섯은 식약청에서 인정받은 우수한 국산 100%품종으로 친환경으로 재배된다. 매년 무농약농산물인증을 갱신하고 엄격한 검사를 통과하여 경상남도 추천상품으로도 지정되었다. KBS ‘6시 내고향’과 ‘한국재발견’, SBS ‘생방송 투데이’ 등 수많은 언론과 매체에서도 주목해 보도된 바 있다. “2년마다 엄격한 품질검사를 통과해 경상남도 추천상품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검사를 통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분들의 건강을 생각하며 정성껏 재배하다보면 자연히 좋은 품질의 상황버섯을 생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부모를 닮듯 농산물의 품질은 재배하는 사람을 닮을 수밖에 없어요. 사실 친환경으로 재배한다는게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내가 먹고, 우리 가족이 먹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먹는다고 생각하면 작은 것도 허투루 할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깨끗한 친환경 상황버섯을 재배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그의 뒤를 잇고자 공부 중인 딸의 역할이 컸다. “확실히 젊은 사람은 다르더군요. 창의적이고 정보력도 뛰어나구요(웃음). 최대한 친환경으로 길러내기 위해 벌레를 살피고 책을 찾고 하더니 국내에서 알아주는 벌레 박사님을 농장에 초청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개구리도 키워보고 잠자리도 넣어보고 물리적, 생물적 방제에 미생물 방제 등 복합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찾으시는 상황버섯이니 더욱 제대로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농산물은 단순히 상품이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품질의 버섯 재배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최상품에도 저렴한 가격 유지해 20년 넘게 찾아주시는 고객들 생각에 가격 못 올려 상황버섯은 나무에 종균을 심어 1년 정도를 키워서 수확한 다음 제대로 건조시켜야 제품으로 내놓을 수 있다. 버섯 원형으로도 판매하지만, 적당한 크기로 썰어 끓여먹기 편리한 절편의 판매가 많은 편, 국제장수상황버섯은 현재 법기수원지 앞 농장에서 관광객들에게 직접 현장 판매를 하고 있다. 농수산물유통센터와 쇼핑몰(e-경남몰),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택배 등 온・오프라인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상황버섯을 조금 아시는 분들은 의아해하실 겁니다. 국제장수상황버섯은 최상품임에도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편입니다. 처음 그 가격을 그대로 지키고 있어요. 그동안 농장운영에 필요한 종목값과 인건비 등 모든 것들이 올라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20년 넘게 저희 농장을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에 부담을 드릴 수가 없더라구요.” 인건비를 줄이고자 그는 365일 버섯과 함께 한다. 모든 버섯이 그렇지만 특히 상황버섯은 온도・습도・환기가 중요하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휴면기를 주는 것이 다음 해의 생장에 유리해 수분공급 없이 그대로 놔두게 되는데(양 대표는 ‘잠재운다’고 표현했다) 그 때도 일정한 온도와 습도로 유지되는 농장 안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버섯을 살핀다. “버섯을 기르는 법은 매뉴얼이 없습니다. 버섯 그 자체에서 배우고 익히게 되는 것이죠. 그때그때마다 버섯이 자신의 상태를 알려오고, 그동안 버섯과 함께 보낸 시간이 해야 할 일을 알려주니까요.” 상황버섯은 약재로도 좋지만 평소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건강음식이라고 강조하는 양 대표. “먹는 법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보편적인 방법은 차로 끓여 마시는 것이지만 그 외에도 닭백숙이나 돼지수육 등을 삶을 때 함께 넣어도 좋습니다. 육질도 부드러워지고 잡내도 제거돼 훨씬 풍미가 살아나죠. 무미무취가 특징이다보니 상황버섯은 어디든 튀지 않고 잘 어울립니다. 육수를 이용한 국, 탕은 물론이고 밥을 짓거나 김치나 된장을 담글 때 사용하면 깊은 맛은 물론이고 영양까지 더해지니까요.” 양동수 대표는 이리저리 계산하지 않는다. 진득하니 그냥 버섯 자체에 애정을 쏟아낸다. 그게 벌써 24년이 됐다. 그에게 농사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실현시키는 삶의 한 부분이다. “버섯과 함께 있으면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한없이 너그러워져요. 남은 인생도 상황버섯과 함께 하겠습니다(웃음).” 인터뷰 말미, 그는 늘 든든한 동반자로 함께 해준 아내(신수연 대표)와 5년 전부터 함께 하며 영농후계자 과정을 밟고 있는 딸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의 오랜 노하우에 젊은 감각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적극적인 마케팅이 더해져 ‘국제장수상황버섯’이 상황버섯의 대표 브랜드로 더욱 굳건히 서길 기대한다. [1142]
    • 라이프
    2022-12-26
  • 사람도 차도 쉬어가는 곳! 수입차 전문, ‘休 모터스’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중평로 40, 차분한 그레이톤의 단층 건물이 눈에 띈다. 하얀 바탕에 커다랗게 쓰인 한자 ‘休(휴)’, 그리고 MOTORS. 여유로운 진입로와 주차공간까지... 카페처럼도 보이는 이곳은 오성택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수입자동차 전문정비업체다. _ 김유미 기자 아주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사회에 진출해 기술을 배워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오 대표. 버스 회사에 입사해 정비를 배우며 사회 첫 발을 내딛었다. “또래와는 조금 다른 행보를 걷다보니 제가 선택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에는 불안하기도, 조급한 맘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자는 생각을 먹고 부터는 실력을 키우는데만 전념했어요. 마음을 굳게 먹고 나니 좋은 기회가 계속해서 생기더라구요.”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 선박엔진 정비・수리 엔지니어로 일하게 된 오 대표는 해군, 해경 요트엔진 정비를 담당하며 또 다른 커리어를 쌓아가게 된다. “부산, 사천, 동해, 군산, 부안, 인천 등 전국을 오가며 일했습니다. 여행 삼아 다니며 즐겁게 일했어요. 연봉도 꽤 높았구요(웃음). 그런데 2년 뒤,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출장이 대부분인 이 일을 이어가기가 힘들더라구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예 집을 떠나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결국 이후 부산 푸조 AS센터에 입사하며 자동차 정비와의 인연을 다시 이어가게 됐습니다.” 본사에서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이론 및 실무 교육을 통해 오 대표는 계속해서 담금질을 했다. 천성적으로 부지런하고 야무졌던 그는 인사, 경영을 함께 배웠고 울산 센터로 옮겨가는 과정에서는 매니저까지 승진하며 성장했다. “처음에는 임시 파견으로 울산 센터에서 근무하다가 아예 정착을 했어요. 이곳에 너무 좋더라구요. 4년 조금 넘게 근무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나중에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다른 곳에 스카우트되어 수입차 정비팀장으로 일했어요. 이때 경험하고 쌓은 노하우들이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오성택 대표는 3년 전, 휴모터스를 창업하며 정비 리프트를 하나만 설치했다. 여유로운 주차공간에 비해서는 파격적인 공간구성이다. 1:1로 고객과 소통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단다. 대기실 역시 정비공간과 맞먹는 크기, 깔끔한 모습이 오 대표의 성격을 닮았다. 중간 창으로 내 차의 작업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데 이 또한 고객 배려의 일환이다. “저부터가 쾌적한 공간에서 근무를 하고 싶어요(웃음). 고객분들은 말할 것도 없겠죠. 차에 문제가 있거나 염려되는 불편한 마음으로 오시는 분이 대부분인데 편안한 공간에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사실 리프트도 마찬가지에요. 욕심으로는 2~3대도 설치하고 싶지만 고객들과 소통하면서 한 대 한 대 집중해서 작업하고 싶은 마음에서 과감히 1대만 설치했지요.” 휴모터스에서는 엔진오일 하나를 교체하더라도 부품 단가는 얼만지 공임비는 얼만지 꼼꼼하게 기재된 명세서를 제공한다. 방문 후기에는 이곳의 세심한 고객 배려와 꼼꼼한 정비 실력에 대한 칭찬 글 일색이다. 특히 오성택 대표의 전문분야인 푸조(PEUGEOT)와 시트로엥(CITROËN) 차량 정비는 동호회 등에서도 입소문이 나 일부러 먼 지역에서도 찾아올 정도. 정비 실력은 기본, 자동차 문외한인 고객들에게도 차분하게 설명하는 그의 친절함과 오히려 고객의 입장에서 꼭 필요한 부분만 정비를 진행하는 신뢰감, 그리고 꼼꼼하게 내역을 밝히는 정직과 신용, 그 바탕에 깔린 고객 배려까지... 휴모터스는 특히나 여성 고객들의 방문이 많은데 바로 이 이유에서다. “정말 단순히 자동차가 좋아 정비를 시작했습니다. 원리를 알수록 정비하는 재미가 새록새록 솟아나더라구요. 자동차는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휴모터스를 찾아주시고 만족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에 늘 힘이 납니다(웃음). 앞으로도 고객과의 약속, 소통 그리고 고객만족을 실천하며 열심히 운영해나가겠습니다.” [1142]
    • 라이프
    2022-12-26
  • 풍부한 실무경험과 탄탄한 이론으로 두각 / 울산, 형사 전문 변호사
    최근 강승모 법무법인 신세계 울산 대표 변호사는 민선 8기 울산시 시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다. 울산시 시민고충처리위원회는 시민의 입장에서 고충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구성된 합의체 기구로 위원장, 부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5명으로 구성됐으며, 임기는 4년이다. 울산시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위원회 명칭 변경 권고에 따라 위원회 명을 기존 시민신문고위원회에서 시민고충처리위원회로 변경했다. 고충민원처리 업무만을 담당하도록 해 전문성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위원을 의회의 동의를 거쳐 시장이 위촉함으로써 신분보장을 강화하고 업무의 독립성을 보장했다. 법적 기반을 갖춘 위원회로 출범함에 따라 위법, 부당하거나 소극적인 행정처분, 불합리한 행정제도 등으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의 고충민원을 해소하는 역랑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주간인물은 법률사각지대에 있는 이웃들을 향한 따뜻한 법률 조력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강승모 변호사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강승모 변호사는 울산이 고향인 그는 청년시절, 육군사관학교와 한국교원대학교를 다니며 다양한 인생 경험을 쌓았다. ‘나라에 봉사하겠다’는 생각으로 군인을 꿈꿨던 그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스승이 되겠다’는 교육자를 꿈꿨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사회의 근간인 가정이 바로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하는 길’임을 깨달은 그는 법률가의 길을 선택했다. “단순히 생업에 종사하기보다는 사회의 일원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한때, 군인을 꿈꾸기도 했고 교육자를 꿈꾸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근간인 가정이 바로 서야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생활 속 많은 분쟁으로 가정이 무너질 위험에 처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부산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시 4회에 합격,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현재 법무법인 신세계 울산 대표 변호사로 울산남부경찰서 법률상담관, 울산지방법원의 법률상담관, 울산시 시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울산 옥동에 있는 법무법인 신세계는 문턱이 낮은 열린 법무법인을 지향하고 있다. 형사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법무법인으로 지역 법조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아플 때도 하루 속히 의사를 만나야 병을 키우지 않고 제대로 진료를 할 수 있듯이, 분쟁이 생길 때도 하루 속히 변호사를 만나야 사건을 키우지 않고 제대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어요. 변호사 수가 많이 늘어났다고 해도 아직 대부분의 시민들이 변호사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것이 현실입니다. 의뢰인들 가까이, 힘이 될 수 있는 열린 변호사 사무실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개업을 했습니다.” 날로 치열해지는 법률시장에서 강 변호사는 특화된 법률 서비스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형사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그는 음주운전, 성범죄, 토지보상, 이혼소송, 기업법인회생 파산 등 각 분야의 풍부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법률 조력을 하고 있는 것. “형사 분야와 개인법인회생, 파산, 이혼소송 분야에 특화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많은 소송 케이스를 통해 얻은 풍부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의뢰인들에게 전문적인 법률 조력을 하고 있습니다.” 성실한 변호사인 그는 사건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 한다. 상담 과정에서부터 마지막 소송 결과를 얻는 과정까지... 매 순간 최선을 다 한다. 기억에 남는 사건에 대해 묻자, 강승모 변호사는 기소 후 1심 무죄를 받은 사건에 대해 설명했다. “의뢰인은 갓 서른이 된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의료 계통 치료학을 전공하고 병원에서 치료사로 일하며 꿈을 키우던 평범한 청년이었죠. 어느 날, 한 여성 환자분에게 성추행 혐의로 고발을 당해 한순간에 직장을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병원 측의 CCTV 자료를 봐도 성추행 혐의를 찾아보기란 어려웠고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이 직접 촬영했다는 증거 영상을 봐도 아무런 혐의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수차례의 법정 다툼을 통하여 억울함을 증명한 끝에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현재 2심을 준비하고 있는 이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어려운 경기에 기업회생, 파산과 관련된 법률 수요도 늘고 있다. 많은 사건을 처리한 경험이 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사건일수록 더욱 신중을 기하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의뢰인은 울산에서 중장비 대여 업체를 운영하던 부부였어요. 신용도가 낮아 두 아이들 앞으로 사업자를 내서 사업체를 운영했죠. 그러다 중공업 경기가 나빠지면서 운영이 어려워졌고 아이들 앞으로 수십 억대의 빚만 쌓여갔습니다. 결국 버티다 못해 기업회생을 신청하게 됐죠. 채무를 다 정리를 하고 10년 상환으로 일부의 빚만 갚으면 된다는 조건으로 회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의 책임을 사회가 지는 것이 무책임하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회생법의 취지가 채무를 정리해주고 갱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라면 그 취지에 걸맞은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앞길이 창창한 아이들이 수십억의 빚을 떠안게 되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법무법인 운영에 바쁜 와중에도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이다.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 분야 중에서도 그는 장애아동 인권향상, 유기견 문제 해결 등 법률사각지대에 있는 소외된 이웃들을 돕는 것에 뜻을 두고 있다. 울산시 시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 활동도 평소 품어왔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의지를 실천한 것이다. 시민고충처리위원회 활동 중에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묻자 그는 한 일화를 소개했다. “울주군에서 마을안길로 사용되고 있는 사유지에 대하여 그에 상당한 매수 보상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시정 권고를 내린 적이 있습니다. 군에서는 마을안길 등은 비법정도로로 토지보상법상 보상 가능한 토지에 해당하지 않아 매수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실질적으로 사유지의 주인은 은혜적인 차원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토지를 빌려준 것이지 아예 소유권을 지자체에 넘겼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부당하게 침해된 시민들의 재산권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현재 울주군에 매수 보상을 시정 권고한 상태입니다.” 강승모 변호사는 사건에 임할 때마다 초심(初心)을 되새긴다. ‘내 일처럼 의뢰인들의 사건을 맡는다’ 것이 그의 오랜 지론이다. 10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일 해온 그는 열심히 일하는 변호사이자 따뜻한 가정의 가장이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 묻자 그는 “치열한 법률시장에서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의뢰인을 대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법무법인 신세계 울산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법무법인으로 만들고 싶다”는 힘찬 포부를 밝혔다. [1140]
    • 라이프
    2022-10-27
  • 일하는 청춘 시니어, 길을 밝히다
    7월 26일 시니어벤처협회(회장: 신향숙)의 성남지사 개소식이 열렸다. 행사에는 신상진 성남시장, 성명기 성남산업관리공단 이사장, 이창희 중소벤처기업부 중장년 사무관, 윤소라 성남상공회의소 여성기업인협의회 회장, 양표숙 한국여성벤처협회 부회장, 성남 중장년기술센터장, 이용기 세종대 시니어산업학과 교수 등 내빈이 함께 참여하여 성남시 지역발전을 위한 시니어벤처협회의 개소를 축하하였다. 지난 21년 11월 성남산업단지관리공단과 ‘시니어의 역할 증진’을 지원하기 위한 포괄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던 (사)시니어벤처협회의 신향숙 회장은 “기술의 융·복합 뿐 아니라 세대 간의 융·복합도 이뤄져야 한다”면서 “시니어그룹과 청년그룹이 지닌 각각의 고유의 장점을 찾아내고 결합해 세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동력을 확산하여 성남시 지역발전에 기여할 것이다”는 의지를 밝혔다. 시니어벤처협회(회장 신향숙)는 2017년도에 중소벤처기업부의 인가를 받은 벤처협회로, 1996년 벤처기업협회, 1998년 한국여성벤처협회 설립 승인에 이어 늦은 감은 있지만 중장년 시니어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설립되었다. 시니어벤처협회는 2019년 시니어창업허브 ‘디딤터’를 서울 광진구를 시작으로 2곳에 개원하였고, 디딤터와 관련 교육과정을 운영, 창업·재창업 관련 각종 세미나와 시니어 문화예술 학교를 열어 중장년 시니어의 창작 활동을 지원 중이며, 대구/경북지회 외에도 전주/전북지회, 울산지회, 서산/충남지회, 광명지회, 인천지회가 출범되는 등 전국단위의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활기찬 중장년 시니어들의 성공적인 도전을 이끌기 위해 시니어벤처협회는 지난 5년간 △언론사 △협단체 △기업 △대학들과 중장년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고 있으며, 도전하는 중장년 시니어가 기술 및 서비스 분야 창업에 도전하도록 창업 교육부터 창업 보육은 물론 투자 및 성장까지 창업 생태계 전 생애에 걸친 지원을 해왔다. 시니어벤처협회 오늘날의 성과는 지치지 않고 지속적인 큰 힘이 되어주신 임원분들의 열정과 봉사로 이루어졌으며 22년 7월 성남에 시니어의 둥지를 마련하고, 일하고 싶은 시니어의 일자리 창출에 앞장설 것이며, 시니어 창업 기업인에게는 창업기회의 장을 마련할 것이다.
    • 라이프
    20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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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도를 타는 바다사나이 긍정의 파도를 만들다
    •2020년 해양수산부 장관상 수상 •2021년 한국관광공사 관광벤처기업 프로젝트 공모전 선정 •부산광역시 서비스 강소기업 선정 •올해의 보드상 수상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모를 파도들이 송정해수욕장에 부딪힌다. 저 먼바다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는 파도가 잔잔하게 찰랑거리며 모래사장을 적셨다. 많은 사람이 한 장의 보드에 의지해 바다 위에 있었다. 서퍼들은 송정이 파도 맛집임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송정에 모여드는 서퍼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좋은 파도를 보면 곧바로 바다로 뛰어든다. ㈜서프홀릭의 신성재 대표 역시 파도 하나만 바라보며 국내 1위 서프샵이라는 높은 파도를 목표로 송정 바다에 뛰어든 인물. 그가 넘어온 수많은 파도에 대해 들어보았다. _송인주 기자 ㈜서프홀릭은 부산 송정해수욕장에 위치한 서프샵이다. 처음 서핑을 접하는 이들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체격, 실력에 맞는 보드와 계절별 슈트를 대여해준다. 쾌적한 탈의실, 파우더룸, 샤워실을 완비하고 쉴 수 있는 카페와 전망 좋은 테라스가 있어 서퍼들에게는 최고의 공간이다. 신성재 대표는 서핑을 접하기 이전부터 아마추어 카레이싱 선수로 활동을 할 만큼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겨왔다. 그런 그에게 서핑은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송정에 드라이브하고 커피를 마시러 자주 갔었어요. 9년 전에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서핑하는 사람은 찾기가 힘들었는데, 우연히 서핑하는 사람들을 보게 됐죠. 그 길로 곧바로 서핑을 시작했습니다. 함께 서핑하던 지인이 서프샵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제게 인수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주셨어요. 당시 하던 사업도 있어 처음엔 사양했다가 생각이 바뀌었죠. 그땐 진짜 단순하게 보드나 슈트를 더 싸게 살 수 있으니 좋겠다, 싶었죠. 근데 막상 서프샵을 운영하니 안 보이는 게 보이더군요.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무척 커 보였습니다. 이왕 시작한 이상,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에 밤낮없이 일했죠(웃음).” 2012년, 신 대표가 처음 서핑을 접할 때만 해도 서핑을 하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였다. 그러나 현재 송정 소재의 서프샵만 19군데일 정도로 많은 서퍼가 존재한다. ㈜서프홀릭은 송정에 4번째로 생긴 서프샵이었다. ㈜서프홀릭은 송정 서프샵의 선두 그룹으로 지역 서핑 문화를 꽃피우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서핑의 대중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출난 사람만 할 수 있는 엘리트 스포츠가 되기보다 많은 사람이 즐기는 대중화된 스포츠여야 해요. 그래야 많은 사람 중 재능 있고 특출난 사람도 발견되는 거죠.” 신 대표는 서핑의 대중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았다. 그는 우선 서프샵의 강습시스템에 주목했다. 기존의 시스템에는 강습생이 몇 번을 방문하든 똑같은 강습을 받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전문 코치 인력이 한참 부족했습니다. 하나의 서프샵에 한두 명의 코치가 있었죠. 그러니 초급자든 중급자든, 한 번 왔든 세 번 왔든 간에 한 번의 강습에 묶어서 진행되었어요. 이런 점은 고객이 재방문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선 강습시스템을 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시행착오 끝에 입문 교육 5회차 커리큘럼을 만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많은 코치 인력이 필요해졌어요. 작년 여름에는 코치만 서른여섯 명을 고용할 정도였죠. 이렇게 운영하다 보니 서프샵에서는 저희가 최초로 정직원을 채용하게 되었습니다.” 서핑의 대중화에는 체계적인 강습시스템도 중요했지만, 전문 서퍼의 일자리 창출과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전에 서프샵에서 코치를 구한다고 하면, 지인들에게 부탁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랬을 때의 단점은 강습생들에게 서프샵의 정신이나 가치관이 전해지는 것이 아닌 코치 개개인의 가치관이 전달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구상한 게 전문 코치 인력의 양성입니다. 두 달의 코치커리큘럼을 거친다면 일반인도 코치를 할 수 있죠.” ㈜서프홀릭의 체계적인 커리큘럼은 강습생들의 만족도가 높아 재방문율이 높다. 신 대표는 커리큘럼을 수립하면서도 다방면으로 서핑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다. 다양한 업체와 기관과의 업무협약 기록이 그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지 짐작게 한다. “부산 관광과 연계해 서핑의 대중화와 서프홀릭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홍보를 했었어요. 근데 부산을 관광하러 오신 분들에게 서핑 소개했을 때 서프샵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반대로 서핑을 배우러 오신 분들에게 부산의 관광지나 맛집을 소개해드리면 너무 좋아하시고 또 찾아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서핑을 하러 오신 분들게 부산의 관광을 소개해줘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서핑 기반 관광 플랫폼입니다.” 그가 고민하고 고민해 개발 중인 서핑 기반 관광 플랫폼에서는 서핑 강습과 함께 다양한 관광 상품을 묶어 서퍼들에게 다양한 부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플랫폼에서는 서퍼들을 위해 ㈜서프홀릭 송점 본점과 울산, 포항, 강릉점의 실시간 파도상황을 보여주는 라이브캠도 볼 수 있다. 현재 홈페이지를 갖추고 있고 앱 출시를 준비를 중에 있다. 최근 송정에서는 서핑 구간이 확대되었다. 처음에 서핑할 수 있는 공간은 30m밖에 안 됐고 그마저도 원래는 윈드서핑이 나가는 통로였다. 점차 서핑하는 사람이 늘어나며 서핑 구간이 확대되었다. 50m, 80m, 안전구역 40m를 제외하여 120m, 올해는 안전구역 30m를 제외하여 240m라고. 송정은 좋은 파도가 들어와 서퍼들에게 소문났지만, 좁디좁은 서핑 구간에 답답함을 호소한 서퍼들은 양양이나 제주도로 향했다. 현재까지의 변화는 서퍼들에겐 아직 부족할지라도 점차 늘어나는 서핑 구간은 고무적이다. 신성재 대표는 자신이 좋아하는 서핑에서 최고가 될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넘실거리는 파도에 실린 그의 열정은 새로운 파도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준다. 앞으로 그가 만들 빛나는 서핑 문화의 파도가 기대된다. [1120]
    • 라이프
    2021-08-10
  •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 지역사회의 빛이 되다
    국제로타리 3630지구 경주중앙로타리클럽이 장애인 재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과제빵 교육과 바리스타 교육장을 설립하는 예사랑단기보호센터를 지원하기 위해 성금 9,800만 원을 기탁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북 경주로 향했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어려운 시기,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위한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김동한 경주중앙로타리클럽 회장을 만나 그들의 뜻깊은 활동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_김나리 기자 Q. 경주중앙로타리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로타리클럽은 전 세계 120만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봉사단체로 인도주의 활동을 통해 세계이해와 평화증진에 이바지하는 세계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경주중앙로타리클럽은 2005년 최병준 도의원과 61명이 함께 창립한 것을 시작으로 ‘로타리 참여로 삶의 변화를’이라는 정신을 행동으로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시설 후원과 소아마비 박멸기금 기부, 지역 내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장학금 지원 사업, 이미용봉사, 한방진료, 독거노인지원 등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과 더불어 필리핀 세부웨스트 클럽과 자매결연을 맺어 해외 봉사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Q. 취임 후 주로 어떤 활동에 집중해오셨는지요? A.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활동 제약이 많았어요. 그러나 어려운 시기인 만큼 도움이 필요한 곳도 그 어느 때보다 많았습니다. 그리고 ‘기회의 문과 희망이 닫혔다고 생각하는 지금, 나눔만이 이 위기를 타개할 문이자 유일한 탈출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나눔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연대의 시작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직접 발로 뛰어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코로나19로 생활이 어려운 취약계층 가구를 위한 생필품을 전달하고, 경주 지역에 노후화된 집을 고치는 사랑의 집수리와 지역사회 환경정화 및 방역 활동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거주 시설인 예티쉼터에 제과제빵 교육과 바리스타 교육을 위한 교육장을 설립하고 장애인 거주 시설인 은혜원도 후원했지요. 코로나 상황으로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다문화 취약계층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고 노트북을 지원하는 등 지역사회 전반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나아가 글로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필리핀 태풍 피해 지역에 후원금을 전달하고, 의료시설이 낙후된 필리핀 병원에 초음파기기가 없어 산모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초음파기기를 지원하는 활동들을 해왔습니다. Q. 특히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으시다면. A. 돌아보니 모든 활동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지만, 예티쉼터 교육장을 설립하는 과정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전에는 경주와 포항에 장애인들을 받아주는 제과제빵, 바리스타 교육장이 없었습니다. 처음엔 대부분의 사람이 장애인들이 자격증을 따서 자립한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이렇게는 사업 운영이 되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러나 직접 발로 뛰고 시행착오와 수정 끝에 RI(국제로타리) 승인을 받아 예티쉼터 교육장이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경주중앙로타리클럽 만의 힘이 아닌 필리핀 세부웨스트, 이리중앙, 영주중앙, 동포항, 경주알영, 경주퀸즈 로타리클럽 등이 마음이 하나로 합쳐졌기에 교육장 조성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모두가 하나의 아름다운 목표를 가지고 함께 했기에 더욱 가치 있는 활동이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주신다면. A.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경주에 있는 다문화 가정과 취약계층을 위한 도움의 손길을 지속적으로 내밀며 살고 싶습니다. 또한 예티쉼터 사후관리가 잘 되어 지역사회 장애인들이 자격증 교육을 받아 자립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 힘쓰고 싶습니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어린 시절 저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온기를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받은 사랑으로 인해 지금의 제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로타리클럽 활동을 하면서 더욱더 값지고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역대 회장님, 회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모든 사업을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특히 3630지구 7지역 총재지역대표 이창희 회원과 3630지구 이종열 재단위원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국제 자매클럽과 3630지구에 도움 주신 모든 클럽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아들 김태유, 딸 김슬기와 사위 김상형 그리고 아내 김영옥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욕심을 내려놓고 선한 방향으로 나가려고 했던 아름다운 결과물들을 모두와 나누고 싶어요. [1120]
    • 라이프
    2021-08-10
  • ‘안전지킴이’이자 안전의 파수꾼으로 감시자 의 역할을 선도해 나가다
    (사)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은 시민의 안전을 위한 정책 건의, 점검, 교육, 홍보 활동 등을 통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실천하고 봉사하는 시민단체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심각한 안전불감증으로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시민 스스로 참여하는 안전문화의식 제고와 실질적인 안전사고 예방에 기여하고자 1998년 12월에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원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빨리 해결하고, 빠르게 기억 속에서 잊혀버리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에 단체에서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가운데 법과 제도적 보완, 국민 안전의식 제고를 통해 보완하고 실천이 될 수 있도록 ‘안전지킴이’이자 안전의 파수꾼인 ‘감시자’의 역할을 선도해 나가고 있는 이가 있어 만나보았다. 김중진 대표를 조명해본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사단법인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으로 독립하다 (사)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이하 대구안실련)은 공동대표 3인, 명예대표 2인, 부대표 4인, 자문단, 이사, 감사, 사무처를 두고 있으며 산하조직으로는 시민안전연구소, 시민안전신고센터, 안전사업본부, 교육사업본부, 안전지킴이 본부, 대학생안전봉사대 등 2,000여 명의 회원을 갖추고 있다. 또한 안전관련분야 박사, 기술사, 실무경력 30년 이상의 안전전문가 40여 명이 활동 중이며 100여 명의 안전지킴이 회원들은 안전강사, 응급처치, 재난심리, 생활안전지도사 자격증을 보유하여 안전전문 시민단체로 손색이 없도록 전문 자격을 갖추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시민 이용시설에 대한 특별 기획점검과 교통안전, 산업안전, 생활안전, 재난안전, 어린이와 노약자 등 취약계층 안전문제에 대해 다양한 교육과 홍보, 국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계기로 시민의 힘으로 안전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느껴 1996년 5월 국민 안전의식 제고와 선진 안전문화 확산을 목적으로 안전 시민단체로 출범하여 현재에는 전국 16개 지역에서 활동 중이다.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은 1998년 12월 대구경북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으로 첫 출발하여 2003년 4월에 경북안실련이 대구에서 분리되였고 2016년 1월부터는 사단법인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으로 독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시민 스스로 참여하는 안전문화의식 필요 ‘안전문화’란 일반적으로 국민생활 전반에 걸쳐 안전에 관한 태도와 관행·의식이 체질화되어 가치관으로 정착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95년도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일련의 대형사고를 겪으면서 안전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과 함께 안전문화운동은 시작됐다.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사고 계기로 ‘안전’이 전 국민적 관심으로 부각되면서 시민중심의 안전문화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시민단체의 운영은 그야말로 시민 안전을 위해 댓가없이 운영회비를 내면서 순수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대구안실련 역시 공동대표를 비롯하여 부대표, 운영이사, 안전지킴이본부 회원 등 활동가 회원은 매년 정해진 분담금과 별도 후원비를 받고 있고 그 외 일반회원은 년 1만 원 이상의 회비를 받은 비용과 지역 기업 및 독지가분의 후원으로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전 회원 모두가 단체 운영을 위해 회비를 내면서 시민안전 활동에 참여를 하고 있기에 더욱 의미가 있고 보람된 일을 하는 단체라고 자부하며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 있기에 안전한 세상을 반드시 만들어진다고 본다. 또한 투명한 회계 운영을 위해 매월1회 운영비 사용 내역 보고와 공개를 하고 있다. “시민여러분께서도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희 대구안실련에 회원 가입 또는 후원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동안 시민들이 이용하는 시설 전반에 대한 안전문제를 발굴, 개선을 유도해온 대구안실련은 우방랜드 번지점프시설, 어린이 놀이터 시설, 도시철도 1,2,3호선, 그리고 1호선 연장구간 점검과 스크린도어 부실시공을 밝혀내어 재시공토록 하였고 물놀이 시설과 학교 수영장시설, 동대구복합환승센터 특별점검, 그리고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 및 자동심장충격기 관리 실태조사와 일반시민 대상 사용방법 설문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발굴 개선 조치하기도했다. 또한 안경원 렌즈 연마 폐수 오염 실태 전국 최초 조사를 통해 법 제정 마련, 수돗물 과불화화합물 사태 대응과 맑고 깨끗하고 안전한 물 마실 권리를 달라 200만 명 서명운동 전개하였다. 그리고 환경부 국정감사 출석, 그리고 풍등축제 안전대책 마련 촉구, 수영장 사다리 실태조사 및 안전기준 마련 법규 제정 요구, 할로겐화합물 가스소화설비의 국내・외 기준조사를 통한 안전성 및 신뢰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한 관련법규 개정 요구, 도시철도 3호선 핑거플레이트 부실시공 관련 안전대책 마련, 팔공산 구름다리 설치관련 안전문제로 설치 철회 관철, 캠프워커 반환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와 완벽한 정화작업 후 반환 요구 등을 진행해왔다. 산림청 소나무 재선충병 및 농진청 등 고독성 농약을 저독성으로 둔갑한 채 유통된 일 역시 알아내 국민건강권 확보 차원에서 방안을 강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코로나19 예방 활동 등 시민안전과 건강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개선, 권고 조치하였다. 현재 전국 최초로 아빠, 엄마와 함께하는 안전체험캠프를 21회째 운영 중에 있고, 어린이, 어르신, 청소년, 근로자를 대상으로 매년 10만 명 넘게 교통안전, 생활안전, 화재안전, 승강기 안전, 산업안전 등에 대한 찾아가는 체험 안전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어린이 안전체험캠프, 물놀이장 안전체험캠프, 시민대상 안전한마당 체험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시민 안전의식을 높이는 활동과 지역언론 및 대학교와 MOU를 체결하여 안전공감 프로젝트 등 시민 안전문화 및 교육 협력사업을 확대 강화해 나가고 있다. 또한 지역 안전분야 유관기관 단체와 다양한 파트너십을 맺고 실질적인 시민 참여형 안전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매년 교통사고 및 산재사고 유자녀를 선정하여 장학금과 매월 생활비 등 지원하는 한가족 사랑나눔 활동을 23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2017년 선진교통안전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한바 있고 향후에도 휴먼에러 및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 자살사고 예방을 위한 시민의식 교육강화와 안전행동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 시민 스스로 안전을 지키고 책임있게 행동하도록 안전실천 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시민 안전을 위해서라면 새벽 일찍 나와서 안전캠페인에 동참하고, 특히 도시철도 시설 점검 시에는 밤샘을 하면서까지 점검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정말 뭉클합니다.”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설마에 타협하는 ‘안전불감증’과 매사에 대충 대충하는 ‘적당주의’를 없애고 완벽한 제도 개선과 국민 모두가 안전이 귀찮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선진국 행태의 안전문화 수준을 높일 때라고 봅니다.” 안전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일상생활 속에서 습관이 되었을 때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개개인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면 안전은 늘 우리 곁에서 안전한 생활을 영위 할 수 있게 보호막이 되어 줄 것이라고 전했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시민의 안전을 위해 안전을 생활화하도록 선도적인 역할과 봉사를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며 시민분께서도 저희 단체가 올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언제나 지켜봐주시고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시면 보다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하겠습니다.” 【학력】 •대구한의대학교 보건학 박사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주요경력】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환경안전그룹장 역임(1986.10〜2014.3) •전국 기업체산업보건협의회 회장(2002.6〜2010.5) •한국산업위생학회 부회장(2005.8〜2010.3) •한국위생협회 이사 및 감사(2009.4〜2014.2) •(사)경북환경포럼 이사(2009.6〜2016.12) •구미지역 환경안전책임자협의회 회장(2010.12 〜2014.3) •낙동강수계관리위원회 자문위원 (2009.12〜2015.12, 2020.10〜현재) •한국 현대인물사 등재(2011.12) •TBC방송 시청자 위원(2015.1 〜 2017.12) •TBN대구교통방송 시청자 위원(2017.1~ 현재) •대구시 민간안전 자문위원(2015.7~2020.6) •(사)한국안전교육강사협회 자문위원(2015.7~ 현재) •(사)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2014.2.13~2018.12) •(사)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2019.1~현재) 【상벌사항】 •철탑산업훈장 수상(2011년) •노동부장관상 표창(1999년) •환경부장관상 표창(2004년) 【기타】 •저서 - 생활과 안전(2007) 근골격계 질환예방관리 실무가이드(2007년) •연구보고서 <전경련 > 산업보건의 정책변화에 대한 기업체 대응전략(2006년) [1119]
    • 라이프
    2021-07-09
  •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난청, 귀 건강의 중요성을 알리다
    난청과 이명은 나이가 들면 당연히 생기는 병, 어르신들에게만 생기는 병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요즘은 젊은 세대들도 잦은 이어폰 사용으로 난청에 걸리는 경우가 적지않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이 병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닌 우울증을 유발하며 사회와 단절되고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청기 사용은 난청 환자에게 단순히 청력 회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로의 복귀를 위해 필수적이게 되는데, 여기 취약계층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타의 모범이 되며 10년째 대구 시민들의 귀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두드림 보청기 김두진 원장이 있다. _박경훈 기자 “두드림 보청기는 일반적으로 판매 목적보다는 사후관리에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소리를 듣는 것이 일상생활 전반에 있어서,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운영 중입니다”라며 말문을 연 김 원장은 난청과 이명 등에 관한 귀 질환을 접하고 공부하며, 듣는 것의 중요성을 깨우쳤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파생되는 현상들은 시력저하로 안경을 착용하는 것과는 다르게 난청과 이명의 경우는 사회와의 단절을 유발한다. 김 원장은 자신의 전공과 이 사실을 관련지어 난청 환자들을 위해 보청기 사업을 운영하길 결정했다. 보청기라는 제품의 특성상, 굉장히 고가의 가격으로 판매가 되고 있다. 거액을 주고 구입을 했지만 구매 후 지속적으로 착용을 하지 않게 된다면, 환자의 귀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럴 경우 환자는 보청기 자체에 회의적이게 될 것이고 보청기 업체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또 높은 가격 때문에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병을 방치해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환자들에게 구매 전 충분한 상담을 거친 후 착용을 해보고 결정하게끔 하며 환자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한다. 취약계층을 위해 무료 청력검사, 보청기 무료체험 행사, 전 제품 50%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등 지속적으로 선행도 하고 있다. “보청기를 필요로 하시는 고객층의 80%가 어르신입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저희 매장을 방문하시기 힘들기 때문에 저희가 직접 방문해서 청력검사를 진행하고 사후관리까지 확실하게 해드립니다.” 김 원장의 고객들을 향한 선행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국민이 힘든 이 시국에 맞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를 고민한 그는 전문 방역업체와 협약을 맺어 사회취약계층 이용시설에 대한 방역봉사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도움을 드리지는 못하더라도, 전문적인 업체에서 어르신분들을 돕도록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더 많은 봉사를 통해 사회적으로 환원을 하며 성장하는 두드림 보청기가 되겠습니다.” 보청기 역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사람의 체격이 제각기 다 다르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잘 맞는 기기를 착용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옷에 비유하자면 딱 맞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 오버핏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보청기 역시 사용자에 따라 조절이 가능합니다. 안경의 경우는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에게 딱 필요한 도수라는 게 있지만 소리는 절대적인 값보다는 정확한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청기는 단순히 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 들리지 않는 음역의 소리를 정상적으로 키워서 잘 들리게끔 하는 역할도 합니다.” 두드림 보청기에서는 고객의 제품을 선택하는 폭이 넓어진다. 한 가지의 보청기 브랜드만을 취급하는 타 업체들과는 달리 다양한 종류의 글로벌 브랜드 제품들을 접해볼 수 있다. 더불어 김 원장이 가장 중요시하는 사후관리를 여러 제품에 맞춰 받을 수 있기도 하다. 어떤 종류의 제품을 쓰는지, 그 제품이 어떤 사양을 지니는지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품은 노후되기 때문에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고객 만족도가 달라진다. “제품을 구매하고 나면 적응하시는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 사용을 껄끄러워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보청기가 방치되어 있게끔은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꾸준히 관리를 해드립니다.” 전문적인 사후 관리팀을 운영 중이기도 한 만큼 타 업체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서비스를 두드림 보청기에서는 만나볼 수 있다. 두드림 보청기를 운영하면서 뿌듯했거나 뜻깊었던 순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김 원장의 표정에서 여러 감정이 오간다. “할아버지, 아들, 손녀가 같이 사는 집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손녀와의 의사소통이 힘들었고 손녀는 할아버지가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이 정말 아파 할아버지께 보청기를 끼워드리니 손녀가 할아버지가 자신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행복해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굉장히 뿌듯하고 따뜻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거동이 힘든 분들을 위해 전국을 다니며 방문 사후관리를 하다 보면 그 지역의 특산물을 선물로 받기도 하는데 그분들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 찡하곤 합니다.” 세월이 지나면 피부에 주름이 생기듯 청력이 감소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언급한 그는 마지막으로 “방치하면 안 된다”라고 주의했다. 또 연령제한도 없고 장애 진단만 받으면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는데 몰라서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 역시 표했다.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김 원장의 고객과 취약계층을 향한 마음은 따뜻했고 진정으로 그들을 위함을 알 수 있었다. 고객을 향한 따뜻한 마음씨에 짧은 인터뷰였지만 김 원장에게 신뢰가 갔다. 벌써 열번째 생일을 맞는다는 두드림 보청기.김두진 원장이 이끌어갈 이곳의 앞으로의 10년 뒤가 더욱더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1119]
    • 라이프
    2021-07-09
  • 이혼, 새로운 삶을 응원하는 ‘인생언니’ 창원 이혼소송 전문 변호사
    날로 치열해지는 법률시장에 특화된 법률서비스로 주목 받는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 창원 이혼소송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강은실 변호사는 열린 태도와 특유의 진솔함으로 의뢰인들의 새로운 인생을 함께하는 변호사다. 새로운 삶을 응원하는 ‘인생언니’, 따뜻한 법률 조력으로 의뢰인들과 함께 울고 웃는 강은실 변호사를 만났다. _박미희 기자 ] 강은실 변호사는 소탈한 사람이었다. 내 고민에 거침없는 조언을 해주는 ‘인생언니’처럼 속 시원하게 의뢰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강은실 변호사는 이혼소송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실력파다. 법리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치밀한 소송 전략으로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강 변호사는 부산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49회 사법시험에 합격, 39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변호사다. 가정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그녀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창원·마산지부 고문변호사, 마산동부경찰서 경찰공무원 징계위원, 경상남도 지방소청심사위원회 위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자문변호사, 경남 지방하천관리위원회 위원, 우리학교 자율감사외부 감사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유의 소탈함과 진솔한 태도로 의뢰인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강은실 변호사. 창원 이혼전문 변호사로 이름이 난 강 변호사는 단란한 가정을 이룬 여성이다. 연수원 동기인 남편, 박규도 판사와 결혼해 화목한 가정을 이뤘다. 슬하에 딸을 둔 그녀는 워킹맘으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성장통을 겪었고, 이로 인해 의뢰인들의 마음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됐단다. “원래는 민사소송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 결혼을 하면서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구조적인 모순과 육아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됐죠. 워킹맘으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성장통을 겪었고, 인간으로서 더 성숙해지는 결과를 얻었죠.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저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의뢰인들의 입장이 너무 잘 이해가 됐어요. 그때부터 이혼소송에 관심을 갖고 더 전문적인 역량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창원 이혼소송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알린 강은실 변호사는 다년간 쌓은 많은 소송 케이스로 의뢰인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의뢰인들에게 강 변호사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혼소송은 이기고 지는 승패가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이혼소송은 비유하자면 동업자들이 사업체를 정리하면서 정산을 하는 것과 유사한 성격을 띠어요. 이혼소송을 하면서 소송 당사자들끼리 서로를 미워해도 됩니다. 하지만 배우자를 미워하기보다 자녀가 있다면 내 아이를 사랑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집중하라는 조언을 드립니다.” 수년간, 첨예한 이해관계와 복잡한 감정이 얽혀있는 이혼소송을 맡으면서 개인적으로 얻은 깨달음도 컸단다. 그 결과, 강 변호사는 이혼소송에서 상처를 덜 남기는 ‘갈등저감 소송’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번은 7년 전 형사, 민사 소송에서도 완전히 승소한 의뢰인이 다시 저를 찾아왔어요. 이유를 알고 보니 이혼소송을 할 때 어린 자녀가 커서 7년이 지난 뒤 비행 청소년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이 사건을 통해 깨달은 바가 컸어요.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 위자료 등 의뢰인 편에서 현실적인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가 상처가 덜 남을 수 있는 ‘갈등저감 소송’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자녀가 있다면 웬만한 이혼사건은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합의안을 찾아내서 조정으로 끝낼 수 있도록 머리를 짜내고 있습니다.” 이혼사건에서 조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은실 변호사. 그녀는 사회적 약자인 의뢰인들을 대변하기 위해서도 많은 일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에 대해 묻자, 그녀는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제 의뢰인은 다년간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받아온 상태였어요. 가정주부다보니 경제적으로도 남편에게 종속되어 있었죠. 남편의 강권으로 제대로 된 재산분할도 하지 않고 협의이혼을 했습니다. 그러다 억울한 마음에 저를 찾아왔어요. 현행법상, 재산분할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2년 안에 다시 재산분할권을 청구하면 다시 재산분할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소송을 통해 남편이 은닉한 재산, 15억 원을 찾아내 제대로 된 재산분할로 7억 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아이들을 키우며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의뢰인을 도울 수 있어 보람된 사건이었습니다.” 한국의 이혼율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혼이 늘고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만큼 가사소송의 수요도 늘고 있다. 변화하는 세태에 따른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에 대해 묻자, 강은실 변호사는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일례로 상간자가 혼인 파탄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해도 현행법상 최대 3천만 원 이내의 위자료를 청구할 수 밖에 없어요. 혼인 파탄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기에는 너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죠.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위자료 금액은 너무 낮은 편입니다. 이혼소송에서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위자료의 상한액을 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은실 변호사는 가정생활로 상처받은 의뢰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따뜻한 사람이다. 사회적 약자로 어려움에 처한 의뢰인들을 돕는 것이 꿈이라는 그녀의 말은 따뜻한 울림이 있었다. “이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머물 곳이 없는 여성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 여성들이 머물 수 있는 쉼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혼소송 과정에서 정신상담이 필요한 분들을 위한 상담소와 정신건강의학과, 법률 조력을 할 수 있는 변호사 사무실을 둔 종합 센터를 만드는 것이 꿈이에요. 이를 통해 가정생활로 상처받은 분들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법률 조력자가 되고 싶습니다.” [1119] •부산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사법시험 합격 (49회) •사법연수원 수료 (2010년 2월, 39기) •가정법률상담소 운영 •도시정비사 자격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창원, 마산지부 고문변호사 •마산동부경찰서 경찰공무원 징계위원 •경상남도 지방소청심사위원회 위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자문변호사 •경남 지방하천관리위원회 위원 •우리학교 자율감사외부 감사관
    • 라이프
    2021-07-09
  • ‘끼니 거르지 마라’ 걱정하시던 엄마의 마음을 담은 캐주얼 한식과 밀키트의 만남
    팔을 걷고 바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늘 무언가가 따라온다.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요식업계이지만 음식을 향한 식지 않는 열정과 싱싱함을 밀키트에 담아 돌파구를 찾아낸 ‘싱싱밀킷X한끼프로젝트’의 구희본 · 육영란 대표가 있는 구미 왜관으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_김나리 기자 Q. 대표님과 싱싱밀킷X한끼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1994년 9월 26일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음식에 대한 연구와 열정으로 가게를 운영 중인 구희본, 육영란입니다. 한끼프로젝트는 ‘캐주얼 한식’ 콘셉트의 식당으로 신선한 야채와 특제 양념장으로 맛을 낸 ‘한끼 비빔밥’, 게딱지에 비벼 먹는 그 맛 그대로를 담은 ‘대게장 비빔밥’, 꼬막, 채소, 특제 양념장이 환상궁합을 이룬 ‘꼬막 비빔밥’과 오랜 시간 직접 우린 해물 육수와 쫄깃한 생면에 채소와 달걀지단을 올린 ‘프리미엄 잔치국수’, 얼큰한 닭개장과 칼국수의 컬래버 ‘파닭칼국수’ 등 다양한 메뉴로 실패하지 않는 한끼를 제공하고 있어요. 착한 가격에 정직한 재료로 정성을 담아 소박하지만 넉넉한 한끼를 제공하고 있어요. 싱싱밀킷은 ‘라면보다 조리하기 쉬워, 여유로운 저녁을 만들어드립니다’라는 목표로 만들었어요. 싱싱밀킷은 모든 육수와 소스를 직접 만들어낸 뛰어난 가성비의 밀키트로 주문과 동시에 패키징이 이뤄집니다. 황금비율로 블렌딩한 육수로 깊은 맛을 낸 ‘국물갑 부대찌개’, ‘매쫄순대볶음’, 맛있게 매운 ‘맵탱쭈꾸미볶음’, ‘찐동태매운탕’과 ‘파닭 칼국수’ 등의 메뉴가 있습니다. Q. 지금의 싱싱밀킷X한끼프로젝트가 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나요? A. 음식 장사를 하기 이전에는 채소 장사를 오랫동안 했어요. 그 이후 우연히 밥집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요리에 관심도 많고 애정도 있어 메뉴 개발을 위해 꾸준히 노력을 하다가 ‘갈비 볶음탕’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손님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음식장사가 처음이라 창업 초기엔 마진율을 생각하지 못했죠. 아무래도 갈비 볶음탕이 점심으로 먹기엔 무거운 메뉴이다 보니 점심 메뉴로 또 다른 메뉴를 개발해야했어요. 그러다 김치찌개와 초계국수를 같이 판매하게 되면서 다양한 메뉴를 시도하게 되었고 여러 형태로 변화하면서 지금의 ‘한끼프로젝트’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영업시간에 제약이 생겨 저녁 매출이 떨어지면서 매출을 안정화하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밀키트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밀키트 시장은 이미 너무나 많은 대기업이 선점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도 많았습니다. 기존 온라인 밀키트는 메뉴 본연의 맛 80% 정도를 구현해낸다면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한 싱싱밀킷은 ‘밀키트도 싱싱하게’라는 모토로 주문과 동시에 패키징을 해서 메뉴 본연의 맛을 95% 정도로 담아내고 있어요. 편하지만 깨끗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오픈 키친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캠핑 동호회에서 꾸준히 대량 주문도 들어오고 있고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더라고요(웃음). Q. 가게를 운영하시면서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어떤 순간들이 있었나요? A. 가게를 새로 오픈하고 5개월 만에 왜관이 코로나19 직격타를 맞았고, 일주일간은 영업을 할 수 없었어요. 처음엔 마음이 어려웠지만 육체적으로 쉬는 시간이 생기고 그 기간 동안 신메뉴를 개발할 수 있게 됐죠. 결과적으로 봤을 땐 필요한 휴식이었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음식점이 노동집약적인 일이다 보니, 인원을 충분히 쓸 수 없어 홍보, 세무, 음식, 노무관계 그리고 포스터 제작까지 스스로 하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완벽주의자인 아내와 많은 논의 과정을 거쳐 문제를 해결해왔습니다. 아내와 의논하면 훨씬 빨리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있어요. 아내는 정말 잘 통하는 파트너예요.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주고 이 시간을 함께해줘서 고마워요(웃음). Q. 싱싱밀킷X한끼프로젝트라는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A. 맛은 주관적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진한 김치찌개를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가벼운 김칫국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정성과 정직에는 호불호가 없어요. 그리고 그 정성은 음식에 내 손이 한 번 더 가는 것이고, 정직은 좋은 재료를 쓰는 것부터 청결한 과정을 거쳐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정성으로 우리만의 맛을 잡고, 정직으로 내 가족에게도 먹일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정직한 브랜드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요식업에 뛰어들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지름길을 제시하며, 상생하고 싶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통해 조금 더 나은 삶,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이니 다들 힘내시라는 말씀도 전하고 싶어요. ‘코로나 때문에’라는 핑계가 사라지게 될, 코로나가 끝난 이후의 시간을 미리 준비합시다! [1120]
    • 라이프
    2021-06-30
  • 건축의 새로운 접근, 끝없는 탐구로 새로운 심미안(審美眼)을 열어가는 젊은 건축가
    ‘건축은 동결된 음악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괴테는 음악과 건축을 하나로 보며 찬란한 정의를 내렸다. ‘건축’은 각 요소들 시간, 장소, 재료, 기술, 경제 그리고 개인의 천재성이 함께 작용하여 이루어진 ‘종합 예술’이다. ‘건축’은 인간의 창의성이 미치는 범주 내에서 높고, 낮은 음조를 넘나들며 울리는 문명의 가장 사랑받는 ‘선율’이다. 김태윤 건축가는 1mm의 간극으로 귀결되는 뛰어난 건축물을 위해, 치열하게 건축의 요소를 조율하는 젊은 건축가다. _박미희 기자 “특정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으려, 매번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비(非)건축의 건축화에 관심을 두고 탐구합니다. 대지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더 좋은 건축물을 짓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입니다.” 자신의 건축 철학에 대해 말하는 김태윤 건축가. 그는 지역 건축 문화를 이끄는 젊은 건축가다. 훌륭한 건축가였던 부친의 뒤를 이어 건축가가 된 김태윤 건축가는 뛰어난 건축 감각을 지닌 사람이다. 경상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립 파리-라빌레트 건축학교(ENSAPLV)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프랑스 건축사(HMONP)이자 프랑스 건축협회 정회원이다. Atelier Christian de Portzamparc, Massimiliano Fuksas Architecture, Loci-Anima Architecture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9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2018년, 경남 창원시에 엠플레이건축을 설립했다. 엠플레이건축은 창의적 사고로 참신한 도전을 계속하는 젊은 전문가 집단으로 지역 건축계의 활력이 되고 있다. “건축은 1cm, 1mm의 작은 간극으로도 결과물에 큰 차이가 날 수 있어요. 그래서 작은 차이일 수 있는 미터(m)도 중요하게 생각하겠다는 뜻에서 ‘M’ play architecture라 이름 지었습니다.” 최근 마산보건소 증축을 위한 설계 공모에 당선되어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당선작은 집합과 다양성으로 도시를 해석하고 이를 건축물에 창의적으로 잘 적용해 증축하는 평면 구성이 명쾌하고 기능적인 분화가 우수한 계획이라는 점에서 심사위원의 호평을 얻었다. “대지가 갖고 있는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애썼어요. 보기 드문 수직 증축이라 공간이 갖고 있는 한계가 컸습니다. 좁은 공간에 최대한 창을 내어 환기와 채광이 좋도록 공간 구성을 했고 지역의 높아지는 복지 수요에 부응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기획을 했습니다.” 그는 대지의 한계를 받아드리고 공간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건축을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인천 강화도, 디저트 카페 아뚜드스윗(A TOUT DE SWEET)이다. 이곳은 인근 지역에서 찾아보기 드문 아름다운 건축물로 화제가 됐다. “이 대지는 강화도 중심가라 오션뷰가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넓은 주차장의 모서리에 자리했었죠. 지역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생활도로가 주차장 뒤로 연결되어 있고 주변은 온통 크고 작은 주택과 상업 시설로 둘러싸여 있어 지리적 환경적 장단점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외부보다는 안으로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1층 카페는 거친 벽에 의해 숨겨져 있고, 주차장과 5층 높이의 상업시설을 마주 보게 해 외부를 향해 오픈된 공간보다 내부로 시야가 집중되는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발코니와 만나는 곡선 입면을 구성해 외부로부터 주거공간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동시에 내부로 자연채광이 들어올 수 있도록 했어요. 전체적으로 노출 콘크리트를 쓰고 밝은 내부 조명을 써서 뮤지엄의 작품처럼 카페의 디저트가 가장 돋보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김태윤 건축사는 현재 경남대학교와 인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획일화된 틀에 갇히지 않는 열린 사고를 하는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고 있는 것. “예를 들어 창원의 대표적인 화가, 문신을 생각하며 건축물을 지어보라는 과제를 내줘요. 인물이 갖고 있는 고유한 스토리를 담아내는 과정을 통해 어떤 스타일에도 얽매이지 말고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낼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기 복제를 하는데 그치는 건축가가 아니라 열이면 열, 다른 색깔을 지닌 건축물을 건축할 수 있는 건축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아름다운 공간과 머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뛰어난 건축물을 위해서, 김태윤 건축가는 오늘도 치열하게 고민한다. 하나의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매번 새로운 접근으로 뛰어난 건축물을 탐구하는 그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1120]
    • 라이프
    2021-06-30
  • ‘봉사’는 ‘나 자신이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끼는 것’ “새벽을 밝히는 ‘여명’이 제 삶 또한 밝혀주고 있습니다”
    최근 부산여명라이온스클럽은 창립 제19주년 기념식 및 회장 이·취임식에서 백미 10kg 69포, KF94 마스크 6000매, 수건을 비롯한 생활용품 6종 100여 개 등 6백만 원 상당의 후원품을 괘법동행정복지센터에 기탁했다. 1년 간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황정식 회장은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 하겠다”라고 피력하며 임기를 마무리하고도 한 명의 라이온으로서 그의 봉사정신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주간인물은 라이온스 초대석에 유종의 미를 거둔 황정식 회장의 이야기를 일문일답식으로 담아보았다. _박정호 기자 Q. 라이온스클럽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2002년 창사하여 20년째 산업체 전용 전열기를 생산, 납품하는 ‘전열사’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봉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소소한 봉사활동을 해오던 중 친구의 추천으로 라이온스에 입회하게 되었죠. 8년 전, 입회 당시엔 ‘개인적으로 하는 봉사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하는 의문점이 있었어요. 항상 스스로가 부족하다 느끼고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라이온으로서 활동한 지난 시간, 그리고 회장직을 맡아 임무를 수행하며 복지 사각지대에 라이온스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고, 공감하며 도움을 드리다 보니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1년 동안 한 클럽의 회장으로서 봉사하며 지역에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제가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죠(웃음). Q. 부산여명라이온스클럽의 활동들이 눈에 띕니다. 클럽 자랑을 해주신다면. A. 여명의 자랑이라고 한다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1년 남짓 임원진들이 저랑 함께하며 불협화음 없이 힘을 보태주었고 모든 국면에서 의기투합하여 여러 수상의 영예를 안곤 했죠(웃음). 1년 임기를 마감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집행부 회원들에게 특히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지구의 147개 클럽 중 임원진들이 사비로 봉사하는 것은 우리가 처음일 것입니다. 또 봉사활동 현장에 역대 회장님들이 동행해 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젊은 신입회원들이 항상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고 있어 앞으로 부산여명라이온스클럽의 미래가 더욱 기대됩니다. Q.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A. 어려운 분들에게 단발적인 도움을 드리게 되면 단순한 행사 차원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최근 방문했던 괘법동행정복지센터 대한 봉사활동이 5년 정도는 유지할 수 있도록 이사회를 통해서 만장일치로 규칙을 만들게 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 회장직을 마무리하며...... A. 지면을 빌어 모든 회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회의 석상이나 공식 석상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구구절절할 수가 없어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웃음). 역대 회장님들도 일반회원분들도 “회장님 고생하십니다”라는 따뜻한 멘트를 자주 보내주셨습니다. 그 덕에 힘들 때마다 참 고마움을 많이 느꼈어요. 총무님, 재무님, 사무장님, 집행부 임원분들 모두 전 클럽 통틀어서 가장 고생 많으셨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었습니다. 라이온스 모토가 ‘we serve’, ‘우리는 봉사한다’잖아요. 앞으로도 함께 나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Q.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라이온으로서 회원 확보를 위하여 많이 움직여봤을 때 라이온스클럽을 굉장히 어렵게 생각합니다. 차기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어요. 봉사는 절대로 어려운 게 아닙니다. 봉사는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 바로 도전해보길 바랍니다. [1120]
    • 라이프
    2021-06-30
  • 사랑의 실천, 분당전하리교회 임흥옥 담임목사,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누가복음 10장 37절)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사랑 이상의 의미를 담는다. 그래서 사랑에는 내 사랑을 받아 달라, 나에게 사랑을 달라는 화자의 염원이 담기곤 한다. 그러나 임흥옥 목사가 전하는 하나님의 사랑에는 대가성이 없다. 그가 전하는 사랑은 지극히 헌신적이고 고요하지만, 큰 울림을 가지고 있다. 그를 만나 느낀 사랑의 충만함을 지면에 담아보고자 한다. _송인주 기자 성남시 분당에 있는 분당전하리교회(이하 전하리교회)에서 따듯한 소식이 들려왔다. 경제적으로 힘든 저소득층 가정들에 1700만원 상당의 서큘레이터와 마스크를 기탁한 것. 전하리교회의 이 같은 나눔의 실천은 이번 한 번이 아니다. 전하리교회와 임흥옥 담임목사가 후원하는 선교지만 27군데다. 16년도에는 그간 실로암안과병원에 후원한 수술비가 총 1억 원이 넘어 화제가 되었다. 올해로 28년째 매월 후원하고 있으니, 전하리교회는 그야말로 ‘작지만 큰 교회’다. 임흥옥 목사는 끊임없이 나눔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선교하는 ‘실천하는 사람’이다. “제가 8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5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5남매를 전부 고등학교 이상 교육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여전도사로 활동하셨고, 가족이 교회 안에서 생활도 몇 년 했었어요. 사춘기 때엔 그게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서 방황도 했지만, 어머니의 깊은 뜻을 알고 은혜를 깨달아 신학을 하게 됐습니다. 어떤 목회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대한민국이 분단되어 고통 받는 사실이 제게 크게 다가왔어요. 언젠가 38선이라는 장벽은 무너질 거라 생각하고 북한 땅에도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임 목사는 우연히 미국 유학의 기회를 얻어 공부의 뜻을 품었다. 그리고 유학 이후, 한국에서 11년간 섬겼던 교회로 돌아가 후임을 맡기로 했다. 그러나 유학의 길이 좌절되며 돌아갈 자리를 잃은 두려움을 느꼈다고. "유학길이 막히자 마음이 참 서글펐어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신학을 처음 배우며 가졌던 꿈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미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유학도 못 한다면 지금부터 한국에서 북한 땅에 복음을 전하는 꿈을 이루겠다고요." 그는 목표를 이루고자 노력하며 나눔을 실천했다. 그리고 더욱 선하고 훌륭하게 살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다섯 군데의 교회를 개척했다. 각각 임하리, 전하리, 구하리, 이루리, 나누리라는 이름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사랑을 전하고 기도 제목을 구하고 거룩함을 이루고 가진 것을 나눔을 뜻한다. “올해로 전하리교회가 28년째입니다. 임하리교회에서 시작해 전하리교회를 개척했고, 20년 전에 구하리교회를 개척했어요. 구하리교회를 개척할 당시 주변의 반대가 심했어요. 저를 보고 찾아온 성도들을 뒤로하고 구하리교회로 향할 수 없었죠. 주저하던 찰나에 결국 기도를 굉장히 많이 하시는 여전도사님께서 구하리교회를 맡게 되셨습니다. 10년 전에는 이루리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때가 전하리교회를 비롯해 임하리교회를 섬겨왔던 원로장로님이 은퇴하셨을 때인데, 장로님의 아드님이 신학을 공부해서, 교회를 개척하고자 하셨어요. 연이 닿아 그분께서 이루리교회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나누리교회는 남아공 케이프타운, 짐스보스에 위치해있다. “몇 년 전에 케이프타운의 한인교회가 어려움에 부닥쳐 제가 건축헌금을 가지고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무사히 전달하고 지역의 선교지를 탐방하다가 짐스보스라는 빈민촌까지 발걸음이 이어졌어요.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변변찮은 놀이터 하나 없이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마음 깊숙이 와 닿아 곧바로 놀이터를 만들어 기증했어요. 그런데, 2년 전인 2019년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어요.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고요. 복구에 필요한 비용을 제가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놀이터 자리에 성전을 세우자 의견을 냈고 이름을 나누리교회라고 짓게 되었습니다.” 임흥옥 목사는 선교와 나눔, 드림과 섬김을 목회 이념으로 삼고 있다. 항상 베풀고 나누고 섬길 것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고. 그는 선교지에 후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총회군선교회에 속해 군부대에도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이 행한 것을 본받아 건축하지 않고 오직 이름 그대로 전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기에 선교에 힘을 쏟고 주력하고 있습니다. 군부대도 방문하며 성전이 필요한 곳은 건축도 해주고 하나님 말씀도 전했어요. 전하리교회 주관으로 논산훈련소에서 더웨이 문화군선교단을 조직해 우정의 무대 뮤지컬 공연을 했습니다.” 분당구청과의 연으로 성남 에덴의 집을 후원한 지도 28년째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산타 옷을 입고 산타할아버지가 되기도 한다고. 그는 지난 창립 20주년에 삼천만 원을 책정해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 25주년에는 삼백 가정에 따듯한 겨울을 위한 이불을 전달했고 이번 달의 서큘레이터와 마스크 기탁은 28주년을 기념한 선물이라고. 뿐만 아니라, 배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해 지난 10년간 각 학교에서 장학생을 추천받아 장학기금을 전달했다. “다음 세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이유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많아 10년 전에 구청장학회를 구성했죠. 지금은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되어, 장학기금은 다양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후원하고자 준비 중입니다.” 28년간 이매동 한신상가 2층을 지켜온 전하리교회는 임 목사의 목회 방향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공간이다. 그는 교회 건물을 세우는 일은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기도할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그곳이 교회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교회 건축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축은 성도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교가 우선이라 판단해 건물을 내려놓고 대외적으로 선교하는 방향으로 헌금을 썼습니다.” 임흥옥 목사는 오는 6월 29일, 전국에서 발행되는 340여 지역신문사가 회원사로 가입되어있는 제 18회 지역신문의 날 기념식에서 사회봉사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는 끝으로 성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앞으로의 포부를 말했다. “재정적인 부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해준 성도들에게 참 감사해요. 앞으로 제가 사역하면서 교회 내적인 성장도 중요하지만, 바깥으로도 눈을 둘 것입니다. 세상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사람들의 마음이 끌림을 받아 교회로 찾아오게끔 전도할 겁니다.” [1120]
    • 라이프
    2021-06-30
  • 사람과 사람 사이, 단 하나의 소리도 모아 기록합니다
    속기사란 무형의 영상, 음성 등을 빠르고 신속하게 문자화하는 직종이다. 특히 기록물 제작 및 보관 중요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속기사 역할의 가치가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속에서 온라인 화상 회의, 인터넷 강의 등이 대중화됨에 따라 속기사 역할의 중요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오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기록해 사건 해결에 실마리를 찾아주는, 소리를 잡는 사람 임은정 속기사를 만나러 단아속기사무소가 있는 경북 구미로 찾아가 보았다. _김나리 기자 Q. ‘단아속기사무소’와 속기사님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부산대학교를 졸업한 국가공인 1급 속기사 임은정입니다. ‘첫째, 들은 대로 기록하고 보태거나 빼지 아니한다. 둘째,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은 일체 누설하지 아니한다. 셋째, 번문한 원고에 대해 책임을 진다.’라는 세 가지 신념으로 전문 속기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21대 국선 예비후보자 녹취록 작성, 경상북도 선거관리위원회 녹취록 작성, 법원, 경찰서 등 증거용 녹취록 작성, 경상도 사투리 전사 작업, 청각장애인 토론회 실시간 속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강의록 제작과 서울사이버대학교 VOD 자막 제작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속기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경상도 출신이다 보니 사투리에 능숙한 편이어서 사투리 관련 다양한 작업을 하게 되고 이런 활동들이 밑바탕이 되어 특히 경상도 사투리를 필요로 하는 고객들의 피드백이 좋았습니다. 또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일하며 녹취록을 효율적으로 작성하고 정리하는 법을 체득해 단아속기사무소 특유의 양식이 되었어요. 고객들이 공무원 스타일 녹취록 양식이라 보기가 깔끔하여 가독성이 좋다고 이야기해 주시더라고요. Q. 속기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A. 대학 후배가 속기사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속기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워낙 전공과 다른 분야여서 속기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속기사에 대해 알아갈수록 기존 전공 지식과 속기사라는 직업의 연결고리를 발견했어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이 녹취록이나 강의록 작성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고, 진출 분야 또한 다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도 다양한 녹취록과 사건을 접할 때마다 항상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속기사라는 직업을 통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더라고요. 그때 바로 망설이지 않고 속기사 준비를 시작했어요. Q. 속기사무소를 운영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A. 사무실 특성상 가장 많은 업무가 법원이나 검찰 증거 제출용 녹취록을 작성하는 일이에요. 고객 비밀 보호를 위해 공개할 수 없는 에피소드가 굉장히 많지만 기억에 남았던 일은 저희 어머니 나이쯤 되시는 분의 사건을 맡았을 때의 일이에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던 의뢰인을 보며 우리 어머니께서 이런 일을 겪었다면 과연 나는 어땠을까 하는 공감이 들어 의뢰인분을 많이 위로해드렸던 적이 있어요. 그 녹취록을 치면서 제 삼자의 귀로 감정을 가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작성하기 위해 울컥울컥 올라오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속기를 멈추었다가 다시 작성하기를 반복했던 기억이 나요.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 의뢰인의 승소를 도와드리고 그렇게 승소하신 의뢰인들의 연락을 받을 때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방송인들의 의뢰가 들어올 때 ‘내가 속기사가 되어서 이렇게 유명한 분들을 만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속기사로서 책임감을 더 무겁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Q. 속기사무소를 운영하시면서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어떤 순간들이 있었나요? A. 녹취를 하다 보면 듣기 힘든 욕설이나 어린아이들이 우는소리를 듣기에 마음이 아플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녹취를 시작하곤 해요. 그리고 일이 매일 고르게 들어오는 게 아니라 몰리는 경우가 있는데, 혼자서 운영하는 개인 사무소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소화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요. 아무래도 의뢰인분들도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오기보다 급하게 오는 경우가 많은 편이거든요. 처음엔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프리랜서들과 함께 녹취록 작업을 진행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녹취록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속기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속기사 준비를 하고 있는 지인들 대부분이 하시는 말씀이 자격증과 취업이 직결되어 있어, 시험에 대한 압박감이 크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마다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요.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 손의 떨림이 줄고, 손의 떨림이 적기 때문에 들리는 말을 순간 외워서 한 번에 칠 수 있어요. 저는 공부할 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속기 연습을 했어요. 사람들이 제가 속기하는 것을 구경할 때도 신경 쓰지 않는 연습을 했었는데, 이 연습이 떨림을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또 속기 키보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인 약어를 중심으로 효율적인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아무래도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시대가 열린 만큼 시대에 빠르게 적응하고 싶어요. 비대면으로도 많은 분에게 도움을 드리기 위해 온라인 의뢰에 많은 관심 생겨, 최근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를 개설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분이 비대면으로 양질의 녹취록, 만족도 높은 녹취록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살면서 법원과 같은 사법기관에 갈 일이 없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녹취록이 처음인 경우에는 보통 녹취할 구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시는데 제가 경험했던 사건을 바탕으로 고객들이 궁금해하는 부분들을 알려드리고 있어요. 사법기관에 들어가는 중요한 증거자료인 만큼 속기사의 경험이 참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단아속기사무소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들의 승소를 뒷받침해드리고 있어요. 어쩔 수 없이 속기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 주요경력 ] - 부산대학교 졸업 - 제21대 국선 예비후보자 녹취록 작성 - 경상북도 교육청 회의록 작성 - 경상북도 선거관리위원회 녹취록 작성 - 법원, 경찰서 등 증거용 녹취록 작성 - 다수 방송인 녹취록 작성 - 20세기 소년 소녀 경상도사투리 전사작업 - 반지의 여왕 경상도사투리 전사작업 - 구미전자정보기술원 청년창업 전담 속기사 - 청각장애인 토론회 실시간 속기 - AI속기사협회 인공지능데이터 전사작업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강의록 제작 - 안동 경찰청 원스톱센터 수사속기사 - 경희사이버대학교 VOD 자막제작 - 서울사이버대학교 VOD 자막제작 - 청각장애인 시낭송 강좌 실시간 속기 [1120]
    • 라이프
    2021-06-30
  • 다대포 해변이 보이는 향수 공방, 향수병에 담기는 작은 추억들을 간직하다
    노즈노트 퍼퓸 하우스(이하 노즈노트)라는 상호는 김다혜 퍼퓸 디자이너가 코(nose)와 메모라는 명사이자 조향 용어인 향조를 뜻하는 노트(note)를 합쳐 만든 단어다. ‘코를 통해 메모하다’, ‘향을 기억하다’라는 의미로, 그가 자신의 향수 공방에 붙인 이름이다. 김다혜 퍼퓸 디자이너는 노즈노트에 담긴 의미처럼 향을 기억하며 방문하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그는 향으로 재방문하는 이들을 기억하며 방문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향에 담아 선물한다. _송인주 기자 노즈노트에서는 김다혜 퍼퓸 디자이너가 조향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한다. 조향 원데이클래스는 각각 향수와 디퓨저 클래스로 나뉜다. 향수 클래스는 다시 향수의 용량과 공병 디자인, 부향률(향의 농도)에 따라 BASIC, CLASSIC, UNIQUE 클래스로 나뉜다. 각 클래스는 용량과 공병의 차이뿐 아니라, 사용하는 향료의 개수도 다르다. 그는 찾아오는 손님의 니즈를 최대한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고객님들은 기존 브랜드의 향이 아닌 오직 나만의 유니크한 시그니처 향을 직접 제작하기 위해서 찾기도 하지만, 자신이 어떤 향을 좋아하는지 향기 취향을 알아보기 위한 과정으로 찾기도 합니다. 그래서 노즈노트만의 포뮬러(조향 차트)를 만들었어요. 이 포뮬러를 통해서 각자의 취향에 맞는 향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김 디자이너는 수많은 향수 공방을 다닌 경험으로 다양한 사람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독자적인 포뮬러를 고안했다. “향수는 뿌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다른 향이 나는데요. 각각 탑노트(10분 전후), 미들노트(30~60분), 베이스노트(2~3시간 후에서 향이 전부 날아갈 때까지)로 나뉩니다. 또 사람마다 향수를 사용하는 공간과 용도, 주제도 달라요. 이 모든 조건이 사람마다 가지는 다양한 취향과 엮여 수만 가지의 향이 생기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자신이 찾는 향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 결과로 노즈노트만의 포뮬러를 완성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향을 만들고 싶어 노즈노트를 찾은 고객은 가장 먼저 김 디자이너가 내미는 포뮬러를 마주하게 된다. 이후는 선택한 클래스의 포뮬러대로 진행이 되는데, 먼저 향수가 담길 공병을 선택한다. 그리고 만들고 싶은 향수에 관해 얘기하면, 이를 토대로 그가 다양한 향료를 추천한다. 탑노트, 미들노트, 베이스노트에 각각 원하는 향을 선택해 비율을 정하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시그니쳐 향수가 완성된다. 그는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하고 7년간 사진작가로 일했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남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갖겠다는 생각으로 취미였던 조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어린 시절부터 좋은 향기를 맡는 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어요. 그러다 하나 둘씩 향수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향수 공방을 다니며 저만의 향수를 만드는 게 취미가 됐죠. 그러다가 이 일이라면 제가 누구보다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본격적으로 조향사를 준비했습니다.” 김다혜 디자이너는 자신감과 확신으로, 취미로 즐기던 원데이 클래스에서 L’odeur LAB(로더랩) 퍼퓸 디자이너 자격증 클래스를 준비했고, 이어 GN SCOOL의 3급 조향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3년의 준비를 거쳐 지금의 노즈노트를 창업하게 됐다고. “여러 향수 공방에서 원데이 클래스를 수강한 게 시장조사를 거친 격이 되었어요. 여러 장점들을 취합해서 완전한 고객 맞춤형 클래스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향을 찾고자 하는 손님을 위해 김 디자이너는 조향 과정에서 중간점검을 꼭 거친다. “노즈노트를 찾는 분들이 만족도가 높은 이유가 샘플링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시향할 수 있는 향료의 개수가 많아요. 로더랩 협회의 매뉴얼에서 제공하는 향료를 포함한 다양한 향료를 갖추고 있어서 단일 향료 개수가 90가지 이상입니다. 다양한 향을 맡아보고, 만드는 과정에서도 손님이 만족할 때까지 샘플링을 제한 없이 해줘요. 제가 창업 이전에 다양한 공방을 다녀보니까 이런 과정이 확실해야 만족할 수 있는 향을 만들 수 있더라고요. 기본 매뉴얼을 제외하고 모든 과정에서 고객님의 취향으로 진행됩니다. 때문에 완성 단계에서 오는 만족감도 더 크죠. 향수를 만드는게 어렵다고 느끼실 수도 있지만, 포뮬러를 따라가며 제가 직접 시향 시켜드리고 향에 대한 설명도 해서 쉽게 접근하실 수 있어요.” 향을 기억하다는 의미의 노즈노트라는 이름은 향으로 재방문하는 고객을 구분하는 김다혜 퍼퓸 디자이너이기에 더 뜻 깊다. “고객님들 중에 만족도가 높아서 지인에게 이런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다고 원데이 클래스를 선물해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리고 그분들이 오셔서 또 너무 좋아해 주세요. 또 다른 향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재방문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이런 분들이 계셔서 운영하는데 크게 힘들지도 않고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 힐링 받을 정도로요. 자기 취향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큰 차이라고 생각해요. 노즈노트에서의 시간이 자신의 향기 취향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면 더없이 뿌듯할 것 같습니다.” 현재 취미 이상의 배움이나 창업을 원하시는 분들을 위한 클래스도 진행 중이다. 이는 로더랩 협회의 퍼퓸 디자이너 과정인 조향사 자격증 클래스로, 그의 목표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의 목표는 조향사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아카데미의 조성이다.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사업화한 사람에게는 넘볼 수 없는 내공과 긍정의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나의 에너지를 고객님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성실히 쓰는 것 또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죠. 초심을 잃지 않고 오래도록 고객님들의 기억 속에 행복한 추억을 남겨드리는 힐링공간이 되는 노즈노트 퍼퓸하우스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추억은 이미지로도 남지만, 향으로도 남는다. 길을 걷다 코끝을 스치는 잠깐의 향으로도 우리는 과거의 어느 날을 떠올린다. 김다혜 퍼퓸 디자이너에게 향이란 추억하고 싶은 지난날의 향수다. 그는 노즈노트를 찾는 모든 이들이 기억에 남는 좋은 향과 좋은 추억을 작은 병에 담아가기를 바란다. 앞으로 담길 수많은 이들의 향이 기대된다. [1120]
    • 라이프
    2021-06-30
  • 누구 하나 소외받지 않는 사회를 향해 다함께 한 발 앞으로
    비구름이 물러난 창원시의 하늘은 쾌청했다. 5월 끝자락의 해가 하늘 한가운데 걸린 시간, 계속된 비에 고생한 풀과 나무는 따사한 햇빛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창원시 의창구에 위치한 행복다문화협동조합은 코로나19라는 장마를 만나 아주 잠깐 햇볕에 몸을 말릴 새도 없이 현재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그 노고를 인정받듯 예비 사회적기업에서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으며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행복다문화협동조합의 이경연 대표와 조합원들, 직원들이 함께 준비하고 있는 앞날을 들어보자. _ 송인주 기자 행복다문화협동조합은 18년 9월 예비 사회적기업을 거쳐 2021년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또한, 노인돌봄서비스 인력인 요양보호사를 양성하여 현장에 파견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의 일자리창출과 직접케어를 받는 노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치매예방을 위한 인지향상프로그램과 교구를 개발하고 인지관리지도 전문 인력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이경연 대표는 응용미술을 전공했지만, 가정폭력에 노출된 여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사회복지석사를 졸업하였다.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에게 심리 정서적으로 전문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서 조선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심리치료 박사과정을 수료하였고, 학위준비과정에서 다문화가족과 그 주체자인 이주여성들이 경험하고 있는 문화변용에 의한 정체성 혼란에 관심을 가지고 미술치료로써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함께 했던 이주여성들과 현재의 행복다문화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되었어요.”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 이경연 대표는 모국에서 한국으로 결혼이주를 결심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 중 자존감을 잃고 상처받은 이들을 주목했다. “이주여성 중에는 결혼 전 모국에서 꿈을 가지고 학위를 취득하고 활동하다가 오신 분들이 많아요, 각종 자격증들을 취득했었지만 한국에서는 활용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각자의 재능과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 대표는 비영리민간단체를 설립하고 수혜를 제공받는 다문화가족이 아니라, 다문화복지사각지대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다문화가족이 발굴하고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적극적 개입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심리적 안정과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미술치유로써 극복해 나갈 수 있었지만, 삶에 대한 새로운 목표를 가지기 위해서는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나아간 게 돌봄 서비스입니다. 재가센터를 만들고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았어요. 2019년부터는 치매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문화가정의 다양한 문화를 반영하는 즉석판매식품업을 준비했어요. 다방면으로 확장을 하려는 시기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즉석판매식품업과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면 서비스사업은 수입 감소라는 직격탄을 맞고 말았어요.” 코로나19로 인해 돌봄 서비스사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즉석판매를 하는 식품업도 준비과정에서 제동이 걸리면서 협동조합 전체가 덜컥거렸다. 유일하게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은 치매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지향상 교구였다. “인지향상 교구는 아이들이 하는 두뇌개발교구와는 주안점이 다릅니다. 아이들은 창의성과 창조성을 개발하는 인지발달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 노인들은 인지 유지와 회복이 목적이죠. 인지저하로 인한 치매증상의 속도를 낮추고 지남력과 기억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치매예방을 위한 인지향상 프로그램은 미술치료 키트와 원목으로 된 퍼즐 그리고 전자퍼즐로 구성되어있다. 전자퍼즐의 앱은 치매가 그간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저장되어 전문 인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모두 힘들고 좌절하는 시기였지만, 저희는 위기를 기회로 모색하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했어요. 사회적기업 진흥원컨설팅을 통해 재정의 안정성을 재점검하게 되었고, 전자퍼즐개발에 대한 창원시의 적극적 협조와 하드웨어 업체 이사님, 소프트웨어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신 폴리텍 대학교수님, 그리고 변리사님의 도움으로 항노화 R&D 시제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현재 전자퍼즐은 특허 등록 중에 있고, 조금 더 다듬고 보완하여 선보일 예정입니다.” 창원시는 경남에서 가장 활발하게 다문화정책을 펼치며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크고 튼튼한 우산일지라도 빗방울이 새는 작은 구멍은 있기 마련.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분리되어 혼자 지내고 있는 여성들 중 근로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이혼을 해주지 않아 공적 부조 혜택조차 받지 못하고 소외된 고령의 이주여성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한 관심과 돌봄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지원도 준비 중이에요. 코로나 19가 종식되고 나면 멈추었던 경로당에 찾아가는 미술심리치료프로그램도 다시 시작할겁니다.” 이 대표는 조합에서 열심히 일하는 이주여성(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힘이 난다고 했다. “각 부서별로 시설장이 있는데 요양보호사 교육원 시설장으로 일본인 선생님을 임명했을 때 선생님이 참 행복해 하시더라고요. 사회에서 소외되고 자신의 능력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 만큼 슬픈 일은 없을 겁니다. 능력을 알아주고 믿어준다면, 거기서 자부심을 가지고 더 열심히 일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수혜를 통해 한국사회로 동화되기를 강요하기보다는 사회구성원으로서 기여를 통해 자존감을 키워나간다면,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협동조합의 많은 선생님들이 그렇게 일을 하고, 서투르지만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 저도 행복합니다. 앞으로 넘어야 할 언덕도 많고 가파르겠지만, 다 같이 웃을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가는 직원들을 생각하면 전 무조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인터뷰 막바지에 노인을 위해 개발한 인지향상교구를 해볼 수 있었다. 퍼즐 조각하나하나에 이 대표와 직원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모나지 않고 둥근 모서리의 작은 조각들은 단순한 퍼즐형태보다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경연 대표와 직원들처럼 맞물려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1118]
    • 라이프
    2021-06-16
  • 자유민주주의 수호, 국리민복 가치 실현! 미래 대한민국, 미래 대구 발전에 앞장서다
    한국자유총연맹은 유엔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350만 회원의 국민운동 단체로,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국가 이익, 국민 행복을 증진시키는 ‘국리민복’에 그 가치를 두고 있다. 한국자유총연맹 대구광역시지부(이하 대구자총)는 1965년 설립된 경상북도 산하 지회로 운영되어 오다가 1979년 대구·경북 통합 지부로 운영되었고, 1981년 대구직할시지부로 분리 설치되어 현재 8개 구·군 지회와 산하 142개 읍·면·동 분회에 5만 명의 회원이 소속되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옹호·발전시키며, 국가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대구광역시 남구 소재의 ‘낙동강 승전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조국수호의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의 방어선전투 승전을 기념하고, 나라를 지킨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이곳에서 정영만 한국자유총연맹 대구광역시지부 회장을 만났다. _정효빈 기자 위기를 겪으며 더욱 단단해진 대구 결집의 중심에 선 대구자총 지난 4월, 한국자유총연맹 대구광역시지부(이하 대구자총)가 코로나19 방역대책 유공으로 행정안전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집단발병 확진자 폭증으로 무거운 자괴감을 느끼던 대구시민들을 독려하기 위해 대국민호소문을 발표, 관련 공익광고와 언론 기고를 통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하는 등 적극적 활동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서다. 대구시민들이 패배의식과 상실감을 하루빨리 극복하고 자신감을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는 정영만 회장은 “시민들의 호응과 200여 회에 이르는 자총회원들의 봉사실적이 뒷받침 되었고, 이러한 활동들이 긍정적인 평가와 공감대를 얻은 것 같다”며 이번 수상의 공을 자총회원들과 대구시민들에게 돌렸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초기부터 각 지역 병원에 음식과 마스크를 지원하는 등 약 2억 원에 달하는 방역물품을 제공해왔습니다. 5만 대구자총 핵심회원들의 봉사와 희생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며, 당시 치열했던 순간들이 가슴 속에 자랑스럽게 남아있습니다. 아직도 코로나는 현재진행형이지만, 국가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하는 자총인들은 앞으로 그 어떤 고난이 닥친다 하더라도 굳건히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지역사회에 공고히 각인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위기를 겪으며 대구가 조금 더 단단해 지는 데 뒷받침한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자유총연맹은 흔히 ‘보수의 아이콘, 보수의 맏형’ 등으로 불리며 다소 경직되고 딱딱한 집단으로 표현되어왔다. 이에 정영만 회장은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처한 봉사활동에서 나타났듯이, 대구자총은 대구시의 안전과 시민의 복리 증진에 앞장서는 실용적인 단체라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실제 대구자총은 한국자유총연맹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의 선봉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5만 대구시 자총회원들의 참여도와 자부심을 높이는 역점 사업들을 추진해왔는데. 시의 안전과 발전에 밑거름이 되는 단체로 발전시키겠다는 비전 아래 대구의 3만 다문화가족의 자총회원화를 도모하기도 한 대구자총은 다문화가족의 토착화를 돕고 다문화 자녀들이 미래 한국의 인적 자산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동을 적극 이어가고 있다. “대구경찰청 외사자문위원장 시절부터 다문화가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다문화가족들은 지금도 우리 국민으로서 기여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더욱더 특별한 존재가 될 겁니다. 일반인들은 배우기 어려운 부모의 모국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사용 가능한 재원이죠. 향후 우리나라의 외교와 국방,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소중한 인적자원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불어 2개 국어의 모국어를 구사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도 자부심으로 느낄 수 있도록 사회에서의 인식 제고와 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다문화가정 학생들의 모국어 웅변대회를 활발히 개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지요.” 이와 더불어 대구자총 자유민주아카데미의 정례화로 자총 회원 전원의 교육을 통한 정예화 및 발전 활동을 적극 이어가고 있으며, 매주 인문경영학, 농학과 건강, 해외문학작품 등을 소개하는 시간을 통해 원활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엔 ‘대구자총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조직으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정 회장의 철학이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발전된 미래로 도약을 위해 ‘열린 대구’로 나아가는 용단 내려야 할 때” 기능성 농업 제제 전문기업인 제이아그로(주)를 이끌고 있는 정영만 회장은 농업전문경영인으로는 드물게 한국자유총연맹에 적극적으로 활동해왔다. 한국자유총연맹과의 정 회장의 인연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외 여러 나라들을 다니며 농업환경에 대해 선진기술을 배우던 차에, 해외로 다니면 다닐수록 우리나라의 소중함이 느껴져 미국에서는 참전용사 추념행사를 진행하고 중국에서는 임시정부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탐방행사를 개인자격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일이라도 개인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한다면 더 많은 일을 좀 더 성과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던 때, 자유총연맹에 대한 권유를 받게 되었죠. 평소 건전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정치적 중립을 선언한 국민운동 단체이며 또한 국가안보문제만큼은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자총의 이념이 마음에 와닿아 수석부회장으로 자총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자총 활동에 참여하기 수년 전부터 참전용사 행사를 기획하며 미국 애틀랜타와 시애틀에서 한국전 참전용사 행사를 개최, 중국 임시정부와 러시아 독립 유공 현장에도 방문해온 정영만 회장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맹주인 미국은 국가를 위해서 전쟁에 참전했거나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예우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라며 “참전용사들이 정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 한미 동맹의 초석을 굳건히 하기 위해 이와 같은 행사를 개최했다”고 전했다. 대구자총은 국민역량을 결집시켜 국가발전과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캠페인’과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마중물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통일에 청년과 여성들의 역할을 강조하며 청년회원들을 중심으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지구촌 재난구조단 활동을 매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미래 통일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을 위해 낙동강승전기념관에서 낙동강 방어선 전투현장 탐방 등 건전한 안보관, 균형 잡힌 대북관, 미래지향적 통일관 정립을 통해 통일에 대한 실천의지와 역량을 배양하고 미래사회의 주역으로서 민주 시민적 자질과 선진 국민의식 함양을 위해 나라사랑 청소년 통일준비 민주시민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 시절에 좋은 모델을 잘 만들어놓으면, 이것이 향후에도 잘 유지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대구자총이 자부심을 갖고 해온 활동들이 대구의 발전과 성공에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고, 위기에 더욱 결집해 과거보다 더 강한 대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더욱 관련 활동과 봉사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끝으로 정 회장은 코로나19확산으로 인한 위기를 통해 ‘대구가 다음 단계로 도약해야 할 때’라고 강조하며 “아일랜드가 유럽의 최빈국에서 최부국으로 가장 성공적인 경제 도약의 모습을 보여주었듯, 대구시 역시 개방적인 자세로 좋은 입지에 글로벌 기업, 국내 대기업 연구소 등을 유치해 지역 출신 청년인재들의 장기적인 일자리 확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 “공공기관이나 기업 역시 열린 소통을 통해 ‘열린 대구’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할 때”라는 뜻을 전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인류 공통의 적을 마주함에 있어 정말 잘 대처해 왔고 이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구에서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을 통해서도 ‘험난함은 있을지언정 불가능은 없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대구시에서는 범시민대책위원회를 통해 방역에 대한 시정과 대책을 시민단체와 함께 고민하고 투명하게 개방하고 있으며, 많은 염려와 반대의견을 겸허히 수용하며 대처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 회원은 물론 대구시민들에게 아니 국민에게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설 것이고, 승리할 것이기에 조금만 더 인내해 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방역의 최일선에 서 계신 분들을 좀 더 응원해주기 바라고요. 마치 우리 선배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낙동강을 수호했던 것처럼 결연한 의지로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해 가길 바라며, 우리 자총도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1118] •경북대 정책정보대학원 정치학석사 •대구대 명예농학박사(2017.8) •現 한국원예학회 부회장(2021) •現 한국 친환경농자재협회 부회장 •現 (美) 스톨러 연구소 동북아 수석연구원(1996) •現 국제교류협회 한ㆍ미 교류협회 이사 •現 스톨러제이 농촌복지연구원 이사장 •現 대구대학교 생명환경학부 겸임교수 •現 제이아그로(주) 대표이사 •現 매일정치아카데미 1기 회장 •前 (日)하야시 화학연구소 연구원 •前 대구 경찰청 외사협력자문위원회 위원장 •前 의령군 대구ㆍ경북향우회장
    • 라이프
    2021-06-16
  • 대한민국 법률제도 개선에 이바지한 참된 법조인, 법 사각지대에 놓인 서민을 위해 달리다
    경남 진주지역에서 오랜 기간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으로 법률서비스 활동을 이어온 박종연 변호사는 서울에서 오랜 기간 법관 생활을 하다 귀향해 활발한 무료법률상담 서비스와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오며 법조계의 귀감이 되어온 인물이다. 30여 년간 법률서비스가 낙후된 지방에서 묵묵히 이웃들과 함께 손을 잡고 걸어온 그의 발자취를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_정효빈 기자 ‘대법관 후보 사양 의사 밝힌 변호사’ 이웃을 향한 따뜻한 관심으로 국민을 위한 법률제도 개선에 힘쓰다 박종연 변호사는 서울에서 10여 년간 민·형사 등 각종 재판을 하며 판사생활을 거친 후 96년부터 고향인 경남 진주로 내려와 지역이웃을 위해 일해 온 변호사다. 79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해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 83년 제14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서울민사지법 판사 임관 이후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 93년도에는 미국 아이비리그의 코넬대학교 법대 교환연구원으로 유학생활을 한 후 대전고등법원 형사부·특별부 판사로 재직했다. 96년 대법원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으로 임명되어 법원 재판제도 개선업무에 힘써왔으며, 이후 사직한 뒤 고향인 진주로 돌아와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판사들이 선망하던 전도유망한 근무처인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던 판사 중 최초로 사직한 사례인데다, 대부분의 판사들이 최종 근무지인 법원 부근에 개업해 전관예우를 받던 시절임에도 모든 혜택을 뿌리친 뒤 어려운 조카들의 학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 근무 연고가 없는 진주로 내려와 변호사사무소 개업을 선택, 당시 다수의 중앙 일간지에 보도되는 등 남다른 행보로 주목을 받았다. 판사로 재직 당시 대법원에서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으로 근무하며 법조계의 주목을 받던 그가 돌연 고향에 내려와 변호사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가난한 집안의 막내로 대학에 진학한 건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 후 판사로 근무할 당시에도 집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죠. 가족들의 희생으로 제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는데 ‘나 혼자 이곳 서울에서 편하게 생활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하는 고민이 밀려오더라고요. 또 본래 시골 출신이어서인지 언젠가는 고향쪽으로 돌아가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줄곧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문득 제가 우리 집안과 형제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굳어져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지요.” 박종연 변호사는 변호사로 십수년간 일하던 중 실력과 평판을 인정받아 2014년 지방인 경남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대법원으로부터 대법관 후보로 천거되었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법조인으로서 큰 영광인 대법관 천거에 박 변호사는 사양 의사를 밝혔는데,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향을 결정했을 때 ‘고향에서 지역이웃들과 함께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종신하겠다’는 생각으로 진주에 내려왔습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사회에서 많은 혜택을 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고향의 이웃들에게 제가 그동안 받은 혜택을 일부나마 갚아드리는 마음으로 책임과 도리를 다해야한다고 생각했지요.” 박종연 변호사의 지난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법의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박 변호사는 1996년 변호사사무소 개업 후부터 지금까지 항상 사무실을 개방하고 서민들을 대상으로 매일 무료 법률상담을 지속해왔다. 또한 수차례 큼직한 공익소송을 제기하며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잘못된 법제도를 개선하는 데 성공한 법조계 인물로 꼽힌다. 대표적 공익소송 사례인 ‘미결수 수의 착용에 대한 국가 손해배상 청구’는 97년 무료변론으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법무부장관의 미결수 사복 착용 제도개선 발표를 이끌어내 전국 교도소에 시행하게 한 바 있다. “당시 농협에 다니던 젊은 시골 아가씨가 은행 자금을 횡령했다고 구속이 되었습니다. 본인은 누명을 썼다고 너무 억울해했고, 푸른 수의를 입고 가족들 앞에 서고 법정에 드나드는 것을 너무 힘들어하더군요. 당시 이미 선진 외국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아직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은 피고인에겐 수의를 입히지 않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은 사람의 인권을 보호해주지 않는 것은 분명히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제도 개선을 목적으로 법원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지요. 당시 사건이 파급효과가 있어 언론에서 이슈가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직 대통령도 사복을 입고 법정에 나오는 모습을 보았지요.” 이밖에도 99년에는 연식에 관계없이 배기량에 따라 자동차세의 과세표준과 세율을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실제 차량 보유기간과 무관하게 자동차세를 부과하도록 한 지방세법 조항에 대해 무료변론으로 위헌심판을 제청하며 법 개정을 촉구, 전국의 중고자동차 소유자들에게 최대 50%까지 자동차세가 경감되게 하여 서민들이 매년 2조원 상당의 자동차세를 경감 받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가 2009년 무료변론으로 진행한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소송은 우리 사회에서 법적으로는 처음으로 자영업자들이 과중하게 부담하고 있는 카드수수료 문제를 제기한 소송으로, 이를 계기로 카드수수료가 4%대에서 2% 이하로 경감된 바 있다. 박 변호사는 이밖에도 변호사 업무 중 법률전문가로서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법제도의 문제점이 발견되면 이를 방치하지 않고 매년 한두 차례씩 적극적으로 법률전문지 기고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법제도를 개선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미등기건물에 채권자의 강제집행이 가능토록 하거나, 피의자의 구속 수사재판 관행을 불구속 수사원칙으로 바꾸거나, 법정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되는 피고인에게 포승줄을 묶는 관행을 시정시키거나,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하여 수사기록을 일정부분 공개토록 하는 등 그동안 십여 차례에 이른다. 작년에는 박 변호사의 이러한 서민들을 위한 법률보호노력이 평가받아 법조계 최고의 법률전문지인 ‘법률신문’에 지방 법조인으로서는 드물게 논설위원으로 위촉되어 사설을 통해 법률제도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려운 법을 친근하게, 서민을 위한 ‘소송대응 안내문’ 작성의 주인공 “돈 없어 권리보호 받지 못하는 일 없어야” 박종연 변호사가 판사로 재직하던 당시엔 국민들이 소송을 당해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부당한 일을 겪어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박 변호사는 판사 초임시절인 92년 당시 법을 모르는 국민들을 위해 소송대응 안내문을 만들어 피고들에게 제공한 바 있다. 당시 그가 창안한 “답변서 제출 및 응소안내”는 현재까지 전국 법원에서 피고들에게 교부하는 소송대응 안내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소송을 당하고 어찌 대응해야 할지 모르고 안절부절하며 법정을 찾아오는 피고분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많은 서민들은 돈이 없어 변호사도 선임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며 발만 동동 구르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래서 소송에서 답변하는 요령이나 증거 제출 요령,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요령들을 소송대응 안내문안으로 작성해 청계산 등산을 함께 하던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어렵거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없어 좋다’고 해서, 제 사건의 피고들에게 소송서류와 함께 보내드리기 시작했지요. 어려운 법을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하고, 많은 국민께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 재판 몇 건을 처리한 것보다 보람이 컸지요.” 박종연 변호사가 다양한 사회공헌활동과 무료변론에 적극 나서게 된 것은 그가 자라온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며 마음 편히 공부에만 몰두하지 못하고 집안의 농사일을 도와야했던 박 변호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단다. 1997년 IMF 당시에는 실직자들을 위해 문을 연 서울 명동성당 평화의 집에 1,000만 원을 기부하고, 진주 나눔의 집에도 500만 원을 남몰래 기부하는 등 현재까지도 꾸준하게 뜻깊은 사회 환원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의뢰인들을 만나는 박 변호사의 마음가짐 역시 이러한 ‘이웃을 향하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변호사란 국민들에게 일종의 책임이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며, 의뢰인에게 최선의 태도란 어떠해야 하는지, 그들의 고통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지를 늘 고민하며 현재까지도 항상 법률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고. ‘변호사 비용 부담 때문에 의뢰인이 어렵게 찾아온 변호사의 도움을 못 받고 돌아가는 일은 없도록 하자’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다는 박종연 변호사는 매년 꾸준히 도움이 필요한 의뢰인들을 위한 무료변론을 진행해오고 있다.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진실이면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으로 의뢰인의 변론을 맡아왔다는 박 변호사. 자신이 돕지 않으면 한 사람의 인생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고, 의뢰인의 고통을 공감하며 진실을 밝히는 일에 매진하고 싶단다. “억울하다고 생각되면 끝까지 밀고 나갑니다. 간혹 판사와 부딪히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말이죠(웃음). 의뢰인과 직접 만나서 제가 느끼는 진실이 있다면, 의뢰인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밀고 나가는 게 변호사의 책임이지요. 저는 그것이 옳고 이치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의뢰인분들을 만나다보면 정말이지 피눈물 나는 사연을 가진 분들도 많습니다. 그분들을 직접 뵙고 나면 조금 더 열심히 사건에 임하게 되죠. 간혹 소송에서 지더라도, 제가 의뢰인의 고통을 공감하여 최선을 다하여 변론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 의뢰인분들께서 고맙다고 말을 해주실 때에는 마음 속 위안을 느낍니다. 사실 소송 하나하나가 의뢰인들에게는 자신의 인생이 걸린 일이라, 졌을 때 고맙다고 말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일 텐데도 말이죠. 보통 변호사라는 직업이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라고 하는데, 이런 성취감을 맛볼 때에는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보람이 큰 직업인 것 같습니다(웃음).” 박 변호사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의미 있고 만족스럽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지금처럼 지역사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진실하게 이어나가고 싶습니다”라며 “제가 살아온 방향을 바꿀 생각은 없어요. 어떤 식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욕심도 없고요. 제 스스로 보람과 만족과 의미를 느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지역이웃들의 곁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도리와 책임을 다하는 법률서비스를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라고 전했다. 박종연 변호사는 “조금 더 가진 이들이 자신의 책임을 생각하고,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부분 외에 남는 일부를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것이 그들이 사회로부터 받은 도움에 보답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가진 이들이 공동체와 나누려는 자세를 가진다면 사회가 더욱 살만한 사회가 되지 않겠느냐”며 “권력과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힘없는 이웃들을 위해서 그 영향력을 선하게 행사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우리 사회가 싸우지 않고 더 따뜻하고 단합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며 밝게 웃어 보이는 박 변호사. 그의 법률사무소는 오늘도 밝고 따스한 에너지로 환하게 빛나고 있다. [1118] •1960. 경남 함양군 안의면 출생 •1966~78. 안의 초등,중, 고등학교 졸업(함양군) •1979. 서울대학교 법대 입학 •1982. 사법시험 합격(제24회) •1983. 서울대학교 법대 졸업 •1983~87. 사법연수원 수료(제14기), 군법무관 복무 •1988. 서울민사지법 판사 임관 (교통사고, 산재 전담재판부, 민사) •1990.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형사, 민사, 가사) •1992. 대전지법 강경지원 판사(민사, 형사, 가사) •1993. 미국 유학(Cornell 법대 교환연구원 - Visiting Scholar) •1994. 대전고등법원 형사부, 특별부 판사(행정, 조세) •1996.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경임(법원재판제도 개선) •1996. 8. 변호사 개업 (진주) •2014. 12. 대법관 후보 천거 - 서민들의 법률제도 개선을 위한 공익소송 - ◎ 미결수 수의 착용에 대한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1997년 진주지원 무료변론) ◎ 자동차세법 위헌제청 서민 자동차세 경감 (1999년 창원지법 무료변론) -전국 차량 소유 국민들에 매년 2조 원의 자동차세 부담 경감 ◎ 진주 - 서울 노선 항공요금 인하소송 제기 - 우회 항공 노선 직선화하여 주민 항공요금 경감 (2003년 진주지원 무료변론) ◎ 신용카드수수료 인하소송・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 (2009년 진주지원 무료변론) ◎ 양형기준의 법제화에 관한 제언 1999년 대법원 양형기준 제정하여 전국 법원에 시행 ◎ 골프장 건설을 위하여 개인 소유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도록 한 지역균형개발법에 대하여 위헌제청신청하여 2014.10.30. 승소 판결로 법률제도 개선
    • 라이프
    2021-06-16
  •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는 라이온스! 새로운 봉사 문화 정착에 한 걸음 다가서다!
    1958년 한국에 뿌리내린 라이온스클럽은 긴 시간 동안 지역에 봉사하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뭉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인 봉사단체이다. 2020년, ‘우리는 봉사한다’라는 뜻의 ‘We Serve’라는 표어를 걸고 온누리에 따뜻함을 나누고 있다. 수많은 지역사회 나눔 소식들이 들리는 와중 햇살 따스한 5월, 라이온스 355-A 지구 제8지역의 배추김치 1,000kg 기탁 소식이 눈에 띄었다. “김치는 항상 식단에 있어야 생각해 김장철 받은 김치가 떨어질 때쯤 구청을 통해 기탁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문성수 부총재는 1987년부터 식자재 기업 ‘패밀리식품’을 경영해오며 과거 혐오시설이라 불린 ‘월남 난민보호소’, 사회복지법인, 복지관 등에 차별 없이 식자재를 납품해온 마음 따뜻한 기업인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식자재를 납품하며 쌓은 경륜으로 ‘주고 싶은 도움’이 아닌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는 문성수 부총재. 그와의 따뜻한 인터뷰를 담아보았다. _박정호 기자 과거 상갓집에 조문을 하러 갔던 문성수 부총재, 빈소에 끝없이 들어오는 단체 조문객을 보고 “뭐 하시는 분들일까”라는 궁금증에 후배에게 질문했다. 돌아온 대답은 ‘라이온스클럽 회원 분들입니다. 선배님도 잘 어울리실 텐데 한번 함께 해보시겠습니까?’라는 후배의 권유였다. 당시 사업에 전념하던 터라 단체에 가입하기엔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던 문 부총재는 마음 한켠에 받은 권유를 곱게 접어두었다. 식자재 유통을 했던 그는 주로 사회복지법인에 납품을 했는데 현장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접하고 봉사 현장을 많이 겪어오며 지역 봉사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활원에 가보니까 ‘우리 실정의 봉사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모자란 점이 있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자주 품었습니다. 하루는 재활원에 갔었는데 5세, 뇌 병변 환자가 저한테 안겼어요. 아이의 침이 옷에 묻었지만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를 보고 더 마음이 가더군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 5부두에 미 함대가 훈련하러 들어올 시기였습니다. 부두에 정박하자마자 미군들이 바로 재활원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오는데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하고 허물없이 티 없이 교감하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나눔이고 봉사구나’하는 뭉클함을 느꼈죠.” 미군의 온전한 나눔의 모습을 본 문 부총재는 2003년, 라이온스클럽에 발을 들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사업체를 운영하며 봐온 봉사의 모습, 온전히 피부를 맞대며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그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다. 그가 몸담은 클럽은 서면 라이온스클럽에서 활동하던 이종삼 L이 2002년 6월 26일 72명의 회원을 모아 시작한 부영라이온스클럽이었다. “벌써 입회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네요. 처음 입회했을 때는 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엄청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왔습니다. 당시 함께해주신 선배들이 배려를 잘해주셔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부영클럽은 결속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활력이 넘치는 50대부터 경륜이 쌓인 70대까지 부인회와 젊은 신입회원들도 최선을 다해주고 있습니다. 항상 노력하는 그 모습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라이온스클럽 부총재의 임기는 1년이다. 2020년, 21년은 코로나-19로 인해 시에서도 다양한 행사를 자제하길 권유해 대외행사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1년 단위로 짜인 연례행사들을 개최시키진 못했지만 물심양면으로 총재를 보좌하며 누구보다도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임기를 보내고 있는 문 부총재. 그는 라이온스 입회 순간부터 지금까지 고수해온 스스로의 라이온스 정신이 있다고 말했다. “라이온스클럽의 모토가 ‘We Serve’입니다. 봉사를 통해 나 자신이 발전합니다. 끊임없이 배우며, 발전하며 뿌듯한 마음이 갈수록 커져요. 대외적으로 라이온스클럽은 ‘봉사단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에게 봉사는 기본입니다. 저는 이제 라이온스클럽이 문화로 정착되어야 할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스킨십으로 나누는 ‘교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들이 동아리를 결성해서 운영하는 ‘목욕 봉사’와 같은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봉사를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품을 지원하는 것도 좋겠지만 피부로 부딪히면서 다시 마음을 나누며 봉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다시 돌아오면 좋겠습니다.” 자신만의 라이온스 정신에 대하여 피력하는 문성수 부총재의 얼굴은 꽤나 상기되어 있었다. 표정에서 감출 수 없을 만큼 봉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아직도 녹음이 만연한 푸르른 여름을 보는 듯했다. 그와의 아쉬운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 담아보았다. “요즘은 경제상황도 안 좋지만 젊은 분들께서 힘을 합쳐 ‘역사시절’로 올라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또 가끔 회원 간에 사고의 차이 때문에 큰 목적을 잠깐 잊는 일도 있습니다. 그럴 땐 제 선친께서 항상 당부하셨던 ‘참을 忍(인)을 가슴에 새기며 善(선), 惡(악)을 전부 내 스승으로 삼으라’는 말을 되새겨봅니다. 그 마음을 한번 떠올려보면 더 나은 결과가 생길 것입니다. 1년 동안 355-A 8지역의 회장님들이 너무 많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다른 지역들보다 더 돈독하게 활동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저 혼자서 이루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굳은 결속과 유대로 세상에 온기를 드리우는 8지역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118]
    • 라이프
    2021-06-16
  • 남해군 1호 나무의사 자격증 취득! 아픈 나무를 고치는 의사, 지역을 향한 나눔을 전하다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처음으로 나무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정재욱 ㈜더푸른나무병원 대표가 최근 지역 취약계층을 위한 성금을 기탁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나무병원이 있는 남해군 고현면으로 향했다. 수목의 피해를 진단해 치료하는 지역 1호 나무의사로서 올바른 수목치료 방법을 제시하고 수목진료의 전문성 강화에 이바지하고 있는 그와의 만남을 주간인물이 담았다. _정효빈 기자 사람이 아프면 의사를 찾듯, 아픈 나무에게도 이를 치료해줄 의사가 필요하다. (주)더푸른나무병원과 더푸른농약사, 남해미래조경농원을 이끌고 있는 정재욱 대표는 2021년 5월 나무의사 자격증을 취득, 아픈 나무를 고치는 나무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생소할 수 있는 이 ‘나무의사 자격증’은 생활권 수목진료에 비전문가의 부적정 약제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수목진료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올바른 수목치료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산림청과 한국임업진흥원이 시행하고 있는 국가전문자격시험이다. “15년 전부터 나무에 깊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게 됐어요. 나무 밑에 자란 잡초를 죽이려고 농약을 뿌린 적이 있었는데, 잘못 사용한 것인지 새순이 오그라들고 나무가 고사 위기에 처했었지요. 나무를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수소문해보니 가까운 진주시에 나무병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곳에서 진단을 내려주시곤 큰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며 영양제 처방을 해주셨어요. 처방에 따라 돌보았더니 나무가 다시 건강하게 살아났고, 그 일을 계기로 관련 자격증 취득에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수목의 피해를 진단·처방해 그 피해를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나무의사. 최근 정재욱 대표는 남해군에서 처음으로 나무의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마을 전체의 자랑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의사 자격시험은 2021년 1월 기준 합격률이 단 4%에 그칠 정도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기 때문. 대부분의 합격생이 관련 학과 석·박사 학위 취득자인 것을 감안하면, 정 대표가 단기간에 합격증을 거머쥔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등에 심어져있는 나무들은 여태껏 비전문가들의 관리를 받아왔는데요, 나무의사 제도 시행으로 자기 소유의 수목을 직접 진료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나무의사나 수목치료기술자를 보유한 나무병원을 통해서만 수목진료가 가능하도록 산림보호법이 개정됐습니다. 주 업무는 아픈 나무에 대해 처방을 내리거나 토양의 질을 관리하고, 수종과 환경에 맞는 약재를 사용해 나무를 치료하는 일입니다. 줄기나 뿌리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이식이나 수술을 진행하기도 하고요. 나무의사 자격증 취득 이후로 먼 곳에서 진단 의뢰를 주시는 케이스도 굉장히 많이 늘었어요. 사업장에 방문해주시는 분들은 병 든 나무의 나뭇잎을 뜯어 오시면 잎사귀 상태를 보고 진단을 내려드리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시면 그걸 토대로 나무의 상태를 설명해드리기도 합니다.” 더푸른나무병원은 나무의사인 정재욱 대표와 수목치료기술자로 구성된 ‘1종 나무병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2종 나무병원이 나무의사의 진단과 처방만 가능한 것에 반해 1종 나무병원은 수목의 진단·처방과 더불어 치료까지 가능한 곳을 말한다. 이와 더불어 정재욱 대표는 활발한 나무의사협회 활동을 통해 다양한 정보교류 및 리스크를 완화하는 데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물이 아닌 살아있는 식물을 돌보는 일인 만큼 일에 임하는 마음가짐 역시 남다르다. 병에 걸려 시들고 고사 위기에 처하거나, 죽어버린 나무들을 볼 때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도 많다고. 특히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우수한 수목들을 관리할 때면 책임감과 보람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단다. “지리산 뱀사골에 있는 천년기념물인 천년송을 좋아해서 매년 가을이면 가족과 함께 그 나무를 보러 가곤 합니다. 소나무를 오롯이 느껴보고 싶어서 나무 아래 맨 발로 서있으면, 땅 아래에서부터 에너지가 느껴지고 뿌리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어요. 정말이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죠. 또 이 마을엔 죽은 소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요, 나무가 서있는 곳이 예전엔 마을로 진입하는 입구였는데 사람들의 왕래가 끊기면서 나무가 외로워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그 나무가 더는 외롭지 않았으면 해서 옆에 천년송의 후계목을 심고 왔습니다. 그 후로 5년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이젠 제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자랐어요(웃음).” 남해군 고현면에 자리를 두고 있는 (주)더푸른나무병원·더푸른농약사는 나무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물을 키우고 있는 이들이 편하게 방문해 이야기꽃이 멈추지 않는 곳이다. 식물에 관해 이것저것을 묻는 고객들과 이에 적절한 해답을 내놓는 정재욱 대표와의 정감 있는 대화 속에서 이들 사이의 돈독한 유대감이 느껴진다. “더푸른농약사의 문을 열기 전엔 관련 약품을 사기 위해 동네분들이 근처 하동까지 먼 길을 나서곤 했는데, 이곳 남해에서 농약사 운영을 시작한 이후로 먼 곳을 찾아가는 불편함을 많이 해소시켜드린 것 같다”라며 정 대표가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남해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줄곧 살아가고 있고, 이 업을 시작하면서 지역민들의 도움도 많이 받아왔습니다. 앞으로 사업도 잘 운영해나가서 지역에 봉사도 많이 하고 기부활동도 힘닿는 만큼 꾸준히 이어가고 싶어요.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남들과 어울려서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니까요. 앞으로도 쭉 이런 마음가짐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웃음).” [1118]
    • 라이프
    2021-06-16
  •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 주민들의 마음에 스며드는 열린 교회를 만들다
    마을교회는 부산 부산진구 범천1동에서 2019년 7월 7일에 설립된 작은 개척교회다. 이곳은 작은 개척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로 타의 모범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4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마을교회는 범천1동 주민센터에 이불 20채를 기탁했다. 이 뿐만 아니라 선풍기, 전기장판, 이불 등의 물품 기탁과 꾸준한 관내 식품 지원 및 무료급식 봉사도 이어오고 있다. 한마디로 ‘나눔 활동계의 다윗’ 같은 교회다. “마을교회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마을이든 스며드는 교회가 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종언 담임목사. 그는 안락1동에서 붕어빵을 판매해 수익금으로 이웃을 돕는 따뜻한 목회자다.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이종언 담임목사와의 이야기를 일문일답의 형식으로 정리해보았다. _박정호 기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언 11장 24~25절- Q. 이종언 목사님의 목회자로서의 길이 궁금합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마을교회를 설립하게 되셨습니까? A. 저는 원래 성악을 전공했습니다. 찬양 사역자의 삶이 좋아 ‘평생 교회에서 활동하며 살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중 주변의 권유로 신학교에 가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신학대학원을 갔고 목사가 되었죠. 하지만 부목사 생활을 하며 제가 살고자 했던 목회자의 삶과 다름을 느끼고 힘들어하던 중 성대폴립(후두폴립:laryngeal polyp) 수술을 하게 됐습니다. ‘한 달 동안 말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죠. 침묵의 기간을 이겨내며 저의 가치관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교인을 대하는 마음자세가 많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담아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해드리며 신앙인으로서 신앙을 잃은 분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움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진심과 진심을 맞닿으면 누군가의 마음이 변화됨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이것이 진정 제가 생각한 목회자의 길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마을교회의 근간이 되었죠. Q. 마을교회는 작은 개척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로 타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사님의 목회 철학은 무엇입니까? A. ‘내 한 몸 마을의 주민처럼 살자’고 항상 되새깁니다. 많은 교회가 있지만 ‘과연 마을에 스며들어서 긴밀한 교제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해보니 아니더라고요. 행사를 통해서 마을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게 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그 행사를 구심점으로 관계가 발전하기 때문이죠. 옛날 마을의 어른은 어른 대접을 받았잖아요. 지혜를 구하기도 하고 말이죠. 저는 마을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굳이 행사가 없어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도움의 손길과 지혜를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꾸준한 나눔과 봉사활동을 해오셨는데,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드리고 있으십니까? A. 주변에서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 싶어 평일에는 안락1동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웃음). 손님들이 기분 좋게 붕어빵을 사가실 수 있도록 늘 넉넉하게 드리려고 해요. 붕어빵 한 마리를 서비스로 드리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붕어빵 무료 나눔의 날을 만들어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웃으면서 마음을 나누었어요. 또 교회 개척과 동시에 시작한 안락1동 바르게살기 위원회에서 마을과 주민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죠. 이렇게 시간이 지나갈수록 주민들과 서로를 알아가면서 좋은 유대관계를 맺기 시작했어요. 이렇듯 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뭘 더 해드리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봄이면 여름에 뭘 필요로 할까 하고 미리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웃음). 교회가 마을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면 제가 주고 싶은 것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엔 뭘 필요로 할지 주변에 자문을 많이 구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니 갈 길이 선명해지더군요. 엄청나게 대단한 것을 해줄 수는 없겠지만 매번 최선을 다 해 준비하고 있어요. Q. 봉사로 만난 인연 중에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A. 지난겨울 우연히 10여년 간 만성질환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청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밥과 물은 고사하고 전기장판과 하루 한끼로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질병이 있으니 변변한 직장을 가질 수도 없구요. 저는 이 청년이 따뜻한 밥이라도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매달 식료품을 지원해주게 됐습니다. 또 정기적인 치료가 중요해서 매달 치료비 일정액을 도와주기로 했어요. 그러다 보니 6개월 만에 사람이 달라지더군요. 목소리에 힘도 실리고 자주 웃고 못 보던 표정들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가 주고 싶은 것과 그가 필요한 것을 잘 맞춰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웃음).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A. 대형교회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늘면서 한때 사회적인 지탄을 받기도 했지요. 이번 기회에 주민들로부터 교회가 과연 마을에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고 있는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더 나은 존재가 되어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준비를 하고 실행으로 옮겨 교회 주변의 마을이 행복해진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행복하게 지내길 바랍니다(웃음). [1117]
    • 라이프
    2021-06-16
  • 신뢰, 소통, 공감의 변호사! 무죄 전문 변호사로 우뚝 서다!
    “피고인 안인득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온 국민의 주목을 받았던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사건’이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법정을 나서던 그. 문일환 변호사도 함께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사형이 선고될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는 최선을 다해 피고인을 대변(代辯)했고 변호(辯護)했다. 기자회견에 침착하게 임하는 그의 직업정신에 많은 누리꾼이 찬사를 보내곤 했다. 그로부터 2년, 창원시에 새로운 법무법인으로 둥지를 튼 문일환 변호사를 주간인물이 만났다. _박정호 기자 2004년 대학교 재학 중에 제46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수도권에서 초임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3년 정도 구력을 쌓았을까,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억울함이 있음에도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보지 못하는 사례들을 보며 국선 전담 변호사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피고인의 여러 가지 사연을 듣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이렇게 살다 죽는 건 의미 없다. 젊을 때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든 한 번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기에 공익과 인권옹호를 위해서 큰 결심을 했습니다.” 그렇게 그의 국선 전담 변호사 생활이 시작됐다. “국선 전담 변호사에 합격한 11년 전, 대법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경남 창원으로 가라고 말이죠. 처음엔 잘 모르는 곳이었어요. 아내도 서울 사람이고 아이들도 어렸던 상황이라 가장의 역할과 법조인의 역할 사이에서 많이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 뜻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6년의 국선 전담 변호사 생활이 시작되었죠. 다양한 분야의 사건을 맡았지만 주로 강력사건, 형사사건, 형사합의부 사건을 주로 도맡아 했습니다.” _____ 설득이 아닌 공감(共感)으로 무죄 전문 변호사로 자리잡다 국선 전담 변호사로 활동하며 70회 이상의 국민참여재판을 경험한 문일환 변호사는 남들이 꺼리는 강력사건에도 피고인에 대한 도리, 개인적인 소명감으로 최선을 다했다. 일반재판과 비교하면 무죄율이 굉장히 높은 국민참여재판의 특성을 활용, 변호인으로서 승리하기 위해 다양한 논문을 조사하고 논문을 써오기도 했다. 항소심에서는 할 수 없는 국민참여재판의 장점이자 단점, 단 한 번의 기회로 배심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기에 재판마다 사건을 영세불망(永世不忘)의 마음으로 머릿속에 새겨두고 변호인석에 섰다. 불 보듯 사건을 꿰뚫고 있는 그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배심원들과 소통하는 데 집중해 배심원들의 신뢰를 얻었다. 소통에 관한 연구와 배심원들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 선택하는 등 심리학 저서를 통달한 노력이 재판마다 빛을 발하며 문일환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 전문 변호사, 무죄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검사가 기소한 것이 다 맞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재판에서 검사들에겐 자료가 많았지만 저는 정제된 정보로 모순됨을 파악해 포인트를 잡아 배심원들을 설득하고 무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만듭니다. 항상 배심원들과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것에 초점을 둡니다. 제가 100을 알아본들 전달을 못 하면 쓸모가 없습니다. 30을 말해도 30을 전달하고 공감하게 하는 게 더 효율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매 순간 문장의 선택과 말의 속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무작정 변호를 한다기보단 신뢰도를 올려야 하기에 재판의 지휘자 역할을 맡으며 배심원들의 호감도를 높이려고 노력합니다.” _____ 추상적인 정의(正義)를 벗어나 변호(辯護)에 충실한 법조인 정의로움과 소명 의식을 가지고 살아온 문 변호사. 항상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와야겠다는 그의 의지를 꾸준히 실천으로 옮겨왔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 법무법인을 운영하는 상황, 그는 “변호사도 사업이기에 가급적 사건 수임을 많이 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져 생각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법정에 들어선 순간에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재판이다. 그 속에서 그를 지금까지 이끌어온 신념에 대해 물었다. “제가 어디까지 의뢰인한테 희망을 줘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합니다. 나 자신도, 그 누구도 속이고 싶지 않아요. 가식을 되게 싫어하고 솔직해지고 싶어요. 또 솔직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는 SNS에 무죄를 받아낸 재판에 대하여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댓글로 ‘정의가 승리한 겁니까’라고 물어보더군요. 정의(正義), 공정(公正), 그런 추상적인 가치를 대입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죄라는 건 결백은 아닙니다. 검사가 입증에 실패했다는 것일 뿐이죠. 결과적으로 저는 제 역할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앞으로도 그 누구도 속이지 않고 제 역할에 충실할 것입니다.” _____ 투명한 신뢰(信賴)를 바탕으로 의뢰인과 동행(同行)하는 법무법인 “저에게 변호사는 서비스업입니다. 예전처럼 변호사가 갑인 시대는 일찍이 끝났다고 생각해요.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에선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변호사란 보조자입니다. 입과 머리가 될 수 있지만 전부가 되어줄 수는 없어요. 의뢰인도 함께 헤쳐나가야 합니다. 변호사의 경험이 활이고 의뢰인이 화살이 되는 겁니다. 법정에서 혹여나 제 말이 틀릴 수도 있지만, 제 말을 믿고 따라올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변호사가 갖춰야 할 소양입니다. 창원 최고의 법무법인이 되겠다고 말하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제 사무실을 알고 오신 분들께 사건의 명암을 모두 밝혀 투명하게 이해를 시켜드릴 것입니다. 양면을 다 보고도 저에게 활시위를 당길 기회를 주신다면 반드시 의뢰인들이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현재 문일환 변호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에 있는 ‘법무법인 지승’에서 대표 변호사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의뢰인들과 함께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문 변호사에게 귀추가 주목되는 때다. [1116] 학력 •1995. 3. - 2005. 2. 건국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2010. 9. - 2013. 2. 부산대학교 법과대학원 석사 졸업(지식재산권법 전공) •2013. 3. - 2015. 8.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사 수료(지식재산권법 전공) 경력 •2004. 12. 제46회 사법시험 합격 •2005. 3. - 2007. 2. 제36기 사법연수원 수료 •2007. 5. - 2010. 2. 법무법인 세인 소속 변호사 •2010. 3. - 2016. 2. 창원지방법원 국선전담 변호사 (형사사건 약 1,500건 변호, 국민참여재판사건 약 70건 변호) •2014. 5. - 현재 대법원 형사실무연구회 회원 •2014. 5. - 현재 대법원 특별소송실무연구회 회원 •2016. 3. - 2021. 2. 법률사무소 환 대표 변호사 •2016. 4. - 2019. 4. 경남개발공사 사외이사 •2017. 1. - 현재 경남지방경찰청 징계위원회 위원 •2017. 2. - 현재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2017. 2. - 2019. 1. 경남지방변호사회 총무이사 •2018. 1. - 현재 경남도민일보 칼럼니스트 •2018. 1. - 현재 창원시 교육지원청 징계위원회 위원 •2018. 1. - 2020. 1. 창원지방검찰청 형사상고심의위원 •2018. 3. -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 고문변호사 •2018. 9. - 2019. 8. 부산고등법원 국선변호 운영위원회 위원 •2019. 1. - 현재 경상남도 지방세 심의위원회 위원 •2019. 7. - 현재 경상남도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위원 •2020. 10. - 현재 경상남도 교육청 교권보호위원회 위원 •2021. 3. - 현재 법무법인 지승 대표변호사 수상 •2015. 2. 경남지방변호사회 표창장 수상 •2016. 2. 29. 대한변호사협회 청년변호사상 수상 •2019. 1. 28. 경남지방변호사회 공로상 수상 •2019. 6. 경상남도 교육감 감사장 수상 •2020. 12. 경상남도 도지사 표창장 수상
    • 라이프
    2021-05-24
  • 청송(聽訟)의 정신을 실천해온 명법관!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으로 인생 2막을 열다
    최근 김승휘 법무법인 이우스 대표변호사가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해 나눔 문화 확산에 동참했다.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김 변호사는 최근 1억 원을 약정해 광주 12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했다. 김승휘 변호사는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가족들의 응원으로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뒀던 나눔을 실천하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가입 소감을 밝혔다. _박미희 기자 김승휘 변호사는 덕망 있는 법조인이다. 그의 고향은 전남 해남 산이 진산리, 2남 4녀 중에 넷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명석한 두뇌로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는 산이 초·중학교와 광주살레시오고, 서울대학교 공법학과(88학번)을 졸업한 뒤 사법시험(40회)에 합격해 사법연수원(30기)를 수료했다. 2001년 판사로 임용된 후 광주지법 해남지원, 광주고법 판사, 창원지법 거창지원장, 광주지법 부장판사를 역임한 뒤 올해 2월 퇴임했다. 20여 년 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하고 최근 법무법인 이우스 대표변호사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는 ‘광주 12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해 평소 품고 있던 사회공헌의 뜻을 실천했다. “평소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을 인생에 있어 꼭 한번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면서 평소 품었던 사회공헌의 뜻을 실천하는 마음으로 회원 가입을 하게 됐습니다. 돈이라는 것이 내 손에 쥐어져있으면 다시 내보내는 것이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 보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먼저 회원 가입을 하고 앞으로 사회공헌의 뜻을 실천할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곁에서 제 뜻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준 아내(강윤희 씨)와 가족들이 있어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웃음).” 명법관으로 이름이 높았던 그가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 질문에 김승휘 변호사는 좋은 판결을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 했던 삶과 법관으로서 인간적인 고뇌에 대해 말했다. “2001년 2월 19일에 임용돼서 2021년 2월 18일에 퇴임식을 가졌으니 신기하게도 딱 20년간 법관생활을 했네요. 어려서부터 장래희망이 훌륭한 법관이 되는 것이니, 주어진 길에서 최선을 다 했어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이지만 사실상 법관의 삶을 들여다보면 남다른 무게가 있어요.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인데 그런 불안전한 존재로 한 사람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주어진 자리에서 좋은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 했습니다. 20여 년간 최선을 다 했기에 이젠 그 무게를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었어요(웃음).”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우며 현명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던 나날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에 대해 묻자, 김승휘 변호사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2002년 형사합의재판부 사건으로 맡았던 강도사건이 기억에 남아요. 3인 합의로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소송방식으로 저는 배석판사로 참여했습니다. 평의를 이뤄내고 판결을 선고하는 당일 아침에 편지 한 장을 받게 됐어요. 초등학교 4학년인 피고인의 딸은 편지를 통해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과 부디 아버지를 용서해달라는 절절한 심경을 토로했어요. 그 편지를 읽으니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재판장님을 비롯한 배석판사님과 합의를 통해 감경 판결을 내렸습니다. 제가 법관생활을 하면서 대단한 명판결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 판결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지요.” 온화한 인품과 높은 덕망으로 신망을 얻었던 김승휘 변호사. 그에게 법관 생활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이냐고 묻자, 하나의 일화를 전해준다. 이를 통해서 그의 삶을 태도를 읽을 수 있었다. “판사로 임용된 후 고향인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2년간 근무한 적이 있었어요. 근무지에서 차를 타고 1~20분 거리에 부모님이 사시는 고향집이 있었어요. 근무 중에 짬이 나면 점심 먹으러 불쑥 찾아가곤 했었는데, 그러면 부모님이 아주 반겨하셨지요(웃음). 돌이켜보면 법관 생활 중에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은 제가 법관의 길을 가는 데 가장 큰 힘을 주신 분이세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서울의 유명 로펌에 면접을 보고 왔다고 말하니, 다른 사람이라면 좋아할 일을 되레 어머니는 울면서 ‘우리 집안이 가난해서 네 꿈을 접으려하느냐, 너는 장차 훌륭한 법관이 될 사람이다’며 ‘가족 걱정은 하지 말고 네 꿈을 펼치라’며 간곡하게 만류하셨지요. 그렇게 법관생활을 시작해 퇴직한 지금도 20년 전 울먹이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슴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법조인인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고 오늘이 있기까지 가장 큰 힘이 되어주신 부모님.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늘 최선을 다해 살아야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는 법관시절,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나오는 청송(聽訟)의 한 구절인 재어신독(在於愼獨)을 좌우명으로 삼아왔다. 흔히 짧게 줄여 청송(聽訟)이라고 하지만 원문은 ‘청송지본 재어성의 성의지본 재어신독(聽訟之本, 在於誠意, 誠意之本, 在於愼獨)’이다. 즉 ‘송사(재판)를 처리하는 기본은 성의(정성)을 다하는 것에 있고 이에 대한 근본은 혼자 있을 때 몸가짐을 바로 하고 말과 행동도 삼가야 한다’는 의미로 재판에 있어 정성을 다해 듣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변호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그는 그 정신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관되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법관시절, ‘청송(聽訟)’이라는 목민심서의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아왔지요. 하지만 변호사 생활을 시작해보니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비단 송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만사 모든 일을 풀어가는 시작임을 알겠더군요(웃음). 앞으로 의뢰인들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는 사람, 어려움에 처한 의뢰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채 잉크가 마르지 않는 깨끗한 새 명함에는 그의 휴대폰 번호가 뚜렷하게 적혀있다. 의뢰인이 어려울 때면 언제든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그의 생각이 담겨있는 것. “처음엔 휴대폰 번호가 없는 명함과 휴대폰 번호가 적힌 명함 두 가지를 받았어요. ‘왜 그렇냐’고 물어보니 직원이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언제 어떻게 명함을 가려 써야하는지 알 것’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휴대폰 번호가 적힌 명함만 쓰겠다고 했어요. 저도 언젠가 밤낮없이 걸려오는 의뢰인들의 전화를 받다보면 지칠 수도 있겠죠(웃음).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부터 휴대폰 번호가 없는 명함을 갖는 것은 그렇지 않는 것과 그 자세부터 큰 차이가 난다고 생각해요.” 한평생, 법조인으로서 한국사회의 치열한 갈등과 반목을 바라봐온 김승휘 변호사. 그는 끝으로 이번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이 양극화로 인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부문화 확산에 기여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짧은 시간동안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뤄냈어요. 경제 선진국이라는 성과를 얻었지만 반면 양극화와 빈부격차라는 부작용도 얻었지요. 앞서 자본주의를 도입한 서구사회는 사회 전반에 확산된 기부문화 덕분에 이런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국사회도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기부문화가 확산되어야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번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이 기부문화 확산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개인적으로 아너소사이어티라는 이름이 영광스럽고요. 가입식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고 나서는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대중들에게 ‘아너소사이어티’로 사회적 책임을 다 하겠다고 공표한 만큼, 앞으로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나가겠습니다!” [1115]
    • 라이프
    2021-04-23
  • 청도의 푸른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대중제 9홀 골프장 - 청도 펜타뷰 GC 지역사회와 상생을 추구하다
    최근 경북 청도군은 아리유(주) 이건순 대표이사가 청도군 인재육성 장학금 5,000만원을 10년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건순 대표이사는 “대구시 수성구에 운영하던 펜타뷰 골프클럽 본점을 청도군 금천면으로 지난 2월 이전하면서 청도와 상생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을 찾던 중 인재육성장학회를 알게 됐다”며 “장학금 기탁은 청도군의 미래와 함께하는 뜻 깊은 일”이라는 말을 전했다. 주간인물은 청도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지역사회와 상생을 추구하는 펜타뷰 골프클럽의 이야기를 담았다. _박미희 기자 경산시에서 약 10분, 대구시 수성구에서 약 40분 거리인 경북 청도군 금천면에 위치한 펜타뷰 골프클럽. 이곳은 청도의 푸른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대중제 9홀 골프장이다. 골프장으로 가는 길은 봄이면 꽃망울을 틔우는 복사꽃의 향연을, 여름이면 초록으로 물들 듯 짙은 녹음을, 가을이면 가을산을 수놓는 낙엽을, 겨울이면 청명한 하늘을 만끽할 수 있다. 청도의 자연을 필드 삼아, 도심을 벗어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펜타뷰 골프장은 대중제 9홀 골프장으로 보기 드물게 ‘가성비’와 ‘최고급 서비스’,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기존의 대중제 9홀 골프장은 보통 18홀 골프장에 비교해 열악한 시설과 만족스럽지 못한 코스와 부족한 서비스로 저렴한 그린피 정도를 제외하면 골퍼들의 환영을 받기 힘들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통념을 완전히 깨는 곳이다.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골프장의 코스를 평가하는 잣대로 페어웨이 폭이나 전장을 생각하기 쉽지만 비교적 길지 않은 코스에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재밌는 라운딩을 할 수도 있습니다. 거리가 길지 않아 여성 아마추어 골퍼들이 즐기는 코스들도 많아요. 무엇보다 경산과 청도를 연결하는 69호 지방도와 연결돼 있어 대구 수성구에서도 40분이면 도심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라운딩을 즐길 수 있어요.” 5번홀 (파5) 페어웨이에서 볼 수 있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전경을 뜻하는 펜타뷰. 그 이름처럼 청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뛰어난 경관은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이다. “5번홀 (파5) 페어웨이에서 볼 수 있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전경은 대중제 골프장이라고 하기엔 무색할 정도로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보다 아름답게 코스를 가꾸기 위해 곳곳에 나무와 꽃을 심고 있어요. 요즘은 골프 대중화로 인해 골프 인구가 젊어졌지요. 젊은 골퍼들이 아름다운 필드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코스 곳곳에 포토존을 준비하고 있어요.” 펜타뷰 골프장은 올해 초, 재단장을 하고 새로운 청도의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로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라운딩을 즐기고 싶은 골퍼들의 사랑을 받아 전일 매진 사례를 겪고 있다. 앞으로 골프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청도의 특산물을 알릴 수 있도록 골프장 내 특산물 전시장을 마련해 지역사회와 함께 상생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청도군과 함께 뜻을 모아 골프장 한편에 특산물 전시장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많은 골퍼들에게 청도의 우수한 특산물을 알릴 계획이에요. 전시관에서 구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온라인 마켓을 통해서도 구매할 수 있도록 해 농가의 소득증대와 청도 특산물 홍보에 기여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삼청의 도시, 청도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요.” 이번 장학금 기탁도 지역사회와 상생을 추구하고자하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앞으로도 꾸준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지역사회와 더불어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이를 통해 청도의 대표 관광명소로 성장하는 것이 꿈이란다. “앞으로 아름다운 골프장으로 지역의 새로운 명소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 이를 통해 전국의 골퍼들에게 꼭 찾아가보고 싶은 명품 골프장을 만드는 것이 꿈이에요. 더불어 지역사회와 상생, 발전하는 기업의 성공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1115]
    • 라이프
    2021-04-23
  • <제7회 대구광역시 장애인 대상> 수상! ‘장애를 딛고 이룬 봉사의 삶으로 시각장애인들의 또 다른 눈이 되어준 사람’
    최근 대구시는 제7회 대구광역시 장애인 대상 수상자로 ‘장애 극복’ 부문에 김재룡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을 선정했다. 김재룡 회장은 불의의 사고로 실명해 중증 시각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극복하고 대구시각장애인연합회 달서구지회장, 대구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 회장, 대한안마사협회 대구지부장을 역임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적극적인 복지증진 활동을 이뤄내 지역사회에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대구시는 장애를 극복하고 자립에 성공해 타인의 귀감이 되는 장애인과 장애인을 위해 헌신 봉사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한 개인과 단체를 매년 발굴해 장애인 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주간인물은 장애인 인식 개선과 복지 증진에 앞장선 김재룡 회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이 상은 제가 아니라 대구시각장애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도와주신 많은 분들을 대신해서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대구시각장애인들의 복지증진과 권익향상,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웃음).” 수상 소감을 밝히는 김재룡 회장. 그는 장애를 극복하고 따뜻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한 인물이다. 그의 고향은 경북 의성, 2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유년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그 후유증으로 16살이 되던 해 망막박리 판정을 받고 중증장애인이 된 것. 하지만 그는 역경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노력했다. 대구대학교 부설 광명학교와 대구미래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그는 특유의 근면성실함으로 일찍이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고 이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봉사의 길로 들어섰다. 대구시각장애인연합회 달서구지회장, 대한안마사협회 대구지부장을 역임한 그는 2014년에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으로 시각장애인들의 복리증진과 권익향상을 위해 일하고 있다. 2천 200명의 회원들로 구성된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는 시각장애인들이 세상과 차별 없이 교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보행교육, 점자교육, 컴퓨터 교육과 같은 기본적인 교육과 자립을 위한 진로적성 교육을 하고 있고 시각장애인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생활이동지원센터, 시각장애인 예술단과 평소 경로당을 갈 수 없는 중증노인시각장애인을 위한 시각장애인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경증, 중증 시각장애인들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회원 가입을 할 수 있다. 그는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들의 또 다른 눈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다양한 활동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일에 대해 묻자, 그는 장애인 복지증진을 위한 노력상에 대해 말했다. “협소하고 노후화돼 불편함이 컸던 회관을 2016년에 지금의 명덕네거리 자리로 이전한 일이 기억에 남아요. 지하철 1호선과 3호선이 환승되는 명덕역에 인접해 접근성이 좋고 흩어져 있던 산하기관을 한곳에 모을 수 있어 행정의 효율성도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지하철 안내방송 광고를 통해서 연합회를 몰랐던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에게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를 알리는 계기가 됐어요. 이를 통해 회원들과 후원자가 늘어나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습니다. 그리고 평소 경로당을 갈 수 없는 중증노인시각장애인을 위해서 시각장애인 주간보호센터를 마련한 일도 기억에 남아요. 이 모든 일은 연합회에 따뜻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후원자들과 권영진 시장님, 대구광역시청의 성원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웃음).” 김재룡 회장은 2014년 3월부터 대구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회장을 맡으면서 시각장애인들에게 볼링, 골볼, 육상, 골프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통한 재활의 기회를 제공했다.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9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등 장애인 체육활성화 및 발전에 기여해왔다. “장애인들도 자신감을 가지면 할 수 있는 일을 앞서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 늘 안타까웠어요. 생각보다 시각장애인들이 도전할 수 있는 스포츠 영역도 다양합니다. 다양한 스포츠에 도전해 재활의 기회를 얻고 사회성과 자신감을 기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열심히 훈련한 선수들이 전국체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서 더욱 보람을 느껴요(웃음).” 그는 숨은 독지가로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다. 매년 10명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50만원 씩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꾸준한 나눔을 실천해왔다. 지난 1월,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는 설을 맞아 대구 중구청, 달서구청, 남구청을 찾아 라면 200box, 떡국 떡 200kg, 간편조리식품 30세트 등 각각 570만원 상당의 이웃돕기 성품을 기탁했다. 전달받은 물품은 대구 중구, 달서구, 남구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됐다. “개인적으로 하는 장학금 기탁은 내세울 것이 못 되고요(웃음). 올해 설을 맞이해 대구 중구청, 달서구청, 남구청에 이웃돕기 성품을 기탁한 것은 코로나19로 어려울 때, 사회에서 받은 것을 되돌려준다는 의미에서 회원들과 뜻을 모았어요.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어려울 때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기도 한다는 인식 개선을 이뤄내고 싶었습니다(웃음).” 1994년 설립된 대구희망신협은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 회원들과 그 가족들의 힘으로 만든 조합으로 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대구시각장애인들의 가족들을 위한 장학금을 지원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사업자금을 지원해 시각장애인들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한편,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는 ‘흰지팡이의 날’, ‘대구시각장애인 복지대회’, ‘점자의 날 기념행사’ 등 다양한 연간 행사를 열고 있다. 코로나19로 행사 개최에 어려움이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의 권리를 알리고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젠 장애인을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이 변화해야할 때라고 생각해요. 장애인을 단순히 불쌍한 사람, 도움을 받아야하는 사람으로 바라보지 말고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바라봐주세요. 장애인들이 장애를 딛고 사회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비장애인들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웃음).” [1115]
    • 라이프
    2021-04-23
  • <제7회 대구광역시 장애인 대상> 수상 ‘장애를 딛고 이룬 봉사의 삶으로 시각장애인들의 또 다른 눈이 되어준 사람’
    최근 대구시는 제7회 대구광역시 장애인 대상 수상자로 ‘장애 극복’ 부문에 김재룡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을 선정했다. 김재룡 회장은 불의의 사고로 실명해 중증 시각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극복하고 대구시각장애인연합회 달서구지회장, 대구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 회장, 대한안마사협회 대구지부장을 역임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적극적인 복지증진 활동을 이뤄내 지역사회에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대구시는 장애를 극복하고 자립에 성공해 타인의 귀감이 되는 장애인과 장애인을 위해 헌신 봉사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한 개인과 단체를 매년 발굴해 장애인 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주간인물은 장애인 인식 개선과 복지 증진에 앞장선 김재룡 회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이 상은 제가 아니라 대구시각장애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도와주신 많은 분들을 대신해서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대구시각장애인들의 복지증진과 권익향상,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웃음).” 수상 소감을 밝히는 김재룡 회장. 그는 장애를 극복하고 따뜻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한 인물이다. 그의 고향은 경북 의성, 2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유년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그 후유증으로 16살이 되던 해 망막박리 판정을 받고 중증장애인이 된 것. 하지만 그는 역경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노력했다. 대구대학교 부설 광명학교와 대구미래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그는 특유의 근면성실함으로 일찍이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고 이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봉사의 길로 들어섰다. 대구시각장애인연합회 달서구지회장, 대한안마사협회 대구지부장을 역임한 그는 2014년에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으로 시각장애인들의 복리증진과 권익향상을 위해 일하고 있다. 2천 200명의 회원들로 구성된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는 시각장애인들이 세상과 차별 없이 교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보행교육, 점자교육, 컴퓨터 교육과 같은 기본적인 교육과 자립을 위한 진로적성 교육을 하고 있고 시각장애인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생활이동지원센터, 시각장애인 예술단과 평소 경로당을 갈 수 없는 중증노인시각장애인을 위한 시각장애인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경증, 중증 시각장애인들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회원 가입을 할 수 있다. 그는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들의 또 다른 눈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다양한 활동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일에 대해 묻자, 그는 장애인 복지증진을 위한 노력상에 대해 말했다. “협소하고 노후화돼 불편함이 컸던 회관을 2016년에 지금의 명덕네거리 자리로 이전한 일이 기억에 남아요. 지하철 1호선과 3호선이 환승되는 명덕역에 인접해 접근성이 좋고 흩어져 있던 산하기관을 한곳에 모을 수 있어 행정의 효율성도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지하철 안내방송 광고를 통해서 연합회를 몰랐던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에게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를 알리는 계기가 됐어요. 이를 통해 회원들과 후원자가 늘어나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습니다. 그리고 평소 경로당을 갈 수 없는 중증노인시각장애인을 위해서 시각장애인 주간보호센터를 마련한 일도 기억에 남아요. 이 모든 일은 연합회에 따뜻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후원자들과 권영진 시장님, 대구광역시청의 성원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웃음).” 김재룡 회장은 2014년 3월부터 대구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회장을 맡으면서 시각장애인들에게 볼링, 골볼, 육상, 골프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통한 재활의 기회를 제공했다.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9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등 장애인 체육활성화 및 발전에 기여해왔다. “장애인들도 자신감을 가지면 할 수 있는 일을 앞서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 늘 안타까웠어요. 생각보다 시각장애인들이 도전할 수 있는 스포츠 영역도 다양합니다. 다양한 스포츠에 도전해 재활의 기회를 얻고 사회성과 자신감을 기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열심히 훈련한 선수들이 전국체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서 더욱 보람을 느껴요(웃음).” 그는 숨은 독지가로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다. 매년 10명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50만원 씩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꾸준한 나눔을 실천해왔다. 지난 1월,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는 설을 맞아 대구 중구청, 달서구청, 남구청을 찾아 라면 200box, 떡국 떡 200kg, 간편조리식품 30세트 등 각각 570만원 상당의 이웃돕기 성품을 기탁했다. 전달받은 물품은 대구 중구, 달서구, 남구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됐다. “개인적으로 하는 장학금 기탁은 내세울 것이 못 되고요(웃음). 올해 설을 맞이해 대구 중구청, 달서구청, 남구청에 이웃돕기 성품을 기탁한 것은 코로나19로 어려울 때, 사회에서 받은 것을 되돌려준다는 의미에서 회원들과 뜻을 모았어요.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어려울 때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기도 한다는 인식 개선을 이뤄내고 싶었습니다(웃음).” 1994년 설립된 대구희망신협은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 회원들과 그 가족들의 힘으로 만든 조합으로 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대구시각장애인들의 가족들을 위한 장학금을 지원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사업자금을 지원해 시각장애인들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한편, 대구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는 ‘흰지팡이의 날’, ‘대구시각장애인 복지대회’, ‘점자의 날 기념행사’ 등 다양한 연간 행사를 열고 있다. 코로나19로 행사 개최에 어려움이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의 권리를 알리고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젠 장애인을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이 변화해야할 때라고 생각해요. 장애인을 단순히 불쌍한 사람, 도움을 받아야하는 사람으로 바라보지 말고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바라봐주세요. 장애인들이 장애를 딛고 사회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비장애인들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웃음).” [1115]
    • 라이프
    2021-04-23
  • 차세대 국가대표 재목감 많은 창원 “전국 일등 야구 도시로 만들고파”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시기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창원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올해 초 제3대 회장 선출이 이뤄졌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2019년 10월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됐던 김정엽 회장이다. 유효 투표자수 69명 중 35표 득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 1년여의 짧은 임기 동안 창원시 100년 야구 역사상 최초의 ‘여자야구단(창미야)’ 창단, ‘범한배 전국중학야구대회’ 개최 등 야구에 대한 열정을 유감없이 발휘함과 더불어 합리적 협회 운영 및 투명한 행정으로 회원에게 두터운 신망과 신뢰를 얻고 있는 김 회장. 앞으로 임기 4년 동안 “서로가 믿을 수 있도록 깨끗하게 운영하고 회원의 뜻을 모으기 위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며 불굴의 의지를 보인 그의 여전히 식지 않은 열정과 뚜렷한 공약을 창원 88올림픽야구장에서 들어봤다. _김민진 기자 창원시 관내 엘리트 야구 활성화 및 대회 개최를 목적으로 2005년 4월 ‘창원시야구협회’로 첫 출범했던 ‘창원시야구소프트볼협회’는 2016년 8월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이 통합되어 명칭을 개정하여 재출범했다. 현재 야구인의 규모는 생활체육 동호인 5,500명, 엘리트 학생선수 500명으로 약 6,000명이 등록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관내 엘리트 야구팀에서는 해마다 다수의 KBO 프로선수와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하고 있다. 김정엽 회장은 전문 야구인 출신은 아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협회의 발전과 토대를 갖추는 데 노력해 왔다. 과거 금전적 사고와 불협화음 등으로 보궐선거를 치르면서 갈라질 수밖에 없었던 회원들 간의 불신 속에 무엇보다 단합과 소통의 장을 만들고자 했던 김 회장은 이번 3대 선거를 통해 개혁과 변화를 갈망하는 회원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자 하는 포부를 밝혔다. ‘같이하는 회원, 함께 가는 협회’ “사실상 인프라가 열악한 상황이긴 합니다만, 완벽하게 갖춰있지 않더라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창원 시내 단 한 개뿐인 낙후된 시설의 인조잔디구장, 고교 야구팀 부족 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유소년 야구 위축 등이 있으나 이에 불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고교야구(U19)’ 창단과 ‘창원야구교실’을 통한 예비 꿈나무 발굴을 계획 중에 있지요. 창원시 향토기업의 스폰서십을 통한 대회 개최로 엘리트 야구 부문의 경기력 향상과 창원시민야구교실을 통해 취약계층(장애우·여성·저소득 가정)의 야구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습니다. 창원시장기, 한마음대축전 등 다수의 동호인야구대회 개최로 생활체육 활성화에도 기여하며 야구 경력 단절 선수들의 제2의 삶을 지원하는 정책 개발과 야구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진보적 제도 개선으로 명실상부한 야구도시 창원으로 발돋움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대기가 줄을 잇는 여자야구단 ‘창미야’ 14살 학생부터 56세 주부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아우르다 “다른 종목과 달리 야구는 ‘희생번트(러너가 다른 베이스로 전진할 수 있도록 두 아웃이 발생하기 전에 의도적으로 공을 번트하는 타자의 행위)’라는 정신이 필요하다”며 “협회는 협력을 위한 징검다리로 존재한다”고 김 회장은 피력했다. 또한 실력적으로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먼저는 ‘인성’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요즘 안타까운 소식이 적지 않은 스포츠맨십에 대해서도 콕 집어 말했다. 현재 전국 어디에도 없는 여자 야구 실업팀 창단의 기초 마련과 여자야구 활성화, 창원시 리틀야구·전국 초등학교 야구 대회 유치 등으로 야구 꿈나무 육성 및 지역 경제 공헌하기, 만 50세 이상 시니어 야구단 활동으로 새로운 사회인 야구 대회 개최, 현 야구장 시설 현대화, 진해 야구장 신설 등 임기 동안 반드시 이루어 내겠다는 김 회장의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공약들이 회원들과 함께 꼭 이루어내기를 응원한다. [1114]
    • 라이프
    2021-04-16
  • 이백년 역사가 깃든 경주 고택에서 꿈같은 하루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던 명예로운 부자, 경주 최씨. 그들의 집성촌이 있는 교촌마을은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잘 보여주는 명소다. 명망가의 유서 깊은 고택이 이젠 역사와 문화를 함께 배우고 공유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 중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0호’로 지정된 석등이 있는 석등있는 집은 이백 년간 내려온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이 깃든 곳이다. _박미희 기자 이백여 년간 내려온 역사가 깃들어 있는 석등있는 집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문화유산이다. 이 고택은 신라시대 궁궐과 절을 받치고 있던 신라시대의 돌을 가져와 세운 고택. 20세기 후반 경주 일대 문인과 화가들이 즐겨 찾던 문화의 장으로 당대 예술가들이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교류의 장이었다. 아직도 봄이면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튼튼한 결실을 맺는 350년 수령의 모과나무와 200년 된 산수유, 탱자나무, 회양목이 그 전설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올해 서른다섯인 최재광 대표는 경주 최씨의 후손(정무공 13대손, 최치원 27대 손)으로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바텐더로 활동하다 귀국해 이곳 교촌마을에서 카페와 고택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선대의 숨결이 살아있는 공간을 지켜나가는 청년, 그에게 고택의 스토리를 물었다.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남다른 심미안을 지닌 분이셨어요. 그 당시 막대한 자산을 들여서 이 집을 지으셨죠. 백 년 전, 신라시대 궁권과 절을 받치고 있던 돌을 가져와 이 집을 지었기에 이 고택은 이백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원에 있는 석등은 약 9C 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하단 대석 네면에 십이지신장이 새겨진 석등입니다. 지금도 아흔이 넘으신 할머니가 이 집에 살고 계세요. 지금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350년 수령의 모과나무와 200년 된 산수유, 탱자나무에서 얻은 과실로 청을 만들어 차를 내놓고 있어요.” 고택에서 머무는 꿈같은 하룻밤.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려는 외국인과 각국 대사관 직원들, 유명 연예인들도 이곳에서 고택의 낭만을 즐겼다. 정자에 앉아 차를 한 잔 즐기며 바라보는 맑은 개천과 아름다운 월정교는 남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이곳 카페는 일상의 바쁨을 내려놓고 쉬어가기 좋다. 최씨 집안의 솜씨로 그의 어머니가 만든 한과와 수제청으로 끓인 차는 고향에서 어머니의 밥상을 마주한 것처럼 정감 있다. 미국 교환학생으로 이민을 가 해외에서 술을 공부하며 바텐더로 활발한 활동을 한 최 대표는 유능한 바텐더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해외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잠시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 어머니가 운영하던 고택 스테이와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 전통주와 서양의 증류주 문화를 결합한 우리술을 개발해 내놓는 것이 목표란다. “건강한 지역의 특산물을 사용한 로컬푸드처럼 칵테일도 다양한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한 건강한 술이 대세에요. 앞으로 외국에서 보고 배웠던 증류주 문화를 바탕으로 한국 전통주를 새롭게 재해석해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잊혀져가는 우리 전통주의 가치를 알리고 싶어요.” [1114]
    • 라이프
    2021-04-16
  •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빛의 모양을 만나는 곳! 보스케, 자연에 녹아들다
    “안도 타다오 좋아하시죠?” 이 질문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창훈 대표와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2020년 경상북도 건축문화상 최우수상에 선정된 카페 ‘보스케’는 뛰어난 공간미와 자연과의 훌륭한 조화가 돋보이는 곳이다. 현대 건축의 거장이자 노출 콘크리트 공법의 대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지중미술관의 모습과도 닮은 이곳. 지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작품으로서 완성된 건축물’을 설계한 이는 누구일까? 오랜 검색 끝에 찾은 설계의 주인공은 건축사사무소 원일을 이끄는 이창훈 대표였다. 그를 무조건 만나고 싶은 마음에 대뜸 ‘안도 타다오를 좋아하시냐’ 물었고, ‘엄청난 팬’이라 답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화색이 묻어남을 느꼈다. 기대에 찬 마음으로 기다리길 몇 초, 이 대표로부터 ‘보스케에서 만나자’는 반가운 응답을 얻어냈다. _정효빈 기자 벚꽃이 만개한 3월의 어느 날, 이창훈 대표를 만나기 위해 경주시 현곡면에 자리를 둔 카페 보스케로 향했다. 언덕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너른 전원풍경과 조화를 이룬 근사한 회색빛 건축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자칫 차가운 느낌만을 주는 것에 반해 자연에 녹아들 듯 조화를 이룬 보스케는 낯선 차가움보다는 자연스러운 안락함을 느끼게 하고, 귓가에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은 이 멋들어진 건축물을 마주한 감동을 증폭시킨다. ‘하늘, 바람, 그림자 등 자연을 담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이창훈 대표는 ‘건축물이 단순해야만 자연을 공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며, 건축을 할 때도 재료의 물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운 건축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건물 형태는 땅에 의해서 많은 것이 결정됩니다. 경사지고 제멋대로 생긴 땅을 만났을 땐 고민조차도 즐거워지죠. 그런 땅에서 창의적인 건축물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카페 보스케 역시 경사진 대지를 최대한 이용해 건물을 땅에 살짝 올려놓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싶었습니다. 삼각형 중정을 구심점 삼아 자연과 어우러지도록 했고, 유기적으로 공간을 배치해 자연스럽게 현재의 형태가 나오게 됐습니다.” 이 대표의 안내에 따라 카페 진입부로 발걸음을 옮기자, 좁고 긴 공간에 들어오는 한 줄기 빛과 물 흐르는 소리가 선물처럼 다가온다. 미로처럼 설계된 카페 내부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공간을 마주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대지 본래의 경사면을 활용해 다양한 레벨로 구성된 공간은 자연에 녹아들며 감각적인 분위기가 완성됐다. 삼각형 중정 꼭대기의 빈 공간을 바라보니, 빛이 드나드는 시간까지 고민한 흔적이 여실히 느껴진다.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삼각형 중정입니다. 이 공간 안에 물이 채워짐으로써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공간이 삼각 형태로 갇혀있다 보니 비가 오는 날이면 이 안에서 들려오는 물방울 소리가 마치 피아노 선율 같아요. 햇살이 좋은 2시쯤 삼각형 코너엔 하트가 걸리고, 수 공간 위로는 구름이 넘나들죠. 비워진 중정 공간이지만 햇살, 바람, 구름 등으로 채워지는 공간입니다.” 건축물이 풍경을 가리지 않고 주변 경관에 녹아들도록 한 안도 타다오의 지중미술관처럼, 카페 보스케 역시 주변 경관에 녹아들어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지중미술관에 방문한 후, 형태건축보다 공간에 집중하는 설계로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는 이창훈 대표. 건축에 관한 그의 철학이 바뀐 지 오래 지나지 않아 현재 보스케 부지를 만나게 됐고, 지중미술관의 감성을 이곳으로 옮겨오고 싶었다고. 좋은 공간에 관한 이창훈 대표의 믿음 역시 “건축은 공간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물의 형태는 노후되면서 많은 것들이 변하지만 공간은 영원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공간을 가진 건축물은 외형에서도 자연스럽게 그만의 매력을 가지며 가슴 속 깊은 곳의 감정까지 끌어내기도 하죠. 편안하고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좋은 공간이라 생각해요. 이런 맥락에서 아무리 멋진 공간도 이용자가 없다면 가치가 없겠지요.” 카페 보스케와 같이 건축사가 자신의 생각을 많이 담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수도권을 벗어난 지방에서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건축물의 완성도를 충족하자면 수익성은 다소 배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익을 목적으로 한 건축주 입장에선 도전인 것이다. 이 대표 역시 “좋은 건축주와 좋은 부지를 만나는 행운이 따랐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보스케 완공 후부터 좋은 공간을 가진 건축물을 짓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저를 많이 찾아와 주십니다. 이런 작품 활동을 할 기회가 많이 생겨서 저 역시 감사한 마음이고요. 현재는 지방에서 이런 부류의 건축물을 접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런 특색 있는 건축물이 하나, 둘 생김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뀔 것이며, 좋은 건축물도 많이 생겨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 땅에 맞는 건축물을 구상하고, 그 땅에 맞는 공간을 연출하는 것’이 자신의 평생 일이라 여긴다는 이창훈 대표. 그는 사람들 간의 자연스러운 소통이 이루어지는 자그마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제가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은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약속이나 한 듯 자연스럽게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곤 했어요. 마음만 맞으면 즉흥적으로 아궁이를 만들고, 그 위에 솥그릇을 걸어 전도 구워먹고 막걸리도 한 잔씩 하곤 하셨죠. 동네 어른들은 약속도 없이 왜 그곳에 모였을까요? 동네에서 가장 편안하고 좋은 공간이라서가 아닐까요? 제가 바라는 마을이 바로 그거예요. 편안하고 아무 약속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는 마을요!” [1114]
    • 라이프
    202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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