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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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사의 악기, 하프의 매력 속으로! - 심소정 하피스트 / 국제하프협회(International Harp Association) 총괄지휘 & 감독
    ‘귀족 악기’, ‘배우기 어려운 악기’ 등 몇몇 편견으로 대중과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던 하프는 인기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명 연예인 유재석이 오케스트라 하프 연주에 도전하는 과정이 방송돼 학교 방과후 수업과 음악학원 하프 취미반 등으로 문의가 이어지며 대중화와 함께 라이프 영역으로 들어서는 기회가 됐다. 이에 주간인물은 2024년 새해를 맞아 공연 소식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곡선미의 우아한 외관과 아름다운 음색을 지닌 하프의 매력과 함께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악기라는 걸 알리기 위해 공연, 도서, 곡, 앨범 등 다양하게 활동 중인 하프계 신진 아티스트, 심소정 하피스트를 소개한다. _김민진 기자 ▲ 셀린(SelyN) - 1st Single ‘Northern Star’ / 2nd Single ‘NeveR & AlwayS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 졸업 후 미국 이스트만대 석사 및 연주자 자격증을 취득하고 성균관대 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며 연주자로서의 기반을 탄탄히 다져온 심소정 하피스트는 음악저널, 한음, 영산음악, 해외파견, 서울오케스트라 콩쿠르 등 국내 유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바 있다. 또한 Osaka International Competition Espoir Award 1위를 거머쥐며 해외에서도 빛나는 행보를 이어나간 그는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몰도바국립방송교향악단 등 다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서울바로크합주단 초청연주, 송사비의 클래식 음악야화, EBS TV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 전국 세미나를 개최해 100여 회의 강연을 진행한 심소정 하피스트 지난 12월에 셀린(SelyN)이라는 예명으로 두 번째 싱글 ‘NeveR & AlwayS’를 발표한 심소정 하피스트는 싱어송라이터 영역에서도 음악적 기량을 펼쳐 나가며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들과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첫 번째 싱글 ‘Northern Star’은 팝록 장르의 데뷔곡으로 트와이스의 ‘Knock Knock’, 오마이걸의 ‘비밀정원’ 등 다수의 히트곡에 참여한 아이돌 메이커, 마유 와키사카가 함께 작업했고 심소정 하피스트 역시 작사/작곡에 참여하며 차세대 크로스오버 뮤지션으로서의 시작을 알렸다. “하프가 비싸고 어려운 악기라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어려움들이 저를 더욱 강인하게 만들었고 음악의 가치와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편견을 완전히 없애고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길 바랐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모두에게 나의 선택을 인정해 주길 바라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대신에, 편견에 의해 제한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긴 설명보단 결과물로 늘 보여주려다 보니 어느새 연주가, 작가, 가수, 강의자 등 많은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웃음).” ▲ “하프와 강아지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심소정 하피스트 세광음악출판사에서 최연소 작가로 ‘미니하프’ 연계교재를 편찬한 그는 하프만이 가진 장점을 최대로 살리고 동시에 “배울 곳이 없다, 어렵다, 비싸다”등 하프의 허들을 깨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하프협회’를 설립했다. 심소정 하피스트보다 최소 10살, 많게는 20살까지 나이 차이가 있는 베테랑 학원 원장들도 협회에서 하프를 배우며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다. “하프를 배우신 학교 선생님들과 학원 원장님들께서 아이들 발표회 영상이나 사진을 보내주시는데요. 너무 귀엽고, 제가 다 뿌듯하더라고요. 게다가 하프가 본인의 일상을 변화시켰다는 분도 많으시고, 그분들이 하프 앙상블을 만들어 연주회도 열었습니다. 저 대신 도서관이나 공공기관에 연락해 제 책을 홍보해 주시는 열정 넘치는 팬들까지... 하프를 사랑하는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을 보답할 수 있도록 하프 대중화에 기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더 열심히 펼쳐나가겠습니다(웃음).” 심소정 하피스트는 오는 1월 2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영화 겨울왕국의 영감을 받아 기획된 ‘Frozen Harp’ 독주회로 설렘 가득한 새해를 맞아 관객들과 마주할 예정이다. [1157] 인스타그램 : @harpist._.ss0vly ⬇Youtube Lin⬇ youtube.com/@harpistssovly?si=Wv-CWO0fzECuBrj2
    • 문화
    2024-01-23
  • [문화산책] 연우 손유경 한얼우리그림협회 회장 / 전통민화 명인 제14호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위원장 / 창원문화재단 이사
    한국의 얼이 담긴 미술을 추구하는 한얼우리그림협회는 2023년 9월 23일부터 11월 5일까지 경남 하동 칠불사 보설루에서 특별전(그림으로 풀어내는 부처님의 가르침전), ‘卍卍展(만만전)’을 성황리에 마쳤다. 한얼우리그림협회는 2019년 손유경 회장이 우리의 혼과 얼이 담긴 작품을 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창립했으며, 2007년 손 회장과 문하생의 전시를 시작으로 만들어진 ‘소천민화협회’가 한얼우리그림협회의 모태다. “부처님의 진실한 법을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에게 있어 이번 전시는 종교를 통하여 그 해답을 찾는 기회가 되셨을 것이다”고 소회를 밝힌 손유경 회장과 따뜻한 차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마산 앞바다를 바라보며 민화, 불교, 전통, 철학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_김민진 기자 It's raining flower rain 꽃비 내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동양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부산, 대구, 창원, 프랑스, 인도, 중국 등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전시를 통해서도 우리 민화(民畵)를 알리고자 42회에 걸친 개인전과 200여 회 그룹전을 개최한 손유경 회장은 약 25년간 선현들의 뜻깊은 정신을 헤아리는 민화를 그리며 문체부 장관상, 통일부 장관상, 환경부 장관상, 국회의장상 등 각종 수상, 위촉장, 감사장을 받은 바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미술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신념으로 손유경 회장이 창립한 한얼우리그림협회는 조각, 회화, 사진 등 다양한 장르에서 약 250명의 작가들이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 전시가 있었던 칠불사(경남 하동군)는 지리산 해발고도 830m 토끼봉에 자리한 사찰로 2년 전 손 회장과의 인연으로 시작한 ‘卍卍展(만만전)’이 벌써 올해로 다섯 번째 전시를 하게 됐다고. Where am I going? “부처님의 가피력이 온 세상에 내려 모든 중생에게 이롭게 되기를 기원하며 불교 이론을 그림으로 설명하는 전시를 해온 ‘卍卍展(만만전)’은 코로나가 있던 때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미술 속에 담아 지친 대중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됐지요. ‘卍(만자 만)’은 부처님의 가슴에 있는 길상(吉祥)의 징표를 나타내는 문자로 힘겨운 시절의 종식과 평안의 시대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풀이한 작품을 통하여 관람하시는 모든 분이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 등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물음에 부처님의 법을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잘 그리는 것과 좋은 작품은 다르다”고 전한 손유경 회장은 본인 작품에 빠져있기보다는 다양한 학문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열린 사고로 전통과 융합 발전시키길 원했다. 특히 철학 공부를 좋아한다는 손 회장은 예를 들어 여백 하나도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비교 및 노자의 도덕경 등을 참고해 왜 동양화는 여백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가는 재미가 그림을 그릴 때 좋은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한다. 2024년 4월 개인전 개최를 포함하여 올해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 손유경 회장의 활발한 작품 활동 또한 기대된다. 지역의 중견작가로서 국내외 전통 민화작가로서 펼칠 손 회장의 다양한 행보를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1156] chaekgeori(책거리) 여보게 관상가 양반 내가 왕이될 관상인가?
    • 문화
    2024-01-11
  • [재난안전보안관] 행정주도 재난관리체계 대응 한계, 재난안전보안관 도입으로 안전문화 혁신을
    “재난안전은 중앙정부와 민간단체와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재난안전보안관 제도를 공공기관은 물론 시장과 기업에 확산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장훈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 회장은 “재난안전법에만 근거한 소극적·협의적 보여주기식 행정에서 벗어나 재난안전 유관 개별법에까지 적용되고 확산될 수 있도록 법·제도적인 정비가 수반돼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하고 “법·제도적인 정비에는 재난안전보안관 활동이 핵심적인 내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_유경석 편집국장 ■ 연합회, 전문인력 양성·재난안전보안관 전문성 강화 주력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국민 참여를 유도하고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 개별법에 따라 부분별로 이뤄지던 국민 안전을 일원화해 나라를 안전선진국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설립됐다. 안전 관련 전문 인력 양성과 재난안전보안관 전문성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는 최근 월드케어필센터에 ‘2023 제1회 대한민국 희망 재난안전 봉사자 표창 수여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주민의 자율적 참여로 철저한 사전 점검과 신속한 초기 현장 대응을 통해 피해를 줄이도록 하는 민관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는 예측 불가능한 재난 발생 빈도가 급증하는 가운데 재난유형이 다양화·대형화하면서 인명·재산 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행정 주도 재난관리 체계로는 적시성 있는 재난의 예방과 대응에 한계를 보이는 데 따른 것이다. 국제표준화기구 ISO/IEC 17024 재난예방안전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재난안전보안관은 재난안전에 대한 교육방법과 재난 상황 발생시 행동요령 등을 숙달하고, 각종 재난과 안전 관련 위기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민간 안전요원이다. 장훈 회장은 “항상 대형사고나 인명피해가 나서야 움직이고, 그 움직임 역시 시늉만 하는 무사안일의 체질이기 때문에 유사한 사고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며 “관(官) 중심 행정으로 시민 불편이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에게 불행이 오지만 않는다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더 나아가서는 ‘대통령, 자치단체장 등은 임기만 되면 떠난다’는 착각에 그저 버티면 된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무사안일’ 체질화…보여주기식 행정 이젠 그만 대형사고나 인명피해가 발생한 이후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반복되는 행정기관의 늑장 대응을 비판한 것으로, 행정안전부에서 시행 중인 안전보안관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제도 개선 요구이기도 하다. 실제 세월호 사고(2014.4.16) 이후 이천 투석 전문 병원 화재(2022.8.08), 강원 태백 장성사업소 탄광 갱도 붕괴(2022.9.14), 포항 인덕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2022.9.06),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2022.10.29),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 터널 화재(2022.12.29), 서울 인왕산 화재(2023.4.2) 등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면서 국민 불안은 높아지고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안전을 소홀히 한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이는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매년 약 278만 명의 노동자가 업무상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2022년말 기준 우리나라 재해자는 13만348명에 달한다. 이중 질병재해로 1349명, 사고재해로 874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요 선진국들이 연간 사고사망 만인율(0.07~0.35)을 비교적 낮게 유지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 중대재해로 인한 사고사망 만인율은 0.43(2021년 기준)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일터에서 사망·사고는 개인의 생명, 가족의 행복을 파괴하고 사회적 비용, 국가적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제도가 포용적(inclusive)이면 흥하고 착취적(exclusive)이면 빈곤해지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서 높은 산재율을 기록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정치·경제 제도가 착취적임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 OECD국가 중 높은 산재율…영유아·고령자 각종 사고 노출 사망·사고는 일터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호를 받아야 마땅한 어린이들이 각종 안전사고와 교통사고, 영유아 돌연사 등으로 매년 400여 명이 사망하고 있다. 인구절벽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태어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각종 사고에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령자 안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2025년 고령인구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그 속도도 빨라져서 향후 5년간 고령인구는 29.4% 증가하고, 고령운전자는 59.4%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간 고령자 교통안전 확보를 위해 노인 보호구역 활성화, 운전면허 반납제도 운영 등을 시행 중이나 고령인구 10만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고령자에게 안전한 환경은 누구에게나 안전하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의 안전 수준을 한 차원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 안전교육 과감히 개선…관리감독 '지방 이양' 실효성 강화 장훈 회장은 “안전분야의 고질적인 부패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지 불신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시장과 기업, 시민사회, 그리고 개별 국민의 합심과 협력이 요구되며 사회 공동체적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안전(Safety)하고, 환경(Environment)적이고, 시스템(System)을 갖춰야 안전한 나라, 국민이 안심하는 나라, 경제 강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한 감시 시스템 구축과 반부패 환경 조성의 책무가 있고, 지방자치단체장과 기업은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한 비용을 선제적으로 내부화하는 등 안전사회 구현을 위한 사회적 가치를 시장과 기업 경영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간 형식적으로 이뤄진 안전교육 관행을 과감하게 개선해야 해요. 안전교육에 대한 강제조항을 두고, 안전교육 실태조사 및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하는 근거조항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특히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을 위해서는 현재 각 부서별·분야별로 이뤄지고 있는 안전교육과 시설점검 등을 통합 조정하는 한편, 지방이양이 가능한 것은 과감하게 지방에 이양할 것”을 주문했다. ■ 사회공동체 책임·재난안전보안관 활용, 안전분야 부패 근절 이와 함께 중앙행정기관과 재난관리책임기관을 대상으로 정밀안전평가를 실시하고, 정밀안전평가 시 해당 재난안전사고를 제대로 예방하고 대응·수습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평가하는 한편 정밀안전평과 결과 해당 재난안전사고 예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과감하게 재난안전사업을 수행할 수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훈 회장은 “안전분야 부패는 안전무시 관행과 불법행위에 대한 사회적 묵인에서 비롯된다”면서 “안전분야 부패 근절을 위한 사회 공동체적 책임과 재난안전보안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안전사고 현장점검 및 예방 활동을 위한 공무원들의 부족한 인력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안전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전문 민간단체에 안전교육 및 안전점검 등을 위탁 위임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재난안전보안관들이 갖고 있는 전문성(사명감)을 활용해 민관협업을 통해 안전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가 동참해나가겠습니다!” [1149]
    • 문화
    2023-05-31
  • 전국 유일의 장애인체육 후원단체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 - 장애인체육과 대구 스포츠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다
    박영호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 단장 / 대구북구축구협회 협회장 / 까사데코 대표이사장애인 :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 체육 : 일정한 운동 따위를 통하여 신체를 튼튼하게 단련시키는 일, 또는 그런 목적으로 하는 운동 신체를 단련시켜기 위한 ‘체육’과 신체 또는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인 ‘장애인’, 두 단어가 어울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를 이겨내고 체육계에 종사하는,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고 운동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이 장애인체육 선수들이다. 박수가 아깝지 않은 이 사람들에게 박수에서 그치지 않고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의 10번째 단장으로 위촉된 박영호 단장을 만났다. _박가빈 기자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의 박영호 단장은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대구에 거주 중인, 그야말로 ‘터줏대감’이다. 대구시 북구에서 원목 가구 전문점 까사데코를 운영하고 있는 박 단장. 그가 장애인 체육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18년이라고 한다. 그는 “지인을 따라 익산에서 열린 장애인 전국체전을 보러 갔습니다. 그때 시각장애인 100미터 달리기, 휠체어 배드민턴, 농아인 축구 등 다양한 종목에 참여하는 장애인 선수들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2019년에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에 가입해서 활동을 시작했죠”라며 지원단과의 인연을 설명했다. “각 가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먼 친척 중에라도 꼭 장애인이 한 명쯤은 있을 겁니다. 그분들을 보면 생활에 참 어려움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체육회에 속한 분들은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이를 스포츠로 승화한,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은 전국 유일의 장애인체육 후원단체이다. 장애인체육의 발전을 위해 후원금을 조성하고 장학금을 전달하며, 지역사회에도 봉사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단장은 “전국 유일의 장애인체육 후원단체이다 보니 벤치마킹을 위해 여러 지역에서 보러오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1기는 소수로 시작했으나, 점점 늘어서 10기인 현재는 142명으로 최다 인원을 기록했다. 지난 2월에 있었던 ‘제10기 지원단 위촉식’에서는 10년 차 활동 멤버 4명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박 단장은 이 위촉식에서 2023년도 지원단장으로 위촉됐다. “예전 월례회 때는 30명만 오면 많이 온 거라고 했는데, 요즘 월례회 출석 인원은 약 60명이 넘습니다. 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개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중간에 이탈하는 경우도 잘 없죠. 코로나 시기에도 후원회의 인원은 계속 증가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가 대구인데, 어려운 사람을 돕고 함께 이겨나가고자 하는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합니다.(웃음)” 그는 “대구에 있는 장애인체육 대표선수들의 지원이 주목적이고, 장애인체육에 대해 홍보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한 뒤 “그 일환으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스포츠 종목의 룰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중이에요”라고 말했다. “운동경기를 볼 때, 룰을 잘 모르고 보면 이해도 안 되고 재미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장애인스포츠도 마찬가지예요. 일반적인 운동경기에 대해 잘 아는 분들도 장애인스포츠 종목을 보며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예를 들어 휠체어 테니스 같은 경우는 투바운드가 룰인데, 모르고 보는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수가 있다고 봅니다. 룰을 잘 이해해야 보는 재미도 있고,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최근 분위기는 장애인을 ‘돕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어울린다’는 개념을 강조 중”이라고 말한 뒤 “장애인을 도와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강조하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박 단장이 감사로 속한 대한장애인낚시연맹에서 준비 중인 대회의 이름이 ‘전국 어울림 낚시대회’이다. “장애인들과 어울려서 함께 살아가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우리를 통해 얻을 점이 있고, 우리도 그들을 통해 얻을 점이 있다는 것을 지원단 생활을 통해 더더욱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지난 3월 21일, 지원단은 대구 북구청에 북구 내 장애인 선수들을 위한 장학금 200만 원을 기탁했다. 박 단장은 “각 구·군별 장애인체육회를 만들자는 취지도 있었고, 장애인체육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라며 기탁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구청장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구·군을 돌아다니며 장애인체육을 홍보하고 선수들을 지원할 예정입니다”라고 밝혔다. 올해 지원단의 후원금은 1억 6,460만 원이 책정됐으며, 전액 후원 예정이라고 한다. 박 단장은 “지역의 편중 없이 골고루 후원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뒤 “구·군 단위에서 장애인체육에 대한 지원이 잘 이뤄지면 대구시 전체의 장애인체육 활성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며 바람을 드러냈다. “지원단으로서 후원은 당연한 것이고, 단원들 간에 친목 도모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단원분들이 다들 본업이 있으신데, 다양한 직종의 단원들과 교류하며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원단을 통해 후원도 하고 얻어가는 것도 있었으면 합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지원단은 대구장애인체육회 직원들과 함께하는 체육대회 겸 단합대회를 5월 중에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로 알아가면서 도울 부분은 도와줄 수 있도록 원만한 관계 형성을 도모하려고 합니다. 자기 시간을 쪼개가며 나와서 고생하는 지원단원들과 체육회 직원들이 관계 형성을 잘해서 앞으로 함께 걸어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는 단장으로서 활동의 범위를 넓혀나갈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장애인체육부서가 보통 문화체육부 내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담당 부서를 알아보니 복지과 내에 장애인체육부서가 있더라고요. 앞으로 장애인체육부서와 연계해서 다양한 방면으로 장애인체육 활성화와 홍보에 힘쓰겠습니다.” 단장 임기는 1년, 그는 임기가 끝나고도 고문으로서 활동을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박 단장은 체육회 선수들에 대해 “장애인체육 선수들은 우선 ‘장애’라는 결함을, 곧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선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데, 선수로 나와 성적을 내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뒤 “물론 체육인으로서 몸도 중요하지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한데, 정신적으로 무장해서 열심히 해주길 바랍니다. 그럴 수 있도록 지원단에서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다. 박 단장은 대구장애인체육회지원단 단장과 동시에 대구북구축구협회의 협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40팀으로 대구 내에서 최다를 자랑하는 북구 축구협회에서 4 년차 회장을 맡은 그는 다방면으로 북구 축구 활성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부키 슛돌이 FC’는 지역아동센터와 소외계층, 저소득층 아이들 우선 선발, 이후 관내 아이들을 선발해서 무료로 수업을 진행하는 사업이다. 박 단장은 “여러 단체에서 다양한 봉사활동과 후원 활동을 진행하다가 ‘내가 북구 축구협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 끝에 나온 것이 부키 슛돌이 FC였어요”라며 창단 배경을 설명했다. 2021년 창단해 올해로 3기를 맞은 부키 슛돌이 FC, 박 단장은 “1기 당시엔 6학년만 뽑아서 진행하려고 했으나, 자리가 남아서 5학년까지 선발했습니다. 2기 때는 4학년까지 뽑았더니, 5·6학년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3기에는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총 60명을 선발했습니다”라며 우여곡절을 설명했다. “감독 1명, 코치 4명, 운영실장 1명, 총 6명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주 1회 토요일에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축구에 대한 교육은 감독과 코치가 진행하고 저는 주로 인성교육을 위주로 참여해요. 예절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확실히 교육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인사를 강조합니다. 아이들이 인사를 하지 않는다던가 대충 인사를 했을 때는 재차 불러서 교육하기도 하죠.” 부키 슛돌이 FC는 학부모들에겐 일절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박 단장은 “첫해에는 보조금 없이 진행했고, 2기 때부턴 구청에서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분들의 후원금이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라며 “지면을 빌어 아낌없이 후원해주시는 후원자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 식사와 간식이 정말 중요한데, 제가 음식업체에 연락해서 ‘한 달에 한 번만 가격을 싸게 해서 제공해달라’라고 타협해서 제공받기도 합니다.” 올해 4월 1일에는 북구 여성축구단인 ‘부키 W-FC’가 창단식을 가지기도 했다. 박 단장은 “대구에 5개 여성축구단이 있었는데, 북구에는 없었어요”라고 말한 뒤 “4월부터 시 대회에 출전할 예정입니다”라고 밝혔다. 대구의 여자 초등축구팀은 2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인 침산초등학교 여자축구부도 박 단장의 작품이다. 지난 2월, 그는 침산초 여자축구부 활성화를 위해 생수와 트레이닝복 등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 박 단장은 “체육회의 홍영숙 사무처장님을 비롯해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 감사합니다. 백만 원을 내는 한 사람보다 만 원을 내는 백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장애인체육회와 지원단, 그리고 체육 꿈나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 그리고 그 관심의 지속을 위해 많은 사람들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더욱 정이 넘치고 사랑스러운 도시 대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며 대구와 장애인체육회, 그리고 지원단 활성화의 바람을 드러냈다. [1148]
    • 문화
    2023-04-27
  • 대한민국 합창과 지휘의 발전을 이끌어온 일등공신 - 여홍은 원로 합창 지휘자 / 교수
    아름다운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가슴을 울리며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한다. 특히 합창의 조화롭고 아름다운 정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맑게 만든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음악교육, 하지만 대한민국은 경제 성장속도에 비해 음악・예술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이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 합창계를 발전시킨 일등공신, 여홍은 교수를 만났다. 반세기 이상 평생 외길을 걸어온 그는 9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지금도 현장에서 우리나라 합창계와 합창 지휘계를 선도하고 있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늘 아름답고 거룩한 음악이 넘치던 기독교 집안,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여홍은 교수는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부터는 교회에서 선교를 위해 고아원이나 양로원에서 찬양 봉사를 하기도 했다고. “1936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유치원을 졸업한 후, 해방되기 일년 전에 귀국해 할아버지의 고향이신 대구 반야월로 왔어요. 고등학교 2학년 말에 대구 신명여고에서 서울 신광여고로 전학했지요. 고3 음악담당이셨던 김경환 선생님께서 이끌어주신 덕에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해 서울대학교 음대에 입학해 성악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이후 50대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60대에 미드웨스트대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처음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남편인 강만식 교수(원자생물물리학 전공, 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권유로 일반대학원인 성신여대 성악과를 졸업하게 된다. “박사학위는 저를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김경환 선생 님의 남편이셨던 구두회 교수님께 논문 지도를 받았어요. 대단한 인연이지요. 워낙 철두철미하셔 죽을 힘을 다해 논문을 통과했어요. 그 논문을 다시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였지요(웃음).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당시에 학위를 받은 일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지 구 교수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성악을 전공한 여 교수는 합창지휘에 있어 더욱 큰 활약을 보였다. “1960년에 대학 졸업 후 모교인 신광여고에 임용됐습니다. 1980년, 당시 최명자 교장선생님의 간곡한 권유로 신광노래선교단을 창단하고 각종 음악회 및 전국 순회공연 등을 500여 회 가졌습니다. 그 때부터 합창과의 인연을 맺게 된 셈입니다. 물론 교회성가대 지휘는 계속 맡고 있었지만요.” 어수선한 국내 정황에 합창계 역시 여건이 쉽지 않았지만 그의 합창에 대한 열정 만큼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다. “각 학교마다 미션스쿨에서는 거의 합창단이 있었어요. 제가 전국고등학교합창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에는 합창제가 열리면 서울 소재 대부분의 고등학교 합창단들이 모두 참여해 2~3일 동안 경연을 할 만큼 큰 행사였지요. 하지만 지금은 입시다 뭐다해서 아이들에게 그런 경험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여 교수는 서울시교육위원회에서 서울음악교사 합창단을 결성, 동료교사와 함께 창단 때부터 퇴임시까지 12년 동안 단장을 맡으며 유럽 연주 객원지휘 활동을 했다. “당시 합창계에는 서울시 음악교사 합창단을 지도해주신 분들이 계셨어요. 너무 감사한 분들이었지요. 러시아에서 오셨던 노다르 찬바 교수님을 비롯해 일곱 분의 지휘자 교수님들과 선생님들 생각이 한번씩 납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기도한 여 교수. 국민훈장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학술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큰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여홍은 교수는 ‘지금까지 잘 해왔구나하는 생각에 참 자랑스럽고 소중하며, 감사한 수상’이었다고 말하며 소녀 같은 미소를 보였다. 이외에도 여 교수는 수많은 기관, 단체에서 특별상, 공로상, 장려상, 감사장 등을 수상했다. “모두 감사하고 뜻깊은 상이었지만, 특히 저를 기쁘고 보람되게 해준 것은 퇴임 시 동료인 국어교사 박기원 선생님이 주신 패에요. <짙은 꽃 향기를 남기시고>라는 주제로 시 한편을 돌에 새겨 주셨는데, 아직도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답니다(웃음).” 2006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을 펼친 한국교회연합성가대의 ‘메시아 연주회’에서 지휘를 맡은 여 교수, 50여 회 동안 여성으로 메시아 지휘를 맡은 사람은 여 교수를 포함해 단 2명에 불과했으니 그의 입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독일에서 앙코르 송을 5곡이나 받으며 청중들이 10분 이상 기립박수를 쳐 독일 조간신문에 최고의 여성 지휘자가 한국에서 왔다는 제목에 기사가 대서특필되며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청중들을 완전히 매료시킨 최고의 공연이었다. “미주성가대합창제 초청으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공연을 했고 한호문화예술제 초청으로 호주 시드니오페라하우스에서도 독창 연주로 영광의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꿈만 같은 순간이었지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와 지휘는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7,17민족화합대성회’입니다. 그외에도 잠실 주경기장에서 2,000여 명을 지휘한 일, 잠실 체육관에서의 부흥회 당시 1,200명(엔그래함-빌리그래함목사의 따님)지휘, 5・16여의도 광장에서 부활절 연합예비 당시 500명 지휘,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순복음인천교회의 150여 명의 지휘 등 대규모의 행사에서 수많은 지휘를 맡았지만 현재하고 있는 을지로교회와 친정교회인 숭덕교회의 30명도 안되는 성가대원들을 지휘하는 일 또한 소중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태도와 마음가짐은 똑같기 때문이지요(웃음).” 그는 한국합창총연합회 자문위원을 비롯해 한국교회음악협회, 일반합창・고교합창연합회에서 고문을 맡아왔다. 또한 한국여성합창협회에서는 이사장으로 오랫동안 활약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드물었던 시대에도 결코 소외되거나 기죽는 일 없이 적극적으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왔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도 목소리가 변하지 않아 을지로교회 수요정오성가대에서 엘토를 맡은 바 있는 그는 올해 2023년 부터는 지휘를 맡고 있다. 여 교수는 “독일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테너로 활동하고 있는 막내아들(강대준 교수-독일 뮌헨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후 독일 드레스덴 국립오페라단에서 활동)과 조그만 공연장에서 조촐하게 작은 음악회를 하고 싶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전했다. 평생을 음악과 합창 발전을 위해 일해온 여홍은 교수, 남다른 열정과 선한 영향력으로 살아온 그는 후학들에게도 의미있는 이야기를 전했다. “음악이 내 삶의 전부입니다. 삶이 풍요로워지려면 무엇보다 믿음을 바탕으로 정직과 성실, 그리고 겸손한 생활이 중요해요. 제가 간절히 바라왔던 삶이기도 한데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언제나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1147]
    • 문화
    2023-04-13
  • ‘그림 읽어주는 남자’가 전하는 감상하는 즐거움 - 이창용 도슨트
    전시회에 가면 늘 ‘내가 좀 더 예술에 대한 조예가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든다. 작품만 보고도 느끼는 것이 있겠지만, 그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나 숨겨진 이야기 등을 알고 보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도세르(docere)에서 유래한 도슨트(docent)는 일정한 교육을 받거나 전문지식을 갖추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 또는 일을 뜻한다.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 전반을 총괄하는 큐레이터나 미술평론가에 비해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는 있겠으나 도슨트야 말로 우리와 가장 가까이서 소통하는 안내자이자 메신저인 셈. ‘그림 읽어주는 남자’ 아트스토리105의 이창용 대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슨트다. 1세대 도슨트로서 현재 한국에서 가장 왕성한 강연, 저술, 방송활동을 하는 인물. 전국에서 이어지는 강연 요청으로 피곤할 법도 한데 인터뷰 내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명확한 화법과 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분위기를 이끈다. 역시는 역시다. _김유미 편집국장 “도슨트는 전시회를 해설해 주는 사람으로 관람객에게 미술품을 감상함에 앞서 전시 작품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통해 전시 관람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미술관 관람이 조금은 지루하거나 어려울 때는 물론, 잘 알려진 작가의 작품이라도 작품의 표현 기법을 위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보다 작품의 작가의 생애나 그 시대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조금의 지식이 있다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죠. 특히나 난해하게 느껴지는 현대미술로 갈수록 사전에 미술사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관객들에게는 각각의 작품이 드러내는 의미를 짧은 감상시간 안에 포착해 해설하는 도슨트가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역사학을 전공한 이창용 대표는 2004년, 로마사를 공부하던 중 ‘로마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이탈리아로 훌쩍 떠났다. 이래저래 범상치 않은 인물임은 확실하다. “가이드 일을 하는 선배를 따라 박물관에 갔는데 여행객들에게 소개하는 내용을 들으며 갸우뚱했어요. ‘어? 저게 아닌데? 내가 하면 더 재밌게 설명할 수 있는데’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에 바티칸 박물관을 방문한 여행자분들을 상대로 도슨트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용돈이나 벌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일하면 할수록 제 적성에 딱 맞는 거에요. 2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원에서 제대로 미술사학을 공부하면서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웃음).” 당시만 해도 ‘도슨트’는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상황. 좋아하는 것만으로 일을 이어가기에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결국 학업을 마치고 해군장교로 복무하고 대기업에 취업한 이 대표. 3년 여 근무하는 동안 특유의 친화력과 창의적 성향은 조직에서 빛을 발했지만, 맘 속 깊이 감춰놓은 도슨트에 대한 열망은 계속 커져만 갔다. “안정적인 생활 속에서도 행복하지가 않더라구요. 많은 고민 끝에 큰마음을 먹고 미술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로 떠났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하다보면 길이 열리겠지’라는 생각이었지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등 유럽의 미술관에서 현지 가이드와 도슨트로 활동했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미술을 전공하고 유학 와 있던 아내를 만나기도 했으니까요(웃음).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후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간 쌓아온 역량을 맘껏 펼쳐보자 싶었어요.” 이창용 대표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미술사를 귀에 쏙쏙 들어오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다. 연 평균 300회 강의를 이어가며 전 국민들의 문화수준 향상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술과 클래식이 함께 하는 <아트콘서트> 마스터로도 활동 중인데 세계적인 화가들과 그들의 명작에 얽힌 이야기와 이어지는 곡을 선정해 오케스트라의 선율로 풀어내는 매력적인 공연으로 전국적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창용 대표는 최근, 인기프로그램인 JTBC ‘톡파원25시’에 출연해 ‘미깡(미술깡패)’라는 별명을 얻으며 인지도를 더욱 높여가는 중이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좋은 기회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제 개인의 영광보다 ‘도슨트’라는 직업을 알리고 많은 분들이 작품을 제대로 알고 즐길 수 있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방송에서도 얘기했지만 시간과 비용을 들여 큰 맘 먹고 세계적인 박물관에 오셔서 그곳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고 즐기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모나리자’만을 위한 곳이 아님에도 줄을 서서 기다려 모나리자 앞에서 사진만 찍고 가시는 여행객들이 대부분이세요. 극장에서 영화 예고편만 보고 나가버리는 셈입니다. 우리가 다가가려 하는 만큼 그림은 우리에게 찾아와 감동을 선물해 줍니다. 어렵게 생각하시지 말고 그림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해요. 저도 계속해서 노력해가겠습니다.” 최근 이 대표는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를 발간했다. “그동안 여러 출판사와 논의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야사 위주의 흥미만을 원하여 출판이 성사되지 못하였습니다. 오랜 기간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는 총 4부작으로 1편 ‘프랑스’, 2편 ‘스페인-네덜란드’, 3편 ‘이탈리아-오스트리아’, 4편 ‘한국’으로 출간될 예정. “많은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루하다고 이야기하죠. 한두 시간 짬을 내어 한 권의 책을 읽듯이,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화가의 인생을 살펴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 그 화가의 작품이 이 전에 비해 훨씬 더 깊고 무겁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재밌는 동화책을 읽어주며 어린아이에게 책에 대한 재미를 갖게 해주는 것처럼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를 선물해 주는 ‘그림 읽어주는 남자’로 꾸준히 기억되고 싶습니다.” [1140] [2018~현재] •아트스토리105 대표 •미술사 전문강사 / 아트콘서트 마스터 [2012~2018] •루브르 박물관 현지 도슨트 •오르세 미술관 현지 도슨트 [2012]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바티칸 박물관전> 큐레이터 [2006~2008] •바티칸 박물관 현지 도슨트 [2005]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인상파 거장전> 도슨트
    • 문화
    2023-02-27
  • 디오라마(Diorama)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재현의 마술사
    거대한 세상 안에서 또다른 작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미니어쳐 예술, 디오라마(Diorama)는 작은 무대를 뜻한다. 풍경화나 그림으로 된 배경에 축소된 모형을 설치해 특정한 장면을 만들거나 배치하는 것을 말하며 모형을 이용해 역사적 사건, 자연 풍경, 도시 경관 등을 표현한다. 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활용되며 기록용으로 쓰였지만, 이제 하나의 예술 장르로써 다양한 오브제의 활용과 축소된 연출은 물론, 음향이나 조명을 함께 연출하여 생생함을 더하기도 한다. 영화, 드라마 미술 감독이자 무대 예술가로서 활동해오던 신언엽 감독. 그는 자신의 무대를 작품으로 승화시켜 국내 최초 디오라마(Diorama) 전시를 선보이며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를 발견해 재현의 마술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신언엽의 디오라마를 조명해본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디오라마는 한 장면의 사건이나 시간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인물과 배경의 전체적인 질감의 정교함을 보여주며 스토리, 음향, 조명, 홀로그램 등의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여 아트와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융복합 예술을 보여준다. 이러한 표현 매체의 확장은 관람객에게 마치 그 시간 그 장소에 들어가 있는 듯한 생생한 장면(Scene)을 보여주며 쉽게 가지 못하는 공간, 느껴볼 수 없었던 공간을 디오라마 작품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디오라마는 단순한 키덜트(Kidult) 산업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한 찰나의 순간을 입체감 있는 표현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줍니다. 장르를 구별하지 않는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통해 교육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느껴 볼 수 있어요.” 디오라마는 근대 이후 유럽귀족들이 테이블 위에 인형 등을 올려놓고 역사적인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데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인형 뿐 아니라 공룡, 전차, 자동차, 비행기 등 점차 종류가 다양해 졌고 1820년대 프랑스의 화가이자 사진 발명가인 다게르가 무대 예술가로서의 경험을 활용해 1822년 파리에서 세계 최초의 디오라마 극장을 설치하고 운영했다고 한다. 1932년, 일본 도쿄과학박물관에서 전시된 디오라마가 최초로 기록된 전시용 디오라마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언엽 감독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정밀 묘사로 인물화를 그리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유명한 배우였던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그린 그림은 지금 봐도 사진과 같이 보일 정도로 상당한 실력이다. 부산이 고향인 신 감독은 서울로 올라와 연극학과에서 무대디자인과 기술을 공부하고 영상대학원 프로덕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후 실감융합콘텐츠학 박사를 공부하며 방송업계 드라마 미술감독, 공연무대 디자인과 영화 미술감독으로 활동한다. “연극, 뮤지컬 무대 디자인, 드라마·영화 미술감독,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호텔 인테리어와 웨딩홀 디자인도 많이 맡았어요. 콘서트부터 광고나 뮤직비디오 세트 디자인을 했구요. 시간과 예산적인 문제로 인해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에 갈증이 나서 디오라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피규어를 수집했었거든요(웃음).” 신 감독은 히어로 피규어에 영감을 받아 ‘배트맨’ 시리즈를 시작으로 ‘백투더 퓨처’, ‘매드맥스’, ‘트랜스포머’, ‘스타워즈’ 등 피규어를 수집해왔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영화 속 장면을 축소된 모형으로 재현해 보곤 했다. “전공인 무대 디자인이 바탕이 됐습니다. 취미로 피규어를 모았는데 표현이 정교하고 또 고가의 제품이 많았죠. 비싸게 샀는데 그냥 장식장에만 두기가 아깝더라구요(웃음). 피규어의 배경을 만들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작품 사진을 찍어 공유했더니 반응도 좋고 무엇보다 제가 너무 즐겁고 재미있더라구요.” 점차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고퀄리티의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 된 신 감독. 취미로 시작된 신언엽의 디오라마는 관련 산업분야의 전시나 박람회에 초대 작품으로 초청되었고 그의 작업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가상의 캐릭터를 현실의 세계로 가져와 우상의 대상인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된다. “그동안 제가 너무 해외 히어로를 주인공으로만 만들고 있었더라구요.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등 우리나라의 영웅을 주제로 한 디오라마를 만들고 싶었는데 우리나라 영웅 피규어가 없어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보게 됐고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커다란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과 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마주했던 판문점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3D디자인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크기가 비교적 큰 디오라마를 전시할 장소가 문제였다. 신 감독은 통일부에 문을 두드렸다. 서기관을 통해 그의 디오라마를 주제로 했던 논문과 포트폴리오, 피규어를 챙겨들고가 통일부를 설득해 장소를 제공받은 것. 첫 전시 공간은 경의선의 북쪽 가장 끝에 위치한 ‘도라산역’ 로비였다. 전시공간이 마련되었고 ‘판문점 선언’ 당시를 재현한 디오라마가 완성이 되어 ‘봄이 오면(When spring comes)’ 이라는 작품명을 가지게 되었다. 같은 해 이 작품은 4월에 서울시청, 5월에는 부산항 축제장과 부산통일관에 전시되었으며 그 이후 계속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기릴 수 있을 만한 의미 있는 공간에서 전시가 이루어졌다. 디오라마 영역에서 단독으로 전시를 개최한 국내 최초・최대 규모이자 미술감독이자 무대예술가였던 ‘감독 신언엽’이 ‘작가 신언엽’으로의 변신을 알린 뜻 깊은 전시이기도 했다. 전공 분야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던 감독 신언엽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디오라마 작가로 변신했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대중들에게 알리는 의미 있는 일에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쏟기로 결심한 것. 2019년 서대문(돈의문)을 디오라마로 복원한 작품도 화제였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5년에 강제 철거된 돈의문을 104년 만에 문화재청, 서울시, 제일기획, 우미건설 등이 참여해 민관 협력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신 작가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디오라마로 복원하는 작업을 맡았다. “외부 제의를 받고 작업한 첫 작품인데 서대문 복원이라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 참여하게 되었지요.” 모 통신사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한 ‘군산 쌀 수탈사건’, 일제강점기의 디오라마 재현을 통해 역사적 의미와 함께 탁월한 창의력을 인정받았다. 국한된 소재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확장성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는 홀로그램, 음향, 조명 등 4차 산업의 다양한 미디어를 도입해 생동감 있는 장면들을 연출해 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신 감독은 바쁜 일정을 쪼개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무대미술) 강단에 서며 학생들과도 소통하고 있다. “디오라마는 인간의 숨겨진 로망을 실현해줍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법한 본능일 거예요. 시공간을 초월해 특별한 역사적 순간, 새로운 창조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 디오라마의 매력입니다.” “디오라마를 통해 재현된 결과물들은 판매하지 않고 문화와 교육, 전시의 목적으로만 활용할 계획”이라는 신언엽 감독. “자신의 디오라마 작품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올바른 역사관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며 따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 EDUCATION ] • 2020 ~ 2022 | 광운대학교 실감융합콘텐츠학과(박사수료) • 2009 ~ 2018 | 홍익대학교 영상대학원 프로덕션디자인 전공(석사) • 1998 ~ 2006 | 용인대학교 연극학과 무대디자인 및 기술 전공(학사) [ AWARD ] •2018 | 통일부장관 표창 디오라마부문(통일부장관 조명균) [ FILM ] •2021 | (주)엠씨엠씨 ‘봄날’(감독: 이돈구) 외 12편/미술감독 [ BROADCASTING ] •2017 | MBC 수목미니시리즈 ‘역도요정 김복주’(연출 오현종) 외 4편/ 미술감독 [ DIORAMA EXHIBITION ] •2016.03 ~ 2018.08 | SBA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엽스타일(YUPSTYLE) 디오라마관 상설전시 • 2018.03 ~ 2019.03 | 서울시 상암동 DMC홍보관 엽스타일(YUPSTYLE) 디오라마 상설전시 • 2018.03 ~ 2019.03 | 서울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살림터 1관 로비 상설전시 • 2019.02 ~ 2019.04 | 파주시 도라산역 로비1F ‘4.27판문점’ 디오라마 상설전시 • 2019.12 ~ 2020.02 | 서울 인사동 CNT 마루갤러리 개인전[재현의 마술사: 신언엽의 디오라마] [ LECTURE ] • 2011.09 | 한국방송예술진흥원[장면만들기] 출강(2학기)/외래교수 • 2017.08 | 서울코믹콘[ 디오라마그시작의배경] -코엑스 • 2018.09 | 홍익대학교영상대학원프로덕션디자인[ 공간과조명] 출강(2학기)/시간강사 • 2022.05 ~현 | 구리고등학교 레인보우 메이커 특강[매체미술교과로서 디오라마의 세계] 수업/시간강사 • 2022.09 ~현 |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무대미술 출강/시간강사 [1140]
    • 문화
    2023-02-27
  • 패션계의 슈퍼루키(super rookie) 끼와 열정 가득한 MZ세대의 대표 디자이너
    꾸준히 성장해온 국내 패션시장,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해외직구 등을 통해 소비자들이 해외브랜드 의류를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타격을 맞고 있다. 김량환 대표는 이런 시대흐름에 맞춰 온라인과 오프라인 쇼핑몰을 만들어 개별브랜드(Leon)를 창업, MZ세대들에게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특별하고 새로운 패션을 전하고 있는 인물이다. 글로벌 패션리더로 성장하고 있는 김 대표를 만나봤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BIGBANG INTERNATIONAL 김량환 대표는 Leon브랜드와 도깨비 쇼핑을 통해 다양한 제품들로 구성된 종합쇼핑몰을 창업하여, 특별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특히 MZ세대들이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유니크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는데 좋은 소재만을 고집하여 품질향상을 우선시하는 한편, 대량 생산으로 제품단가를 낮춰 판매하는 차별화 전략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국내 온라인 쇼핑몰과 유명 온라인 쇼핑몰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될 예정으로 고급원단을 이용한 자체 브랜드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대 초반인 김량환 대표는 독보적인 창업 아이템과 기술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미한 독창적인 디자인들이 눈에 띈다. “국내외 최신의류 트렌드에 맞추어 앞서가는 색상과 디자인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섬세한 제품 마감처리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김 대표는 “최근 시장 환경 SWOT분석을 통해 보자면 강점은 원단 기능성 고급화, 차별화된 디자인, 가격대비 뛰어난 품질입니다. 약점은 판매 채널을 다양화와 마케팅 홍보를 확대부분이지요. 무엇보다 오프라인 거래처를 확보해야 합니다. 코로나 및 경기 침체로 인한 경쟁 업체 세력이 약화되어 있고 시장 점유가 용이한 점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해요. 또한 위기라고 한다면 의류사업 진입 장벽이 낮아 창업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과 악성 재고증가를 들 수 있겠지요.” 20대 초반이지만 그의 시장분석은 경험이 많은 CEO 못지않게 직관력과 통찰력이 돋보인다. 그만큼 날카롭고 정확하다.” 현재 경북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학생으로 학업을 병행하면서 도깨비 쇼핑을 운영 중인 그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좋은 파트너를 찾아 다양한 유통 채널을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유행에 얽매이기보다는 소재와 봉제, 가봉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 독창성)와 숙련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더욱더 연구에 힘을 쓸 계획입니다. 브랜드 이름만큼이나 ‘김량환’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 가치가 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고 있어요.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른 MZ세대는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꾸미고 활용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를 대표하는 유니크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어요.” 자신만의 개성 드러내는 디자인으로 MZ세대들과 소통할 것 “최근 의류 등을 구매하는 형태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패션 대기업들은 브랜드를 축소하거나 통합을 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처럼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 역시 어렵게 되겠죠. 때문에 온라인 쇼핑몰을 활성화 시킬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중저가 쇼핑몰이 성장하고 해외진출이 활발한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온라인 유통비중이 높은 패션업계를 중심으로 패션디자이너의 활동이 좀 더 넓어지고 자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의류 외에도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면서 소비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주얼리, 가방, 악세서리 등을 구매할 수 있도록 현재 도깨비 쇼핑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독창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합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엉뚱한 시도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요.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든 방면으로 시도하고 받아들일 생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MZ세대들과 소통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상업적으로 대중에게 유통되는 옷보다는 자신의 가치관과 개성을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보는게 남는 것’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여가 시간엔 전시회와 패션쇼, 박람회 등 패션・미술과 관련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보고 배우고 느끼고자 합니다. 예술적 감각과 패션 안목을 키우고 영감을 얻는데 도움이 되고 있어요.” 하이패션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한국에서 변함없이 자신의 패션철학과 아이덴티티를 고수하여 현재 자신의 입지를 월드클래스로 다지는 데 시금석이 된 인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우영미’ 대표가 롤모델이라며 웃어 보이는 그는 최근 MZ세대들 사이에서 그의 브랜드 가치가 다시 한 번 평가되고 있지만 세계적 명성에 비해 국내 인지도와 시장점유율이 적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대기업이 패션 유통을 장악한 국내 패션 업계 실정과 명품 패션에 대한 일종의 사대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면서, 국내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 된 측면이 컸어요. 그 과정에서 MZ세대들은 ‘우영미’를 발견했고, 열광하고 있는 거죠. 그야말로 ‘시대가 클래스를 알아본 셈’이죠.” 톡톡 튀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호기심, 그의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 그리고 단단한 자신감으로 뚜벅뚜벅 발을 내딛는 그는 옷을 만드는 즐거움이나 좋은 소재를 발견할 때의 기쁨이 가득하다. 그는 유명 브랜드라고 해서 무조건 좇지 않는다. 자신의 니즈를 정확히 알고, 무엇이 좋은 건지 야무지고 스마트하게 소비하는 MZ세대들의 욕구를 적중시키고 있다. “패션이란게 예술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비즈니스이기도 하죠. 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패션 산업군은 예술에 한 발자국 걸쳐 있으면서도 비즈니스가 중요합니다. 다른 면으로 봐서는 제조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요. 하나의 상품이 나오기까지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이지만 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잘 잡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졸업 후 여성 패션에 최초로 바지 정장을 도입, 여성에게 자유를 입힌 패션 혁명가라고 평가받는 ‘이브 생 로랑’의 나라,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라는 김 대표. 김량환 대표 자신의 피지컬(신체)과 패션 수준 또한 남다르다 보니 모델이냐는 오해도 많이 받는다. ‘시크하며’, ‘쿨’한 이미지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따뜻한 그는 “무엇보다 나만의 아이덴티티(Identity, 독자성)를 갖추고 싶다”며 카리스마를 내비치다가도 “향후 소외계층에 의류를 나눔하는 등 환원 사업도 함께 해나가고자 한다”는 뜻도 전했다. 그의 성장과 왕성한 활약을 통해 대한민국의 패션 피플들이 자신만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멋을 즐기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를 기대해 본다. [1145]
    • 문화
    2023-02-27
  • 유쾌한 만능엔터테이너 부부 “경남 김해, 엔터 문화의 저력을 입증해보이겠습니다”
    키즈댄스대회 <두다붐3(DODABOOM)>. 2019년부터 시작돼 벌써 3회를 맞이하는 이 대회는 경남 최대 규모의 키즈댄스경연대회로 자리 잡은 한편, 서울에서 유명연예기획사 관계자도 직접 김해를 찾아 참여 학생들의 공연을 관람할 정도로 그 위상을 더해가고 있다. 작년 9월 대회에는 경남뿐만 아니라 제주ㆍ울산 등 전국에서 60팀(솔로 댄스ㆍ저학년 14명ㆍ고학년 46명)이 참여하고, 300명이 넘는 관중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매년 성공적으로 개최되며 그 규모와 위상을 키워가는 이 대회의 주최는 다름 아닌 김해지역 케이팝 댄스 전문학원인 ‘엔터아트아카데미’. 엔터아트아카데미 내외점에서 김보연・김민수 대표를 만났다. 이토록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을까. 두 대표에게는 지면에 차마 다 담을 수 없는 좋은 기운과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_김유미 기자 김보연・김민수 부부는 두다붐 대회뿐 아니라 경남 김해에서 1년에 3〜4회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참여하는 콘서트를 진행하고 꾸준한 길거리 버스킹으로 케이팝 문화 확산에도 노력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댄스 동아리 활성화를 위해 6년째 자비를 들여 ‘스쿨액션’이라는 행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장유(1호점), 삼계(2호점), 내외(3호점), 주촌(4호점 예정) 네 곳을 운영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도 이렇게 힘을 쏟는 이유가 뭘까? “저희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라고 해야겠죠. 물론 저희가 처음 춤을 배울 때와는 달리 K-POP과 K-DANCE의 열풍이 거세지면서 춤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전문적인 댄서를 꿈꾸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서울・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경우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가진 전문댄스학원 부족에다 인식도 따라주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에요. 경남 김해에서도 인프라와 시스템을 부족하지 않게 갖추고, 후배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춤을 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오직 그 마음 하나로 열심히 달리고 있지요(웃음).” 김보연 대표는 충북 제천, 김민수 대표는 충남 예산이 고향이다. 끼 많던 부부는 각각 레크리에이션학과, 이벤트연출과를 졸업했다. 춤에 진심이었던 두 사람은 서울의 한 댄스학원에서 만나자 마자 연인이 됐다. 강사로 있던 그녀가 장르를 넘나드는 후배 김민수 대표의 뛰어난 댄스 실력에 한 눈에 반하고 만 것. “하지만 프러포즈는 남편이 먼저 했다”며 그녀가 장난스레 웃어 보인다. 2009년, 결혼 후 두 사람은 서울에서 인연이 있던 선배의 권유로 경남 김해에 내려오게 된다. 댄스에 있어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곳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펼쳐보고자 하는 큰 꿈을 가지고 내려와 수석 강사로 안정된 생활을 했지만, 뜻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고. 2011년, 큰마음을 먹고 김해 시내를 벗어나 장유에 엔터아트아카데미를 오픈했다. “여유자금 없이 학원부터 열었으니 최대한 비용을 줄여야 했어요. 임대만 해놓고 인테리어부터 디테일한 마감까지 처음부터 둘이서 직접 해나갔습니다. 당시에는 ‘초등부’, ‘유아부’도 운영했었는데 정말 고생 많았죠. 대소변 못 가리는 아이들까지 케어하고 잠도 재우고…. 아이들에게 예쁜 무대 의상을 입히기 위해 공업용 미싱기를 사서 밤새도록 돌리기도 하구요. 남편은 공구를 들고 뛰어다녔죠. 학원차 운행까지 직접하며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보람되고 즐겁기도 했던 시간이었어요. 그 때 그 고생들이 다 자산이 되어 이제는 웬만한 일은 전문가 수준으로 어렵지 않게 챙길 수 있게 되었거든요(웃음).” 장유(1호점)에 이어 삼계(2호점) 오픈은 자연스레 진행됐다.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제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실력 있고 뛰어난 친구들을 강사로 채용했어요. 저희와 같이 지역에 있는 후배들에 대한 열망이 뛰어난 친구들이다 보니 더 열정적으로 임하더라구요. 내외(3호), 주촌(4호 예정)은 물론,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끈끈한 사제 간의 정으로 똘똘 뭉친 엔터아트아카데미는 내실 있는 교육 커리큘럼으로 유명하다. SM 등 대형기획사에서 오디션을 직접 보러올 정도로 브랜드 파워도 있다. 실제 서울 본사 기획사 연습생으로 4명을 최종 합격시키기도 했다. 대학입시 전문학원으로도 100% 합격률을 자랑한다. 비영리단체 ‘엔터아트’를 통해 댄스공연은 물론, 공연기획, 영상촬영에다 전문MC까지 해내는 재능 많은 두 부부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다양한 지역 행사에 꾸준히 초청 받으며 밝은 에너지를 전하고 있다고. 엔터아트아카데미 자체적으로도 정기적인 콘서트를 직접 선보이며 학생들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한편, 지역민들에게도 쉽게 접할 수 없는 댄스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해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모금을 통해 독거노인돕기 등 환원사업도 펼치며 따뜻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댄스를 통해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고 창의력을 기를 수 있도록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획일화된 댄스가 아니라 같은 동작이라 하더라도 각자만의 개성을 갖췄으면 하지요. 엔터아트아카데미 콘서트의 경우 각 지점별로 작품 스토리, 기획, 안무구성, 음악, 의상 등을 학생들 스스로 기획하고 연습합니다. 춤을 잘 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연의 레퍼토리나 스토리 라인의 설계까지 짜내면서 실력을 키워가는 거죠. 지방에서 춤을 추고 배우는 친구들이 어깨 쫙 펴고 당당하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도 계속해서 서포트 해나갈 수 있게 열심히 하겠습니다(웃음).” [1145]
    • 문화
    2023-02-27
  • 뜨거운 댄스의 열정으로 삶의 활력 되찾아 건강한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예비 사회적 기업」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신도로에 위치한 ㈜정글러 댄스 스튜디오는 여성가족형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댄스 학원으로 첫 사례가 더욱 의미가 깊은 이곳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전한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곳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주간인물은 타고난 춤꾼으로 새로운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손정희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올해 서른아홉의 손정희 대표는 타고난 춤꾼이다. 어려서부터 춤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그녀는 학창시절,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며 끼와 재능을 펼쳤다.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선박 회사에 디자이너로 일하며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던 그녀에게 춤은 잊지 못할 꿈이었단다. “학창시절, 춤은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는 탈출구였어요. 6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고 열심히 일하는 부모님은 늘 바쁘셨죠. 학창시절, 댄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춤을 연습하고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섰던 순간이 가장 행복했어요. 늘 ‘학교-연습실-집’을 오가며 바쁘게 생활했지만 그때가 가장 살아있는 것 같은 순간이었어요. 대학생 때도 외부 댄스팀을 결성해 활동했었구요.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사회인이 되었지만 춤에 대한 갈망은 여전했습니다. 댄스 강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직업이다 보니 고민도 많았지만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에 끝내 회사에 사표를 쓰고 댄스 강사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0대 시절,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춤에 대한 욕구는 비단 10대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마음껏 자신의 끼를 펼치고 새로운 재능을 찾고 싶은 중장년층의 춤에 대한 욕구도 대단하다. 조금은 부끄럽고 수줍은 마음에 망설여지는 춤 배우기. 손정희 대표는 그런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춤에 다가설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회원들도 점점 실력이 늘고, 수업에 빠지는 일 없이 즐겁게 춤을 배우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취미 생활로 춤을 배우고 싶어 하는 직장인, 삶의 새로운 활력을 찾기 위해 춤을 배우는 시니어, 건전한 여가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건강해지는 청소년들까지... 춤을 통해 새로운 삶의 기쁨을 되찾는 회원들이 있어 일할 맛이 납니다(웃음).”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즐거운 그녀의 수업에는 남다름이 있다 . 단순히 테크닉을 전수하는 것을 넘어서 열린 소통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 특히나 말 못할 고민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그녀는 누구보다 친한 친구이자 따뜻한 멘토다. “2~3년 전, 부산 서면에서 춤을 배우는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연습실을 열었어요.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다보니 너무 정서적으로 힘든 친구들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제가 춤을 가르치기 힘들 정도였는데 아이들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남모를 고충이 많더라고요. 자연스레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힘든 마음을 토닥여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더라고요. 그랬더니 부모님한테도 선생님한테도 말 못할 고민을 제게 털어놓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춤을 배우며 점점 밝아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그랬던 것처럼 춤이 이 아이들의 힘든 현실을 극복하고 꿈을 이뤄가는 새로운 돌파구였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그 연습실 이름이 정글러 댄스였고 그 이름을 따, 북구 화명신도시에 ㈜정글러 댄스 스튜디오를 열었습니다.” ‘청소년들의 건전한 여가문화 확산에 기여하겠다’는 창업정신에 걸맞게 이곳은 2021년 여성가족형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됐다. 댄스 학원으로는 첫 사례라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부산 북구진로교육센터를 비롯해 청소년상담센터와 다른 예비 사회적 기업과 MOU를 체결하고 건전한 여가문화를 선도하고 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10대 청소년들 중에서 아이돌에 열광하지 않는 학생이 있을까요. 그럼에도 아직도 청소년들이 춤을 춘다고 하면 곧 탈선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님들이 많아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건전하게 춤을 배우면 오히려 스트레스 해소와 자아실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함께 춤을 배우는 친구, 선후배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기에 인성 교육에도 효과적이죠. 이렇듯 청소년들의 건전한 여가문화 확산을 통해 올바른 전인성 교육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곳은 K-POP, 코레오, 힙합, 줌바 등 다양한 춤을 배울 수 있다. 아동, 청소년, 직장인, 시니어 등 학원을 다니는 연령층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열정과 실력을 갖춘 전문 댄스 강사의 맞춤 교육을 받을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요즘 가장 트렌디한 K-POP을 배우고 만족해하는 한 회원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K-POP을 배우는 것이 유행인데 이곳은 요즘 가장 트렌디한 K-POP을 배울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며 “개인 SNS 계정에 춤을 배우는 일상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라는 호평을 전했다. 손정희 대표는 댄스 강사지만 그에 앞서 가장 열정적인 춤꾼이다. 그녀가 가장 빛을 나는 곳은 역시 무대. 여러 댄스 대회에 나가 수상한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오랜 시간 갈고 닦아온 춤 실력은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무대 위에 설 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팀원들과 함께 무대를 준비하며 땀 흘리고, 성공적으로 무대를 완성했을 때 희열은 커요. 이런 충만함과 행복을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프로, 손정희 대표. 그녀는 열악한 댄스 강사의 근로여건 개선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댄스 강사의 근로여건이 워낙 열악하다보니 저도 어려울 때가 많았어요. 특히 코로나19가 유행할 때는 생업을 하지 못해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도 못했죠. 이런 어려움을 익히 알기에 후배들에게는 보다 좋은 근로환경에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싶어요. 앞으로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글러 댄스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후배들이 안정적인 근로환경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어요.” [1141]
    • 문화
    2023-01-27
  • 나만의 특별한 사진, 스토리텔링을 통해 피사체를 프레임 안에 담아내다
    사진이 대세인 시대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에 스마트 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우리의 일상은 스마트폰 앨범 속에 담겨 추억으로 남는다. 이제는 보다 전문적인 사진이나 영상들도 스마트폰으로 촬영할 수 있어 상업화하거나 전시회를 갖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나만의 특별한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누구나 한번쯤을 가져봤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통한 피사체를 프레임에 담아 예술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특별한 분위기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양재명 작가를 만나 셔터토그를 해보았다. _우호경 취재본부장, 주정아 기자 어릴 때부터 사진 찍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양재명 작가, 아버지께서는 중학교 2학년 때, 일본인 친구에게 부탁해 당시 야시카[YASHICA] 카메라를 선물해 주셨다. 당시만 해도 한국 경제수준에서 카메라는 굉장한 고가의 물품이었다. 그는 용돈을 모아 주말이면 흑백필름 2통을 구입하여 카메라를 들고 덕수궁, 경복궁 등을 오가면서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동네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장에게 사진 강습을 받는 등 사진 찍는 일에 남다른 열정을 가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진을 전문으로 배운 분이 아니었기에 전문적인 사진 강의라기보다는 현장실습 위주의 기술 전수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 땐 그 시간이 어찌나 좋던지요(웃음).” 양재명 작가는 서울예술대학 영화학과에 진학하면서 영화 카메라를 전공했지만 좀 더 전문적으로 사진과 카메라를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일본 최고의 예술학교인 도쿄비주얼아트에 입학하여 방송학과에서 ENG 카메라, 스튜디오 카메라를 공부하였고 졸업 후 다시 사진학과에 편입해 광고사진도 공부했다. 이후 미국 하와이 주립대학에서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하는 등 해외 각국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전문적으로 이론과 실기를 겸한 프로작가로 성장해갔다. 양 작가는 “이미 필름 카메라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고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 카메라의 시대도 스마트 폰의 편리함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누구나 스마트폰 하나면 자신만의 멋진 사진을 찍어 전시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편리하게 촬영하는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은 한계가 있지요. 전문 프로 사진가들이 DSLR 카메라를 고집하는 이유는 스마트폰으로 표현할 수 없는 디테일하고 심도있는, 자기 표현력이 강한 사진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진을 배우는 사람들은 꽃 사진, 풍경 사진을 주로 촬영한다. 그러다 혹 인물 사진을 찍을 때 배경은 흐릿하고 피사체의 인물만 또렷하게 표현된 사진에 매료된다. 그러나 피사체 심도의 깊고 얕음은 사진가가 주제에 적합하도록 촬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양 작가는 사진을 찍기 전에 반드시 ‘스토리텔링’을 이용하여 촬영하라고 권유한다.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이다. 이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스토리텔링’을 모른 채 그저 피사체를 보이는 대로 찍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마음의 창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예술 자신만이 생각하는 특별한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멋진 사진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생활 속에서 생활하는 장소에서 만들어진다. 그러기에 사진 자체를 특별하게 찍으려고 하기보다는 촬영하는 장소를 잘 선택하여, 멋진 사진을 만들 수 있는 곳을 찾아 그 장소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사진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선택한 장소를 찾았다면 장소에 담긴 보편적인 요소와 느낌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는 것이 핵심이며, 촬영할 때 그 장소의 특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요소를 찾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은 단순히 그 장소를 묘사한 사진과 그 장소에 대한 스토리를 전달하는 사진의 패러다임을 통한 사진의 이해라고 전했다 그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프로 사진가들은 촬영하기 전에 반드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토리를 생각하고 사진을 찍는다. 무턱대고 셔터만 누른다면 결과물에서 큰 차이가 난다. 남들이 공감하는 멋진 사진을 찍는 방법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렌즈와 조리개 셔터와 노출 그리고 빛의 관찰과 활용방식을 이용하여 프레임 한 컷에 주제(스토리)를 넣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토리와 함께 인간의 삶과 갈등, 진실과 정의, 삶과 죽음이라는 부제를 넣어 촬영하라고 권유한다. 양 작가가 생각하는 사진은 카메라의 메커니즘과 렌즈에 의한 광학적 기록이기보다는 사진가의 마음의 창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또한 ‘사진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피사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같은 피사체라도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 독특한 종합예술이라고 강조했다. [1141] •서울예술대학 영화과(연기, 영화 카메라 전공) •일본 선샤인 외국어대학 일본어과, 도쿄비주얼아트 방송학과 및 사진과 졸업 •미국 하와이 주립대학 저널리즘 전공 •호텔신라, 삼성에버랜드, 대상 청정원,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조일제지 엘르골프, 엘르스포츠 등 다수의 유명 기업광고 촬영 •현)서울외신기자클럽 정회원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소속 골든브릿지(금교) 서울특파원 외신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국무위원, 김영남 조선노동당 상임위원장 등 세계 각국 정상들과 노태우, 김영삼,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 취재 •대학에서 사진 강좌와 칼럼을 쓰고 매년 사진 전시회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수상 내역 •2020.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보도 기자 대상 •2021. 제7회 대한민국 예술문화 스타 대상 문화예술 대상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 대상 보도 기자 대상 Great 대한민국 100인 대상 보도 부문 대상 •2022.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취재 보도 대상
    • 문화
    2023-01-27
  • 자연이 주는 치유, “온 가족이 함께하는 행복한 하루를 선사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감각과 운동적 조작을 통해 배운다. 그러므로 자연 환경은 유아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적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자연 세계 자체가 거의 모두 유아들이 직접 경험하고 조작할 수 있는 생생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자연 세계에서의 다양한 경험은 다음과 같이 유아에게 발달의 모든 측면에서 성장을 도모해 줄 수 있다. -Wilson, 1995-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어떻게 하면 이 귀한 시간을 가장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되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보고 듣고 몸으로 부딪히는 체험활동을 하고 부모들은 탁 트인 자연 속에서 차 한 잔하며 힐링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떨까?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읍 율리중마을길 55에 위치한 청송자연농원을 찾았다. _김유미 기자 고즈넉한 산속에 자리잡은 ‘청송자연농원’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한 느낌이 든다. 40여년 식당으로 운영되던 공간은 리모델링을 거쳐 스마트팜, 카페, 펜션, 수영장이 들어선 복합체험공간으로 탄생했다. 여름에는 계곡 옆 평상에서 더위를 식히고 계곡물을 받아쓰는 수영장에서 피서를 즐길 수 있고, 카페와 스마트팜에서는 아이들의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사시사철 운영되는 펜션 역시 인기다. “아이들과 함께 한 소중한 체험들은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지요. 온 가족이 함께 오셔서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차를 하고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보자 고무장갑을 끼고 여기저기를 살피며 정돈하는 류금순 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뒷산까지 너른 부지에 건물만 해도 두 동, 손이 많이 갈 수 밖에 없을 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까지 맞아가며 일하는 모습이 정스러워 한참을 바라봤다. 역시나 직접 만나본 류 대표는 순수하고 따뜻한 미소의 소유자였다.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했어요. 정말 바쁘고 성실하게 일했지요. 하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더라구요(웃음). 점점 체력에 한계를 느끼던 즈음, 남편과 함께 청송자연농원을 좀 더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연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정말 멋진 곳인데, 어떻게 하면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힐링하고 가실 수 있을까.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요.” 류 대표는 올해 여름부터 카페를 오픈하는 동시에 꼬마농부체험을 시작했다. “화분을 꾸미고 아기허브를 심고 밀짚모자를 꾸며 나만의 농부모자 만들기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정말 호응이 좋았어요. 카페 옆 비닐하우스에 심어논 아기 옥수수와 파프리카, 상추, 딸기 등으로 시기별로 새로운 체험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들이 자꾸만 떠올라요(웃음).” 가을에는 뒷산 감나무에서 감따기 체험을, 빼빼로데이를 앞두고는 빼빼로 만들기 체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퐁퐁트리 만들기가 진행됐다. 지금부터 1월 말까지는 딸기케이크 만들기 체험이 가능하다. 하우스에 있는 다양한 작물 따기는 언제든 환영이다. “특별히 홍보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이 나서 부산, 울산, 양산 등지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더라구요. 카페와 체험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차선영 실장의 역할이 큽니다. 본인이 두 아이의 엄마이자 공예, 요리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분이라 굉장히 알차고 세심하게 준비해주세요.” 모래놀이터와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등 아이들을 위한 배려 속 주인장의 넉넉한 마음이 엿보인다. “운동 부족, 대화 부족인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긴장을 풀고 함께 다양한 체험을 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잘 준비해놓고 있겠습니다(웃음)." 카페 창가에서 바라본 산 아래 웅장한 풍광은 신선이 된 듯 한 느낌까지 갖게 한다. 여유로운 좌석과 테이블 배치에 각종 허브로 꾸며진 실내조경 역시 숨통이 확 트일 정도로 깔끔하고 시원하다. 연못 속에서 노니는 금붕어까지, 자연 그대로를 담아논듯 특별하다 . “최근 단체 예약도 많아지고 있어요. 체험이 끝나면 부리나케 떠나는 형식적인 체험농장이 아닌, 충분히 즐기고 놀면서 멋진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청송자연농원의 소식들을 계속해서 올릴 테니 많은 관심가져주세요.” [1144]
    • 문화
    2023-01-27
  • 탈모인의 새로운 희망, 두피 문신 “완벽한 시술(S.M.P)로 보답해야”
    S.M.P(Scalp Micro Pigmentation) 두피 문신은 두피에 미세한 바늘로 점을 찍는 시술로, 작은 점을 찍어 모근처럼 보이게 해 탈모 부위를 자연스럽게 채워주는 효과가 있다. 이 시술은 의료용 시술에 속하며, 모발을 직접 심는 것에 비해서 통증이 덜하고 회복 기간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겨울로 넘어가는 지금의 계절엔 짧은 일조량으로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탈모를 유발한다. 숭숭 빠지는 머리카락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어 탈모로 고민하는 젊은 층이 차츰 증가하는 요즘, S.M.P를 찾는 이들이 더욱 늘고 있다. _김민진 기자 촉망받는 육상선수에서 스칼프 테크니션(Scalp Technician)으로 더스틴(DUSTIN), 제2의 인생을 점찍다 “내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고객상담 시 그 누구보다 “탈모인의 마음을 잘 안다”고 운을 뗀 더스틴(DUSTIN) 주식회사 그레이시티 스칼프 잠실본점 대표원장은 S.M.P로 전국에서 모이는 뜨거운 상담과 기술 문의로 지역마다 본점을 설립하는 가운데 현재 부산본점도 담당하고 있다. 훤칠한 키와 남다른 체격으로 인터뷰 현장 복도를 순식간에 런웨이로 만들어버린 그는 알고 보니 육상선수로 15년간 필드를 뛰며 촉망받던 유망주였다. 어떻게 S.M.P의 길을 걷게 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새벽부터 야간훈련까지 정해진 시간과 프로그램에 맞춰 규칙적인 운동인의 삶을 살면서 마치 농부와 같이 1년 내내 사시사철 모든 역경을 견디고 훈련하다가 수확하는 때 딱 한 번 전국체전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게 때론 허무한 마음이 들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는 중에 사춘기 시절부터 슬슬 탈모 징조가 보였고, 운동할 때나 외출할 때 늘 저에겐 모자가 필수였습니다. 머리카락에 대한 스트레스로 무슨 일을 하든 100% 몰두가 안 되더라고요. 운동을 하면서 땀이 날 때도 물놀이를 가보려고 해도 자연스레 머리 스타일링에 대해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알게 된 그레이시티에 두피 문신 받으러 갔다가 상담하면서 ‘이건 된다, 무조건! 내가 먼저 배워보고 시술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번뜩이며, 이제는 ‘주도적으로 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세상으로 나가는 첫 발걸음! 그레이시티(GRAYCITY)와 함께 더스틴(DUSTIN) 대표원장은 S.M.P를 접하기 전에 모발이식, 부착식 가발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양한 시도와 많은 돈을 썼기에 고객들이 상담하는 동안 그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는 것부터 큰 용기를 가지게 된다고. “나이가 지긋이 드신 어르신도 20년간 가발을 써오시다가 저를 만나셨고요. 학부모도 딸아이와 손잡고 오셔서 상담받으시고, ‘졸업식 때 가장 멋있는 아버지로 만들어드리겠다’는 약속도 지켜드렸죠. 이러한 여러 고객 사례 중에서도 꽃다운 스무 살 청년의 시술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두피 전체의 모발이 빠지는 전두탈모로 몸과 마음 모두 병이 든 상태였지요. 동행하셨던 어머님도 같이 우시는데... 그 모습에 이 친구를 반드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고, 시술 후 만족 그 이상의 감동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시는 고객분들을 보면 이 일을 시작하길 참 잘한 것 같다는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1142]
    • 문화
    2022-12-26
  • 경북문화관광공사에서 선정한 뷰 카페, 김천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발돋움 중
    카페가 단순한 음료를 넘어 더 깊은 취향의 영역으로 들어선 지금. 커피 본연의 맛과 종류도 중요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공간에 대한 스토리가 더해진 디테일이 주목된다. 넓은 주차장을 기본으로 드라이브해서 찾아가는 맛도 있는 대형카페의 경우엔 건물의 외관부터 입구, 실내, 정원 등 모든 공간이 하나의 컨셉으로 디자인돼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주간인물에서 찾은 지역 핫플레이스로는 높은 건물과 넓은 실내, 커다란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으로 도심 속 카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김천의 떠오르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 ‘메타1976’을 선정했다. _김민진 기자 애향심을 바탕으로 탄생한 메타1976 가상과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를 딴 카페명과 디자인 컨셉을 잡았다는 건축주, 김나영 대표는 토목 관련 근무 경험이 있는 남편 김규식 씨와 ‘1976년생’ 동갑내기 커플로 두 사람의 아이디어가 가득 담긴 이 공간을 위해 경제적으로도 그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메타1976>을 내걸고, 남다른 고향사랑으로 김천시 조각공원길 330-137에 카페를 세웠다. “별을 상징하는 조명 하나하나에도 남편이 신경을 많이 썼어요. 무심코 보면 아무도 알아채지는 못하겠지만, 저희 부부 눈에는 사소한 아이템 하나도 그냥 못 넘어가겠더라고요(웃음). 천장형 에어컨을 설치할 때도 건축컨셉에 잘 어울릴만한 브랜드를 고르고 골라서 최대한 우주를 연상케 하는 공간 구성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어디 멀리 찾아가지 않고서도 제가 사랑하는 고향, 김천 안에도 집 앞에 힐링할 수 있는 명소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건축 쪽으로 일가견이 있는 남편의 도움이 컸습니다.” 최근 김충섭 김천시장도 메타1976 카페에 깜짝 방문해 김천시민을 위한 문화공간 조성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소속의 박정아 배구 선수도 들려 휴식 시간을 보내 신상 카페임에도 불구하고 지역민은 물론, 김천 IC를 지나던 여행객들도 “고속도로에서 반짝거리는 예쁜 불빛이 눈길을 끌었다”라며 이곳을 찾는 발길이 크게 늘고 있다. “남녀노소 모두가 건강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메타1976은 대형 베이커리, 브런치 카페로 유명한 만큼 모든 빵은 100% 유기농 밀가루로 당일 생산되는 시스템으로 그날 남은 새 빵은 인근 보육원에 기탁하는 나눔을 실천하는 김 대표는 “아주 작지만, 저희가 하는 일이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라고 수줍게 전했다. 평일 낮, 취재진이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을 때도 유독 노인층이 주 고객을 이룬 모습이었다. “어르신들은 커피를 안 좋아한다는 말은 다 옛날 말이다”라며, “특히, 저희 빵을 먹고 나면 속이 편하고 더부룩하지 않아서 좋다고 카페에서 드신 후 나가실 때 또 사 가신다”라고 김 대표가 빵에 대한 자부심을 표해 메타1976에서 제공하는 베이커리 중 몇몇 차별화된 시그니처 메뉴 소개를 부탁했다. “<파주빵>은 저희 셰프님이 파주에서 근무하실 때 방송까지 나왔던 빵인데요. 완두콩이 들어가 소화가 잘됩니다.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며, 어르신들의 입맛에도 취향 저격이죠. <먹물 어니언>은 오징어 먹물로 반죽했고, 안에 양파와 크림의 조합이 느끼하지 않으며 손님들께서 ‘한국인의 입맛에 딱이다’라고 말해주시는 빵이어서 매장 내 인기 제품입니다. <소금빵>의 경우엔 다른 곳과 차별화를 둔 부분이 쌀가루 50%를 첨가해 쫄깃하고 담백함은 배가 되고 버터가 적당히 들어가면서 더욱 고소한 풍미가 담겨 단짠(달고 짠)으로 갓 구워낸 소금빵은 겉바속촉의 끝판왕이라고 부르지요(웃음). 소금빵 다음으로 인기 있는 빵인 <바질 토마토>는 토마토, 바질, 베이컨의 환상적 조합이 피자빵인 듯 아닌 듯 묘한 매력을 줍니다.” 이외에도 메타1976의 아포가토(Affogato)는 상하목장 아이스크림과 최고급 이탈리아 원두의 절묘한 만남을 이루며, 매장에서 직접 생산한 수제 마카롱과 함께 큐브 치즈와 스틱 과자로 완성된 음료 또한 김 대표가 자신 있게 추천하는 메뉴다. “각종 전시와 공연이 펼쳐지는 문화예술의 장으로” 통유리 창으로 펼쳐지는 탁 트인 뷰와 더불어 카페 안에서는 지역민에게 다양한 문화공연을 선사하기 위해 계획 중에 있다고. 이미 메타1976의 공간을 알아 본 단골손님들이 먼저 제안하여 진행된 유치원 하우스콘서트, 고교입학설명회 등도 성황리에 마쳤다. 음악과 미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눈과 귀가 힐링이 될 수 있도록 꾸며가고 있는 곳이다. “밤샘 작업을 거친 또 하나의 작품 탄생이 있었습니다. 밋밋하고 뭔가 허전하던 공간에 무얼 채워 넣을까 고민고민하다가 그냥 시중에 파는 흔한 그림 액자는 걸고 싶지 않아 작가님을 섭외해서 직접 작업을 했지요. 메타의 규모에 걸맞은 초대형 사이즈의 그림이 압도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화려한 컬러감과 현대적인 예술미에 매료당하실 겁니다. 오 작가님 이하 여러 작업자님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메타1976의 역사에 한 획을 그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카페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세상 유일한 미술작품을 메타1976에서 많이 감상하실 수 있도록 재능 있는 작가님들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무분별한 확장은 지양하고파” 카페 오픈하고 몇 개월 채 되지 않아 초창기부터 프랜차이즈 문의가 잇따른 메타1976은 707특수임무대대 출신인 남편 김규식 씨의 강직하고 올곧은 가치관을 존중하고 한마음으로 뜻을 같이하는 김나영 대표의 확고한 경영이념으로 무분별한 확장을 지양한다. “저희 카페의 진가를 여기저기서 알아봐 주신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하고 뿌듯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럴수록 처음 저희 부부가 지녔던 창업 신념을 잃지 않으며, 고객님들께 건강하고 신선한 빵과 음료를 제공해 드림에 변함이 없을 것을 약속드리며 집중하고 싶고요. 이후에 현재의 규모보다 조금 더 크게 직영점으로 하나 더 세워서 많은 시민들이 모임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짓고 싶습니다.” [1142]
    • 문화
    2022-12-26
  • 차(茶) 한 잔으로 인생이 바뀌는 기적! “맛있는 차를 만드는 제다인(製茶人)으로 남고파”
    경주시 건천읍 단석로 1757에 자리한 ‘다다티하우스’는 대한문인협회 시인으로 등단한 주인장이 운영하는 카페로 “내 시는 읽기 쉬워야 한다”는 철학이 이어져 “차(茶)도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제조시설을 갖춘 이곳에서 수제약선차를 선보이고,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 운영 및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마침 차생활지도사 수업을 마친 이은주 대표와 향긋한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차로 인생이 바뀐 그의 삶을 들어봤다. _김민진 기자 Q1. 차(茶)를 가까이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현재 맡고 계신 일들도 함께 소개해주신다면. A.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아버지께서 가꿔 온 모든 꽃이 사시사철 잎 하나 마른날 없이 항상 싱싱하고 향기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7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 아이의 엄마로 돌아와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정한 마음이 들 때 “그래, 내가 잘하는 일은 풀 만지는 일이었지”라고 번뜩 떠올랐죠. 평소 관심을 가지고 블로그에 700여 편의 글을 모아왔던 약초에 관한 상식으로 ‘약초활용요법’이라는 평생교육원 과정을 듣다가 약초를 먹는 방법을 좀 더 간편하게 하고 싶어 제다(製茶)에 관심을 가지고 ‘꽃차소믈리에’를 시작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고 더 깊게 알아가고 싶은 것이 넘쳐났던 저는 늘 질문하는 학생으로 결국엔 교수님께서 대답을 못하는 지경까지 오셨죠(웃음). 그리고 배운지 1년 만에 <산우산야초꽃차문화원>을 개원하고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1997년, 적어도 제가 가르친 제자들만큼은 어려움 없이 사범 활동을 하고 자신들의 작은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를 창설해 꽃차소믈리에, 약선차사범, 차생활지도사 과정을 교육하고 있어요. 현재 <다다티하우스> 카페도 운영하며, 중국의 국영차창 ‘운남동경호(雲南同慶號) 보이차’를 수입 및 판매하는 총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Q2. 차(茶) 교육에 대한 열망이 더 크신 것 같습니다. 타 문화원과 달리 크게 차별화를 둔 부분이 있으신지요? A. 한국차, 중국차, 일본차를 모두 교육하는 이색카페로 전국각지에서 수강생이 찾아오는 유일무이한 곳이죠. 모든 차를 판매하고, 시음도 할 수 있는 1층 카페에서는 사실상 영리를 위하기보다는 차를 알리기 위한 무료 나눔이 주를 이루는 공간입니다(웃음). 특히,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의 꽃차소믈리에 과정은 전국 최초로 잎차를 6대 다류 제다법으로 분류하여 만들기 시작했어요. 꼭 찻잎이 아니더라도 허브 종류의 잎 혹은 꽃도 경발효, 비발효, 부분발효, 산화발효, 후발효차로 만들어 전통차의 제다법을 따르고 이를 바탕으로 차 공부에 깊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단지 꽃차만 배우는 것이 아닌, 제다법을 통해 차를 알고 전통차를 이해하여 차의 본질을 알아 가는 차생활지도사 과정을 통해 한국/중국/일본차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으며, 생활 속 차인(茶人)이 돼가는 과정을 습득하게 되죠. 그리고 사범 과정을 통해 각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드리고 있습니다. Q3. 10년 넘게 차(茶) 외길인생을 걸어오신 대표님의 교육으로 제자들의 인생이 바뀐 특별한 사례도 있으시죠? A. 감사하게도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를 통해 70개의 문화원이 만들어졌습니다. 먼 곳에서 그들을 응원하며 지켜보는 제 마음이 얼마나 흐뭇한지요. 제가 겪었던 것처럼 경단녀의 삶에서 한국약선차꽃차연합회 수료 후, 다시 자기의 협회를 만드신 분도 계시고 대학에서 강의하고 계신 분도 있으며 작은 공방을 차려서 열심히 수업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면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계신 인생 선배님들이시죠. 삶은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나이 55살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꿈을 정해 놓고 그 꿈을 위해 나아가다 보면 그 어느 날 우리는 그 꿈에 닿아 있지 않을까요?”라고 제자들에게 항상 하는 말입니다. Q4.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경이 있으셨을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그 일로 깨달은 삶의 철학이 있으시다면. A.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던 저는 두 살 터울 오빠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공부를 더 할 수 없었어요. 늘 꿈에 야간 고등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는 꿈을 꾸는데 아이를 업고 가서 달래고 기저귀를 갈고 있더라고요. 이 똑같은 꿈을 수십번 꿔서 외울 정도였습니다. 3~40대 시절은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일찍 아이들을 키워 놓고, 47살에 제가 벌어서 다도대학원을 입학했지요. 2019년, 위덕대학교 외식산업학부에서 또 공부를 시작했고, 처음에 8학기는 이것이 정녕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을 만큼 높은 장벽이었습니다. 만학도 장학금을 받는다 쳐도 제게는 힘든 경제적 난관이 많았죠. 이제 마지막 기말고사 한 번만 치고 나면 졸업입니다! 삶은 꿈꾸는 자의 것이죠.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강철맨탈챌린지’로 제자들은 12개월 동안 1일 1글 포스팅이라는 어려운 일도 해냈습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Q5. 차(茶)를 비싸고,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비싼 한복을 입고 행다(行茶) 위주의 다례원 교육을 받는 등 어려워하시는 분이 많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차는 커피처럼 마시는 음료입니다. 단지 관심이 조금만 있다면 사람들과 소통하며 스스로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여유를 주는 맛있는 음료죠. 우리의 차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해 보면서 ‘초암차보존회’를 만들어 차의 역사를 바로잡고 알리기 위해 힘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차보존회 속의 생활차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차는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임을 꼭 알리고 싶습니다. [1142]
    • 문화
    2022-12-26

실시간 문화 기사

  • 효인성교육을 통해 더불어 사는 대한민국에 일조하고파 - 유정순 경기도효인성교육협회 / 한국효행교육지도사협회 회장
    ‘효도’라고 하면 혹자는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가치이념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를 이루기 위해 ‘성장’과 ‘경쟁’을 강조하며 달려온 현재, 대한민국은 몸살을 앓고 있다. 연일 참혹한 범죄가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타이틀을 달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 올바른 정신적 가치가 뒷받침되지 않은 물질적 성장은 모래로 쌓은 성과 같은 것이다. 이런 세태일수록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기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효사상은 인간사회를 인간답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윤리규범이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올바른 효행의 실천을 널리 알리고자 힘쓰고 있는 경기도효인성교육협회 유정순 회장을 찾았다. 사무실에는 효인성교육 자료들로 가득 차 있었다. _조병훈 경기인천지사장 유정순 회장은 효인성교육을 통해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고 이를 통해 더불어 사는 대한민국이 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우며 큽니다. 저도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한의사로 일하시던 아버지께서는 돈 없는 환자가 찾아와도 거절하지 않으셨고 가족들 식사할 때 초대하여 함께 밥을 먹곤 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잠을 재워가며 치료를 마무리하기도 하셨지요. 평소에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 번 적선을 하고 갈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인간의 도리 중 하나"라는 유 회장. 자신 역시도 "부모님을 보고 자라면서 남을 돕는 데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며 "가정이 바로 서고, 사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효인성교육"이라 전했다. 유 회장이 처음부터 이런 사회활동을 했었던 것은 아니다. 남양주에서 태어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연구소에 취직하여 8년간 직장생활을 했던 그녀는 결혼 후 시어머니가 운영하시던 레스토랑을 맡게 되었다. 직접 맡아보니 곳곳에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부분이 많아 직장생활에서의 경험을 살려 업무 표준화를 시도했다고. 음식 레시피 작성, 친절 교육, 동선 업무처리, 급여체제 등을 손보고 카운터 전담 직원을 따로 두기 보다는 주방장부터 시작해 모든 직원이 손님이 나갈 때 카운터를 볼 수 있도록 업무를 조정했다. 누구나 손님들의 피드백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었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결과, ‘코코아미’ 레스토랑은 의정부에서 가장 맛있고 친절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5개까지 점포를 확장하였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가게가 늘어난 만큼 사회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유 회장. 그녀는 송추에 있는 광명보육원을 찾아 매월 1회 무료급식 봉사를 했으며 점심시간에 찾아오는 노인들에게 100원에 식사를 대접하는 서비스도 시행하였다. 매주 토요일 출발하여 일요일 돌아오는 정동진 무박 1일 코스 여행을 위하여 리무진 버스를 구입하고 5~6년간 무료로 운영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식대에 포함되어 손님으로부터 받은 서비스료는 모두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그녀의 따뜻한 활동들이 조금씩 알려지자 동장으로부터 통장 제의를 받았고 통장협의회 회장을 시작으로 하여 사회 활동을 이어가게 되었다. 현재는 경기도효인성교육협회 회장, 한국효행교육지도사협회 회장, 21세기 여성정치연합 의정부 지회장, 의정부시 마을공동체 연합회장, 의정부시 주민참여예산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경기도효인성교육협회는 2007년 7월 2일 '효행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에 따라 준비과정을 거쳐 2011년 5월에 발족하여 2014년 1월 3일 비영리민간단체(경기도북부청사 제467호)로 등록되었다. 유 회장은 2016년 6월 29일 정기총회에서 4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현재까지 봉사하고 있다. 주요 사업으로 효행인성교육, 효행실천 봉사활동, 효 관련 문화사업 등을 하고 있으며 그동안 효인성 지도사 1,400여명을 배출하였다. 경기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효인성 지도사들은 협회의 자랑이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초중고학생, 학부모, 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 연인원이 15만 명 정도 된다. 유 회장은 여기에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보육원에서 생활하다가 18세가 돼서 퇴소하게 되는 ‘보호종료 청소년’들이 탈선하지 않고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과 다르게 아무런 뒷받침 없이 사회에 내몰리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게 제 욕심이에요.” 유 회장은 대화하는 내내 본인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러 번 말하며 자신을 낮췄다. 기자는 인터뷰를 하면서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격언이 떠올랐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며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앞으로도 아름다운 발자국을 세상에 남기길 응원한다. [1071]
    • 문화
    2019-05-22
  • 모든 것은 인(仁)의 정신으로 - 이도희 전교 / 동래향교
    역사와 충절의 고장으로 불리고 있는 부산 동래. 수많은 역사적 사료가 남아있는 이 곳에는 유교문화의 일환 중 하나인 교육기관 ‘동래향교’가 계속 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문제로 힘들어하는 현재인들에게 우리 민족 고유사상인 유교가 좋은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진 않을까? 동래향교의 지도자인 이도희 전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_문다정 기자 유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 “현대사회엔 물질문명은 풍요로워졌으나 사회적 부도덕 행위나 개인의 정신적인 불안감은 더욱 커졌으며 정신적인 가치관과 자신감은 잃어가고 있습니다. 유교정신의 핵심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실천하는 향교와 유림이 사라져가는 전통문화 향상과 정의사회 구현에 앞장서 유교의 참된 정신이 전달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도희 전교는 현대인들이 유교 하면 제사를 올리는 제향적 기능만을 떠올리는 건 오해라며 말을 잇는다.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이들은 흔히들 유교는 고리타분하고, 형식적이고, 체면위주인 양반 중심의 폐쇄된 문화로 오해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교의 참뜻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유교의 핵심사상인 인으로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이 사랑하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헌신하고, 극기복례(克己復禮)로 자신을 낮추고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해 보고 말해야 합니다. 이런 정신적인 요소들이 유교의 바탕이 되고 중심이 됩니다.” 인성교육의 중요성 이도희 전교는 현대시대의 모든 문제는 우리의 정서에 맞지 않는 교육 때문이라며,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말한다. “모든 교육의 바탕엔 인성교육이 있어야하며, 교육의 첫 시작은 가정교육부터입니다.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 아닙니다. 정신적 교육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엔 엄마의 ‘정(情)‘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엄마의 정을 느낌으로써, 아이는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말로 하는 교육은 아니지요. 그래도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시기에 사랑을 받은 아이는 나중에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로 자라납니다. 반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다른 이들에게 주기 힘듭니다. 현대엔 경제적 상황 등으로 이 순리를 거스르고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잘해서 첫 단추를 잘 잠글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인(仁)의 정신으로 길러진 아이는 후에 선비정신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급할 때 우리 선비들은 스스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수호하는 데 앞장섰다. 자신을 앞세우는 게 아닌, 나라와 타인을 생각하고 받은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도희 전교는 이 선비정신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지켜야 할 고유한 민족정신이며 올바른 세상을 세우기 위한 기초 정신임을 강조한다. 유림에 속하기까지 거제동에서 자영업을 하며 봉사 정신을 이어오던 이도희 전교는 2003년 당시 동래향교 재단 이사장인 문차득 원로님의 권유로 향교와 인연을 맺게 된다. 2004년도엔 장의, 2006년엔 교화수석장의로 활동하면서 맡은 바 책무를 다하고 언행일치를 보여주는 올바른 처신으로 많은 유림 어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2019년, 동래향교 전교로 추대되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철학이 타의 모범이 되어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설명을 이어간다. “첫째로 자기 스스로 모든 걸 찾아 배우고 익혀서 언행과 처신을 나 자신이 아닌 남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로는 사회와 향교 생활을 경애 정신으로 남 달리 부지런하고 올바르게 생활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통예절을 배워서 다른 이들에게 잘 전해야 합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 마지막으로 이도희 전교는 전통문화 계승발전의 중요성과 유교문화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전교로서 오상(五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도덕적 가치를 숭상하고 유교문화와 전통문화 계승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다 할 것입니다. 유교의 정통성을 확립시키는 활동을 전개하고, 선비정신을 일깨우는 향교 체험활동을 강화하고, 유교문화와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 할 계획입니다. 또 향교의 문턱을 낮추어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향교, 열린 향교로 전통 문화의 4례인 관혼상제 등의 상담을 전담할 상담원을 두어 여러 시민들과 친숙할 수 있는 향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유교문화가 옛것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관심을 가지시고 가까이 다가오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많은 이들이 유교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와 포용의 자세로 예(禮)가 우선시 되는 사회, 대동사회(大同社會) 건설에 함께 하기를 기원 해 봅니다.” 향교의 역사는 고려·조선시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관학 교육기관으로써 지금처럼 향교의 유학적인 면모가 나타난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 동래향교의 연혁은 조선 태조 원년(1392년) 1읍 1교라는 관의 교육진흥책에 따라 도호부인 동래에 향교가 설립됐다고 보고 있다. 원래는 지금의 동래고등학교 자리에 설립 되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그 후 선조 38년(1605년)에 중건되어 여러 차례 이건 중창 되어오다 순조 13년(1813년)에 현재의 자리에 이전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과거의 향교는 과거 준비, 유가적 규범을 위한 교육적 기능과 공자를 비롯한 선성선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향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동래향교에서는 새로운 교육제도 도입으로 교육적 기능은 동래향교 평생교육원으로 이관되고, 춘추석전과 삭망의례를 집행하는 제향적 기능과 유교진흥을 위한 교화사업으로는 전통예절, 전통혼례, 향교 스테이, 유림 자체 인성교육, 초·중·고등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거제4동 새마을금고 이사장 역임 •사단법인 박약회 부산지회 회장, 성균관 전의, 성균관 유도회 부산광역시 본부장 역임 •현재 고성이씨 대종회장, 사단법인 한시협회 부산지회 봉산음사 사장, 동래향교 전교 재임 [1071]
    • 문화
    2019-05-22
  • 한국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함축한 전통신, 명품의 명맥을 잇는 부산의 큰 장인 - 안해표 화혜장
    승무를 추는 여승의 발끝에 세인들의 눈길이 몰렸다. 하늘을 향해 승천하는 여승의 혼처럼, 사뿐히 접어올린 전통신의 선은 춤사위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하늘을 향해 올라간 용마루선과 추녀마루선에서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곡선이 우리 전통신에 있다. 이렇게 시대가 흘려도 변하지 않는 한국의 명품, 전통신의 명맥을 잇는 장인이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큰 장인, 50년간 전통신을 지켜온 안해표 화혜장(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 17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최근 문을 연 부산전통예술관에 새롭게 자리한 그를 주간인물이 만났다. _박미희 기자 최근 부산시가 전통공예의 거점으로 마련한 부산전통예술관에서 안해표 화혜장을 만났다. 지난 18일,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 3층 규모로 문을 연 부산전통예술관은 상설 전시장을 갖추고 기능 분야의 무형문화재 전수 교육을 하는 복합공간이다. 부산전통예술관에는 자수장, 전각장, 화혜장, 선화, 지연장, 동장각장 등 6개 종목 기능보유자가 입주했다. 그 중 부산에서 유일한 화혜장인 안해표(67. 부산시지정무형문화제 제17호) 장인의 을 찾았다. 화혜란, 왕가나 양반층이 신던 가죽신을 일컫는다. 화(靴)는 신목이 있는 신발을, 혜(鞋)란 신목이 없는 신발을 말한다. 이를 아울러 화혜(靴鞋)라 하고 이를 만드는 장인을 화혜장(靴鞋匠)이라고 불렀으며, 순우리말로 갖바치라 불렀다. 전통신은 현대적인 신발과 달리 좌우가 없는 것이 특징. 신다보면 자연스레 발모양에 따라 좌우가 구분돼 편안하게 신을 수 있다. 비단, 가죽 등 쓰이는 재료를 구하고 가공하는 일부터 한땀, 한땀 손바느질로 꿰매는 과정까지 많은 공이 든다. 오방색을 비롯한 한국적인 색감과 아름다운 곡선미를 지닌 디자인으로 시대가 변해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진정한 한국의 명품(名品)이다.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신의 명맥을 잇는 장인, 안해표 화혜장은 올해로 50여 년간 전통신을 만들어왔다. 그의 조부는 경남 합천군에서 관에 대는 전통신을 만들어온 장인이었다. 뒤를 이은 아버지를 이어 3대째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장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건 19세 때 부산 용두산공원 아래에서 전통신 가게를 운영하던 김현경 선생 문하에서 기술을 사사받은 이후부터다. 지금은 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이 부산 감천문화마을, 전통신전수관에서 일하며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누대로 내려온 기술과 오랜 세월 체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전통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안해표 화혜장. 장인의 빼어난 솜씨는 구태여 들어내지 않아도 세인들을 감동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처음에는 대회에 작품을 내보라는 주변의 권유에 ‘무슨 그런 일을 하느냐’며 가볍게 넘겼지요. 그러다 주변의 권유로 전국 대회에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기대를 안했는데, 작품을 본 심사위원들이 ‘빼어난 작품’이라며 무형 문화재 등록을 해보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때 만해도 무형문화재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무형문화재 등록에 도전해보라는 주위의 권유도 가벼이 여겼지요. 그런데 함께 활동하던 장인들이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한 분야에 천착한 장인이 많이 나와야, 그 명맥을 이을 수 있다’며 강권하더군요. ‘귀한 것을 지니는 것만큼이나 후대에 전하는 것이 더욱 장인의 큰 사명’임을 깨닫고, 무형문화재로 전통신의 명맥을 잇기 위해 애쓰게 되었습니다.” 한평생 전통신을 만들어온 장인의 야무진 솜씨는 왕가 의복을 복원하는 일에도 쓰임을 받았다. 문헌으로만 남겨진 자료를 토대로 왕의 전통신을 그대로 복원하는 일은 웬만한 솜씨 있는 장인들도 엄두를 내기 힘든 일. 하지만 3대째 내려온 기술과 한평생 전통신에 천착한 장인의 노력은 수백 년의 세월도 고스란히 뛰어넘는 명작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현재 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전 세계에 한국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왕의 전통신은 그의 작품이다. 한땀, 한땀 손바느질을 해서 전통신 하나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하는 시간은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달포까지도 걸린다. “전통신은 만드는 과정은 정성 그 자체입니다. 비단, 가죽 등 사용되는 귀한 재료를 구하고 가공하는 일부터 한땀, 한땀 손바느질로 모양을 잡는 일까지……. 수십 가지 공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완성할 수 있죠. 이렇게 정성을 드리는 장인의 마음이 담겨야, 비로소 시간이 흘려도 변치 않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담은 전통신을 완성할 수 있어요. 전통신은 우리 옷의 고유한 자태와 맵시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한국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함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 만큼 후대에 우리의 것을 전수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을 대표하는 장인으로 부산전통예술관에 공방을 마련한 것도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 전통신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서라고. “전통신의 명맥을 잇고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한국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일, 그리고 그 맥을 잇는 일이 저의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1070]
    • 문화
    2019-05-07
  • 도심 속 동화마을 ‘PINOFAMILIA’,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곳 - 이소영 PINOFAMILIA 대표
    서울시 노원구 도심 속에 우뚝 선 PINOFAMILIA는 한국의 미니멀한 건축물의 대표 작가 ‘문훈’의 설계를 시작으로 2014년부터 2년여 동안 공사를 진행한 끝에 2016년 9월 29일 개관하며 그 첫발을 내디뎠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스토리의 대명사 피노키오, “피노키오는 왜 여자친구가 없을까?”라는 이소영 대표의 엉뚱발랄한 상상이 피노키아를 탄생시키며 5권의 동화책을 세상에 내놓았고, 상상이 현실로 이뤄진 큰 고래 모양을 본떠서 만든 독창적 건축물은 동화 속 배경을 그대로 재현해내며 어디에도 없는 동화 속 공간을 창조해냈다. 행복하고 재미있는 삶을 영위하고 창조의 문화와 색다른 경험을 이끄는 PINOFAMILIA. 어린이에게는 창의력을, 청소년들에게는 희망을, 성인에게는 치유와 행복을 줄 수 있는 체험공간 속으로 피노키아를 만나러 떠나보자. _김현채 팀장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곧 현실을 만들었죠” 피노플랫폼을 통해 창조의 계기를 경험하다 피노키아를 만날 수 있는 창구의 역할이자 피노플랫폼을 통해 행복하고 재미있는 삶을 영위하며 창조의 계기를 경험할 수 있는 ‘피노파밀리아’. 영유아부터 노년층까지 전 세대가 피노문화를 향유하며 어린이에게는 창의력을, 청소년에게는 꿈을, 청년에게는 희망을, 성인들에게는 치유와 행복을 줄 수 있는 체험 공간이다. “호기심이 많고 늘 곰곰이 생각하며, 남들이 하지 않는 것만 골라서 하는 창의적인 소녀였다”는 이소영 대표. “창조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 속에서 찾는 변화”라며 소신을 전한 그녀는 “어릴 때부터 훈련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예술가의 DNA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예술인이셨던 외조부와 작가인 어머니를 보고 자라며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또한 앞모습만 보고 뒷모습은 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죠.” 디즈니의 세계적인 유명한 스토리에 관심이 많던 이소영 대표는 마흔 살까지 쌓아온 경험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는데. “제 생각을 ‘세상에 어떻게 내 놓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조금함을 갖지 않고, 급하게 상자를 열지 않고 상자가 채워진 후 문을 여는 것이 보는 사람뿐 아니라 보여주는 저조차도 자신감이 생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죠. ‘어떻게 하면 우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어릴 적 바라본 우주와 미래는 과학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망상가나 만화가가 미래를 그려서 과학자들이 실현을 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과학자는 그려내는 힘과 상상력이 부족한 대신 제게는 늘 꿈이 있었어요. 꿈은 현실이기에 ‘꿈을 만들어 가자’고 결심했고, 그래서 꿈을 만들어 봤지요(웃음).” “어린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과 콘텐츠를 구성했다”는 이소영 대표는 “마케팅 등의 외면보다는 실속 있는 내면을 중요시 여기며, 콘텐츠와 알맹이에 충실했다”고 밝혔다. 콘텐츠와 틀을 세우고 실현할 때까지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지만, 풀밭에서 건물을 직접 새로 지었기 때문에 건축 소재 하나하나를 배우고 즐겁게 마주했다고. “여자라고 꽃을 모두 좋아한다는 법이 없는 것처럼,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구청에는 왜 마법과가 없을까?’ 하며 독특하고 재미난 발상을 시도했어요. 상상가로서의 CEO의 역할을 하고 싶었죠. 제 상상력을 통해 힐링과 치유의 마법을 선사하고 싶었습니다(웃음).” 낙서가 만든 자유로운 樂書, 365일 놀이터에서 놀다 이소영 대표는 “상상력을 따라 자유롭게 그려온 것이 상상력과 발상의 원천”이라고 밝혔다. “많이 그렸어요. 연필로 낙서를 많이 했죠. 낙서는 즐거움의 낙서고, 마음의 힐링이 되잖아요. 의학적 멘토가 없어도 낙서를 통해 힐링이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연필을 무척 좋아해요.” ‘2B, 4B 등 어떤 연필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나뭇가지도 연필이 될 수 있다”고 답한 이소영 대표는 “때문에 건물을 스케치북 삼아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낙서를 할 수 있도록 테이프를 뜯어 글을 쓰게 하고, 그림도 그릴 수 있도록 낙서판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고 전했다. “낙서는 낙서가 아니라 락서樂書입니다. 그래서 365일 놀이터에서 노는 느낌이에요(웃음).” 사람들이 아는 것만큼 보고, 본 만큼 안다고 믿기에 청소년기에는 많은 것을 보려 행동으로 옮기거나 가능한 직접 느끼고 경험하는데 시간을 많이 소비했다는 이 대표. 그녀는 ”경험해보지 않고는 말하지 말고 직접 부딪혀봐야 내 코드와 맞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전했다. “만나보지도 않고 ‘내 스타일이 아니야’ 라는 선입견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내 스타일은 뭔데요(웃음)?” 웃음과 함께 여유로운 질문을 던진 그녀는 “직접 보고 느끼고 겪어해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20대부터 38세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닌 그녀는 수집한 인형들을 보며 “원주민들의 삶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시아 쪽에서도 원주민이 많아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중국 소수민족이 많은데 특히 원주민들의 삶, 경험, 생각과 끊임없이 톡톡 튀는 발상들이 창의적인 사고에 도움이 많이 됐죠. 이를 통해 원주민들의 독특한 문화와 국가관, 인생관을 비교하며 생각의 깊이를 키웠어요. 그들을 보고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어떤 종교를 갖고 어떤 문화에 습관화되어 있을까’를 생각하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이소영 대표는 “사람들이 사물을 보는 시각이 한정되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사람마다 담긴 컬러가 모두 다르지만, 창의적인 생각을 위해서는 그것을 모두 배우려고 하기보다 시야를 넓히고 각자의 컬러를 가진 창의적인 사람들과 많은 만남을 가지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꿈에서 끝나지 않은 삶을 알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꿈에서 끝나지 않는 삶을 알리는 것이 피노파밀리아의 역할”이라며 포부를 전하는 이 대표. “피노파밀리아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어요. 피노는 내가 그리는 동화 속의 배경이고, 동화 속에 나오는 배경을 직접 만들었어요. 동화가 현실이 된 거죠.” ‘피노키오는 왜 여자 친구가 없을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하여 직접 동화책 다섯 권을 집필한 그녀는 “피노라는 공간이 어린이들에게는 상상의 공간으로, 어른들에겐 힐링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며 웃어 보였다. “현대사회 속 많은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동화 속 피노처럼은 되지 않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하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어야겠죠.” 이렇듯 기발한 상상력과 틀을 넘는 생각으로 동화 속 세상을 꿈꾸는 이 대표의 소망은 바로 피노파밀리아를 많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사람들의 사고 전환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줄 뿐 아니라 세계는 참 넓다는 것을 알리고 사람들 자신이 그 세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또한 피노파밀리아는 망원경으로 산을 보고 사고를 전환할 수 있는 ‘무한대’가 들어간 ‘m&d 커피’의 상표등록을 마쳤으며, 이를 통해 스토리가 있는 기본 철학을 강조하고 있다. 남다른 가치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그녀의 신념은 바로 혼자가 아닌 친구로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자는 것. “영화 ‘어벤저스’가 인기 있는 이유는 뭉쳐서 함께 잘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어른들도 사회성을 키워 우리가 ‘다함께, 같이, 즐겁게, 잘’ 살아가야 한다고 매번 느끼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인생이잖아요. 천년을 살 것 같지만 백년도 못사는 게 현실이잖아요(웃음). ‘슬픈 눈물을 흘리지 말고, 기쁜 눈물을 흘려야 한다’가 동화의 교육적 교훈이에요. 눈물에 대한 캐릭터를 만들고 그 눈물이 기쁜 눈물로 변할 때까지의 과정을 적은 것이 바로 제 동화이지요. 어른들이 읽어도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동화책을 쓰고자 합니다.” 실제로 이 대표의 동화 속에는 ‘나’가 흘리는 눈물을 먹고 사는 ‘앙쿵’이 등장한다. 아기들이 ‘앙’하고 울어 ‘앙쿵’이라 이름 붙였다고. 앙쿵 전사가 크면 앙쿵 괴물이 되고, 사람들이 눈물을 많이 흘리면 흘릴수록 이 괴물이 커져 마왕으로 변해 나쁜 짓을 일삼는다. 하지만 결국은 착한 마왕으로서 기쁜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가 끝난다는 점에서 그녀의 이야기에는 교육적 교훈을 담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좋아하는 음악은 가리지 않고 클래식에서부터 사물놀이까지 다 즐긴다”고 자신을 밝힌 이소영 대표. “요즘 현대인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생각이 너무 많아요. 생각이 많으면 행동이 느려지고 실행이 안 되죠. 그렇기에 ‘무조건 해 봐라, 경험이 되니까’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중요하다고요. 피노파밀리아를 통해 상상력, 자신감을 키워 아이들의 엉뚱함을 존중해주는 사회의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창의력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어 큰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부모로서 아이에게 긍정 마인드를 심어 주고, 부모 자신도 긍정적 사고를 가져 긍정의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일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디렉터로서 피노라는 공간에서 늘 놀고 있다”며 환히 웃는 이 대표의 엉뚱한 발상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통해 서울시 노원구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꿈에서 끝나지 않는 삶’을 알리는데 초석이 되길 기원한다. 이소영 대표 호 : 덕광 故김성집 선생의 외손녀 •화가, 동화작가, 평생교육학 박사 •피노파밀리아 대표이사 •해길 문화예술학교 대표이사 •성희 유아예술학교 이사장 •저서 <심리학의 초대>, <피노키오 닮았니>, <피노키오> 故 김성집 선생 호 :구보 •배우, 문인, 언론인, 리포터 •영화시나리오 집필 •문화영화제작, 강원민보 창간, 정치신문 발행인 •부산 광명극장 전속극 작가 •순향 잡지 발행인 •6.25전투 족보 발행 •영화 <최후의 한사람>연재 •1968 영화 콩쥐팥쥐 각본 •신민요 <약산 동대>, <콧노래>, <모랫벌 심리>, <꼴망티 아리랑> 외 다수 [1070]
    • 문화
    2019-05-07
  • 부산의 ‘패트릭 블랑’(Patric Blanc)을 꿈꾸다! - 박성민 그린노아 대표
    차가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생명이 움트는 따뜻한 공간으로 변하는 변신, 식물 인테리어는 요즘 떠오르는 이슈이다. 카페, 레스토랑 같은 상업공간은 물론이요, 미술관, 도서관 같은 문화공간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식물 인테리어로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부산 대표 가드닝 업체, 그리노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에 주간인물은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는 플랜트 디자이너, 박성민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차가운 콘크리트 벽틈에서 겨울을 보내고 새순을 띄우는 식물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관상용 소품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공생하는 생명으로 여길 수 있도록 전문적인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애정하는 식물을 들고 환하게 웃는 박성민 대표. 그가 운영하고 있는 ‘그린노아’는 부산을 대표하는 가드닝 업체다. 부산 북구 화명동에 샵을 운영하며 가드닝 클래스, 식물 인테리어를 전문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플로리스트인 ‘레드노아’ 홍명희 대표와 플라워클래스, 공간장식, 웨딩 프로젝트를 시행하며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선 가드닝부터 플라워 디자인과 공간장식, 그린 인테리어까지……. 식물에 관한 토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올해 서른다섯의 박성민 대표는 남다른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젊은 플랜트 디자이너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미술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고 대학에서 건축·인테리어를 전공하며 남다른 끼를 발산했다. 그러던 그가 플랜트 디자인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저도 어릴 땐 이렇게 자연이 아름다운 줄 몰랐어요. 숨 가쁜 사회생활을 하면서 삭막한 도시에서 유일하게 휴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연이더라고요. 그때부터 차츰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전국의 농장을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조경 분야에 일하며 경험을 쌓았어요. 이렇게 좋아하는 일에 마음을 쏟다보니 자연스럽게 플랜트 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그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이색적인 식물을 구하기 위해 전국의 농장을 다니며 공부를 계속했다. 식물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으로 여기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식물 인테리어가 유행하면서 그저 인테리어 소품으로 식물을 취급하는 곳이 많아요. 식물이 충분히 살 수 있는 여건 예를 들어 환기, 습기, 토양, 채광 등을 고려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식물 인테리어를 시공해 사후관리가 안 되는 경우도 많아요. 이 때문에 공간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적합한 플랜트 인테리어를 시공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의 식물에 대한 폭넓은 식견과 애정은 커스텀한 식물 인테리어에서 돋보인다. “카페의 경우, 공간의 특성과 고객의 취향을 잘 이해해야해요. 건조하고 햇볕이 잘 드는 공간에 습지 식물로 인테리어를 해놓는다면 아무리 신경을 써도 결코 잘 자랄 수 없어요. 선인장처럼 건조하고 햇볕이 잘 드는 장소에서도 잘 자라는 양지 식물로 인테리어를 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그리고 공간의 목적과 클라이언트의 취향을 잘 고려한 식물 인테리어를 해드리는 것이 중요하죠.” 그의 식물 인테리어를 통해 카페를 찾는 고객이 늘었다는 CEO부터 가드닝 수업을 듣고 식물 키우기에 재미를 붙였다는 주부까지……. 만족을 표현하는 클라이언트들은 다양하다. SNS를 통해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식물 인테리어를 보고 가드닝 클래스에 수강 요청을 하거나 식물 인테리어 시공을 의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가 추구하는 식물 인테리어는 어떤 색깔일까. “녹슨 철제, 폐공장 같은 빈티지한 공간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원시적인 식물들을 배치함으로써 이색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인테리얼 스타일을 좋아해요. 회색빛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초록빛 생명력으로 죽어있는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을 때가 가장 기쁘죠. 이런 공간에서 사람들과 공생하며 새순을 띄우는 식물들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런 그의 미적 감각은 우수한 작품으로 이어졌다. 삭막하고 획일적인 색채의 공간을 살리는 식물 인테리어로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저의 꿈은 도시 속 건물 외벽을 식물로 뒤덮는 수직 정원의 대가 ‘패트릭 블랑’(Patric Blanc)같은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건축물에 생태계를 옮겨놓고 싶어요. 이를 위해 식물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시도들을 계속해나갈 계획입니다.” 이런 그의 감각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플로리스트, 홍명희 대표다. 그녀는 부일국제영화제 수상자 꽃다발을 담당할 정도로 남다른 감각을 지닌 젊은 플로리스트다. 대중들에게 많은 관심을 얻고 있는 가드닝, 플라워 산업에서 트렌드를 이끄는 젊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꿈이라고. “플라워 디자인을 배우고자하는 대중들의 수요가 점차 늘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플로리스트를 양성하는 플라워샵은 많지만, 아직까지 식물 인테리어와 가드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물샵을 찾아보기란 어렵습니다. 대중들의 시선이 이제는 가드닝과 식물 인테리어로 옮겨가고 있는 만큼 트렌드를 이끄는 젊은 기업을 만드는 것이 저희의 꿈입니다!” [1070]
    • 문화
    2019-05-07
  • 거장을 감싸 안은 큰 울타리 - 최성숙 화백 /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명예관장
    누구나 자신을 감싸주는 큰 울타리 속에서 살아간다. 부모라는 첫 울타리를 거쳐, 연인, 새로운 가족, 또는 종교로 자신의 울타리를 옮겨간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변하지 않는 울타리, 즉 ‘진정한 사랑’의 울타리가 있다. 영성가 에크하르트 툴레는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진정한 사랑은 오직 현재의 순간과 하나가 될 때만 경험할 수 있다. 현재의 순간은 삶의 놀이가 일어나고 있는 장이며, 이곳이 삶과 예술, 모든 성공과 행복의 비밀이 존재하는 곳이다.” 위대한 철학가들과 예술가들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사랑’의 자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가들이 삶과 하나가 되어 경험했던 진정한 사랑이 머무는 곳은 어떤 곳일까? 추산동에서 그곳에 머물고 있던 거인(巨人)을 만나고 왔다. 변화무쌍한 삶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평온했으며 아름다웠다. 대담 시간 동안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_문다정 기자 “심산 노수현 선생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술을 드셔서 손이 떨려도 그 떨리는 손으로 붓을 잡으면 절대 떨지 않으셨어요. 일랑 이종상 선생님께는 개자원화보를 배웠습니다. 전통과 기술의 습득을 위해 열심히 했어요. ‘묵화를 통한 창작 의지의 계발’이란 주제로 논문도 썼어요. 국회도서관 우수논문으로도 선정되었죠.” 서울대 학사 이후 동 대학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그녀는 중, 고등학교 교사와 작가 생활을 병행했다. “75년 30살 때부터는 개인전을 열었어요. 그 때부터 실험을 많이 했어요. 화선지에 스며드는 담채화가 아니라 화선지에다가 바로 아크릴을 썼어요. 이런 실험을 한지 44년이나 됐어요. 전통을 배웠지만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요.”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져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전통 습득을 먼저 해야 한다. 체득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우리 문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영감의 자유, 기술의 자유, 전통의 존중.”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시인은 그렇게 님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경계조차 하지 않았던 나는 그와 헤어지고 혼자 살려고 버둥거렸다. 고작 그림 그리는 것밖에 더 있나. 1978 첫 남편과 사별 이후, 78년 돌연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그녀는 프랑스에서 문신을 만난다. 그리고 79년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나는 예술을 사랑했어요. 그런데 작품이 곧 그 사람이잖아? 다시 태어나도 그 사람 꼭 만날 거야. 문 선생님은 6·25 때부터 돌 깨서 고향에 자기 미술관 짓는 것이 꿈이었대. 그럼 내가 뭐 별수 있나요. 소원 이뤄줘야지. 문 선생님 일도 하며 내 작업도 했어요. 고생도 많이 했지만, 많이 배웠어요. 지금도 후회 없어요.” 서로를 알아본 최성숙과 문신은 80년에 귀국하여 15년 세월에 걸쳐서 직접 미술관 건립하여 1994년 문신미술관이 개관하게 된다. 하지만 개관 1년 뒤 문신은 타계한다. 그 후 모든 것을 그녀가 이어받는다.”문신 때문에 작가 활동 못 해서 좀 그렇지 않으냐고 하면 난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해요. 문신은 문신이고 나는 나예요. 모든 결정은 내가 한 것입니다. 문 선생님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좋은 그림 못 그렸을 거예요." 최성숙의 작품은 순수하며 자유롭다. 묵향이 나면서도 모던함이 느껴진다. “당연한 거예요. 당나라 시대에는 당나라 그림이 나와야 하는 것처럼, 내가 현대 시대에 사니깐 이런 그림이 나와요. 하지만 법 없이 그리면 안 돼요.” 그녀는 작가는 기술을 완벽히 습득해야 함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그렇게 될 때만 표현의 자유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표현의 다양화보다는 재료의 다양화만이 보이고 표현은 빈약해져 간다. “사고의 빈약과 욕심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그릴지만 생각해서 그래요. 욕심낼 필요가 없어요. 그림은 자기 본성이 나오는 거예요. 욕심만 사라지면 자기가 가진 것이 그대로 나와요. 본성이 드러날 때, 개성이 나옵니다. 똑같은 걸 그려도 사람마다 다 다르게 나오니 얼마나 좋나요?” 석도는 그림은 내 마음이 수고롭지 않을 때 비로소 그려지는 것이라 하였다. 그녀의 그림이 천진난만하고 자유로운 건 그녀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정 풍부한 그림 그리는 여자가 복잡한 외부의 일들을 하면서도 자신의 본성을 지킨 점이 신기하다. “그런 것들에 흔들리면 안돼요. 핑계대면 안돼요. 문 선생님께 작가로서 집중하는 법을 배웠어요. 바쁜 와중에도 시간 남을 때마다 그림을 그렸어요. 안되는 게 없어요. 나도 사람이라서 스트레스는 받지만, 그걸 그림에 몰두해서 풀어요. 그게 내 정신적, 육체적, 건강 유지 비법입니다.” 향년 74세의 그녀는 정정하다. 하지만 몇 해 전 구강암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항암, 방사선 치료는 받지도 않았지만 어느 날 검사해보니 깨끗하게 나았다고. 하나님이 이 정도로만 혼을 내신 거 같다며 그녀는 미소를 짓는다. 87년도에 영세를 받은 그녀는 기도의 힘을 믿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잘해서 이룬 게 아니에요. 기적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거지. 미술관은 정말 기적의 힘으로 지어진 집이야. 재벌로부터 후원받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떳떳하게 국가에 기증할 수 있는 겁니다.” 문신 미술관은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공공의 것이라는 문신의 뜻에 따라 2003년 창원시에 기증되었다. “우리가 세상에 떠날 때 입고 있는 옷 한 벌도 가져 갈 수 없어요. 다 내려놓고 가야지. 국가에 맡기면 보존이 될 수 있어요. 저작권도 풀어 작가들에게 활용 할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6월 달엔 문신예술아트상품 참여제안 전을 열 예정입니다.” 그녀는 작은 미니어쳐를 보여준다 공장에서 찍어낸 게 아니라, 작가들이 500개 한정으로 문신 작품을 작게 만든 것이다. 밑에는 작가들의 이름도 적혀있다. 제작비가 많이 나가지만 작가들에게 최대한 많이 돌려준다고 한다. 자신이 돌려받는 부분 없이 아트상품을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 만드는 건 오롯이 문신 예술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문신의 저작권을 활용하기 원하는 작가들을 참여시켜 전시를 열고 추후 각자 개인의 사업으로 발전시켜, 창원시가 추구하는 문화예술사업과 경제발전에도 기여하고자 한다. 2022년은 문신 탄생 100주년이다. 100주년을 맞이 해 창원시는 올해부터 문신미술관과 함께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문신미술관을 창원의 브랜드로 만들어 문신의 예술성과 작품성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내가 남들보단 조금 늦었지만, 요즘은 100세 시대잖아요? 지금까지 50% 했는데 앞으로 남은 50%를 어떻게 채워나갈까 하는 희망에 살아갑니다. 우주를 유영하듯 내 그림 어디 있는지 잡으러 가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마음이 두근거려요. 이 기분에 살아갑니다.” 영감과 기술의 자유를 넘어서 소유로부터의 자유를 얻은 그녀는 편안해 보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시적인 것들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들이 우리의 삶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욕심 없이 예술을 사랑한 그녀의 행보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소유하지 않고도 사랑 할 수 있는 자리에 머무는 그녀는 장자의 하늘을 나는 ‘대붕’을 떠올리게 한다. 메추라기의 조롱을 무시하고 하늘을 날기 위해선 구만리 높이까지 날아올라야만 바람을 아래에 둘 수 있다고 한다. 그 도약까진 말하지 못할 아픔도 많았을 터. 하지만 이젠 하늘을 날며 땅의 소음이 들리지 않으니 그녀는 자유롭다. 대담이 끝난 후 문신 미술관을 한 바퀴 돈다. 마침 문신 건축 드로잉 전을 하고 있다. 미술관 건립 이전, 문신이 연필로 그린 미술관의 전경이 소박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이 꿈들의 여정이 작은 종이에서 시작되기 위해선 누군가가 문신의 큰 울타리가 되어줬기 때문인 걸 안다. 이 꿈들은 이제 실제가 되었고, 개인을 넘어 우리 모두의 소중한 유산이 되었다. •1946 한국 부평 생 •1964 경기여자 고등학교 졸업 •1968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72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학과 졸업 •1978 서독 괴팅겐 대학 수학 •1979-80 프랑스 아카데미 그랑쇼미엘 수학 주요경력 •문교부 시청각 교재 검열위원(1973) •개천예술제 심사위원(1984-85)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협회 이사(2009) •파리 시떼 데자르 입주 작가 선정(2010) •박물관·미술관 발전 유공자 정부 포상, 국무총리 표창 수상(2010)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공헌 예술가 선정(2018)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회화과 객원교수(1999-)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명예관장(2004-)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 관장(2004-) [1070]
    • 문화
    2019-05-07
  • 이광복 사단법인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이사장 / 도편수
    봄볕이 따사로운 4월, 한복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 대전 정부청사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300여명의 군중 앞에서 선 남성에게선 결연함이 느껴진다. 이 남성은 미국 뉴욕 주 원각사 대작불사, JSA 공동경비구역 내 무량수전,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내 한국학연구소의 정자 조성 등 빼어난 걸작으로 세계에 한국전통 건축문화의 우수성을 알린 이광복 도편수다. _박미희 기자 21세기, 한국전통 건축문화를 대변하는 그가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회원들과 거리로 나선 건은 홀대받는 문화재 수리기능인들에 대한 법률 개정안 통과를 위해서다. 한국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문화재기능인들의 처우와 환경은 매우 열악한 실정. 무엇보다 이들을 거리로 나서게 한 것은 문화재기능인들의 실적 관리, 경력증 발급 등의 평가 업무를 문화재청이 문화재수리협회에 위탁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문화재수리업체는 문화재수리기능사 자격이 없이도 사업자등록증을 낼 수 있는 경영인입니다. 경영인들의 모임인 문화재수리협회에서 한평생 현장에서 직접 문화재를 만지고, 수리하는 기능인들을 평가한다는 것은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수리·보존하는 기능인들의 자긍심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한국전통문화의 발전을 위해서 기능인들의 경력관리, 자격 인정교육을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로 이관해야할 것입니다.”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는 문화재 보전수리기능 전승개발을 위해 1988년 설립된 문화재청 소관 사단법인이다. 24개 직종, 전국 9,111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단체로 문화재 보수, 복원을 위한 봉사활동과 문화재기능교육을 주로 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12명, 무형문화재보유자 29명을 보유한 단체로 한국전통문화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문화재기능인들의 모임이다. 최근 제13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광복 도편수는 문화재기능인들의 권익향상과 처우개선, 올바른 문화재 정책 마련을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는 일관성 없는 문화재 정책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놨다. “현재 문화정책은 지정 문화재를 관리, 보존하는 방향으로만 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새로운 문화재를 만드는데 서구식 경골목구조 등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복구되고 있는 문화재도 서양식 건축물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어요. 아직 지정되지 않는 문화재, 그리고 전통기법으로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해야할 것입니다. 더불어 지정된 문화재는 문화재청 소관이고, 이외에는 전부 국토부 소관이라고 해서 외면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이 시대의 문화재까지 보존하고 관리하는 정부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 내린 솜씨, 이광복 대목장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수작으로 한국전통건축의 아름다움 선보여 베를린 자유대 한국학연구소 상량식에 참석한 주독 남북대사와 함께한 사진 21세기, 한국전통건축문화를 대변하는 이광복 도편수. 그의 고향은 전남 진도다. 일찍이 근방에서 솜씨 좋은 목수로 이름을 알린 아버지 밑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끌과 정을 가지고 놀며 자랐다. 부친을 닮은 뛰어난 재주와 남다른 눈썰미를 타고난 그는 1977년 목포공고 건축학과를 진학해 1978년 ‘기능장’에 올라 일찍이 두각을 나타냈다. 건축목공 분야 학생기능경기대회 금상, 지방기능올림픽 은상 등을 수상하며 촉망받는 기능인으로 주목받은 것. 이후 사회에 나와 직업훈련원 교사로 기능인들을 교육해 해외로 파송하는 업무를 맡았고, 대학 행정직에 종사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 하지만 사회인으로서 안정감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공허함은 채울 수가 없었다. 건축에 대한 열망을 잠재우지 못하고 그는 돌연 전통 목수의 길로 들어섰다. 한국전통건축의 대가 조원재, 이광규 선생(중요무형문화재, 대목장)의 맥을 잇는 故 조희환 도편수(대목장) 문하에 입문해 기술을 사사받은 것.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쟁쟁한 목수들 사이에서 늦깎이로 시작한 그가 두각을 나타낸 건 뜨거운 예술혼과 빼어난 솜씨 때문이었다. 누대로부터 내려온 지혜와 스승의 가르침, 현장에서 체득한 지식을 접목해 진일보한 기량을 갖추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것. 스스로 담금질을 하며 그는 뛰어난 기량을 지닌 장인으로 다시 거듭났다. “장인정신이란 비단 무언가를 잘 만들기 위한 노력에 그치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대로부터 내려온 지혜와 수년간 현장에서 체득한 지식, 그리고 아름다운 솜씨를 지니는 것이 장인의 덕목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한국전통문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구현하고자하는 휴머니즘(humanism)을 지니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장인정신[匠人精神]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전통 목공예에서 구규법과 양판법을 동시에 쓰는 목수는 전무하다. 두 가지 방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솜씨를 발휘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는 구규법과 양판법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었기에 남들보다 기능 습득이 빨랐고, 고차원적인 작업을 해낼 수 있었다. 정교한 기술과 세련된 기법을 선보이는 匠人(장인) 그의 남다름을 일찍이 알아본 이가 있었으니, 국보 1호 숭례문 중건 공사 책임을 맡고, 승보종찰 송광사 불사를 지휘한 지유 신영훈은 한국전통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인물. 그가 이광복 도편수의 빼어난 솜씨와 뛰어난 기지를 인정한 건 2003년, 전북 임실 대도대한 팔각원당 천지원 신축 현장에서다. 한국전통 건축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되는 작품인 팔각원당은 현존 목조건축물 가운데서 유일하게 귀접이 법식을 사용해 축조됐다. “귀접이 방식이란 팔각지붕 아래 나무를 ‘ㅅ’자로 덧댄 것으로 지붕의 무게를 효율적으로 분산하는 건축법입니다. 1mm만 어긋나도, 16mm가 벌어져 기둥이 버티기가 어려워요.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교한 기술과 세밀함이 필요한 작업이죠. 대게 추녀 4개를 걸려고 해도 이틀이 걸리는 작업을 한나절 만에 해내자, 스승님은 ‘이제 도편수답다’며 환하게 웃어주더군요(웃음).” 이때 지유 신영훈은 그에게 목운(杢雲)이라는 호를 내린다. 목운(杢雲), 즉 ‘나무에 문리가 틔였다’는 뜻으로 전통 목수에게는 최고의 찬사이자, 새로운 시대를 이끌 도편수 탄생을 말하는 순간이었다. 도편수[都邊首]란 17세기부터 궁궐이나 불교사찰을 짓는 공사의 기술자 책임자를 일컫는 말로, 흔히 대목장(大木匠)으로도 불린다. 현재는 실내의 가구 등을 제작하는 소목장(小木匠)과 달리 대목장(大木匠)은 전체의 뼈대를 제작하는 총괄 기술자다. 집 짓는 일부터 기술, 설계, 감리를 조율하는 종합 예술가로 기술자들의 우두머리를 총칭한다. 당대의 건축문화를 말해주는 도편수. 그 이름에 걸맞게 그는 한국전통건축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낙산사 원통보전 내부 불단 공사와 7층석탑 주변 정비사업 빈일루 등 4채 중건 공사, 설악산 봉정암 적별보궁 신축공사, 여주 신륵사 극락보전 해체보수공사, 서울 은평구 진관사 함월당 등 10채 신축공사, 강화학사 재민가, 서울 불광사, 미국 뉴욕 주 원각사 대작불사, 중국 연길시 연성각 신축공사, JSA 공동경비구역 내 무량수전, 미국 워싱턴 메도우락 공원 평화의 종각 건립 및 공원 조성공사, 독일 베를린자유대 내 한국학연구소의 정자 조성 등 걸출한 작품을 남긴 것. 통도사 미주포교당 뉴욕 원각사 선방 한국건축의 미는 자연을 닮은 현수곡선 건축은 한민족의 정신문화를 담아내는 그릇 전통문화의 DNA를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은 아름다운 수작으로 한국전통건축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이렇듯 세계인을 매료한 한국전통건축의 아름다움, 그 핵심은 무엇일까. “한국 건축미의 핵심은 선입니다. 한옥의 선은 높은선도 수평선도 아닌 현수곡선(顯垂曲線 : 줄의 양 끝을 고정하여 자중에 의해 아래로 처진 상태의 곡선)이에요. 한옥의 지붕, 특히 기와지붕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요. 용마루선와 추녀마루를 예로 들 수 있죠. 이렇듯 한국적인 선을 어떻게 자연에 대입해 맞춰놓느냐가 관건입니다. 한국전통건축은 적재적소(適材適所), 즉 있을 때 있고 없을 때 없는 조화로움이 있어요. 이렇듯 조화로운 배치는 눈의 착시현상을 일으켜 공간을 보다 다채롭게 이해하게하고,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지요.” 한국건축문화는 한국정신문화와 그 맥(脈)을 함께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서양의 건축물 중에서 초석, 기둥, 지붕을 다 갖고 있는 건축물은 뭘까요? 바로 신전건물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한국전통건축은 웅장한 궁궐부터 초로에 지어진 초가집까지 초석, 기둥, 지붕으로 이뤄져있습니다. 이 방법은 벽면을 바로 쌓아올리는 현대적 건축기법에 비해서는 효율성이 떨어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적인 건축법을 고집하는 건 한국인의 정신이 반영되었기 때문이죠. 3차원적인 건축문화에는 단군신앙으로부터 비롯된 한민족의 천손사상이 녹아나 있어요. 한편 한국정신문화의 한축을 이루는 불교철학도 한국전통건축에 녹아있습니다. 한국전통건축에는 도리(道理), 이른바 보편적 진리가 담겨있어요. 세상의 이치를 뜻하는 서까래와 그것을 떠받치는 도리에는 이런 우주만물에 대한 보편적 진리와 한민족의 세계관이 담겨있습니다.” 많은 걸작 중에서 단연 화제작은 현재 작업이 진행 중에 있는 미국 뉴욕 주 원각사 대작불사다. 이 작품에는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자하는 이광복 도편수의 정신이 담겨있다. “전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문화재 정책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뉴욕 주 원각사 대작불사는 한국전통건축기법을 사용해 850년 된 거대목을 대들보로 사용해 85평 규모로 지어지고 있어요. 옛날에는 이렇게 큰 규모로 불전을 지은 일이 없죠. 전통 기법만 사용해서는 이처럼 큰 규모의 건축물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현대적 건축기법을 가미해야만 비로소 건축물을 완성할 수 있어요. 하지만 본질적으로 전통에 흐트러짐 없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뤄내는 것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전통이란 그저 옛것을 답습하는데 그치지 않고 현대와 조화를 이뤄 새롭게 계승·발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무엇을 문화재라 규정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도 우리가 함께 고민을 해야 해요. 문화재청은 오래 전에 지어져서 이미 지정된 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하는데 만 그치지 말고 이 시대에 지어지고 있는 새로운 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해야할 때입니다. 우리 안에 내재한 문화적 DNA를 이어가는 일, 제 모든 걸 걸고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명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한국의 문화적 DNA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이라며 자신을 설명했다. 한국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어떤 변화의 움직임이 있어야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큰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아직도 한국은 학력주의 사회에 머물러있어요. 학문에 매진해 석박사를 취득한 학자들만이 전문가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젠 문화재 보존 현장에서 한 평생을 보낸 장인들도 전문가로서 그 전문성을 인정해야할 때입니다. 학문의 테두리 안에서만 전문지식을 따질 것이 아니라, 선조 때부터 내려온 지혜와 수십 년간 현장에서 체득한 지식과 빼어난 솜씨를 갖춘 장인들의 지식도 진정한 의미의 지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재 정책을 마련하고 행정을 집행하는 자리에서 장인들이 설 자리를 찾아볼 수가 없어요. 실례로 도편수라 할지라도 현장 대리인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참담한 현실입니다. 그런 현실에서 점차 문화재기능인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어요. 누대로 내려온 선조들의 지혜, 오랜 세월 동안 체득한 살아있는 지식, 고장 마다 색깔 있는 장인들의 아름다운 솜씨를 발휘하고, 문화재 기능인의 명맥을 이을 수 있도록 현실적인 문화재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01.07: 영국 대영박물관 한국실 신축공사 참여 •08~현재: 목운한옥 대표 •‘05.03~’06.04: 북촌 백인제가옥 해체수리 보수 공사 도편수 •‘05.02~’05.12: 서울 고궁박물관 세종 때의 자격루 복원공사 도편수 •‘09~현재: 지용한옥학교 교수 •‘10.02: 서남대학교 건축과 졸업 •‘11.10~’12.02: 국토해양부 시행 <명지대학교> 건축사 교육 도편수 •‘11.03~’11.12: 서울시 문화재 김형태가옥 전면 해체수리 도편수 •‘13.10: 서울시 건축장인상(한옥분야) 수상 •‘13.07~현재: 뉴욕 원각사 대작불사 신축 도편수 •‘13~현재: 한옥평가 특수감정인 •‘14: 국토교통부 <한옥시공중간관리자과정>교수 •‘15~현재: 서울시 건축위원회 및 한옥위원회 위원 •‘16~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 대목분야 객원교수 •‘17.3: 조계종 총무원장 감사패 수상 •‘19.02.~현재: (사)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이사장 [1069]
    • 문화
    2019-04-25
  • 미술품 시장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 [아트테크 ; 작품 원작자와 미술품 구매고객이 저작권 수익을 나누어 수익을 극대화 하는 현물자산 재테크 프로세스]
    김양금 이사 절찬리에 방영되었던 tvN 인기 드라마 ‘남자친구’.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었지만, 감성을 극대화 시키는 장면에 유독 미술작품이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드라마의 흥행만큼이나 화면에 함께 등장한 작품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중 특히 KACPA 소속 조재만 작가의 사진 작품은 드라마 속 영상미를 높인다는 평가와 함께 많은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그 배경에는 작가의 수준 높은 작품성도 있지만, 이처럼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판로를 개척한 한국미술저작권진흥협회(KACPA)의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그간 부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미술시장에 큰 변화를 견인하고 있는 한국미술저작권진흥협회 영남지부 전인식, 김양금 이사를 만나 국내 미술시장의 작은 변화와 그들의 노력을 담아보았다. _김정은 기자 전인식 이사 “한국미술저작권진흥협회(KACPA)는 한국 미술계의 진흥 및 선진을 위해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뜻을 모아 설립된 단체입니다. 국내 작가들의 수준 높은 작품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품 저작권을 보호하며, 다양한 사업 운영을 통해 작가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이로써 작품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작가들을 지원하고, 대중에게는 좋은 작품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국내 미술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협회의 궁극적인 목적이죠.” 한국 미술시장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는 한국미술저작권진흥협회(KACPA)의 김양금, 전인식 이사. 그들은 국내 미술 작품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오랫동안 작가들과 교류해왔으며, 미술시장의 활성화와 인프라 구축을 위해 협회에서 활동하게 된 배경을 전했다. 사실 그들의 반가운 인사 보다, 취재진의 시선을 곧장 빼앗은 것은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성근, 이주영 화백의 작품. 드라마 ‘남자친구’에 출연한 작품으로 유명한 조재만 작가 등 국내 유수 작가들의 작품이 한 자리에서 전시되고 있다는 것. 이 저명한 작가들이 모두 한국미술저작권진흥협회 소속이라니, 그 위상이 한층 더 높아 보인다. 작가는 작품에만 집중, 고객들은 성장가능성 높은 작가의 작품으로 재테크가 가능하도록 탑스텐호텔에 전시된 작품 서울에 위치한 갤러리K 본사에 이어 제주, 광주지부, 그리고 부산 해운대 ‘마리안느 호텔’에 영남지부가 오픈식을 가지며, 2017년 창단 후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미술저작권진흥협회. 수십 년 전부터 미술시장의 다방면에서 활동했던 임원들로 구성돼 신뢰가 더욱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들이 협회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업은 무엇일까.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분들이 문화, 예술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에 미술품을 구입하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던 예전과 다르게 그림에 투자하고자 하는 ‘아트재테크’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추세지요. 하지만 국내에는 투자가치가 높은 작품임에도 저평가 되고 있는 미술품이 많아 매우 안타까워요. 따라서 협회는 역량 있는 작가를 선별하고 그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며 좋은 작품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미술 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인식 이사, 김양금 이사, 추미란 이사(좌측부터) 한국미술저작권진흥협회에서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첫 번째는 ‘저작권 관리대행’이다. 이는 창작물을 만든 사람의 노력과 가치를 위해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으로, 사업적인 목적으로 활용되는 작품의 모든 저작권 수입을 창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술은 분야별로는 저작권 수입의 편차가 큰 편입니다. 예를 들어 대중음악은 음원이나 편곡 등에서 발생하는 저작권 수익이 높은데, 미술은 그동안 저작권에 대한 비중이 매우 낮은 형편이었죠. 하지만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 등 미디어 협찬과 가전과 가구, 화장품 등 미술작품과 협업하거나 콜라보하는 사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첨단산업과 만나는 미술 인프라에 주력하고 있고요. 이에 협회는 작가의 저작권을 관리 및 보호하며, 작품에 수반되는 상업성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어 두 번째는 미술작품을 통해 투자 수익을 창출한다는 의미를 지닌 아트와 재테크의 합성어 ‘아트테크’ 사업이다. 이미 선진국의 투자시장에는 보편화된 재테크로 우리나라 역시 떠오르는 재테크의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협회에서는 작품에 따른 수익 사업을 전개해 발생하는 수익을 작가와 고객에게 안정적으로 나누어 배분하고 있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미술품 투자는 기존의 투자 상품들인 예금과 적금, 펀드, 주식 등과는 투자하는 방식과 수익구조가 다릅니다. 현물(미술품) 투자로 안정적인 자산 확보와 더불어 저금리 시대에 작가와 저작권 수익을 나눠 투자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으므로 작품에 대한 리서치에 집중하면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지요.” 한성자동차에 전시된 작품 2016년 딜로이트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미술품시장의 수익률은 연평균 10.7%에 달해 이는 미국증시 S&P 지수 8.3% 보다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실제로 영화배우 박준규를 비롯해 코미디언 이용식, 탤런트 이계인 등 방송인들과 운동선수들이 협회를 통해 작품을 구입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투자 가치가 높은 미술품을 가려내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 협회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KACPA는 미래 수익성이 있는 작가와의 계약을 통해 고객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수익을 돌려드리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검증된 작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판로를 열어두고 있는 것이죠. 현재 협회에 소속된 아티스트들은 이미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 대부분이지만, 앞으로는 작품성이 뛰어나지만 저평가 된 작가들을 발굴하는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임할 계획입니다.” 덧붙여 협회에서는 (사)한국미술협회에서 인증한 작품의 호당(작품의 규격) 가격확인서와 진품인증서를 발급하여 작품에 대한 보증을 책임지는 동시에, 협회를 통해 구입한 미술품은 위탁운영이 가능하도록, 또 온라인 조회를 통해 본인이 소장한 작품의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투명한 운영에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작가와 대중의 연결고리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김양금, 전인식 이사. 나아가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우리나라 문화 예술 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기분 좋은 다짐을 전한다. 쥬얼리, 우산, 쿠션, 넥타이, 그릇 등 다양하게 상품화된 작품들 [1069]
    • 문화
    2019-04-25
  • 서울, 인사동 딱딱한 돌에 예술혼 담아 숨결을 새기는 젊은 작가 - 이세웅 설고전각팩토리 대표
    서울 종로구 인사동, 몇 평 남짓한 작은 작업실에는 새벽녘을 밝히는 빛은 채 깃들지 않았다.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 조용한 적막이 흐르는 곳에서 몇 시간씩 똑같은 자세로, 자신의 예술혼을 쏟아내는 이 사람. 딱딱한 돌에 새로운 생명력을 새기는 전각 작가, 이세웅 작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전통에 기반을 두되, 재료와 형식에 있어 파격을 준 작품으로 예술계에 신선한 활력이 되고 있는 그를 주간인물이 인터뷰했다. _박미희 기자 이세웅 작가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젊은 전각 작가다. 돌에 일일이 작은 글씨를 새겨 넣는 전각은 깊이 있는 예술성과 고도의 작업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 서예를 전공한 예술가들 사이에도 전각을 전공으로 삼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젊은 작가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올해로 20년, 오로지 전각 하나에 자신의 예술혼을 불어넣고 있는 이세웅 작가는 한국 전각 문화를 이끌 차세대 주역이다. 어려서부터 일찍이 서예에 눈을 떠 남다른 재능으로 미술계가 기대하는 기대주로 관심을 받았던 그는 95년 원광대학교 순수미술학부 서예학과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인 꿈을 펼쳤다. 자유자재로 다양한 서체를 아름답게 표현하던 그가 어렵다는 전각에 천착(穿鑿)하게 된 건 운명 같은 일이었다. “군 제대 후, 교수님의 제안으로 중국 유리창을 견학하게 됐어요. 한국으로 치면 인사동 같은 곳인데, 그곳에서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치바이스(제백석)의 전각 작품을 모은 책을 보게 됐어요. 가난한 목수였던 제백석은 40대부터 전각에 몰두하게 됐고 중국 전각의 최고봉이라 불리며 당대 전각 문화를 이끈 대가죠. 그의 전각 작품을 모은 책을 보고 난 뒤 3~4일 연속, 꿈에 제백석 선생이 나오는 거예요. 한동안 인상적인 그 꿈을 잊지 못하고,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전각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죠.” 전각은 고도의 예술성을 요하는 작업이다. 다양한 서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서예의 기본기부터 사군자, 조각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망라하는 배경지식이 필요한 예술 분야다. 하지만 전각의 또 다른 매력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예술 작업에서 나온다고. “누군가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웅크린 채 돌에 글씨를 새기는 저를 보면 ‘뭐 하러 저런 고생을 사서 하나?’하고 생각할거예요(웃음). 하지만 작가는 머릿속에 담긴 이미지를 전각으로 표현하는 그 행위 자체를 사랑하죠. 조금만 잘못해도 쉽게 깨지기 쉬운 돌에 한획, 한획 정확한 글씨를 새기는 일은 정교한 기술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물의 가치는 상당히 크다고 봐요.” 수없이 많은 새벽을 밝히며 혼을 담은 젊은 작가의 전각 작품. 전통적인 전각 기법에 충실한 전통적인 작품부터 다양한 디자인 기법을 가미한 현대적 전각 작품까지…….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데, 모두 수많은 반복과 연습으로 빚어진 인고의 시간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다. 그는 “국당, 조성주 선생의 문하에 입문해 사사받았다”며 “선인들의 뛰어난 작품을 수없이 모방하는 과정에서 탄탄한 기본기를 다질 수 있었다”는 말을 전했다. 천자문의 첫 글자인 하늘 천(天)부터 마지막 자인 어조사 야(也)까지...전체를 일곱 번을 반복해 측관(돌 옆면에서 새긴 전각, 사람의 성명, 생년 등을 주로 기록한다)에 새긴 작품은 그의 피땀 어린 노력을 보여준다. “돌 세 개를 사서, 천자문을 새기고 연습하기 위해 썼어요. 다 쓴 요령석을 다시 쓰기 위해 사포로 밀고 다시 천자문을 새기기를 일곱 번. 그렇게 피나는 연습을 통해, 인면보다 깨지기 쉬워 쉽게 새기기 어렵다는 측관에 천자문의 모든 자를 새기는데 성공했습니다. 스승님께서 ‘탁본을 떠 학생들의 교본으로 쓰겠다’며 크게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이렇듯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이세웅 작가의 작품은 한마디로 독보적이다. 전통 전각에 바탕을 두되, 재료와 형식에 있어 파격을 추구했다. 그 대표작이 안중근 의사의 이미지를 팝아트 적으로 활용해 전각 작품과 대비적으로 배치한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다. 이런 그의 시도는 백범김구 선생의 이미지를 디자인해 전통적인 전각 작품과 함께 배치한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이 작품과 얽힌 저작권 문제는 작가, 이세웅을 한 뼘 성장시킨 동력이었다고. “제주도의 한 스님께서 제 도안을 그대로 새긴 작품을 출품해 정부 주최 대회에서 수상을 했어요. 스님께서는 저작권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연관된 선생님은 문제가 불거지자 얼마간의 사례금으로 주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하려고 하셨어요. 당시 저는 학생 신분이었지만 사건을 무마하려고만 하는 기성 작가들의 모습에 실망해, 당당히 저작권을 요청했고 해당 작품은 수상이 취소되는 결과로 귀결이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저작권 문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작가로 한 뼘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표작을 꼽아보라고 하자, 그는 일본 산케이국제서전 전각 부문 대상 수상작을 꼽았다. 일본 산케이신문이 주최하는 일본산케이국제서전은 전 세계 신진 작가들의 등용문이자 1만 여점 이상의 출품작이 모이는 큰 대회다. 그곳에서 전각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작가들을 제치고 한국인이 대상의 영예를 거머쥐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 그 일화에 대해 묻자, 이 작가는 한때 생활고에 시달렸던 어려웠던 시기를 회상했다. “작품을 출품하고도 한동안 수상 소식을 듣지 못했어요. 번번이 한국 미술 대전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시던 터라 수상은 꿈도 못 꾸고 있었는데 작품을 출품하라고 권유한 한 지인을 통해 대상 수상 소식을 듣게 됐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워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 수상식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몇 년 뒤 지인을 통해 상패를 받게 되었습니다. 작품 활동을 해나가기 어려운 시기였지만, 작가로서 가장 열심히 매진하던 때, 큰 힘이 되었습니다(웃음).” 전업작가로 전각만을 고집하기란 한국 문화계의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다. 이세웅 작가는 “원광대학교 순수미술학과 서예과는 초등학교 때부터 서예를 배워온 학생들 중에서 각 도를 대표하는 학생들을 뽑아 구성한 곳”이라며 “그럼에도 졸업생 40여 명 중에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저와 다른 한 친구, 단 둘뿐이며 학과는 폐과가 될 위기에 처해있다”며 한국에서 순수 예술가로 활동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토로했다. 아시아예술 경영협회 사무국장 및 전각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젊은 작가들의 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이세웅 작가는 한국 예술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대중들의 인식의 변화가 수반돼야한다는 말을 전했다. “작가의 등급별로 작품 가격이 합리적으로 매겨지는 중국, 일본 미술 시장과 달리 한국 미술시장에서 가격표가 붙어진 작품을 찾아보기란 상당히 어려워요. 중국, 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 해봐도 한국 미대 교수님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역량은 상당히 뛰어납니다. 하지만 정작 대학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의 가치를 어떻게 매겨야하며, 어떻게 판매해야하는지를 가르치는 수업을 찾아보기란 어렵습니다. 이후 미대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전업작가를 꿈꾸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죠. 그렇다면 한 해에 전국 미대 졸업생이 수만명에 이르는 시대에 젊은 작가들이 재능을 채 펼치지도 못하고 수장(水漿)되고 마는 것이 한국 예술계의 현주소입니다. 한국 예술 문화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작품에 대한 합리적인 가격 설정 기준이 마련되어야하고, 대중들이 작가의 작품을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미술시장의 질서가 마련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설고 이세웅 작가, 그의 뜨거운 예술혼을 담은 작품활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다양한 소재에 대한 연구와 디자인 적인 요소를 응용한 참신한 작품 세계를 펼칠 계획이다. “전각은 중국에서 수입하는 돌을 주로 사용해요. 중국에서 수입하는 것이다 보니 가격 부담도 컸고, 사이즈와 규격에 한계가 많았습니다. 이런 기존의 틀을 깨고 다양한 소재에 대한 연구와 디자인적인 요소를 응용한 참신한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갈 계획이에요. 작가의 예술혼을 담은 아우라 있는 작품, 한국의 고유한 정체성을 담은 개성 있는 작품활동을 펼쳐나가고 싶습니다!” •(현) 설고전각팩토리 대표 •아시아예술경영협회사무국장 및 전각자문위원 •원광대학교 순수미술학부 서예학과 졸업 수상경력 •예술의 전당 청년작가전 전각부문 초대작가 선발 •일본 산케이국제서전 전각부문 대상 •한·중 국제서법예술대전 전각부문 최우수상 •제1회 월정사 사경대회 전각부문 최우수상 •제1회 잉크아트 인터넷 세예대전 전각부문 금상 •전국휘호대회 전각부문 특선 2회 •월간서예대전 전각부문 특선 2회 •경기도미술대전 전각부문 특선 •대한민국서도대전 전각부문 특선 외 [1069]
    • 문화
    2019-04-25
  • 안윤지 (사)글로벌드림다문화연구소 이사장
    세계는 한 민족, 한 국가에서 다민족, 다문화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자연과학, 교통의 발전, 경제 변화, 통신의 발전 등으로 많은 사회가 교류하게 되며 이루어졌다. 바야흐로 다문화시대, 다문화사회라는 말이 더는 낯설지 않다. 특히, 중소기업이 밀집한 경남 김해시는 외국인 근로자로 인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인구대비 외국인 수가 많은 지역이다. 이러한 가운데 김해시 동상동에 위치한 (사)글로벌드림다문화연구소는 다문화사회 이주외국인들을 위한 교육, 인권보호, 결혼 등 현실적인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에 주간인물이 (사)글로벌드림다문화연구소 안윤지 이사장을 만나 다문화사회의 발전방향에 관해 이야기 나눠 보았다. _정효빈 기자 (사)글로벌드림다문화연구소는 다문화가족 구성원의 체류, 결혼, 교육, 인권보호 등 경제적 자립을 돕는 민간 기관으로, 다문화가족의 안정적인 사회정착과 건강한 가족생활을 위한 지원을 통해 다문화사회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다문화 아동의 복지사업, 일자리 창출 관련 교육 및 관련 사업, 국제결혼과 폭력피해 상담, 체류 관련 행정업무 지원과 더불어 국제이혼에 대한 상담 알선까지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현재 다문화 관련 대학원 겸임교수, 다문화교육지원(중학교) 코디네이터, 김해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문화다양성 분과위원, 국제결혼문제연구소 지부장, 가정법원 가사조정 위원, 글로벌국제학교(다문화대안학교)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꾸준히 다문화 사회 구성원들을 위해 힘써온 안윤지 이사장. 그는 국제결혼이주자, 이주근로자, 외국국적 동포, 난민, 탈북민 등 다양한 문화를 가진 다문화사회 구성원들이 우리 사회의 건실한 일원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9년간 교편을 잡았던 안윤지 이사장이 자신의 온 열정을 다문화에 쏟으리라 다짐하게 된 계기는 미국 유학 시절 먼 타지에서 받은 따스한 관심 때문이다. “우리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시기가 있었듯이 현재 이주민들은 코리안드림을 품고 우리나라를 찾아온 사람들일 거예요. 유학 시절 제가 받았던 배려를 다시금 사회에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사)글로벌드림다문화연구소는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아 이주배경 중도입국청소년들과 학교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한글 및 문화, 심리적성 및 진로지도 등 특기적성 교실인 ‘레인보우 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이주배경 중도입국 자녀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언어입니다. 한글의 자·모음도 모르는 상태로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에 편입하게 되면 학습은 물론 또래집단에서의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한, 본국 학교로부터 퇴학이 처리되지 않은 중도입국학생들의 경우 우리나라에서의 정상적인 입학 절차를 밟을 수 없는 것도 시급한 문제다. 안윤지 이사장은 이를 위해 중도입국학생들의 본국 학교 퇴학처리 및 한국에서의 편입업무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구소련지역의 생소한 언어를 번역해 허가를 받아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지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이 모든 업무를 도맡고 있다. 금전적인 이득 하나 없는 일임에도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강조하는 안 이사장. “중도입국 자녀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직접 발로 뛰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사회부적응자가 된다면 앞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야기될 것이며, 이로 인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 또한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현재 다문화가정의 정착을 지원하는 곳은 정부 기관이나 단체, 종교기관, 민간단체, 금융기관 등 다양한 지원단체가 존재해 이른바 춘추전국시대를 연상케 하지만, 이들 지원시스템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종합적이지 않아 교육시스템이 중첩되는 것이 큰 문제다. 안윤지 이사장은 다문화 문제를 담당하는 각 부처, 산하기관들이 통합된 시스템 속에서 협력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입국 초기 학령기 자녀들의 실태를 파악한 후 교육의 제도권으로 진입시켜가는 것. 즉, 입국 초기 공교육기관으로 진입하기 전 언어구사능력을 키워 제도권으로 진입시키는 ‘랭귀지코스’ 운영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문화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교육이 각 부처에서 시행되어 중복되는 부분이 큰 문제입니다. 아이들은 여러 기관을 옮겨 다니기 때문에, 아이들 처지에서는 요일마다 다른 학습장을 찾아다니며 일관성 있는 학습이 어려운 셈이죠. 결국은 ‘아이들이 지쳐 더는 언어교육프로그램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부모님들의 불평 섞인 말씀도 듣습니다. 다양한 지원 주체들 간의 협업을 통해 종합적인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윤지 이사장과 긴 대화를 나눈 후 연구소 2층으로 자리를 옮기자 다양한 연령대의 다문화 학생들이 즐겁게 한국어수업을 듣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을 마주하자 인터뷰 내내 열을 띠던 안 이사장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앞으로도 다문화사회 구성원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모습에서 미래 다문화사회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사)글로벌드림다문화연구소 이사장/소장 •김해교육지원청 다문화교육(중학교) 코디네이터 •동아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글로벌다문화학과 겸임교수 •국제결혼문제연구소 경남·김해지부장 •국제결혼문제연구소 이사 •부산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 •글로벌국제학교 운영위원 •前 동천고등학교 교사 [1069]
    • 문화
    2019-04-25
  • 김동귀 소목장·웅석공방 대표·경남과학기술대학교 인테리어재료공학과 교수
    경남 무형문화재 29호로 인정받은 경남과기대 인테리어재료공학과 김동귀 교수가 최근 한방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와 아주 ‘특별한 협업’을 진행했다. 1년에 단 한 번 장인의 예술혼을 품어 한국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9 진설 명작세트 ‘색동목장’을 선보인 것. 그는 “이번 협업으로 내 흔적의 빛깔을 남기고 많은 이들과 내 작품의 소리를 공유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랜 시간 예술성을 인정받으며 목공예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김동귀 교수를 주간인물과 함께 만나보자. _김미동 기자 “연륜을 가진 나무는 수분이 빠지면서 나이테가 치밀하고 아름다워져요. 나무가 생을 이어오면서 잎, 열매, 꽃은 계절에 따라 바뀌고 사라지지만, 보석같이 아름다운 속살은 거친 껍질 속에 갇혀 손길을 기다리죠. 오랜 시간을 조용히 숨어있던 목재와 그 나무의 생이 담긴 나이테를 다룰 수 있다는 점이 목공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탁녹황 경남 무형문화재 29호 소목장이자 대한명인회 목상감 명인으로서 45년간 나무와 함께해온 김동귀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 공방인 ‘웅석공방’을 개설하는 등 목공예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대에 걸쳐 이어온 외가의 농방을 놀이터 삼으며 자연스레 목재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는 김 교수는 고등학교 시절 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하는 등 목공예에 대한 애정을 키워왔다. 대학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던 시기부터 초등 교사로 임용을 받은 후에도 식지 않았던 그의 열정은 전국 대학 예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꽃을 피웠다는데. 여행 중 지인들을 위한 관광기념품을 구입하던 중 조잡한 디자인에 아쉬워하던 그는 ‘내가 직접 만들어 추억을 선물해보자’ 마음먹기도 했다고. 김 교수는 “당시 공예를 배우기 위해 전국을 돌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땐 장인도, 문헌적 자료도 턱없이 부족했어요. 이론만으로는 한계가 커 고미술상과 사찰 등을 찾아다니고 외가에 조언을 얻기도 했습니다. 금속공예, 목공예, 지공예 등 다양한 장인들의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히고 홀로 틀어박혀 작품을 만들곤 했죠.” 먹감나무 진주반닫이 대학졸업 후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김 교수는 오랜 시간과 경제적 부담을 이겨내며 기법 중심의 민속공예를 익혀갔다. 그러던 중 문득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본격적으로 목공예의 길을 걷기 위해 교사생활을 접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목칠공예에 매진했다고. 이후 전국 공예품경진대회 대상 등 대한민국 공예대전 10회 연속 수상을 포함한 다수의 수상 경력뿐 아니라 1987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 독일, 일본, 중국 등 국내외 개인전과 2008 북경올림픽기념 초대전과 밴쿠버동계올림픽 초대전 등을 펼쳐왔다. 2012년 경남 무형문화재 소목장으로 인정받은 그는 이제 명실상부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자신의 빛깔이 담긴 작품을 위해 목상감 연구 작업에 열중하던 김동귀 교수는 각 나라의 상감기법을 분석하던 중 ‘나이테처럼 자연스럽고 멋스러운 곡선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고민에 빠졌다는데. 그러다 지층의 배사구조와 물에 젖은 종이에 영감을 얻은 그는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원목의 질감을 살린 ‘염색집성목’을 개발하여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공예의 본질은 결국 ‘쓸모 있는 아름다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가구는 주위와의 조화를 고려해야 하죠. 때문에 회화성과 조형적인 요소를 최대한 가미하여 공간에서 자유성을 높이고자 합니다.” 또한 그는 “목공예란 나무를 볼 줄 아는 눈과 목재를 다룰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기술력의 합작”이라고 전했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500년을 이어온 나무의 생이 사라져버릴 수 있어 나이테를 읽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또 장인의 손끝에서 목재가 가장 피어오르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고 봐요. 좋은 목재는 자연이 만들어내지만, 좋은 작품은 장인의 기술력이 만들어내는 것이죠.” 웅석공방을 개설하여 인재배출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경남과기대 인테리어소재공학과 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김동귀 교수는 “벽이 높은 만큼, 숙련된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이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뜻깊은 소신을 내비쳤다. “저는 자료와 문헌이 턱없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기에, 그간 제가 연구해온 목상감 분야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후배들이 접하고 계승, 발전할 수 있도록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전통공예에 대한 이해를 활성화시키고 좋은 소재보다 작품을 극대화할 수 있는 표현방법을 모색해야할 때”라며 강조한 김 교수는 “공예공방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웅석공방을 개설하여 목공예에 대한 관심과 가치를 높인 것이 무엇보다 뿌듯하다”며 웃어 보였다. 오랜 기간 강단에 서왔던 세월을 뒤로하고 올해 8월 정년을 앞두고 있는 김동귀 교수. 그는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작업에 열중하여 작가로서 기억될 수 있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제게 남은 시간 동안 작업에 오롯이 몰두해 제 소리와 냄새, 빛깔이 담긴 작품을 세상에 남기고 싶습니다. 또 세계 곳곳에 우리나라의 예술성을 알릴 수 있는 작품을 공유하기 위해 계속해서 나아가야죠.” 또한 “미술관 혹은 박물관을 건립하여 지금까지 연구를 위해 수집·제작한 고미술품과 자재, 작품을 공유하고 교육하는 장을 만들고 싶다”며 포부를 보인 김동귀 교수의 작품은 예술 그 자체로서 목공예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의 남다른 행보에 주목하며, 앞으로 그가 보여줄 작품세계와 예술성을 기대해본다. [1068]
    • 문화
    2019-04-08
  • 나무에 정성을 입히다 - 이영란, 김정현 현우드공방 대표
    최근 목제 소품의 인기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가구에서부터 도마에 이르는 주방용품까지, 상업 공간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목제 소품 배치가 인테리어의 품격을 한층 올려주고 있기 때문. 이에 주간인물은 나무를 잘라 깎고, 다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 주방과 생활용품을 선보여 주부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공간이 있다는 소개를 받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울산시 성안동에 위치한 현우드공방이 바로 그 주인공. 우드갤러리와 카페가 접목된 공방도 이색적이지만, 오픈식 작업장에는 오늘도 김정현 대표의 목공 수업이 한창이다. _김정은 기자 나무의 은은한 향과 자연의 따스함이 가득 느껴지는 핸드메이드 목공방 현우드공방. 일반적인 소규모 공방과는 달리 분위기 좋은 카페를 연상하게 하는 목공예 갤러리와 커다란 창문 넘어 보이는 작업공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저곳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는 찰나, 이곳의 공방장이자 부부인 김정현, 이영란 대표가 봄날처럼 따듯한 미소로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현우드공방은 나무를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에게 커피를 선물하는 공간이에요(웃음). 누구나 편안하게 들어와 구경하고, 나무 향을 맡으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목공방을 기대하며 기획한 곳입니다.” 남다른 감각이 엿보이는 ‘현우드공방’의 인테리어 역시 김정현 대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데, 그들이 이곳을 운영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목공예는 저의 오랜 취미이자 꿈이었습니다. 본업을 하면서 지인들에게 선물로 만들어 준 도마와 목제품들이 우연한 기회에 입소문을 타면서 공방까지 운영하게 되었어요.” 김정현 대표는 본래 건축사업을 영위해 온 인물이다. 본업인 건축 외에도 사진사로도 주목받았으며 목공예는 그의 오래된 취미생활이었다. 이러한 그의 다재다능한 재능은 아마도 나전칠기만 30년을 해 온 공예가이자 예술가인 아버지를 똑 닮은 모양이다. 손으로 만드는 일에는 타고난 재주와 감각을 지녔고, 특히 나무를 다루는 진가는 이내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소비자들이 찾기 시작해 SNS에 화제가 되었다. 두 부부는 여느 곳만큼 컴퓨터 활용에도 능통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요청으로 조금씩 온라인 판매로 판로를 열어가기 시작하며 공방을 개설했다. 처음 3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시작했던 공방은 작년 12월 지금의 위치로 확장하며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하고 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100% 핸드메이드 목공예 통 원목으로 만든 원목 주방용품, 쓸수록 진가 느껴져 원데이부터 고급반까지 전문적인 목재체험이 가능한 교육장 세상에 단 하나뿐인 디자인을 만드는 핸드메이드 목공방 ‘현우드공방’. 그중 이곳의 나무도마는 사용감도 남다르지만, 주방 한쪽을 장식하는 것만으로도 멋스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 주부들 사이에서는 잇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고 있을 정도. 쓸수록 진가가 느껴지는 나무도마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데, 오래 두고 써도 내구성이 강한 도마로 입소문 난 김 대표의 도마에는 어떤 비결이 있는 것일까. “도마뿐 아니라 공방에서 만드는 모든 제품은 최상품의 나무만 취급하고 있습니다. 무늬가 독특하고 짙은 색상의 북미산 월넛과 향이 좋고 색이 밝으며 무늬가 아름다운 이탈리아산 올리브나무만 고집하고 있어요. 두 나무의 장점은 단단하면서 동시에 탄성이 있고, 광이 많이 나며 묵직한 색감이 좋거든요.” 하나를 해도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김 대표의 감각과 정성이 담긴 도마와 주방용품은 단단한 통 원목을 다듬어 작품을 만들고 건조와 오일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해 오래 두고 써도 나뭇가루가 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또 다른 비결은, 도마와 트레이, 뒤지게 등 주방용품은 저희 부부가 실생활에서 거칠게 사용해 본 후 제품을 만들어 상용화하고 있어요. 일종의 테스트 과정인데, 소비자분들이 제품의 노예가 되어 힘들게 사용하면 안 되잖아요(웃음). 주방용품 특성상 세제와 물에 노출이 많으므로 가끔 나무에 오일 작업만 해주면 오래 두고 쓰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도마를 포함한 주방용품뿐만 아니라 나무의 자연무늬가 살아있는 우드펜과 감각적인 문양과 색을 입힌 냄비 받침대, 최근 핫한 이슈로 떠오른 우드스피커까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을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도 좋겠다. 문장 각인도 가능하기 때문에 답례품이나 기업 판촉물로도 인기가 높다고. 이어 정성을 입히지 않은 제품은 차이가 나기 마련이며, 소비자들이 먼저 알아챈다며 미소를 보이는 두 대표. 공방과 관련된 이야기에는 한시도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한편 현우드공방은 최신 목공기계를 구비해 전문적인 목재체험이 가능한 교육장으로도 많이 찾는다. 고급 공구를 이용해 나무도마와 우드스피커 등 간단한 목공품을 만들어 소장할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와 원목 의자나 가구 등, 좀 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특히 주목한 점은 상품으로 나온 제품과 동일한 재료지만 더욱 저렴하게 자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이어 원하는 디자인과 크기, 통나무 선택이 가능하고 위험한 기계 외에는 모든 기계를 다룰 수 있도록 김 대표가 가이드하고 있다. 끝으로 김 대표는 나무로 만든 주방용품은 관리가 어렵다는 선입견을 낮추는 것이 목표라고 전한다. “나무는 자연의 선물입니다. 누구나 편안하게 접하고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희는 오늘도 나무에 정성을 입히겠습니다.” [1068]
    • 문화
    2019-04-05
  • 최선미 인디고레드 애니메이션(ANIMATION)제작 감독 / (전)한국 애니메이션 예술인협회 이사 / ASIFA 협회 이사
    하늘, 꽃, 구름, 숲, 바위, 그리고 건물 등 이야기를 만들고, 캐릭터를 그려내고 색을 입혀서 캐릭터와 배경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낱장의 그림들을 나열한다. 여기에 소리를 첨가하면 놀라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애니메이션의 걸크러쉬인 최선미 감독을 만나 깊어가는 가을 정취 속에 흠뻑 취해 마법 같은 창작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_우호경 기자 2D 애니메이션의 시대에서 시선이 아닌 소신으로 최 감독은 중학교 시기인 10대 나이에 이미 40~50대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나의 미래는 전문가적인 지식 보다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최 감독의 인생의 첫 발걸음은 애니메이션 동아미술학원 정도빈 선생이 멘토 였다. 1980년대 전후로 한국은 2D 애니메이션 호황을 누리던 시절 이였다. 하지만 넘쳐나는 작품의 홍수 속에서 몇몇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순수한 Animater들을 등에 업고 큰 수익을 삼키던 시절, 권위적이면서 지나치게 새롭게 닥쳐오는 미래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준비 보다는 지나칠 정도로 현실에 안주한 안일함이 지금에 답답한 현실이 되었다고 한다. 때로는 거칠고 불합리하기까지 하던 곳, 여자를 습관적으로 비하하는 우리나라의 남존여비 의식 구조 속에 15년의 청춘과 소중한 시간을 미련 없이 벗어 던지고 한국에서는 불모지였던 최초로 플레시 애니메이션을 선택 하게 된 나이가 32세, 시선이 아니 소신으로 또 다른 넓은 세상으로 나와 도전을 시작하였다. 플래시의 무한 가능성을 강연하다 최 감독은 애니메이션으로 국내 몇 명 안되는 애니메이터 중 한 사람이다. 스마트폰 앱 까지 만들 수 있는 플래시! 그 플래시의 무한 가능성을 최 감독은 강연한다. 필리핀으로 영어교육을 담당하는 어떤 큰 회사에 1년 계약으로 스카웃이 되어 일년에 겨우 세편 만드는데 급급하던 것을 시스템을 바꾸고 체계를 다시 잡아서 불과 6개월 안에 4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해내어 지금도 최 감독을 애니메이션 분야의 히딩크 라고 불리워진다. 심지어 K 대학에 특강을 하면서 학과장과 담당교수가 배석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전 정신과 근성 없는 학생들은 더 늦기 전에 전과하라고 호통을 치는 당당함은 최 감독만이 할 수 있는 끼와 색깔이다. 지금 최 감독은 정통 셀 애니메이션 작가에서 시작, 현재는 디지털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 플래시 애니메이션 분야의 전문가로서 최감독은 현재 각광받고 있는 중이다. 또한 교육용 애니메이션을 비롯하여 TV시리즈, 방송용 DVD, E-Book, 인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며 감독의 많은 작품과 오랜 경험을 통해 플래시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실질적인 업무를 비롯한 여러 활용 부분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또한 최근 최 감독이 참여한 독립영화 ‘다슬이’의 박철순 감독을 초청, 영화에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쓰인 과정 등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시간도 가졌다. 차세대 융합콘텐츠는 첨단기술이 아니라 끈기와 감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융합 콘텐츠는 TV, 컴퓨터, 인쇄 등의 미디어와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한 장르가 디지털 기술을 통해 합쳐지며 제작되는 새로운 콘텐츠를 의미한다. 21세기 디지털 패러다임의 등장과 사용자 중심으로 산업 전반이 4차 혁명시대인 지금 현재 애니메이션은 유망 산업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직업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감성이 만나는 미래형 산업이다. 또한 특히 디지털 미디어환경을 기반으로 사용자의 감성적 체험과 새로운 생활문화를 제안하기 위한 애니메이션 분야는 산업 전반에서 그 역할과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기존의 애니메이션(2D)은 작업과정이 복잡하고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는 것이다, 2D 애니메이션은 직접 종이에다 그림을 그리는 걸 기초하며, 원화(Key animation), 동화(inbetween), 클린업(cleanup), 컬러링(coloring), 배경(background), 촬영(shooting), 편집(compilation), 체킹(checking)등 요소마다 시간과 경비, 인력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 이었던 반면에, 컴퓨터로 작업하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은 그 모든 비용과 시간과 인력을 1/3이하로 단축시킨 혁신을 가져다 준 매력적인 분야다. 하지만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현실의 문제다, 애니메이션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도 단순하게 컴퓨터 작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많은 인력과 시스템이 구축이 안 되다 보니 질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들다고 한다. 또한 결정적인 이유는 작업비용의 단가를 낮게 책정하는 경향이 많아 메이저 급 회사들이 충분한 역량과 능력이 있음에도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활성화 하거나 보급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한다. 뉴미디어 시대의 영상문화의 주역으로 영상과 스토리를 통해 시대를 재 조명하는 영화감독을 꿈꾸다 험난하고 거친 애니메이션 세계를 무서워하지 않고 역동적이며 도전을 즐기는 최 감독은 말 한다 어떤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려면 당연히 시간과 경비를 포함한 투자가 있어야하는데 한국의 기업들은 그 부분에서 외면해 버리고 만다, 또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재들을 발굴해서 체계적인 교육만 제대로 이루어져도 현재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최 감독은 우리나라 작품은 우리가 만들어서 세계에 나가야 한다고 한다, 지금 현재 미국에서 히트친 겨울왕국 애니메이션 제작팀 중에 우리나라 애니메이터가 60%이상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산업의 투자는 구체적인 미래가 없고 돈만 그리는 기업들이 어제의 모습이었고 그리고 지금의 현실이다. 좋은 인재들이 한국에 있지 않는 점은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투자나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투자보다는 있는 것 재활용하고 국내 시장이 어렵다는 이유로 해외로 판권만 팔다 보니 재투자해서 차세대 다음 작품 같은 것은 만들 생각도 못하고 투자를 꺼리는 이유로 인재 발굴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국제 경쟁력에서 살아남고 더 나아가서 애니메이션이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길은 시스템 기초단계에서 튼튼한 구성과 거기에 맞는 맞춤 설계의 청사진이라고 한다. 우선 경제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훌륭한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점차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생각을 모아 시스템의 저변을 구축하여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질적 양적으로 풍부하게 커 가려면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림은 전혀 모르면서 단 KAD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디자인 전공자가 애니메이션 강단에 서는 균형 맞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였다. 그림 잘 그리고 해박하며 깊이 있는 현장의 전문가들이 교단에 서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사실 학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벤쿠버 필름 스쿨은 현장의 감독들(어벤져스/아바타/쥬라기 공원)이 직접 교육하는 시스템이고 그 학교를 졸업한 한국 학생들이 한국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시스템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책에 나오는 이론보다는 현장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인재를 양성하여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실질적으로 중요 하다고 강조 하였다.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중요시 여기는 최 감독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소중하고 가치를 찾으려면 쉽게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젊은이들은 언제든 환영한다고 말한다. 애니메이션 분야는 멋진 분야이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숨어 있다고 한다. 최 감독은 좋은 콘텐츠가 곧 경쟁력이고 힘이기 때문에 모든 여건이 열악한 한국에서 살아남아 세계 속에서 우뚝 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좋은 시스템 안에 꿈을 가진 많은 젊은이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또한 자신의 목표를 확실하게 가진 젊은이들을 잘 만들어진 시스템 안에서 가슴으로 만나고 싶어 한다. 최 감독의 오늘 인터뷰 의상은 쌀쌀한 초가을의 느낌을 맞이하듯이, 자연스런 실버 컬러의 긴 머리와 갈색 피부에 브라운톤 가디건을 걸쳐 입은 엣지 있는 모습은 이 시대에 진정한 걸 크러쉬(Girl Crush)로서 최 감독의 애니메이션 창작 세계의 미래를 기대한다. •동아미술학원 •서울아현기술고등학교 의상과 졸업 •전)한국 애니메이션 예술인협회 이사 •전)ASIFA 협회 이사 •현)인디고레드 제작감독 겸 프리랜서 •초.중.고 애니메이션/만화 교육지도교사 •KBS TV 유치원 하나둘셋 애니메이션 제작 •MBC TV시리즈 가이스터즈 애니메이션 제작 •중, 고등(학습교제) 교육용플래시 제작 •천재/한솔 교육용 플래시애니메이션 제작 •YBM.동심 교육용 플래시애니메이션 제작 •Korea top model contest 주관 •영어사 국내, 해외(필리핀) 애니메이션 제작감독 •무한동력/강풀 연재만화-광고영상 및 플래시애니메이션 제작 •아동동요 플래시애니메이션 제작 •국립박물관. 부산. 함양. 화순 등 지역 홍보영상제작 •드림웍스/매드 하우스 플래시 애니메이션 <터보. 차이니> (TV시리즈) •미국LC -Little Critter- 교육용 3D애니메이션 •한국안전관리공단/국제식품전시회 홍보영상제작
    • 문화
    2019-03-26
  • 이동명 홈앤촉 대표
    목공은 비용이 많이 드는 프리미엄 취미로도, 다양한 장비와 기술, 넉넉한 공간을 요구하는 선진국형 취미로도 불린다. 언뜻 들으면 누구나 쉽게 접하기엔 어려운 취미라고 생각되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목공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 나무를 꽉 쥔 손이 아프기도, 뽀얀 나뭇가루를 온몸에 뒤집어쓰기도 하지만 손에 쥔 나무에 온전히 몰두하는 순간 속에서 진정한 휴식을 만끽할 수 있다. 홈앤촉 이동명 대표가 목공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이에 주간인물이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홈앤촉 목공방을 찾아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정효빈기자 “전자제품이 고장 나면 폐기물이 되는 데 반해, 나무는 아무리 오래되어 망가져도 쓰임 있는 무언가로 재탄생시킬 수 있어요. 부서진 책상은 접시나 젓가락이 되기도 하죠. 목공의 매력을 꼽는다면, 이렇게 나무를 이해하는 감수성이 생긴다는 거예요.” 홈앤촉은 수제 원목 디자인 가구제작과 더불어 원목 가구 제작교육이 이루어지는 목공방이다. 공방으로 통하는 지하 1층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문 사이로 풍겨오는 나무 향이 콧속을 가득 채운다. 낮은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공방 내부로 들어서자 아기자기한 소품부터 멋스러운 테이블, 굴곡진 의자가 저마다의 자리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IT업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이동명 대표는 마흔이 다가오는 나이에 처음 목공을 접하게 됐다. 긴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며 건강은 악화되고 스트레스도 날로 높아졌다. 몸과 마음의 치료가 절실하다고 느꼈던 시기, 손을 움직여 이것, 저것 만들어보기 시작하며 마음을 치유하게 됐다는 이 대표. 무언가를 직접 제작하는 것에 흥미가 생겨 자연스럽게 목공도 시작하게 됐다고. 그가 디자인한 가구를 본 동료로부터 함께 공방을 운영해볼 것을 제안받아 홈앤촉의 문을 열고 본격적인 목공 활동에 나섰다. 공방 내 크고 작은 소품들을 둘러보던 중 오묘한 색을 띤 작은 도마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흔히 보지 못했던 초록빛 도마를 손으로 가리키자 ‘유창목으로 만든 거예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상처를 치유해준다’는 의미를 가진 유창목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나무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성장은 매우 더디지만, 물에 가라앉을 만큼 무겁고 내구성도 강하다. 햇빛에 노출된 유창목은 은은한 초록빛을 띠며 윤기가 흐르고, 특유의 은은한 향은 향수의 원료로 사용될 만큼 매력적이다. 이동명 대표에게서 듣게 된 고상하고 기품 있는 이 나무는 그와 상당 부분 닮아있다. 유해 보이지만 단단하고, 소탈하지만 우아하다. 그는 느리지만 단단하게, 자신만의 감성을 담은 가구를 묵묵히 만들며 그만의 빛깔을 내뿜고 있었다. 이 대표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 가구에는 그만의 감성이 묻어있다. 손이 가는 대로 나무를 가지고 놀며 작업할 때가 가장 즐겁다는 그. 나무의 결을 살린 유려한 곡선과 단정한 직선이 조화를 이뤄 그만의 특별한 가구가 완성된다. 특히 의자를 만들며 사람들에게 가장 편한 모양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다고. 그의 고민이 담긴 굴곡진 의자에 앉자, 딱딱한 나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안락함이 느껴진다. “어머니께 나무로 된 의자를 만들어드린 적이 있습니다. 편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허리와 등을 받쳐줘야 할 등받이가 어머니의 등을 떠밀고, 의자 다리와 좌판은 어머니의 오금을 아프게 했어요. 고문 기구가 따로 없더라고요. 긴 의자 다리를 자르고, 등받이 모양도 바꿔보면서 사람이 가장 편하게 느낄 수 있는 모양을 찾아갔습니다.” “여동생이 오래된 가구들을 좋아해요. 가끔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거실에 놓인 멋스러운 가구를 감상하곤 한대요. 직선과 곡선이 적절하게 섞여 조화를 이룬 가구를 보고 있으면, 그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행복해진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가구는 실용성도 중요하지만,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기능적 요소를 살리면서 다채로운 미적 요소를 갖춘, 조형예술품 같은 가구들을 만들고 싶어요.(웃음)” 공간을 채워 넣는 가구를 제작하며 공간 전체를 디자인하는 인테리어 분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싶다는 이동명 대표. 그만의 감성으로 가득 찬 공간 속에서 많은 이들이 ‘예술’을 만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1066]
    • 문화
    2019-03-21
  • 효문 스님 효심사 주지 / 부산동래구불교연합회 회장
    부산동래구불교연합회는 지난 3월 11일 효심사에서 이·취임 법회를 봉행했다.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효문 스님은 종단을 아우르는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열린 포교로 친숙하게 다가가는 불교를 만들 것이라는 포부를 나타냈다. 주간인물은 소외된 이웃을 향한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며 불교계 화합과 발전을 이끌고 있는 인물, 효문 스님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불교, 절대로 어렵지 않습니다. 불교를 이해하는데 불자들은 하루 1시간 교리를 읽고 열흘을 공부하면 충분합니다. 불교의 교리는 한마디로 ‘바른 생활’이에요. 부처님의 말씀이 삶에 배여 나올 수 있게 불자들을 이끄는 것이 저의 소명이죠.” 환한 웃음으로 쉬운 불교를 말하는 효문 스님. 그는 열린 불교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범어사에서 출가한 효문 스님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범어사 승가대학, 동원과학 기술대학교 보건행정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효심사 주지로 효심공동체 대표를 맡아 효심밥상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시대의 발맞춘 젊은 포교로 화제가 됐다. 매일 새벽 예불을 마치고 금강암 아침 산책을 통해 얻은 영감과 불교 교리, 생생한 삶의 메시지를 담은 카카오톡을 신도들에게 보냈다. 5년 동안 카톡을 통해 소통한 불자는 500여명.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불교 교리를 쉽게 푼 이야기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불자들을 통해 약 2만 명의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고된 삶에 불심을 잊고 살던 불자의 마음을 되돌리는가하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사람의 마음을 다잡게 하기도 했다고. “매일 아침 새벽 예불을 드리고 금강암 내 등산로를 걸으며 좋은 영감을 얻곤 했어요. 그리고 등산로를 내려와 꼬박 3시간 동안 교리 공부를 해야 불자들에게 전할 내용이 정리가 됐어요. 공을 들인 만큼 그 내용이 좋다며 공감하는 불자들도 많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희망을 얻었다는 이도 많았죠. 그렇게 5년, 수많은 불자들과 문답을 나누는 과정에서 공통된 걸 발견했어요. 불자들이 묻는 질문이 대게 5가지로 축약되는데 이것이 곧 불교의 핵심과 맞닿아있더군요. 이것을 제 나름 정리한 것을 ‘체계적 불교학’이라고 정립하게 됐습니다.” 효문 스님의 ‘체계적 불교학’은 풍진 세상을 사는 평범한 불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명쾌하게 ‘불교란 이것이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체계적 불교학의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에요. 첫째, 죽음, 둘째,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에 따르는 교단에 귀의함을 말하는 삼귀의[三歸依], 셋째, 뿌린 대로 거둔다는 업인과보[業因果報], 넷째, 과거의 죄업을 닦기 위한 기도참회, 다섯째, 공양입니다. 사람은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종교를 찾고 이를 통해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과 교단에 귀의하게 되며 결국 뿌린 대로 거둔다는 업인과보[業因果報]의 진리 앞에 업을 닦기 위한 기도참회와 복을 짓는 공양을 하게 되죠. 대개 평범한 불자들의 고민과 심오한 불교의 진리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불교를 어렵게만 여기지 말고 불교의 교리를 올바로 알고, 꾸준한 수행을 통해서 생활 속에서 부처님의 말씀이 묻어날 수 있도록 살아간다면, 그것이 불자로서 행복한 삶일 것입니다.”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포교를 하기 위해서 그는 더욱 낮아졌다. 편안하게 수행에 정진할 수 있는 산 속 사찰을 떠나 동래시장에서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급식 봉사와 도시락 배달 봉사를 시작한 것. 수년째, 흔한 정부지원금도 변변한 후원금도 없이 효심사 7층에 무료급식소 효심밥상을 꾸려나가고 있는 그는 “어려운 어르신들을 가까운 곳에서 보니 배고픔을 해결하기보다 더욱 절실한 문제는 외로움”이라면서 “열악한 재정문제를 개선할 금전적 지원만큼이나 소외된 이웃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며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참여를 촉구했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동래시장 앞에 위치한 효심사는 불자들이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도심 속 도량이다. 7층 무료급식소를 비롯해 6층에 마련된 불당에서 불자들과 종파를 떠난 다양한 불교 지도자들과의 소통과 화합이 이뤄진다. 최근 부산동래구불교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로 효문 스님은 주변을 돌아보며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앞으로 부산동래구불교연합회 활성화와 포교를 위해 시대상에 맞는 젊은 포교와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사업을 주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종파를 떠나서 회원들과 소통하고 화합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것입니다.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사업과 시대상에 발맞춘 젊은 포교로 연합회 발전과 불교 진흥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불자들의 삶 속에 다가가는 불교문화, 종파를 떠나 소통과 화합의 정신으로 발전하는 연합회의 내일을 만들어가겠습니다.” 효문 스님은 교육 및 지역 활동으로 △종교인 과세 교육, △SNS 교육, △환경보존 및 자살예방 캠페인, △교통사고 줄이기 캠페인 등을 들었다. 끝으로 한국 불교 발전을 위해서 어떤 변화의 움직임이 있어야하느냐는 질문에 효문 스님은 한국 불교가 나아가야할 올바른 방향에 대해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 불교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건 변화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교 융성을 위해 자정적 쇄신과 더불어 불자들의 삶에 다가가는 포교가 이뤄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성적인 불교의 모습에 오늘날 불자들은 많이 지쳐있습니다. 이젠 사찰도 찾는 불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해요. 그래야 가족단위로 휴일에 사찰을 찾는 불자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교육, 여가 등 생활 속에 불교가 녹아들 수 있도록 시대상에 발맞춰 새로운 변화를 꾀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효심사 약도 [1066]
    • 문화
    2019-03-21
  • 김소민 토끼와캘리그라피 대표
    아름다움을 뜻하는 그리스어 칼로스(Kallos)와 글쓰기를 뜻하는 그라페(Graphe)의 합성어인 캘리그라피아(Kalligraphia)에서 유래된 ‘캘리그라피(Calligraphy)’는 아름다운 서체라는 의미를 가진다.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고 기록하기 위한 일반적인 글씨와 달리 글자가 담고 있는 의미를 그림 그리듯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최근에는 한글부터 영어와 수채 등 종류도 다양해 일상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최근에는 새로운 취미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 이번 주 주간인물은 김해지역에서 캘리그라피 작가로 활동 중인 토끼와캘리의 김소민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져보았다. _곽인영 기자 5년 전 신생아발도장액자로 시작한 캘리그라피 전문적이고 차별화된 오프라인 강좌 진행 김해의 토끼와캘리 공방은 신생아발도장액자나 손글씨 액자, 로고, 슬로건 등 캘리그라피를 활용해 다양한 소품을 제작하는 곳이다. 특히 (사)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의 인증교육기관으로 등록되어 있어 취미나 창업 준비를 위해 전문적인 강좌를 들을 수 있다. “각종 광고나 영화, 드라마 타이틀에서 쓰이는 독특한 형태의 글씨체가 바로 캘리그라피입니다.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광고디자이너, 아트디렉터로 근무하면서 캘리그라피를 처음 접하게 됐어요. 결혼을 하고 육아를 병행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가 10년 전 배웠던 캘리그라피가 떠올랐고 좀 더 깊이 있게 배우고 싶어 시작하게 되었죠.” 김소민 대표는 5년 전 신생아 발도장에 캘리그라피 이름을 넣어 제작한 액자와 캘리그라피 소품을 제작 판매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작가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도전하면 깊이 파고드는 성격 탓에 독학으로 연습한지 10여년, 전문적으로 공부한지 3년 만에 캘리그파리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다. 그리고 지난해 그는 오프라인 강좌를 들을 수 있는 토끼와캘리 공방을 열었다. 김해지역에서는 최초로 캘리그라피 전문교육기관으로 인정받은 곳이기도 하다. “그간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프리마켓으로 줄곧 활동하면서 꾸준히 수강문의가 들어왔지만 좀 더 깊이 있게 공부를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작년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에서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후 오프라인 공방을 오픈했어요. 오픈한지 1년 정도 지났는데 앞으로 더 차별화된 커리큘럼으로 수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현재 김 대표는 김해시여성센터에서 직업강좌로 초급반과 심화반 강사로 활동 중이다. 토끼와캘리 공방에서는 취미반과 정규반,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며 전문적인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이곳에서 수강생들은 자신만의 글씨체를 만들기 위해 차근차근 글귀를 써나간다. 그렇게 쓰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게 되고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김 대표는 “캘리그라피는 펜과 종이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즐길 수 있다”며 “집중력 향상과 스트레스 해소뿐만 아니라 심리안정효과에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캘리그라피는 아름다운 서체, 작가활동 범위 넓혀 제자양성에 힘쓸 것” 한글 캘리그라피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도구는 붓이다. 하지만 붓은 손의 감각을 익히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재료나 공간의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일반인이 쉽게 사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쁜 손글씨는 손재주가 좋은, 타고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일까? 그렇지 않다. 김소민 대표는 재능보다 꾸준한 연습이 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붓의 단점을 보완한 도구로 붓펜이 있습니다. 붓펜과 종이만 있으면 누구든 제약 없이 캘리그라피를 즐길 수 있어요. 손재주가 없고 재능이 없다고 해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쓰다보면 자신만의 글씨체를 찾게 되죠.” 김 대표는 최근 캘리그라피와 다양한 예술분야를 접목시키기 위해 3개월 전부터 지역의 도자기 공방을 다니며 도예를 배우고 있다. 또한 먹과 붓을 활용한 캘리그라피 덕분에 자연스럽게 수묵화에도 관심이 생겨 또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설 예정이라고 한다. “손으로 그린 그림문자인 캘리그라피(Calligraphy)는 선, 번짐, 효과 등을 통해 순수 조형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손글씨입니다.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고 기록하기 위한 일반적인 문자와 달리 글자가 담고 있는 의미를 그림 그리듯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죠. 한 곳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계속해서 발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요즘은 여행을 다니며 디자인적인 안목을 넓히고 소위 ‘핫플’이라는 곳을 찾아가 독특한 소품이나 인테리어를 보며 아이디어를 많이 얻고 있습니다.(웃음)” 10년 전부터 ‘캘리그라피’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캘리그라피 시장은 예전보다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캘리그라피를 생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김 대표는 서예를 활용한 캘리그라피의 가치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널리는 등 김해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작가활동을 넓혀 전시회를 개최해 제자양성에도 힘쓸 예정이라고 전했다. •現 토끼와 캘리그라피 대표 •現 김해시여성센터 캘리그라피 강사 •現 (사)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정회원 •現 (사)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인증교육기관 •2016~현재 (사)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정기회원전 등 전시 다수 참여 •2016-2017 김해미술대전 디자인부문 캘리그라피 입상 •2018~현재 김해시여성센터 캘리그라피 초급반, 심화반 강의 •2017~현재 김해 <토끼와 캘리그라피>공방 취미반, 정규반 강의 •2019 경상남도 양산교육지원청 책표지 등 캘리그라피 작업 다수 •2018 롯데백화점 부산센텀시티점 캘리그라피 텀블러만들기 특강 •2018 (주)넥센 <신입사원과 기존사원의 멘토링프로그램> 특강 •2017-2018 김해 장유도서관 어린이신문 <풀꽃> 내지 카드, 달력만들기 작업 •2017 김해 장유도서관, 칠암도서관 등 캘리그라피 특강 •2017 신세계백화점 김해점 <마이마스터즈> ‘만배즐’ 등 프리마켓 참여 다수 •2013 유아동 패션브랜드 <꼬까참새> 일러스트 및 디자인 작업 참여 •2012 거제 아주 <이편한세상> 일러스트 및 광고물 작업 •2009-2012 프로축구<부산아이파크>, 부산<삼정더파크>등 광고물 작업 참여 다수 •2003-2005 프랜차이즈 <유가네 닭갈비> 로고디자인 제작참여 및 광고물 작업 [1066]
    • 문화
    2019-03-21
  • 김진규 SOMAD 대표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것들이 있다. 금, 토지 그리고 가죽. 시간이 갈수록 묵직한 멋을 내뿜는 가죽제품은 사용하면 할수록 오래 사용한 ‘맛’이 난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물건을 보고 있노라면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이나 걸음걸이, 습관이 고스란히 읽힐 정도다. 이렇듯 가죽은 쓸수록 나를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최근 수제 가죽제품을 찾는 이들과 직접 공방을 찾아 자신만의 물건을 제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가죽의 매력에 ‘완전히 미쳐버린’ SOMAD 가죽공방의 김진규 대표를 만났다. _정효빈 기자 “가죽이 서서히 제품으로써의 모양을 갖춰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 속에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부산 전포동 카페거리의 한 골목으로 들어서면 황소의 뿔이 그려진 멋스러운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빈티지한 인테리어의 공방으로 들어서자 김진규 대표의 참신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다양한 제품들이 공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SOMAD 가죽공방은 투박하지만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살려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가죽제품을 제작하고 있는 곳이다. 더불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도록 간단한 기법을 활용한 가죽공예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결혼 전 아내에게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선물해주기 위해 가죽공예를 처음 접하게 됐다는 김진규 대표. 사소한 계기로 시작한 가죽공예였지만, 그 매력에 흠뻑 빠져 밤낮없이 작업에 몰두했다. “한 가지 일에 빠져들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파고들게 된다”는 김 대표. ‘SOMAD’라는 상호 역시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본 모친이 ‘완전히 미쳤다’라고 말한 것에서 따온 것이라고. 홀로 틈틈이 가죽공예품을 만들어가던 중, 지인으로부터 수공예 핸드메이드 온라인샵인 ‘아이디어스’의 작가로 활동해볼 것을 권유받게 된다. 이후 그의 작업실은 작은 방 안에서 신혼집의 베란다로, 동네의 자그마한 공방으로 거처를 옮겨갔고 2층 규모의 작업실과 디스플레이 공간을 갖춘 현재 모습에 이르렀다. “잠을 못 자도 가죽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너무 재미나서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비염 수술을 받은 직후에 바로 작업에 몰두하다가 코에서 피가 터져 가죽이 전부 피에 젖어버린 적도 있어요.(웃음)” SOMAD 가죽공방에서는 시계스트랩, 지갑, 에어팟케이스 등 다양한 수제가죽제품을 맞춤 디자인으로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특히, 화학 금속 성분을 사용하지 않은 가죽공법으로 제작된 ‘베지터블 소가죽’을 사용해 쓸수록 자연스러운 형태로 길들여지는 나만의 가죽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그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제품들을 보며 그에게 ‘사업 영역을 넓힐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그가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다른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아요. 제 손을 거친 제품을 꾸준하게 찾아주는 분들이 계시니까요.” 무작정 몸집부터 불리기보다 작은 규모일지라도 자신만의 기운을 담은 제품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고가의 명품 브랜드 디자인을 카피해 수업을 진행하는 공방도 더러 있지만, 그는 가죽공예의 본질을 잊지 않는 길을 택했다. 수강생들과 ‘만듦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고 작품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공방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다는 김진규 대표. 수강생을 대하는 그의 자세가 늘 진중한 이유다. “작가들이 자신만의 특색이 담긴 작품활동을 활발히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해요. 작가들이 성장하면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가죽공예 분야도 성장하지 않을까요?” “조선소에서 일하던 시절에 사고로 동료들을 많이 잃었어요. 그 이후로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졌어요. 단순히 돈을 좇는 삶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삶의 질을 높이고,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여러 갈래의 길을 걸어오는 과정에서 더욱 단단해질 수 있었다는 김진규 대표. 앞으로도 많은 이들과 교류하며 진심이 담긴 가죽공예 활동을 지속해나가겠다는 그를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1066]
    • 문화
    2019-03-21
  • 김성신 건축가 / 더클램프·컬러바이·바른한옥 대표
    최근 경주 황리단길에는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공간이 있다. 웅장하고 멋들어진 분위기를 자랑하는 ‘카페더클램프’가 바로 그 주인공. 동양의 매력을 한껏 살린 외관과 이색적인 중층구조, 거기에 빈티지하고 세련된 내부 인테리어까지, 매력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이렇듯 카페더클램프는 한옥의 매력을 재해석한 이색 건물로 전국에서 손꼽히고 있다. 이에 이번 주 주간인물에서는 카페더클램프를 건축·디자인한 김성신 건축가와의 특별한 만남을 가져보았다. _김미동 기자 용인에서 활동 중인 김성신 건축가는 한옥에 대한 애정과 젊은 감각을 살린 건축으로 전국에서 주목받고 있다. 최근 경주 ‘카페더클램프’를 건축·디자인함으로써 그 영향력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는데. 그는 건축가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감각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의 인더스트리얼 가구를 제작 및 수입·판매하는 업체 ‘더클램프’와 친환경 자석페인트, 화이트보드페인트, 칠판페인트 등 네덜란드 수입 친환경 페인트를 취급하는 ‘컬러바이’, 한옥과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하는 ‘바른한옥’의 운영을 맡고 있다. 요즘에는 특수 페인트인 ‘매그페인트’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고. “특수 페인트는 공간의 제약이 없고 모든 색상의 연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학교, 사무실, 공유 오피스에 인기가 무척 좋아요. 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죠. 이제 막 알려지는 시기입니다.” 그의 대표작이자 입지를 다지게 한 경주 카페더클램프의 인기에 그는 “길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좋아해 주시니 뿌듯하다”며 웃어 보였다. 한옥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의 옛 가옥들을 참고하여 디자인했다는 카페더클램프는 토지 매입부터 시공, 완공까지 김 건축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현존하는 유일 중층건물인 덕수궁의 석어당을 모티브로 삼았어요. 궁궐이지만 단청을 없애 간소화된 그 소박한 분위기가 무척 좋았거든요. 이러한 멋스러움을 오랫동안 보존하고 자연재해 등에 대비하기 위해 함수율이 낮은 목재를 사용했습니다. 물론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세련된 색상을 위해 모든 목재에 색을 다섯 번이나 칠해야 했죠.(웃음) 조명, 소품까지 모두 제가 직접 생각하여 배치했고, 작은 공간에 입체감을 주기 위해 각 공간의 바닥 높이를 다르게 설정했습니다. 카페더클램프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제가 생각한 만큼 함께 느껴주시고 좋아해 주시니 무척 보람됩니다.” 이렇듯 잔뼈 굵은 실력의 그가 처음부터 건축업계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고. 국제경영을 전공하여 평범한 회사원으로서 오랜 시간 직장생활에 몸담았던 김성신 건축가가 처음 인테리어에 눈을 두게 된 것은 바로 ‘신혼집 인테리어’였다. “너저분한 신혼집을 제 손으로 리모델링한 것이 첫 계기였어요. 하다 보니 적성에 맞고 재밌더라고요. 결혼 후 회사를 잠시 쉬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었는데, 그때 많은 궁궐을 찾아다니면서 한옥과 예스러운 것들에 대한 매력을 느껴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당시부터 페인트·가구 수입과 수제가구 제작을 시작으로 인테리어에 입지를 다져왔다는 김성신 건축가는 “이제 경험을 발판삼아 펼쳐나갈 시기”라며 앞으로의 포부를 다짐했다. 이렇듯 그의 이유 있는 열정은 모두 ‘한옥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는데. “오래된 것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감각을 무척 좋아합니다. 사람들에게 잊혔던 것이 멋스럽게 다시 보이는 순간도 한옥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옛 선조가 살았던 공간을 거닐며 시간을 거스르는 느낌에 뭉클해질 때도 많아요.(웃음)” 그는 “거품이 많고 어렵게 보일 수 있는 한옥이 아닌, 신선한 감각을 담아 ‘제대로’ 지어진 한옥이 많아져야 한다”며 특별한 소신을 내비쳤다. 시장이 작아 경쟁 구도가 뚜렷한 한옥의 특성을 벗고 다양한 분야와 감각으로 완성될 필요성이 있다는 것. “각자의 한옥 스타일을 존중하면서, 좀 더 새로운 한옥의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환히 웃는 김성신 건축가. 인테리어나 건축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뛰어들었던 김성신 건축가는 “그렇기에 오히려 나아갈 수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독학으로 직접 개척하여 나아갔기 때문에 오히려 길이 보이고 노하우가 쌓였다고. 많은 시행착오의 경험 또한 김성신 건축가의 강점이라면 강점이다. “지금도 공간을 보면 무척 주의 깊게 보는 편이에요. 많이 보고, 접하고, 그런 경험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죠. 또 직접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이를 위해 해외 사례 수집, 견학 등 끊임없이 배우려 노력한다는 김성신 건축가. 콘텐츠와 감각을 얻기 위한 그의 노력에는 끝이 없다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것이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질 때, 그리고 공간을 찾는 이들이 함께 그것을 느껴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김성신 건축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그는 “한옥 오피스를 완성하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최근 공유 오피스가 유행하는 트렌드를 따라 한옥 오피스를 구상하고자 합니다. 사용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감각적이고 대중화된 한옥 오피스로 한옥의 매력을 좀 더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조지워싱턴대학교 국제경영 전공 •건축·인테리어 - 일반 상가주택 및 아파트 리모델링 - 병원 - 카페더클램프 - 세븐틴레인 카페 외 다수 •바른한옥 •컬러바이 •더클램프 운영 •MBC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가구 협찬 문의번호 ┃ 031. 339. 7312 [1066]
    • 문화
    2019-03-08
  • 강준호 흙과인협동조합 대표이사
    국내 도자기 업계는 유럽과 중국, 동남아 제품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도자기를 만드는 1인 공방들은 어려움에 겪고 있다. 이러한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완화하기 위해 2017년 1인 공방들이 모여 ‘흙과인협동조합’을 설립됐다. “흙과인협동조합은 도자기를 만드는 4명의 조합원과 이 도자기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사업자 1명으로 이루어진 청년 협동조합입니다”며 “그동안 쌓아온 예술혼을 바탕으로 각자의 특성을 살리고자 했습니다”고 설립계기를 말하는 강준호 대표이사. 주간인물은 그를 만나기 위해 경북 영천시에 위치한 흙과인협동조합을 찾았다. _곽인영 기자 고급화의 대중화에 초점 IT와 전통문화를 접목시킨 ‘도자기 울림통’ “전기 물레를 사용해 하나하나 손으로 빚고 고온에서 소성해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공동으로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원가를 낮추고 품질을 높일 수 있죠. 조합원들의 젊은 예술적 감각과 특성을 살린 ‘흙과인’만의 색이 담긴 제품을 개발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 진출할 것입니다.” 흙과인협동조합은 젊은 청년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로 제품을 개발하고 흙과 다른 공예제품을 융합해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작품을 탄생시키고 있다. 특히 공동으로 장비를 사용해 안전한 도자기를 생산하고 ‘고급화의 대중화’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이들은 전통문화를 발전, 계승하고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현재 흙과인협동조합은 공동판매장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며 일일 체험 등 도자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준호 대표는 “공동으로 생산된 도자기 제품을 공동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도로변에 위치해 있어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십니다. 간혹 카페인 줄 아시고 방문하는 분들도 계신데 도자기 체험 장소가 마련되어 있어 체험을 하고 돌아가시죠. 수업이나 체험을 통해 도자기가 어렵다는 인식보다는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강 대표는 최근 IT와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 제작에 주력하는 중이라고 한다. 바로 도자기와 스마트폰을 접목시킨 ‘도자기 울림통’이 그 작품인데, 원형 도자기로 스마트폰의 음악이나 소리를 모아 크게 울려주는 공명현상을 응용했다고 한다. 그는 “도자기 울림통 또한 직접 손으로 빚어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크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며 “2017년 처음 특허를 출원해 매년 새로운 디자인의 도자기 울림통을 제작해 나가는 중입니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의 작품을 접목해 희소성 있는 작품 제작 “해외에 진출해 한국의 전통문화 알리는 것이 목표” 경북 영천시에서 4대째 전통을 이어받아 도자기를 빚어오고 있는 강준호 대표는 주로 화분과 식기를 제작하고 있다. 그는 “식기뿐만 아니라 다기 등 조합원들마다 갖고 있는 색깔과 작품세계가 모두 다릅니다”며 “덕분에 서로의 다양한 작품을 접목시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예전과 달리 도자기 제품을 쉽게 접하게 되면서 ‘대중화’라는 이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산이나 외국 수입산 등에 밀려 국내의 우수한 도자기들이 판로를 잃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고급화뿐만 아니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희소성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급화의 대중화와 희소성, 흙과인협동조합의 도자기 울림통 역시도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제품 중 하나일 것이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도자기는 진입장벽이 높았지만 최근에는 도자기 제품이 대중화되면서 일상생활 곳곳에서도 도자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새로운 트렌드가 생기기도 하고 도자기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과 인식 또한 높아졌다. 그래서 흙과인협동조합은 늘 참신한 작품을 위해 고민하고 도자기를 알리기 위해 지역사회에서 재능기부를 하는 등 봉사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17년에는 경북도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고향사랑 크라우드 펀딩 대회에서 1,500만원의 금액을 모집해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크라우드 펀딩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사업계획을 갖고 있는 기업가 등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이를 제시하고 공감하는 다수의 소액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그간 배운 캘리그라피를 도자기 표면에 옮기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희소성이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전기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 빚어 조합원들의 작품과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앞으로 흙과인협동조합은 더욱 많은 1인 공방들이 모여 협업화를 이루고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발전할 것입니다.” 지난해 중국 도자기 전시회에 참가하는 등 미국 캘리포니아에 식기를 납품해 조금씩 해외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 흙과인협동조합. 올해 새로운 디자인의 도자기 울림통뿐만 아니라 블루투스 스피커 등 IT와 전통문화를 접목시킨 제품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1066]
    • 문화
    2019-03-08
  • 유년시절 향수 간직한 어른들의 놀이터, ‘소수의 취미’ 넘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다 - 박진 수집가 대표
    ‘키덜트(kidult)’란 어린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로, 유년 시절 좋아하던 장난감이나 만화 등을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즐기는 이들을 뜻한다. 한국콘텐트진흥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키덜트 시장규모는 현재 1조 원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키덜트문화가 하나의 소비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 것. 자신의 취미생활을 위해 아낌없이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이들이 늘어나며 키덜트문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장소 또한 주목받고 있다. 부산 금정구에 위치한 ‘수집가’는 건담 프라모델을 비롯해 다양한 캐릭터 프라모델, 밀리터리 프라모델, 피규어 등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 겸 테마카페로 국내를 넘어 해외 키덜트족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_정효빈 기자 “무언가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저의 존재감을 느껴요. 이것이 제가 프라모델을 제작하는 이유입니다.” 박진 대표는 프라모델을 제작하는 전문 ‘모델러’로, 프라모델 갤러리 겸 테마카페 ‘수집가’를 운영하고 있다. ‘기동전사 건담’, ‘에반게리온’ 등 시대상이 담긴 작품들을 특히 좋아했다는 그는 사상의 대립,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고뇌가 담긴 만화영화를 보며 그 매력에 깊게 빠져들었다. 좋아하던 만화영화의 캐릭터 프라모델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것만도 20년이 훌쩍 넘었다고. 대학 시절 미술을 전공한 그는 조형에도 관심이 깊어 프라모델을 수집할 뿐만 아니라 직접 조립하고 도색해 자신만의 프라모델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프라모델 제작은 깔끔하게 조립해 실물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색의 완성도에 따라 가치가 크게 오르내린다. 어린 시절부터 창작활동에 관심이 많았다는 박 대표. 그의 섬세한 표현력은 특히나 도색에서 빛을 발했다. 풍부한 상상력과 독창적인 표현으로 완성된 작품들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 칭할 만하다. 그가 제작한 프라모델을 구매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해외 컬렉터가 있을 정도.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인데, 그 결과물을 좋아해주시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이 저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라며 웃어 보였다. 최근 매체를 통해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취미생활로 프라모델이나 피규어를 수집·제작하는 등의 모습이 비춰치며 키덜트문화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진입 장벽도 낮춰졌다. 과거 성인들을 위한 프라모델 등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매장을 찾기 힘들었지만 최근 대형마트 내에 ‘키덜트존’이 마련되기도 하며 많은 이들이 거부감 없이 즐기게 된 것. 이렇게 변화된 분위기 속 수집가는 ‘덕후’들에게 그저 천국 같은 공간이다. 수집가 갤러리에는 감히 장난감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생동감 있는 모형과 국내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프라모델들이 가득하다. 수집가를 찾는 이들은 완성도 높은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차분한 이 공간 안에서 자신만의 작품을 자유롭게 만들어볼 수도 있다. 더불어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이 모인 공간 속에서 자연스러운 유대감이 형성되기도 한다고. 수집가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취미를 공유하고 정보를 나누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프라모델 제작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창의력을 발휘해 나만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에서 오는 뿌듯함이다. 더불어 섬세함과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도색할 때만큼은 잡다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다고. 박 대표는 “작업에 온전히 몰두하다 보면 심란한 마음도 어느새 전부 사라져버린다”며 “이런 이유로 최근 지친 현대인들에게 프라모델 제작이 하나의 돌파구로 떠오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어른인 나를 잠시 쉬게 하고 제멋대로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만 싶을 때. 옛 추억을 되살려 나만의 프라모델을 제작하는 즐거움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1065]
    • 문화
    2019-02-20
  • 진주문화 발전의 구심점, 지역문화 꽃피워 ‘2018년 교정위원 표창 전수식’ 법무부장관 표창 - 김길수 진주문화원장
    지난 31일 김길수 진주문화원장은 수용자 교정 교화 사회복귀 헌신 공로로 법무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김길수 원장은 경상대학교 교수로 재작하던 2007년 교정위원으로 위촉되어 불우수용자 생활지원금 지원, 모범수형자 격려회 지원, 교화를 위한 공연 등을 지원하며 교정협의회 활성화를 꾀함으로서 수용자 교정교화 및 교정행정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주간인물은 진주문화원장으로 평생교육을 위한 문화대학 개강, 진주천년사 발간 등을 통해 지역사회 문화와 진주문화 계승 발전에 헌신하고 있는 인물, 김길수 원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Q. ‘2018 교정위원 표창수여식’ 법무부장관 표창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간단한 수상 소감 한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A. 과분한 상을 받은 것 같아 영광입니다. 12년 동안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수용자들이 또다시 범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더 많은 수용자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진주문화원도 교정교화에 동참해 수용자에게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Q. 경남환경교육연합회 회장, 경남도 교육위원, 민주평통 자문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국제로타리 3690지구 총재 등을 역임했고 현재 진주문화원 원장, 진주논개제제전위원장으로 재직하는 등 폭넓은 사회활동을 해오셨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사회활동은 무엇입니까? 1997년 진주 선학 로타리클럽에 입회해 23년 동안 활동해왔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클럽회장, 지구 사무총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으며 봉사 정신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남다른 애정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2001년 진주선학로타리클럽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경상대학병원과 함께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자치구를 시작으로 매년 베트남, 동남아시아 등 해외의료 봉사활동을 2018년까지 펼쳐온 것은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또한 2018년 국제로타리 3590지구 차원에서 의료소외지역인 우즈베키스탄에 의료봉사활동을 펼치며 동시에 우즈벡 고려인 한인 문화 협회와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MOU를 체결했던 일도 뜻 깊은 일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Q. 전국의 독자들에게 진주문화원에 대한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A. 진주문화원은 진주의 향토사 연구와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 및 각종 문화행사를 통한 진주 문화 진흥을 목표로 1949년 10월 1일에 설립되었습니다. 역사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1949년 10월 1일에 USIS 진주지원으로 발족하여 박세제 초대원장 체제로 출범했습니다. 1950년 10월 10일에 진주미국공보원으로 개정되었다가 1957년 9월 2일 진주문화원으로 개칭되었습니다. 1964년 10월 13일 사단법인 진주문화원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68년 3월 14일에 진주시 남성동 242-1의 진주문화관으로 원사를 이전했습니다. 이후 1981년, 1986년과 1989년 세 차례에 걸쳐 원사를 이전했으며 2006년 10월 1일에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에는 진주문화원과 진양문화원이 통합되어 현재 3,00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명실공히 천년 진주문화의 구심점입니다. 조직으로는 문화원장, 이사회, 감사, 부원장, 사무국장, 사무과장, 사무간사 및 4개의 위원회와 6개 부설기관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6개의 부설기관은 향토문화, 교육환경, 생활문화, 예술문화, 조형예술, 봉사활동연구소 등이 있습니다. 진주문화원은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의 산실로서 진주가 보다 활발한 문화도시로 도약하는데 기여할 것입니다. Q. 진주문화원의 주요 역점 사업은 무엇입니까? A. 진주는 예로부터 예향의 도시로, 경남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도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개, 촉석루 등 진주를 대표하는 문화자원을 제외하고는 스토리텔링이 된 문화자원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진주문화원을 중심으로 문화재의 보고인 진주의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켜나갈 계획입니다. 이와 더불어 ‘천년의 도시, 진주’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 향토사를 잘 발굴해서 사라져가는 향토사를 정립해나갈 계획입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2018년에 진주천년역사총람을 발간했으며, 또한 진주정신문화의 뿌리인 남명정신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교육해 정신문화의 맥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더불어 진주문화원사를 독립원사로 확대해나갈 것이며 7만 의총 건립 예산을 확보해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또한 문화원 재정활성화를 위한 후원금과 문화원전문연구소 활성화 예산을 확보해 적극적인 사업 추진과 회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올해는 진주문화원 설립 7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진주문화 발전을 위해 공헌해온 많은 회원들과 선배님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70년사 발간, 70년 기록자료전, 지역의 향토문화자원을 발굴하고 연구해서 이를 책으로 발간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70년이란 의미 있는 시간을 진주문화원 100년의 디딤돌로 삼겠습니다. Q. 끝으로 진주시민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진주는 지금처럼 서부경남의 중심도시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인 도시로 그 위상이 높았습니다. 고려 성종 때는 전국 12목, 고려 현종 때는 8목 중 하나의 도시로 요즘 시대상에 비추어 말하면 전국 10대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그만큼 유구하고 다양한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고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진주문화원이 있습니다. 진주문화원은 진주 문화의 구심점으로 넓게는 경남 전체 문화를 이끌어 가야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해 70주년을 맞이해 진주문화원은 과거 화려했던 진주문화의 본산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진주문화원의 주인은 진주시민입니다. 시민 여러분들께서도 주인 의식을 가지고 진주문화원 발전에 동참해주시고, 애정을 가져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1065]
    • 문화
    2019-02-20
  • 통영다운 건축으로 빛나는 건축가, 통영고지도 기증으로 화제! - 설종국 통영거북선호텔 대표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漁港)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오가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김약국집 딸들』에서 박경리가 썼던 것처럼 통영은 바다빛이 아름다운 고장이다. 수많은 한국의 예술가를 길러낸 예향의 고장, 통영. 그 문화적 뿌리는 기민한 장인들의 손놀림으로 빼어난 귀물을 만들어내던 ‘12공방’과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이끌고 조선을 관문을 지켰던 ‘수군통제영’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려진 통영고지도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절경과 수려한 바닷길을 담았다. 세월에 빛을 바래지 않는 숨길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고지도. 소중한 역사 자료이자 향토문화를 담은 통영고지도의 원본이 통영시에 남아 있지 않아 많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최근 통영거북선호텔 설종국 대표가 통영고지도를 통영시에 기탁해 화제가 됐다. 오랫동안 타국을 돌던 통영고지도가 다시 예향의 고장, 통영의 품에 안긴 것. 주간인물은 통영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 건축가, 설종국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다시 통영의 품에 안긴 통영고지도 시니드의 야경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통영 대교. 그 건너편 한려수도를 주름 잡았던 거북선의 기백을 담은 통영거북선호텔이 있다. 다양한 통영의 고지도로 꾸며진 1층 주차장은 주차장이 아닌 갤러리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장인의 숨결이 담긴 작품과 멋스런 통영 전통가구로 꾸며진 넓은 로비를 지날 때마다 ‘통영의 문화와 멋을 만끽할 수 있는 호텔’이라는 평에 수긍이 갔다. 획일적인 호텔 건축의 틀을 깬, 참신한 발상. 그 중심에는 통영다운 건축을 추구한 설종국 대표가 있다. 편안한 미소로 취재진을 맞이한 그는 통영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건축가다. 이번 통영고지도 기증도 오랫동안 통영 전통문화를 사랑해온 데에서 비롯됐다. “통영전통가구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통영고지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소중한 역사자료인 통영고지도가 거의 해외에 있고, 정작 통영시에는 원본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웠죠. 하나라도 국내로 반환해야겠다는 생각에 미국 고지도 사이트에 경매로 올라온 통영고지도를 1만 5000달러(한화 1620만원)을 주고 구매하게 됐습니다. 고지도를 통영의 품으로 돌려주고 싶었어요.” 통영시에 기증한 통영고지도는 1872에 세워낸 천척루(天尺樓)가 지도에 표시된 것을 근거로 1827년부터 185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지도는 전체적으로 푸른 색 안료와 녹색 안료로 채색했으며, 주변지역은 붉은색 안료를 사용하여 둥글게 표시했다. 통영성 벽과 건물기와 등에 은가루로 칠한 것이 특징이다. 지도의 북쪽에 곤양, 진주, 사천, 고성, 진해, 웅천을, 동쪽에 거제, 서쪽에 남해 등 당시 주요 고을을 표시했다. 지도 오른쪽 제일 아래는 대마도까지 표시되어 있다. 통영고지도 전시되었던 이 지도는 이번 기증을 통해 통영시박물관에 전시될 계획이다. 오랜 세월의 역사를 거슬러 소중한 역사자료로, 향토문화를 담은 귀한 자료로 통영시민들을 만날 예정이다. 통영을 아름답게 수놓는 건축가 ‘메세나 운동’으로 통영 문화 활성화에 기여하고 파 중앙시장의 활기가 넘치는 곳, 통영 강구안. 포근하게 안긴 강구안의 아름다운 바다를 가장 잘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카페 바다봄’이 있다. “항남동 해안길가는 옛날 통영극장과 부산을 다니는 동일호 뱃머리를 볼 수 있는 곳이었어요. 저는 어릴 때 배가 들어오면 누나와 어머니를 기다리던 추억이 있던 곳이었죠. 원래 오래된 판자집들이 들어섰던 곳이었고 7평짜리 6필지가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었어요. 그러던 중 화재가 나 6채가 홀라당 타 버리면서 건물이 없었죠. 지인을 통해 자그마한 땅을 구매하게 됐고, 저의 추억이 남아있는 이곳에 통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카페를 짓게 되었습니다.” 7평 남짓한 좁은 공간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이곳은 그의 건축학적 센스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시원한 통유리를 이용해 강구안으로 아름다운 전경을 공간 속으로 담아냈다. 낮과 밤, 해와 달이 뜨는 공간, 손에 잡힐 듯 일렁이는 쪽빛 바다를 보며 마시는 커피는 달다. 통영을 아름답게 수놓는 건축가, 설종국 대표. 그의 공간에 대한 애정은 수십 년 전 고향, 통영에서 비롯됐다. 발 붙일만한 땅한평 찾기가 막막했던 유년시절에도 시절에도 그는 꿈을 키웠다. “집도 절도 없던 시절, 어린 아이 눈엔 여인숙이 너무 좋아보이더라고요. 그때부터 공간에 대한 애정이 생겼죠. 서울로 가서 건축을 공부하면서도 늘 멀미처럼 고향 통영에 대한 향수병을 달고 살았어요. 그러다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고향인 통영으로 내려왔죠.” 설 대표는 통영으로 내려와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야경이 아름다운 통영대교의 전경이 보이는 곳에 통영을 대표하는 상징물인 거북선으로 모티브로 통영거북선호텔을 지은 것. 외관만이 아니 내부도 통영의 멋과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과 장인들의 고가구로 꾸몄다. 젊은 예술가들의 활동의 장을 제공하고 예술인들의 교류의 매개가 되고 있는 통영거북선호텔은 국내외 유명인들이 통영에 오면 꼭 한번 묵고 싶은 호텔로 꼽힌다. 그 중심에는 통영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그가 있다. 앞으로 통영의 문화예술 활성화의 구심점이 되는 호텔을 만들어나가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젊은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이자, 문화예술가들의 교류의 매개가 되고 싶습니다. 획일적인 건축이 아니라 통영의 문화와 멋을 담아내는 공간, 통영에 축적된 고유한 예술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메세나 운동을 통해 지역 문화의 활력이 되고 싶습니다.” [1064]
    • 문화
    2019-02-01
  • 생애 단 한 번의 순간, 그 눈부신 찰나의 기록 - 임민수 The Factory 39.5°c 대표
    바야흐로 영상의 시대다. 누구나 손쉽게 영상콘텐츠를 제작하고 소비하며 소통의 도구로 이용한다. 하지만 이처럼 영상이 만연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진은 많은 이들에게 가치 있는 무언가다. 멈춰있는 사진 속에 담긴 순간의 감정들, 되돌려 재생할 수 없는 찰나의 기록이기에 우리는 여전히 사진을 남긴다. 순간적인 장면을 촬영해 자연스러운 동작과 표정을 담아내는 스냅사진 촬영을 선호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 The Factory 39.5°c는 카메라를 통해 많은 이들의 찬란한 순간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The Factory 39.5°c의 사진작가 임민수 대표를 만나 그의 삶을 조명해보았다. _정효빈 기자 “사람이 사랑할 때 가장 뜨거워지는 온도가 39.5°c라고 하더라고요. 사랑으로 충만한 순간들을 사진 속에 담는다는 저의 가치관에 걸맞은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The Factory 39.5°c는 웨딩, 데이트, 가족, 우정 스냅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스냅사진 전문 업체다. 임민수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카메라로 무대 위의 가수를 사진 속에 담은 것이 카메라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카메라를 제대로 다루는 방법을 몰라 상자에 적힌 사용법을 꼼꼼히 읽으며 한 장 두 장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렌즈의 초점을 맞춰 셔터를 누르고, 필름을 맡겨 사진이 인화되기까지의 기다림. 이 모든 과정이 주는 설렘에 흠뻑 빠진 그는 더욱 멋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정말 갖고 싶던 카메라 가격이 60만 원이었어요. 그만한 돈은 없었지만 어린 시절의 패기였는지, 무작정 현금 30만 원과 주민등록등본을 손에 쥐고 카메라판매점에 찾아갔습니다. 주인아저씨께 나머지 금액은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꼭 갚아드리겠다고, 절대 도망 안 가겠다고 몇 시간을 사정했어요.(웃음) 그때 그분이 저의 간절함을 보신 건지 결국 부탁을 들어주셨죠. 이 카메라로 멋진 사진 많이 남기라면서요. 그분께 정말 감사해요.” 이십 대에 접어든 임민수 대표는 스튜디오에서 본격적으로 일하며 사진작가로서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故 김해림 작가. 늘 자신보다 타인이 우선이었던, 항상 넓은 마음으로 후배들을 다독이던 그를 존경하며 닮고 싶었다고. 임 대표는 그를 등대 삼아 사진에 더욱 몰두하게 됐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으로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사진을 처음 찍던 것처럼 제 인생도 갈피를 못 잡았던 것 같아요. 당시 함께 일했던 김해림 작가님은 사진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서 저를 이끌어준 분입니다. 진심으로 존경했던 스승님이자 닮고 싶은 선배였고, 좋은 형이었어요. 생전에 친근하게 형이라고 불러드리지 못했던 것이 아직도 후회됩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故 김해림 작가를 추억하며 앞으로도 그를 위해 사진을 촬영하겠다고 다짐한 임민수 대표. 그는 반짝이는 감정들을 사진 속에 담아내고자 했던 김 작가의 가치를 39.5°c를 통해 이어가고 있다. 사진 속에 사람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겼을 때, 사진으로써 진정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임민수 대표. 그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묻어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매 순간 노력 중이다. “촬영에 임하기 전, 카메라 앞에 선 분들께 꼭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오늘은 사진 찍는 날이 아니라 신나게 웃고 데이트하는 날이라고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특별한 하루를 맞은 이들을 위해 촬영에 몰두하다 보면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것 같다는 임 대표. 촬영을 마친 하루의 끝, 무거운 장비를 든 채 홀로 돌아갈 때는 말로 표현 못 할 허탈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사진에 만족하는 이들을 보는 순간이 가장 기쁘다며 웃어 보였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영정사진이 없어 아주 오래된 사진을 썼었어요. 그 당시에도 사진 찍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영정도 찍어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습니다.” 당시에 남은 후회 때문일까, 그는 앞으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영정사진을 전문적으로 촬영해보고 싶다고. 더불어 다문화가정이나 형편이 어려워 가족사진조차도 남기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촬영을 진행해보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물건은 쓸수록 닳지만, 감정은 쓸수록 는다고 했던가. 임 대표는 끝으로 많은 이들이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며 자신처럼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에 후회하지 않기를 바랐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살아가길 바라요. 진심 어린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순간순간의 사랑하는 마음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표현하다 보면 감정이 더욱 풍부해지지 않을까요? 전 앞으로도 그런 감정들을 사진 속에 담아내는 사람이고 싶어요.” [1064]
    • 문화
    2019-02-01
  • 꽃으로 피워낸 인생 제2막! 위로의 꽃, 행복한 삶으로 피어나다 - 김미라 까사 플라워마켓 대표
    꽃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한다. 수많은 꽃 중 ‘고귀함’이라는 꽃말을 가진 목련은 모두가 웅크린 겨울날, 가장 먼저 꽃을 틔워 봄이 오는 소식을 알린다. 추운 겨울을 버텨내고 홀로 힘겹게 순백색의 꽃을 피워내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목련. 봄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추위가 이어지는 겨울의 한가운데, 이러한 목련꽃처럼 많은 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따스하게 녹이는 장소가 있다. 향기로운 꽃을 통해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는 곳, 까사 플라워마켓의 김미라 대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정효빈기자 지친 삶을 일으킨 꽃 꽃을 다루며 삶의 의미 되찾아 어린 시절 김미라 대표는 꽃과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어머니 곁에서 성장했다. 그녀 역시 꽃을 가까이하며 청년 시절을 보냈지만, 결혼 이후 육아와 살림에 매진하며 자연스레 꽃을 다루는 일도 줄어들었다. 자기 자신은 잊은 채 가족만을 위해 헌신하던 그녀가 다시금 꽃을 가까이하게 된 계기는 또다시 어머니였다. 암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어머니가 ‘예쁘게 꽃을 피워보라’며 동양란 하나를 남기고 그녀의 곁을 떠난 것. 이후 우울증에 시달리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김 대표는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꽃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다. 무언가를 새로 배우기엔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꽃이 주는 위안이 계속해서 꽃을 찾게 했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온전히 나를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김 대표. 그 길로 그녀는 까사스쿨 제인파커 코스와 안단테블룸스쿨 벤자민 코스를 수료하며 플로리스트의 꿈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꽃을 다루며 진정으로 행복해하는 그녀를 본 남편이 선물 같은 공간을 마련해준 것이 현재의 까사 플라워마켓. 꽃을 다루며 김 대표의 삶에도 다시금 생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꾸준함이 만든 신뢰 대구에서도 다양한 수입 생화 선보이고파 꽃이 주는 매력에 깊게 빠져든 김미라 대표는 전 세계의 수많은 꽃을 접하며 대구 지역민들에게도 다양한 꽃을 보여주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잎이 시들기 전 싱싱한 생화를 내륙지방까지 들여오는 과정에는 예상보다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따랐다. “운영 초반에는 새벽마다 차를 몰고 서울의 수입꽃 도매시장을 직접 찾아가 꽃을 내려왔어요. 꽃이 시들지 않게 빠르게 대구로 내려와 그 꽃들을 컨디셔닝 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말 그대로 녹초가 되더라고요. 하지만 도중에 그만두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서울의 꽃시장 상인들이 지방상인들과의 직거래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수익을 문제로 돌연 거래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팔리지 않고 시들어가는 꽃들을 보며 처음에는 초조한 마음을 가졌지만, ‘지금은 신뢰를 쌓는 기간’이라는 남편의 말에 큰 힘을 얻었다. 금전적 손실을 떠안으면서도 매주 먼 거리를 오가는 그녀를 보며 서울 상인들의 마음도 점차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해를 보면서도 꾸준히 꽃을 사러 서울까지 올라가던 어느 날 상인분들이 그러시더라고요. 고생 그만하시라고. 본인들이 꽃을 직접 내려 보내주시겠다고요.” 이런 김 대표의 노력으로 까사 플라워마켓에서는 대구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종류의 수입 생화를 최상의 상태로 만나볼 수 있다. 꽃과 함께하는 생활이 자연스러워지길 김미라 대표가 진행 중인 클래스는 수강생 본인만의 스타일에 스토리를 입혀 자신만의 취향이 녹아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여러 가지 꽃을 접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갈 수 있도록 수강생들을 이끌고 있다. 더불어 꽃을 구매할 때에도 꽃의 종류와 포장 재료 하나까지 고객이 직접 선택하게 해 자신만의 취향이 담긴 상품을 받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여기엔 사람들이 꽃을 직접 선택하고 구매하는 것에 익숙해져 많은 이들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꽃이 스며들길 바라는 김 대표의 바람이 녹아있다. 마트에 진열된 다양한 상품처럼 꽃 한 송이도 편하게 구매하는 문화가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까사 플라워 ‘마켓’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다는 김미라 대표. 그녀는 끝으로 꽃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꽃의 대중화가 이루어졌으면 한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꽃을 보며 화를 내는 사람은 없잖아요? 특별한 날에만 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늘 꽃과 함께하며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1064]
    • 문화
    2019-01-31
  • “한복을 통해 우리 전통의 가치와 정신을 이어가겠습니다” 한복의 아름다운 가치를 담아내는 이름, 하늘빛우리옷 - 김인숙 대표
    30여 년 동안 한복 디자이너로서 오로지 한길만 고집해 걸어온 김인숙 대표. 그는 한복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미학을 바탕으로 한복을 세계에 알리며 문화 교류 역할을 수행해 귀감이 되어 온 인물이다. 우리나라 전통의 명맥을 이어간다는 자긍심을 높여 더욱 나아가겠다는 김인숙 명인의 스토리를 조명해 본다. _김정은 기자 “한복의 선과 색채에는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가 서려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전통과 역사의 명맥을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한복의 전통성은 살리고, 현대미(美)를 가미해 한복의 세계화와 대중화에 기여하겠습니다.” 한복 디자이너로서 32년 동안 국내외 저명한 전시회와 패션쇼를 통해 꾸준히 한복의 미를 알려온 김인숙 대표. 2015 한국문화예술인총연맹에서 주최한 ‘문화예술인대상 전통한복 부문 대상’을 수상해 명인으로 선정, 2016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수상에 이어 국제평화대상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은 인물이다. 지난날을 떠올리면 고된 기억도 있지만, 우리나라 전통의 명맥을 이어간다는 자부심과 배움에 대한 즐거움으로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며 온화한 미소를 보이는 그. 한복과 땔 수 없는 인연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33년 전 아리랑 한복을 시작으로 한복사업을 영위하게 되었습니다. 시대의 흐름과 젊은 층의 감성에 접근하고자 8년 전 ‘하늘빛 우리옷’으로 상호를 변경했어요. 푸른 하늘색을 연상하게 하는 고운 색을 사용할 때는 ‘하늘의 옷을 지은 것 같다’는 평가를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웃음).” 김 대표는 놀랍게도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86아시안게임’ 당시 개막식에서 정통 한복이 등장했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우리나라의 전통을 고스란히 담은 한복의 고고한 자태에 한눈에 매료되었습니다. 한복을 입는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엄청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우리 전통의상을 세계 각국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당시 부산의 동구 범일동에서 유명한 사업가로 이름이 알려진 친오빠와 형부의 도움으로 김 대표는 한복사업에 입문하게 됐다. 이전에도 섬유와 의류산업이 활발했던 범일동을 자주 왕래하며 한복과 나름 친숙하기는 했지만, 기술적인 부분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오로지 자신감만으로 한복사업에 도전한 것. “처음 열흘 동안 한 명의 손님도 없이 홀로 가게를 지키면서 ‘아,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낮은 자세로 시장 안 주단부에 인사를 돌기 시작하며 한복 복식에 대한 이론부터 실습까지 전국을 다니며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나이 겨우 28세.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상인들 사이에서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에 후회를 남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배움의 자세를 갖춰 멀리 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충무 누비 반두루마기’가 그의 눈에 띄었다. 정통성은 그대로 반영하되 옷에 놓을 자수를 남다르게 디자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옷은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처럼 팸플릿이나 한복 책자가 없던 시기라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판로가 약했어요. 보이는 곳곳에 사진을 붙여 두거나, 주단부에 부탁해 달아 두었더니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단골이 착용한 옷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들어 올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김 대표의 옷을 우연히 공항에서 보았다며 외국에서 본인의 치수 정도만 알려주고 여러 벌의 옷을 주문해간 사람도 있었다. “그 고객과의 우정은 끈끈하게 오랫동안 유지돼 보람된 기억으로 남는다”며 그녀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86아시안게임’에 등장한 한복의 고고한 자태에 매료돼 의지와 자긍심을 한 땀 한 땀 새긴 하늘빛 우리옷 국내를 넘어 국제 행사에서 한복의 아름다움 알리다 지금이야 온라인으로 검색만 해도 수두룩하게 얻을 수 있는 게 정보지만, 당시만 해도 그 흔한 한복 잡지도 구하기 힘들었던 때였다. 하지만 그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전공서 등을 독파했고, 민속미인선발대회를 비롯해 한복을 입고 출전하는 대회나 행사는 모두 찾아다니며 사진을 촬영해 앨범을 만들었다. 타 디자이너들의 한복 감각과 흐름을 읽어 내고자 한 것.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른 매장과 차별화된 인테리어에도 몰두하며 고객과의 관계에 가장 큰 심혈을 기울였다. “유연성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고객의 첫인상을 비롯해 피부 톤과 미세한 체형 차이, 그리고 사소한 취향 하나까지도 모두 파악해 옷을 지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복은 단순히 판매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의복이니까요.” 그의 의지와 자긍심은 한 땀 한 땀 한복에 담기기 시작했고, 야무진 솜씨는 이내 사람들의 눈에 띄어 입소문으로 번졌다. 혼수 보따리를 품에 안고 치수를 재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며 주변에서는 디자인과를 전공해 한복을 잘한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이 모든 게 1년 6개월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틈에도 김 대표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돈을 버는 것에 전전긍긍하지 않았던 터라, 사업부흥만으로는 아쉬움이 남았다. 한복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목표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 더 많이, 더 깊이 한복에 대해 알고 싶었던 그는 원광대학교 한복 복식학과를 지원, 복식과 색채, 문양에 대해 연구하며 정통의 바탕 위에 자신의 한복 작업을 체계화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김 대표의 노력과 실력은 국내를 넘어 국제 행사에서 더욱 빛을 내기 시작했다. 헝가리와 러시아, 온두라스, 달라스, 코스타리카, 호주, 캐나다 등의 대사와 그 부인들이 김 대표의 옷을 입곤 했는데 특히 코스타리카 대사와의 인연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며 일화를 공개했다. “코스타리카 대사 내외분의 옷은 제가 해마다 지어드렸습니다. 남다른 패션 감각을 지닌 멋진 분이셨죠.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 대사님께서 연설시 저를 직접 무대에 불러 최고의 의상을 제작해준 디자이너라고 소개해 주셨어요. 덕분에 타임지에 함께 소개되는 영광까지 얻게 되었습니다(웃음).” 김 대표가 지은 한복에 감동한 그는 자국으로 초대하는 초대장을 보내기까지 했단다. 또한 그녀는 미세스코리아선발대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주목받기도 했는데, 더욱 이목을 끌었던 사실은 ‘하늘빛 우리옷’에서 디자인한 한복을 착용한 후보들이 퀸과 진, 선, 미를 모두 석권했던 것이었다고. 한복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입는 것 민족의 얼·정체성을 지닌 전통 한복을 보전해야 미적인 감성과 철학, 사상이 반영된 한복드레스 진전 이룰 것 이처럼 전통 한복을 통해 우리나라를 알리는 문화 교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온 김인숙 대표는 현대에 맞게 한복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복 고유 이미지가 심하게 훼손되고 변질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얼핏 보기엔 한복과 비슷해도 엄연히 한복이라 부를 수 없는 옷들이 대부분이더군요. 지나치게 상업적인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만들어진 국적 불명의 퓨전 한복들이 정통성을 훼손하고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특히 경복궁과 북촌마을, 전주한옥마을은 관광지로 유명해 외국인들이 자주 찾아 우리나라 한복을 대여해서 입고 관광을 하는데 소위 퓨전 한복이라는 왜곡된 한복으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매우 안타까워요.” 우리 것을 지켜야 한류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아니겠냐는 김인숙 대표는 혼례 시 입는 한복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의견을 표했다. “예로부터 혼례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일컬을 만큼 인생의 가장 큰 행사이지요. 헌데 요즘은 웨딩드레스에 비중을 많이 두면서 우리 전통 혼례복의 개념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물론 전통혼례복을 고집하라는 의견은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이 결혼을 통해 기대되는 모든 소망과 기원을 색과 문양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한복의 의미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소재와 전통 방식으로 만든 한복의 착용과 관리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감수한다면 격식을 갖춰야 할 곳에 한복만큼 아름답고 우아한 의복은 없습니다. 한복의 미적인 감성뿐만 아니라 철학과 사상이 반영된 전통을 살려, 젊은 층에게 한복 드레스를 알리는 데 저 역시 앞장서 노력하겠습니다.” 한복의 멋을 다음 세대에도 온전하게 물려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김인숙 대표. 우리나라 전통을 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한복의 산업화ㆍ세계화ㆍ대중화에 아낌없이 노력해 온 그의 다음 걸음이 기대된다. ■ 주요경력 •1988 월간 아름다운 우리 옷 출품 •1989 한국민속미인선발대회 작품 수상 •1990 한국불교방송 한복패션쇼 참가 •1999 부산 가야고등학교 교복 선발업체 선정 •2002~2018 한국미세스코리아선발대회 심사위원 위촉 •2002, 2006 한국미세스코리아선발대회 작품 대상 수상 •2003 한국문화예술진흥회 우리 옷 연구가 위촉 •2004 여성봉사단체 부산목련회대표 봉사상 •2007 인천 세계의상페스티벌 부산 대표 디자이너 참가 •2007, 2009 인천 세계의상페스티벌 각국 대사 의상 제작(코스타리카, 헝가리, 러시아) •2008 세계 의상패션페스티벌 부산 대표 디자이너 •2008 원광디지털대학을 빛낸 인물 선정 공로패 수상 •2009 사단법인 한지문화진흥회 디자이너 금상 •2009 아태 정상회의 귀빈 두루마기 제작 •2009 한국 전통한복 문화원 금상 •2009 인천 세계의상페스티벌 최우수 디자이너 수상 •2010 전통한복작품대회 최우수상 •2015 한국문화예술대상 명인 수상 •2016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수상 •2016 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 •2017 국제평화대상 •2018 한국문화예술감사패 [1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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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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