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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대통령표창 - 정직한 땀의 결실, 따뜻한 나눔으로 바꾼 40년
    한국자유총연맹 김해시지회 정대헌 회장이 지난달 28일 개최된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식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정 회장은 지난 2021년부터 한국자유총연맹 김해시지회장을 맡아 자유안보사업, 북한이탈주민 정착 돕기 사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시민들의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실천해온 인물이다. _박미희 기자 “나눌수록 되려 받는 행복, 이젠 많은 분들과 함께 봉사의 기쁨을 나누고 싶어요(웃음).” 정대헌 회장은 지역사회의 숨은 독지가로 꾸준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해왔다.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CEO인 그는 40년 경력, 자동차 정비 달인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고향은 경남 창원 북면 감계리, 2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찍이 자동차 정비사로 사회 첫발을 디뎠다. “지인의 추천으로 마산 신기사에서 정비사로 입문했어요. 군 제대 이후 현대자동차서비스정비센터에 입사해 십여 년간 자동차 판금 수리를 했습니다. 초창기,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기초부터 차근차근 이론과 실무를 다져나갔죠. 오랫동안 쌓은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정대헌 회장은 1989년,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창업에 도전해 경남 마산에서 ‘신화정비’를 설립했다. 몇 년 후, 경남 창원에서 ‘대명자동차정비’로 이전했고 2007년, 김해시 진영읍 본산에 1급 본산종합자동차정비를 열어 성업 중에 있다. 1급 본산종합자동차정비는 고급 자동차 판금 도색 전문 업체다. 손님들 사이에서는 ‘못 고칠 자동차가 없고 못 고칠 부분이 없는 만능 정비업소’로 입소문이 났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고품질의 정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 오랜 세월 현장에서 쌓은 뛰어난 기술력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동차 정비에 관한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신 판금·도색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철저한 자동차 수리 후 검사로 고객 만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40년 경력, 자동차 정비의 달인에게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IMF 외환위기, 거래처들의 연이은 부도로 한때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거래처들이 잇따라 부도가 나면서 대금을 받을 길이 막막했어요. 그야말로 죽을 고비에 처했죠. 오죽 막막했으면 ‘낙동강에 확 뛰어들까’하는 극단적인 생각을 할 정도였죠. 하지만 정비사란 자부심,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버텼어요. 뚝심 있게 한우물을 파며 정직하게 일한 노력이 훗날 다 돌아오더라고요.” 기초부터 탄탄하게 쌓아온 실력. 그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아 그는 다시 사업을 일으킬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에 대해 묻자, 그는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경남은행 상남동 지점장이셨어요. 차 정비를 해 드렸더니, ‘이렇게 정비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제대로 된 사업장을 열어 다시 사업을 하라’라고 격려하시더라고요. 모두가 고치기 어렵다는 차를 잘 정비한 것이 마음에 드셨는지 그날 이후로 오랜 단골이 되셨어요. 엔지니어로서의 역량을 높이 인정해 주셔서 훗날 자본금을 마련하는데도 계속 도움을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감사할 따름이죠(웃음).” 올해 육십셋의 정대헌 회장은 뜨거운 현역이다. 베테랑인 그는 정비가 어려운 고급 차도 손쉽게 정비한다. 차를 점검하는 눈빛이 사뭇 매섭다. 자동차 외관만 봐도, 소리만 들어도 차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단번에 알아보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 40년 숙련 기능인의 우수한 정비 기술은 전문가들도 인정할 정도다. “자동차 정비 일은 하면 할수록 어렵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깊이를 더할수록 더 많은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죠. 제대로 된 자동차 정비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늘 배우는 자세로 항상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있어요(웃음).” 땀과 눈물로 만들어온 세월, 그 세월과 함께 쌓아온 덕망은 이젠 그의 아들, 정규화 씨가 이어가고 있다. 2세 경영인으로 일선에서 함께 일하며 가업을 잇고 있는 것. 현장에서 땀 흘리는 아들에게 정 회장은 “정비보다 더 어려운 일이 사람을 대하는 것”이라며 “저마다 다른 손님들의 다양한 ‘Needs&Wants’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늘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라며 자신의 경영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서 꾸준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왔다. 지난 10여 년 간 창원시 체육 문화 발전을 위해 봉사를 해왔고 김해로 사업장을 옮긴 이후론 줄곧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해왔다. 2017년 한국자유총연맹 김해시지회 운영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해 2018년,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2021년, 김해시지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자유안보사업, 북한이탈주민 정착돕기 지원사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시민들의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한국자유총연맹 김해시지회는 1,000여 명의 회원들이 단단한 결속력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다. 특히 북한이탈주민 정착돕기 지원사업에 적극적이다. “김해 지역에 500여 명의 북한이탈주민들이 있어요. 김해시지회는 추석맞이 어울림한마당, 간담회, 경제문화탐방 등을 통해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김해시지회는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한 문화체험 활동과 각종 행사를 통해 문화적인 이질감을 해소하고 이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는 추석맞이 어울림한마당’,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는 간담회’를 주최하고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는 경제문화탐방’, ‘통일청소년민주시민교육’을 통해 활발한 소통과 공감을 이뤄내고 있다. ‘함께하는 평화의 봄’ 평화통일 사업에 참석해 북한이탈주민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고 있다. 김해시지회는 2022년, ‘광복 제77주년 나라사랑 태극기 나눔행사’를 개최했으며 2023년에는‘104주년 3·1절나라사랑태극기나눔’ 사업에 동참했다. 호국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희생을 기억하고 시민들의 애국심과 긍지를 높이기 위해 마련된 행사로 500여 명의 회원들이 참석해 차량용·가정용 태극기 500장을 시민들에게 나눴다. “김해시지회는 매년 광복주년 나랑사랑 태극기 나눔행사를 하고 있으며 2023년부터는 3·1절에 가정용 태극기, 차량용 태극기를 시민들에게 배부함으로써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나라사랑의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회원들과 한마음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월남전 참전지회 김해지회와 국리민복 확산과 가치 실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보훈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6.25참전용사 초청 보훈위안잔치, 국가유공자 명패 달아드리기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 정대헌 회장은 여러 캠페인과 행사에 참여해 국민운동 활성화에 기여했다. 지역사회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해왔다. 국토대청결운동을 주도했고 가야문화축제, 진영읍단감가요제 등 김해시 지역문화축제에 참여했고 경남여성단체협의회와 협력해 6.25참전용사 가정에 사랑의 김장나눔 봉사활동을 펼쳤다. 사랑의 집고쳐주기 지원사업에 참여했고 김해시 불우이웃돕기에 성금 200만원과 250만원 상담의 성품을 기탁했으며 2023 사랑의 도시락나눔사업으로 독거노인 및 소외가정에 밑반찬 나눔활동에 동참하는 등 많은 봉사단체를 후원하며 꾸준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왔다. 그는 매년 사업체 수익의 10%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10여 년간, 누적 기부액만 2억 원이 넘어선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들어내지 않고 묵묵하게 실천해온 봉사와 나눔. 그에게 봉사와 나눔은 이제는 일상이자 삶의 원동력이다. “정비소 수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저희 정비소를 찾아주셨기에 사업체를 잘 운영해올 수 있었어요(웃음). 사회에서 받을 것은 되돌려준다는 생각에서 꾸준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어요. 하면 할수록 되려 받는 나눔의 기쁨, 제가 열심히 일하고 밝게 웃는 삶의 원동력이죠(웃음).” 이번 대통령 표창 수상은 시민들의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봉사한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에 대해 정대헌 회장은 “저보다 더 훌륭한 분이 많은데 이렇게 수상을 하게 되어 송구스럽다”면서 “모든 것은 한마음으로 봉사해온 회원들과 도와주신 지역사회 구성원들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지회 발전과 지역사회를 위해 꾸준히 봉사하며 노력하겠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한평생, 열심히 일하고 기쁘게 봉사하는 그는 요즘 새로운 일로 분주하다. 내년 4월, 김해 최초 ‘한국자유총연맹 경남도지부 국리민복가치확산 결의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 김해에서 최초로 진행되는 이번 한국자유총연맹 경남 시.군18개 지역 단합회를 통해 회원들 간의 화합과 소통을 이뤄낼 계획이다. 김해에서 치러지는 첫 대회인만큼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합심해 노력하고 있다. 2024년에는 김해시에서 제105회 전국체육대회 개최를 앞두고 있어 김해시 홍보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내년 4월, 개최되는 한국자유총연맹 국리민복가치확산 결의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해에서 치러지는 첫 대회인 만큼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민·관의 뜻을 모을 계획입니다. 단합회 개최로 회원들 간의 활발한 교류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단체의 화합과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많은 사회구성원들의 뜨거운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웃음).” [1151]
    • 라이프
    2023-07-25
  • [포커스] 값싼 중국산에 밀리는 한국 치자를 지키는 ‘치자명인’, 약용작물 마이스터가 권하는 회춘 비결은?
    이성만 대표는 농업 분야의 최고장인, 농업 마이스터(약용작물)다. ‘농업 마이스터’는 재배품목에 대한 전문기술과 지식 경영 능력 및 소양을 갖추고 있으며 농업경영 기술 또는 교육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농업경영인을 대상으로 시험 등의 절차를 거쳐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지정한 자를 말한다. 농업 마이스터 지정은 영농경력 15년 차 이상을 대상으로 3차례 심사(필기시험, 역량평가, 현장심사)등을 통해 선정된다.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는 만큼 농업 마이스터는 농업 분야 최고 권위자에게 주어지는 자격으로 통한다. 이 대표는 값싼 중국산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는 한국 치자를 지키는 치자명인이다. ‘농업이 천직’이라고 말하는 그는 30여 년간 영농에 종사하며 농업 기술 개발과 교육, 농업 경영에 있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왔다. 자체 브랜드 ‘통영치자’를 통해 통영 특산물, 유기농 치자로 다양한 제품을 개발, 판매하며 한국 치자의 우수성을 알려왔다. 자수성가형 CEO인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100억대 부농의 꿈을 이뤘다. 주경야독으로 행정학(사회복지사)를 졸업하고 경상대 해양식품공학과 석사,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창업대학원 석사를 마친 그는 경상대학교 대학원 생명소재공학 박사 과정을 다니며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 치자와 관련한 다수의 논문과 특허를 출원했고 저서 『치자열매의 재배와 이용』을 편찬한 약용작물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다. 치자명인으로 불리는 이성만 명인은 최근 새로운 도전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_박미희 기자 대한민국 신지식인 선정으로 주간인물을 장식했던 이성만 명인을 통영 도산면에서 다시 만났다. 개척가인 이성만 명인은 코로나19로 경영환경이 어려운 가운데도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작년, 영농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귄위인 ‘농업 마이스터’에 선정된데 이어 메디어스 청춘연구소 센터장으로 변신, 경상대학교 대학원 생명공학과 박사 과정을 다니며 학문적 토대를 쌓고 있다. 오랜만에 마주한 이 명인의 달라진 점은 비단, 그 동안의 공로를 인정받는 여러 가지 사회적 명성 뿐만이 아니었다. 3년 전과 달리 건강하고 풍성해진 머리숱, 탱탱한 피부결로 그는 한결 젊어보였다. “메디어스 제품 하나를 발랐을 뿐이었는데 그동안 자꾸 빠지기만 하던 머리카락이 다시 나더라고요(웃음). 치자를 비롯한 약용작물을 재배와 제품화에 한평생을 받쳐왔는데 이 제품을 써보고는 최첨단 기술인 생명소재 공학의 가치를 피부로 느꼈죠. 그래서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세수하고 메디어스 토너만 뿌리는데도 내가 봐도 피부가 좋아진 것 같아요. 주변에서는 ‘다들 빠지던 머리가 다시 난다’며 ‘정말 회춘하는 거 아니냐’고 신기해하곤 해요(웃음).” 이성만 명인이 권하는 회춘 비결, 메디어스 제품군 2018년, 이성만 명인은 통영 도산면에 3만 여평 농지에 3만 주 가량의 치자나무를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고 있다. 치자의 우수한 성분을 담은 치자비누, 항염성분으로 잇몸건강에 좋은 치자치약, 화장품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약용식물과 화장품에 대한 조예가 남달랐던 그는 최근 메디어스 청춘연구소 센터장으로 변신, 활발한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인체의 가장 큰 장기는 바로 피부입니다. 피부를 건강하게 가꾸는 것은 곧 회춘을 뜻하죠. 메디어스는 생명공학, 바이오, 줄기세포 등에 기반한 인체 섬유아세포배양액을 두피, 얼굴, 여성의 Y존 등에 M.T.S 타공하는 방식이나 피부에 바르는 방식으로 피부를 건강하게 만들어요. 메디어스는 한국의 신경훈 회장(미국의 한의사)이 미국의 연구소에서 인체 섬유아세포를 배양해 한국과 글로벌 시장에 보급하고 있는 제품입니다. 저도 이 일에 동참해 메디어스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웃음).” 열정가인 이성만 명인은 하루가 바쁜 사람이다. 농업 마이스터, 농촌융복합산업, 한국예술문화명인협회, 어촌계협의회 등 모임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신비로울 정도로 약효가 뛰어난 15년 숙성 벌꿀을 상품화해 약식동원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듯 바쁜 와중에도 통영 사랑의 집 짓기 회장, 장애인 복지시설 민들레 운영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메디어스 제품 사용 전/후, 보다 탄력있고 풍성해진 머리결 “평생 ‘농업이 천직’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어요. 어려운 환경을 딛고 반드시 자수성가해서 부농의 꿈을 이루겠다는 꿈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그간 역경도 많았지만, 뛰어난 효능을 지닌 우리 약용작물이 우리 농업의 미래며 한국의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 농업 마이스터로 선진 영농기술을 개발, 보급하고 농업경영 기술을 컨설팅해 영농인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어요!” [1149] [주요약력] •농업회사법인 참솔(주) 대표이사 •대한민국 신지식인 •한국예술문화명인 •농업 마이스터 (현장교수) •메디어스 청춘연구소 센터장 [학력] •경상대 해양식품공학과 석사(수료) 졸업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창업대학원 석사 졸업 •경상대학교 대학원 생명소재공학 박사 과정 재학 중 [사회활동] •통영해란어촌계장 •통영 사랑의 집 짓기 회장 •통영 로컬푸드 회장 •장애인 복지시설 민들레 운영위원장 •대한적십자사 통영지구 건강지킴봉사단 [저서] •치자열매의 재배와 이용
    • 라이프
    2023-05-31
  • 피부 혁명의 아이콘 - 이은희 이은희에스테틱 대표
    에스테틱 운영 19년차 이은희 대표를 만나는 일은 하늘의 별을 보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라고 한다. 단순히 시간을 맞춰 예약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까다로운 절차와 인내의 기다림을 거쳐야 하기 때문. 사전 설문지 35개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을 적어야 하고 개인정보 이용에 동의를 하면 비로소 예약완료가 끝난다. 이후 4개월의 대기 시간을 거치고 난 후, 통화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방문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극한 상황 속에서도 홈케어 코칭 1만 여 건을 달성한 주인공. 피부관리 에스테틱 창업자들의 컨설팅 교육에 힘쓰고 있는 이은희에스테틱의 이은희 대표를 만나기 위해 역시나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거제 지세포로 향하는 길은 설레기만 하다. _장예영 기자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대학진학을 하려던 때 IMF가 왔어요. 아버지께서 실직을 하면서 가고 싶었던 대학을 포기하고 일터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죠. 그 때 첫 직장이 경락 마사지를 전문으로 하는 에스테틱샵이었습니다. 아침 9시에 출근을 해서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퇴근하는 생활이 계속됐어요. 욱신거리는 손목의 통증을 견뎌내면서도 오로지 샵을 직접 운영하고자 하는 꿈 하나로 견뎌 내고 있을 때, 턱에 뾰루지가 하나씩 올라오더니 보기 흉할 정도로 번지기 시작했어요. 경락마사지 오일에 노출이 되었을까 싶어 피부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지요.” 마침 메디컬 스킨케어 분야를 준비하던 피부과 원장과의 인연으로 이 대표는 VVIP고객관리를 맡게 된다. 에스테틱에서 볼 수 없었던 피부 임상테스트 등 의료적인 이론과 지식들은 그녀를 더욱 깊이 있는 피부전문가로 만들었다. 그녀는 “당시의 공부와 경험들이 지금의 나로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병원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었던 이은희 대표. 그녀의 자리는 어느 누구도 채울 수 없는 자리가 되어버렸고 고액 연봉은 그를 증명하게 된다. “일을 잘 할수록 그 영역은 넓어져만 갔습니다. 저를 찾는 분들도 많아지고 잠시도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바빠졌지만 저만의 프라이빗한 샵을 만들고자 했던 꿈은 쉽게 떨칠 수가 없더라구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제 꿈을 위해 퇴사를 하고는 광안리해수욕장 근처에 첫 에스테틱 샵을 열었어요. 피부과에서 인정받은 실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였죠. 함께 일하면서 알게 됐던 지인분이 거제 지세포에 펜션을 운영하신다는 겁니다. 기분전환 삼아 휴식 겸 오게 됐는데 너무나 이곳이 마음에 드는 거예요. 마침 지세포에 에스테틱이 없다는 것을 알고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이 공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오픈 초창기, 아무 연고도 없던 곳이다 보니 고객 한 사람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네일아트, 왁싱, 스킨케어까지 토탈뷰티 에스테틱으로 운영을 시작한 이 대표. “바쁘고 분주했지만 마음 한편엔 답답함도 있었어요. 이유모를 갈증을 느끼고 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정은희 대표님을 알게 되었죠. 파메스틱 론칭의 기회를 얻게 되면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됐습니다. 슈퍼젝션 도입으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셈이에요. 한 번의 방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홈케어 홈코칭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객관리에 중점을 두게 되면서 피부맛집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고 안주하지 않았다. 거제도에서 서울을 오가며 공부해간 그녀는 대학진학을 다시 꿈꾸며 경남정보대학교 국제뷰티학과에 입학을 했다. 뷰티테라피, 아로마테라피 연구를 하고 CIDESCO 수료를 하면서 43개 회원국가에서 취업이 가능한 자격을 보유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멈추지 않는다는 것’, ‘지속적인 노력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 ‘실패해도 계속 도전한다는 것’일 터, 바로 이은희 대표가 그런 사람이다. “고등학교 재학 중인 남학생이 샵을 찾아왔어요. 학업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예민한 피부로 스트레스가 심해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고 교육자 집안이라는 압박감에 너무 힘들어 했었지요. 5회의 케어를 받을 때쯤 눈에 띄게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고, 자신감을 다시 찾은 아이는 성적도 다시 올라 현재 대한민국의 탑 순위 대학으로 진학했어요. 마지막 케어를 받으러 왔을 때 감사해하시던 아버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웃음).” “40대 여자분께서 예민한 피부 케어로 저에게 오셨다가 한결 좋아지셨는데 통영에 있는 친구분들이 다들 놀라셔서 소개를 시켜 달라고 하셨대요. 거제 지세포에 있는 에스테틱이라고 했더니 비웃으시면서 센텀도 아니고 하다못해 창원도 아닌, 거제도 촌구석에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하시더래요. 그런데 그 분들이 지금 대중교통으로 3시간이나 걸려서 저에게 오시고 계세요. 거제도의 교통 특성상 버스를 타면 안 들리는 곳이 없다보니 지세포까지 오려면 하루 시간을 투자해야 하시는데도 고성, 진주, 태안, 강원도, 서울 등에서 오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한 분이 오시면 친구의 친구, 이모, 고모 등 소개 소개를 거쳐 제 찐팬들이 되시곤 하죠. 너무 감사한 일이예요.” ‘우연으로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우연으로 만나는 사람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고 인생을 바꿀 선택지는 스스로에게 있음을 이은희 대표에게 다시금 배워간다. “정은희 대표님의 권유로 인스타 마케팅을 하고 있어요. 그 결과 미국, 베트남, 태국, 일본에서 파메스틱 제품 문의가 들어오고 있어요. 제가 있는 곳이 서울 강남이냐고 물어오세요. 혹 오실 일이 생기면 깜짝 놀라시겠죠(웃음)? 간이과세자였던 절 1년 만에 일반과세자로 만들어 주셨고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게 도와준 분은 정은희 대표님이세요. 저의 영원한 GOD멘토시지요. 저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상황에 길을 만들어주고 성장시켜 주시고 제 삶을 업그레이드 해 주셨어요. 단순한 피부케어가 아닌 중점적인 교육을 전문적으로 하는 피부사관학교를 만들어 정 대표님께 받았던 귀한 가르침을 물려 줄 계획을 하고 있어요. 함께 가는 이 길이 두렵지 않게 저도 제 능력이 필요한 분들에게 나누면서 살고 싶어요.” 초심을 잃지 않겠다며 다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찾았다. 기부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는 이은희 대표. 피부의 미학은 기다림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제는 대한민국의 관문을 뛰어넘어 세계로 뻗어 가고자 한다. 그녀의 간절한 꿈이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1149]
    • 라이프
    2023-05-31
  • "과일선물전문점이 뜬다~!!" - 박소희 로즈애플(ROSE APPLE) 양산점 대표와의 인터뷰
    <로즈애플>은 일반 청과물 가게가 아닌 과일을 선물용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과일선물전문점이다. 2016년 안동점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적으로 40개가 넘는 지점들이 운영되고 있는 전국 최대 과일선물전문점, 로즈애플은 2018년도 양산점을 오픈하기까지만 해도 양산에서 과일선물전문점이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하게 느끼는 이들이 많을 때였다고. 6년 차 운영 중인 양산점은 코로나와 1인 운영 매장 예약 시스템 속에서도 꾸준한 성장으로 억대 매출을 유지 중이다. “고객이 모르는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제 마음에 안 들면 판매하지 않아요”라며 부드럽지만, 뚜렷한 소신이 인상 깊었던 박소희 대표를 통해 그간 스토리를 들어봤다. _ 김민진 기자 Q1. 과일이 메인이 되는 이곳만의 특별한 상품구성 또는 서비스가 있나요? 당연히 첫째는 신선함입니다. 저는 모든 과일을 직접 눈으로 보고 가져와요. 솔직히 장사하면서 직접 시장에 가 발품을 판다는 게 시간적으로나 효율적인 면에서 쉬운 일이 아니죠. 편하게 시장도매인에게 주문하고 배달로 받아볼 수도 있지만,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게 과일입니다. 매번 제 눈으로 보고 품종도 확인하고 이집 저집 비교해야 좋은 과일이 저에게 오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예약제로 과일 순환율이 높습니다. 과일바구니, 과일도시락 등 모두 제 손으로! 정성이 담겨 상품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이다 보니 예약이 필수죠. 예약날짜에 맞춰서 예약분의 150% 정도만 과일을 구매하고, 날짜에 맞춰서 과일 후숙과 과일 선도를 따로 관리하기 때문에 재고 발생 또한 줄일 수 있지요. 선물로 꽃 선물을 많이 하시는데요. 과일 자체로도 꽃만큼 아름다운 과일들이 정말 많습니다. 색상에서부터 모양, 향기까지 정말 다양하지요. 그리고 서비스 차원에서 아름다움이 배가 될 수 있도록 생화 꾸밈을 아끼지 않고 과일의 아름다움을 더욱 끌어올려서 상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Q2. 꼼꼼하게 과일을 검수하지만, 예기치 못한 일로 당황스러운 일도 있었을 것 같아요? 설, 추석에는 양산은 물론 전국에서 택배 주문이 있어요. 기업고객은 물론 개인고객도 많고요. 대목인 명절 2주 정도는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정신이 없지만, 꼼꼼한 제품 검수는 필수입니다! 그런데 이때 택배사의 배송 실수로 아주머니 한 분의 컴플레인이 딱 한 번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요. 창업 초창기에 너무 당황스러운 인신공격까지 받으며 멀쩡한 상품까지 포함해서 그 자리에서 매출의 2/3 이상을 바로 환불해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명절 휴무 내내 일주일 동안 전화로 모진 말을 듣고 대인기피증에 매장을 접으려고 했었는데요. 그때 제 마음을 다독이고 잡아주신 분이 바로 저희 매장 첫 손님이자 처음으로 큰 매출을 기록할 수 있게 해주신 고객이 계십니다. 양산에서 사업을 하시는 이 분에게 장사하는 방법, 다양한 고객을 대하는 스킬, 내가 내 마음을 지키기 등 많은 걸 배우며 지금은 저의 스승님이자 VIP 고객이십니다(웃음). Q3. 순탄치만은 않았던 1인 창업을 통해 만들어진 운영철학이 있을까요? 감사하게도 꾸준히 주문해 주시는 단골이 많습니다. 매번 상품에 만족하시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 고객님들로부터 좋은 기운을 많이 받지요. 그리고 제가 보답하는 길은 당연히 고품질의 과일입니다. 지금은 양산에도 후발업체들이 있어서 사실 고객님들의 선택지가 여러 개 있는데도 4~5년째 저희 매장을 사랑해 주시는 단골분들께 감사할 따름이죠. 요즘은 과일도 새로운 신품종부터 수입이 어렵던 과일, 새로운 과일들이 많은데요. 그런 과일들을 어렵게 구하게 되면 단가가 맞지 않아도 마진이 뚝 떨어져도 단골분들께 먼저 맛보시라고 구성해 드리는 저의 진심을 알고 계속 찾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Q4. 마지막으로 고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대부분 선물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연락을 주시는데요. “중요한 분께 드리니 신경 써주세요”라고 많이들 말씀하세요. 감사한 분들에게 혹은 중요한 행사 간식으로 필요해서 주문하시다 보니 얼마나 업체 선정을 까다롭게 하셨을까.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얼마나 기대하시고 이곳을 선택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혼자 하는 일이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 힘들더라도 앞으로도 지금처럼 변함없이 소중한 고객 한분 한분께 사랑을 담아 선물을 드려 많은 분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1148]
    • 라이프
    2023-04-26
  • 경남 양산 원동, 꿈에 정원, 신록의 아름다움을 담은 숲속 펜션
    봄의 시작을 알리는 향기로운 매화. 흐드러지게 핀 매화밭과 반짝이는 낙동강변 사이로 기차가 들어오는 순매원의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아름다운 고장, 양산 원동. 이곳에 숲속 요정이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숲속 펜션이 있어 인기다. ‘역대급 뷰의 노천 스파’로 SNS에서 화제가 된 꿈에 정원이 바로 그 주인공. 주간인물은 <MBN 돌싱글즈3>의 촬영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양산의 새로운 명소를 담았다. _박미희 기자 잎사귀마다 맺힌 새벽이슬이 반짝이는 신록의 계절. 향기로운 고장, 경남 양산 원동의 꿈에 정원은 연둣빛 새싹이 움튼다. 푸른 산을 병풍처럼 두른 풍요로운 땅, 원동면 내화절골길에 위치한 꿈에 정원은 배종팔 대표가 직접 가꾼 아름다운 수목들로 꾸며진 숲속 펜션이다. 부산에서 부동산 임대업과 건설업을 했던 배종팔 대표가 원동으로 내려와 사업을 기획하게 됐다. “처음에 토지를 구입할 때는 투자 목적으로 구입했죠. 그러나 땅을 밟아보면서 느낌이 와서 여기에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건축을 하게 됐습니다. 주변에서도 ‘인근에 이보다 좋은 땅은 없다’며 감탄하는 이가 많았죠. 어려서부터 농촌에서 자라다 보니 원래 식물을 키우는 것을 취미로 삼아왔어요. 이참에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꿈에 정원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꽃과 나무와 자연을 늘 함께하다보니 항상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나무 몇 그루밖에 없던 황량한 산은 그의 손을 거쳐 3년 전, 아름다운 정원을 갖춘 숲속 펜션으로 거듭났다. 기초 토목공사부터 정원 조경, 펜션 건축까지... 모두 그와 그의 가족들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그의 손길로 키운 푸른 수목은 물론 귀한 자연석까지... 곳곳에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나무 몇 그루밖에 없던 산에 건물을 세우기 위해 먼저 토목공사를 했습니다. 토목공사를 할 때 정말 좋은 수석들이 많이 나왔어요. ‘누군가 이 땅에 보물을 숨겨 놓은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웃음). 이 땅에서 나온 수석들을 옮겨 지금의 정원과 계단을 꾸몄어요. 같이 작업을 한 분도 ‘이렇게 좋은 돌이 있느냐’며 함께 신나서 작업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웃음).” 봄이면 향기로운 꽃망울을 터트리는 야생화, 여름이면 연둣빛 잎사귀로 신록의 계절을 물 드리는 푸른 수목, 가을이면 병풍처럼 둘러싼 산에 물드는 단풍, 겨울이면 안온하고 고요한 적막을 느낄 수 있는 곳, 꿈에 정원. 이곳에는 사시사철 푸른 잎을 드리우는 소나무와 향긋한 천리향, 푸릇한 황금사철나무, 산수유, 야자수 등 갖은 수목이 우거져있다. 초록빛 생명력으로 생기발랄하게 자라는 이 나무들은 모두 그가 밭에 모종을 심어 키워낸 것들이다.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긴 기다림과 많은 자본이 필요하죠. 제반 공사도 해야 하고 건축을 하는데 많은 자본이 들거든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먼저 밭에 1,700주의 나무 모종을 사서 심고 가꿨어요. 다 큰 나무를 사서 심는다면 조경에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나무 모종을 사서 직접 심고 가꿨기에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일례로 한 포트에 3,000원 하는 나무 모종이 이젠 30만 원이 훌쩍 넘는 큰 나무로 자랐습니다. 이렇듯 제가 심고 가꾼 나무들로 직접 조경을 하고 가꾸기에 더욱 애정이 깊죠(웃음).” 화이트와 우드톤이 어우러진 펜션 건물은 마치 발리의 리조트에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넓은 창을 통해 밝은 햇살과 정원의 푸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곳의 백미는 푸른 나무들과 어우러진 노천 온수 스파다. 야자수, 산수유, 황금사철나무, 소나무 등 나무들로 둘러싸인 온수풀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숲속에서 목욕을 즐기는 듯한 상쾌함을 만끽할 수 있다. 연인과 가족들과 찍은 인생 사진을 올리는 손님들이 늘고 있어 SNS 상에서도 ‘역대급 예쁜 뷰의 노천탕 숙소’, ‘숲속 요정이 살 듯한 펜션’ 등으로 소개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은 <MBN 돌싱글즈3>의 촬영지로 소개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이에 한 단골손님은 “이곳에 오면 숲속에서 잠드는 것 같은 휴식을 느낄 수 있다”라며 “병풍처럼 둘러싼 아름다운 산세와 아름다운 정원, 맑은 공기를 느끼며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 순간이 바로 힐링”이라는 말을 전했다. 아름다운 정원과 깔끔하게 정돈된 펜션을 가꾸기 위해 배종팔 대표의 손은 한순간도 쉴 틈이 없다. 자식처럼 애정으로 가꾼 수목들과 이름 아침 지저귀는 산새들, 따뜻한 청란을 낳는 암탉, 수줍은 꽃망울을 틔어 인사를 건네는 야생화를 돌보는 그의 손길은 언제나 분주하다. “제가 좋아서 한일인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이곳을 좋아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브라이덜 샤워, 돌잔치, 칠순잔치 같은 이벤트를 즐기며 온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손님들을 볼 때, 저도 같이 행복해집니다(웃음). 이곳이 많은 분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힐링을 제공하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푸른 신록의 계절, 꿈에 정원에서 자연을 만끽해 보는 것은 어떨까. [1147]
    • 라이프
    2023-04-13
  • 고양국제꽃박람회, 화훼 산업 활성화 위한 교류의 장 ‘2023 고양국제꽃포럼’ 개최
    재단법인 고양국제꽃박람회(이사장 이동환)는 화훼 및 원예 산업의 최신 트렌드를 논의하고 세계 화훼인의 상호 교류의 장을 형성하는 ‘2023 고양국제꽃포럼’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포럼은 4년 만에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2023 고양국제꽃박람회에서 함께 개최되며, 박람회 기간 중 4월 28일과 29일 양일간 일산호수공원 화훼교류관에서 진행된다. 2023 고양국제꽃포럼은 ‘생활 속의 꽃(Flower in the Life)’을 주제로 화훼 산업과 원예 산업의 확장 가능성에 대한 전망과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자 마련됐다. 포럼은 주제 발표와 세션 발표로 나누어 진행되며, 발표에 앞서 개회식과 이동환 고양특례시 시장의 기조연설로 시작한다. 첫째 날에는 화훼 산업의 트렌드와 기술, 유통을 중심 주제로 다룬다. △국제화훼무역기구 실비에 마미아스(Sylvie Mamias) 사무국장 △업사이트 임강후 대표 △팬 아메리칸 시드(Pan American Seed) 지앤핑 렌(Jianping Ren) 수석 식물 육종가 △PHOOL 안킷 아가왈(Ankit Agarwal) 대표 △화훼 디자인 심사위원 앨리슨 브래들리(Alison Bradley)의 발표가 각각 진행된다. 또 △화훼 작가 드미트리 투르칸(Dmitry Turcan)의 꽃꽂이 시연과 강연도 함께 진행된다. 실비에 마미아스 사무국장은 ‘세계 화훼 산업의 트렌드 및 동향’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며, 변화가 빨라지는 세계 화훼 산업의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의 전망과 함께 최신 기술 동향 등을 다룬다. 뒤이어 화훼작가 드미트리 투르칸이 꽃꽂이 시연과 함께 ‘고유 꽃꽂이 스타일에 대한 중요성’을 주제로 발표한다. 해당 발표에서는 개성있는 스타일로 꽃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와 감성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세션 1에서는 ‘Ag Tech(농업 기술)’를 다루며, 두 명의 연사 발표가 진행된다. 임강후 업사이트 대표는 ‘화훼·원예 분야의 디지털 트윈 확산을 위한 정책 및 산업적 제언’을 주제로 발표하며, 팬 아메리칸 시드의 수석 식물 육종가 지앤핑 렌은 ‘화훼 육종의 변화: 과거와 미래’ 주제로 발표한다. 세션 2에서는 ‘Trade & Logistics’를 다루며, 버려진 꽃을 업사이클링하는 스타트업 기업 PHOOL의 대표 안킷 아가왈이 연사로 나서 ‘꽃에 새로운 생명을 주는 일’을 주제로 세션 발표를 이어 나간다. 마지막으로 국제적인 화훼 디자인 심사위원인 앨리슨 브래들리는 ‘Floral Fundamentals 플랫폼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플로리스트, 학생, 육종가, 학교 및 공급업체 등 화훼·원예 종사자들을 위한 플랫폼 ‘Floral Fundamentals’을 중심으로 진행 교육 및 네트워킹 방식과 관련된 내용을 다룰 예정이다. 두 번째 날에는 화훼 디자인을 중심으로 포럼이 진행된다. △게릴라 가드닝의 리차드 레이놀즈(Richard Reynolds) 작가 △국제플로리스트조직(Florint) 토마스 래츠커(Thomas Ratschker) 심사장 △국제플로리스트조직(Florint) 사이먼 오그리젝(Simon Ogrizek) 대표의 발표가 각각 진행된다. 세션 3에서는 ‘디자인’을 큰 주제로 다루며, 두 명의 연사 발표가 진행된다. 게릴라 가드닝 프로젝트를 진행한 리차드 레이놀즈 작가는 ‘화훼 산업에 끼치는 게릴라 가드닝의 문화적인 영향’을 주제로 발표하며, 국제플로리스트조직의 심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토마스 래츠커는 ‘독일 플로리스트의 디자인 교육 시스템’을 주제로 발표한다. 포럼의 마지막 순서로 국제플로리스트 조직의 사이먼 오그리젝 대표는 ‘국제 화훼·원예 산업의 차세대 도전 과제 대응 전략’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포럼은 ‘2023 고양국제꽃포럼’ 예매 페이지를 통해 사전 참가 신청할 수 있으며, ‘고양국제꽃박람회’ 홈페이지 또는 예매 페이지 접속을 통해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포럼 전일까지 참가자들은 얼리버드 티켓을 구매할 수 있으며, 5인 및 10인 단체 할인도 함께 가능하다. 포럼 참가자는 꽃박람회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2023 고양국제꽃포럼은 4월 28일(금), 29일(토) 양일간 일산호수공원 화훼교류관에서 진행되며, 사전에 연사들의 발표 내용을 적은 사전자료집이 E-BOOK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김운영 고양국제꽃박람회 대표이사는 “이번 포럼을 시작으로 국내외 화훼 산업의 전문가와 함께 더욱 발전된 화훼 산업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고양국제꽃박람회 소개 1997년 대한민국 최초로 시작된 고양국제꽃박람회는 고양의 역사와 함께하고, 고양의 역사를 새로 써왔다. 매년 우수하고 다양한 품종을 선보이며 고양 화훼농가를 넘어 대한민국 화훼 수출의 역군으로 성장했고, 사계절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국내외에서 찾는 매력적인 글로벌 화훼박람회로 성장했다. 고양시는 앞으로 마이스 산업, 한류콘텐츠 등을 결합해 고양국제꽃박람회를 화훼 융복합 산업의 첨병으로 성장시켜 나가겠다. 대한민국 화훼 산업을 앞에서 견인하고, 뒤에서 떠받치는 최고의 박람회로 자리매김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언론연락처: 2023 고양꽃포럼 운영사무국 브로스그룹 박종옥 팀장 070-4467-9908 이 뉴스는 기업·기관·단체가 뉴스와이어를 통해 배포한 보도자료입니다.
    • 라이프
    2023-04-10
  • “태권도 정신이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생활체육・엘리트, 겨루기・품새・시범 등 균형있는 태권도 발전 이루는데 힘 쏟을 것
    태권도 정신은 개인, 사회, 이념의 가치를 모두 포함한다. ‘나를 이기고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의미의 극기(克己)와 홍익(弘益)의 정신이다. 각박한 현실, 치열한 경쟁 속에 내면은 점차 나약해지고 정서는 메말라 간다. 태권도에서 강조하는 5대 정신 <예의 , 인내 , 염치 , 극기 , 백절불굴>은 비단 수련생들 뿐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닐까. 태권도 감독 출신으로 그 정신을 실천해나가며 성공한 사업가로, 진정성 있는 민간외교관으로 불리는 이가 있다. (주)천우테크 대표이사, 주한에디오피아 명예총영사이자 부산광역시 태권도협회장인 김상진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해서 하나를 우직하게 끝까지 파고드는 것은 자신있다”며 웃어 보이는 그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삶의 모토”라고 전한다. 듬직한 외모에 시원스런 웃음이 매력적인 김 회장과 따뜻한 차 한 잔을 두고 마주 앉았다. _심원정 편집위원, 김유미 기자 할렐루야 태권도단 초대감독 역임 ‘태권도’에 관한 끝없는 미담 제조기 6년 째 부산광역시 태권도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상진 회장은 미국 링컨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를 취득하고 에버그린대학교 사회학 명예박사, 그리고 코헨대학교에서 <태권도와 가라데의 상호관련성 연구(전통주의 역사관에서 고찰한 발전과정을 중심으로)> 논문으로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는 등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정진해가는 인물이다. 태권도 공인 6단인 그는 어린 시절 육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주 종목은 1,500미터 장애물 뛰기. “엄청난 체력이 필요한 종목이다 보니 정말 강도 높은 훈련을 많이 했어요. 그 때 열심히 운동한 덕에 지금도 체력은 자신있습니다(웃음).” 1987년 만들어진 부산광역시 할렐루야 태권도단에서는 초대감독을 맡았다.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선수들은 당시 11체급 중에 8체급 우승을 달성할 정도로 성장했고 현재는 세계 각국에서 태권도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직접 시범, 격파, 호신술(실전 겨루기)을 가르쳤어요. 제재소에서 송판 2.5cm 나무를 끊어와 연습하곤 했습니다. 시범단의 경우 도약할 때 탄성이 없으면 부상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근력이 있어야 해요. 육상을 할 때 익혔던 훈련 경험과 노하우를 할렐루야 태권도단 선수들에게 적용했었는데 그게 좋은 성과를 가져왔던 것 같습니다.” 태권도에 관한 김상진 회장의 미담과 비하인드스토리는 끝이 없다. 2007년부터 10년 넘게 내전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프가니스탄 태권도 국가대표팀을 지원해오고 있는 김 회장은 태권도 전용훈련장 건립에 힘을 보태고 태권도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국내에 방한했을 때는 합숙훈련을 지원, 병원 치료를 돕는 등 매년 4천만 원 이상을 후원해 오고 있다. 메일로 직접 소통하며 훈련 방법과 스케줄 등을 직접 전수한 끝에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라훌라 닉파이 선수가 동메달을 따낸 극적인 일화도 있다. 메달은 2회 연속 이어졌다. 고신대학교와의 인연도 깊다. 태권도선교학과를 만들어 겸임교수를 맡은 그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해오고 있다. 해외 개발도상국 곳곳을 지원하고 올해 4월에는 세계태권도연맹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천만 원을 기부하는 등 한 마디로 태권도에 관해서만큼은 ‘진심’인 김 회장이다. ‘2022 고양 WT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종합우승 2회 연속 단장 겸 감독 맡아 ‘키다리아저씨’ 별명 얻어 올해 4월 24일 막을 내린 ‘2022 고양 WT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한국 태권도 품새 대표팀이 금메달 29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로 종합우승을 달성했다. 제1회 서울대회 이후 12회 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널리 알렸다. 2006년 서울에서 창설되고 2007년에 2회 대회를 인천에서 치른 후, 15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되어 더욱 의미가 깊은 이번 대회는 코로나19 중에도 세계 62개국에서 1천여 명의 부문별 국가대표 선수단이 참가하며 성황을 이뤘다. “2018년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대회인데다 한국에서 15년 만에 열리는지라 더욱 기대가 컸습니다. 우리 대표 선수들 또한 대회에 목말라 있는 만큼 세계 최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안방에서 종합우승을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컸지요.” 2018년 대만 세계 대회에 이어 연속으로 단장 겸 감독을 맡아 선수단에게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온 김상진 회장. 그는 대회 준비 때부터 폐막까지 선수들과 함께 동행하며 독려하고 지원했다. 국내 입상 선수들뿐만 아니라 어렵게 대회에 출전한 여섯 개 외국 팀에게도 후원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선수들이 최상의 환경과 여건에서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온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역할이니까요. 일찍부터 훈련장에 나가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꼭 한명 한명 붙잡고 얘기하지 않아도 응원하고 격려하는 마음은 서로 와 닿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열린 대회였는데도 선수 개개인과 지도진이 성실하게 잘 준비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파이팅 해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태권도의 뿌리이자 타 무술과의 뚜렷한 차이점인 ‘품새’, 의미와 가치 재조명돼야 김 회장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겨루기 스포츠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태권도에 품새의 가치를 다시 조명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균형 잡힌 발전이 이루어졌으면 한다”는 것.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겨루기만 부각되어 단순히 스포츠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품새는 태권도의 참 정신을 알고 태권도 기법 자체를 완전히 소화해 종합적으로 완성해야하는 태권도의 최고경지에요. 인성과 품성을 강조하는 품새가 함께 성장해야 진정한 태권도 정신이 나옵니다.” 품새란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규정된 형식(틀, 型)에 맞추어 지도자 없이 수련할 수 있도록 이어 놓은 동작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기원 심사규정은 품・단 응시별 실기과목을 9단까지 구분하고 있다. 김 회장은 “품새는 공격과 방어의 기본동작을 연결, 수련함으로써 겨루기 기술향상과 동작 응용능력 배양하는 태권도의 뿌리”라며 “형식적인 지도가 아닌, 품새의 의미와 가치가 제대로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다행히 2006년 세계태권도연맹이 품새를 세계대회 정식종목으로 채택한 후, 세계 각국에서는 품새 수련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품새 수련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 김 회장은 “런던올림픽 이후 계속해서 올림픽 대회를 참관하고 있는데 올림픽과 ‘WT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의 관중석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겨루기로 대결하는 올림픽의 경우 자기 나라, 자기편만 응원을 합니다. 당연한 거죠. 하지만 품새선수권대회는 자국 뿐 아니라 어느 국가라도 선수들이 멋지게 해낼 때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로 응원합니다(웃음).” 본인 2000만 원 기부, 기금 등 모아 코로나19 극복 위해 체육관 월세 지원 “어려운 시기, 태권도 정신으로 위기 이겨냈으면” 태권도의 근본이 되는 ‘품새’의 위상을 올리고자 애쓰는 그는 같은 차원에서 태권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태권도 체육관이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2020년, 부산광역시 태권도협회는 전국 최초로 지역 내 모든 태권도 체육관 615곳에 월세를 지원했다. “현실적인 지원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체육관별로 50만 원씩, 부산지역 내 총 615개 체육관에 지급했어요.” 코로나19 여파로 휴관하는 체육관에 월세를 지원하는 것은 전국에서 처음 있는 일, 3억 750만 원에 달하는 지원금은 각종 연수나 행사 등에서 절약해 모은 협회 저축금과 상조 복지기금을 해약해 마련했다. “최일선에서 태권도 보급과 지도를 책임지는 체육관이야말로 태권도 발전의 근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선수생활을 거쳐 체육관을 13년간 운영한 바 있다 보니 급변하는 경제적, 사회적 환경 속에서 얼마나 어려우실지 잘 압니다. 관장, 사범님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협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균형있는 태권도 발전 이루는데 힘 쏟을 것 지난 8월 9일 부산광역시 태권도협회는 부산경찰청, 태권도진흥재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다문화 가정 자녀 13명과 다문화 대안학교 3개교에 1년간 태권도 수련을 무료로 지원하기로 했다. 다문화가정 자녀의 사회 부적응을 해소하고, 이들이 우리 사회의 밝고 건강한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부산에 사는 다문화가정 구성원은 2만 6천여 명으로 결혼이민자 자녀의 증가와 중도입국자녀 유입 등으로 학령기 자녀가 늘어나고 있어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김 회장은 “대한민국 국기인 태권도를 활성화하면서 소외계층을 위한 수련 기회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가을에도 좋은 소식이 들렸다. 경기도 가평군에서 개최한 ‘2022 전국생활체육대축전’ 태권도 종목에서 부산시가 종합우승을 차지한 것. 김상진 회장은 “열심히 연습한 선수들과 열성적으로 지도해 준 지도자, 임직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뤄낸 성과”라며 겸손한 말을 이어갔다. “협회는 사조직이 아닙니다. 태권도인들의 권리를 대변하고 태권도를 널리 알리고 보급해 국민의 체력향상과 정신력을 배양시키는 일만 하면 됩니다. 본연의 역할만 생각한다면 니편, 내편 나눌 일이 없지요. 회장에 자리한 이후 판공비를 비롯해 협회 돈은 쓰지 않고 사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고민과 생각을 통해 집행되는 일들이 부산을 넘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생활체육 태권도와 엘리트 태권도, 품새・겨루기・시범 등 태권도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김상진 회장은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해 에티오피아 상공회의소와 MOU를 체결, 양국 기업 간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며 주한에티오피아 명예총영사로서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김 회장은 당시 이노비즈 부산·울산지회장 자격으로 2017년 7월, ‘한-에티오피아 경제인 연합회(KEBA)’를 발족한 바 있으며 이후 양국의 경제 협력으로 한국 외무부의 승인을 거쳐 에티오피아 정부로부터 명예영사로 임명됐다. 회원사 중 26개 사의 민간 경제사절단 ‘한-에티오피아 경제인 연합회’를 이끌고 에티오피아에 방문해 물라투 테시호메(Mulatu Teshome) 대통령과의 협의를 통해 에티오피아 내 약 60만 평 산업단지 개발에 관한 협정을 맺고 한국전용 산업 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주)천우테크는 세계적인 금속표면 전문 기업으로, 스테인리스 배관 후처리 공정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김상진 회장은 설립 이후 꾸준한 혁신 경영으로 업계를 선도해오며 체계적이고 다양한 복지 혜택을 제공해 임직원의 노동 환경 및 지역사회 고용 증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주)천우테크가 개발한 환경 친화적 금속표면처리제 ‘CW-R2’는 질산, 불산 등 유독 물질을 사용하던 기존의 금속표면처리제와 달리 약품에 중금속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제품으로, 밀폐된 공간에서도 작업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준다. 또한 강관의 표면을 부동태피막처리 하여 표면의 녹과 부식 발생을 방지해 스테인리스관의 수명을 높이고, 처리 공정을 단순화시켜서 발생하는 폐수량이 줄어들어 처리 비용이 절감돼 업계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1141]
    • 라이프
    2023-01-27
  • 책 한 권으로 시작된 법조인의 꿈! 휴머니즘을 실현한 명법관, 광주변호사회를 대변하다
    최근 장정희 변호사가 ‘제57대 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됐다. 장정희 회장은 전남 영광 출신으로 전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96년 제38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거쳐 1999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했다. 이후 광주지법 순천지원 판사, 광주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광주지법 가정법원 장흥지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법무법인 감동으로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광주지방변호사회 공보이사, 제1부회장을 맡아 회무 경험을 쌓았으며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으로 회원들의 높은 지지를 얻어 제57대 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 됐다. 주간인물은 2023년 계묘년(癸卯年)을 맞아 지역 법조계를 이끌어갈 리더의 모습을 담았다. _박미희 기자 장정희 회장은 명망 높은 법조인이다. 그의 고향은 전남 영광. 3남 2녀의 셋째로 시골에서 농사짓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명석한 두뇌로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가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된 것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고. “초등학생 때 우연히 변호사에 관한 책을 읽게 됐어요. 주인공인 변호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변론을 하고 천신만고 끝에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며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변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던 평범한 소년이었던 저는 그 책에 영감을 얻어 변호사를 꿈꾸게 됐어요. ‘나중에 커서 변호사 되면 어떻겠느냐’는 제 말에 크게 기뻐하시며 대견해하던 부모님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그 이후로부터 자연스럽게 장래희망은 변호사가 되었습니다(웃음).” 변호사란 직업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순수한 시골 소년은 한 권의 책에 깊은 감명을 얻어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된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고학(苦學)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 법조인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그 당시 저희 집 형편은 매우 어려웠어요. 그래서 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입주과외를 하며 학비를 벌었고 고등학교도 영광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변호사의 꿈을 포기한 적이 없었기에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전남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당시, 1987년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절실함에 공감해 학생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죠. 대학교 2학년 때 ‘통일선봉대’로 참여했다가 시위현장에서 경찰에 체포,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가게 됐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고시공부를 시작해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꿈을 이룰 수 있었어요.” 눈빛이 살아있는 청년. 그는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사법연수원에서 진로를 정할 때도 고민이 많았어요. 애당초 변호사가 꿈이었지만 판사의 길은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다신 갈 수 없는 길이기에 결국 판사의 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판사로 임관한 이후에도 법관으로서 직분을 다 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1999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한 이후 광주지법 순천지원 판사, 광주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광주지법 가정법원 장흥지원장을 역임했다. 20년 가까이 법관으로 살며 만인에게 공정한 법 앞에 억울한 이가 없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 해왔다. 명법관으로 이름이 높았던 장정희 회장. 평소 특유의 소탈한 성품과 온화한 태도로 법원 직원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어왔다. 일례로 장흥지원장을 역임할 당시, ‘상·하반기 지원장 적합성 평가 99점대’를 기록할 정도로 그 덕망이 높았다. 후배 법조인들의 롤모델로 꼽히는 장정희 회장은 평소 강연 때마다 법관의 필수 덕목으로 ‘경청(傾聽)’을 꼽는다. “법관의 필수 덕목은 경청이죠. 판사로서 재판을 진행할 때마다 당사자의 말을 끝까지 차분하게 들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법정에서 당사자들은 판사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사정은 있지만 대부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법 불신의 원인은 소송당사자들과의 소통 부재에서 오고 이 같은 소통 부재는 법관들이 당사자들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 데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사자가 원하는 재판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법관 앞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면 그 결과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법관 더 나아가 법조인의 최고의 덕목은 경청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판결. 그 판결을 내리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기록을 검토하고 고뇌했던 시간들로 그는 청춘을 보냈다. “판사로 일하면서 인간적인 고뇌를 느끼는 순간이 많았죠. 왜냐면 형사사건의 경우, 중형이 선고됐을 때와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한 사람의 인생이 크게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판결을 내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특히 성폭력 사건, 살인 사건 같은 강력 사건에서 목격자나 증인이 부족한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확실한 물증도 없는 사건에 대해 판결을 내려야 할 때 실체적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많이 애썼던 기억이 나네요.” 20년 가까운 법관 인생을 뒤로하고 그는 2015년 변호사로 새로운 법조 인생을 시작했다. 고위직 법관으로 전도유망한 길을 앞두고 그가 돌연 변호사로 새로운 인생 2막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법관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법조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법원에서 대부분의 주요 보직도 거쳤고 대법원에서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사건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지요. 지원장으로 근무하면서 법원 직원들과도 원만하게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법관으로서의 삶은 어찌 보면 주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기에 늘 새로운 길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변호사로 새로운 법조 인생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하고 국회의원을 지낸 송기석 변호사와 2018년, ‘법무법인 감동으로’를 설립했다. 6개월 뒤, 서울중앙지검 중요경제범죄수사단 부장검사를 역임한 이상길 대표 변호사를 영입, 민사, 형사 사건의 체계적인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법무법인 감동으로’는 특화된 법률서비스로 지역 법조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올해 서울 서초동에 분사무소를 개소, 서울남부지검장을 역임한 송삼현 변호사가 대표변호사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호남과 서울 수도권을 잇는 강소 로펌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 “민사와 형사 사건은 보통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경우가 많죠. 법원 부장판사, 검찰 부장검사를 역임한 구성원들로 민사와 형사 사건의 협업 체계를 구축, 다각적인 측면에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어요. 중요한 사건이라도 멀리 서울, 경기도까지 가지 않아도 가까이에서 전문적인 법률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주요 현안을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풀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많은 사건을 맡았던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에 대해 물었다. 대표 사건을 꼽는 여느 변호사들과 달리 그는 사회적 울림이 있는 한 사건을 들었다. “의뢰인은 한국인 남편에게 시집을 온 외국인 여성이었어요. 중소기업을 다니던 남편은 어느 날 과로사로 사망하게 되고 의뢰인은 근로복지공단을 대상으로 유족급여를 청구했죠.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급여 지급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유족급여 지급을 거부했고 결국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도 패소를 했어요. 이후 저를 찾아온 의뢰인을 통해 억울한 사연을 듣게 됐습니다. 항소심에서 남편의 사망과 과중한 업무의 연관성을 밝혀냈고 결국 승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 의뢰인들의 사건을 맡아보면 한국의 실정을 잘 모르고 한국어도 서툴기 때문에 억울하게 피해를 입거나 범죄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어요. 점점 외국인 거주자가 늘어나고 있는 시대상에 발맞춰 법률 사각지대에 있는 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광주국제교류협력단 상임이사, 전남대학교 총동창회 상임부회장, 청소년범죄예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누리문화재단 운영위원 등으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오피니언으로 지역사회의 현안을 함께 해결하고 풀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명법관으로 유명한 그지만 사건을 맡을 때면 변호사를 꿈꿨던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항상 경청하는 법조인이 되자’는 초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건에 임하는 것. “변호사는 항상 의뢰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건을 의뢰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사건을 수임하다 보면 자칫 소홀하게 대하는 사건이 생기게 되죠. 결과의 승패를 떠나 소홀하게 대한 사건의 의뢰인을 생각하면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반면 패소를 했으나 사건에 임할 때 정말 내일처럼 최선을 다 한 사건은 의뢰인도 결과를 떠나 정말 고마워하더라고요. 의뢰인들의 입장에 서서 항상 경청하는 태도로 사건에 임하는 것이 변호사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강소 로펌을 이끌고 있는 그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제57대 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앞으로 지역 법조계 발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당선 소감에 대해 그는 힘찬 포부를 밝혔다. “회원들의 정당한 권익 옹호와 복리 증진을 위해 노력해나갈 것입니다. 특히 어려운 청년 변호사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면서 적극적인 지원을 계속해나갈 계획입니다. 또한 변호사의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고 변호사회에 주어진 시대적, 사회적 역할을 다하면서 광주지방변호사회가 쌓아놓은 훌륭한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나가겠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 회원들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고 회원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지역사회의 현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지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아울러 법치행정이 정착될 수 있도록 공익적 역할에도 힘쓸 생각입니다.” 장정희 회장은 △변론권 침해 방지 △전자경유제도 실시 △회관 리모델링 △경유증지 단가 인하 △외부위원 추천 시 청년변호사 우선 고려 △신입회원과 선배회원 간 결연 △변호사 직역 수호 및 확대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 △법원·검찰·경찰 평가를 통한 사법제도 개선 등을 주요 공약으로 회원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올바른 사법 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해 기존 광주지방변호사회 법관·검사 평가 특별위원회 외에 경찰 평가 특별위원회를 신설할 계획이다. “수사 과정에서 불합리한 일이 생기지 않고 공정한 수사를 받을 수 있도록 새롭게 경찰 평가 특별위원회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올바른 사법 시스템이 정착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바쁘게 일하는 중년인 장정희 회장은 아내, 이화영 씨와 함께 슬하에 2녀를 둔 다정한 가장이기도 하다. 인터뷰 말미, 그는 “가장 고마운 사람은 늘 곁에서 힘이 되어준 아내”라며 자랑을 잊지 않는다. 언제나 밝고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과 화목한 가정이 가장 큰 버팀목이자 자랑이다. 법조인의 휴머니즘을 담은 책 한 권으로 시작된 꿈은 진행형이다. 순수한 시골 소년에서 고학으로 꿈을 이룬 청년, 명법관으로 살아온 20년, 열정적인 변호사로 지역을 대표하는 오늘날까지...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1144]
    • 라이프
    2023-01-27
  • 대구·경북 최초! 믿을 수 있는 간병인 매칭 플랫폼 개발, 도움에 도움을 더하는 ‘케어플러스’
    대한요양병원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한 해 고령인구가 80만 명 이상 증가로 2026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간병 서비스에 대한 관심 또한 급증하고 있는데 코로나19 사태까지 겪으며 더욱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간병시스템이 절실하다. “요즘같이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우리 가족에게 딱 맞는 간병인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최소한의 핵심적인 정보로 간병인이나 병간호 일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전한 간병인 매칭 플랫폼 ‘케어플러스’ 개발자, 이종화 주식회사 씨플러스 대표이사는 대구 토박이로 오랜 시간 지역 봉사를 통해 앱 구축의 영감을 얻었다. _김민진 기자 Q1. ‘간병’이라는 서비스에 대해 수요자와 공급자를 서로 매칭해주는 <케어플러스> 플랫폼은 상호 간에 이점이 뚜렷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맞습니다. 간병 서비스라는 것이 일상생활 중에 쉽게 접하는 범위가 아닌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처음에 어디서 어떻게 간병인을 찾아야 할지 까마득하지요. 특히, 간병인의 경력이나 고용 비용은 선택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지만 객관적인 기준이 없으니 구인 자체부터 고민이 많이 된다는 얘기를 복지시설 봉사활동을 통해 익히 들었습니다. 게다가 간병인을 구인하여 서비스를 이용했지만 앞서 계약 조건과 다르게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일이 다반사인 것도 알게 됐지요. 대구에서 나고 자라며 내가 사는 지역에 관심도 많고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그 속에서 주민들의 불편한 소식이 들리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도움을 드리면 어떨까”라는 단순한 이유로 시작해 모바일 앱까지 개발하게 되며 일이 커졌네요(웃음). 케어플러스는 서비스 이용의 시작을 복잡하지 않은 방법으로 휴대폰 앱에서 간병인을 요청하는 장소, 시간, 날짜 그리고 환자 상태만 등록하면 보호자는 간병인의 경력과 이력을 실시간으로 조회하여 쉽고 빠르게 요양보호사 자격을 갖춘 우수한 간병인을 직접 선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보호자와 간병인이 계약 조건에 대해 애초에 정확하게 짚고 진행하기에 추가 비용 등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없지요. Q2. 체계적인 병간호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 찾기가 어려운 간병인의 입장에서도 반가운 시스템이네요? 그렇습니다. 기존의 구직 방법은 알선업체에서 먼저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거리가 너무 멀거나 간병 요청 시간이 애매한 경우도 있고요. 그리고 환자의 상태가 중증 이상이면 더 많이 돌봄이 필요한데도 경증 환자의 간병과 똑같은 일급을 받습니다. 사실 간병인의 직업군은 프리랜서라 원하는 날짜, 시간, 거리, 급여 등 근무조건을 유동적으로 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는 수요자의 요구사항에만 응해야 하는 현실이다 보니 프리랜서의 메리트가 사라지면서 간병인의 수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죠. 이러한 애로사항에 중점을 둔 케어플러스 앱은 구직할 때 원하는 조건을 간병인 스스로 선택해 꾸준히 일자리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급여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간병인들은 여러 알선 회사에 등록하면서 간병인 배상책임 보험료도 각각 납부해야했는데요. 케어플러스에서는 근무한 일수만큼만 보험료를 납부하게끔 되어 있어 기존의 불필요한 비용 지출도 현저히 감소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Q3. 업계 최초 ‘복수카드결제’시스템으로 부담이 큰 간병비 문제 해결을 돕는 특징이 눈에 띕니다. 현금결제만 하는 부분은 보호자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에 착안해 다수 인원의 보호자가 카드 결제로 할부도 가능하도록 안심할 수 있는 PG사 결제 서비스를 앱에 연동해 안전한 결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설계했지요. 이로써 연말정산처리와 함께 간병비를 가족 간에 분할하여 경제적 부담감을 크게 덜 수 있죠. 이와 더불어 간병비는 앱 내에서 간병인과 보호자 간의 협의가 가능하기에 서비스 진행 중에 추가적인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는 일절 발생할 수 없고, 간병인은 서비스 종료 후 다음 날부터 언제든지 간병비를 출금할 수 있습니다. Q4. 어르신들도 사용하기 쉽다는 앱의 직관적인 디자인과 간략한 질문으로 호평 일색인 <케어플러스>를 통한 기대효과를 말씀해주신다면. 배달주문보다 사용법이 쉬워요. 앱에 접속하여 복잡하지 않은 회원가입 절차를 거친 후 ‘간병인 찾기’ 또는 ‘간병일감 찾기’ 중에 희망 서비스를 클릭합니다. 보호자가 간단한 정보를 입력하고 공고를 등록하면 간병인은 공고리스트를 조회해서 원하는 공고를 선택하고요. 간병 비용을 책정하여 입력하면 보호자는 간병인 리스트 중에서 가장 적합한 간병인을 선택하면 매칭이 성사됩니다. 매칭 절차가 간단해 휴대폰 조작이 어려우신 분도 쉽게 구인・구직을 할 수 있지요. 간병 서비스는 생활 밀착형 분야이지만 실질적으로 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서비스는 아니기에 간병 관련 정보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도 부족하고, 인구수가 적은 지역에서는 간병인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간병인에게는 안정적인 수익 유지와 근무환경을, 보호자에게는 간편한 간병인 구인 서비스를 제공하여 향후 일자리 창출의 효과로 간병인 수가 급증하여 수요와 공급 체계에도 균형을 찾을 수 있죠. 따라서 간병인 매칭 플랫폼이 전국적으로 확산해 그동안 소외된 지역을 포함하여 새로운 간병 문화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Q5. 최근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기관과 업무협약도 체결하며 <케어플러스> 개발과정 단 6개월 만의 놀라운 성장 속도인데요. 앞으로 나아갈 ㈜씨플러스 비전이 궁금합니다. 요양기관, 협회 등 전국적인 MOU 체결로 곳곳에서 직면한 여러 문제를 정형화된 프로세스로 효율적이고 스마트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케어플러스’라는 하나의 네트워크 형성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기존의 간병 서비스는 환자가 존재해야만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이 유지되어 수익이 발생하는데요. 주식회사 씨플러스는 환자의 건강을 회복하는 그 과정에 집중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건강한 간병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남고 싶습니다. 간병인 매칭 서비스부터 기업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관리 시스템까지 간병 서비스와 관련된 이해관계자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토탈 간병케어 솔루션’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1144] 현 (現) - 주식회사 씨플러스 대표이사 - 한일미디어 대표 - 국제라이온스클럽 365-A대구지구 와룡라이온스클럽 회원 - 국제로타리클럽 3700지구 대덕로타리클럽 회원 - 영남대학교 법률아카대미 총동창회 상임부회장 - 대구시 북구 구암동 방위협의회 부회장 - (사)대구시중소기업중소상공인협회 사무총장 - (사)대구시중소기업중소상공인협회 서대구지회 회장 - (사)한국청년지도자연합회대구광역시지부 달성지회 초대회장 - (사)벤처기업인협회 회원 주요 수상 경력 - 2005년 11월 대구지방경찰청 강희락 청장 감사장 - 2017년 12월 대구시남구의회 서석만 의장 표창 - 2017년 12월 대구시북구의회 하병문 의장 표창 - 2018년 12월 홍의락 국회의원 표창 - 2019년 01월 곽대훈 국회의원 표창 - 2019년 05월 김부겸 국회의원 표창 - 2019년 12월 제501보병여단장 고영준 대령 감사장 - 2021년 11월 대구시 수성구 김대권 구청장 표창 - 2021년 11월 주호영 국회의원 표창 - 2022년 01월 대구시의회 장상숙 의장 표창 - 2022년 12월 대구시 류한국 서구청장 표창 - 2022년 12월 국민의 힘 이인선 국회의원 표창 외 다수
    • 라이프
    2023-01-27
  • 한평생 봉사와 헌신의 자세로! “고향 발전 위해 적극 앞장서야”
    인구 변화 추이가 심상치 않은 요즘.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이 맞물리며 전국적으로 인구가 점점 줄어 인구 절벽이 심화할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때에 주목할 만한 지역이 있다. 20년 사이 인구가 5.2배 증가한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이 바로 그곳. 자녀 키우기 좋은 자연환경으로 입소문이 자자한 현동은 특별히 자녀를 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구가 많이 유입되고 있다. 조용한 도심지역으로 소리 없이 강한 현동을 면밀히 들여다보고자 60년이 넘도록 고향 발전을 위해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삶을 살아온 김범수 마산합포구 현동주민자치회장을 만났다. _김민진 기자 Q1. 인구감소시대에 인구 증가로 주목받는 마산합포구 현동을 소개해주신다면.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를 살펴보면, 조선시대에 사람이 살기 좋은 조건으로 풍수와 경제, 인심 그리고 자연 등이 언급돼 있는데요.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지역이 현동입니다! 8개의 자연부락(自然部落)으로 구성된 현동은 과거에는 90%가 개발제한구역이었으나, LH가 시행하는 현동 보금자리 주택지구 조성에 따라 개발제한구역 해제로 대단지 아파트가 조성되면서 2003년도에는 인구가 2,700명이었고 올해는 14,000명이 됐습니다. 지금은 남양휴튼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어 2024년에는 17,000명으로 증가할 것을 예상하지요. 그러다 보니, 이러한 인구 증가에 따른 앞으로의 방향을 두고 현동주민자치회에서도 지역 발전을 위해 한마음으로 봉사하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Q2. 남다른 고향사랑으로 지역주민을 위한 나눔, 행사, 봉사활동 등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9남매 일곱째로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제가 열두 살이었을 때 일찍이 선친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 홀로 저희를 키우며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에 “나도 커서 우리 어머니처럼 가족을 위한 헌신과 그리고 우리 가족이 사는 그 지역에 나눔을 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꿨지요. 지금껏 지역을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이유도 사랑하는 아내와 든든한 5남매 덕분입니다. 마산시농협 이사, 현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회장, 현동복지패밀리봉사회 회장, 현동초등학교 동창회 회장 등을 거쳐 현재 현동주민자치회장과 합포구 주민자치회 부회장을 겸임하기까지 소위 말하는 거마비로 나오는 예산 등에도 일절 개인적으로 쓰지 않고 바른 마음과 헝그리 정신으로 아끼고 아껴서 오직 주민들께 돌리는 활동을 당연시 해왔지요. 또한, 홀로 계신 어르신 집에 방문하여 노후화된 전등 교체, 멀리 가지 않고도 집 앞에서 문화공연을 즐길 수 있는 음악회, 수다도 나누고 천연기념물 수달도 지키는 현동 수달마켓에서의 아나바다, 어린이 사생대회 등 구민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부족한 예산 속에서 지역에 계신 분들의 많은 도움과 기부가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3. 지역 토박이로서 오랜 활동으로 기억에 남는 추억도 있으실 것 같아요? 제 나이 24날, 처음으로 지역 단체에 가입하게 되었는데요. 그 출발지가 현동자율방범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때를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던 것 같아요. 현동은 산지가 많은 관계로 타지에서 차를 몰고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늦은 밤, 차들이 길모퉁이에 주차를 해놓으면 가로등도 없고 취약지구이니 빨리 딴 곳으로 이동하시라고 일일이 돌아다니며 밤늦게까지 활동을 해도 힘든 줄 몰랐지요(웃음). 그 이후에도 새마을협의회,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등에서 오랫동안 지역을 위한 봉사활동을 즐겼던 것도 지역을 생각하는 마음이 항상 있었기에 지금껏 해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구민들과 함께 단합된 활동으로 좋은 추억을 쌓고 싶네요. Q4. 2023년 현동주민자치회 활성화 방향과 계획이 궁금합니다. 현동에는 지역 문화제인 당마산성이 있습니다. 현재 잡목이 우거져 있으며,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거나 훼손되어 원형을 알 수 없지요. 현동 초등학교의 남쪽에 우뚝 솟은 이곳을 어린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자연학습지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현동의 대표적인 주민 힐링공간이 된 유수지에 노인을 위한 파크골프장을 만들어 사기업이 아닌, 주민자치회가 관리하는 방향으로 안건을 내고자 해요. 과거, 갈대와 각종 쓰레기들이 방치돼 악취가 나고 해충이 들끓어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기피 장소의 유수지가 ‘환호연 정원’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2,000그루 수국을 식재하고 웅장한 돌탑을 설치했던 성공 사례가 있거든요. 끝으로, 2년 동안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현동주민자치회장 1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신 현동주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이 일을 이어갈 현동주민자치회장 2기를 위해서 저 또한 열심히 돕겠습니다! [1144]
    • 라이프
    2023-01-27
  • 살기 좋은 양산 덕계 “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갑니다”
    주민은 권력을 지닌 정치가나 전문가들에게 이끌려가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이끌어가야 할 주체들이다. 그러나 그동안 다양한 주민참여 방법들은 대부분 소수 전문가나 전문화된 활동가들에 의해 수행되어 왔다. 그들이 주민자치 활동을 주도하고 주민들은 주민자치활동의 대상 또는 수혜자의 역할 만을 해온 것이다. 풀뿌리자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하여 동에 설치되는 ‘주민자치회’는 동네 생활문제 해결을 위한 주민 의사결정기구다. 자치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총회를 거쳐 의제를 실행하며 변화하는 지방분권 패러다임의 중심에 서있다.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가 자치회관 운영에 관한 심의·의결 및 동 행정에 관한 협의 권한만을 가졌던 것과 달리, ‘주민자치회’는 보다 권한과 책임이 강화된 주민 의사결정기구로 한층 강화된 주민자치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주민자치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비전과 목표는 ‘살기 좋은 마을을 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내가 사는 ‘마을’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경남 양산 최초의 주민자치회. 덕계동주민자치위원회가 덕계동 주민자치회로 전환되는 과정 속, 위원장에서 회장으로 역할을 다해온 서창현 회장을 만났다. 양산 덕계에서 10대째 고향을 지키고 있는 그는 진정성 담긴 애향심으로 살기 좋은 덕계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_김유미 기자 두 갈래로 흐르는 강줄기 사이에 자리 잡은 ‘큰 시내 사이에 만들어진 마을’, 덕계는 큰 ‘덕(德)’자와 시내 ‘계(溪)’자를 합쳐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2007년 4월 1일 웅상읍에서 분동된 덕계동은 부산과 울산을 연결하는 산업·유통 및 교통의 요충지로서, 최근 대단지 아파트 등 대규모 주거단지 조성과 그에 발맞춘 지역 개발 및 도시 인프라 개선 등으로 드물게 꾸준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지역이다. 회야강과 천성산의 맑은 공기와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기도 하다. “14개 면동 중 인구가 적은 편에 속했던 양산 덕계는 계속된 인구 유입으로 이제는 주목받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정말 쾌적하고 여유로운 곳입니다. 저처럼 지역에서 오래 살아오신 분들과 새로 조성된 아파트에 입주하는 분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데도 마을 주민 간 소외나 불화가 전혀 없어요. 어떠한 안건에도 모두가 양보하고 배려하며 평화롭게 해결합니다. 정말 다들 마음 좋은 분들이세요. 갈등이 없다보니 저는 조용히 맡은 일만 하면 됩니다(웃음).” 사람 좋은 얼굴로 허허 웃어 보이지만, 리더이자 책임자로서 서창현 회장의 역할은 상당하다. 따뜻한 리더십과 소통력으로 때론 카리스마 있게, 때론 포용력 있게 주민들과 함께 의견을 모아가며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9월 17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됐던 ‘덕계동 한마음축제’가 3년 만에 덕계동체육회(회장 방영한)와 덕계동 주민자치회 공동주최로 3년 만에 개최됐다. 지역주민 1,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발표회, 클래식 공연, 초대가수 공연, 경품 추첨 등이 펼쳐졌다. ‘2022년 덕계동 주민총회’도 개최되어 더욱 의미가 깊었다. 지난 2021년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회로 변경된 후 처음으로 개최된 주민총회에는 120여 명의 주민들이 참석하여, 2023년 덕계동 주민자치회의 주요사업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주민자치회의 꽃은 주민총회입니다. 주민들이 원하는 사업을 발굴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동의를 얻어서 마을 사업으로 정착화 시키는 것이지요." 얼마 전 ‘한평정원 조성사업’도 큰 관심을 끌었다. 도심 속 자투리 땅에 꽃을 심고 꾸며 쓰레기 무단투기를 막고 주변 환경 조성 개선에도 도움을 주고자 시작한 사업이다. "현재 덕계동행정복지센터 옆, 덕계지하차도 위 택시승강장 앞, 동일2차아파트 후문 산책로에 한평정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관리가 잘 되지 않은 보기 싫은 공간이었지만, 이번 한평정원 조성사업을 통해 새롭게 단장되어 주민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명소로 탈바꿈하게 되었어요.” 서창현 회장은 “무더운 여름철 덕계동의 환경미화를 위해 발벗고 나서준 주민자치회원 및 덕계동장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에게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잡초 제거 및 계절꽃 식재 등을 통해 한평정원 관리에 힘을 쏟아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꾸준히 찾는 명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주민자치를 활성화 시키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한 시민의식을 가진 주민들의 참여입니다.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정착시키려면 주민이 대표로 참여하는 주민자치회, 입주자대표회, 학부모가 대표로 참여하는 학교운영회와 같은 제도적으로 시민참여가 보장된 자치기구가 더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건강한 시민의식을 가진 우리 덕계 주민들이 주민자치회를 통해 자기가 사는 곳을 더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기 위해 관심을 가져주시고, 더 많은 참여를 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앞으로도 알찬 예산 집행으로 주민들에게 더 필요하고 와닿는 사업을 펼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주민자치 사업의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는 데 무엇보다 행정기관과의 적극적인 소통이 중요합니다. 지면을 빌어 박은미 덕계동장님을 비롯해 많은 유관 단체 자생단체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항상 지원해주시고 협력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달성서씨 10대손인 서창현 회장, 지역에서 건실한 건설사를 운영하며 사업적으로도 성공한 그는 국제라이온스협회 355-D(울산・양산)지구 총재특별고문으로도 활동하며 지역 봉사와 나눔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내 고향, 내 동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작지만 큰 행복”이라는 그와의 따뜻한 만남이었다. [1142]
    • 라이프
    2022-12-26
  • 고된 노동과 집념, 지혜가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 ‘상황버섯’
    양산 동면 법기수원지는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부산 최초의 근대식 수원지인 구덕수원지(1902년)와 성지곡수원지(1909년)에 이어 1932년에 완공된 이곳은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 살던 일본인의 식수로 이용된 곳이기도 하다. 상수원 보호구역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여 수십 년 동안 인간의 출입이 제한된 까닭에 79년 동안 ‘금단의 땅’이 되었다가 지난 2011년 7월 15일, 댐과 수림지 일부를 일반인에 개방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수 없이 먹을 수 있는 청정 수질을 자랑하며 150만t의 물을 저장할 수 있고 하루 수천t 정도가 부산에 공급된다.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공존하는 산골 마을, 양산시 동면 법기수원지 입구에는 1급수 맑은 지하수를 끌어올려 친환경으로 재배되고 있는 상황버섯 농장이 있다. 청정한 자연과 맑은 정기를 담아낸 국제장수상황버섯이 바로 그곳이다. 1999년부터 이곳에 자리 잡아 상황버섯을 재배하고 있는 양동수 대표는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축적된 기술과 꼼꼼한 품질관리로 최상품의 상황버섯을 생산해내고 있다. _김유미 기자 상황버섯이 건강에 좋은 귀한 작물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내의 모든 식물 중 항암작용이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상황버섯은 발암물질을 분해하고 배설을 촉진해 암 치료에 좋을 뿐 아니라 면역력을 강화해서 종양을 저지하는 효과 또한 크다고 한다. 소화기계통의 암인 위암, 식도암, 십이지장암, 결장암, 직장암, 간암에 좋고 자궁경부암, 전립선암 등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황버섯의 균사체에 함유되어 있는 베타글루칸 성분이 혈관신생을 억제해 암의 성장을 막고 NK Cell(자연살해세포)의 증식을 도우며 면역기능을 강화해 준다. 그래서 미국식품의약국에서는 상황버섯을 세계 10대 항암식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바이러스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초기에는 노란 진흙덩어리가 뭉친 것 같은 형태를 유지하다가 다 자란 후에는 그루터기에 혓바닥을 내민 것처럼 보여 ‘수설’이라고도 한다. 그 중에서도 장수상황버섯은 특히 더 노란빛을 띄는데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장수상황버섯은 약용버섯 중에서도 뛰어난 효능을 자랑한다. 항암효과와 면역력 증진에 탁월한, 하늘이 준 귀한 선물 ‘상황버섯’ 국내 최초 공중재배 시작해 경남 거창이 고향인 양동수 대표, SK주유소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주유소를 인수받아 운영할 만큼 성실하게 살아온 그는 기름을 공급하던 거래처 농원과의 인연으로 상황버섯을 알게 된다. “당시에 상황버섯 1kg 가격이 280만원에 달할 때였어요. 도대체 어떤 버섯이기에 이렇게나 비쌀까? 얼마나 좋기에 이 가격에도 사람들이 찾을까? 호기심이 들었죠. 그러던 중 농원에서 종균기능사로 일하던 분께서 상황버섯을 한번 키워보지 않겠냐고 제의하시더라구요. 덕분에 종균도 편하게 공급받게 되어 큰 투자 없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부담 없이 시작한 일이 제 일생일대의 과업이 되어버린 셈이죠(웃음).” 마땅한 부지를 찾던 중 청정한 환경이 1순위라고 생각되어 지금의 법기수원지 근처로 자리를 잡았다. 부업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상황버섯에 대해 공부하고 재배방법을 연구하다보니 그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번 시작하면 제대로 파고드는 그의 성격으로 인해 결국 상황버섯 재배는 그의 인생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공중재배를 국내에서 처음 시작하게 된 것도 계속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기존에 원목(참나무)을 땅에 놓고 키우는 재배 방식은 상황버섯이 자라면서 흙이나 모래 등을 같이 품어버리기 대문에 수확 후 손질과정에서도 힘든 점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토양 속의 오염물질이 상황버섯에 일부 흡수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아예 땅에 닿지 않게 공중재배 방식으로 재배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번뜩 떠오르더군요. 현재는 많은 농장들이 공중재배방식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버섯의 품질은 물론, 공간 효율도 좋고 관리도 수월하기 때문이지요.무엇보다 생산량도 바닥에 세워서 하는 것보다 4배 가량 많습니다.” 무농약농산물인증, 경상남도 추천상품 선정 건강을 위해 먹는 상황버섯, ‘제대로 키워야한다’는 사명 국제장수상황버섯은 식약청에서 인정받은 우수한 국산 100%품종으로 친환경으로 재배된다. 매년 무농약농산물인증을 갱신하고 엄격한 검사를 통과하여 경상남도 추천상품으로도 지정되었다. KBS ‘6시 내고향’과 ‘한국재발견’, SBS ‘생방송 투데이’ 등 수많은 언론과 매체에서도 주목해 보도된 바 있다. “2년마다 엄격한 품질검사를 통과해 경상남도 추천상품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검사를 통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분들의 건강을 생각하며 정성껏 재배하다보면 자연히 좋은 품질의 상황버섯을 생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부모를 닮듯 농산물의 품질은 재배하는 사람을 닮을 수밖에 없어요. 사실 친환경으로 재배한다는게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내가 먹고, 우리 가족이 먹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먹는다고 생각하면 작은 것도 허투루 할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깨끗한 친환경 상황버섯을 재배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그의 뒤를 잇고자 공부 중인 딸의 역할이 컸다. “확실히 젊은 사람은 다르더군요. 창의적이고 정보력도 뛰어나구요(웃음). 최대한 친환경으로 길러내기 위해 벌레를 살피고 책을 찾고 하더니 국내에서 알아주는 벌레 박사님을 농장에 초청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개구리도 키워보고 잠자리도 넣어보고 물리적, 생물적 방제에 미생물 방제 등 복합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찾으시는 상황버섯이니 더욱 제대로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농산물은 단순히 상품이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품질의 버섯 재배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최상품에도 저렴한 가격 유지해 20년 넘게 찾아주시는 고객들 생각에 가격 못 올려 상황버섯은 나무에 종균을 심어 1년 정도를 키워서 수확한 다음 제대로 건조시켜야 제품으로 내놓을 수 있다. 버섯 원형으로도 판매하지만, 적당한 크기로 썰어 끓여먹기 편리한 절편의 판매가 많은 편, 국제장수상황버섯은 현재 법기수원지 앞 농장에서 관광객들에게 직접 현장 판매를 하고 있다. 농수산물유통센터와 쇼핑몰(e-경남몰),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택배 등 온・오프라인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상황버섯을 조금 아시는 분들은 의아해하실 겁니다. 국제장수상황버섯은 최상품임에도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편입니다. 처음 그 가격을 그대로 지키고 있어요. 그동안 농장운영에 필요한 종목값과 인건비 등 모든 것들이 올라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20년 넘게 저희 농장을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에 부담을 드릴 수가 없더라구요.” 인건비를 줄이고자 그는 365일 버섯과 함께 한다. 모든 버섯이 그렇지만 특히 상황버섯은 온도・습도・환기가 중요하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휴면기를 주는 것이 다음 해의 생장에 유리해 수분공급 없이 그대로 놔두게 되는데(양 대표는 ‘잠재운다’고 표현했다) 그 때도 일정한 온도와 습도로 유지되는 농장 안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버섯을 살핀다. “버섯을 기르는 법은 매뉴얼이 없습니다. 버섯 그 자체에서 배우고 익히게 되는 것이죠. 그때그때마다 버섯이 자신의 상태를 알려오고, 그동안 버섯과 함께 보낸 시간이 해야 할 일을 알려주니까요.” 상황버섯은 약재로도 좋지만 평소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건강음식이라고 강조하는 양 대표. “먹는 법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보편적인 방법은 차로 끓여 마시는 것이지만 그 외에도 닭백숙이나 돼지수육 등을 삶을 때 함께 넣어도 좋습니다. 육질도 부드러워지고 잡내도 제거돼 훨씬 풍미가 살아나죠. 무미무취가 특징이다보니 상황버섯은 어디든 튀지 않고 잘 어울립니다. 육수를 이용한 국, 탕은 물론이고 밥을 짓거나 김치나 된장을 담글 때 사용하면 깊은 맛은 물론이고 영양까지 더해지니까요.” 양동수 대표는 이리저리 계산하지 않는다. 진득하니 그냥 버섯 자체에 애정을 쏟아낸다. 그게 벌써 24년이 됐다. 그에게 농사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실현시키는 삶의 한 부분이다. “버섯과 함께 있으면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한없이 너그러워져요. 남은 인생도 상황버섯과 함께 하겠습니다(웃음).” 인터뷰 말미, 그는 늘 든든한 동반자로 함께 해준 아내(신수연 대표)와 5년 전부터 함께 하며 영농후계자 과정을 밟고 있는 딸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의 오랜 노하우에 젊은 감각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적극적인 마케팅이 더해져 ‘국제장수상황버섯’이 상황버섯의 대표 브랜드로 더욱 굳건히 서길 기대한다. [1142]
    • 라이프
    2022-12-26
  • 사람도 차도 쉬어가는 곳! 수입차 전문, ‘休 모터스’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중평로 40, 차분한 그레이톤의 단층 건물이 눈에 띈다. 하얀 바탕에 커다랗게 쓰인 한자 ‘休(휴)’, 그리고 MOTORS. 여유로운 진입로와 주차공간까지... 카페처럼도 보이는 이곳은 오성택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수입자동차 전문정비업체다. _ 김유미 기자 아주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사회에 진출해 기술을 배워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오 대표. 버스 회사에 입사해 정비를 배우며 사회 첫 발을 내딛었다. “또래와는 조금 다른 행보를 걷다보니 제가 선택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에는 불안하기도, 조급한 맘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자는 생각을 먹고 부터는 실력을 키우는데만 전념했어요. 마음을 굳게 먹고 나니 좋은 기회가 계속해서 생기더라구요.”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 선박엔진 정비・수리 엔지니어로 일하게 된 오 대표는 해군, 해경 요트엔진 정비를 담당하며 또 다른 커리어를 쌓아가게 된다. “부산, 사천, 동해, 군산, 부안, 인천 등 전국을 오가며 일했습니다. 여행 삼아 다니며 즐겁게 일했어요. 연봉도 꽤 높았구요(웃음). 그런데 2년 뒤,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출장이 대부분인 이 일을 이어가기가 힘들더라구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예 집을 떠나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결국 이후 부산 푸조 AS센터에 입사하며 자동차 정비와의 인연을 다시 이어가게 됐습니다.” 본사에서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이론 및 실무 교육을 통해 오 대표는 계속해서 담금질을 했다. 천성적으로 부지런하고 야무졌던 그는 인사, 경영을 함께 배웠고 울산 센터로 옮겨가는 과정에서는 매니저까지 승진하며 성장했다. “처음에는 임시 파견으로 울산 센터에서 근무하다가 아예 정착을 했어요. 이곳에 너무 좋더라구요. 4년 조금 넘게 근무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나중에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다른 곳에 스카우트되어 수입차 정비팀장으로 일했어요. 이때 경험하고 쌓은 노하우들이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오성택 대표는 3년 전, 휴모터스를 창업하며 정비 리프트를 하나만 설치했다. 여유로운 주차공간에 비해서는 파격적인 공간구성이다. 1:1로 고객과 소통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단다. 대기실 역시 정비공간과 맞먹는 크기, 깔끔한 모습이 오 대표의 성격을 닮았다. 중간 창으로 내 차의 작업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데 이 또한 고객 배려의 일환이다. “저부터가 쾌적한 공간에서 근무를 하고 싶어요(웃음). 고객분들은 말할 것도 없겠죠. 차에 문제가 있거나 염려되는 불편한 마음으로 오시는 분이 대부분인데 편안한 공간에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사실 리프트도 마찬가지에요. 욕심으로는 2~3대도 설치하고 싶지만 고객들과 소통하면서 한 대 한 대 집중해서 작업하고 싶은 마음에서 과감히 1대만 설치했지요.” 휴모터스에서는 엔진오일 하나를 교체하더라도 부품 단가는 얼만지 공임비는 얼만지 꼼꼼하게 기재된 명세서를 제공한다. 방문 후기에는 이곳의 세심한 고객 배려와 꼼꼼한 정비 실력에 대한 칭찬 글 일색이다. 특히 오성택 대표의 전문분야인 푸조(PEUGEOT)와 시트로엥(CITROËN) 차량 정비는 동호회 등에서도 입소문이 나 일부러 먼 지역에서도 찾아올 정도. 정비 실력은 기본, 자동차 문외한인 고객들에게도 차분하게 설명하는 그의 친절함과 오히려 고객의 입장에서 꼭 필요한 부분만 정비를 진행하는 신뢰감, 그리고 꼼꼼하게 내역을 밝히는 정직과 신용, 그 바탕에 깔린 고객 배려까지... 휴모터스는 특히나 여성 고객들의 방문이 많은데 바로 이 이유에서다. “정말 단순히 자동차가 좋아 정비를 시작했습니다. 원리를 알수록 정비하는 재미가 새록새록 솟아나더라구요. 자동차는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휴모터스를 찾아주시고 만족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에 늘 힘이 납니다(웃음). 앞으로도 고객과의 약속, 소통 그리고 고객만족을 실천하며 열심히 운영해나가겠습니다.” [1142]
    • 라이프
    2022-12-26
  • 풍부한 실무경험과 탄탄한 이론으로 두각 / 울산, 형사 전문 변호사
    최근 강승모 법무법인 신세계 울산 대표 변호사는 민선 8기 울산시 시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다. 울산시 시민고충처리위원회는 시민의 입장에서 고충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구성된 합의체 기구로 위원장, 부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5명으로 구성됐으며, 임기는 4년이다. 울산시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위원회 명칭 변경 권고에 따라 위원회 명을 기존 시민신문고위원회에서 시민고충처리위원회로 변경했다. 고충민원처리 업무만을 담당하도록 해 전문성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위원을 의회의 동의를 거쳐 시장이 위촉함으로써 신분보장을 강화하고 업무의 독립성을 보장했다. 법적 기반을 갖춘 위원회로 출범함에 따라 위법, 부당하거나 소극적인 행정처분, 불합리한 행정제도 등으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의 고충민원을 해소하는 역랑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주간인물은 법률사각지대에 있는 이웃들을 향한 따뜻한 법률 조력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강승모 변호사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강승모 변호사는 울산이 고향인 그는 청년시절, 육군사관학교와 한국교원대학교를 다니며 다양한 인생 경험을 쌓았다. ‘나라에 봉사하겠다’는 생각으로 군인을 꿈꿨던 그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스승이 되겠다’는 교육자를 꿈꿨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사회의 근간인 가정이 바로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하는 길’임을 깨달은 그는 법률가의 길을 선택했다. “단순히 생업에 종사하기보다는 사회의 일원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한때, 군인을 꿈꾸기도 했고 교육자를 꿈꾸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근간인 가정이 바로 서야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생활 속 많은 분쟁으로 가정이 무너질 위험에 처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부산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시 4회에 합격,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현재 법무법인 신세계 울산 대표 변호사로 울산남부경찰서 법률상담관, 울산지방법원의 법률상담관, 울산시 시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울산 옥동에 있는 법무법인 신세계는 문턱이 낮은 열린 법무법인을 지향하고 있다. 형사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법무법인으로 지역 법조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아플 때도 하루 속히 의사를 만나야 병을 키우지 않고 제대로 진료를 할 수 있듯이, 분쟁이 생길 때도 하루 속히 변호사를 만나야 사건을 키우지 않고 제대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어요. 변호사 수가 많이 늘어났다고 해도 아직 대부분의 시민들이 변호사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것이 현실입니다. 의뢰인들 가까이, 힘이 될 수 있는 열린 변호사 사무실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개업을 했습니다.” 날로 치열해지는 법률시장에서 강 변호사는 특화된 법률 서비스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형사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그는 음주운전, 성범죄, 토지보상, 이혼소송, 기업법인회생 파산 등 각 분야의 풍부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법률 조력을 하고 있는 것. “형사 분야와 개인법인회생, 파산, 이혼소송 분야에 특화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많은 소송 케이스를 통해 얻은 풍부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의뢰인들에게 전문적인 법률 조력을 하고 있습니다.” 성실한 변호사인 그는 사건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 한다. 상담 과정에서부터 마지막 소송 결과를 얻는 과정까지... 매 순간 최선을 다 한다. 기억에 남는 사건에 대해 묻자, 강승모 변호사는 기소 후 1심 무죄를 받은 사건에 대해 설명했다. “의뢰인은 갓 서른이 된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의료 계통 치료학을 전공하고 병원에서 치료사로 일하며 꿈을 키우던 평범한 청년이었죠. 어느 날, 한 여성 환자분에게 성추행 혐의로 고발을 당해 한순간에 직장을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병원 측의 CCTV 자료를 봐도 성추행 혐의를 찾아보기란 어려웠고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이 직접 촬영했다는 증거 영상을 봐도 아무런 혐의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수차례의 법정 다툼을 통하여 억울함을 증명한 끝에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현재 2심을 준비하고 있는 이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어려운 경기에 기업회생, 파산과 관련된 법률 수요도 늘고 있다. 많은 사건을 처리한 경험이 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사건일수록 더욱 신중을 기하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의뢰인은 울산에서 중장비 대여 업체를 운영하던 부부였어요. 신용도가 낮아 두 아이들 앞으로 사업자를 내서 사업체를 운영했죠. 그러다 중공업 경기가 나빠지면서 운영이 어려워졌고 아이들 앞으로 수십 억대의 빚만 쌓여갔습니다. 결국 버티다 못해 기업회생을 신청하게 됐죠. 채무를 다 정리를 하고 10년 상환으로 일부의 빚만 갚으면 된다는 조건으로 회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의 책임을 사회가 지는 것이 무책임하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회생법의 취지가 채무를 정리해주고 갱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라면 그 취지에 걸맞은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앞길이 창창한 아이들이 수십억의 빚을 떠안게 되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법무법인 운영에 바쁜 와중에도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이다.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 분야 중에서도 그는 장애아동 인권향상, 유기견 문제 해결 등 법률사각지대에 있는 소외된 이웃들을 돕는 것에 뜻을 두고 있다. 울산시 시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 활동도 평소 품어왔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의지를 실천한 것이다. 시민고충처리위원회 활동 중에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묻자 그는 한 일화를 소개했다. “울주군에서 마을안길로 사용되고 있는 사유지에 대하여 그에 상당한 매수 보상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시정 권고를 내린 적이 있습니다. 군에서는 마을안길 등은 비법정도로로 토지보상법상 보상 가능한 토지에 해당하지 않아 매수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실질적으로 사유지의 주인은 은혜적인 차원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토지를 빌려준 것이지 아예 소유권을 지자체에 넘겼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부당하게 침해된 시민들의 재산권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현재 울주군에 매수 보상을 시정 권고한 상태입니다.” 강승모 변호사는 사건에 임할 때마다 초심(初心)을 되새긴다. ‘내 일처럼 의뢰인들의 사건을 맡는다’ 것이 그의 오랜 지론이다. 10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일 해온 그는 열심히 일하는 변호사이자 따뜻한 가정의 가장이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 묻자 그는 “치열한 법률시장에서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의뢰인을 대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법무법인 신세계 울산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법무법인으로 만들고 싶다”는 힘찬 포부를 밝혔다. [1140]
    • 라이프
    2022-10-27
  • 일하는 청춘 시니어, 길을 밝히다
    7월 26일 시니어벤처협회(회장: 신향숙)의 성남지사 개소식이 열렸다. 행사에는 신상진 성남시장, 성명기 성남산업관리공단 이사장, 이창희 중소벤처기업부 중장년 사무관, 윤소라 성남상공회의소 여성기업인협의회 회장, 양표숙 한국여성벤처협회 부회장, 성남 중장년기술센터장, 이용기 세종대 시니어산업학과 교수 등 내빈이 함께 참여하여 성남시 지역발전을 위한 시니어벤처협회의 개소를 축하하였다. 지난 21년 11월 성남산업단지관리공단과 ‘시니어의 역할 증진’을 지원하기 위한 포괄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던 (사)시니어벤처협회의 신향숙 회장은 “기술의 융·복합 뿐 아니라 세대 간의 융·복합도 이뤄져야 한다”면서 “시니어그룹과 청년그룹이 지닌 각각의 고유의 장점을 찾아내고 결합해 세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동력을 확산하여 성남시 지역발전에 기여할 것이다”는 의지를 밝혔다. 시니어벤처협회(회장 신향숙)는 2017년도에 중소벤처기업부의 인가를 받은 벤처협회로, 1996년 벤처기업협회, 1998년 한국여성벤처협회 설립 승인에 이어 늦은 감은 있지만 중장년 시니어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설립되었다. 시니어벤처협회는 2019년 시니어창업허브 ‘디딤터’를 서울 광진구를 시작으로 2곳에 개원하였고, 디딤터와 관련 교육과정을 운영, 창업·재창업 관련 각종 세미나와 시니어 문화예술 학교를 열어 중장년 시니어의 창작 활동을 지원 중이며, 대구/경북지회 외에도 전주/전북지회, 울산지회, 서산/충남지회, 광명지회, 인천지회가 출범되는 등 전국단위의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활기찬 중장년 시니어들의 성공적인 도전을 이끌기 위해 시니어벤처협회는 지난 5년간 △언론사 △협단체 △기업 △대학들과 중장년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고 있으며, 도전하는 중장년 시니어가 기술 및 서비스 분야 창업에 도전하도록 창업 교육부터 창업 보육은 물론 투자 및 성장까지 창업 생태계 전 생애에 걸친 지원을 해왔다. 시니어벤처협회 오늘날의 성과는 지치지 않고 지속적인 큰 힘이 되어주신 임원분들의 열정과 봉사로 이루어졌으며 22년 7월 성남에 시니어의 둥지를 마련하고, 일하고 싶은 시니어의 일자리 창출에 앞장설 것이며, 시니어 창업 기업인에게는 창업기회의 장을 마련할 것이다.
    • 라이프
    20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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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에겐 안전하게 놀 수 있는 환경을, 엄마에겐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채워드리겠습니다”
    최근 조용한 휴식 공간을 찾는 성인들을 배려하고 영유아와 어린이의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출입을 제한하는 ‘노 키즈 존’이 화제가 되고 있다. 어딜 데려가도 눈치를 봐야 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키즈 카페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주간인물에서 소개할 포항에 위치한 키즈 카페 ‘라팡’은 기존의 키즈 카페와 달리 부모들과 아이들이 함께 쉬며 즐기는 공간이다. 분위기 있는 북유럽풍의 인테리어와 다양한 식사메뉴 그리고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테마들로 인기를 얻으며 각광받고 있다. _김정은 기자 아이의 동향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구조와 위생적인 관리로 주목 받은 ‘라팡 키즈 카페’ 대형업체가 운영하지 않음에도 엄마들의 입소문만으로 유명해진 ‘라팡 키즈 카페’. 크림색과 스카이 블루의 조화로운 색감과 세련된 북유렵 감성을 더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분위기도 좋지만 이곳의 가장 큰 자랑은 잘 갖추어진 놀이시설과 맛있는 요리다. 이 때문에 엄마들 친목 모임 장소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엄마들이 식사 후에도 이야기를 나누며 모임을 즐기다 보니 일반 실내 놀이터 보다 이용 시간이 길어요. 그래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오랫동안 즐길 수 있도록 신경 썼어요.” 그녀 역시 아이를 둔 엄마의 마음으로 ‘라팡’을 ‘내 아이의 방’처럼 꾸미고자 했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조명, 벽지, 소품, 테이블 등 모든 인테리어에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20번 정도 도면을 수정했어요(웃음). 예쁜 공간을 만들기보다 아이가 시야에 들어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야 부모는 안심이 되거든요.” 이뿐만 아니라 어린아이가 움직이며 노는 공간인 만큼 수시로 소독하는 등 장난감의 위생관리에도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소독하는 것은 물론 매주 정기적인 살균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영. 유아들은 특히 손에 잡히는 물건을 입에 넣는 습성이 있어 더 위생적으로 관리해야 돼요. 그리고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잘 부러지거나 안전하지 않은 장난감이나 물건은 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카페 내부를 돌며 직원들이 안전 문제를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엄마 역시 편하게 쉴 수 있다고 전하는 그녀에게 아이와 엄마를 생각하는 배려심이 느껴졌다. “제가 엄마가 되어 보니 아이 덕분에 행복하지만, 희생해야 하는 것도 많더군요(웃음). 밥을 먹을 때도 아이에게 신경 쓰느라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할 때가 많고,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하게 되면 가게나 주변인들의 눈치를 보는 일도 많았죠. 이런 부분들을 조금이라도 채워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라팡’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놀이 시설과 다양한 유아용 장난감 ‘라팡’의 놀이기구와 장난감, 승용완구는 해외 사이트에서 구입하거나 엄마들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많다. 특히 아이들이 손뼉 치며 즐거워하고 있는 ‘모션(동작) 인식 플레이 존’은 대형 스크린에 아이들이 공을 던져 목표물을 맞추면 점수가 올라가거나 동작이나 행위에 따라 센서가 감지하여 스크린에 현상이 일어나는 놀이로 5가지의 콘텐츠가 바뀌어 가며 제공되고 있다. “아이들이 카페에서 나가기 싫다고 떼쓰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웃음). 이곳을 자주 찾는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을 주기적으로 교체하고 새로운 것을 접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어요.” ‘라팡’을 찾는 아이들이 늘어나 안정성에 문제가 염려되어 인원 제한을 두고 있다는 장 대표. 주말에는 대기하는 손님들에게 죄송하다고 전하며 내년엔 ‘라팡’이 위치한 건물 옥상에 루프탑 키즈 카페를 만들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커피한잔의 여유도 없는 부모들을 위한 정성 가득한 수제요리 ‘라팡’의 모든 요리는 10년 동안 호텔에서 근무한 전문 셰프가 담당하고 있다. 매일 아침 국내산 재료를 공수해 오고 있으며 합성조미료나 유화제를 사용하지 않고 수제로 조리되고 있다. 자극이 없고 간이 약한 요리로 아이들과 함께 먹어도 좋은 바른 음식만 고집해 내놓고 있어 부모들의 만족도가 높다. 음료 역시 핸드드립 커피와 신선한 계절과일로 매일 매장에서 직접 만들어 맛은 물론 영양까지 갖추고 있다. 음식이 돋보이는 심플하고 고급스러운 식기에 담긴 음식은 기분 좋게 요리를 즐길 수 있도록 신경 쓴 플레이팅이 돋보였다. 특히 아이들 메뉴로 정해진 한우로 조리된 함박스테이크는 자동차 캐릭터 식기에 담겨 나와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음식을 가리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흥미를 유발하고 재밌게 먹을 수 있도록 신경 썼어요. 다 먹고 디저트 과일을 더 달라고 해서 챙겨줄 때 기분 좋고 너무 예뻐요(웃음).” 유명 메신저의 ‘엘로우아이디’를 통해 ‘라팡’의 소식과 이벤트를 받아보며 문의하는 엄마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있는 장 대표. 그녀는 “초심을 잃지 않고 고객의 Need & Want를 반영해, 보다 발전한 모습으로 다가가겠다” 라며 앞으로 포부를 밝혔다.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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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1-16
  • “이젠 국제피플투피플 한국본부가 세계의 중심으로 국제평화에 기여하겠습니다”
    (사)국제피플투피플(PTPI)은 순수 민간 차원의 자발적 노력으로 국제간 친선 교류활동과 상호 이해 증진을 도모하여 세계평화 구현에 기여한다는 취지하에 1956년 미국 제34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창설된 비정치, 비종교, 비영리의 국제 민간외교, 문화교류, 봉사단체로 교육, 문화, 예술, 스포츠 등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을 치르고 난 후 어떻게 하면 이 지구상에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킬까 고민하던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대통령이 지구상 모든 국가의 사람들이 직접 접촉하고 만나서 서로 교류, 소통하는 것이 평화 정착의 첫걸음이라는 철학 하에 설립하였다. 국가가 아닌 민간인들이 교육과 문화 그리고 인도적 사업을 통해서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처음에는 미국정부기관의 한 부서로 출발하였다가 1961년에 순수민간단체로 변모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제피플투피플 세계본부는 미국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 세계 133개국에서 이 운동에 동참하여 활동하고 있다. 한국 PTPI는 1965년 강원도지사로 재임 중이던 박경원 지사가 춘천챕터를 설립하여 이 운동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여러 챕터가 태동하여 1972년에는 우리나라 각 지방의 지도층 인사들과 함께 주한유엔군 및 PTPI세계본부의 후원으로 한국본부가 창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은 PTPI 한국본부 5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총재인 김길연 총재를 만나 그의 역동적이고 섬세한 피플투피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안연승 차장 "우리 대한민국은 무엇보다 국가안보가 중요합니다" “1972년 1월 31일 한국본부가 창립할 때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한누리’라는 휘호를 받았습니다. ‘한누리’는 순우리말로 ‘하나의 세상’ 또는 ‘큰 세상’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PTPI 운동의 취지를 잘 표현한 우리말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 대한민국과 미국은 한·미 안보의 전략적 동맹관계로 결성된 국가입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부흥을 일으킨 우리나라에는 지금도 위기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일촉즉발의 불안한 한반도 정세를 보자면 한국과 미국의 혈맹으로 다져진 관계는 그 결속이 더한층 강화되어야 할 시점인 것입니다. 그래서 매년 이어오는 국제친선의 밤 행사는 한미연합사의 UN 모범 장병 수 백 명을 초청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추천된 모범장병들을 시상하는 자리로 그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민간외교 봉사단체인 국제피플투피플은 지난 50년간 국가안보에 전략적 심리적으로 기여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세계평화구현을 위해, 미군 및 외국인들과의 문화교류를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차세대 교육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 같은 교육은 우리 청년들에게 올바른 국가관을 심어주고 한국인으로서 주인의식을 갖고 세계로 뻗어나가 국제 평화에 기여하도록 하며 외국 유학생들에게는 우리문화와 역사를 알려 제2의 한국인이 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목표로서 이 기회를 통하여 차세대 리더의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2016년 자랑스런 혁신 한국인에 선정 PTPI 한국본부는 5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총재인 김길연 총재를 선출하여 첫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어떤 단체나 리더의 열정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총재가 되기 전, 8년간 부총재로 일하며 몸이 불편하신 총재를 대신하며 전국 각지의 지방행사에 열심히 참석하였습니다. 그 때 많은 분들과 교류하며 친하게 되었고, 지금 총재직을 수행하는데도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전임 총재의 갑작스런 퇴임 후,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저를 총재로 추대하여 지금껏 열심히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제 50년의 방점을 찍은 한국본부는 민간 외교단체로서 그동안 전국의 회원들이 많은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민간외교사절 활동과 봉사활동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부에 우리의 활동을 널리 알리고, 상당한 규모의 사업을 수면 위로 올려 사회단체로서의 위상을 높이고자 합니다. 민간외교단체이면서도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헌신하는 한국 PTPI는 봉사하는 보람을 널리 퍼트려 우리 회원들의 자부심도 더욱 높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한국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국사회 각계각층은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심화되어 있으며 통합보다는 분열, 소통보다는 단절로 국가의 역량을 결집하지 못하여 앞으로 전진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 모두 나라를 되찾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라고 김 총재는 강조했다. 김길연 총재는 국제 피플투피플 한국본부의 활동의 의미를 알리고 대외적으로는 민간외교로 국내에서는 국민통합으로 이어져 이것이 국력의 기본이 되어 분열보다는 화합하는 자랑스런 한국 만들기에 일조를 하고 있다. 김길연 총재의 이 같은 활동을 높이 평가하여 ‘2016년 자랑스런 혁신 한국인’에 선정되었다. 세계의 중심! 한국 국제피플투피플의 위상 미국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에 있는 PTPI 세계본부는 한국본부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는데 한국본부의 활동이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나 세계본부 측에서 한국이 어떻게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지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아왔다고 한다. 세계본부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한국 국제피플투피플은 이젠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PTPI 한국본부는 명실상부한 한미연합사의 협력단체로서 크고 작은 행사에 직접참여하고 있으며, 국가보훈처 행사에도 빠짐없이 초대되어 각국에서 온 6.25 참전용사와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필리핀, 콜럼비아, 아랍에미레이트 등 각국 독립기념일 행사에 초청되어 많은 나라의 대사들과 우의도 증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유엔본부가 개최한 경주 NGO Conference에서는 한국본부가 PTPI 세계본부 대신 참석하여 전 세계에서 참가한 2천여 명의 NGO 대표단에게 PTPI를 알리고 한국 PTPI의 활동을 널리 알리어 각국의 대표단으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또한, 지난 7월에는 500명의 PTPI 국제청소년봉사단 발대식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청소년들이 그들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나아가 진로의 폭을 넓히는데도 기여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지난 50년간 한 번도 단체역사를 기록한 책이 없어 정리가 매우 어려웠던 ‘한국 PTPI 50년사’의 성공적인 발간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 차세대 지도자포럼의 성공적인 개최로 한국본부는 한국 PTPI의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고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라며 김길연 총재는 커다란 자부심을 드러냈다. 다문화가정의 지원 등 봉사활동에도 앞장서는 한국 국제피플투피플 “PTPI 한국본부는 지난 6월 아프리카 토고에 초등학교 교실 신축기금을 전달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이 발전한 원동력은 교육의 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프리카의 교육환경 개선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네팔의 지진사태와 에콰아도르 지진 때도 구호물자와 구호기금은 물론 장학금도 지급하여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젠 우리도 과거의 빚을 갚고자 자랑스럽게 베푸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또한, 다문화가정을 위한 우리 PTPI 한국본부의 활동은 어느 NGO단체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진정성 있고 헌신적입니다. 예를 들면,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다문화 가족들에게 결혼비용 일체를 지원하여 합동결혼식을 올려주고 신혼여행까지 보내주는 운동은 물론 여러 나라에서 시집온 다문화 가족들 중에서 모범 가족을 선발하여 외갓집 보내기 운동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시집온 이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이들에게 자녀들과 함께 그리운 고향과 부모님을 만나고 올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아주 좋은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가을이면 김치담아주기, 쌀 나누어 주기 등 다양한 봉사활동이 있습니다. 저는 PTPI 한국 본부 총재로서 열과 성을 다해 PTPI 기본 이념인 ‘상호 이해를 통한 세계 평화 구현(peace through understanding)’이라는 철학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해 9월 PTPI 국제본부 집행위원(BOD)으로 선출되어 한국의 위상을 높인 김길연 총재는 한국본부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경험을 살려 PTPI 세계본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조타수의 역할을 할 것으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지금은 무엇보다 변화가 중요한 시기입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올바른 비전을 제시하여 발전을 도모해 나가야 합니다. 이제는 PTPI의 모토인 국제평화를 위하여 우리 PTPI 한국본부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 평화의 메시지를 외치며 세계평화구현에 앞장서 나아가겠습니다.” 현재 김 총재는 서경대학교에서 외국 유학생들에게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가르치며 제2의 한국인을 만든다는 각오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이사, 수필가, 시인, 평론가로 한국문인협회, 소월기념사업회, 한국수필가협회 등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People to People International (PTPI) was founded by Dwight D. Eisenhower, the 34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in 1956, with the aim of promoting international exchanges and promoting understanding through voluntary efforts by the private sector. It is a non-political, non-religious and non-profit organization that is dedicated to private diplomacy and cultural exchange on the global stage, and engages in a wide range of activities in relation to education, culture, sports and the arts. Eisenhower, who had been contemplating the ways to eradicate war and establish peace on Earth since the end of World War II and the Korean War, founded PTPI based on the philosophy that communication and interchanges among people from all countries around the world was key to peace. Although it was initially incepted as a department of the U.S. government, it was transformed into a private organization in 1961, under the belief that civilians, not the state, can faithfully pursue its objectives through education, culture and humanitarian programs. PTPI World Headquarters is located in Kansas City, Missouri, and 133 countries worldwide are participating its movement. In Korea, the PTPI movement began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Chuncheon Chapter of PTPI by Park Gyeong-won, the then-Governor of Gangwon-do Province, in 1965. From then on, a number of chapters were incepted and in 1972,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was founded with the support of leadership across the country as well as the UN Command in Korea and PTPI World Headquarters. We met with Kim Gil-youn, the first-ever female president of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in its 50-year history, to hear the dynamic and fascinating story of “People to People.” _Written by An Youn-seung “Above all, national security is most important to Korea” “At the time of the founding of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on January 31, 1972, the then-President Park Chung-hee bestowed a writing that read, ‘Hannuri,’ a native Korean word that means ‘one world’ or ‘large world.’ I believe it is a word that best expresses the purpose of PTPI. Korea and the U.S. have formed a strategic alliance for national security. Korea may have risen from the ruins of war, yet risks and threats still lurk today. The recent instability and volatility observed on the Korean peninsula show that this is a time point at which Korea and the U.S. must further consolidate their ties. For this reason, we invite hundreds of exemplary UN military officers from the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CFC) to our annual International Friendship Night to express our gratitude and confer awards, and this event is becoming increasingly more important. PTPI, a non-profit private diplomacy organization, has dedicated itself to maintaining national security for the past 50 years, and we will continue to actively engage in cultural exchanges with the U.S. armed forces and foreigners to ultimately achieve world peace. Educating our future generations is also highly important. Proper education can instill a proper national view and a sense of ownership among our youth and young adults, thereby encouraging them to reach their influence across the world to contribute to world peace. On the other hand, it can inform international students studying in Korea of Korean culture and history and become Koreans at heart. With these as our objectives, we wish to create the path to becoming the next-generation leaders for our youth and young adults.” Selected as one of the Proud Innovative Koreans of the Year 2016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reached its first turning point when Kim Gil-youn was elected the first female president of the organization in its 50 year history. “Regardless of what kind of organization it is, it is important for the leader to have passion and enthusiasm. Before I was elected President, I served as the Vice-President for 8 years, and actively attended the events held across the country on behalf of the then-President, who was too ill to travel. I was able to build friendly relations with many people then, and they have been providing me with great assistance during my presidency. Following the abrupt resignation of the former President, I was elected as the new President by a unanimous vote at the General Assembly, and since then I have dedicated myself to this organization.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which has celebrated its 50th anniversary, remains relatively unknown, despite the fact that our members have engage in numerous activities as private diplomats, because our private diplomatic activities and volunteer activities have been conducted in a quiet manner. So, I plan to promote our activities externally and raise our programs and initiatives out of obscurity as a means to boost our stature as a social organization.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which is a private diplomacy organization that is also dedicated to volunteer services in the local communities, wishes to spread the joy of volunteering and instill greater pride among our members. Also, I believe that the people ? as the citizens of Korea and as the members of society ? must have a sense of responsibility. Korean society is currently plagued by extreme collective selfishness, which impedes unity and causes division and communication barriers. This in turn has prevent us from consolidating our national power and capacity and moving forward. Therefore, we must recollect our initial resolve and emotions when we reclaimed our country as our own," stressed President Kim. President Kim Gil-youn is communicating the significance of the activities of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and engaging in private diplomacy on the global stage and national integration at home, thereby contributing to the creation of a “proud Korea” that is characterized by harmony rather than division. In recognition of her contributions, President Kim was selected as one of the Proud Innovative Koreans of the Year 2016.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at the center of the world Representatives of PTPI World Headquarters, based in Kansas City, Missouri, U.S.A., visited Korea to celebrate the 50th anniversary of the founding of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They explained that they wanted to pay a visit because the activities conducted in Korea were so exceptional that they wanted to witness them first-hand. The admiration shown by the representatives of the World Headquarters evidenced the prominent stature of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on the global stage.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engages in various events as a partner organization of the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and has been invited to all of the events hosted by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to provide support to the Korean War veterans and bereaved families. Also, we have been invited to the Independence Day events of the U.S.A., the Philippines, Columbia, the United Arab Emirates and others, and promoted friendly relations with numerous countries and their ambassadors. Representatives of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also attended the NGO Conference in Gyeongju hosted by the United Nations this past June, on behalf of the PTPI World Headquarters. There, we provided some 2,000 NGO delegates from around the world information on PTPI and our activities, and received a favorable response. Also, this past July, we successfully hosted the PTPI International Youth Volunteer Starting Ceremony with around 500 volunteers, whose lives will be enriched and whose career paths will be broadened through their activities with PTPI. Moreover, we successfully published ‘The 50-year History of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which was difficult to compile as there had been no prior books documenting its history, and hosted the Asia-Pacific Next-Generation Leaders Forum, which helped display the prestige and status of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and received lavish praise,” said President Kim as she beamed with pride. A leader in volunteer services incl. multicultural family support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donated money to build new classrooms in an elementary school in Togo, Africa, this past June. The driving force behind the economic development of Korea was the power of education. This is why we want to contribute to improving the educational environment of Africa. We have also donated money and relief supplies for the earthquake victims in Nepal and Ecuador, and provided scholarships to students. As such, Korea has transformed from an ‘aid recipient’ to a proud ‘donor,’ as a way to repay its past debts. In addition, the activities carried out by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for multicultural families are accompanied by so much sincerity and dedication that they cannot be compared to the activities of any other NGOs. For instance, for the parents of multicultural families who could not afford to have a wedding, we hold group wedding ceremonies and cover the wedding costs in addition to their honeymoon costs. We also select exemplary multicultural families to send the women to see their families back home. This program gives a chance for the women to visit their hometowns and see their parents again with their own children, and this is considered an excellent program that comforts the women’s hearts. Furthermore, there are various other volunteer activities we carry out including making kimchi in fall and sharing rice. As the President of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I will do everything in my power to practice the fundamental philosophy of PTPI, which ‘peace through understanding.’” Kim Gil-youn bolstered the status of Korea when she was elected as a member of the Board of Directors of the PTPI World Headquarters in September last year. She is expected to play an important role in assisting the PTPI World Headquarters head toward the right direction, based on her experience of successfully running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This is an important time for a change. We must accede to the changes demanded in this day and age, and present a proper vision to promote advancement. To achieve world peace, which is the motto of PTPI, the Korean National Headquarters of PTPI will stand at the center of the world and play a leading role in achieving world peace.” At present, President Kim is teaching Korean culture and language to international students studying at Seokyeong University. She is dedicated to her work as an educator, in hopes of fostering her students into Koreans at heart. She is also a director at the National Strategy Institute, an essay writer, a poet and a critic, and is an active member of the Korean Writers’ Association, Sowol Memorial Society and the Korea Essayists Association.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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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1-15
  • 도심속에서 만나는“물억새 산책길”11일부터 시민 개방
    도심속에서 만나는“물억새 산책길”11일부터 시민 개방 - 청계천 하류(마장2교~용답역) 400m구간 물억새 산책길 조성해 11일부터 시민 개방 - 청둥오리, 왜가리 등 겨울철새와 멋진 물억새 풍경도 만날 수 있는 산책길 서울시설공단(이사장 이지윤, www.sisul.or.kr)은 청계천 하류 마장2교~용답역 구간에 만든 물억새 산책길을 오는 11일부터 12월 10일까지 약 한달 간 개방한다고 밝혔다. 물억새는 물가의 습지에서 자라는 억새를 말한다. 무리 지어 자라며 줄기가 하나씩 바로 서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시설공단에서는 2013년 한차례 청계천 물억새 산책길을 조성해 개방한 바 있다. 청계천 산책길 물억새의 높이는 약 1m정도다. 이번에 개방하는 물억새 산책길은 3.000㎡규모로 폭은 1.2~1.5m, 길이는 약 400m의 오솔길이다. 지하철 2호선 용두역(동대문구청) 4번 출구에서 고산자교 아래쪽으로 5분거리다. 용답역에서 내린다면 청계천 방향으로 내려오면 된다. 물억새 산책길은 철새보호구역으로 청둥오리, 고방오리, 왜가리 등 겨울철새도 구경할 수 있다. 물억새길 건너 한양대 방향으로 걷다보면 탐조대와 망원경이 설치돼 겨울 철새 등을 관찰할 수 있다. 서울시설공단 이지윤 이사장은 “물억새 산책길에 오시면 바람에 흔들리는 물억새와 잔잔히 흐르는 청계천 등 도심속에서 가을의 정취를 접하실 수 있다”며 “앞으로도 청계천을 시민여러분들의 힐링을 도울수 있는 가치있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설공단은 청계천에서 다양한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생태해설사와 함께 생태탐방, 숨어있는 생물 찾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생태학교는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시스템(yeyak.seoul.go.kr, 02-2290-6859)에서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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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1-10
  • 정수영 화천발전연구원장
    화천군은 강원도의 서북부에 위치한 군이다. 화천읍 · 상서면 · 사내면 · 하남면 · 간동면의 1읍 4면을 관할한다. 북쪽으로 철원군, 서남쪽으로 가평군 포천시, 남쪽으로 춘천시 신북읍이 인접한다. 군의 동쪽으로는 봉오산 · 마현산 · 복주산 등이 우뚝 서 있으며, 북한강이 군 중남부로 흘러 파로호(破虜湖)로 흘러들어 소양강 물줄기가 된다. ‘삼국사기’에 ‘낭천군(狼川郡)은 본래 고구려 생천군이었는데 경덕왕이 개칭하였으며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의 화천군이 낭천군이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1902년(광무 6)에 군 이름을 화천군(華川郡)으로 바꾸었는데, 군의 진산인 용화산(龍華山)의 높고 아름다움을 본받고자 한 뜻이었다고 한다. 즉, 용화산의 화(華)와 본 고장을 흐르는 맑은 하천의 천(川)이 물리적으로 합쳐져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늘은 6대째 화천과 인연을 이어가며 지역사랑에 힘쓰고 있는 정수영 화천발전연구원장을 만나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안연승 차장 화천발전연구원장 “밥 굶는 사람, 집 없는 사람, 진학 못 하는 학생을 없애고, 노인과 보육, 의료, 장애인 복지를 강화하는 `3무(無)4강(强)' 복지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것 입니다. 그리고 국방개혁 이후 주둔 군인이 급격히 줄어들면 지역경제 타격이 우려고 있어 장기복무자 정착 유도와 복지 강화 등 다양한 대책을 준비해지속 가능한 발전방향을 찾겠습니다. 또한, 깨끗한 도덕성을 기반으로 부정이 없는 공정하고 투명한 화천 지역사회를 건설하겠습니다.”라고 강조하는 정수영 화천발전연구원장은 화천 출신으로 사내초, 사내중, 춘천공고, 경희대를 졸업했다. 제18대 대선 박근혜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조직총괄본부 조직특보를 역임했고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국방안보분과 부위원장, 새누리당 전국위원회 중앙위원을 맡고 있으며 사내 중·고등학교 총동문회장을 4년간 맡아 봉사했다. “화천이 그동안 중앙정치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해온 것은 중앙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 부족했던 탓이라 생각합니다. 새누리당 중앙당에서의 경험과 인맥을 총 동원해 화천을 보다 건강하고 활기찬 도시로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일하는 화천, 편리한 화천, 건강한 화천을 목표로 문화관광벨트 조성, 공동물류단지 조성, 보육지원 확대, 화천체육진흥재단 설립,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정책 마련 등을 단계적으로 화천의 발전을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관광학자 연구 결과물 행정반영” 화천은 축제의 도시다. 해마다 100만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산천어축제를 비롯해 쪽배 축제와 토마토축제, 읍면별로 열리는 바로파로겨울축제, 동심산촌랜드 축제, 들꽃축제, 호랑이축제 등 군소축제가 넘쳐난다. 특히 산천어축제는 대한민국대표축제로 선정될 만큼 그 규모와 내실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축제개최로 축제의 희소가치를 스스로 떨어트리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각종 축제를 개최하면서 발생하는 주민들 간의 불화, 이권다툼 등 역기능도 적지 않다. “일부 기득권 세력을 위한 축제가 아닌 전체 군민이 참여하고 전체에게 골고루 혜택이 전달 될 수 있도록 보다 세밀하고 보다 계획적으로 축제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화천지역사회와 경제, 문화, 관광 등 산업의 발전을 위한 연구 활동을 수행함으로써 주민들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에 기여 것이며 이 결과물을 행정에 반영하겠습니다.”라며 정수영 화천발전연구원장은 축제의 도시 화천을 더욱 발전시켜나갈 계획도 밝혔다. 다시 찾고 싶은 펜션 고은빛 펜션! 1984년에 고은주 여사와 결혼한 정수영 원장 “아내는 지금도 경희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내조가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결혼식 주례는 김재순 前국회의장께서 맡아 주셨는데 제가 정치에 입문할 운명의 시작이었나 봅니다.” 정 원장은 고향인 화천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펜션의 이름은 아내의 이름에서 ‘고은’을 따고 ‘빛’을 붙여 ‘고은빛’ 펜션이라 지었습니다.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관광발전에도 기어코자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화천군에 있는 수많은 펜션 중에서 좋은 평판을 듣는 펜션이 되었습니다.” 고은빛 펜션은 다시 찾고 싶은 펜션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펜션운영은 물론 고객들에게도 좋은 펜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가 오랜 기간 근무했던 경원대학교 설립자이신 김동석 총장님께서는 ‘10년을 생각하면 나무를 심고 100년을 생각하면 사람을 심는다’란 말씀을 강조하시곤 했습니다. 저도 그 뜻을 기리고자 사내 중·고등학교 총동문회장직을 지난 4년간 수행했습니다. 이제는 저의 고향인 화천의 발전을 위하여 더욱 큰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화천군은 그간 너무 많은 희생만 강요받아 왔습니다. 수많은 군인들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이곳 화천군에 왜 군수 관련 공장이 단 한곳도 없습니까? 이제는 바뀌어야합니다. 100년 대계를 생각하는 화천군을 만들고 싶습니다.”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국방안보위원회 부위원장 1956년 화천군 사내면 출생 1969년 사내초등학교 졸업 1972년 사내중학교 졸업 1975년 춘천공업고등학교 졸업 1984년 경희대학교 공업경영학과 졸업 1991년 경원대학교대학원 관광경영 석사 졸업 1984~2012년 가천대학교 교직원 부장 1998~2003년 가천대학교 간부협의회 회장 2006년 김문수 경기도지사 선거대책위원회 조직특보 2012년 제18대 대선 박근혜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조직총괄본부 조직특보 現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국방안보분과 부위원장 現 새누리당 전국위원회 중앙위원 前 사내중·고등학교 총동문회장 現 화천발전연구원장 [999]
    • 라이프
    2016-10-31
  • 이상웅 아는사람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세간의 많은 관심을 끌었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통상임금 대표 소송. 그 화제의 소송에 변호인단으로 참여한 이상웅 변호사는 장래가 촉망되는 변호사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울산 지역 법조계에서 좋은 평을 받고 있다. _박미희 기자 “변호사로 만난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믿음을 주고 싶어요. 대표변호사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변호사사무실을 운영하는 첫 번째 원칙이죠(웃음).” 이상웅 변호사는 자신의 일에 남다른 열정을 지닌 사람이다. 젊은 변호사로 지역 법조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그는 어떻게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되었을까. “제 원래 꿈은 언론인이 되는 거였죠. 저는 남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데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군 제대 후에 장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남의 이야기를 전해주기보다, 이야기를 듣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언해주는데 더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했던 그는 자신의 공부 성향에 맞는 법학전문대학원을 선택해 본격적인 법조인의 길을 준비한다. “부산대 로스쿨은 금융, 해운통상 분야와 관련해서 많이 특화되어 있어요. 특히 저는 금융거래법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졌어요. 시험과목으로 들어가지 않지만, 실무에서 많이 다뤄지는 부분이거든요. 금융관련 법령은 단행법으로 구성되어 있어 종합적인 시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좋은 공부가 됐던 것 같아요.” 연고가 있는 서울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었지만, 굳이 울산을 선택한 것은 앞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 때문이었다. “서울 로펌에서 고용변호사로 활동한다면 특화된 분야에만 너무 치중할 것 같았어요. 더 다양한 소송 실무를 경험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연고가 전혀 없는 울산으로 내려와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울산은 사건 수가 많지는 않아도, 기업법무와 관련된 다양한 소송들이 많아서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울산으로 내려와 초선변호사로 열정적으로 일한다. 그런 그가 변호인단으로 참여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통상임금 대표 소송(1심)은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정치학을 전공한 배경지식을 살려, 승소의 핵심열쇠를 풀어낸 것. “현대중공업의 급여세칙에는 결근, 조퇴, 휴직 기타 징계사유에 대해 일정 퍼센트의 상여금을 감한다는 규정이 있어요. 그래서 이를 두고 반대편 변호사는 고정성이 없음을 들어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저는 상여금을 감하는 것도 제재에 해당하며 감봉처분을 받아도 기본급의 고정성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하여 법리적인 반박을 했습니다. 그밖에도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것을 법리적으로 주장했고, 결국 1심 승소를 받을 수 있었어요. 현재 이 소송은 2심에서 패해, 대법원까지 올라간 상태에요.” 이렇듯 화제가 된 소송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 만큼 좋은 제안도 많았지만, 그는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는 길을 선택한다. “대표 변호사로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직접 상담을 하고 소송과정에 의뢰인의 의견을 구하며 소송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변호사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길이라고 믿어요.” 환하게 웃는 이 변호사.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아보라고 하자, 그의 눈은 이내 깊어졌다. “제 의뢰인은 사내 봉침 동호회 회원으로 활동을 하셨어요. 그래서 가까운 동료에게 봉침을 놓았는데, 그분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결국 식물인간 상태에 놓인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분이 대가를 받거나 고의를 가지고 한 일이 아닌데 큰 사고로 이어져 민형사상으로 막대한 책임을 지게 될 상황에 처하셨죠. 상담을 할수록 자신이 벌을 받을 두려움보다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에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적으로 돕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쑥스럽지만, 이례적으로 담당 검사분을 찾아뵙고 진심으로 읍소를 했습니다. 그때 변호사로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기소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집행유예를 받았고, 민사상으로도 합의를 해서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변호사로 한 점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했던 사건이었어요.” 그는 앞으로 변호사로 걸어갈 길에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하고 싶단다. 장래가 촉망되는 그는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을까. “이 치열한 법률시장에서 제가 하는 말이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죠(웃음). 하지만 단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한번이라도 저를 마주한 의뢰인들에게 적어도 인간적인 후회가 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변호사. 그런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끝으로 언제나 곁에서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이 변호사. 열정과 소신을 지닌 그의 내일이 기대된다. 부산 내성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부산지방법원 실무수습 심화과정 수료 법무법인 삼성(울산) 근무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울산광역시지부 자문위원 울산광역시교육소청심사위원회 위원 울산시북구주민투표청구심의위원회 위원 주요 승소사례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통상임금 대표소송에서 승소(1심) 외국선주의 운송계약상 배상 청구에 대하여 승소 공장건물 붕괴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소가 150억원)에서 승소 식품위생법 위반 형사사건 등에서 무죄 판결 이혼소송에서 남편의 숨겨둔 재산(17억 원 상당)을 밝혀내 승소 그 외에도 각종 행정, 이혼, 손해배상(산업재해, 의료, 교통사고) 소송 등에서 승소 [999]
    • 라이프
    2016-10-31
  • 젊은 패기와 실력으로 승부수! 진심으로 의뢰인에게 다가가는 젊은 변호사
    점점 치열해지는 법조시장. 탄탄한 실력과 패기로 똘똘 뭉친 젊은 변호사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여기 탄탄한 실력과 따뜻한 인품으로 인정받는 남혜진 변호사는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이다. 이에 주간인물은 진심으로 의뢰인에게 다가가는 사람, 남혜진 변호사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청명한 하늘이 아름다운 가을, 남혜진 변호사를 만나러 창원 법원으로 향하는 길. 환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반긴 남혜진 변호사는 한마디로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었다. 창원이 고향인 그녀는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5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제45기를 수료한 젊은 법조인이다. 얼마 전 고향인 창원으로 내려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그녀는 문턱이 낮은 법률사무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탄탄한 실력과 젊은 패기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남혜진 변호사. 그녀는 어떻게 법조인의 길을 꿈꾸게 되었을까.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되었어요. 동국대법학과에 진학해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도전했죠.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20대를, 꿈을 위해 도전하는 시간들로 채우고 싶었죠. 1차 시험은 재학 중에 합격했으니 빠른 편이었어요. 하지만 2차 시험에서 계속 아쉽게 낙방을 해서 수험 기간이 길어졌어요. 제겐 참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의뢰인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와의 싸움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지만, 꿈이 있었기에 어려움을 딛고 목표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밤새 불을 밝히며 공부하던 날들. 그 힘든 시간 동안 그녀는 훌륭한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더욱 선명하게 그렸다고. “사시에 합격한 기쁨도 잠시,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니 다시 또 공부더라고요(웃음).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그에 따라 다른 처방을 내리는 것처럼, 변호사도 의뢰인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법리를 적용해서 복잡한 문제를 풀어가야 하죠. 그래서 변호사는 평생 공부하는 직업이라고 하나봐요(웃음). 타성에 젖지 않고 변호사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 사건 하나하나를 소중히 다루는 변호사가 되겠단 결심을 했어요.” 여러 로펌의 고용 제안도 많았지만, 그녀가 고향 창원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누군가에겐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사건인데, 너무 많은 일에 치여 제가 할 도리를 다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어요. 평생 변호사로 일할 텐데 어떤 만족감이나 보람 없이 일로만 하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더라구요. 큰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소송 하나 하나를 마치 내 가족의 일처럼 최선을 다해 하는 것, 그것이 제가 변호사 사무실을 열겠다고 결심한 이유입니다.” 상담부터 마지막 재판 결과까지 대표 변호사로 책임감을 갖고 일을 하고 싶다는 남 변호사. 그녀가 창원 사파동에 문을 연 해정법률사무소는 열린 변호사 사무실이다. 그녀가 직접 모든 사건의 상담을 하고, 소송 과정에서 의뢰인들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참여로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 사건의 요추를 꿰뚫는 안목, 철두철미한 사전 준비는 의뢰인들이 그녀를 신뢰하는 이유다. “소송을 준비하면서 작은 부분도 세심하게 준비를 많이 해요.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 나중에 소송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의뢰인들과의 상담을 통해 사건의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열린 소통으로 의뢰인의 의견을 많이 구하는 편이죠(웃음).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시는 의뢰인분들이 참 감사해요(웃음).” 개업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연이어 의뢰인들의 소개로 사건이 들어오는 것은 매사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태도 때문이다.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해 싸워줘서 고맙다는 의뢰인들의 말에 가슴이 찡 해지죠(웃음). 날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워줬다. 그런 믿음, 그 신뢰는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큰 보상입니다. 제 좌우명은 ‘늘 최선을 다하자!’에요. 조금은 식상할 수 있는 말이지만 오늘 하루,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쌓여 더 좋은 내일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하는 변호사,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웃음).”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 남혜진 변호사와 행복한 동행이었다. 프로필 창원 명지여자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제55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45기 수료 WHO/UNESCO/ICRC 기관 연수 창원 해민법률사무소 실무수습 서울동부지방법원 법원시보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창원지방검찰청 검사직무대리 변리사 자격 취득 現) 양산시 상북면, 동면, 원동면 마을 변호사 現) 해정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홈페이지 : http://haejunglaw.com [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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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31
  • 아너스합창단, 2016 대구세계합창경연대회 대상
    대구합창 축제 마지막 날인 10월 22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열린 ‘대구세계합창경연대회’에서 ‘아너스합창단’이 대상을 받았다. 이번 대회는 영상 예선을 거쳐 쟁쟁한 경쟁 끝에 8개 팀이 본선에 진출했으며 대상을 수상한 ‘아너스합창단’은 (단장 김화동, 지휘자 김문영, 반주자 조민지외 45명의 단원) '사랑,위로,기쁨,감동'의 슬로우건으로 창단 10주년을 맞이하여 축하기념으로 출전했다. 오는 12월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창단10주년 기념 정기연주회가 열릴 예정인 ‘아너스’는 찬양순회공연,초청연주등 나눔의 연주로 꾸준한 활동을 해왔다.
    • 라이프
    2016-10-31
  • 김영진 밀양시배드민턴협회장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스포츠, 특히 공을 가지고 집단 간 기량의 우위를 겨루는 경쟁 스포츠가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경쟁의 요소가 적절한 긴장감을 일으켜 흥미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으며 팀워크를 바탕으로 한 전략과 전술이 중요해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데도 효과적이다. 그중 동호인 수가 가장 많은 경쟁스포츠 배드민턴, 배드민턴의 메카로 불리는 경남 밀양에서 밀양시배드민턴협회 김영진 회장을 만났다. _이진랑 기자 배드민턴의 메카의 명성을 지키고파 김영진 회장은 10년 동안 회장직을 역임하면서 밀양시를 배드민턴의 메카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가 배드민턴에 애착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내 때문이었다. “배드민턴에 처음 발을 들인 건 아내였어요. 먼저 배드민턴 동호회에 입문한 아내의 권유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금방 배드민턴의 매력에 빠져버렸죠.” 김 회장은 그동안 밀양시에 많은 대회를 유치시키고 많은 인재들을 발굴해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눈에 띄는 성과를 보였다. 또한 오랜기간의 소리없는 노력을 통해 소도시인 밀양시에 전국 최초로 배드민턴 전용경기장을 건립시키기도 했다. “제가 회장직을 역임하는 기간 동안 제일 자랑스럽고 뜻깊었던 일은 바로 전용경기장을 건립하게 된 것입니다. 전용경기장 건립을 통해 밀양시는 명실공히 배드민턴 메카로 자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전용경기장 건립 이후 국내 배드민턴대표 유치가 더 많이 이루어져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또한 생활체육의 확산을 통해 시민들의 건강증진에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국민생활 체육의 중심 배드민턴 생활 체육은 모든 사람을 위한 체육활동으로 특히 배드민턴이라는 종목은 남녀노소, 계층 없이 좋아하고 쉽게 접근하기 용이하며 지역 세대 간의 화합과 우의를 증진시키는 스포츠다. 보통 경쟁 스포츠들은 성별과 연령 때가 나뉘어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배드민턴은 모든 사람이 어울려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배드민턴은 축구나 농구보단 좁은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스포츠에요. 그러나 좁은 영역에서 움직이는 순간이 굉장히 많죠. 온몸을 긴장하며 활발히 움직이기 때문에 전신운동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또한 온몸의 근육이 이완 수축을 반복하며 혈액순환에도 도움을 주게 되죠. 그리고 배드민턴은 순간 빠르게 치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민첩성과 순발력을 길러주며, 칼로리 소모도 크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많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배드민턴은 단식과 복식으로 이루어져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들과의 관계 형성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김 회장은 말했다. 그리고 배드민턴은 실내에서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드민턴에 매력을 느끼고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하는 생활체육으로 유명하다고. 김 회장은 이렇게 매력적인 스포츠인 배드민턴을 밀양시민들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함께 즐기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배드민턴을 사랑해주고 관심 가져주길 바라며 밀양시에서 많은 배드민턴 시합이 개최되고 있으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전했다. 국내 대표 생활 체육인 배드민턴을 통해 시민들의 건강이 증진되고 또한 밀양시가 국내에서 배드민턴 메카의 도시가 아닌 국제적 메카의 도시로 자리 잡길 소망한다. [999]
    • 라이프
    2016-10-31
  • “몸의 소리를 소중히 듣는 트레이너 되고 싶습니다” 간호사에서 트레이너의 길로
    생활습관병과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필수인 운동. 운동은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잘못된 방법의 무리한 운동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또한 같은 운동일지라도 각 개인에게 나타나는 효과는 천차만별. 본인의 기초체력 수준을 파악하고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야 효과적인 운동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올바른 자세가 뒷받침이 되어야 최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오늘은 올바른 운동법과 자세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THE VIBE FIT 장윤석 대표를 만났다. _이진랑 기자 어려서부터 컴퓨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장윤석 대표. 대학교 전공을 선택할 때도 망설임 없이 컴퓨터 관련 학과를 선택해 자신이 원하는 분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순탄하게 자신의 길을 걷던 그는 국가의 부름에 입대를 했다. 하지만 입대 후 장대표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 “군 복무 도중 폐렴을 심하게 앓았어요. 그래서 군병원으로 이송되어 검사를 받았죠. 하루에 엑스레이를 세 번 이상 찍을 정도로 몸이 안 좋았습니다.” 검사를 담당했던 군의관은 장 대표의 몸 상태로는 정상적인 군 복무를 할 수 없다며 의가사 전역 소견서를 상부로 보냈지만 두 번이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가 군 복무할 당시 폐렴으로는 의가사 전역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대로 복귀하지는 못하고 군의관을 보조하는 일을 했었죠. 그 일을 계기로 간호사란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전역 후 호주로 떠난 장 대표. 그곳에서 직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군 복무 중 관심을 가졌던 간호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공부를 마치고 병원에 취직해 정식으로 간호사 일을 시작했어요. 상당히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느꼈죠. 호주에서는 간호사와 의사를 동등하게 봐주기 때문에 제가 간호사라는 것에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5년 넘게 간호사 생활을 하던 중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다시 한국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마흔을 넘긴 나이, 신입 간호사로 시작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았다. 시작한다고 해도 병원 측에서 취직 시켜줄지 알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마흔이 넘은 나이의 간호사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위치에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간호사를 포기해야만 했어요. 하지만 의료 쪽으로 계속 일을 하고 싶었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렇게 직업에 대해 고민하던 중 체중을 줄이려고 운동을 시작했다는 장 대표. “처음에는 단순히 체중을 줄이려고 시작한 운동이었어요. 어려서부터 운동을 정말 싫어했던 저인데 운동을 하다 보니 기능성 운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나아가 좋은 사업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단순히 다이어트를 하고 몸을 가꾸는 평범한 피트니스센터가 아닌 오늘 하루도 편안한 삶을 살게 해주는 피트니스센터를 계획했고 그게 지금의 ‘THE VIBE FIT’이 되었습니다. 고객의 몸의 소리를 소중히 듣는 THE VIBE FIT THE VIBE FIT 장윤석 대표는 ‘고객은 항상 옳다(The customer is always right)’는 생각으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저희는 항상 회원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가짐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개인마다 생활패턴과 생각, 성격, 운동량 그리고 습관 등에 의해 신체의 모양과 패턴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각각의 회원님에게 맞춰진 차별화된 관리와 운동법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여느 센터들과 차별성을 두고 있기 때문에 따로 광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입소문을 통해 많은 회원들이 울산을 넘어 인근 지역에서도 방문하고 있다고. 이곳은 단순히 몸을 만들어주거나 다이어트를 도와주는 곳이 아니다. 모든 트레이너들이 미국 스포츠 의학회(NASM)에서 인정하는 교정운동 전문가 자격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라 운동을 하기에 적합한 몸 상태인지 먼저 확인 후 수업에 가기 때문에 애초에 부상을 방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짜여 있다. “저희 센터는 무리한 운동은 진행하지 않아요. 대부분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강도를 너무 무리하게 하는 분들이 계신데 이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몸이 불균형을 가속화시키고 부상의 위험만 키울 뿐이죠.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운동법과 운동량이 있습니다.” 또 장 대표는 운동은 안 아플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몸이 아프시더라도 근골격계 관련 몇몇의 불편함은 단순한 스트레칭 또는 자가근막이완법(self myofacial reliese)등 다양한 이완방법으로 근육과 근막을 부드럽게 만들므로 해서 현재의 불편함을 상당부분 호전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저희 트레이너들이 회원님들의 몸에서 나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듣기 때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회원님들의 몸 상태에 맞게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THE VIBE FIT은 건강할 때나 몸이 아플 때나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는 센터다. 센터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하루를 선사해주는 THE VIBE FIT이 되겠다고 장 대표는 말했다. http://www.thevibefit.com [999]
    • 라이프
    2016-10-31
  • “주민들의 행복을 위한 정책과 문화사업이 주민자치의 진정한 역할”
    주민들이 조직한 지방단체에 의해 지역사회의 공적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지방자치. 그러나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현주소는 그렇지 못하다. 동(洞)마다 조직되어 있는 주민자치위원회는 대민봉사 정도의 역할에 머무를 뿐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 그렇다면 주민자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오늘 만난 임혜숙 회장은 주민자치 본연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고민, 그 체계와 초석을 다잡아 주민자치의 모델이자 모범사례로 꼽히며 주민자치의 선구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 이에 주간인물은 그가 걸어온 길을 통해 진정한 주민자치란 무엇이며 주민자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_박지영 기자 안심카드보급사업, 청소년주민자치회 시행으로 전국 주민자치위원회의 모델로 떠올라 거제 상문동 주민자치위원장으로 취임하던 날 임혜숙 회장은 화환을 거절하고 대신 쌀을 받았다. “주민자치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단순히 봉사가 아닌 정말 주민들에게 필요한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취임식 때 받은 쌀로 바자회를 열었습니다.” 바자회를 통해 확보된 예산으로 임 회장은 주민자치의 모범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일본 야매시(거제시와 자매결연)의 나가사키를 방문했다. 이를 통해 노인복지사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임 회장은 시(市)복지담당자와 보건관계자, 119 안전센터장 등 다양한 자문을 통해 ‘안심카드보급’ 사업을 추진했다. 사업성과 반응이 좋아 전국에서 벤치마킹 요청이 들어올 정도. 후속사업으로 주민자치위원들과 건강지수가 가장 낮은 노인 간 1:1 자매결연을 통해 모닝콜 사업도 준비 중이다. 이어서 상문동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또 다른 사업은 청소년주민자치회. 작년 2015년에 창립한 청소년주민자치위원회는 청소년에게 풀뿌리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지역사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중학생 10명, 고등학생 10명 총 20명으로 창립한 이 단체 역시 상문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자금을 마련해 추진한 사업. 이 역시 반응이 좋아 확대 시행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이다. “여전히 자금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지만 주민들을 위해 방법을 모색 중입니다. 주민들을 위해 두 사업이 지속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지요.” 거제관광민간홍보사절단 중국 무석시 방문 주민자치 역량 확대와 더불어 주민자치 위상 정립까지 주민자치 기틀 마련에 힘 쏟아 2014년 거제시를 통합하는 주민자치연합회 창립총회에서 임혜숙 회장이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었다. 통상 위원장들로만 구성되는 주민자치연합회와 달리 주민자치위원회를 구성하는 모든 위원들이 참여하는 거제시 주민자치위원 연합회는 관과의 협치 형태를 벗어나 실질적인 주민자치의 길을 가기 위해 구성원들의 역량강화와 주민자치의 위상 정립에 힘쓰고 있다. 교육을 통해 주민자치위원들의 역량을 강화, 주민자치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있다. 올해 11월에는 ‘주민참여 예산제’라는 슬로건을 걸고 ‘예산’에 대한 대대적인 교육이 이뤄질 예정. 주민자치 역량강화와 더불어 주민자치조례를 시(市)조례로 제정하는 등 주민자치의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데도 힘쓰고 있다. 나아가 임 회장은 2015년 전국에서 3번째로 주민자치조례를 도(道)조례로 제정, 주민자치위원회 제도의 효율을 높이고 역할을 명확히 하는 등 주민자치제 위상을 정립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남부내륙철도 거제 유치, 거제관광민간홍보사절단 등 지역 현안과 대외활동에도 적극 참여 남부내륙철도 거제유치 대한민국 조선산업의 중심지인 거제. 외부인의 왕래가 잦은 도시임에도 늘 KTX 유치에 고배를 마셔왔다. 이에 상문동 주민자치위원회를 포함한 거제시 주민자치위원 연합회에서는 국회와 세종시를 여러 차례 방문, 남부내륙철도 거제 유치 확정에 힘을 보탰다. 앞으로는 지심도 반환 확정에 힘입어 저도 반환 운동도 계획 중이라고. “주민자치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 지역에 주어진 현안을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연합회 회장이란 직함을 내려놓더라도 함께 힘을 보태려 합니다.” 또한 적극적인 대외활동으로 거제를 알리는 데도, 선진 문화를 배워오는 것에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며칠 전 중국 무석시에 거제관광민간홍보사절단으로 참여해 농수산물 판매 MOU체결 현장을 보고 왔습니다. 제가 본 것, 경험한 것, 그리고 깨달은 바를 주민자치에 기여하도록 또 고민해봐야죠.” 이렇듯 지역 현안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준 임 회장은 ‘시의회 본회의 공개방송’을 이끌어내며 주민들의 알 권리와 더불어 주민들이 정치에 한 발 더 다가서게 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봉사는 봉사단체에, 복지는 복지단체로 주민자치는 주민들의 행복을 위한 정책, 문화사업에 힘써야 임혜숙 회장이 보여준 다양한 행보는 주민자치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말만 주민자치가 아닌 체계를 갖추고 실질적으로 주민들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여 본연의 역할을 해내는 것. “봉사는 봉사단체에서 복지는 복지단체에서 해야 합니다. 봉사와 복지를 위한 단체는 주민자치단체가 아니더라도 무수히 많죠. 주민자치는 주민들의 행복을 위한 정책과 문화사업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합니다. 앞으로 제 임기가 끝나더라도 끝까지 주민자치 발전에 힘쓸 생각입니다.” [안심카드보급사업] 안심카드보급사업은 65세 이상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지급된 병에 혈액형, 지병, 복용중인 약, 외래병원 연락처, 비상연락망 등을 넣어 냉장고에 보관하게 하는 사업이다. 안심카드보급사업 대상자는 집 대문에 따로 표시를 해두어 위급 상황에서 정보를 제공, 정확한 초기대응이 가능하도록 한다. [999]
    • 라이프
    2016-10-31
  •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 장려상 수상-지역의 특색 있는 생활문화를 만들어온 사람
    최근 정수식 조양플랜트 대표는 주민자율환경개선사업 및 생활문화운동에 힘써온 공로로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 - 장려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에 주간인물은 지역사회를 위해 공헌해온 인물, 정수식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40년, 부산 사상구에 뿌리를 내리고 산 세월만큼 지역에 대한 애정이 깊지요. 이웃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제가 보탬이 될 수 있는 것이 기쁩니다.” 환하게 웃는 정수식 대표. 사상구에서 그는 기업가로,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봉사자로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강소기업, 조양플랜트를 운영하며 사상구 주민자치위원연합회 회장, 사상구 생활문화운동 본부장, 사상구 청년회의소 명예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 언양이 고향인 그는 한살 때 부터 부산에서 자라며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특유의 성실함과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스물다섯에 조양플랜트를 창업했다. 40여년 굴곡 많은 시장의 변화를 겪으며 업계에서 인정받는 회사를 일군 것. 규모는 작지만, 높은 신용과 탄탄한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회사를 만들기까지……. 그 뒤에는 그의 숨은 땀과 노력이 숨어있다. “사업하면서, 인생의 파도도 많았죠(웃음). 40년 넘게 사업을 하면서 많은 굴곡을 이겨내 왔어요. 사업이 잘 될 때가 있는가하면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언제나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정확한 납기에 보내준다는 원칙만 지키면 거래처의 신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품질과 신용, 그것이 제가 빈손으로 사업을 일으켜 지금까지 사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죠(웃음).” 한창 사업이 번성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시절. 그는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30여년이 흘려 지금까지 한결같이 지역을 살피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그가 몸 담았거나 회장직을 맡았던 단체만 해도 모두 13개. 민족통일사상구협의회, 사상구 경찰발전위원회, 사상구 체육회, 사상구 주민자치위원연합회, 사상구 생활문화운동본부 등 많은 단체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온 것. 특히 12년 동안 한국열관리시공협회 부산시회장을 맡아 산업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해왔다. 현재는 이 단체 중 대다수에 고문을 맡아 물심양면으로 단체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 이런 그의 활동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사상구 주민자치위원연합회와 사상구 생활문화운동본부 활동이다. 30여년전 주민자치라는 단어조차 생소할 때부터 그는 지역을 위해 발 벗고 일 해왔다. 최근에는 주례2동 주민자치위원장을 거쳐 2011년부터 사상구 주민자치위원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주민이 공감하는 열린 마을자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민간주도 봉사단체인 사상구 생활문화운동본부 본부장으로 주민생활과 밀접한 연중 캠페인을 주제로 선정하고, 구민생활 개선을 위한 많은 일을 해왔다. 칭찬합시다(2011년). 한가정 한가훈 갖기(2012년), 클린사상365운동(2013년~2015년), 건강UP! 행복UP! 건강도시 사상만들기 운동(2016년)추진 등 통해 성숙된 시민의식을 향상하고, 민간주도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과 이정표를 마련한 것. “자발적인 참여로 함께 뜻을 해준 회원들, 그리고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신 사상구 구청장님과 관련 부서의 공무원들의 도움이 있기에 잘 이끌어 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많은 일들을 해나가겠습니다!” 선하게 웃는 정수식 대표. 그는 이번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 수상과 관련해 한결같이 겸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저보다 뛰어난 분들이 많은데,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아도 되는지 그저 송구할 뿐입니다. 제가 뛰어나서라기보다 곁에 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많은 분들이 있어 여러 단체들을 잘 이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곁에서 항상 힘이 되어주는 아내와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부족하나마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 정수식 대표와의 행복한 동행이었다. [998]
    • 라이프
    2016-10-12
  • 유명준 전국자연보호중앙회 총재
    산업혁명 이후 빠르게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점차 인간은 자연과 멀어졌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은 생명의 어머니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지요. ‘자연(自然)’을 독립적인 하나의 개체로 보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자란 ‘본인(本人)’ 역시도 자연이지 않습니까? ‘자연’이 곧 ‘본인’이라는 개념이 확고하다면 자연을 보호해야함은 당연한 것이지요.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라고 외친지 2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인간들은 자연파괴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습니다.” 유명준 총재는 자연은 함부로 곁을 내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자연 속에서 진정으로 수련하고 비로소 깨우친 후에야 즐거운 축복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자연을 사랑한 사나이, 행복의 길을 걷는 영원한 청년 유명준 총재를 자연보호헌장 선포일인 10월 5일에 위클리피플이 만나 보았다. _안연승 차장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다 유명준 총재가 자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군 시절 부터였다고 한다. “군에 있을 때 자연이라는 것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해병대였기 때문에 바다에 입수할 때가 많았고 그럴 때 마다 자연 앞에 압도되었다는 유명준 총재는 해병대 시절 특수수색대 훈련을 받다보니 바다 뿐 아니라 하늘과 산도 포함해서 3가지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후 스킨스쿠버를 하면서 바다가 오염되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한다. “레저라는 것이 발달하기 훨씬 전에 제가 스킨스쿠버를 하면서 삶과 바다에 대한 전문성을 갖게 됐습니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바다는 점차 오염됐고 전국에 해안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면서 제 삶이 변하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한강부터 시작해서 전국 해안에 쓰레기 수거를 40년째 해오고 있는 그는 작은 행동하나가 모여서 보람 된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국토의 자연을 지키기 위해 쓰레기 청소꾼이 되다! 유명준 총재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역할은 다름 아닌 ‘자연의 소중함 알기’ 캠페인이다. 환경오염으로부터 자연을 지키고 보호해야함을 피력하며 바다, 산 등 일사일산(一社一山) 가꾸기 운동을 실시했다. “삼성그룹과 MOU를 체결해 8년 간 산 정상에 위치한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명산이 많습니다. 그러나 명산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시민의식이 부족해 산이 굉장히 더럽고 망가져있습니다. 이를 삼성그룹이 물적(헬기)·인적(직원)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주말에 저희와 함께 관악산, 북한산, 도봉산, 남한산성 등 많은 곳들을 청소하고 보호했습니다.” 유 총재가 자연보호에 매진한지 37년이다. 전국자연보호중앙회에서 사단법인이 14개가 창설되었으며, 최근에는 화이트피스 국제연맹도 출범했다. 한때는 사회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에 안타까운 마음도 컸지만 모두 이겨내고 당당히 자리 잡은 것이다. 그는 답한다. 고된 시련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힘은 오직 자연을 향한 진심이었고 중앙위원들을 비롯 전국에 회원들의 역할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자연 속에서 조국 통일을 염원하다 대외적으로 유 총재는 자연보호운동에 여념이 없는 모습으로 비춰지지만, 그에 비견하여 통일운동 역시 30여년의 길을 걸었다. “제대하고 사회에 발을 디디며 앞으로의 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내가 과연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왔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심도 있는 고민이 계속되었지요. 고심 끝에 우리 국토를 낱낱이 본 후 인생을 결정하자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수륙국토종단을 시작하고 자연을 느끼면서 내 몸 하나만으로 세상에 부딪혀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조국 통일’이라는 글자가 뇌리에 스쳤습니다. 군대에서 느꼈던 감정, 가치관이 무의식 속에 깨어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가히 범접할 수 없기에 대자연의 힘을 빌리고자 했습니다. 유 총재의 끝없는 도전과 노력의 연속, 하늘은 그에게 통일로의 첫 걸음을 허락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2003년 북한에 나무심기를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북한은 연료 때문에 나무를 많이 떼다 보니 민둥산이 많았습니다. 20~30년은 자라야 하는 품질 좋은 5년생, 10년생 잣나무를 심었습니다.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는 마음으로 남겨놓았지요.” 북한은 광복 71주년을 맞아 남과 북, 해외의 정당 및 단체, 개별인사들이 참가하는 행사를 개최하자는 제안을 담은 공개편지를 보내왔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타개하기 위해 ‘전민족적인 통일대화합’을 열자는 내용이다. 공개편지를 보낸 남한인사 중 개인 135명에 유명준 총재가 포함되어 있다. 개인 135명에는 대한민국 국회의장, 각 정당의 대표, 전국지자체의 시·도 단체장,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등 쟁쟁한 인물들 속에 유 총재가 들어있는 것은 그간 북한에 잣나무심기 봉사와 함께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한 개천절 천제를 지내는 등 유 총재의 그 간의 행보에 북한 측에서도 큰 주목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여 보인다. 여전한 청춘으로 다방면에서 눈에 띄는 행보를 보여주는 유명준 총재에게 이 시대 청춘들에게 건넬 수 있는 조언을 청했다. “젊은이들이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토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매사 감사하는 마음을 품는다면 더 큰 축복으로 보답 받을 것입니다. 더불어 깨어있는 자들은 자연과 함께 삶을 공유한다면 기쁨이 따를 것입니다. 신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요. 행복과 사랑이 충만한 자연의 길에서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998]
    • 라이프
    2016-10-12
  • 신동준 전국자연보호중앙회 경기남부지부 부총재 | 평택항 환경 피해위원회 회장
    매년 10월 5일은 자연보호헌장 선포일이다. 훼손 ·파괴되어 가는 자연환경에 대하여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자연보호운동에 힘입어 생태학적인 보호의 견지에서 제정된 자연환경보전법과 함께 국민에게 자연환경윤리관을 심어주기 위하여 정부가 선포한 한국의 자연보호에 관한 헌장으로 1978년 10월 5일에 선포되었다. 자연보호를 위한 범국민적 결의를 집약 제정한 헌장은 전문과 실천사항으로 되어 있다. 제정과정을 보면 학계 ·언론계 등 각계 전문가 100명의 위원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중 11명의 헌장 심의위원회에서 초안을 작성하여, 수차례의 심의를 거친 끝에 헌장 제정 위원회와 자연보호위원회의 의견을 거쳐 확정된 것이다. 헌장 전문에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자연생태계의 법칙과 조상들의 자연보호관을 소개하고, 산업문명의 발달과 인구의 팽창에 따른 자연파괴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으며,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각성을 촉구하고, 자연보호를 위한 국민적 결의를 집약하고 있다. 오늘은 전국자연보호중앙회 경기남부지부 부총재와 평택항 환경 피해위원회 회장으로 활동 중인 신동준 부총재를 위클리피플이 만나보았다. _안연승 차장 전국자연보호중앙회 경기남부지부 부총재 신동준 부총재는 고향이 홍성이다. “평택이 개발되면서 산업화로 인해 자연의 아름다움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2007년 9월 11일 전국자연보호중앙회 경기남부지부 발대식을 시작으로 자연보호운동을 10년째 전개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한번 망가지만 복원이 안 됩니다. 그런데도 대기업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자연환경이 계속 파괴되고 있습니다. 산업공단이 생기면 공원시설 등도 함께 병행되어야하나, 주변 땅값의 폭등으로 공원 등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게 됩니다. 서해안시대를 맞이하여 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대기업들은 번창하고 있습니다. 개발에 임할 때도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항상 우선시하길 바랍니다. 정말 평택항의 오염은 심각합니다. 중국과의 교류로 인해 서해안시대를 평택이 앞장서고 있지만 자연환경은 소외받고 있습니다. 이제 자연보호운동에 동참한지 10년이 되었으니 작은 손이지만 방향, 흐름은 알고 있어 앞으로도 더 열심히 자연보호에 앞장서겠습니다. 자연은 한번 파괴되면 복원되는데 오래 걸립니다.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평택항 환경 피해대책위원회 회장 신동준 부총재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경기 평택항 주변 단체들로 구성된 ‘평택항 주민 환경 피해 대책위원회’는 평택항 서부두 분진 환경피해 해결촉구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충남 당진시와 평택수산청, 서부두에 있는 시멘트 공장을 비롯한 잡화 부두 등을 주목하고 있다. 평택시 시민 단체 협의회, 서평택 환경 위원회, 평택시 발전 협의회, 평택 서부 아파트 입주자 연합회, 새마을지도자회 등이 함께하고 있는 ‘평택항 주민 환경 피해 대책위원회’는 평택항이 개항된 지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있으나 지금도 평택항에서는 주민들의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불법영업을 자행해온 서부두 시멘트 공장은 지금도 보란 듯이 가동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하역 작업 등을 함에 있어서 엄청난 분진이 발생돼 주변 지역 주민들의 울분 어린 시정 요청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알렸다. 더욱이 관리감독청인 평택수산청과 공장허가권자인 당진시의 묵인으로 인해 서부두(서해안) 잡화 부두에서 조차도 베트남 등지에서 수입한 타피오카라는 전분원료를 수입해 하역하는 과정에서 핵폭탄처럼 투하해 엄청난 분진이 발생되고 있다고 밝혔다. 신동준 평택항 주민 환경 피해 대책위원회 회장은 “시멘트, 잡화부두가 들어서기 전에 서 평택은 공기가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서부두(서해안)에서 발생하는 먼지 때문에 창문을 못 엽니다. 시멘트·잡화부두 설치 이후 지역주민들 피부병 발병이 늘어났습니다.”라며 해양수산청이 약속한 방진벽, 방진망 설치 등의 대책을 조속히 실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신 회장은 벌크 화물하역과 도로이송 과정에서 먼지 날림 등으로 인해 지역 환경피해와 장기적 노출 시 잠재적·만성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998]
    • 라이프
    2016-10-12
  • “이젠 우리민족이 세계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우주가 11차원으로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주가 무엇으로 11차원을 형성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우주 바깥으로 나가서 바라보아야 한다. 하지만 우주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거대한 추진력을 가진 로켓이 없다. 로켓이 있다 하더라도 지구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돌아오더라도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 수단이 없다. 설사 설명을 한다 해도 이해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는 우주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알려고 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이렇듯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머지 7차원의 우주 기운으로, 지구 자체를 포함해서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들을 영성(靈性)이라고 한다. 우리 인생을 좀더 지혜롭게 사는 유일한 방법인 영성회복을 강조하고 있는 사단법인 명당의 김규덕 居士를 만나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_안연승 차장(Written by An Yeun-sung) Stephen Hawking, an English theoretical physicist, has said that the universe is clearly comprised of 11 dimensions, but in order to confirm this, we must view the universe from the outside. However, there are no rockets with such a massive propulsion force that can possibly take us outside the universe. Even if there was, there would be no means to return to Earth. And even if there was a possibility of returning to Earth, there would be no means of explaining what was witnessed to the people. Even if it could be explained, there would be no one who could truly understand it. That was why Stephen Hawking did not attempt to figure out what the universe was comprised of. As such, the remaining seven dimensions that we are not aware of are “divine nature” that influences the Earth and every living form that exists on Earth with the energy of the university. I met with the spiritual management master, Kim Gyu-deok of Myeongdang who stresses the importance of restoring the divine nature, or spirituality, which is the only way we can be wiser in life, to hear his heartfelt story. 파란만장한 삶의 끝에서 천문과 마주하다 Facing the heaven’s door at the end of a turbulent life 김규덕 居士는 1950년 12월 28일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상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현대, 롯데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근무했으며 한때는 사업체를 이끌어 성공이라는 의미와 기쁨도 맛보았다. 그러나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나이 40에 접어들면서 막막한 현실과 장래에 대한 불안감에 매일 밤 잠못이루며 괴로워했다. 그 후 5~6년간을 인생의 고수들의 조언을 듣고자 전국을 찾아다녔으나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이 46세에 부산 황령산에 들어가 목숨을 바쳐 기도에 매진했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고 천문을 열게 되었다. 기도 끝에 얻은 해답을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귀하게 얻은 철칙을 잘 활용하여 많은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그 후에도 3년 기도, 7년 공부를 하여 하나님이 내려주신 ‘중생제도’의 실천을 위해 명당을 설립하고 중생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해답을 전하고 있다. Kim Gyu-deok was born in Busan on December 28, 1950 and graduated from Busan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Business and economics. After graduation, he worked for the top conglomerates in Korea including Hyundai and Lotte, and experienced the joy of successfully running a business himself. However, after reaching his 40s, he suffered sleepless nights due to the anxiety and worries he had regarding his present and future, which, to him, seemed grim. For 5 to 6 years afterwards, he traveled across the country seeking advice from life gurus, but he did not find anyone who particularly impressed him. So at the age of 46, he began staying on Hwangnyeongsan Mountain in Busan and dedicated his life to prayers. That is how he met God and opened the heaven’s door After receiving the answers to his questions through prayers, he wanted to share his knowledge with many others and follow the principles he learned to help others lead pleasant lives. For this reason, he prayed for 3 years and studied for 7 years before establishing 명당 as a way to practice the people’s system bestowed upon by God and to share the secret to living in happiness. [백두산에서] 세계수출국 순위 6위의 강대국 대한민국!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South Korea, the world’s 6th biggest exporter, must now create a beautiful world. 2002년 월드컵 경기 때에 시청 앞 광장에 구름같이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던 우리 국민들의 모습을 기억하십니까? 우리 국가대표팀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은 시간 경기를 했습니다. 다른 팀들은 한번 하기도 어려운 연장전과 승부차기를 여러 번 그리고 매 경기 피를 말리는 접전을 벌였고 동시에 감동적인 드라마도 연출했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나라는 국운 상승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작은 내가 큰 강을 이루며 도도히 흐르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이제 인류 역사에 큰 획이 그어진, 그 변화의 중심에 우리 한민족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정도 많고 한도 많은 민족입니다. 의리도 있고 신의도 지킬 줄 아는 굳은 의지의 민족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가 삶에 여유가 없고 먹고 살기에 급급해서 정을 베풀고 신의를 말할 만큼 편안하지 않아 실행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수출국 순위 6위의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고 난 이후 허허벌판에 내동댕이쳐졌던 우리 민족이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앞으로만 나아간다고 뒤는 고사하고 옆도 한번 쳐다볼 겨를도 없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하며 모두가 열심히 일한 결과 아니겠습니까? 이제 앞으로 적어도 백년은 우리 민족이 세계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 어떤 민족도 우리 민족이 해야 할 온 세상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대신할 능력도 없고 준비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복도 잘 받아야 복이 되지 잘 받들지 못하면 복이 화로 변해 버립니다. 복이 화로 변하게 하는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우리 민족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 크나큰 죄를 짓는 겁니다. 한 손에는 지식, 다른 한 손에는 문화를 들고 세상 밖으로 나아갑시다. 우리 민족에게 이런 책무를 주신 이유는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중심이 되어 세계평화를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이제부터는 아웅다웅 다투며 시기, 질투하고 살 것이 아니라 서로 품어주고 어루만져주는 재미있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Do you recall how countless people gathered at the square in front of the Seoul City Hall during the 2002 FIFA World Cup to root for the South Korean national football team in unison? The national football team of South Korea played the longest at the 2002 FIFA World Cup than any other national teams. Several of their matches went into overtime and shoot-outs, which was not the case for any of the other teams, and all of their matches were very close and gripping, presenting emotional and dramatic scenes for the spectators and viewers. That was when the fate of South Korea entered the path of prosperity; it was a moment when all the small streams gathered together to flow as a massive river. The people of Korea made history, playing a central role in a major change. Koreans are very caring and affectionate people with jeong, who also have a deep sense of resentment, or han. We are also loyal and faithful people with a strong will. However, we have been so focused on making ends meet and trying to survive from day to day that we haven’t been in a situation where we could practice kindness and generosity. South Korea has become a global powerhouse, ranking as the 6th biggest exporter in the world. We, who experienced a devastating fratricidal war and had to rebuild the country from nothing, achieved a remarkable miracle. We could only stride forward, without looking back or around ourselves. What we have achieved are the results of our hard work and dedication as well as our dire wish to “lead a quality life.” Now, for at least a hundred years from now, the people of Korea must take the center stage of the world. There are no other peoples who are prepared to play or capable of playing a pivotal role in the global society, as we are. When God blesses us, we must accept it properly and with gratitude, or else His blessing will turn into a disaster. It is a sin to let this happen, as it devastates not only our own people but the entire mankind. Take knowledge in one hand and take culture in the other before moving toward the rest of the world. God has given the people of Korea this responsibility and duty because He wants us to play a central role and achieve world peace, instead of worrying and caring only about ourselves. From now on, we must create a beautiful and enjoyable world, where people embrace and care for one another, and not let envy, jealousy, conflict and hostility get in our way. 세계 유일의 ‘HOW’가 있는 영성 경영 연구소 THE HOW THE HOW Institute of Spiritual Management, the only place in the world, with the answer on “how” [THE HOW 영성경영연구소 박선영 대표와 함께] 사람은 왜 사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숨이 붙어 있어 사는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 때문에, 가족 때문에, 태어났기 때문에 등의 변명을 하지 마십시오. 숨이 붙어 있기 때문에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살 수 밖에 없어 살아야 한다면 평안하고, 보람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업도 인간과 같습니다. 기업체는 설립되는 그 순간부터 스스로 생명을 갖는 유기체입니다. 공장의 기계나 외부거래처, 소비자, 내부조직원, 임원, CEO등이 서로 어울려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그러나 한계를 가진 우리 인간이 이 변화를 모두 인식하거나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 대응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과거의 데이터를 이용하여 논리성이나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것도 예상치 못한 상황 변화나, 예기치 못한 돌발 사태로 인해 실패했을 때에 도망가기 위한 변명과 핑계의 수단일 뿐입니다. 이유는 바로, 본성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교육에서 얻는 지식이나 경험의 틀 속에 갇혀 본성을 잃었기에, 작고 힘없는 동식물보다도 더 어리석고 불쌍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간의 본성을 회복해서 우주흐름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예지력을 얻어야 합니다. 작은 지혜는 인간 상호간에 얻을 수 있지만, 큰 지혜는 우주의 기운을 받아야 얻을 수 있습니다. 큰 지혜를 얻으면 높은 안목을 가질 수 있고, 안목이 높아지면 자연적으로 시야가 넓어집니다. 시야가 넓어져야 가능한 많은 변동 요인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기업 경영도 선택의 연속입니다. 안목이 높고 시야가 넓어야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영성회복'입니다. 여러분들의 작은 기운을 우주의 큰 기운으로, 작은 지혜를 큰 지혜로 바꿔 드립니다. 영성회복을 통해 행복한 삶과 지속성장이 가능한 기업을 이끌어 가십시오. Why do people live? To put it simply, we will live as long as we can still breathe. Do not say that you are living for your country and its people, for your family, or because you were born. You are living because you are still breathing. Since we are alive, we should make the best of our lives, striving to lead a comfortable and rewarding life. Companies are comparable to human beings. Companies become living beings the moment they become established. The factory machines, business partners, consumers, staff, executives and the CEO influence and are influenced by one another, and undergo continuous changes. However, human beings, who have limitations, do not have the ability to perceive and recognize all of these changes, and find solutions to the problems. Seeking logic and reason for a new project using data from the past is just a means to escape the blame in the future when an unexpected change or situation occurs and causes the project to fail. This is because we have lost our human nature amidst the experience and the knowledge we gain through education, and this has made us become more foolish and pitiful than small, powerful animals and plants. Now, we must attempt to recover our human nature and gain the power to foresee the flow of the universe. Little wisdom can be obtained from other people, but grand wisdom can only be obtained by receiving the energy of the universe. Grand wisdom will provide us with a discerning eye, and this will naturally broaden our view. We must broaden our view in order to see the factors causing changes around us. Just like the way people manage their lives, managing a company involves making a series of choices. You need an excellent discerning eye and a broad view in order to make the most rational and practical choices. This is what I’m referring to when I speak of “spiritual recovery,” which turns your small energy into the great energy of the universe and small wisdom to great wisdom. Lead a joyful life and a company that can achieve sustainable growth through spiritual recovery. 기업경영, 이제는 ‘사람’이다 Corporate management: It’s “people” that should come first.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화나 용역은 인간에 의해 그리고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고 또 인간들이 사용합니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존재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는 재화나 용역은 애지중지 귀하게 여기면서 정작 주체인 인간은 무시합니다. 근본을 놓쳤으니 뿌리 없이 흔들리며 사는 부초 같은 인생살이가 되는 것입니다. 기업가는 땀 흘리며 제품을 생산해주는 종업원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기업체가 원활하게 운용되도록 도움을 주는 협력업체 관계자들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만약, 그런 사람들의 협조나 참여가 없다면 기업체는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 더욱 소중한 것은 바로 우리가 생산한 재화나 용역을 사용해주는 소비자들입니다. 향후 백년 정도는 우리나라가 새 역사의 주역이라 했으니 우리가 결정적인 악수만 범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경제는 순탄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All goods and services in this world are produced by the people and for the people, and are used by the people. If people did not exist, goods and services would have no value or meaning. Yet we value such goods and services every so highly, while ignoring people who are the ones who give them value. When you do not see the essence, you will live like a floating weed, which wavers constantly as it is without any roots. Entrepreneurs should value their employees who shed sweat and toil, producing the products on their behalf. They should also value the staff of their contractors who help their businesses run smoothly. Without their cooperation and assistance, their companies would have no choice but to close down overnight. What’s even more important is to value the consumers who use the goods and services. I’ve mentioned that Korea will play a leading role in the world for the next hundred years, and as long as we do not make any false moves that come with dire consequences, our economy will continue to grow. 젊은이들이여! 미안하다, 잘못했다 To the younger generations, we are sorry, it is our fault. 무역 1조 달러 시대! 온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을 우리가 해냈습니다. 지난 근 50년간, 우리는 그야말로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엄격한 가부장제 아래, 층층시하 많은 가족들 사이에서 밥 한 숟가락이라도 많이 먹으려고 눈치 보며 살았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견디지 못하면 바로 도태되는 세상이라는 현실을 접하고, 옆도 한번 쳐다볼 겨를도 없이 달리고 달렸습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했으니 그동안 하고 싶어도 해보지 못한 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길을 지나다 어쩌다 들리는 피아노 소리를 한없이 부러워했고 그림 그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체육도장 앞을 지날 때에 들리는 기합 소리에 스스로 주눅이 들곤 했습니다. 참고서 한 권 사서 마음 놓고 읽을 경제적 여유도 없었습니다. 부잣집 아이들이 공부방이 있다고 자랑하면 어린 소견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살아오면서 너무나 원도 많고 한도 많아 내 자식들에게는 절대로 이런 고생을 시키지 않으리라 작심하고 작심했습니다. 우리 기성세대들이 몰랐습니다. 내 자식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임을 몰랐습니다. 그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하루 세끼 끼니를 넉넉하게 먹지 못했고 철따라 옷도 옳게 입지 못했고 변변한 참고서 하나 없이 생활했으니 좀더 맛있는 음식 해먹이고, 철따라 옷 해 입히면 되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보습학원이나 예능학원에라도 보내주면 기죽지 않고 훌륭하게 잘 성장해서 사회의 일원으로 뿌리내릴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사랑을 베푼다는 것이 우리 아이들을 온실 속의 화초처럼 나약하게 키우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소홀히 해도 감기가 들어 죽을지도 모르는데,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밥 먹어라, 공부해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2030세대 여러분들이 우리 기성세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듯, 우리도 여러분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살지만 사는 바탕이 전혀 달라졌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사랑을 쏟고 정성을 들이는 것이 여러분들에게는 필요없는 간섭과 잔소리가 되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 크는 걸 보면 어른 늙는 줄 모른다.” 시대는 급변하는데 교육은 지금도 예전 그대로를 답습하고 있으니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2030세대 여러분들입니다. 내 자식만 보았지 젊은이들 전체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어리석은 기성세대들은 젊은이 일자리 창출 운운하면서 행정기관에 가서 심부름이나 시키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의 앞날을 위한 발상의 대전환이 꼭 필요합니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 급변하는 이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정치인과 행정관료, 그리고 교육가들과 부모들 그리고 당사자인 2030 세대 여러분들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미안합니다. 우리도 어리석은 인간이라 세상을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South Korea has entered the era of USD 1 trillion, which is a remarkable feat. In the past 50 years, we have been moving forward without looking anywhere else. Living as part of an extended family with many children gave a glimpse of what it would be like in the real world, where people fell behind if they could not withstand the fierce competition, and this is why everyone strove forward with their eyes focused on only what was ahead. When we walked by a gym, we felt intimidated by the loud shouts we heard from the inside. We couldn’t afford to buy a reference book to study with. When kids from affluent families bragged about their study rooms, those of us who weren’t as well off resented our parents for their financial inadequacies because we were so young and immature at the time. The pent-up desires and resentment made us become resolved to not let our children suffer the kind of hardships we ourselves had faced. But what we did not realize was that our children were independent beings. We did not recognize the fact that they also have to survive through fierce competitions as we have. Our desires and resentment arose from being unable to eat three a meals a day, to buy new clothes every season, and to buy study materials, so we mistakenly believed that it’d be enough for us to provide our children with delicious meals and to buy them clothes every season. We believed that sending them to academies after school would allow them to grow into confident and competent individuals and become integral members of society. We did not realize that showering our children with love would make them become weak and fragile. We were foolish. “Eat well, study, sleep early and wake up early.” Just as the people in their 20s and 30s do not understand the older generations, we also do not understand you fully. Perhaps it is more truthful to say that we have not tried to understand you. We did not realize that although we may be living in the same time and place, the background of our lives are completely different. Now we are starting to realize that showering you with love seemed like unnecessary meddling and nagging to you. There is an old saying, “When you see how fast a child grows up, you won’t notice how fast an elderly person grows old.” Time is changing fast, yet we still haven’t changed our ways, and the biggest victims suffering from this are the people in their 20s and 30s. The older generations including myself have only focused on our own children, without seeing your generation as a whole. Even now, the foolish older generations are talking about creating jobs for young adults yet their only plans are to make them go on small errands at administrative agencies. We need to change the way we think in order to ensure a brighter future for the younger generations. We must discover the underlying cause of the problems we face today, and proactively respond to the rapid changes occurring in our society. Politicians, administrative officials, educators, parents and the people in their 20s and 30s must come together to jointly find a solution. Dear people in their 20s and 30s, we are sorry. We have been foolish, and failed to develop a proper view of the world. 여성이여! 일어서라 Dear women, rise and take a stand! 우리나라 여성들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구나 싶습니다. 스포츠로 국위선양을 한 경우만 봐도 거의 모두가 여성들입니다. 여자 양궁, 여자 배구, 여자 탁구, 여자 농구, 여자 핸드볼, 여자 골프, 여자 축구, 여자 스케이트와 아이스 댄싱 모두 여성들의 활약은 눈부십니다. 엄격한 가부장제가 여성들을 억누르면서 사회진출을 막지만 않았어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여성들이 각계에서 출중한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여성들을 위한 특별한 예우나 대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 편견과 장벽만 제거해주면 강인한 우리 여성들이 스스로 자리를 잡아갈 겁니다. 그 어렵다는 국가고시와 전문직종의 자격시험에 당당하게 합격하는 여성들을 보십시오. 전체 인구의 반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 소중한 인력을 낭비해서 어찌 큰 발전을 이루겠습니까? 여성 여러분들이 들고 일어서야 합니다. 스스로 사육되고 다듬어진 틀을 깨고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엄마가 객관성과 일관성을 확실하게 견지해야 자식들이 바로 섭니다. 대단한 열정과 투지 그리고 재능을 가진 여성들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대단한 그 열정과 재능을 내 가족이 아닌 사회 전체를 향해 쏟아내야 합니다. 여성은 여성이요, 남성은 남성일 따름입니다. 누구의 부속물도 아니고 소유물은 더 더욱 아닙니다. 여성들이 앞장서야 이 세상이 편안해지리라 믿습니다. Korean women seem incredible. Women make up the vast majority of the athletes who bolstered the image of Korea on the international sports stage. Female archers, volleyball players, table tennis players, basketball players, handball players, golfers, football players, skaters and ice dancers have demonstrated excellence in their respective fields. If our patriarchal society had not oppressed women, many more would have played pivotal roles in various sectors. I am not urging special treatments for women. Just by eliminating prejudice and social barriers, the strong women of Korea will gain firm grounds in their respective fields on their own. Look at all the women who have passed the rigorous national examinations and licensing exams to become public servants and professionals. Half of the world’s population are women; so how can we achieve greatness if we waste their manpower? Women need to rise and take a stand. They must break free from the frame that keeps them trapped inside. Women, who are talented, courageous and strong, must take a stand. That’s the only way our nation can become strong. Women must pour their passion into the entire society, instead of just their immediate families. Women do not “belong” to men. They are not to be considered men’s possessions. I believe women must stand at the forefront for the world to be at peace. 운명을 뒤바꾸는 조언! 본성과 지성, ROM과 RAM을 통한 행복한 인생론 A piece of advice that will change destiny! The theory of living in happiness based on one’s true nature and intellect, and ROM and RAM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은 컴퓨터 반도체에 비유하면 ROM(고정기억장치)이라 할 수 있습니다. ROM이 입력된 내용을 사용자가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듯이 본능을 인간의 뜻대로 변경하거나 교체할 수 없습니다. 본능과 마찬가지로 내가 태어난 환경을 원하지 않는다고 되돌릴 수도 없고 내 신체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컴퓨터는 기술자에게 부탁해 새로운 데이터가 입력된 ROM으로 대체할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인간은 컴퓨터처럼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본능처럼 주어진 운명에 그저 만족하며 살아야 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컴퓨터처럼 읽고 쓰기가 자유로운 지성, 이성, 지식이 내장된 RAM이라는 반도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RAM에 어떤 지식이나 경험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모습은 물론이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인간의 본능이 ROM에 담긴 내용대로 따른다고 한다면, 이성은 RAM에 담긴 내용대로 따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RAM 속에 쌓여진 지식과 경험의 데이터 중 맞는 정보만 취하겠다고 한다면 편협한 사고로 치우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워서 RAM에 입력해 두었다가 필요한 경우에 꺼내 쓰면 됩니다. 그러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살면서 얻은 지식이 살아가면서 봉착하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내 취향이나 전공에 내 경험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내가 쌓은 실력이 모자라면 모자라는 그 상태에서 출발해야 화학적으로 융합되어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처한 현실을 출발점으로 해서 인생의 원대한 목표를 설정하십시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 자신의 목표이니 조금은 허황돼도 괜찮습니다. 이제 출발점과 목표점이 확실하게 정해졌으니 부단하게 노력만 하시면 됩니다. 꼭 100%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목표의 60%~70%만 이뤄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성공한 삶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Human instincts could be compared to the read-only memory (ROM), a semiconductor memory for computers. Just as users cannot modify the data stored in the ROM, we cannot change or replace our instincts however we want to. Similar to the case of instincts, we cannot change the environment where we were born and raised, or the physical conditions we were born with. With computers, you can ask a computer technician to replace the old ROM with a new one that has the data you desire, but unfortunately, we cannot simply wipe out our current lives to start a new one. Then, should we just try to be content with the destiny we have been given? Not at all. That’s because we also have the random-access memory (RAM), which stores our intellect, knowledge and reasoning skills that can be freely accessed for reading the old information and writing new information. Depending on the type of knowledge and experience stored in RAM, our appearance and life become completely different. While our human instincts are stored in the ROM, our voice of reason comes from the RAM. But if you only obtain information that you prefer from all of the experiences and knowledge accumulated in your RAM, then you will end up with biased views. You should see, listen and learn as much as you can and store the information in the RAM so that it can be retrieved whenever necessary. What do you think you must do in order to gain success? You must perceive your current reality as is from an objective point of view. In order to solve the countless issues you face throughout the course of your life, you will need a wide variety of experiences and knowledge. But you need to accept the fact that you may lack certain experiences, skills and talents because that is the only when you will remain steadfast in your journey, without wavering. Are you well-aware of your current situation? Then, make that your starting point and set forth a grand vision for your life. Regardless of what anyone says, it’s okay to dream big – even to the point of slight absurdity. Now that you know your starting point and your target destination, all you have to do is make tireless efforts. It’s alright if you don’t fully achieve your objective because even if you have achieved just 60 to 70% of your objective, you will probably be living a more successful life than most other people.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의 한나라당 경선승리와 대통령 당선을 정확하게 예측한 것은 물론, 이명박 前 대통령의 유아독존적 성격을 지적하여 평탄하지 못할 재임기간을 예고했던 김규덕 居士는 앞으로 적어도 백년은 우리 민족이 세계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전파하고, 젊은이들에게는 고귀한 삶을 전달해 주기 위해 오는 10월 25일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前국회의원 김홍신 작가의 사회로 토크콘서트를 개최한다. 이번 콘서트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영성의 개념을 올바로 인식하고, 영성 회복을 통해 행복하고 성공한 삶을 찾아갈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여 본다. Kim Gyu-deok not only predicted that Lee Myung-bak would win the Grand National Party’s (GNP, Hannara-dang) nomination as its presidential candidate and ultimately be elected in the 17th Presidential Elec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but he projected that Lee’s presidency would not be turbulent due to his imperious and obstinate personality. In order to spread the belief that Koreans must make world history over the course of the next century and to help young adults lead a noble life, Kim Gyu-deok will be holding a “talk concert” hosted by Kim Hong-shin, a National Assemblyman-turned-writer, at the Yonsei University 100th Anniversary Memorial Hall on October 25 this year. He will be praying that this talk concert will become an impetus for the people of Korea to develop a proper concept of spirituality and achieve spiritual recovery to lead successful and joyful lives. [998]
    • 라이프
    2016-10-12
  • 김창신 둥지 탈북민자활정착복지회 회장 | 평양모란관 공동대표, 최정욱 (사)새터민회 회장 | 평양모란관 공동대표
    탈북민의 법적 용어는 '북한이탈주민'이다. 탈북민라는 용어를 대신하여 ‘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는 순 우리말로 '새터민'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새터민은 탈북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하고 긍정적ㆍ미래지향적 이미지 제고를 위해 선정하였다. 통일부는 공식적인 용어로 법률용어인 ‘북한이탈주민’을 사용하되, 비공식적으로 ‘탈북민’를 대신하여 ‘새터민’을 상황에 맞게 사용하면서 장기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자연스럽게 정착될 수 있도록 하였다. 1997년 제정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탈북민(북한이탈주민)'란 북한에 주소·직계가족·배우자·직장 등을 두고 있는 자로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자를 말한다. 탈북민은 2014년 1397명, 2015년 1276명으로 감소하다가 2016년 5월 말 기준 59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6% 증가해 올해 말에는 1500명이 예상돼 곧 3만 명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성별로는 여성이 71%를 차지하고 있으며 20대 여성은 5879명(28.6%), 30대 여성은 6534명(31.8%) 40대 여성은 3618명(17.6%)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탈북민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하여 10여년째 봉사에 힘쓰고 있는 김창신 둥지 탈북민자활정착복지회 회장과 최정욱 (사)새터민회 회장을 만나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안연승 차장 탈북민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보장해주는 제도의 필요성! 탈북민들이 원하는 것은 아마도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립하는 것’일 것이다. (사)새터민회 최정욱 회장은 “2003년 탈북하여 한국에 와 식당 일을 할 때 식당 주인이 비닐 팩을 벌리라는 말을 했는데 도무지 비닐 팩이 뭔지를 모르겠더라구요.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앞에 있는 비닐 주머니가 바로 비닐 팩이었어요. 정말 창피하고 한국 사회에서 살 자신이 없어지더라구요”라며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최 씨는 이 후 새터민들이 직접 새터민을 도울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 같은 생각이 (사)새터민회 조직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함경남도 함흥이 고향인 최 회장은 1997년 남편과 사별한 뒤 당시 10살 갓 남긴 두 남매의 끼니를 구하기 위해 혈혈단신 중국 국경을 넘었다고 한다. 최정욱 회장은 “도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새터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예요.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그 사람들이 처음 남한 사회에 와서 느꼈을 절망감이나 이질감 등도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받기만 한다고 욕할 게 아니라 새터민 수준에서 생각해주고 그 사람들이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또 그래서 받지 않고 나눌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여기서 적응하고 또 자리 잡기 위해서는 남한 사람들보다 10배, 100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새터민들이 위축되지 않고 자신있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또 그곳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당당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둥지 총연합회의 봉사활동 ‘탈북자 및 2세들이 남한사회에서 적응을 시도하다 좌절하면서 느끼는 소외감 또는 상실감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남한 주민의 무관심이나 부정적인 편견으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자신들로부터 무시당하고 홀대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이러한 감정은 정착시기가 길어질수록 증가되고 있다. 이에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남한사회와 주민들과의 소통, 봉사, 협력을 통하여 기본적 자존감을 세우며 더불어 함께 탈북자의 행복과 미래에 대한 불식시키는 단체로 발전시켜 아아감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설립목적으로 2005년 11월 29일 탈북민 자활공동체인 “둥지”가 탄생했다. 그간 독거노인 생활안전자금 지원, 어린이축구교실 개설, 평창 수해복구 봉사 및 위문품전달, 태안 기름때 제거 1,2차 봉사활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벌여왔다. “봉사활동을 해오면서, 봉사는 저 자신을 위하는 활동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을 돕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 자신을 돕는 일인 것이죠. 앞으로도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해서 더 많은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라는 둥지 총연합회 김창신 회장은 함경북도 경흥군의 아오지탄광으로 유명한 아오지읍에서 태어났다. 외모에서도 의리의 사나이 돌쇠가 연상되는 다부짐이 묻어나오는 김 회장은 “탈북하여 한국에 오면 실제나이가 몇 살이던 남한나이로는 한 살입니다. 그러니 취업이 되어도 쉽게 적응 못하는 것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동정을 바랄 수는 없지만, 저는 정부에 건의하고 싶습니다. 탈북민들에게는 3번의 취업기회를 보장하여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남한사회에 정착할 수 있게 제도화 해주길 바라고 싶습니다.” 사단법인 새터민회의 활동 “진정한 통일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정성과 열정을 담아, 하나하나 벽돌을 쌓듯이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터민회는 북한 이탈주민과 대한국민의 화합은 물론 이탈주민들이 새로운 땅에서의 안정적인 정착과 자립을 목표로 두고 2008년부터 활동해 온 비영리법인입니다. 새터민들의 화합을 위한 친목도모행사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새터민 가정의 지원사업, 장학사업, 통일교육, 정착교육 등을 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의 지원으로 새터민 취업지원활동, 예술단운영을 통하여 남한사회에 북한의 예술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09년 9월에 창단한 새터민회 평양모란봉 예술단은 북한의 탈북 예술가들과 남한의 예술가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의 소리, 몸짓을 만들어냄을 목표로 북과 남의 예술이 조화된 퓨전예술, 또는 고전과 현대가 조화된 예술을 지향하는 예술단체입니다. 예술단원은 총 25명이고, 공연프로그램은 대북공연, 삼고 무, 난타, 성악, 무용 등이며 밴드와 금관악기의 공연도 가능합니다. 다양한 공연을 통하여 사회소외계층과 노인정, 불우이웃돕기 행사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맛깔난 북한음식을 맛볼 수 있는 명소! 평양모란관 평양모란관은 종각역 11번출구에서 가까운 평양모란봉 예술단 공연관람과 식사를 함께할 수 있는 곳이다. “평양만두전골, 소고기영양전골, 곱창전골, 물냉면, 비빔냉면, 평양왕만두 등 맛깔난 북한음식을 맛볼 수 있는 명소인 평양모란관의 수익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새터민들의 사회적 적응과 생활안정, 자립과 정착을 지원하여 사회의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남한 음식점에 바로 취업하면 언어 등 어려운 문제들이 많지만 저희 평양모란관에 근무하면서는 조금은 천천히 남한사회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1차 적응을 끝내고 다른 곳에 취업하면 좀 더 쉽게 적응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탈북민의 일자리 문제 등 탈북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김창신 회장과 최정욱 회장을 보며, 우리 남한국민들도 앞으로 갑자기 올지도 모를 통일을 대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탈북민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자세를 갖추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리하여 탈북민들이 대접받는 사회를 지향하고 탈북민들이 통일의 전도사가 되어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이 하루빨리 앞당겨 지기를 기원하여 본다. [997]
    • 라이프
    2016-10-10
  • 임호순 대한카누연맹 회장 / 울산 스포츠과학고등학교 카누팀 지도교사 / 前 울산카누연맹 부회장
    지난 31일 울산 스포츠과학고등학교 카누팀 지도교사, 임호순 전 울산카누연맹 부회장이 제10대 대한카누연맹 회장으로 당선됐다. 선수·지도자·심판·임원 등 4개군 116명의 선거인 중 99명이 투표에 나섰고, 임 회장 당선인은 50표를 받아 이운룡 전 국회의원을 1표차로 제치고 회장에 올랐다. 울산 경기단체장에서 중앙경기단체 회장이 나온 것은 최초로, 세간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_박미희 기자 체육 꿈나무를 키우는 울산스포츠과학고등학교, 그곳에서 만난 임호순 회장은 여전히 선수들을 지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카누 국가대표 선수로, 88서울올림픽, 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의 국가대표를 지도한 지도자로 울산카누연맹 부회장, 대한카누연맹 전무이사로 폭 넓은 활동을 해온 사람. 그에겐 언제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이번 제10대 대한카누연맹 회장으로 당선되며, 다시금 최초라는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한국 카누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와 인연이 닿았을 법하다. 그는 선수로, 지도자로 살아온 세월만큼 한국 카누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이렇게 카누인들의 애로점을 잘 아는 그가 회장에 당선되는 일이 당연한 듯하지만, 한편으론 특별한 일이 된 것은 한국 경기단체의 현실을 잘 반영해준다. 이번 선거의 의미가 특별한 것은 선수·지도자·심판·임원 등 폭넓은 계층이 선거인단이 참여한 선거라는 점이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의 진정한 지지로 제10대 대한카누연맹 회장으로 당선된 그의 포부는 남달랐다. “소통과 화합을 통해 대한카누연맹의 발전을 이끌겠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카누의 저변확대, 국가대표팀의 경기력 향상, 국제교류 강화, 국내대회 활성화 등 한국 카누 발전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해나가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특히 재정자립을 통해 연맹살림을 더욱 넉넉히 만들고,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을 목표로 강화훈련 지원 및 국제대회 참가 확대 등 국가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렇듯 대한카누연맹의 발전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고 생각되면 언제든 자신의 자리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임 회장. 이런 그의 모습에서 한국 카누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는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카누 발전과 함께 해온 33년 카누인들에게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싶어... 임호순 회장이 카누와 인연을 맺은 건 1983년이다. 때는 1986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종목으로 카누가 한국에 소개되던 초창기. 전도유망한 레슬링 선수였던 그에게 갑자기 찾아온 슬럼프는 힘겨운 것이었다. 그때 한국에 막 들어온 카누는 그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이렇게 카누선수로 새 인생을 시작한 그는 카누 선수로서 큰 가능성을 보였다. “카누 국가대표로 서울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 카누국가대표팀을 지도하던 헝가리 코치가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운동하기엔 너무 늦었고, 차라리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최고의 코칭 기술을 알려 주겠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헝가리 코치에 앞서 지도를 한 일본인 코치는 절 보고 ‘정말 좋은 선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거든요. 하지만 ‘내 말을 평생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헝가리 코치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죠. 그렇게 지도자의 길을 택하게 됐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웃음).” ‘지도자로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헝가리 코치의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88서울올림픽에는 코치로,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에는 직접 지휘봉을 잡으며 좋은 성과를 낸 것. 이렇게 국가대표팀을 성공적으로 이끌던 그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바로 장래에 대한 고민에 빠진 것. “지금과 달리, 그땐 국가대표팀 지도자라도 거취를 정확하게 정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때 지금 내게 있는 것은 뭔가 생각해봤어요. 딱 세가지가 남아있더군요. 운전면허자격증, 자도자자격증, 교원자격증. 이 세가지 중에 둘은 썼으니, 이젠 남은 하나를 써보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임용시험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체육 교사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1996년, 카누의 불모지였던 울산으로 내려와 최초로 카누팀을 창단하고 재능 있는 학생들을 키워낸 것. 하지만 그의 다짐과 달리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올 9월, 울산스포츠과학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하는 이채홍 선생님과 그때부터 인연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을 믿고 울산에서 카누팀을 창단했어요. 팀은 만들었는데 선수들이 연습할 카누가 한 대도 없는 거에요. 그래서 사비 1000만원을 들여 카누 5대를 샀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구했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장난삼아 밟아서 3대가 부셔져 버렸어요. 남은 2대의 카누로 대회 출전을 위해 연습을 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이채홍 선생님이 큰 힘이 돼주셨어요. 다시 카누를 구입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해주셨으니까요. 다시 생각해봐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카누를 띄우고 훈련할 훈련장소가 없어 정말 고생했습니다. 울산에서 카누를 연습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은 대암댐인데 공업용수, 생활용수 전용댐이라 쉽게 허가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카누를 타면 수질이 오염된다는 잘못된 인식도 많았죠. 그래서 수자원 공사를 여러 번 찾아가 설득했고, 결국 허가를 얻어냈습니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선수들이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게 참 대견했어요(웃음). 지금도 그때 나를 믿고 카누를 시작했던 학생들이 국가대표를 비롯하여 실업팀의 현역선수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카누 지도자로 훌륭한 길을 걸어온 임호순 회장. 이후 그는 울산카누연맹 부회장, 대한카누연맹 전무이사로 활동하며 폭 넓은 활동을 했다. 제10대 대한카누연맹 회장이라는 막중한 자리를 맡아 앞으로 한국 카누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연맹의 화합과 소통을 통해, 한국 카누 발전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카누인들에게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997]
    • 라이프
    2016-10-05
  • 이광석 ㈜월드인쇄 대표이사
    인쇄문화향상을 위해 힘써온 ㈜월드인쇄 이광석 대표가 그 공로로 지난 9월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28회 인쇄문화의 날’ 기념식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 인쇄 발전을 위해 진심으로 고민하고, 인쇄인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고자 노력하는 이광석 ㈜월드인쇄 대표이사를 만나 인터뷰했다. _김은진 기자 인쇄문화 향상을 위한 길 업계 사람들의 마인드부터 바로잡아야 절대 없어지지 않는 산업, 인쇄 우리 주변에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인쇄는 책과 전단지 등, 무궁무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광석 대표는 자신의 칼럼에서 인쇄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인류가 발전하고 성장하는 데 한 축을 담당하며 발전해왔다고 언급했다. 인쇄업에 대한 자부심과 인쇄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진 그는, 이번 수상을 통해 감사의 말을 전하며 대구 남산동 지역의 인쇄 발전과 나아가 우리나라 인쇄산업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 대표는 근대에서 현대로 들어서면서 인쇄업이 어지럽게 난립되며 포화상태로 들어서고, 먹고 사는 것에만 집중되는 나머지, 현재 인쇄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이 안타깝다며 인쇄에 대한 마인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인쇄산업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 산업 중 하나라고 언급하며, 학생들에게 많은 모니터 화면보다 많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종이 교과서를 강조하기도 했다. 더불어 김영란법 시행으로 기업의 사보 폐간이 서민경제에 막대한 타격과 발전을 저해한다며 모두가 단합해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전했다. 인쇄산업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문화사업으로서 그에 맞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광석 대표. 지역에 맞는 문화사업 필요 인쇄업계가 하나의 축이 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인쇄박물관 건립 앞으로는 제조업이 아닌 문화산업의 시대이다. 이 대표는 지역에 맞는 문화사업을 강조하며 대구 지역에 구축되어 있는 인프라를 더욱 발전시켜 대구 남산동 인쇄골목 등 지역의 대표 문화사업으로서 자리 잡게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미래 문화산업의 일환으로 인쇄업계가 한 축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틈새시장을 개발하고 분발해야 한다는 이광석 대표. 그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인쇄박물관 또한 업계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제대로 건립하여, 이를 통해 인쇄인들의 위상을 높이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전시회의 팜플렛을 비롯해 관광지의 안내책자 등, 스마트 기기보다 인쇄물의 기본적인 힘이 강하다고 언급한 이 대표는 앞으로 더 나은 퀄리티를 제공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방식을 연구해야 하며 제품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뢰를 통해 함께 나아가고자 무한경쟁시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광석 대표는 회사를 조금 더 성장시켜 모두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월드인쇄는 타사에 비해 이직률이 낮은데, 그 이유는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는 그의 경영철학이 뒤에 있기 때문이다. 직원 개개인에게 업무에 대한 권한을 줌과 동시에 책임을 부여해 애사심을 높이고, 전문가로서의 긍지를 심어주기 때문이라고. 그는 직원들을 온전히 믿으며 가족으로서 함께 나아가고자 하지만, 인쇄업계의 특성상 체력을 요하고 글자를 읽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직원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기에 회사 규모를 키우고 임금피크제를 통해 직원들과 같이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업을 하며 무한경쟁시대에 있어 무엇보다도 치열하게 경쟁해야겠지만, 너무 과도하게 도를 넘진 않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스스로의 적정선을 알고, 양보와 타협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그 선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이광석 대표는 자신이 은퇴하기 전까지 직원들 및 업계 사람들과 공생하며 발전하고, 미래를 위한 터전을 닦아놓고 싶다고 전했다. 진정으로 인쇄문화의 향상을 위해 고민하며 힘쓰고, 인쇄인으로서의 자부심으로 앞장서고 있는 이광석 ㈜월드인쇄 대표의 발걸음을 응원한다. [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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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05
  • 조병섭 소문출판인쇄사 회장 | 사단법인 소문노인복지법인 이사장
    조병섭 이사장은 한국인쇄산업의 산증인이다. 1959년 소문출판인쇄사를 설립한 이후로, 15년 동안 부산인쇄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부산중소기업협동조합 이사장협의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 경제와 인쇄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리고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사재를 털어 어려운 이웃들을 돌봐온 조병섭 이사장. 그는 70억 상당의 소문출판인쇄사 건물을 (사)소문노인복지재단에 기부 출연했고, 소문노인대학을 만들어 노인복지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렇듯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한 삶을 살아온 그는 최근 부산 서구, ‘제30회 자랑스러운 구민상’ 희생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며 다시금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에 주간인물은 자수성가한 기업가로, 지역의 숨은 독지가로 살아온 그의 감동적인 인생 스토리를 담았다. _박미희 기자 그의 고향은 경남 김해. 일찍이 암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4남 중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했고 그런 그에게 쏟는 어머니의 정성은 유독 각별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쇄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험난하고 가파른 세월이었지만 그는 특유의 근면성실함과 남다른 일머리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건실한 청년은 스물다섯에 공장장이 됐고, 1959년 소문출판인쇄소를 열며 어엿한 사장이 됐다. 두터운 신용과 꼼꼼한 일처리로 이내 인정을 받았고 한때는 부산시청, 병무청, 선관위 등 정부기관의 일을 도맡아할 정도로 번성했다. 한편으로 1974년 송도케이블카 운영업체인 부산삭도(주)를 설립해 성공가도를 달렸다. 이렇듯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이름을 알리던 그에게 유혹 아닌 유혹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원칙을 지켜왔다. “제 삶의 신조 중에 하나가, ‘사람은 본디 자기 분수대로 살아야 하고, 작은 것이라도 남에게 베풀고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땅 투자를 해라,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라, 여기저기서 이런 저런 제안도 많았죠. 하지만 사업 외에 다른 것을 탐할 마음도 없었고 막중한 자리를 맡기엔 제 그릇이 작아 오로지 사업만 충실히 해왔습니다. 그저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혼자 힘으로 사업을 일으켰다는 게 보람된 일이죠(웃음). 그리고 저도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어려운 이웃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조금이나 힘이 되고 싶어 도움의 손길을 이어왔습니다.” 혼자 힘으로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룬 그에게 많은 지지가 모였다. 그렇게 그는 15년간 부산인쇄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16년간 부산중소기업협동조합 이사장협의회 회장직을 맡아 인쇄산업발전과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일을 했다. 그리고 부산상공회의소 상공의원(9,10,14,15대), 부산시정자문위원회 위원, 국제로타리3360지구 부산동남클럽회장, 장유중·칠산초등학교 총동창회 회장, 학교법인 장유학원재단이사장, (사)소문노인복지재단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문화훈장옥관장, 부산시민대상, 노인대학경영대상, 국무총리표창, 문화체육부장관표창 등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70억 상당의 건물 (사)소문노인복지재단 기부 출연 소문노인대학 운영, 무료급식 실시, 소문실버가요제 개최 등 노인복지를 위해 헌신 성공한 사업가로, 지역의 독지가로 이름이 높았던 그가 몇 해 전 70억 상당의 소문출판인쇄소건물을 (사)소문노인복재단에 기부 출연해 화제가 됐다. 한평생 일군 기업의 터를 선뜻 국가에 기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 하지만 가장 반대할 것 같았던 가족들이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여줬다고. “남들은 애써 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줘야하지 않느냐고 했죠. 하지만 저는 지금껏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까지 다 보냈으니 자식들에게 할 도리를 다했다고, 이제는 내가 뜻하는 일을 하겠다고 했죠. 원래 적십자 건물로 사용되던 것을 제가 인수해 인쇄소로 만들었어요. 그렇게 보면 원래 국가의 것이니, 다시 국가에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랬더니 아내는 물론이요, 장남(조양환 전 부산시의회 부의장)을 비롯해 자식들 전부가 제 뜻을 따라줬어요. 생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이웃들에게 베풀고 나눠주고 싶은 제 뜻을 가족들이 잘 이해해줬지요.” 그는 한평생 어려운 이웃들을 살뜰히 살펴왔다. 그 중 노인복지에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때문이다. “어머니는 훌륭한 분이셨어요. 남편 없이 네 아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웠죠. 특히 어려서부터 허약해 키가 작았던 저에 대한 사랑과 정성은 각별했지요. 어머니 덕분에 키가 작아 6.25 때 군 면제를 받을 정도로 허약했던 저는 건강을 되찾았어요. 고등학생이 되서야 뒤늦게 키도 다시 컸고요. 그만큼 저에 대한 어머니의 정성은 대단한 것이었죠. 기댈 곳 없이 외로운 마음을 부처님에게 기도하며 달래던 어머니.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변함이 없어요. 그래서 외로운 노인들을 보면 마치 저희 어머니를 보는 듯했어요. 못 다한 효도를 어르신들에게 하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를 공양하는 마음으로 그는 2000년도부터 소문노인대학을 운영해왔다. 무료급식실시, 경로잔치 개최 등 많은 행사로 노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과 행복을 전하고 있는 것. 이런 그의 따뜻한 진심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며 기업가로 독지가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조 이사장. 이제는 더 이상 원이 없다는 그의 마지막 바람은 무엇일까. “저는 제 생의 마지막까지 어려운 이웃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요.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 제 존재가 조금이나마 세상에 이로울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제6회 소문실버가요제 ‘노인들이 행복하려면, 먼저 노인들이 즐거워야합니다!’ 조병섭 이사장의 지론은 확고했다. 노인들이 즐거운 세상을 만드는 소문실버가요제. 개인이 개최한 가요제로는 단연 돋보이는 규모와 구성을 자랑하는 소문실버가요제는 올해로 제6회를 맞이했다. 오는 10월 26일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흥겨운 노래한마당과 풍성한 축제의 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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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05
  • 문병옥 법무사 | 김해법무사회 회장
    지난해 4월 김해법무사회 회장으로 취임한 문병옥 법무사는 지역 법조계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다. 어려운 법무사 업계의 현실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 그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청명한 가을 하늘이 아름다운 날, 문병옥 법무사를 만나러 김해로 향하는 길.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는 취재진을 맞이했다. 문병옥 법무사는 동아대학교 법학과 학사, 동대학 법학대학원 석사, 경상대 대학원 법무학과(파산법 전공) 석사를 받은 뛰어난 법조인이다. 79년 검찰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검사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가지고 사법 시험에 도전했다. 매번 안타깝게도 합격의 문턱에서 쓰라린 고배를 마셨지만, 치열한 수험생활은 법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2003년 법무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고향인 김해에 법무사 사무실을 개업해 탄탄한 실력과 두터운 신용으로 업계의 인정을 받았다. 특히 행정소송, 민사소송 분야에 특출한 실력을 발휘하며 그 능력을 인정받는 것.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법리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사건의 요추를 꿰뚫는 안목 때문이다. “법대를 나와 검찰공무원으로 근무를 했고, 사법시험을 준비했기 때문에 소송 분야에 전문성을 갖출 수 있었어요. 그리고 다양한 사건을 맡아 폭 넓은 경험을 한 것도 좋은 경험이 되었고요. 어려움에 처한 의뢰인들이 좋은 결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언제나 힘이 납니다(웃음).” 이렇듯 주위의 신망은 얻은 그는 지난해 4월 김해법무사회 회장으로 취임한 후로 김해법무사회의 발전과 화합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다. 법무사업계가 날로 어려워지는 이때, 김해법무사회는 추석을 맞이해 이웃돕기 성금 500만원을 기탁해 주위를 다시 한 번 훈훈하게 했다. “김해시민들이 애정을 갖고 지켜봐주신 덕분에 법무사들이 본업을 잘 해올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희가 받은 것을 지역사회에 되돌려주자는 의견들이 많았어요. 이번에 이렇게 뜻을 모아, 작은 실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나가겠습니다.” 눈앞에 닥친 어려움에도 지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하는 문 법무사. 하지만 지금 김해법무사업계는 어려움에 처해있다. 1995년 시·군 통합 이후 개발붐에 힘입어 20여명의 그치던 법무사 수는 현재 56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김해지역에서 건립되는 아파트 등기업무와 관련된 시행·시공사와 시당국의 협조업무의 밀려, 타 지역 법무사들에게 일거리가 몰리고 있다. 거기에 시중 은행 대출 알선 등 등기업무도 타 지역 법무사들에게 쏠리는 것이 현실. 이에 문 법무사는 ‘김해법무사업계가 지역사회에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현재 김해지역 법무사들이 처한 현실은 참 어렵습니다. 앞으로 김해법무사업계와 지역사회와 함께 상생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되도록 지역 내에 이뤄지는 시행시공 분야의 일은 지역 법무사들에게 맡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비단 법무사 업계의 어려움은 김해 지역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변호사 수가 늘면서 법무사들이 하는 등기업무를 변호사가 대신하는 곳도 많다. 거기에 회원 간 경쟁으로 일종의 덤핑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경남법무사에서 보수 하한액을 정한 것은 이런 덤핑 현상을 막기 위함입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가격 경쟁을 제한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2억 5000만원을 부과했지만, 저는 이것이 법무사업의 특성과 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법무사업계는 경쟁이 과열돼 일감을 얻기 위해서 무분별한 덤핑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보수가 책정되어야하는데 이런 왜곡된 모습은 법무사업계의 근간을 흔들 뿐만 아니라, 결국 의뢰인들의 피해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이 계속 되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법무사들 스스로도 가격 경쟁이 아닌 실력으로 경쟁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게 문 법무사의 설명.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법무사들에게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달라는 말에 그의 눈은 깊어졌다. “법무사업계가 어렵다고 무조건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한국 법조계가 성숙해지는 과도기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법무사 스스로가 특화된 분야를 갖고 경쟁력을 갖춘다면 충분히 잘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뜻이 있는 법무사들끼리 합동법무사 사무실을 여는 것도 좋은 일이구요. 법무사의 본분에 맞게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 젊은 법무사들이 뜻하는 바를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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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05
  • 6차 산업 활성화를 위해 뭉친 이들 ‘6차산업협동조합’
    ‘1+2+3=6’이다. ‘1×2×3’ 역시 6이다. 하지만 1차 농업 산업 없이는 존재하지 않기에 6차 산업은 곱하기 개념만을 사용한다. 1차(농업생산)×2차(가공)×3차(유통, 체험, 관광, 문화) 산업의 융복합을 통해 농업소득을 안정화하고 농외소득을 창출함으로써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6차 산업의 목적이다. 진주에서는 발 빠르게 ‘6차 산업’을 협동조합으로 꾸려 6차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2014년 11월에 창립해 인터넷 판매망인 '바우샵'(baushop.kr)을 통해 각 농장 체험 프로그램 연계는 물론 각종 판매 대행도 함께하고 있는 6차산업협동조합. 혼자서는 할 수 없는 6차 산업의 구조를 간파, 전국에서 드물게 협동조합으로 운영되고 있는 6차산업협동조합의 김민석 이사장을 만나 보았다. _배진희 기자 2007년 진주로 내려와 아버님 농사를 지으며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에 의구심을 품었다는 김민석 이사장. “농업은 다양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수익을 내기도, 유지를 하기도 힘든 산업입니다. 특히나 농사를 잘 짓는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현실상 농외소득 창출을 통해 수익이 나는 구조로 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농업인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 중 하나인 유통과 판매에 초점을 맞춰 농촌체험마을을 시작으로 다양한 판로 개척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6차산업협동조합. 1차 산업인 농업에 익숙한 이들에게 갑자기 가공이나 유통, 체험 등의 산업을 하게 할 수 없음에 착안, 1차와 2차 그리고 3차 산업으로 이어주는 거점으로 6차산업협동조합을 시작하게 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6차산업협동조합 김민석 이사장을 비롯한 조합의 구성원들은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요리 기능장인 조합원을 비롯해 다도 전문가, 웹 마케터 등 조합원들 각자가 보유한 기술이나 경험들이 다양합니다. 각양각색의 전문 분야 지식과 경험을 살려 원재료의 상품화 노하우를 비롯해 유통 판로 개척 등 농민들의 수입 증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실매출 신장을 위해 판로 개척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특히나 다양한 상품으로의 개발을 통해 원재료의 몇 배에 달하는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바이오센터에 개발팀도 두고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6차산업협동조합은 농업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존재를 아는 이들이 함께 모여 농사에 한정된 1차원적 산업의 모습을 뛰어넘어 가공을 통해 상품의 가치를 높이고, 이 상품들로 체험 및 관광 등의 3차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이러한 이들의 행보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면서 지역 곳곳에 6차산업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성공모델로서 강의 제의도 들어와 바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김민석 이사장은 "좋은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희와 비슷한 사업 유형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어요(웃음)."라고 말했다. 서로의 니즈에 맞는 이들을 연결 국내외로 다양한 수입 창출 구조 만들고파 “농사를 통해 얻은 원재료로는 유통 구조가 국내에 한정되게 됩니다. 그만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판로가 제한적이 되죠. 하지만 외국으로 수출이 가능하도록 원재료를 가공한다면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 판로 개척도 가능해집니다.” 무한한 창의성의 가능성을 지닌 융복합산업인 농업. 하지만 그동안 유통 구조의 한계와 독창성 결여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 해 1차원적인 수입 구조와 유통구조에 한정되어 있었다. 6차산업협동조합은 진정한 블루오션으로서 농업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특히나 서로의 니즈에 맞춰 각 업체나 농가들을 연계해줘 동반 성장을 통해 발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이미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국산 농산물을 가공해 만든 각종 상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점에 주목, 식품과 화장품, 바이오산업의 상품화를 통해 해외 시장 개척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그 일환으로 최근 조합에서는 국산 차 및 발효차 브랜드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이를 상품화하여 경북 안동에 명품 고택을 카페로 개조해 커피와 함께 판매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상품개발뿐만 아니라 농가와 지역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좋은 상품이지만 유통 지식 및 경험 부족으로 수익 창출이 어려운 농가에 대안을 제시해주고, 그로 인해 국민들이 질 좋은 상품을 누리도록 힘쓰는 6차산업협동조합. 농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6차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들의 향후 행보를 더욱 기대해본다. [996]
    • 라이프
    2016-09-12
  • 대중화를 통해문화 선진국에 기여하고파
    나만의 개성이 담긴 가방을 만들고자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가죽공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3초 백(Bag)’이란 별명이 붙은 루이비통처럼 더 이상 명품은 자신을 나타내는 아이덴티티로 적합하지 않게 된 것. 가방으로 신분을 나타내던 시기를 탈피해 이제는 진정 개성을 추구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진입장벽이 높은 가죽공예는 재료 하나부터 열까지 국산제품이 없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 오늘 주간인물이 찾아간 네임레더팩토리는 창원 최초의 가죽공방으로 그곳에서 만난 이승용 대표는 가죽공예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사람이다. _박지영 기자 창원 최초의 가죽공방 네임레더팩토리. 가죽을 이용한 작은 소품부터 가방까지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주문제작할 수도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네임레더팩토리의 ‘쭈쭈’가 환히 반겨주는 그곳에서 만난 이승용 대표는 한눈에도 단순히 가죽공예를 한 사람은 아니란 인상을 주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 가죽 공예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승용 대표는 네임레더팩토리의 인테리어까지 직접 했을 정도로 재주가 넘치는 사람으로 본디 본인 스스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만들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직접 배워서 만들어내고야 마는 집념을 지닌 그. 가죽공예도 그런 그의 ‘디자인’ 욕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패션 디자인회사에서 일할 당시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이 공장과의 트러블로 만족할 만한 결과물로 나오지 못 하며 직접 가죽공예를 배워 스스로 만들어내겠다고 생각했다고. “이태리에서 직접 전통가죽공예를 배워온 지인으로부터 사사 받았죠.” 그렇게 처음에는 자신의 작업을 위한 공간으로 가죽공예공방을 마련했다. 원래 가방을 좋아했던 터라 그의 가죽, 가방사랑은 작업을 거듭할수록 더해갔다. “서울에서 경남대학교로 강의를 다니면서 남는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창원에 마련했죠. 어쩌다 일이 커지다보니 이렇게 클래스까지 진행하게 되었네요.” 미국, 일본식의 통가죽 스타일이 가죽공예의 전부로 인식되다 6년 전 섬세한 스타일의 유럽식 가죽공예가 알려지며 가죽공예의 무한한 변신을 보여줌으로 일반인들의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요즘 그는 이보다 훨씬 전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실부터 시작해 제작도구까지 어느 하나 국산제품이 없어 진입장벽이 높은 유럽식 가죽공예. 그는 그런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방 내에 도구들을 따로 구비해두었다. 장기적인 취미로 이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일회성 수업으로 끝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누구나 부담 없이 경험해볼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는 노력을 하고 있다. 가죽공방의 진입장벽을 낮춰 그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가죽공예의 대중화. “우리나라는 왜 세계적인 명품이 없을까요? 그건 기본적으로 장인이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적 풍토와 기예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때문이에요. 그렇다면 그건 또 왜 그럴까요? 이런 예술 분야가 대중적이지 않아, 사람들이 높은 안목을 가질 수 있을 만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명품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명품을 표방한 건 아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며 알아봐준 사람들 덕분에 명품으로 거듭나게 된 것. 또한 대중들의 안목이 높아져야 국내 브랜드 역시 ‘만듦새’에 더욱 공을 들이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 문화적 선진국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그 시작은 대중들의 예술 인식에서 출발한다. 가죽공예의 대중화를 통해 예술분야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이승용 대표는 지금 창원대학교와 협력해 국산 가죽공예 도구를 만드는 중이다. 접근성을 높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눈으로, 손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목표.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지만 즐거워 보이는 그의 표정에서 그가 얼마나 가죽을, 예술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쭈쭈와 함께해 더욱 꽉 찼던 그와의 인터뷰. 일정한 형식이 없어 무한한 매력을 지닌 가방 같은 사람, 이승용 대표와의 특별한 만남이었다. [996]
    • 라이프
    2016-09-12
  • 추리에 입힌 색다른 스토리, ‘이스케이프 헤라’ “젊은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죠”
    유행처럼 생긴 방 탈출카페. 추리만화 혹은 영화 속 상황을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재현해 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남녀노소 모두가 할 수 있는 ‘놀이’로 주목받고 있다. 세대를 아우르는 놀이로 현재는 전국의 방 탈출카페를 찾아다니는 마니아층까지 생긴 상태. 그러나 비슷비슷한 테마와 스토리, 그리고 결과를 알고 난 후 다시 한 번 발길을 돌리기가 어려워 지속적인 흥미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 그런 이유로 다시 찾지 않는 분들이라면 부산 사상에 새로이 선보이는 ‘이스케이프 헤라’를 추천한다. 단순하게 추리 공간을 재현해내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스토리와 테마로 어디서도 만나지 못한 미션을 통해 방 탈출 마니아들도 다시 찾게 만드는 독창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스케이프 헤라. 무료한 일상에 갈 곳 잃은 당신을 위한 곳이 바로 여기다. _박지영 기자 부산최대규모의 방 탈출카페가 새로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간 ‘이스케이프 헤라’. 그곳에는 오랜 시간 우정을 쌓아온 3명의 대표가 있었다. 이제 곧 마흔, 각자 본업이 있는데다 친구끼리는 더욱이 동업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음에도 같이 본업 이외 다소 이질적인 ‘방 탈출카페’를 오픈하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본업인 인테리어 일로 방 탈출카페 시공을 맡았던 것이 계기였어요. 재밌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끼리 해보자 그렇게 된 거죠.” 추진력 하나는 끝내주는 3인방. 그대로 시공부터 하나하나 본인들의 손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아니라 ‘우리 기술’로 제대로 만들어보자고 다짐했기에 준비하는 데만 꼬박 4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8월 1일, ‘이스케이프 헤라’의 문을 열었다. 기초가 튼튼한 부산최대규모 다양한 테마와 자체 스토리 독창성 있는 문제로 추리의 재미까지 유행처럼 번진 방 탈출카페의 흥행으로 우후죽순 생겨난 방 탈출카페. 수많은 방 탈출카페 중에서 이스케이프 헤라가 눈에 띄었던 건 비교할 수 없는 규모다. 보통 5개 방으로 구성되어있는 것에 반해 이스케이프 헤라에는 총 10개의 테마방이 존재한다. 기본적인 폐교 테마 이외 녹음실, 바(bar), 면접, 천사와 악마의 방 등 무서운 테마와 24금 자극적인 테마를 포함해 다양한 배경으로 구성되어 비슷비슷한 프랜차이즈 방 탈출카페와 비교된다. 3명의 대표가 만들고자 했던 것은 ‘우리 기술’로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테마와 스토리를 가진 방 탈출카페였기에 방 테마, 스토리, 추리문제까지 자체적으로 개발해 ‘독창성’에 무게를 두었다. “자본을 들여 오랜 시간 개발한 외국 프랜차이즈 방 탈출카페와 경쟁해야 했기에 ‘퀄리티’에서 가장 신경이 쓰였죠. 그래서 다른 곳엔 없는 테마,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스토리와 참신한 추리문제로 우리만의 경쟁력을 갖추려 노력했어요.” 오픈한 지 이제 한 달을 갓 넘겼지만 이미 많은 방 탈출카페 마니아들이 다녀가 호평을 남겼다. 신선한 스토리는 물론, 스토리 속 추리문제까지 꼼꼼하게 신경 써 문제를 풀어가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었다고. 이스케이프 헤라가 특별한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대결 시스템’이 바로 그것. “10개의 테마 중에 3개의 테마는 팀을 나누어 다른 곳에서 출발해 중간에서 만나 탈출하는 대결 시스템이에요. 일행끼리 할 수도 있고 낯선 타인과 함께 할 수도 있어요. 하다보면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겠죠?(웃음)” 지속적인 시나리오 리뉴얼로 젊은이들에게 즐거운 공간이 되었으면 한국 정서를 담은 테마로 해외진출도 꿈 꿔 3명의 대표가 이스케이프 헤라의 문을 연 가장 큰 동기는 ‘젊은이들이 즐길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참 힘들잖아요. 취업이다 뭐다 점점 어렵기만 하니. 그런 젊은 친구들에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특히나 이곳 사상은 특별히 놀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젊은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술집밖에 없죠. 우리 셋의 놀이터였던 사상에 젊은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싶었죠.” 서면, 남포동 등과 같은 부산의 번화가가 아니라 사상을 택한 것도 바로 이 때문. 상대적으로 적은 유동인구로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진 않지만 부산 인근 도시 손님들의 방문도 꽤 많은 편. 이제 시작이지만 손님의 많고 적음보다는 지속적인 발걸음을 위해 시나리오 구상에 더욱 주력할 예정이라 한다. “방 탈출카페의 특성상 체험한 테마는 더 이상 찾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찾아 놀다갈 수 있도록 시나리오 구상에 투자할 계획이에요. 6개월마다 전체 테마를 바꿔야하기 때문에 참 갈 길이 멀어요.(웃음)”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그들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젊은이들의 역사인식이 많은 화제가 되었잖아요. 그래서 우리 역사를 배경으로 한 시나리오를 통해 역사인식도 심어주고 더불어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컨텐츠로 해외진출도 해보고 싶어요. 방 탈출카페가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문화긴 하지만 저희만의 ‘독창성’으로 승부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웃음)” 이스케이프 헤라를 다녀온 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제야 기사가 나가는 것은 3명의 대표가 부탁한 특별한 ‘사진’ 때문. 이스케이프 헤라의 시작을 함께한 모든 직원과 함께 찍은 사진을 꼭 같이 싣고 싶다는 것. 이스케이프 헤라 개국공신들이라며 인터뷰 중간 중간 직원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던 3명의 대표. 함께 걸어가는 그 길은 늘 꽃길이기를. [996]
    • 라이프
    2016-09-12
  • 류재학 국제라이온스협회 355-C(대구)지구 34대 총재 | ㈜화성철강산업 대표이사
    영국의 위대한 지도자 윈스턴 처칠은 “우리는 일함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간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라이온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평화와 박애 정신은 인도주의적 봉사정신으로 결속된 국제라이온스클럽 회원들이 세계 각국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근간을 이룬다. 주간인물은 기획특집으로 나눔을 통해 열매 맺는 삶의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대구지구 라이온스 류재학 전 총재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최수영 차장, 정연실 기자 “스마일 바이러스는 큰 힘을 갖게 하죠!” 헌신적인 봉사활동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생활 속 봉사의 향기가 묻어있는 온화한 미소를 지닌 류재학 전 총재.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인품과 부드러운 미소는 그와 인연을 맺어온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될 정도로 호평이 나 있다. 대구지구의 대표 라이온으로 숭고한 봉사정신을 확산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해온 그. 2008년 총재 취임 당시 ‘스마일 서비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현장을 직접 찾아 웃는 얼굴과 함께 따뜻하게 손을 잡는 현장 봉사를 추진해왔다. 류 전 총재는 임기 동안 과감한 추진력과 혁신적 리더십을 발휘해 ‘대구사랑합동봉사’로 추석 및 설날 전역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일만여 가족이 함께 하는 봉사를 추진하였으며 장애인 복지관 무료급식소 건립, 대구 전 지역 연탄 6만 장 보급사업, 독거노인 실버 카 400대 보급사업, 사랑의 집 수리, 지구 5층 대회의실 증축공사 등 많은 봉사의 흔적을 남겼다. 이는 지역 발전과 복지 향상에 기여했으며, 라이온스 가족이 지역사회에서 존경받고 자부심과 긍지를 갖도록 위상을 높이는데 주력하여 사회적 약자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봉사의 참 의미를 몸소 보여주며 현재까지 귀감이 되고 있다. 최선을 다하는 성실성은 삶에 대한 역량을 키워가는 원동력이 되다 경북 칠곡 동명면 송산리 출생으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류재학 전 총재. 가난을 이겨내려는 의지로 불철주야 일을 벗 삼아 일찍부터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동기간 우애를 위하여 희생하는 등 가족을 보살피는 일에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일 저일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근이 일찍 들었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죠(미소).” 어렵고 힘든 일에 봉착할 때마다 최선을 다하는 성실성은 누구보다도 내세울 수 있는 강한 무기였기에 힘든 현실을 노력으로 극복하며 삶에 대한 역량을 키워나간 원동력이 된 것이다. 주변에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일 없이 도와주고 싶어 했으며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것은 그의 일상이었다. 경로효친의 바탕 위에 그의 인간으로서의 됨됨이는 늘 주변 사람의 칭송을 받았다. IMF 금융위기를 극복한 뒤 봉사의 반열에 우뚝 서다 1990년 라이온스 회원이 되면서 그의 활동 범위는 더 넓어졌다. 1997년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트렸던 IMF 금융위기는 그 역시 피할 수없이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였으며, 힘겹게 이겨낸 것도 그의 노력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온스 클럽 회장 직을 권유받아 망설임 끝에 직책을 맡게 되었다. “제가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인데 당시 회장직을 맡기기 위해 새벽까지 저를 설득하러 오신 분들의 마음에 감동받았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저의 큰 지지자가 되었지만, 당시 아내는 이혼까지 불사하겠다며 엄포를 놓았죠.” 성실감, 책임감과 긍정적인 뚝심 하나로 클럽의 발전을 꾀한 공으로 그가 소속된 대붕클럽은 더욱더 활성화되었으며, 그의 인품과 성실 그리고 책임감으로 2002년 회장에 재임하며 클럽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드디어 2008년도 국제라이온스협회 355-C(대구)지구 제34대 총재에 당선되면서 지역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그는 지식보다는 사람의 도리, 인품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밝은 사회를 지향하는데 힘썼다. “돈이라는 것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돕고 복지에 신경 쓰면서 보람된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참 기쁨이고 행복이죠.” 재임 시절 대구지구 라이온스회관의 봉사회관 증축에 큰 기여 국제라이온스 대구지구에서 류재학 전 총재의 활약은 빛이 날 정도다. 대붕클럽 회장을 시작으로 등반대회 분과위원장, 제5지역 2지대위원장, 환경보호 직능부총재, 5지역 부총재, 환경개선 특별위원장, 봉사기금 특별위원장, 대구장학회재단 이사장, 대구 장애인복지관 운영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복지관 내 사자관 무료급식소 준공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2008년에는 국제라이온스 355C 대구지구의 34대 총재에 취임하여 지구회관의 봉사회관 증축에 큰 기여를 했다. “재임 시절 대구지구에서의 가장 큰 보람을 꼽으라면 2007년 대구 라이온스 동남아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발생한 잉여금과 건립기금 6억 2천만 원을 출연해 라이온스 회관 5층을 확장 건립한 것입니다. 그때 저는 대구지구 라이온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라이온스 봉사단체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일도 열정적으로 해내 2개의 자회사를 설립, 지금까지 철강업계에도 많은 기여를 하며 올해 성서공단에 2개의 자회사를 통합 확장을 위한 증축을 앞두고 있다. 욕심부리지 않고 채워지는 만큼 베풀어야 한다는 소명으로 류재학 전 총재는 더불어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좋은 기억을 남기고, 사람과의 원만한 인간관계를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주고 알아주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사람이다. 그래서 주변의 명망은 그에게 더욱더 잘해야 된다는 신뢰와 의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성공하는 일 뒤에는 누군가의 의지와 노력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현재도 지구산악회, 사자회 등 여러 단체를 통해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행사마다 참여함으로써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봉사는 혼자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부 일심동체로 그의 아내 또한 베푸는 것을 좋아해 부단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무슨 일이든 먼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채워지는 만큼 베풀어야 한다.”라며 베풀기를 생활화하고 있다. ‘진인사대천명’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한 후에 하늘의 명을 기다리는 겸손과 인품이 그의 후덕한 미소에서 풍기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고향인 동명 송산리 발전에도 많은 기여와 협조를 하고 있는 그. 고향의 밭농사, 감농사도 바쁜 시간을 쪼개 직접 하는 억척을 부리며 소박한 천심을 실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향한 그의 스마일 바이러스는 멈춤이 없다. [996]
    • 라이프
    2016-09-12
  • 엄마들에게 여유를 되찾아주는 공간이자 내 아이를 위한 현명한 선택, ‘DOBOR’
    청정지역 지리산 유기농 홈 메이드 이유식으로 까다로운 엄마들의 절대적 신뢰를 얻고 있는 에코맘의 산골이유식. 이제는 온라인 배달 시스템에서 나아가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고민하는 엄마들을 위해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 내 아이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란 의미의 DOBOR(도보르). 그러나 도보르는 ‘아이’만을 위한 곳은 아니다. 단순한 이유식카페의 개념을 벗어나 커피 한잔의 여유조차 가지지 못하는 엄마들을 위해 밀린 수다와 쉼을 가질 수 있는 도보르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어루 만져주는 ‘엄마’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_박지영 기자 에코맘 산골이유식을 만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 ‘DOBOR’ 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이유식을 먹이고 싶은 엄마들의 욕심을 정성스레 담아내 키즈카페, 베이비카페 등 초등학생 이전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요즘, 그럼에도 조금은 생소한 이유식 카페 ‘DOBOR’. 전국에도 몇 되지 않는 이유식카페를 창원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도보르는 에코맘 산골이유식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정식 오프라인 매장이다. 빠르면 생후 4개월에서 6개월에 시작하는 이유식은 아이가 자라면서 모유론 부족한 칼로리와 영양소를 섭취하기위해 시기에 맞는 적절한 식재료로 점차 밥에 가까운 형태로 먹여야 한다. 이때부터 초보 엄마들의 본격적인 육아 고민이 시작된다. ‘첫 시작은 어떤 이유식이 좋을까’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모든 엄마들의 마음. 가장 좋은 재료로 다양한 이유식을 먹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다. 아이가 커갈수록 점점 다양한 식재료가 필요한데 이유식에는 소량만 필요함으로 버리게 되는 식재료가 많아져 여간 부담되는 일이 아니다. 도보르는 그런 엄마들의 마음을 대신하여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하여 꼭 필요한 영양소를 고루 섭취할 수 있는 초기, 중기, 후기, 완료기 단계별 이유식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불안한 엄마들의 마음을 백번 이해, 이미 여러 번 검증을 받은 지리산 청정지역 유기농 이유식 브랜드 ‘에코맘’으로부터 직접 공급받고 있다.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한 식품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도보르 창원직영점의 점장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손지희 점장은 내 아이가 먹는다는 마음으로 포장과 보관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빈손으로 올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자 엄마들에게 휴식과 여유를 돌려줄 수 있는 엄마들을 위한 공간이 되었으면 < 몇 개월 차이로 성장 발달에 격차를 보이는 영유아시기. 키즈카페와 베이비카페가 따로 생기는 것처럼 엄마들의 불안한 마음을 반영하여 베이비존과 키즈존을 나눈 도보르의 세심한 배려> 본격적인 가맹사업을 앞두고 먼저 선보이는 도보르 창원직영점은 도보르의 얼굴이자 미래. 이곳을 맡고 있는 손지희 점장은 여느 평범한 여자처럼 직장을 다니다 결혼 후 주부가 되었다. “흔히 산후우울증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출산 후에 산후우울증이 왔었어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을 하고 창원으로 내려와 아이를 낳고 집에만 있다 보니 제 인생에 허무함을 느꼈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집에만 있어야하나, 내 인생은 이렇게 끝인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남편의 제안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남자들은 이유식도, 엄마의 마음도 잘 모르잖아요.(웃음)”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도보르를 단순한 이유식 카페로 만들기보단 ‘엄마’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손지희 점장. 그래서 식기부터 놀이공간까지 어떤 준비물도 없이 빈손으로 올 수 있도록 모두 구비해두었다. 또한 엄마들도 함께 식사와 간식을 해결할 수 있도록 어른을 위한 메뉴도 따로 준비되어 있어 친정집에 가듯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엄마’가 된 세대들은 이전의 엄마세대들과는 많이 달라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누린 세대이고 여가나 여유를 즐기던 세대죠.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더 큰 거 같아요. 답답하고. 그런 엄마들에게 여유를 찾아주고 싶었어요. 이유식을 만드는 시간만이라도 여유로, 여가로 돌려주고 싶어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식. 도보르는 집에서 만드는 수고를 덜고 긴 연휴나 휴가에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테이크아웃도 가능하다. 그 시간을 활용해 엄마들은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수다를 떨거나 커피 한잔이라도 여유롭게 마실 수가 있게 되는 것, 그게 도보르가 추구하는 가치다. 아직은 창원 직영점만을 운영하고 있지만 더 많은 지역의 엄마들에게 유용한 공간으로 자리하고 싶다는 그녀. 도보로의 가치를 공감하고 추구할 이들과 함께 할 날이 곧 오기를 기대해본다. <아이들 뿐 아니라 엄마들도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공간 구성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다> [996]
    • 라이프
    2016-09-12
  • 견과류 쇼핑몰 '방자네'로 추석선물 고민 한방 해결
    적당한 가격대에 받고보면 누구나 만족할만한 선물, 뭐가 있을까.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즐길 수 있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먹거리, 견과류 선물세트라면 그 답이 되지 않을까. 요새 뜨는 견과류 쇼핑몰 '방자네(http://www.bangjane.com)'에서는 호두, 아몬드, 크랜베리, 캐슈넛 4가지 견과류가 따로 정갈히 포장된 견과류 선물세트를 39000원에 판매 중이다. 블루베리, 피스타치오, 마카다미아, 국산잣 등이 함께한 구성들도 가격별로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어 받는 이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방자네의 윤생민 이사는 "고급스러운 전통 문양의 깔끔하고 심플한 디자인에 신선하고 꽉찬 내용물까지, 주는 분, 받는 분 모두 만족하실 것을 자신한다"며 "추석, 설 명절 계절에 상관없이 많이들 찾으시는 스테디셀러"라고 전했다. <'방자네'에서 가장 인기있는 견과류 선물세트> 멸치, 건어물로 시작했던 방자네가 자신있게 선별한 멸치세트, 고급 포 선물세트 등도 단골들이 자주 찾는 품목이라고. 윤 이사는 "꾸준한 인기가 있는 만큼 나날이 견과류 쇼핑몰이 늘어가고 있지만, 한번 구매했던 고객들은 대부분 다시들 찾아준다"며 "부산 서동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시작된 방자네의 초심대로 앞으로도 고객들에게 은 제품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 라이프
    201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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