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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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사의 악기, 하프의 매력 속으로! - 심소정 하피스트 / 국제하프협회(International Harp Association) 총괄지휘 & 감독
    ‘귀족 악기’, ‘배우기 어려운 악기’ 등 몇몇 편견으로 대중과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던 하프는 인기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명 연예인 유재석이 오케스트라 하프 연주에 도전하는 과정이 방송돼 학교 방과후 수업과 음악학원 하프 취미반 등으로 문의가 이어지며 대중화와 함께 라이프 영역으로 들어서는 기회가 됐다. 이에 주간인물은 2024년 새해를 맞아 공연 소식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곡선미의 우아한 외관과 아름다운 음색을 지닌 하프의 매력과 함께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악기라는 걸 알리기 위해 공연, 도서, 곡, 앨범 등 다양하게 활동 중인 하프계 신진 아티스트, 심소정 하피스트를 소개한다. _김민진 기자 ▲ 셀린(SelyN) - 1st Single ‘Northern Star’ / 2nd Single ‘NeveR & AlwayS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 졸업 후 미국 이스트만대 석사 및 연주자 자격증을 취득하고 성균관대 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며 연주자로서의 기반을 탄탄히 다져온 심소정 하피스트는 음악저널, 한음, 영산음악, 해외파견, 서울오케스트라 콩쿠르 등 국내 유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바 있다. 또한 Osaka International Competition Espoir Award 1위를 거머쥐며 해외에서도 빛나는 행보를 이어나간 그는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몰도바국립방송교향악단 등 다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서울바로크합주단 초청연주, 송사비의 클래식 음악야화, EBS TV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 전국 세미나를 개최해 100여 회의 강연을 진행한 심소정 하피스트 지난 12월에 셀린(SelyN)이라는 예명으로 두 번째 싱글 ‘NeveR & AlwayS’를 발표한 심소정 하피스트는 싱어송라이터 영역에서도 음악적 기량을 펼쳐 나가며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들과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첫 번째 싱글 ‘Northern Star’은 팝록 장르의 데뷔곡으로 트와이스의 ‘Knock Knock’, 오마이걸의 ‘비밀정원’ 등 다수의 히트곡에 참여한 아이돌 메이커, 마유 와키사카가 함께 작업했고 심소정 하피스트 역시 작사/작곡에 참여하며 차세대 크로스오버 뮤지션으로서의 시작을 알렸다. “하프가 비싸고 어려운 악기라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어려움들이 저를 더욱 강인하게 만들었고 음악의 가치와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편견을 완전히 없애고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길 바랐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모두에게 나의 선택을 인정해 주길 바라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대신에, 편견에 의해 제한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긴 설명보단 결과물로 늘 보여주려다 보니 어느새 연주가, 작가, 가수, 강의자 등 많은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웃음).” ▲ “하프와 강아지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심소정 하피스트 세광음악출판사에서 최연소 작가로 ‘미니하프’ 연계교재를 편찬한 그는 하프만이 가진 장점을 최대로 살리고 동시에 “배울 곳이 없다, 어렵다, 비싸다”등 하프의 허들을 깨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하프협회’를 설립했다. 심소정 하피스트보다 최소 10살, 많게는 20살까지 나이 차이가 있는 베테랑 학원 원장들도 협회에서 하프를 배우며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다. “하프를 배우신 학교 선생님들과 학원 원장님들께서 아이들 발표회 영상이나 사진을 보내주시는데요. 너무 귀엽고, 제가 다 뿌듯하더라고요. 게다가 하프가 본인의 일상을 변화시켰다는 분도 많으시고, 그분들이 하프 앙상블을 만들어 연주회도 열었습니다. 저 대신 도서관이나 공공기관에 연락해 제 책을 홍보해 주시는 열정 넘치는 팬들까지... 하프를 사랑하는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을 보답할 수 있도록 하프 대중화에 기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더 열심히 펼쳐나가겠습니다(웃음).” 심소정 하피스트는 오는 1월 2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영화 겨울왕국의 영감을 받아 기획된 ‘Frozen Harp’ 독주회로 설렘 가득한 새해를 맞아 관객들과 마주할 예정이다. [1157] 인스타그램 : @harpist._.ss0vly ⬇Youtube Lin⬇ youtube.com/@harpistssovly?si=Wv-CWO0fzECuBrj2
    • 문화
    2024-01-23
  • [문화산책] 연우 손유경 한얼우리그림협회 회장 / 전통민화 명인 제14호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위원장 / 창원문화재단 이사
    한국의 얼이 담긴 미술을 추구하는 한얼우리그림협회는 2023년 9월 23일부터 11월 5일까지 경남 하동 칠불사 보설루에서 특별전(그림으로 풀어내는 부처님의 가르침전), ‘卍卍展(만만전)’을 성황리에 마쳤다. 한얼우리그림협회는 2019년 손유경 회장이 우리의 혼과 얼이 담긴 작품을 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창립했으며, 2007년 손 회장과 문하생의 전시를 시작으로 만들어진 ‘소천민화협회’가 한얼우리그림협회의 모태다. “부처님의 진실한 법을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에게 있어 이번 전시는 종교를 통하여 그 해답을 찾는 기회가 되셨을 것이다”고 소회를 밝힌 손유경 회장과 따뜻한 차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마산 앞바다를 바라보며 민화, 불교, 전통, 철학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_김민진 기자 It's raining flower rain 꽃비 내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동양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부산, 대구, 창원, 프랑스, 인도, 중국 등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전시를 통해서도 우리 민화(民畵)를 알리고자 42회에 걸친 개인전과 200여 회 그룹전을 개최한 손유경 회장은 약 25년간 선현들의 뜻깊은 정신을 헤아리는 민화를 그리며 문체부 장관상, 통일부 장관상, 환경부 장관상, 국회의장상 등 각종 수상, 위촉장, 감사장을 받은 바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미술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신념으로 손유경 회장이 창립한 한얼우리그림협회는 조각, 회화, 사진 등 다양한 장르에서 약 250명의 작가들이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 전시가 있었던 칠불사(경남 하동군)는 지리산 해발고도 830m 토끼봉에 자리한 사찰로 2년 전 손 회장과의 인연으로 시작한 ‘卍卍展(만만전)’이 벌써 올해로 다섯 번째 전시를 하게 됐다고. Where am I going? “부처님의 가피력이 온 세상에 내려 모든 중생에게 이롭게 되기를 기원하며 불교 이론을 그림으로 설명하는 전시를 해온 ‘卍卍展(만만전)’은 코로나가 있던 때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미술 속에 담아 지친 대중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됐지요. ‘卍(만자 만)’은 부처님의 가슴에 있는 길상(吉祥)의 징표를 나타내는 문자로 힘겨운 시절의 종식과 평안의 시대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풀이한 작품을 통하여 관람하시는 모든 분이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 등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물음에 부처님의 법을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잘 그리는 것과 좋은 작품은 다르다”고 전한 손유경 회장은 본인 작품에 빠져있기보다는 다양한 학문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열린 사고로 전통과 융합 발전시키길 원했다. 특히 철학 공부를 좋아한다는 손 회장은 예를 들어 여백 하나도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비교 및 노자의 도덕경 등을 참고해 왜 동양화는 여백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가는 재미가 그림을 그릴 때 좋은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한다. 2024년 4월 개인전 개최를 포함하여 올해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 손유경 회장의 활발한 작품 활동 또한 기대된다. 지역의 중견작가로서 국내외 전통 민화작가로서 펼칠 손 회장의 다양한 행보를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1156] chaekgeori(책거리) 여보게 관상가 양반 내가 왕이될 관상인가?
    • 문화
    2024-01-11
  • [재난안전보안관] 행정주도 재난관리체계 대응 한계, 재난안전보안관 도입으로 안전문화 혁신을
    “재난안전은 중앙정부와 민간단체와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재난안전보안관 제도를 공공기관은 물론 시장과 기업에 확산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장훈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 회장은 “재난안전법에만 근거한 소극적·협의적 보여주기식 행정에서 벗어나 재난안전 유관 개별법에까지 적용되고 확산될 수 있도록 법·제도적인 정비가 수반돼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하고 “법·제도적인 정비에는 재난안전보안관 활동이 핵심적인 내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_유경석 편집국장 ■ 연합회, 전문인력 양성·재난안전보안관 전문성 강화 주력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국민 참여를 유도하고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 개별법에 따라 부분별로 이뤄지던 국민 안전을 일원화해 나라를 안전선진국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설립됐다. 안전 관련 전문 인력 양성과 재난안전보안관 전문성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는 최근 월드케어필센터에 ‘2023 제1회 대한민국 희망 재난안전 봉사자 표창 수여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주민의 자율적 참여로 철저한 사전 점검과 신속한 초기 현장 대응을 통해 피해를 줄이도록 하는 민관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는 예측 불가능한 재난 발생 빈도가 급증하는 가운데 재난유형이 다양화·대형화하면서 인명·재산 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행정 주도 재난관리 체계로는 적시성 있는 재난의 예방과 대응에 한계를 보이는 데 따른 것이다. 국제표준화기구 ISO/IEC 17024 재난예방안전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재난안전보안관은 재난안전에 대한 교육방법과 재난 상황 발생시 행동요령 등을 숙달하고, 각종 재난과 안전 관련 위기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민간 안전요원이다. 장훈 회장은 “항상 대형사고나 인명피해가 나서야 움직이고, 그 움직임 역시 시늉만 하는 무사안일의 체질이기 때문에 유사한 사고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며 “관(官) 중심 행정으로 시민 불편이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에게 불행이 오지만 않는다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더 나아가서는 ‘대통령, 자치단체장 등은 임기만 되면 떠난다’는 착각에 그저 버티면 된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무사안일’ 체질화…보여주기식 행정 이젠 그만 대형사고나 인명피해가 발생한 이후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반복되는 행정기관의 늑장 대응을 비판한 것으로, 행정안전부에서 시행 중인 안전보안관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제도 개선 요구이기도 하다. 실제 세월호 사고(2014.4.16) 이후 이천 투석 전문 병원 화재(2022.8.08), 강원 태백 장성사업소 탄광 갱도 붕괴(2022.9.14), 포항 인덕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2022.9.06),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2022.10.29),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 터널 화재(2022.12.29), 서울 인왕산 화재(2023.4.2) 등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면서 국민 불안은 높아지고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안전을 소홀히 한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이는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매년 약 278만 명의 노동자가 업무상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2022년말 기준 우리나라 재해자는 13만348명에 달한다. 이중 질병재해로 1349명, 사고재해로 874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요 선진국들이 연간 사고사망 만인율(0.07~0.35)을 비교적 낮게 유지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 중대재해로 인한 사고사망 만인율은 0.43(2021년 기준)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일터에서 사망·사고는 개인의 생명, 가족의 행복을 파괴하고 사회적 비용, 국가적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제도가 포용적(inclusive)이면 흥하고 착취적(exclusive)이면 빈곤해지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서 높은 산재율을 기록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정치·경제 제도가 착취적임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 OECD국가 중 높은 산재율…영유아·고령자 각종 사고 노출 사망·사고는 일터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호를 받아야 마땅한 어린이들이 각종 안전사고와 교통사고, 영유아 돌연사 등으로 매년 400여 명이 사망하고 있다. 인구절벽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태어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각종 사고에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령자 안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2025년 고령인구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그 속도도 빨라져서 향후 5년간 고령인구는 29.4% 증가하고, 고령운전자는 59.4%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간 고령자 교통안전 확보를 위해 노인 보호구역 활성화, 운전면허 반납제도 운영 등을 시행 중이나 고령인구 10만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고령자에게 안전한 환경은 누구에게나 안전하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의 안전 수준을 한 차원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 안전교육 과감히 개선…관리감독 '지방 이양' 실효성 강화 장훈 회장은 “안전분야의 고질적인 부패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지 불신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시장과 기업, 시민사회, 그리고 개별 국민의 합심과 협력이 요구되며 사회 공동체적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안전(Safety)하고, 환경(Environment)적이고, 시스템(System)을 갖춰야 안전한 나라, 국민이 안심하는 나라, 경제 강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한 감시 시스템 구축과 반부패 환경 조성의 책무가 있고, 지방자치단체장과 기업은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한 비용을 선제적으로 내부화하는 등 안전사회 구현을 위한 사회적 가치를 시장과 기업 경영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간 형식적으로 이뤄진 안전교육 관행을 과감하게 개선해야 해요. 안전교육에 대한 강제조항을 두고, 안전교육 실태조사 및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하는 근거조항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특히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을 위해서는 현재 각 부서별·분야별로 이뤄지고 있는 안전교육과 시설점검 등을 통합 조정하는 한편, 지방이양이 가능한 것은 과감하게 지방에 이양할 것”을 주문했다. ■ 사회공동체 책임·재난안전보안관 활용, 안전분야 부패 근절 이와 함께 중앙행정기관과 재난관리책임기관을 대상으로 정밀안전평가를 실시하고, 정밀안전평가 시 해당 재난안전사고를 제대로 예방하고 대응·수습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평가하는 한편 정밀안전평과 결과 해당 재난안전사고 예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과감하게 재난안전사업을 수행할 수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훈 회장은 “안전분야 부패는 안전무시 관행과 불법행위에 대한 사회적 묵인에서 비롯된다”면서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한 사회 공동체적 책임과 재난안전보안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안전사고 현장점검 및 예방 활동을 위한 공무원들의 부족한 인력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안전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전문 민간단체에 안전교육 및 안전점검 등을 위탁 위임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재난안전보안관들이 갖고 있는 전문성(사명감)을 활용해 민관협업을 통해 안전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가 동참해나가겠습니다!” [1149]
    • 문화
    2023-05-31
  • 전국 유일의 장애인체육 후원단체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 - 장애인체육과 대구 스포츠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다
    박영호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 단장 / 대구북구축구협회 협회장 / 까사데코 대표이사장애인 :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 체육 : 일정한 운동 따위를 통하여 신체를 튼튼하게 단련시키는 일, 또는 그런 목적으로 하는 운동 신체를 단련시켜기 위한 ‘체육’과 신체 또는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인 ‘장애인’, 두 단어가 어울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를 이겨내고 체육계에 종사하는,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고 운동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이 장애인체육 선수들이다. 박수가 아깝지 않은 이 사람들에게 박수에서 그치지 않고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의 10번째 단장으로 위촉된 박영호 단장을 만났다. _박가빈 기자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의 박영호 단장은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대구에 거주 중인, 그야말로 ‘터줏대감’이다. 대구시 북구에서 원목 가구 전문점 까사데코를 운영하고 있는 박 단장. 그가 장애인 체육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18년이라고 한다. 그는 “지인을 따라 익산에서 열린 장애인 전국체전을 보러 갔습니다. 그때 시각장애인 100미터 달리기, 휠체어 배드민턴, 농아인 축구 등 다양한 종목에 참여하는 장애인 선수들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2019년에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에 가입해서 활동을 시작했죠”라며 지원단과의 인연을 설명했다. “각 가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먼 친척 중에라도 꼭 장애인이 한 명쯤은 있을 겁니다. 그분들을 보면 생활에 참 어려움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체육회에 속한 분들은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이를 스포츠로 승화한,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은 전국 유일의 장애인체육 후원단체이다. 장애인체육의 발전을 위해 후원금을 조성하고 장학금을 전달하며, 지역사회에도 봉사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단장은 “전국 유일의 장애인체육 후원단체이다 보니 벤치마킹을 위해 여러 지역에서 보러오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1기는 소수로 시작했으나, 점점 늘어서 10기인 현재는 142명으로 최다 인원을 기록했다. 지난 2월에 있었던 ‘제10기 지원단 위촉식’에서는 10년 차 활동 멤버 4명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박 단장은 이 위촉식에서 2023년도 지원단장으로 위촉됐다. “예전 월례회 때는 30명만 오면 많이 온 거라고 했는데, 요즘 월례회 출석 인원은 약 60명이 넘습니다. 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개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중간에 이탈하는 경우도 잘 없죠. 코로나 시기에도 후원회의 인원은 계속 증가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가 대구인데, 어려운 사람을 돕고 함께 이겨나가고자 하는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합니다.(웃음)” 그는 “대구에 있는 장애인체육 대표선수들의 지원이 주목적이고, 장애인체육에 대해 홍보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한 뒤 “그 일환으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스포츠 종목의 룰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중이에요”라고 말했다. “운동경기를 볼 때, 룰을 잘 모르고 보면 이해도 안 되고 재미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장애인스포츠도 마찬가지예요. 일반적인 운동경기에 대해 잘 아는 분들도 장애인스포츠 종목을 보며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예를 들어 휠체어 테니스 같은 경우는 투바운드가 룰인데, 모르고 보는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수가 있다고 봅니다. 룰을 잘 이해해야 보는 재미도 있고,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최근 분위기는 장애인을 ‘돕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어울린다’는 개념을 강조 중”이라고 말한 뒤 “장애인을 도와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강조하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박 단장이 감사로 속한 대한장애인낚시연맹에서 준비 중인 대회의 이름이 ‘전국 어울림 낚시대회’이다. “장애인들과 어울려서 함께 살아가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우리를 통해 얻을 점이 있고, 우리도 그들을 통해 얻을 점이 있다는 것을 지원단 생활을 통해 더더욱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지난 3월 21일, 지원단은 대구 북구청에 북구 내 장애인 선수들을 위한 장학금 200만 원을 기탁했다. 박 단장은 “각 구·군별 장애인체육회를 만들자는 취지도 있었고, 장애인체육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라며 기탁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구청장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구·군을 돌아다니며 장애인체육을 홍보하고 선수들을 지원할 예정입니다”라고 밝혔다. 올해 지원단의 후원금은 1억 6,460만 원이 책정됐으며, 전액 후원 예정이라고 한다. 박 단장은 “지역의 편중 없이 골고루 후원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뒤 “구·군 단위에서 장애인체육에 대한 지원이 잘 이뤄지면 대구시 전체의 장애인체육 활성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며 바람을 드러냈다. “지원단으로서 후원은 당연한 것이고, 단원들 간에 친목 도모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단원분들이 다들 본업이 있으신데, 다양한 직종의 단원들과 교류하며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원단을 통해 후원도 하고 얻어가는 것도 있었으면 합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지원단은 대구장애인체육회 직원들과 함께하는 체육대회 겸 단합대회를 5월 중에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로 알아가면서 도울 부분은 도와줄 수 있도록 원만한 관계 형성을 도모하려고 합니다. 자기 시간을 쪼개가며 나와서 고생하는 지원단원들과 체육회 직원들이 관계 형성을 잘해서 앞으로 함께 걸어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는 단장으로서 활동의 범위를 넓혀나갈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장애인체육부서가 보통 문화체육부 내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담당 부서를 알아보니 복지과 내에 장애인체육부서가 있더라고요. 앞으로 장애인체육부서와 연계해서 다양한 방면으로 장애인체육 활성화와 홍보에 힘쓰겠습니다.” 단장 임기는 1년, 그는 임기가 끝나고도 고문으로서 활동을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박 단장은 체육회 선수들에 대해 “장애인체육 선수들은 우선 ‘장애’라는 결함을, 곧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선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데, 선수로 나와 성적을 내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뒤 “물론 체육인으로서 몸도 중요하지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한데, 정신적으로 무장해서 열심히 해주길 바랍니다. 그럴 수 있도록 지원단에서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다. 박 단장은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 단장과 동시에 대구북구축구협회의 협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40팀으로 대구 내에서 최다를 자랑하는 북구 축구협회에서 4 년차 회장을 맡은 그는 다방면으로 북구 축구 활성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부키 슛돌이 FC’는 지역아동센터와 소외계층, 저소득층 아이들 우선 선발, 이후 관내 아이들을 선발해서 무료로 수업을 진행하는 사업이다. 박 단장은 “여러 단체에서 다양한 봉사활동과 후원 활동을 진행하다가 ‘내가 북구 축구협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 끝에 나온 것이 부키 슛돌이 FC였어요”라며 창단 배경을 설명했다. 2021년 창단해 올해로 3기를 맞은 부키 슛돌이 FC, 박 단장은 “1기 당시엔 6학년만 뽑아서 진행하려고 했으나, 자리가 남아서 5학년까지 선발했습니다. 2기 때는 4학년까지 뽑았더니, 5·6학년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3기에는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총 60명을 선발했습니다”라며 우여곡절을 설명했다. “감독 1명, 코치 4명, 운영실장 1명, 총 6명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주 1회 토요일에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축구에 대한 교육은 감독과 코치가 진행하고 저는 주로 인성교육을 위주로 참여해요. 예절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확실히 교육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인사를 강조합니다. 아이들이 인사를 하지 않는다던가 대충 인사를 했을 때는 재차 불러서 교육하기도 하죠.” 부키 슛돌이 FC는 학부모들에겐 일절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박 단장은 “첫해에는 보조금 없이 진행했고, 2기 때부턴 구청에서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분들의 후원금이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라며 “지면을 빌어 아낌없이 후원해주시는 후원자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 식사와 간식이 정말 중요한데, 제가 음식업체에 연락해서 ‘한 달에 한 번만 가격을 싸게 해서 제공해달라’라고 타협해서 제공받기도 합니다.” 올해 4월 1일에는 북구 여성축구단인 ‘부키 W-FC’가 창단식을 가지기도 했다. 박 단장은 “대구에 5개 여성축구단이 있었는데, 북구에는 없었어요”라고 말한 뒤 “4월부터 시 대회에 출전할 예정입니다”라고 밝혔다. 대구의 여자 초등축구팀은 2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인 침산초등학교 여자축구부도 박 단장의 작품이다. 지난 2월, 그는 침산초 여자축구부 활성화를 위해 생수와 트레이닝복 등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 박 단장은 “체육회의 홍영숙 사무처장님을 비롯해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 감사합니다. 백만 원을 내는 한 사람보다 만 원을 내는 백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장애인체육회와 지원단, 그리고 체육 꿈나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 그리고 그 관심의 지속을 위해 많은 사람들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더욱 정이 넘치고 사랑스러운 도시 대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며 대구와 장애인체육회, 그리고 지원단 활성화의 바람을 드러냈다. [1148]
    • 문화
    2023-04-27
  • 대한민국 합창과 지휘의 발전을 이끌어온 일등공신 - 여홍은 원로 합창 지휘자 / 교수
    아름다운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가슴을 울리며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한다. 특히 합창의 조화롭고 아름다운 정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맑게 만든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음악교육, 하지만 대한민국은 경제 성장속도에 비해 음악・예술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이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 합창계를 발전시킨 일등공신, 여홍은 교수를 만났다. 반세기 이상 평생 외길을 걸어온 그는 9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지금도 현장에서 우리나라 합창계와 합창 지휘계를 선도하고 있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늘 아름답고 거룩한 음악이 넘치던 기독교 집안,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여홍은 교수는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부터는 교회에서 선교를 위해 고아원이나 양로원에서 찬양 봉사를 하기도 했다고. “1936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유치원을 졸업한 후, 해방되기 일년 전에 귀국해 할아버지의 고향이신 대구 반야월로 왔어요. 고등학교 2학년 말에 대구 신명여고에서 서울 신광여고로 전학했지요. 고3 음악담당이셨던 김경환 선생님께서 이끌어주신 덕에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해 서울대학교 음대에 입학해 성악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이후 50대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60대에 미드웨스트대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처음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남편인 강만식 교수(원자생물물리학 전공, 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권유로 일반대학원인 성신여대 성악과를 졸업하게 된다. “박사학위는 저를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김경환 선생 님의 남편이셨던 구두회 교수님께 논문 지도를 받았어요. 대단한 인연이지요. 워낙 철두철미하셔 죽을 힘을 다해 논문을 통과했어요. 그 논문을 다시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였지요(웃음).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당시에 학위를 받은 일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지 구 교수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성악을 전공한 여 교수는 합창지휘에 있어 더욱 큰 활약을 보였다. “1960년에 대학 졸업 후 모교인 신광여고에 임용됐습니다. 1980년, 당시 최명자 교장선생님의 간곡한 권유로 신광노래선교단을 창단하고 각종 음악회 및 전국 순회공연 등을 500여 회 가졌습니다. 그 때부터 합창과의 인연을 맺게 된 셈입니다. 물론 교회성가대 지휘는 계속 맡고 있었지만요.” 어수선한 국내 정황에 합창계 역시 여건이 쉽지 않았지만 그의 합창에 대한 열정 만큼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다. “각 학교마다 미션스쿨에서는 거의 합창단이 있었어요. 제가 전국고등학교합창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에는 합창제가 열리면 서울 소재 대부분의 고등학교 합창단들이 모두 참여해 2~3일 동안 경연을 할 만큼 큰 행사였지요. 하지만 지금은 입시다 뭐다해서 아이들에게 그런 경험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여 교수는 서울시교육위원회에서 서울음악교사 합창단을 결성, 동료교사와 함께 창단 때부터 퇴임시까지 12년 동안 단장을 맡으며 유럽 연주 객원지휘 활동을 했다. “당시 합창계에는 서울시 음악교사 합창단을 지도해주신 분들이 계셨어요. 너무 감사한 분들이었지요. 러시아에서 오셨던 노다르 찬바 교수님을 비롯해 일곱 분의 지휘자 교수님들과 선생님들 생각이 한번씩 납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기도한 여 교수. 국민훈장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학술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큰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여홍은 교수는 ‘지금까지 잘 해왔구나하는 생각에 참 자랑스럽고 소중하며, 감사한 수상’이었다고 말하며 소녀 같은 미소를 보였다. 이외에도 여 교수는 수많은 기관, 단체에서 특별상, 공로상, 장려상, 감사장 등을 수상했다. “모두 감사하고 뜻깊은 상이었지만, 특히 저를 기쁘고 보람되게 해준 것은 퇴임 시 동료인 국어교사 박기원 선생님이 주신 패에요. <짙은 꽃 향기를 남기시고>라는 주제로 시 한편을 돌에 새겨 주셨는데, 아직도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답니다(웃음).” 2006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을 펼친 한국교회연합성가대의 ‘메시아 연주회’에서 지휘를 맡은 여 교수, 50여 회 동안 여성으로 메시아 지휘를 맡은 사람은 여 교수를 포함해 단 2명에 불과했으니 그의 입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독일에서 앙코르 송을 5곡이나 받으며 청중들이 10분 이상 기립박수를 쳐 독일 조간신문에 최고의 여성 지휘자가 한국에서 왔다는 제목에 기사가 대서특필되며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청중들을 완전히 매료시킨 최고의 공연이었다. “미주성가대합창제 초청으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공연을 했고 한호문화예술제 초청으로 호주 시드니오페라하우스에서도 독창 연주로 영광의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꿈만 같은 순간이었지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와 지휘는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7,17민족화합대성회’입니다. 그외에도 잠실 주경기장에서 2,000여 명을 지휘한 일, 잠실 체육관에서의 부흥회 당시 1,200명(엔그래함-빌리그래함목사의 따님)지휘, 5・16여의도 광장에서 부활절 연합예비 당시 500명 지휘,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순복음인천교회의 150여 명의 지휘 등 대규모의 행사에서 수많은 지휘를 맡았지만 현재하고 있는 을지로교회와 친정교회인 숭덕교회의 30명도 안되는 성가대원들을 지휘하는 일 또한 소중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태도와 마음가짐은 똑같기 때문이지요(웃음).” 그는 한국합창총연합회 자문위원을 비롯해 한국교회음악협회, 일반합창・고교합창연합회에서 고문을 맡아왔다. 또한 한국여성합창협회에서는 이사장으로 오랫동안 활약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드물었던 시대에도 결코 소외되거나 기죽는 일 없이 적극적으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왔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도 목소리가 변하지 않아 을지로교회 수요정오성가대에서 엘토를 맡은 바 있는 그는 올해 2023년 부터는 지휘를 맡고 있다. 여 교수는 “독일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테너로 활동하고 있는 막내아들(강대준 교수-독일 뮌헨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후 독일 드레스덴 국립오페라단에서 활동)과 조그만 공연장에서 조촐하게 작은 음악회를 하고 싶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전했다. 평생을 음악과 합창 발전을 위해 일해온 여홍은 교수, 남다른 열정과 선한 영향력으로 살아온 그는 후학들에게도 의미있는 이야기를 전했다. “음악이 내 삶의 전부입니다. 삶이 풍요로워지려면 무엇보다 믿음을 바탕으로 정직과 성실, 그리고 겸손한 생활이 중요해요. 제가 간절히 바라왔던 삶이기도 한데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언제나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1147]
    • 문화
    2023-04-13
  • ‘그림 읽어주는 남자’가 전하는 감상하는 즐거움 - 이창용 도슨트
    전시회에 가면 늘 ‘내가 좀 더 예술에 대한 조예가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든다. 작품만 보고도 느끼는 것이 있겠지만, 그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나 숨겨진 이야기 등을 알고 보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도세르(docere)에서 유래한 도슨트(docent)는 일정한 교육을 받거나 전문지식을 갖추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 또는 일을 뜻한다.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 전반을 총괄하는 큐레이터나 미술평론가에 비해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는 있겠으나 도슨트야 말로 우리와 가장 가까이서 소통하는 안내자이자 메신저인 셈. ‘그림 읽어주는 남자’ 아트스토리105의 이창용 대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슨트다. 1세대 도슨트로서 현재 한국에서 가장 왕성한 강연, 저술, 방송활동을 하는 인물. 전국에서 이어지는 강연 요청으로 피곤할 법도 한데 인터뷰 내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명확한 화법과 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분위기를 이끈다. 역시는 역시다. _김유미 편집국장 “도슨트는 전시회를 해설해 주는 사람으로 관람객에게 미술품을 감상함에 앞서 전시 작품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통해 전시 관람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미술관 관람이 조금은 지루하거나 어려울 때는 물론, 잘 알려진 작가의 작품이라도 작품의 표현 기법을 위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보다 작품의 작가의 생애나 그 시대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조금의 지식이 있다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죠. 특히나 난해하게 느껴지는 현대미술로 갈수록 사전에 미술사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관객들에게는 각각의 작품이 드러내는 의미를 짧은 감상시간 안에 포착해 해설하는 도슨트가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역사학을 전공한 이창용 대표는 2004년, 로마사를 공부하던 중 ‘로마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이탈리아로 훌쩍 떠났다. 이래저래 범상치 않은 인물임은 확실하다. “가이드 일을 하는 선배를 따라 박물관에 갔는데 여행객들에게 소개하는 내용을 들으며 갸우뚱했어요. ‘어? 저게 아닌데? 내가 하면 더 재밌게 설명할 수 있는데’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에 바티칸 박물관을 방문한 여행자분들을 상대로 도슨트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용돈이나 벌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일하면 할수록 제 적성에 딱 맞는 거에요. 2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원에서 제대로 미술사학을 공부하면서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웃음).” 당시만 해도 ‘도슨트’는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상황. 좋아하는 것만으로 일을 이어가기에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결국 학업을 마치고 해군장교로 복무하고 대기업에 취업한 이 대표. 3년 여 근무하는 동안 특유의 친화력과 창의적 성향은 조직에서 빛을 발했지만, 맘 속 깊이 감춰놓은 도슨트에 대한 열망은 계속 커져만 갔다. “안정적인 생활 속에서도 행복하지가 않더라구요. 많은 고민 끝에 큰마음을 먹고 미술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로 떠났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하다보면 길이 열리겠지’라는 생각이었지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등 유럽의 미술관에서 현지 가이드와 도슨트로 활동했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미술을 전공하고 유학 와 있던 아내를 만나기도 했으니까요(웃음).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후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간 쌓아온 역량을 맘껏 펼쳐보자 싶었어요.” 이창용 대표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미술사를 귀에 쏙쏙 들어오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다. 연 평균 300회 강의를 이어가며 전 국민들의 문화수준 향상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술과 클래식이 함께 하는 <아트콘서트> 마스터로도 활동 중인데 세계적인 화가들과 그들의 명작에 얽힌 이야기와 이어지는 곡을 선정해 오케스트라의 선율로 풀어내는 매력적인 공연으로 전국적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창용 대표는 최근, 인기프로그램인 JTBC ‘톡파원25시’에 출연해 ‘미깡(미술깡패)’라는 별명을 얻으며 인지도를 더욱 높여가는 중이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좋은 기회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제 개인의 영광보다 ‘도슨트’라는 직업을 알리고 많은 분들이 작품을 제대로 알고 즐길 수 있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방송에서도 얘기했지만 시간과 비용을 들여 큰 맘 먹고 세계적인 박물관에 오셔서 그곳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고 즐기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모나리자’만을 위한 곳이 아님에도 줄을 서서 기다려 모나리자 앞에서 사진만 찍고 가시는 여행객들이 대부분이세요. 극장에서 영화 예고편만 보고 나가버리는 셈입니다. 우리가 다가가려 하는 만큼 그림은 우리에게 찾아와 감동을 선물해 줍니다. 어렵게 생각하시지 말고 그림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해요. 저도 계속해서 노력해가겠습니다.” 최근 이 대표는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를 발간했다. “그동안 여러 출판사와 논의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야사 위주의 흥미만을 원하여 출판이 성사되지 못하였습니다. 오랜 기간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는 총 4부작으로 1편 ‘프랑스’, 2편 ‘스페인-네덜란드’, 3편 ‘이탈리아-오스트리아’, 4편 ‘한국’으로 출간될 예정. “많은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루하다고 이야기하죠. 한두 시간 짬을 내어 한 권의 책을 읽듯이,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화가의 인생을 살펴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 그 화가의 작품이 이 전에 비해 훨씬 더 깊고 무겁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재밌는 동화책을 읽어주며 어린아이에게 책에 대한 재미를 갖게 해주는 것처럼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를 선물해 주는 ‘그림 읽어주는 남자’로 꾸준히 기억되고 싶습니다.” [1140] [2018~현재] •아트스토리105 대표 •미술사 전문강사 / 아트콘서트 마스터 [2012~2018] •루브르 박물관 현지 도슨트 •오르세 미술관 현지 도슨트 [2012]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바티칸 박물관전> 큐레이터 [2006~2008] •바티칸 박물관 현지 도슨트 [2005]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인상파 거장전> 도슨트
    • 문화
    2023-02-27
  • 디오라마(Diorama)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재현의 마술사
    거대한 세상 안에서 또다른 작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미니어쳐 예술, 디오라마(Diorama)는 작은 무대를 뜻한다. 풍경화나 그림으로 된 배경에 축소된 모형을 설치해 특정한 장면을 만들거나 배치하는 것을 말하며 모형을 이용해 역사적 사건, 자연 풍경, 도시 경관 등을 표현한다. 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활용되며 기록용으로 쓰였지만, 이제 하나의 예술 장르로써 다양한 오브제의 활용과 축소된 연출은 물론, 음향이나 조명을 함께 연출하여 생생함을 더하기도 한다. 영화, 드라마 미술 감독이자 무대 예술가로서 활동해오던 신언엽 감독. 그는 자신의 무대를 작품으로 승화시켜 국내 최초 디오라마(Diorama) 전시를 선보이며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를 발견해 재현의 마술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신언엽의 디오라마를 조명해본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디오라마는 한 장면의 사건이나 시간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인물과 배경의 전체적인 질감의 정교함을 보여주며 스토리, 음향, 조명, 홀로그램 등의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여 아트와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융복합 예술을 보여준다. 이러한 표현 매체의 확장은 관람객에게 마치 그 시간 그 장소에 들어가 있는 듯한 생생한 장면(Scene)을 보여주며 쉽게 가지 못하는 공간, 느껴볼 수 없었던 공간을 디오라마 작품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디오라마는 단순한 키덜트(Kidult) 산업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한 찰나의 순간을 입체감 있는 표현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줍니다. 장르를 구별하지 않는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통해 교육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느껴 볼 수 있어요.” 디오라마는 근대 이후 유럽귀족들이 테이블 위에 인형 등을 올려놓고 역사적인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데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인형 뿐 아니라 공룡, 전차, 자동차, 비행기 등 점차 종류가 다양해 졌고 1820년대 프랑스의 화가이자 사진 발명가인 다게르가 무대 예술가로서의 경험을 활용해 1822년 파리에서 세계 최초의 디오라마 극장을 설치하고 운영했다고 한다. 1932년, 일본 도쿄과학박물관에서 전시된 디오라마가 최초로 기록된 전시용 디오라마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언엽 감독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정밀 묘사로 인물화를 그리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유명한 배우였던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그린 그림은 지금 봐도 사진과 같이 보일 정도로 상당한 실력이다. 부산이 고향인 신 감독은 서울로 올라와 연극학과에서 무대디자인과 기술을 공부하고 영상대학원 프로덕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후 실감융합콘텐츠학 박사를 공부하며 방송업계 드라마 미술감독, 공연무대 디자인과 영화 미술감독으로 활동한다. “연극, 뮤지컬 무대 디자인, 드라마·영화 미술감독,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호텔 인테리어와 웨딩홀 디자인도 많이 맡았어요. 콘서트부터 광고나 뮤직비디오 세트 디자인을 했구요. 시간과 예산적인 문제로 인해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에 갈증이 나서 디오라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피규어를 수집했었거든요(웃음).” 신 감독은 히어로 피규어에 영감을 받아 ‘배트맨’ 시리즈를 시작으로 ‘백투더 퓨처’, ‘매드맥스’, ‘트랜스포머’, ‘스타워즈’ 등 피규어를 수집해왔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영화 속 장면을 축소된 모형으로 재현해 보곤 했다. “전공인 무대 디자인이 바탕이 됐습니다. 취미로 피규어를 모았는데 표현이 정교하고 또 고가의 제품이 많았죠. 비싸게 샀는데 그냥 장식장에만 두기가 아깝더라구요(웃음). 피규어의 배경을 만들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작품 사진을 찍어 공유했더니 반응도 좋고 무엇보다 제가 너무 즐겁고 재미있더라구요.” 점차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고퀄리티의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 된 신 감독. 취미로 시작된 신언엽의 디오라마는 관련 산업분야의 전시나 박람회에 초대 작품으로 초청되었고 그의 작업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가상의 캐릭터를 현실의 세계로 가져와 우상의 대상인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된다. “그동안 제가 너무 해외 히어로를 주인공으로만 만들고 있었더라구요.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등 우리나라의 영웅을 주제로 한 디오라마를 만들고 싶었는데 우리나라 영웅 피규어가 없어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보게 됐고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커다란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과 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마주했던 판문점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3D디자인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크기가 비교적 큰 디오라마를 전시할 장소가 문제였다. 신 감독은 통일부에 문을 두드렸다. 서기관을 통해 그의 디오라마를 주제로 했던 논문과 포트폴리오, 피규어를 챙겨들고가 통일부를 설득해 장소를 제공받은 것. 첫 전시 공간은 경의선의 북쪽 가장 끝에 위치한 ‘도라산역’ 로비였다. 전시공간이 마련되었고 ‘판문점 선언’ 당시를 재현한 디오라마가 완성이 되어 ‘봄이 오면(When spring comes)’ 이라는 작품명을 가지게 되었다. 같은 해 이 작품은 4월에 서울시청, 5월에는 부산항 축제장과 부산통일관에 전시되었으며 그 이후 계속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기릴 수 있을 만한 의미 있는 공간에서 전시가 이루어졌다. 디오라마 영역에서 단독으로 전시를 개최한 국내 최초・최대 규모이자 미술감독이자 무대예술가였던 ‘감독 신언엽’이 ‘작가 신언엽’으로의 변신을 알린 뜻 깊은 전시이기도 했다. 전공 분야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던 감독 신언엽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디오라마 작가로 변신했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대중들에게 알리는 의미 있는 일에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쏟기로 결심한 것. 2019년 서대문(돈의문)을 디오라마로 복원한 작품도 화제였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5년에 강제 철거된 돈의문을 104년 만에 문화재청, 서울시, 제일기획, 우미건설 등이 참여해 민관 협력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신 작가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디오라마로 복원하는 작업을 맡았다. “외부 제의를 받고 작업한 첫 작품인데 서대문 복원이라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 참여하게 되었지요.” 모 통신사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한 ‘군산 쌀 수탈사건’, 일제강점기의 디오라마 재현을 통해 역사적 의미와 함께 탁월한 창의력을 인정받았다. 국한된 소재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확장성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는 홀로그램, 음향, 조명 등 4차 산업의 다양한 미디어를 도입해 생동감 있는 장면들을 연출해 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신 감독은 바쁜 일정을 쪼개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무대미술) 강단에 서며 학생들과도 소통하고 있다. “디오라마는 인간의 숨겨진 로망을 실현해줍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법한 본능일 거예요. 시공간을 초월해 특별한 역사적 순간, 새로운 창조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 디오라마의 매력입니다.” “디오라마를 통해 재현된 결과물들은 판매하지 않고 문화와 교육, 전시의 목적으로만 활용할 계획”이라는 신언엽 감독. “자신의 디오라마 작품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올바른 역사관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며 따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 EDUCATION ] • 2020 ~ 2022 | 광운대학교 실감융합콘텐츠학과(박사수료) • 2009 ~ 2018 | 홍익대학교 영상대학원 프로덕션디자인 전공(석사) • 1998 ~ 2006 | 용인대학교 연극학과 무대디자인 및 기술 전공(학사) [ AWARD ] •2018 | 통일부장관 표창 디오라마부문(통일부장관 조명균) [ FILM ] •2021 | (주)엠씨엠씨 ‘봄날’(감독: 이돈구) 외 12편/미술감독 [ BROADCASTING ] •2017 | MBC 수목미니시리즈 ‘역도요정 김복주’(연출 오현종) 외 4편/ 미술감독 [ DIORAMA EXHIBITION ] •2016.03 ~ 2018.08 | SBA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엽스타일(YUPSTYLE) 디오라마관 상설전시 • 2018.03 ~ 2019.03 | 서울시 상암동 DMC홍보관 엽스타일(YUPSTYLE) 디오라마 상설전시 • 2018.03 ~ 2019.03 | 서울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살림터 1관 로비 상설전시 • 2019.02 ~ 2019.04 | 파주시 도라산역 로비1F ‘4.27판문점’ 디오라마 상설전시 • 2019.12 ~ 2020.02 | 서울 인사동 CNT 마루갤러리 개인전[재현의 마술사: 신언엽의 디오라마] [ LECTURE ] • 2011.09 | 한국방송예술진흥원[장면만들기] 출강(2학기)/외래교수 • 2017.08 | 서울코믹콘[ 디오라마그시작의배경] -코엑스 • 2018.09 | 홍익대학교영상대학원프로덕션디자인[ 공간과조명] 출강(2학기)/시간강사 • 2022.05 ~현 | 구리고등학교 레인보우 메이커 특강[매체미술교과로서 디오라마의 세계] 수업/시간강사 • 2022.09 ~현 |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무대미술 출강/시간강사 [1140]
    • 문화
    2023-02-27
  • 패션계의 슈퍼루키(super rookie) 끼와 열정 가득한 MZ세대의 대표 디자이너
    꾸준히 성장해온 국내 패션시장,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해외직구 등을 통해 소비자들이 해외브랜드 의류를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타격을 맞고 있다. 김량환 대표는 이런 시대흐름에 맞춰 온라인과 오프라인 쇼핑몰을 만들어 개별브랜드(Leon)를 창업, MZ세대들에게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특별하고 새로운 패션을 전하고 있는 인물이다. 글로벌 패션리더로 성장하고 있는 김 대표를 만나봤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BIGBANG INTERNATIONAL 김량환 대표는 Leon브랜드와 도깨비 쇼핑을 통해 다양한 제품들로 구성된 종합쇼핑몰을 창업하여, 특별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특히 MZ세대들이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유니크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는데 좋은 소재만을 고집하여 품질향상을 우선시하는 한편, 대량 생산으로 제품단가를 낮춰 판매하는 차별화 전략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국내 온라인 쇼핑몰과 유명 온라인 쇼핑몰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될 예정으로 고급원단을 이용한 자체 브랜드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대 초반인 김량환 대표는 독보적인 창업 아이템과 기술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미한 독창적인 디자인들이 눈에 띈다. “국내외 최신의류 트렌드에 맞추어 앞서가는 색상과 디자인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섬세한 제품 마감처리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김 대표는 “최근 시장 환경 SWOT분석을 통해 보자면 강점은 원단 기능성 고급화, 차별화된 디자인, 가격대비 뛰어난 품질입니다. 약점은 판매 채널을 다양화와 마케팅 홍보를 확대부분이지요. 무엇보다 오프라인 거래처를 확보해야 합니다. 코로나 및 경기 침체로 인한 경쟁 업체 세력이 약화되어 있고 시장 점유가 용이한 점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해요. 또한 위기라고 한다면 의류사업 진입 장벽이 낮아 창업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과 악성 재고증가를 들 수 있겠지요.” 20대 초반이지만 그의 시장분석은 경험이 많은 CEO 못지않게 직관력과 통찰력이 돋보인다. 그만큼 날카롭고 정확하다.” 현재 경북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학생으로 학업을 병행하면서 도깨비 쇼핑을 운영 중인 그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좋은 파트너를 찾아 다양한 유통 채널을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유행에 얽매이기보다는 소재와 봉제, 가봉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 독창성)와 숙련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더욱더 연구에 힘을 쓸 계획입니다. 브랜드 이름만큼이나 ‘김량환’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 가치가 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고 있어요.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른 MZ세대는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꾸미고 활용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를 대표하는 유니크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어요.” 자신만의 개성 드러내는 디자인으로 MZ세대들과 소통할 것 “최근 의류 등을 구매하는 형태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패션 대기업들은 브랜드를 축소하거나 통합을 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처럼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 역시 어렵게 되겠죠. 때문에 온라인 쇼핑몰을 활성화 시킬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중저가 쇼핑몰이 성장하고 해외진출이 활발한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온라인 유통비중이 높은 패션업계를 중심으로 패션디자이너의 활동이 좀 더 넓어지고 자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의류 외에도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면서 소비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주얼리, 가방, 악세서리 등을 구매할 수 있도록 현재 도깨비 쇼핑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독창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합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엉뚱한 시도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요.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든 방면으로 시도하고 받아들일 생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MZ세대들과 소통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상업적으로 대중에게 유통되는 옷보다는 자신의 가치관과 개성을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보는게 남는 것’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여가 시간엔 전시회와 패션쇼, 박람회 등 패션・미술과 관련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보고 배우고 느끼고자 합니다. 예술적 감각과 패션 안목을 키우고 영감을 얻는데 도움이 되고 있어요.” 하이패션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한국에서 변함없이 자신의 패션철학과 아이덴티티를 고수하여 현재 자신의 입지를 월드클래스로 다지는 데 시금석이 된 인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우영미’ 대표가 롤모델이라며 웃어 보이는 그는 최근 MZ세대들 사이에서 그의 브랜드 가치가 다시 한 번 평가되고 있지만 세계적 명성에 비해 국내 인지도와 시장점유율이 적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대기업이 패션 유통을 장악한 국내 패션 업계 실정과 명품 패션에 대한 일종의 사대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면서, 국내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 된 측면이 컸어요. 그 과정에서 MZ세대들은 ‘우영미’를 발견했고, 열광하고 있는 거죠. 그야말로 ‘시대가 클래스를 알아본 셈’이죠.” 톡톡 튀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호기심, 그의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 그리고 단단한 자신감으로 뚜벅뚜벅 발을 내딛는 그는 옷을 만드는 즐거움이나 좋은 소재를 발견할 때의 기쁨이 가득하다. 그는 유명 브랜드라고 해서 무조건 좇지 않는다. 자신의 니즈를 정확히 알고, 무엇이 좋은 건지 야무지고 스마트하게 소비하는 MZ세대들의 욕구를 적중시키고 있다. “패션이란게 예술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비즈니스이기도 하죠. 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패션 산업군은 예술에 한 발자국 걸쳐 있으면서도 비즈니스가 중요합니다. 다른 면으로 봐서는 제조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요. 하나의 상품이 나오기까지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이지만 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잘 잡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졸업 후 여성 패션에 최초로 바지 정장을 도입, 여성에게 자유를 입힌 패션 혁명가라고 평가받는 ‘이브 생 로랑’의 나라,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라는 김 대표. 김량환 대표 자신의 피지컬(신체)과 패션 수준 또한 남다르다 보니 모델이냐는 오해도 많이 받는다. ‘시크하며’, ‘쿨’한 이미지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따뜻한 그는 “무엇보다 나만의 아이덴티티(Identity, 독자성)를 갖추고 싶다”며 카리스마를 내비치다가도 “향후 소외계층에 의류를 나눔하는 등 환원 사업도 함께 해나가고자 한다”는 뜻도 전했다. 그의 성장과 왕성한 활약을 통해 대한민국의 패션 피플들이 자신만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멋을 즐기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를 기대해 본다. [1145]
    • 문화
    2023-02-27
  • 유쾌한 만능엔터테이너 부부 “경남 김해, 엔터 문화의 저력을 입증해보이겠습니다”
    키즈댄스대회 <두다붐3(DODABOOM)>. 2019년부터 시작돼 벌써 3회를 맞이하는 이 대회는 경남 최대 규모의 키즈댄스경연대회로 자리 잡은 한편, 서울에서 유명연예기획사 관계자도 직접 김해를 찾아 참여 학생들의 공연을 관람할 정도로 그 위상을 더해가고 있다. 작년 9월 대회에는 경남뿐만 아니라 제주ㆍ울산 등 전국에서 60팀(솔로 댄스ㆍ저학년 14명ㆍ고학년 46명)이 참여하고, 300명이 넘는 관중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매년 성공적으로 개최되며 그 규모와 위상을 키워가는 이 대회의 주최는 다름 아닌 김해지역 케이팝 댄스 전문학원인 ‘엔터아트아카데미’. 엔터아트아카데미 내외점에서 김보연・김민수 대표를 만났다. 이토록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을까. 두 대표에게는 지면에 차마 다 담을 수 없는 좋은 기운과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_김유미 기자 김보연・김민수 부부는 두다붐 대회뿐 아니라 경남 김해에서 1년에 3〜4회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참여하는 콘서트를 진행하고 꾸준한 길거리 버스킹으로 케이팝 문화 확산에도 노력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댄스 동아리 활성화를 위해 6년째 자비를 들여 ‘스쿨액션’이라는 행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장유(1호점), 삼계(2호점), 내외(3호점), 주촌(4호점 예정) 네 곳을 운영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도 이렇게 힘을 쏟는 이유가 뭘까? “저희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라고 해야겠죠. 물론 저희가 처음 춤을 배울 때와는 달리 K-POP과 K-DANCE의 열풍이 거세지면서 춤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전문적인 댄서를 꿈꾸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서울・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경우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가진 전문댄스학원 부족에다 인식도 따라주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에요. 경남 김해에서도 인프라와 시스템을 부족하지 않게 갖추고, 후배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춤을 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오직 그 마음 하나로 열심히 달리고 있지요(웃음).” 김보연 대표는 충북 제천, 김민수 대표는 충남 예산이 고향이다. 끼 많던 부부는 각각 레크리에이션학과, 이벤트연출과를 졸업했다. 춤에 진심이었던 두 사람은 서울의 한 댄스학원에서 만나자 마자 연인이 됐다. 강사로 있던 그녀가 장르를 넘나드는 후배 김민수 대표의 뛰어난 댄스 실력에 한 눈에 반하고 만 것. “하지만 프러포즈는 남편이 먼저 했다”며 그녀가 장난스레 웃어 보인다. 2009년, 결혼 후 두 사람은 서울에서 인연이 있던 선배의 권유로 경남 김해에 내려오게 된다. 댄스에 있어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곳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펼쳐보고자 하는 큰 꿈을 가지고 내려와 수석 강사로 안정된 생활을 했지만, 뜻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고. 2011년, 큰마음을 먹고 김해 시내를 벗어나 장유에 엔터아트아카데미를 오픈했다. “여유자금 없이 학원부터 열었으니 최대한 비용을 줄여야 했어요. 임대만 해놓고 인테리어부터 디테일한 마감까지 처음부터 둘이서 직접 해나갔습니다. 당시에는 ‘초등부’, ‘유아부’도 운영했었는데 정말 고생 많았죠. 대소변 못 가리는 아이들까지 케어하고 잠도 재우고…. 아이들에게 예쁜 무대 의상을 입히기 위해 공업용 미싱기를 사서 밤새도록 돌리기도 하구요. 남편은 공구를 들고 뛰어다녔죠. 학원차 운행까지 직접하며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보람되고 즐겁기도 했던 시간이었어요. 그 때 그 고생들이 다 자산이 되어 이제는 웬만한 일은 전문가 수준으로 어렵지 않게 챙길 수 있게 되었거든요(웃음).” 장유(1호점)에 이어 삼계(2호점) 오픈은 자연스레 진행됐다.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제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실력 있고 뛰어난 친구들을 강사로 채용했어요. 저희와 같이 지역에 있는 후배들에 대한 열망이 뛰어난 친구들이다 보니 더 열정적으로 임하더라구요. 내외(3호), 주촌(4호 예정)은 물론,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끈끈한 사제 간의 정으로 똘똘 뭉친 엔터아트아카데미는 내실 있는 교육 커리큘럼으로 유명하다. SM 등 대형기획사에서 오디션을 직접 보러올 정도로 브랜드 파워도 있다. 실제 서울 본사 기획사 연습생으로 4명을 최종 합격시키기도 했다. 대학입시 전문학원으로도 100% 합격률을 자랑한다. 비영리단체 ‘엔터아트’를 통해 댄스공연은 물론, 공연기획, 영상촬영에다 전문MC까지 해내는 재능 많은 두 부부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다양한 지역 행사에 꾸준히 초청 받으며 밝은 에너지를 전하고 있다고. 엔터아트아카데미 자체적으로도 정기적인 콘서트를 직접 선보이며 학생들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한편, 지역민들에게도 쉽게 접할 수 없는 댄스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해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모금을 통해 독거노인돕기 등 환원사업도 펼치며 따뜻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댄스를 통해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고 창의력을 기를 수 있도록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획일화된 댄스가 아니라 같은 동작이라 하더라도 각자만의 개성을 갖췄으면 하지요. 엔터아트아카데미 콘서트의 경우 각 지점별로 작품 스토리, 기획, 안무구성, 음악, 의상 등을 학생들 스스로 기획하고 연습합니다. 춤을 잘 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연의 레퍼토리나 스토리 라인의 설계까지 짜내면서 실력을 키워가는 거죠. 지방에서 춤을 추고 배우는 친구들이 어깨 쫙 펴고 당당하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도 계속해서 서포트 해나갈 수 있게 열심히 하겠습니다(웃음).” [1145]
    • 문화
    2023-02-27
  • 뜨거운 댄스의 열정으로 삶의 활력 되찾아 건강한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예비 사회적 기업」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신도로에 위치한 ㈜정글러 댄스 스튜디오는 여성가족형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댄스 학원으로 첫 사례가 더욱 의미가 깊은 이곳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전한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곳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주간인물은 타고난 춤꾼으로 새로운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손정희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올해 서른아홉의 손정희 대표는 타고난 춤꾼이다. 어려서부터 춤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그녀는 학창시절,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며 끼와 재능을 펼쳤다.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선박 회사에 디자이너로 일하며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던 그녀에게 춤은 잊지 못할 꿈이었단다. “학창시절, 춤은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는 탈출구였어요. 6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고 열심히 일하는 부모님은 늘 바쁘셨죠. 학창시절, 댄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춤을 연습하고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섰던 순간이 가장 행복했어요. 늘 ‘학교-연습실-집’을 오가며 바쁘게 생활했지만 그때가 가장 살아있는 것 같은 순간이었어요. 대학생 때도 외부 댄스팀을 결성해 활동했었구요.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사회인이 되었지만 춤에 대한 갈망은 여전했습니다. 댄스 강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직업이다 보니 고민도 많았지만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에 끝내 회사에 사표를 쓰고 댄스 강사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0대 시절,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춤에 대한 욕구는 비단 10대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마음껏 자신의 끼를 펼치고 새로운 재능을 찾고 싶은 중장년층의 춤에 대한 욕구도 대단하다. 조금은 부끄럽고 수줍은 마음에 망설여지는 춤 배우기. 손정희 대표는 그런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춤에 다가설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회원들도 점점 실력이 늘고, 수업에 빠지는 일 없이 즐겁게 춤을 배우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취미 생활로 춤을 배우고 싶어 하는 직장인, 삶의 새로운 활력을 찾기 위해 춤을 배우는 시니어, 건전한 여가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건강해지는 청소년들까지... 춤을 통해 새로운 삶의 기쁨을 되찾는 회원들이 있어 일할 맛이 납니다(웃음).”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즐거운 그녀의 수업에는 남다름이 있다 . 단순히 테크닉을 전수하는 것을 넘어서 열린 소통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 특히나 말 못할 고민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그녀는 누구보다 친한 친구이자 따뜻한 멘토다. “2~3년 전, 부산 서면에서 춤을 배우는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연습실을 열었어요.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다보니 너무 정서적으로 힘든 친구들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제가 춤을 가르치기 힘들 정도였는데 아이들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남모를 고충이 많더라고요. 자연스레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힘든 마음을 토닥여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더라고요. 그랬더니 부모님한테도 선생님한테도 말 못할 고민을 제게 털어놓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춤을 배우며 점점 밝아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그랬던 것처럼 춤이 이 아이들의 힘든 현실을 극복하고 꿈을 이뤄가는 새로운 돌파구였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그 연습실 이름이 정글러 댄스였고 그 이름을 따, 북구 화명신도시에 ㈜정글러 댄스 스튜디오를 열었습니다.” ‘청소년들의 건전한 여가문화 확산에 기여하겠다’는 창업정신에 걸맞게 이곳은 2021년 여성가족형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됐다. 댄스 학원으로는 첫 사례라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부산 북구진로교육센터를 비롯해 청소년상담센터와 다른 예비 사회적 기업과 MOU를 체결하고 건전한 여가문화를 선도하고 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10대 청소년들 중에서 아이돌에 열광하지 않는 학생이 있을까요. 그럼에도 아직도 청소년들이 춤을 춘다고 하면 곧 탈선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님들이 많아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건전하게 춤을 배우면 오히려 스트레스 해소와 자아실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함께 춤을 배우는 친구, 선후배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기에 인성 교육에도 효과적이죠. 이렇듯 청소년들의 건전한 여가문화 확산을 통해 올바른 전인성 교육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곳은 K-POP, 코레오, 힙합, 줌바 등 다양한 춤을 배울 수 있다. 아동, 청소년, 직장인, 시니어 등 학원을 다니는 연령층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열정과 실력을 갖춘 전문 댄스 강사의 맞춤 교육을 받을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요즘 가장 트렌디한 K-POP을 배우고 만족해하는 한 회원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K-POP을 배우는 것이 유행인데 이곳은 요즘 가장 트렌디한 K-POP을 배울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며 “개인 SNS 계정에 춤을 배우는 일상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라는 호평을 전했다. 손정희 대표는 댄스 강사지만 그에 앞서 가장 열정적인 춤꾼이다. 그녀가 가장 빛을 나는 곳은 역시 무대. 여러 댄스 대회에 나가 수상한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오랜 시간 갈고 닦아온 춤 실력은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무대 위에 설 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팀원들과 함께 무대를 준비하며 땀 흘리고, 성공적으로 무대를 완성했을 때 희열은 커요. 이런 충만함과 행복을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프로, 손정희 대표. 그녀는 열악한 댄스 강사의 근로여건 개선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댄스 강사의 근로여건이 워낙 열악하다보니 저도 어려울 때가 많았어요. 특히 코로나19가 유행할 때는 생업을 하지 못해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도 못했죠. 이런 어려움을 익히 알기에 후배들에게는 보다 좋은 근로환경에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싶어요. 앞으로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글러 댄스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후배들이 안정적인 근로환경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어요.” [1141]
    • 문화
    2023-01-27
  • 나만의 특별한 사진, 스토리텔링을 통해 피사체를 프레임 안에 담아내다
    사진이 대세인 시대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에 스마트 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우리의 일상은 스마트폰 앨범 속에 담겨 추억으로 남는다. 이제는 보다 전문적인 사진이나 영상들도 스마트폰으로 촬영할 수 있어 상업화하거나 전시회를 갖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나만의 특별한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누구나 한번쯤을 가져봤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통한 피사체를 프레임에 담아 예술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특별한 분위기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양재명 작가를 만나 셔터토그를 해보았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어릴 때부터 사진 찍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양재명 작가, 아버지께서는 중학교 2학년 때, 일본인 친구에게 부탁해 당시 야시카[YASHICA] 카메라를 선물해 주셨다. 당시만 해도 한국 경제수준에서 카메라는 굉장한 고가의 물품이었다. 그는 용돈을 모아 주말이면 흑백필름 2통을 구입하여 카메라를 들고 덕수궁, 경복궁 등을 오가면서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동네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장에게 사진 강습을 받는 등 사진 찍는 일에 남다른 열정을 가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진을 전문으로 배운 분이 아니었기에 전문적인 사진 강의라기보다는 현장실습 위주의 기술 전수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 땐 그 시간이 어찌나 좋던지요(웃음).” 양재명 작가는 서울예술대학 영화학과에 진학하면서 영화 카메라를 전공했지만 좀 더 전문적으로 사진과 카메라를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일본 최고의 예술학교인 도쿄비주얼아트에 입학하여 방송학과에서 ENG 카메라, 스튜디오 카메라를 공부하였고 졸업 후 다시 사진학과에 편입해 광고사진도 공부했다. 이후 미국 하와이 주립대학에서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하는 등 해외 각국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전문적으로 이론과 실기를 겸한 프로작가로 성장해갔다. 양 작가는 “이미 필름 카메라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고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 카메라의 시대도 스마트 폰의 편리함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누구나 스마트폰 하나면 자신만의 멋진 사진을 찍어 전시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편리하게 촬영하는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은 한계가 있지요. 전문 프로 사진가들이 DSLR 카메라를 고집하는 이유는 스마트폰으로 표현할 수 없는 디테일하고 심도있는, 자기 표현력이 강한 사진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진을 배우는 사람들은 꽃 사진, 풍경 사진을 주로 촬영한다. 그러다 혹 인물 사진을 찍을 때 배경은 흐릿하고 피사체의 인물만 또렷하게 표현된 사진에 매료된다. 그러나 피사체 심도의 깊고 얕음은 사진가가 주제에 적합하도록 촬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양 작가는 사진을 찍기 전에 반드시 ‘스토리텔링’을 이용하여 촬영하라고 권유한다.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이다. 이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스토리텔링’을 모른 채 그저 피사체를 보이는 대로 찍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마음의 창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예술 자신만이 생각하는 특별한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멋진 사진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생활 속에서 생활하는 장소에서 만들어진다. 그러기에 사진 자체를 특별하게 찍으려고 하기보다는 촬영하는 장소를 잘 선택하여, 멋진 사진을 만들 수 있는 곳을 찾아 그 장소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사진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선택한 장소를 찾았다면 장소에 담긴 보편적인 요소와 느낌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는 것이 핵심이며, 촬영할 때 그 장소의 특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요소를 찾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은 단순히 그 장소를 묘사한 사진과 그 장소에 대한 스토리를 전달하는 사진의 패러다임을 통한 사진의 이해라고 전했다 그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프로 사진가들은 촬영하기 전에 반드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토리를 생각하고 사진을 찍는다. 무턱대고 셔터만 누른다면 결과물에서 큰 차이가 난다. 남들이 공감하는 멋진 사진을 찍는 방법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렌즈와 조리개 셔터와 노출 그리고 빛의 관찰과 활용방식을 이용하여 프레임 한 컷에 주제(스토리)를 넣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토리와 함께 인간의 삶과 갈등, 진실과 정의, 삶과 죽음이라는 부제를 넣어 촬영하라고 권유한다. 양 작가가 생각하는 사진은 카메라의 메커니즘과 렌즈에 의한 광학적 기록이기보다는 사진가의 마음의 창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또한 ‘사진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피사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같은 피사체라도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 독특한 종합예술이라고 강조했다. [1141] •서울예술대학 영화과(연기, 영화 카메라 전공) •일본 선샤인 외국어대학 일본어과, 도쿄비주얼아트 방송학과 및 사진과 졸업 •미국 하와이 주립대학 저널리즘 전공 •호텔신라, 삼성에버랜드, 대상 청정원,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조일제지 엘르골프, 엘르스포츠 등 다수의 유명 기업광고 촬영 •현)서울외신기자클럽 정회원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소속 골든브릿지(금교) 서울특파원 외신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국무위원, 김영남 조선노동당 상임위원장 등 세계 각국 정상들과 노태우, 김영삼,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 취재 •대학에서 사진 강좌와 칼럼을 쓰고 매년 사진 전시회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수상 내역 •2020.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보도 기자 대상 •2021. 제7회 대한민국 예술문화 스타 대상 문화예술 대상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 대상 보도 기자 대상 Great 대한민국 100인 대상 보도 부문 대상 •2022.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취재 보도 대상
    • 문화
    2023-01-27
  • 자연이 주는 치유, “온 가족이 함께하는 행복한 하루를 선사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감각과 운동적 조작을 통해 배운다. 그러므로 자연 환경은 유아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적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자연 세계 자체가 거의 모두 유아들이 직접 경험하고 조작할 수 있는 생생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자연 세계에서의 다양한 경험은 다음과 같이 유아에게 발달의 모든 측면에서 성장을 도모해 줄 수 있다. -Wilson, 1995-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어떻게 하면 이 귀한 시간을 가장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되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보고 듣고 몸으로 부딪히는 체험활동을 하고 부모들은 탁 트인 자연 속에서 차 한 잔하며 힐링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떨까?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읍 율리중마을길 55에 위치한 청송자연농원을 찾았다. _김유미 기자 고즈넉한 산속에 자리잡은 ‘청송자연농원’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한 느낌이 든다. 40여년 식당으로 운영되던 공간은 리모델링을 거쳐 스마트팜, 카페, 펜션, 수영장이 들어선 복합체험공간으로 탄생했다. 여름에는 계곡 옆 평상에서 더위를 식히고 계곡물을 받아쓰는 수영장에서 피서를 즐길 수 있고, 카페와 스마트팜에서는 아이들의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사시사철 운영되는 펜션 역시 인기다. “아이들과 함께 한 소중한 체험들은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지요. 온 가족이 함께 오셔서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차를 하고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보자 고무장갑을 끼고 여기저기를 살피며 정돈하는 류금순 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뒷산까지 너른 부지에 건물만 해도 두 동, 손이 많이 갈 수 밖에 없을 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까지 맞아가며 일하는 모습이 정스러워 한참을 바라봤다. 역시나 직접 만나본 류 대표는 순수하고 따뜻한 미소의 소유자였다.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했어요. 정말 바쁘고 성실하게 일했지요. 하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더라구요(웃음). 점점 체력에 한계를 느끼던 즈음, 남편과 함께 청송자연농원을 좀 더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연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정말 멋진 곳인데, 어떻게 하면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힐링하고 가실 수 있을까.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요.” 류 대표는 올해 여름부터 카페를 오픈하는 동시에 꼬마농부체험을 시작했다. “화분을 꾸미고 아기허브를 심고 밀짚모자를 꾸며 나만의 농부모자 만들기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정말 호응이 좋았어요. 카페 옆 비닐하우스에 심어논 아기 옥수수와 파프리카, 상추, 딸기 등으로 시기별로 새로운 체험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들이 자꾸만 떠올라요(웃음).” 가을에는 뒷산 감나무에서 감따기 체험을, 빼빼로데이를 앞두고는 빼빼로 만들기 체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퐁퐁트리 만들기가 진행됐다. 지금부터 1월 말까지는 딸기케이크 만들기 체험이 가능하다. 하우스에 있는 다양한 작물 따기는 언제든 환영이다. “특별히 홍보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이 나서 부산, 울산, 양산 등지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더라구요. 카페와 체험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차선영 실장의 역할이 큽니다. 본인이 두 아이의 엄마이자 공예, 요리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분이라 굉장히 알차고 세심하게 준비해주세요.” 모래놀이터와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등 아이들을 위한 배려 속 주인장의 넉넉한 마음이 엿보인다. “운동 부족, 대화 부족인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긴장을 풀고 함께 다양한 체험을 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잘 준비해놓고 있겠습니다(웃음)." 카페 창가에서 바라본 산 아래 웅장한 풍광은 신선이 된 듯 한 느낌까지 갖게 한다. 여유로운 좌석과 테이블 배치에 각종 허브로 꾸며진 실내조경 역시 숨통이 확 트일 정도로 깔끔하고 시원하다. 연못 속에서 노니는 금붕어까지, 자연 그대로를 담아논듯 특별하다 . “최근 단체 예약도 많아지고 있어요. 체험이 끝나면 부리나케 떠나는 형식적인 체험농장이 아닌, 충분히 즐기고 놀면서 멋진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청송자연농원의 소식들을 계속해서 올릴 테니 많은 관심가져주세요.” [1144]
    • 문화
    2023-01-27
  • 탈모인의 새로운 희망, 두피 문신 “완벽한 시술(S.M.P)로 보답해야”
    S.M.P(Scalp Micro Pigmentation) 두피 문신은 두피에 미세한 바늘로 점을 찍는 시술로, 작은 점을 찍어 모근처럼 보이게 해 탈모 부위를 자연스럽게 채워주는 효과가 있다. 이 시술은 의료용 시술에 속하며, 모발을 직접 심는 것에 비해서 통증이 덜하고 회복 기간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겨울로 넘어가는 지금의 계절엔 짧은 일조량으로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탈모를 유발한다. 숭숭 빠지는 머리카락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어 탈모로 고민하는 젊은 층이 차츰 증가하는 요즘, S.M.P를 찾는 이들이 더욱 늘고 있다. _김민진 기자 촉망받는 육상선수에서 스칼프 테크니션(Scalp Technician)으로 더스틴(DUSTIN), 제2의 인생을 점찍다 “내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고객상담 시 그 누구보다 “탈모인의 마음을 잘 안다”고 운을 뗀 더스틴(DUSTIN) 주식회사 그레이시티 스칼프 잠실본점 대표원장은 S.M.P로 전국에서 모이는 뜨거운 상담과 기술 문의로 지역마다 본점을 설립하는 가운데 현재 부산본점도 담당하고 있다. 훤칠한 키와 남다른 체격으로 인터뷰 현장 복도를 순식간에 런웨이로 만들어버린 그는 알고 보니 육상선수로 15년간 필드를 뛰며 촉망받던 유망주였다. 어떻게 S.M.P의 길을 걷게 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새벽부터 야간훈련까지 정해진 시간과 프로그램에 맞춰 규칙적인 운동인의 삶을 살면서 마치 농부와 같이 1년 내내 사시사철 모든 역경을 견디고 훈련하다가 수확하는 때 딱 한 번 전국체전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게 때론 허무한 마음이 들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는 중에 사춘기 시절부터 슬슬 탈모 징조가 보였고, 운동할 때나 외출할 때 늘 저에겐 모자가 필수였습니다. 머리카락에 대한 스트레스로 무슨 일을 하든 100% 몰두가 안 되더라고요. 운동을 하면서 땀이 날 때도 물놀이를 가보려고 해도 자연스레 머리 스타일링에 대해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알게 된 그레이시티에 두피 문신 받으러 갔다가 상담하면서 ‘이건 된다, 무조건! 내가 먼저 배워보고 시술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번뜩이며, 이제는 ‘주도적으로 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세상으로 나가는 첫 발걸음! 그레이시티(GRAYCITY)와 함께 더스틴(DUSTIN) 대표원장은 S.M.P를 접하기 전에 모발이식, 부착식 가발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양한 시도와 많은 돈을 썼기에 고객들이 상담하는 동안 그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는 것부터 큰 용기를 가지게 된다고. “나이가 지긋이 드신 어르신도 20년간 가발을 써오시다가 저를 만나셨고요. 학부모도 딸아이와 손잡고 오셔서 상담받으시고, ‘졸업식 때 가장 멋있는 아버지로 만들어드리겠다’는 약속도 지켜드렸죠. 이러한 여러 고객 사례 중에서도 꽃다운 스무 살 청년의 시술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두피 전체의 모발이 빠지는 전두탈모로 몸과 마음 모두 병이 든 상태였지요. 동행하셨던 어머님도 같이 우시는데... 그 모습에 이 친구를 반드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고, 시술 후 만족 그 이상의 감동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시는 고객분들을 보면 이 일을 시작하길 참 잘한 것 같다는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1142]
    • 문화
    2022-12-26
  • 경북문화관광공사에서 선정한 뷰 카페, 김천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발돋움 중
    카페가 단순한 음료를 넘어 더 깊은 취향의 영역으로 들어선 지금. 커피 본연의 맛과 종류도 중요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공간에 대한 스토리가 더해진 디테일이 주목된다. 넓은 주차장을 기본으로 드라이브해서 찾아가는 맛도 있는 대형카페의 경우엔 건물의 외관부터 입구, 실내, 정원 등 모든 공간이 하나의 컨셉으로 디자인돼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주간인물에서 찾은 지역 핫플레이스로는 높은 건물과 넓은 실내, 커다란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으로 도심 속 카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김천의 떠오르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 ‘메타1976’을 선정했다. _김민진 기자 애향심을 바탕으로 탄생한 메타1976 가상과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를 딴 카페명과 디자인 컨셉을 잡았다는 건축주, 김나영 대표는 토목 관련 근무 경험이 있는 남편 김규식 씨와 ‘1976년생’ 동갑내기 커플로 두 사람의 아이디어가 가득 담긴 이 공간을 위해 경제적으로도 그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메타1976>을 내걸고, 남다른 고향사랑으로 김천시 조각공원길 330-137에 카페를 세웠다. “별을 상징하는 조명 하나하나에도 남편이 신경을 많이 썼어요. 무심코 보면 아무도 알아채지는 못하겠지만, 저희 부부 눈에는 사소한 아이템 하나도 그냥 못 넘어가겠더라고요(웃음). 천장형 에어컨을 설치할 때도 건축컨셉에 잘 어울릴만한 브랜드를 고르고 골라서 최대한 우주를 연상케 하는 공간 구성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어디 멀리 찾아가지 않고서도 제가 사랑하는 고향, 김천 안에도 집 앞에 힐링할 수 있는 명소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건축 쪽으로 일가견이 있는 남편의 도움이 컸습니다.” 최근 김충섭 김천시장도 메타1976 카페에 깜짝 방문해 김천시민을 위한 문화공간 조성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소속의 박정아 배구 선수도 들려 휴식 시간을 보내 신상 카페임에도 불구하고 지역민은 물론, 김천 IC를 지나던 여행객들도 “고속도로에서 반짝거리는 예쁜 불빛이 눈길을 끌었다”라며 이곳을 찾는 발길이 크게 늘고 있다. “남녀노소 모두가 건강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메타1976은 대형 베이커리, 브런치 카페로 유명한 만큼 모든 빵은 100% 유기농 밀가루로 당일 생산되는 시스템으로 그날 남은 새 빵은 인근 보육원에 기탁하는 나눔을 실천하는 김 대표는 “아주 작지만, 저희가 하는 일이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라고 수줍게 전했다. 평일 낮, 취재진이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을 때도 유독 노인층이 주 고객을 이룬 모습이었다. “어르신들은 커피를 안 좋아한다는 말은 다 옛날 말이다”라며, “특히, 저희 빵을 먹고 나면 속이 편하고 더부룩하지 않아서 좋다고 카페에서 드신 후 나가실 때 또 사 가신다”라고 김 대표가 빵에 대한 자부심을 표해 메타1976에서 제공하는 베이커리 중 몇몇 차별화된 시그니처 메뉴 소개를 부탁했다. “<파주빵>은 저희 셰프님이 파주에서 근무하실 때 방송까지 나왔던 빵인데요. 완두콩이 들어가 소화가 잘됩니다.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며, 어르신들의 입맛에도 취향 저격이죠. <먹물 어니언>은 오징어 먹물로 반죽했고, 안에 양파와 크림의 조합이 느끼하지 않으며 손님들께서 ‘한국인의 입맛에 딱이다’라고 말해주시는 빵이어서 매장 내 인기 제품입니다. <소금빵>의 경우엔 다른 곳과 차별화를 둔 부분이 쌀가루 50%를 첨가해 쫄깃하고 담백함은 배가 되고 버터가 적당히 들어가면서 더욱 고소한 풍미가 담겨 단짠(달고 짠)으로 갓 구워낸 소금빵은 겉바속촉의 끝판왕이라고 부르지요(웃음). 소금빵 다음으로 인기 있는 빵인 <바질 토마토>는 토마토, 바질, 베이컨의 환상적 조합이 피자빵인 듯 아닌 듯 묘한 매력을 줍니다.” 이외에도 메타1976의 아포가토(Affogato)는 상하목장 아이스크림과 최고급 이탈리아 원두의 절묘한 만남을 이루며, 매장에서 직접 생산한 수제 마카롱과 함께 큐브 치즈와 스틱 과자로 완성된 음료 또한 김 대표가 자신 있게 추천하는 메뉴다. “각종 전시와 공연이 펼쳐지는 문화예술의 장으로” 통유리 창으로 펼쳐지는 탁 트인 뷰와 더불어 카페 안에서는 지역민에게 다양한 문화공연을 선사하기 위해 계획 중에 있다고. 이미 메타1976의 공간을 알아 본 단골손님들이 먼저 제안하여 진행된 유치원 하우스콘서트, 고교입학설명회 등도 성황리에 마쳤다. 음악과 미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눈과 귀가 힐링이 될 수 있도록 꾸며가고 있는 곳이다. “밤샘 작업을 거친 또 하나의 작품 탄생이 있었습니다. 밋밋하고 뭔가 허전하던 공간에 무얼 채워 넣을까 고민고민하다가 그냥 시중에 파는 흔한 그림 액자는 걸고 싶지 않아 작가님을 섭외해서 직접 작업을 했지요. 메타의 규모에 걸맞은 초대형 사이즈의 그림이 압도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화려한 컬러감과 현대적인 예술미에 매료당하실 겁니다. 오 작가님 이하 여러 작업자님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메타1976의 역사에 한 획을 그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카페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세상 유일한 미술작품을 메타1976에서 많이 감상하실 수 있도록 재능 있는 작가님들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무분별한 확장은 지양하고파” 카페 오픈하고 몇 개월 채 되지 않아 초창기부터 프랜차이즈 문의가 잇따른 메타1976은 707특수임무대대 출신인 남편 김규식 씨의 강직하고 올곧은 가치관을 존중하고 한마음으로 뜻을 같이하는 김나영 대표의 확고한 경영이념으로 무분별한 확장을 지양한다. “저희 카페의 진가를 여기저기서 알아봐 주신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하고 뿌듯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럴수록 처음 저희 부부가 지녔던 창업 신념을 잃지 않으며, 고객님들께 건강하고 신선한 빵과 음료를 제공해 드림에 변함이 없을 것을 약속드리며 집중하고 싶고요. 이후에 현재의 규모보다 조금 더 크게 직영점으로 하나 더 세워서 많은 시민들이 모임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짓고 싶습니다.” [1142]
    • 문화
    2022-12-26
  • 차(茶) 한 잔으로 인생이 바뀌는 기적! “맛있는 차를 만드는 제다인(製茶人)으로 남고파”
    경주시 건천읍 단석로 1757에 자리한 ‘다다티하우스’는 대한문인협회 시인으로 등단한 주인장이 운영하는 카페로 “내 시는 읽기 쉬워야 한다”는 철학이 이어져 “차(茶)도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제조시설을 갖춘 이곳에서 수제약선차를 선보이고,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 운영 및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마침 차생활지도사 수업을 마친 이은주 대표와 향긋한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차로 인생이 바뀐 그의 삶을 들어봤다. _김민진 기자 Q1. 차(茶)를 가까이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현재 맡고 계신 일들도 함께 소개해주신다면. A.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아버지께서 가꿔 온 모든 꽃이 사시사철 잎 하나 마른날 없이 항상 싱싱하고 향기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7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 아이의 엄마로 돌아와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정한 마음이 들 때 “그래, 내가 잘하는 일은 풀 만지는 일이었지”라고 번뜩 떠올랐죠. 평소 관심을 가지고 블로그에 700여 편의 글을 모아왔던 약초에 관한 상식으로 ‘약초활용요법’이라는 평생교육원 과정을 듣다가 약초를 먹는 방법을 좀 더 간편하게 하고 싶어 제다(製茶)에 관심을 가지고 ‘꽃차소믈리에’를 시작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고 더 깊게 알아가고 싶은 것이 넘쳐났던 저는 늘 질문하는 학생으로 결국엔 교수님께서 대답을 못하는 지경까지 오셨죠(웃음). 그리고 배운지 1년 만에 <산우산야초꽃차문화원>을 개원하고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1997년, 적어도 제가 가르친 제자들만큼은 어려움 없이 사범 활동을 하고 자신들의 작은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를 창설해 꽃차소믈리에, 약선차사범, 차생활지도사 과정을 교육하고 있어요. 현재 <다다티하우스> 카페도 운영하며, 중국의 국영차창 ‘운남동경호(雲南同慶號) 보이차’를 수입 및 판매하는 총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Q2. 차(茶) 교육에 대한 열망이 더 크신 것 같습니다. 타 문화원과 달리 크게 차별화를 둔 부분이 있으신지요? A. 한국차, 중국차, 일본차를 모두 교육하는 이색카페로 전국각지에서 수강생이 찾아오는 유일무이한 곳이죠. 모든 차를 판매하고, 시음도 할 수 있는 1층 카페에서는 사실상 영리를 위하기보다는 차를 알리기 위한 무료 나눔이 주를 이루는 공간입니다(웃음). 특히,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의 꽃차소믈리에 과정은 전국 최초로 잎차를 6대 다류 제다법으로 분류하여 만들기 시작했어요. 꼭 찻잎이 아니더라도 허브 종류의 잎 혹은 꽃도 경발효, 비발효, 부분발효, 산화발효, 후발효차로 만들어 전통차의 제다법을 따르고 이를 바탕으로 차 공부에 깊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단지 꽃차만 배우는 것이 아닌, 제다법을 통해 차를 알고 전통차를 이해하여 차의 본질을 알아 가는 차생활지도사 과정을 통해 한국/중국/일본차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으며, 생활 속 차인(茶人)이 돼가는 과정을 습득하게 되죠. 그리고 사범 과정을 통해 각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드리고 있습니다. Q3. 10년 넘게 차(茶) 외길인생을 걸어오신 대표님의 교육으로 제자들의 인생이 바뀐 특별한 사례도 있으시죠? A. 감사하게도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를 통해 70개의 문화원이 만들어졌습니다. 먼 곳에서 그들을 응원하며 지켜보는 제 마음이 얼마나 흐뭇한지요. 제가 겪었던 것처럼 경단녀의 삶에서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 수료 후, 다시 자기의 협회를 만드신 분도 계시고 대학에서 강의하고 계신 분도 있으며 작은 공방을 차려서 열심히 수업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면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계신 인생 선배님들이시죠. 삶은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나이 55살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꿈을 정해 놓고 그 꿈을 위해 나아가다 보면 그 어느 날 우리는 그 꿈에 닿아 있지 않을까요?”라고 제자들에게 항상 하는 말입니다. Q4.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경이 있으셨을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그 일로 깨달은 삶의 철학이 있으시다면. A.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던 저는 두 살 터울 오빠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공부를 더 할 수 없었어요. 늘 꿈에 야간 고등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는 꿈을 꾸는데 아이를 업고 가서 달래고 기저귀를 갈고 있더라고요. 이 똑같은 꿈을 수십번 꿔서 외울 정도였습니다. 3~40대 시절은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일찍 아이들을 키워 놓고, 47살에 제가 벌어서 다도대학원을 입학했지요. 2019년, 위덕대학교 외식산업학부에서 또 공부를 시작했고, 처음에 8학기는 이것이 정녕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을 만큼 높은 장벽이었습니다. 만학도 장학금을 받는다 쳐도 제게는 힘든 경제적 난관이 많았죠. 이제 마지막 기말고사 한 번만 치고 나면 졸업입니다! 삶은 꿈꾸는 자의 것이죠.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강철맨탈챌린지’로 제자들은 12개월 동안 1일 1글 포스팅이라는 어려운 일도 해냈습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Q5. 차(茶)를 비싸고,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비싼 한복을 입고 행다(行茶) 위주의 다례원 교육을 받는 등 어려워하시는 분이 많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차는 커피처럼 마시는 음료입니다. 단지 관심이 조금만 있다면 사람들과 소통하며 스스로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여유를 주는 맛있는 음료죠. 우리의 차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해 보면서 ‘초암차보존회’를 만들어 차의 역사를 바로잡고 알리기 위해 힘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차보존회 속의 생활차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차는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임을 꼭 알리고 싶습니다. [1142]
    • 문화
    2022-12-26

실시간 문화 기사

  • 아날로그적 향수와 자연의 따스함을 담아 하나의 수제 원목가구로 탄생시키는 백향목공방 - 이종원 백향목공방 대표
    원목가구는 내구성이 좋아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어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흠집이 생기거나 망가지더라도 원목은 복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찾는 사람들은 더욱 늘고 있는 추세다. 경남 진주에 위치한 백향목공방은 심플함과 견고함, 실용성을 기본으로 1:1 맞춤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수제 원목가구를 제작하고 있다. 이곳의 이종원 대표가 선보이는 가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멋이 더욱 짙어진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자연 그대로를 담아 하나의 수제 원목가구로 탄생시키는 백향목공방의 이종원 대표를 만나보았다. _곽인영 기자 “결과물만큼 중요한 것이 과정, 최고의 가구를 위해서는 완성도 높은 작업이 필수” 경남 진주시에 위치한 백향목공방은 나무가 가진 아날로그적 향수와 자연의 따스함을 가구에 담아내는 곳이다. 이곳에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구를 만들어내는 이종원 대표는 원목에서 마감재까지 모두 손수 작업하고 있다. “백향목공방이 문을 연 것은 3년 전입니다. 저는 지난 25년간 자동자차 정비기술자로 살아왔어요. 그래서 자동차 관련 업체에 근무를 하기도 하고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죠. 그리고 학원 강사로 5년 정도 생활했는데, 그 당시 자동차업계가 지금의 대학입사와 맞먹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어요. 하지만 전기전자의 메커니즘이 확립되면서 인간이 자동제어엔진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 눈에 띈 것이 조경 시설물 관리였어요. 당시 현장근무와 내근을 병행하기 위해 공방을 연 것이 지금의 백향목공방이 된 것이죠.” 경남 사천에서 나고 자란 이종원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마산에 있는 경남자동차정비학원에서 정비기술을 배웠다. 자동차 정비 기능장과 다수의 자격증이 그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렇게 정비기술자로 25년간 활동해온 그는 5년 전 조경 시설물관리로 눈을 돌리면서 경남진주에서 백향목공방을 열게 됐다고 한다. 공방운영을 시작한 것은 현장근무와 가구제작을 병행하기 위해서였지만 현재는 밀려드는 주문 덕에 그는 가구제작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당시 전문적으로 목공예를 배운 적이 없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3D나 CAD 프로그램 등 1년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했어요. 그래서인지 노력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셨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웃음)” 이 대표가 그렇게 운영해온지 어느덧 3년째. 그는 단기간에 나무를 만지는 노하우와 기술을 터득하며 전문성을 키워나갔다. 때문에 이 대표는 공방 운영 초창기에 제작한 제품들을 볼 때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경제적 이익을 쫓기보다 자신이 해낼 수 있는 만큼의 주문량만을 소화해 더욱 완벽한 제품을 고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또한 그는 항상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시간이 부족해도 모든 과정을 성실히 거쳐 최고의 제품을 탄생해내고 있다. “가끔 서둘러 작업을 하다보면 보완할 점이 눈에 보일 때가 있어요.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회가 남지 않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밀려드는 주문의뢰 덕분에 항상 시간에 쫓기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 즐겁습니다.” 내구성이 높은 100% 원목가구의 변함없는 가치 향후 접근성이 높인 클래스를 운영할 계획 나무는 습도나 온도에 따라 수축하거나 팽창하게 된다. 그래서 가구를 선택할 때 어떤 소재로 만들어졌는지 알아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가구소재에는 원목부터 MDF, 합판 등의 다양한 소재가 있지만 가구로는 원목이 가장 적합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종원 대표는 저가의 MDF, 무늬목 소재가 일체 들어가지 않은 100% 원목가구를 제작하여 제품의 완성도와 내구성을 높인다. 덕분에 백향목공방에서 탄생되는 가구들은 오랜 시간 변함없는 사용감을 느낄 수 있고 면연력이 약한 영유아나 노약자의 주거공간에도 적합하다. 하지만 고객들 중 일부는 비용적인 부분에서 비교적 저렴한 MDF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아 이 대표는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원목은 정서적 안정감뿐만 아니라 나무가 스스로 숨 쉬며 집안의 습도를 조절합니다. 하지만 비교적 저가의 MDF는 목재의 섬유질을 짠 후 공정을 거쳐 고압 성형시킨 판재로, 가공 및 직접 도장이 가능하지만 습기에 약하고 금방 망가지기 쉽죠.” 또한 그는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생산되는 가구를 판매하는 온라인몰이나 가구점의 제품 가격과 수제 원목가구를 비교하는 고객들이 많아 그들의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해 부가설명도 빼놓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목공예는 체력소비가 많은 분야입니다. 단순히 가구를 제작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죠. 나무종류도 천차만별이며 부수적으로 필요한 자재들도 다양해 많은 노력과 연습이 없다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좋아하는 일이라서 시작할 수 있었기에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목공예를 시작하는 예비 창업가와 청년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는 이종원 대표. 제작부터 설치까지 모든 작업을 직접하다보니 힘든 점도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가구를 만들 것이라는 그는 향후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목공예를 배울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고 접근성이 높인 클래스를 운영하고 싶다고 전했다. [1063]
    • 문화
    2019-01-24
  • 친환경, 유기농 녹차재배 30년 외길 - ‘2018 농식품 품질관리 분야 대통령 표창’ 수상, 서수덕 영봉다원 대표
    최근 사천 영봉다원 서수덕 대표가 31년간 유기농 녹차 산업에 종사하며 산업 육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농식품 품질관리 분야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청정한 봉명산 깊은 산골에서 친환경, 유기농으로 재배한 명품 녹차를 생산하는 사람, 서수덕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31년간 단 한번도,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를 치지 않고 차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소비자들이 믿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우리 녹차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어요.” 자신의 영농철학을 말하는 서수덕 대표. 그는 찻잎만 만져도 양질의 차가 생산될지 가늠할 수 있는 베테랑이다. 청정한 봉명산 산자락에 위치한 영봉다원에서 친환경, 유기농 녹차를 생산하고 있다. 차의 대가, 초의 스님의 제다법을 잇는 원표 스님의 차로 다도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름이 높다. 명차의 시작은 부지런한 농부의 정성에서부터 시작된다. “30여 년 동안 키워온 차나무는 자식 같아요. 애지중지 차나무를 키워오면서 단 한 번도 제초제, 농약, 화학비료를 써본 적이 없어요. 녹차는 찻잎을 그대로 먹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사람 몸에 이로워야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찻잎을 따는 순간, 순간도 정성이다. “보통은 곡우를 전후로 하여 딴 찻잎으로 만든 우전을 높게 치지만, 찻잎을 따는 시기도 지역마다 달라집니다. 사천 지역은 정해진 절기보다는 1창2기의 찻잎이 나왔을 때가 찻잎 따기에 가장 적합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가장 찻잎을 따기 적절한 시기를 골라 찻잎을 땁니다.” 찻잎을 덖는 방식도 일반적인 차 제조 방식과 차이가 크다. “보통은 가마솥에 덖어내죠. 덖어내는 차는 열기가 닿아 고소한 맛이 납니다. 하지만 저희는 스님의 방식대로 가마솥 뚜껑을 닫고, 찻잎이 지닌 자체 수분으로 익히는 증차 방식을 쓰고 있어요. 증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찻잎이 갖고 있는 본연의 향과 맛을 잘 살려낼 수 있죠. 좋은 차 맛을 얻을 수 있는 만큼 많은 정성이 필요하고, 또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고도의 차 제조법입니다.” 그윽한 향과 깊은 맛, 부드러운 목 넘김이 인상적인 영봉다원의 자하청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봉다원의 발효차, ‘자하청다’는 어떤 맛일까. 영롱한 다홍빛이 감도는 색은 스무 번을 우려내도 변함이 없다. 입술을 적시는 첫 모금부터 마지막 목 넘김까지 부드럽다. 은은히 퍼지는 향긋한 향과 깊은 맛이 감미롭다. 첫 새벽 이슬을 머금은 찻잎을 입술에 문 듯 한 상쾌함과 발효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속 편안한 따뜻한 기운이 넘친다. “비유한다면 녹차는 우유로, 발효차는 요구르트로 비교할 수 있죠. 발효가 잘 된 발효차라 하루 수십 잔을 마셔도 속 쓰림이 없어요. 부드럽게 소화되는 발효차, 건강을 한잔에 담았습니다.” 차를 모르는 사람들도 한번 맛보면 반할 맛. 그 비결에 대해 묻자, 그는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차에 조예가 깊은 한 대학교 교수님께서 ‘친환경, 유기농으로 재배한 찻잎이라 차를 만든 후에도 후발효가 계속돼 깊은 맛과 부드러운 맛을 지닐 수 있는 것’이라며 좋은 평가를 해주셨어요. 차농사를 짓는 것부터 찻잎을 따고, 차를 만드는 과정까지 수백 번의 손길을 거칩니다. 차는 정성이라 하셨던 스님의 뜻을 따라 좋은 것만 담아 소비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맑게 깨우는 영봉다원의 차. 명차가 나올 때까지 수백 번의 손길이 거쳐야 하지만 가격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고된 차 만드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사는 그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넘쳤다. “제가 만든 차가 좋다고 말하기보다, 소비자들이 차를 마셔보고 좋다고 말해주는 게 중요하죠. 제대로 만들어 믿고 먹을 수 있는 우리 발효차, 몸에 이로운 건강한 차를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1063]
    • 문화
    2019-01-24
  • 나를 다스리는 ‘차(茶)’ 깊은 자기 성찰, 마음이 쉬는 공간 - 허윤향 전통찻집 다요 대표
    휴식은 나를 재충전하고 내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 지친 현대인들은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방법조차 잊어가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마음에 진정한 휴식을 선사해줄 장소가 있다. 국내 최대 사찰 중 한 곳인 경남 양산의 통도사 인근에 위치해 몸은 물론 마음까지 따스하게 풀어주는 공간. 전통찻집 ‘다요’의 허윤향 대표와 차 한 잔을 두고 마주 앉아 우리네 삶과 행복에 관해 이야기 나눠 보았다. _정효빈 기자 고즈넉한 멋이 느껴지는 전통찻집 다요는 100년의 세월을 거친 고택이 뿜어내는 고고함과 온기가 느껴진다. 다요의 내부로 들어서자 수많은 다기세트와 전통 차의 향기로움이 가득하다. 소담한 공간 속에는 오랜 손길이 닿은 책과 그림, 기타 하나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향토적인 색채가 물씬 느껴지는 이 공간은 조건 없이 우리를 품어주는 어머니의 품처럼 따사로운 분위기였다. 그 안에서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허윤향 대표를 마주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동방의 미인을 마주한 것 같다며 극찬했다던 대만의 전통 차 ‘동방미인’. 허 대표로부터 대접받은 이 차의 은은한 향기로움과 우아함은 마치 그녀를 대변하는 듯했다. 차 생활하며 마음의 안정 찾아 내면을 들여다보고 대화 이끌어내는 차 향토적이고 소박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전통찻집 다요. 오랜 세월을 버텨온 이곳에서는 묘한 기품까지 느껴졌다. 특별한 이 공간에 대해 물으니 100년이 다 된 고택을 개조한 것이라고. 긴 세월이 묻은 옛집을 되살린 건 그녀였다. 집안 곳곳에 황토를 바르고 직접 내부를 개조하며 지금의 다요를 탄생시켰다. 한 현대미술 관계자로부터 이 공간을 작품화시켜 보존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며 허 대표가 웃어 보였다. “아주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차 생활을 하시던 모습을 늘 지켜봤었어요. 할아버지가 계시던 사랑채가 비면 그곳에 몰래 들어가 큰 주전자에 찻잎을 넣고, 설탕도 잔뜩 넣어서 동네친구들에게 나눠줬던 기억이 있어요. (웃음)” 늘 차를 가까이해온 허윤향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차에 깊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차에 관한 본격적인 공부는 물론 새로운 차를 접하고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찾아갈 정도였다고.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늘 차 생활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고 전했다. “물을 붓고, 차를 따르고, 마시고. 이것을 반복하는 행위 자체가 나를 안으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게 해요. ‘다도’라고 하죠? 차를 통해 도의 경지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바로 내면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 때문일 거예요.” 15년째 다요를 운영해온 허윤향 대표는 최근 미얀마의 마하시 명상센터로 떠나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한 달간 수행생활을 하며 한없이 낮춰지고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고. 허 대표는 깊은 자기성찰의 시간을 통해 내면에 한층 밝은 에너지를 담아 다요로 돌아왔다. 그녀는 다요를 비운 한 달 동안 ‘통도사가 다 빈 것 같다’는 주변의 애정 어린 토로를 듣기도 했다. “미얀마에 다녀오며 이 공간이 제 개인의 자리가 아니라고 느꼈어요. 이곳은 모두가 공유하는 자리죠. 제가 주인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지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 차를 통해 진정한 휴식 찾길 바라 다요에는 허윤향 대표가 엄선해 수집한 질 좋은 차들이 가득하다. 전통 차만을 고집해 맛의 깊이와 차이를 아는 많은 이들이 먼 곳에서도 꾸준히 이곳을 찾아온다고. 여기에 월드뮤직 작가 최정욱 선생이 특별히 제작한 음악이 더해진다. 더불어 진행되는 차와 음악에 대한 설명회 또한 다요를 방문하는 이들의 발길을 묶어 놓는 또하나의 매력이다.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 때문일까, 힘든 시기에 다요와 그녀를 찾아와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가는 분들도 많다고. 다요는 단순히 차를 판매하는 곳이 아닌 치유의 공간이었다. 끝으로 허 대표는 앞으로도 상생하는 삶에 의미를 두고, 다요라는 공간을 사람들의 쉼터로 남겨두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더불어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사람들이 진정한 휴식을 갖고 마음을 안정을 되찾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이 많으면 제대로 쉬어지지 않죠. 차와 간단한 다기, 조용한 공간만 준비하면 돼요. 차를 입안에 넣어 맛과 향을 음미하고, 따뜻한 차가 목을 통해 넘어가는 느낌을 놓치지 말고 느껴보세요. 그 과정을 통해서 잠시라도 번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진정을 휴식을 만끽해보길 바랍니다.” [1062]
    • 문화
    2019-01-22
  • 함께 즐기는 목공의 재미, 첫걸음부터 단디배워 -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소품·가구 제작, 박군흠 단디목공방 대표
    자신의 손으로 만든 무언가는 특별하다. 특히 남다른 노력과 시간을 들인 결과물이라면 더욱 가치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목재를 이용해 직접 가구나 소품을 만드는 목공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목공은 취미일 뿐 아니라 취업 및 창업 아이템으로도 급부상 중이다. 이에 주간인물이 부산 범일동 소재의 ‘단디목공방’을 찾아 목공의 매력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_정효빈 기자 아내 위한 수유 의자 만들어주려던 것이 계기 독학하며 실력 쌓아 목공방 정식 오픈 박군흠 대표는 8년간 통신공사에서 근무했다.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흥미와 소질이 있었다던 그. 아내가 둘째 아이를 갖자 그녀와 아이에게 직접 제작한 수유 의자를 선물하리라 결심하고 처음 목공을 시작하게 된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목공의 매력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박 대표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홀로 목공에 관해 공부하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았다. 직장생활과 목공 일을 병행하며 밤낮없이 작업에 몰두하던 그는 마음이 맞는 지인들과 목공동호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이후 홀로서기를 해 지금의 단디목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목공의 최고 매력은 자신이 만든 특별한 아이템에서 얻는 성취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직접 제 손으로 만든 물건은 계속 눈이 가고 애착이 생기죠.” 실제 박 대표의 집에도 그가 직접 제작한 가구가 가득하다고. 아이들은 아버지가 만든 식탁과 이층침대를, 아내는 심플한 디자인의 화장대를 가장 좋아한다며 그가 웃어 보였다. 취미목공으로 시작해 노후대비, 창업으로 이어지기도 회원들은 단디목공방에서 자유로운 작품활동을 펼칠 수 있다. 처음 두 달간 목공의 기초적인 방법을 배우는 수업이 진행되고 그 이후부터는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자유롭게 만들어볼 수 있다. 박 대표는 옆에서 어려운 부분을 돕고 안전에 대한 관리를 도맡는 정도다. 주목할 만한 점은 타 공방과 달리 이용 시간에 제약이 없다는 것. 일정 시간동안은 그가 공방을 지키지만, 새벽 시간대에도 작업을 원하는 회원들은 직접 문을 열고 들어와 공방을 이용한다. 바쁜 시간을 쪼개 목공을 하고자 하는 회원들을 위한 배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스스로 목재를 다루는 시간이 많아서일까, 빠르게 실력이 늘어 여러 가지 가구를 제작하고 창업에 성공한 회원들도 있다고. 이러한 장점 덕에 다른 지역에서도 단디목공방을 찾는 발걸음이 늘어나고 있다. 단디목공방에서는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나만의 목공품을 직접 만들어갈 수 있다. 우드펜, 도마, 스피커 등의 소품은 물론 소파와 식탁 세트 등 가구제작도 가능하다. 더불어 블로그를 통해 주문제작 제품도 판매 중이다. 건강까지 생각한 원목제품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맞춤 디자인으로 받아볼 수 있다. 공방은 회원과 자신을 이어주는 매개체 놀이터 같은 공방 되었으면 박군흠 대표는 사람들과 함께 목공 자체를 즐기는 것이 단디목공방을 운영하는 이유라고 전했다. 더불어 목공방을 찾아주는 이들이 순수하게 취미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그는 본인이 쌓아온 노하우를 적극 활용해 보다 질 좋은 목재를 저렴한 가격으로 회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목공은 돈이 많이 드는 프리미엄 취미활동이죠. 저는 목공을 좋아하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취미를 즐기길 원합니다. 그런 이유로 원데이클래스도 큰 수익을 바라지 않고 진행하고 있어요. 본인이 직접 가구나 소품을 만들려는 분들은 보다 저렴하게 맞춤제품을 갖고 싶은 마음이 클 테니까요.” 이런 박 대표의 마음이 잘 전해졌는지, 수업을 듣지 못해도 매달 등록해 단디목공방을 찾아오는 회원들도 더러 있다는 후문. 목공으로 한 데 모인 그와 회원들 간의 진심이 공방 안을 따뜻하게 채우고 있었다. 앞으로도 꾸준히 실력을 갈고닦아 본인만의 특별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다는 박군흠 대표. 순수한 열정으로 빛나는 그의 작품을 언젠가 유명 전시회에서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1062]
    • 문화
    2019-01-22
  • 임영규 거인조각연구소 대표
    경산 남산면에 들어서면 대형 호랑이 조형물이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은 바로 조형물을 제작하는 거인조각연구소로, 조각가 임영규 대표의 작업실이다. 그는 조형물을 제작하는 전문가들과 함께 모여 다양한 재료의 실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조형물 연구에 열정을 쏟는다. 대표적으로 브론즈, 스테인레스스틸, 석재를 이용한 다양한 조형물이 거인조각연구소에서 만들어진다. 이번 주는 독창적인 조형물로 호평을 받고 있는 조각가 임영규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곽인영 기자 인간의 생명력과 활동력을 지닌 독창적인 조형물로 호평 받는 조각가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흙과 돌을 만지고 나무를 깎으면서 놀았죠.(웃음) 그렇게 자연 속에서 자라다보니 무언가를 만드는 게 즐거웠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리고 만드는 것에 재주가 뛰어났던 임영규 대표는 영남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졸업한 후 줄곧 조각가로 활동해왔다. 꾸준한 작품활동을 펼친 그는 2005년 철근을 녹여 흘러내리는 쇳물을 이용한 작품들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산소용접기의 불꽃 속에서 녹아내린 철근은 다시 굳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자유를 꿈꾸는 영혼을 인간의 팔과 다리 모습으로 탄생됐다. 익숙한 인체의 부분이 눈에 띄지만 그 익숙함은 색다른 조형형식 속에 묻혀 있다. 곳곳에 구멍이 뚫리거나 표면이 거칠어 기묘한 느낌을 더하고 또 다른 쪽으로는 표면의 질감이 매끄럽게 마무리되어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 중 ‘그의 질주’라는 작품은 제5회 전국 대학 및 대학원생 조각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임 대표는 조각예술분야의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열렸던 2017년 개인전에서는 오공을 주제로 자연을 동경하며 날고 싶은 마음, 이루고 싶은 것이나 이루지 못한 것을 표현했다. 이 전시에서는 기존의 작업들과 달리 나무와 잎이라는 자연적인 이미지를 시각화한 브론즈 소재의 작업들이 주를 이뤘다. “지구에서 중력이 작용하는 힘이 강하지만 식물이나 나무는 그 힘을 거스르기라도 하는 듯 위로 솟아 자라납니다. 그것을 보면서 하나의 생명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처럼 인간 또한 마찬가지로 생명력과 활동력을 갖고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 태양을 향해 뻗어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욕망, 마음 속에 항상 갖고 있는 소인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처럼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펼치며 독창적인 조형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그는 대구청년작가회 前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대구현대미술가협회, 경산조각가협회 등에서 활동 중이다. 안정성 확보가 기본, 균형 잡힌 대중성과 작품성이 중요 10년이 지나도 100년이 지나도 훌륭한 작품 남기고파 대형 건물 주변에 설치된 미술품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르면 연면적 1만㎡ 이상의 건축물은 건축비의 0.7% 이상의 가치가 있는 미술품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술가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시민들이 좀 더 예술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는 취지다. 이렇듯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은 허가를 받으려면 이러한 조형물을 지어야만 하는데, 사후관리 없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 도심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임영규 대표는 “일부 건물주는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에서 구색 맞추기에 급급하고 있다”며 “설치비용을 단순한 세금으로 여겨 오히려 공공미술품이 주변 미관을 해치거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개인 작품활동과 함께 거인조각연구소를 운영하면서 공공조형물 제작하는 임 대표는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다. 개인의 취향이 들어가거나 혹은 이윤을 추구하거나, 어느 한쪽에 치우치다 보면 작품이 표현하고자하는 방향을 잃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가장 먼저 안전성 확보를 기본으로 하되, 대중성과 작품성이 적절하게 균형 잡힌 조형물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하나의 작품작업이 끝나면 늘 다음 작품을 구상하기 바쁘다는 임영규 대표. 예술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게 응원 또한 아끼지 않았다. “예술분야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어 취업하는 분야가 아니라 예술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한 분야하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의 예술대학은 취업률을 중심으로 평가하여 취업률이 부족한 학과는 통폐합 혹은 인원축소를 추진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비단 예술계의 문제만도 아니죠. 정부에서는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원 해줘야 하고 예술계로 나오는 신진 작가들 또한 취업률이라는 단순한 수치에 얽매이지 않고 이론과 실기를 적절히 배워나가길 바랍니다.” 임영규 대표는 2019년 하반기 자신의 작품들을 이제껏 선보이지 않은 특별한 형태로 제작해 개인전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손을 속이지 않고 손이 이끄는 대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임영규 대표. 10년이 지나도 100년이 지나도 훌륭한 작품을 남기는 조각가가 되길 응원한다. •영남대학교 조형대학 조소과 졸업 및 동대학원 수료 •대구미술대전 초대작가 ■ 개인전 •2017년 갤러리 오늘 초대전 - 오공의 외출 (대구 갤러리 오늘) •2011년 임영규 개인전 - 오공의 외출 (대구 갤러리 AND) •2005년 임영규 개인전 - 몽상 (대구 봉산문화회관) •아트페어, 기획전 다수 ■ 단체전 •경산조각가협회, 대구청년작가회, 영남조각회, 한국조각가협회, 현대미술가협회, 오각별회원 ■ 수상 •2004년 전국 대학, 대학원생 조각대전 대상 •2004년~2012년 대구시 미술대전 최우수상, 우수상, 특선, 입선 •2003년 전국대학생 미술대전 특선 ■ 작품소장 •청송 국민체육관, 청도 한국코미디타운, 울산 장생포고래박물관 •경북 경산시 남산면 경리 506-6 거인조각연구소 giant7630@daum.net / 010.2530.7630 www.거인조각연구소.kr [1062]
    • 문화
    2019-01-22
  • 토우작가 박영경 이야기갤러리 하모하모 대표 / 창동라온빛 대표
    창원시는 12월 10일 ‘제2회 창원시 관광기념품 공모전’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이번 공모전은 부림창작공예협동조합이 주관하고, 창원시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후원하는 사업으로, 창원의 정체성이 담긴 기념품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시행됐다. 11월 27일부터 작품 접수를 받아 전국 각지에서 총 95점의 작품이 접수됐다. 관광·디자인·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이뤄진 심사위원회는 실물심사를 통해 총 41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그중 금상을 수상한 박영경 작가는 마산만을 디자인한 작품 ‘그리운 합포만’으로 호평을 받았다. “2010년 창원, 마산, 진해가 통합되면서 각 지역의 특색과 정체성이 희미해졌습니다. 저 또한 마산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상실감이 컸죠. 그래서 출향민들이 그리워하는 곳, ‘합포만’을 떠올리며 작품을 만들었어요. 이번 수상은 사그라들던 저의 열정에 불씨를 키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웃으며 수상소감을 전하는 박영경 작가. 이번 주 주간인물은 그녀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곽인영 기자 ‘그땐, 그랬지…’ 한국정서를 담은 지난날 이야기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토우(土偶)작품 창원 창동예술촌의 대표 토우(土偶)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박영경 작가는 옹기를 제작하는 점토로 토우(인형)를 빚고 작은 가마에 굽는 방식으로 스토리를 만든다. 평범한 주부로 두 아이의 미술숙제를 도와주며 접한 찰흙공예에 재미를 느껴 작품을 만든 지 어느덧 20년째.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그녀의 토우작품은 총 12컷으로 보는 이들를 흐뭇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아들로 태어나 집안의 기둥으로 삶의 무게를 견뎌야 했던 우리네 ‘할아버지 이야기’, 딸로 태어나 차별받고 자란 우리네 ‘할머니 이야기’, 백년가약에서 백년해로까지 다복한 일생을 담은 ‘백년해로’, 초등학교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유년의 기억’, 꿈 많았던 여고 시절을 담은 ‘추억 속의 좋은 날’ 등이 있다. 이처럼 그녀는 전시를 통해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엄마와 딸 등 세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마산에서 태어났지만 방학 때마다 찾았던 외가, 의령을 잊을 수 없습니다. 처음 맛봤던 감꽃, 충익사 앞에서 뛰놀던 모습, 수박 서리하다 걸렸던 일 등 단편적 기억들을 모아 옹기토로 빚었습니다.(웃음)” 총 12컷으로 한 컷당 A4 용지 남짓한 크기의 박 작가의 토우작품은 장독대, 보자기, 하얀 고무신, 창호지를 바른 옛날 집 창살무늬, 툇마루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섬세한 손을 거치는 동안 토우는 웃는 모습, 화난 모습 등 다양한 표정을 지은 작품으로 탄생된다. 흙에 숨결을 불어 넣는 작업인 셈이다. 스토리 구상부터 다듬고 말려 가마에 구워져 세심한 표현이 나오기까지는 6개월~1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다소 오랜 기간으로 힘들 법도 하지만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마을기업 ‘창동라온빛’ 농림축산부장관상 수상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매개체 역할 하고파 이은상의 가곡 ‘가고파’의 고향으로 유명한 창원의 옛 마산은 한때 시인 묵객들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1960~1970년대, 마산의 중심가였던 창동의 주점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인생과 시를 노래하던 예술인들의 모습은 아주 흔한 풍경이었다. 이에 2011년 옛 마산을 되살리기 위해 창동예술촌이 조성됐고 2013년에는 소속 전문 예술인들에 의해 마을기업 ‘창동라온빛’이 탄생했다. “명색이 마을기업인 만큼 소득창출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교육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죠.” 창동라온빛의 체험 프로그램은 단순한 회화를 넘어 미술, 공예 등 자신이 선호하는 분야를 선택할 수 있다. 덕분에 참가자들은 작품성뿐만 아니라 다양성까지 갖추고 있어 열광한다. 또한, 이들은 마을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주는 등 사회공헌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해마다 농촌을 방문해 어르신들에게 체험활동을 펼쳐 농림축산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앞으로도 마을, 학교, 기업을 대상으로 테마가 있는 다양한 예술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전통예술이 잊혀져가고 있지만 전통과 현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예술활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 예술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박영경 작가. 이야기 갤러리 ‘하모하모’ 또한 ‘맞다’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로, 그녀의 바람이 다시 한 번 느껴진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녀. 앞으로의 작품활동을 기대해 본다. [1061]
    • 문화
    2019-01-21
  • 백충원, 김선훈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
    ‘설마는 사람 잡고 철마는 달리고 싶다’, ‘고소한지모르겠어’ 자작곡 제목조차도 평범하지 않은 평범해보이는 두 청년을 만났다.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의 백충원, 김선훈. 이들이 노래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들 겪었던 평범한 순간순간들이다. 공감되는 내용과 재치 있는 가사로 일상을 노래하는 두 남자. 이들을 만나기 위해 부산 수영구에 위치한 작업실을 찾았다. _정효빈 기자 보컬/기타 백충원 “여태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저희 모습 그대로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12월 1일 개최된 <2018 EBS 헬로루키 with KOCCA> 최종결선에서 송라이터듀오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가 대상을 받았다. 헬로루키는 EBS가 개최하는 신인뮤지션 발굴·육성 프로젝트로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을 배출한 대회이기도 하다. 신인인디뮤지션으로써 최고의 영예를 안은 그들은 수상 당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대상 팀이 호명됐을 때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어요. 아직은 꿈꾸는 기분입니다. 주변에서 이렇게 축하해주실 때 조금 실감이 나요.” 이들은 기독교밴드의 베이시스트와 드럼리스트로 처음 만났다. 3인조로 활동하던 밴드의 한 멤버가 빠지게 되었지만, 그 후에도 둘은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드럼을 치던 백충원은 보컬로, 베이시스트였던 김선훈은 기타를 잡게 됐다. 이후 2016년 싱글 [빌린빤쮸]로 데뷔 후 2017년 EP [이 음악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를 발매하며 그들만의 독창적인 색을 찾아갔다. 정리되지 않은 기억들, 음악을 통해 추억의 한 칸에 자리잡길 기타/베이스/건반 김선훈 “꿈은 크게 갖는 거라면서요? 전국투어공연이나 해외공연에도 서보고 싶어요.” “누구든 저희 노래 가사와 비슷한 기억이 있을 겁니다. 그 정리되지 않은 기억들이 저희의 노래를 통해 추억의 한 칸에 살며시 자리잡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들의 모든 노래는 노래하는 자신이, 혹은 친구의 경험담을 이른 저녁 소주 한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이야기처럼 털어놓고 있다. “ ‘혼공’이라는 소규모의 공연을 가진 적 있어요.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관객과 매우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노래를 들으시며 가사의 웃음포인트에서 공감해주거나 호응해주는 것이 전부 느껴져서 너무 기분 좋게 공연했어요. 진정으로 소통하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이런 공연이 우리에게 잘 맞구나.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관객들과 이야기 나누느라 정작 노래는 많이 못 불러드렸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짝사랑을 해본 사람이면 한 번쯤은 스스로가 찌질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겪어봤을 것이다. ‘새로운 여름’은 그런 감정의 밑바닥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주변을 보면 늘 연애중이고 항상 이성이 끊이질 않은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전 2016년까지 짝사랑만 계속했거든요. 그런 과정을 오래 거치다보니 ‘나는 보통 여름에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는구나’라는 공식을 알게 됐어요. 짝사랑 오래 하신 분은 정말 공감하실 곡이예요.” “좋아하던 친구가 새벽에 만취해서 절 불러낸 적이 있어요. 저랑 더 놀고 싶다고, 안아달라고 했었는데… 그날 이후 만나 그날 이야기를 꺼냈더니 전혀 기억을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만들어진 곡이 ‘너에겐 없는 필름’입니다.” 꾸밈없이 자유롭다. 툭툭 내뱉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생각보다 깊이 있는 삶의 통찰과 위트 있는 라임이 모두 살아숨쉰다. 쌀쌀한 겨울,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줄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만의 특별한 감성에 편승해보면 어떨까. [1060]
    • 문화
    2018-12-13
  • 이영재 스완 대표
    과거에 무용은 전공자들의 전유물로 생각되어 일반인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은 예술로 인식되었다. 최근에는 전공자뿐만 아니라 자기 개발을 원하거나 취미로 많은 사람들이 무용을 배우고자 한다. 대구의 무용복 전문점 스완은 그런 이들에게 다양한 서비스와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무용이 더욱 많은 관심을 받는 예술활동이 됐으면 한다는 이영재 대표. 주간인물은 대구의 스완을 방문해 그녀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곽인영 기자 무용가와 무대가 돋보일 수 있도록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담은 무용복 “10년 전만해도 전문 무용가들이나 입시생들이 스완을 찾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점점 취미로 무용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고객들이 방문하기 시작했죠.” 대구의 봉산문화거리 입구에 위치한 스완은 무용복 전문점으로 무용가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 2011년부터 스완을 운영해온 이영재 대표는 고객들에게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줄곧 그녀와 함께해온 스완의 부사장과 디자이너 또한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잘 해내고 있어 고객들의 만족도가 더욱 높다고 한다. 무용의 대중화와 더불어 스완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 대표는 여전히 한결같다. 고객들이 어떤 목적으로 무용복을 착용하는지, 콘셉트와 취향은 어떠한지 하나하나 대화를 통해 알아가고 그에 맞는 디자인을 제안한다. 이것 또한 사람들이 스완을 찾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대표는 “같은 디자인의 제품을 여러 개 구비해놓기보다는 디자인이 각각 다른 무용복들을 소량으로 구비해놓는다”며 “그 희소성덕분에 고객들도 더욱 만족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똑같은 색상, 디자인이 아닌 오직 한 사람과 그 무대가 돋보일 수 있는 무용복을 위해 항상 고민한다는 그녀. 틈틈이 일본을 오가며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제품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스완의 무용복들은 단순히 착용한다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재능기부로 시작한 교육활동, 지금도 현재진행형 여러 가지 테마를 가진 복합문화예술공간 조성하고파 “어릴 때부터 무용을 좋아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중학교 시절에는 그림과 피아노를 배웠어요. 하지만 고등학교 입시 시험을 앞둔 일주일 전, 사촌과 함께 무용학원에서 춤을 추면서 깨달았어요. 제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은 미술도, 음악도 아닌 바로 무용이었죠.” 미술과 음악을 할 때 즐거움보다 무용을 할 때 더 즐거움이 더 컸다는 이영재 대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경북예술고등학교 무용과를 졸업한 후 계명대학교에 입학해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그리고 교육대학원에서 무용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그 당시 막연히 갖고 있던 두 가지 꿈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무용복 전문점을 운영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제가 갖고 있는 무용지식과 재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죠.” 결혼을 하고 한사람의 아내로, 세 아이의 엄마로 지내온 이 대표가 본격적으로 꿈을 이룬 것은 2011년. 중학교 시절 다녔던 무용학원 권정숙 선생님으로부터 무용복 전문점 스완의 운영을 제안 받은 것이다.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그녀는 당당히 그 제안을 받아드렸다. 무용전문가답게 이 대표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객들을 맞이했다. 무용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소소한 팁을 알려주는 등 전문가들과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소통했다. “스완을 운영하면서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어요. 항상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시는 부사장님과 디자이너님을 만나게 된 것, 그리고 초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하게 된 것이죠. 스완이 오후부터 문을 여는 것도 이 때문에요.(웃음) 옆에서 묵묵히 응원해주시는 시부모님과 천정어머니, 남편과 아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그리고 부사장님과 디자이너님께도 감사합니다.” 이 대표는 스완을 맡은 다음해인 2012년부터 대구의 계명대학교 국외봉사단 문화공연 안무자로, 동부교육지원청 소속 명예교사로 교육활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그녀는 자신의 두 번째 꿈을 이루기 위해 한발자국 더 나아갔고 재능기부로 시작한 교육활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재봉틀 사용과 무대메이크업에 관심이 생겨 무용인들을 대상으로 메이크업 강의도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스완과 교육활동을 병행하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꿈이 생겼어요. 생생하게 꿈꾸고 상상하면 이뤄진다는 말 아시나요? 덕분에 막연히 꿈꿔온 목표 두 가지를 이룰 수 있었죠. 저의 새로운 꿈은 ‘복합문화예술공간’을 만드는 것이에요. 향후 10년이 지나면 이뤄지지 않을까요?(웃음)” 이 대표의 새로운 꿈은 각 층별로 소극장과 카페, 무용복 매장, 아카데미로 구성된 여러 가지 테마를 가진 복합문화예술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해 자신의 지식과 노하우를 사람들에게 나눌 때 보람을 느낀다는 이영재 대표. 그녀의 아름다운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저에겐 어머니와 같은 정식적 지주이신 장유경 교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늘 마음으로 춤추라고 조언해주십니다. 저는 그 말씀이 너무 좋아서 항상 새겨두는 편이에요. 제게 칭찬과 꾸짖음을 아끼지 않으시는 장유경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1998. 2. 경북예술고등학교 무용과 졸업 •2002. 2. 계명대학교 체육대학 무용학과 졸업 (한국무용전공) •2004. 8. 17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석사학위취득 (무용교육전공) •2004. 8. 17중등학교 정교사(2급)체육 교원자격증 취득 •2003.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폐회식 제작단 보조안무 •2005. 2005년 김천전국체전 개폐회식 제작단 보조안무 •2010~2012. 대구광역시 중견실무자 양성과정 무용강사 •2011~현재. 계명대학교 국외봉사단 문화공연 안무자 •2011~현재. 동부교육지원청 교육(재능)문화예술활동분야 명예교사 •2011~현재. 동부교육지원청 소속 다수 초등학교 교육과정발표회 지도 •2012~현재. 문화·예술·꿈나무 육성을 위한 동부교육 문화.예술 100인 멘토 •2012~2014. 동부교육지원청 소속 특수아동 하계동계 무용·난타수업 •2015. 5~현재. 대구경북춤예술센터 이사 •2016. 3~2018. 2. 동일초등학교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2016. 3~현재. 사)대구광역시학교운영위원연합회 기획분과위원 •2017~현재. 사)우리춤협회 대구경북지회 이사 •2017. 3~2018. 2. 수성구초등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 사무차장 •2018. 3~현재. 동일초등학교 운영위원회 위원장 •2018. 3~현재. 수성구초등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 사무국장 •2018. 5~2023. 대구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 •2018. 8~현재. 대구광역시 수성구교육경쟁력강화협의회 위원 [1060]
    • 문화
    2018-12-13
  • 현사玄史 김도윤 사리도예 대표작가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도예 문화의 도시로서 신라 토기의 맥을 이어온 경상북도 경주, 그곳에 자연 소재를 기조로 한 품격 높은 전수공 청화백자의 명인이 자리하고 있다. ‘사리도예’의 현사 김도윤 대표작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의 청화백자는 하얀 눈밭 위에 피어난 푸른 꽃처럼 은은한 매력이 으뜸이다. 이에 주간인물이 김도윤 작가를 만나 그가 써가는 도예의 새 역사를 주목해보았다. _김미동 기자 자연 소재를 기조로 한 품격 높은 전수공 청화백자로 유명한 사리도예는 경주뿐 아니라 전국에서 그 가치를 찾기 위한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갤러리가 꽤 깊이 위치하고 있음에도 멀리서부터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라며 환히 웃는 김도윤 작가. 그는 다수의 특선·입선뿐 아니라 삼성현미술대전, 국제다도구공모전, 전국찻사발공모전, 경북서예문인화대전 등 50여 회 입상 경험의 소유자다. 또한 다구전을 비롯한 개인전부터 2014 한미중일 국제친환경현대미술교류전 등의 단체전으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산수와 사군자를 담아낸 김도윤 작가의 청화백자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드라마 ‘해를 품은 달’과 영화 ‘봉이 김선달’에 도자기 협찬을 진행했으며, 실용성을 강조한 생활자기들이 신세계 백화점을 비롯한 대구지역의 다수의 백화점에 입점 중이다. 도예의 길로 들어선 지 올해로 25년이라는 김도윤 작가. 그가 도예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했다. “고등학생 때는 제품디자인을 전공했어요. 그러다 기장에 있는 도자기 공방에 체험학습을 하러 가게 되었는데, 손에 닿는 흙의 질감과 조형감이 정말 좋았어요. 당시 입시에 대한 압박감과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것 같았죠. 그 매력에 빠져 곧바로 진로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경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네요.(웃음)” 그는 도예학과를 졸업한 뒤 소지 제조회사 연구실에서 3년간 근무하며 현장감을 쌓았다. 근무지였던 경주가 친숙하게 다가와 2007년 경주에서 사리도예의 첫발을 내디뎠다고. “경주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소담한 매력이 와 닿았습니다. 문화재와 문화유산의 도시일 뿐 아니라 사찰이 많은 것도 좋았어요. 지금도 생활이 매우 마음에 들어요.” 김도윤 작가는 도예가이자 차 문화를 사랑하는 차인으로서 지금까지 수집한 차 종류만 수백 가지에 달할 정도다. “도예가로서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차를 잘 알아야 한다”는 김도윤 작가. “차는 사람에게 기품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정신문화의 꽃이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올바른 차 문화가 더 많이 보급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그는 불자로서도 신실하고 끊임없는 수행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불교에 몸담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무엇일까. “도예를 시작하면서 제 모든 생활의 구심점이 불법(佛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불법은 굉장히 과학적이고 생활에 필요한 부분이에요. 덕분에 제 인생에 확고한 신념이 생겼고, 평정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줬어요. 또 어렵지 않게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리도예에서 함께 활동 중인 김해림 작가 또한 불교로 이어진 소중한 인연이라고. 김도윤 작가는 김해림 작가와의 만남을 회상하며 그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내비쳤다. “김해림 작가님은 원래 비구니이자 그림과 도예에 능한 분이세요. 회사에서 근무할 당시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이분에게 꼭 배움을 얻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감사하게도 함께 하게 되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인복은 타고난 것 같아요.(웃음)” 김도윤 작가의 품격 높은 청화백자는 많은 정성 속에서 탄생한다. 먼저 고령토 등 외국에서 가져온 흙을 작업장에서 배합 후 물레성형의 과정을 거친다. 그 후 초벌과 재벌 사이에 섬세한 한 획들로 청화를 그리고 유약을 발라 품격 높은 청화백자가 만들어진다. 요새는 흙이 굳기 전 조각을 넣어 입체감과 고급스러움을 살린 도자기에 매진하고 있다고. 사군자를 기조로 하는 문인화에도 조예가 깊은 김도윤 작가는 순백함과 자연이 어우러진 청화백자의 매력에 푹 빠져 처음부터 청화백자를 고집했다. “푸른 안료로 자연을 담아내는 아름다움과 차를 우려내면 꽃향기가 나는 듯한 기조가 청화백자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작업과정에서 가장 신경 쓰는 점은 바로 재료선별이라는데. “탁하지 않은, 청아하고 깨끗한 푸른색을 내기 위해 벨기에 코발트를 사용하고 있어요. 원색안료를 직접 조합하여 원하는 색을 내기도 하고요. 또한 중금속 등 유해물질이 없는 재료를 사용하기위해 유약재료를 직접 들여와 제조하고 있어요. 한국세라믹기술원에 완제품을 의뢰하여 중금속불검출 확인을 받은 안전한 도자기입니다. 이런 부분에 특히 경각심을 가지고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늘 ‘쓰임의 다구’로서의 도예를 생각한다는 김도윤 작가. “다구를 쥐었을 때 그립감과 적절한 무게감, 물형(物形) 등 기술적인 부분에 많은 신경을 기울이는 편이에요. 실제 차 도구를 제작하기 때문에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다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25년간 도예의 길을 걸어온 김도윤 작가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생각일까. “오랫동안 도자기를 만들었지만 가마 문을 열 때면 늘 겸손해져요. 노력에는 끝이 없다는 마음으로, 더 정진해야죠. 또 이제는 일본과 미국, 중국 등 세계적으로 나아가 깨끗하고 안전한, 아름답고 품격 높은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더라도 늘 새롭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김도윤 작가. 현사(玄史)라는 호처럼 신비로운 그의 작품 세계와 밝은 내일을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대한민국 서예전람회(국전) 입선 •대한민국 서예대전(국전) 입선 2회 •대구광역시 서예전람회 특선3, 입선4 •친환경현대미술대전 금상, 은상, 동상 수상 •신조형 미술대전 우수상, 특별상 수상 •경북서예문인화대전, 전국찻사발공모전, 정수미술대전 •삼성현미술대전, 국제다도구 공모전 특선 外 50여 회 입상 •개인전 3회 •2014 한미중일 국제친환경현대미술교류전(미국시애틀) 外 단체전 다수 •現 친환경현대미술서예대전 심사위원, 한국서예협회 회원, 대구경북서예가협회 회원, 산노을먹그림연구회 회원, 친환경예술협회 회원, 경주 사리암 사무국장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영화 봉이 김선달 협찬 [1060]
    • 문화
    2018-12-13
  • 이주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공연영상창작학부 무용전공 교수
    현재 한국 무용사에서 전통 춤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던 무용가들의 창작활동이 주춤한 가운데 대신 전통 춤에 몰입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전통 무용춤이 부상, 활성화를 위하여 묵묵히 평생 외길을 걸어온 모녀가 있다. ‘모녀전승’은 올바른 전승의 의미를 두고 시작한 전통 춤 공연으로 독자적인 매력의 춤사위를 선사하는 한순서 명인과 그의 딸 이주희 교수를 만나 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_우호경 차장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떠보니 춤을 추고 있었다” 한순서 명인의 아래서 자란 이 교수. 그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부터 춤을 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교수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성장하여 어린 나이에도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서 어머니가 춤을 추는 모습을 늘 지켜보곤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교수의 어머니인 한순서 명인은 평양 출생이며, 77세 나이다. 가야금 산조의 명인으로 잘 알려진 강태홍 선생으로 부터 피난지인 부산에서 춤과 음악을 처음으로 사사 받고 17세에 자신의 이름을 건 ‘한순서 전통춤연구소’를 부산에서 열어 이듬해 개인발표회를 하는 천재 무용가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이러한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성장하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떠보니 춤을 추고는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도 매일매일 반드시 춤 레슨을 받고, 어머니가 운영하는 단체에서 공연을 하며 음악대학을 가서는 가야금 전공을 했다. 그가 음대에 진학한 가장 큰 이유는 춤을 추는 사람은 음악을 알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권유로 음대를 가게 된 것이다. ‘살아있는 자료’인 어머니의 춤을 수십 년 째 전승, 발전시켜오는 가교 역할을 하다 이 교수는 현재 중앙대학교에서 예술대학 공연영상창작학부 무용전공 학생들을 18년째 가르치며 늘 진심으로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는 교육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 교수는 전통문화를 새롭게 전승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고 전했다. 그가 2002년 모녀 전승 타이틀로 공연을 정한 이유는 전승의 의미를 바르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이 교수는 어머니와 같은 무대에 12번이나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으며, 그 공연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감동적인 무대는 첫 번째 국립국악원에 모녀전승이라는 타이틀에 함께 섰던 기억이 가장 남는다며 전했다. 이는 모녀가 함께 춤을 추었으며 어머니가 춤을 추면 내가 받아 추고, 내가 춤을 추면 어머니가 춤을 추는 방식으로 공연을 마쳤다. 당시 이 교수는 절대 어머니의 춤을 능가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후회의 감정이 스쳤다며 전했다. 일본 유학당시 가장 친했던 친구는 어머니와 함께 춤을 추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수십 년 춤을 추어 온 어머니의 농익은 춤의 표현을 어찌 감히 따라할 수 있느냐고, 흉내는 낼 수 있을지언정 절대로 어머니의 춤의 세계는 쫓아갈 수 없다는 말에 이 교수는 그 말에 공감하여 그 이후부터 어머니하고는 같은 무대에서 공연을 할 때는 똑같은 춤을 추지 않는다고 한다. 이어 이 교수는 다양한 춤 세계 중 ‘상장고’라는 춤에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상장고란 이 교수가 붙인 ‘설장고’의 다른 이름으로, 판 굿에서 장구 연주자가 혼자 나와 멋진 발놀림(몸동작)과 화려한 장구 가락을 보이는 놀이를 가리킨다. 또한 최근 들어서는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살풀이, 승무, 오고무 역시 그 매력 속에 푹 빠져있다. “춤은 내 인생에서 엄마와 같은 존재입니다. 엄마에게는 응석도 부리고 때론 떼를 쓰고 하는 편안함도 있고, 떨어질 수 없는 존재처럼 내 몸의 일부입니다. 수십 년을 무대 위에 섰는데도 아직도 공연 시작 전에 떨립니다.” 하지만 무대 위에 조명이 밝아지기 시작하면 긴장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온몸에 신이 오신 것처럼 장단을 치고 북을 치면서 무대를 즐기는 이 교수. 춤의 기본적인 골격은 있지만 이 교수의 신명 나는 춤과 장단은 매번 관객 반응에 따라 시간과 길이 역시 예측을 할 수가 없는 작은 거인 같은 열정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한국에 문화 예술가들은 무대에서만 빛이 나던가, 아니면 학자로 서만 인정을 받던가 하는 사회구조적인 것이 때론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무대에 서야하기 때문에 정체성이 흔들릴 때로 있었죠. 직업인으로 살아야 하니 좀 더 좋은 테크닉으로 다가가야 하는데 몰입하지 못하고 학자로서 논문도 써야 하지만, 예술가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두 가지 역할의 무게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교수의 장기계획은 나만의 고유의 ‘이주희 스타일’로 다시 만드는 것과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춤을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주간인물은 그의 열정과 에너지, 이 교수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그녀만의 신명 나는 춤사위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행복해지길 확신하며, 그의 예술 인생을 주목해본다. 이주희 주요연혁 •중앙대학교 공연영상창작학부 무용전공 교수 한순서 주요연혁 •한순서 춤연구소 대표 •평남무형문화재 4호 평남수건춤 보유자 [1060]
    • 문화
    2018-12-13
  • 김복임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 회장 / 일지무용단 예술총감독 / (재)남산전통예술아카데미 이사장
    2017년 10월 「제1회 남산골에서 명인과 함께하다」 공연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 전석 매진을 강타했으며, 2018 남산 코우스에서 공연을 본 많은 관람객들의 박수갈채가 끊이질 않았다. 올해 역시 ‘남산골에서 명인과 함께 하다’ 공연과 경연대회를 기획하여 여러 명인선생이 모인 제 2회 남산골 은빛축제의 주인공인 김복임 회장. 주간인물은 그를 만나 40년 동안 외길 인생, 오로지 춤이 그의 인생이 전부인 전통문화의 향연으로 깊숙이 빠져 들어가 보았다. _우호경 차장 인생 2막의 시기, 용감한 도전 100세 시대를 위한 문화공연의 장을 마련하다 ‘남산골에서 명인과 함께 하다’라는 타이틀은 국립극장 전통아카데미에서 배우고 있는 회원들의 예술을 발표할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무대이다. 회원들만의 출연으로 공연프로그램을 만들기 보다는 전국의 춤 명인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면 양질의 공연이 될 것 같다는 김 회장의 뜻깊은 기획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00세 시대를 향해가는 요즘 중·장년층과 실버세대가 중심이 되어 기탄없이 모든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공연과, 전통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공연을 올리고 싶은 김 회장의 염원을 담았다. 지난 10월, 「제 2회 남산골에서 명인과 함께 하다」 공연은 한국문화의 집 코우스에서 공연을 하였으며 이병옥 교수의 사회, 국수호의 남무, 이성훈의 동래학춤, 권명화의 소고춤, 한순서의 평남 살풀이, 왕기철의 판소리, 이주희의 오고무, 그리고 김 회장의 태평무로 화려하게 무대를 장식했다. 특히 왕기철 예술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엄니판소리 일부 중 명창소리로 많은 관람객들이 감동의 눈물을 훔쳤다. 김 회장은 2015년부터 콩쿨을 창설 해야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갖고 이번 대한민국 남산골 은빛축제에서 제 1회 남산골 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하였다. 전주에는 전주대사습이라는 전통예술을 대표하는 경연대회처럼 남산골 서울에서도 전주에 버금가는 남산골 은빛 축제가 명성을 떨치길 염원하고 있다. “남산골과 은빛”의 의미는 30여년을 남산에 매일 출근하듯이 춤을 배우러 오다보니 이곳에 많은 애정이 생겼고 머리 하얗게 센 중·장년층의 출전하는 경연의 장을 의미한다. 자격은 대한민국 45세 이상의 성인 남녀로, 중년(45세이상) 장년(60~70세이상)부와 실버부(70세이상) 그리고 종목은 판소리 민요, 무용 기악 등의 나뉜다. 국악경연대회는 영리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전통춤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함이 목적이다. 무용전공자들은 콩쿨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비전공자들은 전공자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추어 춤 공연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저 좋은 결과를 얻게 되면 힘을 얻게 되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 한국의 춤과 악을 사랑하는 문화지킴이 행렬에 각계 각층의 응원과 축하 메시지 ‘남산골에서 명인과 함께 하다”를 함께 하며 우리 전통문화의 향연으로 늦가을의 아름다움을 더욱 뜻깊게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溫故知新의 정신으로 100세 시대를 위한 문화 공연의 장을 마련하고 기획하신 김복임 회장과 많은 분들의 수고와 정성에 응원과 축하를 드립니다. _국회의장 문희상 우리사회는 노령화 시대가 이미 와 있는데도 노령의 인구들이 직접 참여하고 일을 새롭게 꾸밀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하고 실제로 그런 분위기도 조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은 아직도 식민지 폐허에서 대한민국을 일으킨 열정을 지니고 있는데 이분들이 참여할 사회적 공간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김복임 회장은 공연을 직접 기획하시고 참여하는 큰 무대를 마련하셨습니다. 이 무대가 전통문화로 꾸며졌기에 더욱 값지고 의미가 있습니다. _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안민석 예술을 감상하고 나누기에 더 없이 좋을 계절입니다 지난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남산골에서 명인과 함께 하다”가 올해 2회 공연을 이어가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중장년층과 실버층을 위한 국악경연대회도 마련되었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됩니다. 이처럼 뜻깊은 행상들을 한데 모아 2018 대한민국 남산골 은빛 축제를 준비해주신 남산전통예술아카데미협회 김복임 이사장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_서울특별시의회 의장 신원철 김복임 여사의 지난여름 내내 화두는 은빛 축제공연과 경연대회에 관한 일념뿐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이 흰옷을 입고 각 지역 아리랑을 부르고 춤을 추며 농경을 하던 멋쟁이 이었다는 것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지요?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100년 문화의 정서를 하루빨리 되찾아야할 때입니다 김복임 회장은 이런 사회적 현상을 몸으로 느끼면서 정치인이나 예술계 종사하는 전문가가 하지 못하는 일을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참여하신 예술가와 경연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김복임 여사 파이팅!! 힘내십시오. _한국무용가 국수호 이어 김 회장은 “경연대회에 상장을 보내주신 지상욱 국회의원님과 서울시 중구의회 의장이신 조영훈 의장님과 서울시 중구청 서양호 구청장님의 여러가지 배려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라며 감사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 회장은 실력있는 예술가들의 도전과 새로움을 담아낼 자리를 지켜나가고 싶다고 강조한다. 20여년 전 국립극장과 첫 인연을 맺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이곳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평생 외길을 걸어왔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전통 문화의 명맥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한다. 말로만 외치는 전통이 아니라 그야말로 ‘전통이 우리 곁에서 함께 숨 쉴 수 도록’ 하기위한 김 회장의 노력은 칠순이 넘어서까지 진행 중이다. 무대 위에서 뿐만 아니라 최근들어 서울시의회 등 각 지자체 관련부처에 직접 찾아가 개선해야 할 점을 건의하기도 하고 새로운 공연이나 행사를 자비를 들여서 공연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김 회장은 “열정에는 나이가 없다. 또한 커져가는 실버산업 시장에 우리 전통문화가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라며 소신을 펼쳤다.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잘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종횡무진하고 있으며 전통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김 회장.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전하는 김 회장의 높은 사명감과 열정에 뜨거운 응원과 박수를 보내며 늘 건강하길 기원한다. [1060]
    • 문화
    2018-12-13
  • 이종기 예원학교 교장 · 지휘자
    대중가요의 광화문 연가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덕수궁 돌담을 따라 걷는 정동길은 대한민국 모두에게 아련한 첫사랑 같은 아름다운 추억들을 가지고 있는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길이다. 이길 따라 걷다보면 건물은 소박하지만 세계적인 예술교육의 요람인 예원학교가 눈에 띈다.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미래를 열어 가는 세계적인 예술교육의 산실로서 예술인 양성의 시초이다. 이에 예술인을 양성하는 학교의 교육자이자 현재도 지휘활동을 멈추고 있지 않은 예술인 이종기 예원학교장은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인성과 영성, 예술성을 갖춘 최고의 예술가를 길러내기 위해 최선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간인물은 이종기 교장을 만나 교육현장과 그의 예술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_우호경 차장 참된 가치, 참된 교육 세상에 예술의 향기를 입히다 예원학교의 오케스트라 예원학교는 자유, 사랑, 평화를 교훈으로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 하나님과 인간을 깊이 사랑하며 세상에 평화를 만들어가는 참된 사랑, 참된 예술가를 키우는 학교이다. 또한 예술은 인류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이자 참된 예술은 참된 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에 학생들의 예술적 재능과 인성이 조화를 이루며 성장하도록 돕는 예원학교. 예원학교와 이 교장은 기본에 충실하고 실력있는 예원인, 마음이 따뜻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예원인, 긍정적이고 감사할 줄 아는 예원인을 양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학생들의 타고난 창조성이 온전히 꽃 피울 수 있도록 실기 능력 연마와 예술의 혼을 기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국의 실력 있는 예술인들은 예원학원을 다녔을 만큼 한국 예술교육의 중심이자 내일의 창조가 기대되는 학교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일정한 전형을 거쳐 음악, 미술, 무용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선발하고, 선발된 학생들의 재능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 수준에서도 매우 뛰어나다. 또한 선생님들의 교육적 자질과 실력은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있으며, 특히 실기를 담당하는 교수진들은 국내외 예술계에서 두드러질 만큼 실력과 인성이 갖춰져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원학교는 수많은 예술인들을 배출한 만큼 전통과 배경을 자랑하며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예술을 통해 대한민국과 세계를 아름답게 비추고 있다. 음악, 인생의 기쁨이자 행복! 우아한 선율에 몸을 싣고 오케스트라를 인도하는 지휘 참관 수업모습 이 교장은 유년시절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유난히 목소리가 아름다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합창단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전국대회에 나가 3년 동안 우승을 하게 된다. 이후 음악과 사랑에 빠지며 성악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 교장. 그는 서울에 상경하여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서울예고 입학시험에 응시했고, 당당히 합격하여 성취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아버지는 엄격하였지만 고등학교 합격 후 물신양면으로 지원해주어 이 교장이 성악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후 자신의 모교인 서울예술고등학교의 음악교사로 재직하였다. 이 교장의 모교이자 젊음을 쏟은 학교에서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 찾아오는데 바로 대한민국 최초 지휘자 임원식 선생님이다. 83년도에 자신이 지휘를 보고서는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 지휘가 엉망이라고 야단치며 공부를 해야 한다고 질책했다. 그러나 임 선생님은 성악을 전공한 이 교장을 따로 불러 지휘에 소질이 있으니 전문적으로 공부해 볼 것을 권유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후 임 선생님의 공연과 연습에 참여하며 훈련하기 시작했고,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해외 연주를 다니며 지휘자로서의 면모를 갖춰갔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한계를 깨닫고 대학원을 진학하여 거기서 서울대학교 이남수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또한 임 선생님의 제자이자 당시 필하모닉 임현정 지휘자는 이 교장의 멘토가 되어주어 지휘자로서의 자질과 실력을 채워주고자 했다. 스스로 더 발전하고자 했던 이 교장은 해외유학을 가고자 예원학교 최원형 이사장에게 유학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다. 교사급여를 받지 않고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 발전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했던 이 교장은 이태리 빼스까라 아카데미아 지휘과에 합격하여 지휘자로서의 면모를 갖춰갔다. 한국에 돌아온 후 최 이사장은 따뜻하게 맞이해주었고, 유학기간 동안의 교사급여까지 전해주며 예원학교의 학생들을 잘 양성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후 지휘자, 교사, 교장으로서 학생들과 소통하며 체계적인 교육 아래 미래의 예술인을 배양하고 있다. 체육대회 때 학생들과 어울리는 모습 지휘가 자신의 기쁨이자 행복이라 말하는 이 교장. 그는 학교에서도 학생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며 예술로서 교감하고 있다. 특히 가능성이 많은 학생들이기에 학교에 들어올 당시 특정 악기나 무용을 하더라도 그들이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한다. 예원학교에 합격하지 못한 친구들도 자신의 예술의 꿈을 놓지 않고 달려 나가길 희망한다는 이 교장은 아이들이 지금의 실력이 전부가 아님을, 예술은 삶 그 자체이기에 더 즐기고 예술로서 행복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진정한 예술의 가치를 전달하고 지휘자로서 그 삶을 실천하는 이 교장. 잔잔한 선율이 그의 지휘를 타고 전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그의 역할로 세계를 물들일 예술인이 탄생하기를 기대하며, 음악으로 평화와 사랑, 자유를 선사할 그의 발걸음을 주목해본다. •서울예고 졸업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이탈리아 빼스까라 아카데미아 오케스트라 지휘과 졸업 •프랑스 행스 국립음악원 오케스트라 지휘과 졸업 •광주시향,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서울 심포니 오케스트라, 서울 필하모닉, 루마니아 국립 오케스트라, 불가리아 국립 오케스트라, 미국 아이소메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국립발레단 등 지휘 •예원학교 음악과장, 부장역임 •현재 예원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 서울로얄심포니 총감독 [1059]
    • 문화
    2018-11-30
  • 김요셉 춤추는 나무 아트센터 대표 / 무용수 · 안무가
    무용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학교에서는 예술과 체육을 대단히 중시했다는 보고가 존재한다. 바람직한 인간의 형성에 예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며 몸으로 표현을 하는 예술적 의미와 체육적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 이상적인 인간 형성에 상승적 작용을 한다 할 수 있다. 국가적으로 서양에서는 무용이 대중화 되어있어 타 국가에 비해 풍요로운 문화적 삶을 누렸다는 고려할 때 많은 점을 사사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예술을 존중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확산되어 있으며, 올바른 지도자들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주간인물은 예술과 인성을 정직하게 지도하는 춤추는 나무 아트센터 김요셉 대표를 만나 그의 예술 인생과 교육철학에 대해 집중조명 해보았다. _장보연 기자 “학생들과 만나 춤으로 대화할 때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느낍니다” 뮤지컬과 연기, 보컬 수업을 담당하는 예도희 선생 춤추는 나무는 김 대표가 사람이 중력권에서 바닥에 발을 디디고 있는 관계처럼 나무와 같이 깊게 뿌리내려 춤을 추자는 의미와,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뤄 서로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2011년도부터 시작된 소매틱 기반의 무용전문센터이고 현재는 뮤지컬 보컬 및 연기까지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 대표는 어릴 때부터 춤을 춰 이유없이 몸이 아프기도 했는데, 이는 대다수의 무용수들이 겪는 일이다. 이에 왜 몸이 아플까? 라는 근본적인 이유를 찾기 시작해 몸을 쓰는 방법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심도 있는 탐구를 하게 된 김 대표. 그는 학생들에게 평생 알아야 하는 기본기부터 전하며 해부학과 몸을 어떻게 사용하고 관리해야 되는지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소수 입시전문센터에서는 입시교육 위주이나 춤추는 나무는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학생들이 몸과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즉 훈련을 통해 평생 습관이 되고 자기주도적으로 자각력을 높이도록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춤은 몸을 통해 감정과 예술을 표현하는 활동이기에 몸의 변화는 삶의 변화까지 일으킨다고 전하는 김 대표는 항상 인성과 근본적인 해결과 변화를 강조한다. 또한 슬럼프에 빠진 학생들에게는 영상과 책, 온갖 자료를 통해 동기부여 시켜주고자 노력하며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명상하듯 근원적인 것을 찾아가는 춤의 세계 콜롬비아 수업 및 공연 부산에서 태어난 김 대표가 본격적으로 무용을 시작한 것은 고3 봄이 올 무렵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방송 댄스를 즐겼던 김 대표는 학교에서 하는 장기자랑과 학예회 등에 나가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몸을 쓰고 무용하는 것이 즐거웠으나 고등학교에 입학 후 자연스럽게 춤을 그만두고 평범한 학생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김 대표. 그러나 예술에 대한 꿈틀거리는 마음으로 방황하던 김 대표에게 부모님이 현대무용을 해보라고 권유하는 계기로 처음 현대무용을 접하게 된다. 당시 예술이라는 것을 하고 싶으나 명확한 길을 찾지 못했던 김 대표는 부모님의 권유였으나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부산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늦게 시작한 만큼 배움에 대한 갈구함이 컸던 김 대표에게 느슨한 수업은 답답함을 주었고, 우연히 외국에서 잠시 특강을 온 선생님을 통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이하 한예종) 의 창작과를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방학기간 동안 오로지 한예종을 가겠다는 의지로 연습에 매진하여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한국 최고의 예술종합학교인 한예종에 입학하게 된다. 학교 시스템 자체가 다른 한예종에서 실기와 무용만을 생각하며 더욱 무용에 집중하며 의지를 다져나갔다. 김 대표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산과 들을 뛰놀고 몸을 많이 움직이면서 사용했기에 그것이 무용을 하는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움직임 경험을 물어봅니다.”라며 지난날의 경험을 전했다. 또한 김 대표는 저는 춤을 통해 명상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깊이 들어가면 명상을 하는 이유가 생각과 스트레스가 벗어나는 것처럼 오로지 나의 근원적인 것과 만나 제 자신이 차분해짐을 느낍니다.“라며 춤을 향한 깊은 생각을 표현했다. 춤추는 나무 무용 수업사진 춤 이전에 첫째도 인성, 둘째도 인성이라고 말하는 김 대표는 그 사람의 인성이 몸짓에 드러나기에 한 사람의 생각, 철학, 기술이 결합된 예술이라 말한다. 삶 그 자체도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 대표는 무용예술이 추상적이지만 그 길이 본인에게 추상적이면 갈 길을 잃기에 그 길을 가는 방법론이 구체적여야 하고 나침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장기적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단순히 대학입시를 위해 춤을 추는 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전한다. 또한 향후 한국의 예술인들이 유럽이나 미국에 배우러 나가는 것처럼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한국에 와 배울 수 있도록 움직임을 더 연구하고 앞으로도 무용을 하고 학생들을 가르쳐 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김 대표. 주간인물은 그를 통해 대한민국의 몸짓을 한 마리의 나비처럼 전 세계 곳곳에 알리는 무용수들이 탄생하기를 기대하며 예술 그 자체인 김 대표의 삶을 응원해본다. 서울아트마켓공연 [ 주요이력 ]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예술사 및 전문사 졸업 •現 춤추는나무 아트센터 운영 •국립현대무용단 조엘부비에 <왓어바웃러브> 출연 •국립현대무용단 안무가베이스캠프 <헨델과 그레텔들> 출연 •SCF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 해외초청작 선정 <곰뱅이텄다> 안무 및 출연 •프랑스 < 센센드니 페스티벌>, <무브몽 쏠라빌> 초청 •리투아니아 < AURA 페스티벌> 초청 •프랑스 Pirre Rigal 무용단_Theatre of Operations 출연 •Tvn 드라마 "두번째 스무살" 안무 •아시아 이베로아메리카 재단의 주관 "아트드림캠프"참여_콜롬비아 공연 •Cie Yann Lheureux & K-arts안무집단의 <Red Circle> 조안무 •제6회 서울 국제 즉흥 춤 축제 <듀엣 즉흥> 등 작품출연 및 안무 •하이 서울 페스티벌 폐막작 컬러 댄스 카니발 안무 •춤추는 나무 무용단 "안녕, 낯선사람" 안무 •2015춘천아트페스티벌 기획공연 <댄스하우스> 안무 [ 자격 ] •Feldenkrais 프렉티셔너, MBS ACADEMY, 독일 •Movement Intelligence 프렉티셔너 자격 •Primal Move 프렉티셔너 [1059]
    • 문화
    2018-11-30
  • 권용희 경북문화예술협회 회장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이자 교육도시인 안동. 최근 이곳에서는 문화예술을 통한 화합과 부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지역예술인들이 발벗고 나섰다. 이들은 올해 7월 경북문화예술협회를 설립하는 등 문화향유의 폭을 넓혀 지역발전을 선도하는 중이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공연을 통해 지역예술의 활성화와 발전을 모색하고 있는 경북문화예술협회의 권용희 회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곽인영 기자 ‘지역민이 곧 지역예술인’ 안동색소폰오케스트라를 시작으로 경북문화예술협회 설립 안동의 침체된 음악의 부활을 꿈꾸며 2010년 4월 1일에 창단된 안동색소폰오케스트라는 음악을 즐기고 색소폰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봉사단체이자 순수민간예술단체다. 상임 지휘자를 맞고 있는 권용희 회장을 중심으로 가족초청음악회 및 지역주민들을 위한 음악회, 찾아가는 음악회,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강바람음악회 등 활발한 활동으로 지역민들에게 수준 높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또한, 안동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민들에게도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통해 아름다운 음률과 하모니를 전파 중이다. 2013년부터는 안동시로부터 우수학습동아리로 선정되어 더욱 왕성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으며 이는 올해 7월에 창단된 경북문화예술협회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경북문화예술협회는 2010년에 창단된 안동색소폰오케스트라를 시작으로, 2012년 윈드오케스트라를 창단하며 지역문화예술의 발전과 콘텐츠 개발 등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문예술인들을 비롯해 평생학습자, 지역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예술 공동체로 ‘지역민이 곧 지역예술인’ 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갖고 더 나은 사회적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협회 창단을 계기로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경북지역 문화예술의 우수성을 알리고 발전시켜 건강하고 행복한 경북도민 예술인공동체가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문화예술인들의 관심 속에 설립된 경북문화예술협회는 올해 7월 권용희 회장과 함께 경북지역 색소폰 8개 단체 (안동색소폰오케스트라, 청송색소폰오케스트라, 경북도청색소폰앙상블, 경북소방색소폰오케스트라, 영양바람소리색소폰동호회, 예천색소폰오케스트라, 진보색소폰소리, 노블팝스오케스트라) 160여명의 회원들이 문화부흥을 위해 야심차게 첫발을 내디뎠다. 지역문화 예술발전을 위한 기틀 마련에 앞장서고 있는 이들은 이미 경상북도의 홍보대사 역할과 더불어 많은 공연을 기획하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 특히 지난해 6월에는 광복 72주년을 기념해 이틀간 울릉도와 독도에서 열린 ‘2017 경북을 노래하자’ 음악회에서 ‘애국가’와 ‘독도는 우리땅’ 등을 연주하며 음악으로 국토수호 의지를 표명하고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대해 권 회장은 “독도에서 연주를 했을 당시 저와 똑같이 단원들과 관객들도 큰 감동을 받았는데, 음악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이러한 행사는 어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가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서적 안정과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음악은 국가를 넘어 인류를 화합시키는 문화입니다” “음악은 즐거움이자 행복입니다. 우리 인생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죠. 국민소득 3만 불이 넘는 선진국이 되면 문화향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속도를 보면 이미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화를 가장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음악의 역할이 커지는 시대가 도래 했다고 봅니다.” 현재 진주시립교향악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안동에서 색소폰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등 외부출강을 펼치고 있는 권용희 회장. 음악을 ‘국가를 넘어 인류 모두를 통하게 만드는 문화’라고 정의했다. 6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며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음악을 접했던 그는 중학생시절 관악연주회에서 색소폰의 선율에 매료되면서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권 회장은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즐겁게 들어주면 기쁜 것처럼 제가 연주하는 곡도 마찬가지다”며 “음악은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공감이라고 생각한다”고 웃어보였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음악세계로 스며든 그는 꾸준한 재능기부를 통해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공연을 하며 음악에 대한 애정과 성취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은 평생 학습도시로 선언한지 15년이 지났습니다. 인구 16만 명 중 색소폰 연주를 즐기는 분들은 1천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노령인구가 많지만 배움에는 나이와 직업은 장벽이 될 수 없어요. 음악을 통해 가까이서 문화예술을 향유해야 할 때입니다. 또한 지친 현대인들의 축 처진 어깨를 안아주며 위로하는 것은 바로 음악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한 만큼 경제발전 속도에 맞게 문화를 향유하는 의식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이처럼 유흥문화보다 건강한 문화를 정착시켜 따뜻한 사회가 만들어지길 바란다는 권용희 회장은 다가오는 12월 27일에는 송년음악회를, 그리고 내년 1월에는 경북의 교류도시인 베트남과 교류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지역을 알리기 위해 일본과 교류마켓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경북지역 음악을 대표하는 선구자의 얼굴로 평생을 음악과 함께해온 권 회장. 오늘도 안동에서 문화적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1059]
    • 문화
    2018-11-30
  • 조홍 한국의 전통춤을 추는 예술인
    올 가을 10월에 국립국장 전통예술아카데미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 남산골 은빛 축제 제 1회 남산골 국악경연대회에서 당당히 남자부문 도살풀이춤으로 대상을 수상해 인생의 제2막 춤을 통해 날개짓하며 날아오르고 있는 조 홍 선생. 춤이 있어서 노후가 행복하다는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_우호경 차장 경기도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담고있는 도살풀이춤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다 도살풀이춤은 경기도 남부에 마을굿인 경기도당굿에서 연희되던 춤으로 독특한 경기도당굿의 제의적 요소와 음악과 춤사위에서 여타의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경기도 지역만의 문화양식적 역사성과 문화적 예술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무속계열의 춤이다. 이 도살풀이춤은 흉살과 재난을 소멸시켜 마을의 안녕과 나아가 행복을 맞이한다는 종교적 소원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다. 도살풀이춤은 매우 제의적이지만 소박한 삶의 깊은 뜻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춤사위와 긴 수건에 의해 그려지는 공간상의 유선이 매우 다양하며 그 형태가 하나의 소박한 화폭과도 같다. 또한 각기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의 자유로운 춤사위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제의적인 내면의 멋과 외면적 역동성의 표현미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독특한 경기도당굿 장단과 어우러져 경기도만의 독특한 멋과 뛰어난 예술성을 표현하고 있다. 도살풀이춤의 반주음악은 경기도당굿 무악으로 매우 다양하고 독특한 장단구조로 이루어진 2분박6박자의 도살풀이장단(섭채)으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 장단에 발도 못 맞출 정도로 특색 있게 구성되어 있다. 조 선생이 다시 춤을 만난 것은 영주 부석사 밑에 소백산 안에 예술촌이라는 마을에서 전문가들인 쟁이들(춤과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 모여 '하루 저녁 멋지게 한판 놀아보자' 하며 공연을 하다가 시작되었다. 또한 그 당시 총무 스님으로 계셨던 범종스님하고 15년째 인연을 맺고 있다. 일주일 3일 이상은 경기도 안산에서 안동 광흥사 범종스님이 계시는 절에 내려가 범종스님을 돕고있다. 현재 범종스님은 훈민정음 해례본인 대한민국의 소중한 문화재를 찾는데 큰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뜻에 따라 조 선생 또한 오른팔같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춤 공연을 보면 그 동작에 내 몸이 실려가는 느낌입니다" 경북 대구에서 태어난 조 선생은 유년시절 또래 아이들보다 남다른 감각을 지닌 소년이었으며, 중학생이 되어 장래희망이 스님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조 선생은 풍물에 재능이 있었던 어머니를 통해 자연스럽게 유년시절부터 판소리와 국악에 특별한 관심과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고등학교에 진학 할 무렵에는 본격적으로 전주에서 판소리를 공부했다. 당시 대금과 가야금으로 이름이 알려진 원광호 선생이 본격적으로 국악 공부를 권유했으며 이후 전주의 이일주 선생에게 본격적으로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조 선생은 대학교 진학 후 국악과 춤에 대한 열망과 그리움을 가슴에 담은 채 결혼을 하고 평범한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현재의 요식업을 하며 안정된 삶 속에서도 ‘자신이 꼭 가야할 길이 있는 것처럼’ 가슴 한 켠에는 한국 전통 춤에 대한 간절함과 염원이 늘 남아있었다고 전하는 조 선생. 그는 2005년 경남 밀양 하보경 선생님의 공연을 보러 다니는 등 전통 춤에 대한 열정이 끊임없이 이어져 50대 초반에 남산에 있는 국립극장전통예술아카데미에 등록을 하여 김복임 現회장과 인연이 닿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춤을 추게 되었다. “춤 공연을 보면 그 동작에 내 몸이 실려가는 느낌이다" 라고 말하는 조 선생. 그는 스스로 느끼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며, 자신의 열망과 욕구를 채워주는 춤을 출 수 있도록 내조해 준 아내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또한 공연을 할 때마다 참석해 축하와 격려를 보내주며 금전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은 가족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자신이 춤을 출 수 있다고 말하며, 조 선생은 현재 사찰에서 제사와 49제를 위한 춤을 추며 전통예술을 널리 알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삶을 단순화 시키고 싶다. 타 공연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면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 했으나 실제로 해보니 쉽지가 않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춤은 나의 인생에 동반자다. 무대가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교감하며 공유하는 일은 가슴 벅찬 행복함을 느낀다." 조 선생은 10년 후 칠순 잔치에 가족들과 지인들을 모아 자신의 춤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에 대해 소망과 염원을 가지고 있다. 그는 도살풀이 춤을 추기 위해 버선을 신으려고 잡아당기는 순간 희열을 느끼며, 한발짝 내딛을 때 늘 긴장 속에서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조 선생은 “그래! 내 인생, 제 2막 노년기에 접어들었지만 지금도 춤만 추면 내가 살아 있는 것을 느끼며 몸에 전율이 오르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이 행복감! 나는 정말 행운아다.” 라며 자신을 늘 격려하고 있다. 또한 죽을 때까지 범종스님을 도와 함께 한다는 행운까지 얻은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웃음을 보여주는 조 홍 선생에게 주간인물은 뜨거운 열정과 힘찬 응원에 박수를 보내며, 그의 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해주길 기대해본다. [1058]
    • 문화
    2018-11-22
  • 최진자 시낭송가 / 한국시낭송예술원 대표·논개시낭송협회장
    시낭송 문화는 목소리를 통해 시를 표현하여 마음을 울리는 소리문화예술이다. 음악과 퍼포먼스를 가미하여 예술을 넘어 표현과 감동, 치유의 범위로 넓어지고 있는 시낭송은 그 매력을 인정받아 최근 몇 년 새 크게 활성화되는 추세다. 경남 진주에서 시낭송예술의 문화를 알리고 있는 최진자 시낭송가는 다양한 수상경력과 한국시인협회 인증 시낭송가증서를 보유한 시낭송문화예술인이다. 최진자 시낭송가를 만나 시낭송 문화의 매력에 깊이 다가가 보았다. _김미동 기자 최진자 시낭송가는 소통의 장을 위해 직접 설립한 한국시낭송예술원·논개시낭송협회 대표와 진주교육대학교 평생교육원 시낭송 강사로 활동하며 시낭송 문화를 널리 알리는 중이다. 현재 그녀는 초등학교 도서관 사서 교사로 근무하며 초등학교 시낭송 특강은 물론, 합천 가회중학교, 진주남중학교, 창원남산고등학교, 합천교육지원청 주최 중고등 교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시낭송인문화 특강과 LH, 둥지요양원 등 치유와 감동이 필요한 곳을 찾아 재능기부를 펼치고 있다. 그녀와 시낭송의 만남은 조금 특별했다는데. “대학 시절 많이 힘들고 지쳤을 때, 버스에서 시낭송을 듣게 되었어요.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라는 작품이었는데, 그 시낭송이 꼭 제 마음을 다 아는 것처럼 다가왔어요. 많은 위로와 치유가 되었죠. 당시에도 막연히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사는 일이 바빠 한동안 잊고 살았어요.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운 후에서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싶었죠. 처음에는 대형마트의 문화강의에서 동화구연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시낭송을 다시 듣게 되었을 때, 운명처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점심시간도 반납하고 개인적으로 선생님을 찾아 조금씩 배우고, 혼자 동영상을 보며 연습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지가 벌써 10년 째네요. 시낭송과의 만남은 제 인생의 큰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낭송은 문학과 예술의 범위를 넘어 목소리와 음악, 퍼포먼스 등을 통해 듣는 이의 마음까지 울릴 수 있는 종합문화예술이다. 최진자 시낭송가에게 시낭송이란 어떤 존재일까. “사실 사람들은 모두 다양한 역할을 맡고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누군가의 엄마, 딸, 아내 등으로 살아가다 보면 자기 자신을 잃을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누구나 각자의 분명한 삶이 있고, 인생이 있어요. 제게 시낭송이란 저 자신을 찾고 돌아보며 발전시킬 수 있는 희망이에요. 덕분에 인생의 제2막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웃음)” “시낭송은 한글로 낭독하기 때문에, 한글사랑과 나라사랑을 동시에 실천할 수 있는 문화예요. 그리고 관객의 마음을 달래고 치유하며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이죠. 외면적 가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음악과 시 선정, 그리고 의미 전달을 위한 정확한 발음이 중요합니다. 또한 진정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낭송에 지나치게 도취되기보다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알아야 해요. 때문에 낭송가 자신이 시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강조할 부분에서 자연스러운 호흡이 가능하고, 듣는 이에게 전율로 다가갈 수 있어요.” 이를 위해 작년부터 뮤지컬과 연극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이렇듯 최진자 낭송가는 시낭송의 종합예술문화를 선도하기 위한 배움의 열정으로 꾸준히 달려가고 있다. “정말 좋아서, 스스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힘들기보다 여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기쁜 마음으로 배우고 익히는 중입니다. 체력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틈틈이 걸으며 시낭송을 연습하기도 해요. (웃음)” 시낭송을 공부하며 시창작에도 빠져들었다는 최진자 시낭송가. 사실 그녀는 대학 시절부터 시창작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고. 최진자 시낭송가는 3년 전부터 유홍준 시인에게 시창작을 배우기 시작하여 제1회 김동리 문학제 운문 부문 우수, 제27회 BNK경남은행 여성백일장 운문 부문 차상과 형평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그 재능을 넓게 펼치는 중이다. “유홍준 선생님께 처음으로 보여드렸던 시가 ‘개나리꽃’이라는 헌사시였어요. 몸이 많이 아프던 친구에게 쓴 시였죠. 그때 유홍준 선생님께서 ‘시낭송 그만두고 시 써라’고 농담하셨던 일이 생각나요. (웃음) 덕분에 시창작의 매력을 알 수 있었고, 시낭송을 할 때도 더욱 깊이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최진자 시낭송가는 현재 초등학교 도서관 사서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과 시낭송으로 소통 중이다. “원래 전공이 도서관학이었어요. 처음에는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사서 일을 시작했죠. 하다 보니 ‘시낭송과 접목해서 잘 살릴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이후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도 수료했습니다. 아침에 시낭송으로 방송조회를 하고 나면, 전혀 관심 없을 것 같았던 아이들도 시구절을 읊으며 다가와요. 그런 것을 볼 때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죠.” 시낭송을 가르칠 때 가장 행복하다는 최진자 시낭송가는 강의 후 자기 자신도 모르게 변하는 수강생들의 모습에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애정을 엿보였다. “내가 좋아야 누군가에게 알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시낭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죠. 누구나 가슴 속에 지울 수 없는 사연이 있고, 자신의 삶이 있어요. 그 사연을 울리고 낯선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시낭송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시낭송을 통해 진주와 논개, 한글, 시와 문화를 알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하고 배워나갈 예정입니다.” 매 순간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임한다는 최진자 시낭송가. 그녀는 쉴틈없는 일정 속에서도 시낭송과의 만남이 활기찬 제2의 인생을 만들어주었다며 웃어보였다. 최진자 시낭송가의 이유있는 열정과 시낭송과 함께하는 그녀의 인생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제 4회 대한민국 시낭송가 대상 •제 4회 논개전국시낭송대회 대상 •전국시낭송대회 경남예선 최우수상 2회 수상(재능교육주최) •시낭송 지도교사상 연속 6회 수상 •제1회 김동리문학제 백일장 시부문 우수 •전국시낭송대회 서울본선 은상 •대한민국을 빛낸 문회예술체육인 표창장 •제4회 형평문학제 백일장 장려 •제27회 BNK경남은행 여성백일장 차상 •제1회 한국공예문화예술연합 시낭송봉사 표창장 •제4회 김동리문학제 백일장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제5회 형평문학제백일장 장려 •한국시인협회 인증 시낭송가증 •논개사랑 전국시낭송대회 초등 고학년 지도교사상 •창의 인성 한국인 상(예술 교육자 최고상) •신라대학교 도서관교육 석사졸업 •사)국제시낭송연합예술원 진주지회장 •경남교육 뮤지컬 <메아리> 연구회 회원 •시마을낭송전문작가회 회원 [1057]
    • 문화
    2018-11-09
  • 김승필 오월공방 대표
    반지는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고자 하는 본능의 표현이자 연인들에게는 변함없는 사람의 표식이다. 부산의 체험 공간 ‘오월공방’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반지를 직접 만든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최근 연인, 가족, 친구 등 고객들의 인기 데이트 코스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한 번 다녀간 고객들로부터 시작된 입소문으로 이제는 예약제를 실시해야 할 만큼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이곳. 이번 주 주간인물은 오월공방을 방문해 김승필 대표를 만나보았다. _곽인영 기자 나무반지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 사업성 갖춘 차별화된 아이템으로 눈길 목공은 일반인들이 결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전문적인 분야다. 그래서 김승필 대표는 악세사리와 나무를 접목시켜 그 벽을 허물고 누구나 쉽게 찾아와 행복한 추억을 새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부산의 전포 카페거리와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7층에 자리한 오월공방이 바로 그곳이다. 구수한 나무향기로 가득 찬 이곳이 ‘오월’이라는 이름을 내건 것은 지난 2013년. 대구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참신한 사업아이템을 구상하던 중 군복무 시절이 떠올랐어요. 가위와 사포 하나만 갖고 참나무로 후임들에게 반지를 만들어 선물했었죠.(웃음) 주변에서 우려도 많았지만 추억을 살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나무반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가구 디자이너 출신이었던 김 대표는 자신의 추억을 고객들에게도 나누고자 했다. 그래서 고객들이 직접 나무종류를 선택해 사포로 가공하고 반지에 쥬얼리 장식이나 이니셜을 각인할 수 있는 나무반지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를 열었다. 이는 전국에서 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원데이 클래스가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김 대표는 운영 당시 소신 그대로 젊은 고객층을 고려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오월공방을 운영해오고 있다. 덕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나누며 개성과 의미를 담은 반지를 직접 만들기 위해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부산에서 찾아오는 고객들이 많았는데, 김 대표는 이러한 고객의 편의를 위해 부산의 전포동으로 매장을 이전하기도 했다. 부산의 전포 카페거리는 평일 저녁 1만 명, 주말 이틀간 5만 명 이상이 찾는다. 그 중에서도 오월공방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차별화된 아이템으로 고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업계의 큰 주목 받은 이곳은 지난 4월 백화점업계 최초로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빌리지 7에 입점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영업 담당자로부터 입점 제안을 받았을 때 백화점 영업이 맞을까 망설였지만, 젊은 고객들의 쇼핑 명소로 유명한 빌리지 7에서 공방체험이 어느 곳보다 잘 어우러질 것으로 예상돼 입점하게 됐다”고 말했다. 입점과 동시에 여전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오월공방은 현재 반지뿐만 아니라, 귀걸이, 목걸이, 도마, 목재 소가구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 악세사리를 제작하고 체험할 수 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친절’ 목공수업 통해 예비창업가들에게 교육기회 제공할 것 오월공방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12가지 나무를 선보이고 있다. 그 중 2~4가지 나무를 집성한 집성목은 색깔뿐만 아니라 내구성까지 고려해 특별함을 더했다. 최근에는 살아있는 순록이끼라 불리는 ‘스칸디아모스’를 선보였는데, 집안 분위기 연출을 위한 소품과 함께 공기정화, 탈취, 천연가습, 실내소음 감소 등의 다양한 기능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나무의 매력은 제작범위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소재라도 나무와 접목시킨다면 가지각색으로 작품제작이 가능하죠. 특히 악세사리나 소품은 더욱 다양하게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늘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김 대표. 그런 그가 오월공방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첫 번째도 친절, 두 번째도 친절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직원들에게 이를 당부하며 고객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위해 늘 노력 중이다. “친절하지 않다면 어떤 사업아이템이라도 성공하기 힘들 거예요. 제일 기본은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직원들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맡은 역할에 자부심을 갖고 성실히 임하고 있습니다. 비록 하루지만 ‘대우받았다’는 기분을 느끼고 행복한 발걸음으로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오월공방은 누구나 쉽게 배우고 따라할 수 있는 방법과 친절한 설명으로 어르신이나 특수학교 학생들도 종종 방문한다. 덕분에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한 곳’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래서 김 대표는 이러한 고객들의 관심에 보답하기 위해 종종 이벤트를 열어 상품을 선물하며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는 가구 디자인과 도면작성부터, 목재가공, 조립, 샌딩 마감까지 한 곳에서 배울 수 있는 목공수업을 통해 예비창업가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나무는 오래될수록 그 가치를 더합니다. 나무를 활용한 카페형식의 1일 체험공방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오월’이라는 이름은 딸의 태명이에요.(웃음)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고 떳떳한, 그리고 고객들에게 늘 사랑받는 곳이 되고 싶습니다.” [1057]
    • 문화
    2018-11-09
  • 김재희 Art Platform GL · 카페 비타리카 대표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갤러리. 서민들의 삶에서는 조금은 멀게 느껴지는 갤러리가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부산 사상구 백양대로에 위치한 주유소 옆에 갤러리 카페 생겨 화제다. 새로운 문화복합공간으로 지역에 활력이 되고 있는 Art Platform GL · 카페 비타리카가 바로 그곳이다. _박미희 기자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더 가까이 문화와 예술을 즐기셨으면 합니다. 소통과 공감의 공간, 젊은 예술인들의 자신의 꿈과 끼를 펼치는 활동의 장을 마련하고 싶어요.” 애정이 깃는 Art Platform GL에서 자신의 경영철학을 말하는 김재희 대표. 양산미술협회에 등록된 화가인 김재희 대표는 문화 예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사람이다. 원래 주유소 사업으로 사업가의 길을 걷던 그는 중년의 나이에 돌연 어릴 때 꿈인 화가가 되기 위해 그림을 공부했다. 자유로운 작품 활동을 하며 다양한 화가들과 교류하던 그는 문화복합공간의 필요성에 대해 느끼게 됐다고. “좋은 작가들이 있어도 작품을 걸만한 곳이 없더라고요. 많은 주민들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문화복합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죠. 제가 소장한 그림과 젊은 작가들의 그림과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원래 운영하고 있던 주유소 사업장의 옆 부지를 매입해 사업화를 추진했다. 경사가 높은 언덕길에 위치한 지형의 특성상, 신축 건물을 짓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고. “제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어요. 짓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죠.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고, 애정이 있는 사업이다 보니 어려움 속에서도 카페를 열 수 있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갤러리를 접할 수 있어 좋다는 인근 주민부터,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까지……. 이 공간을 사랑하는 분들을 볼 때가 가장 큰 보람이죠(웃음).” Art Platform GL에는 상시적으로 작품 전시회가 이뤄진다. 다양한 공연을 비롯해 화폭에 개성을 담은 신진 작가부터 명성 있는 유명 작가의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 전시로 부산 지역 문화계에 신선한 활력이 되고 있다. “문화 불모지인 사상에서 문화 예술의 장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젊은 작가들의 활동의 장을 마련하고, 소통의 매개로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갤러리의 문턱을 낮춰 많은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했다. 갤러리와 연결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매력적이다. 그가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만든 커피는 고소한 향과 단맛과 쓴맛의 밸런스가 좋다. 신선한 제철 오디로 만든 음료부터 소소한 메뉴 하나하나까지 그의 정성이 듬뿍 담겼다. 갤러리 공간만큼이나 카페 공간으로서 매력이 넘친다. 여유 있고 편안한 공간, 카페 곳곳에 액자처럼 트인 창을 통해 서부산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갤러리를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이곳에 와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작품을 감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민들의 생활 속에서 문화를 전하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깊어지는 가을, 생활 속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문화복합공간 카페 비타리카를 찾아가보는 건 어떨까. [1057]
    • 문화
    2018-11-09
  • 신보람 슬라임 만나다 대표
    푹신푹신한 촉감과 특유의 늘어지는 점성을 가진 슬라임. 손으로 만지는 모양대로 변형돼 자유롭게 형태를 만들고 창조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장난감이다. 놀이에 제한이 없고, 쉽게 만들 수 있어 성인들은 물론 초등학생 이하의 아이들에게까지 관심을 받고 있는 아이템이다. 이미 온라인에서 슬라임을 통한 다양한 콘텐츠가 확산되고 있으며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이색 창업으로도 속속 선보이고 있는 추세다. 주간인물에서 찾은 ‘슬라임 만나다’는 진주 지역 최초의 슬라임 카페로,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진주의 이색 공간으로 꼽히고 있다. _김정은 기자 진주 평거동에 위치한 ‘슬라임 만나다’는 체험자가 직접 슬라임 베이스를 선택하고 다양한 파츠를 골라 나만의 슬라임을 DIY로 만들어 볼 수 있는 슬라임 체험카페다. 어린 자녀를 둔 가족단위의 방문객뿐만 아니라 색다른 데이트를 즐기고 싶어 하는 커플들 모두에게 '오감만족' 놀이 공간으로 인기가 높다. “완제품으로 나오는 슬라임과 달리, 슬라임 베이스 선택부터 다양한 색과 향, 파츠 재료를 통해 자신만의 수제 슬라임을 만들 수 있어 많은 분들이 찾아 주십니다. 앞으로 레시피를 더 계발해 다양한 종류의 슬라임을 제공하고, 기존의 방식에서 더욱 간편화할 수 있는 편리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심리적인 안정 효과와 스트레스 해소, 유아의 지능발달에도 효과적으로 특히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슬라임 만나다’. 모든 슬라임 베이스 및 파츠는 유해성 검사를 마친 KC 인증을 획득, 미국에서 수입해 오는 제품도 FDA 승인을 받은 제품만으로 구성했다. 또한 시중에 판매되는 슬라임은 접착력이 강해 옷이나 머리카락에 붙어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의 제품은 수성용풀을 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어디에 붙어도 따뜻한 물로 금방 녹일 수 있어 편리하게 이용이 가능하다. 이어 30가지 향 중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으며, 300여 가지의 파츠가 구비되어 있어 구경하는 재미까지 쏠쏠하다. “단순히 재미를 넘어 만들고 만지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소근육 발달이나 촉감을 통한 정서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어 3~5세의 유아들도 부모님과 함께 많이 찾아오세요. 따라서 안전이 검증된 제품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호흡기에 들어갈 수 있는 붕사 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식용색소 및 천연색소와 향을 사용해 이용자들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슬라임 놀이공간이 대부분 시간당 금액, 추가 금액 등으로 비용을 책정한 데 반해,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요금제로 구성돼 마음껏 공간을 활용하며 즐길 수 있어 경제적 부담까지 줄었다는 후문과 함께 소비자들은 높은 만족도를 표현했다. KC 인증과 FDA 승인 받은 제품만으로 구성 부모의 마음으로 운영하는 슬라임 전문 카페 레시피 개발과 키즈클래스, CS, 직원교육 체계 다져 슬라임 체험 카페 프랜차이즈 진출 계획 키즈카페의 성격이 강한 곳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많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간단한 음료만 구성된 점을 의아해하는 취재진에게 신보람 대표는 웃으며 전했다. “물론 브런치나 식사 메뉴를 판매하면 상업적으로 이윤을 볼 수 있지만, 아무리 좋은 성분으로 만든 장난감이라도 손을 쓰는 체험이기 때문에 음식과 함께 판매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해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여기지 않고,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에 민감하게 신경 쓰는 신 대표. 그 역시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누구보다 부모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진주는 교육 도시로 위상이 높은 반면, 아이들 성장 발달에 도움이 되는 놀이공간이 부족해 늘 아쉬웠어요. 때마침 휴가를 맞아 아이들과 함께 서울에 위치한 체험 공간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슬라임을 만드는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 창의력을 보고 우리 지역에도 슬라임 카페가 생기면 많은 가족들이 기뻐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획을 시작했습니다(웃음).” 슬라임 만나다를 운영하기 직전까지 국내 대표 학습지 ‘교원그룹’의 진주시 지국장으로 근무한 신보람 대표. 20대 후반 최연소 지국장으로 부임해 유·초등 교육을 전문으로 맞춤 코칭을 했으며 ‘슬라임 만나다’를 오픈하면서 수석 지국장으로 퇴임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사랑하고, 교육에 남다른 관심이 컸던 그였기에 망설임 없이 ‘슬라임 만나다’를 창업하게 된 것. 창업 후 가장 보람된 기억은 하루 종일 태블릿PC와 스마트폰만 보는 아이의 정서를 염려하는 부모, 자녀와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아쉬움을 토로했던 가족들이 함께 체험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슬라임 만나다’는 이색 창업인 동시에 소자본으로 1인 체제 운영이 가능해 가맹점 개설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색 창업은 단기간에 인기를 끌고 사라질 위험성이 크지만, 슬라임 카페는 키즈산업과 성인 데이트 소재가 반영돼 오래 인기를 끌 수 있는 소재라고 많이 문의를 하십니다. 슬라임 레시피 개발과 더불어 키즈클래스, CS와 직원교육에 필요한 체계와 역량을 다져 프랜차이즈로 확장해 갈 예정입니다.” 부모의 마음으로 따듯하고 바르게 운영하는 슬라임 만나다의 신보람 대표. 그의 귀추가 더욱 주목되는 만남이었다. [1056]
    • 문화
    2018-11-01
  • 박지호 아톰디자인 대표
    최근 디자인과 인테리어에서 아트페인팅 작업의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아트페인팅은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작업 방식으로 그 소재와 색, 디자인에 따라 수천 가지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 크게 사랑받는 중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다양한 만큼 완성도 높은 실력을 갖추기 어려운 것도 사실. 그런데 여기, 전국 각지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아트페인팅 분야의 선두주자로서 자리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부산의 아톰디자인 팀이다. 주간인물은 아톰디자인의 박지호 대표를 만나 그녀와 아톰디자인의 이야기를 집중 조명해보았다. _김미동 기자 아톰디자인의 박지호 대표는 3년 전 아톰디자인을 창업한 이후 실질적으로 팀을 이끌어 지금의 아톰디자인이 자리하게 한 장본인이다. 영업이면 영업, 거래면 거래, 현장이면 현장, 아톰디자인의 모든 장소에는 그녀가 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렇듯 열정적인 박지호 대표가 아톰디자인을 창업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그녀는 ‘다만 꿈을 따라온 것’이라 답했다. “원래 디자인에 흥미가 많았어요. 고등학생 때는 디자인을 공부하고, 대학생 때는 무대미술을 전공하다 2학년 때 중퇴 후 연극과 영화 무대 디자인 쪽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부산으로 영화 촬영을 오게 되었는데, 문득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즉시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고, 자리를 잡기 위해 벽화 회사에 다녔어요. 그곳에서 5년간 일하다 보니 이번엔 창업에 도전하고 싶어졌어요. 제가 가장 하고 싶고, 자신 있는 분야로요. 회사에서 팀장을 맡고 있었는데, 제가 퇴사하면서 팀원들이 함께 나와 아톰디자인을 만들게 되었어요. 당시 학생이었던 남동생도 뜻을 함께하게 되었고요. 그땐 막연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마음이었어요. 결국 저는 줄곧 꿈을 좇아온 셈이죠. 시대를 잘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아톰디자인은 박지호 대표와 그녀의 남동생을 포함한 4명의 팀원이 함께 움직이며 디자인 시안부터 제작, 시공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하는 벽화·아트페인팅 전문 디자인 업체다. 본진은 부산에 두고 있지만, 각지에서 그들을 찾는 덕분에 늘 전국구로 움직인다고. 팀원 모두가 활발하고 직업 만족도가 높아 작업 환경은 늘 즐겁고 화기애애하다. 아톰디자인은 박 대표가 작업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와의 원활한 소통과 완성도 높은 현장이 강점이다. “작업 과정에는 모든 팀원이 참여하는 편이지만, 힘이 많이 소요되는 일에는 남자인 다인 씨와 한스민 씨가, 스텐실과 같이 정교한 작업에는 유진 씨가 맡아 하고 있어요. 전국으로 다니기 때문에 시간이 금이라, 시안을 받으면 차로 이동하며 작업 컨셉 회의를 진행하죠. 팀원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는 덕분에 현장에서 손발이 잘 맞아요. 다들 저를 따라주고 함께 걸어주어 매 순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톰디자인의 비상은 무엇보다 그 실력에 비결이 있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그들만의 감각이 밑거름인 셈이며, 소재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색감 조합 또한 아톰디자인만의 브랜드력이다. 색조합의 경우 정해진 색만 사용하지 않고 순간마다 현장 조색으로 어울리는 색을 캐치해 무궁무진한 색감을 시도할 수 있다고. “디자인만큼 변화에 민감하고 트렌디한 건 없어요. 때문에 틈틈이 웹서핑과 자료조사로 유행을 따라가려고 애쓰죠. 전국을 다니기 때문에 트렌드에 쉽게 접근할 수도 있고요.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곳에서 소스를 얻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디자인 유행이 보였는데, 요즘에는 워낙 다양하고 예측이 불가해요. 그래서 더욱 디자인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고 봅니다. 업종에 따라, 위치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브랜딩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박지호 대표는 디자인과 작업 과정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디테일’과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디자인의 감각적인 면과 섬세한 부분, 그리고 작업 일정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고 진행한다고. “클라이언트의 만족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의 역할은 전체적인 그림을 판단하여 방향을 제시하고, 감각을 불어넣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드리는 것이죠.” 완성된 작업물이 클라이언트와 한마음으로 맞을 때, 아톰디자인의 작업물이 SNS에서 소위 ‘핫플레이스’로 불릴 때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다는 그녀. 이렇듯 거침없이 성장 중인 아톰디자인의 행보가 궁금했다. 박지호 대표는 아톰디자인을 더욱 성장시켜 향후 교육에 힘쓰고 싶다며 포부를 드러냈다. “저희가 가진 아트페인팅, 벽화, 디자인의 노하우와 기술력, 색감 조합 등을 전해주고 싶어요. 열정은 있으나 배울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요. 또 그 후에는 제 팀원들과 공방을 만들어 함께 하고 싶기도 하고요. 덕분에 틈틈이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고 있습니다. (웃음)”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정말로 많아요. 지금은 가장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이 아트페인팅이고, 할 수 있어 행복하죠. 노후에는 작은 꽃집을 열어 사람들에게 감성을 선물하고 싶어요. 누구나 하루에 감각적인 순간이 필요하거든요.” 대화 내내 웃음꽃이 가득한 박지호 대표의 얼굴에서 아톰디자인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 행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녀의 감각적인 하루의 순간과 아톰디자인의 밝은 행보를 응원한다. [1056]
    • 문화
    2018-11-01
  • 백정강 사단법인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이사장
    부산시는 제61회 부산시문화상 수상자를 선정했다. 부산시문화상은 1957년부터 매년 부산 문화예술진흥과 향토문화 발전에 기여한 문화예술인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으로 자연과학, 문학, 공연예술, 시각예술, 전통예술, 대중예술, 공간예술 총 7개의 부문으로 나뉜다. 그중 올해 전통예술 부문 수상자로 사단법인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백정강 이사장이 선정됐다. 그는 부산민속보존협회와 동래아류보존회에서 동래 전통 민속예술 보존·전승을 위한 교육과 공연에 이바지해왔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전통 민속예술에 한 획을 긋고 있는 백정강 이사장을 만나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_곽인영 기자 역사와 전통을 지닌 예술의 본고장 ‘동래’ 문화강국시대에 발맞춰 생명력 넘치는 문화재로 보존·전승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수립 10주년을 기념해 1958년부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대회에서 전통 민속놀이인 동래야류가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전통 민속예술인 국가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됐다. 이는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가 결성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역사와 전통을 지닌 우리의 고장 동래는 충절의 얼이 살아있는 예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호국정신이 출중한 선비들과 걸출한 예인들이 많이 배출된 곳입니다. 이곳에 뿌리를 둔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는 동래의 전통 민속예술인 국가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부산시지정무형문화제 제3호 동래학춤, 제4호 동래지신밟기, 제10호 동래고무, 제 14호 동래한량춤 등을 충실히 보존·전승하며 발전시키는 단체입니다.”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에 남다른 자부심을 드러내는 백정강 이사장은 지난 30여 년간 협회에 몸담아온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13년 12대 이사장으로 취임해 13대 이사장으로 연이어 추대를 받았다. 1988년 44세가 되던 해에는 전통 놀이마당에서 펼쳐지는 민속예술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동래야류보존회에 일반회원으로 가입했던 백 이사장. 그런 열정과 노력을 바탕으로 50세가 되던 해 동래야류 ‘전수장학생’으로 선발된 데 이어 교감 시절인 58세에 ‘전수조교’로 인정됐다. 이처럼 그는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뿐만 아니라 동래아류보존회에 입문해 동래지방 전통 민속예술 보전과 전승을 위한 전수교육 등 각종 공연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 21세기의 문화강국시대에 걸맞게 우리 문화유산을 생명력 넘치는 문화재로 전승하며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백 이사장. 협회를 비롯해 각 보존회의 운영 공연기획, 회원들의 소통과 화합에 기여한 공으로 올해 제61회 부산시문화상 전통예술 부문의 수상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1970년 음악교사를 시작으로 2006년 수영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할 때까지 교직생활을 하며 전통음악 지도에 각별한 관심과 전통음악에 대한 이해와 보급에도 노력했던 그는 “이번 부산시문화상 수상은 지난 세월을 회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감회가 남다르다”며 “우리 고장의 전통 민속놀이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수해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보존하고 싶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문화는 가까이서 보고 향유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아는 법” 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아온 백정강 이사장의 대학 시절 전공은 다름 아닌 경제학이다. 당시 동아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했지만 총학생회 음악부장으로 각종 축제 운영을 주도하는 등 군 복무 시절에는 군악대에서 근무해 리더십을 발휘했다. 어린 시절 교회 성가대에서 기타와 트럼펫을 시작으로 고교시절 밴드부까지, 타고난 ‘끼’를 주체하지 못했던 그는 고민 끝에 전공을 음악으로 바꿔 임용시험에 응시했다. 그렇게 그는 1970년 음악교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본격적으로 전통음악에 빠져든 것은 1975년 국악동아리가 있는 학교로 발령받았을 때입니다. 음악교사가 국악동아리 지도교사를 맡아야 한다는 학교 방침에 따라 국악을 만나 거문고와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지요.” 국악과 인연을 맺은 백 이사장은 1978년에 출범한 부산국악관현악단 창단작업에 참여한 데 이어 동아대학교와 경성대학교에서 한국음악 실기 과목을 가르치는 겸임교수로 출강하는 등 국악세계에 더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특히, 시간이 멈춘 마을 ‘시실리(時失里)’에서 회원들과 함께 모여 자유롭게 음악과 봉사를 즐기면서 실력을 갈고 닦았다. 이렇게 그가 배우고 익힌 악기는 동·서양 구분 없이 (꽹과리, 태평소, 거문고, 가야금, 해금, 아쟁, 기타, 트럼펫, 알토·소프라노 색소폰 등) 10가지가 훌쩍 넘는다. 오는 12월에는 이 악기들을 직접 연주하는 발표회를 열어 문화 전파에도 앞장설 예정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무의식 속에서 보고 접했던 습속들이 제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원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꾸준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도 음악 속에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웃음) 옛 사람들의 지혜에는 정치, 사회, 경제, 예술 등 모든 것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 지혜를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은가를 되짚어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에 필요한 지식을 얻고자하는 관심이 필요합니다.” 문화의 보존과 전승에 대해 역설하는 백정강 이사장은 이를 몸소 실천하며 진정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음악에는 정년이 없다며 문화는 가까이서 보고 향유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백정강 이사장. 향후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거듭나길 응원한다. [1056]
    • 문화
    2018-11-01
  • 변은혜 꼼지락 대표
    최근 아이와 함께 자유롭게 찾을 수 있는 장소가 한정되면서 키즈 카페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은 물론 아이가 안심하고 뛰어놀 수 있는 장소로 학부모들에게도 휴식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어 크게 주목받는 키즈 카페. 전남 순천 오천지구에 본점을 두고 있는 ‘꼼지락’은 이러한 기세를 타고 전국적으로 가맹사업을 시작한 색다른 방식의 ‘오감 키즈 카페’다. 아이들을 위한 톡톡 튀는 프로그램들로 학부모의 마음을 사로잡은 꼼지락의 변은혜 대표를 만나보았다. _김미동 기자 꼼지락을 창업하여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변은혜 대표. 꼼지락은 2017년 6월 1일 전라도 최초 오감 키즈 카페로 문을 연 이후, 1년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평택점과 세종점뿐만 아니라 상주점 오픈을 준비중이다. 변 대표가 ‘오감 키즈 카페’라는 색다른 분야에 뛰어든 계기가 무엇일까. “대학생 때 언어치료를 전공했고, 졸업 후에도 5년 정도 언어치료사로 근무했어요. 그런데 저에게 너무 어렵고 좀처럼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방문미술교육 강사로 전향하게 되었죠. 언어치료를 공부했으니 아이들의 마음을 알고 대화하기가 편했거든요. 저 또한 어릴 적부터 만들고 꾸미는 것을 좋아했고요. 그러던 중 우연히 수도권에서 드로잉 키즈 카페를 접하게 되었는데, ‘이거다!’ 싶었어요. 즉시 창업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남들과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는 변은혜 대표는 오감 키즈카페 중에서도 특색 있고 남들이 쉽게 도전할 수 없는, 그리고 가장 자신 있는 것으로 꼼지락을 채워나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오픈 후 1년간 시행착오를 정말 많이 겪었어요. 지역적 한계도 컸고요. 인테리어와 소품 등 세세한 부분까지도 형태를 잡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처음에는 장난감을 많이 들였다가 오감 키즈카페에 집중하기 위해 최소한의 장난감만 비치하는 등, 서서히 체계를 잡아나갔습니다. 무엇보다 키즈 카페를 찾아주시는 학부모님들과 아이들이 집에서는 할 수 없는 활동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직접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주마다 새로운 활동으로 시작되는 꼼지락의 모든 프로그램은 변은혜 대표가 직접 생각하고 시도하여 정리한 것들이다. 계절과 시기, 나잇대, 유행을 고려하여 프로그램이 정해지면 예약제로 정원을 받아 강사와 아이들의 인원을 배치하고 아이들 모두를 세세히 신경 쓸 수 있도록 한다. 프로그램 구성은 드로잉과 한 가지 프로그램을 체험하며 1시간 10분가량 진행되며, 재료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도 아이들이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적절히 배치한다고. 가령 요리 프로그램이 끝나면 조리 시간에 맞춰 미술 체험을 진행하는 식이다. “남편이 마술을 공부했었거든요. 거기서 소스를 얻기도 하고 특색 있고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것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합니다. 중요한 것은 집이나 밖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활동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들이 실질적으로 창의력을 기를 수 있고 흥미를 느낄 수 있을 만한 요소를 많이 고려합니다.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소품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직접 적용하는 편이에요. 제가 짠 프로그램에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보람찹니다.” 촉촉이 모래 만들기, 설탕으로 그림 그리기, 레몬 화산폭발, 컵젤리 만들기, 옥수수 오감놀이와 미꾸라지 놀이 등 셀 수 없이 다양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은 모두 변 대표의 감각에서 나온 것들이다.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프로그램 단계를 차근차근 설정합니다. 가령 미꾸라지 놀이의 경우, 연못을 꾸미는 것부터 놀이를 시작하는 거죠. 아이들이 직접 만지고 체험해야 성취감과 흥미를 느낄 수 있어요.”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변 대표의 창작 능력은 언어치료를 공부한 그녀의 지식과 오랜 시간의 경험 끝에 얻은 노하우에 그 비결이 있다. 필요 없는 것들은 과감히 버리고 창의력이 돋보이는 요소들을 채우는 것은 물론, 도구와 가구 하나까지도 안전과 위생을 고려하여 가볍고 튼튼한 플라스틱 위주의 제품들로 구성했다고. 녹이 슬지 않고 세척이 용이한 플라스틱 소재의 장점을 이용한 것이다. 꼼지락을 처음 오픈할 당시부터 가맹 사업을 염두에 두었다는 변은혜 대표. 오픈 이후 꼼지락은 단시간에 4호점까지 가맹사업을 진행 중인 현재도 쉬지 않고 달려나가는 중이다. 변은혜 대표는 체계가 잡히면서 가맹 사업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며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를 펼쳐나가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가맹 사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프로그램과 교육, 그리고 본점과 가맹점의 수익 창출입니다. 점주분들이 질문하셨을 때 모두 대답해드릴 수 있도록 저 자신부터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봐요. 본점에서 프로그램을 설정하여 가맹점에 알려드리는 것도 필요하고요. 가오픈 시기에는 제가 직접 카페를 찾아 세부적인 것들을 점검하고 교육까지 진행합니다. 프로그램을 짜고 교육하는 점에서도 저 자신이 절대 허투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직접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고, 감사하게도 만족도가 높은 편이에요. 전체적인 운영과 투자, 수익적인 면에서도 합리적인 방향을 위해 늘 발로 뛰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뛰놀고 활동하는 곳인 만큼 카페 청결과 위생에도 각별히 신경을 기울인다는 변은혜 대표.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감각과 열정을 가진 변 대표의 자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1056]
    • 문화
    2018-11-01
  • 최찬환 사단법인 통일의 집 이사장
    “평화” 대한민국 국민이 그렇게도 염원하던 평화가 차츰 이루어지고 있는 현 시대에 과거를 되돌아보면, 한국의 분단은 초기 정부가 수립될 당시 일제의 침략과 세계역사에서 힘이 없었던 나라의 불가피한 상황이자 희생이 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역사적인 아픔이다. 전쟁을 통해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임에도 한국과 북한은 서로의 정치적 이념의 차이로 지금의 시대까지 흘러 후손들에게 아픔과 수고를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그러나 1970년대 당시 순수한 마음으로 한 민족이자 한 핏줄인 북한과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 시대에 평화적 관계를 위한 노력이 빛을 밝혀가고 있는 것이다. 주간인물이 만난 최찬환 이사장은 ‘문익환 통일의 집’을 문화적·역사적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문익환 목사의 평화적 통일의 염원과 정신을 이어가며 이 시대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그를 만나 문익환 통일의 집의 역사적 가치와 이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_장보연 기자 순수한 마음으로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던, 문익환 목사의 뜻을 전하는 문화적 공간 ‘문익환 통일의 집’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해있으며 실제 문익환 목사와 그의 가족이 1970년대부터 살았던 집이다. 1994년 문익환 목사가 세상을 떠난 뒤 부인 박용길이 ‘문익환 통일의 집’이라는 명칭을 세움으로서 시작되었다.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고 문익환 목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후원에 힘입어 2018년 6월 1일에 박물관으로 개관되어 일반인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곳은 통일을 염원하던 문익환 목사의 생애와 근현대사의 귀중한 자료들을 보관하고 연구하여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통일을 소망하고 꿈꿀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익환 목사는 만주 북간도 명촌동에서 태어나 1955년부터 한국신학대학 교수와 한빛교회 목사로 활동하였으며 1968년 신·구교 공동 구약 번역 책임위원으로 성서를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그 과정에서 시인이 되어 여러 권의 책을 남겼으며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고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1992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 1976년 첫 구속 이후 6차례에 걸쳐 생의 마지막 18년 중 11년 3개월의 옥고를 치루고 한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하며 어려운 이웃들과 아픔을 함께했다. 문익환 목사의 행보는 특정한 정치적 이념에 의한 것이 아닌 교수와 시인, 목회자로서 인간의 본연의 평화를 소망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모두가 평화 속에서 살아가길 희망했다. 그 마음을 담아 명칭을 “문익환 통일의 집”이라 지은 것이며 평화의 씨앗을 심어 역사적·문화적 공간으로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주고자 한다. 역사와 문화예술의 만남 삶의 교훈과 배움을 전하는 박물관으로 재탄생하다 최 이사장은 1970년대 문 목사와 동네에서 함께 살던 이웃으로 최 이사장의 어머니와 문 목사의 어머니가 친구처럼 지낸 사이였다. 문 목사가 10년동안 옥고를 치르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활발한 교류활동은 하지 못하였으나 그의 삶과 순수한 이념을 존중했고, 문 목사의 가족들이 관리하던 집을 가까운 이웃이었던 최 이사장이 유지·관리하며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경북 경산에서 나고 자란 최 이사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건축에 뜻을 두어 연세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하면서 건축과 문화, 예술의 조화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대학 때는 건축분야 중에서도 도시계획과 도시정책에 관심을 가지며 관련 학문에 매진하였고, 이후 다양한 도시계획사업에 참여하며 서울시 보라매 공사부지, 한강고수부지, 세종시 정비사업에 참여하였으며 주거환경연합 정비사업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건축정책법규를 저서를 발간하여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건축인들의 교재로 사용될 만큼 영향력있는 건축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특히 한 동네에서 49년을 살아온 최 이사장은 무엇보다 동네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주거환경 변화와 문화 · 예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 이사장은 “문화라는 것은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아닌 시간이 누적되어 형성되는 것이며 삶의 장소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우리의 통일의 염원이 시작되었고 국민이 한마음이 될 때 통일이 가까워지며, 문화적·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공간들이 많이 탄생하리라 판단합니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 향후 문익환 통일의 집을 기반으로 역사적 사실에 스토리를 주어 그 장소와 사람이 역사적 교훈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향후 문익환 통일의 집의 전시공간을 확보해 다양한 전시와 연계된 시설물을 통해 문화적으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견학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의 세대들에게 무엇을 심어주고 전해줄 것인지 연구하며 역사의 정신을 이어가는 문익환 통일의 집과 최 이사장. 이들을 통해 문익환 목사가 염원하던 통일이 가까워지며 순수한 평화통일 이념이 후손들에게 이어지고 이 시대의 배움과 삶의 교훈을 주는 공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1055]
    • 문화
    2018-10-19
  • 이선영 전자바이올리니스트 / 공연기획사 ‘이즈’ 대표
    전자바이올린은 일반 클래식 바이올린과는 달리, 현을 그으면 브릿지를 통해 나오는 소리를 앰프로 출력해주는 방식으로 소리를 낸다. 전자바이올린의 매력은 장르의 제한없이 클래식한 소리부터 각종 이펙터를 입힌 파워풀한 기계음악까지 다양하게 표현해 낸다는 것. 화려한 비트 사운드와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무대 매너로 관객과 소통하는 이선영 전자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났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끼로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진한 감성을 연주에 담아내는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_김정은 기자 황혜진 기자 깊고 섬세한 연주로 대중들과 호흡하다 현란한 연주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연주자, 이선영 전자바이올리니스트는 곡 해석이 어려운 클래식 음악부터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개성 넘치는 편곡과 현란한 연주 기법을 통해 공연의 성격에 맞는 연주를 선사한다. 그녀의 무대 위 퍼포먼스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카리스마와 진정성에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렇듯 화려한 무대 매너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그녀지만, 무대에 오르기 전 선곡이나 동작, 표정 등을 정형화해놓지 않는다. 무대의 성격과 현장의 분위기, 관객의 연령, 계층을 고려해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연출을 표현해내는 것. 그렇기에 무대에서 전자바이올린을 잡고 연주를 할 때 진정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그의 모습이 발현되곤 한다. 바이올린을 통해 관객과 호흡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이선영 씨. 관객은 그런 그에게서 강렬한 카리스마와 함께 관객을 아우르는 따뜻한 마음까지 묘한 매력에 사로잡히고 만다. “무대 위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통해 저만의 철학과 감성, 영혼의 깊이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제가 표현하고 싶은 바를 알아주시고 호응해주시는 관객분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죠. 오히려 관객들로부터 더 많은 에너지와 기쁨을 얻는 것 같습니다.” 넓은 장르를 아우르는 전자바이올린의 매력에 빠지다 이선영 씨는 사실 피아노를 시작으로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 입문했다. 중학교 재학 중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우연히 접한 전자바이올린의 매력에 빠져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자에서 전자바이올리니스트로 전향했다. “클래식 음악은 물론 팝, 영화OST, 재즈, 대중가요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저만의 편곡으로 표현해 낸다는 점이 특히 좋았어요. 거기다 대중과 좀 더 가까이에서 호흡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지요.” 국내외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녀, 사회공헌 활동 및 재능나눔 콘서트 등 수많은 무대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을 묻자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공연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펼친 무대를 회상했다. “넓은 공연장 한가운데서 저의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지던 순간을 잊지 못해요. 그 순간의 짜릿함, 또한 시민들과 함께 하던 호흡은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이즈’의 대표로 공연기획자로서의 행보 주목 내년 2월, 국제 콩쿠르 유치 계획 밝혀 2001년 설립된 공연기획사 ‘이즈’의 대표로도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인 이선영 씨. 연주자를 넘어 기획자로서도 활동 중인 그녀의 행보 또한 남다른 평가를 받으며 주목받고 있다. 실력 있는 국내 연주자들이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음악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된 ‘이즈’는 오는 2019년 2월, 국제 콩쿠르를 부산에 유치해 개최할 예정이다. 이 국제 콩쿠르는 파리에서 시작해 베이징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개최되는 경연회로 이선영 씨는 한국 대회 본부장을 맡고 있다. 초등부부터 고등부까지, 기존의 평가 위주 경연 대회가 아닌 참가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연주회를 만드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연주회’라고 하면 고전·낭만시대 음악 선율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모습을 상상하곤 하시죠. 일반 관객들에겐 다소 진입장벽이 높은 장르라는 인식 때문에 대중화가 쉽지 않습니다.” 이선영 씨는 “‘클래식 음악’은 격식을 갖춘 장소에서만 즐길 수 있다는 편견은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거리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밝히며, “대중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사명감을 전했다. 가족과 연인, 친구 등 다양한 관람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클래식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그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고.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좋은 연주를 들려주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그. 관객과 소통하며 완성도 높은 무대를 구성하기 위해 매 순간 음악에 대해 고민하며, 국내 현대음악산업에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있는 이선영 전자바이올리니스트. 그의 열정과 힘찬 행보에 큰 박수를 보낸다. [1055]
    • 문화
    2018-10-19
  • 장현수 (사)들숨무용단 비상임안무가 / 국립무용단 단원(주역) / 한국무용학회 이사
    1962년 창단된 국립무용단은 국립극장의 전속단체로서 전통을 기반으로 한 창작을 모토로 지속적인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초대 단장인 송범 선생을 시작으로, 조흥동, 최현, 국수호, 김현자, 배정혜, 윤성주와 같은 최고의 예술가들이 단체를 이끄는 가운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립무용단은 당대 최고의 춤 예술가들의 지도하에 전통과 민속춤을 계승하는 한편, 그것을 기반으로 동시대의 관객이 감동할 수 있는 현대적인 작품개발을 위한 창작활동을 펼쳐가고 있다. 주요 레퍼토리인 전통춤 모둠 <코리아 환타지>, 대표적 극무용 <춤, 춘향>, 스타일리시한 한국춤 <묵향> 등 전통을 기반으로 한 각기 다른 미학의 한국춤 예술로 한국창작무용을 선도하고 있다. 오늘은 국립무용단의 주역으로 23년째 활약하며 사단법인 들숨무용단 비상임안무가로 한국무용의 세계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장현수 안무가를 만나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안연승 차장 무용과의 만남 “저는 딸 부잣집의 큰딸로 태어났습니다. 제 밑으로 여동생이 셋 있습니다. 집안 형편상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들을 돌보면서 어린 언니노릇 하기가 조금은 힘들었지만, 비교적 잘하면서 지냈습니다. 지금은 모두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고 가정을 이루어 잘살고 있지만, 그 시절을 뒤돌아보면 동생들에게 큰 언니로서 더 잘 챙기지 못했던 부분이 조금은 아쉽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무용과의 첫 인연은 다섯 살 때 할머니 손에 이끌려 찾아간 동내 무용교습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집안에 특별히 무용에 관련된 사람은 없었는데 할머니께서 춤에 흥미가 많던 저를 학원에 데리고 가서 등록시킨 것입니다. 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뛰어노는 것이 즐거워야했을 나이에 별생각 없이 시작한 무용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이 운명처럼 느껴집니다. 다섯 살인 저의 작은 몸보다도 커다란 장고 앞에서 환히 웃으며 ‘덩덕궁 장고’를 치고 익히며 동작을 배우던,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지금 그때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어떤 경우 무엇이든 장단점이 있겠지만, 특히 예술은 어느 정도 성장하여 의미나 특징을 이해하면서 배우고 익힌다면 좀 더 효과적이며 자기개발이 빠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힘들었지만 어린 시절의 조기교육이 지금의 창작활동에 도움이 되고 있음은 부정 못할 사실입니다.” 수정홍무·팜므파탈 장현수 안무가는 기억에 남은 작품으로 수정흥무(守丁興舞)와 팜므파탈을 꼽았다. “수정흥무는 한국전통무용예술을 전통적으로 한 그릇에 담아본 작품으로 혼을 처절하게 그려 담아 우아함과 멋스러움이 작품의 상징이라 생각합니다. 태평무, 한량무, 흥풀이, 입춤이 각각 향연(饗宴), 여정(餘情), 찬가(讚歌),미학(美學)이라는 소제목으로 구성된 공연으로 춤 사이사이에 판소리와 민요가 섞여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된 작품입니다. 세대를 통해 계승된 한국 춤의 멋과 흥이 어우러진 한국무용의 아름다움을 물씬 풍기는 춤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국립무용단 기획공연으로 ‘팜므파탈’이라는 공연을 했는데 거기서 살로메 역을 맡았습니다. 대중가수인 한대수 선생의 음악으로 함께 했는데 저의 이름을 내걸고 한 공연이라 뜻 깊고 공연에 대한 평도 매우 좋아서인지 기억에 남습니다. 또, 스페인 혈통의 프랑스 안무가인 조세 몽탈보와 했던 ‘시간의 나이’라는 작품도 좋았습니다. 그분은 직접 안무를 하기보단 무용수들의 동작을 자연스럽게 유도해주었는데 한국적인 춤사위를 매우 좋아했고 볼레로 음악에 나의 솔로 부분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겐 흔한 춤일지 몰라도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의 춤사위는 특별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장현수 안무가! “무대를 통해 역사적 혼과 사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아름다운 감동을 주기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한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느 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한국무용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예술적 사고와 판단을 바탕으로 어린 어느 날 시작해서 매일 반복되는 연습과 배움이 있어야하는데 여기에는 부모님의 경제적 여건과 배울 수 있는 선생님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시작된다 할 수 있습니다. 연습이 시작되면 모든 것이 희생을 강요합니다. 부모님의 경제력, 형제들의 불이익, 공부, 친구, 성장과정의 욕구, 여행, 일상생활 등 많은 사소함과 중요한 것들을 참고 인내하며 예술만을 생각하며 연습해야합니다. 인성, 성격, 도덕, 자아 등을 쌓을 시간도 없이 즉 인간의 내면까지 희생하며 연습해야하는 예술적 접근성이 무용예술입니다. 그래서 무용예술은 예술인 우리들 것만은 아니고 관객과 미래의 관객들과 다른 문화속의 외국인들 즉, 온 인류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지속적인 연습을 바탕으로 자기훈련과 희생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게 한국무용인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전통무용과 창작무용을 구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현대무용이나 발레를 따라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 내용에 맞게 새로운 춤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통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또 다른 언어가 필요하고 그런 시도가 음악사용에 대한 변화입니다. 예를 들어 살풀이춤을 출 때 보통 굿거리에서 자진모리로 끝나는 국악을 쓰는데 나는 그것을 뒤집기도 하고 다른 장르 음악을 사용해서 살풀이를 추기도 했었고 클래식 음악으로 살풀이나 승무를 춘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전통을 버리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안무를 할 때는 무용수들에게 말보다는 직접 몸으로 시범을 보이고 따라오게 하는 방법을 씁니다. 처음에는 무용수들에게 내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점차 젊은 무용수들의 아이디어와 결합되면서 더 좋은 그림이 만들어집니다. 일단 내가 무용수다 보니 직접 움직여서 안 되는 동작을 다른 무용수들에게 요구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 무용수들도 세계적인 안무가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대한민국 무용대상 수상작 <목멱산 59> <목멱산59>의 목멱산은 현재 남산의 옛 이름으로 지형적으로 한반도의 중심이 되고, 대한민국 현대사의 모든 과정을 바라보며 지켜내고 이겨낸 우리민족의 중심적 역할을 해온 정신적 지주로 보고 그 산을 배경으로 우리민족의 부분부분과 전 과정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초연이었던 작년 작품은 한양도성 안에서 젊은이들의 문물과 사회와 국가에 바라는 활동적이며 패기에 찬 호소력 있는 작품이었다면, 올해의 작품은 전국의 봉화가 모여 국가의 재난이나 위기상황을 알려 대처할 수 있는 봉화의상으로 5개의 봉화를 5명이 표현하며 신·구문물이 혼재하던 개화기 때 한양의 사회상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클래식음악에 복고풍의상으로 신세대 여성들의 활발하고 명랑한 운동성은 어느 시대나 있을법하지만 특히 개화기 때는 희망적인 것이 많았던 시절이어서 심도 있게 표현한 작품으로 전 연령대에서 추억과 새로운 사회상을 알아가는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악연주자와 서양악연주자 11명이 국악과 클래식음악의 조화로움을 강조하며 계절사이 구성을 맡아 좀 더 전통적이며 과거와 현대의 조화를 자연스럽게 표현합니다. 오동동타령, 서울야곡, 타향살이, 나그네설음, 눈물 젖은 두만강 등과 이태리 작곡가 비발디의 사계 전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피아노와 베이스의 즉흥연주와 바이올린, 첼로, 소프라노의 연주가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가며 무용수들의 몸짓이 살아서 움직이는 아름다운 그림이 연출되는 한국무용 공연이라 자부합니다.” 후배들에게 보이는 것에만 연연하지 말고 한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묵묵히 연습과 노력을 하면 반드시 보답이 주어진다고 조언하는 장현수 안무가는 독자들에게 춤을 예쁘게 추는 예쁜 안무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과 전통 한국무용예술작품과 이를 바탕으로 한 창작 작품을 해외무대에 많이 올려 한국무용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인터뷰를 마감했다. •現 국립무용단 •現 들숨무용단 비상임안무가 •現 한국무용학회 이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졸업 •2004년 제2회 무용예술상 무용연기상(창무예술원) •2005년 제12회 무용예술상 무용연기상 •2009년 한국춤비평가상 연기상(한국춤비평가협회) •2009년 문화체육부장관 표창 •2010년 제19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화체육부장관) •2017년 대한민국 무용대상 <목멱산59>(한국무용협회이사장) •2017년 대한민국 나눔대상(보건복자부장관 표창) •2017년 국립무용단 표창(문화체육부장관) •2018년 대한민국 창조문화예술 대상 수상(문화체육관광부 위원장) [ 주요 안무 작품 ] •장현수의 춤-여행, 청안, 목멱산59, 검은 꽃, 사막의 붉은달, 피노키오에게, 암향, 아야의 향, 바람꽃, 팜므파탈, 내 혈관 속을 타고 흐르는 수정흥무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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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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